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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전집(東坡前集) 권21(卷二十一) 논 8수

集賢堂 2024. 12.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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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의 동파집에 실린 「형상충후지론(刑賞忠厚之至論)」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 글은 형벌과 상벌의 시행에 있어 인(仁)과 의(義)의 균형, 특히 인(仁)에 무게를 두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논(論)하여 말한다.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성(成), 강(康)의 시대에는 어찌 백성을 이토록 깊이 사랑하고, 백성을 이토록 간절히 염려하며, 천하를 군자와 덕망 높은 어른의 도리로 대하였던가! 한 가지 선행이 있으면 그에 따라 상을 주고, 또 그에 따라 칭송하고 감탄하였으니, 그 시작을 즐겁게 하고 그 마침을 힘쓰게 하려 함이었다. 한 가지 불선이 있으면 그에 따라 벌을 주고, 또 그에 따라 가엾이 여기고 징계하여, 그 잘못을 버리고 새롭게 하려 함이었다. 그러므로 그 탄식하는 소리와 기뻐하는 소리, 슬퍼하는 소리가 우(虞), 하(夏), 상(商), 주(周)의 책에 나타나 있다.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이 세상을 떠난 후, 목왕(穆王)이 즉위하자 주나라의 도는 비로소 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신하 여후(呂侯)에게 명하여 상형(祥刑)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으니, 그 말은 근심하되 해치지 않고, 위엄 있으되 노하지 않으며, 자애로우면서도 결단력이 있고, 무고한 사람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간절하였으므로, 공자(孔子) 또한 이를 취하였다. 전(傳)에 이르기를 “상을 줄지 의심스러울 때는 주는 쪽으로 따르니, 은혜를 넓히기 위함이요, 벌을 줄지 의심스러울 때는 하지 않는 쪽으로 따르니, 형벌을 신중히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요임금 때, 고요(皐陶)가 사사(士師)가 되어 사람을 죽이려 하자, 고요는 “죽이십시오.”라고 세 번 말하고, 요임금은 “용서하십시오.”라고 세 번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은 고요가 법을 집행하는 엄격함을 두려워하면서도 요임금이 형벌을 너그럽게 쓰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사악(四岳)이 “곤(鯀)을 쓸 만합니다.”라고 하자, 요임금은 “안 됩니다. 곤은 명령을 어기고 백성을 해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지만, 이윽고 “시험해 보십시오.”라고 하였다. 어찌하여 요임금은 고요가 사람을 죽이려 하는 것을 듣지 않고 사악이 곤을 쓰려 하는 것을 따랐는가? 그렇다면 성인의 뜻을 또한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죄가 의심스러울 때는 가볍게 하고, 공이 의심스러울 때는 무겁게 하니,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느니 차라리 법도를 어기는 것이 낫다.”라고 하였으니, 아아, 지극하다. 상을 줄 수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다면, 주는 것이 인(仁)에 지나친 것이다. 벌을 줄 수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다면, 벌을 주는 것이 의(義)에 지나친 것이다. 인(仁)에 지나치면 군자가 되는 것을 잃지 않지만, 의(義)에 지나치면 흘러서 잔인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인(仁)은 지나칠 수 있지만, 의(義)는 지나쳐서는 안 된다. 옛날에는 상을 줄 때 작위와 녹봉으로 하지 않았고, 형벌을 줄 때 칼과 톱으로 하지 않았다. 상을 작위와 녹봉으로 하는 것은 상의 도가 작위와 녹봉이 더해지는 곳에만 행해지고, 작위와 녹봉이 더해지지 않는 곳에는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형벌을 칼과 톱으로 하는 것은 형벌의 위엄이 칼과 톱이 미치는 곳에만 베풀어지고, 칼과 톱이 미치지 않는 곳에는 베풀어지지 않는 것이다. 선왕(先王)은 천하의 선행이 상을 주기에는 너무 많고, 작위와 녹봉으로는 다 채울 수 없음을 알았고, 천하의 악행이 형벌을 주기에는 너무 많고, 칼과 톱으로는 다 다스릴 수 없음을 알았으므로, 그러므로 의심스러울 때는 들어서 인(仁)에 귀결시키고, 군자와 덕망 높은 어른의 도리로 천하를 대하였으니,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이끌어 군자와 덕망 높은 어른의 도로 돌아가게 하였으므로, 충후(忠厚)의 지극함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군자가 복이 되면, 어지러움이 곧 그치고, 군자가 노하면, 어지러움이 곧 멈춘다.”라고 하였으니, 무릇 군자가 어지러움을 그치게 하는 데 어찌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그 기쁨과 노여움을 때에 맞게 하여 인(仁)을 잃지 않을 뿐이다. 춘추(春秋)의 의리는 법을 세울 때는 엄하게 하고, 사람을 꾸짖을 때는 너그럽게 한다. 그 포폄(褒貶)의 의리에 따라 상벌을 제정하는 것 또한 충후의 지극함이다. 삼가 논한다.

분석 및 설명:

  • 핵심 주장: 형벌과 상벌을 시행할 때 의(義)보다 인(仁)을 우선시해야 하며, 이를 통해 백성들을 교화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 역사적 사례 인용: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언급하며, 당시의 통치자들이 백성을 어진 마음으로 대했음을 강조합니다. 고요와 요임금의 일화, 곤의 등용 사례 등을 통해 인(仁)의 중요성을 부각합니다.
  • 인(仁)과 의(義)의 균형: 상을 줄지 의심스러울 때는 주고, 벌을 줄지 의심스러울 때는 주지 않는 것이 인(仁)의 실천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죄 없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을 방지하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중시하는 태도입니다. 반면, 의(義)에 치우쳐 과도하게 형벌을 내리는 것은 잔인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계합니다.
  • 상벌의 본질: 작위와 녹봉, 칼과 톱 등의 외형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상벌은 그 효과가 제한적임을 지적합니다. 진정한 상벌은 인(仁)에 기반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 군자의 역할: 군자는 기쁨과 노여움을 적절히 조절하여 인(仁)을 잃지 않아야 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 춘추의 의리: 춘추 시대의 기록을 인용하여 법은 엄격하게 세우되, 사람을 꾸짖을 때는 너그럽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글은 형벌과 상벌의 시행에 있어 단순히 법률적인 기준뿐만 아니라, 통치자의 인(仁)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소식은 인(仁)을 바탕으로 한 통치가 백성들을 감화시키고 사회의 안정을 가져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소식의 동파집에 실린 「중손신명론(重巽申命論)」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 글은 주역(周易)의 손괘(巽卦)를 해석하며, 통치자가 명령을 내리고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중함과 순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논(論)하여 말한다. 옛날 성인이 처음 괘(卦)를 그릴 때, 모두 사물에 배합한 것이 있었다. 손(巽)을 바람에 배합한 것은 그 발(發)하여 움직이는 바가 있기 때문이요, 나무에 배합한 것은 그 어질고 순하기 때문이다. 무릇 발하여 움직이는 바가 있는 것은 어질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순하지 않으면 행해질 수 없으니, 그러므로 발하되 어질고, 움직이되 순해야 손(巽)의 도가 갖추어지는 것이다. 성인은 거듭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고 여겼으므로, 인하여 거듭하여 움직이되 능히 변화하게 하고, 변화하되 궁색하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중손(重巽)으로 명(命)을 펼친다.”라고 말한 것이니, 천자의 호령이 이와 같아야 가한 것이다.

천지의 화육(化育)은 가히 가리켜 말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구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지금 해는 모두 그 따뜻하게 하는 바를 알고, 비는 모두 그 적시는 바를 알고, 우레와 번개는 모두 그 진동시키는 바를 알고, 눈과 서리는 모두 그 죽이는 바를 안다. 바람에 이르러서는 유연히 천지 사이에 펼쳐져, 오는 바를 알지 못하고, 들어가는 바를 알지 못하니, 내쉬면 뜨겁게 하고, 불면 차갑게 하며, 크면 큰 산과 높은 산 위에서 떨치고, 작으면 작은 구멍과 낮은 집 아래로 들어가 만물을 발달시키지만, 천하는 그 덕으로 여기지 않고, 초목을 꺾어 부수지만, 천하는 그 노여움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지의 화육은 구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니, 이는 성인이 법으로 삼아 천하를 다스리는 술책이다.

