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장기 (方丈記) (원전의 중고일본어 기반)
흘러가는 강물은 끊이지 않지만, 그 물은 원래의 물이 아니다. 물웅덩이에 떠오르는 물거품은 잠시 사라졌다가는 다시 맺히지만, 오래도록 머무르는 법이 없다. 세상에 있는 사람과 사는 곳도 이와 같다.
아름다운 구슬을 깐 듯한 수도 안에서, 처마를 나란히 하고 지붕 높이를 다투는 높고 낮은 사람들의 집은, 대대로 이어져 끊이지 않는 듯하지만, 이것이 진실인가 하고 살펴보면 옛날에 있던 집은 드물다. 어떤 집은 작년에 무너지고(혹은 불타고) 올해 새로 짓고, 어떤 집은 대가가 멸망하여 작은 집이 된다. 사는 사람도 이와 같다. 장소는 바뀌지 않고 사람은 많지만, 옛날에 보았던 사람은 이삼십 명 중에 겨우 한두 명뿐이다. 아침에 죽고 저녁에 태어나는 것이 덧없는 인생, 그저 물거품과 같을 뿐이다.
알지 못하겠다, 태어나고 죽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또 알지 못하겠다, 이 덧없는 임시 거처에서 누구를 위해 마음을 괴롭히고, 무엇 때문에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인가. 그 주인과 집이 무상함을 다투며 사라져 가는 모습은, 마치 아침 나팔꽃과 그 위에 맺힌 이슬과 다를 바 없다. 어떤 때는 이슬이 떨어지고 꽃은 남아 있지만, 남아 있다 해도 아침 햇살에 시들어 버린다. 어떤 때는 꽃은 시들고 이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해도 저녁을 기다릴 수 없다.
이 글은 가모노 조메이(鴨長明)의 《방장기(方丈記)》 서두 부분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강물, 물거품, 집, 사람, 그리고 아침 나팔꽃과 이슬에 비유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각 비유에 대한 분석과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강물과 물거품:
- 흘러가는 강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과 세상의 흐름을 상징합니다. 겉보기에는 같은 강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 순간 새로운 물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는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변한다는 무상함의 기본 원리를 보여줍니다.
- 물웅덩이의 물거품: 덧없이 사라지는 존재, 특히 인간의 삶과 덧없는 욕망을 비유합니다. 잠시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물거품처럼, 인간의 삶과 욕망도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2. 집과 사람:
- 아름다운 수도 안의 집들: 겉으로는 화려하고 영원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집이 무너지고 새로 지어지듯, 권력과 부도 영원하지 않고 변화하며, 대가(大家)가 멸망하고 작은 집이 되는 것은 인생사의 흥망성쇠를 나타냅니다.
- 사는 사람: 집과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으며 변화합니다. 옛날에 보았던 사람은 드물고, 아침에 죽고 저녁에 태어나는 것은 인생의 덧없음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3. 아침 나팔꽃과 이슬:
- 나팔꽃과 이슬: 주인(나팔꽃)과 거처(이슬) 모두 덧없이 사라지는 존재를 비유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더욱 강조합니다. 이슬이 먼저 떨어지든, 꽃이 먼저 시들든 결국에는 모두 사라질 운명이라는 점을 통해 덧없음을 부각합니다.
- 아침 햇살과 저녁: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며, 아무리 아름다운 존재(꽃)나 맺힌 이슬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전체적인 의미와 주제:
이 글은 인생의 무상함(無常)을 주제로,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진다는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영원해 보이는 것들도 결국에는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덧없는 욕망에 집착하지 말고 인생의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표현상의 특징:
- 비유와 상징: 강물, 물거품, 집, 사람, 나팔꽃, 이슬 등 다양한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여 추상적인 개념(무상함)을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 대구와 대조: "어떤 집은 ~ 어떤 집은", "아침에 죽고 저녁에 태어나는", "이슬이 떨어지고 꽃은 남아 있지만 ~ 꽃은 시들고 이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등 대구와 대조를 사용하여 의미를 강조하고 리듬감을 형성했습니다.
- 의문형 문장: "이것이 진실인가", "알지 못하겠다, ~ 어디로 가는 것인가", "알지 못하겠다, ~ 무엇 때문에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인가" 등 의문형 문장을 사용하여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무상함에 대한 깨달음을 촉구합니다.
- 간결하고 담담한 문체: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묘사하여 무상함이라는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대체로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이후로, 사십여 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세상의 불가사의한 일들을 자주 보았다. 지난 안겐 3년 4월 28일경이었던가, 바람이 몹시 불고 고요하지 않던 밤, 술시(戌時, 저녁 7-9시) 무렵, 도읍의 동남쪽에서 불이 나 서북쪽으로 번져갔다. 결국에는 주작문, 대극전, 대학료, 민부성까지 옮겨붙어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되었다. 불은 히구치토미노코지라는 곳에서 병자를 묵게 하던 임시 가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리저리 불며 흩날리는 바람에 불길은 마치 부채를 펼친 듯 끝이 넓어졌다. 멀리 있는 집은 연기에 휩싸이고, 가까운 곳은 불꽃이 땅에 닿을 듯 뿜어져 나왔다. 하늘에는 재가 날리고, 불빛에 비쳐 온통 붉은색으로 물든 가운데,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진 불꽃은 나는 듯이 12정(町, 약 109m)을 넘어 옮겨붙었다. 그 안의 사람들은 제정신이었을까. 어떤 사람은 연기에 질식하여 쓰러지고, 어떤 사람은 불길에 휩싸여 순식간에 죽었다. 어떤 사람은 겨우 몸 하나만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재산을 꺼낼 겨를이 없었다. 칠보만보(七珍萬寶)도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그 손실이 얼마나 컸을까. 이번 화재로 공경(公卿)의 집 열여섯 채가 불탔다. 하물며 그 밖의 집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도읍 전체의 3분의 1(혹은 2)이 불탔다고 한다. 남녀 사망자는 수천 명이고, 말과 소의 피해는 끝을 알 수 없었다.
사람의 하는 일은 모두 어리석지만, 그중에서도 이토록 위험한 도읍 안에 집을 짓는다고 보물을 낭비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더욱 부질없는 일이다.
이 글은 《방장기(方丈記)》의 일부로, 안겐(安元) 3년(1177년)에 발생한 교토 대화재를 묘사하고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1. 화재의 묘사:
- 발생 시간 및 장소: "안겐 3년 4월 28일경", "술시(戌時, 저녁 7-9시) 무렵", "도읍의 동남쪽에서 불이 나 서북쪽으로 번져갔다" 등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제시하여 사실성을 높입니다.
- 피해 규모: "주작문, 대극전, 대학료, 민부성까지 옮겨붙어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되었다", "공경(公卿)의 집 열여섯 채가 불탔다", "도읍 전체의 3분의 1(혹은 2)이 불탔다", "남녀 사망자는 수천 명" 등 엄청난 피해 규모를 구체적인 수치와 지명을 통해 묘사하여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 화재 상황: "불길은 마치 부채를 펼친 듯 끝이 넓어졌다", "하늘에는 재가 날리고, 불빛에 비쳐 온통 붉은색으로 물든 가운데",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진 불꽃은 나는 듯이 12정(町, 약 109m)을 넘어 옮겨붙었다" 등 비유적 표현과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화재의 참혹한 광경을 묘사합니다.
- 사람들의 반응: "그 안의 사람들은 제정신이었을까", "어떤 사람은 연기에 질식하여 쓰러지고, 어떤 사람은 불길에 휩싸여 순식간에 죽었다", "겨우 몸 하나만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재산을 꺼낼 겨를이 없었다" 등 화재 속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절망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2. 화재에 대한 작가의 생각:
- 무상함과 어리석음: "사람의 하는 일은 모두 어리석지만, 그중에서도 이토록 위험한 도읍 안에 집을 짓는다고 보물을 낭비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더욱 부질없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화재를 통해 덧없는 인간사와 재물에 대한 집착의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이는 《방장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무상함과 연결됩니다.
- 칠보만보(七珍萬寶)의 허무함: "칠보만보(七珍萬寶)도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라는 표현을 통해, 아무리 귀한 보물이라도 화재 앞에서는 한낱 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물질적 가치의 허무함을 강조합니다.
- 불가사의한 일: "세상의 불가사의한 일들을 자주 보았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화재를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 즉 불가사의한 일로 인식합니다.
3. 표현상의 특징:
- 사실적 묘사: 구체적인 시간, 장소, 피해 규모 등을 제시하여 화재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 비유적 표현: "불길은 마치 부채를 펼친 듯", "불꽃은 나는 듯이" 등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화재의 역동성과 파괴력을 강조했습니다.
- 감각적 묘사: 시각("온통 붉은색으로 물든"), 청각("바람 소리"는 암시됨), 촉각("연기에 질식하여") 등 다양한 감각적 묘사를 통해 독자가 화재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 대조: 화려한 궁궐과 잿더미, 귀중한 보물과 재, 삶과 죽음 등 대조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여 무상함과 허무함을 강조합니다.
- 반어적 표현: "사람의 하는 일은 모두 어리석지만"과 같은 표현으로, 화재의 위험을 알면서도 도읍에 집착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반어적으로 드러냅니다.
결론:
이 글은 안겐 대화재라는 실제 사건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과 재물에 대한 집착의 어리석음을 강조하는 《방장기》의 주제 의식을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사실적이고 생생한 묘사를 통해 독자에게 화재의 참상을 전달하고, 그 속에서 덧없는 인간사의 교훈을 이끌어냅니다.
또 지쇼 4년 4월 29일경, 나카노미카도쿄고쿠 부근에서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로쿠조 부근까지 맹렬하게 불었다. 3-4정에 걸쳐 휘몰아치는 바람에, 그 안에 있던 집들은 크고 작은 것 할 것 없이 하나도 부서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완전히 납작하게 쓰러진 것도 있고, 기둥과 들보만 남은 것도 있다. 또 대문 위를 날려 4-5정(町) 밖에다 던져 놓고, 담장을 날려 이웃과 하나로 만들어 버렸다. 집 안의 보물들은 하늘로 솟아오르고, 지붕 널빤지들은 마치 겨울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듯했다.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소리에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 지옥의 업풍(業風)도 이와 같을까 싶었다. 집이 파괴된 것뿐만 아니라, 이것을 수리하는 동안 몸을 다쳐 불구자가 된 사람도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 바람은 남서쪽으로 옮겨가 많은 사람에게 슬픔을 안겼다. 회오리바람은 늘 부는 것이지만,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필시 어떤 징조일 것이라고 의심했다.
이 글은 가모노 조메이의 《방장기(方丈記)》의 한 부분으로, 지쇼 4년(1180년)에 발생한 커다란 회오리바람(つむじ風, 츠무지카제)으로 인한 피해 상황과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 회오리바람과 피해 상황:
- 발생: 나카노미카도쿄고쿠(中御門京極) 부근에서 발생하여 로쿠조(六条)까지 맹렬하게 불었습니다.
- 규모와 위력: 3-4정에 걸쳐 휘몰아치는 바람은 크고 작은 집들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 완전히 납작하게 쓰러진 집
- 기둥과 들보만 남은 집
- 대문이 4-5정 밖으로 날아감
- 담장이 날아가 이웃집과 하나가 됨
- 집 안의 보물들이 하늘로 솟아오름
- 지붕 널빤지들이 겨울 나뭇잎처럼 흩날림
- 피해 상황 묘사:
-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
- 엄청난 소리에 말소리가 들리지 않음
- 집이 파괴되고, 수리 중 다치는 사람이 속출
- 지옥의 업풍(業風) 비유: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의 바람(업풍)에 비유하여 회오리바람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선 재앙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 작가의 생각과 해석:
- 예사롭지 않은 일: "회오리바람은 늘 부는 것이지만,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라고 하여, 이 사건이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 징조에 대한 의심: "필시 어떤 징조일 것이라고 의심했다"라는 구절에서, 이 사건을 불길한 징조, 즉 사회적 혼란이나 재앙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 당시의 시대적 배경 : 헤이안 시대 말기는 귀족 사회의 쇠퇴와 무사 계급의 대두로 인한 격동기로, 잦은 자연재해와 사회 불안이 겹쳐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회오리바람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세상의 무상함과 불안함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3. 표현상의 특징:
- 과장과 비유: 피해 상황을 과장하여 묘사하고(대문이 4-5정 밖으로 날아감, 지붕 널빤지가 겨울 나뭇잎처럼 흩날림), 지옥의 업풍에 비유하여 회오리바람의 위력을 강조하고 독자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킵니다.
- 생생한 묘사: 시각적(먼지가 연기처럼), 청각적(엄청난 소리) 심상을 사용하여 피해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독자가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짧고 간결한 문장을 사용하여 긴박감을 조성하고, 사건의 충격적인 면모를 강조합니다.
전체적인 의미:
이 글은 단순히 회오리바람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당시 사회의 불안과 무상함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세상의 덧없음을 드러내고, 불길한 징조로 해석하여 독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방장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무상(無常) 사상과도 연결됩니다.
또 같은 해 6월 경, 갑작스럽게 도읍(수도)을 옮기는 일이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대체로 이 도읍(교토)이 시작된 것을 들어보면, 사가 천황 때 도읍으로 정해진 이후 이미 수백 년이 지났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쉽게 바뀔 리도 없으니, 세상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며 근심하는 모습은 당연한 이치를 넘어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소용없이, 천황을 비롯하여 대신과 공경들은 모두 셋쓰 국 나니와(難波)의 도읍(오사카)으로 옮겨가셨다. 세상에 벼슬하는 사람들 중, 누가 혼자 옛 도읍에 남아 있겠는가. 관직과 지위에 마음을 두고, 주군의 은혜를 바라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옮겨가려고 서로 다투었다. 때를 놓치고 세상에서 버려져, 갈 곳 없는 사람들은 근심하며 (옛 도읍에) 머물러 있었다. 처마를 경쟁하던 사람들의 집은 날이 갈수록 황폐해져 갔다. 집은 허물어져 요도가와 강에 떠내려가고, 땅은 눈앞에서 밭이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달라져서, 오직 말과 안장을 중요하게 여겼다. 소달구지를 쓰는 사람은 없었다. 서남해 쪽의 영지를 원하고, 동북쪽의 장원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일이 있어 셋쓰 국 지금의 도읍(오사카)에 가게 되었다. 그곳의 모습을 보니, 땅이 좁아서 조리(條里, 토지 구획 제도)를 나누기에 부족했다. 북쪽은 산에 닿아 높고, 남쪽은 바다에 가까워 낮았다. 파도 소리는 항상 시끄럽고, 바닷바람은 특히 거셌다. 내리(內裏, 황궁)는 산속에 있으니, 저 나무로 만든 궁궐도 이와 같을까 싶어, 꽤나 색다르고 우아한 면도 있었다. 날마다 허물어 강에 띄워 내려보내는 집은 어디에 짓는 것일까. 여전히 빈 땅은 많고, 지어진 집은 적었다. 옛 도읍은 이미 황폐해졌고, 새 도읍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뜬구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땅을 잃어 슬퍼하고, 지금 옮겨 사는 사람들은 토목 공사의 어려움을 한탄했다. 길가를 보면, 수레를 타야 할 사람은 말을 타고, 관복이나 예복을 입어야 할 사람은 히타타레(直垂, 무사들의 평상복)를 입고 있었다. 도읍의 풍속이 순식간에 바뀌어, 그저 시골 무사와 다를 바 없었다. 이것이 세상이 어지러워질 징조라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과연 날이 갈수록 세상이 어수선해지고, 사람들의 마음도 안정되지 않았다. 백성들의 근심이 결국 헛되지 않았기에, 같은 해 겨울, 다시 이 도읍(교토)으로 돌아오셨다. 하지만 허물어 옮겼던 집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두 원래대로 짓지 못했다.
