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이르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조상께서 인자하고 후덕하게 덕을 쌓아 큰 명을 모으셨다. 우리 개운(啓運) 신무 태상왕(태조)께서 창업하실 때에, 왕세자(태종의 이름)께서는 밝은 지혜로 먼저 기미를 아시고, 천명을 분명히 아시어, 먼저 큰 의를 제창하여 큰 업을 세우셨으니, 우리 조선의 개국은 오직 그대의 공이 실로 많았다. 그러므로 처음에 세자를 세우자는 의논이 있을 때, 온 세상의 기대가 모두 그대에게 돌아갔으나, 뜻밖에 권간(權姦)이 어린 서자(庶子)를 세우려 하여 장차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 하였다. 하늘이 그 속마음을 깨닫게 하시어, 계책을 세워 평정하게 하시어 종묘사직을 안정시키셨으니, 우리 조선의 다시 세움 또한 오직 그대의 공에 힘입은 것이다. 나라는 그때 이미 그대의 것이 되었으나, 이에 겸손함을 지키며 태상왕께 아뢰기를, 과인(정종)이 부족하나 맏아들의 자리에 있으니, 명하시어 왕위를 맡기시니, 과인이 사양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여, 힘써 정사를 맡은 지 이제 3년이다. 하늘의 뜻이 허락하지 않으시고, 인심이 따르지 않으며, 가뭄과 메뚜기 재앙이 일어나고, 요사스러운 기운이 거듭 이르렀다. 이는 모두 과인의 어리석음과 덕이 부족한 탓이니, 두렵고 두려워하며 위아래로 부끄러움이 있다. 더구나 과인은 본래 풍습병을 앓고 있어, 많은 정사에 어지러우니, 정신을 쓰고 업무에 대응하다가 병이 더욱 심해질까 두렵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덕 있는 이에게 맡겨, 위로는 하늘의 마음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뜻을 위로하고자 한다.
너 왕세자는 강직하고 밝은 덕을 타고났고, 용기와 지혜의 자질을 갖추었다. 인의는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효성과 형제애는 지극한 본성에서 나왔으며, 학문은 의리에 정통하고, 뛰어난 계략은 변화에 합당하다. 진실로 뛰어난 지혜는 무리와 뛰어나고, 이에 겸손하고 공손함은 더욱 신중하다. 일찍이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만한 도량을 가지고, 난을 다스리고 바로잡는 공을 이루었다. 온 세상의 칭송이 돌아가는 바이고, 종묘사직이 의지할 바이니, 오직 어질고 덕이 있으니, 마땅히 큰 통치를 이어받아야 한다. 과인은 왕위를 물려주어 그대에게 전한다. 과인은 장차 사저로 물러나 편안히 쉬면서 몸을 보존할 것이다. 아! 하늘과 사람의 마음은 반드시 덕 있는 이에게 따르고, 종묘사직의 통치는 마땅히 지극히 가까운 친족에게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대로 이어가는 것은 실로 예로부터 지금까지의 통례이다. 그대는 더욱 덕에 힘쓰고, 밤낮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부지런히 하여, 만세에 허물이 없게 하라. 그러므로 이에 가르쳐 보이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참찬문하부사 신 권근이 짓다.
핵심 내용:
- 정종이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이유 (자신의 부덕, 질병, 천재지변, 태종의 공덕과 능력)
- 태종의 업적과 덕망에 대한 칭송 (개국 공헌, 정사 공헌, 뛰어난 지혜와 덕)
- 태종에게 왕위를 계승할 것을 명하고, 백성들을 잘 다스릴 것을 당부
- 정종은 사저로 물러나 편안히 지낼 것임을 밝힘
- 선위의 정당성을 역설 (천심, 민심, 종통 계승의 원칙)
이 교서는 정종이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종은 자신의 부덕과 질병, 그리고 잇따른 천재지변을 이유로 들며, 태종의 뛰어난 능력과 공적을 강조합니다. 특히 태종이 조선 건국과 왕조 안정에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태종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태종에게 백성을 잘 다스릴 것을 당부하고, 자신은 사저로 물러나 편안히 지낼 것임을 밝힙니다. 마지막으로 선위의 정당성을 역설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권근이 지은 이 글은 태종의 즉위를 정당화하고, 새로운 왕조의 안정적인 출발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