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북송의 시인 소식(蘇軾, 1037-1101)이 동생 소철(蘇轍, 1039-1112)과 정주(鄭州) 서문 밖에서 이별한 후 말 위에서 지어 보낸 시입니다. 제목은 "신축년 11월 19일 이미 자유(子由, 소철의 자)와 정주 서문 밖에서 이별하고, 말 위에서 시 한 편을 지어 보내다(辛丑十一月十九日既與子由別於鄭州西門之外,馬上賦詩一篇寄之)"입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어찌 이리 술 취한 듯 멍한가. 이 마음 이미 돌아가는 안장을 따라 떠났네. 돌아가는 사람도 오히려 집안 생각하거늘, 지금 나는 무엇으로 이 적막함을 달래랴. 높은 곳에 올라 머리 돌리니 언덕과 밭둑에 가로막혀, 오직 검은 모자만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이 보이네. 몹시 추운 날씨에 네 솜옷 얇을까 염려되고, 홀로 여윈 말을 타고 지는 달을 밟아가네. 길 가는 사람은 노래하고 마을 사람들은 즐거워하는데, 아이들은 내가 몹시 슬퍼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네. 인생에는 이별이 있어야 함을 또한 알지만, 다만 세월이 덧없이 흘러갈까 두렵네. 싸늘한 등불 마주하며 지난날을 떠올리니, 어느 때나 밤비 소리 들을 수 있을까. 그대는 이 뜻을 잊지 말 것을 아나니, 부디 높은 벼슬을 탐하지 마오. 전에 밤에 비 내릴 때 평상에서 함께 이야기했던 적이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노라.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형제간의 깊은 우애와 이별의 슬픔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식은 동생과의 이별을 몹시 아쉬워하며, 다음과 같은 감정을 시에 담았습니다.
- 이별의 슬픔과 적막함: "마시지도 않았는데 어찌 이리 술 취한 듯 멍한가(不飲胡為醉兀兀)."라는 구절은 이별의 충격과 슬픔으로 정신이 멍해진 상태를 비유적으로 나타냅니다. "지금 나는 무엇으로 이 적막함을 달래랴(今我何以慰寂寞)."라는 구절에서는 홀로 남겨진 외로움과 적막함을 직접적으로 토로합니다.
- 동생에 대한 염려: "몹시 추운 날씨에 네 솜옷 얇을까 염려되고(苦寒念爾衣裘薄)."라는 구절에서는 추운 날씨에 동생의 건강을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 세월의 무상함에 대한 탄식: "인생에는 이별이 있어야 함을 또한 알지만, 다만 세월이 덧없이 흘러갈까 두렵네(亦知人生要有別。但恐歲月去飄忽)."라는 구절에서는 이별의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냅니다.
- 과거의 추억: "싸늘한 등불 마주하며 지난날을 떠올리니, 어느 때나 밤비 소리 들을 수 있을까(寒燈相對記疇昔。夜雨何時聽蕭瑟)."라는 구절은 과거 형제가 함께 밤에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추억을 회상하는 부분입니다. 이는 형제간의 깊은 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시 함께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 동생에 대한 당부: 마지막 구절 "그대는 이 뜻을 잊지 말 것을 아나니, 부디 높은 벼슬을 탐하지 마오(君知此意不可忘。慎勿苦愛高官職)."는 동생에게 높은 벼슬에 집착하지 말고, 인간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라는 당부의 말입니다. 이는 소식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전에 밤에 비 내릴 때 평상에서 함께 이야기했던 적이 있기에 이와 같이 말하노라(嘗有夜雨對牀之言故云爾)."라는 주석은 이 당부가 단순히 벼슬을 탐하지 말라는 뜻뿐 아니라, 형제간의 정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임을 강조합니다.
이 시는 이별의 슬픔, 형제애, 세월의 무상함 등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소식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진솔한 감정을 전달하는 소식의 시풍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면지(澠池)를 방문했을 때 과거를 회상하며 지은 시 "화자유면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입니다. 여기서 "화(和)"는 시를 화답하는 것을 의미하며, 소철이 먼저 면지에 대한 시를 지었고, 소식이 그에 화답하여 이 시를 지은 것입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생이 어디에 이르러 어떤 모습인지 알겠는가. 응당 나는 기러기가 눈 위의 진흙을 밟는 것과 같으리라. 진흙 위에 우연히 발톱 자국을 남기지만, 기러기가 날아가면 다시 어디로 갔는지 헤아릴 수 없네. 늙은 스님은 이미 죽어 새로운 탑이 되었고, 허물어진 벽에는 옛 글씨를 볼 길이 없네. 지난날의 험난했던 길이 아직도 기억나는가. 길은 멀고 사람은 지쳐 절뚝거리는 나귀가 울었지. 지난해에는 말이 이릉(二陵)에서 죽어, 나귀를 타고 면지에 이르렀었지.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인생의 무상함과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소식은 면지를 방문하여 과거 동생과 함께 이곳을 지나갔던 일을 떠올리며, 세월의 흐름과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합니다.
- 인생의 무상함: "인생이 어디에 이르러 어떤 모습인지 알겠는가. 응당 나는 기러기가 눈 위의 진흙을 밟는 것과 같으리라(人生到處知何似。應似飛鴻踏雪泥)."라는 첫 두 구절은 이 시의 핵심 주제를 드러냅니다. 기러기가 눈 위에 잠시 발자국을 남기지만, 곧 날아가 버려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듯이, 인간의 삶 또한 덧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흙 위에 우연히 발톱 자국을 남기지만, 기러기가 날아가면 다시 어디로 갔는지 헤아릴 수 없네(泥上偶然留指爪。鴻飛那復計東西)."라는 구절은 이러한 무상함을 더욱 강조합니다.
- 변해버린 현실: "늙은 스님은 이미 죽어 새로운 탑이 되었고, 허물어진 벽에는 옛 글씨를 볼 길이 없네(老僧已死成新塔。壞壁無由見舊題)."라는 구절은 과거에 만났던 스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 새로운 탑이 세워졌고, 예전에 보았던 벽의 글씨는 허물어져 찾을 수 없게 된 현실을 묘사합니다. 이는 시간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과거의 추억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감정을 나타냅니다.
- 과거의 고생스러운 기억: "지난날의 험난했던 길이 아직도 기억나는가. 길은 멀고 사람은 지쳐 절뚝거리는 나귀가 울었지(往日崎嶇還記否。路長人困蹇驢嘶)."라는 구절은 과거 면지로 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회상하는 부분입니다. 험난한 길을 걸어오느라 사람들은 지쳐 있었고, 나귀는 힘겹게 울었다고 합니다. 이는 고생스러웠지만 함께했던 동생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 말의 죽음과 나귀를 타고 온 기억: 마지막 구절 "지난해에는 말이 이릉(二陵)에서 죽어, 나귀를 타고 면지에 이르렀었지(往歲馬死於二陵。騎驢至澠池)."는 과거 여행 중 말이 죽어 나귀를 타고 면지까지 왔던 구체적인 경험을 언급합니다. 이는 과거의 기억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시는 소식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풍을 잘 보여줍니다.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인생의 무상함과 과거의 추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나는 기러기가 눈 위의 진흙을 밟는 것과 같으리라(應似飛鴻踏雪泥)."라는 구절은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명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유경조(劉京兆)의 석림정(石林亭)을 방문하고 그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차운화유경조석림정지작(次韻和劉京兆石林亭之作)"입니다. 여기서 "차운(次韻)"은 상대방의 시 운자를 사용하여 화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의 배경은 원래 당나라의 정원에 있던 돌들이 민간에 흩어져 있었는데, 유경조가 그것들을 사들여 석림정을 꾸몄다는 것입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성은 날로 황폐해지고,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네. 오직 옛 정원의 돌만이, 흩어져 아직 인간 세상에 남아 있네. 공께서 오셔서 비로소 사 모으시니, 먼 길의 어려움도 꺼리지 않으셨네. 온통 티끌 속에서, 와서 눈처럼 흰 얼굴을 마주하네. 앙상한 뼈대는 늠름하고, 푸른 뿌리는 흐르는 물에 씻기네. 당나라 사람들은 오직 기이한 문장을 숭상했고, 좋은 돌은 예로부터 견줄 데가 없었네. 이제 모두 유씨(牛氏)에게 속하게 되었으니, 조각한 흔적이 어지럽게 남아 있네. 아, 이것이 본래 어찌 항상하겠는가.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 실로 순환하는 것이거늘. 사람을 잃는 것도 또한 사람을 얻는 것이니, 결국 이 천지 밖을 벗어나지 못하네. 그대는 유씨와 이씨의 말로를 보라, 하관(河關)조차 지키지 못했거늘. 하물며 이 백 그루의 돌이야, 태산에 비하면 깃털과 같거늘. 다만 돌을 마주하며 술을 마실 뿐, 모든 일을 무심히 부치리.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역사의 흥망성쇠와 사물의 무상함을 돌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습니다. 소식은 유경조가 모은 돌들을 보며 과거 당나라의 영화가 사라지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겪은 역사를 회상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합니다.
- 도성의 황폐와 역사의 흐름: "도성은 날로 황폐해지고,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네(都城日荒廢。往事不可還)."라는 구절은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의 옛 모습이 사라지고 현재는 황폐해진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는 역사의 흐름과 무상함을 나타내는 배경이 됩니다.
- 돌의 기구한 운명: "오직 옛 정원의 돌만이, 흩어져 아직 인간 세상에 남아 있네(惟餘故苑石。漂散尚人間)."라는 구절은 원래 당나라 정원에 있던 돌들이 흩어져 민간에 떠돌아다니게 된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는 돌이라는 사물조차 역사의 풍파를 겪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유경조의 수집: "공께서 오셔서 비로소 사 모으시니, 먼 길의 어려움도 꺼리지 않으셨네(公來始購蓄。不憚道里艱)."라는 구절은 유경조가 흩어진 돌들을 다시 모으는 노력을 칭찬하는 부분입니다.
- 돌의 모습과 가치: "앙상한 뼈대는 늠름하고, 푸른 뿌리는 흐르는 물에 씻기네(瘦骨拔凜凜。蒼根漱潺潺)."라는 구절은 돌의 모습을 묘사하며, "당나라 사람들은 오직 기이한 문장을 숭상했고, 좋은 돌은 예로부터 견줄 데가 없었네(唐人唯奇章。好石古莫攀)."라는 구절은 돌의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강조합니다.
- 소유의 변화와 무상함: "이제 모두 유씨(牛氏)에게 속하게 되었으니, 조각한 흔적이 어지럽게 남아 있네(盡今屬牛氏。刻鑿紛班班)."라는 구절은 돌의 소유주가 바뀌었음을 나타내며, "아, 이것이 본래 어찌 항상하겠는가.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 실로 순환하는 것이거늘(嗟此本何常。聚散實循環)."이라는 구절은 사물의 변화와 무상함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 역사의 교훈: "사람을 잃는 것도 또한 사람을 얻는 것이니, 결국 이 천지 밖을 벗어나지 못하네. 그대는 유씨와 이씨의 말로를 보라, 하관(河關)조차 지키지 못했거늘(人失亦人得。要不出區寰。君看劉李末。不能保河關)."라는 구절은 역사의 흥망성쇠를 언급하며, 아무리 강한 권력도 영원할 수 없음을 경고합니다. 유씨와 이씨는 당나라 말기의 혼란기에 권력을 잡았던 인물들로, 결국 몰락했습니다.
- 무심한 태도: 마지막으로 "하물며 이 백 그루의 돌이야, 태산에 비하면 깃털과 같거늘. 다만 돌을 마주하며 술을 마실 뿐, 모든 일을 무심히 부치리(況此百株石。鴻毛於太山。但當對石飲。萬事付等閑)."라는 구절은 모든 것에 초연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돌이라는 작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술을 마시며 모든 것을 잊겠다는 것입니다.
이 시는 소식 특유의 역사 의식과 달관적인 인생관을 잘 보여줍니다. 돌이라는 소재를 통해 역사의 흐름과 인간사의 무상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임인년(1062년) 2월에 조정의 명령을 받아 여러 현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감형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그 여정 중에 보고 느낀 바를 500언의 장시로 지어 동생 소철(蘇轍)에게 보낸 "임인년 2월 조칙이 있어 군의 관리를 시켜 여러 속현에 가서 갇힌 죄수를 감형하게 하였는데, 13일에 명령을 받고 관아를 나서서 보계(寶雞), 괵(虢), 미(郿), 주지(盩厔) 네 현의 일을 마치고, 태평궁에 조현하고 남계 계당에서 묵으며 남산을 따라 서쪽으로 누관(樓觀), 대진사(大秦寺), 연생관(延生觀), 선유담(仙遊潭)까지 갔다가 19일에 돌아와, 모든 겪은 일을 기록하여 시를 지어 자유(子由, 소철)에게 보내다(壬寅二月有詔,令郡史分往屬縣減決囚禁,自十三日受命出府,至寶雞虢郿盩厔四縣,既畢事,因也朝謁太平宮,而宿於南溪溪堂,遂並南山而西至樓觀大秦寺延生觀仙遊潭,十九日迺歸,作詩五百言,以記凡所經歷者寄子由)"입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분석과 설명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 곳 백성은 수재와 한재에 시달리는데, 임금의 명령으로 포로를 석방하네. 여러 현에 명확한 조칙을 전하고, 산을 따라 아름다운 유람을 하였네. 쓸쓸하게 성 밖을 나서니, 광활함이 실로 시름을 덜어주네. 해 질 무렵 외로운 마을에 이르러, 제갈량을 추억하며 높은 곳에 오르네. 높고 험준한 절벽에 의지하고, 아득히 흐르는 강물을 굽어보네. 한밤중에 사람들이 급히 외치니, 하늘을 가로질러 불기운이 떠오르네. 하늘이 멀어 분간하기 어려운데, 거센 바람에 이미 잡기 어렵네. 새벽에 진창현에 들어가니, 오히려 술 파는 누각이 남아 있네. 연기와 그을음은 이미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관리와 병졸들은 여전히 탄식하네.
(13일 무성진에서 묵었는데, 속칭 석비채라고 하며, 전해지는 바로는 제갈량이 쌓았다고 한다. 이 날 밤 2경(밤 9시~11시)에 보계에서 불이 났는데, 30리나 떨어져 있었지만 무성에서도 보였다.)
계령의 구름과 안개는 예로부터 신령하고, 용관의 전각은 그윽하네. 현에는 계조봉과 용관사가 있네. 남산은 대산과 이어져 있고, 돌아오는 길은 우리 주(州)를 향하네. 가고자 하나 어찌 능히 뜻을 이루랴. 장차 돌아가려 하니 잠시 머무르네. 서괵의 길로 방향을 돌려, 다시 작은 강의 물가를 건너네. 듣자 하니 반계의 돌이, 여전히 위수 머리에 남아 있다 하네. 푸른 벼랑에는 비록 흔적이 있지만, 태공의 큰 낚싯대는 본래 낚시 바늘이 없었네.
(14일 보계에서 출발하여 괵에 이르렀는데, 태공의 반계석이 현 동남쪽 18리에 있으며, 여전히 낚싯대를 던지고 무릎 꿇어 미끼를 끼우던 두 무릎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동쪽으로 가서 미오를 지나니, 외로운 성이 마치 한나라 유씨와 같네. 누가 동탁이 강하다고 말했는가. 마침내 다시 오부의 원수가 되었네. 날카로운 칼날이 갑자기 팔꿈치에서 생기고, 황금은 부질없이 언덕처럼 쌓였네.
(15일에 미현에 이르렀는데, 현에는 동탁의 성이 있고, 그 성은 장안과 같아서, 속칭 소장안이라고 한다.)
평소에 이태백의 이름을 들었는데, 한 번 보니 행차를 멈추네. 북과 나팔을 누가 능히 시험하랴. 풍뢰가 과연 이르지 않겠는가. 험준한 벼랑은 이미 기이하고 절묘한데, 얼음과 눈이 더욱 조각해 놓았네. 봄 가뭄에 보리가 없을까 걱정인데, 산신령은 샘이 있음을 기뻐하네. 교룡은 게으르게 잠자고, 작은 병에는 몰래 훔쳐 담네.
(이날 저녁에 미에서 출발하여 청추진에서 묵었는데, 태백산을 지나갔다. 전해지는 바로는 군대가 북과 나팔을 불며 산 아래를 지나가면, 곧 우레와 비가 내린다고 한다. 산 위에는 샘이 있는데, 매우 영험하다고 한다. 올해 가뭄이 심하여, 물을 얻어 쓸 것을 의논하고 있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소식이 죄수 감형이라는 공무를 수행하면서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한 기행시입니다. 여정의 풍경 묘사,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감회, 자연에 대한 감탄, 백성에 대한 염려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 여정의 묘사: 시는 여정의 순서에 따라 지명과 그곳의 풍경을 묘사합니다. 보계, 괵, 미 등 여러 지역의 특징적인 모습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밤에 멀리서 보이는 불길, 험준한 산세, 흐르는 강물 등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감회: 제갈량이 쌓았다는 석비채, 태공망의 반계, 동탁의 성 등 역사적인 인물과 관련된 장소를 방문하며 그에 대한 감회를 드러냅니다. 특히 동탁에 대한 평가는 그의 폭정과 몰락을 간결하게 보여줍니다.
- 자연에 대한 감탄: 계령의 운무, 남산의 웅장함, 태백산의 기이함 등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을 표현합니다. 특히, 태백산의 영험한 샘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 백성에 대한 염려: "먼 곳 백성은 수재와 한재에 시달리는데(遠人罹水旱)."라는 구절에서 백성들의 고통을 염려하는 마음을 드러냅니다. 또한, 가뭄으로 인해 물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언급하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안타까워합니다.
- 기행문의 성격: 시 곳곳에 여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날짜, 숙박 장소, 거리, 전해지는 이야기 등은 이 시가 단순한 서정시가 아닌 기행문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소식의 풍부한 감수성과 뛰어난 묘사력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행의 경험을 통해 역사, 자연, 인간사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아내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생생한 현장감과 깊은 여운을 전달합니다. 특히, 역사적인 고사를 적절히 활용하여 시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든 점이 돋보입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한 기행시의 일부입니다. 특히 주지(盩厔) 지역과 그 주변의 명승지를 방문한 내용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분석과 설명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 갈래 숲에는 맑은 샘이 있고, 세 줄기 강물의 기상이 서로 같네. 산 가까이에는 보리가 일찍 익고, 물가에는 대나무 숲이 길게 뻗어 있네.
(16일에 주지에 이르렀는데, 그곳은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매우 따뜻하여, 현에는 관에서 관리하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십여 리에 걸쳐 끊이지 않는다.)
선제(先帝)께서 천명을 받으시어, 행궁에는 면류관을 그린 그림이 있네. 신하들은 무관의 모자를 쓰고, 여악들은 공후를 안고 있네. 깊숙한 전각은 금빛 자물쇠로 잠겨 있고, 신인은 옥으로 만든 용을 타고 있네. 검은 옷을 입고 큰 칼을 비껴 들고, 헝클어진 머리에 매서운 두 눈빛을 하고 있네.
(17일 한식날, 주지에서 동남쪽으로 20여 리를 가서, 태평궁에 있는 두 성인의 초상화를 배알하였다. 이 궁은 태종 황제 때, 신이 도사 장수진에게 내려와 천명을 받았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세운 것이다. 신에게 익성장군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전각이 있다.)
뜻이 맞는 좋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 함께 색깔 있는 배를 띄우네. 삿대를 던져 푸른 마름을 헤치고, 맑은 개울에서 발을 씻네. 저녁에 남계에서 묵으니, 마치 물의 나라 가을 같네. 호수를 둘러싸고 푸른 나무를 빽빽이 심으니, 밤새도록 바람 소리가 쓸쓸하게 들리네.
(이날 감궁 장고지와 함께 남계에서 배를 타고, 계당에서 묵었다.)
새벽을 무릅쓰고 깊숙한 곳을 탐험하니, 창을 잡고서도 무섭게 빛나는 호랑이를 두려워하네.
(18일 종남산을 따라 서쪽으로 갔는데, 현의 관리가 갑옷 입은 군사들을 보내 호위하였다. 어떤 사람은 관의 대나무 숲 근처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윤희의 집은 여전히 있고, 노자가 옛날에 수레를 멈추었던 곳이네. 도를 물으니 옛 흔적이 남아 있고, 신선이 되어 올라간 옛일은 아득하네. 바람을 타고 아득한 곳으로 돌아가니,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하루살이와 같네. 신선은 사람의 마음을 알아, 거문고를 말 고삐에 매어 놓았네. 먼 산사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와서 사슴 우는 소리를 내네. 전해지는 바로는 황제의 아들은 이씨라고 하는데, 벼랑의 집이 원숭이와 비슷하네. 가벼운 바람에 휘장이 말리고, 지는 해에 여인의 쪽진 머리가 시름겹네. 골짜기에 들어가니 물소리가 빽빽한 나무들을 놀라게 하고, 언덕에 오르니 누각을 끌어올리느라 힘이 드네. 어지러운 봉우리들은 창과 같고, 흐르는 물은 맑은 기름과 같네. 중사(中使)는 어느 해에 왔는가. 금룡은 예로부터 던져졌네. 겹겹이 푸른 돌이 가로놓여 있고, 백 길 아래에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이 보이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샘에서 나는 소리이니, 처음으로 눈 녹은 물을 마시네. 병에 가득 담을 수는 있지만, 귀를 씻을 곳이 없음을 탄식하네.
(이날 숭성관을 유람했는데, 속칭 누관이라고 하며, 윤희의 옛 집이다. 산기슭에는 수경대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장고지와 함께 대진사에 이르렀다. 아침 식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태평궁의 도사 조종유가 거문고를 안고 와서 배웅하였고, 절에 이르러 녹명지인(鹿鳴之引)을 연주하고 떠났다. 또 서쪽으로 가서 연생관에 이르렀는데, 관 뒤의 작은 산에는 당나라 옥진 공주가 수도하던 흔적이 있다. 산에서 내려와 서쪽으로 십여 리를 가다가, 남쪽으로 흑수곡에 들어갔는데, 골짜기 안에 담(潭)이 있으니, 이름하여 선유담이다. 위에는 절 세 곳이 험준한 봉우리에 기대어 있고, 맑은 시내를 마주하고 있으며, 수풀이 짙푸르고, 괴이한 돌들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담의 물을 밧줄에 돌을 매달아 수백 척을 내려 보아도 바닥에 닿지 않았고, 기와 조각을 던지니, 천천히 내려가다가, 밥 먹을 동안이 지나서야 보이지 않으니, 그 맑기가 이와 같았다. 드디어 중흥사에서 묵었는데, 절 안에는 옥녀동이 있고, 동 안에는 나는 샘이 있는데, 매우 달다. 다음날 샘물 두 병을 가지고 돌아와 미에 이르렀다. 또 다음날, 드디어 관아에 이르렀다.)