어렴풋이 전해 듣기로는, 옛날 어진 임금의 시대에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나라를 다스렸다. 즉, 어전(御殿)에 초가지붕을 얹고 처마조차 제대로 손보지 않았다. (백성들의 집에서 밥 짓는) 연기가 적은 것을 보시면, 정해진 조세조차 감면해 주셨다. 이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세상을 구제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세상의 모습을 옛날에 비추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가모노 조메이의 《방장기(方丈記)》의 일부로, 갑작스러운 천도(遷都, 수도를 옮김)와 그로 인한 혼란, 그리고 다시 환도(還都, 원래 수도로 돌아옴)하는 과정을 묘사하며, 당시의 어지러운 사회상과 민심, 그리고 이상적인 정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각 부분에 대한 분석과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갑작스러운 천도와 혼란:
- 천도의 배경: 겐랴쿠 원년(1180년) 6월, 안토쿠 천황(安德天皇)과 다카쿠라 상황(高倉上皇)이 헤이안쿄(平安京, 교토)에서 후쿠하라(福原, 현재의 고베)로 천도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는 당시 권력을 장악한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 예상치 못한 천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천도는 갑작스럽고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수백 년간 수도였던 헤이안쿄를 떠나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불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 혼란스러운 민심: "세상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며 근심하는 모습은 당연한 이치를 넘어설 정도였다"는 구절에서 천도로 인한 백성들의 불안과 동요가 극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관료들의 이주: "천황을 비롯하여 대신과 공경들은 모두... 옮겨가셨다"는 부분은 권력층의 이동을 보여줍니다. "관직과 지위에 마음을 두고, 주군의 은혜를 바라는 사람들"은 새로운 수도로 앞다투어 이주했지만, "때를 놓치고 세상에서 버려져, 갈 곳 없는 사람들"은 옛 도읍에 남아 근심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옛 도읍의 황폐화: "처마를 경쟁하던 사람들의 집은 날이 갈수록 황폐해져 갔다", "집은 허물어져 요도가와 강에 떠내려가고, 땅은 눈앞에서 밭이 되었다"는 묘사는 헤이안쿄의 급격한 쇠퇴를 보여줍니다.
2. 새 도읍(후쿠하라)의 모습과 문제점:
- 지리적 단점: "땅이 좁아서 조리(條里)를 나누기에 부족했다", "북쪽은 산에 닿아 높고, 남쪽은 바다에 가까워 낮았다", "파도 소리는 항상 시끄럽고, 바닷바람은 특히 거셌다"는 묘사는 후쿠하라의 열악한 지리적 조건을 보여줍니다.
- 궁궐의 모습: "내리(內裏, 황궁)는 산속에 있으니, 저 나무로 만든 궁궐도 이와 같을까 싶어, 꽤나 색다르고 우아한 면도 있었다"는 부분은 새로운 궁궐에 대한 작가의 인상을 나타냅니다. 소박하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 미흡한 건설: "여전히 빈 땅은 많고, 지어진 집은 적었다"는 구절은 새 도읍의 건설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옛 도읍은 이미 황폐해졌고, 새 도읍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묘사는 당시의 불안정한 상황을 잘 드러냅니다.
- 백성들의 고통: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땅을 잃어 슬퍼하고, 지금 옮겨 사는 사람들은 토목 공사의 어려움을 한탄했다"는 부분은 천도로 인해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보여줍니다.
- 복식의 변화와 사회 혼란: "수레를 타야 할 사람은 말을 타고, 관복이나 예복을 입어야 할 사람은 히타타레(直垂, 무사들의 평상복)를 입고 있었다." 라는 묘사는 복식의 변화를 통해, 수도의 풍습과 격식이 무너진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암시합니다. "도읍의 풍속이 순식간에 바뀌어, 그저 시골 무사와 다를 바 없었다."라는 문장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강조하며 사회 기강 해이를 보여줍니다.
3. 환도와 그 이후:
- 환도의 배경: 백성들의 불만과 새 도읍의 문제점 등으로 인해 결국 같은 해 겨울에 다시 헤이안쿄로 환도하게 됩니다.
- 미완의 복구: "허물어 옮겼던 집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두 원래대로 짓지 못했다"는 구절은 천도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4. 이상적인 정치에 대한 작가의 생각:
- 어진 임금의 정치: "옛날 어진 임금의 시대에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나라를 다스렸다"는 부분에서 작가는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강조하며, 초가지붕과 세금 감면 등을 예로 들어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 현실 비판: "지금 세상의 모습을 옛날에 비추어 알 수 있을 것이다"는 구절은 당시의 현실 정치(잦은 천도와 백성들의 고통)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이상적인 정치와 대비하여 현실의 문제점을 부각합니다.
전체적인 의미와 주제:
이 글은 갑작스러운 천도와 환도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권력자들의 결정이 백성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 혼란을 보여줍니다. 또한, 백성을 위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이상적인 정치에 대한 작가의 염원을 드러냅니다.
표현상의 특징:
- 사실적인 묘사: 천도와 환도 과정, 새 도읍과 옛 도읍의 모습, 백성들의 반응 등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 대조: 옛 도읍과 새 도읍, 이상적인 정치와 현실 정치 등을 대조하여 주제를 강조하고,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 간접적인 비판: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옛날의 어진 임금의 정치를 언급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현실 정치를 비판합니다.
- 역사적 사실 기반: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글에 사실성과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또 요와(養和) 연간이었던가, 오래되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2년 동안 세상이 굶주려 비참한 일이 있었다. 어떤 때는 봄여름에 가뭄이 들고, 어떤 때는 가을겨울에 큰바람과 홍수 등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이어져, 오곡이 모두 여물지 않았다. 헛되이 봄에 밭을 갈고 여름에 모를 심는 일은 있었지만,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수확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 때문에 여러 나라의 백성들은 땅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거나, 집을 잊고 산으로 들어갔다. 여러 가지 기도가 시작되고, 보통이 아닌 법(法)들도 행해졌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교토의 관습은 무슨 일이든 모두 근본은 시골(농촌)에 의지하는데, (곡식이) 전혀 올라오지 않으니, 어떻게 도성(都城)의 살림을 꾸려갈 수 있겠는가. 걱정하며 괴로워하면서, 여러 가지 보물들을 한쪽부터 버리듯 (헐값에) 팔았지만, 거들떠보는 사람도 없었다. 어쩌다 물건을 바꾸는 사람들은 금을 가볍게 여기고 곡식을 귀하게 여겼다. 거지가 길가에 많고, 슬퍼하며 우는 소리가 귀에 가득했다.
지난해는 이처럼 간신히 저물었다. 새해에는 나아질까 생각했지만, 전염병까지 겹쳐 더욱 심해져서, (나아질) 기미조차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으니,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모습은, 적은 물에 사는 물고기의 비유와 같았다. 마침내 삿갓을 쓰고, 발을 감싸고, 멀쩡한 모습을 한 사람들도 오로지 집집마다 구걸하며 다녔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다니는 사람들을 보는가 싶으면, 곧 쓰러져 죽었다.
담장과 울타리 옆, 길가에 굶어 죽은 사람들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 치우는 일도 할 수 없으니, 썩는 냄새가 세상에 가득하고, 변해가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이 많았다. 하물며 가와라(河原) 같은 곳에는 말과 수레가 서로 지나갈 길조차 없었다. 천민, 산 사람들이 힘이 다하여 땔감조차 구하기 어렵게 되자,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헐어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한 사람이 가지고 나온 값어치는 하루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부족하다고 했다.
이상한 일은, 그런 땔감 속에 붉은 옻칠, 은, 금박 등이 곳곳에 붙어 있는 나무 조각들이 섞여 있는 것이었다. 이를 알아보니, 딱한 사람들이 옛 절에 가서 불상을 훔치고, 법당의 물건들을 부숴 가져다가 깨뜨린 것이었다. 혼탁하고 악한 세상에 태어나 이런 슬픈 일들을 보게 되었다.
또 슬픈 일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을 가진 사람들은, 그 (배우자에 대한) 마음이 더 커서, 정이 깊은 사람은 반드시 먼저 죽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몸은 뒷전으로 하고, 남자든 여자든, 애틋하게 생각하는 쪽에, 어쩌다 구걸해 얻은 것을 먼저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부모 자식 간에는 정해진 일이라, 부모가 먼저 죽었다. 또 어머니가 죽어 누워 있는 줄도 모르고, 어린아이가 그 젖을 빨면서 엎드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닌나지(仁和寺)에 지손인(慈尊院)의 대장경 류교(隆曉) 법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계속해서 수없이 죽는 것을 슬퍼하며, 많은 스님들을 설득하여, 죽은 시신이 보일 때마다 그 이마에 아(阿) 자를 써서 인연을 맺게 하는 일을 했다. 그 사람 수를 알기 위해, 4, 5월 동안 세어보니, 교토 안, 이치조(一條) 이남, 구조(九條) 이북, 교고쿠(京極) 이서, 스자쿠(朱雀) 이동, 길가에 있는 머리가 모두 4만 2천 3백여 개나 되었다. 하물며 그 전후에 죽은 사람도 많고, 가와라(河原), 시라카와(白河), 니시노쿄(西京), 여러 변두리 지역 등을 포함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하물며, 여러 나라 칠도(七道)는 어떻겠는가.
가까이는 스토쿠인(崇徳院) 재위 때, 조쇼(長承) 연간이었던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지만, 그 세상의 모습은 알지 못한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매우 드물고 슬픈 일이었다.
이 글은 가모노 조메이의 《방장기(方丈記)》의 일부로, 요와(養和) 연간(1181-1182)에 발생한 대기근과 그로 인한 참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상세한 분석과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근의 발생과 원인:
- 자연재해: "봄여름에 가뭄이 들고, 어떤 때는 가을겨울에 큰바람과 홍수"에서 알 수 있듯이, 가뭄, 태풍, 홍수 등 복합적인 자연재해가 기근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 오곡 불성(五穀不盛): 자연재해로 인해 농작물이 제대로 여물지 못했습니다. "오곡이 모두 여물지 않았다"는 표현은 식량 생산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했음을 보여줍니다.
- 농촌의 붕괴: 농민들은 땅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거나,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는 농업 생산 기반이 붕괴되었음을 의미하며, 식량 부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 기도와 주술의 실패: "여러 가지 기도가 시작되고, 보통이 아닌 법(法)들도 행해졌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부분은 당시 사람들이 기근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실패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당시 사회의 한계와 절망감을 드러냅니다.
2. 교토(京都)의 참상:
- 경제 마비: "교토의 관습은 무슨 일이든 모두 근본은 시골(농촌)에 의지하는데, (곡식이) 전혀 올라오지 않으니"라는 구절은 농촌 생산에 의존하는 도시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줍니다. 곡식이 올라오지 않자 도성의 살림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 물물교환의 실패: "여러 가지 보물들을 한쪽부터 버리듯 (헐값에) 팔았지만, 거들떠보는 사람도 없었다. 어쩌다 물건을 바꾸는 사람들은 금을 가볍게 여기고 곡식을 귀하게 여겼다"는 부분은 화폐 경제가 붕괴되고 물물교환이 이루어졌지만,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 굶주림과 죽음: 거지가 넘쳐나고, 슬픈 울음소리가 가득하며, 사람들이 굶어 죽어 길가에 시체가 쌓이는 등 끔찍한 상황이 묘사됩니다. "적은 물에 사는 물고기의 비유"는 굶주림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 구걸과 약탈: "삿갓을 쓰고, 발을 감싸고, 멀쩡한 모습을 한 사람들도 오로지 집집마다 구걸하며 다녔다"는 묘사는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생존을 위한 절박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헐어 시장에 내다 팔았"고, "딱한 사람들이 옛 절에 가서 불상을 훔치"는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 시체 처리의 어려움: "담장과 울타리 옆, 길가에 굶어 죽은 사람들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 치우는 일도 할 수 없으니, 썩는 냄새가 세상에 가득하고"라는 구절은 시체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음을 보여줍니다.
3. 인간 군상의 묘사:
-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정이 깊은 사람은 반드시 먼저 죽었다"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음식을 양보하여 먼저 죽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는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사랑과 희생정신이 존재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기근의 비극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 부모의 죽음: "부모가 먼저 죽었다"는 것은 일반적인 순리와 반대되는 상황으로, 기근의 참혹함을 강조합니다.
- 어린아이의 비극: "어머니가 죽어 누워 있는 줄도 모르고, 어린아이가 그 젖을 빨면서 엎드려 있는 경우"는 가장 비참하고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로, 기근의 잔혹함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4. 류교 법인의 활동:
- 아(阿) 자 쓰기: 류교 법인이 죽은 사람들의 이마에 '아(阿)' 자를 써서 인연을 맺게 한 것은 불교적인 의식으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행위입니다.
- 죽은 사람의 수: "4만 2천 3백여 개"라는 구체적인 숫자는 기근으로 인한 사망자가 엄청났음을 보여주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5. 과거와의 비교:
- 조쇼(長承) 연간의 기근: "가까이는 스토쿠인(崇徳院) 재위 때, 조쇼(長承) 연간이었던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지만, 그 세상의 모습은 알지 못한다"는 구절은 과거에도 비슷한 기근이 있었음을 언급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이 더욱 드물고 슬픈 일임을 강조합니다.
전체적인 의미와 주제:
이 글은 대기근이라는 재앙을 통해 인간 사회의 취약성과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보여줍니다. 자연재해 앞에 무력한 인간, 붕괴되는 사회 시스템,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사랑, 희생, 절망, 약탈 등)을 통해 무상(無常)이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또한,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종교적인 위안을 찾으려는 노력(류교 법인의 활동)을 보여주며,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합니다.
표현상의 특징:
- 사실적인 묘사: 기근의 상황과 사람들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독자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합니다.
- 비유와 상징: "적은 물에 사는 물고기의 비유"와 같이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여 굶주림의 고통을 효과적으로 표현했습니다.
