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곳은 바로 우리 태종 공정대왕의 헌릉입니다. 능 아래 옛 신도비가 있었으나, 병화(兵火: 전쟁으로 인한 재앙)를 겪어 돌에 새긴 글씨가 깎이고 떨어져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우리 전하(숙종)께서 즉위하신 지 20년 되는 갑술년 봄 2월, 능에 나아가 참배하시고 돌아보시며 탄식하시며, 다시 기덕(紀德: 덕을 기록함)하는 일을 밝힐 방법을 생각하셨습니다. 이에 담당 관청에 명하여 새 돌을 다듬어 옛 글을 다시 새기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재건청(重建廳)을 설치하고, 예조와 공조의 관원들이 그 일을 맡아 감독하고 다스렸습니다. 다음 해 을해년 5월에 공사가 완료되었음을 보고하니, 좋은 날을 택하여 옛 비각을 헐고, 처마와 기둥을 늘려 옛 비석과 함께 나란히 세웠습니다. 대개 옛 비석은 변계량이 지었고, 권홍이 비석의 머리글씨(篆額)를 썼으며, 윤회가 비석 뒷면(碑陰)을 기록하였으나, 오직 비석의 글씨를 쓴 사람의 성만 기록되어 있고, 그 아래 글자가 빠져 누구의 이름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비문과 음기는 《열성지상통기(列聖誌狀通紀)》에 자세히 실려 있으므로, 지금 《통기》에 실린 내용을 따라 다시 새기되, 혹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은 비석에 새겨진 것을 따랐으니, 신중한 뜻을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아! 우리 선왕의 가정을 다스려 나라를 이룬 위대한 업적과 우리 전하께서 선조를 받들고 효를 생각하는 덕은, 이로부터 만대에 빛나리니, 하늘과 더불어 끝이 없을 것입니다.
대제학 신 박태상이 기록하다.
핵심 내용:
- 헌릉 신도비의 중각(다시 새김) 경위
- 기존 비석의 훼손 및 재건 필요성
- 숙종의 명에 의한 비석 재건 과정
- 기존 비문의 저자, 머리글씨 쓴 사람, 비음 기록자 명시
- 《열성지상통기》를 참고하여 비문을 다시 새김
- 선왕의 업적과 숙종의 효심 찬양
이 기록은 숙종의 명으로 헌릉의 신도비를 다시 새긴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존 비석이 전쟁으로 인해 훼손되어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워지자, 숙종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비석을 다시 세우도록 명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옛 비문의 저자와 글씨를 쓴 사람, 비음 기록자를 명시하고, 《열성지상통기》라는 역사서를 참고하여 내용을 복원하려 한 노력을 보여줍니다. 또한, 마지막에는 선왕(태종)의 업적과 숙종의 효심을 함께 칭송하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숙종 대에도 선왕에 대한 존경과 숭모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AI번역 > 열성지장통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저 부교 (建儲副敎)(날짜는 위와 같음.) (0) | 2024.12.19 |
---|---|
왕세자 책봉 책문(정종 2년 경진년 2월 4일 기해, 정안공을 왕세자로 책립하다. 군국(軍國)의 중대한 일에 해당한다. ○ 교명은 전하지 않는다.) (0) | 2024.12.19 |
비음기 (碑陰記) (비석 뒷면에 새긴 기록) (0) | 2024.12.19 |
헌릉 신도비명 (머리말과 함께 씀. ○ 세종 6년 갑진년 5월) (0) | 2024.12.19 |
*행장 (세종 4년 임인년(1422년), 형조판서 이발 등을 보내 행장을 가지고 경사(京師, 명나라 수도)에 가서 부고를 알리고 시호(諡號)를 청하였다. ○ 지문(誌文, 묘지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0) | 2024.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