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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권서국사(前權署國事, 이전에 임시로 국사를 맡았던) 휘(諱) 경(曔)의 자(字)는 광원(光遠)이며, 강헌왕(康獻王, 태조)의 적자(嫡子)로 정유년(丁酉年, 1357년) 7월 초하루에 태어났다. 성품이 순수하고 신중하며, 뜻과 행동이 단정하고 바르다. 무략(武略)에 뛰어났으며, 일찍이 강헌왕을 따라 여러 도적을 쳐부수어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웠다. 경오년(庚午年, 1390년)에는 예산(禮山)에서 왜구를 잡아 바치고 승리를 보고하였다. 무인년(戊寅年, 1398년) 가을 9월에 아버지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아 3년간 재위하였다. 경진년(庚辰年, 1400년) 겨울 11월에 병으로 인해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한가롭게 지내며 병을 치료하기를 20년간 하였다. 기해년(己亥年, 1419년) 9월 26일에 정침(正寢, 임금이 거처하는 정당)에서 세상을 떠나니, 향년 63세였다.
(찬진한 신하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추가 설명:
- 휘(諱): 돌아가신 분의 이름. 왕이나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은 함부로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휘'라고 표현함.
- 자(字): 본명 외에 부르던 이름.
- 강헌왕(康獻王): 태조 이성계의 묘호.
- 권서국사(權署國事): 임시로 나라의 일을 맡음. 정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상황을 의미.
- 정침(正寢): 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는 정당.
- 찬진(撰進): 글을 지어 올림.
이 기록은 정종의 생애와 업적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으로, 그의 성품, 무공, 즉위 과정, 퇴위 후의 삶, 그리고 사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태조를 도와 여러 공을 세웠다는 점, 짧은 재위 기간 이후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점, 그리고 20년간 병을 치료하며 지냈다는 점 등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누가 지었는지 전해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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