문득 합마배를 찾았던 때를 떠올리니, 한겨울에 사슴 가죽옷을 벗었었지. 산천이 정말 매우 비슷하고, 물과 돌 또한 견줄 만하네. 오직 샘가에서 마시는 것만, 스스로 술잔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네.
(옛날에 자유와 함께 합마배에서 놀 때, 한겨울이었는데, 동굴 안은 따뜻하기가 마치 2, 3월 같았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소식이 주지 지역과 그 주변을 여행하며 겪은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한 기행시입니다. 풍경 묘사, 역사적 고사 인용, 개인적인 감회 등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 풍경 묘사: 주지의 풍요로운 자연환경, 태평궁의 웅장한 모습, 남계의 아름다운 풍경, 흑수곡의 신비로운 담 등 다양한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흑수곡의 담에 대한 묘사는 그 깊이와 맑기를 강조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역사적 고사 인용: 선제의 이야기, 태종 황제와 태평궁의 유래, 윤희와 노자의 이야기, 옥진 공주의 이야기 등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고사를 언급하며 시의 깊이를 더합니다.
- 개인적인 감회: 좋은 사람과의 만남과 뱃놀이, 밤에 들리는 바람 소리,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마음, 옛 추억 회상 등 개인적인 감회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동생 소철과 함께 합마배를 방문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현재의 외로움을 느끼는 부분은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 기행문의 특징: 날짜, 지명, 이동 경로, 방문 장소, 그곳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기행문으로서의 특징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시는 소식의 뛰어난 관찰력과 표현력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행 중에 보고 느낀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시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생생한 현장감과 함께 깊은 사색을 제공합니다. 특히, 풍경 묘사와 역사적 고사 인용, 개인적인 감회의 조화가 돋보입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태백산 아래 횡거진(橫渠鎮)에 이르러 숭수원(崇壽院) 벽에 쓴 시 "태백산하조행지횡거진서숭수원벽(太白山下早行至橫渠鎮書崇壽院壁)"입니다. 이 시는 아침 일찍 말을 타고 가다가 횡거진의 숭수원이라는 절에 들러 벽에 쓴 짧은 시입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 위에서 남은 꿈을 이어가니, 아침 해가 뜬 줄도 몰랐네. 어지러운 산들은 푸른 휘장을 가로지른 듯하고, 지는 달은 희미한 등불과 같네. 달리고 달려 역졸들을 번거롭게 하니, 한가로운 노승이 부끄럽네. 다시 와서 돌아보리라 생각하니, 또한 내가 왔었다는 것을 기록해 두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짧은 시이지만, 여정의 피로와 감회, 그리고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을 간결하게 담고 있습니다.
- 여정의 피로: "말 위에서 남은 꿈을 이어가니, 아침 해가 뜬 줄도 몰랐네(馬上續殘夢。不知朝日昇)."라는 첫 구절은 말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잠이 덜 깬 상태를 묘사합니다. 이는 여정의 피로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섰음을 암시합니다. "달리고 달려 역졸들을 번거롭게 하니(奔走煩郵吏)."라는 구절 역시 여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역졸(郵吏)'은 역참에서 말을 관리하고 전달 업무를 하는 하급 관리들을 의미합니다.
- 주변 풍경 묘사: "어지러운 산들은 푸른 휘장을 가로지른 듯하고, 지는 달은 희미한 등불과 같네(亂山橫翠幛。落月淡孤燈)."라는 구절은 아침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푸른 휘장(翠幛)'은 푸른 산들이 겹겹이 펼쳐진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지는 달(落月)'과 '희미한 등불(淡孤燈)'은 새벽의 어스름한 분위기를 나타냅니다. 이 대구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 감회와 재방문의 기약: "한가로운 노승이 부끄럽네(安閑媿老僧)."라는 구절은 분주하게 여행하는 자신과 절에서 한가롭게 지내는 노승을 대비하며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속세의 일에 얽매인 자신을 돌아보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 "다시 와서 돌아보리라 생각하니, 또한 내가 왔었다는 것을 기록해 두네(再遊應眷眷。聊亦記吾曾)."는 다시 이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며, 이 시를 벽에 쓴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시는 짧은 만큼 간결하고 명료한 표현이 특징적입니다. 여정의 피로, 주변 풍경, 그리고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대구법을 활용하여 시각적인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마지막 구절을 통해 시를 쓰게 된 동기를 밝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 시는 소식의 다른 장편시에 비해 소박하고 담담한 정서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연생관(延生觀) 뒤쪽 산의 작은 당(堂)에 머물면서 남긴 시 "유제연생관후산상소당(留題延生觀後山上小堂)"입니다. 연생관은 도교 사원으로, 소식은 이곳을 방문하여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고 시를 지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계곡과 산은 더욱 아름다워 싫증이 나지 않으니, 올라가니 험준한 봉우리 몇 번째인가. 깊은 골짜기 야생 새의 깃털은 기이하고, 높은 곳 선녀의 귀밑머리와 눈썹은 가늘고 섬세하네. 왕자교가 붉은 봉황을 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응당 항아가 늙은 두꺼비를 쫓아 타리라. 시냇가 풀과 바위 꽃은 저절로 주인이 없고, 저녁이 되니 나비가 성긴 발에 들어오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산수(山水)의 아름다움과 신선(神仙)의 세계를 묘사하며, 자연의 자유로움과 초월적인 삶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뛰어난 경치 묘사: "계곡과 산은 더욱 아름다워 싫증이 나지 않으니, 올라가니 험준한 봉우리 몇 번째인가(溪山愈好意無厭。上到巉巉第幾尖)."라는 구절은 산수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을 표현합니다. '험준한 봉우리(巉巉)'라는 표현을 통해 산의 험준한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 신선 세계에 대한 상상: "깊은 골짜기 야생 새의 깃털은 기이하고, 높은 곳 선녀의 귀밑머리와 눈썹은 가늘고 섬세하네(深谷野禽毛羽怪。上方仙子鬢眉纖)."라는 구절은 신선 세계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묘사합니다. '기이한 깃털(毛羽怪)'과 '가늘고 섬세한 귀밑머리와 눈썹(鬢眉纖)'이라는 표현은 신선들의 초월적인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 신선 고사 인용: "왕자교가 붉은 봉황을 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응당 항아가 늙은 두꺼비를 쫓아 타리라(不慙弄王騎丹鳳。應逐常娥駕老蟾)."라는 구절은 두 가지 신선 고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왕자교(王子喬)'는 신선이 되어 붉은 봉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 속 인물이며, '항아(常娥)'는 달에 있는 두꺼비를 타고 달로 갔다는 전설 속 여인입니다. 이 고사들을 통해 신선들의 자유로운 삶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끄러워하지 않고(不慙)'와 '응당 ~하리라(應逐)'라는 표현은 이러한 신선들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을 드러냅니다.
- 자연의 자유로움: "시냇가 풀과 바위 꽃은 저절로 주인이 없고, 저녁이 되니 나비가 성긴 발에 들어오네(澗草巗花自無主。晚來蝴蝶入踈簾)."라는 구절은 자연의 자유로움을 묘사합니다. '주인이 없다(無主)'는 표현은 자연이 어떤 인위적인 제약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또한, 저녁에 나비가 발에 들어오는 모습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 시는 소식이 자연 속에서 느낀 아름다움과 신선 세계에 대한 상상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특히, 신선 고사를 적절히 활용하여 시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고 있으며, 자연의 자유로움과 초월적인 삶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짧은 시이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선유담(仙遊潭) 중흥사(中興寺)에 머물면서 남긴 시 "유제선유담중흥사(留題仙遊潭中興寺)"입니다. 선유담은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소식은 이곳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특히, 주변의 옥녀동(玉女洞)과 마융(馬融)의 독서 석실(石室) 등을 언급하며, 신선과 관련된 전설과 역사적 인물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맑은 못은 백 길이나 되어 티끌 하나 없이 맑고, 산의 나무는 그늘지고 골짜기에는 새가 우네. 촉나라 나그네는 일찍이 명월협에서 놀았고, 진나라 사람은 지금 무릉계에 있네. 홀로 서실에 올라 바위굴을 엿보고, 다시 선녀의 돌문을 찾아가 속삭이네. 오히려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 다하지 못했으니, 두 발로 나는 사다리를 밟지 않으리.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선유담의 아름다운 경치와 그곳에 얽힌 전설, 그리고 시인의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신선 사상과 관련된 고사를 인용하며 시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 맑고 아름다운 풍경 묘사: "맑은 못은 백 길이나 되어 티끌 하나 없이 맑고, 산의 나무는 그늘지고 골짜기에는 새가 우네(清潭百丈皎無泥。山木陰陰谷鳥啼)."라는 첫 두 구절은 선유담의 맑고 깨끗한 모습과 주변의 자연환경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백 길(百丈)'이라는 과장된 표현은 못의 깊이를 강조하며, '티끌 하나 없이 맑다(皎無泥)'는 표현은 물의 깨끗함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또한, '산의 나무는 그늘지고 골짜기에는 새가 우네(山木陰陰谷鳥啼).'라는 구절은 주변의 울창한 숲과 새들의 지저귐을 묘사하여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 고사 인용과 신선 사상: "촉나라 나그네는 일찍이 명월협에서 놀았고, 진나라 사람은 지금 무릉계에 있네(蜀客曾遊明月峽。秦人今在武陵溪)."라는 구절은 두 가지 고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촉나라 나그네(蜀客)'는 이백(李白)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며, 그는 명월협(明月峽)에서 시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진나라 사람(秦人)'은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계(武陵溪)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모두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입니다. 이러한 고사 인용을 통해 시인은 선유담을 신선들이 살 만한 이상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유적지 방문과 감상: "홀로 서실에 올라 바위굴을 엿보고, 다시 선녀의 돌문을 찾아가 속삭이네(獨攀書室窺巗竇。還訪仙姝欸石閨)."라는 구절은 마융의 독서 석실과 옥녀동을 방문한 경험을 묘사합니다. '서실(書室)'과 '바위굴(巗竇)'은 마융이 책을 읽던 곳을, '선녀(仙姝)'와 '돌문(石閨)'은 옥녀동을 각각 가리킵니다. 이러한 유적지를 방문하며 시인은 과거의 인물들과 신선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삶을 상상합니다. '속삭이네(欸)'라는 표현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합니다.
- 산을 사랑하는 마음과 초월의 거부: "오히려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 다하지 못했으니, 두 발로 나는 사다리를 밟지 않으리(猶有愛山心未至。不將雙脚踏飛梯)."라는 마지막 구절은 시인의 독특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나는 사다리(飛梯)'는 신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데 사용하는 도구를 의미합니다. 시인은 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크지만, 아직 속세를 완전히 벗어나 신선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연을 사랑하면서도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려는 시인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 시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 묘사와 신선 사상, 역사적 고사 인용이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소식은 선유담의 경치를 통해 신선 세계를 상상하고, 과거 인물들을 회상하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 신선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은 자연을 사랑하면서도 현실을 긍정하는 소식의 독특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의 "석비성(石鼻城)"입니다. 석비성은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보계시(寶雞市) 부근에 있던 옛 성으로, 소식은 이 지역을 지나면서 시를 지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전국시대의 전쟁이 지금은 없어졌지만, 길가의 나그네는 저절로 한가롭지 못하네. 북쪽에서 온 나그네는 처음으로 새로운 험난함을 시험하고, 촉나라 사람은 이로부터 남은 산을 보내네. 홀로 어두운 달빛 희미한 속을 뚫고, 시름에 잠겨 거센 강물을 아득한 사이로 건너네. 점점 서남쪽으로 들어가니 풍경이 변하고, 길가에는 긴 대나무가 있고 물은 졸졸 흐르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여정을 묘사하면서 역사적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 그리고 여행자의 고독과 감회를 담고 있습니다.
- 역사의 흐름과 현재의 대비: "평화로운 시대에는 전국시대의 전쟁이 지금은 없어졌지만(平時戰國今無在)."이라는 첫 구절은 과거의 격렬했던 전쟁의 시대가 지나고 현재는 평화로운 시대임을 나타냅니다. '전국시대(戰國)'는 중국 역사상 여러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혼란한 시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역사의 변화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구절 "길가의 나그네는 저절로 한가롭지 못하네(陌上征夫自不閑)."에서 평화로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나그네는 여전히 고달픈 여정을 이어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 여행자의 여정과 감회: "북쪽에서 온 나그네는 처음으로 새로운 험난함을 시험하고, 촉나라 사람은 이로부터 남은 산을 보내네(北客初來試新險。蜀人從此送殘山)."라는 구절은 여행자들의 다양한 상황을 간략하게 보여줍니다. '북쪽에서 온 나그네(北客)'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사람을, '촉나라 사람(蜀人)'은 고향인 촉(蜀, 지금의 사천성)을 떠나 먼 길을 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남은 산을 보내네(送殘山)'는 고향을 떠나는 아쉬움과 슬픔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여정의 고독과 험난함: "홀로 어두운 달빛 희미한 속을 뚫고, 시름에 잠겨 거센 강물을 아득한 사이로 건너네(獨穿暗月朦朧裏。愁渡奔河蒼茫間)."라는 구절은 밤길을 홀로 가는 여행자의 고독과 여정의 험난함을 묘사합니다. '어두운 달빛 희미한 속(暗月朦朧裏)'과 '거센 강물 아득한 사이(奔河蒼茫間)'는 어둡고 위험한 여정의 상황을 나타냅니다. '시름에 잠겨(愁渡)'라는 표현은 여행자의 불안하고 고독한 심정을 드러냅니다.
- 풍경의 변화와 여정의 지속: "점점 서남쪽으로 들어가니 풍경이 변하고, 길가에는 긴 대나무가 있고 물은 졸졸 흐르네(漸入西南風景變。道邊脩竹水潺潺)."라는 마지막 구절은 여정을 계속 이어가면서 주변 풍경이 바뀌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긴 대나무(脩竹)'와 '졸졸 흐르는 물(水潺潺)'은 서남쪽 지역의 특징적인 풍경을 나타내며, 여정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 속에서 여행자의 고독과 감회를 간결하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대비, 다양한 여행자들의 모습, 험난한 여정, 변화하는 풍경 등을 통해 여정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어둡고 험난한 여정을 묘사한 부분에서 여행자의 고독과 불안한 심리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의 "반계석(磻溪石)"입니다. 반계는 주나라 초기의 현인 강태공(姜太公)이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했다는 전설적인 장소입니다. 소식은 이곳을 방문하여 강태공의 고사를 회상하며 시를 지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묵자의 굴뚝은 그을음이 앉을 겨를이 없고, 공자의 자리는 따뜻해 본 적이 없네. 어찌 위수 가의 늙은이가 돌에 무릎 꿇어 두 정강이뼈의 흔적을 남겼는지 알겠는가. 하루아침에 세상일에 얽매여, 고생하며 많은 어려움을 평정했네. 또한 편안히 잠들고 싶지만, 나그네는 객의 게으름을 비웃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강태공의 고사를 통해 그의 고생과 업적을 기리고, 자신 또한 세상일에 힘써야 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 공자와 묵자의 고사 인용: "묵자의 굴뚝은 그을음이 앉을 겨를이 없고, 공자의 자리는 따뜻해 본 적이 없네(墨突不暇黔。孔席未嘗暖)."라는 첫 두 구절은 각각 묵자와 공자의 고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묵돌불가검(墨突不暇黔)'은 묵자가 검소하게 생활하며 집의 굴뚝에 그을음이 앉을 겨를도 없이 바쁘게 일했다는 고사이고, '공석미상난(孔席未嘗暖)'은 공자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느라 자리에 앉아 있을 겨를이 없었다는 고사입니다. 이 두 고사를 병렬함으로써 성현들의 헌신적인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강태공의 고사 회상: "어찌 위수 가의 늙은이가 돌에 무릎 꿇어 두 정강이뼈의 흔적을 남겼는지 알겠는가(安知渭上叟。跪石留雙骭)."라는 구절은 강태공이 위수에서 낚시를 하며 때를 기다렸다는 고사를 언급합니다. '위수 가의 늙은이(渭上叟)'는 강태공을 가리키며,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돌에 무릎을 꿇고 낚시를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전설을 이야기합니다. 이 구절은 강태공의 인내와 기다림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의 고생을 암시합니다.
- 세상일에 대한 책임감: "하루아침에 세상일에 얽매여, 고생하며 많은 어려움을 평정했네(一朝嬰世故。辛苦平多難)."라는 구절은 강태공이 주나라를 도와 천하를 평정하는 큰 업적을 이루었음을 나타냅니다. '세상일에 얽매여(嬰世故)'라는 표현은 강태공이 세상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음을 의미합니다.
- 편안함에 대한 경계: "또한 편안히 잠들고 싶지만, 나그네는 객의 게으름을 비웃네(亦欲就安眠。旅人譏客嬾)."라는 마지막 구절은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자신을 경계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그네(旅人)'는 세상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객의 게으름(客嬾)'은 세상일에 힘쓰지 않고 편안함만 추구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 구절을 통해 소식은 강태공처럼 세상일에 헌신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강태공의 고사를 통해 인내와 헌신, 그리고 세상사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작품입니다. 소식은 과거 성현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일에 힘써야 함을 강조하는 부분은 그의 강한 책임감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의 "미오(郿塢)"입니다. 미오는 후한 말의 권신 동탁(董卓)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쌓은 성으로, 막대한 재물을 쌓아두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소식은 이 미오성을 소재로 하여 시를 지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옷 속에 두꺼운 갑옷을 입고 다니니 무엇을 두려워하랴. 성 안에는 금이 많으니 은퇴 후 의지하기에 족하네. 필경 영웅이라지만 누가 그를 닮으려 하겠는가. 배꼽의 기름이 스스로를 비추니 등불이 필요 없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동탁의 권세와 사치, 그리고 그의 최후를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 동탁의 권세와 사치: "옷 속에 두꺼운 갑옷을 입고 다니니 무엇을 두려워하랴. 성 안에는 금이 많으니 은퇴 후 의지하기에 족하네(衣中甲厚行何懼。塢裏金多退足憑)."라는 첫 두 구절은 동탁의 권세와 사치스러운 생활을 묘사합니다. '옷 속의 두꺼운 갑옷(衣中甲厚)'은 동탁이 항상 암살의 위협을 느껴 갑옷을 입고 다녔음을 의미하며, 그의 불안한 심리를 보여줍니다. '성 안의 많은 금(塢裏金多)'은 미오성에 쌓아둔 막대한 재물을 가리킵니다. 이 두 구절은 동탁이 권력과 재력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모습을 나타냅니다.
- 동탁에 대한 비판: "필경 영웅이라지만 누가 그를 닮으려 하겠는가(畢竟英雄誰得似)."라는 구절은 동탁을 '영웅'이라고 칭하면서도 동시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필경(畢竟)'이라는 단어는 반어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동탁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즉, 동탁은 권력을 남용하고 백성을 괴롭혔기 때문에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동탁의 최후 암시: "배꼽의 기름이 스스로를 비추니 등불이 필요 없네(臍脂自照不須燈)."라는 마지막 구절은 동탁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비참한 최후를 암시합니다. '배꼽의 기름(臍脂)'은 동탁이 매우 비만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이 구절은 동탁이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몰락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동탁은 자신의 양자 여포(呂布)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 시는 짧지만 강렬한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소식은 동탁의 권세와 사치를 묘사하면서 그의 불안한 심리와 비참한 최후를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동탁의 몰락을 예견하는 듯한 인상을 주며, 시의 의미를 더욱 강렬하게 만듭니다. 이 시는 단순히 역사적 인물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권력의 남용과 사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드리자면, "배꼽 기름이 스스로를 비추니 등불이 필요 없네(臍脂自照不須燈)"라는 구절은 《후한서(後漢書)》 동탁전에 나오는 기록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동탁이 극도로 비만하여 배꼽에서 기름이 흘러나왔다는 기록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소식은 동탁의 사치스러움과 동시에 그의 추한 몰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의 "누관(樓觀)"입니다. 누관은 섬서성(陝西省)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도교 사원으로, 진시황(秦始皇)이 처음 노자(老子)의 사당을 세웠고, 진 혜제(晉惠帝) 때 보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소식은 이 누관을 방문하여 역사적 사실과 전설을 회상하며 시를 지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 앞의 오래된 비석은 석양에 비스듬히 누워 있네. 세상을 겪어 보니 흐르는 물과 같아 슬프구나. 늘상 오가는 사람들이 진 혜제를 슬퍼하니, 억지로 허물어진 사당을 보수하며 진시황을 배우네. 오래된 단사는 우물물을 붉게 물들이고, 흰 나무는 누가 태워 부엌의 향기를 내는가. 듣건대 신선도 또한 지나다닌다고 하니, 다만 촌 늙은이가 경상자(庚桑子)가 아닌가 의심하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누관의 역사와 관련된 인물들을 언급하며 세상의 변화무상함과 도가적인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 누관의 역사적 배경: "문 앞의 오래된 비석은 석양에 비스듬히 누워 있네. 세상을 겪어 보니 흐르는 물과 같아 슬프구나(門前古碣卧斜陽。閱世如流事可傷)."라는 첫 두 구절은 누관의 오랜 역사를 암시하며, 세상의 변화무상함을 탄식합니다. '오래된 비석(古碣)'은 누관의 오랜 역사를 상징하며, '흐르는 물(如流)'은 시간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를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 "늘상 오가는 사람들이 진 혜제를 슬퍼하니, 억지로 허물어진 사당을 보수하며 진시황을 배우네(長有遊人悲晉惠。強修遺廟學秦皇)."라는 구절은 진 혜제와 진시황이라는 두 역사적 인물을 언급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진 혜제는 무능한 군주로 평가받으며, 진시황은 폭정으로 유명합니다. '억지로 보수하다(強修)'라는 표현은 누관의 보수가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즉,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도가적인 분위기: "오래된 단사는 우물물을 붉게 물들이고, 흰 나무는 누가 태워 부엌의 향기를 내는가(丹沙久窖井水赤。白樹誰燒廚竈香)."라는 구절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도가적인 색채를 드러냅니다. '단사(丹沙)'는 도교에서 불로장생의 약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광물이며, '흰 나무(白樹)'는 도교와 관련된 제례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누관이 도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장소임을 보여줍니다.
