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번역/푸른하늘 문고

가모노 초메이(鴨長明) - 호조키(方丈記)

集賢堂 2024. 12. 24. 04:00
반응형

 

 

방장기 (方丈記)

서문

흐르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본래의 물은 아니다. 여울에 뜨는 물거품은, 이내 사라졌다 다시 맺히기를 반복하며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세상에 있는 사람과 거처 또한 이와 같다. 구슬을 깐 듯한 도성 안에 지붕을 나란히 하고 처마를 다투는, 높고 낮은 사람들의 거처는, 대대로 이어져 다함이 없을 것 같지만, 이것이 정말 그러한가 물으면, 옛날부터 있던 집은 드물다. 어떤 집은 작년에 불타 없어지고 올해 다시 짓고, 어떤 집은 큰 집이 허물어져 작은 집이 된다. 사는 사람 또한 이와 같다. 장소는 변하지 않고, 사람도 많지만, 옛날에 보았던 사람은, 스무 명 서른 명 중에, 겨우 한두 명뿐이다. 아침에 죽고, 저녁에 태어나는 것이, 마치 물거품과 같구나. 알지 못하겠다, 태어나고 죽는 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또한 알지 못하겠다, 이 덧없는 거처에서, 누구를 위해 마음을 괴롭히고, 무엇으로 인해 눈을 즐겁게 하는지. 그 주인과 거처가, 무상함을 다투며 사라지는 모습은, 비유하자면 아침 이슬과 다르지 않다. 혹은 이슬은 떨어지고 꽃은 남아 있다. 남아 있다고는 하나 아침 햇살에 시든다. 혹은 꽃은 시들고, 이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았다고는 하나, 저녁을 기다리지 않는다.

대략 사물의 이치를 알고 난 이후부터, 마흔 해가 넘는 세월을 보내는 동안, 세상의 기이한 일을 보는 것이 자못 잦아졌다. 옛 안겐 3년 4월 28일이었던가, 바람이 거세게 불어 조용하지 않았던 밤, 술시쯤, 도성의 동남쪽에서 불이 일어나 서북쪽으로 번졌다. 마침내 주작문, 대극전, 대학료, 민부성까지 옮겨 붙어,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되었다. 발화 지점은 히구치 부유의 소로인가, 병자를 머무르게 하던 임시 거처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마구 휘몰아치는 바람에 이리저리 옮겨가는 바람에, 부채를 펼친 것처럼 끝이 넓어졌다. 먼 곳의 집은 연기에 질식하고, 가까운 곳은 오로지 불길을 땅에 내뿜었다. 하늘에는 재를 날려 올렸기 때문에, 불빛에 비추어져 온통 붉은빛인 가운데,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진 불길은, 나는 듯이 한두 정을 넘어 옮겨갔다. 그 속의 사람들이 온전한 정신이었겠는가. 어떤 사람은 연기에 질식하여 쓰러지고, 어떤 사람은 불길에 휩싸여 순식간에 죽었다. 혹은 또 겨우 몸 하나 간신히 도망쳤지만, 재물을 꺼낼 겨를이 없었다. 온갖 귀한 보물들이, 모조리 잿더미가 되었다. 그 손실이 얼마나 되었을까. 이때 공경의 집 열여섯 채가 불탔다. 하물며 그 밖의 것은 수를 알 수 없다. 대략 도성 안의 3분의 2에 달했다고 한다. 남녀 죽은 사람이 수천 명, 말과 소 따위는 헤아릴 수 없다. 사람의 일이 모두 허망한 가운데, 그토록 위태로운 도성 안의 집을 짓는다고 재물을 허비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또한 지쇼 4년 4월 29일경, 중의 어문 교고쿠 부근에서, 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6조 부근까지, 몹시 거세게 불었다. 서너 정에 걸쳐 휘몰아치니, 그 안에 있던 집들, 크든 작든, 하나도 부서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마치 납작하게 쓰러진 것도 있고, 기둥만 남은 것도 있다. 또 문 위를 날려, 네다섯 정 밖에 두고, 또 담을 날려, 이웃과 하나가 되게 했다. 하물며 집 안의 보물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지붕 널빤지 따위는, 겨울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 같았다. 먼지를 연기처럼 날려 올렸기 때문에, 전혀 눈을 뜰 수 없었다. 엄청나게 크고 요란한 소리에,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 지옥의 업풍이라고 해도, 이 정도라고 여겨졌다. 집의 손실뿐만 아니라, 이것을 수습하는 사이에, 몸을 다쳐 불구자가 된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이 바람은 서남쪽으로 옮겨가, 많은 사람의 슬픔을 자아냈다. 회오리바람은 항상 부는 것이지만, 이와 같은 일이 있었겠는가. 평범한 일이 아니다. 마땅한 일의 경고인가 하고 의심스러웠다.

