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지 夷堅志/갑지 제2권

1.1.2.5.24 - 이견지 갑지 제2권 - 비석을 되살린 진향과 비석을 없애버린 묘중선

集賢堂 2016. 1. 2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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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을 되살린 진향과 비석을 없애버린 묘중선陳苗二字

  진향(陳珦)은 자(字)가 중옥(中玉)이며, 정주(鄭州: 현재 허난성 정저우시)사람이고, 문혜공(文惠公)의 후손이다. 진향은 정화(政和: 1111~1118년) 연간에 채주(蔡州: 현재 허난성 루난) 태수(太守)가 되었다. 처음 부임할 당시 그는 진공(晋公) 배도(裴度)의 사당에 배알하였다. 사당 안에 '평회서비(平淮西碑: 회서 반란을 배도와 이소평정한 후 당 헌종憲宗의 명으로 승전을 기념하여 세운 비이다. 원래 배도 수하로 회서에 따라갔던 한유韓愈가 썼다)'가 있기에 읽었는데, 단문창(段文昌)이 쓴 것이었다. 

  이상해서 그 지방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가 말하였다.

  "문공(文公) 한유(韓愈)께서 지으신 '평회서비'를 돌에 새긴 후에 이소(李愬)의 군사가 헌종(憲宗)께 상소하였는데, 비문에 이소의 공적은 없고 배도의 공만 찬미하였다고 하여서 다시 헌종이 조서를 내려 단문창이 지은 것입니다. 오래 전 일이지요."

  진향이 분통함을 참지 못하고, 그날로 옛 비석을 갈아버리고, 글 잘 쓰는 사람을 시켜 한유의 문장을 새기게 하였다. 

  묘중선(苗仲先)이라는 사람은 자가 자야(子野)이고, 통주(通州: 현재 허베이성에 속함) 사람으로 서주(徐州: 현재 장쑤성에 속함)의 태수가 되었다. 서주에는 옛날에 동파 소식의 '황루비(黃樓碑)'가 있었는데, 숭녕(崇寧: 1102~1106년) 연간에 당금(黨禁: 당파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이 일어났을 때에 파괴해야 하지만 서주 사람들이 아깝게 여겨 사수(泗水)가 얕은 물 속에 숨겨 두었다. 정화 말기에 당금이 조금 느슨해지자, 비를 꺼내 옛날 있던 곳에 세웠는데, 비석을 때려 부수자는 자들이 많아지고 정 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황루와 관청이 서로 가까웠는데, 묘중선이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비를 끌어다 깊은 못에 던져 버리니,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두 일이 서로 반대되기가 이와 같다. 주신중(朱新仲)이 해준 이야기다.




원문

程珦,字中玉,鄭州人,文惠公諸孫也。政和中,為蔡州守。始視事,謁裴晉公廟,讀《平淮西碑》,乃段文昌所製者,怪而問。邦人曰:“自韓文公碑刻石,後為李愬卒所訴,以為不述愬功,而專美晉公,憲宗詔文昌別撰,事已久矣。”珦忿然不平,即日磨去舊碑,別諉能書者寫韓文刻之。苗仲先者,字子野,通州人,為徐州守。徐舊有東坡黃樓碑,方崇寧黨禁時,當毀,徐人惜之,置諸泗淺水中。政和末,禁稍弛,乃鉤出,復立之舊處。打碑者紛然,敲杵之聲不絕。樓與郡治相連,仲先惡其煩聒,令拽之深淵,遂不可複出。二事相反如此。 (朱新仲說。)


- 군사라고 하였지만, 사실은 이소의 부인이 궁궐에 들어가 한유의 비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고하여, 황제가 한유의 비문을 지우게 하였다고 구당서 한유 열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소의 부인은 唐安公主의 딸이라고 합니다. 


