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명나라 영락제)가 다음과 같이 내렸다. “제왕은 천하의 주재(主宰)가 되니, 다스리는 법도는 동인(同仁, 어짊)보다 더 넓어야 하고, 현명한 덕은 한 나라의 표본이 되니, 이치는 반드시 먼저 있고 후에 있어야 한다. 짐(朕)이 하늘의 명을 받아, 만방(萬邦)을 통치하니, 안정시키고 어루만져, 하나같이 차별 없이 대한다. 그러므로 현명하고 덕 있는 이를 뽑아, 번복(藩服, 제후의 임무)을 맡기고, 사정에 따라 마땅하게 하여, 교화의 이치를 이루니, 계승을 중하게 여기고 민심을 결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에 조선 국왕 이(태종의 이름)가 와서 아뢰기를, ‘맏아들 제(禔, 양녕대군)가 덕이 없어, 후사를 이을 수 없으므로, 셋째 아들(세종의 이름)이 효성스럽고 형제간의 우애가 있으며 힘써 배우므로, 온 나라 사람들의 바라는 바가 되어, 세자로 세울 만합니다. 또 나이가 많아 국사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물러나기를 청하고, 왕위를 전하여 계승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으므로, 이제 특별히 그 청을 윤허(允許)하고, 조선 국왕으로 명하니, 대대로 그 직분을 지키라. 아! 번국(藩國, 제후의 나라)에 맡기는 것은, 덕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다. 오직 충성으로써 윗사람을 섬길 수 있고, 오직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길 수 있으며, 오직 겸손하고 부지런함으로써 몸을 세울 수 있고, 오직 인애(仁愛)로써 백성을 보호할 수 있다. 너는 더욱 밤낮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이 아름다운 명령을 받들어, 복과 경사를 크게 이어, 영원히 나라를 보전하라. 삼가 받들라!”
주요 내용 정리:
- 제왕의 통치 이념 (동인, 현덕).
- 명나라가 제후국을 다스리는 원칙 (현명한 인재 등용, 교화).
- 태종이 양녕대군의 폐세자 및 세종의 세자 책봉을 요청한 내용 언급.
- 명나라 황제가 태종의 요청을 윤허하여 세종을 조선 국왕으로 책봉하는 내용.
- 새로운 국왕(세종)에게 충성, 효도, 겸손, 인애를 강조하며 나라를 잘 다스릴 것을 당부.
추가 설명:
이 문서는 명나라 황제가 세종을 조선의 국왕으로 책봉하면서 내린 고유문(誥諭文)입니다. 고유문은 황제가 제후국 왕에게 내리는 문서로, 책봉의 의미와 함께 통치에 대한 당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제왕의 통치 이념인 동인(同仁)과 현덕(賢德)을 강조하며, 명나라가 제후국을 다스리는 원칙을 설명합니다. 특히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여 교화를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태종이 직접 명나라에 요청하여 양녕대군을 폐세자하고 세종을 세자로 책봉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을 명확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의 왕위 계승에 명나라의 승인이 필수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새로 즉위한 세종에게 충성, 효도, 겸손, 인애의 덕목을 강조하며 백성을 잘 다스리고 나라를 보전할 것을 당부합니다. 이를 통해 명나라가 조선의 국왕에게 기대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 특히 조선의 왕위 계승 과정에서 명나라가 행사했던 영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또한, 당시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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