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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지 夷堅志/갑지 제2권 15

1.1.2.15.34 - 이견지 갑지 제2권 - 색욕을 멀리 한 최조무 崔祖武

색욕을 멀리 한 최조무崔祖武 최조무(崔祖武)는 하동로(河東路: 현재 산시성 일대)의 위승군(威勝軍) 사람이다. 정화(政和) 계사년(癸巳: 1113년)에 나의 부친과 태학(太學) 통류재(通類齋)에서 함께 지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가 젊었을 때에는 여색을 좋아하여 하루도 여자와 놀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다 나이 26세에 병에 들어 죽게 되었는데, 우씨(牛氏) 성의 도인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색욕을 끊을 수 있다면 내가 그를 구할 수 있소." 당시 그의 부모가 말하기를, "우리 아이가 죽게 되었으니 살릴 수만 있다면 불가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마침내 도인은 그에게 약을 주고, 연기술(練氣術)을 가르쳤는데, 아내와는 떨어져 지내게 하니, 병이 나았다고..

1.1.2.14.33 - 이견지 갑지 제2권 - 도학에 빠진 무승규

도학에 빠진 무승규武承規 무승규(武承規)는 자(字)가 자정(子正)이고, 장안(長安: 현재 섬서성 시안시)사람이다. 정화(政和) 7년(1117년), 태주(台州: 현재 저장성에 속함) 영해현(寧海縣) 현저진(縣渚鎭)에서 주세(酒稅)를 감독하였다. 그는 도사(道士) 대접하기를 좋아해서, 매일 그의 집에서 식사하는 자들이 언제나 여러 명이었다. 나의 부친께서는 당시 그 현의 주부(主簿)셨는데, 그에게 타일러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대의 관직은 낮아 봉급도 적은데, 공밥 먹는 사람들은 이처럼 많으니, 어떻게 먹고 살 생각인가?" 무승규가 답하였다. "저에게는 그들에게 줄 맛좋은 술과 많은 양의 고기가 없습니다. 단지 인연에 따라 있는 대로 줄 뿐입니다. 우연찮게 술이 있을 때에는 술에 취하도록 마시고, 생선이 ..

1.1.2.13.32 - 이견지 갑지 제2권 - 수수께끼 시문

수수께끼 시문詩謎 원우(元佑: 1086~1094년) 연간에 사대부 중 호사가(好事家)들이 이름난 관리의 성명을 가져다가 수수께끼 시를 짓고는 하였다. 이를테면 “눈 내린 하늘 맑게 개이니 무지개 드러나고, 일천 리 뻗은 강산은 경기에 이르네. 천자의 손에는 조회할 때 집는 백옥 있고, 뛰어난 인재는 삼베옷 입기를 꺼리지 않네.(雪天晴色見虹霓 千里江山遇帝畿 天子手中朝白玉 秀才不肯著麻衣)"라는 시가 있는데, 한강(韓絳), 풍경(馮京), 왕규(王圭), 증포(曾布)를 가리킨다. 또 옛 사람의 이름자 뜻을 취하여 현재의 사정에 부합하는 뜻으로 짓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저마다 모두 자첨(子瞻: 소식蘇軾)의 모자를 썼고, 군실(君實: 사마광司馬光)은 근래 관직을 바꾸었네. 왕개보(王介甫: 왕안석王安石)에게..

1.1.2.12.31 - 이견지 갑지 제2권 - 귀신이 치료 방법을 알려주다

귀신이 치료 방법을 알려주다神告方  건창(建昌: 현재 장시성 난창) 사람 황습(黃襲)이 해준 이야기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우리 고을에 한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심양(潯陽: 현재 장시성 주장)에 배를 정박해 두었는데, 달빛 아래 두 사람이 대화하는 듯하였답니다.   한 사람이 말하기를, “어제 저녁, 금산사(金山寺: 현재 장쑤성 전장시에 소재한 사찰)에 바쳐진 공물이 매우 성대하다고 하기에 내가 가서 보니, 음식들은 전부 핏기가 돌고 비린내가 나서 가까이 갈 수 없었네. 내가 화가 나서 요리도 제대로 못하는 요리사의 손을 끓는 솥에 집어 넣어서 지금은 그놈 손이 썩어 문드러졌어.”라고 하니,  다른 한 사람이 말하였다. “그놈 참 잘못했네. 그래도 자네가 그렇게 벌준 것도 너무 지나친 ..

1.1.2.11.30 - 이견지 갑지 제2권 - 조령금의 아들에게 복수하다

조령금의 아들에게 복수하다趙表之子報  조령금(趙令衿)은 자(字)가 표지(表之)이다. 선화(宣和) 5년(1123년)에 남강(南康: 현재 장시성 싱쯔) 사록(司錄)에 부임하여, 가족을 데리고 임지로 가는 도중 기주(蘄州: 현재 후베이성 치춘)를 지나다 오조산(五祖山: 황매현에 있는 빙무산憑茂山을 가리킴. 선종의 오조 홍인 대사가 지냈다고 함)을 유람하였다. 그는 홀로 비바람을 무릅쓰고 정상에 올라 백련지정(白蓮池亭)에 이르러, 커다란 반석에서 쉬었다.   그때 잠중에 꿈을 꾸듯 하였는데. 한 늙은 승려가 나타나 지팡이에 의지하며 말하기를, “그대가 이대로 여산(廬阜: 현재 장시성 싱쯔현 서북에 있는 산)에 가면, 고난이 없을 테지만, 진주(晉州: 현재 산시성 린펀시)로 가면 자식을 잃는 슬픔이 있을 것이네...

