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AI번역 134

애책문(태종 12년 임진년. ○ 실록에 따르면 7월 20일 계묘일에 정안(定安)이라는 시호를 올렸으나, 책문은 전해지지 않고, 지문 또한 전해지지 않는다.)

영락(永樂) 10년 임진년(壬辰年, 1412년) 6월 갑인삭(甲寅朔) 25일 무인일에 순덕대비(順德大妃)께서 훙서(薨逝)하셨다. 이에 8월 초8일 경신일에 후릉(厚陵)으로 좌정(座定, 신주를 모시는 것)하게 되니, 예(禮)에 따른 것이다. 빈궁(殯宮)은 새벽을 향하고, 영거(靈輴, 영구차)는 떠나려 하니, 별과 달이 처참하게 어지럽게 늘어서 있고, 의장(儀仗)은 엄숙하게 종횡으로 벌어져 있다. 우리 성상(聖上, 태종)께서는 왕후(王后)의 의(義)를 중히 생각하시고, 장례를 치르는 정성을 깊이 하셨다. 이에 책문(冊文)을 짓게 하여, 아름다운 명성(休聲)을 기록하게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오직 우리 대비(大妃)께서는,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셨네. 하늘이 내린 진실한 성품으로, 정숙하고 아름다움을 ..

왕대비 상존호 책문(정종 2년 경진년 11월, 태종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12월에 책봉하였다.)

보우(保佑, 보호하고 도움)의 은혜가 융성하니, 어머님의 도리(母儀)가 이에 드러나네. 존숭(尊崇, 높이고 숭상함)의 예(禮)가 갖추어졌으니, 자식의 도리(子道)를 다하는 것이네. 이에 떳떳한 법(彝章)을 들어, 정성스러운 효심(誠孝)을 펼치고자 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덕비(德妃) 전하께서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성품을 타고나셨고, 공손하고 검소한 마음을 간직하셨습니다. 덕행(德行)을 행하심은, 일찍이 안을 다스리는 아름다움을 드러내셨고, 어진 마음을 따르시니, 친족에게 인자함을 베푸는 것을 돈독히 하셨습니다. 실로 자애로운 은혜(慈庥)에 힘입어, 큰 업적(洪緖)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루 말하기 어려운 덕을 드러내고자 하니, 아름다운 칭호를 더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臣, 신하)은 큰 소원을 이기지 못..

봉덕비 책문(태조 7년 무인년 9월, 정종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11월 18일 경인일, 책봉하였는데, 좌정승 조준을 봉책사로 삼고, 참찬문하부사 이거이를 부사로 삼았다. ○ 교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주역(周易)》에는 〈함괘(咸卦)〉와 〈항괘(恒卦)〉를 통해 인륜(人倫)을 바로잡고, 《예기(禮記)》에는 명분(名分)을 엄격히 하여 배필(配匹)을 중히 여겼다. 이에 옛 법전(彝典)을 살펴보아, 아름다운 칭호(徽稱)를 세우고자 한다. 김씨(金氏, 정안왕후)는 단정하고 성실하며 굳세고, 그윽하고 한가하며 정숙하고 조용하다. 일찍이 안방의 도리를 세웠으니, 그 집안을 잘 다스릴 것이고, 아름답고 성대한 맏며느리의 예의를 갖추었으니, 우리 종실의 일을 잘 받들 것이다. 서얼(庶孼)의 난이 일어났을 때, 모든 내조(內助)를 다하여 위태로움을 구제하였다. 이미 안방의 법도에 부족함이 없으니, 풍속 교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왕의 덕비(德妃)로 명하고, 보책(寶冊)을 내린다. 아! 순임금은 규수(嬀汭)에서 아..

후릉 표석 음기(앞면에는 큰 전서체로 “조선국 정종대왕 후릉. 정안왕후 부좌”라고 새겨져 있다.)

