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태종)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덕이 부족함에도, 태조의 큰 사업을 이어받아, 밤낮으로 두려워하며, 정성을 다해 다스리려고 노력한 지, 이미 18년이 되었다. 은택이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재앙과 변고를 초래하였으며, 또 지병이 있는데, 최근에 더욱 심해져, 정사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세자(세종의 이름)는 영명하고 공손하며 검소하고, 효성스럽고 형제간의 우애가 있으며 너그럽고 어질어, 왕위를 이을 만하다. 이미 영락(永樂) 16년 무술년 8월 8일에, 직접 대보(大寶, 왕위)를 전수하여, 모든 정사를 전담하게 하였으니, 오직 군국(軍國)의 중대한 일만, 내가 직접 처리할 것이다. 너희 중외(中外)의 크고 작은 신하들에게 고하노라! 모두 나의 지극한 마음을 헤아리고, 한마음으로 협력하고 도와서, 새롭게 되는 경사를 맞이하라. 이로써 이 교시를 내리니, 마땅히 모두 알도록 하라.”
예조 판서 신 변계량(卞季良)이 짓다.
주요 내용 정리:
- 태종이 선위하는 이유 설명 (덕 부족, 재앙, 지병).
- 세종의 자질 칭찬 (영명, 공손, 효성, 인자).
- 이미 세자에게 대보를 전수하여 정사를 맡겼음을 언급.
- 군국 중대사만 태종이 직접 처리할 것임을 밝힘.
- 신하들에게 새 시대에 협력할 것을 당부.
추가 설명:
이 문서는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즉 선위(禪位)를 하면서 신하들에게 내린 교서(敎書)입니다. 태종은 자신이 덕이 부족하고 지병으로 인해 정사를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되어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세종의 뛰어난 자질을 여러 가지 덕목으로 칭찬하며, 왕위를 이을 만한 인물임을 강조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8월 8일에 왕위를 넘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군국의 중대사는 자신이 직접 처리할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이는 태종이 완전히 정계에서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상왕(上王)으로서 여전히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형식적으로는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정 부분 국정을 계속 관여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하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나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하며 글을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이 교서를 통해 태종의 선위 배경과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과정, 그리고 태종이 상왕으로서 행사하려 했던 영향력 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왕권의 이양 방식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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