- 객관적인 시선: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묘사하여 비극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 구체적인 숫자: 죽은 사람의 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참상의 규모를 짐작하게 합니다.
- 대조: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류교 법인의 활동 등 대조적인 상황을 제시하여 의미를 강조합니다.
또 겐랴쿠(元暦) 2년(1185년) 무렵, 큰 지진이 일어났다. 그 모습은 평소와는 달랐다. 산이 무너져 강을 메우고, 바다가 기울어 육지를 잠기게 했다. 땅이 갈라져 물이 솟아오르고, 바위가 쪼개져 골짜기로 굴러 떨어졌다. 바닷가에 젓는 배는 파도에 흔들리고, 길을 가는 말은 발 디딜 곳을 몰라 헤맸다. 하물며 교토 근처에는 곳곳의 절과 탑, 하나도 온전한 것이 없었다. 어떤 것은 무너지고, 어떤 것은 쓰러진 사이, 먼지와 재가 솟아올라 마치 불길이 거센 연기와 같았다. 땅이 흔들리고 집이 부서지는 소리는 천둥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집 안에 있으면 금방 찌부러질 것 같았다. 뛰쳐나가면 또 땅이 갈라졌다. 날개가 없으니 하늘로도 올라갈 수 없다. 용이 아니니 구름을 타고 오르기도 어렵다. 두려움 중에 가장 두려운 것은 그저 지진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어떤 무사의 외아들, 예닐곱 살쯤 되었을까, 담장 아래에 작은 집을 짓고 덧없는 소꿉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담장이 무너져 깔려 흔적도 없이 납작하게 찌부러졌다. 두 눈이 한 치(약 3cm)쯤 튀어나온 것을 부모가 끌어안고 소리도 아끼지 않고 슬퍼하며 울었다. 그것은 참으로 애처롭고 슬프게 보였다. 자식에 대한 슬픔에는 용맹한 자도 부끄러움을 잊는다고 생각하니, 안타깝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잠깐 만에 그쳤지만, 그 여진은 자주 끊이지 않았다. 평소에 놀랄 정도의 지진이 하루에 이삼십 번씩 안 흔들리는 날이 없었다. 십 일, 이십 일이 지나자, 점점 간격이 멀어져, 혹은 네다섯 번, 두세 번, 혹은 하루 걸러, 이삼일에 한 번 등, 대체로 그 여진은 석 달 정도였던 것 같다.
사대종(四大種: 지수화풍) 가운데 물, 불, 바람은 항상 해를 끼치지만, 땅은 특별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옛날 사이코(齊衡) 연간이었던가. 큰 지진이 일어나 도다이지(東大寺) 부처님의 머리가 떨어지는 등, 끔찍한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덧없는 것을 말하며 조금 마음의 번뇌가 옅어지는 듯 보였지만, 세월이 흘러 해가 바뀌자, 그 후로는 입 밖에 내어 말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이 글은 《방장기(方丈記)》의 일부로, 겐랴쿠 2년(1185년)에 발생한 큰 지진과 그로 인한 피해,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 지진의 묘사:
- 자연의 파괴: "산이 무너져 강을 메우고, 바다가 기울어 육지를 잠기게 했다" 등 과장법과 비유를 사용하여 지진의 엄청난 위력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땅, 바다, 바위 등 자연물들이 파괴되는 모습을 통해 지진의 공포와 파괴력을 강조합니다.
- 인간의 무력함: "바닷가에 젓는 배는 파도에 흔들리고, 길을 가는 말은 발 디딜 곳을 몰라 헤맸다", "날개가 없으니 하늘로도 올라갈 수 없다. 용이 아니니 구름을 타고 오르기도 어렵다" 등의 표현을 통해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 종교 시설의 파괴: "교토 근처에는 곳곳의 절과 탑, 하나도 온전한 것이 없었다"는 구절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종교적 믿음마저 흔들릴 정도의 재앙이었음을 시사합니다.
- 소리와 비유: "먼지와 재가 솟아올라 마치 불길이 거센 연기와 같았다", "땅이 흔들리고 집이 부서지는 소리는 천둥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등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지진 당시의 혼란스럽고 두려운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2. 어린아이의 죽음과 부모의 슬픔:
- 비극적인 죽음: "담장 아래에 작은 집을 짓고 덧없는 소꿉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담장이 무너져 깔려 흔적도 없이 납작하게 찌부러졌다"는 묘사는 지진의 비극성을 극대화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덧없는 놀이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 부모의 슬픔: "두 눈이 한 치(약 3cm)쯤 튀어나온 것을 부모가 끌어안고 소리도 아끼지 않고 슬퍼하며 울었다"는 묘사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극심한 슬픔을 절절하게 표현합니다.
-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 "자식에 대한 슬픔에는 용맹한 자도 부끄러움을 잊는다고 생각하니, 안타깝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보았다"는 구절은 자식을 잃은 슬픔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임을 강조하고,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3. 지진 이후의 상황과 사람들의 반응:
- 여진과 공포: "평소에 놀랄 정도의 지진이 하루에 이삼십 번씩 안 흔들리는 날이 없었다"는 표현은 지진 이후에도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해 사람들이 겪었을 지속적인 공포와 불안감을 보여줍니다.
- 시간의 흐름과 망각: "세월이 흘러 해가 바뀌자, 그 후로는 입 밖에 내어 말하는 사람조차 없었다"는 구절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재앙의 기억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인간의 망각과 적응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재앙의 교훈을 잊고 살아가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 덧없음(무상)에 대한 인식: "사람들은 모두 덧없는 것을 말하며 조금 마음의 번뇌가 옅어지는 듯 보였지만"이라는 구절은 지진을 통해 사람들이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욕망을 줄이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이 오래가지 못하고 망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한계점을 드러냅니다.
- 사대종: 불교 용어인 사대종(四大種: 지수화풍)을 언급하여, 물, 불, 바람과 달리 땅은(지진은) 특별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을 서술하고, 과거의 지진과 비교하여 이번 지진의 심각성을 강조합니다.
전체적인 의미:
이 글은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통해 인간의 무력함, 삶의 덧없음, 그리고 재앙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공포, 슬픔, 망각)을 보여줍니다. 특히, 어린아이의 죽음과 부모의 슬픔을 통해 비극성을 강조하고, 지진 이후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게 합니다. 또한, 무상함을 깨닫지만 결국 망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덧없는 욕망에 집착하지 말고 인생의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는 《방장기》 전체의 주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세상살이의 모든 어려운 일, 덧없고 허망한 내 몸과 집의 모습이 이와 같다. 하물며 처한 곳과 신분에 따라 마음을 괴롭히는 일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만약 변변치 못한 신분으로 권세 있는 집 곁에 사는 사람은 깊이 기뻐할 일이 있어도 크게 즐거워할 수 없다. 슬픈 일이 있어도 소리 높여 울 수 없다. 나아가고 물러섬이 자유롭지 못하고, 앉으나 서나 두려워 떠는 모습은 마치 참새가 매의 둥지에 가까이 다가간 것과 같다. 만약 가난하여 부잣집 이웃에 사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초라한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아첨하며 드나든다. 처자식과 하인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에도, 부잣집 사람이 업신여기는 기색을 듣는 것에도, 마음이 매 순간 흔들려 잠시도 편안할 수 없다. 만약 좁은 땅에 살면, 가까운 곳에 불이 났을 때 그 피해를 피할 수 없다. 만약 변두리에 살면, 오가는 길이 번거롭고 도적의 위험이 끊이지 않는다. 권세 있는 자는 탐욕이 깊고, 홀로 사는 자는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는다. 재물이 있으면 두려움이 많고, 가난하면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 남을 의지하면 내 몸이 남의 종이 되고, 남을 돌보면 마음이 은혜와 사랑에 얽매인다. 세상을 따르면 몸이 괴롭고, 따르지 않으면 미친 사람과 같다. 어느 곳을 차지하고, 어떤 일을 해야 잠시나마 이 몸을 의탁하고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 쪽 할머니의 집을 이어받아 오랫동안 그곳에 살았다. 그 후 인연이 끊기고 가세가 기울어, 몸 둘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집을 떠나 서른이 넘어서 내 마음대로 암자를 하나 지었다. 이것은 예전 살던 집에 비하면 십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 겨우 거처할 방만 만들고 제대로 집을 지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겨우 담장을 둘렀지만, 문을 세울 형편도 못 되었다. 대나무를 기둥 삼아 수레를 세워두는 곳으로 삼았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 때마다 위태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 거처는 강가와 가까워 홍수의 위험이 크고, 흰 파도(도적)의 위협도 잦았다. 모든 것이 덧없는 세상을 근심하며 마음을 괴롭힌 것이 삼십여 년이다. 그동안 때때로 어긋나는 운명을 겪으며, 스스로 짧은 운명을 깨달았다. 곧 쉰 살 봄을 맞아 집을 나와 세상을 등졌다. 본래 처자식이 없으니 버리기 어려운 인연도 없다. 몸에 벼슬이 없으니 무엇에 얽매이겠는가. 헛되이 오하라 산의 구름 속에 엎드려 또 몇 번의 봄과 가을을 보냈는가.
이 글 역시 《방장기(方丈記)》의 일부로, 앞선 부분에서 제시된 인생의 무상함이라는 주제를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상황에 비추어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덧없음:
- 신분과 처지에 따른 고통:
- 권세 있는 집 곁에 사는 사람: 기쁨과 슬픔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항상 눈치를 보며 두려움에 떠는 모습 (참새와 매 비유)
- 가난하여 부잣집 이웃에 사는 사람: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부자의 멸시와 조롱에 마음이 흔들리며 편안할 날이 없음
- 좁은 땅/변두리에 사는 사람: 화재의 위험, 도적의 위험 등 외부 환경으로부터 오는 불안과 공포
- 권세 있는 자/홀로 사는 자: 탐욕/업신여김
- 재물이 있는 자/가난한 자: 두려움/근심
- 남을 의지하는 자/남을 돌보는 자: 종속/얽매임
- 세상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 세상을 따르면 몸이 괴롭고, 따르지 않으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딜레마
- 근본적인 질문: "어느 곳을 차지하고, 어떤 일을 해야 잠시나마 이 몸을 의탁하고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세상 어디에서도 진정한 안식처를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을 드러냄
2. 개인적인 경험과 깨달음:
- 아버지 쪽 할머니의 집: 오랫동안 살았지만, 인연이 끊기고 가세가 기울어 결국 떠나야 했던 경험 (덧없는 소유)
- 서른 넘어 지은 암자: 예전 집에 비해 십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초라한 거처. 담장, 문, 기둥 등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모습은 불안정한 삶을 상징.
- 자연재해와 도적의 위협: 홍수, 흰 파도(도적) 등 끊임없는 외부 위협은 덧없는 세상에서 겪는 고통을 심화시킴.
- 삼십여 년간의 고뇌: 덧없는 세상을 근심하며 마음을 괴롭힌 시간. 어긋나는 운명, 짧은 운명에 대한 깨달음.
- 쉰 살에 출가: 세상을 등지고 오하라 산에 은둔. 처자식, 벼슬 등 세속적인 인연과 얽매임에서 벗어남. 헛되이 시간을 보냈다는 회한.
주제 및 의미:
- 무상함의 심화: 앞선 부분에서 제시된 무상함이라는 주제를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적인 문제(신분, 빈부격차, 환경 등)를 통해 더욱 심화시킴.
- 세속적인 삶의 고통: 세상 어디에서도 진정한 안식처를 찾을 수 없고, 어떤 형태로든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줌.
- 출가(은둔)의 의미: 세속적인 욕망과 얽매임에서 벗어나, 덧없는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표현상의 특징:
- 구체적인 상황 묘사: 다양한 사회 계층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독자의 공감을 유도.
- 비유와 상징: "참새가 매의 둥지에 가까이 다가간 것", "흰 파도(도적)" 등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여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
- 대구와 대조: 권세 있는 자/홀로 사는 자, 재물이 있는 자/가난한 자 등 대구와 대조를 사용하여 의미를 강조.
- 자전적인 경험: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글의 진정성을 높이고 독자의 공감을 얻음.
- 점층적 구성: 사회적 문제 제기 -> 개인적 경험 -> 깨달음과 출가 라는 점층적 구성을 통해 독자가 자연스럽게 주제에 다가가게 한다.
이 글은 단순한 개인의 경험담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고통, 그리고 덧없는 세상에서 진정한 안식처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예순의 이슬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말단의 거처를 마련했다. 이는 마치 사냥꾼이 하룻밤 묵을 곳을 만들고, 늙은 누에가 고치를 짓는 것과 같다. 이것을 중년의 거처와 비교하면 백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는 동안 나이는 해마다 기울고, 거처는 갈수록 좁아진다. 그 집의 모습은 세상의 보통 집과 전혀 다르다. 넓이는 겨우 사방 열 자(方丈)이고, 높이는 일곱 자가 안 된다. 거처할 곳을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땅을 다져 짓지 않았다. 흙단을 쌓고, 지붕을 덮고, 이음매마다 꺾쇠를 걸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서이다. 다시 지을 때, 얼마나 수고로움이 있겠는가. 실을 수 있는 것은 겨우 두 대의 수레뿐이다. 수레의 힘을 빌리는 것 외에는 다른 용도가 없다. 지금 히노산(日野山) 깊숙이 은거한 후, 남쪽에 임시로 햇볕 가리개를 내고, 대나무 발을 깔았다. 그 서쪽에 공양(閼伽) 선반을 만들고, 안에는 서쪽 담에 붙여 아미타불화를 모시고, 지는 해를 받아 미간의 빛으로 삼는다. 장막 문에는 보현보살과 부동명왕의 상을 걸었다. 북쪽 장지문 위에 작은 선반을 만들어 검은 가죽 상자 서너 개를 놓았다. 곧 와카(和歌), 관현악(管絃樂), 왕생요집(往生要集) 같은 초본들을 넣어 두었다. 곁에는 거문고(琴)와 비파(琵琶)를 각각 한 대씩 세워 두었다. 이른바 접는 거문고와 뜯는 비파이다. 동쪽에는 고사리 덩굴을 깔고, 짚단을 깔아 밤의 잠자리로 삼는다. 동쪽 담에 창문을 내고, 여기에 책상을 놓았다. 베개맡에는 숯통이 있다. 이것은 땔나무를 때기 위한 것이다. 암자의 북쪽에 작은 땅을 구획하고, 허술한 낮은 울타리를 둘러 밭으로 삼았다. 곧 여러 가지 약초를 심었다. 임시 암자의 모습은 이와 같다. 그곳의 모습을 말하자면, 남쪽에 도랑이 있고, 바위를 쌓아 물을 가두었다. 숲이 집에 가까워 땔나무를 줍는 데 어려움이 없다. 이름을 도야마(外山)라고 한다. 마삭줄 덩굴이 발자취를 덮었다. 골짜기가 깊지만 서쪽은 트여 있다. 관념(觀念)의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봄에는 등나무 꽃을 본다. 자줏빛 구름처럼 서쪽에서 향기가 난다. 여름에는 뻐꾸기 소리를 듣는다. 지저귈 때마다 사출(死出) 산길(죽음의 길)을 약속한다. 가을에는 쓰르라미 소리가 귀에 가득하다. 덧없는 세상을 슬퍼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겨울에는 눈을 사랑한다. 쌓였다 녹는 모습이 죄업(罪障)에 비유할 만하다. 만약 염불이 귀찮고, 독경이 내키지 않을 때는 스스로 쉬고, 스스로 게으름을 피워도 방해할 사람도 없고, 부끄러워할 친구도 없다.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혼자 있으면 입으로 짓는 업을 닦을 수 있다. 반드시 계율을 지킨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경계가 없으니 무엇을 가지고 깨뜨리겠는가. 만약 배를 타고 강물에 몸을 맡기는 아침에는, 언덕의 강을 오가는 배를 바라보며 만샤미(滿沙彌)의 풍정을 훔치고, 만약 계수나무에 바람이 불어 잎을 흔드는 저녁에는 심양강(潯陽江)을 떠올리며 겐토쿠(源都督, 미나모토노 쓰네노부)의 가락을 익힌다. 만약 흥이 넘치면, 때때로 소나무 울림에 추풍락(秋風樂)을 곁들이고, 물소리에 유천(流泉)의 곡을 연주한다. 재주는 보잘것없지만, 남의 귀를 즐겁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혼자 연주하고, 혼자 읊조리며, 스스로 마음을 기를 뿐이다. [ひとりしらべ、ひとり詠じて、みづから心を養ふばかりなり。]
이 글은 가모노 조메이의 《방장기(方丈記)》의 일부분으로, 조메이가 예순의 나이에 히노산에 은거하며 지은 암자 '방장(方丈)'과 그곳에서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 암자 '방장'의 묘사:
- 임시 거처: '사냥꾼이 하룻밤 묵을 곳', '늙은 누에가 고치를 짓는 것'에 비유하며, 임시적이고 소박한 거처임을 강조합니다. 중년의 거처와 비교하여 '백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표현하여, 크기가 매우 작고 간소함을 드러냅니다.
