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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_서하집_西河集 번역

諺解 2026. 5. 2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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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집(西河集)

  • 저자: 임춘(林椿)
  • 생몰년: ?-?
  • 원문: 한국고전번역원_한국문집총간
  • 번역: Qwen3.6 35B A3B 8bit MTP 활성 로컬 기계번역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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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林西河集重刊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199B, ITKC_MO_0003A_A001_199C ...

원문

古稱三不朽。立言居其一。又曰。言之不文。行而不遠。君子之爲文藝。豈不期於傳之久遠而無廢乎。然自漢唐來。操觚翰費紙札。雕鎪藻繪。自詭爲永世不刊之業者。指不勝屈。及其時移代夐。率皆蕪絶蕩滅。譬如雲煙之變現。蟲鳥之啁噍。不過一瞬之頃。求其影響而不可得。間有將晦而復顯。旣久而始彰。載之簡策而未沫。騰諸口頰而愈芳。必其雄視高蹈。倬乎出類而拔萃者耳。我東詞章始盛於麗代。登藝文之錄者何限。而遺集之行于世。厪厪十數家。噫。文之傳遠。不其難哉。林西河耆之先生。生負絶藝。大鳴一世。文苑之評。謂得蘇長公風格。觀於眉叟誄文所謂名將泰華不滅。才與星斗相軋。可見當時推許之盛也。然其章什之流傳。只寂寥數篇。眞箇泰山毫芒。一臠不足以識全鼎。譚者以爲恨。乃者野僧掘地江岸。得銅尊一枚。中有西河集印本詩文六卷合爲一冊。後爲淸道士人所有。西河之後孫再茂訪求而得之。及爲洪陽營將。將謀重刻以廣其傳。間嘗袖以示余。求爲之釐定。余爲摩挲而屢歎之。與兒子昌大。勘正其訛缺。東平尉鄭公載崙樂聞而相其役。旣繕寫訖。又徵弁卷之文。余已荒落矣。其言不足爲輕重。況公之文。顧奚待於余言哉。以是辭。請之勤。有不獲終辭。謹以一言申之曰。今夫明珠美玉。雖棄擲埋沒於泥土。其精英光怪自不可銷鑠。歷世滋久。有時而發。發則爲天下名器。何則。天地之寶藏也。西河公以高才雋氣。不名一第。平生困阨流離。卒以夭死。其視揚子雲祿位容貌不能動人。殆爲甚焉。然其文章終不容䵝昧鬱沒。是卷也寘之大江之濱。深壤之中。濤波之所侵齧。土膏之所蒸溽。不知其幾百年所。而曾無所漬汙損壞。一朝而發之。宛然如前日。此亦天地之寶藏。固富媼鬼物所呵護而慳秘者。斯已奇矣。今又重加剞劂。日傳萬紙。上爲御府羣玉之林。下爲騷人巾篋之珍。其光價踰照乘而軼連城。向所稱雄視高蹈。出類而拔萃者。非公之謂歟。布衣窮居之士有志千古事者。觀乎此。亦可以無倦矣。余旣歎斯文顯晦之有數。又嘉營將君以武人能知先懿之可重。捐薄俸而成之。遂爲之言。若其製作造詣之品題。世之具眼者自當有定論也。今上三十九年歲在癸巳中秋日。完山崔錫鼎。序。

번역

옛날에는 삼불후(三不朽)라 칭했는데, 입언(立言)이 그 중 하나였다. 또한 말하기를 "언문이 문채롭지 않으면 멀리 행하지 못한다" 하였다. 군자가 문예를 삼는 것이 어찌 오래 전해져 폐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한나라와 당나라 이래로 붓을 잡고 종이를 쓰며, 조각하고 수를 놓아 스스로 영원히 간행되지 않을 업적이라 자칭한 자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때가 바뀌고 대가 멀어지자, 모두 대부분 사라져 흩어지고 멸망하였다. 마치 구름과 안개의 변화와 현현이 그러하고, 벌레와 새의 지저귐이 그러하여, 단지 한순간의 사이에 불과하여 그 흔적조차 구할 수 없게 되었다. 간혹 어두워졌다가 다시 드러나고, 오래되어서야 비로소 밝아져, 간책(簡策)에 실려 아직 꺼지지 않고, 입술과 뺨을 타고 다니며 더욱 향기로운 것이 있으니, 반드시 웅대하게 바라보며 높게 뛰어나고, 두드러져서 뛰어나고 빼어난 자일 뿐이다. 우리 동국(東國)의 문장이 비로소 고려 대에 성하게 되었으니, 예문(藝文)의 녹(錄)에 오른 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유집이 세상에 행해진 것은 겨우 십여 가에 불과하다. 아, 문장이 멀리 전해지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은가. 임서하(林西河) 노지(耆之) 선생은 태어나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한 세대에 크게 명성을 떨쳤다. 문원(文苑)의 평론은 그의 풍격이 소장공(蘇長公)의 것을 얻었다고 하였다. 미소(眉叟)의 제문에서 "명성은 태화산(泰華山)처럼 멸하지 않고, 재능은 성두(星斗)와 서로 부딪친다"고 한 것을 보면, 당시의 추대와 칭송이 성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장시(章什)가 전해지는 것은 단지 적막하게 몇 편에 불과하여, 진실로 태화산의 미소한 부분과 같아, 한 조각으로 전체의 솥을 알 수 없다. 논하는 자들이 이를 한으로 여겼다. 이제 와서야 야승(野僧)이 강가에서 땅을 파서 동존(銅尊) 하나를 얻었는데, 그 안에 서하집(西河集) 인본(印本) 시문 육권이 합쳐져 한 권이 되었다. 뒤에 청도사(淸道士) 사람에게 소유되었다가, 서하의 후손 재사(再茂)가 찾아서 얻었다. 그가 홍양영장(洪陽營將)이 되었을 때, 다시 간행하여 널리 전하고자 도모하였다. 간혹 소매에 넣어 나에게 보여 주며, 정돈해 줄 것을 청하였다. 내가 그것을 만지며 여러 번 탄식하였다. 아들 창대(昌大)와 함께 그 오류와 결락된 것을 교정하였다. 동평위(東平尉) 정재륜(鄭載崙)이 기꺼이 듣고 그 일을 도왔다. 이미 필사하여 끝낸 후, 또 서문(序文)을 구하였다. 나는 이미 문장이 황폐하고 쇠퇴하였으니, 나의 말이 가볍거나 무겁게 작용할 수 없다. 하물며 공의 문장이 어찌 나의 말을 기다리겠는가. 이로써 사양하였다. 청하는 것이 간곡하여, 끝내 사양하지 못하여, 경건히 한 마디로써 이를 밝힌다. 지금 명주(明珠)와 아름다운 옥은 비록 버려져 흙과 진흙에 묻혔다 할지라도, 그 정영(精英)과 광괴(光怪)는 스스로 소멸되지 않는다. 세월이 깊어질수록 때때로 발현되니, 발현되면 천하의 명기가 된다. 어째서인가. 천지의 보창(寶藏)이기 때문이다. 서하 공은 높은 재주와 뛰어난 기상을 지니고, 한 직위도 얻지 못했으며, 평생 곤궁하고 궁핍하며 유랑하다가, 결국 요절하였다. 그의 모습은 양자운(揚子雲)의 녹위(祿位)와 용모가 사람을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을 본받는 것과 같았으나, 오히려 그보다 심하였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끝내 어둡게 가려지고 묻히지 못하였다. 이 권은 큰 강가 깊고 어두운 땅속에 놓여, 파도와 물결이 침식하고, 흙의 기운이 증발하고 습기를 머금는 지경에, 몇 백 년 동안인지 알 수 없으나, 조금도 젖거나 더럽혀지거나 손상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드러나니, 마치 어제와 같았다. 이것 또한 천지의 보창으로, 굳이 부모(富媼: 땅)와 귀신과 물들이 보호하고 아끼며 숨긴 것이다. 이미 기이한 일이다. 이제 다시 다시 새겨서, 매일 만 장을 전하여, 위로는 어부(御府)의 군옥지림(羣玉之林)이 되고, 아래로는 소인(騷人)의巾篋(건첩)의 보물이 된다. 그 빛과 값은 조승(照乘: 큰明珠)을 넘어 연성(連城: 큰 玉)을 초월한다. 전에 칭송하던 웅대하게 바라보며 높게 뛰어나고, 뛰어나고 빼어난 자가 공이 아니겠는가. 포의(布衣)로 궁한 곳에 거하며 천고의 일을 뜻하는 자들이 이것을 보면, 또한 게으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문명의顯晦(현폐)에 수가 있음을 탄식하고, 또 영장군이 무인임에도 선인의 은덕을 중히 여기고, 박봉을 바쳐 이를 성취한 것을 기뻐하므로, 이에 말을 남긴다. 그 제작과 조예의 품평에 대해서는, 세상의 안목 있는 자가 마땅히 정론을 내릴 것이다. 지금 금상(今上) 39년, 세차 계사(癸巳) 중추일, 완산 최석정(崔錫鼎) 서(序).

2. 西河集重刊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3B, ITKC_MO_0003A_A001_203C ...

원문

古人之工於詩者。類多窮阨不遂。談者謂之詩能窮人至。陳無己序王平甫集則曰。詩能達人。未見其窮人。之言也固有激而發。雖然亦大有理。以余觀之。若高麗林西河先生。雖曰窮於詩者。亦以詩有大名於世。謂之非窮也亦宜。先生爲文章。雄博宏肆。在當時。與李眉叟吳濮陽埒美而齊譽。天之生先生固不偶然。若將使摛藻天庭。黼黻王猷。大鳴國家之盛。而不幸遭値家難。竄身荒陬。流離困厄。抑鬱而不揚。貧寒枯槁如孟東野。不得一第如劉德仁。不掛朝籍如玉溪生。卒之無年夭殞。又有似乎李長吉。噫先生一人之身。而兼此數子者之冤。此生人之至戚。千古之最窮。雖其殘膏賸馥至今未沫。名章傑句往往流傳。而年代已逖。全稿無存。其平生著述之富。無以表見於來世。先生身後之窮。至此而無可慰者。乃者雲門寺僧印淡因夢感之異。掘得先生遺集於本寺之近麓。詩文凡六編。盛之銅器。封識深密。卽前朝僧淡印所藏也。藏之者淡印。得之者印淡。其事甚奇。此天所以哀先生之窮。不忍其文之終於棄擲埋沒。使得復出於五百餘年之後。譬如埋獄之劍。蘊山之玉。發其光怪。掩之而愈彰。終爲希世之至寶。其一晦一顯。豈不有數存於其間耶。噫。麗祚旣訖。故都成墟。當時士大夫奕世豪貴。終身佚樂富厚者亦復何限。而率皆聲沈形絶。磨滅無記。乃先生以眇然一措大。生也窮而夭歿。又子孫如綫。獨其遺篇餘翰得全於陵谷百變之餘。使千載之下莫不誦其文而想其人。則先生之名。可與天壤同畢。其視一時富厚佚樂而無稱於後者。得失何如耶。然則先生之窮。窮於暫而不窮於永。是可以慰先生之魂矣。先生後裔諸人。謀所以重刊是集。要不佞一言以題其後。不佞固非能言者。況論先生之文者莫詳於眉叟序文。則不佞又何用贅爲。特感古人窮達之說。且奇是集之旣閟而復出。遂書此而歸之。癸巳中秋朔日。楊州趙泰億。書于鶴灘精舍。

번역

옛날 시에 능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궁핍하고 불우했다. 말하는 이들이 시가 사람을 궁핍하게 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뜻한다. 진무기(陳無己)가 왕평복(王平甫)의 집 서문을 지어 이르기를, "시는 사람을 통달하게 할 수 있다. 사람을 궁핍하게 한다는 말은 보지 못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분명 억울함을 발산하기 위해 나온 말이었다. 비록 그렇지만 또한 큰 이치가 있다. 내 생각에 보건대, 고려의 린시허(林西河) 선생은 비록 시에서는 궁핍했다고 할지라도, 시로 인해 세상에 큰 명성을 얻었으니, 그를 궁핍하지 않다고 하는 것도 마땅하다. 선생이 문장을 지을 때는 웅장하고 방대하며 거침없어서, 당시 이미소(李眉叟)와 오패양(吳濮陽)과 함께 아름다움을 다투며 같은 명성을 얻었다. 하늘이 선생을 낳으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으니, 마치 천궁(天庭)에 가서 문채를 펼치고 왕도의 덕을 아름답게 수식하여 국가의 성대함을 크게 드러내게 하려 하셨던 것 같았으나, 불행히도 집안의 난을 만나 황량한 구석으로 유배되어 유랑하며 곤궁하고 비참하여 억눌려 빛을 보지 못했고, 빈궁하고 추하여 맹동야(孟東野)와 같았으며, 한 번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유덕인(劉德仁)과 같았으며, 조정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옥계생(玉溪生)과 같았다. 결국 수명이 짧아 요절하셨으니, 또다시 이장길(李長吉)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아, 선생 한 사람의 몸으로 이 여러 사람의 원한을 모두 지니셨으니, 이는 인생의 가장 슬픈 일이고 천고의 가장 궁핍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비록 그 남은 기름과 남은 향기가 오늘날까지 꺼지지 않고, 명절과 걸출한 구절들이 종종 전해지지만, 연대가 이미 멀어 전체 원고가 남아 있지 않다. 그의 평생 저술의 풍부함이 후세에 드러날 길이 없으니, 선생 사후의 궁핍함이 이 지경에 이르러 위로할 길이 없다. 최근 운문사(雲門寺) 승려 인담(印淡)이 꿈에서 감응한 기이한 일로 인해, 본사의 가까운 언덕에서 선생의 유적을 파내어 시문 여섯 권을 얻었는데, 구리 용기에 담아 봉인과 인장이 깊고 밀밀하여, 바로 전조의 승려 담인(淡印)이 소장하던 것이었다. 간직한 자는 담인이고, 얻은 자는 인담이니, 그 일이 매우 기이하다. 이는 하늘이 선생의 궁핍함을 불쌍히 여겨, 그 문장이 마침내 버려지고 묻혀 사라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500여 년 후에 다시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이다. 마치 무덤에 묻힌 검과 산에 숨겨진 옥과 같아서, 그 기이한 빛을 드러내어 감추어도 더욱 빛나 결국 세상에 드문 보물이 되었다. 그 한 번 어둡고 한 번 밝은 것은, 어찌 그 사이에 수명(數命)이 있지 않겠는가. 아, 고려의 운명이 이미 다하고 옛 도성은 폐허가 되었으니, 당시 사대부들이 대대로 호귀하여 평생 유희와 즐거움과 부유함을 누린 자들도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모두 소리가 끊어지고 형체가 사라져 기록 없이 망실되었다. 오직 선생은 미약한 한 사대(措大)로서, 살아서는 궁핍하고 죽어서 요절하셨으며, 자손도 실줄처럼 끊어질 뻔했으나, 유독 그의 유편과 여필이 산천이 변한 뒤에도 온전히 보존되어, 천 년 이후의 사람들이 모두 그의 문장을 읊조리고 그 사람을 생각하게 하니, 그렇다면 선생의 이름은 하늘과 땅과 함께 다할 것이다. 그 일시에 부유하고 유희와 즐거움만 누렸으며 후세에 칭송받지 못한 자들과 비교한다면, 득실함이 어찌 같겠는가. 그렇다면 선생의 궁핍함은 잠깐 동안일 뿐 영원한 궁핍이 아니니, 이로써 선생의 혼을 위로할 수 있겠다. 선생의 후예 여러 분이 이 책을 중간할 계획을 세우며, 나에게 뒤에 적을 글을 청하였다. 나는 본래 말재주가 없는 자이니, 더구나 선생의 문장을 논하는 데는 미소(眉叟)의 서문이 가장 상세하므로, 내가 어찌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겠는가. 다만 옛사람의 궁달(窮達)에 대한 설에 감동받고, 또한 이 책이 감춰졌다가 다시 나온 일을 기이하게 여겨, 이에 글을 써서 돌려보낸다. 계사(癸巳) 중추 초하루. 양주 조태억(趙泰億)이 학탄 정사(鶴灘精舍)에서 쓰다.

3. 西河先生集序[李仁老]〔原注:將仕郞尙書禮部郞中知製誥李仁老撰〕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7B, ITKC_MO_0003A_A001_207C

원문

貴與壽。人心之所同欲也。然君子之所貴。在德而不必在於爵位。所謂久而不朽者。在於名而不必在於壽。昔顏回高枕陋巷中。而萬世與舜禹同榮。夷齊恥食周粟。採薇於首陽山。名與日月爭光。則老子云死而不亡者壽。蓋謂此也。設令不義而富且貴。以養其軀。徒與龜蛇竝久。則此柳子所謂赫赫而辱。皤皤而天者也。豈不悲哉。西河先生少有詩名於世。讀書初若不經意。而汲其〔原注:缺〕字字皆有根蔕。眞得蘇黃之遺法。雄視詞場。可以穿楊葉於百步矣。而屢擧不得第。及□毅王末年。闔門遭禍。一身僅脫。避地於江之南。累歲還京師。收合餘燼。思欲雪三奔之恥。卒不就一名。宗伯李相國贈詩曰。莫嗟丹桂久含冤。人道明年作狀元。無限禹稱多日恨。不敎英俊在吾門。雖窮躓不振。而名動搢紳如此。大抵秉筆之徒。工於詩則短於爲文。互有得失。右擅其美。罕有兼得之。先生文得古文。詩有騷雅之風骨。自海而東。以布衣雄世者一人而已。其沒已二十載。學者莫不口詠而心慕之。將以俎豆於屈宋之間。君子之所謂貴且壽者。其在是歟。今得遺篇於後生諷誦之餘。凡若干首。分爲六卷。目曰西河先生集。命兒子祕。校程手寫。將鏤板以傳之。惜其天不與年。所綴述不至於多。見鳳凰一毛。足以知九苞之瑞矣。先生諱椿。字耆之。其學實得之家叔學士宗庇云。

번역

귀함과 장수는 사람들이 함께 원하는 바이나, 군자가 귀히 여기는 바는爵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덕에 있다. 이른바 오래되어도 쇠하지 않는다는 것은壽에 있는 것이 아니라 名에 있다. 예전에 안회는 초록한 골짜기에서 높은 베개를 베고 지냈으나, 만세에 걸쳐 순임금과 우임금과 함께 영광을 누렸고, 이제(夷齊)는 주(周)의 곡식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어 먹었으니, 그들의 名은 해월과 빛을 다투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한 '죽어도 망하지 않는 자가 장수한다'는 것은 바로 이 말을 가리킨 것이다. 만약 불의한 방법으로 부하고 귀하여 몸을 기른다면, 단지 거북과 뱀과 함께 오래 갈 뿐이다. 이는 유자(柳子)가 말한 '빛나지만 치욕스럽고, 하얗게 늙었으나 하늘을 받드는 자'일 뿐이다.岂不 슬프겠는가. 서하(西河) 선생은 어릴 적부터 세간에 시명으로 이름이 높았다. 책을 읽을 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 같았으나, 그 [결락] 글자를 파고들면 글자마다 뿌리와 줄기가 있어, 진정으로 소동파와 황정견의 유법을 얻었으니, 문단에서 웅장하게 바라볼 수 있어 백 보 밖의 가래잎을 뚫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지 못하다가, 의종(毅王) 말년에 집안이 화를 입어 온몸이 거의 탈출할 뿐이었다. 강 남쪽으로 피난하여 여러 해를 보낸 후 다시 경성으로 돌아와 남은 불씨를 모아 모으고, 세 번의 도피의 치욕을 씻고자 하였으나, 결국 한 명의 이름도 이루지 못했다. 종백(宗伯) 이상국(李相國)이 지은 시에 이르기를 '단오(丹桂)가 오랫동안 원한을 품고 있음을 한탄하지 말라. 사람들이 내년에 장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무수히 우임금이 많은 날의 한을 품었어도, 영걸을 내 문하에 두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비록 궁핍하고 좌절하여 떨치지 못했으나, 이와 같이 명성이 신하들 사이를 움직였다. 대개 붓을 잡는 사람들은 시에는 능하나 문장에는 짧아, 서로 득실함이 있고, 우(右)에 뛰어난 미덕을 갖추었으나 겸득하기는 드문 것이다. 선생은 고문을 얻었고, 시에는 소아(騷雅)의 풍골이 있었다. 바다에서 동쪽으로, 포의(布衣)로서 세상에 웅거한 이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그가 죽은 지 이미 스무 해가 지났으나, 학자들은 입으로 읊조리고 마음으로 사모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장차 굴원(屈)과 송옥(宋) 사이에서 제사를 지내고자 함이니, 군자가 말하는 귀하고 장수하는 바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 후생들이 읊조린 나머지 유편을 얻어, 모두 몇 수를 여섯 권으로 나누어, 제목을 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이라 하고, 아들 비(祕)에게 명하여 필사본을 교정하게 하여, 판각하여 전하고자 하였다. 하늘이 나이와 함께하지 않아 지은 글이 많지 않은 것을 아까워하나, 봉황의 한 깃털을 보면 아홉 가지 보배로운 상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선생의 이름은 춘(椿), 자는 기지(耆之)가니, 그의 학문은 실로 가숙 학사 종비(宗庇)에게서 얻은 바이다.

4. 李郞中〔原注:惟誼〕茶店晝睡〔原注:二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8B, ITKC_MO_0003A_A001_208C ...

원문

頹然臥榻便忘形。午枕風來睡自醒。夢裏此身無處著。乾坤都是一長亭。虛樓夢罷正高舂。兩眼空濛看遠峯。誰識幽人閑氣味。一軒春睡敵千鍾。

번역

기품없이 침상에 누워 형체를 잊으니, 정오의 베개에 바람이 불어 스스로그 깨어난다. 꿈속에서 이 몸은 놓일 곳이 없어 천지만방이 다 한 길 긴 정자일 뿐이다. 허루에서 꿈이 깨어나 해가 이미 높게 뜬 것을 보니, 두 눈은 흐릿하여 먼 봉우리를 바라본다. 누가 은거한 선비의 한가한 정취를 알리오. 한 방의 봄잠은 천 잔의 술에 비할 만하다.

5. 謝人以筆墨見惠〔原注:筆上所賜。〕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世有中書君姓毛。從來四貴共爲曹。神人夢授名何重。天子恩分品已高。心怪本無犀一點。學嗟虛禿兔千毫。今朝謬辱賢侯惠。應助楊雄廣反騷。東坡惠我老松煙。妙法應非世所傳。欲與翰林爲子墨。喜從書苑得陳玄。數枚初得香猶在。妙質應欺玉未堅。若向楯頭磨作檄。將軍才思有誰先。

번역

세상에 중서군(中書君)이라는 성이 모(毛)인 분이 계시다. 예로부터 네 가지 귀한 물건이 함께 무리를 이루었으니, 그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신선이 꿈에 내려주어 이름을 지어주심이 어찌 중하지 않겠는가. 천자의 은택으로 품계가 이미 높으니, 마음속으로 의아해하건대 본래 뿔의 한 점도 없거늘, 배우는 바 탄식하건대 허송세월 수천 개의 토끼털만 바랐도다. 오늘 우연히 현후의 은혜를 입었으니, 응당 양웅(揚雄)이 반소(反騷)를 넓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동파(東坡)가 내게 노송연(老松煙)을 주시니, 묘법(妙法)은 세상에 전하여지지 않은 것일 것이다. 한림(翰林)에게 자묵(子墨)이 되기를 원하며, 서원(書苑)에서 진현(陳玄)을 얻게 되어 기쁘다. 처음 몇 개를 얻었을 때 향기가 아직 남아있고, 묘한 질감은 아직 단단하지 않은 옥을 능가할 것이다. 만약 방패 머리에서 갈아 칵테일(檄)을 쓴다면, 장군의 재주와 사색을 누가 앞서겠는가.

6. 題天院柳光植家橙〔原注:時擢用宋人王逢辰〕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9A

원문

仙橙傍砌生一株。問君安得移江湖。渡淮爲枳吾未信。天資不以地性渝。用與不用百里奚。豈智於秦愚於虞。托根近壤誰肯取。幸汝窮僻生荒隅。物因地貴已可笑。魯人豈是皆師儒。遐方異產人所嗜。遂令西伯菹菖蒲。紫梨丹李遍都邑。笑爾獨立何羈孤。君家栽種計已早。山中不羨千頭奴。會看秋晚園林霜。玉腦正拆黃金膚。勸君釀作洞庭春。香色味好勝羅浮。翠勺銀罌取甕頭。濁於甘露淸醍醐。初寒欲雪正可飮。呼我華堂傾一壺。

번역

선橙(선橙)이 계단 곁에 한 그루 자라나니, 군안(君安)이 어찌하여 강호(江湖)에서 옮겨왔는가? 회수(淮水)를 건너면枳(적)이 된다는 말은 내가 믿지 않으니, 천성(天資)은 땅의 성질에 의해 변하지 않느니라. 쓰임이 있든 없든 백리해(百里奚)는 진(秦)에서는 지혜롭고 우(虞)에서는 어리석았다고 어찌할 것인가? 근접한 땅에 뿌리를 내렸으니 누가 기꺼이 취하겠는가? 다행히도 너는 궁벽한 곳인 황우에서 자랐구나. 물건을 땅에 따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이미 웃길 노릇이니, 노(魯)나라 사람들이 모두 사서(師儒)인 것은 아니니라. 먼 지방의 이산(異產)은 사람들이 좋아하여, 이로 인해 서백(西伯)이 창포(창포)를 장아찌로 만들게 되었느니라. 자배(紫梨)와 단리(丹李)가 두읍(都邑)에 두루 퍼졌으니, 너 혼자 독립하여 어찌 외롭지 않느냐? 너희 집이 심은 지는 이미 오래되어, 산중에서 천두노(千頭奴)를 부러워하지 않느니라. 가을晚(만)에 원림(園林)에 서리가 내리는 것을 보게 되리니, 옥뇌(玉腦)가 정녕 황금빛 피부로 갈라지리라. 너에게 권하노니 정동(洞庭)의 봄酒(주)로 빚어라. 향기와 빛깔과 맛이 나로부(羅浮)보다 뛰어나니, 취(翠) 숟가락과 은병(銀罌)으로 병머리를 떠서, 감로(甘露)보다 탁하고 제호(제호)보다 맑게 하라. 초한(初寒)에 눈이 내릴 때가 바로 마실 적이니, 나를 부르라. 화당(華堂)에서 한 호(壺)를 기울이리라.

7. 七夕〔原注:三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9B

원문

銀河淸淺月華饒。也喜神仙會此宵。多小人間烏與鵲。年年辛苦作仙橋。

번역

은하수는 맑고 얕아 달빛이 더욱 풍부하니, 신선들도 이 밤에 모임을 기뻐하리라. 세속의 사람들은 까마귀와 까치에게 오히려 많은 일을 맡기며, 매년 수고롭게도 선녀를 위한 다리를 만들어 주느라 바쁘도다.

원문

坐想豪奢許史門。曝衣樓上綺羅繁。未能免俗聊爲爾。高掛中庭犢鼻禈。

번역

호사스러운 허사(許史)의 문중을 생각하며,曝衣樓 위에는 비단옷이 가득하다. 속세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잠시 너를 위해 중정에 소복(犢鼻禈)을 높이 걸어둔다.

원문

千家肴菓競時新。無限區區乞巧人。獨與天孫仍有約。更將愚拙付精神。

번역

천 가구의 과일과 과자가 제때에 새것을 다투어 내놓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정성껏 칠석의 기도를 올린다. 나는 유독 천손(織女)과 여전히 약속이 있어, 어리석고 둔한 마음을 그에게 맡기노라.

8. 盤松歌

문체: 詩類 / 其他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9C, ITKC_MO_0003A_A001_209D

원문

人言萬物生於天。天本無心醜與妍。豈識紛紜千百態。神愁鬼泣勞雕鐫。雖有良工騁奇巧。疲精竭慮難爭先。不爾天公有造化。亦於何處施其權。吾觀草木狀不同。如人賦與多奇偏。申屠兀其足。甕盎高其肩。大哉天地間。耳目不可窮幽玄。山經地誌多汗漫。荒怪萬象無不傳。曾聞赤枲九衢秀。亦有雙瓜雙蔕連。張華旣沒不復生。誰能博物渾磨研。峯深路絶人罕到。盤松鬱鬱生幾年。地下根深帶茯苓。久爲琥珀凝精堅。凌空直幹未百尋。低枝交錯拏虯拳。有如將軍獵渭城。高張帷蓋影交纏。又如公子遊西園。輕飛繖蓋形團圓。奇姿詭狀獨鍾爾。有口如箝理莫詮。我疑山靈多產異。效奇此物尤可憐。功成已久不欲出。藏之壑底深雲煙。乃今還爲人所得。由來至寶那能專。君不見雙童立雪雪至腰。化爲老檜生庭前。又不見二妃泣血血染竹。斑爛千簇搖江邊。物化皆因誠所感。我嘗一一徵前篇。因知今爾十八公。曾是靑山避世仙。居巖斷穀學祕訣。服藥生毛歲一千。變此蒼髥黑甲身。乃得久壽窮山川。古來遊賞皆賢豪。壁間珠玉堪成編。

번역

사람들이 만물이 하늘에서 난다고 말하지만, 하늘은 본래 심술궂음과 아름다움이 없다. 어찌 그 복잡다단한 천백 가지의 모습을 알겠는가. 신령은 슬퍼하고 귀신은 울며 조각과 새김에 수고한다. 비록 뛰어난 장인이 기이하고 묘한 기교를 펼치더라도, 정력을 피로하게 하고 고심을 다해 앞서 나가려 해도 쉽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하늘 공이 조화를 이루었다면, 또한 어디에서 그 권능을 발휘하겠는가. 내가 초목의 모양이 서로 다르음을 보노라. 마치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 많고 기이하며 편벽됨과 같다. 신투(申屠)는 그 발이 울퉁불퉁하고,瓮盎(옹앙)은 그 어깨가 높다. 크고 위대한 천지 간에, 귀와 눈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깊고 신비로운 것이 많다. 산경(山經)과 지지(誌)에는 많고 흩어짐이 있어, 황량하고 기이한 만상이 전하지 않는 것이 없다. 전에 적시(赤枲)가 구거(九衢)에서 수려함을 들었다. 또한 쌍과(雙瓜)와 쌍제(雙蔕)가 이어진 것도 있다. 장화(張華)가 이미 죽어 다시 태어나지 않으니,谁能博物하여 온전히 연구하겠는가. 봉우리는 깊고 길은 끊어져 사람이 드물게 다니는데, 반송(盤松)은 우거져 몇 해를 살았는가. 땅 아래 뿌리는 깊어 부령(茯苓)을 띠고, 오래되어 호박(琥珀)이 되어 정기가 응결되어 굳어졌다. 공중을 향해 곧게 뻗은 줄기는 백尋(尋)을 넘지 않으나, 낮은 가지들은 서로 얽혀 용의 주먹을 쥐은 듯하다. 마치 장군이渭城(위성)에서 사냥하듯, 높게 장막과 덮개를 펴고 그림자가 서로 얽혀 있다. 또 다시 공자가西園(서원)을 유람하듯, 가볍게 날아 장막과 덮개의 모양이 둥글고 원만하다. 기이한 자세와 괴상한 모양은 오직 너에게만 집중되었으니, 입이 괘(箝)처럼 막혀 이치를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산령이 많은 이물을 생산한다고 의심한다. 기이함을 보임에 있어 이 물건을 특히 불쌍히 여긴다. 공이 이미 이루어졌으나 나오기를 원하지 않아, 골짜기 밑 깊은 구름과 연기에 숨겨두었다. 이제야 다시 사람의 손에 들어왔으니, 원래 지극히 보물인 어찌 전적으로 소유할 수 있겠는가.君不見(군불견)雙童立雪(쌍동립설)이 눈이 허리에 이를 때, 노송이 되어 정자 앞에 생겼다 함을. 또 二妃泣血(이비급혈)이 피를 흘려 대나무를 물들여, 반란(斑爛)한 천 무더기가 강가에서 흔들림을 보지 못했는가. 사물의 변화는 모두 성실함에 감응하여 이루어졌으니, 나는 일일이 이전 편을 징험하였다. 이로써 오늘날의 十八公(십팔공)이 과연 靑山避世仙(청산피세선)이었음을 안다. 바위 사이에 거처하며 곡식을 끊어 비결을 배우고, 약을 복용하여 털이 나게 하여 일천 년을 산다. 이苍髥黑甲身(창염흑갑신)을 변화시켜야 비로소 오래 수명을 다하여 산천을穷(궁)하게 할 수 있다. 옛날부터 유승한 자들은 모두 현호(賢豪)였으니, 벽 사이의 주옥(珠玉)은 감히 편을 이룸이 된다.

9. 謝人見訪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長安霖雨後。思我遠相過。寂寞蝸牛舍。徘徊駟馬車。恒飢窮子美。非病老維摩。莫署吾門去。聲名恐更多。

번역

장안(長安)에 장마가 그친 뒤, 나를 생각하여 멀리서 찾아와 주시니, 쓸쓸한 달집(蝸牛舍)에 네 마리의 말이 끄는 고귀한 수레가 머무르네.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는 자미(子美)와, 병들지 않은 노维摩(維摩)라 할지라도, 우리 문턱에 머무르지 말게 하소서. 소문이 더 퍼질까 두려우니.

10. 八月十五夜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共看中秋月。高樓對酒壺。雲頭初湧出。天面淨都盧。子落恒娥桂。光潛老蚌珠。誰知淸景好。却勝武昌都。

번역

함께 중추의 달을 바라보며, 높은 누각에서 술잔을 대한다. 구름 머리에서 비로소 달이 솟아오르고, 하늘 면은 깨끗하여 온통 빛난다. 상상의 달 속 계수나무에서 씨앗이 떨어지고, 빛은 늙은 조개의 진주를 감춘다. 누가 이 맑고 아름다운 정경을 알리오, 오히려 무창도(武昌都)보다 더 낫도다.

11. 用前韻贈演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風波早出世。實賴千金壺。我愛高僧遠。誰知甲姓盧。資身唯鉢飯。悟性護衣珠。膝下歡猶在。逡巡戀故都。

번역

풍파는 일찍이 세상에 나왔으니, 실로 천금 같은 병(壺)을 의지하였다. 나는 고승의 원대한 뜻을 사랑하나, 누가 갑씨(甲姓)인 노(盧)를 알겠는가. 몸을 부양하는 것은 오직 밥 한 그릇에 의존할 뿐이고, 성품을 깨닫는 것은 옷의 진주(보배)를 지키는 것과 같다. 무릎 아래(부모)의 기쁨이 아직 남아 있으니, 주저하며 옛 도읍을 그리워한다.

12. 記夢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0B

원문

我夢乘風到月宮。排門直捉恒娥問。奈何使爾司春桂。與奪不公人所慍。低頭再拜謝我言。妾不愛憎皆委分。紫府今書君姓字。曾陪王母遊閬苑。也爲輕狂多負過。帝令譴謫方知困。從此文星不在天。世人誰識塵中隱。四海詩名三十秋。燒丹金鼎功成近。留着高枝且待君。明年折取應無恨。

번역

내가 꿈에 바람을 타고 달궁에 이르러, 문을 밀고 들어가서 바로 형아(嫦娥)를 붙잡아 물었다. "어찌하여 너로 하여금 춘계(春桂)를 주관하게 하였는가? 그 주고받음이 공정하지 않아 사람들이 원한을 품고 있노라." 형아가 머리를 숙이고 두 번 절하며 내 말에謝하며 말하였다. "저는 사랑하고 미워함이 모두 하늘의 분수(分數)에 맡겼사오니, 이제 자부(紫府)에 이미 저의 성명을 기록하셨사오며, 또한 왕모(王母)와 함께 낭원(閬苑)을 유람하였사옵니다. 또한 경망스러워 많은 과오를 지었사오니, 천제께서 쫓아내려 명하시니 비로소 곤궁함을 아나이다. 이로부터 문성(文星)이 하늘에 있지 않으니, 세상의 누가 더러움 속에 숨은 은자(隱者)를 알리이까? 사해(四海)에 시명이 삼십 년이었사오나, 단전(丹鼎)에서 단을 태우는 공이 이미 가까웠사옵니다. 높은 가지에 머물러 잠시 임을 기다리리니, 내년에는 가지를 꺾어 가져가도 후회함이 없으리다."

13. 贈眉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丹穴有鳳凰。一朝生鸑鷟。初離產毻中。五色文章足。飛來入南國。豈可樊籠束。何時出大平。鳴應韶簫曲。

번역

단혈(丹穴)에 봉황(鳳凰)이 있어, 하루는 악작(鸑鷟)이 태어났네. 처음에는 산타(產毻)의 구렁에서 벗어나, 오색의 문채(文章)가 충분하도다. 날아와 남국(南國)에 들어왔으니, 어찌 가두리 속에 가둘 수 있겠는가. 언제 대평(大平)의 세상에 나오리요. 소아(韶簫)의 곡조에 응하여 울부짖으리니.

14. 寄益源上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0C

원문

尋眞函丈興何幽。碧眼淸談盡日留。逐世自嗟歸計晚。談空轉覺此生浮。祇從居士田園樂。不與禪師杖錫遊。適性足爲愚谷子。無官合拜醉鄕侯。却慙成佛非靈運。解愛能詩有惠休。莫厭共傾三昧酒。古來儒釋稱風流。

번역

진리를 구하는 마음, 스승님의 문하에서 얼마나 깊고 고요한가. 푸른 눈의 청담은 하루 종일 머물러도 부족함이 없도다. 세속을 따르며 스스로 돌아갈 계책을 늦게 깨달았음을 한탄하고, 공(空)을 논하며 오히려 이 생의 허망함을 깨닫노라. 다만 거사의 전원 생활의 즐거움만 따를 뿐, 선사의 지팡이와锡(석)을 들고 다니는 수행은 하지 않노라. 성품을 따라 함이 우곡(愚谷) 송량(宋亮)에게 충분하니, 벼슬이 없으니 마땅히 취향후(醉鄕侯)에게 예를 갖추어야 하리라. 다시 깨달아 부처가 된 것은 영운(靈運)이 아니라는 부끄러움이 있으나, 시를 잘 아는 데에는 혜휴(惠休)를 이해할 수 있노라. 함께 삼매(三昧)의 술을 마시는 것을 싫어하지 말라. 옛적부터 유가(儒家)와 석가(釋家)가 풍류로 칭송되었노라.

15. 寄友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十年流落半生涯。觸處那堪感物華。秋月春風詩準備。旅愁羈思酒消磨。縱無功業傳千古。祇有文章自一家。盛世偸閑殊不惡。從敎身世轉蹉跎。

번역

십 년 동안 유랑하며 반 생애를 보냈으니, 닿는 곳마다 어찌 물화의 변천을 감내할 수 있으랴. 가을 달과 봄바람은 시를 준비할 뿐이요, 여정의 근심과 매인 된 생각은 술로 달래네. 비록 공업이 천고를 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오직 문장만은 나의 집안 것이라. 태평성대에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나쁘지 않으니, 세상의 내 몸을 따라 실족하게 두자.

16. 寄山人益源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0D, ITKC_MO_0003A_A001_211A

원문

吾少愛林泉。浩然思歸歟。當時重違親。名利豈所拘。及此遭喪亂。飄然放江湖。高遁方可樂。不去胡爲乎。亦由身有累。未忍捐妻帑。羨子拂長袖。靑山歸結廬。峯巒信奇秀。人道似香爐。雲煙藏洞壑。縹緲疑有無。去此跬步間。思之不與俱。子有丹靑習。何不傳其圖。嘗聞避時者。亦有山澤癯。往而不知返。無奈近於愚。今子學眞理。而隱佛之徒。放迹逃名敎。幽閑意所娛。春秋猶且富。其道固已孤。吾觀今之世。擾擾群浮屠。奇形又詭服。與俗無異趨。以此獲其罪。見排於吾儒。而子獨不然。囂塵厭寰區。飛錫來江南。十載眠團蒲。一褐度冬夏。一飯終朝晡。無言自觀心。閫外足不踰。吾方困流落。鬱鬱居荒隅。無人可與語。獨生空長吁。一朝乃得子。喜見碧眼胡。酸辛話平生。竟夕傾村沽。別來纔數月。尺書屢見呼。今聞群盜盛。侵邑而攻都。朝廷懸美賞。州郡募壯夫。世患非吾事。食肉者謀謨。不如居巖穴。斷穀食松腴。莫作北山移。吳儂有林逋。

번역

나는 어릴 적부터 산림과 샘물을 사랑하여, 홀연히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을 품었노라. 당시에는 부모를 거역하기 어려웠기에, 명리와 이치가 나를 구속하지 못하였노라. 이제 장송과 난리를 만나, 홀연히 강호에 몸을 던졌노라. 높은 은거야말로 즐길 만하니, 가지 않음이 어찌 하겠는가. 또한 몸이 부양할 가족이 있어, 아내와 자식을 버리지 못했노라. 자네는 긴 소매를 털고, 푸른 산에 돌아가 초막을 짓는 것을 부러워하노라. 봉우리와 산세는 참으로 기이하고 수려하며, 사람들이 말하기를 향로봉(香爐峰)과 같다고 하노라. 구름과 안개가 동굴과 골짜기를 감싸고 있어, 표묘하여 있음과 없음이 의심될 지경이로다. 여기서 가깝게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 생각해도 함께하지 못하노라. 자네는 채색(丹青)의 기예를 갖추었으니, 어찌 그 그림을 전하지 않느냐. 들으니 때를 피하는 자들도 또한 산천(山澤)의 여윈 선비가 있었다고 하노라. 가서 돌아오지 못하니, 어찌 가까운 어리석음에 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자네는 진리(眞理)를 배우면서 불교의 무리 속에 숨어 있도다. 명교(名敎)에서 벗어나 은일하며, 고요하고 한가한 것이 마음의 즐거움이라 하노라. 나이가 아직 젊으니, 그 도는 이미 고독하도다. 내가 오늘날 세상을 보니, 소란스러운 무리들의 승려들이라 하노라. 기이한 형체와 기묘한 옷차림으로, 세속과 다른 기운이 없도다. 이로 인해 죄를 얻어, 우리 유가(儒家)에게 배척을 받노라. 그러나 자네는 홀연히 그렇지 않아, 소란스러운 먼지를 싫어하여 환구(寰區)를 피하노라. 석(錫)을 들고 강남(江南)에 와서, 십 년 동안 둥근 짚베개에 잠들었도다. 한 겹의 옷으로 겨울과 여름을 넘기고, 한 끼의 밥으로 아침과 저녁을 마쳤노라. 말없이 스스로 마음을 관조하며, 문밖(閫外)을 넘어선 지 발걸음이 넘지 않았노라. 나는 지금 유랑하며 곤궁하여, 우울하게 황량한 구석에 머물고 있노라. 함께 말할 이가 없어, 홀로 빈 긴 한숨만生出하노라. 어느 날 마침내 자네를 만나, 푸른 눈의 호인(胡人)을 본 기쁨을 느끼노라. 신산스러운 평생을 말하며, 밤새도록 마을의 술을 기울여 마셨노라.別來한 지 겨우 몇 달인데, 짧은 편지가 자주 오가노라. 이제 무리가 성행하여, 고을을 침략하고 도성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들었노라. 조정에서는 훌륭한 상을 걸고, 주군(州郡)에서는 장부를 모집하노라. 세상의 근심은 나의 일이 아니니, 고기를 먹는 자(재상)들이 모의하리라.不如하여 바위 굴에 거하며, 곡식을 끊고 소나무 수지를 먹으리라. 북산(北山)의 초막을 옮기지 말라. 오농(吳儂)에게 임포(林逋)가 있노라.

17. 趙亦樂將隱居城南。分韻得歸字。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得車舐痔性多違。洗耳踰垣世亦非。誰似先生嫌異俗。雲山城市兩忘歸。

번역

수레를 타고 창자를 핥는 짓은 본성으로서는 많이 어긋나고, 귀를 씻고 성벽을 넘어간 일은 세상 또한 옳지 않도다. 어찌하여 선생만은 이방의 풍속을 싫어하여, 구름과 산 그리고 도시를 모두 잊고 돌아감을 잊었는가.

18. 李尙書〔原注:允脩〕謝□賜藥設宴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聖君優老特臨軒。遣使傳宣立戟門。早賜金蓮垂異寵。更將鍾乳賞忠言。丁寧紫詔關□宸柙。瀲灎黃封輟上樽。綠野堂中張綺宴。樂聲先按感皇恩。

번역

성군께서 노인을 특별히 우대하여 임헌(臨軒)에 임하셨고, 사신을 보내어 입격문(立戟門)에서 전선(傳宣)하게 하셨네. 일찍이 금련(金蓮)을 하사하여 이로운 은총을 내리셨고, 다시 종유(鍾乳)로 충언(忠言)을 상으로 주셨네. 정성스러운 자조(紫詔)가 □을 관여하여 진찰(宸柙)을 닫았고, 빛나는 황봉(黃封)이 상존(上樽)을 멈추었네. 녹야당(綠野堂)에서 비단 연회를 베풀고, 악성이 먼저 감황은(感皇恩)을 연주하도다.

19. 寄湛之乞墨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1C

원문

吾窮正坐詩。袖手久已縮。但恐身後名。同腐草與木。晚學揚子雲。草玄在天祿。隃麋不見賜。未奏三千牘。念昔家未破。嘗寶松煙馥。正患墨磨人。豈暇歎未足。如今篋笥貧。牢落無餘蓄。君得東坡法。油煙收幾掬。歲月儻可支。分我一寸玉。

번역

나는 궁핍한 것이 오직 시(詩) 때문이라. 손을 소매 속에 넣고 이미 오래도록 위축되어 있노라. 다만 사후의 이름이 썩은 풀과 나무와 함께 썩을까 두려울 뿐이라. 늦게 양자운(揚子雲)을 배워 천록(天祿)에서 초현(草玄)하였으나, 예미(隃麋)의墨을 하사받지 못해 삼천 장의 글을 올리지 못하였노라. 예전에 집이 무너지지 않았을 때, 송연(松煙)의 향기를 귀하게 여겼노라. 다만墨이 사람을 갈게 하는 것을 근심할 뿐, 부족함을 한탄할 겨를이 없었노라. 이제 궤와 상자 안이 가난하여 남긴 것이 없으니, 당신께서 동파(東坡)의 법을 얻어 기름 연기를 몇 줌 거두었도다. 세월이 만약 버틸 만하다면, 내게 한 마디의 옥(墨)을 나누어 주시오.

20. 訪咸子眞山居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先生隱市朝。負郭構茅舍。爲是愛山人。頻邀好事者。飮酒子誠能。吟詩我亦頗。優游數畝園。寬於一天下。

번역

선생님은 시장과 조야(시끄러운 세상)에 은거하시어 성곽 근처에 초가를 지으셨다. 산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주 호의적인 사람들을 초대하셨다. 술을 마시는 것은 자성(子誠)이 능하고, 시를 읊는 것은 나도 제법 한다. 너른 수무(數畝)의 정원에서 유유자적하는 것은 천하를 넓게 보는 것과 같다.

21. 樓上小飮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曾醉東吳八詠樓。能文主客盡風流。談鋒競發雌黃妙。酒令初嚴大白浮。徐稚已敎懸榻下。陳遵未厭閉門留。廻思別後雙溪月。誰伴高吟沈隱侯。

번역

예전에 동오의 팔영루에서 취했던 적이 있다. 문재 있는 주인과 객들은 모두 풍류가 있었다. 담론의 날카로움이雌黃의 묘미를 겨루어 내었고, 술잔의 명령이 처음 엄숙해지자 큰 잔에 술이 떠올랐다. 서稚는 이미 침상을 매달아 예우하였고, 진준은 문을 닫고 머물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이별 후의 쌍계(雙溪) 달을 회상해 보노라. 누가 높은 노래를 함께하며 심은후와 함께했을까.

22. 戲贈〔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1D

원문

憶曾淸夜醉華茵。同賞樽前一搦身。寄語鶯鶯須好在。會應重見老詩人。

번역

맑은 밤에 화초 위에서 취했던 일을 기억하노라. 잔치 앞의 그 아담한 몸과 함께 즐기었노라. 앵앵이여, 무사히 지내기를 빌노라. 반드시 노인이 된 나를 다시 보게 되리라.

원문

倡樓高會舞吳娃。別後闌干玉筯齊。莫笑狂生豪橫過。近來心似絮粘泥。

번역

창루에서 높은 잔치를 열고 오아(吳娃)들이 춤을 추었노라. 그 후로 난간에는 옥젓가락(눈물)이 줄지어 흐르었도다. 망성한 선비를 웃지 말라. 최근의 마음은絮(솜)가 진흙에 달라붙은 듯하도다.

23. 贈眉叟弟僧纘之〔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長安初識少麒麟。不見于今七換春。客路相逢談往事。與君俱是夢中人。

번역

장안에서 처음 소림(少麟)을 만났으니, 이제 보니 일곱 해 봄이 바뀌었도다. 나그네 길에서 만나 옛일을 이야기하니, 우리 둘은 모두 꿈속 사람이로다.

원문

親愛慇懃挽不留。飄然一衲占高遊。知君已作江山主。豈羨人間萬戶侯。

번역

친애함이 간절하여 말리며 붙잡지 못하니, 홀로 한 겹의 가사(伽沙)를 걸치고 높은 곳을 누비며 유람하도다. 이미 그대가 강산의 주인이 되었음을 알겠으니, 어찌 인간의 만호후(萬戶侯)를 부러워하겠는가.

24. 漢陽吳賢良世才見訪。以詩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2A

원문

大曆能文士。昌黎與皇甫。時雖少推許。同訪牛僧孺。姓字留其門。慇懃記不遇。奇章聲大振。一日傳區宇。君才似文公。學者多欣慕。念我久逃虛。惠然肯來顧。空令長者車。却返深山路。免使世俗聞。名高亦可懼。何時與論文。更見今韓愈。

번역

대력(大曆) 연간에는 문재(文才)가 뛰어난 선비들이 많았는데, 창려(昌黎) 한유(韓愈)와 황보(皇甫) 숙(宿)이 그들 중이었다. 당시에는 비록 그들을 적게 칭찬했으나, 함께 우거(牛僧孺)를 찾아가 그 이름과 자(字)를 그의 문하에 남기며, 인연이 없어 만나지 못함을 근심하며 정성스럽게 기록하였다. 기장(奇章) 정(鄭)의 명성이 크게 떨쳐 하루아침에 사방에 전파되었으니, 당신의 재주는 문공(文公) 한유와 같아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동경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도피하여 은거해 왔으나, 당신이 은혜로이 기꺼이 찾아와 주시니, 부득이 노인의 수레를 비워 드리게 되어 다시 깊은 산길로 돌아가게 되었다. 세속의 사람들이 나의 이름이 높음을 알게 하여 두려워하게 하지 않도록, 언제가 되어 함께 문장을 논하며 오늘날의 한유를 다시 보게 될는지.

25. 詠夢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疏慵多是泥春天。頻到香閨玉枕前。詩榻夜涼風斷送。倡樓日晏酒拘牽。一場曾把浮生比。千里長將別恨傳。更爲等閑拋世慮。近來還繞舊林泉。

번역

소탈하고 게으른 성정으로 봄날의 진흙을 더 많이 밟으며 지내니, 자주 향기로운 방과 옥 베개 곁으로 찾아가네. 시를 짓는 침상에는 밤마다 서늘한 바람이 흐르고, 창가의 누각에서는 해가 저물어 술자리가 이어지네. 한때는 헛된 일생을 비추어 보았고, 천 리 밖에서는 이별의 한을 길게 전했네. 더욱이 세상의 근심을 가볍게 여겨 버렸으나, 최근에는 다시 옛 숲과 시냇물 곁을 맴돌고 있구나.

26. 漁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2B

원문

浮家泛宅送平生。明月扁舟過洞庭。壇上不聞夫子語。澤邊來笑屈原醒。臨風小笛歸秋浦。帶雨寒蓑向晚汀。應笑世人多好事。幾廻將我畫爲屛。

번역

배를 띄우고 집을 옮겨 다니며 평생을 보내었노라. 밝은 달 아래 작은 배 타고洞庭을 지나노라. 단상 위에서는 부자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강가에서는 굴원(屈原)이 깨어 있는 것을 비웃으며 오노라. 바람을 맞으며 작은 피리를 불어 가을 강가에 돌아가고, 비를 맞으며 추운 갈옷을 입고 저녁 무렵의 작은 언덕으로 향하노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을 좋아하는 것을 웃으리라. 여러 번 나를 그림으로 그려 벽에 걸었도다.

27. 咸寧侯手種四季花於足庵。代闡公作詩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2C

원문

仙葩風骨尤淸眞。長生獨得名常春。定從阿母分靈丹。一粒便得童顏新。天工夜夜了不睡。護惜不與群芳均。侯家栽遍恐無地。爭買散盡千金珍。老僧有眼故不枯。欲種奈此山家貧。昨夜達院插寸枝。手侔造化眞天人。更將羯鼓忽催打。一笑嫣然發絳脣。未解韓郞寧底巧。雪中頃刻開淸晨。誰知丈室老龐蘊。默坐不覩天女身。紛紛走看傾都邑。鶴林復有司花神。何時車馬更臨賞。對花一飮千杯巡。

번역

선경의 꽃은 풍골이 더욱 청아하고 진실하여, 장생하여 오직 명성을 얻고 항상 봄을 유지하느니라. 반드시 아모(阿母)에게서 영단(靈丹)을 나누어 받아, 한 알만 얻어도 어린 아이의 얼굴이 새로워지느니라. 하늘의 공작이 밤마다 잠들지 않고, 보호하여 아끼며 군방(群芳)과 균등하게 대하지 않도다. 후가(侯家)는 온 집안에 심었으나 땅이 부족하여 걱정하며, 돈을 다 써가며 흩어진 천금(千金)의 보물을 사느니라. 늙은 스승은 눈이 있어 고갈되지 않으니, 심고자 하나 산가의 가난함을 어찌할 수 없도다. 어제 밤 달원(達院)에 한 마디 가지를 꽂으니, 손이 조화(造化)와 같아 참으로 천인이로다. 다시 갈고(羯鼓)를 가져와 갑자기 치게 하니, 한 번 웃으며 아리따운 자태로 붉은 입술을 열었도다. 한랑(韓郞)이 어찌 그토록 교묘한지 알 수 없으나, 눈 속에서 순식간에 맑은 아침을 열었도다. 누가 알리오, 장실(丈室)의 노龐蘊(방온)이 고요히 앉아 천녀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음을.紛紛히 달려가 구경하여 성읍을 기울이니, 학림(鶴林)에 다시 사화신(司花神)이 있도다. 언제 수마(車馬)가 다시 찾아와 구경할꼬, 꽃 한 송이를 대하고 천 잔의 술을 돌리며 마시리라.

28. 次韻鄭侍郞敍詩〔原注:并序〕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2D, ITKC_MO_0003A_A001_213A ...

원문

故學士鄭公。余不及見之。有藏其遺藁者。乃公貶南時所和中淳禪老詩也。追和其韻。

번역

고학사 정공(鄭公)은 내가 직접 뵙지 못하였으나, 그의 유고를 간직한 자가 있어, 그것은 공이 남쪽으로 유배되었을 때 중순선사(淳禪老)와 화답한 시들이었다. 나는 그 운을 따라 지었다.

원문

先生自名家。累葉傳侯伯。相襲珥貂蟬。皆立門前戟。公初有異器。能繼前人迹。斷乳始屬文。技巧又兼百。至尊召之見。降輦迎大白。欣然賜龍顏。寵愛日以益。握手入臥內。契密如金石。廷臣多缺望。聲勢方炎赫。中間忤貴倖。巧讚含沙射。見黜金閨名。良由釁所積。長沙逐賈生。無復虛前席。滄浪作釣翁。浮家而泛宅。千載雖一遇。飜覆在朝夕。固知行路難。擧足多岝峉。始自毫髮差。遂成丘山責。終身纏罪辜。顚踣常動魄。禦魅二十年。愆過懲於昔。遷徙席不暖。所居如郵馹。南中瘴霧深。可虞傷氣脈。優游縱巖壑。屢躡登山屐。聖明方在上。招還劉禹錫。識者聞而喜。以手但加額。是時仇家去。誰作鴟鴞嗝。歸來守先廬。賜書存舊壁。一日朝紫宸。經筵爲之闢。天語垂丁寧。問以寒暄隔。及當危難際。立朝多逼側。忠誠不見知。空使血化碧。忽昨見遺墨。之人猶目擊。神毫鬪蛟螭。大手搏貙獥。翻瀾一快讀。嗜閱空成癖。還疑照乘珠。初從頷下索。觀者已爭購。流傳遍蠻貊。哀哉命壓頭。平生困廝役。雖俟河之淸。百歲如過客。否泰各有理。豈用占蓍策。至人齊寵辱。困窮無戚戚。相從子輿遊。解以生爲脊。靜默閱時人。狂惑等李赤。國恩終未報。慨爾懷奮激。膽氣雖不讓。動輒遭嘲嚇。〔原注:音郝朴切。怒也。〕窮途墮千仞。長綆呼烏獲。出袴當俛就。唾面何敢逆。自從劉備瓜。常恐郭生麥。閑棲多暇日。章句搜且摘。感憤寓諸文。紛紛盈簡策。子雲方草玄。聊愛窮居寂。詞人多薄命。自古例陷阨。海山有歸處。仙遊邈難覓。今修玉樓記。不向人間謫。所恨不同時。意若調飢惄。

번역

선생은 본래 명문 출신이셨다. 대를 이어 후작과 백작의 작위를 물려받으셨고, 이어받으며 관복의 비단 장식과 면류관을 착용하셨으며, 모두 집 앞에 세워진 장대(戟)의 위엄을 떨치셨다. 공께서 처음부터 남다른 재능을 갖추셨으니, 선대의 업적을 이어받으셨다. 젖을 떼자마자 이미 문장을 짓기 시작하셨고, 기교는 백 가지나 겸비하셨다. 임금이 부르신 데로 나아가 뵈옵자, 수레를 내리시고 흰 말(대우)로 맞이하셨다. 기꺼이 용안(龍顏, 임금의 얼굴)을 하사하시어, 총애와 사랑이 날로 더해졌다. 손을 잡고 침실로 모셔들여, 정이 돈독하여 금석(金石) 같았다. 조정 신하들은 많이가 원망하며, 공의 세력이 이미 화염처럼 번져갔다. 그중 귀하고 사치스러운 자들을 어기시니, 교묘한 비방으로 은연중에 공격하셨다. 금궐(金閨)의 이름에서 제외되셨으니, 이는 본디 쌓인 원한 때문이었다. 장사(長沙)로 유배된 가생(賈生)처럼, 다시는 전석(前席)을 허물어뜨리는 임금을 모시지 못하셨다. 창랑(滄浪)의 물가에서 낚시꾼이 되어, 배를 띄우고 집을 옮겨 다니며 유랑하셨다. 천 년 만에 한 번 있는 일이라지만, 운명의 뒤바뀜은 아침과 저녁 사이에도 일어난다. 굳이 알거니, 길이 어렵다는 것을.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바위가 많고 험하다. 처음에는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에서 시작되었으나, 마침내 구산(丘山) 같은 책망이 되었다. 평생 죄와 과오에 얽매여, 넘어짐이 항상 놀라움을 자아냈다. 마귀를 막는 데 스무 해를 보냈고, 과거의 허물을 징계받았다. 좌천되어 자리를 옮기며 자리를 뜨지 못했고, 머무는 곳이 마치 역참 같았다. 남중(南中)의 습하고 안개 낀 기운이 깊어, 기맥이 상할까 두려웠다. 유유자적하게 산과 골짜기를 누비며, 자주 등산용 신발을 신고 올랐다. 성명하신 분이 이미 즉위하시니, 유우석(劉禹錫)을 소환하듯 불러들이셨다. 식자들도 듣고 기뻐하며, 손으로 이마를 치며 감사를 드렸다. 그 때 원수들은 이미 물러났으니, 누가 올빼미 울음소리를 내었겠는가. 돌아와 선려(先廬)를 지키시니, 하사받은 서간이 옛 벽에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조정에 나아가 자진(紫宸)에 나아가니, 경연(經筵)이 이를 위해 열렸다. 천자의 말씀이 정중하게 내리시어, 한겨울과 더위의 간격(오랜 만년)을 물으셨다. 위난한 시기에 이르자, 조정에 서 있음이 종종 위축되었다. 충성이 알려지지 않아, 피가 푸른 옥이 될 뿐 헛되이 했다. 갑자기 어제 보낸 유필을 보니, 그 사람은 아직 눈으로 목격하였다. 신묘한 붓끝은 교체(蛟螭)와 다투고, 대수(大手)는 치역(貙獥)을 움켜잡는다. 물결을 뒤집으며 한 번 쾌감 있게 읽으니, 좋아하여 읽는 것이 빈틈없는 습관이 되었다. 또 지름금(照乘珠)을 비추는 듯하여, 처음에는 턱밑에서 찾았다. 보는 자들이 이미 다투어 구입하여, 만맥(蠻貊)에 두루 퍼졌다. 슬프도다, 운명이 머리를 누르니, 평생을 하역꾼처럼 고생하셨다. 비록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린다 해도, 백 년은 지나가는 객과 같다. 형통함과 불통함에는 각각 이치가 있으니, 어찌 점괘를 점쳐야 하겠는가. 지인은 총명과 치욕을 같게 여기고, 곤궁과 궁핍에 근심하지 않는다. 자여(子輿)와 함께 노닐며, 생명을 등골로 풀이하셨다. 고요히 침묵하며 세인을 관찰하시니, 미친 자들은 이적(李赤)과 같았다. 국은를 아직 보답하지 못해, 개탄하며 분발함을 품으셨다. 담기는 비록 뒤지지 않지만,动不动遭遇嘲笑和恐吓。穷途末路时,从千仞高处坠落,只能呼唤大力士乌获来救援。出胯之辱应当俯身承受,唾面自干也不敢违逆。自从刘备种瓜的故事流传,常常担心郭生种麦的灾祸。闲居多有闲暇时日,搜罗并摘取章句。感慨愤懑寄托于文章,纷纷扬扬充满简策。扬子云正在撰写《太玄》,姑且喜爱这穷居的寂寥。词人多薄命,自古以来的惯例是陷入困厄。海山有归处,仙游遥远难寻觅。如今修撰玉楼记,不再向人间贬谪。所恨不同时,心意如同饥饿之人渴望食物。

29. 贈隱者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鳳逸龍蟠臥草廬。林深不到擧賢書。安身自與山閑靜。抱道常隨世卷舒。恥向嵩高爭捷徑。甘從穎水卜幽居。相逢莫問歸何處。穿白雲行任所如。

번역

봉황은 날아오르고 용은 웅크려 초려(草廬)에 누워 있네. 숲이 깊어 어진 이를 천거하는 서한이 닿지 않도다. 몸을 편안히 함은 산의 한가하고 고요함에 스스로 맞추고, 도(道)를 품음은 세상의 접히고 펴짐을 따라 늘 따르노라. 송고(嵩高)에서 급한 길을 다투는 부끄러움을 여기며, 영수(穎水)에서 은거할 곳을 택함은 기꺼이 하노라. 만날 적에 어디로 돌아가는지 묻지 말라. 흰 구름을 뚫고 다니며 마음 가는 대로 따르노라.

30. 題吳江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連天水氣蒸三吳。橫截中流一幅蒲。垂虹亭上月明夜。淸風不減郞官湖。

번역

삼오(三吳) 땅을 가득 메운 수기(水氣)가 증발하고, 중류(中流)를 가로막아 한 폭의 포(蒲)와 같다. 수홍정(垂虹亭) 위 달 밝은 밤, 청풍은 낭관호(郞官湖)의 정취를 덜어내지 못한다.

31. 書外院壁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早抱文章動帝京。乾坤一介老書生。如今始覺空門味。滿院無人識姓名。

번역

일찍이 문장으로 천자를 감동시켰으나, 이제야 천지 사이에 외로운 노서생의 신세임을 깨닫는다. 비로소 빈 문(空門)의 맛을 알겠으니, 온 집안에 내 이름을 아는 이가 없다.

32. 會李郞中惟誼宅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龍門昔日誤先登。短褐重來謁李膺。席上從容拜一笑。金樽須盡酒如澠。絳帳高堂許一登。文才慙愧豆盧膺。金龜換酒留連處。新撥浮醅綠似澠。

번역

용문(龍門)에서 과거에 먼저 등용된 것이 실수였노라. 짧은 옷을 입고 다시 이응(李膺)을 뵈러 왔노라. 자리에서 여유 있게 한 번 웃어 주시니, 금잔의 술은 마치 묽은 밀가루 죽(澠)처럼 맑게 다 마셔야 하리라. 붉은 장막(絳帳)의 높은 당상(堂上)에 올라갈 수 있게 허락하셨으니, 문재(文才)로써 두루(豆盧) 이응(李膺)을 부끄럽게 하노라. 금귀(金龜)를 바꾸어 술을 사서 머물러 있는 곳, 새로 거른 부풀어 오르는 술은 녹색이 마치 묽은 밀가루 죽(澠)처럼 맑도다.

33. 有懷眉叟〔原注:四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3D, ITKC_MO_0003A_A001_214A

원문

伽耶有高士。吐納駐童顏。爾汝形骸外。文章伯仲間。受書黃石老。問路具茨山。禦寇今何在。乘風去不還。

번역

가야에 높은 선비가 있어, 숨쉬고 삼킴으로 어릴 적 얼굴을 머물게 하네. 형체 밖에서 너와 나로 지내며, 문장에서는 형제 사이로 지내네. 황석공에게 책을 받고, 구자산에서 길을 묻었노라. 여寇는 이제 어디 있느냐, 바람을 타고 가서 돌아오지 않도다.

원문

與君久別離。觸處摠堪悲。巫峽秋雲暮。湘江夜雨時。異鄕同是客。古國去無期。祇憶山陰地。孤舟訪戴逵。

번역

그대와 오랫동안 헤어져 지내니, 닿는 곳마다 모두 슬프도다. 오협(巫峽)의 가을 구름은 저물고, 상강(湘江)의 밤비는 내리네. 타향에서 우리는 모두 객지인이요, 고국으로 돌아가는 날은 기약이 없도다. 오직 산음(山陰)의 땅만 기억나니, 외로운 배를 타고 대규(戴逵)를 찾아가노라.

원문

少年才思贍。往往擅場闈。世路知音寡。雲山拂袖歸。身窮名益進。貌脊道何肥。豈久吳中隱。天文動少微。

번역

젊은 시절 재주가 풍부하여 종종 무대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발휘하였으나, 세상의 길에서는 알아주는 이가 드물어 구름과 산을 벗 삼아 소매를 휘두르며 돌아갔노라. 몸은 궁핍하나 명성은 더욱 높아지고, 외모는 야위었으나 도는 오히려 풍성하도다. 어찌 오랫동안 오중(吳中)에 은거할 수 있겠는가, 천문에서 소미성(少微星)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곧 세상에 나올 징조라.

원문

掛冠金闕下。結社碧山中。自謂羲皇上。誰知易道東。雄深子長學。孤潔范丹風。往日交遊者。唯餘田舍翁。

번역

관직을 버리고 금궐 아래를 내려왔으며, 사귀는 무리를 맺어 푸른 산중에 머물렀노라. 스스로 희상(羲皇) 위의 사람이라 여겼으나, 누가 알았으랴. 내가 이미 도를 바꾸어 동쪽(남쪽)으로 갔음을. 자장(子長)의 학문은 웅대하고 깊으며, 범단(范丹)의 풍절은 고결하고 청렴하도다. 옛날 교유하던 자들은 오직 전야의 늙은이만 남아 있구나.

34. 將歸紺嶽讀書。寄朴東俊。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4B

원문

世事巧中人。略不遺小大。譬如蜘蛛絲。物觸輒已掛。蠅頭循名利。至死猶不悔。首戴蟬冠囚。身被衮衣械。幸者指爲賢。誰復懲前敗。襄陽布衣身已老。有心一片淸於夷。平生坐喙硬。到骨窮且羸。詩稱國手終何用。四十龍鍾兩鬢華。眼前名利無多子。身後文章自一家。木強未肯少低屈。世上纖兒共我嗔。殷勤擧手謝昇平。潁水箕山作外臣。何日故人來遠訪。去路翩翩飛一鳥。茅嶺來從許邁遊。蘇門會見孫登嘯。作詩招隱與王孫。塵起西風恐汙君。

번역

세상의 일들은 교활한 자들을 잘 속인다.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마치 거미줄과 같아서 사물이 닿으면 곧 걸려든다. 파리 머리만큼이나 작은 명리와 이권을 쫓아 죽을 때까지도 후회하지 않으니, 머리에蝉冠(선관)을 쓰고 몸에는衮衣(곤의)를 입어 죄인이 되고 말았다. 운이 좋은 자들은 그를贤(현)이라 지목하지만, 누가 전번의 패배를 징계하겠는가.襄陽(양양)의 포의(布衣)인 나는 이미 늙었으나, 마음 한결같이夷(이)와 齊(제)보다 맑다. 평생 입이 굳어 뼈까지 가난하고 여위었으니, 시를 국수(國手)라 칭해도 무슨 소용이랴. 나이가 마흔이 되어 거만하게 두鬓(빈)은 이미 하얗게 얼었다. 눈앞의 명리에 많지 않은 자들, 사후의 문장은 저절로 내 것이 되리라. 나무처럼 강직하여 조금도 굽히기를 싫어하니, 세상의 가냘픈 자들아 함께 나를 노여워하도다. 정성껏 손을 들어 평온한 세상을 하례하노라.穎水(영수)와 箕山(기산)에서 나는 외신(外臣)이 되리라. 언제 옛 친구가 먼 길을 찾아올까. 가는 길에翩翩(편편)히 날아가는 한 마리 새여.茅嶺(모령)에서 許邁(허매)를 따라 유람하고,蘇門(소문)에서 손등(孫登)의 장소을 만나리라. 시를 지어 王孫(왕손)을 초빙하여 은거하려 하니, 서풍이 일어나 먼지가 일어 당신을 더럽힐까 두려워하노라.

35. 冬日途中〔原注:三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4C

원문

凌晨獨出洛州城。幾里長亭與短亭。跨馬行衝微雪白。擧鞭吟數亂峯靑。天邊日落歸心促。野外風寒醉面醒。寂寞孤村投宿處。人家門戶早常扃。

번역

새벽에 홀로 낙주성을 벗어나니, 몇 리나 되는 긴 정자와 짧은 정자가 이어진다. 말에 올라 타서 희미한 눈빛을 뚫고 나아가고, 채찍을 들어 부러진 봉우리의 푸름을 몇 번이나 읊조린다. 하늘 끝에서 해가 지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급해지고, 들바람의 차가움에 취했던 얼굴이 깨어난다. 적막한 외로운 마을에 투숙할 곳을 찾아보니, 집집이 문과 빗장이 이미 일찍 잠겨 있다.

원문

征鞍催發曉先鷄。紅葉鋪霜擁野蹊。原上無風殘燒斷。峯前欲雪凍雲低。畏途獨怪行人少。候館頻聞困馬嘶。廻首蒼蒼煙水暮。依然似出武陵溪。

번역

징마(征鞍)를 채워 새벽닭보다 먼저 출발하노라. 붉은 단풍잎은 서리를 뒤집어쓰고 들길(野蹊)을 덮었네. 원상(原上)에는 바람 없어 남은 불길(殘燒)이 끊어지고, 봉전(峯前)에는 눈이 내릴 듯 얼어붙은 구름이 낮구나. 위험한 길(畏途)을 혼자 가니 행인(行人)이 적어 기이하도다. 후관(候館)에서는 마우는 소리가 자주 들리네. 돌아보니 푸른 연기 물결 저녁 무렵, 여전히 오릉계(武陵溪)를 나온 듯하도다.

원문

策馬行行趁夕陽。聊尋田舍解歸裝。浮生浪迹身如寄。旅枕無眠夜更長。雪灑園林花書發。年豐村落酒猶香。主人莫問何爲客。面色皆黎語亦鄕。

번역

말을 채찍질하며 해질녘을 따라 걷고, 잠시 농가를 찾아 짐을 풀고 돌아간다. 헛된 삶에 발자취만 남긴 몸은 떠도는 객과 같아, 여관에서 잠들지 못해 밤은 더욱 길게 느껴진다. 눈이 정원의 나무들에 내려앉고 꽃봉오리가 피어나며, 해가 풍년인 마을에서는 술 냄새가 여전히 향기롭다. 주인여, 내가 어떤 객인지 묻지 마소서. 얼굴빛은 모두 검게 그을렸으나 말소리는 고향 사람과 다름없소.

36. 崔文胤將卜居湍州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出處信有命。大上付前定。其次固已昧。鮮以時動靜。吾儕久已窮。幽迹亦可屏。念昨過湍州。寒江魚動鏡。因思卜小隱。將買田一頃。獨往今未決。幾度懷淸穎。譬如馬繫皁。素樂煙霞境。崔君貴公子。愛山亦雅性。近欲營此樂。構築行當竟。他年償吾志。要乞岣嶁令。君歸好待我。先理一漁艇。

번역

나타남과 물러남은 진실로 명(命)에 달려 있으니, 가장 높은 경지는 이미 전에 정해져 있고, 그 다음은 이미 어둡고 밝음을 알 수 없으며, 때에 따라 움직이고 멈춤을 드물게 한다. 우리 일행은 이미 오래도록 궁핍했으니, 은밀한 자취도 또한 물리칠 수 있겠다. 어제湍州를 지날 때 차가운 강물이 거울처럼 고요함을 생각하며, 작은 은거를 장만하려 하고, 곧 밭 한 정(頃)을 사려 한다. 홀로 가려는 마음이 지금 아직 결정되지 않아, 몇 번이나 청명하고 맑은 경치를 그리워하였다. 마치 말이 마구간에 묶인 것과 같아, 본래 연기와 안개 같은 산수의 경치를 즐기려 한다. 崔君은 귀한 공자로서 산수를 사랑하는 것도 또한 풍류 있는 성품이니, 가까이서 이 즐거움을 장만하려 하고, 건축이 곧 끝날 것이다. 다른 해에 나의 뜻을 이루려면, 岣嶁令을 빌려야 하리라.君이 돌아와 나를 기다려 주면, 먼저 한 척의 고기배를 정리하리라.

37. 贈皇甫若水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4D

원문

交道都忘孔禰年。同枝越鳥幾生緣。曾勞旅夢飛天外。更喜淸談接枕前。不分駑駘終附尾。何時鷄犬得昇仙。如今忽看新詩句。大似春雲藹藹然。

번역

교제하는 도리를 잊고 공융과 조비원의 연대를 따랐네. 같은 가지의 월조가 몇 번이나 인연을 맺었는가. 드디어 여행의 꿈이 하늘 밖을 날아다니게 하였고, 다시 맑은 담소를 베개 옆에서 이어받게 되어 기쁘도다. 비록 나약한 말이라도 끝내 꼬리를 붙여 따르려 하니, 언제 닭과 개가 승선하여 선선이 될 것인가. 이제 갑자기 새로운 시구를 보니, 마치 봄 구름이 우아하게 피어오르는 듯하도다.

38. 贈金公〔原注:君綏〕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高才早出少年叢。重使文章盛海東。堂上墨君眞得妙。毫端草聖已偏工。曾聞伯蔚保家主。更喜黃門有父風。老去戀恩何敢死。白頭還見黑頭公。

번역

높은 재능으로 일찍부터 젊은이들 틈에 뛰어나셨으니, 다시금 문장이 해동(海東)에서 성하게 되었도다. 당상(堂上)의 묵군(墨君, 대나무)을 참으로 묘하게 얻으셨고, 모끝의 초성(草聖, 장서)에 이미 편벽되게 정통하셨도다. 전에 백위(伯蔚)가 주주(家主)를 보전한 것을 들었고, 더구나 황문(黃門)이 부풍(父風)을 잇는 것을 기뻐하노라. 늙어가면서 은혜를 사모하여 어찌 감히 죽음을 두려워하리오. 흰 머리가 되어도 다시 검은 머리 공자(公)를 뵈오리니.

39. 次韻松風亭〔原注:三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5A

원문

亭下盤松老。臨風韻更悲。枝垂靑麈尾。幹出黑虯姿。夜子偸閑拾。新圍按夢知。欲思遺一句。才愧沈佺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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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아래에 있는 소나무는 이미 늙었으나, 바람을 맞으니 그 운치가 더욱 슬프다. 가지는 푸른 해오라기 꼬리처럼 늘어지고, 몸통은 검은 용의 모습으로 솟아 있다. 밤중에 몰래 쉬며 열매를 주워 담고, 새로운 울타리 옆에서 꿈속의 정경을 더듬어 안다. 한 구절을 남기고 싶어도, 재주가 심전기(沈佺期)와 서현기(徐賢期)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한다.

원문

貞心任榮悴。何喜亦何悲。故結傍圍影。休誇直上姿。寒聲淸夜聒。孤節勁風知。更欲閑來賞。逢僧月下期。

번역

승한 마음은 영예와 치욕을 맡겨두니, 어찌 기뻐하며 어찌 슬퍼하리오. 옛적부터 옆으로 퍼진 그늘의 그림자를 맺었으니, 곧게 하늘로 솟은 자태를 자랑하지 말라. 차가운 소리는 맑은 밤에 시끄럽게 울리고, 외로운 절개는 강한 바람에서 비로소 알리라. 더욱이 놀러와 감상하고 싶다면, 스님을 만나 달빛 아래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노라.

원문

都爾思賢操。無乃令人悲。長材似和嶠。磥砢抱幽姿。孤立如蕭瑀。忠勁君所知。不願明堂柱。聊與雲山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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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진 마음을 간직하려 하노라. 이는 오히려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주네. 큰 재주는 하교(和嶠)와 같아 구불구불하면서도 깊은 기개를 지니었고, 고립된 모습은 소우(蕭瑀)와 같아 충성과 강직함을 임금께서 아시나니, 나는 명당(明堂)의 기둥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오직 구름과 산을 벗 삼으려 하노라.

40. 寄趙亦樂破肉戒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5B, ITKC_MO_0003A_A001_215C

원문

癡人自養是重外。不知神氣復易敗。達者不爲口腹累。此亦養生知所愛。吾於二者常有取。寧遺其外樂其內。況視天下無正味。但以可口卽爲快。五鼎一簞何者貴。飢飡未覺肉勝菜。豹胎熊掌雖所欲。豈無古人能禁戒。若言細行不足護。此事吾疑頗亦隘。當年帛谷定何人。啖肉屠門眞可怪。至人佯狂世莫測。福且不求那有罪。無心可使物不疑。有迹恐爲魔所械。渭南老尉眞居士。從來枯淡性所耐。自云茹草欲終身。誓守斯言當不改。次律前身是智永。蔬食晚年知舊債。未聞染指徒嘗羹。屢見留根還置瀣。爛蒸匏壺當家鶩。與客飽飡先緩帶。嗟我平生負此腹。一食肯將萬錢買。年方大來日衰減。未盡一臠先厭退。近欲學君雖亦強。擊鮮不逐群兒會。念君羸瘠爲一言。却類嘲楊空見解。班超虎頭須記取。布衣不肯終飢餒。會見君王親賜食。始甘芻豢方知悔。不如早致五侯鯖。相與同持左手蟹。試號恩讎皆左袒。曉然可以知利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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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사람은 스스로 외적인 것을 중시하여 기르는 것이 신기(神氣)를 다시 쉽게 망치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통달한 자는 입과 배로 인한 괴로움을 받지 않으니, 이것 또한 양생하는 데서 무엇을 사랑해야 할 줄 아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가운데 항상 취하는 바가 있으니, 외적인 것을 버리고 내적인 것을 즐기는 편이다. 하물며 천하에 바른 맛이 있겠는가? 단지 입에 맞으면 곧快로 여기는 것이다. 오정(五鼎)의 음식이나 일찬(一簞)의 음식 중 무엇이 귀한가? 배가 고플 때 먹으면 고기가 채소보다 낫다고 느끼지 못한다. 표의 태나iong의 손발虽은 비록 내가 원하는 바이나, 어찌 고인(古人)이 이를 금계(禁戒)하지 않았겠는가. 만약 세세한 행실이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이 일은 내가 의심하건대 매우 편협한 생각이다. 옛날 백곡(帛谷)은 과연 누구인가? 고기를 먹는 것을 문전(屠門)에서 진기한 일로 여긴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지인(至人)은 광기를 가장하여 세상이 측량할 수 없으니, 복을 구하지도 않는데 어찌 죄가 있겠는가. 무심하면 사물이 의심하지 않으나, 자취가 있으면 마귀에게 매일(械)을 당할까 두려워한다.渭南의 노위(老尉)는 참으로 거사이며, 늘 거담(枯淡)한 성품이 견디는 바이다. 스스로 풀을 먹으며 평생을 마치고자 한다고 하니, 이 말을 지키겠다고誓하여 결코 바꾸지 않겠다. 차율(次律)의 전신은 지영(智永)이니, 소식을晚年에 알고는 묵은 빚을 갚는 줄 알았다. 고기를 찔러 맛을 본다는 말은 단지 국물을 맛본 것에 불과하고, 여러 번 뿌리를 남겨두고는 다시 이슬(瀣)을 놓았음을 보았다. 썩은 호두(匏壺)를 찌고 집안의 오리를 대접하며, 객과 함께 배부르게 먹고 나서야 천천히 띠를 풀었다. 탄식하노라, 나의 평생 이 배를 저버렸으니, 한 끼의 식사에 만 전(錢)을 사겠다고 하겠는가. 나이가 대래(大來)에 이르러 날이 쇠퇴하고, 한 조각(一臠)도 다 먹기 전에 먼저 싫증내어 물러난다. 최근 너를 배우려 하지만 또한 강하게 하므로, 신선(鮮)을 쳐서 무리들의 모임에 따르지 않는다. 너의 쇠약함을 생각하여 한 마디 하노니, 이는 오히려 양공(楊公)을 조롱한 것과 같이 공허한 견해이다. 반초(班超)의 호랑이 머리를 반드시 기억하라. 포의(布衣)로서 끝내 기아에 시달리지 않겠다. 장차 임금이 친히 음식을 하사하는 것을 보게 되면, 비로소 초견(芻豢)을 달게 여기며 후회할 것이다.不如 빨리 오후청(五侯鯖)을 가져와 함께 왼손의 게를 함께 잡자. 시호(試號)하여 은원과 원수가 모두 좌편(左袒)함을 알면, 새벽에 분명히 이해와 해악을 알 수 있다.

41. 遊法住寺。贈存古上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萬壑千巖獨杖藜。問禪時得到曹溪。洞中地寂煙霞古。塵外心虛物我齊。況有高人迎倒屐。更驚佳論妙揮▦。直饒名利終歸去。依約靑山共卜棲。

번역

만곡천협에 홀로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선을 묻는 길에 때때려 조계(曹溪)에 이른다. 동중의 땅은 고요하고 안개와 노을은 옛스러우며, 먼 세상의 마음은 비어 사물과 내가 같으니, 하물며 높은 사람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맞아주며, 더구나 아름다운 논의를 보고 묘한 필치를 휘두름에 놀랄 따름이라. 비록 명리가 끝내 사라지더라도, 약간의 푸른 산과 함께 거처를 정하리라.

42. 書湛之家壁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5D

원문

賢達念蒼生。未肯輕去就。用之當作帝王師。不用乃爲窮谷叟。君不見子房袖中一卷書。隆準得遭天所授。從容談笑坐帷幄。四海英雄隨指嗾。斯人若未遇。中原非漢有。又不見子陵橫足加帝腹。一夜蒼旻動星宿。帝不敢起況敢嗔。大史朝來書謾奏。歸耕富春山。徵詔竟不受。有身當恥空磨滅。且要名留千載後。先生犖犖不可羈。何曾折腰爲五斗。功名富貴行迫逐。安得潛逃入林藪。嗟我年來老更窮。氣雖不屈長低首。爲問鷄犬肥。何如鸞鶴瘦。欲澆胸中過秦論。請君醉我千鴟酒。

번역

현달한 자들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결코 가볍게 출사하거나 은거함을 결정하지 않았다. 쓰임받으면 마땅히 제왕의 스승이 되고, 쓰임받지 못하면 비로소 깊은 골짜기의 노인이 된다.君은 보지 못했는가? 자방(子房)의 소매 속 한 권의 서책으로, 융추(隆準) 곧 고조께서 하늘의 도움을 받아 만나셨다. 담담히談笑하며 위궤(帷幄)에 앉아 있으니, 사해의 영웅들이 그의 손가락질과 기침에 따라 움직였다. 이 사람이 만나지 못했더라면 중원은 한(漢)의 소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또 보지 못했는가? 자릉(子陵)이 발을 임금의 배 위에 올려놓으니, 하룻밤 사이에蒼旻(하늘)이 움직이고 별자리가 요동했다. 임금이 감히 일어나지 못하였거늘, 어찌 감히 노여워하겠는가. 대사(大史)가 아침에 와서 거짓으로 아뢰었다. "부춘산(富春山)으로 돌아가 농사짓노라." 징조(徵詔)를 내렸으나 끝내 받지 않았다. 몸이 있음은 부끄럽게도 헛되이 닳아 소멸될 뿐이므로, 오직 명성을 천년 뒤에 남기고자 한다. 선생은 탁월하여 감히 구속할 수 없으셨으니, 오직 오두(五斗)의 쌀을 위해 허리를 굽힌 적이 있었는가. 공명(功名)과 부귀(富貴)가 뒤쫓아오지만, 어찌하여 은거하여 숲과 습지로 숨어들었는가. 탄식하노라, 내가 해가 지면서 더욱 가난해지고 늙어가니, 기개는 굽히지 않았으나 오랫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 닭과 개가 살찌는 것과, 난(鸞)과 학(鶴)이 마른 것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가슴 속의 과진론(過秦論)을 씻어내고자 하노니, 청컨대 나를 천 마리의 술독으로 취하게 하소서.

43. 觀古人筆迹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生綃數幅出鵝溪。醉墨奇蹤似會稽。也是元和遺脚在。從今不復厭家鷄。

번역

생소(生綃) 몇 폭이 구계(鵝溪)에서 나왔으니, 취묵(醉墨)의 기묘한 자취는 회계(會稽)와 비슷하도다. 또한 원화(元和)의 유각(遺脚)이 있으니, 이제부터 다시 집의(鷄)를 싫어하지 않겠노라.

44. 八月十五夜。探韻得起字。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6B

원문

造物與人多所忌。晴陰變化聊幻戲。每恐中秋有陰雨。故將辜負詩人意。忽從今夜浮雲收。簾捲高樓天似水。人間自古重此月。曾伴風流謫仙醉。徘徊對影成三人。淸光幾照金樽裏。我乘狂興尋君家。試看松陰淸滿地。孤輪停午光灎灎。望欲更殘懶欲睡。主人好事亦好客。旋酌鵝黃蹴我起。聳肩危坐共閑吟。顚倒如鴉筆下字。

번역

창조주가 사람에게 많은 것을 꺼리시니, 맑고 흐림이 변하는 것은 잠시 장난감일 뿐이다. 매번 중추절에 비가 올까 두려워하여, 고로 시인의 뜻을 저버리게 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밤부터 구름이 걷히고, 커튼을 걷어 올리니 높은 누각 위 하늘이 물처럼 맑다. 인간은 예로부터 이 달을 중히 여겨, 풍류로운 적선(李白)의 취기를 함께했었다. 그림자에 비추어 세 사람이 되니, 맑은 빛은 몇 번이나 금잔 속에 비쳤는가. 나는 광기한 흥을 타고 그대 집을 찾아가, 소나무 그늘에 맑은 빛이 땅을 가득 채운 것을 보려 한다. 고독한 달이 한낮에도 빛이 물결치듯 하니, 보고 싶어서 더 보고 싶지만 피곤하여 잠들기 싫다. 주인은 일을 좋아하는 동시에 손님을 좋아하시니, 곧바로 거위 노란색 술을 따라 나를 깨운다. 어깨를 으쓱하며 단정히 앉아 함께 한가하게 읊조리니, 거꾸로 선 까마귀처럼 붓 아래의 글자가 어지럽다.

45. 夜宿亦樂家。雨中有作。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閑中相共聚華堂。衮衮淸談興味長。問易每過王湛宅。圍棋曾賭謝公莊。秋光暗淡園林換。晚雨霏微枕簟涼。他日江南成遠別。却思今夜對藜牀。

번역

한가한 가운데 모여 화려한 당에서 함께하니, 흐르는 듯한 맑은 담론은 흥미가 길도다. 역(易)을 묻다가는 종종 왕湛의 집을 지나고, 바둑을 둘 때는 감히 공謝의 장원에서 내기를 했었네. 가을 빛은 어둡고 담담하여 동산과 정원이 바뀌고, 저녁 비는 가느다롭게 내려 베갯잇과 마루가 서늘하도다. 장차 강남에서 먼 이별이 될지라도, 오히려 오늘 밤 나뭇가지 침대(藜牀)를 마주하던 생각이 난다.

46. 梁國俊家鞓紅牧丹〔原注:中書舍人王慶世壻。〕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6C

원문

侯家池館競栽培。誰似城西賀秀才。陣陣天香薰暖蕊。酣酣卯酒入紅顋。忽從道士庭前看。因憶君王殿後開。別有一枝猶未發。故應留待舍人來。天子初移禁苑栽。玉堂曾對醉翁才。低昂晚態風驚睡。寂寞殘粧雨洗顋。詩老莫辭携酒往。天工故遣佇春開。一生同賞無多子。好約明年再看來。

번역

후가의 정원과 누각은 경쟁하듯 모란을 심어 기른다. 서쪽 성외의 하수재(賀秀才)처럼 누가 능히 하겠는가? 아로리 향기가阵阵(연연)히 따뜻한 꽃술을 적시고,卯酒(계주)의 취기가 붉은 뺨에 스며든다. 홀연히 도사 뜰 앞에서 이를 보고, 다시 임금님의 전후(殿後)에서 피어남을 기억하노라. 또 다른 한 가지 가지가 아직 피지 않았으니, 마땅히 사인(舍人)이 올 때까지 기다려 두어야 하리라. 천자가 비로소 금원(禁苑)에서 모란을 옮겨 심으시니, 옥당(玉堂)에서 예전에 취한 노인의 재주를 대하셨도다. 저녁 기운의 낮은 모습은 바람이 놀라 잠을 깨우고, 쓸쓸한 남은 화장(殘粧)은 비가 씻어내린다. 시노(詩老)여 마다하지 말고 술을 들고 가라. 하늘의 공(工)이 굳이 봄의 개화를 기다리게 하셨노라. 일생을 함께 감상할 자는 많지 않으니, 내년에도 다시 보자고 약속하자.

47. 贈皇甫兄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6D

원문

曾聞皇甫湜。間生當大曆。頽波將墜地。拯起眞有力。茫然千百年。誰是繼高迹。今遭書六厄。吾道幾乎息。三日號國中。圓冠者屛匿。知君卽前身。姓字合於昔。復此海之東。二箇文星謫。釋老久塞路。獨欲辭而闢。斯文信未喪。乃知天意惜。危雖無輟業。家傳杜預癖。胸呑萬卷書。筆可千人敵。優游獨立下。一日有所益。甲乙懸牙籤。縱橫架上策。時無好事者。問字楊雄宅。咄彼兒童輩。狂癡那得識。譬如飯囊耳。置之勿復責。自笑隣舍翁。閉門守荒僻。常夜病無燈。偸鑿居家壁。掩卷聊高枕。山雨浪浪滴。樂此足忘憂。三公吾不易。俗議無復恤。相與適其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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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황부적(皇甫湜)을 들으니, 간혹 대력(大曆) 연간에 태어났다고 한다. 무너져 가는 물결이 땅으로 떨어지려 할 때, 그를 구해 일으켜 세운 것은 참으로 힘이 있었다. 아득히 천 년이 지나서, 누가 높은 자취를 잇겠는가. 지금 서적의 여섯 가지 화(厄)를 만나, 우리 도가 거의 소멸될 지경이다. 사흘 동안 나라 안에서 통곡하니, 원모를 쓴 자들이 피하여 숨었다. 내가 너를 알기에 바로 전신(前身)임을 알겠고, 성씨와 이름이 옛적과 합치함을 안다. 다시 바다 동쪽에서 두 문성(文星)이 귀양을 왔으니, 석가(釋迦)와 노자(老子)의 길이 이미 막혀서, 오직 이를 떠나 배척하려 한다. 이 문(文)이 참으로 망하지 않았음을 알았으니, 천의가 아끼는 줄을 알겠다. 비록 위태로워도 학업을 멈추지 않았으니, 집안에서 두예(杜預)의 병을 물려받았음이로다. 가슴에는 만 권의 책을 삼키고,筆은 천 명의 적과 맞설 수 있도다. 유유자적 독립한 아래에서, 하루라도 유익함이 있다. 갑을(甲乙)이 이빨 모양의 책갈피에 걸려 있고, 책장 위에는 종횡무진한 책들이 있다. 때에 호사(好事)를 좋아하는 자가 없어서, 양웅(揚雄)의 집으로 글자를 묻는다. 어이, 저 어린이 무리여, 미치고 어리석으니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마치 밥 주머니와 같으니, 놓아두어도 다시 책망하지 말자. 스스로 웃노라, 이웃의 늙은이여, 문을 닫아 황폐하고 외로운 곳을 지킨다. 밤마다 등불이 없어 병들면, 몰래 집 벽을 파서 불을 훔치느라. 책을 덮고 잠시 높은 베개를 베고 누우니, 산비바람이 요란하게 떨어지네. 이 즐거움을 즐겨 근심을 잊으니, 삼공(三公)이라도 내가 바꾸지 않겠다.世俗의 논평은 다시 걱정하지 않고, 서로 그 즐거움을 적당히 누리노라.

48. 途中暴雨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天低野闊雨跳珠。猛勢橫空望却無。想得符堅初戰退。千兵萬馬一時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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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낮고 들은 넓어 비가 비단 구슬처럼 튀며, 거센 기세가 하늘을 가로지르니 바라보기조차 두려워진다. 부견(符堅)이 처음 전투에서 물러난 것을 생각하니, 천 병만 마가 한꺼번에 달아나는 듯하다.

49. 有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7A

원문

七年浪迹寄南州。輦下重來夢寐遊。早抱虛名驚衆耳。那知有命壓人頭。蛾眉錯畫終辭國。猿臂無功竟不侯。世受君恩是文翰。麤才何日可能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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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년 동안 남주(南州)에 유랑하며 몸을 의지했고, 장안(長安)에 다시 와서 꿈결처럼 유람하였다. 일찍이 허명(虛名)을 안고 있어 많은 이의 귀를 놀라게 하였거늘, 어찌 명(命)이 있어 남의 머리를 누를 줄 알았으랴. 나비(蛾眉)를 그렸으나 어긋나 결국 나라를 떠났고, 원비(猿臂)의 무공(武功)이 없어 결국 후작(侯爵)에 오르지 못하였다. 세속에서 군주의 은혜를 받아 문한(文翰)의 직을 지냈으니, 거친 재주인 내가 언제 보답할 수 있으랴.

50. 題湛之家王可訓家春景山水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湖上靑山山上屋。山色湖光春更綠。潮來潮去怒濤呑吐疑無陸。漁翁歸去一竿竹。鶴汀鳧渚知幾曲。遠近蘭皐花簇簇。縹緲天涯遙極目。洞庭波淨日暮孤帆何處宿。摩詰後孫心不俗。摸寫鵝溪綃一幅。李侯家藏千萬軸。此本尤非世所蓄。至寶由來鬼神欲。再三珍重爲君囑。

번역

호수 위의 푸른 산과 산 위의 집, 산빛과 호수의 빛은 봄이 되어 더욱 푸르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며 노도처럼 밀려와 땅이 없는 듯하고, 어부가 지팡이 대 하나를 들고 돌아가며, 학이 멈춘汀과 오리 떼가 쉬는 섬은 몇 굽이인지 알 수 없다. 먼 곳과 가까운 곳의 난초와 부들밭에는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고, 멀리 하늘 끝은 아득하여 멀리 바라본다. 동정호의 물결은 맑고 해는 저물었으나 외로운 돛배는 어디에 묵을 것인가. 모적(摩詰)의 후손은 마음이不俗하고, 아희(鵝溪)의 비단 한 폭을 그려 모사하였다. 이 이후(李侯)의 집에는 천만 권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으나, 이 본은 세상에 소장된 것들과는尤非 다르다. 보배는 본래 귀신도 탐내니, 세 번 다시 소중히 여기며 그대에게 부탁하노라.

51. 贈演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7B

원문

風生虛閣抵千金。滿院荒涼碧樹深。不覺天西殘月落。終宵空伴草蟲吟。

번역

바람이 허정(虛閣)에서 일어나는 그 값이 천금만금이라 하니, 마당 가득히 황량하여 푸른 나무가 깊게 드리웠도다. 서쪽 하늘의 달이 지는 줄도 모른 채, 밤새도록 초충의 울음소리만 빈들하게 함께하네.

52. 次韻贈若水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與子同時大曆年。平生交分契深緣。詩名迥出蘇梅右。文格須廻漢魏前。欲向雲霄追駿足。自嗟山澤伴癯仙。郢中欲繼陽春曲。慙愧皇華也盍然。

번역

그대와 같은 대력(大曆) 연간 사람이라 평생 교분이 깊은 연유로 맺혔네. 시명은 소동파와 메성우(蘇梅)의 오른편을 뛰어넘었고, 문격은 한위(漢魏)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오. 구름과 하늘을 향해 말의 빠른 발을 쫓고자 하지만, 스스로 산과 늪의 마른 선비와 함께함을 한탄하오. 영중(郢中)에서 양춘곡(陽春曲)을 잇고자 하나, 황화(皇華)의 사신으로서 어찌 부끄럽지 않겠소.

53. 甲午年夏。避地江南。頗有流離之歎。因賦長短歌。命之曰杖劍行。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7C, ITKC_MO_0003A_A001_217D

원문

骯髒六尺身。一落乾坤內。桑弧蓬矢射四方。男兒有膽如斗大。況有狂風吹。波濤搖四海。蛟龍魚鼈皆未安。出穴動蕩失所在。時無豪傑士。誰赴功名會。嗟哉我若匏瓜繫。揮斥難窮八極外。長安塵土中。高枕臥五載。恒飢已變顏色黧。牢落枯腸千卷書。及骭亦足温。滿腹不願餘。可笑文章不直錢。萬乘何曾讀子虛。紛紛世上鄙夫輩。舐痔猶得三十車。我欲唾面去。浩然賦歸歟。休向閭閻老一身。如籠中鳥池中魚。盡室萬里行。蕭蕭一疋驢。家山急赴秋風至。蓴羹一杯方有味。遲遲回首望中原。可憐久作風波地。黃鷄夜鳴非惡聲。起舞自有英雄志。誰言婦女不勝衣。長策雄謀人莫知。作鎚誤擊秦。脫身遊下邳。從容跪授圯橋履。會須不後老人期。笑彼拔山力。捕取等嬰兒。龍顏隆準一相遇。萬戶封侯帝者師。丈夫事業固如是。何爲乞米還遭嗤。一葦江之陽。歸來宿舂糧。雲煙宛若畫。草樹巧如粧。浮家泛宅任平生。胸中自有無何鄕。此行不是求爲田。祇恐祖生先著鞭。感慨無言淚如洗。茫茫鳥外空長天。匣中霜劍寒三尺。壯士有心終報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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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육척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천지 안에 떨어졌노라. 뽕나무 활과蓬矢로 사방을 쏘는 것은, 남자의 담력이 두둑할 때라. 하물며 거센 바람이 불고 파도가 사해를 흔들며, 용과 거북, 물고기들이 모두 안주하지 못해 구멍에서 나와 요동하며 제 자리를 잃었노라면, 때에 호걸이 없어 누가 공명을 이루려 달려들겠는가. 아아, 내가 매달린 포과(匏瓜)와 같아 팔극 밖으로 힘차게 내달치기 어려우니, 장안의 먼지 속에서 다섯 해를 높은 베개에 누워 지냈노라. 항상 배가 고파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텅 빈 창백한 창자에는 천 권의 책이 가득 차 있어 정강이까지 따뜻하게 데우었노라. 배가 가득 차서 더 이상 원치 않으니, 쓸데없는 글재주만 부질없구나. 만승의 임금이 어찌 자허(子虛)의 소리를 읽어주었겠는가. 번다한 세상의 비루한 무리들은 엉덩이를 핥아 주어도 서너 대의 수레를 얻으니, 나는 침을 뱉어 그 더러움을 씻고자 하나, 오직 기운차게 돌아가노라. '여보게, 돌아가자' 하며, 마을 어귀에서 늙어가는 신세가 되지 않으려 하노라. 새장 속의 새나 연못 속의 물고기처럼, 온 집안을 이끌고 만 리를 떠나니,萧萧한 말 한 필을 타고 있노라. 고향 산천으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전에 급히 달려가, 미역국 한 그릇이 비로소 맛이 있노라. 더디게 돌아서 중원을 바라보니, 불쌍하게도 오랫동안 풍파의 땅에 머물렀구나. 닭이 밤에 우는 것은 나쁜 소음이 아니니, 일어나 춤을 추는 것에는自有히 영웅의 뜻이 있노라. 누가 부인이 옷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리오. 긴 계책과 웅대한 모략은 사람들이 알 바 못 되노라. 망치로 진(秦)을 잘못 치고, 몸을 빼어 하비(下邳)를 유람하며, 여유 있게 꿇어앉아 기교(圯橋)의 신발을 받아들이니, 반드시 노인의 기약에 뒤처지지 않으리라. 산을 뽑는 힘을 웃으며, 포획하는 것이 마치 아기와 같았노라. 용안과 높은 코를 가진 이를 만나자, 만호에 봉해지고 제왕의 스승이 되었노라. 장부의 사업이 본래 이와 같은데, 어찌 쌀을 빌려다 주었다는 이유로 조롱을 받았는가. 한 줄기 갈대 강가에서 돌아와 밤에 찧은 쌀로 끼니를 해결하니, 구름과 연기는 마치 그림 같고, 풀과 나무는 마치 화장한 듯巧하노라. 집을 띄우고 집을 떠돌며 평생을任하니, 가슴속에는自有히 무하향(無何鄕)이 있노라. 이번 행차는 농사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니, 다만 조생(祖生)이 먼저 채찍을 놓을까 두려울 뿐이노라. 감개하여 말없이 눈물이 씻기듯 흐르고, 새 밖의茫茫한 하늘은 오직 긴 하늘일 뿐이로다. 상자의 서른 자락 서늘한 서리 검, 장사(壯士)의 마음은 끝내 나라를 보답하려 하노라.

54. 次韻贈李上人覺天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8B, ITKC_MO_0003A_A001_218C ...

원문

落髮辭家在妙年。法門深種善因緣。時時大振金毛吼。往往長齋繡佛前。居易須歸兜率界。嵇康不是洞天仙。羨他明日靑山路。竹杖芒鞋去浩然。小隱林泉送幾年。道心聊學葆虛緣。孤雲自去靑天外。萬木皆春病樹前。祇爲在家靈運佛。休尋買藥長房仙。近來去眼交遊盡。唯有能詩釋皎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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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머리를 깎고 가정을 떠나 법문을 깊이 심어 선한 인연을 맺었도다. 수시로 금모수(金毛吼)의 큰 울림을 떨치시고, 자주 수염을 기른 채 불상 앞에 절하도다. 거이(居易)는 마땅히 도솔계로 돌아가야 하고, 계강(嵇康)은 동천선(洞天仙)이 아니로다. 그대의 내일 청산길을 부러워하노니, 대나무 지팡이와 갈신(芒鞋)을 들고 호연하게 가시도다. 작은 은거를 산림과 샘물에서 몇 해를 보내셨는가. 도심을 잠시 배우며 허무한 인연을 보전하도다. 고운 구름은 저절로 청천 밖으로 가고, 만목은 모두 병수(病樹) 앞에 봄을 맞이하도다. 오직 집에 있기 때문에 영운불(靈運佛)을 찾고, 약을 사러 가는 장방선(長房仙)을 찾지 말라.近来 눈앞을 지나가는 교유가 다尽하였으나, 오직 시를 잘하는 석교연(釋皎然)만 남았도다.

55. 次韻李相國〔原注:知命〕見贈長句〔原注:二首○前篇去幷字等四韻〕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9A, ITKC_MO_0003A_A001_219B ...

원문

周詩古有三百篇。風亡雅缺誰復補由庚。後來作者競馳騖。爭欲牢籠撑抉乾坤精。紛紛徐庾誇浮艶。眞同傖父賦出可以覆醬罌。皇天不欲喪斯文。乃出賢公爲國楨。揮毫鼓吻取富貴。淸朝高選先登瀛。獨鍾絶藝冠今古。文止退之書止顏眞卿。優入風騷閫域中。沈謝曹劉應減名。摩詰中朝一詞客。從來宿習由多生。當使君苗焚筆硯。豈有陸子投箱籯。才多學富賈長頭。紙爲田地舌爲耕。和音逸響忽交發。有如丹山鸑鷟翺翔來集朝陽鳴。長驅遠騁勢益壯。又似東溟巨鼇屓振搖三山傾。傳門學業自名家。白眉最良諸弟兄。風流不減謫仙人。飮盡千鍾頰未赬。一朝承恩入翰林。制作自與鬼神爭。若非錦繡爲五藏。又安得名章俊語開口俱天成。杜陵野叟稱老手。往往氣屈屢乞盟。玉皇召見賜顏色。淸泉灑面解宿酲。虎殿龍樓侍歡宴。君臣賡載歌芩苹。沈香亭上勅進淸平新樣調。管絃交奏和舂喤。興酣十幅筆一息。飄飄俊思博且宏。苑中桃杏齊開拆。不待羯鼓催打如春霆。語道格峭異衆家。譏評不問癡鍾嶸。已抱文章動聖人。譽滿天下何闐轟。高懷磊落狹區宇。醉墨狂吟賦大鵬。直敎名價凌三都。光焰萬丈凝餘晶。朝天儤直入鑾坡。風搖鈴索傳琤琤。千門上鑰黃昏靜。紫微花落如摧瓊。朱衣雙引遙傳呼。履聲響廊踏彭鏗。問神宣室夜漏盡。侍講經筵春晝晴。試草絲綸五色書。解呵凍筆宮娃媖。簪紳缺望無出右。當時閑步靑雲程。丈夫仕官眞罕比。食列五鼎家千兵。中使來宣上樽酒。禁林屢賜金盤橙。宸心愛養日益重。親將御手時調羹。致君堯舜自有術。功成可使陳六韺。雖懷勇退急流中。身與一世爲重輕。心中獨有羲皇地。不將塵事都經營。超然自放繩墨外。芥視祿位輕三旌。仙風道骨眞有餘。久欲飛昇朝玉京。紱冕無異居雲山。紛紛世故未肯嬰。五湖何必逐鴟夷。胸中自有汪汪萬頃碧水泓。要將陶冶及生人。愼勿學淵明歸去田園坐種秔。黃扉當作黑頭公。兩鬢今無雪一莖。願公努力重築大平基。不負孤忠報國誠。襄陽布衣窮且老。早思附驥爲飛蝱。欲作曲江亭上春風燒尾宴。尊前解唱喜遷鸎。禮闈見擯誠我分。戰藝無奈無先聲。却拋文卷將向江東去。徘徊來謁朱門呈。爲詩贈我亦目寫。落花飛雪滿紙多廻縈。與人不肯趁姿媚。自誇老硬天骨淸。辭工墨妙兼得詩鳴與草聖。旋令觀者空嗟驚。興來長讀卷還舒。但覺奇彩爛爛奪目睛。已勝明珠三十箇。何患空囊錢不盈。汝南他日論人物。許預品題月旦更。綠綺塵埃可揮拂。爲公更鼓一再行。

번역

주나라 시대에 고전으로 삼백 편이 있었노라. 풍(風)이 망하고 아(雅)가 결여되니 누가 다시 유편(逸篇)인 유경(由庚)을 보충하겠는가. 후대 작가들은 다투어 치열하게 달렸으나, 모두 천지의 정기를 가두고 지탱하려 했노라. 허다한 서융(徐庾)은浮艶(부연)을 자랑하였으나, 참으로 창부(傖父)가 지은 시가 장항(醬甕)을 덮는 것과 다를 바 없었노라. 하늘이 이 문(文)을 잃게 하지 않으려 하사, 현명한 공(公)을 나라의 기둥으로 내셨노라. 붓을 휘두르고 입을 벌려 부귀를 취하려 하였으나, 청조(淸朝)에서 높은 선발을 받아 선등영(登瀛)을 먼저 하였노라. 독보적인 예술이 고금(古今)을 관통하니, 문장은 퇴지(退之)에게 멈추고 서체는 안진경(顏眞卿)에게 멈추었노라. 풍속(風騷)의 문턱 안으로 훌륭히 들어가니, 심약(沈約)·謝靈運(소령)·조식(曹植)·유건(劉楨)은 모두 명성이 감퇴되리라. 마적(摩詰, 왕維)은 중조(中朝)의 한 시인이었으니, 본래의 숙습(宿習)은 다생(多生)에서 비롯되었노라. 마땅히 임의 묘(苗)가 붓과 벼루를 불태우게 할 것이요, 어찌 육자(陸子)가 상자에 던진 것과 같겠는가. 재주가 많고 학식이 풍부하여 가장두(賈長頭)와 같으니, 종이는 밭이 되고 혀는 경작하는 도구가 되었노라. 화음과 율음이 갑자기 교차하여 발산되니, 마치 단산(丹山)의 악작(鸑鷟)이 날아와 조양(朝陽)에 모여 울음과 같고, 장구(長驅)하여 원거(遠騁)할수록 기세가 더욱 장대하여, 또 동명(東溟)의 거오(巨鼇)가 발을 구르며 삼산(三山)을 기울임과 같노라. 전문(傳門)의 학업은 스스로 명가(名家)이니, 백미(白眉)가 가장 우수한 형제들이라. 풍류가 절선인(謫仙人, 이백)을 잃지 않아, 천 종(鍾)을 다 마셔도 뺨이 붉어지지 않노라. 어느 날 은혜를 받아 한림(翰林)에 들어갔으니, 제작이 스스로 신명과 겨루었노라. 만약 수장(五藏)이 비단과 수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찌 명장(名章)과 준어(俊語)가 입에서 나올 때마다 천성(天成)과 같았겠는가. 두릉(杜陵)의 야수(野叟)가 노수(老手)라 칭하였으니, 종종 기세가 꺾여 여러 번 항복을 빌었노라. 옥황상제가 불러 얼굴을 내비쳐 주시니, 청천(清泉)이 얼굴을 적셔 숙취를 풀어주었노라. 호전(虎殿)과 용루(龍樓)에서 환연(歡宴)을 모시며, 군신이 계재(賡載)하여 근평(芩苹)을 노래하였노라. 침향정(沈香亭)에서 칙명으로 청평신양조(淸平新樣調)를 진상하니, 관현이 교차하여 연주하며 춘황(舂喤)에 화답하였노라. 흥이 취하여 열 폭의 종이를 한 숨에 붓질하니,飄飄(표표)한 준사(俊思)가 넓고 광활하도다. 원중(苑中)의 도래와 살구꽃이 모두 피어나니, 갈고(羯鼓)가 채찍질하여 봄 천둥처럼 울릴 필요조차 없었노라. 어조가 격조가 높고 다른 여러 집과 달라, 치종영(癡鍾嶸)의 비평을 묻지 않았노라. 이미 문장으로 성인을 감동시켰으니, 명성이 천하에 가득하여 천굉(闐轟)하도다. 높은 마음은磊落(뢰락)하여 구우(區宇)를 협소하게 여기고, 취한 먹으로 광음(狂吟)하여 대붕(大鵬)을 읊었노라. 직교(直敎)하여 명성이 삼도(三都)를 초월하게 하니, 광염(光焰)이 만丈(만 장)에 걸쳐 남은 빛을 응축하였노라. 조천(朝天)하여 오직(儤直)하여 란파(鸞坡)에 들어가니, 바람이 종소(鈴索)를 흔들며 청청(琤琤)한 소리를 전하노라. 천문(千門)의 자물쇠가 닫히고 황혼이 고요하니, 자미(紫微)의 꽃이 떨어지는 것이 마치 부서진 옥과 같노라. 주의(朱衣)가 두 명 이끌며 멀리 부르고, 구두 소리가 복도에서 울려 팽형(彭鏗)을 밟는 듯하도다. 신실(神室)에서 묻고, 야루(夜漏)가尽(진)하니, 강경(講經)에 시종하여 춘주(晝晴)에 강론하였노라. 사륜(絲綸)을 시험하여 오색서(五色書)를起草하니, 동필(凍筆)을呵(호)하여 궁아(宮娃)가 영영(媖)하도다. 잠신(簪紳)이 바라되 나설 곳이 없으니, 당시의 한보(閑步)가 청운(靑雲)의 정거였노라. 장부(丈夫)가 벼슬한 것은 참으로 드문데, 식렬(食列)이 오정(五鼎)이고 가(家)가 천병(千兵)이로다. 중사(中使)가 와서 상존주(上樽酒)를 선포하니, 금림(禁林)에서 여러 번 금반성(金盤橙)을 하사받았노라. 천심(宸心)이 아끼고 기르는 것이 날로 중해지시니, 친히 어수(御手)로 때때로 조갱(調羹)을 하셨노라. 치군요순(致君堯舜)에는自有(자유)한 술이 있으니, 공성(功成)하여 육영(六英)을 진술하게 할 수 있노라. 비록 용퇴(勇退)하고 급류(急流)에서 물러나려 하나, 신(身)이 일세(一世)를 중하게 여기고 가볍게 여기느라 그러하노라. 마음속에는 독이 희황지(羲皇地)가 있어, 진사(塵事)를 모두 경영하지 않노라. 초연히 자방(自放)하여 성묵(繩墨) 밖에 있으니, 개시(芥視)하여 녹위(祿位)를 삼정(三旌)보다 가볍게 여기노라. 선풍도골(仙風道骨)이 참으로 여윳되어, 오래도록 비승(飛昇)하여 옥경(玉京)을 조하하려 하였노라. 부면(紱冕)이 구름과 산에 거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분분한 세고(世故)를 감당하기를 거절하였노라. 오호(五湖)에서 어찌 필적(鴟夷, 범려)을 쫓겠는가, 가슴속에는自有(자유)히 왕왕(汪汪)한 만경(萬頃)의 벽수(碧水)가 깊으노라. 요양(陶冶)하여 생인(生人)에 미치게 하려 하니, 신중(愼勿)히 원명(淵明)을 배워 정원을 돌아가 앉아 경작하지 말라. 황폐(黃扉)를 마땅히 흑두공(黑頭公)으로 삼으리라. 두鬓(두 귀퉁이)이 지금 눈 한 가닥 없노라. 원컨대 공이 노력하여 대평기(太平基)를 다시 쌓아, 고충(孤忠)으로 나라에 성실하게 보은함을 부끄럽지 않게 하라. 양양(襄陽)의 포의(布衣)가 궁하고 늙었으니, 일찍이 부계(附驥)하여 비범(飛蝱)이 되기를 생각하였노라. 곡강정(曲江亭)에서 춘풍 소미연(燒尾宴)을 짓고자 하나, 존전(尊前)에서 해창(解唱)하여 희선앵(喜遷鸎)을 부를 수 없노라. 예위(禮闈)에서 견빈(見擯)된 것은 참으로 나의 분수요, 전예(戰藝)를 어이할 수 없어 선성(先聲)이 없었노라. 오히려 문권을 버리고 강동(江東)으로 돌아가려 하니, 배회하며 와서 주문(朱門)을 찾아 올렸노라. 시를 지어 내게 주셨으니 또한 목서(目寫)하셨도다. 낙화가 비와 눈이 되어 종이에 가득하여 회영(廻縈)하도다. 남에게 주기를 꺼려 자태를 아끼지 않으니, 스스로 노경(老硬)하고 천골(天骨)이 청결하다고 자랑하노라. 사공(辭工)과 묵묘(墨妙)를 겸하여 시명(詩鳴)과 초성(草聖)을 얻었으니, 곧 관자가 공적(空嗟)하고 놀라게 하였노라.兴來(흥래)하여 길게 권을 읽고 다시 펴니, 다만 기채(奇彩)가爛爛(란란)하여 눈의 동자를奪(탈)하는 것 같도다. 이미 명주 서십과(明珠三十箇)를 이겼으니, 어찌 빈 주머니에 돈이 가득하지 않음을 걱정하겠는가. 여남(汝南)이 날마다 인물을 논하여, 허예(許預)하여 문단(月旦)의 품평에 참여하게 하리라. 녹기(綠綺)의 먼지를 쓸어 버리고, 공을 위하여 다시 고(鼓)를 치며 일재행(一再行)하리라.

원문

總角當年識聲律。中朝高士希唐庚。寖成病癖如啖炭。仡仡自苦疲心精。飫韓饜柳聊自足。小器已盈如甁罌。學賦猶能敵楊子。爲詩何足侔劉楨。幸生天下無事時。微風不動搖東瀛。聖主垂情好用儒。白衣寒士重公卿。富貴眞吾囊中物。唾手直欲收功名。致君自可興王道。漢帝何如棄賈生。要將經術施諸事。窮書不愧老桓榮。力排莊周逐諸子。笑罵只合黃筐籯。濟時及物爲吾志。肯於雲臥甘芝耕。空嗟獨唱尙無和。有類蛭螾徒勞鳴。與人說事不自休。飜瀾鼓舌江河傾。早負能修五鳳樓。繩樞草舍輕諸兄。蘭臺金馬簉群彥。何日腰黃眼亦赬。翰林場中曾校藝。屢與龍虎時交爭。天亡垓下非我罪。其奈見敗當垂成。會稽餘恥欲一雪。慷慨自指穹蒼盟。未因一跌廢舊學。沈酣六籍如煩酲。贏糧所至將問道。不辭百舍逕苹苹。十年苦學久待問。竊疑撞鍾韻愈喤。丈夫何用更雕蟲。扶持周孔意甚宏。肯張異說驚盲聾。遇事蜂發如振霆。欲令文格變隋餘。絺繪不足數李嶸。吾家伯父與先子。共振雄文隱地轟。連中高科時獨步。圖南水擊天池鵬。玉堂舊草堆成山。可與日月爭光晶。一朝聯步花塼上。壎箎相應和音琤。方將乞公收成編。藏之屋壁時敲瓊。一經喪亂成煨燼。念此曾無淚眼睛。如今欲效元和脚。如畫嫫姆效媌媖。門衰祚薄久汨沒。敢思刷翼靑雲程。況吾性本多迕俗。放曠眞同阮步兵。早觀名位有何味。羽化眞如蠹食橙。掣身一去僅可免。吹虀亦足懲於羹。却作溪山漫浪叟。爲文聊擬補韶韺。平生只有詩千首。芥視萬戶封侯輕。大平不遇亦可樂。久向菟裘已得營。壯心老去便全降。低摧却倒風中旌。閑居賦罷囚山篇。夢魂不復飛天京。一懲危險不欲再。達士何爲禍所嬰。欲俟河淸壽幾何。古無才與時相幷。昨聞神聖急求理。詔書初下選賢英。搜獵群才起幽隱。高張羅網連天橫。片善不欲遺巖谷。豈使一漏呑舟鯨。四方多士皆皐枚。胸中學海波泓泓。德行無非世所貴。豐年美玉荒年秔。翹翹煌煌皆出類。春蘭秋菊初擢莖。竟奮經綸裨帝化。應堪上應勤求誠。嗟吾三釜未逮親。千鍾不啻蚊與蝱。晚登一第雖無用。谷口思爲手放鸎。強將淺技復求售。雷門布鼓猶無聲。不虞楚卞足三刖。抱玉區區還自呈。激昂膽氣角群雄。徒勞吻燥心纏縈。占辭豈免多玷缺。祇累宗工鑑裁淸。失意歸來茅屋底。閉門不出懷憂驚。賦妙知非日五色。固宜一見還迷睛。豈期爲我飛一唾。琅琅懷袖珠璣盈。願遊門下終效節。歲寒此意豈易更。待公朝夕登黃閣。撰詞重獻沙堤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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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이미 음률(音律)을 알았으니, 중조(中朝)의 고사(高士)들이 당의 탕경(唐庚)을 흠모하듯 나를 찾았도다. 점차 병이 되어 숯을 먹는 듯이 스스로를 괴롭히며 심신을 피폐하게 하였도다.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의 글을 배부르게 먹으며 스스로를 만족시켰으나, 작은 그릇이 이미 병과 항아리처럼 가득 차 버렸도다. 부(賦)를 짓는 일로는 여전히 양웅(揚雄)에 대적할 수 있었으나, 시를 짓는 일로 어찌 유정(劉楨)에 비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천하가 무사한 때에 태어나서, 미풍이 동영(東瀛)을 흔들지 않으니, 성주(聖主)가 유학자를 좋아하시어 백의한 선비도 공경(公卿)처럼 중히 여기셨도다. 부귀는 참으로 내 주머니 속의 물건과 같아, 손을 뻗어 곧바로 공명을 거두려 하였도다. 임금을 도와 왕도(王道)를 일으키는 것은 자명하였으나, 한나라 황제가 가생(賈生)을 버린 것과 어찌 같겠는가. 장차 경술(經術)을 사물에 시행하여, 늙어서도 환영(桓榮)처럼 책 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리라. 장주(莊周)를 배격하고诸子(제자)들을 쫓아내며, 웃고 욕하는 일은 오직 황창(黃筐)과 영형(籯)에 담을 뿐이도다. 세상을 구제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이 나의 지사이니, 구름 속에 누워 약초를 경작하는 것을 어찌 기꺼이 하겠는가. 홀로 노래해도 화답하는 이가 없어 공허하게 탄식할 뿐, 지렁이와 거머리가徒勞(도로) 울음소리를 내는 것과 같도다. 남에게 일을 말하면 스스로 쉬지 못하고, 물결을 뒤집고 혀를 두드려 강하(江河)를 기울이듯 하도다. 일찍이 능히 오봉루(五鳳樓)를 수리할 재주를 가졌으나, 밧줄이 달린 문과 풀로 지은 집(繩樞草舍)에서 형제들을 가볍게 여겼도다. 란타이(蘭臺)와金马(금마)에서 군현(群彥)들과 함께하였으니, 언제 황색 허리띠를 매고 눈까지 붉어지며 영광을 누릴 것인가. 한림(翰林)의 무대에서 이미 문예를 교검하였으니, 용호(龍虎)와 자주 경쟁하였도다. 초하(垓下)에서 망한 것은 내 죄가 아니나, 어찌 성공 직전에 패배한 것을 한스러워하지 않겠는가. 회계(會稽)의 남은 치욕을 반드시 씻고자, 분개하여 스스로 천창(穹蒼)에게 맹세하였도다. 한 번의 실패로 옛 배움을 버리지 않고, 육적(六籍)에 깊이 빠져서 마치 고통스러운 술에 취한 듯 하였도다. 양식을 싸고서 가는 곳마다 도(道)를 묻고자, 백 사(舍)를 마다하고 평평한 길로 불사하였도다. 십 년 동안 고학(苦學)하며 오래도록 답을 기다렸으나, 종을 치면 소리가 더 울리는 것처럼 내 실력이 의심스러웠도다. 장부로서 어찌 벌레를 조각하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에 쓰임새를 구하겠는가. 주(周)와 공(孔)을 부흥시키려는 뜻이 매우 장대하니, 어찌 이설(異說)을 펴서 맹인이나 귀머거리들을 놀라게 하겠는가. 일을 만나면 벌떼처럼 일어나 천둥을 울리는 듯 하였도다. 문격을 수나라 말년의 풍조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였으나, 수를 놓는 것쯤으로 이영(李嶠)을 세는 것이 부족하도다. 우리 집 백부(伯父)와 선자(先子)가 함께 웅변을 울려 땅을 진동시켰으니, 연이어 고과(高科)에 합격하여 당시 독보적이었도다. 남천(南冥)을 향하여 물에 부딪히는 천지붕(天池鵬)과 같았도다. 옥당(玉堂)에서 옛 글을 써서 산처럼 쌓았으니, 해와 달과 빛을 다툴 수 있었도다. 어느 날 화전(花塼) 위에서 함께 걸으며, 훈치(壎箎)가 서로 화답하여 경청(琤)하는 소리를 내었도다. 장차 공에게서收成(수확)을 빌려 편찬하고, 집 벽에 간직하며 때때로 옥을 두드리는 듯 하였도다. 그러나 한 번의 난리를 만나 재가 되어 버렸으니, 이를 생각할 때 눈물이 없었도다. 이제 원화(元和)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하나, 마치 무모(嫫母)가 묘영(媌媌)을 본받는 것과 같도다. 문중이 쇠하고 복이 얇아 오랫동안 묻혀 지냈으니, 어찌 청운의 길을 날개를 펴고 오를 것을 감히 생각하겠는가. 더욱이 나의 본성은 본래世俗(속속)에 어긋나서, 방탕하고 광활함이 진정 여보병(阮步兵)과 같도다. 일찍이 명위(名位)를 본들 무슨 맛이 있겠는가. 날아오르는 것은 진정 벌이 오렌지를 먹는 것과 같도다. 몸을 빼어一去(일거)하면 간신히 면할 수 있을 뿐, 무를 썰어 먹는 것조차도 국물을 삼킨 교훈으로 충분하도다. 다시 계산(溪山)을 유랑하는 만랑수(漫浪叟)가 되어, 글을 짓는 것은 잠시 소영(韶韺)을 보충하려는 것일 뿐이도다. 평소에 시 천 수首(편)뿐이니, 만호후(萬戶侯)의 작위를 겨자씨처럼 가볍게 여기도다. 대평(大平)의 시대를 만나지 못해도 또한 즐거울 수 있으니, 이미 두구(菟裘)에서 은거할 곳을 얻었도다. 장년(壯年)의 마음이 늙어가며 완전히 꺾이고, 바람에 쓰러진 깃발처럼 낮추고 굴복하였도다. 간거(閑居)의 부를 짓고囚山(구산)의 편을 마친 후, 꿈혼이라도 다시 천경(天京)으로 날아오르지 않도다. 한 번의 위험을 징계하여 다시는 가고 싶지 않으니, 달사(達士)가 어찌 화에 얽매이겠는가. 하청(河淸)을 기다릴 수 있다면 수명은 얼마나 될까. 옛날에 재주와 때가 함께한 이는 없었도다. 어제 성스러운 신성(神聖)이 급히 치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조서가 처음 내려 현영(賢英)을 선발하시도다. 군재(群才)를 수렵하여 은거한 자들을 일으키시니, 높은 그물을 치켜들며 하늘을 가로질렀도다. 한 점의 선함도 암곡(巖谷)에 버리지 않으려 하시니, 어찌 한 마리 큰 물고기가 그물을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하겠는가. 사방의 다사(多士)가 모두 고매(皋枚)와 같으니, 가슴 속 학해(學海)는 깊고 고요하도다. 덕행이 세상이 귀히 여기는 바를 벗어나지 않으니, 풍년 때의 아름다운 옥이 흉년 때의 쌀과 같도다. 우뚝 솟고 빛나는 모두 출류(出類)하니, 봄 난과 가을 국화가 처음 줄기를 뽑는 것과 같도다. 마침내 경륜을 떨쳐 제화(帝化)를 보필하니, 마땅히 상응하여 구구(求誠)에 힘쓸 만하도다. 탄식하노라, 나는 삼부(三釜)의 예조차 부모를 받들지 못하여, 천종(千鍾)의 녹이 모기와 파리만 같도다. 늦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비록 쓸모없어도, 곡구(谷口)에서 손을 놓아 노루를 쫓고자 하도다. 억지로 얕은 기예를 다시 팔려 하니, 제문(雷門)의 포고(布鼓)처럼 소리가 없도다. 불의에 초변(楚卞)이 세 번 발을 잘리는 것을 당하여, 보옥을 품고서도 여전히 스스로 드러내었도다. 격앙된 담기로 군웅과 겨루었으나, 입은 마르고 마음은 얽매임만徒勞(도로) 하였도다. 점사(占辭)를 피할 수 없어 흠결이 많으니, 오직 종공(宗工)의 청명한 감재(鑑裁)만 괴롭게 하였도다.失意(실의)하여 돌아와 초옥(茅屋) 밑에 머무르며,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아 근심과 놀람을 품었도다. 묘한 부(賦)를 지었으나 알 수 없는 날오색(日五色)이니,固宜(고의)히 한 번 보면 눈이 멀어야 마땅하도다. 어찌 나를 위해 한 번의 침을 뱉어, 랑랑한 진주와 보석이 품과 소매에 가득 차리라 생각했겠는가. 문하에游(유)하여 종신토록 효절(效節)하기를 원하니, 세한(歲寒)의 이 뜻이 어찌 쉽게 바뀌겠는가. 공이 아침저녁으로 황각(黃閣)에 오르기를 기다리며, 글을 지어 다시 사제행(沙堤行)에 헌상하리라.

56. 書懷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詩人自古以詩窮。顧我爲詩亦未工。何事年來窮到骨。長飢却似杜陵翁。

번역

시인은 예로부터 시 때문에 곤궁해졌으나, 내게도 시를 짓는 것이 아직 미숙하지는 않다. 어찌하여 해가 갈수록 뼈가 빠지도록 궁핍해졌는가. 굶주림이 오히려 두릉옹(杜甫)과 비슷하다.

57. 寄北原雞林先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1B

원문

數年音問兩相違。苦憶江南別袖揮。秋晚衡陽霜雁斷。天低楚岫凍雲微。東山若爲蒼生起。北闕行承紫詔歸。莫歎居鄕乘款段。從來富貴有危機。

번역

수년간 소식과 문답이 서로 두절되어, 강남에서 손을 흔들며 작별하던 날을 간절히 기억하노라. 가을 저물어 형양(衡陽)의 서릿발에 기러기 소식이 끊기고, 하늘은 낮아楚山(초수)의 얼어붙은 구름은 희미하도다. 동산(東山)이 어찌하여 백성을 위해 다시 일어나겠는가? 북각(北闕)에서 곧장 자명조(紫詔)를 받아 돌아오리라. 고향에 머물러 느린 말(款段)을 타는 것을 한탄하지 말라. 부귀는 본래 위기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58. 次韻金蘊〔原注:珪題〕觀音院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往事悠悠墮渺茫。側書詩句兩三行。那嫌擧目江山異。賴有高樓似岳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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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일은 유유하게 미궁 속으로 사라졌고, 옆으로 쓴 시구는 두세 줄에 불과하다. 어찌 눈앞의 강산이 다르다고 싫어하겠는가. 높은 누각이 월양(岳陽)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원문

郡樓登眺遠蒼茫。戀國情深淚數行。誰識多情白司馬。天涯流落老潯陽。

번역

군루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蒼茫함이 깊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깊어 눈물이 줄줄 흐른다. 누가 다정한 백마(司馬)의 정서를 알아주랴. 천애에 유랑하며 노인이 된 것은 바로 순양(潯陽)의 나라이니라.

59. 贈月師〔原注:幷序〕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1C

원문

興王寺月上人者頗聰惠而喜文章。從眉叟遊。自號高陽醉髡。一日。眉叟携而見過。余視之。超然奇逸人也。戲作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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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왕사(興王寺) 월상인(月上人)은 매우 총명하고 문장을 좋아하였다. 미수(眉叟)를 따라 다녔으며, 스스로를 고양취곤(高陽醉髡)이라 호하였다. 어느 날 미수가 그를 데리고 나를 찾아왔는데, 내가 보니 그는 초연하고 기이하며 뛰어난 인물이었다. 장난삼아 이 시를 지었다.

원문

日與高人入醉鄕。風流應合號高陽。曾從天上謫仙客。來餽壺中大道漿。餘事文章黃絹妙。同門兄弟白眉郞。時時習氏家池上。倒載何如問葛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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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고인들과 함께 술 취한 고향에 들어가니, 풍류인으로서 마땅히 고양(高陽)이라 일컬어야 하리라. 천상에서 귀양 온 선객이시여, 어찌하여 병중의 큰 도술을 베푸시는 고을에 오셨는가. 남은 일로 문장에 종사하시니 황견(黃絹)의 묘함이 뛰어나시고, 동문수학한 형제들 중 백미(白眉)의 재주이시라. 때때로 시습(時習)의 집 연못가에서, 엎드려 누운 채 어찌하여 갈강(葛強)에게 묻지 않으시는가.

60. 書蓮花院壁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1D

원문

君不見羲之避世來往會山陰。時有同遊釋道林。又不見東山居士問道向金山。更伴禪師老了元。我向桑門投上首。風流欲繼二子後。重來頭上餘詩班。凜凜淸姿仙鶴瘦。問師何年返莬裘。臨湖構築煥丹黝。千金散盡更無事。燕坐虛樓歲月久。相從不厭窮躋攀。此地江山皆我有。葛巾草履隨僧蔬。更學點茶三昧手。自知麋鹿性難馴。不肯塵埃隨指嗾。詔書雖未賜鏡湖。懇表終須乞岣嶁。若能容我卜比隣。結茅不羨愚溪柳。好在他年管送迎。蕭蕭數里蒼髥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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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보지 못했느냐, 희지(羲之)가 세상을 피하여 회음(會山陰)을 오갔던 일을. 그 때에 동유(同遊)하는 석도림(釋道林)이 있었노라. 또 보지 못했느냐, 동산 거사(東山居士)가 도(道)를 묻기 위해 금산(金山)을 향했던 일을. 더하여 선사(禪師) 노원(了元)을 따라 늙었노라. 내가 승문(僧門)에 나아가 수두(首頭)를投한다. 풍류로써 두 자(子)의 뒤를 잇고자 하노라. 다시 와서 머리 위에 남은 시반(詩班)을 보니,凛凛한 청자(淸姿)는 선학(仙鶴)처럼 여위었도다. 스승은 어느 해에 토구(兔裘)로 돌아가셨는가? 호수 곁에 건물을 지어 단오희(丹黝)가 환하게 빛나노라. 천금을 다 써버리고 더 할 일이 없어, 허루(虛樓)에 앉아 세월을 오래 보내노라. 함께 함을 싫어하지 않고 끝없이 기어오르니, 이 곳 강산은 모두 내 것이라. 갈건초려(葛巾草履)를 입고 승려의 채소(蔬)를 따르노라. 더하여 점차(點茶)의 삼매수(三昧手)를 배우노라. 내가 스스로 미록성(麋鹿性)은 순화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먼지 같은 세상에 따라 손가락질에 순종하기를 원치 않노라. 조서(詔書)가 비록 경호(鏡湖)에 하사되지 않았으나, 간절한 표문은 마침내 구루(岣嶁)를 빌려야 하리라.若能容我卜比隣, 結茅不羨愚溪柳. 좋은 것은 그 해에 보내고 영접을 관장하는 것이로다. 소소(蕭蕭)한 수 리에 푸른 수염을 가진 노수(老叟)가 있노라.

61. 戲亦樂近不作詩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詩家綺語定非眞。子是從前近道人。欲學尋醫除口業。也應肝肺日生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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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의 기어(綺語)는 정녕 진실이 아님을 알겠노라. 그대는 예전부터 도(道)에 가까운 자였도다. 의술을 찾아 입의 업(口業)을 제거하려 한다면, 또한 간폐(肝肺)에는 날마다 먼지가 생길 것이로다.

62. 過長湍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長湍風急浪如山。欲借孤舟上瀨灘。十二時回朝復暮。人間何日少波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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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의 바람은 거세고 물결은 산처럼 높구나. 외로운 배를 빌려 급류와 모래톱을 오르려 하지만, 낮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돌아가는 세월, 세상에 어찌 물결이 없는 날이 있겠는가.

63. 長湍湖上。將成草堂。作詩示頤師。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吾家老和靖。寄隱居東吳。江頭結草堂。至今傳其圖。雲山有餘態。宛轉煙鬟姝。我豈先生後。故亦眼不枯。卜宅終歸去。餘生寄一區。不煩來勑賜。衣鉢傳西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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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의 노승 화정(和靖)은 동오(東吳)에 은거하며 살았네. 강가에 초당(草堂)을 짓고, 그 모습은 지금까지도 그림으로 전해지네. 구름과 산은 여전한 자태를 띠고, 안개 낀 산마루는 고운 여인처럼 아름다워라. 내가 어찌 선생의 뒤를 잇지 못하겠는가? 나의 눈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노라. 집을 장만하여 마침내 돌아갈 터, 남은 생을 한 구석에 맡기리라. 하사받는 옷과 법의를 기다릴 필요 없네. 그 법맥은 서호(西湖)로 전해졌으니.

64. 追悼鄭學士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先生蕭灑出塵埃。忽歎風前玉樹摧。上帝已敎長吉去。海山曾待樂天來。當年翰墨爲人寶。高世聲名造物猜。從此匡廬無賀監。誰能呼我謫仙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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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초탈하여 먼지 같은 세속을 벗어났건만, 갑자기 바람 앞의 옥수수가 꺾이는 것을 탄식하셨도다. 천상에서는 이미 장길(李賀)을 보내셨고, 해산(海山)에서는 낙천(白居易)이 올 것을 기다렸었노라. 그 시절의 문장(翰墨)은 사람들의 보물이 되었고, 높은 세상의 명성은 창조주(造物)의 질투를 샀도다. 이제부터 광려(廬山)에는 화감(賀知章)이 없으니, 누가 나를 천상의 선인(謫仙) 같은 재주로 불러주리오.

65. 九月五日。與友人遊龍興寺海雲房。確師求詩。分韻得閣字。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麀鹿性難馴。城市非所樂。魚龍不厭深。久思江湖躍。而我心不羈。矯翼望寥廓。嗟爲名所牽。宿志負丘壑。爲有相携人。晚步同出郭。崎嶇入幽洞。巖谷如棋錯。深溪亂淸流。數里橫野杓。蒼然暮靄間。孤塔靑山脚。黃昏始投寺。古殿鳴風鐸。明月上峯頭。松陰寒落落。高人笑相迎。笑語破寂寞。壺傾大道漿。淸夜開小酌。坐久渾不寐。狂吟雜戲謔。問子何年中。構室煥丹雘。自云嗜爲善。千金盡傾橐。焚香禮白毫。燕坐淸風閣。此外更無事。豈羨楊州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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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은 성질이 순치하기 어렵고, 도시는 즐거움이 되는 곳이 아니다. 물고기와 용은 깊음을 싫어하지 않아, 오래전부터 강호로 뛰쳐나가고자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구속받지 않아, 날개를 펴고 넓은 하늘을 바라보았노라. 아, 이름에 얽매여 산 지 오래되어, 옛 소원을 산천에 저버렸도다. 함께할 벗이 있어, 저녁노을에 함께 성문을 나섰다. 험준한 길을 들어가 깊은 동굴에 이르니, 바위와 계곡이 바둑판처럼 어지럽도다. 깊은 시냇물은 맑은 물결을 흐르고, 수 리에 걸쳐 들의 물레방아가 놓였도다. 푸른 저녁 안개 사이로, 외로운 탑이 푸른 산 기슭에 서 있도다. 황혼이 되어야 비로소 사찰에 들으니, 옛 전당에서는 바람에 풍종이 울리도다. 밝은 달이 봉우리 위에 뜨고, 소나무 그늘은 차갑고 단정하도다. 높은 사람이 웃으며 맞아주니,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적막을 깨뜨리도다. 술잔을 기울여 큰 도의 술을 마시고, 맑은 밤에 작은 잔치를 열었도다. 오래 앉아 있어 거의 잠들지 못하니, 광포한 읊조림과 장난스러운 농담이 섞였도다. 그대에게 묻노니, 어느 해에 집을 지어 붉은 단청을 빛나게 하였는가? 스스로 선을 좋아하는 자라 하여, 천금을 다 털어 주머니를 비웠노라. 향을 피워 백모(釋迦牟尼)를 공경하고, 청풍각에서 편안히 앉아 명상하였도다. 이 밖에 더 할 일이 없으니, 어찌 양주(揚州)의 학을 부러워하겠는가?

66. 贈皇甫若水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早聞風烈盛貞元。幾葉傳爲學士門。文變唐朝今掃地。天敎安定世生孫。扶持正道韓公後。破黜諸家孔氏尊。鼻祖有靈應自喜。高才眞箇入吾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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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정원(貞元) 시대의 풍류가 성대하였다는 소문을 들었노라. 몇 대에 걸쳐 학사(學士)의 문호가 전해졌도다. 문장이 당나라 때부터 오늘날에는 땅에 떨어졌거늘, 하늘이 안정(安定)의 후손을 세상에 낳게 하셨도다. 한공(韓公) 이후 정도를 부흥시키고, 여러 가파를 깨뜨려 공자(孔子)의 존엄을 세웠으니, 조상이 영혼으로 계실 때 마땅히 스스로 기뻐하시리라. 높은 재능이 참으로 우리 문하에 들어왔도다.

67. 李眉叟嘗以言語爲戒。作詩戲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2D

원문

阮籍能愼默。是非口不論。時有禮法士。疾之如讎冤。子猷眞寡辭。對客唯寒暄。亦被顧辟疆。面數驅出園。平生好臧否。誰似郭大原。名德高一代。不見人排根。今君嗜玄虛。豈非李耳孫。超然自傲俗。喜怒不形言。更學維摩詰。早聞不二門。嗟吾未愼口。出語如瀾飜。與子日相對。便覺己之煩。但恐終此生。雖悔舌可捫。有喙謾三尺。欲吐却須呑。陽瘖近可學。必招謗說喧。酒狂要似蓋。目擊何希温。莫作不鳴雁。以智免炰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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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적은 침묵을 지킬 줄 알았으니, 시비(是非)를 입으로 논하지 않았노라. 때때로 예법을 중시하는 선비들이 그를 원수처럼 미워하였으나, 자유는 참으로 말이 드물어 객을 대할 때 다만 한겨울과 더위(인사)만 나누었을 뿐, 또한 구벽강에게 면전에서 수없이 쫓겨나기도 하였노라. 평소에 옳고 그름을 가리키는 것을 좋아하였으니, 누가 곽대원과 닮았는가? 그의 명성과 덕망은 한 시대를 높였으나, 남에게 배척받는 것을 보지 못하였노라. 이제 그대는 현허(玄虛)를 좋아하니, 어찌 이이(李耳)의 손자가 아니겠는가? 초연하게 스스로 세속을 초월하여, 기쁨과 노여움을 말로 드러내지 않으니, 다시 유마힐(維摩詰)을 배우고 일찍이 불이문(不二門)을 들었노라. 아, 나는 아직 입을 삼키지 못하여, 말을 내면 파도가 거꾸로 일듯 하노라. 그대와 매일 마주하니, 곧 나의 번거로움을 느끼노라. 다만 평생토록 이대로 끝날까 두려워, 비록 혀를 물어뜯어 후회할지라도, 입이 허락한다고 삼척이나 재주 부려도, 뱉으려 하면 반드시 삼켜야 하노라. 양음(陽瘖)의 근접한 태도는 배울 만하나, 반드시 비난과 소란을 불러일으키리라. 술에 취한 광기는 오히려 채(蓋)를 닮아야 하고, 눈으로 가리키며 온유함을 구하지 말라. 울지 않는 기러기가 되지 말고, 지혜로써 삶에 익혀지는 화를 면하라.

68. 寄茶餉謙上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近得蒙山一掬春。白泥赤印色香新。澄心堂老知名品。寄與尤奇紫筍珍。

번역

가까이 몽산(蒙山)에서 한 줌의 봄을 얻었노라. 흰 점토와 붉은 인장의 빛깔과 향기가 새롭구나. 성심당(澄心堂)의 노장(老堂)이라 이름난 품격이니, 기특한 자손의 찻잎 진귀함을 보내노라.

69. 戲書謙上人方丈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3A

원문

謙公俊逸叢林秀。玉骨巉巉淸且瘦。佛祖家風傳雪竇。踞地便聞師子吼。默坐澄心牢閉口。不復談空還說有。自知龐蘊一狂叟。往往參禪來稽首。祇笑西堂長禁酒。誇我點茶三昧手。石鼎作聲蚯蚓叫。客遭水厄誰能救。不似十千沽一斗。醍醐微濁甘露厚。且問高僧飮此否。

번역

겸공은 총명하고 우아하여 승려들의 모임에서 빛나는 존재라. 옥과 같은 뼈대는 기품 있고 맑으며 마른 몸이로다. 부처와 조사의 가풍을 설도(雪竇)로부터 전수받아, 땅에 주저앉아 사자의 포효를 듣는 듯하도다. 묵묵히 앉아 마음을 맑게 하고 입을 굳게 다물어, 더 이상 공(空)을 논하거나 유(有)를 말하지 않느니라. 스스로 방온(龐蘊) 같은 광대함을 알기에, 종종 선을 참구하며 머리를 조아리도다. 다만 서당(西堂)이 술을 금하는 것을 비웃으며, 나의 점차(點茶) 삼매수(三昧手)를 자랑하노라. 돌솥에서 소리가 나면 지렁이가 우는 듯하고, 손님이 물의 화를 당해 누가 구원할 수 있으리오. 열 천을 들여 한 말의 술을 사 마시는 것 같지 않아, 제호(醍醐)는 약간 탁하고 감로(甘露)는 진득하도다. 과연 고승이 이 술을 마실는지 묻노라.

70. 喜閔元拔見訪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老憶襄陽歸隱廬。眼中親故盡相疏。身藏氷谷凄涼久。耳絶眞人警咳餘。隱几靜觀齊物論。閉門方著絶交書。自驚負郭窮居陋。何事頻回長者車。

번역

옛적에 양양의 은거하던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일을 기억하노라. 눈앞의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서로 멀리해 있구나. 몸은 빙골(氷谷)에 숨어 서늘하고 쓸쓸함이 오래되었네. 귀는 진인(眞人)의 경쾌한 기침 소리조차 끊겼도다. 의자에 기대어 조용히齊物論을 관찰하고, 문을 닫아 絶交書를 막 써내려가고 있노라. 스스로 성곽 근처의 가난하고 초라한 거처를 부끄러워하며, 어찌하여 빈번히 어르신들의 수레가 돌아오는지 모르겠노라.

71. 六月十五夜雨霽。對月有懷。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3B, ITKC_MO_0003A_A001_223C ...

원문

六合敲蒸未流火。天上傾瓢雨如瀉。長風忽卷雲峯崩。十日繁陰收一夜。人間淸景已不失。始信造化能變化。娟娟好月尋幽人。獨出庭前還舞我。對影成人不解飮。空憶高吟郊與賀。淸光長欲照金尊。其奈乍圓還半破。相看與結無情遊。未曉天涯看已墮。

번역

여러 방면의 찌는 듯한 더위가 물러나지 않았으나 하늘에서는 물동이를 엎지르듯 비가 쏟아졌다. 장풍이 불어 구름 봉우리가 무너지듯 걷히자, 열흘 동안 이어진 무성한 음울함이 하룻밤 사이에 거두어졌다. 세상의 청정한 경치는 이미 사라지지 않았으니, 비로소 조화가 변화하는 능력을 믿게 된다. 아리따운 달은 은둔자를 찾아 나서, 홀로 뜰 앞에 나와 나와 함께 춤을 춘다. 그림자와 함께 세 사람이 되었으나 마시지 못해, 오직 교외에서 높게 읊조린 교(賈島)와 하(賀知章)를 공허히 추억할 뿐이다. 맑은 빛은 항상 금잔을 비추고자 하지만, 어찌 하룻밤 만에 차차 둥글어졌다가 반쯤 깨어지는 것을 면하겠는가. 서로 바라보며 무정함을 벗 삼아 놀았으나, 천하의 달이 이미 떨어졌음을 알지 못했다.

원문

黑月淸明亦勝火。河漢飛濤時倒瀉。坐愁昏勢及吾民。肯爲荒鷄空舞夜。安知八萬二千戶。規作朣朧聊幻化。回看頃刻掃陰威。好事天公還戲我。開戶相邀隣有仲。擧杯空嘆山無賀。隔壁遙聞愷之詠。已許愁顏聊一破。三人飮量眞舊對。達旦莫辭傾白墮。

번역

검은 달이 맑고 밝아 불꽃보다도 낫구나. 하천(銀河)의 물결이 때때로 거꾸로 쏟아지듯 흐르고, 어둠의 기세가 백성들에게까지 미쳐 걱정되니, 어찌 허수아비 닭이 밤중에 춤추듯 헛되이 울겠는가. 어찌 여덟 만 이천 호의 집들이 달을 보고 환상처럼 변화하는 모습을 즐기려 했으랴. 잠시 뒤에는 구름이 걷혀 음험한 기운이 사라지니, 좋은 일 좋아하는 천공(天公)이 나를 장난하듯 하는구나. 문을 열고 이웃의 중(仲)을 초대하려 하지만, 술잔을 들어도 산(山)의 하(賀)가 없어 빈손으로 탄식할 뿐이다. 옆집에서 멀리 캐지(愷之)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니, 이미 슬픈 얼굴을 잠시나마 풀게 되었구나. 세 사람의 음량이 참으로 옛날의 상대와 같아, 새벽까지 백탁(白墮)의 술을 마시지 않음을 사양치 않겠다.

원문

方諸取水燧取火。寒煙逬出淸淚瀉。要知炎冷本無質。一氣交馳代日夜。銀蟾玉ꟙ陰繫陽。古云異物相待化。瑩然水鑑瀉山河。無心自照何彼我。天公眸子洗更新。蟣蝨微臣爲一賀。終宵坐待玉繩橫。仰見不須愁屋破。却思曾泛郞官湖。徑寸明珠波底墮。

번역

방저(方諸)는 물을 뜨고 수취(燧取)는 불을 취하니, 찬 연기가 치솟고 맑은 눈물이 쏟아지는구나. 더위와 추위가 본래 질(質)이 없음을 알라. 한 기운이 서로 달리고 밤낮을 대신한다. 은참(銀蟾)과 옥성(玉繩)은 음이 양에 매여 있으니, 옛사람이 말하기를 이물이 서로 기다려 변화한다고 했도다. 맑은 물거울이 산하를 비추듯, 무심하게 스스로 비추어 어찌 저와 나인가. 천공(天公)의 눈동자를 씻어 새롭게 하였고, 미적(蟣蝨) 같은 작은 신하가 이를 위해 한 번 축하하노라. 종일토록 앉아 옥성이 가로놓인 것을 기다렸으나, 우러러보니 집이 무너질 것을 슬퍼할 필요 없도다. 다시 생각하노니, 옛적 낭관호(郞官湖)를 범했던 일을, 지경(徑寸)의 명주가 물底下에 떨어졌음을.

