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차(維歲次) 신유년(辛酉年, 1681년) 12월 경진삭(庚辰朔) 초이레 병술일(丙戌日)에 효증손(孝曾孫) 사왕(嗣王) 신(臣, 숙종의 이름)이 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말씀을 올립니다.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백 년 동안 거행하지 못했던 의식을 바로잡으니, 묘호(廟號)는 이미 바르게 되었고, 네 글자로 된 아름다운 칭호를 드러내니, 숨은 공덕이 더욱 빛날 것입니다. 빛나는 책(冊)을 추서(追敍)하여 진열하니, 떳떳한 법도(彝章)가 모두 갖추어집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정안왕후(定安王后)께서는 자태가 온화하고 아름다우시며, 마음 씀씀이가 깊고 넓으셨습니다. 아래 사람에게 베푸는 인자함은, 역사에 빛나고(彤管에 빛나고), 하늘의 뜻을 순히 따르심은, 도(道)가 황상(黃裳, 곤괘의 괘사로 지극히 순함을 의미)에 부합합니다. 옛날 우리 후릉(厚陵, 정종의 능)에서 돌아가셨을 때, 바로 그때는 왕실에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였으나, 효성과 우애로운 행실은, 신과 사람을 감동시켰고, 왕위를 물려주는 높은 뜻은,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의 고사보다 뛰어났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나라의 영원한 의지가 된 것은, 안팎의 도움이 서로 합쳐진 것이 아닌 것이 없으니, 비록 종묘(宗廟)의 신주를 옮기는 일이 여러 번 있었지만, 아름다운 명성은 마치 눈앞에 있는 듯합니다. 이에 절의와 은혜에 대한 예(禮)를 생각하건대, 오히려 드높여 기리는 것이 부족함을 느끼고, 아마도 담당하는 신하들이, 아뢰는 일을 겨를이 없어 하지 못하였기에, 인습에 따라 거행하지 못하여,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보게 하였겠습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 그칠 날이 없어, 훌륭한 업적이 드러나지 못할까 염려합니다. 이에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성대한 의식을 거행합니다. 삼가 신 의정부(議政府)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을 보내어 옥책(玉冊)을 받들어 휘호(徽號)를 더하여 온명장의(溫明莊懿)라 합니다. 바라옵건대 정성스러운 마음을 살펴주시고, 굽어 살피시어 밝게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을 제사와 봄 제사에, 끝없는 복을 내려 주시고, 옥으로 만든 족보(玉牒)와 금으로 쓴 문서(金書)에, 아름다운 이름을 영원히 남기소서. 아! 슬프도다! 삼가 말씀드립니다.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 신 김만중(金萬重)이 짓다.
추가 설명:
- 추상 휘호(追上徽號): 이미 내려진 시호 외에 추가로 칭호를 올리는 것. 여기서는 정안왕후에게 추가로 칭호를 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 유세차(維歲次): 해의 차례를 나타내는 의례적인 문구.
- 효증손(孝曾孫): 효성스러운 증손. 숙종이 정안왕후의 증손임을 나타내는 표현.
- 묘호(廟號): 종묘에 신위를 모시는 임금의 칭호.
- 휴칭(休稱): 아름다운 칭호.
- 음공(陰功): 드러나지 않은 공덕.
- 이장(彝章): 떳떳한 법도, 변치 않는 규범.
- 정안왕후(定安王后): 정종의 비(妃).
- 완예(婉嫕): 온화하고 아름다움.
- 색연(塞淵): 깊고 넓음.
- 동관(彤管): 붉은색으로 칠한 필관. 사관이 역사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으므로, 역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 황상(黃裳): 《주역》 곤괘(坤卦)의 괘사 중 하나로, 지극히 순함을 의미한다.
- 후릉(厚陵): 정종의 능.
- 선양(禪讓): 왕위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
- 요(堯)와 순(舜): 중국 고대의 이상적인 임금.
- 종조(宗祧): 종묘.
- 미음(徽音): 아름다운 명성.
- 절혜(節惠): 절의와 은혜.
- 유양(揄揚): 드높여 기림.
- 유사(有司): 담당하는 관리.
- 건청(建請): 의견을 올려 아룀.
- 인순(因循): 인습을 따름.
- 후세(後世): 후대 사람들.
- 휼척(怵惕): 두려워하고 떨림.
- 성렬(盛烈): 훌륭한 업적.
- 군의(群議): 여러 사람의 의견.
- 욕의(縟儀): 성대한 의식.
- 온명장의(溫明莊懿): 정안왕후에게 추가된 휘호.
- 정충(精衷): 정성스러운 마음.
- 명가(明假): 밝게 허락함.
- 추상(秋嘗)과 춘사(春祀): 가을 제사와 봄 제사.
- 옥첩(玉牒): 옥으로 만든 족보.
- 금서(金書): 금으로 쓴 문서.
- 영명(令名): 아름다운 이름.
이 옥책문은 숙종이 정안왕후에게 추가로 휘호를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안왕후의 덕행과 공덕을 기리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특히 그녀의 온화하고 아름다운 성품, 깊고 넓은 마음 씀씀이, 그리고 왕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보여준 효성과 우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의 덕이 나라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되었음을 언급하며, 이제라도 그녀의 공덕을 기리는 의식을 거행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김만중의 문장답게, 간결하면서도 의미를 잘 전달하는 표현들이 돋보입니다. 이 문서를 통해 조선 시대 왕실의 휘호 추상 의식과 왕후의 위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