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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지 52

1.1.3.7.41 - 이견지 갑지 제3권 - 축대백 祝大伯

축대백祝大伯 계진(桂縝)의 조부인 계안시(桂安時)는 어릴 때부터 도술을 좋아하였다. 그는 나이 24세에 처자식을 내버려 두고, 금과 비단을 들고서 명산(名山)을 두루 다니다 십 년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연히 방사가 집문 밖을 지나가면 계안시는 반드시 방사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매일 그의 집에서 밥을 먹는 자가 수십 명이었는데, 이 때문에 그의 집안 살림은 파탄이 났고, 온 집안 사람들이 계안시를 원망하였다. 그래도 계안시의 집념은 더욱 두터워졌다. 그의 집안 하인 축대백(祝大伯)은 땔감을 구하고 물을 긷는 일을 하였는데, 아둔하여도 매사에 신중하였다. 하루는 축대백이 밖에서 돌아오는데, 행동거지가 평상시와는 달랐다. 축대백이 말하였다. "길에서 도인(道人)을 만났는데, 그가 저에게..

1.1.3.6.40 - 이견지 갑지 제3권 - 두씨 도인 竇道人

두씨 도인竇道人 계진(桂縝)은 자(字)가 언율(彥慄)이고, 신주(信州: 현재 장시성에 속함) 귀계(貴溪) 사람이다. 사는 곳에서 용호산(龍虎山)까지 거리가 삼십 리여서, 도인들이 매일 집앞을 지나가면 계씨(桂氏)는 반드시 그들에게 돈을 주었다. 계씨는 본디 산증(疝症: 생식기와 고환이 붓고 아픈 병증)을 앓고 있었는데, 매번 발작이 나면 죽고싶을만치 아팠다. 의원이 방사(方士)에게 가서 기운을 단련하는 요결을 배우라고 권하였는데, 이것이 그가 도술에 뜻을 둔 이유이다. 소흥(紹興) 경신년(庚申: 1140년) 6월 23일 저녁에 목욕을 마치고, 조그마한 길로 산책을 하였는데, 팔구십 세는 되어 보이는 늙은 도인이 다가왔다. 머리털은 허옇고 등은 굽었는데 몸집은 풍만하였다. 계진이 읍을 하며 말하기를, "부..

1.1.3.5.39 - 이견지 갑지 제3권 - 단재의 첩段宰妾

단재의 첩段宰妾 단재(段宰)가 무주(婺州: 현재 저장성에 속함) 보강현(浦江縣)의 한 사찰에서 머물고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문을 바라다본 적이 있는데, 한창 젊은 나이의 여인이 문가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의 성씨(姓氏)와 사정을 물었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남편도 없고, 친척도 없다고 하였다.  단씨의 부인이 말하기를, "기왕 이렇게 되었다면 남의 첩이나 될 것이지 어찌 걸식하오? 내 말대로 하는 것이 어떠하오?"라고 하였다.  답하기를,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가 빈천하여 남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뿐입니다. 부엌일이라도 할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불러들여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게 하였다. 그리고 부엌일 하는 자를 시켜 음식 만드는 방..

1.1.3.4.38 - 이견지 갑지 제3권 - 이상인 李尚仁

이상인李尚仁 승가(承可) 왕부(王鈇)는 소흥(紹興) 신유년(辛酉歲: 1141년)에 절동로(浙東路: 현재 저장성 일대)의 제봉다염공사(提舉茶鹽公事)에 임명되었는데, 관청이 회계(會稽: 현재 저장성 사오싱시) 자성(子城)의 동녘에 있는 옛날의 용흥사(龍興寺)였다. 승가(承可)의 셋째 아들인 왕유(王洧)가 자포(紫袍)를 입은 장부가 나타나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 장부가 말하기를, "나의 유골이 복숭아나무 아래에 매장되어 있어서 혼이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대가 나를 가엽게 생각하신다면 부디 유골을 다른 곳으로 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왕유가 깨어난 뒤에 그의 부친에게 아뢰었다. 건물 주위를 살펴보니 과연 커다란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가 있었다. 이에 나무 아래를 파내어 유골을 찾았으나 ..

1.1.3.3.37 - 이견지 갑지 제3권 - 진씨가 전 남편을 배신하다 陳氏負前夫

진씨가 전 남편을 배신하다陳氏負前夫 시랑(侍郎) 덕응(德應: 진탁의 자字) 진탁(陳橐)의 따님은 회계(會稽: 현재 저장성 사오싱시) 석씨(石氏)의 부인이다.  부부 사이에 아들 하나를 낳은 뒤 석씨가 병에 걸려 장차 죽는데, 죽기 전에 부인의 손을 잡고 사별하며 말하기를, "내가 그대와 서로 즐겁게 살았으니, 보통 부부에 비할 바가 아니로다. 부인은 우리 아들은 잘 보살펴 주오. 그리고 부디 꼭 재가하지 않음으로써 나에게 보답해주구려."라고 하였다.  진씨(陳氏)가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않으니 석씨가 화를 내며 말하기를, "그렇다면 새로운 남편 잘 모시고, 옛 주인일랑 생각치 마오."라고 하였다.  석씨가 끝내 사망하니, 진씨가 눈물을 흘리고 곡하면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였고, 사모함이 지나쳐 매우 수척해..

