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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부(王符) - 《잠부론(潛夫論)》

諺解 2025. 6. 6.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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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부론(潛夫論)》 해제(解題)

시대의 어둠 속에서 붓을 든 은사(隱士), 왕부(王符)

《잠부론(潛夫論)》은 후한(後漢) 중후기의 지식인 왕부(王符, 약 85~163)가 저술한 정론(政論) 모음집이다. 왕부의 자(字)는 절신(節信)으로, 안정군 임경현(安定郡 臨涇縣), 즉 오늘날의 간쑤성(甘肅省) 전위안현(鎮原縣) 출신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마융(馬融), 두장(竇章), 장형(張衡) 등과 교유하며 높은 학문적 명성을 쌓았으나, 성품이 강직하여 권세가에게 아부하지 못했다. 당시 후한 조정은 환관(宦官)과 외척(外戚) 세력이 발호하며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부패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왕부는 출사(出仕)의 길을 포기하고 평생을 은거하며 지냈다. 그는 스스로를 ‘잠복한 선비’라는 뜻의 ‘잠부(潛夫)’라 칭하며, 시대의 병폐를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몰두하였으니, 그 고뇌와 경륜의 결정체가 바로 이 《잠부론》이다.

이 책은 단순한 현실 도피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은거라는 소극적 저항의 형태를 빌려, 당대 사회의 모순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직시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부르짖은 지식인의 절절한 외침이다. 왕부는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이 책을 익명으로 저술하였으나, 그의 벗이자 당대의 명사인 장형(張衡)이 이 책을 읽고 “이는 왕절신(王節信)의 저술이 아니고 누구의 것이겠는가!”라고 감탄하였다는 일화는 그의 명성과 《잠부론》의 가치를 짐작하게 한다.

《잠부론》의 핵심 사상과 문제의식

《잠부론》은 총 36편(현존 35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철학 등 다방면에 걸쳐 왕부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을 담고 있다. 그 저변에 흐르는 핵심 사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가(名)와 실(實)의 괴리 비판
왕부는 당시 사회의 가장 큰 병폐를 이름(名)과 실질(實)이 일치하지 않는 ‘명실불부(名實不符)’의 상태로 진단했다. 군주는 현명하다는 이름만 있을 뿐 어리석고, 신하는 충성스럽다는 명예만 탐할 뿐 간사하며, 관리는 백성을 위한다는 직책을 가졌으나 실제로는 수탈에 여념이 없는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는 모든 개혁이 이름과 실질을 일치시키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2. 실질(實)과 근본(本)의 숭상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실질과 근본을 숭상하는 ‘무본(務本)’ 사상으로 이어진다. 그는 화려함(華)보다는 실질(實)을, 말단(末)보다는 근본(本)을 중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국가의 근본은 농업(農業)이며, 인간의 근본은 도덕(道德)이다. 따라서 그는 사치와 낭비를 비판하고(〈부치(浮侈)〉), 농업 생산력의 회복을 강조하며(〈애일(愛日)〉), 모든 사회 문제의 해결을 인간 내면의 도덕성 회복에서 찾고자 했다.

3. 현실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대안 제시
《잠부론》은 단순한 관념적 비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대안을 제시한다. 특히 당시 심각한 문제였던 강족(羌族)과의 변경 분쟁에 대해서는 〈구변(救邊)〉, 〈변의(邊議)〉, 〈실변(實邊)〉 등 여러 편에 걸쳐 심도 있게 다루며, 영토 포기론과 같은 소극적 대응을 비판하고 적극적인 방어와 내실 있는 변경 경영을 주장했다. 또한 관리 임용 제도의 문란함을 지적하며 능력과 덕행에 기반한 인재 등용(〈사현(思賢)〉, 〈고적(考績)〉)을 촉구하고, 법과 제도의 공정한 운용(〈명충(明忠)〉)을 강조하는 등 실용적인 개혁안을 제시한다.

4. 유가(儒家)를 기반으로 한 사상의 융합
왕부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인(仁), 의(義), 예(禮), 덕치(德治)를 강조하는 유가(儒家)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는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해 법가(法家)의 법(法)·술(術)·세(勢)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군주의 강력한 통치력을 옹호했으며, 도가(道家)의 도(道)·기(氣)·자연(自然) 사상을 통해 우주론적, 철학적 깊이를 더했다. 이처럼 그는 특정 학파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사상을 융합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구축하였다.

《잠부론》의 구성과 문체적 특징

《잠부론》은 마지막 편인 〈서록(敘錄)〉에서 저자 스스로 각 편의 저술 의도를 밝히고 있어, 체계적인 구상 하에 저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책은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찬학(讚學)〉으로 시작하여, 정치·사회 비판, 역사와 인물에 대한 논평, 성씨의 유래에 대한 고증 등 다양한 주제를 거쳐, 저자의 집필 동기를 밝히는 〈서록〉으로 끝을 맺는다.

그의 문체는 날카롭고 논리가 정연하며, 비유와 상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특히 고대의 역사적 사실과 경전의 구절을 풍부하게 인용(引經據典)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함으로써 글의 설득력과 권위를 높이고 있다. 또한 〈석난(釋難)〉편과 같이 문답(問答) 형식을 차용하여 논지를 생동감 있게 전개하는 등, 다채로운 서술 방식을 보여준다.

《잠부론》의 의의와 현대적 가치

《잠부론》은 후한 중후기 사회의 정치적 혼란, 경제적 피폐, 사상적 타락상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귀중한 사료(史料)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한 지식인이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치열한 지적 탐구와 고뇌를 통해 올바른 길을 모색하려 했던 비판 정신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왕부가 지적했던 명실불부의 문제, 실질보다 형식을 중시하는 세태, 부패한 권력과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는 시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글은 우리로 하여금 사회의 근본을 성찰하게 하고, 한 사람의 지식인이 시대를 향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되묻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잠부론》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시대를 초월하여 사회를 진단하고 올바른 길을 모색하는 지식인의 고뇌와 열정이 담긴 살아있는 고전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潛夫論(잠부론) - 讚學(찬학)

1

원문
天地之所貴者人也,聖人之所尚者義也,德義之所成者智也,明智之所求者學問也。雖有至聖,不生而智;雖有至材,不生而能。故《志》曰:黃帝師風后,顓頊師老彭,帝嚳師祝融,堯師務成,舜師紀后,禹師墨如,湯師伊尹,文、武師姜尚,周公師庶秀,孔子師老聃。若此言之而信,則人不可以不就師矣。夫此十一君者,皆上聖也,猶待學問,其智乃博,其德乃碩,而況於凡人乎?

번역문
천지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이고, 성인이 숭상하는 것은 의(義)이며, 덕과 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지혜이고, 밝은 지혜가 추구하는 것은 학문이다. 비록 지극한 성인이라 할지라도 나면서부터 지혜롭지는 않으며, 비록 지극한 재능을 지녔다 할지라도 나면서부터 능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지(志)』에 이르기를1: 황제(黃帝)는 풍후(風后)를 스승으로 삼았고2, 전욱(顓頊)은 노팽(老彭)을 스승으로 삼았으며3, 제곡(帝嚳)은 축융(祝融)을 스승으로 삼았고4, 요(堯)는 무성(務成)을 스승으로 삼았으며5, 순(舜)은 기후(紀后)를 스승으로 삼았고6, 우(禹)는 묵여(墨如)를 스승으로 삼았으며7, 탕(湯)은 이윤(伊尹)을 스승으로 삼았고8,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은 강상(姜尚)을 스승으로 삼았으며9, 주공(周公)은 서수(庶秀)를 스승으로 삼았고10, 공자(孔子)는 노담(老聃)을 스승으로 삼았다11. 만약 이 말이 참이라면, 사람은 스승에게 나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릇 이 열한 분의 군주들은12 모두 지극한 성인인데도 오히려 학문을 기다려서야 그 지혜가 넓어지고 그 덕이 커졌으니, 하물며 평범한 사람에 있어서랴!


2

원문
是故「工欲善其事,必先利其器」;王欲宣其義,必先讀其智。《易》曰:「君子以多志前言往行以畜其德。」是以人之有學也,猶物之有治也。故夏后之璜,楚和之璧,雖有玉璞卞和之資,不琢不錯,不離礫石。夫瑚簋之器,朝祭之服,其始也,乃山野之木、蠶繭之絲耳。使巧倕加繩墨而制之以斤斧,女工加五色而制之以機杼,則皆成宗廟之器、黼黻之章,可著於鬼神,可御於王公。而況君子敦貞之質,察敏之才,攝之以良朋,教之以明師,文之以《禮》、《樂》,導之以《詩》、《書》,讚之以《周易》,明之以《春秋》,其有濟乎?

번역문
이 때문에 “장인이 그 일을 잘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도구를 날카롭게 해야 한다13.”고 하듯이, 왕이 그 의(義)를 널리 알리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 지혜를 익혀야 한다. 『역(易)』에 이르기를14, “군자는 옛사람의 말과 지난 행적을 많이 기억하여 그 덕을 기른다.”고 하였다. 이로써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마치 사물이 다스려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하후씨(夏后氏)의 황(璜)15이나 초(楚)나라 화씨(和氏)의 벽(璧)16은 비록 옥의 원석인 변화(卞和)의 자질을 지녔다 할지라도, 다듬고 쪼지 않으면 자갈을 벗어나지 못한다. 무릇 호궤(瑚簋)17와 같은 제기(祭器)와 조정 제사의 의복은 그 시작이 산야의 나무와 누에고치의 실에 불과하다. 그러나 교묘한 순(倕)18이 먹줄을 더하여 도끼로 만들고, 여공(女工)이 오색을 더하여 베틀로 만들면, 모두 종묘의 기물과 보불(黼黻)19의 문장이 되어 귀신에게 입힐 수 있고 왕공(王公)에게 사용할 수 있다. 하물며 군자의 돈독하고 곧은 바탕과 살피고 민첩한 재능에, 좋은 벗으로 이끌고, 밝은 스승으로 가르치며, 『예(禮)』와 『악(樂)』으로 꾸미고, 『시(詩)』와 『서(書)』로 인도하며, 『주역(周易)』으로 돕고, 『춘추(春秋)』로 밝힌다면, 어찌 성공함이 없겠는가!


3

원문
《詩》云:「題彼鶺鴒,載飛載鳴。我日斯邁,而月斯征。夙興夜寐,無忝爾所生。」是以「君子終日乾乾,進德脩業者」,非直為博己而已也,蓋乃思述祖考之令問,而以顯父母也。

번역문
『시(詩)』에 이르기를20, “저 할미새를 보라, 날면서 울고 또 우네. 나는 날마다 나아가고, 달마다 나아가네. 일찍 일어나 밤늦도록 자지 않고, 너희가 태어난 바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로써 “군자가 종일토록 부지런히 노력하여 덕을 쌓고 업을 닦는 것21”은 단지 자신을 넓히기 위함만이 아니라, 대개 조상들의 아름다운 명성을 계승하여 부모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4

원문
孔子曰:「吾嘗終日不食,終夜不寢,以思,無益,不如學也。」「耕也,餒在其中;學也,祿在其中矣。君子憂道不憂貧。」箕子陳六極,《國風》歌《北門》,故所謂不憂貧也。豈好貧而弗之憂邪?蓋志有所專,昭其重也。是故君子之求豐厚也,非為嘉饌、美服、淫樂、聲色也,乃將以底其道而邁其德也。

번역문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22, “내가 일찍이 종일토록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들지 않고 생각하였으나, 유익함이 없었으니, 배우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다. “밭을 갈면 굶주림이 그 안에 있고23, 배우면 녹봉이 그 안에 있다. 군자는 도(道)를 근심하고 가난을 근심하지 않는다24.” 기자(箕子)가 육극(六極)을 진술하고25, 『국풍(國風)』에 「북문(北門)」이 노래된 것은26, 이른바 가난을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찌 가난을 좋아하여 근심하지 않는 것이겠는가? 대개 뜻하는 바가 전일(專一)하여 그 중요함을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가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음식, 아름다운 옷, 지나친 즐거움, 여색(女色)을 위함이 아니라, 장차 그 도를 이루고 그 덕을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5

원문
夫道成於學而藏於書,學進於振而廢於窮。是故董仲舒終身不問家事,景君明經年不出戶庭,得銳精其學而顯昭其業者,家富也;富佚若彼,而能勤精若此者,材子也。倪寬賣力於都巷,匡衡自鬻於保徒者,身貧也;貧阨若彼,而能進學若此者,秀士也。當世學士恆以萬計,而究塗者無數十焉,其故何也?其富者則以賄玷精,貧者則以乏易計,或以喪亂朞其年歲,此其所以逮初喪功而及其童蒙者也。是故無董、景之才,倪、匡之志,而欲強捐家出身曠日師門者,必無幾矣。夫此四子者,耳目聰明,忠信廉勇,未必無儔也,而及其成名立績,德音令問不已,而有所以然,夫何故哉?徒以其能自託於先聖之典經,結心於夫子之遺訓也。

번역문
무릇 도(道)는 학문에서 이루어지고 책에 보존되며, 학문은 떨쳐 일어남으로써 나아가고 곤궁함으로 인해 폐해진다. 이 때문에 동중서(董仲舒)는 평생 집안일을 묻지 않았고27, 경군명(景君明)은 여러 해 동안 문밖을 나가지 않았는데28, 그 학문에 정진하여 그 업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집안이 부유했기 때문이다. 저와 같이 부유하고 편안하면서도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할 수 있는 자는 재주 있는 선비이다. 예관(倪寬)은 도성 거리에서 힘을 팔고29, 광형(匡衡)은 스스로 보도(保徒)30에게 몸을 팔았던 것은 몸이 가난했기 때문이다. 저와 같이 가난하고 곤궁하면서도 이와 같이 학문을 진전시킬 수 있는 자는 뛰어난 선비이다. 당세의 학사들은 항상 만 명으로 헤아려지지만, 끝까지 도달하는 자는 수십 명도 되지 않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부유한 자는 재물로 인해 정력을 더럽히고, 가난한 자는 궁핍함으로 인해 계획을 바꾸며, 혹은 상란(喪亂)으로 인해 그 세월을 허비하기 때문이다31. 이것이 그들이 처음에는 공을 잃고 나중에는 어린아이와 같아지는 이유이다. 이 때문에 동중서와 경군명의 재능, 예관과 광형의 뜻이 없으면서도 억지로 집을 버리고 몸을 내어 스승의 문하에서 세월을 보내려는 자는 반드시 많지 않을 것이다. 무릇 이 네 사람은32 이목이 총명하고 충성스럽고 신의 있으며 청렴하고 용감하여, 반드시 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이름을 이루고 공적을 세워 덕스러운 소리와 아름다운 명성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대체 무슨 까닭인가? 단지 그들이 선성(先聖)의 전경(典經)에 스스로 의탁하고, 부자(夫子)의 유훈(遺訓)에 마음을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6

원문
是故造父疾趨,百步而廢,而託乘輿,坐致千里;水師泛軸,解維則溺,自託舟楫,坐濟江河。是故君子者,性非絕世,善自託於物也。人之情性,未能相百,而其明智有相萬也。此非其真性之材也,必有假以致之也。君子之性,未必盡照,及學也,聰明無蔽,心智無滯,前紀帝王,顧定百世,此則道之明也,而君子能假之以自彰爾。

번역문
이 때문에 조보(造父)33가 빨리 달려 백 걸음에 지쳐 쓰러지지만, 수레에 의탁하면 앉아서 천 리를 갈 수 있고, 뱃사공이 노를 저어 가지만 밧줄을 풀면 물에 빠지는데, 스스로 배에 의탁하면 앉아서 강과 하천을 건널 수 있다. 이 때문에 군자는 본성이 세상에 뛰어나지 않더라도 사물에 잘 의탁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성(情性)은 백 배로 차이 나지 않지만, 그 밝은 지혜는 만 배로 차이 날 수 있다. 이것은 그 본래의 성품이 지닌 재능이 아니라, 반드시 빌려서 이룬 것이다. 군자의 본성이 반드시 모든 것을 다 비추지는 못하지만, 학문에 이르면 총명함에 가림이 없고 심지(心智)에 막힘이 없어, 앞서 제왕(帝王)의 기록을 살피고 백세(百世)의 도리를 정할 수 있으니, 이것은 도(道)의 밝음이며, 군자는 그것을 빌려서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7

원문
夫是故道之於心也,猶火之於人目也。中穽深室,幽黑無見,及設盛燭,則百物彰矣。此則火之燿也,非目之光也, 而目假之,則為明矣。天地之道,神明之為,不可見也。學問聖典,心思道術,則皆來覩矣。此則道之材也,非心之明也,而人假之,則為己知矣。

번역문
무릇 이 때문에 도(道)가 마음에 있는 것은 마치 불이 사람의 눈에 있는 것과 같다. 우물 속 깊은 방은 어둡고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밝은 촛불을 놓으면 모든 사물이 드러난다. 이것은 불의 빛남이지 눈의 빛이 아니지만, 눈이 그것을 빌리면 밝아지는 것이다. 천지의 도(道)와 신명(神明)의 작용은 볼 수 없다. 그러나 학문과 성인의 경전, 그리고 도술(道術)을 생각하면 모두 와서 볼 수 있다. 이것은 도의 재능이지 마음의 밝음이 아니지만, 사람이 그것을 빌리면 자신의 앎이 되는 것이다.


8

원문
是故索物於夜室者,莫良於火;索道於當世者,莫良於典。典者、經也。先聖之所制;先聖得道之精者以行其身,欲賢人自勉以入於道。故聖人之制經以遺後賢也,譬猶巧倕之為規矩准繩以遺後工也。

번역문
이 때문에 밤의 방에서 사물을 찾는 데는 불보다 나은 것이 없고, 당세에서 도를 찾는 데는 경전보다 나은 것이 없다. 경전(典)이란 경(經)이다. 선성(先聖)이 제정한 것이니, 선성은 도의 정수를 얻어 몸으로 행하고, 현인(賢人)들이 스스로 힘써 도에 들어가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성인이 경전을 제정하여 후대의 현인들에게 남긴 것은, 비유하자면 교묘한 순(倕)이 규(規)34, 구(矩)35, 준(准)36, 승(繩)37을 만들어 후대의 장인들에게 남긴 것과 같다.


9

원문
昔倕之巧,目茂圓方,心定平直,又造規繩矩墨以誨後人。試使奚仲、公班之徒,釋此四度,而傚倕自制,必不能也;凡工妄匠,執規秉矩,錯准引繩,則巧同於倕也。是倕以心來制規矩,往合倕心也,故度之工,幾於倕矣。

번역문
옛날 순(倕)의 교묘함은 눈으로 원과 사각형을 잘 분별하고, 마음으로 평평하고 곧은 것을 정할 수 있었으며, 또한 규(規), 승(繩), 구(矩), 묵(墨)38을 만들어 후세 사람들을 가르쳤다. 시험 삼아 해중(奚仲)39이나 공반(公班)40 같은 무리에게 이 네 가지 도구를 놓아두고 순을 본받아 스스로 만들게 한다면, 반드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장인이나 어리석은 장인이라도 규를 잡고 구를 들며, 준을 놓고 승을 당기면, 그 솜씨가 순과 같아진다. 이것은 순이 마음으로 규와 구를 만들었고, (후세 사람들이) 나아가 순의 마음에 합치되었기 때문에, 도구를 사용하는 장인의 솜씨가 순에 거의 가까워지는 것이다.


10

원문
先聖之智,心達神明,性直道德,又造經典以遺後人,試使賢人君子,釋於學問,抱質而行,必弗具也,及使從師就學,按經而行,聰達之明,德義之理,亦庶矣。是故聖人以其心來造經典,往合聖心,故脩經之賢,德近於聖矣。

번역문
선성(先聖)의 지혜는 마음으로 신명(神明)에 통달하고, 본성으로 도덕을 곧게 하여, 또한 경전을 만들어 후세 사람들에게 남겼다. 시험 삼아 현인군자(賢人君子)에게 학문을 놓아두고 본질만 지닌 채 행하게 한다면, 반드시 갖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스승을 따르고 학문에 나아가 경전에 의거하여 행하게 하면, 총명하게 통달하는 밝음과 덕의(德義)의 이치가 또한 거의 이루어질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이 그 마음으로 경전을 만들었고, (후세 사람들이) 나아가 성인의 마음에 합치되었으니, 그러므로 경전을 닦는 현인은 덕이 성인에 가깝게 되는 것이다.


11

원문
《詩》云:「高山仰止,景行行止。」「日就月將,學有緝熙于光明。」是故凡欲顯勳績揚光烈者,莫良於學矣。

번역문
『시(詩)』에 이르기를41, “높은 산을 우러러보듯, 큰 행실을 따르네42.”라고 하였고, “날마다 나아가고 달마다 나아가, 학문이 빛나고 밝아지네43.”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무릇 공적을 드러내고 빛나는 업적을 드날리고자 하는 자는 학문보다 나은 것이 없다.


각주

  1. 『지(志)』에 이르기를: 『잠부론(潛夫論)』 「찬학(讚學)」 편에 인용된 구절로, 특정 문헌을 지칭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역사 기록이나 고문헌에 전하는 바를 인용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2. 황제(黃帝)는 풍후(風后)를 스승으로 삼았고: 황제는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으로, 풍후는 그의 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등 여러 문헌에 풍후가 황제를 보좌하고 가르쳤다는 기록이 전한다.
  3. 전욱(顓頊)은 노팽(老彭)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전욱은 오제(五帝) 중 한 명으로, 노팽은 전욱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회남자(淮南子)』 「수훈(脩訓)」 등에 관련 기록이 있다.
  4. 제곡(帝嚳)은 축융(祝融)을 스승으로 삼았고: 제곡은 오제 중 한 명으로, 축융은 불을 관장하는 신이자 제곡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산해경(山海經)』 등에서 축융의 역할이 언급된다.
  5. 요(堯)는 무성(務成)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요는 중국 고대 성군으로, 무성(務成子)은 요임금의 스승으로 알려진 은자이다. 『장자(莊子)』 「재유(在宥)」 편에 요가 무성자에게 도를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6. 순(舜)은 기후(紀后)를 스승으로 삼았고: 순은 요와 함께 중국 고대 성군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기후는 순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기록은 많지 않다. 『회남자(淮南子)』 「수훈(脩訓)」에 순이 기후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다.
  7. 우(禹)는 묵여(墨如)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우는 하(夏)나라를 세운 인물로, 묵여는 우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회남자(淮南子)』 「수훈(脩訓)」에 우가 묵여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다.
  8. 탕(湯)은 이윤(伊尹)을 스승으로 삼았고: 탕은 은(殷)나라를 세운 인물로, 이윤은 탕을 도와 은나라를 건국한 현명한 재상이다. 『맹자(孟子)』 「만장상(萬章上)」 등에 탕이 이윤을 스승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9.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은 강상(姜尚)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문왕과 무왕은 주(周)나라를 세운 인물들로, 강상(姜尚)은 태공망(太公望)으로도 불리며 이들을 도와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전략가이자 스승이다. 『사기(史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등에 관련 기록이 있다.
  10. 주공(周公)은 서수(庶秀)를 스승으로 삼았고: 주공은 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으로, 주나라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서수(庶秀)는 주공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기록은 드물다. 『회남자(淮南子)』 「수훈(脩訓)」에 주공이 서수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다.
  11. 공자(孔子)는 노담(老聃)을 스승으로 삼았다: 공자는 유교의 시조로, 노담은 노자(老子)를 지칭한다. 『사기(史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공자가 노자에게 예(禮)에 대해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12. 열한 분의 군주들: 황제, 전욱, 제곡,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 주공, 공자를 지칭한다.
  13. “장인이 그 일을 잘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도구를 날카롭게 해야 한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14. 『역(易)』에 이르기를: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원문은 "君子以多識前言往行以畜其德"으로, '識(식)'이 '志(지)'로 표기된 이본이거나 인용 과정에서의 차이로 보인다. 의미는 동일하다.
  15. 하후씨(夏后氏)의 황(璜):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후손들이 사용했던 옥기(玉器)인 황(璜)을 의미한다. 황은 반원형의 옥기이다.
  16. 초(楚)나라 화씨(和氏)의 벽(璧):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얻어 초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발이 잘렸다가, 문왕(文王) 때 비로소 귀한 옥으로 인정받아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 불리게 된 천하의 보옥(寶玉)을 말한다.
  17. 호궤(瑚簋): 제사 때 곡물을 담는 제기(祭器)의 일종이다. 호(瑚)는 기장쌀을 담는 그릇이고, 궤(簋)는 밥을 담는 그릇이다.
  18. 순(倕): 요순(堯舜) 시대의 전설적인 명장(名匠)으로, 공장(工匠)의 시조로 숭앙받는다.
  19. 보불(黼黻): 고대 제왕이나 고관대작의 의복에 수놓던 문양. 보(黼)는 도끼 모양의 문양, 불(黻)은 활 궁(弓) 자를 마주 보게 한 모양의 문양으로, 모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20.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소아(小雅)」 「척령(鶺鴒)」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21. “군자가 종일토록 부지런히 노력하여 덕을 쌓고 업을 닦는 것”: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无咎"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문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의미는 통한다.
  22.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23. 밭을 갈면 굶주림이 그 안에 있고: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24. 군자는 도(道)를 근심하고 가난을 근심하지 않는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25. 기자(箕子)가 육극(六極)을 진술하고: 기자는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숙부로,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진술했다. 육극(六極)은 홍범구주 중 하나로, 흉(凶)한 여섯 가지 재앙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가난을 포함한 곤궁한 상황을 언급하는 맥락으로 사용되었다.
  26. 『국풍(國風)』에 「북문(北門)」이 노래된 것은: 『시경(詩經)』 「국풍(國風)」 「패풍(邶風)」에 「북문(北門)」이라는 시가 있는데, 이는 벼슬살이의 어려움과 가난을 노래한 시이다.
  27. 동중서(董仲舒)는 평생 집안일을 묻지 않았고: 한(漢)나라의 유학자로, 학문에 몰두하여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에 "三年不窺園, 其精如此" (3년 동안 정원을 엿보지 않았으니, 그 정진함이 이와 같았다)는 기록이 있다.
  28. 경군명(景君明)은 여러 해 동안 문밖을 나가지 않았는데: 경군명(景君明)은 한(漢)나라의 학자로, 학문에 전념하여 문밖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 「경단열전(景丹列傳)」에 그의 학문적 태도가 언급된다.
  29. 예관(倪寬)은 도성 거리에서 힘을 팔고: 한(漢)나라의 학자로, 가난하여 품팔이를 하면서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한서(漢書)』 「예관전(倪寬傳)」에 "家貧, 庸作以供養" (집이 가난하여 품팔이로 부모를 봉양했다)는 기록이 있다.
  30. 광형(匡衡)은 스스로 보도(保徒)에게 몸을 팔았던 것은: 한(漢)나라의 학자로, 가난하여 남의 집에서 품팔이를 하거나 책을 빌려 읽으면서 학문에 정진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보도(保徒)'는 남의 집에서 일하는 종이나 품팔이꾼을 의미한다. 『한서(漢書)』 「광형전(匡衡傳)」에 "家貧, 負販書傭" (집이 가난하여 책을 지고 팔거나 품팔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31. 상란(喪亂)으로 인해 그 세월을 허비하기 때문이다: 상(喪)은 상을 당하는 것, 란(亂)은 전란이나 혼란을 의미한다. 즉, 개인적인 불행이나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거나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를 말한다.
  32. 이 네 사람은: 동중서, 경군명, 예관, 광형을 지칭한다.
  33. 조보(造父): 중국 고대 주(周)나라 목왕(穆王) 때의 전설적인 명마(名馬) 조련사이자 마부. 그의 마차술은 매우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34. 규(規): 원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도구, 컴퍼스.
  35. 구(矩): 직각을 재는 데 사용하는 도구, 곱자.
  36. 준(准): 수평을 재는 데 사용하는 도구, 수평기.
  37. 승(繩): 곧은 선을 긋는 데 사용하는 도구, 먹줄.
  38. 규(規), 승(繩), 구(矩), 묵(墨): 묵(墨)은 먹줄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된 '규구준승(規矩准繩)'과 유사한 의미로, 장인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도구들을 통칭한다.
  39. 해중(奚仲): 중국 고대 하(夏)나라 때의 전설적인 수레 제작자. 수레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다.
  40. 공반(公班):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명장(名匠)으로, 공수반(公輸班) 또는 노반(魯班)으로도 불린다. 뛰어난 목공 기술과 발명으로 유명하다.
  41.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소아(小雅)」 「거할(車舝)」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42. 높은 산을 우러러보듯, 큰 행실을 따르네: 『시경(詩經)』 「소아(小雅)」 「거할(車舝)」 편에 나오는 구절로, 덕이 높은 사람을 우러러보고 그 행실을 본받는다는 의미이다.
  43. 날마다 나아가고 달마다 나아가, 학문이 빛나고 밝아지네: 『시경(詩經)』 「주송(周頌)」 「소비(小毖)」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潛夫論(잠부론) - 務本(무본)

1

원문
凡為人之大體,莫善於抑末而務本,莫不善於離本而餝末。夫為國者以富民為本,以正學為基。民富乃可教,學正乃得義,民貧則背善,學淫則詐偽,入學則不亂,得義則忠孝。故明君之法,務此二者,以為成太平之基,致休徵之祥。

번역문
무릇 사람됨의 큰 줄기는1, 말단(末端)을 억제하고 근본(根本)에 힘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근본을 떠나 말단을 꾸미는 것보다 좋지 않은 것이 없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바른 학문을 기초로 삼는다. 백성이 부유해져야 가르칠 수 있고, 학문이 바르게 되어야 의(義)를 얻을 수 있다. 백성이 가난하면 선(善)을 등지고, 학문이 음란하면2 속임수가 많아진다. 학문에 들어가면 혼란스럽지 않고, 의를 얻으면 충성스럽고 효도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의 법은 이 두 가지에 힘써서 태평성대의 기초를 이루고 상서로운 징조를 이끌어낸다.


2

원문
夫富民者,以農桑為本,以游業為末;百工者,以致用為本,以巧餝為末;商賈者,以通貨為本,以鬻奇為末;三者守本離末則民富,離本守末則民貧,貧則阨而忌善,富則樂而可教。教訓者,以道義為本,以巧辯為末;辭語者,以信順為本,以詭麗為末;列士者,以孝悌為本,以交游為末;孝悌者,以致養為本,以華觀為末;人臣者,以忠正為本,以媚愛為末;五者守本離末則仁義興,離本守末則道德崩。慎本略末猶可也,舍本務末則惡矣。

번역문
무릇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것은 농업과 양잠을 근본으로 삼고3, 유업(游業)4을 말단으로 삼는다. 백공(百工)5은 쓰임에 이르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교묘하게 꾸미는 것을 말단으로 삼는다. 상인(商賈)은 재화를 유통시키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기이한 물건을 파는 것을 말단으로 삼는다. 이 세 가지가 근본을 지키고 말단을 멀리하면 백성이 부유해지고, 근본을 떠나 말단을 지키면 백성이 가난해진다. 가난하면 곤궁하여 선을 꺼리고, 부유하면 즐거워하며 가르칠 수 있다. 교훈(教訓)은 도의(道義)를 근본으로 삼고, 교묘한 변론을 말단으로 삼는다. 언어(辭語)는 믿음과 순리를 근본으로 삼고, 속임수와 화려함을 말단으로 삼는다. 열사(列士)6는 효도와 공경을 근본으로 삼고, 교유(交游)7를 말단으로 삼는다. 효제(孝悌)는 봉양을 다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겉치레를 말단으로 삼는다. 신하(人臣)는 충성과 바름을 근본으로 삼고, 아첨과 사랑을 말단으로 삼는다. 이 다섯 가지가 근본을 지키고 말단을 멀리하면 인의(仁義)가 흥성하고, 근본을 떠나 말단을 지키면 도덕이 무너진다. 근본을 신중히 하고 말단을 소홀히 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근본을 버리고 말단에 힘쓰는 것은 나쁜 일이다.


3

원문
夫用天之道,分地之利,六畜生於時,百物聚於野,此富國之本。游業末事,以收民利,此貧邦之原。忠信謹慎,此德義之基也。虛無譎詭,此亂道之根也。故力田所以富國也。今民去農桑,赴游業,披采眾利,聚之一門,雖於私家有富,然公計愈貧矣。百工者、所使備器也。器以便事為善,以膠固為上。今工好造彫琢之器,巧偽餝之,以欺民取賄。物以任用為要,以堅牢為資。今商競鬻無用之貨、淫極侈之弊,以惑民取產,雖於淫商有得,然國計愈失矣。此三者,外雖有勤力富家之私名,然內有損民貧國之公實。故為政者,明督工啇,勿使淫偽;困辱游業,勿使擅利。寬假本農,而寵遂學士,則民富而國平矣。

번역문
무릇 하늘의 도를 이용하고8, 땅의 이로움을 나누며9, 육축(六畜)이 때에 맞춰 번식하고10, 온갖 물건이 들판에서 모이는 것11, 이것이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근본이다. 유업(游業)과 말단적인 일로 백성의 이익을 거두어들이는 것12, 이것이 나라를 가난하게 하는 근원이다. 충성스럽고 신의 있으며 삼가는 것은 덕의(德義)의 기초이다. 허무하고 속임수가 많으며 기이한 것은 도를 어지럽히는 근본이다. 그러므로 농업에 힘쓰는 것이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까닭이다. 지금 백성들이 농업과 양잠을 버리고 유업으로 달려가 온갖 이익을 긁어모아 한 집안에 쌓으니, 비록 사적으로는 부유함이 있을지라도 공적인 나라의 살림은 더욱 가난해진다. 백공(百工)은 기물을 갖추게 하는 자들이다. 기물은 일에 편리한 것이 좋고, 견고한 것이 으뜸이다. 지금 장인들은 조각하고 다듬은 기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교묘하게 거짓으로 꾸며서 백성을 속여 뇌물을 취한다. 물건은 쓰임에 적합한 것이 중요하고, 견고한 것이 자산이 된다. 지금 상인들은 쓸모없는 재화와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폐물을 다투어 팔아서 백성을 현혹하여 재산을 빼앗으니, 비록 음란한 상인에게는 이득이 있을지라도 나라의 살림은 더욱 손실된다. 이 세 가지는 겉으로는 부지런히 힘써 집안을 부유하게 하는 사적인 명성이 있을지라도, 안으로는 백성을 손상시키고 나라를 가난하게 하는 공적인 실상이 있다.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자는 공인(工人)과 상인(商人)을 밝게 감독하여 음란하고 거짓된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유업을 곤궁하게 하여13 이익을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근본이 되는 농업을 너그럽게 대하고14, 학사(學士)를 우대하고 성취하게 하면15, 백성이 부유해지고 나라가 평안해질 것이다.


4

원문
夫教訓者,所以遂道術而崇德義也。今學問之士,好語虛無之事,爭著彫麗之文,以求見異於世,品人鮮識,從而高之,此傷道德之實,而或矇夫之大者也。詩賦者,所以頌善醜之德,洩哀樂之情也,故溫雅以廣文,興喻以盡意。今賦頌之徒,苟為饒辯屈蹇之辭,競陳誣罔無然之事,以索見怪於世,愚夫戇士,從而奇之,此悖孩童之思,而長不誠之言者也。內孝悌於父母,正操行於閨門,所以烈士也。今多務交游以結黨助,偷世竊名以取濟渡,夸末之徒,從而尚之,此逼貞士之節,而衒世俗之心者也。養生順志,所以為孝也。今多違志儉養,約生以待終,終沒之後,乃崇餝喪紀以言孝,盛饗賓旅以求名,誣善之徒,從而稱之,此亂孝悌之真行,而誤後生之痛者也。忠正以事君,信法以理下,所以居官也。今多姦諛以取媚,撓法以便佞,苟得之,從而賢之,此滅貞良之行,開亂危之原也;五者,外雖有振賢才之虛譽,內有傷道德之至實。

번역문
무릇 교훈(教訓)은 도술(道術)을 이루고 덕의(德義)를 숭상하기 위함이다. 지금 학문하는 선비들은 허무한 일을 말하기를 좋아하고, 조각하고 화려한 글을 다투어 지어서 세상에 남다르게 보이려 한다. 사람을 평가하는 자들이 식견이 부족하여 그들을 높이 평가하니, 이는 도덕의 실상을 해치는 것이며, 혹 어리석은 자들을 크게 현혹하는 것이다. 시와 부(賦)는 선악의 덕을 칭송하고 애락의 정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온화하고 우아하게 문장을 넓히고, 흥취와 비유로 뜻을 다해야 한다. 지금 부와 송(頌)을 짓는 무리들은 구차하게도 말재주가 많고 굴곡진 말을 지어내고, 거짓되고 터무니없는 일을 다투어 늘어놓아 세상에 기이하게 보이려 한다. 어리석고 미련한 선비들이 그들을 기이하게 여기니, 이는 어린아이의 생각을 거스르고 불성실한 말을 키우는 것이다. 안으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하며, 규문(閨門)16에서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이 열사(烈士)17이다. 지금은 교유(交游)에 힘써 당파를 맺고 도움을 얻으며, 세상을 속이고 명예를 훔쳐서 출세하려 한다. 말단을 자랑하는 무리들이 그들을 숭상하니, 이는 정직한 선비의 절개를 핍박하고 세속적인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부모를 봉양하고 뜻을 따르는 것이 효도이다. 지금은 뜻을 거스르고 검소하게 봉양하며, 삶을 절약하여 죽음을 기다리다가, 죽은 후에야 상례(喪禮)를 성대하게 꾸며서 효도라 말하고, 손님과 나그네를 성대하게 대접하여 명예를 구한다. 선(善)을 속이는 무리들이 그들을 칭송하니, 이는 효제의 참된 행실을 어지럽히고 후세 사람들의 아픔을 그르치는 것이다. 충성스럽고 바르게 임금을 섬기고, 법을 믿고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관직에 있는 자의 도리이다. 지금은 간사하게 아첨하여 아첨을 얻고, 법을 굽혀 간사한 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구차하게 얻은 것을 현명하다고 여기니, 이는 정직하고 선량한 행실을 없애고 혼란과 위태로움의 근원을 여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겉으로는 현명한 재능을 떨친다는 헛된 명예가 있을지라도, 안으로는 도덕의 지극한 실상을 해치는 것이다.


5

원문
凡此八者,皆衰世之務,而闇君之所固也。雖未即於篡弒,然亦亂道之漸來也。

번역문
무릇 이 여덟 가지18는 모두 쇠퇴한 세상의 일이며, 어두운 군주가 고집하는 바이다. 비록 당장 찬탈이나 시해에 이르지는 않을지라도, 또한 도를 어지럽히는 점진적인 시작이다.


6

원문
夫本末消息之爭,皆在於君,非下民之所能移也。夫民固隨君之好,從利以生者也。

번역문
무릇 근본과 말단의 성쇠(盛衰)19 다툼은 모두 군주에게 달려 있으며, 아랫 백성들이 능히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릇 백성은 본래 군주의 좋아하는 바를 따르고, 이익을 좇아 살아가는 자들이다.


7

원문
故君子曰:財賄不多,衣食不贍,聲色不妙,威勢不行,非君子之憂也。行善不多,申道不明,節志不立,德義不彰,君子恥焉。是以賢人智士之於子孫也,厲之以志,弗厲以詐;勸之以正,弗勸以詐;示之以儉,弗示以奢;貽之以言,弗貽以財。是故董仲舒終身不問家事,而踈廣不遺賜金。子孫若賢,不待多富;若其不賢,則多以徵怨。故曰:無德而賄豊,禍之胎也。昔曹羈有言:「守天之聚,必施其德義。德義弗施,聚必有闕。」今或家賑而貸之,遺賑貧窮,恤矜疾苦,則必不久居富矣。《易》曰:「天道虧盈以沖謙。」故仁以義費於彼者,天賞之於此;以邪取於前者,衰之於後。是以持盈之道,挹而損之,則不可以免於亢龍之悔、乾坤之愆矣。

번역문
그러므로 군자는 말한다: 재물이 많지 않고, 의식이 넉넉하지 않으며, 음악과 여색이 묘하지 않고, 위세가 행해지지 않는 것은 군자의 근심이 아니다. 선을 많이 행하지 못하고, 도를 밝히지 못하며, 절개와 뜻을 세우지 못하고, 덕과 의가 드러나지 않는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한다. 이 때문에 현인과 지사(智士)가 자손에게는, 뜻으로 격려하고 속임수로 격려하지 않으며, 바름으로 권하고 속임수로 권하지 않으며, 검소함으로 보여주고 사치함으로 보여주지 않으며, 말로 남겨주고 재물로 남겨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동중서(董仲舒)는 평생 집안일을 묻지 않았고20, 서광(疏廣)은 하사받은 황금을 남기지 않았다21. 자손이 현명하다면 많은 부유함을 기다릴 필요가 없고, 만약 현명하지 않다면 많은 재물은 오히려 원망을 불러올 뿐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덕이 없는데 재물이 풍성하면, 화의 태아이다22." 옛날 조기(曹羈)가 말하기를23, "하늘이 모아준 것을 지키려면 반드시 그 덕의(德義)를 베풀어야 한다. 덕의를 베풀지 않으면 모인 것은 반드시 이지러진다."고 하였다. 지금 어떤 이가 집안이 부유한데도 재물을 아끼고24, 가난한 자에게 재물을 나누어주지 않으며, 병들고 고통받는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반드시 오래 부유하게 살지 못할 것이다. 『역(易)』에 이르기를25, "천도(天道)는 가득 찬 것을 덜어내어 겸손하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仁)과 의(義)로 저들에게 베푼 자는 하늘이 이들에게 상을 주고, 사악하게 먼저 취한 자는 나중에 쇠퇴하게 한다. 이 때문에 가득 찬 것을 유지하는 도리는, 덜어내고 손해를 보는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항룡(亢龍)의 후회26와 건곤(乾坤)의 허물27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8

원문
是故務本則雖虛偽之人皆歸本,居末則雖篤敬之人皆就末。且凍餒之所在,民不得不去也;溫飽之所在,民不得不居也。故衰闇之世,本末之人,未必賢不肖也,禍福之所,勢不得無然爾。故明君涖國,必崇本抑末,以遏亂危之萌。此誠治之危漸,不可不察也。

번역문
이 때문에 근본에 힘쓰면 비록 허위적인 사람이라도 모두 근본으로 돌아오고, 말단에 머물면 비록 돈독하고 공경하는 사람이라도 모두 말단으로 나아간다. 또한 춥고 굶주림이 있는 곳은 백성이 떠나지 않을 수 없고, 따뜻하고 배부름이 있는 곳은 백성이 머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쇠퇴하고 어두운 세상에서는 근본에 힘쓰는 사람과 말단에 힘쓰는 사람이 반드시 현명하고 어리석음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화와 복이 있는 곳에 따라 형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릴 때는 반드시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억제하여 혼란과 위태로움의 싹을 막아야 한다. 이것은 진실로 다스림의 위태로운 점진적인 변화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각주

  1. 대체(大體): 큰 줄기, 중요한 부분, 근본적인 원칙.
  2. 학문이 음란하면(學淫): 학문이 바른 길을 벗어나 사치스럽거나 허황된 것을 추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음(淫)'은 여기서는 '지나치다', '방종하다', '바르지 못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3. 농업과 양잠(農桑): 고대 중국의 주요 생산 활동으로, 백성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산업을 상징한다.
  4. 유업(游業): 농업, 공업, 상업 등 생산적인 본업이 아닌, 유흥이나 사치와 관련된 직업, 또는 생산성이 낮은 비본질적인 직업을 의미한다.
  5. 백공(百工): 여러 가지 기술을 가진 장인들을 통칭하는 말.
  6. 열사(列士): 행실이 바르고 절개가 굳은 선비.
  7. 교유(交游): 사람들과 사귀어 왕래하는 것, 즉 사교 활동이나 인맥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본질적인 덕목보다 외적인 관계에 치중하는 것을 비판하는 맥락이다.
  8. 하늘의 도를 이용하고(用天之道): 하늘의 운행 법칙, 즉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9. 땅의 이로움을 나누며(分地之利): 토지의 생산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익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10. 육축(六畜)이 때에 맞춰 번식하고: 소, 말, 돼지, 양, 개, 닭 등 여섯 가지 가축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번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11. 온갖 물건이 들판에서 모이는 것: 자연에서 나는 온갖 산물이 풍성하게 생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12. 유업(游業)과 말단적인 일로 백성의 이익을 거두어들이는 것: 유업과 같은 비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백성들의 재물을 편취하는 행위를 비판한다.
  13. 유업을 곤궁하게 하여(困辱游業): 유업에 종사하는 자들을 곤궁하게 만들거나,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낮추어 본업에 종사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14. 근본이 되는 농업을 너그럽게 대하고(寬假本農): 농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에게 세금 감면이나 지원 등 혜택을 주어 부담을 덜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15. 학사(學士)를 우대하고 성취하게 하면(寵遂學士): 학문하는 선비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학문적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16. 규문(閨門): 여자가 거처하는 안방이나 집안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가정 내에서의 행실을 뜻한다.
  17. 열사(烈士): 굳은 절개와 의지를 지닌 선비.
  18. 이 여덟 가지: 앞서 언급된 세 가지(농상/유업, 백공/교묘한 꾸밈, 상인/기이한 물건 판매)와 다섯 가지(교훈/교묘한 변론, 언어/속임수와 화려함, 열사/교유, 효제/겉치레, 신하/아첨)의 말단적인 행위들을 통칭한다.
  19. 본말 소식(本末消息): 근본과 말단의 성하고 쇠함, 즉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흥망성쇠를 의미한다. '소식(消息)'은 '성장과 소멸', '흥망성쇠'를 뜻한다.
  20. 동중서(董仲舒)는 평생 집안일을 묻지 않았고: 한(漢)나라의 유학자로, 학문에 몰두하여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에 "三年不窺園, 其精如此" (3년 동안 정원을 엿보지 않았으니, 그 정진함이 이와 같았다)는 기록이 있다.
  21. 서광(疏廣)은 하사받은 황금을 남기지 않았다: 한(漢)나라의 학자로, 관직에서 물러난 후 황제에게 하사받은 황금을 모두 친척과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남기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한서(漢書)』 「서광전(疏廣傳)」에 "盡以財分與宗族鄉黨故人" (재물을 모두 종족, 향당, 옛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22. 덕이 없는데 재물이 풍성하면, 화의 태아이다: 덕이 없는 자가 재물을 많이 가지면 오히려 재앙의 씨앗이 된다는 의미의 경구이다.
  23. 조기(曹羈)가 말하기를: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大夫) 조기(曹羈)의 말로, 『좌전(左傳)』 「환공(桓公) 10년」에 나오는 구절이다.
  24. 집안이 부유한데도 재물을 아끼고(家賑而貸之): '賑(진)'은 '넉넉하다', '부유하다'의 뜻이고, '貸(대)'는 '아끼다', '인색하다'의 뜻으로 쓰였다. 즉, 집안이 부유한데도 재물을 인색하게 다룬다는 의미이다.
  25. 『역(易)』에 이르기를: 『주역(周易)』 「겸괘(謙卦)」의 괘사(卦辭)에 나오는 구절이다.
  26. 항룡(亢龍)의 후회: 『주역(周易)』 「건괘(乾卦)」 상구(上九) 효사(爻辭)에 나오는 "亢龍有悔(항룡유회)"에서 유래한 말로, 용이 너무 높이 올라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어 후회한다는 의미이다. 지위나 권세가 극에 달하면 쇠퇴할 수밖에 없음을 비유한다.
  27. 건곤(乾坤)의 허물: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각각 하늘과 땅을 상징하며, 만물의 근원이다. 여기서는 건곤의 도리를 거스르면 허물이 생긴다는 의미로, 자연의 이치나 도덕적 원칙을 벗어날 때 발생하는 잘못을 뜻한다.

潛夫論(잠부론) - 遏利(알리)

1

원문
世人之論也,靡不貴廉讓而賤財利焉,及其行也,多釋廉甘利之於人。徒知彼之可以利我也,而不知我之得彼,亦將為利人也。知脂蠟之可明燈也,而不知其甚多則冥之。知利之可娛己也,不知其稱而必有也。前人以病,後人以競,庶民之愚而衰闇之至也。予故嘆曰:何不察也?願鑒于道,勿鑒于水。象以齒焚身,蚌以珠剖體;匹夫無辜,懷璧其罪。嗚呼問哉!無德而富貴者,固可豫吊也。

번역문
세상 사람들의 논의는1, 청렴하고 겸양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고 재물과 이익을 천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지만, 그들의 행동에 이르면2, 대개 청렴함을 버리고 남에게서 이익을 달게 취한다3. 그들은 남이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만 알 뿐4, 자신이 남에게서 얻는 것이 또한 남에게 이익이 될 것임5을 알지 못한다. 기름과 밀랍이 등불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어둡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6. 이익이 자신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마땅한 정도에 부합해야 하며7, 반드시 (그에 따른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앞선 사람들은 이로 인해 병들었고8, 뒷사람들은 이로 인해 다투니9, 이는 서민들의 어리석음이요 쇠퇴하고 어두움이 지극함이다. 그러므로 나는 탄식하며 말한다: 어찌 살피지 않는가? 원하건대 도(道)에 비추어 살피고10, 물에 비추어 살피지 말라11. 코끼리는 상아 때문에 몸이 불타고12, 조개는 진주 때문에 몸이 쪼개지며13, 평범한 사람은 죄가 없어도 옥을 품고 있으면 그로 인해 죄가 된다14. 아아, 깊도다!15 덕이 없으면서 부귀한 자는 진실로 미리 애도할 만하다16.


2

원문
且夫利物莫不天之財也。天之制此財也,猶國君之有府庫也。賦賞奪與,各有眾寡,民豈得彊取多哉?故人有無德而富貴,是凶民之竊官位、盜府庫者也,終必覺,覺必誅矣。盜人必誅,況乃盜天乎?得無受禍焉?鄧通死無簪,勝、跪伐其身。是故天子不能違天富無功,諸侯不能違帝厚私勸。非違帝也,非違天也。帝以天為制,天以民為心,民之所欲,天必從之。是故無功庸於民而求盈者,未嘗不力顛也;有勳德於民而謙損者,未嘗不光榮也。自古于今,上以天子,下止庶人,蔑有好利而不亡者,好義而不彰者也。

번역문
또한 무릇 이로운 물건들은17 모두 하늘의 재물이다. 하늘이 이 재물을 제정함은18, 마치 나라의 군주가 부고(府庫)19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하늘이) 베풀고 상주고 빼앗고 주는 것에20, 각각 많고 적음이 있으니21, 백성이 어찌 억지로 많이 취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덕이 없으면서 부귀한 것은, 흉악한 백성이 관직을 훔치고 부고를 훔치는 것과 같으니, 끝내 반드시 발각되고, 발각되면 반드시 주살될 것이다. 남의 것을 훔친 자도 반드시 주살되는데, 하물며 하늘의 것을 훔치는 자이겠는가? 어찌 재앙을 받지 않겠는가? 등통(鄧通)은 죽어서 비녀 하나 없었고22, 승(勝)과 궤(跪)는 몸이 잘렸다23. 이 때문에 천자(天子)는 하늘의 뜻을 어기고 공로 없는 자를 부유하게 할 수 없으며24, 제후(諸侯)는 상제(上帝)의 뜻을 어기고 사적인 청탁을 후하게 들어줄 수 없다25. 상제를 어기는 것이 아니요, 하늘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상제는 하늘을 법도로 삼고26, 하늘은 백성을 마음으로 삼으니27, 백성이 바라는 바를 하늘은 반드시 따른다. 이 때문에 백성에게 공로나 공적 없이 가득 채우려 하는 자는28, 힘써도 넘어지지 않은 적이 없으며29, 백성에게 훈공(勳功)과 덕(德)이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는 자는30, 영광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위로는 천자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고 망하지 않은 자가 없었고, 의(義)를 좋아하고 드러나지 않은 자가 없었다.


3

원문
昔周厲王好專利,芮良夫諫而不入,退賦《桑柔》之詩以諷,言是大風也,必將有遂;是貪民也,必將敗其類。王又不悟,故遂流死于彘。虞公屢求以失其國,公叔戍崇賄以為罪,桓魋不節飲食以見弒。此皆以貨自止,用財自滅。楚鬭文子三為令尹,而有飢色,妻子凍餒,朝不及夕。季文子相四君,馬不餼粟,妾不衣帛;子罕歸玉;晏子歸宅。此皆能棄利約身,故無怨於人,世厚天祿,令問不止。伯夷、叔齊餓于首陽,白駒、介推遯逃於山谷,顏、原、公拆困饉於郊野,守志篤固,秉節不虧,寵祿不能固,威勢不能移, 雖有南面之尊、公侯之位,德義有殆,禮義不班,撓志如芷,負心若芬,固弗為也。是故雖有四海之主弗能與之方名,列國之君不能與之鈞重;守志於一廬之內,而義溢乎九州之外,信立於千載之上,而名傳乎百世之際。

번역문
옛날 주(周)나라 여왕(厲王)은 이익을 독점하기를 좋아하였는데31, 예량부(芮良夫)가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32. (예량부는) 물러나 『상유(桑柔)』33 시를 지어 풍자하였는데, 그 시는 “이것은 큰 바람이니34, 반드시 그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탐욕스러운 백성이니35, 반드시 그 무리를 망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왕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였고, 결국 체(彘) 땅으로 유배되어 죽었다36. 우공(虞公)은 거듭 (이익을) 구하다가 그 나라를 잃었고37, 공숙수(公叔戍)는 뇌물을 쌓아 죄를 지었으며38, 환퇴(桓魋)는 음식 절제를 하지 못하여 시해되었다39. 이들은 모두 재물로 인해 스스로 멈추었고40, 재물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멸망시켰다. 초(楚)나라 투문자(鬭文子)는 세 번이나 영윤(令尹)41이 되었으나, 굶주린 기색이 있었고, 처자는 춥고 굶주려 아침 끼니를 저녁까지 잇지 못했다42. 계문자(季文子)는 네 군주를 보필하면서도43, 말에게 곡식을 먹이지 않았고44, 첩에게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다45. 자한(子罕)은 옥을 돌려보냈고46, 안자(晏子)는 집을 돌려보냈다47. 이들은 모두 이익을 버리고 몸을 단속할 수 있었으므로, 사람들에게 원망을 사지 않았고, 세상은 그들에게 하늘의 녹봉을 후하게 베풀었으며, 아름다운 명성이 끊이지 않았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었고48, 백구(白駒)와 개추(介推)는 산골짜기로 도망쳐 숨었으며49, 안회(顏回), 원헌(原憲), 공손작(公孫拆)은 교외에서 곤궁하고 굶주렸지만50, 뜻을 굳건히 지키고 절개를 훼손하지 않았다. 총애와 녹봉도 그들을 머물게 할 수 없었고, 위세도 그들을 움직일 수 없었다. 비록 남면(南面)의 존귀함51과 공후(公侯)의 지위가 주어져도, 덕의(德義)가 위태로워지고 예의(禮義)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며52, 뜻을 지초(芷)처럼 꺾고53, 마음을 악취(芬)처럼 저버리는 일이라면54, 그들은 결코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비록 사해(四海)의 군주55라도 그들과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없었고, 열국(列國)의 군주도 그들과 무게를 같이 할 수 없었다. 한 칸 오두막 안에서 뜻을 지켰지만, 그 의로움은 구주(九州) 밖으로 넘쳐흘렀고56, 그들의 신의는 천년 위에 확고히 섰으며, 그 이름은 백세(百世)에 걸쳐 전해졌다.


각주

  1. 세상 사람들의 논의는(世人之論也): 일반적인 사람들의 말이나 견해를 의미한다.
  2. 그들의 행동에 이르면(及其行也):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세태를 지적하는 표현이다.
  3. 남에게서 이익을 달게 취한다(甘利之於人): '甘利'는 이익을 달게 여겨 거리낌 없이 취한다는 뜻이다. '之於人'은 '남에게서' 또는 '남에게'로 해석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이익을 취하는 주체가 '나'이고 대상이 '남'이므로 '남에게서'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4. 남이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만 알 뿐(徒知彼之可以利我也): '徒'는 '단지 ~만'이라는 의미이다.
  5. 자신이 남에게서 얻는 것이 또한 남에게 이익이 될 것임(我之得彼,亦將為利人也): 자신이 남에게서 이익을 취하면, 그 이익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손해가 되거나, 혹은 자신이 이익을 취한 만큼 다른 사람도 자신에게서 이익을 취하려 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이익 추구가 끝없이 이어지는 순환을 지적하는 것이다.
  6. 그것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어둡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其甚多則冥之): 등불에 기름이나 밀랍이 너무 많으면 불꽃이 꺼지거나 연기가 나서 오히려 어두워지는 현상에 비유하여, 이익이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7. 그것이 마땅한 정도에 부합해야 하며(其稱): '稱(칭)'은 '알맞다', '적합하다', '균형이 맞다'는 의미이다. 즉, 이익이 자신의 덕이나 능력, 혹은 사회적 역할에 합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8. 앞선 사람들은 이로 인해 병들었고(前人以病): 과거의 사람들이 이익 추구로 인해 고통받거나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9. 뒷사람들은 이로 인해 다투니(後人以競): 후세 사람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세태를 지적한다.
  10. 도(道)에 비추어 살피고(鑒于道): 도(道)는 우주의 근본 원리이자 인간 사회의 올바른 도리를 의미한다. 도를 거울삼아 깊이 성찰하라는 뜻이다.
  11. 물에 비추어 살피지 말라(勿鑒于水): 물은 사물의 겉모습만을 비출 뿐, 그 본질이나 깊은 이치를 보여주지 못한다. 겉모습이나 단편적인 현상에 현혹되지 말라는 의미이다.
  12. 코끼리는 상아 때문에 몸이 불타고(象以齒焚身): 코끼리가 귀한 상아(齒) 때문에 사냥되어 죽임을 당하는 것에 비유하여, 귀한 것을 가졌지만 덕이 없어 화를 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焚身'은 '몸이 불탄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죽임을 당한다', '멸망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13. 조개는 진주 때문에 몸이 쪼개지며(蚌以珠剖體): 조개가 귀한 진주 때문에 잡혀 몸이 쪼개지는 것에 비유한다.
  14. 평범한 사람은 죄가 없어도 옥을 품고 있으면 그로 인해 죄가 된다(匹夫無辜,懷璧其罪): 『좌전(左傳)』 「환공(桓公) 10년」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로, 귀한 보물을 지닌 자가 그 보물 때문에 화를 당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15. 아아, 깊도다!(嗚呼問哉!): '問(문)'은 여기서는 '깊다', '오묘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16. 미리 애도할 만하다(豫吊也): '豫吊'는 '미리 조문하다', '미리 애도하다'는 뜻으로, 그들의 파멸이 이미 정해진 것과 같아서 미리 슬퍼할 만하다는 의미이다.
  17. 이로운 물건들(利物):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모든 재화나 자원을 의미한다.
  18. 하늘이 이 재물을 제정함은(天之制此財也): 재물의 근원이 하늘에 있으며, 하늘의 섭리에 따라 재물이 존재하고 분배된다는 사상이다.
  19. 부고(府庫): 나라의 재물을 보관하는 창고.
  20. 베풀고 상주고 빼앗고 주는 것에(賦賞奪與): 재물의 분배와 수거가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1. 각각 많고 적음이 있으니(各有眾寡): 재물의 분배에는 정해진 양이 있고, 함부로 많이 취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22. 등통(鄧通)은 죽어서 비녀 하나 없었고(鄧通死無簪):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총신으로, 황제의 총애로 막대한 부를 쌓았으나, 경제(景帝) 때 실각하여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난하게 죽었다.
  23. 승(勝)과 궤(跪)는 몸이 잘렸다(勝、跪伐其身):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환관인 승(勝)과 궤(跪)는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으나, 결국 죄를 지어 처형당했다. '伐其身'은 '몸이 잘리다', '죽임을 당하다'는 뜻이다.
  24. 천자(天子)는 하늘의 뜻을 어기고 공로 없는 자를 부유하게 할 수 없으며(天子不能違天富無功): 천자가 하늘의 대리자로서 하늘의 도리를 따라야 하며, 공로 없는 자에게 부를 함부로 줄 수 없음을 의미한다.
  25. 제후(諸侯)는 상제(上帝)의 뜻을 어기고 사적인 청탁을 후하게 들어줄 수 없다(諸侯不能違帝厚私勸): 제후 또한 상제(하늘)의 뜻에 따라야 하며, 사적인 정에 이끌려 부당하게 재물을 줄 수 없음을 의미한다.
  26. 상제는 하늘을 법도로 삼고(帝以天為制): 상제(하늘의 주재자)의 통치 원리가 곧 하늘의 자연스러운 이치임을 말한다.
  27. 하늘은 백성을 마음으로 삼으니(天以民為心): 하늘의 뜻이 백성의 뜻과 같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담고 있다.
  28. 백성에게 공로나 공적 없이 가득 채우려 하는 자(無功庸於民而求盈者): 백성에게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자를 비판한다.
  29. 힘써도 넘어지지 않은 적이 없으며(未嘗不力顛也): '力顛'은 '힘써도 넘어지다', '노력해도 실패하다'는 뜻으로, 부당한 이익 추구는 결국 실패로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30.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는 자(謙損者):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지닌 사람을 의미한다.
  31. 주(周)나라 여왕(厲王)은 이익을 독점하기를 좋아하였는데(周厲王好專利): 주나라 여왕은 서주(西周)의 폭군으로, 백성들의 이익을 독점하여 원성을 샀다.
  32. 예량부(芮良夫)가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芮良夫諫而不入): 예량부는 주 여왕 때의 현명한 신하로, 여왕의 전리(專利) 정책을 비판하며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3. 『상유(桑柔)』: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실린 시의 제목으로, 주 여왕의 폭정을 풍자한 내용이다.
  34. 이것은 큰 바람이니(言是大風也): 『상유』 시의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한 것으로, 여왕의 폭정이 마치 큰 바람처럼 백성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는 비유이다.
  35. 이들은 탐욕스러운 백성이니(是貪民也): 여왕과 그를 따르는 탐욕스러운 무리들을 지칭한다.
  36. 결국 체(彘) 땅으로 유배되어 죽었다(故遂流死于彘): 주 여왕은 백성들의 반란으로 인해 체(彘) 땅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죽었다.
  37. 우공(虞公)은 거듭 (이익을) 구하다가 그 나라를 잃었고(虞公屢求以失其國): 춘추시대 우(虞)나라의 군주로, 진(晉)나라가 괵(虢)나라를 치기 위해 우나라에 길을 빌려달라고 하면서 보물을 주자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괵나라가 망한 후 우나라도 진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38. 공숙수(公叔戍)는 뇌물을 쌓아 죄를 지었으며(公叔戍崇賄以為罪):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대부로, 뇌물을 탐하다가 결국 처형당했다.
  39. 환퇴(桓魋)는 음식 절제를 하지 못하여 시해되었다(桓魋不節飲食以見弒):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대부로, 사치와 탐욕으로 인해 결국 암살당했다. '不節飲食'은 단순히 음식 절제를 못했다기보다는, 탐욕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40. 재물로 인해 스스로 멈추었고(以貨自止): 재물에 대한 탐욕이 그들의 파멸을 자초했음을 의미한다.
  41. 영윤(令尹): 초(楚)나라의 재상 직책.
  42. 투문자(鬭文子)는 세 번이나 영윤이 되었으나, 굶주린 기색이 있었고, 처자는 춥고 굶주려 아침 끼니를 저녁까지 잇지 못했다(楚鬭文子三為令尹,而有飢色,妻子凍餒,朝不及夕): 춘추시대 초나라의 현명한 재상으로, 청렴결백하여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가난하게 살았다.
  43. 계문자(季文子)는 네 군주를 보필하면서도(季文子相四君):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현명한 대부로, 네 명의 군주를 섬기면서도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다.
  44. 말에게 곡식을 먹이지 않았고(馬不餼粟): 말에게 귀한 곡식 대신 풀을 먹였다는 의미로, 검소함을 상징한다.
  45. 첩에게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다(妾不衣帛): 첩에게도 사치스러운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다는 의미로, 극도의 검소함을 보여준다.
  46. 자한(子罕)은 옥을 돌려보냈고(子罕歸玉):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대부로, 백성이 바친 옥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 청렴함을 보였다.
  47. 안자(晏子)는 집을 돌려보냈다(晏子歸宅):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현명한 재상으로, 제 경공(景公)이 큰 집을 지어주려 하자 이를 사양하고 돌려보냈다.
  48.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었고(伯夷、叔齊餓于首陽): 은(殷)나라 말기의 현인으로, 주(周)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자,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 죽었다.
  49. 백구(白駒)와 개추(介推)는 산골짜기로 도망쳐 숨었으며(白駒、介推遯逃於山谷): 백구는 『논어』에 언급되는 은자이고, 개추(개자추)는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현인으로, 문공(文公)을 따랐으나 공을 내세우지 않고 면산(綿山)에 숨어 살다가 불에 타 죽었다.
  50. 안회(顏回), 원헌(原憲), 공손작(公孫拆)은 교외에서 곤궁하고 굶주렸지만(顏、原、公拆困饉於郊野): 안회(顏回)는 공자의 수제자, 원헌(原憲)은 공자의 제자, 공손작(公孫拆)은 공손추(公孫丑)의 오기일 가능성도 있으나, 여기서는 모두 청빈하게 살면서도 도를 지킨 인물들을 대표한다.
  51. 남면(南面)의 존귀함(南面之尊): 고대 중국에서 군주가 남쪽을 향해 앉아 신하들의 조회를 받는 데서 유래한 말로, 군주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한다.
  52. 예의(禮義)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며(禮義不班): '班(반)'은 '나누다', '베풀다', '시행하다'는 의미이다. 즉, 예의가 제대로 지켜지거나 베풀어지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53. 뜻을 지초(芷)처럼 꺾고(撓志如芷): '撓志'는 '뜻을 굽히다', '절개를 꺾다'는 의미이다. '芷(지)'는 향기로운 풀인 지초를 의미하는데, 지초가 연약하여 쉽게 꺾이는 것에 비유하여, 뜻을 쉽게 꺾는 것을 비판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54. 마음을 악취(芬)처럼 저버리는 일이라면(負心若芬): '負心'은 '마음을 저버리다', '배신하다'는 의미이다. '芬(분)'은 원래 '향기'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악취'나 '더러움'을 비유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마음을 더럽히거나 배신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55. 사해(四海)의 군주(四海之主): 천하를 다스리는 군주, 즉 황제를 의미한다.
  56. 구주(九州) 밖으로 넘쳐흘렀고(義溢乎九州之外): 구주(九州)는 고대 중국의 전 국토를 의미한다. 그들의 의로움이 온 천하를 넘어 멀리까지 퍼져나갔음을 강조한다.

潛夫論(잠부론) - 論榮(논영)

1

원문
所謂賢人君子者,非必高位厚祿富貴榮華之謂也,此則君子之所宜有,而非其所以為君子者也。所謂小人者,非必貧賤凍餒困辱阨窮之謂也,此則小人之所宜處,而非其所以為小人者也。

번역문
이른바 현인군자(賢人君子)라는 것은, 반드시 높은 지위와 후한 녹봉,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이르는 것이 아니다1. 이것들은 군자가 마땅히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군자가 군자 되는 까닭은 아니다. 이른바 소인(小人)이라는 것은, 반드시 가난하고 천하며 춥고 굶주리고 곤궁하고 욕을 당하며 곤경에 처하고 궁핍한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2. 이것들은 소인이 마땅히 처할 수 있는 것이지만, 소인이 소인 되는 까닭은 아니다.


2

원문
奚以明之哉?夫桀、紂者,夏、殷之君王也,崇侯、惡來,天子之三公也,而猶不免於小人者,以其心行惡也。伯夷、叔齊,餓夫也,傅說胥靡,而井𦥑處虜也,然世猶以為君子者,以為志節美也。

번역문
무엇으로 이를 밝힐 수 있겠는가? 무릇 걸(桀)3과 주(紂)4는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의 군왕이었고, 숭후(崇侯)5와 오래(惡來)6는 천자의 삼공(三公)7이었지만, 오히려 소인(小人)의 범주를 면치 못했던 것은 그 마음과 행실이 악했기 때문이다. 백이(伯夷)8와 숙제(叔齊)9는 굶주린 사내였고, 부열(傅說)10은 죄수 노예였으며11, 정구(井𦥑)12는 포로의 처지에 있었지만, 세상이 오히려 그들을 군자라고 여겼던 것은 그들의 뜻과 절개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3

원문
故論士苟定于志行,勿以遭命,則雖有天下不足以為重,無所用不可以為輕,處隸圉不足以為恥,撫四海不足以為榮。況乎其未能相縣若此者哉?故曰:寵位不足以為尊我,而卑賤不足以卑己。

번역문
그러므로 선비(士)를 논할 때, 만약 그 뜻과 행실에 확고히 정해져 있다면13, 처한 운명으로 인해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14. 그렇다면 비록 천하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중하게 여길 수 없고, 아무 쓸모가 없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노예나 마부의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부끄러워할 것이 못 되며, 사해(四海)를 다스린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영광으로 삼을 것이 못 된다. 하물며 그 처지가 이처럼 현격하게 차이 나지 않는 자들에 있어서랴15! 그러므로 말하기를, "총애받는 지위가 나를 존귀하게 만들기에 부족하고, 비천함이 나를 비천하게 만들기에 부족하다16."고 하였다.


4

원문
夫令譽從我興,而二命自天降之。《詩》云:「天實為之,謂之何哉!」故君子未必富貴,小人未必貧賤,或潛龍未用,或亢龍在天,從古以然。今觀俗士之論也,以族舉德,以位命賢,茲可謂得論之一體矣,而未獲至論之淑真也。

번역문
무릇 아름다운 명예는 나로부터 일어나지만17, 두 가지 운명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18. 『시(詩)』에 이르기를19, “하늘이 실로 그렇게 하였으니, 이를 어찌 말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가 반드시 부귀한 것은 아니며, 소인이 반드시 빈천한 것도 아니다. 혹은 잠룡(潛龍)20처럼 아직 쓰이지 못하기도 하고, 혹은 항룡(亢龍)21처럼 하늘에 있기도 하니, 예로부터 그러하였다. 지금 세속적인 선비들의 논의를 보면, 가문으로 덕을 평가하고22, 지위로 현명함을 논하니23, 이것은 논의의 한 가지 측면을 얻었다고 할 수 있으나, 지극한 논의의 순수하고 참된 것을 얻지는 못하였다.


5

원문
堯、聖父也,而丹凶傲;舜、聖子也,而叟頑惡;叔嚮、賢兄也,而鮒貪暴;季友、賢弟也,而慶父淫亂。論若必以族,是丹宜禪而舜宜誅,鮒宜賞而友宜夷也。論之不可必以族也若是。

번역문
요(堯)24는 성스러운 아버지였으나, 단주(丹朱)25는 흉악하고 오만했다. 순(舜)26은 성스러운 아들이었으나, 고수(瞽叟)27는 완고하고 악했다. 숙향(叔嚮)28은 현명한 형이었으나, 부(鮒)29는 탐욕스럽고 포악했다. 계우(季友)30는 현명한 아우였으나, 경보(慶父)31는 음란하고 난폭했다. 만약 논의가 반드시 가문에 따라야 한다면, 이는 단주가 마땅히 선양(禪讓)을 받아야 하고 순은 마땅히 주살되어야 하며, 부는 마땅히 상을 받아야 하고 계우는 마땅히 멸족되어야 할 것이다. 논의가 반드시 가문에 따라서는 안 되는 것이 이와 같다.


6

원문
昔祁奚有言:「鯀殛而禹興,管、蔡為戮,周公祐王。」故《書》稱「父子兄弟不相及」也。幽、厲之貴,天子也,而又富有四海。顏原之賤,匹庶也,而又凍餒屢空。論若必以位,則是兩王是為世士,而二處為愚鄙也。論之不可必以位也,又若是焉。

번역문
옛날 기해(祁奚)32가 말하기를, “곤(鯀)33은 주살되었으나 우(禹)34는 흥성하였고, 관숙(管叔)35과 채숙(蔡叔)36은 죽임을 당했으나 주공(周公)37은 왕을 도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서경(書經)』38에 “부자 형제는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일컬었다. 유왕(幽王)39과 여왕(厲王)40의 귀함은 천자였고, 또한 사해(四海)를 소유하여 부유했다. 안회(顏回)41와 원헌(原憲)42의 천함은 평범한 백성이었고, 또한 춥고 굶주려 자주 빈곤했다. 만약 논의가 반드시 지위에 따라야 한다면, 이 두 왕은 세상의 훌륭한 선비가 되고, 이 두 사람(안회와 원헌)은 어리석고 비루한 자가 될 것이다. 논의가 반드시 지위에 따라서는 안 되는 것이 또한 이와 같다.


7

원문
故曰:仁重而勢輕,位蔑而義榮。今之論者,多此之反,而又以九族,或以所來,則亦遠於獲真賢矣。

번역문
그러므로 말하기를, “인(仁)은 중하고 권세는 가벼우며, 지위는 보잘것없고 의(義)는 영광스럽다.”고 하였다. 지금 논하는 자들은 대개 이와 반대로 하며, 또한 구족(九族)43이나 혹은 출신 배경44으로 판단하니, 이는 또한 진정한 현명한 자를 얻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8

원문
昔自周公不求備於一人,況乎其德義既舉,乃可以宅故而弗之采乎?由余生於五狄,越象產於人蠻,而功施齊、秦,德立諸夏,令名美譽,載於圖書,至今不滅。張儀、中國之人也,衛鞅、康叔之孫也,而皆讒佞反覆,交亂四海。由斯觀之,人之善惡,不必世族;性之賢鄙,不必世俗。中堂生負苞,山野生蘭芷。夫和氏之璧,出於璞石;隨氏之珠,產於蜃蛤。《詩》云:「采葑采菲,無以下體。」故苟有大美可尚於世,則雖細行小瑕曷足以為累乎?

번역문
옛날 주공(周公)45조차 한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았는데46, 하물며 그 덕과 의가 이미 드러났는데도 옛 관습에 얽매여 그들을 등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여(由余)47는 오적(五狄)48에서 태어났고, 월상(越象)49은 인만(人蠻)50에서 나왔지만, 그 공적은 제(齊)나라와 진(秦)나라에 베풀어졌고, 그 덕은 제하(諸夏)51에 세워져, 아름다운 명성과 좋은 평판이 도서(圖書)52에 실려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장의(張儀)53는 중국(中國)54 사람이고, 위앙(衛鞅)55은 강숙(康叔)56의 손자였지만, 모두 참소하고 아첨하며 변덕스러워 사해(四海)를 어지럽혔다. 이로써 볼 때, 사람의 선악은 반드시 세족(世族)57에 달려 있지 않으며, 본성의 현명함과 비루함은 반드시 세속(世俗)58에 달려 있지 않다. 대청 한가운데서도 껍질을 덮은 식물이 자라나고59, 산과 들에서도 난초와 지초가 자란다60. 무릇 화씨지벽(和氏之璧)61은 다듬지 않은 돌에서 나왔고, 수씨지주(隨氏之珠)62는 조개에서 나왔다. 『시(詩)』에 이르기를63, “순무를 캐고 무를 캐되, 아랫부분을 버리지 말라64.”고 하였다. 그러므로 만약 세상에서 숭상할 만한 큰 아름다움이 있다면, 비록 사소한 행실의 작은 허물이라 한들 어찌 누(累)가 될 수 있겠는가?


9

원문
是以用士不患其非國士,而患其非中;世非患無臣,而患其非賢。蓋無羇縻。陳平、韓信、楚俘也,而高祖以為藩輔,實平四海,安漢室;衛青、霍去病,平陽之私人也,而武帝以為司馬,實攘北狄,郡河西。唯其任也,何卑遠之有?然則所難於非此士之人,非將相之世者,為其無是能而處是位,無是德而居是貴,無以我尚而不秉我勢也。

번역문
이 때문에 선비를 등용할 때, 그가 국사(國士)65가 아님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가 적합하지 않음을 걱정해야 한다66. 세상은 신하가 없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 신하가 현명하지 않음을 걱정해야 한다. 대개 (인재 등용에) 얽매임이 없어야 한다67. 진평(陳平)68과 한신(韓信)69은 초(楚)나라 출신이었지만70, 고조(高祖)71는 그들을 번보(藩輔)72로 삼아 실로 사해(四海)를 평정하고 한(漢)나라 왕실을 안정시켰다. 위청(衛青)73과 곽거병(霍去病)74은 평양공주(平陽公主)의 사사로운 가신(家臣)이었지만75, 무제(武帝)76는 그들을 사마(司馬)77로 삼아 실로 북쪽 오랑캐를 물리치고 하서(河西)78에 군(郡)을 설치했다. 오직 그들의 능력에 맡길 뿐이니, 어찌 비천하거나 멀리 떨어진 출신을 문제 삼겠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선비가 아닌 사람, 즉 장수나 재상이 나올 만한 가문이 아닌 사람에게서 어려운 점은, 그들이 그러한 능력이 없으면서도 그러한 지위에 있고, 그러한 덕이 없으면서도 그러한 귀함을 누리며, 나로 하여금 그들을 숭상할 만한 것이 없는데도 나의 권세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각주

  1. 높은 지위와 후한 녹봉, 부귀영화(高位厚祿富貴榮華): 외적인 성공과 물질적인 풍요를 의미한다.
  2. 가난하고 천하며 춥고 굶주리고 곤궁하고 욕을 당하며 곤경에 처하고 궁핍한 것: 외적인 불행과 고통스러운 상황을 의미한다.
  3. 걸(桀): 중국 하(夏)나라의 마지막 군주로, 폭군으로 악명 높다.
  4. 주(紂): 중국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로, 걸과 함께 대표적인 폭군으로 꼽힌다.
  5. 숭후(崇侯): 은나라 주왕(紂王) 때의 제후로, 주왕의 폭정을 도운 간신이다.
  6. 오래(惡來): 은나라 주왕(紂王) 때의 간신으로, 주왕의 총애를 받으며 폭정을 도왔다.
  7. 삼공(三公): 고대 중국에서 가장 높은 세 명의 관직을 통칭하는 말.
  8. 백이(伯夷): 은나라 말기의 현인으로,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하자,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숙제와 함께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 죽었다.
  9. 숙제(叔齊): 백이의 아우로, 백이와 함께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10. 부열(傅說): 은나라 고종(高宗) 무정(武丁) 때의 현명한 재상으로, 원래는 부험(傅險)이라는 곳에서 노역을 하던 죄수 노예였다.
  11. 죄수 노예(胥靡): 죄를 지어 강제 노역에 동원된 사람을 의미한다.
  12. 정구(井𦥑): 정확한 인물에 대한 기록은 드물지만, 문맥상 부열과 같이 비천한 신분이었던 인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處虜'는 '포로의 처지에 있다'는 의미이다.
  13. 그 뜻과 행실에 확고히 정해져 있다면(苟定于志行): '苟'는 '만약 ~라면'의 의미로 쓰였다.
  14. 처한 운명으로 인해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勿以遭命): '遭命'은 '운명을 만나다', 즉 처한 상황이나 운명을 의미한다.
  15. 하물며 그 처지가 이처럼 현격하게 차이 나지 않는 자들에 있어서랴(況乎其未能相縣若此者哉): '相縣'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의미이다. 즉, 걸, 주, 숭후, 오래와 백이, 숙제, 부열, 정구처럼 극단적으로 지위가 높거나 낮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을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의미이다.
  16. 총애받는 지위가 나를 존귀하게 만들기에 부족하고, 비천함이 나를 비천하게 만들기에 부족하다: 외적인 조건이 사람의 본질적인 가치를 결정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17. 아름다운 명예는 나로부터 일어나지만(令譽從我興): 사람의 진정한 명예는 스스로의 덕과 행실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이다.
  18. 두 가지 운명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二命自天降之): '二命'은 부귀와 빈천, 혹은 길흉화복과 같은 대조적인 운명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하늘의 뜻에 따른 것임을 강조한다.
  19.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20. 잠룡(潛龍):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첫 효사(爻辭)에 나오는 말로,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 숨어 있는 영웅이나 현자를 비유한다.
  21. 항룡(亢龍):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마지막 효사(爻辭)에 나오는 말로, 지위나 권세가 극에 달하여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어 후회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비유한다.
  22. 가문으로 덕을 평가하고(以族舉德): 사람의 덕성을 그가 속한 가문의 배경으로 판단하는 세속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23. 지위로 현명함을 논하니(以位命賢): 사람의 현명함을 그가 가진 지위나 관직으로 판단하는 세속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24. 요(堯):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중 한 명.
  25. 단주(丹朱): 요(堯) 임금의 아들로, 불초하여 요 임금이 순(舜)에게 선양했다는 기록이 있다.
  26. 순(舜):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중 한 명.
  27. 고수(瞽叟): 순(舜) 임금의 아버지로, 눈이 멀고 완고하며 악독하여 순을 여러 번 죽이려 했다고 전해진다.
  28. 숙향(叔嚮):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현명한 대부(大夫).
  29. 부(鮒): 숙향(叔嚮)의 아우인 양설부(羊舌鮒)를 지칭한다. 그는 탐욕스럽고 포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30. 계우(季友):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현명한 대부로, 노 환공(桓公)의 아들이자 노 장공(莊公)의 아우이다.
  31. 경보(慶父):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공자로, 음란하고 난폭하여 노나라의 혼란을 야기했다. "경보가 죽지 않으면 노나라의 난리가 그치지 않는다(慶父不死,魯難未已)"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이다.
  32. 기해(祁奚):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현명한 대부로, 사심 없이 인재를 추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33. 곤(鯀): 우(禹) 임금의 아버지로, 홍수를 다스리는 데 실패하여 순(舜) 임금에게 주살되었다.
  34. 우(禹): 중국 하(夏)나라를 세운 인물로, 곤의 아들이다. 홍수를 성공적으로 다스려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35. 관숙(管叔):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아우로, 무왕 사후 주공(周公)이 섭정하자 채숙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주살되었다.
  36. 채숙(蔡叔):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아우로, 관숙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주살되었다.
  37. 주공(周公):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이자 무왕(武王)의 아우로, 무왕 사후 어린 성왕(成王)을 대신하여 섭정하며 주나라의 기틀을 다진 현명한 인물이다.
  38. 『서경(書經)』: 유교 경전 중 하나로, 고대 중국의 역사 기록과 사상을 담고 있다. 여기 인용된 구절은 『서경』 「강고(康誥)」 편에 나오는 "父子兄弟,罪不相及" (부자 형제는 죄가 서로 미치지 않는다)와 유사한 의미로, 개인의 죄는 가족에게 연좌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한다.
  39. 유왕(幽王): 서주(西周)의 마지막 군주로, 포사(褒姒)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아 결국 서주가 멸망하는 원인을 제공한 폭군이다.
  40. 여왕(厲王): 서주(西周)의 군주로, 백성들의 이익을 독점하고 폭정을 일삼아 결국 백성들의 반란으로 쫓겨났다.
  41. 안회(顏回): 공자의 수제자로, 청빈한 삶을 살면서도 학문과 덕행에 뛰어났다.
  42. 원헌(原憲): 공자의 제자로, 안회와 마찬가지로 청빈한 삶을 살면서도 도를 지켰다.
  43. 구족(九族): 부계(父系)와 모계(母系), 처계(妻系)를 포함한 아홉 종류의 친족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가문이나 혈통을 뜻한다.
  44. 출신 배경(所來):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즉 그 사람의 출신이나 배경을 의미한다.
  45. 주공(周公): 주(周)나라의 현명한 재상.
  46. 한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았는데(不求備於一人): 주공이 인재를 등용할 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고, 각자의 장점을 살려 썼다는 의미이다.
  47. 유여(由余): 춘추시대 진(秦) 목공(穆公)의 현명한 신하로, 원래는 서융(西戎) 출신이었다.
  48. 오적(五狄): 중국 북방의 다섯 이민족을 통칭하는 말.
  49. 월상(越象):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현명한 신하로, 원래는 남방의 월(越)나라 출신이었다.
  50. 인만(人蠻): 남방의 이민족을 통칭하는 말.
  51. 제하(諸夏): 고대 중국의 여러 제후국들을 통칭하는 말로, 중원(中原)의 중국 문명권을 의미한다.
  52. 도서(圖書): 그림과 글이 있는 책, 즉 역사 기록이나 문헌을 의미한다.
  53. 장의(張儀): 전국시대 종횡가(縱橫家)의 대표적인 인물로, 진(秦)나라의 재상을 지내며 합종(合從)과 연횡(連衡) 정책을 통해 여러 나라를 농락했다.
  54. 중국(中國): 여기서는 중원(中原) 지역, 즉 당시 문명화된 한족(漢族)의 땅을 의미한다.
  55. 위앙(衛鞅):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재상으로, 상앙(商鞅)이라고도 불린다. 법가(法家) 사상에 입각한 개혁을 단행하여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으나, 가혹한 법 집행으로 원한을 사 결국 거열형에 처해졌다.
  56. 강숙(康叔):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아우로, 위(衛)나라의 시조이다. 위앙이 강숙의 후손이라는 것은 그가 명문 출신임을 의미한다.
  57. 세족(世族):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명문 가문.
  58. 세속(世俗): 세상의 풍속이나 관습.
  59. 대청 한가운데서도 껍질을 덮은 식물이 자라나고(中堂生負苞): '負苞'는 껍질이나 포엽(苞葉)으로 싸인 식물을 의미한다. 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귀한 것이 나올 수 있음을 비유한다.
  60. 산과 들에서도 난초와 지초가 자란다(山野生蘭芷): 난초와 지초는 향기로운 풀로, 은자나 현자의 덕을 비유한다. 자연 속에서 귀한 것이 자라듯이, 비천한 곳에서도 현명한 인물이 나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61. 화씨지벽(和氏之璧):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변화(卞和)가 발견한 천하의 보옥(寶玉).
  62. 수씨지주(隨氏之珠): 수후지주(隨侯之珠)라고도 하며, 수(隨)나라 후작이 뱀의 상처를 치료해준 대가로 얻었다는 야광주(夜光珠).
  63.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국풍(國風)」 「패풍(邶風)」 「곡풍(谷風)」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64. 순무를 캐고 무를 캐되, 아랫부분을 버리지 말라(采葑采菲,無以下體): '葑(봉)'은 순무, '菲(비)'는 무를 의미한다. 뿌리채소의 아랫부분은 흙이 묻어 있거나 못생겼을 수 있지만, 버리지 않고 다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사람을 평가할 때 겉모습이나 사소한 흠결 때문에 그 본질적인 가치를 버리지 말라는 비유이다.
  65. 국사(國士): 한 나라의 뛰어난 인재,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할 만한 선비.
  66. 그가 적합하지 않음을 걱정해야 한다(而患其非中): '非中'은 '적합하지 않다', '알맞지 않다',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미이다. 즉, 그 사람의 능력이나 덕성이 맡은 바 역할에 부합하지 않음을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67. 대개 (인재 등용에) 얽매임이 없어야 한다(蓋無羇縻): '羇縻(기미)'는 말의 고삐나 굴레를 의미하며, 여기서는 인재 등용에 있어서 출신, 배경, 사소한 흠결 등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태도를 의미한다.
  68. 진평(陳平):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모사(謀士)로, 뛰어난 지략으로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69. 한신(韓信):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명장(名將)으로,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70. 초(楚)나라 출신이었지만(楚俘也): 진평과 한신 모두 원래는 초(楚)나라 항우(項羽)의 휘하에 있었으나, 후에 유방에게 귀순하여 한나라 건국에 기여했다. '楚俘'는 '초나라의 포로'라는 직역보다는 '초나라 출신' 또는 '초나라에 속했던 자'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71. 고조(高祖):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의 묘호.
  72. 번보(藩輔): 나라를 지키고 돕는 기둥과 같은 신하.
  73. 위청(衛青):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명장으로, 흉노(匈奴) 정벌에 큰 공을 세웠다. 원래는 평양공주의 마부였다.
  74. 곽거병(霍去病):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명장으로, 위청의 조카이다. 역시 흉노 정벌에 큰 공을 세웠다.
  75. 평양공주(平陽公主)의 사사로운 가신(家臣)이었지만(平陽之私人也): 위청은 평양공주의 노비 출신이었고, 곽거병은 평양공주의 동생인 위소아(衛少兒)의 아들이었다. '私人'은 '사사로운 사람', '가신'을 의미한다.
  76. 무제(武帝): 한(漢)나라의 황제.
  77. 사마(司馬): 고대 중국의 군사 관직명으로, 병마를 관장하는 고위직이다.
  78. 하서(河西): 황하(黃河) 서쪽 지역을 의미하며, 한나라가 흉노를 물리치고 확보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潛夫論(잠부론) - 賢難(현난)

1

원문
世之所以不治者,由賢難也。所謂賢難者,非直體聰明服德義之謂也。此則求賢之難得爾,非賢者之所難也。故所謂賢者,乃將言乎循善則見妬,行賢則見嫉也,而必遇患難者也。

번역문
세상이 다스려지지 않는 까닭은 현인(賢人)의 어려움 때문이다1. 이른바 현인의 어려움이라는 것은, 단지 몸이 총명하고 덕과 의를 따르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2. 이것은 현인을 구하기 어려운 것일 뿐3, 현인 자신이 겪는 어려움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른바 현인이라는 것은, 선(善)을 따르면 시기(猜忌)를 받고4, 현명하게 행동하면 질투(嫉妬)를 받아5, 반드시 환난(患難)을 겪게 되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2

원문
虞舜之所以放殛,子胥之所以被誅,上聖大賢猶不能自免於嫉妬,則又乎中世之人哉?此秀士所以雖有賢材美質,然猶不得直道而行,遂成其志者也。

번역문
우순(虞舜)6이 유배되어 죽임을 당하고7, 자서(子胥)8가 주살된 까닭은9, 지극한 성인과 큰 현인조차 질투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었으니, 하물며 중세(中世)10의 사람들에 있어서랴? 이것이 바로 뛰어난 선비들이 비록 현명한 재능과 아름다운 자질을 지녔음에도, 오히려 바른 도리를 행하지 못하고11, 마침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이다.


3

원문
處士不得直其行,朝臣不得直其言,此俗化之所以敗,闇君之所以孤也。齊侯之以奪國,魯公之以放逐, 皆敗績厭覆於不暇,而用及治乎?故德薄者惡聞美行,政亂者惡聞治言,此亡秦之所以誅偶語而坑術士也。

번역문
처사(處士)12는 그 행실을 바르게 할 수 없고, 조정 신하는 그 말을 바르게 할 수 없으니13, 이것이 세속의 풍조가 패배하는 까닭이요, 어두운 군주가 고립되는 까닭이다. 제후(齊侯)14가 이로 인해 나라를 빼앗기고15, 노공(魯公)16이 이로 인해 쫓겨났으니17, 모두 패배하고 전복되어 미처 손쓸 틈도 없었는데18, 어찌 다스림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덕이 부족한 자는 아름다운 행실을 듣기 싫어하고, 정치가 혼란한 자는 다스려지는 말을 듣기 싫어하니, 이것이 망한 진(秦)나라가 짝지어 말하는 자를 주살하고19, 술사(術士)를 생매장한20 까닭이다.


4

원문
今世俗之人,自慢其親而憎人敬之,自簡其親而憎人愛之者不少也。豈獨品庶,賢材時有焉。鄧通幸於文帝,盡心而不違,吮癰而無恡色。帝病不樂,從容曰:「天下誰最愛朕者乎?」鄧通欲稱太子之孝,則因對曰:「莫若太子之最愛陛下也。」及太子問疾,帝令吮癰,有難之色,帝不悅而遣太子。既而聞鄧通之常吮癰也,乃慚而怨之。及嗣帝位,遂致通罪而使至於餓死。故鄧通、行所以盡心力而無害人,其言所以譽太子而昭孝慈也。太子自不能盡其稱,則反結怨而歸咎焉。稱人之長,欲彰其孝,且猶為罪,又況明人之短矯世者哉?

번역문
지금 세속의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친한 이를 업신여기면서도21 남이 그를 공경하는 것을 미워하고, 스스로 자기 친한 이를 소홀히 여기면서도22 남이 그를 사랑하는 것을 미워하는 자가 적지 않다. 어찌 평범한 백성들뿐이겠는가, 현명한 재능을 지닌 자들 중에도 때때로 그러한 경우가 있다. 등통(鄧通)23은 문제(文帝)24의 총애를 받아25, 마음을 다하여 거스르지 않았고, 종기를 빨면서도26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황제가 병들어 즐거워하지 않자, 한가로이 말하기를, “천하에 짐을 가장 사랑하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하였다. 등통은 태자(太子)의 효심을 칭송하고자 하여27, 이에 대답하기를, “태자께서 폐하를 가장 사랑하시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병문안을 왔을 때, 황제가 종기를 빨라고 명하자, (태자는) 어려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황제는 불쾌하여 태자를 돌려보냈다. 이윽고 등통이 평소에 늘 종기를 빨았다는 것을 듣고는, 이에 부끄러워하고 그를 원망하였다. (태자가) 황제의 자리를 계승하자28, 마침내 등통에게 죄를 씌워 굶어 죽게 하였다. 그러므로 등통의 행실은 마음과 힘을 다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것이었고, 그의 말은 태자를 칭찬하여 효도와 자애로움을 드러내려 한 것이었다. 태자는 스스로 그 칭찬에 부합하지 못하자, 오히려 원한을 맺고 허물을 돌렸다. 남의 장점을 칭찬하여 그의 효도를 드러내려 한 것조차 오히려 죄가 되었으니, 하물며 남의 단점을 밝혀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자이겠는가?


5

원문
且凡士之所以為賢者,且以其言與行也。忠正之言,非徒譽人而已也,必有觸焉;孝子之行,非徒吮癰而已也,必有駮焉。然則循行論議之士,得不遇於嫉妬之名,免於刑戮之咎者,蓋其幸者也。比干之所以剖心,箕子之所以為奴,伯宗之以死,郄宛之以亡。

번역문
또한 무릇 선비가 현명하다고 일컬어지는 까닭은, 그 말과 행실 때문이다. 충성스럽고 바른 말은 단지 남을 칭찬하는 것만이 아니니, 반드시 (남의 비위에) 거슬리는 바가 있다29. 효자의 행실은 단지 종기를 빠는 것만이 아니니, 반드시 (남의 비위에) 거슬리는 바가 있다30. 그렇다면 행실을 따르고 의론하는 선비가 질투의 명분31을 만나지 않고, 형벌과 죽음의 허물32을 면하는 것은, 대개 그 행운이다. 비간(比干)33이 심장을 쪼개어 죽고34, 기자(箕子)35가 노예가 되고36, 백종(伯宗)37이 이로 인해 죽고38, 극완(郄宛)39이 이로 인해 망한 것은40 (모두 이 때문이다).


6

원문
夫國不乏於妬男也,猶家不乏於妬女也。近古以來,自外及內,其爭功名妬過己者豈希也?予以唯兩賢為宜不相害乎?然也,范雎絀白起,公孫弘抑董仲舒,此同朝共君寵祿爭故邪?唯殊邦異途利害不干者為可以免乎?然也,孫臏脩能於楚,龐涓自魏變免,誘以刖之;韓非明治於韓,李斯自秦作思,致而殺之。嗟士之相妬豈若此甚乎!此未達於君故受禍邪?唯見知為可以將信乎?然也,京房數與元帝論難,使制考功而選守;晁錯雅為景帝所知;使漢法而不亂。夫二子之於君也,可謂見知深而寵愛殊矣,然京房冤死而上曾不知,晁錯既斬而帝乃悔。此材明未足衛身故及難邪?唯大聖為能無累乎?然也,帝乙以義故囚,文王以仁故拘。夫體至行仁義,據南面師尹卿士,且猶不能無難,然則夫子削迹,叔嚮縲紲, 屈原放沈,賈誼貶黜,鍾離廢替,何敞束縛,王章抵罪,平阿斥逐,蓋其輕士者也。

번역문
무릇 나라에 질투하는 남자가 부족하지 않음은41, 마치 집안에 질투하는 여자가 부족하지 않음과 같다. 근고(近古)42 이래로, 밖에서 안으로43, 공명(功名)을 다투고 자신보다 뛰어난 자를 질투하는 자가 어찌 드물었겠는가? 나는 오직 두 현인이 서로 해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범저(范雎)44는 백기(白起)45를 물리쳤고46, 공손홍(公孫弘)47은 동중서(董仲舒)48를 억압했다49. 이것은 같은 조정에서 같은 군주를 섬기며 총애와 녹봉을 다툰 까닭인가? 오직 다른 나라에 있고 길이 달라서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자만이 면할 수 있는가? 그러나 손빈(孫臏)50은 초(楚)나라에서 능력을 닦았는데51, 방연(龐涓)52은 위(魏)나라에서 (손빈을) 면하게 해준다고 속여53, 유인하여 발꿈치를 잘랐고54, 한비(韓非)55는 한(韓)나라에서 다스림의 도리를 밝혔는데56, 이사(李斯)57는 진(秦)나라에서 (한비를) 죽일 생각을 하여58, (진나라로) 오게 하여 죽였다. 아아, 선비들의 서로 질투함이 어찌 이처럼 심한가! 이것은 군주에게 (그들의 진심이) 전달되지 못하여 화를 입은 것인가? 오직 (군주가) 알아주는 것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경방(京房)59은 여러 차례 원제(元帝)60와 논쟁하고61, 공적을 평가하는 법을 제정하여62 관리를 선발하게 하였으며63, 조착(晁錯)64은 경제(景帝)65가 깊이 알아주어66, 한(漢)나라의 법이 문란해지지 않게 하였다. 이 두 사람(경방과 조착)이 군주에게 있어서는, 깊이 알아주고 총애가 특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방은 억울하게 죽었는데도 황제는 전혀 알지 못했고, 조착은 이미 참수되었는데도 황제는 비로소 후회했다. 이것은 재능과 총명함이 몸을 보전하기에 부족하여 환난을 겪은 것인가? 오직 대성(大聖)만이 누(累)가 없을 수 있는가? 그러나 제을(帝乙)67은 의(義) 때문에 갇혔고68, 문왕(文王)69은 인(仁) 때문에 구금되었다70. 무릇 지극한 인의(仁義)를 몸으로 행하고, 남면(南面)의 존귀한 스승, 재상, 경사(卿士)71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환난이 없을 수 없었으니, 그렇다면 부자(夫子)72는 발자취가 지워지고73, 숙향(叔嚮)74은 포박당하고75, 굴원(屈原)76은 유배되어 물에 잠기고77, 가의(賈誼)78는 좌천되었으며79, 종리(鍾離)80는 폐위되고81, 하창(何敞)82은 속박당하고83, 왕장(王章)84은 죄를 뒤집어쓰고85, 평아(平阿)86는 쫓겨난 것은87, 대개 그들보다 가벼운 경우이다.


7

원문
《詩》云:「無罪無辜,讒口敖敖。」「彼人之心,于何不臻?」由此觀之,妬媚之攻擊也,亦誠工矣!賢聖之居世也,亦誠危矣!

번문
『시(詩)』에 이르기를88, “죄도 없고 허물도 없는데, 참소하는 입은 떠들썩하네89.”라고 하였고, “저 사람들의 마음은, 어찌 그리도 이르지 못하는가?90”라고 하였다. 이로써 볼 때, 질투하고 아첨하는 자들의 공격은 참으로 교묘하며! 현명하고 성스러운 자들이 세상에 사는 것은 참으로 위태롭다!


