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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책문 (태종 8년 무자년 9월 4일 기유일에 섭태부(攝太傅) 예조판서(禮曹判書) 이지(李至)와 섭중서령(攝中書令) 한성부윤(漢城府尹) 맹사성(孟思誠)을 보내 시책과 보를 빈전에 바치다. 애책은 전해지지 않는다.)

集賢堂 2024. 12. 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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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8년(1408년) 9월 4일에 태종이 이지(李至)와 맹사성(孟思誠)을 보내 태조 이성계의 빈전(殯殿)에 시책(諡冊)과 보(寶)를 바칠 때 사용한 시책문(諡冊文)입니다. 시책은 왕이나 왕비 등이 승하한 후 그 공덕을 기리어 올리는 시호(諡號)를 적은 문서입니다. 여기서는 태조에게 ‘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라는 시호와 ‘태조(太祖)’라는 묘호(廟號)를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애책(哀冊)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업(創業)하여 후세에 계책을 남기심은 실로 큰 덕(德)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이름을 바꾸고 시호를 정함은 오직 지극히 공정(公正)함으로 하는 것이다. 삼가 옛 제도를 따라 아름다운 칭호를 올립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대행태상왕(大行太上王, 돌아가신 태상왕)께서는 자질이 신성(神聖)하시고, 마음은 너그럽고 어지셨습니다. 전 왕조가 쇠약하고 혼란한 시대를 만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셨고, 하늘의 두터운 보살핌을 받아 큰 기틀을 세우셨습니다. 풍뢰(風雷)와 같은 무위(武威)를 떨치시고, 해와 달처럼 문치(文治)를 밝히셨습니다. 삼가 황제의 명을 받아 국호(國號)를 바꾸어 새롭게 하셨고, 신성한 도읍(한양)을 정하시어 백성들이 영원히 거할 곳을 마련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끝없는 운수를 여신 것은 실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치는 곤궁한 백성을 먼저 생각하셨고, 은혜는 초목에까지 미치셨습니다. 어렵고 큰 일을 감당하심을 생각하고, 오래도록 편안히 지내시기를 바랐습니다. 어찌 갑자기 하늘로 돌아가시어 온 세상에 슬픔을 남기셨습니까? 마땅히 시호를 추증(追贈)하는 예(禮)를 거행하여 아름다움을 돌려드리는 정성을 펼쳐야 합니다. 이에 아름다운 칭호를 지어 후세에 보여주려 합니다. 삼가 아무 관직 아무개를 보내 옥책(玉冊)을 받들어 존시(尊諡, 시호)를 올리니 ‘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라 하고, 묘호(廟號)를 ‘태조(太祖)’라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밝은 거울과 같은 마음으로 저희의 정성을 살펴주시어, 큰 복을 내려주시어 자손들을 천억 년 동안 보우하시고, 넓고 큰 복을 도와주시어 천지(天地)와 더불어 영원히 길이 이어지게 하소서.

수문전 직제학 신 변계량(卞季良)이 짓다.

이 시책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시호 추증의 의의: 태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시호를 추증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 태조의 업적 찬양: 태조의 신성한 자질, 어진 마음, 난세 극복, 건국, 문치, 애민 정신 등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특히 “풍뢰와 같은 무위를 떨치시고, 해와 달처럼 문치를 밝히셨습니다.”라는 표현은 태조의 문무겸전(文武兼全)한 면모를 강조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끝없는 운수를 여신 것은 실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라는 문구는 태조의 건국 이념이 백성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 애도의 표현: 태조의 갑작스러운 승하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찌 갑자기 하늘로 돌아가시어 온 세상에 슬픔을 남기셨습니까?”라는 구절에서 이러한 애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시호와 묘호의 의미: ‘지인계운성문신무(至仁啓運聖文神武)’라는 시호는 ‘지극히 어질고 운수를 열었으며, 성스럽고 문(文)하며 신성하고 용맹하다’라는 뜻으로, 태조의 모든 업적을 포괄적으로 칭송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태조(太祖)’라는 묘호는 왕조를 창건한 시조에게 올리는 묘호입니다.
  • 후손의 번영 기원: 태조의 영령이 후손들을 보우하고 나라의 운명을 영원히 지켜주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변계량이 지은 이 시책문은 태조의 공덕을 기리는 동시에 후손들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조선 초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특히 시호의 의미를 통해 태조의 업적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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