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 10년(1669년)에 신덕왕후에게 휘호(徽號)를 추상(追上, 사후에 올림)하며 올린 옥책문(玉冊文)입니다. 《현종실록》에 따르면 태조 원년(1392년) 8월 7일에 현비(顯妃, 신덕왕후)로 책봉되었고, 원당기(願堂記)에 따르면 병자년에 훙서(薨逝)하였으며, 사후에 신덕(神德)으로 추시(追諡)되었으나, 당시의 책봉문과 시호문, 애책(哀冊)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 옥책문은 오랜 시간이 흘러 신덕왕후의 위상이 복원된 이후에 작성된 것입니다.
“세차(歲次) 기유년(己酉年) 9월 신묘삭(辛卯朔) 29일 기미(己未)에, 효증손(孝曾孫)인 사왕(嗣王) 신(臣, 현종의 이름)은 삼가 다시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룁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떳떳한 법도가 오랫동안 빠져 있었으므로, 이에 등배(登配, 왕비로 책봉)의 성대한 의식을 다시 거행하고, 빛나는 책봉을 높여, 빛나는 업적을 드높이는 큰 의식을 거행합니다. 선왕의 뜻을 잇는 것이니, 우리 집안의 예 또한 마땅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황조비(皇祖妣) 신덕왕후께서는 아름다운 가문에서 태어나시어, 성조(聖祖, 태조)와 배필이 되시어, 몰래 용이 날아오르는 사업(건국)을 도우시어, 어지러운 신하들 사이에서 부인의 도리를 다하셨습니다. 일찍이 왕비의 존귀함을 바로잡으시어, 천자(天子)로부터 고명(誥命)을 받으셨습니다. 모두 도산(塗山)의 교화를 우러러 보았으나, 갑자기 소릉(昭陵)의 슬픔을 맞이하셨습니다. 덕을 드러내어 이름을 바꾸었으니, 모든 일이 이미 끝났습니다. 마땅히 종묘에 올라 함께 제사를 받으셔야 하니, 백세토록 신주를 옮기지 않아야 합니다. 순(舜) 임금이 남쪽으로 순행하다 돌아가신 때에 이르러서, 마침내 주(周)나라의 합향(合饗, 함께 제사 지냄)의 예식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대개 의논하는 신하들의 잘못으로, 영원한 근본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고, 여러 대를 거치면서 인습하여, 효성스러운 의식(종묘 배향)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신령의 답답함에 이르렀으니, 실로 여러 사람의 탄식과 같습니다. 오직 기록된 책에서 증거할 만하니, 오히려 아름다운 명성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편안히 모실 곳이 없으니, 근본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떳떳한 법도가 흠결이 있으니, 후손으로서 어찌 감히 소홀히 하겠습니까? 이에 옛 사실을 상고하여, 인정과 문헌을 참고하여, 상징적인 설비를 능원에 다시 설치하고, 빛나는 경치를 다시 빛내니, 신령이 종묘에 모이시기를 바랍니다. 뭇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으니, 진실로 억만 사람의 바람에 부합하고, 천도는 반드시 회복되니, 삼백 년에 이르러 이에 행합니다. 성대한 의식을 처음과 같이 거행하고, 아름다운 휘호를 올려 감회를 더합니다. 삼가 신 의정부 영의정 정태화(鄭太和)를 보내어 옥책을 받들어 휘호를 올리니, 순원현경왕후(順元顯敬王后)라 합니다. 바라옵건대 밝게 비추어 살펴 주시어, 이 미약한 정성을 굽어 살펴 주시고, 보배로운 책이 아름다움을 드리워, 천지와 함께 길이 전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경사를 펼치어, 후손들에게 더욱 창성하게 하소서. 아! 슬프도다! 삼가 아룁니다.”
대제학 신 조복양(趙復陽)이 짓다.
내용 분석:
- 의식 거행의 정당성 강조: 옥책문은 먼저 오랫동안 빠져 있던 왕비 책봉 의식을 다시 거행하는 것의 정당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선왕의 뜻을 잇고, 왕실의 예법에 부합하는 행위임을 명시합니다.
- 신덕왕후의 공덕 기림: 신덕왕후가 태조를 도와 건국에 공헌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몰래 용이 날아오르는 사업을 도우시어, 어지러운 신하들 사이에서 부인의 도리를 다하셨다”라는 표현은 신덕왕후의 내조의 공을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 과거의 잘못 지적 및 반성: 과거 신하들의 잘못된 의논으로 인해 신덕왕후가 종묘에 배향되지 못했던 사실을 지적하고, 여러 대를 거쳐 이어진 잘못을 반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의논하는 신하들의 잘못”, “여러 대를 거치면서 인습” 등의 표현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 추숭의 의미 강조: 이번 휘호 추상이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행위를 넘어, 신덕왕후의 명예를 회복하고, 억만 백성의 염원에 부합하며, 천리에 순응하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천도는 반드시 회복되니, 삼백 년에 이르러 이에 행한다”라는 표현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야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 휘호의 의미 부여: 새로 올린 휘호 “순원현경(順元顯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이 휘호가 신덕왕후의 덕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 후손의 번영 기원: 마지막으로 신덕왕후의 영령을 위로하고,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됩니다.
결론:
이 옥책문은 신덕왕후의 휘호를 추상하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신덕왕후의 명예를 회복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 논쟁을 종식시키고, 왕실의 권위를 다시 확립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서는 조선 시대 왕실의 예법과 정치,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