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지 夷堅志/갑지 제2권

1.1.2.9.28 - 이견지 갑지 제2권 - 장언택의 신통력

集賢堂 2016. 2. 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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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언택의 신통력張彥澤遁甲

  소흥(紹興) 4년(1134년) 참지 정사(参知政事) 이소우(李少愚)가 도로 강서(江西: 현재 장시성, 장쑤성, 안후이성·후베이성 일대)의 사령관이 되었는데, 총관(總管) 양유충(楊惟忠)을 파견하여 적을 치게 하니 4월 임신일에 인시(寅時: 오전 3~5시)에 파양(鄱陽: 현재 장시성 동북부 일대)으로 출병하게 하였다.


  호소연이 양유충을 강에서 배웅하고 돌아가다 도우(道友)인 진생(陳生)을 방문하고 돌아가려 하는데, 도사(道士) 장언택(張彥澤)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낙양(洛陽)사람이고, 지난 날에 서신옹(徐神翁)을 따라 서산(西山)에서 도술에 연마한 자였다.


  우연찮게 서로 대화를 하던 중, 장언택이 어떤 사람이 출병 날짜와 시간을 정했는지 물었다. 


  호소연이 말하였다. “목무재(穆茂才)입니다.” 


  장언택이 말하였다.

  “어찌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가. 요행히 인시(寅時)에 출병하지 아니면 괜찮은데, 만약 그대로 되면, 적들이 순순히 투항한다 하더라도 총관에게는 이롭지 못할 것이야. 정오의 날씨를 가지고 점을 쳐보니 그때 큰 비가 내리지 않으면 괜찮을 거네.”


  이 말을 할 당시만 해도 맑은 하늘에 약간 더운 날씨였다. 세 사람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서 사찰 주위를 산책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비가 주룩 주룩 내려 골짜기와 도랑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옆에 있던 장언택이 손뼉을 치며 말하였다.

  “인시(寅時)에 출병했군! 양공이 위험하네!” 


  당시 적들은 1만 2천 명이었는데, 관군은 겨우 그 삼 분의 이의 병력 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봉 부선(傅選)이 오군(五軍)의 깃발을 높이 들고 나아가 군위를 떨쳤다. 


  적의 간첩이 군정을 살피고서 말하기를, “선봉이 이와 같이 당당하니, 만약 전군이 온다면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사신을 보내 투항하였다. 이튿날, 양유충이 타던 청총마(青驄馬)가 갑자기 죽었는데, 양공도 병이 들었다. 곧바로 예장(豫章: 현재 장시성 난창시)으로 돌아왔으나, 다음날 죽었다.




원문

紹興四年,李參政少愚(回)為江西帥,遣總管楊惟忠討賊,以四月壬申日寅時出師鄱陽。胡翛然送之渡江,回謁道友陳生。有道士張彥澤者,洛陽人,頃事徐神翁,多居西山好道之家,偶來會語,問何人選日時。翛然曰:“穆茂才也。”彥澤曰:“何其繆邪!幸而非寅時則可,若然,賊雖自擒,主將將不利。以正午卜之,苟無大雨則善。”時天色清霽,已有微暑,三人食已,散步僧舍。俄陰雲四合,雨下如注,溝壑皆盈。彥澤拊掌曰:“必寅時也,楊公其危哉!”時賊眾萬二千,官軍才三之二,先鋒將傅選悉五軍旗幟行,以壯軍聲。賊諜知之,曰:“先鋒尚如此,若全師而來,何可當也!”遂遣使迎降。次日,楊公所乘青驄馬忽斃,楊亦得疾,即反豫章,翌日而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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