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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번역/열성지장통기 92

부묘 시 악장 (문종 2년 임신년 4월 10일 갑술일. ○ 구본에는 “2월 신미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찬술한 날짜를 따른 것이고, 지금 부묘일을 기준으로 바로잡는다.)

밝고 밝으신 세종이시여, 하늘의 덕이 순수하시도다. 도가 정치에 널리 미치니, 제작(制作, 제도와 문물)이 새로워졌네. 조용하고 새로운 궁궐이 있으니, 제기(祭器)가 이에 놓여 있네. 아! 밝게 오르내리시니, 사람들에게 끝없는 복을 주시네. (흠명곡)(지어 바친 신하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주요 내용 정리:세종의 덕과 업적을 찬양.새로운 궁궐에서 제사를 지내는 상황 묘사.세종의 영령이 복을 내려주기를 기원.추가 설명:이 글은 세종의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모시는 의식, 즉 부묘(祔廟) 때 사용된 악장(樂章)입니다. 악장은 제례(祭禮) 등의 의식에서 연주되는 음악의 가사를 말합니다.여기서 “부묘”란, 왕이나 왕비가 승하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 의식입니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

시호 하사 조서 (경오년 8월 18일 기축일)

봉천승운(奉天承運) 황제(명나라 황제)가 조서를 내리노라. 짐(朕)은 삼가 하늘의 명을 받아, 중국과 오랑캐를 다스리는 임금이 되어, 먼 곳을 어루만지고 충성스러운 이를 생각하며, 현명한 이를 표창하고 덕 있는 이를 기린다. 사방 만국의 무리를 차별 없이, 모두 한결같은 어진 마음으로 대한다. 하물며 제후국이 능히 하늘을 공경하고 큰 나라(명나라)를 섬기는 정성을 다하는데 있어, 조정에서는, [빠진 글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됨] 죽음을 애도하고 장례를 치르는 예법을 거행한다. 그러므로 조선 국왕 이(세종의 이름)는 예의를 지키고 행하며, [이 위아래로 빠진 글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됨] 선(善)을 즐기며 처신하였다. 공손하고 삼가 윗사람(명나라 황제)을 섬기고, 은혜와 사랑을 온 나라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

대종 황제 사제문 (경오년 8월, 사신이 도착하다. 15일 병술일, 인성전에서 사제를 행하다. 휘덕전이 좁기 때문에, 신주를 모시고 이 전에서 제사를 지내다.)

황제(명나라 대종 황제)가 태감 윤봉과 봉어 정선을 보내어 고(故) 조선 국왕 이(세종의 이름)에게 제사를 지내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은 동쪽 바닷가 나라에 거주하며, 대대로 내려오는 작위를 이어받아, 하늘을 공경하고 윗나라(명나라)를 섬기어, 충성스러운 마음을 능히 지켰으며, 국경을 보존하고 백성을 어루만져, 제후국의 기틀을 굳건히 하였다. 마땅히 장수를 누려, 영원히 백 년을 넘게 살아야 하거늘, 어찌 갑자기 이에 이르러, 홀연히 세상을 떠났는가? 부음(訃音, 부고 소식)이 멀리까지 전해지니, 참으로 애통하고 슬프게 여긴다. 이에 특별히 시호(諡號)를 장헌(莊憲)이라 내리고, 사람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게 한다. 아울러 너의 아들(문종의 이름)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하여, 너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애책문 (경오년)

용을 그린 관 덮개가 걷히고, 신기루가 새겨진 수레가 멈추니, 흰 상복의 행렬은 서릿발처럼 돌고, 붉은 깃발은 구름처럼 이끌리네. 자색 대궐의 높고 험준함을 뒤로하고, 검은 사당의 어둡고 침울함을 향하네. 매서운 바람은 울부짖고 만백성의 집에서 슬픈 소리가 들리며, 짙은 안개가 드리우니 천지의 모습이 처참하구나. 임금(문종)께서는 더욱 땅을 치는 슬픔을 더하시고, 영원히 하늘 끝까지의 슬픔을 품으시네. 멀리 진정한 세계로 떠나셨으니 붙잡을 수 없고, 높은 업적을 우러러보나 이제는 본보기만 남았네. 금으로 장식된 대궐에 슬픈 명령을 내리시고, 푸른 옥에 빛나는 덕을 드높이시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네.삼가 생각하옵건대 세종께서는, 성인(聖人)이시니 하늘이 내신 분이시네. 총명하시고 학문에 밝으시며, 인자하..

시책문 (문종 즉위 초년 경오년, 좌의정 황보인이 시책을 받들다.)

경태 원년(景泰元年, 명나라 대종의 연호) 세차(歲次) 경오년(庚午年) 5월 갑진삭(甲辰朔) 21일 갑자일에, 고아이자 뒤를 이은 왕 신(臣, 문종의 이름)이 삼가 다시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아뢰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천지의 큰 덕은, 비록 형언(形言)으로 다 표현할 수 없으나, 신하의 지극한 정은, 오직 드러내어 아름답게 하는 데 절실합니다. 삼가 항례(常例)를 따라, 아름다운 칭호를 올리옵니다.삼가 생각하옵건대 선왕(先王, 세종)께서는 지극히 거룩하고 넓고 깊으시며, 총명하고 지혜로우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학문을 힘쓰시어, 다스림의 근원을 깊이 하셨고,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시어, 정치의 큰 강령을 넓히셨습니다. 유학을 숭상하고 교화를 일으키셨으며, 농사를 장려하고 형벌을 신중히 하셨습니다. 조..