원문

壬水飛空伏丁火。浸淫正恐漏天瀉。陰雲斷滅不復見。忽看明月來淸夜。三千世界皆銀色。豈有道人方便化。不知身在唾霧間。泠然却似風乘我。吾曹不可負此景。擧杯欲酹淸光賀。茅簷竹閣白如晝。不妨半掛疏簾破。空牀兀坐如乘航。欹側狂吟忘幘墮。

번역

임수(壬水)가 하늘을 날아 정화(丁火)를 잠재우니, 침범하여 장차 하늘이 새어 내릴까 두려워하도다. 음운이 끊어지고 사라져 다시 보이지 않더니, 홀연히 밝은 달이 청정한 밤에 찾아오네. 삼천 세계가 모두 은빛으로 물들었는데, 어찌 도인(道人)이 편방(方便)으로 변화시킨 것인가. 내가 입김의 안개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여, 냉연(泠然)히 바람이 나를 태우고 가는 듯하도다. 우리 무리들은 이 경치를 저버릴 수 없으니, 잔을 들어 맑은 빛에 올리어 축하하노라. 초막의 처마와 죽각(竹閣)은 낮처럼 하얗고, 반쯤 걷힌 성긴 창살이 깨진 듯해도不妨(방해되지 않도다). 빈 침대에 홀로 앉아 마치 배를 타는 듯하고, 기울어지며 광활하게 읊조리며 갓이 떨어지는 것도 잊었노라.

원문

淸明已過新槐火。暑天汗背飜漿瀉。對榻高眠聽蕭瑟。幾度空思風雨夜。爾來成霖餘十日。此意豈能尤造化。喜聞民隴皆騰歌。澤遍公田遂及我。無才自愧元和老。作詩端就君王賀。新晴晚月一分虧。已看罘罳懸壁破。共君欲尋天竺寺。正待秋風桂子墮。

번역

청명(清明)이 지나자 새 회화나무 불이 타오르고, 더운 날씨에 땀이 등을 따라 물처럼 쏟아진다. 옆 침대에 높은 곳으로 누워 시원한 바람 소리 듣는데, 몇 번이나 비 오는 밤을 그리워하며 헛되이 생각했는가. 이때부터 장마가 이어져 열흘이 넘었으니, 이 뜻이 어찌 하느님(造化)을 원망할 수 있겠는가. 백성들의 논밭에서 모두 노래하는 소리를 기쁘게 듣고, 은혜가 공전(公田)을 두루 적신 뒤 마침내 내게까지 미쳤다. 재주 없어 원화(元和)의 노인을 부끄러워하며, 시를 지어 임금께 직접 축하드린다. 갓 맑아진 저녁 달은 한 분만큼 어둡고, 이미 방추(罘罳)가 벽에 걸려 깨진 것을 보았다. 너와 함께 천축사(天竺寺)를 찾으려 하지만, 정작 가을바람에 계수꽃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원문

隔屋靑熒望燈火。槽牀壓酒香泉瀉。我時獨坐望淸光。無由共醉西園夜。直欲乘雲到月宮。凡骨却嫌難羽化。先生好飮仍好客。遺書一呼趙李我。三杯軟語歡亦甚。危絃不待彈琴賀。子詩淸硬如強兵。往往力拔愁城破。樽前顚倒白綸巾。未省歸來車上墮。

번역

집 건너편 푸른 형광등불을 바라보니 등불이 보인다. 술을 짜는 기구에서 향기로운 샘물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홀로 앉아 맑은 달빛을 바라보았으나, 서원(西園)의 밤을 함께 마실 길이 없었다. 곧장 구름을 타고 달궁(月宮)에 가고 싶었으나, 범골(凡骨)이라 오히려 날개 달아 오르는 일이 어렵다고 여겨졌다. 선생님은 술을 좋아하시고 객을 대접하는 것도 좋아하시니, 유서(遺書)를 하나 보내어 조이(趙李)와 나를 부르셨다. 세 잔의 부드러운 말로 즐거움이 지극하였으니, 위현(危絃)을 기다릴 필요 없이 거문고를 타는 기쁨을 축하하였다. 자네 시는 맑고 단단하여 강한 병사 같아, 종종 힘으로 슬픔의 성을 깨뜨린다. 잔 앞에서 녹건(綠巾)이 뒤섞여 어지러웠으니, 돌아와서 수레 위에서 넘어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72. 留別金璿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4B

원문

苟同近循身。苟異還循名。兩者未免累。不如俱忘情。我性非好高。矯矯豈其誠。但當爲口謀。及辰欲歸耕。鄕人來勸我。香稻富烏程。閑乘葉舟去。海山寄餘生。軒軒金子美。肝膽何崢嶸。與我年雖少。聞道卽己兄。臨別但相語。子去吾亦行。滄浪知幾里。朝發暮江城。愼勿負玆期。鷄黍吾方烹。

번역

만약 남과 같으려 하면 몸가짐을 따르고, 만약 남과 다르려 하면 명성을 따르게 되니, 둘 다 피할 수 없는 번뇌이다. 차라리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낫다. 나의 성품은 높은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니, 거만함이 진실인가. 다만 입으로 먹을 것을 도모할 뿐, 제때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자 한다. 고향 사람들이 나를 권하여 이르되, "향기로운 쌀이 풍부하니 우성(烏程)의 술을 즐기라" 하더라. 한가롭게 나뭇잎으로 만든 배를 타고 가서, 바다와 산에 남은 생을 맡기리라. 풍채가 아름다운 자미(子美)여, 그 간장(肝膽)이 어찌 이리도 단단한가. 나와 나이는 비록 적으나, 도(道)를 듣자마자 이미 형제와 같다. 작별할 때 다만 서로 말하노니, "네가 가면 나도 가리라." 창랑(滄浪)이 몇 리나 되는지,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에 성江城에 닿는다. 부디 이 약속을 저버리지 말라. 닭과 수수밥을 내가 곧 요리할 것이다.

73. 戲贈若水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聞君閉戶對塵編。讀過長安苦雨天。要向柴扉尋病叟。淸談終勝卷中賢。

번역

그대가 문 닫고 먼지 낀 책과 마주한다는데, 장안(長安)의 가쁜 비를 겪으며 읽었노라. 초문(柴扉)을 두드려 병든 노인을 찾아가려니, 맑은 담론이 결국 책 속의 보통 현인보다 낫도다.

74. 復次前韻寄鷄林朴先生〔原注:仁碩〕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役役塵寰萬事違。飜漿白汗歎空揮。欲專一壑開茅棟。須卜比隣住翠微。招我江東携室去。羨君林下棄官歸。秋風定有吳中味。好慰鄕思寄陸機。

번역

세속의 먼지 속에서 부지런히 굴러가며 만사가 어긋남을 알 뿐, 흰 땀을 흘리며 물결을 일으킬 뿐 헛되이 탄식하노라. 한 구렁텅이를 차지하여 초가를 열고자 하면, 반드시 푸른 산기슭에 이웃하여 살 곳을 물색해야 하노라. 나를 강동으로 불러 집안을 데리고 가라 하시니, 당신께서 숲 아래서 관직을 버리고 돌아감을 부러워하노라. 가을바람에는 반드시 오중의 맛이 있을 터이니, 좋은 정취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위로하여 육기에게 보내리다.

75. 贈湛之〔原注:二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4C

원문

寂寂春深學士家。無人庭戶落花多。自驚俗客非仙骨。碧玉壺中醉紫霞。五雲深處有人家。狂客閑來興味多。始信燒丹眞可學。紫陽仙老在飡霞。

번역

적적한 봄 깊은 학사의 집. 뜰과 문에 낙화만 가득하도다. 나는 속인이仙骨이 아님을 스스로 놀라워하노라. 옥호壺中에서 자색 구름에 취하노라. 오운五雲 깊은 곳에 집이 있도다. 광객狂客이 놀러와 흥미가 많도다. 비로소 단丹을 태우는 것이 참으로 배울 만함을 믿노라. 자양紫陽 선로가 자색 구름을 먹으며 지내노라.

76. 賀皇甫沆及第〔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4D, ITKC_MO_0003A_A001_225A ...

원문

卜居同里閈。嘗詣子之室。一見便嗟奇。再語稍款密。旦夕且相就。文藁數容乞。時時又唱酬。窘束怯嚴律。方論古今事。對坐頻捫蝨。弟兄俱孜孜。所業在學術。雖於危難中。手不釋卷帙。樂哉家有師。常無遠離膝。階庭生蘭玉。不減謝安姪。自古賢士輩。其才有得失。揚劉博見聞。李杜工綴述。唯子兼衆美。曾不愧其一。所見過所聞。未信名與實。我與當時人。文章少所屈。至於見子作。輒欲焚其筆。瞠若在乎後。夫子固超逸。後生誠可畏。自笑衰墮質。別子來江南。孤陋居蓬蓽。獨言誰爲應。默默口如吃。雖有老大平。居諸念相迭。於焉得養志。自謂私願畢。去年聞子捷。愁情慰一鬱。今朝人又至。言子取甲乙。先知夢魂王。果得語音吉。有司鑑裁精。而子才可必。然疑傳者誤。逢人輒重詰。寄書欲一賀。久無郵傳疾。因風敍所懷。毫禿未能悉。

번역

우리 둘은 같은 고을에 살며 함께 거처를 정했다. 나는 종종 그의 집으로 찾아가, 처음 본 순간부터 그의 기이함을 탄식하며 감탄했고, 두 번째 대화에서는 조금 더 친밀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아침저녁으로 서로 찾아가 문학적 작품을 몇 차례 빌려 읽기도 했고, 때로는 시를 주고받으며 노래했다. 그러나 나는 엄격한 법도(율격)에 얽매이는 것을 꺼려 곤란해했다. 우리가 옛날과 오늘날의 일을 논할 때는 마주 앉아 종종 이마를 긁으며(고민하며) 대화를 나눴다. 우리 형제는 모두 부지런히 학문에 종사했으며, 그 닦은 바는 학문과 예술에 있었다. 비록 위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집안에 스승이 있어 즐겁고, 항상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계단과 뜰에는 난과 옥 같은 자제들이 자라나, 서안(謝安)의 조카들보다 못하지 않았다. 옛부터 현명한 사대부들은 많았으나, 그들의 재능에는 득실이 있었다. 양웅과 유향은 박식하고 견문이 넓었고, 이백과 두보는 문장 작성에 정교했다. 오직 그대는 이러한 여러 장점을 겸비하여, 그중 하나라도 부끄러워할 것이 없었다. 그가 지나간 곳과 들은 소문은, 이름과 실체가 믿을 만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나와 당시 사람들은 글에서 드물게 굴복하는 일이 없었으나, 그의 작품을 보고 나면 곧장 붓을 불태우고 싶어졌다. 나는 뒤처져 당황할 뿐이었다. 선생님은 본래 초월하고 비약하시니, 후학은 정말 두려울 지경이다. 나는 늙고 무능한 내 몸을 스스로 웃으며 비웃는다. 그대를 떠나 강남에 왔으니, 나는 고독하고 박식하지 못하여 초가삼간에 머물고 있다. 혼자 말해도 누가 응대해 주겠는가, 침묵하며 입이 먹은 듯하다. 비록 나이가 많아 평온하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생각은 겹쳐진다. 그 덕분에 뜻을 기를 수 있어, 사적인 소원이 이루어진 줄 알았다. 작년 그대가 급제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과 근심이 잠시 풀렸다. 오늘 또 사람이 와서, 그대가 갑을(최상위)로 합격했다는 말을 한다. 먼저 꿈속에서 최지몽(崔知夢)의 예언을 알았으니, 과연 음성(점괘)이 길함을 얻었다. 관료들은 감식하고 재단하는 안목이 정교하여, 그대의 재능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하는 말이 잘못되었음을 의심하여,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다시금 거듭 물어보았다. 편지를 보내 한 번 축하하려 했으나, 오래도록 우편이 빠르지 않았다. 바람을 빌려 나의 마음을 서술하니, 붓끝이 닳아 다 쓰지 못한다.

원문

往日遊洛城。交友更賢英。奔馳事場屋。龍戰而虎爭。邇來因避亂。數載辭舊京。每聞登第輩。了莫知其名。新進豈無人。於心固所輕。因嗟文弊極。賢愚不足旌。皇天未喪斯。吾道當大行。近者簡上心。文柄委名卿。異才將盡出。兩耳先自傾。今年果得子。士林爲之榮。群鳥方啾啾。忽然聞鳳鳴。乃知是奇瑞。旦夕見大平。昔唐貞元間。狂瀾起縱橫。退之獨好古。大唱於後生。時有湜與翺。相共和其聲。遂使群學者。從之而變更。當今大儒首。皇甫氏弟兄。其餘盡流落。誰復爲主盟。吾雖向衰暮。殘月配長庚。年來益忘廢。薾爾疲其精。今子少且銳。高論方崢嶸。勉哉無輟業。指日登蓬瀛。更使文波振。聲價增軒轟。吾今不賀子。先賀有司明。

번역

옛적에 나洛城을游歷할 적에, 사귀는 벗이 더욱 어질고 영특하였노라. 場屋을 위해 奔馳하며, 용이 싸우고 호랑이 다투듯 치열하였노라. 근래에는 亂을 피하여, 수 년 동안 옛 京을 떠나 있었노라. 매번 登第한 자들을 들을 때, 도무지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였노라. 새로운 진사들이 없었겠는가, 마음속으로 굳이 가볍게 여겼노라. 이로써 문장의 폐단이 극에 달했음을 탄식하노니, 어질고 어리석은 자를 가릴 수 없었노라. 하늘이 아직 이 도를 멸하지 않았으니, 우리 도가 마땅히 크게 행해지리라. 최근에는 임금의 마음이 간추려져, 문장의 권세를 명경에게 맡겼노라. 기이한 재주가 모두 드러나려 할 때, 두 귀가 먼저 스스로 기울어졌노라. 올해에 마침 그대를 얻었으니, 士林이 이로 인해 영광을 얻었노라. 무리 새들이 비로소 지저귀더니, 갑자기 봉황의 울음소리를 들었노라. 이로써 기이한 상서로움임을 알겠노라. 아침저녁으로 큰 태평성대를 보게 되리라. 옛날 당나라 貞元 연간에는, 거센 물결이 일어나縱橫하였노라. 退之가 홀로 고전을 좋아하여, 후생들에게 크게 호소하였노라. 그 때 湜과 翺이 있어, 서로 화답하며 그 소리를 더하였노라. 이로써 무리 학자들이 그들을 따라 변화하였노라. 오늘날 대유학자의 수장은 皇甫氏 형제들이라. 나머지는 모두 유랑하여, 누가 다시 주盟이 되겠는가. 나는 비록 쇠약한 노년에 이르렀으나, 잔달이 장성(별)을 짝하여 지내노라. 해가 갈수록 게으름을 잊고, 지친 정신을 다스렸노라. 이제 그대는 젊고 날카로우니, 높은 논리가 곧 장엄하리라. 부디 게으르지 말고 학업을 멈추지 말라. 이르면 蓬瀛에 등용될 날이 있노라. 더욱이 문장의 파도를 진동시켜, 성가와 명성을 높여라. 나는 지금 그대를 축하하지 아니하고, 먼저 有司가 밝음을 축하하노라.

77. 次韻資福寺留題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平生愛竹老文同。獨恨兒孫掃地空。解勸主人須會意。春來移種小樓東。

번역

평생 대나무를 사랑한 것은 문동(文同)과 같았으나, 자손들이 마당을 쓸어 빈틈없이 깨끗이 치워버린 것이 유일한 한스러움이라네. 주인에게 명심하라고 권하노니, 뜻을 헤아려 봄이 오면 작은 누각 동쪽에 옮겨 심으시라.

78. 九日獨坐。聞諸公有會。作詩寄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身在天涯歲又催。登高自有望鄕臺。五年去國長爲客。九日無人共把杯。紅葉忽驚霜後落。黃花猶似亂前開。莫嫌擧止非閑雅。會向龍山許一陪。

번역

몸은 천애(天涯)에 있어 해가 또 다급히 차고, 높은 데 오르는 데에는 고향을 바라보는 대(臺)가自有히 있도다. 오 년 동안 나라를 떠나 항상 객지 신세라, 구일(九日)에 함께 잔을 잡을 이 없도다. 붉은 잎은 갑자기 서리 내린 뒤에 떨어지는 것을 놀라워하고, 노란 꽃은 여전히 어지러이 피기 전에 핀 듯하도다. 거동이 비록闲雅하지 않다고 싫어하지 말라, 장차 용산(龍山)에서 함께 끼는 것을 허락받으리라.

79. 聞從兄庭玉到尙州。以詩戲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昨歲過洛州。一日停行輈。爾後又多難。不見年再周。兄方客京輦。我亦居變陬。譬如兩葉蓮。飄然大海浮。隨波東復西。聚散不自由。今聞又杖策。忽事江南遊。至此可三飡。莫言道阻脩。欲聞謦咳聲。頗慰羈離愁。天涯遇親戚。況乃瀟湘秋。貽書先自問。思我肯來不。

번역

작년 봄 낙주(洛州)를 지나가며 하루는 행차의 수레를 멈추었노라. 그 후로 또 많은 난리가 있어, 두 해가 지나도록 너를 보지 못했노라. 형님은 지금 수도 장안(長安)에 객지살이를 하시고, 나도 또한 변방의 구석진 곳에 머물고 있구나. 마치 두 잎의 연꽃 같아, 거대한 바다 위에서 표류하듯 물결 따라 동서로 떠다니니, 모이고 흩어짐이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도다. 이제 또 지팡이를 짚고 있더니, 문득 강남(江南)으로 유람을 가려 하시는구나. 여기에 이르러 세 끼의 식사를 할 수 있으니, 도리어 길이 멀고 수고로움을 말하지 말라. 형님의 목소리와 기침 소리를 듣고 싶으니, 이는 꽤나 외롭고 이별한 슬픔을 위로하리라. 천하 끝에서 친척을 만나니, 하물며 소상(瀟湘)의 가을이랴. 편지를 보내어 먼저 스스로 묻노니, 나를 생각하여 오실는지.

80. 遊密州書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5D

원문

山郡多佳麗。名高冠一方。地靈人自傑。野沃歲頻穰。路控舟車會。風存禮義鄕。多儒如蜀郡。絶景甲餘杭。松菊荒彭澤。煙波動岳陽。山深禽格磔。天與水蒼茫。岫碧關新障。湖晴倚淡粧。際天排樹幄。拂雪梟茶槍。四序叢筠綠。千門細柳黃。杯盤饒海陸。絃管妙宮商。遇勝添詩興。餘閑泥酒觴。春行鳧渚暖。暮燕鳳樓涼。夢覺書窓月。衣凝宴寢香。賞心幷樂事。乘興放淸狂。久被山川住。飜嗟道路長。殘霞望滕閣。夜雨聽瀟湘。鞭促征鞍發。心隨去雁忙。嫌無王勃筆。霞鶩記南昌。

번역

산골 고을에는 아름다운 경치가 많으니, 그 명성이 한쪽 지방을 뛰어넘는다. 땅이 신령하여 사람들이 저절로 영웅豪杰이 되고, 들이 비옥하여 해마다 풍년이 든다. 길은 배와 말이 모이는 요충지에 닿아 있고, 풍속은 예의가 있는 고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유학자가 많은 것은 촉郡과 같고, 절경은 여杭을 능가한다. 송화와 국화는 펑택(彭澤)에서 황폐해졌고, 연기와 물결은 월양(岳陽)에서 일렁인다. 산이 깊어 새 소리가 들리고, 하늘은 물과 함께 광활하다. 봉우리는 푸른색으로 새로운 장막을 이루고, 호수는 맑아 연한 화장에 기대어 있다. 하늘 끝까지 나무 천막이 늘어섰고, 눈을 털어차면 차총(茶槍)이 날아간다. 사계절 내내 대나무는 푸르고, 천 가문의 가는 버들가지는 노랗다. 잔치 상에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악기는 궁상(宮商)의 선율이 뛰어나다.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시흥이 더해지고, 여가에는 술잔에 정신이 팔린다. 봄에 두루미가 노니는 습지를 걸으니 따뜻하고, 저녁에 제비가 봉루(鳳樓)에 머무니 시원하다. 꿈에서 깨어 보니 서창(書窗)에는 달빛이 비치고, 옷에는 연회의 향기가 배어 있다.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과 즐거운 일은 모두, 흥을 타고 맑게 날뛰며 즐긴다. 오랫동안 산천에 머물러 지내다 보니, 오히려 길이가 길어짐을 탄식한다. 남은 노을을 바라보니 등각(滕閣)이 보이고, 밤비에潇湘(소상)의 소리를 듣는다. 채찍을 쳐서 수레를 재촉하여 길을 떠나니, 마음은 떠가는 기러기 따라 바쁘다. 왕발(王勃)의 붓이 부족함이 싫어, 노을과 기러기를 기록하여 남창(南昌)을 기린다.

81. 題嶺南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6A

원문

曾聞圓嶠臨蒼濤。樓閣玲瓏駕巨鼇。鼇傾海動群仙駭。茫茫失去一峯高。飛來怳惚移於斯。磅礴千古當古壕。突起連空如疊玉。百丈淸潭橫鴨綠。水泛桃花出洞中。居人宛是秦餘俗。靑山影裏兩三家。垂柳陰中千萬屋。日暮郊原牛馬歸。春深洲渚鳧鷖浴。漁舟之子棹如飛。溪岸不知盤幾曲。洛城遷客來何時。樓上欲窮千里目。山耶雲耶遠一色。雁點長空行斷續。天涯晚色正蒼然。其奈思家心更速。不用重來登此樓。煙波好處使人愁。

번역

예전에 원교(圓嶠)가 푸른 파도에 접해 있다는 것을 들었노라. 정자 누각이 거대한 거북이 등을 타고 정교하게 서 있도다. 거북이가 기울자 바다가 요동쳐 수많은 선인들이 놀랐고,茫茫하게 사라져 하나의 봉우리가 높이 떠 있도다. 날아온 듯 아득하여 이곳으로 옮겨온 것 같고, 웅장한 기운이 천고에 걸쳐 옛 해자를 당당히 메웠도다. 갑자기 솟아올라 하늘과 이어져 마치 겹친 옥 같고, 백 장의 맑은 연못이 오리색으로 가로놓였도다. 물결에 복숭아꽃이 동굴 속에서 흘러나오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진(秦)나라 이후의 풍속을 간직하였도다. 푸른 산 그림자 속에 두세 가옥이 있고, 버들그늘 속에 천만 채의 집이 있도다. 해가 저물어 교외와 들판에 소와 말이 돌아오고, 봄이 깊어 강섬과 모래톱에서 오리들이 목욕을 하도다. 어부의 아들은 노를 저어 날아오듯 하고, 시냇가 어딘지 몇 번이나 굽이쳤는지 알 수 없도다. 낙성(洛城)으로 유배된 객은 언제 왔는가. 누각 위에 올라 천 리 눈을 다하고 싶도다. 산이냐 구름이냐 멀리 하나 되어, 기러기 점점이 긴 하늘을 가로질러 끊어졌다 이어지네. 천애의 저녁 빛이 오히려蒼然하니, 어찌 집 생각에 마음이 더 급해지지 않겠는가. 다시 이 누각에 올라서지 말라. 연록(煙波)이 좋은 곳이 사람을 슬프게 하노라.

82. 嶺南寺竹樓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6B

원문

嶺南山水甲吳興。樓上春來偶一登。橫皺愁眉孤岫遠。平鋪淨練碧波澄。雲飛畫棟歸湘浦。風送漁舟入武陵。吟罷揮毫留粉壁。重遊聊欲記吾曾。

번역

영남의 산수가 오흥(吳興)보다 뛰어나다. 누각에 올라 봄날에 우연히 한 번 올랐다. 구불거리는 수염 같은 산마루는 외로운 봉우리가 멀리 있고, 평평하게 펼쳐진 맑은 비단 같은 물결은 푸른 빛이 맑다. 구름은 그림자 지붕을 타고 상포(湘浦)로 돌아가고, 바람은 어선을 실어 무릉도원(武陵)으로 들여보낸다. 시를 짓고 난 뒤 붓을 들어 흰 벽에 남기니, 다시 찾아오려니 나의 왔던 발자취를 기록하고 싶다.

83. 次韻鄭學士〔原注:之元〕留題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眼界遐觀極大千。登臨聊與老南泉。門前櫓響淸溪月。村外樵歌薄暮天。漠漠古灘沙似雪。超超春岸草如煙。效嚬欲繼風騷句。才短多慙溟涬然。

번역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니 천하가 다 보인다. 노승 남천과 함께 잠시 이곳에 올라 앉아 있노라. 문 앞에는 노 저음 소리만 울리고 청계(淸溪)의 달빛만 흐르며, 마을 밖에는 나무꾼의 노래 소리만 저녁 하늘에 울려 퍼진다. 옛 모래톱은 모래가 눈처럼 하얗게 퍼져 있고, 높은 봄 언덕의 풀은 연기와 같이 흐릿하다. 풍류의 구절을 이어 받으려 하지만, 재주가 짧아 감히 부끄러울 뿐이다.

84. 鄕校諸生見招會飮。作詩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昨入宮墻拜聖眞。衣冠高會杏壇春。祇因曾點初成服。得見宣尼善誘人。藹藹升堂多吉士。陶陶滿坐盡嘉賓。老儒久歎斯文喪。始喜名都禮義新。

번역

어제 궁궐의 담장 안으로 들어가 성인을 모신 사당을 배알하고, 관복을 입은 신하들이 모인 큰 모임에서 봄의 향기를 나누었노라. 오직 증점이 처음 상복을 입은 때를 생각하여, 선비들을 잘 이끌어 주시는 공자의 모습을 뵙게 되었노라. 당당히 승당하는 많은 선비들과, 즐겁게 가득 찬 자리에는 모두 훌륭한 손님들이라. 늙은 유생으로서 오랫동안 문명이 쇠퇴함을 탄식해 왔으나, 이제 비로소 명도에서 예의와 의리가 새롭게 부흥함을 기뻐하노라.

85. 遊智勒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山徑險巑岏。兩手勤追攀。行行不逢人。古木昏蒼煙。忽得雲邊開一洞。洞裏平明別有天。人居縹緲多樓閣。步上高樓半空碧。當簷絶壁一千尋。灑檻飛流三百尺。時見驚禽落翠毛。只應不慣人間客。晚色蒼然正掩門。婆娑松影月黃昏。上方釋子眉如雪。靜掃中庭留我歇。仙境重來恐易迷。慇勤廻語題歲月。

번역

산길은 험하고 가파르니 두 손으로 부지런히 기어 올랐다. 걸어가도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고목 너머로 어두운 푸른 연기가 자욱하다. 문득 구름 끝에서 한 동굴이 열리니, 동굴 안은 평온하고 밝아 세상이 따로 있다. 사람들은 아득한 곳에 많은 누각을 두고, 높은 누각에 올라 서니 반은 공중의 푸른 하늘에 닿았다. 처마 끝 절벽은 천寻(尋)이나 되고, 난간을 적시는 폭포수는 삼백 척이나 된다. 때때로 놀란 새들이 푸른 깃털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아라, 오직 세상의 손님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저녁 빛이蒼然(창연)하게 드리워 문이 닫히려 할 때, 소나무 그림자가 흔들리며 달이 황혼에 뜬다. 윗곳의 승려 눈썹은 눈처럼 희고, 고요히 중정을 쓸어 나를 쉬게 하려 한다. 선경을 다시 찾을까 두려워 쉽게 길을 잃을까 봐, 정중히 돌아서며 세월을 기록해 남긴다.

86. 戲密州倅〔原注:勝覽載星州恐誤。〕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6D

원문

紅粧待曉帖金鈿。爲被催呼上綺筵。不怕長官嚴號令。謾嗔行客惡因緣。乘樓未作吹簫伴。奔月還爲竊藥仙。寄語靑雲賢學士。仁心愼勿施蒲鞭。

번역

붉은 화장으로 새벽을 기다리며 금으로 만든 비녀를 붙이고, 이불을 덮은 채로 부름을 받아 비단 잔치상에 오른다. 수령의 엄한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떠도는 객의 나쁜 인연만을 한탄할 뿐이다. 누대에 올라서서 소리를 부르는 벗이 되지 못했고, 달로 뛰어올라 약을 훔치는 선녀가 되었다. 푸른 구름 속의 현명한 학사에게 전하노니, 어진 마음으로 함부로 포도채질을 가하지 말라.

87. 謝人携酒見訪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門外頻廻長者車。從容談笑酌流霞。識奇不是楊雄學。日日空煩載酒過。

번역

문외에 장자(長者)의 수레가 자주 돌아오고, 여유 있게談笑하며 유하(流霞)를 마시네. 기이함을 알아보는 것은 양웅(揚雄)의 학문이 아니니, 날마다 술을 싣고 오는 것이 헛되이 번거로울 뿐이오.

88. 謝惠鯉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忽見先生惠鯉魚。不須彈鋏歎歸歟。呼兒乞火烹來處。更得中藏尺素書。

번역

갑자기 선생님께서 고기(鯉魚)를 하사하시니, 칼집을 두드리며 돌아가자고 탄식할 필요가 없도다. 아이를 부러 불을 빌려 그 고기를 삶고, 또 그 속에 담긴 편지(尺素書)를 얻었도다.

89. 二月十五夜對月〔原注:幷序〕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7A, ITKC_MO_0003A_A001_227B

원문

昔黃翰林公嘗作仲春對月詩云。春宵何索莫。秋夕獨喧顚。嘗愛其詞理俱得。及遊嶺南寺。適値此夕。登樓望月。忽憶其句。遂續而賦之。

번역

옛날 한림(翰林) 공이 중춘(仲春)에 달을 대하며 지은 시를 지었는데, 그 말씀이 이러하였다. "봄 밤에 어찌하여 쓸쓸함이 없으며, 가을 저녁에 홀로 소란스럽도다." 나는 그 말씀이 뜻과 문장이 모두 적중함을 사랑하였다. 이후 영남(嶺南)의 사찰을 유람하다가 마침 이 밤을 만나, 누대에 올라 달을 바라보았더니, 문득 그 구절을 떠올려 이어 받아 지었다.

원문

吾聞自古風騷客。皆言勝賞唯秋夕。由來此說亦未公。每到仲春空歎惜。寒暄天氣兩得中。美景淸光眞自敵。明月無心缺復圓。自緣人意悲秋色。念此詩家一段奇。同異是非誰辨析。夫子當年獨著篇。千年疑論一朝釋。今春二月十五夜。我向嶺南樓上適。乾坤開霽微風緊。玉盤東轉長空碧。捲簾門外明如晝。表裏更無纖靄隔。沈沈正照寒溪面。澄波上下難相別。令人却憶黃庭堅。解道春宵何索寞。

번역

나는 옛적부터 풍류객들은 모두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기에는 가을 밤이 최고라고 말한다고 들었다. 예로부터 이 말 또한 공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니, 매년 중춘에 이르러 허수만 탄식하게 된다. 한기와 더위가 적절히 어우러진 날씨에, 맑고 아름다운 달빛은 참으로 서로 견줄 만하다. 달은 본래 마음이 없어 지고 나서 다시 둥글게 차오르니, 이는 다만 사람의 마음이 가을의 쓸쓸함에 슬퍼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이 부분을 기이하게 여겨 동서와 시비를 누가 분별하랴. 부자(黃翰林)가当年에 홀로 이 글을 지어 천 년 동안의 의문을 하루아침에 풀어주셨다. 올해 봄 이월 보름날, 내가 영남의 누각에 올라가니, 천지가 맑게 개고 미풍이 거세게 불며, 옥반(달)이 동쪽 하늘로 돌아가 장엄한 푸른 하늘을 비춘다. 창문을 걷어 올리고 문밖을 보니 밝기가 낮과 같고, 안팎에 더 이상 미세한 안개조차 가리지 않는다. 깊게 흐르는 달빛이 한계(寒溪)의 면을 비추니, 맑은 물결 위아래로 구별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황정견(黃庭堅)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니, 그는 봄 밤이 어찌하여 이렇게 적막한지 풀이할 줄 알았노라.

90. 次韻友人梅花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迎臘梅花一本芳。生憎胡蝶宿深房。未逢陸抗江南信。斷盡多情旅客腸。

번역

설을 맞을 즈음 매화 한 그루가 향기롭구나. 깊은 방에 잠든 나비를 미워하노라. 강남의 소식을 전할 육항을 만나지 못해, 다정다감한 나그네의 간장은 다 끊어졌도다.

원문

天公著意早春芳。故結紅綃作絳房。莫笑宋公曾作賦。平生鐵石譬肝腸。

번역

하늘 공(公)이 의도하여 이른봄의 향기를 내렸으니, 붉은 비단을 묶어 자줏빛 꽃방을 만들었도다. 송공(宋公)이 이미 부(賦)를 지었다 하여 웃지 말라, 평생의 철석 같은 마음은 곧 간장(肝腸)과 같았노라.

91. 寄密州大守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7C

원문

名藩千里謁氷壺。匹馬單裝滯旅途。屢許和顏曾假色。肯廻温律更吹枯。南枝舊有歸禽戀。中道誰憐困鮒呼。泉壤也應知感德。仁心何忍棄遺孤。

번역

명분(名藩)에 천 리나 떨어져 빗호(氷壺) 같은 청렴한 품성을 뵈옵고, 말 한 필과 단장(單裝)으로 여정(旅途)에 머무르네. 자주 미소를 띠어 주셨던 인자한 얼굴을 보았으니, 어찌 온화한 봄바람이 되어 마른 가지를 살려 주지 않겠는가. 남쪽 가지에는 이미 돌아가는 새의 그리움이 있고, 중도(中道)에서는 곤궁한 붕어(困鮒)의 부르짖음을 누가 불쌍히 여기랴. 샘물과 땅속에서도 마땅히 은혜를 알겠지, 어찌 어진 마음으로 고아(孤)를 버리시겠는가.

92. 眉叟訪予於開寧。以鵝梨旨酒爲餉。〔原注:作詩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7D

원문

多公訪我出山行。路上鏗然鐵杖聲。百箇紫梨來大谷。一壺淸酒換烏程。久無好事尋揚子。忽喜論文見李生。欲葬醉鄕終不返。何人中路候淵明。

번역

다공(多公)이 산에서 내려와 나를 찾아오시니, 길에서는 철지팡이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백 개의 자색 배가 대곡(大谷)에서 왔고, 한 병의 맑은 술은 오정(烏程)에서 바꿔 온 것이었다. 오랫동안 좋은 일을 찾아 양자(揚子)를 찾지 못했는데, 문장을 논하는 이생(李生)을 만나게 되어 갑자기 기쁘다. 술 취한 고향에 장사지내려 해도 끝내 돌아오지 않겠다 하니, 누가 중도에서 원명(淵明)을 기다리겠는가.

원문

紫微閑佩一壺行。門外時聞剝啄聲。問我歸來從小隱。留君談笑緩廻程。腹中早識精神滿。胸次都無鄙吝生。已使文章曾竝駕。中興應不羨三明。

번역

자미(紫微)가 한 병의 술을 들고 여유롭게 거닐더니, 문밖에서 때때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네. 돌아가서 작은 은거(小隱)에 몸을 맡겼느냐고 묻기에, 당신을 모시고 담소하며 여정을 늦추었노라. 속에는 이미 정신이 충만하고, 가슴에는 조금도 비열하고 인색한 마음이 없었소. 이미 문장 실력으로 함께 수레를 몰았으니, 중흥(中興)의 시대에는 삼명(三明)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오.

원문

早抱文章獨鼓行。妙年方見振家聲。窮途誤墜千尋壑。逸足須騰萬里程。作賦誰先吳國士。誦書曾號洛陽生。鸞凰不是尋常應。待看來儀表聖明。

번역

일찍이 문장(文章)을 안고 홀로 행진하여, 묘년(妙年)에 비로소 집안의 명성을 떨쳤다. 궁구(窮途)에 미혹되어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졌으나, 뛰어난 발걸음은 만 리 길을 날아오를 것이다. 부작(賦作)을 누가 먼저 했는가? 오국(吳國)의 선비여. 서경(書經)을 외우던 자는 일찍이 낙양생(洛陽生)이라 호칭받았노라. 난봉(鸞凰)은 평범한 응모(應募)가 아니며, 그 문채를 보아 성명(聖明)의 표상이 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원문

曾向秋風送子行。相逢今喜識音聲。詩名早竊韓齊柳。交道重申孔遇程。莫愛孤棲參白足。應須一起爲蒼生。新篇忽得飜瀾讀。鐵點銀鉤照眼明。

번역

가을 바람에 자행(子行)의 행차를 보내던 일이 있었으니, 이제 만나니 그 음성을 아는 기쁨이로다. 시명은 이미 한(韓), 제(齊), 유(柳)의 명성을 훔쳤고, 교우의 도는 다시 공자(孔子)가 여(呂)를 만나 정(程)을 대한 것처럼 중히 여겨지네. 외롭게 앉아 백족(白足)과 함께하기를 사랑하지 말고, 마땅히 함께하여苍生(창생)을 위해 일해야 하오. 새 시편이 갑자기 와서 물결치듯 읽으니, 철점과 은후(銀鉤)의 글씨가 눈을 밝게 비추네.

93. 寄尙州鄭書記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8A

원문

九重親奉紫泥封。暫屈長才佐小邦。堂上高懸絳紗帳。幕中偏擁碧油幢。去珠感德初還浦。猛虎知仁已渡江。自喜龍門參下客。巨鍾時許寸蓬撞。

번역

아홉 겹의 궁궐에서 직접 자니(紫泥)로 된 봉서를 받들었네. 잠시 큰 재주를屈하여 작은 나라를 보좌하도다. 당상(堂上)에는 붉은 비단 장막을 높이 걸고, 막중에는 유독 푸른 기름 천으로 만든 장막을 두르셨도다. 바다의 진주를 잃은 자가 은혜를 느껴 처음 돌아와 포구에 이르렀고, 사나운 호랑이도 인의를 알고 이미 강을 건넜도다. 나는 용문(龍門)의 아래객이 된 것을 기뻐하고, 거대한 종(鍾)이 때때로 작은 대나무 돛단배를 치는 것을 허락하시도다.

원문

風波千里謁名藩。謬辱賢侯禮遇恩。誰道官居如水泠。尙驚談笑作春温。翠娥屢見東山妓。綠蟻閑傾北海樽。廣坐相迎頻倒屣。自慙短拙是王孫。

번역

천 리 물결을 헤치고 명망 높은 절도사를 찾아가 뵈옵고, 부끄럽게도 어진 후작의 예우와 은혜를 입었노라. 어찌 벼슬살이가 물처럼 차갑고 고요할 것이라 생각했으랴. 여전히 그談笑가 봄날처럼 따뜻함을 놀라워하노라. 푸른 미녀들이 자주 동산(東山)의 기녀들을 만나게 하고, 녹색 거품이 든 술은 여가에 북해(北海)의 잔을 기울이니, 넓은 자리에서 자주 맞으며 신발을 거꾸러 신고 달려나왔도다. 나는 스스로 짧고 졸렬함이 왕손(王孫)임을 부끄러워하노라.

94. 遊法住寺。贈存古上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山中昨叩空王門。目擊方知道已存。貌古形疏雙眼碧。獨居方丈纔八尺。跏趺入定便終夕。上人唯嗜大道漿。吾雖不飮亦淸狂。東坡翰墨工滑稽。坐客絶倒主人咍。明朝挽袖不忍別。相期更踏靑山雪。歸來一缺靑天月。惠遠應思陶靖節。雲間問路無辭頻。長作相逢乞話人。

번역

산중에서 어제 공왕문(空王門)을 두드렸노라. 눈을 비비니 이미 도(道)가 존재함을 알겠노라. 용모는 고요하고 형상은 소탈하여 두 눈은 푸르며, 홀로 방장(方丈)에 거처하시니 겨우 팔 자(尺) 남짓하도다. 가부좌를 틀고 입정(入定)하시니 곧 밤새도록 하시네. 상인(上人)은 오직 대도장(大道漿)을 좋아하시니, 내가 비록 마시지 않으나 또한 청량하고 광활하도다. 동파(東坡)의 한묵(翰墨)은 기교가 유창하여, 좌중의 객들은 엎어지고 주인은 웃노라. 내일 소매를 잡아당겨 이별하기 어려우니, 다시 청산설(靑山雪)을 밟기를 기약하노라. 돌아오니 푸른 하늘의 달이 하나缺(결락)되었도다. 혜원(惠遠)은 마땅히 도정절(陶靖節)을 생각하리라. 구름 사이에서 길을 묻기에 빈번히 사양하지 말라. 길게 만나서 말을 구걸하는 사람이 되리라.

95. 次韻鄭書記見贈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8B

원문

名世生當五百年。高才不讓在盧前。興來自斡千鈞筆。吟罷閑題十樣牋。太白肝腸如錦麗。陸機詞賦似珠連。應須火急供詩硯。斫取靑松萬竈煙。

번역

안명세(安名世)는 오백 년 만에 태어난 명재로, 그의 높은 재주는 루지(盧摯) 앞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흥이 나면 천근의 붓을 휘두르고, 읊조린 뒤에는 여덟 가지 무늬의 종이에 여유 있게 적는다. 이태백(李白)의 간장은 비단처럼 화려하고, 육기(陸機)의 사주는 진주처럼 이어진다. 마땅히 재빨리 시를 짓는 벼슬을 마련하여, 푸른 소나무를 베어 만 개의 가마에서 연기를 피워야 하리라.

96. 送眉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地角天涯隻影分。那知謦咳得重聞。飄零亂世誰存者。故舊如今只有君。浪迹相逢浮海葉。無心來作出山雲。春風好趁重尋約。飛策休辭道路勤。

번역

땅 끝과 하늘 끝에서 홀로 나뉜 그림자라니, 어찌 그 웃음소리와 기침 소리를 다시 듣게 될 줄 알았으랴. 어지러운 세상에 표류하며 누가 살아남았는가. 옛 벗들 중 이제 오직 너뿐이다. 물결 따라 떠도는 나그네가 바다 위 나뭇잎처럼 우연히 만나고, 산을 벗어나려는 뜻 없이 구름이 되어 왔도다. 봄바람이여,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잘 지키라. 말발굽을 재촉하며 길의 수고를 마다하지 말라.

97. 次鄭書記韻。戲作〔原注:三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8C

원문

中散昂䀚瘦鶴姿。一麾初出鎭南垂。揮毫欲作風騷句。壓倒屯田鵲踏枝。

번역

중산(中散)은 마른 학과 같은 풍채로 우뚝 서 있구나. 처음 방패를 들고 남쪽 진영으로 나가니, 붓을 들어 풍요로운 구절을 짓고자 할 때, 둔전(屯田)의 작두를 밟는 지조를 압도하도다.

원문

自憐憔悴澤邊姿。去國時時涕淚垂。萬里歸心生羽翼。那堪越鳥戀南枝。

번역

스스로 초지(澤邊)의 쇠잔한 자태를 불쌍히 여기노라. 나라를 떠날 때마다 눈물이 줄줄 흐르네. 만 리나 떨어진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날개를 달았거늘, 어찌 월조(越鳥)가 남쪽 가지를 그리워하는 것을 견딜 수 있으랴.

원문

雲作衣裳雪作姿。可憐疏影倚欄垂。多情杜牧尋春晚。只恐重來于滿枝。

번역

구름으로 옷을 만들고 눈으로 자태를 삼았으니, 가련하게도疏影이 난간을 기대어 늘어져 있도다. 다정다감한 두목(杜牧)이 봄날을 찾아다닐 때, 다시 찾아왔을 때 가지가 이미 가득 차 있을까 두려워하노라.

98. 聞湛之擢第。以詩賀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靑雲高第唱簾前。藉藉詩名四海傳。我昔獨麾韓信鉞。君今先著祖生鞭。曾誇一代同爭霸。恥作三山最後仙。天下英雄幾人在。可憐空老瘴江邊。

번역

청운의 높은 급제 소식이 휘장 앞에서 울려 퍼지고, 두터운 시명은 사해에 널리 전한다. 내가 옛적에 홀로 한신의 도끼를 휘둘렀건만, 너는 이제 선제(祖逖)의 채찍을 먼저 찼구나. 한때는 한 시대를 대표하며 패권을 다투었다 자랑했으나, 이제 삼산의 마지막 선비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노라. 천하의 영웅이 몇이나 있겠는가. 불쌍하게도 공허히 장강 변에서 늙어가기만 하도다.

99. 題竹林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8D

원문

乘閑杖屨訪仙家。境密人稀富物華。十萬丈夫軒外竹。三千宮女檻前花。那愁世上春將暮。別有壺中日未斜。儒釋相逢行樂處。不知飄泊在天涯。

번역

여유를 타 지팡이와 신발을 들고 선가(仙家)를 찾으니, 경치는 깊고 사람은 드물어 사치스러운 물건이 풍부하도다. 십만 장부의 대나무는 창문 밖에 있고, 삼천 궁녀의 꽃들은 난간 앞에 피었도다. 세상의 봄이 저물까 근심하지 말라. 다른 곳에는 호중(壺中)의 해가 아직 기울지 않았으니, 유가(儒家)와 석가(釋家)가 만나 즐거움을 누리는 곳, 어디가 천방(天涯)에서 표박한 곳인지 알 수 없도다.

100. 聞觱篥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臨風送響細泠泠。幾片梅花落後庭。莫向離筵吹一曲。危腸易斷不須聽。

번역

바람을 맞으며 울림을 보내니 가늘고 맑은 소리가 나네. 매화 꽃잎 몇 장이 뒤뜰에 떨어졌도다. 이별 잔치에서 한 곡조를 불리지 말라. 위태로운 심장은 쉽게 끊어지니 들을 필요 없도다.

101. 李相國〔原注:光緖〕挽詞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兩代黃扉相。時稱萬石君。獨全知畏愼。早白爲憂勤。遺令孤皆奉。陰功世莫聞。秋風數行淚。灑與北印墳。

번역

두 대에 걸쳐 황폐(黃扉)의 재상이 되어, 때로부터 만석군(萬石君)이라 칭송받았도다. 오직 지외(知畏)의 경계를 지켜 온전하게 하였으니, 근면함을 걱정하여 일찍이 머리가 희어졌도다. 유명을 남겨 고아들을 모두 부양하게 하였고, 은공(陰功)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도다. 가을 바람에 몇 줄기 눈물을 흘려, 북인분(北印墳)에 뿌리노라.

102. 代書答金秀才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昨傳書信勸加餐。一別堪嗟再會難。每欲烹鷄侍供給。因思捫蝨話辛酸。近來交道如雲薄。唯有先生耐歲寒。秋入衡陽多北雁。須應爲我報平安。

번역

어제 편지를 받아 식음을 챙기라 권하네. 한 번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날 일이 어렵구나. 날마다 닭을 잡아 대접하려 했으나, 오히려 이가 이를 문으며 고난을 이야기하던 때가 생각나네. 최근 세상의 교분이 구름처럼 얇아졌으나, 오직 선생님만 추운 겨울을 견디는 소나무처럼 변치 않도다. 가을이衡陽에 들어오면 북쪽 기러기가 많으니, 반드시 나를 위해 평안을 전해주기를.

103. 作詩賀李壯元眉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凜凜奇鋒百勝威。已看三擅選賢闈。共遊場屋君先捷。笑指煙霞我獨歸。風急摶鵬從北起。月明驚鵲向南飛。山妻只怪頭如雪。猶着當年一布衣。

번역

기예가 날카롭고 위엄이 백 전승의 기세라 하니, 이미 삼전(三選)에서 선비를 뽑는 관직에 세 번이나 합격하였음을 보았노라. 함께 과거 시험장에 출입하였으나 너는 먼저 급제하고, 나는 안개와 구름 같은 자연의 경치를 웃으며 홀로 돌아왔노라. 바람이 거세어 봉황이 북쪽에서 날아오르고, 달이 밝아 까마귀가 남쪽으로 날아갈 때, 산처녀는 내 머리가 눈처럼 하얗게 된 것만 탓할 뿐, 여전히 옛날의 평민 옷을 입고 있구나.

104. 法住寺堂頭惠紙筆。因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0A

원문

吾家二公俱英賢。不慙康樂與惠連。白衣繼入翰林院。弟兄高步八花塼。□

번역

우리 집안 두 분은 모두 영걸과 현인이라, 남량(南梁)의 강악(康樂)과 혜련(惠連)에 부끄럽지 않다. 백의(白衣)가 이어 한림원에 들어가 형제가 팔화전(八花塼)을 높이 걸었으니, □

원문

皇朝制冊歸大手。揮毫潤色金華牋。自是平生無長物。秪得文稿爲家傳。因期三葉居著作。家聲不欲墜吾先。每窮穀皮禿兔毫。不減風月賦三千。中遭喪亂先廬毀。藏書盡作劫灰然。朝廷試士重勇爵。文章不直一銖錢。不如一朝投筆去。功成可得圖凌煙。飜思昔日著書者。亦有賈屈洎馬遷。雖云一時不得意。猶振聲名千百年。我今流落身無事。欲效揚雄鴣草大玄。却歎中書君已老。分無夢授大如椽。都下楮生價亦貴。爲文自弔剡溪邊。年來未厭彫肝腎。試爲貽書乞老禪。遠寄鼠鬚鋒正利。兼分繭紙色何鮮。湘東三品何足貴。益州十樣徒誇前。殷勤坐覺成山冢。不廢舊學窮覃研。會當一撰高僧傳。無使名德遺南泉。

번역

대명(大明)의 제책(制冊)은 거수(大手)의 손에서 나왔고, 휘호(揮毫)로 금화전(金花牋)을 윤색하셨네. 본래 평소에 남긴 것이 없어, 오직文稿(문고)만 집안의 전승으로 남겼소. 삼엽(三葉)이 저작(著作)의 관직에 있기를 기약했으나, 가성(家聲)이 선조(先祖)의 것을 우리 손에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소. 항상 곡피(穀皮)의 탈모(脫毛)와 같은 붓끝을 궁구(窮究)하며, 풍월(風月)을 읊은 삼천 수(首)에 못지않았소. 중(中)에 상란(喪亂)을 만나 선려(先廬)가 파괴되고, 장서(藏書)는 모두 겁회(劫灰)가 되었소. 조정에서 시사(試士)할 때 무공(武功)과 작위(爵位)를 중히 여겨, 문장(文章)은 일수(一銖)의 가치도 없었소. 차라리 하루 빨리 붓을 던지고 떠나, 공을 세워 능연각(凌煙閣)에 그리는 것이 낫겠소. 과거의 저술가들을 생각하니, 가이(賈誼)와 굴원(屈原), 마천(馬遷)도 있었소. 비록 한때 뜻이 통하지 않았으나, 여전히 천백 년의 명성을 떨쳤소. 나는 지금 유락(流落)하여 몸이 자유로우니, 양웅(揚雄)을 본받아 구초(鳩巢)에 앉아 대현(大玄)을 짓고자 하오. 그러나 중서군(中書君, 붓)이 이미 늙었으니, 대여선(大如椽)의 붓을 꿈으로 받는 것은 요원하오. 도하(都下)의 저생(楮生, 종이) 값도 비싸고, 글을 지어 자조하며 살피계(剡溪) 곁에서 스스로를 위로하오. 해를 거듭하여 간을 파고 신진(腎)을 조각하는 일이 싫지 않으니, 시도(試爲)로 서신(書)을 보내 노선(老禪)에게 빌고자 하오. 멀리서 보내온 수수봉(鼠鬚鋒, 쥐수염 붓)은 정히 날카롭고, 함께 나누어 준茧紙(견지)는 빛이 어찌나 선한지. 상동삼품(湘東三品)이 어찌 귀할 수 있으며, 익주십양(益州十樣)을 앞세워 자랑하는 것은 헛된 것이오. 정성껏 앉아 있으니 산더미처럼 쌓이고, 옛 배움을 버리지 않고 정밀하게 연구하오. 마땅히 한 번 고승전(高僧傳)을 지어, 명덕(名德)이 남천(南泉)에 유실되지 않게 하겠소.

105. 與眉叟同會湛之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久因流落去長安。空學南音著楚冠。歲月屢驚羊胛熟。風騷重會鶴天寒。十年契闊挑燈話。半世功名抱鏡看。自笑老來追後輩。文思宦意一時闌。

번역

오랜 세월 동안 유랑하며 장안(長安)을 떠났으니, 헛되이 남쪽 악사(南音)를 배워 초관(楚冠)을 썼도다. 세월은 자주 양갑(羊胛)이 익는다는 말을 놀라게 하고, 풍류(風騷)는 다시 학이 나는 하늘의 추위에서 만나네. 십 년 동안 이별하여 등불을 켜고 이야기하고, 반평생의 공명은 거울을 안고 보는 듯하도다. 스스로 웃노라, 늙어서 후배들을 쫓아간다고. 문사(文思)와 관의(宦意)가 한꺼번에 막혔도다.

106. 夜會湛之家。探韻得閉字。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新秋微雨霽。念子時同詣。相逢日相少。笑口難強閉。呼兒展碧簟。滑膩波紋細。金樽開小軒。玉局臨幽砌。夜深孤月出。亂影森松桂。共感時節變。入耳蟲聲嘒。岸巾縱謔浪。更長如一歲。耿耿終不寐。導舊堪垂涕。

번역

새 가을의 미풍한 비가 그치고, 그대를 생각하며 때를 같이하여 찾아가니, 만나도 서로 만날 날이 적어 웃는 입김을 억지로 다물기 어렵도다. 아이를 부러 푸른 요를 펼치니, 매끄럽고 윤기 나는 물결 무늬가 세밀하도다. 작은 현관에서 금잔을 열고, 옥으로 된 상은 고요한 계단에 마주하도다. 밤이 깊어 홀로 달이 솟아나니, 어지러운 그림자에 소나무와 계수나무가 빽빽하도다. 함께 때와 절기의 변함을 감회하며, 귀에 들리는 벌레 소리는 시끄러우도다. 건넉이를 들어 유쾌하게 논담을 펼치고, 더 긴 밤은 일 년 같도다. 간절하게 잠들지 못하여, 옛일을 이끌어내니 눈물이 맺힐 지경이로다.

107. 次友人見贈詩韻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十載崎區面撲埃。長遭造物小兒猜。問津路遠槎難到。燒藥功遲鼎不開。科第未消羅隱恨。離騷空寄屈平哀。襄陽自是無知已。明主何曾棄不才。

번역

십 년 동안 기구하게 구르며 얼굴에 먼지를 뒤집어썼도다. 늘 창조의 장난감처럼 어린아이들의 추측만 받으니, 진(津)을 묻는 길은 멀어 뱃길도 쉽게 닿지 못하고, 약을 태우는 공은 늦어 솥뚜껑도 열리지 않도다. 과제의 한은 사라지지 않아 라은(羅隱)의 원한을 풀지 못했고, 이소(離騷)는 헛되이 굴평(屈平)의 슬픔을 담았네. 양양(襄陽)은 본래知己(지기)가 없는 곳이라서, 명주(明主)는 어찌 재주 없는 이를 버렸겠는가.

원문

秀逸天才獨不群。海東詞客孰如君。曾酬絶唱鬚先斷。近爲新篇筆欲焚。西晉遠欺陶處士。南朝高壓鮑參軍。昌黎死後無人繼。五百年來見古文。

번역

수려하고 뛰어난 재능이 독보적으로 남다르시니, 해동(海東)의 시객 중 어찌 그대를 닮은 이가 있겠는가. 이미 절창(絶唱)에 화답할 적에는 수염을 먼저 끊어야 했거늘, 최근에는 새로운 편작을 지어 붓을 태우려 했도다. 서진(西晉)은 멀리서 도처사(陶處士)를 업신여겼고, 남조(南朝)는 높게 포참군(鮑參軍)을 눌렀도다. 창려(昌黎)가 죽은 뒤에는 이을 이가 없었으니, 오백 년 만에 고문(古文)을 보았도다.

108. 諸公餞皇甫若水赴中原書記。僕以病不往。作詩寄之。

문체: 詩類 / 詩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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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詩人自古多羈困。倒着靑衫佐州鎭。君不見大原居易位尙卑。白頭始得河南尹。又不見眉山子瞻老更貧。上章自請餘杭郡。先生磊落負高懷。故乞此官爲吏隱。況是中原眞劇邑。世說地靈人物俊。近來幕府厭凡才。雲水溪山長有恨。詔書今下命時賢。千里先聲應已振。好帶腰錢十萬歸。洛下春風初發軫。欲唱陽關第四聲。未解勸君杯更盡。何當依約作南遊。共膾鰣魚烹苦筍。舊聞紅粉盛都邑。燕寢凝香侍雲鬢。休矜自有鐵石腸。忍學當時處仲忍。送君江頭泣更多。恐君更續瑟琶引。

번역

시인들은 예로부터 객지 생활로 고난이 많았노라. 푸른 옷을 거꾸로 입고 주군을 보좌하며 진을 다스렸노라. 대원(大原) 거이(居易)가 벼슬이 아직 낮았음을 보지 못했느냐? 백발이 되어야 비로소 하남윤(河南尹)이 되었노라. 또眉山 자첨(子瞻)이 늙어서도 더 가난했음을 보지 못했느냐? 상소하여 스스로 여항군(餘杭郡)을 청원했노라. 선생은 강직하고 높고 넓은 뜻을 지녔으므로, 이 벼슬을 빌려 관료적 은거(吏隱)를 하려 하셨노라. 하물며 중원은 참으로 치열한 고을이요, 세설(世說)에 땅이 영특하고 인물이 뛰어나다고 했노라. 근래에 막부(幕府)는 평범한 재료를 싫어하여, 구름과 물, 시냇물과 산이 늘 한이 되었노라. 칙서가 내려져 이제 때의 현명한 이를 명하셨으니, 천 리 밖의 선소(先聲)는 이미 떨쳤을 것이로다. 허리춤에 십만(十萬)의 돈을 가지고 돌아가라, 낙하(洛下)의 봄바람이 비로소 수레를 일으키노라. 양관(陽關)의 네 번째 소리를 부르려 하지만, 아직 술잔을 더 비우도록 권하는 법을 풀지 못하겠노라. 언제 약속대로 남쪽 여행을 함께하여, 함께 쏨뱅이를 썰고 쓴 죽순을 삶아 먹으리오. 옛적에 붉은 분(紅粉)이 도읍에서 성하였다는 것을 들었노라. 연실(燕寢)에서 향기가 서려 구름 같은 머리를 모셨노라. 스스로 철석 같은 마음을 가졌다고 자랑하지 말라, 당시 처중(處仲)이 인내한 것을 어찌 견디겠노라. 강가에서 당신을 보내며 눈물을 더 흘리노니, 당신께서 다시 패금(琵琶)의 인(引)을 이을까 두려워하노라.

109. 賀洪仁演得第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1A

원문

丹臺同籍十餘年。見說先爲白日仙。若有庭前盤鼎在。更敎鷄犬上靑天。

번역

단대(丹臺)에 같은 호적 이름으로 십여 년을 지내었노라. 듣건대 먼저 백일선(白日仙)이 되었다 하더군. 만약 정전에 반정(盤鼎)이 있다면, 다시 계견(鷄犬)을 청천으로 올리리라.

110. 遊紺岳正覺僧舍。書其壁。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1B

원문

造物小兒眞好弄。摶沙戲作千峯衆。玆山首尾跨數州。天外廻翔如舞鳳。嗟吾曾與山無素。拄杖高遊久未縱。探幽抉異從今始。好伴閑人躡飛鞚。彭鏗踏逕爭猿猱。挽攙始覺衣裘重。玉室金堂餘漢士。潛通五岳有幽洞。道人眼力覷天功。架嵒早結飛樓湧。我來問年笑不答。藜牀坐穴無迎送。屋底流泉淸可挹。初嘗冷洌齒先凍。靈芝長產白雲阿。古栢孤生蒼石縫。曉風吹雪落寒梢。眩轉雙眸如走永。臨軒一望大千界。不啻胸中九雲夢。此間不可無我詩。況被煙霞助吟諷。人生萬事廻頭錯。卜隱高棲誰可共。無家莫畏妻帑罵。行樂何須妓女從。若許歸來專一壑。他年此地開茅棟。

번역

창조주인 작은 아이는 참으로 장난을 좋아하시니, 모래를 쥐어 펴서 수천 개의 봉우리 무리를 장난감으로 삼았도다. 이 산은 머리와 꼬리가 여러 주를 가로지르고, 하늘 밖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이 마치 춤추는 봉황 같도다. 아, 나는 예전에 산과 인연이 없었기에, 지팡이를 짚고 높은 곳을 유람한 지 오래도록 마음껏 즐기지 못했었노라. 이제부터는 오묘한 곳을 탐구하고 기이한 것을 파헤치며, 한가한 사람들과 함께 날쌔게 달리는 말에 오르리라. 팽굉은 길을 밟아 원숭이와 다투어 오르고, 끌어안으며 올라야 비로소 옷과裘가 무겁게 느껴지노라. 옥실과 금당은 한나라 선비들의 흔적이 남아 있고, 오악(五岳)과 통하는 깊은 동굴이 있도다. 도인의 눈빛은 하늘의 공적을 꿰뚫어 보았으니, 바위 위에 일찍이 날아오르는 누각을 쌓았도다. 내가 와서 나이를 묻자 웃으며 대답하지 않으니, 나뭇가지로 만든 의자에는 구멍이 패어 맞이하고 보내는 예도 없도다. 집 아래 흐르는 시냇물은 맑아 떠서 마실 수 있고, 처음 맛보면 차갑고 시려서 이가 먼저 얼어붙노라. 영지(靈芝)는 흰 구름이 끼은 곳마다 길러지고, 고목은 푸른 바위 틈에 홀로 자라노라. 새벽 바람이 눈을 불어 차가운 가지에 떨어지니, 두 눈이 어지러워 마치 달리는 구름 같도다. 마루에 기대어 천하를 한눈에 바라보니, 그 경치는 가슴속의 구운몽(九雲夢)에 비할 바가 못 되도다. 이 곳에는 내 시가 없어서는 안 될 터, 하물며 안개와 구름이 시를 읊조리는 데 도움을 주는데랴. 인생의 만사는 돌아보면 모두 잘못되었으니, 높은 곳에 은거하며 숨어살 이를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집이 없으니 아내와 자식의 꾸짖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거움을 구할 때 어찌 기녀의 따름이 필요하겠는가. 만약 돌아와서 한 골짜기에 전념할 수 있다면, 훗날 이곳에 초가를 지으리라.

111. 訪興嚴寺堂頭。兼簡金秀才。〔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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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幅巾短葛手携筇。問路雲間紫翠峯。十載寒暄如夢寐。一甌談笑許從容。尋眞要記盧山面。結社須追白老蹤。莫訝近來形變盡。此生身計大龍鍾。

번역

폭건(幅巾)을 쓰고 짧은 나포(葛布) 옷을 입은 채 지팡이를 손에 들고 구름 사이 자색과 녹색이 어우러진 봉우리를 향해 길을 묻노라. 십 년 동안의 한서(寒暄)가 꿈결 같고, 한 잔의 차와 담소로 너그러운 허락을 받았도다. 진경(眞境)을 찾되 반드시 노산(廬山)의 모습을 기억하고, 결사(結社)를 맺되 반드시 백거이(白老)의 자취를 따라야 하리니, 최근 들어 형체가 다 변해 버렸다고 놀라지 말라. 이 생의 몸가짐은 대용종(大龍鍾)과 같으니라.

원문

醉裏閑行獨倚筇。共吟詩意盡西峯。羨君年少才無敵。嗟我身窮世不容。已作寧原三友約。羞言李杜二人蹤。從橫潑墨華牋上。筆法應傳王與鍾。

번역

취한 채 허물없이 거닐며 홀로 지팡이에 기대니, 함께 시를 읊으며 그 뜻은 서쪽 봉우리 끝까지 다하였다. 네가 젊은 날 재능이 무적임을 부러워하고, 나는 몸이 궁하여 세상에 용납되지 못함을 탄식하노라. 이미寧原에서 세 친구가 되기로 약속하였으니, 이백과 두보 두 사람의 자취를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노라. 종횡으로 먹물을 뿌려 화지 위에 펼치니, 필법은 왕희지와 종요의 것을 이어받았을 것이다.

112. 寄從兄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自從避地便忘歸。夜夢時時入試闈。要使家聲今復振。靑雲相伴鶺鴒飛。

번역

난 땅을 피하여 피신한 뒤로 돌아가는 것을 잊었노라. 밤마다 꿈속에서 시험장(시위)에 들어가는 것이 종종 이루어지네. 집안의 명성을 이제 다시 떨치게 하려니와, 푸른 구름이 함께하여 형제(적려)가 날아오르듯 하리라.

113. 寄眉叟求草書〔原注:公舅崔司業永濡不一焉〕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1D

원문

平生嗜書如啖土。玉軸錦囊多蓄聚。豈患身窮家轉貧。散盡千金收斷楮。一從繭紙入昭陵。世上奇蹤難更覩。子敬當時頗亦工。豐冬槎枿見枯樹。謾道世人那得知。外論皆言不如父。解愛氷淸與玉潤。一家二妙還超古。縱使羲之今復生。祇應北面先降杜。昨來向壁一揮灑。得見大娘渾脫舞。堪嗟未入草三昧。不敢心追手自慕。願將斗酒持飮君。試敎醉作黃樓賦。今朝寄扇乞先題。豈學蕺山老嫗怒。

번역

평생에 서적을 먹는 것처럼 좋아하여 옥축과 금낭에 많이 모았노라. 몸이 궁하고 집이 더욱 가난함을 근심하지 아니하고, 천금을 흩뿌려 끊어진 종이를 수습하였노라. 일찍이 견지가 소릉에 들어간 뒤로는 세상의 기적 같은 자취를 다시 보기 어려우니, 자경(子敬)이 당시에도 꽤 능숙하였으나, 풍동(豐冬)의 가지를 보면 마른 나무와 같도다. 헛되이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바깥의 논평은 모두 아버지만 못하다고 말하노라.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윤기 나는 것을 사랑하여, 한 집안의 두 묘한 재주가 오히려 고대를 초월하였노라. 비록 희지(羲之)가 지금 다시 태어났다 할지라도, 마땅히 북면하여 먼저 항복하리라. 어제 벽을 향해 한 번 휘저으니, 대낭(大娘)의 혼탈무(渾脫舞)를 본 듯하도다. 탄식하노니 아직 초서 삼매경에 들지 못하여, 마음으로는 좇되 손으로 스스로 부러워하지 못하노라. 두레박 술을 가져와 당신에게 마시게 하려 하니, 시켜서 취하여 황루부(黃樓賦)를 짓게 하리이다. 오늘 부채를 보내어 먼저 제문을 구하나, 즙산(蕺山)의 노처녀가 노여워하던 것처럼 배우지 아니하노라.

114. 陪崔司業訪吳先生別墅〔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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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高文妙扶鬼神幽。早歷詞階翰苑遊。杜氏腹中呑國子。楮公皮裏襄陽秋。聲名東漢無雙客。家世中朝第一流。筆下三千風月句。成編願爲後人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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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아름다운 문장은 신령의 비범함을 도와 깊은 이치를 밝히니, 일찍이 문관의 길과 한림원을 두루 거닐었도다. 두보의 배중에는 국자감의 지식이 가득하고, 지필묵의 속에는 양추(襄秋)의 풍류가 감춰져 있도다. 동한(東漢)의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대의 명성, 중조(中朝)에서 가장 뛰어난 가문의 혈통이시여. 붓끝에서 피어오른 삼천의 풍월 시구, 그대를 위해 편을 짓고자 후세에 남기고자 하노라.

원문

郊原風物正幽幽。跨馬閑來出郭遊。多與門生行避路。因尋隱客幸逢秋。謝公窓外靑山遠。嚴子臺前碧水流。掃石殷勤題歲月。故敎奇迹洞門留。

번역

교외의 풍광은 한층 더 고요하고 깊구나. 말을 타고 여유롭게 성밖으로 놀러 나왔노라. 제자들과 함께 길을 피하며 걷고, 은거하는 선비를 찾아 가을을 만나게 되었네.謝公(謝安)의 창밖에는 푸른 산이 멀리 있고, 嚴子(嚴光)의 대 앞에는 푸른 물이 흐르네. 돌을 깨끗이 닦아 정성스럽게 세월을 기록하고, 옛적의 기이한 경치가 동문 안에 남기도록 했노라.

115. 眉叟見和。復用前韻。〔原注:三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2B, ITKC_MO_0003A_A001_232C

원문

二王聲價擅東土。每一落筆觀者聚。靳固未嘗妄揮灑。侯王爭乞題縑楮。至今搨本直數萬。後俗亂眞何足覩。先生與此欲抗衡。取供筆硯松千樹。要將鐵葉裹門限。閑事不須瞋老父。若非竊讀枕中訣。妙藝那能冠今古。已看咄咄眞逼人。下方羅趙上崔杜。詩成自寫今寄我。落花飛雪風前舞。氷寒於水性所得。師法區區何用慕。風流雅麗意兼備。煩公更寫洛神賦。他時會客設寒具。預恐一涴令人怒。

번역

이왕(二王)의 명성과 가치는 동토(東土)를 독점하였으니, 한 번 붓을 놓으면 보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끼고 고집하여 함부로 붓을 놀리지 않았기에, 후작과 왕들이 비단과 종이에 글씨를 써 달라고 다투어 청했다. 지금도 모사본(搨本)이 수만 냥에 달하는데, 후세의 속인들이 혼동하여 진품을 가리지 못하는 것이 어찌 보기에 충분하겠는가. 선생은 이 글씨로 이와 맞서고자 하셔서, 수천 그루의 소나무를 베어 붓과 벼루를 위한 재료를 공급하셨다. 철엽(鐵葉)으로 문지방을 감싸서, 쓸데없는 일로 노한 어르신(자신을 가리킴)을 꾸짖지 않아도 되었다. 만약 베개 속의 비결(枕中訣)을 훔쳐 읽지 않았다면, 어찌 묘한 기예로 고금(古今)을 관통할 수 있었겠는가. 이미 놀라움과 기적이 사람을 압박하는 듯하니, 아래로는 나조(羅趙)가 있고 위로는 최도(崔杜)가 있다. 시를 완성하여 스스로 써서 지금 나에게 보내오니,落花와飛雪이 바람 앞에서 춤추는 듯하다. 얼음이 물보다 차가운 것은 본성에서 얻은 바니, 스승의 법을区区히 무엇하러 사모하겠는가. 풍류와 아리따움이 뜻까지 겸비하였으니, 번거롭게 로신부(洛神賦)를 다시 써 주시기를 청하노라. 장차 손님을 접대하여 찬 음식(寒具)을 차릴 때, 미리 한 번 얼룩지면 사람을 화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원문

弄筆成堆幾瘞土。年來大簏旋看聚。盡將衣帛書後鍊。豈獨殷勤窮穀楮。羲獻風流故自得。胡鍾閫域已曾覩。莫嗟大似廣文貧。紅葉書殘霜杮樹。乞寫吾家新榧几。肯容誤刮門生父。倂得張芝筋骨肉。闊視橫行高萬古。當時章草妙入神。變法獨聞齊相杜。君今年少已臻極。奮筆翩翩鸞正舞。弟子同時俱服膺。搥心嘔血徒增慕。暮春修楔山陰亭。會見臨流能自賦。祕藏傳囑有辨才。奉詔不畏文皇怒。

번역

붓을 놀려 글씨를 쓰다 보면 쌓인 것이 많아 몇 번이나 땅에 묻혔는가. 해가 갈수록 큰 광주리가 다시 모여든다. 옷감과 비단을 다 써서 뒤를 닦고, 어찌 성심성의껏 곡지와 고지를 다 구했겠는가. 희헌(羲獻)의 풍류는 본래 스스로 갖추었으니, 호종(胡鍾)의 문호는 이미 한 번 보았노라. 큰广文(광문)의 가난함을 한탄하지 말라. 붉은 단풍잎에 글씨를 써서 서리 맞은 감나무 위에 남겼노라. 우리 집의 새로운 비단 몇 자루를 빌려 쓰겠는가? 제자의 아버지를 잘못 긁어내리겠는가? 장지(張芝)의 골육을 아울러 얻어, 넓게 바라보며 횡행하여 만고에 높았노라. 당시의 장초(章草)는 신묘하여 신에 들어갔으니, 법을 변한 것은 오직 제상 두(杜)에게 들었노라. 너는 이제 나이가 어리지만 이미 극치에 달했고, 붓을 힘차게 휘두르니 봉황이 춤추는 듯하도다. 제자들이 동시에 복응하여, 마음을 치고 피를 토하며徒增慕할 뿐이노라. 늦은 봄에 산음(山陰) 정자에서 수혜를 행하니, 강물을 따라 흐르며 스스로 읊조리는 것을 보았노라. 비장(秘藏)하여 전수하고 부탁함에 변재(辨才)가 있으니, 문황(文皇)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지 않노라.

원문

掘發韋公墳上土。得法精思萬象聚。天工憐我老更窮。近爲廢田生構楮。肯厭家鷄更問人。相傳妙訣亦曾覩。要學素公備揮灑。庭前多種芭蕉樹。由來諸體備難得。草爲曾玄篆祖父。詞淸筆妙君第一。創法神奇變三古。平生曉書莫如我。欲作歌行才愧杜。紙中豈無王濛臥。掌上似看飛燕舞。留意於物錐雖所戒。寶君尺牘加愛慕。正思漢武意欲仙。飄然初讀子虛賦。□

번역

위공(韋公)의 무덤 위 흙을 파내어 법을 얻고, 정밀히 사색하여 만상이 한곳에 모이니, 하늘의 공(工)이 나를 불쌍히 여겨 늙어서도 더욱 궁핍하게 하셨도다. 최근 폐허가 된 밭에서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심었노라. 집안의 닭을 싫어하여 남에게 묻지 않겠는가? 전하는 묘한 비결도 한때 보았노라. 소공(素公)의 필치를 갖추려 하여 정자 앞에 바나무나무를 많이 심었노라. 원래 여러 서체가 갖추어지기 어렵고, 초서는 증현(曾玄)의 조상이며 전서는 조부라 하노라. 말씀은 맑고 필치는 묘하여 당신이 첫째이로다. 창법(創法)이 신기하여 삼고(三古)를 변화시켰노라. 평소에 서법을 아는 자가 나만 같지 않으니, 가행(歌行)을 짓고자 하나 재능이 두보(杜甫)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노라. 종이에 왕몽(王濛)이 누워 있지 않겠는가? 손바닥 위에서 비연(飛燕)이 춤추는 듯하도다. 사물에 마음을 두는 것은 비록 창을 꽂는 것이라 경계받았으나, 당신의 자택(尺牘)을 보아 사랑하고 사모하노라. 정사(正思)는 한무제(漢武)의 뜻을 생각하여 선(仙)이 되고자 하였고,飘然히 처음 자허부(子虛賦)를 읽었노라. □

원문

皇朝赴急須要君。莫待三徵于帝怒。

번역

황조(皇朝)의 급박한 일을 구하려면 반드시 당신을 필요로 하오. 임금이 노하여 세 번이나 부르지 않는 날을 기다리지 마시오.

116. 秋日訪湛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乘閑携一杖。尋訪故人居。酌酒無多我。看詩喜借予。那辭侵夜語。共占納涼初。揮筆高吟逸。開樽雅興餘。孟公投客轄。陶令愛吾廬。八閣松風細。連窓竹影疏。牀頭鳴蟋蟀。屋角掛蟾蜍。寒吹飜紅葉。微雲淡碧虛。園林勝金谷。風物似華胥。對奕閑爭局。移燈更看書。玆遊足可惜。別後莫忘渠。

번역

여가를 타 지팡이를 하나 들고 가서 옛 친구의 집을 찾아뵈었다. 술을 따르되 내게는 많지 않아 시를 보며 기꺼이 빌려주었다. 밤이 깊어도 말하기를 꺼리지 않고, 함께 서늘함이 찾아오는 초여름을 점쳤다. 붓을 휘두르며 높고 유쾌하게 읊조리고, 잔을 열어 우아한 흥취가 남았다. 맹공은 객의 말발굽 고리를 던져 머물게 하고, 도령은 나의 초가를 사랑하였다. 여덟 개의 누각에는 소나무 바람이 미세하고, 창문과 이어진 대나무 그림자는疎疏하다. 침대 머리맡에서는 귀뚜라미가 울고, 집 모퉁이에는 초승달이 걸렸다. 찬 바람이 붉은 잎을 뒤집고, 미약한 구름은 푸른 하늘을 희미하게 한다. 정원은 금곡(金谷)보다 뛰어나고, 풍물은 화서(華胥)와 같다. 바둑을 두며 여가롭게 국면을 다투고, 등불을 옮겨 더 책을 읽는다. 이 여행은 충분히 아깝고, 헤어진 뒤에는 나를 잊지 말라.

117. 和山人演之題淸平山滌心亭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3A

원문

曾向山中聞水樂。擊石傳風鳴萬壑。潨然淸韻便兩耳。不覺塵心渾自滌。見說淸平洞裏亭。亭前一派鳴幽寂。竟使佳名後世傳。猶勝山泉號卓錫。

번역

예전에 산중에서 물소리를 들었노라. 돌을 치며 바람을 전하여 만 개의 골짜기에 울렸으니, 맑은 운치가 순식간에 두 귀를 채워 더러운 마음을 스스로 씻겨 버렸노라. 청평 동굴 안의 정자를 들었다 하니, 정자 앞에는 한 줄기의 물소리가 고요하고 적막하게 울리도다. 마침내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전하게 하였으니, 이는 오히려 산천이 탁자를 찍고 머물렀다는 소문보다 더 낫도다.

118. 續牛後歌。與眉叟同賦。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天宮織女有夫壻。尙隔迢迢銀漢水。〔原注:神異記云。郭翰遇織女降其室。翰曰。牽牛郞何在。曰。河漢隔阻。不復相聞。〕相期七夕間何闊。獨宿空閨潛下淚。投梭不忍奔郭郞。豈識人間有羞恥。朱樓瓊閣更不思。卜居近住牛行里。祇緣天上隨牽牛。自稱牛後爲名字。那知異日繼牛後。往往宮中通小吏。神仙遺事疑有無。更問騎牛周柱史。

번역

천궁의 직녀(織女)에게는 남편이 있으나, 여전히 먼 은하(銀漢)의 물에 가로막혀 있다. [원주: 신이기에 의하면, 곽한이 직녀가 그의 집으로 강림하는 것을 만났다. 한이 말하였다. "견우(牽牛)는 어디에 있는가?" 직녀가 말하였다. "은하가 가로막아 서로 들을 수 없다."] 칠석(七夕)에 서로 약속한 것이 어찌 그리 먼가. 홀로 자고 빈 방에서 몰래 눈물을 흘린다. 방아 찌는梭를 던져 곽랑(郭郞)에게 달려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니, 어찌 인간에 치욕이 있음을 알았겠는가. 붉은 누각과 옥으로 만든 정자(瓊閣)는 더 이상 생각지 않고, 소가 다니는 마을 근처에 집을 정하여 거주한다. 오직 천상에서 견우(牽牛)를 따랐기 때문에, 스스로 이름을 '우후(牛後)'라 하였다. 어찌 알았으랴, 이 날에 견우를 이을 것이, 종종 궁중에서 작은 관리와 통할 것을. 선인이 남긴 일이 있음이 있느냐 없느냐, 다시 소를 타고 주저사(柱下史)가 된 노자(老子)에게 물어보라.

119. 書曹溪壁〔原注:二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3B

원문

安石曾無處世心。幅巾來往會稽陰。那嫌不見風流士。尙有高僧支遁林。坐學無言面壁心。蒼然松柏滿庭陰。吾師已得傳衣鉢。須見淸風繼小林。

번역

안석(安石)은 세상에서 살 마음을 전혀 품지 않아, 두건(幅巾)을 쓰고 계음(會稽陰)을 오갔다. 어찌 풍류객을 보지 못함을 싫어하겠는가. 오히려 고승 지둔(支遁)의 숲이 남아 있다. 앉아 말없이 벽을 향하는 마음을 배우니,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가 마당 그늘을 가득 채웠다. 우리 스님은 이미 법을 전하는 법좌를 얻었으니, 반드시 청풍(淸風)이 소림(小林)을 잇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120. 賦眉叟家垂柳。得園字。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一株垂柳近粧園。此地何年幸托根。老葉半書蟲字暗。柔條長繫午陰繁。低含宿雨藏虛閣。斜帶春風掛小軒。免被行人攀折苦。也勝憔悴在都門。

번역

한 그루의 버드나무가 장원(粧園) 근처에 있으니, 이 땅에 언제 뿌리를 내렸는가. 낡은 잎은 반쯤 벌레 먹은 글씨처럼 어둡고, 부드러운 가지는 낮의 그늘을 길게 매달아 풍성하다. 이슬 비를 머금어 빈 누각을 감싸고, 봄바람을 등에 업어 작은 마루에 걸렸다. 행인들이 꺾어 가기에 괴로움을 면할 뿐 아니라, 수도의 문전에서 쇠약해지던 것보다 낫다.

121. 訪吳先生別墅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3C

원문

偶牽秋興出郊坰。訪子雲家載酒行。金馬玉堂賢學士。蒼顏白髮醉先生。宋纖小隱林泉密。翁仲荒墟草樹平。飮罷歸來何用燭。途中新月照人明。

번역

가끔 가을 정취를 떠올려 교외로 나가서, 자운(子雲)의 집을 찾아 술을 싣고 갔노라. 금마(金馬)와 옥당(玉堂)의 현명한 학사들이여, 푸른 얼굴과 하얀 머리의 취한 노인이로다. 송섬(宋纖) 같은 작은 은거는 숲과 샘이 빽빽하고,翁仲(오중)이 있는 황폐한 무덤은 풀과 나무가 평평하도다. 마시고 돌아온 뒤에 무슨 불이 필요하랴. 길가의 초승달이 사람을 밝게 비추노라.

122. 送湛之使北朝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凜凜李英公。妙略眞自蘊。起從虯鬚王。軍事嘗制閫。在朝威名重。亦勝兵百萬。吾子乃其後。事業不忘本。白面峨儒冠。慷慨安邊論。會當畫凌煙。成功知早晚。丈夫不爲將。奉使亦其願。壯哉乘傳去。持幣交冒頓。折衝以筆刃。何用掉三寸。文章動北朝。不使家聲隕。無愧百代祖。賢於長城遠。

번역

장엄한 이영공(李英公)은 묘책이 참으로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었네. 수염이 곱슬한 왕(唐太宗)을 따라 군사를 일으켜 병권을 장악하기도 했지. 조정에서 위엄과 명성이 높았으니, 백만의 병력을 거느린 것과도 같았도다. 그대야 바로 그의 후예라 업적을 세우면서도 본을 잊지 않도다. 하얀 얼굴에 높은 유관(儒冠)을 쓰고 변방을安宁하게 할 논의를 담대히 펼치네. 언젠가凌煙閣에 그림이 그려져 성공이 언제 이루어질지 알겠지. 장부라 하여 반드시 장수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사명을 받들어 출사하는 것도 또한 그대의 소원이리라. 전차(傳車)를 타고 떠나는 것이야말로 장하도다. 예물을 들고 모돈(冒頓)과 사귀며, 붓끝의 칼날로 적을 물리치니, 어찌 삼촌(三寸)의 혀를 휘두르는 것만으랴. 문장이 북조를 감동시켜 집안의 명성을 실추시키지 않도다. 백대의 조상이라 할 만하여, 장성(長城)보다 훨씬 낫도다.

123. 悼金閱甫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3D

원문

蟬貂七葉盛西都。光祿眞爲烈丈夫。映世片心淸似水。致君忠膽大於軀。驥馳狹路爭駑馬。虎去空山舞孼狐。正始風流今頓盡。幾令多士涕氷鬚。

번역

칠대에 걸쳐 선비들이 번성하던 서도(西都)에서, 광록대부(光祿大夫)는 참으로 강직한 지사였다. 세상에 비친 그의 맑은 마음은 물처럼 투명했고, 임금을 보필하려는 충직한 담력은 그의 몸집보다 컸다. 말은 좁은 길에서 나쁜 말과 다투듯 했고, 호랑이가 사라진 빈 산에는 악한 여우들이 춤을 추었다. 정시(正始)의 풍류는 이제 완전히 다해버렸으니, 어찌 많은 선비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려 수염을 적시게 했는가.

124. 謝了惠首座惠糧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玉川先生居洛城。赤脚長鬚數間屋。意嫌長物擾天眞。文字五千空柱腹。平生嗜酒喜吟詩。不患擧家唯食粥。到骨窮寒幾欲死。豐年之食貴於玉。吾師大勝監河侯。獨歎莊周貧貸粟。今朝打門驚周公。乞與長腰盈數斛。急呼爨婦甑洗塵。厚埋飯甕炊方熟。緩帶甘飡若塡塹。七椀香茶飮更足。習習淸風兩腋生。乘此朝眞謝塵俗。

번역

옥천(玉川) 선생은 낙성(洛城)에 거처하며, 맨발에 긴 수염을 기른 채 몇 칸의 초가에서 지내셨다. 여분인 사물이 천진(天眞)을 방해한다고 여겨, 오천 권의 책으로 배를 채우기만 했을 뿐이었다. 평소에 술을 좋아하고 시를 짓는 것을 즐겼으나, 온 집안이 죽만 먹는 것을 근심하지 않았다. 뼈가 빠지도록 가난하여 죽을 지경이었으나, 풍년해의 식량은 옥(玉)보다 귀하셨다. 나의 스승은 강하후(監河侯)보다 더 뛰어나셨는데, 장주(莊周)가 빈궁하여 벼슬아치에게 벼슬을 빌려달라고 탄식하는 것을 혼자서 탄식하셨다. 오늘 아침 문 두드리는 소리에 주공(周公)이 놀라, 긴 곡식(쌀)을 수두룩하게 얻어 주셨다. 급히 부엌일을 하는 아낙네를 부러甑(증)의 먼지를 씻고, 두텁게 밥을 묻힌 항아리를 파묻어 밥을 짓게 하니, 곧 익었다. 띠를 느슨히 매고 맛있게 먹으니 마치 구덩이를 메우는 듯했고, 일곱 그릇의 향기로운 다음(茶飮)을 마시니 더욱 만족스러웠다. 서리서리 맑은 바람이 두 겨드랑이에 일어나, 이로써 아침에 진인(眞人)에게 사죄하며 더러운 속세를 떠났다.

125. 次韻呈湛之〔原注:三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謫居南國更無州。輦下相逢各白頭。握手何須論契闊。算來今已七年周。

번역

남쪽 나라에 귀양 와서 더 이상 다스릴 주(州)가 없으니, 수도에서 만나니 모두 머리가 하얗게 서렸다. 손을 잡고서 어찌 이별과 재회를 논하겠는가. 셈해 보니 이미 일곱 해가 돌았다.

원문

大手高文柳柳州。人人皆號賈長頭。明時莫怪遭遷謫。天子之才問馬周。

번역

대수(大手)의 높은 문장은 유주주(柳柳州) 같고, 사람들은 모두 가장두(賈長頭)라 호칭한다. 명백한 시대에 전락함을 원망하지 말라. 천자의 재능은 마주주(馬周)를 문책하는 것과 같다.

원문

腰錢駕鶴赴楊州。須要功名尙黑頭。從此圖形麟閣上。致君終不愧伊周。

번역

허리에 돈을 매고 학을 타고 양주로 가니, 공명과 명성을 아직 검은 머리에 간직해야 하오. 이제부터 형상을 그려서 린각 위에 올리니, 임금을 보좌하는 일은 결코 이윤과 주공에게 부끄럽지 않겠소.

126. 重遊尙州寄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4B

원문

上洛重遊日。秋深物象饒。江山雖自異。風月好相邀。客久家何在。天寒路更遙。年華容易去。萍迹等閑飄。落葉驚羈旅。孤砧伴寂寥。悲吟懷往事。獨臥負良宵。裘薄嫌風夕。窓明怯雪朝。閑行尋士板。長揖謁官寮。傾蓋逢新俊。通家有舊交。就中何所欠。不見阿紅嬌。

번역

상락(上洛)을 다시 찾은 날. 가을이 깊어 사물의 형상이 풍성하도다. 강산은 비록 스스로 다르지만, 바람과 달이 좋은 마음으로 서로 초대하네. 객지 생활이 길어지니 집은 어디에 있나. 하늘은 추워져 길은 더욱 멀도다. 세월은 쉽게 가고, 물의萍(핑) 자취는 허무하게 떠돌 뿐. 낙엽은 떠돌이 나그네를 놀라게 하고, 외로운 방망이 소리는 적막함을 함께하네. 슬프게 읊조리며 옛일을 그리워하고, 홀로 누워 좋은 밤을 저버리노라. 두꺼비 옷은 얇아 바람 부는 저녁을 싫어하고, 창문은 밝아 눈 오는 아침을 두려워하네.闲히 걸어가 사판(士板)을 찾고, 길게 작례하며 관료들을 알현하노라. 수레의 갓을 기울여 새로운 영걸을 만나고, 통가(通家)로서 옛 교분이 있도다. 그중 무엇이 부족하뇨. 아홍(阿紅)의 고운 모습을 보지 못함이로다.

127. 暮春聞鶯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田家三月麥初稠。綠樹初聞黃栗留。似識洛陽花下客。殷勤百囀未能休。

번역

농가의 밭에는 삼월이 되어 밀이 처음 무성해지고, 푸른 나무 사이에서 처음 황밤(黃栗)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마치 낙양(洛陽)의 꽃 아래 객(客)임을 알아차린 듯, 정성껏 백 번이나 울어도 쉬지 않는다.

128. 喜三生見訪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4C

원문

喜鵲朝來語更頻。敲門車馬致嘉賓。山窓久抱支離病。花苑無由點檢春。忽有丘門三益友。來尋楚澤獨醒人。典衣徑取隣家釀。共向尊前鬪興新。

번역

까마귀가 아침부터 더 자주 지저귀니, 문을 두드리는 수레와 말로 귀한 손님을 모셨네. 산 창문에는 오래된 병폐가 감싸고 있고, 꽃 동산에는 봄을 살피지 못했노라. 문득 구문(丘門)의 삼익(三益) 벗이 와서 초택(楚澤)의 독醒人을 찾았구나. 옷을 담보로 내어 이웃 집 술을 취하여, 함께 잔 앞에서 새로운 흥을 겨루노라.

129. 寄金先達蘊珪。兼簡湛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4D

원문

忽有庭前乾鵲噪。郵籤果得平安報。書中曲盡綢繆意。便如對面論懷抱。乃知扶輿來避亂。故是先生計亦早。我今偶脫風波地。竄身今作酒家保。方念平生馬少游。溫柔鄕裏吾將老。逃空猶喜見似人。況有舊知遠致勞。天涯共是傷流落。秪憐風月江南好。何時乘興雪中歸。却訪山陰戴安道。縱使相逢應不識。形容與古添枯槀。亦嫌不見李謫仙。安知消息憑君到。去年雁使却廻時。也爲悤忙書草草。今朝臨紙更茫洋。未盡心中所欲導。

번역

문득 마당 앞의 마른 꾀꼬리가 우니, 우편편지(郵籤)로 과연 평안하다는 소식을 얻었도다. 편지 속에 정중한 뜻이 다하여진 것은, 마치 마주 앉아 포부를 논하는 것과 같도다. 알겠노라, 부유(扶輿)의 기운을 타고 난을 피하러 왔으니, 이는 선생의 계책이 이미 이르렀음을 알 수 있노라. 내가 지금 우연히 풍파의 땅을 벗어나, 몸을 숨겨 이제 주점의 보모(酒家保)가 되었노라. 비로소 평생의 마소유(馬少遊)를 생각하니, 온화한 고장에서 내가 늙어가려 하노라. 텅 빈 곳에서도 비슷한 사람을 본 것을 기뻐하는데, 하물며 옛 지인이 먼 곳에서 수고롭게 보내준 것이랴. 천하가 함께 유랑하는 것을 슬퍼하나, 다만 강남의 풍월이 좋은 것을 불쌍히 여기노라. 언제 기운을 차려 눈 속에 돌아갈까, 다시 산음(山陰)의 대안도(戴安道)를 찾아뵙고자 하노라. 비록 만나도 서로 알아볼 수 없으리니, 용모는 고금에 더해 시들고 말랐도다. 또한 이절선(李謫仙)을 보지 못한 것을 싫어하노라. 어찌 소식(消息)이 너를 통해 전해질 줄 알았으랴. 작년 안사(雁使)가 돌아갈 때에도, 바쁘게 편지를 대충 썼노라. 오늘 종이에 임하여 더 막막하여, 마음속으로 하고자 하는 바를 다 이끌어내지 못하노라.

130. 戲尙州妓一點紅〔原注:敎坊妓有紅一點。今尙州鄕籍亦有一點紅。〕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仙花曾見洛陽城。今日江南眼更明。魏紫姚黃雖異格。到頭同占牡丹名。

번역

선화(仙花)를 이전에 낙양(洛陽) 성에서 보았노라. 오늘 강남(江南)에서 눈이 더욱 밝아졌도다. 위자(魏紫)와 요황(姚黃)이 비록 다른 격조를 지녔으나, 끝내 모두 모란(牡丹)이라는 이름을 차지하느니라.

131. 次韻金相國富轍題使君山詩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遨頭曾此作淸歡。不分仙遊早得攀。座上歌姬眞眄眄。尊前詞客有還還。蒼顏白髮風塵外。綠水靑山几案間。遙想使君行樂處。新飜三疊按陽關。

번역

어두(遨頭)가 여기서 맑은 즐거움을 누렸노라. 선유(仙遊)를 일찍이 접할 수 있게 된 것을 분하게 여기지 않노라. 자리에는 가희(歌姬)들이 참으로 눈길을 보내고, 잔치 앞에는 시객(詩客)들이 오가며 어울리네. 푸른 얼굴과 하얀 머리, 풍진(風塵) 밖에서, 녹색 물과 푸른 산이 궤안(几案) 사이에 있도다. 멀리서 사군(使君)이 즐거움을 누리는 곳을 상상하노니, 새로 삼첩(三疊)을 바꾸어 양관(陽關)의 곡조에 맞추었구나.

132. 洪書記見邀宴飮。以詩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5A

원문

磊落高才似謝安。退公携妓賞東山。勸留佳客方投轄。更許淸談共破顏。十室絃歌群俗樂。一樽風月長官閑。舞筵況見傾城態。認得當時玉指環。

번역

뛰어난 재주가 사안(謝安)과 같아 공무를 마치고 기녀를 데리고 동산(東山)을 거닐었네. 훌륭한 객을 권하여 발을 묶어 두고, 또 맑은 담소를 나누며 얼굴의 빛을 풀었도다. 열 집에서도 현악과 노래로 군중의 즐거움이 되고, 한 잔의 바람과 달 아래서 장관은 한가하도다. 춤추는 자리에는 더욱倾城(경성)의 자태가 보이고, 당시의 옥지환(玉指環)을 알아본다.

133. 贈洪書記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爲儒爲吏自兼能。政譽紛傳海內稱。明似千年金匣鏡。淸於一片玉壺氷。南蕃出慰蒼生望。北闕行承紫詔徵。繼理無如賢父子。高門陰德世方興。

번역

유가(儒家)가 되고 관리가 되는 것을 스스로 겸하여 할 수 있으니, 정치를 향한 명성이 천하에 널리 퍼져 칭송받네. 밝음은 천 년 된 금함(金函)의 거울 같고, 청렴함은 한 조각 옥호빙(玉壺氷)보다 맑도다. 남쪽 변방에서는 백성들의 소생(再生)의 희망을 위로하기 위해 나가고, 북쪽 궁궐에서는 자주(紫詔)를 받들어 소명하러 가리라. 이치(理)를 따르는 데는 어진 부자(父子)보다 더 나은 이가 없고, 높은 문호(門戶)의 음덕(陰德)은 세상에 있어 드디어 흥성하리라.

134. 寄黃嶺寺堂頭觀諦上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久思西笑返家鄕。遊官年來罄橐囊。暫見主人晨蓐食。苦無行客宿舂糧。斗升足活貧莊叟。霖雨誰尋病子桑。遠與公姑問庚癸。殷勤須要助資裝。

번역

오랫동안 서쪽 웃음을 기다리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관직에 있어 해를 거듭할수록 주머니는 텅 비었도다. 잠시나마 주인을 만나 아침 식사 때 만나고, 괴로운 것은 행객이 묵을隔夜의 찧은 쌀조차 없다는 것이로다. 두승의 양식도 가난한 농부를 살리기에 충분하건만, 비를 내려 농사를 돕는 이는 병든 자桑을 찾아주지 않도다. 먼 곳에서 시부모께 식량 사정을 묻고자 하나, 간곡히 도와줄 여물(旅費)조차 없구나.

135. 摘瓜寄洪書記。〔原注:三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靑門寂寞邵平家。事業年年謾種瓜。自是野人無所遺。爲君摘此獻淸衙。

번역

청문(青門)의 적막한 소평(邵平)의 집안, 해마다 일만(種瓜)으로 사업을 허송하노라. 본디 야인(野人)에게 남길 것이 없거늘, 이를摘하여 청아(淸衙)에 바치노라.

원문

筆法詩篇自一家。瓊琚好報衞人瓜。須知獨擅風騷句。屈宋還應合作衙。

번역

필법과 시편은 스스로 한 가문을 이룬다. 옥으로 만든 예물(瓊琚)로 위나라 사람의 수박을 잘 갚으리라. 반드시 풍류와 시호(風騷)의 구절을 독점함을 알지니, 굴원(屈)과 송옥(宋) 또한 마땅히 함께 관아에 소속되어 협력해야 하리라.

원문

不到城中蘇小家。此身堪恨繫如瓜。紅顏別後今何處。要覓殷勤古押衙。

번역

성 안의 소가(蘇家) 집에는 가지 못했노라. 이 몸은 마치 박(瓜)에 매인 듯 원통할 따름이로다. 붉은 얼굴(미인)과別한 지 이제 어디에 있겠는가. 정성을 다해 고(古)押衙(압아)를 찾아야 하겠노라.

136. 次韻崔伯環見贈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5C

원문

期年去國戀交親。尙喜今朝見似人。豈臥元龍樓百尺。求田問舍且謀身。

번역

나라를 떠난 지 일 년이 되어 교우와 친척을 그리워하노라. 오늘 아침에 그대 모습을 보니 더욱 기쁘도다. 원룡이 백 척 누각에 누워 있듯이 높은 지위를 구하지 않고, 오직 밭을 구하고 집을 장만하며 스스로의 생계를 도모할 뿐이니라.

원문

相逢何必早相親。共是江南流落人。下筆新詩多俊氣。也應肝膽大於身。

번역

만날 적에 어찌 일찍 친해야 하리오. 함께 강남에서 유랑하는 신세이니. 붓을 들어 새 시를 짓으면 대개 기운이 뛰어나고, 또한 간담이 몸보다도 클 것이다.

137. 翼嶺途中口占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5D

원문

萬里東吳地。行行入水涯。山川多勝地。風俗未通華。幽薊封疆遠。房心分野遐。晨征觀海市。晡飯寓漁家。馬瘦鞭長費。峯多路更賖。天形圍巨野。城勢枕褒斜。跨險思臨坂。乘危似接槎。麝眠隈密麓。鳥迹印平沙。雲斷山橫黛。風飜浪皺花。寒林初脫葉。落日暗烘霞。乳產崖多穴。潮穿石自窊。黃昏遊虎兕。白晝遇麚。樓觀當鼇頂。郊圻接犬牙。豐年祀神鬼。珍產富魚鰕。淺水浮寒鴨。幽林噪晚鴉。妖祠呈楚舞。孤戌咽胡笳。役役思鄕夢。悠悠失路嗟。書稀係鴻雁。客久缺蟆蝦。

번역

만 리나 떨어진 동오 땅에 이르러, 행행히 물가 끝으로 들어간다. 산천에는胜景이 많고, 풍속은 아직 화랑과 통하지 아니한다. 유계는 봉疆이 멀고, 방심은 분야가 멀다. 아침에 나서 해시를 보고, 해 넘어 어가에서 밥을 먹는다. 말이 야위어 채찍을 길게 쓰는 것이 번거롭고, 봉우리가 많아 길이 더욱 멀다. 하늘의 형상은 거대한 들을 둘러싸고, 성의 세력은 포사를 베고 있다. 험한 곳을 건너며 비탈을 내려다보고, 위태로운 곳을 타며 닻을 올리는 듯하다. 사슴은 굽이진 밀림에서 잠들고, 새 발자국은 평평한 모래에 찍힌다. 구름이 끊어지고 산은 푸른 대를 가로놓으며, 바람이 일고 물결은 주름진 꽃을 뒤집는다. 찬 숲은 비로소 잎을 떨어뜨리고, 해는 저물어 붉은 노을을 어둡게 태운다. 산마루에는 구멍이 많아 젖을 생산하고, 조수는 바위를 뚫어 스스로 오목해진다. 황혼에는 호비(호랑이와 표범)를 놀리고, 백주에는 사슴을 만난다. 누각은 거북이 등 위에 있고, 교외는 개 이빨처럼 맞닿아 있다. 풍년에는 신귀를 제사하고, 진산은 물고기와 새우가 풍부하다. 얕은 물에는 찬 오리들이 뜨고, 깊은 숲에는 저녁 까마귀들이 시끄럽게 운다. 요사스러운 사당에서는 초무가 나타나고, 외로운 수비대에서는 호아가 슬프게 불린다. 부지런히 고향 꿈을 생각하며, 길 잃은 신세를 한탄한다. 편지는 드물고 기러기에게 매여 있으며, 객지 생활이 길어 달팽이와 가재가 부족하다.

138. 送人赴試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紛紛擧子踏槐黃。獨喜先生首一鄕。五百年來異人出。從今定見破天荒。

번역

수많은 급제자들이 괴황(槐黃)을 밟고 지나가는데, 오직 선생님이 처음으로 이 고장에 이름을 올린 것을 기쁘게 여긴다. 오백 년 만에 비범한 인물이 나왔으니, 이제부터는 전례가 없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

139. 代書答皇甫淵〔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6A

원문

憑仗秋鴻寄一書。銀鉤鐵點巧縈紆。那嫌遠謫身空老。已覺相思病未蘇。我在瘴濱聊鬱結。君言世路亦崎嶇。異鄕莫怪長垂泣。風景從來也不殊。

번역

가을 기러기에 의지하여 편지 하나를 보내노라. 은후(銀鉤)와 철점(鐵點)이 교묘하게 구불구불하게 얽혀 있도다. 먼 곳으로 유배되어 몸이 늙어감을 어찌 싫어하겠는가. 이미 사모하는 병이 낫지 않음을 깨달았노라. 나는 사나(瘴濱) 곁에서 잠시 우울함을 맺고 있고, 너는 세상이 또한 험난하다고 말하도다. 타향에서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풍광은 본래 다르지 않으니.

원문

數年身不到天京。久作三閭澤畔行。林下欲求容膝地。世間何處稱人情。厭聞時輩登科第。唯記君家好弟兄。寄語低頭須碌碌。一門終要獨全生。

번역

수년간 몸이 천경(天京)에 닿지 못하여, 오래도록 삼려(三閭)의 강가에서 행적들을 이어왔노라. 임하(林下)에서 용천지(容膝地)를 구하려 하지만, 세간에 어찌하여 인정(人情)에 부합하는 곳이 있으리오. 때배들이 등제(登第)하는 소리를 싫어하여 듣기 싫을 뿐, 오직 그대 집의 좋은 형제들만 기억하노라. 머리를 숙이고 부지런히 일해야 할 자들에게 전하노니, 한 집안 끝내 혼자 생명을 보전해야 하느니라.

140. 重到京師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劉郞今是白頭翁。一十年來似夢中。惆悵玄都仙館裏。兔葵燕麥動春風。

번역

유랑(劉郞)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었도다. 십 년 동안이 마치 꿈속 같았네. 슬프도다, 선관(仙館) 안에선 토규(兔葵)와燕麦(燕麥)이 봄바람에 흔들릴 뿐이니.

141. 憶舊遊〔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6B

원문

春風折柳洛橋東。一別如何信未通。自是思君心更苦。容華應減去年紅。

번역

봄바람에 나루교 동쪽에서 버드가지 꺾어 보내고, 한번 이별한 뒤 어찌하여 소식조차 닿지 않는고. 스스로 군주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 용모와 아름다움은 작년의 붉음보다 줄었으리라.

원문

雲飛雨散各西東。秪喜音容夢裏通。憶得郵亭行樂處。淺斟低唱看紅紅。

번역

구름이 날리고 비가 흩어져 각기 서쪽과 동쪽으로 흩어졌노라. 다만 꿈속에서 그 음용(音容)이 통하는 것만을 기뻐할 뿐이라. 우정(郵亭)에서 즐기던 곳을 기억하노니, 잔을 가볍게 따르고 노래를 낮게 부르며 붉은 꽃을 바라보았도다.

142. 次韻李相國題奉嚴寺竹樓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軒竹新添舊歲竿。森羅春筍逬康干。飮酣林下金樽凸。棋罷陰中玉局寒。不爲高人當檻種。應無閑客叩門看。揮毫欲效樊川賦。撚斷吟鬚字未安。

번역

대나무 정자에 새로이 지난 해의 대나무 지팡이가 더해졌네. 푸른 대나무 새순들이 무성하게 돋아나 곧게 자랐고, 숲 아래서 술을 마셔 금잔이 기울었으며, 그늘에서 바둑을 두어 옥판이 차가워졌도다. 높은 사람이 대나무를 난간 곁에 심은 것이 아니니, 마땅히 빈손으로 문을 두드려 구경할 손님이 없으리라. 붓을 들어 번천(樊川)의 시를 본받고자 했으나, 시구를 짜내다 수염을 뽑아 떨어뜨려도 글자가 편안하게 정해지지 않도다.

143. 次韻崔相國〔原注:惟淸〕留題〔原注:四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6C

원문

當年古寺覓餘春。唯有能詩白舍人。兜率海山何處去。姓名空掛壁間塵。

번역

그해 고사에서 남은 봄을 찾았으나, 오직 시를 잘 짓는 백거이(白居易)뿐이었다. 도솔천의 바다와 산은 어디로 갔는가. 이름만 빈 벽의 먼지에 걸려 있을 뿐이다.

원문

夜涼欹枕水鳴樓。樓下疏篁月影稠。我似多情謝安石。聊成一曲洛生謳。

번역

밤은 서늘하여 베개를 기댄 채 누각에서 물소리가 들리네. 누각 아래로는 드문 소나무 숲에 달빛이 짙게 드리워졌다. 나는 다정다감한 안석(安石)과도 같아, 잠깐이나마 낙생가(洛生謳)를 한 곡조 읊조린다.

원문

往事渾如雁過空。上樓無語夕陽中。從橫滿壁龍蛇迹。猶想平生賀老風。

번역

지난 일은 마치 기러기가 빈 하늘을 지나간 듯하다. 누대에 올라서는 말이 없이 해질녘에 서 있다. 벽에는 용과 뱀이 구불거리는 자국이 가득한데, 여전히 평소에 허노(賀老)의 풍모를 그린다.

원문

洞門無鎖也曾來。結夏應嗔踏逕苔。自笑世緣猶不淺。携筇得得出山廻。

번역

동문(洞門)에 자물쇠가 없었기에我曾來訪했노라. 하하(結夏)를 맺을 적에는 발자국에 난 이끼를 밟았음을 원망하리라. 스스로 웃노니 세속의 인연이 아직 깊구나. 지팡이를 들고 산을 벗어나 다시 돌아오네.

144. 病中有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年年虛過試闈開。臨老猶堪矍鑠哉。科第由來求俊士。公卿誰肯薦非才。長鯨欲奮波濤竭。病鶴思飛羽翮摧。舊有江東隱居地。自憐頭白好歸來。

번역

해마다 헛되이 과거 시험만 치르며 세월을 보냈노라. 늙어 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강함이여. 과거 급제는 본래 뛰어난 선비를 구하기 위한 것인데, 공경 중 누가 감히 재능 없는 이를 천거하겠는가. 큰 고래가 날뛰려 해도 파도는 이미 다하고, 병든 학은 날고 싶어도 날개는 부서졌노라. 예전에 강동에는 은거할 땅이 있었건만, 머리가 희어진 것을 스스로 불쌍히 여겨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구나.

145. 奉寄天院洪校書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6D

원문

東野居貧家具少。自笑借車無可載。杜陵身窮更遭亂。未免負薪常自採。我今無田食破硯。平生唯以筆爲耒。自古吾曹例困厄。天公此意眞難會。五鼎一簞未足校。富死窮生何者快。作書乞飯維摩詰。不厭空門淸淨債。先生有意能活我。千金何必監河貸。

번역

동야(東野)는 가난하게 살며 가재도구가 적으니, 스스로 웃으며 수레를 빌려도 실을 것이 없도다. 두릉(杜陵)은 몸이 궁핍한데다 더구나 난리를 만나, 면직(免職)되어 장작을 지으며 스스로 채취하지 않을 수 없었노라. 나는 지금 밭이 없어 깨진 벼루로 생계를 유지하고, 평생을 오직 붓을 쟁기 삼았노라.自古로 우리 무리들은 예외 없이 곤궁하고 억울함을 겪었으니, 천공(天公)의 이 뜻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도다. 오정(五鼎)의 부귀와 일찬(一簞)의 가난은 비교할 가치도 없으니, 부귀하여 죽는 것과 가난하여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즐거운가. 수서(修書)하여 밥을 구하는 것은 유마거사(維摩詰)와 같고, 공문(空門)의 청정한 빚을 싫어하지 않노라. 선생께서 뜻이 계셔 나를 살려주신다면, 천금(千金)이 반드시 감하(監河)에게서 빌려야 할 것은 아니니라.

146. 贈湛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去國同流落。今朝入帝關。天敎雙劍合。亂後一珠還。歲月粘衰鬢。風霜改舊顏。平生交分厚。猶喜更追攀。

번역

고향을 떠나 함께 유랑하다가, 오늘 마침내 천자의 문에 들어왔도다. 하늘이 두 검을 합치게 하셨으니, 난리 후에 한 구슬이 다시 돌아왔도다. 세월은 쇠약해진 수염에 달라붙고, 풍霜은 옛 얼굴을 바꾸었도다. 평생의 교분은 두터웠으니, 여전히 더 따르며 사귀기를 기뻐하노라.

147. 次前韻奉答〔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7A

원문

昔子潮陽去。歸途雪擁關。已應知死所。豈料得生還。未縱靑冥靶。俄緇白玉顏。相逢一樽酒。談笑更容攀。

번역

옛적에 자(子)가 조양(潮陽)을 떠날 때, 돌아가는 길에는 눈이 관문(關門)을 막고 있었다. 이미 죽을 곳을 알았거늘, 어찌 살아 돌아올 줄을 예상했겠는가. 푸른 하늘을 향해 활을 쏘지 못해, 순식간에 흰 옥(白玉) 같은 얼굴이 검게 변하였다. 만나 한 잔의 술을 마시며,談笑하며 더 가까이 사귀기를 바랐다.

원문

紫氣浮函谷。吾知正度關。世嗟才久屈。道直詔徵還。詩妙誰如杜。書奇又止顏。他年同報國。事業笑何攀。

번역

자기가 함곡관 위에 떠다니니, 내가 정도가 관문을 통과하는 것을 알겠다. 세상은 재주가 오랫동안 억눌린 것을 탄식하고, 도는 곧으니 황제의 칙명으로 징발하여 돌려보낸다. 시가 묘한 데 두보만 같고, 서예가 기이한 데 또 안지연만 멈춘다. 장차 함께 나라를 보답하여, 업적이 웃으며 어찌 따를 수 있겠는가.

148. 上李學士〔原注:知命〕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8C, ITKC_MO_0003A_A001_238D ...

원문

月日。林某謹叩頭再拜獻書于某官階戺。夫鏌釾干將者。天下之至寶也。埋於豫章豐城之地。常有紫氣衝斗牛間。而莫有知者。及雷煥登樓而仰觀。然後掘而得之。乃拭以南昌之土而光芒艶發。視之者無不駭然眩目矣。設使煥而不知。則天生神物。其終埋沒。而幾乎不獲見寶於世矣。今僕之在寒鄕氷谷中也久矣。雖往往有冤氣上徹於天。而世無雷煥者望而知之。則其眩目之光艶。無所復發矣。可不惜乎。是以。敢飾其孟浪謬悠之言。區區以列於左右。伏惟閤下少加察焉。僕嘗於造化爐鎚間。受百鍊精剛之氣。而陰陽資其質。五行成其體。二十八宿羅其胸襟。然後稟靈以生。首出利物焉。以德道爲鋏。仁義爲鋒。以智勇爲鍔。包之以言行之鯁亮。飾之以文章之英麗。柙而藏之。所以保其身而明哲也。持而行之。所以應其時而能用也。砥礪以名節。淬磨以學問。上可以決浮雲。下可以絶地維。擧之無前。斡之無旁。天地之內。指揮而無所礙矣。然而有非常之器者。必待非常之人。以立非常之功。故塵埃蒙其光。糞壤蝕其文。繡澁剝落。如靑蛇退鱗。而與死鐵爲徒久矣。但其英靈光怪。耿耿然發露於草木瓦礫之間而不能掩。猶足以號鬼神起雷霆而動星象也。嗚呼。天之生是也。豈虛藏利器。伏而不耀。隱而不發。終於埋沒。而爲棄物邪。恭惟閤下器度宏博。天姿瑰瑋。加之以精鑑卓識。博物多通。自擢居貴位。專持大柄。能樂善忘勢。以待英雄豪傑之輩。故天下之士莫不樂爲之用。皆願收名定價於前。誠後進歐冶也。則凡龍泉大阿湛盧豪曹之類。宜皆收而蓄之。以爲匣中之珍也。此非獨用之以剸犀兕刺虎豹。而效匹夫之事而已。將以剗除奸孼。掃淸夷夏。挾天子令諸侯。致四海之賓服也。誠拭雷煥之眥。望牛斗之氣。掘而發之。刜其垢磨其光。則一日而其資露。二日而其光發。三日而其眞貌覩矣。則其效用於門下者。恢恢乎游刃有餘地矣。豈止鉛刀一割之用乎。倘使僕徒棄於氷谷中。而爲大平無用之物。則亦將飛出以避虎庫之災。躍入以蟠平津之水。待其時有其人而後復出。則何良工哲匠之門。不求希世之珍哉。輕黷嚴威。無任惶恐之至。某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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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일. 임모가 경건히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여 관직과 계급이 있는 그대에게 글을 바칩니다. 막야(鏌釾)와 간장(干將)은 천하의 보물입니다. 예장(豫章)과 풍성(豐城) 땅에 묻혀 있었으나 항상 자기가 두수(斗牛) 사이를 뚫고 올라가는 기운이 있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로소 제환(雷煥)이 누각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 본 뒤에 파내어 얻었는데, 남창(南昌)의 흙으로 닦아내자 광채가 빛나서 보는 자들이 모두 놀라 눈이 부셨습니다. 만약 환지가 모른다면 천생신물은 결국 묻혀서 거의 세상에 보물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차가운 고향의 얼어붙은 골짜기에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비록 종종 원기가 하늘까지 닿았으나 세상에 제환처럼 바라보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눈이 부실 만큼 빛나는 광채는 다시 발하지 못할 것입니다.可不惜乎(아니 아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감히 거칠고 그릇되며 터무니없는 말을 꾸며 제 앞쪽에 늘어놓으니, 부디 각하께서 조금만 살펴주십시오. 저는 조화(造化)의 주조(爐鎚) 사이에서 백 번 단련된 정강한 기운을 받아 음양이 그 질료를 주고 오행이 그 형체를 이루었으며, 이십팔수가 가슴에 늘어져 있기에 영기를 받아 태어나 머리에 나서 만물을 이롭게 하였습니다. 도덕을 칼집으로 삼고 인의를 칼날로 삼으며 지용을 칼등으로 삼아, 언행의 강직함으로 싸고 문장의 아름다움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이를 상자에 넣어 숨기는 것은 몸을 보전하고 명철함을 밝히기 위함이며, 가지고 행하는 것은 때에 응하여 쓸 수 있기 위함입니다. 명절로 갈고 닦고 학문으로 담금질하여, 위로는 구름을 가를 수 있고 아래로는 지유(地維)를 끊을 수 있으며, 들어 올리면 앞서는 것이 없고 돌리면 옆으로 치우침이 없습니다. 천지 안에서 지휘하면 막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상한 기예가 있는 자는 반드시 비상한 사람을 기다려야 비상한 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지가 빛을 가리고 거름더미가 문양을 식으며, 수세(繡澁)가 벗겨져 청사(靑蛇)가 비늘을 벗은 듯 죽은 쇠덩어리와 오랫동안 어울려 지냈습니다. 다만 그 영험하고 기이한 빛이 초목과 벽돌 사이에서 뚜렷이 드러나 가려지지 않아, 여전히 귀신과 천지를 호령하고 번개를 일으키며 별자리를 움직일 만큼 충분합니다. 우와! 하늘이 이를 낳은 것이 허수아비처럼 날카로운 무기를 숨겨 빛나지 않고 감추어 발하지 않아 결국 묻혀 버린 물건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까. 공경히 생각하건대 각하는 기품이 넓고 크며 천성이 기이하고 아름다우며, 정교한 안목과 탁월한 식견을 더하여 박물다통(博物多通)하십니다. 스스로 귀한 자리에 올라 큰 권력을 독점하시며, 선을 좋아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세력을 잊으시어 영웅豪杰의 부대를 기다리시니, 천하의 선비들이 모두 쓰이는 것을 기뻐하며 모두 앞서서 이름을 얻고 값을 정하기를 원합니다. 진실로 후진(後進)인 구야(歐冶)라면, 용천(龍泉), 대아(大阿), 잠로(湛盧), 호조(豪曹) 같은 것들은 모두 거두어 상자의 보물로 삼아야 합니다. 이는 오직犀와 소를 베고 호랑이와 표범을 찌르는 것만 하여 필부(匹夫)의 일을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간악한 적을 제거하고 이하(夷夏)를 깨끗이 하여 천자를 거느리고 제후들을 명분으로 삼아 사해(四海)의 빈복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진실로 제환의 눈물을 닦고 우수(牛斗)의 기운을 바라보며 파내어 드러내고, 때를 밀어내어 더러움을 벗기고 빛을 갈면, 하루가 지나면 그 자질이 드러나고 이틀이 지나면 빛이 발하며 사흘이 지나면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문하에서 효용하는 바가 유유자적하여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찌 연도(鉛刀)의 한 번 베는 용도만 있겠습니까. 만약 제가 차가운 골짜기에서 버려져 태평성대의 무용지물이 된다면, 또한 날아올라 호고(虎庫)의 재앙을 피하고 뛰어들어 평진(平津)의 물에 웅크릴 것입니다. 그 때와 사람을 기다린 뒤에 다시 나온다면, 어찌 훌륭한 장인의 문에 가서 세상에 드문 보물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엄숙한 위엄을 가볍게 모독하여 두려움과 공경함이 극에 달합니다. 임모가 두 번 절합니다.

149. 代李湛之寄權御史〔原注:敦禮〕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9C

원문

某頓首再拜啓。孟冬嚴凝。伏以先生道履淸勝。瞻企瞻企。不肖蒙恩無恙。今秋。佛者中隱來抵京師。因言先生雅量超然。終無處世之意矣。自離難之際。世之賢士莫不深潛草野。以避一時之禍。然一爲名利所誘。而使山靈挽回俗駕者多矣。今閤下見幾而作。高蹈方外。泥滓爵位。膠漆山林。千金不能聘其才。萬乘不能屈其節。眞所謂旣明且哲。以保其身者也。昔殷深源隱于匡盧山。累徵不起。當時以其起與不起。卜江左之興亡。今之論者。或謂閤下不起。當如蒼生何。譬如景星慶雲之將出。人莫不爭先覩之爲快。而閤下方且抱大器藏大道。枕石漱流。高臥不出。其淸風高節。自夷,齊已來一人而已。僕每欲拂衣長往以從先生之遊。向風傃德。勞於夢寐。又聞此州風土信美可樂。高人勝士多往而依焉。僕買土一廛。卜居其間。便了一生。此其雅意也。惟先生諒之。襄陽人林椿。慕道之士也。今因中隱還。同賦一詩寄去。亦欲觀其志之所存者。歲序云暮。山色苦寒。伏惟先生悅道之外。宜加珍嗇。以副遐祝。不宣。惶恐再拜。

번역

내가 절하여 두 번 절하며 아뢰노라. 맹동(孟冬)의 엄하고 응결한 기운이 있사오니, 부디 선생의 도덕과 거처가 청렴하고 뛰어나심을 생각하며, 우러러 보고 또 우러러 봅니다. 불초한 자는 은혜를 입어 무사합니다. 금년 가을에 불자 중은(中隱)이 와서 도성에 이르렀는데, 선생의 풍량이 초연하여 끝내 세상에 머무르려 하지 않으심을 말하였습니다. 난리 이후로 세상의 현사(賢士)들은 모두 초야에 깊이 숨어 한때의 화를 피하였으나, 한 번 명리와 이익에 유혹을 받아 산령(山靈)이俗駕를 돌이키게 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이제 각하(閣下)는 기미(幾微)를 보고 일어나 고도(高蹈)하여 방외(方外)에 거하시니, 지위와 관직은 진흙과 진물 같고 산림(山林)은 옻칠과 젖과 같습니다. 천금으로도 그 재주를 사지 못하며, 만승(萬乘)의 임금으로도 그 절개를 꺾지 못하였습니다. 참으로 이미 밝고 지혜로워 스스로 몸을 보전할 수 있는 자라 하겠사옵니다. 옛적에 은심원(殷深源)이匡盧山에 은거하여 여러 번 초빙하여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음으로 강좌(江左)의 흥망을 점쳤습니다. 오늘날의 논자들은 혹 각하께서 일어나지 않으시면苍生(창생)을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말합니다. 마치 경성(景星)과 경운(慶雲)이 나타나려 할 때 사람들이 모두 먼저 보고자 하여 기쁨으로 여겨듯, 각하께서는 오히려 큰 기예와 큰 도를 품고 산돌에 기대어 시류(漱流)하며, 높은 곳으로 누워 나오지 않으십니다. 그 청풍과 고절은 의제(夷齊) 이래로 단 한 분뿐입니다. 나는 매양 옷자락을 털고 멀리 가서 선생의 유유를 따르고자 하였으나, 풍덕(風德)을 우러러 사모함이 꿈과 잠속에서 피로할 지경입니다. 또 이 주(州)의 풍토가 진실로 아름다워 즐거움이 많고, 고인(高人)과 승사(勝士)들이 많이 가서 의지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토지 한 전(廛)을 사서 그 사이에 거처를 정하여 일생을 마치려 하니, 이것이 아까운 뜻입니다. 오직 선생께서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양양(襄陽) 사람 임춘(林椿)은 도를 사모하는 선비인데, 이제 중은이 돌아가는 김에 함께 시 한 수를 지어 보내오니, 또한 그 뜻이 어디에 머무르는지를 보고자 함입니다. 세월이 이미 저물고 산빛은 차갑구나. 부디 선생께서 도를 기뻐하심 외에, 마땅히 몸을 아끼시어 먼 곳의 바램에 부응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세히 말하지 못하오니, 황공하여 두 번 절합니다.

150. 答同前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0A, ITKC_MO_0003A_A001_240B ...

원문

某謹頓首再拜。遙致尺牘于北原權先生閣下。向者獲覩所答湛之書并示僕詩一首。奉窺之際。實增感悸。反覆諷詠。宛然如侍左右而承佳論之亹亹也。僕少聞長者之言。咸以閤下爲今偉人。而賞識之下。率多名士。僕亦私誠慕之。而顧以未受知遇。常爲之恨。況僕伯父密州出先學士選中。遂知名焉。故世受厚恩。通家且舊。每欲摳衣函丈執弟子禮。而肩不摩於夫子之墻者久矣。去年冬。與釋中隱偶會於京輦。得先生之事甚悉。因言箕穎之志。始樂不渝。僕乃相與咨嗟慕望。至或爲之垂泣。果知先生爲人中之龍也。適其還。遂附一篇。少達其誠耳。今蒙閤下辱垂和答。其褒示之言。所不敢當也。有以見大人君子之寵待晚輩。未嘗不諄諄切至如是也。僕略觀昔之窮居退處者。自放山水間。其堙鬱感憤。一寓諸文。言多怨誹矣。至如所賜詩文。皆和裕自得。眞達者之辭也。其言與志得道行者無以異焉。益知先生之任眞推分。不以窮達進退介其胸次。而視世之榮利蔑如也。此所謂遁世無悶歟。今悠悠者云。一時安危。係閤下之出處。深存挹退。苟全高節。一丘一壑。以遂從容之適。則經濟之寄。復無其人矣。昔辛謐有言。不嬰於禍亂者。非爲避之。但冥心至趣。自與志會耳。以此知賢者之處乎廟堂也無異於山林間矣。斯乃窮理盡性之妙。其體而行之者。非閤下而誰耶。惟先生深思之靜慮之。俯循物議。起應徵詔。則亦海內蒼生之福也。若吾道之大行也。物必蒙利。至於僕輩枯槀癈錮之士。亦將受其餘潤。豈不在一物之數中耶。此尤所喜於心者。近聞先生常閉門敎授。門徒日盛。頌習之聲。比於洙泗。此非獨幽居避世者所樂也。蓋君子之所處。人受其賜。不必待名位而後有爲也。勉之勉之。僕當不出夏首。還指舊居。思欲枉道造謁。親問道要也。遐陬僻邑。寒燠異候。伏惟先生加飡自重。善保天和。以副區區之祝。不宣。謹啓。

번역

신이 감히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합니다. 북원 권(權) 선생阁下에 멀리서 편지를 보내옵니다. 이전에 선생께서 담지(湛之)에게 답한 서신과 저에게 보여 주신 시 한 수를 얻어 뵈었습니다. 받들어 살펴볼 적에 실로 감격과 두려움이 더해졌습니다. 되풀이하여 읊조리니, 마치 선생의 좌우에 모셔 아름다운 논의를 끊임없이 듣는 듯하였습니다. 저는 어릴 적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으니, 모두들 선생을 오늘날의 위인이라 하였고, 식견이 높은 이들을 대할 때 대부분 명사들이었습니다. 저도 사사로이 진심으로 사모하였으나, 오히려 저를 알아주지 못해 항상 한으로 여겼습니다. 하물며 저의 백보(伯父) 강회백(姜淮伯)이 밀주(密州)에서 선학(先學)의 선택을 받아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니, 세상이 두터운 은혜를 입어 통가(通家)가 되었으며 또한 오래되었습니다. 매번 옷깃을 잡고 문장(丈)에서 제자의 예로 섬기고자 하였으나, 부자(夫子)의 담장에도 닿지 못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작년 겨울, 중은 중은(中隱)과 우연히京城에서 만나 선생의 일을 매우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거령(箕潁)의 뜻을 말하니, 처음부터 즐거움이 바뀌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로써 서로 탄식하며 사모하고 바라보며,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진실로 선생이 인중의 용(龍)임을 알았습니다. 마침 선생이 돌아가시니, 감히 한 편을 붙여 그 성심을 조금이나마 전할 뿐입니다. 이제 감히 선생께서 부끄럽게도 화답해 주시니, 그 칭찬과 표시의 말씀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다만 대인군자가 후배를 총대하는 바가 항상 이처럼 간절하고 절실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대략 옛적에 궁핍하게 살며 물러나 있던 자들을 살펴보니, 스스로 산수 사이에 놓아두어 그 억눌리고 감개한 바를 모두 문장에 맡겼습니다. 말이 대부분 원망과 비방이었습니다. 지극히 선생께서 내려주신 시문은 모두 화유하고自得하여, 진실로 달관한 자의 말입니다. 그 말과 지극히 도를 행하는 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더욱이 선생이 진실을 임하고 분수를 밀어붙여, 궁달함과 진퇴로 가슴에 끼워 넣지 않으며, 세간의 영리를 업신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은신하여도 근심이 없음이겠습니까. 지금 유유자적하는 자들이 말하길, 일시의 안위가 선생의 출사(出處)에 달려 있으니, 깊이 사양하고 물러남을 간직하여 고결한 절개를 온전히 하고, 한 구비와 한 골짜기로 여유 있는 적성을 이루면, 경제(經濟)의 임무는 다시는 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옛날 신밀(辛愍)이 말하기를, 화란에 걸리지 않는 것은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마음을 어둡게 하여 지극한 취미에 임하여 스스로 뜻과 만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이로써 현자가 묘당에 있는 것이 산수 사이에 있는 것과 다름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궁리진성(窮理盡性)의 묘미로, 그 체득하고 행하는 자는 선생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오직 선생께서 깊이 생각하시고 고요히 숙고하시어, 물의(物議)를 따라 내려다보고 징조(徵詔)에 일어나 응한다면, 또한 해내 창생의 복이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 도가 크게 행해진다면, 물이 반드시 이익을 입을 것입니다. 지극히 저희 같은 고초하고 폐锢된 선비들도 또한 그 남은 이슬을 받을 것이니, 어찌 한 물의 수(數)에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특히 마음에 기쁜 바입니다. 근래에 선생께서 항상 문을 닫고 가르치시니, 문도가 날로 성하여, 송습의 소리가 주사(洙泗)에 비할 만합니다. 이는 오직 은거하여 세상을 피하는 자들이 즐거워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실로 군자가 처한 바는 사람이 그 은혜를 받으니, 반드시 명위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디 부디 힘쓰소서. 저는 하수(夏首)를 넘지 않아, 옛 거처로 돌아가려 합니다. 생각하건대, 길을 굽혀 찾아뵙고 친히 도요(道要)를 묻고자 합니다. 먼 구석僻邑은 한온(寒燠)이 다른 기후이니,伏惟 선생께서 밥을 더 드시고 몸을 중히 여기시어, 선천화(天和)를 잘 보위하여, 구구한 축원을 부응하시기를 바랍니다. 선포하지 않으니, 감히 계합니다.

151. 答朴仁碩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0D, ITKC_MO_0003A_A001_241A

원문

某啓。今月某日。僧中隱至京師。得所寄盛製一篇。發緘啓紙。燦然溢目。辭與理齊。誠能覩古作者閫閾。非晉宋間人所可跂及者。蓋其陳列情緖。綢繆微悉。若出於誠懇。但過自謙挹。褒示溢美。固非鄙陋所敢當也。今閤下以文章道德。爲一時君子之選。雖中遭艱厄。深潛遠遁。不欲聞於世矣。而盛譽益茂。人皆屬望。此亦柳子厚所謂周乎藝者。屈抑不能貶其名也。且昔人有一面如舊。便與之交者。苟以意氣相許。又何論輩行之先後。交遊之久遠乎。況僕與閤下。嘗有一日之雅。今觀所寄書。有未嘗披肝膽接殷勤之語。甚所未諭也。豈以僕疏狂謬戾。爲人所訕罵。故卑其書辭。外若加敬。而實惡之耶。僕自念旣取當世僇笑而卒爲棄物矣。然世途不遇者。恒事也。夫君子之知。蓋難遇焉。故常望風遐想。願備廝役之賤而不可得。儻閤下當衆人交棄之際。少加收接。則死無恨矣。惟先生諒之。春暄。伏惟爲道自重。以副遐禱。不宣。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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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오매, 이번 달 어느 날 승중은(僧中隱)이 경사에 이르러, 제가 보내준 훌륭한 시 한 편을 받았습니다. 봉투를 열고 종이를 펼치니 눈앞에 찬란하게 빛나고, 문장과 이치가 서로 맞닿아 있어, 진실로 고대의 저술가들이 들어가는 문턱을 꿰뚫어 본 바가 있으니, 진·송 시대 사람들의 따라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대개 정서를 진열하고 미묘하고 세밀하게 다듬어낸 것이 마치 성의에서 우러난 듯하지만, 지나치게 겸손하게 낮추어 칭찬한 것은 과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아, 본래 저의 천박하고 보잘것없는 자질이 감당할 바가 아닙니다. 이제 각하께서는 문장과 도덕으로 한때 선비들 중의 선택을 받으셨으니, 비록 중간에 고난과 역경을 겪어 깊이 숨어 멀리 도망쳐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자 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높은 명성이 더욱 성하여, 사람들이 모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유자후가 말한, 예술에 두루한 자가 굴욕과 억압을 당하여도 그 이름을 낮출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또한 옛사람 중에는 단 한 번의 만남만으로도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것처럼 여기며, 곧바로 교분을 맺는 이가 있었습니다. 만약 뜻과 기개로 서로 허락한다면, 어찌 세대의 선후나 교유의 오래고 짧음을 논하겠습니까. 하물며 저와 각하는 이미 하루의 친교가 있었으니, 이제 보내온 서신을 보니, 간장을 털어놓으며 성심을 다해 접대했던 말이 없으니, 매우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혹시 저를 소탈하고 광기 있으며 어리석고 그릇된 자로 여겨 남들에게 욕을 먹었기 때문에, 그 서신의 말씨를 낮추어, 겉으로는 공경을 더하는 듯하지만 실로는 싫어하는 것입니까? 제가 스스로 생각하건대, 이미 당세의 조롱을 받아 결국 버려진 물건이 되었으니, 세상의 길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입니다. 군자의 지음(知遇)은 참으로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풍경을 바라보며 멀리 생각하며, 시역의 천한 벼슬을 준비하고 싶어도 얻지 못하옵나니, 만약 각하께서 많은 사람들이 모두 버리는 시기에 조금이라도 받아주신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오직 선생님께서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봄기운이 따뜻하오니, 도를 위해 몸을 중히 여기시어, 먼 곳에서 바라는 바를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세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경건히 아뢰옵니다.

152. 上吏部李郞中〔原注:純祐〕薦徐諧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1B, ITKC_MO_0003A_A001_241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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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日。某等沐蘭浴芳。叩頭百拜獻書于天曹學士階戺。夫富商之居於廛肆也。藏珍貨而候求者之自至。問其直則有高之以五萬者。然亦得而售焉。及持其珍貨而家至戶歷。以自號於道途曰。吾將市此矣。則雖五萬之直。必低䀚銖兩而其直愈卑。然亦不能售者。彼不求我而我自求售也。士之於人亦然。雖懷奇蘊異之士。苟不負其能而自重。欲求市於當世。則望愈卑才亦不售矣。其勢然也。今以五萬之直將自號而求售於閤下之門。恐有卑其直而不見售之患。故敢先之以是說。以布區區於左右。伏惟閤下垂察納焉。僕等於交友中得士之賢者徐諧。爲人深弘而有局量。所謂人知其寶。而莫名其器也。然言其大略。則如黃鍾大呂隨叩而鳴者。其精於學問而應對之給敏也。如孤峯絶岸壁立千仞者。其富於文章而綴述之秀麗也。如三江七澤順勢而下者。其議論之宏博而無所底滯也。如秋霜烈日凜然可畏者。其氣節之豪橫而不可近狎也。蓋天下之士。於此有所長則於彼有所短。於彼有所蔽則於此有所見矣。其得而兼之者。諧實有焉。如待詔金鑾。則必有蘇頲之潤色王言。直筆蓬山。則必有孟堅之勒成一家。雖盛明之世多士如林。設國家有大手筆事。則恐魯國之儒一人而已。先儒有言曰。士之心志旣通而名譽不聞者。友之過也。名譽旣聞而有司不擧。有司之罪也。今有士於此而亦不以聞。則安敢逭其罪乎。伏惟閤下以直文直道。結上之知。自擢居銓部。品藻人才。有識之士莫不傾耳而聽。引領而望。以待閣下之用人。則正宜遠取不遺賤。近取不避親。以塞其望。而讙呼海內高談之士。奔走天下慕義之人矣。或謂知人之明。雖聖人難之。以僕等碌碌。安足知其人而薦耶。以明察之則雖聖人有不足恃。揆之以道則中人可無失。僕等之於諧。亦以所得者知之。其未所知者。以待閤下之明。惟冀閤下不以人廢言。而東觀翰掖之地。如有一員缺者。以諧之名掛於啓擬之首。任之以事而徐觀其效。若果不如言。則斥逐之。復加僕等以狂妄阿弊之誅。使僥倖之士無敢覬覦。此亦未辱朝廷取士之大體也。況諧之行己。非其人不交。而朝無瓜葛之親。則爲閤下而言者必少矣。僕等所以拳拳欲一聞者。非若時之朋比相援以所好而爲賢也。但循其公論。而竊恐閤下未知其人之實而或遺之爾。庶乎其低昂銖兩之價。一定於權衡之手。無使奇貲異貨。家至戶歷。不見售於五萬之直而已。惟閣下諒之。輕黷尊嚴。無任悚懼之至。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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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일. 우리 등(某等)은 난초를 목욕하고 향기를浴하며, 머리를 조아려 백배하며 천조(天曹) 학사의 계단과 마루에 서서 글을 올립니다. 부호(富商)가 상점(廛肆)에 머물러 보물을 간직하고 찾는 자가 스스로 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값을 묻으면 오만(五萬)을 부르는 자도 있지만, 또한 팔아 치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물을 가지고 집마다 다니며 거리를 돌아다니며 스스로를 알리면서 이르기를, '내가 이것을 장사하려 한다'고 하면, 비록 오만의 값이라도 반드시 저울질을 하며 그 값은 더욱 낮아집니다. 그러나 또한 팔아 치울 수 없는 것은, 저들이 나를 구하지 않는데 내가 스스로 팔려 하기 때문입니다. 선비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비록 기이한 재능과 다른 뜻을 품은 선비라 할지라도, 만약 그 능력을 믿고 스스로를 중히 여기지 않고, 당세(當世)에 장사하려 한다면, 기대는 더욱 낮아지고 재능 또한 팔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형세가 그러합니다. 이제 오만의 값을 가지고 스스로를 알리며阁下의 문전에서 팔려 하려 하니, 그 값을 낮게 보고 팔리지 않을 근심이 있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감히 먼저 이 말로써 구구한 마음을 좌우에 밝힙니다. 부디阁下께서 살피시고 받아주십시오. 우리 등은 친구들 중 현명한 선비 서해(徐諧)를 얻었습니다. 그는为人이 깊고 넓으며 기량이 있습니다. 이른바 사람들은 그의 보물을 알지만, 그릇의 이름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대략을 말하면, 황종대여(黃鍾大呂)가 따라 치면 울리는 것과 같아, 학문에 정통하고 응대하는 것이 급하고 민첩합니다. 고봉절벽(孤峯絶岸)이 천인(千仞)을 벽립한 것과 같아, 문장이 풍부하고 지술(綴述)이 수려합니다. 삼강칠택(三江七澤)이顺势로 흐르는 것과 같아, 의론이 광박하고 저지(底滯)함이 없습니다. 추상열일(秋霜烈日)이凛然하여 두려워할 수 있는 것과 같아, 기절(氣節)이 호횡하여 가까이 사귀기 어렵습니다. 천하의 선비들은 이쪽에 장점이 있으면 저쪽에 단점이 있고, 저쪽에蔽함이 있으면 이쪽에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을 겸하여 갖춘 자는, 서해가 실로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대조금란(待詔金鑾)한다면, 반드시 소정(蘇頲)의 윤색 왕언(王言)과 같을 것이고, 직필봉산(直筆蓬山)한다면, 반드시 맹견(孟堅)의 렉성 일가(勒成一家)와 같을 것입니다. 비록 성명(盛明)의 세대에 다사가 임목과 같지만, 국가에 대수필(大手筆) 일이 있다면, 오히려 노국(魯國)의 유인(儒人)이 한 사람일 뿐입니다. 선유가 말하기를, 선비의 심지가 이미 통하고 명성이 들리지 않는 것은 친구의 과오입니다. 명성이 이미 들렸으나 유사(有司)가 거두지 않는 것은 유사의 죄입니다. 이제 여기에 선비가 있는데 또한 듣지 않는다면, 어찌 감히 그 죄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阁下께서 직문직도(直文直道)로 상(上)의 지음을 맺으시고, 스스로 전부(銓部)에 거처하여 인재를 평론하시니, 식식지사가 모두 귀를 기울이고 목을 길게 빼어阁下의 인재를 등용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히 원근을 가리지 않고 천천(賤賤)을 버리지 않으며, 근친(親親)을 피하지 않아 그 기대를 막고, 해내(海內)의 고담(高談)하는 선비들을 환호하게 하며, 천하의 무의(慕義)하는 사람들을 분주하게 해야 합니다. 혹 말하기를, 지인(知人)의 명(明)은 비록 성인이라도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 등(僕等)이 녹록한데, 어찌 감히 그 사람을 알고 천거하겠습니까. 명찰(明察)로 하면 비록 성인이 있어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도(道)로써 계측하면 중인(中人)도 잃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등이 서해에게 있어서도 얻은 바로서 알고 있습니다. 그 알지 못하는 바는阁下의 명(明)을 기다릴 뿐입니다. 오직阁下께서 사람을 버리고 말을 버리지 않기를 바라며, 동관한掖(東觀翰掖)의 땅에 만약 한 원의 결원이 있다면, 서해의 이름을 계의(啓擬)의 수두(首頭)에 걸고, 임하여 그 효험을 서서히 보십시오. 만약 과연 말과 같지 않다면, 축출하십시오. 다시 우리 등에게 망량 아폐(狂妄阿弊)의 주(誅)를 가하여, 교교(僥倖)하는 선비가 감히 기우(覬覦)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것 또한 조정에 치사(取士)의 대체(大體)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물며 서해의 행己(行己)는 그 사람이 아니면 교교하지 않고, 조에 과근(瓜葛)의 친척이 없다면,阁下를 위해 말하는 자가 반드시 적을 것입니다. 우리 등이 권권(拳拳)하여 한 번 듣고자 하는 것은, 만약 시인(時人)의 방비상원(朋比相援)하여 소호(所好)로 하여 현(賢)으로 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다만 공론을 따라 그 사람의 실상을 알지 못해 또는 유실할까 두려워할 뿐입니다.庶乎其 저앙(低昂)의 수량(銖兩)의 가격이 일정한 데서 권형(權衡)의 손에 있게 하여, 기자이화(奇貲異貨)가 가호도력(家至戶歷)하여 오만의 값에 팔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직阁下께서 양지(諒之)하십시오. 경독존엄(輕黷尊嚴)하여 신거지치(悚懼之至)함이 이만하지 못합니다. 재배(再拜).

153. 與皇甫若水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2B, ITKC_MO_0003A_A001_242C ...

원문

某啓。昨於梁君之廬。得足下所撰樂章六篇。手披目覩。反覆成誦。且欣且慶。輒用歎服。非有厚也。誠公義之然也。僕觀近古已來□本朝制作之體。與皇宋相爲甲乙。而未聞有以善爲樂章名于世者。以爲六律之不可辨。而疾舒長短淸濁曲折之未能諧也。嗟乎。此亦當世秉筆爲文者之一惑也。苟曰能曉音樂之節奏。然後乃得爲此。則其必待師曠之瞽然後爲耶。蓋虞夏之歌。殷周之頌。皆被管弦流金石。以動天地感鬼神者也。至後世作歌詞調引。以合之律呂者皆是也。若李白之樂府。白居易之諷諭之類。非復有辨淸濁審疾徐度長短曲折之異也。皆可以歌之。則何獨疑於此乎。僕嘗歎世無作者。屢欲爲之。而力不暇久矣。足下負超卓之才。學博而識精。氣淸而詞雅。今又於樂章。推餘刃而爲之。正聲諧韶頀。勁氣沮金石。鏗鋐陶冶。動人耳目。非若鄭衞之靑角激楚以鼓動婦女之心也。論者或謂淫辭艶語。非壯士雅人所爲。然食物之有稻也粱也。美則美矣。固爲常珍。至於遐方怪產。然後乃得極天下之奇味。豈異於是哉。彼貧尋嗜瑣者。其言不足恤也。僕每爲文。出而示乎人也。未嘗喜怒於人之笑與譽者。以其猶有吾子之知之也。足下文章。誠盡善矣。其知而賞音者。亦自以爲無出於僕矣。今辱見示副本。富我以琳琅圭壁之寶。亦足下博我之貺也。讀其詞而益知吾子之所用心將復有深於是者。庶幾繼以垂示。以慰牢落。將歸紺岳。悤悤不宣。謹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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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뢰옵니다. 어제 양군(梁君)의 묘실(廬)에서 그대께서 지으신 악장(樂章) 여섯 편을 얻었사옵나니, 손으로 펼치고 눈으로 살펴 보며 되풀이하여 외웠사옵나니, 기쁘고 경사스러워하며 감탄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사옵나이다. 이는 두터운 사사로운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실로 공의(公義)가 그러하기 때문이니이다. 내가 근세 이후의 본朝의 제작(制作) 체제를 살펴보니 황송(皇宋)과 서로 갑을을 다투었으나, 악장에 능하여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자는 듣지 못하였사옵니다. 이는 육률(六律)을 분별하지 못하여, 빠르고 느림, 길고 짧음, 맑고 탁함, 굽힘과 펴짐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하옵니다. 아아, 이것 또한 당세에 글을 쓰는 자들의 한 가지 미혹임이로소이다. 만약 음악의 리듬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이를 지을 수 있다 한다면, 반드시 사광(師曠)의 소견(瞽)을 기다려야 하겠는가. 대개 우하(虞夏)의 가요와 은주(殷周)의 송(頌)은 모두 관현(管弦)에 실려 금석(金石)에 흐르며, 천지를 동하고 귀신감동시켰사오며, 후세에歌詞와 調引을 지어 율려(律呂)에 합한 것들도 모두 그러하오며, 이백(李白)의 악부(樂府)와 백거이(白居易)의 풍어(諷諭) 같은 것들은 다시 맑고 탁함을 분별하고 빠르고 느림을 살피며 길고 짧음과 굽힘과 펴림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었사오며, 모두 노래할 수 있었으니, 어찌 유독 이것에 대해 의심하리오. 내가 흔히 세상에 작가(作者)가 없음을 탄식하며, 자주 이를 지으려 하였으나 힘이 여의지 못한 지 오래였사옵니다. 그대는 초탁(超卓)한 재능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학식이 넓고 식견이 정밀하며 기상이 맑고 문장이 아하시오며, 이제 또 악장에 여력을 밀어 넣어 이를 지으셨사오니, 정성(正聲)이 소아(韶頀)와 조화를 이루고劲氣가 금석을 무너뜨리시니, 경황(鏗鋐)하고 토야(陶冶)하여 사람의 귀와 눈을 움직이시었사오며, 정위(鄭衛)의 청각(靑角)과 격초(激楚)로 부녀자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것과 같지 않사옵니다. 논하는 자들 중에는 음辞와艳語가 장사(壯士)와 아인(雅人)이 지을 바 아니라고 하는 자도 있사오나, 음식에 도량(稻粱)이 있는 것과 같아서, 아름답기는 아름답되, 본디 상진(常珍)이오며, 지극히 먼 지방의 기이한 산물이어야 비로소 천하의 기미(奇味)를 극진히 얻을 수 있사오니, 어찌 이것과 다르리오. 빈약하고 세속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들의 말은 고려할 가치도 없사옵니다. 내가 글을 지을 때마다 남에게 보여 주되, 남의 웃음과 칭찬에 기쁨과 노여움을 두지 않았사오니, 그대께서 나를 아시는 바가 있기 때문이오며, 그대의 문장은 진실로 진선(盡善)하오며, 그대를 알고 음률을 즐기는 자들도 또한 스스로 그대보다 나은 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오오며, 이제 부디 사본(副本)을 보여 주시어, 구슬과 옥벽 같은 보물로 나를 부유하게 하셨사오니, 또한 그대의 나를 넓혀 주시는 은택이오오며, 그 글을 읽고 더욱 그대의用心이 다시 이에 깊을 줄 알겠사오니, 차차 내려 보내시어, 외로운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를 바라오오며, 장차 금악(紺岳)으로 돌아가려 하오니, 소홀히 하여 아뢰지 못하오오며,謹白하오오이다.

154. 與眉叟論東坡文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3A

원문

僕觀近世。東坡之文大行於時。學者誰不伏膺呻吟。然徒翫其文而已。就令有撏撦竄竊。自得其風骨者。不亦遠乎。然則學者但當隨其量以就所安而已。不必牽強橫寫。失其天質。亦一要也。唯僕與吾子雖未嘗讀其文。往往句法已略相似矣。豈非得於其中者闇與之合耶。近有數篇。頗爲其體。今寄去。幸觀之以賜指敎。不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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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근세에 동파(東坡)의 문장이 세상에 크게 유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학자들이 어찌 감히 복종하지 않고 읊조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단지 그의 문장만 즐기었을 뿐입니다. 비록 찢어 붙이고 훔쳐 쓴 곳이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 풍골을 얻은 자는 얼마나 먼 일입니까. 그렇다면 학자들은 다만 자신의 재량에 따라 편안함을 구할 따름이어야 할 뿐, 억지로 억지로 써서 천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 또한 중요한 점입니다. 오직 저와 당신께서는 비록 그의 문장을 읽지 않았으나, 문장의 법도가 이미 약간 유사하였습니다. 어찌 그 가운데 얻은 바가 암묵적으로 합치하지 않았겠습니까. 근일에 몇 편을 지었는데, 그 체재에 꽤 따랐습니다. 이제 보내오니, 보시고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세히 쓰지 못합니다.