성인이 위에 있으면 천하의 백성들은 각기 그 직분을 얻는다. 선비는 모두 “나는 배워서 벼슬한다.”라고 하고, 농부는 모두 “나는 밭 갈아 먹는다.”라고 하며, 장인은 모두 “나는 만들어 쓴다.”라고 하고, 장사치는 모두 “나는 짊어지고 판다.”라고 하니, 성인이 명령을 만들어 그 도를 고무하고 통변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에 편안하게 하는 줄을 알지 못한다. 성인이 위에 있는 것은 천하가 따를 수는 있지만 알 수는 없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의논할 수는 없으니, 손(巽)의 도를 얻은 것이다. 역(易)은 성인의 움직임이요, 괘(卦)는 움직이는 때이다. 고괘(蠱卦)의 단사(彖辭)에 “갑(甲) 삼 일 전, 갑 삼 일 후.”라고 하였고, 손괘(巽卦)의 구오(九五)에도 또한 “경(庚) 삼 일 전, 경 삼 일 후.”라고 하였으니, 설(說)하는 자가 말하기를 갑과 경은 모두 명령을 펼치는 바요, 먼저 하고 뒤에 하는 것은 신중함의 지극함이라고 하였다. 성인은 이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 차마 갑자기 죄에 빠지게 하지 못하므로, 삼 일 전에 명령하고, 삼 일 후에 거듭 알리니, 따르지 않은 후에 벌하는 것이니, 그 마음씀의 신중함이다. 지극히 신묘한 변화로 천하에 명령을 내리어 천하로 하여금 그 단서를 헤아리지 못하게 하고, 지극히 자세한 법으로 천하를 깨우쳐 천하로 하여금 피할 바를 분명히 알게 하니, 천하가 그 단서를 헤아리지 못하면서도 피할 바를 분명히 알므로, 휩쓸리듯 서로 이끌어 감히 의논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에서 명령하는데 아래에서 의논하지 않고, 아래에서 따르는데 위에서 벌하지 않으니, 순함의 지극함이다. 그러므로 중손(重巽)의 도는 위아래가 순한 것이다. 삼가 논한다.

분석 및 설명:

  • 핵심 주장: 이 글은 손괘(巽卦)의 의미를 통해 통치자가 명령을 내릴 때 신중함과 백성들의 순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특히, 천지의 운행처럼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통치를 이상으로 제시합니다.
  • 손괘(巽卦)의 해석: 손(巽)은 바람과 나무에 비유되는데, 바람의 움직임과 나무의 순응하는 성질을 통해 통치의 도리를 설명합니다. 바람이 만물을 기르면서도 억지로 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통치자는 백성들을 자연스럽게 이끌어야 합니다.
  • 중손(重巽)의 의미: 손괘가 거듭된 중손(重巽)은 변화와 융통성을 의미합니다. 통치자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며, 백성들이 변화에 잘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 신중한 명령의 시행: 갑(甲) 삼 일 전, 갑(甲) 삼 일 후, 경(庚) 삼 일 전, 경(庚) 삼 일 후의 고사를 인용하여 명령을 내릴 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시행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는 백성들이 명령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 천지의 화육(化育) 비유: 바람의 작용을 통해 천지의 화육을 설명하며, 통치자는 천지의 도를 본받아 백성들을 다스려야 함을 역설합니다. 바람이 만물을 기르면서도 공을 내세우지 않고, 재앙을 가져와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처럼, 통치자는 무위(無爲)의 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 상하 순응의 중요성: 위에서 명령하고 아래에서 따르는 것은 순(順)의 지극함이며, 이는 중손(重巽)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통치자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자발적인 순응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 글은 주역의 철학을 바탕으로 통치의 도리를 논한 것으로, 소식은 신중하고 자연스러운 통치를 통해 백성들의 순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상적인 통치라고 보았습니다. 특히, 백성들을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고 충분히 배려하는 마음으로 명령을 시행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소식의 동파집에 실린 「학사원시 공자종선진론(學士院試 孔子從先進論)」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 글은 군자가 세상에 나아갈 때의 올바른 자세, 특히 공자의 행적을 통해 처음부터 올바른 도(道)를 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논(論)하여 말한다. 군자가 천하에 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 때, 그 처음 나아감이 가장 중요하다. 처음 나아감을 바르게 하였더라도 오히려 바르지 못함으로 이을 수 있는데, 하물며 바르지 못함으로 나아가는 자이겠는가! 옛사람 중에는 그 임금으로 하여금 왕(王)이 되게 하고자 하는 자가 있었고, 그 임금으로 하여금 패자(覇者)가 되게 하고자 하는 자가 있었으며, 그 나라를 강하게 하고자 하는 자가 있었다. 이 세 부류는 그 뜻이 다르므로, 그 방법이 얕고 깊음이 있으며, 그 성공이 크고 작음이 있었다. 비록 그 평생의 행적을 미리 알 수는 없지만, 그 큰 절개는 반드시 처음 나아가는 날에 나타난다. 어째서인가? 그 마음속에 본래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강국으로 나아가면서 능히 패자가 된 자는 없었고, 패자로 나아가면서 능히 왕이 된 자는 없었다.

이윤(伊尹)이 유신(有莘)의 들에서 밭을 갈 때, 그 마음속에 진실로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요순(堯舜)의 임금이 되게 하고, 우리 백성으로 하여금 요순의 백성이 되게 하리라.”라고 하였다. 이윤을 맛있는 음식으로 탕왕(湯王)을 설득한 자로 여기는 것은 전국시대의 책략가들이 자기 기준으로 이윤을 헤아린 것이니, 군자는 이를 싫어한다. 관중(管仲)이 누옥(纍囚) 가운데에서 환공(桓公)을 만났을 때, 그가 말한 것은 진실로 제후들을 모아 융적(戎狄)을 막고자 함이었다. 관중은 환공이 족히 패자가 될 만하다고 헤아렸고, 자기 자신이 족히 패자의 보좌가 될 만하다고 헤아렸으므로, 위로는 과장된 말이 없었고, 아래로는 비굴한 논의가 없었다. 옛사람들은 그 스스로를 아는 것이 이와 같았다.

상앙(商鞅)이 효공(孝公)을 만났을 때, 세 번 설득한 후에 합치되었다. 심하도다, 상앙이 거짓을 품고 술수를 써서 그 임금을 속인 것이! 그가 어찌 스스로 제(帝)가 되고 왕(王)이 될 수 없음을 알지 못했겠는가? 다만 그 형벌과 명분(名分)을 가혹하게 하는 학문이 효공이 따르지 못할까 염려하였으므로, 높은 논의를 만들어 과시하였다. 임금이 이미 이를 따를 수 없게 되자, 그 나라를 들어 오로지 자기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제왕의 큰 계획을 가지고서 매번 만날 때마다 사람을 따라 바꾸었겠는가? 상앙이 진나라에서 끝맺지 못한 것은 그 나아감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인은 그렇지 않으니, 그 뜻이 더욱 크므로, 그 도가 더욱 높고, 그 도가 더욱 높으므로, 그 합치됨이 더욱 어렵다. 성인은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는 것을 마치 갓난아이가 물과 불 가운데 있는 것과 같이 여긴다. 그 임금을 얻어 도를 행하고자 하는 것이 가히 급하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일찍이 합치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낮추지 않았으니, 조금 낮추기 시작하면 그 점차 반드시 쇠퇴하여 크게 무너질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악(禮樂)을 먼저 하는 것은 야인(野人)이요, 예악을 뒤에 하는 것은 군자이다. 만약 쓴다면 나는 먼저 하는 자를 따르겠다.”라고 하였다.

공자(孔子)의 시대에 그 제후와 경대부들은 선왕(先王)의 예악을 마치 모난 것과 둥근 것, 얼음과 숯불이 서로 섞이지 않는 것과 같이 여겼다. 나아가 먼저 예악으로 하였으니, 그 합치되지 않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람은 도로 말하면 성인이요, 세상으로 말하면 야인이다. 무릇 군자로서 공을 세우기에 급한 자는 그렇지 않으니, 합치되지 않았을 때는 먼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하고, 이미 합치되었을 때는 선왕의 예악으로 잇는다. 그 마음은 그러하지만, 그 나아감이 바르지 못하면 능히 바른 것으로 이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러므로 공자는 따르지 않았다. 맹자(孟子) 또한 “한 자를 굽혀 한 길을 얻는 것은 이익으로 말하는 것이다. 만약 이익으로 한다면 한 길을 굽혀 한 자를 얻는 것도 이로울진대 또한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군자가 그 임금을 얻는 것은 이미 그 임금을 헤아리고, 또 그 자신을 헤아린다. 임금이 능히 할 수 있는데 내가 능히 하지 못하면 감히 나아가지 않는 것이요, 내가 능히 할 수 있는데 임금이 능히 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감히 나아가지 않으면서 나아가는 것은 그 임금을 바꾸는 것이요, 할 수 없으면서 하는 것은 그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죄가 있다.

그러므로 군자가 처음 나아갈 때 말하기를 “임금이 진실로 나를 쓴다면 나는 장차 이렇게 하겠소. 임금이 능히 한다고 하면 편안히 받아들이고 사양하지 않을 것이요, 임금이 능히 하지 못한다고 하면 천하에 어찌 나 혼자뿐이겠소!”라고 한다. 사람의 임금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하니, 장차 이 사람을 쓰고자 하면 자기 하고자 하는 바를 알려 주고, 그 능력을 헤아려 책임을 맡긴다. 그 “시험 삼아 써 보고 관찰해 보겠다.”라고 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다. 후세의 군자들은 그 나아감이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으니, 오로지 합치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말하기를 “내가 권도(權道)로 도를 이루겠다.”라고 한다. 이미 도가 끝내 행해지지 않게 되면 “우리 임금이 나를 다 쓰지 못한다.”라고 한다. 처음 그 자신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마침내 그 임금을 비방한다. 이러한 사람은 스스로 군자라고 여기지만, 맹자가 이른바 그 임금을 해치는 자이다. 삼가 논한다.