8

원문
故所謂賢難也者,非賢難也,免則難也。彼大聖群賢,功成名遂,或爵侯伯,或位公卿,尹據天官,柬在帝心,宿夜侍宴,名達而猶有若此,則又況乎畎畝佚民、山谷隱士,因人乃達,時論乃信者乎?此智士所以鉗口結舌,括囊共默而已者也。

번역문
그러므로 이른바 현인의 어려움이라는 것은, 현인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환난을) 면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저 위대한 성인과 여러 현인들은 공을 이루고 명성을 얻어, 혹은 후백(侯伯)의 작위를 받고91, 혹은 공경(公卿)의 지위에 있었으며92, 재상이 천관(天官)93의 자리를 차지하고94, 황제의 마음에 선택되어95, 밤낮으로 연회에 시중들며96, 명성이 드높았음에도 오히려 이와 같았으니, 하물며 밭이랑의 은둔 백성97이나 산골짜기의 은사(隱士)98처럼, 남으로 인해 뜻을 펴고99, 당시의 여론으로 인해 신뢰를 얻는 자들에 있어서랴?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선비들이 입을 다물고 혀를 묶으며100, 주머니를 묶어 함께 침묵할 뿐인 까닭이다101.


9

원문
且閭閻凡品,何獨識哉?苟望塵僄聲而已矣。觀其論也,非能本閨𨵦之行迹,察臧否之虛實也;直以面譽我者為智,諂諛己者為仁,處姦利者為行,竊祿位者為賢爾。豈復知孝悌之原,忠正之直,綱紀之化,本途之歸哉?此鮑焦所以立枯於道左,徐衍所以自沈於滄海者也。

번역문
또한 여염(閭閻)102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찌 홀로 (진실을) 알겠는가? 단지 (남의) 먼지를 보고103 소문을 쫓을 뿐이다104. 그들의 논의를 보면, 규문(閨門)105의 행적을 근본으로 삼아106, 선악의 허실을 살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면전에서 나를 칭찬하는 자를 지혜롭다고 여기고, 자신에게 아첨하는 자를 인자하다고 여기며, 간사한 이익을 취하는 자를 행실이 바르다고 여기고, 녹봉과 지위를 훔치는 자를 현명하다고 여길 뿐이다. 어찌 다시 효제(孝悌)의 근원, 충정(忠正)의 곧음, 강기(綱紀)의 교화, 본질적인 길의 귀결을 알겠는가? 이것이 바로 포초(鮑焦)107가 길가에 서서 말라 죽고108, 서연(徐衍)109이 스스로 창해(滄海)에 몸을 던진110 까닭이다.


10

원문
諺曰:「一犬吠形,百犬吠聲。」世之疾此固久矣哉!吾傷世之不察貞偽之情也,故設虛義以喻其心曰:今觀宰司之取士也,有似於司原之佃也。昔有司原氏者,燎獵中野。鹿斯東奔,司原縱譟之。西方之眾有逐狶者,聞司原之譟也,競舉音而和之。司原聞音之眾, 則反輟己之逐而往伏焉,遇夫俗惡之狶。司原喜,而自以獲白瑞珍禽也,盡芻豢單囷倉以養之。豕俛仰嚘咿,為作容聲,司原愈益珍之。居無何,烈風興而澤雨作,灌巨豕而惡塗渝,逐駭懼,真聲出,乃知是家之艾猳爾。此隨聲逐響之過也,眾遇之未赴信焉。

번역문
속담에 이르기를111, “한 마리 개가 형체를 보고 짖으면, 백 마리 개가 소리를 듣고 짖는다112.”고 하였다. 세상이 이를 병폐로 여긴 지 참으로 오래되었다! 나는 세상이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의 실상을 살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여, 가상의 이야기를 들어 그 마음을 비유하고자 한다: 지금 재상(宰相)과 관리(司)가 선비를 취하는 것을 보면113, 사원(司原)114이라는 자가 사냥하는 것과 비슷하다. 옛날 사원이라는 자가 들판 한가운데서 불을 놓아 사냥을 하였다115. 사슴이 동쪽으로 달아나자, 사원은 소리를 질러 그것을 쫓았다. 서쪽에 있던 무리 중에 돼지를 쫓는 자들이 있었는데, 사원의 소리를 듣고는 다투어 소리를 내어 화답하였다. 사원은 소리를 내는 무리가 많음을 듣고는, 오히려 자신이 쫓던 것을 멈추고 그곳으로 가서 숨어 기다렸는데, 그곳에서 평범하고 못생긴 돼지를 만났다116. 사원은 기뻐하며, 스스로 흰 상서로운 진귀한 짐승을 얻었다고 여겨117, 모든 사료와 외양간의 곡식을 다하여 그것을 길렀다118. 돼지는 머리를 숙이고 들며 꿀꿀거리고 끙끙거리며119, (사원의) 비위를 맞추는 소리를 내자120, 사원은 더욱 그것을 귀하게 여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자121, 큰 돼지에게 물이 쏟아지고122 더러운 진흙이 씻겨 내려가자123, 쫓기던 돼지는 놀라고 두려워하며124, 본래의 소리를 내었다. 이에 비로소 그것이 집에서 기르던 늙은 수퇘지임을 알게 되었다125. 이것은 소리를 따라가고 메아리를 쫓는 과오이며,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만나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11

원문
今世主之於士也,目見賢則不敢用,耳聞賢則恨不及。雖自有知也,猶不能取,必更待群司之所舉,則亦懼失麟鹿而獲艾猳。奈何其不分者也?未過風之變者故也。俾使一朝奇政兩集,則險隘之徒,闒茸之質,亦將別矣。

번역문
지금 세상의 군주들이 선비에 대해서는, 눈으로 현명한 자를 보아도 감히 등용하지 못하고, 귀로 현명한 자를 들으면 (등용하지 못함을) 한탄한다126. 비록 스스로 아는 바가 있을지라도, 여전히 (그들을) 취하지 못하고, 반드시 여러 관리들이 추천하는 바를 다시 기다리니, 이는 또한 기린과 사슴127을 놓치고 늙은 수퇘지를 얻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찌 그들이 분별하지 못하는가? 아직 풍속의 변화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128. 만약 하루아침에 기이한 정치가 두루 시행된다면129, 험악하고 편협한 무리130와 보잘것없는 자질131 또한 장차 구별될 것이다.


12

원문
夫眾小朋黨而固位,讒妬群吠齧賢,為禍敗也豈希?三代之以覆,列國之以滅,後人猶不能革,此萬官所以屢失守,而天命數靡常者也。《詩》云:「國既卒斬,何用不監!」嗚呼!時君俗主不此察也。

번역문
무릇 소인배들이 붕당을 지어132 자리를 굳건히 하고, 참소하고 질투하는 무리가 현명한 자를 물어뜯어133 화와 패망을 일으키는 것이 어찌 드물겠는가? 삼대(三代)134가 이로 인해 전복되고, 열국(列國)135이 이로 인해 멸망했건만, 후세 사람들은 여전히 고치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모든 관직이 자주 지켜지지 못하고136, 천명(天命)의 운수가 일정하지 않은 까닭이다137. 『시(詩)』에 이르기를138, “나라가 이미 마침내 끊어졌으니, 어찌 살피지 않는가!139”라고 하였다. 아아! 당대의 군주와 세속적인 군주들은 이를 살피지 않는구나.


각주

  1. 현인(賢人)의 어려움(賢難): 현명한 사람이 세상에서 겪는 어려움, 즉 현인이 등용되거나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려운 현실을 의미한다.
  2. 단지 몸이 총명하고 덕과 의를 따르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현인의 어려움이 단순히 현인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가 아님을 강조한다.
  3. 현인을 구하기 어려운 것일 뿐(求賢之難得爾): '爾(이)'는 '뿐이다'라는 어조사.
  4. 선(善)을 따르면 시기(猜忌)를 받고(循善則見妬): '妬(투)'는 '시기하다', '질투하다'는 뜻. 선을 행하면 오히려 남의 시기를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5. 현명하게 행동하면 질투(嫉妬)를 받아(行賢則見嫉): '嫉(질)'은 '질투하다', '미워하다'는 뜻. 현명한 행동이 오히려 남의 질투를 유발한다는 의미이다.
  6. 우순(虞舜):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순(舜) 임금을 지칭한다.
  7. 유배되어 죽임을 당하고(放殛): 순(舜)이 요(堯) 임금에게 선양받은 후, 자신의 이복동생 상(象)과 계모, 친아버지 고수(瞽叟)가 자신을 여러 번 죽이려 했으나, 순은 그들을 용서하고 오히려 덕으로 감화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순이 오히려 질투로 인해 해를 입었다는 맥락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순의 아들 상균(商均)이 불초하여 순이 그를 변방으로 유배 보냈다는 기록(『맹자』 「만장상」)이나, 순이 남방으로 순수(巡狩)하다가 창오(蒼梧)에서 죽었다는 전설(『사기』 「오제본기」)과 연결될 수 있다. 혹은 저자가 순의 덕이 너무 뛰어나 오히려 주변의 질투를 받았다는 의미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8. 자서(子胥):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명신 오자서(伍子胥)를 지칭한다.
  9. 주살된 까닭은(被誅): 오자서는 초(楚)나라에서 오(吳)나라로 망명하여 오왕 합려(闔閭)를 도와 초나라를 정벌하고 패업을 이루었으나, 후에 오왕 부차(夫差)의 총애를 받던 백비(伯嚭)의 참소로 인해 자결을 명받아 죽었다.
  10. 중세(中世): 여기서는 고대 성인 시대 이후의 시대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는 한(漢)나라 시대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11. 바른 도리를 행하지 못하고(不得直道而行): '直道而行'은 '바른 길을 곧게 가다', '정직하게 행동하다'는 의미이다.
  12. 처사(處士):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
  13. 그 행실을 바르게 할 수 없고, 조정 신하는 그 말을 바르게 할 수 없으니: 현명한 처사나 신하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치거나 바른 말을 할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한다.
  14. 제후(齊侯):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군주. 여기서는 구체적인 인물을 지칭하기보다, 제나라 군주 중 이로 인해 나라를 빼앗긴 사례를 일반화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제 민왕(閔王)은 폭정으로 인해 연(燕)나라 악의(樂毅)에게 나라를 거의 빼앗겼다.
  15. 나라를 빼앗기고(奪國): 나라를 잃거나 영토를 빼앗기는 것을 의미한다.
  16. 노공(魯公):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군주. 여기서는 구체적인 인물을 지칭하기보다, 노나라 군주 중 이로 인해 쫓겨난 사례를 일반화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노 소공(昭公)은 계손씨(季孫氏) 등 삼환(三桓)의 전횡으로 인해 쫓겨나 죽었다.
  17. 쫓겨났으니(放逐): 추방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18. 패배하고 전복되어 미처 손쓸 틈도 없었는데(敗績厭覆於不暇): '敗績'는 '패배하다', '실패하다'. '厭覆'는 '전복되다', '뒤집히다'. '不暇'는 '겨를이 없다', '틈이 없다'. 즉, 너무나 급박하게 망하여 손쓸 겨를도 없었다는 의미이다.
  19. 짝지어 말하는 자를 주살하고(誅偶語): 진시황(秦始皇)이 백성들이 모여 앉아 정치에 대해 사사로이 이야기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했던 정책을 말한다. 이는 언론 통제의 극단적인 예이다.
  20. 술사(術士)를 생매장한(坑術士): 진시황이 유생(儒生)과 술사들을 생매장한 사건인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의미한다. 이는 사상 탄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21. 스스로 자기 친한 이를 업신여기면서도(自慢其親): '慢(만)'은 '업신여기다', '경시하다'는 뜻.
  22. 스스로 자기 친한 이를 소홀히 여기면서도(自簡其親): '簡(간)'은 '소홀히 하다', '가볍게 여기다'는 뜻.
  23. 등통(鄧通):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총신으로, 황제의 총애로 막대한 부를 쌓았으나, 경제(景帝) 때 실각하여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난하게 죽었다.
  24. 문제(文帝): 한(漢)나라의 황제.
  25. 총애를 받아(幸於): '幸(행)'은 '총애를 받다', '사랑을 받다'는 뜻.
  26. 종기를 빨면서도(吮癰): 종기를 빨아내는 것은 당시 의술의 한 방법이었으나, 매우 비천하고 혐오스러운 행위로 여겨졌다. 등통이 황제의 종기를 빨았다는 것은 황제에 대한 극진한 충성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27. 태자(太子)의 효심을 칭송하고자 하여(欲稱太子之孝): 등통이 황제의 질문에 태자를 칭찬하여 태자의 효심을 드러내려 했다는 의미이다.
  28. (태자가) 황제의 자리를 계승하자(及嗣帝位): 경제(景帝)가 황제가 된 후.
  29. 반드시 (남의 비위에) 거슬리는 바가 있다(必有觸焉): '觸(촉)'은 '부딪히다', '거슬리다', '자극하다'는 뜻. 바른 말은 듣기 싫어하는 자들에게는 거슬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30. 반드시 (남의 비위에) 거슬리는 바가 있다(必有駮焉): '駮(박)'은 '반박하다', '거스르다'는 뜻. 효자의 지극한 행실조차도 때로는 남의 질투나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31. 질투의 명분(嫉妬之名): 질투로 인해 생기는 비난이나 오명.
  32. 형벌과 죽음의 허물(刑戮之咎): 형벌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는 죄.
  33. 비간(比干):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숙부로, 주왕에게 간언하다가 심장을 쪼개어 죽임을 당했다.
  34. 심장을 쪼개어 죽고(剖心): 주왕이 비간의 충심을 시험한다며 그의 심장을 쪼개어 보았다는 잔혹한 일화이다.
  35. 기자(箕子):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숙부로, 주왕의 폭정을 간하다가 미치광이 행세를 하여 죽음을 면하고 노예가 되었다.
  36. 노예가 되고(為奴): 기자가 주왕의 폭정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풀고 미친 척하며 노예처럼 살았다는 일화이다.
  37. 백종(伯宗):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현명한 대부로, 직언을 잘하여 동료들의 질투를 받아 결국 죽임을 당했다.
  38. 이로 인해 죽고(之以死): 질투와 참소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는 의미이다.
  39. 극완(郄宛):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로, 현명하고 충성스러웠으나, 동료들의 질투와 참소로 인해 결국 망했다.
  40. 이로 인해 망한(之以亡): 질투와 참소로 인해 몰락했다는 의미이다.
  41. 나라에 질투하는 남자가 부족하지 않음은(國不乏於妬男也): '妬男'은 '질투하는 남자'를 의미하며, 이는 '妬女(질투하는 여자)'와 대비되어 사용된다. 즉, 나라 안에도 시기심 많은 간신배들이 많다는 비유이다.
  42. 근고(近古): 가까운 옛날, 즉 한(漢)나라 시대를 포함하는 비교적 최근의 역사를 의미한다.
  43. 밖에서 안으로(自外及內): 사회 전반에 걸쳐, 혹은 조정 안팎에서.
  44. 범저(范雎):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재상으로, 뛰어난 외교술과 모략으로 진나라의 세력을 확장시켰다.
  45. 백기(白起):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명장으로,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진나라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46. 물리쳤고(絀): '絀(출)'은 '물리치다', '배척하다', '좌천시키다'는 뜻. 범저는 백기의 공이 너무 커서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여겨 백기를 참소하여 죽게 만들었다.
  47. 공손홍(公孫弘):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재상으로, 유학자였으나 권모술수에 능했다.
  48. 동중서(董仲舒): 한(漢)나라의 유학자로, 유교를 국교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49. 억압했다(抑): 공손홍은 동중서의 학문적 명성과 영향력을 질투하여 그를 억압하고 견제했다.
  50. 손빈(孫臏):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군사 전략가로, 손무(孫武)의 후손이다.
  51. 초(楚)나라에서 능력을 닦았는데(脩能於楚): 손빈이 초나라에서 학문을 닦았다는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위(魏)나라에서 방연과 함께 귀곡자(鬼谷子)에게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초'가 '위'의 오기이거나, 혹은 손빈이 위나라에서 해를 입은 후 초나라로 망명하여 능력을 닦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52. 방연(龐涓):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장수로, 손빈과 함께 귀곡자에게 병법을 배웠으나, 손빈의 재능을 질투하여 그를 모함했다.
  53. 면하게 해준다고 속여(自魏變免): '變免'은 '변통하여 면하게 하다'는 뜻. 방연이 손빈을 위나라로 불러들일 때, 어떤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속였다는 의미이다.
  54. 유인하여 발꿈치를 잘랐고(誘以刖之): 방연은 손빈을 위나라로 불러들인 후, 그를 모함하여 죄를 씌우고 발꿈치를 자르는 형벌(刖刑)을 가했다.
  55. 한비(韓非): 전국시대 말기의 법가(法家) 사상가.
  56. 한(韓)나라에서 다스림의 도리를 밝혔는데(明治於韓): 한비가 한나라에서 자신의 법가 사상을 펼치려 했다는 의미이다.
  57. 이사(李斯): 진(秦)나라의 재상으로, 법가 사상가이자 한비의 동문이다.
  58. (한비를) 죽일 생각을 하여(作思): 이사는 한비의 재능을 질투하여 진시황에게 한비를 모함하여 죽게 만들었다.
  59. 경방(京房):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학자로, 역학(易學)과 재이설(災異說)에 능했다.
  60. 원제(元帝): 한(漢)나라의 황제.
  61. 여러 차례 원제(元帝)와 논쟁하고(數與元帝論難): 경방이 원제와 여러 차례 학문적 논쟁을 벌였다는 의미이다.
  62. 공적을 평가하는 법을 제정하여(制考功): 관리들의 공적을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63. 관리를 선발하게 하였으며(選守): '守'는 '태수(太守)'와 같은 지방관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관리를 선발하는 것을 뜻한다.
  64. 조착(晁錯):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의 재상으로, 제후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삭번(削藩) 정책을 추진하다가 결국 경제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했다.
  65. 경제(景帝): 한(漢)나라의 황제.
  66. 깊이 알아주어(雅為景帝所知): '雅'는 '깊이', '매우'라는 뜻. 경제가 조착의 재능과 뜻을 깊이 이해하고 알아주었다는 의미이다.
  67. 제을(帝乙): 은(殷)나라의 군주로, 주왕(紂王)의 아버지이다.
  68. 의(義) 때문에 갇혔고(以義故囚): 제을이 현명한 신하를 보호하려다 오히려 갇혔다는 일화가 전한다.
  69. 문왕(文王): 주(周)나라의 시조로, 덕망이 높았으나 은(殷)나라 주왕(紂王)에게 갇히는 고난을 겪었다.
  70. 인(仁) 때문에 구금되었다(以仁故拘): 문왕이 인자한 덕을 지녔음에도 주왕에게 유리(羑里)에 구금당했다는 일화이다.
  71. 남면(南面)의 존귀한 스승, 재상, 경사(卿士)(據南面師尹卿士): '南面'은 군주의 지위를 상징. '師尹卿士'는 스승, 재상, 경사 등 고위 관직을 의미한다. 즉, 군주의 자리에 있거나 그에 버금가는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72. 부자(夫子): 공자(孔子)를 지칭한다.
  73. 발자취가 지워지고(削迹): 공자가 여러 나라를 유랑하며 도를 펼치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의 발자취가 세상에서 지워진 듯했다는 의미이다.
  74. 숙향(叔嚮):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현명한 대부.
  75. 포박당하고(縲紲): '縲紲(누설)'는 '포박하다', '묶다'는 뜻. 숙향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인해 투옥되거나 곤경에 처했던 일화가 전한다.
  76. 굴원(屈原):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충신으로, 간신들의 참소로 인해 유배당했다.
  77. 유배되어 물에 잠기고(放沈): 굴원이 유배당한 후 자신의 충정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비관하여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었다.
  78. 가의(賈誼):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의 젊은 학자로,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나 간신들의 질투로 인해 좌천되었다.
  79. 좌천되었으며(貶黜): 관직에서 강등되거나 쫓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80. 종리(鍾離):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인물로, 간신들의 모함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81. 폐위되고(廢替):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폐위되는 것을 의미한다.
  82. 하창(何敞):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의 인물로, 직언을 하다가 간신들의 미움을 받아 투옥되었다.
  83. 속박당하고(束縛): 묶이거나 구속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84. 왕장(王章):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의 인물로, 직언을 하다가 간신들의 모함으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85. 죄를 뒤집어쓰고(抵罪): 죄를 뒤집어쓰거나 죄를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86. 평아(平阿):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의 인물로, 간신들의 모함으로 인해 쫓겨났다.
  87. 쫓겨난 것은(斥逐): 관직에서 쫓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88.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89. 죄도 없고 허물도 없는데, 참소하는 입은 떠들썩하네(無罪無辜,讒口敖敖): 죄 없는 자가 참소로 인해 고통받는 현실을 비판한다. '敖敖(오오)'는 '떠들썩하다', '시끄럽다'는 뜻.
  90. 저 사람들의 마음은, 어찌 그리도 이르지 못하는가?(彼人之心,于何不臻?): '臻(진)'은 '이르다', '도달하다'는 뜻. 남을 해치려는 간악한 마음이 어찌 그리도 끝이 없는가, 혹은 진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어찌 그리도 깨닫지 못하는가 하는 탄식의 의미이다.
  91. 후백(侯伯)의 작위를 받고(爵侯伯): 제후의 작위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92. 공경(公卿)의 지위에 있었으며(位公卿): 삼공(三公)이나 구경(九卿)과 같은 고위 관직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93. 천관(天官): 하늘의 관직, 즉 매우 중요한 고위 관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94. 재상이 천관(天官)의 자리를 차지하고(尹據天官): '尹(윤)'은 '재상', '관장하다'는 뜻. 재상이 중요한 관직을 맡았다는 의미이다.
  95. 황제의 마음에 선택되어(柬在帝心): '柬(간)'은 '가리다', '선택하다'는 뜻. 황제의 신임을 받아 선택되었음을 의미한다.
  96. 밤낮으로 연회에 시중들며(宿夜侍宴): 황제의 총애를 받아 가까이에서 모셨음을 의미한다.
  97. 밭이랑의 은둔 백성(畎畝佚民): 밭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평범한 백성이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은둔자를 의미한다. '佚民'은 '숨어 사는 백성', '은둔자'를 뜻한다.
  98. 산골짜기의 은사(隱士)(山谷隱士): 산속이나 골짜기에 숨어 사는 선비.
  99. 남으로 인해 뜻을 펴고(因人乃達): 다른 사람의 추천이나 도움으로 인해 자신의 뜻을 펼치게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100. 입을 다물고 혀를 묶으며(鉗口結舌):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을 의미한다.
  101. 주머니를 묶어 함께 침묵할 뿐인 까닭이다(括囊共默而已者也): '括囊'은 주머니를 묶어 내용물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재능이나 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하는 것을 비유한다.
  102. 여염(閭閻): 백성들이 사는 마을, 즉 일반 백성들을 의미한다.
  103. (남의) 먼지를 보고(望塵): '望塵'은 '먼지를 보고 쫓다'는 뜻으로, 남의 뒤를 쫓거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을 비유한다.
  104. 소문을 쫓을 뿐이다(僄聲而已矣): '僄聲'은 '소문을 쫓다', '헛된 명성을 따르다'는 뜻. 즉, 실체 없이 소문이나 겉모습에 현혹되어 판단한다는 의미이다.
  105. 규문(閨門): 여자가 거처하는 안방이나 집안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가정 내에서의 행실을 뜻한다.
  106. 행적을 근본으로 삼아(本閨𨵦之行迹): 사람의 진정한 행실이나 덕성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107. 포초(鮑焦):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은자(隱者)로, 세상의 혼탁함을 비관하여 길가에서 말라 죽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108. 길가에 서서 말라 죽고(立枯於道左): 세상의 도가 무너진 것을 한탄하며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길가에 서서 말라 죽었다는 일화이다.
  109. 서연(徐衍):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은자(隱者)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110. 스스로 창해(滄海)에 몸을 던진(自沈於滄海): 세상의 혼탁함을 피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의미이다.
  111. 속담에 이르기를(諺曰): 옛사람들의 격언이나 속담을 인용할 때 쓰는 표현.
  112. 한 마리 개가 형체를 보고 짖으면, 백 마리 개가 소리를 듣고 짖는다: 근거 없이 한 사람이 소문을 내면, 다른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덩달아 따라 짖어대는 현상을 비유한다. 즉, 맹목적인 추종이나 유언비어의 확산을 경계하는 말이다.
  113. 재상(宰相)과 관리(司)가 선비를 취하는 것을 보면(宰司之取士也): 인재를 등용하는 관리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맥락이다.
  114. 사원(司原): 가상의 인물 이름.
  115. 들판 한가운데서 불을 놓아 사냥을 하였다(燎獵中野): 불을 놓아 짐승을 몰아 사냥하는 방식.
  116. 평범하고 못생긴 돼지를 만났다(遇夫俗惡之狶): '俗惡'은 '평범하고 못생기다', '천박하다'는 뜻. '狶(시)'는 '돼지'를 의미한다.
  117. 흰 상서로운 진귀한 짐승을 얻었다고 여겨(自以獲白瑞珍禽也): '白瑞'는 '흰 상서로운 징조', '珍禽'은 '진귀한 새'를 의미한다. 사원이 평범한 돼지를 귀한 짐승으로 착각했음을 보여준다.
  118. 모든 사료와 외양간의 곡식을 다하여 그것을 길렀다(盡芻豢單囷倉以養之): '芻豢(추환)'은 '사료', '단(單)'은 '다하다', '囷倉(균창)'은 '외양간' 또는 '곡식 창고'를 의미한다. 즉, 아낌없이 먹이를 주어 길렀다는 의미이다.
  119. 머리를 숙이고 들며 꿀꿀거리고 끙끙거리며(俛仰嚘咿): '俛仰(부앙)'은 '머리를 숙이고 들다', '嚘咿(유이)'는 돼지 울음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
  120. (사원의) 비위를 맞추는 소리를 내자(為作容聲): '容聲'은 '용모를 꾸미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비위를 맞추는 소리' 또는 '꾸며낸 소리'로 해석된다.
  121. 거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자(烈風興而澤雨作): 비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을 묘사.
  122. 큰 돼지에게 물이 쏟아지고(灌巨豕): 비가 쏟아져 돼지의 몸이 젖는 것을 의미한다.
  123. 더러운 진흙이 씻겨 내려가자(惡塗渝): '惡塗'는 '더러운 진흙', '渝(유)'는 '변하다', '씻겨 내려가다'는 뜻. 돼지 몸에 묻어 있던 더러운 것이 씻겨 내려가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비유한다.
  124. 놀라고 두려워하며(逐駭懼): 쫓기던 돼지가 놀라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묘사.
  125. 집에서 기르던 늙은 수퇘지임을 알게 되었다(乃知是家之艾猳爾): '艾猳(애가)'는 '늙은 수퇘지'를 의미한다. 즉, 겉모습에 속아 귀한 짐승으로 착각했던 것이 사실은 평범하고 늙은 돼지였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비유이다.
  126. 귀로 현명한 자를 들으면 (등용하지 못함을) 한탄한다(耳聞賢則恨不及): 현명한 자의 명성을 듣고는 그를 등용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는 의미이다.
  127. 기린과 사슴(麟鹿): 기린은 상서로운 상상의 동물로, 여기서는 진정으로 현명하고 뛰어난 인재를 비유한다. 사슴은 일반적인 짐승으로, 평범한 인재를 비유할 수 있다.
  128. 아직 풍속의 변화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未過風之變者故也): '風之變'은 '풍속의 변화', '세태의 변화'를 의미한다. 즉, 아직 혼란스러운 세태를 겪지 않아 진정한 분별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29. 하루아침에 기이한 정치가 두루 시행된다면(俾使一朝奇政兩集): '奇政'은 '기이한 정치', '특별한 정치'를 의미하며, 여기서는 비범하고 강력한 개혁 정치를 뜻한다. '兩集'은 '두루 모이다', '널리 시행되다'는 뜻.
  130. 험악하고 편협한 무리(險隘之徒): 마음이 좁고 간사하며 위험한 무리.
  131. 보잘것없는 자질(闒茸之質): '闒茸(탑용)'은 '보잘것없다', '평범하다'는 뜻.
  132. 소인배들이 붕당을 지어(眾小朋黨): 소인배들이 무리를 지어 세력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133. 참소하고 질투하는 무리가 현명한 자를 물어뜯어(讒妬群吠齧賢): '群吠'는 '떼 지어 짖다', '齧賢'은 '현명한 자를 물어뜯다'는 뜻. 간신배들이 현명한 자를 모함하고 해치는 것을 비유한다.
  134. 삼대(三代): 하(夏), 은(殷), 주(周) 세 왕조를 통칭하는 말.
  135. 열국(列國):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제후국들.
  136. 모든 관직이 자주 지켜지지 못하고(萬官所以屢失守): 관직에 있는 자들이 그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관직이 자주 바뀌어 혼란스러움을 의미한다.
  137. 천명(天命)의 운수가 일정하지 않은 까닭이다(天命數靡常者也): 하늘의 명(命)이 항상 한 왕조나 한 사람에게 머물지 않고 변하는 까닭을 의미한다. 이는 통치자의 실책으로 인해 천명이 떠날 수 있음을 경고한다.
  138.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139. 나라가 이미 마침내 끊어졌으니, 어찌 살피지 않는가!(國既卒斬,何用不監!): 나라가 이미 망했는데도 어찌 그 원인을 살피지 않는가 하는 탄식과 경고의 의미이다.

潛夫論(잠부론) - 明闇(명암)

1

원문
國之所以治者君明也,其所以亂者君闇也。君之所以明者兼聽也,所以闇者偏信也。是故人君通必兼聽,則聖日廣矣;庸說偏信,則過日甚矣。《詩》云:「先民有言,詢于芻蕘。」

번역문
나라가 다스려지는 까닭은 군주가 밝기 때문이요1, 나라가 혼란스러운 까닭은 군주가 어둡기 때문이다2. 군주가 밝은 까닭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루 듣기 때문이요3, 어두운 까닭은 한쪽 말만 믿기 때문이다4. 이 때문에 군주가 통달하여 반드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루 들으면, 성스러움이 날마다 넓어질 것이요5, 평범한 말에 치우쳐 믿으면6, 허물이 날마다 심해질 것이다7. 『시(詩)』에 이르기를8, “옛사람의 말이 있으니, 꼴 베는 사람과 나무꾼에게도 물어보라9.”고 하였다.


2

원문
夫堯、舜之治,闢四門,明四目,達四聰,是以天下輻湊而聖無不昭;故共、鯀之徒弗能塞也,靖言庸回弗能惑也。秦之二世,務隱藏己,而斷百僚,隔捐疏賤而信趙高,是以聽塞於貴重之臣,明蔽於驕妬之人,故天下潰叛,弗得聞也。皆高所殺,莫敢言之。周章至戲乃始駭,閻樂進勸乃後悔,不亦晚矣!故人兼聽納下,則貴臣不得誣,而遠人不得欺也;慢賤信貴,則朝廷讜言無以至,而潔士奉身伏罪於野矣。

번역문
무릇 요(堯)10와 순(舜)11의 다스림은, 사방의 문을 열고12, 사방의 눈을 밝히며13, 사방의 귀를 통하게 하여14, 이로써 천하가 수레바퀴살처럼 모여들어15 성스러움이 드러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공공(共工)16과 곤(鯀)17 같은 무리도 (그들의) 길을 막을 수 없었고, 간사한 말로 평범하게 회유하는 자도18 그들을 현혹할 수 없었다. 진(秦)나라 이세황제(二世皇帝)19는 자신을 숨기는 데 힘쓰고20, 모든 관료들을 단절시켰으며21, 소외되고 천한 자들을 멀리하고22 조고(趙高)23를 믿었다. 이로써 귀중한 신하들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되고24, 교만하고 질투하는 자들에게 밝음이 가려졌다25. 그러므로 천하가 무너지고 반란을 일으켜도 (황제는) 듣지 못했다. 모두 조고가 죽였으므로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주장(周章)26이 (함양) 서문(戲)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놀랐고27, 염락(閻樂)28이 (황제에게) 나아가 (자결을) 권한 후에야 후회했으니29, 또한 늦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여러 의견을 두루 듣고 아랫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면, 귀한 신하가 속이지 못하고, 멀리 있는 백성이 속이지 못한다. 천한 자를 업신여기고 귀한 자를 믿으면, 조정에 바른 말이 이를 수 없고, 깨끗한 선비는 몸을 보전하기 위해 들판에 숨어 죄를 짓게 된다30.


3

원문
夫朝臣所以統理,而多比周則亂;賢人所以奉己,而隱遯伏野則君孤,而能存者,未之嘗有也。是故明君位眾,務下言以昭外,敬納卑賤以誘賢也。其無距言,未必言者之盡可用也;其無慢賤,未必其人盡賢也,乃懼慢不肖而絕賢望也。是故聖王責小以厲大,賞鄙以招賢,然後良士集于朝,下情達于君也。故上無遺失之策,官無亂法之臣。此君民之所利,而姦佞之所患也。

번역문
무릇 조정 신하는 정사를 총괄하고 다스리는 자인데31, 붕당을 많이 지으면32 혼란스러워진다. 현인은 자신을 받드는 자인데33, 숨어들고 들판에 엎드려 있으면 군주가 고립되고, 그러고도 (나라가) 보존될 수 있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많은 사람을 지위에 앉히고34, 아랫사람의 말을 구하여 밖으로 드러내고35, 비천한 자들을 공경히 받아들여 현명한 자들을 이끌어낸다. 그가 (바른) 말을 물리치지 않는다고 해서36, 말하는 자들의 말이 모두 쓸모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비천한 자들을 업신여기지 않는다고 해서37, 그 사람들이 모두 현명한 것은 아니다. 이는 어리석은 자를 업신여겨 현명한 자의 기대를 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왕(聖王)은 작은 것을 꾸짖어 큰 것을 경계하고38, 비루한 자를 상주어 현명한 자를 불러들인 후에야39, 훌륭한 선비들이 조정에 모이고, 아랫사람들의 사정이 군주에게 전달된다. 그러므로 위로는 빠뜨리거나 잃는 계책이 없고, 관직에는 법을 어지럽히는 신하가 없다. 이것은 군주와 백성에게 이로운 것이요,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들이 근심하는 바이다.


4

원문
昔張祿一見而穰侯免,袁絲進說而周㪍黜。是以當塗之人,恆嫉正直之士,得一介言於君以矯其邪也,故餝偽辭以彰主心,下設威權以固士民。趙高亂政,恐惡聞上,乃預要二世曰:「屢見群臣眾議政事則黷,黷且示短,不若藏己獨斷,神且尊嚴。天子稱朕,固但聞名。」二世於是乃深自幽隱,獨進趙高。趙高入稱好言以說主,出倚詔令以自尊。天下魚爛,相帥叛秦。趙高恐懼,歸惡於君,乃使閻樂責而殺,願一見高不能而死。

번역문
옛날 장록(張祿)40이 한 번 알현하자41 양후(穰侯)42가 면직되었고43, 원사(袁絲)44가 나아가 설득하자45 주발(周㪍)46이 축출되었다47. 이 때문에 권세를 잡은 자들48은 항상 정직한 선비를 질투하여49, 군주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하여50 그들의 간사함을 바로잡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거짓된 말을 꾸며서51 군주의 마음을 드러내고52, 아래로는 위엄과 권세를 설치하여53 선비와 백성을 굳건히 한다54. 조고(趙高)가 정치를 어지럽히면서, (자신의 악행이) 위로 들릴까 두려워하여55, 미리 이세황제(二世皇帝)에게 요점만 말하기를56, “여러 신하들이 모여 정사를 논의하는 것을 자주 보면 (황제의 위엄이) 더럽혀지고57, 더럽혀지면 또한 (황제의) 단점이 드러나니58, 자신을 숨기고 홀로 결단하여59 신비롭고 존엄하게 되는 것만 못합니다. 천자가 스스로 짐(朕)이라 칭하는 것은60, 본래 이름만 들릴 뿐입니다61.”라고 하였다. 이세황제는 이에 깊이 스스로를 숨기고62, 오직 조고만을 가까이했다. 조고는 안으로는 좋은 말을 하여 군주를 기쁘게 하고63, 밖으로는 조서와 명령에 의지하여64 스스로를 높였다. 천하가 물고기처럼 썩어65, 서로 이끌고 진(秦)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 조고는 두려워하여, (반란의) 악행을 군주에게 돌리고66, 이에 염락(閻樂)을 시켜 (이세황제를) 꾸짖고 죽이게 하였는데67, (이세황제는) 조고를 한 번 만나기를 원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죽었다68.


5

원문
夫田常囚簡公,踔齒懸湣王,二世亦既聞之矣。然猶復襲其敗迹者何也?過在於不納卿士之箴規,不受民氓之謠言,自以己賢於簡、湣,而於二臣也。故國已亂而上不知,禍既作而下不殺。此非眾共棄君,乃君以眾命繫趙高,病自絕於民也。

번역문
무릇 전상(田常)69이 제 간공(齊簡公)70을 가두고71, 촉치(踔齒)72가 제 민왕(齊湣王)73을 매달아 죽인 것을74, 이세황제도 이미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들의 실패한 전철을 다시 밟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잘못은 경사(卿士)75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76, 백성들의 유언비어를 듣지 않은 데 있었다77. 스스로 자신을 간공과 민왕보다 현명하다고 여겼고, (조고와 같은) 두 신하에게 (전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이다78. 그러므로 나라가 이미 혼란스러워졌는데도 위에서는 알지 못했고, 재앙이 이미 일어났는데도 아래에서는 (간신을) 죽이지 못했다. 이것은 백성들이 함께 군주를 버린 것이 아니라, 군주가 백성들의 운명을 조고에게 맡겨79, 스스로 백성들과 단절하는 병폐를 자초한 것이다.


6

원문
後末世之君危何知之哉?舜曰:「予違,汝弼。汝無面從,退有後言。」故國之道,勸之使諫,宣之使言,然後君明察而治情通矣。

번역문
후세 말세의 군주들이 위태로움을 어찌 알겠는가? 순(舜)80이 말하기를81, “내가 잘못하면, 너희가 보필하라. 너희는 면전에서만 따르지 말고, 물러나서도 뒤에 할 말이 없게 하라82.”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신하들을) 권하여 간언하게 하고, (그들의 뜻을) 널리 펴서 말하게 한 후에야, 군주가 밝게 살피고 다스림의 실정이 통하게 된다.


7

원문
且凡驕臣之好隱賢也,既患其正義以繩己矣,又恥居上位而明不及下,尹其職而策不出於己。是以郄宛得眾而子常殺之,屈原得君而椒、蘭挺讒,耿壽建常平而嚴延妬其謀,陳湯殺郅支而匡衡捄其功。

번역문
또한 무릇 교만한 신하가 현명한 자를 숨기기를 좋아하는 것은83, 이미 그들의 정당한 의로움이 자신을 바로잡을까 근심하기 때문이요84, 또한 상위(上位)에 있으면서도 아랫사람만 못하게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85, 그 직책을 맡았으면서도 계책이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86. 이 때문에 극완(郄宛)87이 백성의 지지를 얻자88 자상(子常)89이 그를 죽였고90, 굴원(屈原)91이 군주의 총애를 얻자92 초(椒)93와 난(蘭)94이 참소하였으며95, 경수(耿壽)96가 상평(常平)97을 세우자 엄연년(嚴延年)98이 그 계책을 질투하였고99, 진탕(陳湯)100이 질지선우(郅支單于)101를 죽이자 광형(匡衡)102이 그 공을 가로챘다103.


8

원문
由此觀之,處位卑賤而欲效善於君,則必先與寵人為讎。恃舊寵沮之於內,接賤欲自信於外,思善之君,願忠之士,所以雖並生一世,憂心相皦,而終不得遇者也。

번역문
이로써 볼 때, 지위가 비천하면서도 군주에게 선(善)을 베풀고자 하면104, 반드시 먼저 총애받는 자들과 원수가 된다. 옛 총애를 믿고 안에서 그들을 방해하고105, 천한 자들을 접촉하여 밖에서 신임을 얻으려 하니106, 선(善)을 생각하는 군주와 충성하고자 하는 선비가 비록 한 시대에 함께 태어났을지라도, 근심하는 마음이 서로 분명히 드러나는데도107, 끝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각주

  1. 군주가 밝기 때문이요(君明也): 군주가 현명하고 사리에 밝아 정치를 잘한다는 의미.
  2. 군주가 어둡기 때문이다(君闇也): 군주가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워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의미.
  3.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루 듣기 때문이요(兼聽也):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를 의미.
  4. 한쪽 말만 믿기 때문이다(偏信也): 특정인의 말이나 한쪽 의견에만 치우쳐 믿는 태도를 의미.
  5. 성스러움이 날마다 넓어질 것이요(聖日廣矣): 군주의 지혜와 덕이 날마다 증진된다는 의미.
  6. 평범한 말에 치우쳐 믿으면(庸說偏信): '庸說'은 평범하거나 하찮은 말, 혹은 간사한 아첨의 말을 의미할 수 있다.
  7. 허물이 날마다 심해질 것이다(過日甚矣): 군주의 실책이 날마다 심해진다는 의미.
  8.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9. 꼴 베는 사람과 나무꾼에게도 물어보라(詢于芻蕘):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에게도 의견을 구해야 한다는 의미로, 널리 의견을 수렴하는 겸손한 태도를 강조한다.
  10. 요(堯):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중 한 명.
  11. 순(舜):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중 한 명.
  12. 사방의 문을 열고(闢四門): 사방의 문을 열어 백성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외부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태도를 상징한다.
  13. 사방의 눈을 밝히며(明四目): 사방의 상황을 두루 살피고,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보려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14. 사방의 귀를 통하게 하여(達四聰): 사방의 소리를 듣고,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15. 천하가 수레바퀴살처럼 모여들어(天下輻湊):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수레바퀴살이 바퀴통으로 모이듯이 군주에게 모여든다는 의미로, 백성들의 지지와 복종을 나타낸다.
  16. 공공(共工): 중국 고대 전설상의 인물로, 요순 시대에 홍수를 다스리는 데 실패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17. 곤(鯀): 우(禹) 임금의 아버지로, 홍수를 다스리는 데 실패하여 순(舜) 임금에게 주살되었다.
  18. 간사한 말로 평범하게 회유하는 자도(靖言庸回): '靖言'은 '간사한 말', '庸回'는 '평범하게 회유하다', '어물쩍 넘어가다'는 뜻. 즉, 간사한 아첨이나 어물쩍 넘어가는 말로도 현혹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19. 진(秦)나라 이세황제(二世皇帝): 진시황의 아들 호해(胡亥)로, 조고(趙高)의 꼭두각시가 되어 폭정을 일삼다가 결국 조고에게 살해당했다.
  20. 자신을 숨기는 데 힘쓰고(務隱藏己): 황제가 정사에 나서지 않고 자신을 숨겨 외부와 단절하려 했다는 의미.
  21. 모든 관료들을 단절시켰으며(斷百僚): 다른 관료들과의 소통을 끊고 특정인에게만 의지했다는 의미.
  22. 소외되고 천한 자들을 멀리하고(隔捐疏賤): '隔捐'은 '격리시키고 버리다', '疏賤'은 '소외되고 천한 자'를 의미한다.
  23. 조고(趙高): 진(秦)나라 이세황제 때의 환관으로, 권력을 농단하여 진나라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4. 귀중한 신하들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되고(聽塞於貴重之臣): 귀하고 중요한 신하들의 충언이 황제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의미.
  25. 교만하고 질투하는 자들에게 밝음이 가려졌다(明蔽於驕妬之人): 조고와 같은 간신배들의 교만과 질투로 인해 황제의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의미.
  26. 주장(周章): 진(秦)나라 말기 농민 반란군 지도자 중 한 명.
  27. (함양) 서문(戲)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놀랐고(至戲乃始駭): 주장이 군대를 이끌고 진나라 수도 함양(咸陽) 근처의 희(戲) 땅에 이르러서야 이세황제가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일화.
  28. 염락(閻樂): 조고의 심복으로, 조고의 명령을 받아 이세황제를 시해했다.
  29. (황제에게) 나아가 (자결을) 권한 후에야 후회했으니(進勸乃後悔): 염락이 이세황제에게 자결을 강요하자, 이세황제가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후회했다는 일화.
  30. 깨끗한 선비는 몸을 보전하기 위해 들판에 숨어 죄를 짓게 된다(潔士奉身伏罪於野矣): '奉身'은 '몸을 보전하다', '伏罪於野'는 '들판에 숨어 죄를 짓다'는 뜻. 즉, 바른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명한 선비들이 몸을 보전하기 위해 은둔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31. 정사를 총괄하고 다스리는 자인데(統理): 나라의 모든 일을 총괄하고 처리하는 역할을 의미.
  32. 붕당을 많이 지으면(多比周): '比周'는 '붕당을 짓다', '무리 짓다'는 뜻.
  33. 자신을 받드는 자인데(奉己): 현인이 군주를 보필하고 지지하는 존재라는 의미.
  34. 많은 사람을 지위에 앉히고(位眾): 다양한 배경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관직에 등용한다는 의미.
  35. 아랫사람의 말을 구하여 밖으로 드러내고(務下言以昭外):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이를 통해 자신의 통치에 대한 외부의 평가를 밝게 한다는 의미.
  36. 그가 (바른) 말을 물리치지 않는다고 해서(其無距言): '距言'은 '거스르는 말', '반대하는 말'을 의미.
  37. 비천한 자들을 업신여기지 않는다고 해서(其無慢賤): '慢賤'은 '비천한 자를 업신여기다'는 뜻.
  38. 작은 것을 꾸짖어 큰 것을 경계하고(責小以厲大): 사소한 잘못을 꾸짖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의미.
  39. 비루한 자를 상주어 현명한 자를 불러들인 후에야(賞鄙以招賢): 비록 비루한 자라도 작은 공로가 있으면 상을 주어, 현명한 자들이 그 상을 보고 조정으로 나아오도록 유도한다는 의미.
  40. 장록(張祿):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재상 범저(范雎)를 지칭한다. 그는 원래 위(魏)나라 사람으로, 장록은 그의 가명이다.
  41. 한 번 알현하자(一見): 범저가 진 소양왕(昭襄王)을 처음 만났을 때.
  42. 양후(穰侯): 진(秦) 소양왕의 외척인 위염(魏冉)을 지칭한다. 그는 소양왕의 고모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43. 면직되었고(免): 범저가 소양왕에게 양후의 전횡을 간언하여 결국 양후가 면직되었다.
  44. 원사(袁絲):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의 학자 원앙(袁盎)을 지칭한다. '絲'는 '盎'의 오기일 가능성이 있다.
  45. 나아가 설득하자(進說): 원앙이 문제에게 주발의 잘못을 간언했다는 의미.
  46. 주발(周㪍):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의 개국공신 주발(周勃)을 지칭한다. '㪍'은 '勃'의 오기이다.
  47. 축출되었다(黜): 원앙의 간언으로 주발이 재상 자리에서 물러났다.
  48. 권세를 잡은 자들(當塗之人): '當塗'는 '길에 있다', '권세를 잡다'는 뜻.
  49. 정직한 선비를 질투하여(恆嫉正直之士): 항상 정직한 사람들을 시기하고 미워한다는 의미.
  50. 한마디 말이라도 하여(一介言): '一介'는 '하나의', '사소한'이라는 뜻. 즉, 아주 작은 말이라도.
  51. 거짓된 말을 꾸며서(餝偽辭): '餝(식)'은 '꾸미다', '장식하다'는 뜻.
  52. 군주의 마음을 드러내고(彰主心): 군주의 뜻을 왜곡하여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포장한다는 의미.
  53. 아래로는 위엄과 권세를 설치하여(下設威權): 아랫사람들에게 위세를 부리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의미.
  54. 선비와 백성을 굳건히 한다(固士民): 선비와 백성들을 통제하고 억압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는 의미.
  55. (자신의 악행이) 위로 들릴까 두려워하여(恐惡聞上): 자신의 악행이 황제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했다는 의미.
  56. 미리 요점만 말하기를(預要): '預要'는 '미리 요점을 말하다', '미리 약속하다'는 뜻.
  57. (황제의 위엄이) 더럽혀지고(黷): '黷(독)'은 '더럽히다', '모독하다'는 뜻.
  58. (황제의) 단점이 드러나니(示短): 황제의 부족한 점이나 약점이 노출된다는 의미.
  59. 자신을 숨기고 홀로 결단하여(藏己獨斷): 황제가 직접 나서지 않고 은밀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을 의미.
  60. 천자가 스스로 짐(朕)이라 칭하는 것은(天子稱朕): '朕'은 황제만이 사용하는 1인칭 대명사.
  61. 본래 이름만 들릴 뿐입니다(固但聞名): 황제의 존재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위엄이 있다는 의미로, 실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조고의 간언.
  62. 깊이 스스로를 숨기고(深自幽隱): 황제가 더욱 깊이 은둔하여 정사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의미.
  63. 안으로는 좋은 말을 하여 군주를 기쁘게 하고(入稱好言以說主): 조고가 황제에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말을 했다는 의미.
  64. 밖으로는 조서와 명령에 의지하여(出倚詔令): 조고가 황제의 조서와 명령을 빙자하여 자신의 권력을 행사했다는 의미.
  65. 천하가 물고기처럼 썩어(天下魚爛): 천하가 극도로 혼란하고 부패하여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비유.
  66. (반란의) 악행을 군주에게 돌리고(歸惡於君): 조고가 백성들의 반란 책임을 이세황제에게 전가했다는 의미.
  67. 염락(閻樂)을 시켜 (이세황제를) 꾸짖고 죽이게 하였는데(乃使閻樂責而殺): 조고가 염락을 시켜 이세황제를 협박하고 자결을 강요하여 죽게 만들었다.
  68. (이세황제는) 조고를 한 번 만나기를 원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죽었다(願一見高不能而死): 이세황제가 죽기 직전 조고를 만나려 했으나 거절당하고 죽었다는 일화.
  69. 전상(田常):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대부로, 제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고 군주를 폐립하며 결국 제나라를 찬탈했다.
  70. 제 간공(齊簡公):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군주. 전상에게 살해당했다.
  71. 가두고(囚): 전상이 간공을 가두고 죽였다는 의미.
  72. 촉치(踔齒):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장수로, 제 민왕(齊湣王)을 배신하고 죽였다.
  73. 제 민왕(齊湣王):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군주로, 연(燕)나라 악의(樂毅)의 침공으로 나라를 잃고 촉치에게 살해당했다.
  74. 매달아 죽인 것을(懸): 촉치가 민왕을 매달아 죽였다는 잔혹한 일화.
  75. 경사(卿士): 고대 중국의 고위 관직.
  76.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不納箴規): '箴規'는 '간언', '훈계'를 의미.
  77. 백성들의 유언비어를 듣지 않은 데 있었다(不受民氓之謠言): '謠言'은 '유언비어'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백성들의 불만이나 민심을 반영하는 소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78. 스스로 자신을 간공과 민왕보다 현명하다고 여겼고, (조고와 같은) 두 신하에게 (전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이다(自以己賢於簡、湣,而於二臣也): '而於二臣也'는 문맥상 '두 신하(조고와 같은 간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이다' 또는 '두 신하(간공과 민왕을 죽인 전상과 촉치)의 전철을 밟았기 때문이다'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79. 백성들의 운명을 조고에게 맡겨(以眾命繫趙高): 백성들의 생명과 안위를 조고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다는 의미.
  80. 순(舜):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81. 말하기를(曰): 『서경(書經)』 「익직(益稷)」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82. 내가 잘못하면, 너희가 보필하라. 너희는 면전에서만 따르지 말고, 물러나서도 뒤에 할 말이 없게 하라: 군주가 잘못을 저지를 때 신하들이 적극적으로 간언하고, 겉으로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보필해야 한다는 의미.
  83. 교만한 신하가 현명한 자를 숨기기를 좋아하는 것은(驕臣之好隱賢也): 교만한 간신들이 현명한 인재가 등용되는 것을 막는 행위를 비판한다.
  84. 이미 그들의 정당한 의로움이 자신을 바로잡을까 근심하기 때문이요(既患其正義以繩己矣): '繩己'는 '자신을 바로잡다', '자신을 규제하다'는 뜻. 현인의 바른 도리가 자신의 잘못된 행실을 드러내고 바로잡을까 두려워한다는 의미.
  85. 상위(上位)에 있으면서도 아랫사람만 못하게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恥居上位而明不及下): 자신이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아랫사람보다 지혜롭지 못하거나, 아랫사람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의미.
  86. 그 직책을 맡았으면서도 계책이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尹其職而策不出於己): '尹其職'은 '그 직책을 맡다', '策不出於己'는 '계책이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다'는 뜻. 즉, 자신이 책임자인데도 중요한 정책이나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의미.
  87. 극완(郄宛):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로, 현명하고 충성스러웠으나, 동료들의 질투와 참소로 인해 결국 망했다.
  88. 백성의 지지를 얻자(得眾):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다는 의미.
  89. 자상(子常):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영윤(令尹)으로, 간신이었다.
  90. 그를 죽였고(殺之): 자상이 극완을 질투하여 죽였다는 일화.
  91. 굴원(屈原):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충신으로, 간신들의 참소로 인해 유배당했다.
  92. 군주의 총애를 얻자(得君): 군주의 신임을 얻었다는 의미.
  93. 초(椒):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간신 자초(子椒)를 지칭한다.
  94. 난(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간신 자란(子蘭)을 지칭한다.
  95. 참소하였으며(挺讒): '挺讒'은 '참소를 드러내다', '참소하다'는 뜻.
  96. 경수(耿壽):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인물로, 상평창(常平倉) 제도를 건의하여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
  97. 상평(常平): 상평창(常平倉) 제도를 의미하며, 곡물 가격이 오르면 풀고 내리면 사들여 물가를 조절하는 제도이다.
  98. 엄연년(嚴延年):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관리로, 탐욕스럽고 잔혹하여 경수의 상평 정책을 질투했다.
  99. 그 계책을 질투하였고(妬其謀): 경수의 훌륭한 정책을 시기했다는 의미.
  100. 진탕(陳湯):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장수로, 서역의 질지선우를 토벌하여 큰 공을 세웠다.
  101. 질지선우(郅支單于): 흉노(匈奴)의 선우(單于) 중 한 명으로, 한나라에 대항하다가 진탕에게 토벌당했다.
  102. 광형(匡衡):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재상으로, 학문이 뛰어났으나 탐욕스럽고 공적을 가로채는 행위로 비판받았다.
  103. 그 공을 가로챘다(捄其功): '捄(구)'는 '구하다', '가로채다'는 뜻. 광형이 진탕의 공적을 가로채려 했다는 의미.
  104. 지위가 비천하면서도 군주에게 선(善)을 베풀고자 하면(處位卑賤而欲效善於君):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군주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거나 선정을 돕고자 하는 경우를 의미.
  105. 옛 총애를 믿고 안에서 그들을 방해하고(恃舊寵沮之於內): '舊寵'은 '옛 총애', '沮之'는 '그들을 방해하다'는 뜻. 즉, 기존의 총애를 믿는 간신들이 안에서 현명한 자들을 방해한다는 의미.
  106. 천한 자들을 접촉하여 밖에서 신임을 얻으려 하니(接賤欲自信於外): '接賤'은 '천한 자들을 접촉하다', '自信於外'는 '밖에서 신임을 얻다'는 뜻. 즉, 간신들이 천한 자들과 결탁하여 외부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는 의미.
  107. 근심하는 마음이 서로 분명히 드러나는데도(憂心相皦): '皦(교)'는 '밝다', '분명하다'는 뜻. 즉, 현명한 군주와 충성스러운 선비가 서로를 알아보고 근심하는 마음이 분명한데도.

潛夫論(잠부론) - 考績(고적)

1

원문
凡南面之大務,莫急於知賢;知賢之近途,莫急於考功。功誠考則治亂暴而明,善惡信則直賢不得見障蔽,而佞巧不得竄其姦矣。

번역문
무릇 남면(南面)1의 큰 임무 중 현명한 자를 아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없으며, 현명한 자를 아는 지름길 중 공적을 평가하는 것2보다 더 급한 것은 없다. 공적이 진실로 평가되면 다스려짐과 혼란스러움이 드러나 밝아지고, 선과 악이 신뢰를 얻으면 정직하고 현명한 자가 가려지지 않고 드러나며, 아첨하고 교활한 자가 그 간사함을 숨기지 못할 것이다.


2

원문
夫劍不試則利鈍闇,弓不試則勁撓誣,鷹不試則巧拙惑,馬不試則良駑疑。此四者之有相紛也,由不考試故得然也。今群臣之不試也,其禍非直止於誣、闇、疑、惑而已,又必致於怠慢之節焉。設如家人有五子十孫,父母不察精懦,則懃力者懈弛,而惰慢者遂非也,耗業家之道也。父子兄弟,一門之計,猶有若此,則又況乎群臣總猥治公事者哉?《傳》曰:「善惡無彰,何以沮勸?」是故大人不考功,則子孫惰而家破窮;官長不考功,則吏怠傲而姦宄興;帝王不考功,則直賢抑而詐偽勝。故《書》曰:「三載考績,黜陟幽明。」蓋所以昭賢愚而勸能否也。

번역문
무릇 칼은 시험하지 않으면 날카로움과 무딤을 알 수 없고3, 활은 시험하지 않으면 강함과 약함을 알 수 없으며4, 매는 시험하지 않으면 교묘함과 서투름을 알 수 없고5, 말은 시험하지 않으면 좋고 나쁨을 의심하게 된다6. 이 네 가지가 서로 뒤섞여 분별할 수 없는 것은 시험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지금 여러 신하들을 시험하지 않으면, 그 화는 단지 속임수, 어두움, 의심, 혼란에 그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태만하고 오만한 행실에 이르게 된다. 비유컨대 한 집안에 다섯 아들과 열 손자가 있는데, 부모가 부지런함과 나약함을 살피지 않으면, 부지런히 노력하는 자는 게을러지고, 게으르고 오만한 자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어, 가업을 망치는 길이다. 부자 형제, 한 집안의 살림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하물며 여러 신하들이 뒤섞여 공적인 일을 다스리는 경우에 있어서랴? 『전(傳)』에 이르기를7, “선악이 드러나지 않으면, 무엇으로 막고 권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대인(大人)8이 공적을 평가하지 않으면 자손이 게을러져 집안이 망하고 궁핍해지며, 관장(官長)9이 공적을 평가하지 않으면 아전이 태만하고 오만해져 간사하고 흉악한 일이 흥성하고, 제왕(帝王)이 공적을 평가하지 않으면 정직하고 현명한 자가 억압당하고 사기(詐欺)와 거짓이 승리한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 이르기를10, “삼 년에 한 번 공적을 평가하여, 어둡고 무능한 자는 내치고 밝고 유능한 자는 올린다11.”고 하였다. 이는 대개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밝히고, 능력 있음과 능력 없음을 권장하기 위함이다.


3

원문
聖王之建百官也,皆以承天治地,物養萬民者也。是故有號者必稱典,名理者必效於實,則官無廢職,位無非人。夫守相令長,效在治民,州牧刺史,在憲聰明;九卿分職,以佐三公;三公總統,典和陰陽;皆當考治以效實為王休者也。侍中、大夫、慱士、議郎,以言語為職,諫諍為官, 及選茂才、孝廉、賢良方正、惇樸、有道、明經、寬慱、武猛、治劇,此皆名自命而號自定,群臣所當盡情竭慮稱君詔也。

번역문
성왕(聖王)이 백관(百官)을 세운 것은, 모두 하늘을 계승하고 땅을 다스리며12, 만백성을 기르고 양육하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직책의 명칭을 가진 자는 반드시 법도를 따르고13, 다스림을 주장하는 자는 반드시 실제적인 효과를 보여야 하니14, 그러면 관직에 버려지는 직무가 없고, 자리에 부적합한 사람이 없게 된다. 무릇 태수(太守)15, 재상(相)16, 현령(令)17, 현장(長)18은 백성을 다스리는 데 그 효과가 있고, 주목(州牧)19과 자사(刺史)20는 총명함의 모범이 되는 데 있으며21, 구경(九卿)22은 직책을 나누어 삼공(三公)23을 보좌하고, 삼공은 모든 것을 총괄하여 음양(陰陽)을 조화롭게 다스리니24, 모두 다스림을 평가하여 실제적인 효과로써 왕의 영광을 이루어야 하는 자들이다. 시중(侍中)25, 대부(大夫)26, 박사(博士)27, 의랑(議郎)28은 언어를 직책으로 삼고, 간쟁(諫諍)을 관직으로 삼으며, 또한 무재(茂才)29, 효렴(孝廉)30, 현량방정(賢良方正)31, 돈박(惇樸)32, 유도(有道)33, 명경(明經)34, 관박(寬慱)35, 무맹(武猛)36, 치극(治劇)37과 같은 인재를 선발하는데, 이들은 모두 이름이 스스로 부여되고 호칭이 스스로 정해지는 것이니38, 여러 신하들이 마땅히 정성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군주의 조서에 부응해야 한다.


4

원문
今則不然,令長守相不思立功,貪殘專恣,不奉法令,侵冤小民。州司不治,令遠詣闕上書訟訴。尚書不以責三公,三公不以讓州郡,州郡不以討縣邑,是以凶惡狡猾易相冤也。侍中、博士諫議之官,或處位歷年,終無進賢嫉惡拾遺補闕之語,而貶黜之憂。群僚舉士者,或以頑魯應茂才,以桀逆應至孝,以貪饕應廉吏,以狡猾應方正,以諛諂應直言,以輕薄應敦厚,以空虛應有道,以嚚闇應明經,以殘酷應寬博,以怯弱應武猛,以愚頑應治劇,名實不相副,求貢不相稱。富者乘其材力,貴者阻其勢要,以錢多為賢,以剛彊為上。凡在位所以多非其人,而官聽所以數亂荒也。

번역문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령, 현장, 태수, 재상은 공적을 세울 생각을 하지 않고, 탐욕스럽고 잔혹하며 제멋대로 행동하고, 법령을 받들지 않으며, 소민(小民)을 침해하고 억울하게 만든다. 주(州)의 관리가 다스리지 않아, 백성들이 멀리 대궐에 나아가 상서(上書)하여 송사(訟訴)하게 한다. 상서(尚書)39는 삼공(三公)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삼공은 주군(州郡)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으며, 주군은 현읍(縣邑)에게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흉악하고 교활한 자들이 서로를 쉽게 억울하게 만든다. 시중, 박사, 간의(諫議)40와 같은 관직에 있는 자들은, 혹은 여러 해 동안 자리에 있으면서도 끝내 현명한 자를 천거하고 악한 자를 미워하며, 빠진 것을 줍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말41이 없고, (그로 인해) 좌천될 걱정도 없다. 여러 관료들이 선비를 천거하는 것을 보면, 혹은 완고하고 어리석은 자를 무재(茂才)에 응하게 하고, 사납고 거역하는 자를 지효(至孝)에 응하게 하며, 탐욕스럽고 게걸스러운 자를 청렴한 관리에 응하게 하고, 교활한 자를 방정(方正)에 응하게 하며, 아첨하는 자를 직언(直言)에 응하게 하고, 경박한 자를 돈후(敦厚)에 응하게 하며, 공허한 자를 유도(有道)에 응하게 하고, 어리석고 어두운 자를 명경(明經)에 응하게 하며, 잔혹한 자를 관박(寬博)에 응하게 하고, 겁 많고 나약한 자를 무맹(武猛)에 응하게 하며, 어리석고 완고한 자를 치극(治劇)에 응하게 하니, 이름과 실상이 서로 부합하지 않고, 구하는 바와 바치는 바가 서로 맞지 않는다. 부유한 자는 그 재력에 의지하고, 귀한 자는 그 세력에 의지하여, 돈이 많은 것을 현명하다고 여기고, 강하고 굳센 것을 으뜸으로 여긴다. 무릇 자리에 있는 자들이 그 적임자가 아닌 경우가 많고, 관청의 정사가 자주 혼란스럽고 황폐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5

원문
古者諸侯貢士,一適謂之好德,載適謂之尚賢,三適謂之有功,則加之賞。其不貢士也,一則黜爵,載則黜地,三黜則爵土俱畢。附下罔上者,刑,與聞國政而無益於民者斥,在上位而不能進賢者逐。其受事而重選舉,審名實而取賞罰也如此。故能別賢愚而獲多士,成教化而安民氓。三有於世,皆致太平。聖漢踐祚,載祀四八,而猶者末,教不假而功不考,賞罰稽而赦贖數也。諺曰:「曲水惡直繩,重罰惡明證。」此群臣所以樂總猥而惡考功也。

번역문
옛날에는 제후(諸侯)들이 선비를 천거하였는데42, 한 번 천거하면 덕을 좋아한다고 일컬었고, 두 번 천거하면 현명한 자를 숭상한다고 일컬었으며, 세 번 천거하면 공적이 있다고 일컬어, 상을 더해주었다. 선비를 천거하지 않으면, 한 번은 작위(爵位)를 삭탈하고, 두 번은 봉지(封地)를 삭탈하며, 세 번 삭탈하면 작위와 봉지가 모두 사라졌다. 아랫사람과 결탁하여 윗사람을 속이는 자는 형벌에 처하고, 국정에 참여하여 백성에게 이로움이 없는 자는 내쫓으며,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현명한 자를 천거하지 못하는 자는 추방하였다. 그들이 일을 맡아 선거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름과 실상을 살피며 상벌을 취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분별하여 많은 선비를 얻을 수 있었고, 교화를 이루어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이 세 가지가 세상에 있으면43, 모두 태평성대에 이르렀다. 성스러운 한(漢)나라가 제위에 올라44, 삼십이 년45이 지났는데도 오히려 말세와 같으니46, 가르침은 빌리지 않고47 공적은 평가하지 않으며, 상벌은 지체되고48, 사면과 속죄는 자주 행해진다49. 속담에 이르기를50, “굽은 물은 곧은 먹줄을 싫어하고, 무거운 벌은 명확한 증거를 싫어한다51.”고 하였다. 이것이 여러 신하들이 뒤섞여 있는 것을 즐기고 공적 평가를 싫어하는 까닭이다.


6

원문
夫聖人為天口,賢者為聖譯。是故聖人之言,天之心也。賢者之所說,聖人之意也。先師京君,科察考功,以遺賢俊,太平之基,必自此始,無為之化,必自此來也。

번역문
무릇 성인(聖人)은 하늘의 입이 되고52, 현자(賢者)는 성인의 통역자가 된다53. 이 때문에 성인의 말은 하늘의 마음이요, 현자가 말하는 바는 성인의 뜻이다. 선사(先師) 경군(京君)54은 공적 평가를 체계적으로 살피고55, 이를 통해 현명하고 뛰어난 인재를 남겼으니56, 태평성대의 기초는 반드시 여기에서 시작되고, 무위(無爲)의 교화57는 반드시 여기에서 비롯될 것이다.


7

원문
是故世主不循考功而思太平,此猶欲舍規矩而為方圓,無舟楫而欲濟大水,雖或云縱,然不知循其慮度之易且速也。群寮師尹,咸有典司,各居其職,以責其效;百郡千縣,各因其前,以謀其後;辭言應對,各緣其文,以覈其實,則奉職不解,而陳言者不得誣矣。《書》云:「賦納以言,明試以功,車服以庸。」「誰能不讓?誰能不敬應?」此堯、舜所以養黎民而致時雍也。

번역문
이 때문에 세상의 군주가 공적 평가를 따르지 않고 태평성대를 생각하는 것은, 마치 규(規)와 구(矩)58를 버리고 원과 사각형을 만들려 하거나, 배와 노59 없이 큰 물을 건너려 하는 것과 같다. 비록 혹자는 (그것이) 자유롭다고 말할지라도, 신중하게 헤아려 계획하는 것이 쉽고 빠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여러 관료와 재상들은60 모두 맡은 바 직책이 있으니, 각자 그 직책에 머물러 그 효과를 책임져야 한다. 백 개의 군(郡)과 천 개의 현(縣)은 각기 그 이전의 것을 바탕으로61 그 이후를 도모하고, 말과 응대는 각기 그 문장(형식)에 따라62 그 실상을 핵실(覈實)63하면, 직무를 받들어 게을리하지 않고, 의견을 진술하는 자가 속이지 못할 것이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64, “말을 바쳐 받아들이고, 공적으로 밝게 시험하며, 수레와 의복은 공로에 따라 준다65.”고 하였고, “누가 겸양하지 않겠으며? 누가 공경히 응하지 않겠는가?66”라고 하였다. 이것이 요(堯)와 순(舜)이 백성을 길러 때에 맞는 화합67을 이룬 까닭이다.


각주

  1. 남면(南面): 고대 중국에서 군주가 남쪽을 향해 앉아 신하들의 조회를 받는 데서 유래한 말로, 군주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한다.
  2. 공적을 평가하는 것(考功): 관리들의 업무 성과나 공로를 평가하는 제도.
  3. 칼은 시험하지 않으면 날카로움과 무딤을 알 수 없고: 칼의 본질적인 성능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사용해보아야 한다는 비유.
  4. 활은 시험하지 않으면 강함과 약함을 알 수 없으며: 활의 강도와 유연성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활시위를 당겨보아야 한다는 비유.
  5. 매는 시험하지 않으면 교묘함과 서투름을 알 수 없고: 매의 사냥 기술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사냥에 투입해보아야 한다는 비유.
  6. 말은 시험하지 않으면 좋고 나쁨을 의심하게 된다: 말의 능력과 품성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타보고 길들여보아야 한다는 비유.
  7. 『전(傳)』에 이르기를: 『좌전(左傳)』 「양공(襄公) 24년」에 나오는 구절이다.
  8. 대인(大人): 여기서는 집안의 어른, 가장을 의미한다.
  9. 관장(官長): 관청의 우두머리, 관리.
  10.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나오는 구절이다.
  11. 삼 년에 한 번 공적을 평가하여, 어둡고 무능한 자는 내치고 밝고 유능한 자는 올린다(三載考績,黜陟幽明): 고대 중국의 관리 평가 제도. '黜(출)'은 '내쫓다', '강등시키다', '陟(척)'은 '올리다', '승진시키다'는 뜻. '幽(유)'는 '어둡다', '무능하다', '明(명)'은 '밝다', '유능하다'는 뜻.
  12. 하늘을 계승하고 땅을 다스리며(承天治地): 천명을 받아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
  13. 직책의 명칭을 가진 자는 반드시 법도를 따르고(有號者必稱典): 관직에 있는 자는 그 직책에 맞는 규범과 법도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
  14. 다스림을 주장하는 자는 반드시 실제적인 효과를 보여야 하니(名理者必效於實): 말로만 다스림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의미.
  15. 태수(太守): 군(郡)의 최고 행정관.
  16. 재상(相): 제후국의 최고 행정관.
  17. 현령(令): 큰 현(縣)의 최고 행정관.
  18. 현장(長): 작은 현(縣)의 최고 행정관.
  19. 주목(州牧): 한(漢)나라 때 주의 최고 행정관.
  20. 자사(刺史): 한(漢)나라 때 주의 감찰관.
  21. 총명함의 모범이 되는 데 있으며(在憲聰明): '憲(헌)'은 '법', '모범'이라는 뜻. 즉, 총명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
  22. 구경(九卿): 고대 중국의 아홉 가지 고위 관직.
  23. 삼공(三公): 고대 중국의 가장 높은 세 명의 관직.
  24. 음양(陰陽)을 조화롭게 다스리니(典和陰陽): 국가의 모든 일을 조화롭게 처리하여 안정과 번영을 이룬다는 의미.
  25. 시중(侍中): 황제를 측근에서 보좌하는 관직.
  26. 대부(大夫): 고대 중국의 관직명.
  27. 박사(博士): 학문을 담당하는 관직.
  28. 의랑(議郎): 황제에게 간언하고 정책을 논의하는 관직.
  29. 무재(茂才): 한(漢)나라 때 인재 선발 과목 중 하나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를 천거하는 제도.
  30. 효렴(孝廉): 한(漢)나라 때 인재 선발 과목 중 하나로, 효도와 청렴함을 갖춘 자를 천거하는 제도.
  31. 현량방정(賢良方正): 한(漢)나라 때 인재 선발 과목 중 하나로, 현명하고 어질며 행실이 바른 자를 천거하는 제도.
  32. 돈박(惇樸): 성품이 돈독하고 순박함.
  33. 유도(有道): 도덕적 수양이 깊은 자.
  34. 명경(明經): 경전에 밝은 자.
  35. 관박(寬慱): 마음이 넓고 학식이 풍부함.
  36. 무맹(武猛): 무예가 뛰어나고 용맹함.
  37. 치극(治劇):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잘 처리함.
  38. 이름이 스스로 부여되고 호칭이 스스로 정해지는 것이니(名自命而號自定): 이러한 인재 선발 과목의 명칭이 그 자체로 해당 인물의 자질을 나타내므로, 그에 걸맞은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의미.
  39. 상서(尚書): 한(漢)나라 때 황제의 명령을 담당하던 고위 관직.
  40. 간의(諫議): 간언하고 논의하는 관직.
  41. 빠진 것을 줍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말(拾遺補闕之語): 군주의 잘못이나 정책의 미비점을 지적하고 보완하는 충언을 의미한다.
  42. 선비를 천거하였는데(貢士): 제후들이 자신의 봉국에서 현명한 선비를 중앙 조정에 추천하는 제도.
  43. 이 세 가지가 세상에 있으면(三有於世): 앞서 언급된 '好德', '尚賢', '有功'의 세 가지 덕목이 세상에 존재하면.
  44. 성스러운 한(漢)나라가 제위에 올라(聖漢踐祚): 한나라가 황제국으로서 정통성을 가지고 통치하기 시작했다는 의미.
  45. 삼십이 년(載祀四八): '載祀'는 '해'를 의미하고, '四八'은 '4 곱하기 8'로 32년을 뜻한다.
  46. 오히려 말세와 같으니(而猶者末): 한나라가 건국된 지 3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말세의 징조를 보인다는 비판적인 시각.
  47. 가르침은 빌리지 않고(教不假): '假(가)'는 '빌리다', '의지하다'는 뜻. 즉,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형식적인 가르침만 있을 뿐 실질적인 가르침이 없다는 의미.
  48. 상벌은 지체되고(賞罰稽):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리는 것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
  49. 사면과 속죄는 자주 행해진다(赦贖數也): 죄를 사면해주거나 돈을 받고 죄를 면해주는 일이 빈번하다는 의미. 이는 법 집행의 문란을 의미한다.
  50. 속담에 이르기를(諺曰): 옛사람들의 격언이나 속담을 인용할 때 쓰는 표현.
  51. 굽은 물은 곧은 먹줄을 싫어하고, 무거운 벌은 명확한 증거를 싫어한다(曲水惡直繩,重罰惡明證): 굽은 물이 곧은 먹줄에 의해 자신의 굽은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듯이, 잘못된 행위를 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명확히 드러내는 평가나 증거를 싫어한다는 비유.
  52. 성인(聖人)은 하늘의 입이 되고(聖人為天口): 성인이 하늘의 뜻을 대변한다는 의미.
  53. 현자(賢者)는 성인의 통역자가 된다(賢者為聖譯): 현인이 성인의 가르침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
  54. 선사(先師) 경군(京君):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학자 경방(京房)을 지칭한다. 그는 역학(易學)과 재이설(災異說)에 능했으며, 관리들의 공적 평가 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55. 공적 평가를 체계적으로 살피고(科察考功): '科察'은 '과목별로 살피다', '체계적으로 조사하다'는 뜻.
  56. 현명하고 뛰어난 인재를 남겼으니(以遺賢俊): 경방의 공적 평가 제도가 현명하고 뛰어난 인재를 발굴하고 등용하는 데 기여했음을 의미한다.
  57. 무위(無爲)의 교화: 도가(道家) 사상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인위적인 간섭 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백성을 교화하는 이상적인 통치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유가(儒家)적 맥락에서 군주의 덕치(德治)를 통해 백성이 자연스럽게 교화되는 상태를 뜻한다.
  58. 규(規)와 구(矩): 규(規)는 컴퍼스, 구(矩)는 곱자를 의미한다. 원과 사각형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기본적인 도구로, 여기서는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다스리는 기준이나 원칙을 비유한다.
  59. 배와 노(舟楫): 강이나 바다를 건너는 데 필요한 도구로, 여기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나 방법을 비유한다.
  60. 여러 관료와 재상들은(群寮師尹): '群寮'는 여러 관료, '師尹'은 스승과 재상을 의미하며, 고위 관직자들을 통칭한다.
  61. 그 이전의 것을 바탕으로(各因其前): 과거의 경험이나 선례를 참고하여.
  62. 그 문장(형식)에 따라(各緣其文): 말이나 글의 형식, 즉 규정이나 원칙에 따라.
  63. 핵실(覈實): 사실을 조사하여 확인하다, 진위를 가리다.
  64.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나오는 구절이다.
  65. 말을 바쳐 받아들이고, 공적으로 밝게 시험하며, 수레와 의복은 공로에 따라 준다(賦納以言,明試以功,車服以庸): 인재를 등용할 때 그들의 말과 공적을 기준으로 삼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준다는 의미. '賦納以言'은 '말을 바쳐 받아들이다'는 뜻으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 내용을 경청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車服以庸'은 '수레와 의복은 공로에 따라 준다'는 뜻으로, 공적에 따른 합당한 상벌을 의미한다.
  66. 누가 겸양하지 않겠으며? 누가 공경히 응하지 않겠는가?(誰能不讓?誰能不敬應?):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겸양하고 공경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의미.
  67. 때에 맞는 화합(時雍): 시기에 맞춰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潛夫論(잠부론) - 思賢(사현)

1

원문
國之所以存者、治也,其所以亡者、亂也。人君莫不好治而惡亂,樂存而畏亡。然常觀上記,近古已來,亡代有三,穢國不數,夫何哉?察其敗,皆由君常好其所亂,而忘其所治;憎其所以存,而愛其所以亡。是雖相去百世,縣年一紀,限隔九州,殊俗千里,然其已徵敗迹,若重規襲矩,稽節合符。故曰:雖有堯、舜之美,必考於《周頌》;雖有桀、紂之惡,必譏於《版》、《蕩》。「殷鑒不遠,在夏后之世。」

번역문
나라가 존재하는 까닭은 다스려지기 때문이요, 망하는 까닭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군주는 다스려지는 것을 좋아하고 혼란을 싫어하며, 보존되는 것을 즐거워하고 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나 항상 위에서 기록된 것을 살펴보면, 근고(近古)1 이래로 망한 왕조가 셋이나 되고2, 더러운 나라들은 셀 수 없으니, 대체 어찌 된 일인가? 그들의 패망을 살펴보면, 모두 군주가 항상 자신이 혼란스럽게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다스려야 할 것을 잊었기 때문이며; 자신이 보존되는 까닭을 미워하고, 자신이 망하는 까닭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는 비록 서로 백 세대나 떨어져 있고, 연대가 한 기(紀)3나 차이가 나며, 구주(九州)4로 한정되어 떨어져 있고, 풍속이 천 리나 다르다 할지라도, 이미 드러난 패망의 흔적은 마치 규(規)5를 거듭하고 구(矩)6를 밟는 듯하여, 마디를 헤아려 부절(符)7을 맞추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비록 요(堯)8와 순(舜)9의 아름다움이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주송(周頌)』10에서 상고해야 하며; 비록 걸(桀)11과 주(紂)12의 악함이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판(板)』13과 『탕(蕩)』14에서 비난해야 한다. “은(殷)나라의 거울은 멀리 있지 않으니, 하후씨(夏后氏)의 세상에 있다15.”


2

원문
夫與死人同病者,不可生也;與亡國同行者,不可存也。豈虛言哉!何以知人且病也?以其不嗜食也。何以知國之將亂也?以其不嗜賢也。是故病家之廚,非無嘉饌也,乃其人弗之能食,故遂於死也。亂國之官,非無賢人也,其君弗之能任,故遂於亡也。夫生飯秔粱,旨酒甘醪,所以養生也,而病人惡之,以為不若菽麥糠糟欲清者,此其將死之候也。尊賢任能,信忠納諫,所以為安也,而闇君惡之,以為不若姦佞闒茸讒諛言者,此其將亡之徵。老子曰:「夫唯病病,是以不病。」《易》稱「其亡其亡,繫于苞桑。」是故養壽之士,先病服藥;養世之君,先亂任賢,是以身常安而國永永也。

번역문
무릇 죽은 사람과 같은 병을 앓는 자는 살아날 수 없고; 망한 나라와 같은 길을 가는 자는 보존될 수 없다. 어찌 헛된 말이겠는가! 무엇으로 사람이 장차 병들 것임을 아는가? 그가 음식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나라가 장차 혼란스러워질 것임을 아는가? 그 군주가 현명한 자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병든 집안의 부엌에 좋은 음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것을 능히 먹지 못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나라의 관직에 현명한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군주가 그들을 능히 임용하지 못하여, 마침내 망하는 것이다. 무릇 갓 지은 멥쌀밥과 기장밥16, 맛있는 술과 단 막걸리17는 생명을 기르는 것인데, 병든 사람은 그것을 싫어하고, 콩, 보리, 겨, 지게미18처럼 맑은 것을 원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기니, 이것이 그가 장차 죽을 징후이다. 현명한 자를 존중하고 능력 있는 자를 임용하며, 충성스러운 자를 믿고 간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인데, 어두운 군주는 그것을 싫어하고, 간사하고 아첨하며 보잘것없는 자들의 참소하고 아첨하는 말19만 못하다고 여기니, 이것이 그가 장차 망할 징조이다. 노자(老子)20가 말하기를: “무릇 병을 병으로 여기는 자만이, 이로써 병들지 않는다21.” 『역(易)』22에 이르기를: “망할 것이다, 망할 것이다, 뽕나무 뿌리에 매달린 듯 위태롭다23.” 이 때문에 수명을 기르는 선비는 병들기 전에 약을 복용하고; 세상을 기르는 군주는 혼란이 오기 전에 현명한 자를 임용하니, 이로써 몸이 항상 편안하고 나라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3

원문
上毉毉國,其次下毉毉疾。夫人治國,固治身之象。疾者、身之病,亂者、國之病也。身之病待毉而愈,國之亂待賢而治。治身有黃帝之術,治世有孔子之經。然病不愈而亂不治者,唯鍼石之法誤,而《五經》之言誣也,乃因之者非其人。苟非其人,則規不圓而矩不方,繩不直而準不平,鑽燧不得火,鼓石不下金, 金馬不可以追速,土舟不可以涉水也。凡此八者,天之張道,有形見物,苟非其人,猶尚無功,則又況乎懷道術以撫民氓,乘六龍以御天心者哉?

번역문
최고의 의사는 나라를 다스리고24, 그 다음은 하급 의사가 질병을 다스린다. 무릇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진실로 몸을 다스리는 것의 비유이다. 질병은 몸의 병이요, 혼란은 나라의 병이다. 몸의 병은 의사를 기다려야 낫고, 나라의 혼란은 현명한 자를 기다려야 다스려진다. 몸을 다스리는 데는 황제(黃帝)25의 의술이 있고,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공자(孔子)26의 경전이 있다. 그러나 병이 낫지 않고 혼란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오직 침과 돌칼의 방법이 잘못되었거나27, 『오경(五經)』의 말이 거짓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따르는 자가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사람이 아니라면, 규(規)28는 원을 그리지 못하고 구(矩)29는 사각형을 만들지 못하며, 먹줄은 곧게 그어지지 않고 수평기는 평평하지 못하며30, 부싯돌을 비벼도 불을 얻지 못하고31, 돌을 두드려도 쇠를 얻지 못하며32, 쇠로 만든 말은 빨리 쫓아갈 수 없고33, 흙으로 만든 배는 물을 건널 수 없다34. 무릇 이 여덟 가지35는 하늘이 펼쳐놓은 도리요, 형체가 있어 눈에 보이는 사물인데도, 만약 그 사람이 아니라면 오히려 공을 이룰 수 없으니, 하물며 도술(道術)을 품고 백성을 어루만지며, 여섯 마리 용을 타고 하늘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에 있어서랴?36


4

원문
夫治世不得真賢,譬猶治疾不得良毉也。治疾當真人參,反得支羅服;當得麥門冬,反烝橫麥。己而不識真,合而服之,病以侵劇,不自知為人所欺也。乃反謂方不誠而藥皆無益於病,因棄後藥而弗敢飲,而便求巫覡者,雖死可也。人君求賢,下應以鄙,與真不以枉。己不引真,受猥官之,國以侵亂,不自知為下所欺也。乃反謂經不信而賢皆無益於救亂,因廢真賢不復求進,更任俗吏,雖滅亡可也。三代以下,皆以支羅服、烝橫麥合藥,病日痁而遂死也。

번역문
무릇 세상을 다스리는 데 진정한 현인을 얻지 못하는 것은, 비유컨대 질병을 치료하는 데 좋은 의사를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질병을 치료할 때 진정한 인삼을 써야 하는데, 도리어 지라복(支羅服)37을 얻고; 맥문동을 써야 하는데, 도리어 찐 횡맥(橫麥)38을 얻는다. 자신은 진짜를 알지 못하고, (가짜 약을) 합하여 복용하니, 병이 더욱 심해지는데도, 스스로 남에게 속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이에 도리어 처방이 성실하지 못하고 약이 모두 병에 유익하지 않다고 말하며, 이후의 약을 버리고 감히 마시지 않으며, 곧바로 무당이나 박수39를 찾는 자는, 비록 죽어도 마땅하다. 군주가 현명한 자를 구할 때, 아랫사람은 비루한 자로 응하고40, 진정한 자를 주지 않고 왜곡된 자를 준다. 자신은 진정한 자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뒤섞인 자들을 관직에 받아들이니41, 나라가 이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워지는데도, 스스로 아랫사람에게 속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이에 도리어 경전이 믿을 수 없고 현명한 자들이 모두 혼란을 구하는 데 유익하지 않다고 말하며, 진정한 현인을 폐기하고 다시는 구하여 등용하지 않으며, 다시 세속적인 관리를 임용하니, 비록 멸망해도 마땅하다. 삼대(三代)42 이후로는 모두 지라복과 찐 횡맥으로 약을 지어 복용하여, 병이 날마다 심해져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


5

원문
《書》曰:「人之有能,使循其行,國乃其昌。」是故先王為官擇人,必得其材,功加於人,德稱其位,人謀鬼謀,百姓與能,務順以動天地如此。三代開國建侯,所以傳嗣百世,歷載千數者也。

번역문
『서경(書經)』43에 이르기를: “사람이 능력이 있으면, 그 행실을 따르게 하여, 나라가 이에 창성한다44.” 이 때문에 선왕(先王)45은 관직을 위해 사람을 선택할 때, 반드시 그 재능을 얻었고, 공적은 사람들에게 더해지고, 덕은 그 지위에 걸맞았으며, 사람의 계책과 귀신의 계책이46, 백성이 능력을 함께하여47, 천지를 움직이는 데 힘썼으니 이와 같았다. 삼대(三代)48가 나라를 열고 제후를 세워, 백 세대에 걸쳐 대를 잇고, 천 년을 헤아리는 세월을 지탱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6

원문
自春秋之後,戰國之制,將權臣,必以親家。皇后兄弟,主壻外孫,年雖童妙,未脫桎梏,由籍此官職,功不加民,澤不被下而取侯,多受茅土,又不得治民效能以報百姓,虛食重祿,素餐尸位,而但事淫侈,坐作驕奢,破敗而不及傳世者也。

번역문
춘추시대 이후, 전국시대의 제도에서는, 권세 있는 신하를 장수로 삼을 때49, 반드시 친척을 썼다. 황후의 형제, 공주의 남편50, 외손자들은 나이가 비록 어리고 앳되어51, 아직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어도52, 이 관직에 의지하여53, 백성에게 공적을 더하지 못하고, 아랫사람에게 은택을 입히지 못하면서도 후(侯)54의 작위를 얻고, 많은 봉토를 받았으며55, 또한 백성을 다스려 능력을 발휘하여 백성에게 보답하지 못하고, 헛되이 많은 녹봉을 먹으며56, 하는 일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57, 단지 음란하고 사치스러운 일만 일삼고, 앉아서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짓을 하여58, 패망하고 대를 잇지 못하는 자들이다.


7

원문
子產有言:「未能操刀而使之割,其傷實多。」是故也主之於貴戚也,愛其嬖媚之美,不量其材而受之官,不使立功自託於民,而苟務高其爵位,崇其賞賜,令結怨於下民,縣罪於惡,積過既成,豈有不顛隕者哉?此所謂:「子之愛人,傷之而已哉!」

번역문
자산(子產)59이 말하기를: “아직 칼을 잡을 줄 모르는데 그에게 베게 하면, 그 상처가 실로 많을 것이다60.” 이 때문에 군주가 귀척(貴戚)61에게는, 그들의 총애받고 아첨하는 아름다움62을 사랑하여, 그 재능을 헤아리지 않고 관직을 주며, 공적을 세워 백성에게 의탁하게 하지 않고, 구차하게 그들의 작위를 높이고, 그들의 상을 후하게 하여, 아랫 백성에게 원한을 맺게 하고, 악행에 죄를 매달아63, 허물이 이미 쌓여 이루어졌는데, 어찌 넘어지고 떨어지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자식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를 해치는 것일 뿐이다!64


8

원문
先王之制,官民必論其材,論定而後爵之,位定然後祿之。人君也此君不察,而苟以親戚邑官之人典官者,譬猶以愛子易御僕,以明珠易瓦礫,雖有可愛好之情,然而其覆大車而殺病人也必矣。《書》稱「天工、人其代之」,《傳》曰:「夫成天地之力者,未嘗不蕃昌也。」由地觀之,世主欲無功之人而彊富之,則是與天鬭也。使無德況之人與皇天鬭,而欲久立,自古以來, 未之嘗有也.

번역문
선왕(先王)65의 제도에서는, 관직에 있는 자와 백성을 반드시 그 재능으로 논하고, 논의가 정해진 후에 작위를 주었으며, 지위가 정해진 후에 녹봉을 주었다. 군주가 이를 살피지 않고, 구차하게 친척이나 읍관(邑官)66의 사람에게 관직을 맡기는 것은, 비유컨대 사랑하는 아들로 마부67를 바꾸고, 밝은 구슬로 기와 조각68을 바꾸는 것과 같으니, 비록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그러나 그 큰 수레를 뒤엎고 병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서경(書經)』69에 “하늘의 일은 사람이 그를 대신한다70.”고 일컬었고, 『전(傳)』71에 “무릇 천지의 힘을 이루는 자는, 번성하고 창성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말하였다. 이로써 볼 때, 세상의 군주가 공로 없는 사람을 억지로 부유하게 하려 한다면, 이는 하늘과 싸우는 것이다. 덕이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황천(皇天)72과 싸우게 하면서, 오래도록 서 있기를 바라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일찍이 없었다.


각주

  1. 근고(近古): 여기서는 한(漢)나라 시대를 포함하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를 의미한다.
  2. 망한 왕조가 셋이나 되고: 구체적으로 어떤 세 왕조를 지칭하는지는 문맥상 명확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진(秦)나라, 신(新)나라, 그리고 서한(西漢) 말기의 혼란기를 거쳐 망한 왕조들을 의미할 수 있다. 혹은 저자가 살던 시점(후한)에서 이전의 망한 왕조들을 통칭하는 표현일 수 있다.
  3. 한 기(紀): 12년을 의미한다. 고대 중국에서 12지(十二支)를 사용하여 연대를 기록하는 방식에서 유래한다.
  4. 구주(九州): 고대 중국의 전 국토를 의미한다. 우(禹) 임금이 천하를 아홉 개의 주로 나누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5. 규(規): 원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도구, 컴퍼스.
  6. 구(矩): 직각을 재는 데 사용하는 도구, 곱자.
  7. 부절(符): 고대 중국에서 신표로 사용되던 물건. 둘로 쪼개어 보관하다가 나중에 서로 맞춰보아 진위를 확인했다. 여기서는 정확히 일치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8. 요(堯):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중 한 명.
  9. 순(舜):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중 한 명.
  10. 『주송(周頌)』: 『시경(詩經)』의 삼송(三頌) 중 하나로, 주(周)나라의 덕을 칭송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1. 걸(桀): 중국 하(夏)나라의 마지막 군주로, 폭군으로 악명 높다.
  12. 주(紂): 중국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로, 걸과 함께 대표적인 폭군으로 꼽힌다.
  13. 『판(板)』: 『시경(詩經)』 「대아(大雅)」에 실린 시의 제목으로, 주(周)나라 여왕(厲王)의 폭정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4. 『탕(蕩)』: 『시경(詩經)』 「대아(大雅)」에 실린 시의 제목으로, 주(周)나라 여왕의 폭정을 비판하며 은(殷)나라의 멸망을 거울삼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5. “은(殷)나라의 거울은 멀리 있지 않으니, 하후씨(夏后氏)의 세상에 있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탕(蕩)」 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은나라가 하(夏)나라의 멸망을 거울삼지 못하여 망했음을 경고하는 말로, 역사의 교훈을 강조할 때 인용된다.
  16. 멥쌀밥과 기장밥(秔粱): '秔(갱)'은 멥쌀, '粱(량)'은 기장을 의미한다. 고대 중국의 주식으로, 영양가 있는 좋은 음식을 상징한다.
  17. 맛있는 술과 단 막걸리(旨酒甘醪): '旨酒(지주)'는 맛있는 술, '甘醪(감로)'는 단 막걸리를 의미한다. 역시 좋은 음료를 상징한다.
  18. 콩, 보리, 겨, 지게미(菽麥糠糟): '菽(숙)'은 콩, '麥(맥)'은 보리, '糠(강)'은 겨, '糟(조)'는 술지게미를 의미한다. 모두 거칠고 하찮은 음식을 상징한다.
  19. 간사하고 아첨하며 보잘것없는 자들의 참소하고 아첨하는 말(姦佞闒茸讒諛言者): '姦佞(간녕)'은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 '闒茸(탑용)'은 보잘것없고 평범한 자, '讒諛(참유)'는 참소하고 아첨하는 것을 의미한다.
  20. 노자(老子):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로, 도가(道家)의 시조이다. 『도덕경(道德經)』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21. “무릇 병을 병으로 여기는 자만이, 이로써 병들지 않는다”: 『도덕경(道德經)』 제7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자신의 병을 병으로 인식하고 경계하는 자만이 진정으로 병들지 않는다는 의미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이 해결의 첫걸음임을 강조한다.
  22. 『역(易)』: 『주역(周易)』을 지칭한다.
  23. “망할 것이다, 망할 것이다, 뽕나무 뿌리에 매달린 듯 위태롭다”: 『주역(周易)』 「비괘(否卦)」 상구(上九) 효사(爻辭)에 나오는 구절이다. 뽕나무 뿌리는 겉으로는 튼튼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쉽게 뽑히는 것에 비유하여, 겉으로는 안정되어 보이나 실제로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을 나타낸다.
  24. 최고의 의사는 나라를 다스리고(上毉毉國): 고대 중국의 의학 사상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국가의 병폐를 다스리는 것이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보았다. 이는 『국어(國語)』 「진어(晉語)」에 나오는 "良醫者,多聞而闚物,亦可以醫國" (훌륭한 의사는 많이 듣고 사물을 살피니, 또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말과 통한다.
  25. 황제(黃帝):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으로, 의술과 여러 문명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은 그에게 가탁된 의학 경전이다.
  26. 공자(孔子): 춘추시대 말기의 사상가로, 유교의 시조이다. 그의 사상은 『논어(論語)』에 집약되어 있으며, 『오경(五經)』은 유교의 핵심 경전이다.
  27. 침과 돌칼의 방법이 잘못되었거나(鍼石之法誤): '鍼(침)'은 침술, '石(석)'은 고대 의술에서 사용되던 돌칼(砭石, 편석)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의술의 방법론을 통칭한다.
  28. 규(規): 원을 그리는 도구, 컴퍼스.
  29. 구(矩): 직각을 재는 도구, 곱자.
  30. 먹줄은 곧게 그어지지 않고 수평기는 평평하지 못하며(繩不直而準不平): '繩(승)'은 먹줄, '準(준)'은 수평기를 의미한다.
  31. 부싯돌을 비벼도 불을 얻지 못하고(鑽燧不得火): '鑽燧(찬수)'는 나무를 비벼 불을 얻는 고대의 발화법을 의미한다.
  32. 돌을 두드려도 쇠를 얻지 못하며(鼓石不下金): 돌에서 쇠를 제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33. 쇠로 만든 말은 빨리 쫓아갈 수 없고(金馬不可以追速): 쇠로 만든 말은 아무리 정교해도 실제 말처럼 빨리 달릴 수 없다는 비유.
  34. 흙으로 만든 배는 물을 건널 수 없다(土舟不可以涉水也): 흙으로 만든 배는 물에 뜨지 못하고 가라앉는다는 비유.
  35. 이 여덟 가지: 규, 구, 승, 준, 찬수, 고석, 금마, 토주를 의미한다. 이들은 모두 도구를 사용하여 어떤 목적을 이루는 행위를 비유한다.
  36. 여섯 마리 용을 타고 하늘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에 있어서랴?(乘六龍以御天心者哉?):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육효(六爻)를 '육룡(六龍)'에 비유하여, 천자(天子)가 하늘의 뜻에 따라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형체가 있는 도구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데, 하물며 형체가 없는 도(道)와 천심(天心)을 다루는 일이야 오죽하겠는가 하는 강조이다.
  37. 지라복(支羅服): 약효가 없거나 해로운 식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라(支羅)'는 식물의 이름으로, 약재로 쓰이지 않거나 독성이 있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38. 찐 횡맥(橫麥): '횡맥(橫麥)'은 보리나 밀의 일종으로, 약재로 쓰이지 않는 평범한 곡물이다. '烝(증)'은 '찌다'는 뜻. 약효가 없는 것을 약으로 착각하는 상황을 비유한다.
  39. 무당이나 박수(巫覡): '巫(무)'는 여자 무당, '覡(격)'은 남자 박수를 의미한다. 미신에 의지하는 행위를 비판한다.
  40. 아랫사람은 비루한 자로 응하고(下應以鄙): 아랫사람들이 군주에게 현명한 자 대신 비루하거나 무능한 자를 추천한다는 의미.
  41. 뒤섞인 자들을 관직에 받아들이니(受猥官之): '猥(외)'는 '뒤섞이다', '잡다하다'는 뜻. 즉, 능력 없는 자들이 뒤섞여 관직에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42. 삼대(三代): 하(夏), 은(殷), 주(周) 세 왕조를 통칭하는 말. 여기서는 삼대 이후의 시대, 즉 저자가 살던 한(漢)나라 시대를 포함하는 후대의 시대를 의미한다.
  43. 『서경(書經)』: 유교 경전 중 하나로, 고대 중국의 역사 기록과 사상을 담고 있다.
  44. “사람이 능력이 있으면, 그 행실을 따르게 하여, 나라가 이에 창성한다”: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여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면 나라가 번성한다는 의미이다.
  45. 선왕(先王): 고대 중국의 현명한 군주들을 통칭하는 말.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 등을 포함한다.
  46. 사람의 계책과 귀신의 계책이(人謀鬼謀): 인간의 지혜와 노력뿐만 아니라, 하늘의 뜻이나 신령한 도움까지 얻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통치자의 덕이 지극하여 천인감응(天人感應)을 이룬 상태를 나타낸다.
  47. 백성이 능력을 함께하여(百姓與能): 모든 백성들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의미이다.
  48. 삼대(三代): 하(夏), 은(殷), 주(周) 세 왕조를 통칭하는 말. 유교에서 이상적인 시대로 여겨진다.
  49. 권세 있는 신하를 장수로 삼을 때(將權臣): '將(장)'은 '장수로 삼다', '권세 있는 신하'는 '권력을 가진 신하'를 의미한다. 문맥상 권력을 가진 신하가 장수가 되는 경우를 말한다.
  50. 공주의 남편(主壻): '主(주)'는 공주를 의미하고, '壻(서)'는 사위, 남편을 의미한다.
  51. 어리고 앳되어(童妙): '童(동)'은 어린아이, '妙(묘)'는 젊고 아름답다는 뜻. 여기서는 나이가 어리고 미숙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52. 아직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어도(未脫桎梏): '桎梏(질곡)'은 발목에 채우는 차꼬와 수갑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정신적으로 미숙하거나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비유로 쓰였다.
  53. 이 관직에 의지하여(由籍此官職): '籍(적)'은 '의지하다', '빌리다'는 뜻.
  54. 후(侯): 고대 중국의 작위 중 하나로, 제후의 최고 작위이다.
  55. 많은 봉토를 받았으며(多受茅土): '茅土(모토)'는 봉토를 상징한다. 고대에는 봉토를 줄 때 띠풀(茅)과 흙(土)을 함께 주어 그 땅의 소유권을 상징했다.
  56. 헛되이 많은 녹봉을 먹으며(虛食重祿): '虛食'은 헛되이 먹다, '重祿'은 많은 녹봉을 의미한다.
  57. 하는 일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素餐尸位): '素餐(소찬)'은 하는 일 없이 녹봉만 받다, '尸位(시위)'는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하다는 뜻.
  58. 앉아서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짓을 하여(坐作驕奢): '坐作'은 '앉아서 하다', '저절로 생기다'는 뜻. 여기서는 아무런 노력 없이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행위를 일삼는다는 의미이다.
  59. 자산(子產):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현명한 재상. 뛰어난 정치력과 외교술로 정나라를 안정시켰다.
  60. “아직 칼을 잡을 줄 모르는데 그에게 베게 하면, 그 상처가 실로 많을 것이다”: 『좌전(左傳)』 「양공(襄公) 25년」에 나오는 구절이다. 능력 없는 자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면 오히려 해를 끼친다는 의미이다.
  61. 귀척(貴戚): 황실의 외척이나 가까운 친척으로, 높은 지위와 권세를 누리는 자들을 의미한다.
  62. 총애받고 아첨하는 아름다움(嬖媚之美): '嬖媚(폐미)'는 총애를 받기 위해 아첨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아첨하는 태도나 외모, 혹은 총애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63. 악행에 죄를 매달아(縣罪於惡): '縣(현)'은 '매달다', '걸다'는 뜻. 즉,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결국 죄를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64. “자식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를 해치는 것일 뿐이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무조건 따르다가 오히려 부모에게 해를 끼치는 상황을 비유한다. 여기서는 군주가 귀척을 사랑하여 무조건적으로 대우하다가 오히려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상황을 비유한다.
  65. 선왕(先王): 고대 중국의 현명한 군주들을 통칭하는 말.
  66. 읍관(邑官): 읍(邑)의 관리, 즉 지방 관리나 하급 관리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능력보다는 친분으로 관직에 임명되는 경우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67. 마부(御僕): 수레를 모는 하인.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직책이다.
  68. 기와 조각(瓦礫): 쓸모없고 하찮은 것을 비유한다.
  69. 『서경(書經)』: 유교 경전 중 하나.
  70. “하늘의 일은 사람이 그를 대신한다”: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하늘의 뜻을 사람이 대신하여 실현한다는 의미로, 유능한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71. 『전(傳)』: 여기서는 『좌전(左傳)』이나 『국어(國語)』와 같은 고대 역사서를 의미할 수 있다. 구체적인 출처는 명확하지 않으나,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는 자가 번성한다는 일반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72. 황천(皇天): 하늘을 높여 부르는 말. 여기서는 하늘의 섭리나 도리를 의미한다.

