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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번역 134

종묘 악장 (宗廟樂章)

사제(思齊)의 성모(聖母, 원경왕후를 높여 부르는 말)는, 능히 하늘의 굳셈과 짝하시네. 그 난리를 평정하심에, 도우신 계책은 진실로 훌륭하시네. 아! 아름다우신 정명(貞明, 곧고 밝음)이여! 끝없는 도움을 열어 주시네. (정명.)(지어 바친 신하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해석 및 해설:이 악장은 원경왕후 민씨를 기리는 종묘 제향에서 사용된 음악의 가사입니다. 앞서 번역한 옥책문, 애책문 등과 맥락을 같이 하며, 특히 원경왕후의 공덕 중에서도 태종을 도와 나라의 혼란을 평정하는 데 기여한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사제(思齊)의 의미 재확인: 앞서 언급했듯이, “사제”는 《시경(詩經)》의 〈사제(思齊)〉에서 유래한 말로, 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기리는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원경왕후를 태임에 비유하여..

추상존호 옥책문 (追上尊號玉冊文)(세종 6년 갑진년 7월 초하루 갑술일에, 좌의정 이원에게 명하여 책을 올리게 하였으니, 즉 종묘에 부묘하기 열하루 전이다.)

지극한 은혜는 갚을 길이 없어, 다만 슬픈 마음만 간절하오며, 아름다운 칭호를 높이는 것은, 이에 아름다움을 돌려드리는 일을 힘쓰는 것이옵니다. 이에 떳떳한 법도를 따라, 이에 훌륭한 규범을 엄히 하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타고난 바탕은 바르고 아름다우시며, 지키신 행실은 공경하고 순하셨습니다. 마음은 오로지 땅의 두터움과 같으시어, 아름다운 덕을 집안을 다스리는 데 드러내셨고, 도는 하늘의 근원과 짝하시어, 성대한 공렬을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밝히셨습니다. 이에 《관저(關雎)》의 교화를 펴시어, 드디어 《린지(麟趾)》의 상서로움을 이루셨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다행히 큰 복을 입어, 아름다운 업적을 외람되이 이었사옵니다. 이에 삼가 특별한 칭호를 올리는 의식을 거행하여, 영원히 사모하는 정성을 ..

애책문 (哀冊文)(경자년.)

영락 18년 경자년 7월 정묘 초하루부터 열흘째 되는 병자일에, 후덕왕대비께서 수강궁에서 돌아가시어, 별전에 빈소(殯所)를 마련하였고, 석 달 열이레가 지난 임오일에, 헌릉에 장사 지냈으니, 예법에 따른 것이다. 빈전(殯殿)은 아침을 향하고, 관을 모신 궁궐이 비로소 열리니, 깃발이 길에 가득하고, 종묘(祖庭)에서 예를 받드네. 흰 달은 밝으나 처량하고, 찬 바람은 불어 슬프고 쓸쓸하네. 성상(임금, 세종)께서는 하늘을 부르며 영원히 사모하시고, 땅을 치며 슬픔을 더하시며, 신선의 수레를 바라보시나 돌아오지 않으니, 자애로운 가르침을 영원히 듣지 못함을 아파하시네. 이에 법도를 명하여, 효성스러운 마음을 펼치게 하셨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하늘의 근원은 비롯됨을 주관하고, 땅의 도리는 순히 받드네. ..

시책문 (諡冊文)

이 부분은 원경왕후 민씨 사후에 그녀의 시호(諡號)를 정하고 올리는 의식에 사용된 시책문입니다. 시호는 죽은 왕이나 왕비, 신하 등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붙이는 이름입니다. 두 개의 시책문이 실려 있는데, 첫 번째는 실제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두 번째는 지어졌으나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첫 번째 시책문 (세종 2년 경자년):영락 18년 경자년 9월 병인 초하루부터 열나흘째 되는 기묘일에, 슬픈 아들 국왕 신(세종의 이름)이 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아뢰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바른 자리에 거하여 존귀함을 이루고, 안의 다스림을 이루었으니, 이름을 바꾸어 시호를 정하는 것은, 마땅히 후세에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삼가 옛 법을 따라, 아름다운 칭호를 올리려 합니다. 삼가 생각하옵..

악장 (樂章)(날짜는 위와 같음.)

사제(思齊, 문왕의 어머니 태임을 기리는 말)의 대비는, 오직 덕의 행실을 행하시네. 재상의 도리는, 이에 그 이룸을 보는 것이네. 이에 그 경사를 돈독히 하시니, 능히 그 후손을 번창하게 하시네. 복록을 편안히 하시니, 이로써 장수를 누리시네.(지어 바친 신하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해석 및 해설:이 악장은 앞서 번역한 왕대비 상존호 옥책문과 같은 날(세종 즉위 초년 무술년 11월)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경왕후 민씨의 덕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는 짧은 시입니다. 옥책문과 함께 의례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사제(思齊)의 의미: “사제”는 《시경(詩經)》의 〈사제(思齊)〉에서 유래한 말로, 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기리는 말입니다. 태임은 현명하고 덕이 높은 여성으로, 후세의 여성..

왕대비 상존호 옥책문 (王大妃上尊號玉冊文)(세종이 선위 받은 첫 해 무술년, 진책관 남재, 진보관 유정현.)