155. 答靈師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3B, ITKC_MO_0003A_A001_243C

원문

某頓首啓。去九月時傳法阮謙師至。得吾師書。勞問敎誨勤勤備悉。日欲奉謝。而性不便書。稽留至今。悚息悚息。僕觀人文章。未嘗妄敢題跋。書中所云榜文。其所見者何時也。所跋者又何辭也。擧不能知之。豈俗子妄托吾名而爲之耶。晉宋已來。浮屠多以詩名於世。至其著述。則雖其尤所謂傑然者。未有能窮其源。蓋比興與著述異。故吾儒之人。莫得而兼之。則況浮屠耶。吾師果能此。其賢於人遠矣。若其名儒之說。固吾所欲辨之者。夫世所謂名儒者。不過工章句取科第爾。果如是而爲名儒。則何擾擾焉名儒之多耶。不唯今世所不見。雖古亦少。若賈誼,司馬遷,韓愈,柳子厚輩是也。以漢,唐之盛。其事業之尤著顯。卓然可見者止此而已。近古又有歐陽永叔。尙古文以排諸子。至號今之韓愈。王介甫祖述墳典。明先聖之道。蘇子瞻牢籠百氏。以窮著作之源。亦眞名儒也。無名儒之實而竊其名者。亦吾道之罪人也。誠不願爲之。若有與僕以此者。則謹再拜而辭。不敢當也。不敢受也。幸不復導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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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절하며 아뢰노라. 지난 구월에 법을 전하는 승려 원천(阮謙) 스님이 오셨으니, 스님의 편지를 받아 부름과 가르침이 정성스럽고 상세함을 알았노라. 날마다 답장을 올리고자 하였으나, 내 성품이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아 오늘까지 미루었노라. 두렵고 두려워하오. 내가 사람의 글을 볼 때, 함부로 제목을 달거나跋을 씀을 감히 하지 않노라. 편지에 언급된 방문(榜文)은 언제의 것을 본 것이며,跋을 쓴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나는 모두 알 수 없노라. 혹시 세속의 무지한 자가 내 이름을 함부로 빌려 만든 것은 아닌가? 진·송 이후 불교 승려들이 주로 시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으나, 그들의 저술에 이르러서는 비록 특히 뛰어난 자라 할지라도 그 근원을 다 파고든 이는 없었노라. 이는 비흥(比興)과 저술이 다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유가 사람들은 감히 이를 겸하지 못하였으니, 더구나 불교 승려이랴. 스님이 과연 이를 할 수 있다면, 그 분은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시니라. 만약 명유(名儒)의 설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본래 내가 변증하고자 하는 바니라. 세상이 말하는 명유라 함은 단지 장구(章句)에 능하여 과제(科第)를 취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오. 만약 그렇게 하여 명유가 된다면, 어찌 이토록 혼란스럽게 명유가 많은 것인가? 오직 오늘날 세상에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대에도 적었으니, 가의(賈誼), 사마천(司馬遷), 한유(韓愈), 유자후(柳子厚) 등이 그러하오. 한나라와 당나라의 성대함으로 그 업적이 특히 두드러져 뚜렷이 보이는 자는 오직 이들뿐이었노라. 근세에는 또欧阳영숙(永叔)이 있어 고문을 숭상하여 제자(諸子)를 배격하니, 마침내 오늘날의 한유라 불렸고, 왕안석(王介甫)은 분전(墳典)을 종사하여 선성(先聖)의 도를 밝히며, 소식철(蘇子瞻)은 백가(百家)를 포용하여 저술의 근원을 다 파고들었으니, 또한 참된 명유라 할 수 있노라. 명유의 실체는 없으면서 그 이름만 훔친 자는 또한 우리 도의 죄인이니라. 진실로 나는 그런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노라. 만약 이와 관련하여 나에게 말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경건히 두 번 절하며 사양하노라. 감히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며, 감히 받지 않겠사오니, 부디 다시는 이를 유도하지 마시기를 바라노라.

156. 上李學士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3D, ITKC_MO_0003A_A001_244A

원문

文之難尙矣。而不可學而能也。蓋其至剛之氣。充乎中而溢乎貌。發乎言而不自知者爾。苟能養其氣。雖未嘗執筆以學之。文益自奇矣。養其氣者。非周覽名山大川。求天下之奇聞壯觀。則亦無以自廣胸中之志矣。是以。蘇子由以爲於山見終南嵩華之高。於水見黃河之大。於人見歐陽公,韓大尉。然後爲盡天下之大觀焉。恭惟閤下以雄文直道。獨立兩朝。爲文章之司命。一時多士莫不仰而宗師。僕常願摳衣函丈。執弟子禮。與其門人賢士大夫。然後將以退理其文。而自難以來。久去京師。卑賤之迹。愈遠而疏。故肩不摩於夫子之墻。名不聞於賓客之末。恐遂埋沒。無以激發其志也。近者。伏聞閤下語及鄙著。趣令寫進。因竊自謂幸以薄技得效於前。覩賢人之光耀。聞言以自法。則雖不見終南嵩華黃河高且大。歐韓二公之奇偉。而足以無憾焉。所著逸齋記。謹錄以獻左右。儻垂一字以示褒貶。則終身之幸。終無以過也。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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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배우기 어렵고 또한 배워서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강직한 기운이 가운데에 충만하여 용모에 넘쳐나고, 말에서 발현되어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 기운을 기를 수 있다면, 비록 붓을 들어 배우지 않았더라도 문장은 더욱 스스로 기이해진다. 그 기운을 기른다는 것은 반드시 유명한 산과 큰 강을 두루 둘러보고, 천하의 기이한 소식과 장엄한 경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또한 가슴속의 뜻을 넓힐 길이 없다. 그러므로 소자유는 산에서 종남·송화·화산의 높음을 보고, 물에서 황하의 크기를 보며, 사람에서 양공과 한태위를 본 뒤에야 천하의 큰 경관을 다 본 것이라고 여겼다. 공경하건대, 폐하께서는 웅대한 문장과 곧은 도리로 두 조에 독립하여 문장의 사명을 맡으셨으니, 한때의 많은 선비들이 모두 우러러 스승으로 삼지 않음이 없습니다. 저는 항상 옷깃을 들어 큰 스승께 배례하고 제자의 예로써 그 문인들과 현명한 선비들을 대한 뒤에, 물러나서 문장을 다듬어 스스로 어렵게 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난리가 일어난 이후로 오랫동안 경성을 떠났으므로, 천한 제자의 자취는 더욱 멀어지고 소원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제 어깨가 선생의 벽에 닿지 못하였고, 이름이 손님들의 끝자락에 들리지 못하여, 마침내 묻혀버릴까 두려워 그 뜻을 격발할 길이 없습니다. 최근 공경히 들으니, 폐하께서 저의 지은 글을 언급하시며 급히 써서 올리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비록 얕은 재주로 이전에 공헌할 수 있어 어진 사람의 광휘를 보고, 말을 들어 스스로 본받으니, 비록 종남·송화·황하의 높고 큼과 양·한 두 공의 기이하고 위엄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로써 부족함이 없足以할 것입니다. 지은 『일재기』를 정성껏 베껴서 폐하께 바칩니다. 만약 한 글자라도 내려주어 칭찬하거나 비판해 주신다면, 그것은 평생의 행운으로 그 어떤 것도 더할 수 없습니다. 경건히 아뢰옵니다.

157. 上刑部李侍郞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4B, ITKC_MO_0003A_A001_244C

원문

某叩頭再拜獻書于刑曹學士閤下。僕聞燕之谷。去中國不知其幾千里也。大和蒸物。無間遠近。而獨其地不生黍。固天地間一窮谷也。有鄒衍者。吹律於其間而暖之。然後一點和氣從大虛中來。物得以生而煕煕然春矣。嗚呼。與天地間窮谷爲春者鄒子也。與天地間窮民爲春者閤下也。恭惟閤下以眞人之德。其喜怒通於四時。凄然似秋。暖然似春。吹枯噓榮。人被其澤者多矣。某也氷氏之子。生於沍寒涸陰之鄕。頑顏鈍頰。慘懍凄涼。有氷雪之容。身殘家敗。食貧口衆。爲寒窘所迫。遂之江東。乞丐爲生。凡五移星霜。以今年春首。西笑而旋。久寄旅泊。囊橐傾竭。弱妻寡妹。蓬飄蓮斷。一在天之涯。一在地之角。無寸田尺宅可以聚而容膝。每一念之。不覺涕下。僕之先祖嘗從草昧之際。功成汗馬。圖畫凌煙。以丹書鐵券。錫之士田。永世無絶。而反爲兵士所奪。故郭外數畝。無日可得。而淵明之歸去來。久不能賦。某肩不摩於夫子之墻。名不聞於賓客之席。今乃手携長牋。筆話羈愁。疾聲大呼。以乞憐於左右者。不唯他人笑之。僕亦自笑之。然而垂哀於不報之人。推德於無用之地。非盛德至仁。固不可語。擧今之世。唯閤下可以望乎此爾。是敢聲其哀而不自疑焉。冀閤下噢咻泠族。挫抑豪民。振頽綱於將墜之日。訊鞠其人而處置之。使僕復得汙萊之舊地。則全家百指。朝飢寒而暮飽暖者。皆閤下爐中之造化也。未識與之爲春否乎。輕黷尊嚴。無任惶恐。某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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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두 번 절하며 형조 학사(刑曹學士)의 문하에 글을 올립니다. 저는 연(燕)의 계곡이 중국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대화(大和)가 만물을 무르익게 함에는远近의 간격이 없는데도 유독 그곳에서는 수(黍)가 자라지 않으니, 진실로 천지 간에 가장 외진 계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조연(鄒衍)이라는 자가 있어 그곳에서 율(律)을 불어 따뜻하게 하니, 그제야 한 점의 화기(和氣)가 태허(太虛)에서부터 내려와 만물이 생육되어 희희낙락하며 봄이 되었나이다. 아아, 천지 간 외진 계곡에 봄을 가져다준 이는 조자(鄒子)요, 천지 간 외로운 백성에게 봄을 가져다주신 이는阁下(각하)이시니이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각하는 진인(眞人)의 덕을 갖추어 기쁨과 노여움이 사계절과 통하시니, 서늘하심은 가을 같으시고 따뜻하심은 봄 같으십니다. 마른 것을 불어 일으키고 시든 것을 불어 꽃피게 하시니, 그 은혜를 입은 사람이 많으시옵나이다. 신은 빙씨(氷氏)의 자손으로, 혹한과 고요한 음기(陰氣)가 고인 고장에서 태어나, 완고한 얼굴과 둔한 뺨을 가지고 있어 차갑고 서늘하며 두려움과 슬픔이 가득하여 빙설 같은 용모를 지녔습니다. 몸은 병들고 집은 망하여 가난한 음식을 먹으며 입은 많으니, 추위와 궁핍에 쫓겨 강동(江東)으로 가서 거지처럼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다섯 해 동안 해가 바뀌었는데, 올해 초봄에 서쪽을 향해 웃으며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여관에 기거하며 머물렀으나 주머니와 가방은 모두 비어 버렸고, 약한 아내와 고아 같은 여동생은蓬飄蓮斷(붕표연단: 부들깃이 날리고 연꽃이 끊어짐)하듯 흩어져 한 사람은 하늘 끝, 한 사람은 땅 구석에 있으니, 좁은 밭 한 모퉁이와 작은 집 한 채조차도 모여서 무릎을 꿰고 쉴 곳이 없습니다. 이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저절로 떨어집니다. 신의 선조께서도 혼돈의 시기에 따라 마상 공훈을 세우고凌煙(릉연)에 그림을 그려, 단서철권(丹書鐵券)으로 토지를 하사받아 대대로 끊이지 않게 하였으나, 오히려 병사들에게 빼앗겨 성 밖 몇 무덤의 땅조차도 매일 얻을 수 없었으며, 은명(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를 오래도록 지을 수 없었습니다. 신은 부자의 벽에 손을 비비지 못했고, 손님의 자리에서 이름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긴 편지를 들고 발로 걸으며 이별의 근심을 말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 좌우(左右)에게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걸하는 것은, 남들이 웃을 뿐만 아니라 신 스스로도 웃게 만듭니다. 그러나 보답할 수 없는 사람에게 자비를 구하고, 쓸모없는 곳에 덕을 미친다면, 성덕과 지인(至仁)이 아니면 굳이 이야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세상에 오직 각하께만 이를 바랄 수 있사오니, 이에 감히 그 슬픔을 소리 내어 말하며 스스로 의심하지 않나이다. 각하께서 불쌍히 여겨 식족(族)을 어루만지고, 호민(豪民)을 억누르며, 무너지려 하는 시기에 무너진 법도를 일으켜, 그 사람을 심문하여 처치하게 하시면, 신이 다시 황무했던 옛 땅을 되찾아, 온 집안 백 지(指: 가족)가 아침에는 배고픔과 추위를 겪다가 저녁에는 배부름과 따뜻함을 얻게 될 것이니, 이는 모두 각하의 가마솥 속造化(조화)가 되리이다. 각하께서 신에게 봄을 가져다주실는지 모르겠사오니, 존엄을 가볍게 모독하여 두려움과 공경함이 끝이 없나이다. 신이 두 번 절합니다.

158. 與王若疇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4D, ITKC_MO_0003A_A001_245A ...

원문

某頓首再拜兄王先生足下。前四五日。皇甫沆問病至旅舍。因言兄聞僕以疾廢擧。嗟痛驚愕。出於誠懇。迺知大君子之篤於仁愛也。僕之親與舊者多矣。至於行己本末。未有如兄所知之詳也。故今欲爲兄一言焉。僕自幼不好他技。博奕投壺。音律射御。一無所曉。唯讀書學文。欲以此自立。而恥藉門戶餘陰以干仕宦。故先君柄用時。豈求取祿利。以爲己榮哉。況先君或強之仕。而不從者屢矣。此亦年少氣銳。未更世變。信心直遂。不識幾微耳。其持心甚高。礪節益堅。遂以文名於世。以是日自負。頗凌轢人物。誠自有之。笑罵仇疾者粉飾無狀。一犬吠形。千犬吠聲。漸成怪物。而中路陷阨。立身一敗。萬事瓦裂。孤危顚踣。無路可振。旣朝無知己大人之所拯拔。其所望以爲階梯者獨科第耳。今又蹇滯如此。僕之衰危。又可寒心。且其人有暴貴劇顯而後乃衰廢者。中雖遭摧抑而晚或享其榮顯者。有前與後皆不貴達。而終其身不及於禍者。皆不一如是。而僕所遭罹。獨無一日忘慼慼者何哉。將先世餘殃所積。特鍾於僕。必欲勦絶而不起耶。抑向以疏狂謬戾。人多嫉媢。故爲衆口所鑠而然耶。有不可測者。兄其以僕爲釋悶解疑乎。又有可怪者。流輩中以僕年少號有才能。而巧取科第者。洽然同稱。固僕所懍懍不欲聞也。甚矣世俗之陋於知人而好妄論也。僕非求名聲者。然譽人不以實。不如不譽之安也。其有評我者。兄勿以知文許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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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顿首再拜(도수재배)하여 형제 왕선생님께 아뢰옵니다. 지난 사오일 전에 황부항(皇甫沆)이 병문안하러 여관에 왔다가, 형님께서 제가 병으로 인해 과거 시험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고 놀라워하심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는 진심으로 우러난 정에서 비롯된 것이니, 대군자께서 인애(仁愛)에 두터우심을 알 수 있사옵니다. 제게 친하고 옛부터 아는 이들이 많으나, 행실의 본말에 있어서는 형님께서 저를 자세히 아시는 바가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이제 형님께 한 말씀 드리려 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다른 기술에는 관심이 없었으니, 바둑이나 주사위, 투호(投壺), 음악, 사격, 마술 등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책을 읽고 글을 배우며, 이것으로 스스로 서고자 했을 뿐, 문중의 남은 은혜에 기대어 벼슬을 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선군(先君)이 권력을 잡으셨을 때, 어찌하여 제 자신의 영달을 위해禄利(녹리)를 구했겠습니까. 더구나 선군께서 벼슬을 권하셨을 때에도 여러 번 거절했습니다. 이는 또한 젊어서 기세가 등등하여 세상의 변화를 겪지 못했고, 믿는 대로 곧장 나아갔을 뿐, 미묘한 기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가짐은 매우 높았고, 절개를 닦아 더욱 견고했기에, 마침내 문명(文名)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습니다. 이로 인해 날마다 자부심이 강해져, 인물들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는 진실로 저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웃음과 욕설, 원한과 질투를 일으키며 무례하게 꾸미는 자들은, 개 한 마리가 형체를 보고 짖으면 천 마리가 소리에 따라 짖듯, 점차 괴물이 되어 중도에 곤경에 빠지고, 입신양명이 한 번 무너지자 만사가 깨어지고, 고립되어 위태롭게 넘어져 다시 일어설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미 조정에는 나를 구해 줄 친한 어른이 없고, 기대하던 계책은 오직 과제(科第)뿐이었습니다. 이제 또 이렇게 막혀 있으니, 제 쇠약하고 위태로운 처지는 또 한 번 서늘한 마음을 일으키게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급히 귀현한 뒤에 쇠퇴하고 폐지된 자도 있고, 중간에 억압을 당했으나 늦게 그 영달을 누린 자도 있으며, 전후로 모두 귀달하지 못해 종신에 화를 입지 않은 자도 있습니다. 모두 이와 같지 않은데, 제가 당한 고난은 하루도 잊지 않고 근심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장차 선세의 남은 재앙이 쌓여 특별히 저에게 집중되어, 반드시 뿌리째 끊어지지 않고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전에 소란스럽고 옳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질투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입으로 녹아내린 탓입니까. 알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형님께서 저를 위해 근심을 풀고 의문을 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놀라운 일이 있으니, 유행하는 무리들 중에는 제가 어리다고 하여 재능이 있다고 칭송하며, 교묘하게 과제를 취한 자들을 함께 칭찬합니다. 이는 진실로 제가 두려워하며 듣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세속의 사람들이 사람을 아는 것이 얕고 망령된 논의를 좋아하는 것이 심하도다. 저는 명성을 구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을 칭찬할 때 실상이 아니면, 칭찬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저를 평론하는 자가 있다면, 형님께서는 저를 문장을 아는 자로 여기지 마십시오.

159. 與皇甫若水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5C, ITKC_MO_0003A_A001_245D ...

원문

啓。近有京師人至。言試圍當罷而首以足下爲稱。若果爾。誠所賀也。僕豈不素料之耶。但喜與平昔之望偕焉耳。近世取士。拘於聲律。往往小兒輩咸能取甲乙。而宏博之士多見擯抑。故朝野嗟冤。吾恐玆弊已久。不可一旦矯之。今乃僅而獲足下。僕在遠地。不能盡識其餘。亦得人之盛也。足下以名父之子。大振家聲。學精業茂。年又甚少。其濯髮雲漢。垂光虹霓。踐文昌登禁掖者。不旦卽夕也。譬如趫者之升梯。擧足愈多而身愈高人愈仰耳。苟非奕世文章之胄。能如是耶。僕廢錮淪陷。爲世所笑。屛居僻邑。坐增孤陋。學不益加。道不益進。遂爲庸人矣。凡作文。以氣爲主。而累經憂患。神志荒敗。眊眊焉眞一老農也。其時時讀書。唯欲不忘吾聖人之道耳。假令萬一復得應科擧登朝廷。吾已老矣。無能爲也。所念者。吾家俱以文章。名於當代。僕若棄遐荒。莫承遺緖。則亦終身之恥也。然至此豈非命歟。是以。放情丘壑。無處世意。常與獵夫漁者。上下水陸。游蕩相狎。略無拘檢。如此足以無恨矣。自頃年已來。一時交遊者零落殆盡。使人悲傷。僕完支體。以至今日。苟卒以樂死。是亦幸矣。是非榮辱。又何足道耶。況僕以疏狂。獲罪於世。吠者成群。非困辱如此。何以悅其仇嫉者之心耶。此尤所以甘如飴者。僕略觀當世士大夫。志於遠且大者甚少。但以科第爲富貴之資而已。其遒然霈然。橫行闊視於綴述之場。可以興西漢之文章者。捨足下誰耶。勉之勉之。所寄去二篇。亦欲觀吾志之所存者。不具。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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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합니다. 근경에 경사에서 온 사람이 와서, 시위(試圍)가 당분간 중단될 것이라고 하며, 그 첫 번째로 선생님을 거론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진정으로 축하할 일입니다. 제가 어찌 평소부터 그와 같이 예상하지 않았겠습니까. 다만 기쁨이 평소에 품어 왔던 소망과 함께 이루어졌을 뿐입니다. 근세에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성률(聲律)에 구애되어, 종종 어린아이들조차 갑을(甲乙)의 성적을 거두곤 합니다. 반면 광박한 학식을 가진 선비들은 대부분 배척과 억압을 받기 때문에, 조정과 사방이 탄식하고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이 폐단이 이미 오래되어 하루아침에 바로잡기 어렵다고 우려해 왔습니다. 이제야 간신히 선생님을 얻었으니, 저는 먼 곳에 있어 나머지 인물들을 모두 알 수는 없으나, 그래도 인재를 얻은 성대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명망 높은 부친의 아들로, 가문의 명성을 크게 떨치셨으며, 학문이 정밀하고 업적이 성숙하며, 또 나이가 매우 어리십니다. 은하수를 씻듯 한결같은 절개를 갖추고, 홍도와 단비를 드리운 듯 빛을 발하시니, 문창성(文昌星)을 밟고 금掖(황제의 부엌이나 관청)에 오르시는 날은 아침이 되면 저녁이 될 것입니다. 마치 뛰어난 등반가가 사다리를 오르는 것과 같아서, 발을 내딛을수록 몸은 더 높아지고 사람들은 더욱 우러러봅니다. 만약 세대에 걸쳐 문장을 이은 가문의 후예가 아니라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벼슬길에서 배제되어 몰락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며, 외진 고을에 은거하며 홀로 외로움과 무지를 더해 갑니다. 학문은 더욱 나아지지 않고 도(道)도 진전되지 않아, 결국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릇 문장을 짓는 데는 기(氣)가 주가 되는데, 저는 여러 번의 근심과 고난을 겪어 정신이 황폐해지고, 눈이 어두워져 진실로 한 노농부(老農夫)와 다름없습니다. 그때때로 책을 읽는 것은 오직 성인의 도를 잊지 않기 위함일 뿐입니다. 만일 운이 좋아 다시 과거에 응시하여 조정에 등용된다 하더라도, 저는 이미 늙었으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바는, 우리 집안은 모두 문장으로 당대에 명성을 떨쳤는데, 제가 먼 곳으로 버림받아 유업을 이어받지 못한다면, 이는 평생의 치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이르렀으니, 이는 운명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산수(丘壑)에 정을 풀어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항상 사냥꾼과 어부와 함께 수륙을 오가며 유랑하고 친교를 맺으며, 조금도 구속과 검약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지낼 수 있다면足以히 한이 없겠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때 교유하던 이들이 거의 모두 흩어져 버려, 사람을 슬프게 합니다. 저는 온전한 신체를 지니고 오늘까지 살아왔으니, 만약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것 또한 행운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영광과 치욕을 논하겠습니까. 하물며 저는 소란스럽고 광기 어린 성품으로 세상의 죄를 얻어, 짖는 개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들었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곤궁하고 치욕을 당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들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자들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오히려 제가 달콤한 사탕처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유입니다. 제가 대략 당세의 사대부들을 살펴보건대, 원대하고 큰 뜻을 품은 이는 매우 적고, 다만 과거 급제를 부귀의 수단으로 삼을 뿐입니다. 그 기세가 강건하고 우뚝하여, 문장 짓는 시장에서 횡행하며 넓고 크게 바라보며 서한(西漢)의 문장을 일으킬 수 있는 이는, 선생님을 제외하고 누가 있겠습니까. 힘쓰십시오, 힘쓰십시오. 보내드린 두 편의 글도, 제 마음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고자 함이니, 자세히 쓰지 못합니다. 경건히 계하합니다.

160. 與趙亦樂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6B, ITKC_MO_0003A_A001_246C

원문

某頓首師友趙先生足下。昨者與安定皇甫沆見顧病中。哀悵惻怛。形於辭色。自非卓然見獨。不以進退出處爲念者。誰肯辱與往還哉。僕性本曠達。好問大道。不樂爲世俗應用文字。但少爲父兄所強。未免作之。自遭難。廢而不爲者久矣。今旣寒窘。思其所以取仕進而具裘葛養孤窮者。非此術莫可。故出而迺取時所謂場屋之文者讀之。工則工矣。非有所謂甚難者。誠類俳優者之說。因自計曰。如是而以爲文乎則雖甲乙。可曲肱而有也。曾不知遽爲造物小兒所困。遂奪之志也。此天命要不可逃。嗟乎。自古賢人才士例多窮厄矣。而無有如僕者。子美之流落。韓愈之幼孤。摯虞之飢困。馮唐之無時。羅隱之不第。長卿之多病古人特犯其一。而亦已爲不幸人。僕今皆犯之。豈不悲哉。夫達人以窮達爲寒暑。未嘗不任眞推分。怡然自愛。僕學此久矣。故不欲以憂患細故介吾胸次。且一涉世故。懲而不再者智士也。僕旣屢困場屋。將自誓不復求之。所願者。時時從足下問易大旨。以不忘吾聖人道耳。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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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某)가 머리를 조아려 사부(師友)인 조(趙) 선생께 아뢰옵니다. 어제 안정(安定)皇甫沆이 병중에 있는 저를 찾아와 주셨는데, 슬픔과 원한이 얼굴과 말씨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만약 탁월하게 홀로 깨달아 진퇴(進退)와 출사(出仕) 및 은퇴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저와 왕래해 주겠습니까. 제 본성은 원래 광달(曠達)하여 큰 도(道)를 묻는 것을 좋아하고, 세속의 응용문자(應用文字)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릴 적 부형과 형제들에게 강요당해 어쩔 수 없이 글을 썼을 뿐입니다. 난리를 만난 이후로는 폐하고 쓰지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이미 가난하고 궁핍하여 출사하여 관직에 나아가고, 겨울에는 두꺼운 옷과 여름에는 얇은 옷을 갖추어 고아와 궁한 사람들을 부양할 방도를 생각하니, 이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와서 당시 장원(場屋)에서 통용된다는 문장들을 읽었습니다. 비록 훌륭하긴 하지만,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진실로 가무꾼이나 연극배우의 말장난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길, 이렇게 해서 글을 쓴다면 비록 갑을(甲乙)을 가릴지라도 팔을 굽혀 베개 삼아도 편안하게 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갑자기 조물주(造物)의 장난감에 얽매여 뜻이 꺾이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천명(天命)이라 도망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차! 옛날부터 현인과 재사들은 대부분 궁핍하고 고난을 겪었으나, 저처럼 된 이는 없었습니다. 자미(子美)의 유랑, 한유(韓愈)의 어릴 적 고아 생활, 지우(摯虞)의 기근과 곤궁, 풍당(馮唐)의 적기(適期)를 만나지 못함, 나은(羅隱)의 불제(不第), 장경(長卿)의 다병함. 옛사람들은 특별히 그중 하나만 범했을 뿐인데도 이미 불행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지금 모두를 범하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달인(達人)은 궁달(窮達)을 더위와 추위처럼 여기며, 항상 진리(眞)를 따르고 분수(分數)를 밀어붙여 기꺼이 자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이 점을 오래도록 배웠으므로, 근심과 고난 같은 사소한 일로 제 가슴속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한 번 세속의 일에 관여했다가 징계를 받고 다시는 시도하지 않는 것이 지사(智士)의 도입니다. 저는 이미 여러 번 장원(場屋)에서 곤란을 겪었으니, 스스로 맹세하여 다시는 구하지 않겠습니다. 소원인 것은 때때로 선생께 나아가 역(易)의 대강(大旨)을 여쭈어 우리 성인의 도(道)를 잊지 않을 뿐입니다. 경건히 아뢰옵니다.

161. 同前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6D

원문

某啓。自古困場屋者。遂至汩沒者多矣。至於僕則尤有所不可曉者。求試于有司。凡二擧而不中。後遭難依違。遷就至今。纔三擧而鬚鬢幾白。又輒廢以疾病。則彼漠漠者。固有使之然耳。此項羽所謂天亡我。非戰之罪也。僕每念天之禍罰深重如此者。殆由名過其實耳。名者公器。不可得取。蘇子瞻以爲與無功而受千鍾者罪均也。誠哉言乎。僕不願足下輩務相褒譽以益其過也。若使取虛名而招實禍。顧何益哉。嗟呼。僕旣無用。竊自比盛世之胥吏卒伍。而不可得。至譬愚夫愚婦。又無有如僕者。甘自廢棄。不復出其技藝以求聞於人代矣。足下以雄才遭明時。宜卓然有所立者。且文章之衰未有甚於今日。當賴足下輩三四人迭唱更和而振起之。則其功豈細也哉。欲與足下言者無窮。而紙盡筆禿。止書如此。不具。某謹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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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뢰옵니다. 옛적부터 과거에 낙방하여 고난을 겪은 자들은 결국 세속에 물들어 망실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에게 이르러서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관리들에게 시험을 보아 두 번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고, 이후 난리를 만나 유예하고 타협하며 오늘에 이르렀으니, 겨우 세 번 응시하여 수염과 머리카락이 거의 하얗게 되었으며, 또다시 질병으로 인해 시험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니 저 무심한 운명(천명)이 필연적으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항우가 말한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전쟁의 죄가 아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저는 하늘이 저에게 이렇게 깊은 벌을 내리심은, 아마도 이름이 실속을 초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름은 공적인 것이니 함부로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소자첨(蘇子瞻)은 공로 없이 천 종(千鍾)의 녹을 받는 것과 죄가 같다고 여겼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저는阁下들이 부디 저를 지나치게 칭찬하고 칭송하여 저의 과오를 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허명(虛名)을 취하여 실화(實禍)를 초래한다면, 도대체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하아! 저는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 은거하여盛世의 서기나 병졸들과 스스로 비교하려 하였으나 그 또한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지극히 어리석은 백성들에 비유하여도, 저처럼 어리석은 자는 또 없습니다. 스스로 버려져 더 이상 남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위해 재주를 드러내려 하지 않겠습니다.阁下는 뛰어난 재주로 밝은 시대를 만나셨으니, 마땅히 탁연하게 업적을 세우셔야 합니다. 또한 문장의 쇠퇴는 오늘처럼 심한 적이 없었으니, 당장은阁下들 셋이나 넷이 서로 노래하고 화답하며 이를 진작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공적이 어찌 작겠습니까.阁下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무궁무진하나, 종이가 다하고 붓이 닳았으므로 여기까지만 적나니다. 자세히 쓰지 못합니다. 내가 정중히 아뢰옵니다.

162. 與湛之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7A, ITKC_MO_0003A_A001_247B

원문

某再拜湛之足下。辱書敎示。罪責甚大。周覽再三。慼然以慙。此皆足下愛我多重我過。故其恩情益深則怨或易生於其間。理宜然也。僕與足下交久。僕之所守。足下知之熟矣。雖少性倨慢。爲人所嫉。及今多更事故。折節而不爲。乃學方其中圓其外者。常屈己於恒人之前。默默俛首。似不能言。以爲如是。可以無忤於世矣。僕旣能忍於恒人。而不能忍足下之一言者。足下當亦度而知之。宜勿責焉可也。今乃卑其書辭。陰加譙讓。僕之罪則大矣。足下待人之義。得無小乎。是殆以僕窮蹇而衰廢。擧世皆背而馳。足下亦從而悔其知。又無大惡。不能決捨。幸其有微釁。因欲絶之也已。且世之人有朝窮而暮達。情態卽異。遺忘故舊。揚揚自若者。足下以爲賢耶。不圖足下之行義而其所爲或出乎此也。足下誠欲絶僕而不能。又何難哉。僕今窮甚。方將深潛遠遁。不聞乎時。則與足下出處殊途。而足下之庭。可以無某之跡也。雖不待疏。而將自疏焉。足下無求僕過失而惟恐其不絶。痞病比劇。甚無聊。不復一一。惶恐謹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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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번 절하여 전하옵나니, 전하(湛之) 발하옵소서. 부디 편지를 보내어 가르침을 주시니, 죄책감이 매우 큽니다. 두루 살펴 세 번이나 읽으니, 슬프고 부끄러워합니다. 이는 모두 전하께서 저를 사랑하심이 깊고 저를 중히 여기시는 과오가 많기 때문에, 그 정이 깊어질수록 원망이 그 사이에 생기기 쉬워진 것입니다. 이치는 마땅히 그러합니다. 저와 전하의 교분이 오래되었으니, 저의 지키는 바를 전하께서 이미 잘 알고 계십니다. 비록 어릴 적 성품이 거만하고 완만하여 사람들에게 시기받았으나, 이제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 나서 마음을 고쳐먹고 그렇게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곧 학문을 하여 안은 둥글고 밖은 모난(중원외원) 자가 되어, 항상 평범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굽히고, 묵묵히 고개를 숙여 말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세상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미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있었으나, 전하의 한 마디 말은 참지 못하게 되었으니, 전하께서도 헤아려 아실 것입니다. 마땅히 책망하지 않으시면 좋을 것입니다. 이제 이르러서는 그 편지의 말씨를 낮추어 은밀히 책망하고 탓하시니, 제 죄가 이미 크옵니다. 전하께서 사람을 대하는 의리가 조금도 작아지지는 않았습니까. 이는 아마도 제가 궁핍하고 고달파서 쇠퇴하고 폐망하자, 온 세상이 모두 등을 돌리고 달아났으니, 전하께서도 또한 저를 아는 것을 후회하게 되었고, 또 큰 악이 없었기에 결단코 버리지 못하여, 다행히 작은 틈이 있는 것을 빌미로 하여 단절하려 하신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사람 중에는 아침에는 궁핍하다가 저녁에는 달하여, 정상이 즉시 달라져 옛 친구를 잊고 당당히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는 자가 있으니, 전하께서는 이를 어진 자로 여기십니까. 도저히 전하의 행의(行義)를 생각지 못하고 그 행위가 혹 이와 같다고 여기게 되었나 봅니다. 전하가 정말로 저를 단절하려 하여도 할 수 없다면, 또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제가 지금 매우 궁핍하니, 깊이 숨어 멀리 도망하여 세상의 소문을 듣지 않으려 하오니, 그러면 전하와 저의 나아감과 물러남이 다른 길이 되어, 전하의 집안에는 제 자취가 없을 수 있습니다. 비록 단절하기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장차 스스로 멀어질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제 허물을 구하지 마시고 오직 단절되지 않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병이 비단(痞病)보다 더 심하여, 매우 심심하고 답답하여 다시 일일이 말씀하지 못합니다. 공경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아뢰옵나니.

163. 寄山人悟生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7C, ITKC_MO_0003A_A001_247D ...

원문

某謹東望再拜。遙致尺牘于伽耶山人生公侍者。僕觀古賢士之於世。不苟異不苟同。用之則爲帝師。不用則乃窮谷一叟耳。故其動靜語默。皆得其所矣。昨於擾攘之際。人皆深潛遠遁。盜名僞服。以避一時之難。及其神志一變。則不待鶴書之聘。甘心利祿。突梯苟冒。誰復自藏於畔高肥遁之節耶。是以。幽逸之士。古則相望於世。今則罕聞焉。其箕穎之志。始末不渝。淸風爽氣凜凜與秋霜爭嚴。足以激貪汙之志者。唯足下與北原處士權君耳。僕嘗欲拂衣長往。得從之遊。而未獲捫蘿撥雲。一叩山扃。但日夕咨嗟慕望而已。乃知以市井之徒。輕慕山林高蹈之迹。誠亦難矣。嗚呼。旣困而後知歸。不可謂見幾而作也。然欲買土一廛。爲耕農氓。亦足以老死而無戚戚者。嘗遊湍川。山川信美。可以卜居。環江石壁奇絶。其東有一遺墟。訪之乃郡氓之田也。以官租私契之委積。屢欲貨財以緩禍而不售。僕聞而樂之。無貲可買。且無經營之費。今學士李公知命。於僕爲知己。欲借其力而具材於山谷。因有啓獻之已見從矣。當不出夏首。結搆草堂。携家便去。且買江田數頃。以供伏臘。此吾計也。往年秋。遣家僮奉書奔千里。以告菩提寺禪公。求以見助。公旣有報書。若將從其志者。誠所愧喜。且昔人有好周人之急。輕財如糞土者。秦漢間游俠皆能之。但少見於今之世耳。然固亦達人之細事也。在於禪公。亦何所難乎。僕以是率然干請。而不自疑焉。儻有侍側之日。其爲僕從容語及此事。使卒成吾卜築之計。亦大善已。今幷往上李公啓。欲其致之禪公。使知僕干求非出於偶爾。則雖未蒙見助。已若函受其賜矣。素聞足下善草書。每有南人至者。求之未獲。常歉然也。蓋凡書皆象其爲人。觀顏魯公之書。凜乎若誚盧杞而擊希烈。則以足下豪邁拔俗之姿。而知之亦可髣髴其書矣。然終欲見其眞蹟。山中想多暇日。其一爲揮灑。無靳固之。幸甚幸甚。不宣。再拜。

번역

내가 정중히 동쪽을 바라보며 두 번 절합니다. 멀리 가야산의 산인(山人) 생공(生公)의 부름을 받아 편지를 보내옵니다. 제가 고대의 현명한 선비들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살펴보면, 함부로 남과 다르거나 남과 같음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쓰임받으면 제왕의 스승이 되고, 쓰임받지 않으면 깊은 골짜기의 외로운 노인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동과 침묵, 말과 고요함은 모두 마땅한 곳에 있었습니다. 어제 소란스러운 때에 사람들은 모두 깊이 숨고 멀리 도망쳤으며, 이름을 속이고 거짓 복장을 하여 한때의 난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과 의지가 한 번 변하자, 학서(鶴書)의 초빙을 기다리지 않고도 기꺼이 이득과 벼슬을 원하며, 아부하고 구차하게 용납되어 부끄러움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누가 다시 스스로 높은 곳과 기름진 땅을 버리고 은둔하는 절개를 감추겠습니까. 그러므로 은밀하고 고요한 선비들은 고대에는 세상에 서로 마주 볼 만큼 많았으나, 지금은 드물게 들립니다. 기원(箕潁)의 뜻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고, 맑은 바람과 상쾌한 기운이 서릿발과 함께 엄숙하여, 탐욕과 더러운 마음을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과 북원 처사 권군(權君)뿐입니다. 저는 일찍이 옷자락을 털고 멀리 떠나가며 그들과 교유하기를 원했으나, 덩굴을 잡고 구름을 헤치고 산문의 문을 두드려 뵙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낮과 밤으로 탄식하며 사모하고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정(市井)의 무리로서 산림(山林)의 높은 도를 가볍게 사모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알았습니다. 아아. 이미 곤궁한 뒤에야 돌아가야 할 곳을 알았으니, 기미(幾微)를 보고 행동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땅 한 칸을 사서 농부가 되어 늙어 죽으면 근심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我曾遊覽湍川(단천)의 산천이 참으로 아름다워 거처를 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을 둘러싼 바위 절벽이 기이하고绝絶하여, 그 동쪽에는 한 폐허가 있습니다. 찾아보니 그것은 군민(郡氓)의 밭이었습니다. 관세와 사적(私契)이 쌓여 있어, 여러 차례 재물을 팔아 화를 피하려 했으나 팔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듣고 기뻐하였으나, 살 돈이 없고 경영할 비용도 없었습니다. 지금 학사(學士) 이공(李公) 지명(知命)이 저를 알아주는 벗이니, 그 힘을 빌려 산골에서 재목을 갖추려 합니다. 이미 계헌(啓獻)한 바를 따랐으니, 여름 초순을 넘기지 않아 초당(草堂)을 짓고 가족을 데리고 떠나겠습니다. 또한 강변의 전답 몇顷을 사서 복랍(伏臘)의 제사를 준비하려 합니다. 이것이 제 계획입니다. 작년 가을, 가동(家僮)을 보내 천 리를 달려 보리사(菩提寺) 선공(禪公)에게 서신을 전하여 도움을 구했습니다. 공이 이미 답서를 보내셨으니, 제 뜻을 따르려 하는 것 같아 참으로 부끄럽고 기쁩니다. 또한 옛사람 중에는 남의 급한 일을 돕기를 좋아하고 재물을 더럽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있었는데, 진한(秦漢) 사이의 유협(游俠)들은 모두 이를 행했습니다. 다만 오늘날 세상에 드물게 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통달한 사람의 작은 일일 뿐입니다. 선공에게 있어서는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저는 이로써 망령되게 간청하며 스스로 의심하지 않습니다. 만약 곁에 모실 날이 있다면, 제게 이 일을 여유 있게 말씀하여 제 거처를 정하는 계획을 완성하게 해 주시면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제 함께 상서(上書)를 보내 선공에게 전달하게 하여, 제가 간구한 것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 합니다. 비록 도움을 받지 못하더라도, 이미 그 은혜를 받은 것과 같을 것입니다.素來聽說足下(족하)가 초서(草書)에 능하다고 합니다. 남쪽 사람이 올 때마다 구했으나 얻지 못해 항상 미안하게 여겼습니다. 모든 서체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본받으니, 안노공(顏魯公)의 서체를 보면 루기(盧杞)를 책망하고 이희열(李希烈)을 치는 듯 엄숙합니다. 그러므로 족하의 호방하고 속세를 초월한 자질을 알 때, 그 서체를 대략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진적(眞蹟)을 보고 싶습니다. 산중에 생각컨대 여가가 많을 것이니, 한번 붓을 들어 써 주시고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매우 기쁩니다. 자세히 말하지 못합니다. 다시 절합니다.

164. 與契師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8C

원문

某頓首吾師座下。比來。不審道況何似。萬福調護。瞻向之勤。少選不已。不肖蒙恩。無恙遊息。以延歲月。昨者頂謁函丈。仰承高論。亹亹不絶。使人改聽。誠非庸俗之士所能窺其涯畔者也。僕自以性多倨野。未嘗降氣於人。至於吾師。一聞其言。輒服雅量。所謂衞玠淸談平子絶倒者也。昔謝安寓居會稽。與桑門支遁放情丘壑。無處世意。僕本有不羈之志。樂慕方外。而況累經憂患。常歎計不早決耳。今與吾師幸居近地。未能放絶世務。往從杖錫之遊而以遂本意。徒爲林澗之所笑。吁可歎歟。然春初。因事稍間。當造之。披晤不久。心之所抱。遲回而盡。此外惟冀頤神養性。順時自重。以副祈禱。不宣。

번역

아마 뵙겠습니다. 스승님 뵙옵고 아뢰옵니다. 근래에 도경이 어떠신지 잘 모르겠사옵나니, 만복하시옵고 건강히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바라보고 사모하는 정성은 잠시도 그치지 않사옵나이다. 저는 은총을 입어 무사히 유식하며 세월을延命하고 있사옵니다. 어제 장자(丈室)를 친히 알현하여 높은 논의를 받으니, 끝없이 이어지는 말씀은 제 청력을 새롭게 하여, 진실로 평범하고 속된 자들이 그 끝자락을 헤아릴 수 없는 바가 있사옵니다. 저는 본래 성품이 거만하고 야무짐이 많아 남에게 기운을 낮춘 적이 없었사오나, 스승님의 말씀을 한 번 듣자마자 곧 아량하심을服하게 되었사오니, 이것이 바로 위계(衛玠)가 청담을 듣고 평자(平子)가 절도한 고사와 같사옵니다. 예전에 사안(謝安)이 회계(會稽)에 거처하며 승려 지둔(支遁)과 함께 구곡(丘壑)에 정을 풀어 세상에 뜻을 두지 않았사옵니다. 저도 본래 구속되지 않는 지조를 가지고 방외(方外)를 사모하거늘, 하물며 여러 번 근환을 겪으며 항상 계책을 서둘러 결단하지 못한 것을 탄식해 왔사옵니다. 이제 스승님과 함께 다행히 가까운 땅에 거처하나, 세속의 일을 완전히 끊고 지팡이와 지팡이 끝의 종을 들고 다니는 유람을 따라 본뜻을 이루지는 못했사오니, 다만 임간(林澗)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옵니다. 아, 슬프도다. 그러나 초봄에 일이 약간 한가해지면 당장 찾아가 뵙겠사오니, 짧은 면담이라도 곧장 마음을 다하여 아뢰리이다. 그 외에는 오직 신명을 보양하시고 때를 순응하여 몸을 중히 여기시어, 기도의 뜻에 부응하시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자세히 아뢰지 못합니다.

165. 與洪校書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8D, ITKC_MO_0003A_A001_249A ...

원문

僕啓。昔唐柳子厚曰。人之當貴寵顯劇。則其受賜於人也。無德心焉。其報也必細。至於窮困屈辱。則感慨捧戴萬萬有加。其報也必鉅。是以。明德君子。必務其鉅而遺其細焉。夫感德者不以其恩施之輕重也。以其勢有緩急之異如是。僕自遭難。跋前躓後。隱匿竄伏。投於人而求濟者數矣。皆以犬彘遇之而不顧。故居京師凡五載。飢寒益甚。至親戚無有納門者。乃挈家而東焉。是時出佐藩幕者。雖非素所相識。亦皆儒生。然彼不哀而問我。僕固不欲以窮困自干於人也。以是默默屛居。而不敢先焉。始閤下作鎭于是州。僕聞而喜曰。公吾知己也。必厚我矣。及相見。賜之坐而與之言。其禮遇有加於平日。慰誨勤勤。若憫其窮且老。然後知大君子之與人。不以窮達貴賤爲慮焉。僕固感慨捧戴而欲效其鉅者。每謹置于懷。而一日未嘗忘之。頃於春初。僕乃西步而旋返。假途化境。而不獲入拜辭決。至輦下。爲上所召。入遊天院。榮耀大矣。而僕又不在賓客交賀之列。此以他人觀之。豈不疏且慢而禮不足者乎。然僕自度公旣知我。必不以朝造夕謁。遜辭恭貌者遇之。且閤下當亦有自信者。待僕甚厚。異於衆人。則僕非病風狂易者。何若而負耶。以閤下待僕。可以知其不負也。然僕之趨舍好惡。與衆背戾皆此類。非如閤下高懷大度豁然無疑者。孰肯寬而不誅耶。旣辱閤下之知遇。而無所效尺寸於左右。又不自露其區區之抱。則閤下終無以知其所以感慨奉戴而欲效其鉅者。故言之如此。不宣。再拜。

번역

제가 아뢰옵나니, 옛날 당나라 유자후(柳子厚)가 이르기를, "사람이 귀하고 총애받으며显赫하고 중한 직책에 있을 때는 남에게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보답할 때도 반드시 사소하다. 그러나 궁핍하고 굴욕을 당할 때는 감개와 받듦이 만만치 않게 더해져, 보답할 때가 반드시 크다." 하였으니, 이로써 덕망이 높은 군자는 반드시 큰 보답에 힘쓰고 사소한 것은 버려야 합니다. 감덕하는 자는 그 은혜의轻重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형편에 느리고 급한 차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난리를 만난 후로는 앞을 밟으면 발이 걸리고 뒤를 디디면 발이 빠지는 형편이 되어, 숨어 도망치며 남에게 의지하여 구제를 구한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개와 돼지처럼 대하며 돌아보지 않았기에, 도성(京師)에 머무는 동안 다섯 해를 보내며 굶주림과 추위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심지어 친척 중에도 문을 열어接纳하는 이가 없었으므로, 가족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떠났습니다. 그 때 성 밖의 장수(藩幕)를 보좌하는 자들은 비록 평소 친숙하지 않았으나, 모두 유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불쌍히 여기거나 묻지 않았고, 저는 굳이 궁핍함을 가지고 남에게 간청하기를 원치 않았기에, 묵묵히 물러나 살며 감히 먼저 나서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각하께서 이 주(州)에서 진영을 차리시자, 제가 듣고 기뻐하여 이르기를, "공은 나를 아는 어진 분이니, 반드시 나를 두텁게 대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만나 뵙자, 앉으라고 명하시며 말씀하시니, 그 예우가 평소보다 더했고, 위로와 가르침이 간절하여, 마치 제가 궁핍하고 늙은 것을 불쌍히 여기는 듯하였습니다. 그제야 큰 군자는 남을 대함에 궁달함과 귀천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굳이 감개와 받듦을 가지고 큰 보답을 하고자 하여, 매번 경건히 가슴에 간직하고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 초봄에, 저는 서쪽으로 걸어가 돌아오다가, 화경(化境)을 지나며 들어뵈어 작별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어 천하(輦下)에 이르러 임금의 부름을 받아 천원(天院)에 들어가 놀게 되었는데, 영광이 크기는 하였으나, 저는 또 손님들의 축하에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를 다른 사람이 보면,岂不疏遠하고慢慢하며 예가 부족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공이 이미 저를 아시니, 반드시 아침에 와서 저녁에 알현하고, 겸손한 말과 공경한 모습으로 저를 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각하께서도 또한 스스로 믿는 바가 있으실 것이니, 저를 매우 두텁게 대하여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하신다면, 저는 병풍(風狂易)에 걸린 자는 아니니, 어찌하여 배신하겠습니까? 각하께서 저를 대하는 태도로 보아, 저의 배신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나아감과 물러남, 좋아하고 싫어함이 다른 사람들과 모두 어긋나는 것이 이 같은데, 각하처럼 높은 마음과 넓은 도량으로豁然하고 의심이 없는 분이라면, 누가 너그러이 용서하고 처벌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각하의 지우(知遇)를 입었으면서도 좌우에 작은 공이라도 바치지 못하였고, 또 스스로 그 작은 뜻을 드러내지 못하였다면, 각하께서는 끝내 제가 왜 감개하고 받들어 큰 보답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으리이다. 그러므로 이같이 말하오니, 자세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절합니다.

166. 中秋會飮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0B, ITKC_MO_0003A_A001_250C

원문

季終孟始而炎泠之氣得其中焉。故以八月之望。修翫事者舊矣。李白與故人張渭遊於郞官湖。林蘊與歐陽詹賞于長安。自乾元貞元後。翫事廢而不修者幾五六百秋矣。今中秋先一日。李君湛之抵余書曰。吾用此夕。將釃酒以酹明月。復修吾家故事。子非濟南後乎。安得而忘情。余遂欣然赴之。乃相與登高樓。飛羽觴嘯詠虛懷。間以俳諧。而不導人間事。至夜五鼓乃罷。噫。吾二家子孫流落旣久。使淸秋朗月已爲棄物。今乃襲之。若不誌玆會。後孰知吾家之喜風月者世有其人耶。於是各賦一篇。以歌疇昔之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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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종과 맹시가 시작되어 더위와 추위의 기운이 그 중간에 얻어지므로, 이로써 팔월 보름에 수양과 놀이 일을 행하는 것은 옛부터 있어 왔다. 이백이 구인 장위와 낭관호에서 유람하고, 임운과 구양첨이 장안에서 감상하였으니, 건원·절원 이후에는 놀이 일이 폐지되어 수양하지 않은 지가 이미 오륙백 가을이었도다. 이제 중추절 하루 전, 이군 담지가 내게 편지를 보내어 이르되, "내가 이 밤을 사용하여 술을 길어 달을 제사하고, 다시 우리 집의 옛일을 수리하려 하노니, 자네는 제남의 후손이 아닌가. 어찌 정정을 잊을 수 있겠는가." 이에 내가 기꺼이 달려가니, 서로 함께 높은 누대에 올라가서 날개 달린 잔을 날리며 허심탄회하게 읊조리고 노래하며, 간혹 희롱하는 말로 섞되 인间的 일을 인도하지 아니하였다. 밤이 다하여 오고(五鼓)에야 그쳤다. 아, 우리 두 집 자손이 유락한 지 이미 오래되어, 만약 청추와 랑월이 이미 버려진 물건이 되었다면, 이제야 이를 습득하였으니, 만약 이 모임을 기록하지 아니하면, 장차 누가 우리 집의 풍월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음을 알겠는가. 이에 각각一篇을 지어,畴昔의 일을 노래하였노라.

167. 浮屠可逸名字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0D

원문

人恃氣以生。氣恃息以存焉。隨子午順陰陽而出入。未始有止也。方且以聲色臭味蘖其外。思爲智慮柴其內。則幾何其不壅而殆哉。故君子之於事。無勞其神。無暴其氣。逸以待之而已。古之人有靜默可以補病。揃搣可以休老。此勞者之事也。至於逸者。則未嘗動。安用靜。未嘗繁見熾。安用揃搣。淡然無爲。以守眞氣。則不爲事物之所擾也。李氏子有去而爲浮屠者。種性銳甚。如新生之駒未受控勒。其荷法之才。他日未易量也。然而其求道大切。用意大速。吾懼其未免於陰陽之寇。因其求易名也。擧是以告之曰可逸。吾又懼其逸之過則弛也。字之曰法耽。其爲學。耽而不至於暴其氣則幾矣。

번역

사람은 기(氣)를 의지하여 태어나고, 기는 숨을 의지하여 존재한다. 자오(子午)의 방향에 따라 음양을 순종하며 출입하는데, 결코 멈춤이 없다. 만약 외부로声色臭味로 막히고 내부로思爲智慮로 채워진다면, 얼마나 막혀서 위태로워지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군사는 사물에 대해 정신을 피로하게 하지 않고 기를 남용하지 않으며, 오직 편안하게 하여 기다릴 뿐이다. 옛사람 중에는 정적하고 침묵함으로써 병을 보충할 수 있고, 머리를 깎고 손톱을 깎음으로써 노년을 쉬게 할 수 있는 자가 있었다. 이는 수고로운 자들의 일이다. 그러나 편안함을 추구하는 자는 결코 움직이지 않았으니, 어찌 정적함이 필요하겠으며, 결코 번거롭고 치열하게 보이지 않았으니, 어찌 머리를 깎고 손톱을 깎음이 필요하겠는가. 담담하게 무위(無爲)하여 진기(眞氣)를 지킨다면, 사물에 의해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이씨 자제 중 불교도가 되어 떠난 자가 있으니, 종성(種性)이 매우 날카로워 마치 새로 태어난 말이 굴레를 받지 않은 것과 같았다. 그의 법을 짊어질 재능은 장차 쉽게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도를 구하는 데에 뜻이 크고 마음이 급하므로, 내가 두려워하는 바는 그가 음양의 재앙을 면치 못할까 함이라. 그가 이름을 바꾸기를 구하므로, 이를 들어 그에게 일러 이르기를 '가일(可逸)'이라 하였다. 또 내가 그의 편안함이 지나치면 느슨해지을까 두려워하여, 자(字)를 '법탐(法耽)'이라 지었다. 그가 배우는 바는 탐닉하여도 기를 남용하지 않는다면, 거의 도에 이를 것이다.

168. 送李眉叟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1A, ITKC_MO_0003A_A001_251B

원문

昔吾聖人。出衰周末。與老聃氏同時。遂相師資焉。至後世。學者猶或有迭相訾毀之弊。而況去吾聖人。凡千百餘載。有釋氏者出。與孔老抗爲三敎。則其抵梧而不合亦宜矣。釋氏以慈仁廣博寂滅無爲爲道。與大易有合其旨者。苟統而和融。本無異歸。雖吾聖人復生。不得而斥也。若救世之搏鬪攘奪。殘生害命者。惟釋氏有可助夫敎化焉。故雖儒家者流。亦將悅其風而趨之。唯韓退之乃力排而急與之角。蓋不如是。學者不可救而遂無孔氏耳。然而儒釋之徒者。不能無俱害於其道。今夫身衣冠口仁義而曰。我孔氏徒也。徐而視則資其道以濟不義。往往爲愚陋恒民所不忍爲者。是固以詩書發塚。而得罪於吾聖人也亦大矣。至於髡而緇。無夫婦父子。縱誕浮虛。妄取空語。以誘乎人而利乎己者。豈異夫是。君子其卒不斥。而反譽以使進耶。吾斥釋氏者蓋在是。所以尤尊其道也。眉叟與余善而喜釋氏。雖吾亦樂而從焉。所疑者。其好作有爲。而見釋氏之徒。則莫不合爪而加敬信焉。是豈眞能好釋氏者耶。吾嘗爲之言而不少沮。以吾爲斥釋氏者。且不知樂其道。而憤其縱誕浮虛而爲徒者。將去吾而南也。旣重其去。故不可以不告以此。而敢用變其志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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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에 우리 성인은 쇠잔한 주나라 말기에 세상에 나왔는데, 노자(老聃)와 동시에 살면서 서로 스승과 제자 관계를 맺었다. 후세에 이르러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비방하고毁谤하는 폐단이 있었거니와, 하물며 우리 성인이신 공자께서 돌아가신 지 천여 년이 지난 뒤에 불교(釋氏)가 나타나 공자와 노자를 견주어 삼교(三敎)를 이루었으니, 그 부딪혀서 어긋나고 합치되지 않음은 마땅한 일이었다. 불교는 자비와 인애, 광활하고 박약하며, 적멸(寂滅)과 무위(無爲)를 도(道)로 삼으니, 그 뜻이 대역(大易)과 합치되는 바가 있다. 만약 이를 통괄하여 화융(和融)한다면, 근본적으로 다른 귀착점이 없다. 비록 우리 성인이 다시 태어나신다 할지라도 배척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세상의 싸움과 쟁탈, 생명을 해치고 목숨을 끊는 일들을 구제하고자 한다면, 오직 불교만이 교화를 돕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유가(儒家)의 무리라 할지라도 또한 그 풍조를 기뻐하여 따를 것이다. 다만 한퇴지(韓退之)만이 힘을 다해 배척하며 급히与之角(대결)하였으니,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학자들은 구제할 수 없어 결국 공자의 도가 없어질 뻔하였다. 그러나 유가와 불교의 무리들은 모두 그들의 도에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몸에는 관복을 입고 입으로는 인의(仁義)를 말하며, 나는 공자의 제자라고 하는 자가, 차분히 살펴보면 그 도를 이용하여 불의(不義)를 돕는 경우가 많아서, 종종 어리석고 천한 평민들이 감히 하지 않을 짓을 저지른다. 이는 실로 시서(詩書)를 가지고 무덤을 파는 것과 같아서 우리 성인에게 죄를 짓는 것이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至於於는 머리를 깎고 검은 옷을 입으며, 부부나 부자(父子)의 도리가 없고, 방종하고 방탕하며 공허하고 허황된 말을 망령되게 취하여 사람들을 유혹하고 이익을 구하는 자들이,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군자는 끝내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하여 진급시키려 하는가. 내가 불교를 배척하는 바는 실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그 도를 존중하는 것이다. 미수(眉叟)는 나와 사이가 좋아 불교를 좋아하는데, 나도 또한 기꺼이 따르기를 즐긴다. 다만 의심되는 바는, 그가 유위(有爲)를 좋아하여 불교의 무리를 만나면 모두 손톱을 모으고 경외하며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 진실로 불교를 좋아하는 자이겠는가. 내가 그에게 말하여 조금도 저지하지 않았으나, 나를 불교를 배척하는 자로 여기고, 또한 그 도를 즐기는 줄을 알지 못하며, 그 방종하고 공허하며 허황된 것을 분하게 여겨 제자들이 되어 나를 떠나 남쪽으로 가려 한다. 이미 그의 떠남을 중히 여겼으므로, 이 말로 고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의 뜻을 변화시키기를 감히 바랄 뿐이다.

169. 送咸淳赴翼嶺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1C, ITKC_MO_0003A_A001_251D

원문

道德可勉強而有矣。至於才則其可勉強而得之耶。今夫士之綴偶屬之文。書方寸之紙。以取科第登朝廷者多矣。如使之置羽檄奔走之地而無恐。試之繁劇紛宂之事而無擾。爲將而將。爲吏而吏。是皆不可勉強而有者。擧今之世。罕見其比。吾得之於恒陽咸君。其庶幾乎。敦朴質重。與直道爲任。孝敬忠信資乎中。文學辭彩飾乎外。則其施於事業者。又可量耶。今則夢徵三刀。東轅淮湖。同志者合而餞焉。咸君以常居獨立之下。一旦遠去。意不能無戚而曰。慰我離曠之懷。祛我行役之勞。吾非吾子之望。將誰望耶。僕乃崇酒于觴。擧而諭之曰。今天子以君家世淸白。暫屈小郡。以理疲民。故朝廷無東顧之憂。將見其以追鋒疾置。有詔徵黃矣。又何眷戀庭闈。效兒女態耶。余久見斥於世。不得與諸生詣闕抗疏。叫于帝閽。以還君之東也。旣預玆會。不可無言。於是引而序之。在坐者凡若干人。援毫同賦。紀于末簡。以貺其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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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은 부단히 노력하여 얻을 수 있으나, 재능은 부단히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오늘날 선비들이 짝지어 문장을 짓고, 한 장의 종이에 글을 써서 과급에 합격하여 조정에 등용된 자가 많으나, 만약 그들로 하여금 날개 달린 군사 문서를 가지고 급히 달리는 곳에 배치하여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번잡하고 복잡한 일에 시험하여도 어지럽지 않게 한다면, 장수가 되어 장수가 되고 관리가 되어 관리가 되는 것은 모두 부단히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세상에 그와 같은 사람을 보기 어렵다. 나는 항양(恒陽)의 함군(咸君)에게서 그를 얻었는데, 그야말로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는 후하고 소박하며 질박하고 중후하여 곧은 도리를 임무로 삼고, 효도와 공경, 충성과 신의는 본성에서부터 우러나왔으며, 문학과 재주는 외적으로 장식되었으니, 그의 행하는 사업은 또 얼마나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제 꿈에 세 개의 칼이 뜨는 상(徵)을 보고 동쪽 수레를 돌려 회호(淮湖)로 가게 되었으니, 뜻이 같은 이들이 모여서 작별 잔치를 베푼다. 함군은 평소 혼자 서 있는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멀리 떠나가니, 마음이 슬프지 않을 수 없다며 말하기를, "나의 이별한 허전한 마음을 위로하고, 나의 행역(行役)의 노고를 제거해 줄 사람은 나의 아들 함군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누가 있겠는가." 하니, 나는 잔에 술을 가득 채워 들어 올려 그에게 일러 말하였다. "오늘 천자는 당신의 집안이 청백함을 아시고, 잠시 작은 군현에 내려가 피폐한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으니, 조정에서는 동쪽을 돌아보는 근심이 없습니다. 장차 추풍(追鋒)의 빠른 마차로 조서를 내려 황하(黃河)를 징발할 것입니다. 어찌하여 정자(庭闈)를 그리워하며 아이들 같은 정서를 보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나는 오랫동안 세상에 버림받아 제자들과 함께 궐에 나아가 상소를 올려 천자의 문호를 두드리며, 당신의 동쪽 귀환을 돌려달라고 청하지 못하였다. 이제 이 모임에 참여하였으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서술하여 기록하니, 자리에 앉은 자는 모두 몇 명이었다. 붓을 들어 함께 지어, 마지막 대목에 기록하여 그의 행차에 바쳤다.

170. 送皇甫沆赴忠州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2A

원문

余居京師也。門杜箔垂。深居簡出。遂與人絶。其出處不吾違。旦暮不吾捨。其惟安定皇甫若水乎。君博其學專其志。且強於記識。而宏放於文辭。君之直。琴上之絃也。君之淸。匣中之鏡也。士之貴賤與賢愚。以不獲從君爲之羞。是其得於中者果有異歟。今將被詔。出佐雄藩。朝廷以江左奧區。倚以爲重。則其緩征更稅。振淹糾慝。而誅求榷奪之政。自君革矣。未足導也。至於推明天子之澤。以化一方。使休聲和氣。疏爲泠風。蒸爲甘澍。以煦以煕。而神雀靈芝之瑞擧集於境內者。吾非君之望而誰耶。凡交君者咸嘉其行。長言以餞之。噫。魚相忘於江湖。人相忘於道術。吾與君。忘道術之江湖久矣。於是別也。不能默已。是豈眞忘者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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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京城에 있을 때, 문초(門簾)는 내려져 있었고, 깊이 거처하며 드물게 외출하여 결국 사람들과 단절되었다. 나가는 것과 머무는 것이 나를 떠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나를 버리지 않은 이는 오직安定皇甫若水뿐이었다. 그대는 학문을 넓게 익히고 뜻을专히 하며, 또한 기억하고 식별하는 데 능하며, 문장에서는宏放하다. 그대의 곧음은 거문고의 줄과 같고, 그대의 청렴함은 상자의 거울과 같다. 사대부의 귀천과 현숙함은 그대를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움으로 여기니, 그 안으로부터 얻은 바가 과연 남다름인가. 이제 명을 받아 나가雄藩을 보좌하려 하니, 조정에서는 江左의 오구(奧區)를 중히 여겨 의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징세와 세금을 유예하고, 묻힌 인재를 일으키며 사악함을 바로잡아, 요구하거나 독점하여 빼앗는 정치는 스스로 그대가 개혁할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인도할 필요가 없다. 천자의 은혜를 밝히 드러내어 한 지방을教化하게 하여, 좋은 소리와 화기가疏하여 냉풍이 되고,蒸하여 감우가 되어, 따뜻하게 하고 기쁘게 하여, 신조와 영지의 상이한 길조가境內에 거두어 모이게 하는 것은, 내가 그대를 바라고 누가 바라겠는가. 그대를 사귄 모든 이들이 그 행실을 기뻐하며, 긴 말로 그를 전송한다. 아, 물고기는 강호에서 서로 잊고, 사람은 도술에서 서로 잊으니, 나와 그대는 도술을 잊은 강호에 오래 있었노라. 이제 이별함에 있어, 감히 침묵하지 못하니, 이는 참으로 잊은 자인가.

171. 送志謙上人赴中原廣修院法會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2B, ITKC_MO_0003A_A001_252C

원문

或問於林大年曰。悉矣子之得於謙上人也。其道果何如哉。對曰。吾性好釋氏道。故將求其人以爲友。積二十年不遇。今於上人有得焉。且世之學釋氏。而不能修潔謹愨者。則必託文章之流以爲放。故率皆縱誕浮雜。其中空虛。妄取儒家綺語。抽靑嫓白。以誇耀乎人之耳目。其得罪于釋氏亦大矣。今吾上人則獨異夫是。氣韻絶人。機鋒迅捷。所至叢席。雖名緇奇衲。無不望風而服。眞法中俊人也。又於儒典。皆貫綜博洽。且工於詞藻。遒勁精緻。過人遠甚。而深自覆匿。恂恂若不能言。吾與之遊三年。未嘗有一語及此者。吾固疑而問焉。謙笑曰。余深嗜法語。忘甘露之味。而況爲禪者以旣落文字爲先。安可未除口業。囂嘵與俗士爭名耶。吾聞此然後益賢焉。今因赴廣修院法會。遂躡虛而南。吾久病其假託文章而爲放者。故書以畀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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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린대년(林大年)에게 물었다. "자네가 상인(上人)에게서 얻은 바가 참으로 상세하구려. 그 도가 과연 어떠하오?" 대년이 대답하였다. "내 본성적으로 석씨(釋氏)의 도를 좋아하므로, 그를 찾아 친구로 삼으려 하였노라. 스무 해를 쌓았으나 만나지 못하다가, 이제야 상인으로부터 얻게 되었소. 또한 세상의 불도를 배우면서도 수결(修潔)하고 경결(謹愨)하지 못한 자들은, 반드시 문장(文章)의 유파를 빌려 방종(放縱)의 거처로 삼으므로, 대개 방탕하고 허황하며 잡다하여 그 내부는 공허하오. 그들은 망령되이 유가의 기어(綺語)를 취하여 청색과 백색을 견주듯 하여 남의 귀와 눈을 과시하려 하므로, 석씨에게 죄를 입는 것도 크오나, 지금 우리 상인은 오직 이와 다르오. 기운과 운치가 남다르고 기봉(機鋒)이 신속하며 예리하여, 머무는 곳의 승단에서는 비록 명망 있는 승려와 기이한 스님들도 모두 풍채를 보고 복종하지 않음이 없소. 참으로 법중의 준인이오. 또한 유전(儒典)에 통달하여 박학하며, 또한 사조(詞藻)에 능하여 구경정제하여 남을 훨씬 초월하오. 그러나 깊이 자신을 감추어, 순순히 말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지내었소. 내가 그와 교유한 지 삼 년 되었으나, 한 마디라도 이 일을 언급한 적이 없었소. 나는 굳이 의심하여 물었더니, 겸(謙)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깊이 법어를 사랑하여 감로수의 맛을 잊었거늘, 하물며 선가(禪家)는 이미 문자를 벗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데, 어찌 아직 구업(口業)을 제거하지도 않았으면서 소란스럽게 속인과 명성을 다투겠소?'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더욱 그를 어진 줄로 여겼소. 이제 그가 광수원(廣修院) 법회에 참가하므로, 허공을 밟고 남쪽으로 가노라. 나는 오랫동안 문장을 빌려 방종하는 자들을 싫어하였으므로, 이를 기록하여 그에게 주노라.

172. 妙光寺十六聖衆繪象記

문체: 雜著類 / 記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2D, ITKC_MO_0003A_A001_253A ...

원문

如來世尊曰。我滅度後劫。諸菩薩及阿羅漢應身。坐彼末法之中。作種種形。度諸輪轉。或作沙門白衣居士。人王宰臣。童男童女。如是乃淫女寡婦。姦偸屠販。與其同事。稱贊佛事。令其身心入三摩地。終不目言我眞菩薩。我眞羅漢。今則去佛旣遠。末法方興。其受佛記莂而分身揚化者。惟阿羅漢之方便。而六通四闢。無乎不在。固不可以擬諸形容矣。欲摸寫其眞。非愚則惑。此豈韓子所謂乾坤之容。日月之明。不可以畫繪者耶。雖然。漢明以來。像敎東漸。凡天下名山勝壤。鮮不立梵刹而皆置聖眞尊像。在在處處。常見護持。其眞假之象。本無二矣。是以。欲奉福於君親者。與死生禍福之際。苟有祈求。必隨機答之。譬如形著影出。聲呼谷應。願無不從。則捨此繪塑之功。而使人起信。蓋亦難矣。有天台上人契玄其名者。居州之妙光蘭若。余至州三年。偶抵謁之。見一古殿有聖衆繪像。端嚴逼眞。余拜瞻而問曰。此古盤礴之筆。非若今之畫工摸擬而爲者。胡爲於子之室乎。上人之言曰。先是有衲子自京輦負一函而來置此寺。後竟不知所之。其名氏與歲月則失焉。傳者以爲是像自中夏至我朝。嘗安于大內。而流傳出於人間。乃至此也。多歷炎泠。塵昏蠹食。丹雘漫滅。形像缺毀。隱隱不可識矣。及貧道之管香火於玆宇也。始發而視之。不能無慨然之意。乃發信誠。特募工修補。使宏而新之。頓還舊觀。功旣畢。兼備幢幡几案。或鑄小鍾。盤子螺鈸器皿凡百莊嚴之具。奉安于玆宇之內。永充供養。仍以衣鉢之儲。當每年春秋。虔設齋筵。以爲恒範。用此勝利因緣。祝□我聖上陛下受諸天覆護。壽籙增延。邦基有永。邊鄙無虞。文恬武嬉。民物擧安。調玉燭於四時。混車書於萬里。而得無象之大平矣。庶幾報在上者庇己之恩於萬一耳。余聽其言而觀其色。似欲得予筆。而不能告也。噫。世之名浮屠者。居則邃宇。出則肥馬。賣佛祖以漁利。而不營一毫之善者多矣。吾上人則異夫是。而雅性好善。生平以樂施爲事。今其所居纔避風雨。而晨粥午飯。取給而已。乃能作大佛事。以締善根。又知在上者庇己。而謀報其德。拳拳懇至。非其素所蓄養者大過於人。則何以至是耶。蓋其施作有可書者如此。而余朴不曉文。且事非儒者所宜言。然君子樂道人之善。故書以告後之居於斯者。是歲大定十九年秋八月二十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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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멸도한 후의 겁에서, 모든 보살과 아라한이 응신하여 그 말법의 가운데에 앉아 갖가지 형상을 지어 중생을 도량하리라. 혹 사문이나 백의 거사가 되거나, 인왕이나 재신이 되며, 동자나 동녀가 되기도 하리라. 이와 같이 혹은 음녀나 과부가 되거나, 간죄인이나 도살업, 장사꾼이 되어 그들과 동행하며 불사를 칭찬하여 그들의 심신이 삼마지에 들게 하리라. 끝내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참된 보살이다, 참된 나한이라고 하지 않느니라." 이제 불멸하신 지 이미 멀고 말법이 막兴起하였으니, 불의 기록을 받아 분신하여 교화를 펴는 자는 오직 나한의 방편일 뿐이며, 육사통과 사벽이 어디에나 있지 않으니, 굳이 형상으로 비유할 수 없느니라. 그 진상을 모사하려는 것은 어리석거나 미혹한 자일 뿐이니, 이것이 어찌 한자가 이른바 천지의 용모와 일월의 밝음은 그릴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한명제 이후로 상교가 동쪽으로 퍼져, 천하의 명산과勝壤에는 불刹을 세우고 모두 성진 존상을 두지 않은 곳이 없으니, 여기저기서 흔히 호지하는 것을 볼 수 있느니라. 그 진상과 가상의 본질은 본래 둘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군친에게 복을 빌고자 하는 자와 생사 화복의 기로에 있어 구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기운에 따라 답하리라. 마치 형이 서면 그림자가 나오고, 소리가 부르면 골짜기가 응답하는 것과 같으니, 원하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이 그림과 조각의 공덕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신심을 일으키게 하려는 것은 또한 어렵겠지. 천태의 상인 계현이라는 이름의 자가 있으니, 주(州)의 묘광란야에 거하더라. 내가 주에 와서 3년 만에, 우연히 그를 찾아가 뵈었더니, 한 고전이 있어 성중의 회상이 단엄하고逼真하더라. 내가 절하며 살펴보고 물으니, "이것이 고대의 반박한 필치라, 만약 오늘날의 화공이 모사하여 만든 것과 같지 않으니, 어찌 자의 방에 있느냐?" 상인의 말하기를, "먼저는 나자 한 사람이 경궤에서 한 상자를 지고 와서 이 사원에 두었으나, 끝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더라. 그의 명칭과 세월은 이미 잃어버렸노라. 전하는 자들은 이 상이 중하부터 조조에 이르기까지 대내에 안치되었다가 유�传出하여 인간에 이르렀으니, 심지어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하더라. 많은 더위와 추위를 겪어 먼지가 어둡고 벌레가 먹어 단확이 흐려지고 형상이 결파되어 은은하여 식별할 수 없었노라. 및 빈도가 이 우에서 향화를 관장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열어 살펴보아 개연한 뜻이 없지 않더라. 이에 신성을 발하여 특별히 공을 모아 수보하게 하여 크게 하고 새롭게 하여, 돌연 옛 모습을 회복하게 하였노라. 공이 이미 끝난 후, 전번과 궤안을 겸비하고, 혹 작은 종을 주조하고, 반자, 나발, 발반, 기구 등 모든 장엄의 구비를 갖추어 이 우의 안에 봉안하여 영원히 공양하게 하였노라. 여전히 의발의 저축으로 매년 춘추에 간절히 재연을 베풀어 항상의 법범으로 삼았노라. 이로써 승리의 인연으로써 □ 우리 성상 폐하가 제천의 복호를 받으시고, 수록이 증연하며, 방기가 영원하고, 변비에게 근심이 없으며, 문이 편안하고 무가 유희하며, 민물이 거안하며, 옥축을 사시에 조화하고 차서를 만리에 혼일하여 상상의 대평에 이르기를 원하노라. 대략 위에서 보호해 주신 은혜를 만분의 일로 보답하고자 함이니라." 내가 그의 말을 듣고 그 빛을 보니, 마치 내 필력을 얻고자 하는 듯하였으나, 감히 고하지 못하더라. 아, 세상의 명부도자는 거처하면 깊은 우에 있고, 나가면 비마를 타며, 부조를 팔아 이를 어루만지고 일호의 선을 영위하지 않는 자가 많았노라. 우리 상인은 이와 다르며, 아호 선을 좋아하고 평생을 낙시로 삼았노라. 지금 그의 거처는 겨우 풍우를 피할 뿐이요, 조죽과 오반을 취하여 얻는 데 그치노라. 어찌 능히 대불사를 행하여 선근을 닦으며, 또 위에서 보호해 주심을 알고 그 덕을 보답하려 하여 권권간지한 것이니, 만약 그 소양이 사람보다 크게 쌓이지 않았다면, 어찌 이에 이르렀겠는가. 그 시작이 이와 같이 기록할 만한 것이 있으니, 나는 소박하여 문장을 알지 못하며, 또한 일이 유자의 마땅히 말하지 않음이로되, 군자는 사람의 선을 기뻐하므로 기록하여 후에 여기에 거하는 자에게 고하노라. 이 해 대정 19년 추 8월 20일이니라.

173. 小林寺重修記

문체: 雜著類 / 記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3D, ITKC_MO_0003A_A001_254A ...

원문

聖人之道迭興於世。而化成天下。故昔吾孔子當衰周時。以仁義設其敎。及更揚,墨,黃,老。奇言異術。雜裂而四出。其弊流於秦漢而無所不至。而有不忍聞。於是釋迦氏入中土。醇以第一義示人。敎之以慈悲之行。以度衆生。所以趣時也。故柳子以爲浮屠之說不與孔子異道。又曰。眞乘法印。與儒典竝用。而人知嚮方矣。然則苟統而混之。儒釋二敎本無異歸焉。是以。自晉宗以來。賢士大夫有聞其風而悅之者。若白居易。有唐巨儒也。深信內典。躬行服習。至其晚年。自號香山居士。乃結社於山中。精勤佛事。則其信之可謂篤矣。今錢塘金君令義素奉眞風。慕樂天之爲人。常欲結一精社。著衲衣而居之。必能脫去穢累。超詣覺路。此豈所謂從佛法生。得佛法分者耶。其言曰。軒冕者人之所貴。吾未嘗得。而用之則行。捨之則藏者吾志也。遂退家于功成縣。有宅一區。有田數頃。樹之麻藝之穀。豐足其家。不以非義。而旣歸誠法門。以施捨爲事。縣之西北隅有佛祠。曰小林。先是縣人置之以爲植福之所。林麓叢密。喧靜得中。高人勝士棲眞養性者。咸樂處之。而多歷炎涼。爲風雨所漂搖。但破屋斷垣。僅蔽風雨而已。雖有殘僧數輩。而晨香夕炷寂寥已絶者。幾數百年也。使雲山煙水長有餘恨。然而州俗質陋。少爲善者。莫有補葺而完之。爲有識者所傷久矣。金君觀其傾圮。慨然興歎曰。吾誓創玆宇。爲異日終老之所矣。遂豎願輪。出錢貲且鉅萬。爲工徒之費。作而新之。飾以金碧。頗極壯麗。自大定十四年六月。訖十七年七月。又新構成會主滿金觀音菩薩像一軀。或營珍龕繒蓋花菓幢幡。或鑄鍾磬。至於茵帳几案器皿種種莊嚴之具。功旣訖。以狀敷聞于上。請於其寺。峙粟一千五百石。權子母之法。歲取其贏。以充供養。擇名緇十五人。約長年陁洛之法筵。庶幾以此勝利因緣。祝我聖上陛下受諸天覆護之力。般若光中。增延壽算也。上乃嘉之。其制曰可。仍命州牧官僚。親至以落成焉。蓋阿含經曰。若能補理古寺。是謂二梵之福。則凡以有爲功德。締結善根。奉福君親者。舍此莫之可爲。則今其爲善。誠可喜也。由是州俗化之。革暴戾爲慈仁。咸知尊嚴佛乘。有過玆宇者。無不合爪而加敬焉。其自利利他。而有以裨敎化者如此。乃知君子之所在。雖匿德藏光。而物必蒙其澤。不待於立名而後有爲也。金君欲存其始造年月。伻來請辭。余牢讓不獲。遂取其言而書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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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도는 세상에 거듭 흥성하여 천하를 화성(化成)하였다. 그러므로 옛적 우리 공자께서 쇠퇴한 주(周) 말에 인의(仁義)로써 그 교화를 베풀었으나, 이후 양(楊)과 묵(墨), 황(黃)과 노(老)가 대두하여 기이한 말과 묘한 술수가 섞여 사방으로 흩어지니, 그 폐해는 진한(秦漢)에 흘러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 불쌍히 여길 지경이었다. 이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중원(中土)에 들어와 순전한 제1의(第一義)로써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비로운 행실을 가르쳐 중생을 건지셨으니, 이는 시류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자(柳子)는 부처님의 설법이 공자의 도와 다르지 않다고 여겼으며, 또 이르기를 "진법(眞法)의 법인(法印)이 유전(儒典)과 병용되어 사람들이 향방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만약 통괄하여 혼동한다면 유교와 불교 두 교화는 본래 같은 귀결을 지니지 않은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진(晉)나라 종(宗) 이래 현명한 선비들 중 그 풍취를 듣고 기뻐하는 자가 있었는데, 백거이(白居易)가 그중 하나였다. 백거이는 당나라의 거유(巨儒)로서 내전(內典)을 깊이 신봉하고 몸소 행하며 복습하였다. 그의 말년에 이르러 자호를 향산거사(香山居士)라 하였으니, 이는 산중에 결사(結社)를 맺고 불사(佛事)를 정진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믿음이 진실로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전당(錢塘)의 김군(金君) 영의(令義)는 본래 진풍(眞風)을 받들어 낙천(樂天)의 인품을 사모하며, 항상 정사(精社)를 하나 맺고 나바지(衲衣)를 입고 거하기를 원하였다. 만약 그가 더러운 번뇌를 벗어날 수 있다면 각로(覺路)를 초월하여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법에서 생겨나 불법의 분(分)을 얻은 자라 일컫는 바가 아니겠는가? 그의 말에 이르기를 "현관(軒冕)은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것이나, 나는 얻지 못했으며, 쓰면 행하고 버리면 은퇴하는 것이 나의 지조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공성현(功成縣)에 은거하여 집 한 구획과 전답 몇顷을 가지고, 삼을 심고 곡식을 가꾸어 가정을 풍족하게 하였으며, 비의(非義)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법문(法門)에 귀의하여 시비(施捨)를 일로 삼았다. 현의 서북쪽 모퉁이에 불사(佛祠)가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소림(小林)이라 한다. 본래 현인들이 이를 설치하여 복을 심는 곳으로 삼았으며, 숲이 울창하고 정자와 고요함이 적절하였다. 고인과 승사(勝士)들이 진리를 거처하고 성성을 양육하는 것을 모두 즐거워하여 거처하였으나, 오랜 세월 동안 풍우에 흔들려 부서진 집과 끊어진 담장만이 간신히 풍우를 가릴 뿐이었다. 비록 잔여 승려 몇 명이 있었으나, 아침 향과 저녁 향이 적막하여 이미 끊어진 지 거의 수백 년이었다. 구름과 산, 안개와 물이 영원히 여한을 남겼으나, 주속(州俗)이 질박하고 야만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적어 보수하고 완성하는 자가 없었다. 이는 유식자(有識者)로 하여금 오랫동안 슬프게 하였었다. 김군이 그 무너진 모습을 보고 개연히 탄식하며 이르기를 "나는 이 건물을 창건하여 훗날 종로(終老)할 곳으로 삼겠다"고 서원하였다. 이에 원륜(願輪)을 세우고 거금 수만 전을 내어 공인(工人)들의 비용으로 삼아 이를 새로 지었으며, 금벽(金碧)으로 장식하여 매우 장엄하고 화려하였다. 대정(大定) 14년 6월부터 17년 7월까지, 또 새로 구성하여 만금(滿金) 관음보살상 한 구를 조성하고, 혹은 보감(寶龕)과 승개(繒蓋), 화과(花果) 당번(幢幡)을 경영하며, 혹은 종과 징을 주조하였다. 나아가 인장(茵帳), 궤안(几案), 기구 등 각종 장엄의 구비를 갖추었다. 공사가 마치자 상주(狀敷)하여 위(上)에 알리고, 그 사찰에 청하여 쌀 1,500석을 마련하여 권자모(權子母)의 법으로 매년 이자를 취하여 공양에 충당하게 하였다. 명망 있는 승려 15인을 선발하여 장년(長年) 타락(陁洛)의 법연(法筵)을 약정하여,庶幾히 이 승리 인연으로 우리 성상 폐하께서 제천(諸天)의 부호(覆護)하는 힘을 받아 반야광(般若光) 가운데 수명을 연장하시기를 기원하였다. 임금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허락하는 조칙을 내리시고, 여전히 주목(州牧)과 관료들에게 명하여 친히 가서 낙성식을 거행하게 하였다. 아함경(阿含經)에 이르기를 "만약 고사(古寺)를 보리(補理)하면 이것이 바로 이범(二梵)의 복이다"라고 하였으니, 모든 유위공덕(有爲功德)을 맺어 선근(善根)을缔結하고 군친(君親)을 위해 복을 비는 자는 이것보다 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그의 선한 행실은 진실로 기쁠 따름이다. 이로써 주속이 화하여 포역(暴戾)을 자인(慈仁)으로 바꾸고 모두 불승(佛乘)을 존엄히 여겨, 이 사찰을 지나는 자는 모두 합장하여 경외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도모하여 교화에 보익한 바가 이와 같으니, 비로소 군자의 있는 바를 알 수 있다. 비록 덕을 숨기고 빛을 감추더라도 물(物)이 반드시 그 은혜를 입으며, 이름을 세운 후에야 비로소有为(유위)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김군이 처음 창건한 연월을 남기고자 사신을 보내어 서문(辭)을 청하니, 나는 굳이 사양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그의 말을 취하여 기록하였다.

174. 畫雁記

문체: 雜著類 / 記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5A

원문

道人惠雲持一畫雁圖。就予以觀。凡三十九雁。而狀之不同者十有八焉。其翔集飮啄起伏伸縮之形。曲盡而無遺矣。是亦精強之至者也。道人之言曰。此吾家舊物也。工之名氏則不知也。以其奇且古。蓄之久矣。始則甚寶惜之。今乃釋然。蓋君子不可以留意於物。但寓意而已。況爲浮屠者。旣輕死生去嗜欲。而反重畫。豈不謬錯而失其本心哉。今將歸江南。以畫付吾弟某者而去焉。子若書其形數以畀。則異日讀之。雖不見畫。可以閉目而盡識也。余笑曰。爲是畫者。當其畫時。必先得成形於胸中。奮筆直遂而後乃得至此。則心識其所以然。而口不能言之。余雖巧說。若工之所不能言者。安得而盡之。必欲存其形與數之粗者。則有兩對伏而交頸相叉者。纍纍然微見背脊於崖岸之交者。聳趐欲翔而未起者。昂其首而伏者。伸其吭而跂者。且步且啄者。几立而不動者。群聚者。圜而向赴飮者。騈而爭翹者。拳其足曬者。披其羽其又傍睨者。廻眄者。刷者戲者睡者。此其大略也。余因其言。爲甲乙帳而授之耳。非所以爲記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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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道人) 혜운(惠雲)이 한 폭의 기러기 그림을 가져와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기러기가 모두 마흔 마리였는데, 그 모양이 다른 것이 열여덟 가지나 되었다. 날아오르고 내려앉으며, 마시고 먹으며, 일어나고 눕고, 몸을 펴고 굽히는 형세가 모두 세밀하게 그려져서 빠진 것이 없었다. 이는 또한 정교하고 강건함이 극에 달한 것이다. 도인이 말하였다. "이것은 우리 집의 옛 물건입니다. 화공의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그 기이하고 고전한 점 때문에 오래 간직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귀중히 여겼으나, 지금은 마음이 놓여 있습니다. 군자는 사물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할 뿐, 단지 뜻만 담으면 됩니다. 하물며 부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미 생사를 가볍게 여기고 욕망을 버렸는데, 다시 그림을 중히 여기다니, 이는岂不 어긋나고 본심을 잃은 것이 아닙니까?" 이제 장강 이남으로 돌아가려 하니, 그림을 내 아우 어떤 이에게 맡기고 떠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형상과 수를 기록하여 주면, 훗날 이를 읽을 때 비록 그림을 보지 못하더라도 눈을 감고 모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웃으며 말하였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그릴 때 반드시 먼저 형상을 가슴속에 품고, 붓을 들어 곧장 그어야만 비로소 이 지경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그 이치를 알지만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巧하게 말한다고 해도, 화공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어찌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 형상과 수의 대략을 남기려 한다면, 두 마리가 서로 마주 앉아 목을 비비며 꼬리를 엇갈린 것, 절벽과 언덕이 만나는 곳에 기워 등뼈가 살짝 보이는 것, 날개를 들어 날려고 하지만 일어나지 못한 것, 머리를 들고 엎드린 것, 목을 빼고 발을 구르는 것, 걷다가 먹이를 쪼는 것,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 무리지어 모인 것, 둥글게 모여 물을 마시러 달려드는 것, 서로 다투어 날개를 치는 것, 발을 말고 햇볕을 쬐는 것, 깃털을 펴고 또 곁눈질하는 것, 돌아다보는 것, 깃을 손질하는 것, 장난치는 것, 자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 대략입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 갑을자 장부(甲乙帳)를 만들어 그에게 주었을 뿐, 이것이 바로 기(記)를 쓰는 방법이 아닙니다.

175. 逸齋記

문체: 雜著類 / 記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5C, ITKC_MO_0003A_A001_255D ...

원문

眞隱者能顯也。眞顯者能隱也。凡涕唾爵位。粃糠芻豢。枕白石漱淸流者。索隱行怪而已。於顯能之耶。桎梏名撿。汩溺朝市。首蟬冠腰龜印者。奔勢循利而已。於隱能之耶。必有不苟同不苟異。時乎退。不夷而齊之。時乎進。不皐而夔之。一浮沈一往來。無適而不自得者乃眞隱顯。而隱與道俱藏。顯與道俱行也。世之有道之士體是道者。惟海東李左司一人而已。仲若。先生名也。子眞。先生字也。內天外人。先生道也。金堂玉室。先生家也。紫府丹臺。先生官也。先生係出雞林宗室。至先生凡七代爲文章家。而先妣李氏嘗夢黃冠而遂有娠。故先生幼而嗜讀道藏。服事眞風。則於儒玄之業。蓋有宿習而然者。常宅心事外。脫落羈束。棄家歸隱于加耶山。自號靑霞子。先生父某以存家祀爲念。恐不可奪其志。知處士殷元忠與禪師翼宗解祕術。遂貽書以誠告之。二人者謀曰。江南諸山。其形勢若奔螭伏虎。控扶蘇而朝大內者。莫奇於道康郡之月生山。居此者當旬月被徵矣。遂斬茅築室於其上。乃邀致之曰。此山有道氣。必異人然後應之。君可以爲修眞之所乎。先生未知其計。欣然從之。旣至。以所居爲逸齋。齋之北。有小嶺蔚然秀出而聳立者。名爲玉霄峯。恒以幅巾鶴氅登其頂。燕坐彌日。如抱葉之蟬。凝目之龜。澹乎自處。黃庭在左。素琴在右。或撫而弄之。聲振林木。樵蘇遇之。以爲神仙也。至今其迹宛然。每煙消雨霽。萬竅不呼。泠泠淸響。如在人耳。先生方將傲睨物表。揖堯謝舜。與扶桑公,陶隱居,張天師遙爲師友。盈縮造化。轇輵璿璣。漱亭午之元氣。思靑冥之輕擧。待其功圓行滿。駕龍轡鸞。上朝玉帝。則吾見先生之與道俱藏而得所謂眞隱也。先生嘗以醫者可以惠衆。因究其術。妙如專家。活人多矣。時邑倅有嬰疾拘攣而不行者。先生往鍼之。應時而愈。倅後因□肅廟不豫。旁求醫術之士。乃薦焉。□上聞而悅之。召赴闕下。方上道而鼎湖龍駕。已莫及矣。□睿祖以在藩邸時素聞其名。遂屬籍禁閨。將用祿秩以縻之。先生於是迹出心隱。徘徊宮掖間。非其好也。然旣出應昌期。爲時廣成子。欲以至道之精播於理術。日鑿生靈之耳目。後航海入宋。從法師黃大忠,周與齡。親傳道要。玄關祕鑰。罔不洞釋。及還本國。上疏置玄館。以爲國家齋醮之福地。今福源宮是也。乃撞鴻鍾於講席。廣開衆妙之門。而問道之士塡門成市。如衆星之環天津也。則吾又見先生之與道俱行而得所謂眞顯也。其屈伸於理亂之際。消息於夷曠之域。如雲出於山而遊於寥廓。卷舒無心。不可得而累也。達人之一行一止。皆繫盛衰於時耳。安肯制乎陰陽術數之間哉。彼元忠輩自以爲用奇術而得鉤之者。亦無足取信矣。夫境之殊尤者。必待人而後彰其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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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은자는 드러날 수 있고, 참으로 드러난 자는 숨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작위적인爵位를 흘기거나, 썩은 곡식이나 가축의 먹이처럼 여겨, 흰 바위를 베고 맑은 개울물을 헹구는 자들은 오직 은밀함을 찾아 기이한 행실을 부리는 것일 뿐, 드러남을 능히 할 수 있는가? 명분과 법도를 속박으로 여기고 조야(朝野)에 빠져 허덕이며, 머리에蝉冠을 쓰고 허리에 龜印을 찬 자들은 권세에奔命하고 이익을 따르는 것일 뿐, 숨김을 능히 할 수 있는가? 반드시 그릇되게 동조하지도 않고 그릇되게 다르지도 않으며, 물러날 때는 평범함을 버리고 정숙함으로 하고, 나아갈 때는 우매함을 버리고 지혜로움으로 한다. 한 번은沉浮하고 한 번은 왕래하여 어디에 있더라도 스스로 만족하는 자야말로 참된 은자와 드러남이며, 은밀함은 도(道)와 함께 숨겨지고 드러남은 도와 함께 행해진다. 세상에 도를 가진 선비로서 이 도를 체득한 자는 오직 해동(海東)의 이좌사(李左司) 한 사람뿐이다. 중약(仲若)은 선생의 이름이고, 자진(子眞)은 선생의 자(字)이다. 내천외인(內天外人)은 선생의 도(道)요, 금당옥실(金堂玉室)은 선생의 집안이고, 자부단대(紫府丹臺)는 선생의 관직이다. 선생은 계림(雞林) 종실의 후예로, 선생에 이르러 대를 이어 일곱 대나 문장가로 명성을 떨쳤다. 선모(先母) 이씨(李氏)는 황관(黃冠)을 쓴 이를 꿈꾸고 잉태하였으므로, 선생은 어릴 적부터 도장(道藏)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진풍(眞風)을 섬겼다. 그러므로 유교와 현학의 학문에 있어서는 소박한 습관이 있어서 그러하였던 것이다. 항상 마음을 밖으로 돌리고 속박에서 벗어나, 가정을 버리고 가야산(加耶山)에 은거하여 스스로를 청하자(靑霞子)라 호칭했다. 선생의 부친은 가문의 제사를 잇는 것을 염려하여, 선생의 뜻을 꺾기 어려울 것을 알았으므로, 처사(處士) 은원충(殷元忠)과 선사(禪師) 익종(翼宗)이 비술(秘術)을 해하는 것을 알고, 편지를 보내어 간곡히 알렸다. 두 사람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강남의 여러 산들은 그 형세가 달리고伏하는 용과 엎드린 호수 같아 부소(扶蘇)를 잡고 대내(大內)를 조공하는 듯하니, 도강군(道康郡)의 월생산(月生山)보다 기이한 곳이 없다. 이곳에 거하면 십일개월 만에 징소(徵召)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여, 그곳에 초막을 베고 집을 짓고서는 선생을 초청하여 말하기를, "이 산에는 도기가 있어 반드시 이인(異人)이어야 응할 수 있으니, 선생이 수진(修真)할 곳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선생은 그들의 계책을 알지 못했으나, 기꺼이 따랐다. 이미 도착하여 거처한 곳을 일러 율재(逸齋)라 하고, 재(齋)의 북쪽에는 작은 능선이 우뚝하게 솟아오른 곳이 있어 이름을 옥소봉(玉霄峯)이라 했다. 항상 부건(幅巾)과 학창(鶴氅)을 입고 그 꼭대기에 올라, 하루 종일 얌전히 앉아 마치 잎을 품은 매미처럼, 응시하는 거북처럼 담담하게 스스로를 대했다. 황정(黃庭)은 왼쪽에 있고 소금(素琴)은 오른쪽에 있어, 때로는 타며 놀았는데, 소리가 나무와 숲을 진동시켰다. 나무꾼과 장작더미가 이를 만나 신선이라 여겼다. 지금도 그 자취가 뚜렷하여, 매연이 걷히고 비가 그치면 만 개의 구멍이 부르지 않아도 차가운 맑은 소리가 마치 사람의 귀에 있는 듯하다. 선생은 장차 물밖을傲睨하며 요(堯)와 작별하고 순(舜)에게謝하며, 부송공(扶桑公), 도은거(陶隱居), 장천사(張天師)와 멀리서 사부로 삼으려 할 것이다. 창조(造化)를盈縮하고 현기(璿璣)를轇輵하며, 정오의 원기(元氣)를 씻고 청명(靑冥)의 가벼운 거상을 생각하여, 공이 원만하고 행실이 차면 용의 고삐와 나비의 날개를 타고 올라 옥제(玉帝)를 조하하면, 나는 선생이 도와 함께 숨겨져 참된 은자가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선생은 의술로써 대중을 이롭게 할 수 있다 하여, 마침내 그 술을 궁구하여 전문가처럼 묘하게 되어 많은 사람을 살렸다. 당시 현의 속관(倅)이 경련병에 걸려 걸을 수 없었는데, 선생이 가서 침을 놓으니 즉시 나았다. 속관은 후에 숙종(肅宗)이 몸이 편치 않자, 옆에서 의술을 구하는 자들을 널리 찾았으므로, 선생을 천거하였다. 상(上)이 듣고 기뻐하여, 궁궐로 부르라 명했으나, 이미 길을 나서자 정호(鼎湖)의 용가(龍駕)가 이미 미치지 못하였다. 예조(睿祖)는 빈전(藩邸)에 있을 때부터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궁궐에 소속시켜 녹직(祿秩)으로 묶으려 했다. 선생은 이때 몸은 나왔으나 마음은 은거하여, 궁궐 사이를 배회하였으나 그것이 그의 뜻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출사하여 창기(昌期)에 응하여 시대의 광성자(廣成子)가 되어, 지극한 도의 정수를 이술(理術)에 펼쳐 생령의 귀와 눈을 일깨우려 했다. 이후 해를 건너 송(宋)나라로 들어가, 법사 황대충(黃大忠)과 주여령(周與齡)을 따라 도요(道要)를 친전받고, 현관(玄關)의 비밀한 열쇠를 모두 통달하여 해석했다. 본국으로 돌아와서 상소하여 현관(玄館)을 설치하여 국가의 재계(齋醮)의 복지로 삼았는데, 지금의 복원궁(福源宮)이 그것이다. 강석(講席)에서 홍종(鴻鍾)을 치고 대중의 묘한 문(門)을 널리 열어, 도를 묻는 선비들이 문을 메우고 시장이 되었는데, 마치 많은 별이 천금(天津)을 둘러싼 듯했다. 그러므로 나는 또 선생이 도와 함께 행하여 참된 드러남을 얻는 것을 보게 된다. 그 거침이 이난(理亂)의 사이에서屈伸하고, 이광(夷曠)의 영역에서消息하는 것은, 구름이 산에서 나와 요廓을 유유하는 것과 같아, 말아 올리거나 펴는 데 마음이 없어 얻어질 수 없다. 달인(達人)의 한 행(行)과 일지(一止)는 모두盛衰를 때에 따라 매달릴 뿐, 어찌 음양술수(陰陽術數)의 사이에 제압당하겠는가? 저 원충(元忠) 일행은 스스로 기이한 술을 사용하여 구(鉤)를 얻었다고 여겼으나, 또한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경치(境)가 특별히 뛰어난 자는 반드시 사람을 기다려야 그 이색(異色)을 드러낸다.

원문

則非斯人無以住斯境矣。設無先生孤峙絶俗之姿。則人與境兩失其宜。而但窮谷蟠林中一虎兕狐貍之區爾。吾不知先生之待斯境耶。斯境之待先生耶。是以。自先生起應玄纁之禮。居斯者復無其人。寂寥累稔。寢爲荒墟。使雲山煙水長有餘恨者久矣。及□毅廟在宥之十二載。先生子今尙書久脩。適出鎭錦城。始尋而往焉。古壇廢井。遺址尙存。其松楸之聲。谿壑之容。有如怨者。有如慕者。有如訴其堙沒者。公乃感之。有肯構之志。遂出俸錢。爲工徒費。因時於農隙。因材於林谷。鏟荒剔翳。創爲梵宇。至於鍾磬几案種種莊嚴之具。悉無不備。功旣訖。以狀聞于□冕旒。上乃頷其奏。特內降觀世音畫像。且以良田十五頃賜焉。又私峙穀一百石。權子母法。歲取其贏。求充供養。擇苾芻之修潔者。俾管其事焉。蓋斯境之綿世伏匿。而遇先生一朝朗發。使窮崖潤色。幽澗光耀。名著千祀。非待人而彰其異者耶。噫。余雖不獲操篲服勤於先生之門庭。嘗拜其遺像於尙書之第。整冠拭目而觀之。淸姿秀格。如融融春露曉濯金莖。追味其平生。則使人足以忘鄙吝之心。何必親見元紫芝眉宇耶。但恨瓊都命淺。玉籙道微。不能捫蘿發雲。一叩仙扃。窺丹竈之留煙。蔭瑤壇之餘竹。咨嗟慕仰。瞻跂不足。而爲之歌曰。先生去兮控靑虯。肩松喬兮隱嵩丘。先生來兮乘玉麟。動星象兮謁紫宸。八極外兮追汗漫。入東海兮今不返。古洞天兮寂無事。白日長兮珪鸞睡。余常謁尙書。獲齒諸子。侍坐于側。公屬余謂曰。吾先之奇迹。久而不述。其若待子。子其筆之可乎。余辭以文不長於記事。而強之再三。遂承命書始創歲月。因及出處大槩。至若官民與行年之始末。備於大史氏。故不記。林椿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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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사람(先生)이 아니면 이 경치에 머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선생이 고독하게 우뚝 서서 속세를 초월한 자태가 없었다면, 사람과 경치가 모두 마땅함을 잃고, 다만 깊은 골짜기와 웅덩이 숲 속에 호랑이와 유수, 여우와 이리들이 사는 곳일 뿐이었을 것이다. 나는 선생이 이 경치를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이 경치가 선생을 기다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선생이 흑현(玄纁)의 예우를 받아 출사하신 후, 이곳에 머무는 사람이 다시 없자, 고요하고 적막함이 여러 해 동안 계속되어 점차 황폐한 폐허가 되었다. 이로 인해 구름과 산, 연못과 물이 영원한 한을 품게 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의(毅) 묘(廟)가 천하를 포용한 지 열두 해째 되던 해, 선생의 아들인 지금의 상서(尙書) 구수(久脩)가 마침내 진성(錦城)을 떠나 진주하게 되자, 비로소 그곳을 찾아갔다. 옛 제단과 버려진 우물, 유적지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소나무와 잣나무의 소리, 시냇물과 골짜기의 모습은 마치 원망하는 자 같고, 그리워하는 자 같으며, 묻혀 없어짐을 호소하는 자 같았다. 공(公)은 이에 감동하여 건물을 다시 짓고자 하는 뜻을 품고, 마침내 봉록을 내놓아 일꾼과 비용으로 삼았다. 때를 따라 농사의 한가한 틈을 타서, 재료를 숲과 계곡에서 구해, 황폐한 곳을 깎아내고 어두운 곳을 제거하여 범우(梵宇, 절)를 새로이 창건하였다. 종과 징, 궤안(几案)과 각종 장엄한 도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갖추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사가 이미 끝나자, 상소문을 올려 □의(冕)수(旒)에게 아뢰었다. 임금이 마침내 그 상소를 허락하시고, 특별히 관세음(觀世音)의 화상을 내려 보내시며, 또한 좋은 전지(田地) 십오 경을 하사하셨다. 또 사적으로 곡식 백석을 비축하여, 본전과 이자를 번갈아 쓰는 법으로 매년 그 이득을 거두어 공양에 충당하게 하였다. 수결하고 깨끗한 비구(比丘)를 택하여 그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실로 이 경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숨어 있다가, 선생을 만나 하루아침에 밝게 드러나, 험준한 절벽을 물들이고 깊은 시냇물을 빛나게 하여 천 년 동안 이름이 빛난 것은, 사람이 아니면 그 기이함을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아! 나는 비록 선생의 문하에서 빗자루를 잡고 공경하며 섬길 기회를 얻지 못했으나, 상서의 제사에서 그 유상을 받들어 보았고, 관모를 정돈하고 눈을 씻고 바라보았다. 청아한 자태와 뛰어난 기품은 마치融融한 봄 이슬이 아침에 금경(金莖)을 씻어낸 듯하였다. 그 평생을 추종하여 음미해 보니, 사람을 충분히 욕심과 구차함을 잊게 할 수 있었다. 어찌 반드시 원자지(元紫芝)의 미간을 직접 보아야만 하는가. 다만 궁도(瓊都)의 명(命)이 얕고 옥록(玉籙)의 도(道)가 미약하여, 덩굴을 잡고 구름을 헤치고 가서 한 번 선문(仙扃)을 두드리며, 단로(丹竈)에 남은 연기를 엿보고, 요단(瑤壇)의 남은 대나무 그늘에 머무는 일을 할 수 없어, 탄식하며 사모하고 우러러보며 발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그래서 노래하여 말하였다. "선생 가시니 푸른 용을 모시어, 송악(松喬)의 어깨를 지고 소구(嵩丘)에 숨으시네. 선생 오시니 옥린(玉麟)을 타고, 별상(星象)을 움직여 자진(紫宸)을 알현하시네. 팔극(八極) 밖에서 한만(汗漫)을 쫓으시어, 동해(東海)에 들어가시니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도다. 옛 선계(洞天)는 고요하여 할 일이 없고, 해는 길게 빛나며 규란(圭鸞)이 잠들었도다. 나는 항상 상서를 알현하여, 자제(諸子)들과 함께 하며, 그 곁에서 시좌(侍坐)하였다. 공이 나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나의 선친의 기적스러운 일화가 오래도록 서술되지 않았으니, 어찌 너를 기다림과 같겠는가. 너는 필히 기록해 줄 수 있겠는가?' 나는 글이 기사(記事)에 능하지 않다고 사양했으나, 세 번이나 강권하여 마침내 명을 받아 처음 창건한 연월을 기록하고, 나아가 출사와 퇴임의 대략을 적었다. 만약 관직과 백성, 그리고 행년(行年)의 시말은 모두 대사(大史)에게備하므로 기록하지 아니하였다. 임춘(林椿) 기(記)함.

176. 足庵記

문체: 雜著類 / 記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7C, ITKC_MO_0003A_A001_257D ...

원문

凡亢爽奇壯之珍觀者。天作而天藏之。必在乎山區海陬荒邊側壤。而有衝波急洑隤崖落石之所壓覆。龍蛇虺蝎虎豹之所抵觸。故莫不贏糧戒途。奔朝走夜。變更寒暑。而後得至焉。若其不出都邑。不畚土輦石以增其高厚。而坐得勝槩者。曠千祀而罕有矣。王輪寺之西偏有一庵。上人闡師者居之。庵之制皆撓桷曲桓。因其天姿。不黝不堊。蓋得華質之中也。臨其上以望則庨豁虛明。飛鳥之背可視矣。重岡複嶺。帨帶而繚繞。荒蹊細逕。高低而晻曖。遊人之往來相續者。皆不能逃乎一几一席之內。眞王都之佳處也。公自南國躡虛而來。旋于京師。居是庵凡二歲。嘗喟然歎曰。吾不幸生末法中。宗門衰廢。知聖道之將夷。而荷擔如來祕藏。宜長揖人世。巖逃谷隱。以老吾生耳。於是將振五樓之金策。飄然獨往。搜訪名山。登臨諸天。而搢紳先生之素與公遊者。咸樂其道而不欲去焉。故未免如志。而行不爲牽。止不爲柅。如閑雲無心。任其去留。常斂迹庵中。閉目燕坐。淡泊如也。晨昏焚頌之外。閑而無事。每天淸景融。引諸賓客。摘實于林而香可割。擷芳于畦而美可茹。盤有嘉餚。樽有旨酒。使淸風掃階。明月侍座。碾春茗而香泉甘。弄素琴而幽鳥窺。或醉者淋漓。歌者激烈。或靜觀微步。傲睨物表。逍遙徜徉。以適其適。雖所遇之樂不同。而得於心者亦皆自足矣。先是居斯者。不書所作。以貽林澗之愧久矣。余嘗謁公于是庵。公欣然屬之曰。自古秀異之境。必遇高才以極其詞。子其爲吾。名而記之。余牢讓不獲。強名之爲足庵。公意若薄其名者而曰。夫華榱髤楯。藻井綺疏。連雲煥日而千門洞開。垣墻數百里者。有長楊,五柞之宮。此室宇之宏大壯麗者也。驚濤怒浪。排空無際。閩商海賈飛帆鼓楫。出入於煙雲杳靄之間者。有洞庭,彭蠡之湖。此景物之魁偉秀絶者也。今以是庵爲足。得無小乎。余應之曰。夫物無窮而身有涯。必欲盡物而後爲足耶。則彼舐痔而得車。入市而攫金者。役役至死。而猶不知足矣。苟虛其心委其分。而安之若命。則一枝滿腹。烏往而不足哉。以居是庵之側僻湫隘。纔庇風雨。而優游逸樂乎其中。則不待夫涼臺館之比棟連甍。璀璨錯峙。而足以容吾身也。又庵之下有溪瀉出。聽其聲潨然可愛。則不待夫三江七澤之洶湧轟磕。驚裂地軸。若萬軍之怒號。而足以淸吾耳也。庵之前有峯環互。望其氣蔚然可揖。則不待夫嵩南泰華之陽崖陰壑。晦明變化。有濃雲迅雷之俱發。而足以適吾目也。謂足者如是而已。雖然。有實而後有名。有我而後有物。公方將遺物忘形。而立於獨。則自身不有。而況於是庵乎。大定二十一年庚子七月日。記。

번역

대개 거칠고 시원하며 기이하고 장대한 보물 같은 경치는 하늘이 지어 하늘이 감추는 것이니, 반드시 산간과 해변의 황량한 변방과 구석진 땅에서, 격렬한 물결과 빠른 소용돌이, 무너진 절벽과 떨어진 바위들이 덮고 있는 곳, 용과 뱀, 독사와 전갈, 호랑이와 표범들이 부딪치는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양식을 장만하고 길을 준비하여 아침을 달려 밤을 달리고, 사계절의 변화를 겪은 뒤에야 그곳에 이를 수 있다. 만약 도읍을 벗어나지 않고, 흙을 나르고 돌을 실어 그 높이를 더하지도 않은 채 앉아 있는 것만으로 뛰어난 경치를 얻는다면, 천 년 동안 드물게 있을 일이다. 왕륜사의 서쪽 편에 한 암자가 있으니, 상인(上人) 찬사(闡師)가 거처하고 있다. 암자의 구조는 모두 굽은 서까래와 휘어진 기둥으로, 그 천연의姿를 따라 지어 검게 칠하거나 흰색으로 도색하지 않았으니, 이는 화려함과 소박함의 중간을 얻은 것이다. 그 위에 올라 바라보면 넓고 트여 있으며 허전하고 밝아, 날아다니는 새의 등까지 볼 수 있다. 겹친 언덕과 여러 봉우리는 비단 띠처럼 둘려 있고, 황량한 길과 좁은 길은 높고 낮아 흐릿하다. 왕래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으나, 모두 한 자리와 한 자리 안에 벗어나지 못하니, 참으로 왕도(王都)의 아름다운 곳이다. 공(公)은 남국(南國)에서 허공을 밟고 와서, 곧京师에 돌아와 이 암자에 두 해 동안 거처하였다. 한번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불행하게도 말법(末法) 중에 태어났으니, 종문(宗門)이 쇠퇴하고 폐허되어 성도(聖道)가 장차 평탄해짐을 알겠다. 여래의 비장(秘藏)을 짊어지는 자로서, 마땅히 인간세를 멀리揖하고, 바위 속으로 도망하여 계곡에 숨어 내 생을 마쳐야 하리라." 이에 오루(五樓)의 김책(金策)을 들어 흔들며, 홀연히 혼자 가서 명산(名山)을 찾아다니며, 제천(諸天)에 올라가려 하였다. 그러나 평소 공과 교유하던 진선(搢紳) 선비들은 모두 그의 도를 기뻐하며 떠나기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공은 뜻대로 하지 못하여 행함이 끌리지 않고, 멈춤이 막히지 않았으니, 마치 마음이 없는 여운(閑雲)처럼 그 떠남과 남음을任하였다. 항상 암자 속에 몸을 감추고 눈을 감고 앉아 명상하며, 담박하였다. 아침과 저녁에 분사(焚頌)를 하는 외에는, 한가하여 할 일이 없었으니, 매일 맑은 경치가 어우러질 때, 여러 손님을 이끌고 숲에서 열매를 따서 향기가 자를 수 있을 만큼 나고, 텃밭에서 꽃잎을 꺾어 맛이 먹을 만하였다. 접시에는 맛있는 요리가 있고, 술잔에는 좋은 술이 있어, 맑은 바람이 계단을 쓸고 밝은 달이 좌석을 모시게 하였으며, 봄 차를 갈아 마시니 향기로운 샘물이 달았고, 흰 거문고를 타니 고요한 새가 엿보았다. 혹은 취한 자가 흠뻑 젖고, 노래하는 자가 격렬하였으며, 혹은 고요히 미묘한 걸음을 관찰하고 사물을 초월하여傲慢히 바라보며, 유유자적하여 자신의 적소(適所)를 편안히 하였다. 비록 마주한 즐거움이 다르지만, 마음에 얻은 바 또한 모두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먼저 이곳에 거처하던 자들은 자신의 작품을 기록하지 않아, 임간(林澗)의 부끄러움을 오래도록 남겼다. 내가 이 암자에서 공을 알현하니, 공이 기꺼이 나에게 부탁하며 말하기를, "옛적부터 수려하고 이례적인 경치는 반드시 높은 재주를 가진 이를 만나야 그 뜻을 극진히 표현할 수 있느니라. 너는 나를 위해 이름을 짓고 기록하라." 나는 굳이 사양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억지로 이름을 지어 '족암(足庵)'이라 하였다. 공의 뜻은 그 이름을 얕게 여기는 듯하며 말하기를, "화려한 서까래와 광택 있는 난간, 무늬가 있는 천장과 비단으로 만든 창호, 구름에 이어져 해를 밝히고 천 개의 문이 활짝 열린, 성벽이 수백 리에 달하는 곳에는 장양(長楊)과 오작(五柞)의 궁궐이 있으니, 이는 집의 크고 장엄하며 화려한 것이다. 격렬한 파도와 성난 물결이 하늘을 치고 끝이 없어, 민상(閩商)과 해가(海賈)가 날개를 펴고 노를 저어 안개와 흐림 사이를 드나드는 곳에는 동정(洞庭)과 방리(彭蠡)의 호수가 있으니, 이는 경물의 크고 뛰어나며绝倫한 것이다. 이제 이 암자를 족하다 함은, 작게 여기지 않겠는가?" 내가 대답하였다. "사물은 무궁하지만 몸은 유한하니, 반드시 모든 사물을 다한 뒤에야 족하다고 할 것인가? 그렇다면 엉덩이를 핥아 수레를 얻은 자나, 시장에 들어가 금을攫하는 자들은, 부지런히 죽을 때까지도 여전히 족하지 않으니라. 만약 마음을 비우고 분수(分數)를 맡겨 명(命)을 안다면, 한 가지 가지로 배를 채우고 새가 어디로 가더라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이 암자가 구석지고 낮고 좁아 겨우 바람과 비를 가릴 뿐이지만, 그 안에서 유유자적하고 편안하게 즐기면, 서리(涼臺)와 관각(館閣)의 기둥이 이어지고 지붕이 닿아 찬란하게 어긋나게 늘어선 것을 기다릴 필요 없이, 내 몸을 수용하기에 족하리라. 또 암자 아래로 시내가 흘러나오니, 그 소리를 들으면 우렁차고 사랑스러워, 삼강(三江)과 칠택(七澤)의 소용돌이치고 굉음 내며 땅의 축을 찢고 만 군대의 성난 부르짖음 같은 것을 기다릴 필요 없이, 내 귀를 맑게 하기에 족하리라. 암자 앞에는 봉우리가 서로 둘러싸고 있어, 그 기운이 우거져 절할 만하니, 송남(嵩南)과 태화(泰華)의 양지바른 절벽과 그늘진 골짜기, 어둡고 밝음이 변화하며 짙은 구름과 우레가 함께 발동하는 것을 기다릴 필요 없이, 내 눈을 편안하게 하기에 족하리라. 족하다는 것이 이와 같을 뿐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실체가 있어야 이름이 있고, 내가 있어야 사물이 있느니라. 공은 장차 사물을 버리고 형체를 잊고, 독보(獨)에 서려 할 터이니, 스스로도 소유하지 않는데, 하물며 이 암이랴?" 대정(大定) 21년 경자(庚子) 7월 일. 기(記).

177. 東行記

문체: 雜著類 / 記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8C, ITKC_MO_0003A_A001_258D ...

원문

世之論山水者。以江東爲秀地。余獨未信曰。造物者固無心於與奪。安肯私于一方耶。及遊南國。凡以奇勝絶特自名者。咸所冥搜饜見。以爲天下之奇觀殆無出於此矣。又去而之東。自溟原二州之境。風土特變。山增高水益淸。千峯萬壑。誇奇競秀。民居其間。皆側耕危穫。怳然若別造一世界。向之所歷者。宜皆遜讓屈伏。無敢與抗矣。然後知混沌氏始判淸濁。崑崙磅礴。獨凝結而爲是也。竹嶺之西二十餘里。有水名唐津。下多細石。皆圓熟而靑色。色徹而水碧。沈沈無聲。魚可數百尾戲于石間。左右皆巖巖靑峙。壁立萬仞。如丹而碧之。崖谷之勢呀然窪然。若垤若穴。奇卉美箭。交生羅絡。影倒水底。大略如此。而其奇麗不可狀。遂下馬斷岸口。泛舟於石壁之趾。舟中人語。山谷皆應。乃嘯詠自得。終日忘歸。蒼然晚色。自遠而至。其境過淸。不可久留。吟一詩題之而去。碧水溶溶色似藍。映波靑壁倒巉巖。飄然萬里東征客。獨掛秋風一幅帆。自余東邁。車轍馬迹之所及多矣。淸絶之地莫有過此者。如近置於京邑。則貴遊必日增千金而爭買矣。以僻在荒壤。人罕能至。時時有獵夫漁老過而不顧。此必天將祕之。以待吾輩窮愁之人爾。至登溟州南嶺。北出海畔。有小城曰洞山。人民聚落。蕭然甚僻。登其城以望之。薄暮冥冥。道傍漁舍。燈火隱顯。使人有懷鄕去國。凄然感極而悲者。夜宿傳舍。倚壁危坐。江聲渹渹不已。雷輥電擊。豎人毛髮。若符堅以百萬之師來伐江南。麾陣而却。驚潰不止。棄器械輜重而疾走也。何其壯哉。遂題詩曰。居民寂寞半溟濤。百丈峯頭插麗譙。帆影輕飛魚市闊。浪花爭蹙海門遙。征鞍泠帶黃昏月。客枕頻喧半夜潮。不減吳江亭上望。丹楓綠橘映長橋。曉聞村雞一號。行過洛山之西。路有孤松。節目磥砢。枝幹屈盤。蔭地而周圍者數十步。異哉松之奇怪。世復有如是者耶。洞天幽寂。雲水沈沈。殆非人間之境。仙靈之所居。高士之逸迹。宛然在焉。余感昔新羅元曉,義相二法師親謁觀音於仙窟中。自歎其骨凡氣俗。未遇而返。欲問遺事則徒見其山長水流。而數百年間。故家遺俗盡矣。乃作二絶以懷之曰。曾聞居士老維摩。飛錫凌空萬里過。已遣文珠來問疾。不應無事出毗耶。謂元曉也。飛錫尋眞海岸孤。親瞻妙相出虛無。不緣大士廻靈應。爭得神龍一顆珠。謂義相也。自捍城以北。未有所歷。若世所傳叢石鳴沙皆不目焉。則今之見於江東者。眞大倉一稊稗耳。設使盡觀。雖窮萬穀之皮。禿千兔之翰。安能盡紀耶。昔司馬太史嘗遊會稽。窺禹穴以窮天下之壯觀。故氣益奇偉。而其文頗疏蕩而有豪壯之風。則大丈夫周遊遠覽。揮斥八極。將以廣其胸中秀氣耳。余若桎梏於名檢之內。則必不能窮其奇摻其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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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산수를 논하는 이들은 강동을 아름다운 곳으로 여긴다. 나는 유독 믿지 않았다. "창조주가 본래 사사로운 마음이 없어, 어찌 한쪽 땅에 치우쳐 줄 수 있겠는가." 남국을 유람한 뒤, 기이함과 절묘함으로 스스로를 내세운 곳들은 모두 찾아다니며 충분히 보았으니, 천하의 기이한 경관은 이보다 더한 것이 거의 없다고 여겼다. 다시 동쪽으로 가서, 명원 두 주의 경계에서부터 풍토가 특별히 변하여 산은 더 높아지고 물은 더욱 맑아졌다. 천 개의 봉우리와 만 개의 골짜기가 기이함을 자랑하고 아름다움을 다투니, 그곳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비탈진 곳에서 농사짓고 위태로운 곳에서 수확하는 모습이라, 마치 별세계를 새로 만든 듯했다. 이전에 지나쳤던 곳들은 마땅히 물러나 굴복하여 감히 대적할 자가 없었을 것이다. 그제야 혼돈의 선비가 비로소 청탁을 가르고, 곤륜산이 웅장하게 뻗어 오직 이곳에 응결되어 형성되었음을 알았다. 죽령 서쪽二十여 리 지점에 당진이라는 이름의 물이 있는데, 아래에는 작은 돌들이 많고 모두 둥글고 매끄러우며 푸른빛을 띤다. 빛이 투명하고 물은 푸르며, 고요히 소리 없이 흐르고, 수백 마리의 물고기들이 돌 사이에서 노닌다. 좌우에는 푸르게 우뚝 선 절벽이 만 길 높이로 서 있고, 붉고 푸른 빛을 띤다. 절벽과 골짜기의 형세는 깊고 패인 듯하며, 개미의 흙무더기나 구멍 같기도 하다. 기이한 꽃들과 아름다운 대나무가 교차하여 나고 얽혀 있으며, 그 그림자가 물속에 비친다. 대략 이와 같으나, 그 기이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형용할 수 없다. 마침내 말에서 내려 절벽 끝에서 배를 타고 석벽 발치에서 유람했다. 배 안의 사람들이 말하자 계곡이 모두 응답했다. 이에 노래하고 읊조리며 스스로 즐거움을 얻어, 종일 잊고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푸른빛의 저녁 빛이 멀리서부터 찾아왔는데, 그 경치가 지나치게 맑아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시 한 수를 읊어題하고 떠났다. "푸른 물은 용솟음치며 빛이 푸르니, 파도에 비친 푸른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다. 저절로 만 리를 동쪽으로 정벌하는 객은, 홀가분하게 가을 바람에 한 폭의 돛을 걸었다." 내가 동쪽으로 나아가면서, 수레 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이 미친 곳이 많았으나, 맑고 절묘한 곳으로 이보다 더한 곳은 없었다. 만약 근접하여 수도에 두었다면, 귀족들은 반드시 날마다 천금을 더하여 서로 사려고 했을 것이다. 오랑된 땅에 외딴 곳에 있어 사람들이 드물게 찾아가니, 때때로 사내들과 낚시 노인들이 지나쳐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는 반드시 하늘이 이를 비밀에 부쳐 우리 같은 궁핍하고 슬픈 사람들을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영주 남령에 올라 북쪽 바다 곁을 바라보니, 동산이라는 작은 성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은 매우 외롭고 외딴 곳이었다. 그 성에 올라 바라보니, 해가 저물어 어둠이 끼고, 길가 어부들의 집에는 등불이 숨었다 드러났다 하여, 고향을 그리워하고 나라를 떠난 마음을 불러일으켜, 서글프고 감격하여 슬퍼하게 하였다. 밤에 역관에서 묵으며 벽에 기대어 위태롭게 앉아 있으니, 강물은 요란하게 그치지 않고, 천둥은 굴러가고 번개는 치며, 머리카락을 세우게 하니, 마치 부견이 백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강남을 정벌하러 왔다가, 진을 휘저어 물러나 놀라 패배하여 멈추지 않고, 병기와 물자를 버리고 달아나는 것과 같았다. 얼마나 장엄한가. 이에 시를題하였다. "주민들은 고요하여 반쯤 바다 물결에 잠겼고, 백 길 봉우리 위에 화려한 누각이 꽂혔다. 돛 그림자는 가볍게 날아 어시장은 넓고, 물결은 다투어 조수맞이하는 바다 문턱은 멀다. 정마는 차갑게 황혼의 달을 띠고, 객의 베개는 자주 한밤중의 조수를 시끄럽게 한다. 오강 정자에서 바라보는 것과 다름없어, 붉은 단풍과 녹색 귤이 긴 다리를 비춘다." 아침에 마을 닭 한 마리가 울리는 것을 듣고, 낙산 서쪽으로 지나갔다. 길에 외로운 소나무가 있었는데, 마디가 울퉁불퉁하고 가지와 줄기는 구불구불하여 땅을 음영하여 둘레가 수십 보나 되었다. 놀랍도다, 소나무의 기이하고 괴상한 모습. 세상에 또 이와 같은 것이 있는가. 동천은 고요하고 적막하며, 구름과 물은 깊어, 거의 인간의 세상이 아닌 듯하여, 선령이 거하는 곳이고, 고사의 은거 자취가 아련히 남아 있다. 나는 옛날 신라의 원효와 의상 두 법사가 선굴에서 관음을 친히 알현하였다는 것을 듣고, 자신의 뼈는 평범하고 기운은 속된 탓에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음을 탄식하였다. 유적을 묻고자 하나 산만 길게 흐르고 물만 볼 뿐, 수백 년 동안 옛 집안의 풍속은 모두 다하였다. 이에 두 수의 절구를 지어 그들을 추억하였다. "옛적에 거사가 노쇠한 유마와 함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팡이를 날려 만 리를 건너왔다. 이미 문수가 병문안을 오게 하였으니, 일이 없이 비야를 나올 리 없다." 원효를 말한 것이다. "지팡이를 날려 진리를 찾으니 해안가 외롭고, 친히 묘상을 보아 허무에서 나왔다. 대사의 영험한 응답이 아니었다면, 어찌 신룡의 한 알 주머니를 얻었겠는가." 의상을 말한 것이다. 자성성 북쪽에서는 지나간 곳이 없으니, 만약 세상에 전하는 종석과 명사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 강동에서 보는 것은 참으로 큰 창고의 한 알 기장 같은 것이다. 비록 모두 보았다고 해도, 만 곡의 껍질을 다 벗기고 천 마리 토끼의 먹물을 다 쓰더라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옛날 사마태사가 회계를 유람하고 우굴을 엿보아 천하의 장관을 다穷하였으므로, 기운이 더욱 기이하고 위대하며, 그 문장이 다소 소탈하고 호장한 풍이 있었으니, 이는 대장부가 멀리 두루 유람하며 팔극을 휘저어 장차 그 가슴 속의 수기(秀氣)를 넓히려 함이었을 뿐이다. 내가 만약 명검(名檢)의 속박 안에 있다면, 반드시 그 기이함을 다穷하고 그 이색함을 다掺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문

以賞其雅志也。有以見天之厚余多矣。月日。某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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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아한 뜻을 칭송하기 위함이다. 하늘이 나에게 후하게 베푼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월일. 모(某)가 기록함.

178. 麴醇傳

문체: 傳記類 / 其他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9D, ITKC_MO_0003A_A001_260A ...

원문

麴醇字子厚。其先隴西人也。九十代祖牟佐后稷。粒蒸民有功焉。詩所謂貽我來牟是也。牟始隱不仕曰。吾必耕而後食矣。乃居畎畝。上聞其有後。詔以安車徵之。下郡縣所在敦遣。命下臣親造其廬。遂定交杵臼之間。而和光同塵矣。熏蒸漸漬。有醞藉之美。牟乃喜曰。成我者朋友也。豈不信然。旣而以淸德聞。乃表旌其閭焉。從上祀圜丘。以功封中山侯。食邑一萬戶。食實封五千戶。賜姓爲麴氏。五世孫輔成王。以社稷爲己任。致太平旣醉之盛。康王卽位。漸見疏忌。使之禁錮。著於誥令。是以。後世無顯著者。皆藏匿於民間。至魏初。醇父酎知名於世。與尙書郞徐邈偏汲引於朝。每說酎不離口。時有白上者。邈與酎私交。漸長亂階矣。上怒。召邈詰之。邈頓首謝曰。臣之從酎。以其有聖人之德。時復中之耳。上乃責之。及晉受禪。知將亂。無仕進意。與劉伶,阮籍之徒。爲竹林遊以終其身焉。醇器度弘深。汪汪若萬頃陂水。澄而不淸。擾之不濁。其風味傾於一時。頗以氣加人。嘗詣葉法師。談論彌日。一座爲之絶倒。遂知名。號爲麴處士。自公卿大夫神仙方士。至於廝兒牧豎夷狄外國之人。飮其香名者皆羨慕之。每有盛集。醇不至。咸愀然曰。無麴處士不樂。其爲時所愛重如此。大尉山濤有鑑識。嘗見之曰。何物老姁生此寧馨兒。然誤天下蒼生者。未必非此人也。公府辟爲靑州從事。以鬲上非所部。改調爲平原督郵。久之歎曰。吾不爲五斗米折腰。向鄕里小兒。當立談樽俎之間耳。時有善相者曰。君紫氣浮面。後必貴。享以千鍾矣。宜待善價而沽之。陳後之時。以良家子拜主客員外郞。上乃器異之。將有大用意。因以金甌覆而選之。擢遷光祿大夫禮賓卿。進爵爲公。凡君臣會議。上必使醇斟酌之。其進退酬酢。從容中於意。上深納之曰。卿所謂直哉惟淸。啓乃心沃朕心者也。醇得用事。其交賢接賓。養老賜酺。祀神祇祭宗廟。醇優主之。上嘗夜宴。唯與宮人得侍。雖近臣不得預。自是之後。上以沈酗廢政。醇乃以箝其口而不能言。故禮法之士。疾之如讎。上每保護之。醇又好聚斂營資產。時論鄙焉。上問曰。卿有何癖。對曰。昔杜預有傳癖。王濟有馬癖。臣有錢癖。上大笑。注意益深。嘗入奏對于上前。醇素有口臭。上惡之曰。卿年老氣渴。不堪吾用耶。醇遂免冠謝曰。臣受爵不讓。恐有斯亡之患。乞賜臣歸于私第。則臣知止足之分矣。上命左右扶出焉。旣歸。暴病渴。一夕卒。無子。族弟淸後仕唐。官至內供奉。子孫復盛於中國焉。史臣曰。麴氏之先。有功于民。以淸白遺子孫。若鬯之在周。馨德格于皇天。可謂有祖風矣。醇以挈甁之智。起於甕牖。早中金甌之選。立談樽俎。不能獻可替否。而迷亂王室。顚而不扶。卒取笑於天下。巨源之言。有足信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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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순(麴醇)은 자(字)가 자후(子厚)이다. 그의 선조는 룽시(隴西) 사람이다. 아흔 번째 대조인 모좌(牟佐)는 후직(后稷)을 도와 백성에게 곡식을 심는 공이 있었다. 시경에 "우리에게 밀과 보리를 주셨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모(牟)는 처음에 은거하며 벼슬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나는 반드시 농사를 지은 후에야 먹겠다"고 하여, 밭과 도랑에 거처하였다. 임금이 그의 후손이 있음을 듣고, 안거(安車)로 그를 징발하라고 명하였다. 군현에 내려 명하여 그곳에서 권면하여 보내게 하니, 명이 내려지자 신하가 친히 그의 초가에 찾아가 교분을 맺었고, 추수(杵臼) 사이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하였다. 훈증과 침잠으로酝藉(운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모가 기뻐하여 말하였다. "나를 성취해 주는 것은 친구다. 진실로 그러하지 않겠는가." 이후 청덕(淸德)으로 이름이 알려지자, 임금이 그의 문간을 표창하게 하였다. 상(上)이 원구(圜丘)에 제사할 때 따라가 공으로 중산후(中山侯)에 봉해졌고, 식읍 만 호, 식실봉 오천 호를 받았으며, 성을 하사받아 곡씨(麴氏)가 되었다. 오세손 보(輔)는 왕을 도와 사직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 태평성대와 기醉(기醉)의盛況을 이루었다. 강왕(康王)이 즉위하자 점차 신임을 잃고 기피당하여, 교령(誥令)에 명하여 감금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후세에 현저한 인물이 없었으며, 모두 민간에 숨어 지내다가, 위(魏)나라 초에 이르러 순의 부친 주(酎)가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상서랑 서막(徐邈)이 조정에 있을 때 주를 편벽되게 끌어주었으며, 항상 주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당시 누군가 상에게 고하여 말하였다. "막이 주와 사사로운 사교를 맺어 점차 난세의 계보를 길렀습니다." 임금이 노하여 막을 불러 문책하였다. 막이 머리를 조아리며謝罪하였다. "신은 주를 따르는 것이, 그에게 성인의 덕이 있어 때때로 그에게 취하는 것일 뿐입니다." 임금이 그를 책망하였다. 진(晉)이 선양을 받자, 장차 난이 일어날 것을 알고 벼슬할 뜻이 없어, 유령(劉伶), 원적(阮籍)의 무리와 함께 죽림(竹林)의 유락을 하며 일생을 마쳤다. 순의 기개와 도량이 깊고 넓어, 만 길의 큰 연못물처럼 맑으나 맑다고만 할 수 없고, 어지럽혀도 흐려지지 않았다. 그의 풍미는 한때 사람들을 매료시켰으나, 다소 기세로 사람을 누르기도 하였다. 전적으로 법사(法師)를 찾아 며칠 동안 담론을 나누니, 자리가 모두 그를 감복하여 절도하였다. 이로써 이름을 알렸고, 곡처사(麴處士)라 불렸다. 공경대부부터 선인방사(神仙方士)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시동자와 목동, 이적(夷狄)과 외국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의 향기를 알고 이름을 아는 자는 모두 부러워하였다. 매번 큰 모임이 있을 때 순이 오지 않으면, 모두 슬픈 기색을 지으며 말하였다. "곡처사가 없으면 즐겁지 않다." 그가 이처럼 때의 사랑과 중임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태위 산도(山濤)는 식견이 있어, 그를 보고 말하였다. "어찌 이 노인이 이런 훌륭한 아들을 낳았는가." 그러나 천하의 백성을 미혹하게 한 자는, 반드시 이 사람일지도 모른다. 공부(公府)가 청주종사(靑州從事)로 발탁하였으나, 격상(鬲上)이 관할 구역이 아니어서 평원독우(平原督郵)로 전임되었다. 오래도록 탄식하였다. "나는 오십 도미(五斗米)를 위해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 향리의 소아(小兒)에게로 돌아가, 잔치 자리에서 단숨에 말하리라." 당시 상술가(相術家)가 말하였다. "군자의 얼굴에는 자기가 뜨고 있으니, 후일에 반드시 귀해져 천 종(千鍾)의 녹을 받을 것이다. 좋은 값을 기다려 팔아야 한다." 진후(陳后) 때에 양가자(良家子)로서 주객원외랑(主客員外郞)에 임명되었다. 임금이 그를 기이하게 여겨 크게 쓰려 하였다. 금구(金甌)로 덮어 선택하여, 광록대부 예빈경(光祿大夫禮賓卿)으로 승진시켰고, 작위를 진작하여 공(公)으로 삼았다. 임금이든 신하든 회의할 때, 반드시 순에게 술을 따르게 하였다. 그의进退(진퇴)와 주례(酬酢)가从容(용이)하여 뜻에 맞았다. 임금이 깊이 받아들여 말하였다. "네야말로 곧음과 청렴을 말하는 자요, 마음을 열어 내 마음에 부어주는 자이다." 순이 권력을 잡자, 그와 교유하고 손님을 접하며, 노인을 공양하고 포주(酺)를 하사하며, 신명과 조묘(宗廟)를 제사할 때, 순이 주로 맡았다. 임금이 밤에 연회를 열었을 때, 오직 궁인(宮人)만伺候하게 하였으며, 근신이라도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 이후 임금은 심취하여 정사를 폐단하게 되자, 순은 그의 입을 막아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예법之士들이 그를 원수처럼 미워하였다. 임금이 매번 그를 보호하였다. 순은 또 재물을 모으고 재산을 경영하는 것을 좋아하여, 당시 여론이 그를 비웃었다. 임금이 물었다. "네게 무슨 병이 있는가?" 답하였다. "예전에 두예(杜預)는 전적(傳癖)이 있었고, 왕제(王濟)는 말癖이 있었습니다. 신에게는 돈癖이 있습니다." 임금이 크게 웃으며 주의를 더욱 깊게 하였다. 전적으로 조대(奏對)하기 위해 상전(上前)에 들어갔을 때, 순은 평소 입냄새가 심하였다. 임금이 싫어하여 말하였다. "네가 늙어 기가 고갈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쓰기가 어렵겠는가?" 순이 즉시 관을 벗고謝罪하였다. "신이 작위를 사양하지 않으니, 혹시 망하는 재앙이 있을까 두려워합니다. 신에게 사사로이 돌아가게 해 주시면, 신은 족함의 분수를 알겠습니다." 임금이 좌우로 명하여 부축하여 내보냈다. 돌아간 후, 갑자기 목마른 병에 걸려 하룻밤 사이에 죽었다. 아들이 없었다. 종제 청(淸)이 후일 당(唐)에 나가 관직이 내공부(內供奉)에 이르렀고, 자손들이 중국에서 다시 성성하였다. 사신(史臣)이 말하였다. "곡씨의 선조는 백성에게 공이 있어, 청백(淸白)으로 자손에게 남겼다. 마치 주(周)나라에 칙(鬯)이 있는 것과 같아, 향덕이 황천에 통하였다. 조상의 풍모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순은 병을 들고 지혜를 발휘하여瓮牖(옹유)에서 일어나, 일찍이 금구의 선택을 받아, 잔치 자리에서 단숨에 말하였으나, 가(可)를 바치고 부(否)를 대신하지 못하여 왕실을 미혹하게 하고, 넘어뜨려도 부축하지 않아, 결국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거원(巨源)의 말이 믿을 만하다."

179. 孔方傳

문체: 傳記類 / 其他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1A, ITKC_MO_0003A_A001_261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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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方字貫之。其先嘗隱首陽山。居窟穴中。未嘗出爲世用。始黃帝時稍採取之。然性強硬。未甚精鍊於世事。帝召相工觀之。工熟視良久曰。山野之質。雖藞苴不可用。若得遊於陛下之造化爐錘間。而刮垢磨光則其資質當漸露矣。王者使人也器之。願陛下無與頑銅同棄爾。由是顯於世。後避亂徙江滸之炭鑪步。因家焉。父泉。周大宰。掌邦賦。方爲人。圓其外方其中。善趨時應變。仕漢爲鴻臚卿。時吳王濞驕僭專擅。方與之爲利焉。虎帝時海內虛耗。府庫空竭。上憂之。拜方爲富民侯。與其徒充鹽鐵丞僅同在朝。僅每呼爲家兄不名。方性貪汙而少廉隅。旣摠管財用。好權子母輕重之法。以爲便國者不必古在陶鑄之術爾。遂與民爭錙銖之利。低昂物價。賤穀而重貨。使民棄本逐末。妨於農要。時諫官多上疏論之。上不聽。方又巧事權貴。出入其門。招權鬻爵。升黜在其掌。公卿多撓節事之。積實聚斂。券契如山。不可勝數。其接人遇物。無問賢不肖。雖市井人。苟富於財者。皆與之交通。所謂市井交者也。時或從閭里惡少。以彈棋格五爲事。然頗好然諾。故時人爲之語曰。得孔方一言。重若黃金百斤。元帝卽位。貢禹上書。以爲方久司劇務。不達農要之本。徒興管榷之利。蠹國害民。公私俱困。加以賄賂狼藉。請謁公行。蓋負且乘。致寇至。大易之明戒也。請免官以懲貪鄙。時執政者有以穀梁學進。以軍資乏。將立邊策。疾方之事。遂助其言。上乃頷其奏。方遂見廢黜。謂門人曰。吾頃遭主上。獨化陶鈞之上。將以使國用足而民財阜而已。今以微罪。乃見毀棄。其進用與廢黜。吾無所增損矣。幸吾餘息。不絶如線。苟括囊不言。容身而去。以萍遊之迹。便歸于江淮別業。垂緡若冶溪上。釣魚買酒。與閩商海賈拍浮酒船中。以了此生足矣。雖千鍾之祿。五鼎之食。吾安肯以彼而博此哉。然吾之術。其久而當復興乎。晉和嶠聞其風而悅之。致貲巨萬。遂愛之成癖。故魯褒著論非之。以矯其俗。唯阮宣子以放達。不喜俗物。而與方之徒杖策出遊。至酒壚。輒取飮之。王夷甫口未嘗言方之名。但稱阿堵物耳。其爲淸議者所鄙如此。唐興。劉晏爲度支判官。以國用不贍。請復方術。以便於國用。語在食貸志。時方沒已久。其門徒遷散四方者。物色求之。起而復用。故其術大行於開元,天寶之際。詔追爵方朝議大夫少府丞。及炎宋神宗朝。王安石當國。引呂惠卿同輔政。立靑苗法。天下始騷然大困。蘇軾極論其弊。欲盡斥之。而反爲所陷。遂貶逐。由是朝廷之士不敢言。司馬光入相。奏廢其法。薦用蘇軾。而方之徒稍衰減而不復盛焉。方子輪以輕薄獲譏於世。後爲水衡令。贓發見誅云。史臣曰。爲人臣而懷二心。以邀大利者。可謂忠乎。方遭時遇主。聚精會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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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孔方)은 자(字)가 관지(貫之)이다. 그의 선조는 본디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하며 동굴에서 살았는데, 한 번도 나와서 세상에 쓰임을 받지 않았다. 처음에 황제 때에 와서야 조금씩 채굴되기 시작했으나, 성품이 강직하고 단단하여 아직世事(세상의 일)에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았다. 황제가 상공(相工)을 불러 그를 보게 하니, 상공이 오랫동안 자세히 바라보며 말하였다. "산야의 재질이라 비록 거칠어 쓰기에 적합하지 않으나, 만약 폐하의 조화(造化)의 주조(鑄造)와 망치질 사이에 유유자적하며 때를 타서 더러움을 긁어내고 빛을 낸다면 그 자질은 점차 드러날 것입니다." 왕이 사람을 시켜 그를 쓰기를 원하여 말하였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그를 버린 못된 구리와 함께 버리지 마소서." 이로 인해 공방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후에 난을 피하여 강가의 탄로(炭爐) 부근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집안을 이루었다. 그의 아버지는 천(泉)으로, 주(周)나라의 대재(大宰)로서 나라의 세수를 관장하였다. 공방은 사람됨이 바깥은 둥글고 안은 네모났으며, 때를 잘 따라 변통하는 데 능하였다. 한(漢)나라에서 벼슬하여 홍려경(鴻臚卿)이 되었다. 당시 오왕 유비(吳王濞)가 교만하고 거만하여 독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자, 공방은 그와 결탁하여 이익을 취하였다. 호제(武帝) 때에 천하가 허하고 고갈되어 부고가 텅 비었으므로, 황제가 이를 근심하여 공방을 부민후(富民侯)에 임명하고 그의 무리들을 함께 염철승(鹽鐵丞)으로 삼았다. 공방은 매번 그를 집안 형님이라 부르며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공방은 성품이 탐욕스럽고 더러워 청렴한 절개가 없었으며, 이미 재정을 총괄하게 되자 권자모(權子母, 이자를 받는 일)와 경중(輕重, 물가 조절)의 법을 좋아하여, 나라를 편하게 하는 데 반드시 고대의 주조술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이에 백성과 쪼그라미의 이익을 다투며 물가의 높낮이를 조정하여 곡식은 싸게 하고 물품은 비싸게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본업인 농사를 버리고 상공(工商)에 종사하게 하여 농사의 요긴함을 해쳤다. 당시 간관들이 상소하여 이를 논박하였으나, 황제는 듣지 않았다. 공방은 또 교묘하게 권세를 가진 자들을 아첨하여 그들의 문안을 드나들며 권세를 장사치고 작위를 팔아 승진과 면직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공경대신들이 대부분 절개를 굽혀 그를 섬겼다. 그는 재물을 쌓고 수탈하여 전적(券契)이 산처럼 쌓여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가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대함에 현명한 자나 현명하지 못한 자를 가리지 않고, 비록 시정(市井)의 사람이라도 재물이 풍부한 자라면 모두 그와 교제하였다. 이를 이른바 시정(市井)의 사귀(交遊)라고 한다. 때로는 때때로 마을의 악동들을 따라 탄기(彈棋)와 격오(格五)를 놀이로 삼았으나, 본래 약속을 중히 여겨 신의가 있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에게 대하여 말하였다. "공방의 한 마디 말은 황금 백 근보다 무겁다." 원제(元帝)가 즉위하자 공우(貢禹)가 상소하여 말하였다. "공방이 오랫동안 중요한 직무를 맡아 농사의 근본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관전(管榷, 국가 독점)의 이익만 일으켜 나라를 해치고 백성을 해치며 사사(公私)가 모두 곤궁해졌습니다. 여기에 뇌물이 횡행하고 청탁이 공공연히 이루어지니, 이는 곧 '부하고 큰 것을 타고 있으니 도적이 이를 부른다'는 것이요, 대역(大易)의 분명한 경계입니다. 원컨대 관직에서 면직시켜 탐욕스럽고 비열함을 징벌하게 하소서." 당시 집정자 중에는 곡량학(穀梁學)으로 등용된 자가 있었는데, 군자금이 부족하여 변방의책을 세우려다가 공방의 일을 미워하여, 이에 공우의 말을 도와주었다. 황제께서 비로소 그 상소를 허락하시자, 공방은 마침내 폐위되었다. 공방이 문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근일 주상을 만나서 오직 도금(陶鈞) 위에서 변화하기를 바랐으니, 이는 나라의 재정을 충분히 하고 백성의 재물을 풍요롭게 하려 함이었다. 이제 작은 죄로 인해 오히려 훼멸되고 버림을 받았으니, 그 쓰임과 폐지는 내게 더하거나 잃는 바가 없다. 다행히도 나의 남은 숨결이 실처럼 끊어지지 않았으니, 만약 주머니를 말아 말하지 않고 몸을 보전하여 물러간다면, 둥근 물결을 타는 자취로 돌아가 강호의 별업(別業)에 돌아갈 것이다. 낚싯대를 내려 메계(冶溪) 위에서 낚시를 하고 술을 사서, 월상(閩商)과 해가(海賈)들과 함께 술배에 띄워 살며 이생을 마치는 것이 족하리라. 비록 천종(千鍾)의 녹과 오정(五鼎)의 식사가 있다 할지라도, 내가 어찌 그것을 얻기 위해 이를 희생하겠는가." 그러나 나의 도술이 오래되어 다시 흥할까? 진나라의 하교(和嶠)가 그 명성을 듣고 기뻐하여 재물을 거두어 만 냥에 달하게 하여, 마침내 이를 사랑하여 버릇이 되었다. 그러므로 노포(魯褒)가 논을 지어 이를 비판하여 풍속을 교정하려 하였다. 오직 선자(阮宣子)만이 방달하여 속물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공방의 무리와 함께 지팡이를 짚고出游하여 주포(酒壚)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술을 가져다 마셨다. 왕이부(王夷甫)는 입으로 공방의 이름을 말한 적이 없었으나, 다만 아독물(阿堵物)이라 불렀을 뿐이다. 그의 청의(淸議)를 논하는 자들에게 이처럼 천하게 여겨졌다. 당나라가 흥하여 유안(劉晏)이 도지판관(度支判官)이 되었을 때, 나라의 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공방의 도술을 다시 청하여 나라의 재정에 편리하게 하려 하였다. 그 말은 식대지(食貸志)에 있다. 당시 공방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그의 문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것을 물색하여 구하여 다시 쓰이게 하였으므로, 그의 도술이 개원(開元)과 천보(天寶) 사이에 크게 행해졌다. 조령으로 공방을 조의대부 소부승(朝議大夫少府丞)에 작호하였다. 그리고 염송(炎宋) 신종(神宗) 조에 왕안석(王安石)이 정권을 잡자 여혜경(呂惠卿)을 인출하여 함께 정사를 보좌하게 하고 청묘법(靑苗法)을 세우자, 천하가 비로소 소란하여 크게 곤궁해졌다. 소순(蘇軾)이 그 폐해를 극력으로 논하여 모두 물리치려 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에게 함정에 빠져 천거되어 쫓겨났다. 이로 인해 조정의 신하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사마광(司馬光)이 재상이 되어 그 법을 폐지할 것을 상주하고 소순을 천거하여 쓰자, 공방의 무리가 조금씩 쇠퇴하여 다시 성대하지 않게 되었다. 공방의 아들 윤(輪)이 경박하여 세상에서 비난을 받았는데, 후에 수형령(水衡令)이 되어 간혹이 드러나 주살되었다. 사신이 말하였다. "신하로서 두 마음을 품고 큰 이익을 노리는 자를 충성스럽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공방은 때를 만나 주상을 만나서 정력을 모았으나, 결국 왕실을 어지럽히고 넘어뜨려도 부축하지 않아 마침내 천하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거원의 말이 믿을 만하다."

