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려염王俪阎 선생의 '중국고대화폐주조틀공예'라는 책에서]
지금까지도 중국 고대 금속 화폐 주조가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정론이 없다. 《관자管子·산권수山權數》에 ‘우임금이 역산歷山의 금속으로 주조한 화폐’, ‘탕임금이 장산莊山의 금속으로 주조한 화폐’라는 기록이 있지만, 아직 실물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1953년 河南安阳大司空村 상나라 시대 후기 무덤 중 3개의 구리 조개 화폐[贝币]가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금속 화폐이다.[马得志等《1953 年安阳大司空村发掘报告》.《考占学报》1955 年第9 期。].
1970년 山西省保德县林遮峪 상나라 시대 후기 무덤에서 109개의 구리 조개 화폐가 출토되었는데, 발굴자의 말에 의하면, 이들 구리 화폐는 112건의 조개와 함께 수레와 함께 놓여있었다고 하며, 장식 용도로 쓰인 것 같다고 하였다.[吴振鲁《保德县新发现的殷代青铜器》,《文物》1972 年第4期。]
그 외에도 1969~1977년에 河南安阳殷墟西区의 한 무덤에서 2개가 출토되었다.[中国社会科学院考古研究所安阳工作队《1969一1977 年殷墟西区发掘报告》.《考肯学报》1979 年 第1期。]
금속 화폐 외에, 상나라 주나라 시기에는 일종의 금속 칭량 화폐가 있었다. 청동괴, 청동병, 청동기 잔편 등,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이미 고고 발굴로 실제 발견되었고, 서주 중기에 주조된 ‘㫚鼎’의 명문에 쓰인 ‘賣(買)兹五夫,用百寽[무게 단위]’라는 문구는 칭량 화폐가 실재하였음을 증명한다.
서주 시기, 주조된 청동 포전은 농기로 쓰이던 쟁기, 삽이 변형된 것이다. 포전이 유통된 지역은 황하 유역의 양주(동주와 서주 왕기), 삼진,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 등 농경 생산을 주로 하던 국가이다.
山西에서 발굴된 구멍에 나무 조각이 남아있는 소형 청동 쟁기는 화폐계에서 서주 시대 금속 화폐로 인정되고 있다. [吴连城《山西省拣逃到珍贵文物一一西周布币》,《文物》1965 年第5 期]
이는 농기구로 쓰이던 쟁기가 변형된 포전의 최초 형태이며, 이후 화폐 경제의 발전에 따라 포전은 마침내 원시 형태에서 변형되어 대형 공수포가 된다.
서주 시기의 문헌과 금문에는 포전에 대한 기재가 일정하게 나타나며, 고고 발굴로는 드물게 발견된다. 이를테면 1988년 陕西华阴县砖瓦厂에서 출토된 한 건의 청동 쟁기는 길이가 10.4cm, 너비가 9.6cm인데, 농기로 쓰이기 위해 생산된 쟁기보다 형체가 작아, 원시 공수포로 여겨진다. [郑州师专中原文化研究所编《钱币考芮文献叙录》,中州古籍出版社, 2005 年.第10 页。]
연하도燕下都 출토 쟁기
山西 출토 서주 시대 화폐
중국국가박물관소장 원시 공수포
賣(買)兹五夫,用百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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