- 이동 가능한 구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서' 지어졌다고 설명합니다. 흙단을 쌓고 지붕을 덮고 꺾쇠를 걸어 쉽게 해체하고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세속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조메이의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 크기와 구조: 넓이 사방 열 자(약 3m), 높이 일곱 자(약 2.1m) 미만의 작은 공간입니다. 땅을 다져 짓지 않았다는 것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 내부 배치: 불교적 색채가 강합니다. 아미타불화, 보현보살과 부동명왕 상, 공양 선반 등 불교 수행과 관련된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와카, 관현악, 왕생요집 등의 책과 거문고, 비파 등의 악기를 두어 문학, 음악, 불교를 아우르는 조메이의 관심사를 보여줍니다.
- 생활 공간: 고사리 덩굴과 짚단을 깔아 잠자리를 마련하고, 숯통을 두어 땔나무를 때는 등 소박한 생활 모습을 묘사합니다.
- 밭: 암자 북쪽에 작은 밭을 만들어 약초를 심는 것은 자급자족하는 생활과 자연과의 교감을 보여줍니다.
2. 주변 환경과 생활:
- 자연과의 조화: 도랑, 숲, 땔나무, 도야마(外山), 마삭줄 덩굴 등 자연물을 언급하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사계절의 변화: 봄에는 등나무 꽃, 여름에는 뻐꾸기 소리, 가을에는 쓰르라미 소리, 겨울에는 눈 등 사계절의 변화를 묘사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를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불교 수행: 염불, 독경, 관념(觀念) 등 불교 수행을 언급하며, 세속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자유로운 삶: '스스로 쉬고, 스스로 게으름을 피워도 방해할 사람도 없고, 부끄러워할 친구도 없다'는 표현에서, 세속적인 규범이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조메이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예술 활동: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고, 시를 읊조리며, 옛 사람들의 풍류를 흉내 내는 등 예술 활동을 통해 마음을 수양하고 즐거움을 얻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혼자 연주하고, 혼자 읊조리며, 스스로 마음을 기를 뿐이다.')
3. 주제 및 표현상의 특징:
- 주제 : 은둔 생활의 소박함과 자유로움,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무상한 세상 속에서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그렸습니다.
- 비유와 상징: 암자를 '사냥꾼의 임시 거처', '늙은 누에의 고치'에 비유하고, 눈을 '죄업'에 비유하는 등 다양한 비유와 상징을 사용했습니다.
- 자연 묘사: 사계절의 변화와 주변 자연환경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암자 생활의 정취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 대구와 반복: 유사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거나 대구를 사용하여 리듬감을 형성하고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 불교적, 문학적 배경: 불교 용어 및 경전, 그리고 다른 문학 작품(만샤미, 겐토쿠 등)을 인용하여 글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이 글은 조메이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무상한 세상 속에서 덧없는 욕망을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산기슭에 섶나무로 지은 암자가 하나 있다. 바로 이 산지기가 사는 곳이다. 거기에 어린아이가 있어 때때로 찾아와 서로 이야기하며 지낸다. 만약 무료할 때는 이 아이를 벗 삼아 함께 놀러 다닌다. 아이는 열여섯 살, 나는 예순 살, 그 나이는 너무나 다르지만, 마음을 달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삘기를 뽑고, 돌배를 딴다. 또 벼 이삭을 모으고, 미나리를 캔다. 혹은 스소와(すそわ)의 논에 가서 떨어진 벼 이삭을 주워 묶음을 만든다. 날씨가 화창하면 산마루에 올라 멀리 고향 하늘을 바라본다. 고하타 산(木幡山), 후시미(伏見) 마을, 도바(鳥羽), 하즈카시(羽束師)를 본다. 경치 좋은 곳은 막힘이 없어 마음을 달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걷는 것이 힘들지 않고, 뜻이 멀리까지 닿을 때는 여기서부터 산등성이를 따라 스미야마(炭山)를 넘어, 가사토리(笠取)를 지나, 이와마(岩間)에 참배하고, 혹은 이시야마(石山)를 참배한다. 혹은 아와즈(粟津) 들판을 지나 세미마루(蝉丸) 옹의 자취를 찾고, 다가미 강(田上川)을 건너 사루마루 다유(猿丸大夫)의 무덤을 찾는다. 돌아오는 길에는 때에 따라 벚꽃을 꺾고, 단풍을 찾고, 고사리를 꺾고, 나무 열매를 주워, 부처님께 바치기도 하고, 집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밤이 고요하면 창밖의 달을 보며 옛사람을 그리워하고, 원숭이 울음소리에 소매를 적신다. 풀숲의 반딧불은 멀리 마키 섬(眞木島)의 횃불과 비슷하고, 새벽 비는 자연스레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와 같다. 산새가 홰를 치며 우는 소리를 들어도, 아버지일까 어머니일까 의심하고, 산봉우리의 관문이 가까워질수록 세상과 멀어진 정도를 안다. 혹은 묻어둔 불을 다시 피워 늙은이의 잠을 깨우는 벗으로 삼는다. 무시무시한 산은 아니지만, 부엉이 소리를 애처롭게 여기는 것을 포함해, 산중의 경치는 때때로 형언할 수 없는 감흥을 자아낸다. 하물며 깊이 생각하고 깊이 깨달은 사람에게는 이것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이 글은 앞선 글과 마찬가지로 가모노 조메이의 《방장기(方丈記)》의 일부분으로, 은둔 생활의 한 단면과 그 속에서 느끼는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인생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은둔 생활과 교류:
- 섶나무로 지은 암자: 세속과 떨어진 은둔자의 소박한 삶을 상징합니다.
- 산지기와 어린아이: 고독한 은둔 생활 속에서도 사람들과의 교류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어린아이와의 교류는 세대 차이를 초월한 순수한 우정을 나타내며, 마음을 달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 함께 놀러 다니는 행위 (삘기 뽑기, 돌배 따기 등): 자연 속에서 소박한 즐거움을 찾고, 어린아이와 교감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2. 자연과의 교감 및 풍경 묘사:
- 고향 하늘, 산, 마을, 들판: 멀리 떨어진 고향과 주변의 자연 풍경을 바라보며 향수와 위안을 얻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구체적인 지명(고하타 산, 후시미 마을 등)을 언급하여 현실감을 높이고, 경치를 통해 마음을 달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 산등성이를 따라 걷는 여정: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거닐며 여러 장소를 방문하는 과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는 구도의 여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벚꽃, 단풍, 고사리, 나무 열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에서 얻는 소박한 선물들을 묘사하며, 이를 부처님께 바치거나 집으로 가져가는 행위는 자연에 대한 감사와 경외심을 나타냅니다.
- 달, 원숭이 울음소리, 반딧불, 새벽 비, 산새 소리: 자연의 소리와 풍경을 통해 옛사람을 그리워하고, 슬픔을 느끼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등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3. 인생에 대한 성찰:
- "산봉우리의 관문이 가까워질수록 세상과 멀어진 정도를 안다": 세속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정신적으로 더욱 자유로워지고 깨달음에 가까워짐을 의미합니다.
- 묻어둔 불: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 혹은 잊고 지냈던 내면의 열정을 상징하며, 이를 다시 피워 늙은이의 잠을 깨우는 벗으로 삼는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되찾고 성찰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 부엉이 소리, 산중의 경치: 무섭지만 애처롭게 느껴지는 부엉이 소리와 형언할 수 없는 감흥을 자아내는 산중의 경치는 인생의 희로애락과 깨달음을 상징합니다.
4. 더 깊은 깨달음에 대한 암시:
- "하물며 깊이 생각하고 깊이 깨달은 사람에게는 이것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이 글에서 묘사된 자연과의 교감과 은둔 생활의 경험은 깨달음의 일부일 뿐이며, 더 깊은 성찰과 깨달음의 경지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전체적인 의미와 주제:
이 글은 은둔 생활 속에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얻는 평화와 위안, 그리고 인생에 대한 성찰을 보여줍니다. 세속적인 욕망과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정신적인 풍요로움과 깨달음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표현상의 특징:
- 감각적인 묘사: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자연의 아름다움과 은둔 생활의 정취를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 비유와 상징: 섶나무 암자, 묻어둔 불, 부엉이 소리 등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여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 대구와 반복: 유사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거나 대구를 사용하여 리듬감을 형성하고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 간결하고 서정적인 문체: 꾸밈없이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은둔 생활의 정취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대체로 이곳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는 잠깐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덧 5년이 지났다. 임시 암자도 점점 낡은 집이 되어 처마에는 낙엽이 깊고, 흙담에는 이끼가 끼었다. 자연스레 세상 소식을 들으면, 이 산에 들어온 후, 귀한 분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많이 듣는다. 하물며 그 수가 적지 않은 사람들은 다 알 수조차 없다. 잦은 화재로 불타 없어진 집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오직 임시 암자만이 평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좁지만 밤에 누울 침상이 있고, 낮에 앉을 자리가 있다. 한 몸을 깃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소라게는 작은 소라 껍데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자기 몸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수리는 거친 바닷가에 사는데,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와 같다. 자신을 알고 세상을 알면, 바라지도 않고 섞이지도 않고, 그저 고요함을 바라고, 근심 없음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대체로 세상 사람들이 집을 짓는 것은 반드시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혹은 처자식, 권속을 위해 짓고, 혹은 친한 친구를 위해 짓는다. 혹은 주군, 스승, 재물, 말, 소를 위해 짓기도 한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위해 지었고, 남을 위해 짓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세상의 모습과 내 처지를 보면, 함께할 사람도 없고, 의지할 하인도 없다. 설령 넓게 지은들 누구를 묵게 하고, 누구를 살게 하겠는가.
무릇 사람이 친구를 사귈 때는 부유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겉으로 친절한 사람을 우선으로 한다. (그러나) 반드시 인정이 있거나 정직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좋아하기 보다는, 그저 풍류(絲竹)와 꽃, 달을 벗 삼는 것이 낫다. 사람이 남의 종이 될 때는 상벌이 엄격한지를 살펴보고, 은혜가 두터운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비록 (주인이) 몹시 가엾게 여긴다 하더라도, 편안하고 한가로운 것을 바라지 않고, 그저 제 자신을 종으로 삼는 것이 낫다. [それ人の友たるものは富めるをたふとみ、ねんごろなるを先とす。かならずしも情あると、すぐなるとをば愛せず、たゞ絲竹花月を友とせむにはしかじ。人のやつこたるものは賞罰のはなはだしきを顧み、恩の厚きを重くす。更にはごくみあはれぶといへども、やすく閑なるをばねがはず、たゞ我が身を奴婢とするにはしかず。] 만약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곧 스스로 몸을 쓴다.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남을 부리고 남을 돌아보는 것보다는 편하다. 만약 걸어야 할 일이 있으면, 스스로 걷는다. 괴롭기는 하지만, 말과 안장, 소달구지에 마음을 괴롭히는 것만 못하다. 지금 한 몸을 나누어 두 가지 일을 한다. 손은 하인이 되고, 발은 탈것이 되어, 내 마음에 잘 맞는다. 마음 또한 몸의 괴로움을 알기 때문에, 괴로울 때는 쉬게 하고, 힘이 있을 때는 쓴다. 쓴다고 해도 자주 과하게 하지 않고, 귀찮다고 해도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없다. 하물며 항상 걷고, 항상 움직이는 것은 양생이 될 것이다. 어찌 헛되이 쉬고 있을 것인가. 남을 괴롭히고 남을 번뇌하게 하는 것은 또한 죄업이다. [人を苦しめ人を惱ますはまた罪業なり。] 어찌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것인가.
이 글 역시 《방장기(方丈記)》의 일부분으로,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은둔하며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삶의 방식과 철학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1. 임시 암자와 5년의 세월:
- 임시 암자: 처음에는 임시 거처로 생각했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낡고 이끼 낀 암자는 작가의 삶의 터전이자, 세속과 단절된 공간을 상징하게 됩니다.
- 5년의 세월: 세속과의 단절,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깨달음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귀한 사람들의 죽음, 잦은 화재 등 세상의 무상함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암자에서의 삶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지게 됩니다.
- 평온하고 두려움 없는 암자: 좁지만 필요한 것(침상, 앉을 자리)을 갖추고 있어, 작가에게 육체적, 정신적 안식처를 제공합니다. 이는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작가의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2. 소라게와 물수리의 비유:
- 소라게와 물수리: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선택하는 지혜를 가진 존재들입니다. 소라게는 작은 껍데기를, 물수리는 거친 바닷가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고 생존하기 위한 본능적인 선택입니다.