분석 및 설명:

  • 핵심 주장: 군자가 세상에 나아갈 때는 처음부터 올바른 도(道)를 견지해야 하며, 타협하거나 변절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공자의 행적을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합니다.
  • 나아감의 세 가지 유형: 임금을 왕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 패자로 만들고자 하는 자, 나라를 강하게 하고자 하는 자를 비교하며, 그 뜻과 방법, 결과가 다름을 설명합니다.
  • 역사적 인물 비교: 이윤, 관중, 상앙을 비교하며, 그들의 시작과 끝을 통해 나아감의 중요성을 부각합니다. 특히 상앙의 사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처음부터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 공자의 사례: 공자가 당시의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도를 굽히지 않고 일관되게 주장한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비록 세상과 합치되지 못했지만, 그의 도는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타협의 위험성: 세상과 타협하여 처음에는 뜻을 굽히더라도 나중에 다시 바른길로 돌아설 수 있다는 주장을 비판합니다. 처음의 잘못된 선택은 결국 더 큰 실패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합니다.
  • 군자와 임금의 자세: 군자는 자신의 능력을 헤아려 임금을 선택해야 하며, 임금 또한 신하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기용해야 합니다. 서로를 시험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 권도(權道)의 남용 비판: 도를 이루기 위해 권도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하며, 이는 결국 자신의 잘못을 임금에게 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합니다.

 

소식의 동파집에 실린 「학사원시 춘추정천하지사정론(學士院試 春秋定天下之邪正論)」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 글은 춘추(春秋)의 역할을 논하며, 천하의 사악함과 바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예(禮)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곡량전(穀梁傳)을 지은 자가 말하기를 “천하의 사업을 이루고, 천하의 사악함과 바름을 정하는 데에는 춘추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청컨대 그 말을 인하여 지극히 논해 보겠다. 무릇 춘추는 예(禮)가 사업에 나타난 것이다. 공자(孔子)는 삼대(三代)의 융성함을 논할 때 반드시 예의 크게 이루어짐에 귀결시키고, 그 쇠퇴함은 반드시 예의 점차 폐지됨에 근본을 두었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위와 아래가 예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지위를 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예가 있으면 살고, 예가 없으면 죽는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공자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일찍이 하루도 예를 배우지 않은 날이 없었고, 다른 것을 다스리지 않았다. 이로써 출입하고 행동하니, 어지러운 신하와 강한 임금도 더할 수 없었다. 천하가 능히 쓰지 못함을 알고, 물러나 그 기강과 조목을 다스려 후세의 군자에게 남겼다. 또한 직접 행사에 나타남을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여, 그 갖춤은 있으나 베풀고 조치하는 방법이 없으므로, 이에 노(魯)나라의 사기(史記)를 인하여 춘추를 지었으니, 하나의 판단을 예에 두었다. 무릇 춘추에서 칭찬하는 것은 예에서 긍정하는 것이요, 폄하하는 것은 예에서 부정하는 것이다. 기록에 이르기를 “예는 의심스러운 것을 분별하고, 의혹스러운 것을 밝히며, 주저하는 것을 정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춘추는 하나의 판단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무릇 천하의 사악함과 바름은 군자가 의심하여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 모두 춘추에 이르러 정해진다. 춘추에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에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사공(太史公)이 말하기를 “춘추는 예의 큰 근본이다. 사람의 임금과 아버지가 되어 춘추를 알지 못하는 자는 앞에 참소하는 자가 있어도 보지 못하고, 뒤에 해치는 자가 있어도 알지 못한다. 사람의 신하와 아들이 되어 춘추를 알지 못하는 자는 경전의 일을 지키면서도 그 마땅함을 알지 못하고, 변고를 만나서도 그 권도를 알지 못한다. 무릇 예의의 상실됨이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함에 이르러서는 그 뜻은 모두 선으로 하려 하지만, 그 의를 알지 못하므로, 빈 말에 덮여 감히 사양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무릇 사악함과 바름의 다름은 검은색과 흰색과 같지 않다. 천하의 무릇 군자가 되는 자가 모두 안연(顔淵)과 같고, 무릇 소인이 되는 자가 모두 걸척(桀跖)과 같다면, 비록 춘추가 미약하더라도 천하가 누가 의심하겠는가? 천하가 의심하는 것은 사악함과 바름의 사이이다. 그 정은 사악하지만, 그 자취는 바른 것 같은 것이 있다. 그 정은 바르다고 여기지만, 그 의를 알지 못하여 사악함에 빠지는 것이 있다. 이것이 춘추가 그 사이에서 간곡하게 반복하는 이유이다.

송양공(宋襄公)은 인(仁)에 의심스러운 자요, 진(晉)나라의 순식(荀息)은 충(忠)에 의심스러운 자이다. 양공은 덕을 닦지 않고, 그 백성을 피폐하게 하여 제후에게 구하니, 이 마음이 어찌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의 마음이겠는가? 홀로 전쟁에 이르러서는 “두 번 싸우지 않고, 진을 치지 않은 적을 공격하지 않는다.”라고 하니, 인자의 본질이 있지 않으면서 하루아침에 그 이름을 훔쳐 후세를 속이려 한 것이니, 진실로 춘추가 바로잡지 않는다면 세상의 인을 행하는 자가 서로 이끌어 거짓을 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책에 이르기를 “겨울 11월 을사 초하루에 송나라 임금이 초나라 사람과 홍(泓)에서 싸워 송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춘추의 전쟁을 기록함에 이처럼 자세한 것이 없었다. 군자는 그 패배가 진실로 마땅하다고 여겨 숨기거나 차마 말하지 못할 말이 없었다. 순식이 그 임금을 섬김은 임금이 살아 있을 때는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죽은 후에는 그 사악한 뜻을 이루어 죽었으니, 순식을 충이라고 한다면 무릇 도적에게 충성하고 사사로운 친분에 죽은 자가 모두 충이라고 하는 것이니, 옳겠는가? 그러므로 그 책에 이르기를 “그 대부 순식에 이르러서.”라고 하였으니, 그렇지 않다면 순식은 공보(孔父)의 무리와 같은데, 가히 이름할 수 있겠는가! 삼가 논한다.

분석 및 설명:

  • 핵심 주장: 춘추는 예(禮)의 구현이며, 천하의 사악함과 바름을 판단하는 궁극적인 기준이라는 주장입니다. 특히, 춘추의 기록을 통해 당시의 행위를 예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평가합니다.
  • 예(禮)의 중요성: 공자가 예를 중시한 것을 언급하며, 예는 사회 질서의 근본이며, 인간 관계의 기준임을 강조합니다. 춘추는 이러한 예를 바탕으로 역사를 평가하는 잣대입니다.
  • 춘추의 역할: 춘추는 애매한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춘추의 판단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예에 근거한 도덕적 판단입니다.
  • 송양공과 순식의 사례: 송양공은 인(仁)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백성을 괴롭혔고, 순식은 충(忠)을 행하려 했지만 결국 그릇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사례를 통해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으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으며, 예에 비추어 그 본질을 파악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 춘추의 엄격한 판단: 춘추는 송양공의 패배를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여 그의 위선적인 행위를 비판합니다. 또한, 순식의 행위를 비판적으로 기록하여 충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 태사공의 인용: 태사공의 말을 인용하여 춘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춘추를 알지 못하면 군주와 신하, 부모와 자식의 도리를 제대로 지킬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이 글은 춘추를 단순히 역사 기록이 아닌, 예에 근거한 도덕적 판단의 기준으로 보았습니다. 소식은 춘추를 통해 당시의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겉으로 드러난 행위가 아닌 그 내면의 동기와 예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합니다.

 

소식의 동파집에 실린 「후정통론(後正統論)」 세 수 중 첫 번째인 총론 1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 글은 정통(正統)의 본질에 대해 논하며, 명분(名分)보다 실질(實質)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요순(堯舜)과 같은 성군이 되는 것은 정통의 계승 여부와 관계없이 덕(德)에 달려 있음을 역설합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정통이란 무엇인가? 이름인가? 실질인가? 정통에 대한 설명에 이르기를 “정(正)은 천하의 바르지 못함을 바로잡는 것이요, 통(統)은 천하의 하나 되지 못함을 합치는 것이다.”라고 한다. 불행히도 천자의 실질은 있으나 그 지위가 없고, 천자의 이름은 있으나 그 덕이 없다면, 이 두 사람이 천하에 서 있을 때, 천하가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하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정통에 대한 논의는 결론이 난 것이다. 정통이라는 말은 마치 천하를 소유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이 이름을 얻고 또 이 실질을 가진다면, 무엇을 의논하겠는가? 천하에는 본래 실질은 없으면서 이름을 얻는 자가 있으니, 성인은 이에 어쩔 수 없이 실질로 이름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이름은 마침내 실질을 손상시키지 못하므로, 이름은 가볍고 실질은 무겁다. 실질로 이름을 손상시키지 않으므로, 천하가 다투지 않는다. 이름은 가볍고 실질은 무거우므로, 천하가 실질로 나아간다.