 

이 단락은 "방장기"의 서두 부분으로, 세상의 무상함과 재해의 참혹함을 묘사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세상의 무상함: 흐르는 강물과 물거품의 비유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음을 강조합니다. 번성한 도성, 높은 신분의 집, 많은 사람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침에 죽고 저녁에 태어나는 것을 물거품에 비유한 부분은 인생의 허무함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 안겐의 대화재: 안겐 3년에 발생한 대화재의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화재의 발생 원인, 불길의 확산 과정,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 막대한 피해 규모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며 재해의 무서움을 전달합니다. 특히 화재로 인해 재산을 잃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세상의 덧없음을 더욱 강조합니다.
  • 지쇼의 회오리바람: 지쇼 4년에 발생한 회오리바람의 피해를 묘사합니다. 바람의 위력, 집들의 파괴된 모습, 사람들이 입은 피해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자연의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특히 바람으로 인해 집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다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위력을 강조합니다.

이 단락은 "방장기" 전체의 주제인 세상의 무상함을 제시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연의 변화와 재해의 참상을 통해 인간의 삶과 모든 것이 덧없음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특히 강물과 물거품, 아침 이슬의 비유는 무상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되었습니다.

 

같은 해 6월 무렵, 갑자기 도읍을 옮겼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대체로 이 도읍의 시작을 들어보면, 사가덴노(嵯峨天皇) 때 도읍으로 정해진 후 이미 수백 년이 지났다. 달라질 이유가 없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았기에 세상 사람들은 이를 가볍게 여기며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황제를 비롯하여 대신과 공경들이 모두 세츠노쿠니(攝津國) 난바의 도읍으로 옮겼다. 세상을 섬기는 사람들 중 누가 혼자 고향에 남아 있으랴. 관직에 뜻을 두고 주군의 그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옮기려고 애썼다. 때를 놓쳐 세상에 버려진 사람들은 근심하며 남아 있었다. 집들이 서로 다투듯 늘어서 있던 곳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갔다. 집들은 무너져 요도가와(淀川)에 떠내려가고 땅은 눈앞에서 밭이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변하여 오직 안장만 무겁게 여겼다. 소달구지를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남쪽 바다의 소유지를 원하고 북쪽 땅의 장원(莊園)은 탐내지 않았다. 그때, 자연스럽게 일이 있어 츠노쿠니(津國) 지금의 도읍에 이르렀다. 그곳의 모습을 보니 땅이 매우 좁아 조리(條里)를 나누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북쪽은 산에 기대어 높고, 남쪽은 바다에 가까워 낮았다. 파도 소리가 항상 시끄럽고, 짠 바람이 유난히 거세었으며, 궁궐은 산속에 있어 마치 옛날의 목조 건물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날마다 무너져 내려 강물이 막히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집들을 어디에 지을 수 있겠는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은 많고, 지어진 집은 적었다. 옛 도읍은 이미 황폐해졌고, 새 도읍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마치 떠도는 구름처럼 생각했다.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땅을 잃어 슬퍼하고, 이제 옮겨와 사는 사람들은 토목 공사의 어려움을 한탄했다. 길가를 보면 수레를 타야 할 사람이 말을 타고, 관복을 입어야 할 사람이 헝겊옷을 입고 있었다. 도읍의 모습이 순식간에 변하여 단지 초라한 무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는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조짐이라고 들었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이 뒤숭숭해지고 사람들의 마음도 안정되지 못하여 백성들의 기쁨은 결국 헛된 것이었다. 같은 해 겨울, 다시 이전의 도읍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무너져 버린 집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 예전처럼 다시 지어지지 않았다. 옛날 훌륭한 시대에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해 들었다. 곧 궁궐에 억새를 덮고 처마도 제대로 손보지 않았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제한된 음식만을 허락했다고 한다. 이는 백성을 사랑하고 세상을 구하려 했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의 모습을 옛날에 비추어 알 수 있다.

 

  • 갑작스러운 천도: 사가덴노 때부터 수백 년간 유지되었던 수도가 갑작스럽게 난바(현재의 오사카)로 옮겨지면서 사회 전반에 큰 혼란이 발생합니다.
  • 혼란과 고통: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히 하층민의 고통이 두드러지게 묘사됩니다.
  • 변화된 풍경: 수도의 모습은 급격하게 변하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도 달라집니다.
  • 옛 시대와의 대비: 옛 현명한 임금의 시대에는 백성을 어여삐 여기고 검소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여줍니다.