- 자신을 알고 세상을 알면: 작가 역시 소라게와 물수리처럼 자신과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에 맞는 삶의 방식을 선택합니다. 즉,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고요함과 근심 없음을 추구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3. 집을 짓는 이유와 '나'를 위한 집:
- 세상 사람들의 집: 처자식, 권속, 친구, 주군, 스승, 재물, 가축 등 다양한 타인을 위한 목적으로 집을 짓습니다. 이는 세속적인 관계와 욕망에 얽매인 삶을 의미합니다.
- '나'를 위한 집: 작가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집을 짓습니다. 함께할 사람도, 의지할 하인도 없는 상황에서 넓은 집은 무의미하며, 오직 자신의 안식과 수행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집이 필요합니다. 이는 세속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4. 친구와 종에 대한 생각:
- 친구: 부유함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함보다는 풍류(음악)와 자연(꽃, 달)을 벗 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진정한 교감과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의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 종: 엄격한 상벌이나 두터운 은혜보다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부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5. 자신의 몸을 부리는 삶:
- 한 몸을 나누어 두 가지 일을 한다: 손은 하인, 발은 탈것으로 삼아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노동의 가치를 긍정하고, 자급자족하는 삶의 즐거움을 나타냅니다.
- 마음과 몸의 조화: 몸의 괴로움을 아는 마음은 적절한 휴식과 노동을 통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합니다. 이는 몸과 마음의 균형을 중시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 양생(養生): 항상 걷고 움직이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며, 헛되이 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통해 건강과 활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 남을 괴롭히는 것의 죄업: 타인의 힘을 빌리는 것은 그들을 괴롭히고 번뇌하게 하는 죄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윤리적으로도 옳다고 믿는 작가의 신념을 보여줍니다.
전체적인 의미와 주제
이 글은 세속적인 가치와 관계에서 벗어나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작가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정신적인 만족을, 타인과의 관계보다는 자신과의 관계를, 의존적인 삶보다는 자립적인 삶을 중시하는 작가의 가치관이 드러납니다. 또한, 몸과 마음의 조화를 통해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납니다.
입고 먹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등나무 옷, 삼베 이불, 얻는 대로 몸을 가린다. 들판의 삘기, 산마루의 나무 열매, 겨우 목숨을 이을 뿐이다. 사람과 섞이지 않으니, 모습을 부끄러워할 후회도 없다. 먹을 것이 부족하면 소홀해지지만, 오히려 맛을 달게 여긴다. 대체로 이러한 것들은 즐겁고 부유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 한 몸을 가지고, 옛날과 지금을 비교할 뿐이다. 대개 세상을 벗어나 몸을 버린 후, 원망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목숨은 천운에 맡기고, 아끼지 않고 싫어하지 않는다. 몸은 뜬구름에 비유하여, 의지하지 않고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한평생의 즐거움은, 선잠 자는 베개 위에 있고, 평생의 소망은, 때때로의 아름다운 경치에 머무른다.
저 삼계는 오직 한마음뿐이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소와 말, 칠보도 소용없고, 궁전과 누각도 바라지 않는다. 지금 쓸쓸한 거처, 한 칸짜리 암자를 스스로 사랑한다. 어쩌다 도읍에 나가면, 거지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돌아와 여기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이 세속의 먼지에 물드는 것을 불쌍히 여긴다. 만약 사람들이 이 말을 의심한다면, 물고기와 새의 영역을 보라. 물고기는 물에 싫증 내지 않는다. 물고기가 아니라면 그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새는 숲을 바란다. 새가 아니라면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한가롭게 사는 즐거움 또한 이와 같다. 살지 않고서야 누가 깨달을 것인가.
원래 한평생의 달 그림자 기울어져, 남은 수명이 산등성이에 가깝다. 갑자기 삼도의 어둠으로 향할 때, 무슨 업을 탓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사람을 가르치시는 뜻은, 모든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초가 암자를 사랑하는 것도 허물이고, 한적함에 집착하는 것도 장애가 될 것이다. 어찌 쓸데없는 즐거움을 말하고, 헛되이 아까운 시간을 보낼 것인가.
고요한 새벽, 이 이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스스로 마음에 묻고 말한다. 세상을 벗어나 산림에 섞이는 것은, 마음을 다스려 도를 행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너의 모습은 성인을 닮았지만, 마음은 더러움에 물들어 있다. 거처는 곧 유마거사의 자취를 더럽히고 있지만, 지키는 바는 겨우 주리반특의 행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이 빈천한 과보가 스스로 괴롭히는 것인가, 아니면 헛된 마음이 이르게 하여 미치게 하는 것인가. 그때 마음은 다시 대답할 말이 없다. 다만 곁에 혀를 빌려 부르지 않아도 염불을 두세 번 외우고 그쳤다.
때는 건력(建暦) 2년(1212), 음력 3월 그믐께, 소몬 렌인(桑門蓮胤)이, 도야마(外山)의 암자에서 이것을 적는다.
이 글은 《방장기(方丈記)》의 일부분으로, 세속을 떠나 은둔하는 삶의 방식과 그 안에서 느끼는 깨달음, 그리고 자기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1. 의식주와 세속과의 단절:
- 등나무 옷, 삼베 이불, 삘기, 나무 열매: 소박하고 간소한 의식주를 나타냅니다. 이는 세속적인 욕망(물질적인 풍요)에서 벗어나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사람과 섞이지 않으니: 세속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나 후회 없이, 오직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살아감을 나타냅니다.
- 먹을 것이 부족하면 소홀해지지만, 오히려 맛을 달게 여긴다: 부족함 속에서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의 필수 조건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2. 은둔 생활의 즐거움과 깨달음:
- 세상을 벗어나 몸을 버린 후, 원망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세속적인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를 묘사합니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삶과 죽음에 초연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 목숨은 천운에 맡기고, 몸은 뜬구름에 비유: 삶의 덧없음을 인식하고,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 한평생의 즐거움은, 선잠 자는 베개 위에 있고, 평생의 소망은, 때때로의 아름다운 경치에 머무른다: 소박한 일상과 자연 속에서 진정한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태도를 반영합니다.
3. 한 칸 암자와 세속에 대한 연민:
- 쓸쓸한 거처, 한 칸짜리 암자를 스스로 사랑한다: 작고 소박한 암자를 통해 은둔하는 삶의 공간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이곳에서 자신만의 깨달음을 추구하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거지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다른 사람이 세속의 먼지에 물드는 것을 불쌍히 여긴다: 세속에 나갔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과, 세속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대비시켜 보여줍니다. 이는 세속적인 가치와 은둔자의 가치관 사이의 갈등과, 은둔자의 우월감을 드러냅니다.
- 물고기와 새의 비유: 물고기와 새가 각각 물과 숲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자신도 한가로운 삶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비유를 통해 은둔 생활의 즐거움과 필연성을 강조합니다.
4. 자기 성찰과 종교적 귀의:
- 삼계는 오직 한마음뿐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불교의 유심론(唯心論)적 사상을 나타냅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보여줍니다.
- 삼도의 어둠: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 아귀, 축생의 세 가지 악도(惡道)를 의미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며, 자신의 업(業)에 대한 걱정을 드러냅니다.
- 집착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상기시킵니다.
- 초가 암자를 사랑하는 것도 허물이고, 한적함에 집착하는 것도 장애가 될 것이다: 은둔 생활과 한적함에 대한 자신의 집착마저도 깨달음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깊은 자기 성찰을 보여줍니다.
- 세상을 벗어나 산림에 섞이는 것은, 마음을 다스려 도를 행하기 위함이다: 은둔의 목적이 단순히 세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수양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함임을 밝힙니다.
- 모습은 성인을 닮았지만, 마음은 더러움에 물들어 있다: 자신의 외적인 모습(은둔자)과 내적인 상태(세속적인 욕망) 사이의 괴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 염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종교(불교)에 귀의하여 구원을 바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체적인 의미:
이 글은 세속을 떠나 은둔하는 삶 속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깨달음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수행하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은둔 생활의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그 안에서도 집착과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한계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종교적 귀의를 통해 구원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문체의 특징:
- 자전적이고 성찰적인 어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어조를 사용합니다.
- 비유와 상징: 물고기, 새, 뜬구름, 암자 등 다양한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여 은둔 생활의 의미와 깨달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 불교 용어 사용: 삼계, 삼도, 업, 염불 등 불교 용어를 사용하여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깨달음과 수행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 대구와 대조: "거지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 다른 사람이 세속의 먼지에 물드는 것을 불쌍히 여긴다", "모습은 성인을 닮았지만, 마음은 더러움에 물들어 있다" 등 대구와 대조를 사용하여 의미를 강조하고 리듬감을 형성합니다.
"달빛은 (산의) 끝자락에 스며들고, 매정하게도 (달빛을) 가로막는구나. (가려지지 않은) 온전한 빛을 볼 방법이 없을까.
[月かげは入る山の端もつらかりきたえぬひかりをみるよしもがな]"
방장기 (方丈記) (현대일본어 번역 기반)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가는 강물은 변하여 끊임이 없다. 급류에 나타나는 물보라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나타나자마자 곧 사라지고 또 새로 나타난다. 세상 사람들의 운명이나, 사람들이 사는 집의 변화가 심한 것 등은 강물의 흐름에 비유될 수 있으며, 또 급류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보라처럼 덧없는 것이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도읍 안에 빽빽하게 늘어선 집들은 각자의 아름답고 높은 용마루를 서로 경쟁하듯 뽐내고 있다. 이러한 여러 사람들의 집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으로 결코 끊이지 않지만, 이런 귀천 다양한 사람들의 집 안에서 불변하는 것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옛 모습 그대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집은 거의 없고, 극히 드물게 옛 아름다움을 간직한 것을 발견하는 것조차 매우 어렵다. 이곳에 아름답고 훌륭한 집이 있었는데 하고 보면 그 집은 이미 작년에 불타 없어졌을 수도 있다. 또 이런 곳에 이렇게 훌륭한 집은 없었는데 하고 보면 예전의 초라한 집은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이토록 훌륭한 집이 들어서 있기도 하다. 이처럼 예전에 부자여서 훌륭하고 아름다운 집에 살던 사람이 지금은 몰락하여 옛집에 비하면 판잣집 같은 곳에 살기도 한다. 이런 운명이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은 없을까 하고 보면 그런 사람은 좀처럼 찾을 수 없고, 장소는 옛날 그대로인데, 또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 명 중 겨우 두세 명밖에 찾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참으로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운명의 길이 너무도 변화무쌍함을 보면 감동을 금할 수 없다.
인간의 이런 운명,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어갈 수밖에 없는 덧없는 운명, 변화무쌍한 운명,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해 보면 정말로, 맺혔다가는 곧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맺히는 물거품과 같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급류에 맺히고 또 사라지는 물보라의 운명, 그것이 결국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운명인 것이다.
대체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리고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등을 생각해 보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고 사람들은 이 수수께끼 속에서 태어나,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다. 물에 뜨는 거품이 맺히고 또 사라지듯이.
이렇듯 덧없고, 풀 수 없는 운명을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또 이 세상에서 무엇을 즐거워하고, 무엇을 괴로워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거품처럼 사라져야 하는 인생 속에서 어떤 일에 재미를 느끼고 또 어떤 일로 괴로워하는지 많은 사람들의 답을 구한다면 각양각색의 답이 나와 결코 하나로 묶을 수 없고, 결국 무엇을 괴로워하고, 무엇을 즐거워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도 하나의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긴 세월 동안 화재 때문에, 지진 때문에, 혹은 다른 여러 가지 변고 때문에, 훌륭하고 아름다운 집이 없어지거나, 또 부잣집이 가난해지거나, 귀한 지위에 있던 사람이 천한 신분으로 몰락하는, 이러한 사람들이나 그 집의 변화무쌍함은 마치 아침나팔꽃에 맺힌 아침 이슬과 그 꽃과 같은 것이다. 꽃은 이슬의 집이다. 이슬은 나팔꽃의 주인이다.
이슬이 먼저 땅에 떨어질까, 꽃이 먼저 시들어 버릴까, 어느 쪽이든 결국은 떨어지고 시들어야 할 것이다. 이슬이 저녁 햇살이 비칠 때까지 남아 있을 리 없고, 또 나팔꽃도 마찬가지로, 아침 해가 높이 뜨면 시들어 버릴 운명인 것이다. 사람들과 사람들의 집도 결국은 나팔꽃에 맺힌 아침 이슬과 나팔꽃의 운명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먼저 몰락할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몰락하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벌써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왔는데, 철이 든 후로 여러 가지 보고 들은 세상 일에는 정말로 신기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많은 견문한 것들을 조금 떠올려 적어 보기로 하겠다.
옛날 일이라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안겐 3년 4월 28일쯤이었던 것 같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고, 결국에는 큰 폭풍이 되었던 날의 일이다. 교토의 동남부 어느 집에서 공교롭게도 불이 났다. 워낙 강풍이 휘몰아치는 때였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불은 동북쪽으로 번져 나갔다. 그리고 결국에는 주작문, 대극전, 대학료, 민부성 등 중요한 건축물들을 하룻밤 사이에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이 대화재의 발화점인 어느 집은 나중에 조사에 따르면 히구치토미노코지에 있는 집으로, 병자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타오르는 불길은 때마침 불어 닥친 돌풍에 휩싸여 부채를 펼친 듯한 모양으로 끝이 넓게 퍼져 나갔다. 발화점에서 멀리 떨어진 집들은 맹렬한 연기에 완전히 둘러싸여 사람들은 연기에 숨이 막혀 호흡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불타고 있는 집들 근처의 도로는 불길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의 통행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도읍의 하늘은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때문에 밤에는 불바다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얼마나 강한 불이 얼마나 많은 집들을 불태우려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또 한편 바람은 더욱 거세질 뿐 전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 강풍은 때때로 불길을 먼 곳으로 날려 보내 또 새롭게 화재를 일으켜 더욱 불길이 번져 나가게 했다.