- 신선과 은둔자에 대한 상상: "듣건대 신선도 또한 지나다닌다고 하니, 다만 촌 늙은이가 경상자(庚桑子)가 아닌가 의심하네(聞道神仙亦相過。只疑田叟是庚桑)."라는 마지막 구절은 신선과 은둔자에 대한 상상을 나타냅니다. '경상자(庚桑子)'는 《장자(莊子)》에 등장하는 은둔자로, 도가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인물입니다. 촌 늙은이를 경상자로 의심하는 것은 누관이 신선과 은둔자들이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누관이라는 장소를 통해 역사의 흥망성쇠와 도가적인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소식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비판과 신선과 은둔자에 대한 상상을 통해 세상의 변화무상함과 초월적인 삶에 대한 동경을 보여줍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 촌 늙은이를 경상자로 의심하는 부분은 시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며,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지은 "구월 이십일 미설 회자유 제이시(九月二十日微雪懷子由弟二詩)"입니다. 구월 이십일, 즉 음력 9월 20일에 내리는 희미한 눈을 보며 동생 소철(蘇轍, 자는 子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입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양(岐陽) 구월 하늘에 희미한 눈 내리니, 이미 쓸쓸한 연말의 마음이 드네. 짧은 해는 차가움을 보내고 다듬이질 소리는 급하고, 한가한 관리의 집은 깊숙하네. 시름 가득한 창자는 이별 후에 술로 달랠 수 있고, 백발은 가을이 되니 이미 비녀에 꽂혔네. 가까이 산 담비 갖옷은 변방에 나가기에 넉넉하고, 문득 역마차를 타고 서쪽 변경의 소식을 물을까 생각하네. 강 위에서 함께 배를 탔을 때 시가 상자에 가득했는데, 정서(鄭西)에서 말을 나누어 타고 헤어질 때 눈물이 옷깃을 적셨네.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우니 글과 칼이 부끄럽고,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만 벗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랴. 관사에서 가을을 보내니 세월이 저무는 것이 놀랍고, 절의 누각에서 눈을 보니 누구와 함께 오를까. 멀리 동쪽 창 아래에서 주역을 읽고 있음을 아노니, 수레와 말이 문을 두드려도 정녕 대답하지 않으리.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눈 내리는 날씨와 고독한 상황을 배경으로 동생에 대한 그리움, 나라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쓸쓸한 겨울 풍경과 고독한 상황: "기양 구월 하늘에 희미한 눈 내리니, 이미 쓸쓸한 연말의 마음이 드네. 짧은 해는 차가움을 보내고 다듬이질 소리는 급하고, 한가한 관리의 집은 깊숙하네(岐陽九月天微雪。已作蕭條歲暮心。短日送寒砧杵急。冷官無事屋廬深)."라는 첫 부분은 겨울의 차가운 풍경을 묘사하며 시인의 고독한 처지를 부각합니다. '희미한 눈(微雪)', '쓸쓸한 연말(蕭條歲暮)', '짧은 해(短日)', '차가움(寒)', '다듬이질 소리(砧杵急)', '깊숙한 집(屋廬深)' 등의 시어들은 차갑고 외로운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특히 '한가한 관리(冷官)'라는 표현은 당시 소식의 처지를 나타냅니다.
-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과거 회상: "시름 가득한 창자는 이별 후에 술로 달랠 수 있고, 백발은 가을이 되니 이미 비녀에 꽂혔네. 가까이 산 담비 갖옷은 변방에 나가기에 넉넉하고, 문득 역마차를 타고 서쪽 변경의 소식을 물을까 생각하네. 강 위에서 함께 배를 탔을 때 시가 상자에 가득했는데, 정서에서 말을 나누어 타고 헤어질 때 눈물이 옷깃을 적셨네(愁腸別後能消酒。白髮秋來已上簪。近買貂裘堪出塞。忽思乘傳問西賝。江上同舟詩滿篋。鄭西分馬涕垂膺)." 이 부분은 동생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술로 시름을 달래고, 백발이 성성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동생과 함께 배를 타고 시를 지었던 즐거운 때와 정서에서 헤어질 때 눈물 흘렸던 슬픈 순간을 떠올립니다. '담비 갖옷(貂裘)'은 먼 길을 떠날 때 입는 옷으로, 동생을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 나라에 대한 걱정과 현실에 대한 고민: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우니 글과 칼이 부끄럽고,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만 벗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랴(未成報國慙書劔。豈不懷歸畏友朋)."라는 부분은 나라에 대한 걱정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민을 드러냅니다. '나라에 보답하지 못함(未成報國)'을 부끄러워하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는 심정을 토로합니다. 이는 당시 소식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 고독과 그리움의 심화: "관사에서 가을을 보내니 세월이 저무는 것이 놀랍고, 절의 누각에서 눈을 보니 누구와 함께 오를까. 멀리 동쪽 창 아래에서 주역을 읽고 있음을 아노니, 수레와 말이 문을 두드려도 정녕 대답하지 않으리(官舍度秋驚歲晚。寺樓見雪與誰登。遙知讀易東窓下。車馬敲門定不譍)." 마지막 부분은 다시 고독한 상황으로 돌아와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심화시킵니다. 절의 누각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함께 할 사람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동생이 동쪽 창 아래에서 주역을 읽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자신이 찾아가도 동생은 세상과의 단절을 택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겨울 풍경, 과거 회상, 나라에 대한 걱정, 동생에 대한 그리움 등 다양한 감정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특히, 동생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고독한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정치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고향과 가족을 생각하는 소식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병중에 동생 소철(蘇轍, 자는 子由)이 상주(商州) 부임을 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세 수의 시 "병중문자유득고불부상주삼수(病中聞子由得告不赴商州三首)"입니다. 병중에 동생이 먼 곳으로 떠나지 않게 되어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시:
병중에 네가 상주에 가지 않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떠돌이 기러기는 어느 때 다시 길을 떠나려 할까. 멀리 떨어져 있으니 벼슬의 좋음을 알지 못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여 세월이 길게 느껴지네. 책을 쓰는 여가가 많은 것이 정말 좋은 계책이니, 벼슬길에 공 없이 고향을 떠나 다니는 것은 부질없네. 오직 왕성(王城)만이 가장 은거하기에 좋으니, 만 사람 속에서 한 몸을 숨기네.
두 번째 시:
가까이 장자(章子, 章惇)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으니, 상인(商人) 사람들이 네가 오기를 바란다고 하더군. 유세하는 사람이 신령하다면 곧은 도를 부끄러워할 것이고, 도망친 늙은이는 이미 죽었으니 평범한 재주를 싫어하네. 오랑캐 말은 겨우 이름과 성만 통할 뿐이고, 혹 있는 풍속으로는 목과 턱을 구별할 길이 없네. 답안 작성이 마땅히 이곳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니, 글을 올려 면직을 구하는 것이 또한 어찌 허물이 되겠는가.
세 번째 시:
벼슬을 사직하고 나가지 않는 뜻을 누가 알겠는가. 감히 맑은 세상에 벼슬이 낮다고 원망하겠는가. 만사를 부질없이 술잔에 부치니, 흐르는 세월이 어느덧 두 뺨의 수염으로 들어가네. 과거 정책이 세상 사람들의 뜻을 거슬러 네가 미움을 받았으니, 근심을 잊기는 쉬우니 집에는 스승이 있네. 이 밖에 마음을 나눌 사람이 또 누구인가. 꿈속에서 서로 찾지만 엇갈림이 심하네.
분석 및 설명:
이 세 수의 시는 동생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 세상살이의 어려움, 그리고 자신의 심경을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줍니다.
- 동생의 무사함에 대한 안도: 첫 번째 시는 동생이 먼 곳으로 가지 않게 된 것에 대한 안도감을 표현합니다. '떠돌이 기러기(旅鴈)'는 동생의 처지를 비유하며, '돌아가고 싶은 마음(思歸)'은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책을 쓰는 여가(著書多暇)'를 좋은 계책이라고 하는 것은 동생이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왕성(王城)'은 은거하기 좋은 곳으로, 동생이 안전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정치적 상황: 두 번째 시는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당시 정치적 상황을 암시합니다. '상인(商人)'은 상주 지역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그들이 동생을 기다렸다는 것은 동생이 그 지역에 필요한 인물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유세하는 사람(說客)'은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도망친 늙은이(逋翁)'는 은둔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오랑캐 말(夷音)'과 '혹 있는 풍속(癭俗)'은 상주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나타내며, 동생이 그곳에서 겪을 어려움을 암시합니다. '답안 작성(荅策)'은 과거 시험을 의미하며, 동생이 관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생각을 드러냅니다.
- 자신의 심경과 고독: 세 번째 시는 자신의 심경과 고독을 토로합니다. '벼슬을 사직하고 나가지 않는 뜻(辭官不出意)'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맑은 세상에 벼슬이 낮다고 원망하겠는가(敢向清時怨位卑)'는 자신의 처지를 겸손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만사를 술잔에 부친다(萬事付杯酒)'는 세상사를 초월하려는 태도를 나타내며, '흐르는 세월이 수염으로 들어간다(流年入雙髭)'는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과거 정책이 세상 사람들의 뜻을 거슬렀다(策曾忤世人嫌汝)'는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었음을 암시하며, '근심을 잊기는 쉽다(易可忘憂)'는 도가적인 사유를 나타냅니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누구인가(知心更誰是)'와 '꿈속에서 서로 찾지만 엇갈림이 심하다(夢魂相覔苦參差)'는 극심한 고독감을 드러냅니다.
이 세 수의 시는 동생에 대한 염려와 더불어 세상살이의 어려움, 정치적 상황, 그리고 자신의 고독한 심경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특히, 각 시마다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시인의 복잡한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병중에 큰 눈이 며칠 동안 내려 일어나 바깥 풍경을 보지 못했을 때, 괵주(虢州)의 현령 조천(趙薦)이 시를 보내 화답을 청하자 그의 운(韻)을 빌려 지은 시 "병중대설수일미상기관(病中大雪數日未嘗起觀)"입니다. 며칠 동안 눈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는 병중의 상황과 외부 세계와의 단절, 그리고 시를 통해 교류하는 지인과의 우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열흘을 서재에 누워 지내니, 종일토록 약만 가까이 하네. 눈이 이미 깊이 쌓인 줄도 모르고, 다만 추위 어찌할 수 없음을 느낄 뿐이네. 눈발은 창호지에서 소리 내고, 지붕 처마에는 눈이 쌓여 떨어지네. (누각 안은 모두 널빤지로 처마를 삼았다.) 바람까지 몰아쳐 차가움이 더해지고, 휘장은 바람에 흔들리네. 오로지 독한 술만 생각나고, 아름다운 경치를 감히 엿보지 못하네. 어느 때나 더위를 되찾을까, 도리어 절구와 맷돌을 몸소 갈고 싶네. 누가 자리에 모전(毛氈)이 없다고 하는가, 오히려 갖옷이 가득하네. 서쪽 이웃에서 노래와 피리 소리가 나니, 자리를 당기니 추위가 꺾이네. 눈이 흩날리며 밟아 길이 되고, 빙빙 돌며 자리에 날아드네. 사람들은 즐거워하니 기와가 먼저 녹고, 술병은 자주 쓰러지네. 아, 나는 홀로 시름에 잠겨 적막하니, 빈 방에서 홀로 곤궁에 처하네. 뒷날의 감상을 위해 남겨두려 하나, 속세의 티끌에 더럽혀질까 두렵네. 차가운 밤에 새롭게 갠 날씨를 알리니, 밝은 달이 반쯤 걸려 있네. 어떤 객은 홀로 괴로이 시를 읊으니, 맑은 밤에 묵묵히 스스로를 다스리네. 시인은 대개 운수가 기박하니, 뛰어난 시구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나오는 법. 어느 때나 폭풍우가 그치고, 비로소 교외에 나가 축하할 수 있을까.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병중의 고독과 외부 세계와의 단절, 그리고 시를 통해 교류하는 우정을 다층적으로 보여줍니다.
- 병중의 고독과 외부와의 단절: "열흘을 서재에 누워 지내니, 종일토록 약만 가까이 하네. 눈이 이미 깊이 쌓인 줄도 모르고, 다만 추위 어찌할 수 없음을 느낄 뿐이네. 눈발은 창호지에서 소리 내고, 지붕 처마에는 눈이 쌓여 떨어지네.(經旬卧齋閤。終日親劑和。去不知雪已深。但覺寒無奈。飄蕭窓紙鳴。堆壓簷板墮。)"라는 부분은 병으로 인해 외부 세계와 단절된 시인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열흘(經旬)', '종일토록(終日)', '알지 못하고(不知)', '어찌할 수 없음(無奈)' 등의 표현은 병중의 무력함과 고독함을 강조합니다. 눈 내리는 소리, 처마에 쌓인 눈 등 외부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시인은 방 안에 갇혀 외부 세계를 직접 보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시켜 고립감을 더욱 부각합니다.
- 술과 시를 통한 위안: "오로지 독한 술만 생각나고, 아름다운 경치를 감히 엿보지 못하네. 어느 때나 더위를 되찾을까, 도리어 절구와 맷돌을 몸소 갈고 싶네. 누가 자리에 모전이 없다고 하는가, 오히려 갖옷이 가득하네. 서쪽 이웃에서 노래와 피리 소리가 나니, 자리를 당기니 추위가 꺾이네. 눈이 흩날리며 밟아 길이 되고, 빙빙 돌며 자리에 날아드네. 사람들은 즐거워하니 기와가 먼저 녹고, 술병은 자주 쓰러지네.(惟思近醇醲。未敢窺璨瑳。何時反炎𦮰。却欲躬臼磨。誰云座無氊。尚有裘充貨。西隣歌吹發。促席寒威挫。崩騰踏成逕。繚繞飛入坐。人歡瓦先融。飲儁缾屢卧。)" 이 부분은 술과 시를 통해 고독을 달래려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독한 술(醇醲)'은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절구와 맷돌(臼磨)'은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을 나타냅니다. 이웃의 즐거운 소리는 시인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지만, 동시에 자신의 고독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 고독과 창작의 고뇌: "아, 나는 홀로 시름에 잠겨 적막하니, 빈 방에서 홀로 곤궁에 처하네. 뒷날의 감상을 위해 남겨두려 하나, 속세의 티끌에 더럽혀질까 두렵네. 차가운 밤에 새롭게 갠 날씨를 알리니, 밝은 달이 반쯤 걸려 있네. 어떤 객은 홀로 괴로이 시를 읊으니, 맑은 밤에 묵묵히 스스로를 다스리네. 시인은 대개 운수가 기박하니, 뛰어난 시구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나오는 법. 어느 때나 폭풍우가 그치고, 비로소 교외에 나가 축하할 수 있을까.(嗟余獨愁寂。空室自困坷。欲為後日賞。恐被遊塵涴。寒更報新霽。皎月懸半破。有客獨苦吟。清夜默自課。詩人例窮蹇。秀句出寒餓。何當暴風霜。庶以躡郊賀。)" 이 부분은 시인의 깊은 고독과 창작의 고뇌를 드러냅니다. '홀로 시름에 잠겨 적막하다(獨愁寂)', '빈 방에서 홀로 곤궁에 처하다(空室自困坷)' 등의 표현은 극심한 고독감을 나타냅니다. '뛰어난 시구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나온다(秀句出寒餓)'는 시인의 고뇌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고통 속에서 예술이 탄생한다는 예술론적인 관점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폭풍우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건강을 회복하여 바깥 세상과 다시 교류하고 싶은 소망을 나타냅니다.
이 시는 병중의 고독, 외부 세계와의 단절, 시를 통한 교류, 창작의 고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외부 세계와의 단절 속에서 내면의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고독과 고뇌를 시로 승화시키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조천의 시에 화답하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자신의 진솔한 심정을 담아낸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지은 "세만상여궤문위궤세(歲晩相與餽問為餽歲), 주식상요호위별세(酒食相邀呼為別歲), 지제야달단불면위수세(至除夜達旦不眠為守歲), 촉지풍속여시(蜀之風俗如是). 여관어기하(余官於岐下), 세모사귀이불가득(歲暮思歸而不可得), 고위차삼시기자유제(故為此三詩寄子由弟)" 즉, "연말에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궤세라 하고, 술과 음식을 함께하며 서로 부르는 것을 별세라 하며, 섣달 그믐날 밤을 새우는 것을 수세라 하니, 촉 땅의 풍속이 이와 같다. 나는 기 땅에서 벼슬하고 있어, 연말에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갈 수 없기에, 이 세 편의 시를 지어 동생 자유에게 보낸다."라는 서문에 이어지는 세 수의 시입니다. 촉 지방의 연말 풍속인 궤세, 별세, 수세를 소재로 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시: 궤세(餽歲)
농사일은 각자 이미 거두었고, 연말 행사는 서로 도울 수 있네. 함께 즐기려 하나 만날 수 없을까 두려워, 물건을 빌려 주고받으며 재물을 논하지 않네. 산천의 산물에 따라,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가 가진 것에 맞춰서 하네. 큰 쟁반에는 큰 잉어가 가로놓여 있고, 새장에서 꺼낸 토끼 두 마리는 엎드려 있네. 부유한 사람은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하니, 비단과 수를 놓은 옷이 자리에 빛을 내네. 가난한 사람은 능히 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작은 정성으로 방아와 맷돌에서 낸 것을 내놓네. 관직에 있으니 옛 친구는 적고, 마을의 좋은 명절은 지나가네. 또한 고향의 풍속을 행하려 하지만, 홀로 노래하니 화답하는 사람이 없네.
두 번째 시: 별세(別歲)
옛 친구가 천 리 먼 곳으로 떠나가니, 이별에 임해서도 오히려 머뭇거리네. 사람은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세월은 어찌 쫓을 수 있으랴. 가는 해는 어디로 가는가 물으니, 하늘 끝 먼 곳에 있네. 이미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따라, 바다로 달려가 돌아올 기약이 없네. 동쪽 이웃집에서는 술이 처음 익었고, 서쪽 집에서는 돼지가 또한 살쪘네. 우선 하루의 즐거움을 누려, 이 저무는 해의 슬픔을 위로하네. 옛 해의 이별을 슬퍼하지 마오, 새로운 해와 함께 작별인사를 하네. 가고 또 가고 뒤돌아보지 마오, 늙음과 쇠함을 그대에게 돌려주네.
세 번째 시: 수세(守歲)
다하려는 해를 알려 하니, 골짜기로 달려가는 뱀과 같네. 긴 비늘은 반쯤 이미 사라졌으니, 가는 뜻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하물며 그 꼬리를 잡으려 하니, 비록 애쓴다 한들 어찌하랴. 아이들은 억지로 잠들지 않고, 밤새도록 함께 떠들썩하게 즐기네. 새벽닭은 부디 울지 마오, 밤북 소리에 형벌 더할까 두렵네. 오래 앉아 있으니 등불이 다하고, 일어나 북두칠성을 바라보네. 내년이라고 어찌 해가 없겠는가, 마음의 일이 그르칠까 두렵네. 오늘 저녁을 힘써 다하니, 젊음은 오히려 자랑할 만하네.
분석 및 설명:
이 세 편의 시는 각각 궤세, 별세, 수세라는 촉 지방의 연말 풍속을 소재로 하여 시상을 전개하면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시인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궤세(餽歲): 첫 번째 시는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을 묘사하며, 고향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정을 나누는 행위이지만, 시인은 홀로 관직에 있어 이러한 풍습을 함께 누릴 수 없음을 안타까워합니다.