潛夫論(잠부론) - 本政(본정)

1

원문
凡人君之治,莫大於和陰陽。陰陽者、以天為本。天心順則陰陽和,天心逆則陰陽乖。天以民為心,民安樂則天心順,民愁苦則天心逆。民以君為統,君政善則民和治,君政惡則民冤亂。君以恤民為本,臣忠良賜君政善,臣姦枉則君政惡。以選為本,選舉實則忠賢進,選虛偽則邪黨貢。選以法令為本,法令正則選舉實,法令詐則選虛偽。法以君為主,君信法則法順行,君欺法則法委棄。君臣法令之功,必效於民。故君臣法令善則民安樂,民安樂則天心惣,天心惣則陰陽和,陰陽和則五穀豐,五穀豐而民眉壽,民眉壽則興於義,興於義而無姦行,無姦行則世平,而國家寧、社稷安,而君尊榮矣。是故天心陰陽、君臣、民氓、善惡相輔至而代相徵也。

번역문
무릇 군주의 다스림에 있어서, 음양(陰陽)을 조화롭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1. 음양이라는 것은 하늘을 근본으로 삼는다2. 하늘의 마음이 순조로우면 음양이 조화롭고, 하늘의 마음이 거스르면 음양이 어그러진다3. 하늘은 백성을 마음으로 삼으니4, 백성이 편안하고 즐거우면 하늘의 마음이 순조롭고, 백성이 근심하고 고통스러우면 하늘의 마음이 거스른다. 백성은 군주를 통솔자로 삼으니5, 군주의 정치가 선하면 백성이 화합하고 다스려지고, 군주의 정치가 악하면 백성이 억울하고 혼란스러워진다. 군주는 백성을 구휼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니6, 신하가 충성스럽고 어질면 군주의 정치가 선하게 되고7, 신하가 간사하고 왜곡되면 군주의 정치가 악하게 된다. 선발을 근본으로 삼으니, 선거가 실제적이면 충성스럽고 현명한 자가 나아가고, 선거가 허위적이면 사악한 무리가 천거된다8. 선발은 법령을 근본으로 삼으니, 법령이 바르면 선거가 실제적이고, 법령이 속임수가 있으면 선발이 허위적이다. 법은 군주를 주체로 삼으니, 군주가 법을 믿으면 법이 순조롭게 시행되고, 군주가 법을 속이면 법이 버려진다9. 군주, 신하, 법령의 공적은 반드시 백성에게 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군주, 신하, 법령이 선하면 백성이 편안하고 즐거우며, 백성이 편안하고 즐거우면 하늘의 마음이 모두 모이고10, 하늘의 마음이 모두 모이면 음양이 조화롭고, 음양이 조화로우면 오곡이 풍성하며, 오곡이 풍성하고 백성이 장수하면11 백성이 의(義)에 흥기하고, 의에 흥기하여 간사한 행실이 없으면 세상이 평화로워지고, 국가가 편안하며, 사직이 안정되고, 군주가 존귀하고 영광스러울 것이다. 이 때문에 하늘의 마음, 음양, 군신, 백성, 선악은 서로 보좌하여 지극해지고12, 번갈아 서로 징조가 된다13.


2

원문
夫天者、國之基也,君者、民之統也,臣者、治之材也。「工欲善其事,必先利其器。」是故將致大平者,必先調陰陽;調陰陽者,必先順天心;順天心者,必先安其人;安其人者,必先審擇其人。是故國家存亡之本,治亂之機,在於明選而已矣。聖人知之,故以為黜陟之首。《書》曰:「爾安百姓,何擇非人?」此先王致太平而發頌聲也。

번역문
무릇 하늘은 나라의 기초요, 군주는 백성의 통솔자요, 신하는 다스림의 재료이다14. “장인이 그 일을 잘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도구를 날카롭게 해야 한다15.” 이 때문에 태평성대를 이루려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음양을 조화롭게 해야 하고; 음양을 조화롭게 하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하늘의 마음에 순응해야 하며; 하늘의 마음에 순응하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하고; 그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인재)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국가 존망의 근본과 다스려짐과 혼란의 기틀은 밝게 선발하는 데 있을 뿐이다. 성인이 이를 알았으므로, 출척(黜陟)의 으뜸으로 삼았다16. 『서경(書經)』에 이르기를17, “너희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면, 어찌 사람이 아닌 것을 선택하겠는가?18”라고 하였다. 이것은 선왕(先王)이 태평성대를 이루고 칭송의 소리를 낸 것이다.


3

원문
否泰消息,陰陽不並,觀其所聚,而興衰之端可見也。稷、契、皋陶聚而致雍熙,皇父、蹶、踽聚而致災異。夫善惡之象,千里合符,百世累迹,性相近而習相遠。是故賢愚在心,不在貴賤;信欺在性,不在親踈。二世所以共亡天下者,丞相、御史也。高祖所以共取天下者,繒肆、狗屠也;驪山之徒,鉅野之盜, 皆為名將。由此觀之,苟得其人,不患貧賤;苟得其材,不嫌名跡。

번역문
비(否)와 태(泰)의 성쇠(盛衰)는 음양이 조화롭지 않을 때 나타나니19, 그 모이는 바를 보면 흥하고 쇠하는 단서를 알 수 있다. 직(稷)20, 설(契)21, 고요(皋陶)22가 모여 화목하고 번성하게 하였고, 황보(皇父)23, 궐(蹶)24, 거(踽)25가 모여 재앙과 이변을 초래하였다. 무릇 선악의 형상은 천 리 밖에서도 부절(符)을 맞추듯이 일치하고26, 백 세대에 걸쳐 자취가 쌓이니,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은 서로 멀어진다27. 이 때문에 현명함과 어리석음은 마음에 있고 귀하고 천함에 있지 않으며; 믿음과 속임수는 본성에 있고 친하고 소원함에 있지 않다. 이세황제(二世皇帝)28가 함께 천하를 망하게 한 자들은 승상(丞相)29과 어사(御史)30였다. 고조(高祖)31가 함께 천하를 취한 자들은 비단 장수32와 개 잡는 백정33이었고; 여산(驪山)의 무리34와 거야(鉅野)의 도적35은 모두 명장이 되었다. 이로써 볼 때, 만약 그 사람을 얻으면 가난하고 천함을 걱정하지 않으며; 만약 그 재능을 얻으면 이름이나 자취를 싫어하지 않는다.


4

원문
遠迹漢元以來,驕貴之臣,每受罪誅,黨與在位,并伏辜者,常十二三。由此觀之,貴寵之臣,未嘗不播授私人進姦黨也。是故王莽與漢公卿牧守奪漢,光武與漢之遺民棄士共誅。如貴人必賢而忠,賤人必愚而欺,則何以若是?

번역문
한(漢) 원제(元帝)36 이래로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교만하고 귀한 신하들이 매번 죄를 받아 주살되었고, 당파를 이룬 자들이 자리에 있으면서 함께 죄를 지어 처벌받은 자들이 항상 십중팔구였다37. 이로써 볼 때, 귀하고 총애받는 신하들은 항상 사사로운 사람들을 심고 간사한 무리를 나아가게 했다. 이 때문에 왕망(王莽)38은 한(漢)나라의 공경(公卿)39과 목수(牧守)40와 함께 한나라를 빼앗았고, 광무제(光武帝)41는 한(漢)나라의 유민(遺民)42과 버려진 선비들43과 함께 (왕망을) 주살했다. 만약 귀한 사람이 반드시 현명하고 충성스럽고, 천한 사람이 반드시 어리석고 속인다면, 어찌 이와 같겠는가?


5

원문
自成帝以降,至于莽,公卿列侯,下訖令尉,大小之官,且十萬人,皆自漢所謂賢明忠正貴寵之士也。莽之篡位,唯安眾侯劉崇、東郡太守翟義思事君之禮,義勇奮發,欲誅莽。功雖不成,志節可紀。夫以十萬之計,其能奉報惡,二人而已。由此觀之,衰世群臣誠少賢也,其官益大者罪益重,位益高者罪益深爾。故曰:治世之德,衰世之惡,常與爵位自相副也。

번역문
성제(成帝)44 이래로 왕망(王莽)에 이르기까지, 공경(公卿)과 열후(列侯)45로부터 아래로는 현령(令)46과 현위(尉)47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관직에 있는 자들이 대략 십만 명이었는데, 모두 한(漢)나라에서 이른바 현명하고 밝으며 충성스럽고 바르며 귀하고 총애받는 선비들이었다. 왕망이 제위를 찬탈했을 때, 오직 안중후(安眾侯) 유숭(劉崇)48과 동군태수(東郡太守) 적의(翟義)49만이 임금을 섬기는 예절을 생각하여 의로운 용기가 분발하여 왕망을 주살하고자 하였다. 공은 비록 이루지 못했으나, 뜻과 절개는 기록할 만하다. 무릇 십만 명에 달하는 인원 중에서, 그 악에 대항하여 충성을 바칠 수 있었던 자는 두 사람뿐이었다. 이로써 볼 때, 쇠퇴한 세상의 여러 신하들은 참으로 현명한 자가 적었고, 그 관직이 더욱 큰 자는 죄가 더욱 무거웠으며, 지위가 더욱 높은 자는 죄가 더욱 깊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다스려지는 세상의 덕은 쇠퇴한 세상의 악과 항상 작위와 스스로 서로 부합한다50.”고 하였다.


6

원문
孔子曰:「國有道,貧且賤焉,恥也;國無道,富且貴焉,恥也。」《詩》傷「皎皎白駒,在彼空谷」,「巧言如流,俾躬處休。」蓋言衰世之士,志彌潔者身彌賤,佞彌巧者官彌尊也。「方以類聚,物以群分」,同明相見,同聽相聞,唯聖知聖,唯賢知賢。

번역문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51, “나라에 도(道)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면 부끄러운 일이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유하고 귀하면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하셨다. 『시(詩)』는 “희고 희다 흰 망아지여, 저 빈 골짜기에 있네52.”라고 슬퍼하고, “교묘한 말은 흐르는 물과 같고, 몸은 편안한 곳에 있네53.”라고 하였다. 대개 쇠퇴한 세상의 선비는 뜻이 더욱 깨끗한 자는 몸이 더욱 천해지고, 아첨이 더욱 교묘한 자는 관직이 더욱 높아짐을 말하는 것이다. “방(方)은 무리로 모이고, 물(物)은 무리로 나뉘며54,” 밝음이 같은 자는 서로 만나고, 들음이 같은 자는 서로 들으니, 오직 성인만이 성인을 알고, 오직 현인만이 현인을 안다.


7

원문
今當塗之人,既不能昭練賢鄙,然又卻於貴人之風指,脅以權勢之囑託, 請謁闐門,禮贄輻湊,追於目前之急,則且先之。此正士之所獨蔽,而群邪之所黨進也。

번역문
지금 권세를 잡은 자들은55 이미 현명함과 비루함을 밝게 분별하지 못하면서도56, 또한 귀한 사람의 풍채와 지시를 꺼리고57, 권세 있는 자의 부탁에 위협받아, 청탁하는 자들이 문을 가득 메우고58 예물과 폐백이 수레바퀴살처럼 모여드니59, 당장의 급한 일에 쫓겨 곧 그것을 먼저 한다. 이것이 정직한 선비가 홀로 가려지고, 여러 간사한 자들이 무리를 지어 나아가는 까닭이다.


8

원문
周公之為宰輔也,以謙下士,故能得真賢。祁奚之為大夫也,舉讎薦子,故能得正人。今世得位之徒,依女妹之寵以驕士,藉亢龍之勢以陵賢,而欲使志義之士,匍匐曲躬以事己,毀顏諂諛以求親,然後乃保持之,則貞士採薇凍餒,伏死巖穴之中而已爾,豈有肯踐其闕而交其人者哉?

번역문
주공(周公)60이 재상(宰輔)61이 되었을 때, 겸손하게 선비를 대했으므로 진정한 현인을 얻을 수 있었다. 기해(祁奚)62가 대부(大夫)63가 되었을 때, 원수를 천거하고 아들을 추천했으므로64 바른 사람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세상에서 지위를 얻은 무리들은 누이동생의 총애에 의지하여 선비를 교만하게 대하고65, 항룡(亢龍)66의 세력에 힘입어 현명한 자를 능멸하며67, 그러면서도 뜻과 의를 지닌 선비로 하여금 기어가고 몸을 굽혀 자신을 섬기게 하고68, 얼굴을 망가뜨리고 아첨하여 친분을 구하게 한 후에야 비로소 그들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면 정직한 선비는 고사리를 캐먹으며 춥고 굶주려69 바위굴 속에서 숨어 죽을 뿐이니, 어찌 감히 그들의 대궐 문을 밟고 그들과 교유하려는 자가 있겠는가?


각주

  1. 음양(陰陽)을 조화롭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고대 중국 사상에서 음양의 조화는 자연의 순리이자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상징한다. 군주의 통치가 올바르면 음양이 조화롭고, 그렇지 않으면 부조화가 발생하여 재앙이 따른다고 믿었다.
  2. 하늘을 근본으로 삼는다: 음양의 조화가 하늘의 섭리에 바탕을 둔다는 의미.
  3. 어그러진다: '乖(괴)'는 '어그러지다', '불화하다'는 뜻.
  4. 하늘은 백성을 마음으로 삼으니: 민본주의 사상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늘의 뜻이 곧 백성의 뜻과 같다는 의미.
  5. 백성은 군주를 통솔자로 삼으니: '統(통)'은 '통솔자', '근본'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백성을 이끄는 주체를 의미한다.
  6. 백성을 구휼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니: '恤民(휼민)'은 '백성을 구휼하다', '백성의 어려움을 돌보다'는 뜻.
  7. 군주의 정치가 선하게 되고: '賜(사)'는 '주다'의 의미 외에, 여기서는 '하게 하다', '이 되게 하다'의 사동적 의미로 쓰였다.
  8. 사악한 무리가 천거된다: '貢(공)'은 '바치다'는 뜻 외에, 여기서는 '천거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9. 법이 버려진다: '委棄(위기)'는 '버려지다', '내버려지다'는 뜻.
  10. 하늘의 마음이 모두 모이고: '惣(총)'은 '모두', '총괄하다'의 의미. 여기서는 하늘의 뜻이 온전히 모여든다는 의미로 해석.
  11. 백성이 장수하면: '眉壽(미수)'는 '눈썹이 희어질 때까지 살다', 즉 '장수하다'는 뜻.
  12. 서로 보좌하여 지극해지고: '相輔至(상보지)'는 '서로 돕고 보좌하여 지극한 경지에 이른다'는 의미.
  13. 번갈아 서로 징조가 된다: '代相徵(대상징)'은 '번갈아 서로에게 징조가 된다'는 의미로, 상호 연관성을 강조한다.
  14. 신하는 다스림의 재료이다: '材(재)'는 '재료', '재목'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다스림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서의 인재를 의미한다.
  15. “장인이 그 일을 잘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도구를 날카롭게 해야 한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편에 나오는 구절.
  16. 출척(黜陟)의 으뜸으로 삼았다: '黜陟(출척)'은 관리를 강등시키거나 승진시키는 인사 제도. 『서경』 「순전」에 "三載考績,黜陟幽明" (삼 년에 한 번 공적을 평가하여, 어둡고 무능한 자는 내치고 밝고 유능한 자는 올린다)는 구절이 있다.
  17.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유교 경전 중 하나로, 고대 중국의 역사 기록과 사상을 담고 있다. 여기 인용된 구절은 『서경』 「고요모(皐陶謨)」 편에 나오는 "安民則惠,何擇非人" (백성을 편안하게 하면 은혜로우니, 어찌 사람이 아닌 것을 선택하겠는가)와 유사한 의미로,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18. 어찌 사람이 아닌 것을 선택하겠는가?: '何擇非人(하택비인)'은 '어찌 사람을 제대로 가려 뽑지 못하겠는가', '어찌 적합한 인재를 뽑지 못하겠는가'라는 의미로,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9. 비(否)와 태(泰)의 성쇠(盛衰)는 음양이 조화롭지 않을 때 나타나니: 『주역』의 괘 이름인 '비(否)'와 '태(泰)'는 각각 막히고 쇠퇴하는 것과 통하고 번성하는 것을 상징한다. '소식(消息)'은 '성장과 소멸', '흥망성쇠'를 뜻한다.
  20. 직(稷): 주(周)나라의 시조 후직(后稷).
  21. 설(契): 은(殷)나라의 시조 설(契).
  22. 고요(皋陶): 순(舜) 임금 때의 현명한 신하. 이들은 모두 성군을 보필하여 태평성대를 이룬 현신들이다.
  23. 황보(皇父): 서주(西周) 여왕(厲王) 때의 간신.
  24. 궐(蹶): 정확한 인물은 불분명하나, 문맥상 황보와 같은 간신배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25. 거(踽): 정확한 인물은 불분명하나, 문맥상 황보와 같은 간신배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26. 부절(符)을 맞추듯이 일치하고: 고대 중국에서 신표로 사용되던 물건. 둘로 쪼개어 보관하다가 나중에 서로 맞춰보아 진위를 확인했다. 여기서는 정확히 일치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27.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은 서로 멀어진다: 『논어』 「양화(陽貨)」 편에 나오는 구절로,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큰 차이가 없으나, 후천적인 학습과 환경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긴다는 의미.
  28. 이세황제(二世皇帝): 진시황의 아들 호해(胡亥)로, 조고(趙高)의 꼭두각시가 되어 폭정을 일삼다가 결국 조고에게 살해당했다.
  29. 승상(丞相): 진(秦)나라의 고위 관직. 이세황제 때의 승상은 이사(李斯)였다.
  30. 어사(御史): 진(秦)나라의 고위 관직. 이세황제 때의 어사는 조고(趙高)였다.
  31. 고조(高祖):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의 묘호.
  32. 비단 장수: 한신(韓信)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신은 원래 항우(項羽)의 휘하에 있었으나, 후에 유방에게 귀순하여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33. 개 잡는 백정: 번쾌(樊噲)를 비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번쾌는 유방의 처남이자 개를 잡던 백정 출신으로,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맹장이다.
  34. 여산(驪山)의 무리: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난을 일으킨 농민 반란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산은 진시황릉이 있는 곳으로, 진시황 때 많은 죄수들이 이곳에서 노역에 동원되었다.
  35. 거야(鉅野)의 도적: 거야택(鉅野澤)은 산동성(山東省)에 있던 큰 호수로, 진나라 말기 혼란기에 많은 도적떼가 활동하던 곳이다. 여기서는 비천한 출신이지만 후에 공을 세운 인물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36. 한(漢) 원제(元帝): 서한(西漢)의 황제. 그의 시대부터 외척과 환관의 전횡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37. 십중팔구였다: '十二三(십이삼)'은 '십중팔구' 또는 '대부분'을 의미하는 관용적인 표현. '十之二三'이 아니라 '十有二三'으로, '열에 둘셋'이 아니라 '열에 여덟아홉'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38. 왕망(王莽): 신(新)나라를 세워 한(漢)나라를 찬탈한 인물.
  39. 공경(公卿):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을 통칭하는 고위 관직.
  40. 목수(牧守): 주목(州牧)과 태수(太守)를 통칭하는 지방관.
  41. 광무제(光武帝): 후한(後漢)을 세운 황제.
  42. 유민(遺民): 망한 나라의 백성.
  43. 버려진 선비들: 세상에 등용되지 못하고 버려진 선비.
  44. 성제(成帝): 서한(西漢)의 황제. 그의 시대에 외척 왕씨(王氏) 세력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45. 열후(列侯): 제후의 작위 중 하나.
  46. 현령(令): 현(縣)의 최고 행정관.
  47. 현위(尉): 현(縣)의 무관.
  48. 안중후(安眾侯) 유숭(劉崇): 서한(西漢)의 종실(宗室)로, 왕망의 찬탈에 반대하여 거병했으나 실패했다.
  49. 동군태수(東郡太守) 적의(翟義): 서한(西漢)의 관리로, 왕망의 찬탈에 반대하여 거병했으나 실패했다.
  50. 작위와 스스로 서로 부합한다: '自相副(자상부)'는 '스스로 서로 부합하다', '일치하다'는 뜻. 즉, 태평성대에는 높은 지위에 덕 있는 자가 있고, 혼란한 세상에는 높은 지위에 악한 자가 있다는 의미.
  51.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논어(論語)』 「태백(泰伯)」 편에 나오는 구절.
  52. “희고 희다 흰 망아지여, 저 빈 골짜기에 있네”: 『시경(詩經)』 「소아(小雅)」 「백구(白駒)」 편에 나오는 구절. 현명한 인재가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은둔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
  53. “교묘한 말은 흐르는 물과 같고, 몸은 편안한 곳에 있네”: 『시경(詩經)』 「소아(小雅)」 「교언(巧言)」 편에 나오는 구절. 간신배들이 아첨하는 말로 편안한 지위를 누리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
  54. “방(方)은 무리로 모이고, 물(物)은 무리로 나뉘며”: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구절.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린다는 의미.
  55. 권세를 잡은 자들: '當塗之人(당도지인)'은 '길에 있다', '권세를 잡다'는 뜻.
  56. 현명함과 비루함을 밝게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昭練(소련)'은 '밝게 분별하다', '명확히 가려내다'는 뜻.
  57. 귀한 사람의 풍채와 지시를 꺼리고: '風指(풍지)'는 '풍채와 지시', 즉 '위세와 영향력'을 의미한다. '卻(각)'은 '물러나다', '꺼리다'는 뜻.
  58. 청탁하는 자들이 문을 가득 메우고: '闐門(전문)'은 '문이 가득 차다', '문전성시를 이루다'는 뜻.
  59. 예물과 폐백이 수레바퀴살처럼 모여드니: '禮贄(예지)'는 '예물과 폐백', '輻湊(복주)'는 '수레바퀴살이 바퀴통으로 모이듯이 모여들다'는 뜻.
  60. 주공(周公): 주(周)나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아우로, 무왕 사후 어린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하며 주나라의 기틀을 다진 현명한 인물.
  61. 재상(宰輔): 재상, 보필하는 신하.
  62. 기해(祁奚):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현명한 대부로, 사심 없이 인재를 추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63. 대부(大夫): 고대 중국의 관직명.
  64. 원수를 천거하고 아들을 추천했으므로: 기해가 진 평공(平公)에게 중군원수(中軍元帥)를 추천할 때, 자신의 원수인 해호(解狐)를 추천하고, 해호가 죽자 자신의 아들 기오(祁午)를 추천했다는 일화. 이는 사심 없이 오직 능력만을 보고 인재를 등용했음을 보여준다.
  65. 누이동생의 총애에 의지하여 선비를 교만하게 대하고: '女妹之寵(여매지총)'은 '누이동생의 총애'를 의미한다. 외척 세력을 비판하는 표현이다.
  66. 항룡(亢龍):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마지막 효사(爻辭)에 나오는 말로, 지위나 권세가 극에 달하여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어 후회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비유한다. 여기서는 권세가 극에 달한 간신배들을 비유한다.
  67. 현명한 자를 능멸하며: '陵賢(능현)'은 '현명한 자를 능멸하다'는 뜻.
  68. 기어가고 몸을 굽혀 자신을 섬기게 하고: '匍匐曲躬(포복곡궁)'은 '기어가고 몸을 굽히다', 즉 '극도로 비굴한 태도'를 의미한다.
  69. 고사리를 캐먹으며 춥고 굶주려: '採薇凍餒(채미동뇌)'는 '고사리를 캐먹으며 춥고 굶주리다'는 뜻. 백이숙제(伯夷叔齊)의 고사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청빈하게 은둔하는 삶을 의미한다.

潛夫論(잠부론) - 潛歎(잠탄)

1

원문
凡有國之君者,未嘗不欲治也,而治不世見者,所任不賢故也。世未嘗無賢也,而賢不得用者,群臣妬也。主有索賢之心,而無得賢之術,臣有進賢之名,而無進賢之實,此以人君孤危於上,而道猶抑於下也。

번역문
무릇 나라를 가진 군주치고1 다스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이는 없지만, 다스려짐이 대대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2, 임용한 자가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현명한 자가 없었던 적은 없지만, 현명한 자가 등용되지 못하는 것은 여러 신하들이 질투하기 때문이다. 군주는 현명한 자를 찾는 마음은 있으나3, 현명한 자를 얻는 방법이 없고4, 신하는 현명한 자를 천거한다는 명분은 있으나5, 현명한 자를 천거하는 실제가 없으니6, 이로써 군주는 위에서 고립되고 위태로우며, 도(道)는 아래에서 여전히 억압받는 것이다.


2

원문
夫國君之所以致治者公也,公法行則軓亂絕,佞臣之所以便身者私也,私術用則公法奪。列士所以建節者義也,正節立則醜類代。此姦臣亂吏無法之徒,所謂日夜杜塞賢君義士之間,咸使不相得者也。夫賢者之為人臣,不損君以奉佞,不阿眾以取容,不惰公以聽私,不撓法以吐剛,其明能照姦,而義不比黨。是以范武歸晉而國姦逃,華元反朝而魚氏亡。故正義之士與邪枉之人不兩立之。夫人君之取士也,不能參聽民氓,斷之聰明,反徒信亂臣之說,獨用污吏之言,此所謂與仇遷使,令囚擇吏者也。

번역문
무릇 군주가 다스림을 이루는 까닭은 공정함에 있고7, 공정한 법이 시행되면 혼란이 끊어진다8. 아첨하는 신하가 자신을 편하게 하는 까닭은 사사로움에 있고, 사사로운 방법이 쓰이면 공정한 법이 빼앗긴다9. 열사(列士)10가 절개를 세우는 까닭은 의(義)에 있고, 바른 절개가 확립되면 추악한 무리가 사라진다11. 이 간사한 신하, 문란한 아전, 법 없는 무리들은 이른바 밤낮으로 현명한 군주와 의로운 선비 사이를 막아12, 모두 서로 뜻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다. 무릇 현명한 자가 신하가 되면, 군주를 손상시켜 아첨하는 자를 받들지 않고13, 대중에게 아첨하여 용납받으려 하지 않으며14, 공적인 일을 게을리하여 사적인 일을 듣지 않고15, 법을 굽혀 강직한 말을 내뱉지 않는다16. 그 밝음은 간사함을 비출 수 있고, 그 의로움은 당파를 짓지 않는다17. 이 때문에 범무자(范武子)18가 진(晉)나라로 돌아오자 나라의 간사한 자들이 도망쳤고19, 화원(華元)20이 조정으로 돌아오자 어씨(魚氏)21가 망했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선비는 사악하고 왜곡된 사람과 양립할 수 없다. 무릇 군주가 선비를 등용할 때, 백성들의 의견을 두루 듣고22, 자신의 총명함으로 판단하지 못하고23, 도리어 혼란을 일으키는 신하의 말만 믿고, 더러운 관리의 말만 홀로 사용하니, 이것은 이른바 원수와 함께 사신을 보내고24, 죄수에게 관리를 선택하게 하는 것과 같다25.


3

원문
《書》云:「謀及乃心,謀及庶人。」孔子曰:「眾好之,必察焉;眾惡之,必察焉。」故聖人之施舍也,不必任眾,亦不必專己,必察彼己之為,而度之以義,或舍人取己,故舉無遺失而政無廢滅也。或君則不然,己有所愛,則因以斷正,不稽於眾,不謀於心,苟眩於愛,唯言是從,此政之所以敗亂,而士之所以放佚者也。

번역문
『서경(書經)』에 이르기를26, “그대의 마음에 미치도록 도모하고, 백성에게 미치도록 도모하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27, “뭇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고; 뭇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인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28, 반드시 대중에게만 맡기지도 않고, 또한 반드시 자신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지도 않으며, 반드시 남과 자신의 행위를 살펴서29, 의(義)로써 헤아리고, 때로는 남의 의견을 버리고 자신의 의견을 취하기도 하니30, 그러므로 인재 등용에 빠뜨리거나 잃는 것이 없고 정치가 폐지되거나 망하는 일이 없다. 어떤 군주는 그렇지 않아서, 자신이 사랑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대중에게 상고하지 않으며31, 마음에 도모하지 않고, 구차하게 사랑에 현혹되어32, 오직 말하는 바를 따르니, 이것이 정치가 패배하고 혼란스러워지는 까닭이요, 선비가 방종하고 흩어지는 까닭이다33.


4

원문
昔紂好色,九侯聞之,乃獻厥女。紂則大喜,以為天下之麗莫若此也,以問妲己,妲己懼進御而奪己愛也,乃偽俯而泣曰:「君王年即耆邪?明既衰邪?何貌惡之若此而覆謂之好也?」紂於是渝而以為惡。妲己恐天下之愈進美女者,因白「九侯之不道也,乃欲以此惑君王也。王而弗誅,何以革後?」紂則大怒,遂脯厥女而烹九侯。自此之後,天下之有美女者,乃皆重室晝閉,唯恐紂之聞也。趙高專秦,將殺二世,乃先示權於眾,獻鹿於君,以為駿馬。二世占之曰:「鹿。」高曰:「馬也。」二世收目獨視曰:「丞相誤邪!此鹿也。」高終對以馬。問於朝臣,朝臣或助二世而非高。高因白二世:「此皆阿主惑上,不忠莫大。」乃盡殺之。自此之後,莫敢正諫,而高遂殺二世於望夷,竟以亡。

번역문
옛날 주(紂)34가 여색을 좋아하자, 구후(九侯)35가 이를 듣고 그 딸을 바쳤다. 주왕은 크게 기뻐하며 천하의 아름다움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여겨, 달기(妲己)36에게 물었다. 달기는 (그 딸이) 나아가 총애를 받아 자신의 사랑을 빼앗을까 두려워37, 거짓으로 고개를 숙이고 울면서 말하기를, “군왕께서 연세가 드셨습니까?38 눈이 이미 어두워졌습니까?39 어찌 이처럼 못생긴 얼굴을 도리어 아름답다고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주왕은 이에 마음이 변하여40 (그 딸을) 추하게 여겼다. 달기는 천하에서 더욱 미녀를 바칠까 두려워하여, 이에 아뢰기를, “구후가 도리에 어긋나게도41 이로써 군왕을 현혹하려 합니다. 왕께서 그를 주살하지 않으시면, 어찌 후세의 폐단을 고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왕은 크게 노하여, 마침내 그 딸을 포(脯)로 만들고42 구후를 삶아 죽였다43. 이로부터 이후, 천하에 미녀를 가진 자들은 모두 이중으로 방을 잠그고 낮에도 문을 닫아, 오직 주왕이 들을까 두려워하였다. 조고(趙高)44가 진(秦)나라의 권력을 독점하고45, 이세황제(二世皇帝)46를 죽이려 할 때, 먼저 대중에게 권세를 보이고47, 군주에게 사슴을 바치면서48 준마(駿馬)라고 하였다. 이세황제가 그것을 보고 “사슴이다.”라고 말하자, 조고는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세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홀로 보며 말하기를, “승상(丞相)이 잘못 아는가! 이것은 사슴이다.”라고 하였다. 조고는 끝까지 말이라고 대답했다. 조정 신하들에게 묻자, 조정 신하들은 혹은 이세황제를 돕고 조고를 비난했다. 조고는 이에 이세황제에게 아뢰기를, “이들은 모두 군주에게 아첨하고 위를 현혹하는 자들이니, 이보다 더 큰 불충은 없습니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그들을 모두 죽였다. 이로부터 이후, 감히 바른 간언을 하는 자가 없었고, 조고는 마침내 망이(望夷)49에서 이세황제를 죽이고, 결국 (진나라는) 망했다.


5

원문
夫好之與惡放於目,而鹿之與馬者著於形者也,已又定矣。還至讒,如臣妾之餝偽言而作辭也, 則君王失己心,而人物喪我體矣。況乎逢幽隱囚人,而待校其信,不若察妖女之留意也;其辨賢不肖也,必若辨鹿馬之審固也。此二物者,皆得進見於朝堂,暴質於心臣矣。及歡愛、苟媚、佞說、巧辯之惑君也,猶炫燿君目,變奪君心,便以好醜,以鹿為馬,而況於郊野之賢,闕外之士,未嘗得見者乎?

번문
무릇 좋아함과 싫어함은 눈에 드러나고50, 사슴과 말은 형체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니51, 이미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도 참소에 이르면, 마치 신첩(臣妾)52이 거짓말을 꾸며53 말을 지어내는 것과 같아서, 군주는 자신의 마음을 잃고54, 인물은 그 본체를 잃게 된다55. 하물며 숨겨진 죄수56를 만나 그들의 진실을 기다려 확인하는 것이, 요사스러운 여인의 마음을 살피는 것만 못하고57; 현명함과 불초함을 분별하는 것이, 반드시 사슴과 말을 분별하는 것처럼 신중하고 확고해야 함에 있어서랴. 이 두 가지 사물(사슴과 말)은 모두 조정에 나아가 보여지고, 신뢰하는 신하들에게 그 본질이 드러날 수 있었다. 그러나 환심을 사고58, 구차하게 아첨하며59, 아첨하는 말과 교묘한 변론으로 군주를 현혹하는 것은, 오히려 군주의 눈을 현혹하고, 군주의 마음을 바꾸어 빼앗으며, 쉽게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사슴을 말이라고 여기게 하니, 하물며 교외의 현명한 자나 대궐 밖의 선비처럼, 일찍이 (군주에게) 직접 보인 적이 없는 자들에 있어서랴?


6

원문
夫在位者之好蔽賢而務進黨也,自古而然。昔唐堯之大聖也,聰明宣昭;虞舜之大聖也,德音發聞。堯為天子,求索賢人,訪於群后,群后不肯薦舜而反稱共、鯀之徒,賴堯之聖,後乃舉舜而放四子。夫以古聖之質也,堯聰之明也,舜德之彰也,君明不可欺,德彰不可蔽也。質鮮為佞,而位者尚直若彼。今夫列士之行,其不及堯、舜乎達矣,而俗之荒唐,世法滋彰。然則求賢之君,哀民之士,其相合也,亦必不幾矣。文王游畋,遇姜尚于渭濱,察言觀志,而見其心,不諮左右,不諏群臣,遂載反歸,委之以政,用能造周。故堯參鄉黨以得舜,文王參己以得呂尚, 豈若殷辛、秦政,既得賢人,反決滯於讎,誅殺正直,而進任姦臣之黨哉?

번역문
무릇 자리에 있는 자들이 현명한 자를 가리고60 당파를 나아가게 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였다. 옛날 당요(唐堯)61는 위대한 성인이었으니, 총명함이 널리 드러났고; 우순(虞舜)62은 위대한 성인이었으니, 덕스러운 명성이 널리 퍼졌다. 요(堯)가 천자가 되어 현명한 사람을 찾으면서, 여러 제후들에게 물었으나, 제후들은 순(舜)을 천거하려 하지 않고 도리어 공공(共工)63과 곤(鯀)64 같은 무리를 칭찬했다. 요의 성스러움에 힘입어, 후에야 순을 등용하고 네 명의 불초한 자들을 내쫓았다65. 무릇 옛 성인의 바탕과, 요의 총명함, 순의 덕이 드러남으로 볼 때, 군주가 밝으면 속일 수 없고, 덕이 드러나면 가릴 수 없다. 그들의 본성은 아첨하는 자가 드물었고, 자리에 있는 자들도 그처럼 정직함을 숭상했다. 지금 열사(列士)66의 행실은 요와 순에 미치지 못함이 분명한데도, 풍속은 황당하고, 세상의 법은 더욱 드러난다67. 그렇다면 현명한 자를 구하는 군주와 백성을 슬퍼하는 선비가 서로 만나는 것은,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문왕(文王)68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 강가에서 강상(姜尚)69을 만났는데, 그의 말과 뜻을 살펴 그 마음을 알아보았고, 좌우의 측근에게 묻지 않고, 여러 신하들에게 자문하지 않고, 마침내 수레에 태워 돌아와 그에게 정사를 맡겼으니, 이로써 주(周)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요는 향당(鄉黨)70의 의견을 참고하여 순을 얻었고, 문왕은 자신을 참고하여 여상(呂尚)71을 얻었으니, 어찌 은(殷)나라의 신(辛)72(주왕)이나 진(秦)나라의 정(政)73(시황제)처럼, 이미 현명한 사람을 얻었음에도 도리어 원한을 풀고74, 정직한 자를 주살하며, 간사한 신하의 당파를 임용하는 것과 같겠는가?


7

원문
是以明聖之君於正道也,不專驅於貴寵,惑於嬖媚,不棄踈遠,不輕幼賤,又參而任之。故有周之制也,天子聽政,使三公至於列士獻典,良史獻書,師箴,瞍賦,矇誦,百工諫,庶人傳語,近臣盡規,親戚補察,瞽叟教誨,耆艾脩之,而後王斟酌焉,是以事行而無敗也。

번역문
이 때문에 밝고 성스러운 군주는 바른 도리에 있어서, 총애받는 귀한 자들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75, 아첨하는 자들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으며, 소원한 자를 버리지 않고, 어리고 천한 자를 경시하지 않으며, 또한 두루 참고하여 그들을 임용한다. 그러므로 주(周)나라의 제도에서는, 천자가 정사를 들을 때, 삼공(三公)76으로부터 열사(列士)77에 이르기까지 법도를 바치게 하고, 훌륭한 사관(史官)78은 책을 바치게 하며, 악사(樂師)79는 간언하게 하고, 맹인 악사(瞍)80는 부(賦)를 읊게 하며, 맹인 악사(矇)81는 송(誦)을 읊게 하고, 모든 장인(百工)82은 간언하게 하며, 백성(庶人)83은 말을 전하게 하고, 가까운 신하(近臣)84는 모든 계책을 바치게 하며, 친척(親戚)85은 보충하고 살피게 하고, 맹인 노인(瞽叟)86은 가르치게 하며, 나이 많은 현자(耆艾)87는 (그것을) 다듬게 한 후에야, 왕이 헤아려 결정하였으니88, 이로써 일이 행해져 실패함이 없었다.


8

원문
末世則不然,徒信貴人驕妬之議,獨用苟媚蠱惑之言,行豊禮者蒙愆咎,論德義者見尤惡,於是諛臣又從以詆訾之法,被以議上之刑,此賢士之始困也。夫詆訾之法者,伐賢之斧也,而驕妬者,噬賢之狗也。人君內秉伐賢之斧,權噬賢之狗,而外招賢,欲其至也,不亦悲乎!

번역문
말세(末世)89에는 그렇지 않다. 단지 귀한 자들의 교만하고 질투하는 의론만 믿고, 구차하게 아첨하고 현혹하는 말만 홀로 사용하니, 성대한 예절을 행하는 자는 허물과 비난을 뒤집어쓰고90, 덕과 의를 논하는 자는 더욱 미움을 받는다. 이에 아첨하는 신하들은 또다시 비방하는 법을 따르고91, 윗사람을 비판했다는 죄로 형벌을 받게 하니92, 이것이 현명한 선비가 처음으로 곤경에 처하는 것이다. 무릇 비방하는 법은 현명한 자를 베는 도끼요93, 교만하고 질투하는 자는 현명한 자를 물어뜯는 개이다94. 군주가 안으로는 현명한 자를 베는 도끼를 쥐고95, 현명한 자를 물어뜯는 개에게 권한을 주면서96, 밖으로는 현명한 자를 불러 그들이 오기를 바라니97,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각주

  1. 나라를 가진 군주치고(凡有國之君者): '有國之君'은 '나라를 소유한 군주', 즉 '통치자'를 의미한다.
  2. 대대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不世見者): '世見'은 '세상에 나타나다', '대대로 이어지다'는 의미. 즉, 좋은 다스림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뜻.
  3. 현명한 자를 찾는 마음은 있으나(索賢之心): '索賢'은 '현명한 자를 찾다'는 뜻.
  4. 현명한 자를 얻는 방법이 없고(無得賢之術): '得賢之術'은 '현명한 자를 얻는 방법'을 의미한다.
  5. 현명한 자를 천거한다는 명분은 있으나(有進賢之名): '進賢之名'은 '현명한 자를 천거한다는 명성'을 의미한다.
  6. 현명한 자를 천거하는 실제가 없으니(無進賢之實): '進賢之實'은 '현명한 자를 실제로 천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7. 공정함에 있고(公也): '公'은 '공정하다', '사심이 없다'는 의미.
  8. 혼란이 끊어진다(軓亂絕): '軓(패)'는 '어지럽다', '혼란스럽다'는 뜻. '絕(절)'은 '끊어지다', '없어지다'는 뜻.
  9. 공정한 법이 빼앗긴다(公法奪): 공정한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무력화된다는 의미.
  10. 열사(列士): 행실이 바르고 절개가 굳은 선비.
  11. 추악한 무리가 사라진다(醜類代): '代(대)'는 '대체되다', '사라지다'는 뜻.
  12. 밤낮으로 현명한 군주와 의로운 선비 사이를 막아(日夜杜塞賢君義士之間): '杜塞(두색)'은 '막다', '가로막다'는 뜻. 간신배들이 군주와 현명한 신하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비판한다.
  13. 군주를 손상시켜 아첨하는 자를 받들지 않고(不損君以奉佞): 군주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아첨하는 자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는 의미.
  14. 대중에게 아첨하여 용납받으려 하지 않으며(不阿眾以取容): '阿眾(아중)'은 '대중에게 아첨하다', '取容(취용)'은 '용납받다', '환심을 사다'는 뜻.
  15. 공적인 일을 게을리하여 사적인 일을 듣지 않고(不惰公以聽私): 공적인 직무를 소홀히 하면서 사적인 청탁이나 이익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의미.
  16. 법을 굽혀 강직한 말을 내뱉지 않는다(不撓法以吐剛): '撓法(요법)'은 '법을 굽히다', '吐剛(토강)'은 '강직한 말을 내뱉다'는 뜻. 법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의 강직함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로, 현명한 신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바른 말을 한다는 뜻이다.
  17. 당파를 짓지 않는다(不比黨): '比黨(비당)'은 '당파를 짓다', '무리 짓다'는 뜻.
  18. 범무자(范武子):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범선자(范宣子)를 지칭한다. 그의 이름은 사개(士燮)이다. '范武'는 그의 시호와 성을 합친 것이다.
  19. 진(晉)나라로 돌아오자 나라의 간사한 자들이 도망쳤고(歸晉而國姦逃): 범선자가 진나라로 돌아와 정치를 맡자, 간사한 자들이 두려워 도망쳤다는 일화.
  20. 화원(華元):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대부.
  21. 어씨(魚氏):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간신 어석(魚石)을 지칭한다.
  22. 백성들의 의견을 두루 듣고(參聽民氓): '參聽(참청)'은 '두루 듣다', '널리 참고하다'는 뜻. '民氓(민맹)'은 '백성'을 의미한다.
  23. 자신의 총명함으로 판단하지 못하고(斷之聰明): '斷之聰明'은 '자신의 총명함으로 판단하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능히 ~하지 못하다'는 부정의 맥락이므로, 군주가 자신의 지혜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24. 원수와 함께 사신을 보내고(與仇遷使): 원수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는 어리석은 행위를 비유한다.
  25. 죄수에게 관리를 선택하게 하는 것과 같다(令囚擇吏者也): 죄수에게 관리를 뽑게 하는 것처럼, 부당한 자에게 중요한 권한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26.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27.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28. 성인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聖人之施舍也): '施舍(시사)'는 '베풀다', '처리하다', '행하다'는 뜻.
  29. 남과 자신의 행위를 살펴서(察彼己之為): '彼己之為'는 '남과 자신의 행위'를 의미한다.
  30. 때로는 남의 의견을 버리고 자신의 의견을 취하기도 하니(或舍人取己): '舍人取己'는 '남의 것을 버리고 자신의 것을 취하다'는 뜻. 여기서는 남의 의견을 버리고 자신의 판단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31. 대중에게 상고하지 않으며(不稽於眾): '稽(계)'는 '상고하다', '조사하다'는 뜻.
  32. 구차하게 사랑에 현혹되어(苟眩於愛): '苟(구)'는 '구차하게', '함부로'라는 뜻. '眩(현)'은 '현혹되다', '눈이 멀다'는 뜻.
  33. 선비가 방종하고 흩어지는 까닭이다(士之所以放佚者也): '放佚(방일)'은 '방종하다', '흩어지다', '제멋대로 하다'는 뜻. 군주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현명한 선비들이 뜻을 잃고 흩어진다는 의미.
  34. 주(紂):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로, 폭군으로 악명 높다.
  35. 구후(九侯): 은(殷)나라 주왕(紂王) 때의 제후.
  36. 달기(妲己):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총희(寵姬)로, 주왕의 폭정을 부추긴 악녀로 알려져 있다.
  37. (그 딸이) 나아가 총애를 받아 자신의 사랑을 빼앗을까 두려워(懼進御而奪己愛也): '進御'는 '나아가 총애를 받다'는 뜻.
  38. 연세가 드셨습니까?(年即耆邪?): '耆(기)'는 '늙다'는 뜻.
  39. 눈이 이미 어두워졌습니까?(明既衰邪?): '明(명)'은 '눈' 또는 '총명함'을 의미한다.
  40. 마음이 변하여(渝): '渝(유)'는 '변하다', '달라지다'는 뜻.
  41. 도리에 어긋나게도(不道也): '不道'는 '도리에 어긋나다', '불의하다'는 뜻.
  42. 그 딸을 포(脯)로 만들고(脯厥女): '脯(포)'는 '육포'를 의미한다. 주왕이 구후의 딸을 죽여 육포로 만들었다는 잔혹한 일화.
  43. 구후를 삶아 죽였다(烹九侯): '烹(팽)'은 '삶아 죽이다'는 뜻.
  44. 조고(趙高): 진(秦)나라 이세황제 때의 환관으로, 권력을 농단하여 진나라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45. 진(秦)나라의 권력을 독점하고(專秦): '專秦'은 '진나라의 권력을 독점하다'는 뜻.
  46. 이세황제(二世皇帝): 진시황의 아들 호해(胡亥)로, 조고의 꼭두각시가 되어 폭정을 일삼다가 결국 조고에게 살해당했다.
  47. 대중에게 권세를 보이고(示權於眾):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여 다른 신하들을 위협했다는 의미.
  48. 사슴을 바치면서(獻鹿於君): 조고가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우긴 고사성어 '지록위마(指鹿為馬)'의 유래.
  49. 망이(望夷): 진(秦)나라의 궁궐 이름. 조고가 이세황제를 이곳에서 죽였다.
  50. 좋아함과 싫어함은 눈에 드러나고(好之與惡放於目): '放於目'은 '눈에 드러나다', '눈에 비치다'는 뜻.
  51. 사슴과 말은 형체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니(鹿之與馬者著於形者也): '著於形'은 '형체로 분명히 나타나다'는 뜻.
  52. 신첩(臣妾): 신하와 첩을 통칭하는 말로, 여기서는 간신배와 총희를 비유한다.
  53. 거짓말을 꾸며(餝偽言): '餝(식)'은 '꾸미다', '장식하다'는 뜻.
  54. 군주는 자신의 마음을 잃고(君王失己心): 군주가 자신의 올바른 판단력을 잃는다는 의미.
  55. 인물은 그 본체를 잃게 된다(人物喪我體矣): '人物'은 '사람' 또는 '사물'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사람의 본질' 또는 '사물의 본체'를 의미한다. '喪我體'는 '자신의 본체를 잃다'는 뜻.
  56. 숨겨진 죄수(幽隱囚人): 억울하게 투옥되거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현명한 인재를 비유한다.
  57. 요사스러운 여인의 마음을 살피는 것만 못하고(不若察妖女之留意也): '妖女之留意'는 '요사스러운 여인의 마음을 살피다'는 뜻. 간신배나 총희의 간사한 속셈을 파악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는 의미.
  58. 환심을 사고(歡愛): '歡愛'는 '환심을 사다', '사랑을 받다'는 뜻.
  59. 구차하게 아첨하며(苟媚): '苟媚'는 '구차하게 아첨하다'는 뜻.
  60. 현명한 자를 가리고(蔽賢): 현명한 인재가 등용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
  61. 당요(唐堯):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요(堯) 임금을 지칭한다.
  62. 우순(虞舜):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순(舜) 임금을 지칭한다.
  63. 공공(共工): 중국 고대 전설상의 인물로, 요순 시대에 홍수를 다스리는 데 실패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64. 곤(鯀): 우(禹) 임금의 아버지로, 홍수를 다스리는 데 실패하여 순(舜) 임금에게 주살되었다.
  65. 네 명의 불초한 자들을 내쫓았다(放四子): 요 임금이 순에게 선양하기 전, 공공, 곤, 환두(驩兜), 삼묘(三苗) 등 네 명의 불초한 자들을 내쫓았다는 일화.
  66. 열사(列士): 행실이 바르고 절개가 굳은 선비.
  67. 풍속은 황당하고, 세상의 법은 더욱 드러난다: '荒唐(황당)'은 '황당하다', '터무니없다'는 뜻. '滋彰(자창)'은 '더욱 드러나다', '더욱 분명해지다'는 뜻. 즉, 세상의 풍속은 어지럽고, 법은 더욱 가혹해진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68. 문왕(文王): 주(周)나라의 시조로, 덕망이 높았으나 은(殷)나라 주왕(紂王)에게 갇히는 고난을 겪었다.
  69. 강상(姜尚): 주(周)나라 문왕과 무왕을 보필하여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현인으로, 태공망(太公望)이라고도 불린다.
  70. 향당(鄉黨): 고대 중국의 행정 구역 단위로, 여기서는 지역 사회의 여론이나 추천을 의미한다.
  71. 여상(呂尚): 강상(姜尚)의 본명.
  72. 은(殷)나라의 신(辛):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 주왕(紂王)의 이름이 신(辛)이다.
  73. 진(秦)나라의 정(政): 진시황(秦始皇)의 이름이 정(政)이다.
  74. 원한을 풀고(決滯於讎): '決滯(결체)'는 '막힌 것을 뚫다', '해결하다'는 뜻. '讎(수)'는 '원수', '원한'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현명한 자들을 원수처럼 여겨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원한을 풀었다는 의미이다.
  75. 총애받는 귀한 자들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不專驅於貴寵): '專驅(전구)'는 '전적으로 의지하다', '오직 ~에게만 달려가다'는 뜻.
  76. 삼공(三公): 고대 중국의 가장 높은 세 명의 관직.
  77. 열사(列士): 행실이 바르고 절개가 굳은 선비.
  78. 훌륭한 사관(史官):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
  79. 악사(樂師): 음악을 담당하는 관리.
  80. 맹인 악사(瞍): 맹인 악사. 고대에는 맹인들이 악사나 점술가로 활동하며 사회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다.
  81. 맹인 악사(矇): 맹인 악사. '瞍'와 '矇'는 모두 맹인 악사를 지칭한다.
  82. 모든 장인(百工): 여러 기술을 가진 장인들.
  83. 백성(庶人): 일반 백성.
  84. 가까운 신하(近臣): 황제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신하.
  85. 친척(親戚): 황제의 친척들.
  86. 맹인 노인(瞽叟): '瞽叟'는 순(舜) 임금의 아버지 이름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맹인 노인을 의미한다. 고대에는 맹인 노인들이 지혜로운 조언을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87. 나이 많은 현자(耆艾): '耆艾(기애)'는 '나이 많고 경험 많은 현자'를 의미한다.
  88. 왕이 헤아려 결정하였으니(王斟酌焉): '斟酌(짐작)'은 '헤아리다', '고려하다', '결정하다'는 뜻.
  89. 말세(末世): 시대의 마지막, 혼란하고 쇠퇴한 시대를 의미한다.
  90. 허물과 비난을 뒤집어쓰고(蒙愆咎): '蒙(몽)'은 '뒤집어쓰다', '입다'는 뜻. '愆咎(건구)'는 '허물과 비난'을 의미한다.
  91. 비방하는 법을 따르고(從以詆訾之法): '詆訾(저자)'는 '비방하다', '헐뜯다'는 뜻.
  92. 윗사람을 비판했다는 죄로 형벌을 받게 하니(被以議上之刑): '被(피)'는 '~을 당하다', '입다'는 뜻. '議上之刑'은 '윗사람을 비판한 죄로 인한 형벌'을 의미한다.
  93. 현명한 자를 베는 도끼요(伐賢之斧也): '伐賢'은 '현명한 자를 베다', '현명한 자를 해치다'는 뜻.
  94. 현명한 자를 물어뜯는 개이다(噬賢之狗也): '噬賢'은 '현명한 자를 물어뜯다'는 뜻.
  95. 안으로는 현명한 자를 베는 도끼를 쥐고(內秉伐賢之斧): '秉(병)'은 '쥐다', '잡다'는 뜻.
  96. 현명한 자를 물어뜯는 개에게 권한을 주면서(權噬賢之狗): '權(권)'은 '권한을 주다', '권세를 주다'는 뜻.
  97. 밖으로는 현명한 자를 불러 그들이 오기를 바라니(外招賢,欲其至也): 겉으로는 현명한 자를 초빙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들을 해치는 모순적인 행위를 비판한다.

潛夫論(잠부론) - 潛歎(잠탄)

1

원문
凡有國之君者,未嘗不欲治也,而治不世見者,所任不賢故也。世未嘗無賢也,而賢不得用者,群臣妬也。主有索賢之心,而無得賢之術,臣有進賢之名,而無進賢之實,此以人君孤危於上,而道猶抑於下也。

번역문
무릇 나라를 가진 군주치고1 다스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이는 없지만, 다스려짐이 대대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2, 임용한 자가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현명한 자가 없었던 적은 없지만, 현명한 자가 등용되지 못하는 것은 여러 신하들이 질투하기 때문이다. 군주는 현명한 자를 찾는 마음은 있으나3, 현명한 자를 얻는 방법이 없고4, 신하는 현명한 자를 천거한다는 명분은 있으나5, 현명한 자를 천거하는 실제가 없으니6, 이로써 군주는 위에서 고립되고 위태로우며, 도(道)는 아래에서 여전히 억압받는 것이다.


2

원문
夫國君之所以致治者公也,公法行則軓亂絕,佞臣之所以便身者私也,私術用則公法奪。列士所以建節者義也,正節立則醜類代。此姦臣亂吏無法之徒,所謂日夜杜塞賢君義士之間,咸使不相得者也。夫賢者之為人臣,不損君以奉佞,不阿眾以取容,不惰公以聽私,不撓法以吐剛,其明能照姦,而義不比黨。是以范武歸晉而國姦逃,華元反朝而魚氏亡。故正義之士與邪枉之人不兩立之。夫人君之取士也,不能參聽民氓,斷之聰明,反徒信亂臣之說,獨用污吏之言,此所謂與仇遷使,令囚擇吏者也。

번역문
무릇 군주가 다스림을 이루는 까닭은 공정함에 있고7, 공정한 법이 시행되면 혼란이 끊어진다8. 아첨하는 신하가 자신을 편하게 하는 까닭은 사사로움에 있고, 사사로운 방법이 쓰이면 공정한 법이 빼앗긴다9. 열사(列士)10가 절개를 세우는 까닭은 의(義)에 있고, 바른 절개가 확립되면 추악한 무리가 사라진다11. 이 간사한 신하, 문란한 아전, 법 없는 무리들은 이른바 밤낮으로 현명한 군주와 의로운 선비 사이를 막아12, 모두 서로 뜻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다. 무릇 현명한 자가 신하가 되면, 군주를 손상시켜 아첨하는 자를 받들지 않고13, 대중에게 아첨하여 용납받으려 하지 않으며14, 공적인 일을 게을리하여 사적인 일을 듣지 않고15, 법을 굽혀 강직한 말을 내뱉지 않는다16. 그 밝음은 간사함을 비출 수 있고, 그 의로움은 당파를 짓지 않는다17. 이 때문에 범무자(范武子)18가 진(晉)나라로 돌아오자 나라의 간사한 자들이 도망쳤고19, 화원(華元)20이 조정으로 돌아오자 어씨(魚氏)21가 망했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선비는 사악하고 왜곡된 사람과 양립할 수 없다. 무릇 군주가 선비를 등용할 때, 백성들의 의견을 두루 듣고22, 자신의 총명함으로 판단하지 못하고23, 도리어 혼란을 일으키는 신하의 말만 믿고, 더러운 관리의 말만 홀로 사용하니, 이것은 이른바 원수와 함께 사신을 보내고24, 죄수에게 관리를 선택하게 하는 것과 같다25.


3

원문
《書》云:「謀及乃心,謀及庶人。」孔子曰:「眾好之,必察焉;眾惡之,必察焉。」故聖人之施舍也,不必任眾,亦不必專己,必察彼己之為,而度之以義,或舍人取己,故舉無遺失而政無廢滅也。或君則不然,己有所愛,則因以斷正,不稽於眾,不謀於心,苟眩於愛,唯言是從,此政之所以敗亂,而士之所以放佚者也。

번역문
『서경(書經)』에 이르기를26, “그대의 마음에 미치도록 도모하고, 백성에게 미치도록 도모하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27, “뭇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고; 뭇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인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28, 반드시 대중에게만 맡기지도 않고, 또한 반드시 자신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지도 않으며, 반드시 남과 자신의 행위를 살펴서29, 의(義)로써 헤아리고, 때로는 남의 의견을 버리고 자신의 의견을 취하기도 하니30, 그러므로 인재 등용에 빠뜨리거나 잃는 것이 없고 정치가 폐지되거나 망하는 일이 없다. 어떤 군주는 그렇지 않아서, 자신이 사랑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대중에게 상고하지 않으며31, 마음에 도모하지 않고, 구차하게 사랑에 현혹되어32, 오직 말하는 바를 따르니, 이것이 정치가 패배하고 혼란스러워지는 까닭이요, 선비가 방종하고 흩어지는 까닭이다33.


4

원문
昔紂好色,九侯聞之,乃獻厥女。紂則大喜,以為天下之麗莫若此也,以問妲己,妲己懼進御而奪己愛也,乃偽俯而泣曰:「君王年即耆邪?明既衰邪?何貌惡之若此而覆謂之好也?」紂於是渝而以為惡。妲己恐天下之愈進美女者,因白「九侯之不道也,乃欲以此惑君王也。王而弗誅,何以革後?」紂則大怒,遂脯厥女而烹九侯。自此之後,天下之有美女者,乃皆重室晝閉,唯恐紂之聞也。趙高專秦,將殺二世,乃先示權於眾,獻鹿於君,以為駿馬。二世占之曰:「鹿。」高曰:「馬也。」二世收目獨視曰:「丞相誤邪!此鹿也。」高終對以馬。問於朝臣,朝臣或助二世而非高。高因白二世:「此皆阿主惑上,不忠莫大。」乃盡殺之。自此之後,莫敢正諫,而高遂殺二世於望夷,竟以亡。

번역문
옛날 주(紂)34가 여색을 좋아하자, 구후(九侯)35가 이를 듣고 그 딸을 바쳤다. 주왕은 크게 기뻐하며 천하의 아름다움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여겨, 달기(妲己)36에게 물었다. 달기는 (그 딸이) 나아가 총애를 받아 자신의 사랑을 빼앗을까 두려워37, 거짓으로 고개를 숙이고 울면서 말하기를, “군왕께서 연세가 드셨습니까?38 눈이 이미 어두워졌습니까?39 어찌 이처럼 못생긴 얼굴을 도리어 아름답다고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주왕은 이에 마음이 변하여40 (그 딸을) 추하게 여겼다. 달기는 천하에서 더욱 미녀를 바칠까 두려워하여, 이에 아뢰기를, “구후가 도리에 어긋나게도41 이로써 군왕을 현혹하려 합니다. 왕께서 그를 주살하지 않으시면, 어찌 후세의 폐단을 고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왕은 크게 노하여, 마침내 그 딸을 포(脯)로 만들고42 구후를 삶아 죽였다43. 이로부터 이후, 천하에 미녀를 가진 자들은 모두 이중으로 방을 잠그고 낮에도 문을 닫아, 오직 주왕이 들을까 두려워하였다. 조고(趙高)44가 진(秦)나라의 권력을 독점하고45, 이세황제(二世皇帝)46를 죽이려 할 때, 먼저 대중에게 권세를 보이고47, 군주에게 사슴을 바치면서48 준마(駿馬)라고 하였다. 이세황제가 그것을 보고 “사슴이다.”라고 말하자, 조고는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세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홀로 보며 말하기를, “승상(丞相)이 잘못 아는가! 이것은 사슴이다.”라고 하였다. 조고는 끝까지 말이라고 대답했다. 조정 신하들에게 묻자, 조정 신하들은 혹은 이세황제를 돕고 조고를 비난했다. 조고는 이에 이세황제에게 아뢰기를, “이들은 모두 군주에게 아첨하고 위를 현혹하는 자들이니, 이보다 더 큰 불충은 없습니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그들을 모두 죽였다. 이로부터 이후, 감히 바른 간언을 하는 자가 없었고, 조고는 마침내 망이(望夷)49에서 이세황제를 죽이고, 결국 (진나라는) 망했다.


5

원문
夫好之與惡放於目,而鹿之與馬者著於形者也,已又定矣。還至讒,如臣妾之餝偽言而作辭也, 則君王失己心,而人物喪我體矣。況乎逢幽隱囚人,而待校其信,不若察妖女之留意也;其辨賢不肖也,必若辨鹿馬之審固也。此二物者,皆得進見於朝堂,暴質於心臣矣。及歡愛、苟媚、佞說、巧辯之惑君也,猶炫燿君目,變奪君心,便以好醜,以鹿為馬,而況於郊野之賢,闕外之士,未嘗得見者乎?

번문
무릇 좋아함과 싫어함은 눈에 드러나고50, 사슴과 말은 형체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니51, 이미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도 참소에 이르면, 마치 신첩(臣妾)52이 거짓말을 꾸며53 말을 지어내는 것과 같아서, 군주는 자신의 마음을 잃고54, 인물은 그 본체를 잃게 된다55. 하물며 숨겨진 죄수56를 만나 그들의 진실을 기다려 확인하는 것이, 요사스러운 여인의 마음을 살피는 것만 못하고57; 현명함과 불초함을 분별하는 것이, 반드시 사슴과 말을 분별하는 것처럼 신중하고 확고해야 함에 있어서랴. 이 두 가지 사물(사슴과 말)은 모두 조정에 나아가 보여지고, 신뢰하는 신하들에게 그 본질이 드러날 수 있었다. 그러나 환심을 사고58, 구차하게 아첨하며59, 아첨하는 말과 교묘한 변론으로 군주를 현혹하는 것은, 오히려 군주의 눈을 현혹하고, 군주의 마음을 바꾸어 빼앗으며, 쉽게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사슴을 말이라고 여기게 하니, 하물며 교외의 현명한 자나 대궐 밖의 선비처럼, 일찍이 (군주에게) 직접 보인 적이 없는 자들에 있어서랴?


6

원문
夫在位者之好蔽賢而務進黨也,自古而然。昔唐堯之大聖也,聰明宣昭;虞舜之大聖也,德音發聞。堯為天子,求索賢人,訪於群后,群后不肯薦舜而反稱共、鯀之徒,賴堯之聖,後乃舉舜而放四子。夫以古聖之質也,堯聰之明也,舜德之彰也,君明不可欺,德彰不可蔽也。質鮮為佞,而位者尚直若彼。今夫列士之行,其不及堯、舜乎達矣,而俗之荒唐,世法滋彰。然則求賢之君,哀民之士,其相合也,亦必不幾矣。文王游畋,遇姜尚于渭濱,察言觀志,而見其心,不諮左右,不諏群臣,遂載反歸,委之以政,用能造周。故堯參鄉黨以得舜,文王參己以得呂尚, 豈若殷辛、秦政,既得賢人,反決滯於讎,誅殺正直,而進任姦臣之黨哉?

번역문
무릇 자리에 있는 자들이 현명한 자를 가리고60 당파를 나아가게 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였다. 옛날 당요(唐堯)61는 위대한 성인이었으니, 총명함이 널리 드러났고; 우순(虞舜)62은 위대한 성인이었으니, 덕스러운 명성이 널리 퍼졌다. 요(堯)가 천자가 되어 현명한 사람을 찾으면서, 여러 제후들에게 물었으나, 제후들은 순(舜)을 천거하려 하지 않고 도리어 공공(共工)63과 곤(鯀)64 같은 무리를 칭찬했다. 요의 성스러움에 힘입어, 후에야 순을 등용하고 네 명의 불초한 자들을 내쫓았다65. 무릇 옛 성인의 바탕과, 요의 총명함, 순의 덕이 드러남으로 볼 때, 군주가 밝으면 속일 수 없고, 덕이 드러나면 가릴 수 없다. 그들의 본성은 아첨하는 자가 드물었고, 자리에 있는 자들도 그처럼 정직함을 숭상했다. 지금 열사(列士)66의 행실은 요와 순에 미치지 못함이 분명한데도, 풍속은 황당하고, 세상의 법은 더욱 드러난다67. 그렇다면 현명한 자를 구하는 군주와 백성을 슬퍼하는 선비가 서로 만나는 것은,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문왕(文王)68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 강가에서 강상(姜尚)69을 만났는데, 그의 말과 뜻을 살펴 그 마음을 알아보았고, 좌우의 측근에게 묻지 않고, 여러 신하들에게 자문하지 않고, 마침내 수레에 태워 돌아와 그에게 정사를 맡겼으니, 이로써 주(周)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요는 향당(鄉黨)70의 의견을 참고하여 순을 얻었고, 문왕은 자신을 참고하여 여상(呂尚)71을 얻었으니, 어찌 은(殷)나라의 신(辛)72(주왕)이나 진(秦)나라의 정(政)73(시황제)처럼, 이미 현명한 사람을 얻었음에도 도리어 원한을 풀고74, 정직한 자를 주살하며, 간사한 신하의 당파를 임용하는 것과 같겠는가?


7

원문
是以明聖之君於正道也,不專驅於貴寵,惑於嬖媚,不棄踈遠,不輕幼賤,又參而任之。故有周之制也,天子聽政,使三公至於列士獻典,良史獻書,師箴,瞍賦,矇誦,百工諫,庶人傳語,近臣盡規,親戚補察,瞽叟教誨,耆艾脩之,而後王斟酌焉,是以事行而無敗也。

번역문
이 때문에 밝고 성스러운 군주는 바른 도리에 있어서, 총애받는 귀한 자들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75, 아첨하는 자들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으며, 소원한 자를 버리지 않고, 어리고 천한 자를 경시하지 않으며, 또한 두루 참고하여 그들을 임용한다. 그러므로 주(周)나라의 제도에서는, 천자가 정사를 들을 때, 삼공(三公)76으로부터 열사(列士)77에 이르기까지 법도를 바치게 하고, 훌륭한 사관(史官)78은 책을 바치게 하며, 악사(樂師)79는 간언하게 하고, 맹인 악사(瞍)80는 부(賦)를 읊게 하며, 맹인 악사(矇)81는 송(誦)을 읊게 하고, 모든 장인(百工)82은 간언하게 하며, 백성(庶人)83은 말을 전하게 하고, 가까운 신하(近臣)84는 모든 계책을 바치게 하며, 친척(親戚)85은 보충하고 살피게 하고, 맹인 노인(瞽叟)86은 가르치게 하며, 나이 많은 현자(耆艾)87는 (그것을) 다듬게 한 후에야, 왕이 헤아려 결정하였으니88, 이로써 일이 행해져 실패함이 없었다.


8

원문
末世則不然,徒信貴人驕妬之議,獨用苟媚蠱惑之言,行豊禮者蒙愆咎,論德義者見尤惡,於是諛臣又從以詆訾之法,被以議上之刑,此賢士之始困也。夫詆訾之法者,伐賢之斧也,而驕妬者,噬賢之狗也。人君內秉伐賢之斧,權噬賢之狗,而外招賢,欲其至也,不亦悲乎!

번역문
말세(末世)89에는 그렇지 않다. 단지 귀한 자들의 교만하고 질투하는 의론만 믿고, 구차하게 아첨하고 현혹하는 말만 홀로 사용하니, 성대한 예절을 행하는 자는 허물과 비난을 뒤집어쓰고90, 덕과 의를 논하는 자는 더욱 미움을 받는다. 이에 아첨하는 신하들은 또다시 비방하는 법을 따르고91, 윗사람을 비판했다는 죄로 형벌을 받게 하니92, 이것이 현명한 선비가 처음으로 곤경에 처하는 것이다. 무릇 비방하는 법은 현명한 자를 베는 도끼요93, 교만하고 질투하는 자는 현명한 자를 물어뜯는 개이다94. 군주가 안으로는 현명한 자를 베는 도끼를 쥐고95, 현명한 자를 물어뜯는 개에게 권한을 주면서96, 밖으로는 현명한 자를 불러 그들이 오기를 바라니97,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각주

  1. 나라를 가진 군주치고(凡有國之君者): '有國之君'은 '나라를 소유한 군주', 즉 '통치자'를 의미한다.
  2. 대대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不世見者): '世見'은 '세상에 나타나다', '대대로 이어지다'는 의미. 즉, 좋은 다스림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뜻.
  3. 현명한 자를 찾는 마음은 있으나(索賢之心): '索賢'은 '현명한 자를 찾다'는 뜻.
  4. 현명한 자를 얻는 방법이 없고(無得賢之術): '得賢之術'은 '현명한 자를 얻는 방법'을 의미한다.
  5. 현명한 자를 천거한다는 명분은 있으나(有進賢之名): '進賢之名'은 '현명한 자를 천거한다는 명성'을 의미한다.
  6. 현명한 자를 천거하는 실제가 없으니(無進賢之實): '進賢之實'은 '현명한 자를 실제로 천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7. 공정함에 있고(公也): '公'은 '공정하다', '사심이 없다'는 의미.
  8. 혼란이 끊어진다(軓亂絕): '軓(패)'는 '어지럽다', '혼란스럽다'는 뜻. '絕(절)'은 '끊어지다', '없어지다'는 뜻.
  9. 공정한 법이 빼앗긴다(公法奪): 공정한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무력화된다는 의미.
  10. 열사(列士): 행실이 바르고 절개가 굳은 선비.
  11. 추악한 무리가 사라진다(醜類代): '代(대)'는 '대체되다', '사라지다'는 뜻.
  12. 밤낮으로 현명한 군주와 의로운 선비 사이를 막아(日夜杜塞賢君義士之間): '杜塞(두색)'은 '막다', '가로막다'는 뜻. 간신배들이 군주와 현명한 신하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비판한다.
  13. 군주를 손상시켜 아첨하는 자를 받들지 않고(不損君以奉佞): 군주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아첨하는 자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는 의미.
  14. 대중에게 아첨하여 용납받으려 하지 않으며(不阿眾以取容): '阿眾(아중)'은 '대중에게 아첨하다', '取容(취용)'은 '용납받다', '환심을 사다'는 뜻.
  15. 공적인 일을 게을리하여 사적인 일을 듣지 않고(不惰公以聽私): 공적인 직무를 소홀히 하면서 사적인 청탁이나 이익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의미.
  16. 법을 굽혀 강직한 말을 내뱉지 않는다(不撓法以吐剛): '撓法(요법)'은 '법을 굽히다', '吐剛(토강)'은 '강직한 말을 내뱉다'는 뜻. 법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의 강직함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로, 현명한 신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바른 말을 한다는 뜻이다.
  17. 당파를 짓지 않는다(不比黨): '比黨(비당)'은 '당파를 짓다', '무리 짓다'는 뜻.
  18. 범무자(范武子):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범선자(范宣子)를 지칭한다. 그의 이름은 사개(士燮)이다. '范武'는 그의 시호와 성을 합친 것이다.
  19. 진(晉)나라로 돌아오자 나라의 간사한 자들이 도망쳤고(歸晉而國姦逃): 범선자가 진나라로 돌아와 정치를 맡자, 간사한 자들이 두려워 도망쳤다는 일화.
  20. 화원(華元):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대부.
  21. 어씨(魚氏):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간신 어석(魚石)을 지칭한다.
  22. 백성들의 의견을 두루 듣고(參聽民氓): '參聽(참청)'은 '두루 듣다', '널리 참고하다'는 뜻. '民氓(민맹)'은 '백성'을 의미한다.
  23. 자신의 총명함으로 판단하지 못하고(斷之聰明): '斷之聰明'은 '자신의 총명함으로 판단하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능히 ~하지 못하다'는 부정의 맥락이므로, 군주가 자신의 지혜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24. 원수와 함께 사신을 보내고(與仇遷使): 원수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는 어리석은 행위를 비유한다.
  25. 죄수에게 관리를 선택하게 하는 것과 같다(令囚擇吏者也): 죄수에게 관리를 뽑게 하는 것처럼, 부당한 자에게 중요한 권한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26.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27.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28. 성인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聖人之施舍也): '施舍(시사)'는 '베풀다', '처리하다', '행하다'는 뜻.
  29. 남과 자신의 행위를 살펴서(察彼己之為): '彼己之為'는 '남과 자신의 행위'를 의미한다.
  30. 때로는 남의 의견을 버리고 자신의 의견을 취하기도 하니(或舍人取己): '舍人取己'는 '남의 것을 버리고 자신의 것을 취하다'는 뜻. 여기서는 남의 의견을 버리고 자신의 판단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31. 대중에게 상고하지 않으며(不稽於眾): '稽(계)'는 '상고하다', '조사하다'는 뜻.
  32. 구차하게 사랑에 현혹되어(苟眩於愛): '苟(구)'는 '구차하게', '함부로'라는 뜻. '眩(현)'은 '현혹되다', '눈이 멀다'는 뜻.
  33. 선비가 방종하고 흩어지는 까닭이다(士之所以放佚者也): '放佚(방일)'은 '방종하다', '흩어지다', '제멋대로 하다'는 뜻. 군주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현명한 선비들이 뜻을 잃고 흩어진다는 의미.
  34. 주(紂):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로, 폭군으로 악명 높다.
  35. 구후(九侯): 은(殷)나라 주왕(紂王) 때의 제후.
  36. 달기(妲己):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총희(寵姬)로, 주왕의 폭정을 부추긴 악녀로 알려져 있다.
  37. (그 딸이) 나아가 총애를 받아 자신의 사랑을 빼앗을까 두려워(懼進御而奪己愛也): '進御'는 '나아가 총애를 받다'는 뜻.
  38. 연세가 드셨습니까?(年即耆邪?): '耆(기)'는 '늙다'는 뜻.
  39. 눈이 이미 어두워졌습니까?(明既衰邪?): '明(명)'은 '눈' 또는 '총명함'을 의미한다.
  40. 마음이 변하여(渝): '渝(유)'는 '변하다', '달라지다'는 뜻.
  41. 도리에 어긋나게도(不道也): '不道'는 '도리에 어긋나다', '불의하다'는 뜻.
  42. 그 딸을 포(脯)로 만들고(脯厥女): '脯(포)'는 '육포'를 의미한다. 주왕이 구후의 딸을 죽여 육포로 만들었다는 잔혹한 일화.
  43. 구후를 삶아 죽였다(烹九侯): '烹(팽)'은 '삶아 죽이다'는 뜻.
  44. 조고(趙高): 진(秦)나라 이세황제 때의 환관으로, 권력을 농단하여 진나라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45. 진(秦)나라의 권력을 독점하고(專秦): '專秦'은 '진나라의 권력을 독점하다'는 뜻.
  46. 이세황제(二世皇帝): 진시황의 아들 호해(胡亥)로, 조고의 꼭두각시가 되어 폭정을 일삼다가 결국 조고에게 살해당했다.
  47. 대중에게 권세를 보이고(示權於眾):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여 다른 신하들을 위협했다는 의미.
  48. 사슴을 바치면서(獻鹿於君): 조고가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우긴 고사성어 '지록위마(指鹿為馬)'의 유래.
  49. 망이(望夷): 진(秦)나라의 궁궐 이름. 조고가 이세황제를 이곳에서 죽였다.
  50. 좋아함과 싫어함은 눈에 드러나고(好之與惡放於目): '放於目'은 '눈에 드러나다', '눈에 비치다'는 뜻.
  51. 사슴과 말은 형체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니(鹿之與馬者著於形者也): '著於形'은 '형체로 분명히 나타나다'는 뜻.
  52. 신첩(臣妾): 신하와 첩을 통칭하는 말로, 여기서는 간신배와 총희를 비유한다.
  53. 거짓말을 꾸며(餝偽言): '餝(식)'은 '꾸미다', '장식하다'는 뜻.
  54. 군주는 자신의 마음을 잃고(君王失己心): 군주가 자신의 올바른 판단력을 잃는다는 의미.
  55. 인물은 그 본체를 잃게 된다(人物喪我體矣): '人物'은 '사람' 또는 '사물'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사람의 본질' 또는 '사물의 본체'를 의미한다. '喪我體'는 '자신의 본체를 잃다'는 뜻.
  56. 숨겨진 죄수(幽隱囚人): 억울하게 투옥되거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현명한 인재를 비유한다.
  57. 요사스러운 여인의 마음을 살피는 것만 못하고(不若察妖女之留意也): '妖女之留意'는 '요사스러운 여인의 마음을 살피다'는 뜻. 간신배나 총희의 간사한 속셈을 파악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는 의미.
  58. 환심을 사고(歡愛): '歡愛'는 '환심을 사다', '사랑을 받다'는 뜻.
  59. 구차하게 아첨하며(苟媚): '苟媚'는 '구차하게 아첨하다'는 뜻.
  60. 현명한 자를 가리고(蔽賢): 현명한 인재가 등용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
  61. 당요(唐堯):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요(堯) 임금을 지칭한다.
  62. 우순(虞舜):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순(舜) 임금을 지칭한다.
  63. 공공(共工): 중국 고대 전설상의 인물로, 요순 시대에 홍수를 다스리는 데 실패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64. 곤(鯀): 우(禹) 임금의 아버지로, 홍수를 다스리는 데 실패하여 순(舜) 임금에게 주살되었다.
  65. 네 명의 불초한 자들을 내쫓았다(放四子): 요 임금이 순에게 선양하기 전, 공공, 곤, 환두(驩兜), 삼묘(三苗) 등 네 명의 불초한 자들을 내쫓았다는 일화.
  66. 열사(列士): 행실이 바르고 절개가 굳은 선비.
  67. 풍속은 황당하고, 세상의 법은 더욱 드러난다: '荒唐(황당)'은 '황당하다', '터무니없다'는 뜻. '滋彰(자창)'은 '더욱 드러나다', '더욱 분명해지다'는 뜻. 즉, 세상의 풍속은 어지럽고, 법은 더욱 가혹해진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68. 문왕(文王): 주(周)나라의 시조로, 덕망이 높았으나 은(殷)나라 주왕(紂王)에게 갇히는 고난을 겪었다.
  69. 강상(姜尚): 주(周)나라 문왕과 무왕을 보필하여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현인으로, 태공망(太公望)이라고도 불린다.
  70. 향당(鄉黨): 고대 중국의 행정 구역 단위로, 여기서는 지역 사회의 여론이나 추천을 의미한다.
  71. 여상(呂尚): 강상(姜尚)의 본명.
  72. 은(殷)나라의 신(辛):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 주왕(紂王)의 이름이 신(辛)이다.
  73. 진(秦)나라의 정(政): 진시황(秦始皇)의 이름이 정(政)이다.
  74. 원한을 풀고(決滯於讎): '決滯(결체)'는 '막힌 것을 뚫다', '해결하다'는 뜻. '讎(수)'는 '원수', '원한'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현명한 자들을 원수처럼 여겨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원한을 풀었다는 의미이다.
  75. 총애받는 귀한 자들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不專驅於貴寵): '專驅(전구)'는 '전적으로 의지하다', '오직 ~에게만 달려가다'는 뜻.
  76. 삼공(三公): 고대 중국의 가장 높은 세 명의 관직.
  77. 열사(列士): 행실이 바르고 절개가 굳은 선비.
  78. 훌륭한 사관(史官):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
  79. 악사(樂師): 음악을 담당하는 관리.
  80. 맹인 악사(瞍): 맹인 악사. 고대에는 맹인들이 악사나 점술가로 활동하며 사회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다.
  81. 맹인 악사(矇): 맹인 악사. '瞍'와 '矇'는 모두 맹인 악사를 지칭한다.
  82. 모든 장인(百工): 여러 기술을 가진 장인들.
  83. 백성(庶人): 일반 백성.
  84. 가까운 신하(近臣): 황제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신하.
  85. 친척(親戚): 황제의 친척들.
  86. 맹인 노인(瞽叟): '瞽叟'는 순(舜) 임금의 아버지 이름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맹인 노인을 의미한다. 고대에는 맹인 노인들이 지혜로운 조언을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87. 나이 많은 현자(耆艾): '耆艾(기애)'는 '나이 많고 경험 많은 현자'를 의미한다.
  88. 왕이 헤아려 결정하였으니(王斟酌焉): '斟酌(짐작)'은 '헤아리다', '고려하다', '결정하다'는 뜻.
  89. 말세(末世): 시대의 마지막, 혼란하고 쇠퇴한 시대를 의미한다.
  90. 허물과 비난을 뒤집어쓰고(蒙愆咎): '蒙(몽)'은 '뒤집어쓰다', '입다'는 뜻. '愆咎(건구)'는 '허물과 비난'을 의미한다.
  91. 비방하는 법을 따르고(從以詆訾之法): '詆訾(저자)'는 '비방하다', '헐뜯다'는 뜻.
  92. 윗사람을 비판했다는 죄로 형벌을 받게 하니(被以議上之刑): '被(피)'는 '~을 당하다', '입다'는 뜻. '議上之刑'은 '윗사람을 비판한 죄로 인한 형벌'을 의미한다.
  93. 현명한 자를 베는 도끼요(伐賢之斧也): '伐賢'은 '현명한 자를 베다', '현명한 자를 해치다'는 뜻.
  94. 현명한 자를 물어뜯는 개이다(噬賢之狗也): '噬賢'은 '현명한 자를 물어뜯다'는 뜻.
  95. 안으로는 현명한 자를 베는 도끼를 쥐고(內秉伐賢之斧): '秉(병)'은 '쥐다', '잡다'는 뜻.
  96. 현명한 자를 물어뜯는 개에게 권한을 주면서(權噬賢之狗): '權(권)'은 '권한을 주다', '권세를 주다'는 뜻.
  97. 밖으로는 현명한 자를 불러 그들이 오기를 바라니(外招賢,欲其至也): 겉으로는 현명한 자를 초빙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들을 해치는 모순적인 행위를 비판한다.

潛夫論(잠부론) - 忠貴(충귀)

1

원문
世有莫盛之福,又有莫痛之禍。處莫高之位者,不可以無莫大之功。竊亢龍之極貴,未嘗不破亡也。成天地之大功者,未嘗不蕃昌也。

번역문
세상에는 이보다 더 성대한 복이 없고, 또한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화가 있다.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자는1 이보다 더 큰 공이 없어서는 안 된다2. 항룡(亢龍)3의 지극한 귀함을 훔친 자는4 파멸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천지(天地)의 큰 공을 이룬 자는 번성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2

원문
帝王之所尊敬、天之所甚愛者,民也。今人臣受君之重位,牧天之所甚愛,焉可以不安而利之、養而濟之哉?是以君子任職則思利民,達上則思進賢,功孰大焉?故居上而下不重也,在前而後不始也。《書》稱:「天工、人其代之」,王者法天而建官,自公卿以下,至于小司,輒非天官也?是故明主不敢以私愛,忠臣不敢以誣能。夫竊人之財,猶謂之盜,況偷天官以私己乎?以罪犯人,必加誅罰,況乃犯天, 得無咎乎?

번역문
제왕이 존경하고 하늘이 매우 사랑하는 것은 백성이다. 이제 신하가 군주의 중한 지위를 받아 하늘이 매우 사랑하는 백성을 다스리는데5, 어찌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이롭게 하며, 길러서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군자는 직책을 맡으면 백성을 이롭게 할 것을 생각하고, 윗자리에 오르면 현명한 자를 천거할 것을 생각하니, 이보다 더 큰 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위에 있으면서도 아래를 중히 여기지 않고6, 앞에 있으면서도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7. 『서경(書經)』에 이르기를8, “하늘의 일은 사람이 그를 대신한다9.”고 하였으니, 왕이 하늘을 본받아 관직을 세웠는데, 공경(公卿)10 이하로부터 작은 관리(司)11에 이르기까지, 어찌 하늘의 관직이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사사로운 사랑으로 (인재를 등용)하지 못하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능력을 속이지 못한다. 무릇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도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관직을 훔쳐 사사로이 자신을 위함이겠는가? 죄로써 남을 범하면 반드시 주벌을 가하는데, 하물며 하늘을 범함에 있어서랴, 허물이 없을 수 있겠는가?


3

원문
五代建侯,開國成家,傳嗣百世,歷載千數,皆以能當天官,功加百姓。周公東征,後世追思;召公甘棠,人不忍伐,見愛如是,豈欲私害之者哉?此其後之封君多矣,或不終身,或不朞月,而莫隕墜,其世無者,載莫盈百,是人何也哉?

번역문
오대(五代)12가 제후를 세우고, 나라를 열고 가문을 이루어, 백 세대에 걸쳐 대를 잇고, 천 년을 헤아리는 세월을 지탱한 것은, 모두 능히 하늘의 관직에 합당하고, 공적이 백성에게 더해졌기 때문이다. 주공(周公)13이 동정(東征)14하자 후세가 추모하였고; 소공(召公)15의 감당(甘棠)16은 사람들이 차마 베지 못했으니, 사랑받음이 이와 같았는데, 어찌 사사로이 그들을 해치려 한 자들이 있었겠는가? 이들 이후의 봉군(封君)17들이 많았는데, 혹은 평생을 마치지 못하고, 혹은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떨어져 망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18, 그 대를 잇지 못한 자들이 백 년을 채우지 못했으니19, 이 사람들은 무엇 때문인가?


4

원문
五代之臣,以道事君,以仁撫世,澤及草木,兼利外內,普天率土,莫不被德,其所安全,直天工也。是以福祚流衍,本枝百世。季世之臣,不思順天,而時主是諛,謂破敵者為忠,多殺者為賢。白起、蒙恬,秦以為功,天以為賊。息夫、董賢,主以為忠,天以為盜。此等之儔,雖見貴於時君,然上不順天心,下不得民意,故卒泣血號咷,以辱終也。《易》曰:「德薄而位尊,智小而謀大,力少而任重,鮮不及矣。」是故德不稱其任,其禍必酷;能不稱其位,其殃必大。

번역문
오대(五代)20의 신하들은 도(道)로써 군주를 섬기고, 인(仁)으로써 세상을 어루만져, 은택이 초목에까지 미치고, 안팎으로 두루 이롭게 하여, 온 천하의 모든 땅이 덕을 입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그들이 안전하게 한 것은 바로 하늘의 공적이었다. 이 때문에 복록이 흘러넘쳐21, 본가지가 백 세대에 걸쳐 이어졌다. 말세(末世)의 신하들은 하늘에 순응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당시의 군주에게 아첨하여, 적을 깨뜨리는 자를 충성스럽다고 하고, 많이 죽이는 자를 현명하다고 여겼다. 백기(白起)22와 몽염(蒙恬)23은 진(秦)나라가 공로로 여겼으나, 하늘은 도적으로 여겼다. 식부(息夫)24와 동현(董賢)25은 군주가 충성스럽다고 여겼으나, 하늘은 도둑으로 여겼다. 이와 같은 무리들은 비록 당시의 군주에게 귀하게 여겨졌으나, 위로는 하늘의 마음에 순응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뜻을 얻지 못했으므로, 마침내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고 울부짖으며26, 욕됨으로 끝을 맺었다. 『역(易)』에 이르기를27, “덕이 얇은데 지위가 높고, 지혜가 작은데 꾀하는 바가 크며, 힘이 적은데 맡은 바가 무거우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다28.” 이 때문에 덕이 그 임무에 걸맞지 않으면 그 화가 반드시 혹독하고; 능력이 그 지위에 걸맞지 않으면 그 재앙이 반드시 크다.


5

원문
且夫竊位之人,天奪其鑒,神惑其心。是故貧賤之時,雖有鑒明之資、仁義之志,一旦富貴,則背親損舊,喪其本心。皆踈骨肉而親便辟,薄知友而厚狗馬。財貨滿於僕妾,祿賜盡於猾奴。寧見朽貫千萬,而不忍賜人一錢;寧積粟腐倉,而不忍貸人一斗。人多驕肆,負債不償,骨肉怨望於家,細民謗讟於道。前人以敗,後爭襲之,誠可傷也。

번역문
또한 무릇 자리를 훔친 자는29 하늘이 그들의 분별력을 빼앗고, 신명이 그들의 마음을 현혹한다. 이 때문에 가난하고 천할 때는 비록 밝게 분별하는 자질과 인의(仁義)의 뜻이 있었을지라도, 일단 부귀해지면 친한 이를 등지고 옛 친구를 해치며, 그 본래의 마음을 잃는다. 모두 골육(骨肉)30을 멀리하고 아첨하는 자들을 가까이하며31, 지기(知己)32를 박대하고 개와 말을 후대한다. 재화는 하인과 첩에게 가득하고, 녹봉과 하사품은 교활한 노예에게 다 쓰인다. 차라리 썩은 돈꿰미가 천만 개 쌓이는 것을 볼지언정33, 사람에게 한 푼도 주지 못하고; 차라리 곡식을 쌓아 창고에서 썩힐지언정, 사람에게 한 말도 빌려주지 못한다. 사람들은 교만하고 방자하여, 빚을 지고도 갚지 않으니, 골육은 집안에서 원망하고, 미천한 백성은 길에서 비방한다. 앞선 사람들이 이로 인해 패망했는데도, 뒷사람들이 다투어 이를 답습하니, 참으로 슬프다.


6

원문
歷觀前世貴人之用心也,與嬰兒等。嬰兒有常病,貴臣有常禍,父母有常失,人君有常過。嬰兒常病,傷飽也;貴臣常禍,傷寵也。父母常失,在不能已於媚子;人君常過,在不能已於驕臣。哺乳太多,則必掣縱而生癇;貴富太盛,則必驕佚而生過。是故媚子以賊其軀者,非一門也;驕臣用滅其家者,非一世也。或以背叛橫逆不道,或以德薄不稱其貴。文昌奠功,司命舉過,觀惡深淺,稱罪降罰,或捕挌斬首,或拉髆掣胸,掊死深穽,銜刀都市,殭屍破家,覆宗滅族者,皆無功於民氓者也。而後人貪權冒寵,蓄積無極,思登顛隕之臺,樂偱覆車之迹,願裨福祚,以備員滿貫者,何世無之?

번역문
지난 세상의 귀한 자들이 마음 쓰는 것을 살펴보면, 갓난아이와 같다. 갓난아이에게는 늘 있는 병이 있고, 귀한 신하에게는 늘 있는 화가 있으며, 부모에게는 늘 있는 실수가 있고, 군주에게는 늘 있는 허물이 있다. 갓난아이의 늘 있는 병은 배부름으로 인해 상하는 것이요; 귀한 신하의 늘 있는 화는 총애로 인해 상하는 것이다. 부모의 늘 있는 실수는 자식을 아첨하는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 데 있고; 군주의 늘 있는 허물은 교만한 신하를 그만두지 못하는 데 있다. 젖을 너무 많이 먹이면 반드시 경련을 일으켜 간질이 생기고34; 부귀가 너무 성하면 반드시 교만하고 방종하여 허물이 생긴다. 이 때문에 아첨하는 자식으로 인해 그 몸을 해치는 자가 한 집안에 그치지 않고; 교만한 신하로 인해 그 집안을 멸망시키는 자가 한 시대에 그치지 않는다. 혹은 배반하고 횡포하며 도리에 어긋나서, 혹은 덕이 부족하여 그 귀함에 걸맞지 않아서이다. 문창(文昌)35이 공적을 정하고, 사명(司命)36이 허물을 기록하며, 악행의 깊고 얕음을 살펴서, 죄에 따라 벌을 내리니, 혹은 붙잡혀 목이 잘리고37, 혹은 어깨가 찢기고 가슴이 뜯겨38, 깊은 구덩이에 맞아 죽고39, 칼을 물고 도시에 시체가 되어40, 시체가 굳어 집안이 파괴되고, 종족이 멸망하는 자들은, 모두 백성에게 공로가 없는 자들이다. 그런데도 후세 사람들은 권력을 탐하고 총애를 무릅쓰며41, 축적함이 끝이 없고, 넘어지고 떨어지는 대(臺)에 오르기를 생각하고42, 뒤집힌 수레의 자취를 즐겨 따르며43, 복록을 더하여44, 정원을 채우고 돈꿰미를 가득 채우려 하는 자들이45, 어느 시대에 없었겠는가?


7

원문
當呂氏之貴也,太后稱制而專政,祿、產秉事而握權,擅立四五,多封子弟,兼據將相,外內磐結,自以雖湯、武興,五霸作,弗能危也。於是廢仁義而尚威虐,滅禮信而務譎詐。海內怨痛,人欲其亡,故一朝摩滅而莫之哀也。霍氏之貴,專相幼主,誅滅同僚,廢帝立帝,莫之敢違。禹繼父位,山、雲屏事,諸壻專典禁兵,婚姻本族。王氏之貴,九侯五將,朱輪二十三。太后專政,秉權三世。莽為宰衡,封安漢公,居攝假號,身當南面,卒以篡位,十有餘年,自以居之已久, 威立恩行,永無禍敗,故遂肆心恣意,私近忘遠,崇聚群小,重賦殫民,以奉無功,動為姦詐,託之經義,迷罔百姓,欺誣天地。自以我密,人莫之知,皇天從上鑒其姦,神明自幽照其態,豈有誤哉!

번역문
여씨(呂氏)46가 귀하게 되었을 때, 태후(太后)47가 칭제(稱制)48하며 정사를 독점하고, 여록(呂祿)49과 여산(呂產)50이 일을 맡아 권력을 장악하며, 제멋대로 네다섯 명을 세우고51, 자제들을 많이 봉했으며, 장수와 재상을 겸하여 차지하고, 안팎으로 단단히 결속하여, 스스로 탕(湯)52과 무(武)53가 일어나고, 오패(五霸)54가 나타나도 위태롭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에 인의(仁義)를 폐하고 위엄과 포학함을 숭상하며, 예절과 신의를 없애고 속임수와 간사함에 힘썼다. 천하가 원망하고 고통스러워하여, 사람들이 그들의 망하기를 원했으므로, 하루아침에 몰락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곽씨(霍氏)55가 귀하게 되었을 때, 어린 군주를 전적으로 보필하고56, 동료들을 주살하며, 황제를 폐하고 황제를 세우는 것을 감히 거스르는 자가 없었다. (곽)우(禹)57가 아버지의 지위를 계승하고, (곽)산(山)58과 (곽)운(雲)59이 정사를 가로막았으며60, 여러 사위들이 금군(禁軍)61을 전적으로 관장하고, 혼인은 본족(本族)62과만 하였다. 왕씨(王氏)63가 귀하게 되었을 때, 아홉 명의 제후와 다섯 명의 장수가 있었고, 붉은 수레64가 스물세 대였다. 태후(太后)65가 정사를 독점하고, 세 세대에 걸쳐 권력을 장악했다. 왕망(王莽)66이 재형(宰衡)67이 되고, 안한공(安漢公)68에 봉해졌으며, 거섭(居攝)69으로 가짜 칭호를 사용하고, 스스로 남면(南面)70의 자리에 앉아, 마침내 제위를 찬탈하여, 십여 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으니, 스스로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었고, 위엄이 확립되고 은혜가 행해져, 영원히 화와 패망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마침내 마음껏 방자하고 뜻대로 행동하며, 사사로운 가까운 자들을 위하고 먼 자들을 잊었으며, 소인배들을 숭상하여 모으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백성을 피폐하게 하였으며, 공로 없는 자들을 받들고, 행동마다 간사하고 거짓되었으며, 경전의 의리에 의탁하여71, 백성을 미혹하고 속였으며, 천지를 기만하고 속였다. 스스로 자신은 은밀하여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여겼으나, 황천(皇天)72은 위에서 그 간사함을 살피고, 신명(神明)은 은밀한 곳에서 그 태도를 비추었으니, 어찌 잘못이 있었겠는가!