 

또 요와(養和)의 해인가 보구나. 오래되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2년 동안 세상이 굶주려 몹시 비참했다. 봄여름에는 가뭄이 들고, 가을겨울에는 큰 바람과 큰 물 등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되어 곡식이 전혀 자라지 않았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모종을 심었지만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저장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땅을 버리고 고을을 떠나거나 집을 잊고 산으로 들어갔다. 온갖 기도를 드리고 별난 법들을 행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옛날 수도의 풍습으로 볼 때 모든 것은 농촌에 의존하는데, 농촌에서 올라오는 것이 전혀 없으니 귀족들도 먹을 것을 만들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온갖 보물들을 마치 한쪽으로 버리듯 했지만 받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돈을 가볍게 여기고 곡식을 무겁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길가에는 구걸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지난해도 이렇게 힘들게 보냈는데, 올해는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심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모습이 마치 마른 못에 있는 물고기 떼와 같았다. 결국에는 짚신을 신고 발을 끌며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집집마다 구걸하며 다녔다. 그렇게 비참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곧 쓰러져 죽었다. 길가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다. 버릴 수도 없어 썩는 냄새가 세상에 가득하고 썩어가는 모습이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물며 강가에는 수레가 다닐 만한 길조차 없었다. 땔나무를 해오는 사람도, 산도, 힘이 다하여 땔감조차 귀해지니,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은 스스로 집을 허물어 시장에 내다 팔지만, 한 사람이 내다 판 값은 하루 목숨을 이어가기에도 부족하다고 한다. 이상한 일은, 이런 땔나무 속에서 금박, 은박 등이 여기저기 붙어 보이는 나무 조각들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알아보니 할 수 없는 일에 부닥친 사람들이 옛 절에 가서 불상을 훔치고, 당의 기물을 부수어 나누어 가졌던 것이다. 혼탁하고 악한 세상에 태어나 이런 비참한 일을 보게 되다니.

 

