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지 夷堅志/갑지 제3권

1.1.3.6.40 - 이견지 갑지 제3권 - 두씨 도인 竇道人

集賢堂 2016. 2. 16. 19:00
반응형

두씨 도인竇道人

 계진(桂縝)은 자(字)가 언율(彥慄)이고, 신주(信州: 현재 장시성에 속함) 귀계(貴溪) 사람이다. 사는 곳에서 용호산(龍虎山)까지 거리가 삼십 리여서, 도인들이 매일 집앞을 지나가면 계씨(桂氏)는 반드시 그들에게 돈을 주었다. 계씨는 본디 산증(疝症: 생식기와 고환이 붓고 아픈 병증)을 앓고 있었는데, 매번 발작이 나면 죽고싶을만치 아팠다. 의원이 방사(方士)에게 가서 기운을 단련하는 요결을 배우라고 권하였는데, 이것이 그가 도술에 뜻을 둔 이유이다. 


 소흥(紹興) 경신년(庚申: 1140년) 6월 23일 저녁에 목욕을 마치고, 조그마한 길로 산책을 하였는데, 팔구십 세는 되어 보이는 늙은 도인이 다가왔다. 머리털은 허옇고 등은 굽었는데 몸집은 풍만하였다. 


 계진이 읍을 하며 말하기를, "부디 저의 집에 오셔서 차라도 드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도인이 답하기를,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그대의 집에는 갈 수 없소. 그대에게 뜻한 바가 있다면 열흘이라도 나더러 살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계진이 답하지 않자, 노인이 가버렸다. 그러다 다시 돌아서서 계진을 앞으로 부르더니 숲속에 들어가 늙은 소나무 뿌리에 앉았다.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는 성(姓)이 두씨(竇氏)라고 하는데, 음성은 산동(山東) 지방 사람과 같았다. 둘이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노인이 계진을 욕하는 말을 하였다. 그래서 계진이 그 노인을 볼 때에 공경하는 모양을 갖췄어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노인의 외모를 보자면 두 눈을 가늘게 떴고, 귀가 덮힐 만큼 머리털이 수북했다. 그리고 푸른 복건(幅巾)을 썼는데, 더운 날에 돌아다녔을 텐데도 땀을 안 흘렸다. 계진이 차마 갑자기 떠날 수는 없어서 다시 연기술(鍊氣術)에 대해서 물었다. 


 도인이 말하기를, "내가 연기술은 행한 지 이백 년이 되었는데, 병 다스리는 것이 조금 쉬워졌을 뿐이네." 


 그리고 계진을 위해 자신이 익힌 천여 권의 책을 외워서 말해주었는데, 천문, 지리, 병법, 도요 등 방대한 내용이라서 계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계진이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저를 가르쳐주시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만, 제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간단하고 쉬운 것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도인이 말하였다. "그대는 가르칠만하다. 나에게 한 편의 책이 있는데, 형산(衡山: 현재 후난성 남부에 있는 산)에 보관하였다. 지금 가지러 갈 것이니, 삼십삼 년 뒤에는 그대에게 전수해주겠다." 


 계진이 말하였다. "그 책이 혹시 반운도인결(搬運導引訣)입니까?" 


 도인이 말하였다. "아니다. 우선 방서(方書)를 가지고 세상 사람을 구제하면서 조금씩 음공(陰功)을 쌓아야 한다." 


 계진이 말하였다. "만일 때가 되면, 선생님을 어디서 찾아뵈어야 합니까?" 


 도인이 말하였다. "그대가 알 바가 아니다. 내가 그대를 찾아올 것이다."


 마침내 도인은 계진과 함께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계진은 나이많은 부모와 처자식이 있어 갈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이에 도인이 불쾌해 하더니 잠깐 사이 갑자기 사라졌다. 계진은 놀랍고도 무서워 급히 집에 돌아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며칠 뒤에 한 도사가 문밖에서 묻기를, "집에 어른 계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집안 사람이 외출하였다고 말하였다. 


 그 도사가 성을 내며 말하였다. "내가 무언가 구할려고 온 것이 아니오. 선생님께서 책을 전해주라 해서 온 것이오. 어찌하여 나오지 않소?" 


 그리고 도사는 책을 계단에 던져놓고 가버렸다. 가져다 보니, '여동빈전(呂洞賓傳)'이었다. 계진이 비로소 후회하였다. 


