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7년(1398년) 9월에 정종이 선위(禪位)를 받은 후 11월 11일 계미일에 신의왕후 한씨에게 시호(諡號)를 추가로 올리는 죽책문(竹冊文)입니다. 태조 즉위 초에 절비(節妃)로 추존되었으나, 이후 시호를 다시 정하여 올리는 의식에 사용된 글입니다. 당시의 책문은 전해지지 않고, 이 글만 남아 있습니다.
예(禮)보다 더 큰 것은 이름을 바로잡는 것(正名)이고, 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본에 보답하는 것(報本)입니다. 이에 말씀을 짓는 전례를 따라, 감히 시호를 정하는 의식을 행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성모(聖母) 한씨께서는 하늘의 조화로운 기운을 받으시고, 땅의 순리에 부합하셨습니다. 인륜의 근본을 바로 세우시어, 영원히 아름다움을 주셨고, 왕의 교화의 기틀을 도우시어, 그 후손을 크게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다만 후사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명분과 지위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은 변변치 못한 재능으로, 이에 큰 명을 받들었습니다. 적자를 빼앗으려는 난(왕자의 난)을 평정하였으니, 어찌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실로 하늘의 도움에 힘입어 이에 이른 것입니다. 이에 좋은 날을 가리어, 특별히 간소한 제수를 차립니다. 마땅히 큰 칭호를 올려, 아름다운 공렬을 기려야 합니다. 이 때문에 모 관(某官) 모(某)를 보내 삼가 책을 받들어 시호를 올리니 신의(神懿)라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넓으신 마음으로 살펴주시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헤아려 주시어, 우리 후손을 열어주시어, 영원한 세월을 누리게 하소서.
신 이첨(李詹, 직책 미상)이 짓다.
이 죽책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정명과 보본의 중요성 강조: 예의 근본인 정명(正名)과 효의 근본인 보본(報本)을 강조하며, 시호 추증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신의왕후의 덕행 찬양: 신의왕후의 덕을 하늘의 기운과 땅의 순리에 비유하며, 인륜을 바로 세우고 왕의 교화에 기여한 공을 칭송합니다. 특히 후손을 번성하게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왕자의 난 언급 및 정당화: 왕자의 난을 “적자를 빼앗으려는 난(奪嫡之亂)”으로 규정하고, 이를 평정한 것이 하늘의 도움이라고 설명하며, 태종의 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 신의왕후의 시호 추증: 신의왕후에게 ‘신의(神懿)’라는 시호를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신의’는 ‘신령스럽고 아름답다’는 뜻으로, 왕후의 덕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후손의 번영 기원: 신의왕후의 은덕으로 후손들이 영원히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 죽책문은 신의왕후의 덕을 기리는 동시에, 태종의 즉위를 정당화하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왕자의 난을 하늘의 뜻으로 해석하고, 신의왕후의 덕이 왕조의 번영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 점이 특징적입니다. 또한, 이 글을 통해 태조 즉위 초에 신의왕후가 ‘절비’로 추존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후 ‘신의’로 시호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글은 신의왕후의 시호가 바뀌는 과정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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