1.1.3.2.36 - 이견지 갑지 제3권 - 이신에게 원한을 갚다

이신에게 원한을 갚다李辛償冤 선화(宣和: 1119~1125년) 말엽, 요주(饒州: 현재 장시성 상라오) 유(庾)땅 사람 이신(李辛)이라는 포악한 관리가 있었으니, 요주 사람들은 그를 흘겨 보았다. 큰눈이 내리는 어느 날 그가 일을 보려고 관아로 가다가 어떤 사람과 길에서 부딪쳤는데, 술에 취한 이신은 술기운에 자기 힘을 믿고 주먹을 휘둘러 그를 죽여버렸다. 그때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많았는데 자기도 당할까 두려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이신이 떠난 후에 순찰을 하던 병사는 길에서 갑자기 죽은 사람이라 여기고 죽은 자의 집안사람을 불러 묻게 하였다. 이 사건 이후로 이신은 더욱 방자해져 성 밖에 있는 거처에 돌아갈 때는 성문이 닫힌 밤중이라도 성벽을 뛰어넘어 다녔다. 삼 년이 지난 뒤, 당시 길에서 죽었..

1.1.3.1.35 - 이견지 갑지 제3권 - 만세단

만세단萬歲丹 휘주(徽州) 무원현(婺源縣: 현재 장시성에 속함) 회금향(懷金鄉)에 정빈(程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해치는 약을 팔아 이익을 챙겼다. 많은 양의 독사를 땅에 묻은 뒤 거적으로 덮고 물을 부으면 오랜 시간이 지나 버섯이 자라는데, 그 버섯을 채집해 햇볕에 말린다. 그리고 다시 다른 약을 더 추가하면 독약이 된다. 처음 생긴 버섯을 가지고 사람에게 먹이면 즉사하는데, 곧바로 죽으면 의심을 살까 두려워 감히 쓰지는 못하고, 대부분 그 다음에 자란 버섯을 가지고 먼저 개구리에게 먹여보고 뛰어다니는 수를 세서 등급을 매기는데, 그 독약의 이름을 듣기 좋게 '만세단(萬歲丹)'이라고 하였다. 죽이고 싶은 원수가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수천 금을 내고서 그 약을 몰래 사 간다..

1.1.2.15.34 - 이견지 갑지 제2권 - 색욕을 멀리 한 최조무 崔祖武

색욕을 멀리 한 최조무崔祖武 최조무(崔祖武)는 하동로(河東路: 현재 산시성 일대)의 위승군(威勝軍) 사람이다. 정화(政和) 계사년(癸巳: 1113년)에 나의 부친과 태학(太學) 통류재(通類齋)에서 함께 지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가 젊었을 때에는 여색을 좋아하여 하루도 여자와 놀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다 나이 26세에 병에 들어 죽게 되었는데, 우씨(牛氏) 성의 도인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색욕을 끊을 수 있다면 내가 그를 구할 수 있소." 당시 그의 부모가 말하기를, "우리 아이가 죽게 되었으니 살릴 수만 있다면 불가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마침내 도인은 그에게 약을 주고, 연기술(練氣術)을 가르쳤는데, 아내와는 떨어져 지내게 하니, 병이 나았다고..

1.1.2.14.33 - 이견지 갑지 제2권 - 도학에 빠진 무승규

도학에 빠진 무승규武承規 무승규(武承規)는 자(字)가 자정(子正)이고, 장안(長安: 현재 섬서성 시안시)사람이다. 정화(政和) 7년(1117년), 태주(台州: 현재 저장성에 속함) 영해현(寧海縣) 현저진(縣渚鎭)에서 주세(酒稅)를 감독하였다. 그는 도사(道士) 대접하기를 좋아해서, 매일 그의 집에서 식사하는 자들이 언제나 여러 명이었다. 나의 부친께서는 당시 그 현의 주부(主簿)셨는데, 그에게 타일러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대의 관직은 낮아 봉급도 적은데, 공밥 먹는 사람들은 이처럼 많으니, 어떻게 먹고 살 생각인가?" 무승규가 답하였다. "저에게는 그들에게 줄 맛좋은 술과 많은 양의 고기가 없습니다. 단지 인연에 따라 있는 대로 줄 뿐입니다. 우연찮게 술이 있을 때에는 술에 취하도록 마시고, 생선이 ..

1.1.2.13.32 - 이견지 갑지 제2권 - 수수께끼 시문

수수께끼 시문詩謎 원우(元佑: 1086~1094년) 연간에 사대부 중 호사가(好事家)들이 이름난 관리의 성명을 가져다가 수수께끼 시를 짓고는 하였다. 이를테면 “눈 내린 하늘 맑게 개이니 무지개 드러나고, 일천 리 뻗은 강산은 경기에 이르네. 천자의 손에는 조회할 때 집는 백옥 있고, 뛰어난 인재는 삼베옷 입기를 꺼리지 않네.(雪天晴色見虹霓 千里江山遇帝畿 天子手中朝白玉 秀才不肯著麻衣)"라는 시가 있는데, 한강(韓絳), 풍경(馮京), 왕규(王圭), 증포(曾布)를 가리킨다. 또 옛 사람의 이름자 뜻을 취하여 현재의 사정에 부합하는 뜻으로 짓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저마다 모두 자첨(子瞻: 소식蘇軾)의 모자를 썼고, 군실(君實: 사마광司馬光)은 근래 관직을 바꾸었네. 왕개보(王介甫: 왕안석王安石)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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