- 별세(別歲): 두 번째 시는 가는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음을 탄식하면서도,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희망을 가지려 합니다. 동쪽과 서쪽 이웃집의 풍경을 대비시켜 연말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 수세(守歲): 세 번째 시는 섣달 그믐날 밤을 새우는 풍습을 묘사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냅니다. 시간이 덧없이 흘러감을 뱀이 골짜기로 달려가는 모습에 비유하고, 아이들이 밤새도록 즐거워하는 모습과 대비되는 자신의 고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내년에는 마음의 일이 그르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세 편의 시는 촉 지방의 풍속을 배경으로 하여 시간의 흐름, 고향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각 시마다 다른 풍속에 초점을 맞추어 시상을 전개함으로써, 연말의 다양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 속에서도 새로운 해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동생 소철(蘇轍, 자는 子由)과 함께 봄나들이를 갔을 때 지은 "화자유답청(和子由踏青)"입니다. 봄날의 풍경과 나들이의 즐거움, 그리고 길에서 만난 도인(道人)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봄바람 길 위에서 작은 먼지를 일으키니, 나들이하는 사람들은 비로소 새해의 화창함을 즐기네. 사람들은 한가로이 길가에서 술 마시기에 좋고, 보리가 짧으니 수레바퀴가 다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네. 성안에 사는 사람들은 성곽을 싫어하여, 시끄럽게 새벽에 나와 사방의 이웃을 비우네. 노래와 북소리에 산의 초목이 움직이고, 도시락과 표주박이 들판에 흩어지니 까마귀와 솔개도 순해지네. 어떤 사람이 무리를 모아 도인이라 칭하며, 길을 막고 부적을 파는데 얼굴빛이 성나고 부릅뜨네. 누에는 네 누에고치가 항아리 같게 하고, 가축은 네 양이 새끼 사슴 같게 한다고 하네. 길 가던 사람들은 이 말을 반드시 믿지는 않지만, 억지로 돈을 내어 부적을 사서 새해의 재앙을 막으려 하네. 도인은 돈을 얻자 곧 술을 사 마시고, 술에 취해 쓰러지며 스스로 내 부적이 신령하다고 여기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봄나들이의 흥취와 도인의 행태를 대비시켜 해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 봄나들이의 흥취: "봄바람 길 위에서 작은 먼지를 일으키니, 나들이하는 사람들은 비로소 새해의 화창함을 즐기네. 사람들은 한가로이 길가에서 술 마시기에 좋고, 보리가 짧으니 수레바퀴가 다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네. 성안에 사는 사람들은 성곽을 싫어하여, 시끄럽게 새벽에 나와 사방의 이웃을 비우네. 노래와 북소리에 산의 초목이 움직이고, 도시락과 표주박이 들판에 흩어지니 까마귀와 솔개도 순해지네(春風陌上驚微塵。遊人初樂歲華新。人閑正好路旁飲。麥短未怕遊車輪。城中居人厭城郭。喧闐曉出空四隣。歌鼓驚山草木動。簞瓢散野烏鳶馴)." 앞 부분은 봄날의 생동감 넘치는 풍경과 나들이의 즐거움을 묘사합니다. '봄바람(春風)', '작은 먼지(微塵)', '새해의 화창함(歲華新)', '한가로이 술 마시기 좋고(正好路旁飲)', '노래와 북소리(歌鼓)', '초목이 움직이고(草木動)', '까마귀와 솔개도 순해지네(烏鳶馴)' 등의 시어들은 봄의 활기찬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특히, 사람들이 성안의 답답함을 벗어나 자연을 즐기는 모습을 통해 봄나들이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 도인의 해학적인 묘사: "어떤 사람이 무리를 모아 도인이라 칭하며, 길을 막고 부적을 파는데 얼굴빛이 성나고 부릅뜨네. 누에는 네 누에고치가 항아리 같게 하고, 가축은 네 양이 새끼 사슴 같게 한다고 하네. 길 가던 사람들은 이 말을 반드시 믿지는 않지만, 억지로 돈을 내어 부적을 사서 새해의 재앙을 막으려 하네. 도인은 돈을 얻자 곧 술을 사 마시고, 술에 취해 쓰러지며 스스로 내 부적이 신령하다고 여기네(何人聚衆稱道人。遮道賣符色怒瞋。宜蠶使汝蠒如甕。宜畜使汝羊如麕。路人未必信此語。強為買服禳新春。道人得錢徑沽酒。醉倒自謂吾符神)." 뒷부분은 길에서 만난 도인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묘사합니다. '얼굴빛이 성나고 부릅뜨네(色怒瞋)'라는 표현은 도인의 외모를 익살스럽게 묘사하고, '누에고치가 항아리 같게 하고, 양이 새끼 사슴 같게 한다(蠒如甕。羊如麕)'라는 과장된 표현은 도인의 허황된 주장을 풍자합니다. 사람들이 부적을 사는 모습과 도인이 술에 취해 쓰러지는 모습은 대비를 이루며 웃음을 자아냅니다. 특히, 도인이 술에 취해 '내 부적이 신령하다(吾符神)'고 스스로를 칭하는 모습은 해학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봄나들이의 즐거움과 도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대비시켜 해학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소식은 도인을 통해 당시 사회의 미신적인 풍습을 비판하는 동시에, 인간의 어리석음을 익살스럽게 보여줍니다. 봄날의 흥취와 풍자를 조화롭게 담아낸 재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동생 소철(蘇轍, 자는 子由)과 함께 잠시(蠶市), 즉 누에 시장을 구경하고 지은 "화자유잠시(和子由蠶市)"입니다. 촉(蜀) 지방 사람들의 생활고와 시장의 활기,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촉 땅 사람들은 의식주가 늘 고달프고 어려운데, 촉 땅 사람들은 놀고 즐기면 돌아갈 줄을 모르네. 천 명이 밭 갈고 만 명이 먹으니, 일 년 내내 고생하고 봄 한철만 한가롭네. 한가한 때에는 오히려 누에로 시장을 이루니, 함께 고생을 잊고 기쁜 즐거움을 쫓네. 지난해 서리 내릴 때 가을 갈대를 베었고, 올해는 대자리 쌓인 것이 첩첩산중 같네. 깨진 바가지를 바퀴 삼고 흙을 솥 삼아, 다투어 사들이니 비단과 같다고 하네. 옛날 너와 내가 모두 어렸을 적, 해마다 글 읽기를 폐하고 시장 구경을 갔던 것을 떠올리네. 시장 사람들은 다투어 솜씨와 지혜를 자랑하고, 시골 사람들은 말 못 하고 속임을 당하네. 시를 보내 나로 하여금 옛 일을 느끼게 하니, 나라를 떠난 슬픔은 없고 흘러간 세월을 슬퍼하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촉 지방의 누에 시장 풍경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인생의 무상함을 보여줍니다.
- 촉 지방 사람들의 생활: "촉 땅 사람들은 의식주가 늘 고달프고 어려운데, 촉 땅 사람들은 놀고 즐기면 돌아갈 줄을 모르네. 천 명이 밭 갈고 만 명이 먹으니, 일 년 내내 고생하고 봄 한철만 한가롭네. 한가한 때에는 오히려 누에로 시장을 이루니, 함께 고생을 잊고 기쁜 즐거움을 쫓네(蜀人衣食常苦艱。蜀人遊樂不知還。千人耕種萬人食。一年辛苦一春閑。閑時尚以蠶為市。共忘辛苦逐欣歡)." 앞부분은 촉 지방 사람들의 고된 삶과 시장의 활기찬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줍니다. '의식주가 늘 고달프고 어렵다(衣食常苦艱)'라는 표현은 당시 사람들의 힘겨운 삶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하지만 '놀고 즐기면 돌아갈 줄 모른다(遊樂不知還)'라는 표현은 고된 현실 속에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천 명이 밭 갈고 만 명이 먹는다(千人耕種萬人食)'라는 표현은 농업 사회의 현실을 간결하게 나타냅니다. '한가한 때에 누에로 시장을 이룬다(閑時尚以蠶為市)'라는 표현은 누에치기가 당시 사람들에게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 시장의 풍경과 활기: "지난해 서리 내릴 때 가을 갈대를 베었고, 올해는 대자리 쌓인 것이 첩첩산중 같네. 깨진 바가지를 바퀴 삼고 흙을 솥 삼아, 다투어 사들이니 비단과 같다고 하네(去年霜降斫秋荻。今年箔積如連山。破瓢為輪土為釜。爭買不翅金與紈)." 이 부분은 시장의 구체적인 풍경을 묘사하여 활기찬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대자리 쌓인 것이 첩첩산중 같다(箔積如連山)'라는 표현은 시장의 규모를 과장하여 생동감을 더합니다. '깨진 바가지를 바퀴 삼고 흙을 솥 삼는다(破瓢為輪土為釜)'라는 표현은 가난한 사람들이 물건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장의 활기를 나타내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다투어 사들인다(爭買)'라는 표현은 시장의 열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 어린 시절의 추억과 인생의 무상함: "옛날 너와 내가 모두 어렸을 적, 해마다 글 읽기를 폐하고 시장 구경을 갔던 것을 떠올리네. 시장 사람들은 다투어 솜씨와 지혜를 자랑하고, 시골 사람들은 말 못 하고 속임을 당하네. 시를 보내 나로 하여금 옛 일을 느끼게 하니, 나라를 떠난 슬픔은 없고 흘러간 세월을 슬퍼하네(憶昔與子皆童丱。年年廢書走市觀。市人爭誇鬬巧智。野人喑啞遭欺謾。詩來使我感舊事。不悲去國悲流年)." 이 부분은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시장 구경을 갔던 추억을 회상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해마다 글 읽기를 폐하고 시장 구경을 갔다(年年廢書走市觀)'라는 표현은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장 사람들은 솜씨와 지혜를 자랑하고, 시골 사람들은 속임을 당한다(市人爭誇鬬巧智。野人喑啞遭欺謾)'라는 표현은 당시 사회의 불평등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나라를 떠난 슬픔은 없고 흘러간 세월을 슬퍼한다(不悲去國悲流年)'라는 표현은 정치적인 어려움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촉 지방의 누에 시장 풍경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인생의 무상함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특히, 구체적인 묘사와 대비를 통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마지막 구절에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동생 소철(蘇轍, 자는 子由)이 추위를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보낸 시 "화자유고한견기(和子由苦寒見寄)"입니다. 인생의 짧음과 이별의 안타까움, 그리고 나라에 대한 걱정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의 수명은 백 년을 채우지 못하는데, 한 번 이별하면 삼 년을 보내네. 삼 년이 내 인생에 얼마나 있겠는가, 버리고 내던지면 돌이킬 수 없네. 늘 이별 중에 머물러, 나의 귀밑털과 얼굴을 쇠하게 할까 두렵네. 옛날에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별한 후로는 한 편의 글도 이루지 못했네. 평소의 즐거움을 자세히 생각해보니, 도리어 근심의 원인이 되네. 내가 천하의 선비들을 따르지만, 그대와 함께하는 즐거움만 같지 못하네. 그대가 오랫동안 나가지 않고, 책을 읽어 이(蝨)가 모전에 생기는 것을 부러워하네. 대장부는 나아가고 물러남을 중히 여기니, 물러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앞에 나서야 하네. 서쪽 오랑캐가 원한과 틈을 풀었지만, 용맹한 장수들은 변방을 걱정하네. 조정의 계책은 비록 싸우지 않지만, 오랑캐의 뜻은 오랫동안 하늘을 속이네. 산서(山西)의 좋은 집안 자제는, 비단으로 장식한 담비 갖옷이 곱네. 천금을 들여 전마(戰馬)를 사고, 온갖 보물로 칼고리를 장식하네. 어느 때 그대를 따라가, 오랑캐와 더불어 싸움을 겨뤄볼까.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인생의 유한함, 이별의 슬픔, 그리고 나라에 대한 우려를 복합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 인생의 유한함과 이별의 슬픔: "사람의 수명은 백 년을 채우지 못하는데, 한 번 이별하면 삼 년을 보내네. 삼 년이 내 인생에 얼마나 있겠는가, 버리고 내던지면 돌이킬 수 없네. 늘 이별 중에 머물러, 나의 귀밑털과 얼굴을 쇠하게 할까 두렵네. 옛날에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별한 후로는 한 편의 글도 이루지 못했네. 평소의 즐거움을 자세히 생각해보니, 도리어 근심의 원인이 되네. 내가 천하의 선비들을 따르지만, 그대와 함께하는 즐거움만 같지 못하네(人生不滿百。一別費三年。三年吾有幾。弃擲理無還。長恐別離中。摧我鬢與顏。念昔喜著書。別來不成篇。細思平時樂。乃為憂所緣。吾從天下士。莫如與子歡)." 앞부분은 인생의 짧음과 이별의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사람의 수명은 백 년을 채우지 못한다(人生不滿百)'라는 표현은 인생의 유한함을 강조하고, '한 번 이별하면 삼 년을 보낸다(一別費三年)'라는 표현은 이별의 시간을 안타까워합니다. '늘 이별 중에 머물러 나의 귀밑털과 얼굴을 쇠하게 할까 두렵다(長恐別離中。摧我鬢與顏)'라는 표현은 이별로 인한 심신의 고통을 드러냅니다. 동생과 함께했던 즐거움을 회상하며 현재의 고독함을 부각하는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 동생에 대한 걱정과 격려: "그대가 오랫동안 나가지 않고, 책을 읽어 이가 모전에 생기는 것을 부러워하네. 대장부는 나아가고 물러남을 중히 여기니, 물러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앞에 나서야 하네(羨子久不出。讀書蝨生氊。丈夫重出處。不退要當前)." 이 부분은 동생을 걱정하면서도 격려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가 모전에 생기는 것을 부러워한다(蝨生氊)'라는 표현은 동생이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지만, 동시에 세상일에 나서지 않는 동생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대장부는 나아가고 물러남을 중히 여긴다(丈夫重出處)'라는 표현은 동생에게 적극적으로 세상일에 나설 것을 권유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나라에 대한 우려와 비분강개: "서쪽 오랑캐가 원한과 틈을 풀었지만, 용맹한 장수들은 변방을 걱정하네. 조정의 계책은 비록 싸우지 않지만, 오랑캐의 뜻은 오랫동안 하늘을 속이네. 산서의 좋은 집안 자제는, 비단으로 장식한 담비 갖옷이 곱네. 천금을 들여 전마를 사고, 온갖 보물로 칼고리를 장식하네. 어느 때 그대를 따라가, 오랑캐와 더불어 싸움을 겨뤄볼까(西羗解仇隙。猛士憂塞壖。廟謀雖不戰。虜意久欺天。山西良家子。錦緣貂裘鮮。千金買戰馬。百寶粧刀環。何時逐汝去。與虜試周旋)." 마지막 부분은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비분강개하는 심정을 드러냅니다. '서쪽 오랑캐(西羗)', '변방(塞壖)', '오랑캐의 뜻(虜意)' 등의 시어는 당시 국방의 불안한 상황을 나타냅니다. '천금을 들여 전마를 사고, 온갖 보물로 칼고리를 장식한다(千金買戰馬。百寶粧刀環)'라는 표현은 호화로운 귀족들의 생활과 대비되는 국가의 위태로움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오랑캐와 싸우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는 부분은 시인의 애국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이별의 슬픔, 동생에 대한 염려와 격려, 나라에 대한 걱정 등 다양한 감정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특히,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애국심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동생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함께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시인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동생 소철(蘇轍, 자는 子由)과 서예에 대해 논한 후 지은 "화자유논서(和子由論書)"입니다. 서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세속의 서예 풍조를 비판적으로 논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비록 글씨를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씨에 대해 아는 것은 나만 한 사람이 없네. 진실로 그 뜻을 통할 수 있다면,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늘 말하네. 얼굴이 예뻐도 찡그릴 때가 있고, 옥이 아름다워도 모난 부분이 있을 수 있네. 단정함에 유려함이 섞여 있고, 강건함에 아리따움이 담겨 있네. 좋아하여 날마다 비평하니, 그대 또한 자못 그러한 줄은 몰랐네. 글씨를 쓰자마자 곧 버리니, 잘못되어 다른 사람에게 싸여 있네. 모두들 본래 호방하다고 말하지만, 단속하여 자질구레한 것에 빠져드네. 그대의 시 또한 칭찬을 받으니, 말씀이 무거워 감히 받들지 못하겠네. 요즘 또 활쏘기를 배우니, 힘이 약해 관가에서 쓰는 화살을 걱정하네. (관가 화살 열두 발 중 나는 겨우 열한 발을 쏠 수 있을 뿐이네.) 많이 좋아하기만 하고 결국 이루는 것이 없으니, 정밀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아 봐야 무엇에 쓰겠는가. 어느 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만사를 게으름에 맡길까. 내가 듣기에 옛 서법에서는, 잘 달리는 준마를 지키는 것은 절뚝거리는 것만 같다고 하네. 세속의 붓은 괴로울 정도로 교만하고,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 높이 뽐내네. 종요(鍾繇)와 장지(張芝)는 갑자기 이미 멀어졌으니, 이 말은 시대와 어긋나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서예에 대한 소식의 독특한 관점과 당시 세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보여줍니다.
- 서예의 본질에 대한 논의: "나는 비록 글씨를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씨에 대해 아는 것은 나만 한 사람이 없네. 진실로 그 뜻을 통할 수 있다면,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늘 말하네. 얼굴이 예뻐도 찡그릴 때가 있고, 옥이 아름다워도 모난 부분이 있을 수 있네. 단정함에 유려함이 섞여 있고, 강건함에 아리따움이 담겨 있네(吾雖不善書。曉書莫如我。茍能通其意。常謂不學可。貌妍容有顰。璧美何妨橢。端莊雜流麗。剛健含婀娜)." 앞부분은 서예의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소식의 생각을 드러냅니다. '뜻을 통할 수 있다면 배우지 않아도 된다(通其意。不學可)'라는 표현은 서예의 본질은 외형적인 기교가 아닌 내면의 정신을 표현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아름다운 얼굴에도 흠이 있을 수 있고, 옥에도 모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비유는 완벽한 형태에 집착하기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 세속의 서예 풍조 비판: "좋아하여 날마다 비평하니, 그대 또한 자못 그러한 줄은 몰랐네. 글씨를 쓰자마자 곧 버리니, 잘못되어 다른 사람에게 싸여 있네. 모두들 본래 호방하다고 말하지만, 단속하여 자질구레한 것에 빠져드네. 그대의 시 또한 칭찬을 받으니, 말씀이 무거워 감히 받들지 못하겠네. 요즘 또 활쏘기를 배우니, 힘이 약해 관가에서 쓰는 화살을 걱정하네. (관가 화살 열두 발 중 나는 겨우 열한 발을 쏠 수 있을 뿐이네.) 많이 좋아하기만 하고 결국 이루는 것이 없으니, 정밀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아 봐야 무엇에 쓰겠는가(好之每日譏。不謂子亦頗。書成輙弃去。謬被旁人裹。皆云本闊落。結束入細麼。子詩亦見推。語重未敢荷。邇來又學射。力薄愁官笴。官箭十二把吾能十一把箭耳。多好竟無成。不精安用夥)." 이 부분은 당시 세속의 서예 풍조를 비판합니다. 남들이 자신을 호방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질구레한 것에 집착한다고 지적하고, 많이 배우기만 하고 정밀하게 연마하지 않는 세태를 비판합니다. 활쏘기를 예로 들어 이러한 비판을 더욱 강조합니다.
- 고대의 서법에 대한 회고와 현실 비판: "어느 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만사를 게으름에 맡길까. 내가 듣기에 옛 서법에서는, 잘 달리는 준마를 지키는 것은 절뚝거리는 것만 같다고 하네. 세속의 붓은 괴로울 정도로 교만하고,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 높이 뽐내네. 종요와 장지는 갑자기 이미 멀어졌으니, 이 말은 시대와 어긋나네(何當盡屏去。萬事付懶惰。吾聞古書法。守駿莫如跛。世俗筆苦驕。衆中強嵬騀。鍾張忽已遠。此語與時左)." 마지막 부분은 고대의 서법을 회고하며 현실을 비판합니다. '잘 달리는 준마를 지키는 것은 절뚝거리는 것만 같다(守駿莫如跛)'라는 역설적인 표현은 겉으로 화려한 기교보다는 내면의 깊은 경지가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세속의 서예가 교만하고 억지로 뽐내는 행태를 비판하며, 서예의 본질을 잃어버린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종요와 장지와 같은 옛 대가들은 이미 멀어졌다고 탄식하는 부분에서 시대의 변화와 예술의 쇠퇴에 대한 안타까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서예에 대한 소식의 독특한 관점과 당시 세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외형적인 기교보다는 내면의 정신을 중시하고, 지나치게 화려하고 겉치레에 치중하는 세속의 풍조를 비판하는 소식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개원사(開元寺)에서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불멸도(佛滅度), 즉 석가모니의 열반 장면을 보고 동생 소철(蘇轍, 자는 子由)에게 보낸 시 "기소견개원사오도자화불멸도이답자유(記所見開元寺吳道子畫佛滅度以荅子由)"입니다. 오도자의 그림을 감상한 감상과 함께 불교의 교리를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방의 진인(眞人)을 누가 보았는가? 칠보(七寶)로 장식된 옷을 입고 두 마리 사자와 함께 있네. 당시 도를 닦는 것이 자못 고생스러웠으니, 두 팔꿈치에는 굳은살이 생기고 어깨에는 새 둥지가 있네. 처음에는 몽롱하게 산속의 옥처럼 숨겨져 있다가, 점점 맑고 깨끗하게 물에서 나온 연꽃과 같네. 도를 이루자 하루아침에 허무로 돌아가니, 온 세상 사람들이 슬퍼하네. 나는 새는 슬픈 울음소리를 내어 숲과 계곡을 울리고, 짐승과 귀신은 발을 구르며 눈물을 샘처럼 쏟네. 풍성한 눈썹과 깊은 눈을 가진 저 사람은 누구인가? 침상 주위를 돌며 손가락을 튕기니 성품이 저절로 원만하네. 차가운 달이 맑은 대낮에 떨어지는 것처럼 숨으니, 텅 빈 채 외로운 빛만 옛 자리에 남았네. 봄날 옛 절에 놀러 와 먼지 낀 벽을 닦으니, 남겨진 모습이 오랫동안 향 연기 속에 덮여 있네. 화가는 다시는 이름과 성을 쓰지 않으니, 모두 오도자의 입으로 전해졌다고 하네. 가로와 세로로 이미 손오(孫吳)와 등전(鄧展)을 멸시하니, 마치 큰 악어가 작은 물고기를 삼키는 것과 같네. 보내온 시에서 칭찬한 것이 어찌 이것과 비교되랴, 어찌 그 옆에 가지고 걸어두고 볼 수 있겠는가.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오도자의 그림을 통해 석가모니의 고행과 열반의 의미를 되새기며, 예술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 석가모니의 고행과 열반: "서방의 진인을 누가 보았는가? 칠보로 장식된 옷을 입고 두 마리 사자와 함께 있네. 당시 도를 닦는 것이 자못 고생스러웠으니, 두 팔꿈치에는 굳은살이 생기고 어깨에는 새 둥지가 있네. 처음에는 몽롱하게 산속의 옥처럼 숨겨져 있다가, 점점 맑고 깨끗하게 물에서 나온 연꽃과 같네. 도를 이루자 하루아침에 허무로 돌아가니, 온 세상 사람들이 슬퍼하네. 나는 새는 슬픈 울음소리를 내어 숲과 계곡을 울리고, 짐승과 귀신은 발을 구르며 눈물을 샘처럼 쏟네(西方真人誰所見。衣被七寶從雙狻。當時脩道頗辛苦。柏生兩肘烏巢肩。初如濛濛隱山玉。漸如濯濯出水蓮。道成一旦就空滅。奔會四海悲人天。翔禽哀響動林谷。獸鬼躑躅淚迸泉)." 앞부분은 석가모니의 모습과 열반의 순간을 묘사합니다. '칠보로 장식된 옷(衣被七寶)', '두 마리 사자(雙狻)' 등의 표현은 불교적인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두 팔꿈치에 굳은살이 생기고 어깨에는 새 둥지가 있다(柏生兩肘烏巢肩)'라는 표현은 석가모니의 고행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몽롱하게 산속의 옥(濛濛隱山玉)'에서 '맑고 깨끗하게 물에서 나온 연꽃(濯濯出水蓮)'으로 변화하는 이미지는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열반의 순간을 묘사하며 온 세상 사람들이 슬퍼하고, 새와 짐승, 귀신까지 슬퍼하는 모습은 석가모니의 위대함을 강조합니다.
