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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번역 134

고부 후 태조 황제 위로 조칙 (태조 6년 정축년 3월 8일 신유일, 참찬문하부사 안익, 동지중추원사 김희선, 예문춘추관 학사 권근이 가지고 옴.)

태조의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 강씨(康氏)의 죽음을 애도하며 명나라 황제가 내린 위로의 조칙(慰勅)과 관련된 기록입니다. 태조 6년(1397년) 3월 8일에 안익(安翊), 김희선(金希善), 권근(權近)이 조칙을 가지고 왔으며, 이후의 상황과 권근이 지은 글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신이 도착하여 왕의 첫 번째 부인 강씨의 죽음을 듣고, 아, 슬프도다! 왕께서는 반드시 밤낮으로 그리워하시어 스스로 그치지 못하실 것이니, 어찌 그러하겠는가? 옛날 가정을 이루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부인의 훌륭한 내조가 있었으니, 삼한(三韓)의 어머니로서의 모범이 된 분이 강씨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지금 사람은 죽었으나 그 자취는 남아 있으니, 어찌 그리워하지 않고 스스로 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옛날 생존..

가상 시호 옥책문 (태종 8년 무자년 9월 6일 신해일, 존시를 더함. 즉 태조 발인 전날. 태종 11년 신묘년 6월 2일 신묘일에 임금이 면복을 갖추고 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옥책을 올림. 찬성사 이천우를 봉책사로 삼음.)

태종 8년(1408년) 9월 6일 신해일에 신의왕후 한씨에게 존시(尊諡)를 추가로 올리는 옥책문(玉冊文)입니다. 태조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날에 거행된 의식이며, 이후 태종 11년(1411년) 6월 2일 신묘일에 면복(冕服)을 갖추고 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옥책을 올리는 의식이 다시 거행되었습니다. 이때 이천우(李天祐)가 봉책사(奉冊使)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지극한 은혜를 영원히 생각하오니, 감격하고 슬픈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높고 아름다운 칭호를 추가로 올리오니, 지극히 높고 숭상하는 것입니다. 삼가 옛 법도를 따라, 효성스러운 정성을 펼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신령스럽고 아름다운 자질을 타고나시고, 순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덕은 하늘의 근원(乾元)과 부합하니, 마치 도산씨(塗山..

추상 시호 죽책문 (태조 7년 무인년 9월, 정종 선위, 11월 11일 계미일, 우정승 김사형을 봉책사로, 정당문학 하륜을 부사로 보내 문소전에 책을 올림. 태조 즉위 초에 절비로 추존되었으나 책문은 전해지지 않음.)

태조 7년(1398년) 9월에 정종이 선위(禪位)를 받은 후 11월 11일 계미일에 신의왕후 한씨에게 시호(諡號)를 추가로 올리는 죽책문(竹冊文)입니다. 태조 즉위 초에 절비(節妃)로 추존되었으나, 이후 시호를 다시 정하여 올리는 의식에 사용된 글입니다. 당시의 책문은 전해지지 않고, 이 글만 남아 있습니다. 예(禮)보다 더 큰 것은 이름을 바로잡는 것(正名)이고, 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본에 보답하는 것(報本)입니다. 이에 말씀을 짓는 전례를 따라, 감히 시호를 정하는 의식을 행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성모(聖母) 한씨께서는 하늘의 조화로운 기운을 받으시고, 땅의 순리에 부합하셨습니다. 인륜의 근본을 바로 세우시어, 영원히 아름다움을 주셨고, 왕의 교화의 기틀을 도우시어, 그 후손을 크게 번..

중각비 부기 (영종 20년 갑자년 11월)

신의왕후 한씨의 제릉(齊陵)에 세워진 비석을 다시 새긴 후 그 내용을 덧붙인 기록, 즉 ‘중각비부기(重刻碑附記)’입니다. 영종 20년(1744년) 11월에 작성되었으며, 이전에 세워졌던 비석이 임진왜란 이후 훼손되어 그 내용을 다시 새기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 이곳은 바로 우리 태조 강헌대왕의 원비(元妃) 신의왕후 한씨의 제릉입니다. 갑좌경향(甲坐庚向)의 방향입니다. 태종 계미년(1403년) 2월에 길창군 신 권근이 비문을 지어 올렸고, 갑신년(1404년) 2월에 비석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이후로 다만 지장(誌狀, 묘지명)에 기록된 글만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 임금(영종) 17년 신유년(1737년)에 도신(道臣, 지방 관찰사)이 옛 비석을 다시 세울 것을 청하는 일이 있었으나, 그때는 일이..

제릉 신도비명 병서 (태종 3년 계미년 10월)

예로부터 제왕이 천명을 받아 일어섬에는 반드시 현명한 배우자(妃匹)의 도움을 받아 덕을 함께하고 경사를 길러 그 사업을 영원히 하였습니다. 하나라에는 도산씨(塗山氏)가 있어 하나라 우왕(禹)이 능히 뒤를 잇게 하였고, 주나라에는 태사(太姒)가 있어 주나라 무왕(武王)이 크게 계승하였으니, 우왕과 문왕(文王)이 하늘과 짝하는 제사를 지낸 것은 이로 말미암은 것이 영원하였습니다. 아, 훌륭하도다!우리 신의왕후께서는 천성이 맑고 아름다우시며, 땅의 덕(坤德)은 부드럽고 정결하셨습니다. 일찍이 용연(龍淵, 태조의 옛 지명)에 시집오시어 왕업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거룩한 성인을 낳으시어, 끝없는 통치를 드리우셨습니다. 신령한 공덕과 아름다운 모범은 옛날과 비교해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홀로 애석한 ..

