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永樂) 10년 임진년(壬辰年, 1412년) 6월 갑인삭(甲寅朔) 25일 무인일에 순덕대비(順德大妃)께서 훙서(薨逝)하셨다. 이에 8월 초8일 경신일에 후릉(厚陵)으로 좌정(座定, 신주를 모시는 것)하게 되니, 예(禮)에 따른 것이다. 빈궁(殯宮)은 새벽을 향하고, 영거(靈輴, 영구차)는 떠나려 하니, 별과 달이 처참하게 어지럽게 늘어서 있고, 의장(儀仗)은 엄숙하게 종횡으로 벌어져 있다. 우리 성상(聖上, 태종)께서는 왕후(王后)의 의(義)를 중히 생각하시고, 장례를 치르는 정성을 깊이 하셨다. 이에 책문(冊文)을 짓게 하여, 아름다운 명성(休聲)을 기록하게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직 우리 대비(大妃)께서는,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셨네. 하늘이 내린 진실한 성품으로, 정숙하고 아름다움을 이루셨네. 존귀한 선왕(先王)과 짝하시어, 안방의 법도(壼儀)를 잘 다스리셨네. 태임(太任,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을 본받으시니, 아름다운 명성이 이어지네. 거의 장수하시어, 끝까지 바르고 길하게 마치시기를 바랐건만, 하늘은 참으로 아득하고, 일 또한 예측할 수 없네. 갑작스런 큰 병환에, 백 번의 몸으로도 속죄할 수 없네. 상복(象服)은 갑자기 비게 되고, 어거(魚軒, 왕비의 수레)는 영원히 고요해졌네. 아! 슬프도다! 《내칙(內則)》의 가르침만 헛되이 전하고, 고매(高禖, 출산을 관장하는 신)에 제사 지내는 일은 다시 없네. 이슬 잎은 말라 자취 없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은 돌아오지 않네. 아! 슬프도다! 신선 세계를 생각하니 혼(魂)은 아득하고, 빈 후궁(後宮)에는 슬픔이 깊고 깊네. 오동나무는 밤비에 시들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가을 그늘에 덮였네. 아! 슬프도다! 진실로 이치와 운수를 피하기 어려우니, 누가 능히 초연히 홀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리워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기에, 이로써 글로써 표현하네. 아! 슬프도다!
성균관 대사성 신 권우(權遇)가 짓다.
추가 설명:
- 애책문(哀冊文): 왕비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글.
- 훙서(薨逝): 왕이나 왕비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 좌정(座定): 신주를 정해진 곳에 모시는 것.
- 빈궁(殯宮):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신을 모셔두는 곳.
- 영거(靈輴): 영구차.
- 의장(儀仗): 의식에 사용되는 각종 기물.
- 성상(聖上): 임금을 높여 이르는 말. 여기서는 태종을 가리킨다.
- 왕후(王后): 왕의 정비. 여기서는 순덕대비를 가리킨다.
- 휴성(休聲): 아름다운 명성.
- 대비(大妃): 선왕의 비.
- 영족(令族): 훌륭한 가문.
- 정숙(貞淑): 정절이 있고 얌전함.
- 선왕(先王): 이미 세상을 떠난 임금. 여기서는 정종을 가리킨다.
- 곤의(壼儀): 안방의 법도, 아내의 도리.
- 태임(太任):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로,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 고매(高禖): 출산을 관장하는 신.
- 내칙(內則): 《예기》의 편명 중 하나로, 부녀자의 도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 상복(象服): 상례 때 입는 옷.
- 어거(魚軒): 왕비의 수레.
- 선부(仙府): 신선 세계.
- 후궁(後宮): 왕의 후비들이 거처하는 곳.
- 이수(理數): 이치와 운수.
이 애책문은 순덕대비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글로, 그녀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행적과 덕행을 기리고 있습니다. 특히, 그녀의 고귀한 출신, 정숙한 성품, 현명한 내조, 그리고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태임의 고사를 인용하여 순덕대비의 덕을 칭송하고, 《내칙》과 고매에 대한 언급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과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묘사를 통해 슬픔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으며, 마지막에는 인간의 유한함을 탄식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를 통해 조선 시대 왕실의 장례 문화와 왕비의 위상,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