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이르기를, “세자를 세우는 것은 나라의 근본을 바로잡는 것이요, 지위를 높이는 것은 인심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이에 전장(典章)을 따라 책례(冊禮)를 거행한다. 오직 너 정안공(태종의 이름)은 문무를 겸비하고 덕은 영명하다. 태상왕(태조)께서 나라를 세우실 초기에 큰 의리를 제창하였고, 과인(寡人, 정종 자신)이 사직을 안정시킨 날에는 특별한 공을 세웠다. 여러 사람의 칭송이 돌아가는 바이고, 마땅히 백성을 다스리는 임무를 맡아야 하므로, 너를 왕세자로 명한다. 아! 사람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고, 아들 노릇하기도 어렵다. 친족으로서 현명함으로 이미 종통을 이을 지위에 처해 있으니, 오직 충성과 효도로써 정치를 보좌하는 방도를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에 가르쳐 보이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지어 바친 신하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왕세자 죽책문 (옛 책에는 이 글을 《봉왕세자책문》에 실어 놓고, 위에는 태조의 명령이라고 의심된다고 주석을 달았으나, 지금 그 뜻을 살펴보니 경진년에 내린 명령이 아닌 듯하다. 아마도 무인년 가을, 종친과 장상들이 태종을 세자로 책봉해 줄 것을 청하려 할 때, 특별히 지었으나 쓰지 않은 것이 아닌가! 사실을 자세히 알 수 없으므로, 지금 일단 여기에 덧붙여 싣고, 후일의 고증을 기다린다.))
나라가 처음 생김에는 진실로 나라를 지키는 굳건함에 의지하고, 예법을 행함에는 마땅히 나라의 그릇(임금의 자리)을 맡을 만한 현명한 이를 세운다. 옛 법을 살펴보니, 모두 이 도리를 따랐다고 한다. (중략) 성품은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며, 기상은 온화하고 문학적이라, 모두 으뜸가는 훌륭함이라고 칭송하고, 일찍이 삼선(三善)의 덕을 드러냈다. 장차 너에게 책봉을 내리니, 장차 나를 대신하여 종통을 이어야 한다. 돌이켜 생각건대 오직 사랑에 빠져 미혹되어, 이에 변란을 일으키고 서로 공격하게 되었으나, 네가 뛰어난 계책을 내어 화란의 근본을 제거하였다. 네 공덕을 살펴보니, 백성을 다스릴 만하다. 이에 너를 왕세자로 명하고, 보책(寶冊)을 내린다. 너는 그 마음을 공경히 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이겨내어, 신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종묘사직의 기반을 영원히 굳건히 하라.
신 이첨(관직명은 고찰하지 못함)이 짓다.
정리:
이 기록은 태종이 왕세자로 책봉될 당시의 책봉문 두 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첫 번째 책봉문 (정종 2년 경진년): 정종이 태종의 공덕을 칭송하며 세자로 책봉하는 내용입니다. 태조의 건국 초기의 공헌과 정종 대의 공헌을 언급하며, 태종의 문무겸전한 능력과 백성을 다스릴 만한 덕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두 번째 책봉문 (시기 미상): 이 책봉문은 시기가 명확하지 않지만, 내용으로 보아 태종이 왕자의 난 이후 세자로 책봉될 상황에서 작성되었으나 실제로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변란을 진압한 태종의 공을 언급하며 세자로 책봉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오직 사랑에 빠져 미혹되어, 이에 변란을 일으키고 서로 공격하게 되었으나, 네가 뛰어난 계책을 내어 화란의 근본을 제거하였다.”라는 구절은 왕자의 난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두 책봉문을 비교해 보면, 첫 번째 책봉문은 정종의 입장에서 태종을 공식적으로 세자로 책봉하는 내용인 반면, 두 번째 책봉문은 왕자의 난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며 태종의 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책봉문은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정치 상황과 태종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첨이라는 인물이 두 번째 책봉문을 지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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