- 오도자의 그림에 대한 감탄: "풍성한 눈썹과 깊은 눈을 가진 저 사람은 누구인가? 침상 주위를 돌며 손가락을 튕기니 성품이 저절로 원만하네. 차가운 달이 맑은 대낮에 떨어지는 것처럼 숨으니, 텅 빈 채 외로운 빛만 옛 자리에 남았네. 봄날 옛 절에 놀러 와 먼지 낀 벽을 닦으니, 남겨진 모습이 오랫동안 향 연기 속에 덮여 있네. 화가는 다시는 이름과 성을 쓰지 않으니, 모두 오도자의 입으로 전해졌다고 하네. 가로와 세로로 이미 손오와 등전을 멸시하니, 마치 큰 악어가 작은 물고기를 삼키는 것과 같네(龎眉深目彼誰子。遶牀彈指性自圓。隱如寒月墮清晝。空有孤光留故躔。春遊古寺拂塵壁。遺像久此霾香煙。畫師不復寫名姓。皆云道子口所傳。從橫固已蔑孫鄧。有如巨鰐吞小鮮)." 이 부분은 오도자의 그림에 대한 감탄을 표현합니다. 석가모니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그림이 주는 깊은 인상을 전달합니다. 특히, '차가운 달이 맑은 대낮에 떨어지는 것처럼 숨는다(隱如寒月墮清晝)'라는 표현은 석가모니의 열반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뛰어난 구절입니다. '큰 악어가 작은 물고기를 삼키는 것과 같다(有如巨鰐吞小鮮)'라는 표현은 오도자의 뛰어난 그림 실력을 칭찬하는 표현입니다.
- 동생의 시에 대한 겸손: "보내온 시에서 칭찬한 것이 어찌 이것과 비교되랴, 어찌 그 옆에 가지고 걸어두고 볼 수 있겠는가(來詩所誇孰與此。安得攜掛其旁觀)." 마지막 구절은 동생의 시에 대한 겸손을 표하는 부분입니다. 오도자의 그림에 대한 감탄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시가 그에 미치지 못함을 겸손하게 표현합니다.
이 시는 오도자의 그림을 통해 석가모니의 고행과 열반을 되새기며, 예술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비유와 묘사를 통해 시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마지막 구절에서 동생에 대한 겸손을 표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한식(寒食)날을 맞아 동생 소철(蘇轍, 자는 子由)에게 보낸 시 "화자유한식(和子由寒食)"입니다. 한식날의 풍경과 감회를 간략하게 읊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올해 한식은 2월 그믐날이니, 수풀은 짙푸르게 연기를 내뿜는 듯하네. 성을 둘러싼 준마를 누가 빌려줄까, 곳곳의 명원은 뜻대로 편안히 즐길 수 있네. 다만 술병을 걸어 놓으니 어찌 잔을 헤아리랴, 우연히 시구를 적으니 엮을 필요도 없네. 문득 소쩍새 우는 소리에 나그네의 시름이 놀라니, 강가에는 누가 황폐한 밭을 갈고 있는가.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한식날의 풍경 묘사와 함께 시인의 간략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비교적 짧은 시이지만, 한식이라는 절기와 자연 풍경, 그리고 시인의 정서가 간결하게 담겨 있습니다.
- 한식날의 풍경 묘사: "올해 한식은 2월 그믐날이니, 수풀은 짙푸르게 연기를 내뿜는 듯하네. 성을 둘러싼 준마를 누가 빌려줄까, 곳곳의 명원은 뜻대로 편안히 즐길 수 있네(寒食今年二月晦。樹林深翠已生煙。遶城駿馬誰能借。到處名園意盡便)." 앞의 세 구절은 한식날의 풍경을 묘사합니다. '2월 그믐날(二月晦)'이라는 표현은 한식의 시기를 명시하고, '수풀은 짙푸르게 연기를 내뿜는 듯하다(樹林深翠已生煙)'라는 표현은 봄의 생동감 넘치는 자연 풍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합니다. '성을 둘러싼 준마를 누가 빌려줄까(遶城駿馬誰能借)'라는 표현은 과거 귀족들이 한식날 말을 타고 놀았던 풍습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곳곳의 명원은 뜻대로 편안히 즐길 수 있다(到處名園意盡便)'라는 표현은 한식날을 맞아 여러 정원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나타냅니다.
- 자유로운 감흥과 나그네의 시름: "다만 술병을 걸어 놓으니 어찌 잔을 헤아리랴, 우연히 시구를 적으니 엮을 필요도 없네. 문득 소쩍새 우는 소리에 나그네의 시름이 놀라니, 강가에는 누가 황폐한 밭을 갈고 있는가(但挂酒壺那計盞。偶題詩句不須編。忽聞啼鵙驚羈旅。江上何人治廢田)." 뒤의 네 구절은 시인의 감흥과 주변 풍경을 묘사합니다. '다만 술병을 걸어 놓으니 어찌 잔을 헤아리랴(但挂酒壺那計盞)'라는 표현은 술을 마시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연히 시구를 적으니 엮을 필요도 없다(偶題詩句不須編)'라는 표현은 즉흥적인 감흥을 중시하는 시인의 태도를 나타냅니다. '소쩍새 우는 소리(啼鵙)'는 흔히 나그네의 시름을 자아내는 새로 여겨지는데, 이 시에서도 '나그네의 시름(羈旅)'을 일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 구절 '강가에는 누가 황폐한 밭을 갈고 있는가(江上何人治廢田)'는 황폐한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을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혹은 한식날 농사를 시작하는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시는 한식날의 풍경과 시인의 자유로운 감흥을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특히, 자연 풍경 묘사와 함께 '소쩍새 우는 소리'를 통해 나그네의 시름을 환기시키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짧은 시이지만, 한식이라는 절기의 분위기와 시인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유장안(劉長安)과 함께 설주(薛周)의 일로정(逸老亭)에 제(題)한 시 "화유장안제설주일로정(和劉長安題薛周逸老亭)"입니다. 설주라는 인물의 은퇴 생활을 찬양하고, 술을 즐기는 그의 풍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즘 설 공자에 대한 소식을 들으니, 일찍 은퇴하여 속인들을 놀라게 하네. 동산을 사서 들의 학을 불러들이고, 우물을 파서 숨은 용을 움직이네. 스스로 말하길 술 마시는 즐거움은, 한 말(斗)이 양주(涼州)보다 낫다고 하네. 훨훨 옷을 떨치고 떠나가니, 친한 이들이 붙잡아도 머물지 않네. 숨어 사는 것이 또한 무슨 즐거움이겠는가, 평소의 뜻을 거의 이룰 수 있네. 잃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한탄하지만, 얻은 것은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네. 젊은 시절은 그대를 위해 좋고, 긴긴 낮은 그대를 위해 한가롭네. 산새는 거문고와 축을 연주하고, 들꽃은 한가로운 그윽함을 희롱하네. 비록 공명(功名)을 버렸지만, 그 즐거움은 실로 소후(素侯)와 같네. 지금도 맑은 밤 꿈에는, 오히려 관(冠)이 머리를 누르는 것에 놀라네. 누가 능히 좋은 술을 가득 싣고, 가서 큰 잔에 부어 마실까. 그 사람을 비록 알지는 못하지만, 유 공으로 인하여 함께 놀 수 있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설주라는 인물의 은퇴 생활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 술을 즐기며 살아가는 그의 풍류를 부각하고 있습니다.
- 설주의 은퇴와 풍류: "요즘 설 공자에 대한 소식을 들으니, 일찍 은퇴하여 속인들을 놀라게 하네. 동산을 사서 들의 학을 불러들이고, 우물을 파서 숨은 용을 움직이네. 스스로 말하길 술 마시는 즐거움은, 한 말이 양주보다 낫다고 하네. 훨훨 옷을 떨치고 떠나가니, 친한 이들이 붙잡아도 머물지 않네(近聞薛公子。早退驚常流。買園招野鶴。鑿井動潛虬。自言酒中趣。一斗勝涼州。飜然拂衣去。親愛挽不留)." 앞부분은 설주의 은퇴와 그의 풍류를 묘사합니다. '일찍 은퇴하여 속인들을 놀라게 한다(早退驚常流)'라는 표현은 당시 사람들이 벼슬을 중시하던 사회 분위기와 대비되는 설주의 행동을 강조합니다. '동산을 사서 들의 학을 불러들이고, 우물을 파서 숨은 용을 움직인다(買園招野鶴。鑿井動潛虬)'라는 표현은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지내는 설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술 마시는 즐거움은 한 말이 양주보다 낫다(酒中趣。一斗勝涼州)'라는 표현은 술을 즐기는 설주의 호방한 성격을 드러냅니다. '훨훨 옷을 떨치고 떠나간다(飜然拂衣去)'라는 표현은 미련 없이 속세를 떠나는 그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 은거 생활의 즐거움과 설주에 대한 찬양: "숨어 사는 것이 또한 무슨 즐거움이겠는가, 평소의 뜻을 거의 이룰 수 있네. 잃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한탄하지만, 얻은 것은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네. 젊은 시절은 그대를 위해 좋고, 긴긴 낮은 그대를 위해 한가롭네. 산새는 거문고와 축을 연주하고, 들꽃은 한가로운 그윽함을 희롱하네. 비록 공명을 버렸지만, 그 즐거움은 실로 소후와 같네. 지금도 맑은 밤 꿈에는, 오히려 관이 머리를 누르는 것에 놀라네(隱居亦何樂。素志庶可求。所亡嗟無幾。所得不啻酬。青春為君好。白日為君悠。山鳥奏琴筑。野花弄閑幽。雖辭功與名。其樂實素侯。至今清夜夢。尚驚冠壓頭)." 이 부분은 설주의 은거 생활을 찬양하고 그의 심경을 묘사합니다. '잃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한탄하지만, 얻은 것은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다(所亡嗟無幾。所得不啻酬)'라는 표현은 공명을 버린 대신 자연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산새는 거문고와 축을 연주하고, 들꽃은 한가로운 그윽함을 희롱한다(山鳥奏琴筑。野花弄閑幽)'라는 표현은 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설주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그 즐거움은 실로 소후와 같다(其樂實素侯)'라는 표현은 설주의 은거 생활을 고대의 현인인 소후에 비유하여 그의 높은 인품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맑은 밤 꿈에는, 오히려 관이 머리를 누르는 것에 놀란다(至今清夜夢。尚驚冠壓頭)'라는 표현은 비록 은퇴했지만, 과거의 벼슬 생활에 대한 기억이 아직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술을 함께 마시고 싶다는 마음: "누가 능히 좋은 술을 가득 싣고, 가서 큰 잔에 부어 마실까. 그 사람을 비록 알지는 못하지만, 유 공으로 인하여 함께 놀 수 있네(誰能載美酒。往以大白浮。之子雖不識。因公可與遊)." 마지막 부분은 설주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설주를 직접 알지는 못하지만, 유장안을 통해 그와 교류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설주의 은퇴 생활을 찬양하며, 자연 속에서 술을 즐기며 살아가는 그의 풍류를 부각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자연 묘사와 비유를 통해 시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서 설주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기산(岐山)의 재상 왕군신(王君紳)의 집인 중은당(中隱堂)에 대해 지은 "중은실시 병서(中隱室詩并敘)"입니다. 서문과 함께 다섯 수의 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왕군신의 가문 내력과 중은당의 풍경, 그리고 역사적 회고를 담고 있습니다.
서문 번역:
기산의 재상 왕군신은, 그 조상이 본래 촉(蜀) 사람이다. 난리를 피해 장안(長安)에 와서, 드디어 그곳에 정착하였다. 그의 저택과 정원은 이름이 있었으니, 장안 성중에서 중은당이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내가 장안에 갔을 때, 왕군신이 편지로 그의 자제들에게 당부하여 나를 초청하여 함께 놀았고, 또한 시를 청하기를 매우 간절히 하였다. 이에 이 다섯 편의 시를 지었다.
시 번역 및 분석:
제1수:
촉을 떠나 처음에는 난리를 피했으나, 진(秦)에서 노닐다가 마침내 돌아가지 못했네. 정원은 황폐해지고 큰 나무는 늙었으니, 집은 옛 사람만 못하네. 돌을 뚫으니 맑은 샘물이 솟아나고, 문을 여니 들의 학이 날아오네. 물러나 사는 것을 내가 오래 전부터 생각했으니, 늘 이 마음과 어긋날까 두렵네.
- 왕씨 가문의 내력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시작합니다. 촉에서 난리를 피해 장안에 정착하게 된 과정을 언급하고, 현재는 정원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안타까워합니다. 맑은 샘물과 날아드는 학의 모습은 은거 생활의 운치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화자는 자신의 마음이 은거와 어긋날까 두려워합니다.
제2수:
오솔길은 마치 큰 뱀처럼 굽이져 있고, 비탈은 엎드린 자라처럼 드리워져 있네. 나무는 어느 시대부터 있었던 것인가, 사람과 이 집은 역사를 함께하네. 옛것을 좋아하지만 늦게 태어남을 슬퍼하고, 한가함을 훔치지만 오래된 수고를 싫어하네. 왕손은 일찍 은거하니, 속세의 티끌이 그대의 도포를 더럽히네.
- 중은당의 지형과 풍경을 묘사합니다. 굽이진 오솔길과 드리워진 비탈을 뱀과 자라에 비유하여 생동감 있게 표현합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나무와 집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고, 늦게 태어난 것을 아쉬워하는 감정을 드러냅니다. 왕손의 은거를 칭찬하면서도, 속세의 티끌이 그를 더럽힐까 염려하는 마음을 내비칩니다.
제3수:
2월에 매화가 늦게 피어나는 것에 놀라니, 그윽한 향기가 이곳에는 없네. 아련하게 먼 길손을 위로하니, 맑고 깨끗함이 오나라 미인과 같네. 옛 정원을 멀리 떠나온 것을 한탄하지 않고, 부질없이 아름다운 세월이 흘러감을 슬퍼하네. 봄이 깊어 도화와 행화가 어지러이 피어나니, 그대가 더욱 외롭고 고독해짐을 비웃네.
- 늦게 피어난 매화를 통해 봄의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멀리서 온 손님을 위로하는 매화의 모습에서 오나라 미인을 연상하고, 고향을 떠나온 슬픔보다는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냅니다. 봄꽃이 만발한 풍경 속에서 오히려 고독함을 느끼는 화자의 감정이 드러납니다.
제4수:
푸른 돌은 앵무새와 같으니, 어느 해에 바닷가에서 헤어졌는가. 공물로 남쪽 사신을 따라 멀리 왔고, 배에 실려 위수(渭水)에서 기울어졌네. 이미 큰 소나무와 함께 늙었으니, 고국의 변천을 어찌 알겠는가. 금인(金人)은 한(漢)나라를 떠나는 것을 슬퍼했으나, 너는 홀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구나.
- 중은당에 있는 푸른 돌에 대한 이야기를 펼칩니다. 이 돌이 먼 곳에서 옮겨져 온 사연을 이야기하며, 역사적 사건인 금인의 한나라 이별을 언급합니다. 돌은 고국의 변천을 알지 못하지만, 금인은 슬퍼했다는 대비를 통해 무정함과 유정함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제5수:
도성에는 몇 번이나 성씨가 바뀌었던가, 가는 곳마다 허물어진 비석이 있네. 옛 무덤에는 올챙이가 묻혀 있고, 허물어진 벼랑에는 엎드린 거북이 드러나 있네. 웅장한 정자와 누각을 마련하니, 많은 재물을 들였네. 구루산(岣嶁山)에 무엇하러 가겠는가, 한유(韓愈)만 부질없이 슬퍼했네.
- 도성의 역사적 변천을 회고하며, 곳곳에 남아 있는 유적들을 통해 역사의 무상함을 드러냅니다. 많은 재물을 들여 정자와 누각을 지었지만, 결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덧없음을 강조합니다. 구루산에 가서 슬퍼했던 한유의 고사를 인용하며, 역사의 허무함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이 시는 왕군신의 집인 중은당을 방문하여 느낀 감회를 서사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왕씨 가문의 내력에서 시작하여 중은당의 풍경, 역사적 회고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시간의 흐름과 역사의 무상함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소식(蘇軾)이 봉상(鳳翔)의 여덟 가지 볼거리, 즉 팔관(八觀)에 대해 쓴 "봉상팔관 병서(鳳翔八觀并敘)"입니다. 서문과 함께 여덟 가지 볼거리에 대한 시가 이어질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서문 부분만 번역 및 분석하겠습니다.
서문 번역:
봉상 팔관시는, 볼 만한 여덟 가지를 기록한 것이다. 옛날 사마천(司馬遷, 자는 子長)은 회계산(會稽山)에 올라 우왕(禹王)의 동굴을 탐험하며, 천 리를 멀다 하지 않았다. 또한 이백(李白) 역시 칠택(七澤)의 볼거리를 보기 위해 형주(荊州)에 이르렀다. 이 두 사람은 세상을 슬퍼하고 속됨을 개탄하며, 스스로 옛사람을 보지 못함을 슬퍼하여, 그들의 유적을 한 번이라도 보고자 하였기에 그 부지런함이 이와 같았다. 봉상은 진(秦)나라와 촉(蜀)나라의 접경에 위치하여, 사대부들이 아침저녁으로 왕래하는 곳이다. 이 여덟 가지 볼거리는, 또한 지척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인데, 좋은 일을 좋아하는 사람조차 두루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보고자 하지만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시를 지었다.
서문 분석 및 설명:
이 서문은 봉상팔관시를 짓게 된 동기와 목적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 저술 동기: 소식은 사마천과 이백의 고사를 인용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사마천이 우왕의 동굴을 탐험하고 이백이 칠택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떠난 것은, 옛 성현의 자취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역사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소식은 자신이 봉상의 팔관을 시로 쓰게 된 동기를 고인들의 행적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 또한 옛사람들의 행적을 통해 세상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과, 사람들이 봉상의 아름다운 경치를 놓치지 않도록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시를 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봉상의 지리적 중요성: 봉상이 진나라와 촉나라의 접경에 위치하여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임을 언급합니다. 이는 봉상이 교통의 요지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 저술 목적: 봉상의 팔관이 가까운 곳에 있어 쉽게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여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보고자 하지만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시를 짓는다고 밝힙니다. 즉, 봉상의 아름다운 경치를 널리 알리고 사람들이 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 이 시를 쓴 목적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 서문은 소식이 옛 성현의 행적을 본받아 봉상의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하고, 사람들이 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도록 하기 위해 이 시를 짓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봉상의 지리적 중요성을 언급하며, 가까이 있는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목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석고(石鼓)를 보고 지은 "석고(石鼓)"입니다. 1091년 겨울 12월, 그가 처음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을 때 노인(魯叟)을 만나 석고를 직접 보고 느낀 감회를 담고 있습니다. 석고문의 난해함과 역사적 의미, 그리고 주나라의 역사를 회고하는 내용에 더불어 진나라의 폭정과 석고의 운명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겨울 12월 신축년, 내가 처음 정사에 참여했을 때 노인을 만났네. 예전부터 듣던 석고를 지금 보니, 문자는 울창하고 꿈틀거리는 뱀처럼 달려가네. 자세히 보니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배를 그리는 듯하고, 읽으려 하니 마치 입에 재갈이 물린 듯하네. 한유(韓愈)는 옛것을 좋아했지만 태어남이 이미 늦었고, 나는 지금 더욱 백 년 후이네. 억지로 자형(字形)을 찾아 점과 획을 추론하니, 간혹 한두 자는 얻지만 여덟아홉은 놓치네. 내 수레는 이미 공격하고 말 또한 같으니, 그 물고기는 비늘이 있는 큰 물고기이니 버드나무에 꿰었네. 〈(그 뜻은 이러하니, 내 수레는 이미 공격하고 내 말 또한 같다고 하였네. 또 이르기를, 그 물고기는 무엇인가, 비늘이 있는 큰 물고기와 잉어이네. 무엇으로 꿰었는가, 버드나무와 버드나무이네. 오직 이 여섯 구절만 읽을 수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통하지 않네.)〉 오래된 그릇은 가로세로로 놓여 있어도 오히려 솥인 줄 알겠고, 뭇 별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어 겨우 북두칠성인 줄 알겠네. 희미하게 반쯤은 흉터처럼 되었고, 구부러진 곳은 오히려 팔꿈치와 무릎인 줄 분별할 수 있네. 아름다운 초승달은 구름과 안개 속에 숨고, 탐스러운 곡식은 가라지와 함께 무성하네. 수많은 전쟁을 거치며 우연히 살아남았으니, 천 년 동안 홀로 서서 누구와 벗하겠는가. 위로는 헌원(軒轅)과 힐힐(頡)에게 서로 따르겠다고 맹세하고, 아래로는 빙(冰)과 사(斯)에게 함께 알을 품겠다고 읍하네. 옛날 주 선왕(周宣王)이 《홍안(鴻雁)》을 노래하던 때를 생각하니, 당시 주사(籀史)가 올챙이 글자를 바꾸었네. 난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바야흐로 성현을 생각하니, 중흥을 하늘이 늙은 현자를 내리셨네. 동쪽으로 서융(徐戎)을 정벌하니 사나운 호랑이와 같고, 북쪽으로 견융(犬戎)을 굴복시키니 손가락으로 시키는 대로 따르네. 통역관들이 뒤섞여 늑대와 사슴을 바치니, 방숙(方叔)과 소공(召公)이 나란히 규(圭)와 이(卣)를 하사받네. 마침내 북소리와 징 소리를 인하여 장수를 생각하니, 어찌 글자를 연구하는 것으로 장님을 괴롭히겠는가. 어떤 사람이 송(頌)을 지어 《숭고(嵩高)》에 비하겠는가, 만고의 이 문장을 구루산과 나란히 하겠는가. 공훈은 지극히 크지만 자랑하지 않았고, 문왕과 무왕의 시대가 멀지 않아 오히려 충후하였네. 연대를 찾으려 해도 갑을(甲乙)이 없으니, 어찌 이름자를 기록하여 누구라고 하겠는가. 주나라가 쇠한 이후 일곱 나라를 거치니, 마침내 진나라 사람이 천하를 가지게 되었네. 시경과 서경을 쓸어 없애고 법률을 외우게 하니, 제기와 콩을 던져 버리고 형벌 도구를 늘어놓았네. 당년에 어떤 사람이 조룡(祖龍, 진시황)을 도왔는가, 상채(上蔡)의 공자가 누런 개를 끌었네. 산에 올라 돌에 새겨 공적을 기리니, 후세 사람은 잇지 못하고 이전 사람도 짝이 없네. 모두 말하기를 황제가 사방을 순행하며, 강포한 자를 쳐 없애고 백성을 구원했다고 하네. 육경이 이미 재 속에 버려졌으니, 이 돌 또한 마땅히 깨지고 부서졌을 것이네. 전해지는 말에 구정(九鼎)이 사수(泗水)에 가라앉았다 하니, 만 명의 장정을 시켜 물속에서 건져 올리려 하였네. 폭군은 제 욕심을 채우려 백성의 힘을 다하니, 신물(神物)은 의로써 진나라의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으려 하였네. 이때 석고는 어디로 피했는가, 아마도 하늘이 귀신에게 명하여 지키게 하였으리라. 흥망성쇠는 백 번 바뀌어도 사물은 저절로 한가로우니, 부귀는 하루아침이지만 이름은 영원히 썩지 않네. 자세히 사물의 이치를 생각하며 앉아 탄식하니, 인생이 어찌 너와 같이 장수할 수 있겠는가.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석고를 보고 느낀 소식의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석고문의 난해함과 고대 문자에 대한 경외심: 시의 초반부는 석고문을 해독하려는 시도의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문자가 울창하고 꿈틀거리는 뱀처럼 달려가네(文字郁律蛟蛇走)", "읽으려 하니 마치 입에 재갈이 물린 듯하네(欲讀嗟如箝在口)" 등의 표현은 석고문의 난해함을 생동감 있게 전달합니다. 한유보다도 늦게 태어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부분에서는 고대 문자에 대한 경외심과 더불어 안타까움을 드러냅니다.