- 한유의 평회서비는 고문진보후집 3권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 단문창段文昌 평회서비平淮西碑







夫五兵之設,本以助文德而成教化,故聖人不專任之。其有桀驁暴邪,幹紀作孽,道德不服,則兵以威之;文誥不諭,則兵以靜之,在禁暴除害而已。自黃帝堯舜,不能無誅;至湯武受命,武功浸盛。其本之以仁義,行之以吊伐,惟帝與王,率由茲道。於戲!創業之君,勞而後定;守文之主,安而忘戰。故三代之衰,功在五伯,未有中葉之後,再安生靈,前古所無,歸於聖代。我唐運之興也,高祖、太宗以仁義之兵,除暴隋之亂,戎功祖武,百代丕承。元宗嚐亦內翦奸邪,外清夷狄。所以繼文之代,協帝之明,既而禍起於微,亂生於理,由是髖髀之眾。結固於兩河,斤斧不用,綿曆於五紀。肅宗、代宗,親翦大憝。且務生育。德宗、順宗,觀於天象,察於人事,以理運未至,沴氣猶凝,運啟升平。以俟後聖。 惟我後握樞出震,端扆向明,考上元之心,思祖宗之意,掃滌區宇,光啟帝圖。不以萬乘為尊,四海為富,遵大禹櫛風之誌,有光武乙夜之勤。以為景擒七國而漢民安,成翦三監而周化洽,焉有患難未去,而德教可興!日者李琳恃近狄之固,劉辟憑坤維之險,李錡保長江之衝,從史資太行之阻,四凶相挺,繼為亂常。三數年間,盡膏鈇锧。太尉茂昭以中山之地,盡室來朝;司空宏正以全魏之邦,舉宗向闕。義風所激,莫不歸心。況彭城從折簡之召,橫海展執珪之覲,向之談虞虢之存亡,議輔車之形勢,莫不刳心斷臂,繼踵為忠。既而麟見於巴賨之間,河清於鄘衛之際,固本根之貺,昭聖祚之符。廓清寰海,兆於此矣。而長淮右地,連山四起,控扼吳楚,密邇轘轅,有上帝濯龍之池,同冀方多馬之國,戈鋋雪照,駔駿雲屯。二姓三凶,憑阻作孽。歲在甲午,吳少誠積禍而斃,餘殃聚於逆嗣,氛祲淮濆。我後方吊人省冤,墾災除穢,猶命使者持節,往申寵賻,以昭柔服之義,示含宏之仁。元濟劫眾拒境,滔天肆逆,剽葉縣,燒舞陽,侵襄城、伊洛之間,騷然震恐。乃詢廷議,咸願假以墨絰,授以兵符。天子淵默以思,霆馳以斷,獨發宸慮,不詢眾謀。漢宣從屯田之議,晉武決平吳之計。至聖不惑,群疑自消。於是會鳧藻之師,得鷹揚之帥。以忠武軍帥李光顏。往者平朔邊,靜庸蜀。雙矛電激,孤劍飆馳,亦猶馮異之總軍鋒,子顏之將突騎,才氣雄武,可掃攙槍。總魏博河陽郃陽凡三軍,自臨穎而前。以河陽軍帥烏重允,當從史內訹邪謀,外阻兵勢,精誠奮發,密應王師,故得虜魏豹於軍中,縛呂布於麾下,識慮中正,可革梟音。益以汝海之地,總朔方義成陝虢劍南西川鳳翔延州寧慶凡七軍,由襄陽而進。宣武帥韓宏,請以子公武領精卒一萬二千,時集洄曲,欒書作帥,針為戎右,充國討虜。卬統支軍,是能從帥之命,成父之誌。又以壽春守李文通,夙精戎韜,累習軍旅,明於守備,可保金湯,總宣武淮南宣歙浙西徐泗凡五軍,扼固始之險。以鄂嶽都團練使李道古,以先曹王皋有任城之武,昔征凶渠,嚐取安陸,授以戎柄,嗣其家聲,乘五關之隘。以唐鄧隨帥李,溫敏能斷,靜深有謀。昔趙孟慕成季之勳,複能霸晉,亞夫紹絳侯之武,亦克擒吳。想其英徽,必有以似。山南東道荊南凡兩軍,自文成而東。乃命禦史中丞裴度,布挾纊之恩,奉如絲之命,以諭群帥。以撫輿師,且以古之會兵,必謀元帥,令歸於一,勢不欲分。