정종 공정의문장무온인순효대왕(定宗恭靖懿文莊武溫仁順孝大王)은 원나라 지정(至正) 17년 정유년(丁酉年, 1357년) 7월 초하루에 탄생하셨다. 처음에는 영안군(永安君)에 봉해졌고, 명나라 홍무(洪武) 31년 무인년(戊寅年, 1398년)에 왕세자(王世子)에 책봉되었다. 9월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건문(建文) 2년 경진년(庚辰年, 1400년) 11월에 태종(太宗)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영락(永樂) 17년 기해년(己亥年, 1419년) 9월 26일에 승하(昇遐)하였다. 경자년(庚子年, 1420년) 정월 3일에 풍덕(豐德) 동쪽 흥교동(興敎洞) 계좌(癸坐)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재위 기간은 2년이고, 상왕(上王)의 지위에 있었던 기간은 20년이며, 향년 63세였다. 명나라에서 내린 시호는 공정(恭靖)이다.왕비 순..

추상 시호 옥책문(숙종 7년 신유년)

유세차(維歲次) 신유년(辛酉年, 1681년) 12월 경진삭(庚辰朔) 초이레 병술일(丙戌日)에 효증손(孝曾孫) 사왕(嗣王) 신(臣, 숙종의 이름)이 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말씀을 올립니다.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아름다운 이름을 내리는 것은, 남긴 은택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음을 보이는 것이고, 절의와 은혜로 시호를 올리는 것은, 이미 신주를 옮긴 뒤에 빠진 의식을 추행(追行)하는 것입니다. 책보(冊寶)가 이에 진열되었으니, 신과 사람이 모두 기뻐합니다.삼가 생각하옵건대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 정종의 시호)께서는 어려운 시기에 업적을 이루셨고, 중화(重華, 요순시대의 태평성대)에 합당한 도를 행하셨습니다. 나라의 큰 계획을 도우시어, 온갖 어려움과 험난함을 겪으셨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부묘시 악장(세종 3년 신축년 12월 18일 정미일)

아! 크신 임금이시여! 우리(선조)의 빛나는 업적을 이으셨네. 돈독한 효성과 우애로, 이 동방(우리나라)을 보존하셨네. 제기(祭器)는 가지런하고, 악기는 장엄하네. 바라건대 그를 도우시어, 끝없는 복을 내려 주소서.(찬진한 신하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추가 설명:부묘(祔廟):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모시는 의식. 왕이나 왕비가 죽은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주를 종묘에 옮겨 모시는데, 이를 부묘라고 한다.악장(樂章): 의식이나 행사에서 연주되는 음악의 가사.噫嘻(噫嘻): 감탄사. 슬픔이나 탄식을 나타낼 때 쓰인다. 옛 기록에는 '噫(아)'로만 되어 있기도 하다.렬광(烈光): 빛나는 업적. 여기서는 선조(先祖)들의 업적을 의미한다.독효우(篤孝友): 돈독한 효성과 우애.변두(籩豆): 제기에 쓰이는 ..

성조황제 사제사시 고유(세종 2년 경자년 4월 12일 경술일, 사신이 제문과 제물을 가지고 혼전에 도착하자, 태종과 세종이 흰옷, 검은 띠, 익선관 차림으로 맞이하여 예를 행하였다.)

황제(명나라 영락제)가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조량(趙亮)과 행인(行人) 이절(易節)을 보내어 조선국 전 권서국사(前權署國事) 이(李, 정종의 이름)에게 제사를 지내며 다음과 같이 유시(諭示)하였다. “그대는 온순하고 순박하며 돈후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선을 좋아하며, 조정(朝廷, 명나라)을 존경하기를 오래도록 그치지 않았다. 일찍이 나이가 높아 집에서 편안히 쉬게 하였으니, 영화와 귀함을 누리고, 장수하고 건강하며 편안하였다. 정사(政事)는 한가로이 만년을 보내기를 기약하였고, 이 태평성대를 즐기려 하였는데, 어찌 한 번의 병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가? 먼 곳의 신하를 생각하니, 매우 슬프고 아프다. 특별히 은휼(恩恤)의 전례를 높여, 그대에게 시호(諡號)를 내려 공정(恭靖)이라 하고, 사람을 보내..