  • 기근의 원인: 가뭄, 큰 바람, 큰 물 등 자연재해가 겹쳐 오곡이 흉작을 이루어 기근이 발생합니다.
  • 기근의 참상: 백성들은 땅과 집을 버리고 떠돌아다니며,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합니다. 시체의 부패로 인한 악취와 끔찍한 광경이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 사회의 혼란: 물물교환의 질서가 무너지고, 도둑질이 만연하는 등 사회 질서가 붕괴됩니다. 심지어 절의 불상까지 도난당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 고통과 절망: 백성들의 고통과 절망이 극적으로 표현되며, 당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들은 그리움이 더하여 마음이 깊은 아이일수록 먼저 죽었다. 그 이유는 자신을 먼저 희생하고 부모든 형제든 간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얻은 것을 먼저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 간에는 당연한 일이어서 부모가 먼저 죽었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고 누워 있는 줄도 모르고 어린 아이가 젖을 빨며 잠든 경우도 있었다. 닌나지(仁和寺)의 지존인(慈尊院)의 대장경 류교호인(隆曉法印)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많은 스님들에게 부탁하여 죽은 사람의 이마에 아(आ)자를 쓰고 사자와의 인연을 맺어 주는 의식을 행했다. 그 수를 세어보니 4,5개월 동안 계산한 결과, 서울의 일조부터 남쪽, 구조부터 북쪽, 경극에서 서쪽, 주작에서 동쪽까지 길가에 있는 시체가 모두 4만 2천 3백여 구였다. 하물며 그 전후로 죽은 사람이 많아 강가, 백하, 서경 등 온갖 변방을 다 합치면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여러 쿠니와 칠도는 어떠했겠는가. 가까이는 스토쿠인(崇徳院)의 시대, 조쇼(長承)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지만 그 시대의 상황은 알 수 없다. 직접 눈으로 보니 매우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또한, 겐랴쿠(元暦) 2년(1185년) 경 큰 지진(おほなゐ)이 일어났다. 그 모습은 세상의 이치를 벗어났다. 산이 무너져 강을 메우고, 바다가 솟아올라 육지를 덮었다.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아올라 골짜기에 흘러들고, 해변을 달리던 배는 파도에 떠밀려 다녔으며, 길을 가던 말은 발을 붙일 곳을 잃고 헤매었다. 하물며 도읍 주변에는 사찰과 묘탑 하나 온전한 것이 없었다. 무너지거나 부서진 사이에 먼지와 재가 솟아올라 마치 큰 연기 같았다. 땅이 흔들리고 집이 무너지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 같았다. 집 안에 있으면 갑자기 집이 무너질 듯 했다. 밖으로 뛰쳐나가면 또 땅이 갈라졌다. 날개가 없으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고, 용이 아니면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두려움 속에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단지 지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중 어떤 무사의 외아들이 여섯 살이나 일곱 살 정도 되었는데, 담장 아래 작은 집을 짓고 쓸데없는 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갑자기 무너져 매몰되어 온몸이 납작하게 깔리고 두 눈만 조금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부모가 안고 소리 없이 슬퍼하는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게 보였다. 자식에 대한 슬픔에 굳센 사람도 부끄러움을 잊는다는 것을 느끼고,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무서운 일은 얼마 안 가 멈추었지만 그 여파는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의 지진이 이십삼십 번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열흘 스무 날이 지나자 조금씩 잦아들어 때로는 네다섯 번, 두세 번, 혹은 하루에 한두 번, 이삼일에 한 번 등 대체로 그 여파가 약 석 달 정도 지속되었다. 물, 불, 바람은 항상 해를 끼치지만 땅은 특별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옛날 사이코(齊衡) 때 큰 지진이 일어나 도다이지(東大寺)의 불상이 무너지는 등 무서운 일이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끔찍한 일이라고 말하고 조금씩 마음의 혼탁함이 가시는 듯했지만, 세월이 흘러 해가 바뀌자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부분은 "방장기"에서 기근에 이은 참상과 대지진의 공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 기근의 심화와 비극적인 죽음: 기근으로 인해 가족 간의 애절한 이별과 비극적인 죽음이 속출하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특히 부모가 자식을 위해 먼저 죽는 모습, 어린아이가 부모의 죽음도 모른 채 젖을 찾는 모습 등은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 융효 법인의 구제 활동: 닌나지의 류교호인이 기근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신에 '아'자를 써서 인연을 맺어주는 행위를 통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4만 2천 명이 넘는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기록은 당시 기근의 규모를 짐작하게 합니다.
  • 대지진의 공포와 파괴: 전례 없는 대지진의 발생과 그로 인한 피해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산사태, 해일, 땅 갈라짐 등 자연의 파괴력과 그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대비시켜 공포감을 극대화합니다. 특히 어린아이가 지진으로 끔찍하게 죽은 모습은 큰 슬픔과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 지진의 여진과 기억의 망각: 지진 이후에도 계속되는 여진은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 공포를 잊어버립니다. 이는 인간의 망각 속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상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세상살이의 어려움, 내 몸과 거처의 덧없고 허망한 모습이 이와 같다. 하물며 처한 곳에 따라, 자신의 처지에 따라, 마음을 괴롭히는 일은,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다. 만약 저절로 높은 지위에 있지 않아, 권세 있는 집 옆에 사는 사람은 깊이 기쁜 일이 있더라도, 크게 즐거워하지 못한다.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한다. 나아가고 물러서기가 편하지 않고, 서고 앉는 것에 있어서도 두려워 떠는 모습은, 비유하자면, 참새가 매의 둥지에 가까이 있는 것과 같다. 만약 가난하여 부유한 집의 이웃에 사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초라한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아첨하며 드나드는 처자식, 하인들의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에도, 부유한 집 사람들이 자신을 업신여기는 기색을 듣는 것에도, 마음이 시시각각 흔들려 때로는 편안하지 않다. 만약 좁은 곳에 살면, 가까이에서 불이 날 때, 그 피해를 피할 수 없다. 만약 변두리에 있으면, 왕래의 불편이 많고, 도적의 위험을 벗어나기 어렵다. 세력이 있는 사람은 탐욕이 깊고, 홀몸인 사람은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는다. 재물이 있으면 두려움이 많고, 가난하면 슬픔이 간절하다. 남에게 의지하면 몸이 남의 종이 되고, 남을 보살피면 마음이 은혜와 사랑에 얽매인다. 세상에 따르면 몸이 괴롭고, 또 따르지 않으면 미친 것과 같다. 어느 곳에 머물고, 어떠한 일을 해야 잠시라도 이 몸을 맡기고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내 몸은, 아버지 쪽 할머니의 집을 이어받아, 오랫동안 그곳에 살았다. 그 후 인연이 끊어지고, 몸이 쇠약해져, 지탱하기가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에, 마침내 그곳을 유지하지 못하고, 서른이 넘어, 다시 내 마음과 함께 하나의 암자를 지었다. 이를 예전에 살던 곳에 비유하면, 십분의 일이다. 단지 거처할 방만을 마련하고, 제대로 집을 지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겨우 담장을 둘렀다고는 하지만, 문을 세울 여력이 없다. 대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수레를 덮는 천막으로 삼았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위태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땅이 강가와 가깝기 때문에, 물의 위험도 크고, 흰 파도의 두려움도 심하다. 모든 것이 덧없는 세상을 생각하며 지내며, 마음을 괴롭힌 것이, 서른 해가 넘는다. 그동안 여러 번의 변화를 겪으며, 저절로 짧은 운명을 깨달았다. 마침내 쉰의 봄을 맞이하여, 집을 나와 세상을 등졌다. 원래 처자가 없었기 때문에, 버리기 어려운 인연도 없다. 벼슬도 안 했으니, 무엇 때문에 집착을 남기겠는가. 헛되이 오하라 산의 구름에 몸을 맡기고,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을까.

