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책에는 『급총주서(汲冢周書)』라고 적혀 있다. 고찰하건대 『수서』 「경적지」와 『신당서(新唐書)』 「예문지」에서는 모두 이 책을 언급하면서 진나라 태강(太康) 2년(281)에 위(魏)나라 안리왕(安釐王)의 무덤 속에서 구했다고 하고 있으니, 이러한 급총(汲冢)의 설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나 『진서(晉書)』 「무제기(武帝紀)」 및 순욱(荀勖)과 속석(束晳)의 전기에서는 급군(汲郡) 사람 부준(不準)이 얻은 죽간 75편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편명(篇名)은 갖추어져 있지만 이른바 『주서(周書)』라는 책은 없다. 두예(杜預)의 『춘추집해(春秋集解)』 「후서(後序)」에서는 급총의 여러 책에 대해 기록하고 있지만 역시 『주서』라는 항목은 나열하지 않았으니, 이 『주서』는 급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고찰하건대 『한서』 「예문지」에는 앞에 『주서』 71편이 있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지금 판본은 반고가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한 편이 적다. 진진손의 『직재서록해제』에서는 “70편이며 「서문」 한편이 끝에 있다. 경구(京口)의 간행본에서 처음으로 「서문」을 여러 편에 섞어 넣었다.”라고 했는데 편의 수는 여전히 71편으로 『한서』 「예문지」와 합치한다. - 사고전서총목제요
현전하는 서경 주서에서 빠진 내용으로, 그동안 위서로 간주되었으나, 고대 청동문과 죽간과 같은 출토문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주목받고 있는 책이다. 7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1편은 제목만 있다.
원래 제목만 알고 있던 정오해程寤解는 칭화대학 소장 전국죽간을 통해 내용이 알려졌다.
내용은 주나라 문왕에서부터 경왕까지[周文王、周武王、周公、成王、康王、穆王、厉王和景王]의 역사가 주를 이룬다.
예전에도 간혹 책에 인용되어서 읽다가 오늘 왕염손의 독서잡지라는 책을 읽던 중 다시 갑자기 읽고 싶어서 찾아 읽고 옮기려고 합니다.
우라나라에서 추앙받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 등 사서삼경과 달리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고 위서라고 취급받는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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