천하에 불초하면서 “나는 현명하다.”라고 말하는 자는 있어도, 천하면서 “나는 귀하다.”라고 말하는 자는 없다. 천하의 다툼은 현명함과 불초함에서 시작되니, 성인은 이를 근심하여 감히 귀함과 천함을 어지럽히지 않으므로, 천하가 현명함이 귀함을 빼앗을 수 없음을 안다. 천하의 귀한 자는 성인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으니, 현명함과 불초함이 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남에게 귀함을 주고, 무겁게 남에게 현명함을 주면, 천하가 그런 후에 귀함이 현명함만 못함을 알고, 현명함이 귀함을 빼앗을 수 없음을 알므로, 다투지 않는다. 귀함이 현명함만 못함을 알므로, 실질로 나아가니, 천하로 하여금 다투지 않고 실질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또한 족하다.

정통은 이름이 있는 곳에 있을 뿐이다. 이름이 있는 곳에 있으면서 그 사람에게 유익함이 없다면, 그런 후에 이름이 가볍다. 이름이 가벼운 후에 실질이 무겁다. 내가 천하의 실질을 무겁게 하고자 하니, 이에 정통을 가볍게 함에서 시작한다. 스스로 얻은 자를 들어 열(十)을 말하니, 요(堯), 순(舜), 하(夏), 상(商), 주(周), 진(秦), 한(漢), 진(晉), 수(隋), 당(唐)이다. 가히 얻을 만한 자 여섯(六)을 들어 가르침을 보존하니, 위(魏), 양(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이다. 요순과 삼대(三代)가 후세의 임금보다 현명한 이유는 모두 정통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후세의 임금이 그 도(道)로써 얻지 않은 자는 또한 요순과 삼대에 비할 바가 없다. 이에 실질이 무겁다.

분석 및 설명:

  • 핵심 주장: 정통은 단순한 명분에 불과하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덕(德)과 능력이라는 주장입니다. 요순과 같은 성군이 되는 것은 정통의 계승 여부가 아니라 개인의 수양과 능력에 달려 있음을 강조합니다.
  • 정통의 정의: 정통을 “천하의 바르지 못함을 바로잡고, 천하의 하나 되지 못함을 합치는 것”이라고 정의하지만, 실질이 없는 명분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 명분과 실질의 비교: 명분은 가볍고 실질은 무겁다고 강조하며, 사람들이 명분에 집착하기보다는 실질적인 덕과 능력을 쌓는 데 힘써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 현명함과 귀함의 비교: 사람들이 귀함보다는 현명함을 추구해야 하며, 현명함은 귀함을 빼앗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명분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맥락과 일치합니다.
  • 역사적 사례의 인용: 요순과 삼대, 그리고 이후의 왕조들을 언급하며, 정통의 계승 여부가 왕조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특히, 요순이 성군이 된 것은 정통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덕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 정통의 경시: 정통을 가볍게 여김으로써 오히려 실질적인 덕과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명분 논쟁에 매몰되지 않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글은 정통이라는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실질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소식의 사상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요순과 같은 성군이 되는 것은 혈통이나 명분이 아닌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주장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명분 논쟁에 일침을 가하고자 했습니다.

 

 

 

소식의 동파집에 실린 「변론(辨論)」 두 번째를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 글은 정통론(正統論)에 대한 논쟁, 특히 구양수(歐陽脩)의 주장을 옹호하고 장재(張載)의 주장을 비판하며, 정통의 본질과 그 적용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펼칩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정통론은 구양자(歐陽子, 구양수)에게서 시작되었고, 패통(覇統)에 대한 주장은 장자(章子, 장재)에게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논의 중 나는 구양자의 의견에 동의하므로, 구양자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장자와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 구양자의 주장이 온전해지면, 나의 주장 또한 그로 인해 더욱 명확해진다. 장자의 주장은 “진(秦)과 양(梁)을 정통으로 세운 것은 잘못되었고, 좋지 못하다. 위(魏)를 정통으로 세운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한다. 이는 장자가 명분과 실질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한 것이다. 무릇 이른바 정통이라는 것은 마치 천하를 소유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름일 뿐이다. 정통은 과연 이름일 뿐인데, 또 어찌 실질을 알겠는가! 천하가 함께 임금으로 섬기는 바를 보고 더할 뿐인데, 또 어찌 다른 것을 알겠는가! 장자는 위나라가 천하를 하나로 통일하지 못했으므로, 정통으로 세워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위나라가 비록 천하를 하나로 통일하지 못했지만, 천하에 위나라처럼 강한 자도 없었고, 오(吳)나라가 비록 존속했지만, 양립할 형세가 아니었으니, 어찌 정통으로 세우지 않겠는가! 장자가 오대(五代)를 끊지 않은 것도 또한 단지 천하에 그와 대적할 자가 없다고 여겼을 뿐이다. 지금 위나라를 끊는다면, 위나라가 어찌 변명하지 않겠는가! 정통은 천하에 임금이 없는 것을 싫어하여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가 비록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더라도, 양립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면, 군자는 차마 임금이 없는 것으로 끊지 못한다. 또 덕이 같고 힘이 균등하면, 신하로 섬기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천하가 불행히도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는데, 덕으로 서로 뛰어넘을 수 없고, 약한 자가 또한 강한 자를 신하로 섬기려 하지 않으니, 이에 정통으로 세우지 않는다면, 또한 천하의 불행을 무겁게 여기고, 신하로 섬기지 않는 자를 돕는 것이다.

장자가 말하기를 “마을 사람도 도둑과 짝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데, 성인이 어찌 찬탈한 임금과 같은 이름을 하겠는가?”라고 한다. 나는 말하겠다. 이 마을 사람과 이 도둑으로 여기는 자는 백성은 모두 백성이요, 선비는 모두 선비요, 대부는 모두 대부이니, 또한 그와 함께 모두 앉아 있겠는가? 진실로 그 형세가 그와 함께 모두 앉아 있지 않을 수 없다면, 마을 사람이 무엇을 부끄러워하겠는가? 성인이 천하를 얻고, 찬탈한 임금도 천하를 얻으니, 그 형세가 그와 같은 이름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성인이 무엇을 부끄러워하겠는가? 나는 성인이 찬탈한 임금을 부끄러워한다고 하겠지만, 찬탈한 임금이 또 어찌 능히 성인을 부끄러워하겠는가!

장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크게 바름에 거처하는데, 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있게 하는 것은 바름과 바르지 못함의 거리가 서로 멀리 떨어지지 못한 것이다.”라고 한다. 또 장자가 이른바 바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 몸의 바름을 바름으로 여기는가? 천하에 임금이 있는 것을 바름으로 여기는가? 한 몸의 바름은 천하의 사사로운 바름이다. 천하에 임금이 있는 것은 천하의 공정한 바름이다. 나는 사사로운 바름을 취하지 않는다. 천하에 임금이 없으면, 찬탈한 임금이 나와서 천하를 다스리니, 탕왕과 무왕이 죽은 후, 내가 어디에서 바름을 취하겠는가. 그러므로 찬탈한 임금은 또한 당시의 바름일 뿐이다.

장자가 말하기를 “할아버지와 손자가 비록 백 살이라도, 아들이 오십 살이면, 아들은 장수했다고 할 수 없다. 한나라와 진나라가 비록 천하를 얻었더라도, 위나라가 하나로 통일하지 못했으면, 위나라는 정통이 있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한다. 나는 말하겠다. 그 형이 마흔 살에 죽으면, 그 아우가 오십 살이면 장수하는 것이다. 아우가 그 형에 대해 장수하는 것은 위나라가 당시의 정통인 것과 같을 뿐이다. 장자는 이를 비유하여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첩을 시어머니라고 하는 것에 비유하였다. 나는 말하겠다. 시아버지는 아내로 여기는데, 며느리가 어찌 홀로 시어머니로 여기지 않겠는가? 첩을 아내로 여기는 것은 시아버지의 잘못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라고 하는 것은 대개 며느리의 죄가 아니다. 천하를 들어 위나라와 진나라에게 주었으니, 이는 또한 한나라와 위나라의 잘못일 뿐이다. 정통으로 세운 자는 홀로 무슨 죄가 있겠는가.

분석 및 설명:

  • 핵심 주장: 정통은 단순한 명분이며, 시대 상황과 실질적인 지배력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장재의 엄격한 정통론을 비판하며, 현실적인 관점에서 정통을 해석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 구양수 옹호 및 장재 비판: 구양수의 정통론을 지지하며, 장재의 주장이 명분과 실질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특히, 위나라를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장재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 정통의 본질: 정통은 단순히 천하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백성들에게 임금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 역사적 사례의 재해석: 위나라, 오나라, 오대 등의 역사를 재해석하며, 정통은 시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위나라가 비록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지만, 당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으므로 정통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 비유를 통한 논증: 마을 사람과 도둑, 형과 아우, 시아버지와 며느리 등의 비유를 통해 장재의 주장을 반박하고 자신의 논리를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특히,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첩을 시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시아버지의 잘못이지 며느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비유는 정통의 부여가 당시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 정통의 상대성: 정통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임을 시사합니다.