- 석고의 형상과 오랜 역사: 석고의 외형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오래된 그릇은 가로세로로 놓여 있어도 오히려 솥인 줄 알겠고, 뭇 별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어 겨우 북두칠성인 줄 알겠네(古器縱橫猶識鼎,眾星錯落僅名斗)"와 같이 비유를 사용하여 석고의 형태를 설명합니다. "희미하게 반쯤은 흉터처럼 되었고(模糊半已似瘢胝)"라는 표현에서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주나라 역사 회고와 석고의 제작 배경: 시의 중간 부분은 주나라의 역사를 회고하며 석고가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을 설명합니다. 주 선왕의 《홍안》 노래, 주사의 문자 개혁, 서융과 견융 정벌 등의 역사를 언급하며, 석고가 주나라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 진나라의 폭정과 석고의 운명: 진나라의 폭정을 비판하는 부분은 이 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시경과 서경을 쓸어 없애고 법률을 외우게 하니(掃除詩書誦法律)", "당년에 어떤 사람이 조룡(祖龍, 진시황)을 도왔는가(當年何人佐祖龍)" 등의 표현은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폭정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진시황이 구정을 물에서 건져 올리려 했다는 고사를 인용하며, 그의 권력욕을 비판합니다. 이러한 폭정 속에서 석고가 온전히 보존된 것은 기적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 석고의 영원함과 인생의 유한함: 시의 마지막 부분은 석고의 영원함과 대비되는 인생의 유한함을 탄식하며 마무리됩니다. "흥망성쇠는 백 번 바뀌어도 사물은 저절로 한가로우니, 부귀는 하루아침이지만 이름은 영원히 썩지 않네. 자세히 사물의 이치를 생각하며 앉아 탄식하니, 인생이 어찌 너와 같이 장수할 수 있겠는가.(興亡百變物自閑,富貴一朝名不朽。細思物理坐嘆息,人生安得如汝壽)"라는 구절은 역사의 흥망성쇠 속에서도 변치 않는 석고의 영원함을 강조하며,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시인의 안타까움을 드러냅니다.
이 글은 소식(蘇軾)이 "저주초문비(詛楚文碑)"에 대해 쓴 기록입니다. 저주초문비는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초(楚)나라를 저주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개원사(開元寺) 땅 아래 묻혀 있다가 발견되어 태수(太守)의 관청에 옮겨졌다고 합니다. 소식은 이 비석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고찰하며 시를 지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저주초문비는 개원사 땅 아래 묻혀 있었는데, 지금은 태수의 관청에 있다. 진 목공은 옹(雍) 땅의 탁천(橐泉)에 있는 기년관(祈年觀) 아래에 묻혔는데, 지금 무덤은 개원사 동남쪽 수십 보 거리에 있으니, 개원사가 어찌 기년관의 옛 무덤터가 아니겠는가. 회남왕(淮南王)은 촉(蜀)으로 옮겨졌다가 옹 땅에서 병들어 죽었다. 그러므로 옹은 장안(長安)이 아니니, 이곳은 옛 옹 땅인 것이다.
높이 솟은 개원사, 마치 기년관과 흡사하네. 옛 건축물은 쓸려 없어져 빈터가 되었지만, 옛 비석은 묻혀 있어도 썩지 않았네. 저주문은 비록 읽을 수 있지만, 글자체가 오래되어 바뀌었음을 탄식하네. 글에 이르기를 ‘진나라의 후대 왕이 감히 축문에 옥잔(瓚)을 사용하게 하였다’ 하였네. 선군(先君)인 목공 시대에 초나라와 약속하여 서로 막았으니, 무함(巫咸)에게 물어보아 만세토록 배반하지 않기를 기약했네. 지금 그 후대 왕은 이에 감히 많은 어려움을 일으키니, 태아를 가르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며, 친족이 재앙을 만나 얽매이네.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헤아려 보니, 어찌 걸(桀)과 주(紂)의 혼란보다 심하지 않겠는가. 내가 듣기로 옛 진나라 풍속은, 앞에서 거짓을 행하고 뒤에서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였네. 어찌 공자 옹(公子卭)뿐이겠는가, 사직의 신(社鬼) 또한 속임을 당하였네. 아득하도다 천 년이 지난 후에, 나의 웃음을 자아내네.
분석 및 설명:
이 글은 서문과 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문에서는 저주초문비의 발견 경위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시에서는 비석에 담긴 내용과 그에 대한 감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 서문: 저주초문비가 개원사 땅 아래에서 발견되었고, 진 목공의 무덤이 개원사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개원사가 과거 기년관의 터였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또한, 회남왕의 죽음과 관련된 지리적 사실을 언급하며, 이곳이 옛 옹 땅임을 명확히 합니다. 이러한 서문을 통해 시의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시 분석:
- 개원사와 기년관의 회상: "높이 솟은 개원사, 마치 기년관과 흡사하네. 옛 건축물은 쓸려 없어져 빈터가 되었지만, 옛 비석은 묻혀 있어도 썩지 않았네(崢嶸開元寺。髣髴祈年觀。舊築掃成空。古碑埋不爛)." 첫 부분은 개원사의 모습을 묘사하며, 과거 기년관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옛 건축물은 사라졌지만, 비석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영속성을 암시합니다.
- 저주문의 내용과 진나라 후대 왕의 행태 비판: "저주문은 비록 읽을 수 있지만, 글자체가 오래되어 바뀌었음을 탄식하네. 글에 이르기를 ‘진나라의 후대 왕이 감히 축문에 옥잔(瓚)을 사용하게 하였다’ 하였네. 선군(先君)인 목공 시대에 초나라와 약속하여 서로 막았으니, 무함(巫咸)에게 물어보아 만세토록 배반하지 않기를 기약했네. 지금 그 후대 왕은 이에 감히 많은 어려움을 일으키니, 태아를 가르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며, 친족이 재앙을 만나 얽매이네.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헤아려 보니, 어찌 걸(桀)과 주(紂)의 혼란보다 심하지 않겠는가(詛書雖可讀。字法嗟久換。詞云秦嗣王。敢使祝用瓚。先君穆公世。與楚約相捍。質之於巫咸。萬葉期不叛。今其後嗣王。乃敢構多難。刳胎殺無罪。親族遭圉絆。計其所稱訴。何啻桀紂亂)." 이 부분은 저주문의 내용을 언급하며, 진나라 후대 왕의 폭정을 비판합니다. 목공 시대에는 초나라와 약속을 맺었지만, 후대 왕은 이를 어기고 폭정을 일삼았다는 내용입니다. 특히, 태아를 가르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하나라의 걸왕과 은나라의 주왕에 비견될 만큼 잔혹한 행위임을 강조합니다.
- 진나라의 풍속과 역사적 조롱: "내가 듣기로 옛 진나라 풍속은, 앞에서 거짓을 행하고 뒤에서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였네. 어찌 공자 옹(公子卭)뿐이겠는가, 사직의 신(社鬼) 또한 속임을 당하였네. 아득하도다 천 년이 지난 후에, 나의 웃음을 자아내네(吾聞古秦俗。面詐背不汗。豈惟公子卭。社鬼亦遭謾。遼哉千歲後。發我一笑粲)." 마지막 부분은 진나라의 풍속을 비판하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조롱합니다. 앞에서 거짓을 행하고 뒤에서는 부끄러워하지 않는 진나라의 풍속은 공자 옹뿐만 아니라 사직의 신까지 속이는 행위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천 년이 지난 후 이러한 역사를 되돌아보며 소식은 씁쓸한 웃음을 짓습니다.
이 시는 저주초문비를 통해 진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후대 왕의 폭정을 비판하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조롱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의 약속을 어기고 폭정을 일삼는 행위를 비판하는 부분에서 소식의 역사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왕유(王維)와 오도자(吳道子)의 그림을 비교하며 쓴 "왕유오도자화(王維吳道子畫)"입니다. 두 화가의 화풍을 대비시키고, 왕유의 그림을 특히 높이 평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어디에서 오도자의 그림을 찾을까? 보문사(普門寺)와 개원사(開元寺)에 있네. 개원사에는 동쪽 탑이 있는데, 마힐(摩詰, 왕유의 자)의 손자취가 남아 있네. 내가 생각하는 그림의 품격 중, 이 두 사람보다 존경할 만한 이가 없네. 오도자는 실로 웅장하고 호방하여, 넓은 바다의 파도처럼 넘실거리네. 그가 붓을 들면 바람과 비처럼 빠르고, 붓이 닿지 않은 곳까지 기운이 삼켜 버리네. 우뚝 솟은 쌍림(雙林) 사이로, 아름다운 햇빛이 돋아오르네. 그 안에는 지인(至人)이 적멸(寂滅)을 이야기하니, 깨달은 자는 슬피 눈물 흘리고 미혹한 자는 손으로 더듬네. 오랑캐 임금과 귀신 우두머리가 천만이나 되니, 서로 밀치며 나아가 머리가 자라 머리처럼 되었네. 마힐은 본래 시인이니, 지초(芷草)를 차고 향기로운 풀을 입었네. 지금 이 벽화를 보니, 또한 그의 시처럼 맑고 돈후하네. 기원정사(祇園精舍) 제자가 그린 학의 뼈는, 마음이 식어 다시 따뜻해지지 않는 듯하네. 문 앞 두 그루의 대나무는, 눈 덮인 마디가 서리 맞은 뿌리를 꿰뚫고 있네. 서로 얽힌 가지와 어지러운 잎이 무수히 움직이니, 하나하나 모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네. 오생(吳生, 오도자)은 비록 묘함이 뛰어나지만, 오히려 화공(畫工)으로 논할 만하고, 마힐은 형상 밖의 것을 얻었으니, 마치 신선 새가 새장에서 벗어난 것과 같네. 내가 보건대 두 사람 모두 신묘하고 뛰어나지만, 왕유에게는 더욱 옷깃을 여미며 거리낌 없이 칭찬하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오도자와 왕유의 그림을 비교하며, 특히 왕유의 그림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 오도자의 화풍: "오도자는 실로 웅장하고 호방하여, 넓은 바다의 파도처럼 넘실거리네(道子實雄放 浩如海波飜).", "그가 붓을 들면 바람과 비처럼 빠르고, 붓이 닿지 않은 곳까지 기운이 삼켜 버리네(當其下手風雨快 筆所未到氣已吞)." 등의 구절에서 오도자의 화풍을 웅장하고 호방하며, 기세가 넘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붓을 놀리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붓이 닿지 않은 곳까지 기운이 미치는 것으로 표현하여, 그의 그림이 가진 역동성을 강조합니다.
- 왕유의 화풍: "마힐은 본래 시인이니, 지초(芷草)를 차고 향기로운 풀을 입었네(摩詰本詩老 佩芷襲芳蓀).", "지금 이 벽화를 보니, 또한 그의 시처럼 맑고 돈후하네(今觀此壁畫 亦若其詩清且敦)." 등의 구절에서 왕유의 화풍을 그의 시풍과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왕유가 시인이었음을 언급하며, 그의 그림 또한 시처럼 맑고 돈후하다고 평가합니다. 이는 왕유의 그림이 단순한 묘사를 넘어 시적인 정취와 깊은 사상을 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 두 화가의 그림 비교: "오생(吳生, 오도자)은 비록 묘함이 뛰어나지만, 오히려 화공(畫工)으로 논할 만하고(吳生雖妙絕 猶以畫工論)", "마힐은 형상 밖의 것을 얻었으니, 마치 신선 새가 새장에서 벗어난 것과 같네(摩詰得之於象外 有如仙翮謝籠樊)." 등의 구절에서 두 화가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오도자의 그림은 묘기가 뛰어나지만, 여전히 화공의 범주에 머무르는 반면, 왕유의 그림은 형상 너머의 정신적인 경지를 담고 있어 마치 새장에서 벗어난 신선 새와 같다고 비유합니다. 이는 왕유의 그림이 단순한 기술을 넘어 예술의 본질을 꿰뚫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 왕유에 대한 존경: "내가 보건대 두 사람 모두 신묘하고 뛰어나지만, 왕유에게는 더욱 옷깃을 여미며 거리낌 없이 칭찬하네(吾觀二子皆神俊 又於維也斂袵無間言)." 마지막 구절에서 소식은 두 사람 모두 신묘하고 뛰어나다고 인정하면서도, 왕유에게는 더욱 존경을 표합니다. "옷깃을 여미며 거리낌 없이 칭찬하네(斂袵無間言)."은 옷깃을 여미며 존경을 표한다는 뜻으로, 왕유에 대한 소식의 깊은 존경심을 나타냅니다.
이 시는 오도자와 왕유의 그림을 비교하며, 왕유의 그림을 특히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오도자의 그림이 뛰어난 기술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반면, 왕유의 그림은 시적인 정취와 깊은 사상을 담고 있어 예술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평가합니다. 이를 통해 소식은 예술의 가치를 단순히 기술적인 묘사보다는 정신적인 깊이에서 찾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천주사(天柱寺)에 있는 양혜지(楊惠之)가 만든 유마상(維摩像)을 보고 지은 "유마상(維摩像)"입니다. 유마거사(維摩居士)의 병든 모습을 묘사하며, 생사의 초월과 내면의 강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옛날 자여(子輿, 맹자)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의 친구 자사(子思)가 찾아가 문병하였다. 절뚝거리며 우물에 비친 자신을 보고 탄식하며, 조물주가 장차 나를 어떻게 쓰려 하는가 하였다. 지금 옛 조각인 유마상을 보니, 병든 뼈가 앙상하여 마른 거북이와 같네. 이에 지인은 생사를 초월함을 알게 되니, 이 몸의 변화는 뜬구름을 따르는 것과 같네. 세상 사람들은 어찌 크고 훌륭하지 않겠는가마는, 몸은 비록 병들지 않았으나 마음은 이미 지쳐 있네. 이 노인은 정신이 완전하여 마음속에 믿는 바가 있으니, 담소로 천 마리 곰의 공포를 물리칠 수 있네. 그가 살아 있을 때 혹 누가 법을 물으면, 머리를 숙여 말없이 마음으로 알게 하였네. 지금까지 남은 모습은 묵묵히 말을 하지 않으니, 옛날 살아 있을 때와 더하거나 덜함이 없네. 밭의 늙은이와 시골 아낙네는 어찌 돌아보겠는가, 때로는 들쥐가 그 수염을 물어뜯네. 이를 보니 사람으로 하여금 매번 스스로 다짐하게 하니, 누가 능히 말없는 스승과 함께할 수 있을까.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유마상의 모습을 통해 유마거사의 정신적인 경지를 찬양하고, 세속 사람들의 삶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 자여의 고사와 유마상의 대비: 시의 첫 부분은 맹자의 고사를 인용하며 시작합니다. 자여가 병들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탄식하는 모습은, 유마상의 병든 모습과 대비됩니다. 유마상은 병들어 앙상한 모습이지만, 생사를 초월한 초연함을 보여주는 반면, 자여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 유마상의 묘사와 그의 정신적 경지: "지금 옛 조각인 유마상을 보니, 병든 뼈가 앙상하여 마른 거북이와 같네(今觀古塑維摩像。病骨磊嵬如枯龜)."라는 구절은 유마상의 외형적인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병든 모습 속에서 소식은 "지인은 생사를 초월함을 알게 되니(乃知至人外生死)"라고 하여 유마거사의 정신적인 경지를 강조합니다. 즉, 유마거사는 육신의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 세속 사람들과의 대비: "세상 사람들은 어찌 크고 훌륭하지 않겠는가마는, 몸은 비록 병들지 않았으나 마음은 이미 지쳐 있네(世人豈不碩且好。身雖未病心已疲)."라는 구절은 유마거사와 세속 사람들을 대비시킵니다. 세속 사람들은 외형적으로는 건강하고 훌륭해 보일지라도, 마음은 이미 세상의 걱정과 욕심으로 지쳐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육신의 건강보다 정신의 건강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유마거사의 내면의 강인함: "이 노인은 정신이 완전하여 마음속에 믿는 바가 있으니, 담소로 천 마리 곰의 공포를 물리칠 수 있네(此叟神完中有恃。談笑可却千熊罷)."라는 구절은 유마거사의 내면의 강인함을 보여줍니다. 병든 몸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은 완전하며,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말없는 가르침: "지금까지 남은 모습은 묵묵히 말을 하지 않으니, 옛날 살아 있을 때와 더하거나 덜함이 없네(至今遺像兀不語。與昔未死無增虧)."라는 구절은 유마상의 묵묵한 모습에서 오히려 더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말없이 존재하는 유마상 자체가 하나의 가르침이 되는 것입니다.
- 세속의 무관심과 유마상의 가치: "밭의 늙은이와 시골 아낙네는 어찌 돌아보겠는가, 때로는 들쥐가 그 수염을 물어뜯네(田翁俚婦那肯顧。時有野鼠㘅其髭)."라는 구절은 세속 사람들의 무관심을 보여줍니다. 유마상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세속 사람들은 그저 지나쳐 버리고, 심지어 들쥐에게 수염을 뜯기는 모습에서 세속의 무지와 대비되는 유마상의 고고함을 드러냅니다.
- 말없는 스승과의 만남: "이를 보니 사람으로 하여금 매번 스스로 다짐하게 하니, 누가 능히 말없는 스승과 함께할 수 있을까(見之使人每自矢。誰能與結無言師)." 마지막 구절은 유마상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유마거사와 같은 정신적인 경지에 도달하고 싶어 하는 시인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 시는 유마상을 통해 생사의 초월, 내면의 강인함, 그리고 말없는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속의 가치와 대비되는 유마거사의 고고한 정신을 찬양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사색을 던져줍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동호(東湖)를 보고 지은 시입니다. 촉(蜀) 지방의 아름다운 강물을 그리워하며, 현재 머무는 곳의 황량한 풍경과 대비시키고, 동호의 맑고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며 옛일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우리 집은 촉 땅 강가에 있었으니, 강물은 푸르고 쪽빛과 같았네. 이곳에 와서 티끌 속을 헤매니, 마음이 매우 편치 않네. 하물며 기산(岐山) 아래에 있으니, 풍경이 더욱 부끄럽네. 산은 벌겋게 벗겨져 있고, 물은 쌀뜨물처럼 흐리네. 군성(郡城) 동쪽에, 몇 걸음 가지 않아 호수와 못을 보게 될 줄 생각지 못했네. 문에 들어서니 바로 맑고 그윽하니, 황홀히 마치 서남쪽 고향에 있는 듯하네. 샘의 근원은 높은 곳에서 내려와, 비탈을 따라 졸졸 흐르네. 동쪽으로 여러 언덕에 부딪히니, 모두 호수가 차지하였네. 다만 푸른 돌로 만든 이무기가, 입을 벌려 맑고 단 물을 토해내는 것을 보네. 네 배 속을 빌려 지나가면서, 어찌하여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가. 새로운 연잎은 저녁의 서늘함을 희롱하고, 가벼운 배는 지극히 그윽한 곳을 탐험하네. 표표히 멀고 가까운 곳을 바라보며, 편안히 쉬며 패옥과 비녀를 잊네. 깊은 곳에는 거북과 물고기가 있고, 얕은 곳에는 다슬기와 새조개가 있네. 햇볕에 말랐다가 다시 비를 맞으며 노니,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누에보다 많네. 떠오르고 가라앉으며 먹이를 멈추지 않으니, 순식간에 가득 바구니를 채우네. 가는 낚싯줄로 억지로 잡으려 하지만, 하찮은 것들을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옛날 주나라가 흥성했을 때, 푸른 봉황이 외로운 산봉우리에 깃들었다고 들었네. 날아다니며 이 물을 마시고, 그림자를 비추며 아름다운 깃털을 흔들었네. 이곳은 옛날 봉황이 물을 마시던 못이네. 지금까지 오동나무가 많으니, 둘레가 팽조(彭祖)와 담(聃)처럼 크네. 아름다운 깃털은 다시 볼 수 없고, 위에는 매가 비둘기를 낚아채네. 아, 내가 태어남이 비록 늦었지만, 옛것을 탐구하는 뜻이 간절하네. 서적은 이미 희미해졌지만, 오히려 교담(僑郯)을 찾아보네. 권아(卷阿)의 시를 이을 만하니, 이 뜻을 오래도록 품어 왔네. 부풍(扶風)은 옛날 삼보(三輔)였으니, 정사를 어찌 네가 알겠는가. 애오라지 호숫가에서 술을 마시며, 실컷 취한 후에 이야기를 나누네. 문 앞을 지나가는 먼 길을 가는 나그네는, 바삐 가느라 머무르는 말이 없네. 어찌하여 뒤돌아보지 않는지 물으니, 아마도 아침 조회를 서두르는 것이리라. 나는 지금 바야흐로 게으르니, 관장(官長)이 너그럽게 봐주네. 날마다 두 번씩 노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니, 다니는 것이 해가 세 번이나 찰까 두렵네. 저물녘에 돌아오니 수레가 거꾸로 실려 있고, 종과 북소리는 이미 은은하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의 풍경에 대한 실망: 시의 초반부는 고향인 촉 지방의 아름다운 강물을 회상하며 시작합니다. "우리 집은 촉 땅 강가에 있었으니, 강물은 푸르고 쪽빛과 같았네(吾家蜀江上。江水綠如藍)."라는 구절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반면, 현재 머무는 곳의 풍경은 "산은 벌겋게 벗겨져 있고, 물은 쌀뜨물처럼 흐리네(有山禿如赭。有水濁如泔)."와 같이 황량하게 묘사됩니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시인은 현재의 상황에 대한 불만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강조합니다.