상왕 제 빈전 문(기해년 10월 초엿새 정축일)

하늘이 성스러운 조상을 내시어 동방(東方, 우리나라)을 처음 세우셨네. 큰 업적을 이어받아 우리에게 한없이 큰 은혜를 베푸셨네. 의(義)로는 부자(父子)요, 친(親)으로는 형제(兄弟)이셨네. 훈지(壎篪)가 서로 화합하듯, 함께 편안함을 누리셨네. 어찌 이리 불행하게, 영원히 형상과 목소리를 감추셨는가? 아! 슬프도다! 무엇으로 마음을 삼아야 하는가? 외롭고 슬픈 마음으로, 슬퍼하고 애통함이 매우 깊네. 이에 변변치 못한 제물을 드리오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오직 영령(靈靈)께서 위에 계시니, 바라건대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직접 지었으나 누가 대신 지었는지는 지금 알 수 없다.)추가 설명:빈전(殯殿):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신을 모셔 둔 곳.훈지(壎篪): 훈(壎)은 질나팔, 지(篪)는 대나무 피리. ..

애책문(기해년)

영락(永樂) 17년 기해년(己亥年, 1419년) 9월 계묘삭(癸卯朔) 26일 무진일(戊辰日)에 인문공예상왕(仁文恭睿上王, 정종)께서 정침(正寢)에서 승하하시어 인덕궁(仁德宮)에 빈소(殯所)를 마련하였고, 시호(諡號)를 올려 온인공용순효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이라 하였다. 이듬해 경자년(庚子年, 1420년) 정월 경자삭(庚子朔) 초사흘 임인일(壬寅日)에 후릉(厚陵)에 장사지냈으니, 예(禮)에 따른 것이다. 빈전(殯殿)은 새벽을 향하고, 영구(靈柩)가 장차 떠나려 하니, 희미한 달빛은 명정(銘旌)을 비추고, 차가운 바람은 흰 상여의 끈을 스치네. 사왕(嗣王) 신(臣, 세종의 이름)은 삼가 조상의 의식을 받들어 잠시 시간을 늦추며, 신선이 타는 수레를 붙잡을 수 없음을 슬퍼하고, 임금의 용안을 영원히 이별함을 ..

시책문(세종 원년 기해년. ○ 실록을 살펴보면, 성종 을미년에 무림군(茂林君) 선생(善生) 등이 상소하여 “예종(睿宗) 기축년에 공정(恭靖)이라는 묘호를 희종(熙宗)이라고 고쳐 부르고, 장차 세조(世祖)와 함께 종묘에 모시려 하였는데, 이미 명령이 내려졌다.”라고 하였으나, 그 일이 《예종실록》에 보이지 않으니 의심스럽다.)

영락(永樂) 17년 기해년(己亥年, 1419년) 12월 신미삭(辛未朔) 24일 갑오일(甲午日)에 사왕(嗣王) 신(臣, 세종의 이름)이 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말씀을 올립니다. 신이 듣자 하니 뜻을 이어 일을 계승하는 것은 창업(創業)의 계책을 잘 따르는 것이고, 은혜를 베풀고 이름을 바꾸는 것은 삼가 추숭(追崇)의 예(禮)를 따르는 것이라 합니다. 지극한 소원을 이기지 못하여 이에 아름다운 칭호를 올립니다.삼가 생각하옵건대 돌아가신 상왕(上王, 정종)께서는 온순하고 겸손하며 공손하시고, 너그럽고 어지시며 지혜로우셨습니다. 무위를 떨쳐 적을 제압하시고, 문덕(文德)을 펴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셨습니다. 큰 업적을 빛내어 아름다운 명을 받으셨습니다. 온화한 기운을 아래에 베푸시어 항상 효경(孝敬)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