폭풍과 화재의 한가운데에 갇힌 교토 사람들은 완전히 반쯤 미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었고, 모두 살아 있다는 느낌조차 없이, 그저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망연자실하여 전혀 손쓸 방법이 없었다. 불어 닥치는 연기에 휩싸인 사람은 호흡이 멎어 털썩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고, 또 불어 닥치는 불길에 몸이 휩싸인 사람들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귀한 목숨을 잃는 일도 빈번했다. 이런 혼란과 위험 속에서 다행히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무사히 탈출한 사람들도 자신의 집에서 소중한 가재도구를 꺼내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고, 소중한 가재도구가 모두 화재로 잿더미가 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처럼 불타 없어진 여러 가지 가재도구, 세간, 혹은 보물, 그중에는 분명 조상 대대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도 있었을 텐데, 그것들의 값어치가 얼마나 되었을지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막대한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공경의 저택이 이번 대화재로 16채나 불타 없어졌을 정도이니, 하물며 신분이 천한 서민들의 집이 불타 없어진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대화재는 교토 거리의 3분의 1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대화재로 그 존귀한 목숨까지 잃었다. 이들 중에는 청년, 소년으로 장래에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을지 모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조차 이런 지경이 되었으니, 하물며 짐승인 말이나 소가 불에 타 죽은 것은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인간은 본래 여러 가지 쓸데없는 짓을 하는 존재이지만, 특히 이번처럼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잿더미로 돌려보내는 위험성이 많은 도시 안에서, 하루아침에 재가 될 운명도 모르는 채, 자신의 집에 엄청난 돈을 들여, 이렇다 저렇다 여러 가지로 고심하며 짓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절실히 깨달았다. 이렇게 고생해서 지어도 하루아침에 불길에 휩싸이면 곧바로 잿더미가 되어 버리는데, 정말 건물에 돈을 들이거나 고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지쇼 4년(1180년) 4월경에는 또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일어난 일이 있었다. 교고쿠 부근에서 일어나 로쿠조 근처까지 불었는데, 정말로 무시무시한 기세로 3, 4정(약 327~436m)이나 불어가는 동안, 부딪치는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어떤 집이든 거의 뒤집거나 파괴하거나 손상시켰다. 그 정도로 엄청난 기세로 불어 닥친 것이었다.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그대로 땅바닥에 납작하게 쓰러진 집도 있었고, 대들보와 기둥만 남고 장지문이나 벽은 완전히 날아가 버린 집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문을 날려 4, 5정(약 436~545m)이나 떨어진 곳으로 가져가 버리거나, 담장을 날려 버려 이웃집과의 경계를 없애고 정원을 이어 버리는 등 곳곳에서 엄청난 희비극을 일으켰다. 집집마다 있는 온갖 가재도구들도 뿌리째 하늘로 날려 버렸다. 지붕을 덮고 있는 노송나무 껍질이나 널빤지 따위는 마치 겨울철에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듯 어지럽게 하늘로 솟아올랐다.
연기가 도읍의 하늘을 완전히 덮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도읍의 하늘에는 먼지가 자욱하게 날아올라 햇빛 때문에 어둡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들의 말소리 등은 미친 듯이 불어 닥치는 강풍 때문에 완전히 묻혀 버려 들리는 소란이 아니었다. 도읍의 거리에 들리는 것은 오직 바람이 세차게 불어 닥치는 무시무시한 소리뿐이었다. 그 바람이 거칠게 부는 모습은 마치 전해 듣는 지옥의 업풍(業風)이 현실 세계에 부는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무너진 집, 파손된 집, 그런 집들의 처참한 모습은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또 주택 등이 파손된 곳을 수리하려고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큰 것이 날아와 부딪쳐 슬프게도 불구자가 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말로 안타까운 사람들이다. 이 회오리바람은 또 서남쪽으로 이동해 가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손해를 입혀 사람들을 슬프게 했다. 춘하추동을 통틀어 바람이 불지 않는 때는 없지만, 평소의 바람은 운치 있는 기분 좋은 바람인데 이번 바람은 무시무시한 바람으로, 수많은 손해를 사람들에게 입혔다. 이런 바람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바람으로 정말 드문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참사를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분명 하늘의 신이 지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경고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쇼 4년 6월경의 일이었는데, 갑자기 도읍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 일이 있었다. 이 일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불시에 행해졌기 때문에 도읍의 주민들은 놀라고 당황했다.
대체로 교토에 도읍이 정해진 것은 사가 천황 때였고, 이미 400여 년이나 지났으니, 뭔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렇게 쉽게 도읍을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걱정했고, 그 걱정 때문에 평화롭던 인심이 어지럽혀진 것도 정말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걱정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마침내 천황은 물론, 대신, 공경들도 모두 새로운 도읍인 후쿠하라로 이전해 버렸다. 세상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이제 단 한 명도 옛 도읍인 교토에 사는 사람은 없어져 버렸다. 지위가 높고 벼슬이 높은 것을 유일한 희망이자 이상으로 삼는 사람들이나, 천황의 총애를 바라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옛 도읍을 버리고 새로운 도읍인 후쿠하라로 이주하는 것을 오로지 마음속에 두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뒤처져 지위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이상도 없는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해 슬퍼하고, 시름에 잠기면서도 옛 도읍을 버리지 못하고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고위 고관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없어진 옛 도읍의 모습은 너무나 쓸쓸했다. 처마를 나란히 하고 그 아름다움을 다투던 당당한 집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사는 사람도 없고 손질도 제대로 되지 않아 황폐해져 갔다. 또 그 집들 중에는 부서져 후쿠하라로 뗏목으로 엮여 요도가와 강에 띄워 보내진 것도 많다. 부서진 저택 터는 보는 사이에 밭이 되어 버렸다. 정말 옛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큰 변고는 인심에도 큰 영향과 변화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보는 사이에 도시인으로서의 우아한 마음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그런 마음이 여러 곳에 나타났는데, 우선 옛날처럼 우차(牛車) 등에 귀족들이 타는 것도, 이제 그런 것에는 타지 않고 무가(武家) 풍으로 말을 타고 그 민첩한 곳을 좋아한다는 것에서 나타났다. 이것만 봐도 옛날처럼 우아하고 느긋한 풍조는 사라져 버렸다. 또 영지를 바라는 것도 지금은 헤이케(平家)와 연고가 많은 서남해의 영지를 사람들은 원했지만, 새로운 도읍에서 멀리 떨어진 동북쪽의 장원은 아무도 바라는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 이처럼 모든 것이 변해 버린 것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셋쓰 국 후쿠하라의 새로운 도읍의 모습을 볼 기회를 얻어 그 상태를 말해 보면, 우선 그 넓이는 교토에 비하면 정말로 좁아서, 교토를 본떠 시가지를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북쪽은 산이 되어 높고, 남쪽은 바다에 면해 낮다. 그리고 해안에 가깝기 때문에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유난히 강한 곳이라 그다지 좋은 땅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황궁은 산속에 지어져 있었다. 문득 그 건물을 보니 사이메이 천황의 아사쿠라 행궁의 나무로 만든 궁전도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의외로 운치가 있고, 색다른 만큼 멋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황궁의 모습, 새로운 도읍의 상태였다.
교토에서는 매일매일 이사에 사람들이 바빴다. 많은 집들이 헐려 뗏목으로 엮여 강을 따라 운반되므로, 넓은 요도 강도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뗏목으로 가득 차 버렸다. 이렇게 많은 집들이 후쿠하라로 운반되고 있는데, 후쿠하라의 땅을 생각해 보면 이쪽에서 보낸 만큼 집이 지어져 있지 않아 아직도 빈 땅이 많았다. 지어져 있는 집의 수는 적다. 도대체 저렇게 강폭이 좁아 보일 정도로 보낸 집은 어디에 지을 예정인지, 또 어디에 짓고 있는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교토는 점점 더 날마다 황폐해져 가고, 새로운 도읍 후쿠하라가 도읍으로 완비되려면 아직도 시일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시기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될 리가 없다. 마치 푸른 하늘에 떠도는 구름처럼 바람에 따라 움직여 정말로 불안정 그 자체, 사람들의 마음은 어두웠다. 원래 후쿠하라에 살던 사람들은 새로 천황과 함께 온 관리들을 위해 그 땅을 빼앗겨 탄식하며 슬퍼하고 있다. 또 새로 온 그 관리들은 자신들의 집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그 번거로운 일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어차피 좋은 일들은 아니다. 문득 왕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차를 타야 할 귀한 신분의 사람이 그런 것은 타지 않고 말을 타거나, 의관, 포의를 입어야 할 궁중 사람들이 신흥 세력에 아첨하여 무가가 입는 히타타레 등을 입고 궁중 사람의 우아한 풍속을 잃어버리고, 마침내는 도읍다운 우아하고 멋있는 풍속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그저 시골스러운 거친 무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참으로 한심한 모습이 되었다.
어렴풋이 전해 듣기로는 옛 성천자 시대에는 정치의 중심점이 일반 서민을 불쌍히 여기는 데 있었던 것 같다. 백성들이 가난 때문에 괴로워할 때나, 어떤 변고 때문에 괴로워할 때는 존귀한 신분이면서도 자신의 거처인 황궁의 일 등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처마 끝에 가지런하지 않은 억새 끝이 나와 있어도 그것조차 자르지 않고, 게다가 백성이 먹을 쌀이 없을 때는 연공조차 면제해 줄 정도였다. 이러한 일은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리고자 하는 황송한 대어심에서 나오는 것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현재의 모습은 어떠한가, 도읍을 옮긴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며 인심을 평화롭게 다스리기는커녕 불안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기요모리의 무도하고 극단적인 전횡의 발현이지만, 어쨌든 옛 성천자 시대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모습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요와 연간의 일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아무튼 오래된 일이라 확실한 때는 말할 수 없지만, 그 무렵 2년 동안 정말 심한 기근이 있었다. 참으로 참담한 상황을 나타낸 일이 있었다. 봄부터 여름까지의 긴 기간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고, 매일매일 가뭄이 계속되어 논밭의 작물은 모두 말라 죽어 버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는가 싶더니 가을이 되자 큰 바람이 불거나, 큰 비가 내려 대홍수가 나는 등 전혀 눈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으로 곡물 등의 수확은 전혀 없고, 그저 헛되이 논을 갈고 밭에 씨를 뿌렸을 뿐 그 보람도 없이, 가을의 바쁜 수확기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완전히 전대미문의 재난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 1년 분의 쌀도 없고, 음식도 없는 상황이다.
음식이 없는 선조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의 생활, 그것은 고난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선조 대대로 살아온 땅을 버리고 여러 나라를 방랑하며 다니게 되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집이나 경작지를 완전히 잊은 듯이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살기도 했다. 산 쪽이 아직 나무 열매 등의 음식이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참으로 참담한 상황에서는 사람들은 자멸의 길을 걷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천황께서도 걱정하시어 여러 가지 기도나 특별히 영험이 있다고 하는 수법 등을 거행하게 하셨지만, 전혀 그 효험이 나타나지 않았다.
원래 교토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그 물자의 공급을 모두 시골에서 받고 있으므로, 그 공급자인 시골이 천재로 인해 물자를 전혀 얻을 수 없게 되자, 교토 사람들은 당연히 물자 부족을 호소하게 되었다. 교토는 완전히 물자 공급자를 잃은 셈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한 것은 교토 사람들이다. 우선 음식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음식을 얻기 위해 마침내 체면도 염치도 없이 가재도구를 헐값에 팔아 쌀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러 가지만, 이렇게 물자가 부족한 때에 소중한 쌀을 팔 리가 없어서, 아주 비싼 값이 아니면 팔아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아무리 돈이 많고 보물이 있어도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점점 날이 갈수록 거지들이 많아져 길가에 잔뜩 몰려들어 음식을 구걸하는 그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길에 가득 차 들려오게 되었다. 그러나 요와 원년도 이런 참담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저물어 갔다.
이듬해 요와 2년, 사람들은 올해만큼은 물자가 풍부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왜냐하면 이런 기근의 참상 위에, 또 그 참상을 덧칠하듯 역병이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참상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심해져 갔다. 원래의 평화로운 세상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사람들은 기근으로 약해진 몸에 역병의 어려움까지 겪어 많은 사람들이 그 목숨을 잃어갔다. 한편 물자 부족은 더욱 심해져 사람들은 고난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갔다. 이 모습은 마치 물이 적은 곳에 많은 물고기를 넣은 것과 같아서, 결국은 모두 그 생명을 빼앗기는 슬픈 운명에 놓였다. 마침내 상당한 신분의 사람들조차 각반에 발을 감싸고 얼굴을 삿갓으로 가린 채 부끄러움을 참으며 집집마다 음식을 구걸하며 다니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음식을 구걸하며 다녀도 음식을 주는 집이 있을 리 없으므로, 사람들은 피로곤비하여 그 극한에 이르러, 방금 저기를 걷고 있었나 싶으면 곧바로 푹 쓰러져 그 귀한 목숨을 잃는 일이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참으로 애처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길거리에는 어디를 가도 쓰러져 죽은 불쌍한 사람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저쪽 담벼락 앞, 이쪽 대문 앞 하는 식으로 전혀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굶어 죽어 쓰러진 사람들의 시체를 치우려는 사람이 없으므로, 날이 갈수록 시체는 점점 썩어 형태가 무너지고, 악취는 진동하여 길거리에 가득했다. 거리가 이런 상황이니, 가모 강변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수많은 시체가 가득 넘쳐, 그 때문에 우차나 마차가 다닐 길조차 없을 정도로 심한 상황이었다.
산에 가서 땔나무를 구해 이것을 도읍 사람들에게 팔아 그날그날의 생계를 이어가는 천민이나 나무꾼들은 굶주림 때문에 이제 그 매일매일의 일조차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도읍 사람들은 땔나무가 부족해졌다. 그래서 전혀 의지할 곳 없는 홀몸들은 자신의 집을 부숴 땔나무로 만들어 이것을 땔나무가 필요한 사람에게 팔려고 하지만, 한 사람이 거리에 나가 팔아 오는 대가만으로는 그 사람 한 명조차 생명을 유지할 만한 값도 되지 않는 비참한 상황이다. 그보다 더 기괴하다고 할까, 애처롭다고 할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이렇게 땔나무 부족을 메울 것들 중에 훌륭하게 옻칠이 되어 있거나 금은박이 붙은 재목이 가끔 섞여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참으로 기괴천만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니, 결국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들이 팔 물건은 모두 다 팔아 버렸기 때문에 절에 몰래 들어가 불상을 훔쳐 오거나, 법당의 도구를 뜯어내 그것을 땔나무로 만들어 팔러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자 부족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가 싶어 암담했다. 이런 엄청난 세상에 태어난 탓에 즐거워야 할 인생에서 이런 추악한 모습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온 세상이 비참한 가운데서도 가장 애처로운 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운명이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 깊이 사랑하는 남편을 가진 아내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은 어떻게 되든 우선 사랑하는 남편에게, 사랑하는 아내에게 얼마 안 되는 음식이라도 주는 것이 인정이다.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굶어 죽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이 일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가장 명확하게 나타났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자식은 세상에 있을지라도,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반드시 그 얻은 음식을 자식에게 주어 버리므로, 부모는 반드시 먼저 굶어 죽어야 하는 것이다. 참으로 가장 강한 사랑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변고 때에는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다. 어머니의 젖을 찾아 우는 아이들이 곳곳에서 보이는데, 이미 어머니는 죽었는데도 그 시체에 매달려 우는 아기의 가엾은 모습은 이 세상의 지옥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이다. 완전히 교토의 거리들은 옛 평화는 어디로 가고, 지금은 살아 있는 지옥의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그 무렵 닌나지(仁和寺)에 류교(隆暁) 법인이라는 출가한 스님이 있었다. 이 사람은 너무나도 비참한 세상의 모습과, 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죽어 가는 것을 탄식하고 슬퍼한 나머지, 어떻게든 죽은 사람들에게 불연(仏縁)을 맺어 주고 싶다고 발원하여, 매일매일 거리를 걸어 다니며 시체를 발견할 때마다 그 이마에 아(阿) 자를 쓰고 극락왕생을 빌었다. 이렇게 아(阿) 자를 써서 성불시킨 사람 수가 얼마나 되었는가 하면, 4월과 5월 두 달 동안 아(阿) 자를 쓴 시체의 수는 교토의 이치조(一条) 이남, 구조(九条) 이북, 교고쿠(京極) 이서, 스자쿠(朱雀) 이동, 그 사이만 해도 놀라지 마시라, 모두 4만 2천 3백여 구나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큰 변고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망자를 내고 있으니, 하물며 그 전후에 죽은 사람들의 수를 넣어 생각해 보면, 막대한 수가 되어, 교토 주민 모두가 죽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가와라(河原), 시라카와(白河), 니시노쿄(西の京)의 사망자도 거기에 더하고, 전 일본의 사망자 수를 더해 간다면 정말 끝도 없이 엄청난 수가 되었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옛날 스토쿠 천황(崇徳天皇)의 치세인 조쇼(長承) 연간에도 이런 기근이 있었다고 나는 들었는데, 그 당시 상황은 직접 보지 못했으므로 전혀 모른다. 하지만 이번 기근은 눈앞에서 그 참상을 보여 주어, 기근이 얼마나 심한 것이었는지, 이번 것은 정말 유례없는 큰일이며 전대미문의 것이었음에는 틀림없고, 정말이지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픈 일이었다.