- 동호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옛 이야기 회상: 시의 중반부는 동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며, 점차 긍정적인 분위기로 전환됩니다. "문에 들어서니 바로 맑고 그윽하니, 황홀히 마치 서남쪽 고향에 있는 듯하네(入門便清奧。怳如夢西南)."라는 구절은 동호의 풍경이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이후에는 동호의 구체적인 모습, 즉 샘의 흐름, 이무기 조각, 연잎, 배, 물고기 등을 묘사하며, 동호의 아름다움을 다채롭게 표현합니다. 또한, 주나라의 흥성과 관련된 봉황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동호의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 역사 탐구와 현재의 삶에 대한 성찰: 시의 후반부는 역사 탐구에 대한 열정과 현재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아, 내가 태어남이 비록 늦었지만, 옛것을 탐구하는 뜻이 간절하네(嗟予生雖晚。考古意所妉)."라는 구절은 과거의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또한, 현재의 관직 생활에 대해 "나는 지금 바야흐로 게으르니, 관장이 너그럽게 봐주네(予今正踈懶。官長幸見函)."라고 표현하며,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녁에 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하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이 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현재의 풍경에 대한 실망과 감탄, 역사에 대한 탐구, 현재의 삶에 대한 성찰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대조적인 풍경 묘사를 통해 시인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역사적인 고사를 인용하여 시의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진흥사(真興寺)의 누각(樓閣)을 보고 지은 "진흥사각(真興寺閣)"입니다. 누각의 웅장함과 그 건축을 주도한 왕중령(王中令)의 기개를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산천과 성곽은, 광막하게 모두 같은 모습이네. 시장 사람들과 까마귀와 까치는, 넓고 크게 같은 소리를 내네. 이 누각은 얼마나 높은가, 어떤 사람이 지었는가. 몸을 기울여 지는 해를 보내고, 손을 뻗어 날아가는 별을 잡으려 하네. 당년에 왕중령은, 나무를 베어 남산(南山)을 붉게 하였네. 초상을 누각 아래에 남기니, 굳센 얼굴에 눈빛이 날카롭네. 키가 여덟아홉 자나 되니, 누각과 함께 우뚝 솟아 있네. 옛사람은 비록 포악하고 방자했지만, 한 일은 지금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네. 오르는 사람도 오히려 숨을 헐떡거리니, 지은 사람은 어찌 이보다 더 뛰어나겠는가. 어찌 이 누각을 보지 않겠는가, 그 사람은 용감하고 또한 영웅이었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진흥사 누각의 웅장함과 그 건축을 주도한 왕중령의 기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 주변 풍경 묘사: 시의 첫 두 구절은 누각 주변의 풍경을 묘사합니다. "산천과 성곽은, 광막하게 모두 같은 모습이네. 시장 사람들과 까마귀와 까치는, 넓고 크게 같은 소리를 내네(山川與城郭。漠漠同一形。市人與鵶鵲。浩浩同一聲)."라는 표현은 주변의 풍경이 광활하고, 사람들의 소리와 새들의 소리가 뒤섞여 있는 혼잡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주변 환경 묘사는 이후에 등장하는 누각의 웅장함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 누각의 웅장함과 왕중령의 위업: 시의 중심 내용은 누각의 웅장함과 그 건축을 주도한 왕중령의 위업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누각은 얼마나 높은가, 어떤 사람이 지었는가. 몸을 기울여 지는 해를 보내고, 손을 뻗어 날아가는 별을 잡으려 하네(此閣幾何高。何人之所營側身送落日。引手攀飛星)."라는 표현은 누각의 높이를 과장하여 표현함으로써 그 웅장함을 강조합니다. 또한, "당년에 왕중령은, 나무를 베어 남산을 붉게 하였네(當年王中令。斫木南山頳)."라는 구절은 왕중령이 누각을 짓기 위해 많은 나무를 베어냈음을 나타내며, 그의 대담함을 보여줍니다.
- 왕중령의 인상과 누각의 조화: "초상을 누각 아래에 남기니, 굳센 얼굴에 눈빛이 날카롭네. 키가 여덟아홉 자나 되니, 누각과 함께 우뚝 솟아 있네(寫真留閣下。鐵面眼有稜。身強八九尺。與閣兩崢嶸)."라는 구절은 왕중령의 초상과 누각의 모습을 함께 묘사합니다. 굳센 얼굴과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큰 키는 왕중령의 강인한 인상을 보여주며, 누각과 함께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그의 위엄을 더욱 강조합니다.
- 왕중령의 과단성과 누각의 위대함: "옛사람은 비록 포악하고 방자했지만, 한 일은 지금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네. 오르는 사람도 오히려 숨을 헐떡거리니, 지은 사람은 어찌 이보다 더 뛰어나겠는가. 어찌 이 누각을 보지 않겠는가, 그 사람은 용감하고 또한 영웅이었네(古人雖暴恣。作事今世驚。登者尚呀喘。作者何以勝。曷不觀此閣。其人勇且英)."라는 구절은 왕중령의 과단성과 누각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비록 그가 포악하고 방자했을지라도, 그가 이룬 업적은 후세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누각에 오르는 사람조차 숨을 헐떡거릴 정도이니, 이러한 누각을 지은 왕중령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겠냐며 그의 용감함과 영웅적인 면모를 찬양합니다.
이 시는 진흥사 누각을 통해 왕중령의 기개와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누각의 웅장함과 왕중령의 강인한 인상을 대비시키고, 그의 과단성을 강조함으로써 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이씨(李氏)의 정원, 즉 이무정(李茂正)의 정원을 방문하고 지은 "이씨원(李氏園)"입니다. 현재는 왕씨(王氏)의 소유가 된 이 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역사를 회고하며, 인간사의 무상함과 자연에 귀의하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아침에 북쪽 성 동쪽을 거닐다가, 고개를 돌리니 키 큰 대나무가 보이네. 아래에는 붉은 대문 집이 있는데, 허물어진 담장이 옛 집을 둘러싸고 있네. 채찍을 들어 그 문을 두드리니, 그윽한 소리가 빈 골짜기에 울려 퍼지네. 문에 들어서니 보이는 것이 많아, 열 걸음에 아홉 번이나 눈길을 옮기네. 사방의 진귀한 꽃들이 함께하고, 온갖 종류의 들새들이 지저귀네. 그 서쪽으로는 시냇물을 끌어들여, 졸졸 흐르며 구불구불 돌아가네. 동쪽으로는 깊은 숲으로 흘러드니, 숲이 깊어 창문이 푸르네. 물빛과 대나무의 맑음이 어우러지니, 때로는 홀로 선 백조가 있네. 숲 속의 백 척이나 되는 소나무는, 오랜 세월에 푸른 비늘이 쭈글쭈글하네. 어찌 이곳에만 적겠는가, 아마도 관중(關中)에만 있을 듯하네. 작은 다리를 건너 남쪽 밭으로 가니, 길 양쪽에는 큰 나무들이 많네. 숨어 있는 모습은 마치 천 겹의 성과 같고, 솟아 있는 모습은 마치 천 섬의 곡식을 실은 배와 같네. 어둑한 햇빛 아래 가을 기운이 서늘하게 쌓여 있네. 동쪽 끝은 네모난 연못이 되었으니, 집오리와 들오리가 섞여 있네. 붉은 배나무는 아름답게 합쳐 안을 만하니, 섬을 비추니 외로운 구름이 향기롭네. 봄 햇살은 물에 녹아 일렁이고, 눈보라는 바람에 휘날리네. 그 북쪽으로는 긴 시냇물이 있으니, 파도 소리가 평평한 땅을 휩쓰네. 북산이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이니, 푸른빛 사이에 메마른 봉우리가 섞여 있네. 내가 이때 와서 두루 살펴보며, 이것을 누가 지었는지 물으니, 옛날 이 장군(李將軍)이 험한 곳에 의지하여 쇠약한 숙부를 탔다고 하네. 돈을 거두어 백성들의 입을 헤아렸지만, 겨우 죽이나 끓일 정도도 되지 못했네. 당시 백성들의 밭을 빼앗았으니, 실업한 백성들이 어찌 감히 울 수 있었겠는가. 누구의 아름다운 정원인가, 몰수되어 되찾을 수 없었네. 이 정자는 천 가구를 무너뜨렸으니, 답답하게 성 아래에 자리 잡고 있네. 장군은 결국 무슨 일을 하였는가, 칼집에 이와 벌레가 생겼네. 일찍이 아름다운 술을 싣고 와서 이곳에 수레를 멈춘 적이 있었던가. 헛되이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이름을 듣고도 목을 움츠리게 하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황후의 정원이라고 부르니, 아마도 무정이 그 아내를 이르는 것이리라. 나는 지금 관직이 한가하여, 휴가를 맞아 여러 번 왔네. 인생이 거처할 곳을 경영하는 것이, 결국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가. 언제쯤 이 한 몸을 맡겨, 영원히 맑은 경치를 쫓을 수 있을까.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이씨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함께, 그 정원이 지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을 이야기하며 인간사의 무상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 묘사: 시의 전반부는 이씨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대나무, 꽃, 새, 시냇물, 숲, 소나무, 큰 나무, 연못, 배나무, 북산 등 다양한 자연 요소들을 통해 정원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열 걸음에 아홉 번이나 눈길을 옮기네(十步九移目)"라는 표현은 정원의 풍경이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지를 강조합니다.
- 정원의 역사적 배경과 인간사의 무상함: 시의 중반부부터는 정원의 역사적 배경을 이야기하며 분위기가 전환됩니다. 이 정원이 원래 이 장군의 소유였으나, 백성들의 밭을 빼앗아 지은 것이며, 이후 몰수되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이 정자는 천 가구를 무너뜨렸으니(此亭破千家)"라는 표현은 정원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이 장군의 말로를 언급하며, 권세의 무상함을 보여줍니다.
- 세상사에 대한 회의와 자연에 귀의하고 싶은 마음: 시의 후반부는 세상사에 대한 회의와 자연에 귀의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냅니다. "인생이 거처할 곳을 경영하는 것이, 결국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가(人生營居止。竟為何人卜)."라는 구절은 인간이 집을 짓고 재산을 모으는 행위가 결국 덧없음을 탄식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쯤 이 한 몸을 맡겨, 영원히 맑은 경치를 쫓을 수 있을까(何當辦一身。永與清景逐)."라는 구절을 통해 자연에 귀의하여 영원히 맑은 경치를 즐기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이 시는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함께 역사적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사의 무상함과 자연의 영원함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인은 세상사에 대한 회의를 드러내고, 자연에 귀의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무덤에 대해 쓴 "진목공묘(秦穆公墓)"입니다. 목공의 무덤 위치와 순장(殉葬)된 세 신하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고찰하며, 고인(古人)의 의로움과 현대인의 세태를 대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탁천(橐泉)은 성 동쪽에 있고, 무덤은 성안에서 백 보도 떨어져 있지 않다. 이에 옛날에는 이 성이 없었음을 알게 되니, 진나라 사람들은 샘으로 목공의 무덤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옛날 목공은 살아 있을 때 맹명(孟明)을 죽이지 않았으니, 어찌 죽는 날에 그의 어진 신하들을 차마 함께 묻었겠는가. 이에 세 신하가 목공의 뜻을 따랐음을 알게 되니, 마치 제(齊)나라의 두 신하가 전횡(田橫)을 따른 것과 같네. 옛사람은 한 끼 식사의 은혜에도, 오히려 그 몸을 바칠 수 있었으니, 지금 사람들은 다시 이와 같은 일을 보지 못하니, 이에 보이는 것으로 옛사람을 의심하네. 옛사람은 가히 우러러볼 수 없으니, 지금 사람은 더욱 가슴 아프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목공의 무덤 위치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순장된 세 신하의 충절을 기리고, 이를 통해 고인과 현대인의 가치관 차이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 무덤의 위치에 대한 의문: 시의 첫 두 구절은 목공의 무덤 위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탁천은 성 동쪽에 있는데, 무덤은 성안에 있다는 사실에서, 과거에는 이 성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추론합니다. 즉, 옛날에는 탁천이라는 샘이 목공의 무덤을 가리키는 중요한 표지였음을 암시합니다.
- 순장에 대한 의문과 해석: "옛날 목공은 살아 있을 때 맹명을 죽이지 않았으니, 어찌 죽는 날에 그의 어진 신하들을 차마 함께 묻었겠는가(昔公生不誅孟明。豈有死之日而忍用其良)."라는 구절은 목공이 생전에 어진 신하를 중용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그가 죽으면서 신하들을 순장했을 리 없다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는 당시 통설이었던 순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세 신하의 충절: "이에 세 신하가 목공의 뜻을 따랐음을 알게 되니, 마치 제나라의 두 신하가 전횡을 따른 것과 같네(乃知三子徇公意。亦如齊之二子從田橫)."라는 구절은 순장의 진실을 해석합니다. 목공이 신하들을 순장한 것이 아니라, 세 신하가 스스로 목공을 따라 죽음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제나라의 두 신하가 전횡을 따라 자결한 고사를 인용하여, 세 신하의 충절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순공의(徇公意)'는 자발적인 순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고인과 현대인의 대비: "옛사람은 한 끼 식사의 은혜에도, 오히려 그 몸을 바칠 수 있었으니, 지금 사람들은 다시 이와 같은 일을 보지 못하니, 이에 보이는 것으로 옛사람을 의심하네(古人感一飯。尚能殺其身。今人不復見此等。乃以所見疑古人)."라는 구절은 고인과 현대인의 가치관 차이를 대비합니다. 과거에는 작은 은혜에도 목숨을 바칠 만큼 의리를 중시하는 풍습이 있었지만, 현대에는 이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현대인들은 과거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하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 고인에 대한 존경과 현대에 대한 안타까움: "옛사람은 가히 우러러볼 수 없으니, 지금 사람은 더욱 가슴 아프네(古人不可望。今人益可傷)."라는 마지막 구절은 고인에 대한 존경과 현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합니다. 과거의 높은 도덕적 기준을 현대에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이 시는 목공의 무덤과 순장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통해, 고대의 의로운 행위와 현대의 세태를 대비하며, 인간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성찰을 보여줍니다. 특히, 순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자발적인 순절에 대한 해석은 당시 사회의 통념에 대한 소식의 독자적인 생각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동생 소철(蘇轍, 자 子由)과 함께 소식의 아들 소대(蘇迨, 자 子瞻)가 종남산(終南山) 태평궁(太平宮) 계당(谿堂)에서 공부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화자유문자첨장여종남태평궁계당독서(和子由聞子瞻將如終南太平宮谿堂讀書)"입니다. 소대의 학업을 격려하고, 자신의 불우한 처지와 세상사에 대한 생각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나중의 이름은 이미 '근(勤)'으로 정해졌고, 몸을 맡기는 것은 이미 '투(媮)'가 되었네. 나는 진실로 어리석고 졸렬하여, 몸과 이름 모두 도모함이 없네. 처음에는 서판(書判)을 배웠고, 근래에는 인과(因果)를 묻는 것을 알게 되었네. 다만 지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 뿐, 감히 이전의 행적을 묻지 않네. 선비가 아직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는, 오직 얻지 못할까 근심하고, 이미 얻고 나서는 또 잃을까 근심하니, 이 마음은 넓고도 거두기 어렵네. 비유하자면 지친 나그네가, 길 중간에 맑은 물을 만난 것과 같으니, 티끌은 비록 벗지 못했지만, 잠시 쉬며 입을 헹구네. 나는 남쪽 계곡으로 가고 싶으니, 봄 새가 비로소 아름답게 우짖네. 오랫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더니, 이제 이미 가을이 되었네. 교산(橋山)의 해와 달이 재촉하고, 부현(府縣)의 번거로운 일이 잇따르네. 왕실을 위해 누가 하소연하겠는가, 백성은 고달프고 관리는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하네. 중간에 가뭄을 만나, 비를 부르는 비둘기를 배우려 하였네. 천 사람이 하나의 나무를 당기지만, 열 걸음에 여덟 아홉 번이나 쉬네. 위수(渭水)는 말라 진흙이 없고, 둑을 쌓아 다시 보수하네. 이를 마주하니 배불리 먹지 못하니, 다른 일은 더욱 어찌 구하겠는가. 요즘 가을비가 넉넉히 내리니, 공무를 마치고 새로 빚은 술을 맛보네. 힘든 일은 다행히 이미 지났으니, 썩고 무딘 나는 벼슬에 쓰이지 못하네. 가을바람이 모자를 세차게 불어오니, 서쪽 언덕에서 마음껏 놀 수 있네. 애오라지 하루의 즐거움을 삼아, 이 백일의 시름을 위로하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아들의 학업을 격려하는 내용과 함께, 시인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아들의 학업에 대한 기대와 자신의 겸손: 시의 초반부는 아들의 학업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하게 드러냅니다. "나중의 이름은 이미 '근(勤)'으로 정해졌고, 몸을 맡기는 것은 이미 '투(媮)'가 되었네(後名則已勤。徇身則已媮)."라는 구절은 아들이 학문에 힘써 이름을 떨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반면, "나는 진실로 어리석고 졸렬하여, 몸과 이름 모두 도모함이 없네(我誠愚且拙。身名兩無謀)."라는 구절은 자신을 낮추는 표현입니다.
- 세상사에 대한 생각과 고뇌: 시의 중반부는 세상사에 대한 시인의 생각과 고뇌를 보여줍니다. "선비가 아직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는, 오직 얻지 못할까 근심하고, 이미 얻고 나서는 또 잃을까 근심하니, 이 마음은 넓고도 거두기 어렵네(士方其未得。唯以不得憂。既得又憂失。此心浩難收)."라는 구절은 인간의 욕망과 불안에 대한 보편적인 심리를 묘사합니다. 또한, 가뭄과 부역 등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상황을 언급하며, 관리로서의 책임감과 안타까움을 표현합니다.
- 자연에 대한 갈망과 현실의 괴리: "나는 남쪽 계곡으로 가고 싶으니, 봄 새가 비로소 아름답게 우짖네(我欲走南澗。春禽始嚶呦)."라는 구절은 자연에 귀의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현실은 "교산의 해와 달이 재촉하고, 부현의 번거로운 일이 잇따르네(橋山日月迫。府縣煩差抽)."와 같이 바쁘고 고달픈 일상입니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자연에 대한 갈망과 현실의 괴리감을 보여줍니다.
- 술을 마시며 시름을 달래는 모습: 시의 후반부는 가을비가 내린 후 술을 마시며 시름을 달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즘 가을비가 넉넉히 내리니, 공무를 마치고 새로 빚은 술을 맛보네(近日秋雨足。公餘試新篘)."라는 구절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애오라지 하루의 즐거움을 삼아, 이 백일의 시름을 위로하네(聊為一日樂。慰此百日愁)."라는 구절을 통해 술로 잠시나마 시름을 달래려는 시인의 심정을 드러내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이 시는 아들의 학업을 격려하는 내용과 함께, 시인 자신의 복잡한 심경, 즉 세상사에 대한 고뇌, 자연에 대한 갈망, 그리고 현실의 괴리 등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장차 종남산(終南山)에 가려 할 때 동생 소철(蘇轍, 자 子由)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장왕종남화자유견기(將往終南和子由見寄)"입니다. 인생의 덧없음과 학문에 대한 뜻, 그리고 은거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인생 백 년은 귀밑의 터럭에 부쳐진 것과 같으니, 부귀는 단지 갈대 속의 얇은 막과 같네. 오직 글과 붓을 남겨 세상에 적시는 것이, 미인의 부축을 받으며 술에 취해 쓰러지는 것보다 훨씬 낫네. 나는 지금 학문을 폐하여 차가운 피리와 같으니, 오래 불지 않아 뻑뻑하여 소리가 나지 않으려 하네. 한 해가 저물어 가니 남은 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탄식하네. 남쪽 시냇가에 가서 새와 물고기를 벗하려 하네. 가을바람이 비를 몰아 시원함이 피부에 스며드니, 긴 밤에 외롭게 등불을 더하네. 평생 붓을 잡으니 소매가 검으니, 옛사람도 그러하였으니 나도 그러하기를 바라네. 온종일 위태롭게 앉아 승려의 가부좌를 배우고,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아 한가로이 오리처럼 거니네. 관작을 아래로 보니 진흙과 같으니, 아, 나는 어찌하여 오래 머뭇거리는가. 세월이 어찌 너를 위해 머물러 있겠는가. 하인이 일어나 밥을 짓고 내 말을 먹이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인생의 덧없음, 학문에 대한 뜻, 은거의 뜻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 인생의 덧없음: 시의 첫 두 구절은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인생 백 년은 귀밑의 터럭에 부쳐진 것과 같으니, 부귀는 단지 갈대 속의 얇은 막과 같네(人生百年寄鬢鬚。富貴和啻葭中莩)."라는 구절은 인생의 짧음과 부귀의 허무함을 강조합니다. 귀밑의 터럭이나 갈대 속의 얇은 막처럼 덧없다는 것입니다.
- 학문에 대한 뜻: "오직 글과 붓을 남겨 세상에 적시는 것이, 미인의 부축을 받으며 술에 취해 쓰러지는 것보다 훨씬 낫네(惟將翰墨留染濡。絕勝醉倒蛾眉扶)."라는 구절은 학문에 대한 시인의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향락에 빠지는 것보다 글과 붓을 통해 자신의 뜻을 남기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학문을 폐하여 차가운 피리와 같으니, 오래 불지 않아 뻑뻑하여 소리가 나지 않으려 하네(我今廢學如寒竽。久不吹之澀欲無)."라는 구절을 통해 현재는 학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합니다.