 

이 단락은 "방장기"의 저자인 가모노 초메이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세상의 어려움과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세상살이의 어려움: 세상의 다양한 어려움, 즉 높은 지위에 있지 않은 사람의 고충, 가난한 사람의 어려움, 좁은 곳이나 변두리에 사는 사람의 위험, 재물이 많거나 적을 때의 고뇌, 남에게 의지하거나 남을 보살필 때의 어려움, 세상에 따르거나 따르지 않을 때의 어려움 등을 열거하며, 어디에도 마음 편히 지낼 곳이 없음을 토로합니다. 이는 세상의 무상함과 인간의 고뇌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 자신의 삶과 출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할머니의 집에서 살다가 인연이 끊어지고 집을 잃게 된 이야기, 서른 살이 넘어 암자를 짓고 살았던 이야기, 암자에서의 불안한 생활, 그리고 쉰 살에 출가하게 된 이야기를 간략하게 서술합니다. 특히 암자를 지을 때의 어려움, 자연의 위험에 노출된 생활 등을 통해 자신의 고난을 보여줍니다. 또한, 처자가 없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출가할 수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세상의 인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이 단락은 가모노 초메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태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세상의 어려움과 자신의 고난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출가를 통해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의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예순 나이의 이슬이 사라질 즈음, 다시 말년의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사냥꾼이 하룻밤 묵을 곳을 만들고, 늙은 누에가 고치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를 한창때의 거처에 비유하면, 다시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이에, 나이는 해마다 기울고, 거처는 때때로 좁아진다. 그 집의 모습은 세상의 보통 집과도 같지 않아, 넓이는 겨우 한 장(丈), 높이는 일곱 자 안이다. 머무를 곳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땅을 다져 짓지 않았다. 흙으로 담을 쌓고, 덮개를 덮고, 이음매마다 걸쇠를 걸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쉽게 밖으로 옮기기 위해서이다. 그것을 다시 지을 때, 얼마나 번거로움이 있겠는가. 짐은 겨우 두 대의 수레 분량이다. 수레의 힘을 쓰는 것 외에는, 다시 다른 용도가 필요 없다. 지금 히노 산의 깊은 곳에 자취를 감춘 후, 남쪽으로 임시 차일을 내어, 대나무 발을 깔고, 그 서쪽에 아가다나(閼伽棚)를 만들고, 안에는 서쪽 담에 붙여, 아미타불의 그림을 안치하여, 저무는 해를 받아, 미간의 빛으로 삼는다. 그 휘장 문에는, 보현보살과 부동명왕의 상을 걸었다. 북쪽 미닫이 위에는, 작은 선반을 만들어, 검은 가죽 상자 서너 개를 놓는다. 즉 와카, 관현, 왕생요집 등의 필사본을 넣었다. 곁에는 거문고, 비파, 각각 한 대씩을 세웠다. 이른바 때에 따라, 비파를 타는 것이다. 동쪽에 붙여, 고사리 자리를 깔고, 돗자리를 깔아 밤의 잠자리로 삼는다. 동쪽 담에 창문을 내어, 여기에 등불을 내놓았다. 베갯머리에는 화로가 있다. 이를 땔나무를 넣어 불을 지피는 방편으로 삼는다. 암자의 북쪽에 작은 땅을 차지하여, 허술한 싸리 울타리를 둘러쳐 뜰로 삼는다. 즉 여러 가지 약초를 심었다. 임시 암자의 모습이 이와 같다. 그곳의 모습을 말하자면, 남쪽에 물을 끌어들이는 장치가 있고, 바위를 쌓아 물을 모아 두었다. 숲이 가까우므로, 땔나무를 줍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름을 외산(外山)이라 한다. 마사키의 덩굴이 자취를 덮고 있다. 골짜기는 빽빽하지만, 서쪽은 맑다. 관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봄에는 등나무 꽃을 본다, 자줏빛 구름처럼 서쪽으로 향기를 낸다. 여름에는 두견새 소리를 듣는다, 이야기할 때마다 사후의 세계로 가는 길을 맹세한다. 가을에는 매미 소리가 귀에 가득하다. 덧없는 세상을 슬퍼하는 것처럼 들린다. 겨울에는 눈을 가엾이 여긴다. 쌓이고 녹는 모습은, 죄업에 비유할 만하다. 만약 염불을 게을리하고, 좌선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에는, 스스로 쉬고, 스스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막을 사람도 없고, 또한 부끄러워해야 할 벗도 없다.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홀로 있으면 수행을 쌓을 수 있다. 반드시 계율을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경계가 없으니 무엇 때문에 어기겠는가. 만약 아침에 흰 파도에 몸을 맡기는 날에는, 언덕의 포구에 오가는 배를 바라보며, 만사미(滿沙彌)의 풍정을 훔치고, 만약 계수나무 바람이 잎을 스치는 저녁에는, 심양의 강을 떠올리며, 겐도도쿠(源都督)의 흐름을 따른다. 만약 남는 흥이 있으면, 종종 소나무 울림에 가을바람의 음악을 더하고, 물소리에 흐르는 샘의 곡조를 연주한다. 솜씨는 서툴지만, 남의 귀를 즐겁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홀로 연주하고, 홀로 읊으며, 스스로 마음을 기를 뿐이다. [ひとりしらべ、ひとり詠じて、みづから心を養ふばかりなり。]

