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 16년 무술년 11월 정미 초하루부터 여드레째 되는 갑인일에, 국왕 신(세종의 이름)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삼가 책문을 받들어 아뢰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하늘의 두터운 은혜를 받듦에 있어서, 비록 성대한 덕을 이름 짓기 어렵사오나, 효자의 지극한 정은, 오직 어버이를 높이는 것을 가장 크게 여깁니다. 삼가 예문의 옛 법을 따라, 작은 정성과 존경을 펼치고자 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왕대비 전하께서는 부드럽고 은혜로우며 편안하고 정숙하시고, 자애롭고 온화하며 삼가고 신중하십니다. 《주남(周南)》의 아름다운 교화를 근본으로 삼으시고, 지중(摯仲)의 아름다운 가르침을 이으셨습니다. 경계하고 삼가함을 어김이 없이, 능히 서로 돕는 도리를 다하셨고, 수고로움이 끝이 없어, 낳아 기르신 은혜를 갚기 어렵습니다. 해와 나란히 항상 높이 오르시어, 나라와 가정에 어머님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신의 약한 자질로, 외람되이 큰 사업을 지키고 있사오니, 우러러 돌보아 주시는 은혜를 생각하옵고, 마땅히 칭송하는 의식을 거행해야 할 것입니다. 신 (세종의 이름)은 큰 소원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책보를 받들어 존호(尊號)를 올리니 ‘후덕왕대비(厚德王大妃)’라 하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왕대비 전하께서는 빛나는 칭호를 받으시고, 크나큰 복록을 누리시어, 만년의 장수를 누리시고, 왕실의 혈통을 백세토록 번창하게 하시옵소서. 신 (세종의 이름)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머리를 조아려 다시 두 번 절하며 아뢰옵니다.
(지어 바친 신하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해석 및 해설:
이 글은 세종이 태종으로부터 선위를 받은 직후, 어머니인 원경왕후 민씨에게 ‘후덕왕대비(厚德王大妃)’라는 존호(尊號)를 올리는 의식에서 사용된 옥책문입니다. 존호는 살아있는 왕의 어머니, 즉 대비에게 올리는 존경의 칭호입니다. 이 문서를 통해 당시 왕실의 효 사상, 왕비의 역할, 그리고 정치적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 효 사상의 강조: 옥책문의 서두에서 “효자의 지극한 정은, 오직 어버이를 높이는 것을 가장 크게 여긴다(孝子至情, 惟尊親之爲大)”라고 언급하며, 효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유교적 이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왕으로서 어머니에게 존호를 올리는 행위가 지극히 당연하고 중요한 의례임을 나타냅니다.
- 왕대비의 덕행 칭송: 원경왕후의 덕행을 “유혜안정(柔惠安貞, 부드럽고 은혜로우며 편안하고 정숙함)” “자화숙신(慈和淑愼, 자애롭고 온화하며 삼가고 신중함)” 등의 표현으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덕목들을 보여주는 동시에, 원경왕후가 이러한 덕목을 두루 갖춘 이상적인 어머니이자 왕비였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 고전의 인용: 《시경(詩經)》의 〈주남(周南)〉과 지중(摯仲)의 고사를 인용하여 왕대비의 덕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 《주남(周南)》: 《시경》의 첫 번째 부분으로, 주로 부부의 윤리와 가정의 도리를 노래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왕대비의 덕을 가정의 모범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 지중(摯仲): 고대 중국의 현인으로, 효성이 지극했다고 전해집니다. 왕대비의 자애로움을 지중에 비유한 것입니다.
- 국가의 안정과 왕실의 번영 기원: 옥책문의 말미에는 왕대비의 장수와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왕대비의 건강과 행복이 곧 국가의 안정과 왕실의 번영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 세종의 겸손한 표현: 세종은 자신을 “약한 자질(弱質)”이라고 표현하며, 선왕의 큰 사업을 이어받은 것에 대한 겸손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왕으로서 선대 왕과 대비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동시에, 백성들에게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옥책문은 존호 추상이라는 의례를 통해 당시 왕실의 효 사상, 왕비의 역할, 그리고 새로운 왕의 자세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특히 유교적인 가치관이 왕실 문화에 미친 영향, 왕비의 역할, 그리고 왕위 계승 이후의 정치적 안정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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