- 은거의 뜻: 시의 중반부부터는 종남산에 은거하고자 하는 시인의 뜻이 드러납니다. "남쪽 시냇가에 가서 새와 물고기를 벗하려 하네(欲往南溪侶禽魚)."라는 구절은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지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합니다. 또한, "온종일 위태롭게 앉아 승려의 가부좌를 배우고,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아 한가로이 오리처럼 거니네(終朝危坐學僧趺。閉門不出閑履鳧)."라는 구절은 세상과의 단절을 암시하며, 은거 생활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 세상사에 대한 초탈: "관작을 아래로 보니 진흙과 같으니, 아, 나는 어찌하여 오래 머뭇거리는가(下視官爵如泥淤。嗟我何為久踟躕)."라는 구절은 관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세상사를 초탈하고자 하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세월이 어찌 너를 위해 머물러 있겠는가. 하인이 일어나 밥을 짓고 내 말을 먹이네(歲月豈肯為汝居。僕夫起餐秣吾駒)."라는 구절은 시간의 흐름을 강조하며,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하인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은, 은거를 결심하고 실행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인생의 덧없음, 학문에 대한 뜻, 은거의 뜻을 주제로 하여, 시인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자연에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과 세상사에 대한 초탈의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7월 24일에 오랜 가뭄으로 반계(磻溪)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러 갔다가, 25일 밤에 괵현(虢縣)을 출발하여 승려의 집인 증각(曾閣)에서 묵으며 지은 "칠월이십사일이구불우출도반계시일숙괵현이십오일만자괵현도위숙어승사증각각고증씨소건야야구불매건필유전현령조천류명유회기인(七月二十四日以久不雨出禱磻溪是日宿虢縣二十五日晚自虢縣渡渭宿於僧舍曾閣閣故曾氏所建也夜久不寐建必有前縣令趙薦留名有懷其人)"입니다. 가뭄을 걱정하는 마음과 옛 친구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감실의 등불은 깜박이며 삼경(三更)이 되려 하는데, 베개를 비스듬히 베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잠에서 깨 놀라네. 깊은 골짜기에 남은 바람은 밤새도록 울리고, 어지러운 산들은 반쪽 달을 물고 침상 반쪽을 밝히네. 옛 친구는 점점 멀어져 소식이 없고, 옛 절에 부질없이 와서 이름만 보네. 반계에 가서 강태공(姜太公)에게 물어보려 하지만, 하인이 여러 번 북두칠성이 기울었다고 알리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밤중에 잠 못 이루는 상황 묘사, 자연 풍경 묘사, 옛 친구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기우제에 대한 염려라는 네 가지 측면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 밤중에 잠 못 이루는 상황 묘사: 시의 첫 두 구절은 밤이 깊었지만 잠 못 이루는 시인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감실의 등불은 깜박이며 삼경이 되려 하는데, 베개를 비스듬히 베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잠에서 깨 놀라네(龕燈明滅欲三更。欹枕無人夢自驚)."라는 구절은 어둡고 적막한 밤중에 홀로 깨어 있는 시인의 외로운 심정을 잘 드러냅니다. '꿈에서 놀라 깨다(夢自驚)'라는 표현은 시인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자연 풍경 묘사: "깊은 골짜기에 남은 바람은 밤새도록 울리고, 어지러운 산들은 반쪽 달을 물고 침상 반쪽을 밝히네(深谷留風終夜響。亂山銜月半牀明)."라는 구절은 밤의 풍경을 묘사합니다. 골짜기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반쪽 달빛이 어우러진 풍경은 시인의 외로운 심정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어지러운 산들이 반쪽 달을 물고(亂山銜月)'라는 표현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밤의 정경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 옛 친구에 대한 그리움: "옛 친구는 점점 멀어져 소식이 없고, 옛 절에 부질없이 와서 이름만 보네(故人漸遠無消息。古寺空來看姓名)."라는 구절은 옛 친구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옛 절에 부질없이 와서 이름만 보네'라는 표현은 증각에 남아 있는 옛 현령 조천(趙薦)의 이름을 보며 그를 회상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소식이 끊긴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 기우제에 대한 염려: "반계에 가서 강태공에게 물어보려 하지만, 하인이 여러 번 북두칠성이 기울었다고 알리네(欲向磻谿問姜叟。僕夫屢報斗杓傾)."라는 구절은 반계에서 지낸 기우제에 대한 염려를 나타냅니다. 강태공은 주나라를 일으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그에게 물어보려 한다는 것은 가뭄을 해결할 방도를 찾고 싶은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인이 북두칠성이 기울었다고 알리는 것은 밤이 깊어 더 이상 기도를 드릴 수 없음을 의미하며, 기우제가 제대로 효험을 보지 못할까 염려하는 시인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이 시는 가뭄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옛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개인적인 감정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밤중에 잠 못 이루는 상황, 주변의 풍경 묘사, 옛 친구의 이름에서 느끼는 회상, 그리고 기우제에 대한 염려 등을 통해 시인의 복잡한 심경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7월 26일 새벽에 반계(磻溪)로 향하며 지은 "이십육일오경기행지반계미명(二十六日五更起行至磻溪未明)"입니다. 어두운 새벽에 반계에 도착하여 느낀 인상과 신령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기우(祈雨)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26일 오경(五更)에 일어나 길을 떠나 반계에 이르니, 아직 밝지 않았네. 밤에 반계에 들어서니 마치 협곡에 들어선 듯하네. 산을 비추는 횃불에 놀란 원숭이들이 떨어지네. 산꼭대기의 외로운 달은 밝게 여전히 있고, 바위 위의 차가운 물결은 새벽이 되니 더욱 시끄럽네. 지인(至人, 여기서는 강태공을 가리킴)의 옛 은거지에는 흰 구름이 덮여 있고, 신령한 물건은 이미 변화하여 자취만 구불구불 남아 있네. 어찌 꿈에 우레를 타고 가는 것처럼 할 수 있을까, 말 위에서 하늘의 표주박이 뒤집히듯 비가 쏟아지기를 바라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어둠 속 반계의 풍경 묘사, 강태공의 흔적에 대한 감상, 그리고 기우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 어둠 속 반계의 풍경 묘사: 시의 첫 두 구절은 어두운 새벽에 반계에 도착했을 때의 인상을 강렬하게 묘사합니다. "밤에 반계에 들어서니 마치 협곡에 들어선 듯하네(夜入磻溪如入峽)."라는 구절은 어둠 속에서 좁고 깊은 반계의 지형이 더욱 강조되어 마치 협곡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산을 비추는 횃불에 놀란 원숭이들이 떨어지네(照山炬火落驚猿)."라는 구절은 횃불에 놀라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들의 모습을 통해 어둠 속의 긴장감과 생동감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 강태공의 흔적에 대한 감상: "산꼭대기의 외로운 달은 밝게 여전히 있고, 바위 위의 차가운 물결은 새벽이 되니 더욱 시끄럽네(山頭孤月耿猶在。石上寒波曉更喧)."라는 구절은 새벽이 밝아오면서 드러나는 반계의 풍경을 묘사합니다. 외로운 달과 시끄러운 물결 소리는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어지는 "지인의 옛 은거지에는 흰 구름이 덮여 있고, 신령한 물건은 이미 변화하여 자취만 구불구불 남아 있네(至人舊隱白雲合。神物已化遺蹤蜿)."라는 구절은 강태공의 옛 은거지를 회상하며, 그의 신령한 기운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지인(至人)'은 강태공을 가리키며, '신물(神物)'은 강태공이 사용했던 낚싯대나 그와 관련된 신령한 물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기우에 대한 간절한 소망: 마지막 구절 "어찌 꿈에 우레를 타고 가는 것처럼 할 수 있을까, 말 위에서 하늘의 표주박이 뒤집히듯 비가 쏟아지기를 바라네(安得夢隨霹靂駕。馬上傾倒天瓢飜)."는 기우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꿈에 우레를 타고 간다(夢隨霹靂駕)'는 것은 신령한 존재가 되어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늘의 표주박이 뒤집히듯 비가 쏟아진다(傾倒天瓢飜)'는 것은 많은 비가 쏟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말 위에서 이러한 상상을 하는 시인의 모습은 가뭄을 해소하고 싶은 그의 절박한 심정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어두운 새벽의 반계 풍경을 배경으로, 강태공의 흔적을 회상하며 기우제를 지내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둠과 밝음, 고요함과 시끄러움, 신령함과 현실의 대비를 통해 시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강렬한 비유를 사용하여 시인의 감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반계(磻溪)에서 양평(陽平)으로 가는 길에 마전(麻田) 청봉사(青峰寺) 아래의 취록정(翠麓亭)에서 쉬면서 지은 "시일자반계장왕양평계어마전청봉사지하원취록정(是日自磻溪將往陽平憩於麻田青峰寺之下院翠麓亭)"입니다. 여정 중 잠시 머무른 정자의 풍경과 가뭄에 대한 안타까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봉우리 앞 절에는 이르지 못하고, 부질없이 위수(渭水) 가의 마을에 왔네. 이 정자라도 잠시 머물러 쉴 만하네. 닦여진 길을 어찌 마다하고 더듬어 오르겠는가. 골짜기는 붉은 난간을 비추어 빼어나고, 산은 오래된 나무를 품어 존엄하네. 길이 다하여 바위가 끊어진 것에 놀라고, 숲이 빈 곳으로 강물이 달려가는 것이 보이네. 말은 푸른 풀을 뜯으며 지쳐 울고, 스님은 저녁 식사를 권하네. 내가 온 때는 가을날 정오인데, 오랜 가뭄에 돌 평상이 따뜻하네. 어찌 구름이 덮개처럼 덮여, 비가 마치 동이에서 쏟아지듯 내리게 할 수 없을까. 함께 산 아래 벼를 보니, 서늘한 잎이 저녁에 팔랑팔랑 뒤집히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여정 중 정자에 머무른 상황, 주변 풍경 묘사, 그리고 가뭄에 대한 염려라는 세 가지 측면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 여정 중 정자에 머무른 상황: 시의 첫 두 구절은 목적지인 절에 가지 못하고 도중에 있는 정자에 머무르게 된 상황을 설명합니다. "봉우리 앞 절에는 이르지 못하고, 부질없이 위수 가의 마을에 왔네(不到峯前寺。空來渭上村)."라는 구절은 원래 목적지가 절이었음을 나타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절에 가지 못하고 위수 가의 마을에 있는 정자에 머물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정자라도 잠시 머물러 쉴 만하네. 닦여진 길을 어찌 마다하고 더듬어 오르겠는가(此亭聊可喜。修徑豈辭捫)."라는 구절은 비록 원래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정자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음에 만족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더듬어 오르다(捫)'라는 표현은 길이 잘 닦여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주변 풍경 묘사: 시의 중반부는 정자 주변의 풍경을 묘사합니다. "골짜기는 붉은 난간을 비추어 빼어나고, 산은 오래된 나무를 품어 존엄하네(谷映朱欄秀。山含古木尊)."라는 구절은 정자의 아름다움과 주변 산의 웅장함을 대비적으로 보여줍니다. "길이 다하여 바위가 끊어진 것에 놀라고, 숲이 빈 곳으로 강물이 달려가는 것이 보이네(路窮驚石斷。林缺見河奔)."라는 구절은 험준한 산길과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묘사하여, 주변 풍경의 다채로움을 보여줍니다. 또한, "말은 푸른 풀을 뜯으며 지쳐 울고, 스님은 저녁 식사를 권하네(馬困嘶青草。僧留薦晚飱)."라는 구절은 여정의 고단함과 따뜻한 인심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 가뭄에 대한 염려: "내가 온 때는 가을날 정오인데, 오랜 가뭄에 돌 평상이 따뜻하네(我來秋日午。旱久石牀溫)."라는 구절은 현재의 상황이 오랜 가뭄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돌 평상이 따뜻하다는 것은 그만큼 햇볕이 강하고 비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두 구절 "어찌 구름이 덮개처럼 덮여, 비가 마치 동이에서 쏟아지듯 내리게 할 수 없을까. 함께 산 아래 벼를 보니, 서늘한 잎이 저녁에 팔랑팔랑 뒤집히네(安得雲如葢。能令雨瀉盆。共看山下稻。涼葉晚飜飜)."는 가뭄에 대한 안타까움과 비를 기다리는 마음을 간절하게 표현합니다. 구름이 덮개처럼 덮여 비가 쏟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가뭄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걱정하는 마음과 연결됩니다. 저녁 바람에 벼잎이 팔랑거리는 모습을 보며, 비가 오기를 더욱 간절히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여정 중 잠시 머무른 정자의 풍경을 통해,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가뭄의 현실을 대비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도 가뭄을 걱정하는 시인의 마음은 백성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잘 드러냅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7월 27일에 양평(陽平)에서 사곡(斜谷)을 거쳐 남산(南山) 속의 반룡사(磻龍寺)에서 묵으며 지은 "이십칠일자양평자사곡숙어남산중반룡사(二十七日自陽平自斜谷宿於南山中磻龍寺)"입니다. 밤늦게 절에 도착하여 겪은 일들과 주변 풍경,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가로지른 나룻배는 저녁 늦게 푸른 시냇가 어귀를 건너고, 말을 타고 밤늦게 남산 골짜기로 들어섰네. 골짜기 속 어두운 물은 콸콸 소리 내고, 고갯마루의 드문 별들은 밝게 빛나네. 절은 바위 밑 천만 길 깊이에 숨어 있고, 길은 산허리를 돌아 삼백 굽이나 되네. 바람이 불어 배고픈 호랑이가 빈 숲에서 울부짖고, 달이 어두워 놀란 고라니가 긴 대숲으로 달아나네. 문에 들어서니 우뚝 솟은 깊은 전각이 나타나고, 조불(趙佛)은 푸르게 빛나며 남은 촛불이 있네. 술과 음식이 없어 나그네를 대접하지 못함이 부끄러워, 곧 삼나무와 소나무를 베어 시냇가의 나물을 삶네. 나무 널빤지로 만든 누각에서 홀로 잠드니 나그네의 베개가 놀라고, 목어(木魚)는 새벽에 스님들의 죽에 맞춰 울리네. 일어나서 수많은 기와가 울창하게 들쭉날쭉한 것을 보니, 눈은 수많은 바위들이 흩어져 붉고 푸른 것에 어지럽네. 문 앞에는 상인들이 후추와 차를 짊어지고 다니고, 산 뒤는 지척으로 파촉(巴蜀)과 이어져 있네. 어느 때에 강가의 밭을 갈며 돌아갈 수 있을까, 하룻밤 마음은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쫓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밤늦게 절에 도착한 상황, 주변의 험준한 자연환경 묘사, 절에서의 하룻밤 풍경,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네 가지 측면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 밤늦게 절에 도착한 상황: 시의 첫 두 구절은 밤늦게 반룡사에 도착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가로지른 나룻배는 저녁 늦게 푸른 시냇가 어귀를 건너고, 말을 타고 밤늦게 남산 골짜기로 들어섰네(橫槎晚渡碧澗口。騎馬夜入南山谷)."라는 구절은 여정이 늦어졌음을 나타냅니다. 어두운 밤에 말을 타고 험한 산길을 들어서는 모습에서 고생스러움이 느껴집니다.
- 주변의 험준한 자연환경 묘사: "골짜기 속 어두운 물은 콸콸 소리 내고, 고갯마루의 드문 별들은 밝게 빛나네(谷中暗水響瀧瀧。嶺上踈星明煜煜)."라는 구절은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들리는 물소리와 빛나는 별들을 통해 주변 환경의 험준함을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절은 바위 밑 천만 길 깊이에 숨어 있고, 길은 산허리를 돌아 삼백 굽이나 되네(寺藏巖底千萬仞。路轉山腰三百曲)."라는 구절은 절의 깊숙한 위치와 험난한 산길을 묘사하여, 절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강조합니다. 또한, "바람이 불어 배고픈 호랑이가 빈 숲에서 울부짖고, 달이 어두워 놀란 고라니가 긴 대숲으로 달아나네(風生飢虎嘯空林。月黑驚麏竄脩竹)."라는 구절은 맹수와 야생 동물의 출현을 통해 밤의 공포와 긴장감을 더합니다.
- 절에서의 하룻밤 풍경: "문에 들어서니 우뚝 솟은 깊은 전각이 나타나고, 조불은 푸르게 빛나며 남은 촛불이 있네(入門突兀見深殿。趙佛青熒有殘燭)."라는 구절은 어둠 속에서 마주한 절의 웅장한 모습과 신성한 분위기를 묘사합니다. "술과 음식이 없어 나그네를 대접하지 못함이 부끄러워, 곧 삼나무와 소나무를 베어 시냇가의 나물을 삶네(媿無酒食待遊人。旋斫杉松煮溪蔌)."라는 구절은 소박하지만 따뜻한 절의 인심을 보여줍니다. "나무 널빤지 만든 누각에서 홀로 잠드니 나그네의 베개가 놀라고, 목어는 새벽에 스님들의 죽에 맞춰 울리네(板閣獨眠驚旅枕。木魚曉動隨僧粥)."라는 구절은 절에서의 하룻밤 풍경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일어나서 수많은 기와가 울창하게 들쭉날쭉한 것을 보니, 눈은 수많은 바위들이 흩어져 붉고 푸른 것에 어지럽네(起觀萬瓦欝參差。目亂千巗散紅綠)."라는 구절은 아침에 일어나 바라본 절의 모습과 주변 풍경을 묘사합니다. "문 앞에는 상인들이 후추와 차를 짊어지고 다니고, 산 뒤는 지척으로 파촉과 이어져 있네(門前商賈負椒荈。山後咫尺連巴蜀)."라는 구절은 절의 위치가 교통의 요지임을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어느 때에 강가의 밭을 갈며 돌아갈 수 있을까, 하룻밤 마음은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쫓네(何時歸耕江上田。一夜心逐南飛鵠)."라는 구절은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을 간절하게 표현합니다.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쫓는 마음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 시는 험난한 여정과 절에서의 하룻밤을 통해, 주변의 험준한 자연환경과 대비되는 인간의 따뜻한 정,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밤의 어둠과 새벽의 밝음, 산의 험준함과 강의 평화로움, 현재의 고달픔과 미래의 평화로움 등의 대비를 통해 시적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소식(蘇軾)이 하마적(下馬磧)에 이르러 북산(北山)의 승려 집에서 쉬면서 지은 것으로, 그곳에 회현각(懷賢閣)이 있었고, 남쪽으로는 사곡(斜谷)이, 서쪽으로는 제갈량(諸葛亮)이 출사했던 오장원(五丈原)이 있었습니다. 시 제목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내용으로 보아 "하마적에서 북산 승려 집에 머물며(是日至下馬磧憩於北山僧舍)"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제갈량을 회상하며 그의 업적과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남쪽으로 사곡 어귀를 바라보니, 세 산이 개의 어금니처럼 엇갈려 있네. 서쪽으로 오장원을 바라보니, 울창하게 굽이쳐 긴 뱀과 같네. 제갈 공(諸葛公)을 생각하니, 만 기(萬騎)의 군사로 한(漢)나라 땅에서 출정했었지. 관리와 병사들은 물처럼 고요하고, 쓸쓸히 말 채찍 소리만 들리네. 공의 재능은 조비(曹丕)와 비교하면, 어찌 십 배에 그치겠는가. 삼보(三輔) 땅을 돌아보니, 형세가 바람이 모래를 휘감는 듯했네. 하루아침에 큰 별이 떨어지니, 마침내 촉(蜀)나라 여인들로 하여금 머리를 풀어 헤치게 하였네. 산의 스님은 어찌 이를 알겠는가, 한 방에서 늙어 연기와 노을 속에 있네. 지나간 일은 구름을 쫓아 흩어지고, 옛 산은 위수(渭水)에 기대어 비스듬하네. 나그네가 와서 부질없이 옛일을 조상하니, 맑은 눈물이 슬픈 피리 소리에 떨어지네.
분석 및 설명:
이 시는 주변 지형 묘사, 제갈량의 업적 회상,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역사에 대한 감회라는 네 가지 측면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 주변 지형 묘사: 시의 첫 두 구절은 시인이 머무른 곳에서 바라본 주변의 지형을 묘사합니다. "남쪽으로 사곡 어귀를 바라보니, 세 산이 개의 어금니처럼 엇갈려 있네(南望斜谷口。三山如犬牙)."라는 구절은 사곡 어귀의 험준한 지형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서쪽으로 오장원을 바라보니, 울창하게 굽이쳐 긴 뱀과 같네(西觀五丈原。欝屈如長虵)."라는 구절은 오장원의 지형을 뱀에 비유하여 그 험준함과 길게 뻗은 모양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이러한 지형 묘사는 제갈량이 활약했던 역사적 배경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 제갈량의 업적 회상: "제갈 공을 생각하니, 만 기의 군사로 한나라 땅에서 출정했었지. 관리와 병사들은 물처럼 고요하고, 쓸쓸히 말 채찍 소리만 들리네(有懷諸葛公。萬騎出漢巴。吏士寂如水。蕭蕭聞馬檛)."라는 구절은 제갈량의 북벌을 회상하며, 군대의 정숙함과 위엄을 묘사합니다. "공의 재능은 조비와 비교하면, 어찌 십 배에 그치겠는가. 삼보 땅을 돌아보니, 형세가 바람이 모래를 휘감는 듯했네(公才與曹丕。豈止十倍加。顧瞻三輔間。勢若風捲沙)."라는 구절은 제갈량의 뛰어난 재능을 극찬하며, 그의 군사적 위세가 대단했음을 보여줍니다.
-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하루아침에 큰 별이 떨어지니, 마침내 촉나라 여인들로 하여금 머리를 풀어 헤치게 하였네(一朝長星墜。竟使蜀婦髽)."라는 구절은 제갈량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는 표현입니다. '큰 별이 떨어지다(長星墜)'는 것은 영웅의 죽음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그의 죽음이 촉나라에 큰 슬픔을 가져왔음을 나타냅니다.
- 역사에 대한 감회: "산의 스님은 어찌 이를 알겠는가, 한 방에서 늙어 연기와 노을 속에 있네(山僧豈知此。一室老煙霞)."라는 구절은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산속 스님의 모습을 통해, 역사의 덧없음을 강조합니다. "지나간 일은 구름을 쫓아 흩어지고, 옛 산은 위수에 기대어 비스듬하네. 나그네가 와서 부질없이 옛일을 조상하니, 맑은 눈물이 슬픈 피리 소리에 떨어지네(往事逐雲散。故山依渭斜。客來空弔古。清淚落悲笳)."라는 구절은 역사의 허무함과 슬픔을 표현하며, 시인 자신이 역사의 현장을 찾아와 옛일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제갈량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을 통해, 역사의 흥망성쇠와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변 풍경 묘사와 역사적 사실의 조화를 통해 시적 깊이를 더하고 있으며,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 드러나는 비애감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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