 

이 단락은 저자인 가모노 초메이가 예순이 넘어 지은 말년의 암자 생활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 말년의 암자: 이전의 거처에 비해 매우 작고 간소한 암자의 모습, 이동을 고려하여 지어진 구조, 내부에 갖춰진 물건들(불상, 그림, 서적, 악기 등), 주변 환경(샘, 숲, 약초밭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특히 이동을 염두에 둔 간이 건축 방식과 최소한의 물건만 갖춘 검소한 생활이 인상적입니다.
  • 사계절의 풍경과 감상: 암자 주변의 사계절 풍경을 묘사하며, 각 계절에 느끼는 감상을 서정적으로 표현합니다. 봄의 등나무 꽃, 여름의 두견새, 가을의 매미, 겨울의 눈 등 자연의 변화를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자신의 수행과 연결짓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홀로 지내는 삶의 의미: 홀로 지내는 삶의 장점, 즉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수행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자연 속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읊으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외부의 평가나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나타냅니다.

이 단락은 가모노 초메이가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홀로 지내는 삶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만족감을 보여줍니다. 간소한 암자에서의 생활, 사계절의 풍경과 함께하는 수행, 그리고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특히, "홀로 연주하고, 홀로 읊으며, 스스로 마음을 기를 뿐이다"라는 구절은 그의 삶의 목적과 "방장기"의 주제를 잘 드러내는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산기슭에 작은 땔나무로 지은 초암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산지기가 사는 곳이다. 그곳에 아이가 있어 때때로 찾아와 함께 어울린다. 혹시 심심할 때는 이 아이를 벗 삼아 함께 놀러 다닌다. 아이는 열여섯 살이고 나는 예순이니, 나이는 매우 다르지만 마음을 달래는 것은 이와 같다. 혹은 냉이꽃을 꺾고 돌멩이를 줍는다. 또 미나리 씨앗을 심고 미나리를 캔다. 어떤 때는 가까운 밭에 가서 떨어진 이삭을 주워 새 먹이를 만든다. 만약 날씨가 화창하면 산마루에 기어올라 멀리 고향 하늘을 바라본다. 고하타 산, 후시미 마을, 도바, 하즈카시를 본다. 경치가 좋은 곳을 빼놓지 않으니 마음을 달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걸음이 불편하지 않고 뜻이 멀리 이를 때는 이곳에서부터 산줄기를 따라 스미야마를 넘고 가사도리를 지나 바위 사이에 있는 이와마 사원에 가거나 혹은 이시야마 절을 참배한다. 혹은 아와즈 들판을 가로질러 세미마루 노인의 흔적을 찾아보고, 다카미 강을 건너 사루마루 다유의 무덤을 찾아간다. 돌아오는 길에는 때때로 벚꽃을 꺾고 단풍을 구하고 고사리를 꺾고 나무 열매를 주워 한편으로는 부처님께 바치고 한편으로는 집으로 가져간다. 만약 밤이 조용하면 창밖의 달을 보며 옛사람을 그리워하고 원숭이 울음소리에 소매를 적신다. 풀숲의 반딧불은 멀리 마키 섬의 횃불로 착각하고 새벽비는 저절로 나뭇잎을 스치는 폭풍처럼 들린다. 산새가 후드득하고 우는 소리를 듣고도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의심하고 산의 시냇물이 가까워진 것을 느끼고도 세상과 멀어진 정도를 안다. 혹은 묻어둔 불씨를 다시 피워 늙음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벗으로 삼는다. 무서운 산은 아니지만 부엉이 소리를 가엾게 여기는 것을 통해서도 산속의 경치를 때에 맞춰 만들어낸다. 하물며 깊이 생각하고 깊이 깨달은 사람에게는 이것에만 국한될 것은 아니다. 대략 이곳에 살기 시작했을 때는 임시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벌써 오 년이 지났다. 임시 초암도 점점 낡은 집이 되어 처마에는 이끼가 두껍고 담에는 이끼가 끼었다. 저절로 소식을 통해 도읍의 소식을 들으면 이 산에 들어와 산 이후로 지위가 높은 사람이 숨어 지내는 것도 많이 들린다. 하물며 그 수에 들지 못하는 부류는 다 헤아릴 수 없다. 여러 번의 화재로 불타 버린 집은 또 얼마나 되는가. 다만 임시 초암만이 평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비록 좁다고는 하지만 밤에 눕는 잠자리가 있고 낮에 앉아 있는 자리가 있다. 한 몸을 뉘이는 데 부족함이 없다. 갈매기는 작은 조개를 좋아하는데 이는 능히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물수리는 거친 바닷가에 사는데 이는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와 같다. 자신을 알고 세상을 안다면 바라지도 사귀지도 않고 다만 조용함을 목표로 삼고 근심 없음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대체로 세상 사람들이 집을 짓는 습관은 반드시 자신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혹은 처자 권속을 위해 짓고 혹은 친한 친구를 위해 짓는다. 혹은 임금, 스승 및 재물, 소와 말을 위해서까지 이것을 짓는다. 나는 지금 자신을 위해 지었으니 남을 위해 짓지 않았다. 어째서 그러한가 하면 지금 세상의 풍습, 이 몸의 모습으로는 함께할 사람도 없고 의지할 하인도 없다. 비록 넓게 지었다고 한들 누구를 머물게 하고 누구를 먹이겠는가.