1.1.2.10.29 - 이견지 갑지 제2권 - 의원 사여권

의원 사여권謝與權醫 양유충(楊惟忠)에게 병이 났을 때에 얼굴빛이 불같이 붉었는데, 여러 의원이 치료하지 못하였다. 그의 사위 진유(陳槱)가 걱정이 되어 호소연에게 방도를 물었다. 기주(蘄州: 현재 후베이성 치춘) 사람 사여권(謝與權)이라는 자가, 대대로 유의(儒醫: 유학자로서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술을 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였다고 하여 호소연이 그를 데려다 진찰을 하게 하였다. 사여권이 들어가서 진맥을 하지 않고 말하기를, “증세는 이미 보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양공의 부인 등씨(滕氏)가 그와 다른 의생에게 어떤 약이 좋을지 의논하게 하였다. 주씨(朱氏), 장씨(張氏) 두 의생이 말하였다. “이미 정양단(正陽丹)과 백택원(白澤圓)을 처방했고, 여기에 종유(鐘乳)와 부자(附子)를 더할 것이오...

1.1.2.9.28 - 이견지 갑지 제2권 - 장언택의 신통력

장언택의 신통력張彥澤遁甲  소흥(紹興) 4년(1134년) 참지 정사(参知政事) 이소우(李少愚)가 도로 강서(江西: 현재 장시성, 장쑤성, 안후이성·후베이성 일대)의 사령관이 되었는데, 총관(總管) 양유충(楊惟忠)을 파견하여 적을 치게 하니 4월 임신일에 인시(寅時: 오전 3~5시)에 파양(鄱陽: 현재 장시성 동북부 일대)으로 출병하게 하였다.   호소연이 양유충을 강에서 배웅하고 돌아가다 도우(道友)인 진생(陳生)을 방문하고 돌아가려 하는데, 도사(道士) 장언택(張彥澤)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낙양(洛陽)사람이고, 지난 날에 서신옹(徐神翁)을 따라 서산(西山)에서 도술에 연마한 자였다.   우연찮게 서로 대화를 하던 중, 장언택이 어떤 사람이 출병 날짜와 시간을 정했는지 물었다.   호소연이 말하였다...

1.1.2.8.27 - 이견지 갑지 제2권 - 남편과의 약속을 어긴 부인 육씨

남편과의 약속을 어긴 부인 육씨陸氏負約 구주(衢州: 현재 저장성 취저우시) 사람 정모(鄭某)는 젊어서 성격이 활달해 글쓰는 것도 유창했다. 그는 회계(會稽: 현재 저장성 사오싱) 육씨(陸氏)의 딸을 아내로 맞았는데, 자태가 아름답고 명랑하여 부부 사이가 단란하였다. 정모가 일찍이 잠자리에서 육씨에게 말하기를,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지극하니, 만약 내가 불행히 죽더라도 당신은 재혼하지 마오. 만약 당신이 죽어면 나도 그리하리라."라고 하였다. 육씨가 대답하기를, "우리는 백년토록 해로할텐데, 당신은 왜 그런 불길한 말씀을 하십니까?" 라고 하였다. 십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은 두 남매를 낳았지만, 정씨는 중병을 앓게 되었다. 그는 부모에게 자신 죽고난 뒤를 당부하는 말을 여러 번 하였는데,..

1.1.2.7.26 - 이견지 갑지 제2권 - 옥진에서 만난 세 명의 도사

옥진에서 만난 세 명의 도사玉津三道士 대관(大觀: 1107~1110년) 연간에 숙주(宿州: 현재 안후이성 쑤저우시)의 사인(士人)으로 성이 전씨(錢氏)인 두 형제가 서울의 태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야흐로 봄날에 시험을 앞두고 있었기에 잠시 휴식을 위해서 옥진원(玉津園)에 놀러 나갔다. 도중 그들은 세명의 도사를 만나 예를 갖추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세명의 도사는 이마가 높고 눈썹이 길며 말씨가 맑고 아름다워 듣기 좋았다. 조금 지나 작별을 고하고 떠나는데, 말하기를, "우리에게 이름난 술이 조금 있으니 두 공께서 드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 정오에 다시 여기로 오면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만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전씨 형제가 알..

1.1.2.6.25 - 이견지 갑지 제2권 - 자라의 복수

자라의 복수鱉報 승절랑(承節郞) 회경원(懐景元)은 전당(錢塘: 현재 저장성 항저우시) 사람이다. 선화(宣和: 1119~1125년) 초엽, 수주(秀州: 현재 저장성 자싱시) 다보사(多寶寺)에서, 채유(蔡攸)에 의하여 설치된 국(局)에서 일하였다. 회경원은 성품이 자라 먹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은 요리를 잘하는 부하 병사가 마침 자라를 삶으려는데 칼로 자라의 머리를 쳐서 피를 뽑아 냈다. 그는 이렇게 해야 맛이 온전히 좋다고 하였는데, 후에 갑상선 결핵에 걸려 들 수도 없을 정도로 머리가 커졌다. 다닐 때는 머리를 붙잡고 다녀야만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커지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더니, 머리가 떨어져 죽었는데, 마치 칼로 자른 듯 하였다. 회경원은 이때부터 자라 고기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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