 임술년(壬戌年: 1142년) 과거에 합격한 계진은 파양(鄱陽) 현위(縣尉)에 임명되었다. 엄주(嚴州)와 구주(衢州) 사이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데, 계진에게 갑자기 산증이 일어났다. 수레를 탈 수 없게 된 계진은 몇 리를 더 간 뒤 수레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는 여관에서 쉬기 위해 바깥 문에 기대어 누웠다. 


 그때 한 상인이 지나가는데, 등짐을 지고서 묻기를, "관인께서는 병이 있으십니까?" 


 계진이 답하였다. "그렇소." 


 상인이 말하였다. "처음 병증이 날 때에는 움직이거나, 앉거나, 서거나, 눕는 것도 할 수 없고, 어딘가 너무 아파서, 죽을 정도로 아프지만 죽지는 않지요. 증세가 제 말대로이지 않습니까?" 


 계진이 말하였다. "그렇소.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아시오?" 

 

 상인이 말하였다. "나는 예장(豫章) 사람인데, 젊어서 나도 이 병으로 고생하였습니다. 지금은 매일 백 근(斤)이나 되는 짐을 지고도 괜찮으니, 약으로 치료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행낭을 풀어서 찾는 것이 있는 듯 하더니, 가늘게 썬 뽕잎을 담은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상인은 계진에게 그것을 서 되(升) 술에 담가 복용하라고 하였다. 계진은 본래 술을 못 마셔서 함부로 복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천금으로 상인에게 사례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집에 도착하니, 계진의 병은 더 심해졌다. 다른 약을 두루 복용했는데도 효험은 전혀 없었다. 결국 상인이 말했던 대로 약을 술에 타서 한 잔 크게 들이키니, 그 맛이 꿀처럼 달았다. 목마른 대로 마셨는데 새벽이 되어서야 술이 동났다. 병세도 팔 할은 나은 듯 싶었는데, 하루 더 지나자 완전히 나아서 이후로 다시는 산증이 일지 않았다. 계진이 가만  생각해 보니, 상인은 바로 예전에 만났던 두씨(竇氏) 도인이었다.




원문

桂縝,字彥栗,信州貴溪人。所居至龍虎山才三十里,道流日過門,桂氏必與錢。縝素病疝,每作皆濱死。醫者教以從方士受服氣訣,故尤屬意。紹興庚申六月二十有三日晚,浴畢散步小徑,有老道人來,年八九十矣,鬢須皤然,曲僂豐下。縝揖與語曰:“請至弊廬,取湯茗之資。”曰:“日已暮,不可至君家,君苟有意,能延我旬日否?”縝不應,遂行。復回首,呼縝使前,入林間,坐古松根上。自云姓竇氏,聲音如山東人,劇談良久,語頗侵縝。縝見其老,雖貌敬而心不平。細視其目,清聳入鬢,著青幅巾,暑行不汗。未忍遽去,复詢以氣術,道人曰:“吾行氣二 百年,治病差易耳。”為誦所習書千餘言,天文地理、兵法道要錯綜其間,略不可曉。縝曰:“先生幸教我,此非我所能,盍言其粗者。”道人曰:“汝似可教。吾有一編書,藏衡山中,今往取之。又三十三年,當以授汝。”縝曰:“得非般運導引訣邪!”曰:“未也。姑以方書濟眾,稍儲陰功。”縝曰:“萬一及期,尋先生何所?”曰:“非汝所知,吾當來訪汝。”遂邀縝欲偕逝,縝以親年高及孥累為解。道人不懌,間忽不見。縝且駭且懼,急歸不敢語人。後數日,一道者及門問曰:“八十三承事何在?”(原註:縝之父。)家人辭以出。呼者怒曰:“吾非有所求,先生使來授公書耳。胡為不出?”擲卷於階而去。取視之,乃呂《洞賓傳》也,縝始悔之。至壬戌年擢第,調鄱陽尉。歸至嚴衢間,疾大作,不可痏。輿行數里必下,投逆旅中,傍外戶而臥。有商人過,倚擔問曰:“官人有疾邪?”曰:“然。”曰:“始發時行坐立臥皆不可,某處最痛,祈死不能。證候若是否? ”曰:“然。爾何以知之?”客曰:“某豫章人也,少亦病此,今日負百斤而不害,蓋有藥以療之耳。”遂解囊,如有所索,得一裹如細剉桑葉者,教以酒三升浸服之。縝素不飲,未敢服,以千金謝客而行。及家,疾益甚,遍服它藥,皆弗驗。姑如客言,以藥投酒中,甫酌一杯,其甘若飴蜜,隨渴隨飲,至曉而酒盡,病瘳什八,信宿脫然,後不復作。細思商人,乃昔所遇竇君也。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