이 글은 정통론에 대한 심도 있는 논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소식은 장재의 엄격한 정통론에 맞서 현실적인 관점에서 정통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명분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자신의 사상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앞서 번역한 소식의 동파집 「변론(辨論)」 두 번째의 뒷부분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구양수(歐陽脩)의 정통론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하며, 자신의 주장을 더욱 심화합니다. 핵심은 정통의 가치를 낮춤으로써 오히려 실질적인 덕과 업적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것입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비록 그렇지만, 구양자의 논의는 오히려 나의 주장과 다른 점이 있다. 구양자가 긍정하는 것은 내가 긍정하는 것과 같다. 구양자가 긍정하는 이유는 내가 긍정하는 이유와 같지 않다. 구양자는 긍정하는 것을 중하게 여기고, 나는 긍정하는 것을 가볍게 여긴다. 또 그는 말하기를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이후로 정통이 여러 번 끊어졌고, 얻은 자가 적다. 얻은 자가 적기 때문에 그 이름이 매우 존귀하고 중한 것이다.”라고 한다. 아아, 나는 적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행히 얻은 자가 적기 때문에 그 이름을 존중할 만한 것이 있다. 불행히도 모두 얻었다면, 구양자가 어찌 긍정하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또 그가 중하게 여기면, 찬탈한 임금에게 베푸는 것이 진실로 지나친 것과 같으므로, 장자(章子)가 그 주장을 펼칠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문왕(文王)으로서 평생 얻지 못했는데, 위(魏), 진(晉), 양(梁)이 얻었다면, 과연 그 중함이 그렇다면, 문왕은 장차 위, 진, 양에게 부끄러워할 것이다. 반드시 정통으로 하여금 성인의 성대한 절개가 되지 않게 해야, 얻는 것이 무익하게 된다. 얻는 것이 무익하게 되면, 비록 들어서 찬탈한 임금에게 더하더라도 지나침이 되지 않는다. 문왕이 얻지 못한 바를 위, 진, 양이 얻은 것은 모두 내가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그런 후에 위, 진, 양이 문왕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고, 문왕 또한 위, 진, 양에게 부끄러워할 바가 없다.

분석 및 설명:

  • 구양수와의 차이점: 구양수 역시 위, 진, 양 등의 왕조를 정통으로 인정했지만, 그 이유는 정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반면, 소식은 정통 자체의 가치를 낮추어 논의의 초점을 실질적인 덕과 업적으로 옮기고자 합니다.
  • 정통의 희소성 비판: 구양수는 정통을 얻은 왕조가 적기 때문에 그 가치가 높다고 주장하지만, 소식은 이를 비판합니다. 정통을 얻은 왕조가 많아지면 구양수도 어쩔 수 없이 모두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며, 정통의 희소성이 그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 정통의 과도한 부여 비판: 정통을 지나치게 중시하면 찬탈한 왕조에게도 정통을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장재가 정통론을 비판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 문왕의 사례: 문왕은 성인이었지만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정통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면, 천하를 통일한 위, 진, 양 등의 왕조가 문왕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소식은 이러한 모순을 지적하며, 정통은 성인의 업적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 정통의 무익성 강조: 정통을 “무익한 것”으로 만들어야 찬탈한 왕조에게 부여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정통 논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대신 실질적인 덕과 업적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입니다.
  • 핵심 주장 반복: 문왕이 얻지 못하고 위, 진, 양이 얻은 것은 모두 자신이 가볍게 여기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정통보다 실질이 중요함을 명확히 합니다.

이 부분을 통해 소식은 정통론 논쟁의 핵심을 명분에서 실질로 옮기는 데 성공합니다. 그는 정통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춤으로써, 왕조의 정당성은 혈통이나 명분이 아닌 실질적인 통치 능력과 백성에 대한 공덕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더욱 강력하게 펼칩니다. 이는 형식적인 명분 논쟁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그의 현실주의적인 사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소식의 동파집에 실린 「변론(辨論)」 세 번째의 앞부분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정통(正統)을 얻는 방식과 그 의미를 심층적으로 논하며, 구양수(歐陽脩)와 장재(章載)의 주장을 다시 한번 비교 분석합니다. 핵심은 명분(名分)과 실질(實質)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장재의 주장이 찬탈을 정당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처음부터 끝까지 바름을 얻어 천하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 이 두 가지는 반드시 그 도(道)로써 얻는 것인가? 혹은 그 도로써 얻지 못하는 것인가? 문제점은 혹자가 그 도로써 얻지 못하는 데 있으니, 이에 들어서 이름에 귀결시킨다. 구양자는 모두 정통이라고 하였으니, 이름으로 말한 것이다. 장자는 정통이라고도 하고, 또한 패통(覇統)이라고도 하였으니, 실질로 말한 것이다. 구양자는 이름으로 말하여 오로지 이름에 순수하고, 장자는 실질로 말하였으나 실질을 다하지 못했다.

장자의 뜻은 패통으로 그 실질을 중하게 여기지만, 실질의 가벼움이 패통에서 시작됨을 알지 못한다. 천하의 이름이 모두 실질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진실로 장자의 뜻이다. 천하의 이름이 과연 실질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나는 장자를 성인보다 지나치다고 여긴다. 성인은 어쩔 수 없으면 실질로 이름을 손상시키지 못하지만, 장자는 능히 그렇게 한다. 또 내가 어찌 바름을 얻어 그 자리에 거하는 것이 위나라가 한나라로부터 받고, 진나라가 위나라로부터 받은 것과 같은 바름만 못함을 알지 못하겠는가? 대개 또한 어쩔 수 없음이 있을 뿐이다. 장자의 말과 같다면, 나는 그 갖춤을 구하겠다. 요(堯)와 순(舜)은 덕으로, 삼대(三代)는 덕과 공으로, 한(漢)나라와 당(唐)나라는 공으로, 진(秦)나라, 수(隋)나라, 후당(後唐), 진(晉), 한(漢), 주(周)나라는 힘으로, 진(晉)나라와 양(梁)나라는 시해(弑害)로 얻었다. 위나라를 말하지 않은 것은 장자의 말을 인하여 변론하기 때문이다. 실질로 말하면, 덕은 덕만 못하고, 공은 덕과 공만 못하고, 힘은 공만 못하고, 시해는 힘만 못하니, 요와 순 아래로 통치를 얻은 자는 무릇 네 가지 못함(不如)을 거친 후에 진나라와 양나라에 이른다. 그런데 장자는 천하의 실질이 그 정통과 패통 사이에 다한다고 여긴다.

구양자는 오로지 이름에 순수하므로, 실질이 그치는 바를 알지 못한다. 장자는 실질에 섞여 있으므로, 비록 진나라와 양나라가 임금을 시해한 죄는 천하가 용납하지 않는 악이지만, 그 실질은 도리어 패(覇)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들이 처음 정통의 허명(虛名)을 얻고, 그 실질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죄가 이르는 바이다. 장자는 그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패자이다.”라고 한다. 임금을 시해하고 천하를 얻어도 패자가 되지 않음을 잃지 않는다면, 장자의 주장은 진실로 찬탈하는 자에게 편리하다. 장자가 어찌 임금을 시해한 자가 그 실질이 패에 그친다고 말하겠는가? 대개 이미 그 실질을 들어 이름에 드러내었으니, 비록 다시 죄를 더하려 해도 얻을 수 없다.

분석 및 설명:

  • 정통 획득 방식의 다양성: 정통을 얻는 방식에는 도덕적인 방법(덕, 덕과 공)과 그렇지 않은 방법(공, 힘, 시해)이 있음을 지적하며, 정통이 반드시 도덕적인 방식으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님을 강조합니다.
  • 구양수와 장재의 차이점 재론: 구양수는 정통을 이름(名)의 관점에서, 장재는 실질(實)의 관점에서 논하지만, 둘 다 한계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구양수는 실질을 고려하지 않고, 장재는 실질에만 치우쳐 오히려 혼란을 야기합니다.
  • 장재 주장의 모순 지적: 장재는 패통을 통해 실질을 중시하려 했지만, 오히려 실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합니다. 특히, 시해로 천하를 얻은 왕조에게도 패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찬탈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 역사적 사례의 재해석: 요순, 삼대, 한, 당, 진, 수, 후당, 진, 한, 주, 진, 양 등의 왕조를 언급하며, 각 왕조가 정통을 얻은 방식을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정통의 획득 방식이 다양하며, 도덕적인 방식만이 유일한 기준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 장재 주장의 위험성 강조: 장재의 주장이 시해를 통해 천하를 얻은 왕조에게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찬탈을 막고 도덕적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유학의 기본적인 가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부분은 정통론 논쟁의 핵심 쟁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소식은 명분과 실질의 조화로운 관계를 강조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합니다. 특히, 장재의 주장이 찬탈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며, 도덕적 가치 판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앞서 번역한 소식의 동파집 「변론(辨論)」 세 번째의 뒷부분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왕(王)과 패(覇)의 차이, 그리고 명(名)과 실(實)의 관계를 더욱 심도 있게 논하며, 장재(張載)의 패통론(覇統論)의 문제점을 최종적으로 지적합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무릇 왕자가 죽고, 패자가 천하에 공이 있다면, 나는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에서 그러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반드시 부득이한 경우에 진(秦)나라, 수(隋)나라, 후당(後唐), 진(晉), 한(漢), 주(周)나라가 그것을 얻는다면, 나는 오히려 유감스러워할 것이다. 하물며 그것을 들어 임금을 시해한 사람에게 더하는 것이랴! 아아! 나는 이름을 아끼지 않고 실질을 아낀다. 패자가 왕에 비유되는 것은 형이 아비에 비유되는 것과 같다. 천하의 아비가 일찍이 요(堯)라고 불린 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반드시 요라야만 아비라고 하고, 조금이라도 요만 못하면 형으로 낮춘다면, 고수(瞽)와 곤(鯀)은 종과 첩에 이를까 두려워할 것이다. 천하에 장차 아비를 낮추어 종과 첩에 이르는 자가 있을 것이니, 괴이할 것이 없다. 장자의 주장을 따르는 자는 그 폐단이 진실로 이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이름에 순수함만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로지 이름에 순수하므로, 진나라와 양나라가 천하를 얻은 것은 그 이름이 정통이라고 불리지만, 그 임금을 시해한 실질은 오로지 천하 후세의 사람들이 더하는 바일 뿐이니, 나는 그와 함께 똑같이 헤아리지 않는다. 이에 진나라와 양나라의 악함이 천하에 죄를 다스림을 이기지 못하니, 실질이 이에 도리어 중하지 않다. 장자가 말하기를 “요와 순은 제(帝)라고 하고, 삼대는 왕(王)이라고 하고, 하(夏)나라는 씨(氏)라고 하고, 상(商)나라와 주(周)나라는 인(人)이라고 하니, 옛사람이 그 임금을 가볍게 여기고 중하게 여김이 있었다.”라고 하여 그 패통의 주장으로 삼았다. 성인의 한쪽 끝을 잡고 그 입을 빌리면, 무슨 말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나 또한 장차 말하겠다. 공자(孔子)가 서경(書經)을 편찬하면서, 우(虞), 하, 상, 주를 모두 서(書)라고 하고, 탕왕, 무왕, 백금(伯禽), 진목공(秦穆公)을 모두 서(誓)라고 하였으니, 내가 모두 정통이라고 하는 주장으로 삼으면, 누가 옳지 않다고 하겠는가? 성인은 실질에 있어서 그 이름을 손상시키지 않은 후에 따른다. 제 또한 천자이고, 왕 또한 천자이고, 씨 또한 사람이고, 사람 또한 씨이니, 무슨 이름이 손상되겠는가? 장자가 이른바 패통이라는 것은 이름을 손상시키고 실질을 잃는 것이다.

분석 및 설명:

  • 왕과 패의 비교: 왕은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이상적인 군주이고, 패는 힘과 권모술수로 천하를 다스리는 군주입니다. 소식은 한나라와 당나라처럼 공(功)으로 천하를 얻은 왕조는 패자에 가깝다고 보았고, 시해로 천하를 얻은 왕조는 더욱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 명과 실의 조화 강조: 명분과 실질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실질에만 치우치는 것은 모두 문제점을 야기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상적인 것은 명분과 실질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명분보다 실질을 중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 장재 주장의 폐단 지적: 장재의 패통론은 왕의 기준을 지나치게 높여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모든 군주를 요와 같은 성인과 비교하여 그에 미치지 못하면 가치를 낮추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합니다.
  • 비유를 통한 논증: 아버지와 형의 비유를 통해 장재 주장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모든 아비를 요와 비교하여 그에 미치지 못하면 형으로 낮추는 것은 부당하며, 심지어 종과 첩으로까지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 구양수의 명분론 옹호: 구양수가 정통을 이름에 순수하게 귀결시킨 것은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점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명분을 중시함으로써 시해와 같은 부도덕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성인의 행위 재해석: 공자가 서경을 편찬하면서 다양한 칭호를 사용한 것은 명분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실질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는 명분과 실질의 조화로운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됩니다.
  • 결론: 장재의 패통론은 명분을 손상시키고 실질을 잃는 것이라고 최종적으로 비판하며, 명분과 실질의 조화로운 관계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이 부분은 「변론」의 결론부에 해당하며, 소식의 정통론에 대한 핵심 주장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명분과 실질의 조화, 그리고 시대 상황에 따른 유연한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장재의 주장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이를 통해 형식적인 명분 논쟁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그의 현실주의적인 사상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소식의 동파집에 실린 「사치론(思治論)」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 글은 당시(북송 신종 가우 8년, 1063년) 사회의 세 가지 문제점, 즉 재정 부족, 군사력 약화, 관리 부패를 지적하고,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이 ‘처음부터 제대로 세우지 못함’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지금 천하의 병폐는 무엇인가? 그 시작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그 마침내 이루지 못하는 것이니, 오직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싫어하여 더욱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사람의 감정은 한 번 거행하여 공이 없으면 의심하고, 두 번 하면 게을러지고, 세 번 하면 그만둔다. 지금 세상의 선비들이 서로 돌아보며 감히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충의롭고 강개한 뜻이 없는 것도 아니요, 또한 그 재주와 술책, 모략과 생각이 다른 사람보다 못한 것도 아니니, 어려워서 이루기 어렵다고 괴로워하며 다시 세우려 하지 않는 데 근심이 있다. 그 이루지 못하는 까닭을 알지 못하니, 죄는 세우지 않음에 있다. 진실로 세우면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 세상에는 세 가지 근심이 있어 마침내 없애지 못하니, 그 일어나는 바를 좇으면 오륙십 년이 되었다. 궁실과 도사(禱祠)의 역사가 일어난 이후로, 돈과 화폐, 차와 소금의 법이 무너지고, 더하여 군대의 일이 있으니, 천하가 항상 재물이 없음을 근심한다. 오륙십 년 사이에 아래에서 유세하고 담론하며 모여서 의논하고, 위에서 정치를 바꾸고 명령을 고쳐 재물을 풍족하게 하려 한 것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재물은 마침내 풍족해지지 않는다. 전연(澶淵)의 싸움 이후로 북쪽 오랑캐가 비록 화친을 구했지만, 마침내 그 요점을 얻지 못했고, 그 후에 서쪽 오랑캐의 변란이 더해지니, 변방이 편안하지 못하여 두 나라가 더욱 교만해졌다. 싸우면 이기지 못하고, 지키면 굳건하지 못하니, 천하가 항상 군대가 약함을 근심한다. 오륙십 년 사이에 아래에서 유세하고 담론하며 모여서 의논하고, 위에서 정치를 바꾸고 명령을 고쳐 강한 군대를 구하려 한 것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군대는 마침내 강해지지 않는다. 선거의 제도가 엄격해진 이후로 관리는 법에 얽매여 공명에 뜻을 두지 않고, 고과(考課)하여 관리를 평가하는 법이 무너지니, 현명한 자는 권면할 바가 없고, 불초한 자는 두려워할 바가 없어 천하가 항상 관리가 없음을 근심한다. 오륙십 년 사이에 아래에서 유세하고 담론하며 모여서 의논하고, 위에서 정치를 바꾸고 명령을 고쳐 관리를 선택하려 한 것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관리는 마침내 선택되지 않는다. 재물을 풍족하게 할 수 없고, 군대를 강하게 할 수 없고, 관리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어찌 진실로 할 수 없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그 시작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그 마침내 이루지 못하는 것이니, 오직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싫어하여 더욱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분석 및 설명:

  • 핵심 주장: 당시 사회의 문제점은 단순히 정책의 문제라기보다는 근본적인 문제, 즉 ‘처음부터 제대로 세우지 못함(其始不立)’에 있다는 주장입니다. 시작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 세 가지 문제점: 소식은 당시 사회의 세 가지 주요 문제점으로 재정 부족, 군사력 약화, 관리 부패를 지적합니다.
    • 재정 부족: 궁궐 건축과 제사 등의 과도한 지출, 화폐 및 세법의 문란, 잦은 전쟁 등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항상 부족한 상황을 지적합니다.
    • 군사력 약화: 전연의 맹약 이후에도 북방 민족의 침입이 계속되고, 서하의 침입까지 더해져 국방이 불안한 상황을 지적합니다. 잦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이 강화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 관리 부패: 엄격한 선발 제도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은 법에 얽매여 소극적으로 일하고, 관리 평가 제도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무능한 관리들이 득세하는 상황을 지적합니다.
  • 문제의 근본 원인: 소식은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처음부터 제대로 세우지 못함’에 있다고 진단합니다. 즉,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 임시방편적인 정책만 반복하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 인간 심리 분석: ‘한 번 거행하여 공이 없으면 의심하고, 두 번 하면 게을러지고, 세 번 하면 그만둔다(一舉而無功則疑,再則倦,三則去之矣)’라는 구절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쉽게 포기되는 인간의 심리를 지적합니다.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하는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세움(立)’의 중요성: 소식은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세움(立)’을 강조합니다. 즉,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치론」은 소식이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그 근본 원인을 ‘처음부터 제대로 세우지 못함’에서 찾은 글입니다. 그는 임시방편적인 정책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올바른 방향 설정을 역설합니다.

