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태종대왕의 성스러운 덕과 신령한 공적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으뜸이며, 나이가 아직 높지 않은데 성자(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셨습니다. 바야흐로 편안히 지내시며 영화로운 봉양을 받으시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니, 우리 전하(세종)께서 슬픔으로 몸이 상할 정도로 예를 다하셨습니다. 5월에 원경왕태후의 헌릉에 합장하였으니, 이는 (태종의) 유언을 따른 것입니다. 능은 광주 치소의 서쪽 대모산 아래 건해(乾亥) 방향의 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북쪽으로 서울에서 30여 리 떨어져 있습니다. 삼가 살펴보니 산은 장백산에서 뻗어 내려와 수천 리를 지나 상주의 속리산에 이르러 서북쪽으로 꺾여 또 수백 리를 지나 과천의 청계산에 이르렀고, 또 동북쪽으로 꺾여 한강을 등지고 멈추니, 이곳이 바로 대모산입니다. 대지의 신령한 기운이 머무르고, 맑은 기운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습니다. 아!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 원릉의 길한 조짐을 기다린 것인가!
전하께서 능의 손(巽) 방향 63보 되는 곳에 큰 비석을 세워 덕과 아름다움을 기록하여 후세에 빛을 드리우도록 명하셨습니다. 또 개국, 좌명, 정사 공신의 이름과 차례를 적어 비석 뒷면에 새기도록 명하셨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옛날부터 왕의 일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세상을 빛낸 신하가 때에 맞춰 나와 큰 사업을 이루었습니다. 이에 공을 기록하는 종묘, 솥에 새기는 등의 전례가 있었으니, 이는 영원히 잊히지 않도록 하고 오랜 세월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왕조 임신년의 건국과 무인년, 경진년의 평정은 실로 하늘이 우리 태종을 도와 조선 만억 년 무궁한 복의 기반을 마련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장수와 재상들이 몸을 잊고 목숨을 바쳐 보필하고 도운 힘이 많았습니다. 마땅히 굳건한 돌에 새겨 영원한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니, 후세 사람들이 이를 보고 우리 전하께서 선대의 공적을 드러내고 큰 공훈을 기리는 지극한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문관 제학 신 윤회가 기록하다.
핵심 내용:
- 태종의 장례와 헌릉의 위치 및 풍수지리적 의미
- 비석 건립의 목적과 비음 기록의 내용
- 개국, 좌명, 정사 공신들의 공적을 기리는 의미
- 세종의 선대 공훈을 기리는 지극한 효심 강조
이 부분은 비석 뒷면에 새겨진 기록으로, 태종의 장례와 능의 위치를 설명하고 비석을 세운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태종의 업적뿐 아니라 개국, 좌명, 정사 공신들의 공적을 함께 기리는 이유를 설명하며, 세종의 효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헌릉의 풍수지리적 의미를 부여하여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개국공신)
익안대군 방의(芳毅), 문하좌시중 배극렴(裵克㢘), 영의정부사 조준(趙浚), 상락부원군 김사형(金士衡), 흥안군 이제(李濟), 의안대군 화(和), 판한성부사 정희계(鄭煕啓), 청해군 이지란(李之蘭), 의성군 남은(南誾), 화산부원군 장사길(張思吉), 정당문학 정총(鄭揔), 한산군 조인옥(趙仁沃), 의령부원군 남재(南在), 의정부 우의정 정탁(鄭擢), 지중추원사 김인찬(金仁贊), 판삼사사 윤호(尹虎), 상산군 이민도(李敏道), 호조전서 조영규(趙英珪), 복흥군 조방(趙胖), 한천부원군 조온(趙溫), 남양군 홍길민(洪吉旼), 옥천부원군 유창(劉敞), 평성부원군 조견(趙狷), 지중추원사 황희석(黃希碩), 흥녕부원군 안경공(安景恭), 계림군 김균(金稛), 서성군 유원정(柳爰廷), 성산부원군 이직(李稷), 영성군 오사충(吳思忠), 안평부원군 이서(李舒), 한산부원군 조영무(趙英茂), 완성군 이백유(李伯由), 흥원군 이부(李敷), 연성군 김로(金輅), 고성군 고려(高呂), 동원군 함부림(咸傅霖), 서원부원군 한상경(韓尙敬), 상호군 한충(韓忠), 여천부원군 민여익(閔汝翼), 동지중추원사 조기(趙琦).