같은 무렵의 일인데, 또 하나 그 위에 큰 지진이라는 재난을 만난 일이 있었다. 그 지진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있었던 어느 것보다도 강했고, 따라서 그 피해도 평소와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심한 것이었다. 큰 산은 지진 때문에 무너져 내려, 아래로 흐르는 강을 메워 버리거나, 바닷물은 역류하여 해안가로 올라와, 더욱이 사람이 사는 곳까지 흘러 들어올 정도였다. 또 땅이 둘로 갈라져 그 사이에서 물이 솟아 나오거나, 큰 바위가 데굴데굴 골짜기로 굴러떨어지거나 하여, 정말 대단히 무시무시했다. 바다에 나가 있던 배는 지진 때문에, 큰 파도 때문에 나뭇잎처럼 뒤집히고,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나, 말이나 소 등은 휘청휘청하며 그 발 디딜 곳을 잃고 넘어지거나 하는 형편이라 대단한 소동이었다.
교토에 있는 훌륭한 집이나, 큰 집이나, 작은 집은 한 채도 멀쩡한 것이 없고, 모두 무너져 버렸다. 신사나 절 등도 수없이 그 훌륭한 건조물을 무너뜨리고 있는 형편이다. 완전히 무너진 것이나, 반쯤 무너진 집들 주변에는 마치 맹렬한 연기처럼 먼지나 재가 솟아오르고 있다. 땅이 여진으로 흔들리거나, 큰 집이 무너질 때에는, 천둥이 치는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안정을 찾을 곳이 없었다. 집 안에 있으면 당장 집이 덮쳐 찌부러뜨리지 않을까 걱정되어 가만히 있을 수 없고, 밖으로 뛰쳐나가면 땅이 갈라져 오고,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만약 하늘로 도망칠 수만 있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에게는 날개가 없어 그것조차 할 수 없고, 참으로 또 기근 이상의 안타깝고 슬픈 상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 경우에 용이라도 될 수 있었다면, 구름을 타고 승천한다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용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형편이다.
세상에는 무서운 것이 그 밖에도 얼마든지 있지만, 지진이 크고 강한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안정을 찾을 곳이 없을 정도로 강하고 격렬하게 진동하는 지진은 잠시 후에 멈추었지만, 그 후에 오는 여진이라는 것은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그 여진조차도 보통은 누구나 놀랄 정도의 강한 것이어서, 이 정도의 것이 하루에 2, 30번은 반드시 일어났다. 그러나 점점 날이 지나, 열흘이 지나고 스무 날이 지나, 되어 가는 동안에, 그렇게 심했던 여진도 점점 횟수가 줄어들고, 간격을 두게 되었다. 하루에 4, 5번의 적은 횟수가 되고, 2, 3번이 되어, 마침내 하루 걸러가 되고, 2, 3일에 한 번으로 점점 줄어들기는 했지만, 대체로 3개월이라는 기간은 여진이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불, 물, 바람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재해를 주고 있는 것이지만, 땅은 그다지 재해를 주는 것이 아닌데, 이번만은 좀 심하게 엄청난 재해를 준 것이다. 이번 지진과 옛날 사이코(斉衡) 연간에 있었던 지진으로, 도다이지(東大寺) 대불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소란스러웠던 때와 비교해 봐도, 이번 지진에 비하면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이었다. 그 정도로 이번 것은 심했던 것이다.
현대 한국어 번역: 이처럼 여러 재난을 겪어 보니,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지, 인생 그 자체조차도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적어도 이 세상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돕고, 기분 좋게,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조금은 흐려져 있던 사람들의 마음도 잇따른 재난 때문에 바로잡힌 것일까.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란 믿을 것이 못 되고, 점점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지남에 따라, 그러한 큰 재해가 있었다는 것 따위는 어느새 잊어버리고, 서로 돕자는, 서로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고 기분 좋게 살아가자는 마음은 이미 어디론가 가 버리고, 다시 원래의 사리사욕만을 생각하게 되어, 싫고 싫은 세상으로 점점 되어 가 버렸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모든 세상은 무정하여, 꽤나 살기 힘든 곳이라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고, 또 자기 자신의 운명이 덧없고 의지할 곳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며, 그 거처조차 언제 어떤 재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물며 사람들은 그 위에 사는 곳이나 신분에 따라 세상 인연의 구속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처럼 세상은 어렵고 살기 힘든 곳이다. 한편으로는 자연재해가 있고, 한편으로는 서로 사랑하지도 않고 제각기 살아가는 이런 세상은 완전히 지옥과 같다고 해도 좋다.
사는 곳으로 말하자면,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비좁은 거리에 살고 있다면 한번 맹렬한 화재를 만났을 경우 반드시 그 재앙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싫다고 해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산다고 하면, 화재의 어려움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잠깐 외출하거나 산책할 때에도 도로가 나쁜 시골길을 길게 걸어야 한다는 불편함도 있고, 너무 외딴곳에서는 종종 도적에게 습격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래서는 차분한 생활도 할 수 없다.
권세 있는 자는 그 현재 가지고 있는 권세에 결코 만족하지 않고, 더 강한 권세를 바라고 그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생하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권세도 없고 신분도 낮고 고독한 자는 사람들의 경멸의 대상이 되어 괴로워해야 하며, 또 재산이 너무 많으면 밤낮으로 도적에게 습격당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밤에도 제대로 잠들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가난하다면 그날 먹을 것을 위해 밤낮으로 걱정하고 고생해야 할 것이니, 이것 또한 꽤나 괴로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면 자기 자신이 왠지 그 사람의 노예처럼 취급되어 괴로워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정을 베풀어 돌봐 준다고 해도 또 그 정에 이끌려 한바탕 고생해야 하고, 하는 일 모두가 이 모양이니 고통의 씨앗이 되어 견딜 수 없다. 세속 일반 사람들이 보통 하고 있는 생활의 법칙, 도덕률 등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하면 어딘가에 공허한 곳이 있어 진심으로 이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할 수 없어 괴롭고, 그렇다고 해서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완전히 벗어나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생활하면 자신의 본심은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지만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치광이 취급을 받아 이 또한 괴로워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떤 일을 해도 괴로워해야 하는 세상에서 자신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차분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무엇을 하고, 어디에 살아야 도대체 나의 마음은 영원한 평화를 얻고, 본심의 만족을 얻고, 차분하게 생활할 수 있을까. 요컨대 나는 아직도 이 속세에 집착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 속세를 벗어나는 것이 가장 나의 생활에 만족을 주고, 평안을 주고, 안정을 주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 쪽 할머니의 가독을 이어받아 그 집과 부지를 물려받아 그곳에 살기 위해, 할머니가 오랫동안 살았던 땅에 오래 머물렀지만,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거나, 여러 불행이 잇따라 일어났기 때문에 완전히 기력을 잃어버리고, 마침내 그곳에 살고 있으면 여러 지나간 불행이 떠올라 싫어져서 결국 그 땅을 버릴 결심을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속세에서는 결코 만족을 얻을 수 없으므로 이것마저 버리고 사람이 오지 않는 곳에 작은 암자를 지어 살기로 정했다. 그때 나는 마침 서른 살이었다. 이 암자는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집에 비하면 그 10분의 1 정도의 참으로 작은 것이었다. 그래도 그 안에 자신의 거처만은 만들 수 있었지만 주거라고 부를 만한 방을 만들 수는 없었다. 소박한 울타리를 만들었지만, 이것을 장식할 만한 훌륭한 문은 만들 수 없었다. 대나무를 기둥으로 하여 수레를 넣을 곳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암자는 조금 바람이 세게 불기라도 하면 날아가 버릴까 걱정되고, 또 그 위에 눈이라도 미친 듯이 내리면 언제 짓눌려 버릴지 모른다는 정말로 위험천만한 건물이다. 게다가 강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홍수가 나면 속절없이 휩쓸려갈 위험이 있고, 너무 외딴 곳이라 도적의 걱정 또한 대단한 것이다. 이렇게 속세를 벗어나 와도 여러 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걱정거리와 괴로운 일뿐이 세상에는 많아서 조금도 차분하게 살 수 없고,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다, 싫은 세상이다, 뭐라 불평하면서도 나는 이미 서른 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괴롭고, 힘든 세상에 참고 견디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동안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과,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많았던 것, 뜻밖의 재난을 당했던 것, 실패했던 일 등을 통해 절실히 자신의 운명의 안타까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세상을 버릴 수는 없었지만, 마침내 쉰 살 봄에는 완전히 집을 버리고, 괴로운 세상을 버리고, 완전히 은둔할 결심을 하고 그것을 실행했다.
물론 나는 고독한 몸으로 아내나 자식은 없으므로 그런 가족의 사랑에 이끌린다는 것은 전혀 없으니 그런 일에는 전혀 괴로워할 일도 없었다. 또 고위 고관이나, 귀한 관직이나, 많은 봉급 등과는 전혀 상관없는 몸이므로 무엇 하나 속세에 얽매일 만한 것도 없어, 매우 쉽게 세상을 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완전히 은둔 생활을, 인적이 드문 오하라 산 눈 깊은 곳에서 보내게 된 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나, 몇 번의 봄과 가을을 보내고 맞이했는지 모른다.
이미 나이도 예순 가까이 되어, 앞으로 남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하나의 새로운 집을 지어 살았던 적이 있었다. 마침 이것은 마침내 갈 곳 몰라 헤매던 나그네가 겨우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 안도하는 것과 같고, 또 이것은 늙은 누에가 고치를 짓고 갇히는 것과 같이 참으로 덧없는 것이지만 왠지 마음 즐거운 것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집은 이전에 지어 살던 것에 비하면 그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것이었다. 이렇게 점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신의 집마저 점점 좁아져 가는, 왠지 자신의 운명 그 자체처럼 느껴져 외롭다.
현재 자신의 집은 어떤 것인가 하면 세상에서 보통 일반적으로 집이라고 불리는 것과 비교하면 그것은, 이미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조잡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자신 혼자 살기에는 참으로 적합하고 마음 편한 집임에는 틀림없다. 넓이는 겨우 1장 4방(약 3.3m x 3.3m)이라는 작은 것으로 높이도 그에 상당하여 7척(약 2.1m)에 미치지 못한다. 대체로 나는 어디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으므로 이곳이 좋다든가 저곳이 좋다든가 하는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아무 곳에나 토대를 쌓고, 지붕을 엮고 판자와 판자 사이에는 걸쇠를 거는 것뿐으로 지극히 조잡하지만, 그만큼 언제든 마음 가는 곳에 가서 간단하게 지을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다. 그러므로 지어 놓고 나서도 그곳에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바로 부숴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에도 약간의 비용밖에 들지 않는다. 기껏해야 수레 두 대 정도면 충분하므로, 이 수레의 삯만 지불하면 노동력은 스스로 할 수 있으므로 지극히 쉽게 이사도 할 수 있다.
현재 히노 산의 초암을 짓고 나서 그 초암의 동쪽에 조잡하지만 3척(약 90cm) 남짓한 처마를 달아 햇볕을 가리고, 그 아래에서 땔감을 쪼개거나 하는 데 편하게 했다. 남쪽에는 대나무 툇마루를 만들고, 북쪽에 치우쳐 장지를 사이에 두고 아미타불의 그림을 안치하고 그 옆에 보현보살의 상을 걸고, 그 앞에 법화경을 놓았다. 서쪽 끝에는 물건을 놓기에 편리하도록 아카다나(閼伽棚, 불전에 물을 올리는 선반)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주거다운 설비를 해 나갔다. 자신의 잠자리에는 동쪽 끝에 고사리 이삭을 따 와 깔아 놓았다. 서남쪽에는 대나무로 만든 선반을 만들었다. 그것은 검은 칠을 한 껍질 바구니 세 개 정도를 놓기 위한 것으로 그 바구니 안에는 몇 권의 와카(和歌) 책이나, 음악 책, 또는 「왕생요집(往生要集)」 등의 발췌한 것이 들어 있다. 이것은 무료할 때 읽고 위로를 삼기 위한 것이다. 그 옆에는 "오리코토(おり琴)"와 "쓰기비와(つぎ琵琶)"라고 이름 붙인 거문고와 비파를 한 대씩 세워 놓았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것이 현재 나의 거처이다.
초암 주변의 경치는 어떤가 하면, 남쪽에는 돌로 만든 물통에 물을 끌어오기 위한 물받이가 만들어져 있다. 매일 필요한 물건인 장작은 바로 근처에 숲이 있어 조금도 힘들지 않게 모아 올 수 있다. 바로 옆에는 도야마(外山)와 야마토(大和)라고 하는 산이 있는데, 이 산으로 가는 길에는 마사키카즈라(まさきかずら)가 온통 무성하게 자라, 완전히 그 길을 덮어 버려 오르기에는 조금 어려움을 느낄 정도이다. 골짜기에는 울창한 초목이 무성해서 조금 어두움을 느낄 정도이지만, 서쪽은 활짝 트여 있어, 서쪽에 있다고 하는 정토의 일이나, 부처님의 일을, 그쪽을 향해 묵상하기에는 정말 좋은 장소이다.
봄은 등나무 꽃이 골짜기에 온통 피어 보라색 구름이 드리워진 듯하여 완전히 황홀한 경치가 서쪽에 보인다.