 

앞서 번역한 소식의 동파집 「사치론(思治論)」의 뒷부분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세움(立)’의 구체적인 의미, 즉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規摹先定)’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고대의 현명한 정치 사례와 당시 정치의 문제점을 비교하여 논지를 전개합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무릇 ‘세움(立)’에서 귀하게 여기는 바는 그 규범과 계획을 먼저 정하는 데 있다. 옛날의 군자는 먼저 그 규범과 계획을 정한 후에 일을 행하였으므로, 그 대응하는 데에도 기한이 있었고, 그 이루는 데에도 형상이 있었다. 뭇사람들은 이를 아득하여 알 수 없다고 여기지만, 군자는 이치의 당연함이라고 여기니, 마치 밥을 지으면 익지 않음이 없고, 씨를 심으면 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그 힘을 들이는 것은 적고 성공하는 것은 빠르다.

옛날에 자태숙(子太叔)이 자산(子產)에게 정치를 물었다. 자산이 말하기를 “정치는 농사와 같으니, 밤낮으로 생각하고, 그 시작을 생각하고 그 마침을 도모하며, 아침저녁으로 행하니, 행함이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음이 마치 농사에 밭두둑이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자산은 생각하지 않고 행하는 것과 무릇 행함이 생각 밖에서 나오는 것은 마치 농사에 밭두둑이 없는 것과 같으니, 그 시작은 비록 부지런하지만, 마침내 반드시 버리게 된다고 여겼다. 지금 저 부유한 사람이 집을 지을 때에도 반드시 먼저 그 재산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집의 크기를 정하니,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후에 훌륭한 목수를 택하여 한 사람을 쓰되, 반드시 그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내가 장차 집 몇 채를 지으려 하는데, 헤아려 쓸 재목은 얼마나 되고, 부릴 일꾼은 몇 명이며, 며칠 만에 이루겠는가? 흙과 돌, 재목과 갈대는 내가 어디에서 취하겠는가?”라고 한다. 그 훌륭한 목수는 반드시 그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어느 곳에 나무가 있고, 어느 곳에 돌이 있으며, 쓸 재목과 부릴 일꾼은 얼마이고, 며칠 만에 이루겠습니다.”라고 한다. 주인은 그 말을 따라 듣는다. 기한에 이르러 이루어지니, 이미 이루어져서 마땅함을 잃지 않는 것은 규범과 계획을 먼저 정한 것이다.

지금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그렇지 않다. 모든 관리들은 위에서 하고자 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사람마다 각각 마음이 다르다. 큰 것을 좋아하는 자는 왕(王)이 되고자 하고, 권세를 좋아하는 자는 패(覇)가 되고자 하며, 구차하게 지내려는 자는 휴식을 원한다. 문관이 이르는 곳에서는 형옥을 다스리고, 재물을 모으는 신하는 재물을 급하게 여긴다. 백성은 그 어디로 따라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 하나의 정치를 펼침에 이르러서는 “시험 삼아 행할 뿐이다.”라고 하니, 그 성공할지 그렇지 못할지는 진실로 알 수 없다. 앞의 정치가 그 이로움과 해로움을 보기도 전에 뒤의 정치가 다시 펼쳐진다. 무릇 지금 이른바 신정(新政)이라는 것은 그 처음의 의론을 들으면 어찌 매우 아름답고 즐겁지 않겠는가. 그러나 천하에 펼쳐 내보내면 마침내 그 마침을 알지 못한다. 어째서인가? 그 규범과 계획을 먼저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쓰고 버리는 것이 좋아하고 싫어함에 매여 있고, 폐지하고 일으키는 것이 무리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만전을 기할 이로움이 작은 불편함으로 인해 폐지되는 것이 있고, 백대의 근심이 작은 이익 때문에 돌아보지 않는 것이 있다. 쓰는 사람은 일정한 책임이 없고, 펼치는 정치는 성과가 없다. 이는 마치 천 리를 가면서 양식을 준비하지 않고, 길에서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것과 같고, 병을 다스리면서 마땅히 써야 할 약을 알지 못하고, 온갖 약을 다 시험하여 하나의 물건 중에서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다. 세 가지 근심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얻을 수 없다.

옛날에 태공(太公)이 제(齊)나라를 다스리고, 주공(周公)이 노(魯)나라를 다스린 것은 수십 세 이후에 이르러 자손의 강하고 약함, 풍속의 좋고 나쁨을 모두 얻어 미리 알 수 있었다. 어째서인가? 그 베푼 것이 오로지 하나였으므로, 그 형세가 진실로 그것을 그렇게 만들 만한 것이 있었다. 관중(管仲)이 환공(桓公)을 보좌하여 처음 정치를 행한 때로부터 패자가 되기에 이르기까지 그 베푼 모든 것이 모두 방법이 있었다. 그 성공에 이르러서는 모두 그 까닭을 알았으니, 지금에 이르러서도 다시 살펴볼 수 있다. 구범(咎犯)이 진(晉)나라에 있고, 범려(范蠡)가 월(越)나라에 있었을 때, 문공과 구천(句踐)이 일찍이 그 백성을 쓰고자 하였으나, 두 신하는 모두 아직 안 된다고 여겼고, 그 쓸 만하다고 여김에 이르러서는 초(楚)나라를 깨뜨리고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기를 마치 그 이웃에 맡겨 두었다가 취하는 것과 같이 하였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밝고 계책이 익었기 때문이다.

분석 및 설명:

  • ‘세움(立)’의 구체적 의미: 앞 부분에서 제시된 ‘세움’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세움’이란 단순히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規摹先定)’을 의미합니다.
  • 계획의 중요성 강조: 모든 일은 시작 전에 명확한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하며, 그래야만 효율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개인의 일뿐만 아니라 국가의 통치에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 자산의 정치론 인용: 자산이 자태숙에게 정치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인용하여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자산은 정치를 농사에 비유하며, 계획 없이 행하는 것은 밭두둑 없이 농사짓는 것과 같다고 지적합니다.
  • 부자의 집짓기 비유: 부자가 집을 지을 때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국가를 다스리는 데에도 철저한 계획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목표, 자원, 일정 등을 미리 정해야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당시 정치의 문제점 비판: 당시 정치는 목표와 계획 없이 임시방편적인 정책만 남발하고, 신정(新政)이라는 이름으로 혼란만 가중시키는 상황을 비판합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성과도 없는 정책들을 비판하며, 이는 마치 양식 없이 천 리를 가거나, 병의 원인도 모른 채 온갖 약을 다 시험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합니다.
  • 고대의 현명한 정치 사례 제시: 태공의 제나라 통치, 주공의 노나라 통치, 관중의 환공 보좌, 구범과 범려의 활약 등 고대의 현명한 정치 사례들을 제시하며, 이들은 모두 철저한 계획과 준비를 통해 성공을 거두었다고 강조합니다.
  • 결론: ‘보는 것이 밝고 계책이 익어야(見之明而策之熟)’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국가 통치 역시 명확한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이 부분은 「사치론」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으며, 소식의 정치 사상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국가 통치에 있어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당시 정치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고대의 현명한 정치 사례들을 통해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을 제시하며, 현실 정치의 개혁을 촉구합니다.

 

 

앞서 번역한 소식의 동파집 「사치론(思治論)」의 마지막 부분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무릇 지금 세상은 또한 현명한 자와 더불어 익히 계책을 세울 뿐이다. 선비들이 다투어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재물을 풍족하게 할 수 있고, 이와 같이 하면 군대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이 하면 관리를 선택할 수 있다.”라고 한다. 나는 그 실행할 수 있는 것을 좇아 계획을 세우고, 용기로써 펼치고, 오로지 함으로써 지키고, 힘씀으로써 통달하여, 밤낮으로 그 계획한 바 안에 합치기를 구하고, 계획한 바 밖에서 나오는 것을 힘쓰지 않는다. 그 사람이 오로지 하고, 그 정치가 하나이면, 이루지 못하는 것은 있지 않다. 재물이 풍족하지 않고, 군대가 강하지 않고, 관리가 선택되지 않는 이 세 가지는 존망이 나오는 바이니, 천하의 큰일이다. 무릇 천하의 큰일로 한 사람이 있어 홀로 맡아 겸하여 말하면, 이 세 가지를 다스리는 방법의 득실을 진실로 알 수 없다. 비록 알 수 없더라도 이 세 가지는 결단코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방법이 없을 수 없다. 그 방법은 알기 어렵거나 듣기 어려운 것이 아니고, 듣기 어렵거나 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고, 행하기 어렵거나 거두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잘 도모하면 이룬다.”라고 하셨다. 잘 도모하고도 이루지 못하면 도모하지 않음만 못하다. 대개 세상에 좋은 칼을 좋아하는 자가 있어 천하의 좋은 쇠를 모아 만들어서 3년 만에 이루고, “내 칼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라고 여기지만, 칼이 이루어지면 날카롭지 않고 부러져서 쓸 수 없다. 어째서인가? 만드는 것은 알지만 거두는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의 일을 거행하는 자는 비록 그 매우 작은 일이라도 이루고자 하는 자는 항상 몇 사람을 넘지 않고, 무너뜨리고자 하는 자는 항상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이룰 만한 공은 항상 나타나기 어렵고, 이루지 못할 모양은 항상 먼저 보인다. 윗사람이 바야흐로 어지럽고 스스로 믿지 못하는데, 또 어찌 겨를이 있어 거두는 데에 이르겠는가!