원문

以握手丁寧之契。橫受不貲之寵。當興利除害。以報恩遇。而助濞擅權。乃樹私黨。非忠臣無境外之交者也。方沒。其徒復用於炎宋。阿附執政。反陷正人。雖脩短之理在於冥冥。若元帝納貢禹之言。一旦盡誅。則可以滅後患也。而止加裁抑。使流弊於後世。豈先事而言者嘗患於不見信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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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정중히 맺은 인연으로 막대한 은혜를 입었으니, 마땅히 이익을 취하고 해악을 제거하여 은택을 갚아야 할 터였으나, 오히려 오(吳)의濞(비)가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도와 사당을 쌓았으니, 이는 국외의 사귀가 없는 충신이 아니다. 방(方)이 죽은 후, 그의 무리들은 다시 대송(大宋)의 융성기에 등용되어 권력을 장악한 자들을 아첨하고 부역하며, 오히려 정직한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렸다. 비록 수명의 길고 짧음은 명백하지 않은 이치에 있으나, 만약 원제(元帝)가 공우(貢禹)의 말을 받아들여 하루아침에 모두 주살했다면 이후의 근절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억제만 하여 후세에 악영향을 남겼으니, 이는 사전에 말한 자가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인가.

180. 上金侍郞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3C, ITKC_MO_0003A_A001_263D

원문

造化爐中。雖愧躍金之請。丹靑手下。庶爲斷木之收。敢將危迫之誠。輒叩包容之度。伏念某。庸庸賤品。瑣瑣末流。自吹葱騎竹之年。以挾策讀書爲事。野馬也塵埃也。恥從俗吏之靑衫。山林歟皐壤歟。長對古人之黃卷。幾作杏壇弟子。浪隨絳帳先生。嘗長者見而奇之。唯時輩有所嫉矣。且天生我必有用。命也如何。而才與世不相當。時哉易失。不求其利。祗待我辰。近被家公之指揮。欲參儲后之侍從。然無介紹。孰爲先容。吳坂之驥駕車。尙未逢於知己。魏宮之鵲繞樹。其可依者何枝。幸獲利於貴寮。早掛名於選籍。側聞去倖求之弊。乃特嚴考試之規。豈望虞廷之擧僉曰鯀哉。庶幾夫子之言吾與點也。恭惟某官。名高北斗。望重南金。如日月無得而踰。若鳳凰皆以爲瑞。落落楊憑之材幹。時人號曰文章魁。軒軒公道之風神。天下謂之宰相器。在朝無出其右。得君如彼其專。果簡上心。俾扶東禁。將蒐豹霧英雄之輩。以補龍樓左右之人。衆以此歸。士不失望。重念某孤危難托。飄泊何依。雖久爲明月之無因。猶仰慕淸風之有素。冀荷吹噓於今日。猥蒙掄選於昌朝。顧惟小子之心將以如此。不識大人之意忍之否乎。伏望與物爲春。推仁布惠。三吐哺三握髮而待士。見善若驚。一投足一擧手之忘勞。濟人爲急。竝錄寒生之姓字。兼留公擧之封章。則敢不俯仰生成。激昂志氣。便將附翼。少當得路之風雲。儻未蓋棺。皆是報恩之歲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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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造化)의 가마솥 가운데서 비록 금(金)을 뛰게 하려는 청을 부끄러워하나, 단청(丹青)의 손底下에서 비록 잘려 나간 나무의 수확을 바랄 뿐입니다. 감히 위급하고 절박한 성의를 가져 감히 포용하시는 도량(度)을 두드리나이다. 생각건대, 저는 평범하고 천한 품성으로 초췌한 말류(末流)에 속하여,葱을 불고 대나무 말을 타던 어린 시절부터 책을 잡고 읽는 일을 삼았나이다. '야마야(野馬)도 진애(塵埃)라' 하였으니, 속된 관리의 청삼(靑衫)을 입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고, '산림(山林)이요 고壤(고壤)이여' 하였으니, 옛사람의 황권(黃卷)을 항상 상대하였나이다. 거의 안단(杏壇)의 제자가 되어浪隨(물결을 따라) 강장(絳帳)의 선생을 따랐으며, 장자(長者)께서 저를 보고 기이하게 여기셨으나, 오직 동류들이 저를 시기하였나이다. 또한 천생아래 저를 반드시 쓸 사람이 있게 하셨으니, 이는 명(命)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재주가 세상과 맞지 않아, 때(時)는 쉽게 잃어지나, 이치를 구하지 않고 오직 나의 시기를 기다렸나이다. 최근 집안의 지시를 받아 태후(儲后)의 시종에 참여하려 하였으나, 소개할 이가 없어 누가 먼저 용납해 주겠습니까. 오반(吳坂)의 기마(驥馬)가 수레를 끌어도 아직 지기를 만나지 못했고, 위궁(魏宮)의 까마귀가 나무를 돌며 울어도 의지할 수 있는 가지는 어디겠습니까. 다행히 귀료(貴寮)의 도움을 얻어 일찍이 선적(選籍)에 이름을 올렸나이다. 들으니 허물을 제거하고 실리를 구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특별히 고시(考試)의 규율을 엄격히 하였으니, 어찌 어정(虞廷)에서 '모두 건(鯀)을 들었다'는 말을 바라겠습니까. 비록 부자(夫子)의 말씀인 '내가 점(點)과 함께하노라'는 뜻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공경하건대, 그대께서는 이름이 북두(北斗)에 높고 명성이 남금(南金)에 무거우시며, 일월(日月)처럼 넘을 수 없고, 봉황(鳳凰)처럼 모두 길조로 여기시나이다. 락락(落落)한 양붕(楊憑)의 재간은 당시 사람들이 문장(文章)의魁(수호)라 칭했고, 현현(軒軒)한 공도(公道)의 풍신은 천하가 재상기(宰相器)라 불렀나이다. 재조(在朝)에 있어 그 우에 나가는 이가 없고, 임금을 얻으심이 그리도 전전(專專)하셨으니, 과연 상심(上心)을 간택받아 동금(東禁)을 부축하게 하셨나이다. 장차 포우(豹霧)의 영웅들을 모아 용루(龍樓)의 좌우를 보충하려 하시니, 대중이 이로써 귀의하고 선비들이 실망하지 않겠나이다. 다시 생각건대, 저는 고위(孤危)하여 의지하기 어렵고 표박(飄泊)하여 어디에 의지할지 모르나, 비록 오랫동안 명월(明月)의 인연이 없었으나 오히려 청풍(淸風)을 흠모해 왔나이다. 오늘에 비로소 부축해 주심을 바라고, 창조(昌朝)에서 선발됨을 입었사오니, 어찌 작은 자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대인(大人)의 뜻이 어찌 용납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간절히 바라건대, 만물과 함께 봄이 되어 인(仁)을 밀어내고 은혜를 베푸시며, 세 번 댕기를 토하고 세 번 머리를 쥐어 손님을 기다리듯 하시고, 선한 것을 보면 놀라며, 한 발 한 걸음 한 손 한 손동작으로 노고를 잊으시며, 사람을 구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으시어, 함께 한생(寒生)의 성씨를 기록하고 겸하여 공거(公擧)의 봉장(封章)을 남겨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그러면 감히 하늘과 땅을 우러러 생명을 받고, 지기를 격앙시켜 날개를 달아 부속하려 하겠사오니, 조금이라도 도로(道路)에 오르는 풍운(風雲)을 얻으리이다. 만약 관이 덮이지 않는 한, 모두 은혜에 보답할 세월이 되겠나이다.

181. 謝金少卿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4A, ITKC_MO_0003A_A001_264B

원문

趙勝之門。雖未作請行之毛遂。孔融之表。遽已爲被薦之禰衡。毫髮身輕。丘山恩重。伏念某。一曲之士。三尺之童。弧矢射天地四方。早懷壯志。錦繡爲心肝五藏。未負奇才。久對揚黃卷之聖賢。猶未得靑雲之岐路。傷足泣淚。自貽獻寶之疑。斲鼻成風。誰識運斤之巧。我辰安在。自進誠難。以此痛心。不遑寧處。雖將寸管。願瞻樂廣之雲天。猶冒覆盆。未覩仲尼之日月。遙荷吹噓之力。豈因左右之容。聞而悅之。非所望也。此蓋閤下世襲日磾七葉。家傳韋氏一經。廉如鮑捷如慶勇如賁。器宏而博。書止顏文止韓詩止杜。學無不窺。其威名之所及也。隱隱轟轟匪雷匪霆。其節義之彌堅也。玲玲瓏瓏如珠如玉。其特立有如此者。顧當今捨我而誰。果承北闕之絲綸。曾作東宮之羽翼。頃擧英雄之輩。將聯侍從之徒。乃以至公。及於無狀。某敢不奮發綿力。激昂素懷。增益其所不能。敬修其可願。生成厚意。而今而後知之。感慨此心。未死未可量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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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趙勝)의 문하에 비록 행하여 청한 모수(毛遂)는 못 되었으나, 공융(孔融)의 표장(表章)으로 인해 급히 추천된 예형(禰衡)이 되어 버렸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만큼 가벼운 몸이지만 구산(丘山)만큼 무거운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생각건대, 저는 한구석의 사나이에다 세 자의 아이와 같사오니, 호궁(弧弓)과 화살로 천지와 사방을 쏘며 일찍이 장대한 뜻을 품었고, 수주(繡珠)로 심장과 간장을 삼았으나 아직 기이한 재능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오래도록 황권(黃卷)의 성현을 대면하였으나 아직 청운(靑雲)의 길을 얻지 못하여, 발을 다쳐 눈물을 흘리며 보물을 바치는 의심을 자초했고, 코를 도려내어 풍조를 이뤘으나 누가 도끼를 휘두르는 묘함을 알아주었습니까. 나의 운명은 어디에 있는고, 스스로 진정함을 드러내기 어려우니, 이로 인해 통분하여 쉴 새 없이 안절부절합니다. 비록 작은 붓을 쥐었으나 악광(樂廣)의 구름과 하늘을 바라보고 싶고, 여전히 거꾸로 엎어진 그릇처럼 중니(仲尼)의 해와 달을 보지 못했습니다. 멀리서 불어넣어 주는 힘을 입었으니, 어찌 좌우(左右)의 용납 때문이겠습니까. 듣고 기뻐하는 것은 바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는 대개 문하님께서 세습으로 밀저(金日磾)의 일곱 잎을 잇고, 가전으로 위씨(韋氏)의 일경(一經)을 전수하셨기 때문입니다. 청렴함은 포갈(鮑捷) 같고, 용감함은 계강(慶忌)과 강백(賁) 같으며, 기량이 넓고 박학하여, 서적은 오직 안지(顔之推)의 문장, 한유(韓愈)의 시, 두보(杜甫)의 시에 그쳤고, 학문에 두루 정통하여, 그 위명이 미친 바가 은은하고 굉굉하여 비록 뇌성이나 천둥이 아니지만, 그 절의가 더욱 견고하고,玲玲瓏瓏하여 구슬과 옥 같으니, 그 특립함이 이와 같습니다. 오늘날 저를 버리고 누가 있겠습니까. 과연 북궐의 사륜(絲綸)을 받들어 동궁(東宮)의 날개짓을 했으며, 근일 영웅의 무리를 거느려 장차 시종(侍從)의 무리와 함께하려 합니다. 지극히 공평하게 무상한 저에게까지 미쳤으니, 제가 어찌 감히 면력을 분발하고 소회(素懷)를 격앙하여,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보충하고, 경건히 바라는 바를 수행하지 않겠습니까. 생성의 후의(厚意)를 이제야 알겠사오니, 이 마음을 감개하여 죽지 않고는 가늠할 수 없사옵니다.

182. 賀新及第崔〔原注:永濡〕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4C

원문

俄入虞庠。暫被賢才之育。直遊唐彀。遽飛儒者之榮。物議僉同。士林相賀。恭惟某公。學傳尼父。才敵崔男。韻宇宏宏。自是風塵外物。品流落落。此必神仙中人。乃有期下地而生。眞所謂名世之後。早收功於雪榻。已得路於雲梯。讀書之士豈無其時。提筆以取富貴。積善之家必有餘慶。收科如摘髭鬚。登桂嶺而遊。赴杏園之宴。光流里閈。歡洽親堂。久嗟豐邑之龍蟠。空衝紫氣。忽作莊溟之鯤化。背負靑天。舊恨盡消。門風復盛。凡諸聞見。莫不愉忻。某寄於造化之爐。被以吹噓之力。鴻鵠已擧。方得上於層霄。燕雀焉知。猶喜成於大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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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우창(虞庠)에 들어가 잠시 현재들의 교육이라는 영예를 입었고, 곧바로 당구(唐彀)를 유람하며 급히 유가의 영광을 날아올랐다. 물의(物議)가 모두 같고 사림(士林)이 서로 축하하니, 공경하건대 그대께서는 학문은 노부(尼父)에게 전수받으셨고 재주는 최남(崔男)에 맞서셨도다. 운우(韻宇)가 넓고 크시니 본디 풍진(風塵) 밖의 물외인이시요, 품류(品流)가 높고 높으시니 이는 반드시 선신(神仙) 중의 사람이시라. 마침내 기하(期下)의 땅에서 탄생하셨으니, 참으로 명세(名世)의 후예라 할 만하도다. 일찍이 설탑(雪榻)에서 공을 거두셨고 이미 운제(雲梯)에서 길을 얻으셨도다. 독서하는 선비로서 어찌 때를 얻지 못했으리오. 붓을 들어 부귀를 취하려 하였으니,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여경(餘慶)이 있느니라. 과방(科榜)에 오르는 것은 수염을 뽑아내는 것처럼 쉬웠고, 계령(桂嶺)에 올라가며 성원(杏園)의 연회에 참여하였도다. 빛이 리환(里閈)에 흐르고 기쁨이 친당(親堂)에서 화합하였도다. 오래도록 풍읍(豐邑)의 용반(龍蟠)을 탄식하며 공교롭게 자기(紫氣)를 치셨으나, 갑자기 장명(莊溟)의 곤화(鯤化)를 이루어 푸른 하늘을 등에 지셨도다. 구한(舊恨)은 모두 소멸되고 문풍(門風)이 다시 성하여, 모든 들은 바 보고 본 바 없지 않게 기뻐하도다. 나는 조화(造化)의 주야(爐)에 맡겨져 부허(吹噓)의 힘을 입었으니, 홍호(鴻鵠)가 이미 날아올라 비로소 층요(層霄)에 올라가고, 연작(燕雀)이 어찌 알리오마는 여전히 대하(大廈)가 완성된 것을 기뻐하노라.

183. 上吳郞中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4D, ITKC_MO_0003A_A001_265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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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也命廢也亦命。雖安吾道之窮。伸於知屈於不知。尙冀仁人之造。肆刳肝而瀝懇。代執贄而爲儀。竊惟賢士之方處於貧窮。固無爵而自貴。大人之所尊者道德。宜以禮而必謙。惟不爲位貌之矜嚴。然後彰功業之烜赫。子夏在西河之上。文侯擁篲而行。鄒生居忝谷之陰。昭王陪乘而待。曹參迎蓋公於堂下。劉備顧葛亮於廬中。陳平致長者之車。安道拒大宰之使。歷見非常可喜之事。未嘗自屈以干於人。然苟非借譽於靑雲。又安得施名於後代。馮驩從孟嘗而爲客。迺悲彈鋏之歌。毛遂見平原而請行。自喩處囊之穎。荀彧東京之高士也。與李膺而爲馭。陸機南國之詞人也。投馬穎而爲臣。逸少謁朱顗而知名。公回因虞喜而延譽。況下於古人數等。必求其知已大賢。伏念某。瑣瑣末流。間間小知。早樂父兄之訓。切勤翰墨之功。童而習之紛如。謾自勤於晝夜。生而知者上也。猶未究於淵源。才旣非居易之詩工。人或笑長康之癡絶。然惡夫畫也。乃問以辨之。及趨司馬之校能。謬作連城之擅價。欠漢帝之讀賦。恨不與相如同時。慕宗元之能文。皆以謂柳氏有子。不量其力。自負於心。巽以揚之。欲附顏淵之鳳翼。搏而上者。未從莊叟之鵬遊。恐長虞之墮其家聲。望董子之褎然擧首。嘐嘐夷考行。碌碌未有奇。寧誤身於儒冠。恥藉榮於門蔭。謀之至拙。世莫不嗤。方忍辱以包羞。願揚名於爲孝。燕雀焉知鴻鵠志四海九州。騏驥不與駑駘爭一日千里。慨然抱璞。翹以待求。曩者因其積釁之所萌。忽爾私門之發禍。遭家不造。叫天無辜。以有涯之生。罹不測之患。拋戈泣血。方銜桓氏之冤。陟屺興悲。繼有魏人之苦。何中散之途窮。信賈生之命薄。閉門却掃。絶交遊而遠讒。丐食假衣。携細弱而避地。一涯流落。幾度寒暄。迺遑遑而無歸。常鬱鬱而居此。久類虞卿之羈旅。誰憐令伯之零丁。去國三年。嘗聞足跫然喜矣。墜途千仞。皆俯首矉而過之。跂絶亨嘉。分甘退縮。宜乎幅巾蕭灑。緩帶優游。樂潘岳田園之居。輸阮籍黍稷之稅。鑿而飮耕而食。但虛老於太平。用則行捨則藏。無苟容於斯世。於焉養志。不復有求。蓋念自吾家伯叔以來。有當代文章之譽。翺翔翰掖。出入承明。謂遺子不如一經相傳素業。若積善必有餘慶宜及後昆。苟終沒於遐荒。而莫承於遺緖。知將何面。下見先人。故痛極必呼於天。而無往曲爲之地。絶絃莫續。斷梗何依。每哀吟乎行路難。或寫意於囚山賦。何同儕已飛於雲漢。而唯我未振於泥塗。怪物在濱。多被獱獺之笑。長鯨失水。飜爲螻蟻之欺。不免陶潛之折腰。動貽師德之唾面。以志廣而才疏。卒勢窮而命極。且外物不必。雖忘軒冕之儻來。而大器晚成。何患功名之未立。又況禍兮爲福之所伏。貴者先賤而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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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한다는 것은 명을 받는 것이고, 물러난다는 것도 또한 명을 받는 것입니다. 비록 제 도리가 궁핍하더라도, 아는 자에게는 신명나고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굴복합니다. 여전히 어진 사람의 방문을 기대하며, 간을 갈라 성심을 다해 호소합니다. 예물을 들고 의식을 행하는 것을 대신하여, 저는 어진 선비들이 빈궁한 처지에 있을 때, 본래 작위가 없어도 스스로 귀하게 여긴다는 점을 헤아립니다. 대인(大人)이 존중하는 것은 도덕이므로, 마땅히 예로써 반드시 겸손해야 합니다. 오직 지위와 용모를 과시하지 않을 때, 비로소 공업이 현저하게 빛납니다. 자하(子夏)가 서하(西河) 위에 있을 때, 문후(文侯)는 빗자루를 들고 행진하며 예우했고, 조생(鄒生)이 거곡(鉅谷)의 그늘에 있을 때, 소왕(昭王)은 함께 수레를 타고 대우했습니다. 조참(曹參)은 당하에서 갱공(蓋公)을 영접했고, 유비(劉備)는 초중(廬中)에서 갈량(葛亮)을 찾았습니다. 진평(陳平)은 장자(長者)의 수레를 보내었고, 안도(安道)는 대재(大宰)의 사신을 거절했습니다. 이와 같이 비상하고 기쁜 일들을 많이 보았으나, 한 번도 스스로 굴하여 남에게 간청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청운(靑雲)의 명성을 빌리지 않는다면, 어찌 후대에 이름을 떨칠 수 있겠습니까? 풍환(馮驩)은 맹상군(孟嘗君)을 따라 객이 되어, 마침내 검을 치며 노래하는 비탄을 느꼈고, 모수(毛遂)는 평원군(平原君)을 만나 출정을 청하며, 스스로 주머니 속의 이(穎)에 비유했습니다. 순옥(荀彧)은 동경(東京)의 고사이자 이응(李膺)과 함께 수레를 모셨고, 육기(陸機)는 남국의 시인이자 마颖(馬穎)에게 투항하여 신하가 되었습니다. 익소(逸少)는 주의(朱顗)를 알현하여 이름을 알렸고, 공회(公回)는 우희(虞喜)로 인해 연명(延譽)을 받았습니다. 하물며 저를 고인들보다 몇 등이나 아래로 본다면, 반드시 이미(知己)인 대현을 구할 것입니다. 생각건대, 저는 보잘것없는 말류(末流)이며 간간한 소지(小知)입니다. 일찍이 부형의 훈계를 좋아하여, 간절히 한묵(翰墨)의 공력을 닦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익힌 것이 어지러웠으나, 밤낮으로 부지런히 한 것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는 자가 상등이나, 오히려 원천을 궁구하지 못했습니다. 재주가 이미 거이(居易)의 시를 잘하지 못하여, 사람들은 장강(長康)의 기이함을 웃었습니다. 그러나 악부화야(惡夫畫也)라 하여, 물어서 변명했습니다. 그리고 사마(司馬)의 교술(校讎)을 따를 수 있어, 미망하게도 연성(連城)의 값을 자랑하는 재주를 갖추었습니다. 한제(漢帝)의 독부(讀賦)를 채우지 못해, 상여(相如)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해합니다. 종원(宗元)의 문재(能文)를 사모하여, 모두 유씨(柳氏)에게 아들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스스로 마음에 자부하여, 손(遜)으로써 드러내고자 하여, 안연(顏淵)의 봉익(鳳翼)에 부속되려 했으나, 날아올라 장공(莊叟)의Peng遊(鵬遊)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장우(長虞)가 그 가성(家聲)을 떨어뜨릴까 두려워하고, 동자(董子)가 미소하며 거수(擧首)하기를 바라았습니다. 요요(嘐嘐)히 행적을 고찰하니, 녹록(碌碌)하여 기이한 것이 없습니다. 유관(儒冠)에 몸을 오해받는 것을 낯설어하며, 문음(門蔭)으로 영광을 빌리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계책이 지극히 졸렬하여, 세상이 비웃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마침내 치욕을 참고 부끄러움을 감추며, 효도함으로 이름을 떨치기를 원합니다. 염작(燕雀)이 어찌 홍호(鴻鵠)의 뜻을 알며, 사해(四海) 구주(九州)에서 기예(騏驥)가 누대(駑駘)와 하루 천리를 다투지 않습니다. 개연(慨然)히 포벽(抱璞)하고,翘以待求(翘以待求)하며 기다립니다. 지난적에 그 적근(積釁)이 싹튼 곳을 따라, 갑자기 사문(私門)에서 화가 발생했습니다. 조상(不造)을 만나 하늘을 부르나 무고함이 없으며, 유애(有涯)의 생으로 불측의 환을 입었습니다. 창(戈)을 던지고 피를 흘리며, 방금 환씨(桓氏)의 원한을 삼키고, 절기(陟屺)하여 비를 일으키며, 이어 위인(魏人)의 고난이 있었습니다. 하필 중산(中散)의 도궁(途窮)이겠으며, 진실로 가생(賈生)의 명박(命薄)이겠습니다. 문을 닫고 성을 물리쳐, 교유를 끊고 간사함을 피하며, 거식가의(丐食假衣)하며 세약(細弱)을 데리고 피난했습니다. 일야(一涯)에 유락(流落)하여, 몇 번의 한온(寒暄)을 겪었습니다. 이에 황황히 귀처가 없어, 항상 우울히 거하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우경(虞卿)의 거류(羈旅)와 같고, 누구라야 영백(令伯)의 영딩(零丁)을 불쌍히 여기겠습니까. 국(國)을 떠난 지 삼 년, 이미 족궁연희(足跫然喜矣)를 들었습니다. 추도(墜途) 천ren(仞)에 모두 고개를 숙이고 비관(矉)하며 지나갔습니다. 기절(跂絶)하여 헝가(亨嘉)를 바라나, 분감(分甘)하여 퇴축(退縮)합니다. 마땅히 부건(幅巾)으로 소쇄하고, 완대(緩帶)로 유유(優游)하며, 반악(潘岳)의 전원(田園)의 거처를 즐거워하고, 원적(阮籍)의黍稷(黍稷)의 세를 납부합니다. 파이(鑿而)하여 음하고 경이(耕而)하여 식(食)하나, 다만 허로(虛老)할 뿐입니다. 용즉행(用則行)하고 사즉장(捨則藏)하여, 구용(苟容)하지 않습니다. 이에 양지(養志)하여, 다시 구하지 않습니다. 생각건대, 우리 집 백숙(伯叔) 이래로, 당대 문장(文章)의 명성이 있어,翱翔(翱翔)한 한掖(翰掖)을 날아다니며, 출입(出入)한 승명(承明)에 있었습니다. 유자(遺子)보다 일경(一經)을 전하는 소업(素業)이 낫다고 여겼고, 적선(積善)하면 필유여경(必有餘慶)하여, 마땅히 후곤(後昆)에 미칠 것입니다. 만약 종몰(終沒)하여 하방(遐荒)에 있으면서, 유서(遺緖)를 이어받지 못한다면, 어찌 얼굴을 보이고 선인(先人)을 뵙겠습니까. 그러므로 통극(痛極)하여 천(天)을 부르지만, 왕왕(往往) 곡위지지(曲爲之地)하지 않습니다. 절현(絶絃)하여 이을 수 없고, 단갱(斷梗)이 어디에 의지합니까. 매애(每哀)히 행로난(行路難)을 읊조리고, 또는 취이(寫意)하여 구산부(囚山賦)를 씁니다. 하필 동배(同儕)가 이미 운한(雲漢)에 날아오르고, 오직 저만 니도(泥塗)에서 떨치지 못합니까. 괴물(怪物)이 재빈(在濱)하면, 대부분 전달(獱獺)의 웃음을 입고, 장경(長鯨)이 실수(失水)하면, 오히려 누의(螻蟻)의 핍박을 받습니다. 면불도잠(不免陶潛)의 절요(折腰)하여, 동이사덕(動貽師德)의 타면(唾面)을 남깁니다. 지광(志廣)하여 재소(才疏)하므로, 종세궁(卒勢窮)하여 명극(命極)합니다. 또한 외물(外物)이 필요하지 않으니, 비록 전면(軒冕)의 탱내(儻來)를 잊을지라도, 대기만성(大器晚成)하여 어찌 공명(功名)이 서지 않을 것을 근심합니까. 하물며 화(禍)가 복(福)의 소부(所伏)이요, 귀자선천(貴者先賤)하여 내통(乃通)합니다.

원문

與其沒世而無聞。曷若因敗而爲效。載洗塵於筆硯。將應詔於賢良。招聚殘魂。激昂壯氣。馬援已老。猶能矍鑠以據鞍。李陵未降。亦可傷夷而振臂。空懷此意。未果良圖。嗟舊學之荒涼。奈流年之荏苒。屢顧沙頭之翼。幾看舟側之帆。禿兔翰窮穀皮。不廢腐儒之學。寧鷄口無牛後。恥爭新進之名。況弱植易顚之身。當衆怒難犯之際。多言可畏。尙口乃窮。誠出處之俱難。嘆孤寒之無援。非事其大夫之賢者。殆卒以布衣而老乎。恭惟某官。百世忠臣。三韓貴種。掃千軍於筆下。呑九澤於胸中。薄蓬萊羞崑崙。飄爾謫仙之氣。捕龍蛇搏虎豹。蔚然華國之文。早結於主上之知。自任以天下之重。茂弘贊中興之霸業。帝稱朕有蕭何。永叔排諸子之異端。人曰今之韓愈。縉紳爲之袖領。儒士仰而師資。臺閣生風。權豪側目。國其庶興矣。文不在玆乎。重念某慕義無窮。聞風且舊。與康成而受業。雖願從絳帳先生。非文擧之通家。又不作龍門下客。在吾先子。嘗玷同年。顧伊幸會之深。實與常情而倍。山公在矣。豈忘嵇紹之尙孤。劉訟聞之。應喜義先之有種。伏望和顏假色。大度包荒。俯憐窮巷之民。待以故人之子。決其去就。費以推揚。則君子長君子消。如相時而可動。國士遇國士報。誠感恩而無忘。過此以還。未知所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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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이름 없이 묻히는 것보다, 오히려 실패를 틈타 효력을 세우는 것이 낫습니다. 붓과 벼루의 먼지를 씻어내고 현량과(賢良科)의 칙명에 응하여, 흩어진 혼령을 모으고 장엄한 기개를 고취하려 합니다. 마원(馬援)은 이미 늙었으나 여전히 용감하게 안장에 앉아 있었고, 이릉(李陵)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슬픔에 젖은 몸으로도 팔을 들어 떨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뜻을 비록 간직했으나 훌륭한 도모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 옛 배움이 황량해지고 세월이 흐르는 것을 어찌 하겠습니까. 모래톱의 새 날개를 자주 돌아보며, 거의 배 옆의 돛을 바라보았습니다. 수탉의 깃털과 토끼의 털로 만든 붓이 다하고 골짜기의 가죽이尽해도, 썩은 유학자의 학문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닭의 머리가 되어 소의 뒤에 서는 것을耻스럽게 여기며, 새로운 진급자들의 이름을 다투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하물며 약한 식물이 쉽게 넘어지는 몸이어서, 많은 사람의 노여움을 범하기 어려운 시기에 처했습니다. 말이 많으면 두려운 법이고, 입만 다투면 궁지에 빠지는 법이니, 진실로 나감과 물러남이 모두 어렵습니다. 고독하고 가난하여 도와주는 이가 없는 것을 탄식합니다. 대부(大夫) 중 어진 이를 섬기려 하지 않았으므로, 아마도 필부(布衣)로써 늙어갈 것입니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그대는 백세에 한 명의 충신이요, 삼한(三韓)의 귀한 혈통입니다. 붓 아래로 천 군마를 물리치고, 가슴속으로 아홉 개의 소택을 삼켰습니다. 붕래(蓬萊)와 곤륜(崑崙)을 가볍게 여기며, 신선처럼 귀신 같은 기상을 떨쳤습니다. 용과 뱀을 포획하고 호랑이와 표범을 잡았으니, 화려하게 나라를 빛내는 문장이 웅장합니다. 일찍이 임금님의 총애를 받아 맺었으니, 스스로 천하의 무거운 책임을 맡았습니다. 묘홍(茂弘: 庾亮)이 중흥의 웅업을 보좌하자, 임금은 이르기를 '내가 소하(蕭何)를 얻었다' 하였고, 영수(永叔: 歐陽修)가诸子의 이단을 배격하자, 사람들은 그를 오늘날의 한유라 했습니다. 관료들은 그에게 절하고, 유학자들은 그를 스승으로仰慕합니다. 대궐에 풍채가 생기고, 권세 있는 자들이 곁눈질로 바라봅니다. 나라가 거의 흥성할 것입니다. 문장이 여기 있지 않습니까. 다시 생각하건대, 그대는 의를 사모함이 끝이 없고, 풍문을 듣고자 함이 오래되었습니다. 강성(康成: 鄭玄)과 함께 수학하기를 원하여, 비록 자장(絳帳)의 스승을 따르고자 했으나, 문거(文擧)의 통가(世交)가 아니어서 용문(龍門)의 객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선친께서도 과거 동년으로 치욕을 겪었으니, 그대의 깊은 인연을 돌이켜보면, 실로 상식과 두 배로 다릅니다. 산공(山公: 山濤)이 있으니, 어찌 계소(嵇紹)가 아직 고아인 것을 잊겠습니까. 유송(劉訟)을 들으니, 의선(義先)에게 씨가 있음을 기뻐할 것입니다. 부디 화색을 띠고 대도로 포용하여, 궁한 골짜기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 옛 친구의 아들로 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대의 거취를 결정하고, 추양(推揚)을 아껴 주신다면, 군자가 군자를 길러내고 소인이 소인을 소멸시킬 것입니다. 마치 때를 보아 움직이는 것과 같고, 국사(國士)가 국사를 대우하면 보답하는 것이니, 진실로 감격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184. 上某官啓〔原注:代人〕

문체: 公車類 / 疏箚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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剖瓠無用。雖祗適於江湖。鑄金不祥。請自躍於爐冶。敢瀝忱誠之款。仰煩博愛之仁。竊以聖明之時固難得而易失。英俊之士常少達而多窮。賈誼負以才能。尙命薄於孝文之代。馬周有其名位。亦壽短於太宗之朝。蓋遭逢如此其難。故仕進所以爲急。況投機之會。智士不欲其失時。而俟河之淸。昔賢嘗爲之興嘆。然而士無才不才之相遠。命有幸不幸之或殊。千秋得悟於一言。亦能取相。馮唐不遇於三世。空嘆爲郞。其或張子房賤爲布衣。萬戶封侯足矣。金日磾出於降虜。七葉內侍盛哉。以李廣猿臂善射也。困於數奇。雖韓愈虎躍高文也。猶以貶老。苟無相拯而相援。安免自衒以自媒。是以毛遂爲平原而請行。譬以處囊之穎。馮驩與孟嘗而求見。乃悲彈鋏之歌。將以有爲。必資知己。伏念識微一得。能乏寸長。忠孝萃門。素欲事君而盡節。文章華國。切期學古以入官。頃當賢詔之頒。偶捷文闈之戰。靑雲平地。已絶跂於享衢。黃紙書名。喜果先於群彥。始識爲儒之貴。益殫報主之誠。侍從丹墀。瀀游星官。積善之家必有餘慶。旣知于氏之陰功。何王之門不曳長裾。自得鄒陽之大志。朋儕皆爲缺望。親儻盡以交歡。是乃旦暮遇之。非因左右先者。及例行於外務。仍許涖於南藩。嘗由先子之所臨。頗有當年之遺愛。歲計之不足。猶未移畏壘之民。人去而見思。庶無愧謝安之理。事苟關於利害。動輒忤於權豪。寧以顚擠。期於報補。且請理劇郡。豈無張敞之懷。然雅意本朝。早抱蕭郞之願。嘆州縣徒爲勞耳。豈書記致足樂乎。望魏闕以懸心。待宣室之問事。矧乎昔當籍係乎閹寺。因玷管句於佛堂。昵對晨昏。不違咫尺。從出鎭於荒服。阻獲奉於淸光。茫茫鯨海之隅。其幾千里。戀戀龍顏之意。如隔三秋。徒增犬馬之悲。未假風雲之會。而由在朝乏金張之援。於已無王貢之交。長作不平之鳴。無往曲爲之地羨潼關之白鵒。能入獻于京師。有鄴縣之飛鳧。每自朝於宮掖。昨從巨鎭。來覲長安。縹緲鈞天。怳如夢到。丁寧綍命。密若春溫。謂將召以泥封。方不及於瓜代。吾聞語矣。天若啓之。王者無戲言。自喜榮升之有路。外物不可必。亦虞行止之非人。竊觀近歲以來。多選群才之輩。每官有缺。望者交爭。倘求賢士之投閑。以代庸夫之曠位。固所願也。不亦樂乎。忠臣不擇事而安。縱合東西之命。君子惟使人以器。乃宜小大之才。但位下而身微。亦閽深而天遠。久懷此懇。未達淸衷。恭惟某上性生知。多能天縱。得心要於黃頭大士。傳筆法於白雲先生。北面爲師。唐堯願受言於齧缺。南首而臥。黃帝嘗問道於崆峒。命留方外之蹤。遂賜禁中之隱。道至虛而方應於物。勢則貴而能下於人。多士所歸。群生之福。謬以頑姿之無似。夙承宿眷之特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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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을 쪼개어 쓸 데가 없으니, 비록 강호에서 적당히 지낼 뿐이오. 금을 주조하여 불길하니, 스스로 용광로에 뛰어들어 주조를 청하오. 간절히 진심을 다하여, 넓은 사랑의 인덕을 번거롭게仰仰하오. 대강 성명하신 시대는 얻기 어렵고 잃기 쉬우며, 영걸한 선비들은 항상 성공하는 자는 적고 곤궁한 자가 많사옵니다. 가의는 재능을 갖추었으나, 하문제 대에 명복이 얇았고, 마주는 명성과 지위를 갖추었으나, 태종 조에 수명이 짧았사옵니다. 대개 운명을 만나기가 이처럼 어려우니,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이 급선무인 것입니다. 하물며 기회를 타하는 때에 지혜로운 자는 실수를 원치 않고, 강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림은 옛 선비들이 탄식하던 바입니다. 그러나 선비에게 재주가 있거나 없거나의 차이가 크고, 운명에 행불행이 있을 수 있으니, 천추에 한 마디 말로 깨달아 재상이 될 수도 있고, 풍당이 삼 세 동안 만나지 못해 낭중으로 있을 뿐 탄식한 것과 같습니다. 만약 장자방이 천민으로 천하게 지내며 만호후에 봉해짐이 충분했고, 금밀저가 항복한 포로에서 나와 일곱 대에 내시가 되어 성대했던 것과 같습니다. 이광은 원팔이어서 사냥을 잘했으나, 수기(數奇)하여 곤궁했고, 한유는 호약하고 고문으로 위엄이 있었으나, 오히려 노년에贬退당했습니다. 만약 서로 구원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찌 스스로 드러내고 스스로 중매하는 것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모수가 평원군을 위해 행함을 청한 것은 주머니 속의 뾰족한 것이 처한 것과 같고, 풍환이 맹상군을 만나 뵙기를 구한 것은 칼집을 치며 노래한 것을 슬퍼한 것과 같습니다. 장차有为를 이루려면 반드시 지기를 필요로 하옵니다. 생각건대, 미묘한 이치를 깨닫는 지혜는 하나 있으나, 작은 재주조차 부족하고, 충효가 문중에 모여 평소에는 군주를 섬기고 절개를 다하고자 했으며, 문장으로 나라를 화려하게 하여 옛것을 배우고 관직에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근래에 현명한 칙명이 반포되었을 때, 우연히 문과의 싸움에서 이겨 청운의 평지에 이미 향거(享衢)를 바라보는 발걸음을 끊었고, 황지에 이름을 적어 기쁨이 이미 군웅들보다 앞서었사옵니다. 처음에는 유가의 귀함을 알았고, 더욱 군주를 보답하는 정성을 다했습니다. 시종으로서 단치에서 성운관(星官)을 유람했고, 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여경이 있으니, 이미 우씨(于氏)의 음덕을 알았고, 어찌 왕의 문에서 긴 옷자락을 끌지 않겠습니까. 자유탕의 큰 뜻을 얻었으니, 동무들은 모두 결망(缺望)하고, 친척들은 모두 교우하여 사귀었으니, 이는 아침과 저녁에 만나는 것과 같아, 좌우의 선행 때문이 아닙니다. 외무가 예행될 때, 여전히 남방을 임명받았으니, 선친이 다스리던 곳이라, 당시의 유애가颇有합니다. 세간의 계량이 부족하여, 이미 위뢰(畏壘)의 백성을 옮기지 않았고, 사람이 가고도 생각함이 있어, 소위 사안(謝安)의 이치를 부끄럽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이 만약 이익과 해악에 관련되면, 동요할 때마다 권력자와 어긋나니, 오히려 전복되어 추락할지언정, 보답함을 기약합니다. 또한 극한 군현을 다스릴 것을 청하니, 장창(張敞)의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아호는 본래 조정을 향하여, 일찍이 소랑(蕭郞)의 원을 품었사오니, 주현이 허락으로劳苦할 뿐임을 탄식하고, 어찌 서기가足以한 즐거움이겠습니까. 위궐을 바라보며 마음을 매달고, 선실의 문사를 기다립니다. 하물며 과거에 필자가 간사에 소속되었을 때, 불당(佛堂)의 관무를 더럽혔으니, 아침과 저녁에 가까이하여 거리가 멀지 않았고, 진영을 따라 황복으로 나가서, 청광을 받들 기회를 막았사옵니다. 망망한 경해의 끝자락에, 그 길은 거의 수천 리라, 연연한 용안의 뜻은 마치 삼추를隔하듯 하옵니다. 다만 개비(犬馬)의 비를 더할 뿐, 풍운의 기회를 빌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조정에 있을 때 김장(金張)의 원수가 없고, 이미 왕공(王貢)의 교분이 없으니, 길게 불평의 울음을 지르며, 오직 곡으로 땅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동관의 백적을 사모하여, 능히 경사에 바치고, 업현의 비부가 있어, 항상 궁掖에 조하합니다. 어제 큰 진영에서 와서 장안을 뵈옵고, 표묘한钧天은 홀연히 꿈에 이른 듯하며, 정녕한 칙명은 밀약이 봄의 온기 같사옵니다. 필자가泥封으로 초빙할 줄 알았으나, 방금 과대(瓜代)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내가 들으니, 천자가 만약 그를 열어주신다면, 왕자에게 장난스러운 말이 없으니, 스스로榮升할 길이 있음을 기뻐하고, 외물은 반드시 할 수 없으니, 또한 행지가 남의 탓이 될까 두려워합니다. 대강 근세 이후, 여러 재능 있는 자들을 많이 선발하여, 매번 관직에 공백이 있으면, 바라는 자가 서로 다투었사옵니다. 만약 현명한 선사를 투한(投閑)하여,庸夫의 공백을 대신하기를 구한다면,固所願也. 아니겠습니까. 충臣은 일을 선택하지 않고 편안함을 삼으니, 비록 동서로 명령을 합치더라도, 君子는 오직 기용하여器를 쓰니, 소대(小大)의 재주가 마땅합니다. 다만 지위가 낮고 신분이 미천하여, 또한 閽이 깊고 천이 멀어, 오래 이 간절한 마음을 품었으나, 청중(淸衷)에 닿지 못했습니다. 공경히 여쭈건대, 어르신은 성품이 생지(生知)하시고, 다능함이 천종(天縱)하시어, 황두대사(黃頭大士)에게 심요(心要)를 얻으시고, 백운선생(白雲先生)에게 필법을 전하셨사옵니다. 북면하여 스승이 되시니, 당요가 엎드려 말에 듣기를 원했고, 남수하여 누우시니, 황제가 상공(崆峒)에서 도를 물으셨사옵니다. 명하여 방외의 자취를 남기시어,遂賜禁中の 隱이 되셨으니, 도는 지극히 허허로워 물체에 응하고, 세력은 귀하나 사람을 아래로 할 수 있사옵니다. 다사가 귀의하는 바, 군생의 복이로소이다.谬以 頑姿의 무사함을 가지고, 소숙히 숙眷의 특심을承服했습니다.

원문

一昨當小子登第之初。篤大人周急之意。乃遣分於內帑。用助設於慶筵。寵渥不貲。感誠徒切。孀親喜而垂涕。聞者莫不爲榮。又於單閼之在年。將受東都而出佐。理當交換。勢有所難。唯仰賴於仁私。終遣移於善地。載顧因緣之幸。不在尋常之間。故恃厚知。特陳危素。伏望善救無棄。惟容乃公。用上奏於冕旒。俾徵還於輦轂。庶觀寶劍衝天之氣長徹斗牛。無使沙禽鼓翼之心空懷雲漢。更加甄拔。以賜始終。則量力驅馳。無忝知人之鑑。誓心糜粉。以爲效節之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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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아들이 과거에 급제했을 때, 대인께서 어려운 이를 구제하려는 뜻으로 내탕(內帑)에서 분부하여 경사스러운 연회를 차리는 데 도움을 주셨으니, 그 은총이 헤아릴 수 없어 감사하고 간절할 뿐입니다. 과부인 어머님께서 기쁨에 눈물을 흘리셨고, 듣는 자들 모두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또한 단합(單閼) 해에 동도(東都)로 나가 보좌하게 되자, 직책상 교환이 마땅했으나 형편상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오직 어진 사정을 의지하여 마침내 좋은 곳으로 옮기게 되었으니, 인연의 행운을 다시 돌아보니尋常한 수준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두터운 지기를 믿고 특별히 간절한 마음을 아뢰오니, 부디 구원하여 버리지 마시고 오직 너그럽게 용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관복과 유두(冕旒)를 입은 임금께 아뢰어, 수레가 있는 곳으로 소환하게 하소서. 비록 보검이 하늘을 찌르는 기세가 길게 두수(斗牛)를 꿰뚫어 비추더라도, 모래 새가 날개를 치는 마음이 빈 하늘을 바라보며 공허히 품지 않도록 하소서. 다시 발탁하여始終을 베풀어 주시거든, 힘을 다해 달려가 지인을 알아보는 안목을 실족하지 않게 할 것이며, 마음을 다해 분쇄됨을 맹세하며 효절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185. 上李學士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8A, ITKC_MO_0003A_A001_268B ...

원문

携家同隱。願從江海之遊。築室以居。尙乏茅茨之具。敢陳危懇。仰丐優容。竊以用捨行藏。仲尼獨稱於顏子。理進亂退。孟軻亦與於伯夷。惟隱顯之隨時。乃聖賢之同致。絶世違俗則往而作山中宰。利物及時則出而爲帝者師。苟或獨善其身。莫如不俟終日。故梅福變名於吳市。君平賣卜於成都。賀老隱廬山。自號四明狂客。子陵臥釣瀨。亦稱東漢故人。從古以還。遺風可想。伏念某散材瓠落。野性迂疏。枕石漱流。久負平生之願。閉門面壁。已灰榮望之心。雖盛明之世不可易遭。而去就之分各有所適。故當坎而卽止。非刻意以爲高。少游之思。不過終乘於下澤。謝安之志。亦將必去於東山。繄湍水之前頭。接積城之西畔。碧峯邐迤兮多衡山嵩岳之壯觀。蒼波縹緲兮有洞庭彭蠡之奇形。得一荒墟。纔數畝地。因問居民而將買。規爲逸士之幽棲。丹崖百丈靑壁萬尋。宛似宋纖之隱處。明月雙溪淸風八詠。依然沈約之高遊。眞寂寞之濱。具仁智之樂。幅巾短褐。吾將歸老於其間。泛宅浮家。豈恨大平而不遇。於焉放志。無復有求。恭惟某官。至誠接物。淸德鎭浮。聖主得賢臣。若巨魚縱於大壑。仁人在高位。以膏澤下於斯民。庇蔭所加。孤寂有托。重念某獲服掃除之役。久遊門館之間。潛潤而生。已作不枯之草。餘膏所燭。常分無盡之光。出處無殊。生成有望。顧一介書生之計。乏三間草堂之材。以今年某月日。欲於神巖寺山中。斫取棟樑榱椽之貝。伏望閤下俯閔愚衷。特紆尊旨。助結小庵而爲托。乃令幽跡以得安。閑眠深谷之雲。如依德宇。每飮淸江之水。皆是恩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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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이끌고 함께 은거하기를 원하나 강호의 유람을 따를 수 없으며, 집을 지어 거처하려 하나 초가삼간의 구비조차 부족합니다. 감히 위급한 간절한 마음을 아뢰어, 높게 바라보며 너그러이 용납해 주시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듣건대, 쓰임과 버림, 나아가고 물러남은 공자께서 유일하게 안자를 칭찬하신 바이며, 이치에 따라 나아가고 어지러울 때 물러남은 맹자가 백이와 함께 한 바입니다. 오직 은거함과顯현함이 때에 따라 다름은 곧 성인과贤人이 함께 도달한 바입니다. 세상을 떠나 풍속을 피하면 가서 산중의 수령이 되고, 사물을 이롭게 하여 때를 맞추면 나와 제자의 스승이 됩니다. 만약 오직 자기 한 몸의 선함을 구한다면, 하루 종일 기다리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매복은 오시에서 이름을 바꾸었고, 군평은 성도에서 점을 팔았으며, 노(賀老)는庐山에 은거하여 스스로 사명광객이라 칭했고, 자릉은 대수에서 낚시를 하며 누워 있기도 하여 동한의 고인이라 불렸습니다. 옛적부터 돌아보면, 유풍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생각건대, 저는 흩어진 재능으로 헛되이 크고, 야성으로 구부러지고 소박하여, 돌을 베개하고 물을 헹구는 것을 오래전부터 평생의 소원으로 여겼고, 문을 닫고 벽을面對하여 이미 영광에 대한 바램의 마음을 태워버렸습니다. 비록 성명(聖明)의 세대를 만나기 어렵지 않으나, 나아가고 물러남의 분수에는 각각 적합한 바가 있으므로, 구덩이에 이르러서는 즉시 멈추었으니, 의도적으로 높음을 삼킨 것이 아닙니다. 소유(秦少游)의 생각은 결국 낮은 곳에서의 수레를 타는 데 그쳤고, 사안(謝安)의 뜻 또한 반드시 동산을 떠나야 했습니다. 여기 급류의 앞머리는 적성(積城)의 서쪽 끝과 이어져 있고, 푸른 봉우리는 길게 이어져 형산과 송악의 장엄한 경관을 닮았으며, 푸른 물결은 아득하여 동정과 방리의 기이한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뼘의 황무한 성채를 얻어 겨우 수 무(畝)의 땅이 되자, 주민들에게 물어 장차 사려고 하고, 은거하는 선비의 오묘한 거처로 계획합니다. 붉은 절벽은 백 장이 높고 푸른 바위는 만寻이어서, 마치 송섬(宋纖)의 은거한 곳과 같고, 밝은 달과 두 개의 시냇물, 청풍과 여덟 편의 시는 여전히 심약(沈約)의 높은 유람과 같습니다. 참으로 고요한 변방에 인자와 지혜의 즐거움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폭건(幅巾)과 짧은 옷차림으로, 저는 그곳에서 노년을 보내려 합니다. 배를 집으로 삼아 떠다니며 살며, 태평성대를 만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지 않겠습니다. 이에 뜻을 놓고 더 이상 구하는 바가 없습니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대감께서는 지극한 성실로 사물을 대하고, 맑은 덕으로浮薄을 진압하십니다. 성주께서 현명한 신하를 얻으심은 큰 물속의 큰 물고기가 자유롭게 노니는 것과 같고, 인자가 높은 자리에 있음은 고운 비를 내려 이 백성에게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보호와 그늘이 미치는 곳에 고독한 저도 의지할 바가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생각건대, 저는 청소의 역무를 얻어 오래전부터 문하의 사이라도 되었습니다. 잠깐의 은혜로 살아나 이미 마르지 않는 풀이 되었고, 남은 기름의 빛을 받아 항상 끝없는 빛을 나누었습니다. 나아가고 물러남이 다르지 않으니, 생성(生成)의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일개 서생의 계책이 삼간 초당의 재목이 부족한 것을 돌아보며, 올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신암산(神巖寺) 산중에서 들보와 서까래의 재목을 베어 내기를 원합니다. 간곡히 바라건대, 문하에서 저의 어리석은 마음을 가엾이 여겨, 특별히 존귀한 뜻을 굽혀 주시어 작은 암자를 도와 거처를 마련해 주시면, 비로소 은거한 발자취가 편안해질 것입니다. 깊은 계곡의 구름에 편안히 누워 있으면 마치 덕스러운 집안과 의지하는 것과 같고, 맑은 강물을 마실 때마다 모두 은택의 물결입니다.

186. 上按部學士啓〔原注:代人作○闕聯〕

문체: 公車類 / 疏箚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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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跋山涉水。行經旅館之簫條。吐氣成章。偶發眞人之謦欬。口飜瀾而快讀。目割膜以聳觀。竊以道假辭而傳。述者明而作者聖。文以氣爲主。動於中而形於言。非抽黃對白以相誇。必含英咀華而後妙。歷觀前輩。能有幾人。子厚雄深。雖韓愈尙難爲敵。少陵高峭。使李白莫窺其藩。聖兪身窮而詩始工。潘閬髮白而吟益苦。賈島之病在於瘦。孟郊之語出於貧。至如以李賀孤峯絶岸之奇。施於廊廟則駭矣。雖張公輕縑素練之美。猶得江山之助焉。才難不其然乎。賢者足以與此。恭惟某官。潛聖人道。負王佐才。呑萬卷於胸中。掃千人於筆下。陳祕書之大節。忠類朱雲。孝類考叔。廉類儀休。吳武陵之高文。博如莊周。哀如屈原。明如賈誼。作搢紳之袖領。號邦國之蓍龜。留如晦以佐時。天子望中興之業。出張網而爲使。朝廷無南顧之憂。所臨有聲。自任以重。除人民之疾苦。挫州郡之豪強。擁蓋張旌。觀風察俗。碧山萬里紫微九重。想謫仙之雅致。明月雙溪淸風八詠。多沈約之高遊。其於秋入郵亭。雲橫秦嶺。登高望遠。有滕王閣流水長天。選勝探奇。如石屛風孤煙落日。於是寄高情於物表。騁逸興於詩壇。懷古感今。舒牋點翰。爲文迅速。欻如下瀨之船。落筆縱橫。凜若倚天之劍。眞五經之鼓吹。作萬口之笙簧。壓倒曹劉。鞭笞屈宋。曲盡飄然之思。似非率爾而成。禹錫作詩。每有護持之神物。微之有詠。時多請購之蠻酋。傳之無窮。和者蓋寡。伏念某。間間小智。瑣瑣末流。謬登千佛之名。來赴三刀之夢。神明決事。雖素愧於陸雲。辛苦處身。亦庶幾於孔奮。比遭當世之貴流。繼作此方之膚使。事與心違。道不我合。安敢望其保護。常恐被於猜疑。適聞閤下之出巡。實是吾曹之大幸。固所願也。不亦樂乎。然而非郗生入幕之賓。異元禮通家之舊。但始自於小名犬子。久從遊於佳壻雞林。因竊謂絳帳先生。必不遺杏壇弟子。心自傾於向日。久懷葵藿之誠。飛不可以越階。秪守蚊蝱之分。頗稽謁見。殊積悚兢。自知阮籍之禮疏。無奈謝安之往緩。側聞盛製。實激私心。強隨韻格之艱。以扶荒蕪之作。低頭拜東野。切有慕於高才。捧心效西施。敢輒忘於己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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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어 강을 건너, 여관의 쓸쓸함을 지나쳤다. 숨을 내뱉어 문장을 이루고, 우연히 진인의 말소리를 발했다. 입은 물결을 뒤집으며 빠르게 읽고, 눈은 막을 가르고 놀라워하며 바라보았다. 내가 들으니, 도는 말을 빌려 전하여, 서술하는 자는 밝고 저술하는 자는 성스럽다. 문장은 기운을 주로 하여, 마음에서 동하여 말에 형상화된다. 황색과 백색을 뽑아내어 서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영호를 삼키고 화를 씹은 뒤에야 묘하다. 옛 선배들을 두루 살펴보면, 누가 몇이나 있었는가. 자후의 웅심은 깊어 한유조차도 감히 적수가 되지 못했고, 소릉의 높고 깎아지른 듯한 문장은 이백으로 하여금 그 울타리를 엿보지 못하게 했다. 성유는 몸이 궁핍해야 시가 비로소 잘 만들어지고, 반랑은 머리가 희어져야 읊조림이 더욱 고달프다. 가도의 병은 가난함에 있고, 맹교의 말은 빈곤에서 나온다. 이렇듯 이허의 고봉 절벽 같은 기이함을 궁궐에 적용하면 놀라울 뿐이다. 비록 장공이 비단과 명주 같은 아름다움을 가볍게 여긴다 해도, 여전히 강산의 도움을 얻는다. 재주가 어렵다는 것이 과연 그렇지 않은가. 현명한 자는 이에 참여할 만하다. 공경히 바라건대, 모친께서는 성인의 도를 잠복하시고 왕을 보좌할 재능을 지니셨다. 만 권의 책을 가슴속에 삼키고, 천 명의 글을 붓 아래로 쓸어냈다. 진비서의 큰 절개는 충절이 주운과 같고, 효도는 고수와 같으며, 청렴은 의휴와 같다. 오무령의 높은 문장은 장주처럼 넓고, 슬픔은 굴원과 같으며, 밝음은 가의와 같다. 관료들의 지휘자가 되어 나라의 점쟁이로 불린다. 여회(如晦)가 시를 보좌하여 천자가 중흥의 업적을 바라보고, 장장망(張網)을 풀어 사신이 되어 조정에서 남쪽을 돌아봄이 근심되지 않는다. 머무는 곳에 소문이 있으니, 스스로 무거운 책임을 맡는다. 백성의 고난을 제거하고 주군의 호족을 누른다. 가림막과 깃발을 펴고 풍속을 살핀다. 만 리의 푸른 산과 아홉 층의 자미궁(紫微宮)을 바라보며, 선비들의 우아한 취향을 생각하리라. 두 개의 시냇물과 맑은 바람, 여덟 편의 노래로 심약(沈約)의 높은 유람을 많이 하리라. 그 가을이 우정을 들이닥치고 구름이 진릉(秦嶺)을 가로막을 때,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 등왕각(滕王閣)의 긴 물과 하늘이 있고,勝地를 택하여 기이함을 탐구하면 석병풍(石屛風)의 고독한 연기와 해가 지는 노을과 같다. 이에 사물을 초월하여 높은 정서를 담고, 시단에서 뛰어난 흥을 펼친다. 옛것을 그리워하고 오늘날을 감회하며, 종이를 펴고 붓을 찍는다. 글을 쓰는 것이 신속하여, 갑자기 아래로 흐르는 강물의 배와 같고, 붓을 놓는 것이縱橫하여, 엄숙하게 하늘에 기대어 선 칼과 같다. 진실로 오경(五經)의 북소리이고, 만 구리의 피리와 북소리이다. 조유(曹劉)를 누르고 굴송(屈宋)을 채찍질한다.飄然한 생각을 다하여, 결코 성급하게 된 것이 아님을 보인다. 우석(禹錫)이 시를 지을 때마다 보호하는 신물이 있었고, 미지(微之)가 읊조릴 때 많은 사람이 만주(蠻酋)에게서 사달라고 청했다. 영원히 전하여, 화답하는 자는 거의 없다. 내가 생각하건대, 나는 간간한 작은 지혜와 소소한 말단 신세이다. 천불(千佛)의 이름에谬登하여, 삼도(三刀)의 꿈에 왔다. 신명이 일을 결정하시니, 비록 평소 육운(陸雲)에게 부끄러움이 있지만, 고생하며 몸을 다스림으로써 비로소 공분(孔奮)에 미치리라. 비록 당세의 귀류와 이어져 이 지방의 피사를 계속하였으나, 일이 마음과 어긋나고 도가 나를 합치지 않는다. 어찌 보호를 바라겠는가, 항상 의심에 빠질까 두려워한다. 마침내 각하의 순찰을 들으니, 실로 우리 무리의 큰 행운이다. 마땅히 소원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그러나 비록 희생(郗生)이 막내의 손님이 아니요, 원예(元禮)의 통가(通家)의 옛 친구도 아니다. 다만 처음에는 작은 이름인 개자(犬子)로 시작하여, 오래도록 가색(佳壻)의 계림(雞林)에서 유배되었다. 이로 인해 감히 장막의 선생이 반드시 안반의 제자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마음은 해를 향해 기울어지고, 오래도록 해바라기의 정성을 품었다. 날아갈 수 없으므로 계단을 넘지 못하고, 단지 모기나 파리 같은 신분을 지킨다. 아뢰어 뵙는 것이 꽤 지체되어, 매우 떨리고 경계하는 마음이 쌓였다. 내가 전직(阮籍)의 예가 소홀함을 알지만, 사안(謝安)의 왕래가 더디다는 것을 어찌하겠는가.盛製를 옆에서 들으니, 실로 사심을 격동시킨다. 강제로 운격의 어려움을 따라하여, 황무한 작품을 부축한다. 머리를 숙여 동야(東野)를 절하며, 높은 재능을 사모한다. 가슴을 안고 서시(西施)를 본받아, 감히 자신의 추함을 잊지 않는다.

187. 賀王舍人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9D, ITKC_MO_0003A_A001_270A

원문

宸極疏恩。驟降紫泥之詔。掖垣進秩。更遊紅藥之階。除目播騰。士林增抃。竊以惟內制之重職。實右省之峻班。讜議嘉謨。備諫諍七人之列。高文大冊。裁絲綸五色之書。在唐以馬周,岑文本爲得人。至宋有楊億,蘇子瞻之故事。繼玆前美。今有幾人。恭惟某官。學自名家。才鍾間氣。王茂弘贊中興之霸業。帝稱朕有蕭何。歐陽脩排諸子之異端。人曰今之韓愈。早遇知於旦暮。備踐秩於淸華。用之則行。慨然獨立。久協僉言之允。雅諧上簡之求。果被異恩。更升峻級。三進及霤。卑之無甚高論。一言興邦。聞者足以爲戒。賢旣大用。國其庶興。某頗忝品題。濫遊門館。幸獲聞於賞善。竊自喜於私誠。蟠木爲之先容。雖愧孤根之無用。大廈成而相賀。尙知巨陰之得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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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의 극진한 은총이 멀리 미쳐, 갑자기 자니(紫泥)로 된 조서를 내리셨고,掖垣의 벼슬이 승진하여 다시 홍약(紅藥)의 계단을 거닐게 되었으니, 제수(除目)가 널리 퍼져 학자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저는 듣건대, 내제(內制)의 중한 직책은 실로 우성(右省)의 높은 반열에 속하여, 당당한 논의와 훌륭한 모책은 일곱 사람의 열후(諫諍七人)의 열에 갖추어졌고, 높은 문장과 큰 책자는 오색의 비단으로 된 선纶(絲綸)의 글을 재단한다고 합니다. 당나라에서는 마주(馬周)와 문본(岑文本)이 인재를 얻은 것으로 꼽혔고, 송나라에는 양억(楊億)과 소자첨(蘇子瞻)의 일화가 있었습니다. 이 앞선 아름다움을 이은 자가 오늘날 몇이나 있겠습니까. 공경히 존경하건대, 어전(某官)께서는 학문이 이미 명가(名家)에서 비롯되었고, 재주가 간기(間氣)에 모였으니, 왕마홍(王茂弘)은 중흥의 패업을 보좌하여 임금이 이르기를 ‘내가 소하(蕭何)를 얻었다’ 하셨고, 양수(歐陽脩)는 제자(諸子)의 이단을 배격하여 사람들이 이르기를 ‘이것이 곧 오늘의 한유(韓愈)다’ 하였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이미 총애를 받아 청화(淸華)의 직위를 두루 밟았고, 쓰임받으면 행하여 당당히 독립하였으며, 오래도록 많은 사람의 의견에 합당하여 우연히 상제(上旨)의 구미를 맞추었으니, 과연 특은을 받아 다시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였습니다. 세 번이나 이윽(霤)에 이르렀으나 비천한 것은 높은 논을 하지 못하고, 한 마디의 말씀으로 나라를 흥성케 하였으니, 듣는 자가足以히 경계로 삼습니다.贤人이 이미 크게 쓰임받으니 나라가 거의 흥성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품평(品題)에 부끄러움을 느끼나, 문관(門館)에 어슬렁거림을 남용하였습니다. 다행히 선을 상하는 것을 들었으니, 사사로이 기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반목(蟠木)이 먼저 용서해 주었으니, 비록 고근(孤根)이 무용함을 부끄러워하나, 대옥(大廈)이 완성되어 서로 축하하니, 아직 거음(巨陰)을 의지할 줄 압니다.

188. 謝尙州鄭書記〔原注:紹〕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0B

원문

樂郊寓迹。方謀容膝之安。公廩振貧。特助齊眉之餉。恩非望及。感與愧幷。某祚薄門衰。身殘家破。徒欲求田而問舍。飄然去國以離鄕。久餬口於江南。幸卜居於境內。食如玉薪如桂。不堪蘇子之愁。樹之穀藝之麻。聊勉柳生之業。形羸色瘁。衣破履穿。萬卷書生。磊落枯腸之文字。數間茅屋。蕭條泠甑之塵埃。分自甘令伯之零丁。猶未免相如之庸賃。朝不謀夕。窶而且貧。鄕黨竊笑而相欺。朋遊皆背而告絶。至此亦命。予將疇依。豈圖長者之仁。俯記同問之賤。每於謁見。輒賜從容。愍孤迹之滯淹。語平生之契闊。綸巾論道。雖非入幕之賓。絳帳摳衣。喜預授經之列。交則續而意不倦。勢甚卑而禮有加。或開其翰墨之場。或導以田園之樂。念腐儒疏於計活。而旅食無以支特。迺歎困窮。遂令賙贍。布衣蔬食晏如也。久希毛玠之風。肥馬輕裘共弊之。幸見仲由之義。需其惠澤。及爾妻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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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郊에 몸을 의지하여 방금容膝할 만한 안식처를 꾀하고 있사옵니다. 공廩으로 가난한 이를 구제하시니, 특별히齊眉할 식량을 도와주셨사옵니다. 은혜가 바라던 데에 미치지 못하여, 감격과 부끄러움이 함께 하옵니다. 저는 복이 얇고 문중이 쇠하여, 몸은 상하고 집은 망하였사옵니다. 다만 밭을 구하고 집을 묻는 것만 원할 뿐,飘然히 나라를 떠나 고향을 떠났사옵니다. 오랫동안 강남에서 입에 풀칠하며 지내다가, 다행히 경내에 거처를 정하였사옵니다. 식량은 옥처럼 비싸고 땔나무는 계수나무처럼 귀하여, 소자(蘇子)의 근심을 견딜 수 없사옵니다. 곡식을 심고 삼을 가꾸어, 유생(柳生)의 생업을 겨우 면하였사옵니다. 형체는 쇠하고 색상은 쇠하여, 옷은 헐리고 신발은 뚫렸사옵니다. 만 권의 책을 읽은 서생이라 하여도, 그 글씨는磊落한枯腸의 내용일 뿐이오, 수간의 초가에는蕭條한泑甑의 먼지만 쌓였사옵니다. 분수대로 영정(令伯)의 고독함을 자임하나, 여전히 상여(相如)의 세전(賃賃)을 면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아침을 보더라도 저녁을 도모하지 못하여, 가난하고 빈궁하오며, 향당들이 비웃으며 속이고, 벗들은 모두 등을 돌리고 끊었사옵니다. 여기에 이르러 또한 운명이라, 저는 어디에 의지할꼬. 어찌 장자(長者)의 인자하심이, 하직히 저의 천한 것을 기억하시리라고 생각하였사오며. 매번 뵈올 때마다, 곧 용납하여 주시어, 고독한 발자취가 머무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평생의 이별과 재회를 말씀하시오셨사옵니다. 綸巾으로 도를 논하는 것은 비록入幕의 손은 아니나, 絳帳에서 옷깃을 잡고 배우는 것을 기뻐하여 授經의 열에 참여하였사옵니다. 교분은 이어지고 뜻은 싫증나지 않으며, 세력은 매우 비록하나 예우는 더하였사옵니다. 때로는 翰墨의 장을 열어주시고, 때로는 田園의 즐거움을 인도하시오셨사옵니다. 부유한 선비가 생계를 도모하는 데 어둡고, 타향살이로 특별히 지탱할 길이 없음을 생각하시어, 곤궁함을 탄식하시더니, 마침내 구휼하여 주시어, 포의(布衣)와 소식(蔬食)으로 안락하게 지내게 하셨사옵니다. 오랫동안 모계(毛玠)의 풍모를 사모하고, 비마경구(肥馬輕裘)가 함께 낡는 것을 보았으며, 다행히 중유(仲由)의 의를 보았사옵니다. 그 은혜를 기다리니, 이에 아내와 자식에게까지 미쳤사옵니다.

189. 代金善州〔原注:瑗〕上晉陽林大判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0C, ITKC_MO_0003A_A001_270D ...

원문

一夫泣以向隅。滿堂爲之不樂。大人淸而容物。惟所欲者必從。誠未忍於胸懷。敢冒塵於視聽。恭惟某官。天才秀逸。雅量宏深。張鷟文高。時皆號曰靑錢選。元琳望重。人當知作黑頭公。主上喜於同時。朝廷倚以爲重。暫虛侍從之列。出莅股肱之邦。早徙天池。搏而上者九萬里也。遠宣王化。共我理惟二千石乎。雅諧黃屋之心。大慰蒼生之望。伏念某庸虛末品。跅弛下才。竄謫江湖。久戀子牟之魏闕。遭逢旦暮。詔徵賈誼於長沙。舊里爲墟。生妻去室。及一麾而出守。乘匹馬以獨來。行道遲遲。窮愁鬱鬱。窓前列遠岫。豈尋謝守之居。宴寢凝淸香。久欠蘇州之興。昨者來投巨鎭。忝預華筵。對孔融北海之樽。擁安石東山之妓。心乎愛矣。目而送之。醉花柳窮江山。行盡謫仙之樂事。曳羅穀蘊蘭麝。無非金谷之佳人。命以傾城。使之薦枕。方結綢繆之信。欲寬羈旅之愁。奈何事與心違。會難別易。黯消魂於南浦。忽失佩於江皐。晚色慘兮愁容。秋風吹兮哀響。故國三千里。那堪遊子淚霑巾。巫山十二峯。正是行人腸斷處想仙容之綽約。弔隻影以徘徊。其於旅館秋涼。郡齋夜靜。空展轉而不寐。念聚散之難期。思子爲勞。願言則嚔。南有沈鱗北羈羽。嗟影響之無因。上窮碧落下黃泉。指生死而爲誓。必有與也。求則得之。昔者杜牧聞紫雲之名。乃往乞於李相國。孫秀知綠珠之美。亦使求於石將軍。況吾戀戀之故人。肯拒拳拳之危懇。仰惟大度。俯諒愚衷。女子縫裳。俾助鱞夫之窮計。我心匪石。敢忘知己之厚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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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구석에서 울면 온 방이 즐거움을 잃는다. 대인은 청렴하고 사물을 용납하시니, 원하는 바를 반드시 따르십니다. 진실로 가슴속에 참지 못해 감히 먼지를 일으켜 시청에 더럽힙니다. 공경하건대, 어전께서는 천재가 뛰어나고 풍량이 깊으시어, 장작(張鷟)의 문장이 높으니 때로는 모두 그를 청전선(靑錢選)이라 불렀고, 원림(元琳)의 명성이 중하니 사람들은 그가 흑두공(黑頭公)이 될 줄 알았습니다. 임금이 동시(同時)의 인재를 기뻐하시고 조정에서는 그를 중히 여겨 의지하셨습니다. 잠시 시종(侍從)의 자리를 비워 내어 주효(股肱)의 고을을 다스리게 하셨으니, 일찍 천지(天池)로 옮겨 구만 리를 날아 올랐고, 멀리 왕화를 선포하여 우리와 함께 이천석(二千石)의 치적을 함께하셨나이다. 아득히 황거의 마음을 합치시고 크게苍生의 소망을 위안하게 하셨나이다. 생각건대, 저는 용허한 말품으로 탁기(跅弛)한 하재(下才)라 강호에 유배되어 오래 자모(子牟)의 위궐(魏闕)을 그리워하다가, 조석에 조우하여 장사에서 가의(賈誼)를 징집하라는 조서를 받았나이다. 옛 고향은 폐허가 되고 살아있는 아내는 집을 떠났으며, 일찍이 일휘(一麾)를 들고 외직에 나가 마 한 필을 타고 홀로 왔나이다. 길을 가느라 더디고 궁구하여 우울하오며, 창가에 먼 봉우리가 늘어졌으나 어찌謝守의 거처를 찾는 것이리오. 연실에서 맑은 향기가 응어리졌으나 오래 소주(蘇州)의兴致를欠하고 있나이다. 어제 큰 진영에 투항하여 부끄럽게도 화연(華筵)에 참여하였으니, 공융(孔融)의 북해의 잔을 대하고 안석(安石)의 동산의 기녀를 거느렸나이다. 마음은 사랑하였으나 눈으로 보내었나이다. 꽃과 버들醉하고 강산이 끝나는 것을穷하여 행尽한 선객(謫仙)의 낙사를 행하였나이다. 비단 옷을 끌며 난초 향기를 품으니, 모두 금곡(金谷)의 미인이었나이다. 명하여倾城하게 하고 잔침(薦枕)하게 하였나이다. 비로소绸缪의 신의를 맺고 거려(羈旅)의 근심을 풀려 하였건만, 어찌 일이 마음과 어긋나고 회합은 어렵고 이별은 쉬웠나이다. 남포(南浦)에서黯消魂하고 갑자기 강고(江皐)에서 패(佩)를 잃었나이다. 늦은 빛은 차갑고 얼굴은 슬프며, 가을바람은 불어 슬픈 소리를 내나이다. 고국은 삼천 리나 되어 어찌 유자의 눈물이 적신 수건을 견디리오. 오산(巫山) 십이봉은 바로 행인의 창자가 끊어지는 곳이로다. 선용(仙容)의绰約함을 생각하며, 홀로 남은 그림자를弔하며 배회하오나, 그 여관의 가을 서늘함과 군재(郡齋)의 밤 고요함에는, 공히 전전하며 잠들지 못하고,相聚와 散離의 기약이 어려울 것을 생각하오며, 자(子)를 생각하여勞하며, 원언(願言)하면 재(噦)하오나, 남에는 깊은 비늘이 있고 북에는 묶인 날개가 있으니, 영향(影響)의 인연이 없음을 탄식하오며, 상궁벽락(碧落)하고 하황천(黃泉)을穷하여 생사와 죽음을誓로 삼으오니, 반드시 함께할 것이요, 구하면 얻을 것이오. 과거에 두목(杜牧)이 자운(紫雲)의 이름을 듣고는 감히 이상국(李相國)에게 구하였고, 손수(孫秀)가 녹주(綠珠)의 아름다움을 알고는 감히 석장군(石將軍)에게 구하였나이다. 하물며 우리 연연한 고인이 어찌 권권한 위간(危懇)을 거절하겠나이까. 우러러 대도(大度)를 생각하시고, 굽어 어중(愚衷)을 용납하시오. 여자가 옷을 바느질하여 비록 어부(鱞夫)의 궁계를 돕게 하오나, 나의 마음은 돌이 아니니 감히 지기(知己)의 후은을 잊겠나이까.

190. 答從兄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1B, ITKC_MO_0003A_A001_271C

원문

低頭拜東野。阻獲昌黎之從遊。打門驚周公。忽承諫議之寄信。伏念某衰門泠裔。末路羈蹤。十載艱難。偶脫風波之地。一涯流落。久淹瘴癘之鄕。久積憂傷。頗乖榮衞。昨以負薪之疾。不堪伏枕之勞。惟君子之垂仁。記窮民而無棄。惠然肯顧。愍爾衰容。加以解賀監之金龜。愌洞庭之春色。慰我弊廬之牢落。設其小飮之從容。擧白飛觴。客以淸濁爲聖賢耳。揮毫落紙。兄之心䏏皆錦繡耶。乃促膝而談。或持頤而笑。洒若沈痾之頓愈。美哉樂事之相并。白綸巾宮錦袍。盡淋漓於座上。明月杯淸風簟。多交錯於松間。及乎日入虞淵。雲生楚岫。煙景晚色。渾爲慘淡之愁容。尊酒相逢。已作分離之餘恨。但貽書而致謝。承墮墨之繼臨。旨盡綢繆。言多款密。欣聞親戚之警欬。已覺精神之坐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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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조아려 동야(東野)에게 절하니, 장려(昌黎)를 따라 수학했던 인연이 끊겨 만나지 못하더니, 문 두드리는 소리로 주공(周公)을 놀라게 하여, 갑자기 간의(諫議)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생각건대, 저는 쇠망한 문중의 냉정한 후예로서 말로에 표류하는 신세였습니다. 십 년 동안 고난을 겪으며 간신히 풍파의 땅을 벗어났고, 한쪽 끝에서 유랑하며 오랫동안 사독(瘴癘)의 고을에 머무르며 지냈습니다. 오래도록 근심과 상념이 쌓여 몸과 정신이 많이 어긋났습니다. 어제 부채(負薪)의 병으로, 엎드려 베개에 머리를 기대는 노역조차 견딜 수 없었는데, 오직 어르신께서 자비를 베풀어 가난한 백성을 잊지 않으시니, 기꺼이 찾아와 주시어 쇠약한 제 용모를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나아가 해감(賀監)의 금귀(金龜)를 풀고, 동정(洞庭)의 봄빛을 마시게 하여, 허름한 제 오두막의 적막함을 위로해 주시고, 작은 술잔의 여유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흰 술잔을 들고 술잔을 돌리며, 손님은 맑고 탁한 술을 가리켜 성인과贤人의 경지라 하였습니다. 붓을 들어 종이에 떨어뜨리니, 형님의 마음속에는 모두 수놓은 비단처럼 아름다운 글이 가득하였겠습니까. 그러자 우리는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턱을 받치고 웃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오래된 중병이 갑자기 낫은 듯 상쾌하고, 아름다운 즐거움이 겹쳐지는 듯하였습니다. 흰 비단 관과 궁금포(宮錦袍)는 좌석 위에서 흠뻑 젖었고, 밝은 달의 잔과 청풍의 요(簟)는 소나무 사이에서 많이 오갔습니다. 해가 우연(虞淵)에 지고, 구름이 초수(楚岫)에서 생기니, 연기 같은 경치와 저녁 빛깔은 모두 씁쓸하고 담담한愁容으로 변하였습니다. 잔을 마주하였을 때, 이미 이별의 여한이 생겼습니다. 다만 편지를 보내어 감사함을 전할 뿐, 떨어지는 먹물처럼 이어져 내려온 글씨를 받았습니다. 뜻은 깊고 끈끈하고, 말은 많고 정밀하였습니다. 친척의 목소리를 듣는 기쁨을 이미 느꼈고, 정신이 앉은 자리에서부터 날아갈 듯하였습니다.

191. 謝見訪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病莫能興。久臥窮閻而伏枕。跫然而喜。忽驚長者之迂車。惟憂患之餘生。抱支離之多病。久矣朋遊之謝絶。何其門巷之蕭條。豈意仁人。不遺舊物。常裹飯而來問。或載酒以相過。共爲方外之遊。不導人間之事。守顏回之陋巷。雖簞瓢不堪其憂。入王績之醉鄕。非轍迹所可得至。有文以接。其樂也融。顧枯朽之孤骸。辱撫存之厚眷。其爲感悚。曷盡敍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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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어 일어나지 못하여 오랫동안 궁한 골목에서 누워 지내다가, 발소리가 들려 기뻐하다가 갑자기 어르신께서 먼 길을 오시어 수레를 멈추신 것을 놀라게 여겼습니다. 오직 환난 이후의 남은 생을 걱정하며, 지극히 불구덩이 같은 다병한 몸을 안고 있습니다. 벗들과의 왕래가 끊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거늘, 어찌하여 문과 골목이 이토록 쓸쓸하고 고요한지. 어찌 어진 어르신께서 옛 사람을 버리지 않으실 줄을 생각했겠습니까. 항상 밥을 싸서 찾아와 문안하시거나, 때로는 술을 싣고 지나가시어 함께 방외(方外)의 유락을 즐기시고, 인간의 사정을 이끌지 않으셨습니다. 안회(顏回)의陋巷을 지키며 비록 대와 독으로 근심함이 견디기 어렵지만, 왕적(王績)의 취향(醉鄕)에 들어가면 차자국(轍迹)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문장으로 접하니 그 즐거움이 융융하였습니다. 오히려 마른 나무와 썩은 나무 같은 외로운 뼈를 가지고, 두터운 보살핌과 간문을 받으니, 그 감격과 두려움이 어찌 다 서술하여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192. 賀李壯元〔原注:眉叟〕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1D, ITKC_MO_0003A_A001_272A

원문

文高學博。當今舍我其誰。選妙鑑精。得人於斯爲盛。凡其聞覩。莫不歡欣。恭惟壯元。負王佐才。號名家子。若高山深谷龍虎變化。隱顯隨時。如孤峯絶岸雲雷發興。文章駭俗。蠻夷欲購其篇什。草木亦知其聲名。若趨升堂補闕之試則諸生推爲先登。應宏詞拔萃之科則多士拱而環視。何其壯也。孰敢當哉。是天上謫仙人。眞世間奇男子。況斯文已將墜地。而聖主急於取才。果應精求。首登優第。武帝讀相如之賦。喜於同時。明皇聞李白之才。召而親見。朝纔綴行於桂嶺。夕必待詔於玉堂。選士以來。唯公而已。胸呑雲夢者九箇。望素負於經綸。身到黃扉已四人。位佇登於廊廟。使聞風而大振。爲儒者之極榮。某筆硯舊交。丘園遺老。路窮鵬海。阻攀羊角之搏。病臥蟻牀。未展鳧趨之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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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 높고 박식하시니, 오늘날 저를 제치고 누가 있겠습니까. 묘한 것을 선택하고 정수를 감식하여 인재를 얻음에 이보다 성대할 수 없으니, 그들을 듣고 본 자들이 기쁨과 희열을 느끼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공경하건대 장원(壯元)께서는 왕을 보좌할 재능을 지니셨고 명가의 자제라 일컬어지십니다. 마치 높은 산과 깊은 계곡에서 용과 호랑이가 변화하듯, 때에 따라 은신하거나 현현하시며, 마치 외로운 봉우리와 끊어진 절벽에서 구름과 번개가 일어나듯, 그 문장은 세속을 놀라게 하여 만이도 그의 편지를 사려 하고 초목도 그의 명성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승당(升堂)과 보궐(補闕)의 시험에 나아가는 것이라면 제자들은 그를 선두로 밀어내고, 만약굉사(宏詞)와拔萃(발萃)의 과시에 응시한다면 많은 선비들이 고개를 들고 둘러보며 감탄할 뿐입니다. 어찌 이토록 장엄합니까. 누가 감히 당해내겠습니까. 그는 천상에서 귀양 온 선인(仙人)이요, 진실로世间의 기인(奇男子)입니다. 하물며 이미 문명이 땅에 떨어지려 할 때 성군이 재재를 급히 구하여, 과연 정구(精求)에 응하여 처음으로 우수한 제1등을 차지하였습니다. 무제(武帝)가 상거(相如)의 부(賦)를 읽고 같은 시대에 있음을 기뻐하였으며, 명황(明皇)이 이백(李白)의 재주를 듣고 불러 친히 만나보았습니다. 아침에야 계령(桂嶺)에서 행렬에 섞였다가 저녁에는 반드시 옥당(玉堂)에서 조서를 기다리게 되었으니, 선사를 뽑은 이래 오직 공뿐이었습니다. 흉중에는 운몽(雲夢)의 아홉 개를 삼킬 기상이 있어 경륜(經綸)에 대한 명성이 높았고, 몸은 이미 황비(黃扉)에 이르렀으니 네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지위는 정승의 자리에 오를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풍문을 듣고 크게 진동하여 유자(儒者)의 극치인 영광을 얻게 되었으니, 저는 붓과 벼루의 옛 친구이자 산천의 유노(遺老)로, 길은 봉해(鵬海)에서 막혀 양각(羊角)의 날개를 타고 오르는 것을 방해받았으며, 병들어 개미 침대 위에 누워 있어 부취(鳧趨)의 예를 펼치지 못하였습니다.

193. 上安西大判陳郞中〔原注:光脩〕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2B, ITKC_MO_0003A_A001_272C ...

원문

黃鵠凌墟。雖有九霄之逸翮。白駒在谷。恨無一束之生蒭。敢將長喙以哀鳴。庶或動心而垂察。伏念某。命賦多難。性鍾至愚。慕顏回賢人之樂。雖甘飮水曲肱。非元龍國士之心。徒欲求田問舍。昔吾先祖。遇聖初基。轉籌幄中。眞子房之人傑。圖形閣上。忝唐帝之功臣。乃貽鐵券之書。永有土田之錫。及傳後嗣。見奪他人。遂令忠義之魂。久絶歲時之享。以玆興嘆。每欲訟冤。然而孤拙之心固易危而自縮。流離之跡方遠退以深藏。尙口乃窮。多言可畏。故莫伸於鬱結。而坐受於飢寒。昨披悃愊之誠。仰叩高明之鑑。雖莫躬於造請。實有意於知憐。惟容乃公。勿咈所欲。希荊州半面之識。貴踰萬戶封侯。得劉弘一紙之書。賢於十部從事。然乏金張之爲援。尙稽虞芮之質成。聞循吏善政之風。其惟良二千石也。使遊民不耕而食。故取禾三百囷兮。不有仁人。孰噓氷氏。恭惟某官。際天精識。命世賢才。李太白獨擅歌詞。人稱國手。陳子昂復興騷雅。世號文宗。天子喜於同時。廷臣莫能出右。謀猷告后。素勤伊尹之忠。臺閣生風。早振陳咸之節。猒嚴助承明之直。請張敞劇郡之行。果簡在於上心。而出鎭於西海。遠宣王化。大慰民心。加以挫豪強而自服。禮儒雅以旁延。士願品題。人皆樂慕。矧此妄庸。益深敬仰。意在山水。庶逢鍾子之知音。皮有陽秋。未接褚褒之雅氣。伏望救人無棄。決事如神。遂令舊將之雲孫。獲食世封之尺地。一家飽暖。儻蒙濡沫之恩。萬死粉糜。敢誓漆身之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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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黃鵠)이 높은 언덕을 넘나들어도 아홉 하늘을 날 만한 뛰어난 날개는 있으나, 흰 말이 계곡에 머무는 것을 보고는 한 줌의 생초(生芻)조차 바칠 길이 없어, 감히 긴 부리로 슬피 울어 보아 마음이 움직여 주시어 살펴주실 바 바랍니다. 생각건대, 저는 운명이 다난하고 성품이 지극히 어리석어, 안회(顏回)가 어진 이가 누리는 즐거움을 동경하여 비록 물이 굽이치는 곳에서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 삼는 검소한 삶을 기꺼이 하나, 원룡(元龍)의 국사(國士)로서의 마음은 오직 밭을 구하고 집을 장만하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예전에 우리 선조께서 성초(聖初)를 만나 계책으로 정치를 도우셨으니, 참으로 자방(子房)과 같은 인걸이었고, 각상(閣上)에 형상을 그려 당나라 황제의 공신이 되었사오니, 이에 철권(鐵券)의 서신을 하사받아 영원히 토지와 전답을 하사받았습니다. 그러나 후손에게 전해지자 타인에게 빼앗겨, 충의의 혼이 오랫동안 세시(歲時)의 제사를 끊게 되었으니, 이로 인해 탄식하며 항상 원한을 호소하려 하였으나, 고독하고 어리석은 마음은 본래 위태로워 스스로 위축되기 쉽고, 유리(流離)의 자취는 비로소 멀리 물러나 깊이 숨기고 있으니, 입만 열면 궁지에 빠지고 말이 많으면 두려움이 있으니, 우울한 결백을 펴지 못하고 앉아서 굶주림과 한랭을 받았습니다. 어제 간절한 뜻을 펴어 높은 분의 감식(鑑識)을 우러러 여쭈었사오니, 비록 친히 찾아가 뵙지는 못하였으나 실로 아끼고 사랑하려는 뜻이 있었사옵니다. 오직 너그러이 용납하여 원하시는 바를 거스르지 마시기를, 형주(荊州)의 반면(半面)의 지식을 바라며, 이는 만 호후(萬戶封侯)보다 귀하오며, 유홍(劉弘)의 한 장의 서신을 얻어 열 부의 종사(從事)보다 현명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금장(金張)과 같은 세력가의 도움을乏하여, 아직 우예(虞芮)의 질성(質成)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순리(循吏)가 선정을 베푸는 풍조를 들으니, 오직 양이천석(二千石)뿐이옵니다. 유민이 농사짓지 않고 먹게 하므로, 고로 곡식 서른 구니를 취하오며, 어진 이가 없다면 누가 빙씨(氷氏)의 기운을 불어넣으시겠습니까. 공경하건대, 전하의 정식(精識)을 만나 세상에 뛰어난 재능을 지니셨으니, 이태백(李太白)이 독점한 가사(歌詞)는 사람들이 국수(國手)라 칭하고, 진자앙(陳子昂)이 소아(騷雅)를 부흥시키니 세상이 문종(文宗)이라 호칭합니다. 천자가 동시에 기뻐하시고 조정 신하들 중 그 우에 나설 이가 없으며, 모의(謀猷)로 후(后)에게 고하여 평소 이윤(伊尹)의 충성을 다하시고, 대각(臺閣)에 풍채를 일으켜 일찍 진함(陳咸)의 절개를 떨치셨습니다. 엄조(嚴助)가 승명(承明)의 직언을 싫어하여 장창(張敞)의 극군(劇郡) 행을 청하셨으니, 과연 상심(上心)에서 간택되어 서해(西海)로 나가 치우셨사오니, 멀리 왕화(王化)를 선포하시고 대위(大慰) 민심을 이루셨사옵니다. 더하여 호강(豪強)을 꺾어 스스로 복종하게 하시고, 유아(儒雅)를 예로 삼아 옆으로 널리 연고하시니, 사인(士人)은 품평을 원하고 사람들은 모두 기꺼이 사모합니다. 하물며 이 망용(妄庸)한 자로서 더욱 깊은 경외감을 품고 있으니, 뜻이 산수(山水)에 있어 비로소 종자(鍾子)의 지음을 만날 바라고, 가죽에 양추(陽秋)가 있어 아직 서포(褚褒)의 아기를 접하지 못하였사옵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사람을 구하여 버리지 마시고, 일을 결정하기를 신명나게 하사, 옛 장수의 운손(雲孫)이 세봉(世封)의 척지(尺地)를 얻어 먹게 하시고, 일가가 포난(飽暖)을 얻으면 비록 물에 젖은 거품의 은혜를 입은 바가 될지라도, 만사(萬死) 분미(粉糜)할지라도 감히 칩신(漆身)의 보답을 맹세하오리다.

194. 上李常侍〔原注:知命〕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3A, ITKC_MO_0003A_A001_273B ...

원문

遊羿彀而不中。宜任分無慊於心。與越戰而或封。請聚謀以鬻其技。敢贄謬悠之浪說。仰希咳唾之餘音。竊以易牙之前。淄澠不能隱其味。師曠之側。鄭衛未嘗欺其聲。況大賢能精於選掄。而多士孰逃於鑑藻。故殷卿考第。先於詞學而必收。永叔試文。務爲險怪者皆黜。使文風淳而造理。被退者擧無屈辭。然而雖權衡本出於至公。有愚智相雜而交進。王良爲馭。造父驂乘。皆欲善試其良能。卞和泣玉。伯牙碎琴。固常罕遇於眞賞。一失其顧。無如之何。陳岵贄卷於權舍人。自伸就試之志。亞之上書於李諫議。未免混類之悲。玆皆當代之大才。況下古人於數等。伏念某。晚未聞道。朴不曉文。七歲頌六甲。雖無敏悟之才。三年通一經。頗有辛勤之學。焚膏以繼。下筆不休。恐長虞墮其家聲。望董子褎然擧首。謂閤下操升黜之柄。是小子得奮揚之秋。何相須殷相遇疏。願莫之遂。奈其進銳其退速。理固爲然。以獐頭鼠目之姿。角虎戰龍爭之地。多多益辨。始期必勝以取之。一一以吹。乃復先逃而去矣。終身所恥。咋舌何言。雖十上忘勞。後必作靑雲之上客。其一條遺恨。在不爲玉筍之門生。信通塞皆係於時。故功名數失於會。分甘藏縮。跂絶亨嘉。匠伯以爲不材。自慙無用。大人淸而容物。豈棄所長。恭惟閤下。一角祥麟。九苞威鳳。幾千年出韓愈。振文章於己衰。五百歲得陳君。補風雅之久缺。潤色皇朝之制作。主張吾道之會盟。揚紫微垂虹蜺。風彩傾乎四海。光天衢樹桃李。英才萃於一門。凡見博帶褒衣之徒。必將分庭抗禮以待。重念某窺墻尙阻。傃德益深。自吾叔伯之生平。頗獲師資於道義。願自稱文擧之通家後。欲往俟以直前。得相見雍陶之詩集中。亦何疑於未接。伏望和顏假色。大度包荒。少垂仁者之哀矜。俯記孤生之潦倒。千里附於驥尾。儻得依歸。一死輕於鴻毛。誓圖報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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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羿)의 활대(彀)에 들어가도 적중하지 못한다면, 마땅히 자신의 분수를 받아들이고 마음에 미련이 없어야 한다. 월(越)과 싸워 비록 봉작을 얻었다 할지라도, 모의를 모아 그 재주를 팔아보려 한다. 감히 헛되고 터무니없는 망언을 바치니, 폐하의 재주 있는 말씀의 여운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간혹 생각하건대, 이아(易牙)가 있기 전에는 자수(淄水)와 명수(澠水)의 맛이 숨겨지지 않았고, 사광(師曠)이 곁에 있으면 정(鄭)과 위(衛)의 소리가 속이지 못하였다. 하물며 대현인이 선별하는 일에 정통하시다면, 많은 사들이 어찌 감미(鑑藻)를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은경(殷卿)이 등급을 고를 때 먼저 문학을 시험하여 반드시 거두었고, 영숙(永叔)이 글을 시험할 때 험하고 기이한 것을 무릅쓰는 자는 모두 버렸다. 이로써 문풍이 순박하고 이치에 도달하게 되어, 낙방한 자가 모두 굴복하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비록 저울질하는 것이 본래 지극히 공평하지만, 어리석은 자와 슬기로운 자가 섞여 함께 나아간다. 왕량(王良)이 마부를 하고 조부(造父)가 좌수를 하니, 모두 서로의 뛰어난 재능을 시험하려 함이다. 변화(卞和)가 옥을 울고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부수는 것은, 본래 진정한 감상을 만나기 드문 일이다. 한 번 그 시선을 잃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진호(陳岵)가 권사인(舍人)에게 문권을 바쳐 스스로 시험에 응하려는 뜻을 펼쳤고, 아지(亞之)가 이간의(諫議)에게 상소를 올렸으나, 비록 혼탁한 무리에 섞였다는 슬픔을 면하지 못하였다. 이 모두는 당대의 대재들이요, 하물며 고대의 사람들을 수등으로 여길 것이냐. 감히 생각하건대, 저는 늦게 도를 듣지 못했고, 소박하여 문장을 알지 못합니다. 일곱 살에 육갑(六甲)을 외웠으나, 민첩하고 총명한 재주가 없었고, 삼 년에 경전 하나를 통달하였으나, 다소 근면하고 수고로운 학문은 있었습니다. 기름을 태워 밤을 밝히며 글을 썼으니,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집안의 명성을 떨어뜨릴까 두려워했고, 동자(董子)처럼 현저하게 거수되기를 바랐습니다. 폐하께서 승강(升黜)의 권력을 잡으셨으니, 이 소자가 분발할 시기입니다. 어찌 그리 기다리심이 간절하고 만나심이 소원하였습니까. 원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진격이 빠르면 퇴각도 빠르니, 이치가 본래 그러합니다. 어치두(獐頭)와 소목(鼠目)의 자태로 호전룡쟁(虎戰龍爭)의 땅에 각축하니, 많을수록 더욱 변론하여 처음에는 반드시 이겨 취하려 하였으나, 하나하나 불어주자 다시 먼저 도망하여 갔습니다. 평생의 치욕이니, 혀를 깨물어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 비록 열 번 올렸다고 하여 노고를 잊지 않더라도, 뒤에는 반드시 청운(靑雲) 위의 객이 될 것입니다. 그 하나의 남은 한은 옥순(玉筍)의 문하생이 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신(通)과 통(塞)은 모두 때에 달려 있으므로, 공명과 수는 회합에서 자주 잃어집니다. 분수를 감추고 수축하여, 높은 길과 아름다운 것을 바라봅니다. 장백(匠伯)이 재능 없는 자로 여겨, 스스로 무용함을 부끄러워합니다. 대인(大人)이 청렴하여 물건을 용납하시니, 어찌 장점을 버리시겠습니까. 공경히 생각하건대, 폐하는 한 각(一角)의 상린(祥麟)이시고, 구포(九苞)의 위풍(威鳳)입니다. 수천 년 만에 한유(韓愈)가 나와 쇠퇴한 문장을 진작하였고, 오백 년 만에 진군(陳君)을 얻어 오래도록 결여된 풍아(風雅)를 보충하였습니다. 황조의 제작을 윤색하시고, 우리 도회의(會盟)를 주장하십니다. 자미(紫微)를 들어 홍적(虹蜺)을 드리우시니, 풍채가 사해(四海)를 기울이고, 천거(天衢)에 도토리(桃李)를 심어, 영재가 한 문하에 모이십니다. 보리(博帶)와 포의(褒衣)를 입은 자들을 보면, 반드시 정립(分庭)하여 예의로 대접할 것입니다. 다시 생각하건대, 저는 성을 엿보아도 아직 막혀 있고, 덕을 사모함이 더욱 깊습니다. 자형(叔伯)의 생평을 통해, 도의(道義)에서 사사(師資)를 꽤 얻었습니다. 문거(文擧)의 통가(通家) 후손임을 칭하여, 직전(直前)하여 나아가기를 기다리고자 합니다. 오효(雍陶)의 시집에相见하기를 얻어, 아직 접하지 못함을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간절히 바라오니, 화안(和顏)과 가색(假色)을 베푸시고, 대도(大度)로 포황(包荒)하소서. 조금이라도 인자한 자의 애긍(哀矜)을 내려주셔서, 고생(孤生)의潦倒(료도)를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천리를 달려 기미(驥尾)에 붙어, 만약 의지할 수 있다면, 일사는 홍모(鴻毛)보다 가볍습니다. 보효(報效)를 도모할 것을 맹세합니다.

195. 祭復源闍梨文〔原注:代門弟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3D, ITKC_MO_0003A_A001_274A ...

원문

嗚呼。自西方大仙影滅於雙林。吾聖敎墜而寢隳。故薝葍之香。久歇以衰。醍醐之味。亦變以醨。茫然法界。橫目蚩蚩。窒鼻觀而莫齅。燥舌根而莫滋。大救斯弊。其待我師。現比丘之身。當末法之時。上膺付囑。憫然興悲。使香返而復薰。味返而如飴。而微我公挺出應期。高張敎綱。任者爲誰。亦猶堯舜之道。仲尼出而述之。聖賢異代。迭相扶持。有際天之濤。乃可容呑舟之魚。有扶搖之風。乃可負垂雲之翼。況乎負擔如來之法印。豈在尋常之瑣力。公之器局。英偉絶特。三藏大敎。盡貯胸臆。暢微言如玉振。剖奧義如氷釋。皆衆人之莫知。乃熟解而獨得。投我宗門。始肄其跡。高然慧炬。以照昏黑。後學之流。皆仰其德。如乘舟入海。未辨東西。而忽望見其斗極。然而鸞鳳者不可束之以樊籠。常自懷寥廓之雲飛。脫落名檢。振錫而歸。念彼南民。未聞正法。俯與群迷。同修善業。披榛結庵。謁于佛岬。庶類知歸。其踵相接。攀危輦重。紛然帀合。道博器圓。虛中以納。燕坐窮山。名落天下。蓄養於中。有過人者。居不擇乎遐陬僻邑。蓋自知其法無中邊。推我方寸。施及大千。凡聆咳唾之一音者。孰不知善而必遷。朝爲獵夫與漁師。夕則已化而爲賢。繄含靈之蒙賜。在此土以有緣。何遽示於圓寂。乃薪盡而火傳。嗚呼哀哉。施之苟博。報則必篤。聞公之沒。列郡痛哭。遠邇之人。如失眼目。矧伊無狀。早結宿因。幼蒙發藥。善誘諄諄。自違方丈。徒企光塵。將百舍重趼而至。江山杳杳而阻絶。承哀萬里。不覺涕雪。痛之至者。言不能說。欲寄一辭。向風感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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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서방의 대선인(大仙人)이 쌍림(雙林)에서 그 그림자를 거두신 후, 우리 성교(聖敎)는 떨어지고 점차 무너져 내렸다. 그러므로 접부(薝葍)의 향기는 오래도록 그치고 쇠퇴하였으며, 제호(醍醐)의 맛 또한 변하여 묽어졌다. 망연자실한 법계(法界)에서 눈이 가로 달린 백성들은 코를 막아 관(觀)하여도 맡을 데가 없고, 마른 혀뿌리를 가지고도 적실 데가 없다. 이 폐단을 구원하는 것은 오직 우리 스승을 기다림에 달려 있다. 그는 비구(比丘)의 몸을 나타내어 말법(末法)의 시대에 상응하여 나타나셨으며, 위의(上膺)로 부처님의 부탁을 받고, 불쌍히 여겨 슬퍼하며 슬픔을 일으키셨다. 향기를 다시 돌려 다시 피우게 하고, 맛을 다시 돌려 마치 설탕처럼 되게 하셨다. 만약 우리 공(公)이 용감히 나와 시기에 응하지 않았다면, 교강(敎綱)을 높게 장악한 자는 누구였겠는가. 또한 요순(堯舜)의 도가 공자(仲尼)께서 나타나서 서술하신 것과 같으니, 성현은 서로 다른 시대에 있어 서로 번갈아 부축하여 주었다. 하늘에 닿은 파도가 있어야 비로소 뱃머리를 물고기를 삼킬 수 있고, 부요(扶搖)의 바람이 있어야 비로소 구름 아래로 드리운 날개를 짊어질 수 있다. 하물며 여래(如來)의 법인(法印)을 짊어지는 일이 어찌尋常한琐碎한 힘에 있겠는가. 공의 기국(器局)은 영웅스럽고 위대하여 특별하며, 삼장대교(三藏大敎)를 모두 가슴속에 간직하셨다. 미묘한 언어를 옥이 울리는 듯하게 펼치시고, 오묘한 의의를 얼음이 녹는 듯이 풀어내셨으니, 모두 대중들이 알지 못하는 바를 오직 숙달하여 독득하셨다. 우리 종문(宗門)에 투신하여 처음 그 자취를 연마하셨으니, 높은 지혜의 횃불로 어둠을 비추셨다. 후학의 무리들은 모두 그의 덕을 우러러 보았으니, 마치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갔을 때 동서쪽을 분간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두극(斗極, 북두칠성)을 바라본 것과 같았다. 그러나 난조(鸞鳳)는 우리들의 우리장에 묶일 수 없으므로 항상 요괄(寥廓)한 구름을 품고 날아갔으며, 명검(名檢)을 탈락하고 지팡이를 들어 돌아가셨다. 그 남쪽 백성을 생각하여 정법을 듣지 못함을 슬퍼하시고, 군미(群迷)와 함께하여 선업(善業)을 수지하셨다. 가시나무를 베어 암자를 짓고 불갑(佛岬)에 참배하셨으니, 제사(庶類)들이 귀의할 바를 알게 되어 그 뒤를 이어 잇달았다. 위태로운 수레를 끌어올리고 무거운 짐을 지고 어지럽게 모여들었다. 도가 넓고 기구가 원만하여 허중(虛中)하여 받아들였다. 연좌(燕坐)하여 궁산(窮山)을 다스리셨으나 이름은 천하에 떨쳤다. 중(中)에 축양하여 남다른 이가 있었다. 거처는 먼 곳과 외진 고을을 가리지 않으셨으니, 이는 법에 중변(中邊)이 없음을 스스로 아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방寸을 미루어 천대(大千)에 베풀었다. 기침과 침뱉음의 한 음을 들은 자들이 어찌 선을 알지 못하고 반드시 옮기지 않았겠는가. 아침에는 사냥꾼과 어사(漁師)였으나 저녁에는 이미 변화하여 현인이 되었다. 함령(含靈)이 은택을 입은 것은 이 땅에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갑자기 원적(圓寂)을 보이셨는가. 이는 장작이 다하여 불이 전한 것과 같다. 아, 슬프도다. 베푸는 것이 만약 넓었다면 보답은 반드시 두터울 것이다. 공이 죽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열郡이 통곡하였다.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사람들이 눈과 눈을 잃은 듯하였다. 하물며 무상(無狀)한 내가 일찍이 소인(宿因)을 맺었으니, 어릴 때 발약(發藥)을 받고 선유(善誘)를 진진하게 받았다. 방장(方丈)을 떠난 후로 홀로 광진(光塵)을 사모할 뿐이었다. 백사(百舍)를 거듭하여 발을 굳게 하여 이르려 하였으나 강산이 멀고 멀어 가로막혔다. 만리 밖에서 애통을 받아 눈물을 흘림을 알지 못하였다. 통곡함이 지극하여 말로 다할 수 없다. 한 마디를 보내려 하니 바람을 향하여 감개와 흐느낌이 일었다.

196. 祭金尙書〔原注:莘尹〕文〔原注:代壻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4C

원문

惟靈高標落落。偉節堂堂。爲鳳爲麟爲星爲雲。早作朝廷之瑞。如圭如壁如金如錫。蔚然君子之儀。久鬱經綸之雅志。未升台輔之峻資。奈何時有三空之橫厄。天無一老之憖遺。壑底舟移。人間劍解。嵇侍中之汙血。上惜而留。蕭大保之餘冤。後多爲訟。學者失其矜式。有識莫不咨嗟。嗚呼哀哉。修短之因。古今所惑。顏回善而不必壽。盜跖惡而亦得終。天之報施於人。孰謂能測。道之興廢也命。夫復何言。況於衰季之適遭。實是英雄之不幸。嗚呼哀哉。公之平昔。性固異恒。其於榮悴之交。艱危之際。恬然自處。曾不形言。旣知命而不憂。但忘身而循難。且薰蕕異器。固非闒茸之所容。然玉石俱焚。可歎賢愚之共貫。悵然念此。詎不痛歟。某謬以妄庸。忝聯姻戚。辱郗公之鑑識。才雖愧於羲之。編韓愈之文章。心自慕於李漢。敢陳泂酌。克享至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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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령이시여, 높고 단정한 기개는 맑고 높으며, 위대한 절개는 당당하시도다. 봉황이 되고 기린이며, 별이 되고 구름이 되어 일찍이 조정의 상서로움을 이루셨고, 옥圭와 같고 벽과 같으며, 금과 같고 석(錫)과 같아 우아하게 군자의 풍모를 갖추셨도다. 오래도록 경륜의 아득한 뜻을 품으셨으나, 대부(台輔)의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하셨도다. 어찌하여 세상에 세 번의 빈손이라는 횡액이 닥치고, 하늘에는 한 분 어르신(重臣)을 남겨두지 않으셨는가. 골짜기 아래 배가 옮겨가고, 인간 세상에서 검이 변하는 일이 있나니, 계시중(嵇侍中)의 더러운 피는 하늘이 아껴 남겨두었고,萧大保(소대보)의 남은 원한은 이후 많은 이들이 위해 호소하였도다. 학자들은 그를 본받아야 할 스승으로 잃었고, 식견 있는 자들은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도다. 슬프고 슬프도다. 수명과 단명은 인과가 있어 고금인들 혼란스럽지 않던가. 안회(顏回)는 착했으나 반드시 장수하지는 않았고, 도적 좌(盜跖)는 악했으나 또한 생을 마쳤도다. 하늘이 사람에게 보답하는 바가 어찌 누가 능히 측량할 수 있겠는가. 도의 흥성과 폐단은 명(命)에 있으니, 다시 무슨 말이 있겠는가. 하물며 쇠퇴한 시대에 우연히 마주친 것은 실로 영웅의 불행이었도다. 슬프고 슬프도다. 공의 평소 성품은 본래 남달랐으니, 영욕의 교차로와 곤난과 위태로운 시기에 태연히 스스로를 처신하여, 결코 말로 드러내지 않았도다. 명(命)을 알고 근심하지 않으니, 다만 몸을 잊고 난을 따랐을 뿐이라. 또한 훈(薰)과 유(蕕)는 다른 그릇에 있으니, 본래 하찮은 자들이 용납할 바가 아니었으나, 옥과 돌이 함께 타니 어찌 현자와 우매한 자가 함께 관통함을 탄식하지 않겠는가.怅然히 이를 생각하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내가谬히 망령되고 어리석어서 혼인 친척으로 부끄럽게 연결되었으니, 칙공(郗公)의 식견을 입어 비록 재주는 의지(羲之)에 비해 부끄럽지만, 한유(韓愈)의 문장을 편찬하여 마음은 스스로 이한(李漢)을 사모하노라. 감히 맑은 술을 바쳐 성대한 지성을 다하노라.

197. 祭錄事李惟諒文〔原注:代湛之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4D

원문

人之好惡。大異於天。禍仁祐賊。壽虐夭賢。世所共厭。或假之年。欲其久存。晷刻莫延。與奪如是。孰主其權。今子之死。愈怨蒼然。念其英拔。長鬣廣顙。膽大於身。素有蓄養。靑春富貴。士友所望。幼年識子。於其輩行。歲則少我。氣力方壯。一臥遽蛻。奄爾先往。聞訃之夕。若己之喪。方食哽唾。於心悵惘。平生之好。義貫黃壤。豈復相見。笑談抵掌。他時對酒。必憶劉昶。臨使絶域。未由會葬。奠此一巵。來擧勿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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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좋아하고 싫어함이 하늘과 크게 다르니, 인자한 자를 해치고 간사한 자를 도와주며, 포악한 자는 장수하고 어진 자는 요절한다. 세상이 함께 싫어하면서도, 어떤 이는 장수를 누린다. 그가 오래 살기를 바랐으나, 시초(晷刻)도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주고받으니, 누가 그 권세를 주재하는가. 이제 그대가 죽으니, 더욱 푸른 하늘을 원망한다. 그대의 영특하고 뛰어나심을 생각하니, 수염이 길고 이마가 넓으며, 담력이 몸보다 컸다. 평소부터 재능을 쌓아왔고, 청춘의 부귀는 사대부들과 친구들이 기대하던 바였다. 내가 어릴 적 그대를 알았으니, 그대의 행렬에서는 나이가 내보다 어렸으나, 기력이 막 장성한 때에, 갑자기 누워 해체하듯 죽어, 갑자기 먼저 갔다. 소식을 듣는 밤, 마치 내 자신의 상사(喪事)인 듯하여, 밥을 먹으며 목이 메어 삼키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허전하고 당황하였다. 평생의 정은 의리로 황천을 관통하니, 다시 만나 웃고 수다떨며 손바닥을 치며 담소하던 때가 어찌 다시 있겠는가. 다른 때에 술을 마주하면, 반드시 유창(劉昶)을 기억하리라. 먼 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장례에 참석하지 못함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이 잔을奠酒하여 올리오니, 오시어 거두어 주시되 잊지 마소서.

198. 祭皇甫源文〔原注:代父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5A, ITKC_MO_0003A_A001_275B

원문

靈奇之性。上天所私。貪取不猒。理必以危。正直之道。陰鬼是憎。躬行必果。合受其凌。卓絶之譽。衆人乃猜。得之大早。宜見其摧。惟此三者。皆汝所有。孰謂其亡。靡不自取。若魯鈍而無能。胡夙離夫厥咎。不然。抱濟世之志而利不及人。有拔萃之才而卒以謫死。包忠裹信。毒中骨髓。念汝英英。門戶所寄。返遭癈黜。今復爲累。飛文之謗。正人之誣。按驗不實。終抵罪辜。溟海茫茫。而以汝踰。群山屹屹。而以汝徂。汝之得疾。復何疑乎。幽憂發內。瘴氣侵膚。遠無兄弟。求醫謁巫。一夕之間。以致云殂。天道無知。忍此翦屠。我將訟冤。叫于帝居。此心未遂。遽棄異區。始聞其訃。絶而復蘇。夢如平生。果有果無。惟造物之所爲。大不均乎厚薄。福則必加乎姦回。禍則必施乎蹇諤。使汝之身乃終流落。窮天下之辭。無以宣其哀。盡海內之口。無以訴其虐。彼貴而且壽。豈在善惡。吾見夫詭誕皆榮。冥頑亦老。固汝所恥。宜賀不弔。愧非上士。情鍾我輩。有酒在壺。手斟以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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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특한 성품은 하늘이 특별히 아끼는 것이나, 탐내어 그치지 않으면 이치로서 반드시 위태로워진다. 정직함은 음귀(陰鬼)가 미워하는 바이므로, 몸소 행하면 반드시 결단코 실천하여 모욕을 받게 된다. 탁월한 명성은 많은 사람들이 시기하므로, 얻기가 너무 빠르면 오히려 그 파탄을 보게 된다. 오직 이 세 가지는 모두 너에게 있었으니, 누가 너의 죽음을 믿겠는가? 실은 모두 스스로 불러온 것이다. 만약 둔하고 능력이 없었더라면, 어찌 일찍이 그 죄과를 떠났겠는가? 아니라면, 세상을 구제할 뜻을 품었으나 이치가 사람에게 미치지 못했고, 뛰어나고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결국 귀양 가서 죽었으니, 충성과 신의를 품고 골수까지 독이 되었느니라. 네가 영특함을 생각하면 문호를 맡길 사람인데, 오히려 폐위와 면직을 당하고, 이제 다시 나의 짐이 되었도다. 날조된 문서의 비방은 정직한 자에 대한 억울한 누명이라, 조사하여 실상을 밝히지 못하여 마침내 죄를 받게 되었도다. 명해는 광활하여 너를 넘어가고, 산들은 우뚝하여 너를 지나갔으니, 네가 병을 얻은 것이 어찌 의심스럽겠는가? 깊은 근심이 내면에서 발동하고, 장기가 피부를 침범하여, 멀리 형제가 없어 의사를 구하고 무당을 찾았으나, 하룻밤 사이에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도다. 하늘의 도가 지혜롭지 못하여, 어찌 이같이 베어 죽임을 참을 수 있겠는가? 내가 원한을 호소하여 천제의 거처에 부르짖으려 하였으나, 이 마음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급히 타향을 버렸도다. 처음 그 소문을 들었을 때,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였으며, 꿈속에서는 평소와 같아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오직 창조주가 행하는 바라, 하늘이 두터움과 박함을 크게 불균형하게 하였도다. 복은 반드시 간악한 자에게 더하고, 화는 반드시 간사한 자에게 미치니, 만약 네 신체가 끝내 유랑하여, 천하의 말을 다하여도 그 슬픔을 선포할 수 없고, 해내의 입을 다하여도 그 잔학함을 호소할 수 없다면, 그 귀하고 장수하는 자는 어찌 선악에 있는 것이랴. 나는 간사하고诞妄한 자들이 모두 영예를 누리고, 어리석고 완고한 자들도 늙어가는 것을 보았으니, 이는 본디 네가 부끄러워할 바요, 슬퍼하지 않고 기뻐해야 할 일이라. 나는 상사가 아니어서 부끄럽지만, 정이 우리 세대에 집중되었으니, 술이 병 속에 있도다. 손으로 떠서 바치노라.

199. 祭安社悅文〔原注:代妹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5C

원문

惟靈孝悌飭躬。敦和備德。早繼父業。居多扁鵲之活人。出分帝憂。無愧士龍之決獄。旣有陰功於二世。宜膺上壽於百年。白眉最良。方號保家之主。黃梁已熟。遽興捐館之悲。況寄他鄕而適亡。玆爲人理之所極。始聞其訃。實愴于心。何天道之無知。在善人而若此。顧爾遺孤之皆幼。又今孀婦之遠居。魂悵悵乎何歸。路茫茫而尙隔。乃令吾息。遣執汝喪。其孔懷急難之情。庶無負幽明之際。王事靡盬。恨非生入於國門。女子有行。莫得親持於葬紼。敢披危懇。聊展菲儀。庶幾如在之靈。歆我由中之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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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령은 효도와 우애를 다하여 몸을 단속하고, 화목을 두터이 하여 모든 덕을備하였다. 일찍이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대부분 扁鵲처럼 사람을 살리는 활약을 보였고, 세상의 근심을 분담하여 士龍의 결옥(決獄)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이미 두 대에 음덕이 있었으니, 마땅히 백 년의 상수를 받아야 할 터인데, 백미(白眉)로 가장 뛰어나시어 마침내 가호의 주라고 호칭하셨건만, 황량한 꿈이 이미 다하여 급히 관을 버리는 비애가 일어났다. 하물며 타향에 기거하다가 마침내 돌아가셨으니, 이로써 인륜의 극치라 하겠다. 처음 그 상을 들었을 때, 실로 마음에 창연하였다. 어찌 천도가 지식이 없으셔서 착한 사람에게 이와 같으리오. 돌이켜보니 당신의 유고들은 모두 어리고, 또 지금 과부는 멀리 살고 있으니, 혼령은 초조하여 어디로 돌아가는지 알 수 없고, 길은 멀고 막연하여 아직 단절되어 있도다. 이에 내 아들을 시켜 당신의 상을 집으로 모시게 하였으니, 그 형제의 급난을 돕는 정이 아마도 명암의 사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왕사가 그치지 않아 도성의(國門)로 생환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고, 처녀가 시집가는 길에 장례의 끈을 직접 잡지 못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노라. 감히 위급한 간절한 마음을 펴서, 잠시 소박한 예물을 드리노라. 비록 계신 듯하신 영혼이여, 나의 마음에서 우러난 신의를 받으시기를.

200. 祭李樞密文〔原注:代壻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5D, ITKC_MO_0003A_A001_276A ...

원문

惟靈靑雲上客。紗籠中人。素窺道義之淵源。深達古今之理亂。大羹玄酒。韓丞相之雄文。紫電白虹。張工部之逸氣。早自結九重之知己。魁然爲一代之宗臣。擢居樞要而摠兵。兼奠禮闈而取士。黃閣淸風一萬古。偉哉經世之功名。玉簪珠履三千人。藹爾出門之英俊。頃者星柝三台而告變。病纏二豎以莫瘳。上眷方深。實遇聖知解於萬世。綸言甚密。使爲朕臥護於六軍。蓋由運命之艱難。益重老成而圖任。方欲矯時流之貪競。故屢飛懇奏以敷陳。憂國雖深。引年而去。功成不處。方退遊於綠野堂。尸解而仙。遽促歸於樂天院。謂仁者之必壽。何哲人之其萎。天不假年。人皆爲痛。乃是蒼生之無福。孰云吾國之有廖。寇準忠明。自有閻羅之交代。李賀才德。必爲上帝之召歸。孤墳峙兮松柏已生。賢閣閉兮塵涘空鎖。錫錢備葬。君王厚爲之辦營。無宅起樓。妻子未免於寒窘。士起山頽之歎。民多巷哭之悲。矧是庸愚。忝聯姻戚。龍移虎去而狐貍舞。空懷永叔之平生。日光玉潔而韶鈞鳴。泣抱昌黎之遺草。何嗟及矣。如可贖兮。敢自力於悃誠。特用陳於菲薄。長號伏地。一訣終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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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여, 당신은 청운 위의 객이요, 사롱(紗籠) 속의 사람이었습니다. 소박하게 도의의 연원을 살피고, 깊게 고금의 치란(治亂)을 통달하셨나이다. 대갱 현주(大羹玄酒)와 같은 한상상의 웅문, 자전 백홍(紫電白虹)과 같은 장공부의 유기(逸氣)를 지니셨으니, 일찍이 구중(九重)의 지기를 맺으시고, 위연히 일대의 종신이 되셨나이다. 추거(樞要)에 발탁되어 병권을 총괄하시고, 겸하여 예위(禮闈)를 담당하여 인재를 취하셨나이다. 황각(黃閣)의 청풍은 만고에 흐르고, 위대한 경세(經世)의 공명이여! 옥잠 주려(珠履) 삼천 인이, 아아히 문밖의英俊이로다. 근래에 성탁(星柝)이 삼태(三台)에서 변고를 알리자, 병이 이서(二豎)에 감싸서 낫지 않으니, 상견(上眷)이 방금 깊으시어, 실로 만세에 성지를 해석(解厄)하심을 만나셨고,纶言(纶言)이 심히 밀밀하여, 명하여 우리로 하여금 육군(六軍)을 호호(臥護)하게 하셨나이다. 이는 곧 운명의 간난함에서 비롯되어, 오히려 노성(老成)을 중히 여겨 도임(圖任)하셨나이다. 방금 시류의 탐경(貪競)을 교정하려 하심이라, 고로 간헐적으로 간절한 상주(奏)를 날려 진술하셨나이다. 국우(憂國)가 비록 깊으셨으나, 인년(引年)하여 물러가셨고, 공성(功成)하여 거처하지 않으시어, 방금 녹야당(綠野堂)에서 유유자적하려 하셨건만, 시해(尸解)하여 선(仙)이 되시니, 급히 낙천원(樂天院)으로 돌아가시기를 재촉하셨나이다. 인자(仁者)는 반드시 수(壽)할 것이라 하였거늘, 어찌 지인(哲人)이 그萎하십니까. 천이 년수를 허락하지 않으시니, 사람들이 모두 아파하옵니다. 이는 곧 창생(蒼生)의 복이 없음을 뜻하니, 어찌 우리 나라에 요(廖)가 있다 하겠습니까. 곽준(寇準)의 충명(忠明)은自有히 염라(閻羅)의 교대(交代)가 있고, 이하(李賀)의 재덕(才德)은 반드시 상제(上帝)의 소귀(召歸)가 있나이다. 고분(孤墳)은 서리(峙)하고 소백(松柏)은 이미 생하였으니, 현각(賢閣)은 닫히고 진사(塵涘)는 빈틈없이 잠겼나이다. 석전(錫錢)으로 장례를 예비하셨으니, 임금이 후히 이를 위해 영영(營辦)하셨고, 무택(無宅)으로 누를 일으키지 못하여, 처자(妻子)는 면하지 못하여 한窘(寒窘)함이 있나이다. 사(士)는 산퇴(山頽)의 탄식을 일으키고, 민(民)은 다 호곡(巷哭)의 비애가 있나이다. 하물며 미망(庸愚)인 내가, 전연(忝聯)하여 인척이 되었으니, 용이移하고 호가去하자 호랑이(狐貍)가 춤추니, 공평(平生)의 옹위(永叔)를 공허히 품고, 일광 옥결(玉潔)하고 소균(韶鈞)이 울자, 창리(昌黎)의 유초(遺草)를 슬피 안고 울었나이다. 어찌 탄식할꼬, 만일 속일(贖)할 수 있다면, 감히 스스로 곤성(悃誠)을 힘써, 특히 비박(菲薄)을 진술하오니, 장호(長號)하며 복지(伏地)하여, 일결(一訣)로 종천(終天)하옵니다.

원문

惟靈處士孤潔。參軍俊逸。文出月脅。詩聳山骨。八音洋溢。衆彩間發。祥麟一角。瑞鳳五色。時然後出。不可多得。方其起從朱閥。富擅金穴。秦晉成匹。鄭薛爭熱。天衢甚闊。蛙步可達。不以紛華而爲之悅。及乎甘井先渴。文木則泄。萬事瓦裂。一身免脫。居無黔突。行哭窮轍。不以困厄而易其節。於是高歌裂石。神鬼慘怛。幽憤塡臆。雲霓糾結。柳子一鬱。宋公憀慄。嚬呻叫笑。是非得失。一寓筆舌。得以舒洩。不啻如江海之卷蓬勃。金石之破蟋蟀。其辭怪而譎。其思哀以切。至若霜鶻振翮。一上千尺。不足以比其奮激。貞松拂雪。槎牙倚壁。不足以比其勁烈。粉面窺墻。未爲艶點。風檣截海。未爲迅疾。馳騁漢魏。雜以莊屈。其利可以穿札。其巧可以貫蝨。自恃八音之捷。恥作一聯之乞。則其曲肱而有甲乙者。可謂易於俯掇矣。然猶資冠適越。鬻屨與刖。鷁都返躓。蟻封顚蹶。未破由基之楊葉。遽碎龜蒙之潭月。靑春三十。白衣永沒。則夫丹桂之冤憤。其與天地無終畢矣。嗚呼。世皆謂公高視不輟。硬喙莫屈。孔禰恃氣。潘張傲物。此特淸淮之點毫末。白壁之有蟻缺。何足恤哉。有或煌煌赤紱。賤於布葛。皎皎華髮。不如短折。則龜蛇木石。雖久奚益。今公身雖窮而才與星斗相軋。壽雖夭而名將泰華不滅。以此校彼。霄壤可別。某等早遊蘭室。以膠投漆。纔轉般斤。遽失郢質。歌塵已絶。衣霧頓歇。子狂孰和。詩病誰詰。山巨源之酒壚敻隔。向常侍之隣笛悽咽。能不仰天殞涕。繼之以血乎。嗚呼。有肴斯設。有酒斯撥。聊薦一杯。想音容於髣髴。

번역

영혼이여, 처사는 고결하고, 참군은 총명하며, 문장은 월협(月脅)에서 나오고, 시는 산골을耸然히 세웠다. 팔음이 넘치고, 여러 빛이 섞여 발하였다. 상린(祥麟)의 한 뿔, 서봉(瑞鳳)의 오색. 때를 기다려야 비로소 나타나니, 얻기 어렵도다. 그가 주벌(朱閥)에서 일어나, 부귀를 금혈(金穴)로 삼았을 때, 진진(秦晉)이 짝을 이루고, 정설(鄭薛)이 다투어 열을 냈다. 천거(天衢)가 매우 넓으니, 개구리의 걸음으로도 도달할 수 있었다. 번화함에 마음을 기쁘게 하지 않았노라. 간신히 감미(甘井)가 먼저 마르고, 문목(文木)이 비워지며, 만사가 기와처럼 깨지고, 한 몸만 면하여 벗어났다. 거처에는 검은 재가 새지 않고, 행차에는 빈 수레를 울며, 곤궁함에 있어 그 절개를 바꾸지 않았노라. 이에 높은 노래로 돌을 찢고, 신귀가 슬퍼하며, 깊은 원한이 가슴을 채우고, 구름과 지네가 엉켰도다. 유자(柳子)의 한 번 우울함, 송공(宋公)의 서늘함. 찡그리고 신음하며, 부르짖고 웃으며, 시비와 득실을 오직 붓과 혀에 담아, 이를 풀어내었노라. 강해가 휘몰아치는 것 같고, 금석이 부러지는 것 같으니, 그 말이 기이하고 기묘하며, 그 생각이 슬프고 절실하도다. 서거(霜鶻)가 날개를 펴고, 한 번 천 척을 오르더라도, 그 분발과 격앙을 비할 수 없으며, 마른 소나무가 눈을 털고, 가지가 벽에 기대어 서 있더라도, 그 거룩함과 격렬함을 비할 수 없도다. 분면(粉面)이 담장을 엿보았으나, 아름답게 물들인 것이 아니며, 풍창(風檣)이 바다를 가로질렀으나, 빠름을 말하기 어렵도다. 한위(漢魏)를 치달리며, 장자(莊子)와 굴원(屈原)을 섞었으니, 그 날카로움은 갑옷을 뚫을 수 있고, 그 묘함은 바늘구멍을 꿸 수 있도다. 팔음의 빠름을 자부하여, 한 구절의 빌음을 부끄러워했으니, 그 굽은 팔로 베개를 삼고 갑을(甲乙)을 가리는 자는, 머리를 숙여 거두기에 쉬웠으리라. 그러나 여전히 관을 쓰고 월나라에 가서, 신발을 팔아 발을 베인 자와 같았고, 예도(鷁都)로 돌아가 발을 헛디뎌, 개미의 둥우리에서 넘어졌도다. 유기(由基)의 양엽(楊葉)을 깨뜨리지 못해, 급히 구몽(龜蒙)의 연못 달을 부수었노라. 청춘 서십 세, 백의(白衣)로 영원히 묻혔으니, 단계(丹桂)의 원한과 분통은 천지와 함께 끝이 없으리라. 슬프도다. 세상은 모두 공이 높게 보고 멈추지 않으며, 단호한 입으로 꺾이지 않는다고 한다. 공융(孔融)과 미발(禰衡)은 기개를 의지하고, 반고(潘岳)와 장예(張儀)는 물건을 교만하게 여기나, 이는 청회(淸淮)의 점모(點毫末)와 백벽(白壁)의 개구멍에 불과하니, 어찌 걱정할 것이 있으리오. 혹 황황한 적복(赤紱)이 포포(布葛)보다 천하고,皎皎한 화발(華髮)이 단절(短折)만 못하다면, 거사(龜蛇)와 목석(木石)은 비록 오래 있어도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이제 공은 몸은 비록 궁하지만, 재주는 성두(星斗)와 다투고, 수명은 비록 짧으나, 명성은 태화(泰華)와 함께 멸하지 않도다. 이로써 저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분명하도다. 우리 일찍이 난실(蘭室)을 유람하여, 고를 칠한漆에 던진 듯 지극히 합하였더니, 겨우 반근(般斤)을 돌리자, 급히 영질(郢質)을 잃었도다. 노래의 먼지는 이미 끊어지고, 옷의 안개는 갑자기 그쳤노라. 누가 나의 광기를 화답하며, 시의 병을 누구에게 꾸짖으리오. 산거원(山巨源)의 주루(酒壚)는 멀리 떨어졌고, 상상시(向常侍)의 린적(隣笛)은 슬프고 간절하도다. 어찌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고, 이어서 피를 흘리지 않겠는가. 슬프도다. 음식이 차려지고, 술이 베풀어졌으니, 잠시 한 잔을 바쳐, 상반(髣髴)한 음용을 생각하노라.

201. 後序[崔瑀]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7B

원문

予於人。雖片善必錄。況鉅材也。西河林先生椿。材之鉅者也。平生所綴緝。呑古英豪。不幸而夭於時。寧天於文章。有所嗇而然耶。何其功之不見施於世如此。近聞李大諫眉叟於後輩間。搜得殘槀。編爲六通。雖藏之家。而歉乎無以刻鏤。如鏡之在奩。其光明有未盡於照物者。是可惜也。慮其異日塵蝕埃滅。而不傳于後之人。仍取其本。隨牒齎送西京諸學院。使之勒板。成移上都。附書籍店。廣布而流於世。爲後生規矱云。貞祐十一年壬午仲冬。樞密院使吏兵部尙書上將軍崔瑀。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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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에 대해 비록 작은 덕목이라도 반드시 기록하는데, 하물며 큰 재능을 가진 이를 어찌 잊으랴. 서하(西河) 임춘(林椿) 선생은 재능이 큰 분이었다. 평생 지은 글은 고대 영걸들을 삼킬 듯했으나, 불행히도 당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천지가 문장에 대해 아끼어서 그러했는가. 어찌 그 공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음이 이토록 심한가. 최근 대간(大諫) 미수(眉叟) 이인로(李仁老)가 후배들 사이에서 남은 원고를 찾아 여섯 권으로 편찬하였다고 들었다. 비록 집에 간직하고 있으나 새겨 판각할 길이 없어 거울이 거울집에 있는 것과 같아 사물을 비추는 광명이 다하지 못함이 아깝다. 이는 정말 아까운 일이다. 장차 먼지에 덮이고 티끌에 묻혀 후세에 전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그 원본을 취하여 벼슬아치로 서경(西京) 여러 학교에 보내어 판각하게 하고, 완성된 것을 수도로 옮겨 서점(書籍店)에 부쳐 널리 유포하여 세상에 흐르게 하여 후학을 위한 규범으로 삼았다. 정유(貞祐) 11년 임오(壬午) 중동(仲冬)에 추밀원사(樞密院使) 이병부상서(吏兵部尙書) 상장군(上將軍) 최우(崔瑀)가 발을 붙이다.

202. 重刻西河集跋[申維翰]

문체: 序跋類 / 題跋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8B, ITKC_MO_0003A_A001_278C ...

원문

今□上癸巳秋。故高麗西河先生林公文集成。卷凡六。是役也。先生之裔孫再茂以洪陽鎭帥。眡剞劂役卒。今丞相明谷崔公曁趙吏部各爲文而弁其頭已。又授卷於不佞。丐一言而尾之。非謂斯集之傳待余文以也。抑斯集之出。與有故焉。惡敢以不文爲解。嗚呼。天地鬼神。尙能愛林西河集哉。不佞甫離齔。已誦先生名。蓋世之搢紳大夫稱東方藝林。首先生。談古今文章奇數。首先生。五百歲而聞風。何能得牖下之趾。日。寓居嶺之淸道郡。從郡人李生游。觀其櫝中有藏西河集。卽麗朝尙書李眉叟仁老以先生故人。序其集而傳者。字本蒼而古。往往蠹齧其襞已。李遽曰。是卷之出。芒乎异哉。昔在丙申。雲門寺僧印淡於若耶溪旁松石間。夢遇一道士。手指咫尺谽谺云。發此可得希世寶。起而如其言。果有銅塔。高四尺。中貯一銅盎。高半之。又以銅蓋合盎口。封緘密甚。坼之得西河集。集卷猶是也。今其塔與盎。依雲門佛藏。是卷幸而爲吾有云。余旣蹶蹶然驚且歎。試嘗目寓焉。詩若文佹二百有奇。其光栗然。其鋒凜然。節族鏐𤨿然。其斯爲廣陵譜。其斯爲象罔得也。壬辰。余到京師。始與洪陽君邂逅。問西河集梓本安在。曰。亡有。西河公生而坎壈毋所偶。圽而言不集于世。世之貌榮名。堇有二三零句錯落唇牙間。余也弗類。髮今種種矣。所購賞不能一秋毫已而。已而語未究。余以所覩於李生家者與向之李生語語洪陽君。君起爲拜。泣數行下曰。天以西河公弗朽深矣。篇之出且六十載。而子始敎吾。吾今履戎於湖。力足以供鋟梓。命之哉。何敢後時。卽具書屬余往報李生。李生聞之大驩。亡何。致使者取卷而歸。立召匠奏事。舊本爲一部。分而兩之。其缺者訛者若干言。悉存而不補。字樣依舊刊。皆以示重於神授而毋敢毫毛爽也。於是都人士執價而崇之者日千百至。邇鼓舞遠起立。不踁而馳四裔。及聞其所由得狀。亡不灑然改容。激昂長大息者。嗚呼。天地鬼神尙能愛林西河集哉。不佞少讀太史氏書。夫夫固以彼其才。落魄罹殃。至欲述空言而藏之名山大川。希覬夫不必然之境。其敍致胡傷而志胡迂也。夫人之不可恃如此。而吾不能及吾目而詔之。奈何令幽竇中餘光。賈名價於朽骨爲。然至覃精結思。出神入玄。隱然與宰物者同其權。昭乎爛乎。莫與汝爭光。莫與汝爲郵。忽卷而藏。忽闖而發。水不能浸。火不能焦。盜賊不能窺。咸使其造化而已不與知焉。卽空山凈溪黑甜禪夢。與夫區區數赤之銅。獨得人間不傳之寶。凌風雨閱年紀。而莫或墜亡者。彼固無待於先生。而亦非先生意也。然則斯集之成。先生視太史猶賢。豐城之掘而胥合於延津。魯壁之藏而載見於舫頭者。皆是物也。如吾不信。有天地鬼神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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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上)의 계사(癸巳) 가을에 고려 서하(西河) 임공(林公)의 문집이 간행되었으니, 권수가 모두 여섯 권이다. 이 일은 서하 선생의 후손 재모(再茂)가 홍양진(洪陽鎭)의 장수로 있어 판각(刊刻)의 일을 감독하였고, 현재의 재상 명곡(明谷) 최공(崔公)과 조시부(趙吏部)가 이미 머리에 글을 써서 서(序)를 붙였다. 또 그 책을 나에게 맡겨 한 마디의 글을 부탁하였다. 이는 이 문집의 전파가 나의 글에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문집이 세상에 나온 데에는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 감히 문재(文才)가 없음을 핑계로 삼겠는가. 아아, 천지(天地)와 귀신(鬼神)이 오히려 임서하(林西河)의 문집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나는 겨우 동자(童子)의 나이를 벗어나 이미 선생의 이름을 외웠으니, 세상의 관료들과 학자들이 동방(東方)의 예림(藝林)을 논할 때 먼저 선생을 꼽고, 고금의 문장 기이함을 논할 때 먼저 선생을 꼽는다. 오백 년 만에 풍취를 듣고자 하지만, 어찌 감히 책상 밑의 발자취를 얻으랴. 일찍이 청도군(淸道郡)에 거주하며 고을 사람 이생(李生)과 교유하며, 그의 서고에 서하(西河) 문집이 소장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는 고려의 사서(尙書) 미수(眉叟) 이인로(李仁老)가 선생의 고인이 되어 그 문집에 서문을 써서 전한 것이었다. 글씨가 본래 창랑(蒼浪)하고 고금(古勁)하여, 종종 책장 사이에 벌레가 먹은 자국이 이미 있었다. 이생이 급히 말하였다. "이 권이 나온 것은 묘하다. 예전에 병신(丙申)년에 운문사(雲門寺) 승려 인담(印淡)이 약야(若耶) 시냇가의 소석(松石) 사이에서 꿈에 한 도사를 만나, 손가락으로 가깝고 먼 곳을 가리키며 이르되, '이곳을 파면 세상에 드문 보물을 얻을 수 있다' 하였다. 일어나서 그 말대로 하니, 과연 구리 탑이 있어 높이가 사 자였고, 그 안에 구리 항아리가 하나 있어 높이가 그 절반이었다. 또 구리 뚜껑으로 항아리 입구를 막아 봉인이 매우 밀밀하였다. 뜯어보니 서하 문집이 나왔으니, 문집의 권수가 그대로였다. 지금 그 탑과 항아리는 운문사의 불장(佛藏)에 의지하고 있으니, 이 권은 운이 좋아 내 것이 되었다. 나는 이미 놀라고 탄식하며,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시와 문이 모두 이백여 편이었는데, 그 빛이 떨리고, 그 날카로움이 엄격하며, 절조와 리듬이 맑고 깨끗하였다. 이것이 곧 광릉(廣陵)의 악보요, 이것이 곧 상망(象罔)이 얻은 바이다. 임진(壬辰)년에 내가 경성에 이르러, 비로소 홍양군(洪陽君)과 우연히 마주쳤다. 서하 문집의 간행본이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말하기를 "없다. 서하 공은 살아서 고난을 겪어 짝을 얻지 못했고, 죽어서도 그의 말이 세상에 모이지 않았다. 세상이 명성을 추구하는 자들은 입술과 이 사이에 몇 구의 단편이 어지럽게 떠도는 것뿐이다. 나는 그런 자와 다르다. 머리는 이미 희어졌으나, 구매한 것이 한 올의 털만큼도 없다. 이미, 이미 말이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생 집에서 본 것과 앞서 이생에게 들은 말을 홍양군에게 모두 말하였다. 군이 일어나 절하며, 눈물이 줄줄 흐르며 말하였다. "천하가 서하 공을 불멸하게 한 것이 깊구나. 편이 나온 지 이미 육십 년이 지났는데, 자(子)가 비로소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지금 호남에서 무관으로 복무하고 있으니, 힘이 있어 판각을 감당할 수 있다. 명하라. 어찌 감히 늦겠는가." 즉시 서신을 준비하여 나에게 이생에게 알리라고 명하였다. 이생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자를 보내 책을 가져가게 하고, 즉시 장인을 불러 일을 시작하게 하였다. 옛본을 한 부로 하여 두 부로 나누어, 그 빠진 것과 잘못 된 글자가 수백 자였으나, 모두 보존하고 보충하지 않았다. 글자 모양도 옛대로 간행하여, 모두 신수(神授)를 중히 여기고 감히 조금도 어김이 없음을 보였다. 이에 도성 사람들이 값을 치르고 높여 사려는 자가 날마다 수천 수백 명에 이르렀다. 멀리서도 감동하여 일어나, 발을 구르지 않아도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얻게 된 경위를 듣자, 모두 놀라 안색을 바꾸고, 격앙되어 크게 탄식하였다. 아아, 천지와 귀신이 오히려 임서하의 문집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릴 때 태사(太史)의 책을 읽었으니, 그분은 확실히 그 재주로 인해 낙망하여 재앙을 입어, 공언을 서술하여 명산대천에 묻어, 반드시 그렇지 않을 경지를 바랐으니, 그 서술이 어찌 슬프지 않으며, 그 뜻이 어찌 비약하지 않았겠는가. 사람의 의지할 바가 이와 같은데, 나는 내 눈으로 증언하지 못하여, 어찌하여 음험한 구석의 남은 빛이 썩은 뼈에게 이름과 값을 팔게 하랴. 그러나 정성을 다해 생각을 맺고, 신묘하여 현미(玄微)에 들어가고, 은연중에 천지의 이치와 그 권세를 같이하여, 밝고 빛나서 그와 빛을 다투는 자가 없고, 그와 우두머리가 되려는 자가 없다. 갑자기 감추었다가 갑자기 드러나며, 물이 적실 수 없고, 불이 태울 수 없으며, 도적이 엿볼 수 없다. 모두 그 창조주에게 알리지 않게 하였으니, 비록 빈 산과 맑은 시냇가의 깊은 잠과 꿈, 그리고区区한 수 개의 구리 조각이 홀로 인간 세상의 전하지 않은 보물이 되어, 풍우를 겪고 세월을 지나도 떨어지거나 망하지 않는 것은, 그분은 확실히 선생을 기다리지 않았으나, 또한 선생의 뜻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문집의 성취는 선생이 태사보다 낫다. 풍성(豐城)의 삽화가 연진(延津)에서 모두 합쳐진 것과, 노벽(魯壁)의 장서가 선두(舫頭)에서 다시 나타난 것이 모두 이 물건이다. 만약 내가 믿지 않다면, 천지와 귀신이 있다.

원문

雲門寺在淸道郡虎踞山。若耶溪出寺下。襲故而名焉。李生名夏耇。進士。家近雲門寺。印淡無佗見著。李又爲余言嘗觀銅塔。刻其主淡印字。豈西方敎所稱輪回生理或然與。是爲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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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雲門寺)는 청도(淸道) 군의 호거산(虎踞山)에 위치해 있다. 약야계(若耶溪)는 사(寺) 아래에서 솟아나, 옛 이름을 이어받아 그 이름이 붙여졌다. 이생(李生) 이름은 하구(夏耇)로 진사였다. 그의 집은 운문사 근처였다. 그는 인색함이 없고 다른 욕심이 없어 저명하였다. 이생은 또 나에게 말하기를, "내가 전에 동탑(銅塔)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주위에 '담인(淡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서방 교법에서 일컫는 윤회의 이치가 혹시 이와 같은 것인가?"라고 하였다. 이에 발을 붙인다.

원문

甲午暮秋月末。□禮州申維翰。謹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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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늦가을 달 끝무렵. 예주(禮州) 신유한(申維翰)이 경건히 기제한다.

203. 西河集跋[林再茂]

문체: 序跋類 / 題跋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80B, ITKC_MO_0003A_A001_280C ...

원문

嗚呼。此吾先祖西河先生集也。公以又章名於麗代。不幸窮阨早歿。距今五百有餘年矣。其文之見於東文選者。廑二三零句。而若其全編則未之見焉。爲其後裔者。未嘗不私疚於斯矣。去歲春。適遇嶺南人申生維翰於漢師。其人雅好奇。爲余言嘗於淸道郡李生夏耇家。覩林西河集古本一部。盍麗僧淡印盛之以銅盎。藏之干若耶溪傍。迺者雲門寺僧印淡感夢而得之。因爲李所有云。及聞其所由得狀。果知吾先祖不朽之文晦而復顯於今日文明之世矣。盍致之而來。以爲重刊而博布之於遠邇乎。於是遂與諸宗而議之。送人淸道。奉舊卷而還。卷凡六而合爲一冊也。吁。半劫地中之物。宛然如昨。其事甚奇。而淡印印淡之前後藏發者。其亦异矣哉。凡我後裔之所以爲寶者。不翅周序之天球而已。而況且當世名公大家咸歎而奇之。正譌而分編。作序而弁卷。以爲張大之者。亦豈有先於斯集而爲吾宗之盛事乎。不肖〔原注:再茂〕忝守洪陽鎭營。謀以鋟梓。乃於今七月。募匠撝役。閱數月而告訖。不惟後孫羹墻之慕得有所托。亦或有資於浚之尙論君子矣。不肖夙違先業。效力弓馬。卽不敢雕琢曼辭辱置卷末。而敬尸梓役。事與時會。謹錄一二以告吾宗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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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이 나의 선조 서하(西河) 선생의 문집이다. 공은 고려 대에 또장(又章)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불행히도 궁핍하고 곤궁한 가운데 일찍 세상을 떠났다. 지금으로부터 오백 년이 넘었다. 그의 문장이 동문선(東文選)에 실린 것은 겨우 이삼 개의 조각에 불과하고, 만약 그의 전편이라면 본 적이 없다. 후손으로서 이에 대해 사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작년 봄, 한성에서 영남 사람 신생(申生) 유한(維翰)을 우연히 만났다. 그 사람은 본래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어서, 나에게 청도군 이생(李生) 하구(夏耇)의 집에서 임서하(林西河) 집의 고본 한 부를 보았다고 말하였다. 고려 승려 담인(淡印)이 이를 동항(銅盎)에 담아 청도(淸道)의 약야(若耶) 강가 곁에 숨겨 두었는데, 최근 운문사(雲門寺) 승려 인담(印淡)이 꿈을 보고 이를 얻었으므로, 이로 인해 이생의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얻은 경위를 들으니, 과연 나의 선조의 불후의 문장이 오늘 문명해진 세상에 숨겨졌다가 다시 드러났음을 알 수 있었다. 어찌하여 이를 가져와 중간하여 멀리 가까운 곳에 널리 퍼뜨리지 않겠는가. 이에 마침내 여러 종족들과 의논하여 사람을 청도로 보내어 옛 권장을 받들어 돌아오게 하였다. 권장은 모두 여섯 권이었는데 하나로 합쳐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허, 반겁(半劫) 동안 땅속에 있던 물건이 마치 어제 일처럼 온전하게 남아 있으니, 그 일이 매우 기이하고, 또한 담인(淡印)과 인담(印淡)이 앞뒤로 숨겼다 드러낸 것은 또한 기이하다. 나의 후손들이 보물로 여기는 바는 주서(周序)의 천구(天球)에 미치지 못함이 아니다. 더구나 당세의 명공과 대가들이 모두 감탄하고 기이하게 여겨,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나누어 편집하며, 서문을 지어 권말에 붙여 이를 장대하게 한 일이, 이 문집보다 앞서 우리 종족의 성사(盛事)가 있었겠는가. 불초한 자[원주: 재무(再茂)]는 홍양진영(洪陽鎭營)의 영장을 감히 맡아, 판각하여 간행하려 하였으니, 이제 칠월에 장인을 모아 노역을 베풀어 수개월을 거쳐 마침내 끝마쳤다. 이는 후손들의 향사(羹墻)의 그리움을 맡길 곳이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진지(浚之)의 상론(尙論) 군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불초한 자는 일찍이 선업을 떠나 활과 말을效力하여, 감히 다듬고 수식하는 만사(曼辭)로 권말을 더럽히지 못하겠으나, 간행의 일을 경건히 맡아 시와 함께 하므로, 경솔하게一二을 기록하여 우리 종족에게 고한다.

원문

今□上殿下卽位之三十九年癸巳九月□日。十四代孫洪陽營將再茂。謹書。

번역

지금 상전殿下가 즉위하신 지 39년 되는 계사년 구월 □일, 14대손 홍양영장 재무가 정중히 기록한다.

 


서하집(西河集)

  • 저자: 임춘(林椿)
  • 생몰년: ?-?
  • 원문: 한국고전번역원_한국문집총간
  • 번역: Gemma4 26B A4B 8bit 로컬 기계번역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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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林西河集重刊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199B, ITKC_MO_0003A_A001_199C ...

