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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번역/열성지장통기 92

세자를 세울 때 신하들에게 내린 교서 (태종 18년 무술년 6월 초3일 임오일)

왕(태종)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자를 세움에 어진 이를 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의리이고, 죄가 있으면 폐하는 것은, 오직 나라의 변하지 않는 규범이다. 일은 한 가지로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치에 마땅함에 기준을 둘 뿐이다. 내가 일찍이 맏아들 제(禔, 양녕대군)를 세자로 세웠는데, 나이가 이미 스무 살이 넘도록, 글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풍류와 여색에 빠졌다. 나는 그가 어리다고 여겨, 장성하면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바랐다. 나이가 20세를 넘었으나, 도리어 간사한 무리들과 사사로이 통하고, 함부로 의롭지 못한 일을 행하였다. 지난봄에는, 일이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 자가 수십 명이었다. 제는 이에 그 잘못을 모두 적어, 종묘에 고하고, 나에게 글을 올리니, 스스로..

영릉을 옮긴 기록 (예종 원년 기축년. 옛 능의 지문은 전해지지 않음.)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은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의 셋째 아들이다.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가 대명(大明) 홍무(洪武) 30년 정축년(丁丑年) 4월 10일 임진일(壬辰日)에 한양(漢陽)의 사저에서 낳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뛰어났으므로, 두 궁(宮, 태종과 원경왕후)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장성하여 충녕대군(忠寧大君)에 봉해졌다. 성품이 배우기를 좋아하여, 비록 병중에 있을 때에도 오히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세자(世子) 제(禔, 양녕대군)가 많은 잘못을 저지르므로, 영락(永樂) 16년 무술년(戊戌年) 여름, 여러 신하들이 폐위를 청하니, 태종이 왕에게 숨겨진 덕이 있다고 여겨,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 명나라 영락제)..

영릉 신도비명 (서문과 함께. 문종 원년 신미년 7월)

요(堯) 임금은 단주(丹朱)를 버리고 순(舜)에게 선양하였으니, 순에게는 중화(重華)의 덕이 있었지만, 요의 인자함은 더욱 멀리까지 미쳤다. 문왕(文王)은 백읍고(伯邑考)를 버리고 무왕(武王)을 세웠으니, 무왕에게는 큰 업을 계승한 빛나는 공적이 있었지만, 주(周)나라의 업은 더욱 창성하였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당(唐, 요임금의 나라)과 우(虞, 순임금의 나라)의 선양과 하후(夏后), 은(殷), 주(周)의 계승은 그 뜻이 하나이다.”라고 하였으니, 하나라는 것은 모두 사사로운 마음이 없음을 이른다. 우리 태종(太宗)의 선위(禪位)는 그 요임금과 문왕의 마음과 같은 것이고, 우리 세종(世宗)의 선위를 받은 것은 그 순임금과 무왕의 덕과 같은 것이다!태종이 재위에 있을 때, 일찍이 원자(元子) 제(禔..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 행장 (문종 즉위 초년 경오년에 지중추원사 이훤 등을 경사(京師)에 보내 부고를 알리고 시호를 청하니, 의정부에서 행적을 지어 예부에 보고하다.

국왕의 성은 이씨이고, 휘(諱)는 도(祹)이며, 자(字)는 원정(元正)이니, 공정왕(恭定王, 태종)의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민씨 부인으로, 홍무(洪武) 30년 4월 10일에 탄생하였다. 성장하여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졌다. 천성이 영특하고 지혜로우며, 마음이 깊고 신중하였다.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아 일찍이 병이 있었음에도 책 읽기를 그치지 않으니, 공정왕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충녕군의 학문 사랑은 참으로 천성이다.” 하였다.영락(永樂) 16년 6월, 세자 제(禔, 양녕대군)가 덕을 잃어 폐위되자, 나라 사람들이 왕이 여러 아들 중 가장 현명하다고 하여 후계자로 세울 것을 청하였다. 공정왕이 이를 따르고 조정에 보고하니, 얼마 후 노환으로 정사를 돌볼 수 없음을 아뢰어 왕에게 전위하기를 청하였다. 1..

종묘 악장 (宗廟樂章)

사제(思齊)의 성모(聖母, 원경왕후를 높여 부르는 말)는, 능히 하늘의 굳셈과 짝하시네. 그 난리를 평정하심에, 도우신 계책은 진실로 훌륭하시네. 아! 아름다우신 정명(貞明, 곧고 밝음)이여! 끝없는 도움을 열어 주시네. (정명.)(지어 바친 신하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해석 및 해설:이 악장은 원경왕후 민씨를 기리는 종묘 제향에서 사용된 음악의 가사입니다. 앞서 번역한 옥책문, 애책문 등과 맥락을 같이 하며, 특히 원경왕후의 공덕 중에서도 태종을 도와 나라의 혼란을 평정하는 데 기여한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사제(思齊)의 의미 재확인: 앞서 언급했듯이, “사제”는 《시경(詩經)》의 〈사제(思齊)〉에서 유래한 말로, 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기리는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원경왕후를 태임에 비유하여..