8

원문
夫鳥以山為卑而橧巢其上,魚以淵為淺而穿穴其中,卒所以得之者餌也。貴戚懼家之不吉而聚諸令名,懼門之不堅而為作鐵樞,卒其以敗者,非苦禁忌少而門樞朽也,常苦崇財貨而行驕僭,虐百姓而失民心爾。

번역문
무릇 새는 산을 낮다고 여겨 그 위에 둥지를 틀고73, 물고기는 연못을 얕다고 여겨 그 안에 구멍을 뚫지만74, 결국 그들을 잡는 것은 미끼 때문이다. 귀척(貴戚)75들은 집안이 불길할까 두려워 좋은 명성을 모으고76, 문이 튼튼하지 않을까 두려워 쇠로 문지방을 만들지만77, 결국 그들이 패망하는 것은 금기(禁忌)가 적어서나 문지방이 썩어서가 아니라, 항상 재물을 숭상하고 교만하고 참람한 행실을 하며, 백성을 학대하여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9

원문
孔子曰:「不患無位,患己不立。」是故人臣不奉遵禮法,竭精思職,推誠輔君,效功百姓,下自附於民氓,上承順於天心,而乃欲任其私知,竊君威德,以陵下民,反戾天地,欺誣神明,偷進苟得,以自奉厚;居累卵之危,而圖泰山之安,為朝露之行,而思傳世之功,譬猶始皇之舍德任刑,而欲計一以至於萬也。豈不惑哉!

번역문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78, “자리가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자신이 확고히 서지 못함을 근심하라79.”고 하셨다. 이 때문에 신하가 예법을 받들어 따르지 않고, 정성을 다해 직무를 생각하며, 성실하게 군주를 보필하고, 백성에게 공적을 세우며, 아래로는 스스로 백성에게 의지하고, 위로는 하늘의 마음에 순응하지 않으면서80, 도리어 자신의 사사로운 지혜에 맡기고, 군주의 위엄과 덕을 훔쳐서, 아랫 백성을 능멸하고, 천지를 거스르며, 신명을 기만하고 속이며, 몰래 나아가 구차하게 얻어서, 스스로를 후하게 봉양하고; 쌓아 올린 알처럼 위태로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태산처럼 편안하기를 도모하고81, 아침 이슬처럼 덧없는 행실을 하면서도 대대로 전해질 공적을 생각하는 것은, 비유컨대 진시황(始皇)82이 덕을 버리고 형벌에 의지하면서83, 하나를 헤아려 만 가지에 이르기를 바란 것과 같다84. 어찌 미혹된 것이 아니겠는가!


각주

  1.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자(處莫高之位者): 군주나 최고 권력자를 의미한다.
  2. 이보다 더 큰 공이 없어서는 안 된다(不可以無莫大之功): '莫大之功'은 '이보다 더 큰 공이 없다'는 뜻으로, '최대의 공'을 의미한다. 즉,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자는 그에 걸맞은 가장 큰 공적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3. 항룡(亢龍):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상구(上九) 효사(爻辭)에 나오는 말로, 용이 너무 높이 올라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어 후회한다는 의미이다. 지위나 권세가 극에 달하여 쇠퇴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비유한다. 여기서는 극도로 높은 지위와 권세를 의미한다.
  4. 지극한 귀함을 훔친 자(竊亢龍之極貴): 자신의 능력이나 덕에 비해 과분한 지위와 권세를 차지한 자를 비판하는 표현이다.
  5. 하늘이 매우 사랑하는 백성을 다스리는데(牧天之所甚愛): '牧(목)'은 '다스리다', '기르다'는 뜻. 하늘이 백성을 사랑하듯이, 신하도 백성을 사랑하고 돌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6. 위에 있으면서도 아래를 중히 여기지 않고(居上而下不重也):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백성이나 아랫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를 비판한다.
  7. 앞에 있으면서도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在前而後不始也): '不始'는 '시작하지 않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다',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다', '후대를 생각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즉, 당장의 이익이나 권세에만 급급하여 장기적인 안목이나 후대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8.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유교 경전 중 하나로, 고대 중국의 역사 기록과 사상을 담고 있다. 여기 인용된 구절은 『서경』 「고요모(皐陶謨)」 편에 나오는 "天工,人其代之" (하늘의 일은 사람이 그를 대신한다)와 유사한 의미로, 유능한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9. 하늘의 일은 사람이 그를 대신한다: 하늘의 뜻을 사람이 대신하여 실현한다는 의미로, 유능한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0. 공경(公卿):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을 통칭하는 고위 관직.
  11. 작은 관리(司): 하급 관리를 의미한다.
  12. 오대(五代): 여기서는 하(夏), 은(殷), 주(周)의 삼대(三代)와 한(漢)나라, 그리고 저자가 살던 후한(後漢)까지의 주요 왕조를 의미할 수 있다. 혹은 단순히 '여러 시대'를 의미하는 관용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문맥상 이상적인 통치를 했던 고대의 왕조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13. 주공(周公): 주(周)나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아우로, 무왕 사후 어린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하며 주나라의 기틀을 다진 현명한 인물.
  14. 동정(東征): 주공이 은나라의 잔여 세력과 동이족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동쪽으로 출정한 사건.
  15. 소공(召公): 주(周)나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아우로, 주공과 함께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현명한 인물.
  16. 감당(甘棠): 소공이 백성들의 송사를 해결하기 위해 감당나무 아래에서 정사를 보았는데, 백성들이 그 덕을 기려 나무를 베지 않았다는 고사성어 '감당지애(甘棠之愛)'의 유래.
  17. 봉군(封君): 제후의 작위를 받아 봉토를 다스리는 군주.
  18. 떨어져 망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莫隕墜): '莫(막)'은 '아무도 ~하지 않다'는 부정의 의미. '隕墜(운추)'는 '떨어져 망하다'는 뜻. 즉, 모두 떨어져 망했다는 의미이다.
  19. 그 대를 잇지 못한 자들이 백 년을 채우지 못했으니(其世無者,載莫盈百): '世無者'는 '대를 잇지 못한 자', '載莫盈百'은 '백 년을 채우지 못했다'는 뜻. 즉, 봉군들이 오래가지 못하고 망했다는 뜻.
  20. 오대(五代)의 신하: 앞서 3단락의 '오대'와 동일한 의미로, 이상적인 통치를 했던 고대 왕조의 현명한 신하들을 지칭한다.
  21. 복록이 흘러넘쳐(福祚流衍): '福祚(복조)'는 '복록', '행복', '流衍(유연)'은 '흘러넘치다', '널리 퍼지다'는 뜻.
  22. 백기(白起):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명장으로,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진나라 통일의 기반을 다졌으나, 후에 자결을 명받아 죽었다.
  23. 몽염(蒙恬): 진(秦)나라의 장수로, 흉노를 물리치고 만리장성을 쌓는 데 공을 세웠으나, 진시황 사후 조고의 모함으로 죽었다.
  24. 식부(息夫): 한(漢)나라 애제(哀帝) 때의 총신 식부궁(息夫躬)을 지칭한다. 그는 황제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누렸으나, 후에 죄를 지어 죽었다.
  25. 동현(董賢): 한(漢)나라 애제(哀帝) 때의 총신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아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렸으나, 애제 사후 실각하여 자결했다.
  26.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고 울부짖으며(泣血號咷): '泣血(읍혈)'은 '피눈물을 흘리다', '號咷(호도)'는 '통곡하고 울부짖다'는 뜻.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음을 강조한다.
  27. 『역(易)』에 이르기를: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28.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다: '鮮不及矣(선불급의)'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뜻으로, '거의 반드시 미치지 못한다', 즉 '반드시 실패한다'는 의미이다.
  29. 자리를 훔친 자(竊位之人): 자신의 능력이나 덕에 비해 부당하게 높은 지위를 차지한 자를 비판하는 표현이다.
  30. 골육(骨肉): 가까운 친척, 혈육.
  31. 아첨하는 자들을 가까이하며(親便辟): '便辟(편벽)'은 '아첨하는 자', '간사한 자'를 의미한다.
  32. 지기(知己):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
  33. 썩은 돈꿰미가 천만 개 쌓이는 것을 볼지언정(寧見朽貫千萬): '朽貫(후관)'은 '썩은 돈꿰미'를 의미한다. 고대에는 엽전을 꿰어 보관했는데, 오래되면 끈이 썩어 돈이 흩어졌다. 이는 쓸모없이 쌓아둔 재물을 비유한다.
  34. 경련을 일으켜 간질이 생기고(掣縱而生癇): '掣縱(철종)'은 '경련을 일으키다', '癇(간)'은 '간질'을 의미한다. 과도한 보살핌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비유.
  35. 문창(文昌): 도교에서 문운(文運)과 관직을 주관하는 신. 여기서는 인간의 공적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36. 사명(司命): 인간의 수명과 운명을 주관하는 신. 여기서는 인간의 허물을 기록하고 벌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37. 붙잡혀 목이 잘리고(捕挌斬首): '捕挌(포격)'은 '붙잡다', '체포하다'는 뜻.
  38. 어깨가 찢기고 가슴이 뜯겨(拉髆掣胸): '拉髆(납박)'은 '어깨가 찢어지다', '掣胸(철흉)'은 '가슴이 뜯기다'는 뜻. 잔혹한 형벌이나 죽음을 비유한다.
  39. 깊은 구덩이에 맞아 죽고(掊死深穽): '掊(부)'는 '때리다', '치다'는 뜻. '深穽(심정)'은 '깊은 구덩이'를 의미한다.
  40. 칼을 물고 도시에 시체가 되어(銜刀都市): '銜刀(함도)'는 '칼을 물다'는 뜻으로, 자결하거나 처형당한 시체가 칼을 문 채로 버려지는 비참한 모습을 묘사한다.
  41. 권력을 탐하고 총애를 무릅쓰며(貪權冒寵): '冒寵(모총)'은 '총애를 무릅쓰다', '총애를 얻으려 하다'는 뜻.
  42. 넘어지고 떨어지는 대(臺)에 오르기를 생각하고(思登顛隕之臺): '顛隕之臺'는 '넘어지고 떨어지는 대'로, 권세의 정점에 올랐다가 몰락하는 것을 비유한다.
  43. 뒤집힌 수레의 자취를 즐겨 따르며(樂偱覆車之迹): '覆車之迹'은 '뒤집힌 수레의 자취'로, 앞선 사람들의 실패를 의미한다. 이를 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즐겨 따른다는 비판이다.
  44. 복록을 더하여(裨福祚): '裨(비)'는 '더하다', '돕다'는 뜻.
  45. 정원을 채우고 돈꿰미를 가득 채우려 하는 자들이(以備員滿貫者): '備員(비원)'은 '정원을 채우다', '滿貫(만관)'은 '돈꿰미를 가득 채우다'는 뜻. 즉, 관직의 정원을 채우고 재물을 축적하는 데만 급급한 자들을 비판한다.
  46. 여씨(呂氏):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황후 여태후(呂太后)의 친족들을 지칭한다. 여태후는 고조 사후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여씨 일족을 요직에 앉혀 전횡을 일삼았다.
  47. 태후(太后): 여태후(呂太后)를 지칭한다.
  48. 칭제(稱制): 황제처럼 정사를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49. 여록(呂祿): 여태후의 조카로, 여씨 정권의 핵심 인물.
  50. 여산(呂產): 여태후의 조카로, 여씨 정권의 핵심 인물.
  51. 제멋대로 네다섯 명을 세우고(擅立四五): 여씨 일족이 제멋대로 제후를 세우거나 관직을 임명했음을 의미한다.
  52. 탕(湯): 은(殷)나라를 세운 성군.
  53. 무(武): 주(周)나라를 세운 성군.
  54. 오패(五霸): 춘추시대의 다섯 패자(齊桓公, 晉文公, 楚莊王, 吳王闔閭, 越王勾踐 또는 宋襄公, 秦穆公 등).
  55. 곽씨(霍氏):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외척 곽광(霍光)의 일족을 지칭한다. 곽광은 무제 사후 어린 소제(昭帝)와 선제(宣帝)를 보필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56. 어린 군주를 전적으로 보필하고(專相幼主): '專相'은 '전적으로 재상 노릇을 하다'는 뜻.
  57. (곽)우(禹): 곽광의 아들 곽우.
  58. (곽)산(山): 곽광의 조카 곽산.
  59. (곽)운(雲): 곽광의 조카 곽운.
  60. 정사를 가로막았으며(屏事): '屏事'는 '정사를 가로막다', '정사에 간섭하다'는 뜻.
  61. 금군(禁軍): 황궁을 지키는 군대.
  62. 본족(本族): 같은 성씨의 친족.
  63. 왕씨(王氏): 한(漢)나라 원제(元帝)의 황후 왕정군(王政君)의 친족들을 지칭한다. 왕망(王莽)은 왕정군의 조카이다.
  64. 붉은 수레(朱輪): 붉은색 바퀴를 단 수레로, 고위 관직이나 귀족의 상징.
  65. 태후(太后): 왕정군 태후를 지칭한다.
  66. 왕망(王莽): 신(新)나라를 세워 한(漢)나라를 찬탈한 인물.
  67. 재형(宰衡): 왕망이 스스로 칭한 관직명으로, 재상과 같은 의미.
  68. 안한공(安漢公): 왕망이 황실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받은 작위.
  69. 거섭(居攝): 왕망이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섭정하면서 사용한 칭호.
  70. 남면(南面): 군주의 지위를 상징.
  71. 경전의 의리에 의탁하여(託之經義): 자신의 간사한 행위를 유교 경전의 명분으로 포장했다는 의미.
  72. 황천(皇天): 하늘을 높여 부르는 말.
  73. 새는 산을 낮다고 여겨 그 위에 둥지를 틀고(鳥以山為卑而橧巢其上): '橧巢(증소)'는 '나무를 쌓아 둥지를 틀다'는 뜻. 새가 높은 산을 낮다고 여기는 것은, 자신의 욕심이 끝이 없음을 비유한다.
  74. 물고기는 연못을 얕다고 여겨 그 안에 구멍을 뚫지만(魚以淵為淺而穿穴其中): 물고기가 깊은 연못을 얕다고 여기는 것은, 자신의 욕심이 끝이 없음을 비유한다.
  75. 귀척(貴戚): 황실의 외척이나 가까운 친척으로, 높은 지위와 권세를 누리는 자들을 의미한다.
  76. 좋은 명성을 모으고(聚諸令名): '聚諸'는 '모으다', '취하다'는 뜻. '令名'은 '좋은 명성'을 의미한다. 즉, 겉으로만 좋은 평판을 얻으려 한다는 비판이다.
  77. 쇠로 문지방을 만들지만(為作鐵樞): '鐵樞(철추)'는 '쇠로 만든 문지방'을 의미한다. 집안의 안전을 위해 겉으로만 견고함을 추구하는 행위를 비유한다.
  78.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논어(論語)』 「이인(里仁)」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79. 자리가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자신이 확고히 서지 못함을 근심하라: 외적인 지위보다 내적인 수양과 덕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80. 예법을 받들어 따르지 않고, 정성을 다해 직무를 생각하며, 성실하게 군주를 보필하고, 백성에게 공적을 세우며, 아래로는 스스로 백성에게 의지하고, 위로는 하늘의 마음에 순응하지 않으면서: 이 부분은 '不'이 앞에 붙어 있으므로, 뒤의 모든 행위들이 부정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즉, 신하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행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81. 쌓아 올린 알처럼 위태로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태산처럼 편안하기를 도모하고(居累卵之危,而圖泰山之安): '累卵之危'는 '쌓아 올린 알처럼 위태로운 상황'을 비유한다. '泰山之安'은 '태산처럼 굳건한 안정'을 비유한다. 즉, 위태로운 상황에 있으면서도 안전을 바라는 모순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82. 진시황(始皇): 진(秦)나라를 통일한 시황제(始皇帝).
  83. 덕을 버리고 형벌에 의지하면서(舍德任刑): 덕치(德治)를 버리고 법치(法治), 특히 가혹한 형벌에만 의지하는 통치 방식을 비판한다.
  84. 하나를 헤아려 만 가지에 이르기를 바란 것과 같다(欲計一以至於萬也): '計一以至於萬'은 '하나를 헤아려 만 가지를 이루다'는 뜻으로,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얻으려 하거나, 단편적인 방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것을 비유한다.

潛夫論(잠부론) - 浮侈(부치)

1

원문
凡王者以四海為一家,以兆民為通計。一夫不耕,天下必受其飢者;一婦不織,天下必受其寒者。今舉世舍農桑,趨商賈,牛馬車輿,填塞道路,游手為功,充盈都邑,治本者少,浮食者眾。「商邑翼翼,四方是極。」今察洛陽,浮末者什於農夫,虛偽游手者什於浮末。是則一夫耕,百人食之,一婦桑,百人衣之,以一奉百,孰能供之?天下百郡千縣,市邑萬數,類皆如此。本末何足相供?則民安得不飢寒?飢寒並至,則安能不為非?為非則姦宄,姦宄繁多,則吏安能無嚴酷?嚴酷數加,則下安能無愁怨?愁怨者多, 則咎徵並臻。下民無聊,則上天降災,則國危矣。

번역문
무릇 왕은 사해(四海)1를 한 집안으로 삼고, 모든 백성2을 통계의 대상으로 삼는다. 한 사내가 밭을 갈지 않으면 천하가 반드시 굶주림을 당하고; 한 여인이 베를 짜지 않으면 천하가 반드시 추위를 당한다. 지금 온 세상이 농업과 양잠을 버리고3, 상업으로 달려가며4, 소와 말, 수레와 가마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5, 놀고먹는 자들이 공로를 세운 양6 도읍에 가득 차니, 근본을 다스리는 자는 적고, 헛되이 소비하는 자는 많다7. “상(商)나라 도읍은 웅장하고8, 사방이 본받을 만하다9.” 지금 낙양(洛陽)10을 살펴보면, 말단적인 일에 종사하는 자가 농부보다 열 배나 많고11, 허위적이고 놀고먹는 자가 말단적인 일에 종사하는 자보다 열 배나 많다. 이는 곧 한 사내가 밭을 갈면 백 사람이 먹고, 한 여인이 누에를 치면 백 사람이 입는 격이니, 한 사람이 백 사람을 봉양하는데 누가 능히 공급할 수 있겠는가? 천하의 백 개의 군(郡)과 천 개의 현(縣), 수많은 시장과 읍(邑)이 대개 이와 같다. 근본과 말단이 어찌 서로 공급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백성이 어찌 굶주리고 추위에 떨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굶주림과 추위가 함께 닥치면, 어찌 나쁜 짓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쁜 짓을 하면 간사하고 흉악해지고12, 간사하고 흉악한 자가 많아지면, 관리가 어찌 엄혹하고 잔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엄혹함이 자주 가해지면, 아랫사람이 어찌 근심하고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근심하고 원망하는 자가 많아지면, 재앙의 징조가 함께 닥친다13. 아랫 백성이 고통스러우면, 하늘이 재앙을 내리니,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2

원문
夫貧生於富,弱生於彊,亂生於治,危生於安。是故明王之養民也,憂之勞之,教之誨之,慎微防萌,以斷其邪。故《易》美「節以制度,不傷財,不害民」;《七月詩》,大小教之,終而復始。由此觀之,民固不可恣也。

번역문
무릇 가난은 부유함에서 생기고, 약함은 강함에서 생기며, 혼란은 다스려짐에서 생기고, 위태로움은 편안함에서 생긴다. 이 때문에 현명한 왕이 백성을 기를 때는, 그들을 근심하고 수고롭게 하며14, 가르치고 훈계하며, 미미한 것을 신중히 하여 싹을 막아서15, 그들의 사악함을 끊어낸다. 그러므로 『역(易)』16은 “절제하여 제도를 만들면, 재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17.”고 칭송하였고; 『칠월(七月)』 시18는, 크고 작은 것을 가르치고, 끝없이 반복한다. 이로써 볼 때, 백성은 본래 제멋대로 하게 해서는 안 된다.


3

원문
今民奢衣服,侈飲食,事口舌而習調欺,以相詐紿,比肩是也。或以謀姦合任為業,或以游敖慱弈為事;或丁夫世不傳犂鋤,懷丸挾彈,攜手遨游。或取好土作丸賣之,於彈外不可以禦寇,內不足以禁鼠,晉靈好之以增其惡,未嘗聞志義之士喜操以游者也。唯無心之人,群豎小子,接而持之,妄彈烏雀,百發不得一,而反中面目,此最無用而有害也。或坐作竹簧,削銳其頭,有傷害之象,傅以蠟蜜,有甘舌之類,皆非吉祥善應。或作泥車、瓦狗、馬騎、倡排,諸戲弄小兒之具以巧詐。

번역문
지금 백성들은 의복을 사치스럽게 하고, 음식을 지나치게 하며, 말재주를 부리고19 속임수를 익혀20, 서로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이다21. 혹은 간사한 모의와 결탁을 업으로 삼고22, 혹은 놀고 돌아다니며 도박을 일삼기도 한다23. 혹은 장정들이 대대로 쟁기와 호미를 물려받지 않고24, 쇠구슬을 품고 새총을 끼고25, 손을 잡고 돌아다닌다. 혹은 좋은 흙을 가져다 쇠구슬을 만들어 파는데26, 밖으로는 도적을 막을 수 없고, 안으로는 쥐를 잡기에도 부족한데, 진(晉)나라 영공(靈公)27이 이를 좋아하여 그 악행을 더했으니28, 뜻과 의를 지닌 선비가 이를 즐겨 가지고 노는 것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오직 무심한 사람, 무리 지은 어린아이들이29, 그것을 받아 들고 함부로 까마귀와 참새를 쏘아 백 번 쏘아도 한 마리도 맞히지 못하고, 도리어 얼굴을 맞히니, 이것은 가장 쓸모없고 해로운 것이다. 혹은 앉아서 대나무 피리30를 만들고, 그 끝을 뾰족하게 깎아 상해의 형상을 띠게 하고31, 밀랍과 꿀을 발라32 달콤한 혀와 같은 종류를 만드니33, 모두 길상(吉祥)하고 좋은 징조가 아니다. 혹은 흙으로 수레를 만들고, 기와로 개를 만들고, 말과 기수(騎手)를 만들고, 광대 인형을 만들어34, 온갖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을 교묘하게 속여 만든다.


4

원문
《詩》刺「不績其麻,女也婆娑」。今多不脩中饋,「休其蠶織」,而起學巫祝,鼓舞事神,以欺誣細民,熒惑百姓婦女。羸弱疾病之家,懷憂憒憒,皆易恐懼,至使犇走便時,去離正宅,崎嶇路側,上漏下濕,風寒所傷,姦人所利,賊盜所中,益禍益崇,以致重者不可勝數。或棄毉藥,更往事神,故至於死亡,不自知為巫所欺誤,乃反恨事巫之晚,此熒惑細民之甚者也。

번역문
『시(詩)』는 “삼을 삼지 않고, 여인은 한가롭게 노니네35.”라고 풍자하였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36, “누에치고 베 짜는 일을 쉬면서37,” 일어나 무당과 박수에게 배우고38, 북 치고 춤추며 신을 섬겨39, 미천한 백성을 속이고 기만하며, 백성들의 부녀자들을 현혹한다. 몸이 약하고 병든 집안은 근심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워40, 모두 쉽게 두려워하여, 심지어 (점쟁이의) 편한 시기를 좇아41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바른 집을 떠나42, 길가에서 험난하게 지내며43, 위로는 비가 새고 아래는 습하며44, 바람과 추위에 상하고, 간사한 자들에게 이익을 당하고, 도적에게 해를 입어45, 화가 더해지고 더욱 심해져, 그로 인해 중한 병에 이르는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혹은 의약(醫藥)을 버리고, 다시 신을 섬기러 가서, 마침내 죽음에 이르러서도, 스스로 무당에게 속았음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무당을 섬긴 것이 늦었음을 한탄하니, 이것이 미천한 백성을 현혹하는 것이 심한 경우이다.


5

원문
或裁好繒,作為䟽頭,令工采畫,雇人書祝,虛飾巧言,欲邀多福。或裂拆繒綵,裁廣數分,長各五寸,縫繪佩之。或紡綵絲而縻,斷截以繞臂。此長無益於吉凶,而空殘滅繒絲,縈悸小民。剋削綺縠,寸竊八采,以成榆葉、無窮、水波之文,碎刺縫紩,詐為笥囊、裙䙏、衣被,費繒百縑,用功十倍。此等之儔,既不助長農工女,無有益於世,而坐食嘉穀,消費白日,毀敗成功,以見為破,以牢為行,以大為小, 以易為難,皆宜禁者也。

번역문
혹은 좋은 비단을 잘라46, 소두(䟽頭)47를 만들고, 장인에게 채색하여 그리게 하고, 사람을 고용하여 축문(祝文)을 쓰게 하여48, 헛되이 꾸미고 교묘한 말로 많은 복을 구한다. 혹은 비단과 채색 비단을 찢어 잘라49, 너비는 몇 푼, 길이는 각각 다섯 치로 만들고, 꿰매어 몸에 찬다. 혹은 채색 실을 꼬아 끈을 만들고50, 잘라 팔에 감는다. 이것은 길흉에 아무런 이로움이 없고, 헛되이 비단을 훼손하고, 백성을 불안하게 한다. 비단과 얇은 비단을 자르고 깎아51, 한 치마다 여덟 가지 색을 훔쳐52, 느릅나무 잎, 무궁화, 물결 무늬를 만들고53, 잘게 찢어 꿰매어54, 거짓으로 상자, 주머니, 치마, 이불을 만드는데55, 비단 백 필을 소비하고, 공은 열 배나 든다. 이와 같은 무리들은 이미 농업과 공업, 여성의 생산을 돕지 않고56, 세상에 아무런 이로움도 없으면서, 앉아서 좋은 곡식을 먹고57, 한가로이 세월을 보내며58, 성공을 망치고59, 보이는 것을 깨뜨리고60, 견고한 것을 행실로 삼고61, 큰 것을 작게 만들고62, 쉬운 것을 어렵게 만드니63, 모두 마땅히 금해야 할 것들이다.


6

원문
山林不能給野火,江海不能灌漏巵。孝文皇帝躬衣弋綈,足履革舄,以韋帶劍,集上書囊以為殿帷,盛夏苦暑,欲起一臺,計直百萬,以為奢費而不作也。今京師貴戚,衣服、飲食、車輿、文飾、廬舍,皆過王制,僣上甚矣。從奴僕妾,皆服葛子升越,筩中女布,細緻綺縠,水紈錦繡。犀象珠玉,琥珀瑇瑁,石山隱飾,金銀錯鏤,麞麂履舄,文組綵褋,驕奢僣主,轉相誇詫,箕子所晞,今在僕妾。富貴嫁娶,車軿各十,騎奴侍僮,夾轂節引。富者競欲相過,貧者恥不逮及。是故一饗之所費,破終身之本業。

번역문
산림은 들불을 감당할 수 없고64, 강과 바다는 새는 술잔을 채울 수 없다65. 효문황제(孝文皇帝)66는 몸소 검은 명주옷을 입고67, 가죽신을 신었으며68, 가죽띠로 칼을 찼고69, 상소 주머니를 모아 궁전의 휘장으로 삼았다70. 한여름 무더위에 시달리면서도, 누대 하나를 지으려 할 때 비용이 백만 전이나 된다는 계산에, 사치스럽고 낭비라고 여겨 짓지 않았다. 지금 경사(京師)71의 귀척(貴戚)72들은 의복, 음식, 수레, 장식, 집이 모두 왕의 제도73를 넘어서니, 윗사람을 참람하게 모방함이 심하다. 노비와 첩에 이르기까지 모두 갈자승월(葛子升越)74, 통중여포(筩中女布)75, 섬세한 비단과 얇은 비단76, 물비단과 비단 수놓은 옷77을 입는다. 코뿔소 뿔, 상아, 진주, 옥, 호박, 대모(玳瑁)78, 돌산 장식79, 금은 상감 세공80, 노루 가죽신81, 무늬 있는 끈과 채색 옷82으로, 교만하고 사치스럽게 군주를 참람하게 모방하며, 서로를 과시하고 자랑하니, 기자(箕子)83가 바라던 것84이 지금 노비와 첩에게 있다. 부유한 자들의 혼인에는, 수레와 가마가 각각 열 대씩이고85, 기마 노비와 시중드는 아이들이 수레바퀴 축을 끼고86 줄지어 이끈다87. 부유한 자들은 서로를 능가하려 다투고, 가난한 자들은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이 때문에 한 번의 잔치에 드는 비용이 평생의 본업을 망친다.


7

원문
古者必有命民,然後乃得衣繒綵而乘車馬,今者既不能盡復古,細民誠可不須,乃踰於古昔孝子,衣必細緻,履必麞麂,組必文采,飾襪必緰此,挍飾車馬,多畜奴婢。諸能若此者,既不生穀,又坐為蠹賊也。

번역문
옛날에는 반드시 (군주가) 백성에게 명한 후에야88 비단옷을 입고 수레와 말을 탈 수 있었는데89, 지금은 이미 옛 제도를 모두 회복할 수 없으니, 미천한 백성들은 진실로 (사치를)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도 도리어 옛 효자들을 능가하여90, 옷은 반드시 섬세하게 짜고, 신발은 반드시 노루 가죽으로 만들며, 끈은 반드시 무늬 있고 채색하며, 장식 양말은 반드시 비단으로 만들고91, 수레와 말을 꾸미고, 노비들을 많이 기른다. 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자들은, 이미 곡식을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앉아서 좀벌레와 도적이 된다92.


8

원문
子曰:「古之葬者,厚衣之以薪,葬之中野,不封不樹,喪期無時;後世聖人易之以棺槨」,桐木為棺,葛采為緘,下不及泉,上不泄臭。後世以楸梓槐柏杔㯉,各取方土所出,膠漆分致,釘細要,削除鏟靡,不見際會,其堅足恃,其用足任,如此可矣。其後京師貴戚,必欲江南檽梓豫章楩柟;邊遠下土,亦競相倣傚。夫檽梓豫章,所出殊遠,又乃生於深山窮谷,經歷山岑,立千步之高,百丈之谿,傾倚險阻,崎嶇不便,求之連日然後見之,伐斫連月然後訖,會眾然後能動擔,牛列然後能致水,油潰入海,連淮逆河,行數千里,然後到雒。工匠彫治,積累日月,計一棺之成,功將千萬。夫既其終用,重且萬斤,非大眾不能舉,非大車不能輓。東至樂浪,西至燉煌,萬里之中,相競用之。此之費功傷農,可為痛心!

번역문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93, “옛날 장례를 치르는 자는, 두껍게 땔감으로 덮어94, 들판 한가운데에 장사 지내고, 봉분도 만들지 않고 나무도 심지 않았으며, 상기(喪期)도 정해진 때가 없었다. 후세의 성인이 이를 관곽(棺槨)으로 바꾸었다95.” 오동나무로 관을 만들고, 칡으로 짠 비단으로 묶어96, 아래로는 샘물에 닿지 않고, 위로는 냄새가 새지 않게 하였다. 후세에는 가래나무, 오동나무, 느티나무, 잣나무, 상수리나무, 박달나무97를 각기 그 지방에서 나는 것을 취하여, 아교와 옻칠을 나누어 바르고98, 못을 섬세하게 박고99, 깎고 다듬어100 이음매가 보이지 않게 하여, 그 견고함은 의지할 만하고, 그 쓰임은 맡길 만하니, 이 정도면 괜찮다. 그 후 경사(京師)의 귀척(貴戚)들은 반드시 강남(江南)의 느티나무, 오동나무, 예장(豫章)의 편남(楩柟)101을 원했고; 변방의 하급 지역에서도 또한 다투어 서로 모방했다. 무릇 느티나무, 오동나무, 예장 편남은 나는 곳이 매우 멀고, 또한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라며, 산봉우리를 지나 천 걸음 높이의 험준한 곳에 서 있고, 백 길 깊이의 계곡에 기울어져 있어, 험하고 불편하여, 며칠을 찾아야 비로소 볼 수 있고, 몇 달을 베고 다듬어야 비로소 끝나며, 많은 사람이 모여야 비로소 움직여 멜 수 있고, 소를 줄지어 세워야 비로소 물가로 운반할 수 있으며, 기름진 강을 따라 바다로 들어가, 회수(淮水)를 거쳐 황하(黃河)를 거슬러 올라가, 수천 리를 행군한 후에야 낙양에 도착한다. 장인들이 조각하고 다듬는 데 날마다 쌓여 몇 달이 걸리니, 관 하나를 완성하는 데 드는 공이 장차 천만 전이나 된다. 무릇 그 마지막 쓰임에 이르러서는, 무게가 또한 만 근이나 되어, 많은 사람이 아니면 들 수 없고, 큰 수레가 아니면 끌 수 없다. 동쪽으로는 낙랑(樂浪)102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돈황(燉煌)103에 이르기까지, 만 리 안에서 서로 다투어 이를 사용한다. 이처럼 공을 낭비하고 농업을 해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9

원문
古者墓而不崇。仲尼喪母,冡高四尺,遇雨而墮,弟子請治之。夫子泣曰:「禮不脩墓。」「鯉死,有棺而無槨。」文帝葬於芒碭,明帝葬於洛南, 皆不藏珠寶,不造廟,不起山陵。陵墓雖卑而聖高。今京師貴戚,郡縣豪家,生不極養,死乃崇喪。或至刻金鏤玉,檽梓楩柟,良田造塋,黃壤致藏,多埋珍寶偶人車馬,造起大冡,廣種松柏,廬舍祠堂,崇侈上僣。寵臣貴戚,州郡世家,每有喪葬,都官屬縣,各當遣吏齎奉,車馬帷帳,貸假待客之具,競為華觀。此無益於奉終,無增於孝行,但作煩攪擾,傷害吏民。

번역문
옛날에는 무덤을 높이 만들지 않았다104. 중니(仲尼)105가 어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 봉분 높이가 네 자였는데, 비를 만나 무너졌다. 제자들이 고치기를 청하자, 공자께서 울면서 말씀하시기를, “예(禮)는 무덤을 수리하지 않는다.”고 하셨다106. “이(鯉)107가 죽었을 때, 관은 있었으나 곽은 없었다108.” 문제(文帝)109는 망탕산(芒碭山)110에 장사 지냈고, 명제(明帝)111는 낙양 남쪽에 장사 지냈는데, 모두 진귀한 보물을 묻지 않고, 사당을 짓지 않았으며, 산릉(山陵)112을 일으키지 않았다. 능묘는 비록 낮았으나 성스러움은 높았다. 지금 경사(京師)의 귀척(貴戚)들과 군현(郡縣)의 호가(豪家)들은, 살아 있을 때 지극히 봉양하지 않고, 죽어서야 비로소 장례를 성대하게 치른다. 혹은 금을 새기고 옥을 조각하며113, 느티나무, 오동나무, 편남으로114, 좋은 밭에 묘역을 만들고115, 황토에 매장하며116, 많은 진귀한 보물과 인형, 수레와 말을 묻고, 큰 봉분을 만들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넓게 심으며, 여사(廬舍)117와 사당을 짓는 등, 사치스럽고 윗사람을 참람하게 모방함이 심하다. 총애받는 신하와 귀척, 주군(州郡)의 세가(世家)들은 매번 상장(喪葬)이 있을 때마다, 도관(都官)118과 속현(屬縣)119이 각기 관리를 보내어 예물을 바치고120, 수레와 말, 휘장, 손님을 대접할 물품을 빌려주며121, 화려함을 다투어 과시한다. 이것은 죽은 이를 봉양하는 데 아무런 이로움이 없고, 효행을 더하지도 않으며, 단지 번거로움과 혼란을 야기하고, 관리와 백성을 해칠 뿐이다.


10

원문
今按鄗、畢之郊,文、武之陵,南城之壘,曾析之家。周公非不忠也,曾子非不孝也,以為襃君顯父,不在聚財;揚名顯祖,不在車馬。孔子曰:「多貨財傷于德,弊則沒禮。」晉靈厚賦以彫墻,《春秋》以為非君。華元、樂呂厚葬文公,《春秋》以為不臣。況於群司士庶,乃可僭侈主上,過天道乎?

번역문
지금 호(鄗)122와 필(畢)123의 교외에 있는 문왕(文王)124과 무왕(武王)125의 능묘, 남성(南城)의 보루126, 증자(曾子)127의 집안을 살펴보면128, 주공(周公)129이 충성스럽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증자가 효도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군주를 칭송하고 아버지를 드러내는 것이 재물을 모으는 데 있지 않고; 이름을 드날리고 조상을 빛내는 것이 수레와 말에 있지 않다고 여겼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130, “재물이 많으면 덕을 해치고, 폐단이 생기면 예절이 사라진다.”고 하셨다. 진(晉)나라 영공(靈公)131이 세금을 많이 거두어 담장을 조각한 것을132, 『춘추(春秋)』133는 군주답지 못하다고 여겼다. 화원(華元)134과 악려(樂呂)135가 문공(文公)136을 후하게 장사 지낸 것을, 『춘추』는 신하답지 못하다고 여겼다. 하물며 여러 관리와 선비, 백성들이 어찌 감히 군주를 참람하게 모방하고 사치하며, 천도(天道)를 넘어설 수 있겠는가?


11

원문
景帝時,原侯衛不害坐葬過律奪國。明帝時,桑民摐陽侯坐冡過制髡削。今天下浮侈離本,僭奢過上,亦已甚矣!

번역문
경제(景帝)137 때, 원후(原侯) 위불해(衛不害)138는 장례가 법도를 넘어서 국(國)을 빼앗겼고139. 명제(明帝)140 때, 상민(桑民)141 창양후(摐陽侯)142는 무덤이 제도를 넘어서 삭발당하고 관직이 삭탈되었다143. 지금 천하의 사치와 허황됨이 근본을 떠나144, 윗사람을 참람하게 모방하고 지나침이 또한 심하다!


12

원문
凡諸所譏,皆非民性,而競務者,亂政薄化使之然也。王者統世,觀民設教,乃能變風易俗,以致太平。

번문
무릇 비난하는 바의 모든 것들은145, 모두 백성의 본성이 아니며, 다투어 힘쓰는 것은, 혼란스러운 정치와 박약한 교화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왕이 세상을 통치할 때, 백성을 살펴 가르침을 베풀어야146 비로소 풍속을 바꾸고 습관을 고쳐147, 태평성대에 이를 수 있다.


각주

  1. 사해(四海): 천하, 온 세상을 의미한다.
  2. 모든 백성(兆民): '兆(조)'는 '억', '조'와 같이 매우 큰 수를 나타내며, 여기서는 '수많은 백성'을 의미한다.
  3. 농업과 양잠을 버리고(舍農桑): 농업과 양잠은 고대 사회의 근본적인 생산 활동이었다.
  4. 상업으로 달려가며(趨商賈): 상업은 당시 말단적인 직업으로 여겨졌다.
  5. 소와 말, 수레와 가마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牛馬車輿,填塞道路): 상업 활동의 번성으로 인한 교통 혼잡을 묘사하며, 이는 사치와 낭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6. 놀고먹는 자들이 공로를 세운 양(游手為功): '游手'는 '놀고먹는 자', '한량'을 의미한다. 생산적인 활동 없이 부를 축적하는 자들을 비판하는 표현이다.
  7. 근본을 다스리는 자는 적고, 헛되이 소비하는 자는 많다(治本者少,浮食者眾): '治本者'는 농업 등 근본적인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자, '浮食者'는 생산 없이 소비만 하는 자를 의미한다.
  8. 상(商)나라 도읍은 웅장하고(商邑翼翼): 『시경(詩經)』 「상송(商頌)」 「인무(殷武)」 편에 나오는 구절. 상나라의 번영을 묘사한다.
  9. 사방이 본받을 만하다(四方是極): '極(극)'은 '본보기', '표준'을 의미한다.
  10. 낙양(洛陽): 후한(後漢)의 수도.
  11. 말단적인 일에 종사하는 자가 농부보다 열 배나 많고(浮末者什於農夫): '浮末者'는 상업, 수공업, 유흥업 등 비생산적인 말단 직업에 종사하는 자를 의미한다. '什於'는 '열 배나 많다'는 뜻.
  12. 간사하고 흉악해지고(姦宄): '姦(간)'은 '간사하다', '宄(궤)'는 '흉악하다', '도적'을 의미한다.
  13. 재앙의 징조가 함께 닥친다(咎徵並臻): '咎徵(구징)'은 '재앙의 징조', '並臻(병진)'은 '함께 닥치다'는 뜻.
  14. 그들을 근심하고 수고롭게 하며(憂之勞之): 백성들이 게으르지 않도록 적절한 노동을 시키고, 그들의 삶을 걱정하고 돌본다는 의미.
  15. 미미한 것을 신중히 하여 싹을 막아서(慎微防萌): 작은 잘못이나 폐단이 싹트기 전에 미리 막는다는 의미.
  16. 『역(易)』: 『주역(周易)』을 지칭한다.
  17. 절제하여 제도를 만들면, 재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節以制度,不傷財,不害民): 『주역(周易)』 「절괘(節卦)」의 괘사(卦辭)에 나오는 구절.
  18. 『칠월(七月)』 시: 『시경(詩經)』 「국풍(國風)」 「빈풍(豳風)」에 실린 시의 제목. 농민들의 일 년 생활을 묘사하며, 농업의 중요성과 절제된 삶을 강조한다.
  19. 말재주를 부리고(事口舌): '口舌'은 '말재주', '구변'을 의미한다.
  20. 속임수를 익혀(習調欺): '調欺'는 '속임수', '기만'을 의미한다.
  21.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이다(比肩是也): '比肩'은 '어깨를 나란히 하다'는 뜻으로, 그런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의미.
  22. 간사한 모의와 결탁을 업으로 삼고(謀姦合任為業): '謀姦'은 '간사한 모의', '合任'은 '결탁'을 의미한다.
  23. 놀고 돌아다니며 도박을 일삼기도 한다(游敖慱弈為事): '游敖'는 '놀고 돌아다니다', '慱弈'은 '도박'을 의미한다.
  24. 장정들이 대대로 쟁기와 호미를 물려받지 않고(丁夫世不傳犂鋤): '丁夫'는 '장정', '犂鋤(이서)'는 '쟁기와 호미'를 의미한다. 즉,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비판.
  25. 쇠구슬을 품고 새총을 끼고(懷丸挾彈): '丸(환)'은 '쇠구슬', '彈(탄)'은 '새총'을 의미한다.
  26. 좋은 흙을 가져다 쇠구슬을 만들어 파는데: 쓸모없는 행위를 비판.
  27. 진(晉)나라 영공(靈公):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군주로, 사치와 향락을 일삼은 폭군.
  28. 이를 좋아하여 그 악행을 더했으니(好之以增其惡): 영공이 쇠구슬 놀이를 좋아하여 더욱 방탕해졌다는 일화.
  29. 무리 지은 어린아이들이(群豎小子): '豎小子'는 '어린아이', '어리석은 자'를 의미한다.
  30. 대나무 피리(竹簧): 대나무로 만든 피리나 악기.
  31. 그 끝을 뾰족하게 깎아 상해의 형상을 띠게 하고(削銳其頭,有傷害之象): 장난감이 해로운 형상을 띠는 것을 비판.
  32. 밀랍과 꿀을 발라(傅以蠟蜜): '傅(부)'는 '바르다'는 뜻.
  33. 달콤한 혀와 같은 종류를 만드니(有甘舌之類): '甘舌'은 '달콤한 혀', 즉 '아첨하는 말'을 비유한다.
  34. 흙으로 수레를 만들고, 기와로 개를 만들고, 말과 기수(騎手)를 만들고, 광대 인형을 만들어(泥車、瓦狗、馬騎、倡排): '倡排(창배)'는 '광대 인형' 또는 '광대'를 의미한다. 쓸모없는 장난감을 만드는 사치스러운 행위를 비판.
  35. “삼을 삼지 않고, 여인은 한가롭게 노니네”: 『시경(詩經)』 「국풍(國風)」 「패풍(邶風)」 「곡풍(谷風)」 편에 나오는 구절. 여인들이 본업인 길쌈을 게을리하고 노는 것을 풍자한다.
  36.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不脩中饋): '中饋(중궤)'는 '집안일', 특히 '음식 준비'를 의미한다.
  37. “누에치고 베 짜는 일을 쉬면서”: 『시경(詩經)』 「국풍(國風)」 「패풍(邶風)」 「곡풍(谷風)」 편에 나오는 구절.
  38. 무당과 박수에게 배우고(學巫祝): '巫祝(무축)'은 '무당과 박수'를 의미한다. 미신에 빠지는 세태를 비판.
  39. 북 치고 춤추며 신을 섬겨(鼓舞事神): 무속 행위를 묘사.
  40. 근심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워(懷憂憒憒): '憒憒(궤궤)'는 '마음이 혼란스럽다', '어지럽다'는 뜻.
  41. (점쟁이의) 편한 시기를 좇아(犇走便時): '便時'는 '편한 시기', '좋은 때'를 의미한다. 점쟁이가 말하는 길한 때를 좇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비판.
  42. 바른 집을 떠나(去離正宅): 안정된 거처를 버리고 떠도는 것을 의미.
  43. 길가에서 험난하게 지내며(崎嶇路側): '崎嶇(기구)'는 '험난하다', '고생스럽다'는 뜻.
  44. 위로는 비가 새고 아래는 습하며(上漏下濕): 집이 허술하여 비바람을 막지 못하는 상황.
  45. 간사한 자들에게 이익을 당하고, 도적에게 해를 입어(姦人所利,賊盜所中): '所利'는 '이익을 당하다', '所中'은 '해를 입다'는 뜻.
  46. 좋은 비단을 잘라(裁好繒): '繒(증)'은 '비단'을 의미한다.
  47. 소두(䟽頭): 머리에 쓰는 장식의 일종.
  48. 축문(祝文)을 쓰게 하여(書祝): '祝(축)'은 '축문', '기원문'을 의미한다.
  49. 비단과 채색 비단을 찢어 잘라(裂拆繒綵): '繒綵(증채)'는 '채색 비단'을 의미한다.
  50. 채색 실을 꼬아 끈을 만들고(紡綵絲而縻): '縻(미)'는 '끈', '묶다'는 뜻.
  51. 비단과 얇은 비단을 자르고 깎아(剋削綺縠): '綺縠(기곡)'은 '비단과 얇은 비단'을 의미한다. '剋削'은 '자르고 깎다', '훼손하다'는 뜻.
  52. 한 치마다 여덟 가지 색을 훔쳐(寸竊八采): '寸竊'은 '한 치씩 훔치다', '조금씩 훔치다'는 뜻. '八采'는 '여덟 가지 색'을 의미한다.
  53. 느릅나무 잎, 무궁화, 물결 무늬를 만들고(榆葉、無窮、水波之文): 옷감에 새기는 문양의 종류. '無窮(무궁)'은 무궁화 문양을 의미할 수 있다.
  54. 잘게 찢어 꿰매어(碎刺縫紩): '碎刺'는 '잘게 찢다', '縫紩(봉질)'은 '꿰매다'는 뜻.
  55. 거짓으로 상자, 주머니, 치마, 이불을 만드는데(詐為笥囊、裙䙏、衣被): '笥囊(사낭)'은 '상자와 주머니', '裙䙏(군복)'은 '치마', '衣被(의피)'는 '이불'을 의미한다.
  56. 농업과 공업, 여성의 생산을 돕지 않고(不助長農工女): '農工女'는 농업, 공업, 길쌈 등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57. 앉아서 좋은 곡식을 먹고(坐食嘉穀): 생산 활동 없이 소비만 하는 것을 비판.
  58. 한가로이 세월을 보내며(消費白日): '白日'은 '밝은 낮', '세월'을 의미한다.
  59. 성공을 망치고(毀敗成功): '成功'은 '이루어 놓은 공적'이나 '완성된 것'을 의미한다.
  60. 보이는 것을 깨뜨리고(以見為破): 겉으로 보이는 것을 파괴한다는 의미.
  61. 견고한 것을 행실로 삼고(以牢為行): '牢(뢰)'는 '견고하다', '단단하다'는 뜻. '行(행)'은 '행실', '행위'를 의미한다. 견고한 것을 파괴하는 행위를 비판하는 맥락으로 보인다.
  62. 큰 것을 작게 만들고(以大為小): 큰 가치를 작은 것으로 폄하하거나, 큰 것을 작게 만드는 행위.
  63. 쉬운 것을 어렵게 만드니(以易為難):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드는 행위.
  64. 산림은 들불을 감당할 수 없고(山林不能給野火): 산림이 아무리 넓어도 들불이 나면 다 타버리듯이,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낭비하면 다 없어진다는 비유.
  65. 강과 바다는 새는 술잔을 채울 수 없다(江海不能灌漏巵): 강과 바다가 아무리 커도 새는 술잔을 채울 수 없듯이,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낭비하면 채워지지 않는다는 비유.
  66. 효문황제(孝文皇帝): 서한(西漢)의 문제(文帝). 검소한 생활로 유명하다.
  67. 몸소 검은 명주옷을 입고(躬衣弋綈): '弋綈(익제)'는 '검은 명주옷'을 의미한다.
  68. 가죽신을 신었으며(足履革舄): '革舄(혁석)'은 '가죽신'을 의미한다.
  69. 가죽띠로 칼을 찼고(以韋帶劍): '韋(위)'는 '가죽'을 의미한다.
  70. 상소 주머니를 모아 궁전의 휘장으로 삼았다(集上書囊以為殿帷): '上書囊'은 '상소를 담는 주머니', '殿帷'는 '궁전의 휘장'을 의미한다. 검소함을 극대화한 일화.
  71. 경사(京師): 수도.
  72. 귀척(貴戚): 황실의 외척이나 가까운 친척.
  73. 왕의 제도(王制): 왕이 정한 규범이나 제도. 여기서는 검소함을 강조하는 왕의 규범을 의미한다.
  74. 갈자승월(葛子升越): '葛子'는 칡으로 짠 옷감, '升越'은 '승월포'라는 고급 삼베.
  75. 통중여포(筩中女布): '통중'은 대나무 통 안에서 짠 비단, '여포'는 여인이 짠 베. 고급 직물을 의미한다.
  76. 섬세한 비단과 얇은 비단(細緻綺縠): '細緻(세치)'는 '섬세하다', '綺縠(기곡)'은 '비단과 얇은 비단'을 의미한다.
  77. 물비단과 비단 수놓은 옷(水紈錦繡): '水紈(수환)'은 '물비단', '錦繡(금수)'는 '비단 수놓은 옷'을 의미한다.
  78. 코뿔소 뿔, 상아, 진주, 옥, 호박, 대모(玳瑁): 사치품의 재료. '玳瑁(대모)'는 바다거북의 일종으로, 그 등껍질은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다.
  79. 돌산 장식(石山隱飾): 돌로 만든 산 모양의 장식품.
  80. 금은 상감 세공(金銀錯鏤): 금과 은을 박아 넣거나 조각하는 세공 기술.
  81. 노루 가죽신(麞麂履舄): '麞麂(장기)'는 '노루'를 의미한다.
  82. 무늬 있는 끈과 채색 옷(文組綵褋): '文組(문조)'는 '무늬 있는 끈', '綵褋(채접)'은 '채색 옷'을 의미한다.
  83. 기자(箕子):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숙부로, 주왕의 폭정을 간하다가 미치광이 행세를 하여 죽음을 면하고 노예가 되었다.
  84. 바라던 것(所晞): '晞(희)'는 '바라다', '기대하다'는 뜻. 기자가 주왕의 사치를 비판하며 검소한 세상을 바랐다는 의미.
  85. 수레와 가마가 각각 열 대씩이고(車軿各十): '軿(병)'은 '가마'를 의미한다.
  86. 기마 노비와 시중드는 아이들이 수레바퀴 축을 끼고(騎奴侍僮,夾轂): '夾轂(협곡)'은 '수레바퀴 축을 끼고 서다'는 뜻.
  87. 줄지어 이끈다(節引): '節引'은 '줄지어 이끌다'는 뜻.
  88. (군주가) 백성에게 명한 후에야(必有命民): 군주의 허락이나 명령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
  89. 비단옷을 입고 수레와 말을 탈 수 있었는데(衣繒綵而乘車馬): 신분에 따른 복식과 이동 수단의 제한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90. 옛 효자들을 능가하여: 옛 효자들이 검소하게 부모를 봉양했음을 상기시키며, 지금의 백성들이 오히려 사치스럽다는 비판.
  91. 장식 양말은 반드시 비단으로 만들고(飾襪必緰此): '緰此(유차)'는 '비단'을 의미한다.
  92. 앉아서 좀벌레와 도적이 된다(坐為蠹賊也): 생산 활동 없이 소비만 하며 사회에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된다는 비판.
  93.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예기(禮記)』 「단궁상(檀弓上)」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94. 두껍게 땔감으로 덮어(厚衣之以薪): '衣之'는 '덮다'는 뜻.
  95. 후세의 성인이 이를 관곽(棺槨)으로 바꾸었다: 관(棺)은 시신을 직접 담는 안쪽 널, 곽(槨)은 관을 다시 둘러싸는 바깥 널.
  96. 칡으로 짠 비단으로 묶어(葛采為緘): '葛采(갈채)'는 '칡으로 짠 비단', '緘(함)'은 '묶다', '봉하다'는 뜻.
  97. 가래나무, 오동나무, 느티나무, 잣나무, 상수리나무, 박달나무(楸梓槐柏杔㯉): 관곽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나무의 종류.
  98. 아교와 옻칠을 나누어 바르고(膠漆分致): '分致'는 '나누어 바르다', '골고루 바르다'는 뜻.
  99. 못을 섬세하게 박고(釘細要): '細要'는 '섬세하게 박다', '정교하게 하다'는 뜻.
  100. 깎고 다듬어(削除鏟靡): '削除(삭제)'는 '깎아내다', '鏟靡(찬미)'는 '다듬다', '매끄럽게 하다'는 뜻.
  101. 강남(江南)의 느티나무, 오동나무, 예장(豫章)의 편남(楩柟): '檽梓(유자)'는 느티나무와 오동나무, '豫章楩柟(예장편남)'은 예장 지역에서 나는 편남나무. 모두 귀하고 값비싼 목재를 의미한다.
  102. 낙랑(樂浪): 한(漢)나라가 설치한 한사군(漢四郡) 중 하나로, 한반도 북부에 위치했다.
  103. 돈황(燉煌): 한(漢)나라가 설치한 서역의 군(郡) 중 하나로, 실크로드의 요충지.
  104. 무덤을 높이 만들지 않았다(墓而不崇): '崇(숭)'은 '높이다', '성대하게 하다'는 뜻.
  105. 중니(仲尼): 공자(孔子)의 자(字).
  106. “예(禮)는 무덤을 수리하지 않는다.”: 『예기(禮記)』 「단궁상(檀弓上)」에 나오는 구절.
  107. 이(鯉): 공자의 아들 공리(孔鯉).
  108. 관은 있었으나 곽은 없었다: 『예기(禮記)』 「단궁상(檀弓上)」에 나오는 구절. 공자가 아들의 장례를 검소하게 치렀음을 보여준다.
  109. 문제(文帝): 서한(西漢)의 황제. 검소한 생활로 유명하다.
  110. 망탕산(芒碭山): 한(漢)나라 황제들의 능묘가 있던 곳.
  111. 명제(明帝): 후한(後漢)의 황제. 역시 검소한 장례를 치렀다.
  112. 산릉(山陵): 황제의 무덤.
  113. 금을 새기고 옥을 조각하며(刻金鏤玉): '刻金(각금)'은 '금을 새기다', '鏤玉(루옥)'은 '옥을 조각하다'는 뜻.
  114. 느티나무, 오동나무, 편남으로: 앞서 언급된 값비싼 목재.
  115. 좋은 밭에 묘역을 만들고(良田造塋): '塋(영)'은 '묘역'을 의미한다.
  116. 황토에 매장하며(黃壤致藏): '黃壤(황양)'은 '황토', '致藏(치장)'은 '매장하다'는 뜻.
  117. 여사(廬舍):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무덤 옆에 지은 집.
  118. 도관(都官): 수도의 관청.
  119. 속현(屬縣): 속해 있는 현.
  120. 관리를 보내어 예물을 바치고(遣吏齎奉): '齎奉(재봉)'은 '가지고 가서 바치다'는 뜻.
  121. 수레와 말, 휘장, 손님을 대접할 물품을 빌려주며(車馬帷帳,貸假待客之具): '帷帳(유장)'은 '휘장', '貸假(대하)'는 '빌려주다', '待客之具'는 '손님을 대접할 물품'을 의미한다.
  122. 호(鄗): 주(周)나라 문왕의 능묘가 있던 곳.
  123. 필(畢): 주(周)나라 무왕의 능묘가 있던 곳.
  124. 문왕(文王): 주(周)나라의 시조.
  125. 무왕(武王): 주(周)나라를 세운 왕.
  126. 남성(南城)의 보루(壘): '壘(루)'는 '보루', '성벽'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장소는 불분명하나, 증자의 집안과 관련된 곳으로 보인다.
  127. 증자(曾子): 공자의 제자 증삼(曾參). 효도로 유명하다.
  128. 증자(曾子)의 집안을 살펴보면: 증자의 집안이 검소했음을 의미한다.
  129. 주공(周公): 주(周)나라의 현명한 재상.
  130.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에 나오는 구절이다.
  131. 진(晉)나라 영공(靈公):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군주로, 사치와 향락을 일삼은 폭군.
  132. 세금을 많이 거두어 담장을 조각한 것을(厚賦以彫墻): '厚賦(후부)'는 '세금을 많이 거두다', '彫墻(조장)'은 '담장을 조각하다'는 뜻. 영공의 사치스러운 행위를 비판한다.
  133. 『춘추(春秋)』: 공자가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노(魯)나라의 역사서.
  134. 화원(華元):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대부.
  135. 악려(樂呂):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대부.
  136. 문공(文公):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군주.
  137. 경제(景帝): 서한(西漢)의 황제.
  138. 원후(原侯) 위불해(衛不害): 한(漢)나라 경제 때의 제후.
  139. 장례가 법도를 넘어서 국(國)을 빼앗겼고(坐葬過律奪國): '坐(좌)'는 '~의 죄로', '過律'은 '법도를 넘어서다', '奪國'은 '봉국을 빼앗기다'는 뜻.
  140. 명제(明帝): 후한(後漢)의 황제.
  141. 상민(桑民): '桑民'은 '뽕나무 백성'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인명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142. 창양후(摐陽侯): 후한(後漢) 명제 때의 제후.
  143. 무덤이 제도를 넘어서 삭발당하고 관직이 삭탈되었다(坐冡過制髡削): '冡過制'는 '무덤이 제도를 넘어서다', '髡削(곤삭)'은 '삭발당하고 관직이 삭탈되다'는 뜻.
  144. 천하의 사치와 허황됨이 근본을 떠나(天下浮侈離本): '浮侈(부치)'는 '사치스럽고 허황되다', '離本(이본)'은 '근본을 떠나다'는 뜻.
  145. 비난하는 바의 모든 것들은(凡諸所譏): '譏(기)'는 '비난하다', '풍자하다'는 뜻.
  146. 백성을 살펴 가르침을 베풀어야(觀民設教): 백성들의 실정을 파악하여 그에 맞는 교화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
  147. 풍속을 바꾸고 습관을 고쳐(變風易俗): '變風易俗'은 '풍속을 바꾸고 습관을 고치다'는 뜻으로, 사회의 잘못된 풍조를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潛夫論(잠부론) - 慎微(신미)

1

원문
凡山陵之高,非削而成崛起也,必步增而稍上焉。川谷之卑,非截斷而顛陷也,必陂池而稍下焉。是故積上不止,必致嵩山之高;積下不已,必極黃泉之深。

번역문
무릇 산과 언덕의 높음은, 깎아서 갑자기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한 걸음씩 더해져 점차 높아진 것이다. 강과 골짜기의 낮음은, 잘라 끊어져 갑자기 함몰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비스듬히 기울어져 점차 낮아진 것이다. 이 때문에 위로 쌓이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반드시 숭산(嵩山)1의 높이에 이르고; 아래로 쌓이는 것을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황천(黃泉)2의 깊이에 이른다.


2

원문
非獨山川也,人行亦然,有布衣積善不怠,必致顏、閔之賢,積惡不休,必致桀、跖之名。非獨布衣也,人臣亦然,積正不倦,必生節義之志,積邪不止,必生暴弒之心。非獨人臣也,國君亦然,政教積德,必致安泰之福,舉錯數失,必致危亡之禍。故仲尼曰:湯、武非一善而王也,桀、紂非一惡而亡也。三代之廢興也,在其所積。積善多者,雖有一惡,是謂過失,未足以亡。積惡多者,雖有一善,是謂誤中,未足以存。人君聞此,可以悚懼。布衣聞此,可以改容。

번역문
비단 산천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행실 또한 그러하여, 평범한 백성이라도 선(善)을 쌓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반드시 안회(顏回)3와 민자건(閔子騫)4과 같은 현명함에 이르고, 악(惡)을 쌓는 것을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걸(桀)5과 도척(跖)6과 같은 악명에 이른다. 비단 평범한 백성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다. 신하 또한 그러하여, 바름을 쌓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반드시 절개와 의로움의 뜻이 생기고, 간사함을 쌓는 것을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포악하고 시해하는 마음이 생긴다. 비단 신하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다. 군주 또한 그러하여, 정치와 교화로 덕을 쌓으면, 반드시 편안하고 태평한 복에 이르고, 거동과 조치에 자주 실수가 있으면, 반드시 위태롭고 망하는 화에 이른다. 그러므로 중니(仲尼)7가 말하기를: 탕(湯)8과 무(武)9는 한 가지 선행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요, 걸(桀)과 주(紂)10는 한 가지 악행으로 망한 것이 아니다. 삼대(三代)11의 흥망성쇠는 그들이 쌓은 바에 달려 있다. 선을 많이 쌓은 자는 비록 한 가지 악행이 있을지라도, 이는 과실이라 일컬어지며, 망하기에 부족하다. 악을 많이 쌓은 자는 비록 한 가지 선행이 있을지라도, 이는 우연히 맞춘 것이라 일컬어지며, 보존되기에 부족하다. 군주가 이 말을 들으면 두려워할 수 있고, 평범한 백성이 이 말을 들으면 얼굴빛을 고칠 수 있다.


3

원문
是故君子「戰戰慄慄,日慎一日」,克己三省,「不見是圖」。孔子曰:「善不𥢢不足以成名,惡不積不足以滅身。

번역문
이 때문에 군자는 “두려워하고 떨며, 날마다 더욱 신중히 하고12,” 자신을 극복하고 세 번 반성하며13, “드러나지 않는 것을 헤아린다14.”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15, “선(善)이 쌓이지 않으면16 명성을 이룰 수 없고, 악(惡)이 쌓이지 않으면 몸을 멸망시킬 수 없다.”


4

원문
「夫賢聖卑革,則登其福。慶封、伯,荒淫于酒,沈湎無度,以弊其家。晉平殆政,惑以喪志,良臣弗匡,故俱有禍。楚莊、齊威,始有荒淫之行,削弱之敗,幾於亂亡,中能感悟,勤恤民事,勞精苦思,孜孜不怠,夫出陳應,爵命管蘇,召即墨,烹阿大夫,故能中興,彊霸諸侯,當時尊顯,後世見思,傳為令名,載在圖籍。由此言之,有希人君,其行一也,知己曰明,自勝曰彊。夫有不善未嘗不知,知之未嘗復行,此顏子所以稱庶幾也。《詩》曰:『天祿定爾,亦孔之固。俾爾亶厚,胡福不除?』足以滅身。

번역문
무릇 현명하고 성스러운 자가 낮은 곳에 처하면17, 그 복이 올라간다. 경봉(慶封)18과 백(伯)19은 술에 빠져 방탕하고20, 한없이 탐닉하여21 그 집안을 망쳤다. 진(晉)나라 평공(平公)22은 정치가 위태로웠고23, (여색에) 현혹되어 뜻을 잃었으며24, 훌륭한 신하가 바로잡아주지 못했으므로, 모두 화를 입었다. 초(楚)나라 장왕(莊王)25과 제(齊)나라 위왕(威王)26은 처음에는 방탕하고 음란한 행실이 있어27, 쇠약해지고 패배하여28 거의 혼란과 멸망에 이르렀으나, 중간에 깨달아 감동하고29, 백성의 일에 부지런히 힘쓰며30, 정신을 수고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생각하며31,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여32, 진응(陳應)33을 내보내고34, 관소(管蘇)35에게 작위를 내리고36, 즉묵(即墨)37을 불러들이고38, 아대부(阿大夫)39를 삶아 죽였으므로40, 중흥을 이루고41, 제후들 사이에서 강자로 군림하여 패자(霸者)가 될 수 있었다. 당대에 존귀하고 현명하게 여겨졌으며, 후세에 추모되어, 아름다운 명성을 전하고, 도서(圖書)42에 실렸다. 이로써 말하건대, 군주를 희망하는 자가 있다면, 그 행실은 한결같아야 한다. 자신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하고,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함이라 한다. 무릇 불선(不善)함이 있어도 일찍이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고, 그것을 알면 일찍이 다시 행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안자(顏子)43가 거의 도에 가까웠다고 칭송받은 까닭이다. 『시(詩)』에 이르기를44, “하늘의 복록이 너에게 정해졌으니, 또한 매우 굳건하다. 너를 진실로 후하게 하면, 어떤 복인들 오지 않겠는가?45” 몸을 멸망시키기에 충분하다.


5

원문
「小人以小善謂無益而不為也,以小惡謂無傷而不去也,是以惡積而不可掩,罪大而不可解也。」此蹶、屬所以迷國而不返,三季所以遂往而不振者也。

번역문
“소인(小人)은 작은 선(善)을 무익하다고 여겨 행하지 않고, 작은 악(惡)을 무해하다고 여겨 버리지 않으니, 이 때문에 악이 쌓여 가릴 수 없게 되고, 죄가 커져 해결할 수 없게 된다46.” 이것이 궐(蹶)47과 속(屬)48이 나라를 미혹시키고 돌아오지 못하게 한 까닭이요, 삼계(三季)49가 마침내 나아가 떨쳐 일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6

원문
夫積微成顯,積著成,鄂譽鄂譽;鄂致存亡,聖人常慎其微也。文王小心翼翼,成王夙夜敬止,思慎微眇,早防未萌,故能太平而傳子孫。

번역문
무릇 미미한 것이 쌓여 드러나게 되고, 드러난 것이 쌓여 (큰 결과를) 이루며, (좋은) 명성이 쌓여 (좋은 결과를) 이루고; (나쁜) 명성이 쌓여 존망에 이르게 되니, 성인(聖人)은 항상 그 미미한 것을 신중히 한다. 문왕(文王)50은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51,” 성왕(成王)52은 “밤낮으로 공경하고 그치지 않으며53,” 미세한 것을 신중히 생각하고, 아직 싹트지 않은 것을 일찍이 막았으므로, 태평성대를 이루어 자손에게 전할 수 있었다.


7

원문
且夫邪之與正,猶水與火不同原,不得並盛。正性勝,則遂重己不忍虧也,故伯夷餓死而不恨。邪性勝,則忸怵而不忍舍也,故王莽竊位而不慚。積惡習之所致也。夫積惡習非久,致死亡非一也。世品人遂。

번역문
또한 무릇 간사함과 바름은, 마치 물과 불이 근원이 달라 함께 성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바른 본성이 이기면, 마침내 자신을 중히 여겨 (덕을) 훼손하지 못하니54, 그러므로 백이(伯夷)55는 굶어 죽으면서도 한탄하지 않았다. 간사한 본성이 이기면,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악행을) 버리지 못하니56, 그러므로 왕망(王莽)57은 제위를 훔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는 모두) 악을 쌓고 습관화한 결과이다. 무릇 악을 쌓고 습관화하는 것이 오래되지 않아도, 죽음에 이르는 것이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마침내 (그렇게 된다).


8

원문
「俾爾多益,以莫不庶。」善也此言也,言天保佐王者,定其性命,甚堅固也。使汝信厚,何不治?而多益之,甚庶眾焉。不遵履五常,順養性命,以保南山之壽、松柏之茂也?

번역문
“너에게 많은 이로움을 더하여, 풍성하지 않음이 없게 하리라58.” 이 말은 선(善)한 말이다. 하늘이 왕을 돕고 보좌하여, 그 성명(性命)을 정해줌이 매우 견고하다는 것을 말한다. 너를 진실로 후하게 하면, 어찌 다스려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많은 이로움을 더하여, 매우 풍성하게 할 것이다. 오상(五常)59을 따르지 않고, 성명(性命)을 순조롭게 기르지 않으면서, 남산(南山)의 수명60과 송백(松柏)의 무성함61을 보전하려 하는가?


9

원문
「德輶如毛」,為仁由己。「莫與併蜂,自求辛螫。」禍福無門,唯人所召。天之所助者順也,人之所尚者信也,履信思乎順,又以尚賢,是以吉無不利也。亮哉斯言!可無思乎?

번역문
“덕은 깃털처럼 가벼워도62,” 인(仁)을 행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63. “벌과 함께 나란히 하지 말라, 스스로 쏘임을 구하게 될 것이다64.” 화와 복은 정해진 문이 없고, 오직 사람이 불러들이는 바이다. 하늘이 돕는 것은 순리(順理)요, 사람이 숭상하는 것은 신의(信義)이다. 신의를 실천하고 순리를 생각하며, 또한 현명한 자를 숭상하면, 이로써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밝고도 훌륭한 말이여!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각주

  1. 숭산(嵩山): 중국 오악(五嶽) 중 중악(中嶽)으로, 매우 높은 산을 상징한다.
  2. 황천(黃泉): 지하 세계, 죽은 자의 세계를 의미하며, 매우 깊은 곳을 상징한다.
  3. 안회(顏回): 공자의 수제자로, 덕행이 뛰어나고 청빈한 삶을 살았다.
  4. 민자건(閔子騫): 공자의 제자로, 효성이 지극하고 덕행이 뛰어났다.
  5. 걸(桀): 중국 하(夏)나라의 마지막 군주로, 폭군으로 악명 높다.
  6. 도척(跖): 춘추시대의 유명한 도적으로, 잔인하고 포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7. 중니(仲尼): 공자(孔子)의 자(字).
  8. 탕(湯): 은(殷)나라를 세운 성군.
  9. 무(武): 주(周)나라를 세운 성군.
  10. 주(紂):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로, 폭군으로 악명 높다.
  11. 삼대(三代): 하(夏), 은(殷), 주(周) 세 왕조를 통칭하는 말.
  12. “두려워하고 떨며, 날마다 더욱 신중히 하고”: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无咎" (군자는 종일토록 부지런히 노력하고, 저녁에는 경계하는 듯하여,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다)와 유사한 의미.
  13. 자신을 극복하고 세 번 반성하며(克己三省): 『논어(論語)』 「학이(學而)」 편에 나오는 증자(曾子)의 말 "吾日三省吾身" (나는 날마다 내 몸을 세 번 반성한다)과 유사한 의미.
  14. “드러나지 않는 것을 헤아린다(不見是圖)”: 『중용(中庸)』에 나오는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慎其獨也" (숨겨진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미미한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를 신중히 한다)와 유사한 의미. 즉, 드러나지 않는 미미한 부분까지도 헤아려 신중히 한다는 뜻.
  15.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주역(周易)』 「계사하전(繫辭下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16. 선(善)이 쌓이지 않으면(善不𥢢): '𥢢(누)'는 '쌓이다', '모이다'는 뜻.
  17. 낮은 곳에 처하면(卑革): '卑(비)'는 '낮다', '革(혁)'은 '처하다', '변하다'는 뜻. 즉, 낮은 지위에 있거나 겸손하게 처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18. 경봉(慶封):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대부로, 사치와 방탕으로 인해 결국 망했다.
  19. 백(伯):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백종(伯宗)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나, 백종은 청렴하고 직언을 잘하다가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여기서는 문맥상 방탕한 인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 다른 인물이거나, 혹은 백종의 아들 백주리(伯州犁)와 같은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20. 술에 빠져 방탕하고(荒淫于酒): '荒淫'은 '방탕하고 음란하다'는 뜻.
  21. 한없이 탐닉하여(沈湎無度): '沈湎(침면)'은 '술에 빠지다', '탐닉하다'는 뜻. '無度'는 '한도가 없다'는 뜻.
  22. 진(晉)나라 평공(平公):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군주로, 사치와 향락을 일삼아 국정을 문란하게 했다.
  23. 정치가 위태로웠고(殆政): '殆(태)'는 '위태롭다'는 뜻.
  24. (여색에) 현혹되어 뜻을 잃었으며(惑以喪志): '惑'은 '현혹되다', '喪志'는 '뜻을 잃다'는 뜻.
  25. 초(楚)나라 장왕(莊王):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군주로, 처음에는 방탕했으나 후에 각성하여 패자(霸者)가 되었다.
  26. 제(齊)나라 위왕(威王):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군주로, 처음에는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나 후에 각성하여 제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27. 방탕하고 음란한 행실이 있어(荒淫之行): '荒淫'은 '방탕하고 음란하다'는 뜻.
  28. 쇠약해지고 패배하여(削弱之敗): '削弱'은 '쇠약해지다', '약해지다'는 뜻.
  29. 중간에 깨달아 감동하고(中能感悟): '感悟'는 '깨달아 감동하다'는 뜻.
  30. 백성의 일에 부지런히 힘쓰며(勤恤民事): '勤恤(근휼)'은 '부지런히 힘쓰다', '백성의 어려움을 돌보다'는 뜻.
  31. 정신을 수고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생각하며(勞精苦思): '勞精'은 '정신을 수고롭게 하다', '苦思'는 '고통스럽게 생각하다'는 뜻.
  32.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여(孜孜不怠): '孜孜(자자)'는 '부지런히', '꾸준히'라는 뜻.
  33. 진응(陳應): 제(齊) 위왕(威王) 때의 현명한 관리.
  34. 내보내고(出): '出'은 '등용하다', '내보내다'는 뜻.
  35. 관소(管蘇): 제(齊) 위왕(威王) 때의 현명한 관리.
  36. 작위를 내리고(爵命): '爵命'은 '작위를 내리다', '관직을 임명하다'는 뜻.
  37. 즉묵(即墨): 제(齊) 위왕(威王) 때의 현명한 관리.
  38. 불러들이고(召): '召'는 '불러들이다', '등용하다'는 뜻.
  39. 아대부(阿大夫): 제(齊) 위왕(威王) 때의 간신.
  40. 삶아 죽였으므로(烹): '烹(팽)'은 '삶아 죽이다'는 뜻. 위왕이 아대부의 간사함을 알고 그를 삶아 죽였다는 일화.
  41. 중흥을 이루고(中興): 쇠퇴했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42. 도서(圖書): 그림과 글이 있는 책, 즉 역사 기록이나 문헌을 의미한다.
  43. 안자(顏子): 공자의 수제자 안회(顏回)를 지칭한다.
  44.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45. 너를 진실로 후하게 하면, 어떤 복인들 오지 않겠는가?: '俾爾亶厚,胡福不除?'는 '너를 진실로 후하게 하면, 어떤 복인들 오지 않겠는가?'라는 뜻으로, 덕을 쌓으면 복이 저절로 온다는 의미.
  46. “소인(小人)은 작은 선(善)을 무익하다고 여겨 행하지 않고, 작은 악(惡)을 무해하다고 여겨 버리지 않으니, 이 때문에 악이 쌓여 가릴 수 없게 되고, 죄가 커져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주역(周易)』 「계사하전(繫辭下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47. 궐(蹶): 정확한 인물은 불분명하나, 문맥상 간사하고 악한 무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48. 속(屬): 정확한 인물은 불분명하나, 문맥상 궐과 같은 간사하고 악한 무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49. 삼계(三季): 주(周)나라 말기, 노(魯)나라의 삼환(三桓)처럼 권력을 농단하여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세력들을 통칭하는 말.
  50. 문왕(文王): 주(周)나라의 시조.
  51.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시경(詩經)』 「대아(大雅)」 「대명(大明)」 편에 나오는 구절.
  52. 성왕(成王): 주(周)나라의 두 번째 왕으로, 주공(周公)의 보필을 받아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53. “밤낮으로 공경하고 그치지 않으며”: 『시경(詩經)』 「주송(周頌)」 「경지(敬之)」 편에 나오는 구절.
  54. 마침내 자신을 중히 여겨 (덕을) 훼손하지 못하니(遂重己不忍虧也): '重己'는 '자신을 중히 여기다', '不忍虧'는 '훼손하는 것을 참지 못하다'는 뜻.
  55. 백이(伯夷): 은(殷)나라 말기의 현인으로, 주(周)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자,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숙제와 함께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 죽었다.
  56.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악행을) 버리지 못하니(忸怵而不忍舍也): '忸怵(뉴출)'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다'는 뜻.
  57. 왕망(王莽): 신(新)나라를 세워 한(漢)나라를 찬탈한 인물.
  58. “너에게 많은 이로움을 더하여, 풍성하지 않음이 없게 하리라”: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 편에 나오는 구절.
  59. 오상(五常): 유교에서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60. 남산(南山)의 수명: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 편에 나오는 "如南山之壽" (남산의 수명과 같다)에서 유래한 말로, 장수를 기원하는 표현.
  61. 송백(松柏)의 무성함: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철 푸르러 변치 않는 절개와 장수를 상징한다.
  62. “덕은 깃털처럼 가벼워도”: 『서경(書經)』 「홍범(洪範)」 편에 나오는 구절. 덕이 비록 가벼운 깃털 같을지라도, 그 영향력은 크다는 의미.
  63. 인(仁)을 행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논어(論語)』 「안연(顏淵)」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為仁由己" (인을 행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에서 유래.
  64. “벌과 함께 나란히 하지 말라, 스스로 쏘임을 구하게 될 것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민(小旻)」 편에 나오는 구절. 위험한 존재와 가까이하면 스스로 화를 자초한다는 경고.

潛夫論(잠부론) - 實貢(실공)

1

원문
國以賢興,以謟衰,君以忠安,以忌危。此古今之常論,而世所共知也。然衰國危君繼踵不絕者,豈世無忠信正直之士哉?誠苦忠信正直之道不得行爾。

번역문
나라는 현명한 자로 인해 흥하고, 아첨하는 자로 인해 쇠하며1, 군주는 충성스러운 자로 인해 편안하고, 시기하는 자로 인해 위태로워진다. 이것은 고금(古今)의 변함없는 논리이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이다. 그러나 쇠퇴한 나라와 위태로운 군주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은, 어찌 세상에 충성스럽고 신의 있으며 정직한 선비가 없기 때문이겠는가? 진실로 충성스럽고 신의 있으며 정직한 도리가 행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원문
夫十步之間,必有茂草;十室之邑,必有俊士。賢材之生,日月相屬,未嘗乏絕。是故亂殷有三仁,小衛多君子。以漢之廣博,士民之眾多,朝廷之清明,上下之脩治,而官無直吏,位無良臣。此非今世之無賢也,乃賢者廢錮而不得達於聖主之朝爾。

번역문
무릇 열 걸음 사이에는 반드시 무성한 풀이 있고2; 열 집 되는 고을에는 반드시 뛰어난 선비가 있다3. 현명한 인재의 탄생은 날마다 이어져4, 일찍이 부족하거나 끊어진 적이 없다. 이 때문에 혼란스러운 은(殷)나라에도 삼인(三仁)5이 있었고, 작은 위(衛)나라에도 군자(君子)가 많았다6. 한(漢)나라의 넓고 광대한 영토와7, 선비와 백성의 많음, 조정의 청명함, 위아래의 잘 다스려짐에도 불구하고, 관직에 정직한 아전이 없고, 자리에 훌륭한 신하가 없다. 이것은 지금 세상에 현명한 자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현명한 자들이 폐기되고 갇혀8 성스러운 군주의 조정에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3

원문
夫志道者少友,逐俗者多儔。是以舉世多黨而用私,競比質而行趨華。貢士者,非復依其質榦,準其材行也,直虛造空美,掃地洞說。擇能者而書之,公卿刺史掾從事,茂才孝廉且二百員。歷察其狀,德侔顏淵、卜、冉,㝡其行能,多不及中。誠使皆如狀文,則是為歲得大賢二百也。然則災異曷為飢?此非其實之效。

번역문
무릇 도(道)를 뜻하는 자는 벗이 적고9, 세속을 좇는 자는 무리가 많다10. 이 때문에 온 세상이 당파를 많이 짓고 사사로움을 사용하며, 겉모습을 다투어 꾸미고 화려함을 좇는다11. 선비를 천거하는 자들은, 다시는 그 바탕과 근본에 의지하지 않고12, 그 재능과 행실에 준하지 않으며, 단지 헛되이 공허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13, 땅을 쓸어내듯이14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15. 능력이 있는 자를 선택하여 기록하는데, 공경(公卿)16, 자사(刺史)17, 연종사(掾從事)18, 무재(茂才)19, 효렴(孝廉)20이 대략 이백 명이나 된다. 그들의 상태를 두루 살펴보면, 덕은 안연(顏淵)21, 복상(卜商)22, 염옹(冉雍)23과 같다고 하지만, 그들의 행실과 능력은 대부분 중간에도 미치지 못한다. 진실로 모두 기록된 글과 같다면, 이는 해마다 이백 명의 대현(大賢)을 얻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재앙과 이변이 어찌 굶주림을 초래하겠는가? 이것은 그 실제적인 효과가 아니다.


4

원문
夫說梁飯食肉,有好於面,因而不若糲粢藜烝之可食於口也。圖西施、毛嬙,可悅於心,而不若醜妻陋妾之可御於前也。虛張高譽,彊蔽疵瑕,以相誑耀,有快於耳,而不若忠選實行可任於官也。周顯拘時,故蘇秦;燕噲利虛譽,故讓子之,皆舍實聽聲,嘔哇之過也。

번역문
무릇 잘 지은 밥과 고기를 먹는 것은24 겉으로 보기에 좋지만, 거친 쌀밥과 명아주 찐 것25처럼 입에 먹기 좋은 것만 못하다. 서시(西施)26와 모장(毛嬙)27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마음에 즐거움을 주지만, 못생긴 아내와 비천한 첩28처럼 앞에서 부릴 수 있는 것만 못하다. 헛되이 높은 명예를 과장하고29, 억지로 허물과 흠을 가려서30, 서로를 속이고 현혹하여31 귀에 즐거움을 주지만, 충성스럽게 선발된 실제적인 행실을 지닌 자가 관직에 임용될 만한 것만 못하다. 주(周)나라 현왕(顯王)32은 시세에 얽매여33 소진(蘇秦)34을 등용했고; 연(燕)나라 쾌왕(噲王)35은 헛된 명예를 탐하여36 자지(子之)37에게 (왕위를) 양보했으니38, 모두 실질을 버리고 명성만 들은39, 구역질 나는 과오이다.


5

원문
夫聖人純,賢者駮,周公不求備,四肢不相兼,況末世乎?是故高祖所輔佐,光武所將相,不遂偽舉,不責兼行,亡秦之所棄,王莽之所捐,二祖任用以誅暴亂,成致治安。太平之世,而云無士,數開橫選,而不得直,甚可憤也!

번역문
무릇 성인(聖人)은 순수하고40, 현자(賢者)는 섞여 있으며41, 주공(周公)42도 모든 것을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았고43, 사지(四肢)도 서로 겸할 수 없는데44, 하물며 말세(末世)에 있어서랴? 이 때문에 고조(高祖)45가 보좌로 삼고, 광무제(光武帝)46가 장수와 재상으로 삼은 자들은, 거짓된 천거를 따르지 않고47, 겸비한 행실을 요구하지 않았으며48, 망한 진(秦)나라가 버리고, 왕망(王莽)49이 내버린 자들을, 두 황제(고조와 광무제)가 임용하여 포악하고 혼란스러운 자들을 주살하고, 안정과 평화를 이루었다. 태평성대라고 하면서도 선비가 없다고 말하고, 여러 차례 비정상적인 선발을 열었으나50, 정직한 자를 얻지 못하니, 매우 분통 터지는 일이다!


6

원문
夫明君之詔也若聲,忠臣之和也當如響應,長短大小,清濁疾徐,必相和也。是故求馬問馬,求驢問驢,求鷹問鷹,求駹問駹。由此教令,則賞罰必也。

번역문
무릇 현명한 군주의 조서(詔書)는 소리와 같고, 충성스러운 신하의 화답은 메아리와 같아서51, 길고 짧음, 크고 작음, 맑고 탁함, 빠르고 느림이 반드시 서로 조화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말을 구하려면 말을 묻고52, 나귀를 구하려면 나귀를 물으며, 매를 구하려면 매를 묻고, 얼룩말을 구하려면 얼룩말을 묻는 것이다53. 이와 같은 가르침과 명령에 따르면, 상벌이 반드시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7

원문
夫高論而相欺,不若忠論而誠實。且攻王以石,治金以鹽,濯錦以魚,浣布以灰。夫物固有以賤治貴,以醜治好者矣。智者棄其所短而採其所長,以致其功,明君用士亦猶是也。物有所宜,不廢其材,況於人乎?

번역문
무릇 고상한 논의로 서로를 속이는 것은54, 충성스러운 논의로 성실하게 대하는 것만 못하다. 또한 옥을 돌로 다듬고55, 쇠를 소금으로 다스리며56, 비단을 물고기로 씻고57, 베를 재로 빠는 것과 같다58. 무릇 사물에는 본래 천한 것으로 귀한 것을 다스리고, 추한 것으로 좋은 것을 다스리는 경우가 있다. 지혜로운 자는 그 단점을 버리고 그 장점을 취하여 그 공적을 이루니, 현명한 군주가 선비를 등용하는 것도 이와 같다. 사물도 각기 적합한 쓰임이 있어 그 재료를 버리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8

원문
夫脩身慎行,敦方正直,清廉潔白,恬淡無為,化之本也。憂君哀民,獨覩亂原,好善嫉惡,賞罰嚴明,治之材也。明君兼善而兩納之,惡行之器也,為金玉寶政之材剛鐵用。無此二寶, 苟務作異以求名,詐靜以惑眾,則敗俗傷化。今世慕虛者,此謂堅白。堅白之行,明君所憎,而王制所不取。

번역문
무릇 몸을 닦고 행실을 삼가며, 돈독하고 방정하며 정직하고, 청렴결백하며, 고요하고 무위(無爲)한 것은59, 교화의 근본이다. 군주를 근심하고 백성을 슬퍼하며, 홀로 혼란의 근원을 보고60,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하며, 상벌을 엄정하게 밝히는 것은, 다스림의 재료이다. 현명한 군주는 이 두 가지 선(善)을 겸하여 모두 받아들이니, (이들은) 악행을 막는 도구이며61, 금옥(金玉)처럼 귀한 정치의 재료요 강철처럼 유용하다. 이 두 가지 보배가 없으면서, 구차하게 기이한 것을 만들어 명예를 구하고, 거짓으로 고요한 척하여 대중을 현혹하면, 풍속을 망치고 교화를 해친다. 지금 세상에 허황된 것을 숭상하는 자들은, 이를 '견백(堅白)'62이라 일컫는다. 견백의 행실은 현명한 군주가 미워하고, 왕의 제도에서 취하지 않는 바이다.


9

원문
是故選賢貢士,必考覈其清素,據實而言,其有小疵,勿彊衣飾,以壯虛聲。一能之士,各貢所長,出處默語,勿彊相兼,則蕭、曹、周、韓之論,何足得矣?吳、鄧、梁、竇之徒,而致十。各以所宜,量材授任,則庶官無曠,興功可成,太平可致,麒麟可臻。

번역문
이 때문에 현명한 자를 선발하고 선비를 천거할 때, 반드시 그 청렴하고 소박함을 조사하고63, 사실에 근거하여 말해야 한다. 만약 작은 흠이 있더라도, 억지로 꾸며서 헛된 명성을 드높이지 말라. 한 가지 재능을 지닌 선비는 각기 그 장점을 바치게 하고, 나아가고 물러나며 침묵하고 말하는 것을64, 억지로 서로 겸하게 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소하(蕭何)65, 조참(曹參)66, 주발(周勃)67, 한신(韓信)68과 같은 인물에 대한 논의가 어찌 충분하겠는가?69 오(吳)70, 등(鄧)71, 양(梁)72, 두(竇)73와 같은 무리들은 (나라를) 열 번이나 위태롭게 했다74. 각기 적합한 바에 따라, 재능을 헤아려 임무를 맡기면, 모든 관직에 빈자리가 없고75, 큰 공적을 이룰 수 있으며,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고, 기린(麒麟)76이 나타날 것이다.


10

원문
且燕小,其位卑,然昭王尚能招集他國之英俊,興誅暴亂,成致治彊。今漢土之廣慱,天子尊明,而曾無一良臣,此誠不愍兆黎之愁苦,不急賢人之佐治爾。孔子曰:「未之思也,夫何遠之有?」忠良之吏誠易得也,顧聖王欲之不爾。

번역문
또한 연(燕)나라는 작고, 그 지위는 비천했지만77, 그러나 소왕(昭王)78은 오히려 다른 나라의 영준한 인재들을 불러 모아79, 포악하고 혼란스러운 자들을 주살하고, 다스려지고 강성하게 만들 수 있었다. 지금 한(漢)나라의 영토는 넓고 광대하며, 천자는 존귀하고 밝은데도, 일찍이 한 명의 훌륭한 신하도 없으니, 이것은 진실로 백성들의 근심과 고통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현명한 사람의 보좌를 급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80, “아직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니, 어찌 멀리 있겠는가?81” 충성스럽고 훌륭한 관리는 진실로 쉽게 얻을 수 있는데, 다만 성왕(聖王)이 그들을 원하지 않을 뿐이다.


각주

  1. 아첨하는 자로 인해 쇠하며(以謟衰): '謟(첨)'은 '아첨하다'는 뜻. 아첨하는 간신배들로 인해 나라가 쇠퇴한다는 의미.
  2. 열 걸음 사이에는 반드시 무성한 풀이 있고: 자연 속에서 풀이 흔히 자라듯이, 인재도 세상에 널리 존재한다는 비유.
  3. 열 집 되는 고을에는 반드시 뛰어난 선비가 있다: 작은 마을에도 현명한 사람이 있다는 비유로, 인재가 어디에나 있음을 강조한다.
  4. 날마다 이어져(日月相屬): '日月'은 '날마다', '相屬'은 '이어지다', '계속되다'는 뜻.
  5. 삼인(三仁): 은(殷)나라 주왕(紂王) 때의 세 현인,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 이들은 주왕의 폭정에 간언하다가 각각 떠나거나, 노예가 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6. 작은 위(衛)나라에도 군자(君子)가 많았다: 춘추시대 위(衛)나라는 작은 나라였지만, 『논어』 등에서 여러 군자들이 언급된다. 예를 들어, 위령공(衛靈公) 시대에 거백옥(蘧伯玉)과 같은 현인이 있었다.
  7. 한(漢)나라의 넓고 광대한 영토(漢之廣博): 한나라의 광대한 영토를 언급하며, 그에 걸맞은 인재가 많아야 함을 강조한다.
  8. 폐기되고 갇혀(廢錮): '廢(폐)'는 '버려지다', '錮(고)'는 '갇히다', '등용되지 못하다'는 뜻. 현명한 자들이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억압받는 현실을 비판한다.
  9. 도(道)를 뜻하는 자는 벗이 적고: 진정한 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세속적인 이익을 좇지 않으므로, 동지가 적다는 의미.
  10. 세속을 좇는 자는 무리가 많다: 세속적인 이익이나 명예를 좇는 사람들은 서로 무리를 짓기 쉽다는 의미.
  11. 겉모습을 다투어 꾸미고 화려함을 좇는다(競比質而行趨華): '比質'은 '겉모습을 다투다', '趨華'는 '화려함을 좇다'는 뜻.
  12. 그 바탕과 근본에 의지하지 않고(非復依其質榦): '質榦(질간)'은 '바탕과 근본', '본질'을 의미한다.
  13. 헛되이 공허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虛造空美): 실속 없이 겉으로만 아름답게 꾸민다는 의미.
  14. 땅을 쓸어내듯이(掃地): '掃地'는 '땅을 쓸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모두 쓸어버리다', '철저하게'라는 의미로 쓰여,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15.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洞說): '洞說'은 '터무니없는 말', '허황된 말'을 의미한다.
  16. 공경(公卿):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을 통칭하는 고위 관직.
  17. 자사(刺史): 한(漢)나라 때 주의 감찰관.
  18. 연종사(掾從事): 지방 관청의 하급 관리.
  19. 무재(茂才): 한(漢)나라 때 인재 선발 과목 중 하나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를 천거하는 제도.
  20. 효렴(孝廉): 한(漢)나라 때 인재 선발 과목 중 하나로, 효도와 청렴함을 갖춘 자를 천거하는 제도.
  21. 안연(顏淵): 공자의 수제자로, 덕행이 뛰어나고 청빈한 삶을 살았다.
  22. 복상(卜商):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의 이름. 학문과 문학에 뛰어났다.
  23. 염옹(冉雍): 공자의 제자 중궁(仲弓)의 이름. 덕행이 뛰어났다.
  24. 잘 지은 밥과 고기를 먹는 것은(說梁飯食肉): '說(열)'은 '기쁘다', '즐겁다'는 뜻. '梁飯(량반)'은 '잘 지은 밥', '食肉'은 '고기를 먹다'는 뜻.
  25. 거친 쌀밥과 명아주 찐 것(糲粢藜烝): '糲(려)'는 '거친 쌀', '粢(자)'는 '기장', '藜(려)'는 '명아주', '烝(증)'은 '찌다'는 뜻. 소박하고 실용적인 음식을 비유한다.
  26. 서시(西施): 중국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미녀로,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
  27. 모장(毛嬙):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미녀. 서시와 함께 미인의 대명사로 불렸다.
  28. 못생긴 아내와 비천한 첩(醜妻陋妾): 외모는 뛰어나지 않지만 실용적인 존재를 비유한다.
  29. 헛되이 높은 명예를 과장하고(虛張高譽): '虛張'은 '헛되이 과장하다', '高譽'는 '높은 명예'를 의미한다.
  30. 억지로 허물과 흠을 가려서(彊蔽疵瑕): '彊(강)'은 '억지로', '蔽(폐)'는 '가리다', '疵瑕(자하)'는 '허물과 흠'을 의미한다.
  31. 서로를 속이고 현혹하여(以相誑耀): '誑耀(광요)'는 '속이고 현혹하다'는 뜻.
  32. 주(周)나라 현왕(顯王): 전국시대 주(周)나라의 왕.
  33. 시세에 얽매여(拘時): '拘時'는 '시세에 얽매이다', '시대의 흐름에 구속되다'는 뜻.
  34. 소진(蘇秦): 전국시대 종횡가(縱橫家)의 대표적인 인물로, 육국(六國)의 재상을 겸하며 합종책(合從策)을 펼쳤다.
  35. 연(燕)나라 쾌왕(噲王):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왕.
  36. 헛된 명예를 탐하여(利虛譽): '利虛譽'는 '헛된 명예를 이롭게 여기다', '탐하다'는 뜻.
  37. 자지(子之): 연(燕)나라 쾌왕의 재상.
  38. (왕위를) 양보했으니(讓): 쾌왕이 자지의 말을 믿고 왕위를 자지에게 양보했다가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결국 망했다.
  39. 실질을 버리고 명성만 들은(舍實聽聲): 실속은 없고 겉으로 드러나는 명성이나 소문만 좇았다는 비판.
  40. 성인(聖人)은 순수하고(聖人純): 성인은 덕성이 완전하고 흠이 없다는 의미.
  41. 현자(賢者)는 섞여 있으며(賢者駮): '駮(박)'은 '섞이다', '순수하지 않다'는 뜻. 현자는 성인만큼 완전하지 않고, 장점과 단점이 섞여 있다는 의미.
  42. 주공(周公): 주(周)나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아우로, 무왕 사후 어린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하며 주나라의 기틀을 다진 현명한 인물.
  43. 모든 것을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았고(不求備): 주공이 인재를 등용할 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고, 각자의 장점을 살려 썼다는 의미.
  44. 사지(四肢)도 서로 겸할 수 없는데(四肢不相兼): 팔다리가 각기 다른 기능을 하듯이, 사람도 모든 재능을 겸비하기 어렵다는 비유.
  45. 고조(高祖):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의 묘호.
  46. 광무제(光武帝): 후한(後漢)을 세운 황제.
  47. 거짓된 천거를 따르지 않고(不遂偽舉): '偽舉'는 '거짓된 천거', '부당한 추천'을 의미한다.
  48. 겸비한 행실을 요구하지 않았으며(不責兼行): '兼行'은 '모든 것을 겸비한 행실'을 의미한다. 즉,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재만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의미.
  49. 왕망(王莽): 신(新)나라를 세워 한(漢)나라를 찬탈한 인물.
  50. 비정상적인 선발을 열었으나(數開橫選): '橫選'은 '비정상적인 선발', '부당한 선발'을 의미한다.
  51. 현명한 군주의 조서(詔書)는 소리와 같고, 충성스러운 신하의 화답은 메아리와 같아서: 군주의 명령과 신하의 응답이 서로 조화롭게 일치해야 한다는 비유.
  52. 말을 구하려면 말을 묻고: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 본질에 맞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의미.
  53. 얼룩말을 구하려면 얼룩말을 묻는 것이다(求駹問駹): '駹(망)'은 '얼룩말'을 의미한다. 즉,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대상을 구하려면 그에 맞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비유.
  54. 고상한 논의로 서로를 속이는 것은(高論而相欺):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는 말로 서로를 기만하는 것을 비판한다.
  55. 옥을 돌로 다듬고(攻王以石): '攻(공)'은 '다듬다', '가공하다'는 뜻. '王(왕)'은 '옥'을 의미한다. 귀한 옥도 평범한 돌(도구)로 다듬어야 한다는 비유.
  56. 쇠를 소금으로 다스리며(治金以鹽): 쇠를 제련하거나 녹을 제거하는 데 소금이 사용될 수 있음을 비유한다.
  57. 비단을 물고기로 씻고(濯錦以魚): 비단을 세탁하는 데 물고기가 사용될 수 있다는 비유. (실제로는 물고기 비늘이나 내장으로 비단을 닦아 광택을 냈다는 설이 있다.)
  58. 베를 재로 빠는 것과 같다(浣布以灰): 베를 세탁하는 데 재(잿물)가 사용될 수 있음을 비유한다.
  59. 고요하고 무위(無爲)한 것은: '恬淡無為(염담무위)'는 '욕심 없이 담담하고 인위적인 것을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60. 홀로 혼란의 근원을 보고(獨覩亂原): 혼란의 근본 원인을 통찰한다는 의미.
  61. 악행을 막는 도구이며(惡行之器也): 악한 행위를 제어하는 수단이 된다는 의미.
  62. '견백(堅白)': 전국시대 명가(名家) 공손룡(公孫龍)의 '견백론(堅白論)'을 지칭한다. '돌은 단단하고 희다'는 명제를 통해 사물의 속성과 명칭의 관계를 논한 것으로, 여기서는 실속 없이 말장난만 하는 허황된 논의를 비판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63. 그 청렴하고 소박함을 조사하고(考覈其清素): '考覈(고핵)'은 '조사하여 확인하다', '清素(청소)'는 '청렴하고 소박함'을 의미한다.
  64. 나아가고 물러나며 침묵하고 말하는 것을(出處默語): '出處'는 '나아가 관직에 임하거나 물러나 은둔함', '默語'는 '침묵하거나 말함'을 의미한다. 즉, 인재의 다양한 행태를 포괄한다.
  65. 소하(蕭何):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재상으로, 행정 및 법률 정비에 큰 공을 세웠다.
  66. 조참(曹參):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재상으로, 소하의 뒤를 이어 무위(無爲)의 정치를 펼쳤다.
  67. 주발(周勃):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개국공신으로, 군사적 재능이 뛰어났다.
  68. 한신(韓信):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명장으로,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69. 소하(蕭何), 조참(曹參), 주발(周勃), 한신(韓信)과 같은 인물에 대한 논의가 어찌 충분하겠는가?: 이들은 각기 뛰어난 한 가지 재능을 지녔던 인물들이다. 만약 모든 것을 겸비한 완벽한 인재만을 고집한다면, 이들처럼 특정 분야에 특출난 인재들을 놓치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즉, 이들의 공적을 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반어적인 표현.
  70. 오(吳):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의 오왕(吳王) 유비(劉濞). 칠국(七國)의 난을 일으켰다.
  71. 등(鄧): 후한(後漢) 화제(和帝) 때의 외척 등즐(鄧騭). 권력을 농단했다.
  72. 양(梁):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의 외척 양기(梁冀). 권력을 농단했다.
  73. 두(竇): 후한(後漢) 장제(章帝) 때의 외척 두헌(竇憲). 권력을 농단했다.
  74. (나라를) 열 번이나 위태롭게 했다(而致十): '致十'은 '열 번에 이르다', '열 번이나 초래하다'는 뜻. 즉, 이들 외척 세력들이 여러 차례 나라를 위태롭게 했다는 의미.
  75. 모든 관직에 빈자리가 없고(庶官無曠): '曠(광)'은 '비다', '소홀하다'는 뜻.
  76. 기린(麒麟): 상상의 동물로, 성군이 나타나 태평성대가 이루어질 때 나타난다고 전해지는 상서로운 징조.
  77. 연(燕)나라는 작고, 그 지위는 비천했지만: 전국시대 연나라는 다른 강대국들에 비해 약소국이었다.
  78. 소왕(昭王):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왕. 곽외(郭隗)의 조언을 받아들여 천금을 들여 인재를 초빙하는 등 현명한 인재 등용 정책을 펼쳤다.
  79. 다른 나라의 영준한 인재들을 불러 모아(招集他國之英俊): 소왕이 곽외의 조언을 받아들여 인재를 초빙하는 대를 짓고, 악의(樂毅)와 같은 다른 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을 등용하여 연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다.
  80.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논어(論語)』 「이인(里仁)」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81. 아직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니, 어찌 멀리 있겠는가?: 인재를 얻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군주가 진정으로 인재를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미.