여름이 오면 두견새가 쉴 새 없이 저 애절한 소리로 울고, 옛사람이 말한 것처럼, 저승길의 길 안내를 한다고 하는 이 새의 울음소리는 왠지 자신이 죽었을 때 반드시 길 안내를 하여 극락왕생을 시켜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처럼 들려 정말 기쁘게 느껴진다.
가을은 저녁매미가 온 산에 울어 나에게 그 슬픈 소리를 들려준다. 그 소리는 나에게 이 세상의 덧없는 운명에 대한 비가를 들려주는 듯하여 왠지 쓸쓸하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겨울이 되면 온 산이 눈으로 덮일 때가 가끔 있어, 은은하게 눈 덮인 산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해 준다. 또 내린 눈이 점점 녹아 없어지거나, 또 내려 쌓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의 죄악이라는 것도 꼭 이 눈처럼 쌓였다가 부처님의 크신 마음으로 깨끗하게 없어지거나, 또 죄를 짓고 또 깨끗하게 되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매일매일 부처님께 염불을 드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귀찮아지거나, 또 부처님께 독경하는 것이 힘들어서 견딜 수 없을 때는 스스로 게을리해 보기도 하고, 염불도, 독경도 하지 않을 때조차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는 아무도 없으니, 게으름 피운 것을 부끄러워할 만한 친구도 없으니 그만 게을러져 버린다. 이렇게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 홀로 살고 있으니, 자연히 무언(無言)의 수행을 해야 하고, 또 스스로 반드시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산속에서는 부처님의 계율을 어길 만한 유혹은 전혀 없으므로 자연히 계율을 지키게 된다. 무엇을 성인, 군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할 상대도 없는 이런 곳에서는 자연히 무언의 수행을 하게 되고 또 자연히 부처님의 도를 행하게 되는 것이고 무엇을 스스로 노력해서 이렇게 된 것은 결코 아니다.
너무 심심해서 어쩔 수 없을 때는 언덕 위를 지나는 배를 바라보며, 배 뒤에 남는 거품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것을 보고 인간 운명의 덧없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또 옛사람 만샤미(満沙弥)가 행했던 풍류를 흉내 내어 노래를 읊어 보기도 한다. 또 저녁이 되어 저녁 바람이 계수나무에 부딪혀 쏴쏴 나무가 흔들릴 때는 심양강(潯陽江)의 저녁 경치를 떠올리기도 한다. 때로는 가쓰라 다이나곤(桂大納言)을 흉내 내어 "추풍(秋風)"이라는 곡을 비파로 연주하면 솔바람 소리가 이것에 마치 화답하는 것처럼 들려온다. "유천(流泉)"이라는 곡을 연주하면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가 이것에 화답하는 것처럼 들려온다. 나의 비파 연주 실력은 결코 능숙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누구를 위해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스스로 연주하고 스스로 즐기는 것이니 이것으로 충분하다. 자신은 그 곡을 연주하여 상쾌한 기분이 되어 차분하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즐기고, 산의 고독한 외로움을 위로받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초암에서 조금 떨어진 산기슭에 작은 오두막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산지기가 살고 있다. 거기에는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때때로 나의 암자를 찾아와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뭐 나의 암자의 유일한 손님이라고 해도 좋다. 말할 것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할 일도 없을 때는 이 아이를 벗 삼아 그 주변의 산을 거닌다. 그 아이는 열 살이고 나는 예순 고개를 넘은 노인이지만, 나이는 달라도 둘이서 산을 걸으며 서로 즐긴다는 데에는 조금도 지장이 없고, 완전한 좋은 친구 사이이다. 어떤 때는 산을 걸으며 풀꽃을 꺾거나, 돌배를 따기도 한다. 또 때로는 마 열매를 줍거나, 미나리를 뜯기도 한다. 그런 일에도 싫증이 나면 산기슭까지 가서 밭에 있는 낙엽을 주워 낟가리를 만들기도 한다. 또 너무 날씨가 좋고 평화로운 날에는 봉우리에 올라가 멀리 고향 하늘을 바라보거나, 고하타 산(木幡山), 후시미 마을, 도바(鳥羽), 하쓰카시(羽束師) 등의 주변을 굽어보기도 한다. 이러한 경치가 빼어난 산들은 누구라고 해서 이것을 독점하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껏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어 정말 마음 즐거운 일이다. 마음이 밝고 조금도 걷는 것이 피곤하지 않을 때는 멀리 가는 일도 있다. 그럴 때는 스미 산(すみ山)을 넘어 가사토리(笠取)를 지나가서 이와마 신사(岩間神社)에 참배하고 이시야마(石山)에도 참배를 한다. 좀 더 먼 곳에 있는 아와즈(粟津) 벌판에 가서 옛날 세미마루(蝉丸)가 살았다고 하는 가옥의 폐허를 찾아 세미마루의 영혼을 위로하거나, 다나카미 강(田上川) 저편에 있는 사루마루 다유(猿丸太夫)의 묘소에 참배하는 일 등도 있다. 이러한 먼 길을 다녀올 때는 계절에 따라 봄에는 벚꽃 가지를 꺾어 돌아오고, 가을에는 단풍나무 가지를 꺾어 돌아온다. 또는 한 다발의 고사리나, 한 바구니의 나무 열매를 따 가지고 돌아와 부처님께 바치거나, 또 스스로의 식량으로 하기도 한다.
달이 아름답고 맑게 개인 밤에는 달빛이 아름답게 비치는 창가에서 옛날에 서로 사귀었던 오랜 친구들을 떠올리며, 슬프게 달을 향해 울부짖는 원숭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오르는 일조차 있다.
풀숲에 있는 반딧불의 불빛은 마치 마키시마(真木島)의 횃불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많이 골짜기에 빛나고 있어 나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고, 또 새벽녘 잠을 깨우는 새벽 소나기는 왠지 나뭇잎을 흩날리는 폭풍처럼 생각되기도 해서, 왠지 쓸쓸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호로호로 우는 들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지금의 울음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하고 의심해 보기도 하고 옛날 부모님이 계시던 시절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떠올려 보기도 한다. 이렇게 산속 깊이 살고 있으니 똑같이 산속 깊이 사는 사슴 등이 정답게 암자 근처까지 오는 것을 보면 내가 얼마나 속세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생각되어 왠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도 들기도 한다.
예순이 넘은 노경에 들어서니 밤에 잠 못 이루는 일이 가끔 있는데, 그럴 때의 유일한 즐거움은 숯불을 피워 이것에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 이럴 때에는 숯불도 소중한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특별히 무서운 일이 있다고 할 만큼 산속도 아니지만, 음침한 올빼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왠지 마음이 쓸쓸하고 애처로움을 절절히 느끼게 되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산속의 경물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에 재미있는 것을 주어 좀처럼 끝이 없다. 하물며 우리보다 내성이 깊고 지각이 예리한 사람들이었다면 내가 느낀 것 외에도 아직도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여 이것을 즐길 수 있었겠지만,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이상의 것에서밖에 즐거움을 찾을 수도 없고 왠지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산속에 들어와 살게 된 지도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암자도 곳곳이 부서지고 훼손되었고, 처마 밑에는 낙엽이 깊이 쌓여 있고, 그 잎은 썩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다. 또 이끼가 마루 위에 가득하게 자라기까지 했다.
가끔씩 서울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귀한 신분의 사람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 일이 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신분이 천한 사람들도 많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집들이 잦은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 천한 나의 집만은 화재도 당하지 않고 정말로 평화롭다. 아무리 좁은 곳이라도 밤에 잠자리는 있고, 낮에 책을 읽거나 하는 곳도 제대로 있으니, 나 자신이 사는 데에는 아무런 불편도 부족도 느끼지 않는다. 소라게가 작은 조개 속에 사는 것도 분명히 자신의 분수를 알아서 하는 일로, 소라게에게는 작은 조개가 어울리는 집인 것이다. 또 물수리가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파도가 거친 해안에 있어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소라게나 물수리처럼 나는 나 나름대로 작은 집에 살고, 그렇게 세상의 덧없음, 내 운명의 슬픔을 알고 세상을 떠나 이런 산속에 살며, 부도 구하지 않고, 지위도 구하지 않고, 더구나 속세와 교제하는 일도 없이, 물수리나 소라게가 자기 자신만의 평안을 즐기는 것처럼 혼자서 아무런 불안도 없이 살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세상 사람들이 집을 짓는 목적은 거의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결코 아니고, 부모를 위해서라든가, 처자를 위해서라든가, 다른 가족을 위해 짓는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는 다른 사람에게 겉치레를 하기 위해 짓거나, 임금이나 스승을 위해 짓기도 한다. 재산이나 보물을 넣기 위해 짓기도 하고 결코 자신만을 위해 짓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나의 건물은 순수하게 나 자신을 위해 지은 것이다. 남을 위해 짓는다고 해도 나에게는 이미 부모님은 안 계시고, 아내나 자식조차 없는 것이고, 또 함께 살 만한 친구도 없고, 하인도 두고 있지 않으니, 완전히 지금의 처지에서는 집을 지어 줄 만한 사람은 없으므로 결국 나 자신을 위해 짓게 된 것이다. 현재 세상에서 사람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보다도 부자여야 하고, 그리고 그 사람에게 친숙해진다는 것이어야 하고, 반드시 정이 깊고 솔직하다는 것은 필요하지 않으므로 이런 경박한 친구 사귐을 할 바에는, 그보다는 산속에 있어 자연을 벗 삼고 음악을 벗 삼아 그날그날을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르는 것이다.
또 사람의 하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먼저 급료가 많은 것을 바라고, 무엇이든 돈이 되는 곳으로만 가려고 하는 형편으로, 귀여워하고 정을 주어 길러 주어도 급료가 적으면 결코 거기에서 일하는 것을 승낙하지 않는 형편이다. 이래서는 사람을 써서 도리어 괴로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인을 쓰지 않고 나 자신을 하인으로 삼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인 것이다. 다소는 그렇게 하면 귀찮은 일도 있지만, 사람을 써서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좋은지도 모른다. 걸어야 할 일이 있으면 자신의 발로 걷는 것으로 한다. 그러면 다소는 괴로운 일이지만, 소달구지나 마차를 타고 신경을 쓰는 것보다는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나의 몸은 두 가지 하인을 겸하고 있다. 하나는 손으로 이것은 심부름꾼의 일을 해 주는 것이고, 하나는 발로 이것은 탈것의 역할을 해 주어 둘 다 나를 충분히 만족시켜 준다. 이 때문에 자신의 몸이 괴로워지면 쓰는 것을 멈추고 충분히 쉬게 하고, 또 튼튼해지면 쓰기로 하니 결코 무리를 한다고 하는 일은 없다. 나른해져서 걷는 것도, 일하는 것도 내키지 않을 때에도 아무것도 걱정할 일은 없다. 하물며 매일 일하거나 걷거나 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몸의 양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고 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걷거나, 자신의 주변 일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의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의식주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등나무 껍질로 만든 옷이나 삼베로 만든 침구 같은 것으로 입을 것은 충분히 해결되니 그 이상의 것은 불필요한 것이다. 또 들판에 있는 삘기나 산봉우리에 있는 돌배나무 열매 등을 따서 먹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니 그 이상은 또 불필요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교제하지 않으니 아무리 가난한 차림을 하고 있어도 누구도 뭐라 할 사람도 없고, 또 음식이 지극히 부족한 산속이니 아무리 맛없는 것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지금 나의 생활을 써 보는 것은 결코 다른 부유한 사람들에게 이런 생활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아직 속세를 버리지 않고 속세에 살았던 때의 생활과 지금의 생활을 비교하기 위해 써 본 것뿐이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괴로운 세상이 되기도 하고, 즐거운 세상이 되기도 한다. 정신이 만약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 서 있지 않다면 아무리 돈이 있고 훌륭한 집에 살아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역시 괴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 나는 이렇게 외로운 산속에 들어와 단칸방밖에 없는 좁은 집에 살고 있지만 정신은 참으로 평안하고, 매일매일을 매우 즐겁게 살고 있다.
게다가 이렇게 초라한 집이지만 나는 이 집을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한다.
가끔 도읍 쪽으로 나가 탁발을 하는데, 그럴 때에는 내가 이런 거지 중이 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이 작은 나의 집에 돌아와 보면, 속세 사람들이 덧없는 명리에만 집착하여 사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이 불쌍하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네가 꿈같은 소리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물고기나 새의 생활을 깊이 생각해 보면 좋다. 물고기는 평생을 물속에서 살면서 조금도 물을 싫증 내지 않고, 또 새는 그 평생을 숲속에서 보내기를 바란다. 이 새의 마음이나 물고기의 마음은 물고기 자신, 새 자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도 그처럼 산속에서 세상을 떠나 홀로 사는 이 마음은 정말로 그런 생활을 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산속에서 한가롭게 사는 즐거움, 외로움 등에는 속세에서는 맛볼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는 것으로 정말로 실천한 사람이 아니면 이 맛을 알 수 없다. 이 맛은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몇 배나 더 나에게 좋은 일이고 즐거운 일이다.
자, 나의 일생도 이제 남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죽음의 길을 떠나야 하지만, 이제 와서 새삼 탄식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에 대해서도 집착심을 갖지 말라고 하셨는데, 지금 이렇게 마음 편안하게 즐겁게 살 수 있는 이 산속의 초가를 사랑하는 것조차 하나의 집착심의 발현으로 죄악이다. 나는 부처님의 세계에서 보면 아무 가치 없는 즐거움을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으며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고요한 새벽녘에 이러한 진리를 계속 생각하며, 나의 마음가짐을 깊이 반성해 보면 내가 이렇게 속세를 벗어나 산속에 들어온 처음 목적은 무엇이었나 하면 그것은 부처님의 도에 정진하려고 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활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겉모습은 성인 같지만 그 마음은 아직 성인에는 멀리 미치지도 못하는 것으로 완전히 속인처럼 흐려져 있는 것이다. 나의 집은 옛날 유마거사(維摩居士)의 방장(方丈) 암실을 본떠 지은 것이지만, 나의 행위나 신앙에 있어서는 가장 어리석다고 하는 부처님 제자 주리반특(周利槃特)의 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원인은 너무 가난한 고통을 겪어서 그 때문에 너무 괴로워했기 때문에 마음껏 수행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또는 번뇌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마음이 미쳤던 것일까, 등 내가 왜 깨달음에 들어갈 수 없었는지 자문자답해도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입과 혀의 힘을 빌려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두세 번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가호를 빌 뿐이다.
때는 건력(建暦) 2년 3월 그믐 무렵, 승려 연인(蓮胤)이 외산(外山)의 암자에서 이것을 썼다. (2025.2.25.)
'AI번역 > 푸른하늘 문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 은하철도의 밤(銀河鉄道の夜) (0) | 2024.12.24 |
---|---|
나카야 우키치로(中谷宇吉郎) - 수표(小切手) (0) | 2024.12.24 |
모리 오토(森於菟) - 해부수필초(解剖随筆抄) (0) | 2024.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