추상존호 옥책문 (追上尊號玉冊文)(세종 6년 갑진년 7월 초하루 갑술일에, 좌의정 이원에게 명하여 책을 올리게 하였으니, 즉 종묘에 부묘하기 열하루 전이다.)

지극한 은혜는 갚을 길이 없어, 다만 슬픈 마음만 간절하오며, 아름다운 칭호를 높이는 것은, 이에 아름다움을 돌려드리는 일을 힘쓰는 것이옵니다. 이에 떳떳한 법도를 따라, 이에 훌륭한 규범을 엄히 하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타고난 바탕은 바르고 아름다우시며, 지키신 행실은 공경하고 순하셨습니다. 마음은 오로지 땅의 두터움과 같으시어, 아름다운 덕을 집안을 다스리는 데 드러내셨고, 도는 하늘의 근원과 짝하시어, 성대한 공렬을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밝히셨습니다. 이에 《관저(關雎)》의 교화를 펴시어, 드디어 《린지(麟趾)》의 상서로움을 이루셨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다행히 큰 복을 입어, 아름다운 업적을 외람되이 이었사옵니다. 이에 삼가 특별한 칭호를 올리는 의식을 거행하여, 영원히 사모하는 정성을 ..

애책문 (哀冊文)(경자년.)

영락 18년 경자년 7월 정묘 초하루부터 열흘째 되는 병자일에, 후덕왕대비께서 수강궁에서 돌아가시어, 별전에 빈소(殯所)를 마련하였고, 석 달 열이레가 지난 임오일에, 헌릉에 장사 지냈으니, 예법에 따른 것이다. 빈전(殯殿)은 아침을 향하고, 관을 모신 궁궐이 비로소 열리니, 깃발이 길에 가득하고, 종묘(祖庭)에서 예를 받드네. 흰 달은 밝으나 처량하고, 찬 바람은 불어 슬프고 쓸쓸하네. 성상(임금, 세종)께서는 하늘을 부르며 영원히 사모하시고, 땅을 치며 슬픔을 더하시며, 신선의 수레를 바라보시나 돌아오지 않으니, 자애로운 가르침을 영원히 듣지 못함을 아파하시네. 이에 법도를 명하여, 효성스러운 마음을 펼치게 하셨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하늘의 근원은 비롯됨을 주관하고, 땅의 도리는 순히 받드네. ..

시책문 (諡冊文)

이 부분은 원경왕후 민씨 사후에 그녀의 시호(諡號)를 정하고 올리는 의식에 사용된 시책문입니다. 시호는 죽은 왕이나 왕비, 신하 등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붙이는 이름입니다. 두 개의 시책문이 실려 있는데, 첫 번째는 실제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두 번째는 지어졌으나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첫 번째 시책문 (세종 2년 경자년):영락 18년 경자년 9월 병인 초하루부터 열나흘째 되는 기묘일에, 슬픈 아들 국왕 신(세종의 이름)이 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아뢰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바른 자리에 거하여 존귀함을 이루고, 안의 다스림을 이루었으니, 이름을 바꾸어 시호를 정하는 것은, 마땅히 후세에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삼가 옛 법을 따라, 아름다운 칭호를 올리려 합니다. 삼가 생각하옵..

악장 (樂章)(날짜는 위와 같음.)

사제(思齊, 문왕의 어머니 태임을 기리는 말)의 대비는, 오직 덕의 행실을 행하시네. 재상의 도리는, 이에 그 이룸을 보는 것이네. 이에 그 경사를 돈독히 하시니, 능히 그 후손을 번창하게 하시네. 복록을 편안히 하시니, 이로써 장수를 누리시네.(지어 바친 신하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해석 및 해설:이 악장은 앞서 번역한 왕대비 상존호 옥책문과 같은 날(세종 즉위 초년 무술년 11월)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경왕후 민씨의 덕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는 짧은 시입니다. 옥책문과 함께 의례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사제(思齊)의 의미: “사제”는 《시경(詩經)》의 〈사제(思齊)〉에서 유래한 말로, 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기리는 말입니다. 태임은 현명하고 덕이 높은 여성으로, 후세의 여성..

왕대비 상존호 옥책문 (王大妃上尊號玉冊文)(세종이 선위 받은 첫 해 무술년, 진책관 남재, 진보관 유정현.)

영락 16년 무술년 11월 정미 초하루부터 여드레째 되는 갑인일에, 국왕 신(세종의 이름)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삼가 책문을 받들어 아뢰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하늘의 두터운 은혜를 받듦에 있어서, 비록 성대한 덕을 이름 짓기 어렵사오나, 효자의 지극한 정은, 오직 어버이를 높이는 것을 가장 크게 여깁니다. 삼가 예문의 옛 법을 따라, 작은 정성과 존경을 펼치고자 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왕대비 전하께서는 부드럽고 은혜로우며 편안하고 정숙하시고, 자애롭고 온화하며 삼가고 신중하십니다. 《주남(周南)》의 아름다운 교화를 근본으로 삼으시고, 지중(摯仲)의 아름다운 가르침을 이으셨습니다. 경계하고 삼가함을 어김이 없이, 능히 서로 돕는 도리를 다하셨고, 수고로움이 끝이 없어, 낳아 기르신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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