潛夫論(잠부론) - 班祿(반록)

1

원문
凡太古之時,烝黎初載,未有上下,而自順序,天未事焉,君未設焉。後稍矯虔,或相陵虐,侵漁不止,為萌巨害,於是天命聖人使司牧之,使不失性,四海蒙利,莫不被德,僉共奉戴,謂之天子。

번역문
무릇 태고(太古) 시절에는, 백성들1이 처음 세상에 살면서, 위아래가 없었고, 스스로 순서를 따랐으며, 하늘이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았고, 군주도 세워지지 않았다. 그 후 점차 교만하고 포악해져2, 혹은 서로를 능멸하고 학대하며, 침탈과 어업(어업은 여기서는 백성을 침탈하는 것에 비유)이 그치지 않아3, 거대한 해악이 싹텄다. 이에 하늘이 성인에게 명하여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으니4, 백성이 본성을 잃지 않게 하여, 사해(四海)5가 이로움을 입고, 덕을 입지 않은 이가 없게 되었다. 모두 함께 받들어 모시며, 그를 천자(天子)6라고 불렀다.


2

원문
故天之立君,非私此人也,以役民,蓋以誅暴除害利黎元也。是以人謀鬼謀,能者處之。《詩》云:「皇矣上帝!臨下以赫。監觀四方,求民之瘼。惟此二國,其政不獲。惟此四國,爰究爰度?上帝指之,憎其式惡。乃睠西顧,此惟與度。」蓋此言也,言夏、殷二國之政不得,乃用奢夸廓大,上帝憎之,更求民之瘼聖人,與天下四國究度而使居之也。

번역문
그러므로 하늘이 군주를 세운 것은, 이 사람을 사사로이 위함이 아니요, 백성을 부리기 위함도 아니며7, 대개 포악한 자를 주살하고 해악을 제거하여 백성들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사람의 지혜와 귀신의 지혜를 다하여8, 능력 있는 자가 그 자리에 있게 된다. 『시(詩)』에 이르기를9, “위대하신 상제(上帝)시여! 아래에 임하시어 밝게 살피시네. 사방을 두루 보시며, 백성의 고통을 구하시네10. 오직 이 두 나라(하, 은)는, 그 정치를 얻지 못하였네. 오직 이 네 나라(사방의 제후국)는, 이에 연구하고 헤아렸는가?11 상제께서 그들을 지목하시고, 그들의 악행을 미워하시네. 이에 서쪽을 돌아보시니12, 이것이 바로 (천명을) 주시고 헤아리신 것이네.” 대개 이 말은, 하(夏)13와 은(殷)14 두 나라의 정치가 올바르지 못하여, 사치하고 과장하며15 영토를 확장하는 데 힘썼으므로, 상제께서 그들을 미워하시고, 다시 백성의 고통을 구제할 성인을 찾아, 천하의 사방 제후국과 함께 연구하고 헤아려 그를 (천자의 자리에)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3

원문
前招良人,疾奢夸廓無紀極也,乃惟度法象,明著禮秩,為優憲藝,縣之無窮。故《傳》曰:「制禮,上物不過十二,天之道也。」是以先聖籍田有制,供神有度,奉己有節,禮賢有數,上下大小,貴賤親踈,皆有等威,階級衰殺,各足祿其爵位,公私達其等級,禮行德義。

번역문
옛날에는 훌륭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사치하고 과장하며 한계가 없는 것을 싫어하여16, 이에 법도를 헤아리고 본받아, 예절과 등급을 밝히고, 훌륭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17, 무궁토록 본보기로 삼았다. 그러므로 『전(傳)』에 이르기를18, “예(禮)를 제정함에 있어, 윗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은 열두 가지를 넘지 않으니, 이는 하늘의 도이다.” 이 때문에 선성(先聖)19은 적전(籍田)20에 제도가 있었고, 신에게 제사 지내는 데 법도가 있었으며, 자신을 봉양하는 데 절제가 있었고, 현명한 자를 예우하는 데 정해진 수가 있었으니, 위아래, 크고 작음, 귀하고 천함, 친하고 소원함에 모두 등급과 위엄이 있었고21, 계급에 따라 녹봉이 줄어들었으며22, 각기 그 작위(爵位)에 합당한 녹봉을 받았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그 등급에 따라 통달하여23, 예절과 덕의가 행해졌다.


4

원문
當此之時也,九州之內,合三千里,爾八百國。其班祿也,以上農為正,始於庶人在官者,祿足以代耕,蓋食九人。諸侯下士亦然。中士倍下士,食十八人。上士倍中士,食三十六人。大夫倍之,食七十二人。小國之卿,二於大夫。次國之卿,三於大夫。大國之卿,四於大夫,食二百八十八人。君各什其卿。天子三公侯采視公侯,蓋方百里。卿采視伯,方七十里。大夫視子男,方五十里。元士視附庸,方三十里。功成者封。是故官政專公,不慮私家;子弟事學,不於財利,閉門自守,不與民交爭,而無飢寒之道,而不陷;臣養優而不隘,吏愛官而不貪,民安靜而彊力,此則太平之基立矣。乃惟慎貢選,明必黜陟,官得其人,人任其職;「欽若昊天,敬授民時」,「同我婦子,饁彼南畝」;上務節禮,正身示下,下悅其政,各樂竭己奉戴其上。是以天地交泰,陰陽和平,民無姦匿,機衡不傾,德氣流布而頌聲作也。

번역문
이때에는, 구주(九州)24 안이 합하여 삼천 리였고, 팔백 개의 나라가 있었다. 그 녹봉을 나누는 것은, 상농(上農)25을 기준으로 삼아, 관직에 있는 서민(庶人)26으로부터 시작하여, 녹봉이 밭을 가는 것을 대신할 만하여, 대개 아홉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제후(諸侯)의 하사(下士)27도 또한 그러하였다. 중사(中士)28는 하사의 두 배로, 열여덟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상사(上士)29는 중사의 두 배로, 서른여섯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대부(大夫)30는 그 두 배로, 일흔두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소국(小國)의 경(卿)31은 대부의 두 배였다. 다음 가는 나라의 경은 대부의 세 배였다. 대국(大國)의 경은 대부의 네 배로, 이백팔십팔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군주(君)는 각기 그 경(卿)의 열 배를 받았다32. 천자(天子)의 삼공(三公)33과 제후(侯)의 채읍(采邑)34은 공후(公侯)35의 봉토와 같았으니, 대개 사방 백 리였다. 경(卿)의 채읍은 백(伯)36의 봉토와 같았으니, 사방 칠십 리였다. 대부(大夫)의 채읍은 자(子)37와 남(男)38의 봉토와 같았으니, 사방 오십 리였다. 원사(元士)39의 채읍은 부용(附庸)40의 봉토와 같았으니, 사방 삼십 리였다. 공적을 이룬 자는 봉해졌다. 이 때문에 관청의 정사는 오직 공정하여, 사사로운 집안을 염려하지 않았고; 자제들은 학문에 힘쓰고, 재물과 이익을 탐하지 않았으며, 문을 닫고 스스로를 지켜41,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았고, 굶주림과 추위의 도리가 없어42, (곤궁에) 빠지지 않았다. 신하는 봉양이 넉넉하여 궁핍하지 않았고43, 아전은 관직을 사랑하여 탐욕스럽지 않았으며, 백성은 편안하고 고요하며 강인했으니, 이것이 바로 태평성대의 기초가 확립된 것이다. 이에 선발을 신중히 하고, 밝게 강등시키고 승진시키는 것을 반드시 행하여44, 관직은 그 적임자를 얻고, 사람은 그 직책을 맡게 하였다. “공경히 넓고 큰 하늘을 본받아, 백성에게 때에 맞춰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고45,” “우리 처자식과 함께, 저 남쪽 밭에 점심을 나르네46.” 위에서는 예절을 절제하는 데 힘쓰고, 몸을 바르게 하여 아랫사람에게 본보기를 보였으며, 아랫사람은 그 정치를 기뻐하고, 각기 자신을 다하여 윗사람을 받들어 모셨다. 이로써 천지(天地)가 조화롭고47, 음양(陰陽)이 화평하며, 백성에게 간사하게 숨는 자가 없고, 기강(機衡)48이 기울어지지 않아, 덕스러운 기운이 널리 퍼지고 칭송의 소리가 일어났다.


5

원문
其後忽養賢而《鹿鳴》思,背宗族而《采蘩》怨,履畝稅而《碩鼠》作,賦歛重譯告通,班祿頗而《傾甫》賴,行人定而《緜蠻》諷,故遂耗亂衰弱。

번역문
그 후 현명한 자를 기르는 것을 소홀히 하여 『녹명(鹿鳴)』49을 생각하게 되었고, 종족을 등한시하여 『채번(采蘩)』50의 원망이 생겼으며, 밭에 세금을 부과하여 『석서(碩鼠)』51가 지어졌고, 부세(賦稅)와 공물(貢物)이 거듭 통고되어52, 녹봉을 나누는 것이 치우쳐53 『경보(傾甫)』54에 의지하게 되었고, 나그네가 정착하여55 『면만(緜蠻)』56으로 풍자하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마침내 소모되고 혼란스러워져 쇠약해졌다.


6

원문
及周室微而五伯作,六國弊而暴秦興,背義理而尚威力,滅興禮而行貪叨,重賦歛以厚己,彊臣下以弱枝,文德不獲封爵,列侯不獲。是以賢者不能行禮以從道,品臣不能無枉以從利。君又驟赦以縱賦,民無恥而多盜竊。

번역문
주(周)나라 왕실이 쇠약해지자 오패(五伯)57가 일어났고, 육국(六國)58이 피폐해지자 포악한 진(秦)나라가 흥성하였다. 의리(義理)를 등지고 위력(威力)을 숭상하며, 예절을 없애고 탐욕스러운 행위를 일삼았으며59,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자신을 살찌우고, 신하들을 강압하여 제후들을 약화시켰다60. 문덕(文德)을 지닌 자는 봉작(封爵)을 얻지 못하고61, 열후(列侯)62는 (그 지위를) 얻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현명한 자는 예절을 행하여 도를 따를 수 없었고, 평범한 신하는 이익을 좇아 왜곡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주는 또한 자주 사면하여63 (백성에게) 세금을 함부로 부과하게 하니64, 백성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도둑질이 많아졌다.


7

원문
何者?咸氣加而化上風,患害切而迫飢寒,此滅絕所以不能詰其盜者也。《詩》云:「大風有隧,貪人敗類。」「爾之教矣,民斯效矣。」是故先王將發號施令,諄諄如也,唯恐不中而道於邪,故作典以為民極,上下共之,無有私曲,三府制法,未聞赦彼有罪,獄貨惟寶者也。

번역문
무엇 때문인가? (간사한) 기운이 더해져 위에서부터 풍속이 변하고65, 환난이 절박하여 굶주림과 추위가 닥치니, 이것이 바로 (나라가) 멸망하여 그 도둑들을 다스릴 수 없는 까닭이다. 『시(詩)』에 이르기를66, “큰 바람에 길이 나듯이67, 탐욕스러운 자는 그 무리를 망친다68.”고 하였고, “너희가 가르치면, 백성이 이에 본받는다69.”고 하였다. 이 때문에 선왕(先王)70이 명령을 내릴 때, 간곡하고 정성스러웠으니71, 오직 (명령이) 적중하지 못하여 사악한 길로 흐를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법전을 만들어 백성의 표준으로 삼고72, 위아래가 함께 따르며, 사사로운 편파가 없었고, 삼부(三府)73가 법을 제정하여, 죄 있는 자를 사면하거나, 옥중의 재물을 보배로 삼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74.


8

원문
是故明君臨眾,必以正軌,既無猒有,務節禮而厚下,復德而崇化,使皆阜於養生而競於廉恥也。是以官長正而百姓化,邪心黜而姦匿絕,然後乃能協和氣而致太平也。《易》曰:「聖人養賢以及萬民。」為本,君以臣為基,然後高能可崇也;馬肥,然後遠能可致也。人君不務此而欲致太平,此猶薄趾而望高墻,驥瘠而責遠道,其不可得也必矣。

번역문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가 백성을 다스릴 때는, 반드시 바른 궤도에 따라75, 이미 재물에 싫증 내지 않고76, 예절을 절제하고 아랫사람을 후하게 대하며, 덕을 회복하고 교화를 숭상하여, 모두 생업에 풍족하고77 청렴과 부끄러움을 다투게 한다. 이로써 관장(官長)78이 바르면 백성이 교화되고, 간사한 마음이 물러나고 간사하게 숨는 자가 끊어지며, 그 후에야 비로소 화합하는 기운을 조화롭게 하여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 『역(易)』에 이르기를79, “성인(聖人)은 현명한 자를 길러 만백성에게 미치게 한다80.”고 하였다.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군주는 신하를 기초로 삼은 후에야 높은 능력을 숭상할 수 있고; 말이 살쪄야 먼 길을 갈 수 있다. 군주가 이것에 힘쓰지 않고 태평성대를 이루려 한다면, 이는 마치 얇은 주춧돌로 높은 담장을 바라거나81, 여윈 준마(駿馬)에게 먼 길을 요구하는 것과 같으니82, 그것을 얻을 수 없음이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각주

  1. 백성들(烝黎): '烝(증)'은 '많다', '모든', '黎(려)'는 '검다'는 뜻으로, '검은 머리 백성', 즉 '일반 백성'을 의미한다.
  2. 교만하고 포악해져(矯虔): '矯(교)'는 '바로잡다'는 뜻 외에 '억지로 하다', '거만하다'는 뜻이 있고, '虔(건)'은 '공경하다'는 뜻 외에 '강하다', '포악하다'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교만하고 포악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3. 침탈과 어업(어업은 여기서는 백성을 침탈하는 것에 비유)이 그치지 않아(侵漁不止): '侵漁(침어)'는 '침략하여 어업을 하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백성을 침탈하고 착취하다'는 비유적인 의미로 쓰였다.
  4.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으니(司牧之): '司牧(사목)'은 '다스리다', '목양하다'는 뜻.
  5. 사해(四海): 천하, 온 세상을 의미한다.
  6. 천자(天子): 하늘의 아들, 즉 황제를 의미한다. 하늘의 명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
  7. 백성을 부리기 위함도 아니며(以役民): '役民'은 '백성을 부리다', '백성을 노역시키다'는 뜻.
  8. 사람의 지혜와 귀신의 지혜를 다하여(人謀鬼謀): 인간의 지혜와 노력뿐만 아니라, 하늘의 뜻이나 신령한 도움까지 얻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통치자의 덕이 지극하여 천인감응(天人感應)을 이룬 상태를 나타낸다.
  9.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대아(大雅)」 「황의(皇矣)」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10. 백성의 고통을 구하시네(求民之瘼): '瘼(막)'은 '병', '고통'을 의미한다.
  11. 이에 연구하고 헤아렸는가?(爰究爰度?): '爰(원)'은 '이에', '究(구)'는 '연구하다', '度(도)'는 '헤아리다'는 뜻.
  12. 서쪽을 돌아보시니(睠西顧): 주(周)나라가 서쪽에 위치했으므로, 하늘이 주나라를 돌아보아 천명을 내렸다는 의미.
  13. 하(夏): 중국 고대 전설상의 첫 왕조.
  14. 은(殷): 중국 고대 상(商)나라의 다른 이름.
  15. 사치하고 과장하며(奢夸廓大): '奢夸'는 '사치하고 과장하다', '廓大'는 '확장하다'는 뜻.
  16. 사치하고 과장하며 한계가 없는 것을 싫어하여(疾奢夸廓無紀極也): '疾(질)'은 '싫어하다', '미워하다'는 뜻. '紀極(기극)'은 '한계', '규범'을 의미한다.
  17. 훌륭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為優憲藝): '優憲(우헌)'은 '훌륭한 법', '藝(예)'는 '제도', '규범'을 의미한다.
  18. 『전(傳)』에 이르기를: 『좌전(左傳)』 「환공(桓公) 2년」에 나오는 구절이다.
  19. 선성(先聖): 고대 중국의 현명한 성인 군주들을 통칭하는 말.
  20. 적전(籍田): 천자나 제후가 친히 밭을 갈아 농업의 중요성을 보였던 밭.
  21. 등급과 위엄이 있었고(等威): '等(등)'은 '등급', '威(위)'는 '위엄'을 의미한다.
  22. 계급에 따라 녹봉이 줄어들었으며(階級衰殺): '衰殺(쇠살)'은 '줄어들다', '감소하다'는 뜻.
  23.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그 등급에 따라 통달하여(公私達其等級):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이 그 등급에 맞게 처리되었다는 의미.
  24. 구주(九州): 고대 중국의 전 국토를 의미한다.
  25. 상농(上農): 농업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의미.
  26. 관직에 있는 서민(庶人): 일반 백성 출신으로 관직에 나아간 자.
  27. 하사(下士): 가장 낮은 등급의 선비.
  28. 중사(中士): 중간 등급의 선비.
  29. 상사(上士): 가장 높은 등급의 선비.
  30. 대부(大夫): 고대 중국의 관직명.
  31. 경(卿): 고대 중국의 고위 관직.
  32. 군주(君)는 각기 그 경(卿)의 열 배를 받았다(君各什其卿): '什(십)'은 '열 배'를 의미한다.
  33. 삼공(三公): 고대 중국의 가장 높은 세 명의 관직.
  34. 채읍(采邑): 제후나 대부에게 봉해진 영지.
  35. 공후(公侯): 오등작(五等爵) 중 공작과 후작.
  36. 백(伯): 오등작 중 백작.
  37. 자(子): 오등작 중 자작.
  38. 남(男): 오등작 중 남작.
  39. 원사(元士): 가장 낮은 등급의 관직.
  40. 부용(附庸): 작은 제후국이나 부속된 영지.
  41. 문을 닫고 스스로를 지켜(閉門自守): 사사로운 교류를 줄이고 본분에 충실했다는 의미.
  42. 굶주림과 추위의 도리가 없어(無飢寒之道): 굶주림과 추위가 발생할 여지가 없었다는 의미.
  43. 신하는 봉양이 넉넉하여 궁핍하지 않았고(臣養優而不隘): '優(우)'는 '넉넉하다', '隘(애)'는 '궁핍하다'는 뜻.
  44. 밝게 강등시키고 승진시키는 것을 반드시 행하여(明必黜陟): '黜陟(출척)'은 관리를 강등시키거나 승진시키는 인사 제도.
  45. 공경히 넓고 큰 하늘을 본받아, 백성에게 때에 맞춰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고(欽若昊天,敬授民時):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나오는 구절.
  46. 우리 처자식과 함께, 저 남쪽 밭에 점심을 나르네(同我婦子,饁彼南畝):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동(大東)」 편에 나오는 구절. 백성들이 평화롭게 농사짓는 모습을 묘사한다.
  47. 천지(天地)가 조화롭고(天地交泰): 『주역』의 태괘(泰卦)처럼 천지가 교류하여 만물이 번성하는 상태를 의미.
  48. 기강(機衡): 국가의 기강이나 질서.
  49. 『녹명(鹿鳴)』: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실린 시의 제목. 군주가 현명한 신하를 예우하고 연회에 초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는 현명한 자를 기르지 않아 이 시의 정신을 잃었음을 한탄하는 맥락.
  50. 『채번(采蘩)』: 『시경(詩經)』 「국풍(國風)」 「소남(召南)」에 실린 시의 제목. 종묘 제사에 쓰이는 쑥을 캐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종족의 화합과 제사의 중요성을 노래한다. 여기서는 종족을 등한시하여 이 시의 정신을 잃었음을 한탄하는 맥락.
  51. 『석서(碩鼠)』: 『시경(詩經)』 「국풍(國風)」 「위풍(魏風)」에 실린 시의 제목. 큰 쥐(탐욕스러운 관리)를 비판하며 백성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풍자한다.
  52. 부세(賦稅)와 공물(貢物)이 거듭 통고되어(賦歛重譯告通): '賦歛(부렴)'은 '부세와 공물', '重譯(중역)'은 '거듭', '告通(고통)'은 '통고하다'는 뜻.
  53. 녹봉을 나누는 것이 치우쳐(班祿頗): '頗(파)'는 '치우치다', '불공정하다'는 뜻.
  54. 『경보(傾甫)』: 『시경(詩經)』 「대아(大雅)」에 실린 시의 제목. 간신배들을 비판하고 군주의 잘못된 정치를 풍자한다.
  55. 나그네가 정착하여(行人定): '行人'은 '나그네', '정착하다'는 뜻.
  56. 『면만(緜蠻)』: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실린 시의 제목. 작은 새들이 짝을 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묘사하며, 백성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풍자하거나, 혹은 백성들이 흩어져 떠도는 모습을 비유할 수 있다.
  57. 오패(五伯): 춘추시대의 다섯 패자(齊桓公, 晉文公, 楚莊王, 吳王闔閭, 越王勾踐 또는 宋襄公, 秦穆公 등).
  58. 육국(六國): 전국시대의 주요 여섯 나라(齊, 楚, 燕, 韓, 趙, 魏).
  59. 예절을 없애고 탐욕스러운 행위를 일삼았으며(滅興禮而行貪叨): '滅興禮'는 '예절을 없애다', '貪叨(탐도)'는 '탐욕스럽다'는 뜻.
  60. 신하들을 강압하여 제후들을 약화시켰다(彊臣下以弱枝): '彊臣下'는 '신하들을 강압하다', '弱枝'는 '가지(제후)를 약화시키다'는 뜻.
  61. 문덕(文德)을 지닌 자는 봉작(封爵)을 얻지 못하고(文德不獲封爵): 덕행이 뛰어난 선비가 관직을 얻지 못했다는 의미.
  62. 열후(列侯): 제후의 작위 중 하나.
  63. 자주 사면하여(驟赦): '驟(취)'는 '자주', '빈번히'라는 뜻.
  64. (백성에게) 세금을 함부로 부과하게 하니(縱賦): '縱賦'는 '세금을 함부로 부과하다', '방종하게 세금을 거두다'는 뜻.
  65. (간사한) 기운이 더해져 위에서부터 풍속이 변하고(咸氣加而化上風): '咸氣(함기)'는 '간사한 기운', '化上風'은 '위에서부터 풍속이 변하다'는 뜻.
  66.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대아(大雅)」 「탕(蕩)」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67. 큰 바람에 길이 나듯이(大風有隧): '隧(수)'는 '길', '통로'를 의미한다. 큰 바람이 불면 길이 생기듯이, 탐욕스러운 자들의 행위가 결국 재앙의 길을 연다는 비유.
  68. 탐욕스러운 자는 그 무리를 망친다(貪人敗類): 탐욕스러운 자들이 결국 자신들의 무리까지 망하게 한다는 의미.
  69. 너희가 가르치면, 백성이 이에 본받는다(爾之教矣,民斯效矣):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抑)」 편에 나오는 구절. 위정자의 교화가 백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다.
  70. 선왕(先王): 고대 중국의 현명한 군주들을 통칭하는 말.
  71. 간곡하고 정성스러웠으니(諄諄如也): '諄諄(준준)'은 '간곡하고 정성스러운 모양'을 의미한다.
  72. 법전을 만들어 백성의 표준으로 삼고(作典以為民極): '民極(민극)'은 '백성의 표준', '규범'을 의미한다.
  73. 삼부(三府): 고대 중국의 세 가지 주요 관청.
  74. 죄 있는 자를 사면하거나, 옥중의 재물을 보배로 삼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未聞赦彼有罪,獄貨惟寶者也): '獄貨惟寶'는 '옥중의 재물이 오직 보배가 된다'는 뜻으로, 뇌물을 받고 죄인을 사면하는 부패한 행위를 비판한다.
  75. 바른 궤도에 따라(正軌): '正軌(정궤)'는 '바른 궤도', '정확한 기준'을 의미한다.
  76. 이미 재물에 싫증 내지 않고(既無猒有): '猒(염)'은 '싫증 내다', '만족하다'는 뜻. '無猒有'는 '재물에 만족하지 않고 탐욕을 부리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이미 재물에 싫증 내지 않고'로 해석하여, 재물에 대한 탐욕이 없음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다.
  77. 모두 생업에 풍족하고(皆阜於養生): '阜(부)'는 '풍족하다', '넉넉하다'는 뜻. '養生'은 '생업', '생활'을 의미한다.
  78. 관장(官長): 관청의 우두머리, 관리.
  79. 『역(易)』에 이르기를: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80. 성인(聖人)은 현명한 자를 길러 만백성에게 미치게 한다(聖人養賢以及萬民): 성인이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여 그들의 덕과 지혜가 모든 백성에게 미치도록 한다는 의미.
  81. 얇은 주춧돌로 높은 담장을 바라거나(薄趾而望高墻): '薄趾(박지)'는 '얇은 주춧돌', '望高墻'은 '높은 담장을 바라다'는 뜻. 기초가 부실한데 큰 것을 이루려 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82. 여윈 준마(駿馬)에게 먼 길을 요구하는 것과 같으니(驥瘠而責遠道): '驥(기)'는 '천리마', '준마', '瘠(척)'은 '여위다'는 뜻. 능력 없는 자에게 큰일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潛夫論(잠부론) - 述赦(술사)

1

원문
凡治病者,必先知脈之虛實,氣之所結,然後為之方,故疾可愈而壽可長也。為國者,必先知民之所苦,禍之所起,然後設之以禁,故姦可塞、國可安矣。

번역문
무릇 병을 치료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맥(脈)의 허실(虛實)1과 기(氣)가 맺힌 곳2을 알아야 비로소 처방을 내릴 수 있으니, 그러므로 병이 나을 수 있고 수명이 길어질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먼저 백성의 고통과 재앙이 일어나는 곳을 알아야 비로소 금지(禁)를 설치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간사함이 막히고 나라가 편안해질 수 있다.


2

원문
今日賊良民之甚者,莫大於數赦。赦贖數,則惡人昌而善人傷矣。奚以明之哉?曰:孝悌之家,脩身慎行,不犯上禁,從生至死,無銖兩罪;數有赦贖,未嘗蒙恩,常反為禍。何者?正真之士之為吏也,不避彊禦,不辭上官。從事督察,方懷不快,而姦猾之黨,又加誣言,皆知赦之不久,則且共橫枉侵冤,誣奏罪法。令主上妄行刑辟,高至死徙,下乃淪冤,而彼冤之家,乃甫當乞鞠告故以信直,亦無益於死亡矣。

번역문
오늘날 양민(良民)을 해치는 것이 심한 것 중, 자주 사면(赦)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사면과 속죄3가 잦으면, 악한 사람은 번성하고 선한 사람은 상처를 입는다. 무엇으로 이를 밝힐 수 있겠는가? 말하기를: 효도하고 공경하는 집안은4, 몸을 닦고 행실을 삼가며, 위에서 금하는 것을 범하지 않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주 작은 죄도 없다5. (그러나) 자주 사면과 속죄가 있어도, 일찍이 은혜를 입지 못하고, 오히려 항상 화를 당한다. 무엇 때문인가? 정직하고 진실한 선비가 관리가 되면, 강포하고 억압하는 자를 피하지 않고6, 윗사람의 명령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들이) 일을 맡아 감독하고 살피면, (간사한 자들은) 바야흐로 불쾌함을 품게 되고,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들은7 또다시 거짓말을 더한다. (그들은) 모두 사면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8, 곧 함께 제멋대로 억울하게 침해하고9, 거짓으로 죄를 아뢰어 법을 적용한다. (이로 인해) 군주가 함부로 형벌을 시행하여10, 심하면 죽거나 유배되고11, 가벼워도 억울함에 빠지게 되는데, 그 억울한 집안은 비로소 (군주에게) 심문과 해명을 간청하여12 결백함을 밝히려 하지만, 죽음을 면하는 데 아무런 이로움이 없다.


3

원문
及隱逸行士,淑人君子,為讒佞利口所加誣覆冒,下士冤民,能至闕者,萬無數人,其得省問者,不過百一,既對尚書,空遣去者,復十六七。雖蒙考覆,州郡轉相顧望,留吾真事。春夏待秋冬,秋冬復涉春夏,如此行逢赦者,不可勝數。

번역문
또한 은둔하여 도를 행하는 선비13와 어진 군자들은, 참소하고 아첨하며 말재주 있는 자들14에게 거짓으로 모함당하고 덮어씌워진다. 하급 관리와 억울한 백성 중 대궐에 이를 수 있는 자는 만 명 중 몇 명 되지 않고15, 그중 심문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백 명 중 한 명에 불과하며, 이미 상서(尚書)16에게 대면했어도, 헛되이 돌려보내지는 자가 다시 십중육칠이다. 비록 조사와 심사를 받는다 할지라도, 주(州)와 군(郡)은 서로 눈치만 보며17, 우리의 진실된 사건을 보류한다. 봄여름에 가을겨울을 기다리고, 가을겨울에 다시 봄여름을 넘기니, 이처럼 (억울함을 풀러) 가다가 사면을 만나는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4

원문
又謹慎之民,用天之道,分地之利,擇莫犯土,謹身節用,積累纖微,以致小過,此言質良蓋民,惟國之基也。

번역문
또한 신중한 백성은, 하늘의 도리를 따르고18, 땅의 이로움을 나누며19,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을 범하지 않고20, 몸가짐을 삼가고 절약하며21, 미미한 것을 쌓아22, 작은 허물에 이른다. 이들은 소박하고 선량한 백성으로, 오직 나라의 기초가 된다.


5

원문
輕薄惡子,不道凶民,思彼姦邪,起作盜賊,以財色殺人父母,戮人之子,滅人之門,取人之賄,及貪殘不軌,凶惡弊吏,掠殺不辜,侵冤小民, 皆望聖帝當為誅惡治冤,以解蓄怨。反一門赦之,令惡人高會而夸詫,老盜服藏而過門,孝子見讎而不得討,亡主見物而不得取,痛莫甚焉。故將赦而先暴寒者,以且多冤結悲恨之人也。

번역문
경박하고 악한 자들, 도리에 어긋나는 흉악한 백성들은, 간사하고 사악한 생각을 품고, 일어나 도적이 되어, 재물과 여색 때문에 남의 부모를 죽이고, 남의 자식을 죽이며, 남의 집안을 멸망시키고, 남의 뇌물을 취한다. 또한 탐욕스럽고 잔혹하며 법도를 어기는23, 흉악하고 부패한 관리들은, 죄 없는 자를 약탈하고 죽이며, 미천한 백성을 침해하고 억울하게 만든다. 이들은 모두 성스러운 황제가 마땅히 악한 자를 주살하고 억울함을 다스려, 쌓인 원한을 풀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도리어 일괄적으로 사면하니24, 악한 사람들은 거만하게 모여 자랑하고25, 늙은 도적들은 (자신을) 숨기고 (피해자의) 문 앞을 지나다니며26, 효자는 원수를 보아도 복수하지 못하고, 재산을 잃은 주인은 자기 물건을 보아도 되찾지 못하니, 이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 그러므로 사면을 앞두고 먼저 (억울한 자들을) 추위에 노출시키는 것은27, 장차 억울함과 슬픔이 쌓인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6

원문
夫養稊稗者傷禾稼,惠姦宄者賊良民。《書》曰:「文王作罰,刑茲無赦。」是故先王之制刑法也,非好傷人肌膚,斷人壽命者也,乃以威姦懲惡除民害也。天下本以民不能相治,故為立王者以統治之。天下在於奉天威命,共行賞罰。故經稱「天命有德,五服五章;天罰有罪,五刑五用。」《詩》刺「彼宜有罪,汝反脫之。」古者唯始受命之君,承大亂之極,被前王之惡,其民乃並為敵讎,罔不寇賊消義姦宄奪攘,以革命受祚,為之父母,故得一赦。繼體以下,則無違焉。何者?人君配乾而仁,順育萬以成大功,非得以養姦活罪為仁,放縱天賊為賢也。

번역문
무릇 잡초를 기르는 자는 곡식을 해치고28, 간사하고 흉악한 자를 은혜롭게 대하는 자는 양민을 해친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29, “문왕(文王)은 형벌을 제정하여, 죄를 벌함에 사면이 없었다30.” 이 때문에 선왕(先王)이 형법을 제정한 것은, 사람의 살과 피부를 상하게 하고 사람의 수명을 끊는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간사함을 위협하고 악을 징벌하여 백성의 해악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천하는 본래 백성들이 서로를 다스릴 수 없었으므로, 왕을 세워 그들을 통치하게 한 것이다. 천하는 하늘의 위엄 있는 명을 받들어, 함께 상벌을 시행하는 데 달려 있다. 그러므로 경전(經)에 이르기를31, “하늘은 덕 있는 자에게 명을 내리고, (그에게) 오복(五服)32과 오장(五章)33을 주며; 하늘은 죄 있는 자에게 벌을 내리고, 오형(五刑)34을 오용(五用)35한다.”고 하였다. 『시(詩)』는 “그들은 마땅히 죄가 있는데, 너는 도리어 그들을 풀어주는구나36.”라고 풍자하였다. 옛날에는 오직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군주만이, 큰 혼란의 극에 달하여, 이전 왕의 악행을 뒤집어쓰고, 그 백성들이 모두 적이 되어, 도적질하고 의로움을 없애며 간사하고 흉악하게 약탈하는 상황에서, 혁명으로 천명을 받아 왕위에 올랐으므로, 백성의 부모가 되어, 한 번의 사면을 행할 수 있었다. (그 후) 대를 이은 군주들은, (이러한 원칙을) 어김이 없었다. 무엇 때문인가? 군주는 건(乾)37에 짝하여 인자하고, 만물을 순조롭게 길러 큰 공을 이루는 것이지, 간사함을 기르고 죄를 살려주는 것을 인자함으로 삼거나, 하늘의 도적을 방종하게 하는 것을 현명함으로 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7

원문
今夫性惡之人,居家不孝悌,出入不恭敬,輕薄慢傲,凶悍無辨,明以威侮侵利為行,以賊殘酷虐為賢,故數陷王法者,此乃民之賊,下愚極惡之人也。雖脫桎梏,而出囹圄,終無改悔之心,自詩以羸敖頭,出獄踧踖復犯法者何不然。

번역문
이제 본성이 악한 사람들은, 집에서는 효도하고 공경하지 않으며, 밖에 나가서는 공손하지 않고, 경박하고 오만하며, 흉악하고 사나워 분별력이 없고38, 공공연히 위협하고 모욕하며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행실로 삼고, 남을 해치고 잔인하며 포악한 것을 현명함으로 삼아, 자주 왕법을 어기는 자들이다. 이들은 바로 백성의 도적이요, 가장 어리석고 지극히 악한 사람들이다. 비록 차꼬와 수갑을 벗고39, 감옥에서 나온다 할지라도, 끝내 뉘우치는 마음이 없어, (감옥에서) 나오자마자40 남루한 옷차림으로41 조심스럽게42 다시 법을 범하는 자들이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8

원문
洛陽至有主諧合殺人者,謂之會任之家,受人十萬,謝客數千。又重饋部吏,吏興通姦,利入深重,幡黨盤牙,請至貴戚寵臣,說聽於上,謁行於下。是故雖嚴令、尹,終不能破攘斷絕。何者?凡敢為大姦者,材必有過於眾,而能自媚於上者也。多散苟得之財,奉以謟諛之辭,以轉相驅,非有第五公之廉直,孰能不為顧?今案洛陽主殺人者,高至數十,下至四五,身不死則殺不止,皆以數赦之所致也。由此觀之,大惡之資,終不可化,雖歲,適勸姦耳。

번역문
낙양(洛陽)에는 심지어 살인을 공모하는 자들이 있는데43, 이들을 '회임(會任)의 집안'44이라 부른다. 남에게 십만 전을 받고, 손님에게 수천 전을 사례한다. 또한 하급 관리에게 뇌물을 많이 바치니, 관리들은 간사한 짓을 일삼고45, 이익은 깊고 무거워지며, 당파는 깃발처럼 얽히고 설켜46, 귀척(貴戚)47과 총애받는 신하에게까지 청탁이 이르고, 위에서는 (그들의) 말을 듣고, 아래에서는 (그들의) 청탁이 행해진다. 이 때문에 아무리 엄격한 현령(令)과 태수(尹)48라도, 끝내 (이들을) 깨뜨려 끊어낼 수 없다. 무엇 때문인가? 무릇 감히 큰 간사한 짓을 하는 자는, 재능이 반드시 남보다 뛰어나고, 스스로 윗사람에게 아첨할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당하게 얻은 재물을 많이 뿌리고, 아첨하는 말로 바치며, 서로를 부추기니, 제오공(第五公)49의 청렴하고 정직함이 없다면, 누가 능히 (그들의 유혹에)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낙양에서 살인을 주도하는 자들을 살펴보면, 많게는 수십 명, 적게는 서너 명에 이르는데, 그들이 죽지 않으면 살인이 그치지 않으니, 모두 자주 사면하는 것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로써 볼 때, 큰 악의 본성은50, 끝내 교화될 수 없으니, 세월이 흘러도51, 단지 간사함을 부추길 뿐이다.


9

원문
惑之,三辰有候,天氣當赦,故人主順之而施德焉。未必殺也。王者至貴,與天通精,心有所想,意有所慮, 未發聲色,天為變移。或若休咎庶徵,月之從星,此乃宜有是事。故見瑞異,或戒人主。若忽不察,是乃己所感致,而反以為天意欲然,非直也。

번문
(세상 사람들이) 미혹되어, 삼진(三辰)52에 징조가 있고, 천기(天氣)가 사면을 내릴 때라고 여기므로, 군주가 이에 순응하여 덕을 베푼다. (그러나) 반드시 (죄인을) 죽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왕은 지극히 존귀하여, 하늘과 정기(精氣)가 통하니, 마음에 생각하는 바가 있고, 뜻에 헤아리는 바가 있어, 아직 소리나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하늘이 (그에 따라) 변하고 움직인다. 혹은 길흉의 여러 징조나53, 달이 별을 따르는 것54과 같은 것은, 마땅히 이러한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상서롭거나 기이한 징조를 보면, 혹 군주에게 경계한다. 만약 홀연히 살피지 않으면, 이는 곧 자신이 감응하여 초래한 것인데도, 도리어 하늘의 뜻이 그러하기를 바란다고 여기니, 바른 것이 아니다.


10

원문
俗人又曰:「先世欲赦,常先遣馬分行市里,聽于路隅,咸云當赦,以知天之教也,乃因施德。」若使此言也而信,則殆過矣。夫民之性,固好意度者也,見久陰則稱將水,見久陽則稱將旱,見小貴則言將飢,見小賤則言將穰,然或信或否。由此觀之,民之所言,未必天下。前世贖赦稀踈,民無覬覦。近時以來,赦贖稠數,故每春夏,輒望復赦;或抱罪之家,僥倖蒙恩,故宣此言,以自悅喜。誠令仁君聞此,以為天教而輒從之,誤莫甚焉。

번역문
세속 사람들은 또 말하기를, “옛날에는 사면을 내리고자 할 때, 항상 먼저 말을 보내어 시가지에 나누어 다니게 하고, 길모퉁이에서 (백성들의 말을) 들었는데, 모두 사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 하늘의 가르침을 알았다고 여겨, 이에 덕을 베풀었다.”고 한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거의 잘못된 것이다. 무릇 백성의 본성은, 본래 추측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다. 오랫동안 흐리면 비가 올 것이라고 말하고, 오랫동안 맑으면 가뭄이 들 것이라고 말하며, 물건값이 조금 오르면 굶주림이 올 것이라고 말하고, 물건값이 조금 내리면 풍년이 들 것이라고 말하지만, 혹은 맞기도 하고 혹은 틀리기도 한다. 이로써 볼 때, 백성의 말은 반드시 천하의 이치가 아니다. 이전 시대에는 속죄와 사면이 드물어, 백성들이 (사면을) 바라지 않았다. 근래에 이르러, 사면과 속죄가 빈번해지자, 매년 봄여름마다, 문득 다시 사면이 있기를 바라고; 혹은 죄를 지은 집안은 요행히 은혜를 입기를 바라므로, 이 말을 퍼뜨려 스스로 기뻐한다. 진실로 인자한 군주가 이 말을 듣고, 하늘의 가르침이라고 여겨 곧바로 따른다면, 이보다 더 큰 잘못은 없을 것이다.


11

원문
論者多曰:「久不赦則姦宄熾,而吏不制,故赦贖以解之。」此乃招亂之本原,不察禍福之所生者之言也。凡民所以輕為盜賊,吏之所以易作姦匿者,以赦贖數而有僥望也。若使犯罪之人終身被命,得而必刑,則計姦之謀破,而慮惡之心絕矣。

번역문
논하는 자들이 많이 말하기를, “오랫동안 사면하지 않으면 간사하고 흉악한 자들이 번성하여, 관리가 제어하지 못하므로, 사면과 속죄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혼란을 불러들이는 근본 원인이요, 화와 복이 생겨나는 바를 살피지 못하는 자들의 말이다. 무릇 백성이 쉽게 도적이 되고, 관리가 쉽게 간사하게 숨는 짓을 하는 까닭은, 사면과 속죄가 잦아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죄를 지은 사람이 평생 죄인으로 낙인찍히고55, (죄가) 드러나면 반드시 형벌을 받는다면, 간사한 꾀를 부릴 계획이 깨지고, 악을 생각하는 마음이 끊어질 것이다.


12

원문
夫良贖可,孺子可令妲,中庸之人,可弘而下,故其諺曰:「一歲載赦,奴兒噫嗟。」言王誅不行,則痛瘀之子皆輕犯,況狡乎?若誠思畏盜賊多而姦不勝故赦,則是為國為姦冗報也。夫天道賞善而刑淫,「天工、人其代之」,故凡立王者,將以誅邪惡而養正善,而以逞邪惡逆,妄莫甚焉。

번역문
무릇 선량한 자는 속죄할 수 있고56, 어린아이는 달기(妲己)57처럼 만들 수 있으며, 중용(中庸)의 사람은58 (악에) 물들어 타락할 수 있다59.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한 해에 여러 번 사면하면, 노비들이 탄식한다60.”고 하였다. 이는 왕의 형벌이 시행되지 않으면, 고통받고 억울한 자들조차61 모두 쉽게 죄를 범하니, 하물며 교활한 자들이겠는가? 만약 진실로 도적이 많고 간사함이 이기지 못할까 두려워 사면한다면, 이는 나라를 위해 간사한 자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무릇 하늘의 도리는 선한 자에게 상을 주고 음란한 자에게 벌을 내리며, “하늘의 일은 사람이 그를 대신한다62.” 그러므로 무릇 왕이 된 자는, 장차 사악한 자를 주살하고 바르고 선한 자를 길러야 하는데, 도리어 사악하고 거역하는 자를 방종하게 하는 것은, 망령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13

원문
昔孝明帝時,制舉茂才,過闕謝恩,賜食事訖,問何異聞,對曰:「巫有劇賊九人,刺史數以竊郡,訖不能得。」帝曰:「汝非部南郡從事邪?」對曰:「是。」帝乃振怒,曰:「賊發部中而不能擒,然材何以為茂?」捶數百,便免官,而切讓州郡,十日之閒,賊即伏誅。由此觀之,擒滅盜賊,在於明法,不在數赦。

번역문
옛날 효명제(孝明帝)63 때, 무재(茂才)64를 선발하는 제도를 시행하여, (선발된 자가) 대궐을 지나며 은혜에 감사하고, 식사를 하사받은 후, (황제가) 무슨 특이한 소식이 있느냐고 묻자, (한 관리가) 대답하기를, “무(巫) 지역에 극악한 도적 아홉 명이 있는데, 자사(刺史)65가 여러 번 (그들을 잡으려) 군(郡)을 수색했으나, 끝내 잡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황제가 말하기를, “너는 남군(南郡)의 종사(從事)66가 아니냐?”고 묻자,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황제는 이에 진노하여67 말하기를, “도적이 네 관할 지역에서 발생했는데도 잡지 못했으니, 그렇다면 네 재능이 어찌 무재라 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수백 대를 때리고68, 곧바로 관직을 면하게 하였으며, 주(州)와 군(郡)에 엄하게 꾸짖으니, 열흘 사이에 도적들이 곧 주살되었다. 이로써 볼 때, 도적을 잡고 없애는 것은 법을 밝히는 데 있지, 자주 사면하는 데 있지 않다.


14

원문
今不顯行賞罰以明善惡,嚴督牧守以擒姦猾,而反數赦以勸之,其文帝曰:「謀反大逆不道諸犯,不當得赦皆除之,將與士大夫灑心更始。」歲歲灑之,然未嘗見姦人冗吏,有肯變心悔服稱詔者也。有司奏事,又俗以赦前之微過,妨今日之顯舉。然則改往脩來,更始之詔, 亦不信也。

번역문
지금은 상벌을 명확히 시행하여 선악을 밝히지 않고, 주목(州牧)69과 태수(太守)70를 엄하게 독려하여 간사하고 교활한 자들을 잡지 않으면서, 도리어 자주 사면하여 그들을 부추긴다. (옛날) 문제(文帝)71가 말하기를, “모반, 대역무도(大逆不道)72 등 모든 범죄자 중 사면을 받을 수 없는 자는 모두 제거하여, 장차 사대부와 함께 마음을 씻고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하였다. 해마다 마음을 씻는다고 하였으나, 간사한 자나 게으른 관리 중에 마음을 바꾸고 뉘우쳐 황제의 조서에 따르는 자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담당 관리가 일을 아뢸 때, 또 세속적으로 사면 이전의 사소한 허물을 들어 오늘날의 중요한 인재 등용을 방해한다. 그렇다면 과거를 고치고 미래를 닦는다는73, 새롭게 시작하라는 조서 또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15

원문
《詩》譏「君子屢盟,亂是用長」。故不若希其令,必其言。若良不能子無赦者,罕之為愈,令世歲老古時一赦,則姦宄之減十八九可勝必也。昔大司馬吳漢老病將卒,世祖問以遺戒,對曰:「臣愚不智,不足以知治,慎無赦而已矣。」

번역문
『시(詩)』는 “군자가 자주 맹세하면, 혼란이 이로 인해 자라난다74.”고 비난하였다. 그러므로 (사면) 명령을 드물게 하고, 그 말을 반드시 지키는 것만 못하다. 만약 선량한 자가 사면이 없음을 견디지 못한다면75, (사면을) 드물게 하는 것이 더 나으니, 세상이 옛날처럼 한 해에 한 번 사면을 내리게 한다면, 간사하고 흉악한 자들이 십중팔구 줄어들 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옛날 대사마(大司馬) 오한(吳漢)76이 늙고 병들어 죽으려 할 때, 세조(世祖)77가 유언을 묻자, 대답하기를, “신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다스림을 알기에 부족합니다. 삼가 사면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할 뿐이었다.


16

원문
夫「方以類聚,物以群分。」「人之情皆見乎辭」,故諸言不當赦者,非脩身脩行,則必憂哀謹慎而嫉毒姦惡者也。諸利數赦者,非不達赦務,則交內懷隱憂有願為者也。人君之發令也,必諮於群臣,群臣之姦邪者,固必伏罪, 雖正直吏,猶有公過,自非鬻拳、李離,孰肯刑身以正國?然則是皆接私計以論公政也。興瓜議裘,無時焉可!

번역문
무릇 “방(方)은 무리로 모이고, 물(物)은 무리로 나뉘며78,” “사람의 정(情)은 모두 말에 나타난다79.” 그러므로 사면이 마땅치 않다고 말하는 자들은, 몸을 닦고 행실을 닦는 자들이 아니면, 반드시 근심하고 슬퍼하며 신중하고, 간사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자들이다. 자주 사면하는 것을 이롭게 여기는 자들은, 사면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아니면, (간사한 자들과) 교류하며 내심 은밀한 근심을 품고 (악행을) 행하고자 하는 자들이다. 군주가 명령을 내릴 때, 반드시 여러 신하들에게 자문하는데, 여러 신하 중 간사하고 사악한 자들은, 본래 반드시 죄를 지을 것이고, 비록 정직한 관리라도, 오히려 공적인 허물이 있으니, 육권(鬻拳)80이나 이리(李離)81가 아니라면, 누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여 나라를 바로잡으려 하겠는가?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사사로운 계산으로 공적인 정치를 논하는 것이다. 오이와 가죽옷을 논하듯이82, 어느 때인들 옳겠는가!


17

원문
《傳》曰:「民之多幸,國之不幸也。」夫有罪而備辜,冤結而信理,此天之正也,而王之法也。故曰:「無縱詭隨,以謹無良。」若枉善人以惠姦惡,此謂「歛怨以為德」。先帝制法,論衷刺刀者。何則?以其懷姦惡之心,有殺害之意也。聖主有子愛之情,而是有殺害之意,故誅之,況成罪乎?

번역문
『전(傳)』에 이르기를83, “백성에게 요행이 많으면, 나라의 불행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죄가 있는 자는 마땅히 벌을 받고84, 억울함이 풀려 이치가 믿어지는 것, 이것이 하늘의 바름이요, 왕의 법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속이는 자를 놓아주지 말고, 불량한 자를 삼가라85.”고 하였다. 만약 선량한 사람을 억울하게 하고 간사하고 악한 자에게 은혜를 베푼다면, 이것을 일러 “원한을 모아 덕으로 삼는다86.”고 한다. 선제(先帝)87가 법을 제정할 때, 몰래 칼을 품은 자를 논하였다88. 무엇 때문인가? 그들이 간사하고 악한 마음을 품고, 살해할 의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군주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데도, (자식이) 살해할 의도를 가졌다면, 그러므로 그를 주살하니, 하물며 이미 죄를 이룬 자이겠는가?


18

원문
《尚書·康誥》:『王曰:「於戲!封。敬明乃罰。人有小罪匪省,乃惟終,自作不典;戒爾,有厥罪小,乃不可不殺。」』言恐人有罪雖小,然非以過差為之也,乃欲終身行之,故雖小,不可不殺也。何則?是本頑凶思惡而為之者也。「乃有大罪匪終,乃惟省哉,適爾,既道極厥罪,時亦不可殺。」言殺人雖有大罪, 非欲以終身為惡,乃過誤爾,是不殺也。若此者, 雖曰赦之可也。金作贖刑,赦作宥罪,皆謂良人吉士,時有過誤,不幸陷離者爾。

번역문
『상서(尚書)』 「강고(康誥)」에 이르기를89: ‘왕이 말하기를, “아아! 봉(封)90아. 공경히 너의 형벌을 밝히라. 사람이 작은 죄가 있는데도91, (그것이)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92, 마침내 (악행을) 계속하려 하여93, 스스로 법도에 어긋나는 짓을 한다면; 너에게 경고하노니, 그 죄가 작을지라도, 죽이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사람이 죄가 비록 작을지라도, 그것이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라, 마침내 평생 그 죄를 행하려 하는 것이므로, 비록 작을지라도 죽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무엇 때문인가? 이는 본래 완고하고 흉악하며 악을 생각하여 그 죄를 저지른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큰 죄가 있는데도 (그것이) 마침내 (악행을) 계속하려 한 것이 아니라94, 오직 반성하고95, 우연히 그렇게 되었으며96, 이미 그 죄의 극에 달했다면97, 이때는 또한 죽이지 않을 수 있다98.”’고 하였다. 이는 살인과 같은 큰 죄가 있을지라도, 평생 악을 행하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과실로 인한 것이라면, 죽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자는, 비록 사면한다고 해도 괜찮다. 금(金)으로 속죄형을 만들고99, 사면으로 죄를 용서하는 것은100, 모두 선량한 사람이나 길한 선비가 때때로 과실을 저질러, 불행히도 (죄에) 빠지게 된 경우를 이르는 것일 뿐이다.


19

원문
先王議讞獄以制,原情論意,以救善人,非欲令兼縱惡逆以傷人也。是故《周官》差八議之辟,此先王所以整萬民而致時雍也。《易》故觀民設教,變通移時之義。今日捄世,莫乎此意。

번역문
선왕(先王)은 옥사(獄事)를 의논하고 심리하여101 제도를 만들고, 정황을 살피고 의도를 논하여102 선량한 사람을 구제하였으니, 악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동시에 방종하게 하여 사람을 해치려 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주관(周官)』103은 팔의(八議)104의 형벌을 구별하였으니, 이것이 선왕이 만백성을 다스려105 때에 맞는 화합106을 이룬 까닭이다. 『역(易)』은 백성을 살펴 가르침을 베풀고107, 변화에 통달하여 시기에 맞게 옮기는108 의의를 담고 있다. 오늘날 세상을 구하는 데는, 이 뜻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각주

  1. 맥(脈)의 허실(虛實): 한의학에서 맥을 짚어 환자의 기혈(氣血) 상태가 허(虛)한지 실(實)한지 판단하는 것. 병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을 비유한다.
  2. 기(氣)가 맺힌 곳: 기혈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병이 생긴 부위.
  3. 사면과 속죄(赦贖): '赦(사)'는 죄를 용서하는 것, '贖(속)'은 돈이나 물건으로 죄를 면하는 것.
  4. 효도하고 공경하는 집안(孝悌之家): 효도와 공경을 실천하는 모범적인 가정을 의미한다.
  5. 아주 작은 죄도 없다(無銖兩罪): '銖兩(수량)'은 아주 적은 무게 단위로, '아주 작은 것'을 비유한다.
  6. 강포하고 억압하는 자를 피하지 않고(不避彊禦): '彊禦(강어)'는 '강포하고 억압하는 자', '권세 있는 자'를 의미한다.
  7.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들은(姦猾之黨): '姦猾(간활)'은 '간사하고 교활하다', '黨(당)'은 '무리', '당파'를 의미한다.
  8. 사면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皆知赦之不久): 사면이 자주 이루어지므로, 죄를 지어도 곧 풀려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
  9. 제멋대로 억울하게 침해하고(橫枉侵冤): '橫枉(횡왕)'은 '제멋대로 억울하게 하다', '侵冤(침원)'은 '침해하고 억울하게 만들다'는 뜻.
  10. 함부로 형벌을 시행하여(妄行刑辟): '妄行(망행)'은 '함부로 행하다', '刑辟(형벽)'은 '형벌'을 의미한다.
  11. 죽거나 유배되고(死徙): '死(사)'는 '죽음', '徙(사)'는 '유배', '귀양'을 의미한다.
  12. 심문과 해명을 간청하여(乞鞠告故): '乞鞠(걸국)'은 '심문을 간청하다', '告故(고고)'는 '사정을 아뢰다', '해명하다'는 뜻.
  13. 은둔하여 도를 행하는 선비(隱逸行士):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숨어 살면서 도를 닦는 선비.
  14. 참소하고 아첨하며 말재주 있는 자들(讒佞利口): '讒佞(참녕)'은 '참소하고 아첨하다', '利口(이구)'는 '말재주가 뛰어나다'는 뜻.
  15. 만 명 중 몇 명 되지 않고(萬無數人): '萬無數人'은 '만 명 중에 몇 명도 안 된다'는 뜻으로, 매우 적다는 의미.
  16. 상서(尚書): 한(漢)나라 때 황제의 명령을 담당하던 고위 관직.
  17. 서로 눈치만 보며(轉相顧望): '顧望(고망)'은 '서로 돌아보다', '눈치보다'는 뜻.
  18. 하늘의 도리를 따르고(用天之道): 자연의 순리나 하늘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19. 땅의 이로움을 나누며(分地之利): 토지의 생산성을 활용하여 이익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20.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을 범하지 않고(擇莫犯土): '莫犯土'는 '땅을 범하지 않다'는 뜻으로,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을 무리하게 개간하거나, 혹은 땅의 신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21. 몸가짐을 삼가고 절약하며(謹身節用): '謹身(근신)'은 '몸가짐을 삼가다', '節用(절용)'은 '절약하다'는 뜻.
  22. 미미한 것을 쌓아(積累纖微): '纖微(섬미)'는 '아주 작고 미미한 것'을 의미한다.
  23. 탐욕스럽고 잔혹하며 법도를 어기는(貪殘不軌): '不軌(불궤)'는 '법도를 어기다', '정도를 벗어나다'는 뜻.
  24. 일괄적으로 사면하니(一門赦之): '一門'은 '한꺼번에', '모두'라는 뜻.
  25. 거만하게 모여 자랑하고(高會而夸詫): '高會(고회)'는 '거만하게 모이다', '夸詫(과차)'는 '자랑하다', '과시하다'는 뜻.
  26. (자신을) 숨기고 (피해자의) 문 앞을 지나다니며(服藏而過門): '服藏(복장)'은 '숨다', '은닉하다'는 뜻.
  27. 사면을 앞두고 먼저 (억울한 자들을) 추위에 노출시키는 것은(將赦而先暴寒者): '暴寒(폭한)'은 '추위에 노출시키다'는 뜻. 사면이 오히려 억울한 자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의미.
  28. 잡초를 기르는 자는 곡식을 해치고(養稊稗者傷禾稼): '稊稗(제패)'는 '잡초', '禾稼(화가)'는 '곡식'을 의미한다. 악한 자를 용납하면 선한 자가 해를 입는다는 비유.
  29.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서경(書經)』 「강고(康誥)」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30. 문왕(文王)은 형벌을 제정하여, 죄를 벌함에 사면이 없었다: 주(周)나라 문왕이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기강을 바로잡았음을 의미한다.
  31. 경전(經)에 이르기를: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나오는 구절이다.
  32. 오복(五服): 고대 중국의 다섯 가지 상복(喪服) 제도. 여기서는 사회 질서와 예절을 상징한다.
  33. 오장(五章): 고대 중국의 다섯 가지 의복 문양. 여기서는 문명과 덕을 상징한다.
  34. 오형(五刑): 고대 중국의 다섯 가지 형벌(묵형, 의형, 비형, 궁형, 대벽).
  35. 오용(五用): 다섯 가지 형벌의 적용 방식.
  36. “그들은 마땅히 죄가 있는데, 너는 도리어 그들을 풀어주는구나”: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 편에 나오는 구절. 부당한 사면을 비판한다.
  37. 건(乾): 『주역(周易)』의 건괘(乾卦)로, 하늘을 상징한다.
  38. 흉악하고 사나워 분별력이 없고(凶悍無辨): '凶悍(흉한)'은 '흉악하고 사납다', '無辨(무변)'은 '분별력이 없다'는 뜻.
  39. 차꼬와 수갑을 벗고(脫桎梏): '桎梏(질곡)'은 발목에 채우는 차꼬와 수갑을 의미한다.
  40. (감옥에서) 나오자마자(自詩): '詩(시)'는 '시작하다', '비로소'의 의미로 쓰였다.
  41. 남루한 옷차림으로(羸敖頭): '羸(리)'는 '여위다', '쇠약하다', '敖頭(오두)'는 '머리에 쓰는 남루한 두건'을 의미한다.
  42. 조심스럽게(踧踖): '踧踖(축척)'은 '조심스럽게 걷다', '머뭇거리다'는 뜻. 여기서는 출소 후에도 불안정한 모습을 묘사한다.
  43. 살인을 공모하는 자들이 있는데(主諧合殺人者): '主(주)'는 '주도하다', '諧合(해합)'은 '공모하다'는 뜻.
  44. '회임(會任)의 집안': 살인을 공모하고 청부 살인을 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45. 관리들은 간사한 짓을 일삼고(吏興通姦): '通姦(통간)'은 '간사한 짓을 하다', '부정부패를 저지르다'는 뜻.
  46. 당파는 깃발처럼 얽히고 설켜(幡黨盤牙): '幡黨(번당)'은 '깃발처럼 펄럭이는 당파', '盤牙(반아)'는 '얽히고 설키다', '뿌리 깊이 박히다'는 뜻.
  47. 귀척(貴戚): 황실의 외척이나 가까운 친척.
  48. 현령(令)과 태수(尹): '令(령)'은 현령, '尹(윤)'은 태수를 의미한다.
  49. 제오공(第五公): 한(漢)나라의 청렴한 관리 제오륜(第五倫)을 지칭한다.
  50. 큰 악의 본성은(大惡之資): '資(자)'는 '자질', '본성'을 의미한다.
  51. 세월이 흘러도(雖歲): '歲(세)'는 '세월'을 의미한다.
  52. 삼진(三辰): 해, 달, 별 세 가지 천체를 의미한다.
  53. 길흉의 여러 징조나(休咎庶徵): '休咎(휴구)'는 '길흉', '庶徵(서징)'은 '여러 징조'를 의미한다.
  54. 달이 별을 따르는 것(月之從星): 달이 별자리를 따라 움직이는 천문 현상.
  55. 평생 죄인으로 낙인찍히고(終身被命): '被命(피명)'은 '명을 받다', '운명 지어지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죄인으로 낙인찍히다'는 의미.
  56. 선량한 자는 속죄할 수 있고(良贖可): 선량한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속죄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의미.
  57. 달기(妲己):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총희(寵姬)로, 악녀의 대명사. 여기서는 어린아이도 잘못된 환경에서 자라면 악하게 변할 수 있다는 비유.
  58. 중용(中庸)의 사람은: 평범하고 보통의 사람.
  59. (악에) 물들어 타락할 수 있다(可弘而下): '弘(홍)'은 '넓히다', '크게 하다'는 뜻 외에 '물들다', '타락하다'는 뜻이 있다. '下(하)'는 '낮아지다', '타락하다'는 뜻.
  60. 노비들이 탄식한다(奴兒噫嗟): '奴兒(노아)'는 '노비', '噫嗟(희차)'는 '탄식하다'는 뜻. 왕의 형벌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사회 질서가 문란해지고, 오히려 선량한 노비들이 고통받는다는 의미.
  61. 고통받고 억울한 자들조차(痛瘀之子): '痛瘀(통어)'는 '고통받고 억울하다'는 뜻.
  62. 하늘의 일은 사람이 그를 대신한다: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 편에 나오는 구절.
  63. 효명제(孝明帝): 후한(後漢)의 황제.
  64. 무재(茂才): 한(漢)나라 때 인재 선발 과목 중 하나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를 천거하는 제도.
  65. 자사(刺史): 한(漢)나라 때 주의 감찰관.
  66. 남군(南郡)의 종사(從事): 남군 지역의 하급 관리.
  67. 진노하여(振怒): '진노하다', '크게 화내다'는 뜻.
  68. 수백 대를 때리고(捶數百): '捶(추)'는 '때리다', '매질하다'는 뜻.
  69. 주목(州牧): 한(漢)나라 때 주의 최고 행정관.
  70. 태수(太守): 군(郡)의 최고 행정관.
  71. 문제(文帝): 서한(西漢)의 황제.
  72. 모반, 대역무도(大逆不道): 중대한 범죄.
  73. 과거를 고치고 미래를 닦는다는(改往脩來): '改往(개왕)'은 '과거를 고치다', '脩來(수래)'는 '미래를 닦다'는 뜻.
  74. “군자가 자주 맹세하면, 혼란이 이로 인해 자라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 편에 나오는 구절. 맹세가 잦으면 신뢰가 떨어져 오히려 혼란이 가중된다는 의미.
  75. 선량한 자가 사면이 없음을 견디지 못한다면(良不能子無赦者): '子(자)'는 '어조사'로 쓰여 의미를 강조한다. '無赦者'는 '사면이 없는 것'을 의미.
  76. 대사마(大司馬) 오한(吳漢):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개국공신.
  77. 세조(世祖):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묘호.
  78. “방(方)은 무리로 모이고, 물(物)은 무리로 나뉘며”: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구절.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린다는 의미.
  79. “사람의 정(情)은 모두 말에 나타난다”: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에 나오는 구절.
  80. 육권(鬻拳):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충신. 군주에게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발꿈치를 잘라 죽음으로써 군주를 깨닫게 했다.
  81. 이리(李離):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법관. 죄 없는 자를 죽인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82. 오이와 가죽옷을 논하듯이(興瓜議裘): '興瓜(흥과)'는 '오이를 논하다', '議裘(의구)'는 '가죽옷을 논하다'는 뜻. 사소하거나 본질과 관계없는 것을 논하는 것을 비유한다.
  83. 『전(傳)』에 이르기를: 『좌전(左傳)』 「선공(宣公) 12년」에 나오는 구절이다.
  84. 죄가 있는 자는 마땅히 벌을 받고(有罪而備辜): '備辜(비고)'는 '마땅히 벌을 받다', '죄를 다하다'는 뜻.
  85. 속이는 자를 놓아주지 말고, 불량한 자를 삼가라(無縱詭隨,以謹無良): '縱(종)'은 '놓아주다', '詭隨(궤수)'는 '속이는 자', '불량한 자'를 의미한다. '謹(근)'은 '삼가다', '경계하다'는 뜻.
  86. “원한을 모아 덕으로 삼는다”: 『좌전(左傳)』 「환공(桓公) 2년」에 나오는 구절. 부당한 사면이 오히려 백성들의 원한을 쌓이게 한다는 비판.
  87. 선제(先帝): 한(漢)나라 선제(宣帝).
  88. 몰래 칼을 품은 자를 논하였다(論衷刺刀者): '衷刺刀(충자도)'는 '몰래 칼을 품다'는 뜻.
  89. 『상서(尚書)』 「강고(康誥)」에 이르기를: 『서경(書經)』 「강고(康誥)」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90. 봉(封):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아우로, 위(衛)나라에 봉해진 강숙(康叔)의 이름.
  91. 사람이 작은 죄가 있는데도(人有小罪): '匪省'은 '살피지 않다', '우연한 실수가 아니다'는 뜻.
  92.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匪省): '省(성)'은 '살피다', '반성하다'는 뜻 외에 '우연한 실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93. 마침내 (악행을) 계속하려 하여(乃惟終): '惟終(유종)'은 '마침내 끝까지 하다', '계속하다'는 뜻.
  94. 마침내 (악행을) 계속하려 한 것이 아니라(匪終): '匪終'은 '끝까지 하려 한 것이 아니다'는 뜻.
  95. 오직 반성하고(乃惟省哉): '惟省(유성)'은 '오직 반성하다'는 뜻.
  96. 우연히 그렇게 되었으며(適爾): '適爾(적아)'는 '우연히 그렇게 되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다'는 뜻.
  97. 이미 그 죄의 극에 달했다면(既道極厥罪): '道極(도극)'은 '극에 달하다', '厥罪(궐죄)'는 '그 죄'를 의미한다.
  98. 이때는 또한 죽이지 않을 수 있다(時亦不可殺): '不可殺'은 '죽이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문맥상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쓰였다.
  99. 금(金)으로 속죄형을 만들고(金作贖刑): 돈을 받고 형벌을 면해주는 제도.
  100. 사면으로 죄를 용서하는 것은(赦作宥罪): '宥罪(유죄)'는 '죄를 용서하다'는 뜻.
  101. 옥사(獄事)를 의논하고 심리하여(議讞獄): '議讞(의언)'은 '의논하고 심리하다', '재판하다'는 뜻.
  102. 정황을 살피고 의도를 논하여(原情論意): '原情(원정)'은 '정황을 살피다', '論意(논의)'는 '의도를 논하다'는 뜻.
  103. 『주관(周官)』: 『주례(周禮)』를 지칭한다.
  104. 팔의(八議): 고대 중국에서 특정 신분(황족, 공신, 현자 등)의 죄를 감면하거나 특별히 심리하는 여덟 가지 규정.
  105. 만백성을 다스려(整萬民): '整(정)'은 '다스리다', '정돈하다'는 뜻.
  106. 때에 맞는 화합(時雍): 시기에 맞춰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潛夫論(잠부론) - 班祿(반록)

1

원문
凡太古之時,烝黎初載,未有上下,而自順序,天未事焉,君未設焉。後稍矯虔,或相陵虐,侵漁不止,為萌巨害,於是天命聖人使司牧之,使不失性,四海蒙利,莫不被德,僉共奉戴,謂之天子。

번역문
무릇 태고(太古) 시절에는, 백성들1이 처음 세상에 살면서, 위아래가 없었고, 스스로 순서를 따랐으며, 하늘이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았고, 군주도 세워지지 않았다. 그 후 점차 교만하고 포악해져2, 혹은 서로를 능멸하고 학대하며, 침탈과 어업(어업은 여기서는 백성을 침탈하는 것에 비유)이 그치지 않아3, 거대한 해악이 싹텄다. 이에 하늘이 성인에게 명하여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으니4, 백성이 본성을 잃지 않게 하여, 사해(四海)5가 이로움을 입고, 덕을 입지 않은 이가 없게 되었다. 모두 함께 받들어 모시며, 그를 천자(天子)6라고 불렀다.


2

원문
故天之立君,非私此人也,以役民,蓋以誅暴除害利黎元也。是以人謀鬼謀,能者處之。《詩》云:「皇矣上帝!臨下以赫。監觀四方,求民之瘼。惟此二國,其政不獲。惟此四國,爰究爰度?上帝指之,憎其式惡。乃睠西顧,此惟與度。」蓋此言也,言夏、殷二國之政不得,乃用奢夸廓大,上帝憎之,更求民之瘼聖人,與天下四國究度而使居之也。

번역문
그러므로 하늘이 군주를 세운 것은, 이 사람을 사사로이 위함이 아니요, 백성을 부리기 위함도 아니며7, 대개 포악한 자를 주살하고 해악을 제거하여 백성들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사람의 지혜와 귀신의 지혜를 다하여8, 능력 있는 자가 그 자리에 있게 된다. 『시(詩)』에 이르기를9, “위대하신 상제(上帝)시여! 아래에 임하시어 밝게 살피시네. 사방을 두루 보시며, 백성의 고통을 구하시네10. 오직 이 두 나라(하, 은)는, 그 정치를 얻지 못하였네. 오직 이 네 나라(사방의 제후국)는, 이에 연구하고 헤아렸는가?11 상제께서 그들을 지목하시고, 그들의 악행을 미워하시네. 이에 서쪽을 돌아보시니12, 이것이 바로 (천명을) 주시고 헤아리신 것이네.” 대개 이 말은, 하(夏)13와 은(殷)14 두 나라의 정치가 올바르지 못하여, 사치하고 과장하며15 영토를 확장하는 데 힘썼으므로, 상제께서 그들을 미워하시고, 다시 백성의 고통을 구제할 성인을 찾아, 천하의 사방 제후국과 함께 연구하고 헤아려 그를 (천자의 자리에)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3

원문
前招良人,疾奢夸廓無紀極也,乃惟度法象,明著禮秩,為優憲藝,縣之無窮。故《傳》曰:「制禮,上物不過十二,天之道也。」是以先聖籍田有制,供神有度,奉己有節,禮賢有數,上下大小,貴賤親踈,皆有等威,階級衰殺,各足祿其爵位,公私達其等級,禮行德義。

번역문
옛날에는 훌륭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사치하고 과장하며 한계가 없는 것을 싫어하여16, 이에 법도를 헤아리고 본받아, 예절과 등급을 밝히고, 훌륭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17, 무궁토록 본보기로 삼았다. 그러므로 『전(傳)』에 이르기를18, “예(禮)를 제정함에 있어, 윗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은 열두 가지를 넘지 않으니, 이는 하늘의 도이다.” 이 때문에 선성(先聖)19은 적전(籍田)20에 제도가 있었고, 신에게 제사 지내는 데 법도가 있었으며, 자신을 봉양하는 데 절제가 있었고, 현명한 자를 예우하는 데 정해진 수가 있었으니, 위아래, 크고 작음, 귀하고 천함, 친하고 소원함에 모두 등급과 위엄이 있었고21, 계급에 따라 녹봉이 줄어들었으며22, 각기 그 작위(爵位)에 합당한 녹봉을 받았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그 등급에 따라 통달하여23, 예절과 덕의가 행해졌다.


4

원문
當此之時也,九州之內,合三千里,爾八百國。其班祿也,以上農為正,始於庶人在官者,祿足以代耕,蓋食九人。諸侯下士亦然。中士倍下士,食十八人。上士倍中士,食三十六人。大夫倍之,食七十二人。小國之卿,二於大夫。次國之卿,三於大夫。大國之卿,四於大夫,食二百八十八人。君各什其卿。天子三公侯采視公侯,蓋方百里。卿采視伯,方七十里。大夫視子男,方五十里。元士視附庸,方三十里。功成者封。是故官政專公,不慮私家;子弟事學,不於財利,閉門自守,不與民交爭,而無飢寒之道,而不陷;臣養優而不隘,吏愛官而不貪,民安靜而彊力,此則太平之基立矣。乃惟慎貢選,明必黜陟,官得其人,人任其職;「欽若昊天,敬授民時」,「同我婦子,饁彼南畝」;上務節禮,正身示下,下悅其政,各樂竭己奉戴其上。是以天地交泰,陰陽和平,民無姦匿,機衡不傾,德氣流布而頌聲作也。

번역문
이때에는, 구주(九州)24 안이 합하여 삼천 리였고, 팔백 개의 나라가 있었다. 그 녹봉을 나누는 것은, 상농(上農)25을 기준으로 삼아, 관직에 있는 서민(庶人)26으로부터 시작하여, 녹봉이 밭을 가는 것을 대신할 만하여, 대개 아홉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제후(諸侯)의 하사(下士)27도 또한 그러하였다. 중사(中士)28는 하사의 두 배로, 열여덟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상사(上士)29는 중사의 두 배로, 서른여섯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대부(大夫)30는 그 두 배로, 일흔두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소국(小國)의 경(卿)31은 대부의 두 배였다. 다음 가는 나라의 경은 대부의 세 배였다. 대국(大國)의 경은 대부의 네 배로, 이백팔십팔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군주(君)는 각기 그 경(卿)의 열 배를 받았다32. 천자(天子)의 삼공(三公)33과 제후(侯)의 채읍(采邑)34은 공후(公侯)35의 봉토와 같았으니, 대개 사방 백 리였다. 경(卿)의 채읍은 백(伯)36의 봉토와 같았으니, 사방 칠십 리였다. 대부(大夫)의 채읍은 자(子)37와 남(男)38의 봉토와 같았으니, 사방 오십 리였다. 원사(元士)39의 채읍은 부용(附庸)40의 봉토와 같았으니, 사방 삼십 리였다. 공적을 이룬 자는 봉해졌다. 이 때문에 관청의 정사는 오직 공정하여, 사사로운 집안을 염려하지 않았고; 자제들은 학문에 힘쓰고, 재물과 이익을 탐하지 않았으며, 문을 닫고 스스로를 지켜41,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았고, 굶주림과 추위의 도리가 없어42, (곤궁에) 빠지지 않았다. 신하는 봉양이 넉넉하여 궁핍하지 않았고43, 아전은 관직을 사랑하여 탐욕스럽지 않았으며, 백성은 편안하고 고요하며 강인했으니, 이것이 바로 태평성대의 기초가 확립된 것이다. 이에 선발을 신중히 하고, 밝게 강등시키고 승진시키는 것을 반드시 행하여44, 관직은 그 적임자를 얻고, 사람은 그 직책을 맡게 하였다. “공경히 넓고 큰 하늘을 본받아, 백성에게 때에 맞춰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고45,” “우리 처자식과 함께, 저 남쪽 밭에 점심을 나르네46.” 위에서는 예절을 절제하는 데 힘쓰고, 몸을 바르게 하여 아랫사람에게 본보기를 보였으며, 아랫사람은 그 정치를 기뻐하고, 각기 자신을 다하여 윗사람을 받들어 모셨다. 이로써 천지(天地)가 조화롭고47, 음양(陰陽)이 화평하며, 백성에게 간사하게 숨는 자가 없고, 기강(機衡)48이 기울어지지 않아, 덕스러운 기운이 널리 퍼지고 칭송의 소리가 일어났다.


5

원문
其後忽養賢而《鹿鳴》思,背宗族而《采蘩》怨,履畝稅而《碩鼠》作,賦歛重譯告通,班祿頗而《傾甫》賴,行人定而《緜蠻》諷,故遂耗亂衰弱。

번역문
그 후 현명한 자를 기르는 것을 소홀히 하여 『녹명(鹿鳴)』49을 생각하게 되었고, 종족을 등한시하여 『채번(采蘩)』50의 원망이 생겼으며, 밭에 세금을 부과하여 『석서(碩鼠)』51가 지어졌고, 부세(賦稅)와 공물(貢物)이 거듭 통고되어52, 녹봉을 나누는 것이 치우쳐53 『경보(傾甫)』54에 의지하게 되었고, 나그네가 정착하여55 『면만(緜蠻)』56으로 풍자하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마침내 소모되고 혼란스러워져 쇠약해졌다.


6

원문
及周室微而五伯作,六國弊而暴秦興,背義理而尚威力,滅興禮而行貪叨,重賦歛以厚己,彊臣下以弱枝,文德不獲封爵,列侯不獲。是以賢者不能行禮以從道,品臣不能無枉以從利。君又驟赦以縱賦,民無恥而多盜竊。

번역문
주(周)나라 왕실이 쇠약해지자 오패(五伯)57가 일어났고, 육국(六國)58이 피폐해지자 포악한 진(秦)나라가 흥성하였다. 의리(義理)를 등지고 위력(威力)을 숭상하며, 예절을 없애고 탐욕스러운 행위를 일삼았으며59,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자신을 살찌우고, 신하들을 강압하여 제후들을 약화시켰다60. 문덕(文德)을 지닌 자는 봉작(封爵)을 얻지 못하고61, 열후(列侯)62는 (그 지위를) 얻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현명한 자는 예절을 행하여 도를 따를 수 없었고, 평범한 신하는 이익을 좇아 왜곡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주는 또한 자주 사면하여63 (백성에게) 세금을 함부로 부과하게 하니64, 백성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도둑질이 많아졌다.


7

원문
何者?咸氣加而化上風,患害切而迫飢寒,此滅絕所以不能詰其盜者也。《詩》云:「大風有隧,貪人敗類。」「爾之教矣,民斯效矣。」是故先王將發號施令,諄諄如也,唯恐不中而道於邪,故作典以為民極,上下共之,無有私曲, 三府制法,未聞赦彼有罪,獄貨惟寶者也。

번역문
무엇 때문인가? (간사한) 기운이 더해져 위에서부터 풍속이 변하고65, 환난이 절박하여 굶주림과 추위가 닥치니, 이것이 바로 (나라가) 멸망하여 그 도둑들을 다스릴 수 없는 까닭이다. 『시(詩)』에 이르기를66, “큰 바람에 길이 나듯이67, 탐욕스러운 자는 그 무리를 망친다68.”고 하였고, “너희가 가르치면, 백성이 이에 본받는다69.”고 하였다. 이 때문에 선왕(先王)70이 명령을 내릴 때, 간곡하고 정성스러웠으니71, 오직 (명령이) 적중하지 못하여 사악한 길로 흐를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법전을 만들어 백성의 표준으로 삼고72, 위아래가 함께 따르며, 사사로운 편파가 없었고, 삼부(三府)73가 법을 제정하여, 죄 있는 자를 사면하거나, 옥중의 재물을 보배로 삼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74.


8

원문
是故明君臨眾,必以正軌,既無猒有,務節禮而厚下, 復德而崇化,使皆阜於養生而競於廉恥也。是以官長正而百姓化,邪心黜而姦匿絕,然後乃能協和氣而致太平也。《易》曰:「聖人養賢以及萬民。」為本,君以臣為基,然後高能可崇也;馬肥,然後遠能可致也。人君不務此而欲致太平,此猶薄趾而望高墻,驥瘠而責遠道,其不可得也必矣。

번역문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가 백성을 다스릴 때는, 반드시 바른 궤도에 따라75, 이미 재물에 싫증 내지 않고76, 예절을 절제하고 아랫사람을 후하게 대하며, 덕을 회복하고 교화를 숭상하여, 모두 생업에 풍족하고77 청렴과 부끄러움을 다투게 한다. 이로써 관장(官長)78이 바르면 백성이 교화되고, 간사한 마음이 물러나고 간사하게 숨는 자가 끊어지며, 그 후에야 비로소 화합하는 기운을 조화롭게 하여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 『역(易)』에 이르기를79, “성인(聖人)은 현명한 자를 길러 만백성에게 미치게 한다80.”고 하였다.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군주는 신하를 기초로 삼은 후에야 높은 능력을 숭상할 수 있고; 말이 살쪄야 먼 길을 갈 수 있다. 군주가 이것에 힘쓰지 않고 태평성대를 이루려 한다면, 이는 마치 얇은 주춧돌로 높은 담장을 바라거나81, 여윈 준마(駿馬)에게 먼 길을 요구하는 것과 같으니82, 그것을 얻을 수 없음이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9

원문
昔宣皇帝興於民閒,深知之,故常嘆曰:「萬民所以安田里無憂患者,政平訟治也。與我共此者,其惟良二千石。」於是明選守相,其初除者,必躬見之,觀其志趣,以昭其能,明察其治,重其刑賞。姦宄減少、戶口增息者,賞賜金帛,爵至封侯。其耗亂無狀者,皆銜刀瀝血於市。賞重而信,罰痛而必,群臣畏勸,競思其職。故能致治安而世升平,降鳳皇而來麒麟,天人悅喜,符瑞並臻,功德茂盛,立為中宗。由此觀之,牧守大臣者,誠盛衰之本原也,不可不選練也;法令賞罰者,誠治亂之樞機也,不可不嚴行也。

번역문
옛날 선제(宣皇帝)83가 민간에서 흥기하여84, 이를 깊이 알았으므로, 항상 탄식하며 말하기를, “만백성이 전답에서 편안하고 근심 걱정 없는 까닭은, 정치가 평화롭고 송사가 잘 다스려지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이를 이룬 자는, 오직 훌륭한 이천석(二千石)85 관리들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밝게 태수(守)와 재상(相)을 선발하였는데, 처음 임명되는 자는 반드시 몸소 만나보고, 그들의 뜻과 취향을 살펴 그 능력을 밝히고, 그들의 다스림을 명확히 살피며, 그들의 형벌과 상을 중히 하였다. 간사하고 흉악한 자들이 줄어들고, 호구(戶口)가 늘어난 자에게는, 금과 비단을 상으로 주고, 작위는 열후(列侯)에 이르기까지 봉했다. 그 혼란을 야기하고 형편없는 자들은, 모두 칼을 물고 피를 흘리며 시장에서 죽였다86. 상은 중하고 신뢰할 만했으며, 벌은 고통스럽고 반드시 시행되었으므로, 여러 신하들은 두려워하고 권장되어, 다투어 그 직책을 생각했다. 그러므로 안정과 평화를 이루고 세상이 태평해졌으며, 봉황이 내려오고 기린이 나타났으니87, 하늘과 사람이 기뻐하고, 상서로운 징조가 함께 닥쳐, 공덕이 무성하여 중종(中宗)88으로 추앙받았다. 이로써 볼 때, 주목(牧)과 태수(守)와 같은 대신들은, 진실로 흥망성쇠의 근본 원인이니, 선발하고 단련하지 않을 수 없고; 법령과 상벌은, 진실로 다스려짐과 혼란의 중요한 기틀이니, 엄하게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


10

원문
昔仲尼有言:「政寬則民慢,慢則糾之以猛;猛則民殘,殘則施之以寬。寬以濟猛,猛以濟寬,政是以和。」今者刺史、守相,率多怠慢,違背法律,廢忽詔令,專情務利,不䘏公事。細民冤結,無所控告,下土邊遠,能詣闕者,萬無數人,其得省治,不能百一。郡縣負其如此也,故至敢延期,民日往上書。此皆太寬之所致也。

번역문
옛날 중니(仲尼)89가 말하기를, “정치가 너그러우면 백성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엄격함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엄격하면 백성이 잔혹해지고, 잔혹해지면 너그러움으로 베풀어야 한다. 너그러움으로 엄격함을 돕고, 엄격함으로 너그러움을 도우면, 정치가 이로써 화합한다.”고 하였다. 지금 자사(刺史)90와 태수(守) 및 재상(相)들은, 대개 태만하고 게을러서, 법률을 위반하고, 조서와 명령을 폐기하고 소홀히 하며,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고, 공적인 일을 돌보지 않는다. 미천한 백성들은 억울함이 쌓여도 호소할 곳이 없고, 변방의 먼 지역에서는 대궐에 이를 수 있는 자가 만 명 중 몇 명 되지 않으며91, 그중 심문을 받아 다스려지는 자는 백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는다. 군(郡)과 현(縣)은 그들이 이와 같음을 믿고92, 감히 (사건 처리를) 연기하니, 백성들은 날마다 상서(上書)하러 간다. 이것은 모두 지나치게 너그러운 정치 때문에 생긴 일이다.


11

원문
《噬嗑》之卦,下動上明,其《象》曰:「先王以明罰敕法。」夫積怠之俗,賞不隆則善不勸,罰不重則惡不懲。故凡欲變風改俗者,其行賞罰者也,必使足驚心破膽,民乃易視。

번역문
『서합(噬嗑)』 괘(卦)93는 아래가 움직이고 위가 밝으니, 그 『상전(象傳)』에 이르기를94, “선왕(先王)은 이로써 형벌을 밝히고 법을 엄하게 하였다95.” 무릇 게으름이 쌓인 풍속에서는, 상이 후하지 않으면 선(善)이 권장되지 않고, 벌이 무겁지 않으면 악(惡)이 징벌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릇 풍속을 바꾸고 습관을 고치려는 자는, 상벌을 시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사람들의 마음을 놀라게 하고 담력을 꺾을 만큼96 해야 백성이 비로소 (잘못된 것을) 쉽게 여길 것이다.


12

원문
聖主誠肯明察群臣,竭精稱職有功效者,無愛金帛封侯之費;其懷姦藏惡別無狀者,圖鈇鑕鉞之決。然則良臣如王成、黃霸、龔遂、邵信臣之徒,可比郡而得也;神明瑞應,可朞年而致也。

번역문
성스러운 군주가 진실로 여러 신하들을 밝게 살피고, 정성을 다해 직책을 수행하여 공효(功效)가 있는 자에게는, 금과 비단, 봉후(封侯)의 비용을 아끼지 않고; 간사함을 품고 악을 숨기며 특별히 형편없는 자에게는, 도끼와 칼날로 처형할 것을 계획한다면97. 그렇다면 훌륭한 신하인 왕성(王成)98, 황패(黃霸)99, 공수(龔遂)100, 소신신(邵信臣)101 같은 무리들을, 군(郡)마다 얻을 수 있을 것이요; 신령스러운 징조와 상서로운 응답을, 일 년 안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백성들(烝黎): '烝(증)'은 '많다', '모든', '黎(려)'는 '검다'는 뜻으로, '검은 머리 백성', 즉 '일반 백성'을 의미한다.
  2. 교만하고 포악해져(矯虔): '矯(교)'는 '바로잡다'는 뜻 외에 '억지로 하다', '거만하다'는 뜻이 있고, '虔(건)'은 '공경하다'는 뜻 외에 '강하다', '포악하다'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교만하고 포악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3. 침탈과 어업(어업은 여기서는 백성을 침탈하는 것에 비유)이 그치지 않아(侵漁不止): '侵漁(침어)'는 '침략하여 어업을 하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백성을 침탈하고 착취하다'는 비유적인 의미로 쓰였다.
  4.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으니(司牧之): '司牧(사목)'은 '다스리다', '목양하다'는 뜻.
  5. 사해(四海): 천하, 온 세상을 의미한다.
  6. 천자(天子): 하늘의 아들, 즉 황제를 의미한다. 하늘의 명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
  7. 백성을 부리기 위함도 아니며(以役民): '役民'은 '백성을 부리다', '백성을 노역시키다'는 뜻.
  8. 사람의 지혜와 귀신의 지혜를 다하여(人謀鬼謀): 인간의 지혜와 노력뿐만 아니라, 하늘의 뜻이나 신령한 도움까지 얻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통치자의 덕이 지극하여 천인감응(天人感應)을 이룬 상태를 나타낸다.
  9.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대아(大雅)」 「황의(皇矣)」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10. 백성의 고통을 구하시네(求民之瘼): '瘼(막)'은 '병', '고통'을 의미한다.
  11. 이에 연구하고 헤아렸는가?(爰究爰度?): '爰(원)'은 '이에', '究(구)'는 '연구하다', '度(도)'는 '헤아리다'는 뜻.
  12. 서쪽을 돌아보시니(睠西顧): 주(周)나라가 서쪽에 위치했으므로, 하늘이 주나라를 돌아보아 천명을 내렸다는 의미.
  13. 하(夏): 중국 고대 전설상의 첫 왕조.
  14. 은(殷): 중국 고대 상(商)나라의 다른 이름.
  15. 사치하고 과장하며(奢夸廓大): '奢夸'는 '사치하고 과장하다', '廓大'는 '확장하다'는 뜻.
  16. 사치하고 과장하며 한계가 없는 것을 싫어하여(疾奢夸廓無紀極也): '疾(질)'은 '싫어하다', '미워하다'는 뜻. '紀極(기극)'은 '한계', '규범'을 의미한다.
  17. 훌륭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為優憲藝): '優憲(우헌)'은 '훌륭한 법', '藝(예)'는 '제도', '규범'을 의미한다.
  18. 『전(傳)』에 이르기를: 『좌전(左傳)』 「환공(桓公) 2년」에 나오는 구절이다.
  19. 선성(先聖): 고대 중국의 현명한 성인 군주들을 통칭하는 말.
  20. 적전(籍田): 천자나 제후가 친히 밭을 갈아 농업의 중요성을 보였던 밭.
  21. 등급과 위엄이 있었고(等威): '等(등)'은 '등급', '威(위)'는 '위엄'을 의미한다.
  22. 계급에 따라 녹봉이 줄어들었으며(階級衰殺): '衰殺(쇠살)'은 '줄어들다', '감소하다'는 뜻.
  23.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그 등급에 따라 통달하여(公私達其等級):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이 그 등급에 맞게 처리되었다는 의미.
  24. 구주(九州): 고대 중국의 전 국토를 의미한다.
  25. 상농(上農): 농업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의미.
  26. 관직에 있는 서민(庶人): 일반 백성 출신으로 관직에 나아간 자.
  27. 하사(下士): 가장 낮은 등급의 선비.
  28. 중사(中士): 중간 등급의 선비.
  29. 상사(上士): 가장 높은 등급의 선비.
  30. 대부(大夫): 고대 중국의 관직명.
  31. 경(卿): 고대 중국의 고위 관직.
  32. 군주(君)는 각기 그 경(卿)의 열 배를 받았다(君各什其卿): '什(십)'은 '열 배'를 의미한다.
  33. 삼공(三公): 고대 중국의 가장 높은 세 명의 관직.
  34. 채읍(采邑): 제후나 대부에게 봉해진 영지.
  35. 공후(公侯): 오등작(五等爵) 중 공작과 후작.
  36. 백(伯): 오등작 중 백작.
  37. 자(子): 오등작 중 자작.
  38. 남(男): 오등작 중 남작.
  39. 원사(元士): 가장 낮은 등급의 관직.
  40. 부용(附庸): 작은 제후국이나 부속된 영지.
  41. 문을 닫고 스스로를 지켜(閉門自守): 사사로운 교류를 줄이고 본분에 충실했다는 의미.
  42. 굶주림과 추위의 도리가 없어(無飢寒之道): 굶주림과 추위가 발생할 여지가 없었다는 의미.
  43. 신하는 봉양이 넉넉하여 궁핍하지 않았고(臣養優而不隘): '優(우)'는 '넉넉하다', '隘(애)'는 '궁핍하다'는 뜻.
  44. 밝게 강등시키고 승진시키는 것을 반드시 행하여(明必黜陟): '黜陟(출척)'은 관리를 강등시키거나 승진시키는 인사 제도.
  45. 공경히 넓고 큰 하늘을 본받아, 백성에게 때에 맞춰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고(欽若昊天,敬授民時):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나오는 구절.
  46. 우리 처자식과 함께, 저 남쪽 밭에 점심을 나르네(同我婦子,饁彼南畝):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동(大東)」 편에 나오는 구절. 백성들이 평화롭게 농사짓는 모습을 묘사한다.
  47. 천지(天地)가 조화롭고(天地交泰): 『주역』의 태괘(泰卦)처럼 천지가 교류하여 만물이 번성하는 상태를 의미.
  48. 기강(機衡): 국가의 기강이나 질서.
  49. 『녹명(鹿鳴)』: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실린 시의 제목. 군주가 현명한 신하를 예우하고 연회에 초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는 현명한 자를 기르지 않아 이 시의 정신을 잃었음을 한탄하는 맥락.
  50. 『채번(采蘩)』: 『시경(詩經)』 「국풍(國風)」 「소남(召南)」에 실린 시의 제목. 종묘 제사에 쓰이는 쑥을 캐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종족의 화합과 제사의 중요성을 노래한다. 여기서는 종족을 등한시하여 이 시의 정신을 잃었음을 한탄하는 맥락.
  51. 『석서(碩鼠)』: 『시경(詩經)』 「국풍(國風)」 「위풍(魏風)」에 실린 시의 제목. 큰 쥐(탐욕스러운 관리)를 비판하며 백성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풍자한다.
  52. 부세(賦稅)와 공물(貢物)이 거듭 통고되어(賦歛重譯告通): '賦歛(부렴)'은 '부세와 공물', '重譯(중역)'은 '거듭', '告通(고통)'은 '통고하다'는 뜻.
  53. 녹봉을 나누는 것이 치우쳐(班祿頗): '頗(파)'는 '치우치다', '불공정하다'는 뜻.
  54. 『경보(傾甫)』: 『시경(詩經)』 「대아(大雅)」에 실린 시의 제목. 간신배들을 비판하고 군주의 잘못된 정치를 풍자한다.
  55. 나그네가 정착하여(行人定): '行人'은 '나그네', '정착하다'는 뜻.
  56. 『면만(緜蠻)』: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실린 시의 제목. 작은 새들이 짝을 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묘사하며, 백성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풍자하거나, 혹은 백성들이 흩어져 떠도는 모습을 비유할 수 있다.
  57. 오패(五伯): 춘추시대의 다섯 패자(齊桓公, 晉文公, 楚莊王, 吳王闔閭, 越王勾踐 또는 宋襄公, 秦穆公, 楚莊王, 吳王闔閭, 越王勾踐 등).
  58. 육국(六國): 전국시대의 주요 여섯 나라(齊, 楚, 燕, 韓, 趙, 魏).
  59. 예절을 없애고 탐욕스러운 행위를 일삼았으며(滅興禮而行貪叨): '滅興禮'는 '예절을 없애다', '貪叨(탐도)'는 '탐욕스럽다'는 뜻.
  60. 신하들을 강압하여 제후들을 약화시켰다(彊臣下以弱枝): '彊臣下'는 '신하들을 강압하다', '弱枝'는 '가지(제후)를 약화시키다'는 뜻.
  61. 문덕(文德)을 지닌 자는 봉작(封爵)을 얻지 못하고(文德不獲封爵): 덕행이 뛰어난 선비가 관직을 얻지 못했다는 의미.
  62. 열후(列侯): 제후의 작위 중 하나.
  63. 자주 사면하여(驟赦): '驟(취)'는 '자주', '빈번히'라는 뜻.
  64. (백성에게) 세금을 함부로 부과하게 하니(縱賦): '縱賦'는 '세금을 함부로 부과하다', '방종하게 세금을 거두다'는 뜻.
  65. (간사한) 기운이 더해져 위에서부터 풍속이 변하고(咸氣加而化上風): '咸氣(함기)'는 '간사한 기운', '化上風'은 '위에서부터 풍속이 변하다'는 뜻.
  66.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대아(大雅)」 「탕(蕩)」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67. 큰 바람에 길이 나듯이(大風有隧): '隧(수)'는 '길', '통로'를 의미한다. 큰 바람이 불면 길이 생기듯이, 탐욕스러운 자들의 행위가 결국 재앙의 길을 연다는 비유.
  68. 탐욕스러운 자는 그 무리를 망친다(貪人敗類): 탐욕스러운 자들이 결국 자신들의 무리까지 망하게 한다는 의미.
  69. 너희가 가르치면, 백성이 이에 본받는다(爾之教矣,民斯效矣):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抑)」 편에 나오는 구절. 위정자의 교화가 백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다.
  70. 선왕(先王): 고대 중국의 현명한 군주들을 통칭하는 말.
  71. 간곡하고 정성스러웠으니(諄諄如也): '諄諄(준준)'은 '간곡하고 정성스러운 모양'을 의미한다.
  72. 법전을 만들어 백성의 표준으로 삼고(作典以為民極): '民極(민극)'은 '백성의 표준', '규범'을 의미한다.
  73. 삼부(三府): 고대 중국의 세 가지 주요 관청.
  74. 죄 있는 자를 사면하거나, 옥중의 재물을 보배로 삼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未聞赦彼有罪,獄貨惟寶者也): '獄貨惟寶'는 '옥중의 재물이 오직 보배가 된다'는 뜻으로, 뇌물을 받고 죄인을 사면하는 부패한 행위를 비판한다.
  75. 바른 궤도에 따라(正軌): '正軌(정궤)'는 '바른 궤도', '정확한 기준'을 의미한다.
  76. 이미 재물에 싫증 내지 않고(既無猒有): '猒(염)'은 '싫증 내다', '만족하다'는 뜻. '無猒有'는 '재물에 만족하지 않고 탐욕을 부리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이미 재물에 싫증 내지 않고'로 해석하여, 재물에 대한 탐욕이 없음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다.
  77. 모두 생업에 풍족하고(皆阜於養生): '阜(부)'는 '풍족하다', '넉넉하다'는 뜻. '養生'은 '생업', '생활'을 의미한다.
  78. 관장(官長): 관청의 우두머리, 관리.
  79. 『역(易)』에 이르기를: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80. 성인(聖人)은 현명한 자를 길러 만백성에게 미치게 한다(聖人養賢以及萬民): 성인이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여 그들의 덕과 지혜가 모든 백성에게 미치도록 한다는 의미.
  81. 얇은 주춧돌로 높은 담장을 바라거나(薄趾而望高墻): '薄趾(박지)'는 '얇은 주춧돌', '望高墻'은 '높은 담장을 바라다'는 뜻. 기초가 부실한데 큰 것을 이루려 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82. 여윈 준마(駿馬)에게 먼 길을 요구하는 것과 같으니(驥瘠而責遠道): '驥(기)'는 '천리마', '준마', '瘠(척)'은 '여위다'는 뜻. 능력 없는 자에게 큰일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83. 선제(宣皇帝): 서한(西漢)의 황제.
  84. 민간에서 흥기하여(興於民閒): 민간 출신으로 황제가 되었다는 의미. 선제는 무제(武帝)의 증손자로, 어린 시절 민간에서 자랐다.
  85. 이천석(二千石): 한(漢)나라 때 태수(太守)의 녹봉이 이천석이었으므로, 태수를 지칭하는 말.
  86. 칼을 물고 피를 흘리며 시장에서 죽였다(銜刀瀝血於市): '銜刀(함도)'는 '칼을 물다'는 뜻으로, 자결하거나 처형당한 시체가 칼을 문 채로 버려지는 비참한 모습을 묘사한다. '瀝血(력혈)'은 '피를 흘리다'.
  87. 봉황이 내려오고 기린이 나타났으니(降鳳皇而來麒麟): 봉황과 기린은 상상의 동물로, 성군이 나타나 태평성대가 이루어질 때 나타난다고 전해지는 상서로운 징조.
  88. 중종(中宗): 한(漢) 선제(宣帝)의 묘호.
  89. 중니(仲尼): 공자(孔子)의 자(字).
  90. 자사(刺史): 한(漢)나라 때 주의 감찰관.
  91. 만 명 중 몇 명 되지 않으며(萬無數人): '萬無數人'은 '만 명 중에 몇 명도 안 된다'는 뜻으로, 매우 적다는 의미.
  92. 군(郡)과 현(縣)은 그들이 이와 같음을 믿고(郡縣負其如此也): '負(부)'는 '믿다', '의지하다'는 뜻. 즉, 군현 관리들이 백성들이 호소할 곳이 없다는 것을 믿고.
  93. 『서합(噬嗑)』 괘(卦): 『주역(周易)』의 괘 이름. '서합(噬嗑)'은 '씹어서 합치다'는 뜻으로, 입 안에 있는 것을 씹어 삼키듯이, 어려움을 해결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것을 상징한다.
  94.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주역(周易)』의 괘상(卦象)을 풀이한 부분.
  95. 형벌을 밝히고 법을 엄하게 하였다(明罰敕法): 형벌을 명확히 하고 법을 엄정하게 시행한다는 의미.
  96. 사람들의 마음을 놀라게 하고 담력을 꺾을 만큼(驚心破膽): '驚心(경심)'은 '마음을 놀라게 하다', '破膽(파담)'은 '담력을 꺾다'는 뜻.
  97. 도끼와 칼날로 처형할 것을 계획한다면(圖鈇鑕鉞之決): '圖(도)'는 '계획하다', '생각하다'는 뜻. '鈇(부)'는 '도끼', '鑕(질)'은 '칼날', '鉞(월)'은 '큰 도끼'를 의미한다. 모두 처형 도구를 상징한다.
  98. 왕성(王成):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태수.
  99. 황패(黃霸):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태수.
  100. 공수(龔遂):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태수.
  101. 소신신(邵信臣):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태수. 이들은 모두 선제 시대의 명관(名官)으로, 백성을 잘 다스려 칭송받았다.

