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유년(己酉年, 1669년) 10월 초하루 신유일(辛酉日)에 거행된 부묘제(祔廟祭)의 제문(祭文)입니다. 여기서 '대비(大妃)'는 신덕왕후(神德王后)를 가리키며, '열조(烈祖)'는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를 가리킵니다. 즉, 이 제문은 신덕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의식, 즉 부묘 의식에서 사용된 제문입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대비(大妃, 신덕왕후)께서는 열조(烈祖, 태조)의 배필이 되시어, 중국 조정의 명을 받으시고, 왕실의 안주인이 되셨습니다. 덕스러운 말씀은 비록 멀어졌으나, 아름다운 명칭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부묘의 예가 거행되지 않은 지, 몇 년이나 되었습니까? 밝게 오르내리시니, 마치 임하시어 돌아보시는 듯합니다. 어린 저로서는, 이에 두려워합니다. 늦가을 첫날, 날과 시각이 길합니다. 이에 훌륭한 의식을 갖추어, 종묘의 대실(大室)에 올립니다. 엄숙하고 고요한 사당에는, 엄숙함과 밝음이 함께합니다. 아름다움이 가득하니, 백세토록 신주를 옮기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저는 병을 앓아, 오래도록 더욱 깊어졌습니다. 규폐(珪幣, 제사 예물)를 받들지 못하였으니, 다만 슬픔과 그리움만 더할 뿐입니다. 정성껏 재계하고 깨끗한 제물을 올리니, 재상(宰相)이 섭행(攝行)합니다. 아아, 거룩한 신령이시여! 바라옵건대 제사 음식을 흠향(歆饗)하소서.]”
지제교(知製敎) 신 김석주(金錫胄)가 짓다.
각 용어에 대한 설명:
- 부묘(祔廟): 왕이나 왕비가 승하한 후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 의례.
- 대비(大妃): 선왕의 왕비. 여기서는 태조의 비인 신덕왕후를 가리킴.
- 열조(烈祖): 태조 이성계. 조선 왕조의 시조.
- 중조(中朝): 중국의 조정, 명나라 또는 청나라를 의미. 조선은 중국의 제후국이었으므로, 왕비 책봉 등을 중국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 내壼(내곤): 왕실의 안주인, 왕비를 의미.
- 덕음(德音): 덕스러운 말씀, 왕비의 가르침이나 덕행을 의미.
- 휘칭(徽稱): 아름다운 명칭, 왕비의 존호나 시호를 의미.
- 척강(陟降): 신령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것, 신령의 임재(臨在)를 의미.
- 유자(小子):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의 겸칭. 여기서는 왕(현종)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
- 맹동(孟冬): 겨울의 첫 달, 즉 음력 10월.
- 유삭(維朔): 초하루.
- 대실(大室): 종묘의 가장 중요한 건물로,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곳.
- 비침(閟寢): 깊숙하고 조용한 사당.
- 목기소(穆曁昭): 엄숙함과 밝음이 함께함. 종묘의 신성함을 표현.
- 취가양양(萃假洋洋): 아름다움이 가득함. 종묘의 웅장함과 신성함을 묘사.
- 백세미조(百世靡祧): 백세토록 신주를 옮기지 않음. 영원히 종묘에 모셔진다는 의미.
- 영질(嬰疾): 병을 앓음. 현종은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음.
- 규폐(珪幣): 제사에 사용하는 예물.
- 창모(愴慕): 슬픔과 그리움.
- 재성천결(齋誠薦潔): 정성껏 재계하고 깨끗한 제물을 올림. 제사의 기본 자세.
- 섭이재보(攝以宰輔): 재상이 섭행함. 왕이 병으로 직접 제사를 주관할 수 없을 때 재상이 대신하는 것을 의미.
- 어목황령(於穆皇靈): 아아, 거룩한 신령이시여! 신령에게 존경과 경외를 표하는 말.
- 흠향(歆饗): 신령이 제사 음식을 받아서 흠향함.
- 지제교(知製敎): 왕명으로 글을 짓는 관직.
- 김석주(金錫胄):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이 제문을 지은 사람.
제문의 내용 분석:
이 제문은 신덕왕후의 덕을 기리고, 종묘에 부묘하는 의식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이 주목할 만합니다.
- 신덕왕후의 위상 강조: 태조의 배필이자 왕실의 안주인으로서 신덕왕후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중국 조정의 명을 받았다는 언급을 통해, 왕후의 정통성을 강조합니다.
- 늦어진 부묘에 대한 안타까움: 부묘가 늦어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이제야 정당한 예식을 거행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마음을 드러냅니다. "부묘의 예가 거행되지 않은 지, 몇 년이나 되었습니까?"라는 문장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 현종의 건강 문제 언급: 현종 자신의 병 때문에 직접 제사를 주관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小子嬰疾, 久而彌痼。未奉珪幣, 秖增愴慕。"라는 구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종묘의 신성함 강조: 종묘의 엄숙함과 신성함을 묘사하여, 부묘 의식의 중요성을 부각합니다. "肅肅閟寢, 維穆曁昭。萃假洋洋, 百世靡祧。"라는 구절에서 종묘의 숭고한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 신령에 대한 경외심 표현: 마지막으로 신령에게 제사 음식을 흠향해 주기를 간청하며, 제문을 마무리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제례 의식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결론:
이 제문은 신덕왕후의 부묘 의식을 거행하면서, 왕후의 덕을 기리고 종묘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늦어진 부묘에 대한 안타까움과 현종 자신의 건강 문제에 대한 언급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이 문서는 조선 시대 왕실의 의례와 문화, 그리고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특히, 신덕왕후의 부묘는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제문은 당시 정치 상황을 반영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