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8년(1408년) 9월 6일 신해일에 신의왕후 한씨에게 존시(尊諡)를 추가로 올리는 옥책문(玉冊文)입니다. 태조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날에 거행된 의식이며, 이후 태종 11년(1411년) 6월 2일 신묘일에 면복(冕服)을 갖추고 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옥책을 올리는 의식이 다시 거행되었습니다. 이때 이천우(李天祐)가 봉책사(奉冊使)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지극한 은혜를 영원히 생각하오니, 감격하고 슬픈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높고 아름다운 칭호를 추가로 올리오니, 지극히 높고 숭상하는 것입니다. 삼가 옛 법도를 따라, 효성스러운 정성을 펼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신령스럽고 아름다운 자질을 타고나시고, 순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덕은 하늘의 근원(乾元)과 부합하니, 마치 도산씨(塗山氏)가 우왕(禹王)의 배필이 된 것과 같고, 도는 항상 길함(恒吉)을 온전히 하니, 주나라 태사(太姒)가 주나라를 다스린 것과 같습니다. 자식을 가르치는 의로운 방법을 엄하게 하시고, 아랫사람에게는 어진 은혜를 두텁게 베푸셨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외람되이 후한 은택을 이어받아, 큰 터전을 계승하였습니다. 이에 좋은 날을 택하여, 성대한 예식을 거행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伏惟 두 글자는 중복된 것으로 보임) 삼가 모 관(某官) 모(某)를 보내 책을 받들어 존시를 올리니 신의(神懿)라 합니다. (실록의 사실에 따르면, 마땅히 “승인순성 신의왕태후(承仁順聖神懿王太后)”라고 해야 하나, 여기에는 빠진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우러러 밝게 살펴주시고, 엎드려 정성스러운 마음을 헤아려 주시어, 만세의 근본 가지를 이어가고, 억년의 왕위를 이어가게 하소서.
수문전 직제학 신 변계량(卞季良)이 짓다.
이 옥책문은 신의왕후에게 존시를 추가하는 의식에 사용된 글로, 앞서의 죽책문과 마찬가지로 신의왕후의 덕을 기리는 내용과 함께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신의왕후의 덕행을 고대의 성녀에 비유: 도산씨와 태사에 비유하여 신의왕후의 덕이 매우 높았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왕후의 덕을 고대의 성현과 견줄 정도로 격상시키는 효과를 줍니다.
- 자녀 교육과 어진 마음 강조: 자녀를 엄하게 가르치고 아랫사람에게는 어진 은혜를 베풀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신의왕후의 현모양처로서의 면모를 부각합니다.
- 왕실의 번영 기원: 신의왕후의 은덕으로 왕실이 영원히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마무리합니다.
- 실록과의 차이점 지적: 실록의 기록과 비교하여 옥책문에 누락된 부분이 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문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이 옥책문은 앞서의 죽책문보다 더욱 화려한 문장과 비유를 사용하여 신의왕후의 덕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산씨와 태사라는 고대의 성녀에 비유한 것은 신의왕후의 위상을 극도로 높이는 효과를 줍니다. 또한, 이 글을 통해 신의왕후에게 ‘신의’ 외에 ‘승인순성(承仁順聖)’이라는 존호가 추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글은 신의왕후의 시호가 추가되는 과정의 또 다른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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