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夷堅志 52

1.1.2.12.31 - 이견지 갑지 제2권 - 귀신이 치료 방법을 알려주다

귀신이 치료 방법을 알려주다神告方  건창(建昌: 현재 장시성 난창) 사람 황습(黃襲)이 해준 이야기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우리 고을에 한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심양(潯陽: 현재 장시성 주장)에 배를 정박해 두었는데, 달빛 아래 두 사람이 대화하는 듯하였답니다.   한 사람이 말하기를, “어제 저녁, 금산사(金山寺: 현재 장쑤성 전장시에 소재한 사찰)에 바쳐진 공물이 매우 성대하다고 하기에 내가 가서 보니, 음식들은 전부 핏기가 돌고 비린내가 나서 가까이 갈 수 없었네. 내가 화가 나서 요리도 제대로 못하는 요리사의 손을 끓는 솥에 집어 넣어서 지금은 그놈 손이 썩어 문드러졌어.”라고 하니,  다른 한 사람이 말하였다. “그놈 참 잘못했네. 그래도 자네가 그렇게 벌준 것도 너무 지나친 ..

1.1.2.11.30 - 이견지 갑지 제2권 - 조령금의 아들에게 복수하다

조령금의 아들에게 복수하다趙表之子報  조령금(趙令衿)은 자(字)가 표지(表之)이다. 선화(宣和) 5년(1123년)에 남강(南康: 현재 장시성 싱쯔) 사록(司錄)에 부임하여, 가족을 데리고 임지로 가는 도중 기주(蘄州: 현재 후베이성 치춘)를 지나다 오조산(五祖山: 황매현에 있는 빙무산憑茂山을 가리킴. 선종의 오조 홍인 대사가 지냈다고 함)을 유람하였다. 그는 홀로 비바람을 무릅쓰고 정상에 올라 백련지정(白蓮池亭)에 이르러, 커다란 반석에서 쉬었다.   그때 잠중에 꿈을 꾸듯 하였는데. 한 늙은 승려가 나타나 지팡이에 의지하며 말하기를, “그대가 이대로 여산(廬阜: 현재 장시성 싱쯔현 서북에 있는 산)에 가면, 고난이 없을 테지만, 진주(晉州: 현재 산시성 린펀시)로 가면 자식을 잃는 슬픔이 있을 것이네...

1.1.2.10.29 - 이견지 갑지 제2권 - 의원 사여권

의원 사여권謝與權醫 양유충(楊惟忠)에게 병이 났을 때에 얼굴빛이 불같이 붉었는데, 여러 의원이 치료하지 못하였다. 그의 사위 진유(陳槱)가 걱정이 되어 호소연에게 방도를 물었다. 기주(蘄州: 현재 후베이성 치춘) 사람 사여권(謝與權)이라는 자가, 대대로 유의(儒醫: 유학자로서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술을 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였다고 하여 호소연이 그를 데려다 진찰을 하게 하였다. 사여권이 들어가서 진맥을 하지 않고 말하기를, “증세는 이미 보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양공의 부인 등씨(滕氏)가 그와 다른 의생에게 어떤 약이 좋을지 의논하게 하였다. 주씨(朱氏), 장씨(張氏) 두 의생이 말하였다. “이미 정양단(正陽丹)과 백택원(白澤圓)을 처방했고, 여기에 종유(鐘乳)와 부자(附子)를 더할 것이오...

1.1.2.9.28 - 이견지 갑지 제2권 - 장언택의 신통력

장언택의 신통력張彥澤遁甲  소흥(紹興) 4년(1134년) 참지 정사(参知政事) 이소우(李少愚)가 도로 강서(江西: 현재 장시성, 장쑤성, 안후이성·후베이성 일대)의 사령관이 되었는데, 총관(總管) 양유충(楊惟忠)을 파견하여 적을 치게 하니 4월 임신일에 인시(寅時: 오전 3~5시)에 파양(鄱陽: 현재 장시성 동북부 일대)으로 출병하게 하였다.   호소연이 양유충을 강에서 배웅하고 돌아가다 도우(道友)인 진생(陳生)을 방문하고 돌아가려 하는데, 도사(道士) 장언택(張彥澤)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낙양(洛陽)사람이고, 지난 날에 서신옹(徐神翁)을 따라 서산(西山)에서 도술에 연마한 자였다.   우연찮게 서로 대화를 하던 중, 장언택이 어떤 사람이 출병 날짜와 시간을 정했는지 물었다.   호소연이 말하였다...

1.1.2.8.27 - 이견지 갑지 제2권 - 남편과의 약속을 어긴 부인 육씨

남편과의 약속을 어긴 부인 육씨陸氏負約 구주(衢州: 현재 저장성 취저우시) 사람 정모(鄭某)는 젊어서 성격이 활달해 글쓰는 것도 유창했다. 그는 회계(會稽: 현재 저장성 사오싱) 육씨(陸氏)의 딸을 아내로 맞았는데, 자태가 아름답고 명랑하여 부부 사이가 단란하였다. 정모가 일찍이 잠자리에서 육씨에게 말하기를,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지극하니, 만약 내가 불행히 죽더라도 당신은 재혼하지 마오. 만약 당신이 죽어면 나도 그리하리라."라고 하였다. 육씨가 대답하기를, "우리는 백년토록 해로할텐데, 당신은 왜 그런 불길한 말씀을 하십니까?" 라고 하였다. 십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은 두 남매를 낳았지만, 정씨는 중병을 앓게 되었다. 그는 부모에게 자신 죽고난 뒤를 당부하는 말을 여러 번 하였는데,..