潛夫論(잠부론) - 愛日(애일)

1

원문
國之所以為國者,以有民也;民之所以為民者,以有穀也;穀之所以豐殖者,以有人功也;功之所以能建者,以日力也。治國之日舒以長,故其民閒暇而力有餘;亂國之日促以短,故其民困務而力不足。

번역문
나라가 나라 되는 까닭은 백성이 있기 때문이요; 백성이 백성 되는 까닭은 곡식이 있기 때문이요; 곡식이 풍성하게 번식하는 까닭은 사람의 공력(功力)이 있기 때문이요; 공력이 능히 세워지는 까닭은 날마다의 힘1 때문이다. 잘 다스려지는 나라의 날은 느긋하고 길어서2, 그 백성이 한가하고 여유로워 힘이 남고; 혼란스러운 나라의 날은 촉박하고 짧아서3, 그 백성이 일에 곤궁하여 힘이 부족하다.


2

원문
所謂治國之日舒以長者,非謁羲和而令安行也,又非能增分度而益漏刻也。乃君明察而百官治,下循正而得其所,則民安靜而力有餘,故視日長也。所謂亂國之日促以短者,非謁羲和而令疾驅也,又非能減分度而損漏刻也。乃君不明則百官亂而姦宄興,法令鬻而役賦繁,則希民困於吏政,仕者窮於典禮,冤民就獄乃得直,烈士交私乃見保,姦臣肆心於上,亂化流行於下,君子載質而車馳,細民懷財而趨走,故視日短也。

번역문
이른바 잘 다스려지는 나라의 날이 느긋하고 길다는 것은, 희화(羲和)4에게 아뢰어 (해를) 편안히 가게 하는 것도 아니요, 또한 능히 분도(分度)5를 늘리고 누각(漏刻)6을 더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군주가 밝게 살피고 백관이 잘 다스려지며, 아랫사람이 바른 도리를 따르고 그 마땅한 바를 얻으면, 백성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힘이 남으므로, 날이 길게 보이는 것이다. 이른바 혼란스러운 나라의 날이 촉박하고 짧다는 것은, 희화에게 아뢰어 (해를) 빨리 가게 하는 것도 아니요, 또한 능히 분도를 줄이고 누각을 손상시키는 것도 아니다. 이는 군주가 밝지 못하면 백관이 문란해지고 간사하고 흉악한 일이 흥성하며, 법령이 팔리고7 부역과 세금이 번거로워지니8, 드문 백성이 관리의 정치에 곤궁해지고9, 벼슬하는 자는 전례(典禮)10에 궁핍해지며, 억울한 백성은 감옥에 가서야 비로소 결백함을 얻고11, 절개 있는 선비는 사사로운 교류를 통해서야 보전되며12, 간사한 신하는 위에서 마음껏 방자하고13, 혼란스러운 교화가 아래에서 유행하며, 군자는 재물을 싣고 수레를 타고 달리며14, 미천한 백성은 재물을 품고 달아나니15, 그러므로 날이 짧게 보이는 것이다.


3

원문
《詩》云:「王事靡盬,不遑將父。」言在古閒暇而得行孝,今迫促不得養也。孔子稱庶則富之,既富則教之。是禮義生於富足,盜竊起於貧窮,富貴生於寬暇,貧窮起於無日。聖人深知力者乃民之本也而國之基,故務省役而為民愛日。是以堯敕羲和,「欽若昊天,敬授民時」;邵伯訟不忍煩民,聽斷棠下,能興時雍而致刑錯。

번역문
『시(詩)』에 이르기를16, “왕의 일이 끝이 없어, 아버지를 봉양할 겨를이 없네17.”라고 하였다. 이는 옛날에는 한가하고 여유로워 효도를 행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촉박하여 봉양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백성이 많아지면 부유하게 하고18, 이미 부유해지면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19. 이는 예절과 의로움이 부유함에서 생기고, 도둑질은 빈궁함에서 일어나며, 부귀는 여유로움에서 생기고, 빈궁은 날마다의 힘이 부족함에서 일어남을 말한다. 성인(聖人)은 힘이 곧 백성의 근본이요 나라의 기초임을 깊이 알았으므로, 부역을 줄이는 데 힘써 백성을 위해 시간을 아끼게 하였다. 이 때문에 요(堯)20 임금은 희화(羲和)에게 명하여, “공경히 넓고 큰 하늘을 본받아, 백성에게 때에 맞춰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라21.”고 하였고; 소백(邵伯)22은 송사(訟事)가 백성을 번거롭게 하는 것을 참지 못하여, 감당나무 아래에서 송사를 듣고 판결하여23, 때에 맞는 화합을 일으키고 형벌을 없앨 수 있었다24.


4

원문
今則不然。萬官撓民,令長自衒,百姓廢桑而趨府庭者,非朝晡不得通,非意氣不得見,訟不訟輒連月日,舉室釋作,以相瞻視,辭人之家,輒請鄰里應對送餉,比事訖,竟亡一歲功,則天下獨有受其飢者矣,而品人俗士之司典者,曾不覺也。郡縣既加冤枉,州司不治,今破家活,達詣公府。公府不能昭察真偽,則但欲罷之以久困之資,故猥說一科,令此注百日,乃為移書,其不滿百日,輒更造數,甚違邵伯訟棠之義。此所謂誦《詩》三百,授之以政,不達,雖多亦奚以為者也。

번역문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모든 관리가 백성을 괴롭히고25, 현령과 현장이 스스로를 과시하니26, 백성들이 양잠을 버리고 관청으로 달려가는 것은27, 아침저녁이 아니면 통할 수 없고28, (관리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만날 수 없으며29, 송사를 하든 안 하든 문득 몇 달씩 이어지고30, 온 집안이 생업을 버리고31 서로를 바라보며 (기다리니)32, 송사를 하는 집안은 문득 이웃에게 응대하고 식량을 보내달라고 청하여33, 일이 끝날 때까지 결국 일 년의 공력을 잃게 되니, 천하에는 오직 굶주림을 당하는 자만 있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을 평가하고 세속을 다스리는 자들은34, 일찍이 깨닫지 못한다. 군(郡)과 현(縣)이 이미 억울함을 더하고, 주(州)의 관리가 다스리지 않으니, 이제 (백성들은) 가산을 탕진하여35 공적인 관청에 이른다. 공적인 관청은 진위(眞僞)를 밝게 살피지 못하고, 단지 (백성들을) 오랫동안 곤궁하게 할 자산으로 삼아36 그만두게 하려 하므로, 함부로 한 가지 조목을 말하여37, 이것을 백 일 동안 기록하게 하고38, 이에 공문을 보내는데, 백 일이 채 되지 않으면 문득 다시 (다른) 조목을 만들어내니39, 소백(邵伯)이 감당나무 아래에서 송사를 다스린 의의에 매우 어긋난다. 이것은 이른바 『시(詩)』 삼백 편을 외웠으나, 그에게 정치를 맡기면 통달하지 못하니, 비록 많이 알아도 무엇에 쓰겠는가40.


5

원문
孔子曰:「聽訟,吾猶人也。」從此觀之,中材以上,皆議曲直之辯,刑法之理可;鄉亭部吏,足以斷決,使無怨言。然所以不者,蓋有故焉。

번역문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41, “송사를 듣는 것은, 나도 남과 같다42.”고 하셨다. 이로써 볼 때, 중간 재능 이상이라면, 모두 옳고 그름의 변론과 형법의 이치를 논할 수 있다. 향(鄉)과 정(亭)의 하급 관리43도, 충분히 단정하고 결정하여, 원망하는 말이 없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은, 대개 이유가 있다.


6

원문
《傳》曰:「惡直醜正,實繁有徒。」夫直者真正而不撓志,無恩於吏。怨家務主者結以貨財,故鄉亭與之為排直家,後反覆時吏坐之,故共枉之於庭。以羸民與豪吏訟,其勢不如也。是故縣與部并,後有反覆,長吏坐之,故舉縣排之於郡。以一人與一縣訟,其勢不如也。故郡與縣并,而不肯治,故乃遠詣公府爾。公府不能察,而苟欲以錢刀課之,則貧弱少貨者終無已曠旬滿祈。豪富饒錢者取客使往,可盈千日,非徒百也。治訟若此,為務助豪猾而鎮貧弱也,何冤之能治?

번역문
『전(傳)』에 이르기를44, “곧은 것을 미워하고 바른 것을 추하게 여기는 자들이, 실로 무성하게 무리를 이룬다.”고 하였다. 무릇 곧은 자는 진정으로 바르고 뜻을 굽히지 않아, 관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원한을 품은 자들이 송사를 주도하여45 재물로 결탁하니, 향(鄉)과 정(亭)은 그들과 함께 정직한 집안을 배척하고46, 후에 (사건이) 번복될 때 관리가 그 죄를 뒤집어쓰게 되므로47, 함께 법정에서 그들을 억울하게 만든다. 약한 백성이 호강한 관리와 송사하면, 그 형세가 불리하다. 이 때문에 현(縣)은 부(部)48와 결탁하고, 후에 (사건이) 번복될 때 장리(長吏)49가 그 죄를 뒤집어쓰게 되므로, 온 현이 함께 그들을 군(郡)에 배척한다. 한 사람이 한 현과 송사하면, 그 형세가 불리하다. 그러므로 군(郡)은 현(縣)과 결탁하고, (사건을) 다스리려 하지 않으므로, 이에 멀리 공적인 관청에 이르는 것이다. 공적인 관청은 살피지 못하고, 구차하게 돈으로 (송사를) 해결하려 하니50, 가난하고 약하며 재물이 적은 자는 끝내 열흘을 넘기거나 백 일을 채우지 못하고51, 부유하고 돈 많은 자는 객사(客使)52를 보내어 천 일도 채울 수 있으니, 단지 백 일에 그치지 않는다. 송사를 다스리는 것이 이와 같으니, 호강하고 교활한 자를 돕고 가난하고 약한 자를 억압하는 데 힘쓰는 것이니, 어찌 억울함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7

원문
非獨鄉部辭訟也。武官斷獄,亦皆始見枉於小吏,終重冤於大臣。怨故未讎,輒逢赦令,不得復治,正士懷冤結而不得信,猾吏崇姦宄而不痛坐。郡縣所以易侵小民,而天下所以多飢窮也。

번역문
비단 향(鄉)과 부(部)의 송사뿐만이 아니다. 무관(武官)53이 옥사(獄事)를 판결할 때도, 모두 처음에는 하급 관리에게 억울함을 당하고, 결국 대신에게 더욱 억울함을 당한다. 원한이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도, 문득 사면령을 만나 다시 다스릴 수 없게 되니, 정직한 선비는 억울함을 품고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교활한 관리는 간사하고 흉악한 짓을 일삼아도 고통스러운 처벌을 받지 않는다. 군(郡)과 현(縣)이 쉽게 미천한 백성을 침해하는 까닭이요, 천하에 굶주리고 궁핍한 자가 많은 까닭이다.


8

원문
於上天感動,降災傷穀,但以人功見事言之,今自三府以下,至于縣道鄉亭,及從事督郵,有典之司,民廢農桑而守之, 辭訟告訴,及以官事應對吏者,一人之,日廢十萬人,人復下計之,一人有事,二人獲餉,是為日三十萬人離其業也。以中農率之,則是歲三百萬口受其飢也。然則盜賊何從消,太平何從作?

번역문
위로는 하늘이 감동하여, 재앙을 내리고 곡식을 해치지만54, 단지 사람의 공력으로 일을 말하건대, 지금 삼부(三府)55 이하로부터, 현(縣)과 도(道)56, 향(鄉)과 정(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종사(從事)57와 독우(督郵)58 등 직책을 맡은 관리들이 있는데, 백성들이 농업과 양잠을 버리고 그들을 지키며59, 송사를 호소하고, 관청 일로 관리에게 응대하는 자가, 한 사람의 일로 인해, 날마다 십만 명이 생업을 폐하고60, 다시 계산해보면, 한 사람이 일이 있으면, 두 사람이 식량을 얻으니61, 이는 날마다 삼십만 명이 그 생업을 떠나는 것이다. 중간 농민의 비율로 계산하면, 이는 해마다 삼백만 명이 굶주림을 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적은 어디에서 사라지고, 태평성대는 어디에서 이루어지겠는가?


9

원문
孝明皇帝嘗問:「今旦何得無上書者?」左右對曰:「反支故。」帝曰:「民既廢農遠來詣闕,而復使避反支,是則又奪其日而冤之也。」乃敕公車受章,無避反支。上明聖主為民愛日如此,而有司輕奪民時如彼,蓋所謂有君無臣,有主無佐,元首聰明,股肱怠惰者也。《詩》曰:「國既卒斬,何用不監!」傷三公居人尊位,食人重祿,而曾不肯察民之盡瘁也。

번역문
효명제(孝明帝)62께서 일찍이 물으시기를, “오늘 아침에는 어찌 상서(上書)하는 자가 없는가?”라고 하시자, 좌우의 신하들이 대답하기를, “반지(反支)63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황제가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이미 농업을 버리고 멀리 대궐에 왔는데, 또다시 반지(反支)를 피하게 하는 것은, 곧 그들의 시간을 또 빼앗고 억울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공거(公車)64에 명하여 상소를 받되, 반지(反支)를 피하지 말라고 하였다. 위로는 밝고 성스러운 군주가 백성을 위해 시간을 아끼는 것이 이와 같았는데, 담당 관리들은 백성의 시간을 저처럼 가볍게 빼앗으니, 대개 이른바 군주는 있으나 신하가 없고, 주군은 있으나 보좌하는 자가 없으며, 원수(元首)65는 총명하나, 사지(四肢)66는 게으르고 나태한 것이다. 『시(詩)』에 이르기를67, “나라가 이미 마침내 끊어졌으니, 어찌 살피지 않는가!68”라고 하였다. 삼공(三公)69이 사람의 존귀한 지위에 있으면서, 사람의 많은 녹봉을 먹으면서도, 백성의 지치고 고통스러운 것을 일찍이 살피려 하지 않음을 슬퍼하는 것이다.


10

원문
孔子病夫「未之得也,患不得之,既得之,患失之」者。今公卿始起州郡而致宰相,此其聰明智慮,未必闇也,患其苟先私計而後公義爾。《詩》云:「莫肯念亂,誰無父母!」今民力不暇,穀何以生?「百姓不足,君孰與足?」嗟哉,可無思乎!

번역문
공자(孔子)께서 “아직 얻지 못했을 때는, 얻지 못할까 근심하고, 이미 얻었을 때는, 잃을까 근심한다70.”는 것을 병폐로 여기셨다. 지금 공경(公卿)들이 주군(州郡)에서 시작하여 재상에 이르렀으니, 이들의 총명함과 지혜로운 생각은 반드시 어둡지 않다. 다만 그들이 구차하게 사사로운 계산을 먼저 하고 공적인 의로움을 나중에 하는 것을 근심할 뿐이다. 『시(詩)』에 이르기를71, “아무도 혼란을 생각하려 하지 않으니, 누가 부모가 없겠는가!72”라고 하였다. 지금 백성의 힘이 여유롭지 못하니, 곡식이 어찌 생산되겠는가? “백성이 부족한데, 군주가 누구와 함께 넉넉하겠는가?73” 아아,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각주

  1. 날마다의 힘(日力): 하루하루의 노력과 시간을 의미한다.
  2. 느긋하고 길어서(舒以長): 시간이 여유롭고 길게 느껴진다는 의미.
  3. 촉박하고 짧아서(促以短): 시간이 촉박하고 짧게 느껴진다는 의미.
  4. 희화(羲和): 중국 고대 전설상의 해와 달을 관장하는 신.
  5. 분도(分度): 시간의 단위, 혹은 해와 달의 운행을 측정하는 단위.
  6. 누각(漏刻): 물시계.
  7. 법령이 팔리고(法令鬻): 법령이 공정하게 시행되지 않고, 뇌물 등으로 거래된다는 의미.
  8. 부역과 세금이 번거로워지니(役賦繁): '役賦(역부)'는 '부역과 세금', '繁(번)'은 '번거롭다', '많다'는 뜻.
  9. 드문 백성이 관리의 정치에 곤궁해지고(希民困於吏政): '希民'은 '드문 백성', 즉 '소수의 백성'을 의미한다.
  10. 전례(典禮): 법도와 예절.
  11. 억울한 백성은 감옥에 가서야 비로소 결백함을 얻고(冤民就獄乃得直): 억울한 백성이 감옥에 갇히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이 밝혀진다는 비참한 현실을 비판한다.
  12. 절개 있는 선비는 사사로운 교류를 통해서야 보전되며(烈士交私乃見保): '烈士'는 '절개 있는 선비', '交私'는 '사사로운 교류', '見保'는 '보전되다'는 뜻.
  13. 간사한 신하는 위에서 마음껏 방자하고(姦臣肆心於上): '肆心(사심)'은 '마음껏 방자하다', '제멋대로 하다'는 뜻.
  14. 군자는 재물을 싣고 수레를 타고 달리며(君子載質而車馳): '載質'은 '재물을 싣다', '車馳'는 '수레를 타고 달리다'는 뜻. 군자라고 불리는 자들조차 재물에 눈이 멀어 이익을 좇는 세태를 비판한다.
  15. 미천한 백성은 재물을 품고 달아나니(細民懷財而趨走): '懷財'는 '재물을 품다', '趨走'는 '달아나다', '도망치다'는 뜻. 백성들이 재산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는 비참한 현실을 묘사한다.
  16.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소아(小雅)」 「북산(北山)」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17. 왕의 일이 끝이 없어, 아버지를 봉양할 겨를이 없네: 왕의 부역이 너무 많아 백성들이 부모를 봉양할 시간조차 없다는 백성의 고통을 묘사한다.
  18. 백성이 많아지면 부유하게 하고(庶則富之): 『논어(論語)』 「자로(子路)」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19. 이미 부유해지면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既富則教之): 『논어(論語)』 「자로(子路)」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20. 요(堯):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21. 공경히 넓고 큰 하늘을 본받아, 백성에게 때에 맞춰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라(欽若昊天,敬授民時):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나오는 구절.
  22. 소백(邵伯): 주(周)나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아우로, 주공과 함께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현명한 인물.
  23. 감당나무 아래에서 송사를 듣고 판결하여(聽斷棠下): 소백이 백성들의 송사를 해결하기 위해 감당나무 아래에서 정사를 보았는데, 백성들이 그 덕을 기려 나무를 베지 않았다는 고사성어 '감당지애(甘棠之愛)'의 유래.
  24. 때에 맞는 화합을 일으키고 형벌을 없앨 수 있었다(興時雍而致刑錯): '時雍(시옹)'은 '때에 맞는 화합', '刑錯(형착)'은 '형벌이 없어지다', '형벌이 필요 없게 되다'는 뜻.
  25. 모든 관리가 백성을 괴롭히고(萬官撓民): '撓民(요민)'은 '백성을 괴롭히다', '백성을 어지럽히다'는 뜻.
  26. 현령과 현장이 스스로를 과시하니(令長自衒): '自衒(자현)'은 '스스로를 과시하다', '자랑하다'는 뜻.
  27. 백성들이 양잠을 버리고 관청으로 달려가는 것은(百姓廢桑而趨府庭者): '廢桑'은 '양잠을 버리다', '趨府庭'은 '관청으로 달려가다'는 뜻.
  28. 아침저녁이 아니면 통할 수 없고(非朝晡不得通): '朝晡(조포)'는 '아침과 저녁'을 의미한다. 즉,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관리를 만날 수 없다는 의미.
  29. (관리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만날 수 없으며(非意氣不得見): '意氣(의기)'는 '의기', '기분'을 의미한다. 즉, 관리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는 의미.
  30. 송사를 하든 안 하든 문득 몇 달씩 이어지고(訟不訟輒連月日): '輒(첩)'은 '문득', '곧', '連月日'은 '몇 달씩 이어지다'는 뜻.
  31. 온 집안이 생업을 버리고(舉室釋作): '舉室'은 '온 집안', '釋作'은 '생업을 버리다', '일을 그만두다'는 뜻.
  32. 서로를 바라보며 (기다리니)(以相瞻視): '瞻視(첨시)'는 '바라보다', '쳐다보다'는 뜻.
  33. 이웃에게 응대하고 식량을 보내달라고 청하여(請鄰里應對送餉): '應對(응대)'는 '응대하다', '送餉(송향)'은 '식량을 보내다'는 뜻.
  34. 사람을 평가하고 세속을 다스리는 자들은(品人俗士之司典者): '品人'은 '사람을 평가하다', '俗士'는 '세속적인 선비', '司典'은 '법도를 다스리다'는 뜻.
  35. 가산을 탕진하여(破家活): '破家'는 '집안을 망치다', '活(활)'은 '생계'를 의미한다.
  36. 오랫동안 곤궁하게 할 자산으로 삼아(以久困之資): '久困(구곤)'은 '오랫동안 곤궁하게 하다', '資(자)'는 '자산', '재료'를 의미한다.
  37. 함부로 한 가지 조목을 말하여(猥說一科): '猥(외)'는 '함부로', '구차하게'라는 뜻. '科(과)'는 '조목', '규정'을 의미한다.
  38. 이것을 백 일 동안 기록하게 하고(令此注百日): '注(주)'는 '기록하다', '주석을 달다'는 뜻.
  39. 다시 (다른) 조목을 만들어내니(輒更造數): '更造數'는 '다시 다른 조목을 만들다'는 뜻.
  40. 『시(詩)』 삼백 편을 외웠으나, 그에게 정치를 맡기면 통달하지 못하니, 비록 많이 알아도 무엇에 쓰겠는가: 『논어(論語)』 「자로(子路)」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41.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논어(論語)』 「안연(顏淵)」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42. 송사를 듣는 것은, 나도 남과 같다: 송사를 판결하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 즉, 공정한 판단은 누구나 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43. 향(鄉)과 정(亭)의 하급 관리(鄉亭部吏): '鄉亭'은 고대 행정 구역 단위, '部吏'는 하급 관리를 의미한다.
  44. 『전(傳)』에 이르기를: 『좌전(左傳)』 「양공(襄公) 24년」에 나오는 구절이다.
  45. 원한을 품은 자들이 송사를 주도하여(怨家務主者): '怨家'는 '원한을 품은 자', '務主'는 '주도하다', '힘쓰다'는 뜻.
  46. 향(鄉)과 정(亭)은 그들과 함께 정직한 집안을 배척하고(鄉亭與之為排直家): '排(배)'는 '배척하다', '밀어내다'는 뜻.
  47. 후에 (사건이) 번복될 때 관리가 그 죄를 뒤집어쓰게 되므로(後反覆時吏坐之): '反覆(반복)'은 '번복되다', '뒤집히다'는 뜻. '坐之'는 '그 죄를 뒤집어쓰다', '책임을 지다'는 뜻.
  48. 부(部): 군(郡) 아래의 행정 구역.
  49. 장리(長吏): 현(縣)의 최고 관리.
  50. 돈으로 (송사를) 해결하려 하니(以錢刀課之): '錢刀(전도)'는 '돈', '課之(과지)'는 '해결하다', '부과하다'는 뜻.
  51. 열흘을 넘기거나 백 일을 채우지 못하고(無已曠旬滿祈): '曠旬(광순)'은 '열흘을 넘기다', '滿祈(만기)'는 '백 일을 채우다'는 뜻.
  52. 객사(客使): 심부름꾼, 대리인.
  53. 무관(武官): 군사적인 일을 담당하는 관리.
  54. 위로는 하늘이 감동하여, 재앙을 내리고 곡식을 해치지만: 하늘이 인간의 잘못된 정치에 감응하여 재앙을 내린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 사상.
  55. 삼부(三府): 고대 중국의 세 가지 주요 관청.
  56. 도(道): 현(縣) 아래의 행정 구역.
  57. 종사(從事): 지방 관청의 하급 관리.
  58. 독우(督郵): 지방 관청의 감찰관.
  59. 백성들이 농업과 양잠을 버리고 그들을 지키며(民廢農桑而守之): '守之'는 '그들을 지키다', '그들에게 매달리다'는 뜻. 즉, 백성들이 생업을 버리고 관청에 매달려 송사를 해결하려 한다는 의미.
  60. 날마다 십만 명이 생업을 폐하고(日廢十萬人): '廢(폐)'는 '폐지하다', '버리다'는 뜻.
  61. 한 사람이 일이 있으면, 두 사람이 식량을 얻으니(一人有事,二人獲餉): '獲餉(획향)'은 '식량을 얻다'는 뜻. 한 사람이 송사를 하면, 그를 돕는 두 사람이 식량을 얻는다는 의미로, 송사로 인해 발생하는 비생산적인 활동을 비판한다.
  62. 효명제(孝明帝): 후한(後漢)의 황제.
  63. 반지(反支): '반지(反支)'는 '반지(反支)'로, 당시 길흉을 따지던 미신적인 날짜를 의미한다. 이 날에는 상소를 올리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64. 공거(公車): 한(漢)나라 때 상소를 담당하던 관청.
  65. 원수(元首): 국가의 최고 통치자, 군주.
  66. 사지(四肢): 팔다리. 여기서는 군주를 보좌하는 신하들을 비유한다.
  67.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68. 나라가 이미 마침내 끊어졌으니, 어찌 살피지 않는가!: 나라가 이미 망했는데도 어찌 그 원인을 살피지 않는가 하는 탄식과 경고의 의미이다.
  69. 삼공(三公): 고대 중국의 가장 높은 세 명의 관직.
  70. “아직 얻지 못했을 때는, 얻지 못할까 근심하고, 이미 얻었을 때는, 잃을까 근심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71.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72. 아무도 혼란을 생각하려 하지 않으니, 누가 부모가 없겠는가!: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부모를 돌보지 않는 자들을 비판하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73. 백성이 부족한데, 군주가 누구와 함께 넉넉하겠는가?: 『논어(論語)』 「안연(顏淵)」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백성이 가난하면 군주도 부유할 수 없다는 의미.
  74. “군자가 자주 맹세하면, 혼란이 이로 인해 자라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 편에 나오는 구절. 맹세가 잦으면 신뢰가 떨어져 오히려 혼란이 가중된다는 의미.
  75. 선량한 자가 사면이 없음을 견디지 못한다면(良不能子無赦者): '子(자)'는 '어조사'로 쓰여 의미를 강조한다. '無赦者'는 '사면이 없는 것'을 의미.
  76. 대사마(大司馬) 오한(吳漢):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개국공신.
  77. 세조(世祖):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묘호.
  78. “방(方)은 무리로 모이고, 물(物)은 무리로 나뉘며”: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구절.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린다는 의미.
  79. “사람의 정(情)은 모두 말에 나타난다”: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에 나오는 구절.
  80. 육권(鬻拳):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충신. 군주에게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발꿈치를 잘라 죽음으로써 군주를 깨닫게 했다.
  81. 이리(李離):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법관. 죄 없는 자를 죽인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82. 오이와 가죽옷을 논하듯이(興瓜議裘): '興瓜(흥과)'는 '오이를 논하다', '議裘(의구)'는 '가죽옷을 논하다'는 뜻. 사소하거나 본질과 관계없는 것을 논하는 것을 비유한다.
  83. 『전(傳)』에 이르기를: 『좌전(左傳)』 「선공(宣公) 12년」에 나오는 구절이다.
  84. 죄가 있는 자는 마땅히 벌을 받고(有罪而備辜): '備辜(비고)'는 '마땅히 벌을 받다', '죄를 다하다'는 뜻.
  85. 속이는 자를 놓아주지 말고, 불량한 자를 삼가라(無縱詭隨,以謹無良): '縱(종)'은 '놓아주다', '詭隨(궤수)'는 '속이는 자', '불량한 자'를 의미한다. '謹(근)'은 '삼가다', '경계하다'는 뜻.
  86. “원한을 모아 덕으로 삼는다”: 『좌전(左傳)』 「환공(桓公) 2년」에 나오는 구절. 부당한 사면이 오히려 백성들의 원한을 쌓이게 한다는 비판.
  87. 선제(先帝): 한(漢)나라 선제(宣帝).
  88. 몰래 칼을 품은 자를 논하였다(論衷刺刀者): '衷刺刀(충자도)'는 '몰래 칼을 품다'는 뜻.
  89. 『상서(尚書)』 「강고(康誥)」에 이르기를: 『서경(書經)』 「강고(康誥)」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90. 봉(封):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아우로, 위(衛)나라에 봉해진 강숙(康叔)의 이름.
  91. 사람이 작은 죄가 있는데도(人有小罪): '匪省'은 '살피지 않다', '우연한 실수가 아니다'는 뜻.
  92.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匪省): '省(성)'은 '살피다', '반성하다'는 뜻 외에 '우연한 실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93. 마침내 (악행을) 계속하려 하여(乃惟終): '惟終(유종)'은 '마침내 끝까지 하다', '계속하다'는 뜻.
  94. 마침내 (악행을) 계속하려 한 것이 아니라(匪終): '匪終'은 '끝까지 하려 한 것이 아니다'는 뜻.
  95. 오직 반성하고(乃惟省哉): '惟省(유성)'은 '오직 반성하다'는 뜻.
  96. 우연히 그렇게 되었으며(適爾): '適爾(적아)'는 '우연히 그렇게 되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다'는 뜻.
  97. 이미 그 죄의 극에 달했다면(既道極厥罪): '道極(도극)'은 '극에 달하다', '厥罪(궐죄)'는 '그 죄'를 의미한다.
  98. 이때는 또한 죽이지 않을 수 있다(時亦不可殺): '不可殺'은 '죽이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문맥상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쓰였다.
  99. 금(金)으로 속죄형을 만들고(金作贖刑): 돈을 받고 형벌을 면해주는 제도.
  100. 사면으로 죄를 용서하는 것은(赦作宥罪): '宥罪(유죄)'는 '죄를 용서하다'는 뜻.
  101. 옥사(獄事)를 의논하고 심리하여(議讞獄): '議讞(의언)'은 '의논하고 심리하다', '재판하다'는 뜻.
  102. 정황을 살피고 의도를 논하여(原情論意): '原情(원정)'은 '정황을 살피다', '論意(논의)'는 '의도를 논하다'는 뜻.
  103. 『주관(周官)』: 『주례(周禮)』를 지칭한다.
  104. 팔의(八議): 고대 중국에서 특정 신분(황족, 공신, 현자 등)의 죄를 감면하거나 특별히 심리하는 여덟 가지 규정.
  105. 만백성을 다스려(整萬民): '整(정)'은 '다스리다', '정돈하다'는 뜻.
  106. 때에 맞는 화합(時雍): 시기에 맞춰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潛夫論(잠부론) - 斷訟(단송)

1

원문
五代不同禮,三家不同教,非其苟相反也,蓋世推移而俗化異也。俗化異則亂原殊,故三家符世,皆革定法。高祖制三章之約,孝文除克膚之刑,是故自非殺傷盜贓,文罪之法,輕重無常,各隨時宜,要取足用勸善消惡而已。

번역문
오대(五代)는 예(禮)가 같지 않았고1, 삼가(三家)는 가르침이 같지 않았으니2, 이는 구차하게 서로 반대한 것이 아니라, 대개 세상이 변천하고 풍속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풍속이 달라지면 혼란의 근원도 달라지므로, 삼가는 세상에 부합하여3 모두 정해진 법을 개혁하였다. 고조(高祖)4는 삼장(三章)의 약속을 제정하였고5, 효문황제(孝文皇帝)6는 살을 깎는 형벌을 폐지하였으니7, 이 때문에 살인, 상해, 도둑질, 뇌물죄가 아닌 한8, 문(文)9에 관한 죄의 법은 경중이 일정하지 않고, 각기 시대의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적용하여, 오직 선(善)을 권하고 악(惡)을 없애는 데 충분하도록 할 뿐이었다.


2

원문
夫制法之意,若為藩籬溝壍以有防矣,擇禽獸之尤可數犯者,而加深厚焉。今姦宄雖眾,然其原少;君事雖繁,然其守約。知其原少姦易塞,見其守約政易治。塞其原則姦宄絕,施其術則遠近治。

번역문
무릇 법을 제정하는 뜻은, 마치 울타리와 해자(垓子)를 만들어 방비하는 것과 같으니10, 특히 자주 범죄를 저지를 만한 짐승을 가려내어11, 더욱 깊고 두터운 방비를 더하는 것이다. 지금 간사하고 흉악한 자들이 비록 많지만, 그 근원은 적고; 군주의 일이 비록 번거롭지만, 그 지키는 바는 간략하다. 그 근원이 적으면 간사함을 막기 쉽고, 그 지키는 바가 간략하면 정치를 다스리기 쉽다는 것을 안다. 그 근원을 막으면 간사하고 흉악한 일이 끊어지고, 그 방법을 시행하면 멀고 가까운 곳이 다스려진다.


3

원문
今一歲斷獄,雖以萬計,然辭訟之辯,鬭賊之發,鄉部之治,獄官之治者,其狀一也。本皆起民不誠信,而數相欺紿也。「舜勑龍以讒說殄行,震驚朕師」,乃自上古患之矣。故先慎己唯舌,以元示民。孔子曰:「亂之所生也,則言語以為階。」「小人不恥不仁,不畏不義。」脈脈規規,常懷姦唯,昧冒前利,不顧廉恥,苟且中,後則榆解奴抵,以致禍變者,比屈是也。

번역문
지금 일 년에 판결하는 옥사(獄事)가 비록 만 건에 달할지라도, 송사(訟事)의 변론, 싸움과 도적의 발생, 향(鄉)과 부(部)의 다스림, 옥관(獄官)의 다스림은12, 그 양상이 한결같다. 본래 모두 백성들이 성실하고 신의롭지 못하여, 자주 서로를 속이고 기만하는 데서 비롯된다. “순(舜)13이 용(龍)14에게 명하여 참소하는 말로 행실을 해치고, 나의 무리를 놀라게 하는 자들을 주살하라15.”고 하였으니, 이는 상고(上古) 시대부터 이를 근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혀를 삼가고16, 으뜸 되는 도리로 백성에게 보여야 한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17, “혼란이 생겨나는 것은, 곧 언어(言語)가 그 계단이 된다.”고 하셨다. “소인(小人)은 불인(不仁)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불의(不義)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맥맥(脈脈)하고 규규(規規)하여18, 항상 간사한 생각만 품고19,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20, 염치(廉恥)를 돌아보지 않으며, 구차하게 (이익을) 취하고21, 나중에는 (책임을) 회피하고 노예처럼 버티어22, 화와 변란을 초래하는 자들은, 이와 같이 굴복하는 자들이다23.


4

원문
非唯細民為然,自封王侯貴戚豪富,尤多有之。假舉驕奢,以作淫侈,高負千萬,不肯償責。小民守門號哭啼呼,曾無怵惕慚怍哀矜之意。苟崇聚酒徒無行之人,傳空引滿,啁啾罵詈,晝夜鄂鄂,慢游是好。或毆擊責主,人於死亡,群盜攻剽,劫人無異。雖會赦贖,不當復得在選辟之科,而州司公府反爭取之。且觀諸敢妄驕奢而作大責者,必非救飢寒而解困急,振貧窮而行禮義者也,咸以崇驕奢而奉淫湎爾。

번역문
비단 미천한 백성들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다. 봉해진 왕후(王侯)24, 귀척(貴戚)25, 호부(豪富)26에 이르기까지, 더욱 많은 이들이 그러하다. 거짓으로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행위를 내세워27, 음란하고 지나친 짓을 일삼고, 천만 전의 빚을 지고도28 갚으려 하지 않는다. 소민(小民)은 문을 지키며 통곡하고 울부짖어도, 일찍이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 구차하게 술꾼과 행실 없는 자들을 모아29, 빈 잔을 돌리고 가득 채우며30, 지저귀고 욕설을 퍼붓고31, 밤낮으로 시끄럽게 떠들며32, 게으르고 방탕하게 노는 것을 좋아한다. 혹은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주인을 구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33, 무리 지은 도적처럼 약탈하고 노략질하여34, 남을 겁탈하는 것과 다름없다. 비록 사면과 속죄를 만난다 할지라도35, 다시는 선발되어 임용되는 과목에 들 수 없어야 하는데36, 주(州)의 관리와 공적인 관청은 도리어 그들을 다투어 얻으려 한다. 또한 감히 망령되이 교만하고 사치하며 큰 빚을 지는 자들을 살펴보면, 반드시 굶주림과 추위를 구제하고 곤궁함을 해결하며, 빈궁한 자를 구제하고 예의를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모두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숭상하고 음란하고 탐닉하는 것을 받들 뿐이다.


5

원문
《春秋》之義,責知誅率。孝文皇帝至寡動,欲任德,然河陽侯陳信坐負六日免國。孝武仁明,周陽侯田彭祖坐當軹侯宅而不與免國,黎陽侯邵延坐不出持馬,身斬國除。二帝豈樂以錢財之故而傷大臣哉?乃欲絕詐欺之端,必國家法,防禍亂之原,以利民也。故一人伏正罪而萬家蒙乎福者,聖主行之不疑。永平時,諸侯負責,輒有削絀之罰。此其後皆不敢負民,而世自節儉,辭訟自消矣。

번역문
『춘추(春秋)』의 의리(義理)는, (군주가) 아는 것을 책임지고37, (간사한) 우두머리를 주살한다38. 효문황제(孝文皇帝)39는 지극히 움직임이 적었고40, 덕(德)에 의지하여 (나라를) 다스리려 하였으나, 하양후(河陽侯) 진신(陳信)41은 빚을 육 일 동안 갚지 못하여42 국(國)을 면직당했다43. 효무제(孝武帝)44는 인자하고 밝았으나, 주양후(周陽侯) 전팽조(田彭祖)45는 지후(軹侯)의 집을 마땅히 차지하고도46 주지 않아 국(國)을 면직당했고47, 여양후(黎陽侯) 소연(邵延)48은 말을 내놓지 않아49 몸이 잘리고 국(國)이 폐지되었다50. 두 황제가 어찌 돈 때문에 대신을 해치는 것을 즐겼겠는가? 이는 속임수의 단서를 끊고, 국가의 법을 확립하며, 화란의 근원을 막아 백성을 이롭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정당한 죄로 처벌받아 만 가구가 복을 입는다면, 성스러운 군주는 이를 행함에 의심하지 않는다. 영평(永平)51 연간에는, 제후들이 빚을 지면, 문득 작위를 삭탈당하는 벌이 있었다. 이로 인해 그 후로는 모두 감히 백성에게 빚을 지지 않았고, 세상은 스스로 절검(節儉)해졌으며, 송사도 저절로 사라졌다.


6

원문
今諸侯貴戚,或曰勑民慎行,德義無違,制節謹度,未嘗負責,身絜規避,志厲青雲。或既欺負百姓,上書封祖,願且償責,此乃殘掠官民,而還依縣官也,其誣罔慢易,罪莫大焉。

번역문
지금 제후(諸侯)와 귀척(貴戚)들은, 혹은 백성에게 삼가고 신중히 행동하며, 덕과 의를 어기지 말고, 절제하고 법도를 지켜, 일찍이 빚을 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혹은 이미 백성을 속이고 억압하여55, (군주에게) 상서(上書)하여 조상에게 봉해달라고 청하고56, (백성에게) 빚을 갚겠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백성을 잔혹하게 약탈하고도, 도리어 현관(縣官)57에 의지하는 것이니, 그 속임수와 기만, 오만하고 경솔함은 죄가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


7

원문
《孝經》曰:「陳之以德義而民興行,示之以好惡而民知禁。」今欲變巧偽以崇美化,息辭訟以閒官事者,莫若表顯有行,痛誅無狀,導文武之法,明詭詐之信。

번역문
『효경(孝經)』에 이르기를58, “덕과 의로써 (백성에게) 진술하면 백성이 행실을 일으키고, 좋고 싫음을 보여주면 백성이 금지하는 바를 안다.”고 하였다. 지금 교활하고 거짓된 것을 바꾸어 아름다운 교화를 숭상하고, 송사를 그치게 하여 관청의 일을 한가롭게 하려는 자는, 행실이 있는 자를 표창하고 드러내며, 형편없는 자를 통렬히 주살하고, 문(文)과 무(武)의 법을 인도하며, 속임수와 간사함의 실상을 밝히는 것만 못하다.


8

원문
今侯王貴戚不得浸廣,姦宄遂多。豈謂每有爭鬭辭訟,婦女必致此乎?亦以傳見。凡諸禍根不早斷絕,則或轉而滋蔓,人若斯邪。是故原官察之所以務念,臣主之所以憂勞者,其本皆鄉亭之所治者,太半詐欺之所生也。故曰:知其原少則姦易塞也,見其守約則政易持也。

번역문
지금 왕후(王侯)와 귀척(貴戚)들이 점차 세력을 넓히지 못하게 되자59, 간사하고 흉악한 자들이 마침내 많아졌다. 어찌 매번 다툼과 송사가 있을 때마다, 부녀자들이 반드시 이 지경에 이른다고 말하겠는가?60 또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무릇 모든 화의 근원을 일찍이 끊어내지 않으면, 혹은 변하여 더욱 번성하니, 사람도 이와 같다. 이 때문에 관리가 살피는 바가 힘쓰는 바요, 신하와 군주가 근심하고 수고하는 바는, 그 근본이 모두 향(鄉)과 정(亭)에서 다스려지는 것인데, 태반이 사기와 기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그 근원이 적으면 간사함을 막기 쉽고, 그 지키는 바가 간략하면 정치를 유지하기 쉽다.


9

원문
或婦人之行,貴令鮮絜,今以適矣,無顏復入甲門,縣官原之,故令使留所既入家。必未昭亂之本原,不惟貞絜所生者之言也。貞女不二心以數變,故有匪石之詩;不枉行以遺憂,故美歸寧之志。一許不改,蓋所以長貞絜而寧父兄也。其不循此而二三其德者,此本無廉恥之家,不貞專之所也。若然之人,又何醜恡?輕薄父兄,淫僻婦女,不惟義理,苟踈一德,借本治生,逃亡抵中,乎以致於刳腹芟頸滅宗之禍者,何所無之?

번역문
혹은 부녀자의 행실은 청렴하고 결백하게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61, 지금은 (간사한 자들이) 적합하다고 여겨62, (부녀자들이) 얼굴을 들고 다시 갑(甲)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63, 현관(縣官)은 그들을 용서하여64, 이미 들어간 집에서 머물게 한다. (이는) 반드시 혼란의 근본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정결함이 생겨나는 바를 생각하지 않는 말이다. 정절 있는 여인은 두 마음을 품고 자주 변하지 않으므로, “돌이 아닐진대65”라는 시가 있고; 행실을 굽혀 근심을 남기지 않으므로, 친정으로 돌아가는 뜻을 아름답게 여긴다. 한 번 허락하면 바꾸지 않는 것은, 대개 정절과 결백을 오래도록 지키고 부형(父兄)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를 따르지 않고 그 덕을 두세 번 바꾸는 자들은, 본래 염치없는 집안이요, 정절을 지키지 않는 곳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또 무엇을 추하게 여기고 아끼겠는가? 부형을 경박하게 대하고, 음란하고 비뚤어진 부녀자들은, 의리(義理)를 생각하지 않고, 구차하게 한 가지 덕목을 소홀히 하며66, 생업을 빌미로 삼아67, 도망치고 (죄를) 범하여68, 마침내 배를 가르고 목을 베어 종족을 멸망시키는 화에 이르는 자들이, 어찌 없겠는가?


10

원문
先王因人情喜怒之所能已者,則為之立禮制而崇德讓;人所可已者,則為之設法禁而明賞罰。今市賣勿相欺,婚姻無相詐,非人情之不可能者也。是故不若立義順法,遏絕其原。初雖慚恡於一人,然其終也,長利於萬世。「小懲而大戒」,此所以全小而濟頑凶也。

번역문
선왕(先王)은 인정(人情)의 희로애락 중 스스로 그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69, 예절과 제도를 세워 덕과 겸양을 숭상하게 하였고; 사람이 그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70, 법과 금령을 설치하여 상벌을 밝게 하였다. 지금 시장에서 서로 속이지 않고, 혼인에서 서로 기만하지 않는 것은, 인정상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의(義)를 세우고 법에 순응하여, 그 근원을 막아 끊는 것만 못하다. 처음에는 비록 한 사람에게 부끄럽고 인색할지라도71, 그러나 그 끝에는, 만세에 걸쳐 큰 이로움이 될 것이다. “작게 징벌하여 크게 경계한다72.” 이것이 작은 것을 온전히 하고 완고하고 흉악한 자를 구제하는 방법이다.


11

원문
夫立法之大要,必令善人勸其德而樂其政,邪人痛其禍而悔其行。諸一女許數家,雖生十子,更百赦,勿令得蒙一還私家,則此姦絕矣。不則髡其夫妻,徙千里外劇縣,乃可以毒者心而絕其後,姦亂絕則太平興矣。

번역문
무릇 법을 제정하는 큰 요점은, 반드시 선량한 사람이 그 덕을 권장하고 그 정치를 즐기게 하며, 사악한 사람이 그 화를 고통스러워하고 그 행실을 뉘우치게 하는 것이다. 여러 집안에 한 여인이 허락되어73, 비록 열 명의 자식을 낳고, 백 번의 사면을 거친다 할지라도, 그들이 한 번이라도 사사로운 집으로 돌아가는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한다면, 이 간사함은 끊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부를 삭발하고74, 천 리 밖의 험한 현(縣)으로 유배 보내어75, 비로소 (악한) 자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 후손을 끊을 수 있으니, 간사하고 혼란스러운 일이 끊어지면 태평성대가 흥성할 것이다.


12

원문
又貞絜寡婦,或男女備具,財貨富饒,欲守一醮之禮,成同穴之義,執節堅固,齊懷必死,終無更許之慮。遭值不仁世叔,無義兄弟,或利其娉幣,或貪其財賄,或私其兒子,則彊中欺嫁,處迫脅遣送,人有自縊房中,飲藥車上,絕命喪軀,孤捐童孩。此猶迫脅人命自殺也。

번번역문
또한 정결한 과부 중에, 혹은 자녀가 모두 있고76, 재물이 풍부하여, 한 번의 혼례를 지키고77, 같은 무덤에 묻히는 의리를 이루고자 하여78, 절개를 굳건히 지키고, 모두 죽음을 각오하여79, 끝내 다시 허락할 생각이 없는 자가 있다. (그러나) 불인(不仁)한 숙부나80, 의리 없는 형제를 만나, 혹은 그들의 예물(聘幣)을 탐하거나81, 혹은 그들의 재물을 탐하거나, 혹은 그들의 아들을 사사로이 취하려 하여82, 억지로 중매를 서고 속여 시집보내며83, 협박하여 (새로운 집으로) 보내니, 어떤 이는 방에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고, 어떤 이는 수레 위에서 약을 마셔, 목숨을 끊고 몸을 잃으며, 어린아이들을 고아로 버려두는 일이 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의 목숨을 협박하여 자살하게 하는 것과 같다.


13

원문
或後夫多設人客,威力脅載,守將抱執,連日乃綬,與彊掠人為妻無異。婦人軟弱,猥為眾彊所扶與執迫,幽阨連日,後雖欲復脩本志,嬰絹吞藥。

번역문
혹은 후부(後夫)84가 많은 손님을 불러85, 위력으로 협박하여 (수레에) 태우고86, 수장(守將)87이 붙잡아 며칠 동안이나 (그들을) 받아들이게 하니88, 강제로 남의 아내를 약탈하는 것과 다름없다. 부녀자는 나약하여, 함부로 여러 강포한 자들에게 부축당하고 억압당하며89, 며칠 동안이나 갇혀 곤궁해지니, 나중에 비록 본래의 뜻을 다시 닦으려 해도90, 비단에 매달리거나 약을 삼켜 (자살한다)91.


각주

  1. 오대(五代): 여기서는 하(夏), 은(殷), 주(周)의 삼대(三代)와 진(秦), 한(漢)을 포함하는 고대 주요 왕조를 의미한다. 각 왕조마다 예법과 제도가 달랐음을 강조한다.
  2. 삼가(三家): 하(夏), 은(殷), 주(周)의 삼대(三代)를 의미한다. 각 왕조의 통치 이념과 방식이 달랐음을 말한다.
  3. 세상에 부합하여(符世):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4. 고조(高祖):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
  5. 삼장(三章)의 약속(三章之約): 유방이 진(秦)나라의 수도 함양(咸陽)에 입성한 후, 백성들에게 살인, 상해, 절도 세 가지만을 법으로 삼겠다고 약속한 것. 가혹한 진나라 법을 폐지하고 간략화한 것이다.
  6. 효문황제(孝文皇帝): 서한(西漢)의 문제(文帝). 검소하고 덕치(德治)를 펼친 군주로 유명하다.
  7. 살을 깎는 형벌(克膚之刑): 얼굴에 먹물을 새기거나(墨), 코를 자르거나(劓), 발꿈치를 자르는(刖) 등 신체를 훼손하는 형벌. 효문황제는 이를 폐지했다.
  8. 살인, 상해, 도둑질, 뇌물죄가 아닌 한(自非殺傷盜贓): '殺傷(살상)'은 '살인과 상해', '盜贓(도장)'은 '도둑질과 뇌물'을 의미한다.
  9. 문(文): 여기서는 '문서', '기록', '형식적인 죄'를 의미할 수 있다.
  10. 울타리와 해자(垓子)를 만들어 방비하는 것과 같으니(若為藩籬溝壍以有防矣): 법이 범죄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는 비유. '藩籬(번리)'는 '울타리', '溝壍(구참)'은 '해자'를 의미한다.
  11. 특히 자주 범죄를 저지를 만한 짐승을 가려내어(擇禽獸之尤可數犯者): 법이 특정 유형의 범죄를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함을 비유한다.
  12. 송사(訟事)의 변론, 싸움과 도적의 발생, 향(鄉)과 부(部)의 다스림, 옥관(獄官)의 다스림은: 사회 질서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열거한다.
  13. 순(舜):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14. 용(龍): 순(舜) 임금 때의 현명한 신하 고요(皐陶)를 지칭한다. 고요는 순 임금의 명을 받아 형벌을 관장했다.
  15. 참소하는 말로 행실을 해치고, 나의 무리를 놀라게 하는 자들을 주살하라(讒說殄行,震驚朕師):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 편에 나오는 구절. 간사한 말로 백성을 현혹하고 군주를 흔드는 자들을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
  16. 자신의 혀를 삼가고(慎己唯舌):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의미.
  17.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논어(論語)』 「안연(顏淵)」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18. 맥맥(脈脈)하고 규규(規規)하여: '脈脈(맥맥)'은 '정답다', '정이 통하다'는 뜻 외에 '은밀하다', '속마음을 숨기다'는 뜻이 있다. '規規(규규)'는 '꼼꼼하다', '정확하다'는 뜻 외에 '겉으로만 바른 척하다', '위선적이다'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간사한 자들의 은밀하고 위선적인 태도를 묘사한다.
  19. 간사한 생각만 품고(懷姦唯): '姦唯(간유)'는 '간사한 생각'을 의미한다.
  20.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昧冒前利): '昧冒(매모)'는 '눈이 멀다', '탐하다'는 뜻. '前利'는 '눈앞의 이익'을 의미한다.
  21. 구차하게 (이익을) 취하고(苟且中): '苟且(구차)'는 '구차하게', '함부로'라는 뜻. '中(중)'은 '맞다', '취하다'는 뜻.
  22. 나중에는 (책임을) 회피하고 노예처럼 버티어(後則榆解奴抵): '榆解(유해)'는 '느릅나무처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다', '책임을 회피하다'는 뜻. '奴抵(노저)'는 '노예처럼 버티다', '뻔뻔하게 버티다'는 뜻.
  23. 이와 같이 굴복하는 자들이다(比屈是也): '比屈'은 '비굴하게 굴복하다'는 뜻.
  24. 왕후(王侯): 왕과 제후.
  25. 귀척(貴戚): 황실의 외척이나 가까운 친척.
  26. 호부(豪富): 세력이 강하고 부유한 집안.
  27. 거짓으로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행위를 내세워(假舉驕奢): '假舉'는 '거짓으로 내세우다', '가장하다'는 뜻.
  28. 천만 전의 빚을 지고도(高負千萬): '高負'는 '높은 빚을 지다', '많은 빚을 지다'는 뜻.
  29. 술꾼과 행실 없는 자들을 모아(崇聚酒徒無行之人): '崇聚'는 '숭상하여 모으다', '酒徒'는 '술꾼', '無行之人'은 '행실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30. 빈 잔을 돌리고 가득 채우며(傳空引滿): '傳空'은 '빈 잔을 돌리다', '引滿'은 '가득 채우다'는 뜻.
  31. 지저귀고 욕설을 퍼붓고(啁啾罵詈): '啁啾(조추)'는 '새가 지저귀다'는 뜻 외에 '시끄럽게 떠들다'는 뜻이 있고, '罵詈(매리)'는 '욕설을 퍼붓다'는 뜻.
  32. 밤낮으로 시끄럽게 떠들며(晝夜鄂鄂): '鄂鄂(악악)'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의미한다.
  33.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주인을 구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毆擊責主,人於死亡): '責主'는 '빚을 요구하는 주인', '人於死亡'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다'는 뜻.
  34. 무리 지은 도적처럼 약탈하고 노략질하여(群盜攻剽): '攻剽(공표)'는 '공격하여 약탈하다'는 뜻.
  35. 사면과 속죄를 만난다 할지라도(雖會赦贖): '會(회)'는 '만나다', '닥치다'는 뜻.
  36. 다시는 선발되어 임용되는 과목에 들 수 없어야 하는데(不當復得在選辟之科): '選辟之科'는 '선발되어 임용되는 과목'을 의미한다.
  37. (군주가) 아는 것을 책임지고(責知): 군주가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
  38. (간사한) 우두머리를 주살한다(誅率): '率(솔)'은 '우두머리', '두목'을 의미한다.
  39. 효문황제(孝文皇帝): 서한(西漢)의 문제(文帝).
  40. 지극히 움직임이 적었고(至寡動): '寡動'은 '움직임이 적다', '행동이 신중하다'는 뜻.
  41. 하양후(河陽侯) 진신(陳信):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의 제후.
  42. 빚을 육 일 동안 갚지 못하여(負六日): '負(부)'는 '빚지다', '육 일 동안'은 '짧은 기간'을 의미한다.
  43. 국(國)을 면직당했다(免國): 제후의 봉국을 박탈당했다는 의미.
  44. 효무제(孝武帝): 서한(西漢)의 황제.
  45. 주양후(周陽侯) 전팽조(田彭祖):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제후.
  46. 지후(軹侯)의 집을 마땅히 차지하고도(坐當軹侯宅): '坐當'은 '마땅히 차지하다'는 뜻.
  47. 국(國)을 면직당했고(免國): 봉국을 박탈당했다는 의미.
  48. 여양후(黎陽侯) 소연(邵延):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제후.
  49. 말을 내놓지 않아(不出持馬): '持馬'는 '말을 내놓다', '말을 바치다'는 뜻.
  50. 몸이 잘리고 국(國)이 폐지되었다(身斬國除): '身斬'은 '몸이 잘리다', '죽임을 당하다', '國除'는 '봉국이 폐지되다'는 뜻.
  51. 영평(永平): 후한(後漢) 명제(明帝)의 연호.
  52. 백성에게 삼가고 신중히 행동하며(勑民慎行): '勑(칙)'은 '명령하다', '경계하다'는 뜻.
  53. 덕과 의를 어기지 말고(德義無違): '無違'는 '어기지 않다'는 뜻.
  54. 절제하고 법도를 지켜(制節謹度): '制節'은 '절제하다', '謹度'는 '법도를 지키다'는 뜻.
  55. 이미 백성을 속이고 억압하여(既欺負百姓): '欺負(기부)'는 '속이고 억압하다'는 뜻.
  56. (군주에게) 상서(上書)하여 조상에게 봉해달라고 청하고(上書封祖): '封祖'는 '조상에게 봉작하다'는 뜻.
  57. 현관(縣官): 현(縣)의 관리, 즉 지방 관청.
  58. 『효경(孝經)』에 이르기를: 유교 경전 중 하나.
  59. 왕후(王侯)와 귀척(貴戚)들이 점차 세력을 넓히지 못하게 되자(侯王貴戚不得浸廣): '浸廣(침광)'은 '점차 넓히다', '세력을 확장하다'는 뜻.
  60. 어찌 매번 다툼과 송사가 있을 때마다, 부녀자들이 반드시 이 지경에 이른다고 말하겠는가?: 부녀자들의 송사가 많아지는 현상이 단순히 그들의 문제만이 아님을 지적하는 반어적인 표현.
  61. 청렴하고 결백하게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貴令鮮絜): '鮮絜(선결)'은 '청렴하고 결백하다'는 뜻.
  62. 지금은 (간사한 자들이) 적합하다고 여겨(今以適矣): '適(적)'은 '적합하다', '옳다'는 뜻.
  63. 얼굴을 들고 다시 갑(甲)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無顏復入甲門): '甲門'은 '남의 집 문'을 의미한다. 즉, 부녀자들이 정절을 잃어 부끄러워 남의 집을 드나들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
  64. 현관(縣官)은 그들을 용서하여(縣官原之): '原(원)'은 '용서하다', '관대하게 대하다'는 뜻.
  65. “돌이 아닐진대”: 『시경(詩經)』 「국풍(國風)」 「패풍(邶風)」 「백주(柏舟)」 편에 나오는 구절. "我心匪石,不可轉也" (내 마음은 돌이 아니지만, 굴릴 수 없다)에서 유래. 굳건한 절개를 비유한다.
  66. 구차하게 한 가지 덕목을 소홀히 하며(苟踈一德): '踈(소)'는 '소홀히 하다', '멀리하다'는 뜻.
  67. 생업을 빌미로 삼아(借本治生): '借本'은 '본전을 빌리다', '治生'은 '생업을 다스리다'는 뜻.
  68. 도망치고 (죄를) 범하여(逃亡抵中): '抵中'은 '죄를 범하다', '죄에 빠지다'는 뜻.
  69. 스스로 그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之所能已者): '已(이)'는 '그치다', '멈추다'는 뜻.
  70. 사람이 그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人所可已者): '可已'는 '그칠 수 있다', '제어할 수 있다'는 뜻.
  71. 한 사람에게 부끄럽고 인색할지라도(慚恡於一人): '慚恡(참린)'은 '부끄러워하고 인색하다'는 뜻.
  72. “작게 징벌하여 크게 경계한다”: 『주역(周易)』 「서합(噬嗑)」 괘(卦)의 상전(象傳)에 나오는 구절.
  73. 여러 집안에 한 여인이 허락되어(諸一女許數家): 한 여인이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는 문란한 풍속을 비판한다.
  74. 그 부부를 삭발하고(髡其夫妻): '髡(곤)'은 '삭발하다'는 뜻. 죄인에게 가하던 형벌 중 하나.
  75. 천 리 밖의 험한 현(縣)으로 유배 보내어(徙千里外劇縣): '劇縣(극현)'은 '험하고 살기 어려운 현'을 의미한다.
  76. 자녀가 모두 있고(男女備具): '備具(비구)'는 '모두 갖추다'는 뜻.
  77. 한 번의 혼례를 지키고(守一醮之禮): '醮(초)'는 '혼례'를 의미한다.
  78. 같은 무덤에 묻히는 의리를 이루고자 하여(成同穴之義): '同穴(동혈)'은 '같은 무덤에 묻히다'는 뜻. 부부가 죽어서도 함께 묻히는 것을 의미한다.
  79. 모두 죽음을 각오하여(齊懷必死): '齊懷(제회)'는 '모두 마음먹다', '必死'는 '반드시 죽다'는 뜻.
  80. 불인(不仁)한 숙부나(不仁世叔): '世叔'은 '숙부'를 의미한다.
  81. 그들의 예물(聘幣)을 탐하거나(利其娉幣): '娉幣(빙폐)'는 '예물', '혼인 예물'을 의미한다.
  82. 그들의 아들을 사사로이 취하려 하여(私其兒子): '私(사)'는 '사사로이 취하다', '간통하다'는 뜻.
  83. 억지로 중매를 서고 속여 시집보내며(彊中欺嫁): '彊中(강중)'은 '억지로 중매를 서다', '欺嫁(기하)'는 '속여 시집보내다'는 뜻.
  84. 후부(後夫): 재혼한 남편.
  85. 많은 손님을 불러(多設人客): '設人客'은 '손님을 불러 대접하다'는 뜻.
  86. 위력으로 협박하여 (수레에) 태우고(威力脅載): '脅載(협재)'는 '협박하여 태우다'는 뜻.
  87. 수장(守將): 지키는 장수, 혹은 관리를 의미한다.
  88. 붙잡아 며칠 동안이나 (그들을) 받아들이게 하니(抱執,連日乃綬): '抱執(포집)'은 '붙잡다', '억류하다'는 뜻. '乃綬(내수)'는 '비로소 받아들이다', '허락하다'는 뜻.
  89. 함부로 여러 강포한 자들에게 부축당하고 억압당하며(猥為眾彊所扶與執迫): '猥(외)'는 '함부로', '眾彊(중강)'은 '여러 강포한 자들', '扶與執迫(부여집박)'은 '부축당하고 억압당하다'는 뜻.
  90. 본래의 뜻을 다시 닦으려 해도(復脩本志): '本志'는 '본래의 뜻', '정절'을 의미한다.
  91. 비단에 매달리거나 약을 삼켜 (자살한다)(嬰絹吞藥): '嬰絹(영견)'은 '비단에 목을 매다', '吞藥(탄약)'은 '약을 삼키다'는 뜻. 자살을 의미한다.

潛夫論(잠부론) - 衰制(쇠제)

1

원문
無慢制而成天下者,三皇也;畫則象而化四表者,五帝也;明法禁而和海內者,三王也。行賞罰而齊萬民者,治國也;君立法而下不行者,亂國也;臣作政而君不制者,亡國也。

번역문
느슨한 제도로도 천하를 이룬 자들은 삼황(三皇)1이요; 법도를 본받아 사방을 교화한 자들은 오제(五帝)2요; 법과 금령을 밝히고 천하를 화합시킨 자들은 삼왕(三王)3이다. 상벌을 시행하여 만백성을 가지런히 하는 것은 잘 다스려지는 나라요; 군주가 법을 세웠는데 아랫사람이 따르지 않는 것은 혼란스러운 나라요; 신하가 정사를 행하는데 군주가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망하는 나라이다.


2

원문
是故民之所以不亂者,上有吏;吏之所以無姦者,官有法;法之所以順行者,國有君也;君之所以位尊者,身有義身有。義者、君之政也,法者、君之命也。人君思正以出令,而貴賤賢愚莫得違也,則君位於上,而民氓治於下矣。人君出令而貴臣驕吏弗順也,則君幾於弒,而民幾於亂矣。

번역문
이 때문에 백성이 혼란스럽지 않은 까닭은 위에 관리가 있기 때문이요; 관리가 간사함이 없는 까닭은 관청에 법이 있기 때문이요; 법이 순조롭게 시행되는 까닭은 나라에 군주가 있기 때문이요; 군주가 지위가 존귀한 까닭은 몸에 의(義)가 있기 때문이다. 의(義)는 군주의 정치요, 법은 군주의 명령이다. 군주가 바름을 생각하여 명령을 내리면, 귀하고 천하며 현명하고 어리석은 자가 감히 어기지 못하니, 그러면 군주는 위에 존귀하게 있고, 백성은 아래에서 다스려질 것이다. 군주가 명령을 내렸는데 귀한 신하와 교만한 아전이 따르지 않으면, 군주는 시해당할 지경에 이르고, 백성은 혼란에 빠질 지경에 이를 것이다.


3

원문
夫法令者,君之所以用其國也。君出令而不從,是與無君等。主令不從則臣令行,國危矣。

번역문
무릇 법령은 군주가 그 나라를 다스리는 수단이다. 군주가 명령을 내렸는데 따르지 않으면, 이는 군주가 없는 것과 같다. 군주의 명령이 따르지 않으면 신하의 명령이 행해지니,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4

원문
夫法令者,人君之銜轡箠策也,而民者,君之輿馬也。若使人臣廢君法禁而施己政令,則是奪君之轡策,而己獨御之也。愚君闇主託坐於左,而姦臣逆道執轡於右,此齊騶馬傳所以沈胡公於貝水,宋羊叔䍧所以獘華元於鄭師,而莫之能御也。是故陳恆執簡公於徐州,李兌害主父於沙丘,皆以其毒素奪君之轡策也。《文言》故曰:「臣弒其君,子殺其父,非一朝一夕之故也,其所由來者漸矣,由辯之不蚤變也。」是故妄違法之吏,妄造令之臣,不可不誅也。

번역문
무릇 법령은 군주의 재갈과 고삐요 채찍이다4. 그리고 백성은 군주의 수레와 말이다. 만약 신하가 군주의 법과 금령을 폐지하고 자신의 정령(政令)을 시행한다면, 이는 군주의 고삐와 채찍을 빼앗아 자신이 홀로 수레를 모는 것이다. 어리석은 군주와 어두운 군주는 왼쪽에 의지하여 앉아 있고5, 간사한 신하는 도리에 어긋나게 오른쪽에 고삐를 잡고 있으니6, 이것이 제(齊)나라 추마(騶馬)7가 호공(胡公)8을 패수(貝水)에 빠뜨려 죽인 까닭이요9, 송(宋)나라 양숙양(羊叔䍧)10이 정(鄭)나라 군대에서 화원(華元)11을 곤궁하게 한 까닭이니12, 아무도 그들을 제어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진항(陳恆)13은 간공(簡公)14을 서주(徐州)에서 붙잡았고15, 이태(李兌)16는 주보(主父)17를 사구(沙丘)에서 해쳤으니18, 모두 그들의 독기 어린 본성으로 군주의 고삐와 채찍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문언(文言)』19에 그러므로 말하기를,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그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하루아침이나 하룻밤의 까닭이 아니요, 그 유래하는 바가 점진적이다. 이는 변고를 일찍이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망령되이 법을 어기는 아전과 망령되이 명령을 만드는 신하는 주살하지 않을 수 없다.


5

원문
議者必將以為刑殺當不用,而德化可獨任。此非變通者之論也,非叔世者之言也。夫上聖不過堯、舜,而放四子,盛德不過文、武,而赫斯怒。《詩》云:「君子如怒,亂庶遄沮;君子如祉,亂庶遄已。」是故君子之有喜怒也,善以止亂也。故有以誅止殺,以刑禦殘。

번역문
논하는 자들은 반드시 형벌과 살육은 마땅히 사용하지 않고, 덕화(德化)만으로도 홀로 맡을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이것은 변화에 통달한 자의 논의가 아니요, 말세(末世)20의 말이 아니다. 무릇 지극한 성인도 요(堯)21와 순(舜)22을 넘지 못하는데, (그들도) 네 명의 불초한 자들을 내쫓았고23, 성대한 덕도 문왕(文王)24과 무왕(武王)25을 넘지 못하는데, (그들도) 크게 노하였다26. 『시(詩)』에 이르기를27, “군자가 노하면, 혼란이 거의 곧 그치고; 군자가 기뻐하면, 혼란이 거의 곧 사라진다.” 이 때문에 군주에게 희로애락이 있는 것은, 혼란을 그치게 하는 데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살함으로써 살육을 그치게 하고, 형벌로써 잔혹함을 막는다.


6

원문
且夫治世者若登丘矣,必先躡其卑者,然後乃得履其高。是故先致治國,然後三王之政乃可施也;道齊三王,然後五帝之化乃可行也;道齊五帝,然後三皇之道乃可從也。

번역문
또한 무릇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언덕에 오르는 것과 같으니28, 반드시 먼저 낮은 곳을 밟은 후에야 비로소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 이 때문에 먼저 나라를 잘 다스린 후에야 삼왕(三王)의 정치를 시행할 수 있고; 삼왕의 도리에 이르러야 오제(五帝)의 교화를 행할 수 있으며; 오제의 도리에 이르러야 삼황(三皇)의 도리를 따를 수 있다.


7

원문
且夫法也者,先王之政也;令也者,己之命也。先王之政所以眾共也,己之命所以獨制人也,君誠能授法而時貸之,布令而必行之,則群臣百吏莫敢不悉心從己令矣。己令無違,則法禁必行矣。故政令必行,憲禁必從,而國不治者,未嘗有也。此一弛一張,以今行古,以輕重尊卑之術也。

번역문
또한 무릇 법이라는 것은, 선왕(先王)29의 정치요; 명령이라는 것은, 자신의 명(命)이다. 선왕의 정치는 여러 사람이 함께 따르는 것이요, 자신의 명은 홀로 남을 제어하는 것이다. 군주가 진실로 법을 베풀고 때에 맞춰 (백성에게) 너그럽게 대하며30, 명령을 내리고 반드시 시행한다면, 여러 신하와 모든 아전이 감히 마음을 다하여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명령이 어긋남이 없으면, 법과 금령이 반드시 시행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령(政令)이 반드시 시행되고, 법과 금령이 반드시 따라지는데도,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이것은 한 번은 느슨하게 하고 한 번은 긴장시키는31, 현재의 상황으로 옛것을 행하고, 경중과 존비(尊卑)를 헤아리는 방법이다.


각주

  1. 삼황(三皇):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수인씨(燧人氏) 등을 이른다. 이들은 인위적인 법과 제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천하를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2. 오제(五帝):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 등을 이른다. 이들은 삼황 시대 이후 좀 더 구체적인 법도와 제도를 마련하여 백성을 교화했다고 전해진다. 畫則象은 자연의 이치나 사물의 형상을 본받아 법도를 만들었다는 의미. 化四表는 사방의 먼 곳까지 교화가 미쳤다는 의미.
  3. 삼왕(三王): 하(夏)나라 우왕(禹王), 은(殷)나라 탕왕(湯王),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이른다. 이들은 오제 시대 이후 더욱 명확한 법과 제도를 통해 국가를 통치하고 천하를 안정시켰다고 평가된다.
  4. 재갈과 고삐요 채찍이다(銜轡箠策也): 말의 재갈, 고삐, 채찍은 말을 제어하는 도구이다. 법령이 군주가 백성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통제 수단임을 비유한다.
  5. 왼쪽에 의지하여 앉아 있고(託坐於左): 고대 중국에서 군주는 남면(南面)하여 앉고, 신하는 북면(北面)하여 선다. 왼쪽은 군주의 권한이 미치지 못하는 곳, 혹은 군주가 무능하여 간신에게 의지하는 상황을 비유한다.
  6. 도리에 어긋나게 오른쪽에 고삐를 잡고 있으니(逆道執轡於右): 오른쪽은 군주의 권한이 미치는 곳, 혹은 군주를 보좌하는 신하의 위치를 의미한다. 간사한 신하가 군주의 권한을 침해하여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비유한다.
  7. 제(齊)나라 추마(騶馬):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대부.
  8. 호공(胡公):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군주.
  9. 패수(貝水)에 빠뜨려 죽인 까닭이요: 추마가 제 호공을 죽여 패수에 던져 넣었다는 일화. 이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한 사례로 인용된다.
  10. 송(宋)나라 양숙양(羊叔䍧):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대부.
  11. 화원(華元):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대부.
  12. 정(鄭)나라 군대에서 화원(華元)을 곤궁하게 한 까닭이니: 송나라와 정나라의 전쟁 중, 양숙양이 화원을 배신하여 곤경에 빠뜨렸다는 일화.
  13. 진항(陳恆):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대부 전상(田常)을 지칭한다. 그는 제 간공(簡公)을 시해하고 제나라의 실권을 장악했다.
  14. 간공(簡公):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군주.
  15. 서주(徐州)에서 붙잡았고: 전상이 제 간공을 서주에서 붙잡아 죽였다는 일화.
  16. 이태(李兌):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재상.
  17. 주보(主父): 조(趙) 무령왕(武靈王)을 지칭한다. 그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스스로 주보(主父)라 칭했으나, 후에 이태의 모함으로 사구(沙丘)에서 굶어 죽었다.
  18. 사구(沙丘)에서 해쳤으니: 이태가 조 무령왕을 사구에서 죽게 만든 사건.
  19. 『문언(文言)』: 『주역(周易)』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의 효사(爻辭)를 해설한 부분. 여기 인용된 구절은 『주역』 「건괘」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臣弒其君,子弒其父,非一朝一夕之故,其所由來者漸矣,由辯之不早變也"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그 아버지를 시해하는 것은, 하루아침이나 하룻밤의 까닭이 아니요, 그 유래하는 바가 점진적이다. 이는 변고를 일찍이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와 유사하다.
  20. 말세(末世): 시대의 마지막, 혼란하고 쇠퇴한 시대를 의미한다.
  21. 요(堯):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22. 순(舜):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聖君).
  23. 네 명의 불초한 자들을 내쫓았고: 요 임금이 순에게 선양하기 전, 공공(共工), 곤(鯀), 환두(驩兜), 삼묘(三苗) 등 네 명의 불초한 자들을 내쫓았다는 일화.
  24. 문왕(文王): 주(周)나라의 시조.
  25. 무왕(武王): 주(周)나라를 세운 왕.
  26. 크게 노하였다(赫斯怒): 『시경(詩經)』 「대아(大雅)」 「대명(大明)」 편에 나오는 구절. 문왕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폭정에 분노하여 정벌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27.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28. 언덕에 오르는 것과 같으니: 점진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비유한다.
  29. 선왕(先王): 고대 중국의 현명한 군주들을 통칭하는 말.
  30. 법을 베풀고 때에 맞춰 (백성에게) 너그럽게 대하며(授法而時貸之): '授法'은 '법을 베풀다', '時貸之'는 '때에 맞춰 너그럽게 대하다'는 뜻. 법의 엄격함과 함께 적절한 관용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31. 한 번은 느슨하게 하고 한 번은 긴장시키는(一弛一張): 활시위를 한 번은 느슨하게 하고 한 번은 긴장시키듯이, 정치도 엄격함과 너그러움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는 의미.

潛夫論(잠부론) - 勸將(권장)

1

원문
太古之民,淳厚敦朴,上聖撫之,恬澹無為,體道履德,簡刑薄威,不殺不誅,而民自化,此德之上也。德稍弊薄,邪心孳生,次聖繼之,觀民設教,坐為誅賞,以威勸之,既作五兵,又為之憲,以正厲之。《詩》云:「脩爾輿馬,弓矢戈兵,用戒作則,用逖蠻方。」故曰:「兵之設也久矣。」涉歷五代,以迄于今,國未嘗不以德昌而以兵彊也。

번역문
태고(太古)의 백성들은 순박하고 돈독하며 소박하여1, 지극한 성인이 그들을 어루만지니2, 고요하고 무위(無爲)하며3, 도(道)를 체득하고 덕(德)을 실천하여4, 형벌을 간략히 하고 위엄을 가볍게 하여5, 죽이지도 않고 주살하지도 않았는데도 백성이 스스로 교화되었으니, 이것이 덕(德)의 지극함이다. 덕이 조금 쇠퇴하고 박약해지자6, 간사한 마음이 생겨나7, 다음 가는 성인이 이를 계승하여8, 백성을 살펴 가르침을 베풀고9, 앉아서 주살하고 상을 주며10, 위엄으로 권장하고11, 이미 오병(五兵)12을 만들고, 또 그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13, 바름으로 다스렸다14. 『시(詩)』에 이르기를15, “너의 수레와 말을 닦고, 활과 화살, 창과 병기를 갖추어16, 경계하여 법도를 만들고17, 오랑캐 땅을 멀리하라18.”고 하였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병기(兵器)가 설치된 지 오래되었다19.”고 한다. 오대(五代)20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라가 덕으로 창성하고 병력으로 강성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2

원문
今兵巧之械,盈乎府庫,孫、吳之言,聒乎將耳,然諸將用之,進戰則兵敗,退守則城亡。是何也哉?曰:彼此之情,不聞乎主上,勝負之數,不明乎將心,士卒進無利而自退無畏,此所以然也。

번역문
지금 병기(兵器)와 교묘한 기계가21 부고(府庫)에 가득하고, 손자(孫子)22와 오기(吳起)23의 병법이 장수들의 귀를 시끄럽게 울리지만24, 그러나 여러 장수들이 그것을 사용하여, 나아가 싸우면 병사들이 패하고, 물러나 지키면 성이 망한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말하기를: 피아(彼我)의 실정25이 군주에게 들리지 않고, 승패의 운수26가 장수의 마음에 밝지 않으며, 사졸(士卒)이 나아가도 이로움이 없고 물러나도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니, 이것이 그러한 까닭이다.


3

원문
夫服重上阪,出馳千里,馬之禍也。然節馬樂之者,以王良足為盡力也。先登陷陣,赴死嚴敵,民之禍也。然節士樂之者,以明君可為效死也。凡人所以肯赴死亡而不辭,非為趨利,則因以避害也。無賢鄙愚智皆然,顧其所利害有異爾。不利顯名,則利厚賞也;不避聖辱,則避禍亂也。非四者,雖聖王不能以要其臣,慈父不能以必其子。明主深知之,故崇利顯害以與下市,使親踈貴賤賢鄙愚智,皆必順我令乃得其欲,是以一旦軍鼓雷震,旌旗並發,士皆奮激,競與死敵者,豈其情厭久生,而樂害死哉?乃義士且以激其名,貪夫且以求其賞爾。

번역문
무릇 무거운 짐을 지고 언덕을 오르며27, 천 리를 달려 나가는 것은 말의 고통이다. 그러나 말을 절제하여 즐겁게 하는 것은28, 왕량(王良)29이 충분히 힘을 다하기 때문이다. 먼저 성에 오르고 진영에 뛰어들어30, 엄정한 적에게 죽음을 무릅쓰는 것은 백성의 고통이다. 그러나 절개 있는 선비가 이를 즐거워하는 것은, 현명한 군주를 위해 죽음을 바칠 만하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이 기꺼이 죽음을 무릅쓰고 사양하지 않는 까닭은, 이익을 좇기 위함이 아니면, 해악을 피하기 위함이다. 현명하고 비루하며 어리석고 지혜로운 자 모두 그러하니, 다만 그들이 이롭게 여기고 해롭게 여기는 바가 다를 뿐이다. 드러나는 명예를 이롭게 여기지 않으면, 후한 상을 이롭게 여기는 것이요; 성스러운 치욕을 피하지 않으면, 화와 혼란을 피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31가 아니면, 비록 성왕이라도 그 신하를 다스릴 수 없고, 자애로운 아버지라도 그 자식을 반드시 (뜻대로) 할 수 없다. 현명한 군주는 이를 깊이 알았으므로, 이익을 숭상하고 해악을 드러내어32 아랫사람과 거래하고33, 친하고 소원하며 귀하고 천하며 현명하고 비루하며 어리석고 지혜로운 자 모두 반드시 나의 명령에 순응해야만 그들의 욕구를 얻게 하였다. 이 때문에 일단 군대의 북소리가 천둥처럼 울리고, 깃발이 일제히 나부끼면, 병사들이 모두 분발하여, 다투어 죽음을 무릅쓰고 적과 싸우는 것은, 어찌 그들이 오래 사는 것을 싫어하고, 죽음을 즐겨서이겠는가? 이는 의로운 선비는 그 명예를 고취시키기 위함이요, 탐욕스러운 자는 그 상을 구하기 위함일 뿐이다.


4

원문
今吏從軍敗沒死公事者,以十萬數,上不聞弔唁嗟嘆之榮名,下又無祿賞之厚實,節士無所勸慕,庸夫無所貪利。此其所以人懷沮懈,不肯復死也。

번역문
지금 관리가 군대에 종사하다가 패하여 죽거나 공적인 일로 죽은 자가34, 십만 명에 달하는데도, 위에서는 조문하고 애도하며 탄식하는 영광스러운 명성을 듣지 못하고35, 아래에서는 녹봉과 상의 후한 실질이 없으니, 절개 있는 선비는 권장하여 사모할 바가 없고, 평범한 사람은 탐할 이익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좌절하고 게을러져36, 다시는 죽으려 하지 않는 까닭이다.


5

원문
軍起以來,暴師五年,典兵之吏,將下千數,大小之戰,歲十百合,而希有功。歷察其敗,無他故焉,皆將不明變勢,而士不勸於死敵也。其士之不能死也,乃其將不能效也,言賞則不與,言罰則不行,士進有獨死之禍,退蒙眾生之福。此所以臨陣亡戰,而競思奔北者也。

번번역문
군대가 일어난 이래로, 군사를 혹사시킨 지 오 년이 되었고37, 병권을 잡은 관리와 장수들이 천 명에 달하며38, 크고 작은 전투가 해마다 수십, 수백 번 있었지만, 공을 세운 자는 드물다. 그들의 패배를 두루 살펴보면, 다른 까닭이 없으니, 모두 장수가 형세의 변화를 밝게 알지 못하고39, 병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적과 싸우도록 권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병사들이 죽음을 무릅쓰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장수가 본보기를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니, 상을 말하면 주지 않고, 벌을 말하면 시행하지 않는다. 병사들이 나아가면 홀로 죽는 화를 입고, 물러나면 여러 사람이 사는 복을 누리니, 이것이 바로 전장에 임하여 싸우지 않고, 다투어 달아날 생각만 하는 까닭이다.


6

원문
孫子曰:「將者、智也,仁也,敬也,信也,勇也,嚴也。」是故智以折敵,仁以附眾,敬以招賢,信以必賞,勇以益氣,嚴以一令。故折敵則能合變,眾附愛則思力戰,賢智集則陰謀得,賞罰必則士盡力, 氣勇益則兵勢自倍,威令一則唯將所使。必有此六者,乃可折衝擒敵,輔主安民。

번역문
손자(孫子)40가 말하기를, “장수라는 것은, 지혜로움이요, 인자함이요, 공경함이요, 신의요, 용맹함이요, 엄격함이다.” 이 때문에 지혜로써 적을 꺾고41, 인자함으로써 대중을 따르게 하며42, 공경함으로써 현명한 자를 불러들이고43, 신의로써 반드시 상을 주며44, 용맹함으로써 사기를 북돋우고45, 엄격함으로써 명령을 통일한다46. 그러므로 적을 꺾으면 변화에 대응할 수 있고47, 대중이 따르고 사랑하면 힘껏 싸울 것을 생각하며48,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가 모이면 은밀한 계책을 얻을 수 있고49, 상벌이 확실하면 병사들이 힘을 다하며50, 사기와 용맹이 더해지면 병세가 저절로 배가되고51, 위엄 있는 명령이 통일되면 오직 장수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52. 반드시 이 여섯 가지를 갖추어야만, 적의 예봉을 꺾고 적을 사로잡아53, 군주를 보필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7

원문
前羌始反時,將帥以定令之群,籍富厚之蓄,據列城而氣利勢,權十萬之眾,將勇傑之士,以誅草創新叛散亂之弱虜,擊自至之小寇,不能擒滅,輒為所敗,令遂雲烝起,合從連橫,掃滌并、源,內犯司隸,東寇趙、魏,西鈔蜀、漢,五州殘破,六郡削迹。此非天之災,長吏過爾。

번역문
이전에 강족(羌族)54이 처음 반란을 일으켰을 때, 장수들은 정해진 명령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55, 풍부한 비축 물자에 의지하여56, 여러 성을 점거하고 기세와 이로운 형세를 장악하며57, 십만 명의 병력을 지휘하고, 용맹하고 뛰어난 병사들을 거느리고서, 새로이 반란을 일으켜 흩어지고 혼란스러운 약한 오랑캐를 주살하고58, 스스로 쳐들어오는 작은 도적을 공격했으나, 사로잡아 없애지 못하고, 문득 그들에게 패배하여, 마침내 (반란이) 구름처럼 일어나59, 합종(合從)60과 연횡(連橫)61을 이루어, 병주(并州)62와 옹주(雍州)63를 휩쓸고64, 안으로는 사예교위부(司隸校尉部)65를 침범하고, 동쪽으로는 조(趙)66와 위(魏)67를 노략질하며, 서쪽으로는 촉(蜀)68과 한(漢)69을 약탈하여, 다섯 주(州)가 잔혹하게 파괴되고, 여섯 군(郡)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70. 이것은 하늘의 재앙이 아니라, 장리(長吏)71의 잘못일 뿐이다.


8

원문
孫子曰:「將者,民之司命,而國安危之主也。」是故諸有寇之郡,太守令長不可以不曉兵。今觀諸將,既無斷敵合變之奇,復無明賞必罰之信,然其士民又甚貧困,器械不簡習,將恩不素結,卒然有急,則吏以暴發虐其士,士以所拙遇敵巧。此為吏驅怨以禦讎,士率縛手以待寇也。

번역문
손자(孫子)가 말하기를, “장수라는 것은, 백성의 사명(司命)72이요, 나라의 안위(安危)를 주관하는 자이다.” 이 때문에 도적이 있는 모든 군(郡)에서는, 태수(太守)73와 현령(令)74이 병법을 알지 못해서는 안 된다. 지금 여러 장수들을 보면, 이미 적을 단정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기묘한 재주도 없고75, 또한 상을 명확히 하고 벌을 반드시 시행하는 신의도 없다. 그런데도 그 병사들은 또 매우 빈곤하고, 병기는 간략하게 익히지 못했으며76, 장수의 은혜는 평소에 맺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아전은 포악하게 (병사들을) 징발하여 학대하고77, 병사들은 서투른 실력으로 교활한 적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아전이 원한을 몰아 적을 막는 것이요, 병사들이 손을 묶인 채 도적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9

원문
夫將不能勸其士,士不能用其兵,此二者與無兵等。無士無兵,而欲合戰,其敗負也,治數也。故曰:其敗者,非天之所災,將之過也。

번역문
무릇 장수가 그 병사들을 권장하지 못하고, 병사들이 그 병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이 두 가지는 병기가 없는 것과 같다. 병사도 없고 병기도 없는데, 싸우려 한다면, 그 패배는, 정해진 수(數)이다78. 그러므로 말하기를: 그 패배는, 하늘이 내린 재앙이 아니라, 장수의 잘못이다.


10

원문
饒士處世,但患無典爾。故苟有土地,百姓可富也;苟有市列,商賈可來也;苟有士民,國家可彊也;苟有法令,姦邪可禁也。夫國不可從外治,兵不可從中御。郡縣長吏,幸得兼此數者丈斷已,而而不能以稱明詔安民氓哉,此亦陪克闒茸,無里之爾。

번역문
재능 있는 선비가 세상에 처함에 있어, 다만 법도가 없는 것을 근심할 뿐이다79. 그러므로 만약 토지가 있다면, 백성을 부유하게 할 수 있고; 만약 시장이 있다면, 상인들이 올 수 있으며; 만약 선비와 백성이 있다면, 국가를 강성하게 할 수 있고; 만약 법령이 있다면, 간사하고 사악한 것을 금할 수 있다. 무릇 나라는 밖에서부터 다스릴 수 없고80, 병력은 안에서부터 제어할 수 없다81. 군(郡)과 현(縣)의 장리(長吏)82는 다행히 이 몇 가지를 겸하여83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데도84, 현명한 조서에 부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니85, 이것 또한 보잘것없고 평범하며86, 아무런 능력도 없는 자들일 뿐이다.


11

원문
夫世有非常之人,然後定非常之事,必道非常之失,然後見。是故選諸有兵之長吏,宜踔躒豪厚,越取幽奇,材明權變,任將帥者。不可苟惟基序,或阿親戚,便典兵官。此所謂以其國與敵者也。

번역문
무릇 세상에 비범한 사람이 있어야87 비로소 비범한 일을 결정할 수 있고, 반드시 비범한 실책을 겪은 후에야 (그 실책의 본질이) 드러난다. 이 때문에 병권을 가진 장리(長吏)를 선발할 때, 마땅히 뛰어나고 호탕하며88, 은밀하고 기이한 재능을 뛰어넘어 취하고89, 재능이 밝고 권모술수에 능하며90, 장수와 원수의 임무를 맡을 만한 자를 뽑아야 한다. 구차하게 혈통이나 서열만을 따르거나91, 혹은 친척에게 아첨하여92, 곧바로 병관(兵官)93을 맡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이른바 그 나라를 적에게 주는 것과 같다.


각주

  1. 순박하고 돈독하며 소박하여(淳厚敦朴): '淳厚(순후)'는 '순박하고 후덕하다', '敦朴(돈박)'은 '돈독하고 소박하다'는 뜻.
  2. 지극한 성인이 그들을 어루만지니(上聖撫之): '上聖'은 '지극한 성인', '撫之'는 '그들을 어루만지다', '다스리다'는 뜻.
  3. 고요하고 무위(無爲)하며(恬澹無為): '恬澹(염담)'은 '고요하고 욕심이 없다', '無為(무위)'는 '인위적인 간섭 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르다'는 뜻.
  4. 도(道)를 체득하고 덕(德)을 실천하여(體道履德): '體道'는 '도를 체득하다', '履德'은 '덕을 실천하다'는 뜻.
  5. 형벌을 간략히 하고 위엄을 가볍게 하여(簡刑薄威): '簡刑'은 '형벌을 간략히 하다', '薄威'는 '위엄을 가볍게 하다'는 뜻.
  6. 덕이 조금 쇠퇴하고 박약해지자(德稍弊薄): '稍(초)'는 '조금', '점차', '弊薄(폐박)'은 '쇠퇴하고 박약하다'는 뜻.
  7. 간사한 마음이 생겨나(邪心孳生): '孳生(자생)'은 '생겨나다', '번식하다'는 뜻.
  8. 다음 가는 성인이 이를 계승하여(次聖繼之): '次聖'은 '다음 가는 성인', 즉 삼황 다음의 오제나 삼왕을 의미한다.
  9. 백성을 살펴 가르침을 베풀고(觀民設教): 백성들의 실정을 파악하여 그에 맞는 교화를 시행한다는 의미.
  10. 앉아서 주살하고 상을 주며(坐為誅賞): '坐為'는 '앉아서 ~하다', '주관하다'는 뜻.
  11. 위엄으로 권장하고(以威勸之): 위엄을 통해 백성들을 선으로 이끌고 악을 멀리하게 한다는 의미.
  12. 오병(五兵): 다섯 가지 병기. 창, 칼, 활, 방패, 갑옷 등을 통칭한다.
  13. 그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為之憲): '憲(헌)'은 '법', '규범'을 의미한다.
  14. 바름으로 다스렸다(以正厲之): '厲(려)'는 '다스리다', '엄하게 하다'는 뜻.
  15. 『시(詩)』에 이르기를: 『시경(詩經)』 「대아(大雅)」 「상무(常武)」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16. 너의 수레와 말을 닦고, 활과 화살, 창과 병기를 갖추어(脩爾輿馬,弓矢戈兵): '脩(수)'는 '닦다', '정비하다'는 뜻. '戈兵(과병)'은 '창과 병기'를 의미한다.
  17. 경계하여 법도를 만들고(用戒作則): '戒(계)'는 '경계하다', '則(칙)'은 '법도', '규범'을 의미한다.
  18. 오랑캐 땅을 멀리하라(用逖蠻方): '逖(척)'은 '멀리하다', '쫓아내다'는 뜻. '蠻方(만방)'은 '오랑캐 땅'을 의미한다.
  19. 병기(兵器)가 설치된 지 오래되었다: 병기가 인류 역사와 함께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을 강조한다.
  20. 오대(五代): 여기서는 하(夏), 은(殷), 주(周)의 삼대(三代)와 진(秦), 한(漢)을 포함하는 고대 주요 왕조를 의미할 수 있다.
  21. 병기(兵器)와 교묘한 기계(兵巧之械): '兵巧之械'는 '병기와 교묘한 기계'를 의미한다.
  22. 손자(孫子): 춘추시대의 병법가 손무(孫武).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23. 오기(吳起):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병법가. 『오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24. 장수들의 귀를 시끄럽게 울리지만(聒乎將耳): '聒(괄)'은 '시끄럽게 하다', '귀를 울리다'는 뜻. 병법서의 내용이 장수들에게 익숙하게 들린다는 의미.
  25. 피아(彼我)의 실정(彼此之情): 적과 아군의 실제 상황이나 정세.
  26. 승패의 운수(勝負之數):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이나 법칙.
  27. 무거운 짐을 지고 언덕을 오르며(服重上阪): '服重'은 '무거운 짐을 지다', '上阪'은 '언덕을 오르다'는 뜻.
  28. 말을 절제하여 즐겁게 하는 것은(節馬樂之者): '節馬'는 '말을 절제하다', '말을 잘 다루다'는 뜻.
  29. 왕량(王良):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명마부(名馬夫).
  30. 먼저 성에 오르고 진영에 뛰어들어(先登陷陣): '先登'은 '먼저 성에 오르다', '陷陣'은 '적진에 뛰어들다'는 뜻.
  31. 이 네 가지: 이익을 좇는 것, 해악을 피하는 것, 드러나는 명예를 이롭게 여기는 것, 화와 혼란을 피하는 것.
  32. 이익을 숭상하고 해악을 드러내어(崇利顯害): '崇利'는 '이익을 숭상하다', '顯害'는 '해악을 드러내다'는 뜻.
  33. 아랫사람과 거래하고(與下市): '與下市'는 '아랫사람과 거래하다',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다'는 뜻.
  34. 공적인 일로 죽은 자가(死公事者): '死公事'는 '공적인 일로 죽다', '순직하다'는 뜻.
  35. 조문하고 애도하며 탄식하는 영광스러운 명성을 듣지 못하고(不聞弔唁嗟嘆之榮名): '弔唁(조언)'은 '조문하고 애도하다', '嗟嘆(차탄)'은 '탄식하다'는 뜻.
  36. 좌절하고 게을러져(沮懈): '沮(저)'는 '좌절하다', '방해하다', '懈(해)'는 '게으르다'는 뜻.
  37. 군사를 혹사시킨 지 오 년이 되었고(暴師五年): '暴師(폭사)'는 '군사를 혹사시키다', '군대를 무리하게 운용하다'는 뜻.
  38. 병권을 잡은 관리와 장수들이 천 명에 달하며(典兵之吏,將下千數): '典兵之吏'는 '병권을 잡은 관리', '將下千數'는 '장수들이 천 명에 달하다'는 뜻.
  39. 형세의 변화를 밝게 알지 못하고(不明變勢): '變勢'는 '변화하는 형세', '전황'을 의미한다.
  40. 손자(孫子):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孫武).
  41. 지혜로써 적을 꺾고(智以折敵): '折敵'은 '적을 꺾다', '적을 제압하다'는 뜻.
  42. 인자함으로써 대중을 따르게 하며(仁以附眾): '附眾'은 '대중을 따르게 하다', '백성을 복종시키다'는 뜻.
  43. 공경함으로써 현명한 자를 불러들이고(敬以招賢): '招賢'은 '현명한 자를 불러들이다'는 뜻.
  44. 신의로써 반드시 상을 주며(信以必賞): '必賞'은 '반드시 상을 주다'는 뜻.
  45. 용맹함으로써 사기를 북돋우고(勇以益氣): '益氣'는 '사기를 북돋우다', '기운을 더하다'는 뜻.
  46. 엄격함으로써 명령을 통일한다(嚴以一令): '一令'은 '명령을 통일하다', '명령을 일사불란하게 하다'는 뜻.
  47. 적을 꺾으면 변화에 대응할 수 있고(折敵則能合變): '合變'은 '변화에 대응하다', '임기응변하다'는 뜻.
  48. 대중이 따르고 사랑하면 힘껏 싸울 것을 생각하며(眾附愛則思力戰): '力戰'은 '힘껏 싸우다'는 뜻.
  49.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가 모이면 은밀한 계책을 얻을 수 있고(賢智集則陰謀得): '陰謀'는 '은밀한 계책', '비밀스러운 전략'을 의미한다.
  50. 상벌이 확실하면 병사들이 힘을 다하며(賞罰必則士盡力): '盡力'은 '힘을 다하다'는 뜻.
  51. 사기와 용맹이 더해지면 병세가 저절로 배가되고(氣勇益則兵勢自倍): '兵勢自倍'는 '병세가 저절로 배가되다'는 뜻.
  52. 위엄 있는 명령이 통일되면 오직 장수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威令一則唯將所使): '唯將所使'는 '오직 장수가 시키는 대로 하다'는 뜻.
  53. 적의 예봉을 꺾고 적을 사로잡아(折衝擒敵): '折衝(절충)'은 '적의 예봉을 꺾다', '擒敵(금적)'은 '적을 사로잡다'는 뜻.
  54. 강족(羌族): 중국 서북 지역의 유목 민족. 한(漢)나라 시대에 자주 반란을 일으켰다.
  55. 정해진 명령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定令之群): '定令'은 '정해진 명령', '군율'을 의미한다.
  56. 풍부한 비축 물자에 의지하여(籍富厚之蓄): '籍(적)'은 '의지하다', '빌리다'는 뜻. '富厚之蓄'은 '풍부한 비축 물자'를 의미한다.
  57. 여러 성을 점거하고 기세와 이로운 형세를 장악하며(據列城而氣利勢): '據列城'은 '여러 성을 점거하다', '氣利勢'는 '기세와 이로운 형세'를 의미한다.
  58. 새로이 반란을 일으켜 흩어지고 혼란스러운 약한 오랑캐를 주살하고(誅草創新叛散亂之弱虜): '誅草'는 '주살하다', '없애다', '創新叛散亂'은 '새로이 반란을 일으켜 흩어지고 혼란스러운', '弱虜'는 '약한 오랑캐'를 의미한다.
  59. (반란이) 구름처럼 일어나(雲烝起): '雲烝(운증)'은 '구름처럼 일어나다', '떼 지어 일어나다'는 뜻.
  60. 합종(合從): 전국시대 육국(六國)이 진(秦)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남북으로 연합한 외교 정책.
  61. 연횡(連橫): 전국시대 진(秦)나라가 육국을 각개격파하기 위해 동서로 연합한 외교 정책.
  62. 병주(并州): 한(漢)나라의 행정 구역.
  63. 옹주(雍州): 한(漢)나라의 행정 구역.
  64. 휩쓸고(掃滌): '掃滌(소척)'은 '휩쓸다', '청소하다'는 뜻.
  65. 사예교위부(司隸校尉部): 한(漢)나라 수도 주변 지역을 관할하던 행정 구역.
  66. 조(趙): 한(漢)나라의 제후국.
  67. 위(魏): 한(漢)나라의 제후국.
  68. 촉(蜀): 한(漢)나라의 행정 구역.
  69. 한(漢): 한(漢)나라의 행정 구역.
  70. 다섯 주(州)가 잔혹하게 파괴되고, 여섯 군(郡)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五州殘破,六郡削迹): '殘破(잔파)'는 '잔혹하게 파괴되다', '削迹(삭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는 뜻.
  71. 장리(長吏): 현(縣)의 최고 관리.
  72. 백성의 사명(司命): 백성의 생명과 운명을 주관하는 존재.
  73. 태수(太守): 군(郡)의 최고 행정관.
  74. 현령(令): 현(縣)의 최고 행정관.
  75. 적을 단정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기묘한 재주도 없고(無斷敵合變之奇): '斷敵'은 '적을 단정하다', '적을 판단하다', '合變'은 '변화에 대응하다', '奇(기)'는 '기묘한 재주', '뛰어난 능력'을 의미한다.
  76. 병기는 간략하게 익히지 못했으며(器械不簡習): '簡習(간습)'은 '간략하게 익히다', '충분히 연습하다'는 뜻.
  77. 아전은 포악하게 (병사들을) 징발하여 학대하고(吏以暴發虐其士): '暴發(폭발)'은 '포악하게 징발하다', '虐其士'는 '병사들을 학대하다'는 뜻.
  78. 그 패배는, 정해진 수(數)이다: 필연적인 결과라는 의미.
  79. 재능 있는 선비가 세상에 처함에 있어, 다만 법도가 없는 것을 근심할 뿐이다: '饒士'는 '재능 있는 선비', '患無典'은 '법도가 없는 것을 근심하다'는 뜻.
  80. 나라는 밖에서부터 다스릴 수 없고(國不可從外治): 나라의 근본적인 문제는 내부에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
  81. 병력은 안에서부터 제어할 수 없다(兵不可從中御): 군사력은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지, 내부의 혼란을 제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
  82. 군(郡)과 현(縣)의 장리(長吏): 군과 현의 최고 관리.
  83. 이 몇 가지를 겸하여(兼此數者): 앞서 언급된 '토지', '시장', '백성', '법령' 등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84.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데도(丈斷已): '丈斷(장단)'은 '스스로 판단하다', '독단적으로 결정하다'는 뜻.
  85. 현명한 조서에 부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니(不能以稱明詔安民氓哉): '稱明詔'는 '현명한 조서에 부응하다'는 뜻.
  86. 보잘것없고 평범하며(陪克闒茸): '陪克(배극)'은 '보잘것없다', '闒茸(탑용)'은 '평범하다', '무능하다'는 뜻.
  87. 비범한 사람이 있어야(非常之人): 평범하지 않고 뛰어난 인재.
  88. 뛰어나고 호탕하며(踔躒豪厚): '踔躒(탁력)'은 '뛰어나다', '호탕하다'는 뜻.
  89. 은밀하고 기이한 재능을 뛰어넘어 취하고(越取幽奇): '越取'는 '뛰어넘어 취하다', '幽奇'는 '은밀하고 기이한 재능'을 의미한다.
  90. 재능이 밝고 권모술수에 능하며(材明權變): '材明'은 '재능이 밝다', '權變'은 '권모술수에 능하다', '임기응변하다'는 뜻.
  91. 구차하게 혈통이나 서열만을 따르거나(苟惟基序): '苟惟'는 '구차하게 오직 ~만 생각하다', '基序'는 '혈통', '서열'을 의미한다.
  92. 친척에게 아첨하여(阿親戚): '阿(아)'는 '아첨하다', '친척'은 '친척'을 의미한다.
  93. 병관(兵官): 군사 관련 관직.

