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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각비 부기 (영종 20년 갑자년 11월)

集賢堂 2024. 12. 1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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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왕후 한씨의 제릉(齊陵)에 세워진 비석을 다시 새긴 후 그 내용을 덧붙인 기록, 즉 ‘중각비부기(重刻碑附記)’입니다. 영종 20년(1744년) 11월에 작성되었으며, 이전에 세워졌던 비석이 임진왜란 이후 훼손되어 그 내용을 다시 새기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 이곳은 바로 우리 태조 강헌대왕의 원비(元妃) 신의왕후 한씨의 제릉입니다. 갑좌경향(甲坐庚向)의 방향입니다. 태종 계미년(1403년) 2월에 길창군 신 권근이 비문을 지어 올렸고, 갑신년(1404년) 2월에 비석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이후로 다만 지장(誌狀, 묘지명)에 기록된 글만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 임금(영종) 17년 신유년(1737년)에 도신(道臣, 지방 관찰사)이 옛 비석을 다시 세울 것을 청하는 일이 있었으나, 그때는 일이 바빠 겨를이 없었습니다. 갑자년(1744년)에 종신(宗臣, 종친)이 다시 아뢰니, 드디어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새 돌에 옛 글을 새기게 하시고, 종백(宗伯, 예부 상서)이 그 예식을 주관하고, 사도(司徒, 공조 판서)가 그 일을 맡았습니다. 이에 신 이의현(李宜顯)에게 명하여 그 아래에 기록을 덧붙이게 하시므로, 신은 삼가 손을 모아 머리를 조아리며 아룁니다. “여러 백 년을 거치면서, 폐지되었던 의례가 비로소 다시 행해지니, 성후(聖后, 신의왕후)께서 도와 나라를 다스리신 위대한 업적이 이로 인해 더욱 드러나고, 우리 성상(聖上, 영종)께서 먼 조상을 추모하는 효성을 또한 우러러볼 수 있습니다. 한 번의 거행으로 여러 아름다움이 갖추어지니, 아, 훌륭하도다!”

봉조하 신 이의현이 짓다.

이 부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제릉의 위치와 방향: 제릉이 갑좌경향의 방향에 위치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풍수지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비석 건립과 훼손 과정: 태종 때 처음 비석이 세워졌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훼손되어 지장에만 그 내용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오랜 시간이 지나 비석이 다시 세워지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 비석 중건의 경위: 영종 대에 들어와 지방 관찰사의 건의와 종친의 요청으로 비석을 다시 세우게 되었음을 설명합니다. 이는 비석 중건이 임금의 명에 의한 국가적인 사업이었음을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 비석 중건의 의의: 비석을 다시 세움으로써 신의왕후의 업적을 기리고 영종의 효심을 드러내는 효과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일거이중미구언(一擧而衆美具焉)”이라는 표현은 비석 중건이 여러 가지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부기는 단순히 비석을 다시 세운 사실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역사적 의미와 의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으로 인해 훼손되었던 문화유산을 복구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사업이었으며, 이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백성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기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신의왕후의 업적을 다시 한번 기리는 계기가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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