 

이 단락은 저자가 산속 암자에서 지내는 생활과 세상에 대한 생각을 더욱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 산속 생활의 벗과 일상: 산지기 아이와의 교류, 자연 속에서의 소소한 활동(냉이 캐기, 풀씨 줍기, 미나리 뜯기, 이삭 줍기 등), 주변 명승지 방문(코하타 산, 후시미, 토바, 이와마, 이시야마 등)을 통해 소박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여줍니다. 또한, 밤의 정경(달빛, 원숭이 소리, 반딧불, 새벽비 등)을 묘사하며 자연과 하나 된 삶을 표현합니다.
  • 자연과의 교감과 깨달음: 산새 소리를 듣고 부모를 떠올리거나, 계곡의 모습을 보고 세상과의 거리를 느끼는 등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묻은 불씨를 다시 피우는 행위를 통해 늙음의 외로움을 달래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 세상과의 거리두기: 도성에서 높은 사람들이 은거하는 소식을 듣고, 화재로 소실된 집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암자만이 평온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세상의 번잡함과 재난으로부터 벗어난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 집의 의미와 자신의 선택: 세상 사람들이 집을 짓는 이유(가족, 친구, 권력, 재물 등)와 달리, 자신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암자를 지었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세상의 인연에서 벗어나 홀로 수행하는 삶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한, 큰 기와집이 작은 조개를 좋아하고, 물수리가 거친 바닷가에 사는 것에 비유하며, 자신 또한 자신을 알고 세상을 알기에 조용히 지내는 것을 바람으로 삼고 근심 없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단락은 가모노 초메이가 산속 암자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홀로 지내는 삶의 의미를 심화하여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세상과의 거리두기, 내면의 평화 추구,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드러내며, "방장기" 전체의 주제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사람의 벗이 되는 것은 부유한 사람을 존경하고, 친밀한 관계를 우선으로 여긴다. 반드시 정이 있거나, 곧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풍류(음악과 시, 자연의 아름다움)를 벗 삼는 것만 못하다. 사람의 하인이 되는 것은 상벌의 과함을 염려하고, 은혜의 두터움을 중요하게 여긴다. 더욱이 보살펴주고 가엾이 여긴다고는 하지만, 쉽게 한가로움을 바라지는 않으며, 다만 자신의 몸을 노비로 여기는 것만 못하다. 만약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곧 저절로 몸을 쓴다. 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남을 부리고, 남을 돌보는 것보다는 쉽다. 만약 다녀야 할 일이 있으면, 스스로 걷는다. 괴롭다고는 하지만, 말안장이나 우차로 마음을 괴롭히는 것만 못하다. 지금 한 몸을 나누어, 두 가지 용도를 한다. 손은 하인, 발은 탈것, 능히 내 마음에 맞는다. 마음 또한 몸의 괴로움을 알기 때문에, 괴로울 때는 쉬게 하고, 부지런할 때는 쓴다. 쓴다고 해도 지나치게 자주 하지 않고, 싫다고 해도 마음을 흔들리게 하지 않는다.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항상 다니고, 항상 일하는 것은, 이것이 양생이 될 것이다. 어찌 헛되이 쉬기만 하겠는가. 남을 괴롭히고 남을 괴롭게 하는 것은 또한 죄업이다.[人を苦しめ人を惱ますはまた罪業なり。] 어찌 남의 힘을 빌리겠는가.