2.5 pro 0605

잠부론(潛夫論) - 제12편 구변(救邊)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聖王之政,普覆兼愛,不私近密,不忽踈遠,吉凶禍福,與民共之,哀樂之情,恕以及人,視民如赤子,救禍如引手爛。是以四海歡悅,俱相得用。

【번역문 1】
성왕(聖王)의 정치는 널리 덮어주고¹⁾ 겸하여 사랑하며, 가깝고 친밀한 이들을 사사로이 대하지 않고 성기고 먼 이들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백성과 함께하고, 슬픔과 즐거움의 정(情)을 서(恕)의 마음으로²⁾ 남에게 미루어 행하며, 백성 보기를 갓난아이처럼 하고³⁾ 재앙에서 구해 주기를 끓는 물에 빠진 손을 건져내듯 합니다.⁴⁾ 이 때문에 온 세상이 기뻐하며 모두 서로에게 쓰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원문 2】
往者羌虜背叛,始自涼、并,延及司隸,東禍趙、魏,西鈔蜀、漢,五州殘破,六郡削迹,周迴千里,野無孑遺,寇鈔禍害,晝夜不止,百姓滅沒,日月焦盡。而內郡之士不被殃者,咸云當且放縱,以待天時。用意若此,豈人心也哉!

【번역문 2】
지난날 강로(羌虜)가⁵⁾ 배반한 것은 양주(涼州)와 병주(幷州)에서 시작되어⁶⁾ 사예(司隸)에까지⁷⁾ 미쳤고, 동쪽으로는 조(趙)·위(魏) 지역에⁸⁾ 재앙을 끼치고 서쪽으로는 촉(蜀)·한(漢) 지역을⁹⁾ 노략질하여, 다섯 주(州)가 잔파(殘破)되고 여섯 군(郡)은 자취를 감추었으며,¹⁰⁾ 주위 천 리에 들판에는 살아남은 자가 없었고, 도적의 노략질과 재앙이 밤낮으로 그치지 않아 백성들은 스러져 없어지고 세월이 갈수록 고통이 극심해졌습니다.¹¹⁾ 그러나 내지(內地)의 군(郡)에 있어 재앙을 입지 않은 선비들은 모두 말하기를, “마땅히 내버려 두어¹²⁾ 천시(天時)를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마음 씀씀이가 이와 같으니, 어찌 사람의 마음이라 하겠습니까!


【원문 3】
前羌始反,公卿師尹咸欲捐棄涼州,卻保三輔,朝廷不聽。後羌遂侵,而論者多恨不從惑議。余竊笑之,所謂媾亦悔,不媾亦有悔者爾,未始識變之理。地無邊,無邊亡國。是故失涼州,則三輔為邊;三輔內入,則弘農為邊;弘農內入,則洛陽為邊。推此以相況,雖盡東海猶有邊也。今不厲武以誅虜,選材以全境,而云邊不可守,欲先自割,偄寇敵,不亦惑乎!

【번역문 3】
이전에 강(羌)이 처음 반란을 일으켰을 때, 공경(公卿)과 사윤(師尹)은¹³⁾ 모두 양주(涼州)를 포기하고 물러나 삼보(三輔)를¹⁴⁾ 지키고자 하였으나 조정에서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 후 강(羌)이 마침내 침략해오자, 논자(論者)들은 대부분 그 미혹된 논의를 따르지 않은 것을 한탄하였습니다. 내가 남몰래 이를 비웃으니, 이른바 화친해도 후회하고 화친하지 않아도 후회하는 것일 뿐,¹⁵⁾ 변화의 이치를 애초에 알지 못한 것입니다. 땅에 변방이 없으면 나라가 망합니다.¹⁶⁾ 이런 까닭에 양주를 잃으면 삼보가 변방이 되고, 삼보가 안으로 들어오면 홍농(弘農)이¹⁷⁾ 변방이 되며, 홍농이 안으로 들어오면 낙양(洛陽)이¹⁸⁾ 변방이 될 것입니다. 이를 미루어 서로 비교해 보면, 동해(東海)에 이르러도 오히려 변방은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 무력(武力)을 가다듬어 오랑캐를 주살하고 인재를 선발하여 영토를 온전히 하지 않고서, 변방은 지킬 수 없다고 말하며 먼저 스스로 땅을 베어내어 적을 나태하고 교만하게 만드니,¹⁹⁾ 이 또한 미혹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원문 4】
昔樂毅以慱慱之小燕,破滅彊齊,威震天下,真可謂良將矣。然即墨大夫以孤城獨守,六年不下,竟完其民。田單師窮,率五千騎,擊走卻,復齊七十餘城,可謂善用兵矣。圍聊、莒連年,終不能拔。此皆以至彊攻至弱,以上智圖下愚,而猶不能克者何也?曰:攻常不足,而守恆有餘也。前日諸郡,皆據列城而擁大眾。羌虜之智,非乃樂毅、田單也;郡縣之阨,未若聊、莒、即墨也。然皆不肯專心堅守,而反彊驅劫其民,捐棄倉庫,背城邑走。由此觀之,非苦城乏糧也,但苦將不食爾。

【번-역문 4】
옛날 악의(樂毅)는²⁰⁾ 보잘것없이 작은 연(燕)나라를 가지고 강한 제(齊)나라를 격파하여 멸망시키고 위세를 천하에 떨쳤으니, 참으로 양장(良將)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제나라 즉묵(即墨)의 대부(大夫)는²¹⁾ 외로운 성을 홀로 지키며 6년 동안 함락되지 않아 마침내 그 백성을 온전히 하였습니다. 전단(田單)은²²⁾ 군대가 궁지에 몰리자 5천 기병을 이끌고 악의의 군대를 격파하여 물리치고 제나라의 70여 성을 회복하였으니, 용병(用兵)을 잘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악의는 요(聊)와 거(莒)를²³⁾ 여러 해 동안 포위하고도 끝내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는 모두 지극히 강한 군대로 지극히 약한 곳을 공격하고, 최상의 지혜로 최하의 어리석음을 도모한 것인데도 이기지 못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답하여 말하기를, “공격은 항상 부족하고 수비는 항상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²⁴⁾ 지난날 여러 군(郡)들은 모두 줄지어선 성(城)에 의지하고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강로(羌虜)의 지혜는 악의나 전단과 같지 않았고, 군현(郡縣)의 험고함은 요(聊), 거(莒), 즉묵(即墨)만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모두 오로지 마음을 다해 굳게 지키려 하지 않고, 도리어 억지로 그 백성을 몰아 위협하고 창고를 내버리고 성읍을 등지고 달아났습니다. 이로 보건대, 이는 성(城)에 군량이 부족한 것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다만 장수들이 (백성을) 먹여 살리려 하지 않았을 뿐임을 괴로워한 것입니다.²⁵⁾


【원문 5】
折衝安民,要在任賢,不在促境。齊、魏卻守,國不以安。子嬰自削,秦不以在。武皇帝攘夷拆境,面數千里,東開樂浪,西置燉煌,南踰交阯,北築朔方,卒定南越,誅斬大宛,武軍所嚮,無不夷滅。今虜近發封畿之內,而不能擒,亦自痛爾,非有邊之過也。唇亡齒寒,體傷心痛,必然之事,又何疑焉?君子見機,況已著乎?

【번역문 5】
적의 창끝을 꺾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²⁶⁾은 현명한 이를 임용하는 데에 달려있지, 국경을 축소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제(齊)나라와 위(魏)나라가 물러나 지켰으나 나라가 이로써 편안하지 못했고,²⁷⁾ 자영(子嬰)이 스스로 영토를 깎았으나 진(秦)나라가 이로써 보존되지 못했습니다.²⁸⁾ 무황제(武皇帝)께서는²⁹⁾ 오랑캐를 물리치고 강역을 개척하시어 사방 수천 리에 걸쳐, 동쪽으로는 낙랑(樂浪)을 열고 서쪽으로는 돈황(燉煌)을 설치하셨으며, 남쪽으로는 교지(交阯)를 넘고 북쪽으로는 삭방(朔方)을 쌓으셨고, 마침내 남월(南越)을 평정하고 대완(大宛)을 베어 무찌르시니, 무황제의 군대가 향하는 곳마다 평정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³⁰⁾ 지금 오랑캐가 가까이는 봉기(封畿)의³¹⁾ 안에서 일어났는데도 능히 사로잡지 못하니, 이 또한 스스로 통탄할 일일 뿐 변방이 있는 허물이 아닙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고 몸이 다치면 마음이 아픈 것³²⁾은 필연적인 일이니, 또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군자(君子)는 기미를 보고 아는데, 하물며 이미 드러난 일이겠습니까?


【원문 6】
乃者,邊害震如雷霆,赫如日月,而談者皆諱之,曰焱并竊盜。淺淺善靖,俾君子怠,欲令朝廷以寇為小,而不蚤憂,害乃至此,尚不欲救。曰:「痛不著身言忍之,錢不出家言與之。」假使公卿子弟有被羌禍,朝夕切急如邊民者,則競言當誅羌矣。

【번역문 6】
아! 변경의 재앙이 우레와 같이 진동하고 해와 달처럼 빛나는데도, 논하는 자들은 모두 이를 꺼려서 “타오르는 불길이 아니라 좀도둑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³³⁾ 얄팍한 꾀로 잘 진정시키는 체하여³⁴⁾ 군자(君子)를 나태하게 만들고, 조정으로 하여금 도적을 작은 존재로 여겨 일찍부터 근심하지 않게 하려 하다가, 해(害)가 이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구원하려 하지 않습니다. 말하기를, “고통이 내 몸에 닿지 않으면 참으라 말하고, 돈이 내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주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만약 공경(公卿)의 자제 중에 강(羌)의 화(禍)를 입어, 아침저녁으로 절박하기가 변방의 백성과 같은 자가 있다면, 곧 다투어 마땅히 강(羌)을 주살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원문 7】
今苟以己無慘怛冤痛,故端坐相仍,又不明脩禦之備,陶陶問澹,臥委天聽。羌獨往來,深入多殺,己乃陸陸,相將詣闕,諧辭禮謝,退云狀,會坐朝堂,則無憂國哀民懇惻之誠,苟轉相顧望,莫肯違止,日晏時移,議無所定,己且須後。後得小安,則恬然棄忘。旬時之間,虜復為害,軍書交馳,羽檄狎至,乃復怔忪如前。若此以來,出入九載,庶曰式臧,覆出為惡,佐佐潰潰,當何終極!《春秋》譏「鄭棄其師」,況棄人乎?一人吁嗟,王道為虧,況百萬之眾,號哭泣咸天心乎?

【번역문 7】
지금 진실로 자신에게 참담하고 원통한 아픔이 없다는 이유로, 단정히 앉아 서로 머뭇거리기만 하고, 또한 막아낼 방비를 닦을 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며, 태연하고 무심하게³⁵⁾ 누워서 하늘의 뜻에 맡겨 버립니다. 강(羌)이 멋대로 왕래하며 깊이 들어와 많이 죽이면, 자신들은 그제야 줄줄이³⁶⁾ 서로 이끌고 대궐로 나아가, 말을 맞추어 예로써 사죄하고 물러나 상황을 보고합니다. 조정의 당(堂)에 모여 앉아서는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슬퍼하는 간절하고 측은한 정성이 없으며, 그저 서로 눈치만 살피며 아무도 (관례를) 어기고 나서려 하지 않으니, 해가 저물고 시간이 흘러도 논의는 정해지는 바가 없고 자신은 또 뒷사람을 기다립니다. 그 후에 조금 안정을 얻으면, 곧 태연하게 잊어버립니다. 열흘 사이에 오랑캐가 다시 해를 끼치면, 군사 보고가 빗발치고 우격(羽檄)이³⁷⁾ 빈번히 이르러서야, 다시 이전처럼 허둥지둥 놀랍니다.³⁸⁾ 이와 같이 한 지 아홉 해가 오고 갔으니, 거의 잘 다스려지려나 하면 뒤집혀 다시 악화되기를, 주저하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니³⁹⁾ 장차 어느 때에 끝이 나겠습니까! 《춘추(春秋)》에서는 “정(鄭)나라가 그 군대를 버렸다”고 기롱하였는데,⁴⁰⁾ 하물며 사람을 버리는 것이겠습니까? 한 사람이 탄식해도 왕도(王道)가 이지러지거늘, 하물며 백만 무리의 울부짖음이 하늘의 마음에까지 사무치는 것이겠습니까?


【원문 8】
且夫國以民為基,貴以賤為本。是以聖王養民,愛之如子,憂之如家,危者安之,亡者存之,救其災患,除其禍亂。是故鬼方之伐,非好武也,玁狁于攘,非貪土也,「以振民育德」,安彊宇也。「古者,天子守在四夷」,「自彼互、羌,莫不來享」,普天思服,行葦賴德。況近我民蒙禍若此,可無救乎?

【번-역문 8】
또한 무릇 나라는 백성을 기초로 삼고,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이 때문에 성왕(聖王)은 백성을 기름에 자식처럼 사랑하고 집안일처럼 걱정하며, 위태로운 자를 편안하게 하고 망해가는 자를 보존하며, 그 재앙과 근심을 구원하고 그 화란(禍亂)을 제거합니다. 이런 까닭에 옛날 귀방(鬼方)을 정벌한 것은 무(武)를 좋아해서가 아니며, 험윤(玁狁)을 물리친 것은 땅을 탐해서가 아니었으니,⁴¹⁾ “백성을 구제하고 덕을 기르기 위함(以振民育德)”이며⁴²⁾ 강역을 편안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옛날에 천자(天子)의 수비는 사방의 오랑캐에 있었다”고 하고,⁴³⁾ “저 호(互)와 강(羌)으로부터 이르기까지 공물을 바치지 않음이 없었다”고 하니,⁴⁴⁾ 온 하늘 아래가 그 덕을 생각하여 복종하고 의지하였습니다.⁴⁵⁾ 하물며 가까운 우리 백성이 이와 같은 화를 입었는데 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문 9】
凡民之所以奉事上者,懷義恩也。痛則無恥,福則不仁。忿戾怨懟,生於無恥。今羌叛久矣!傷害多矣!百姓急矣!憂禍深矣!上下相從,未見休時。不一命大將以掃醜虜,而州稍稍興役,連連不已。若排榩障風,探沙灌河,無所能禦,徒自盡爾。今數州屯兵才餘萬人,皆廩食縣官,歲數百萬斛,又有月直。但此人耗,不可勝供,而反憚暫出之費,甚非計也。

【번역문 9】
무릇 백성이 윗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까닭은 의(義)와 은혜를 마음속에 품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고통스러우면 염치를 모르고, (윗사람은) 복을 누리면 어질지 못하게 됩니다. 분노하고 어그러지며 원망하고 한을 품는 마음은 염치가 없는 데서 생겨납니다. 지금 강(羌)이 배반한 지 오래되었고, 상해(傷害)를 입은 이가 많으며, 백성은 위급하고, 근심과 재앙은 깊습니다. 위아래가 서로 따르기만 할 뿐, 쉴 때를 보지 못합니다. 한번 대장(大將)에게 명하여 추한 오랑캐를 쓸어버리지 않고, 주(州)에서 조금씩 군역을 일으키는 것을 연이어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짧은 널빤지로 바람을 막고, 모래를 파서 강에 쏟아붓는 것과 같아서,⁴⁶⁾ 막아낼 수 있는 바가 없고 한갓 스스로를 소진시킬 뿐입니다. 지금 몇몇 주(州)에 주둔한 병사가 겨우 만여 명인데, 모두 관청의 녹봉을 먹으니 한 해에 수백만 곡(斛)이며, 또한 매달 봉급이 있습니다. 다만 이 인력과 물자의 소모를 이루 다 공급할 수 없는데도, 도리어 잠시 출병하는 비용을 꺼리니, 이는 심히 계책이 아닙니다.


【원문 10】
是夫危者易傾,疑者易化。今虜新擅邊地,未敢自安,易震蕩也。百姓新離舊懷,思慕未衰,易將厲也。誠宜因此遣大將誅討,迫脅離逖破壞之。如寬假日月,蓄積富貴,各懷安固之後,則難動矣。《周書》曰:「凡彼聖人必趨時。」是故戰守之策,不可不早定也。

【번역문 10】
무릇 위태로운 자는 쉽게 기울어지고, 의심하는 자는 쉽게 교화됩니다. 지금 오랑캐는 새로 변방 땅을 차지하였으나 감히 스스로 편안해하지 못하니, 쉽게 흔들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새로 옛 터전을 떠나 그리워하는 마음이 쇠하지 않았으니, 쉽게 이끌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마땅히 이 기회에 대장(大將)을 파견하여 주살하고 토벌하며, 핍박하고 위협하여 그들을 이간시키고 멀리하며 파괴해야 합니다. 만약 너그러이 세월을 보내주어 그들이 재물을 축적하고 부귀해져서 각기 안정되고 견고해지려는 마음을 품은 뒤에는, 움직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주서(周書)》에 이르기를, “무릇 저 성인(聖人)은 반드시 때를 따른다”고 하였습니다.⁴⁷⁾ 그러므로 싸우고 지키는 계책은 일찍 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석 (Footnotes)

1) 普覆(보부): 하늘이 만물을 널리 덮듯이, 군주의 은택이 온 백성에게 미침을 비유하는 말이다.
2) 恕(서):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유교의 중요한 덕목이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편에서 공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하여 서(恕)를 설명했다.
3) 視民如赤子(시민여적자): 백성을 갓난아이처럼 여기고 돌본다는 뜻으로, 군주의 지극한 애민정신을 비유한다. 『서경(書經)』 「강고(康誥)」편에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하라(若保赤子)”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4) 引手爛(인수란): 끓는 물(爛)에 빠진 손을 급히 빼내는(引手)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상」에 나오는 말로,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지체할 수 없는 일임을 비유한다.
5) 羌虜(강로): 강(羌)은 고대 중국 서북쪽에 살던 유목 민족이다. 후한(後漢) 시기에는 이들과의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았으며, 저자인 왕부(王符)가 살던 시기에는 강족의 대규모 반란으로 양주(涼州)를 비롯한 서북 변방 지역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虜(로)는 오랑캐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6) 涼州(양주), 幷州(병주): 모두 후한의 행정구역인 13주(州)에 속한다. 양주는 지금의 간쑤성(甘肅省) 일대, 병주는 산시성(山西省) 북부와 내몽골 자치구 일부에 해당하며, 당시 강족과 접경한 최전선 지역이었다.
7) 司隸(사예): 후한의 수도인 낙양(洛陽)과 그 주변 지역을 관할하던 특별 행정구역이다. 수도권에 해당한다.
8) 趙(조), 魏(위): 전국시대의 조나라와 위나라 땅을 가리키며, 후한 당시에는 기주(冀州)와 연주(兗州)에 속하는 지역으로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남부와 허난성(河南省) 북부 일대이다.
9) 蜀(촉), 漢(한): 촉군(蜀郡)과 한중군(漢中郡)을 가리키며, 익주(益州)에 속하는 지역으로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일대이다.
10) 五州殘破(오주잔파), 六郡削迹(육군삭적): 다섯 주는 양주, 병주, 사예, 기주, 익주를 가리킨다. 여섯 군은 일반적으로 한양(漢陽), 무도(武都), 금성(金城), 안정(安定), 북지(北地), 상당(上黨) 등 강족의 침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서북 변경의 군(郡)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11) 日月焦盡(일월초진): 직역하면 ‘해와 달이 타서 다하다’는 뜻으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고통과 피해가 극에 달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12) 放縱(방종): 여기서는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의미로, 강족의 침략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방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가리킨다.
13) 公卿師尹(공경사윤): 공경(公卿)은 삼공(三公)과 구경(九卿) 등 고위 관료를, 사윤(師尹)은 경사(京師) 즉 수도의 장관을 뜻한다. 조정의 최고위 관료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14) 三輔(삼보): 전한(前漢)의 수도 장안(長安) 일대를 관할하던 경조윤(京兆尹), 좌풍익(左馮翊), 우부풍(右扶風) 세 관직 또는 그 관할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다. 후한 시대에도 관중(關中)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사용되었다.
15) 媾亦悔,不媾亦有悔(구역회, 불구역유회): ‘媾’는 화친(和親)을 뜻한다. 이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 『좌전(左傳)』에 나오는 초(楚)나라 영윤(令尹) 자문(子文)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6) 地無邊,無邊亡國(지무변, 무변망국): 땅에 정해진 국경선이 없으면, 국경선이 없는 나라는 망한다는 뜻. 즉, 국경을 포기하고 계속 후퇴하면 결국 나라 전체를 잃게 된다는 논리이다.
17) 弘農(홍농): 후한의 군(郡) 이름.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서부 지역으로, 수도 낙양의 서쪽 관문에 해당한다.
18) 洛陽(낙양): 후한의 수도.
19) 偄寇敵(나구적): ‘偄’는 ‘게으르다’, ‘나태하다’는 뜻이다. 스스로 영토를 포기하는 것은 적을 나태하고 교만하게 만들어 더욱 침략을 부추기는 행위임을 비판하는 말이다.
20) 樂毅(악의): 중국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명장. 소왕(昭王)의 신임을 받아 5개국 연합군을 이끌고 강대국이었던 제(齊)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임치(臨淄)를 비롯한 70여 성을 함락시켰다.
21) 即墨大夫(즉묵대부): 제나라 즉묵(即墨)성을 지키던 대부(大夫)를 말한다. 악의의 공격에 제나라의 거의 모든 성이 함락되었으나, 즉묵과 거(莒) 두 성만이 저항을 계속했다.
22) 田單(전단): 전국시대 제나라의 장수. 즉묵성이 포위되었을 때, 화우계(火牛計)라는 기발한 계책으로 연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악의에게 빼앗겼던 70여 성을 모두 되찾아 나라를 회복시켰다.
23) 聊(요), 莒(거): 모두 제나라의 성읍 이름. 악의는 제나라의 대부분을 점령했으나, 이 두 성은 끝까지 함락시키지 못했다.
24) 攻常不足,而守恆有餘也(공상부족, 이수항유여야): 공격하는 쪽은 항상 전력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수비하는 쪽은 항상 여유가 있다는 의미. 수성전(守城戰)의 이점을 강조하는 병법의 원리이다.
25) 但苦將不食爾(단고장불식이): 직역하면 ‘다만 장수가 먹지 않음을 괴로워할 뿐이다’이다. 여기서 ‘食(식)’은 ‘(백성이나 병사를) 먹이다, 부양하다’라는 사동의 의미로 해석해야 문맥이 통한다. 즉, 장수들이 성을 지키고 백성을 먹여 살릴 의지가 없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26) 折衝(절충): 적의 예리한 창(衝)을 꺾는다(折)는 뜻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위세를 꺾는 것을 비유한다. 외교적 담판으로 전쟁을 막는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27) 齊、魏卻守,國不以安(제, 위각수, 국불이안):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와 위나라가 강대국 진(秦)의 공세에 밀려 영토를 내주며 수세적인 전략을 취했으나 결국 멸망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28) 子嬰自削,秦不以在(자영자삭, 진불이재): 자영(子嬰)은 진(秦)나라의 마지막 군주이다. 유방(劉邦)의 군대가 관중으로 진격해오자, 스스로 영토를 바치고 항복했으나 진나라는 결국 멸망했다.
29) 武皇帝(무황제): 한(漢)나라의 제7대 황제인 한무제(漢武帝)를 가리킨다. 그는 적극적인 대외 정벌을 통해 한나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30) 樂浪(낙랑) ... 大宛(대완): 모두 한무제가 정벌하거나 설치한 지역 및 국가 이름이다. 낙랑(한반도 북부), 돈황(감숙성 서부), 교지(베트남 북부), 삭방(내몽골 지역), 남월(광둥·광시 및 베트남 북부), 대완(중앙아시아 페르가나) 등이다.
31) 封畿(봉기):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수도와 그 주변의 땅. 즉, 수도권 지역을 의미한다.
32) 唇亡齒寒(순망치한):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하나가 망하면 다른 하나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유래했다.
33) 焱并竊盜(염병절도): ‘焱并(염병)’은 활활 타오르는 큰 불길, ‘竊盜(절도)’는 좀도둑을 의미한다. 변방의 위기를 큰 재앙이 아닌 사소한 문제로 축소하여 말하는 조정 논자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말이다.
34) 淺淺善靖(천천선정): ‘淺淺(천천)’은 얄팍하고 피상적인 모양. ‘善靖(선정)’은 잘 안정시키는 척하는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35) 陶陶問澹(도도문담): ‘陶陶(도도)’는 화락하고 태평한 모양, ‘問澹(문담)’은 고요하고 무심한 모양을 나타낸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 무관심하고 안일한 태도를 비판하는 표현이다.
36) 陸陸(육륙): 줄을 지어 잇따르는 모양. 마지못해 줄줄이 대궐로 나아가는 관료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37) 羽檄(우격): 위급한 군사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깃털(羽)을 꽂은 격문(檄). 가장 긴급한 명령을 전달하는 데 사용되었다.
38) 怔忪(정송): 두려워서 허둥지둥 놀라는 모양.
39) 佐佐潰潰(회회궤궤): ‘佐佐(회회)’는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 ‘潰潰(궤궤)’는 혼란스럽게 무너지는 모양이다. 결단력 없이 주저하다가 상황이 악화되는 모습이 반복됨을 나타낸다.
44) 《春秋》譏「鄭棄其師」(춘추기 정기기사):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33년 조에 나오는 고사. 진(晉)나라와 싸우던 정(鄭)나라가 군대를 버리고 달아난 것을 《춘추》의 필법으로 비판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군대를 버리는 것도 비판받는데, 하물며 백성을 버리는 것은 더 큰 죄악이라는 의미이다.
41) 鬼方(귀방), 玁狁(험윤): 모두 고대 중국 북방에 있었던 이민족의 이름이다. 귀방은 상(商)나라 때, 험윤은 주(周)나라 때 주로 중국을 침략하여 정벌의 대상이 되었다.
42) 以振民育德(이진민육덕): 『서경(書經)』 「주서(周書)·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 구절로, 정벌의 목적이 영토 확장이 아니라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고 천하의 덕을 기르는 데 있음을 의미한다.
43) 古者,天子守在四夷(고자, 천자수재사이): 『예기(禮記)』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로, 천자의 진정한 국방은 국경선이 아니라 사방의 오랑캐를 덕으로 복속시켜 변경 자체를 안정시키는 데 있다는 이상적인 통치관을 보여준다.
44) 自彼互、羌,莫不來享(자피호, 강, 막불래향): 『시경(詩經)』 「대아(大雅)·행위(行葦)」에 나오는 구절이다. 주나라의 덕치(德治)가 널리 퍼져 멀리 있는 호(互)족과 강(羌)족까지 조공을 바치러 왔음을 노래한 것이다.
45) 行葦賴德(행위뢰덕): 앞서 인용한 시경의 「행위(行葦)」편의 내용을 가리킨다. 이 시는 제후들이 주나라 천자에게 나아와 제사를 돕는 모습을 묘사하며, 천자의 덕에 온 세상이 의지하고 복종함을 노래한다.
46) 排榩障風(배단장풍), 探沙灌河(탐사관하): ‘榩(단)’은 짧은 널빤지이다. 짧은 판자로 바람을 막고, 모래를 파서 강을 메우려는 것처럼, 임시방편적인 소규모 군역 동원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헛수고일 뿐임을 비유한다.
47) 《周書》曰:「凡彼聖人必趨時。」(주서왈 범피성인필추시): 『일주서(逸周書)』 또는 『상서(尙書)』의 「주서(周書)」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성인은 반드시 시기(時機), 즉 가장 적절한 때를 포착하여 행동한다는 의미로, 지금이 바로 강족을 토벌할 적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잠부론(潛夫論) - 제13편 변의(邊議)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明於禍福之實者,不可以虛論惑也;察於治亂之情者,不可以華飾移也。是故不疑之事,聖人不謀,浮游之說,聖人不聽。何者?計不背是實而更爭言也。是以明君先盡人情,不獨委夫良將,脩己之備,無恃於人,故能攻必勝敵,而守必自全也。

【번역문 1】
화(禍)와 복(福)의 실상에 밝은 자는 헛된 논의에 미혹되지 않으며,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의 실정을 살피는 자는 화려한 꾸밈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성인(聖人)이 따로 꾀하지 않고, 허황되고 근거 없는 말은¹⁾ 성인이 듣지 않습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계책이란 올바른 실질을 등지고서 다시 다투어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먼저 인정(人情)을 두루 살피고, 오직 유능한 장수에게만 일을 맡기지 않으며, 자신을 닦고 방비를 갖추어 남에게만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공격하면 반드시 적에게 이기고, 지키면 반드시 스스로를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문 2】
羌始反時,計謀未善,黨與未成,人眾未合,兵器未備,或持竹木枝,或空手相附,草食散亂,未有都督,甚易破也。然太守令長,皆奴怯畏偄不敢擊。故令虜遂乘勝上彊,破州滅郡,日長炎炎,殘破三輔,「覃及鬼方。」若此已積十歲矣。百姓被害,訖今不止。而癡兒騃子,尚云不當救助,且待天時。用意若此,豈人也哉!

【번역문 2】
강(羌)이 처음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는 계책이 아직 좋지 못했고, 무리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아직 모이지 않았고, 병기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아, 어떤 자는 대나무나 나뭇가지를 들고 어떤 자는 맨손으로 서로 붙좇았으며, 풀을 먹으며 흩어져 있고 아직 통솔하는 우두머리도 없어, 격파하기가 매우 쉬웠습니다. 그러나 태수(太守)와 영장(令長)들은²⁾ 모두 종처럼 비굴하고 겁이 많으며 나약하여 감히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랑캐가 마침내 승세를 타고 더욱 강성해져 주(州)를 깨뜨리고 군(郡)을 멸망시키며, 날로 그 기세가 불길처럼 타올라 삼보(三輔)를³⁾ 잔파하고 “멀리 귀방(鬼方)에까지 미치게”⁴⁾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한 지 이미 10년이 쌓였습니다.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것이 지금까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고 못난 자들은⁵⁾ 여전히 구원해서는 안 되며 우선 천시(天時)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음 씀씀이가 이와 같으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원문 3】
夫仁者恕己以及人,智者講功而處事。今公卿內不傷士民滅沒之痛,外不慮久兵之禍,各懷一切,所脫避前,苟云不當動兵,而不復知引帝王之綱維,原禍變之所終也。

【번역문 3】
무릇 어진 자는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고, 지혜로운 자는 공효(功効)를 따져 일을 처리합니다. 지금 공경(公卿)들은 안으로는 사민(士民)이 스러져 없어지는 고통을 아파하지 않고, 밖으로는 오래 끄는 전쟁의 재앙을 염려하지 않으며, 각기 일시적인 편안함만을 품고 눈앞의 책임만 벗어나 피하려 하면서, 그저 군사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말할 뿐, 다시 제왕의 기강을 이끌어와⁶⁾ 화란과 변고가 끝내 어디에 이를지를 근원적으로 살필 줄은 모릅니다.


【원문 4】
《易》制禦寇,《詩》美薄伐,自古有戰,非乃今也。《傳》曰:「天生五材,民並用之,廢一不可,誰能去兵?兵所以威不軌而昭文德也,聖人所以興,亂人所以廢。」齊桓、晉文、宋襄,衰世諸侯,猶恥天下有相滅而己不能救,況皇天所命四海主乎?晉、楚大夫,小國之臣,猶恥己之身而有相侵,況天子三公典世任者乎?公劉仁德,廣被行葦,況含血之人,己同類乎?一人吁嗟,王道為虧,況滅沒之民百萬乎?《書》曰:「天子作民父母。」父母之於子也,豈可坐觀其為寇賊之所屠剝,立視其為狗豕之所噉食乎?

【번역문 4】
《역경(易經)》에서는 도적을 막는 법을 만들었고,⁷⁾ 《시경(詩經)》에서는 정벌을 아름답게 여겼으니,⁸⁾ 예로부터 전쟁은 있었던 것이지 지금에 와서 비로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좌전(左傳)》에서 말하기를, “하늘이 다섯 가지 재료를 내니 백성이 모두 사용하며, 하나라도 폐할 수 없으니 누가 능히 병기(兵器)를 없애겠는가? 병기란 법도를 따르지 않는 자에게 위엄을 보이고 문덕(文德)을 밝히는 것이다. 성인은 이로써 흥하고, 난인(亂人)은 이로써 폐망한다”고 하였습니다.⁹⁾ 제 환공(齊桓公), 진 문공(晉文公), 송 양공(宋襄公)과 같은 쇠락한 시대의 제후들조차도 천하에 서로 멸망시키는 일이 있는데 자신이 구원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는데, 하물며 황천(皇天)의 명을 받은 온 세상의 군주이겠습니까?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대부, 작은 나라의 신하조차도 자신의 몸이 침략당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는데, 하물며 천자의 삼공(三公)으로서 세상을 맡은 책임을 맡은 자이겠습니까?¹⁰⁾ 공류(公劉)의 어진 덕은 「행위(行葦)」에 널리 입혀졌거늘,¹¹⁾ 하물며 피를 머금은 사람으로서¹²⁾ 자신과 같은 동족임에랴? 한 사람이 탄식해도 왕도(王道)가 이지러지거늘, 하물며 스러져 없어진 백성이 백만이나 됨에랴? 《서경(書經)》에서 말하기를, “천자는 백성의 부모가 된다”고 하였습니다.¹³⁾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어찌 앉아서 도적에게 도륙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으며, 서서 개나 돼지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겠습니까?


【원문 5】
除其仁恩,且以計利言之。國以民為基,貴以賤為本。願察開闢以來,民危而國安者誰也?上貧而下富者誰也?故曰:「夫君國,將民之以,民實瘠,而君安得肥?」夫以小民受天永命,竊願聖主深惟國基之傷病,遠慮禍福之所生。

【번역문 5】
인(仁)과 은(恩)을 제외하고, 우선 이해(利害)를 따져 말해보겠습니다. 나라는 백성을 기초로 삼고,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원컨대 천지가 열린 이래로, 백성이 위태로운데 나라가 편안했던 자가 누구이며, 윗사람은 가난한데 아랫사람이 부유했던 자가 누구인지 살펴보십시오. 그러므로 말하기를, “무릇 나라의 군주가 되어 백성을 이끄는데, 백성이 실로 척박하다면 군주가 어찌 살찔 수 있겠는가?”¹⁴⁾라고 합니다. 무릇 보잘것없는 백성이라도 하늘의 영원한 명(命)을 받았으니,¹⁵⁾ 삼가 원하옵건대 성스러운 주군께서는 나라의 기초가 상하고 병든 것을 깊이 생각하시고, 화(禍)와 복(福)이 생겨나는 바를 멀리 내다보십시오.


【원문 6】
且夫物有盛衰,時有推移,事有激會,人有愛化。智者揆象,不其宜乎!孟明補闕於河西,范蠡收責於故胥,是以大功建於當世,而令名傳於無窮也。

【번역문 6】
또한 무릇 사물에는 성하고 쇠함이 있고, 시대에는 옮겨감이 있으며, 일에는 좋은 기회가 있고, 사람에게는 사랑하여 교화함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러한 형세를 헤아리니,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맹명(孟明)은 하서(河西)에서 잘못을 만회하였고,¹⁶⁾ 범려(范蠡)는 옛 서(胥) 땅에서 책임을 다하였으니,¹⁷⁾ 이로써 큰 공을 당대에 세우고 아름다운 이름을 무궁토록 전한 것입니다.


【원문 7】
今邊陲搔擾,日放族禍,百姓晝夜望朝廷救己,而公卿以為費煩不可。徒竊笑之,是以晏子輕囷倉之蓄而惜一杯之鑽何異?今但知愛見薄之錢穀,而不知末見之待民先也;知傜伇出難動,而不知中國之待邊寧也。

【번역문 7】
지금 변방이 소란하여 날마다 일족이 몰살되는 화가 벌어지고, 백성들은 밤낮으로 조정이 자신들을 구해주기만 바라는데, 공경(公卿)들은 비용이 많이 들고 번거로워 불가하다고 여깁니다. 부질없이 남몰래 이를 비웃으니, 이는 안자(晏子)가 둥근 창고의 저축은 가벼이 여기면서 한 잔의 술에 구멍 뚫는 것을 아까워한 것과¹⁸⁾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지금 단지 눈앞의 하찮은 돈과 곡식을 아낄 줄만 알고, 보이지 않는 먼 미래에는 백성을 기다리는 것이 우선임을 알지 못하며, 요역(傜役)으로 나가는 것을 어렵고 움직이기 힘든 일로만 알 뿐, 중원(中國)이 변방의 안녕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원문 8】
《詩》痛「或不知叫號,或慘慘劬勞。」今公卿苟以己不被傷,故競割國家之地以與敵,殺主上之民以餧羌。為謀若此,未可謂知,為臣若此,未可謂忠,才智未足使議。

【번역문 8】
《시경(詩經)》에서는 “어떤 이는 부르짖는 소리조차 알지 못하고, 어떤 이는 참담하게 고생만 한다”고¹⁹⁾ 애통해하였습니다. 지금 공경들은 진실로 자신이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투어 국가의 땅을 베어 적에게 주고, 주상(主上)의 백성을 죽여 강(羌)에게 먹이로 줍니다. 계책을 세움이 이와 같으니 지혜롭다 할 수 없고, 신하 노릇함이 이와 같으니 충성스럽다 할 수 없으니, 재주와 지혜가 의논에 참여하게 하기에 부족합니다.


【원문 9】
且凡四海之內者,聖人之所以遺子孫也;官位職事者,群臣之所以寄其身也。傳子孫者,思安萬世;寄其身者,各取一闋。故常其言不久行,其業不可久厭。夫此誠明君之所微察也,而聖主之所獨斷。今言不欲動民與煩可也。即然,當脩守禦之備。必今之計,令虜不敢來,無所得;令民不患寇,既無所失。今則不然,苟憚民力之煩勞,而輕使受滅亡之大禍。非人之主,非民之將,非主之佐,非勝之主者也。

【번-역문 9】
또한 무릇 사해(四海)의 안은 성인(聖人)이 자손에게 남겨준 것이며, 관위(官位)와 직책은 여러 신하가 그 몸을 의탁하는 곳입니다. 자손에게 전하는 자는 만세(萬世)의 안녕을 생각하지만, 그 몸을 의탁하는 자는 각기 한 시절의 편안함만 취합니다.²⁰⁾ 그러므로 항상 그들의 말은 오래 실행될 수 없고, 그들의 공업은 오래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무릇 이는 진실로 현명한 군주가 미세하게 살피는 바이며, 성스러운 군주가 홀로 결단하는 바입니다. 지금 백성을 동원하고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지키고 막아낼 방비를 닦아야 합니다. 반드시 지금의 계책은, 오랑캐로 하여금 감히 오지 못하게 하여 얻는 것이 없게 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도적을 근심하지 않게 하여 잃는 것이 없게 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진실로 백성의 힘이 번거롭고 수고로운 것만 꺼리고, 가벼이 그들로 하여금 멸망의 큰 화를 받게 합니다. 이는 사람의 군주가 아니며, 백성의 장수도 아니고, 군주의 보좌관도 아니며, 승리를 주관하는 자도 아닙니다.


【원문 10】
且夫議者,明之所見也;辭者,心之所表也。「維其有之,是以似之。」諺曰:「何以服很?莫若聽之。」今諸言邊可不救而安者,宜誠以其身若子弟補邊太守令長丞尉,然後是非之情乃定,捄邊乃無患。邊無患,中國乃得安寧。

【번역문 10】
또한 무릇 논의라는 것은 밝은 이의 소견이며, 말이란 것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오직 그것이 있기에, 이로써 그것과 같아진다”고 하였습니다.²¹⁾ 속담에 이르기를, “어떻게 사나운 자를 복종시키겠는가? 그 말을 들어주는 것만 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²²⁾ 지금 변방을 구하지 않아도 편안할 수 있다고 말하는 모든 자들은, 마땅히 진실로 그 자신이나 자제들로써 변방의 태수(太守), 영장(令長), 승(丞), 위(尉)를²³⁾ 보충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시비(是非)의 실정이 정해지고, 변방을 구원하는 데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변방에 근심이 없어야, 중원(中國)이 비로소 안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석 (Footnotes)

1) 浮游之說(부유지설): ‘浮游(부유)’는 물 위에 떠다니는 것처럼 근거가 없고 허황됨을 의미한다. 실질에 근거하지 않은 공허한 이론이나 주장을 가리킨다.
2) 太守令長(태수영장): 후한(後漢)의 지방 관직명. 태수(太守)는 군(郡)의 최고 행정관이며, 영(令)과 장(長)은 현(縣)의 최고 행정관이다. 인구 1만 호 이상의 현에는 영(令)을, 그 이하의 현에는 장(長)을 두었다.
3) 三輔(삼보): 전한(前漢)의 수도 장안(長安) 일대를 관할하던 경조윤(京兆尹), 좌풍익(左馮翊), 우부풍(右扶風)의 총칭. 후한 시대에는 관중(關中)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쓰였다.
4) 覃及鬼方(담급귀방): 『시경(詩經)』 「대아(大雅)·탕(蕩)」편의 구절 “覃及鬼方”을 인용한 것이다. 원문에서는 은(殷)나라의 난리가 멀리 귀방(鬼方, 고대 북방 민족)에까지 미쳤다는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강족의 반란이 매우 광범위하게 퍼졌음을 비유한다.
5) 癡兒騃子(치아애자): ‘癡(치)’와 ‘騃(애)’는 모두 ‘어리석다’는 뜻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들을 경멸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6) 帝王之綱維(제왕지강유): ‘綱維(강유)’는 그물의 벼리줄과 동아줄을 뜻하며, 사물의 근본 또는 국가의 기강을 비유한다.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적인 원칙과 법도를 의미한다.
7) 《易》制禦寇(역제어구): 《역경(易經)》의 괘상(卦象)과 괘사(卦辭)에는 도적이나 외적의 침입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원리가 담겨 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사괘(師卦)는 군대의 운용을, 둔괘(屯卦)는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법을 다룬다.
8) 《詩》美薄伐(시미박벌): 《시경(詩經)》에서 정벌(薄伐)을 아름답게 노래했다는 뜻. 「대아(大雅)·강한(江漢)」, 「노송(魯頌)·반수(泮水)」 등에서 천자의 명을 받아 외적을 정벌하고 공을 세운 것을 찬미하는 내용이 나온다.
9) 《傳》曰...亂人所以廢(전왈...난인소이폐): 이 인용문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7년 조에 나오는 말이다. 병기(兵器)는 문덕(文德)을 보완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성인은 이를 통해 흥하고 어지러운 자는 이 때문에 망한다는 논리로, 군사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10) 天子三公典世任者(천자삼공전세임자): 삼공(三公)은 후한 시대에 최고위 관직인 태위(太尉), 사도(司徒), 사공(司空)을 말한다. 이들은 천자를 보좌하여 세상의 일을 맡은(典世任) 막중한 책임을 진 자들이다.
11) 公劉仁德,廣被行葦(공류인덕, 광피행위): 공류(公劉)는 주(周)나라의 시조인 후직(后稷)의 후손으로, 백성을 이끌고 빈(豳) 땅에 정착하여 나라의 기틀을 닦은 인물이다. 그의 덕은 《시경》 「대아(大雅)·행위(行葦)」편에서 널리 칭송되었다.
12) 含血之人(함혈지인): 피를 머금은 사람, 즉 혈기(血氣)가 있는 살아있는 사람을 뜻한다.
13) 《書》曰:「天子作民父母。」(서왈 천자작민부모): 《서경(書經)》 「주서(周書)·태서(泰誓)」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군주는 백성의 부모와 같아서 백성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14) 夫君國...君安得肥(부군국...군안득비): 이 구절은 『설원(說苑)』 「군도(君道)」편에 유사한 내용이 보인다. 군주와 백성은 한 몸과 같아서 백성이 피폐하면 군주도 번영할 수 없다는, 민본주의적 국가관을 보여준다.
15) 小民受天永命(소민수천영명): 보잘것없는 백성이라도 하늘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았다는 뜻. 모든 인간의 생명은 천부적으로 존귀하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16) 孟明補闕於河西(맹명보궐어하서): 춘추시대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장수 맹명시(孟明視)의 고사. 맹명시는 효산(崤山) 전투에서 진(晉)나라에 대패했으나, 목공은 그를 다시 등용했다. 맹명시는 이후 절치부심하여 하서(河西) 지역에서 진(晉)나라 군대를 격파함으로써 이전의 실패를 만회하고 큰 공을 세웠다.
17) 范蠡收責於故胥(범려수책어고서):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명신 범려(范蠡)의 고사. 월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 패했을 때, 범려는 구천을 보좌하여 20년간 와신상담(臥薪嘗膽)한 끝에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회계(會稽)의 치욕을 씻었다. ‘故胥(고서)’는 오나라의 수도 부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收責(수책)’은 빚을 거두듯 책임을 다하고 원수를 갚았다는 의미이다.
18) 晏子輕囷倉之蓄而惜一杯之鑽何異(안자경균창지축이석일배지찬하이):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고사. 안자가 제(齊)나라의 재상일 때, 큰 가뭄이 들자 군주의 창고(囷倉)를 열어 백성을 구휼할 것을 청했으나, 군주는 창고의 곡식보다 술잔에 구멍을 뚫어 장식하는 비용을 더 아까워했다는 이야기이다. 국가의 큰 손실은 외면하고 눈앞의 작은 비용만 아끼는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비유이다.
19) 《詩》痛「或不知叫號,或慘慘劬勞。」(시통 혹부지규호 혹참참구로): 《시경》 「소아(小雅)·북산(北山)」에 나오는 구절이다. 불공평한 노역 분담으로 인해, 어떤 사람은 편안하여 백성의 부르짖음을 알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참담하게 고생만 하는 현실을 노래한 시이다. 조정 관리들의 무관심과 변방 백성의 고통을 대비시키는 데 인용되었다.
20) 傳子孫者,思安萬世;寄其身者,各取一闋(전자손자, 사안만세; 기기신자, 각취일결): 황제는 자손만대의 안녕을 생각하지만, 관료들은 자신의 임기 동안(一闋)의 안위만을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군주와 신하의 시간적 관점과 책임감의 차이를 지적하며, 관료들의 단견과 이기심을 비판하고 있다.
21) 維其有之,是以似之(유기유지, 시이사지): 이 구절의 출처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대의 격언으로 보인다. 마음속에 그러한 생각(그것, 其)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나 행동도 그와 같아진다는 의미이다. 즉, 말이란 그 사람의 내면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22) 何以服很?莫若聽之(하이복한? 막약청지): ‘很(한)’은 사납고 복종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나운 자를 복종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설적으로 그의 말을 들어주는 척하는 것이라는 의미의 속담이다. 여기서는 변방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주장대로 직접 변방에 가서 책임을 져보라고 말하는 역설적 제안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23) 太守令長丞尉(태수영장승위): 모두 후한의 지방 관직명이다. 태수, 영, 장은 군현의 행정 책임자이며, 승(丞)은 이들을 보좌하는 부관, 위(尉)는 군사 및 치안을 담당하는 무관이다. 변방 지역의 주요 관직을 총칭한다.

잠부론(潛夫論) - 제24편 실변(實邊)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夫制國者,必照察遠近之情偽,預禍福之所從來,乃能盡群臣之筋力,而保興其邦家。

【번역문 1】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멀고 가까운 곳의 실정과 거짓을 밝게 살피고, 화(禍)와 복(福)이 비롯되는 바를 미리 알아야, 비로소 뭇 신하들의 힘을 다하게 하여 그 나라를 보전하고 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원문 2】
前羌始叛,草創新起,器械未備,虜或持銅鏡以象兵,或負板案以類楯,惶懼擾攘,未能相持。一城易制爾,郡縣皆大熾。及百姓暴被殃禍,亡失財貨,人哀奮怒,各欲報讎,而將帥皆怯劣軟弱,不敢討擊,但坐調文書,以欺朝廷。實殺民百則言一,殺虜一則言百;或虜實多而謂之少,或實少而謂之多。傾側巧文,要取便身利己,而非獨憂國之大計,哀民之死亡也。

【번역문 2】
이전에 강(羌)이 처음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막 일어나기 시작하여¹⁾ 병기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아, 오랑캐들은 더러 구리 거울을 들고 병기처럼 보이게 하고²⁾ 더러는 판자나 책상을 짊어져 방패처럼 보이게 하였으며,³⁾ 두려워하며 소란스러워 아직 서로 버티지 못하였습니다. 한 성(城)을 제압하기 쉬웠을 뿐인데도, 군현(郡縣)은 모두 크게 소란스러워졌습니다.⁴⁾ 백성들이 갑자기 재앙과 화를 입어 재물을 잃자, 사람들은 슬퍼하고 분노하여 각기 원수를 갚고자 하였으나, 장수들은 모두 비겁하고 졸렬하며 연약하여 감히 토벌하지 못하고, 다만 앉아서 문서를 조작하여 조정을 속였습니다. 실제로는 백성 백 명을 죽게 하고는 한 명이라 말하고, 오랑캐 한 명을 죽이고는 백 명이라 말하였으며, 혹은 오랑캐가 실제로는 많은데 적다고 하고, 혹은 실제로는 적은데 많다고 하였습니다. 치우치고 교묘한 글로써 자신을 편안하게 하고 이롭게 할 것만 구할 뿐, 오로지 나라의 큰 계책을 걱정하고 백성의 죽음을 슬퍼하지는 않았습니다.


【원문 3】
又放散錢穀,殫盡府庫,乃復從民假貸,彊奪財貨。千萬之家,削身無餘,萬民遺竭,因隨以死亡者,皆吏所餓殺也。其為酷痛,甚於逢虜。寇鈔賊虜,忽然而過,未必死傷。至使所搜索剽奪,游踵塗地,或覆宗滅族,絕無種類;或孤婦女,為人奴婢,遠見販賣,至今不能自治者,不可勝數也。此之感天致災,尤逆陰陽。

【번역문 3】
또한 돈과 곡식을 함부로 흩어 써서 관청 창고를 다 비우고는, 다시 백성에게서 빌린다는 명목으로 재물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천만금의 재산을 가진 집안도 몸을 깎아내듯 다 빼앗겨 남은 것이 없게 되고, 만백성이 재산을 다 잃고 잇따라 죽음에 이른 것은, 모두 관리가 굶겨 죽인 것입니다. 그 참혹하고 고통스러움이 오랑캐를 만나는 것보다 심하였습니다. 노략질하는 도적인 오랑캐는 갑자기 지나갈 뿐이라 반드시 죽거나 다치지는 않지만, 관리들이 수색하고 약탈하는 바에 이르면, 발길 닿는 곳마다 땅을 쓸고 다니듯 하여, 더러는 온 가문과 일족이 멸망하여 씨가 마르고, 더러는 외로운 부녀자들이 남의 노비가 되어 멀리 팔려가 지금까지도 스스로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자가 이루 다 셀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늘을 감동시켜 재앙을 부르는 것이니, 특히 음양의 조화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원문 4】
且夫士重遷,戀慕墳墓,賢不肖之所同也。民之於徙,甚於伏法。伏法不過家一人死爾。諸亡失財貨,奪土遠移,不習風俗,不便水土,類多滅門,少能還者。代馬望北,狐死首丘,邊民謹頓,尤惡內留。雖知禍人,猶願守其緒業,死其本處,誠不欲去之極。太守令長,畏惡軍事,皆以素非此土之人,痛不著身,禍不及我家,故爭郡縣以內遷。至遣吏兵,發民禾稼,發徹屋室,夷其營壁,破其生業,彊劫驅掠,與其內入,捐棄羸弱,使死其處。當此之時,萬民怨痛,泣血叫號,誠愁鬼神而感天心。然小民謹劣,不能自達闕庭,依官吏家,迫將滅嚴,不敢有摯。民既奪土失業,又遭蝗旱飢遺,逐道東走,流離分散,幽、冀、兗、豫,荊、楊、蜀、漢,飢餓死亡,復失太半。邊地遂以兵荒,至今無人。原禍所起,皆吏過爾。

【번-역문 4】
또한 무릇 사람은 고향 떠나기를 중히 여기고 조상의 무덤을 그리워하는 것은 현명한 이나 어리석은 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백성에게 이주란 사형을 당하는 것보다 심합니다. 사형은 한 집에 한 사람이 죽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재물을 모두 잃고 땅을 빼앗겨 멀리 옮겨가면, 풍속에 익숙하지 않고 물과 토양이 맞지 않아 대부분 가문이 멸망하고 돌아올 수 있는 자가 적기 때문입니다. 대(代) 땅의 말은 북쪽을 바라보고, 여우는 죽을 때 고향 언덕으로 머리를 두거늘,⁵⁾ 변방 백성들은 삼가고 신중하여 특히 내지로 들어가 머무는 것을 싫어합니다. 비록 재앙이 닥칠 것을 알더라도 오히려 조상의 업을 지키고 본래 살던 곳에서 죽기를 원하니, 진실로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지극한 것입니다. 태수(太守)와 영장(令長)들은 군사 일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며, 모두 본래 이 땅 사람이 아니므로 “고통이 내 몸에 닿지 않고, 재앙이 내 집에 미치지 않는다”고 여겨, 다투어 군현(郡縣)을 내지로 옮기려 하였습니다. 심지어 관리와 병사를 보내 백성의 농작물을 베어버리고, 집을 철거하며, 성벽을 무너뜨리고, 생업을 파괴하며, 강제로 위협하여 몰아내고 약탈하여 그들을 데리고 내지로 들어오면서, 허약한 자들은 버려두어 그곳에서 죽게 하였습니다. 이때에 만백성이 원통해하며 피눈물을 흘리고 부르짖으니, 진실로 귀신을 근심케 하고 하늘의 마음을 움직일 만했습니다. 그러나 힘없는 백성들은 삼가고 졸렬하여 스스로 대궐에까지 호소하지 못하고, 관리의 집에 의탁하며 닥쳐올 위협에 핍박받아 감히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은 이미 땅을 빼앗기고 생업을 잃은 데다 또 메뚜기 재앙과 가뭄, 기근을 만나, 길을 따라 동쪽으로 달아나 흩어지니, 유주(幽州)·기주(冀州)·연주(兗州)·예주(豫州)와 형주(荊州)·양주(揚州)·촉(蜀)·한(漢) 지역까지 유랑하다가, 굶주려 죽어 다시 절반 이상을 잃었습니다.⁶⁾ 변방 땅은 마침내 전쟁과 기근으로 황폐해져 지금까지 사람이 없으니, 재앙이 일어난 근원을 따져보면 모두 관리의 허물일 뿐입니다.


【원문 5】
夫土地者,民之本也,誠不可久荒以開墾。且扁鵲之治病也,審閉結而通鬱,虛者補之,實者瀉之,故病愈而名顯。伊尹之佐湯也,設輕重而通有無,損積餘以補不足,故殷治而君尊。賈誼痛於偏枯躄痱之疾。今邊郡千里,地各有兩縣,戶財置敢百,而太守周迴萬里,空無人民,美田棄而莫墾發;中州內郡,規地拓境,不能生邊,而口戶百萬,田畝一全,人眾地荒,無所容足,此亦偏枯躄痱之類也。

【번역문 5】
무릇 토지는 백성의 근본이니, 진실로 오래 황폐하게 두어 개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편鵲(편작)이 병을 치료할 때, 막히고 맺힌 곳을 살펴 뭉친 것을 통하게 하고, 허한 것은 보하고 실한 것은 사(瀉)하였기에, 병이 낫고 이름이 드러났습니다.⁷⁾ 이윤(伊尹)이 탕왕(湯王)을 보좌할 때, 경중(輕重)의 법을 만들어 있고 없는 것을 유통시키고, 쌓여 남는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기에, 은(殷)나라가 다스려지고 군주가 존귀해졌습니다.⁸⁾ 가의(賈誼)는 편고(偏枯)와 벽비(躄痱)의 병을 통탄하였습니다.⁹⁾ 지금 변방의 군(郡)은 천 리에 걸쳐 있는데, 땅은 각각 두 현(縣)을 둘 만하고 호구와 재산은 감히 백을 헤아릴 만한데도, 태수가 다스리는 영역은 주위가 만 리에 이르나 텅 비어 백성이 없고, 좋은 밭은 버려져 개간되지 않습니다. 반면 중주(中州)의 내지 군(郡)은 땅을 구획하고 경계를 넓혀도 변방을 살릴 수 없는데, 인구는 백만이나 되고 토지는 온전한 밭 하나 없으니, 사람은 많고 땅은 황폐하여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이 또한 편고(偏枯)와 벽비(躄痱)와 같은 종류의 질병입니다.


【원문 6】
《周書》曰:「土多人少,莫出其材,是謂虛土,可襲伐也。土少人眾,民非其民,可遺竭也。」是故土地人民必相稱也。今邊郡多害而役劇,動入禍門。不為興利除害,有以勸之,則長無與復之,而門有寇戎之心。西羌北虜,必生闚欲,誠大憂也。

【번-역문 6】
《주서(周書)》에 이르기를, “땅은 넓은데 사람이 적어 그 재물을 내지 못하는 것을 허한 땅이라 하니, 습격하여 정벌할 수 있다. 땅은 적은데 사람이 많아 백성이 그 땅의 백성이 아니게 되면, 버려지고 고갈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¹⁰⁾ 그러므로 토지와 백성은 반드시 서로 걸맞아야 합니다. 지금 변방의 군(郡)은 재해가 많고 부역이 심하여, 움직이면 재앙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이로운 것을 일으키고 해로운 것을 제거하여 그들을 권면할 방법이 없다면, 영원히 그곳을 회복시킬 수 없을 것이며, 문마다 도적과 오랑캐의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¹¹⁾ 서쪽의 강(羌)과 북쪽의 오랑캐가 반드시 엿볼 욕심을 낼 것이니, 진실로 큰 근심거리입니다.


【원문 7】
百工制器,咸填其邊,散之兼倍,豈有私哉?乃所以固其內爾。先聖制法,亦務實邊,蓋以安中國也。譬猶家人遇寇賊者,必使老小羸軟居其中央,丁彊武猛衛其外。內人奉其養,外人禦其難,蛩蛩距虛,更相恃仰,乃俱安存。

【번역문 7】
온갖 장인이 기물을 만들 때, 모두 그 가장자리를 채우고 재료를 두 배로 흩어 쓰는 것이 어찌 사사로움이 있어서이겠습니까? 바로 그 안쪽을 견고하게 하려는 까닭입니다. 옛 성인께서 법을 만드실 때 또한 변방을 충실히 하는 데 힘쓰셨으니, 대개 중원(中國)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한 집안이 도적을 만났을 때 반드시 노약하고 허약한 자들은 중앙에 머물게 하고, 장정의 강하고 용맹한 자들로 그 바깥을 지키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안의 사람들은 그들을 봉양하고 밖의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막으니, 공공(蛩蛩)과 거허(距虛)처럼¹²⁾ 서로 의지하고 우러러보아야, 비로소 함께 편안히 보존될 수 있습니다.


【원문 8】
詔書法令:二十萬口,邊郡十萬,歲舉孝廉一人;員除世舉廉吏一人。羌反以來,戶口減少,又數易太守,至十歲不得舉。當職勤勞而不錄,賢俊蓄積而悉,衣冠無所覬望,農夫無所貪利,是以逐稼中災,莫肯就外。古之利其民,誘之以利,弗脅以刑。《易》曰:「先王以省方觀民設教。」是故建武初,得邊郡,戶雖數百,令歲舉孝廉,以召來人。今誠宜權時令邊郡舉孝一人,廉吏世舉一又,益置明經百石一人,內郡人將妻子來召著,五歲以上,與居民同均,皆得選舉。又募運民耕邊入穀,遠郡千斛,近郡二千斛,拜爵五大夫。可不欲爵者,使食倍賈於內郡。如此,君子小人各有所利,則雖欲令無往,弗能正也。均此苦樂、平傜伇、充邊境、安中國之要術也。

【번역문 8】
조서(詔書)와 법령에 따르면, (내지 군은) 20만 호, 변방 군은 10만 호마다 해마다 효렴(孝廉) 한 명을 천거하고, 결원이 생기면 해마다 염리(廉吏) 한 명을 천거합니다.¹³⁾ 강(羌)이 반란을 일으킨 이래로 호구가 감소하고 또 태수가 자주 바뀌어, 10년이 되도록 천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직책에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도 기록되지 않고, 현명하고 뛰어난 인재는 쌓여만 있다가 흩어지며, 벼슬아치들은 바랄 것이 없고 농부들은 탐할 이익이 없으니, 이 때문에 농사짓다 재앙을 만나면 중원으로 쫓겨갈 뿐 아무도 밖(변방)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백성을 이롭게 할 때는 이익으로 유인하고 형벌로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선왕(先王)은 이로써 사방을 살피고 백성을 관찰하여 가르침을 베풀었다”고 하였습니다.¹⁴⁾ 이런 까닭에 건무(建武) 초에는 변방 군을 얻으면 호수가 비록 수백에 불과하더라도 해마다 효렴을 천거하게 하여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¹⁵⁾ 지금 진실로 마땅히 시의에 맞게 조치하여 변방 군에서 효렴 한 명을 천거하게 하고, 염리를 해마다 한 명씩 더 천거하며, 명경(明經)으로 백석(百石)의 관리를¹⁶⁾ 하나 더 두어야 합니다. 내지 군의 사람이 처자를 데리고 와서 정착하면, 5년 이상 된 자는 원래 주민과 동등하게 대우하여 모두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한 백성을 모집하여 변방에서 밭을 갈아 곡식을 바치게 하되, 먼 군에서는 천 곡(斛), 가까운 군에서는 이천 곡을 바치면 오대부(五大夫)의 작위를¹⁷⁾ 내려주어야 합니다. 작위를 원하지 않는 자는 내지 군보다 배의 가격으로 곡식을 사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이 각기 이로운 바가 있을 것이니, 비록 가지 말라고 명령하려 해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고락(苦樂)을 균등하게 하고, 요역(傜役)을 공평하게 하며, 변경을 채우고, 중원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주석 (Footnotes)

1) 草創(초창): 풀을 베고 처음 길을 내듯이, 어떤 일이 처음 시작되는 단계를 의미한다.
2) 持銅鏡以象兵(지동경이상병): 구리 거울을 들고 병기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뜻. 햇빛에 반사시켜 적의 눈을 혼란시키거나, 번쩍이는 모습으로 칼이나 창처럼 위장하려 한 것으로, 초기 반란군의 장비가 매우 열악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묘사이다.
3) 負板案以類楯(부판안이류순): 판자나 책상을 짊어져 방패처럼 보이게 했다는 뜻. 방어구가 없어 생활용품으로 대체했음을 보여준다.
4) 一城易制爾,郡縣皆大熾(일성이제이, 군현개대치): 초기 반란군은 오합지졸이라 한 성을 제압하기도 쉬웠는데, 지방관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오히려 혼란이 군현 전체로 크게 번졌다는 의미이다. ‘熾(치)’는 불길이 타오르듯 기세가 성해지는 것을 뜻한다.
5) 代馬望北,狐死首丘(대마망북, 호사수구): 모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하는 유명한 고사성어이다. ‘대마망북’은 북쪽 대(代) 땅에서 난 말은 항상 고향인 북쪽을 바라본다는 뜻이고, ‘호사수구’는 여우는 죽을 때 자기가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이다.
6) 幽、冀、兗、豫,荊、楊、蜀、漢(유, 기, 연, 예, 형, 양, 촉, 한): 유주(幽州), 기주(冀州), 연주(兗州), 예주(豫州), 형주(荊州), 양주(揚州), 익주(益州)의 촉군(蜀郡)과 한중군(漢中郡) 등 후한의 행정구역이다. 변방에서 쫓겨난 유민들이 중국 전역으로 흩어져 고통받았음을 보여준다.
7) 扁鵲(편작)...虛者補之,實者瀉之(편작...허자보지, 실자사지): 편작은 춘추전국시대의 전설적인 명의이다. ‘허한 것은 보하고 실한 것은 사한다’는 것은 한의학의 기본 치료 원칙으로, 인체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를 국가 통치에 비유하여, 인구가 부족한 변방(虛)은 채워주고 인구가 과밀한 내지(實)는 덜어내어 국가 전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8) 伊尹(이윤)...損積餘以補不足(이윤...손적여이보부족): 이윤은 상(商)나라 탕왕(湯王)을 도와 하나라를 멸하고 상나라를 세운 명재상이다. ‘경중법(輕重法)’은 국가가 물가의 높고 낮음을 조절하여 경제를 안정시키는 정책을 말한다.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곳을 채우는 것처럼,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해야 함을 역설한다.
9) 賈誼(가의)痛於偏枯躄痱之疾(가의통어편고벽비지질): 가의는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학자이다. 그는 당시 제후왕의 세력이 강하고 중앙의 힘이 약한 것을, 몸의 한쪽이 마비되는 ‘편고(偏枯)’나 다리를 저는 ‘벽비(躄痱)’와 같은 병에 비유하며 국가의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 비유를 빌려 인구가 없는 변방과 과밀한 내지의 불균형을 비판하고 있다.
10) 《周書》曰...(주서왈...): 여기서의 《주서》는 《일주서(逸周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힘은 토지와 인구의 균형에서 나오며, 이 균형이 깨지면 외적의 침입을 받거나 내부적으로 붕괴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11) 門有寇戎之心(문유구융지심): 직역하면 ‘문마다 도적과 오랑캐의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변방이 텅 비어 방비가 허술해지면, 외부의 적인 오랑캐(寇戎)가 침략할 마음을 품게 되는 문(門)을 열어주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12) 蛩蛩距虛(공공거허): 고대 중국의 문헌인 『회남자(淮南子)』 등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공공은 다리가 하나뿐이고, 거허는 다리가 없어 항상 공공을 업고 다닌다고 한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공생 관계를 상징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변방(外)과 내지(內)가 서로 의지해야만 국가 전체가 안전하게 존립할 수 있음을 비유하고 있다.
13) 孝廉(효렴), 廉吏(염리): 모두 한(漢)나라의 인재 등용 제도이다. 효렴은 효행과 청렴함을 기준으로 지방에서 인재를 천거하는 제도이며, 염리는 청렴한 관리를 뜻한다. 당시에는 인구수를 기준으로 천거 인원이 할당되었는데, 변방의 인구가 급감하여 인재 등용의 길이 막힌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14) 《易》曰:「先王以省方觀民設教。」(역왈 선왕이성방관민설교): 《주역(周易)》 관괘(觀卦)의 상사(象辭)에 나오는 구절이다. 훌륭한 군주는 사방을 두루 살피고 백성의 삶을 관찰하여 그에 맞는 정책과 교화를 베푼다는 의미이다.
15) 建武初(건무초): 건무(建武)는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의 연호이다. 광무제는 전한 멸망 후 황폐해진 변방을 부흥시키기 위해 인구수에 얽매이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다. 저자는 이를 성공적인 선례로 제시하고 있다.
16) 明經(명경), 百石(백석): 명경은 경전(經傳)에 밝은 사람을 뽑는 과거 과목 또는 그 합격자를 말한다. 백석은 한나라의 가장 낮은 관등(官等)이다. 변방에 학문이 뛰어난 인재를 낮은 직급으로라도 배치하여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게 하자는 제안이다.
17) 五大夫(오대부): 진(秦)·한(漢) 시대의 20등급 작위 중 제9등급에 해당하는 작위이다. 실질적인 관직은 아니지만 명예로운 신분을 부여하는 것으로, 백성들에게 큰 유인책이 될 수 있었다.

잠부론(潛夫論) - 제25편 복렬(卜列)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天地開闢有神民,民神異業精氣通。行有招召,命有遭隨,吉凶之期,天難諶斯。聖賢雖察不自專,故立卜筮以質神靈。孔子稱「蓍之德圓而神,卦之德方以智。」又曰:「君子將有行也,問焉而已言,其受命而嚮。」是以禹之得皋陶,文王之取呂尚,皆兆告其象,卜底其思,以成其吉。

【번역문 1】
천지가 개벽할 때 신(神)과 민(民)이 있었는데, 백성과 신은 하는 일이 달라도 정기(精氣)는 서로 통하였습니다. 행동에는 불러들이는 바가 있고 운명에는 마주치는 바가 있으니, 길흉(吉凶)의 시기는 하늘에만 의지하기 어렵습니다.¹⁾ 성현(聖賢)은 비록 능히 살필 수 있으나 스스로 오로지하지 않고, 이 때문에 복서(卜筮)를²⁾ 세워 신령(神靈)에게 질정(質正)하였습니다. 공자(孔子)께서는 “시초(蓍草)의 덕은 둥글어 신묘하고, 괘(卦)의 덕은 모나서 지혜롭다”고³⁾ 칭송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가 장차 행하려 할 때, 그것에 물으면 말을 해주고, 그는 그 명(命)을 받아 향한다”고⁴⁾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우(禹)임금이 고요(皋陶)를 얻고 문왕(文王)이 여상(呂尚)을 얻은 것은,⁵⁾ 모두 조짐이 그 형상을 알려주고 점복(占卜)이 그 생각을 확정하여, 그 길(吉)함을 이룬 것입니다.


【원문 2】
夫君子聞善則勸樂而進,聞惡則循省而改尤,故安靜而多福;小人聞善,即懾懼而妄為,故狂躁而多禍。是故凡卜筮者,蓋所問吉凶之情,言興衰之期,令人脩身慎行以迎福也。

【번역문 2】
무릇 군자(君子)는 좋은 것을 들으면 권면하고 즐거워하며 나아가고, 나쁜 것을 들으면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어 허물을 고치므로, 안정되고 복이 많습니다. 소인(小人)은 좋은 것을 들으면 도리어 두려워하며 망령되이 행동하고, 나쁜 것을 들으면 미친 듯 조급하게 굴어 재앙이 많습니다. 이런 까닭에 무릇 복서(卜筮)라는 것은, 대개 길흉의 실정을 묻고 흥망성쇠의 시기를 말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몸을 닦고 행동을 삼가 복(福)을 맞이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원문 3】
且聖王之立卜筮也,不違民以為吉,不專任以斷事。故《鴻範》之占,大同是尚。《書》又曰:「假爾元龜,罔敢知吉。」《詩》云:「我龜既厭,不我告猶。」從此觀之,蓍龜之情,儻有隨時儉易,不以誠邪?將世無史蘇之材,識神者少乎?及周史之筮敬仲,莊叔之筮穆子,可謂能「探賾索隱,鉤深致遠者矣。」使獻公早納史蘇之言,穆子宿備莊叔之戒,則驪姬、豎牛之讒,亦將無由而入,無破國危身之禍也。

【번역문 3】
또한 성왕(聖王)께서 복서(卜筮)를 세우신 것은, 백성의 뜻을 어기는 것을 길(吉)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오로지 점에만 맡겨 일을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서경(書經)》「홍범(鴻範)」의 점법에서는 여러 의견이 일치하는 것(大同)을 숭상하였습니다.⁶⁾ 《서경》에서는 또 “너의 큰 거북에게 물어도 감히 길함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고,⁷⁾ 《시경(詩經)》에서는 “우리의 거북이 이미 싫어하여, 우리에게 계책을 알려주지 않네”라고 하였습니다.⁸⁾ 이로 보건대, 시초와 거북의 실정이 혹시 때에 따라 간략하고 바뀌어 성실하지 않아서이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에 사소(史蘇)와 같은 재능이 없어 신의 뜻을 아는 자가 적어서이겠습니까?⁹⁾ 주(周)나라 태사(太史)가 경중(敬仲)을 위해 점을 친 것이나, 장숙(莊叔)이 목자(穆子)를 위해 점을 친 것은,¹⁰⁾ 가히 “복잡한 것을 탐구하고 숨은 것을 찾아내며, 깊은 것을 낚아 멀리까지 이르게 하는 자”라¹¹⁾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헌공(獻公)이 일찍이 사소의 말을 받아들이고, 목자가 미리 장숙의 경계를 대비하였다면, 여희(驪姬)와 수우(豎牛)의 참소 또한 들어올 길이 없었을 것이며, 나라를 깨뜨리고 몸을 위태롭게 하는 재앙도 없었을 것입니다.¹²⁾


【원문 4】
聖人甚重卜筮,然不疑之事,亦不問也。甚敬祭祀,非禮之祈,亦不為也。故曰:「聖人不煩卜筮」,「敬鬼神而遠之」。夫鬼神與人殊氣異務,非有事故,何奈於我?故孔子善楚昭之不祀河,而惡季氏之旅泰山。今俗人筴於卜筮,而祭非其鬼,豈不惑哉!

【번역문 4】
성인(聖人)은 복서(卜筮)를 매우 중시하였으나, 의심할 바 없는 일은 또한 묻지 않았습니다. 제사(祭祀)를 매우 공경하였으나, 예(禮)에 맞지 않는 기도는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복서를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고 하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고¹³⁾ 하였습니다. 무릇 귀신은 사람과 기운이 다르고 일이 다르니, 특별한 연고가 없으면 나에게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초(楚)나라 소왕(昭王)이 하수(河水)에 제사 지내지 않은 것을 훌륭하다 하셨고, 계씨(季氏)가 태산(泰山)에 여제(旅祭)를 지낸 것을 미워하셨습니다.¹⁴⁾ 지금 속된 사람들은 복서에만 빠져 있으면서 자신이 섬겨야 할 귀신이 아닌데도 제사를 지내니,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원문 5】
亦有妄傳姓於五音,設五宅之符第,其為誣也甚矣!古有陰陽,然後有五行。五帝右據行氣,以生人民,載世遠,乃有姓名敬民。名字者,蓋所以別眾猥而顯此人爾,非以絕五音而定剛柔也。今俗人不能推紀本祖,而反欲以聲音言語定五行,誤莫甚焉。

【번-역문 5】
또한 망령되이 성씨(姓氏)를 오음(五音)에 배당하고, 오택(五宅)의 부서(符第)를¹⁵⁾ 설정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속임이 심합니다. 옛날에 음양(陰陽)이 있은 뒤에 오행(五行)이 있었습니다. 오제(五帝)가 오행의 기운을 근거로 하여 백성을 낳으셨고, 세대가 멀어지면서 비로소 성명(姓名)이 생겨 백성을 공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대개 여러 사람과 구별하여 그 사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 뿐, 오음(五音)을 나누어 강(剛)과 유(柔)를 정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속된 사람들은 그 근본과 조상을 미루어 헤아리지 못하고, 도리어 소리와 말로써 오행을 정하려 하니, 이보다 더 큰 잘못은 없습니다.


【원문 6】
夫魚處水而生,鳥據巢而卯。即不推其本祖,諧音而可,即呼鳥為魚,可內之水乎?呼魚為鳥,可棲之木邪?此不然之事也。命駒曰犢,終不為馬。是故凡姓之有音也,必隨其本生祖所土也。太皞木精,承歲而王,夫其子孫咸當為角。神農火精,承熒惑而王,夫其子孫咸當為徵。黃帝土精,承鎮而王,夫其子孫咸當為宮。少皞金精,承太白而王,夫其子孫咸當為商。顓頊水精,承辰而王,夫其子孫咸當為羽。雖號百變,音行不易。

【번-역문 6】
무릇 물고기는 물에 살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새는 둥지에 의지하여 알을 낳습니다. 만약 그 근본과 조상을 미루어 헤아리지 않고 음(音)이 맞는다고 괜찮다면, 새를 물고기라 부르고 물속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물고기를 새라 부르고 나무에 깃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그렇지 않은 일입니다. 망아지를 송아지라 이름 붙여도 끝내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성씨에 음(音)이 있는 것은, 반드시 그 근본이 되는 조상이 살았던 땅을 따르는 것입니다. 태호(太皞)는 목(木)의 정기이니 세성(歲星)을 이어 왕이 되었으니, 그 자손은 모두 마땅히 각음(角音)이 되어야 합니다. 신농(神農)은 화(火)의 정기이니 형혹성(熒惑省)을 이어 왕이 되었으니, 그 자손은 모두 마땅히 치음(徵音)이 되어야 합니다. 황제(黃帝)는 토(土)의 정기이니 진성(鎮星)을 이어 왕이 되었으니, 그 자손은 모두 마땅히 궁음(宮音)이 되어야 합니다. 소호(少皞)는 금(金)의 정기이니 태백성(太白星)을 이어 왕이 되었으니, 그 자손은 모두 마땅히 상음(商音)이 되어야 합니다. 전욱(顓頊)은 수(水)의 정기이니 진성(辰星)을 이어 왕이 되었으니, 그 자손은 모두 마땅히 우음(羽音)이 되어야 합니다.¹⁶⁾ 비록 그 칭호가 백 번 변하더라도, 음(音)과 오행(五行)의 관계는 바뀌지 않습니다.


【원문 7】
俗工又曰:「商家之宅,宜西出門。」此復虛矣。五行當出乘其勝,入居其隩乃安吉。商家向東入,東入反以為金伐木,則家中精神日戰鬭也。五行皆然。又曰:「宅有宮商之第,直符之歲。」既然者,放其上增損門數,即可以變其音而過其符邪?今一宅也,同姓相伐,或吉或凶;一宮也,同姓相伐,或遷或免;一宮也,成、康居之日以興,幽、厲居之日以衰。由此觀之,吉凶興衰不在宅明矣。

【번역문 7】
속된 술사(術士)가 또 말하기를, “상음(商音)에 속하는 사람의 집은 서쪽으로 문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이 또한 헛된 말입니다. 오행(五行)은 마땅히 나아갈 때는 자신이 이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들어올 때는 자신이 의지하는 아늑한 곳에 머물러야 안정되고 길합니다.¹⁷⁾ 상음(商音)에 속하는 사람이 동쪽을 향해 들어오면, 도리어 금(金)이 목(木)을 치는 격이 되어 집안의 정신(精神)이 날마다 싸우게 될 것입니다. 오행이 모두 그러합니다. 또 말하기를, “집에는 궁음(宮音)과 상음(商音)의 구별이 있고, 직부(直符)의 해가 있다”고 합니다.¹⁸⁾ 그렇다면, 그 위에 문의 숫자를 늘리거나 줄이면, 그 음(音)을 바꾸고 그 부(符)를 비껴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지금 한 집안인데도 같은 성씨끼리 서로 해치니, 어떤 경우는 길하고 어떤 경우는 흉합니다. 한 궁궐인데도 같은 성씨끼리 서로 해치니, 어떤 경우는 승진하고 어떤 경우는 면직됩니다. 한 궁궐인데도,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이 거처할 때는 흥성하였고,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이 거처할 때는 쇠퇴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길흉과 흥망성쇠는 집에 달려있지 않음이 명백합니다.


【원문 8】
及諸神祇太歲、豐隆、鉤陳、太陰將軍之屬,此乃天吏,非細民所當事也。天之有此神也,皆所以奉成陰陽而利物也,若人治之有牧守令長矣。向之何怒?背之何怨?君民道近,不宜相責,況神致貴,與人異禮,豈可望乎?

【번-역문 8】
그리고 여러 신기(神祇)인 태세(太歲), 풍륭(豐隆), 구진(鉤陳), 태음장군(太陰將軍)과 같은 무리는,¹⁹⁾ 이는 하늘의 관리일 뿐, 미천한 백성이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하늘에 이러한 신이 있는 것은 모두 음양(陰陽)을 받들어 이루고 만물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니, 마치 인간 세상의 다스림에 목(牧)·수(守)·영(令)·장(長)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을 향한다고 어찌 노여워하며, 그들을 등진다고 어찌 원망하겠습니까? 군주와 백성의 도(道)는 가까워 서로 책망하는 것이 마땅치 않은데, 하물며 신(神)은 지극히 존귀하여 사람과는 예(禮)가 다르니, 어찌 (감응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원문 9】
且欲使人而避鬼,是即道路不可行,而室廬不復居也。此謂賢人君子秉心方直,精神堅固者也。至如世俗小人,醜妾婢婦,淺陋愚戇,漸染既成,又數揚精破膽。今不順精誠所向,而彊之以其所畏,直亦增病爾。何以明其然也?夫人之所以為人者,非以此八尺之身也,乃以其有精神也。人有恐怖死者,非病之所加也,非人功之所辜也。然而至於遂不損者,精誠去之也。蓋奔柙猛虎而不惶,嬰人畏螻蟻而發聞。今通士或欲彊羸病之愚人,必之其所不能,吾又恐其未盡善也。

【번역문 9】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귀신을 피하게 하고자 한다면, 이는 곧 길을 다닐 수 없고 집에 다시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현명한 군자로서 마음가짐이 바르고 곧으며 정신이 견고한 자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세속의 소인배나 추한 첩, 비천한 부녀자와 같이 천박하고 어리석으며 미련한 자들에 이르러서는, (미신에) 점차 물듦이 이미 이루어졌고 또 자주 정신을 흩뜨리고 담력을 깨뜨립니다. 지금 그들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향하는 바를 따르지 않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바로써 억지로 이끌려 한다면, 단지 병을 더하게 할 뿐입니다. 어째서 그러함을 알 수 있는가? 무릇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이 팔 척의 몸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정신(精神)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공포로 죽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병이 더해진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공력에 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마침내 해를 입지 않게 되는 것은, 정성스러운 마음이 그것을 떠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우리에서 뛰쳐나온 사나운 호랑이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갓난아이는 개미를 두려워하여 소리를 지릅니다. 지금 이치에 통달한 선비가 혹 허약하고 병든 어리석은 사람에게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반드시 하도록 강요하려 한다면, 나는 또한 그것이 지극히 선(善)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원문 10】
移風易俗之本,乃在開其心而正其精。今民生不見正道,而長於邪淫誑惑之中,其信之也,難卒解也。唯王者能變之。

【번역문 10】
풍속을 옮기고 세속을 바꾸는 근본은, 바로 그 마음을 열어주고 그 정신을 바르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지금 백성들은 태어나서 정도(正道)를 보지 못하고, 사악하고 음란하며 기만하고 미혹하는 것들 속에서 자라나니, 그것을 믿는 마음을 갑자기 풀어주기 어렵습니다. 오직 왕자(王者)만이 능히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석 (Footnotes)

1) 天難諶斯(천난심사): ‘諶(심)’은 ‘믿다’, ‘의지하다’는 뜻이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자신의 행동(行)과 정해진 운명(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므로, 막연히 하늘의 뜻에만 의지해서는 그 시기를 알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2) 卜筮(복서): 고대의 대표적인 점술. ‘복(卜)’은 거북의 등껍질이나 짐승의 뼈를 불에 구워 갈라진 금(兆)을 보고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고, ‘서(筮)’는 시초(蓍草)라는 식물의 줄기 50개를 이용하여 괘(卦)를 얻어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다.
3) 蓍之德圓而神,卦之德方以智(시지덕원이신, 괘지덕방이지):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상편에 나오는 구절. 시초의 둥근 모양은 하늘과 신묘함을, 괘의 네모난 모양은 땅과 지혜를 상징한다고 보아, 복서의 원리가 천지의 이치에 근거함을 설명한 말이다.
4) 君子將有行也...受命而嚮(군자장유행야...수명이향): 이 또한 『주역』 「계사전」 상편의 구절이다. 군자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점을 쳐서 그 결과를 신의 명령처럼 받아들여 행동의 지침으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5) 禹之得皋陶,文王之取呂尚(우지득고요, 문왕지취여상): 고요(皋陶)는 순(舜)임금과 우(禹)임금을 도운 전설적인 현신(賢臣)이며, 여상(呂尚)은 강태공(姜太公)으로 알려진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스승이자 공신이다. 이들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의 만남이 점복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들어 복서의 권위를 높이고 있다.
6) 《鴻範》之占,大同是尚(홍범지점, 대동시상): 『서경』 「주서(周書)·홍범(鴻範)」편에 나오는 점법에 대한 설명이다.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거북점(卜)과 시초점(筮)의 결과, 그리고 경(卿)·사(士)와 서민(庶民)의 의견까지 종합하여, 여러 의견이 크게 일치하는 것(大同)을 따라야 길하다고 하였다. 이는 점의 결과보다 인간 사회의 공통된 의견을 더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7) 假爾元龜,罔敢知吉(가이원구, 망감지길): 『서경』 「상서(商書)·반경(盤庚)」편의 구절로, 반경이 천도를 논하며 점의 한계를 지적한 말이다.
8) 我龜既厭,不我告猶(아귀기염, 불아고유): 『시경(詩經)』 「대아(大雅)·탕(蕩)」편의 구절. 주나라 여왕(厲王)의 폭정으로 민심이 떠나자, 점을 쳐도 거북이 더 이상 계책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내용이다.
9) 史蘇(사소): 춘추시대 진(晉)나라 헌공(獻公) 때의 태사(太史). 헌공이 여희(驪姬)를 부인으로 맞으려 할 때 점을 쳐서 흉조가 나오자 반대했으나, 헌공이 듣지 않아 결국 나라에 큰 난리가 일어났다.
10) 周史之筮敬仲,莊叔之筮穆子(주사지서경중, 장숙지서목자): 모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고사이다. 주나라 태사는 진(陳)나라 공자 경중(敬仲)의 미래를 점쳐 그 후손이 제(齊)나라에서 크게 번성할 것을 예언했다. 노(魯)나라의 장숙(莊叔)은 아들 목자(穆子)의 관상을 보고 그가 가문을 망칠 것이라 예언했다. 모두 점복과 관상을 통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사례이다.
11) 探賾索隱,鉤深致遠者矣(탐색색은, 구심치원자의): 『주역』 「계사전」 상편의 구절로, 성인이 역(易)의 원리를 통해 복잡하고 숨겨진 이치를 탐구하고, 깊은 것을 낚아내어 멀리까지 이르게 할 수 있음을 설명한 말이다.
12) 驪姬(여희), 豎牛(수우): 여희는 진 헌공의 총애를 받아 태자 신생(申生)을 모함하여 죽게 하고 나라를 어지럽힌 인물이다. 수우는 노나라 목자의 아들로, 아버지를 굶겨 죽이는 등 패륜을 저질렀다.
13) 敬鬼神而遠之(경귀신이원지):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되 공경하는 마음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합리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14) 楚昭之不祀河...季氏之旅泰山(초소지불사하...계씨지려태산): 모두 『논어』에 나오는 고사이다. 초나라 소왕은 자신의 통치 영역이 아닌 황하(河水)에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거절하여 공자에게 칭찬을 받았다. 반면, 노나라의 대부인 계씨가 천자만이 제사 지낼 수 있는 태산에 제사를 지내려 하자 공자는 이를 참람된 행위라고 비판했다.
15) 五宅之符第(오택지부제): 당시 유행하던 풍수지리설의 일종. 사람의 성씨를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오음(五音)에 따라 나누고, 집의 좌향(坐向)이나 구조를 오행에 배속시켜 길흉을 점치는 술법을 가리킨다.
16) 太皞木精...咸當為羽(태호목정...함당위우): 고대 신화와 오행 사상을 결합한 논리이다. 태호(복희씨)는 목(木)의 덕으로 왕이 되었으므로 그 후손의 성씨는 목에 해당하는 각음(角音)에, 신농(염제)은 화(火)의 덕이므로 화에 해당하는 치음(徵音)에 속하는 식으로, 성씨의 근원을 오제(五帝)와 오행에 연결하여 당시 유행하던 성명학(姓名學)의 오류를 비판하고 있다. 각 행성(歲星-목성, 熒惑-화성, 鎮星-토성, 太白-금성, 辰星-수성)은 오행을 상징한다.
17) 出乘其勝,入居其隩(출승기승, 입거기오): 오행의 상생상극(相生相剋) 원리를 응용한 풍수 이론. 나아갈 때는 자신이 이기는(我克) 방향으로, 들어와 머물 때는 자신을 생(生)해주는 아늑한(隩) 방향으로 자리해야 길하다는 것이다.
18) 直符之歲(직부지세): 도가(道家)나 음양가(陰陽家)에서 사용하는 술어로, 그 해의 길흉을 주관하는 신(神)이나 방위를 가리킨다.
19) 太歲、豐隆、鉤陳、太陰將軍(태세, 풍륭, 구진, 태음장군): 모두 고대 중국의 천문학과 점성술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이다. 태세는 목성(木星)을 신격화한 것이며, 풍륭은 구름과 비를 관장하는 뇌신(雷神), 구진과 태음 등은 별자리를 신격화한 것이다. 저자는 이들이 자연의 운행을 관장하는 '하늘의 관리'일 뿐, 인간이 개인적으로 섬길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잠부론(潛夫論) - 제26편 정렬(正列)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凡人吉凶,以行為主,以命為決。行者、己之質也,命者、天之制也。在於己者,固可為也;在於天者,不可知也。巫覡祝請,亦其助也,然非德不行。巫史祈祝者,蓋所以交鬼神而救細微爾,至於大命,末如之何。譬民人之請謁於吏矣,可以解微過,不能脫正罪。設有人於此,晝夜慢侮君父之教,干犯先王之禁,不克己心,思改過善,而苟驟發請謁以求解免,必不幾矣。不若脩己,小心畏慎,無犯上之必令也。故孔子不聽子路,而云「丘之禱久矣」。《孝經》云:「夫然,故生則親安之,祭則鬼享之。」由此觀之,德義無違,神乃享;鬼神受享,福祚乃隆。故《詩》云:「降福禳禳,降福簡簡,威儀板板。既醉既飽,福祿來反。」此言人德義茂美,神歆享醉飽,乃反報之以福也。

【번역문 1】
무릇 사람의 길흉(吉凶)은 행실을 위주로 하고 운명으로 결정됩니다. 행실은 자신의 바탕이요, 운명은 하늘의 제재(制裁)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은 진실로 행할 수 있지만, 하늘에 있는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무당의 기도와 청함도¹⁾ 또한 도움이 되기는 하나, 덕(德)이 아니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무당과 사관(史官)이 기도하고 축원하는 것은²⁾ 대개 귀신과 교감하여 사소한 것을 구제할 뿐이니, 큰 운명에 이르러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백성이 관리에게 청탁하는 것과 같으니, 사소한 잘못은 해결할 수 있어도 중대한 죄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만약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 밤낮으로 군주와 어버이의 가르침을 업신여기고 선왕(先王)의 금령을 어기며, 자신의 마음을 이겨 허물을 고치고 선(善)으로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갑자기 청탁을 하여 용서받기를 구한다면, 필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을 수양하고 조심하며 삼가서, 윗사람의 필연적인 명령을 어기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는 자로(子路)의 말을 듣지 않고 “나의 기도는 오래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³⁾ 《효경(孝經)》에 이르기를, “무릇 그러하므로, 살아계실 때는 어버이가 그를 편안히 여기시고, 돌아가신 뒤 제사 지내면 귀신이 그 제사를 흠향하신다”고 하였습니다.⁴⁾ 이로 보건대, 덕과 의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신(神)이 비로소 흠향하고, 귀신이 제사를 받아야 복과 경사가 이에 융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복을 넉넉히 내리시고, 복을 크게 내리시니, 위의(威儀)가 장중하시도다. 이미 취하고 이미 배부르시니, 복록(福祿)이 돌아오네”라고 하였습니다.⁵⁾ 이는 사람의 덕과 의리가 무성하고 아름다우면, 신이 흠향하여 취하고 배불리 드신 뒤에, 이에 복으로써 갚아준다는 말입니다.


【원문 2】
虢延神而亟亡,趙嬰祭天而速滅,此蓋所謂神不歆其祀,民不即其事也。故魯史書曰:「國將興,聽於民;將亡,聽於神。」楚昭不禳雲,宋景不移咎,子產距裨竈,邾文公違卜史,此皆審己知道,身以俟命者也。晏平仲有言:「祝有益也,詛亦有損也。」季梁之諫隨侯,宮之奇說虞公,可謂明乎天人之道,達乎神民之分矣。

【번역문 2】
괵(虢)나라는 신을 불러들였으나 급히 망했고, 조영(趙嬰)은 하늘에 제사 지냈으나 신속히 멸망했으니,⁶⁾ 이는 대개 이른바 “신은 그 제사를 흠향하지 않고, 백성은 그 일에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魯)나라의 사서(史書)에 이르기를, “나라가 장차 흥하려 하면 백성에게서 듣고, 장차 망하려 하면 신에게서 듣는다”고 하였습니다.⁷⁾ 초(楚)나라 소왕(昭王)은 붉은 구름을 보고 빌지 않았고, 송(宋)나라 경공(景公)은 재앙을 남에게 옮기지 않았으며, 자산(子產)은 비조(裨竈)의 말을 물리쳤고, 주문공(邾文公)은 점치는 사관의 말을 어겼으니,⁸⁾ 이들은 모두 자신을 살피고 도(道)를 알아 몸소 운명을 기다린 자들입니다. 안평중(晏平仲)의 말에 “축원이 이로움이 있다면, 저주 또한 손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⁹⁾ 계량(季梁)이 수후(隨侯)에게 간언한 것이나, 궁지기(宮之奇)가 우공(虞公)에게 설득한 것은,¹⁰⁾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에 밝고, 신(神)과 민(民)의 분수를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문 3】
夫妖不勝德,邪不伐正,天之經也。雖時有違,然智者守其正道,而不近於淫鬼。所謂淫鬼者,閑邪精物,非有守司真神靈也。鬼之有此,猶人之有姦言賣平以干求者也。若或誘之,則遠來不止,而終必有咎。鬼神亦然,故申繻曰:「人之所忌,其氣炎以取之。人無釁焉,妖不自作。」是謂人不可多忌,多忌妄畏,實致妖祥。

【번역문 3】
무릇 요사스러움은 덕(德)을 이기지 못하고, 사악함은 올바름을 치지 못하는 것이 하늘의 떳떳한 도리입니다. 비록 때로 이에 어긋나는 일이 있더라도, 지혜로운 자는 그 정도(正道)를 지키고 음란한 귀신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음란한 귀신이란, 사악한 틈을 타는 정령(精靈)과 요물(妖物)이지, 직책을 맡은 참된 신령이 아닙니다. 귀신에게 이러한 존재가 있는 것은, 마치 사람에게 간사한 말로 공평한 척하며 구하는 바를 얻으려는 자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혹 그들을 유인하면 멀리서부터 와서 그치지 않을 것이며, 끝내는 반드시 허물이 있을 것입니다. 귀신도 또한 그러하므로, 신수(申繻)가 말하기를, “사람이 꺼리는 바가 있으면, 그 기운이 불꽃처럼 일어나 그것을 취한다. 사람에게 허물이 없으면, 요사스러움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¹¹⁾ 이는 사람이 꺼리는 것을 많이 두어서는 안 되며, 꺼리는 것이 많아 망령되이 두려워하면, 실로 요사스러운 조짐을 불러온다는 말입니다.


【원문 4】
且人有爵位,鬼神有尊卑。天地山川、社稷五祀、百辟卿士有功於民者,天子諸侯所命祀也。若乃巫覡之謂獨語,小人之所望畏,士公、飛尸、咎魅、北君、銜聚、當路、直符七神,及民間繕治微蔑小禁,本非天王所當憚也。

【번역문 4】
또한 사람에게 작위가 있듯이, 귀신에게도 존비(尊卑)가 있습니다. 천지(天地)와 산천(山川), 사직(社稷)과 오사(五祀), 그리고 백성에게 공이 있는 여러 군주와 경사(卿士)는 천자(天子)와 제후(諸侯)가 명하여 제사 지내는 대상입니다. 만약 무당들이 이른바 ‘독어(獨語)’라 하는 것, 소인배들이 우러러 두려워하는 것, 사공(士公)·비시(飛尸)·구매(咎魅)·북군(北君)·함취(銜聚)·당로(當路)·직부(直符)의 일곱 신,¹²⁾ 그리고 민간에서 꾸며 만든 미미하고 하찮은 작은 금기(禁忌)들은, 본래 천왕(天王)께서 꺼리실 바가 아닙니다.