(정사공신)
의안대군 화(和), 익안대군 방의(芳毅), 상당군 이저(李佇), 영의정부사 조준(趙浚), 상락부원군 김사형(金士衡), 진산부원군 하륜(河崙), 한산부원군 조영무(趙英茂), 완원부원군 이양우(李良祐), 봉녕부원군 복근(福根), 청해군 이지란(李之蘭), 화산부원군 장사길(張思吉), 한천부원군 조온(趙溫), 연성군 김로(金輅), 의정부 우의정 정탁(鄭擢), 완산부원군 이천우(李天祐), 중추원 부사 장철(張哲), 취산군 신극례(辛克禮).
정리:
이 부분은 조선 건국과 왕조 안정에 공을 세운 신하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 가지 부류의 공신, 즉 개국공신과 정사공신을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 개국공신: 조선 건국에 직접적인 공을 세운 인물들입니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데 기여한 인물들로, 정치, 군사,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습니다.
- 정사공신: 왕자의 난 이후 태종의 왕위 계승을 확립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들입니다. 태종을 지지하며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왕권 강화를 도운 인물들입니다.
이 명단을 통해 조선 건국 초기의 정치 상황과 태종의 왕위 계승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같은 인물이 개국공신과 정사공신 모두에 포함된 경우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안대군 화, 익안대군 방의, 조준, 김사형, 이지란, 장사길, 조온, 김로, 정탁 등은 두 목록 모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는 이들이 조선 건국뿐 아니라 태종의 왕권 확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좌명공신)
상당군 이애(李薆) (구 이름은 이저(李佇)), 진산부원군 하륜(河崙), 한산부원군 조영무(趙英茂), 취산군 신극례(辛克禮), 계성군 이래(李來), 의안대군 화(和), 완원부원군 이양우(李良祐), 창녕부원군 성석린(成石璘), 완천군 이숙(李淑), 청해군 이지란(李之蘭), 칠성군 윤지(尹柢), 참판 승추부사 김영렬(金英烈), 파평군 윤곤(尹坤), 금천군 박은(朴訔), 평양군 박석명(朴錫命), 장흥군 마천목(馬天牧), 한천부원군 조온(趙溫), 길창군 권근(權近), 의정부 좌의정 이원(李原), 성산부원군 이직(李稷), 문성부원군 유량(柳亮), 한평부원군 조반(趙泮), 평양부원군 김승주(金承霔), 마성군 서익(徐益), 남양군 홍서(洪恕), 칠원부원군 윤자당(尹子當), 형조판서 이승상(李升商), 연성군 김정경(金定卿), 이성군 서유(徐愈), 장천부원군 이종무(李從茂), 병조판서 이응(李膺), 풍산군 심귀령(沈龜齡), 곡산부원군 연사종(延嗣宗), 면성부원군 한규(韓珪), 희천군 김우(金宇), 월천군 문빈(文彬), 여산군 송거신(宋居信), 증 동지중추원사 김덕생(金德生).
정리:
이 목록은 태종의 왕위 계승에 공을 세운 좌명공신들의 명단입니다. 좌명공신은 왕자의 난 이후 태종이 왕위를 굳건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로 구성됩니다. 이들은 군사적 공헌뿐만 아니라 정치적 책략을 통해 태종을 지지하고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명단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알 수 있습니다.
- 다양한 계층의 인물: 왕족(의안대군 화), 문신(하륜, 권근, 이원 등), 무신(이지란, 이종무, 이응 등)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좌명공신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태종의 왕위 계승이 특정 계층의 지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 개국공신과의 중복: 앞서 언급된 개국공신 명단과 비교해 보면, 일부 인물(예: 의안대군 화, 이지란, 조온, 이직 등)이 좌명공신에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이들이 건국 초기뿐만 아니라 태종의 왕위 계승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의미합니다.
- 왕실 외척의 존재: 성석린, 심귀령 등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은 외척들도 좌명공신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왕실의 안정을 위해 외척 세력의 지지가 중요했음을 보여줍니다.
- 공신 책봉의 확대: 개국공신에 비해 좌명공신의 수가 훨씬 많습니다. 이는 태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공신 책봉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을 시사합니다.
이 명단은 조선 초기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특히 태종의 왕위 계승 과정과 그 이후 왕권 강화 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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