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AI번역/열성지장통기 92

시책문 (諡冊文)(세종 4년 임인년.)

영락 20년 임인년 9월 초하루부터 이틀째 되는 병진일에, 고아(孤哀)인 세자(후에 왕이 된) 신(臣, 세종의 이름)이 삼가 다시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말씀을 올립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큰 덕과 높은 공은, 예로부터 뛰어나셨고, 큰 이름은 후세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삼가 떳떳한 법도를 따라 아름다운 칭호를 올립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신공태상왕(태종)께서는 총명하고 신성하시며, 용맹하고 지혜로우시며 너그럽고 인자하시어, 고려의 운수가 이미 다했을 때, 천명이 어디에 속할지 아셨습니다. 태조를 보필하시어 만세의 기틀을 여셨고, 명나라 황제를 뵙고 특별히 세 번이나 후한 대접을 받으셨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기미를 밝히시어, 종묘사직의 영원한 안녕을 이루셨습니다. 어버이를 사랑하..

악장 (樂章)(날짜는 위와 같음.)

아! 훌륭하신 태상왕이시여! 덕스러운 말씀이 크게 밝으시네. 아름다운 업을 잘 이으시어,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 참으로 많으시네. 공이 이루어지고 다스림이 안정되니, 예는 갖추어지고 음악은 조화롭네. 자손에게 계책을 남기시니, 세상을 태평에 이르게 하시네. 이에 아름다운 법전을 일컬으니, 존귀하고 영화로움을 드높이네. 온갖 복록을 받으시고, 장수하여 건강하시네. 영원한 세월 동안, 끝없는 복을 드리우소서.(지어 바친 신하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해석 및 해설:이 악장은 앞서 번역한 악장과 마찬가지로 태종(이때는 태상왕)의 덕과 공을 기리는 노래입니다. 다만, 이전 악장보다 내용이 더욱 풍부하고 표현이 다채로우며, 태종의 통치 전반에 걸친 업적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각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

상태상왕 호 옥책문 (上太上王 號 玉冊文)(세종 3년 신축년.)

영락 19년 신축년 9월 초하루부터 열이틀째 되는 임신일에, 국왕 신(臣, 세종의 이름)이 머리를 조아려 다시 절하며, 삼가 책문을 받들어 올립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성스러운 덕은 지극히 높으시니, 높여 숭상함이 위가 없을 것이요, 신령한 공은 지극히 크시니, 보답할 방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아름다운 칭호만이, 그 성대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상태상왕 전하(태종)께서는 나라를 여는 계책을 세우시고, 사직의 기틀을 결정하셨습니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시어, 백성을 위해 큰 기준을 세우셨고, 이웃 나라와 사대하는 일에, 세상을 바르게 하여 평화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데에는 살아 계신 듯한 정성을 다하셨고, 정사를 펼치는 데에는 백성에게 알림이 없는 ..

악장 (樂章) (날짜는 위와 같음.)

아! 훌륭하신 상왕이시여! 성대한 덕과 높은 공적이시여. 우리 성조(聖祖, 태조)를 도와 대동(大東, 우리나라)을 가지셨네. 다시 난리의 계략을 막으시고, 다스림과 가르침을 밝게 펴셨네. 용이 하늘의 명을 받으셨으니, 종묘사직이 만년토록 이어지리.(지어 바친 신하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해석 및 해설:이 악장은 상왕, 즉 태종의 덕과 공을 기리는 노래입니다. 매우 간결하고 함축적인 표현으로 태종의 업적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각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於皇上王! (아! 훌륭하신 상왕이시여!): 감탄사 "於皇(오황)"은 크고 훌륭함을 나타내며, 상왕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있습니다.盛德隆功 (성대한 덕과 높은 공적이시여): 태종의 뛰어난 덕과 높은 공을 간략하게 표현한 구절입니다.贊我聖祖, ..

상왕 상존호 옥책문 (上王 上尊號 玉冊文)(태종 18년 무술년 8월, 세종이 선위받다. 11월, 곤면(袞冕)을 갖추고 인정전에서 책보(冊寶)를 진책관 박은, 진보관 이원에게 주어 수강궁에 나아가 올리게 하다.)

영락 16년 무술년 11월 초하루부터 여드레째 되는 갑인일에, 국왕 신(臣, 태종의 이름)이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려 삼가 책문을 받들어 올립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성스럽고 신묘함은 비록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나, 신하와 자식의 정으로 반드시 아름다운 칭호를 높여야 합니다. 이에 떳떳한 법도를 들어 효심을 펼칩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상왕 전하(태종)께서는 높으신 지혜는 하늘에 짝하고, 넓고 두터우심은 땅과 같습니다. 조상(태조)을 도와 나라를 여셨고, 적장자(嫡長子)를 높여 성업을 지키셨습니다. 덕은 모든 왕보다 으뜸이시니, 순(舜)임금과 문(文)왕의 본성과 같고, 공은 만대에 높으니, 탕(湯)왕과 무(武)왕과 더불어 부합합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정성을 돈독히 하셨고, 큰 나라를 섬기고 ..

혜종 황제 봉왕 고 (惠宗皇帝 封王 誥)(태종 원년 신사년 6월 12일 기사, 사신 통정사승 장근, 문연각 대조 단목례가 와서 명령을 내리니,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을 올리고, 무일전(無逸殿)에 맞이하여 고유문을 선포하다. ○ 살펴보건대 3년 계미년 4월에 성조 황제(영락제)가 도지휘 고득 등을 보내 다시 고유문과 인장을 내렸으나, 고유문은 전하지 않는다.)