원문

古稱三不朽。立言居其一。又曰。言之不文。行而不遠。君子之爲文藝。豈不期於傳之久遠而無廢乎。然自漢唐來。操觚翰費紙札。雕鎪藻繪。自詭爲永世不刊之業者。指不勝屈。及其時移代夐。率皆蕪絶蕩滅。譬如雲煙之變現。蟲鳥之啁噍。不過一瞬之頃。求其影響而不可得。間有將晦而復顯。旣久而始彰。載之簡策而未沫。騰諸口頰而愈芳。必其雄視高蹈。倬乎出類而拔萃者耳。我東詞章始盛於麗代。登藝文之錄者何限。而遺集之行于世。厪厪十數家。噫。文之傳遠。不其難哉。林西河耆之先生。生負絶藝。大鳴一世。文苑之評。謂得蘇長公風格。觀於眉叟誄文所謂名將泰華不滅。才與星斗相軋。可見當時推許之盛也。然其章什之流傳。只寂寥數篇。眞箇泰山毫芒。一臠不足以識全鼎。譚者以爲恨。乃者野僧掘地江岸。得銅尊一枚。中有西河集印本詩文六卷合爲一冊。後爲淸道士人所有。西河之後孫再茂訪求而得之。及爲洪陽營將。將謀重刻以廣其傳。間嘗袖以示余。求爲之釐定。余爲摩挲而屢歎之。與兒子昌大。勘正其訛缺。東平尉鄭公載崙樂聞而相其役。旣繕寫訖。又徵弁卷之文。余已荒落矣。其言不足爲輕重。況公之文。顧奚待於余言哉。以是辭。請之勤。有不獲終辭。謹以一言申之曰。今夫明珠美玉。雖棄擲埋沒於泥土。其精英光怪自不可銷鑠。歷世滋久。有時而發。發則爲天下名器。何則。天地之寶藏也。西河公以高才雋氣。不名一第。平生困阨流離。卒以夭死。其視揚子雲祿位容貌不能動人。殆爲甚焉。然其文章終不容䵝昧鬱沒。是卷也寘之大江之濱。深壤之中。濤波之所侵齧。土膏之所蒸溽。不知其幾百年所。而曾無所漬汙損壞。一朝而發之。宛然如前日。此亦天地之寶藏。固富媼鬼物所呵護而慳秘者。斯已奇矣。今又重加剞劂。日傳萬紙。上爲御府羣玉之林。下爲騷人巾篋之珍。其光價踰照乘而軼連城。向所稱雄視高蹈。出類而拔萃者。非公之謂歟。布衣窮居之士有志千古事者。觀乎此。亦可以無倦矣。余旣歎斯文顯晦之有數。又嘉營將君以武人能知先懿之可重。捐薄俸而成之。遂爲之言。若其製作造詣之品題。世之具眼者自當有定論也。今上三十九年歲在癸巳中秋日。完山崔錫鼎。序。

번역

옛사람들은 세 가지 불후(三不朽)를 일컬었는데, 입언(立言)이 그중 하나이다. 또 이르기를, '말이 문장이 되지 못하면 행실이 멀리 가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군자가 문예(文藝)를 함에 어찌 전해지는 것이 오래도록 폐해지지 않기를 기대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이래로 붓을 잡고 종이와 댓잎을 쓰는 비용이 많이 들고, 문장을 다듬고 꽃을 그려 넣는 일을 스스로 영세에 불칸(不刊)할 업적이라 기만해 왔으나, 손가락을 꼽아 세어도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러나 그 시대가 옮겨가고 세대가 바뀌면 대개 무참히 끊어지고 탕멸되어, 마치 구름과 안개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나 벌레와 새가 지저귀는 것과 같아서, 한순간의 찰나에 지나지 않으니 그 영향을 구하려 해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간혹 어둠 속에서 다시 나타나거나, 오래된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간략한 책에 실려 사라지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더욱 향기로워지는 것이니, 반드시 웅장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높이 거닐며, 탁월하게 뛰어나고 발췌된 자여야만 한다. 우리 동방의 사장(詞章)은 고려(麗代) 시대에 비로소 성하였으니, 예문(藝文)의 기록에 오른 자가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다만 그 유집(遺集)이 세상에 행해진 것이 대략 십여 가구에 불과하니, 아! 문장이 멀리 전해지는 것이 이토록 어렵지 않은가. 임서하(林西河) 기지(耆之) 선생은 타고난 절예(絶藝)가 있어 한 시대를 크게 울렸으니, 문단의 평가는 소장공(蘇長公)의 풍격을 얻었다고 하였다. 이미수(李眉叟)의 조문(誄文)에서 '명장이 태화(泰華)를 멸하지 못하고, 재능이 별과 싸운다'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의 추허(推許)가 얼마나 성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장들이 전해지는 것은 오직 적막하게 몇 편뿐이니, 참으로 태산의 미세한 털끝과 같아서 한 점의 고기 조각조차 온전한 솥을 식별하기에 부족할 정도였다. 말하는 이들은 이를 한스러워하였다. 그러다 어떤 이가 강가에서 땅을 파다가 구리 술병 하나를 얻었는데, 그 안에 서하집(西河集) 인본(印本) 시문 6권이 합쳐져 한 권의 책이 되어 있었다. 후에 청(淸)나라 도사(道士)의 소유가 되었다가, 서하(西河)의 후손 재무(再茂)가 찾아 헤맨 끝에 얻게 되었다. 재무가 홍양영(洪陽營)의 장수(將)가 되었을 때, 장수가 그 전함을 넓히고자 중각(重刻)을 꾀하였고, 간혹 소매에 넣어 내게 보여주며 교정(釐定)을 부탁하였다. 내가 그것을 어루만지며 거듭 탄복하였다. 아들 창대(昌大)와 함께 그 오자와 결락을 바로잡았는데, 동평위(東平尉) 정재륜(鄭載崙)이 이를 듣고 그 일을 맡았다. 이미 베껴 쓰는 일을 마친 뒤에 또 변(弁) 권지의 문장을 청하였는데, 나는 이미 황락(荒落)하여 몸이 노쇠하였다. 그 말은 경중을 따질 것이 못 되는데, 하물며 공(公)의 문장이 어찌 나의 말에 기다리겠는가. 이에 사양하며 근면함을 청하였으나 끝내 얻지 못하였기에, 삼가 한마디 말을 보태어 말한다. 지금 저 밝은 구슬과 아름다운 옥이 비록 진흙 속에 버려지고 묻혔다 하더라도, 그 정수와 빛나는 기운은 스스로 소멸되지 않는다. 세대를 거쳐 오래 지나면 때가 되어 나타나게 되니, 나타나면 천하의 명기(名器)가 된다. 어찌 아니하겠는가? 이는 천지의 보물 창고이다. 서하(西河) 공은 높은 재능과 준걸한 기운을 가졌음에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였고, 평생을 곤액과 유랑 속에서 보내다 결국 요절하였다. 그가 양자운(揚子雲)처럼 녹봉과 관직의 용모를 갖추지 못한 것이 참으로 심하였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끝내 어둡고 묻혀 있을 수 없었다. 이 책이 대강(大江)의 가에 놓여 깊은 땅속에 있었으니, 파도가 침식하고 토양의 습기가 찌는 가운데 몇 백 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으나, 한 번도 젖거나 더럽혀지거나 손상되지 않았다. 어느 날에 그것을 찾아내니 마치 엊그제와 같았다. 이것 또한 천지의 보물 창고이니, 진실로 귀신과 신령이 보호하고 감추어 둔 것이라 이 또한 기이한 일이다. 이제 다시 판각을 더하여 날마다 만 장의 종이로 전해지니, 위로는 어부(御府)의 군옥(羣玉) 같은 숲이 되고, 아래로는 소인(騷人)의 서함(巾篋) 속 보물이 될 것이다. 그 빛은 해와 달을 비추고 성현의 자취를 잇는 연성(連城)과 같으니, 일찍이 웅장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뛰어나다고 일컬어지던 이가 바로 공이 아니겠는가. 포의(布衣)로 궁핍하게 사는 선비 중 천고의 일에 뜻을 둔 자가 있다면, 이를 보고 또한 게을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미 문장의 나타남과 가려짐에 수(數)가 있음을 탄식하였고, 또한 영장(營將) 군(君)이 무인으로서 옛 선비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겨 적은 봉급을 내놓아 이를 이룬 것을 가상히 여겨 마침내 말을 남긴다. 그 제작과 조예의 품격에 대해서는 세상의 안목 있는 이들이 스스로 정론을 내릴 것이다. 금상(今上) 39년 계사(癸巳)년 중추(中秋) 날에, 완산(完山) 최석정(崔錫鼎)이 짓는다. 서(序).

2. 西河集重刊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3B, ITKC_MO_0003A_A001_203C ...

원문

古人之工於詩者。類多窮阨不遂。談者謂之詩能窮人至。陳無己序王平甫集則曰。詩能達人。未見其窮人。之言也固有激而發。雖然亦大有理。以余觀之。若高麗林西河先生。雖曰窮於詩者。亦以詩有大名於世。謂之非窮也亦宜。先生爲文章。雄博宏肆。在當時。與李眉叟吳濮陽埒美而齊譽。天之生先生固不偶然。若將使摛藻天庭。黼黻王猷。大鳴國家之盛。而不幸遭値家難。竄身荒陬。流離困厄。抑鬱而不揚。貧寒枯槁如孟東野。不得一第如劉德仁。不掛朝籍如玉溪生。卒之無年夭殞。又有似乎李長吉。噫先生一人之身。而兼此數子者之冤。此生人之至戚。千古之最窮。雖其殘膏賸馥至今未沫。名章傑句往往流傳。而年代已逖。全稿無存。其平生著述之富。無以表見於來世。先生身後之窮。至此而無可慰者。乃者雲門寺僧印淡因夢感之異。掘得先生遺集於本寺之近麓。詩文凡六編。盛之銅器。封識深密。卽前朝僧淡印所藏也。藏之者淡印。得之者印淡。其事甚奇。此天所以哀先生之窮。不忍其文之終於棄擲埋沒。使得復出於五百餘年之後。譬如埋獄之劍。蘊山之玉。發其光怪。掩之而愈彰。終爲希世之至寶。其一晦一顯。豈不有數存於其間耶。噫。麗祚旣訖。故都成墟。當時士大夫奕世豪貴。終身佚樂富厚者亦復何限。而率皆聲沈形絶。磨滅無記。乃先生以眇然一措大。生也窮而夭歿。又子孫如綫。獨其遺篇餘翰得全於陵谷百變之餘。使千載之下莫不誦其文而想其人。則先生之名。可與天壤同畢。其視一時富厚佚樂而無稱於後者。得失何如耶。然則先生之窮。窮於暫而不窮於永。是可以慰先生之魂矣。先生後裔諸人。謀所以重刊是集。要不佞一言以題其後。不佞固非能言者。況論先生之文者莫詳於眉叟序文。則不佞又何用贅爲。特感古人窮達之說。且奇是集之旣閟而復出。遂書此而歸之。癸巳中秋朔日。楊州趙泰億。書于鶴灘精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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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 중에 시에 능한 자는 궁핍하고 곤액을 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는 이들은 이를 일컬어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한다고 한다. 김무기(無己)가 왕평보(王平甫)의 집을 서문에서 말하기를, '시는 사람을 통달하게 할 수는 있으나, 사람을 궁하게 한다는 것은 본 적이 없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말은 본래 격렬하여 발현된 것이지만, 비록 그러할지라도 크게 이치가 있다. 내가 보기에 고려의 임서하(林西河) 선생은 비록 시에 궁하다고는 하나, 또한 시로 인해 세상에 큰 이름을 떨쳤으니, 궁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도 마땅하다. 선생의 문장은 웅발하고 웅대하며 넓고 호방하여, 당시 이미수(李眉叟) 및 오복양(吳濮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명성을 같이하였다. 하늘이 선생을 낳은 것은 진실로 우연이 아니다. 만약 선생이 그 재능을 펼쳐 조정에서 문채를 드러내고, 왕유(王猷)처럼 큰 공을 세워 국가의 성대함을 크게 알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불행히도 가문의 난을 만나 변방의 외진 곳으로 쫓겨나 유랑하며 곤궁한 처지에 놓였다. 억눌려 있으나 드높이지 못하고, 가난하고 추하여 맹동야(孟東野)와 같았으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유덕인(劉德仁)과 같았고, 조정의 관직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여 옥계생(玉溪生)과 같았다. 결국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으니, 또 이장길(李長吉)과도 흡사하다. 아, 선생 한 사람의 몸에 이 여러 사람의 원통함이 겸해져 있으니, 이는 살아있는 사람의 지극한 슬픔이며 천고의 가장 궁한 일이다. 비록 그 남은 향기와 빛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아 명문장과 걸작이 종종 전해지고는 있으나, 시대가 이미 멀어 전고(全稿)가 남아 있지 않다. 선생의 평생 저술이 풍부함이 후세에 드러날 길이 없으니, 선생 사후의 궁핍함이 여기에 이르러 위로할 만한 것이 없다. 다행히 운문사(雲門寺) 승려 인담(印淡)이 꿈속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고, 본 사찰의 근처 산기슭에서 선생의 유집(遺集)을 파내어 얻었으니, 시문이 모두 6편이다. 구리 그릇에 정성껏 담아 봉인하고 기록한 것이 매우 치밀하였는데, 곧 전조(前朝)의 승려 담인(淡印)이 소장하였던 것이다. 담인이 소장하였으나 인담이 얻었으니 그 일이 매우 기이하다. 이는 하늘이 선생의 궁핍함을 가엽게 여겨, 그 글이 끝내 버려지고 묻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500여 년이 지난 뒤에 다시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옥에 갇혔던 칼이나 산속에 묻혔던 옥과 같아서, 그 기이한 빛을 발하게 하니 덮어둘수록 더욱 빛나게 되어 마침내 세상에 드문 지극한 보배가 되었다. 한 번은 가려지고 한 번은 드러나니, 그 사이에 수(數)가 존재함이 어찌 아니겠는가. 아, 고려의 운수가 이미 다하여 옛 도읍은 폐허가 되었다. 당시의 사대부들은 대대로 호귀하여 평생을 안락하고 부유하게 보낸 이들이 한이 없었으나, 대개 이름이 가라앉고 형체가 끊어져 기록이 마멸되었다. 그러나 선생은 미약한 한 사람으로서 크게 떨쳤으나 삶이 궁핍하여 요절하였고, 또 자손은 실처럼 가늘다. 오직 그 남은 편과 글들이 세상의 변화무쌍함 속에서도 온전히 보존되어, 천 년 뒤의 사람들이 그 글을 읊조리고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음이 없다면, 선생의 이름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나란히 할 것이다. 이를 한때의 부유함과 안락함이 후세에 일컬어지지 못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득실이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선생의 궁핍함은 잠시 동안의 궁핍일 뿐 영원한 궁핍이 아니니, 이것으로 선생의 혼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의 후손들이 이 집을 중간(重刊)하기를 도모하며 불초한 나에게 그 뒤에 붙일 글 한 마디를 청하였다. 나는 본래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하물며 선생의 문장을 논함에 있어 미수(眉叟)의 서문보다 상세한 이가 없으니, 내가 또 무엇을 덧붙여 쓸 수 있겠는가. 다만 옛사람의 궁달(窮達)에 관한 설에 감동하였고, 또한 이 집이 숨겨져 있다가 다시 나온 것이 기이하여, 마침내 이 글을 써서 돌려보낸다. 계사년(癸巳年) 중추날 초하루, 양주(楊州) 조태억(趙泰億)이 학탄정사(鶴灘精舍)에서 쓰다.

3. 西河先生集序[李仁老]〔原注:將仕郞尙書禮部郞中知製誥李仁老撰〕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7B, ITKC_MO_0003A_A001_207C

원문

貴與壽。人心之所同欲也。然君子之所貴。在德而不必在於爵位。所謂久而不朽者。在於名而不必在於壽。昔顏回高枕陋巷中。而萬世與舜禹同榮。夷齊恥食周粟。採薇於首陽山。名與日月爭光。則老子云死而不亡者壽。蓋謂此也。設令不義而富且貴。以養其軀。徒與龜蛇竝久。則此柳子所謂赫赫而辱。皤皤而天者也。豈不悲哉。西河先生少有詩名於世。讀書初若不經意。而汲其〔原注:缺〕字字皆有根蔕。眞得蘇黃之遺法。雄視詞場。可以穿楊葉於百步矣。而屢擧不得第。及□毅王末年。闔門遭禍。一身僅脫。避地於江之南。累歲還京師。收合餘燼。思欲雪三奔之恥。卒不就一名。宗伯李相國贈詩曰。莫嗟丹桂久含冤。人道明年作狀元。無限禹稱多日恨。不敎英俊在吾門。雖窮躓不振。而名動搢紳如此。大抵秉筆之徒。工於詩則短於爲文。互有得失。右擅其美。罕有兼得之。先生文得古文。詩有騷雅之風骨。自海而東。以布衣雄世者一人而已。其沒已二十載。學者莫不口詠而心慕之。將以俎豆於屈宋之間。君子之所謂貴且壽者。其在是歟。今得遺篇於後生諷誦之餘。凡若干首。分爲六卷。目曰西河先生集。命兒子祕。校程手寫。將鏤板以傳之。惜其天不與年。所綴述不至於多。見鳳凰一毛。足以知九苞之瑞矣。先生諱椿。字耆之。其學實得之家叔學士宗庇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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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함과 장수는 사람의 마음이 함께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덕에 있는 것이지 반드시 관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오래되어도 썩지 않는다는 것은 이름에 있는 것이지 반드시 수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옛날 안회(顔回)는 누추한 골목에서 베개를 높이 베고 지냈으나, 만세에 순(舜)·우(禹)와 더불어 영광을 누렸다. 이제(夷齊)는 주(周)나라의 곡식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를 캐 먹었으니, 그 이름이 해와 달과 더불어 빛을 다투었다. 이는 노자(老子)가 말한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장수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바로 이를 일컫는 것이다. 만약 의롭지 못하면서 부유하고 귀하게 되어 그 몸을 보존한다면, 이는 단지 거북이나 뱀과 더불어 오래갈 뿐이니, 이것이야말로 유자(柳子)가 말한 '빛나면서도 욕되고, 희면서도 하늘에 가깝다(赫赫而辱, 皤皤而天)'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서하(西河) 선생은 젊어서 세상에 시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글을 읽을 때는 처음에는 마치 뜻을 두지 않는 듯하였으나, 그 〔원주:결락〕 글자마다 모두 뿌리와 줄기가 있어 참으로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의 유법을 얻었다. 사장(詞場)에서 웅장하게 바라보며 백 보 밖의 버들잎도 꿰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였다. □의 왕(王) 말년에 가문 전체가 화를 당하여, 한 몸 겨우 벗어나 강남(江之南)으로 피신하였다가 여러 해 만에 경사(京師)로 돌아와 남은 재산을 거두어들였다. 삼분(三奔)의 치욕을 씻고자 생각하였으나 끝내 한 명의 관직도 얻지 못하였다. 종백(宗伯) 이 상국(李相國)이 시를 지어 읊기를, “단계(丹桂)가 원한을 품은 채 오래되었음을 탄식하지 마라, 사람들이 내년에 장원 급제할 것이라 말하네, 우(禹)가 칭송받던 날의 한이 끝이 없으니, 영준한 인재가 우리 문중에 있지 못함이 아쉽구나”라고 하였다. 비록 궁핍하여 꺾이고 일어나지 못하였으나, 이름이 문신(搢紳)들 사이에 움직인 것이 이와 같았다. 대개 글을 쓰는 이들은 시에는 능하나 문장을 짓는 데는 짧으니 서로 얻고 잃음이 있다. 오른쪽(시)은 그 아름다움을 잘 발휘하나 양쪽을 겸하여 얻는 경우는 드물다. 선생은 문장은 고문(古文)을 얻었고, 시는 소아(騷雅)한 풍골이 있었다. 바다 동쪽에서 평민의 몸으로 세상을 웅장하게 마주한 이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선생이 돌아가신 지 이미 20년이 되었으나, 배우는 이들 중에 입으로 읊조리며 마음으로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장차 굴원(屈原)과 송옥(宋玉) 사이에 제사를 지내려는 것과 같다. 군자가 말하는 귀함과 장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후생들이 읊조리고 전하는 나머지 유편(遺篇)을 얻게 되었는데, 무릇 몇 수 되지 않으나 6권으로 나누어 이름을 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이라 하였다. 아들에게 비밀로 하게 하고 교정하여 손으로 써서, 장차 판각하여 전하고자 한다. 아쉽게도 하늘이 수명을 주지 않아 기술한 내용이 많지는 않으나, 봉황의 깃털 하나를 본 것만으로도 아홉 가지 상서로운 싹(九苞之瑞)이 있을 것을 알기에 충분하다. 선생의 휘는 춘(椿)이고 자는 기지(耆之)이니, 그 학문은 실로 가숙(家叔) 학사(學士) 종(宗)의 보살핌을 얻었다.

4. 李郞中〔原注:惟誼〕茶店晝睡〔原注:二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8B, ITKC_MO_0003A_A001_208C ...

원문

頹然臥榻便忘形。午枕風來睡自醒。夢裏此身無處著。乾坤都是一長亭。虛樓夢罷正高舂。兩眼空濛看遠峯。誰識幽人閑氣味。一軒春睡敵千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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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낭중(李郞中) 차점(茶店)에서의 낮잠 (두 수의 절구) 풀썩 누워 평상에 몸을 맡기니 형체마저 잊게 되네. 낮잠 잘 때 베개 삼은 바람이니 잠결에 스스로 깨어나네. 꿈속에서는 이 몸이 머물 곳이 없으니, 천지가 모두 하나의 긴 정자라네. 빈 누각에서 꿈 깨니 마침 높이 종소리 울리네. 두 눈은 아스라하여 먼 봉우리를 바라보네. 누가 이 한가로운 사람의 정취를 알리오. 초가집 한 채에서 즐기는 봄잠은 천 종(千鍾)의 녹봉과도 맞먹는다네.

5. 謝人以筆墨見惠〔原注:筆上所賜。〕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世有中書君姓毛。從來四貴共爲曹。神人夢授名何重。天子恩分品已高。心怪本無犀一點。學嗟虛禿兔千毫。今朝謬辱賢侯惠。應助楊雄廣反騷。東坡惠我老松煙。妙法應非世所傳。欲與翰林爲子墨。喜從書苑得陳玄。數枚初得香猶在。妙質應欺玉未堅。若向楯頭磨作檄。將軍才思有誰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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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중서(中書)라는 성이 모(毛) 씨인 이가 있으니, 예로부터 네 명의 귀한 이가 함께 벼슬아치가 되었다. 신령한 사람이 꿈속에서 이름을 내려주었으니 어찌 중하겠는가. 천자의 은혜로 품계가 이미 높으니, 마음속에 신비로운 기운이 본래 한 점의 뿔(犀)처럼 예리하게 있다. 배우는 것이 허망하여 대머리 토끼의 천 마리 털 같음을 탄식하노라. 오늘 아침 현후(賢侯)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잘못되어, 마땅히 양웅(楊雄)의 넓은 반소(反騷)를 돕게 되리라. 동파(東坡)께서 내게 노송연(老松煙)을 베풀어 주셨으니, 그 오묘한 법은 마땅히 세상에 전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한림(翰林)과 함께 자묵(子墨)이 되고자 하여, 서원(書苑)에서 진현(陳玄)을 얻은 것을 기뻐하노라. 몇 자루를 처음 얻었을 때의 향기가 여전히 남아 있으니, 그 오묘한 바탕은 마땅히 옥(玉)보다 뛰어나나 아직 단단하지는 않다. 만약 방패 머리에 갈아 격문(檄)을 만든다면, 장군(將軍)의 재사와 사유에 누가 앞설 수 있겠는가.

6. 題天院柳光植家橙〔原注:時擢用宋人王逢辰〕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9A

원문

仙橙傍砌生一株。問君安得移江湖。渡淮爲枳吾未信。天資不以地性渝。用與不用百里奚。豈智於秦愚於虞。托根近壤誰肯取。幸汝窮僻生荒隅。物因地貴已可笑。魯人豈是皆師儒。遐方異產人所嗜。遂令西伯菹菖蒲。紫梨丹李遍都邑。笑爾獨立何羈孤。君家栽種計已早。山中不羨千頭奴。會看秋晚園林霜。玉腦正拆黃金膚。勸君釀作洞庭春。香色味好勝羅浮。翠勺銀罌取甕頭。濁於甘露淸醍醐。初寒欲雪正可飮。呼我華堂傾一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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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귤나무 한 그루가 담장 곁에 자라고 있구나. 군안(君安)에게 묻노니, 어찌하여 강호(江湖)로 옮길 수 있겠는가. 회수(淮水)를 건너면 지(枳)나무가 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타고난 자질은 땅의 성질에 따라 변하지 않는 법이다. 백리해(百里奚)를 등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와 같으니, 어찌 진(秦)나라의 어리석음이나 우(虞)나라의 어리석음과 비교하겠는가. 뿌리를 가까운 흙에 내렸으니 누가 이를 취하려 하겠는가. 다행히 그대가 궁벽한 곳에 살며 황량한 구석에 태어났구나. 사물이 땅을 따라 귀해지는 것이 참으로 가소롭도다. 노나라(魯) 사람이 어찌 모두 유학자(師儒)뿐이겠는가. 먼 곳의 특산물을 사람들이 즐기게 되니, 마침내 서백(西伯)이 창포(菖蒲)를 절임으로 만들게 하였다. 자줏빛 배와 붉은 오얏이 도읍(都邑)에 가득하구나. 그대가 홀로 떨어져 있어 어찌 그리 외롭다 하겠는가. 그대의 집에서 재배하는 계획은 이미 빨랐으니, 산속의 천 마리 노비(千頭奴)를 부럽게 하지 않으리라. 가을이 저물어 원림(園林)에 서리가 내릴 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옥 같은 속살이 막 벌어져 황금빛 껍질을 드러내면, 그대에게 권하여 동정(洞庭)의 봄과 같은 술을 빚게 하리라. 그 향기와 색과 맛이 나부산(羅浮山)보다 낫도다. 비취색 국자와 은제 병으로 술독 머리에서 떠내니, 감로(甘露)나 맑은 제호(醍醐)보다 탁하겠는가. 초겨울에 눈이 내리려 할 때가 마시기 딱 좋으니, 나를 불러 화려한 집에서 한 호리병을 기울이게 하라.

7. 七夕〔原注:三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9B

원문

銀河淸淺月華饒。也喜神仙會此宵。多小人間烏與鵲。年年辛苦作仙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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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銀河)는 맑고 얕은데 달빛은 넘실거린다. 신선들이 이 밤에 만나는 것이 또한 즐겁구나. 인간 세상의 까마귀와 까치들은 어찌하여, 해마다 고생하며 신선의 다리를 만드는가.

원문

坐想豪奢許史門。曝衣樓上綺羅繁。未能免俗聊爲爾。高掛中庭犢鼻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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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하니 허사(許史) 같은 권세 있는 집안의 호사스러움이 떠오른다. 폭의루(曝衣樓) 위에는 화려한 비단옷이 가득하다. 속세를 면하지 못하고 잠시 그대를 위해 중정(中庭)에 독비(犢鼻)를 높이 걸어둔다.

원문

千家肴菓競時新。無限區區乞巧人。獨與天孫仍有約。更將愚拙付精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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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집의 안주와 과일들이 제철을 맞아 다투어 새로워지는데, 부지런히 재주를 비는 사람들은 끝이 없구나. 홀로 천손(天孫)과 여전히 약속이 있어, 다시금 나의 어리석고 졸렬함을 정신에 담아 바치노라.

8. 盤松歌

문체: 詩類 / 其他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09C, ITKC_MO_0003A_A001_209D

원문

人言萬物生於天。天本無心醜與妍。豈識紛紜千百態。神愁鬼泣勞雕鐫。雖有良工騁奇巧。疲精竭慮難爭先。不爾天公有造化。亦於何處施其權。吾觀草木狀不同。如人賦與多奇偏。申屠兀其足。甕盎高其肩。大哉天地間。耳目不可窮幽玄。山經地誌多汗漫。荒怪萬象無不傳。曾聞赤枲九衢秀。亦有雙瓜雙蔕連。張華旣沒不復生。誰能博物渾磨研。峯深路絶人罕到。盤松鬱鬱生幾年。地下根深帶茯苓。久爲琥珀凝精堅。凌空直幹未百尋。低枝交錯拏虯拳。有如將軍獵渭城。高張帷蓋影交纏。又如公子遊西園。輕飛繖蓋形團圓。奇姿詭狀獨鍾爾。有口如箝理莫詮。我疑山靈多產異。效奇此物尤可憐。功成已久不欲出。藏之壑底深雲煙。乃今還爲人所得。由來至寶那能專。君不見雙童立雪雪至腰。化爲老檜生庭前。又不見二妃泣血血染竹。斑爛千簇搖江邊。物化皆因誠所感。我嘗一一徵前篇。因知今爾十八公。曾是靑山避世仙。居巖斷穀學祕訣。服藥生毛歲一千。變此蒼髥黑甲身。乃得久壽窮山川。古來遊賞皆賢豪。壁間珠玉堪成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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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만물이 하늘에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하늘은 본래 마음이 없어 추함과 아름다움을 구별하지 않는다. 어찌 어지럽게 얽힌 수많은 모습들을 알겠는가. 신령은 근심하고 귀신은 울며 조각하고 새기는 수고를 한다. 비록 뛰어난 장인이 기묘한 재주를 부린다 해도, 정력을 다하고 생각을 쏟아부어도 앞서 나가기는 어렵다. 그대들이 아니더라도 천공(天公)은 조화를 부리시니, 또한 어느 곳에서 그 권능을 베푸시는가. 내가 살펴보니 초목의 형상이 서로 다른 것은, 마치 사람에게 부여된 기이하고 치우친 재능과 같다. 신도올기(申屠兀其)는 발이 족하고, 옹앙(甕盎)은 어깨가 높다. 대저 천지 사이의 이치는 크도다. 귀와 눈으로는 그 깊고 오묘함을 다 헤아릴 수 없다. 산경(山經)과 지지(地誌)는 내용이 매우 방대하여, 황홀하고 괴이한 만물 형상이 전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일찍이 붉은 삼(赤枲)이 아홉 거리에서 빼어나게 피어난 것을 들었고, 또한 두 개의 오이와 두 개의 꼭지가 연결된 것도 있었다. 장화(張華)는 이미 죽어 다시 살아나지 못하니, 누가 박학하여 모든 것을 혼합하여 연구할 수 있겠는가. 봉우리는 깊고 길은 끊겨 사람이 드물게 도달한다. 반송(盤松)은 울창하게 몇 년이나 살았는가. 땅 밑의 뿌리는 깊어 복령(茯苓)을 두르고 있다. 오래되어 호박(琥珀)처럼 정수가 응결되어 단단해졌다. 허공을 향해 곧게 뻗은 줄기는 백 길(百尋)이 되지 않는데, 낮은 가지들은 서로 엇갈려 용처럼 굽어 있다. 마치 장군이 위성(渭城)에서 사냥하며 높은 휘장과 덮개를 높이 쳐서 그림자가 서로 뒤엉키는 듯하다. 또한 공자가 서원(西園)을 노니는 것과 같으니, 가볍게 날리는 산 모양의 덮개가 둥글게 퍼져 있다. 기이한 자태와 괴이한 형상이 홀로 독보적이니, 입이 집게처럼 생긴 것은 이치를 다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산의 신령이 기이한 것을 많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이 물건이 기이함을 본받은 것이 더욱 가련하다 생각한다. 공을 이룬 지 오래되어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고, 골짜기 밑 깊은 구름과 안개 속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사람의 손에 얻어지게 되었다. 본래 지극한 보물은 어찌 한 곳에만 머물 수 있겠는가. 그대는 두 아이가 눈 속에 서서 허리까지 눈이 차오른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그것이 변하여 늙은 측백나무가 되어 뜰 앞에 생겨났다. 또한 두 비(二妃)가 피눈물을 흘려 피가 대나무를 물들인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얼룩진 천 개의 무리가 강가에서 흔들린다. 만물의 변화는 모두 정성으로 느낀 바에 따른 것이다. 내가 일찍이 앞의 글들을 하나하나 대조해 보니, 이제 그대들이 바로 십팔공(十八公, 소나무)임을 알게 되었다. 일찍이 청산에서 세상을 피한 신선이었으니, 바위 사이에 거처하며 곡기를 끊고 비결을 배웠다. 약을 먹고 털이 나니 수명이 천 년이라, 이 푸른 수염과 검은 갑옷 같은 몸으로 변하여 마침내 산천에서 오래도록 살게 되었다. 예로부터 유람하고 감상하는 이들은 모두 현명한 호걸들이었으니, 벽 사이에 걸린 구슬과 옥 같은 이 글들을 차례로 엮을 만하다.

9. 謝人見訪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長安霖雨後。思我遠相過。寂寞蝸牛舍。徘徊駟馬車。恒飢窮子美。非病老維摩。莫署吾門去。聲名恐更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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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長安)에 단비가 내린 뒤, 멀리서 나를 찾아올 생각을 하니, 적막한 달팽이 집 같은 초라한 집 앞에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가 서성이는구나. 늘 굶주린 자미(子美)와 같으니, 병든 노유마(老維摩)는 아니다. 내 문 앞에 이름을 적지 말고 가거라, 명성이 더 커질까 두렵구나.

10. 八月十五夜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共看中秋月。高樓對酒壺。雲頭初湧出。天面淨都盧。子落恒娥桂。光潛老蚌珠。誰知淸景好。却勝武昌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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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중추(中秋)의 달을 바라보며, 높은 누각에서 술병을 마주하고 있네. 구름 머리에서 막 솟아오르니, 하늘 표면은 깨끗하기 그지없구나. 달은 항아(姮娥)와 계수(桂)나무가 떨어지는 듯하고, 빛은 조개 속의 진주에 잠겨 있는 듯하네. 누가 알랴, 이 맑은 경치가 무창(武昌)의 도성보다 오히려 낫다는 것을.

11. 用前韻贈演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風波早出世。實賴千金壺。我愛高僧遠。誰知甲姓盧。資身唯鉢飯。悟性護衣珠。膝下歡猶在。逡巡戀故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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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파를 일찍이 세상에서 벗어났으니, 참으로 천금호(千金壺)에 의지하는구나. 나는 고승이 멀리 있음을 사랑하거늘, 누가 갑성(甲姓) 노(盧) 씨임을 알겠는가. 몸을 건사함은 오직 발우의 밥뿐이며, 성품을 깨달음은 옷에 품은 구슬과 같도다. 무릎 아래의 즐거움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머뭇거리며 옛 도읍을 그리워하네.

12. 記夢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0B

원문

我夢乘風到月宮。排門直捉恒娥問。奈何使爾司春桂。與奪不公人所慍。低頭再拜謝我言。妾不愛憎皆委分。紫府今書君姓字。曾陪王母遊閬苑。也爲輕狂多負過。帝令譴謫方知困。從此文星不在天。世人誰識塵中隱。四海詩名三十秋。燒丹金鼎功成近。留着高枝且待君。明年折取應無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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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속에서 바람을 타고 월궁(月宮)에 이르렀다. 문을 밀치고 들어가 곧장 항아(姮娥)를 붙잡고 물었다. 어찌하여 그대에게 봄의 계절을 다스리는 춘계(春桂)의 직분을 맡겼는가. 주고 빼앗는 것이 공정하지 못하여 사람들이 원망한다. 항아가 머리를 숙여 다시 절하며 내게 말하기를, '저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모두 하늘의 뜻에 맡깁니다. 자부(紫府)에 지금 그대의 성명(姓字)을 써 두었습니다. 일찍이 왕모(王母)를 모시고 낭원(閬苑)에서 노닐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경망스러워 허물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임금께서 문책하여 유배를 보내시니 비로소 곤궁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문성(文星)이 하늘에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가 속세에 숨어 있는 나를 알겠습니까. 사해(四海)에 시문(詩文)의 이름이 서른 해 동안 울려 퍼졌으나, 단약을 구워 금정(金鼎)을 이루는 공은 이제 가까워졌습니다. 높은 가지에 머물러 있으니 그대를 기다리겠습니다. 내년에 꺾어 가져가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13. 贈眉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丹穴有鳳凰。一朝生鸑鷟。初離產毻中。五色文章足。飛來入南國。豈可樊籠束。何時出大平。鳴應韶簫曲。

번역

단혈(丹穴)에는 봉황이 있는데, 어느 날 아침 악(鸑)과 작(鷟)이 태어났네. 처음 갓 태어나 솜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색의 문채가 충분하구나. 날아와 남국(南國)에 들어왔으니, 어찌 새장 속에 갇혀 묶여 있겠는가. 언제쯤 대평(大平)으로 나아가, 소소(韶簫)의 곡조에 맞춰 울겠는가.

14. 寄益源上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0C

원문

尋眞函丈興何幽。碧眼淸談盡日留。逐世自嗟歸計晚。談空轉覺此生浮。祇從居士田園樂。不與禪師杖錫遊。適性足爲愚谷子。無官合拜醉鄕侯。却慙成佛非靈運。解愛能詩有惠休。莫厭共傾三昧酒。古來儒釋稱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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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도를 구하는 그 높이는 어찌 이리도 그윽한가. 푸른 눈의 청담(淸談)에 온종일 머무네. 세상의 흐름을 쫓으며 스스로 탄식하며 돌아갈 날을 계산하니, 헛된 담론에 이 한 생애가 덧없이 떠도는 것임을 깨닫게 되네. 오직 거사(居士)의 전원(田園)에서 즐거움을 얻을 뿐, 선사(禪師)의 지팡이와 발우를 따라 유람하지 않네. 성품에 맞으니 우곡(愚谷)이라 불리기에 충분하고, 관직이 없으니 취향후(醉鄕侯)로 칭송받기에 합당하네. 도리어 부처가 된 것이 영험한 운수 때문이 아님을 부끄러워하네. 사랑을 이해하고 시를 지을 줄 아니 혜휴(惠休)가 있네. 함께 삼매(三昧)의 술을 기울임을 싫어하지 마오. 예부터 유교와 불교 모두 풍류를 칭송해 왔네.

15. 寄友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十年流落半生涯。觸處那堪感物華。秋月春風詩準備。旅愁羈思酒消磨。縱無功業傳千古。祇有文章自一家。盛世偸閑殊不惡。從敎身世轉蹉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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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동안 떠돌며 생애의 절반을 보냈으니, 발길 닿는 곳마다 어찌 만물의 화려함에 감흥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을 달과 봄바람에 시를 지을 준비를 하고, 나그네의 시름과 얽매인 생각은 술로 달래며 보낸다. 비록 천고에 전할 공업은 없을지라도, 오직 자기만의 독특한 문장만은 남으리라. 성세에 한가로움을 훔쳐 누리는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으니, 설령 몸과 세상이 헛되이 흘러간다 해도 괜찮으리라.

16. 寄山人益源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0D, ITKC_MO_0003A_A001_211A

원문

吾少愛林泉。浩然思歸歟。當時重違親。名利豈所拘。及此遭喪亂。飄然放江湖。高遁方可樂。不去胡爲乎。亦由身有累。未忍捐妻帑。羨子拂長袖。靑山歸結廬。峯巒信奇秀。人道似香爐。雲煙藏洞壑。縹緲疑有無。去此跬步間。思之不與俱。子有丹靑習。何不傳其圖。嘗聞避時者。亦有山澤癯。往而不知返。無奈近於愚。今子學眞理。而隱佛之徒。放迹逃名敎。幽閑意所娛。春秋猶且富。其道固已孤。吾觀今之世。擾擾群浮屠。奇形又詭服。與俗無異趨。以此獲其罪。見排於吾儒。而子獨不然。囂塵厭寰區。飛錫來江南。十載眠團蒲。一褐度冬夏。一飯終朝晡。無言自觀心。閫外足不踰。吾方困流落。鬱鬱居荒隅。無人可與語。獨生空長吁。一朝乃得子。喜見碧眼胡。酸辛話平生。竟夕傾村沽。別來纔數月。尺書屢見呼。今聞群盜盛。侵邑而攻都。朝廷懸美賞。州郡募壯夫。世患非吾事。食肉者謀謨。不如居巖穴。斷穀食松腴。莫作北山移。吳儂有林逋。

번역

나는 젊어서부터 산림과 샘을 사랑하였다. 호연(浩然)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것인가. 당시에는 부모님을 중히 여겨 어겼으나, 명리와 이익이 어찌 구속이 되겠는가. 이토록 난리와 상(喪)을 겪게 되어, 홀연히 강호로 내쫓기듯 떠돌게 되었다. 높이 은둔해야 비로소 즐거울 수 있을 텐데, 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또한 몸에 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내의 재물을 차마 버릴 수 없어, 자네가 긴 소매를 털어내듯(자유롭게 떠도는 것을) 부러워한다. 청산에 돌아가 초막을 짓는다니, 봉우리와 산줄기가 참으로 기이하고 빼어나구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향로봉(香爐峰)과 같다는데, 구름과 안개가 동굴과 골짜기에 숨어 있어 아스라하니 실재하는지 없는지 의심스럽다. 이곳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도 생각이 함께하지 못하는구나. 자네는 단청(丹靑)을 익혔으니, 어찌 그 그림을 전하지 않는가. 일찍이 시대를 피해 은거하는 자들은 산과 못에서 수양하며 갔다가 돌아오는 줄을 알지 못한다고 들었다. 어찌할 도리 없이 어리석음에 가깝구나. 이제 자네는 참된 이치를 배우고 불도를 닦는 무리로서, 자취를 놓아 명교(名敎)로부터 도망하고 있으니, 그윽하고 한가로운 마음이 즐거움의 대상이다. 봄과 가을의 제사(春秋)를 지내며 여전히 풍족할 것이니, 그 도가 본래 이미 외롭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세상은 어지럽게 떠도는 부도(浮屠)들이 가득하고, 기이한 형상과 괴이한 옷차림이 세속의 흐름과 다를 바 없다. 이로써 죄를 얻어 우리 유학자들에게 배척당하는데, 자네는 홀로 그렇지 않구나. 시끄러운 먼지 가득한 세상을 싫어하여, 지팡이를 짚고 강남(江南)으로 날아왔구나. 십 년 동안 연꽃 잎 위에서 잠을 자고, 한 벌의 누더기 옷으로 겨울과 여름을 나며, 한 끼의 밥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를 보낸다. 말없이 스스로 마음을 관찰하며, 조정 밖(閫外)을 발 한 자국도 넘지 않는구나. 나는 이제 유랑하며 곤궁해져서, 황량한 구석에 울적하게 거처하며 말할 사람이 없다. 홀로 허공을 향해 긴 한숨만 내쉴 뿐이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자네를 얻으니, 푸른 눈의 오랑캐(碧眼胡)를 보는 듯 반갑구나. 평생의 신산(辛酸)한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 내내 마을 술집에 기울인다. 헤어진 지 겨우 몇 달인데, 편지가 자주 와서 부르는구나. 이제 들으니 도적 떼가 성하여 고을을 침범하고 도읍을 공격한다는데, 조정에서는 상금을 걸고 현상금을 내걸었다. 주군(州郡)에서는 장정들을 모집한다니, 세상의 환란이 내 일은 아니로다. 고기를 먹는 자들이 모의하는 것은 바위 구멍에 거처하며 곡기를 끊고 솔의 기름진 것을 먹는 것만 못하다. 북산(北山)의 이발(李潑)처럼 옮겨가지 마라. 오나라 사람 중에 임포(林逋)가 있다.

17. 趙亦樂將隱居城南。分韻得歸字。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得車舐痔性多違。洗耳踰垣世亦非。誰似先生嫌異俗。雲山城市兩忘歸。

번역

수레를 얻은 자는 핥고 치아를 다스리는 성품이 많아 어긋나고, 귀를 씻는 자는 담을 넘으니 세상 또한 그렇지 못하다. 누가 선생처럼 세속의 다름을 싫어하여, 구름 낀 산과 도시를 모두 잊고 돌아가겠는가.

18. 李尙書〔原注:允脩〕謝□賜藥設宴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聖君優老特臨軒。遣使傳宣立戟門。早賜金蓮垂異寵。更將鍾乳賞忠言。丁寧紫詔關□宸柙。瀲灎黃封輟上樽。綠野堂中張綺宴。樂聲先按感皇恩。

번역

이 상서(李尙書)가 □를 하사받은 약을 사례하며 연회를 베풀다. 성군께서 노인을 우대하시어 특별히 행차하시니, 사자를 보내어 선포하시고 문에 창을 세우게 하셨다. 일찍이 금련(金蓮)을 하사하시어 특별한 은총을 내리셨고, 다시 종유(鍾乳)를 내려 충직한 말을 상으로 주셨다. 자색 조서(紫詔)가 □를 통해 신하에게 전해지니 정성스럽고도 간절하다. 맑고 투명한 황봉(黃封)의 술을 올리던 잔을 멈추고, 녹야당(綠野堂) 가운데 화려한 연회를 베풀며, 악기 소리를 먼저 울려 황제의 은혜에 감격한다.

19. 寄湛之乞墨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1C

원문

吾窮正坐詩。袖手久已縮。但恐身後名。同腐草與木。晚學揚子雲。草玄在天祿。隃麋不見賜。未奏三千牘。念昔家未破。嘗寶松煙馥。正患墨磨人。豈暇歎未足。如今篋笥貧。牢落無餘蓄。君得東坡法。油煙收幾掬。歲月儻可支。分我一寸玉。

번역

나는 억지로 바른 자세로 앉아 시를 짓는다. 소매에 손을 넣은 채 오래되어 이미 움츠러들었다. 다만 죽은 뒤의 이름이 풀과 함께 썩어 나무와 같아질까 두렵다. 늦게나마 양자운(揚子雲)을 배우니, 《초현(草玄)》이 하늘의 복록(天祿)에 있다. 유미(隃麋)의 먹은 보지 못하였고, 아직 삼천(三千) 통의 글을 올리지 못했다. 예전에 집이 깨지기 전에는 일찍이 송연(松煙)의 향기를 보배로 여겼으나, 정작 먹이 사람을 괴롭힐까 걱정하였다. 탄식할 겨를이 없음을 어찌 한탄하겠는가. 지금은 상자와 궤가 빈궁하여 늙고 쓸쓸하니 남은 저축이 없다. 그대는 동파(東坡)의 법을 얻었으니, 기름진 먹을 몇 움큼이나 거두었는가. 세월을 혹 견딜 수 있다면, 내게도 한 치의 마음(一寸玉)을 나누어 주게나.

20. 訪咸子眞山居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先生隱市朝。負郭構茅舍。爲是愛山人。頻邀好事者。飮酒子誠能。吟詩我亦頗。優游數畝園。寬於一天下。

번역

선생께서는 저잣거리와 조정의 번잡함 속에 은거하시며, 성곽 근처에 초가집을 지으셨다. 이 때문에 산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주 좋은 일을 즐기는 이들을 불러 술을 마시는데, 자성(子誠)은 참으로 능력이 있고, 시를 읊는 것도 나 또한 꽤 잘한다. 몇 마지기 되는 작은 정원에서 유유자적하니, 이는 천하보다 너그럽다.

21. 樓上小飮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曾醉東吳八詠樓。能文主客盡風流。談鋒競發雌黃妙。酒令初嚴大白浮。徐稚已敎懸榻下。陳遵未厭閉門留。廻思別後雙溪月。誰伴高吟沈隱侯。

번역

일찍이 동오(東吳) 팔영루(八詠樓)에서 취한 적이 있었네. 문재(能文)가 있어 주인과 손님 모두 풍류를 다했었지. 담론의 날카로움은 암탉의 날카로움과 황묘(黃妙)함이 서로 다투듯 솟아나고, 술자리 명령은 처음부터 엄격하여 큰 술이 떠올랐었네. 서치(徐稚)는 이미 침상 아래에 매달리도록 가르쳤고, 진준(陳遵)은 문을 닫고 머물기를 마다하지 않았었지. 이별한 뒤 쌍계(雙溪)의 달을 보며 회상하니, 누가 함께 높은 소리로 읊으며 심은후(沈隱侯)를 벗하겠는가.

22. 戲贈〔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1D

원문

憶曾淸夜醉華茵。同賞樽前一搦身。寄語鶯鶯須好在。會應重見老詩人。

번역

맑은 밤 꽃이 만발한 곳에서 취했던 일을 기억하네. 술잔 앞에서 함께 몸을 맡기며 감상했었지. 앵앵(鶯鶯)에게 말하노니 부디 잘 지내고 있으라. 다시 늙은 시인을 만나게 될 것이니.

원문

倡樓高會舞吳娃。別後闌干玉筯齊。莫笑狂生豪橫過。近來心似絮粘泥。

번역

기루에는 오나라 여인들이 춤추며 성대하게 모여 노네. 헤어진 뒤에 난간의 옥 대는 가지런하구나. 미친 선비가 호탕하게 지나간다고 웃지 마라. 근래에 내 마음은 버들솜이 진흙에 달라붙은 듯하구나.

23. 贈眉叟弟僧纘之〔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長安初識少麒麟。不見于今七換春。客路相逢談往事。與君俱是夢中人。

번역

장안(長安)에서 처음 소기린(少麒麟)을 알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보지 못하니 봄이 일곱 번이나 바뀌었구나. 나그네 길에서 서로 만나 지난 일을 이야기하니, 그대와 나는 모두 꿈속의 사람이로다.

원문

親愛慇懃挽不留。飄然一衲占高遊。知君已作江山主。豈羨人間萬戶侯。

번역

친근하고 정성스러워 붙잡아 머물게 하지 못했네. 홀연히 누더기 옷 한 벌 걸치고 높은 곳에서 노니는구나. 그대가 이미 강산의 주인이 된 것을 아노니, 어찌 인간 세상의 만호후(萬戶侯)를 부러워하겠는가.

24. 漢陽吳賢良世才見訪。以詩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2A

원문

大曆能文士。昌黎與皇甫。時雖少推許。同訪牛僧孺。姓字留其門。慇懃記不遇。奇章聲大振。一日傳區宇。君才似文公。學者多欣慕。念我久逃虛。惠然肯來顧。空令長者車。却返深山路。免使世俗聞。名高亦可懼。何時與論文。更見今韓愈。

번역

대력(大曆) 연간에는 글재주가 뛰어난 선비들이 있었다. 창려(昌黎) 한유(韓愈)와 황보(皇甫)는 비록 당시에 비록 적게 추앙받았으나, 우승유(牛僧孺)를 함께 찾아갔다. 성과 이름은 그 문중에 남겨두고, 만나지 못한 것을 간곡히 기록하니 기이한 문장이 그 명성을 크게 떨쳐 하루아침에 온 세상에 전해졌다. 그대의 재능은 문공(文公)과 같아 배우는 이들이 많이 흠모한다. 내가 오랫동안 허송세월하며 떠돌고 있음을 생각하여 기꺼이 와서 살펴주려 하니, 다만 어른의 수레를 헛되이 가게 하여 깊은 산길로 되돌아가게 할 뿐이다. 세속에 알려지는 것을 면하게 하려 함이니, 명성이 높은 것 또한 두려운 일이다. 언제쯤 함께 문장을 논할 수 있겠는가? 다시금 지금의 한유(韓愈)를 만나고 싶다.

25. 詠夢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疏慵多是泥春天。頻到香閨玉枕前。詩榻夜涼風斷送。倡樓日晏酒拘牽。一場曾把浮生比。千里長將別恨傳。更爲等閑拋世慮。近來還繞舊林泉。

번역

게으르고 나태함이 대부분 봄날에 젖어 있는 것이다. 자주 향기로운 여인의 방 옥침 앞으로 찾아간다. 시를 읽는 평상에 밤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와 세월을 보내고, 기생집에서는 해가 저물도록 술로 얽매인다. 한바탕의 삶을 일찍이 덧없는 인생에 비유하며, 천 리 먼 곳으로 이별의 한을 전한다. 더욱더 태연하게 세상의 근심을 던져버리고, 근래에는 다시 옛 숲과 샘으로 돌아가고 있다.

26. 漁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2B

원문

浮家泛宅送平生。明月扁舟過洞庭。壇上不聞夫子語。澤邊來笑屈原醒。臨風小笛歸秋浦。帶雨寒蓑向晚汀。應笑世人多好事。幾廻將我畫爲屛。

번역

배를 집 삼아 떠돌며 평생을 보내노라. 밝은 달 아래 작은 배를 타고 동정호(洞庭湖)를 지나네. 제단 위에서는 그 선비의 말을 듣지 못하고, 못가에 와서 굴원(屈原)이 깨어났음을 웃으며 말하네. 바람을 맞으며 부는 작은 피리 소리는 가을 포구로 돌아오고, 비를 머금은 차가운 도롱이를 입고 저녁 무렵의 물가로 향하네. 세상 사람들이 흥미로운 일을 좋아한다고 비웃으리니, 몇 번이나 나를 그려 병풍으로 만들었는가.

27. 咸寧侯手種四季花於足庵。代闡公作詩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2C

원문

仙葩風骨尤淸眞。長生獨得名常春。定從阿母分靈丹。一粒便得童顏新。天工夜夜了不睡。護惜不與群芳均。侯家栽遍恐無地。爭買散盡千金珍。老僧有眼故不枯。欲種奈此山家貧。昨夜達院插寸枝。手侔造化眞天人。更將羯鼓忽催打。一笑嫣然發絳脣。未解韓郞寧底巧。雪中頃刻開淸晨。誰知丈室老龐蘊。默坐不覩天女身。紛紛走看傾都邑。鶴林復有司花神。何時車馬更臨賞。對花一飮千杯巡。

번역

함녕후(咸寧侯)가 족암(足庵)에 사계절의 꽃을 심으니, 대천공(代闡公)이 이를 대신하여 시를 지어 사례하다. 선계의 꽃 같은 풍채가 더욱 맑고 참되니, 장생(長生)을 홀로 얻어 이름이 항상 봄과 같구나. 반드시 어머니로부터 영단(靈丹)을 나누어 받았으리라. 한 알이면 곧 어린 얼굴이 새로워지네. 하늘의 솜씨가 밤마다 잠들지 않고, 아끼고 보호하여 다른 꽃들과 고르게 섞이지 않게 하네. 후가(侯家)에 널리 심어 땅이 없을까 두렵고, 천금의 보물을 다 사들여 다 써버릴까 걱정되네. 늙은 승려가 안목이 있어 마르지 않았으나, 심고 싶어도 이 산골이 가난하여 어찌하랴. 어젯밤 달원(達院)에서 한 치의 가지를 꽂으니, 그 솜씨가 조화와 같아 참으로 천인(天人)이로다. 다시羯鼓(갈고)를 갑자기 재촉하여 치니, 한 번 웃음 짓는 모습이 붉은 입술을 화사하게 드러내네. 한랑(韓郞)이 어디서 이토록 교묘하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하겠으나, 눈 속에서 순식간에 맑은 아침을 피워냈네. 누가 알랴, 장실(丈室)의 노승 방온(龐蘊)이 묵묵히 앉아 천녀(天女)의 몸을 보지 못함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도읍의 풍경이 기울어감을 보네. 학림(鶴林)에 다시 유사(有司)인 화신(花神)이 있으니, 어찌하여 차와 말이 다시 임하여 감상하겠는가. 꽃을 마주하고 천 잔의 술을 순례하리라.

28. 次韻鄭侍郞敍詩〔原注:并序〕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2D, ITKC_MO_0003A_A001_213A ...

원문

故學士鄭公。余不及見之。有藏其遺藁者。乃公貶南時所和中淳禪老詩也。追和其韻。

번역

그러므로 학사(學士) 정(鄭) 공은 내가 미처 뵙지 못하였다. 그가 남긴 초고를 간직한 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공이 남쪽 지방으로 좌천되었을 때 화중(和中) 변협(邊協) 선사와 화답한 시이다. 나는 그 운을 따라 다시 화답하였다.

원문

先生自名家。累葉傳侯伯。相襲珥貂蟬。皆立門前戟。公初有異器。能繼前人迹。斷乳始屬文。技巧又兼百。至尊召之見。降輦迎大白。欣然賜龍顏。寵愛日以益。握手入臥內。契密如金石。廷臣多缺望。聲勢方炎赫。中間忤貴倖。巧讚含沙射。見黜金閨名。良由釁所積。長沙逐賈生。無復虛前席。滄浪作釣翁。浮家而泛宅。千載雖一遇。飜覆在朝夕。固知行路難。擧足多岝峉。始自毫髮差。遂成丘山責。終身纏罪辜。顚踣常動魄。禦魅二十年。愆過懲於昔。遷徙席不暖。所居如郵馹。南中瘴霧深。可虞傷氣脈。優游縱巖壑。屢躡登山屐。聖明方在上。招還劉禹錫。識者聞而喜。以手但加額。是時仇家去。誰作鴟鴞嗝。歸來守先廬。賜書存舊壁。一日朝紫宸。經筵爲之闢。天語垂丁寧。問以寒暄隔。及當危難際。立朝多逼側。忠誠不見知。空使血化碧。忽昨見遺墨。之人猶目擊。神毫鬪蛟螭。大手搏貙獥。翻瀾一快讀。嗜閱空成癖。還疑照乘珠。初從頷下索。觀者已爭購。流傳遍蠻貊。哀哉命壓頭。平生困廝役。雖俟河之淸。百歲如過客。否泰各有理。豈用占蓍策。至人齊寵辱。困窮無戚戚。相從子輿遊。解以生爲脊。靜默閱時人。狂惑等李赤。國恩終未報。慨爾懷奮激。膽氣雖不讓。動輒遭嘲嚇。〔原注:音郝朴切。怒也。〕窮途墮千仞。長綆呼烏獲。出袴當俛就。唾面何敢逆。自從劉備瓜。常恐郭生麥。閑棲多暇日。章句搜且摘。感憤寓諸文。紛紛盈簡策。子雲方草玄。聊愛窮居寂。詞人多薄命。自古例陷阨。海山有歸處。仙遊邈難覓。今修玉樓記。不向人間謫。所恨不同時。意若調飢惄。

번역

선생은 명가(名家) 출신으로, 여러 대에 걸쳐 후백(侯伯)의 작위를 이어받아 대대로 벼슬을 계승하며 벼슬아치의 상징인 초선(貂蟬)을 귀에 걸었습니다. 모두 문 앞에 창(戟)을 세우는 기상을 가졌습니다. 공이 처음으로 기이한 재능을 가졌을 때, 전인의 자취를 이을 수 있었고, 젖을 떼자마자 문장에 속했습니다. 기교 또한 백 가지를 겸비하였습니다. 지존(至尊)께서 그를 불러 만나시니, 수레를 내리고 내려와 큰 술잔을 맞이하며 기쁘게 용안(龍顔)을 보여주셨고, 총애는 날로 더해갔습니다. 손을 잡고 침소에 드니 친밀함이 금석(金石)과 같이 굳건하였습니다. 조정의 신하들은 모두 원망하며 기대를 잃었으나, 그 기세는 오히려 불타오르듯 드높았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귀한 분의 뜻을 거스르는 행운을 얻어, 교묘하게 모함을 받아 금규(金閨)의 이름이 실추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원한이 쌓인 까닭입니다. 장사(長沙)가 가생(賈生)을 쫓아내듯, 다시는 앞자리에 앉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창랑(滄浪)이 낚시하는 노인이 되어, 집을 띄우고 배를 타고 떠돌게 되었습니다. 천 년에 한 번 만날 인연이라 하나, 변화는 아침저녁 사이에 있습니다. 본래 가는 길이 어렵고 발을 떼기가 매우 험난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에서 시작하여, 결국 구산(丘山)의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평생 죄를 짊어지고 얽매여 있으며, 넘어지고 비틀거림이 늘 마음을 흔듭니다. 20년 동안 요사스러운 기운을 막아냈으나, 지난날의 허물로 인해 징벌을 받았습니다. 자리를 옮겨도 자리가 따뜻해질 틈이 없으니, 머무는 곳이 마치 우편의 말 정거장과 같습니다. 남중(南中)의 장기 어린 안개가 깊으니, 기맥이 상할까 우려됩니다. 암석과 골짜기 사이를 유유자적하며 노닐며, 여러 번 산에 오르는 신을 신었습니다. 성명(聖明)하신 임금이 마침 위에 계시어, 유우석(劉禹錫)을 다시 불러들이듯 그를 부르셨습니다. 식견 있는 이들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손을 들어 이마에 댔습니다. 이때 원수들은 떠나갔으나, 누가 올빼미 울음소리를 내었습니까. 돌아와 선조의 사당을 지키며, 옛 벽에 남겨진 글을 보며 책을 하사받았습니다. 어느 날 자진(紫宸)에서 경연(經筵)을 위해 그를 위해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늘의 말씀이 정답게 내려와, 안부를 묻는 사이가 멀어졌음을 물으셨습니다. 마침 위난의 때에 이르러, 조정에 서니 압박이 많았으나, 충성심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헛되이 피가 푸르게 변하게 하였습니다. 문득 어제 유묵(遺墨)을 보았는데, 그 글을 남긴 이는 여전히 눈으로 보고 신묘한 붓끝으로 교룡과 싸우는 듯합니다. 큰 손(大手)이 맹수를 잡는 듯하니, 물결을 뒤엎는 한바탕의 쾌감을 느끼며 읽습니다. 읽기를 즐겨하여 버릇이 되었는데, 오히려 구슬을 비추어 타는 듯합니다. 처음에는 턱 밑에서 찾아내었으나, 보는 이들이 이미 다투어 삽니다. 만맥(蠻貊) 땅까지 널리 유전됩니다. 아아, 명이 머리를 누르는구나. 평생을 종처럼 부림을 당하며 고생하니, 비록 하(河)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 해도 백 년이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길함과 흉함은 각기 이치가 있으니, 어찌 점을 쳐서 헤아리겠습니까. 지극한 사람은 총애와 치욕을 함께 받으면서도 곤궁함에 슬퍼하지 않습니다. 자여(子輿)를 따라 유람하며, 삶을 척추로 삼아 풀어나갑니다. 정적 속에서 시대의 사람들을 살피니, 광혹함이 이적(李赤)과 같습니다. 나라의 은혜를 끝내 갚지 못하여, 그 품은 뜻이 분개하며 격동합니다. 담기는 비록 물러서지 않으나, 움직일 때마다 조롱과 겁박을 당합니다. 궁지에 몰려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장비(長綆)가 오(烏)를 부르듯, 바지를 입고 나와 마땅히 몸을 굽혀야 합니다. 면전에 침을 뱉는데 어찌 감히 거스르겠습니까. 스스로 유비(劉備)의 오이(瓜)가 된 듯하여, 항상 곽생(郭生)의 보리(麥)를 두려워합니다. 한가로이 머무는 날이 많을 때, 문장과 구절을 찾고 채집하며, 분개함을 여러 글에 담으니, 분분히 간책(簡策)에 가득합니다. 자운(子雲)이 막 현학을 논하듯, 잠시 궁핍한 거처의 적막함을 사랑합니다. 시인은 대개 명이 박하니, 예로부터 재앙에 빠지는 법입니다. 바다와 산에는 돌아갈 곳이 있으나, 신선이 노니는 곳은 멀고 찾아가기 어렵습니다. 이제 옥루기(玉樓記)를 닦으니, 인간 세상에 유배된 것이 아닙니다. 한스러운 것은 시대가 같지 않음이니, 그 뜻이 마치 굶주림을 걱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29. 贈隱者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鳳逸龍蟠臥草廬。林深不到擧賢書。安身自與山閑靜。抱道常隨世卷舒。恥向嵩高爭捷徑。甘從穎水卜幽居。相逢莫問歸何處。穿白雲行任所如。

번역

봉황은 날아오르고 용은 꿈틀거리며 초려(草廬)에 누워 있네. 숲이 깊어 어진 이를 추천하는 글(賢書)도 미치지 못하네. 몸을 편안히 하여 스스로 산과 함께 한가롭고 고요하니, 도를 품고 항상 세상의 흐름에 따라 펴고 접네. 높고 험한 곳을 향해 지름길을 다투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영수(穎水)의 맑은 물을 따라 그윽한 거처를 점지함에 즐거워하네. 서로 만난다면 돌아가는 곳이 어디인지 묻지 마오. 흰 구름을 뚫고 마음 가는 대로 행하리라.

30. 題吳江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連天水氣蒸三吳。橫截中流一幅蒲。垂虹亭上月明夜。淸風不減郞官湖。

번역

하늘과 맞닿은 물의 기운이 삼오(三吳) 땅에 증기처럼 피어오르는데, 흐르는 물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것은 한 폭의 갈대 그림이라. 수홍정(垂虹亭) 위로 달이 밝은 밤에는, 맑은 바람이 낭관호(郞官湖)의 정취를 줄이지 않는구나.

31. 書外院壁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早抱文章動帝京。乾坤一介老書生。如今始覺空門味。滿院無人識姓名。

번역

일찍이 문장(文章)을 품고 제도경(帝京)으로 움직였으나, 천지 사이의 한낱 늙은 서생일 뿐이네. 이제야 비로소 공문(空門)의 맛을 깨달으니, 온 마당에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32. 會李郞中惟誼宅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龍門昔日誤先登。短褐重來謁李膺。席上從容拜一笑。金樽須盡酒如澠。絳帳高堂許一登。文才慙愧豆盧膺。金龜換酒留連處。新撥浮醅綠似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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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龍門)에서 예전에 잘못하여 먼저 등용되었네. 짧은 옷차림으로 다시 돌아와 이응(李膺)을 뵙노라. 자리에서 여유롭게 절하며 한 번 웃으니, 금잔에는 마땅히 술이 진액처럼 가득해야 하리. 붉은 휘장 드리운 높은 집에서 한 번 오르기를 허락하니, 문재(文才)는 두로응(豆盧膺)에게 부끄럽구나. 금구(金龜)를 바꾸어 술을 마시며 계속 머무르니, 새로 거른 술의 거품이 푸른 빛이 진액 같구나.

33. 有懷眉叟〔原注:四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3D, ITKC_MO_0003A_A001_214A

원문

伽耶有高士。吐納駐童顏。爾汝形骸外。文章伯仲間。受書黃石老。問路具茨山。禦寇今何在。乘風去不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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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伽耶)에 높은 선비가 있으니, 호흡을 조절하며 어린 얼굴을 유지하네. 육신을 벗어난 친밀한 사이로, 문장 실력은 우열을 가리기 어렵네. 황석공(黃石公)에게 글을 받았고, 자산(茨山)에서 길을 물었었지. 도적을 막아내던 분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바람을 타고 떠나 돌아오지 않으시네.

원문

與君久別離。觸處摠堪悲。巫峽秋雲暮。湘江夜雨時。異鄕同是客。古國去無期。祇憶山陰地。孤舟訪戴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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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오랫동안 이별하여, 발길 닿는 곳마다 모두 슬프기만 하구나. 무협(巫峽)의 가을 구름과 저무는 해, 상강(湘江)의 밤비가 내리는 때라. 타향에서 우리 모두 똑같은 나그네인데, 옛 나라로 떠나는 기약이 없구나. 오직 산음(山陰) 땅만을 생각하며, 외로운 배를 타고 대규(戴逵)를 찾아가네.

원문

少年才思贍。往往擅場闈。世路知音寡。雲山拂袖歸。身窮名益進。貌脊道何肥。豈久吳中隱。天文動少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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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는 재능과 생각이 풍부하여, 종종 조정에서 기량을 마음껏 뽐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상의 길에는 나를 알아주는 지음(知音)이 적으니, 구름 낀 산으로 소매를 뿌리치며 돌아온다. 몸은 궁핍해졌으나 명성은 더욱 높아져, 모습은 수척해졌으나 도(道)는 어찌 살찌지 않겠는가. 어찌 오중(吳中)에 오래 은거하겠는가, 천문(天文)이 소미(少微)를 움직이고 있으니.

원문

掛冠金闕下。結社碧山中。自謂羲皇上。誰知易道東。雄深子長學。孤潔范丹風。往日交遊者。唯餘田舍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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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을 벗어던지고 금궐(金闕) 아래에 있었고, 푸른 산(碧山) 가운데에 모임을 맺었네. 스스로는 태평성대의 사람이라 일컬었으나, 누가 알았으랴, 세상의 도가 동쪽으로 바뀌었음을. 자장(子長)의 깊고 웅장한 학문을 배우고, 범단(范丹)의 고결하고 깨끗한 풍모를 따랐네. 지난날 교유하던 이들 중에는 오직 전사옹(田舍翁)뿐이로다.

34. 將歸紺嶽讀書。寄朴東俊。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4B

원문

世事巧中人。略不遺小大。譬如蜘蛛絲。物觸輒已掛。蠅頭循名利。至死猶不悔。首戴蟬冠囚。身被衮衣械。幸者指爲賢。誰復懲前敗。襄陽布衣身已老。有心一片淸於夷。平生坐喙硬。到骨窮且羸。詩稱國手終何用。四十龍鍾兩鬢華。眼前名利無多子。身後文章自一家。木強未肯少低屈。世上纖兒共我嗔。殷勤擧手謝昇平。潁水箕山作外臣。何日故人來遠訪。去路翩翩飛一鳥。茅嶺來從許邁遊。蘇門會見孫登嘯。作詩招隱與王孫。塵起西風恐汙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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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紺嶽(감악)으로 돌아가 글을 읽으려 하며, 박동준(朴東俊)에게 보내다] 세상일은 교묘한 사람들에게 달려 있어, 크고 작은 일을 대략 놓치지 않는다. 마치 거미줄과 같아서 물체가 닿으면 곧 걸려든다. 파리 머리만큼 작은 명리(名利)를 쫓으며 죽을 때까지 오히려 후회하지 않는다. 머리에는 매미 관을 쓴 죄수처럼 쓰고, 몸에는 곤의(衮衣)를 입은 죄수처럼 얽매여 있으면서도, 다행이라 여기는 자들은 이를 현명하다 일컫는다. 누가 다시 앞선 실패를 경계하겠는가. 양양(襄陽)의 포의(布衣) 신세는 이미 늙었으니, 마음 한 조각은 이(夷)나라 사람보다 맑다. 평생 입을 놀리는 것이 강직하였으나, 뼈에 사무칠 정도로 궁핍하고 여위었다. 시를 읊는 국수(國手)라 칭송받은들 결국 어디에 쓰겠는가. 마흔 살에 용종(龍鍾)하여 양쪽 귀밑머리가 희어졌다. 눈앞의 명리와 이익은 많지 않으나, 사후의 문장은 스스로 한 가문을 이룰 것이다. 나무처럼 강직하여 차마 조금도 굽히지 않으니, 세상의 가냘픈 아이들이 나와 함께 화를 낸다. 부지런히 손을 들어 태평성대를 찬양하고, 영수(潁水)와 기산(箕山)의 외신(外臣)이 되려 한다. 어느 날 옛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려나. 가는 길에 한 마리 새가 훨훨 날아가고, 모령(茅嶺)에서 허매(許邁)를 따라 유람한다. 소문(蘇門)에서 손등(孫登)의 장소를 만나고, 시를 지어 은거하는 이들과 왕손(王孫)을 불러들인다. 서풍이 일어 먼지가 일어나 그대를 더럽힐까 두렵다.

35. 冬日途中〔原注:三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4C

원문

凌晨獨出洛州城。幾里長亭與短亭。跨馬行衝微雪白。擧鞭吟數亂峯靑。天邊日落歸心促。野外風寒醉面醒。寂寞孤村投宿處。人家門戶早常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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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홀로 낙주성(洛州城)을 나섰다. 몇 리나 되는 긴 정자와 짧은 정자들이 이어져 있다. 말을 타고 가니 미세한 눈이 하얗게 흩날린다. 채찍을 들어 휘두르며 몇몇 푸른 봉우리들을 읊조린다. 하늘가에 해가 지니 돌아가려는 마음이 급해진다. 들판의 바람은 차가운데 취한 듯하다가도 깨어난다. 적막한 외딴 마을에 숙소를 찾아드니, 집집마다 문들은 일찍이 닫혀 있다.

원문

征鞍催發曉先鷄。紅葉鋪霜擁野蹊。原上無風殘燒斷。峯前欲雪凍雲低。畏途獨怪行人少。候館頻聞困馬嘶。廻首蒼蒼煙水暮。依然似出武陵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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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떠나는 말안장이 새벽 닭 울음소리에 재촉되니, 붉은 잎은 서리를 깔고 들길의 오솔길을 에워싸고 있다. 언덕 위에는 바람이 없어 타다 남은 흔적만이 끊어져 있고, 봉우리 앞에는 눈이 내리려는지 낮은 구름이 얼어붙어 있다. 험한 길에 홀로 가는 행인이 적음을 괴이하게 여기는데, 역관(候館)에서는 지친 말의 울음소리가 빈번히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니 저물녘의 푸르스름한 안개 낀 물결이, 여전히 무릉(武陵)의 계곡에서 나오는 듯하구나.

원문

策馬行行趁夕陽。聊尋田舍解歸裝。浮生浪迹身如寄。旅枕無眠夜更長。雪灑園林花書發。年豐村落酒猶香。主人莫問何爲客。面色皆黎語亦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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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채찍질하며 부지런히 달려 석양을 쫓는다. 잠시나마 시골을 찾아 돌아갈 채비를 푼다. 떠도는 삶에 몸은 나그네처럼 잠시 머무는 것 같으니, 나그네의 베개는 잠들지 못하고 밤은 더욱 길어만 간다. 눈은 정원에 흩뿌려져 꽃이 피어난 듯하고, 풍년이 든 마을에는 술 향기가 여전하다. 주인에게 왜 손님으로 왔느냐 묻지 마라, 얼굴빛이 모두 고향 사람 같으니 말소리 또한 고향 말과 같다.

36. 崔文胤將卜居湍州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出處信有命。大上付前定。其次固已昧。鮮以時動靜。吾儕久已窮。幽迹亦可屏。念昨過湍州。寒江魚動鏡。因思卜小隱。將買田一頃。獨往今未決。幾度懷淸穎。譬如馬繫皁。素樂煙霞境。崔君貴公子。愛山亦雅性。近欲營此樂。構築行當竟。他年償吾志。要乞岣嶁令。君歸好待我。先理一漁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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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윤(崔文胤)이 단주(湍州)에 거처를 정하려 하다] 벼슬에 나가고 물러남은 믿음직하게 운명에 달려 있고, 크게 나아감은 이미 앞서 정해진 바에 따르며, 그다음은 본래 어두운 것이니 때에 따라 움직이고 정지함이 드물다. 우리 무리는 오래전부터 이미 궁핍하였으니, 그윽한 자취 또한 멀리할 수 있다. 어제 단주(湍州)를 지나간 것을 생각하니, 차가운 강물에 물고기가 움직여 거울을 흔든다. 이에 작은 은거를 생각하며 한 조각 밭을 사려 하니, 홀로 가려 함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맑고 빼어난 경치를 그리워했으니, 마치 말에 검은 끈을 매는 것과 같다. 소박한 음악과 안개와 노을이 있는 경지이다. 최(崔) 군은 귀한 공자이니 산을 사랑하는 것 또한 우아한 성품이다. 근래에 이 즐거움을 경영하고자 하여, 집을 짓는 일이 마침 끝날 것이니, 훗날 나의 뜻을 보상받으리라. 다만 산을 오르내리는 일만 청하노니, 그대가 돌아오면 나를 잘 대접해 주게나. 먼저 낚싯배 한 척을 다스려 놓겠네.

37. 贈皇甫若水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4D

원문

交道都忘孔禰年。同枝越鳥幾生緣。曾勞旅夢飛天外。更喜淸談接枕前。不分駑駘終附尾。何時鷄犬得昇仙。如今忽看新詩句。大似春雲藹藹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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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귐의 도를 나누며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나이(를 잊을 만큼 깊었네). 같은 가지에 깃든 새가 몇 번이나 생연(生緣)을 맺었을까. 일찍이 나그네의 꿈속에서 하늘 밖으로 날아오르는 수고로움을 겪었고, 다시금 베갯머리에서 청담(淸談)을 나누는 기쁨을 누렸네. 보잘것없는 재능이라 하여 끝내 꼬리에 붙어다니니, 어찌해야 닭과 개가 신선이 되어 승선(昇仙)할 수 있을까. 이제 문득 새로 지은 시 구절을 보니, 마치 봄 구름이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듯하구나.

38. 贈金公〔原注:君綏〕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高才早出少年叢。重使文章盛海東。堂上墨君眞得妙。毫端草聖已偏工。曾聞伯蔚保家主。更喜黃門有父風。老去戀恩何敢死。白頭還見黑頭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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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재능을 가진 이가 일찍이 소년의 무리에서 나왔으니, 다시금 문장이 해동(海東)을 성하게 만드네. 당상(堂上)의 먹을 다루는 솜씨는 참으로 묘하고, 붓끝의 초서 실력은 이미 한쪽으로 치우쳐 능숙하구나. 일찍이 백울(伯蔚)이 가문의 주인이 됨을 들었는데, 다시금 황문(黃門)에 아버지의 풍모가 있음을 기뻐하노라. 늙어 가니 은혜가 그리워 어찌 감히 죽겠는가. 백발이 되어서도 다시금 검은 머리의 공(黑頭公)을 보게 되리라.

39. 次韻松風亭〔原注:三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5A

원문

亭下盤松老。臨風韻更悲。枝垂靑麈尾。幹出黑虯姿。夜子偸閑拾。新圍按夢知。欲思遺一句。才愧沈佺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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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아래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있고, 바람을 마주하니 운치가 더욱 슬프구나. 가지는 푸른 꿩의 꼬리처럼 드리워져 있고, 줄기는 검은 용의 모습처럼 솟아 있다. 밤중에 한가로이 잠시 줍다 보니, 새로이 둘러친 울타리에서 꿈을 꾸듯 알게 되네. 한 구절을 남겨 생각하려 하니, 겨우 침전기(沈佺期)에게 부끄러울 뿐이네.

원문

貞心任榮悴。何喜亦何悲。故結傍圍影。休誇直上姿。寒聲淸夜聒。孤節勁風知。更欲閑來賞。逢僧月下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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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마음은 번영과 쇠락을 맡겨 두었으니,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겠는가. 옛날의 결속은 주변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니, 곧게 솟은 자태를 뽐내지 마라. 차가운 소리는 맑은 밤에 귀를 울리고, 외로운 절개는 강한 바람이 알고 있구나. 다시 한가로이 와서 감상하고 싶으니, 달 아래에서 스님을 만나 기약을 하리라.

원문

都爾思賢操。無乃令人悲。長材似和嶠。磥砢抱幽姿。孤立如蕭瑀。忠勁君所知。不願明堂柱。聊與雲山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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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어진 절개를 생각하니, 참으로 사람을 슬프게 하는구나. 뛰어난 재목은 화교(和嶠)와 같고, 웅장함은 그윽한 자태를 품었도다. 외로이 서 있는 모습은 소우(蕭瑀)와 같으니, 충직하고 강직함은 임금이 아시리라. 명당(明堂)의 기둥이 되기를 바라지 않고, 그저 구름과 산에 머물며 기약하노라.

40. 寄趙亦樂破肉戒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5B, ITKC_MO_0003A_A001_215C

원문

癡人自養是重外。不知神氣復易敗。達者不爲口腹累。此亦養生知所愛。吾於二者常有取。寧遺其外樂其內。況視天下無正味。但以可口卽爲快。五鼎一簞何者貴。飢飡未覺肉勝菜。豹胎熊掌雖所欲。豈無古人能禁戒。若言細行不足護。此事吾疑頗亦隘。當年帛谷定何人。啖肉屠門眞可怪。至人佯狂世莫測。福且不求那有罪。無心可使物不疑。有迹恐爲魔所械。渭南老尉眞居士。從來枯淡性所耐。自云茹草欲終身。誓守斯言當不改。次律前身是智永。蔬食晚年知舊債。未聞染指徒嘗羹。屢見留根還置瀣。爛蒸匏壺當家鶩。與客飽飡先緩帶。嗟我平生負此腹。一食肯將萬錢買。年方大來日衰減。未盡一臠先厭退。近欲學君雖亦強。擊鮮不逐群兒會。念君羸瘠爲一言。却類嘲楊空見解。班超虎頭須記取。布衣不肯終飢餒。會見君王親賜食。始甘芻豢方知悔。不如早致五侯鯖。相與同持左手蟹。試號恩讎皆左袒。曉然可以知利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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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를 기르는 데 있어 외부의 것을 중히 여기니, 신기(神氣)가 다시 쉽게 무너지는 줄을 알지 못한다. 달관한 사람은 입과 배의 욕심에 얽매이지 않으니, 이것 또한 양생(養生)의 도를 아는 자가 사랑하는 바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항상 취할 바를 두고 있다. 어찌 외부의 즐거움을 버리고 내부의 즐거움을 따르겠는가. 하물며 천하에 정당한 맛이 없다고 보며, 단지 입에 맞으면 곧 즐겁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음에랴. 다섯 가지 귀한 솥의 음식과 한 그릇의 소박한 밥 중 무엇이 귀하겠는가. 배고파 밥을 먹을 때는 고기가 채소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표범의 태반과 곰의 발바닥이 비록 욕심내는 것이라 해도, 어찌 옛사람 중에 이를 금하고 경계하지 못한 이가 없겠는가. 만약 세세한 행실이 자신을 보호하기에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이 일에 대해 나는 의구심이 매우 크고 또한 편협하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백곡(帛谷) 정(定)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고기 먹는 것을 위해 도살장 문을 드나든 것이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지인(至人)은 미친 척하며 세상이 예측할 수 없게 하니, 복을 구하지 않아도 어찌 죄가 있겠는가. 무심하면 사물이 나를 의심하지 않게 할 수 있으나, 흔적이 있으면 마귀에게 얽매일까 두렵다. 위남(渭南)의 늙은 위관은 참된 거사(居士)이니, 예부터 고담(枯淡)한 성품을 견뎌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풀을 먹으며 평생을 보내려 한다 하였으니, 이 말을 지키기로 맹세했으면 마땅히 바꾸지 말아야 한다. 차율(次律) 전(前)의 몸은 지영(智永)이니, 만년에 채식을 하며 옛 인연의 빚을 갚는 것을 안다. 고기 국물에 손을 대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자주 남은 음식을 두고 돌아가며, 썩은 박과 호리병에 담긴 집안의 오리 요리를 내놓는다. 손님과 함께 배불리 밥을 먹을 때 먼저 띠를 느슨히 한다. 아, 나의 평생은 이 배를 저버렸구나. 한 끼 식사를 어찌 만 개의 돈을 주고 사겠는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날로 쇠약해지니, 고기 한 점을 다 먹기도 전에 먼저 싫증이 나 물러나게 된다. 근래에 그대처럼 배우고자 하나 또한 억지로 하는 것이니, 신선한 음식을 먹으며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임에는 따르지 못한다. 그대가 여위고 야윈 것을 생각하며 한마디 하자니, 도리어 양공(楊空)의 헛된 견해를 조롱하는 것과 같다. 반초(班超)의 호두(虎頭)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평민이라도 굶주림과 배고픔을 끝내려 하지 않는다면, 장차 임금께서 친히 음식을 내리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감추(甘芻)의 고기를 먹는 것이 후회스러움을 알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일찍이 오후경(五侯鯖)을 준비하여, 함께 왼손으로 게를 잡으며 은혜와 원수를 모두 왼편으로 드러내어(左袒), 밝게 깨달아 이해득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낫다.

41. 遊法住寺。贈存古上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萬壑千巖獨杖藜。問禪時得到曹溪。洞中地寂煙霞古。塵外心虛物我齊。況有高人迎倒屐。更驚佳論妙揮▦。直饒名利終歸去。依約靑山共卜棲。

번역

만곡천암(萬壑千巖) 사이를 홀로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선(禪)을 물으니 조계(曹溪)에서 얻었다고 하네. 동중(洞中)은 땅이 고요하고 안개와 노을이 옛날 그대로라, 속세 밖의 마음은 비어 있어 물아(物我)가 하나가 되었네. 하물며 고인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마중 나오니, 더욱 놀라운 묘한 논리를 휘두르는 것이 결락되어 뜻이 이어지지 않는다. 명리와 이익은 곧 모두 버리고 떠나버리리니, 약속한 대로 청산에 의지하여 함께 살아가세.

42. 書湛之家壁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5D

원문

賢達念蒼生。未肯輕去就。用之當作帝王師。不用乃爲窮谷叟。君不見子房袖中一卷書。隆準得遭天所授。從容談笑坐帷幄。四海英雄隨指嗾。斯人若未遇。中原非漢有。又不見子陵橫足加帝腹。一夜蒼旻動星宿。帝不敢起況敢嗔。大史朝來書謾奏。歸耕富春山。徵詔竟不受。有身當恥空磨滅。且要名留千載後。先生犖犖不可羈。何曾折腰爲五斗。功名富貴行迫逐。安得潛逃入林藪。嗟我年來老更窮。氣雖不屈長低首。爲問鷄犬肥。何如鸞鶴瘦。欲澆胸中過秦論。請君醉我千鴟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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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달인은 백성을 생각하여, 가벼이 나아가거나 물러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를 등용한다면 마땅히 제왕의 스승으로 삼아야 하거늘, 등용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궁벽한 골짜기의 노인이 될 뿐이다. 그대는 자방(子房)의 소매 속에 든 한 권의 책을 보지 못하였는가. 높은 콧대를 가진 그는 하늘의 부여함을 입어, 여유롭게 담소하며 막사 안에 앉아 있었고, 사해의 영웅들이 그의 손가락짓에 따라 움직였다. 그런 사람이 만약 때를 만나지 못했다면 중원은 한(漢)나라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자릉(子陵)이 발을 옆으로 뻗어 황제의 복부에 닿았던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어느 날 밤 푸른 하늘에서 별자리가 움직이니, 황제도 감히 일어나지 못하고 어찌 화를 내겠는가. 대사(大史)가 조정에 와서 헛되이 상소를 올렸으나, 그는 부춘산(富春山)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부름을 받고 조서를 내려도 끝내 받지 않았다. 몸이 있는 동안에는 공허하게 마멸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하며, 또한 이름을 천 년 뒤까지 남기고자 한다. 선생의 기상은 씩씩하여 얽매일 수 없으니, 어찌 일찍이 다섯 말의 곡식에 허리를 굽혔겠는가. 공명과 부귀가 쫓아오듯 다가오는데, 어찌 잠시 숨어 숲속으로 도망치겠는가. 아, 내 나날이 늙어가고 더욱 궁핍해지니, 기운은 비록 꺾이지 않았으나 머리를 길게 숙여 닭과 개가 살찌는 것을 묻는 처지가 되었구나. 차라리 난새나 학처럼 여위는 것이 어떻겠는가. 가슴 속의 과진론(過秦論)을 쏟아내고 싶으니, 부디 그대여 나를 취하게 하여 천 치(鴟)의 술을 주오.

43. 觀古人筆迹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生綃數幅出鵝溪。醉墨奇蹤似會稽。也是元和遺脚在。從今不復厭家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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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生綃) 몇 폭이 아계(鵝溪)에서 나왔구나. 취묵(醉墨)의 기이한 자취는 회계(會稽)와 같으니. 이 또한 원화(元和)의 유각(遺脚)이로다. 이제부터는 다시 집안의 닭을 싫어하지 않으리라.

44. 八月十五夜。探韻得起字。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6B

원문

造物與人多所忌。晴陰變化聊幻戲。每恐中秋有陰雨。故將辜負詩人意。忽從今夜浮雲收。簾捲高樓天似水。人間自古重此月。曾伴風流謫仙醉。徘徊對影成三人。淸光幾照金樽裏。我乘狂興尋君家。試看松陰淸滿地。孤輪停午光灎灎。望欲更殘懶欲睡。主人好事亦好客。旋酌鵝黃蹴我起。聳肩危坐共閑吟。顚倒如鴉筆下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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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造物)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꺼리게 한다. 맑음과 흐림의 변화는 그저 환상적인 놀이와 같다. 매번 중추(中秋)에 흐린 비가 내릴까 두려웠으니, 이는 시인의 뜻을 저버리게 될까 염려함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밤 부유하는 구름이 걷히더니, 발을 걷어 올린 높은 누각의 풍경이 하늘이 물과 같이 보인다. 인간 세상에서는 예부터 이 달을 중히 여겨, 풍류를 즐기던 적선(謫仙)과 함께 취하곤 하였다. 거닐며 그림자를 마주하니 세 사람이 된 듯하다. 맑은 빛은 금잔 속에 몇 번이나 비치는가. 나는 흥겨운 마음을 타고 그대의 집을 찾아간다. 소나무 그림자가 땅에 맑게 가득한 것을 보라. 외로운 달은 한낮의 빛처럼 맑게 고여 있다. 바라보니 달이 더욱 기울려 하여 게으르게 잠이 들고 싶다. 주인은 좋은 일을 즐기며 손님 대접도 잘하니, 곧바로 아황(鵝黃)색 술을 따라 나를 일으켜 세운다. 어깨를 솟구치며 높이 앉아 함께 한가로이 시를 읊으니, 그 모습이 마치 까마귀 붓(鴉筆)으로 쓴 글자처럼 뒤집히고 거꾸로 되어 있다.

45. 夜宿亦樂家。雨中有作。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閑中相共聚華堂。衮衮淸談興味長。問易每過王湛宅。圍棋曾賭謝公莊。秋光暗淡園林換。晚雨霏微枕簟涼。他日江南成遠別。却思今夜對藜牀。

번역

〈역락가(亦樂家)에서 밤을 묵다. 비 오는 중에 짓다.〉 한가로이 서로 모여 화려한 집에서 함께하였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맑은 담론은 흥미가 길구나. 물을 물을 때마다 매번 왕담(王湛)의 집을 지나쳤고, 바둑은 일찍이 사공(謝公)의 장원에서 두었었지. 가을 빛은 어둑어둑하여 원림(園林)은 바뀌었는데, 저녁 비는 가늘게 내리고 베갯잇은 서늘하구나. 훗날 강남(江南)에서 멀리 이별하게 되면, 도리어 오늘 밤 명아주 놓인 상을 마주하던 때를 생각하리라.

46. 梁國俊家鞓紅牧丹〔原注:中書舍人王慶世壻。〕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16C

원문

侯家池館競栽培。誰似城西賀秀才。陣陣天香薰暖蕊。酣酣卯酒入紅顋。忽從道士庭前看。因憶君王殿後開。別有一枝猶未發。故應留待舍人來。天子初移禁苑栽。玉堂曾對醉翁才。低昂晚態風驚睡。寂寞殘粧雨洗顋。詩老莫辭携酒往。天工故遣佇春開。一生同賞無多子。好約明年再看來。

번역

양국준(梁國俊)의 집에서 붉은 모란을 심었으니, [중서사인(中書舍人) 왕경세(王慶世)의 사위이다.] 후(侯) 씨 집안의 못가 정원에서 재배하는 것이 경쟁하듯 화려하니, 성 서쪽의 하(賀) 수재와 누가 닮았으랴. 꽃향기가 번번이 피어나 따스한 꽃술을 향기롭게 하고, 새벽 술이 한창이라 붉은 뺨에 스며드네. 문득 도사의 정원 앞에서 보게 되니, 그대를 생각하게 되도다. 대궐 뒤편에 피어난 것이 있으니, 유독 한 가지가 아직 피지 않았구나. 그러니 마땅히 사인(舍人)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천자가 처음 금원(禁苑)에서 옮겨 심었으니, 옥당(玉堂)에서 일찍이 취옹(醉翁)의 재주를 마주하였도다. 저물녘의 기운이 낮게 오르내리며 바람은 잠을 깨우고, 적막한 가운데 남은 화장(粧)은 빗물에 씻겨 뺨에 흐르네. 시 늙은이여, 술을 들고 가는 것을 마다하지 마오. 하늘의 솜씨가 일부러 봄을 머물게 하여 꽃을 피웠으니, 평생 함께 감상할 날이 많지 않으리라. 내년에도 다시 보러 오기로 좋게 약속하세.

47. 贈皇甫兄弟

문체: 詩類 / 詩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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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曾聞皇甫湜。間生當大曆。頽波將墜地。拯起眞有力。茫然千百年。誰是繼高迹。今遭書六厄。吾道幾乎息。三日號國中。圓冠者屛匿。知君卽前身。姓字合於昔。復此海之東。二箇文星謫。釋老久塞路。獨欲辭而闢。斯文信未喪。乃知天意惜。危雖無輟業。家傳杜預癖。胸呑萬卷書。筆可千人敵。優游獨立下。一日有所益。甲乙懸牙籤。縱橫架上策。時無好事者。問字楊雄宅。咄彼兒童輩。狂癡那得識。譬如飯囊耳。置之勿復責。自笑隣舍翁。閉門守荒僻。常夜病無燈。偸鑿居家壁。掩卷聊高枕。山雨浪浪滴。樂此足忘憂。三公吾不易。俗議無復恤。相與適其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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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식(皇甫湜)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대력(大曆) 연간에 태어났다. 물결에 휩쓸려 땅으로 떨어질 듯했으나, 참된 힘으로 건져 올려졌다. 아득한 천백 년 동안 그 높은 자취를 이을 이가 누구인가. 지금 글을 쓰니 육액(六厄)의 운수를 만나 나의 도가 거의 끊어질 듯하다. 사흘 동안 나라 안에서 통곡하니, 관을 쓴 자들은 모두 숨어버렸다. 그대가 바로 전생의 모습임을 알겠으니, 성명 또한 예전과 일치한다. 다시 이 바다의 동쪽에서 두 개의 문성(文星)이 유배를 왔구나. 석노(釋老)의 길은 오래도록 막혀 있으나, 홀로 떠나고자 하며 길을 열려 한다. 스문(斯文)은 참으로 사라지지 않았으니, 곧 하늘의 뜻이 아까워함을 아는 것이다. 위태로움이 비록 학업을 중단하게 하지는 못하겠으나, 집안에 두예(杜預)의 기질이 전해 내려오니 가슴에는 만 권의 책을 품었고, 붓은 천 명의 적수가 될 만하다. 유유자득하게 홀로 아래에 머물며, 하루하루 얻는 바가 있다. 갑을(甲乙)의 계절에는 책의 표식인 아첨(牙籤)이 걸려 있고, 종횡으로 서가에 책이 놓여 있다. 때때로 좋은 일이 없을 때는 양웅(楊雄)의 집을 묻는다. 아, 저 어린 무리들이여, 광치(狂癡)한 자들이 어찌 알겠는가. 비유하자면 밥통(飯囊)과 같으니, 두지 말고 다시 꾸짖지 마라. 이웃집 노인을 스스로 비웃노니, 문을 닫고 거칠고 외진 곳을 지키며, 밤마다 등불도 없이 병들어 있다가, 몰래 집 벽을 뚫고, 책을 덮고 잠시 고침(高枕)하며 지낸다. 산비가 낭랑하게 떨어지니, 이것을 즐겨 근심을 잊기에 충분하다. 삼공(三公)의 자리도 나는 바꾸지 않을 것이니, 세상의 논의를 다시는 개의치 않고, 서로의 형편에 맞게 지내리라.

48. 途中暴雨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天低野闊雨跳珠。猛勢橫空望却無。想得符堅初戰退。千兵萬馬一時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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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낮고 들판은 넓은데 빗방울은 구슬처럼 튀어 오른다. 맹렬한 기세가 허공을 가로지르니 바라보아도 끝이 없다. 부견(符堅)이 처음 싸움에서 물러났던 것을 생각하니, 천병만마(千兵萬馬)가 한꺼번에 달려드는 듯하다.

49. 有感

문체: 詩類 / 詩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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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七年浪迹寄南州。輦下重來夢寐遊。早抱虛名驚衆耳。那知有命壓人頭。蛾眉錯畫終辭國。猿臂無功竟不侯。世受君恩是文翰。麤才何日可能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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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떠돌며 남주(南州)에 기탁하였네. 임금의 수레 아래로 거듭 찾아가니 꿈속에서도 노니는구나. 일찍이 헛된 이름을 품어 사람들의 귀를 놀라게 하였으나, 운명이 사람의 머리를 누를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아름다운 눈썹을 잘못 그려 결국 나라를 떠나고, 원숭이 같은 팔의 용맹함도 소용없어 끝내 제후가 되지 못하네. 세상에서 임금의 은혜를 입은 것은 문한(文翰) 덕분이니, 거친 재주로 어느 날에나 보답할 수 있을까.

50. 題湛之家王可訓家春景山水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湖上靑山山上屋。山色湖光春更綠。潮來潮去怒濤呑吐疑無陸。漁翁歸去一竿竹。鶴汀鳧渚知幾曲。遠近蘭皐花簇簇。縹緲天涯遙極目。洞庭波淨日暮孤帆何處宿。摩詰後孫心不俗。摸寫鵝溪綃一幅。李侯家藏千萬軸。此本尤非世所蓄。至寶由來鬼神欲。再三珍重爲君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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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위의 푸른 산에는 산속의 집이 있고, 산빛과 호수의 빛은 봄이 되어 더욱 푸르구나.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나갈 때 사나운 파도가 삼켰다 뱉어내니 육지가 없는 듯하네. 어부는 낚싯대 하나 들고 돌아가고, 학이 노니는 물가와 오리가 노니는 모래톱은 그 굽이진 모양을 알 수 없구나. 멀고 가까운 난초 언덕에는 꽃이 층층이 피어 있고, 아득한 하늘 끝은 눈을 멀게 할 만큼 멀구나. 동정(洞庭)의 물결은 맑은데 해 저문 뒤 외로운 돛배는 어디에 머무는가. 마길(摩詰)의 후손은 마음이 속되지 않아, 아계(鵝溪)의 풍경을 비단에 한 폭 베껴 그렸네. 이후(李侯)의 집에는 천만 축이나 소장되어 있으나, 이 본은 특히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귀신조차 탐낼 만한 지보(至寶)로다. 재삼 소중히 여기며 그대에게 부탁하노라.

51. 贈演之

문체: 詩類 / 詩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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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風生虛閣抵千金。滿院荒涼碧樹深。不覺天西殘月落。終宵空伴草蟲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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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빈 누각에 불어와 천금의 무게를 견디는 듯하고, 마당 가득 황량한 가운데 푸른 나무만 깊구나. 어느덧 서쪽 하늘에는 잔월이 지고, 밤새도록 허공에서 풀벌레 소리만 벗 삼아 읊조리네.

52. 次韻贈若水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與子同時大曆年。平生交分契深緣。詩名迥出蘇梅右。文格須廻漢魏前。欲向雲霄追駿足。自嗟山澤伴癯仙。郢中欲繼陽春曲。慙愧皇華也盍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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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나는 대력(大曆) 연간에 함께 태어났네. 평생의 사귐은 깊은 인연으로 맺어졌도다. 시문(詩文)의 명성은 소매우(蘇梅右)를 훨씬 뛰어넘고, 문장의 격조는 모름지기 한(漢)나라와 위(魏)나라 시대를 회귀할 만하네. 구름 위 높은 하늘로 나아가 뛰어난 발자취를 쫓고 싶으나, 스스로 산과 못에 머물며 야윈 신선과 벗하고 있음을 탄식하노라. 영중(郢中)에서 계양(繼陽)의 곡조를 잇고 싶으나, 황화(皇華)에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

53. 甲午年夏。避地江南。頗有流離之歎。因賦長短歌。命之曰杖劍行。

문체: 詩類 / 詩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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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骯髒六尺身。一落乾坤內。桑弧蓬矢射四方。男兒有膽如斗大。況有狂風吹。波濤搖四海。蛟龍魚鼈皆未安。出穴動蕩失所在。時無豪傑士。誰赴功名會。嗟哉我若匏瓜繫。揮斥難窮八極外。長安塵土中。高枕臥五載。恒飢已變顏色黧。牢落枯腸千卷書。及骭亦足温。滿腹不願餘。可笑文章不直錢。萬乘何曾讀子虛。紛紛世上鄙夫輩。舐痔猶得三十車。我欲唾面去。浩然賦歸歟。休向閭閻老一身。如籠中鳥池中魚。盡室萬里行。蕭蕭一疋驢。家山急赴秋風至。蓴羹一杯方有味。遲遲回首望中原。可憐久作風波地。黃鷄夜鳴非惡聲。起舞自有英雄志。誰言婦女不勝衣。長策雄謀人莫知。作鎚誤擊秦。脫身遊下邳。從容跪授圯橋履。會須不後老人期。笑彼拔山力。捕取等嬰兒。龍顏隆準一相遇。萬戶封侯帝者師。丈夫事業固如是。何爲乞米還遭嗤。一葦江之陽。歸來宿舂糧。雲煙宛若畫。草樹巧如粧。浮家泛宅任平生。胸中自有無何鄕。此行不是求爲田。祇恐祖生先著鞭。感慨無言淚如洗。茫茫鳥外空長天。匣中霜劍寒三尺。壯士有心終報國。

번역

더럽고 지저분한 육척의 몸이 한 번 천지 사이에 떨어지니, 뽕나무 활과 쑥 화살로 사방을 쏘아대는구나. 사내라면 대접만큼 큰 담력을 가져야 하거늘, 하물며 광풍이 불고 파도가 사해를 흔드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교룡과 물고기, 자라들이 모두 편안치 못하여, 굴에서 나와 요동치며 머물 곳을 잃었도다. 때에 호걸과 선비가 없으니, 누가 공명(功名)을 위해 나아가겠는가. 아아, 나는 박이나 오이처럼 매달려 있는 처지라, 팔극(八極) 밖으로 휘저으며 나아가기 어렵구나. 장안(長安)의 먼지 속에서 5년 동안 높은 베개를 베고 누워 있으니, 늘 배가 고파 얼굴색이 검게 변하였도다. 쇠락한 마른 창자에 천 권의 책이 있으니,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도 충분히 온기를 더해준다. 배를 가득 채우고 싶지는 않으나, 문장이 돈이 되지 못함이 가소롭구나. 만 승(萬乘)의 군주가 어찌 자허(子虛)의 글을 읽었겠는가. 세상에 분분한 비루한 무리들은 치질을 핥으면서도 서른 대의 수레를 얻는구나. 나는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어 쫓아버리고 싶구나. 호연(浩然)한 기운으로 시를 지어 돌아가리라. 저잣거리에서 한 몸을 늙게 하지 않으리라. 마치 새장 속의 새나 연못 속의 물고기처럼, 만 리 길을 떠나리라. 쓸쓸히 나귀 한 마리를 끌고 가니, 집으로 가는 산길이 급하고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순갱(蓴羹) 한 그릇이 비로소 맛이 있으니, 더디게 고개를 돌려 중원(中原)을 바라본다. 오랫동안 풍파의 땅에 머물렀음이 가련하구나. 황계(黃鷄)가 밤에 우는 것은 악한 소리가 아니니, 춤을 일으키면 스스로 영웅의 뜻이 있도다. 누가 여인이 옷을 이기지 못한다 말하는가. 긴 책략과 웅대한 도모를 사람은 알지 못하리라. 망치를 휘둘러 진(秦)나라를 잘못 쳤다 하나, 하비(下邳)에서 몸을 빼내어, 여유롭게 기교(圯橋)의 가르침을 무릎 꿇고 받으리라. 반드시 노인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으리니, 산을 뽑는 힘으로 저들이 아이를 잡듯 웃어넘기리라. 용안(龍顏)과 융준(隆準)한 얼굴을 한 이를 한 번 만나면, 만 호(萬戶)의 제후가 되는 것은 제왕의 스승이 될 일이라. 대장부의 사업은 본래 이와 같거늘, 어찌하여 쌀을 구걸하며 비웃음을 사겠는가. 한 척의 조각배를 타고 강 저편으로 가, 돌아와 용량(舂糧)에서 묵으리라. 구름과 안개는 마치 그림 같고, 풀과 나무는 정성껏 단장한 듯하구나. 집을 띄우고 배를 저으며 평생을 보내니, 가슴 속에는 스스로 무(無)의 고향이 있도다. 이번 행차는 결코 전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요, 다만 조생(祖生)이 먼저 채찍을 들었을까 두려울 뿐이라. 감개무량하여 말없이 눈물만 씻듯 흐르는데, 망망한 새 너머로 하늘은 끝없이 길구나. 갑(匣) 속의 서늘한 칼날은 세 척의 한기를 머금었으니, 장사(壯士)는 마음이 있어 끝내 나라에 보답하리라.

54. 次韻贈李上人覺天

문체: 詩類 / 詩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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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落髮辭家在妙年。法門深種善因緣。時時大振金毛吼。往往長齋繡佛前。居易須歸兜率界。嵇康不是洞天仙。羨他明日靑山路。竹杖芒鞋去浩然。小隱林泉送幾年。道心聊學葆虛緣。孤雲自去靑天外。萬木皆春病樹前。祇爲在家靈運佛。休尋買藥長房仙。近來去眼交遊盡。唯有能詩釋皎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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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깎고 집을 떠나 젊은 나이에 출가하였네. 법문(法門)에 깊이 선한 인연을 심었으니, 때때로 금모(金毛)가 크게 울부짖고, 종종 불상 앞에 정성껏 공양하며 수를 놓네. 머무는 곳이 바뀌면 마땅히 도솔계(兜率界)로 돌아가야 하리니, 혜강(嵇康)은 동천(洞天)의 신선이 아니었네. 그가 내일 청산 길을 떠나 대나무 지팡이와 짚신을 신고 호연(浩然)한 기운으로 가는 것을 부러워하네. 숲과 샘에서 은거하며 몇 년을 보냈는가. 도의 마음을 배우며 허정(虛靜)한 인연을 지키려 하네. 외로운 구름은 스스로 청천 밖으로 떠나가고, 만 가지 나무는 모두 봄을 맞은 병든 나무 앞에 있네. 단지 집에 머물며 영험한 운을 불교에 쏟고 있을 뿐이니, 약을 사고 장방(長房)의 신선을 찾는 일은 그만두게나. 근래에는 교유하는 눈길이 다 끊겼으니, 오직 시를 잘 짓는 석교연(釋皎然)만이 있을 뿐이네.

55. 次韻李相國〔原注:知命〕見贈長句〔原注:二首○前篇去幷字等四韻〕

문체: 詩類 / 詩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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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周詩古有三百篇。風亡雅缺誰復補由庚。後來作者競馳騖。爭欲牢籠撑抉乾坤精。紛紛徐庾誇浮艶。眞同傖父賦出可以覆醬罌。皇天不欲喪斯文。乃出賢公爲國楨。揮毫鼓吻取富貴。淸朝高選先登瀛。獨鍾絶藝冠今古。文止退之書止顏眞卿。優入風騷閫域中。沈謝曹劉應減名。摩詰中朝一詞客。從來宿習由多生。當使君苗焚筆硯。豈有陸子投箱籯。才多學富賈長頭。紙爲田地舌爲耕。和音逸響忽交發。有如丹山鸑鷟翺翔來集朝陽鳴。長驅遠騁勢益壯。又似東溟巨鼇屓振搖三山傾。傳門學業自名家。白眉最良諸弟兄。風流不減謫仙人。飮盡千鍾頰未赬。一朝承恩入翰林。制作自與鬼神爭。若非錦繡爲五藏。又安得名章俊語開口俱天成。杜陵野叟稱老手。往往氣屈屢乞盟。玉皇召見賜顏色。淸泉灑面解宿酲。虎殿龍樓侍歡宴。君臣賡載歌芩苹。沈香亭上勅進淸平新樣調。管絃交奏和舂喤。興酣十幅筆一息。飄飄俊思博且宏。苑中桃杏齊開拆。不待羯鼓催打如春霆。語道格峭異衆家。譏評不問癡鍾嶸。已抱文章動聖人。譽滿天下何闐轟。高懷磊落狹區宇。醉墨狂吟賦大鵬。直敎名價凌三都。光焰萬丈凝餘晶。朝天儤直入鑾坡。風搖鈴索傳琤琤。千門上鑰黃昏靜。紫微花落如摧瓊。朱衣雙引遙傳呼。履聲響廊踏彭鏗。問神宣室夜漏盡。侍講經筵春晝晴。試草絲綸五色書。解呵凍筆宮娃媖。簪紳缺望無出右。當時閑步靑雲程。丈夫仕官眞罕比。食列五鼎家千兵。中使來宣上樽酒。禁林屢賜金盤橙。宸心愛養日益重。親將御手時調羹。致君堯舜自有術。功成可使陳六韺。雖懷勇退急流中。身與一世爲重輕。心中獨有羲皇地。不將塵事都經營。超然自放繩墨外。芥視祿位輕三旌。仙風道骨眞有餘。久欲飛昇朝玉京。紱冕無異居雲山。紛紛世故未肯嬰。五湖何必逐鴟夷。胸中自有汪汪萬頃碧水泓。要將陶冶及生人。愼勿學淵明歸去田園坐種秔。黃扉當作黑頭公。兩鬢今無雪一莖。願公努力重築大平基。不負孤忠報國誠。襄陽布衣窮且老。早思附驥爲飛蝱。欲作曲江亭上春風燒尾宴。尊前解唱喜遷鸎。禮闈見擯誠我分。戰藝無奈無先聲。却拋文卷將向江東去。徘徊來謁朱門呈。爲詩贈我亦目寫。落花飛雪滿紙多廻縈。與人不肯趁姿媚。自誇老硬天骨淸。辭工墨妙兼得詩鳴與草聖。旋令觀者空嗟驚。興來長讀卷還舒。但覺奇彩爛爛奪目睛。已勝明珠三十箇。何患空囊錢不盈。汝南他日論人物。許預品題月旦更。綠綺塵埃可揮拂。爲公更鼓一再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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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周詩)》에는 옛날부터 300편이 있었다. 풍(風)은 사라지고 아(雅)는 결락되었으니 누가 다시 보충하겠는가, 유경(由庚)이 그러하였다. 후대의 작가들은 다투어 치달으며, 다들 건곤(乾坤)의 정수를 가두어 뽑아내고자 한다. 분분히 서유(徐庾)는 부질없는 아름다움을 뽐내니, 참으로 광대(傖父)가 부은 것과 같아 장(醬)을 담는 항아리를 뒤엎을 수 있을 정도이다. 황천(皇天)은 이 문장(斯文)이 쇠락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어, 이에 현공(賢公)을 내어 나라의 기둥으로 삼으셨다. 붓을 휘두르고 입을 놀려 부귀를 취하시니, 청조(淸朝)의 높은 선발로 먼저 영영(瀛)에 오르셨다. 홀로 절묘한 재주로 금고(今古)에 으뜸이시니, 문장은 퇴지(退之)와 같고 글씨는 안진경(顏眞卿)과 같다. 풍류는 풍조(風騷)의 문단에 드셨으니, 심(沈)·사(謝)·조(曹)·유(劉)의 명성은 마땅히 줄어들 것이다. 마결(摩詰)은 조정에서 한 마디 말로 손님이 되었으니, 예부터 숙달된 것이 다생(多生)으로부터 온 것이다. 마땅히 임금님께서 묘(苗)를 태우듯 붓과 벼루를 태우게 하실 것이니, 어찌 육자(陸子)가 상자에 던져 넣는 것과 같겠는가. 재주가 많고 학문이 풍부하여 가(賈) 장두(長頭)와 같다. 종이는 밭이 되고 혀는 쟁기가 된다. 화음(和音)과 일탈(逸響)이 홀연히 교차하여 터져 나오니, 마치 단산(丹山)의 鸑작(鷟)이 날아와 모여들고 조양(朝陽)이 울리는 것과 같다. 멀리 내달리는 기세는 더욱 씩씩하고, 또한 동해(東溟)의 거대한 자라가 세 산을 기울게 하며 몸을 흔드는 것과 같다. 문중의 학업은 스스로 명가(名家)로 이름이 나니, 백미(白眉)가 가장 좋은 형제들이다. 풍류는 적선(謫仙)에 못지않으니, 천 종의 술을 다 마셔도 뺨이 붉어지지 않는다. 어느 날 은혜를 입어 한림(翰林)에 입성하니, 작품을 짓는 것이 스스로 귀신과 다투는 듯하다. 만약 금수(錦繡)가 오장(五藏)을 위함이 아니라면, 또 어찌 명문장과 준걸한 말을 얻어 입을 열 때마다 모두 하늘이 이룬 듯하겠는가. 두릉(杜陵)의 들판 노인이 노련한 손수라고 칭송하며, 종종 기운이 꺾여 여러 번 맹약을 청한다. 옥황(玉皇)께서 불러 보시고 안색을 내려주시니, 맑은 샘물이 얼굴에 뿌려져 숙취를 풀어준다. 호전(虎殿)과 용루(龍樓)에서 즐거운 연회를 모시니, 군신(君臣)이 이어져 노래하고 풀을 먹는다. 심향정(沈香亭) 위에서 청평(淸平)의 새로운 가락을 내리시니, 관현(管絃)이 교차하여 연주되며 화답이 울려 퍼진다. 흥이 고조되어 열 폭의 글을 한 호흡에 쓰시니, 표표한 준수한 생각이 넓고도 웅장하다. 원중(苑中)의 복숭아와 살구가 일제히 피어나니, 마치 봄의 천둥소리처럼 갈고(羯鼓)를 치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말씀하시는 도리가 높고 엄격하여 여러 집과 다르니, 비평하는 이들이 어리석은 이들을 묻지 않는다. 이미 문장으로 성인(聖人)을 감동시켰으니, 천하에 명성이 가득하여 떠들썩하다. 높은 뜻이 늠름하여 좁은 세상을 가두기 어려우니, 취한 먹물로 미친 듯이 읊조리며 대붕(大鵬)의 부를 짓는다. 곧 명성이 삼도(三都)를 능가하게 하리라. 만 장의 빛이 남은 수정처럼 응결되니, 아침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란파(鑾坡)로 들어간다. 바람에 흔들리는 방울 소리가 쟁쟁하게 들리고, 천 개의 문에 자물쇠를 채우니 황혼이 고요하다. 자미(紫微)의 꽃이 떨어지니 마치 옥을 꺾은 듯하고, 붉은 옷을 입은 이가 쌍으로 멀리서 불러오니, 신발 소리가 복도에 울리며 팽갱(彭鏗)의 소리 같다. 신선(神宣)에게 물으니 선실(宣室)의 밤 누각의 누각(漏)이 다하였고, 시강(侍講)의 경연은 봄날의 맑은 낮이다. 다섯 색의 서신을 초안하시니, 추운 붓을 풀며 궁녀(宮娃)들이 웃는다. 관직의 명망이 부족하여 나아갈 곳이 없으니, 당시에 한가로이 청운(靑雲)의 길을 걷는 장부의 관직 생활은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오정(五鼎)의 반열에 올라 천 병(兵)을 거느리는 집안이다. 중사(中使)가 와서 술을 올리고, 금림(禁林)에서 자주 금반(金盤)의 오렌지를 내리신다. 임금의 마음이 아끼고 기르심이 날로 중해지니, 친히 어수(御手)로 국을 저어주시며 임금을 받드는 요순(堯舜)의 술법이 저절로 있다. 공을 이루면 진육악(陳六韺)을 부릴 수 있다. 비록 용퇴(勇退)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급류 속에 있으나, 몸은 한 세대의 중함과 가벼움에 달려 있다. 마음속에는 홀로 희황(羲皇)의 땅이 있으니, 속세의 일을 모두 경영하지 않는다. 초연히 스스로 밧줄과 먹물 밖으로 벗어나니, 녹봉과 관직을 견계(旌) 세 개보다 가볍게 여긴다. 선풍도골(仙風道骨)이 참으로 남아 있으니, 오래도록 옥경(玉京)으로 날아오르고자 한다. 면류관을 쓰는 것이 운산(雲山)에 거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분분한 세상일에는 얽히기를 원치 않는다. 오호(五湖)에서 어찌 반드시 치이(鴟夷)를 쫓겠는가, 가슴 속에는 저절로 넓고 넓은 만경창파의 푸른 물이 흐른다. 사람을 도야(陶冶)하고자 한다면, 부디 도연명(陶淵明)처럼 돌아가 전원에서 곡식을 심는 것을 배우지 말라. 황비(黃扉)를 마땅히 흑두공(黑頭公)처럼 대하라. 양쪽 귀밑머리에 이제 눈(雪) 한 가닥이 없으니, 원컨대 공께서 힘써 대평(大平)의 기틀을 다시 세워 고독한 충성으로 나라에 보답하는 정성을 저버리지 마소서. 양양(襄陽)의 포의(布衣)가 궁하고 늙어가니, 일찍이 기마(驥馬)에 붙어 날아오르기를 생각한다. 강정(江亭) 위에서 봄바람에 타오르는 소열연(燒尾宴)의 곡을 지어, 존전에서 노래하며 기쁜 이주(移州)를 부르리라. 예위(禮闈)에서 퇴출당함이 참으로 나의 운명이니, 전예(戰藝)는 어찌할 수 없이 선성(先聲)이 없구나. 도리어 문권(文卷)을 던져버리고 강동(江東)으로 가려 한다. 배회하며 주문(朱門)을 찾아와 정성을 바치니, 시를 지어 나에게 주며 눈으로도 써준다. 낙화와 비설이 종이에 가득하여 여러 번 맴도니, 사람과 더불어 아첨하는 자세를 취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노경(老硬)한 천골(天骨)의 맑음을 자랑한다. 글씨는 묘하고 시는 울림이 있어 초성(草聖)의 경지까지 겸비하였으니, 돌이켜 보는 이들이 공허하게 탄복하며 놀란다. 흥이 나면 길게 읽다가 다시 펼치니, 오직 기이한 채색이 눈부시게 빛남을 느낄 뿐이다. 이미 밝은 구슬 서른 개를 얻은 것보다 나으니, 어찌 빈 주머니에 돈이 차지 않음을 걱정하겠는가. 여남(汝南)의 다른 날 인물을 논하듯, 달의 품계(月旦)를 품평하기를 허락한다. 녹기(綠綺)의 먼지는 떨쳐버릴 수 있으니, 공을 위해 다시 한번 연주하리라.

원문

總角當年識聲律。中朝高士希唐庚。寖成病癖如啖炭。仡仡自苦疲心精。飫韓饜柳聊自足。小器已盈如甁罌。學賦猶能敵楊子。爲詩何足侔劉楨。幸生天下無事時。微風不動搖東瀛。聖主垂情好用儒。白衣寒士重公卿。富貴眞吾囊中物。唾手直欲收功名。致君自可興王道。漢帝何如棄賈生。要將經術施諸事。窮書不愧老桓榮。力排莊周逐諸子。笑罵只合黃筐籯。濟時及物爲吾志。肯於雲臥甘芝耕。空嗟獨唱尙無和。有類蛭螾徒勞鳴。與人說事不自休。飜瀾鼓舌江河傾。早負能修五鳳樓。繩樞草舍輕諸兄。蘭臺金馬簉群彥。何日腰黃眼亦赬。翰林場中曾校藝。屢與龍虎時交爭。天亡垓下非我罪。其奈見敗當垂成。會稽餘恥欲一雪。慷慨自指穹蒼盟。未因一跌廢舊學。沈酣六籍如煩酲。贏糧所至將問道。不辭百舍逕苹苹。十年苦學久待問。竊疑撞鍾韻愈喤。丈夫何用更雕蟲。扶持周孔意甚宏。肯張異說驚盲聾。遇事蜂發如振霆。欲令文格變隋餘。絺繪不足數李嶸。吾家伯父與先子。共振雄文隱地轟。連中高科時獨步。圖南水擊天池鵬。玉堂舊草堆成山。可與日月爭光晶。一朝聯步花塼上。壎箎相應和音琤。方將乞公收成編。藏之屋壁時敲瓊。一經喪亂成煨燼。念此曾無淚眼睛。如今欲效元和脚。如畫嫫姆效媌媖。門衰祚薄久汨沒。敢思刷翼靑雲程。況吾性本多迕俗。放曠眞同阮步兵。早觀名位有何味。羽化眞如蠹食橙。掣身一去僅可免。吹虀亦足懲於羹。却作溪山漫浪叟。爲文聊擬補韶韺。平生只有詩千首。芥視萬戶封侯輕。大平不遇亦可樂。久向菟裘已得營。壯心老去便全降。低摧却倒風中旌。閑居賦罷囚山篇。夢魂不復飛天京。一懲危險不欲再。達士何爲禍所嬰。欲俟河淸壽幾何。古無才與時相幷。昨聞神聖急求理。詔書初下選賢英。搜獵群才起幽隱。高張羅網連天橫。片善不欲遺巖谷。豈使一漏呑舟鯨。四方多士皆皐枚。胸中學海波泓泓。德行無非世所貴。豐年美玉荒年秔。翹翹煌煌皆出類。春蘭秋菊初擢莖。竟奮經綸裨帝化。應堪上應勤求誠。嗟吾三釜未逮親。千鍾不啻蚊與蝱。晚登一第雖無用。谷口思爲手放鸎。強將淺技復求售。雷門布鼓猶無聲。不虞楚卞足三刖。抱玉區區還自呈。激昂膽氣角群雄。徒勞吻燥心纏縈。占辭豈免多玷缺。祇累宗工鑑裁淸。失意歸來茅屋底。閉門不出懷憂驚。賦妙知非日五色。固宜一見還迷睛。豈期爲我飛一唾。琅琅懷袖珠璣盈。願遊門下終效節。歲寒此意豈易更。待公朝夕登黃閣。撰詞重獻沙堤行。

번역

총각(總角) 시절에 그 시절에 성률(聲律)을 알았으니, 조정의 고결한 선비 중 당경(唐庚)과 같은 이가 드물다. 성취를 이루니 병적인 습관이 마치 숯을 삼키는 것 같고, 꿋꿋하게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며 정력을 소모한다. 한나라의 풍요로움과 버드나무의 즐거움으로 겨우 스스로 만족하니, 작은 그릇이 이미 병이나 항아리처럼 가득 찼다. 부를 짓는 재주는 오히려 양자(楊子)와 겨룰 만하나, 시를 짓는 데는 어찌 유정(劉楨)과 비견될 수 있겠는가. 다행히 천하가 태평한 시절에 태어나, 미풍이 동영(東瀛)을 흔들지 못한다. 성스러운 임금께서 정을 베풀어 유생을 쓰기 좋아하시니, 백의(白衣)의 한 선비가 공경(公卿)을 중히 여긴다. 부귀는 참으로 내 주머니 속의 물건이니, 손을 털어 곧바로 공명을 거두고 싶다. 임금을 받들어 왕도(王道)를 일으키는 것은 스스로 가한 일인데, 한나라 황제는 어찌하여 가생(賈生)을 버렸는가. 마땅히 경술(經術)을 써서 일을 행해야 하니, 글을 궁구함에 노환(老桓)과 영(榮)에게 부끄럽지 않다. 힘써 장주(莊周)를 물리치고 제자(諸子)들을 쫓아내니, 웃으며 꾸짖는 것이 오직 황방(黃筐)의 폄(폄)에 합당하다. 세상을 구제하고 만물을 대하는 것이 나의 뜻이니, 구름 위에 누워 지초를 캐는 일에 어찌 달가워하겠는가. 홀로 노래 부르나 화답하는 이 없어 공허이 탄식하니, 거머리나 거머리 같은 부류가 헛되이 울어대는 것과 같다. 사람들과 일을 논하며 쉬지 않으니, 물결을 일으키고 혀를 놀려 강하를 기울게 한다. 일찍이 오봉루(五鳳樓)를 닦는 재능을 저버렸으니, 중심축을 잡는 초사(草舍)가 여러 형제보다 가볍다. 난대(蘭臺)와 금마관(金馬館)에 인재들이 모여드는데, 어느 날에야 허리에 황색 띠를 두르고 나아가겠는가. 한림원(翰林院) 마당에서 일찍이 재주를 겨루었고, 여러 번 용호(龍虎)와 같은 이들과 교쟁하였다. 하늘이 해하(垓下)에서 망하게 한 것은 나의 죄가 아니나, 패배를 목격하니 공적이 무너질 때가 되었구나. 회계(會稽)에 남은 치욕을 한 번에 씻어내고자 하여, 의기넘치게 스스로 하늘을 향해 맹세한다. 한 번의 낙방으로 옛 학문을 폐하지 않았으니, 육경(六籍)을 깊이 탐독함이 마치 술에 취한 듯하다. 양식을 얻는 곳마다 도를 물을 것이니, 백 가지 집을 마다하지 않고 평평한 길로 가리라. 십 년간 고생하며 공부하며 오래도록 문답을 기다렸으니, 종을 치는 듯한 운율이 더욱 드높아질까 생각한다. 대장부가 어찌 다시 문장을 꾸미는 데 힘을 쓰겠는가.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뜻을 받드는 것이 매우 웅대하니, 괴이한 설로 눈먼 이들을 놀라게 하지는 않겠다. 일을 만나면 벌떼처럼 일어나 진동하는 천둥과 같으니, 문장의 격조를 수나라의 남은 자들과 다르게 만들고자 한다. 세밀하게 그려내도 이연(李嶸)의 수에 미치지 못함이 부족하다. 우리 집 백부(伯父)와 선자(先子)는 함께 웅장한 문장으로 땅을 울렸다. 연이어 고과(高科)에 급제하여 홀로 독보하였으니, 남쪽으로 날아가는 대붕(大鵬)과 같다. 옥당(玉堂)의 옛 초안이 산처럼 쌓였으니, 해와 달과 더불어 빛을 다툴 만하다. 어느 날에 꽃 벽돌 위에서 함께 걸으며, 피리와 퉁소 소리가 서로 화답하며 쟁쟁하게 울리리라. 이제 막 그대에게 청하여 성과를 거두어 엮으려 하니, 집 벽에 간직하여 때때로 옥 소리를 두드리리라. 한 번의 난리로 인해 불타 재가 되었으니, 이를 생각하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제 원화(元和)의 발자취를 본받고자 하니, 그림 속의 미녀가 아름다운 여인을 본받는 것과 같다. 가문이 쇠하고 복이 박하여 오래도록 침몰해 있었으니, 감히 푸른 구름의 앞길을 닦으려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나의 성품은 본래 속된 것과 어긋남이 많아, 방랑하는 완박병(阮步兵)과 참으로 같다. 일찍이 명예와 지위가 무슨 맛이 있는지 보았으니, 나방이 귤을 먹는 것과 참으로 같다. 몸을 빼어 한 번 떠나면 그저 면할 뿐이니, 끓는 국물에 볶은 고기를 먹는 것도 충분히 경계가 된다. 도리어 시냇가와 산을 떠도는 망령된 노인이 되어, 글을 짓는 것은 그저 소영(韶韺)을 보충하려는 것뿐이다. 평생에 오직 천 수의 시가 있을 뿐이니, 만 호의 제후를 됨을 겨우 보듯 가볍게 여긴다. 태평성대에 만나지 못해도 또한 즐거울 수 있으니, 오래도록 토구(菟裘)에서 이미 경영해 왔다. 장한 마음이 늙어 가니 곧 온전히 내려놓으리라. 바람 속의 깃발이 꺾이고 쓰러지듯 말이다. 한가로이 거처하며 산속에서 시를 짓다 지치니, 꿈속의 혼백도 다시는 천경(天京)으로 날아가지 못한다. 한 번의 위험을 겪었으니 다시는 원치 않으니, 달사가 어찌 화를 입게 되었는가. 하수(河淸)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니 수명이 얼마이겠는가. 옛날에는 재능 있는 자가 시대와 함께하지 못했다. 어제 성스러운 임금께서 이치를 급히 구하신다는 말을 들으니, 조서가 처음 내려와 어진 인재를 선발하신다. 숨어 있는 인재들을 찾아내려 군재(群才)를 수색하시니, 하늘에 닿을 듯 높게 그물을 펼쳐 놓으셨다. 작은 선함이라도 암곡(巖谷)에 버려두지 않으시니, 어찌 한 번의 누락으로 고래를 삼키게 하겠는가. 사방에 선비가 많으니 모두 갈대와 같고, 가슴 속 학문의 바다는 물결이 출렁인다. 덕행은 모두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바이다. 풍년에는 아름다운 옥이요, 흉년에는 기(秔)이니, 빼어나고 빛나는 이들이 모두 부류를 달리한다. 봄의 난초와 가을의 국화가 처음 줄기를 뻗으니, 마침내 경륜을 떨쳐 황제의 교화를 돕는다. 마땅히 위로는 임금의 부지런한 구함에 응해야 하리라. 아아, 나의 삼가(三釜)는 친근함에 미치지 못하고, 천 종(千鍾)은 모기나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는다. 늦게 급제함이 비록 쓸모없으나, 골짜기 입구에서 맹금(鸎)을 놓아주는 듯한 마음으로 생각한다. 얕은 재주를 다시 팔고자 강요하니, 뇌문(雷門)의 북소리가 여전히 소리가 없다. 뜻밖에도 초변(楚卞)이 세 번의 형벌을 받는 것과 같으니, 옥을 품고 구구하게 스스로 바친다. 격앙된 담기를 떨쳐 군웅과 맞서려 하나, 헛되이 입술만 말라 마음만 얽매인다. 점치는 말(占辭)이 어찌 결함이 많음을 면하겠는가. 다만 종공(宗工)의 감재(鑑裁)를 번거롭게 할 뿐이다. 뜻을 잃고 돌아와 초가집 밑에 있으니, 문을 닫고 나가지 않으며 근심에 놀란다. 시의 묘함이 날마다 오색(五色)이 아님을 아노니, 마땅히 한 번 보아야 눈이 미혹될 것이다. 어찌하여 나를 위해 한 번 침을 뱉어 주시리라 기대했는가. 낭랑하게 소매 속에 구슬이 가득 차니, 원컨대 문하(門下)에서 노닐며 끝까지 절개를 본받고 싶다. 세찬 추위 속에 이 마음을 어찌 쉽게 바꾸겠는가. 그대가 아침저녁으로 황각(黃閣)에 오르기를 기다리며, 사제(沙堤)의 행(行)을 지어 다시금 헌상하리라.

56. 書懷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詩人自古以詩窮。顧我爲詩亦未工。何事年來窮到骨。長飢却似杜陵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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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예로부터 시 때문에 가난해졌다 하거늘, 나를 돌아보니 시를 짓는 것 또한 능숙하지 못하다. 어찌하여 근래 들어 뼈에 사무칠 정도로 가난해졌는가. 늘 굶주리는 것이 도리어 두릉옹(杜陵翁)과 같구나.

57. 寄北原雞林先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1B

원문

數年音問兩相違。苦憶江南別袖揮。秋晚衡陽霜雁斷。天低楚岫凍雲微。東山若爲蒼生起。北闕行承紫詔歸。莫歎居鄕乘款段。從來富貴有危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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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소식과 안부가 서로 끊겼구나. 강남(江南)에서 소매를 흔들며 작별하던 때가 괴로이 생각난다. 늦가을 형양(衡陽)에는 서리 내린 기러기가 끊어지고, 하늘은 낮아졌으며 초산(楚岫)의 산봉우리에는 얼어붙은 구름이 희미하다. 동산(東山)이 만약 백성을 위하여 일어난다면, 북궐(北闕)로 나아가 자색 조서를 받들어 돌아오리라. 고향에 머물며 말의 걸음이 느린 것을 한탄하지 마라. 예부터 부귀함에는 늘 위기가 있는 법이다.

58. 次韻金蘊〔原注:珪題〕觀音院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往事悠悠墮渺茫。側書詩句兩三行。那嫌擧目江山異。賴有高樓似岳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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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은 아득하고 아득하여 아스라히 사라졌구나. 시 구절 몇 줄을 곁들여 적어본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강산이 달라진 것을 어찌 싫어하랴. 다행히 높은 누각이 악양(岳陽)과 같으니.

원문

郡樓登眺遠蒼茫。戀國情深淚數行。誰識多情白司馬。天涯流落老潯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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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루(郡樓)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아득하고 창망하구나. 나라를 그리워하는 정이 깊어 눈물만 몇 줄기 흐른다. 누가 이 다정한 사마(司馬)를 알리오. 하늘 끝 유락(流落)하여 순양(潯陽)에서 늙어가는 것을.

59. 贈月師〔原注:幷序〕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1C

원문

興王寺月上人者頗聰惠而喜文章。從眉叟遊。自號高陽醉髡。一日。眉叟携而見過。余視之。超然奇逸人也。戲作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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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왕사(興王寺)의 월상인(月上人)이라는 이는 매우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문장을 좋아하였다. 미수(眉叟)를 따라 유람하며 스스로 호를 고양취곤(高陽醉髡)이라 하였다. 어느 날 미수(眉叟)가 물건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는데, 내가 그를 보니 초연하고 기이하며 풍류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에 장난삼아 이 시를 지었다.

원문

日與高人入醉鄕。風流應合號高陽。曾從天上謫仙客。來餽壺中大道漿。餘事文章黃絹妙。同門兄弟白眉郞。時時習氏家池上。倒載何如問葛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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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고인(高人)과 함께 취향(醉鄕)에 드니, 풍류는 마땅히 고양(高陽)이라 일컬을 만하네. 일찍이 하늘에서 유배 온 선객(仙客)을 따랐으니, 호중(壺中)의 대도(大道)를 가져와 대접하러 왔구나. 남은 일은 황견(黃絹)의 묘한 문장뿐이니, 동문 형제들은 백미(白眉)와 같도다. 때때로 시습(時習)의 집 연못가에서 거꾸로 얹어두는 것이 어떠한지 갈강(葛強)에게 물어보리라.

60. 書蓮花院壁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1D

원문

君不見羲之避世來往會山陰。時有同遊釋道林。又不見東山居士問道向金山。更伴禪師老了元。我向桑門投上首。風流欲繼二子後。重來頭上餘詩班。凜凜淸姿仙鶴瘦。問師何年返莬裘。臨湖構築煥丹黝。千金散盡更無事。燕坐虛樓歲月久。相從不厭窮躋攀。此地江山皆我有。葛巾草履隨僧蔬。更學點茶三昧手。自知麋鹿性難馴。不肯塵埃隨指嗾。詔書雖未賜鏡湖。懇表終須乞岣嶁。若能容我卜比隣。結茅不羨愚溪柳。好在他年管送迎。蕭蕭數里蒼髥叟。

번역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희지(羲之)가 세상을 피해 산음(山陰)을 오가며 머물렀던 것을. 그때 도림(道林)이라는 승려와 함께 노닐었다네. 또한 보지 못하였는가, 동산(東山) 거사가 금산(金山)으로 향하여 도를 물었던 것을. 다시 요원(了元) 선사와 함께 늙어갔다네. 나는 상문(桑門)에서 상수(上首)를 찾아가, 풍류로써 두 분의 뒤를 잇고자 하네. 다시 돌아와 머리 위에는 시단(詩班)이 남아 있고, 늠름하고 맑은 자태는 신선 같은 학처럼 여위었네. 스님께 묻노니 어느 해에 다시 가죽옷을 입으시렵니까. 호숫가에 집을 지으니 붉고 검게 빛나고, 천금을 다 써버려도 다시 아무런 일이 없네. 빈 누각에 앉아 세월을 보내니, 서로 따르며 오르내림에 지치지 않네. 이곳의 강산은 모두 나의 것이라네. 삼베 수건과 풀신을 신고 승려의 채소를 따르며, 다시 차를 달이는 삼매(三昧)의 수법을 배우네. 스스로 미록(麋鹿)의 성품은 길들이기 어려움을 아노니, 먼지 속에서 손가락질에 따라 움직이려 하지 않네. 조서(詔書)가 비록 경호(鏡湖)에 내려지지는 않았으나, 간절한 표는 끝내 묘림(岣嶁)에 청해야 하리라. 만약 나를 이웃에 머물게 해준다면, 초가집을 짓고 살며 우계(愚溪)의 버드나무를 부러워하지 않으리니, 다가올 해에 그대가 나를 배웅하고 맞이해준다면 좋겠네. 쓸쓸히 몇 리 밖에서 흰 수염 난 노인이 되겠네.

61. 戲亦樂近不作詩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詩家綺語定非眞。子是從前近道人。欲學尋醫除口業。也應肝肺日生塵。

번역

시인의 화려한 말은 결코 참이 아님이 정해져 있다. 그대는 예전부터 도에 가까운 사람이다. 의술을 배워 입으로 짓는 업을 없애고자 하나, 또한 간과 폐에 날마다 먼지가 생길 것이다.

62. 過長湍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長湍風急浪如山。欲借孤舟上瀨灘。十二時回朝復暮。人間何日少波瀾。

번역

긴 여울은 바람이 급하여 물결이 산과 같구나. 외로운 배 한 척 빌려 여울의 여울목을 올라가려 하네. 열두 시(十二時) 동안 아침에서 다시 저녁으로 돌아가니, 인간 세상에는 어찌하여 파란만장한 일이 끊이지 않는가.

63. 長湍湖上。將成草堂。作詩示頤師。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吾家老和靖。寄隱居東吳。江頭結草堂。至今傳其圖。雲山有餘態。宛轉煙鬟姝。我豈先生後。故亦眼不枯。卜宅終歸去。餘生寄一區。不煩來勑賜。衣鉢傳西湖。

번역

우리 집안에는 노(老) 화정(和靖)이 계시니, 동오(東吳)에 은거하셨다. 강가에 초당(草堂)을 맺으셨는데, 지금까지 그 그림이 전해진다. 구름 낀 산에는 남은 풍채가 있고, 돌돌 말린 연기 같은 머리 모양은 아름답구나. 내가 어찌 선생의 후배라 하여 눈이 메마르지 않겠는가. 집터를 정해 결국 돌아가니, 남은 생을 한 구역에 기탁하노라. 내려주시는 가르침을 번거롭게 청하지 않으니, 의발(衣鉢)은 서호(西湖)로 전해지리라.

64. 追悼鄭學士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先生蕭灑出塵埃。忽歎風前玉樹摧。上帝已敎長吉去。海山曾待樂天來。當年翰墨爲人寶。高世聲名造物猜。從此匡廬無賀監。誰能呼我謫仙才。

번역

선생님은 속세를 벗어나 소탈하셨는데, 문득 바람 앞의 옥나무가 꺾인 듯 탄식하게 됩니다. 상제께서 이미 장길(長吉)을 가게 하셨고, 바다와 산은 일찍이 낙천(樂天)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당시에 문장과 필묵은 사람들의 보배였으나, 세상에 드높은 명성은 조물주가 시기하는 듯합니다. 이제부터 구려(匡廬)에는 하감(賀監)이 없으니, 누가 능히 나를 불러 적선(謫仙)의 재능이라 하겠습니까.

65. 九月五日。與友人遊龍興寺海雲房。確師求詩。分韻得閣字。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麀鹿性難馴。城市非所樂。魚龍不厭深。久思江湖躍。而我心不羈。矯翼望寥廓。嗟爲名所牽。宿志負丘壑。爲有相携人。晚步同出郭。崎嶇入幽洞。巖谷如棋錯。深溪亂淸流。數里橫野杓。蒼然暮靄間。孤塔靑山脚。黃昏始投寺。古殿鳴風鐸。明月上峯頭。松陰寒落落。高人笑相迎。笑語破寂寞。壺傾大道漿。淸夜開小酌。坐久渾不寐。狂吟雜戲謔。問子何年中。構室煥丹雘。自云嗜爲善。千金盡傾橐。焚香禮白毫。燕坐淸風閣。此外更無事。豈羨楊州鶴。

번역

9월 5일. 벗과 함께 용흥사(龍興寺) 해운방(海雲房)에서 놀았다. 확(確) 스님이 시를 청하여, 운을 나누어 얻은 글자로 지었다. 사슴의 성품은 길들이기 어려워 성안은 즐거운 곳이 아니네. 물고기와 용은 깊은 곳을 싫어하지 않으니, 오래도록 강호에서 뛰어오르기를 생각했네. 그러나 내 마음은 얽매이지 않아, 날개를 펴고 아득히 넓은 곳을 바라보네. 아, 이름 때문에 끌려다니느라 옛 뜻을 구곡간곡한 산천에 저버렸구나. 함께할 사람이 있어 저녁에 함께 성 밖으로 나갔네. 험한 길을 지나 그윽한 동굴로 들어가니, 바위와 골짜기가 바둑판처럼 엇갈려 있고 깊은 시내에는 맑은 물이 어지러이 흐르네. 몇 리 되는 들판에 저녁 안개가 푸르스름하게 깔려 있고, 외로운 탑은 청산 발치에 있네. 황혼 무렵에야 절에 들어서니, 옛 전각에는 풍경 소리가 울리고 밝은 달은 봉우리 머리에 떠 있네. 소나무 그늘은 차갑게 드리워져 있고, 고결한 이는 웃으며 맞이하네. 웃음 섞인 말소리가 적막함을 깨뜨리고, 술병을 기울여 큰 도의 술을 나누네. 맑은 밤에 소박하게 술을 마시며, 오래 앉아 있으니 도무지 잠이 오지 않네. 미친 듯 읊조리고 잡다한 놀이를 하며, 자네는 몇 년째에 집을 지어 붉은 칠을 화려하게 했느냐 묻네. 스스로 말하기를 선을 행하는 것을 즐겨 천금을 다 주머니에서 쏟아붓고, 향을 피워 백호(白毫)에 예를 올린다 하네. 청풍각(淸風閣)에 편안히 앉아 이 외에는 더 할 일이 없으니, 어찌 양주학(楊州鶴)을 부러워하겠는가.

66. 贈皇甫若水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早聞風烈盛貞元。幾葉傳爲學士門。文變唐朝今掃地。天敎安定世生孫。扶持正道韓公後。破黜諸家孔氏尊。鼻祖有靈應自喜。高才眞箇入吾藩。

번역

일찍이 풍속이 엄격하고 정순하며 원만한 것을 들었네. 몇 잎의 잎사귀가 학사(學士)의 문중으로 전해졌구나. 문풍(文風)이 당나라 시절처럼 변하여 지금은 쓸쓸히 사라졌으나, 하늘이 안정(安定)의 세상을 내려주어 손자가 태어나게 하셨도다. 한(韓) 공의 후손을 보필하여 바른 도를 지탱하고, 여러 가문의 공씨(孔氏)를 배척하며 존귀함을 세웠네. 조상님의 영험함이 있으니 스스로 기뻐할 만하구나. 높은 재능을 가진 이가 참으로 나의 벗으로 들어왔도다.

67. 李眉叟嘗以言語爲戒。作詩戲之。

문체: 詩類 / 詩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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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阮籍能愼默。是非口不論。時有禮法士。疾之如讎冤。子猷眞寡辭。對客唯寒暄。亦被顧辟疆。面數驅出園。平生好臧否。誰似郭大原。名德高一代。不見人排根。今君嗜玄虛。豈非李耳孫。超然自傲俗。喜怒不形言。更學維摩詰。早聞不二門。嗟吾未愼口。出語如瀾飜。與子日相對。便覺己之煩。但恐終此生。雖悔舌可捫。有喙謾三尺。欲吐却須呑。陽瘖近可學。必招謗說喧。酒狂要似蓋。目擊何希温。莫作不鳴雁。以智免炰燔。

번역

완적(阮籍)은 신중하게 침묵할 줄 알았으니, 옳고 그름을 입으로 논하지 않았다. 때로는 예법을 중시하는 선비들이 그를 원수나 한 맺힌 사람처럼 미워하기도 했다. 자유(子猷)는 참으로 말이 적어, 손님을 대할 때 오직 안부만 물을 뿐이었다. 또한 고벽강(顧辟疆)도 그 영향을 받았는데, 면전에서 그를 몰아내어 정원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평생에 좋고 싫음을 가리기를 곽대원(郭大原)과 누가 닮았으랴. 명성과 덕이 한 세대에 높았으나, 사람들이 그 뿌리를 배척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제 그대는 현허(玄虛)를 즐기니, 어찌 이이(李耳)의 손자인가. 세속을 초연하게 벗어나 오만하며, 희로애락을 말로 드러내지 않으니, 다시 유마힐(維摩詰)을 배우는 듯하다. 일찍이 불이문(不二門)을 들었으니, 아, 나는 말을 신중히 하지 못하였구나. 내뱉는 말이 물결처럼 넘실거리니, 그대와 날마다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 번잡함을 느낀다. 다만 이 생을 마칠 때까지, 비록 혀를 만져 후회한다 한들, 세 자나 되는 입이 있어 쏟아내려 하면 반드시 삼켜야 하니, 벙어리가 되는 것이 차라리 배울 만하다. 반드시 비방하는 말이 떠들썩하게 불어올 것이니, 술에 취해 미친 듯이 덮개처럼 행동하고, 눈으로 마주할 때 어찌 온화함을 바라겠는가. 울지 않는 기러기가 되어, 지혜로써 구워 먹히는 일을 면하라.

68. 寄茶餉謙上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近得蒙山一掬春。白泥赤印色香新。澄心堂老知名品。寄與尤奇紫筍珍。

번역

[기차향겸상인(寄茶餉謙上人)] 근래에 몽산(蒙山)에서 한 움큼의 봄을 얻었네. 흰 진흙에 붉은 인장이 찍혔으니 색과 향이 새롭구나. 징심당(澄心堂) 어른께서 명품을 알아보시니, 더욱 기이한 자순(紫筍)의 보배를 보내드린다네.

69. 戲書謙上人方丈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3A

원문

謙公俊逸叢林秀。玉骨巉巉淸且瘦。佛祖家風傳雪竇。踞地便聞師子吼。默坐澄心牢閉口。不復談空還說有。自知龐蘊一狂叟。往往參禪來稽首。祇笑西堂長禁酒。誇我點茶三昧手。石鼎作聲蚯蚓叫。客遭水厄誰能救。不似十千沽一斗。醍醐微濁甘露厚。且問高僧飮此否。

번역

겸(謙) 공은 준일하고 숲속에서도 빼어나구나. 옥 같은 골격은 가파르고 맑으면서도 여위었네. 불조(佛祖)의 가풍은 설두(雪竇)를 전하고, 땅에 앉아 있으면 곧 사자후(師子吼)가 들리네. 묵묵히 앉아 맑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입을 굳게 다물어, 다시는 공(空)을 말하거나 유(有)를 논하지 않네. 스스로 방온(龐蘊)과 같은 한 명의 광노(狂叟)임을 아나, 종종 참선하러 와서 머리를 조아리네. 다만 서당(西堂)이 술을 오래 금한 것을 웃으며, 나의 점다(點茶) 삼매(三昧) 수법을 자랑하네. 솥에서는 소리가 나고 지렁이가 꿈틀거리네. 손님이 물의 재앙을 만났을 때 누가 구해줄 수 있으랴. 천 그릇에 한 말씩 파는 것과는 다르니, 제호(醍醐)는 약간 탁하나 감로(甘露)는 두텁도다. 또한 높은 스님께 묻노니, 이것을 마시겠는가.

70. 喜閔元拔見訪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老憶襄陽歸隱廬。眼中親故盡相疏。身藏氷谷凄涼久。耳絶眞人警咳餘。隱几靜觀齊物論。閉門方著絶交書。自驚負郭窮居陋。何事頻回長者車。

번역

늙은 나는 양양(襄陽)의 은거지로 돌아온 것을 회상하노라. 눈앞의 친한 벗들은 모두 서로 멀어졌구나. 몸은 얼음 골짜기에 숨어 오랫동안 쓸쓸하고 서늘했으니, 귀에는 진인(眞人)의 경고하는 듯한 기침 소리만 남았네. 은기(隱几)에 기대어 정적으로 제물론(齊物論)을 관조하고, 문을 닫고 막 절교하는 글을 쓰고 있노라. 성곽 근처의 누추한 곳에 궁색하게 거처함을 스스로 놀라워하거늘, 어찌하여 어른들의 수레가 빈번히 오가는가.

71. 六月十五夜雨霽。對月有懷。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3B, ITKC_MO_0003A_A001_223C ...

원문

六合敲蒸未流火。天上傾瓢雨如瀉。長風忽卷雲峯崩。十日繁陰收一夜。人間淸景已不失。始信造化能變化。娟娟好月尋幽人。獨出庭前還舞我。對影成人不解飮。空憶高吟郊與賀。淸光長欲照金尊。其奈乍圓還半破。相看與結無情遊。未曉天涯看已墮。

번역

6월 15일 밤에 비가 그치니, 달을 마주하며 품은 회포가 있다. 온 세상에 찌는 듯한 더위가 몰아치더니 불꽃처럼 흐르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바가 기울어진 듯 비가 쏟아졌다. 거센 바람이 갑자기 휘몰아치니 구름 낀 봉우리가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열 개의 해가 번갈아 가며 흐린 날을 보내더니 하룻밤 사이에 걷혔다. 인간 세상의 맑은 경치가 이미 사라지지 않았다. 조화가 능히 변화할 수 있음을 비로소 믿게 되었다. 곱고 아름다운 달이 그윽한 곳에 사는 사람을 찾아오니, 홀로 뜰 앞에 나타나 다시 나와 함께 춤을 춘다. 그림자를 마주하여 사람이 되니 술을 마실 줄 모른다. 그저 교외에서 높이 읊조리며 축하하던 일을 허망하게 추억할 뿐이다. 맑은 빛은 오래도록 금잔을 비추려 하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둥글었다가 다시 반으로 깨어지는가. 서로 바라보며 무정한 유람을 맺으려 하니, 날이 밝기도 전에 하늘 끝에서 바라보니 이미 떨어져 버렸다.

원문

黑月淸明亦勝火。河漢飛濤時倒瀉。坐愁昏勢及吾民。肯爲荒鷄空舞夜。安知八萬二千戶。規作朣朧聊幻化。回看頃刻掃陰威。好事天公還戲我。開戶相邀隣有仲。擧杯空嘆山無賀。隔壁遙聞愷之詠。已許愁顏聊一破。三人飮量眞舊對。達旦莫辭傾白墮。

번역

검은 달이 맑고 밝으니 또한 불빛보다 낫구나. 은하수의 물결은 마치 쏟아져 내리는 듯하다. 수심에 잠겨 앉아 있으니 그 기세가 내 백성들에게까지 미치는데, 어찌 들판의 닭이 밤에 헛되이 춤추는 것과 같겠는가. 8만 2천 호(戶)가 어슴푸레한 달빛의 환상적인 변화로 만들어졌음을 어찌 알겠는가. 잠시 동안 음산한 기운을 걷어내는 것을 돌이켜 본다. 하늘의 공(公)이 좋은 일을 가지고 나를 희롱하는지, 문을 열고 이웃인 유중(有仲)을 서로 청하니, 잔을 들어 산에 축하할 일이 없음을 빈 마음으로 탄식한다. 옆집에서 개지(愷之)가 읊는 소리가 멀리 들려오니, 이미 근심 어린 얼굴을 잠시나마 털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세 사람의 술 따르는 양이 참으로 예전과 같구나. 날이 밝을 때까지 백타(白墮)를 기울여 마시는 것을 사양하지 말자.

원문

方諸取水燧取火。寒煙逬出淸淚瀉。要知炎冷本無質。一氣交馳代日夜。銀蟾玉ꟙ陰繫陽。古云異物相待化。瑩然水鑑瀉山河。無心自照何彼我。天公眸子洗更新。蟣蝨微臣爲一賀。終宵坐待玉繩橫。仰見不須愁屋破。却思曾泛郞官湖。徑寸明珠波底墮。

번역

방제(方諸)로 물을 취하고 수燧(燧)로 불을 취하네. 차가운 안개가 걷히니 맑은 눈물이 쏟아지듯 내리네. 뜨거움과 차가움이 본래 성질이 없음을 알겠는가. 한 기운(一氣)이 밤낮으로 교차하여 흐르네. 은빛 달은 옥 같은 구름에 가려져 음(陰)이 양(陽)을 묶어두었네. 옛말에 서로 다른 물건이 화합하여 변화한다 하였으니, 맑고 밝은 물거울이 산하(山河)를 비추며 쏟아지네. 무심하게 스스로 비추니 어찌 저와 이가 따로 있겠는가. 하늘의 눈동자가 씻겨 새로워졌구나. 미천한 신하인 이 蟣蝨(해충)가 한 번 축하하노니, 밤이 다하도록 옥끈(玉繩)이 가로지르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네. 우러러보며 집이 깨질까 걱정할 필요는 없으나, 문득 예전에 낭관호(郞官湖)에 배를 띄웠던 일이 생각나네. 한 치 크기의 명주(明珠)가 물결 아래로 떨어지네.

원문

壬水飛空伏丁火。浸淫正恐漏天瀉。陰雲斷滅不復見。忽看明月來淸夜。三千世界皆銀色。豈有道人方便化。不知身在唾霧間。泠然却似風乘我。吾曹不可負此景。擧杯欲酹淸光賀。茅簷竹閣白如晝。不妨半掛疏簾破。空牀兀坐如乘航。欹側狂吟忘幘墮。

번역

임수(壬水)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정화(丁火)가 엎드려 있으니, 비가 스며들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릴까 두렵다. 먹구름이 끊어지고 멸하여 다시는 보이지 않더니, 문득 맑은 밤에 밝은 달이 오는 것을 보았다. 삼천세계(三千世界)가 모두 은빛이로구나. 어찌 도인(道人)의 방편으로 변화시킨 것이겠는가. 몸이 안개 속에 있는 줄은 알지 못하고, 서늘한 기운이 마치 바람을 타고 내게 오는 듯하다. 우리네가 어찌 이 경치를 마다하겠는가. 잔을 들어 맑은 빛에 축원하며 축하하려 한다. 초가 처마와 대나무 정각(竹閣)이 낮처럼 하얗구나. 성긴 발(疏簾)에 반쯤 걸려 있어도 괜찮다. 빈 평상에 홀로 앉아 있노라면 마치 배를 타고 항해하는 듯하다. 비스듬히 앉아 미친 듯 읊조리다 보니 이불을 떨어뜨린 줄도 모른다.