봉왕 칙서 (날짜는 위와 같음.)

황제(명나라 황제)가 조선 국왕(세종의 이름)에게 칙유(勅諭)한다. 너의 아버지(태종의 이름)는 돈독하고 노련하며, 능히 하늘의 도리를 공경하고, 조정을 공손히 섬겨, 한 나라 사람들을 위해 복을 만들었으니, 충성스럽고 순순한 정성이, 더욱 오래되어도 변치 않는다. 최근 너의 효성스럽고 형제간의 우애가 있으며 힘써 배우므로, 종묘의 제사를 계승하고 나라 사람들을 주재할 만하다고 하여, 왕위를 잇기를 청하였으므로, 특별히 그 청을 윤허하여, 너를 조선 국왕으로 삼는다. 너는 마땅히 왕위를 전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생각하고, 작록(爵祿, 벼슬과 녹봉)이 가볍지 않음을 생각하며,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충성으로써 윗사람을 섬기며, 하늘의 도리를 공경하고 삼가하여, 한 나라 사람들에게 복을 베풀면, 하늘의 ..

상왕(태종)에게 내린 칙서 (기해년 8월 17일 기축일 선칙)

황제(명나라 황제)가 전 조선 국왕(태종의 이름)에게 칙유(勅諭)한다. 왕은 지극히 성실하고 돈독하며, 조정(朝廷, 명나라 조정)을 공경히 섬기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게을리하지 않았다. 최근 셋째 아들(세종의 이름)이 효성스럽고 형제간의 우애가 있으며 힘써 배우므로, 종묘의 제사를 계승하고 나라 사람들을 주재할 만하다고 하여, 또 스스로 나이가 많아 국사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면서, 왕위를 물려주기를 청하였으므로, 짐(朕)은 왕의 식견이 밝고 통달함을 생각하여, 특별히 그 청을 윤허한다. 대대로 왕위를 잇는 것은 후손이 있는 데에 있고, 왕위를 전하는 것은 사람을 얻는 데에 있다. 이제 왕이 능히 선대의 업을 이어받고, 삼가 번복(藩服, 제후의 임무)을 지키면서, 현명하고 덕 있는 이를 ..

성조 황제 봉왕 고 (세종 원년 기해년 정월 19일 갑자일, 홍려승 유천 등이 받들고 옴)

황제(명나라 영락제)가 다음과 같이 내렸다. “제왕은 천하의 주재(主宰)가 되니, 다스리는 법도는 동인(同仁, 어짊)보다 더 넓어야 하고, 현명한 덕은 한 나라의 표본이 되니, 이치는 반드시 먼저 있고 후에 있어야 한다. 짐(朕)이 하늘의 명을 받아, 만방(萬邦)을 통치하니, 안정시키고 어루만져, 하나같이 차별 없이 대한다. 그러므로 현명하고 덕 있는 이를 뽑아, 번복(藩服, 제후의 임무)을 맡기고, 사정에 따라 마땅하게 하여, 교화의 이치를 이루니, 계승을 중하게 여기고 민심을 결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에 조선 국왕 이(태종의 이름)가 와서 아뢰기를, ‘맏아들 제(禔, 양녕대군)가 덕이 없어, 후사를 이을 수 없으므로, 셋째 아들(세종의 이름)이 효성스럽고 형제간의 우애가 있으며 힘써 배우므로, 온 ..

태종이 선위할 때 신하들에게 내린 교서 (1418년 8월 초8일 을유일에 태종이 선위하였고, 열흘 뒤 정해일에 그 사실을 널리 알렸다.)

왕(태종)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덕이 부족함에도, 태조의 큰 사업을 이어받아, 밤낮으로 두려워하며, 정성을 다해 다스리려고 노력한 지, 이미 18년이 되었다. 은택이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재앙과 변고를 초래하였으며, 또 지병이 있는데, 최근에 더욱 심해져, 정사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세자(세종의 이름)는 영명하고 공손하며 검소하고, 효성스럽고 형제간의 우애가 있으며 너그럽고 어질어, 왕위를 이을 만하다. 이미 영락(永樂) 16년 무술년 8월 8일에, 직접 대보(大寶, 왕위)를 전수하여, 모든 정사를 전담하게 하였으니, 오직 군국(軍國)의 중대한 일만, 내가 직접 처리할 것이다. 너희 중외(中外)의 크고 작은 신하들에게 고하노라! 모두 나의 지극한 마음을 헤아리고, 한마음으로..

봉왕세자 책문 (무술년 6월 17일 병신일)

(교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살펴보건대 이 해에 성조 황제(成祖皇帝, 명나라 영락제)가 내관 육선재(陸善財)를 보내 칙서(勅書)를 가지고 와 왕세자로 봉하였다. 칙서의 내용은 신도비(神道碑)에 대략적으로 나타나 있으나, 전문(全文)은 전해지지 않는다.)세자를 세우는 것은 인심에 관계되는 것이니, 실로 큰 의례이고, 훌륭한 후계자를 선택하는 것은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것이니, 오직 지극히 공정함에 달려 있다. 이에 명위(名位)의 융성함을 바로잡고, 책봉의 숭고한 예(禮)를 거행한다. 이에 너 충녕대군(忠寧大君, 세종의 이름)에게 고하노라. 너는 너그럽고 넓으며 신중하고 중후하며, 효성스럽고 공손하며 겸손하다.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섬기되, 평소에도 조심하고 삼가는 모습이다.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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