1.1.2.7.26 - 이견지 갑지 제2권 - 옥진에서 만난 세 명의 도사

옥진에서 만난 세 명의 도사玉津三道士 대관(大觀: 1107~1110년) 연간에 숙주(宿州: 현재 안후이성 쑤저우시)의 사인(士人)으로 성이 전씨(錢氏)인 두 형제가 서울의 태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야흐로 봄날에 시험을 앞두고 있었기에 잠시 휴식을 위해서 옥진원(玉津園)에 놀러 나갔다. 도중 그들은 세명의 도사를 만나 예를 갖추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세명의 도사는 이마가 높고 눈썹이 길며 말씨가 맑고 아름다워 듣기 좋았다. 조금 지나 작별을 고하고 떠나는데, 말하기를, "우리에게 이름난 술이 조금 있으니 두 공께서 드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 정오에 다시 여기로 오면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만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전씨 형제가 알..

1.1.2.6.25 - 이견지 갑지 제2권 - 자라의 복수

자라의 복수鱉報 승절랑(承節郞) 회경원(懐景元)은 전당(錢塘: 현재 저장성 항저우시) 사람이다. 선화(宣和: 1119~1125년) 초엽, 수주(秀州: 현재 저장성 자싱시) 다보사(多寶寺)에서, 채유(蔡攸)에 의하여 설치된 국(局)에서 일하였다. 회경원은 성품이 자라 먹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은 요리를 잘하는 부하 병사가 마침 자라를 삶으려는데 칼로 자라의 머리를 쳐서 피를 뽑아 냈다. 그는 이렇게 해야 맛이 온전히 좋다고 하였는데, 후에 갑상선 결핵에 걸려 들 수도 없을 정도로 머리가 커졌다. 다닐 때는 머리를 붙잡고 다녀야만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커지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더니, 머리가 떨어져 죽었는데, 마치 칼로 자른 듯 하였다. 회경원은 이때부터 자라 고기를 함..

1.1.2.5.24 - 이견지 갑지 제2권 - 비석을 되살린 진향과 비석을 없애버린 묘중선

비석을 되살린 진향과 비석을 없애버린 묘중선陳苗二字 진향(陳珦)은 자(字)가 중옥(中玉)이며, 정주(鄭州: 현재 허난성 정저우시)사람이고, 문혜공(文惠公)의 후손이다. 진향은 정화(政和: 1111~1118년) 연간에 채주(蔡州: 현재 허난성 루난) 태수(太守)가 되었다. 처음 부임할 당시 그는 진공(晋公) 배도(裴度)의 사당에 배알하였다. 사당 안에 '평회서비(平淮西碑: 회서 반란을 배도와 이소평정한 후 당 헌종憲宗의 명으로 승전을 기념하여 세운 비이다. 원래 배도 수하로 회서에 따라갔던 한유韓愈가 썼다)'가 있기에 읽었는데, 단문창(段文昌)이 쓴 것이었다. 이상해서 그 지방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가 말하였다. "문공(文公) 한유(韓愈)께서 지으신 '평회서비'를 돌에 새긴 후에 이소(李愬)의 군사가 헌종..

1.1.2.4.23 - 이견지 갑지 제2권 - 동파 소식과 산곡 황정견이 그림에 시를 쓰다

동파 소식과 산곡 황정견이 그림에 시를 쓰다東坡山谷題畵 연저(燕邸) 래주(萊州: 현재 산둥성 라이저우시)의 양천공(洋川公) 집안에서 고금(古今)의 그림을 10책(冊)으로 장황(裝潢: 작품의 보존을 위해 족자나 서책으로 만드는 것)하고 있었는데,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공의 집을 지나다가 이를 위해 제첨(題簽: 책 따위의 표제)을 써주고, 아울러 책 뒤에 다음과 같이 썼다. "높다란 집과 깨끗한 벽 사이에 지내니 뜻을 펴거나 접는 일로 수고하지 아니하고, 밝은 창가와 깨끗한 의자에서 지내니 앉거나 눕는 일에 편안하다네."[高堂素壁 無舒卷之勞 明窗淨几 有坐臥之安] 그리고 왕애(王靄)의 그림인 '여래출산상(如來出山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머리털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귀는 곧게 섰구나. 어느 곳에..

1.1.2.3.22 - 이견지 갑지 제2권 - 제의가가 어머니를 구하다

제의가가 어머니를 구하다齊宜哥救母 강음(江陰: 현재 장쑤성 장인현)에 사는 제삼(齊三)의 아내 구씨(歐氏)는 아이를 낳는 것이 순조롭지 못하여 거의 죽을 뻔하였으나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부부에게는 의가(宜哥)라 불리는 자식이 하나 있었다. 나이는 여섯 살이었는데, 총명해서 사물의 이치에 밝았다. 의가는 자신의 어머니가 괴로워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의가는 한 노인을 찾아뵈어서, 어떤 방법을 쓰면 어머니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여쭈었다.) 노인이 말하기를, "다만 도가(道家: 중국 선진 시대에 노장老莊 일파의 허무虛無ㆍ염담ㆍ무위無爲의 설을 따른 학자의 총칭)의 '구천생신장(九天生神章: 총칭은 영보자연구천생신삼보대유금서靈寶自然九天生神三寶大有金書로서, 도교 경전인 영보경靈寶經의 일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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