추상 시호 옥책문 (숙종 9년 계해년)

숙종 9년(1683년)에 태조 이성계에게 시호(諡號)를 추가로 올리는 옥책문(玉冊文), 즉 ‘추상시호옥책문(追上諡號玉冊文)’입니다. 이미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라는 시호를 받았던 태조에게 ‘정의광덕(正義光德)’이라는 시호를 추가하는 내용입니다.  **계해년 6월 임신 초하루부터 12일 계미까지, 효증손(孝曾孫) 임금 신 (숙종의 휘)은 삼가 다시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룁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큰 기틀을 처음 세우시어 하늘과 짝하는 엄숙한 제사를 받으시고, 높고 빛나는 칭호를 더하시어 빛나는 날의 아름다운 문장을 올립니다. 삼가 정성을 펼치오니, 어찌 다 칭송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하옵건대 태조 강헌 지인 계운 성문 신무 대왕께서는 자질이 뛰어나게 성스러우시고, 운..

문소전 악장 (세종 15년 계축년)

세종 15년(1433년)에 문소전(文昭殿)에서 사용된 악장(樂章)입니다. 문소전은 태조 이성계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이 악장은 태조를 기리는 제향에서 연주되었을 것입니다. (환환곡(桓桓曲) - 초헌(初獻)에 사용)빛나고 빛나신 성조(聖祖, 태조)시여, 하늘의 명을 널리 펼치셨습니다. 공덕은 예로부터 빛나고, 상서로운 징조에 부합합니다. 하늘과 사람이 함께 순응하니, 동방(東方)을 모두 차지하셨습니다. 후세에 풍족한 계책을 남기시니, 우리에게 끝없는 은혜를 베푸십니다.(유황곡(維皇曲) - 아헌(亞獻)에 사용)오직 넓으신 하늘은 사방의 나라를 살피시어, 동쪽 백성을 돌보십니다. 덕 있는 이를 도우시어, 신과 사람의 주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화목한 백성들은 깊은 은혜를 우러러 봅니다. 고려의 운수가 장차 다..

종묘 악장

종묘 제향(宗廟祭享)에서 사용된 악장(樂章)입니다. 특히 태조 이성계의 신주를 모신 종묘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악장은 여러 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곡은 특정한 의식 절차에 맞춰 연주되었을 것입니다. (융화(隆化) - 초헌(初獻)에 사용)아, 거룩하신 성조(聖祖, 태조)시여! 뛰어난 덕을 이어받으셨습니다. 인(仁)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시고 의(義)로 복종하게 하시니, 신의 교화가 널리 미쳤습니다. 저 멀리 섬 오랑캐(왜구)와 그 산 오랑캐(여진)까지도, 아름다운 덕으로 품으니, 따르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배로 건너오고 사다리를 타고 오니, 정성껏 우리에게 끊임없이 조공을 바칩니다. 아, 혁혁하신 그 신령스러움이여! 가까이는 편안하게 하시고 멀리는 엄숙하게 하시네.(선위(宣威) - ..

부묘시 악장 (태종 10년 경인년 7월 26일 신묘일에 거행하다.)

태종 10년(1410년) 7월 26일에 태조 이성계의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모실 때 사용한 악장(樂章)입니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태조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것은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의례였습니다. 아아, 황고(皇考, 돌아가신 아버지)시여! 하늘로부터 도우심을 받으셨습니다. 문덕(文德)과 무공(武功)은 후세에 이어져 앞을 빛내셨습니다. 아, 혁혁(赫赫, 빛나는 모양)하십니다. 종묘에 계시니, 처음 제사를 삼가 올립니다. 이처럼 흠모하고 이처럼 제향(祭享)을 드리오니, 천만 년 동안 이어지리이다.(지어 올린 신하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이 짧은 악장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태조의 공덕 찬양: “하늘로부터 도우심을 받으셨습니다.”라는 구절..

사시고 (무자년 9월 29일 갑술일에 사신이 시고를 가지고 왕궁에 이르니, 임금이 면복을 입고 맞이하여 예를 갖추어 받았으며, 상복을 입고 문소전에서 분황례를 행하다.)

명나라 황제가 태조 이성계에게 시호(諡號)를 내리는 조서(詔書), 즉 ‘사시고(賜諡誥)’입니다. 태종 8년(1408년) 9월 29일에 사신이 시고(諡誥)를 가지고 왕궁에 도착하였고, 태종은 면복(冕服)을 입고 맞이하여 예를 갖추어 받았으며, 상복을 입고 문소전에서 분황례(焚黃禮)를 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짐(朕, 황제의 자칭)은 삼가 하늘의 명(命)을 받아 만방(萬方, 온 세상)을 다스리니, 넓고 편안하게 하여 인심(人心)을 화합하게 하고, 현명한 덕(德)을 표창하여 다스림을 일으키니, 온 세상 안팎을 한결같이 공정하게 여긴다. 하물며 변방의 신하로서 훌륭한 자가 이처럼 운명(殞歿)하는 때를 당하였으니, 반드시 포상(褒賞)하고 구휼(救恤)하여 칭찬하고 기리는 뜻을 보여야 한다. 이에 조선 국왕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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