원문

淸明已過新槐火。暑天汗背飜漿瀉。對榻高眠聽蕭瑟。幾度空思風雨夜。爾來成霖餘十日。此意豈能尤造化。喜聞民隴皆騰歌。澤遍公田遂及我。無才自愧元和老。作詩端就君王賀。新晴晚月一分虧。已看罘罳懸壁破。共君欲尋天竺寺。正待秋風桂子墮。

번역

청명(淸明)이 이미 지나고 새로운 회화나무에 불이 붙었네. 무더운 날씨에 등에는 땀이 흐르고 끈적한 액체가 쏟아지네. 평상에 기대어 깊이 잠들었다가 쓸쓸한 소리를 듣네. 몇 번이나 비바람 치는 밤에 헛되이 생각했는가. 그 뒤로 비가 내려 열흘이 지났네. 이러한 뜻을 어찌 조화(造化)가 더할 수 있겠는가. 백성들이 마을마다 모두 노래 부르는 소리를 기쁘게 들으니, 은택이 공전(公田)에 가득하여 마침내 나에게까지 미치네. 재주가 없어 원화(元和) 시절의 늙음이 스스로 부끄러운데, 시를 지어 마침내 임금께 축하를 올리네. 새로 갠 저녁 달은 조금 이지러졌네. 이미 벽에 걸린 방충망이 찢어진 것을 보았네. 그대와 함께 천축사(天竺寺)를 찾고 싶으니, 정녕 가을바람에 계수나무 열매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노라.

원문

隔屋靑熒望燈火。槽牀壓酒香泉瀉。我時獨坐望淸光。無由共醉西園夜。直欲乘雲到月宮。凡骨却嫌難羽化。先生好飮仍好客。遺書一呼趙李我。三杯軟語歡亦甚。危絃不待彈琴賀。子詩淸硬如強兵。往往力拔愁城破。樽前顚倒白綸巾。未省歸來車上墮。

번역

방 너머 푸른 등불 빛이 아른아른 보이는데, 술통과 평상에는 술 향기가 배어 있고 향천(香泉)은 쏟아져 내린다. 나는 이때 홀로 앉아 맑은 달빛을 바라본다. 서원(西園)의 밤에 함께 취할 길이 없으니, 곧 구름을 타고 달궁(月宮)에라도 가고 싶구나. 하지만 범속한 몸이라 신선이 되어 날아오르기(羽化)는 어려울까 꺼려진다. 선생은 술을 좋아하실 뿐만 아니라 손님 맞이도 좋아하시니, 남긴 글 한 통으로 조(趙)씨나 이(李)씨 같은 이들을 불러 모으셨다. 세 잔의 부드러운 말 속에 즐거움 또한 매우 컸다. 위태로운 거문고 소리는 연주하여 축하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자시(子詩)의 맑고 단단한 기운은 마치 강한 병사와 같아서, 종종 근심의 성을 힘으로 뽑아 무너뜨린다. 술잔 앞에서 흰 두건을 떨구며 쓰러지니, 돌아오는 수레 위에서 쓰러진 것은 미처 알지 못하셨다.

72. 留別金璿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4B

원문

苟同近循身。苟異還循名。兩者未免累。不如俱忘情。我性非好高。矯矯豈其誠。但當爲口謀。及辰欲歸耕。鄕人來勸我。香稻富烏程。閑乘葉舟去。海山寄餘生。軒軒金子美。肝膽何崢嶸。與我年雖少。聞道卽己兄。臨別但相語。子去吾亦行。滄浪知幾里。朝發暮江城。愼勿負玆期。鷄黍吾方烹。

번역

억지로 근근이 몸을 보전하며 살거나, 억지로 다르게 이름을 좇아 살거나, 두 가지 모두 번거로움을 면하기 어려우니 차라리 모두 잊는 것이 낫겠네. 내 성품이 높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나, 억지로 꾸미는 것이 어찌 진실하겠는가. 다만 마땅히 입으로써 도모할 뿐이라네. 때가 되어 농사지으며 돌아가려 하니, 고향 사람들이 와서 나를 권하는구나. 향기로운 벼는 오정(烏程)에 풍족하니, 한가로이 잎배를 타고 떠나리라. 바다와 산에 남은 생을 맡기리라. 금자미(金子美)는 씩씩하니, 그 간담(肝膽)이 어찌 높고 험하지 않겠는가. 나와 나이는 비록 적으나, 도를 들으니 이미 형님이라네. 이별하며 다만 서로 말하기를, 자네가 떠나면 나 또한 가리라, 창랑(滄浪)이 몇 리나 되는지 아는가 하였네.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에 강성(江城)에 이르리니, 부디 이 약속을 저버리지 마오. 닭의 죽을 내가 막 끓이고 있네.

73. 戲贈若水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聞君閉戶對塵編。讀過長安苦雨天。要向柴扉尋病叟。淸談終勝卷中賢。

번역

그대가 문을 닫아걸고 옛 책을 마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네. 장안(長安)의 고달픈 비 내리는 날씨를 읽으며 지나왔구려. 사립문으로 찾아가 병든 노인을 만나고 싶네. 청담(淸談)을 나누는 것이 결국 책 속의 현인들을 읽는 것보다 낫다네.

74. 復次前韻寄鷄林朴先生〔原注:仁碩〕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役役塵寰萬事違。飜漿白汗歎空揮。欲專一壑開茅棟。須卜比隣住翠微。招我江東携室去。羨君林下棄官歸。秋風定有吳中味。好慰鄕思寄陸機。

번역

번잡한 세상 속에서 만사가 어긋나니, 술잔을 뒤집으며 흰 땀을 흘리는 것을 탄식하며 허망하게 휘두를 뿐이다. 오로지 한 골짜기에 머물며 초가집을 열고자 하니, 마땅히 이웃을 찾아 푸른 산기슭에 살아야 하리라. 나를 강동(江東)으로 불러 아내를 데리고 가라 하니, 숲 아래에서 관직을 버리고 돌아간 그대를 부럽구나. 가을바람에는 분명 오중(吳中)의 정취가 있으니, 육기(陸機)를 생각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좋으리라. <復次前韻寄鷄林朴先生(인석)>

75. 贈湛之〔原注:二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4C

원문

寂寂春深學士家。無人庭戶落花多。自驚俗客非仙骨。碧玉壺中醉紫霞。五雲深處有人家。狂客閑來興味多。始信燒丹眞可學。紫陽仙老在飡霞。

번역

적막한 봄이 깊어가는 학사(學士)의 집에는, 사람이 없어 뜰과 문간에 낙화가 가득하구나. 스스로 속세의 손님은 신선의 기질이 아님을 놀라며, 벽옥호(碧玉壺) 속에서 자하(紫霞)에 취하네. 오름구름 깊은 곳에 사람이 사는 집이 있으니, 광객(狂客)이 한가로이 찾아오니 흥취가 많구나. 단약을 굽는 것이 참으로 배울 만함을 비로소 믿겠노라. 자양선로(紫陽仙老)가 노을을 먹고 있네.

76. 賀皇甫沆及第〔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4D, ITKC_MO_0003A_A001_225A ...

원문

卜居同里閈。嘗詣子之室。一見便嗟奇。再語稍款密。旦夕且相就。文藁數容乞。時時又唱酬。窘束怯嚴律。方論古今事。對坐頻捫蝨。弟兄俱孜孜。所業在學術。雖於危難中。手不釋卷帙。樂哉家有師。常無遠離膝。階庭生蘭玉。不減謝安姪。自古賢士輩。其才有得失。揚劉博見聞。李杜工綴述。唯子兼衆美。曾不愧其一。所見過所聞。未信名與實。我與當時人。文章少所屈。至於見子作。輒欲焚其筆。瞠若在乎後。夫子固超逸。後生誠可畏。自笑衰墮質。別子來江南。孤陋居蓬蓽。獨言誰爲應。默默口如吃。雖有老大平。居諸念相迭。於焉得養志。自謂私願畢。去年聞子捷。愁情慰一鬱。今朝人又至。言子取甲乙。先知夢魂王。果得語音吉。有司鑑裁精。而子才可必。然疑傳者誤。逢人輒重詰。寄書欲一賀。久無郵傳疾。因風敍所懷。毫禿未能悉。

번역

같은 마을 이웃에 거처를 정하고, 일찍이 자네의 방에 찾아갔었네. 한 번 보고는 곧바로 기이함을 탄복하였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니 점차 친밀해졌지. 아침저녁으로 서로 마주하며 문장 초고를 몇 번이나 보여주어 청하기도 하고, 때때로 서로 시를 읊으며 화답하기도 했네. 엄격한 율격에 얽매여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바로 고금의 일을 논하며 마주 앉아 빈번히 곤충을 만지작거렸지. 형제 모두가 부지런하여 학술에 힘쓰는 것이 업이었으니, 비록 위난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네. 집에 스승이 있어 즐거우니, 늘 무릎 가까이서 떠나지 않았지. 뜰에는 난초와 옥 같은 꽃이 피어 있으니, 사안(謝安)의 조카에 못지않네. 자고 이래로 현사(賢士) 무리 중 그 재주에 득실이 있으니, 양류(揚劉)는 박학하고 견문이 넓었으며 이두(李杜)는 문장을 짓는 데 뛰어났으나, 오직 자네만이 여러 아름다움을 겸비하여 일찍이 그중 하나에 부끄러움이 없었네. 자네가 보고 들은 것이 이름과 실재가 일치한다고 믿지 않네. 나와 당대의 사람들은 문장에 있어 굴복하는 바가 적었으나, 자네의 작품을 보게 되면 매번 내 붓을 태워버리고 싶으니, 마치 후세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네. 부자(夫子)는 본래 초탈하고 빼어나니 후생이 참으로 두렵네. 스스로 쇠락한 몸이라 자책하며 자네를 떠나 강남(江南)으로 왔네. 누추한 초가에 거처하며 홀로 말하려 해도 누가 응답해 줄지 모르니, 입을 꾹 다문 듯 말이 없네. 비록 늙고 평온한 처지이나 여러 생각이 번갈아 일어나니, 어디서 뜻을 기를 수 있겠는가. 스스로 사사로운 소망이 다하였다 말하네. 작년에 자네가 급제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름에 잠겼던 마음이 위로되었네. 오늘 아침에 사람이 또 와서 자네가 갑을(甲乙)을 차지했다고 말해주었네. 먼저 꿈속의 왕(王)이 나타나더니, 과연 길한 소식을 들려주었구려. 유사(有司)의 감재(鑑裁)가 정밀하니 자네의 재능은 필히 인정받을 것이나, 전해지는 말이 틀렸을까 의심되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거듭 물어보네. 편지를 보내 한 번 축하하고 싶었으나, 오랫동안 우편이 전해지지 않아 바람에 실어 소회(所懷)를 서술하노니, 붓이 닳아 다 전하지 못하겠네.

원문

往日遊洛城。交友更賢英。奔馳事場屋。龍戰而虎爭。邇來因避亂。數載辭舊京。每聞登第輩。了莫知其名。新進豈無人。於心固所輕。因嗟文弊極。賢愚不足旌。皇天未喪斯。吾道當大行。近者簡上心。文柄委名卿。異才將盡出。兩耳先自傾。今年果得子。士林爲之榮。群鳥方啾啾。忽然聞鳳鳴。乃知是奇瑞。旦夕見大平。昔唐貞元間。狂瀾起縱橫。退之獨好古。大唱於後生。時有湜與翺。相共和其聲。遂使群學者。從之而變更。當今大儒首。皇甫氏弟兄。其餘盡流落。誰復爲主盟。吾雖向衰暮。殘月配長庚。年來益忘廢。薾爾疲其精。今子少且銳。高論方崢嶸。勉哉無輟業。指日登蓬瀛。更使文波振。聲價增軒轟。吾今不賀子。先賀有司明。

번역

지난날 낙성(洛城)에서 노닐 때, 더욱 현명하고 뛰어난 벗들을 사귀었다. 관직을 얻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용과 호랑이가 다투듯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근래에는 난리를 피하느라 수년 동안 옛 수도를 떠나 있었다. 매번 급제했다는 이들의 소식은 들었으나 그 이름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새로 진출한 이들 중에 어찌 사람이 없겠는가마는, 마음속으로는 본래 가볍게 여겼다. 문풍(文風)이 극도로 쇠퇴하여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가려내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아직 우리의 도를 버리지 않으셨으니, 우리의 도가 마땅히 크게 행해질 것이다. 근래에 간략히 상소하니, 문장의 권능을 명경(卿)에게 맡겼다. 이채로운 재능들이 마침내 다 나오니, 내 두 귀가 먼저 기울어진다. 올해 과연 자네가 급제하였으니, 사림(士林)이 이를 위하여 영광스럽게 여길 것이다. 온갖 새들이 막 지저귀는 가운데 홀연히 봉황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이에 기이한 상서로움임을 알겠다. 아침저녁으로 태평성대를 보게 되니, 옛 당(唐)나라 정원(貞元) 연간에는 거친 물결이 종횡으로 일어났다. 퇴지(退之)는 홀로 옛것을 좋아하여 후생들에게 크게 외쳤다. 당시 식(湜)과 파(翺)가 있어 서로 그 소리에 화답하니, 마침내 모든 학자가 그를 따라 변화하였다. 당금의 대유(大儒)는 황보(皇甫) 씨 형제이다.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떠돌아다니니, 누가 다시 주된 맹약이 되겠는가. 나는 비록 쇠락한 노년에 접어들어 잔월(殘月)이 장경(長庚)과 짝하는 형국이나, 해가 갈수록 폐해짐을 잊으려 노력하고 있다. 몸은 쇠약하여 그 정기가 지쳐가는데, 이제 자네는 젊고 또한 예리하여 높은 논변이 막 드높아지고 있다. 부디 힘써 학업을 중단하지 말게나. 머지않아 등용되어 신선 세계에 오를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다시금 문장의 물결을 떨치고 명성이 드높아지기를 바라네. 내가 이제 자네를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유사(有司)의 밝은 안목을 축하하노라.

77. 次韻資福寺留題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平生愛竹老文同。獨恨兒孫掃地空。解勸主人須會意。春來移種小樓東。

번역

평생에 대나무를 사랑한 것은 문동(文同)과 같았는데, 홀로 자손들이 땅을 쓸어버려 허사가 될까 한스러울 뿐이다. 주인이 그 뜻을 알아줄 줄 안다면, 봄이 올 때 작은 누각 동쪽에 옮겨 심어주어야 하리라.

78. 九日獨坐。聞諸公有會。作詩寄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身在天涯歲又催。登高自有望鄕臺。五年去國長爲客。九日無人共把杯。紅葉忽驚霜後落。黃花猶似亂前開。莫嫌擧止非閑雅。會向龍山許一陪。

번역

몸은 하늘 끝(天涯)에 있는데 세월은 또 재촉하는구나. 높은 곳에 올라(登高) 스스로 고향의 망향대(望鄕臺)를 바라보게 된다. 나라를 떠난 지 5년 만에 길게 나그네 생활을 하니, 중양절(九日)에도 함께 술잔을 나눌 사람이 없구나. 붉은 잎은 서리 맞은 뒤에 갑자기 떨어짐에 놀라고, 황화(黃花)는 여전히 어지럽게 피어 있는 듯하네. 나의 거동이 우아하지 못함을 싫어하지 마라. 용산(龍山)에서 반드시 한 번은 너를 모시리라.

79. 聞從兄庭玉到尙州。以詩戲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昨歲過洛州。一日停行輈。爾後又多難。不見年再周。兄方客京輦。我亦居變陬。譬如兩葉蓮。飄然大海浮。隨波東復西。聚散不自由。今聞又杖策。忽事江南遊。至此可三飡。莫言道阻脩。欲聞謦咳聲。頗慰羈離愁。天涯遇親戚。況乃瀟湘秋。貽書先自問。思我肯來不。

번역

사촌 형 정옥(庭玉)이 상주(尙州)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로 농담하다. 지난해 낙주(洛州)를 지났습니다. 어느 날 수레를 멈추고 쉬었지요. 그 후로 또 많은 어려움이 있어, 해가 바뀌어 다시 만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형은 마침 경차(京輦)에 머물고 있고, 나 또한 변방의 구석에 살고 있으니, 비유하자면 두 잎의 연꽃이 큰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물결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가니,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지팡이와 채찍을 들고 강남(江南) 유람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곳에 오면 세 끼 식사는 거뜬히 함께할 수 있겠습니다. 길이 멀고 험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형의 기침 소리(안부)를 듣고 싶을 뿐이니, 이로써 떠나 있는 슬픔이 꽤 위로가 됩니다. 하늘 끝에서 친척을 만나는데, 하물며 지금은 소상(瀟湘)의 가을이 아니겠습니까. 먼저 글을 보내 스스로 물어봅니다.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지요.

80. 遊密州書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5D

원문

山郡多佳麗。名高冠一方。地靈人自傑。野沃歲頻穰。路控舟車會。風存禮義鄕。多儒如蜀郡。絶景甲餘杭。松菊荒彭澤。煙波動岳陽。山深禽格磔。天與水蒼茫。岫碧關新障。湖晴倚淡粧。際天排樹幄。拂雪梟茶槍。四序叢筠綠。千門細柳黃。杯盤饒海陸。絃管妙宮商。遇勝添詩興。餘閑泥酒觴。春行鳧渚暖。暮燕鳳樓涼。夢覺書窓月。衣凝宴寢香。賞心幷樂事。乘興放淸狂。久被山川住。飜嗟道路長。殘霞望滕閣。夜雨聽瀟湘。鞭促征鞍發。心隨去雁忙。嫌無王勃筆。霞鶩記南昌。

번역

산간 고을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많고, 그 이름은 한 지방에서 으뜸이라네. 땅의 영험함으로 인물이 저절로 뛰어나며, 들판이 기름져 매년 풍년이 드네. 길은 배와 수레가 모이는 곳에 맞닿아 있고, 바람에는 예의의 고장다운 면모가 남아 있네. 유학자가 많음은 촉군(蜀郡)과 같고, 절경이 뛰어남은 여항(餘杭)을 능가하네. 소나무와 국화는 팽택(彭澤)의 황폐함을 닮았고, 물결과 안개는 악양(岳陽)의 풍경을 흔드네. 산이 깊으니 새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하늘과 물은 아득히 푸르네. 산봉우리는 푸르고 새로운 장벽을 가로막았으며, 호수는 맑아 옅은 화장한 듯하네. 하늘에 닿을 듯 나무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눈을 스치는 듯한 차(茶) 향기가 감도네. 사계절 내내 푸른 숲이 무성하고, 천 개의 문에는 가느다란 버들이 노랗게 피었네. 술잔과 접시는 산해진미로 풍족하고, 현악기와 관악기의 음악은 궁상(宮商)의 묘한 소리를 내네. 좋은 경치를 만나니 시를 짓는 흥취가 더해지고, 한가로이 술잔을 기울이네. 봄길을 걸으니 물가의 오리가 따뜻하고, 저물녘 제비는 봉루(鳳樓)의 서늘함을 느끼네. 꿈에서 깨어난 서창(書窓)에는 달이 떠 있고, 옷에는 연회의 향기가 배어 있네. 즐거운 마음으로 즐거운 일을 함께하며, 흥에 겨워 맑고 거침없이 행동하네. 오랫동안 산천에 머물다 보니, 길게 늘어진 길을 보며 탄식하며 되돌아보네. 저무는 노을 속에서 등각(滕閣)을 바라보고, 밤비 소리에 소상(瀟湘)을 듣네. 말의 안장을 재촉하여 길을 떠나니, 마음은 떠가는 기러기를 따라 바쁘기만 하네. 왕발(王勃)의 필력이 없는 것이 아쉬워, 노을진 물가에서 남창(南昌)을 기록하노라.

81. 題嶺南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6A

원문

曾聞圓嶠臨蒼濤。樓閣玲瓏駕巨鼇。鼇傾海動群仙駭。茫茫失去一峯高。飛來怳惚移於斯。磅礴千古當古壕。突起連空如疊玉。百丈淸潭橫鴨綠。水泛桃花出洞中。居人宛是秦餘俗。靑山影裏兩三家。垂柳陰中千萬屋。日暮郊原牛馬歸。春深洲渚鳧鷖浴。漁舟之子棹如飛。溪岸不知盤幾曲。洛城遷客來何時。樓上欲窮千里目。山耶雲耶遠一色。雁點長空行斷續。天涯晚色正蒼然。其奈思家心更速。不用重來登此樓。煙波好處使人愁。

번역

원교(圓嶠)가 푸른 파도에 임했다는 말을 일찍이 들었네. 누각은 영롱하여 거대한 자라를 타고 있는 듯하구나. 자라가 바다를 기울이며 신선들을 놀라게 하니, 망망한 가운데 한 봉우리의 높이가 사라졌네. 홀연히 날아와 이곳으로 옮겨온 듯 황홀하구나. 천고의 옛 구덩이를 마주하며 웅장하게 솟아올라, 겹겹이 쌓인 옥처럼 하늘에 맞닿아 있네. 백 장 깊은 맑은 못은 압록(鴨綠)을 가로지르고, 물결은 동중(洞中)에서 복숭아꽃을 띄워 보내네. 사는 사람들은 마치 진(秦)나라의 유적지에 남은 속민 같구나. 청산 그림자 속에 두세 가구가 있고, 버드나무 그늘 아래 수천수만 채 집이 있네. 해 저무는 교외 벌판에는 소와 말이 돌아가고, 봄이 깊은 물가에는 오리와 기러기가 목욕하네. 어부의 아들은 노를 저어 날아가는 듯한데, 시냇가 굽이진 길은 몇 군데인지 알 수 없네. 낙양(洛城)에서 온 천객은 언제쯤 올 것인가. 누각 위에서 천 리 밖을 멀리 바라보니, 산인가 구름인가 온 세상이 한 빛깔이네. 기러기는 긴 하늘을 가로지르며 끊겼다 이어졌다 하고, 하늘 끝 저녁 빛은 정작 창연하구나. 어찌하여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빨라지는가. 다시는 이 누각에 오르지 못할 터인데, 안개 낀 물결의 좋은 경치가 사람을 슬프게 하는구나.

82. 嶺南寺竹樓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6B

원문

嶺南山水甲吳興。樓上春來偶一登。橫皺愁眉孤岫遠。平鋪淨練碧波澄。雲飛畫棟歸湘浦。風送漁舟入武陵。吟罷揮毫留粉壁。重遊聊欲記吾曾。

번역

영남(嶺南)의 산수는 오흥(吳興)이 으뜸이라. 누각 위에 봄이 와서 우연히 한 번 올랐네. 구불구불한 외로운 봉우리는 근심 어린 눈썹 같고, 맑고 푸른 물결은 비단처럼 평평하게 펼쳐져 있구나. 구름은 채색된 들보 위로 날아 상포(湘浦)로 돌아가고, 바람은 어선(漁舟)을 실어 무릉(武陵)으로 보내네. 읊조림을 마치고 붓을 휘둘러 분벽(粉壁)에 남겨두니, 다시 찾아와 내가 왔었음을 잠시나마 기록하고자 함이라.

83. 次韻鄭學士〔原注:之元〕留題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眼界遐觀極大千。登臨聊與老南泉。門前櫓響淸溪月。村外樵歌薄暮天。漠漠古灘沙似雪。超超春岸草如煙。效嚬欲繼風騷句。才短多慙溟涬然。

번역

눈앞에 펼쳐진 경관이 지극히 넓고 크니, 높은 곳에 올라 잠시 노남천(老南泉)과 함께하노라. 문 앞에는 노 젓는 소리 맑은 시냇물에 비친 달과 어우러지고, 마을 밖에는 나무꾼의 노래가 저무는 하늘에 울려 퍼지네. 아득한 옛 여울의 모래는 눈과 같고, 드높은 봄 언덕의 풀은 안개와 같구나. 억지로 눈을 찡그리며 풍소(風騷)의 구절을 이어가려 애써 보지만, 재주가 짧아 자꾸만 아득하고 혼돈스러운 마음만 드는구나.

84. 鄕校諸生見招會飮。作詩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昨入宮墻拜聖眞。衣冠高會杏壇春。祇因曾點初成服。得見宣尼善誘人。藹藹升堂多吉士。陶陶滿坐盡嘉賓。老儒久歎斯文喪。始喜名都禮義新。

번역

어제 궁궐 담장에 들어서서 성상께 절을 올리며 참된 성덕을 뵈었습니다. 의관을 갖추고 행단(杏壇)의 봄날에 성대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단지 증점(曾點)의 일로 처음 성복(成服)을 한 까닭에, 선니(宣尼, 공자)께서 사람을 선하게 인도하심을 보게 된 것입니다. 화창하게 강당에 오르는 이들은 모두 길한 선비들이요, 즐겁게 자리에 가득 앉은 이들은 모두 아름다운 손님들입니다. 늙은 유학자는 스문(斯文)이 쇠퇴함을 오래도록 탄식하다가, 마침내 도성(名都)의 예의가 새로워진 것을 보고 기뻐하기 시작했습니다.

85. 遊智勒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山徑險巑岏。兩手勤追攀。行行不逢人。古木昏蒼煙。忽得雲邊開一洞。洞裏平明別有天。人居縹緲多樓閣。步上高樓半空碧。當簷絶壁一千尋。灑檻飛流三百尺。時見驚禽落翠毛。只應不慣人間客。晚色蒼然正掩門。婆娑松影月黃昏。上方釋子眉如雪。靜掃中庭留我歇。仙境重來恐易迷。慇勤廻語題歲月。

번역

산길은 험하고 가파르니, 두 손으로 부지런히 붙잡고 올라간다. 계속 가도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고목은 어둑어둑한 안개 속에 있다. 문득 구름가에서 한 동굴이 열리니, 동굴 안은 밝은 대낮처럼 별천지구나. 사람이 사는 곳은 아스라하고 누각이 많다. 높은 누각에 올라서니 허공은 푸르고, 처마 끝 절벽은 천 길이나 된다. 난간에 뿌려지는 폭포는 삼백 자나 되니, 때때로 놀란 새가 푸른 깃털을 떨어뜨리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인간 세상의 손님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저녁 빛이 창연하여 막 문을 닫는데, 어지러운 소나무 그림자와 달이 황혼에 걸려 있다. 저 위 스님은 눈썹이 눈처럼 하얗구나. 고요히 중정을 쓸며 나를 머물게 하니, 선경에 다시 오면 아마도 길을 잃기 쉽겠다. 간곡하게 말을 돌리며 세월을 노래한다.

86. 戲密州倅〔原注:勝覽載星州恐誤。〕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6D

원문

紅粧待曉帖金鈿。爲被催呼上綺筵。不怕長官嚴號令。謾嗔行客惡因緣。乘樓未作吹簫伴。奔月還爲竊藥仙。寄語靑雲賢學士。仁心愼勿施蒲鞭。

번역

붉은 화장한 여인이 새벽을 기다리며 금박 장식을 한 편지를 보낸다. 비단 깔린 잔치 자리로 오라고 재촉하며 부른다. 장관의 엄한 명령도 두려워하지 않고, 행객의 나쁜 인연을 탓하며 성을 내기도 한다. 누각에 올라 퉁소를 불어 짝을 맞추지는 못하고, 달을 향해 달려가 몰래 약선(藥仙)이 되려 한다. 청운(靑雲)의 현학사(賢學士)에게 전하노니, 어진 마음을 가지고 부디 채찍질하는 일(蒲鞭)을 삼가시라.

87. 謝人携酒見訪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門外頻廻長者車。從容談笑酌流霞。識奇不是楊雄學。日日空煩載酒過。

번역

문밖에는 귀한 분의 수레가 빈번히 오가고, 유유히 담소를 나누며 흐르는 노을 같은 술을 마신다. 기이함을 아는 것이 양웅(楊雄)의 학문을 배운 것이 아님을 알고, 날마다 빈 마음으로 술을 실어 나르며 지나가는구나.

88. 謝惠鯉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忽見先生惠鯉魚。不須彈鋏歎歸歟。呼兒乞火烹來處。更得中藏尺素書。

번역

문득 선생께서 잉어를 베풀어 주시는 것을 보았으니, 굳이 칼자루를 튕기며 돌아가기를 탄식할 필요가 있겠는가. 아이를 불러 불을 빌려와서 온 곳을 삶아 오게 하였는데, 그 속에 다시 서신 한 통이 들어 있었다.

89. 二月十五夜對月〔原注:幷序〕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7A, ITKC_MO_0003A_A001_227B

원문

昔黃翰林公嘗作仲春對月詩云。春宵何索莫。秋夕獨喧顚。嘗愛其詞理俱得。及遊嶺南寺。適値此夕。登樓望月。忽憶其句。遂續而賦之。

번역

옛날 황(黃) 한림공(翰林公)이 일찍이 한중(仲春)에 달을 마주하며 지은 시에서 이르기를, “봄밤은 어찌 이토록 쓸쓸한가. 가을밤은 홀로 전전(顚)하며 떠들썩하구나.”라고 하였다. 일찍이 그 시의 이치가 모두 적절함을 사랑하였다. 영남(嶺南)의 절에 놀러 갔을 때 마침 이 밤을 만났다. 누각에 올라 달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구절이 생각나서, 마침 그 뒤를 이어 시를 지었다.

원문

吾聞自古風騷客。皆言勝賞唯秋夕。由來此說亦未公。每到仲春空歎惜。寒暄天氣兩得中。美景淸光眞自敵。明月無心缺復圓。自緣人意悲秋色。念此詩家一段奇。同異是非誰辨析。夫子當年獨著篇。千年疑論一朝釋。今春二月十五夜。我向嶺南樓上適。乾坤開霽微風緊。玉盤東轉長空碧。捲簾門外明如晝。表裏更無纖靄隔。沈沈正照寒溪面。澄波上下難相別。令人却憶黃庭堅。解道春宵何索寞。

번역

내가 듣기로 예부터 풍소(風騷)의 시객들은 모두 아름다운 감상의 대상은 오직 추석뿐이라고 말해 왔다. 이래로 이러한 설은 또한 공인되지 않았다. 나는 매번 중춘(仲春)이 되면 허공을 보며 탄식하고 아쉬워하곤 했다. 따뜻한 바람과 온화한 날씨라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었으나, 맑은 빛의 아름다운 경치는 참으로 스스로 대적할 만하다. 밝은 달은 무심하게 기울었다가 다시 차오르는데, 이는 자연히 사람의 마음이 가을빛을 슬퍼하기 때문이다. 이 시인의 기발한 한 단면을 생각하니, 그 옳고 그름과 차이를 누가 변별하겠는가. 부자(夫子)께서 당년에 홀로 편을 지으시니, 천 년의 의문과 논란이 하루아침에 풀리는구나. 이번 봄 2월 15일 밤, 내가 영남(嶺南)의 누각 위에 마침 올라갔는데, 하늘은 비가 그쳐 개었고 미풍은 거세다. 옥반(玉盤) 같은 달은 동쪽으로 돌며 창공은 푸르른데, 발을 걷어 올리니 문밖이 낮처럼 밝고, 안팎으로 미세한 안개조차 가로막는 것이 없다. 달빛은 깊고 깊게 차가운 시냇물 면을 비추고, 맑은 물결은 위아래가 서로 구별하기 어렵다. 사람으로 하여금 도리어 황정견(黃庭堅)을 생각나게 하니, 봄밤이 어찌 이토록 쓸쓸하다고 말했는가.

90. 次韻友人梅花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迎臘梅花一本芳。生憎胡蝶宿深房。未逢陸抗江南信。斷盡多情旅客腸。

번역

새해를 맞이하는 매화는 한 가지에 향기가 가득하니, 나비가 깊은 방에 깃드는 것을 미워하노라. 육항(陸抗)이 강남에서 보낸 소식을 아직 만나지 못했으니, 다정(多情)한 나그네의 애틋한 마음을 다 끊어내지 못하겠구나.

원문

天公著意早春芳。故結紅綃作絳房。莫笑宋公曾作賦。平生鐵石譬肝腸。

번역

하늘이 뜻을 두어 이른 봄의 꽃다운 향기를 내셨으니, 고운 붉은 비단을 맺어 붉은 꽃방을 만드셨구나. 송공(宋公)이 부를 지었던 것을 비웃지 마라. 평생의 철석 같은 마음이 곧 간장과 같으니라.

91. 寄密州大守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7C

원문

名藩千里謁氷壺。匹馬單裝滯旅途。屢許和顏曾假色。肯廻温律更吹枯。南枝舊有歸禽戀。中道誰憐困鮒呼。泉壤也應知感德。仁心何忍棄遺孤。

번역

명망 높은 지방관(名藩)을 뵙고자 천 리 길을 달려와 얼음처럼 맑은 마음(氷壺)을 우러러보러 왔습니다. 말 한 필에 홀로 짐을 꾸려 나그네 길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러 번 온화한 얼굴로 화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색채를 빌려주셨거늘, 어찌하여 따뜻한 가락을 다시 불어 마른 풀을 말리지 않으시는가. 남쪽 가지에는 예부터 돌아오려는 새가 그리워하고, 도중에는 누가 곤궁한 붕어의 울음소리를 가련하게 여기겠습니까. 샘과 흙도 마땅히 은덕에 감동할 것이니, 어찌 인자한 마음으로 외로운 고아를 버려두실 수 있겠습니까.

92. 眉叟訪予於開寧。以鵝梨旨酒爲餉。〔原注:作詩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7D

원문

多公訪我出山行。路上鏗然鐵杖聲。百箇紫梨來大谷。一壺淸酒換烏程。久無好事尋揚子。忽喜論文見李生。欲葬醉鄕終不返。何人中路候淵明。

번역

다공(多公)이 나를 찾아 산에서 내려온 길에, 길 위에서는 철장(鐵杖) 소리가 챙그랑거렸네. 큰 골짜기에서 보랏빛 배가 백 개나 오고, 오정(烏程)의 맑은 술 한 호리병을 바꾸었네. 오랫동안 양자(揚子)를 찾아 즐거운 일을 하지 못했는데, 문장을 논하다가 문득 이생(李生)을 만나 반가웠네. 취한 마을에 묻히고자 하나 끝내 돌아가지 못하니, 길 위에서 누가 도연명(陶淵明)을 기다리겠는가.

원문

紫微閑佩一壺行。門外時聞剝啄聲。問我歸來從小隱。留君談笑緩廻程。腹中早識精神滿。胸次都無鄙吝生。已使文章曾竝駕。中興應不羨三明。

번역

자미(紫微)를 한가로이 차고 한 호리병을 들고 가니, 문밖에서는 때때로 박을 쪼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게 물으니 돌아와서 소은(小隱)이 되려 한다기에, 그대를 머물게 하여 담소를 나누며 돌아가는 길을 늦추게 하였다. 배 속에는 이미 정신이 가득 차 있음을 알고, 가슴 속에는 인색함이 전혀 없으니, 이미 문장(文章)이 한껏 빛나고 있다. 중흥(中興)을 이룬다면 마땅히 세 명의 현인(三明)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원문

早抱文章獨鼓行。妙年方見振家聲。窮途誤墜千尋壑。逸足須騰萬里程。作賦誰先吳國士。誦書曾號洛陽生。鸞凰不是尋常應。待看來儀表聖明。

번역

일찍이 문장을 품고 홀로 고행(鼓行)을 불렀으니, 젊은 나이에 바로 가문의 명성을 떨치고 있구나. 곤궁한 길에 잘못 빠져 천 계곡의 골짜기에 떨어졌으나, 뛰어난 말은 마땅히 만 리 길을 달려야 한다. 부를 지음에는 누가 먼저 오나라의 선비보다 앞서겠으며, 글을 읽음에는 일찍이 낙양생(洛陽生)이라 불렸도다. 난봉(鸞凰)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니, 장차 성명한 임금의 거동인 내의(來儀)를 보게 되리라.

원문

曾向秋風送子行。相逢今喜識音聲。詩名早竊韓齊柳。交道重申孔遇程。莫愛孤棲參白足。應須一起爲蒼生。新篇忽得飜瀾讀。鐵點銀鉤照眼明。

번역

일찍이 가을바람 속에 자행(子行)을 배웅했었는데, 오늘 다시 만나 그 목소리를 알게 되니 참으로 기쁘다. 시문은 일찍이 몰래 한제류(韓齊柳)의 명성을 훔쳤고, 사귀는 도리는 공우정(孔遇程)의 경우처럼 중히 거듭하였다. 외로이 거처하는 백족(白足)을 사랑하지 마라, 마땅히 함께 일어나 창생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새로운 글을 문득 얻어 파란을 일으키며 읽으니, 철점은구(鐵點銀鉤)가 눈을 밝게 비춘다.

93. 寄尙州鄭書記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8A

원문

九重親奉紫泥封。暫屈長才佐小邦。堂上高懸絳紗帳。幕中偏擁碧油幢。去珠感德初還浦。猛虎知仁已渡江。自喜龍門參下客。巨鍾時許寸蓬撞。

번역

임금님께서 직접 내리신 자니(紫泥)의 봉서를 받으셨으니, 잠시 재능을 굽혀 작은 나라를 돕게 되셨구려. 당상(堂上)에는 붉은 비단 휘장이 높이 걸려 있고, 막사 안에는 푸른 기름 휘장이 쳐진 깃발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네. 구슬 같은 덕을 베풀어 처음 포구로 돌아가니, 용맹한 호랑이가 인자함을 알고 이미 강을 건넜다네. 용문(龍門)에 올라 과거에 급제한 손님임을 스스로 기뻐하니, 커다란 종이 때때로 작은 쑥을 부딪치듯 그대의 재능이 세상에 알려지겠구려.

원문

風波千里謁名藩。謬辱賢侯禮遇恩。誰道官居如水泠。尙驚談笑作春温。翠娥屢見東山妓。綠蟻閑傾北海樽。廣坐相迎頻倒屣。自慙短拙是王孫。

번역

천 리 길 풍파를 헤치고 명망 높은 고을에 찾아가니, 어진 후작께서 나를 예우해 주시는 은혜가 과분하고 치욕스럽기까지 하구나. 누가 관직에 있는 것이 물처럼 맑고 깨끗하다고 말하겠는가. 담소 나누는 모습이 봄날의 온화함 같아 여전히 놀랍기만 하네. 동산기(東山妓)의 고운 모습도 자주 보았고, 북해(北海)의 술잔을 한가로이 기울이며 푸른 이끼 낀 술을 마셨네. 넓은 자리에 모여 나를 맞이하며 빈번히 신발을 거꾸로 신을 정도로 서둘러 마중하니, 왕손(王孫)인 내가 스스로의 짧고 졸렬함을 부끄러워하노라.

94. 遊法住寺。贈存古上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山中昨叩空王門。目擊方知道已存。貌古形疏雙眼碧。獨居方丈纔八尺。跏趺入定便終夕。上人唯嗜大道漿。吾雖不飮亦淸狂。東坡翰墨工滑稽。坐客絶倒主人咍。明朝挽袖不忍別。相期更踏靑山雪。歸來一缺靑天月。惠遠應思陶靖節。雲間問路無辭頻。長作相逢乞話人。

번역

산속에서 어제 공왕(空王)의 문을 두드렸더니, 눈으로 뵙고서야 비로소 도(道)가 이미 갖추어져 있음을 알았네. 모습은 예스럽고 형체는 소박하며 두 눈은 푸르구나. 홀로 거처하는 방장은 겨우 여덟 자인데, 가부좌를 틀고 입정(入定)하여 밤을 꼬박 지내시네. 상인(上人)은 오직 대도의 술만을 즐기시니, 내가 비록 마시지는 않으나 또한 맑고 미친 듯하네. 동파(東坡)의 필묵은 해학이 뛰어나 손님들을 웃음바다로 만들고 주인은 즐거워하였네. 내일 아침 소매를 붙잡고 차마 이별하지 못하리니, 다시 청산의 눈을 밟기로 기약하세. 돌아오면 푸른 하늘에 달만 홀로 비어 있겠으나, 혜원(惠遠)은 마땅히 도정절(陶靖節)을 생각하리라. 구름 사이에서 길을 물으며 빈말로 자주 묻노니, 오래도록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리라.

95. 次韻鄭書記見贈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8B

원문

名世生當五百年。高才不讓在盧前。興來自斡千鈞筆。吟罷閑題十樣牋。太白肝腸如錦麗。陸機詞賦似珠連。應須火急供詩硯。斫取靑松萬竈煙。

번역

안명세(安名世)는 마땅히 500년 동안 세상에 이름을 떨칠 인물이라네. 높은 재능은 노전(盧前)에 있는 이에게도 뒤지지 않으니, 흥취는 알천균(斡千鈞)의 붓끝에서 나오고, 읊조림을 마치면 열 가지 종류의 시문(詩文)이 한가로이 제기되네. 태백(太白)의 간장은 비단처럼 아름답고, 육기(陸機)의 사부(詞賦)는 구슬이 이어지는 듯하구나. 마땅히 급히 시를 짓는 벼루에 보태어 주어야 하니, 만 개의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소나무 연기를 베어다 써야겠네.

96. 送眉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地角天涯隻影分。那知謦咳得重聞。飄零亂世誰存者。故舊如今只有君。浪迹相逢浮海葉。無心來作出山雲。春風好趁重尋約。飛策休辭道路勤。

번역

땅 끝과 하늘 끝에 외로운 그림자만 나뉘어 있구나. 그대의 기침 소리를 이토록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어지러운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이들 중 누가 살아남겠는가. 옛 친구 중 이제는 오직 그대뿐이로다. 바다 위를 떠도는 잎새처럼 떠돌다 서로 만났으니, 아무런 마음 없이 산속의 구름처럼 나타났구나. 봄바람이 좋을 때 다시 만날 약속을 서둘러 찾아오리니, 말을 타고 부지런히 길을 가며 길 위에서 머뭇거리지 마라.

97. 次鄭書記韻。戲作〔原注:三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8C

원문

中散昂䀚瘦鶴姿。一麾初出鎭南垂。揮毫欲作風騷句。壓倒屯田鵲踏枝。

번역

중산(中散)은 기운이 없고 야위어 학과 같은 자태를 지녔구나. 한 번 휘두르는 명령으로 처음 출현하여 남쪽을 진압하고 수호하네. 붓을 휘둘러 풍류 넘치는 시구를 지으려 하니, 둔전(屯田)의 기세를 압도하고 까치가 가지에 내려앉는구나(작답지, 鵲踏枝).

원문

自憐憔悴澤邊姿。去國時時涕淚垂。萬里歸心生羽翼。那堪越鳥戀南枝。

번역

못가에 있는 초췌한 내 모습이 스스로 가련하구나. 나라를 떠날 때면 때때로 눈물이 흐른다. 만 리 밖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은 날개를 돋게 하는데, 남쪽 가지를 그리워하는 저 새의 마음을 어찌 견딜 수 있으랴.

원문

雲作衣裳雪作姿。可憐疏影倚欄垂。多情杜牧尋春晚。只恐重來于滿枝。

번역

구름은 옷을 만들고 눈은 자태를 만드네. 가련하게도 성긴 그림자는 난간에 기대어 드리워져 있구나. 다정함 많은 두목(杜牧)은 늦봄을 찾아오지만, 다만 그(꽃)가 다시 만발한 가지에 머물까 두렵구나.

98. 聞湛之擢第。以詩賀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靑雲高第唱簾前。藉藉詩名四海傳。我昔獨麾韓信鉞。君今先著祖生鞭。曾誇一代同爭霸。恥作三山最後仙。天下英雄幾人在。可憐空老瘴江邊。

번역

담지(湛之)가 급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시로써 축하한다. 푸른 구름처럼 높은 급제를 하여 채점하는 커튼 앞에 이름을 올리니, 시의 이름이 자자하여 온 세상에 전해지네. 내가 예전에 홀로 한(韓)의 신월(信鉞)을 휘둘렀으나, 그대는 이제 전조생(田祖生)의 채찍을 먼저 잡았구려. 일대의 패권을 다투던 것을 일찍이 자랑하였는데, 삼산(三山)의 마지막 신선이 된 것을 부끄러워하네. 천하의 영웅이 몇이나 있겠는가, 장강(瘴江) 변에서 헛되이 늙어가는 것이 가련할 따름이네.

99. 題竹林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28D

원문

乘閑杖屨訪仙家。境密人稀富物華。十萬丈夫軒外竹。三千宮女檻前花。那愁世上春將暮。別有壺中日未斜。儒釋相逢行樂處。不知飄泊在天涯。

번역

한가로운 때를 틈타 신선이 사는 집을 찾아가니, 경치는 깊고 사람은 드문데 물산은 풍요롭고 꽃은 화사하구나. 십만 장부의 집 바깥에는 대나무가 있고, 삼천 궁녀의 우리 앞에는 꽃이 피어 있네. 세상의 봄이 저물어감을 어찌 근심하지 않으랴. 항아 속의 해는 아직 기울지 않았으니, 유학자와 불교도가 서로 만나 즐거움을 누리는 곳에서, 하늘 끝에서 떠도는 신세를 알지 못하네.

100. 聞觱篥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臨風送響細泠泠。幾片梅花落後庭。莫向離筵吹一曲。危腸易斷不須聽。

번역

바람을 마주하며 울려 퍼지는 소리는 가늘고도 서늘하구나. 매화 꽃잎이 떨어지는 듯한 '매화락(梅花落)' 노래가 후정(後庭)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이별의 잔치에서 한 곡조를 불지 마라. 애끊는 소리는 간장을 끊어놓기 쉬우니 굳이 듣지 말아야 하리라.

101. 李相國〔原注:光緖〕挽詞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兩代黃扉相。時稱萬石君。獨全知畏愼。早白爲憂勤。遺令孤皆奉。陰功世莫聞。秋風數行淚。灑與北印墳。

번역

두 세대에 걸쳐 황비(黃扉)의 재상이 되었으니, 당시에는 만석군(萬石君)이라 일컬었다. 홀로 온전하게 지외(知畏)와 신중함을 지켰고, 일찍이 백성(白)을 위하는 것을 근심으로 삼았다. 남긴 유언에 외로운 자식들을 모두 받들라 하였으나, 남몰래 쌓은 공덕은 세상에 들리지 않는다. 가을바람 속에 몇 줄기 눈물이 북인(北印)의 무덤가에 뿌려진다.

102. 代書答金秀才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昨傳書信勸加餐。一別堪嗟再會難。每欲烹鷄侍供給。因思捫蝨話辛酸。近來交道如雲薄。唯有先生耐歲寒。秋入衡陽多北雁。須應爲我報平安。

번역

어제 보내온 편지에는 밥을 더 잘 챙겨 먹으라고 권하더군요. 한 번 헤어짐이 탄식스러울 만큼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매번 닭을 잡아 대접하고 싶었으나, 문득 빈궁한 시절을 떠올리니 그 사연이 매워집니다. 근래에 우리 사이의 교분이 구름처럼 옅어졌으니, 오직 선생만이 추위를 견뎌내시리라 믿습니다. 가을이 되어 형양(衡陽)에 북쪽 기러기가 많이 들어오니, 반드시 나를 대신하여 평안함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103. 作詩賀李壯元眉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凜凜奇鋒百勝威。已看三擅選賢闈。共遊場屋君先捷。笑指煙霞我獨歸。風急摶鵬從北起。月明驚鵲向南飛。山妻只怪頭如雪。猶着當年一布衣。

번역

늠름하고 기이한 칼끝은 백 가지 승리의 위엄을 갖추었구나. 이미 삼천(三擅)의 재능으로 어진 이를 뽑는 선현위(選賢闈)를 보았네. 함께 장옥(場屋)에서 노닐던 그대는 먼저 급제하였고, 나는 웃으며 안개와 노을 속으로 홀로 돌아간다네. 바람이 급하니 대붕(大鵬)은 북쪽에서 날아오르고, 달이 밝으니 까치가 남쪽을 향해 놀라 날아가는구나. 산처(山妻)는 그저 머리가 눈처럼 하얗게 변한 것을 탓할 뿐, 여전히 그 시절의 한 명의 포의(布衣)와 같구려.

104. 法住寺堂頭惠紙筆。因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0A

원문

吾家二公俱英賢。不慙康樂與惠連。白衣繼入翰林院。弟兄高步八花塼。□

번역

우리 집안의 두 어른은 모두 영명하고 현명하시니, 강락(康樂)과 혜련(惠連)에 부끄럽지 않다. 평민의 신분으로 한림원(翰林院)에 연이어 들어갔으며, 형제는 팔화전(八花塼) 위를 높이 걸어갔으나, □(결락되어 뜻이 이어지지 않는다).

원문

皇朝制冊歸大手。揮毫潤色金華牋。自是平生無長物。秪得文稿爲家傳。因期三葉居著作。家聲不欲墜吾先。每窮穀皮禿兔毫。不減風月賦三千。中遭喪亂先廬毀。藏書盡作劫灰然。朝廷試士重勇爵。文章不直一銖錢。不如一朝投筆去。功成可得圖凌煙。飜思昔日著書者。亦有賈屈洎馬遷。雖云一時不得意。猶振聲名千百年。我今流落身無事。欲效揚雄鴣草大玄。却歎中書君已老。分無夢授大如椽。都下楮生價亦貴。爲文自弔剡溪邊。年來未厭彫肝腎。試爲貽書乞老禪。遠寄鼠鬚鋒正利。兼分繭紙色何鮮。湘東三品何足貴。益州十樣徒誇前。殷勤坐覺成山冢。不廢舊學窮覃研。會當一撰高僧傳。無使名德遺南泉。

번역

황조(皇朝)의 제책(制冊)이 대수(大手)에게 돌아갔으니, 붓을 휘둘러 금화전(金華牋)을 윤색해 주셨습니다. 이로부터 평생에 더 바랄 것이 없게 되었고, 오직 문고(文稿)를 얻어 가문의 전승으로 삼을 뿐입니다. 삼엽(三葉)에 저술을 완성하기를 기약하며, 가문의 명성이 저보다 먼저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매번 닳고 해진 붓을 가지고 글을 써도 풍월에 부치는 삼천(三千)의 시와 그 기운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전란을 만나 선려(先廬)가 허물어지고, 장서들은 모두 겁회(劫灰)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조정에서 선비들을 시험할 때는 용맹한 관직을 중시하니, 문장이 한 줌의 돈(一銖錢)만큼의 가치도 없습니다. 차라리 하루아침에 붓을 던지고 떠나는 것이 낫겠습니다. 공을 이루어 능연(凌煙)의 도를 얻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다시 옛날의 저서들을 생각해보니, 가굴(賈屈)과 마천(馬遷) 같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비록 한때 뜻을 얻지 못하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그 명성을 천백 년 동안 떨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유랑하는 몸이라 아무런 일도 없으니, 양웅(揚雄)이나 대현(大玄)처럼 드높이고 싶으나, 도리어 중서군(中書君)이 이미 늙었음을 탄식합니다. 꿈속에서라도 거대한 붓을 전해 받을 수 없으니, 도하(都下)의 종이 값 또한 귀합니다. 문장을 쓰며 스스로 염계(剡溪) 변에서 조문합니다. 근래에 간과 신장을 깎아내는 듯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으니, 노선(老禪)에게 글을 보내어 늙음을 청해 보려 합니다. 멀리 쥐수염 붓(鼠鬚鋒)을 보내니 참으로 날카롭고 이롭습니다. 또한 겹겹이 쌓인 종이의 색깔이 어찌 그리 선명한지요. 상동(湘東)의 삼품(三品)이 어찌 귀할 것이며, 익주(益州)의 열 가지 양식은 헛된 자랑일 뿐입니다. 정성스럽게 앉아 있다 보면 산과 같은 무덤이 될 듯하니, 옛 학문을 폐하지 않고 깊이 연구하겠습니다. 반드시 고승전(高僧傳)을 한 편 저술하여, 명성과 덕이 남전(南泉)에게서 끊어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105. 與眉叟同會湛之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久因流落去長安。空學南音著楚冠。歲月屢驚羊胛熟。風騷重會鶴天寒。十年契闊挑燈話。半世功名抱鏡看。自笑老來追後輩。文思宦意一時闌。

번역

오랫동안 유랑하며 장안(長安)을 떠나 있었네. 헛되이 남음(南音)을 배우며 초관(楚冠)을 썼었지. 세월은 거듭 양갈(羊胛)이 익어가는 것을 놀라게 하고, 풍소(風騷)를 다시 만나니 학천(鶴天)은 차갑구나. 십 년 동안 떨어져 지내다 등불을 켜고 이야기를 나누고, 반평생의 공명(功名)은 거울을 안고 바라보네. 늙어서 후배들을 뒤쫓는 것을 스스로 비웃으니, 문재(文思)와 벼슬하려는 마음이 한때에 다하였구나.

106. 夜會湛之家。探韻得閉字。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新秋微雨霽。念子時同詣。相逢日相少。笑口難強閉。呼兒展碧簟。滑膩波紋細。金樽開小軒。玉局臨幽砌。夜深孤月出。亂影森松桂。共感時節變。入耳蟲聲嘒。岸巾縱謔浪。更長如一歲。耿耿終不寐。導舊堪垂涕。

번역

새로운 가을의 가랑비가 그쳤다. 자시(子時)에 함께 갔던 일을 생각하니, 서로 만나는 날이 점점 줄어든다. 웃는 얼굴을 억지로 짓기 어렵다. 아이를 불러 푸른 대자리(碧簟)를 펴게 하니, 매끄러운 물결무늬가 가늘다. 금잔을 들고 작은 정자를 열고, 옥 같은 술잔은 그윽한 돌계단에 임한다. 밤이 깊어 외로운 달이 떠오르니, 어지러운 그림자가 소나무와 계수나무에 빽빽하다. 함께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데, 귀에는 벌레 소리가 울려 퍼진다. 머리띠를 풀어헤치고 방탕하게 노닐며, 세월은 한 해가 더해지듯 길어만 간다. 번뜩이는 달빛에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니, 옛일을 떠올리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107. 次友人見贈詩韻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十載崎區面撲埃。長遭造物小兒猜。問津路遠槎難到。燒藥功遲鼎不開。科第未消羅隱恨。離騷空寄屈平哀。襄陽自是無知已。明主何曾棄不才。

번역

십 년 동안 험난한 고비마다 먼지 속에 부딪히며 살아왔네. 늘 조물주의 어린아이 같은 시샘을 받았구나. 나루터를 묻는 길은 멀어 뗏목으로도 도달하기 어렵고, 약을 굽는 공력은 더뎌 솥은 열리지 않네. 과거 급제의 기쁨은 사라지지 않아 나(羅)는 한스러움이 숨겨지지 않으니, 이소(離騷)를 굴원(屈原)에게 빈들 헛되이 보냈구나. 양양(襄陽)에서 스스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음은, 밝은 임금이 어찌 재능 없는 이를 버렸겠는가.

원문

秀逸天才獨不群。海東詞客孰如君。曾酬絶唱鬚先斷。近爲新篇筆欲焚。西晉遠欺陶處士。南朝高壓鮑參軍。昌黎死後無人繼。五百年來見古文。

번역

빼어나고 명석한 천재가 홀로 무리에 섞이지 않으니, 해동(海東)의 사객(詞客) 중 그대와 같을 자가 누구인가. 일찍이 절창(絶唱)을 주고받으며 수염(鬚先)을 먼저 끊었으며, 근래에는 새로운 작품을 지어 붓을 태우고 싶을 정도이다. 서진(西晉)의 시대는 멀리 도처사(陶處士)를 속였고, 남조(南朝)는 포참군(鮑參軍)을 압도하였다. 창려(昌黎)가 죽은 뒤로는 그를 이을 사람이 없으니, 오백 년 만에 고문(古文)을 보게 된다.

108. 諸公餞皇甫若水赴中原書記。僕以病不往。作詩寄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0D

원문

詩人自古多羈困。倒着靑衫佐州鎭。君不見大原居易位尙卑。白頭始得河南尹。又不見眉山子瞻老更貧。上章自請餘杭郡。先生磊落負高懷。故乞此官爲吏隱。況是中原眞劇邑。世說地靈人物俊。近來幕府厭凡才。雲水溪山長有恨。詔書今下命時賢。千里先聲應已振。好帶腰錢十萬歸。洛下春風初發軫。欲唱陽關第四聲。未解勸君杯更盡。何當依約作南遊。共膾鰣魚烹苦筍。舊聞紅粉盛都邑。燕寢凝香侍雲鬢。休矜自有鐵石腸。忍學當時處仲忍。送君江頭泣更多。恐君更續瑟琶引。

번역

시인은 예로부터 얽매이고 곤궁한 경우가 많았다. 푸른 옷을 입고 주진(州鎭)을 보좌하며 거꾸로 처신하기도 했다. 그대는 대원(大原)의 거이(居易)가 아직 지위가 낮았음을 보지 못하였는가. 백발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남윤(河南尹)이 되었다. 또한 미산(眉山)의 자첨(子瞻)이 늙어서 더욱 가난해졌음을 보지 못하였는가. 그는 상장(上章)에서 스스로 여항군(餘杭郡)을 청하였다. 선생은 기개가 드높고 높은 뜻을 품고 계시니, 이에 이 관직을 청하여 관리로서 은거하고자 하신 것이다. 하물며 이곳 중원(中原)은 참으로 극적인 고을이라,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령(地靈)하여 인물이 준걸하다고 하였다. 근래에 막부(幕府)에서는 평범한 재능을 싫어하니, 구름과 물, 계곡과 산에는 늘 한이 있다. 조서(詔書)가 이제 내려와 어진 이를 명하니, 천 리 밖에서 먼저 울려 퍼진 명성이 이미 떨쳐졌다. 좋은 것은 허리춤의 돈 열만 냥을 차고 돌아오는 것이니, 낙하(洛下)에서 봄바람이 처음 수레를 움직이게 한다. 양관(陽關)의 네 번째 곡조를 부르고 싶으나, 그대에게 술잔을 다시 다 비우라고 권하는 법을 아직 모른다. 어찌 약속에 따라 남쪽으로 유람하며 함께 상어 회를 먹고 쓴 죽순을 삶아 먹겠는가. 예전부터 홍분(紅粉)이 성한 도읍이라 들었다. 침소에는 향기가 응결되어 구름 같은 머리칼을 모신다 하니, 스스로 철석 같은 심장을 가졌다고 자만하지 마라. 강가에서 그대를 보내며 눈물 흘리는 일이 더 많아질까 두렵고, 그대가 다시 거문고와 비파를 타며 노래를 이어갈까 걱정된다.

109. 賀洪仁演得第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1A

원문

丹臺同籍十餘年。見說先爲白日仙。若有庭前盤鼎在。更敎鷄犬上靑天。

번역

단대(丹臺)에서 함께 이름을 올린 지 십여 년 만에, (그대가) 과거에 급제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치 백일선(白日仙)이 된 듯하구나. 만약 정 앞에 솥이 놓여 있다면, 다시금 닭과 개가 푸른 하늘로 올라가게 하겠노라.

110. 遊紺岳正覺僧舍。書其壁。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1B

원문

造物小兒眞好弄。摶沙戲作千峯衆。玆山首尾跨數州。天外廻翔如舞鳳。嗟吾曾與山無素。拄杖高遊久未縱。探幽抉異從今始。好伴閑人躡飛鞚。彭鏗踏逕爭猿猱。挽攙始覺衣裘重。玉室金堂餘漢士。潛通五岳有幽洞。道人眼力覷天功。架嵒早結飛樓湧。我來問年笑不答。藜牀坐穴無迎送。屋底流泉淸可挹。初嘗冷洌齒先凍。靈芝長產白雲阿。古栢孤生蒼石縫。曉風吹雪落寒梢。眩轉雙眸如走永。臨軒一望大千界。不啻胸中九雲夢。此間不可無我詩。況被煙霞助吟諷。人生萬事廻頭錯。卜隱高棲誰可共。無家莫畏妻帑罵。行樂何須妓女從。若許歸來專一壑。他年此地開茅棟。

번역

조물주 어린아이가 참으로 노는 것을 좋아하여, 모래를 뭉쳐 수천 개의 봉우리를 만들어 노니는구나. 이 산은 머리와 꼬리가 여러 주(州)에 걸쳐 있는데, 하늘 밖에서 춤추는 봉황처럼 빙빙 돌며 날아다닌다. 아아, 나는 일찍이 산과 아무런 인연이 없었구나. 지팡이를 짚고 높이 노닐며 오래 머물렀으나 아직 마음껏 즐기지 못했는데, 그윽한 곳을 찾아내고 색다른 것을 가려내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가로운 사람과 짝이 되어 날쌔게 달리는 말을 타고, 쟁쟁한 소리를 내며 오솔길을 밟아 원숭이와 여우를 쫓는다. 누군가를 부축해 끌어당기니 비로소 옷과 가죽옷이 무겁게 느껴지는구나. 옥실(玉室)과 금당(金堂)에는 남은 한사(漢士)가 있고, 오악(五岳)의 그윽한 동굴에 잠겨 통달하였으니, 도인(道人)의 안목은 하늘의 공덕을 꿰뚫어 보는구나. 바위 위에 누각을 지어 일찍이 날아오르는 듯한 형세를 갖추었으니, 내가 와서 나이를 물어도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다. 칡덩굴로 만든 평상에 앉아 동굴을 마주하니 맞이하고 보내는 이가 없구나. 집 바닥으로 흐르는 샘물은 맑아서 바로 떠 마실 수 있는데, 처음 맛보니 차갑고 매끄러워 이가 먼저 얼어붙는다. 영지(靈芝)는 백운(白雲) 언덕에 길게 자라나고, 고목인 측백나무는 푸른 바위 틈에 외로이 자라 새벽바람에 눈을 맞으며 차가운 가지 끝에 눈을 떨어뜨린다. 두 눈이 어지러이 돌아가는 것이 마치 영주(永州)를 달리는 듯하구나. 난간에 임하여 한 번 바라보니 대천세계(大千世界)가 펼쳐지니, 가슴 속의 구운몽(九雲夢)과 다를 바 없다. 이 가운데 나의 시가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안개와 노을의 도움을 받아 시를 읊조리는데, 인생의 만사가 머리를 돌리면 모두 잘못된 것이로다. 은거하여 높이 거처할 곳을 점지받아도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집이 없다고 해서 아내의 꾸짖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거움을 누리는 데 어찌 기녀의 따름이 꼭 필요하겠는가. 만약 돌아와 오로지 골짜기에 머무는 것을 허락한다면, 훗날 이곳에 초가집을 짓고 살리라.

111. 訪興嚴寺堂頭。兼簡金秀才。〔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1C

원문

幅巾短葛手携筇。問路雲間紫翠峯。十載寒暄如夢寐。一甌談笑許從容。尋眞要記盧山面。結社須追白老蹤。莫訝近來形變盡。此生身計大龍鍾。

번역

두건을 쓰고 짧은 삼베옷을 입은 채 손에는 죽장(竹杖)을 들고, 구름 사이의 자줏빛과 푸른빛 도는 봉우리를 물으며 길을 묻는다. 십 년 만에 나누는 인사가 마치 꿈속에서 만난 듯하구나. 한 잔 술 나누며 담소함이 여유롭다. 참된 도를 찾는 것은 노산(盧山)의 면모를 기억하는 데 있고, 결사를 함은 마땅히 백로(白老)의 자취를 따라야 한다. 근래에 모습이 변해버렸다고 놀라지 마라, 이 몸의 계획은 크게 나태해져 있다.

원문

醉裏閑行獨倚筇。共吟詩意盡西峯。羨君年少才無敵。嗟我身窮世不容。已作寧原三友約。羞言李杜二人蹤。從橫潑墨華牋上。筆法應傳王與鍾。

번역

취중에 한가로이 거닐며 홀로 지팡이에 의지하니, 함께 시의 뜻을 읊조리며 서봉(西峯)을 다 채우네. 그대의 젊고 대적할 재주가 없음을 부러워하며, 나의 궁핍한 처지가 세상에서 용납되지 않음을 탄식하노라. 이미 영원(寧原)에서 세 벗과 약속하였으니,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두 사람의 자취를 말하기는 부끄럽구나. 거침없이 먹을 뿌려 화려한 종이 위에 쓰니, 필법은 마땅히 왕희지(王羲之)와 종요(鍾繇)를 전하리라.

112. 寄從兄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自從避地便忘歸。夜夢時時入試闈。要使家聲今復振。靑雲相伴鶺鴒飛。

번역

피난하며 지낸 뒤로 돌아갈 생각을 잊었습니다. 밤마다 꿈속에서 때때로 시험을 치르는 대궐에 들어갑니다. 가문의 명성이 다시 떨쳐지기를 원하니, 청운의 뜻을 품은 이들이 제비처럼 함께 날아오르기를 바랍니다.

113. 寄眉叟求草書〔原注:公舅崔司業永濡不一焉〕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1D

원문

平生嗜書如啖土。玉軸錦囊多蓄聚。豈患身窮家轉貧。散盡千金收斷楮。一從繭紙入昭陵。世上奇蹤難更覩。子敬當時頗亦工。豐冬槎枿見枯樹。謾道世人那得知。外論皆言不如父。解愛氷淸與玉潤。一家二妙還超古。縱使羲之今復生。祇應北面先降杜。昨來向壁一揮灑。得見大娘渾脫舞。堪嗟未入草三昧。不敢心追手自慕。願將斗酒持飮君。試敎醉作黃樓賦。今朝寄扇乞先題。豈學蕺山老嫗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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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글씨를 좋아하는 것이 마치 흙을 먹는 것과 같아서, 옥축(玉軸)과 금낭(錦囊)에 많이 모아 두었습니다. 몸이 궁핍하고 집안이 더욱 가난해지는 것을 어찌 걱정하겠습니까. 천금을 다 써버리더라도 끊어진 종이 조각을 거두어들이니, 한 번부터는 닥종이가 소릉(昭陵)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의 기이한 자취를 다시 보기 어려우니, 자경(子敬)은 당시에 참으로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풍년 겨울의 물나무가 마른 나무에서 보이는 듯하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느냐고 헛되이 말합니다. 밖에서 논하기를 모두 아버지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해애(解愛)의 얼음처럼 맑은 기운과 옥처럼 윤택한 기운이 한 집안의 두 가지 묘함으로서 오히려 옛사람을 초월했습니다. 설령 희지(羲之)가 지금 다시 살아난다 해도, 마땅히 북면하여 먼저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어제 벽을 향해 한 번 휘둘러 썼더니, 대낭(大娘)이 혼연히 춤추는 듯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초서 삼매(三昧)에 들지 못한 것이 참으로 탄식스러워, 감히 마음으로 따르고 손으로 우러러보기만 합니다. 원컨대 한 말의 술을 가지고 그대에게 마시게 하며, 취한 김에 황루부(黃樓賦)를 지어보기를 청합니다. 오늘 아침 부채를 보내어 먼저 글씨를 써달라고 청하니, 어찌 즙산(蕺山) 노파처럼 화를 내겠습니까.

114. 陪崔司業訪吳先生別墅〔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2A

원문

高文妙扶鬼神幽。早歷詞階翰苑遊。杜氏腹中呑國子。楮公皮裏襄陽秋。聲名東漢無雙客。家世中朝第一流。筆下三千風月句。成編願爲後人留。

번역

높은 문장은 오묘하여 귀신을 돕는 듯하고, 일찍이 문장가들의 계단을 거쳐 한원(翰苑)에서 노닐었네. 두(杜) 씨의 복중에는 국자(國子)를 삼켰고, 저(楮) 씨의 가죽 안에는 양양추(襄陽秋)가 담겨 있구나. 동한(東漢) 시대에 비길 데 없는 명성을 떨친 손님이며, 가문은 중조(中朝)의 제일류라네. 붓 끝에서 나오는 삼천 편의 풍월 같은 구절들을 엮어 편찬하니, 바라건대 후세 사람들에게 남겨지기를 원하노라.

원문

郊原風物正幽幽。跨馬閑來出郭遊。多與門生行避路。因尋隱客幸逢秋。謝公窓外靑山遠。嚴子臺前碧水流。掃石殷勤題歲月。故敎奇迹洞門留。

번역

교외의 풍경이 참으로 그윽하구나. 말을 타고 한가로이 성 밖으로 나와 노닐다. 문생(門生)들과 함께 길을 피하여 가다가, 은거하는 손님을 찾아 가을을 만났네. 사공(謝公)의 창밖에는 청산이 멀고, 엄자(嚴子)의 대 앞에는 푸른 물이 흐르네. 돌을 쓸며 정성스레 세월을 새겨 넣으니, 옛 기적이 동문(洞門)에 머물게 하였구나.

115. 眉叟見和。復用前韻。〔原注:三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2B, ITKC_MO_0003A_A001_232C

원문

二王聲價擅東土。每一落筆觀者聚。靳固未嘗妄揮灑。侯王爭乞題縑楮。至今搨本直數萬。後俗亂眞何足覩。先生與此欲抗衡。取供筆硯松千樹。要將鐵葉裹門限。閑事不須瞋老父。若非竊讀枕中訣。妙藝那能冠今古。已看咄咄眞逼人。下方羅趙上崔杜。詩成自寫今寄我。落花飛雪風前舞。氷寒於水性所得。師法區區何用慕。風流雅麗意兼備。煩公更寫洛神賦。他時會客設寒具。預恐一涴令人怒。

번역

이왕(二王)의 명성은 동토(東土)에서 으뜸이라, 붓을 한 번 내릴 때마다 보는 이들이 모여드니, 아껴서 함부로 휘두르는 법이 없었다. 제후와 왕들이 다투어 종이에 글을 써달라 청하였고, 지금까지 필사본이 곧 수만 권에 달한다. 후대의 속된 난잡함은 참으로 볼 가치가 없다. 선생께서 이와 맞서고자 하시니, 붓과 벼루를 삼아 쓸 천 그루의 소나무를 취하고, 철엽(鐵葉)으로 문턱을 감싸려 하신다. 한가로운 일로 늙은 아버지를 노엽게 하지 마시라. 만약 잠자리에서 읽은 비결을 몰래 훔쳐본 것이 아니라면, 그 묘한 예술이 어찌 지금과 옛날을 통틀어 으뜸이라 하겠는가. 이미 보기에 대단히 진실하여 사람을 압도한다. 아래로는 나조(羅趙)가 있고 위로는 최두(崔杜)가 있으니, 시를 완성하면 스스로 써서 지금 내게 보내주신다. 떨어지는 꽃과 날리는 눈이 바람 앞에서 춤추는 듯하니, 얼음이 차가운 것은 물의 성질에서 얻은 것이다. 스승의 법을 구구히 따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풍류가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뜻까지 겸비하였으니, 번거로우시겠지만 다시 낙신부(洛神賦)를 써 주시기를 청한다. 다른 때에 손님을 맞이하여 소박한 음식을 차릴 때, 혹여 한 자락의 얼룩이 사람을 노하게 할까 두렵다.

원문

弄筆成堆幾瘞土。年來大簏旋看聚。盡將衣帛書後鍊。豈獨殷勤窮穀楮。羲獻風流故自得。胡鍾閫域已曾覩。莫嗟大似廣文貧。紅葉書殘霜杮樹。乞寫吾家新榧几。肯容誤刮門生父。倂得張芝筋骨肉。闊視橫行高萬古。當時章草妙入神。變法獨聞齊相杜。君今年少已臻極。奮筆翩翩鸞正舞。弟子同時俱服膺。搥心嘔血徒增慕。暮春修楔山陰亭。會見臨流能自賦。祕藏傳囑有辨才。奉詔不畏文皇怒。

번역

붓을 놀려 글을 쌓아 올리니 몇 번이나 흙을 묻혔던가. 근래에는 큰 장터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번갈아 보네. 옷과 비단에 글을 써서 뒤에 연마하니, 어찌 홀로 곡식과 종이를 아끼는 정성뿐이겠는가. 희헌(羲獻)의 풍류를 본받아 스스로 얻었으니, 호종(胡鍾)의 곤역(閫域)을 이미 본 적이 있네. 광문(廣文)처럼 가난한 것을 한탄하지 마오. 붉은 잎은 서리 맞은 서편 나무에 남았으니, 우리 집의 새 호두 탁자를 써 달라고 청하노라. 문생(門生)의 아버지를 잘못 대접하는 것을 용납하겠는가. 장지(張芝)의 근골과 살을 함께 얻었으니, 만고의 높은 기상을 넓게 바라보네. 당시의 장초(章草)는 신묘하게 신의 경지에 들었고, 법을 바꾸어 독특하게 제상(齊相)과 두(杜)를 들었네. 그대는 올해가 젊은데 이미 극치에 이르렀으니, 붓을 휘두르면 마치 난새가 춤추는 듯하네. 제자들이 동시대에 모두 마음속에 새기며, 가슴을 치고 피를 토하며 흠모함이 더해지네. 늦봄에 산음정(山陰亭)을 수리하니, 흐르는 물가에서 스스로 시를 짓는 것을 만나게 되리라. 비장(祕藏)하여 전해 부탁하니 변재(辨才)가 있도다. 조서를 받들면서도 문황(文皇)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지 않네.

원문

掘發韋公墳上土。得法精思萬象聚。天工憐我老更窮。近爲廢田生構楮。肯厭家鷄更問人。相傳妙訣亦曾覩。要學素公備揮灑。庭前多種芭蕉樹。由來諸體備難得。草爲曾玄篆祖父。詞淸筆妙君第一。創法神奇變三古。平生曉書莫如我。欲作歌行才愧杜。紙中豈無王濛臥。掌上似看飛燕舞。留意於物錐雖所戒。寶君尺牘加愛慕。正思漢武意欲仙。飄然初讀子虛賦。□

번역

위공(韋公)의 무덤 위 흙을 파헤쳐 보니, 만물의 형상이 모여 있는 법도를 얻어 깊이 생각하게 된다. 하늘의 솜씨가 늙고 궁핍해진 나를 가엽게 여기시는가. 근래에 폐전(廢田)을 일구며 종이(楮)를 만들고 있으니, 집의 닭을 기르면서 어찌 다시 남에게 묻겠는가. 전해 내려오는 묘한 비결 또한 일찍이 보았다. 소공(素公)처럼 휘호(揮灑)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뜰 앞에는 파초(芭蕉) 나무를 많이 심었으니, 예로부터 여러 서체(諸體)를 갖추기가 참으로 어렵다. 초(草)는 증현(曾玄)의 전서(篆)를 조부(祖父)로 삼고, 사(詞)는 맑고 필치(筆妙)가 뛰어나니 그대가 제일이다. 신기한 법을 창안하여 삼고(三古)를 변화시켰으니, 평생 글을 깨우침에 나만한 이가 없다. 노래를 짓고자 하면 두(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니, 종이 속에 어찌 왕몽(王濛)이 누워 있지 않겠는가. 손바닥 위에서는 마치 날아다니는 제비가 춤추는 듯하다. 사물에 마음을 두는 것을 송곳처럼 날카롭게 경계해야 하나, 그대의 편지(尺牘)를 더욱 사랑하고 사모한다. 정작 한무제(漢武帝)의 뜻이 신선이 되고자 함을 생각하니, 홀연히 자허부(子虛賦)를 처음 읽었을 때와 같구나. □

원문

皇朝赴急須要君。莫待三徵于帝怒。

번역

조정의 급한 소식을 전하려 하니 그대에게 꼭 필요하네.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세 번 부름을 당하기를 기다리지 말게나.

116. 秋日訪湛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乘閑携一杖。尋訪故人居。酌酒無多我。看詩喜借予。那辭侵夜語。共占納涼初。揮筆高吟逸。開樽雅興餘。孟公投客轄。陶令愛吾廬。八閣松風細。連窓竹影疏。牀頭鳴蟋蟀。屋角掛蟾蜍。寒吹飜紅葉。微雲淡碧虛。園林勝金谷。風物似華胥。對奕閑爭局。移燈更看書。玆遊足可惜。別後莫忘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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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때를 틈타 지팡이 하나를 짚고 옛 친구의 거처를 찾아갔다. 술을 빚어 마시니 양이 많지 않아 나를 위해 시를 보며 즐거워하고는 내게 빌려주기도 한다. 밤늦도록 이야기하는 것을 어찌 사양하겠는가. 함께 더위를 피하며 처음으로 서늘함을 맛본다. 붓을 휘둘러 높이 읊조리니 풍류가 넘치고, 술통을 여니 우아한 흥취가 남는다. 맹공(孟公)은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도령(陶令)은 나의 초가집을 사랑한다. 여덟 칸 방에는 솔바람 소리가 가늘게 들리고, 창가에는 대나무 그림자가 성기게 비친다. 침상 머리에서는 귀뚜라미가 울고, 집 구석에는 두꺼비가 매달려 있는 듯하다. 찬 바람이 불어 붉은 잎을 뒤집어 놓으니, 옅은 구름은 푸른 허공에 맑게 떠 있다. 원림은 금곡(金谷)처럼 아름답고, 풍경은 화서(華胥)의 세계와 같다. 바둑을 두며 한가로이 국면을 다투다가, 등불을 옮겨 다시 책을 본다. 이 유람이 참으로 아쉬우니, 헤어진 뒤에도 나를 잊지 말아다오.

117. 和山人演之題淸平山滌心亭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3A

원문

曾向山中聞水樂。擊石傳風鳴萬壑。潨然淸韻便兩耳。不覺塵心渾自滌。見說淸平洞裏亭。亭前一派鳴幽寂。竟使佳名後世傳。猶勝山泉號卓錫。

번역

일찍이 산속에서 물소리를 들었으니, 돌을 치며 바람에 전해지는 소리가 만 개의 골짜기에 울려 퍼지네. 맑고 높은 운치가 쏟아져 내려와 양쪽 귀에 바로 들리니, 속세의 마음이 절로 씻겨 내려가는 듯하네. 청평동(淸平洞) 안의 정자를 말하니, 정자 앞의 한 줄기 물줄기가 그윽하고 고요하게 울리며, 마침내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전하게 하네. 이는 마치 산샘의 이름이 탁석(卓錫)보다 뛰어난 것과 같네.

118. 續牛後歌。與眉叟同賦。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天宮織女有夫壻。尙隔迢迢銀漢水。〔原注:神異記云。郭翰遇織女降其室。翰曰。牽牛郞何在。曰。河漢隔阻。不復相聞。〕相期七夕間何闊。獨宿空閨潛下淚。投梭不忍奔郭郞。豈識人間有羞恥。朱樓瓊閣更不思。卜居近住牛行里。祇緣天上隨牽牛。自稱牛後爲名字。那知異日繼牛後。往往宮中通小吏。神仙遺事疑有無。更問騎牛周柱史。

번역

천궁(天宮)의 직녀(織女)에게는 남편이 있네. 멀리 아득히 은하수(銀漢水)가 가로막고 있구나. 〔원주(原注): 신이기(神異記)에 이르기를, 곽한(郭翰)이 직녀를 만나 그 집으로 내려갔다. 곽한이 견우랑(牽牛郞)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직녀가 은하수가 가로막아 멀리 떨어져 있어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한다고 하였다.〕칠석(七夕) 사이에 기약하였는데 어찌 이리도 멀리 떨어져 있는가. 홀로 빈 침실에서 잠을 자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네. 북(梭)을 던지면서도 차마 견우랑(牽牛郞)에게 달려가지 못하니, 인간 세상에 수치심이 있음을 어찌 알겠는가. 붉은 누각과 옥 같은 각(閣)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니, 소를 모는 마을(牛行里) 근처에 자리를 잡고 살았네. 단지 하늘에서 견우(牽牛)를 따랐을 뿐이라, 스스로 이름을 견우후(牛後)라 칭하였네. 그런데 훗날 견우후(牛後)를 잇게 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종종 궁중에서 소리(小吏)가 통하곤 하니, 신선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지 없는지는 의심스럽고, 다시 소를 타는 주주사(周柱史)에게 물어보리라. <속우후가(續牛後歌). 미수(眉叟)와 함께 짓다.>

119. 書曹溪壁〔原注:二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3B

원문

安石曾無處世心。幅巾來往會稽陰。那嫌不見風流士。尙有高僧支遁林。坐學無言面壁心。蒼然松柏滿庭陰。吾師已得傳衣鉢。須見淸風繼小林。

번역

안석(安石)은 일찍이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이 없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회계(會稽)의 그늘진 곳을 오갔다. 풍류를 아는 선비를 만나지 못함을 어찌 싫어하겠는가. 아직 고승 지둔(支遁)이 도림(道林)에 있나니. 앉아서 배우며 말 없는 면벽(面壁)의 마음을 지키니,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가 뜰에 가득하여 그늘을 이룬다. 나의 스승은 이미 의발을 전해 받으셨으니, 반드시 맑은 바람이 소림(小林)을 잇는 것을 보아야 하리라.

120. 賦眉叟家垂柳。得園字。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一株垂柳近粧園。此地何年幸托根。老葉半書蟲字暗。柔條長繫午陰繁。低含宿雨藏虛閣。斜帶春風掛小軒。免被行人攀折苦。也勝憔悴在都門。

번역

[소주] 미수(眉叟)의 집에 드리운 버드나무를 보고, '원(園)' 자를 얻다.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장원(粧園) 가까이 드리워져 있네. 이 땅에 어느 해에 다행히 뿌리를 내렸는가. 늙은 잎에는 벌레가 갉아먹은 글자가 어렴풋이 적혀 있고, 부드러운 가지는 한낮의 무성한 그늘을 길게 붙잡고 있네. 낮은 가지에는 밤새 내린 비를 머금어 빈 누각에 숨겨두고, 비스듬히 봄바람을 띠고 작은 행랑채에 걸려 있네. 행인이 붙잡아 꺾어가는 고통을 면했으니, 도성 문 앞에 초췌하게 서 있는 것보다도 낫구나.

121. 訪吳先生別墅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3C

원문

偶牽秋興出郊坰。訪子雲家載酒行。金馬玉堂賢學士。蒼顏白髮醉先生。宋纖小隱林泉密。翁仲荒墟草樹平。飮罷歸來何用燭。途中新月照人明。

번역

우연히 가을의 흥취가 일어나 교외로 나갔다. 자운(子雲)의 집을 찾아 술을 싣고 길을 떠났다. 금마옥당(金馬玉堂)의 현명한 학사께서, 창백한 얼굴에 흰 머리가 된 채 선생과 함께 취해 계시네. 송섬(宋纖)처럼 작고 가냘프게 숲과 샘에 은거하니, 옹중(翁仲)의 거친 터에는 풀과 나무가 평탄하구나. 술을 다 마시고 돌아오는데 어찌 촛불이 필요하랴, 길 위의 초승달이 사람을 밝게 비추어 주는데.

122. 送湛之使北朝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凜凜李英公。妙略眞自蘊。起從虯鬚王。軍事嘗制閫。在朝威名重。亦勝兵百萬。吾子乃其後。事業不忘本。白面峨儒冠。慷慨安邊論。會當畫凌煙。成功知早晚。丈夫不爲將。奉使亦其願。壯哉乘傳去。持幣交冒頓。折衝以筆刃。何用掉三寸。文章動北朝。不使家聲隕。無愧百代祖。賢於長城遠。

번역

늠름한 이영공(李英公)은 묘한 계책을 참으로 스스로 품고 있었네. 용의 수염을 가진 왕을 따라 일어나 군사권을 맡아 통솔하기도 했었지. 조정에 있을 때 위명이 중하여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도 뛰어났으니, 그대는 바로 그 후손이라네. 사업을 함에 있어 근본을 잊지 않으니, 하얀 얼굴에 선비의 관을 쓰고 의기롭게 변방의 안녕을 논하는구려. 반드시 능연(凌煙)의 그림을 그리듯 성공할 것이니, 그 성공의 시기를 일찍이 알 수 있겠네. 대장부가 장수가 되지 못한다면 사명을 받드는 것 또한 그대의 염원이겠지. 늠름하게 역차를 타고 떠나가서, 모돈(冒頓)과 교류하며 화폐를 전하려나. 붓끝으로 적을 꺾어 격파할 터이니, 어찌 세 치 혀를 놀리는 데 그치겠는가. 문장으로 북조(北朝)를 뒤흔들어 가문의 명성이 떨어지지 않게 하고, 백 대의 조상에게 부끄러움이 없게 하라. 그대의 현명함은 장성(長城)보다도 멀리 퍼지리라.

123. 悼金閱甫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3D

원문

蟬貂七葉盛西都。光祿眞爲烈丈夫。映世片心淸似水。致君忠膽大於軀。驥馳狹路爭駑馬。虎去空山舞孼狐。正始風流今頓盡。幾令多士涕氷鬚。

번역

매미와 貂(貂)의 일곱 잎이 서도(西都)에 성하니, 광록(光祿) 녹진(祿眞)은 참으로 열렬한 대장부로다. 세상에 비치는 한 조각 마음은 물처럼 맑고, 임금을 보필하는 충성스러운 담력은 몸보다도 크도다. 천리마는 좁은 길에서 노마(駑馬)와 다투고, 호랑이는 빈 산에서 여우와 춤을 추는구나. 정시(正始)의 풍류가 이제 갑자기 다하였으니, 어찌 많은 선비가 눈물과 수염의 차가움을 느끼게 하겠는가.

124. 謝了惠首座惠糧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玉川先生居洛城。赤脚長鬚數間屋。意嫌長物擾天眞。文字五千空柱腹。平生嗜酒喜吟詩。不患擧家唯食粥。到骨窮寒幾欲死。豐年之食貴於玉。吾師大勝監河侯。獨歎莊周貧貸粟。今朝打門驚周公。乞與長腰盈數斛。急呼爨婦甑洗塵。厚埋飯甕炊方熟。緩帶甘飡若塡塹。七椀香茶飮更足。習習淸風兩腋生。乘此朝眞謝塵俗。

번역

옥천(玉川) 선생은 낙양(洛城)에 거처하시는데, 맨발에 긴 수염을 한 채 몇 칸 안 되는 집에서 지내신다. 속세의 물건들이 천진(天眞)함을 어지럽히는 것을 싫어하신다. 글은 오천 자나 되지만 헛되이 배만 채웠을 뿐, 평생 술을 즐기고 시 읊기를 좋아하신다. 집안이 오직 죽만 먹는 형편이라 뼈 사무치는 추위에 거의 죽을 지경이다. 풍년의 먹을거리는 옥처럼 귀하다. 나의 스승은 감하후(監河侯)를 크게 이기셨는데, 홀로 장주(莊周)가 가난하여 곡식을 빌려준 것을 탄식하신다. 오늘 아침 문을 두드려 주공(周公)을 놀라게 하니, 허리춤에 찬 곡식 몇 섬을 달라고 청한다. 급히 부엌데기를 불러 솥을 씻어 먼지를 털게 한다. 밥 항아리를 두껍게 묻어 밥을 지으니 다 익었다. 띠를 느슨히 매고 달콤하게 먹으니 마치 참호를 메우는 듯하다. 향기로운 차 일곱 사발을 마시니 다시 충분하다. 솔솔 부는 맑은 바람이 양 겨드랑이에서 피어오르니, 이 아침의 참된 기운을 타고 속세의 먼지를 씻어낸다.

125. 次韻呈湛之〔原注:三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謫居南國更無州。輦下相逢各白頭。握手何須論契闊。算來今已七年周。

번역

유배되어 남국(南國)에 머무니 다른 주(州)는 더 없구나. 수레 아래에서 서로 만나니 각자 머리가 하얗게 세었네. 손을 맞잡고 어찌 맺힌 원한이나 헤어짐의 아쉬움을 논하겠는가. 계산해 보니 어느덧 7년이 흘렀구나.

원문

大手高文柳柳州。人人皆號賈長頭。明時莫怪遭遷謫。天子之才問馬周。

번역

대수(大手)와 고문(高文)은 문장이 뛰어나 류주(柳州)에 계시니, 사람마다 모두 가(賈)씨의 우두머리라 칭송하네. 밝은 시대에 유배를 당함을 이상히 여기지 마라, 천자의 재능은 마주(馬周)에게 묻는 법이라네.

원문

腰錢駕鶴赴楊州。須要功名尙黑頭。從此圖形麟閣上。致君終不愧伊周。

번역

허리춤에 돈을 차고 학을 타고 양주(楊州)로 달려가네. 반드시 공명을 세워 아직 머리가 검을 때에 이루어야 하리. 이로부터 그 형상이 인각(麟閣) 위에 오르게 하여, 임금을 보필함에 있어 끝내 이윤(伊尹)과 주공(周公)과 같은 충신이라 부끄러움이 없게 하리라.

126. 重遊尙州寄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4B

원문

上洛重遊日。秋深物象饒。江山雖自異。風月好相邀。客久家何在。天寒路更遙。年華容易去。萍迹等閑飄。落葉驚羈旅。孤砧伴寂寥。悲吟懷往事。獨臥負良宵。裘薄嫌風夕。窓明怯雪朝。閑行尋士板。長揖謁官寮。傾蓋逢新俊。通家有舊交。就中何所欠。不見阿紅嬌。

번역

낙양(洛陽)으로 올라가 다시 놀던 날이니, 가을이 깊어 만물의 형상이 풍성하다. 강산은 비록 스스로 달라졌으나, 풍월은 즐겁게 서로 맞이해준다. 나그네 된 지 오래되었는데 집은 어디에 있는가. 날씨는 추워지고 길은 더욱 멀다. 세월은 쉽게 흘러가고, 부평초 같은 자취는 한가로이 떠다닌다. 낙엽은 나그네의 객지 생활을 놀라게 하고, 외로운 다듬질 소리는 적막함을 동반한다. 슬프게 읊조리며 지난 일을 회상하고, 홀로 누워 좋은 밤을 맞이한다. 얇은 겉옷은 저녁 바람을 싫어하게 하고, 밝은 창은 아침 눈을 두렵게 한다. 한가로이 거닐며 선비들의 모임(士板)을 찾고, 길게 읍하며 관아를 방문한다. 수레 덮개를 기울이며 새로운 인재를 만나고, 집안끼리 통하며 옛 벗을 만난다. 그 가운데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아리따운 여인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127. 暮春聞鶯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田家三月麥初稠。綠樹初聞黃栗留。似識洛陽花下客。殷勤百囀未能休。

번역

농가의 3월은 보리가 처음으로 무성해지는 때이다. 푸른 나무에서는 황밤이 처음으로 맺히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낙양(洛陽)의 꽃 아래에 머물던 손님을 알아보는 듯, 꾀꼬리가 백 번을 지저귀어도 정성이 지극하여 멈출 줄을 모른다.

128. 喜三生見訪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4C

원문

喜鵲朝來語更頻。敲門車馬致嘉賓。山窓久抱支離病。花苑無由點檢春。忽有丘門三益友。來尋楚澤獨醒人。典衣徑取隣家釀。共向尊前鬪興新。

번역

기쁜 까치가 아침에 와서 지저귐이 더욱 빈번하구나. 문을 두드리는 수레와 말은 귀한 손님을 데려왔네. 산창(山窓)에는 오랫동안 이별의 병을 품고 있었고, 꽃밭에는 봄을 점검할 길이 없었네. 문득 구문(丘門)의 세 벗 삼익(三益)이 초택(楚澤)의 홀로 깨어 있는 사람을 찾아오려 왔구나. 옷을 저당 잡히듯 이웃집 술을 가져와서, 함께 술잔 앞에서 흥겹게 다투며 노니네.

129. 寄金先達蘊珪。兼簡湛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4D

원문

忽有庭前乾鵲噪。郵籤果得平安報。書中曲盡綢繆意。便如對面論懷抱。乃知扶輿來避亂。故是先生計亦早。我今偶脫風波地。竄身今作酒家保。方念平生馬少游。溫柔鄕裏吾將老。逃空猶喜見似人。況有舊知遠致勞。天涯共是傷流落。秪憐風月江南好。何時乘興雪中歸。却訪山陰戴安道。縱使相逢應不識。形容與古添枯槀。亦嫌不見李謫仙。安知消息憑君到。去年雁使却廻時。也爲悤忙書草草。今朝臨紙更茫洋。未盡心中所欲導。

번역

[금선달온규(金先達蘊珪)에게 보내며, 담지(湛之)에게도 겸하여 소식을 전한다.] 문득 뜰 앞의 마른 까치가 지저귀더니, 역참의 전령이 과연 평안하다는 소식을 가져왔구나. 편지 속에는 얽히고설킨 마음을 다 쏟아냈으니, 마치 얼굴을 마주하고 품은 생각을 논하는 것 같구나. 가마를 타고 난리를 피해 왔음을 이제야 알겠으니, 선생의 대책이 또한 빨랐도다. 나는 지금 우연히 풍파를 벗어난 곳에서 몸을 숨겨 술집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네. 평생을 말 타고 떠돌던 일을 생각하니, 부드럽고 온화한 고향 땅에서 이제 늙어갈 모양이로다. 빈 몸으로 도망쳐 나왔으나 뜻밖에도 닮은 사람을 만나니 다행이로다. 하물며 옛 지인을 멀리서나마 찾아와 수고를 끼치니, 하늘 끝에서 함께 떠도는 처지라네. 다만 강남의 풍월이 좋다는 것이 가련할 뿐이니, 언제쯤 흥취를 싣고 눈 속을 헤치며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면 산음(山陰)의 대안도(戴安道)를 찾아가리라. 설령 서로 만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니, 모습이 예전과 달리 메마르고 쇠약해졌기 때문이라네. 또한 이태백(李謫仙)을 만나지 못함이 아쉬우니, 그 소식을 그대에게 의지하여 알 수 있겠는가. 작년 안사(雁使)가 돌아올 때도 너무 바빠서 글을 초조하게 썼는데, 오늘 아침 종이를 마주하니 더욱 막막하여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하지 못하겠구나.

130. 戲尙州妓一點紅〔原注:敎坊妓有紅一點。今尙州鄕籍亦有一點紅。〕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仙花曾見洛陽城。今日江南眼更明。魏紫姚黃雖異格。到頭同占牡丹名。

번역

선화(仙花)를 일찍이 낙양(洛陽) 성에서 보았는데, 오늘 강남(江南)에서 보니 눈이 더욱 밝아지는구나. 위자(魏紫)와 요황(姚黃)이 비록 품격은 다르다 하나, 결국에는 모두 모란(牡丹)이라는 이름을 차지하는구나.

131. 次韻金相國富轍題使君山詩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遨頭曾此作淸歡。不分仙遊早得攀。座上歌姬眞眄眄。尊前詞客有還還。蒼顏白髮風塵外。綠水靑山几案間。遙想使君行樂處。新飜三疊按陽關。

번역

머리를 들어 예전에 이토록 맑은 즐거움을 지은 적이 있었던가. 신선 노름을 하듯 일찍이 그 경지에 오르는 것을 구분하지 않고 올라탔네. 좌상의 가희는 참으로 눈길을 끄는데, 잔 앞의 사객은 자꾸만 돌아보네. 창백한 얼굴과 흰 머리는 풍진 세상 밖에 있고, 푸른 물과 청산은 책상 사이에 있구나. 멀리 사군(使君)께서 즐기시는 곳을 생각하니, 새로이 세 번 꺾어 부르는 양관(陽關)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네.

132. 洪書記見邀宴飮。以詩謝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5A

원문

磊落高才似謝安。退公携妓賞東山。勸留佳客方投轄。更許淸談共破顏。十室絃歌群俗樂。一樽風月長官閑。舞筵況見傾城態。認得當時玉指環。

번역

호탕한 고재(高才)는 사안(謝安)과 같구나. 퇴직한 공(公)은 기생을 데리고 동산(東山)에서 풍류를 즐기네. 좋은 손님을 권하여 머물게 하니, 다시 맑은 대화를 나누며 함께 웃음을 터뜨리네. 열 집의 현가(絃歌)는 세속의 즐거움이요, 한 잔의 술에는 바람과 달이 관직의 한가로움과 함께 흐르네. 춤추는 연회에서는 도리어 성을 기울게 할 만큼의 자태를 보이고, 당시의 옥 같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알아보겠네.

133. 贈洪書記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爲儒爲吏自兼能。政譽紛傳海內稱。明似千年金匣鏡。淸於一片玉壺氷。南蕃出慰蒼生望。北闕行承紫詔徵。繼理無如賢父子。高門陰德世方興。

번역

유학자로서도 되고 관리로서도 되어 스스로 두 가지 능력을 겸비하였으니, 정사를 잘 돌본 명성이 온 나라에 널리 퍼져 칭송받고 있네. 그 밝음은 천 년 된 금함 속의 거울과 같고, 그 맑음은 한 조각 옥호빙(玉壺氷)과 같도다. 남쪽 변방에서 나와 백성들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기대를 위로하고, 북궐(北闕)의 자색 조서를 받들어 부름을 받았으니, 정사를 이어가는 데 어찌 현명한 부자(父子)와 같지 않으랴. 명문가의 음덕이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구나.

134. 寄黃嶺寺堂頭觀諦上人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久思西笑返家鄕。遊官年來罄橐囊。暫見主人晨蓐食。苦無行客宿舂糧。斗升足活貧莊叟。霖雨誰尋病子桑。遠與公姑問庚癸。殷勤須要助資裝。

번역

오랫동안 고향으로 돌아갈 서쪽의 웃음을 그리워했습니다. 근래에 관직에 머물며 주머니를 다 비웠습니다. 잠시 주인의 아침 식사를 보았으나, 밤새 쌀을 찧어 식량을 준비해 두는 나그네가 없어 고통스럽습니다. 적은 양의 식량으로 겨우 살아가는 농촌의 노인에게, 장마철에 누가 병든 자손 자상(子桑)을 찾아가겠습니까. 멀리서 공(公)과 고모(姑母)의 안부를 묻노니, 정성껏 여비 마련을 도와주어야겠습니다.

135. 摘瓜寄洪書記。〔原注:三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靑門寂寞邵平家。事業年年謾種瓜。自是野人無所遺。爲君摘此獻淸衙。

번역

청문(靑門)은 적막한 소평(邵平)의 집 같구나. 해마다 헛되이 오이만 심는 것이 사업이라네. 본래 들사람으로서 남길 것이 없으니, 그대를 위해 이것을 따서 청아(淸衙)에 바치노라.

원문

筆法詩篇自一家。瓊琚好報衞人瓜。須知獨擅風騷句。屈宋還應合作衙。

번역

필법(筆法) 시편은 저만의 독특한 경지가 있다. 아름다운 옥(瓊琚)과 같은 선물로 위(衞) 사람에게 오이로 보답하노니, 반드시 독자적인 풍속과 시구(風騷句)를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굴원(屈宋)의 시와도 마땅히 아악(衙)의 격에 어울릴 것이다.

원문

不到城中蘇小家。此身堪恨繫如瓜。紅顏別後今何處。要覓殷勤古押衙。

번역

성안의 소소(蘇小)네 집에 이르지 못하니, 이 몸은 오이처럼 매달려 있는 것이 한스럽구나. 고운 얼굴(紅顏)과 헤어진 뒤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가. 정성스러운 옛 압아(押衙)를 어디서 찾으리오.

136. 次韻崔伯環見贈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5C

원문

期年去國戀交親。尙喜今朝見似人。豈臥元龍樓百尺。求田問舍且謀身。

번역

한 해가 지나 나라를 떠나 친한 이들을 그리워했는데, 오늘 아침에 사람을 만난 듯하니 오히려 기쁘구나. 어찌 백 척 높이의 원룡루(元龍樓)에 누워, 땅을 구하고 관직을 물으며 몸을 도모하겠는가.

원문

相逢何必早相親。共是江南流落人。下筆新詩多俊氣。也應肝膽大於身。

번역

서로 만나는 데 어찌 반드시 일찍 친해져야 하겠는가. 우리 모두 강남(江南)에서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닌가. 붓을 들어 새로 지은 시에는 준걸한 기운이 넘치니, 또한 그 간담(肝膽)이 몸보다도 클 것이로다.

137. 翼嶺途中口占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5D

원문

萬里東吳地。行行入水涯。山川多勝地。風俗未通華。幽薊封疆遠。房心分野遐。晨征觀海市。晡飯寓漁家。馬瘦鞭長費。峯多路更賖。天形圍巨野。城勢枕褒斜。跨險思臨坂。乘危似接槎。麝眠隈密麓。鳥迹印平沙。雲斷山橫黛。風飜浪皺花。寒林初脫葉。落日暗烘霞。乳產崖多穴。潮穿石自窊。黃昏遊虎兕。白晝遇麚。樓觀當鼇頂。郊圻接犬牙。豐年祀神鬼。珍產富魚鰕。淺水浮寒鴨。幽林噪晚鴉。妖祠呈楚舞。孤戌咽胡笳。役役思鄕夢。悠悠失路嗟。書稀係鴻雁。客久缺蟆蝦。

번역

만리나 되는 동오(東吳) 땅에서, 계속해서 물가로 들어서네. 산천에는 경치 좋은 곳이 많으나 풍속은 아직 화려하게 통하지 않았구나. 유계(幽薊)의 봉강은 멀고, 방심(房心)의 분야는 아득하네. 새벽에 길을 떠나 바다 시장을 구경하고, 저녁 무렵에는 어가(漁家)에 머물며 밥을 먹네. 말은 여위고 채찍은 길어 비용이 많이 들며, 봉우리는 많고 길은 더욱 멀구나. 하늘의 형세는 거대한 들판을 에워싸고, 성의 기세는 비스듬한 언덕에 기대어 있네. 험한 곳을 가로지르며 언덕에 임하려 생각하니, 위태로움을 타는 것이 마치 뗏목을 타고 연결되는 듯하네. 사향노루는 울창한 산기슭에 잠들어 있고, 새의 흔적은 평평한 모래사장에 찍혀 있네. 구름은 끊기고 산은 검푸른 빛을 가로지르며, 바람은 물결을 뒤집어 꽃처럼 파도를 일게 하네. 찬 기운의 숲은 이제 막 잎을 떨구었고, 지는 해는 노을을 어둡게 비추네. 절벽에는 젖을 먹이는 짐승의 구멍이 많고, 조수는 바위를 뚫어 스스로 구멍을 내네. 황혼에는 호사(虎兕)를 유람하고, 낮에는 사슴을 만나네. 누각에서 바라보니 거북의 머리 같은 형상이고, 교외의 경계는 개 이빨처럼 험준하네. 풍년에는 신과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귀한 산물로는 물고기와 새우가 풍부하네. 얕은 물에는 찬 기운에 떠오른 오리가 있고, 그윽한 숲에서는 저녁 까마귀가 시끄럽게 우네. 요사스러운 사당에서는 초나라의 춤을 선보이고, 외로운 성곽에서는 오랑캐의 피리 소리가 애처롭게 들리네. 부지런히 일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꿈을 꾸고, 유유히 길을 잃어 탄식하네. 편지는 드물어 기러기와 雁(안)에 의지하고, 나그네 된 지 오래되어 조개와 새우조차 결핍되어 있구나.

138. 送人赴試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紛紛擧子踏槐黃。獨喜先生首一鄕。五百年來異人出。從今定見破天荒。

번역

떠들썩하게 과거를 치르러 가는 이들이 괴황(槐黃)을 밟고 지나가는데, 오직 선생께서 이 고을의 으뜸이 되심이 기쁘구나. 오백 년 만에 이렇듯 뛰어난 인물이 나왔으니, 이제부터는 전례 없는 새로운 경지를 보게 되리라.

139. 代書答皇甫淵〔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6A

원문

憑仗秋鴻寄一書。銀鉤鐵點巧縈紆。那嫌遠謫身空老。已覺相思病未蘇。我在瘴濱聊鬱結。君言世路亦崎嶇。異鄕莫怪長垂泣。風景從來也不殊。

번역

가을 기러기에 의지하여 편지 한 통을 보냅니다. 은갈고리와 철점의 필체가 정교하고 굽이굽이 휘어져 있군요. 멀리 유배 온 몸이 헛되이 늙어가는 것을 어찌 싫다 하겠습니까. 이미 상사병이 낫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나는 장기(瘴氣) 가득한 변방에서 겨우 울적하게 지내고 있는데, 그대는 세상살이 또한 험난하다고 말하는군요. 타향에서 자꾸 눈물을 흘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원문

數年身不到天京。久作三閭澤畔行。林下欲求容膝地。世間何處稱人情。厭聞時輩登科第。唯記君家好弟兄。寄語低頭須碌碌。一門終要獨全生。

번역

몇 년 동안 몸이 천경(天京)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삼려(三閭)의 늪가에서 노니는 듯 지냈습니다. 숲 아래에서 무릎을 빌려줄 만한 곳을 구하고자 하나, 세상 어디에 인정이 있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이 과거에 급제했다는 소식은 듣기 싫고, 오직 그대 집안의 형제들이 우애 깊다는 것만 기억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부지런히 애써야 한다고 말을 전하니, 한 집안이 끝내 홀로 삶을 온전히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140. 重到京師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劉郞今是白頭翁。一十年來似夢中。惆悵玄都仙館裏。兔葵燕麥動春風。

번역

유(劉) 씨 성을 가진 이가 이제는 백두옹(白頭翁)이 되었구나. 지난 십 년 세월은 마치 꿈속 같도다. 현도(玄都)의 신관(仙館)에서 슬픔에 잠겨 있으니, 토규(兔葵)와 연맥(燕麥)이 봄바람에 흔들리는구나.

141. 憶舊遊〔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6B

원문

春風折柳洛橋東。一別如何信未通。自是思君心更苦。容華應減去年紅。

번역

봄바람에 버들가지를 꺾던 낙교(洛橋) 동쪽. 한 번 이별한 뒤 어찌 소식 하나 전해지지 않는 것인가. 본래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만으로도 괴로운데, 그대의 고운 얼굴은 작년의 붉은 빛보다 더욱 시들었으리라.

원문

雲飛雨散各西東。秪喜音容夢裏通。憶得郵亭行樂處。淺斟低唱看紅紅。

번역

구름은 날아가고 비는 흩어져 예전의 일들은 모두 사라졌으나, 오직 꿈속에서나마 그 목소리와 얼굴을 만날 수 있어 기쁠 따름이다. 옛날 우정(郵亭)에서 즐기던 곳을 떠올려 보니, 술을 조금씩 따르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며 붉은 꽃들을 바라보던 모습이 생각난다.

142. 次韻李相國題奉嚴寺竹樓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軒竹新添舊歲竿。森羅春筍逬康干。飮酣林下金樽凸。棋罷陰中玉局寒。不爲高人當檻種。應無閑客叩門看。揮毫欲效樊川賦。撚斷吟鬚字未安。

번역

대나무 채가 새롭게 더해졌으니 지난해의 대나무 줄기였구나. 울창한 봄순은 곧게 뻗은 줄기 같네. 숲 아래에서 술을 마시니 금잔이 툭 튀어나오고, 바둑을 마치니 그늘 속 옥국(玉局)은 차갑구나. 고결한 사람을 위해 울타리에 심어둔 것이 아니니, 한가한 손님이 문을 두드려 구경할 일도 없으리라. 붓을 휘둘러 번천(樊川)의 부(賦)를 본받으려 하나, 턱수염을 만지며 읊조리니 글자가 아직 안절부절못하네.

143. 次韻崔相國〔原注:惟淸〕留題〔原注:四絶〕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6C

원문

當年古寺覓餘春。唯有能詩白舍人。兜率海山何處去。姓名空掛壁間塵。

번역

그해 옛 절에서 남은 봄을 찾았으니, 오직 시에 능한 백사인(白舍人)뿐이었네. 도솔해(兜率海)의 산은 어디로 갔는가, 이름만 벽 사이의 먼지 속에 헛되이 걸려 있구나.

원문

夜涼欹枕水鳴樓。樓下疏篁月影稠。我似多情謝安石。聊成一曲洛生謳。

번역

밤은 서늘한데 베개를 기울이니 물소리가 들리는 누각이로다. 누각 아래 성긴 대나무 사이로 달그림자가 빽빽하구나. 나는 다정함이 많은 듯하여 안석(安石)에게 사례하노니, 잠시 낙생(洛生)의 노래 한 곡을 지어 부르노라.

원문

往事渾如雁過空。上樓無語夕陽中。從橫滿壁龍蛇迹。猶想平生賀老風。

번역

지난 일은 마치 기러기가 허공을 지나가는 듯하구나. 누각에 올라가니 석양 속에서 아무런 말이 없다. 벽면 가득한 용사(龍蛇)의 흔적을 보니, 평생에 하노(賀老)의 풍모를 찬양하던 일이 여전히 생각난다.

원문

洞門無鎖也曾來。結夏應嗔踏逕苔。自笑世緣猶不淺。携筇得得出山廻。

번역

동문(洞門)은 잠겨 있지 않아 예전에도 왔었다. 결하(結夏) 기간에는 길에 낀 이끼를 밟는 것을 마땅히 성내겠지. 스스로 웃노니 세상 인연이 아직 얕지 않구나. 죽장(筇)을 지니고서 산을 내려가 다시 돌아온다.

144. 病中有感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年年虛過試闈開。臨老猶堪矍鑠哉。科第由來求俊士。公卿誰肯薦非才。長鯨欲奮波濤竭。病鶴思飛羽翮摧。舊有江東隱居地。自憐頭白好歸來。

번역

해마다 과거 시험이 열리는 때를 허송세월하며 보내니, 늙은 나이에도 여전히 기운이 넘치는지 궁금하구나. 과거 급제는 본래 뛰어난 인재를 구하는 것인데, 공경(公卿)들 중 누가 재능 없는 이를 추천하려 하겠는가. 큰 고래는 파도를 일으키려 분투하나 물결이 다했고, 병든 학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 하나 깃털이 꺾였구나. 예전에 강동(江東)에 은거하던 곳이 있었으니, 머리가 하얗게 된 것을 스스로 가련하게 여기며 돌아가고 싶어 하노라.

145. 奉寄天院洪校書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6D

원문

東野居貧家具少。自笑借車無可載。杜陵身窮更遭亂。未免負薪常自採。我今無田食破硯。平生唯以筆爲耒。自古吾曹例困厄。天公此意眞難會。五鼎一簞未足校。富死窮生何者快。作書乞飯維摩詰。不厭空門淸淨債。先生有意能活我。千金何必監河貸。

번역

동야(東野)는 시골에 거처하니 가재도구가 적다. 수레를 빌려도 실을 것이 없음을 스스로 비웃는다. 두릉(杜陵)은 처지가 궁핍한 데다 다시 난리를 만났으니, 땔나무를 지고 다니며 늘 스스로 채집하는 처지를 면치 못했다. 나는 지금 밭이 없어 벼루를 깨뜨리며 먹는다. 평생 오직 붓을 쟁기로 삼아왔다. 예부터 우리 같은 무리는 늘 곤궁한 처지에 놓였으니, 하늘의 뜻은 참으로 만나기 어렵다. 다섯 솥의 귀한 음식과 한 그릇의 소박한 밥으로는 서로 비교할 수 없다. 부유하게 죽는 것과 가난하게 사는 것 중 무엇이 유쾌하겠는가. 글을 써서 밥을 구걸하는 유마(維摩)의 문답을 떠올린다. 공문(空門)의 청정한 빚을 싫어하지 않으니, 선생께서 뜻이 있으시다면 나를 살려주실 수 있다. 천금의 돈을 빌려주는 감하(監河)가 굳이 필요하겠는가.

146. 贈湛之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去國同流落。今朝入帝關。天敎雙劍合。亂後一珠還。歲月粘衰鬢。風霜改舊顏。平生交分厚。猶喜更追攀。

번역

나라를 떠나 함께 유랑하다가 오늘 아침에 제관(帝關)에 들어왔네. 하늘이 두 자루의 검을 합치게 하였으니, 난리 후에 한 알의 구슬이 돌아왔구나. 세월은 쇠한 귀밑머리에 달라붙고, 풍상에 옛 얼굴은 변하였네. 평생의 사귐이 두터우니, 다시금 서로 찾아 인연을 맺음이 더욱 기쁘네.

147. 次前韻奉答〔原注:二首〕

문체: 詩類 / 詩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7A

원문

昔子潮陽去。歸途雪擁關。已應知死所。豈料得生還。未縱靑冥靶。俄緇白玉顏。相逢一樽酒。談笑更容攀。

번역

옛날에 그대가 조양(潮陽)으로 떠났을 때, 돌아오는 길에는 눈이 관문을 에워싸고 있었네. 이미 죽을 곳을 알았을 터인데, 어찌 살아 돌아올 줄을 알았겠는가. 푸른 하늘(靑冥)의 표적이 되지 않고, 어느덧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어 얼굴이 변했구나. 한 잔의 술을 마주하고 앉아, 담소를 나누며 다시금 서로를 붙잡아 보네.

원문

紫氣浮函谷。吾知正度關。世嗟才久屈。道直詔徵還。詩妙誰如杜。書奇又止顏。他年同報國。事業笑何攀。

번역

자색 기운이 함곡관(函谷關)에 떠다니니, 내가 바른 법도가 관문에 있음을 아노라. 세상 사람들은 재능이 오래도록 억눌려 있다고 탄식하나, 도가 곧으니 조서(詔書)를 받고 돌아오도다. 시의 묘함에 두보(杜甫)와 비길 자 누구이며, 글씨의 기이함은 안진경(顔眞卿)에서 멈추는구나. 훗날 함께 나라에 보답하여, 그 사업을 보고 무엇이라 비웃으며 매달리겠는가.

148. 上李學士〔原注:知命〕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8C, ITKC_MO_0003A_A001_238D ...

원문

月日。林某謹叩頭再拜獻書于某官階戺。夫鏌釾干將者。天下之至寶也。埋於豫章豐城之地。常有紫氣衝斗牛間。而莫有知者。及雷煥登樓而仰觀。然後掘而得之。乃拭以南昌之土而光芒艶發。視之者無不駭然眩目矣。設使煥而不知。則天生神物。其終埋沒。而幾乎不獲見寶於世矣。今僕之在寒鄕氷谷中也久矣。雖往往有冤氣上徹於天。而世無雷煥者望而知之。則其眩目之光艶。無所復發矣。可不惜乎。是以。敢飾其孟浪謬悠之言。區區以列於左右。伏惟閤下少加察焉。僕嘗於造化爐鎚間。受百鍊精剛之氣。而陰陽資其質。五行成其體。二十八宿羅其胸襟。然後稟靈以生。首出利物焉。以德道爲鋏。仁義爲鋒。以智勇爲鍔。包之以言行之鯁亮。飾之以文章之英麗。柙而藏之。所以保其身而明哲也。持而行之。所以應其時而能用也。砥礪以名節。淬磨以學問。上可以決浮雲。下可以絶地維。擧之無前。斡之無旁。天地之內。指揮而無所礙矣。然而有非常之器者。必待非常之人。以立非常之功。故塵埃蒙其光。糞壤蝕其文。繡澁剝落。如靑蛇退鱗。而與死鐵爲徒久矣。但其英靈光怪。耿耿然發露於草木瓦礫之間而不能掩。猶足以號鬼神起雷霆而動星象也。嗚呼。天之生是也。豈虛藏利器。伏而不耀。隱而不發。終於埋沒。而爲棄物邪。恭惟閤下器度宏博。天姿瑰瑋。加之以精鑑卓識。博物多通。自擢居貴位。專持大柄。能樂善忘勢。以待英雄豪傑之輩。故天下之士莫不樂爲之用。皆願收名定價於前。誠後進歐冶也。則凡龍泉大阿湛盧豪曹之類。宜皆收而蓄之。以爲匣中之珍也。此非獨用之以剸犀兕刺虎豹。而效匹夫之事而已。將以剗除奸孼。掃淸夷夏。挾天子令諸侯。致四海之賓服也。誠拭雷煥之眥。望牛斗之氣。掘而發之。刜其垢磨其光。則一日而其資露。二日而其光發。三日而其眞貌覩矣。則其效用於門下者。恢恢乎游刃有餘地矣。豈止鉛刀一割之用乎。倘使僕徒棄於氷谷中。而爲大平無用之物。則亦將飛出以避虎庫之災。躍入以蟠平津之水。待其時有其人而後復出。則何良工哲匠之門。不求希世之珍哉。輕黷嚴威。無任惶恐之至。某再拜。

번역

월일. 임(林) 아무개가 삼가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며 어느 관직의 계급에 계신 분께 글을 올립니다. 무릇 막야(鏌釾)와 간장(干將)은 천하의 지극한 보물입니다. 예장(豫章)과 풍성(豐城) 땅에 묻혀 있었는데, 항상 자색 기운이 두각(斗牛) 사이에 치솟았으나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뇌환(雷煥)이 누각에 올라 우러러본 뒤에야 비로소 땅을 파서 그것을 얻었는데, 곧 남창(南昌)의 흙으로 닦으니 광채가 눈부시게 발했습니다. 그것을 보는 자 중에 놀라 눈이 부시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만약 뇌환이 그것을 알지 못했다면, 하늘이 낳은 신령한 물건이 결국 매몰되어 세상에 보물을 보여줄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한향(寒鄕)의 얼음 골짜기에 있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비록 때때로 원통한 기운이 하늘에 사무치나, 세상에 뇌환 같은 이가 있어 바라보고 알아주지 않으니, 그 눈부신 광채와 아름다움이 다시 발휘될 곳이 없습니다. 어찌 아깝지 않겠습니까? 이에 감히 망령되고 미혹된 말을 꾸며서 구구하게 좌우에 나열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합하(閤下)께서 조금 살펴주십시오. 저는 일찍이 조화의 화로와 망치질 사이에서 백 번 단련된 정강(精剛)한 기운을 받았고, 음양으로써 그 바탕을 지원받았으며, 오행으로써 그 체를 이루었고, 28수가 그 가슴속에 펼쳐진 뒤에야 영성을 부여받아 태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나섰습니다. 덕과 도를 칼집으로 삼고, 인의를 칼날로 삼으며, 지혜와 용맹을 칼등으로 삼고, 언행의 명랑함으로 그것을 감싸고, 문장의 영려함으로 그것을 꾸몄습니다. 이를 상자에 담아 보관하는 것은 그 몸을 보존하고 명철하기 위함이며, 이를 지니고 행하는 것은 그 때에 응하여 능히 쓰이기 위함입니다. 명절로써 갈고 닦고 학문으로써 담금질하니, 위로는 뜬구름을 결단할 수 있고 아래로는 땅의 지탱함을 끊을 수 있습니다. 들어 올리면 앞이 없고 돌리면 옆이 없으니, 천지 안에서 지휘함에 거침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상한 그릇을 가진 자는 반드시 비상한 사람을 기다려 비상한 공을 세우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티끌이 그 빛을 가리고, 똥과 흙이 그 문채를 좀먹으며, 수놓은 무늬가 거칠어져 벗겨지니, 마치 푸른 뱀이 비늘을 물러나게 하는 것과 같아 죽은 쇠와 함께 오래도록 벗처럼 지내왔습니다. 다만 그 영험하고 괴이한 빛이 풀과 나무, 기와와 돌 사이에서 번득이며 드러나 숨길 수 없으니, 오히려 귀신을 부르고 뇌정(雷霆)을 일으키며 성상(星象)을 움직이기에 충분합니다. 아아, 하늘이 이와 같이 낳았거늘, 어찌 빈 보물 상자에 예리한 도구를 감추어 두고 엎드려 빛나지 않으며 숨어 있어 드러나지 않은 채 결국 매몰되어 버려진 물건이 되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합하께서는 기도가 웅대하고 박학하시며, 천부적인 자태가 괴이하고 아름다우신 데다, 정밀한 감식안과 탁월한 식견을 더하셨고, 박물에 통달하셨습니다. 스스로 높이 올라 귀한 자리에 계시며 큰 권한을 전적으로 쥐고 계시니, 선을 즐기고 세력을 잊는 데 능하여 영웅호걸의 무리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선비들이 그 쓰임이 되기를 즐기지 않는 이가 없으며, 모두가 그 앞에 이름을 올리고 값을 정해주기를 원하니, 참으로 후진의 구야(歐冶)가십니다. 그렇다면 무릇 용천(龍泉)의 대아담로(大阿湛盧)나 호조(豪曹) 같은 부류를 마땅히 모두 거두어 저축하여 갑 안의 보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코뿔소나 호랑이를 찌르는 일처럼 필부의 일에 쓰이기 위함만이 아닙니다. 장차 간사하고 해로운 것을 제거하고, 이(夷)와 하(夏)를 깨끗이 쓸어버리며,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여 사해의 빈복(賓服)을 이끌어내기 위함입니다. 참으로 뇌환의 눈을 닦고 우두(牛斗)의 기운을 바라보며, 땅을 파서 그것을 드러내고, 그 때를 깎아내어 광채를 연마한다면, 하루 만에 그 자질이 드러나고 이틀 만에 그 빛이 발하며 사흘 만에 그 참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하(門下)에서 쓰이는 효용이 넓고 넓어 칼을 휘두름에 여유가 있을 것이니, 어찌 단지 연도(鉛刀)를 한 번 긋는 용도에 그치겠습니까? 만약 제가 그저 얼음 골짜기에 버려져 태평성대에 쓸모없는 물건이 된다면, 또한 호랑이 굴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날아 나가고 평진(平津)의 물속으로 뛰어들어, 때를 기다려 마땅한 사람을 만나고 나서야 다시 나오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훌륭한 장인과 철장(哲匠)의 문에서 희귀한 보물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가볍게 행동하여 위엄을 해칠까 두려워하며, 황공함이 지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무개는 다시 절합니다.

149. 代李湛之寄權御史〔原注:敦禮〕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39C

원문

某頓首再拜啓。孟冬嚴凝。伏以先生道履淸勝。瞻企瞻企。不肖蒙恩無恙。今秋。佛者中隱來抵京師。因言先生雅量超然。終無處世之意矣。自離難之際。世之賢士莫不深潛草野。以避一時之禍。然一爲名利所誘。而使山靈挽回俗駕者多矣。今閤下見幾而作。高蹈方外。泥滓爵位。膠漆山林。千金不能聘其才。萬乘不能屈其節。眞所謂旣明且哲。以保其身者也。昔殷深源隱于匡盧山。累徵不起。當時以其起與不起。卜江左之興亡。今之論者。或謂閤下不起。當如蒼生何。譬如景星慶雲之將出。人莫不爭先覩之爲快。而閤下方且抱大器藏大道。枕石漱流。高臥不出。其淸風高節。自夷,齊已來一人而已。僕每欲拂衣長往以從先生之遊。向風傃德。勞於夢寐。又聞此州風土信美可樂。高人勝士多往而依焉。僕買土一廛。卜居其間。便了一生。此其雅意也。惟先生諒之。襄陽人林椿。慕道之士也。今因中隱還。同賦一詩寄去。亦欲觀其志之所存者。歲序云暮。山色苦寒。伏惟先生悅道之外。宜加珍嗇。以副遐祝。不宣。惶恐再拜。

번역

저 모(某)는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며 아룁니다. 초겨울의 추위가 엄해지고 얼어붙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선생님의 도를 걷는 곳은 맑고 빼어나니, 우러러 바라보고 또 바라봅니다. 불초한 저는 은혜를 입어 무사합니다. 이번 가을에 중은(中隱) 불자(佛者)가 경사(京師)에 도착하여, 선생님의 아량은 초연하여 끝내 세상을 살아갈 뜻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난리를 떠날 때부터 세상의 현사들은 한시의 화를 피하고자 모두 초야에 깊이 숨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명리에 유혹되어 산령(山靈)이 속세의 수레를 돌이키게 하는 자가 많습니다. 지금 합하(閤下)께서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 세상을 벗어나 방외(方外)에 높이 거닐며, 벼슬자리에 머물지 않고 산림에 굳게 붙어 계시니, 천금을 주어도 그 재능을 부를 수 없고 만승의 군주도 그 절개를 굽히게 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이미 밝고 명철하여 그 몸을 보존하는 자라 할 것입니다. 옛날 은(殷)나라의 심원(深源)은 광로산(匡盧山)에 숨어 여러 번 부름을 받아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그가 일어나는가 일어나지 않는가로 강좌(江左)의 흥망을 점쳤습니다. 지금 논하는 이들은 혹 합하께서 일어나지 않으시니 마땅히 창생(蒼生)과 같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비유하자면 상서로운 별과 경사스러운 구름이 나타나려 할 때, 사람들이 저마다 먼저 보고 즐거워하려 다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합하께서는 또한 큰 그릇을 품고 대도(大道)를 감추어 두신 채,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을 씻으며 높이 누워 나서지 않으시니, 그 맑은 바람과 높은 절개는 이(夷)와 제(齊) 이래로 오직 한 사람뿐입니다. 저는 매번 옷을 떨치고 멀리 가서 선생님의 유람을 따르고자 하며, 바람을 향해 덕을 사모하니 꿈속에서도 수고롭습니다. 또 이 주(州)의 풍토가 참으로 아름답고 즐거워 고인(高人)과 승사(勝士)들이 많이 가서 의지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한 칸의 땅을 사서 그 사이에 거처를 정한다면 곧 일생이 편안할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아취(雅意)이니 오직 선생님께서 살펴 주십시오. 양양(襄陽) 사람 임춘(林椿)은 도를 사모하는 선비입니다. 이번에 중은(中隱)이 돌아오는 길에 함께 시 한 수를 지어 보내니, 또한 그 뜻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보고자 합니다. 세월이 저물어 가고 산색이 몹시 차갑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선생님의 도를 즐기심에 마땅히 소중히 아끼어 멀리서 드리는 축원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황공하여 두 번 절합니다.

150. 答同前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0A, ITKC_MO_0003A_A001_240B ...

원문

某謹頓首再拜。遙致尺牘于北原權先生閣下。向者獲覩所答湛之書并示僕詩一首。奉窺之際。實增感悸。反覆諷詠。宛然如侍左右而承佳論之亹亹也。僕少聞長者之言。咸以閤下爲今偉人。而賞識之下。率多名士。僕亦私誠慕之。而顧以未受知遇。常爲之恨。況僕伯父密州出先學士選中。遂知名焉。故世受厚恩。通家且舊。每欲摳衣函丈執弟子禮。而肩不摩於夫子之墻者久矣。去年冬。與釋中隱偶會於京輦。得先生之事甚悉。因言箕穎之志。始樂不渝。僕乃相與咨嗟慕望。至或爲之垂泣。果知先生爲人中之龍也。適其還。遂附一篇。少達其誠耳。今蒙閤下辱垂和答。其褒示之言。所不敢當也。有以見大人君子之寵待晚輩。未嘗不諄諄切至如是也。僕略觀昔之窮居退處者。自放山水間。其堙鬱感憤。一寓諸文。言多怨誹矣。至如所賜詩文。皆和裕自得。眞達者之辭也。其言與志得道行者無以異焉。益知先生之任眞推分。不以窮達進退介其胸次。而視世之榮利蔑如也。此所謂遁世無悶歟。今悠悠者云。一時安危。係閤下之出處。深存挹退。苟全高節。一丘一壑。以遂從容之適。則經濟之寄。復無其人矣。昔辛謐有言。不嬰於禍亂者。非爲避之。但冥心至趣。自與志會耳。以此知賢者之處乎廟堂也無異於山林間矣。斯乃窮理盡性之妙。其體而行之者。非閤下而誰耶。惟先生深思之靜慮之。俯循物議。起應徵詔。則亦海內蒼生之福也。若吾道之大行也。物必蒙利。至於僕輩枯槀癈錮之士。亦將受其餘潤。豈不在一物之數中耶。此尤所喜於心者。近聞先生常閉門敎授。門徒日盛。頌習之聲。比於洙泗。此非獨幽居避世者所樂也。蓋君子之所處。人受其賜。不必待名位而後有爲也。勉之勉之。僕當不出夏首。還指舊居。思欲枉道造謁。親問道要也。遐陬僻邑。寒燠異候。伏惟先生加飡自重。善保天和。以副區區之祝。不宣。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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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무개는 삼가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합니다. 북원(北原) 권(權) 선생 각하께 멀리서 편지를 보냅니다. 지난번에 담지(湛之)에게 보낸 답장을 얻어 보고, 또한 저에게 시 한 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받들어 살펴보니 참으로 감격하여 떨렸으며, 반복해서 읊조리니 마치 곁에서 모시며 그 훌륭한 논의를 부지런히 듣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말씀을 조금 들었는데, 모두 각하를 지금의 위대한 분이라 하였고, 그를 알아보고 아끼는 이들도 대개 명사들이었습니다. 저 또한 사사로이 진심으로 그분을 사모하였으나, 돌아보니 지식을 얻지 못함(知遇)을 항상 한으로 여겨 왔습니다. 하물며 저의 백부(伯父)가 밀주(密州) 출신인 선(先) 학사에게 선발되어 마침내 이름을 떨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으로부터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집안끼리 서로 잘 아는 옛 사이입니다. 매번 옷자락을 붙잡고 스승의 문하에 들어가 제자의 예를 갖추고자 하였으나, 어깨를 스승의 담장 안에 문지른 지(접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지난겨울, 석(釋) 중은(中隱)과 경차(京輦)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선생에 관한 일을 매우 자세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기영(箕穎)의 뜻을 말하니 비로소 즐거움이 변치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에 함께 탄식하며 사모하고 바라다가, 심지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과연 선생이 인중지룡(人中之龍)임을 알았습니다. 마침 선생께서 돌아오시기에, 이에 한 편을 붙여 그 정성을 조금이나마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제 각하께서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화답을 보내주시니, 그 칭찬해 주신 말씀은 감히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대인(大人)이자 군자께서 만배(晩輩)를 총애하여 대우해 주심을 보여주셨는데, 이토록 간곡하고 절실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제가 대략 예전의 궁거(窮居)하고 퇴처(退處)하던 이들을 살펴보니, 스스로 산수 사이에 자신을 놓아두고 그 답답함과 분함과 울분을 모두 글에 기탁하여 원망하고 비방하는 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선생께서 내려주신 시문은 모두 화합하고 넉넉하며 스스로 만족스러우니, 참으로 달(達)한 자의 말입니다. 그 말은 뜻을 얻고 도를 행하는 자와 다를 바가 없으니, 선생께서 참으로 자신의 분수를 밀어붙여(推分) 맡으셨음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궁함과 달함에 따라 진퇴를 가리지 않고 그 가슴속에 두지 않으며, 세상의 영화와 이익을 하찮게 여기시니, 이것이 이른바 세상을 피하면서도 번민하지 않는 것(遁世無悶)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유유(悠悠)한 이들이 말하기를, 일시적인 안위가 각하의 출처(出處)에 달려 있으니, 깊이 물러남과 나아감을 조심하여 구차하게라도 높은 절개를 보존하고, 한 언덕과 한 골짜기에서 유유자적한 즐거움을 누린다면, 경제(經濟)를 맡길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옛날 신밀(辛謐)이 말하기를, 화란(禍亂)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그것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만 마음을 어둡게 하여 지극한 취지에 이르러 스스로 뜻과 만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현자가 조정에 머무는 것이 산림 사이에 있는 것과 다름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치를 궁구하고 성품을 다하는 묘함(妙)이니, 그 체를 이루고 행하는 이가 각하가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오직 선생께서 깊이 생각하고 정밀하게 살피시며, 물의 논의를 굽어 살피고 조칙에 응하여 일어나신다면, 또한 해내(海內) 창생의 복이 될 것이며, 우리 도(道)가 크게 행해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만물이 반드시 이익을 입게 될 것이니, 저와 같이 메마르고 굳어버린 선비들 또한 장차 그 남은 윤택함을 입을 것이니, 어찌 만물의 수(數) 안에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더욱 마음으로 기쁜 바입니다. 근래 선생께서 항상 문을 닫고 가르침을 베푸시니 문도가 날로 성하여, 배우고 익히는 소리가 수사(洙泗)에 비견된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단지 은거하며 세상을 피하는 자가 즐거워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대개 군자가 처하는 곳은 사람들이 그 은혜를 입는 것이니, 반드시 명위(名位)를 기다린 후에야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쓰고 또 힘쓰십시오. 저는 아마 여름 초에 나가 옛 거처로 돌아가, 길을 굽혀 찾아뵙고 친히 도의 요체를 묻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 변방의 외진 마을에 추위와 더위의 기후가 다르니, 엎드려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음식을 잘 드시고 몸을 소중히 하시며 하늘의 화합(天和)을 잘 보존하시어, 저의 간절한 축원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다 전하지 못합니다. 삼가 아룁니다.

151. 答朴仁碩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0D, ITKC_MO_0003A_A001_24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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某啓。今月某日。僧中隱至京師。得所寄盛製一篇。發緘啓紙。燦然溢目。辭與理齊。誠能覩古作者閫閾。非晉宋間人所可跂及者。蓋其陳列情緖。綢繆微悉。若出於誠懇。但過自謙挹。褒示溢美。固非鄙陋所敢當也。今閤下以文章道德。爲一時君子之選。雖中遭艱厄。深潛遠遁。不欲聞於世矣。而盛譽益茂。人皆屬望。此亦柳子厚所謂周乎藝者。屈抑不能貶其名也。且昔人有一面如舊。便與之交者。苟以意氣相許。又何論輩行之先後。交遊之久遠乎。況僕與閤下。嘗有一日之雅。今觀所寄書。有未嘗披肝膽接殷勤之語。甚所未諭也。豈以僕疏狂謬戾。爲人所訕罵。故卑其書辭。外若加敬。而實惡之耶。僕自念旣取當世僇笑而卒爲棄物矣。然世途不遇者。恒事也。夫君子之知。蓋難遇焉。故常望風遐想。願備廝役之賤而不可得。儻閤下當衆人交棄之際。少加收接。則死無恨矣。惟先生諒之。春暄。伏惟爲道自重。以副遐禱。不宣。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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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某)가 아룁니다. 이번 달 어느 날, 승려 중에 경사(京師)에 온 사람이 있어, 정성스럽게 지은 글 한 편을 보내왔습니다. 함사(緘辭)를 보내온 글을 펼쳐보니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하며, 말과 이치가 나란히 맞습니다. 참으로 옛 저술가들의 문턱을 마주한 듯하여, 진(晉)나라와 송(宋)나라 사이의 사람들이 미칠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대개 그 정서의 나열이 매우 치밀하고 미세한 부분까지 다 헤아리고 있으니, 만약 정성스러움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만 스스로 겸손해하고 칭찬과 미사여구를 과하게 보일 뿐, 본래 저의 비루함이 감히 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합하(閤下)께서는 문장과 도덕으로써 당대의 군자를 선발하고 계십니다. 비록 어려운 일을 당하여 깊이 숨어 멀리 은둔하며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으시나, 성대한 명성은 더욱 무성해져 사람들이 모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유자후(柳子厚)가 말한, 재주가 두터워 억눌러도 그 이름을 깎아내릴 수 없는 경우입니다. 또한 옛사람 중에 얼굴을 한 번 보고 바로 사귀는 이가 있었으니, 진실로 뜻과 기개가 서로 맞았다면 어찌 항렬의 선후나 교유의 오래고 짧음을 논하겠습니까? 하물며 저와 합하께서는 일찍이 하루 동안의 우아한 만남(一日之雅)이 있었는데, 지금 보내온 글을 보니 간담을 터놓고 간곡하게 접하는 말이 전혀 없으니 매우 이해되지 않는 바입니다. 혹시 저의 소탈하고 거칠며 어긋난 성격 때문에 남들에게 비난을 받을까 염려하여, 글의 문구는 낮추고 겉으로는 공경하는 듯하면서 실제로는 미워하시는 것입니까? 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미 당세의 비웃음을 사고 결국 버려진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뜻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늘 있는 일입니다. 무릇 군자의 지식은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멀리서 소식을 바라며 간절히 생각하되, 비천한 심부름꾼의 역할이라도 갖추어 모시고 싶어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합하께서 사람들이 저를 버리려 할 때 조금이라도 거두어 주신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부디 선생께서 혜량하여 주십시오. 봄의 따스한 기운 속에, 도를 닦으시는 일을 스스로 중히 하시어 저의 간절한 축원을 받으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소식을 다 전하지 못합니다. 삼가 아룁니다.

152. 上吏部李郞中〔原注:純祐〕薦徐諧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1B, ITKC_MO_0003A_A001_241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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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日。某等沐蘭浴芳。叩頭百拜獻書于天曹學士階戺。夫富商之居於廛肆也。藏珍貨而候求者之自至。問其直則有高之以五萬者。然亦得而售焉。及持其珍貨而家至戶歷。以自號於道途曰。吾將市此矣。則雖五萬之直。必低䀚銖兩而其直愈卑。然亦不能售者。彼不求我而我自求售也。士之於人亦然。雖懷奇蘊異之士。苟不負其能而自重。欲求市於當世。則望愈卑才亦不售矣。其勢然也。今以五萬之直將自號而求售於閤下之門。恐有卑其直而不見售之患。故敢先之以是說。以布區區於左右。伏惟閤下垂察納焉。僕等於交友中得士之賢者徐諧。爲人深弘而有局量。所謂人知其寶。而莫名其器也。然言其大略。則如黃鍾大呂隨叩而鳴者。其精於學問而應對之給敏也。如孤峯絶岸壁立千仞者。其富於文章而綴述之秀麗也。如三江七澤順勢而下者。其議論之宏博而無所底滯也。如秋霜烈日凜然可畏者。其氣節之豪橫而不可近狎也。蓋天下之士。於此有所長則於彼有所短。於彼有所蔽則於此有所見矣。其得而兼之者。諧實有焉。如待詔金鑾。則必有蘇頲之潤色王言。直筆蓬山。則必有孟堅之勒成一家。雖盛明之世多士如林。設國家有大手筆事。則恐魯國之儒一人而已。先儒有言曰。士之心志旣通而名譽不聞者。友之過也。名譽旣聞而有司不擧。有司之罪也。今有士於此而亦不以聞。則安敢逭其罪乎。伏惟閤下以直文直道。結上之知。自擢居銓部。品藻人才。有識之士莫不傾耳而聽。引領而望。以待閣下之用人。則正宜遠取不遺賤。近取不避親。以塞其望。而讙呼海內高談之士。奔走天下慕義之人矣。或謂知人之明。雖聖人難之。以僕等碌碌。安足知其人而薦耶。以明察之則雖聖人有不足恃。揆之以道則中人可無失。僕等之於諧。亦以所得者知之。其未所知者。以待閤下之明。惟冀閤下不以人廢言。而東觀翰掖之地。如有一員缺者。以諧之名掛於啓擬之首。任之以事而徐觀其效。若果不如言。則斥逐之。復加僕等以狂妄阿弊之誅。使僥倖之士無敢覬覦。此亦未辱朝廷取士之大體也。況諧之行己。非其人不交。而朝無瓜葛之親。則爲閤下而言者必少矣。僕等所以拳拳欲一聞者。非若時之朋比相援以所好而爲賢也。但循其公論。而竊恐閤下未知其人之實而或遺之爾。庶乎其低昂銖兩之價。一定於權衡之手。無使奇貲異貨。家至戶歷。不見售於五萬之直而已。惟閣下諒之。輕黷尊嚴。無任悚懼之至。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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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일(月日). 저희 등이 난초 향기에 몸을 씻고 꽃 향기에 목욕하며, 천조(天曹) 학사(學士) 계(階)에 머무는 분께 머리 숙여 백 번 절하며 글을 올립니다. 무릇 부유한 상인이 저잣거리에 거주하면서, 보물을 감추어 두고 그것을 구하러 오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값을 물으면 5만(五萬) 정도로 높게 부르는 자도 있으나, 또한 그것을 팔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보물을 가지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길 위에서 '내가 이것을 팔려 한다'라고 스스로 알리게 되면, 비록 5만의 값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무게를 따지며 그 값이 더욱 낮아지게 되고, 또한 팔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저(상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팔려고 구하기 때문입니다. 선비가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습니다. 비록 기이하고 독특한 재능을 품은 선비를 가졌더라도, 진실로 그 능력을 저버리지 않고 스스로 무게를 지키지 않은 채 당세(當世)에서 팔리기를 구하려 한다면, 기대가 클수록 재능이 있어도 팔리지 않을 것입니다. 형세가 그러합니다. 이제 5만의 값으로 스스로를 알리며 합하(閤下)의 문 앞에 팔려고 구하니, 혹 그 값을 낮게 여겨 팔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먼저 이 이야기를 드려 좌우에 구구한 마음을 전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합하께서 살펴 받아주십시오. 저희들의 벗 중에서 어진 선비인 서해(徐諧)는 사람이 깊고 넓으며 도량이 있습니다. 이른바 사람이 그 보배로움을 알지만 그 그릇됨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대략을 말하자면, 마치 황종(黃鍾)과 대려(大呂)가 두드리는 대로 울리는 것과 같습니다. 학문에 정밀함과 응대가 민첩함은 마치 외로운 봉우리나 절벽이 천 길 높이로 우뚝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문장이 풍부하고 서술이 수려함은 마치 삼강칠택(三江七澤)이 형세를 따라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논의가 宏博(굉박)하여 막힘이 없는 것은 마치 가을 서리와 뜨거운 태양처럼 늠름하여 두려운 것과 같습니다. 그 기개가 호방하여 가까이하여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대개 천하의 선비는 이 점에 장점이 있으면 저 점에 단점이 있고, 저 점에 가려져 있으면 이 점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 모든 것을 겸비한 자가 서해에게는 실로 있습니다. 대조(待詔)가 되어 금란(金鑾)에 머문다면 반드시 소정(蘇頲)처럼 왕언(王言)을 윤색할 것이요, 봉산(蓬山)에 직필(直筆)한다면 반드시 맹견(孟堅)처럼 일가를 이루어낼 것입니다. 비록 성명(盛明)한 시대에 선비가 숲처럼 많다 하더라도, 국가에 큰 글솜씨가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혹시 노나라(魯國)의 유학자 한 사람뿐일까 두렵습니다. 옛 선비의 말씀에 이르기를, 선비의 뜻은 이미 통하였으나 명예가 들리지 않는 것은 벗의 허물이요, 명예는 이미 들렸으나 관리들이 천거하지 않는 것은 관리의 죄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여기에 선비가 있는데 또한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면 어찌 그 죄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곧은 글과 곧은 도리로 윗분과 지식을 맺으시고, 스스로 선발되어 전부(銓部)에 머무시며 인재를 품평하시니, 식견 있는 선비들 중에 귀를 기울여 듣고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며 합하의 인재 등용을 기다리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멀리서 취하되 천한 이를 버리지 말고, 가까이서 취하되 친한 이를 피하지 않음으로써 그 기대를 채워주어야 하며, 그리하여 해내(海內)의 고담(高談)하는 선비와 천하에 의로움을 慕(모)하는 사람들이 분주히 달려오게 해야 합니다. 혹 어떤 이들은 사람을 알아보는 밝음이 비록 성인에게도 어렵다 하며, 저희 같은 범인들이 어찌 사람을 알아보고 천거하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의지할 만한 부족함이 있을 수 있으나, 도(道)에 비추어 헤아린다면 보통 사람이라 하여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희가 서해를 아는 것 또한 얻은 바를 통해 아는 것이니,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합하의 밝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오직 합하께서 사람을 이유로 말을 버리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동관(東觀)과 한액(翰掖)의 자리에 한 명의 결원이 있는 것처럼 서해의 이름을 계의(啓擬)의 머리에 올려 맡겨 일을 시키시고 그 효험을 천천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과연 말과 같지 않다면 물리쳐 내쫓으시고 다시 저희에게 광망하고 아첨한다는 죄를 물으시어, 요행을 바라는 선비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것 또한 조정이 인재를 취하는 큰 체통을 욕되게 하지 않는 길입니다. 하물며 서해의 행실은 그 사람이 아니면 사귀지 않고 조정에 아무런 연고가 없으니, 합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반드시 적을 것입니다. 저희가 간절히 한 번 알리고자 하는 것은, 당시의 벗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서로 돕고 현명하다고 하는 식의 붕당이 아닙니다. 다만 그 공론을 따르는 것일 뿐이며, 혹 합하께서 그 사람의 실체를 모르시어 혹여 간과하실까 남몰래 두려워할 뿐입니다. 바라건대 그 값을 따지는 저울질이 권형(權衡)의 손에 의해 반드시 결정되게 하여, 기이한 보물과 특이한 화물이 집집마다 돌아다녀도 5만의 값에 팔리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오직 합하께서 량해(諒解)해 주시기를 바라며, 가볍게 여겨 존엄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니 두려움이 지극합니다. 재배(再拜)합니다.

153. 與皇甫若水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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某啓。昨於梁君之廬。得足下所撰樂章六篇。手披目覩。反覆成誦。且欣且慶。輒用歎服。非有厚也。誠公義之然也。僕觀近古已來□本朝制作之體。與皇宋相爲甲乙。而未聞有以善爲樂章名于世者。以爲六律之不可辨。而疾舒長短淸濁曲折之未能諧也。嗟乎。此亦當世秉筆爲文者之一惑也。苟曰能曉音樂之節奏。然後乃得爲此。則其必待師曠之瞽然後爲耶。蓋虞夏之歌。殷周之頌。皆被管弦流金石。以動天地感鬼神者也。至後世作歌詞調引。以合之律呂者皆是也。若李白之樂府。白居易之諷諭之類。非復有辨淸濁審疾徐度長短曲折之異也。皆可以歌之。則何獨疑於此乎。僕嘗歎世無作者。屢欲爲之。而力不暇久矣。足下負超卓之才。學博而識精。氣淸而詞雅。今又於樂章。推餘刃而爲之。正聲諧韶頀。勁氣沮金石。鏗鋐陶冶。動人耳目。非若鄭衞之靑角激楚以鼓動婦女之心也。論者或謂淫辭艶語。非壯士雅人所爲。然食物之有稻也粱也。美則美矣。固爲常珍。至於遐方怪產。然後乃得極天下之奇味。豈異於是哉。彼貧尋嗜瑣者。其言不足恤也。僕每爲文。出而示乎人也。未嘗喜怒於人之笑與譽者。以其猶有吾子之知之也。足下文章。誠盡善矣。其知而賞音者。亦自以爲無出於僕矣。今辱見示副本。富我以琳琅圭壁之寶。亦足下博我之貺也。讀其詞而益知吾子之所用心將復有深於是者。庶幾繼以垂示。以慰牢落。將歸紺岳。悤悤不宣。謹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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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룁니다. 어제 양(梁) 군의 집에서 귀하가 지은 악장(樂章) 여섯 편을 얻었습니다. 손으로 펼쳐 눈으로 보고, 되풀이하여 읽고 외우니, 기쁘고도 경사스러워 절로 감탄하며 따르게 됩니다. 이는 제가 두터운 마음을 가져서가 아니라, 참으로 공의(公義)로운 까닭입니다. 제가 보기에 근래부터 □ 본조(本朝)에서 제작하는 체제는 황송(皇宋)과 서로 우열을 가릴 정도인데, 세상에 악장이라 이름 붙일 만한 선한 것이 있다고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는 육률(六律)을 분별하기 어렵고, 빠르고 느림, 길고 짧음, 맑고 탁함, 굽고 꺾임의 차이를 조화롭게 펼쳐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아, 이것은 또한 당대의 글 쓰는 이들이 겪는 하나의 미혹이기도 합니다. 만약 음악의 절주(節奏)를 깨달은 뒤에야 비로소 이것을 할 수 있다면, 반드시 사광(師曠)처럼 눈먼 이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대개 우(虞)·하(夏)의 노래와 은(殷)·주(周)의 송가(頌歌)는 모두 관현(管弦)과 금석(金石)의 소리에 실려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을 감동시켰습니다. 후세에 가사(歌詞)나 조인(調引)을 지어 율려(律呂)에 맞추는 것들은 모두 그러합니다. 이백(李白)의 악부(樂府)나 백거이(白居易)의 풍유(諷諭) 같은 부류는 맑고 탁함이나 빠르고 느림, 길고 짧음, 굽고 꺾임의 차이를 다시 분별할 필요가 없이 모두 노래할 수 있는데, 어찌 홀로 이것을 의심하겠습니까? 제가 일찍이 세상에 지은 이가 없음을 탄식하며 여러 번 지으려 하였으나, 힘이 부족하여 오래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귀하는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고, 학문이 넓으며 식견이 정밀하고, 기운이 맑으며 글이 아담합니다. 이제 또 악장에 대하여 남은 날카로움을 다해 지었으니, 바른 소리가 소(韶)·순(頀)의 음악과 조화를 이루고, 굳센 기운이 금석을 울리며, 쟁쟁하게 울려 퍼져 사람의 눈과 귀를 도야하니, 정(鄭)·위(衛)의 청각(靑角)이 초(楚)나라 음악으로 여인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것과는 다릅니다. 논하는 이들은 혹 일컬어 음란한 말과 요염한 말이라 하여, 장사(壯士)나 아인(雅人)이 할 바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음식에 벼가 있고 기장(粱)이 있는 것처럼, 맛있는 것은 맛있는 것이며 본래 상스러운 진미입니다. 먼 곳의 괴이한 산물에 이르러서야 천하의 기이한 맛을 극치에 달하게 할 수 있는데, 어찌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저 가난하고 사소한 것을 즐기는 이들의 말은 돌볼 가치가 없습니다. 제가 매번 글을 지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어도, 사람들의 웃음이나 칭찬에 일찍이 기뻐하거나 노한 적이 없었는데, 이는 마치 귀하가 저를 알아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귀하의 문장은 참으로 온전하게 훌륭합니다. 그 소리를 알아보고 감상하는 이 또한 스스로 저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여길 것입니다. 이제 부본(副本)을 부끄럽게 보여주니, 옥과 벽 같은 보물로 저를 풍요롭게 해주었으나, 또한 귀하가 저를 가르쳐준 것이기도 합니다. 그 글을 읽으니 귀하가 마음을 쓴 바가 더욱 깊음을 알게 되니, 부디 계속해서 보여주어 저의 외로운 처지를 위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곧 검악(紺岳)으로 돌아가게 되어 마음이 급하여 다 적지 못합니다. 삼가 아룁니다.

154. 與眉叟論東坡文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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僕觀近世。東坡之文大行於時。學者誰不伏膺呻吟。然徒翫其文而已。就令有撏撦竄竊。自得其風骨者。不亦遠乎。然則學者但當隨其量以就所安而已。不必牽強橫寫。失其天質。亦一要也。唯僕與吾子雖未嘗讀其文。往往句法已略相似矣。豈非得於其中者闇與之合耶。近有數篇。頗爲其體。今寄去。幸觀之以賜指敎。不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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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건대 근래에는 동파(東坡)의 문장이 당대에 크게 유행하고 있다. 배우는 이들 중에 누가 감탄하며 읊조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단지 그 문장을 즐기기만 할 뿐이다. 설령 그 문장을 뽑아내고 다듬고 도용하여, 스스로 그 풍골을 얻는 자는 또한 멀지 않겠는가. 그러니 배우는 자는 마땅히 그 분량에 따라 스스로 편안한 바를 따를 뿐이어야 하며, 반드시 억지로 끌어다 쓰거나 흉내 내어 써서 그 타고난 바탕을 잃어서는 안 되니, 이 또한 중요한 일이다. 다만 나와 그대만은 비록 그 문장을 일찍이 읽어본 적은 없으나, 문구의 법식이 이미 대략 서로 비슷하니, 어찌 그 가운데서 얻은 것이 어둡게나마 그것과 합치된 것이 아니겠는가. 최근 몇 편이 꽤 그 체제에 맞게 쓰였기에 이제 그대에게 보낸다. 부디 살펴보시고 가르침을 내려주길 바란다. 이만 줄인다.