命宣武軍帥韓宏為諸道行營都統,假陸遜之鉞,拜韓信之壇,指蹤畫奇正之機,發號申嚴凝之令,然後有司馬之法,成節制之師。而寒暑再罹,賊巢未下。又命內掌樞密之臣梁守謙,肅將天威,盡護諸將,懸白日於千裏,推赤心於萬人。由是甘寧奮升城之勇,君文勵擊郾之誌,焚上蔡以翦其翼,拔郾城以扼其吭。以軒後攻蚩尤之亂,殷宗伐鬼方之罪,周公誅淮夷之叛,雖以聖討逆,皆三年後定。百辟之議,且謂久勞。將決其機,以安海內,複命丞相裴度,擁淮蔡之節,撫將帥之臣,分鄧禹之麾旆,盛竇憲之幕府,四牡業業,於藩於宣。先是光顏、重允、公武,戎旅同心,壘垣齊列,常蛇之勢,首尾相從。胡騎之雄,紛紜縱擊,逐餘孽如鳥雀,獵殘寇似狐狸。幹矛如林,行次於洄曲,丞相之來也。群帥之誌氣逾勵,統制之號令益明,勢如雷霆,功在漏刻。賊乃悉其精騎,以備洄曲之師。唐隨帥李,新總傷痍之軍,稍勵奔北之氣,城孤援絕,地逼勢危,而能養貔虎之威,未嚐矍視,屈鷙鳥之勢,不使露形。是以收文城柵而降吳秀琳,下興橋而擒李祐。祐果敢多略,眾以留之,或謂蓄患,不利吾軍,誠明在躬,秉信不撓,爰命釋縛,授之親兵。祐感慨之心,出於九死。縱橫之計,果效六奇。粵十月既望,陰凝雪飛,天地盡閉。乃遣其將史旻、仇良輔留鎮文城,備其侵軼,命李祐領突騎三千以為鄉導,自領中權三千,與監軍使李誠義繼進,又遣其將田進誠領馬步三千以殿其後。郊雲晦冥,寒可墮指,一夕卷旆,淩晨破關,鋪敦淮濆,仍執醜虜。雖魏軍得田疇為導,潛出盧龍,鄧艾得田章先登,長驅綿竹,用奇制勝,與古為儔。 四紀逋誅,一朝蕩定。攄宗廟之宿憤,致黎庶之大安,周漢以還,莫斯為盛。帝命策勳,進宏為侍中,光顏、重允並為司空,為左仆射,帥山南東道,公武加散騎常侍,節制鄜坊丹延,道古進禦史大夫,文通加散騎常侍,王師獲金爵之賞,環境蒙優複之恩,掩骼埋胔,除瑕宥罪,躋群生於壽域,還比戶於可封。東西南北,無思不服。丞相旋請來朝,後加金紫光祿大夫,封晉國公。乃眷淮濆,烝人生殖,俾擇循吏,撫其疾傷。以宣慰副使刑部侍郎馬總領淮蔡之任,天子議功雲台,追美將帥,俾刻金石,以揚休勳。而百辟僉謀,群帥克讓,推義士之誌,敢貪天功,征賢臣之言,實在君德。於是搢紳之士,暨侯服之臣,上獻鴻名,式昭徽冊,然後光輝千古,聲名百蠻。詔命掌文之臣文昌勒銘淮浦,庶乎閱周雅者,美宣王之中興,觀劍銘者,戒蜀川之恃險。銘曰: 天有肅殺,萬物以成。雷風為令,霜霰為刑。君有武節,四海以寧。陳之原野,阻以甲兵。在昔聖主,格寧邦國。武以禁暴,刑以助德。牧除害馬,農去蟊賊。苟非戎功,孰靜群慝。明明我後,神算精微。九重獨運,千裏不違。宵衣旰食,再安中寓。始翦朔漠,旋梟蜀虜。丹徒鏦濞,白門縛布。服茲四罪,豈勞一旅。淮夷怙亂,四十餘年。長蛇未翦,寰宇騷然。逮於孽童,逆誌滔天。懷柔匪及,告諭罔悛。帝念生人,乃申薄伐。飛將鷹揚,前鋒電發。齋壇命信,靈旗指越。我武惟揚,襖氛未滅。集於洄曲,決戰摧凶。豹略臨晉,維留遝中。桓桓襄帥,奇謀成功。浮罌暗渡,束馬潛攻。合以長圍,絕其飛走。布德滅妖,升城獲醜。商不易肆,農安其畝。洄曲殘兵,投戈束手。帝嘉群帥,賞不逾時。畫社啟封,珪組陸離。洎於蠻貊,服我英威。刻之金石,作戒淮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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