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의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 강씨(康氏)의 죽음을 애도하며 명나라 황제가 내린 위로의 조칙(慰勅)과 관련된 기록입니다. 태조 6년(1397년) 3월 8일에 안익(安翊), 김희선(金希善), 권근(權近)이 조칙을 가지고 왔으며, 이후의 상황과 권근이 지은 글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신이 도착하여 왕의 첫 번째 부인 강씨의 죽음을 듣고, 아, 슬프도다! 왕께서는 반드시 밤낮으로 그리워하시어 스스로 그치지 못하실 것이니, 어찌 그러하겠는가? 옛날 가정을 이루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부인의 훌륭한 내조가 있었으니, 삼한(三韓)의 어머니로서의 모범이 된 분이 강씨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지금 사람은 죽었으나 그 자취는 남아 있으니, 어찌 그리워하지 않고 스스로 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옛날 생존해 계실 때, 왕께서 밤늦도록 정사를 보실 때, 강씨는 여러 번 살피셨고, 늦은 식사에도 부지런히 수고하시니, 강씨는 이를 절제하여 받드셨다. 해마다 조정에 나아가 정사를 보실 때, 강씨는 궁빈(宮嬪)들을 거느리고 보내셨고, 날이 저물면, 강씨는 궁빈들을 거느리고 촛불을 들고 맞이하여, 거처로 돌아오셨다. 지금 강씨는 영원히 떠나셨으니, 난대(鸞臺, 왕비의 거처)의 맑은 거울이 걸려 있지 않다. 왕께서 아침 조정에 나아가시나, 배웅하는 사람이 드물고, 저물어 거처로 돌아오시나, 돌아보면 아득하다. 다만 궁빈과 시녀들이 관을 붙잡고 흐느끼며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것을 보니, 그 슬픔이 어떠하겠는가? 아! 장례 이후, 세월이 흐르면, 푸른 풀이 무덤에 덮이고, 여우와 토끼가 그 사이를 다니리라. 곁의 큰 나무들은, 늙은 가지가 높이 솟아 있고, 날이 저물면, 나는 새들이 날개를 나란히 하여 높은 가지에 깃들이고, 나무는 바람에 휘날리며 흐느끼고, 어두운 골짜기의 물은, 졸졸 소리를 내리라. 사람이 조용하고 밤이 깊어지면, 들판은 쓸쓸하고 적막하고, 황량한 들의 신(神)이, 멀리 황량한 곳에서 노래하리라. 이때에, 첫 번째 부인 강씨의, 신령한 혼이 만약 안다면, 멀리 궁궐을 바라보며, 어찌 아득한 곳에서 슬퍼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으니 왕께서 어찌 그리워하지 않겠는가? 강씨는 갔으니, 왕께서는 마땅히 몸을 소중히 여기시기를 바라며, 이에 조칙을 내린다.
정릉 원당(흥천사) 기문(記文) 대략 (정축년)
홍무 병자년(1396년) 가을 8월 무술일에 우리 소군(小君, 신의왕후) 현비 강씨가 돌아가셨다. 임금(태조)께서 마음 아파하시며, 유사에게 명하여 시호와 존호를 추증하여 신덕왕태후(神德王太后)라 하였다. 장사 지낼 곳을 정하니 왕궁의 서남쪽 수 리의 가까운 곳으로, 산과 언덕이 둘러싸고, 풍수가 길하다고 하였다. 다음 해 정축년 정월 갑인일에 정릉에 장사 지냈다. (이하 생략)
9월 정축일에 임금께서 신 권근 등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안팎으로 수고가 많았고, 가정을 이루어 나라를 세운 날에, 오직 신덕왕후의 내조가 실로 많았고, 왕위에 오른 후에도 또한 부지런히 충고와 이익을 주었다.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바른 말을 듣지 못하게 되어, 어진 보좌를 잃은 것과 같으니, 내가 매우 슬퍼한다.” (이하 생략)
화산군 신 권근이 짓다.
이 내용은 명나라 황제의 위로 조칙과 함께, 신의왕후의 생전의 모습과 죽음 이후의 상황, 그리고 태조의 슬픔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권근이 태조의 명을 받아 지은 글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명나라 황제의 위로 조칙: 신의왕후의 죽음을 애도하며 태조를 위로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신의왕후의 내조의 공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 신의왕후의 생전 모습: 태조를 내조하며 가정을 돌보고, 조정의 일에도 도움을 주었던 신의왕후의 모습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 태조의 슬픔 묘사: 신의왕후의 죽음으로 인한 태조의 깊은 슬픔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변 풍경을 묘사하며 슬픔을 더욱 부각하고 있습니다.
- 신의왕후의 추존 과정: 신의왕후가 신덕왕태후로 추존되는 과정과 정릉에 장사 지내진 사실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 권근의 글: 태조의 명을 받아 권근이 지은 글에서는 신의왕후의 덕행을 고대의 현명한 왕후들에 비견하며 극찬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의왕후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통해하며, 명나라 황제의 위로 조칙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통해 신의왕후가 태조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였으며, 그녀의 죽음이 태조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명나라에서도 신의왕후의 역할을 인정하고 위로 조칙을 내렸다는 점에서, 그녀의 위상이 높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권근의 글은 신의왕후의 덕을 기리는 동시에,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고려하여 작성되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