영락 16년 무술년 11월 정미 초하루부터 여드레째 되는 갑인일에, 국왕 신(세종의 이름)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삼가 책문을 받들어 아뢰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하늘의 두터운 은혜를 받듦에 있어서, 비록 성대한 덕을 이름 짓기 어렵사오나, 효자의 지극한 정은, 오직 어버이를 높이는 것을 가장 크게 여깁니다. 삼가 예문의 옛 법을 따라, 작은 정성과 존경을 펼치고자 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왕대비 전하께서는 부드럽고 은혜로우며 편안하고 정숙하시고, 자애롭고 온화하며 삼가고 신중하십니다. 《주남(周南)》의 아름다운 교화를 근본으로 삼으시고, 지중(摯仲)의 아름다운 가르침을 이으셨습니다. 경계하고 삼가함을 어김이 없이, 능히 서로 돕는 도리를 다하셨고, 수고로움이 끝이 없어, 낳아 기르신 은혜..

봉정비 옥책문 (封靜妃玉冊文)(태종 원년 신사년 정월 초10일 경오일에, 참찬문하부사 권근에게 명하여 책보를 내리게 하였다. ○ 옛 기록에는 “봉왕비책(封王妃冊)”이라 하였으나, 중궁(왕비)을 단지 “왕비”라고 칭한 것은 세종 임자년부터 시작되었으므로, 지금 바로잡는다. ○ 교명은 전하지 않는다.)

왕의 교화의 근본은, 반드시 집안의 바름에서 시작되고, 종묘 제사의 계통은, 진실로 배필의 존귀함과 관계된다. 이에 떳떳한 법도를 거행하여, 빛나는 책에 기록하고자 한다. 생각하건대 그대 정빈 민씨는 깊고 조용하며 정숙하고 고요하며, 진실로 한결같고 단정하다. 머리를 묶어 부부가 된 이후로, 일찍이 집안을 다스리는 덕을 드러내었고, 능히 계책을 결정하고 갑옷을 갖추어, 나라를 안정시킨 공을 도왔다. 이에 큰 사업을 잇게 되었으니, 또한 안의 도움이 많았다. 이에 어려웠던 시절의 은혜를 잊지 않고, 아름다운 왕비의 예의를 높이고자 한다. 아! 집안이 만년토록 이어져, 번성하고 평화로운 복을 길이 누리고, 왕실의 혈통이 백세토록 이어져, 영원히 후손에게 풍족함을 남기는 계책을 내릴 것이다.(지어 바친 신하의..

봉왕세자정빈 책문 (封王世子貞嬪冊文)(정종 2년 경진년 3월 초4일 기사. ○ 교명은 전하지 않음.)

배필을 중히 여기는 것은, 인륜을 두텁게 하는 것이요, 위계와 칭호를 높이는 것은, 명분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에 성대한 전례를 따라, 아름다운 칭호를 세우고자 한다. 이에 민씨에게 이르노라. 명문세가에서 태어나, 군자(태종)의 배필이 되었도다. 일찍부터 부드럽고 아름다운 법칙을 드러내었고, 항상 고요하고 한결같은 마음을 지녔도다. 잘못됨이 없고 법도에 어긋남이 없이, 안에서 음식을 주관함에 정하고 길하며, 반드시 경계하고 삼가하여, 안의 도움을 다하여 엄숙하고 화목하게 하였도다. 이미 풍속과 교화의 근원을 돈독히 하였으니, 마땅히 종묘 제사를 받들어야 할 것이다. 이로써 너를 왕세자 정빈으로 책봉하노라. 아! 매번 《계명(鷄鳴)》의 경계를 나아가게 하니, 덕스러운 말씀을 어기지 말 것이며, 영원히 《린..

지문 (誌文)(세종 2년 경자년.)

삼가 살펴보건대 태후 민씨는 여흥의 명문 집안이다. 고려 문하시랑 평장사 문경공 민영모로부터 6대를 내려와 황고조(皇高祖, 고조할아버지) 민종유에 이르렀으니, 의릉(毅陵)의 재상으로서 도첨의시랑 찬성사를 지냈고, 시호는 충순(忠順)이다. 충순은 황증조(皇曾祖, 증조할아버지) 판밀직사사 시호 문순(文順) 민적을 낳았고, 문순은 황조(皇祖, 할아버지) 대광 여흥군 민변을 낳았으며, 대광은 황고(皇考, 아버지) 순충동덕찬화공신 보국숭록대부 여흥부원군 수문전 대제학 영예문춘추관사 시호 문도(文度) 민제를 낳았다. 황비(皇妣, 어머니) 송씨는 삼한국대부인에 봉해졌으니, 고려 중대광 여량군 송선지의 딸이다. 을사년 7월 정묘일에 송경 철동의 사저에서 태후를 낳았다.태후는 태어나면서부터 어질고 아름다우셨으며, 총명함..

추상 시호 옥책문 (追上諡號玉冊文)(숙종 9년 계해년.)

계해년 6월 임신 초하루부터 열이틀째 되는 계미일에, 효증손(孝曾孫)인 사왕(嗣王) 신(숙종의 이름)이 삼가 다시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아뢰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높고 큰 업적은 만대에 영원히 드리워져,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새로워지고, 빛나는 칭호는 백 년 동안 더욱 높여져, 빠진 전례를 이에 거행하옵니다. 이에 보첩(寶牒, 옥책)을 펼쳐, 떳떳한 법도를 밝히고자 하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태종 공정 성덕 신공 문무 광효 대왕께서는 예지와 지혜가 뛰어나시고, 영웅적인 무용은 세상에 비할 데 없으셨습니다. 당나라의 운수가 처음 열릴 때, 하늘의 뜻은 이미 진왕(당 태종)에게 향하였고, 한나라의 도가 장차 흥하려 할 때, 인심은 진실로 대저(한 광무제)에게 속하였습니다. 큰 계책을 결단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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