155. 答靈師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3B, ITKC_MO_0003A_A001_243C

원문

某頓首啓。去九月時傳法阮謙師至。得吾師書。勞問敎誨勤勤備悉。日欲奉謝。而性不便書。稽留至今。悚息悚息。僕觀人文章。未嘗妄敢題跋。書中所云榜文。其所見者何時也。所跋者又何辭也。擧不能知之。豈俗子妄托吾名而爲之耶。晉宋已來。浮屠多以詩名於世。至其著述。則雖其尤所謂傑然者。未有能窮其源。蓋比興與著述異。故吾儒之人。莫得而兼之。則況浮屠耶。吾師果能此。其賢於人遠矣。若其名儒之說。固吾所欲辨之者。夫世所謂名儒者。不過工章句取科第爾。果如是而爲名儒。則何擾擾焉名儒之多耶。不唯今世所不見。雖古亦少。若賈誼,司馬遷,韓愈,柳子厚輩是也。以漢,唐之盛。其事業之尤著顯。卓然可見者止此而已。近古又有歐陽永叔。尙古文以排諸子。至號今之韓愈。王介甫祖述墳典。明先聖之道。蘇子瞻牢籠百氏。以窮著作之源。亦眞名儒也。無名儒之實而竊其名者。亦吾道之罪人也。誠不願爲之。若有與僕以此者。則謹再拜而辭。不敢當也。不敢受也。幸不復導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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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某)는 머리를 조아려 아룁니다. 지난 9월에 법을 전하는 완겸(阮謙) 스님이 도착하였습니다. 저희 스승님의 편지를 얻어, 수고로운 문안과 가르침을 정성껏 다해 모두 받았습니다. 날마다 스승님께 사례를 올리고 싶었으나, 성품이 글을 쓰는 데 서툴러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습니다. 두렵고 또 두렵습니다. 제가 사람의 문장을 살펴보건대, 감히 함부로 발문을 달지 않았습니다. 편지 중에 언급된 방문(榜文)은 그 내용이 무엇을 본 것입니까? 또한 발문한 것은 또 어떤 말입니까? 들어서는 알 수 없으니, 혹시 속된 사람이 제 이름을 함부로 빌려 쓴 것입니까? 진(晉)나라와 송(宋)나라 이래로 불교 승려들은 대개 시(詩)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그 저술에 이르면, 비록 그중 매우 걸출하다고 일컬어지는 자라 할지라도 그 근원을 다 파헤치지 못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대개 비유와 흥취(比興)는 저술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유학자들 중에서도 이를 겸비한 자가 없는데, 하물며 승려들이겠습니까? 만약 저희 스승님께서 정말로 그러하시다면, 사람보다 훨씬 현명하신 것입니다. 만약 명유(名儒)에 관한 설이 있다면, 그것은 본래 제가 변론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세상에서 이른바 명유라는 자들은 문장(章句)에만 공을 들여 과거에 급제한 자들에 불과합니다. 만약 정말로 이와 같이 하여 명유가 된다면, 어찌 어지러이 명유가 많은 것이겠습니까? 지금 세상에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옛날에도 적었습니다. 가의(賈誼), 사마천(司馬遷), 한유(韓愈), 유자후(柳子厚) 같은 무리가 바로 그러합니다.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의 성세에 그 사업이 특히 저명하여 탁연(卓然)하게 드러난 자는 오직 이들뿐입니다. 근래에는 또 구양영숙(歐陽永叔)이 있어 고문(古文)을 숭상하여 제자백가를 배척하였습니다. 오늘날의 한유(韓愈)라 칭송받는 자에 이르러서는, 왕개보(王介甫)가 옛 전적을 계승하여 선성(先聖)의 도를 밝히고, 소자첨(蘇子瞻)이 백가(百氏)를 가두어 저술의 근원을 다 파헤쳤으니, 이들 또한 진정한 명유입니다. 명유의 실질은 없으면서 그 이름만 몰래 빌리는 자들은 또한 우리 도(道)의 죄인입니다.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만약 저와 함께 이런 일을 하는 자가 있다면, 삼가 다시 절하며 사양할 것이니, 감히 당할 수도 없고 감히 받을 수도 없습니다. 부디 다시는 저를 인도하지 마십시오.

156. 上李學士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3D, ITKC_MO_0003A_A001_244A

원문

文之難尙矣。而不可學而能也。蓋其至剛之氣。充乎中而溢乎貌。發乎言而不自知者爾。苟能養其氣。雖未嘗執筆以學之。文益自奇矣。養其氣者。非周覽名山大川。求天下之奇聞壯觀。則亦無以自廣胸中之志矣。是以。蘇子由以爲於山見終南嵩華之高。於水見黃河之大。於人見歐陽公,韓大尉。然後爲盡天下之大觀焉。恭惟閤下以雄文直道。獨立兩朝。爲文章之司命。一時多士莫不仰而宗師。僕常願摳衣函丈。執弟子禮。與其門人賢士大夫。然後將以退理其文。而自難以來。久去京師。卑賤之迹。愈遠而疏。故肩不摩於夫子之墻。名不聞於賓客之末。恐遂埋沒。無以激發其志也。近者。伏聞閤下語及鄙著。趣令寫進。因竊自謂幸以薄技得效於前。覩賢人之光耀。聞言以自法。則雖不見終南嵩華黃河高且大。歐韓二公之奇偉。而足以無憾焉。所著逸齋記。謹錄以獻左右。儻垂一字以示褒貶。則終身之幸。終無以過也。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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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文章)을 숭상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배우지 않고도 능히 해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대개 그 지극히 강한 기운이 가운데에 가득 차서 겉모습으로 넘쳐흐르고, 말로 나타나는데도 스스로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능히 그 기운을 기를 수 있다면, 비록 붓을 잡고 배운 적이 없더라도 문장이 더욱 스스로 기이해질 것입니다. 그 기운을 기르는 자는 명산대천을 두루 살피고 천하의 기이한 소문과 장관을 구하지 않고서는, 또한 가슴속의 뜻을 스스로 넓힐 방법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소자유(蘇子由)는 산에서는 종남산(終南山)과 숭화산(嵩華山)의 높음을 보고, 물에서는 황하(黃河)의 큼을 보았으며, 사람에게서는 구양공(歐陽公)과 한대위(韓大尉)를 본 뒤에야 비로소 천하의 대관(大觀)을 다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각하께서는 웅변과 직도(直道)로 두 조정에서 홀로 서 계시며 문장의 사명(司命)이 되셨으니, 한 시대를 사는 많은 선비가 우러러보며 스승으로 삼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저는 항상 스승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제자의 예를 갖추어, 그 문하의 현명한 선비와 사대부들과 함께한 뒤에야 비로소 그 글을 물러나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의로 찾아뵙기가 어려워 경사(京師)를 떠난 지 오래되었으니, 비천한 자의 흔적은 더욱 멀어지고 소원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스승님의 담장 안을 어깨로 스치지도 못하고, 빈객(賓客)의 말단에서도 이름을 듣지 못하니, 혹시나 뜻을 격발하지 못한 채 매몰될까 두렵습니다. 근래에 각하께서 저의 보잘것없는 글을 말씀하시며 써서 올리라고 권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다행히 미천한 재주로 앞서 현명한 분의 광채를 뵙게 되었으니, 그 말씀을 듣고 스스로 본보기로 삼는다면 비록 종남산과 숭화산의 높고 큼을 보지 못하고 구양공(歐陽公)과 한대위(韓大尉) 두 분의 기이하고 위대한 모습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한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지은 일재기(逸齋記)를 삼가 기록하여 좌우에 올리오니, 혹시 한 글자라도 내려주어 포폄(褒貶)을 보여주신다면 종신의 행운으로서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삼가 올립니다.

157. 上刑部李侍郞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4B, ITKC_MO_0003A_A001_244C

원문

某叩頭再拜獻書于刑曹學士閤下。僕聞燕之谷。去中國不知其幾千里也。大和蒸物。無間遠近。而獨其地不生黍。固天地間一窮谷也。有鄒衍者。吹律於其間而暖之。然後一點和氣從大虛中來。物得以生而煕煕然春矣。嗚呼。與天地間窮谷爲春者鄒子也。與天地間窮民爲春者閤下也。恭惟閤下以眞人之德。其喜怒通於四時。凄然似秋。暖然似春。吹枯噓榮。人被其澤者多矣。某也氷氏之子。生於沍寒涸陰之鄕。頑顏鈍頰。慘懍凄涼。有氷雪之容。身殘家敗。食貧口衆。爲寒窘所迫。遂之江東。乞丐爲生。凡五移星霜。以今年春首。西笑而旋。久寄旅泊。囊橐傾竭。弱妻寡妹。蓬飄蓮斷。一在天之涯。一在地之角。無寸田尺宅可以聚而容膝。每一念之。不覺涕下。僕之先祖嘗從草昧之際。功成汗馬。圖畫凌煙。以丹書鐵券。錫之士田。永世無絶。而反爲兵士所奪。故郭外數畝。無日可得。而淵明之歸去來。久不能賦。某肩不摩於夫子之墻。名不聞於賓客之席。今乃手携長牋。筆話羈愁。疾聲大呼。以乞憐於左右者。不唯他人笑之。僕亦自笑之。然而垂哀於不報之人。推德於無用之地。非盛德至仁。固不可語。擧今之世。唯閤下可以望乎此爾。是敢聲其哀而不自疑焉。冀閤下噢咻泠族。挫抑豪民。振頽綱於將墜之日。訊鞠其人而處置之。使僕復得汙萊之舊地。則全家百指。朝飢寒而暮飽暖者。皆閤下爐中之造化也。未識與之爲春否乎。輕黷尊嚴。無任惶恐。某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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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某)는 형부(刑部) 이시랑(李侍郞) 합하께 머리 숙여 재배하며 글을 올립니다. 제가 듣기로 연(燕)의 곡(谷)은 중국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큰 조화로운 기운이 쪄낸 음식처럼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으나, 유독 그 땅에는 기장이 나지 않으니 진실로 천지 사이의 궁핍한 골짜기입니다. 옛날 추연(鄒衍)이라는 이가 그 사이에서 율려를 불어 따뜻하게 하였더니, 그제야 한 점의 화기(和氣)가 대허(大虛) 가운데로부터 와서 만물이 생겨나고 화창한 봄이 되었습니다. 아아, 천지 사이의 궁핍한 골짜기에 봄을 가져다준 이는 추자(鄒子)요, 천지 사이의 궁핍한 백성에게 봄을 가져다주는 이는 합하십니다. 삼가 생각건대 합하께서는 진인(眞人)의 덕을 지니셔서, 그 기쁨과 노여움이 사시(四時)와 통하니 처량함은 가을 같고 따뜻함은 봄과 같습니다. 마른 것을 불어 말리고 꽃을 피우게 하시니 그 은택을 입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某)는 빙씨(氷氏)의 아들로, 얼음처럼 차갑고 음침한 곳에서 태어나 얼굴은 완고하고 뺨은 둔하며, 처량하고 쓸쓸하여 얼음과 눈 같은 용모를 지녔습니다. 몸은 망가지고 집안은 파산하여, 가난한 음식을 먹는 입은 많은데 추위와 궁핍함에 내몰렸습니다. 마침내 강동(江東)으로 가서 구걸하며 생계를 이어왔는데, 어느덧 다섯 번의 성상이 지나 올해 봄 초에 서글픈 웃음을 지으며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나그네로 머물며 주머니와 보따리는 다 비어버렸고, 약한 아내와 적은 누이는 쑥처럼 떠돌고 연꽃처럼 꺾여, 하나는 하늘의 끝에 있고 하나는 땅의 모퉁이에 있습니다. 무릎을 맞대고 머물 수 있는 한 치의 땅이나 집조차 없습니다. 매번 생각이 날 때마다 절로 눈물이 흐릅니다. 저의 선조께서는 일찍이 미개한 시절에 따라 공을 세워 말 위에서 전공을 떨치셨고, 그림과 그림자처럼 위엄이 있었으며, 단서철권(丹書鐵券)으로 사전(士田)을 내려주어 영원히 끊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병사들에게 빼앗겨, 성 밖의 몇 마지기 땅조차 날마다 얻을 수가 없습니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歸去來)를 오래도록 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某)는 공자의 문턱에 어깨를 비비지도 못했고, 빈객의 자리에서 이름이 들리지도 않습니다. 이제 겨우 긴 글을 손에 들고 붓으로 시름을 이야기하며, 급한 목소리로 크게 외쳐 좌우의 사람들에게 가련함을 구걸하니, 이는 다른 사람만 비웃는 것이 아니라 저 또한 스스로를 비웃는 것입니다. 그러나 슬픔을 전해도 응답이 없는 사람에게 덕을 권하는 것은, 성스러운 덕과 지극한 인애가 아니고서는 진실로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의 세상을 들어보건대 오직 합하께만 이를 바라볼 수 있을 뿐입니다. 이에 감히 그 슬픔을 소리 높여 말하면서도 스스로 의심하지 않습니다. 바라옵건대 합하께서 엄격하고 서늘하게 호령하시어, 호걸과 악한 백성을 꺾으시고, 추락하는 강륜(綱)을 떨어진 날에 떨쳐 일으키시어, 그 사람을 문초하고 처치함으로써 저로 하여금 다시 오염되고 척박한 옛 땅을 얻게 해주신다면, 온 가족이 백 손가락을 다 합쳐 아침에는 춥고 배고프다가 저녁에는 배부르고 따뜻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합하의 화로 속에서 만들어진 조화일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봄이 될지 아닐지 알 수 있겠습니까? 경솔하게 존엄함을 더럽혀 황공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저(某)는 재배합니다.

158. 與王若疇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4D, ITKC_MO_0003A_A001_245A ...

원문

某頓首再拜兄王先生足下。前四五日。皇甫沆問病至旅舍。因言兄聞僕以疾廢擧。嗟痛驚愕。出於誠懇。迺知大君子之篤於仁愛也。僕之親與舊者多矣。至於行己本末。未有如兄所知之詳也。故今欲爲兄一言焉。僕自幼不好他技。博奕投壺。音律射御。一無所曉。唯讀書學文。欲以此自立。而恥藉門戶餘陰以干仕宦。故先君柄用時。豈求取祿利。以爲己榮哉。況先君或強之仕。而不從者屢矣。此亦年少氣銳。未更世變。信心直遂。不識幾微耳。其持心甚高。礪節益堅。遂以文名於世。以是日自負。頗凌轢人物。誠自有之。笑罵仇疾者粉飾無狀。一犬吠形。千犬吠聲。漸成怪物。而中路陷阨。立身一敗。萬事瓦裂。孤危顚踣。無路可振。旣朝無知己大人之所拯拔。其所望以爲階梯者獨科第耳。今又蹇滯如此。僕之衰危。又可寒心。且其人有暴貴劇顯而後乃衰廢者。中雖遭摧抑而晚或享其榮顯者。有前與後皆不貴達。而終其身不及於禍者。皆不一如是。而僕所遭罹。獨無一日忘慼慼者何哉。將先世餘殃所積。特鍾於僕。必欲勦絶而不起耶。抑向以疏狂謬戾。人多嫉媢。故爲衆口所鑠而然耶。有不可測者。兄其以僕爲釋悶解疑乎。又有可怪者。流輩中以僕年少號有才能。而巧取科第者。洽然同稱。固僕所懍懍不欲聞也。甚矣世俗之陋於知人而好妄論也。僕非求名聲者。然譽人不以實。不如不譽之安也。其有評我者。兄勿以知文許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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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모(某)는 머리를 조아려 형님 왕(王) 선생 발하(足下)께 다시 절을 올립니다. 지난 4, 5일 전, 황보항(皇甫沆)이 병문안을 온다며 여사(旅舍)에 이르렀다가, 형님께서 제가 병으로 인해 거사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탄식하며 놀라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마음이 참으로 간절한 것을 보니, 대군자(大君子)께서 인애(仁愛)에 두터우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와 친하게 지내온 옛사람이 많으나, 저의 처신과 행실의 본말에 대해서는 형님만큼 상세히 아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형님께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다른 기술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바둑이나 투호, 음악이나 말 타기, 활쏘기 등 어느 하나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직 글을 읽고 학문을 닦아 이것으로 자립하고자 했을 뿐이며, 가문의 남은 음덕에 기대어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선친께서 관직을 맡기려 하셨을 때, 어찌 녹봉과 이익을 구하여 스스로 영광이라 여겼겠습니까? 하물며 선친께서 때로 강제로 벼슬을 권하셨으나 따르지 않은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는 또한 젊은 시절 기세가 날카로웠고, 세상의 변화를 겪어보지 못하여 신념을 곧게 밀고 나갔을 뿐, 미세한 이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지키는 마음은 매우 높았고 절개를 갈고닦는 것은 더욱 굳건하여, 마침내 문명(文名)을 세상에 떨쳤습니다. 이로 인해 스스로 자부하여 사람들을 다소 업신여긴 면이 있었으니, 이는 참으로 저에게 있는 일입니다. 원한을 품은 자를 비웃고 욕하는 것을 겉으로만 꾸며 대책 없이 행동하였고, 개 한 마리가 짖으면 천 마리의 개가 짖는 격이 되어 점차 괴물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다 길 중간에 빠져 넘어지니, 입신(立身)에 한 번 실패하자 모든 일이 깨진 기와처럼 무너지고 고립되어 넘어지니 다시 일어설 길이 없습니다. 이미 조정에 저를 구해줄 지기(知己)인 대인이 없으니, 제가 바라는 계단은 오직 과거 급제뿐인데 지금 또 이토록 막혀 있으니, 저의 쇠약하고 위태로운 처지가 또한 마음을 서늘하게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갑자기 귀하게 되고 현달했다가 나중에 쇠퇴하기도 하고, 중간에 억눌림을 당하더라도 늦게나마 영예와 현달을 누리기도 하며, 앞뒤로 모두 귀하게 되지 못하더라도 끝내 화를 입지 않고 몸을 보전하는 이도 있어 모두 이와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겪는 일은 어찌하여 단 하루도 슬픔을 잊지 못할 만큼 참담한 것입니까? 장차 선대의 남은 재앙이 쌓여 특별히 저에게 집중되어 반드시 저를 멸하여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전에 소탈하고 거칠며 그릇된 면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시기하고 질투하였기에, 대중의 입방아에 올라 이 지경이 된 것입니까? 헤아릴 수 없는 일이 있으니 형님께서는 저를 생각하여 의문을 풀어 주십시오. 또한 괴이한 점이 또 있습니다. 무리들 사이에서 저를 일컬어 젊은 나이에 재능이 있다고 하면서도, 교묘하게 과거 급제를 꾀하는 자들이라고 일제히 칭송하는데, 이는 본래 제가 두려워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입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데 있어 세속의 누추함이 참으로 심하여 망령되게 논하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명성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나, 실질이 없으면서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차라리 칭찬하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저를 평가하는 자들이 있다면, 형님께서는 그들을 글을 아는 자로 인정하지 마십시오.

159. 與皇甫若水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5C, ITKC_MO_0003A_A001_245D ...

원문

啓。近有京師人至。言試圍當罷而首以足下爲稱。若果爾。誠所賀也。僕豈不素料之耶。但喜與平昔之望偕焉耳。近世取士。拘於聲律。往往小兒輩咸能取甲乙。而宏博之士多見擯抑。故朝野嗟冤。吾恐玆弊已久。不可一旦矯之。今乃僅而獲足下。僕在遠地。不能盡識其餘。亦得人之盛也。足下以名父之子。大振家聲。學精業茂。年又甚少。其濯髮雲漢。垂光虹霓。踐文昌登禁掖者。不旦卽夕也。譬如趫者之升梯。擧足愈多而身愈高人愈仰耳。苟非奕世文章之胄。能如是耶。僕廢錮淪陷。爲世所笑。屛居僻邑。坐增孤陋。學不益加。道不益進。遂爲庸人矣。凡作文。以氣爲主。而累經憂患。神志荒敗。眊眊焉眞一老農也。其時時讀書。唯欲不忘吾聖人之道耳。假令萬一復得應科擧登朝廷。吾已老矣。無能爲也。所念者。吾家俱以文章。名於當代。僕若棄遐荒。莫承遺緖。則亦終身之恥也。然至此豈非命歟。是以。放情丘壑。無處世意。常與獵夫漁者。上下水陸。游蕩相狎。略無拘檢。如此足以無恨矣。自頃年已來。一時交遊者零落殆盡。使人悲傷。僕完支體。以至今日。苟卒以樂死。是亦幸矣。是非榮辱。又何足道耶。況僕以疏狂。獲罪於世。吠者成群。非困辱如此。何以悅其仇嫉者之心耶。此尤所以甘如飴者。僕略觀當世士大夫。志於遠且大者甚少。但以科第爲富貴之資而已。其遒然霈然。橫行闊視於綴述之場。可以興西漢之文章者。捨足下誰耶。勉之勉之。所寄去二篇。亦欲觀吾志之所存者。不具。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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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아룁니다. 근래에 경사(京師)에서 온 사람이 있는데, 시험이 곧 끝나갈 때에 바로 귀하를 으뜸으로 꼽으며 말한다고 합니다. 만약 정말 그러하다면 참으로 축하할 일입니다. 제가 어찌 평소에 그렇게 예상하지 않았겠습니까. 다만 평소의 기대와 일치하니 기쁠 따름입니다. 근래의 인재 선발은 성률(聲律)에 얽매여 있어, 종종 어린아이들도 모두 갑을(甲乙)을 차지할 수 있으나, 박학다식한 선비들은 도리어 배척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조정과 민간에서 원망 섞인 탄식이 나옵니다. 저는 이러한 폐단이 이미 오래되어 단번에 바로잡기 어려울까 두렵습니다. 이제 겨우 귀하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먼 지역(遠地)에 있어 나머지 사람들을 다 알지는 못하나, 또한 인재가 성한 것이기도 합니다. 귀하는 명문가의 자식으로서 가문의 명성을 크게 떨치고 있으며, 학문은 정밀하고 학업은 무성한 데다 나이 또한 매우 젊습니다. 머리를 땋은 지 얼마 안 된 어린 나이에 구름과 은하수처럼 빛나고 무지개처럼 광채를 드리우니, 문창(文昌)의 문을 밟고 금액(禁掖)에 오르는 것이 결코 하루아침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좁은 사다리를 오르는 자가 발을 더 많이 내디딜수록 몸은 더 높아지고 사람은 더 우러러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진실로 대대로 문장가 집안의 자손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관직에서 물러나 유배되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벽지에 은거하며 고립되고 누추함만 더해갔습니다. 학문은 더해지지 않고 도는 진전되지 않아 결국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릇 글을 짓는 데는 기(氣)를 위주로 삼는데, 누적된 경륜과 근심과 우환으로 인해 신지(神志)가 황폐해져, 멍하니 있는 모습이 참으로 늙은 농부와 같습니다. 그때마다 책을 읽는 것은 오직 성인의 도를 잊지 않으려 함뿐입니다. 설령 만에 하나 다시 과거에 급제하여 조정에 나간다 한들, 저는 이미 늙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저희 집안이 모두 문장으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는데, 만약 제가 이 먼 황무지에 버려져 가문의 유업을 잇지 못한다면 또한 평생의 수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어찌 운명이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감정을 구곡간장(丘壑)에 놓아두고 세상살이에 뜻을 두지 않은 채, 항상 사냥꾼이나 어부들과 함께 산천과 수륙을 오가며 유랑하며 어울리니, 약간의 구속도 없습니다. 이만하면 한이 없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 이후로 한때 교유하던 이들이 흩어지고 거의 다 사라져 사람을 슬프게 합니다. 저는 몸을 보전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대략 즐겁게 죽을 수 있다면 이 또한 다행입니다. 시비와 영욕이 또 무엇을 말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저는 소광(疏狂)하여 세상에 죄를 지었으니, 비방하는 자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곤궁하고 욕됨이 이 정도가 아니라면 어찌 그들의 질투하는 마음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더욱 달게 여길 수 있는 이유입니다. 제가 대략 당대의 사대부들을 살펴보니, 뜻이 멀고도 큰 자가 매우 적습니다. 단지 과거 급제를 부귀의 자산으로 삼을 뿐입니다. 그중에서도 기운이 웅장하고 널리 퍼져 문장하는 자리에서 거침없이 활보하며, 서한(西漢)의 문장을 일으킬 수 있는 자가 귀하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힘쓰고 또 힘쓰십시오. 보내는 두 편의 글 또한 제 뜻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보고자 함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삼가 아룁니다.

160. 與趙亦樂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6B, ITKC_MO_0003A_A001_246C

원문

某頓首師友趙先生足下。昨者與安定皇甫沆見顧病中。哀悵惻怛。形於辭色。自非卓然見獨。不以進退出處爲念者。誰肯辱與往還哉。僕性本曠達。好問大道。不樂爲世俗應用文字。但少爲父兄所強。未免作之。自遭難。廢而不爲者久矣。今旣寒窘。思其所以取仕進而具裘葛養孤窮者。非此術莫可。故出而迺取時所謂場屋之文者讀之。工則工矣。非有所謂甚難者。誠類俳優者之說。因自計曰。如是而以爲文乎則雖甲乙。可曲肱而有也。曾不知遽爲造物小兒所困。遂奪之志也。此天命要不可逃。嗟乎。自古賢人才士例多窮厄矣。而無有如僕者。子美之流落。韓愈之幼孤。摯虞之飢困。馮唐之無時。羅隱之不第。長卿之多病古人特犯其一。而亦已爲不幸人。僕今皆犯之。豈不悲哉。夫達人以窮達爲寒暑。未嘗不任眞推分。怡然自愛。僕學此久矣。故不欲以憂患細故介吾胸次。且一涉世故。懲而不再者智士也。僕旣屢困場屋。將自誓不復求之。所願者。時時從足下問易大旨。以不忘吾聖人道耳。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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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某)는 스승이자 벗이신 조(趙) 선생 발하께 머리 숙여 문안드립니다. 어제 안정(安定) 황보항(皇甫沆)과 만나 보았는데, 병중에 있는 것을 보고 슬프고 애통한 마음이 얼굴빛에 나타났습니다. 홀로 탁연(卓然)하게 깨달아 독처하면서 나아가고 물러나는 처사를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기꺼이 저와 더불어 왕래하며 욕을 당하겠습니까? 저의 성품은 본래 너그럽고 달관하여 큰 도(大道)를 묻기를 좋아하며, 세속에 쓰이는 응용 문장(應用文字)을 짓는 것을 즐기지 않습니다. 다만 부형께서 강요하시는 일이 적어 그것을 짓지 않게 된 것뿐입니다. 재난을 당한 뒤로 글을 쓰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이미 가난하고 궁핍해지니, 벼슬을 취하여 나아가 옷과 짚신을 갖추어 외로운 처지를 기를 방도를 생각해보면, 이 방법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밖으로 나가 소위 장옥(場屋)의 글이라 불리는 것들을 읽어보니, 잘 쓰기는 잘 썼으나 특별히 매우 어렵다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배우(俳優)와 같은 말입니다. 이에 스스로 헤아려 말하기를, 이 정도를 가지고 문장이라 한다면 비록 갑을(甲乙)의 등급은 나눌 수 있을지언정 팔을 굽혀 얻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다만 조물주의 어린아이에게 급히 곤란을 당하여 결국 그 뜻을 빼앗길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천명이라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아, 예부터 현인과 재사들은 대개 궁핍하고 곤궁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자미(子美)의 유락(流落), 한유(韓愈)의 어린 고아됨, 지우(摯虞)의 굶주림과 곤궁, 풍당(馮唐)의 때를 얻지 못함, 나은(羅隱)의 낙방, 장경(長卿)의 잦은 병질 등 옛사람들이 특별히 그중 하나만 범했어도 이미 불행한 사람이었을 텐데, 저는 지금 이 모든 것을 다 범하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무릇 달인(達人)은 궁핍함과 통달함을 추위와 더위처럼 여겨, 일찍이 진실로 자신의 처지를 맡겨 두며 즐겁게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를 배운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근심과 환난 같은 사소한 일로 제 가슴을 괴롭히고 싶지 않으며, 또한 한 번 세상의 풍파에 발을 들였다면 다시는 그것을 겪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저는 이미 여러 번 장옥의 글에 곤란을 겪었으므로, 장차 스스로 맹세하여 다시는 그것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바라는 바는 때때로 선생으로부터 역경(易經)의 큰 뜻을 물어 성인의 도를 잊지 않는 것뿐입니다. 삼가 올립니다.

161. 同前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6D

원문

某啓。自古困場屋者。遂至汩沒者多矣。至於僕則尤有所不可曉者。求試于有司。凡二擧而不中。後遭難依違。遷就至今。纔三擧而鬚鬢幾白。又輒廢以疾病。則彼漠漠者。固有使之然耳。此項羽所謂天亡我。非戰之罪也。僕每念天之禍罰深重如此者。殆由名過其實耳。名者公器。不可得取。蘇子瞻以爲與無功而受千鍾者罪均也。誠哉言乎。僕不願足下輩務相褒譽以益其過也。若使取虛名而招實禍。顧何益哉。嗟呼。僕旣無用。竊自比盛世之胥吏卒伍。而不可得。至譬愚夫愚婦。又無有如僕者。甘自廢棄。不復出其技藝以求聞於人代矣。足下以雄才遭明時。宜卓然有所立者。且文章之衰未有甚於今日。當賴足下輩三四人迭唱更和而振起之。則其功豈細也哉。欲與足下言者無窮。而紙盡筆禿。止書如此。不具。某謹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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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룁니다. 예로부터 과거 시험에 매달리던 자들 중에 결국 몰락하여 빠져 죽는 자가 많았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더욱 알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유사(有司)에게 시험을 청하였으나 두 번의 응시 모두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난리를 만나 의지할 곳을 찾다가 지금까지 겨우 세 번 응시하였는데 어느덧 귀와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습니다. 또 때때로 질병 때문에 시험을 치르지 못하기도 하니, 저렇게 막막한 상황은 본래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항우(項羽)가 말한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싸움의 죄가 아니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하늘의 재앙과 벌이 이토록 무거운 것은 아마도 이름이 실제보다 지나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매번 생각합니다. 이름이란 공적인 도구인데, 그것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자첨(蘇子瞻)은 공 없이 천 종의 곡식을 받는 자와 죄가 같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저는 귀하와 같은 분들이 저의 허물을 보태기 위해 애써 칭송해 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허울 좋은 이름을 얻으려다 실제 재앙을 불러온다면 그것이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아아, 저는 이미 쓸모가 없어져 스스로 성세의 서리나 졸병에 비유하곤 하지만, 그조차 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어리석은 남녀에 비유하자니 저와 같은 자는 또 없을 것입니다. 달게 스스로를 폐기하고, 다시는 자신의 재주를 드러내어 세상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려 하지 않겠습니다. 귀하는 웅재(雄才)를 갖추고 밝은 시대를 만났으니 마땅히 탁연(卓然)하게 우뚝 서야 할 분입니다. 또한 문장이 쇠퇴함이 오늘보다 심한 적이 없으니, 마땅히 귀하와 같은 분들 서너 명이 번갈아 가며 노래하고 화답하여 이를 진흥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공이 어찌 작겠습니까. 귀하와 나누고 싶은 말이 끝이 없으나 종이는 다하고 붓은 닳았기에 이만 적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 적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삼가 아룁니다.

162. 與湛之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7A, ITKC_MO_0003A_A001_247B

원문

某再拜湛之足下。辱書敎示。罪責甚大。周覽再三。慼然以慙。此皆足下愛我多重我過。故其恩情益深則怨或易生於其間。理宜然也。僕與足下交久。僕之所守。足下知之熟矣。雖少性倨慢。爲人所嫉。及今多更事故。折節而不爲。乃學方其中圓其外者。常屈己於恒人之前。默默俛首。似不能言。以爲如是。可以無忤於世矣。僕旣能忍於恒人。而不能忍足下之一言者。足下當亦度而知之。宜勿責焉可也。今乃卑其書辭。陰加譙讓。僕之罪則大矣。足下待人之義。得無小乎。是殆以僕窮蹇而衰廢。擧世皆背而馳。足下亦從而悔其知。又無大惡。不能決捨。幸其有微釁。因欲絶之也已。且世之人有朝窮而暮達。情態卽異。遺忘故舊。揚揚自若者。足下以爲賢耶。不圖足下之行義而其所爲或出乎此也。足下誠欲絶僕而不能。又何難哉。僕今窮甚。方將深潛遠遁。不聞乎時。則與足下出處殊途。而足下之庭。可以無某之跡也。雖不待疏。而將自疏焉。足下無求僕過失而惟恐其不絶。痞病比劇。甚無聊。不復一一。惶恐謹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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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某)는 담지(湛之) 귀하께 다시 절하며 올립니다. 보내주신 편지로 가르침을 주시니, 죄스럽고 송구함이 매우 큽니다. 몇 번이고 거듭 살펴보니 슬프고도 부끄럽습니다. 이는 모두 귀하께서 저를 아끼시어 저의 허물을 많이 중히 여기셨기 때문이니, 그 은혜와 정이 더욱 깊어지면 원망하는 마음 또한 그 사이에 생기기 쉬운 법이며 이치는 마땅히 그러합니다. 제가 귀하와 사귄 지 오래되었으니, 제가 지키는 바를 귀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비록 성품이 거만하여 남에게 미움을 사기도 하였으나, 지금까지 많은 사건이 닥쳐도 절도를 지키며 행하지 않고, 다만 그 가운데서 둥글게 처신하는 법을 배웠을 뿐입니다. 항상 평범한 사람 앞에서 자신을 굽히고 묵묵히 머리를 숙여 마치 말을 못 하는 사람처럼 행동함으로써, 이와 같이 하면 세상에 거스름이 없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제가 이미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있었으나, 귀하의 한마디를 참지 못한 것은 귀하께서도 헤아려 아셔야 할 것이니, 마땅히 저를 꾸짖지 말아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오히려 편지의 말을 낮추면서 은근히 비난하고 꾸짖으시니, 저의 죄는 크지만 귀하의 사람을 대하는 의리에는 조금의 허물이 없겠습니까? 이는 아마도 제가 궁핍하고 곤궁하여 쇠퇴하고 폐해지니, 온 세상이 모두 저를 등지고 달려가는 것을 보고 귀하께서도 그 지식을 후회하시는 듯합니다. 또한 큰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니 결단하여 끊어내지 못하시다가, 다행히 작은 틈을 발견하고는 이를 계기로 끊으려 하시는 것뿐이겠지요. 또한 세상 사람 중에는 아침에 궁핍하다가 저녁에 통달하기도 하여, 그 태도가 즉시 달라져 옛 친구를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잘 지내는 자들이 있는데, 귀하께서는 그런 자를 현명하다고 여기십니까? 귀하의 행의(行義)를 생각건대 설마 그러하시지는 않겠지만, 귀하의 행실이 혹 이와 같을까 두렵습니다. 귀하께서 진실로 저를 끊고자 하시는데도 끊지 못하신다면 또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저는 지금 매우 궁핍하여 이제 막 깊이 숨어 멀리 달아나려 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듣지 못한다면 귀하와 저의 처신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니, 귀하의 뜰에는 저의 흔적이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비록 소식을 전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멀리 떠나겠습니다. 귀하께서는 저의 허물을 찾기보다 오직 저를 끊어내지 못할까 봐 걱정하시니, 병세가 심해져 매우 막막합니다. 일일이 다 적지 못하겠습니다. 황공하게 삼가 올립니다.

163. 寄山人悟生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7C, ITKC_MO_0003A_A001_247D ...

원문

某謹東望再拜。遙致尺牘于伽耶山人生公侍者。僕觀古賢士之於世。不苟異不苟同。用之則爲帝師。不用則乃窮谷一叟耳。故其動靜語默。皆得其所矣。昨於擾攘之際。人皆深潛遠遁。盜名僞服。以避一時之難。及其神志一變。則不待鶴書之聘。甘心利祿。突梯苟冒。誰復自藏於畔高肥遁之節耶。是以。幽逸之士。古則相望於世。今則罕聞焉。其箕穎之志。始末不渝。淸風爽氣凜凜與秋霜爭嚴。足以激貪汙之志者。唯足下與北原處士權君耳。僕嘗欲拂衣長往。得從之遊。而未獲捫蘿撥雲。一叩山扃。但日夕咨嗟慕望而已。乃知以市井之徒。輕慕山林高蹈之迹。誠亦難矣。嗚呼。旣困而後知歸。不可謂見幾而作也。然欲買土一廛。爲耕農氓。亦足以老死而無戚戚者。嘗遊湍川。山川信美。可以卜居。環江石壁奇絶。其東有一遺墟。訪之乃郡氓之田也。以官租私契之委積。屢欲貨財以緩禍而不售。僕聞而樂之。無貲可買。且無經營之費。今學士李公知命。於僕爲知己。欲借其力而具材於山谷。因有啓獻之已見從矣。當不出夏首。結搆草堂。携家便去。且買江田數頃。以供伏臘。此吾計也。往年秋。遣家僮奉書奔千里。以告菩提寺禪公。求以見助。公旣有報書。若將從其志者。誠所愧喜。且昔人有好周人之急。輕財如糞土者。秦漢間游俠皆能之。但少見於今之世耳。然固亦達人之細事也。在於禪公。亦何所難乎。僕以是率然干請。而不自疑焉。儻有侍側之日。其爲僕從容語及此事。使卒成吾卜築之計。亦大善已。今幷往上李公啓。欲其致之禪公。使知僕干求非出於偶爾。則雖未蒙見助。已若函受其賜矣。素聞足下善草書。每有南人至者。求之未獲。常歉然也。蓋凡書皆象其爲人。觀顏魯公之書。凜乎若誚盧杞而擊希烈。則以足下豪邁拔俗之姿。而知之亦可髣髴其書矣。然終欲見其眞蹟。山中想多暇日。其一爲揮灑。無靳固之。幸甚幸甚。不宣。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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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모(某)는 삼가 동쪽을 바라보며 다시 절합니다. 멀리 가야산(伽耶山) 인생(人生)의 공시자(公侍者)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제가 옛 현사(賢士)들이 세상을 대하는 것을 보건대, 함부로 다르지도 않고 함부로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를 쓰면 제사(帝師)가 되고, 쓰지 않으면 그저 깊은 골짜기의 한 노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동정(動靜)과 말과 침묵이 모두 제자리를 얻었습니다. 어제 소란스러운 와중에 사람들은 모두 깊이 숨어 멀리 달아나고, 이름을 도둑질하고 거짓 옷을 입어 일시의 난을 피했습니다. 그 신지(神志)가 한 번 변하면, 학서(鶴書)의 빈서(聘書)를 기다리지 않고도 감언이설과 이록(利祿)에 마음을 빼앗겨 갑자기 사다리를 타고 함부로 나아가니, 누가 다시 높은 곳이나 비옥한 곳에 숨어 지내는 절개를 지키겠습니까? 이 때문에 은逸한 선비들은 옛날에는 서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나, 지금은 듣기 드뭅니다. 그 기개와 빼어난 뜻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고, 맑은 바람과 상쾌한 기운이 늠름하여 가을 서리와 다투어 엄숙하니, 탐욕스럽고 더러운 뜻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한 자는 오직 귀하와 북원(北原) 처사(處士) 권(權) 군(君)뿐입니다. 제가 일찍이 옷을 떨치고 멀리 가서 그들을 따라 유람하고자 했으나, 아직 구름을 헤치고 넝쿨을 만지듯 산문(山扃)을 두드려 문을 열게 하지 못하고, 다만 밤낮으로 탄식하며 그리워할 뿐입니다. 그러니 시정의 무리가 산림의 고결한 행적을 가볍게 흠모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알겠습니다. 아아, 이미 곤궁해진 뒤에야 돌아갈 줄을 아니, 기미를 보고 행동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칸의 땅을 사서 농부로 살고자 하는 것 또한 충분히 늙어 죽을 때까지 근심이 없을 만한 일입니다. 일찍이 단천(湍川)에서 유람했을 때 산천이 참으로 아름다워 거처로 삼기에 좋았습니다. 강을 둘러싼 석벽이 기이하고 절묘한데, 그 동쪽에 유허(遺墟)가 하나 있었는데 찾아보니 군민(郡氓)의 논밭이었습니다. 관조(官租)와 사계(私契)의 위탁이 쌓여 있어, 여러 번 재물을 들여 재앙을 늦추려 했으나 팔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소식을 듣고 즐거워했습니다. 살 돈도 없고 경영할 비용도 없습니다. 이제 학사(學士) 이(李) 공(公)께서 명(命)을 아시어 저를 지기(知己)로 여기시니, 그 힘을 빌려 산곡(山谷)에 재목을 갖추고자 하여, 이에 계헌(啓獻)하여 이미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여름 초입에는 틀림없이 초당(草堂)을 짓고 가솔을 데리고 편히 떠날 것이며, 또한 강가의 논 몇 경(頃)을 사서 복랍(伏臘)을 공급할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계획입니다. 지난해 가을, 집안의 아이를 보내 천 리 길을 달려 보리사(菩提寺) 선공(禪公)께 서신을 올리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공께서 이미 답서를 보내오셨으니, 마치 그 뜻을 따르려는 것과 같아 참으로 부끄럽고도 기쁩니다. 또한 옛사람 중에 주(周)나라 사람의 급함을 좋아하여 재물을 분토(糞土)처럼 가볍게 여긴 이가 있었는데, 진한(秦漢) 시대의 유협(游俠)들은 모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지금의 세상에서는 보기 드물 뿐입니다. 그러나 본래 달인(達人)의 세세한 일일 뿐이니, 선공께 달려 있다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저는 이로써 거리낌 없이 간청하였으며 스스로 의심하지 않습니다. 만약 곁에서 모시는 날이 있다면, 저를 위해 조용히 이 일을 말씀해 주어 마침내 저의 터를 닦으려는 계획을 이루게 해 주신다면 또한 매우 좋겠습니다. 이제 이(李) 공께 올리는 계(啓)와 함께 보내어, 그 뜻을 선공께 전달하게 하여 저의 간청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면, 비록 도움을 입지는 못했을지라도 이미 그 은혜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평소 귀하의 초서(草書)가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매번 남쪽 사람이 와서 구해도 얻지 못해 항상 아쉬워하셨지요. 대개 모든 글씨는 그 사람을 상징하는 법입니다. 안록공(顏魯公)의 글씨를 보면 늠름하여 마치 노기(盧杞)를 꾸짖고 희렬(希烈)을 치는 듯하니, 귀하의 호방하고 속세를 벗어난 자태로 미루어 보아 그 글씨 또한 그와 비슷할 것이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 진적(眞蹟)을 보고 싶습니다. 산중에는 한가한 날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중 하나로 휘호하여 주시는 것을 아끼지 마십시오. 다행스럽고 또 다행스럽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다시 절합니다.

164. 與契師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8C

원문

某頓首吾師座下。比來。不審道況何似。萬福調護。瞻向之勤。少選不已。不肖蒙恩。無恙遊息。以延歲月。昨者頂謁函丈。仰承高論。亹亹不絶。使人改聽。誠非庸俗之士所能窺其涯畔者也。僕自以性多倨野。未嘗降氣於人。至於吾師。一聞其言。輒服雅量。所謂衞玠淸談平子絶倒者也。昔謝安寓居會稽。與桑門支遁放情丘壑。無處世意。僕本有不羈之志。樂慕方外。而況累經憂患。常歎計不早決耳。今與吾師幸居近地。未能放絶世務。往從杖錫之遊而以遂本意。徒爲林澗之所笑。吁可歎歟。然春初。因事稍間。當造之。披晤不久。心之所抱。遲回而盡。此外惟冀頤神養性。順時自重。以副祈禱。不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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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은 스승님의 좌하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근래에 도를 닦으시는 형편은 어떠하신지요? 만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라며, 우러러 뵙고자 하는 정성이 적지 않습니다. 불초한 제가 은혜를 입어 무사히 쉬며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번 스승님의 함장에 뵈었을 때, 높으신 논설을 우러러 받들었는데 그 정력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시켜 다시 듣게 하니, 참으로 평범하고 속된 선비가 그 끝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본래 성품이 거칠고 야성이 많아 사람에게 기운을 낮춘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승님께 이르러서는 그 말씀을 한 번 듣기만 해도 매번 그 아량에 감복하니, 이른바 위개(衞玠)의 청담에 평자(平子)가 매료되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 사안(謝安)이 회계(會稽)에 머물 때, 승려 지둔(支遁)과 함께 산천에 정을 놓아 세상의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본래 구속받지 않는 뜻을 가지고 있어 세속 밖의 삶을 즐거워하고 사모합니다. 하물며 여러 번 근심과 환난을 겪었으니, 늘 대책을 일찍 세우지 못한 것을 탄식할 뿐입니다. 이제 스승님과 다행히 가까운 곳에 살게 되었으나, 아직 세속의 업무를 끊어내지 못하여 스승님의 유람을 따라가 본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숲과 시냇가에서 비웃음을 살 뿐이니, 아, 참으로 탄식할 만합니다. 그러나 봄이 시작되면서 일로 인해 잠시 틈이 생겼으니, 마땅히 찾아뵙겠습니다. 뵈었을 때가 얼마 되지 않아 마음속에 품은 바를 천천히 다 전하겠습니다. 이 외에는 오직 정신을 보양하고 성품을 기르며, 때에 맞추어 스스로 몸을 소중히 하여 스승님의 기도를 받들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165. 與洪校書書

문체: 書簡類 / 書簡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48D, ITKC_MO_0003A_A001_249A ...

원문

僕啓。昔唐柳子厚曰。人之當貴寵顯劇。則其受賜於人也。無德心焉。其報也必細。至於窮困屈辱。則感慨捧戴萬萬有加。其報也必鉅。是以。明德君子。必務其鉅而遺其細焉。夫感德者不以其恩施之輕重也。以其勢有緩急之異如是。僕自遭難。跋前躓後。隱匿竄伏。投於人而求濟者數矣。皆以犬彘遇之而不顧。故居京師凡五載。飢寒益甚。至親戚無有納門者。乃挈家而東焉。是時出佐藩幕者。雖非素所相識。亦皆儒生。然彼不哀而問我。僕固不欲以窮困自干於人也。以是默默屛居。而不敢先焉。始閤下作鎭于是州。僕聞而喜曰。公吾知己也。必厚我矣。及相見。賜之坐而與之言。其禮遇有加於平日。慰誨勤勤。若憫其窮且老。然後知大君子之與人。不以窮達貴賤爲慮焉。僕固感慨捧戴而欲效其鉅者。每謹置于懷。而一日未嘗忘之。頃於春初。僕乃西步而旋返。假途化境。而不獲入拜辭決。至輦下。爲上所召。入遊天院。榮耀大矣。而僕又不在賓客交賀之列。此以他人觀之。豈不疏且慢而禮不足者乎。然僕自度公旣知我。必不以朝造夕謁。遜辭恭貌者遇之。且閤下當亦有自信者。待僕甚厚。異於衆人。則僕非病風狂易者。何若而負耶。以閤下待僕。可以知其不負也。然僕之趨舍好惡。與衆背戾皆此類。非如閤下高懷大度豁然無疑者。孰肯寬而不誅耶。旣辱閤下之知遇。而無所效尺寸於左右。又不自露其區區之抱。則閤下終無以知其所以感慨奉戴而欲效其鉅者。故言之如此。不宣。再拜。

번역

제가 아룁니다. 옛날 당나라의 유자후(柳子厚)가 말하기를, 사람이 마땅히 귀하게 대접받고 총애를 받으며 현달하고 성대해질 때는,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덕스러운 마음이 없다. 그 보답 또한 반드시 미미하다. 그러나 궁핍하고 곤궁하여 굴욕을 당할 때는, 감격하여 받들어 모시는 마음이 만만(萬萬)히 더해지니, 그 보답은 반드시 거대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명덕(明德)한 군자는 반드시 그 거대한 것을 힘쓰고 미미한 것을 버린다 하였습니다. 무릇 은혜에 감격하는 것은 그 은혜를 베푸는 것이 가볍고 무거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형세에 완급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재난을 당한 뒤로 앞뒤로 넘어지고 부딪히며 은밀히 숨어 지낼 때, 사람들에게 의탁하여 구제를 구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저를 개나 돼지처럼 대하며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경사(京師)에 머문 지 무릇 5년 동안 굶주림과 추위가 더욱 심해졌고, 지척의 친척 중에도 문을 열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에 가족을 데리고 동쪽으로 떠났습니다. 이때 번사(藩幕)를 돕기 위해 나온 이들은 비록 평소에 서로 알던 사이는 아니었으나 모두 유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를 가엽게 여기며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본래 궁핍한 처지를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이로써 묵묵히 숨어 지내며 감히 먼저 나서지 못했습니다. 처음 합하(閤下)께서 이곳 주(州)에 진을 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공께서는 나의 지기(知己)시니 반드시 나를 후하게 대우해 주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막상 만나 뵈니 자리를 내어주시고 말씀도 나누어 주셨는데, 그 예우가 평소보다 더하였고 위로와 가르침이 정성스러웠습니다. 마치 저의 궁핍함과 늙음을 가엽게 여기는 듯하였으니, 그제야 대군자(大君子)란 사람을 대함에 있어 궁함과 달함, 귀함과 천함을 염려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감격하여 받들어 모시며 그 거대한 보답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매번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여 하루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 봄 초에 제가 서쪽으로 걸어가 돌아오면서, 길을 빌려 경계(化境)에 들고자 하였으나 미처 들어가 배사(拜辭)하지 못했습니다. 수레 아래에 이르렀을 때 상(上)의 부름을 받아 천원(天院)에 들어가 노닐게 되어 영광이 매우 컸으나, 저는 또 빈객(賓客)으로서 축하하는 대열에 끼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어찌 소홀하고 거만하며 예가 부족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공께서 이미 저를 아시니 반드시 아침저녁으로 찾아뵙는 것을 사양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자로 대하지 않으실 것이며, 또한 합하께서도 스스로 자신감이 있으시어 저를 대함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매우 후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만약 제가 병들거나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저를 저버리겠습니까? 합하께서 저를 대우해 주신 것을 보면 저를 저버리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행동과 호불호가 대중과 어긋나는 것은 모두 이런 부류의 일입니다. 합하처럼 높은 마음과 큰 도량으로 활달하고 의심이 없는 분이 아니라면, 누가 너그럽게 받아주고 벌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합하의 지우(知遇)를 입었음에도 곁에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만한 일을 하지 못하고, 또한 저의 미천한 포부를 스스로 드러내지 못했으니, 합하께서는 끝내 제가 왜 감격하여 받들어 모시며 그 거대한 보답을 하고자 하는지를 알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드립니다. 다 전하지 못하여 다시 절합니다.

166. 中秋會飮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0B, ITKC_MO_0003A_A001_250C

원문

季終孟始而炎泠之氣得其中焉。故以八月之望。修翫事者舊矣。李白與故人張渭遊於郞官湖。林蘊與歐陽詹賞于長安。自乾元貞元後。翫事廢而不修者幾五六百秋矣。今中秋先一日。李君湛之抵余書曰。吾用此夕。將釃酒以酹明月。復修吾家故事。子非濟南後乎。安得而忘情。余遂欣然赴之。乃相與登高樓。飛羽觴嘯詠虛懷。間以俳諧。而不導人間事。至夜五鼓乃罷。噫。吾二家子孫流落旣久。使淸秋朗月已爲棄物。今乃襲之。若不誌玆會。後孰知吾家之喜風月者世有其人耶。於是各賦一篇。以歌疇昔之事也。

번역

계절이 끝날 무렵과 시작될 무렵에는 서늘하고 맑은 기운이 그 가운데에 얻어진다. 그러므로 8월의 보름에 풍류를 즐기는 일을 행해 온 것은 예부터 그러하였다. 이백(李白)은 옛 친구 장위(張渭)와 함께 낭관호(郞官湖)에서 노닐었고, 임온(林蘊)은 구양첨(歐陽詹)과 함께 장안(長安)에서 풍류를 즐겼다. 건원(乾元)과 정원(貞元) 연간 이후로 풍류를 즐기는 일이 폐지되어 행해지지 않은 지 벌써 5, 6백 년이나 되었다. 이제 중추절 전날, 이담지(李湛之) 군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나는 이 밤을 빌려 술을 부어 밝은 달에게 제를 올리고, 다시 우리 집안의 옛 관습을 행하려 하오. 그대는 제남(濟南) 사람의 후예가 아니오? 어찌 정을 잊을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서로 함께 높은 누각에 올라, 술잔을 높이 들고 읊조리며 빈 마음으로 즐겼고, 사이사이에 해학을 섞었으나 인간 세상의 번잡한 일로 인도하지는 않았다. 밤 다섯 고(五鼓)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쳤다. 아! 우리 두 집안의 자손들이 유랑한 지 이미 오래되어, 맑은 가을의 밝은 달이 이미 버려진 물건이 되었는데, 이제야 그것을 되찾았다. 만약 이 모임을 기록해 두지 않는다면, 훗날 세상에 풍월을 즐기는 우리 집안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이에 각자 한 편씩 글을 지어 지난날의 일을 노래하고자 한다.

167. 浮屠可逸名字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0D

원문

人恃氣以生。氣恃息以存焉。隨子午順陰陽而出入。未始有止也。方且以聲色臭味蘖其外。思爲智慮柴其內。則幾何其不壅而殆哉。故君子之於事。無勞其神。無暴其氣。逸以待之而已。古之人有靜默可以補病。揃搣可以休老。此勞者之事也。至於逸者。則未嘗動。安用靜。未嘗繁見熾。安用揃搣。淡然無爲。以守眞氣。則不爲事物之所擾也。李氏子有去而爲浮屠者。種性銳甚。如新生之駒未受控勒。其荷法之才。他日未易量也。然而其求道大切。用意大速。吾懼其未免於陰陽之寇。因其求易名也。擧是以告之曰可逸。吾又懼其逸之過則弛也。字之曰法耽。其爲學。耽而不至於暴其氣則幾矣。

번역

사람은 기(氣)를 의지하여 살아가고, 기는 숨(息)을 의지하여 존재한다. 자오(子午)를 따라 음양(陰陽)에 순응하며 출입하니, 처음부터 멈추는 법이 없다. 만약 성색(聲色)과 취미(臭味)로써 그 밖을 돋우고, 지려(智慮)로써 그 안을 깎아낸다면, 어찌 막히고 위태롭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군자가 일을 함에 있어서는 정신을 수고롭게 하지 말고, 기를 거칠게 하지 말며, 편안히 쉬면서 그것을 기다릴 뿐이어야 한다. 옛사람 중에 정묵(靜默)으로써 병을 보할 수 있고, 소락(揃搣)으로써 노쇠함을 쉴 수 있다고 한 것은 수고로운 일을 하는 자의 일이다. 안일(逸)한 자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움직인 적이 없으니, 어찌 정(靜)함이 필요하겠는가. 일찍이 번잡하게 나타나고 치솟은 적이 없으니, 어찌 소락(揃搣)함이 필요하겠는가. 담연(淡然)하여 무위(無爲)함으로써 진기(眞氣)를 지킨다면, 사물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씨(李氏)의 아들 중에 떠나서 부도(浮屠)가 된 자가 있는데, 타고난 성품이 매우 날카로워 마치 아직 고삐와 재갈을 받지 않은 갓 태어난 망아지와 같다. 그 법을 짊어질 재능은 훗날 헤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를 구함에 있어 매우 절실하고 뜻을 세우는 속도가 매우 빠르니, 나는 그가 음양의 침해를 면하지 못할까 두렵다. 이에 그가 구하는 쉬운 이름을 따라 가일(可逸)이라 하였다. 나는 또 그가 편안함에 치우쳐 나태해질까 두려워, 자(字)를 법탐(法耽)이라 하였다. 그 학문을 함에 있어, 탐닉하되 기를 거칠게 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는다면 거의 (목적을 이룰) 것이다.

168. 送李眉叟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1A, ITKC_MO_0003A_A001_251B

원문

昔吾聖人。出衰周末。與老聃氏同時。遂相師資焉。至後世。學者猶或有迭相訾毀之弊。而況去吾聖人。凡千百餘載。有釋氏者出。與孔老抗爲三敎。則其抵梧而不合亦宜矣。釋氏以慈仁廣博寂滅無爲爲道。與大易有合其旨者。苟統而和融。本無異歸。雖吾聖人復生。不得而斥也。若救世之搏鬪攘奪。殘生害命者。惟釋氏有可助夫敎化焉。故雖儒家者流。亦將悅其風而趨之。唯韓退之乃力排而急與之角。蓋不如是。學者不可救而遂無孔氏耳。然而儒釋之徒者。不能無俱害於其道。今夫身衣冠口仁義而曰。我孔氏徒也。徐而視則資其道以濟不義。往往爲愚陋恒民所不忍爲者。是固以詩書發塚。而得罪於吾聖人也亦大矣。至於髡而緇。無夫婦父子。縱誕浮虛。妄取空語。以誘乎人而利乎己者。豈異夫是。君子其卒不斥。而反譽以使進耶。吾斥釋氏者蓋在是。所以尤尊其道也。眉叟與余善而喜釋氏。雖吾亦樂而從焉。所疑者。其好作有爲。而見釋氏之徒。則莫不合爪而加敬信焉。是豈眞能好釋氏者耶。吾嘗爲之言而不少沮。以吾爲斥釋氏者。且不知樂其道。而憤其縱誕浮虛而爲徒者。將去吾而南也。旣重其去。故不可以不告以此。而敢用變其志也。

번역

옛날 우리의 성인께서는 쇠락한 주나라 말기에 출현하시어 노자(老聃氏)와 동시대를 사셨고, 마침내 서로 스승과 제자가 되셨다. 후세에 이르러 학자들이 여전히 서로 번갈아 가며 비방하고 헐뜯는 폐단이 있거늘, 하물며 우리 성인으로부터 천백여 년이 지난 뒤에 석가(釋氏)가 출현하여 공자와 노자와 맞서 삼교(三敎)를 이루었으니, 그 뜻이 서로 어긋나고 합치되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석가는 자애롭고 인자하며 넓고 박하며 적멸하고 무위함을 도(道)로 삼으니, 대역(大易)과 그 뜻이 합치되는 바가 있다. 만약 이를 통섭하여 조화롭게 한다면 본래 돌아가는 귀착점이 다르지 않으므로, 설령 우리 성인께서 다시 태어나신다 해도 배척하지 못하실 것이다. 다만 세상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투쟁하고 약탈하며, 남은 생을 보존하기 위해 생명을 해치는 자들에 있어서는 오직 석가만이 교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비록 유가(儒家)의 무리라 할지라도 또한 그 풍조를 기뻐하며 따르게 된다. 오직 한퇴지(韓退之)만이 힘써 배척하며 급히 그들과 다투었으니, 대개 이와 같지 않다면 학자들이 구제할 수 없어 결국 공자(孔氏)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교와 불교의 무리들은 그 도(道)에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저들이 의관을 갖추고 입으로는 인의(仁義)를 말하며 스스로 공자의 무리라고 일컫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그 도를 이용해 불의를 구제하고 있으니, 종종 어리석고 천한 상민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을 행하곤 한다. 이는 진실로 시서(詩書)를 들어 무덤을 파헤치는 것과 같으니, 우리 성인께 죄를 짓는 것 또한 매우 크다. 머리를 깎고 검은 옷을 입어 부부와 부자 관계가 없게 하고, 허황된 것을 낳아 뜬구름 같은 헛된 말을 함부로 취하여 사람들을 유혹하고 자신을 이롭게 하는 자들은 어찌 저들과 다르겠는가. 군자가 끝내 이를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칭송하여 나아가게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내가 석가를 배척하는 까닭은 대개 여기에 있으니, 이로써 그 도를 더욱 존중하고자 함이다. 미수(眉叟)는 나와 친분이 있으면서도 석가를 좋아하니, 비록 나 또한 즐거워하며 따르기는 하나 의심스러운 점은, 무언가 유위(有爲)한 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여 석가의 무리를 보면 예외 없이 손을 맞잡고 공경하며 믿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석가를 좋아하는 것이겠는가. 내가 일찍이 그에게 이 말을 하여 조금도 굽히지 않았으나, 그는 나를 석가를 배척하는 사람이라 여기며 또한 그 도를 즐거워할 줄 모르고 허황되고 뜬구름 같은 것을 따르는 무리에게 분개하니, 장차 나를 떠나 남쪽으로 가려 한다. 이미 그 떠남을 중히 여기기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 없으며 감히 그 뜻을 바꾸게 하려는 것이다.

169. 送咸淳赴翼嶺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1C, ITKC_MO_0003A_A001_251D

원문

道德可勉強而有矣。至於才則其可勉強而得之耶。今夫士之綴偶屬之文。書方寸之紙。以取科第登朝廷者多矣。如使之置羽檄奔走之地而無恐。試之繁劇紛宂之事而無擾。爲將而將。爲吏而吏。是皆不可勉強而有者。擧今之世。罕見其比。吾得之於恒陽咸君。其庶幾乎。敦朴質重。與直道爲任。孝敬忠信資乎中。文學辭彩飾乎外。則其施於事業者。又可量耶。今則夢徵三刀。東轅淮湖。同志者合而餞焉。咸君以常居獨立之下。一旦遠去。意不能無戚而曰。慰我離曠之懷。祛我行役之勞。吾非吾子之望。將誰望耶。僕乃崇酒于觴。擧而諭之曰。今天子以君家世淸白。暫屈小郡。以理疲民。故朝廷無東顧之憂。將見其以追鋒疾置。有詔徵黃矣。又何眷戀庭闈。效兒女態耶。余久見斥於世。不得與諸生詣闕抗疏。叫于帝閽。以還君之東也。旣預玆會。不可無言。於是引而序之。在坐者凡若干人。援毫同賦。紀于末簡。以貺其行。

번역

도덕은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재능에 이르러서는 그것을 노력해서 얻을 수 있겠는가. 지금 선비들이 글을 짓고 문장을 꾸며 한 뼘 남짓한 종이에 써서 과거에 급제하고 조정에 나아가는 자가 많다. 만약 그들을 급박한 군사적 명령이 내려지는 곳에서 두려움 없이 뛰게 하고, 번거롭고 복잡한 일들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게 한다면, 장수가 되어 장수답고 관리가 되어 관리답게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모두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세상을 들어보건대 이러한 사례를 보기 드물다. 나는 항양(恒陽)의 함(咸) 군에게서 이를 얻었으니, 아마도 그럴 것이다. 돈독하고 소박하며 중후하여 직도(直道)를 임무로 삼고, 효와 경, 충과 신이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으며, 문장과 화려한 말솜씨가 겉으로 드러나 있으니, 그가 행하는 일을 어찌 가늠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꿈속에서 세 자루의 칼(三刀)을 얻는 듯한 기세로 동쪽 수레를 몰아 회호(淮湖)로 향하니,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여 송별 잔치를 한다. 함(咸) 군은 평소 홀로 지내는 것을 즐겼는데, 갑자기 멀리 떠나게 되니 그 마음이 슬프지 않을 수 없어 말하기를, “나의 외로운 마음을 위로하고 나의 노역하는 수고를 덜어주려 하는가? 내가 그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데 장차 누구를 바라보겠는가?”라고 하였다. 나는 이에 술잔을 높이 들고 그에게 일러주기를, “지금 천자께서 그대의 가문이 청백하니 잠시 작은 군에 머물며 백성을 피로하게 하는 일을 맡기셨다. 그러므로 조정은 뒤를 돌아볼 걱정이 없으니, 장차 그대가 급히 달려가야 할 곳에 조서가 내려져 황(黃) 지역으로 소집될 것이 보인다. 또한 어찌 조정의 안위를 걱정하며 여인네 같은 태도를 보이겠는가. 나는 오랫동안 세상에서 배척당하여 여러 생도와 함께 대궐에 나아가 상소를 올리거나 황제의 문 앞에서 외치며 그대의 동쪽 행을 배웅하지 못한다. 이미 이 모임에 참여하였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에 글을 지어 서문을 쓴다. 자리에 앉은 이들이 모두 얼마 되지 않으니, 붓을 들어 함께 시를 짓고 마지막 종이에 기록하여 그가 떠남을 축하한다.

170. 送皇甫沆赴忠州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2A

원문

余居京師也。門杜箔垂。深居簡出。遂與人絶。其出處不吾違。旦暮不吾捨。其惟安定皇甫若水乎。君博其學專其志。且強於記識。而宏放於文辭。君之直。琴上之絃也。君之淸。匣中之鏡也。士之貴賤與賢愚。以不獲從君爲之羞。是其得於中者果有異歟。今將被詔。出佐雄藩。朝廷以江左奧區。倚以爲重。則其緩征更稅。振淹糾慝。而誅求榷奪之政。自君革矣。未足導也。至於推明天子之澤。以化一方。使休聲和氣。疏爲泠風。蒸爲甘澍。以煦以煕。而神雀靈芝之瑞擧集於境內者。吾非君之望而誰耶。凡交君者咸嘉其行。長言以餞之。噫。魚相忘於江湖。人相忘於道術。吾與君。忘道術之江湖久矣。於是別也。不能默已。是豈眞忘者耶。

번역

내가 경사(京師)에 거주하면서는 문 앞에 도포를 늘어뜨리고 깊이 은거하며 간략하게 출입하였기에, 마침내 사람들과 절연하였다. 나의 출처가 나를 어기지 않았고, 아침저녁으로 나를 버리지 않았으니, 오직 안정(安定)의 황보약수(皇甫若水)뿐이 아니겠는가. 그대는 학문을 넓히고 뜻을 전념하였으며, 또한 기억하고 아는 것에 능하면서도 문사(文辭)에 있어서는 웅대하고 방탕하였다. 그대의 곧음은 거문고 위의 현과 같고, 그대의 맑음은 상자 속의 거울과 같다. 선비의 귀함과 천함, 그리고 어짊과 어리석음이 그대를 따르지 못함에 대하여 부끄러워하는 것은, 그대가 얻은 중용의 도가 과연 남과 다른 까닭인가. 이제 장차 조서를 받들어 웅번(雄藩)을 보좌하러 나가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강좌(江左)를 요충지로 여겨 의지하고 중히 여기니, 그러면 세금을 완화하고 징수를 늦추며, 어지러운 일을 바로잡고, 가혹하게 징수하고 빼앗는 정치를 그대가 혁파할 것이다. 이는 (백성을) 인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아가 천자의 은택을 밀어 올려 한 지방을 교화함으로써, 휴식하는 소리와 화목한 기운이 성겨서는 서늘한 바람이 되고, 증기처럼 솟아서는 단비가 되어, 만물을 따뜻하게 하고 빛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신령한 새와 영지(靈芝)의 상서로움이 경내에 모이게 하는 것은, 내가 그대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무릇 그대와 교유하는 이들은 모두 그대의 행실을 찬양하며, 긴 말로 작별을 고한다. 아아, 물고기는 강호에서 서로를 잊고, 사람은 도술(道術)에서 서로를 잊는다더니, 나와 그대는 도술의 강호에서 서로를 잊은 지 오래되었다. 이에 이별하면서도 침묵할 수 없으니, 이것이 어찌 진정으로 잊는 것이겠는가.

171. 送志謙上人赴中原廣修院法會序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2B, ITKC_MO_0003A_A001_252C

원문

或問於林大年曰。悉矣子之得於謙上人也。其道果何如哉。對曰。吾性好釋氏道。故將求其人以爲友。積二十年不遇。今於上人有得焉。且世之學釋氏。而不能修潔謹愨者。則必託文章之流以爲放。故率皆縱誕浮雜。其中空虛。妄取儒家綺語。抽靑嫓白。以誇耀乎人之耳目。其得罪于釋氏亦大矣。今吾上人則獨異夫是。氣韻絶人。機鋒迅捷。所至叢席。雖名緇奇衲。無不望風而服。眞法中俊人也。又於儒典。皆貫綜博洽。且工於詞藻。遒勁精緻。過人遠甚。而深自覆匿。恂恂若不能言。吾與之遊三年。未嘗有一語及此者。吾固疑而問焉。謙笑曰。余深嗜法語。忘甘露之味。而況爲禪者以旣落文字爲先。安可未除口業。囂嘵與俗士爭名耶。吾聞此然後益賢焉。今因赴廣修院法會。遂躡虛而南。吾久病其假託文章而爲放者。故書以畀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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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어떤 이가 임대년(林大年)에게 물었다. “자네가 지겸(志謙) 상인을 얻은 것은 그 도가 과연 어떠하기 때문인가?”라고. 대답하기를, “나는 본래 석씨(釋氏)의 도를 좋아하여, 그 사람을 구하여 벗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20년 동안 만나지 못하였다. 이제 상인에게서 얻은 바가 있다. 또한 세상에서 석씨의 도를 배우면서도 수양을 깨끗하고 삼가며 경계하지 못하는 자들은, 반드시 문장가들의 무리에 기대어 방탕함을 일삼는다. 그러므로 대개 모두 방종하고 탄망하며 부질없고 잡다하다. 그 가운데는 공허하여 유가의 화려한 말들을 망령되게 취하고, 푸른 것을 뽑아 흰 것을 섞어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여 자랑할 뿐이니, 석씨에게 죄를 짓는 것 또한 매우 크다. 지금 우리 상인은 홀로 이들과는 다르다. 기운과 운치가 남다르고, 기봉(機鋒)이 신속하고 날카로워, 그가 가는 곳마다 비록 이름난 승려들이라 할지라도 그 풍모를 우러러보며 따르지 않는 이가 없으니, 참으로 법문(法門) 안의 뛰어난 인물이다. 또한 유교 경전에 있어서도 모두 꿰뚫고 종합하여 넓고 깊으며, 문장 또한 공을 들여 힘차고 정교함이 남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면서도 깊이 스스로를 숨겨, 겸손하고 온순하여 마치 말을 할 줄 모르는 듯하다. 내가 그와 함께 노닌 지 3년이 되었으나, 단 한 마디도 이에 관한 말을 한 적이 없다. 나는 과연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지겸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법어(法語)를 깊이 즐기느라 감로(甘露)의 맛을 잊었을 뿐이다. 하물며 선(禪)을 하는 자가 이미 문자를 앞세우는 것을 버리지 못했다면, 어찌 구설의 업(口業)을 제거하지 않고 시끄럽게 속세의 선비들과 명성을 다투겠는가?”라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더욱 현명함을 얻었다. 이제 광수원(廣修院) 법회에 참석하는 일로 말미암아 마침 허황된 것을 밟고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문장에 기대어 방탕함을 일삼는 자들을 병적으로 싫어해 왔기에, 이 글을 써서 그에게 주노라.”라고 하였다.

172. 妙光寺十六聖衆繪象記

문체: 雜著類 / 記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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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如來世尊曰。我滅度後劫。諸菩薩及阿羅漢應身。坐彼末法之中。作種種形。度諸輪轉。或作沙門白衣居士。人王宰臣。童男童女。如是乃淫女寡婦。姦偸屠販。與其同事。稱贊佛事。令其身心入三摩地。終不目言我眞菩薩。我眞羅漢。今則去佛旣遠。末法方興。其受佛記莂而分身揚化者。惟阿羅漢之方便。而六通四闢。無乎不在。固不可以擬諸形容矣。欲摸寫其眞。非愚則惑。此豈韓子所謂乾坤之容。日月之明。不可以畫繪者耶。雖然。漢明以來。像敎東漸。凡天下名山勝壤。鮮不立梵刹而皆置聖眞尊像。在在處處。常見護持。其眞假之象。本無二矣。是以。欲奉福於君親者。與死生禍福之際。苟有祈求。必隨機答之。譬如形著影出。聲呼谷應。願無不從。則捨此繪塑之功。而使人起信。蓋亦難矣。有天台上人契玄其名者。居州之妙光蘭若。余至州三年。偶抵謁之。見一古殿有聖衆繪像。端嚴逼眞。余拜瞻而問曰。此古盤礴之筆。非若今之畫工摸擬而爲者。胡爲於子之室乎。上人之言曰。先是有衲子自京輦負一函而來置此寺。後竟不知所之。其名氏與歲月則失焉。傳者以爲是像自中夏至我朝。嘗安于大內。而流傳出於人間。乃至此也。多歷炎泠。塵昏蠹食。丹雘漫滅。形像缺毀。隱隱不可識矣。及貧道之管香火於玆宇也。始發而視之。不能無慨然之意。乃發信誠。特募工修補。使宏而新之。頓還舊觀。功旣畢。兼備幢幡几案。或鑄小鍾。盤子螺鈸器皿凡百莊嚴之具。奉安于玆宇之內。永充供養。仍以衣鉢之儲。當每年春秋。虔設齋筵。以爲恒範。用此勝利因緣。祝□我聖上陛下受諸天覆護。壽籙增延。邦基有永。邊鄙無虞。文恬武嬉。民物擧安。調玉燭於四時。混車書於萬里。而得無象之大平矣。庶幾報在上者庇己之恩於萬一耳。余聽其言而觀其色。似欲得予筆。而不能告也。噫。世之名浮屠者。居則邃宇。出則肥馬。賣佛祖以漁利。而不營一毫之善者多矣。吾上人則異夫是。而雅性好善。生平以樂施爲事。今其所居纔避風雨。而晨粥午飯。取給而已。乃能作大佛事。以締善根。又知在上者庇己。而謀報其德。拳拳懇至。非其素所蓄養者大過於人。則何以至是耶。蓋其施作有可書者如此。而余朴不曉文。且事非儒者所宜言。然君子樂道人之善。故書以告後之居於斯者。是歲大定十九年秋八月二十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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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如來)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멸도(滅度)한 후의 겁(劫)에는 여러 보살(菩薩) 및 아라한(阿羅漢)의 응신(應身)이 말법(末法)의 가운데 앉아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어 윤회하는 중생들을 제도한다. 어떤 이는 사문(沙門)이나 백의(白衣), 거사(居士)로 나타나고, 어떤 이는 인왕(人王)이나 재신(宰臣), 동남(童男)이나 동녀(童女)로 나타나며, 이와 같이 음녀(淫女)나 과부(寡婦), 간도(姦偸)나 도범(屠販), 혹은 그 동료로 나타나 불사(佛事)를 찬탄하며 그 몸과 마음이 삼매(三摩地)에 들게 한다. 그러나 결코 입으로 말하기를 ‘나는 참된 보살이다, 나는 참된 아라한이다’라고 하지 않는다. 지금은 부처를 떠난 지 이미 멀었고 말법이 막 흥하고 있으니, 그 불기(佛記)를 받고 분신하여 교화하는 자는 오직 아라한의 방편일 뿐이며, 육통(六通)과 사벽(四闢)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진실로 형상으로 비유할 수 없다. 그 참모습을 모사하고자 한다면 어리석은 자는 미혹될 것이니, 이것이 어찌 한자(韓子)가 말한 건곤(乾坤)의 모습과 일월(日月)의 밝음은 그림을 그려 나타낼 수 없다고 한 것과 같겠는가?”라고 하셨다. 비록 그러하나 한(漢)나라 명제(明帝) 이래로 불교의 가르침이 동쪽으로 점차 전해져, 무릇 천하의 명산과 빼어난 땅에는 범절(梵刹, 사찰)을 세우지 않은 곳이 드물며 모두 성진(聖眞)하신 존상(尊像)을 모셔 놓았으니, 곳곳마다 항상 호지(護持)하고 있다. 그 참과 거짓의 형상은 본래 둘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복을 군친(君親)께 받들고자 하는 자가 삶과 죽음, 화와 복의 경계에서 진실로 기도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그 기틀에 따라 응답한다. 비유하자면 형상이 나타나면 그림자가 나오고, 소리를 부르면 골짜기가 응하는 것과 같으니, 바라건대 응하지 않음이 없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이 회불(繪塑)의 공덕을 버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천태산(天台山) 사람 중에 이름이 계현(契玄)인 자가 있는데, 주(州)의 묘광란약(妙光蘭若)에 거처하고 있었다. 내가 주(州)에 이르러 3년 동안 머물다가 우연히 그를 찾아가 보니, 한 고전(古殿)에 성중(聖衆)의 회상(繪像)이 있는데 단엄(端嚴)하고 참으로 진실했다. 내가 절하며 여쭈기를, “이 고귀한 필력은 지금의 화공이 모사하여 만든 것이 아닌 듯한데, 어찌하여 선생님의 방에 있습니까?”라고 하니, 상인(上人)께서 말씀하시기를, “먼저 어떤 납자(衲子)가 경(京)에서 상자 하나를 짊어지고 와서 이 절에 두었는데, 나중에는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한다. 그 이름과 세월은 잃어버렸다. 전하는 바로 이 상이 중하(中夏)에서 우리 조정으로 왔으며, 일찍이 대내(大內)에 안치되었다가 인간 세상으로 흘러 들어와 마침내 이곳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많은 세월을 지나며 먼지가 쌓이고 좀이 먹고, 단확(丹雘)은 흩어져 없어지고 형상은 훼손되어 희미하니 알아보기 어려웠다. 내가 빈도(貧道)로서 이곳에서 향화(香火)를 관리하게 되었을 때, 처음 이를 보고 감개무량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에 정성을 다하여 특별히 공을 모집해 수보(修補)하게 하여, 크고 새롭게 하여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하였다. 공사가 끝나자 당번(幢幡), 궤안(几案)을 갖추고 혹은 작은 종이나 소라, 나팔, 그릇 등 온갖 장엄의 기구들을 주조하여 이곳 안에 받들어 모셔 영원히 공양을 충실히 하게 하였다. 또한 의발(衣鉢)의 저축을 가지고 매년 봄과 가을에 정성껏 재연(齋筵)을 베푸는 것을 항범(恒範)으로 삼았다. 이 승리(勝利)의 인연으로써 우리 성상(聖上) 폐하께 제천(諸天)의 복호를 빌어, 수록(壽籙)이 늘어나고 나라의 기틀이 영원하며 변방에 근심이 없고, 문물은 평온하고 무력은 화평하며, 백성들이 모두 안락하여 사시(四時)에 옥척(玉燭)을 조절하듯 다스리고 만리에 수서(車書)를 혼합하듯 다스려, 형상 없는 대평(大平)을 얻으시기를 축원한다. 이는 부디 윗분께서 나를 보살펴 주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자 함이다. 내가 그 말을 듣고 그 안색을 보니, 마치 내 필력을 얻고자 하는 듯하였으나 차마 말하지 못하였다. 아! 세상의 이름뿐인 부처(浮屠)들은 거처는 깊고 화려하며 나오는 것은 비마(肥馬)를 타면서, 부처와 조상을 팔아 이익을 취할 뿐 일 毫의 선(善)도 꾀하지 않는 자가 많다. 나의 상인(上人)은 저들과 다르니, 아담한 성품이 선을 좋아하여 평생을 보시를 즐기는 일로 삼았다. 지금 그 거처는 겨우 비바람을 피할 정도이며 아침 죽과 점심밥을 얻어 먹는 것이 전부인데, 또한 큰 불사(佛事)를 지어 선근(善根)을 맺을 수 있었다. 또한 윗분이 자신을 보살펴 주심을 알고 그 덕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지극하니, 이는 평소 쌓아온 바가 남보다 훨씬 큼이 아니겠는가? 그 행한 바가 기록할 만한 것이 이와 같아서, 내가 비록 문장에 어둡고 또한 이 일이 유학자가 말하기에 마땅한 일은 아니나, 군자는 남의 선함을 즐거워하는 법이기에 후일에 이곳에 머물 자들에게 알리고자 글로 써 남긴다. 이 해는 대정(大定) 19년 가을 8월 20일이다.

173. 小林寺重修記

문체: 雜著類 / 記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3D, ITKC_MO_0003A_A001_254A ...

원문

聖人之道迭興於世。而化成天下。故昔吾孔子當衰周時。以仁義設其敎。及更揚,墨,黃,老。奇言異術。雜裂而四出。其弊流於秦漢而無所不至。而有不忍聞。於是釋迦氏入中土。醇以第一義示人。敎之以慈悲之行。以度衆生。所以趣時也。故柳子以爲浮屠之說不與孔子異道。又曰。眞乘法印。與儒典竝用。而人知嚮方矣。然則苟統而混之。儒釋二敎本無異歸焉。是以。自晉宗以來。賢士大夫有聞其風而悅之者。若白居易。有唐巨儒也。深信內典。躬行服習。至其晚年。自號香山居士。乃結社於山中。精勤佛事。則其信之可謂篤矣。今錢塘金君令義素奉眞風。慕樂天之爲人。常欲結一精社。著衲衣而居之。必能脫去穢累。超詣覺路。此豈所謂從佛法生。得佛法分者耶。其言曰。軒冕者人之所貴。吾未嘗得。而用之則行。捨之則藏者吾志也。遂退家于功成縣。有宅一區。有田數頃。樹之麻藝之穀。豐足其家。不以非義。而旣歸誠法門。以施捨爲事。縣之西北隅有佛祠。曰小林。先是縣人置之以爲植福之所。林麓叢密。喧靜得中。高人勝士棲眞養性者。咸樂處之。而多歷炎涼。爲風雨所漂搖。但破屋斷垣。僅蔽風雨而已。雖有殘僧數輩。而晨香夕炷寂寥已絶者。幾數百年也。使雲山煙水長有餘恨。然而州俗質陋。少爲善者。莫有補葺而完之。爲有識者所傷久矣。金君觀其傾圮。慨然興歎曰。吾誓創玆宇。爲異日終老之所矣。遂豎願輪。出錢貲且鉅萬。爲工徒之費。作而新之。飾以金碧。頗極壯麗。自大定十四年六月。訖十七年七月。又新構成會主滿金觀音菩薩像一軀。或營珍龕繒蓋花菓幢幡。或鑄鍾磬。至於茵帳几案器皿種種莊嚴之具。功旣訖。以狀敷聞于上。請於其寺。峙粟一千五百石。權子母之法。歲取其贏。以充供養。擇名緇十五人。約長年陁洛之法筵。庶幾以此勝利因緣。祝我聖上陛下受諸天覆護之力。般若光中。增延壽算也。上乃嘉之。其制曰可。仍命州牧官僚。親至以落成焉。蓋阿含經曰。若能補理古寺。是謂二梵之福。則凡以有爲功德。締結善根。奉福君親者。舍此莫之可爲。則今其爲善。誠可喜也。由是州俗化之。革暴戾爲慈仁。咸知尊嚴佛乘。有過玆宇者。無不合爪而加敬焉。其自利利他。而有以裨敎化者如此。乃知君子之所在。雖匿德藏光。而物必蒙其澤。不待於立名而後有爲也。金君欲存其始造年月。伻來請辭。余牢讓不獲。遂取其言而書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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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도가 세상에 번갈아 흥하며 천하를 교화하였다. 그러므로 옛날 우리 공자(孔子)께서 주나라가 쇠퇴할 때 인의(仁義)로써 그 가르침을 세우셨는데, 이후 묵가(墨), 황로(黃老)가 일어나 기이한 말과 특이한 술법이 뒤섞여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폐단이 진(秦)과 한(漢) 시대에 이르러 극에 달하여 차마 듣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석가(釋迦)가 중토(中土)에 들어와 가장 으뜸가는 의리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비의 행실로 가르쳐 중생을 제도하였으니, 이는 시대의 흐름에 맞춘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자(柳子)는 부처의 설법이 공자의 도와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또한 이르기를, '진정한 법인(法印)은 유교의 경전과 병용되어야 사람들이 향하는 바를 알게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만약 이를 통섭하여 혼합한다면 유교와 불교 두 가르침은 본래 돌아가는 귀결이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진(晉)나라 종실 이래로 현명한 사대부들 중 그 풍모를 듣고 기뻐하는 이들이 있었다. 당나라의 거유(巨儒) 백거이(白居易)가 그러하였다. 그는 내전(內典)을 깊이 믿고 몸소 행하며 익혔는데, 만년에 스스로 향산거사(香山居士)라 호를 짓고 산중에 모임을 결성하여 불교의 일에 정성을 다하였으니 그 믿음이 매우 두텁다고 할 만하다. 지금 전당(錢塘)의 김(金) 군 영의(令義) 소(素)는 진정한 풍모를 받들고 낙천(樂天)의 인품을 사모하여, 항상 정교한 모임을 결성하고 누더기 옷을 입고 거하며 반드시 더러운 번뇌를 벗어던지고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것이 어찌 이른바 불법을 따라 생겨나 불법의 분수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말이 이르기를, '관직과 벼슬은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나 나는 일찍이 얻지 못하였고, 그것을 쓰면 행하고 버리면 감추는 것이 나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공성현(功成縣)으로 물러나 집 한 채와 논 몇 경(頃)을 두었으며, 삼을 심고 곡식을 경작하여 집안을 풍족하게 하였다. 의롭지 않음을 탓하지 않고 이미 성스러운 법문에 귀의하였으므로 보시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현(縣)의 서북쪽 구석에 소림(小林)이라 불리는 불사(佛祠)가 있는데, 예전에 현의 사람들이 복을 심는 곳으로 삼아 두었다. 숲과 기슭이 울창하고 조용함과 소란스러움이 적절하여, 높은 인격과 선비들이 참된 양생을 위해 머물기를 즐겼다. 그러나 많은 풍파를 겪으며 비바람에 흔들려 다만 깨진 집과 무너진 담장이 비바람을 겨우 가릴 뿐이었다. 비록 잔존하는 승려 몇 명은 있었으나 아침 향과 저녁 등불이 적막하여 끊어진 지 수백 년이 되었다. 이로 인해 운산(雲山)과 연수(煙水)에 긴 한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주(州)의 풍속이 질박하고 미련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적으니, 보수하여 온전하게 하는 이가 없어 깨어 있는 이들의 상심이 오래되었다. 김 군이 그 기울고 허물어진 것을 보고 개탄하며 탄식하기를, '내가 맹세코 이 집을 창건하여 훗날 노후를 보낼 곳으로 삼으리라'라고 하였다. 마침내 원륜(願輪)을 세우고 거액의 돈을 내어 공사 비용으로 삼아, 집을 새로 짓고 신축하여 금빛과 벽색으로 꾸미니 매우 장려하였다. 대정(大定) 14년 6월에 시작하여 17년 7월에 마쳤다. 또한 새로 구성하여 회주(會主)로 만금(滿金) 관음보살상을 한 구 세웠으며, 혹은 보배로운 함과 비단 덮개, 꽃과 과일, 등(幢)과 번(幡)을 경영하고, 혹은 종과 경(磬)을 주조하였으며, 요와 휘장, 탁자와 그릇 등 각종 장엄의 도구에 이르렀다. 공사가 끝나자 그 형편을 상(上)에게 보고하여, 그 절에 곡식 1,500석을 기탁하게 하고 자모(子母)의 법을 권하여 매년 그 이자로 공양을 충당하게 하였다. 승려 15명을 택하여 장기간의 타락(陁洛) 법석을 약속하였으니, 바라건대 이러한 승리의 인연으로써 우리 성상(聖上) 폐하께서 제천(諸天)의 보호를 받는 힘을 받아 반야(般若)의 빛 가운데 수명을 더욱 연장하시기를 축원한다. 상(上)께서 이에 가상히 여겨 그 제도를 허락하시고, 다시 주목(州牧)과 관료들에게 명하여 친히 가서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였다. 대략 아함경(阿含經)에 이르기를, '만약 옛 절을 보수하고 다스릴 수 있다면 이를 두 범(二梵)의 복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무릇 유위(有爲)의 공덕으로 선근을 맺고 복을 숭상하는 자라면 이를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니 지금 그 선행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이로 말미암아 주의 풍속이 변화하여 포악함이 자비와 인애로 바뀌었고, 모두가 존엄한 불승(佛乘)을 알게 되어 이 집보다 뛰어난 것이 있으면 모두 합심하여 공경하였다. 이처럼 스스로 이롭고 남을 이롭게 하여 교화를 돕는 바가 이러하니, 군자의 처소는 비록 덕을 숨기고 빛을 감추더라도 사물이 반드시 그 은택을 입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름을 세운 뒤에야 비로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김 군이 처음 지은 연월을 남기고자 하여 여러 번 청하여 사양하였으나 얻지 못하였기에, 마침내 그 말을 취하여 기록한다.

174. 畫雁記

문체: 雜著類 / 記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5A

원문

道人惠雲持一畫雁圖。就予以觀。凡三十九雁。而狀之不同者十有八焉。其翔集飮啄起伏伸縮之形。曲盡而無遺矣。是亦精強之至者也。道人之言曰。此吾家舊物也。工之名氏則不知也。以其奇且古。蓄之久矣。始則甚寶惜之。今乃釋然。蓋君子不可以留意於物。但寓意而已。況爲浮屠者。旣輕死生去嗜欲。而反重畫。豈不謬錯而失其本心哉。今將歸江南。以畫付吾弟某者而去焉。子若書其形數以畀。則異日讀之。雖不見畫。可以閉目而盡識也。余笑曰。爲是畫者。當其畫時。必先得成形於胸中。奮筆直遂而後乃得至此。則心識其所以然。而口不能言之。余雖巧說。若工之所不能言者。安得而盡之。必欲存其形與數之粗者。則有兩對伏而交頸相叉者。纍纍然微見背脊於崖岸之交者。聳趐欲翔而未起者。昂其首而伏者。伸其吭而跂者。且步且啄者。几立而不動者。群聚者。圜而向赴飮者。騈而爭翹者。拳其足曬者。披其羽其又傍睨者。廻眄者。刷者戲者睡者。此其大略也。余因其言。爲甲乙帳而授之耳。非所以爲記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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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道人) 혜운(惠雲)이 기러기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무릇 서른아홉 마리의 기러기인데, 그 모양이 다른 것이 열여덟 마리나 되었다. 날아오르거나 모여 앉고, 먹이를 쪼거나 오르내리며 펴고 줄이는 그 형상이 빠짐없이 정교하게 다 표현되어 있었다. 이는 참으로 정교함이 지극함에 이르렀다. 도인의 말이 이르기를, “이것은 우리 집의 옛 물건인데, 그린 이의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기이하고 오래된 것이라 오랫동안 간직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보배롭게 여기고 아꼈으나, 이제는 초연해졌습니다. 대개 군자는 사물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되고 다만 뜻을 기탁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부처(浮屠)가 된 자는 이미 생사를 가볍게 여기고 탐욕을 버렸거늘, 도리어 그림을 중히 여기니 어찌 잘못되어 본심을 잃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강남(江南)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이 그림을 내 아우 모(某)에게 맡기려 합니다. 만약 그대가 그 형상과 수를 적어 준다면, 훗날 그것을 읽고 그림을 보지 못하더라도 눈을 감고 그 모습을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그림을 그린 이는 그림을 그릴 당시에 반드시 먼저 그 형상을 마음속에 이루어 놓았을 것이고, 붓을 휘둘러 곧바로 나아간 뒤에야 비로소 이 지경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으로는 그 까닭을 알지만 입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말을 잘한다 한들, 화공이 말할 수 없는 것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반드시 그 형상과 수의 대략이라도 남기고자 한다면, 두 마리씩 짝을 지어 엎드린 채 목을 서로 교차하고 있는 것, 떼를 지어 빽빽하게 있으면서 절벽과 언덕이 만나는 곳에서 등줄기가 희미하게 보이는 것, 날아오르려 치솟으면서도 아직 일어나지 못한 것, 머리를 높이 들고 엎드린 것,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는 것, 걸으면서 먹이를 쪼는 것, 거의 서 있는 듯 움직이지 않는 것, 무리 지어 모여 있는 것, 둥글게 모여 먹으러 달려드는 것, 나란히 서서 다투어 솟구치는 것, 발을 굽혀 말리는 것, 깃털을 펼친 것, 곁눈질하는 것, 눈을 돌려 훑어보는 것, 털을 고르는 것, 노는 것, 잠자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이것이 대략적인 모습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따라 갑을(甲乙) 장(帳)을 만들어 그것을 전해주었을 뿐이지, 이것이 기(記)를 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175. 逸齋記

문체: 雜著類 / 記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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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眞隱者能顯也。眞顯者能隱也。凡涕唾爵位。粃糠芻豢。枕白石漱淸流者。索隱行怪而已。於顯能之耶。桎梏名撿。汩溺朝市。首蟬冠腰龜印者。奔勢循利而已。於隱能之耶。必有不苟同不苟異。時乎退。不夷而齊之。時乎進。不皐而夔之。一浮沈一往來。無適而不自得者乃眞隱顯。而隱與道俱藏。顯與道俱行也。世之有道之士體是道者。惟海東李左司一人而已。仲若。先生名也。子眞。先生字也。內天外人。先生道也。金堂玉室。先生家也。紫府丹臺。先生官也。先生係出雞林宗室。至先生凡七代爲文章家。而先妣李氏嘗夢黃冠而遂有娠。故先生幼而嗜讀道藏。服事眞風。則於儒玄之業。蓋有宿習而然者。常宅心事外。脫落羈束。棄家歸隱于加耶山。自號靑霞子。先生父某以存家祀爲念。恐不可奪其志。知處士殷元忠與禪師翼宗解祕術。遂貽書以誠告之。二人者謀曰。江南諸山。其形勢若奔螭伏虎。控扶蘇而朝大內者。莫奇於道康郡之月生山。居此者當旬月被徵矣。遂斬茅築室於其上。乃邀致之曰。此山有道氣。必異人然後應之。君可以爲修眞之所乎。先生未知其計。欣然從之。旣至。以所居爲逸齋。齋之北。有小嶺蔚然秀出而聳立者。名爲玉霄峯。恒以幅巾鶴氅登其頂。燕坐彌日。如抱葉之蟬。凝目之龜。澹乎自處。黃庭在左。素琴在右。或撫而弄之。聲振林木。樵蘇遇之。以爲神仙也。至今其迹宛然。每煙消雨霽。萬竅不呼。泠泠淸響。如在人耳。先生方將傲睨物表。揖堯謝舜。與扶桑公,陶隱居,張天師遙爲師友。盈縮造化。轇輵璿璣。漱亭午之元氣。思靑冥之輕擧。待其功圓行滿。駕龍轡鸞。上朝玉帝。則吾見先生之與道俱藏而得所謂眞隱也。先生嘗以醫者可以惠衆。因究其術。妙如專家。活人多矣。時邑倅有嬰疾拘攣而不行者。先生往鍼之。應時而愈。倅後因□肅廟不豫。旁求醫術之士。乃薦焉。□上聞而悅之。召赴闕下。方上道而鼎湖龍駕。已莫及矣。□睿祖以在藩邸時素聞其名。遂屬籍禁閨。將用祿秩以縻之。先生於是迹出心隱。徘徊宮掖間。非其好也。然旣出應昌期。爲時廣成子。欲以至道之精播於理術。日鑿生靈之耳目。後航海入宋。從法師黃大忠,周與齡。親傳道要。玄關祕鑰。罔不洞釋。及還本國。上疏置玄館。以爲國家齋醮之福地。今福源宮是也。乃撞鴻鍾於講席。廣開衆妙之門。而問道之士塡門成市。如衆星之環天津也。則吾又見先生之與道俱行而得所謂眞顯也。其屈伸於理亂之際。消息於夷曠之域。如雲出於山而遊於寥廓。卷舒無心。不可得而累也。達人之一行一止。皆繫盛衰於時耳。安肯制乎陰陽術數之間哉。彼元忠輩自以爲用奇術而得鉤之者。亦無足取信矣。夫境之殊尤者。必待人而後彰其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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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은자는 능히 드러내는 자요, 진정으로 드러나는 자는 능히 숨는 자이다. 무릇 눈물과 침을 흘리며 작위를 탐하고, 거친 곡식과 짐승의 고기를 탐하며, 백석(白石)을 베개 삼고 맑은 시냇물로 입을 헹구는 자는, 그저 숨겨진 것을 찾고 괴이한 것을 행할 뿐이니 어찌 드러냄을 능히 한다 하겠는가. 굴레와 수갑을 차고 명예를 쫓으며, 조정의 시장에서 허우적거리고, 머리에 관을 쓰고 허리에 구슬 인장을 차는 자는, 그저 세력을 쫓고 이익을 따를 뿐이니 어찌 숨음을 능히 한다 하겠는가. 반드시 구차하게 같지도 않고 구차하게 다르지도 않아야 한다. 때가 되어 물러날 때는 억지로 평탄하게 만들지 않고, 때가 되어 나아갈 때는 억지로 조화롭게 만들지 않는다. 한 번 뜨고 가라앉으며 한 번 오고 가되, 마땅히 스스로 얻지 못함이 없는 자가 바로 진정한 은자이자 드러남이다. 은자는 도(道)와 함께 숨고, 드러남은 도(道)와 함께 행하는 것이다. 세상에 도를 체득하여 이 도를 몸소 실천하는 선비는 해동(海東)의 이좌사(李左司) 한 사람뿐이다. 중약(仲若)은 선생의 이름이고, 자진(子眞)은 선생의 자(字)이다. 내천외인(內天外人)은 선생의 도(道)요, 금당옥실(金堂玉室)은 선생의 집이며, 자부단대(紫府丹臺)는 선생의 관직이다. 선생은 계림(鷄林) 종실의 후손인데, 선생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7대 동안 문장가가 되었다. 선비(先妣) 이씨가 일찍이 황관(黃冠)을 꿈꾼 뒤에 마침내 임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생은 어릴 때부터 도장(道藏)을 읽기를 즐겨하며 참된 풍모를 받들어 섬겼으니, 유현(儒玄)의 업에 있어서는 대개 오래도록 익힌 바가 그러한 것이다. 항상 마음을 세상 밖의 일에 두어, 속박에서 벗어나 집을 버리고 가야산(加耶山)으로 돌아가 은거하며 스스로 청하자자(靑霞子)라 하였다. 선생의 부친은 가문의 제사를 보존하는 것을 염려하여 선생의 뜻을 꺾지 못할 것을 알고, 처사 은원충(殷元忠)과 선사 익종(翼宗)이 비술(祕術)을 풀고 있음을 알아, 마침내 편지를 보내 정성스럽게 고하였다. 두 사람이 모의하여 말하기를, “강남의 여러 산 중 그 형세가 마치 용이 달아나고 호랑이가 엎드린 듯하며, 부소(扶蘇)를 제어하여 대내(大內)를 향하는 듯한 곳 중 도강군(道康郡)의 월생산(月生山)보다 기이한 곳이 없다. 이곳에 거처하면 반드시 한 달 안에 부름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풀을 베어 그 위에 집을 짓고는 선생을 청하여 이르기를, “이 산에는 도기(道氣)가 있으니 반드시 비범한 사람이라야 응할 것입니다. 군께서 이곳을 수진(修眞)의 처소로 삼으시겠습니까?” 하였다. 선생은 그 계획을 알지 못했으나 기쁘게 따랐다. 이미 도착하여 머무는 곳을 일재(逸齋)라 하였다. 재(齋)의 북쪽에는 작은 고개가 울창하고 빼어나게 솟아 있는데, 이름은 옥소봉(玉霄峯)이다. 항상 두건을 쓰고 학창의를 입은 채 그 정상에 올라 온종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니, 마치 잎을 품은 매미 같고 눈을 응시하는 거북 같았다. 담담하게 스스로 처신하며, 왼편에는 황정(黃庭)을 두고 오른편에는 소금(素琴)을 두어, 때로는 거문고를 타며 노닐었는데 그 소리가 숲의 나무를 진동시켰다. 나무꾼과 소를 치는 이가 이를 만나면 신선이라 여겼다. 지금까지 그 자취가 완연하여, 매번 안개가 사라지고 비가 갠 뒤 만 개의 구멍에서 소리가 나지 않을 때면, 맑고 서늘한 울림이 마치 사람의 귀에 있는 듯하다. 선생은 막 세상의 사물을 굽어보며 요(堯)임금에게 읍하고 순(舜)임금에게 사례하며, 부상공(扶桑公), 도은거(陶隱居), 장천사(張天師)와 멀리서 스승이자 벗이 되고자 하였다. 만물의 수축과 조화를 부리며, 천체의 운행을 다스리고, 정오의 원기를 헹구며, 청명한 하늘의 가벼운 움직임을 생각하였다. 그 공덕이 원만하고 행실이 가득 차서 용을 타고 신선이 되어 옥제(玉帝)에게 올라가기를 기다리니, 그때야 비로소 선생이 도와 함께 숨어 이른바 진은(眞隱)이라 함을 보게 될 것이다. 선생은 일찍이 의원(醫者)이 대중을 은혜롭게 할 수 있다고 여겨 그 술법을 연구하였는데, 그 묘함이 전문가와 같아 사람을 살린 것이 많았다. 당시 읍수(邑倅)에게 영아(嬰疾)로 인해 몸이 뒤틀려 걷지 못하는 병이 있었는데, 선생이 가서 침을 놓으니 때맞춰 나았다. 읍수는 후에 □ 숙종(肅廟)께서 편치 않으심으로 인해 곁에서 의술을 가진 이를 찾다가 선생을 추천하였다. □께서 이를 들으시고 기뻐하시어 궐 아래로 불러들이셨으나, 마침 상도(上道)를 하던 중 정호(鼎湖)의 용가(龍駕)가 이미 미치지 못하였다. □께서 번저(藩邸)에 계실 때부터 일찍이 그 이름을 들으셨기에, 마침내 금규(禁閨)에 속하게 하여 녹봉으로써 그를 묶어두려 하였다. 선생은 이에 마음은 은둔한 채 자취만 드러내어 궁궐 사이를 배회하였으니, 이는 선생이 좋아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응창(應昌)의 기한을 내어 광성자(廣成子)가 된 뒤에, 지극한 도의 정수를 이치와 술법에 펴고자 하여 날마다 생령의 귀와 눈을 뚫어주려 하였다. 후에 바다를 건너 송(宋)나라에 들어가 법사 황대충(黃大忠), 주여령(周與齡)을 따라 도의 요결과 현관(玄關)의 비밀스러운 열쇠를 친히 전수받으니, 통달하여 해석하지 못함이 없었다.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상소를 올려 현관(玄館)을 설치하게 하였으니, 국가의 재초(齋醮)를 위한 복지(福地)로 삼은 것이 지금의 복원궁(福源宮)이다. 이에 강석(講席)에서 홍종(鴻鍾)을 쳐서 중묘(衆妙)의 문을 넓게 여니, 도를 묻는 선비들이 문 앞에 가득하여 마치 많은 별이 천진(天津)을 둘러싼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또 선생이 도와 함께 행하여 이른바 진현(眞顯)이라 함을 보게 된다. 이치와 어지러움이 교차하는 때에 굽히고 펴며, 평탄하고 넓은 영역에서 소멸하고 나타남이, 마치 구름이 산에서 나와 넓은 허공에서 노니는 듯하여, 펴고 말기를 무심하게 하니 얽매일 수 없다. 달인(達人)의 한 번 움직임과 멈춤은 모두 성쇠를 때에 맞추어 매는 것일 뿐이다. 어찌 음양의 술수 사이에 제약을 받겠는가. 저 은원충(殷元忠) 무리가 스스로 기이한 술법을 써서 낚아챘다고 하는 것 또한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무릇 경계가 유달리 다른 것은 반드시 사람을 기다린 뒤에야 그 다름이 드러나는 법이다.

원문

則非斯人無以住斯境矣。設無先生孤峙絶俗之姿。則人與境兩失其宜。而但窮谷蟠林中一虎兕狐貍之區爾。吾不知先生之待斯境耶。斯境之待先生耶。是以。自先生起應玄纁之禮。居斯者復無其人。寂寥累稔。寢爲荒墟。使雲山煙水長有餘恨者久矣。及□毅廟在宥之十二載。先生子今尙書久脩。適出鎭錦城。始尋而往焉。古壇廢井。遺址尙存。其松楸之聲。谿壑之容。有如怨者。有如慕者。有如訴其堙沒者。公乃感之。有肯構之志。遂出俸錢。爲工徒費。因時於農隙。因材於林谷。鏟荒剔翳。創爲梵宇。至於鍾磬几案種種莊嚴之具。悉無不備。功旣訖。以狀聞于□冕旒。上乃頷其奏。特內降觀世音畫像。且以良田十五頃賜焉。又私峙穀一百石。權子母法。歲取其贏。求充供養。擇苾芻之修潔者。俾管其事焉。蓋斯境之綿世伏匿。而遇先生一朝朗發。使窮崖潤色。幽澗光耀。名著千祀。非待人而彰其異者耶。噫。余雖不獲操篲服勤於先生之門庭。嘗拜其遺像於尙書之第。整冠拭目而觀之。淸姿秀格。如融融春露曉濯金莖。追味其平生。則使人足以忘鄙吝之心。何必親見元紫芝眉宇耶。但恨瓊都命淺。玉籙道微。不能捫蘿發雲。一叩仙扃。窺丹竈之留煙。蔭瑤壇之餘竹。咨嗟慕仰。瞻跂不足。而爲之歌曰。先生去兮控靑虯。肩松喬兮隱嵩丘。先生來兮乘玉麟。動星象兮謁紫宸。八極外兮追汗漫。入東海兮今不返。古洞天兮寂無事。白日長兮珪鸞睡。余常謁尙書。獲齒諸子。侍坐于側。公屬余謂曰。吾先之奇迹。久而不述。其若待子。子其筆之可乎。余辭以文不長於記事。而強之再三。遂承命書始創歲月。因及出處大槩。至若官民與行年之始末。備於大史氏。故不記。林椿記。

번역

그러니 이 사람(선생)이 아니었다면 이 경계(장소)에 머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선생의 고고하고 속세를 벗어난 모습이 없었다면, 사람과 경계 모두 마땅한 도리를 잃었을 것이며, 그저 깊은 골짜기 숲속에 호랑이와 코뿔소, 여우와 삵이 사는 구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선생이 이 경계를 기다린 것인지, 아니면 이 경계가 선생을 기다린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이 때문에 선생이 현훈(玄纁)의 예(禮)를 일으킨 이래로, 이곳에 머무는 사람이 다시는 없었다. 적막함이 여러 해 이어져 잠자던 곳은 황폐한 터가 되었으니, 구름 낀 산과 안개 낀 물이 길게 남은 한이 된 지 오래되었다. □毅廟(의묘)가 유(宥)에 있던 12년에, 선생의 아들인 상서(尙書)가 오래도록 수양하며 지내다가 마침 금성(錦城)으로 출장(出鎭)을 가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곳을 찾아갔다. 옛 제단과 폐허가 된 우물은 그 유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소나무와 느티나무의 소리, 계곡과 골짜기의 모습은 원망하는 듯하기도 하고, 그리워하는 듯하기도 하며, 매몰된 것을 호소하는 듯하기도 하였다. 공(상서)이 이에 감동하여 다시 세우고자 하는 뜻을 품고, 마침내 봉급을 내어 공사 인부들의 비용으로 썼다. 또한 농한기를 이용하고 숲과 골짜기의 재료를 사용하여, 거친 풀을 베고 덤불을 걷어내어 마침내 범사(梵宇, 사찰)를 창건하였다. 종과 경, 상과 안 등 갖가지 장엄한 기구들까지 모두 갖추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사가 끝나자 장계(狀啓)를 올려 □冕旒(면류)에 보고하니, 임금께서 그 보고를 가납하시고 특별히 관세음(觀世音) 화상을 내리셨으며, 또한 양전 15경(頃)을 하사하셨다. 또한 곡식 100석을 사사로이 내리시되, 자모법(子母法)을 권하여 매년 그 이익을 취해 공양을 충당하게 하시고, 깨끗한 풀을 골라 그 일을 맡게 하였다. 대개 이 경계가 대대로 은밀히 숨겨져 있다가 선생을 만나 하루아침에 밝게 드러나니, 벼랑 끝이 윤택해지고 그윽한 계곡에 빛이 나며 그 이름이 천 대의 역사에 남게 되었으니, 이는 사람이 기다려야 그 다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내가 비록 선생의 문하에서 빗자루를 잡고 부지런히 봉사하지는 못했으나, 일찍이 상서(尙書)의 집에서 선생의 유상을 뵈었다. 관을 정제하고 눈을 씻고 바라보니, 맑은 자태와 빼어난 격조가 마치 따스한 봄 이슬이 새벽에 금빛 줄기를 씻어내는 듯하였다. 그 평생을 추억해 보니 사람으로 하여금 비루하고 인색한 마음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니, 어찌 반드시 원자지(元紫芝)의 눈썹과 이마를 직접 보아야 하겠는가. 다만 경도(瓊都)의 명운이 짧고 옥록(玉籙)의 도가 미미하여, 능히 넝쿨을 만져 구름을 일으키고 신선의 문을 두드려 단로(丹竈)에 남은 연기를 엿보며 요단(瑤壇)의 남은 대나무 그늘을 입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이다. 탄식하며 우러러보아도 우러러보는 것이 부족하여 이로써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선생은 떠나가시어 푸른 용을 부리시고, 소나무 어깨에 기대어 숭구(嵩丘)에 은거하시네. 선생은 오시어 옥린(玉麟)을 타시고, 별의 형상을 움직여 자신(紫宸)을 알현하시네. 팔극(八極) 밖에서 한한(汗漫)함을 쫓으시고, 동해로 들어가 이제 돌아오지 않으시네. 옛 동천(洞天)은 적막하여 아무 일이 없는데, 밝은 해는 길게 비치고 규란(珪鸞)은 잠들어 있네. 내가 항상 상서(尙書)를 뵙고 제자들을 얻어 곁에서 시좌(侍坐)하였는데, 공이 나에게 말하기를, '나의 먼저 있었던 기적을 오래도록 서술하지 않았으니, 마치 자네를 기다리는 것 같네. 자네가 이를 기록해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내가 글재주가 사건을 기록하는 데 능하지 않다고 사양하였으나, 두세 번 강권하시기에 마침내 명을 받들어 처음 창건한 세월을 쓰고, 이어 출처의 대략을 적었다. 관직과 민간의 일 및 살아온 생애의 시말은 대사(大史)에게 갖추어져 있으므로 기록하지 않는다. 임춘(林椿) 기록.

176. 足庵記

문체: 雜著類 / 記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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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凡亢爽奇壯之珍觀者。天作而天藏之。必在乎山區海陬荒邊側壤。而有衝波急洑隤崖落石之所壓覆。龍蛇虺蝎虎豹之所抵觸。故莫不贏糧戒途。奔朝走夜。變更寒暑。而後得至焉。若其不出都邑。不畚土輦石以增其高厚。而坐得勝槩者。曠千祀而罕有矣。王輪寺之西偏有一庵。上人闡師者居之。庵之制皆撓桷曲桓。因其天姿。不黝不堊。蓋得華質之中也。臨其上以望則庨豁虛明。飛鳥之背可視矣。重岡複嶺。帨帶而繚繞。荒蹊細逕。高低而晻曖。遊人之往來相續者。皆不能逃乎一几一席之內。眞王都之佳處也。公自南國躡虛而來。旋于京師。居是庵凡二歲。嘗喟然歎曰。吾不幸生末法中。宗門衰廢。知聖道之將夷。而荷擔如來祕藏。宜長揖人世。巖逃谷隱。以老吾生耳。於是將振五樓之金策。飄然獨往。搜訪名山。登臨諸天。而搢紳先生之素與公遊者。咸樂其道而不欲去焉。故未免如志。而行不爲牽。止不爲柅。如閑雲無心。任其去留。常斂迹庵中。閉目燕坐。淡泊如也。晨昏焚頌之外。閑而無事。每天淸景融。引諸賓客。摘實于林而香可割。擷芳于畦而美可茹。盤有嘉餚。樽有旨酒。使淸風掃階。明月侍座。碾春茗而香泉甘。弄素琴而幽鳥窺。或醉者淋漓。歌者激烈。或靜觀微步。傲睨物表。逍遙徜徉。以適其適。雖所遇之樂不同。而得於心者亦皆自足矣。先是居斯者。不書所作。以貽林澗之愧久矣。余嘗謁公于是庵。公欣然屬之曰。自古秀異之境。必遇高才以極其詞。子其爲吾。名而記之。余牢讓不獲。強名之爲足庵。公意若薄其名者而曰。夫華榱髤楯。藻井綺疏。連雲煥日而千門洞開。垣墻數百里者。有長楊,五柞之宮。此室宇之宏大壯麗者也。驚濤怒浪。排空無際。閩商海賈飛帆鼓楫。出入於煙雲杳靄之間者。有洞庭,彭蠡之湖。此景物之魁偉秀絶者也。今以是庵爲足。得無小乎。余應之曰。夫物無窮而身有涯。必欲盡物而後爲足耶。則彼舐痔而得車。入市而攫金者。役役至死。而猶不知足矣。苟虛其心委其分。而安之若命。則一枝滿腹。烏往而不足哉。以居是庵之側僻湫隘。纔庇風雨。而優游逸樂乎其中。則不待夫涼臺館之比棟連甍。璀璨錯峙。而足以容吾身也。又庵之下有溪瀉出。聽其聲潨然可愛。則不待夫三江七澤之洶湧轟磕。驚裂地軸。若萬軍之怒號。而足以淸吾耳也。庵之前有峯環互。望其氣蔚然可揖。則不待夫嵩南泰華之陽崖陰壑。晦明變化。有濃雲迅雷之俱發。而足以適吾目也。謂足者如是而已。雖然。有實而後有名。有我而後有物。公方將遺物忘形。而立於獨。則自身不有。而況於是庵乎。大定二十一年庚子七月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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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높고 시원하며 기이하고 장대한 진귀한 경관을 보는 자는, 하늘이 만들고 하늘이 감추어 놓은 것이니, 반드시 산골짜기나 바닷가, 거친 변방의 땅에 있다. 그곳에는 파도가 부딪치고 급한 물살이 흐르며, 절벽이 무너지고 돌이 떨어지는 곳이 압박하고, 용이나 뱀, 독사나 호랑이, 표범이 부딪치는 곳이 있다. 그러므로 경계와 길을 살피며 밤낮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추위와 더위의 변화를 겪은 뒤에야 비로소 그곳에 이를 수 있다. 만약 도읍을 벗어나지 않고, 흙을 퍼 나르고 돌을 실어 날라 그 높고 두터움을 더하지 않고도 저절로 승경을 얻는 자가 있다면,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드물 것이다. 왕륜사(王輪寺)의 서편에 한 암자가 치우쳐 있는데, 상인(上人) 탄사(闡師)가 그곳에 거처한다. 암자의 구조는 모두 서까래가 굽고 뒤틀려 있는데, 그 천연의 자태를 따라 검게 칠하지도, 흰 칠을 하지도 않았으니, 대개 화려한 바탕 가운데서 얻은 것이다. 그 위에서 바라보면 탁 트여 허공이 밝으니, 날아가는 새의 등까지 볼 수 있을 정도다. 첩첩한 산과 여러 고개는 두건을 두른 듯 휘감아 돌고, 거친 길과 가는 길은 높낮이가 있어 어둑어둑하다. 오가는 유람객들이 끊이지 않으나, 모두 한 책상과 한 자리의 안락함을 벗어나지 못하니, 참으로 왕도(王都)의 아름다운 곳이다. 공(公)은 남국(南國)에서 허공을 밟듯 와서 경사(京師)에 머물며 이 암자에 약 2년 동안 거처하였다. 일찍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불행히도 말법(末法)의 시대에 태어나 종문(宗門)이 쇠퇴하고 폐해져 성도(聖道)가 장차 평탄해질 것을 알겠노라. 여래의 비밀스러운 저장(祕藏)을 짊어진 몸이니, 마땅히 인세에 길게 절하며 바위와 골짜기로 도망쳐 은둔하며 내 생을 늙게 해야 하리라.” 하였다. 이에 오루(五樓)의 금책(金策)을 떨치듯 홀연히 홀로 가서 명산을 찾아다니고 여러 하늘에 올라가니, 평소 공과 함께 놀던 문신(賒紳) 선생들이 모두 그 도를 즐거워하여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뜻한 바를 피할 수 없었으나, 행함에 끌리지 않고 머묾에 막히지 않으니, 마치 한가로운 구름이 마음 없이 가고 머무는 것에 맡기는 것과 같았다. 항상 암자 안에서 자취를 거두고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담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새벽과 저녁에 송주(頌)를 올리는 것 외에는 한가하여 아무 일도 없으니, 매일 맑은 경치가 화창하였다. 여러 빈객을 불러 숲에서 열매를 따니 향기가 베어낼 만하고, 밭에서 꽃을 꺾으니 아름다움이 씹을 만했다. 소반에는 맛있는 음식이 있고 술통에는 향기로운 술이 있었다. 맑은 바람이 계단을 쓸게 하고 밝은 달이 자리에 모시게 하며, 봄차를 찧으니 향기로운 샘물이 달콤하고, 소금을 타서 거문고를 타니 그윽한 새가 엿보았다. 어떤 이는 취하여 흐드러지게 노래하고, 어떤 이는 격렬하게 노래하며, 혹은 정적으로 미세한 걸음을 관찰하거나 사물을 오만하게 굽어보며 유유자적 노닐어 그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비록 마주하는 즐거움은 서로 다르나, 마음으로 얻는 바는 모두 스스로 만족하였다. 이전에 이곳에 거처하던 자가 자신이 지은 바를 쓰지 않아 숲과 골짜기에 부끄러움을 끼친 지 오래되었다. 내가 일찍이 이 암자에서 공을 뵙자, 공이 기쁘게 나에게 부탁하며 말하기를, “예부터 빼어나고 이색적인 경지는 반드시 높은 재능을 만나 그 사를 극해야 하는 법이니, 그대가 나를 위해 이름을 지어 기를 수 있겠는가?” 하였다. 내가 사양하며 얻지 못하다가, 억지로 이름을 지어 ‘족암(足庵)’이라 하였다. 공의 뜻은 그 이름이 박하다고 여겼는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화려한 들보와 기둥, 채색된 천장과 격자창이 있고, 구름이 이어지고 해가 빛나며 천 개의 문이 활짝 열린 듯하고, 담장이 수백 리에 달하는 것은 장양(長楊)과 오작(五柞)의 궁궐과 같으니, 이는 건축물이 웅대하고 장려한 것이다. 놀라운 파도와 성난 물결이 하늘 끝까지 밀려와 민상(閩商)과 해상 상인들이 돛을 달고 노를 저어 안개와 구름 사이를 드나드는 것은 동정(洞庭)과 팽려(彭蠡)의 호수와 같으니, 이는 경물 중 으뜸이며 빼어난 것이다. 이제 이 암자를 ‘족(足, 족함)’이라 하니, 작지 않겠는가?” 내가 대답하기를, “무릇 만물은 끝이 없으나 몸은 한계가 있으니, 반드시 만물을 다 누려야만 족하다고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저 치질을 핥아 수레를 얻고 시장에 들어가 금을 낚는 자들은 죽을 때까지 애쓰면서도 여전히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진실로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분수를 맡겨 명에 따라 편안히 한다면, 한 가지 가지와 가득 찬 배만 있어도 어찌 가지 않고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이 암자의 측면이 외지고 좁고 험하여 겨우 바람과 비를 가릴 뿐이지만, 그 안에서 유유자적 즐거움을 누린다면, 굳이 서늘한 대나 관청의 건물처럼 기둥과 지붕이 이어져 찬란하게 솟아 있지 않아도 충분히 내 몸을 담을 수 있습니다. 또한 암자 아래로 시냇물이 쏟아져 나오니 그 소리가 졸졸 들려 사랑스러운데, 굳이 삼강칠택(三江七澤)의 물결이 요동치며 땅의 축을 흔들 듯 만군의 함성처럼 울리지 않아도 충분히 내 귀를 맑게 할 수 있습니다. 암자 앞에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어 그 기운이 울창하여 절을 하고 싶을 정도이니, 굳이 숭산(嵩山)이나 태산(泰山)의 양쪽 절벽과 골짜기처럼 어둠과 밝음이 변화하며 짙은 구름과 빠른 천둥이 함께 발하는 것이 아니어도 충분히 내 눈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족하다’ 함은 이와 같을 뿐입니다.” 하였다. 비록 그러하나, 실체가 있어야 이름이 있고, 내가 있어야 사물이 있는 법이다. 공은 막 사물을 버리고 형체를 잊으려 하며 홀로 서 있으니, 자신조차 없는데 하물며 이 암자가 있겠는가? 대정(大定) 21년 경자(庚子) 7월 어느 날, 기록한다.

177. 東行記

문체: 雜著類 / 記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8C, ITKC_MO_0003A_A001_258D ...

원문

世之論山水者。以江東爲秀地。余獨未信曰。造物者固無心於與奪。安肯私于一方耶。及遊南國。凡以奇勝絶特自名者。咸所冥搜饜見。以爲天下之奇觀殆無出於此矣。又去而之東。自溟原二州之境。風土特變。山增高水益淸。千峯萬壑。誇奇競秀。民居其間。皆側耕危穫。怳然若別造一世界。向之所歷者。宜皆遜讓屈伏。無敢與抗矣。然後知混沌氏始判淸濁。崑崙磅礴。獨凝結而爲是也。竹嶺之西二十餘里。有水名唐津。下多細石。皆圓熟而靑色。色徹而水碧。沈沈無聲。魚可數百尾戲于石間。左右皆巖巖靑峙。壁立萬仞。如丹而碧之。崖谷之勢呀然窪然。若垤若穴。奇卉美箭。交生羅絡。影倒水底。大略如此。而其奇麗不可狀。遂下馬斷岸口。泛舟於石壁之趾。舟中人語。山谷皆應。乃嘯詠自得。終日忘歸。蒼然晚色。自遠而至。其境過淸。不可久留。吟一詩題之而去。碧水溶溶色似藍。映波靑壁倒巉巖。飄然萬里東征客。獨掛秋風一幅帆。自余東邁。車轍馬迹之所及多矣。淸絶之地莫有過此者。如近置於京邑。則貴遊必日增千金而爭買矣。以僻在荒壤。人罕能至。時時有獵夫漁老過而不顧。此必天將祕之。以待吾輩窮愁之人爾。至登溟州南嶺。北出海畔。有小城曰洞山。人民聚落。蕭然甚僻。登其城以望之。薄暮冥冥。道傍漁舍。燈火隱顯。使人有懷鄕去國。凄然感極而悲者。夜宿傳舍。倚壁危坐。江聲渹渹不已。雷輥電擊。豎人毛髮。若符堅以百萬之師來伐江南。麾陣而却。驚潰不止。棄器械輜重而疾走也。何其壯哉。遂題詩曰。居民寂寞半溟濤。百丈峯頭插麗譙。帆影輕飛魚市闊。浪花爭蹙海門遙。征鞍泠帶黃昏月。客枕頻喧半夜潮。不減吳江亭上望。丹楓綠橘映長橋。曉聞村雞一號。行過洛山之西。路有孤松。節目磥砢。枝幹屈盤。蔭地而周圍者數十步。異哉松之奇怪。世復有如是者耶。洞天幽寂。雲水沈沈。殆非人間之境。仙靈之所居。高士之逸迹。宛然在焉。余感昔新羅元曉,義相二法師親謁觀音於仙窟中。自歎其骨凡氣俗。未遇而返。欲問遺事則徒見其山長水流。而數百年間。故家遺俗盡矣。乃作二絶以懷之曰。曾聞居士老維摩。飛錫凌空萬里過。已遣文珠來問疾。不應無事出毗耶。謂元曉也。飛錫尋眞海岸孤。親瞻妙相出虛無。不緣大士廻靈應。爭得神龍一顆珠。謂義相也。自捍城以北。未有所歷。若世所傳叢石鳴沙皆不目焉。則今之見於江東者。眞大倉一稊稗耳。設使盡觀。雖窮萬穀之皮。禿千兔之翰。安能盡紀耶。昔司馬太史嘗遊會稽。窺禹穴以窮天下之壯觀。故氣益奇偉。而其文頗疏蕩而有豪壯之風。則大丈夫周遊遠覽。揮斥八極。將以廣其胸中秀氣耳。余若桎梏於名檢之內。則必不能窮其奇摻其異。

번역

세상에서 산수를 논하는 자들은 강동(江東)을 빼어난 곳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홀로 그것을 믿지 않으니, 조물주가 본래 주고 빼앗는 데에 마음이 없다면 어찌 한 지방에만 사사로이 머물겠는가. 남국(南國)에 가서 보니, 무릇 기이하고 빼어나 독특하여 이름난 곳들은 모두 어렴풋이 찾아보고 즐겁게 구경한 곳들이었다. 이를 보니 천하의 기관(奇觀)은 아마도 이곳에서 벗어남이 없을 듯하였다. 다시 떠나 동쪽으로 가니, 명원(溟原)과 이주(二州)의 경계로부터 풍토가 특별히 변하여, 산은 더욱 높아지고 물은 더욱 맑아졌다. 천 개의 봉우리와 만 개의 골짜기가 기이함을 뽐내며 빼어남을 다투는데, 그 사이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험한 곳에서 밭을 갈고 위태롭게 수확하니, 마치 별도의 세계를 만들어 놓은 듯하였다. 이전에 거쳐 온 곳들은 마땅히 모두 양보하고 굴복하여 감히 맞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뒤에야 혼돈씨(混沌氏)가 비로소 맑음과 탁함을 나누었으며, 곤륜(崑崙)이 웅장하게 뭉쳐져 홀로 이것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령(竹嶺)의 서쪽 20여 리에 당진(唐津)이라는 이름의 물이 있는데, 아래에 가는 돌이 많은데 모두 둥글고 매끄러우며 푸른 빛을 띠었다. 색이 깊고 물은 푸르며, 고요하여 소리가 없는데, 물고기가 수백 마리쯤 돌 사이에서 노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좌우는 모두 바위가 푸르게 우뚝 솟아 만 길 높이로 절벽을 이루었는데, 마치 붉은 빛을 칠하고 푸른 빛을 입힌 듯하였다. 절벽과 골짜기의 형세는 아득하고 움푹 파여 마치 둑 같기도 하고 구멍 같기도 했으며, 기이한 풀과 아름다운 나무들이 서로 얽혀 자라나 그 그림자가 물 밑에 거꾸로 비쳤다. 대략 이와 같았으나 그 기이하고 아름다움은 형언할 수 없었다. 마침내 말에서 내려 언덕 끝에 이르러, 석벽의 발치에서 배를 띄웠다. 배 안에서 하는 말소리가 산과 골짜기에 모두 울려 퍼지니, 이에 휘파람을 불고 시를 읊으며 스스로 즐거워하여 종일토록 돌아갈 것을 잊었다. 푸르스름한 저녁 빛이 멀리서 다가오니 그 경치가 너무도 맑아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시 한 수를 지어 붙이고 떠났다. 푸른 물은 넘실거려 빛깔은 쪽빛 같고, 물결에 비친 푸른 벽에는 험한 바위가 거꾸로 서 있네. 홀연히 만 리 길 동쪽으로 가는 나그네는, 홀로 가을바람에 돛 하나 매달았구나. 내가 동쪽으로 나아간 뒤 수레 바퀴와 말 발자국이 닿은 곳이 많았으나, 이토록 맑고 빼어난 곳은 이곳을 넘어서는 곳이 없었다. 만약 가까이 경읍(京邑)에 두었다면 귀한 유람객들이 반드시 날마다 천금을 더해 다투어 사려 했을 것이다. 다만 외진 황무지에 있어 사람들이 드물게 이를 수 있을 뿐이다. 때때로 사냥꾼과 어부가 지나가면서도 돌아보지 않으니, 이는 필시 하늘이 이를 비밀히 간직하여 우리 같은 궁핍하고 시름에 잠긴 사람들을 기다리게 함이리라. 명주(溟州) 남령(南嶺)에 올라 북쪽으로 바닷가에 이르니, 동산(洞山)이라 불리는 작은 성이 있어 인민들이 모여 사는데 쓸쓸하고 매우 외졌다. 그 성에 올라 바라보니 땅거미가 어둑어둑하고 길가의 어촌 집들에는 등불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고향을 그리워하고 나라를 떠나온 슬픔에 처량하게 감격하여 비통하게 만들었다. 밤에 전사(傳舍)에서 묵으며 벽에 기대어 위태롭게 앉아 있으니, 강물 소리가 출렁출렁 끊이지 않았다. 천둥과 번개가 치니 머리카락이 곤두섰는데, 마치 수백만 대군이 강남(江南)을 치러 오는 듯하여, 진영을 휘두르며 물러나는데 놀라 무너져 멈추지 못하고 무기와 군수품을 버리고 급히 달아나는 듯하였다. 어찌 이리도 웅장한가! 이에 시를 지어 이르기를. 백성들은 적막하여 명주 바다에 반쯤 잠겨 있고, 백 장 높이 봉우리 끝에는 아름다운 누각이 꽂혀 있네. 돛 그림자 가볍게 날아다니는 어시장은 넓은데, 물결꽃은 다투어 굽이치고 해문(海門)은 멀구나. 나그네의 말 안장은 황혼 달빛을 가볍게 띠고, 객의 베개는 한밤중 파도 소리에 자주 소란스럽네. 오강정(吳江亭) 위에서 바라보던 풍경에 못지않으니, 붉은 단풍과 푸른 귤이 긴 다리에 비치네. 새벽에 마을 닭 울음소리 한 번 듣고, 낙산(洛山)의 서쪽을 지나가니 길에 외로운 소나무가 있더라. 마디마디가 굵고 뚜렷하며 가지와 줄기는 굽이쳐 돌아, 그 그늘이 땅을 덮은 주위가 수십 보나 되니, 소나무의 기이함이 참으로 특이하구나. 세상에 다시 이와 같은 것이 있겠는가! 동산(洞天)은 그윽하고 적막하며 구름과 물은 고요하니, 거의 인간 세상의 경계가 아니라 신선이 거처하는 곳 같았다. 고결한 선비의 은거한 자취가 완연히 그곳에 있었다. 나는 옛날 신라(新羅)의 원효(元曉)와 의상(義相) 두 법사가 선굴(仙窟) 속에서 관음(觀音)을 친히 뵙고자 했던 일을 생각하며, 그들의 골격이 범속함을 탄식하며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갔던 것을 느꼈다. 남겨진 일을 묻고자 해도 다만 산이 길고 물이 흐르는 것만 보일 뿐, 수백 년 사이에 옛 집과 풍속은 모두 사라졌다. 이에 두 수의 절창을 지어 그들을 그리워하며 이르기를. 일찍이 거사 노유마(老維摩)가 지팡이를 날려 허공을 타고 만 리를 지나, 이미 문수(文殊)를 보내 병을 물으러 왔으니, 비야(毗耶)에서 일 없이 나오지 않았음이 아니라고 원효(元曉)에게 이르노라. 지팡이를 날려 참된 해안의 외로움을 찾고, 묘한 모습을 친히 우러러보니 허무함에서 나왔도다. 대사(大士)가 영험함을 돌려주지 않았더라면, 어찌 신룡의 여의주 한 알을 얻었으랴, 의상(義相)에게 이르노라. 성 북쪽으로부터는 아직 가본 적이 없으나, 세상에 전하는 총석명사(叢石鳴沙)는 모두 보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강동(江東)에서 보는 것은 참으로 큰 곡식더미 속의 작은 피와 조에 불과할 것이다. 설령 다 본다 한들, 비록 만 가지 곡식의 껍질을 다 벗기고 천 마리 토끼의 털을 다 뽑는다 해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옛날 사마(司馬) 태사(太史)가 일찍이 회계(會稽)를 유람하며 우혈(禹穴)을 살펴 천하의 장관을 다 파악하였기에 그 기운이 더욱 기이하고 위대하였으나, 그 글은 다소 거칠고 방탕하여 호장(豪壯)한 풍채가 있었다. 대장부가 주유하며 멀리 바라보고 팔방을 휘저음은 장차 그 가슴 속의 빼어난 기운을 넓히기 위함일 것이다. 내가 만약 명검(名檢)의 틀에 갇혀 있다면, 반드시 그 기이함과 특이함을 다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원문

以賞其雅志也。有以見天之厚余多矣。月日。某記。

번역

그 아담한 뜻을 상찬함이다. 하늘의 두터움을 본 바가 내게는 매우 많다. 월일(月日). 모(某)가 기록하다.

178. 麴醇傳

문체: 傳記類 / 其他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59D, ITKC_MO_0003A_A001_260A ...

원문

麴醇字子厚。其先隴西人也。九十代祖牟佐后稷。粒蒸民有功焉。詩所謂貽我來牟是也。牟始隱不仕曰。吾必耕而後食矣。乃居畎畝。上聞其有後。詔以安車徵之。下郡縣所在敦遣。命下臣親造其廬。遂定交杵臼之間。而和光同塵矣。熏蒸漸漬。有醞藉之美。牟乃喜曰。成我者朋友也。豈不信然。旣而以淸德聞。乃表旌其閭焉。從上祀圜丘。以功封中山侯。食邑一萬戶。食實封五千戶。賜姓爲麴氏。五世孫輔成王。以社稷爲己任。致太平旣醉之盛。康王卽位。漸見疏忌。使之禁錮。著於誥令。是以。後世無顯著者。皆藏匿於民間。至魏初。醇父酎知名於世。與尙書郞徐邈偏汲引於朝。每說酎不離口。時有白上者。邈與酎私交。漸長亂階矣。上怒。召邈詰之。邈頓首謝曰。臣之從酎。以其有聖人之德。時復中之耳。上乃責之。及晉受禪。知將亂。無仕進意。與劉伶,阮籍之徒。爲竹林遊以終其身焉。醇器度弘深。汪汪若萬頃陂水。澄而不淸。擾之不濁。其風味傾於一時。頗以氣加人。嘗詣葉法師。談論彌日。一座爲之絶倒。遂知名。號爲麴處士。自公卿大夫神仙方士。至於廝兒牧豎夷狄外國之人。飮其香名者皆羨慕之。每有盛集。醇不至。咸愀然曰。無麴處士不樂。其爲時所愛重如此。大尉山濤有鑑識。嘗見之曰。何物老姁生此寧馨兒。然誤天下蒼生者。未必非此人也。公府辟爲靑州從事。以鬲上非所部。改調爲平原督郵。久之歎曰。吾不爲五斗米折腰。向鄕里小兒。當立談樽俎之間耳。時有善相者曰。君紫氣浮面。後必貴。享以千鍾矣。宜待善價而沽之。陳後之時。以良家子拜主客員外郞。上乃器異之。將有大用意。因以金甌覆而選之。擢遷光祿大夫禮賓卿。進爵爲公。凡君臣會議。上必使醇斟酌之。其進退酬酢。從容中於意。上深納之曰。卿所謂直哉惟淸。啓乃心沃朕心者也。醇得用事。其交賢接賓。養老賜酺。祀神祇祭宗廟。醇優主之。上嘗夜宴。唯與宮人得侍。雖近臣不得預。自是之後。上以沈酗廢政。醇乃以箝其口而不能言。故禮法之士。疾之如讎。上每保護之。醇又好聚斂營資產。時論鄙焉。上問曰。卿有何癖。對曰。昔杜預有傳癖。王濟有馬癖。臣有錢癖。上大笑。注意益深。嘗入奏對于上前。醇素有口臭。上惡之曰。卿年老氣渴。不堪吾用耶。醇遂免冠謝曰。臣受爵不讓。恐有斯亡之患。乞賜臣歸于私第。則臣知止足之分矣。上命左右扶出焉。旣歸。暴病渴。一夕卒。無子。族弟淸後仕唐。官至內供奉。子孫復盛於中國焉。史臣曰。麴氏之先。有功于民。以淸白遺子孫。若鬯之在周。馨德格于皇天。可謂有祖風矣。醇以挈甁之智。起於甕牖。早中金甌之選。立談樽俎。不能獻可替否。而迷亂王室。顚而不扶。卒取笑於天下。巨源之言。有足信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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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순(麴醇)의 자는 자후(子厚)이다. 그의 선조는 농서(隴西) 사람이다. 90대 조상인 무좌(牟佐)는 후직(后稷)의 후예로, 곡식을 증식시켜 백성에게 공을 세웠다. 시경에서 말하는 '나에게 내래모(來牟)를 주셨도다'라는 구절이 바로 이것이다. 무좌는 처음에 은거하여 벼슬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고 나서야 먹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밭을 일구며 살았는데, 위에서 그 후손이 있음을 듣고 안차(安車)를 보내 불러들였다. 군현이 있는 곳마다 두텁게 보내어, 명을 내려 신하가 직접 그 거처를 방문하게 하였다. 마침내 절구질하는 사이에서 교제를 정하고, 빛을 조화시키며 세상과 함께하였다. 훈증하고 점차 우려내는 과정에 술을 빚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무좌가 이에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를 이루어 주는 자는 벗이다. 어찌 믿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윽고 그의 맑은 덕이 알려지자, 표창을 내려 그 마을을 기렸다. 위에서 따라 환구(圜丘)에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공으로 중산후(中山侯)에 봉하여 식읍 만 호를 주었으며, 실봉은 오천 호였다. 성을 곡(麴)씨로 하사하였다. 5세손인 보성왕(輔成王)은 사직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 태평성대의 성대한 취함을 이루었다. 강왕(康王)이 즉위하자 점차 소외되고 기피함을 보였는데, 금고하도록 조령(誥令)에 실었다. 이 때문에 후세에 현달한 자가 없으면 모두 민간에 숨어 지냈다. 위나라 초기에 곡순의 아버지 주(酎)가 세상에 이름을 떨쳤는데, 상서랑(尙書郞) 서막(徐邈)과 함께 조정에 편파적으로 끌어들여졌다. 매번 주(酎)에 관한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당시 상(上)에게 아뢰는 자가 있었는데, 막(邈)이 주(酎)와 사사로이 교제하며 점차 어지러운 계단이 길어졌다. 상(上)이 노하여 막(邈)을 불러 문책하였다. 막(邈)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며 말하기를, "제가 주(酎)를 따르는 것은 그에게 성인의 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중용되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상(上)이 이에 그를 꾸짖었다. 진(晉)나라가 선양을 받을 때에 이르러, 난이 일어날 것을 알고 벼슬하여 나아갈 뜻이 없었다. 이에 유령(劉伶), 완적(阮籍) 등의 무리와 함께 죽림(竹林)의 유흥을 즐기며 그 몸을 마쳤다. 곡순의 기도는 넓고 깊어, 마치 만 경의 호수와 같았다. 맑기는 하나 깨끗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흔들어도 탁해지지 않았다. 그 풍미는 당대에 기울어, 꽤 기운으로 사람을 압도하였다. 일찍이 엽(葉) 법사에게 가서 하루 종일 담론을 나누었는데, 좌중이 모두 그를 보고 쓰러질 정도였다. 마침내 이름을 떨쳐 곡처사(麴處士)라 불렸다. 공경대부와 신선 방사로부터 시작하여, 하인과 목동, 이적(夷狄)과 외국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향기로운 이름을 마시는 자는 모두 그를 흠모하였다. 매번 성대한 모임이 있어도 곡순이 참석하지 않으면 모두 슬퍼하며 말하기를, "곡처사가 없으면 즐겁지 않다."라고 하니, 그가 시대에 사랑받고 중히 여겨짐이 이와 같았다. 대위(大尉) 산도(山濤)는 식견이 있어 일찍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 "어떤 물건이 늙은 노인에게서 태어나 이토록 아름다운 아이와 같은가. 그러나 천하 창생을 그르치는 자가 반드시 이 사람일지도 모르겠구나."라고 하였다. 공부(公府)에서 청주종사(靑州從事)로 삼으려 했으나, 격식에 맞지 않아 평원독유(平原督郵)로 개조하여 전임시켰다. 오래된 뒤에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 장차 고향의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당시 관상을 잘 보는 자가 말하기를, "그대의 얼굴에 자색 기운이 떠도니 반드시 귀해질 것이며, 천 종의 술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땅히 좋은 값을 기다려 팔아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진후(陳後)의 때에 양가자(良家子)로서 주객원외랑(主客員外郞)에 임명되니, 상(上)이 이에 그의 기이함을 여겨 장차 큰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금잔(金甌)으로 덮어 그를 선발하였다. 광록대부(光祿大夫) 예빈경(禮賓卿)으로 승차시키고 작위를 공(公)으로 높였다. 무릇 군신이 회의할 때 상(上)은 반드시 곡순에게 조절하게 하였는데, 그 진퇴와 술자리 예법이 여유롭고 뜻에 부합하였다. 상(上)이 깊이 받아들이며 말하기를, "경이 말하는 직(直)함은 오직 맑음뿐이니, 경의 마음을 열어 나의 마음을 적셔주는구나."라고 하였다. 곡순이 일을 맡아 현자와 사귀고 빈객을 접대하며, 노인을 봉양하고 술잔치를 베풀며, 신령에게 제사 지내고 종묘를 제사 지내는 일을 능히 주관하였다. 상(上)이 일찍이 밤에 연회를 열면 오직 궁인들만이 모실 수 있었고, 비록 근신이라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이때 이후로 상(上)이 술에 빠져 정사를 폐하게 되자, 곡순은 그 입을 막아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법을 중시하는 선비들이 그를 원수처럼 미워하였으나, 상(上)이 매번 그를 보호하였다. 곡순은 또 재산을 모으고 축적하기를 좋아하여 시론이 비천하였다. 상(上)이 물어 말하기를, "경에게 무슨 편벽된 취미가 있는가?"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옛날 두예(杜預)는 책에 빠진 편벽함이 있었고, 왕제(王濟)는 말에 빠진 편벽함이 있었습니다. 신은 돈에 빠진 편벽함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상(上)이 크게 웃으며 그를 더욱 깊이 주목하였다. 일찍이 상(上) 앞에 나아가 대답할 때, 곡순은 본래 입냄새가 있었는데 상(上)이 이를 싫어하여 말하기를, "경은 나이가 많고 기운이 갈증 나니, 나의 쓰임에 견디지 못하는가?"라고 하였다. 곡순이 이에 관을 벗고 사죄하며 말하기를, "신이 작위를 사양하지 않으니 혹시 망하는 환란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청컨대 신을 사적인 거처로 돌려보내 주시면, 신은 그치고 만족할 분수를 알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상(上)이 좌우에 명하여 그를 부축해 내보냈다. 집에 돌아온 뒤 갑작스러운 병과 갈증으로 어느 날 밤에 죽었는데, 아들이 없었다. 족제(族弟) 진후(淸後)가 당(唐)나라에서 벼슬하여 내공봉(內供奉)에 이르렀으니, 그 자손이 다시 중국에서 번성하였다. 사신(史臣)이 말하기를, "곡씨의 선조는 백성에게 공이 있었고, 맑고 깨끗함을 자손에게 남겼다. 주나라의 향기로운 술(鬯)이 황천에 닿은 것과 같이, 그 향기로운 덕이 황천에 격하였으니 가히 조상의 풍모가 있다고 할 만하다. 곡순은 술병을 쥐는 지혜로 항아리와 창문 사이에서 일어났고, 일찍이 금잔의 선택을 받았으며, 술잔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이름을 떨쳤으나, 가부를 제안할 수는 없었고 왕실을 미혹하고 어지럽혔다. 엎드러졌으나 부축하지 못하여 결국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거원(巨源)의 말이 참으로 믿을 만하다."라고 하였다."

179. 孔方傳

문체: 傳記類 / 其他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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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方字貫之。其先嘗隱首陽山。居窟穴中。未嘗出爲世用。始黃帝時稍採取之。然性強硬。未甚精鍊於世事。帝召相工觀之。工熟視良久曰。山野之質。雖藞苴不可用。若得遊於陛下之造化爐錘間。而刮垢磨光則其資質當漸露矣。王者使人也器之。願陛下無與頑銅同棄爾。由是顯於世。後避亂徙江滸之炭鑪步。因家焉。父泉。周大宰。掌邦賦。方爲人。圓其外方其中。善趨時應變。仕漢爲鴻臚卿。時吳王濞驕僭專擅。方與之爲利焉。虎帝時海內虛耗。府庫空竭。上憂之。拜方爲富民侯。與其徒充鹽鐵丞僅同在朝。僅每呼爲家兄不名。方性貪汙而少廉隅。旣摠管財用。好權子母輕重之法。以爲便國者不必古在陶鑄之術爾。遂與民爭錙銖之利。低昂物價。賤穀而重貨。使民棄本逐末。妨於農要。時諫官多上疏論之。上不聽。方又巧事權貴。出入其門。招權鬻爵。升黜在其掌。公卿多撓節事之。積實聚斂。券契如山。不可勝數。其接人遇物。無問賢不肖。雖市井人。苟富於財者。皆與之交通。所謂市井交者也。時或從閭里惡少。以彈棋格五爲事。然頗好然諾。故時人爲之語曰。得孔方一言。重若黃金百斤。元帝卽位。貢禹上書。以爲方久司劇務。不達農要之本。徒興管榷之利。蠹國害民。公私俱困。加以賄賂狼藉。請謁公行。蓋負且乘。致寇至。大易之明戒也。請免官以懲貪鄙。時執政者有以穀梁學進。以軍資乏。將立邊策。疾方之事。遂助其言。上乃頷其奏。方遂見廢黜。謂門人曰。吾頃遭主上。獨化陶鈞之上。將以使國用足而民財阜而已。今以微罪。乃見毀棄。其進用與廢黜。吾無所增損矣。幸吾餘息。不絶如線。苟括囊不言。容身而去。以萍遊之迹。便歸于江淮別業。垂緡若冶溪上。釣魚買酒。與閩商海賈拍浮酒船中。以了此生足矣。雖千鍾之祿。五鼎之食。吾安肯以彼而博此哉。然吾之術。其久而當復興乎。晉和嶠聞其風而悅之。致貲巨萬。遂愛之成癖。故魯褒著論非之。以矯其俗。唯阮宣子以放達。不喜俗物。而與方之徒杖策出遊。至酒壚。輒取飮之。王夷甫口未嘗言方之名。但稱阿堵物耳。其爲淸議者所鄙如此。唐興。劉晏爲度支判官。以國用不贍。請復方術。以便於國用。語在食貸志。時方沒已久。其門徒遷散四方者。物色求之。起而復用。故其術大行於開元,天寶之際。詔追爵方朝議大夫少府丞。及炎宋神宗朝。王安石當國。引呂惠卿同輔政。立靑苗法。天下始騷然大困。蘇軾極論其弊。欲盡斥之。而反爲所陷。遂貶逐。由是朝廷之士不敢言。司馬光入相。奏廢其法。薦用蘇軾。而方之徒稍衰減而不復盛焉。方子輪以輕薄獲譏於世。後爲水衡令。贓發見誅云。史臣曰。爲人臣而懷二心。以邀大利者。可謂忠乎。方遭時遇主。聚精會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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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孔方)의 자는 관지(貫之)이다. 그의 선조는 일찍이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하며 굴속에 살았는데, 세상에 나와 쓰인 적이 없었다. 황제(黃帝) 시대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채취되었다. 그러나 성품이 강하고 딱딱하여 세상일에 정교하게 단련되지 않았다. 황제가 상공(相工)을 불러 그를 보게 하니, 상공이 자세히 한참을 보고 말하기를, “산야의 바탕이라 비록 거칠고 투박하여 쓸 수 없으나, 만약 폐하의 조화로운 용광로와 망치 사이에서 노닐며 때를 벗기고 빛을 낸다면 그 자질이 마땅히 점차 드러날 것입니다. 왕이 사람을 쓸 때는 그릇됨을 경계해야 하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완고한 구리와 함께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후에 난을 피해 강가와 탄로(炭鑪)의 발치로 옮겨가 그곳에 집을 마련하였다. 아버지는 천(泉)으로 주(周)나라의 대재(大宰)였으며 나라의 부세를 관장하였다. 공방은 겉은 둥글고 속은 모나게 행동하며, 때를 잘 타서 변화에 응하는 데 능했다. 한(漢)나라에 출사하여 홍로경(鴻臚卿)이 되었는데, 당시 오왕(吳王) 비(濞)가 교만하고 참람하여 권력을 독점하자 그와 함께 이익을 도모하였다. 황제 시대에 해내(海內)가 허비되고 부고(府庫)가 비어 가자, 황제가 근심하며 공방을 부민후(富民侯)로 삼았다. 그 제자들이 염철승(鹽鐵丞)으로 충원되어 조정에 함께 있었는데, 매번 그를 이름 없이 가형(家兄)이라 불렀다. 공방은 성품이 탐욕스럽고 청렴함이 적었다. 이미 재용(財用)을 총괄하게 되자, 권력을 이용해 자모(子母)와 경중(輕重)의 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는 나라를 편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옛날의 주조 기술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백성과 다투어 푼돈의 이익을 취하고, 물가를 조절하며 곡물은 싸게 하고 화폐는 귀하게 하여, 백성들이 근본을 버리고 말단(末)을 쫓게 함으로써 농업의 요체를 방해하였다. 당시 간관들이 많이 상소를 올려 그를 논하였으나 황제는 듣지 않았다. 공방은 또 권귀(權貴)들에게 아첨하며 그들의 문을 드나들고, 권세를 끌어들여 벼슬을 팔았으며, 승진과 강등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공卿들은 대개 그의 절도를 어지럽히는 일을 많이 하였다. 실속을 쌓고 재물을 모으는 것이 산더미 같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가 사람을 접하고 사물을 대함에 있어 어질고 못난 이를 가리지 않았으며, 비록 시장의 사람이라도 재물로 부유하다면 모두 교제하였으니, 이른바 시장의 교제(市井交)라고 하였다. 때로는 마을의 악한 소인들을 따라 바둑을 두며 도박을 하는 일도 있었으나, 꽤 너그럽게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를 두고 말하기를, “공방의 말 한마디를 얻는 것이 황금 백 근만큼 무겁다.”라고 하였다. 원제(元帝)가 즉위하자 공우(貢禹)가 상소를 올려, 공방이 오랫동안 극무(劇務)를 맡아 농업의 근본인 요체를 돌보지 않고, 다만 관액(管榷)의 이익만을 흥하게 하여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치며 공사와 사가 모두 곤궁해졌다고 하였다. 거기에 더해 뇌물이 난무하니, 공행(公行)을 알현하기를 청하며 대개 엎드려 타는 것을 이용해 도적을 불러들이는 것이니 이는 《대역(大易)》의 밝은 경계라고 하였다. 또한 탐욕스럽고 비천함을 징계하기 위해 관직을 면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당시 집정하던 자 중에 곡량학(穀梁學)을 인용하여 군자금이 부족하니 변방의 책략을 세우려 한다며 공방의 일을 성토한 자가 있었는데, 마침 그 말을 도왔다. 황제가 이에 그 상소를 승낙하니 공방은 마침내 폐출되었다. 공방이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얼마 전 주상을 만났을 때 홀로 도균(陶鈞) 위에 올라 나라의 용용을 충족시키고 백성의 재물을 풍족하게 하려 했을 뿐이다. 이제 작은 죄로 인해 멸시당하고 버려지게 되었으니, 나의 쓰임과 폐출에 대해서는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 다행히 나의 남은 숨이 실처럼 끊어지지 않았으니, 그저 주머니를 챙겨 말하지 않고 몸을 보존하여 떠나리라.” 하고는, 떠돌이의 자취를 따라 강회(江淮)의 별업으로 돌아가 뗏목을 띄우고 낚시를 하며 술을 샀다. 민상(閩商)과 해가(海賈)들과 함께 떠다니는 술배 안에서 이 생을 마치는 것으로 족하였다. 비록 천 종의 녹봉과 오정(五鼎)의 식사라 할지라도 내가 어찌 저것을 위해 이것을 걸겠는가 하였다. 그러나 나의 기술이 오래 지나면 다시 흥할 것인가? 진(晉)나라 화교(和嶠)가 그의 풍문을 듣고 기뻐하며 거액의 재물을 보내어 마침내 그를 병적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노(魯)와 포(褒)가 논하여 비난함으로써 그 풍속을 바로잡으려 하였으나, 오직 완선자(阮宣子)만이 방달하여 속된 사물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공방의 무리와 함께 지팡이를 짚고 유람하며 술집에 이르면 곧 술을 마시곤 하였다. 왕이보(王夷甫)는 입으로 공방의 이름을 말한 적이 없으나 다만 아도물(阿堵物, 돈)이라 일컬었을 뿐이니, 청의(淸議)하는 자들에게 이토록 비천하게 여겨졌다. 당(唐)나라가 흥할 때 유안(劉晏)이 도지판관(度支判官)이 되어 국용이 부족함을 이유로 공방의 기술을 회복하여 국용에 편의를 도모할 것을 청하였는데, 그 말이 《식대지(食貸志)》에 있다. 당시 공방이 죽은 지 이미 오래되어 그의 문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는데, 사람을 찾아내어 일으켜 다시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기술이 개원(開元), 천보(天寶) 연간에 크게 유행하였다. 조칙으로 공방의 작위를 추증하여 조의대부(朝議大夫) 소부승(少府丞)으로 삼았다. 염(炎)나라와 송(宋)나라 신종(神宗) 조에 이르러 왕안석(王安石)이 국정을 맡아 여혜경(呂惠卿)을 끌어들여 함께 정사를 보좌하며 청묘법(靑苗法)을 세우니, 천하가 비로소 크게 소란스러워졌다. 소식(蘇軾)이 그 폐해를 극렬히 논하며 모두 물리치려 하였으나 도리어 함정에 빠져 결국 유배되었다. 이로 인해 조정의 선비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마광(司馬光)이 재상이 되어 그 법을 폐지할 것을 상소하고 소식을 천거하여 사용하니, 공방의 무리들이 점차 쇠퇴하여 다시 성하지 못하였다. 공방의 아들 윤(輪)은 경박함으로 세상의 비난을 받다가 후에 수형령(水衡令)이 되었는데, 비리가 드러나 처형되었다고 한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품고 큰 이익을 꾀하는 자를 어찌 충(忠)이라 할 수 있겠는가. 공방은 때를 만나 주군을 만났으나, 정신을 집중하여 오로지 이익을 모으는 데만 힘썼다.”