의식주 또한 마찬가지이다. 등나무 옷, 삼베 이불, 얻는 대로 몸을 가린다. 들의 냉이, 산의 나무 열매, 겨우 목숨을 이을 정도이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니, 모습을 부끄러워할 후회도 없다. 음식이 부족하여 소홀하지만, 오히려 맛을 달게 여긴다. 모든 이러한 것을, 즐겁고 부유한 사람에게 대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내 몸 하나를 가지고, 옛날과 지금을 비교해 볼 뿐이다. 대략 세상을 벗어나, 몸을 버린 이후로, 원망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목숨은 하늘의 운에 맡기고, 아끼지도 꺼리지도 않으며, 몸을 뜬구름에 비유하여,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한 세상의 즐거움은, 잠깐 눈 붙이는 베개 위에 그치고, 한평생의 소망은, 때때로 만나는 아름다운 경치에 남아 있다.

무릇 삼계(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는, 다만 마음 하나이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면, 좋은 음식과 귀한 보물도 소용없고, 궁궐과 누각도 소망이 없다. 지금 쓸쓸한 거처, 작은 암자를, 스스로 이것을 사랑한다. 저절로 도성에 나가면, 거지가 된 것을 부끄러워한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이곳에 있을 때는, 다른 속세의 티끌에 물드는 것을 가엾이 여긴다. 만약 사람이 이 말을 의심한다면, 물고기와 새의 영역을 보라. 물고기는 물에 싫증내지 않으니, 물고기가 아니면 그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새는 숲을 원하니, 새가 아니면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 한가로운 거처의 기분 또한 이와 같다. 살아보지 않고 누가 깨닫겠는가.

무릇 한 세상의 달빛이 기울어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갑자기 삼도(三途, 지옥, 아귀, 축생)의 어둠에 마주할 때, 무슨 일을 후회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사람을 가르치시는 뜻은, 모든 일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 초가 암자를 사랑하는 것도 허물이고, 한적함에 집착하는 것도 장애가 될 것이다. 어찌 쓸데없는 즐거움을 말하며, 헛되이 아까운 시간을 보내겠는가.

고요한 새벽, 이 이치를 계속 생각하며, 스스로 마음에 물어 이르기를, 세상을 벗어나 산림에 섞이는 것은, 마음을 다스려 도를 행하려 함이다. 그러한데 네 모습은 승려와 같지만, 마음은 혼탁함에 젖어 있다. 거처는 곧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자취를 더럽혔다고는 하지만, 지키는 바는 겨우 주리반특(周梨槃特)의 행에도 미치지 못한다. 만약 이것이 빈천의 보응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인가, 혹은 또한 망녕된 마음이 이르러 어지럽히는 것인가, 그때 마음은 다시 대답하는 것이 없다. 다만 곁에서 혀를 놀려 불청의 염불(不請의 念佛, 청하지 않고 스스로 하는 염불)을, 두세 번 하고 그만둔다. 때는 건력(建暦) 2년, 음력 3월 그믐께, 소몬 렌인(桑門蓮胤)이, 외산의 암자에서 이것을 쓴다.

 

"달빛은 (산의) 끝자락에 스며들고, 매정하게도 (달빛을) 가로막는구나. (가려지지 않은) 온전한 빛을 볼 방법이 없을까.

[月かげは入る山の端もつらかりきたえぬひかりをみるよしもがな]"

 

 

 

이 단락은 "방장기"의 결론으로, 저자의 삶의 철학과 깨달음을 담고 있습니다.

  • 자신만의 삶의 방식: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제시합니다. 부유함이나 친밀함, 권력이나 은혜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과 풍류를 벗 삼으며,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삶을 강조합니다.
  • 세상과의 비교와 초월: 세상 사람들의 집착과 욕망을 비판하며, 자신은 세상을 벗어남으로써 원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마음의 평안이 진정한 가치임을 강조하며, 작은 암자에서의 삶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자연과의 조화와 깨달음: 물고기와 새의 비유를 통해, 자신이 산속 생활에 만족하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새가 숲을 원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 마지막 자기 성찰과 염불: 자신의 수행이 부족함을 자각하고, 유마거사나 주리반특과 같은 고승에 미치지 못함을 반성합니다. 마지막으로 염불을 하며 글을 마무리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정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구는 세상의 어둠(무지)에 가려 진리를 보기 어려운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이 단락은 가모노 초메이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얻은 깨달음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홀로 지내는 삶,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삶,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진리에 다가가고자 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