옛날의 현명한 임금이 다스림을 행할 때에는, 덕을 다하여 널리 베풀어 만방을 덮어 기르니, 모든 나라가 안팎의 구별 없이 신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군장(君長)을 세워 그 백성을 다스리게 하여, 오랑캐와 중화(中華)의 경계에 울타리가 되게 하였다. 짐(朕, 명나라 황제)이 대통을 이어받아 옛 법을 따르니, 너 조선 권지국사 이(태종의 이름)에게 묻노라. 부형의 전함을 이어 이 땅을 진정시키고 다스리며, 와서 직분을 바치고 조공을 행함에, 예의를 따르고 정성을 다하였으나, 아직 책봉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간청하기를 부지런히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너를 조선 국왕으로 명하고, 금인(金印)을 내리니, 이 동쪽 땅을 길이 다스리라. 아! 하늘에는 일정한 마음이 없고, 오직 백성을 따르고, 백성에게는 일정..

선위 교서 (禪位敎書)(경진년 11월 11일 신미, 정종이 선위하다. 판삼군부사 이무가 교서를 받들고, 도승지 박석명이 국보를 받들고 인수부(仁壽府)에 올렸다. 13일 계유에 수창궁에서 즉위하다. ○ 실록에는 “반교문(頒敎文)”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이 다소 다르다.)

임금이 이르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조상께서 인자하고 후덕하게 덕을 쌓아 큰 명을 모으셨다. 우리 개운(啓運) 신무 태상왕(태조)께서 창업하실 때에, 왕세자(태종의 이름)께서는 밝은 지혜로 먼저 기미를 아시고, 천명을 분명히 아시어, 먼저 큰 의를 제창하여 큰 업을 세우셨으니, 우리 조선의 개국은 오직 그대의 공이 실로 많았다. 그러므로 처음에 세자를 세우자는 의논이 있을 때, 온 세상의 기대가 모두 그대에게 돌아갔으나, 뜻밖에 권간(權姦)이 어린 서자(庶子)를 세우려 하여 장차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 하였다. 하늘이 그 속마음을 깨닫게 하시어, 계책을 세워 평정하게 하시어 종묘사직을 안정시키셨으니, 우리 조선의 다시 세움 또한 오직 그대의 공에 힘입은 것이다. 나라는 그때 이미 그대의 것이 되었으나, 이..

건저 부교 (建儲副敎)(날짜는 위와 같음.)

임금이 이르기를, “예로부터 임금이 세자를 세우는 것은 종묘사직을 존중하고 나라의 근본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예문에 살펴보니, 적자와 같은 어머니의 아우를 세운다는 말이 있으니, 혹은 세대를 이어가기도 하고 혹은 미치기도 하니, 오직 지극히 마땅한 것을 따를 뿐이다. 과인(정종)이 어리석게 선왕의 업을 이어받아 삼가 정치를 생각한 지 이제 3년이 되었다. 돌아보니 적자가 없고, 다만 서출의 아들만 있으니, 어둡고 약하여 지혜롭지 못하다. 매번 후계의 중요함을 생각하며, 항상 사람을 얻기 어려울까 두려워하여, 밤낮으로 두려워하고 삼가며 감히 편안히 지내지 못하였다. 오직 같은 기운의 친족을 생각하여 우애의 의리를 돈독히 하려 하였다. 뜻밖에 회안공 방간이 간사한 무리를 믿고 의심과 시기를 함부로 일으켜..

왕세자 책봉 책문(정종 2년 경진년 2월 4일 기해, 정안공을 왕세자로 책립하다. 군국(軍國)의 중대한 일에 해당한다. ○ 교명은 전하지 않는다.)

임금이 이르기를, “세자를 세우는 것은 나라의 근본을 바로잡는 것이요, 지위를 높이는 것은 인심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이에 전장(典章)을 따라 책례(冊禮)를 거행한다. 오직 너 정안공(태종의 이름)은 문무를 겸비하고 덕은 영명하다. 태상왕(태조)께서 나라를 세우실 초기에 큰 의리를 제창하였고, 과인(寡人, 정종 자신)이 사직을 안정시킨 날에는 특별한 공을 세웠다. 여러 사람의 칭송이 돌아가는 바이고, 마땅히 백성을 다스리는 임무를 맡아야 하므로, 너를 왕세자로 명한다. 아! 사람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고, 아들 노릇하기도 어렵다. 친족으로서 현명함으로 이미 종통을 이을 지위에 처해 있으니, 오직 충성과 효도로써 정치를 보좌하는 방도를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에 가르쳐 보이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할 것..

중각비 부기 (重刻碑 附記)(숙종 21년 을해년 5월)

아! 이곳은 바로 우리 태종 공정대왕의 헌릉입니다. 능 아래 옛 신도비가 있었으나, 병화(兵火: 전쟁으로 인한 재앙)를 겪어 돌에 새긴 글씨가 깎이고 떨어져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우리 전하(숙종)께서 즉위하신 지 20년 되는 갑술년 봄 2월, 능에 나아가 참배하시고 돌아보시며 탄식하시며, 다시 기덕(紀德: 덕을 기록함)하는 일을 밝힐 방법을 생각하셨습니다. 이에 담당 관청에 명하여 새 돌을 다듬어 옛 글을 다시 새기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재건청(重建廳)을 설치하고, 예조와 공조의 관원들이 그 일을 맡아 감독하고 다스렸습니다. 다음 해 을해년 5월에 공사가 완료되었음을 보고하니, 좋은 날을 택하여 옛 비각을 헐고, 처마와 기둥을 늘려 옛 비석과 함께 나란히 세웠습니다. 대개 옛 비석은 변계량..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