원문

以握手丁寧之契。橫受不貲之寵。當興利除害。以報恩遇。而助濞擅權。乃樹私黨。非忠臣無境外之交者也。方沒。其徒復用於炎宋。阿附執政。反陷正人。雖脩短之理在於冥冥。若元帝納貢禹之言。一旦盡誅。則可以滅後患也。而止加裁抑。使流弊於後世。豈先事而言者嘗患於不見信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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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맞잡고 정답게 맺은 계약으로, 대가 없는 총애를 누렸다. 마땅히 이익을 일으키고 해를 제거하여 그 은혜로운 대우에 보답해야 했으나, 오히려 비(濞)가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도와 사사로운 무리를 세웠으니, 이는 충신이 아니고서는 결코 맺을 수 없는 경계 밖의 사귐이다. 그는 죽었으나, 그 무리는 다시 염송(炎宋) 시대에 쓰여 집권자에게 아부하며 오히려 바른 사람을 함정에 빠뜨렸다. 수명이 길고 짧은 이치는 저승의 명운에 달려 있으나, 만약 원제(元帝)가 공우(貢禹)의 말을 받아들여 단번에 모두 처단했더라면 후환을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억제하고 재단하기만 하여 그 폐단이 후세에 흐르게 하였으니, 어찌 미리 일을 살피어 말했던 이가 믿음을 얻지 못해 근심했던 일이겠는가.

180. 上金侍郞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3C, ITKC_MO_0003A_A001_263D

원문

造化爐中。雖愧躍金之請。丹靑手下。庶爲斷木之收。敢將危迫之誠。輒叩包容之度。伏念某。庸庸賤品。瑣瑣末流。自吹葱騎竹之年。以挾策讀書爲事。野馬也塵埃也。恥從俗吏之靑衫。山林歟皐壤歟。長對古人之黃卷。幾作杏壇弟子。浪隨絳帳先生。嘗長者見而奇之。唯時輩有所嫉矣。且天生我必有用。命也如何。而才與世不相當。時哉易失。不求其利。祗待我辰。近被家公之指揮。欲參儲后之侍從。然無介紹。孰爲先容。吳坂之驥駕車。尙未逢於知己。魏宮之鵲繞樹。其可依者何枝。幸獲利於貴寮。早掛名於選籍。側聞去倖求之弊。乃特嚴考試之規。豈望虞廷之擧僉曰鯀哉。庶幾夫子之言吾與點也。恭惟某官。名高北斗。望重南金。如日月無得而踰。若鳳凰皆以爲瑞。落落楊憑之材幹。時人號曰文章魁。軒軒公道之風神。天下謂之宰相器。在朝無出其右。得君如彼其專。果簡上心。俾扶東禁。將蒐豹霧英雄之輩。以補龍樓左右之人。衆以此歸。士不失望。重念某孤危難托。飄泊何依。雖久爲明月之無因。猶仰慕淸風之有素。冀荷吹噓於今日。猥蒙掄選於昌朝。顧惟小子之心將以如此。不識大人之意忍之否乎。伏望與物爲春。推仁布惠。三吐哺三握髮而待士。見善若驚。一投足一擧手之忘勞。濟人爲急。竝錄寒生之姓字。兼留公擧之封章。則敢不俯仰生成。激昂志氣。便將附翼。少當得路之風雲。儻未蓋棺。皆是報恩之歲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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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화로 속에서, 비록 약금(躍金)의 청을 받기에는 부끄러우나, 단청을 그리는 손길 아래에서 끊어진 나무를 거두어들이는 정도의 수확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감히 위급하고 절박한 정성을 담아 엎드려 당신의 포용하는 도량에 호소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저 모(某)는 보잘것없는 낮은 품계의 미미한 무리로서, 스스로는 총기(葱騎)와 죽림(竹)의 세월이라 자칭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해왔으나, 이는 실로 야마(野馬)와 같은 먼지일 뿐입니다. 속세 관리의 청삼(靑衫)을 따르는 것이 부끄러워 산림(山林)에 머물 것인지, 혹은 진흙탕 속에 있을 것인지 고민하며, 오랫동안 옛사람의 황권(黃卷)을 마주하며 행단(杏壇)의 제자가 되기를 꿈꾸고 낭장(絳帳) 선생을 낭비하듯 따랐습니다. 일찍이 어른들이 저를 보고 기이하게 여겼으나, 오직 당대의 무리들만이 시기하였을 뿐입니다. 또한 하늘이 저를 낳으심은 반드시 쓰임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으나, 명(命)이 어떠할지 알 수 없고 재능 또한 세상과 맞지 않습니다. 때가 바뀌어 기회를 잃었으니, 그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저의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근래에 가공(家公)의 지휘를 받아 저후(儲后)의 시종(侍從)에 참여하고자 하나, 소개하는 이가 없으니 누가 먼저 저를 받아주겠습니까? 오판(吳坂)의 기마가 지기(知己)를 만나지 못한 것과 같고, 위궁(魏宮)의 까치가 나무를 에워싸고 있으나 어느 가지에 의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귀한 관직에서 이익을 얻어 일찍이 선적(選籍)에 이름을 올리고자 합니다. 겉치레를 버리고 실질을 구하는 폐단을 곁에서 들었기에, 특별히 고시(考試)의 규정을 엄격히 하시는 것이 어찌 우정(虞廷)에서 모든 인재를 추천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겠습니까? 부디 공자께서 말씀하신 '나와 함께 점을 찍는다'는 말씀과 같기를 바랍니다. 공경히 생각건대 귀관(貴官)께서는 명성이 북두(北斗)처럼 높고 명망이 남금(南金)에서 중하여, 해와 달과 같아 넘볼 수 없으며, 봉황조차 서기로 여길 정도입니다. 낙락장송과 같은 재목으로서 당시 사람들이 문장의 괴수(魁)라 칭송하였고, 헌헌한 공도(公道)의 풍신을 지니셨으니 천하에서는 재상(宰相)의 기틀이라 일컫습니다. 조정에 계시면서 그보다 나은 이가 없으니, 임금을 모심에 있어 저와 같이 전념하신다면, 과연 상심(上心)을 통해 동금(東禁)을 보좌하시고, 표범과 안개 속의 영웅들을 모아 용루(龍樓) 좌우의 인재를 보충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귀의할 것이니 선비들이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모(某)의 외롭고 위태로운 부탁을 거듭 생각하시어, 떠돌아다니며 어디에 의지할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오랫동안 밝은 달이 될 인연이 없었으나, 여전히 맑은 바람의 소박함을 우러러보며, 오늘날 그 바람이 불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황조(昌朝)에서 운 좋게 선발되기를 바랍니다. 돌아보건대 소자의 마음이 이와 같으니, 대인(大人)의 뜻이 이를 참아주실지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만물과 함께 봄이 되어 인애를 밀어 혜택을 베풀어 주시고, 세 번의 먹기를 권하고 세 번의 머리카락을 잡으며 선비를 기다리던 분처럼, 선한 것을 보면 놀라워하며 한 번 발을 내딛고 한 번 손을 드는 수고로움을 잊으시고, 사람을 구제하는 것을 급히 여기시어 가난한 선비의 성명(姓字)을 모두 기록해 주시고 공거(公擧)의 봉장(封章)을 남겨 주신다면, 감히 생성을 우러러보며 의기를 드높여 곧 날개를 달아주는 듯한 길운을 얻을 것입니다. 만약 관을 덮기 전까지라면 모두 은혜를 갚는 세월이 될 것입니다.

181. 謝金少卿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4A, ITKC_MO_0003A_A001_264B

원문

趙勝之門。雖未作請行之毛遂。孔融之表。遽已爲被薦之禰衡。毫髮身輕。丘山恩重。伏念某。一曲之士。三尺之童。弧矢射天地四方。早懷壯志。錦繡爲心肝五藏。未負奇才。久對揚黃卷之聖賢。猶未得靑雲之岐路。傷足泣淚。自貽獻寶之疑。斲鼻成風。誰識運斤之巧。我辰安在。自進誠難。以此痛心。不遑寧處。雖將寸管。願瞻樂廣之雲天。猶冒覆盆。未覩仲尼之日月。遙荷吹噓之力。豈因左右之容。聞而悅之。非所望也。此蓋閤下世襲日磾七葉。家傳韋氏一經。廉如鮑捷如慶勇如賁。器宏而博。書止顏文止韓詩止杜。學無不窺。其威名之所及也。隱隱轟轟匪雷匪霆。其節義之彌堅也。玲玲瓏瓏如珠如玉。其特立有如此者。顧當今捨我而誰。果承北闕之絲綸。曾作東宮之羽翼。頃擧英雄之輩。將聯侍從之徒。乃以至公。及於無狀。某敢不奮發綿力。激昂素懷。增益其所不能。敬修其可願。生成厚意。而今而後知之。感慨此心。未死未可量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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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지(趙勝之)의 문에 들어섰습니다. 비록 청탁을 실행하는 모수(毛遂)와 같은 기개나 공융(孔融)의 표문 같은 것은 아니었으나, 갑작스럽게 추천을 받는 예형(禰衡)이 되었습니다. 몸은 깃털처럼 가볍고 머리카락 하나조차 가볍게 느껴지나, 구산(丘山)과 같은 은혜는 매우 무겁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저라는 사람은 한 곡조의 음악을 아는 선비이자 세 자 높이의 어린아이와 같아서, 활과 화살로 천지 사방을 겨누며 일찍이 장한 뜻을 품었습니다. 비단과 수놓은 듯한 마음을 간과 오장(五藏)에 담았으나 기이한 재능을 다 펼치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성현의 경전을 마주하면서도 여전히 푸른 구름이 솟는 길목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이를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보물을 바치려다 의심을 사는 일을 자초하였습니다. 코를 깎아 바람을 일으킨다(斲鼻成風)는 재주가 있어도 누가 그 도끼질의 교묘함을 알아주겠습니까. 저의 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스스로 나아가는 것이 참으로 어려우니, 이로 인해 마음이 아파 편히 쉴 곳이 없습니다. 비록 작은 붓과 관을 가지고 낙광(樂廣)의 구름과 하늘 같은 경지를 우러러보고자 하나, 여전히 엎질러진 물과 같습니다. 중니(仲尼)의 일월을 보지 못하였으니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의 힘에 의지할 뿐입니다. 어찌 좌우의 용납함 덕분에 듣고 기뻐하기를 바라겠습니까? 그것은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이는 대개 각하께서 세습하여 일도(日磾) 7엽을 이어받으시고, 가문 대대로 위씨(韋氏)의 한 경(一經)을 전수하셨기 때문입니다. 청렴함은 포절(鮑捷)과 같고, 용맹함은 경(慶)과 같으며, 기상은 분(賁)과 같습니다. 기량이 크고 박학하며, 글은 안문(顏文)에서 멈추고 한시(韓詩)에서 멈추며 두보(杜甫)에서 멈추었으니, 배우지 않고 엿보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위명은 은은하고 웅장하여 천둥과 벼락 같고, 그 절의는 더욱 굳건하여 구슬과 옥처럼 영롱하니 그 홀로 우뚝 선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돌아보건대 지금의 세상에서 저를 버리고 누구를 보겠습니까? 과연 북궐(北闕)의 명을 받들어 동궁(東宮)의 날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근래에 영웅의 무리와 시종(侍從)의 무리를 연이어 모시게 되었으니, 지극히 공정함으로써 저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저 감히 미약한 힘을 떨치고 평소의 포부를 격앙하여, 그분이 할 수 없는 부분을 보태고 간절히 바라는 바를 정성껏 닦겠습니다. 생성(生成)의 두터운 뜻을 이제부터라도 깨달아 이 마음을 감개무량하게 여기니, 죽기 전에는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182. 賀新及第崔〔原注:永濡〕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4C

원문

俄入虞庠。暫被賢才之育。直遊唐彀。遽飛儒者之榮。物議僉同。士林相賀。恭惟某公。學傳尼父。才敵崔男。韻宇宏宏。自是風塵外物。品流落落。此必神仙中人。乃有期下地而生。眞所謂名世之後。早收功於雪榻。已得路於雲梯。讀書之士豈無其時。提筆以取富貴。積善之家必有餘慶。收科如摘髭鬚。登桂嶺而遊。赴杏園之宴。光流里閈。歡洽親堂。久嗟豐邑之龍蟠。空衝紫氣。忽作莊溟之鯤化。背負靑天。舊恨盡消。門風復盛。凡諸聞見。莫不愉忻。某寄於造化之爐。被以吹噓之力。鴻鵠已擧。方得上於層霄。燕雀焉知。猶喜成於大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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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유학(虞庠)에 들어가 잠시 현재(賢才)의 교육을 받더니, 곧바로 당구(唐彀)에서 노닐다가 급히 유자(儒者)의 영광을 날아올랐으니, 세상의 논의가 모두 같고 사림(士林)이 서로 축하하고 있습니다. 공(公)을 공경히 생각건대, 학문은 니부(尼父)로부터 전해받으셨고 재능은 최남(崔男)과 맞먹으시며, 운치와 풍모가 웅대하십니다. 이로부터 풍진(風塵)의 외물(外物)을 벗어나 품격이 고결하니, 이는 필시 신선 중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기한을 정해 땅으로 내려온 분입니다. 참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뒤에 일찍이 눈 덮인 침상(雪榻)에서 공을 거두고, 이미 구름 사다리(雲梯)에 길을 얻으셨으니, 글 읽는 선비에게 어찌 이런 때가 없겠습니까. 붓을 들어 부귀를 취하시니,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급제함은 마치 수염을 떼어내는 것과 같고, 계령(桂嶺)에 올라 노닐며 행원(杏園)의 잔치에 참여하니, 그 빛이 마을과 거리로 흐르고 기쁨이 친가에 가득합니다. 풍요로운 고을에 용이 서려 있음을 오래도록 탄복하였는데, 공허하게 자색 기운(紫氣)을 찌를 뿐이더니, 홀연히 장명(莊溟)의 큰 물고기가 되어 푸른 하늘을 등에 업으니 옛 한이 다 사라지고 문풍(門風)이 다시 성해졌습니다. 무릇 듣고 본 모든 이들이 즐겁고 기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저를 조화(造化)의 화로에 맡겨 불어대는 힘을 입히시니, 홍곡(鴻鵠)이 이미 솟아올라 마침 층층이 쌓인 하늘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제비와 참새가 어찌 이를 알겠습니까. 다만 큰 집을 이루게 된 것을 기뻐할 뿐입니다.

183. 上吳郞中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4D, ITKC_MO_0003A_A001_265A ...

원문

行也命廢也亦命。雖安吾道之窮。伸於知屈於不知。尙冀仁人之造。肆刳肝而瀝懇。代執贄而爲儀。竊惟賢士之方處於貧窮。固無爵而自貴。大人之所尊者道德。宜以禮而必謙。惟不爲位貌之矜嚴。然後彰功業之烜赫。子夏在西河之上。文侯擁篲而行。鄒生居忝谷之陰。昭王陪乘而待。曹參迎蓋公於堂下。劉備顧葛亮於廬中。陳平致長者之車。安道拒大宰之使。歷見非常可喜之事。未嘗自屈以干於人。然苟非借譽於靑雲。又安得施名於後代。馮驩從孟嘗而爲客。迺悲彈鋏之歌。毛遂見平原而請行。自喩處囊之穎。荀彧東京之高士也。與李膺而爲馭。陸機南國之詞人也。投馬穎而爲臣。逸少謁朱顗而知名。公回因虞喜而延譽。況下於古人數等。必求其知已大賢。伏念某。瑣瑣末流。間間小知。早樂父兄之訓。切勤翰墨之功。童而習之紛如。謾自勤於晝夜。生而知者上也。猶未究於淵源。才旣非居易之詩工。人或笑長康之癡絶。然惡夫畫也。乃問以辨之。及趨司馬之校能。謬作連城之擅價。欠漢帝之讀賦。恨不與相如同時。慕宗元之能文。皆以謂柳氏有子。不量其力。自負於心。巽以揚之。欲附顏淵之鳳翼。搏而上者。未從莊叟之鵬遊。恐長虞之墮其家聲。望董子之褎然擧首。嘐嘐夷考行。碌碌未有奇。寧誤身於儒冠。恥藉榮於門蔭。謀之至拙。世莫不嗤。方忍辱以包羞。願揚名於爲孝。燕雀焉知鴻鵠志四海九州。騏驥不與駑駘爭一日千里。慨然抱璞。翹以待求。曩者因其積釁之所萌。忽爾私門之發禍。遭家不造。叫天無辜。以有涯之生。罹不測之患。拋戈泣血。方銜桓氏之冤。陟屺興悲。繼有魏人之苦。何中散之途窮。信賈生之命薄。閉門却掃。絶交遊而遠讒。丐食假衣。携細弱而避地。一涯流落。幾度寒暄。迺遑遑而無歸。常鬱鬱而居此。久類虞卿之羈旅。誰憐令伯之零丁。去國三年。嘗聞足跫然喜矣。墜途千仞。皆俯首矉而過之。跂絶亨嘉。分甘退縮。宜乎幅巾蕭灑。緩帶優游。樂潘岳田園之居。輸阮籍黍稷之稅。鑿而飮耕而食。但虛老於太平。用則行捨則藏。無苟容於斯世。於焉養志。不復有求。蓋念自吾家伯叔以來。有當代文章之譽。翺翔翰掖。出入承明。謂遺子不如一經相傳素業。若積善必有餘慶宜及後昆。苟終沒於遐荒。而莫承於遺緖。知將何面。下見先人。故痛極必呼於天。而無往曲爲之地。絶絃莫續。斷梗何依。每哀吟乎行路難。或寫意於囚山賦。何同儕已飛於雲漢。而唯我未振於泥塗。怪物在濱。多被獱獺之笑。長鯨失水。飜爲螻蟻之欺。不免陶潛之折腰。動貽師德之唾面。以志廣而才疏。卒勢窮而命極。且外物不必。雖忘軒冕之儻來。而大器晚成。何患功名之未立。又況禍兮爲福之所伏。貴者先賤而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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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오는 것도, 명을 받아 폐해지는 것도 또한 명입니다. 비록 나의 도가 궁핍해질지라도, 앎을 넓히거나 모름을 굽히는 것 또한 그러합니다. 다만 인(仁)한 사람의 조화를 바라며, 간과 쓸개를 쏟아내듯 간절함을 드립니다. 제물을 대신 바치며 의식을 치릅니다. 삼가 생각건대, 현명한 선비가 빈궁한 처지에 있을 때 비록 작위는 없으나 스스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대인이 존중받는 것은 도덕이니, 마땅히 예로써 하되 반드시 겸손해야 합니다. 오직 지위와 외모의 엄숙함에 자만하지 않아야 그 공업이 빛나게 됩니다. 자하(子夏)는 서하(西河)의 위에서 있었고, 문후(文侯)는 지팡이를 짚고 행하였으며, 추생(鄒生)은 외진 골짜기에 거처할 때 소왕(昭王)이 수레를 모시고 기다렸습니다. 조참(曹參)은 당 아래에서 공(公)을 맞이하였고, 유비(劉備)는 초가집 안에서 제갈량(葛亮)을 돌아보았으며, 진평(陳平)은 장자의 수레를 보냈고, 안도(安道)는 재상의 사절을 거절하였습니다. 이처럼 비상하고 가히 기뻐할 만한 일들을 두루 보았습니다. 일찍이 스스로를 굽혀 남에게 아첨한 적이 없으나, 만약 청운의 명성을 빌리지 않았다면 또 어찌 후대에 이름을 떨칠 수 있었겠습니까. 풍환(馮驩)은 맹상(孟嘗)을 따라 객이 되어 탄협(彈鋏)의 노래를 슬프게 불렀고, 모수(毛遂)는 평원(平原)을 만나 행차를 청하며 스스로 주머니 속의 날카로운 칼(處囊之穎)임을 자처했습니다. 순욱(荀彧)은 동경(東京)의 고결한 선비로서 이응(李膺)과 더불어 다스렸고, 육기(陸機)는 남국의 시인으로서 마영(馬穎)에게 투항하여 신하가 되었습니다. 악석(逸少)은 주이(朱顗)를 알현하여 이름을 떨쳤고, 공회(公回)는 우희(虞喜)로 인하여 명성을 얻었으니, 하물며 옛날 사람들의 등급보다 아래에 있는 저를 말입니다. 반드시 자신을 알아주는 대현을 구하고자 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저라는 자는 보잘것없는 말단이며 얕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일찍이 부형의 가르침을 즐거워하고 문장의 공력을 부지런히 닦고자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익힌 것이 분분하여 밤낮으로 스스로 부지런히 하였으니, 태어날 때부터 아는 자(生而知者)와 같은 상이라 할지라도 아직 그 연원을 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재능 또한 쉽게 시를 짓는 공(詩工)이 아니어서, 어떤 이는 장강(長康)의 어리석음이 절정에 달했다고 비웃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림을 싫어하면서도 이를 구별하기 위해 묻기도 합니다. 사마(司馬)의 학교에 나아가 능력을 발휘할 때에는 연성(連城)의 값을 잘못 매기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고, 한나라 황제에게 부를 바쳤으나 읽히지 못했으니 상여(相如)와 시대를 같이하지 못한 것을 한탄합니다. 종원(宗元)의 문재(文才)를 사모하였으나, 모두 유씨(柳氏)에게 자식이 있음을 알고 그 힘을 헤아리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뽐내며 부드럽게 드높이려 했습니다. 안연(顏淵)의 봉익(鳳翼)에 붙으려 하였으나, 날아오르는 자는 장주(莊周)의 대붕(鵬)과 함께 노닐지 못했습니다. 장차 가문의 명성이 떨어질까 두려워하며, 동자(董子)가 늠름하게 머리를 드는 것을 바라봅니다. 이고(夷考)처럼 행실을 살피며 부지런히 하려 했으나, 평범하여 기이함이 없었습니다. 유학자의 관을 쓰고 유학의 길에 몸을 망치며 문중의 음덕에 기대어 영광을 누리는 것을 부끄러워하니, 그 꾀가 지극히 졸렬하여 세상 사람들이 비웃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부끄러움을 참으며 효도로써 이름을 떨치기를 원합니다. 연작(燕雀)이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알겠습니까. 사해와 구주를 품은 뜻을 말입니다. 기천(騏驥)은 노퇴(駑駘)와 함께 하루 천 리를 다투지 않습니다. 慨然하게 옥(璞)을 품고 뛰어나게 기다리며 구하고자 합니다. 지난날 갈등의 싹이 텄던 까닭에 갑작스레 사사로운 문중에 화가 미쳐 집안이 망하고 재앙을 만났습니다. 하늘에 부르짖어도 허망하니, 유한한 삶에 예측할 수 없는 환난을 당했습니다. 창을 던지고 피눈물을 흘리며 환씨(桓氏)의 원한을 품고 슬픔을 일으키며 일어섰습니다. 이어 위나라 사람의 고통을 겪으니, 중산(中散)의 길은 다했고 가생(賈生)의 운명은 박했습니다. 문을 닫고 거절하며 교유를 끊고 참소를 멀리했습니다. 먹을 구걸하고 옷을 빌려 입으며, 약한 자들을 데리고 피난처를 찾아 한 끝 세상에 떠돌며 몇 번이나 추위와 더위를 겪었는지 모릅니다. 황망히 돌아갈 곳이 없어 늘 울적하게 이곳에 머무니, 오래도록 우경(虞卿)의 나그네살과 같았습니다. 누가 영백(令伯)의 외로움을 가련히 여기겠습니까. 나라를 떠난 지 3년 만에 발걸음이 즐거울 줄 알았으나,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니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무심히 지나칠 뿐입니다. 길조를 기대하며 물러나 움츠러드니, 마땅히 두건을 쓰고 소탈하게 지내며 판악(潘岳)의 전원 거주를 즐기고 완적(阮籍)의 소박한 삶을 본받아 땅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어야 했습니다. 다만 태평성대에 늙어갈 뿐, 쓸 때는 행하고 거둘 때는 감추며 이 세상에 구차하게 용납되지 않으려 하고, 그리하여 뜻을 기르며 다시는 구하는 바가 없게 하려 했습니다. 대개 생각건대 우리 집안의 백부와 숙부 이래로 당대의 문장가라는 명성이 있어, 조정의 문단에서 날아다니며 임금을 뫼셨습니다. 유자(遺子)는 한 권의 경전이라도 전해 내려오는 소업(素業)만 못하다고 하니, 선행을 쌓으면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어 후손에게 미칠 것입니다. 만약 끝을 잘 맺지 못하고 먼 변방에서 사라져 유지를 잇지 못한다면, 장차 무슨 면목으로 선인들을 뵙겠습니까. 그러므로 통탄이 극에 달해 하늘에 부르짖으나 굽이굽이 닿을 곳이 없습니다. 거문고 줄은 끊겨 이어갈 수 없고, 끊어진 나무 그루터기에 어찌 의지하겠습니까. 매번 '행로난(行路難)'을 애달프게 읊조리고, 혹은 '수산부(囚山賦)'에 뜻을 적었습니다. 어찌하여 동료들은 이미 구름과 은하로 날아갔는데, 오직 나만 진흙탕에서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까. 괴물들이 물가에 있어 많은 이들이 비웃고, 큰 고래가 물을 잃어 개미의 조롱을 받으니, 도잠(陶潛)처럼 허리를 굽히지 않을 수 없고 스승의 덕에 침을 뱉는 일을 당하게 됩니다. 뜻은 넓으나 재주가 부족하여, 결국 형세가 궁하고 명이 다했습니다. 또한 외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니, 비록 관직의 영광을 잊는다 해도 대기만성(大器晩成)이니 어찌 공명이 세워지지 않음을 걱정하겠습니까. 하물며 화(禍)는 복(福)이 숨어 있는 곳이며, 귀한 자는 천한 자를 먼저 거쳐 비로소 통하는 법입니다.

원문

與其沒世而無聞。曷若因敗而爲效。載洗塵於筆硯。將應詔於賢良。招聚殘魂。激昂壯氣。馬援已老。猶能矍鑠以據鞍。李陵未降。亦可傷夷而振臂。空懷此意。未果良圖。嗟舊學之荒涼。奈流年之荏苒。屢顧沙頭之翼。幾看舟側之帆。禿兔翰窮穀皮。不廢腐儒之學。寧鷄口無牛後。恥爭新進之名。況弱植易顚之身。當衆怒難犯之際。多言可畏。尙口乃窮。誠出處之俱難。嘆孤寒之無援。非事其大夫之賢者。殆卒以布衣而老乎。恭惟某官。百世忠臣。三韓貴種。掃千軍於筆下。呑九澤於胸中。薄蓬萊羞崑崙。飄爾謫仙之氣。捕龍蛇搏虎豹。蔚然華國之文。早結於主上之知。自任以天下之重。茂弘贊中興之霸業。帝稱朕有蕭何。永叔排諸子之異端。人曰今之韓愈。縉紳爲之袖領。儒士仰而師資。臺閣生風。權豪側目。國其庶興矣。文不在玆乎。重念某慕義無窮。聞風且舊。與康成而受業。雖願從絳帳先生。非文擧之通家。又不作龍門下客。在吾先子。嘗玷同年。顧伊幸會之深。實與常情而倍。山公在矣。豈忘嵇紹之尙孤。劉訟聞之。應喜義先之有種。伏望和顏假色。大度包荒。俯憐窮巷之民。待以故人之子。決其去就。費以推揚。則君子長君子消。如相時而可動。國士遇國士報。誠感恩而無忘。過此以還。未知所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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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나고도 세상에 알려지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실패를 계기로 하여 효험을 이루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붓과 벼루를 씻으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어진 관리(賢良)로서의 부름에 응하고자 합니다. 남은 혼을 불러 모으고 씩씩한 기운을 북돋우겠습니다. 마원(馬援)은 이미 늙었음에도 여전히 정정하게 안장에 앉아 버텼고, 이릉(李陵)은 항복하지 않았으니 또한 상처를 입더라도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속으로 이런 뜻을 품고만 있다가 좋은 도모를 이루지 못한다면, 아아, 옛 학문이 황량해짐을 어찌하겠으며 흘러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자꾸만 모래톱의 날개를 돌아보고 배 옆의 돛을 바라봅니다. 대머리 토끼가 글재주가 다하고 곡식 껍질처럼 닳아버렸으나, 부유(腐儒)의 학문을 폐하지는 않겠습니다. 닭의 입(鷄口)이 되기를 원할 뿐 소의 뒤(牛後)가 되지는 않겠으며, 새로 들어온 이들의 이름을 다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하물며 약하게 심어진, 쉽게 쓰러질 듯한 몸으로 대중의 분노를 사기 쉬운 때에 있으니,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고 입을 다물면 궁핍해지니, 참으로 나아가고 물러남이 모두 어렵습니다. 외롭고 가난하여 도움받을 곳 없음을 탄식하니, 어진 대부(大夫)를 섬기지 못한다면 아마도 결국 평민의 몸으로 늙게 될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어느 관직(某官)께서는 백세의 충신이시며 삼한의 귀한 종족이십니다. 붓끝으로 천 군사를 쓸어버리고 가슴속에 아홉 개의 못을 삼키셨으며, 봉래산은 곤륜산에 비하여 보잘것없고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기운을 풍기십니다. 용과 뱀을 잡고 호랑이와 표범을 잡으며 나라의 문물을 찬란하게 꽃피우셨으니, 일찍이 주상(主上)의 지식(知)에 맺히셨고 천하의 중책을 스스로 맡으셨습니다. 중흥의 패업을 크게 떨치시니 황제께서 '짐에게 소하(蕭何)가 있다'라고 칭송하셨고, 영숙(永叔)은 제자(諸子)들의 이단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금의 한유(韓愈)와 같다고 하며, 사대부들이 그를 소매와 깃처럼 여기고 유생들이 우러러 스승으로 삼으니, 조정에 바람이 일고 권세가들이 곁눈질할 정도이니 나라가 아마도 크게 흥할 것입니다. 문채(文)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다시 생각건대 제가 의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끝이 없고, 그 풍모를 듣고 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며 강성(康成)에게 학문을 배웠습니다. 비록 강장(絳帳) 선생의 문하를 따르기를 원하였으나 문학에 통달한 가문이 아니기에 용문(龍門) 아래의 손님이 되지 못했습니다. 저희 선친께서 일찍이 동년배인 분과 인연을 맺으셨으니, 그 깊은 만남을 돌아보건대 실로 보통의 정보다 갑절이나 됩니다. 산공(山公)이 계시니 어찌 계소(嵇紹)의 고결함을 잊겠습니까. 유송(劉訟)이 이를 들었으니 의리를 앞세우는 그 씨앗이 있음을 기뻐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온화한 얼굴과 너그러운 빛을 보여주시고, 너그러운 도량으로 거친 것을 포용하시며, 궁핍한 골목의 백성을 굽어살피시어, 옛 친구의 아들을 대하듯 결정하여 주시고, 북돋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군자는 군자를 따르고 소인은 사라지게 된다면, 만약 때를 맞추어 움직여 주신다면 국사(國士)가 국사를 만난 듯하여 참으로 은혜에 감사하며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일을 지나고 나면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184. 上某官啓〔原注:代人〕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6D, ITKC_MO_0003A_A001_267A ...

원문

剖瓠無用。雖祗適於江湖。鑄金不祥。請自躍於爐冶。敢瀝忱誠之款。仰煩博愛之仁。竊以聖明之時固難得而易失。英俊之士常少達而多窮。賈誼負以才能。尙命薄於孝文之代。馬周有其名位。亦壽短於太宗之朝。蓋遭逢如此其難。故仕進所以爲急。況投機之會。智士不欲其失時。而俟河之淸。昔賢嘗爲之興嘆。然而士無才不才之相遠。命有幸不幸之或殊。千秋得悟於一言。亦能取相。馮唐不遇於三世。空嘆爲郞。其或張子房賤爲布衣。萬戶封侯足矣。金日磾出於降虜。七葉內侍盛哉。以李廣猿臂善射也。困於數奇。雖韓愈虎躍高文也。猶以貶老。苟無相拯而相援。安免自衒以自媒。是以毛遂爲平原而請行。譬以處囊之穎。馮驩與孟嘗而求見。乃悲彈鋏之歌。將以有爲。必資知己。伏念識微一得。能乏寸長。忠孝萃門。素欲事君而盡節。文章華國。切期學古以入官。頃當賢詔之頒。偶捷文闈之戰。靑雲平地。已絶跂於享衢。黃紙書名。喜果先於群彥。始識爲儒之貴。益殫報主之誠。侍從丹墀。瀀游星官。積善之家必有餘慶。旣知于氏之陰功。何王之門不曳長裾。自得鄒陽之大志。朋儕皆爲缺望。親儻盡以交歡。是乃旦暮遇之。非因左右先者。及例行於外務。仍許涖於南藩。嘗由先子之所臨。頗有當年之遺愛。歲計之不足。猶未移畏壘之民。人去而見思。庶無愧謝安之理。事苟關於利害。動輒忤於權豪。寧以顚擠。期於報補。且請理劇郡。豈無張敞之懷。然雅意本朝。早抱蕭郞之願。嘆州縣徒爲勞耳。豈書記致足樂乎。望魏闕以懸心。待宣室之問事。矧乎昔當籍係乎閹寺。因玷管句於佛堂。昵對晨昏。不違咫尺。從出鎭於荒服。阻獲奉於淸光。茫茫鯨海之隅。其幾千里。戀戀龍顏之意。如隔三秋。徒增犬馬之悲。未假風雲之會。而由在朝乏金張之援。於已無王貢之交。長作不平之鳴。無往曲爲之地羨潼關之白鵒。能入獻于京師。有鄴縣之飛鳧。每自朝於宮掖。昨從巨鎭。來覲長安。縹緲鈞天。怳如夢到。丁寧綍命。密若春溫。謂將召以泥封。方不及於瓜代。吾聞語矣。天若啓之。王者無戲言。自喜榮升之有路。外物不可必。亦虞行止之非人。竊觀近歲以來。多選群才之輩。每官有缺。望者交爭。倘求賢士之投閑。以代庸夫之曠位。固所願也。不亦樂乎。忠臣不擇事而安。縱合東西之命。君子惟使人以器。乃宜小大之才。但位下而身微。亦閽深而天遠。久懷此懇。未達淸衷。恭惟某上性生知。多能天縱。得心要於黃頭大士。傳筆法於白雲先生。北面爲師。唐堯願受言於齧缺。南首而臥。黃帝嘗問道於崆峒。命留方外之蹤。遂賜禁中之隱。道至虛而方應於物。勢則貴而能下於人。多士所歸。群生之福。謬以頑姿之無似。夙承宿眷之特深。

번역

호박(瓠)을 쪼개는 것은 무용하니, 비록 강호에 적절히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금을 주조하는 것과 같이 불길합니다. 청하오니 스스로 용광로와 대장간으로 뛰어드십시오. 감히 정성스러운 마음을 쏟아내어, 박애(博愛)의 인자함으로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살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성명(聖明)한 시대는 본래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쉬운 법이며, 영준한 선비는 항상 세상에 뜻을 펴기는 어려우나 곤궁함은 많습니다. 가의(賈誼)는 재능을 갖추었으나 효문(孝文)의 대에 명운이 짧았고, 마주(馬周)는 그 명성과 지위가 있었으나 태종(太宗)의 조정에서 수명이 짧았습니다. 대개 이토록 어려운 시운을 만났기에 벼슬에 나아가는 것을 급히 여겨야 합니다. 하물며 기회를 만난 때에 지혜로운 선비는 때를 놓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하(河)의 맑음을 기다리며 옛 현인이 탄식했던 것을 예전에 보았습니다. 그러나 선비란 재주가 없는 자와 있는 자의 차이가 멀지 않으며, 명운 또한 행운과 불행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천 년의 세월 중 한마디 말에 깨달음을 얻는다면 또한 인재로 발탁될 수 있습니다. 풍당(馮唐)이 세 세대에 걸쳐 뜻을 얻지 못하여 헛되이 낭(郞)이라 탄식하였으나, 혹 장자방(張子房)이 비록 포의(布衣)로 천하게 되었을지라도 만호(萬戶)의 후(侯)로 봉해진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금일휘(金日磾)는 항복한 오랑캐 중에서 나왔으나 칠엽(七葉) 내시로서 성대하였고, 이광(李廣)은 원숭이 같은 팔과 뛰어난 활솜씨를 가졌으나 운수가 기이하여 곤궁하였습니다. 한유(韓愈) 또한 호랑이처럼 뛰어난 문장가였으나 좌천되어 늙었습니다. 만약 서로 구제하고 도와주는 일이 없다면, 어찌 스스로를 드러내어 매개자가 되려 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모수(毛遂)가 평원(平原)을 위해 행차를 청하였고, 붕(囊) 속에 들어있던 날카로운 끝과 같았던 풍환(馮驩)이 맹상(孟嘗)을 만나 뵙기를 구하였으나, 도리어 탄협(彈鋏)의 노래를 슬퍼하게 되었습니다. 장차 유능한 일을 도모하려면 반드시 지기(知己)를 의지해야 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식미(識微)는 한 가지를 얻어 조금 부족할 수 있으나, 충효(忠孝)가 문(門)에 모여 있으니 본래 임금을 섬겨 절개를 다하고자 합니다. 문장이 나라를 빛내니, 간절히 옛 학문을 배워 관직에 들기를 기약합니다. 근래에 어진 조서가 내려져 우연히 문과(文闈)의 싸움에서 승전하였으니, 청운(靑雲)이 평지(平地)에 이르러 이미 높은 곳에 오르기를 갈망하던 것을 넘어섰습니다. 황지(黃紙)에 이름이 적히니 군자들보다 앞서게 된 것이 기쁘고, 비로소 유학자로서의 귀함을 알게 되어 임금께 보답하려는 정성을 더욱 다하게 되었습니다. 단치(丹墀)에서 시종하며 성관(星官)처럼 노닐고자 합니다. 선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는 법이니, 이미 우리 씨(氏) 가문의 음덕을 알고 있습니다. 어찌 왕(王)의 문에 긴 옷자락을 끌며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추양(鄒陽)의 큰 뜻을 얻었으나 동료들은 모두 그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친한 이들은 아마도 모두 즐거움을 나누려 할 것입니다. 이는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것이지 좌우의 먼저 있던 이들 때문이 아닙니다. 외무(外務)의 관례를 따라 남번(南藩)을 다스리는 것을 허락받았으니, 일찍이 선친께서 임하셨던 곳을 거치며 그해의 남겨진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부족함이 있어 아직 두려운 요새의 백성들에게 옮겨가지 못하였으나, 사람이 떠난 뒤에 그리워함이 있다면 사안(謝安)의 이치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일이 만약 이해(利害)에 관계되면 움직일 때마다 권세가와 부딪히게 되니, 차라리 번잡함을 감수하며 보답할 기약을 기대하겠습니다. 또한 급군(郡)을 다스리기를 청함은 어찌 장창(張敞)의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본래 아침의 뜻은 조정에 소망을 품고 있었으니, 주현(州縣)이 다만 수고로울 뿐이지 어찌 서기(書記)로서 만족하겠습니까. 위궐(魏闕)을 바라보며 마음을 매달리고 선실(宣室)의 물음에 응하기를 기다립니다. 하물며 예전에 궁궐의 관청에 속해 있었고, 불당에서 붓을 더럽히며 아침저녁으로 대면하여 지척에 있었는데, 황폐한 변방으로 진수(鎭守)를 나가게 되어 맑은 빛을 받들기가 막혔습니다. 망망한 경해(鯨海)의 구석, 그 수천 리 땅에서 용안(龍顏)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마치 세 번의 가을을 보낸 듯하여, 다만 개와 말 같은 미천한 자의 슬픔만 더할 뿐입니다. 풍운의 기회를 빌리지 못하고 조정에 금장(金張)의 원조가 없으니, 이미 왕의 공물(貢)을 나누는 교분이 없어 장차 불평의 울음만 길게 짓게 됩니다. 동관(潼關)의 백오(白鵒)가 동관에서 노래하며 경사(京師)에 바치기를 꿈꾸듯, 업현(鄴縣)의 날아다니는 오리(鳧)가 매번 궁궐로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어제 거진(巨鎭)에서 장안(長安)을 뵙기 위해 왔으니, 아득한 하늘(鈞天)에 있는 듯 꿈결에 닿은 듯합니다. 정성스러운 명(命)은 봄의 온기처럼 은밀하니, 장차 봉토를 주어 부를 것이라 일컬어지던 때에 미처 과대(瓜代)를 대신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듣기로 하늘이 열리면 왕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스럽게 승진할 길이 있음을 기뻐합니다. 다만 외물(外物)은 확실치 않으니 또한 행차와 머무름이 사람답지 못할까 우려합니다. 삼가 근래를 살펴보니 많은 인재를 선발하는 무리가 많으나 매번 관직에 결원이 있어, 바라보는 이들이 서로 다툽니다. 만약 어리석은 부류가 차지한 빈자리를 대신할 현사를 구한다면 이는 진실로 원하는 바이니 또한 즐겁지 않겠습니까. 충신은 일을 가리지 않고 편안히 여기니, 비록 동서(東西)의 명에 합치된다 하더라도 군자는 오직 사람을 도구로 삼아 마땅히 크고 작은 재능에 맞게 써야 합니다. 다만 지위가 낮고 몸이 미천하여 문이 깊고 하늘이 멀 뿐입니다. 오랫동안 이 간절함을 품었으나 맑은 충정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공경히 생각건대 모(某) 상(上)께서는 성품이 생지(生知)하여 능력이 많고 하늘이 내린 재능이 뛰어나시니, 황두대사(黃頭大士)에게서 마음의 요체를 얻으셨고 백운선생(白雲先生)에게서 필법을 전수받으셨습니다. 북면하여 스승으로 삼으시니, 당요(唐堯)가 결함이 있는 자(齧缺)로부터 말을 듣고자 원했던 것과 같고, 남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운 황제(黃帝)가 崆峒(공동)에서 도를 물었던 것과 같습니다. 방외(方外)의 자취를 머물게 하시니 마침내 금중(禁中)의 은거를 내리셨습니다. 도가 지극히 비어 있으면 만물에 방응(方應)하게 되고, 형세가 귀하면 도리어 사람들에게 낮아질 수 있으니, 이는 많은 선비가 귀의할 곳이며 모든 생명의 복입니다. 완고한 모습으로 어리석게 굴어 숙연한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을 송구스럽게 여길 뿐입니다.

원문

一昨當小子登第之初。篤大人周急之意。乃遣分於內帑。用助設於慶筵。寵渥不貲。感誠徒切。孀親喜而垂涕。聞者莫不爲榮。又於單閼之在年。將受東都而出佐。理當交換。勢有所難。唯仰賴於仁私。終遣移於善地。載顧因緣之幸。不在尋常之間。故恃厚知。特陳危素。伏望善救無棄。惟容乃公。用上奏於冕旒。俾徵還於輦轂。庶觀寶劍衝天之氣長徹斗牛。無使沙禽鼓翼之心空懷雲漢。更加甄拔。以賜始終。則量力驅馳。無忝知人之鑑。誓心糜粉。以爲效節之期。

번역

엊그제 소자가 과거에 급제했을 때, 대인께서 급한 사정을 구제해 주시려는 뜻을 지극히 품으셔서, 내탕금을 보내 경사스러운 잔치를 베푸는 데 쓰도록 하셨으니, 그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이 두터워 감격스러운 마음이 간절합니다. 홀로 된 어머니께서는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셨고, 이를 듣는 이들 중 영광스럽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또한 제가 아직 나이가 어려 단독으로 관직을 맡지 못하고 동도(東都)로 나가 보좌해야 할 처지에 있으니, 마땅히 (관직을) 교체해야 하나 형편상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직 인자하고 사사로운 은혜에 의지하여, 끝내 좋은 곳으로 옮겨 주시기를 바라며, 인연의 다행스러움을 거듭 돌아보니 이는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두터운 지식을 믿고 특별히 위태롭고 간절한 사정을 진술하오니, 부디 선처하시어 버려두지 마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오직 공(公)께서 용납하시어 임금님께 아뢰어 주신다면, 수레와 말의 행렬 속으로 다시 불러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하여 보검(寶劍)이 하늘을 찌르는 기운이 두수(斗牛) 성좌에 길게 미치듯, 모래새가 날개를 치는 마음이 은하수를 품는 것처럼 허망하게 남지 않게 하시고, 다시금 선발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힘을 다해 달려 나가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을 다해 맹세하며 절개를 지키는 기약으로 삼겠습니다.

185. 上李學士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8A, ITKC_MO_0003A_A001_268B ...

원문

携家同隱。願從江海之遊。築室以居。尙乏茅茨之具。敢陳危懇。仰丐優容。竊以用捨行藏。仲尼獨稱於顏子。理進亂退。孟軻亦與於伯夷。惟隱顯之隨時。乃聖賢之同致。絶世違俗則往而作山中宰。利物及時則出而爲帝者師。苟或獨善其身。莫如不俟終日。故梅福變名於吳市。君平賣卜於成都。賀老隱廬山。自號四明狂客。子陵臥釣瀨。亦稱東漢故人。從古以還。遺風可想。伏念某散材瓠落。野性迂疏。枕石漱流。久負平生之願。閉門面壁。已灰榮望之心。雖盛明之世不可易遭。而去就之分各有所適。故當坎而卽止。非刻意以爲高。少游之思。不過終乘於下澤。謝安之志。亦將必去於東山。繄湍水之前頭。接積城之西畔。碧峯邐迤兮多衡山嵩岳之壯觀。蒼波縹緲兮有洞庭彭蠡之奇形。得一荒墟。纔數畝地。因問居民而將買。規爲逸士之幽棲。丹崖百丈靑壁萬尋。宛似宋纖之隱處。明月雙溪淸風八詠。依然沈約之高遊。眞寂寞之濱。具仁智之樂。幅巾短褐。吾將歸老於其間。泛宅浮家。豈恨大平而不遇。於焉放志。無復有求。恭惟某官。至誠接物。淸德鎭浮。聖主得賢臣。若巨魚縱於大壑。仁人在高位。以膏澤下於斯民。庇蔭所加。孤寂有托。重念某獲服掃除之役。久遊門館之間。潛潤而生。已作不枯之草。餘膏所燭。常分無盡之光。出處無殊。生成有望。顧一介書生之計。乏三間草堂之材。以今年某月日。欲於神巖寺山中。斫取棟樑榱椽之貝。伏望閤下俯閔愚衷。特紆尊旨。助結小庵而爲托。乃令幽跡以得安。閑眠深谷之雲。如依德宇。每飮淸江之水。皆是恩波。

번역

가족을 데리고 함께 은거하며 강해(江海)의 유람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방을 지어 거처하고자 하나, 아직 초가집을 지을 도구가 부족합니다. 감히 위태롭고 간절한 마음을 진술하오니, 너그러운 용납을 우러러 바랍니다. 생각건대 쓰임과 버림, 행함과 숨음은 중니(仲尼)가 홀로 안자(顏子)를 칭찬하셨고, 이치에 나아가거나 어지러움에 물러남은 맹가(孟軻) 또한 백이(伯夷)와 더불어 그러했습니다. 오직 은거함과 나타남을 때에 따르는 것이야말로 성현들이 공통으로 이룬 바입니다. 세상을 끊고 속세를 떠나면 산중의 재상이 되고, 만물을 이롭게 하고 때를 맞추면 세상에 나와 제자의 스승이 되는 법입니다. 진실로 홀로 몸을 선하게 하고자 한다면 하루를 기다리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매복(梅福)은 오시(吳市)에서 이름을 바꾸었고, 군평(君平)은 성도(成都)에서 점을 쳤으며, 하로(賀老)는 여산(廬山)에 은거하며 스스로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 불렀고, 자릉(子陵)은 瀨(뢰)에 누워 낚시를 하며 또한 동한(東漢)의 옛사람이라 일컬어졌습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 풍속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저는 재목이 없고 열매가 떨어진 듯한 허물 많은 사람이며, 야성이 우둔하고 소박합니다.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을 씻으며 평생의 원원을 품어온 지 오래되었습니다. 문을 닫고 벽을 마주하며 영화와 망망함을 잊은 마음은 이미 재가 되었습니다. 비록 성명(盛明)한 세상을 만났으나 그 시대를 바꾸어 만날 수는 없으니, 떠남과 머무름의 분별은 각기 적당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굽히고 머물러야 하니, 억지로 고결함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게 유람하고자 하는 생각은 그저 아래의 못에 배를 띄우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안(謝安)의 뜻 또한 반드시 동산(東山)으로 떠나야 할 것입니다. 거센 물살의 앞머리에 적성(積城)의 서쪽 기슭이 맞닿아 있고, 푸른 봉우리는 길게 이어져 형산(衡山)과 숭악(嵩岳)의 장관을 이루었으며, 푸른 물결은 아득하여 동정(洞庭)과 팽려(彭蠡)의 기이한 형상을 지녔습니다. 황폐한 터 한 곳을 얻었는데 겨우 몇 마지기 땅뿐이라, 거주하는 사람에게 물어 사려고 합니다. 유사의 그윽한 거처를 계획하고자 합니다. 붉은 절벽은 백 장에 푸른 벽은 만 길이라 마치 송섬(宋纖)의 은거지와 같습니다. 밝은 달과 쌍계(雙溪)의 맑은 바람을 여덟 번 읊조리니 여전히 심약(沈約)의 높은 유람과 같습니다. 참으로 적막한 물가에서 인지와 지혜의 즐거움을 갖추고, 머리띠를 두르고 짧은 옷을 입으며 저는 그 사이에 돌아가 늙고자 합니다. 집을 띄우고 가정을 누리니 어찌 태평한 세상을 만나지 못함을 한탄하겠습니까. 이에 뜻을 놓아 더 이상 구하는 바가 없습니다. 공경히 생각건대 귀하께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사물을 접하시고 맑은 덕으로 세상을 진정시키십니다. 성스러운 군주께서 현신을 얻으시니, 마치 거대한 물고기가 큰 구렁에 놓인 것과 같습니다. 인재가 높은 자리에 있어 그 은택을 이 백성들에게 내려주시면, 입혀지는 음덕에 외롭고 적막한 이가 의지할 곳을 얻게 됩니다. 다시 생각건대 제가 복을 얻어 청소하는 직역을 맡아 문관의 사이에 오래 머물며 은밀히 윤택함을 입어 자라났으니, 이미 마르지 않는 풀이 되었습니다. 남은 기름진 은혜가 비추는 바를 항상 다함 없는 빛으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출처가 다르더라도 생성의 희망은 있으나, 돌아보니 한낱 서생의 계획으로는 초당 세 칸의 재목조차 부족합니다. 이에 올해 몇 월 며칠에 신암사(神巖寺) 산중에 기둥과 들보, 서까래를 베어 취하고자 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귀하께서 저의 어리석은 충정을 굽어살피시어, 특별히 존귀한 뜻을 굽혀 작은 암자를 짓는 것을 도와 저의 거처로 삼아주신다면, 유적(幽跡)을 남겨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깊은 골짜기의 구름 속에서 한가로이 잠드는 것이 만약 덕 있는 집안에 의지하는 듯하다면, 매번 맑은 강물을 마실 때마다 모두 은혜로운 물결이 될 것입니다.

186. 上按部學士啓〔原注:代人作○闕聯〕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8D, ITKC_MO_0003A_A001_269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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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山涉水。行經旅館之簫條。吐氣成章。偶發眞人之謦欬。口飜瀾而快讀。目割膜以聳觀。竊以道假辭而傳。述者明而作者聖。文以氣爲主。動於中而形於言。非抽黃對白以相誇。必含英咀華而後妙。歷觀前輩。能有幾人。子厚雄深。雖韓愈尙難爲敵。少陵高峭。使李白莫窺其藩。聖兪身窮而詩始工。潘閬髮白而吟益苦。賈島之病在於瘦。孟郊之語出於貧。至如以李賀孤峯絶岸之奇。施於廊廟則駭矣。雖張公輕縑素練之美。猶得江山之助焉。才難不其然乎。賢者足以與此。恭惟某官。潛聖人道。負王佐才。呑萬卷於胸中。掃千人於筆下。陳祕書之大節。忠類朱雲。孝類考叔。廉類儀休。吳武陵之高文。博如莊周。哀如屈原。明如賈誼。作搢紳之袖領。號邦國之蓍龜。留如晦以佐時。天子望中興之業。出張網而爲使。朝廷無南顧之憂。所臨有聲。自任以重。除人民之疾苦。挫州郡之豪強。擁蓋張旌。觀風察俗。碧山萬里紫微九重。想謫仙之雅致。明月雙溪淸風八詠。多沈約之高遊。其於秋入郵亭。雲橫秦嶺。登高望遠。有滕王閣流水長天。選勝探奇。如石屛風孤煙落日。於是寄高情於物表。騁逸興於詩壇。懷古感今。舒牋點翰。爲文迅速。欻如下瀨之船。落筆縱橫。凜若倚天之劍。眞五經之鼓吹。作萬口之笙簧。壓倒曹劉。鞭笞屈宋。曲盡飄然之思。似非率爾而成。禹錫作詩。每有護持之神物。微之有詠。時多請購之蠻酋。傳之無窮。和者蓋寡。伏念某。間間小智。瑣瑣末流。謬登千佛之名。來赴三刀之夢。神明決事。雖素愧於陸雲。辛苦處身。亦庶幾於孔奮。比遭當世之貴流。繼作此方之膚使。事與心違。道不我合。安敢望其保護。常恐被於猜疑。適聞閤下之出巡。實是吾曹之大幸。固所願也。不亦樂乎。然而非郗生入幕之賓。異元禮通家之舊。但始自於小名犬子。久從遊於佳壻雞林。因竊謂絳帳先生。必不遺杏壇弟子。心自傾於向日。久懷葵藿之誠。飛不可以越階。秪守蚊蝱之分。頗稽謁見。殊積悚兢。自知阮籍之禮疏。無奈謝安之往緩。側聞盛製。實激私心。強隨韻格之艱。以扶荒蕪之作。低頭拜東野。切有慕於高才。捧心效西施。敢輒忘於己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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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여관의 고요한 풍경을 지나가니, 숨을 내뱉음이 문장이 되고 우연히 터져 나오는 소리가 진인(眞人)의 기침 소리 같구나. 입으로는 물결을 일으키며 쾌활하게 읽고, 눈으로는 안막을 가를 듯이 높이 바라본다. 생각건대 도(道)는 말을 빌려 전해지고, 서술하는 이는 명석하며 지은 이는 성스럽다. 글은 기(氣)를 위주로 하니, 속에서 움직여 말로 나타나는 것이다. 단순히 화려한 말로 서로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꽃과 영험함을 씹어 삼킨 뒤에야 묘함이 나타난다. 앞선 선배들을 훑어보니 능히 그러한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자후(子厚)는 웅숭깊어 한유(韓愈)조차 대적하기 어렵다 하고, 소릉(少陵)은 고결하여 이백(李白)도 그 울타리를 엿보지 못한다 한다. 성유(聖兪)는 몸은 궁핍하나 시가 비로소 공교해졌고, 반랑(潘閬)은 머리가 희어지며 읊조림이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가도(賈島)의 병은 여윈 데 있고, 맹교(孟郊)의 말은 가난함에서 나왔다. 이와 같이 이하(李賀)의 외로운 봉우리와 끊어진 절벽 같은 기이함을 조정에 펼친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비록 장공(張公)은 비단과 종이의 아름다움을 가볍게 여겼으나 오히려 강산의 도움을 얻었다. 재주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 바로 이와 같지 않겠는가. 현자는 이와 함께할 만하다. 삼가 생각건대 모 관원은 성인의 도를 잠재우고 왕을 보좌할 재능을 짊어지셨다. 가슴속에는 만 권의 책을 삼키고 붓 아래로는 천 명을 쓸어버리시니, 비서(祕書)의 큰 절개를 드러내고 충성스러운 무리는 주운(朱雲)과 같으며 효성스러운 무리는 고숙(考叔)과 같다. 청렴함은 의휴(儀休)와 같고, 오무릉(吳武陵)의 높은 글은 장주(莊周)처럼 넓으며, 애달픔은 굴원(屈原)과 같고, 명석함은 가의(賈誼)와 같다. 문관의 소매깃을 만들고 나라의 점치는 거북이 되시어, 유회(如晦)처럼 머물며 때를 돕는다. 천자가 중흥의 업을 바라시어 그물을 내어 사신으로 삼으시니, 조정에는 뒤를 돌아볼 걱정이 없고 임하는 곳마다 명성이 있다. 스스로를 중하게 여기며 백성의 질고를 제거하고, 주군(州郡)의 호강을 꺾으며, 장정(張旌)을 드리우고 풍속을 살핀다. 벽산(碧山) 만 리와 자미궁(紫微) 구중의 풍경은 마치 적선(謫仙)의 아취를 생각케 하고, 명월(明月)과 쌍계(雙溪)의 맑은 바람 여덟 가지 노래는 심약(沈約)의 높은 유람을 떠올리게 한다. 가을에 우정(郵亭)에 들어서니 구름이 진령(秦嶺)을 가로지르고,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니 등왕각(滕王閣)의 흐르는 물과 긴 하늘이 있다. 빼어난 경치를 찾아 기이함을 탐색하니, 마치 석병풍(石屛風)에 외로운 연기와 지는 해가 있는 듯하다. 이에 높은 정취를 사물에 기탁하고 뛰어난 흥취를 시단(詩壇)에 펼치며, 옛일을 회상하고 지금을 느끼며 글을 써서 붓을 휘두른다. 문장이 신속함은 마치 물을 만난 배와 같고, 글을 떨어뜨림이 종횡무진하니 마치 하늘에 기댄 검처럼 늠름하다. 참으로 오경(五經)의 고취(鼓吹)요, 만 사람의 생황(笙簧)이라. 조(曹)와 유(劉)를 압도하고 굴(屈)과 송(宋)을 채찍질하며, 아득한 사색을 다함에 있어 결코 경솔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석(禹錫)이 시를 지을 때마다 항상 수호하는 신령한 물건이 있었고, 미지(微之)가 읊을 때마다 때때로 만한(蠻酋)들이 청하여 사들이니 그 전함이 끝이 없다. 화합하는 자는 대개 적으니, 삼가 생각건대 모(某)는 간간이 작은 지혜와 자질이 미천하여 천불(千佛)의 명단에 잘못 이름을 올리고 삼도(三刀)의 꿈을 맞이하러 왔습니다. 신명이 일을 결정함에 비록 육운(陸雲)에게 부끄러움이 있으나, 고생스럽게 몸을 지키는 것이 또한 공분(孔奮)에 가깝기를 바랐습니다. 당세의 귀한 흐름을 만나 이 방의 피부를 만드는 역할을 이어가려 하였으나, 일은 마음과 어긋나고 도는 나와 합하지 않으니 어찌 감히 보호를 바라겠습니까. 항상 시샘을 받을까 두려워하다가 마침 합하(閤下)께서 순행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니 실로 저희들에게 큰 다행이며 본래 원하던 바이니 또한 즐겁지 아니합니까. 그러나 희생(郗生)이 막사에 들어간 빈객도 아니고 원례(元禮)와 통가(通家)의 옛 사이도 아닙니다. 다만 처음에는 소명(小名)인 견자(犬子)가 오래전부터 가슬(佳壻) 계림(雞林)에서 노닐었던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삼가 강장(絳帳) 선생께서 반드시 행단(杏壇)의 제자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해를 향하듯 기울어 해바라기의 정성을 오래 품어왔습니다. 날아올 수 없어 그저 모기나 매미의 분분에 머물며 조심스레 뵙고자 하니, 두려움과 떨림이 쌓여갑니다. 스스로 완적(阮籍)의 예법이 소홀함을 알지만 어찌 사안(謝安)의 완만한 태도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성대한 제도에 대해 곁에서 들으니 실로 사사로운 마음을 격동시켜, 어려운 운격(韻格)을 억지로 따라 황무한 작품으로 보태려 합니다. 머리를 숙여 동야(東野)에게 절하며, 높은 재주를 흠모하는 마음을 간절히 담아 서시(西施)를 본받고자 하니, 감히 저의 추함을 잊고 나아갑니다.

187. 賀王舍人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69D, ITKC_MO_0003A_A001_27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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宸極疏恩。驟降紫泥之詔。掖垣進秩。更遊紅藥之階。除目播騰。士林增抃。竊以惟內制之重職。實右省之峻班。讜議嘉謨。備諫諍七人之列。高文大冊。裁絲綸五色之書。在唐以馬周,岑文本爲得人。至宋有楊億,蘇子瞻之故事。繼玆前美。今有幾人。恭惟某官。學自名家。才鍾間氣。王茂弘贊中興之霸業。帝稱朕有蕭何。歐陽脩排諸子之異端。人曰今之韓愈。早遇知於旦暮。備踐秩於淸華。用之則行。慨然獨立。久協僉言之允。雅諧上簡之求。果被異恩。更升峻級。三進及霤。卑之無甚高論。一言興邦。聞者足以爲戒。賢旣大用。國其庶興。某頗忝品題。濫遊門館。幸獲聞於賞善。竊自喜於私誠。蟠木爲之先容。雖愧孤根之無用。大廈成而相賀。尙知巨陰之得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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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은혜가 지극하여 갑자기 자니(紫泥)의 조서가 내려오고, 조정의 직위가 높아지니 다시금 붉은 약초가 있는 계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관직의 임명이 널리 퍼지니 사림의 칭송이 더해집니다. 삼가 생각건대, 내조(內制)의 중직은 실로 우성(右省)의 높은 반열이며, 간언하는 이들의 가감 없는 논의와 좋은 계책은 간쟁하는 일곱 사람의 반열을 갖추고 있습니다. 높은 문장과 큰 책을 지어 오색 비단 글을 재단하니, 당나라에서는 마주(馬周)와 최문본(文本)이 인재를 얻은 본보기였고, 송나라에는 양억(楊億)과 소자첨(蘇子瞻)의 고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앞선 아름다움을 이어받아 지금 몇 사람이 있습니까. 공손히 생각건대 어느 관직에 계신 분은 학문이 명가(名家)로부터 나왔고 재능은 기개 속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왕무홍(王茂弘)이 중흥의 패업을 찬성한 것과 같고, 황제가 짐에게 소하(蕭何)가 있다고 칭한 것과 같습니다. 구양수(歐陽脩)가 제자들의 이단을 배척한 것과 같으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금의 한유(韓愈)와 같다고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알아주는 이를 일찍이 만났고, 청화(淸華)한 직위에 올라 임용되니 행함이 있습니다. 의연히 홀로 서서 오랫동안 여러 사람의 옳은 말을 모았으며, 상급자의 간결한 요구와도 우아하게 부합하여 과연 특별한 은혜를 입고 다시금 높은 급에 올랐습니다. 삼진(三進) 및 루(霤)에 이르렀으니, 낮은 자 중에는 심한 고론이 없으나 한 마디 말이 나라를 흥하게 하니 듣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경계가 됩니다. 현인이 크게 쓰이니 나라는 필히 번성할 것입니다. 저는 다소 품계에 이름을 올리고 문관의 자리에 함부로 머물렀으나, 다행히 선함을 상 주는 일에 들려 듣게 되었습니다. 삼가 사사로운 정성으로 기뻐하며, 굽은 나무가 되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합니다. 비록 외로운 뿌리의 무용함에 부끄러움이 있으나, 큰 집이 완성되니 함께 축하하며 큰 그늘에 의지할 수 있음을 오히려 알겠습니다.

188. 謝尙州鄭書記〔原注:紹〕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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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郊寓迹。方謀容膝之安。公廩振貧。特助齊眉之餉。恩非望及。感與愧幷。某祚薄門衰。身殘家破。徒欲求田而問舍。飄然去國以離鄕。久餬口於江南。幸卜居於境內。食如玉薪如桂。不堪蘇子之愁。樹之穀藝之麻。聊勉柳生之業。形羸色瘁。衣破履穿。萬卷書生。磊落枯腸之文字。數間茅屋。蕭條泠甑之塵埃。分自甘令伯之零丁。猶未免相如之庸賃。朝不謀夕。窶而且貧。鄕黨竊笑而相欺。朋遊皆背而告絶。至此亦命。予將疇依。豈圖長者之仁。俯記同問之賤。每於謁見。輒賜從容。愍孤迹之滯淹。語平生之契闊。綸巾論道。雖非入幕之賓。絳帳摳衣。喜預授經之列。交則續而意不倦。勢甚卑而禮有加。或開其翰墨之場。或導以田園之樂。念腐儒疏於計活。而旅食無以支特。迺歎困窮。遂令賙贍。布衣蔬食晏如也。久希毛玠之風。肥馬輕裘共弊之。幸見仲由之義。需其惠澤。及爾妻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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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에 머물며 자취를 남기며, 마침 한 뼘의 안락함을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공께서 녹봉을 내려 가난을 구제해 주시니, 특별히 미지(眉之, 이귀령)의 양식을 도와주신 격입니다. 은혜가 바라지 않은 곳에서 이르니, 감격스러움과 부끄러움이 함께 일어납니다. 저의 복은 박하고 가문은 쇠하였으며, 몸은 병들고 집은 깨졌습니다. 다만 논을 구하고자 물었으나 집을 묻기만 하였고, 홀연히 나라를 떠나 고향을 등졌습니다. 오랫동안 강남(江南)에서 입에 풀칠하며 지내다가, 다행히 경내(境內)에 거처를 정하였습니다. 먹는 것은 옥 같고 땔나무는 계수나무 같으나, 소자(蘇子, 들깨)의 근심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곡식을 심고 삼을 기르며, 겨우 버들에서 나는 것을 얻는 업을 면하고 있습니다. 몸은 여위고 안색은 초췌하며, 옷은 해지고 신발은 닳았습니다. 만 권의 책을 읽는 서생으로서, 메마른 창자에서 나오는 글자들은 낙락(磊落)하나, 몇 칸의 초가집에는 쓸쓸한 솥의 먼지만이 가득합니다. 스스로 감령백(甘令伯)처럼 외롭고 쓸쓸하다 여기면서도, 여전히 상여(相如)처럼 평범한 임금을 받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저녁을 도모하지 못할 정도로 몹시 가난하여, 마을 사람들은 남몰래 비웃으며 서로 속이고, 벗들은 모두 등을 돌려 절교하였습니다. 이 또한 운명이라 하겠으나, 제가 장자(長者)의 인애를 도모하겠습니까? 다만 동문(同問)의 천한 처지를 굽어보시어, 매번 뵙을 때마다 늘 너그럽게 대해 주셨습니다. 외로운 자취가 정체되어 있는 것을 가엾게 여기시어, 평생의 친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란건(綸巾)을 쓰고 도를 논하니, 비록 막하의 빈객은 아니었으나, 강장(絳帳)에서 옷자락을 붙잡고 의지하였습니다. 경전의 열중에 참여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며, 사귀면 뜻이 끊이지 않아 게으르지 않았고, 형세는 매우 비천하나 예우는 더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문장의 장을 열어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전원의 즐거움을 인도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썩은 선비로서 생계를 꾸리는 데 서툴러 나그네의 식사를 감당할 길이 없음을 생각하시고, 곤궁함을 탄식하시어 마침내 넉넉히 도와주셨으니, 포의를 입고 채소를 먹으면서도 편안할 수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모개(毛玠)의 풍모를 희망하였으나 살찐 말과 가벼운 가죽옷을 함께 잃었을 뿐입니다. 다행히 중유(仲由, 양윤의)의 의리를 보았으니, 그 은택이 저의 처자에게까지 미치기를 바랍니다.

189. 代金善州〔原注:瑗〕上晉陽林大判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0C, ITKC_MO_0003A_A001_270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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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夫泣以向隅。滿堂爲之不樂。大人淸而容物。惟所欲者必從。誠未忍於胸懷。敢冒塵於視聽。恭惟某官。天才秀逸。雅量宏深。張鷟文高。時皆號曰靑錢選。元琳望重。人當知作黑頭公。主上喜於同時。朝廷倚以爲重。暫虛侍從之列。出莅股肱之邦。早徙天池。搏而上者九萬里也。遠宣王化。共我理惟二千石乎。雅諧黃屋之心。大慰蒼生之望。伏念某庸虛末品。跅弛下才。竄謫江湖。久戀子牟之魏闕。遭逢旦暮。詔徵賈誼於長沙。舊里爲墟。生妻去室。及一麾而出守。乘匹馬以獨來。行道遲遲。窮愁鬱鬱。窓前列遠岫。豈尋謝守之居。宴寢凝淸香。久欠蘇州之興。昨者來投巨鎭。忝預華筵。對孔融北海之樽。擁安石東山之妓。心乎愛矣。目而送之。醉花柳窮江山。行盡謫仙之樂事。曳羅穀蘊蘭麝。無非金谷之佳人。命以傾城。使之薦枕。方結綢繆之信。欲寬羈旅之愁。奈何事與心違。會難別易。黯消魂於南浦。忽失佩於江皐。晚色慘兮愁容。秋風吹兮哀響。故國三千里。那堪遊子淚霑巾。巫山十二峯。正是行人腸斷處想仙容之綽約。弔隻影以徘徊。其於旅館秋涼。郡齋夜靜。空展轉而不寐。念聚散之難期。思子爲勞。願言則嚔。南有沈鱗北羈羽。嗟影響之無因。上窮碧落下黃泉。指生死而爲誓。必有與也。求則得之。昔者杜牧聞紫雲之名。乃往乞於李相國。孫秀知綠珠之美。亦使求於石將軍。況吾戀戀之故人。肯拒拳拳之危懇。仰惟大度。俯諒愚衷。女子縫裳。俾助鱞夫之窮計。我心匪石。敢忘知己之厚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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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내가 울며 구석을 향하면 온 집안이 그로 인해 즐겁지 못하다. 대인은 맑고 만물을 포용하니 오직 바라는 바를 반드시 따른다. 참으로 가슴속에 품은 것을 참지 못하여 감히 속세에 나타나 보고 듣게 하려 한다. 공경히 생각건대 어느 관원은 천재가 빼어나고 아량은 넓고 깊으며, 문장이 높고 화려하여 당시 모두가 청전선(靑錢選)이라 일컬었다. 원림(元琳)은 명망이 중하여 사람들이 흑두공(黑頭公)이라 알았다. 주상께서 동시대 사람으로서 기뻐하시고 조정에서도 그를 의지하여 중히 여기시어, 잠시 시종(侍從)의 열에 비워두고 국정의 핵심인 고굉지방(股肱之邦)에 나가게 하셨다. 일찍이 천지(天池)로 옮겨가니, 낚아 올려 올라간 곳이 구만리였다. 멀리 선왕(宣王)의 교화를 선포하며 나와 함께 이천석(二千石)의 이치를 다스리려 하였으니, 아량 있게 황실의 마음과 부합하고 창생의 바람을 크게 위로하였다. 엎드려 생각건대 나는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품계로 재주가 부족하여 강호로 유배되어, 오랫동안 자모(子牟)의 위궐(魏闕)을 그리워하며 아침저녁으로 마주하였다. 조서가 내려 가의(賈誼)를 장사(長沙)에서 불러들일 때, 옛 고장은 폐허가 되고 생처는 아내가 떠나갔다. 마침내 휘를 휘둘러 나와 수령으로 나갈 때, 홀로 말을 타고 오니 길 가는 이의 걸음이 더디고 곤궁한 시름은 울적하였다. 창 앞에는 먼 산봉우리가 늘어서 있으니 어찌 사수(謝守)의 거처를 찾는 것이겠는가. 연침에는 맑은 향기가 응결되어 있으니 오랫동안 소주(蘇州)의 흥취가 결핍되었다. 어제 큰 진영에 와서 화려한 잔치에 부임하게 되어, 북해의 공융(孔融)과 같은 술잔을 마주하고 동산의 안석(安石)과 같은 기생을 품으니 마음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눈으로 보내며 꽃과 버들이 진 강산에서 취하니, 퇴선(謫仙)의 즐거운 일을 다 누렸다. 비단 옷을 끌며 난초와 사향을 품으니 금곡(金谷)의 가인(佳人)과 다름없다. 성을 기울게 할 만큼의 명을 내려 침상을 권하게 하니, 막으로 맺은 신의를 통해 나그네의 시름을 달래고자 하였다. 어찌하여 일은 마음과 어긋나고 만남은 어렵고 이별은 쉬운가. 남포(南浦)에서 슬프게 혼을 잃고, 갑자기 강가에서 패옥을 잃었으니, 저무는 빛은 참담하고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며, 가을바람은 불어와 애처로운 울림을 낸다. 옛 나라 삼천리가 어찌 나그네의 눈물이 수건을 적시는 것을 견디겠는가. 무산(巫山)의 열두 봉우리는 바로 행인이 장단(腸斷)하는 곳이니, 신선의 얼굴을 생각하며 외로운 그림자를 조롱하며 배회한다. 여관의 가을 서늘함과 군의 관아의 밤 정적 속에서, 헛되이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모임과 헤어짐의 기약이 어려움을 생각하며 자식을 생각하여 수고롭다. 말하고자 하면 눈물이 난다. 남쪽에는 심린(沈鱗)이 있고 북쪽에는 기우(羈羽)가 있으니, 아아, 그림자와 형상이 인연이 없음이여. 위로는 푸른 하늘에 닿고 아래로는 황천(黃泉)에 이르니, 생사를 두고 맹세하면 반드시 함께할 것이다. 구하면 얻을 것이다. 옛적에 두목(杜牧)이 자운(紫雲)의 명성을 듣고 이에 가서 이 상국(李相國)에게 청하였고, 손수(孫秀)가 녹주(綠珠)의 아름다움을 알고 또한 석 장군(石將軍)에게 구하게 하였다. 하물며 내가 연연해하는 옛 친구가 어찌 간곡한 위급함을 거절하겠는가. 우러러 대도를 바라오며 굽어보아 나의 어리석은 충정을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인이 옷을 꿰매어 가난한 남편의 궁한 계책을 돕게 하듯, 내 마음은 돌과 같지 않으니 지기(知己)의 두터운 은혜를 어찌 잊겠는가.

190. 答從兄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1B, ITKC_MO_0003A_A001_271C

원문

低頭拜東野。阻獲昌黎之從遊。打門驚周公。忽承諫議之寄信。伏念某衰門泠裔。末路羈蹤。十載艱難。偶脫風波之地。一涯流落。久淹瘴癘之鄕。久積憂傷。頗乖榮衞。昨以負薪之疾。不堪伏枕之勞。惟君子之垂仁。記窮民而無棄。惠然肯顧。愍爾衰容。加以解賀監之金龜。愌洞庭之春色。慰我弊廬之牢落。設其小飮之從容。擧白飛觴。客以淸濁爲聖賢耳。揮毫落紙。兄之心䏏皆錦繡耶。乃促膝而談。或持頤而笑。洒若沈痾之頓愈。美哉樂事之相并。白綸巾宮錦袍。盡淋漓於座上。明月杯淸風簟。多交錯於松間。及乎日入虞淵。雲生楚岫。煙景晚色。渾爲慘淡之愁容。尊酒相逢。已作分離之餘恨。但貽書而致謝。承墮墨之繼臨。旨盡綢繆。言多款密。欣聞親戚之警欬。已覺精神之坐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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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숙여 동야(東野)에게 절합니다. 창려(昌黎)와 함께 노닐던 일을 가로막혔고, 문을 두드려 주공(周公)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간의(諫議)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저의 가문은 몰락하여 쇠잔해졌고 말년에는 행방이 묘연하였습니다. 10년 동안의 고난 끝에 우연히 풍파가 없는 곳을 벗어났으나, 한쪽 구석에 유랑하며 오랫동안 장려(瘴癘)의 고장에 머물러 있어 근심과 슬픔이 깊게 쌓였으니 영화롭고 호위받던 시절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제는 땔나무를 지는 듯한 병 때문에 베개에 엎드려 있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오직 군자의 어진 마음이 가난한 백성을 기억하여 버리지 않고 은혜롭게 돌아보아 주셨습니다. 저의 쇠약한 모습을 가엾게 여기시고, 게다가 해감(解賀)의 금구(金龜)를 보내어 동정(洞庭)의 봄빛을 더해주시니, 저의 초라한 집의 쓸쓸함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 소박한 술자리를 마련하여 술잔을 주고받으며 흥겹게 노닐 때, 손님은 맑고 탁한 술을 성현의 도리처럼 여겼습니다. 붓을 휘둘러 종이에 글을 적으시니, 형님의 마음은 모두 금수(錦繡)와 같으신지요. 또한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때로는 턱을 괴고 웃으시니, 마치 중한 병이 갑자기 나은 듯했습니다. 즐거운 일이 서로 함께하니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흰 두건과 비단 도포를 입고 자리 위에서 마음껏 쏟아내고, 밝은 달과 맑은 술, 시원한 대자리와 맑은 바람이 소나무 사이에서 어우러졌습니다. 해가 저물어 우연(虞淵)에 잠기고 구름이 초수(楚岫)에서 피어오를 때, 저녁 경치의 안개 낀 풍경은 모두 쓸쓸한 시름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술을 나누며 만났으나 이미 이별의 남은 한이 되었습니다. 다만 글을 남겨 감사의 뜻을 전할 뿐인데, 답장으로 먹을 이어주시니 그 뜻이 매우 정답고 세심합니다. 말씀이 구체적이고 친밀하니, 친척의 경계하는 듯한 소식을 기쁘게 듣고 이미 정신이 그곳으로 달려가는 듯합니다.

191. 謝見訪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病莫能興。久臥窮閻而伏枕。跫然而喜。忽驚長者之迂車。惟憂患之餘生。抱支離之多病。久矣朋遊之謝絶。何其門巷之蕭條。豈意仁人。不遺舊物。常裹飯而來問。或載酒以相過。共爲方外之遊。不導人間之事。守顏回之陋巷。雖簞瓢不堪其憂。入王績之醉鄕。非轍迹所可得至。有文以接。其樂也融。顧枯朽之孤骸。辱撫存之厚眷。其爲感悚。曷盡敍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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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들어 일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궁핍한 집에서 누워 베개를 베고 지내다가, 발소리가 들리니 기뻤습니다. 문득 어른께서 수레를 타고 오시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오직 근심과 걱정 속에 남은 삶을 붙들고, 갈팡질팡하며 많은 병을 앓고 있어, 오래전부터 벗들과 노니는 것을 끊었습니다. 어찌하여 골목길이 이토록 쓸쓸한지요. 인자하신 분께서 옛 인연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늘 밥을 싸 들고 오셔서 문안하시거나, 혹은 술을 싣고 오셔서 서로 방문하시며, 함께 세속 밖의 유람을 즐기시고 인간 세상의 일은 돌보지 않으며 안회(顔回)의 누추한 골목을 지키시니, 비록 단표누항(簞瓢)이라 하여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왕적(王績)의 취향에 들어 술에 취해 지내는 삶은 그 발자취를 따라갈 수 없으나, 글을 지어 접하니 그 즐거움이 매우 화락하였습니다. 돌아보니 썩어 문드러진 외로운 뼈와 같은 저를, 두텁게 보살펴 주신 그 은혜가 어찌 감격스럽고 송구스러운지 다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192. 賀李壯元〔原注:眉叟〕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1D, ITKC_MO_0003A_A001_272A

원문

文高學博。當今舍我其誰。選妙鑑精。得人於斯爲盛。凡其聞覩。莫不歡欣。恭惟壯元。負王佐才。號名家子。若高山深谷龍虎變化。隱顯隨時。如孤峯絶岸雲雷發興。文章駭俗。蠻夷欲購其篇什。草木亦知其聲名。若趨升堂補闕之試則諸生推爲先登。應宏詞拔萃之科則多士拱而環視。何其壯也。孰敢當哉。是天上謫仙人。眞世間奇男子。況斯文已將墜地。而聖主急於取才。果應精求。首登優第。武帝讀相如之賦。喜於同時。明皇聞李白之才。召而親見。朝纔綴行於桂嶺。夕必待詔於玉堂。選士以來。唯公而已。胸呑雲夢者九箇。望素負於經綸。身到黃扉已四人。位佇登於廊廟。使聞風而大振。爲儒者之極榮。某筆硯舊交。丘園遺老。路窮鵬海。阻攀羊角之搏。病臥蟻牀。未展鳧趨之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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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 높고 박식하니, 지금의 세상에 나를 제외하고 그 누가 그러하겠습니까. 뛰어난 감식안을 선택하여 인재를 얻음이 이와 같으니 매우 성대합니다. 무릇 그가 듣고 본 바는 하나같이 기뻐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공경히 생각건대 장원(壯元)께서는 왕을 보필할 재능을 갖추셨고, 명문가의 자제라 불리십니다. 마치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용과 호랑이가 변화무쌍하며 은거와 나타남이 때를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외로운 봉우리와 끊어진 절벽에서 구름과 천둥이 일어나는 듯하여, 문장이 속된 것을 놀라게 하니 오랑캐들조차 그 글을 사고자 하고 초목조차 그 명성을 아는 듯합니다. 만약 승당보궐(升堂補闕)의 시험에 나아간다면 모든 생원이 선등(先登)하는 것으로 추대할 것이요, 홍사발췌(宏詞拔萃)의 과목에 응한다면 많은 선비가 모여들어 둘러싸고 바라볼 것입니다. 어찌 이리도 장한가요. 누가 감히 맞설 수 있겠습니까.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자 참으로 세상의 기이한 남자입니다. 하물며 문풍(文風)이 이미 땅으로 떨어지려 하는 때에 성상께서 급히 인재를 취재(取才)하시니, 과연 정밀하게 구하여 처음으로 우등하게 급제하셨습니다. 무제(武帝)가 상여(相如)의 부를 읽고 그 시대의 인재를 기뻐하였고, 명황(明皇)이 이백(李白)의 재능을 듣고 불러 친히 대면하였던 것과 같습니다. 조정에서 막 계령(桂嶺)으로 떠나려 하면 저녁에는 반드시 옥당(玉堂)에서 조칙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인재를 선발함에 있어 오직 공(公)뿐입니다. 가슴에 운몽(雲夢)을 품은 자가 아홉이나 되고, 경륜을 펼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진 자가 황비(黃扉)에 이른 이가 이미 네 명이나 되니, 그 위상이 조정의 랑묘(廊廟)에 올라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된다면 유학자로서 지극히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저(某)는 붓과 벼루를 함께 쓰던 옛 벗이자 구릉(丘園)의 늙은이로서, 길은 붕해(鵬海)까지 멀고 양각(羊角)의 힘겨운 다툼에 뛰어들 길은 막혔으며, 병들어 개미 침상(蟻牀)에 누워 있어 꿩처럼 달려가 예(禮)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193. 上安西大判陳郞中〔原注:光脩〕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2B, ITKC_MO_0003A_A001_272C ...

원문

黃鵠凌墟。雖有九霄之逸翮。白駒在谷。恨無一束之生蒭。敢將長喙以哀鳴。庶或動心而垂察。伏念某。命賦多難。性鍾至愚。慕顏回賢人之樂。雖甘飮水曲肱。非元龍國士之心。徒欲求田問舍。昔吾先祖。遇聖初基。轉籌幄中。眞子房之人傑。圖形閣上。忝唐帝之功臣。乃貽鐵券之書。永有土田之錫。及傳後嗣。見奪他人。遂令忠義之魂。久絶歲時之享。以玆興嘆。每欲訟冤。然而孤拙之心固易危而自縮。流離之跡方遠退以深藏。尙口乃窮。多言可畏。故莫伸於鬱結。而坐受於飢寒。昨披悃愊之誠。仰叩高明之鑑。雖莫躬於造請。實有意於知憐。惟容乃公。勿咈所欲。希荊州半面之識。貴踰萬戶封侯。得劉弘一紙之書。賢於十部從事。然乏金張之爲援。尙稽虞芮之質成。聞循吏善政之風。其惟良二千石也。使遊民不耕而食。故取禾三百囷兮。不有仁人。孰噓氷氏。恭惟某官。際天精識。命世賢才。李太白獨擅歌詞。人稱國手。陳子昂復興騷雅。世號文宗。天子喜於同時。廷臣莫能出右。謀猷告后。素勤伊尹之忠。臺閣生風。早振陳咸之節。猒嚴助承明之直。請張敞劇郡之行。果簡在於上心。而出鎭於西海。遠宣王化。大慰民心。加以挫豪強而自服。禮儒雅以旁延。士願品題。人皆樂慕。矧此妄庸。益深敬仰。意在山水。庶逢鍾子之知音。皮有陽秋。未接褚褒之雅氣。伏望救人無棄。決事如神。遂令舊將之雲孫。獲食世封之尺地。一家飽暖。儻蒙濡沫之恩。萬死粉糜。敢誓漆身之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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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백로가 언덕 위를 날아오르니 비록 구만리 높은 하늘을 날아갈 날개가 있으나, 골짜기에 있는 흰 망아지는 한 묶음의 생명력마저 없음을 한탄하네. 감히 긴 부리로 슬프게 울어, 혹시나 마음을 움직여 살펴주실까 바라노라. 엎드려 생각건대 저(某)는 타고난 운명이 다난하여 성품은 지극히 어리석습니다. 안회(顔回) 같은 현인의 즐거움을 사모하면서도, 비록 물을 달게 마시고 팔을 굽혀 잠을 자는 고통을 겪을지언정 원룡(元龍)과 같은 국사의 마음은 없으며, 그저 전답을 구하고 집을 묻고자 할 뿐입니다. 옛날 저희 선조께서는 성군을 뵙는 초기에 막사 안에서 주사위를 굴리며 책략을 세우시니 참으로 자방(子房)과 같은 인걸이셨고, 각 위에서 도를 도모하시니 부끄럽게도 황제의 공신이 되셨습니다. 이에 철권(鐵券)의 글을 남겨 영원히 토전(土田)을 하사받게 하셨으나, 후손에게 전해지니 타인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충의(忠義)의 혼이 오랫동안 제사를 받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로써 탄식하며 매번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외롭고 서툰 마음은 본래 위태롭기 쉬워 스스로 움츠러들고, 떠돌아다니는 자취는 더욱 멀리 물러나 깊이 숨게 되니, 입을 열자니 궁핍하고 말이 많으면 두려움을 삽니다. 그러므로 울결된 마음을 펴지 못한 채 굶주림과 추위를 그대로 받게 되었습니다. 어제 진실한 정성을 펴서 높으신 밝은 거울에 우러러 절하였으니, 비록 직접 찾아뵙고 청하지는 못하나 실로 가련히 여겨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오직 용납해 주시는 공(公)께서 바라는 바를 거스르지 마시고, 형주(荊州)에서 반면의 식견을 가졌던 이의 지식과 만호(萬戶) 봉후(封侯)의 귀함이 넘치며, 유홍(劉弘)의 종이 한 장을 얻은 것이 십부종사(十部從事)보다 현명함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금장(金張)의 원조가 부족하여 여전히 우예(虞芮)의 자질을 살피는 데 머물러 있으니, 듣건대 순리(循吏)의 선정(善政)의 풍모는 오직 어진 이가 다스리는 이천석(二千石)의 관직뿐이라, 유민들이 농사짓지 않고도 먹게 하니 곡식이 삼백 괵(囷)이나 되었습니다. 인인이 없다면 누가 빙씨(氷氏)를 불어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공(公)께서는 하늘의 정밀한 식견을 갖추셨고 세상을 구제할 현재이십니다. 이태백(李太白)이 홀로 가사를 읊어 사람들이 국수(國手)라 칭송하고, 진자앙(陳子昂)이 다시 소아(騷雅)함을 일으켜 세상이 문종(文宗)이라 일컬었으나, 천자가 그와 같은 이들을 기뻐하듯 조정의 신하 중에는 그와 같은 이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모략과 계책을 후세에 고함에 있어 평소 이윤(伊尹)의 충성을 부지런히 따랐고, 대각(臺閣)에 바람이 일게 하여 일찍이 진함(陳咸)의 절개를 떨쳤으며, 엄숙함을 누려 승명(承明)의 직언을 도왔고, 장창(張敞)의 군현에서의 행실을 청하였으니, 과연 상심(上心)에 간결함이 머물러 서해(西海)의 진수(鎭守)로 나가 왕화(王化)를 멀리 선포하고 민심을 크게 위로하셨습니다. 이에 호강(豪強)을 꺾어 스스로 복종하게 하고, 유학자들에게 예로써 유아하게 대하며 곁에 두시니 선비들이 품계를 논하기를 원하고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하며 사모합니다. 하물며 이 미천하고 평범한 자는 더욱 깊이 경외하고 앙모하여, 뜻은 산수에 있고 종자(鍾子)와 같은 지음(知音)을 만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양추(陽秋)의 글은 있으나 저포(褚褒)의 아기(雅氣)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사람을 구제함에 버려지는 이가 없게 하시고, 일을 결정함에 신령함과 같이 하시어, 마침내 옛 장수의 손자(雲孫)가 세상의 봉토인 한 자 땅이라도 얻어 일가가 배불리 먹게 된다면, 혹시라도 적셔주시는 은혜를 입게 될 경우 만 번 죽어 가루가 될지언정 감히 몸을 옻칠하는(漆身) 보답을 맹세하겠습니다.

194. 上李常侍〔原注:知命〕啓

문체: 公車類 / 疏箚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3A, ITKC_MO_0003A_A001_273B ...

원문

遊羿彀而不中。宜任分無慊於心。與越戰而或封。請聚謀以鬻其技。敢贄謬悠之浪說。仰希咳唾之餘音。竊以易牙之前。淄澠不能隱其味。師曠之側。鄭衛未嘗欺其聲。況大賢能精於選掄。而多士孰逃於鑑藻。故殷卿考第。先於詞學而必收。永叔試文。務爲險怪者皆黜。使文風淳而造理。被退者擧無屈辭。然而雖權衡本出於至公。有愚智相雜而交進。王良爲馭。造父驂乘。皆欲善試其良能。卞和泣玉。伯牙碎琴。固常罕遇於眞賞。一失其顧。無如之何。陳岵贄卷於權舍人。自伸就試之志。亞之上書於李諫議。未免混類之悲。玆皆當代之大才。況下古人於數等。伏念某。晚未聞道。朴不曉文。七歲頌六甲。雖無敏悟之才。三年通一經。頗有辛勤之學。焚膏以繼。下筆不休。恐長虞墮其家聲。望董子褎然擧首。謂閤下操升黜之柄。是小子得奮揚之秋。何相須殷相遇疏。願莫之遂。奈其進銳其退速。理固爲然。以獐頭鼠目之姿。角虎戰龍爭之地。多多益辨。始期必勝以取之。一一以吹。乃復先逃而去矣。終身所恥。咋舌何言。雖十上忘勞。後必作靑雲之上客。其一條遺恨。在不爲玉筍之門生。信通塞皆係於時。故功名數失於會。分甘藏縮。跂絶亨嘉。匠伯以爲不材。自慙無用。大人淸而容物。豈棄所長。恭惟閤下。一角祥麟。九苞威鳳。幾千年出韓愈。振文章於己衰。五百歲得陳君。補風雅之久缺。潤色皇朝之制作。主張吾道之會盟。揚紫微垂虹蜺。風彩傾乎四海。光天衢樹桃李。英才萃於一門。凡見博帶褒衣之徒。必將分庭抗禮以待。重念某窺墻尙阻。傃德益深。自吾叔伯之生平。頗獲師資於道義。願自稱文擧之通家後。欲往俟以直前。得相見雍陶之詩集中。亦何疑於未接。伏望和顏假色。大度包荒。少垂仁者之哀矜。俯記孤生之潦倒。千里附於驥尾。儻得依歸。一死輕於鴻毛。誓圖報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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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羿)가 활을 쏘았으나 맞히지 못했으니, 마땅히 분수를 맡아 마음에 불만함이 없어야 합니다. 월(越)나라와 싸워 공을 세워 봉해질 수도 있습니다. 청하건대 모여 의논하여 그 재주를 팔게 하십시오. 감히 잘못된 말로 어지럽게 떠드는 것을 제물로 바치니, 우러러 바라건대 (대인께서) 뱉으시는 말의 여운이라도 얻기를 바랍니다. 생각건대 이아(易牙)의 앞에서는 지음(淄澠)도 그 맛을 숨길 수 없었고, 스광(師曠)의 곁에서는 정(鄭)나라와 위(衛)나라 사람들도 결코 그 소리를 속이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대현(大賢)은 인재를 선발하는 데 정통할 수 있고, 많은 선비가 그 감별함에서 어찌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은경(殷卿)은 과거 시험을 볼 때 문학에 앞서 반드시 거두어들였고, 영숙(永叔)은 문장을 시험할 때 험하고 괴이한 것을 힘써 물리쳤습니다. 문풍(文風)을 순수하게 하여 이치를 만들게 한다면, 낙방한 자를 추천함에 있어 굽히는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형(權衡, 인재 선발의 기준)은 본래 지극히 공정함에서 나오는 것이니, 어리석음과 지혜가 섞여 함께 나아갑니다. 왕량(王良)이 채찍질을 하고 조부(造父)가 말을 몰 듯, 모두 그 뛰어난 능력을 잘 시험하고자 합니다. 변화(卞和)가 옥을 위해 울고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부수었으니, 진정한 감상자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라 한 번 그 눈길을 놓치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진고(陳岵)가 권(權) 사인(舍人)에게 책을 바치며 스스로 시험에 임하고자 하는 뜻을 펼쳤으나, 이간의에게 상소를 올린 것은 부류가 섞이는 슬픔을 면치 못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당대의 큰 재주를 가진 이들인데, 하물며 옛사람을 여러 등급 아래에 두는 격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저(某)는 늦게 도를 들어 문장에 밝지 못했습니다. 일곱 살에 육갑(六甲)을 읊었으니 비록 민첩하게 깨닫는 재주는 없었으나, 3년 동안 경전 하나를 통달하였으니 제법 부지런히 공부한 바가 있습니다. 등불을 태워 밤을 이어가며 붓을 놓지 않았으나, 장차 가문의 명성을 떨어뜨릴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동자(董子)께서 늠름하게 고개를 드시어, 합하(閤下)께서 승진과 퇴출의 권한을 쥐고 계시니 이 소생이 떨쳐 일어날 가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서로 간절히 만나기를 바라며 소서를 올리는데,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겠습니까? 나아감은 날카롭고 물러남은 빠르니 이치는 본래 그러합니다. 쥐 눈과 여우 눈 같은 모습으로 호랑이와 용이 다투는 땅에서, 다투고 다투며 처음에는 반드시 이겨서 취할 것을 기약하더니, 하나하나 불어대더니 다시 먼저 도망쳐 달아나 버렸습니다. 평생의 수치이니 혀를 차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비록 열 번을 상소하여 수고로움을 잊는다 해도, 후에는 반드시 청운 위의 손님이 될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유한(遺恨)은 옥순(玉筍)의 문생이 되지 못한 데 있습니다. 믿음과 소통이 막히는 것은 모두 때에 달려 있으니, 공명(功名)을 여러 번 놓친 것은 모임의 시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달콤함을 나누고 움츠러드는 것은 형통함과 경사스러움을 갈구함이라, 장백(匠伯)은 저를 재목이 아니라고 여겨 스스로 무용함을 부끄러워합니다. 대인께서는 맑으시며 만물을 포용하시니 어찌 장점을 버리시겠습니까? 공경히 생각건대 합하께서는 상서로운 기린의 뿔과 같으시고, 아홉 가지 위엄을 갖춘 봉황과 같으십니다. 몇 천 년 만에 한유(韓愈)가 나와 문장을 떨쳤듯, 500년 만에 진(陳) 군을 얻어 풍아(風雅)의 오랜 결함을 보충하고 황조(皇朝)의 제작을 윤색하며 우리 도의 회맹을 주장하시니, 자미성(紫微)을 드높이고 무지개를 드리우는 풍채가 사해를 기울게 하고 천궁(天衢)에 복숭아와 오얏나무를 심어 영재들이 한 문에 모이게 하십니다. 무릇 의관을 갖춘 선비들을 보면 반드시 정당하게 예우하며 맞이하실 것입니다. 다시 생각건대 저(某)는 담장을 엿보듯 학문을 닦았으나 여전히 막혀 있고 덕을 사모함은 더욱 깊습니다. 저희 숙부와 백부의 생애로부터 도의(道義)에서 스승의 자질을 얻은 바가 적지 않습니다. 스스로 문학의 가문 후손이라 일컬으며 곧장 나아가 뵙고자 하니, 옹도(雍陶)의 시집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면 또한 만나지 못함을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온화한 얼굴과 너그러운 태도로 넓게 포용하시어, 인자한 이의 가련함을 조금이라도 베풀어 주시고 외로운 생의 몰락함을 굽어 살펴 주십시오. 천 리 길을 달려 기마의 꼬리에 붙어 혹 그 품에 의지할 수 있다면, 죽음이 기러기 털보다 가벼울 것이니 반드시 보답하고자 맹세합니다.

195. 祭復源闍梨文〔原注:代門弟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3D, ITKC_MO_0003A_A001_274A ...

원문

嗚呼。自西方大仙影滅於雙林。吾聖敎墜而寢隳。故薝葍之香。久歇以衰。醍醐之味。亦變以醨。茫然法界。橫目蚩蚩。窒鼻觀而莫齅。燥舌根而莫滋。大救斯弊。其待我師。現比丘之身。當末法之時。上膺付囑。憫然興悲。使香返而復薰。味返而如飴。而微我公挺出應期。高張敎綱。任者爲誰。亦猶堯舜之道。仲尼出而述之。聖賢異代。迭相扶持。有際天之濤。乃可容呑舟之魚。有扶搖之風。乃可負垂雲之翼。況乎負擔如來之法印。豈在尋常之瑣力。公之器局。英偉絶特。三藏大敎。盡貯胸臆。暢微言如玉振。剖奧義如氷釋。皆衆人之莫知。乃熟解而獨得。投我宗門。始肄其跡。高然慧炬。以照昏黑。後學之流。皆仰其德。如乘舟入海。未辨東西。而忽望見其斗極。然而鸞鳳者不可束之以樊籠。常自懷寥廓之雲飛。脫落名檢。振錫而歸。念彼南民。未聞正法。俯與群迷。同修善業。披榛結庵。謁于佛岬。庶類知歸。其踵相接。攀危輦重。紛然帀合。道博器圓。虛中以納。燕坐窮山。名落天下。蓄養於中。有過人者。居不擇乎遐陬僻邑。蓋自知其法無中邊。推我方寸。施及大千。凡聆咳唾之一音者。孰不知善而必遷。朝爲獵夫與漁師。夕則已化而爲賢。繄含靈之蒙賜。在此土以有緣。何遽示於圓寂。乃薪盡而火傳。嗚呼哀哉。施之苟博。報則必篤。聞公之沒。列郡痛哭。遠邇之人。如失眼目。矧伊無狀。早結宿因。幼蒙發藥。善誘諄諄。自違方丈。徒企光塵。將百舍重趼而至。江山杳杳而阻絶。承哀萬里。不覺涕雪。痛之至者。言不能說。欲寄一辭。向風感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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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서방의 대선(大仙)께서 쌍림(雙林)에서 자취를 감추신 이래로, 우리의 성스러운 가르침이 떨어져 쇠퇴하고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자스민 향기가 오래도록 끊겨 쇠락하였고, 제호(醍醐)의 맛 또한 변하여 싱거워졌습니다. 법계는 아득하여 눈을 돌려 보아도 어리석고 멍하며, 코로 관찰하려 해도 냄새를 맡을 수 없고, 혀를 말리려 해도 윤택함이 없습니다. 이러한 폐단을 크게 구제하기를 우리 스승님께서 비구의 몸으로 말세의 때에 나타나셔서, 위로 부촉을 받으셨으니 가련하게도 슬픔이 일어납니다. 향기가 돌아와 다시 향기롭고 맛이 돌아와 다시 달콤하게 하실 분은, 미약하게나마 우리 공(公)께서 응기(應期)에 나타나셔서 높은 가르침의 강령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맡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또한 요순(堯舜)의 도와 같고, 공자(孔子)가 나타나 이를 서술한 것과 같습니다. 성현들이 대를 이어 서로 부축하였듯이, 끝없는 하늘의 물결이 있으면 배를 삼키는 물고기를 수용할 수 있고, 부요하는 바람이 있으면 구름에 걸린 날개를 업고 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여래의 법인(法印)을 짊어지셨으니, 어찌 평범하고 사소한 힘에 달려 있겠습니까? 공의 기국(器局)은 영위하고 탁월하여 삼장대교(三藏大敎)를 모두 가슴속에 담으셨습니다. 미세한 말씀을 펼치심은 옥이 진동하는 듯하고, 깊은 뜻을 나누심은 얼음이 녹는 듯하니, 모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공께서는 깊이 이해하여 홀로 얻으셨습니다. 우리 종문에 투신하여 비로소 그 자취를 익히셨고, 높은 지혜의 횃불로 어두운 밤을 비추셨습니다. 후학의 무리는 모두 그 덕을 우러러보며, 마치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갔으나 동서쪽을 분간하지 못하다가 문득 북극성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난봉(鸞鳳)과 같은 존재는 울타리에 가둘 수 없으니, 항상 광활한 구름을 품고 스스로 날아다니며 명칭과 검속에서 벗어나 지팡이를 휘두르며 돌아가십니다. 저 남쪽 백성들이 정법을 듣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아래로는 미혹된 무리와 함께 선업을 닦고, 덤불을 헤치고 암자를 지어 불교의 요지(佛岬)를 찾아가니, 서둘러 귀의할 줄 아는 무리가 그 뒤를 이어 발자취가 서로 맞닿습니다. 위태로운 곳을 오르고 무거운 가마를 메며 어지럽게 모여드니, 도는 넓고 기량은 원만하여 비어 있는 가운데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산속에 은거하며 천하에 이름을 남기지 않고도 그 가운데 양육하시니, 남보다 뛰어난 분이십니다. 거처함에 있어 멀고 외진 마을을 가리지 않으시니, 이는 스스로 그 법에 안팎이 없음을 아시고 나의 마음을 미루어 대천세계에까지 베푸시는 것입니다. 무릇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소리를 듣는 자가 어찌 선함을 알고 반드시 변화하지 않겠습니까? 아침에는 사냥꾼이나 어부였다가 저녁에는 이미 현자로 화하였습니다. 영험한 중생의 어리석음이 이 땅에 인연이 있어, 어찌 갑자기 원적(圓寂)의 경지에 보이셨습니까? 이에 땔나무가 다하여 불이 전해지듯, 아아, 슬프도다! 베풂이 진실로 넓으셨으니 보답함 또한 반드시 지극해야 합니다. 공의 별세 소식을 들으니 여러 고을에서 통곡하고,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마치 눈과 눈을 잃은 듯합니다. 하물며 보잘것없는 제가 일찍이 숙연한 인연을 맺어 어릴 때 약을 주시며 간곡히 선하게 인도해 주셨는데, 스승의 처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그 빛나는 먼지만을 헛되이 우러러보았습니다. 백여 채의 집을 지나 수많은 발걸음을 옮겨 이르려 하였으나, 강산이 아득하여 길이 끊겼습니다. 만 리 밖에서 슬픔을 전하려니 절로 눈물이 흐릅니다. 슬픔이 지극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한 마디 말을 전하고자 바람을 향해 목이 메어옵니다.

196. 祭金尙書〔原注:莘尹〕文〔原注:代壻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4C

원문

惟靈高標落落。偉節堂堂。爲鳳爲麟爲星爲雲。早作朝廷之瑞。如圭如壁如金如錫。蔚然君子之儀。久鬱經綸之雅志。未升台輔之峻資。奈何時有三空之橫厄。天無一老之憖遺。壑底舟移。人間劍解。嵇侍中之汙血。上惜而留。蕭大保之餘冤。後多爲訟。學者失其矜式。有識莫不咨嗟。嗚呼哀哉。修短之因。古今所惑。顏回善而不必壽。盜跖惡而亦得終。天之報施於人。孰謂能測。道之興廢也命。夫復何言。況於衰季之適遭。實是英雄之不幸。嗚呼哀哉。公之平昔。性固異恒。其於榮悴之交。艱危之際。恬然自處。曾不形言。旣知命而不憂。但忘身而循難。且薰蕕異器。固非闒茸之所容。然玉石俱焚。可歎賢愚之共貫。悵然念此。詎不痛歟。某謬以妄庸。忝聯姻戚。辱郗公之鑑識。才雖愧於羲之。編韓愈之文章。心自慕於李漢。敢陳泂酌。克享至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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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높고 영롱한 표상은 눈부시게 빛나고, 위대한 절개는 당당하였습니다. 봉황과 기린, 별과 구름이 되어 일찍이 조정의 상서로운 징조가 되셨습니다. 규(圭)와 벽(壁) 같고 금(金)과 석(錫) 같으니, 군자의 의례가 울창하였고 경륜을 펼치고자 했던 아담한 뜻은 오래도록 깊었습니다. 재능이 높아서 조정의 보좌(台輔)가 될 만한 준수한 자질을 갖추었으나, 어찌하여 때로는 세 가지 공허한 재앙이 닥쳐왔단 말입니까. 하늘은 한 번의 노련함도 남겨주지 않으셨습니다. 골짜기 밑의 배가 옮겨지고 인간 세상의 칼이 풀리듯, 혜 시중(嵇侍中)의 더러워진 피는 위로 남겨져 아쉬움을 남겼고, 소대보(蕭大保)의 남은 원한은 뒤에 송사가 많아져 배우는 이들이 그 본보기를 잃게 되었으니, 식견 있는 이들 중에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아아, 슬프도다. 삶과 죽음의 길이는 예부터 사람들이 미혹되어 온 것입니다. 안회(顏回)는 선하였으나 반드시 장수하지 못했고, 도척(盜跖)은 악하였으나 또한 끝을 누렸습니다. 하늘이 사람에게 베푸는 보응을 누가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도(道)의 흥망은 명(命)에 달려 있으니, 이에 다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하물며 쇠락한 시기에 마침내 맞닥뜨렸으니, 실로 영웅의 불행이라 할 것입니다. 아아, 슬프도다. 공의 평소 성품은 본래 평범함과 달랐습니다. 영예와 쇠락이 교차할 때나 위태로운 시기에도 담담하게 처신하며 결코 말로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천명을 알아 근심하지 않으셨고, 다만 자신을 잊고 어려움을 따르셨습니다. 또한 향기로운 꽃과 악취 나는 풀이 섞인 그릇과 같으니, 본래 평범한 이들이 용납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옥과 돌이 함께 타버리니,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가 함께 휩쓸려 가는 것이 참으로 탄식스럽습니다. 망연히 이를 생각하니 어찌 아프지 않겠습니까. 저는 미련하고 평범하여 부끄럽게도 인척의 관계를 맺어 치공(郗公)의 식견에 누를 끼쳤습니다. 재주는 비록 희지(羲之)에게 부끄럽고 문장은 한유(韓愈)를 엮기에 부족하나, 마음은 스스로 이한(李漢)을 사모하며 감히 술을 따라 올리니, 부디 지극한 정성을 받으소서.

197. 祭錄事李惟諒文〔原注:代湛之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4D

원문

人之好惡。大異於天。禍仁祐賊。壽虐夭賢。世所共厭。或假之年。欲其久存。晷刻莫延。與奪如是。孰主其權。今子之死。愈怨蒼然。念其英拔。長鬣廣顙。膽大於身。素有蓄養。靑春富貴。士友所望。幼年識子。於其輩行。歲則少我。氣力方壯。一臥遽蛻。奄爾先往。聞訃之夕。若己之喪。方食哽唾。於心悵惘。平生之好。義貫黃壤。豈復相見。笑談抵掌。他時對酒。必憶劉昶。臨使絶域。未由會葬。奠此一巵。來擧勿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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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호오(好惡)는 하늘과 크게 다르다. 재앙은 어진 이를 돕고, 은혜는 도적을 돕는다. 장수는 학대를 받고, 현명함은 일찍 죽는다. 세상 사람들이 공통으로 혐오하는 일이다. 혹은 세월을 빌려 그가 오래 살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해와 달의 흐르는 시간은 늦춰지지 않으니, 주고 빼앗는 것이 이와 같다면 누가 그 권한을 주관하겠는가. 이제 자네의 죽음은 더욱 창연하여, 그 뛰어난 기상을 생각하니, 긴 수염에 넓은 이마를 가졌고 담력은 몸보다 컸으며, 평소에 수양을 쌓아 청춘에 부귀를 누리는 것이 선비 친구들이 바라던 바였다. 어린 시절 자네를 알았을 때, 그 또래들의 행실에 비하면 세월은 나를 적게 하였고 기력은 막 왕성할 때였는데, 한 번 누워 갑자기 허물을 벗듯 떠나버려 갑작스럽게 먼저 가버렸구나. 부고를 들은 밤은 마치 나의 상사(喪事)와 같아서, 밥을 먹다가도 목이 메고 침을 뱉을 수 없었으며, 마음은 슬프고 망연하였다. 평생의 호(好)가 황토 아래 묻혔으니 어찌 다시 만나겠는가. 웃으며 손바닥을 맞대고 담소를 나누던 일을 훗날 술을 마주할 때 반드시 유창(劉昶)을 기억하리라. 먼 곳에 임하여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였으니, 이 한 잔을 올리니 부디 잊지 마라.

198. 祭皇甫源文〔原注:代父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5A, ITKC_MO_0003A_A001_275B

원문

靈奇之性。上天所私。貪取不猒。理必以危。正直之道。陰鬼是憎。躬行必果。合受其凌。卓絶之譽。衆人乃猜。得之大早。宜見其摧。惟此三者。皆汝所有。孰謂其亡。靡不自取。若魯鈍而無能。胡夙離夫厥咎。不然。抱濟世之志而利不及人。有拔萃之才而卒以謫死。包忠裹信。毒中骨髓。念汝英英。門戶所寄。返遭癈黜。今復爲累。飛文之謗。正人之誣。按驗不實。終抵罪辜。溟海茫茫。而以汝踰。群山屹屹。而以汝徂。汝之得疾。復何疑乎。幽憂發內。瘴氣侵膚。遠無兄弟。求醫謁巫。一夕之間。以致云殂。天道無知。忍此翦屠。我將訟冤。叫于帝居。此心未遂。遽棄異區。始聞其訃。絶而復蘇。夢如平生。果有果無。惟造物之所爲。大不均乎厚薄。福則必加乎姦回。禍則必施乎蹇諤。使汝之身乃終流落。窮天下之辭。無以宣其哀。盡海內之口。無以訴其虐。彼貴而且壽。豈在善惡。吾見夫詭誕皆榮。冥頑亦老。固汝所恥。宜賀不弔。愧非上士。情鍾我輩。有酒在壺。手斟以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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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성품은 하늘이 사사로이 내린 것이니, 탐욕스럽게 취하여 만족할 줄을 모르니 이치는 반드시 위태로워진다. 정직한 도를 행하니 음귀가 이를 미워하고, 몸소 행함이 반드시 과단성이 있었으나 그 능멸함을 입게 되었다. 탁월한 명성을 얻으니 사람들이 도리어 시기하였고, 그것을 너무 일찍 얻었기에 마땅히 꺾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오직 이 세 가지가 모두 네가 가진 것이니, 누가 그것이 망했다고 말하겠는가. 스스로 자초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만약 네가 어리석고 무능했다면 어찌 일찍이 그 허물을 떠나왔겠는가. 그렇지 않고 세상을 구제하려는 뜻을 품었으나 이로움이 남에게 미치지 못하였고, 빼어난 재능이 있었으나 끝내 유배지에서 죽었도다. 충성심과 신의를 가득 품었으나 뼈속까지 독이 되었으니, 너의 영특함을 생각하면 문중이 의지하던 바가 허망하게 버려지고 이제 다시 화를 입었구나. 날아다니는 글(비방하는 글)의 비방과 사람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의 모함이 검증해 보니 사실이 아니었으나, 결국 죄와 허물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아득한 바다처럼 망망한데 너는 그곳을 넘어섰고, 첩첩한 산처럼 우뚝 솟아 있는데 너는 그곳을 지나갔구나. 네가 병을 얻었으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속에서 근심이 일어나고 장기(瘴氣)가 피부를 침범하였으며, 멀리 형제도 없으니 의원을 찾고 무당을 찾아갔으나,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천도가 무지하여 어찌 이토록 베고 도살하듯 하는가. 내가 장차 원통함을 호소하며 하늘의 거처에 부르짖으리라. 이 마음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급히 이 세상을 떠났구나. 처음 부고를 들었을 때는 끊어졌다 다시 살아난 듯하였고, 꿈은 평소와 같았으니 과연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엇인가. 오직 조물주가 행하는 바가 두터움과 얇음의 차이가 이토록 불공평하구나. 복은 반드시 간사하고 회유하는 자에게 더하고, 화는 반드시 곧고 강직한 자에게 내리는구나. 네 몸이 끝내 떠돌게 되었으니, 천하의 말로는 그 슬픔을 다 펼칠 길이 없고, 해내의 입으로는 그 학대를 호소할 길이 없도다. 저 귀하고 오래 사는 자들은 어찌 선악에 달려 있겠는가. 나는 허황되고 거짓된 자들이 모두 영화를 누리고, 어리석고 완고한 자들도 늙어가는 것을 보았으니, 이는 진실로 네가 부끄러워할 일이며 마땅히 조문하기를 슬퍼해야 할 일이로다. 상사(上士)가 되지 못하여 너의 정을 내 무리에게 쏟게 하였으니, 호리병에 술이 있으니 손으로 따라 제를 올리노라.

199. 祭安社悅文〔原注:代妹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5C

원문

惟靈孝悌飭躬。敦和備德。早繼父業。居多扁鵲之活人。出分帝憂。無愧士龍之決獄。旣有陰功於二世。宜膺上壽於百年。白眉最良。方號保家之主。黃梁已熟。遽興捐館之悲。況寄他鄕而適亡。玆爲人理之所極。始聞其訃。實愴于心。何天道之無知。在善人而若此。顧爾遺孤之皆幼。又今孀婦之遠居。魂悵悵乎何歸。路茫茫而尙隔。乃令吾息。遣執汝喪。其孔懷急難之情。庶無負幽明之際。王事靡盬。恨非生入於國門。女子有行。莫得親持於葬紼。敢披危懇。聊展菲儀。庶幾如在之靈。歆我由中之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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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영혼이여, 효도와 우애를 다하며 몸을 단정히 하고, 화목함을 두텁게 하여 덕을 갖추었으며, 일찍이 아버지의 업을 계승하였도다. 편작(扁鵲)과 같은 활인(活人)의 경지에 머물렀고, 임금의 근심을 나누어 분담하며 사룡(士龍)과 같이 결옥(決獄)함에 부끄러움이 없었도다. 이미 이 세대에 음공(陰功)을 쌓았으니 마땅히 백 년의 장수를 누려야 했거늘, 백미(白眉)와 같이 가장 뛰어난 자로서 집안을 지키는 주인이 되려 하던 차에, 황량한 들판에 곡식이 익기도 전에 급히 관을 내놓게 되는 슬픔이 일어났도다. 하물며 타향에 기탁하여 살다가 뜻밖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는 참으로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로다. 비보를 처음 듣고 실로 마음이 슬프도다. 어찌 천도(天道)가 이토록 무심하여 선한 사람에게 이와 같이 대할 수 있단 말인가. 돌아보니 남겨진 고아들은 모두 어리고, 또한 과부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혼백은 망연하여 어디로 돌아가야 하며 길은 아득하고 여전히 멀기만 하도다. 이에 나로 하여금 잠시 쉬게 하고 너의 상례를 집행하게 하니, 급하고 어려운 난관을 걱정하는 그 정성이 가히 저승과 이승 사이의 만남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노라. 왕사(王事)가 그치지 않으니, 나라의 문 안으로 들어가 살지 못한 것이 한스럽도다. 여자의 도리를 다하였으나 장례의 절차를 친히 붙잡지 못하였으니, 감히 위태롭고 간절한 마음으로 소박한 예물을 펼치나, 부디 마치 곁에 있는 듯한 영혼이 되어 내가 정성껏 올리는 믿음을 받으소서.

200. 祭李樞密文〔原注:代壻作〕

문체: 哀祭類 / 祭文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5D, ITKC_MO_0003A_A001_276A ...

원문

惟靈靑雲上客。紗籠中人。素窺道義之淵源。深達古今之理亂。大羹玄酒。韓丞相之雄文。紫電白虹。張工部之逸氣。早自結九重之知己。魁然爲一代之宗臣。擢居樞要而摠兵。兼奠禮闈而取士。黃閣淸風一萬古。偉哉經世之功名。玉簪珠履三千人。藹爾出門之英俊。頃者星柝三台而告變。病纏二豎以莫瘳。上眷方深。實遇聖知解於萬世。綸言甚密。使爲朕臥護於六軍。蓋由運命之艱難。益重老成而圖任。方欲矯時流之貪競。故屢飛懇奏以敷陳。憂國雖深。引年而去。功成不處。方退遊於綠野堂。尸解而仙。遽促歸於樂天院。謂仁者之必壽。何哲人之其萎。天不假年。人皆爲痛。乃是蒼生之無福。孰云吾國之有廖。寇準忠明。自有閻羅之交代。李賀才德。必爲上帝之召歸。孤墳峙兮松柏已生。賢閣閉兮塵涘空鎖。錫錢備葬。君王厚爲之辦營。無宅起樓。妻子未免於寒窘。士起山頽之歎。民多巷哭之悲。矧是庸愚。忝聯姻戚。龍移虎去而狐貍舞。空懷永叔之平生。日光玉潔而韶鈞鳴。泣抱昌黎之遺草。何嗟及矣。如可贖兮。敢自力於悃誠。特用陳於菲薄。長號伏地。一訣終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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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영령이시여, 푸른 구름 위의 손님이자 비단 망사 속의 사람이시여. 도의(道義)의 깊은 근원을 맑게 꿰뚫어 보셨고, 고금의 이치와 어지러움을 깊이 통달하셨나이다. 큰 제사와 현묘한 술이 있는 자리에서 한(韓) 승상의 웅장한 문장이 있고, 자전백홍(紫電白虹)과 같은 기세로 장(張) 공부의 일탈한 기개가 있었나이다. 일찍이 스스로 구중(九重)의 지기(知己)를 맺어, 으뜸가는 한 시대의 종신(宗臣)이 되셨나이다. 요직에 발탁되어 요직에 머물며 병력을 총괄하셨고, 예위(禮闈)를 겸하여 인재를 뽑으셨나이다. 황각(黃閣)의 맑은 바람은 만고에 이어질 것이니, 경세(經世)의 공명이 참으로 위대하도다. 옥비녀와 구슬 신발을 신은 삼천 명의 인재 중에서도 그와 같이 영준한 이들이 문밖으로 우러러 나왔나이다. 근래에 별과 북소리가 삼대(三台)에서 변고를 알렸고, 병은 두 가지(二豎)가 얽혀 낫지 않았나이다. 임금의 보살핌이 마침 깊으셨으니, 실로 성현의 지혜를 만세에 풀게 만난 것이었나이다. 윤령(綸言)이 매우 엄중하여, 임금께서 짐의 곁에서 육군을 호위하게 하려 하셨나이다. 대개 운명의 험난함으로 말미암아 노련한 경륜을 더욱 중히 여겨 임무를 맡기려 하셨나이다. 막 시류의 탐욕스러운 경쟁을 바로잡으려 하여, 여러 차례 간곡히 상소를 올려 펼치려 하셨나이다. 우국(憂國)의 마음은 비록 깊었으나, 연로한 나이에 세상을 떠나시니 공을 이루고도 머물지 못하셨나이다. 막 녹야당(綠野堂)에서 은퇴하여 노닐려 하셨는데, 시해(尸解)하여 신선이 되시더니 급히 낙천원(樂天院)으로 돌아가셨나이다. 인자한 이는 반드시 장수한다 하거늘, 어찌 어진 이가 이토록 일찍 쇠락한단 말인가. 하늘이 수명을 빌려주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도다. 이는 곧 창생의 복이 없음이요, 누가 우리 나라에 요(廖)가 있다고 말하겠는가. 구준(寇準)의 충명함은 스스로 염라의 교차(交代)가 있을 것이요, 이하(李賀)의 재덕은 반드시 상제의 부름을 받아 돌아갈 것이로다. 외로운 무덤은 우뚝 솟아 있는데 소나무와 잣나무는 이미 자라났고, 현각(賢閣)은 닫혔는데 먼지 낀 물가에는 빈 채로 잠겨 있도다. 장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錫錢(석전)을 준비하고, 임금께서 두텁게 영(營)을 마련해 주셨으나, 집을 짓고 누각을 세울 겨를이 없었으니 처자식은 가난과 곤궁함을 면치 못하였도다. 선비들은 산이 무너지는 듯한 탄식을 일으키고, 백성들은 골목마다 통곡하는 슬픔이 많도다. 하물며 용이 옮겨가고 호랑이가 떠나니 여우와 너구리가 춤을 추는 형국이라, 영숙(永叔)의 평생을 공허하게 품고 있도다. 햇빛은 옥처럼 깨끗하고 소리(韶鈞)는 울려 퍼지는데, 창리(昌黎)의 유초(遺草)를 붙잡고 눈물 흘리며 품으니, 어찌 탄식하지 않으리오. 만약 속죄할 수 있다면 감히 스스로 정성을 다해 보려 하나, 특별히 보잘것없는 것을 바치나이다. 길게 울부짖으며 땅에 엎드려, 한 번의 작별로 하늘 끝까지 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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惟靈處士孤潔。參軍俊逸。文出月脅。詩聳山骨。八音洋溢。衆彩間發。祥麟一角。瑞鳳五色。時然後出。不可多得。方其起從朱閥。富擅金穴。秦晉成匹。鄭薛爭熱。天衢甚闊。蛙步可達。不以紛華而爲之悅。及乎甘井先渴。文木則泄。萬事瓦裂。一身免脫。居無黔突。行哭窮轍。不以困厄而易其節。於是高歌裂石。神鬼慘怛。幽憤塡臆。雲霓糾結。柳子一鬱。宋公憀慄。嚬呻叫笑。是非得失。一寓筆舌。得以舒洩。不啻如江海之卷蓬勃。金石之破蟋蟀。其辭怪而譎。其思哀以切。至若霜鶻振翮。一上千尺。不足以比其奮激。貞松拂雪。槎牙倚壁。不足以比其勁烈。粉面窺墻。未爲艶點。風檣截海。未爲迅疾。馳騁漢魏。雜以莊屈。其利可以穿札。其巧可以貫蝨。自恃八音之捷。恥作一聯之乞。則其曲肱而有甲乙者。可謂易於俯掇矣。然猶資冠適越。鬻屨與刖。鷁都返躓。蟻封顚蹶。未破由基之楊葉。遽碎龜蒙之潭月。靑春三十。白衣永沒。則夫丹桂之冤憤。其與天地無終畢矣。嗚呼。世皆謂公高視不輟。硬喙莫屈。孔禰恃氣。潘張傲物。此特淸淮之點毫末。白壁之有蟻缺。何足恤哉。有或煌煌赤紱。賤於布葛。皎皎華髮。不如短折。則龜蛇木石。雖久奚益。今公身雖窮而才與星斗相軋。壽雖夭而名將泰華不滅。以此校彼。霄壤可別。某等早遊蘭室。以膠投漆。纔轉般斤。遽失郢質。歌塵已絶。衣霧頓歇。子狂孰和。詩病誰詰。山巨源之酒壚敻隔。向常侍之隣笛悽咽。能不仰天殞涕。繼之以血乎。嗚呼。有肴斯設。有酒斯撥。聊薦一杯。想音容於髣髴。

번역

오직 영특한 처사는 결백하고 고결하였으며, 참군(參軍)은 준수하고 빼어났다. 문장은 달빛 아래의 피리 소리처럼 흘러나왔고, 시는 산의 골격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여덟 가지 악기의 소리는 넘쳐흘렀고, 온갖 채색은 사이사이로 피어났다. 상서로운 기린의 한 뿔과 상서로운 봉황의 다섯 빛깔이 때가 되어서야 나타났으니, 참으로 얻기 어려운 인재였다. 처음에는 명문가에서 일어나 금의옥식의 부를 누리며, 진나라와 진나라의 사절처럼 격을 갖추고 정나라와 설나라의 열기처럼 경쟁하였다. 하늘의 길은 매우 넓어 개구리의 걸음으로도 닿을 수 있을 듯하였으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러나 감천(甘井)이 먼저 마르고 문목(文木)이 쇠하는 지경에 이르러, 만사가 기와가 깨지듯 무너지고 한 몸은 재난을 면하지 못했다. 거처함에는 곤궁함이 있었고, 행차함에는 울음소리가 수레바퀴를 따라갔으나, 곤액을 당했다고 해서 그 절개를 바꾸지 않았다. 이에 높은 노래는 돌을 쪼갤 듯하였으니 신과 귀신도 슬퍼하였고, 가슴속에 맺힌 분함은 구름과 무지개처럼 엉켰다. 버드나무 자식의 한스러운 울음처럼 송공(宋公)은 전율하였고, 신음하며 울부짖었다. 시비와 득실을 오직 붓과 입에 담아, 마치 강해(江海)가 소용돌이치고 금석(金石)이 蟋蟀(실솔)처럼 부서지는 듯하게 펼쳐 놓았다. 그 말은 괴이하면서도 절묘하였고, 그 생각은 슬프면서도 절실하였다. 마치 서리 맞은 매가 날개를 떨치며 한 번 올라가면 천 길 높이에 이르는 것과 같으니, 그 분격함을 비할 길이 없다. 곧은 소나무가 눈을 떨쳐내고, 나무 배가 벽에 기대어 있는 것과 같으니, 그 강렬함을 비할 길이 없다. 분칠한 얼굴로 담 너머를 엿보는 것이 채색을 더하는 것이 아니며, 바람 부는 돛대가 바다를 가로지르는 것이 신속함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한(漢)나라와 위(魏)나라를 달리는 듯하며, 굽히고 펴는 것이 섞여 있으니 그 예리함은 글자를 뚫을 수 있고 그 교묘함은 벼룩을 꿰뚫을 수 있다. 여덟 가지 악기의 재주를 믿고 한 구절의 간청을 부끄럽게 여겼으니, 그 팔을 굽혀 갑을(甲乙)을 만드는 것과 같아 쉽게 집어 들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전히 관(冠)을 쓰고 적월(適越)을 가며, 신발을 팔아 월(刖)에게 주듯 하고, 새가 도심(鷁都)에서 돌아와 발을 헛디디며, 개미가 무덤을 쌓아 뒤집히는 것과 같으니, 유기(由基)의 버들잎을 깨뜨리지 못하고 급히 거몽(龜蒙)의 못에 비친 달을 부수어 버렸다. 청춘 서른에 흰 옷을 입고 영원히 사라졌으니, 단계(丹桂)의 원통함은 천지와 함께 끝이 없을 것이다. 아아, 세상 사람들은 모두 공(公)이 높게 보아 멈추지 않았고, 굳센 입으로 굴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공자와 맹자가 기개를 믿고, 판장(潘張)이 사물을 오만하게 대했다고 하지만, 이는 청회(淸淮)의 털끝을 찍는 것이나 흰 벽에 개미가 파먹은 구멍이 있는 것과 같으니 어찌 슬퍼할 가치가 있겠는가. 혹시라도 찬란한 붉은 관복이 삼베옷보다 천하다면, 희끗희끗한 백발이 짧게 꺾인 것보다 못하다면, 거북과 뱀, 나무와 돌이 비록 오래간다 한들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이제 공의 몸은 비록 궁핍하나 재능은 별들과 맞먹고, 수명은 비록 짧으나 명성은 태화(泰華)에 불멸할 것이니, 이것으로 저들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들은 일찍이 난실(蘭室)에서 노닐며 아교로 칠을 하듯 긴밀히 지냈으나, 겨우 무게를 맞추려던 차에 급히 영질(郢質)을 잃었다. 노래하는 먼지는 이미 끊겼고, 안개 입는 옷은 갑자기 멎었으니, 자광(子狂)과 누가 화답하며 시의 병은 누가 따지겠는가. 산거원(山巨源)의 술집은 아득히 멀어졌고, 상시(常侍)의 이웃에서 피리 소리는 처량하게 울리니, 어찌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쏟으며 피를 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아, 안주가 있으니 차리고, 술이 있으니 따르니, 잠시나마 한 잔을 올리며 그 음성과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 생각하노라.

201. 後序[崔瑀]

문체: 序跋類 / 序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7B

원문

予於人。雖片善必錄。況鉅材也。西河林先生椿。材之鉅者也。平生所綴緝。呑古英豪。不幸而夭於時。寧天於文章。有所嗇而然耶。何其功之不見施於世如此。近聞李大諫眉叟於後輩間。搜得殘槀。編爲六通。雖藏之家。而歉乎無以刻鏤。如鏡之在奩。其光明有未盡於照物者。是可惜也。慮其異日塵蝕埃滅。而不傳于後之人。仍取其本。隨牒齎送西京諸學院。使之勒板。成移上都。附書籍店。廣布而流於世。爲後生規矱云。貞祐十一年壬午仲冬。樞密院使吏兵部尙書上將軍崔瑀。跋。

번역

나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비록 작은 선함이라도 반드시 기록한다. 하물며 거대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서하(西河) 임춘(林椿) 선생은 재능이 매우 거대한 분이셨다. 평생에 엮고 모은 글들은 옛 성현들의 영웅적 기상을 삼킨 듯하였다. 불행히도 시대에 일찍 돌아가셨으니, 어찌 문장에 있어서 무언가 아껴둔 것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겠는가. 어찌 그 공적이 세상에 베풀어지지 못함이 이토록 심하단 말인가. 근래에 듣기로 이대간(李大諫) 미수(眉叟)가 후배들 사이에서 남은 글편들을 찾아내어 6통으로 엮었다고 한다. 비록 집에 소장하고는 있으나, 새겨서 남길 방법이 없어 아쉬워하니, 이는 마치 함 속에 있는 거울이 그 밝음으로 사물을 비추는 데 다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아까운 일이다. 훗날 먼지에 쌓이고 티끌에 덮여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염려되어, 다시 그 원본을 취하여 서경(西京)의 여러 학원에 보내 판각하게 하고, 상도(上都)로 옮겨 서점들에 붙여 널리 유포함으로써 세상에 흐르게 하여 후생들의 규범으로 삼고자 한다. 정우(貞祐) 11년 임오년 중동, 추밀원사(樞密院使) 이병부상장군(吏兵部尙書上將軍) 최우(崔瑀)가 발(跋)을 쓰다.

202. 重刻西河集跋[申維翰]

문체: 序跋類 / 題跋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78B, ITKC_MO_0003A_A001_278C ...

원문

今□上癸巳秋。故高麗西河先生林公文集成。卷凡六。是役也。先生之裔孫再茂以洪陽鎭帥。眡剞劂役卒。今丞相明谷崔公曁趙吏部各爲文而弁其頭已。又授卷於不佞。丐一言而尾之。非謂斯集之傳待余文以也。抑斯集之出。與有故焉。惡敢以不文爲解。嗚呼。天地鬼神。尙能愛林西河集哉。不佞甫離齔。已誦先生名。蓋世之搢紳大夫稱東方藝林。首先生。談古今文章奇數。首先生。五百歲而聞風。何能得牖下之趾。日。寓居嶺之淸道郡。從郡人李生游。觀其櫝中有藏西河集。卽麗朝尙書李眉叟仁老以先生故人。序其集而傳者。字本蒼而古。往往蠹齧其襞已。李遽曰。是卷之出。芒乎异哉。昔在丙申。雲門寺僧印淡於若耶溪旁松石間。夢遇一道士。手指咫尺谽谺云。發此可得希世寶。起而如其言。果有銅塔。高四尺。中貯一銅盎。高半之。又以銅蓋合盎口。封緘密甚。坼之得西河集。集卷猶是也。今其塔與盎。依雲門佛藏。是卷幸而爲吾有云。余旣蹶蹶然驚且歎。試嘗目寓焉。詩若文佹二百有奇。其光栗然。其鋒凜然。節族鏐𤨿然。其斯爲廣陵譜。其斯爲象罔得也。壬辰。余到京師。始與洪陽君邂逅。問西河集梓本安在。曰。亡有。西河公生而坎壈毋所偶。圽而言不集于世。世之貌榮名。堇有二三零句錯落唇牙間。余也弗類。髮今種種矣。所購賞不能一秋毫已而。已而語未究。余以所覩於李生家者與向之李生語語洪陽君。君起爲拜。泣數行下曰。天以西河公弗朽深矣。篇之出且六十載。而子始敎吾。吾今履戎於湖。力足以供鋟梓。命之哉。何敢後時。卽具書屬余往報李生。李生聞之大驩。亡何。致使者取卷而歸。立召匠奏事。舊本爲一部。分而兩之。其缺者訛者若干言。悉存而不補。字樣依舊刊。皆以示重於神授而毋敢毫毛爽也。於是都人士執價而崇之者日千百至。邇鼓舞遠起立。不踁而馳四裔。及聞其所由得狀。亡不灑然改容。激昂長大息者。嗚呼。天地鬼神尙能愛林西河集哉。不佞少讀太史氏書。夫夫固以彼其才。落魄罹殃。至欲述空言而藏之名山大川。希覬夫不必然之境。其敍致胡傷而志胡迂也。夫人之不可恃如此。而吾不能及吾目而詔之。奈何令幽竇中餘光。賈名價於朽骨爲。然至覃精結思。出神入玄。隱然與宰物者同其權。昭乎爛乎。莫與汝爭光。莫與汝爲郵。忽卷而藏。忽闖而發。水不能浸。火不能焦。盜賊不能窺。咸使其造化而已不與知焉。卽空山凈溪黑甜禪夢。與夫區區數赤之銅。獨得人間不傳之寶。凌風雨閱年紀。而莫或墜亡者。彼固無待於先生。而亦非先生意也。然則斯集之成。先生視太史猶賢。豐城之掘而胥合於延津。魯壁之藏而載見於舫頭者。皆是物也。如吾不信。有天地鬼神在。

번역

지금 □ 상 계사년 가을, 고(故) 고려 서하(西河) 선생 임공(林公)의 문집인 『서하집(西河集)』 총 6권이 나왔다. 이 일은 선생의 후손 재무(再茂)가 홍양진수(洪陽鎭帥)로서 판각하는 일을 마쳤다. 지금 승상 명곡(明谷) 최공(崔公)과 조(趙) 이부(吏部)가 각각 글을 써서 그 머리말을 변별하였고, 또 나에게 권수를 주어 한마디 말을 보태어 끝맺어 달라고 청하였다. 이는 이 문집의 전해짐이 나의 글을 기다리기 때문이 아니라, 이 문집이 나온 데에는 연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 감히 문장이 미천함을 핑계로 해명하겠는가. 아아, 천지 귀신이 과연 임서하(林西河)의 문집을 사랑한 것인가. 나는 젖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생의 이름을 외웠다. 세상의 문사(文士)와 대부(大夫)들이 동방의 예림(藝林)이라 칭송하며 선생을 으뜸으로 치고, 고금 문장의 기이함을 논할 때 선생을 으뜸으로 치며, 500년이 지나서도 그 풍문을 듣는데, 어찌 창문 아래에서 그 발자취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영(嶺)의 청도군(淸道郡)에 머물며 군의 사람인 이생(李生)을 따라 유람하다가, 그의 상자 속에 서하집(西河集)이 간직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곧 고려 시대 상서(尙書) 미수(眉叟) 이인로(李仁老)가 선생의 옛 친구로서 그 문집에 서문을 써서 전한 것인데, 종종 좀이 파먹어 그 낱장이 훼손되어 있었다. 이생이 급히 말하기를, “이 권수가 나온 것이 어찌 이토록 기이한가! 옛날 병신년(丙申)에 운문사(雲門寺)의 승려 인담(印淡)이 약야계(若耶溪) 옆 송석(松石) 사이에서 꿈에 한 도사를 만났는데, 도사가 손가락으로 지척을 가리키며 ‘이것을 발굴하면 세상을 드문 보물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깨어나 보니 그 말과 같아서 과연 높이가 4척인 구리 탑이 있었고, 그 가운데 높이가 절반인 구리 항아리가 들어 있었다. 또 구리 뚜껑으로 항아리 입구를 합쳐 봉인하니 매우 밀밀하였다. 그것을 쪼개어 보니 서하집(西河集)이 나왔으니, 이 권수가 나온 것도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지금 그 탑과 항아리는 운문사 불장(佛藏)에 의거한 것이니, 이 권수가 다행히 우리에게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이미 놀라고 탄식하며 눈으로 살펴보니, 시와 문장이 200여 편이 넘는데 그 빛이 번뜩이고 그 날카로움이 서늘하며, 절조가 굳건하고 웅장하였다. 이것은 광릉보(廣陵譜)와 같고, 이것은 상망(象罔)을 얻은 것과 같다. 임진년(壬辰)에 내가 경사(京師)에 이르러 비로소 홍양군(洪陽君)과 우연히 만났기에 서하집(西河集)의 목판본이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없다. 서하공(西河公)은 태어나서 고난을 겪어 뜻을 펼칠 곳이 없었기에, 그 재능을 세상에 모아 문집을 만들지 못했다. 세상에 그 모습과 명성이 겨우 두세 구절 흩어져 입에 오르내릴 뿐이다. 나는 그와 같지 않다.”라고 하였다. 나는 지금 여러 가지로 준비하여 구하고자 하였으나 한 올의 털만큼도 이루지 못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이생의 집에서 본 것과 방금 이생과 나눈 이야기를 홍양군에게 말하니, 군이 일어나 절하며 몇 줄의 눈물을 흘리고 내려와 말하기를, “하늘이 서하공을 불멸하게 하심이 참으로 깊도다. 이 문집이 나온 지 60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자네가 내게 알려주는구나. 나는 지금 호(湖)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으니, 힘을 다해 판각하는 데 보탬이 되리라. 하늘의 명이니 어찌 시기를 늦추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곧바로 글을 써서 나에게 이생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였다. 이생이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였으니 어찌 아니하겠는가. 이에 심부름꾼이 권수를 가지고 돌아가 판각공을 불러 일을 고하였다. 옛본은 한 부였으나 이를 나누어 두 부로 만들었다. 결락된 것이나 잘못된 글자 몇 마디는 모두 그대로 두어 보충하지 않았고, 글자 모양도 예전 그대로 판각하였으니, 모두 이것이 하늘이 내려준 것임을 중히 여겨 조금의 어긋남이라도 없게 하려 함이다. 이에 도성(都城)의 선비들이 값을 치르고 숭상하는 자가 날로 천백 명에 이르니, 근처에서부터 멀리까지 북돋워 일어나는 기세가 멈추지 않고 사방으로 달려 나갔다. 그 유래를 듣고는 모두 깜짝 놀라 안색을 고치고 격앙되어 크게 숨을 몰아쉬는 자들이 있었다. 아아, 천지 귀신이 과연 임서하(林西河)의 문집을 사랑한 것인가. 나는 어릴 때 태사씨(太史氏)의 글을 읽었다. 대개 그들은 재능을 가지고도 낙백하여 재앙을 당하니, 공허한 말을 서술하여 명산대천에 감추려 하고, 필연적이지 않은 경지를 희망하니 그 서술이 어찌 상처가 되고 그 뜻이 어찌 굽이치겠는가. 사람의 믿음직함이 이와 같거늘, 내가 내 눈으로 보고 이를 선포할 수 없었으니, 어찌 유동(幽竇) 속의 남은 빛이 썩은 뼈에 값을 매기게 하였는가. 그러나 깊이 정밀하게 생각하고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니, 은연중에 만물을 다스리는 자와 그 권능을 같이하는 듯하여, 밝고 찬란함이 그대와 빛을 다투지 않고 그대와 우편을 삼지 않는다. 갑자기 권수를 감추었다가 갑자기 드러내니, 물도 침수시키지 못하고 불도 태우지 못하며 도적도 엿보지 못하니, 모두 조화가 그렇게 하게 하였을 뿐이지 알지 못하게 하였다. 곧 빈 산과 맑은 시냇가, 검고 달콤한 선몽(禪夢)이 저 구석진 몇 푼의 구리 조각과 같으니, 홀로 인간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 보물을 얻은 것이다. 비바람을 이겨내고 세월을 지나면서도 떨어지거나 잃어버린 자가 없으니, 이는 본래 선생에게 의지한 것이 아니면서도 또한 선생의 뜻도 아니다. 그러나 이 문집이 이루어진 것은 선생이 태사(太史)를 보아도 어질다 여겼던 것이요, 풍성(豐城)에서 파낸 것이 연진(延津)에서 모두 합쳐진 것이요, 노벽(魯壁)에 감춘 것이 방두(舫頭)에서 다시 나타난 것이니, 모두 이 물건 때문이다. 만약 내가 이를 믿지 않는다면, 천지 귀신이 있다고 하겠는가.

원문

雲門寺在淸道郡虎踞山。若耶溪出寺下。襲故而名焉。李生名夏耇。進士。家近雲門寺。印淡無佗見著。李又爲余言嘗觀銅塔。刻其主淡印字。豈西方敎所稱輪回生理或然與。是爲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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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雲門寺)는 청도군(淸道郡) 호거산(虎踞山)에 있다. 약야계(若耶溪)가 사찰 아래에서 흘러나와 옛 물길을 따라 흐르기에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이생(李生)의 이름은 하구(夏耇)이고 진사(進士)인데, 집이 운문사(雲門寺)와 가깝다. 인장이 담백하여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이생(李生)이 또 나에게 말하기를, 일찍이 구리 탑을 보았는데 그 주위에 담백하게 인자(印字)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서방의 가르침에서 말하는 윤회(輪回)의 이치가 혹시 그러한 것인가? 이를 위해 발(跋)을 쓴다.

원문

甲午暮秋月末。□禮州申維翰。謹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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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甲午年) 늦가을 달말. □ 예주(禮州) 신유한(申維翰)이 삼가 제(題)하다.

203. 西河集跋[林再茂]

문체: 序跋類 / 題跋類

원문 위치: ITKC_MO_0003A_A001_280B, ITKC_MO_0003A_A001_280C ...

원문

嗚呼。此吾先祖西河先生集也。公以又章名於麗代。不幸窮阨早歿。距今五百有餘年矣。其文之見於東文選者。廑二三零句。而若其全編則未之見焉。爲其後裔者。未嘗不私疚於斯矣。去歲春。適遇嶺南人申生維翰於漢師。其人雅好奇。爲余言嘗於淸道郡李生夏耇家。覩林西河集古本一部。盍麗僧淡印盛之以銅盎。藏之干若耶溪傍。迺者雲門寺僧印淡感夢而得之。因爲李所有云。及聞其所由得狀。果知吾先祖不朽之文晦而復顯於今日文明之世矣。盍致之而來。以爲重刊而博布之於遠邇乎。於是遂與諸宗而議之。送人淸道。奉舊卷而還。卷凡六而合爲一冊也。吁。半劫地中之物。宛然如昨。其事甚奇。而淡印印淡之前後藏發者。其亦异矣哉。凡我後裔之所以爲寶者。不翅周序之天球而已。而況且當世名公大家咸歎而奇之。正譌而分編。作序而弁卷。以爲張大之者。亦豈有先於斯集而爲吾宗之盛事乎。不肖〔原注:再茂〕忝守洪陽鎭營。謀以鋟梓。乃於今七月。募匠撝役。閱數月而告訖。不惟後孫羹墻之慕得有所托。亦或有資於浚之尙論君子矣。不肖夙違先業。效力弓馬。卽不敢雕琢曼辭辱置卷末。而敬尸梓役。事與時會。謹錄一二以告吾宗云爾。

번역

아아, 이것은 우리 선조이신 서하(西河) 선생의 문집이다. 공께서는 고려 시대에 우장(又章)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치셨으나, 불행히도 가난하고 곤궁한 처지에서 일찍 돌아가셨으니,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문장이 동문선(東文選)에 실린 것은 겨우 2, 300구뿐이며, 그 전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 후손으로서 이 점에 대해 사사로이 한스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난해 봄, 마침 영남 사람 신유한(申維翰)을 한양에서 만났다. 그 사람은 아취가 있고 호기심이 많아, 나에게 말하기를 일찍이 청도군(淸道郡) 이생하구(李生夏耇)의 집에서 서하(西河) 선생의 문집 고본 한 부를 보았다고 하였다. 어찌 고려의 승려 담인(淡印)이 그것을 구리 항아리에 담아 약야계(若耶溪) 곁에 감추어 두었겠는가. 그런데 이번에 운문사(雲門寺) 승려 인담(印淡)이 꿈을 꾸어 그것을 얻게 되어 이생(李生)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 얻게 된 경위를 듣고 보니, 과연 우리 선조의 불후의 문장이 어두운 가운데 있다가 오늘날처럼 문명이 밝은 세상에 다시 나타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찌 이것을 가져와서 중판(重刊)하여 멀고 가까운 곳에 널리 펴내지 않겠는가? 이에 마침 여러 종사들과 의논하여 청도(淸道)로 사람을 보내 옛 권수를 받아 돌아오게 하였다. 권수는 모두 6권인데 하나로 합쳐 한 권으로 만들었다. 아아, 반 겁의 세월 동안 땅속에 있던 물건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니 그 일이 매우 기이하다. 또한 담인(淡印)이 인담(印淡)의 앞뒤로 감추고 드러낸 것 또한 참으로 기이하도다. 무릇 우리 후손들이 보배로 여기는 까닭은 단지 주서(周序)의 천구(天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하물며 당대의 명공(名公)과 대가(大家)들이 모두 감탄하며 기이하게 여겨, 바로 그것을 나누어 편찬하고 서문을 지어 권수를 변별하며 크게 벌리려 하는 것이 또한 어찌 이 문집보다 앞서 우리 종문의 성대한 일이 있겠는가. 불초(不肖) 〔원주: 재무(再茂)〕가 감히 홍양진영(洪陽鎭營)을 지키며 판각할 것을 도모하다가, 이에 이번 7월에 장인과 역부를 모집하여 수개월 동안 살펴보고 마쳤다. 후손들이 흉장(羹墻)의 사모함을 기탁할 곳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후세의 상론(尙論)하는 군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불초는 일찍이 선업(先業)을 어기고 무예에 힘써왔기에, 감히 미사여구를 다듬어 권말에 부끄럽게 올리지는 못하나, 경건히 판각하는 일을 맡게 되어 때와 일이 맞았기에 삼가 한두 구절을 기록하여 우리 종문(吾宗)에 고할 뿐이다.

원문

今□上殿下卽位之三十九年癸巳九月□日。十四代孫洪陽營將再茂。謹書。

번역

이제 □ 상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39년인 계사(癸巳)년 9월 □일. 14대 손 홍양(洪陽) 영장(營將) 재무가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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