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永樂) 17년 기해년(己亥年, 1419년) 9월 계묘삭(癸卯朔) 26일 무진일(戊辰日)에 인문공예상왕(仁文恭睿上王, 정종)께서 정침(正寢)에서 승하하시어 인덕궁(仁德宮)에 빈소(殯所)를 마련하였고, 시호(諡號)를 올려 온인공용순효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이라 하였다. 이듬해 경자년(庚子年, 1420년) 정월 경자삭(庚子朔) 초사흘 임인일(壬寅日)에 후릉(厚陵)에 장사지냈으니, 예(禮)에 따른 것이다. 빈전(殯殿)은 새벽을 향하고, 영구(靈柩)가 장차 떠나려 하니, 희미한 달빛은 명정(銘旌)을 비추고, 차가운 바람은 흰 상여의 끈을 스치네. 사왕(嗣王) 신(臣, 세종의 이름)은 삼가 조상의 의식을 받들어 잠시 시간을 늦추며, 신선이 타는 수레를 붙잡을 수 없음을 슬퍼하고, 임금의 용안을 영원히 이별함을 애통해 합니다. 이에 신하에게 명하여 큰 덕을 기록하게 하였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 위대하신 태조(太祖)께서 큰 업적을 처음 세우셨네! 우리 선왕(先后, 정종)께서는 밝게 계승하고 이으셨네! 효성과 우애로운 마음으로 화목을 돈독히 하셨네! 잠저(潛邸, 왕위에 오르기 전의 거처)에 계실 때, 도와주신 일이 매우 많으셨네! 이 왜적(倭賊)을 굴복시키시니, 백성들이 무기를 내려놓았네! 큰 성공을 이루시니, 은혜가 초목에까지 미쳤네! 이에 오랜 병환으로 인해, 부지런하고 삼가시는 데 지치셨네! 덕이 있는 이에게 양보하시어, 일찍이 정사를 푸셨네! 이에 오직 위대한 성군(聖君, 태종)께서, 천명을 받아 왕위에 오르셨네! 20년 동안, 다스리는 도가 크게 융성하였네! 문왕(文王)에 비견되시니, 역대의 왕위를 이으셨네! 이에 지금의 아름다움에 이르기까지, 계도(啓迪)하지 않음이 없었네! 오직 덕의 빛이요, 오직 공의 빛남이네! 한가롭게 지내시며 몸을 기르시니, 기이(期頤, 100세)를 누리실 줄 알았네! 어찌 하루아침에, 영원한 이별을 남기셨는가! 아! 슬프도다! 임금의 자리(宸扆)를 보니 마치 계신 듯한데, 남기신 활과 칼(遺弓劍)은 어찌 이리 갑작스러운가! 두 성인(二聖, 태조와 태종)께 슬픔을 드리니, 온 백성에게 슬픔이 모이네! 아! 슬프도다! 아! 세상에 살아있는 것은 만 가지로 다르지만! 모두 변화를 타고 돌아가니, 오직 신성한 분의 남기신 큰 업적은, 천지와 더불어 사라지지 않네! 아! 슬프도다!
(찬진한 신하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추가 설명:
- 애책문(哀冊文): 왕이나 왕후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글.
- 명정(銘旌): 죽은 사람의 관직, 이름, 행적 등을 적어 관 앞에 세우는 깃발.
- 고불(縞紼): 흰 상여의 끈.
- 사왕(嗣王): 왕위를 이은 임금, 여기서는 세종을 가리킨다.
- 잠저(潛邸): 왕위에 오르기 전 왕자의 거처.
- 기무(機務): 중요한 국가의 사무.
- 천조(踐阼):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것.
- 희흡(煕洽): 매우 융성함.
- 계도(啓迪): 가르치고 이끌어 줌.
- 기이(期頤): 100세.
- 신이(宸扆): 임금의 자리.
- 유궁검(遺弓劍): 임금이 남긴 활과 칼. 여기서는 임금이 남긴 유품을 의미하며, 곧 임금의 죽음을 상징한다.
- 이성(二聖): 여기서는 태조와 태종을 가리킨다.
이 애책문은 정종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으로, 정종의 공덕과 갑작스러운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태조를 도와 공을 세운 일,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일 등을 언급하며 정종의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애통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태조와 태종 두 성인에게 슬픔을 드린다는 표현과 온 백성에게 슬픔이 모였다는 표현을 통해 정종의 죽음이 나라 전체의 큰 슬픔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종의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