옛날 사람은 그 지극히 어려운 일을 범하고 그 지극히 먼 것을 도모한 자가 있었으니, 저들은 홀로 무슨 방법인가? 또한 단지 성인뿐만이 아니다. 상앙(商鞅)이 진나라의 법을 변혁한 것은 만인의 노여움을 무릅쓰고, 온 나라의 반대 주장을 물리쳤으니, 형세가 이와 같이 거슬렀다. 소진(蘇秦)이 합종책(合從策)을 행한 것은 천하의 다른 것을 합하여 같게 하고, 여섯 성씨의 소원한 것을 이어서 친하게 하였으니, 계획이 이와 같이 멀었다. 회음후(淮陰侯, 한신)가 고제(高帝, 유방)에게 청하여 3만 명을 구하여 북쪽으로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를 치고, 동쪽으로 제(齊)나라를 치고, 남쪽으로 초(楚)나라의 군량 보급로를 끊고, 서쪽으로 형양(滎陽)에서 모이기를 원하였다. 경엄(耿弇) 또한 세조(世祖, 광무제)에게 말하기를 먼저 어양(漁陽)을 평정하고, 탁군(涿郡)을 취하고, 돌아와 부평(富平)을 거두고, 동쪽으로 제나라로 내려가기를 원하니, 세조는 어긋나서 합치기 어렵다고 여겼다. 이는 모두 남의 나라의 도읍을 넘어서 남의 나라를 도모한 것이니, 공이 이와 같이 소원하였다. 그러나 네 사람은 행하기를 쉬운 것과 같이 하였다. 그 입에서 나오고, 그 손에서 이루어지니, 이미 우리 임금에게 허락받았으면, 직접 거느리고 돌아왔다. 지금 나는 스스로 가진 천하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행하는데, 그 일이 또한 천하의 뜻에 거스르는 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기다린 후에 갖추어지는 것도 아니니, 마치 재물이 있어 스스로 쓰는 것과 같고, 자식이 있어 스스로 가르치는 것과 같을 뿐이다. 그러나 정치가 천하에서 나오는데, 나아가기만 하고 이루어짐이 없는 것이 오륙십 년이 되었다. 이는 어째서인가? 생각건대 나아가는 것은 알지만 거두는 것은 알지 못하는가? 거두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건대 아득하여 거둘 바가 없는가? 그러므로 설을 지어 말하기를 “먼저 그 규범과 계획을 정한 후에 일을 행해야 한다.”라고 한다. 먼저 정하는 것은 남을 도모할 수 있다. 먼저 정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도모함도 항상 부족한데, 하물며 남을 도모함에 있어서랴!

분석 및 설명:

  • 계획, 실행, 마무리의 중요성: 소식은 국가를 다스리는 데 있어 세 가지 핵심 요소, 즉 계획(規摹), 실행(發, 守, 達), 마무리(收)를 강조합니다. 좋은 계획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용기를 가지고 실행하고, 꾸준히 지켜나가며,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거두다(收)’라는 개념은 결과를 관리하고 정책의 효과를 지속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단순히 일을 시작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 공자의 ‘호모이성(好謀而成)’ 인용: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계획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잘 계획하고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계획하지 않음만 못하다는 말은,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 칼의 비유: 좋은 칼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쓸모없게 되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는 ‘거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비유입니다.
  • 당시 정치의 문제점 재확인: 소식은 당시 정치가 계획 없이 시작만 하고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합니다. 이는 윗사람부터 확신이 없고, 반대 세력의 방해가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 고대 성공 사례 재조명: 상앙, 소진, 한신, 경엄 등의 사례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계획과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모두 철저한 계획과 실행력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 ‘선정기규모(先定其規摹)’의 중요성 재차 강조: 소식은 ‘먼저 계획을 세우는 것’이 모든 일의 성공을 위한 기본 조건임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계획이 있어야 자신을 도모할 수 있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단들은 《사치론》의 핵심 주장을 요약하고 있으며, 소식의 정치 사상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국가 통치에 있어 계획, 실행, 마무리라는 세 가지 요소의 조화로운 균형을 강조하며, 당시 정치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고대의 성공 사례들을 통해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을 제시하며, 현실 정치의 개혁을 촉구합니다. 특히 ‘거둠’의 개념을 통해 정책의 지속성과 효과를 강조한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 부분은 소식(蘇軾)의 《사치론(思治論)》의 결론부에 해당하며, 효과적인 통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민심의 중요성과 이를 얻는 방법에 대해 심도 있게 논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현대 한국어 번역과 함께 중요한 내용에 대한 분석 및 설명입니다.

현대 한국어 번역:

또 지금 세상의 풍속에는 근심할 만한 바가 있으니, 사대부들이 조정에 대해 믿고 따르는 것이 돈독하지 않고, 모두 의론하기를 좋아하여 그 윗사람을 비방하는 데 힘쓰니, 사람들로 하여금 옳고 그름에 어지럽게 하여 그 어디를 따라야 할지 알지 못하게 한다. 따르면 일이 거행되어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따르지 않으면 그 행하는 것이 항상 탈이 많고 쉽게 실패한다. 무릇 탈이 많고 쉽게 실패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각각 그 사사로운 뜻을 가지고 해치기 때문이니, 의론이 아래에서 이기고, 성공하지 못함을 바라는 자가 많다. 부유한 사람이 이익을 도모함은 항상 얻으니, 세상 사람들은 복이라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저 부유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믿음이 본래 깊고, 사람들에게 복종함이 본래 두터우니, 하는 바에 해치는 자가 없고, 하고자 하는 바에 비방하는 자가 없으니, 일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무리가 이미 먼저 이루어 놓는다. 무릇 일의 행함에는 형세가 있고, 그 이루어짐에는 기운이 있다. 부유한 사람은 그 형세를 타고 그 기운을 덮치는 것이다. 일이 쉽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먼저 천하에 믿고 따르게 하는 바를 다스려야 한다.

천하의 일은 힘으로 이길 수 없다. 힘으로 이길 수 없다면, 뭇사람을 따르는 것만 같음이 없다. 뭇사람을 따른다는 것은, 많은 사람의 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말하지 않지만 다 같이 그러하다고 여기는 바를 따르는 것이니, 이것이 진실로 뭇사람을 따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입은 진실로 뭇사람이 아니니, 다만 내 귀에 들리고, 내 앞에 접할 뿐이니, 그 사사로운 말이 아닌 것이 없다. 나에게는 뭇사람이지만, 천하에는 적다. 저 뭇사람이 말하지 않지만 다 같이 그러하다고 여기는 것은, 많은 사람의 입이 모두 즐거워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의 입이 즐거워하지 않는 것으로써, 뭇사람이 말하지 않지만 다 같이 그러하다고 여기는 바를 버린다면, 즐거워하는 자는 적고 즐거워하지 않는 자는 많을 것이다. 옛날 사람은 항상 뭇사람을 따름으로써 천하의 마음을 얻었고, 지금의 군자는 항상 뭇사람을 따름으로써 그것을 잃는다. 저 옛날 사람이 그 따르는 바는, 그 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다 같이 그러하다고 여기는 바를 따르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무엇으로 이를 밝힐 수 있는가? 세상에서 이른바 뭇사람을 거슬러 원망을 모아 행할 수 없다고 하는 것 중에, 감원을 행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홀로 돌아보지 않고 행한 지 오륙 년이 되었지만, 천하에 일찍이 한마디 말이 없었다. 어째서인가? 저들의 입은 즐거워하지 않지만, 마음은 다 같이 그러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 다 같이 그러하다고 여기는 바를 좇아 행하면, 만약 오히려 말이 있는 자가 있다면,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설을 지어 말하기를 “용기로써 펼치고, 오로지 함으로써 지키고, 힘씀으로써 통달해야 한다.”라고 한다. 진실로 이 세 가지를 안다면, 우리나라만을 위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비록 북쪽으로 거란(契丹)을 취할 수 있다.

분석 및 설명:

  • 당시 사회의 문제점: 소식은 당시 사대부들이 조정을 불신하고 비판만 일삼는 풍조를 다시 한번 지적합니다. 이는 정책의 효율적인 추진을 방해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 부자의 성공 비유: 부자들이 쉽게 성공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이는 국가가 백성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입니다. 부자는 이미 사회적으로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일을 추진할 때 주변의 협력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진정한 ‘따름(從)’의 의미: 소식은 ‘뭇사람을 따르는 것(從衆)’의 진정한 의미를 제시합니다. 단순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공감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 진정한 ‘따름’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여론의 표면적인 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민심을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감원(減任)의 사례: 감원 정책이 비록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별다른 반발 없이 시행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진정한 민심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통치의 세 가지 요소 재강조: 앞서 제시한 통치의 세 가지 요소, 즉 용기(勇), 오로지 함(專), 힘씀(強)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이 세 가지 요소만 갖춘다면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넘어 외세까지 제압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 결론: 소식은 백성들의 진정한 마음을 얻는 것이 통치의 핵심임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서는 표면적인 여론에 현혹되지 않고, 백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용기, 헌신, 노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 결론부는 소식의 정치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그는 단순히 정책의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진정한 민심을 파악하고 따르는 것이 성공적인 통치의 핵심임을 역설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지도자가 귀 기울여야 할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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