【원문 5】
舊時京師不防,動功造禁,以來吉祥應瑞,子孫昌熾,不能過前。且夫以君畏臣,以上需下,則必示弱而取陵,殆非致福之招也。

【번-역문 5】
옛 시절 수도에서는 금기를 두지 않았는데, (지금은) 공역(功役)을 일으키고 금기를 만들어서 길상(吉祥)과 상서로운 조짐을 불러들여 자손이 창성하게 하려 하지만, 이전보다 낫게 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무릇 군주가 신하를 두려워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의지한다면, 이는 반드시 약함을 보여 능멸을 당하게 될 것이니, 거의 복을 부르는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원문 6】
嘗觀上記,人君身脩正、賞罰明者,國治而民安;民安樂者,天悅喜而增曆數。故《書》曰:「王以小民受天永命。」孔子曰:「天之所助者順也,人之所助者信也。履信思乎順,又以尚賢,是以自天祐之,吉無不利。」此最卻凶災而致福善之本也。

【번역문 6】
일찍이 옛 기록을 살펴보니, 군주가 몸을 바르게 닦고 상벌을 분명히 하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백성이 편안하며, 백성이 편안하고 즐거우면 하늘이 기뻐하여 수명을 늘려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왕은 작은 백성으로 인하여 하늘의 영원한 명(命)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¹³⁾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돕는 것은 순리(順理)이며, 사람이 돕는 것은 신의(信義)이다. 신의를 행하고 순리를 생각하며, 또 현명한 이를 숭상하면, 이로써 하늘로부터 도움을 받아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¹⁴⁾ 이것이야말로 흉한 재앙을 물리치고 복과 선(善)을 부르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주석 (Footnotes)

1) 巫覡祝請(무격축청): ‘巫(무)’는 여자 무당, ‘覡(격)’은 남자 무당을 뜻하며, ‘祝(축)’은 제사 때 축문을 읽는 사람, ‘請(청)’은 신에게 비는 행위를 말한다. 고대의 각종 종교적, 주술적 기원 행위를 총칭한다.
2) 巫史(무사): 무당과 사관(史官). 고대에는 사관이 천문 관측, 점복, 제사 기록 등을 담당하여 종교적 역할도 겸했다.
3) 丘之禱久矣(구지도구의):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고사. 공자가 병이 들자 제자 자로(子路)가 쾌유를 위해 기도드릴 것을 청했다. 이에 공자는 “내가 기도한 지는 오래되었다”고 답했는데, 이는 평생 덕을 쌓고 도리를 지키며 살아온 삶 자체가 곧 기도라는 의미이다.
4) 《孝經》云...鬼享之(효경운...귀향지): 『효경(孝經)』 「감응장(感應章)」에 나오는 구절이다. 효성스러운 자는 살아계신 부모를 편안하게 할 뿐 아니라, 돌아가신 뒤에도 그 덕으로 인해 조상신이 제사를 기쁘게 흠향한다는 의미이다.
5) 《詩》云...福祿來反(시운...복록래반): 『시경(詩經)』 「대아(大雅)·기취(旣醉)」편의 구절이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위의가 바르고 정성스러우면, 신이 그 제물을 기쁘게 흠향하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복록(福祿)을 내려준다는 내용이다.
6) 虢延神而亟亡,趙嬰祭天而速滅(괵연신이극망, 조영제천이속멸): 모두 덕을 쌓지 않고 제사에만 의존하다가 망한 사례이다. 『국어(國語)』에 따르면 괵(虢)나라 군주는 신령에만 의지하다가 사관에게 “나라는 백성에 의지하는 것이지 신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충고를 들었으나 듣지 않고 망했다. 조영(趙嬰)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진(晉)나라의 대부로, 간음죄를 짓고 제사를 지냈으나 결국 멸망했다.
7) 國將興,聽於民;將亡,聽於神(국장흥, 청어민; 장망, 청어신): 『춘추좌씨전』 장공(莊公) 32년 조에 나오는 말이다. 나라가 흥할 때는 민심을 따르고, 망할 때는 미신과 점에 의존하게 된다는 뜻으로, 민본(民本) 사상과 합리주의를 강조하는 경구이다.
8) 楚昭不禳雲...邾文公違卜史(초소불양운...주문공위복사): 모두 흉조나 점괘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덕과 올바른 정치에 힘쓴 군주와 신하들의 사례이다. 이들은 모두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고사로, 저자는 이들을 합리적이고 주체적인 지도자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9) 晏平仲有言...詛亦有損也(안평중유언...조역유손야):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 안영(晏嬰)의 말이다. 기도가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면, 반대로 저주 또한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논리로, 인간의 의지와 행위가 길흉에 영향을 미침을 강조하는 말이다.
10) 季梁之諫隨侯,宮之奇說虞公(계량지간수후, 궁지기설우공): 모두 신(神)보다 민(民)을 우선해야 함을 역설한 고사이다. 계량은 수(隨)나라 군주에게 “백성은 신의 주인(民者, 神之主也)”이라며 민심을 얻을 것을 간언했다. 궁지기는 우(虞)나라 군주에게 “귀신은 동족이 아니면 흠향하지 않고, 사람은 덕이 아니면 의지하지 않는다”고 설득했다. 모두 『춘추좌씨전』에 나온다.
11) 申繻曰...妖不自作(신수왈...요부자작): 『춘추좌씨전』 장공(莊公) 14년 조에 나오는 노(魯)나라 대부 신수(申繻)의 말이다. 사람에게 허물이나 약점(釁)이 있을 때 비로소 요사스러운 기운이 틈타는 것이지, 사람 스스로가 바르면 요사스러운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12) 士公、飛尸...七神(사공, 비시...칠신): 한(漢)나라 때 민간에서 믿던 잡다한 귀신들의 이름이다. 저자는 이러한 음사(淫祀), 즉 예법에 맞지 않는 제사의 대상을 열거하며, 천자(天王)와 같은 존귀한 존재는 이런 미신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13) 《書》曰:「王以小民受天永命。」(서왈 왕이소민수천영명): 『서경(書經)』 「주서(周書)·소고(召誥)」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왕의 통치권, 즉 하늘의 영원한 명(天永命)은 백성(小民)을 기반으로 한다는 민본주의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
14) 孔子曰:「天之所助者順也...吉無不利。」(공자왈 천지소조자순야...길무불리): 『주역(周易)』 「건괘(乾卦)·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하늘의 도움은 순리를 따르는 데 있고, 사람의 도움은 신의를 지키는 데 있으므로, 신의를 실천하고 순리를 따르며 현자를 존중하면 하늘의 도움을 받아 모든 일이 길하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를 길흉화복의 근본 원리로 제시하며 글을 맺는다.

잠부론(潛夫論) - 제27편 상렬(相列)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詩》所謂「天生烝民,有物有則。」是故人身體形貌皆有象類,骨法角肉各有分部,以著性命之期,顯貴賤之表,一人之身,而五行八卦之氣具焉。故師曠曰「赤色不壽」,火家姓易滅也。《易》之《說卦》:「《巽》為人多白眼」,相揚四白者兵死,此猶金伐木也。《經》曰:「近取諸身,遠取諸物。」「聖人有見天下之至賾,而擬諸形容,象其物宜。」此亦賢人之所察,紀往以知來,而著為憲則也。

【번역문 1】
《시경(詩經)》에서 이른바 “하늘이 뭇 백성을 낳으시니,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고 하였습니다.¹⁾ 이런 까닭에 사람의 신체와 형모(形貌)는 모두 그에 상응하는 유형이 있고, 골법(骨法)과 각육(角肉)은²⁾ 각기 나뉜 부위가 있어, 타고난 수명의 기간을 드러내고 귀천(貴賤)의 표상을 나타내니, 한 사람의 몸에 오행(五行)과 팔괘(八卦)의 기운이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광(師曠)은 “붉은빛은 장수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화(火)에 속하는 성씨는 쉽게 멸망하기 때문입니다.³⁾ 《역경(易經)》의 「설괘전(說卦傳)」에 이르기를, “손괘(巽卦)는 눈에 흰자위가 많은 사람이다”라고 하였는데, 관상에서 사백안(四白眼)을 드러낸 자는 전쟁에서 죽으니,⁴⁾ 이는 금(金)이 목(木)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⁵⁾ 경(經)에서 말하기를,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다른 사물에서 취한다”고 하였고,⁶⁾ “성인이 천하의 지극히 복잡하고 심오한 것을 보고, 그것을 형용에 견주어 그 사물의 마땅함에 맞게 상징으로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⁷⁾ 이것이 또한 현인(賢人)이 살피는 바로서, 지나간 것을 기록하여 미래를 알고, 이를 법과 원칙으로 저술한 것입니다.


【원문 2】
人之相法,或在面部,或在手足,或在行步,或在聲響。面部欲溥平潤澤,手足欲深細明直,行步欲安穩覆載,音聲欲溫和中宮。頭面手足,身形骨節,皆欲相副稱。此其略要也。

【번역문 2】
사람의 관상법은 얼굴 부위에 있기도 하고, 손과 발에 있기도 하며, 걸음걸이에 있기도 하고, 목소리에 있기도 합니다. 얼굴 부위는 넓고 평평하며 윤택해야 하고, 손과 발(의 손금과 발금)은 깊고 가늘며 밝고 곧아야 하며, 걸음걸이는 안정되어 땅을 덮고 싣는 듯해야 하고, 목소리는 온화하여 궁음(宮音)에 맞아야 합니다.⁸⁾ 머리, 얼굴, 손, 발, 몸의 형태와 뼈마디는 모두 서로 어울려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 대략적인 요점입니다.


【원문 3】
夫骨法為祿相表,氣色為吉凶候,部位為年時,德行為三者招,天授性命決然。表有顯微,色有濃淡,行有薄厚,命有去就。是以吉凶期會,祿位成敗,有不必。非聰明慧智,用心精密,孰能以中?

【번역문 3】
무릇 골법(骨法)은 녹봉과 관상의 표상이며, 기색(氣色)은 길흉의 징후이고, 부위(部位)는 연령과 시기를 나타내며, 덕행(德行)은 이 세 가지를 불러들이고, 하늘이 부여한 성명(性命)이 결정적인 것입니다. 표상에는 드러남과 숨음이 있고, 기색에는 짙고 옅음이 있으며, 덕행에는 박하고 후함이 있고, 운명에는 떠나고 머묾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길흉의 시기와 만남, 녹봉과 지위의 성공과 실패에는 반드시 그러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마음 씀씀이가 정밀하지 않다면, 누가 능히 맞힐 수 있겠습니까?


【원문 4】
昔內史叔服過魯,公妋敖聞其能相人也,而見其二子焉。叔服曰:「穀也食子,難也收子。穀也豐下,必有後於魯。」及穆伯之老也,文伯居養;其死也,惠叔典哭。魯竟立獻子,以續孟氏之後。及王孫說相喬如,子上幾商臣,子文憂越椒,叔姬惡食我,單襄公察晉厲,子貢觀邾魯,臧文聽禦說,陳咸見張□,賢人達士,察以善心,無不中矣。及唐舉之相李兌、蔡澤,許負之相鄧通、條侯,雖司命班祿,追敘行事,弗能過也。

【번역문 4】
옛날 내사(內史) 숙복(叔服)이 노(魯)나라를 지날 때, 공손오(公孫敖)가 그가 관상을 잘 본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두 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숙복이 말하기를, “곡(穀)은 당신을 봉양할 것이고, 난(難)은 당신의 시신을 거둘 것입니다. 곡의 턱이 풍만하니, 반드시 노나라에서 후사를 이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목백(穆伯, 공손오)이 늙자 문백(文伯, 곡)이 그를 봉양하였고, 그가 죽자 혜숙(惠叔, 난)이 장례를 주관하였습니다. 노나라는 마침내 헌자(獻子, 문백의 아들)를 세워 맹씨(孟氏)의 후사를 잇게 하였습니다.⁹⁾ 또한 왕손열(王孫說)이 교여(喬如)의 관상을 본 것, 자상(子上)이 상신(商臣)을 살핀 것, 자문(子文)이 월초(越椒)를 걱정한 것, 숙희(叔姬)가 식아(食我)를 미워한 것, 단양공(單襄公)이 진(晉) 여공(厲公)을 살핀 것, 자공(子貢)이 주(邾)나라와 노나라를 관찰한 것, 장문중(臧文仲)이 어설(禦說)의 목소리를 들은 것, 진함(陳咸)이 장□(張□)를 본 것 등,¹⁰⁾ 현인(賢人)과 달사(達士)들이 선한 마음으로 살피면 맞히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또한 당거(唐舉)가 이태(李兌)와 채택(蔡澤)의 관상을 본 것이나, 허부(許負)가 등통(鄧通)과 조후(條侯)의 관상을 본 것은,¹¹⁾ 비록 운명의 신(司命)이 녹봉을 나누어 주고 나중에 그 행적을 서술한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정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원문 5】
雖然,人之有骨法也,猶萬物之有種類,材木之有常宜。巧匠因象,各有所授,曲者宜為,輿,檀宜作輻,榆宜作轂,此其正法通率也。若有其質,而工不材,可如何?故凡相者,能期其所極,不能使之必至。十種之地,膏壤雖肥,弗耕不穫;千里之馬,骨法雖具,弗策不致。

【번-역문 5】
비록 그러하나, 사람에게 골법(骨法)이 있는 것은 만물에 종류가 있는 것과 같고, 재목에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뛰어난 장인은 그 모양에 따라 각기 쓰임을 부여하니, 굽은 것은 수레의 몸체를 만들기에 적합하고, 박달나무는 바퀴살을 만들기에 적합하며, 느릅나무는 바퀴통을 만들기에 적합한 것이, 이것이 올바른 법도이자 일반적인 원칙입니다. 만약 그 바탕은 갖추었으나 장인이 재능이 없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무릇 관상을 보는 자는 그가 이를 수 있는 극치를 기약할 수는 있으나, 반드시 거기에 이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십종(十種)의 땅은¹²⁾ 토양이 비록 기름지더라도 밭 갈지 않으면 수확할 수 없고, 천리마는 골법을 비록 갖추었더라도 채찍질하지 않으면 천 리를 가지 못합니다.


【원문 6】
夫觚而弗琢,不成於器;士而弗仕,不成於位。若此者,天地所不能貴賤,鬼神所不能貧富也。或王公孫子,仕宦終老,不至於穀。或庶隸廝賤,無故騰躍,窮極爵位。此受天性命,當必然者也。《詩》稱「天難忱斯」,性命之質,德行之招,參錯授,不易者也。

【번역문 6】
무릇 옥 술잔도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선비도 벼슬하지 않으면 지위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자는 천지(天地)도 귀하게 하거나 천하게 할 수 없으며, 귀신(鬼神)도 가난하게 하거나 부유하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왕공(王公)의 자손은 평생 벼슬살이를 해도 녹봉을 받는 지위에 이르지 못하고, 어떤 서민이나 종과 같이 천한 자는 까닭 없이 뛰어올라 최고의 작위에 오르기도 합니다. 이는 하늘로부터 성명(性命)을 받아 마땅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시경》에서 “하늘은 믿기 어렵다”고 하였으니, 타고난 성명의 바탕과 덕행이 불러들이는 바가 서로 엇갈려 주어지는 것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원문 7】
然其大要,骨法為主,氣色為候。五色之見,王廢有。智者見祥,脩善迎之,其有憂色,循行改尤。愚者反戾,不自省思,雖休徵見相,福轉為災。於戲君子,可不敬哉!

【번-역문 7】
그러나 그 큰 요점은, 골법(骨法)이 주가 되고 기색(氣色)이 징후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 빛깔이 나타나는 것으로 흥성함과 쇠퇴함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상서로운 조짐을 보면 선(善)을 닦아 그것을 맞이하고, 근심스러운 기색이 있으면 행실을 돌아보고 허물을 고칩니다. 어리석은 자는 반대로 행동하여 스스로 살피고 생각하지 않으니, 비록 아름다운 징조가 관상에 나타나더라도 복이 바뀌어 재앙이 됩니다. 아아, 군자여!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석 (Footnotes)

1) 《詩》所謂「天生烝民,有物有則。」: 『시경(詩經)』 「대아(大雅)·증민(烝民)」편의 첫 구절이다. 하늘이 만물을 낼 때 그에 상응하는 고유한 법칙을 함께 부여했다는 의미로, 인간의 형상에 그 운명의 법칙이 깃들어 있다는 관상학의 철학적 근거로 인용되었다.
2) 骨法角肉(골법각육): 관상학의 용어. ‘골법(骨法)’은 사람의 골격 구조를, ‘각육(角肉)’은 이마(角)와 얼굴의 살집(肉)을 가리킨다. 사람의 골격과 외모를 총칭하는 말이다.
3) 師曠曰「赤色不壽」...: 사광(師曠)은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유명한 악사로, 눈이 멀었지만 통찰력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저자는 붉은색을 오행(五行) 중 화(火)에 배속시키고, 화(火)는 타오르다 쉽게 꺼지는 속성이 있으므로 붉은 기색을 띤 사람은 장수하지 못한다고 해석한다.
4) 四白眼(사백안): 눈동자를 중심으로 상하좌우 네 방향에 모두 흰자위가 드러나 보이는 눈을 말한다. 관상학에서는 흉상(凶相)으로 여겨진다.
5) 此猶金伐木也(차유금벌목야): 오행 사상에 근거한 해석이다. 「설괘전」에서 손괘(巽卦)는 목(木)에 해당하고, 관상학에서 흰색은 금(金)에 해당한다. 오행의 상극(相剋) 원리에 따라 금(金)이 목(木)을 치므로(金剋木), 목(木)의 속성을 가진 사람에게 금(金)의 속성인 흰자위가 많이 보이는 것은 흉조라는 논리이다.
6) 《經》曰:「近取諸身,遠取諸物。」: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하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성인이 팔괘(八卦)를 만들 때,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멀리는 만물에서 그 형상과 이치를 취했음을 설명하는 말이다.
7) 「聖人有見天下之至賾...」: 『주역』 「계사전」 상편의 구절이다. ‘賾(색)’은 복잡하고 심오함을 뜻한다. 성인이 천하의 심오한 이치를 보고 그것을 인간의 형상에 비유하여 사물의 이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는 의미이다.
8) 溫和中宮(온화중궁): 목소리가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오음(五音) 중 으뜸음인 궁음(宮音)에 부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궁음은 오행 중 토(土)에 해당하며, 만물을 포용하는 중화(中和)의 소리로 여겨졌다.
9) 內史叔服...孟氏之後(내사숙복...맹씨지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원년 조에 나오는 고사이다. 노나라 공손오가 두 아들의 관상을 숙복에게 보이자, 숙복은 아들 곡(穀)의 턱이 풍만하여 후사를 이을 것이라 예언했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10) 王孫說相喬如...陳咸見張□(왕손열상교여...진함견장□): 모두 관상을 통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고대 현인들의 사례이다. 대부분 『춘추좌씨전』, 『국어(國語)』, 『사기(史記)』 등에 기록되어 있다. 원문의 ‘張□’는 글자가 빠진 것으로, 『한서(漢書)』 등의 기록에 근거하여 진함이 관상을 본 대상은 장창(張敞)으로 추정된다.
11) 唐舉...蔡澤,許負...條侯(당거...채택, 허부...조후): 당거는 전국시대, 허부는 한(漢)나라 초기의 유명한 관상가이다. 당거는 채택의 관상을 보고 그가 재상이 될 것을 예언했고, 허부는 한 문제(文帝)의 총신 등통이 굶어 죽을 것과, 명장 주아부(周亞夫, 조후)가 굶어 죽을 것을 예언했는데 모두 적중했다. 모두 『사기』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이다.
12) 十種之地(십종지지): 매우 기름진 땅을 가리키는 말. 한 번 씨앗을 심으면 열 배의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잠부론(潛夫論) - 제28편 몽렬(夢列)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凡夢:有直,有象,有精,有想,有人,有感,有時,有反,有病,有性。

【번역문 1】
무릇 꿈에는 직(直), 상(象), 정(精), 상(想), 인(人), 감(感), 시(時), 반(反), 병(病), 성(性)의 열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¹⁾


【원문 2】
在昔武王,邑姜方震太叔,夢帝謂己:「命爾子虞,而與之唐。」及生,手掌曰「虞」,因以為名。成王滅唐,遂以封之。此謂直應之夢也。《詩》云:「惟熊惟羆,男子之祥;惟虺惟蛇,女子之祥。」「眾惟魚矣,實惟豐年;旐惟旄矣,室家蓁蓁。」此謂象之夢也。孔子生於亂世,日思周公之德,夜即夢之。此謂意精之夢也。人有所思,即夢其到;有憂即夢其事。此謂記想之夢也。今事,貴人夢之即為祥,賤人夢之即為妖,君子夢之即為榮,小人夢之即為辱。此謂人位之夢也。晉文公於城濮之戰,夢楚子伏己而盬其腦,是大惡也。及戰,乃大勝。此謂極反之夢也。陰雨之夢,使人厭迷;陽旱之夢,使人亂離;大寒之夢,使人怨悲;大風之夢,使人飄飛。此謂感氣之夢也。春夢發生,夏夢高明,秋冬夢熱藏。此謂應時之夢也。陰病夢寒,陽病夢熱,內病夢亂,外病夢發,百病之夢,或散或集。此謂氣之夢也。人之情心,好惡不同,或以此吉,或以此凶。當各自察,常古所從。此謂性情之夢也。

【번역문 2】
옛날 무왕(武王)의 부인 읍강(邑姜)이 태숙(太叔)을 임신했을 때, 무왕이 꿈에 상제(上帝)께서 자신에게 “너의 아들 이름을 우(虞)라 하고 그에게 당(唐) 땅을 주리라”고 이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자 손바닥에 ‘우(虞)’라는 글자가 있어, 이로써 이름을 삼았습니다. 훗날 성왕(成王)이 당나라를 멸하고 마침내 그 땅을 그에게 봉해주었습니다. 이를 일러 직응(直應)의 꿈이라 합니다.²⁾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곰을 꿈꾸면 아들의 상서로운 징조요, 독사와 뱀을 꿈꾸면 딸의 상서로운 징조라네.” “물고기 떼를 꿈꾸면 풍년이 들 징조요, 새 깃털로 장식한 깃발을 꿈꾸면 집안이 번성할 징조라네”라고 하였으니, 이를 일러 상(象)의 꿈이라 합니다.³⁾ 공자(孔子)께서는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나시어, 낮에는 주공(周公)의 덕을 생각하시고 밤에는 그를 꿈꾸셨으니, 이를 일러 의정(意精)의 꿈이라 합니다.⁴⁾ 사람이 생각하는 바가 있으면 꿈에 그곳에 도달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꿈에 그 일을 겪으니, 이를 일러 기상(記想)의 꿈이라 합니다.⁵⁾ 지금의 일에 대해, 귀한 사람이 꿈을 꾸면 상서로운 징조가 되고 천한 사람이 꿈을 꾸면 요사스러운 징조가 되며, 군자가 꿈을 꾸면 영화로운 일이 되고 소인이 꿈을 꾸면 욕된 일이 되니, 이를 일러 인위(人位)의 꿈이라 합니다.⁶⁾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성복(城濮) 전투를 앞두고, 초(楚)나라 자(子)가 자신을 엎드리게 하고 그 뇌를 빨아먹는 꿈을 꾸었으니, 이는 크게 나쁜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마침내 크게 이겼으니, 이를 일러 극반(極反)의 꿈이라 합니다.⁷⁾ 장마철의 꿈은 사람을 답답하고 미혹되게 하고, 가뭄철의 꿈은 사람을 어지럽고 흩어지게 하며, 큰 추위 속의 꿈은 사람을 원망하고 슬프게 하고, 큰 바람 속의 꿈은 사람을 표류하게 하니, 이를 일러 감기(感氣)의 꿈이라 합니다.⁸⁾ 봄의 꿈은 만물이 생겨나는 것과 같고, 여름의 꿈은 높고 밝으며, 가을과 겨울의 꿈은 따뜻하게 감추는 것과 같으니, 이를 일러 응시(應時)의 꿈이라 합니다.⁹⁾ 음(陰)의 병이 있으면 차가운 꿈을 꾸고, 양(陽)의 병이 있으면 뜨거운 꿈을 꾸며, 내적인 병이 있으면 어지러운 꿈을 꾸고, 외적인 병이 있으면 드러나는 꿈을 꾸니, 온갖 병의 꿈은 흩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합니다. 이를 일러 기(氣)의 꿈이라 합니다.¹⁰⁾ 사람의 정과 마음은 좋고 싫어함이 같지 않아, 어떤 이는 이를 길하다 여기고 어떤 이는 이를 흉하다 여깁니다. 마땅히 각자 살펴서, 예로부터 따르던 바를 따라야 합니다. 이를 일러 성정(性情)의 꿈이라 합니다.¹¹⁾


【원문 3】
故先有差武者,謂之精;晝有所思,夜夢其事,乍吉乍善,凶惡不信者,謂之想;貴賤賢愚,男女長少,謂之人;風雨寒暑謂之感;五行王相謂之時,陰極即吉,陽極即凶,謂之反;觀其所疾,察其所夢,謂之病;心精好惡,於事驗。謂之性:凡此十者,占夢之大略也。

【번역문 3】
그러므로 먼저 (꿈에 나타난 인물이) 무언가 가리키고 보여주는 것을 정(精)이라 하고, 낮에 생각한 바를 밤에 꿈꾸는 것으로, 길흉과 선악을 믿을 수 없는 것을 상(想)이라 하며, 귀천과 현우, 남녀와 장유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인(人)이라 하고, 비바람과 추위 더위를 감(感)이라 하며, 오행(五行)의 왕상(王相)을¹²⁾ 시(時)라 하고, 음(陰)이 지극하면 길하고 양(陽)이 지극하면 흉한 것을 반(反)이라 하며, 그 앓는 병을 보고 그 꿈을 살피는 것을 병(病)이라 하고, 마음의 정미로운 좋고 싫음이 일에서 증험되는 것을 성(性)이라 하니, 무릇 이 열 가지가 꿈을 점치는 대략적인 방법입니다.


【원문 4】
而決吉凶者之類以多反,其故哉?豈人覺為陽,人寐為陰,陰陽之務相反故邪?此亦謂其不甚者爾。借如使夢吉事而己意大喜樂,發於心精,則真吉矣。夢凶事而己意大恐懼憂悲,發於心精,即真惡矣。所謂秋冬夢死傷也,吉者順時也。雖然,財為大害爾,由弗若勿夢也。

【번역문 4】
그런데 길흉을 판단할 때 반대로 해석하는 종류가 많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찌 사람이 깨어 있는 것은 양(陽)이 되고 잠든 것은 음(陰)이 되어, 음양의 일이 서로 반대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또한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우를 말할 뿐이다. 가령 길한 일을 꿈꾸고 자신의 마음이 크게 기쁘고 즐거워 마음의 정미로운 곳에서 우러나온다면, 이는 참으로 길한 것이다. 흉한 일을 꿈꾸고 자신의 마음이 크게 두렵고 근심하며 슬퍼하여 마음의 정미로운 곳에서 우러나온다면, 이는 참으로 나쁜 것이다. 이른바 가을과 겨울에 죽거나 다치는 꿈을 꾸는 것이 길하다고 하는 것은, (만물이 시드는) 때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러하나, 재물은 큰 해가 될 뿐이니, 꿈을 꾸지 않는 것만 못하다.


【원문 5】
凡察夢之大體:清絜鮮好,貌堅健,竹木茂美,宮室器械新成,方正開通,光明溫和,升上向興之象皆為吉喜,謀從事成。諸臭汙腐爛,枯槁絕霧,傾倚徵邪,劓刖不安,閉塞幽昧,解落墜下向衰之象皆為,計謀不從,舉事不成。妖孽怪異,可憎可惡之事皆為憂。圖畫䘏胎,刻鏤非真,瓦器虛空,皆為見欺紿。倡優俳儛,侯小兒所戲弄之象,皆為觀笑。此其大部也。

【번역문 5】
무릇 꿈을 살피는 대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맑고 깨끗하며 산뜻하고 좋은 것, 모습이 굳건하고 건강한 것, 대나무와 나무가 무성하고 아름다운 것, 궁실과 기물이 새로 만들어진 것, 반듯하고 막힘없이 통하는 것, 밝고 온화한 것, 위로 오르고 흥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형상은 모두 길하고 기쁜 일이니, 꾀하는 바가 이루어지고 하는 일이 성공한다. 온갖 더럽고 썩은 냄새가 나는 것, 마르고 끊어지며 안개 낀 것, 기울고 비뚤어져 사악함을 드러내는 것, 코가 베이고 발이 잘려 불안한 것, 닫히고 막혀 어두컴컴한 것, 풀리고 떨어져 쇠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형상은 모두 흉하니, 계책은 따르지 않고 벌인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사스럽고 괴이하며, 밉고 싫은 일은 모두 근심거리가 된다. 그림이나 태아의 형상, 조각과 같이 진짜가 아닌 것, 질그릇처럼 속이 텅 빈 것은 모두 속임을 당할 징조이다. 광대나 배우가 춤추는 것, 제후나 어린아이가 희롱하는 형상은 모두 비웃음거리가 될 징조이다. 이것이 그 대체적인 구분이다.


【원문 6】
夢或甚顯而無占,或甚微而有應,何也?曰:本所謂之夢者,困不了察之稱,而懵憒冒名也。故亦不專信以斷事。人對計事,起而行之,尚有不從,況於忘忽雜夢,亦可必乎?唯其時有精誠之所感薄,神靈之所告者,乃有占爾。

【번-역문 6】
꿈이 어떤 때는 매우 뚜렷한데도 점괘가 없고, 어떤 때는 매우 미미한데도 응험이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답하여 말하기를, 본래 꿈이라고 하는 것은, 곤하여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 것이며, 어둡고 혼미한 상태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또한 오로지 믿고서 일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마주 앉아 일을 계획하고 일어나 실행해도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거늘, 하물며 잊어버리기 쉽고 잡다한 꿈을 어찌 반드시 믿을 수 있겠는가? 오직 그때에 정성스러운 마음이 감응한 바가 있거나, 신령이 알려주는 바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점괘가 있는 것이다.


【원문 7】
是故君子之異夢,非妄而已也,必有事故焉。小人之異夢,非桀而已也,時有真祥焉。是以武丁夢獲聖而得傅說,二世夢白虎而其封。

【번역문 7】
이런 까닭에 군자(君子)의 기이한 꿈은 망령된 것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연고가 있는 것이다. 소인(小人)의 기이한 꿈은 사나울 뿐만 아니라, 때로는 참된 상서로움이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무정(武丁)은 성인(聖人)을 얻는 꿈을 꾸고 부열(傅說)을 얻었고,¹³⁾ 이세(二世) 황제는 흰 호랑이 꿈을 꾸고 그 나라를 잃었다.¹⁴⁾


【원문 8】
夫奇異之夢,多有故而少無為者矣。人一寢之夢,或屢遷化,百物代至,而其主不能究道之,故占者有不中也。此非古之罪也,乃夢者過也。或言夢審矣,而說者不能連類傳觀,故其惡有不驗也。此非書之罔,乃說之過也。是故占夢之難者,讀其書為難也。

【번역문 8】
무릇 기이한 꿈은 연고가 있는 경우가 많고 까닭 없이 꾸는 경우는 적다. 사람이 하룻밤 자는 동안 꾸는 꿈은, 더러는 여러 번 바뀌고 변화하며 온갖 사물이 번갈아 나타나는데, 꿈꾼 주인이 그것을 끝까지 말하지 못하므로 점치는 자가 맞히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옛 방법의 죄가 아니라, 바로 꿈꾼 자의 허물이다. 혹은 꿈을 자세히 말했다고 하나, 해몽하는 자가 연관 지어 두루 살피지 못하므로, 그 흉함이 증험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해몽서의 허물이 아니라, 바로 해몽하는 자의 잘못이다. 이런 까닭에 꿈을 점치는 것의 어려움은, 그 책을 읽는 것이 어렵다는 데에 있다.


【원문 9】
夫占夢必謹其變故,審其徼候,內考情意,外考王相,即吉凶之符,善惡之效,庶可見也。

【번역문 9】
무릇 꿈을 점칠 때는 반드시 그 변화와 연고를 신중히 살피고, 그 조짐과 징후를 자세히 살피며, 안으로는 꿈꾼 이의 감정과 뜻을 살피고, 밖으로는 오행의 왕상(王相)을¹²⁾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면 길흉의 부합과 선악의 효험을 거의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문 10】
且凡人道見瑞而脩德者,福必成,見瑞而縱恣者,福轉為禍;見妖而驕侮者,禍必成,見妖而戒懼者,禍轉為福。是故大姒有吉夢,文王不敢康吉,祀于群神,然後占于明堂,並拜吉夢。修發戒懼,聞喜若憂,故能成吉以有天下。虢公夢見蓐收賜之土田,目以為有吉,因史嚚,令國賀夢。聞憂而喜,故能成凶以滅其封。

【번-역문 10】
또한 무릇 사람의 도리로서, 상서로운 조짐을 보고 덕을 닦는 자는 복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상서로운 조짐을 보고 방자하게 구는 자는 복이 바뀌어 화가 된다. 요사스러운 조짐을 보고 교만하고 업신여기는 자는 화가 반드시 이루어지고, 요사스러운 조짐을 보고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자는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 이런 까닭에 태사(大姒)가 길한 꿈을 꾸었으나, 문왕(文王)은 감히 편안히 길함을 여기지 않고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낸 뒤에 명당(明堂)에서 점을 치고, 아울러 길한 꿈에 대해 절을 하였다.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닦아 일으키고, 기쁜 소식을 듣고도 근심하는 듯하였으므로, 능히 길함을 이루어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다.¹⁵⁾ 괵공(虢公)은 꿈에 욕수(蓐收)가¹⁶⁾ 자신에게 토지를 하사하는 것을 보고, 이를 길하다고 여겨 사관인 인(嚚)으로 하여금 나라에 꿈을 축하하게 하였다. 근심할 일을 듣고도 기뻐하였으므로, 능히 흉함을 이루어 그 봉토를 잃게 되었다.¹⁷⁾


【원문 11】
《易》曰:「使知懼,又明於憂患與故。」凡有異夢感心,以及人之吉凶,相之氣色,無問善惡,常恐懼脩省,以德迎之,乃其逢吉,「天祿永終」。

【번-역문 11】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성인은) 두려움을 알게 하고, 또한 근심과 환난, 그리고 그 까닭을 밝히셨다”고 하였다.¹⁸⁾ 무릇 기이한 꿈이 마음에 감응하거나, 사람의 길흉이나 관상의 기색에 대해, 좋고 나쁨을 막론하고 항상 두려워하며 자신을 닦고 살펴 덕으로써 그것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야만 길함을 만나고 “하늘의 녹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주석 (Footnotes)

1) 직(直), 상(象)...성(性): 저자인 왕부(王符)가 꿈을 분류한 10가지 유형이다. 각각 직응(直應), 상징(象徵), 정신(精神), 생각(思想), 신분(人位), 감응(感應), 계절(時節), 반대(反對), 질병(疾病), 성정(性情)에 따른 꿈을 가리킨다. 이어지는 문단에서 각 유형을 상세히 설명한다.
2) 직응(直應)의 꿈: 꿈의 내용이 현실에서 문자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 여기서 인용된 고사는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아들 당숙 우(唐叔虞)를 낳기 전에 꾼 태몽 이야기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사기(史記)』 등에 기록되어 있다.
3) 상(象)의 꿈: 꿈의 내용이 상징적으로 현실을 예시하는 경우. 인용된 구절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사간(斯干)」편에 나오는 내용으로, 곰(熊, 羆)은 아들을, 뱀(虺, 蛇)은 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꿈의 상징이다.
4) 의정(意精)의 꿈: ‘精(정)’은 정신이나 마음의 집중을 의미한다. 강렬한 사모의 정이나 깊은 생각이 꿈으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공자가 이상적인 통치자로 숭배했던 주공(周公)을 꿈에서 본 것은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온다.
5) 기상(記想)의 꿈: 낮 동안의 생각이나 기억이 꿈에 반영되는 경우. 현대 심리학의 꿈에 대한 이해와 유사하다.
6) 인위(人位)의 꿈: 꿈꾼 사람의 신분(人位)에 따라 같은 꿈도 길흉이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 이는 당시의 엄격한 신분 질서가 꿈의 해석에도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7) 극반(極反)의 꿈: 꿈의 내용과 현실의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우. 진(晉) 문공(文公)의 고사는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28년 조에 나온다. 뇌를 빨리는 흉몽을 꾸었으나, 해몽가는 초나라가 하늘의 뜻에 굴복하는 길조라고 해석했고, 실제로 진나라가 승리했다.
8) 감기(感氣)의 꿈: 외부의 기운(氣), 즉 날씨나 자연환경의 변화가 꿈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9) 응시(應時)의 꿈: 계절(時)의 변화에 상응하여 꾸는 꿈. 봄에는 생장, 여름에는 번성, 가을과 겨울에는 수렴과 저장의 기운이 꿈에 반영된다는 오행(五行) 사상에 기반한 해석이다.
10) 기(氣)의 꿈: 여기서의 ‘氣’는 인체 내부의 기운, 즉 건강 상태를 의미한다. 몸의 음양(陰陽) 상태나 병의 위치에 따라 관련된 꿈을 꾼다는 것으로, 고대 의학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11) 성정(性情)의 꿈: 사람의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性情)에 따라 같은 꿈도 다르게 느끼고 해석되는 경우.
12) 왕상(王相): 오행(五行) 사상의 용어. 계절에 따라 오행의 기운이 왕성해지거나(王) 쇠약해지는(相, 休, 囚, 死) 주기를 말한다. 꿈을 해석할 때 꿈꾼 시점의 우주적 기운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3) 무정(武丁)...부열(傅說): 상(商)나라의 현명한 군주 무정(武丁)이 꿈에서 본 성인의 모습대로 사람을 찾아 등용하니, 그가 바로 명재상 부열(傅說)이었다는 고사이다. 『서경(書經)』 「열명(說命)」편에 나온다.
14) 이세(二世) 황제...그 나라를 잃었다: 진(秦)나라 이세 황제가 흰 호랑이가 자신의 수레를 끄는 왼쪽 말을 물어 죽이는 꿈을 꾸고 불길하게 여겼는데, 얼마 후 조고(趙高)의 반란으로 시해당했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기록되어 있다.
15) 태사(大姒)...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다: 태사는 주(周) 문왕(文王)의 부인이다. 그녀가 길몽을 꾸었음에도 문왕은 자만하지 않고 더욱 삼가고 덕을 닦아 마침내 주나라 왕업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로, 길조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보여준다.
16) 욕수(蓐收): 고대 신화에 나오는 서쪽과 가을을 다스리는 신으로, 오행 중 금(金)을 상징한다.
17) 괵공(虢公)...그 봉토를 잃게 되었다: 『국어(國語)』 「주어(周語)」에 나오는 고사. 괵공이 신에게 땅을 받는 길몽을 꾸고 교만해져 신하들의 충고를 듣지 않다가 결국 나라를 잃었다. 흉조를 대하는 그릇된 태도의 예시이다.
18) 《易》曰...: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하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성인이 역(易)을 만든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길흉의 조짐을 통해 두려움을 알고 근심과 환난에 대비하게 하려는 데 있음을 설명한다.

잠부론(潛夫論) - 제29편 석난(釋難)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庚子問於潛夫曰:「堯、舜道德,不可兩美,實若韓子戈伐之說邪?」

【번역문 1】
경자(庚子)가 잠부(潛夫)에게 물었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의 도덕은 둘 다 훌륭하다고 할 수 없으니, 실로 한자(韓子)의 창과 방패에 대한 이야기와 같습니까?”¹⁾


【원문 2】
潛夫曰:「是不知難而不知類。今夫伐者盾也,厥性利;戈者矛也,厥性害。是伐為賊,伐為禁也,其不俱盛,固其術也。夫堯、舜之相於,人也,非戈與伐也,其道同仁,不相害也。舜、伐何如弗得俱堅?堯、伐何如不得俱賢哉?且夫堯、舜之德,譬猶偶燭之施明于幽室也,前燭即盡照之矣,後燭入而益明。此非前燭昧而後燭彰也,乃二者相因而成大光,二聖相德而致太平之功也。是故大鵬之動,非一羽之輕也;騏驥之速,非一足之力也。眾良相德,而積施乎無極也。堯、舜兩美,蓋其則也。」

【번역문 2】
잠부가 말했다. “이는 질문의 어려움도 모르고 비유의 종류도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저 방패(伐)라는 것은 막는 것이니 그 본성은 이롭게 하는 것이고, 창(戈)이라는 것은 찌르는 것이니 그 본성은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창은 해치기 위한 것이고 방패는 막기 위한 것이니,²⁾ 그 둘이 함께 우세할 수 없는 것은 본래 그 기능 때문입니다. 무릇 요임금과 순임금의 관계는 사람의 관계이지 창과 방패의 관계가 아니며, 그 도(道)는 인(仁)으로 같아서 서로 해치지 않습니다. 순임금과 방패가 어찌 둘 다 견고할 수 없으며, 요임금과 창이 어찌 둘 다 훌륭할 수 없겠습니까?³⁾ 또한 무릇 요임금과 순임금의 덕은, 비유하자면 어두운 방에 짝을 이룬 촛불이 빛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앞선 촛불이 이미 방을 다 비추고 있는데, 뒤이은 촛불이 들어오면 더욱 밝아집니다. 이는 앞선 촛불이 어둡고 뒤이은 촛불이 밝아서가 아니라, 바로 두 촛불이 서로로 인하여 큰 빛을 이루는 것이니, 두 성인께서 서로 덕을 더하여 태평의 공을 이룬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대붕(大鵬)이 움직이는 것은 한 깃털의 가벼움 때문이 아니며, 기린(騏驥)이 빠른 것은 한 발의 힘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 좋은 것들이 서로 덕을 더하여, 그 베풂이 무궁함에 쌓이는 것입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둘 다 훌륭한 것은, 대개 그것이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원문 3】
伯叔曰:「吾子過矣。韓非之取矛盾以喻者,將假其不可兩立,以詰堯、舜之不得並之勢。而論其本性之仁與賊,不亦失是譬喻之意乎?」

【번역문 3】
백숙(伯叔)이 말했다. “그대의 말이 지나칩니다. 한비(韓非)가 창과 방패를 가져다 비유한 것은, 장차 그것들이 양립할 수 없음을 빌려 요임금과 순임금이 나란히 설 수 없는 형세를 따지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본성이 어질고 해로운지를 논하는 것은, 이 비유의 뜻을 잃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문 4】
潛夫曰:「夫譬喻也者,生於直告之不明,故假物之然否以彰之。物之有然否也,非以其文也,必以其真也。今子舉其實文之性以喻,而欲使鄙也釋其文,鄙也惑焉。且吾聞問陰對陽,謂之彊說;論西詰東,謂之彊難。子若欲自必以則昨反思,然後求,無苟目彊。」

【번역문 4】
잠부가 말했다. “무릇 비유라는 것은, 직접 말해서는 분명하지 않을 때 생겨나는 것이므로, 사물의 그러함과 그렇지 않음을 빌려 그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물에 그러함과 그렇지 않음이 있는 것은 그 형식(文) 때문이 아니라, 반드시 그 실질(真) 때문입니다. 지금 그대는 그 실질과 형식의 본성을 들어 비유하면서, 나로 하여금 그 형식을 버리라고 하니, 내가 미혹됩니다. 또한 내가 듣건대, 음(陰)에 대해 물었는데 양(陽)으로 대답하는 것을 억지 설명(彊說)이라 하고, 서쪽을 논하는데 동쪽을 따지는 것을 억지 비난(彊難)이라 합니다. 그대가 만약 스스로 반드시 옳다고 여긴다면, 어제의 생각을 되돌아본 뒤에 구하십시오. 구차하게 고집부리지 마십시오.”


【원문 5】
庚子曰:「周公知管、蔡之惡,以相武,使肆厥毒,從而誅之,何不仁也?若其不知,何不聖也?二者之過,必處一焉。」

【번역문 5】
경자가 말했다. “주공(周公)이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의 악함을 알면서도 무왕(武王)을 도와 그들로 하여금 그 해독을 마음껏 부리게 한 뒤에 그들을 주살했다면, 어찌 그리 어질지 못합니까? 만약 그들의 악함을 몰랐다면, 어찌 그리 성스럽지 못합니까? 이 두 가지 허물 가운데 반드시 하나에는 해당할 것입니다.”⁴⁾


【원문 6】
潛夫曰:「書二子挾庚子父以叛,然未知其類之與?抑抑相反?且天知桀惡而帝之夏,又知紂惡而王之殷,使虐二國,殘賊下民,多縱厥毒,滅其身,亦可謂不仁不知乎?」

【번역문 6】
잠부가 말했다. “책에는 두 아들이 경자의 아버지를 끼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되어 있는데,⁵⁾ 그것이 이 경우와 같은 종류인지 아니면 정반대인지 아직 알지 못하겠습니다. 또한 하늘은 걸(桀)의 악함을 알면서도 그를 하(夏)나라의 제왕으로 삼았고, 또 주(紂)의 악함을 알면서도 그를 은(殷)나라의 왕으로 삼아, 두 나라를 포학하게 하고 아랫 백성을 해치게 하여 그 해독을 마음껏 부리게 한 뒤에 그 몸을 멸망시켰으니, 이 또한 어질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원문 7】
庚子曰:「不然。夫桀、紂者,無親於天,故天任而弗憂,誅之而弗哀。今管、蔡之與周公也,有兄弟之親,有骨肉之恩,不量能而使之,不堪命而任之,故曰異於桀、之與天也。」

【번역문 7】
경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걸과 주는 하늘과 친함이 없으므로, 하늘이 그들을 내버려 두어도 근심하지 않고 그들을 주살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지금 관숙, 채숙과 주공의 관계는 형제의 친함이 있고 골육의 은혜가 있는데도,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 임무를 맡기고, 명을 감당하지 못할 자에게 임무를 맡겼으니, 그러므로 걸, 주와 하늘의 관계와는 다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원문 8】
潛夫曰:「皇天無親,帝王繼體之君,父事天。王者為子,故父事天也。率土之民,「莫非王臣」也。將而必誅,王法公也。無偏無頗,親踈同也。「大義滅親」,尊王之義也。立弊之天為周公之德因斯也。過此而往者,未之或知。」

【번역문 8】
잠부가 말했다. “황천(皇天)은 사사로이 친한 이가 없으며, 제왕은 그 뒤를 잇는 군주로서 하늘을 아버지로 섬깁니다. 왕이 아들이므로 하늘을 아버지로 섬기는 것입니다. 온 땅의 백성은 ‘왕의 신하 아닌 이가 없습니다.’⁶⁾ 장차 반드시 주살하는 것은 왕법(王法)이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치우침도 기울어짐도 없으니, 친한 이나 성긴 이나 똑같습니다. ‘대의(大義)를 위해 친족을 희생시키는 것’⁷⁾이 왕의 의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하늘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주공의 덕이 이로 말미암은 까닭입니다.⁸⁾ 이보다 더 나아간 것은, 알지 못하는 바입니다.”


【원문 9】
秦子問於潛夫曰:「耕種、生之本也,學問、業之末也。老聃有言:『大丈夫處其實,不居其華。』而孔子曰:『耕也,餒在其中;學也,祿在其中。』敦問今使舉世之人,釋耨耒而程相群於學,何如?」

【번역문 9】
진자(秦子)가 잠부에게 물었다. “농사는 삶의 근본이요, 학문은 일의 말단입니다. 노담(老聃)의 말에 ‘대장부는 그 실질에 머물고 그 화려함에 거하지 않는다’고 하였고,⁹⁾ 공자께서는 ‘밭을 갈아도 굶주림이 그 안에 있고, 배워도 녹봉이 그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¹⁰⁾ 삼가 묻건대, 지금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쟁기와 보습을 놓고 모두 학문에 매달리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원문 10】
潛夫曰:「善哉問!君子勞心,小人勞力。故孔子所稱,謂君子爾。今以目所見,耕、食之本也。以心原道,即學、又耕之本也。《易》曰:『立天之道曰陰與陽,立地之道曰柔與剛,立人之道曰仁與義。』夫反德者為災。」

【번-역문 10】
잠부가 말했다. “훌륭한 질문입니다! 군자(君子)는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소인(小人)은 힘을 수고롭게 합니다.¹¹⁾ 그러므로 공자께서 칭찬하신 것은 군자를 두고 한 말일 뿐입니다. 지금 눈으로 보는 바로는 농사가 먹고사는 것의 근본이지만, 마음으로 도(道)의 근원을 따져보면 학문이야말로 또한 농사의 근본입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하늘의 도를 세우는 것을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우는 것을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를 세우는 것을 인(仁)과 의(義)라 한다’고 하였습니다.¹²⁾ 무릇 덕(德)을 거스르는 자에게는 재앙이 닥칩니다.”


【원문 11】
潛夫曰:「嗚呼!而未此察乎?吾語子。夫君子也者,其賢宜君國而德宜子民也。宜處此位者,唯仁義人,故有仁義者,謂之君子。昔荀子有言:『夫仁也者愛人,愛人,故不忍危也;義也者聚人,聚人,故不忍亂也。』是故君子夙夜箴規,蹇蹇匪懈者,憂君之危亡,哀民之亂離也。故賢人君子,推其仁義之心,愛之君猶父母也,愛居世之民猶子弟也。父母將臨顛隕之患,子弟將有陷溺之禍者,豈能墨乎哉!是以『仁者必有勇』,而德人必有義也。

【번역문 11】
잠부가 말했다. “아아! 그대는 아직 이것을 살피지 못했습니까? 내가 그대에게 말해주겠습니다. 무릇 군자라는 자는, 그 어짊이 나라의 군주가 되기에 마땅하고 그 덕이 백성을 자식처럼 돌보기에 마땅한 사람입니다. 이 자리에 있기에 마땅한 자는 오직 인의(仁義)를 갖춘 사람이므로, 인의를 갖춘 자를 군자라 부릅니다. 옛날 순자(荀子)의 말에 ‘무릇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 사람을 사랑하므로 차마 위태롭게 하지 못한다. 의(義)란 사람을 모으는 것이니, 사람을 모으므로 차마 어지럽게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¹³⁾ 이런 까닭에 군자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경계하고 바로잡으며, 어렵고 힘들어도 게으르지 않는 것은, 군주의 위망(危亡)을 근심하고 백성의 혼란과 이산을 슬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진 군자는 그 인의의 마음을 미루어, 섬기는 군주를 부모처럼 사랑하고, 세상에 사는 백성을 자제처럼 사랑합니다. 부모가 장차 넘어지고 떨어질 환란에 처하고, 자제가 장차 물에 빠질 재앙에 처했는데, 어찌 능히 잠자코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어진 자는 반드시 용기가 있다’고 하는 것이며,¹⁴⁾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의리가 있는 것입니다.


【원문 12】
「且夫一國盡亂,無有安身。《詩》云:『莫肯念亂,誰無父母。』言將皆為害,然有親者憂將深也。是故賢人君子,既憂民,亦為身作。夫蓋滿於上,沾溥在下,棟折欀崩,懼有厭患。故大屋移傾,則下之人不待告令,各爭其柱之。仁者兼護人家者,且自為也。《易》曰:『王明,並受其福。』是以次室倚立而嘆嘯,楚女揭幡而激王。仁惠之恩,忠愛之情,固能已乎?」

【번역문 12】
“또한 무릇 한 나라가 모두 어지러우면 몸을 편안히 할 곳이 없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아무도 어지러움을 생각하려 하지 않으니, 누구인들 부모가 없으리오’라고 하였습니다.¹⁵⁾ 이는 장차 모두가 해를 입게 될 것이나, 어버이가 있는 자는 근심이 장차 더욱 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까닭에 어진 군자는 백성을 근심하면서 또한 자신을 위해서도 행동하는 것입니다. 무릇 지붕이 위에서 가득 차 있으면, 그 젖음이 아래까지 널리 미치고, 대들보가 부러지고 서까래가 무너지면, 깔릴 근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큰 집이 기울면,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은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각기 다투어 그 기둥을 버팁니다. 어진 이가 남의 집까지 아울러 보호하는 것은, 또한 스스로를 위함이기도 합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왕이 현명하면, (모두가) 함께 그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¹⁶⁾ 이 때문에 차실(次室)의 부인이 기둥에 기대어 탄식하고, 초(楚)나라 여인이 깃발을 들어 왕을 격려했던 것입니다.¹⁷⁾ 인자하고 은혜로운 마음과 충성스럽고 사랑하는 정을 진실로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주석 (Footnotes)

1) 韓子戈伐之說(한자과벌지설):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편에 나오는 ‘모순(矛盾)’ 고사를 가리킨다. 어떤 사람이 “어떤 방패(盾)도 뚫을 수 있는 창(矛)”과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를 함께 팔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여기서는 ‘矛(모)’ 대신 ‘戈(과, 창)’를, ‘盾(순)’ 대신 ‘伐(벌, 방패)’을 사용했다. 경자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덕이 동시에 최고일 수 없다는 선양(禪讓)에 대한 회의론을 이 비유를 통해 제기하고 있다.
2) 是伐為賊,伐為禁也(시벌위적, 벌위금야): 원문의 첫 ‘伐’은 문맥상 ‘戈’의 오기로 보인다. “창(戈)은 해치기(賊) 위한 것이고, 방패(伐)는 막기(禁) 위한 것이다”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3) 舜、伐何如弗得俱堅?堯、伐何如不得俱賢哉?(순, 벌하여부득구견? 요, 벌하여부득구현재?): 잠부가 한비자의 비유를 해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단어를 뒤섞어 질문하는 부분이다. “순임금과 방패가 어찌 둘 다 견고하지 못하겠는가? 요임금과 창이 어찌 둘 다 훌륭하지 못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을 억지로 비교하는 비유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있다.
4) 周公知管、蔡之惡...: 주(周)나라 무왕(武王) 사후, 어린 성왕(成王)을 대신해 섭정을 편 주공(周公)에 대한 유명한 난제(難題)이다. 주공의 형제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무왕의 아들 무경(武庚)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삼감의 난), 주공은 이를 진압했다. 경자는 주공이 반란을 미리 알았다면 어질지 못한 것이고, 몰랐다면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며 딜레마를 제기한다.
5) 書二子挾庚子父以叛(서이자협경자부이반): 잠부가 경자의 질문을 받아치며, “책에는 두 아들이 경자의 아버지를 끼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식으로 말을 비튼 것이다. 이는 경자의 질문이 자신과 무관한 옛날이야기임을 지적하며, 논의의 초점을 바꾸려는 수사적 기법이다.
6) 率土之民,「莫非王臣」也(솔토지민, 막비왕신야): 『시경(詩經)』 「소아(小雅)·북산(北山)」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천하의 모든 땅과 백성은 왕에게 속한다는 고대 왕권 사상을 보여준다.
7) 大義滅親(대의멸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로, 사사로운 혈연의 정보다 국가의 대의와 공적인 정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유교의 중요한 윤리 원칙이다.
8) 立弊之天為周公之德因斯也(입폐지천위주공지덕인사야): 이 구절은 해석이 매우 난해하다. ‘弊’를 ‘가리다(蔽)’ 또는 ‘법칙(弊=法)’으로 보아, “하늘의 법칙을 세운 것이 주공의 덕이 이로 말미암은 까닭이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주공이 사사로운 정을 버리고 하늘의 공평한 법칙(王法)을 세웠기 때문에 그의 덕이 위대하다는 의미이다.
9) 老聃有言...: 『노자(老子)』 제38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겉치레(華)보다 실질(實)을 중시하는 도가(道家)의 사상을 대표한다.
10) 孔子曰...: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자는 밭을 가는 육체노동보다 학문을 통한 정신노동이 굶주림을 피하고 녹봉을 얻는 데 더 확실한 길이라고 보았다.
11) 君子勞心,小人勞力(군자노심, 소인노력):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상」에 나오는 말로, 지배 계급인 군자는 정신노동을, 피지배 계급인 소인은 육체노동을 담당한다는 사회 분업론을 나타낸다.
12) 《易》曰...: 『주역(周易)』 「설괘전(說卦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도를 각각 음양, 유강, 인의로 규정하며, 학문을 통해 배우는 인의(仁義)가 인간 사회의 근본 법칙임을 강조한다.
13) 昔荀子有言...: 『순자(荀子)』 「의병(議兵)」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仁)은 사랑을 통해 위기를 막고, 의(義)는 화합을 통해 혼란을 막는다는, 인의의 사회적 기능을 설명한다.
14) 仁者必有勇(인자필유용): 『논어』 「헌문(憲問)」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진정으로 어진 사람은 정의를 실천할 용기를 반드시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15) 《詩》云...: 『시경』 「소아·보전(甫田)」의 구절로 보이나, 의미가 다소 다르게 인용되었다. 원문은 관리의 수탈을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국가적 혼란 속에서 개인의 안위만을 생각할 수 없는 절박함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16) 《易》曰...: 『역경』 「계사전(繫辭傳)」 상편의 구절로, 왕이 현명하면 신하와 백성이 함께 그 복을 누린다는 의미이다.
17) 次室倚立而嘆嘯,楚女揭幡而激王(차실의립이탄소, 초녀게번이격왕): 모두 나라의 위기 앞에서 여인들이 보인 충정과 지혜를 보여주는 고사이다. 전자는 『열녀전(列女傳)』에 나오는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부인 이야기이고, 후자는 초(楚)나라 소왕(昭王)이 오(吳)나라에 쫓길 때 한 여인이 깃발을 들어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았다는 이야기이다. 학문으로 닦은 인의의 마음은 신분과 성별을 넘어 발현됨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잠부론(潛夫論) - 제30편 교제(交際)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語曰:「人惟舊,器惟新。昆弟世踈,朋友世親。」此交際之理,人之情也。今則不然,多思遠而忘近,背故而向新;或歷載而益踈,或中路而相捐,悟先聖之典戒,負久要之誓言。斯何故哉?退而省之,亦可知也。勢有常趣,理有固然。富貴則人爭附之,此勢之常趣也;貧賤則爭去之,此理之固然也。

【번역문 1】
옛말에 이르기를, “사람은 옛사람이 좋고, 그릇은 새것이 좋다. 형제는 세대가 지나면 멀어지고, 친구는 세대가 지나도 친하다”고 하였습니다.¹⁾ 이것이 교제의 이치요, 사람의 정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멀리 있는 이를 생각하고 가까운 이를 잊으며, 옛사람을 등지고 새사람을 향하는 이가 많습니다. 혹은 해가 지나면 더욱 멀어지고, 혹은 도중에 서로 버리며, 옛 성인의 경계를 어기고 오랜 약속의 맹세를²⁾ 저버립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물러나 살펴보면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세(勢)에는 늘 향하는 바가 있고, 이(理)에는 본래 그러한 바가 있습니다.³⁾ 부귀하면 사람들이 다투어 그에게 붙으니, 이것이 세(勢)가 늘 향하는 바입니다. 빈천하면 다투어 그를 떠나니, 이것이 이(理)가 본래 그러한 바입니다.


【원문 2】
夫與富貴交者,上有稱譽之用,下有貨財之益。與貧賤交者,大有賑貸之費,小有假借之損。今使官人雖兼桀、跖之惡,苟結駟而過士,士猶以榮而歸焉,況其實有益者乎?使處子雖苞顏、閔之賢,苟被褐而造門,人猶以為辱而恐其復來,況其實有損者乎?

【번역문 2】
무릇 부귀한 자와 교제하는 것은, 위로는 칭찬받는 쓰임이 있고 아래로는 재물의 이익이 있습니다. 빈천한 자와 교제하는 것은, 크게는 구제하고 빌려주는 비용이 있고 작게는 빌려주는 손해가 있습니다. 지금 벼슬아치가 비록 걸(桀)과 척(跖)의 악함을 겸비했더라도,⁴⁾ 만약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선비의 집을 지나가기만 해도, 선비는 오히려 이를 영광으로 여기는데, 하물며 실제로 이익이 있는 경우이겠습니까?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가⁵⁾ 비록 안연(顏淵)과 민자건(閔子騫)의 어짊을 품었더라도,⁶⁾ 만약 갈옷을 입고 문에 찾아오면, 사람들은 오히려 이를 욕되게 여기고 그가 다시 올까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실제로 손해가 있는 경우이겠습니까?


【원문 3】
故富貴易得宜,貧賤難得適。好服謂之奢僭,惡衣謂之困厄,徐行謂之飢餒,疾行謂之逃責,不候謂之倨慢,數來謂之求食,空造以為無意,奉贄以為欲貸,恭謙以為不肖,抗揚以為不得。此處子之羈薄,貧賤之苦酷也。

【번역문 3】
그러므로 부귀한 자는 쉽게 마땅함을 얻고, 빈천한 자는 합당함을 얻기 어렵습니다. 좋은 옷을 입으면 사치하고 분수에 넘친다고 하고, 허름한 옷을 입으면 곤궁하고 불행하다고 하며, 천천히 걸으면 굶주렸다고 하고, 빨리 걸으면 빚을 피해 달아난다고 하며, 기다리지 않으면 거만하다고 하고, 자주 찾아오면 먹을 것을 구걸한다고 하며, 빈손으로 찾아오면 무성의하다고 여기고, 예물을 바치면 돈을 빌리려 한다고 여기며, 공손하고 겸손하면 못났다고 여기고, 뜻을 높이 내세우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가 얽매이는 박대함이요, 빈천한 자의 혹독한 고통입니다.


【원문 4】
夫處卑下之位,懷《北門》之殷憂,內見謪於妻子,外蒙譏於士夫。嘉會不從禮,餞御不逮眾,貨財不足以合好,力勢不足以扙急。歡忻久交,情好曠而不接,則人無故自廢踈矣。漸踈則賤者逾自嫌而日引,貴人逾務黨而忘之。夫以逾踈之賤,伏於下流,而望日忘之貴,此《谷風》所為內摧傷,而介推所以赴深山也。

【번역문 4】
무릇 비천한 지위에 처하여 「북문(北門)」의 깊은 근심을⁷⁾ 품고, 안으로는 처자에게 질책을 받고 밖으로는 사대부에게 비웃음을 당합니다. 좋은 모임에 예(禮)를 따라 참여하지 못하고, 전송하고 맞이하는 일도 남들에게 미치지 못하며, 재물은 좋은 관계를 맺기에 부족하고, 힘과 권세는 위급할 때 의지하기에 부족합니다. 기쁘게 오래 사귀던 사이라도, 정이 멀어져 이어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까닭 없이 스스로 관계를 끊고 멀어집니다. 점점 멀어지면 천한 자는 더욱 스스로를 꺼려 날마다 물러나고, 귀한 사람은 더욱 무리 짓는 데 힘쓰느라 그를 잊어버립니다. 무릇 더욱 멀어진 천한 몸으로 하류에 엎드려, 날마다 자신을 잊어가는 귀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곡풍(谷風)」이 안으로 마음을 상하게 한 까닭이며, 개자추(介子推)가 깊은 산으로 들어간 까닭입니다.⁸⁾


【원문 5】
夫交利相親,交害相踈。是故長捄誓而廢,心無用者也。交漸而親,必有益者也。俗人之相於也,有利生親,積親生愛,積愛生是,積是生賢,情苟賢之,則不自覺心之親之,口之譽之也。無利生踈,積踈生憎,積憎生非,積非生惡,情苟惡之,則不自覺心之外之,口之毀之也。是故富貴雖新,其勢日親;貧賤雖舊,其勢日除,此處子所以不能與官人競也。世主不察朋交之所生,而苟信貴臣之言,此絜士所以獨隱翳,而姦雄所以黨飛揚也。

【번역문 5】
무릇 이로움으로 사귀면 서로 친해지고, 해로움으로 사귀면 서로 멀어집니다. 이런 까닭에 오랜 맹세가 폐기되는 것은, 마음에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귐이 점점 친밀해지는 것은, 반드시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속된 사람들이 서로 사귈 때, 이익이 있으면 친밀함이 생기고, 친밀함이 쌓이면 사랑이 생기며, 사랑이 쌓이면 옳음이 생기고, 옳음이 쌓이면 어짊이 생겨나니, 마음으로 진실로 그를 어질다 여기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으로 그를 친하게 여기고 입으로 그를 칭찬하게 됩니다. 이익이 없으면 멀어짐이 생기고, 멀어짐이 쌓이면 미움이 생기며, 미움이 쌓이면 그름이 생기고, 그름이 쌓이면 악함이 생겨나니, 마음으로 진실로 그를 악하다 여기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으로 그를 멀리하고 입으로 그를 헐뜯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부귀한 자는 비록 새로운 사이라도 그 기세가 날로 친밀해지고, 빈천한 자는 비록 오랜 사이라도 그 기세가 날로 멀어지니, 이것이 초야의 선비가 벼슬아치와 경쟁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세상의 군주가 벗을 사귀는 관계가 생겨나는 바를 살피지 않고, 그저 귀한 신하의 말만 믿으니, 이것이 결백한 선비가 홀로 숨어 지내고, 간사한 영웅이 무리 지어 날뛰는 까닭입니다.


【원문 6】
昔魏其之客,流於武安;長平之吏,移於冠軍;廉頗、翟公,載盈載虛。夫以四君之賢,藉舊貴之夙恩,客猶若此,則又況乎生貧賤者哉?唯有古烈之風,志義之士,為不然爾。恩有所結,終身無解;心有所矜,賤而益篤。《詩》云:「淑人君子,其儀一兮,心如結兮。」故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隘然後知其人之篤固也。

【번-역문 6】
옛날 위기후(魏其侯)의 손님들은 무안후(武安侯)에게로 흘러갔고, 장평군(長平君)의 관리들은 관군후(冠軍侯)에게로 옮겨갔으며, 염파(廉頗)와 적공(翟公)의 문 앞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가 텅 비기도 하였습니다.⁹⁾ 무릇 이 네 군자의 어짊과 옛 부귀의 오랜 은혜에 힘입었음에도 손님들이 오히려 이와 같았으니, 하물며 본래 빈천하게 태어난 자의 경우이겠습니까? 오직 옛 열사(烈士)의 풍모를 지니고 의리에 뜻을 둔 선비만이 그렇지 않을 뿐입니다. 은혜를 맺은 바가 있으면 평생 풀지 않고, 마음에 소중히 여기는 바가 있으면 빈천해져도 더욱 돈독해집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훌륭한 군자는 그 거동이 한결같아, 마음이 맺은 듯 변치 않네”라고 하였습니다.¹⁰⁾ 그러므로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듦을 알고, 궁핍해진 뒤에야 그 사람의 돈독하고 굳건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¹¹⁾


【원문 7】
候羸、豫讓,出身以報恩;鱄諸、荊軻,奮命以效用。故死可為也,處之難爾。龐勛、㪍貂,一旦見收,亦立為義報,況累舊乎?故鄒陽稱之曰:「桀之狗可使吠堯,跖之客可使刺由。」豈虛言哉?俗士淺短,急於目前,見赴有益則先至,顧無用則後輩。是以欲速之徒,競推上而不暇接下,爭逐前而不遑䘏後。是故韓安國能遺田蚡五百金,而不能賑一窮;翟方進稱淳于長,而不能薦一士。夫安國、方進,前世之忠良也,而猶若此,則又況乎末塗之下相哉?此姦雄所以逐黨進,而處子所以愈擁蔽也。非明聖之君,孰能照察?

【번역문 7】
후영(侯嬴)과 예양(豫讓)은 몸을 바쳐 은혜에 보답했고, 전제(鱄諸)와 형가(荊軻)는 목숨을 던져 쓰임에 부응했습니다.¹²⁾ 그러므로 죽는 것은 할 수 있어도, (빈천함을) 감내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방훈(龐勛)과 복초(㪍貂)는¹³⁾ 하루아침에 거두어지자 또한 즉시 의리로써 보답했는데, 하물며 오랜 관계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추양(鄒陽)이 칭송하기를, “걸(桀)의 개도 시켜서 요(堯)임금을 짖게 할 수 있고, 척(跖)의 식객도 시켜서 허유(許由)를 찌르게 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¹⁴⁾ 어찌 헛된 말이겠습니까? 속된 선비는 생각이 얕고 짧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달려가면 이익이 있을 것을 보면 먼저 이르고, 돌아보아 쓸모가 없으면 뒤로 물러납니다. 이 때문에 속히 출세하려는 무리는 다투어 윗사람을 밀어주느라 아랫사람을 접할 겨를이 없고, 앞선 자를 쫓느라 뒤처진 자를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한안국(韓安國)은 전분(田蚡)에게 오백 금을 줄 수는 있었어도 한 명의 궁한 자를 구휼하지는 못했고, 적방진(翟方進)은 순우장(淳于長)을 칭송했어도 한 명의 선비를 천거하지는 못했습니다.¹⁵⁾ 무릇 한안국과 적방진은 전 시대의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였는데도 오히려 이와 같았으니, 하물며 말세의 하급 재상들이겠습니까? 이것이 간사한 영웅이 무리를 좇아 나아가고, 초야의 선비가 더욱 가려지는 까닭입니다. 밝고 성스러운 군주가 아니면, 누가 능히 이를 밝게 살피겠습니까?


【원문 8】
且夫怨惡之生,若二人偶焉。苟相對也,恩情相向,推極其意,精誠相射,貫心達髓,愛樂之隆,輕相為死,是故侯生、豫子刎頸而不恨。苟相背也,心情乖㸦,推極其意,分背奔馳,窮東極西,心尚未決,是故陳餘、張耳老相全滅而無感痛。從此觀之,交際之理,其情大矣。非獨朋友為然,君臣夫婦亦猶是也。當其歡也,父子不能問;及其乖也,怨讎不能先。是故聖人常慎微以敦其終。

【번역문 8】
또한 무릇 원망과 미움이 생기는 것은, 두 사람이 짝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서로 마주하여 은혜와 정이 서로를 향하면, 그 뜻을 끝까지 밀어 정성이 서로를 비추어 마음을 꿰뚫고 골수에까지 이르니, 사랑과 즐거움이 융성하여 가벼이 서로를 위해 죽을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후영(侯嬴)과 예양(豫讓)은 스스로 목을 찔러도 한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서로 등지면, 마음과 정이 어그러져, 그 뜻을 끝까지 밀어 서로 등을 보이고 달려가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이르러도 마음이 아직 풀리지 않으니, 이런 까닭에 진여(陳餘)와 장이(張耳)는 늙어서 서로를 완전히 멸망시키고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¹⁶⁾ 이로 보건대, 교제의 이치는 그 정(情)이 매우 중요합니다. 비단 친구 사이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군신(君臣)과 부부(夫婦) 사이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 기쁠 때에는 부자(父子) 사이라도 끼어들 수 없고, 그 어그러졌을 때에는 원수라도 그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성인(聖人)은 항상 미미한 것을 신중히 하여 그 끝을 돈독히 하는 것입니다.


【원문 9】
富貴未必可重,貧賤未必可輕。人心不同好,度量相萬億。許由讓其帝位,俗人有爭縣職,孟軻辭祿萬鍾,小夫貪於升食。故曰:鶉鷃群游,終日不休,亂舉聚跱,不離蒿茆。鴻鵠高飛,雙別乖離,通千達萬,志在陂池。鸞鳳翱翔黃歷之上,徘徊太清之中,隨景風而飄颻,時抑揚以從容,意猶未得,喈喈然長鳴,蹶號振翼,陵朱雲,薄升極,呼吸陽露,曠旬不食,其意尚猶嗛嗛如也。三者殊務,各安所為。是以伯夷採薇而不恨,巢父木棲而自願。由斯觀諸,士之志量,固難測度。凡百君子,未可以富貴驕貧賤,謂貧賤之必我屈也。

【번역문 9】
부귀하다고 반드시 중히 여길 수 없으며, 빈천하다고 반드시 가벼이 여길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좋아하는 바가 같지 않고, 도량은 서로 만억 배나 차이가 납니다. 허유(許由)는 제왕의 자리를 사양했으나 속인은 현(縣)의 직책을 다투고, 맹가(孟軻)는 만 종(鍾)의 녹봉을 사양했으나 소인배는 한 되의 식량을 탐합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메추라기는 떼 지어 노닐며 종일 쉬지 않고, 어지러이 날아올라 모여 앉아도 쑥대밭을 떠나지 못합니다. 기러기와 고니는 높이 날아 짝과 헤어져, 천 리 만 리를 가니 그 뜻은 큰 연못에 있습니다. 난새와 봉황은 황력(黃歷)의 위를 날아다니고 태청(太清)의 가운데를 배회하며,¹⁷⁾ 햇볕 속의 바람을 따라 나부끼고 때로 오르내리며 조용히 노닐어도, 뜻은 오히려 만족하지 못하여, ‘개개’하고 길게 울며, 발을 구르고 부르짖으며 날개를 떨쳐 붉은 구름을 넘어 하늘 끝까지 솟아올라, 아침 이슬을 마시며 열흘을 굶어도 그 뜻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이 세 종류는 힘쓰는 바가 달라 각기 하는 바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 때문에 백이(伯夷)는 고사리를 캐면서도 한스러워하지 않았고, 소부(巢父)는 나무에 깃들어 살면서도 스스로 원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선비의 뜻과 도량은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무릇 모든 군자는 부귀하다고 빈천한 이에게 교만해서는 안 되며, 빈천한 이가 반드시 나에게 굴복할 것이라고 여겨서도 안 됩니다.


【원문 10】
《詩》云:「德輶如毛,民鮮克舉之。」世有大男者四,而人莫之能行也,一曰恕,二曰平,三曰恭,四曰守。夫恕者、仁之本也,平者、義之本也,恭者、禮之本也,守者、信之本也。四本並立,四行乃具,四行具存,是謂真賢。四本不立,四行不成,四行無一,是謂小人。

【번역문 10】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덕(德)은 가볍기가 터럭과 같으나, 백성 중에 능히 드는 자가 드물다”고 하였습니다.¹⁸⁾ 세상에는 대장부의 네 가지 덕목이 있으나 사람들이 능히 행하지 못하니, 첫째는 서(恕), 둘째는 평(平), 셋째는 공(恭), 넷째는 수(守)입니다. 무릇 서(恕)는 인(仁)의 근본이요, 평(平)은 의(義)의 근본이며, 공(恭)은 예(禮)의 근본이요, 수(守)는 신(信)의 근본입니다. 네 가지 근본이 함께 서야 네 가지 행실이 갖추어지고, 네 가지 행실이 모두 존재해야 참으로 어질다 할 수 있습니다. 네 가지 근본이 서지 않으면 네 가지 행실이 이루어지지 않고, 네 가지 행실 중 하나도 없으면 이를 소인(小人)이라 합니다.


【원문 11】
所謂恕者,君子之人,論彼恕於我,動作友聲。故人君不開精誠以示賢忠,賢忠亦無以得達。《易》曰:「王明,並受其福。」是以忠臣必待明君乃能顯其節,良吏必得察主乃能成其功。君不明,則大臣隱下不遏忠,又群司舍法而阿貴。夫忠言所以為安也,不貢必危;法禁所以為治也,不奉必亂。忠之貢與不貢,法之奉與不奉,其秉皆在於君,非臣下之所能為也。是故聖人求之於己,不以責下。凡為人上,法術明而賞罰必者,雖無言語而勢自治。

【번-역문 11】
이른바 서(恕)라는 것은, 군자 된 사람이 저쪽의 입장에서 나를 헤아려, 행동에 소리가 화답하듯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주가 정성을 열어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에게 보이지 않으면,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 또한 그 뜻을 전달할 방법이 없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왕이 현명하면, (모두가) 함께 그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¹⁹⁾ 이 때문에 충신은 반드시 현명한 군주를 기다려야 능히 그 절개를 드러낼 수 있고, 유능한 관리는 반드시 살피는 주군을 얻어야 능히 그 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군주가 현명하지 못하면, 대신들은 아래에 숨어 충언을 막고, 또한 여러 관청은 법을 버리고 귀한 자에게 아첨합니다. 무릇 충언은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까닭이니, 바치지 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지고, 법과 금령은 나라를 다스리는 까닭이니, 받들지 않으면 반드시 어지러워집니다. 충언을 바치고 바치지 않는 것, 법을 받들고 받들지 않는 것, 그 권한은 모두 군주에게 달려있지, 신하가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자신에게서 구하고, 아랫사람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무릇 윗사람이 되어 법술(法術)이 분명하고 상벌이 확실하면, 비록 말이 없어도 형세가 저절로 다스려집니다.


【원문 12】
治賈一倍,以相高。苟能富貴,雖積狡惡,爭稱譽之,終不見非;苟處貧賤,恭謹秪為不肖,終不見是。此俗化之所以浸敗,而禮義之所以消衰也。

【번역문 12】
장사하여 한 배의 이익을 남기는 것을 서로 높이 여깁니다. 진실로 부귀할 수만 있다면, 비록 교활하고 악한 짓을 쌓아도 다투어 칭찬하고 끝내 그르다 하지 않으며, 진실로 빈천한 처지에 있으면 공손하고 삼가도 다만 못났다고 여길 뿐 끝내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속의 교화가 점점 무너지고, 예의(禮義)가 사라지고 쇠퇴하는 까닭입니다.


【원문 13】
世有可患者三。三者何?曰:情實薄而辭稱厚,念實忽而文想憂,懷不來而外克期。不信則懼失賢,信之則註誤人。此俗世可猒之甚者也。是故孔子疾夫言之過其行者,《詩》傷「蛇蛇碩言,出自口矣。巧言如簧,顏之厚矣。」

【번역문 13】
세상에는 근심할 만한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무엇인가? 말하기를, 실제 정은 박하면서 말로는 두텁다고 칭하고, 실제 생각은 소홀하면서 겉으로는 근심하는 척하며, 마음속으로는 올 생각이 없으면서 겉으로는 기약을 정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어진 이를 잃을까 두렵고, 믿으면 사람을 그릇되게 하는 데 이릅니다. 이것이 속세에서 매우 싫어할 만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공자께서는 말이 그 행동을 지나치는 것을 미워하셨고, 《시경》에서는 “길고 긴 큰소리가 입에서 나오는구나. 교묘한 말은 생황 같고, 얼굴은 두껍구나”라고²⁰⁾ 상심하였습니다.


【원문 14】
今世俗之交也,未相照察而求深固,探懷扼腕,拊心祝詛,苟欲相護論議而已,分背之日,既得之後,則相棄忘。或受人恩德,先以濟度,不能拔舉,則因毀之,為生瑕釁,明言我不遺力,無奈自不可爾。《詩》云:「知我如此,不如無生。」先合而後忤,有初而無終,不若本無生意,彊自誓也。

【번역문 14】
지금 세속의 교제는, 서로를 밝게 살피지도 않고 깊고 굳건한 관계를 구하며, 품속을 더듬고 팔을 잡으며, 가슴을 치고 저주로 맹세하여, 그저 서로를 감싸주고 의논할 뿐입니다. 등을 돌리는 날, 이미 얻은 뒤에는 서로를 버리고 잊어버립니다. 혹은 남에게 은덕을 입어 먼저 도움을 받았는데도, 그를 발탁해주지 못하면 이내 그를 헐뜯고, 흠과 허물을 만들어내며, “내가 힘을 아끼지 않았으나, 그 자신이 불가한 것을 어찌하겠는가”라고 버젓이 말합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나를 이와 같이 대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만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²¹⁾ 먼저 합했다가 나중에 거스르고, 처음은 있으나 끝이 없는 것은, 본래 사귈 뜻도 없이 억지로 맹세하는 것만 못합니다.


【원문 15】
「君子屢盟,亂是用長。」大人之道,周而不比,微言相感,掩若同符,又焉用盟?孔子恂恂,似不能言者,又稱「誾誾言,唯謹也」。士貴有辭,亦憎多口。故曰:「文質彬彬,然後君子。」與其不忠,剛毅木納,尚近於仁。

【번-역문 15】
“군자가 자주 맹세하면, 혼란이 이로써 자라난다”고 하였습니다.²²⁾ 대인(大人)의 도(道)는 두루 통하면서도 편당을 짓지 않으니, 미묘한 말로 서로 감응하여 꼭 맞는 부절(符節)과 같거늘, 또 어찌 맹세가 필요하겠습니까? 공자께서는 온화하고 신실하시어 마치 말을 잘 못하는 사람 같았고, 또한 “온화하고 정직하게 말씀하시니, 오직 삼가기 때문이다”라고 칭송받았습니다. 선비는 말을 귀하게 여기지만, 또한 말이 많은 것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문채와 바탕이 잘 어우러진 뒤에야 군자이다”라고 하였습니다.²³⁾ 불충한 것보다는, 강직하고 굳세며 어눌한 것이 오히려 인(仁)에 가깝습니다.


【원문 16】
嗚呼哀哉!凡今之人,言方行圓,口正心邪,行與言謬,心與口違;論古則知稱夷、齊、原、顏,言今則必官爵職位;虛談則知以德義為賢,貢薦則必閥閱為前。處子雖躬顏、閔之行,性勞謙之質,秉伊、呂之才,懷救民之道,其不見資於斯世也,亦已明矣!

【번역문 16】
아아, 슬프도다! 무릇 지금 사람들은 말은 모나게 하고 행동은 둥글게 하며, 입은 바르나 마음은 사악하고, 행동과 말이 어긋나며, 마음과 입이 다릅니다. 옛날을 논할 때는 백이(伯夷)·숙제(叔齊)와 원헌(原憲)·안연(顏淵)을 칭송할 줄 알면서, 오늘을 말할 때는 반드시 관직과 작위를 따집니다. 헛된 이야기를 할 때는 덕의(德義)로써 어짊을 삼을 줄 알면서, 천거할 때는 반드시 가문과 경력을 앞세웁니다. 초야의 선비가 비록 안연과 민자건의 행실을 몸소 실천하고, 근면하고 겸손한 자질을 타고났으며, 이윤(伊尹)과 여상(呂尚)의 재능을 지니고, 백성을 구제할 도를 품었더라도, 이 세상에서 등용되지 못할 것은 또한 이미 명백합니다!


주석 (Footnotes)

1) 人惟舊...朋友世親: 고대부터 전해오는 속담들이다. 사람과 그릇을 대하는 태도를 대비하고, 혈연관계와 친구 관계의 지속성을 비교하며,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이치를 제시한다.
2) 久要之誓言(구요지서언): 오랜 약속.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 나오는 말로, 곤궁할 때 했던 약속을 잊지 않는 것을 군자의 덕목으로 보았다.
3) 勢(세), 理(리): 한(漢)나라 시대 사상에서 중요한 개념. ‘세(勢)’는 권세, 형세 등 변화하는 외적 조건을, ‘리(理)’는 사물의 본성, 이치 등 변하지 않는 내적 원리를 의미한다. 저자는 당시 사회가 ‘리’보다 ‘세’에 따라 움직임을 비판한다.
4) 桀(걸), 跖(척): 걸은 하(夏)나라의 폭군, 척은 춘추시대의 대도적으로, 악인의 대명사로 쓰인다.
5) 處子(처자):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가리킨다.
6) 顏淵(안연), 閔子騫(민자건): 모두 공자의 제자로, 뛰어난 덕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어진 선비의 대명사로 쓰인다.
7) 《北門》之殷憂(북문지은우): 『시경(詩經)』 「패풍(邶風)·북문(北門)」편을 가리킨다. 이 시는 나라를 위해 애쓰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에 시달리는 관리의 깊은 근심을 노래하고 있다.
8) 《谷風》(곡풍), 介子推(개자추): ‘곡풍’은 『시경』 「패풍·곡풍」편으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의 슬픔을 노래한다. 여기서는 옛 친구에게 버림받은 심정을 비유한다. 개자추는 춘추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충신으로, 논공행상에서 제외되자 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모두 버림받은 자의 슬픔과 절개를 상징한다.
9) 魏其之客...翟公: 모두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이다. 권세의 성쇠에 따라 손님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세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위기후 두영, 장평군 위청, 무안후 전분, 관군후 곽거병, 전국시대의 염파, 한나라의 적공 등은 모두 권력을 잃자 문전이 한산해지는 경험을 했다.
10) 《詩》云...: 『시경』 「소아(小雅)·증민(烝民)」편의 구절로 보이나, 약간의 차이가 있다. 변치 않는 군자의 마음을 노래한다.
11)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 『논어』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역경에 처해야 비로소 그 사람의 진정한 절개를 알 수 있다는 유명한 비유이다.
12) 侯嬴(후영), 豫讓(예양), 鱄諸(전제), 荊軻(형가): 모두 자신을 알아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들로, 의리 있는 자의 대명사이다.
13) 龐勛(방훈), 㪍貂(복초): 이 인물들은 다른 문헌에서 명확히 확인되지 않아, 저자가 당대의 인물을 예로 들었거나 혹은 문자가 잘못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문맥상 자신을 거두어준 이에 대한 의리를 지킨 인물로 보인다.
14) 鄒陽(추양)...: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의 문인 추양이 옥중에서 양효왕(梁孝王)에게 올린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충성심이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15) 韓安國...翟方進...: 모두 한나라의 유명한 관리들이다. 이들이 권세가인 전분이나 순우장에게는 아첨하면서도, 힘없는 선비는 외면했던 일화를 들어, 충신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세태에 따라 움직였음을 비판한다.
16) 陳餘(진여), 張耳(장이): 진(秦)나라 말기부터 초한쟁패기까지 함께했던 친구였으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결국 서로를 죽이려 하는 원수가 되었다. 인간관계의 극단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17) 黃歷(황력), 太清(태청): 모두 하늘을 가리키는 말이다. ‘황력’은 별들이 운행하는 길, ‘태청’은 맑고 높은 하늘을 의미한다.
18) 《詩》云...: 『시경』 「대아·증민」편의 구절이다. 덕을 실천하는 것이 겉보기에는 쉬워 보이나 실제로는 매우 어려움을 말한다.
19) 《易》曰...: 『역경(易經)』 「계사전(繫辭傳)」 상편의 구절로, 왕이 현명하면 신하와 백성이 함께 그 복을 누린다는 의미이다.
20) 《詩》傷...: 『시경』 「소아·교언(巧言)」편의 구절이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람의 뻔뻔함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21) 《詩》云...: 『시경』 「왕풍(王風)·중곡유퇴(中谷有蕥)」편의 구절이다. 버림받은 아내가 남편을 원망하며 탄식하는 노래이다.
22) 君子屢盟,亂是用長: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이다. 신의가 없는 시대에는 잦은 맹세가 오히려 불신과 혼란을 키운다는 의미이다.
23) 文質彬彬,然後君子: 『논어』 「옹야(雍也)」편의 구절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채(文)와 내면의 바탕(質)이 조화를 이룬 뒤에야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잠부론(潛夫論) - 제31편 명충(明忠)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人君之稱,莫大於明;人臣之譽,莫美於忠。此二德者,古來君臣所共願也。然明不繼踵,忠不萬一者,非必愚闇不逮而惡名揚也,所道求之非其道之爾。

【번역문 1】
군주에 대한 칭호는 현명하다(明)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신하에 대한 명예는 충성스럽다(忠)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덕(德)은 예로부터 군주와 신하가 함께 바라던 바입니다. 그러나 현명함이 대를 잇지 못하고 충성스러움이 만에 하나도 없는 것은,¹⁾ 반드시 어리석고 어두워 미치지 못하고 나쁜 이름만 떨쳐서가 아니라, 그것을 구하는 방법이 올바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일 뿐입니다.


【원문 2】
夫明據下起,忠依上成。「二人同心,則利斷金。」能如此者,兩譽俱具。要在於明操法術,自握權秉而已矣。所謂術者,使下不得欺也;所謂權者,使勢不得亂也。術誠明,則雖萬里之外,幽冥之內,不得不求效;權誠用,則遠近親踈,貴賤賢愚,無不歸心矣。周室之末則不然,離其術而舍其權,怠於己而恃於人。是以公卿不思忠,百僚不盡力,君王孤蔽於上,兆黎冤亂於下,故遂衰微侵奪而不振也。

【번역문 2】
무릇 현명함(明)은 아랫사람에게 근거하여 일어나고, 충성(忠)은 윗사람에게 의지하여 이루어집니다.²⁾ “두 사람이 한마음이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는다”고 하였으니,³⁾ 이와 같이 할 수 있으면 두 가지 명예를 모두 갖추게 됩니다. 요점은 군주가 분명하게 법술(法術)을 운용하고, 스스로 권력의 자루를 쥐는 데 있을 뿐입니다.⁴⁾ 이른바 술(術)이란 아랫사람이 속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이른바 권(權)이란 형세가 어지러워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술(術)이 진실로 분명하면 비록 만 리 밖, 어둡고 깊숙한 곳의 일이라도 그 실효를 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권(權)이 진실로 쓰이면 멀고 가까우며 친하고 성긴 이, 귀하고 천하며 어질고 어리석은 이를 막론하고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주(周)나라 말기에는 그렇지 않았으니, 그 술(術)을 떠나고 그 권(權)을 버렸으며, 자신에게는 게으르고 남에게만 의지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공경(公卿)은 충성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관리는 힘을 다하지 않았으며, 군왕은 위에서 외로이 가려지고, 뭇 백성은 아래에서 원통하고 어지러웠습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쇠미해지고 침탈당하여 떨쳐 일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원문 3】
夫帝王者,其利重矣,其威大矣,徒懸重利,足以勸善;徒設嚴威,可以懲姦。乃張重利以誘民,操大威以驅之,則舉世之人,可令冒白刃而不恨,赴湯火而不難,豈云但率之以共治而不宜哉?若鷹、也,然獵夫御之,猶使終日奮擊而不敢怠,豈有人臣而不可使盡力者乎?

【번-역문 3】
무릇 제왕(帝王)은 그 이익이 중하고 그 위엄이 큽니다. 단지 큰 이익을 내거는 것만으로도 족히 선(善)을 권할 수 있고, 단지 엄한 위엄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가히 간악함을 징벌할 수 있습니다. 이에 큰 이익을 펼쳐 백성을 유인하고, 큰 위엄을 부려 그들을 몰아간다면, 온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번쩍이는 칼날을 무릅쓰게 해도 한스러워하지 않게 할 수 있고, 끓는 물과 타는 불에 뛰어들게 해도 어려워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단지 그들을 이끌고 함께 다스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만 하겠습니까? 매나 새매와 같아서, 사냥꾼이 이를 부리면 오히려 종일 힘껏 공격하면서도 감히 게으르지 못하게 하거늘, 어찌 신하 된 자로서 힘을 다하게 할 수 없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원문 4】
《詩》云:「伐柯伐柯,其則不遠。」夫神明之術,其在君身,而忽之,故令臣鉗口結舌而不敢言。此耳目所以蔽塞,聰明所以不得也。制下之權,日陳君前,而君釋之,故令君臣懈弛而背朝。此威德所以不照,而功名所以不建也。

【번역문 4】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도끼 자루를 베네, 도끼 자루를 베네, 그 본보기는 멀리 있지 않네”라고 하였습니다.⁵⁾ 무릇 신묘한 통치술(術)은 군주의 몸에 있는데도 이를 소홀히 하므로, 신하로 하여금 입을 다물고 혀를 묶어 감히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귀와 눈이 가려지고 막히는 까닭이며, 총명함이 발휘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아랫사람을 제어하는 권력은 날마다 군주 앞에 펼쳐져 있는데도 군주가 이를 놓아버리므로, 군주와 신하가 해이해져 조정을 등지게 합니다. 이것이 위엄과 덕이 빛나지 못하는 까닭이며, 공과 이름이 세워지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원문 5】
《詩》云:「我雖異事,及爾同僚。我即爾謀,聽我敖敖。」夫惻隱人皆有之,是故耳聞啼號之音,無不為之慘悽悲懷而傷心者;目見危怠之事,無不為之灼怛驚而赴救之者。君臣義重,行路禮輕,過耳悟目之交,未恩未德,非貧非貴,而猶若此,則又況於北面稱臣被寵者乎?

【번역문 5】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나는 비록 하는 일이 다르나, 그대와는 동료라네. 내가 그대에게 계책을 구하러 갔더니, 나의 하소연만 시끄럽게 듣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⁶⁾ 무릇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울부짖는 소리를 귀로 들으면 그를 위해 참혹하고 슬픈 마음을 품어 상심하지 않는 이가 없고, 위태로운 일을 눈으로 보면 그를 위해 애태우고 놀라 달려가 구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군신(君臣)의 의리는 중하고 길 가는 사람의 예는 가벼우니, 귀를 스치고 눈을 마주친 사이로서 은혜도 덕도 없고 가난하지도 귀하지도 않은데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을 향해 신하를 칭하며 총애를 입은 자의 경우이겠습니까?⁷⁾


【원문 6】
是故進忠扶危者,賢不肖之所共願也。誠皆願之而行違者,常苦其道不利而有害,言未得言而身敗爾。歷觀古來愛君憂主敢言之臣,治勢一成,君自不能亂也,況臣下乎?法術不明而賞罰不必者,雖曰號令,然勢自亂。亂勢一成,君自不能治也,況臣下乎?是故勢治者,雖委之不亂;勢亂者,雖懃之不治也。堯、舜恭己无為而有餘,勢治也;胡亥、王莽馳騖,勢亂也。故曰:善者求之於勢,弗責於人。是以明王審法度而布教令,不行私以欺法,不黷教以辱命,故臣下敬其言而奉其禁,竭其心而稱其職。此由法術明而威權任也。

【번역문 6】
이런 까닭에 충성을 바치고 위태로움을 돕는 것은, 어진 이나 그렇지 못한 이나 함께 바라는 바입니다. 진실로 모두 그것을 바라면서도 행동이 어긋나는 것은, 항상 그 길이 이롭지 않고 해로움이 있으며,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망하기를 괴로워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예로부터 군주를 사랑하고 걱정하여 감히 말했던 신하들을 두루 살펴보건대, 다스려지는 형세(治勢)가 한번 이루어지면 군주 스스로도 어지럽힐 수 없거늘, 하물며 신하이겠습니까? 법술(法術)이 분명하지 않고 상벌이 확실하지 않으면, 비록 호령이라 말하더라도 형세는 저절로 어지러워집니다. 어지러운 형세(亂勢)가 한번 이루어지면 군주 스스로도 다스릴 수 없거늘, 하물며 신하이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형세가 다스려지는 자는 비록 내버려 두어도 어지러워지지 않고, 형세가 어지러운 자는 비록 부지런히 힘써도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요(堯)·순(舜)이 몸을 공손히 하고 무위(無爲)로 다스려도 여유가 있었던 것은 형세가 다스려졌기 때문이요, 호해(胡亥)와 왕망(王莽)이 분주히 날뛰어도 다스려지지 않은 것은 형세가 어지러웠기 때문입니다.⁸⁾ 그러므로 말하기를, “잘하는 자는 형세에서 구하고,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⁹⁾ 이 때문에 현명한 왕은 법도를 살피고 교령을 펴며, 사사로움을 행하여 법을 속이지 않고, 가르침을 더럽혀 명령을 욕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하들은 그 말을 공경하고 그 금령을 받들며, 그 마음을 다하고 그 직분을 다하게 됩니다. 이는 법술이 분명하고 위엄과 권력이 제대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원문 7】
夫術之為道也,精微而神,言之不足,而行有餘;有餘,故能兼四海而照幽冥。權之為勢也,健悍以大,不待貴賤,操之者重;重,故能奪主威而順當也。是以明君未嘗示人術而借下權也。孔子曰:「可與權。」是故聖人「顯諸仁,藏諸用。」「神而化之,使民宜之。」然後致其治而成其功。功業效於民,美譽傳于世,然後君乃得稱明,臣乃得稱忠。此所謂明據下作,忠依上成,二人同心,其利斷金也。

【번-역문 7】
무릇 술(術)의 도(道)는 정미롭고 신묘하여, 말로는 부족하나 행함에는 남음이 있고, 남음이 있으므로 능히 온 세상을 아우르고 어둡고 깊숙한 곳까지 비출 수 있습니다. 권(權)의 형세는 굳세고 크며, 귀천을 기다리지 않고 그것을 쥔 자가 중요해지니, 중요해지므로 능히 군주의 위엄을 빼앗아 마땅함에 순응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일찍이 남에게 술(術)을 보이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권(權)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공자께서 “더불어 권도(權道)를 행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¹⁰⁾ 이런 까닭에 성인은 “인(仁)을 드러내고, 그 쓰임은 감춘다”고 하였고,¹¹⁾ “신묘하게 변화시켜 백성들이 마땅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¹²⁾ 그런 뒤에야 그 다스림을 이루고 그 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공업(功業)의 효험이 백성에게 나타나고 아름다운 명예가 세상에 전해진 뒤에야, 비로소 군주는 현명하다 칭송받고 신하는 충성스럽다 칭송받게 됩니다. 이것이 이른바 ‘현명함은 아랫사람에게 근거하여 일어나고, 충성은 윗사람에게 의지하여 이루어지며, 두 사람이 한마음이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는다’는 것입니다.


주석 (Footnotes)

1) 忠不萬一(충불만일): 충성스러운 신하가 만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충신이 지극히 드묾을 의미한다.
2) 明據下起,忠依上成(명거하기, 충의상성): 이 글의 핵심 주제이다. 군주의 현명함(明)은 아랫사람들의 보고와 실정에 근거하여 생겨나고, 신하의 충성(忠)은 윗사람인 군주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군신(君臣) 관계를 상호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시각을 보여준다.
3) 二人同心,其利斷金(이인동심, 기리단금):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상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이 단단한 쇠도 끊을 수 있다는 뜻으로, 군주와 신하가 마음을 합할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비유한다.
4) 法術(법술), 權(권): 전국시대 법가(法家) 사상, 특히 신불해(申不害)와 한비(韓非)가 강조한 군주의 통치술이다. ‘법(法)’은 명문화된 법률, ‘술(術)’은 신하를 부리고 간악함을 방지하는 기술, ‘권(權)’은 군주가 장악해야 할 절대적인 권력과 권세를 의미한다.
5) 伐柯伐柯,其則不遠(벌가벌가, 기칙불원): 『시경(詩經)』 「빈풍(豳風)·벌가(伐柯)」편의 구절이다. 도끼 자루를 베는 데 그 본보기(則)는 바로 손에 쥔 도끼 자루라는 뜻으로, 도(道)나 방법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음을 비유한다. 여기서는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는 방법(術)이 바로 군주 자신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6) 《詩》云...: 『시경』 「소아(小雅)·북산(北山)」편의 구절이다. 자신은 격무에 시달리는데 동료는 편안한 것을 원망하며, 군주에게 하소연해도 들어주지 않는 신하의 탄식을 노래한 시이다. 저자는 이를 인용하여 신하가 충언을 하려 해도 군주가 듣지 않는 상황을 묘사한다.
7) 北面稱臣(북면칭신): 신하가 북쪽을 향해 서서 군주를 뵙는 고대의 예법이다. 군주는 남쪽을 향해 앉았기 때문이다. 신하의 지위를 나타내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8) 勢治(세치), 勢亂(세란), 恭己无為(공기무위), 馳騖(치무): 모두 법가, 특히 신도(申到)의 ‘세(勢)’ 사상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세(勢)’는 권세, 형세, 시스템을 의미한다. ‘세치(勢治)’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저절로 다스려지는 상태이며, 이때 군주는 ‘무위(無爲)’, 즉 일부러 하는 일 없이 공손히 있기만 해도 나라가 다스려진다. 반면 ‘세란(勢亂)’은 시스템이 무너진 상태로, 군주가 아무리 바쁘게 날뛰어도(馳騖) 다스려지지 않는다. 호해(진시황의 아들)와 왕망은 후자의 대표적인 예이다.
9) 善者求之於勢,弗責於人(선자구지어세, 불책어인): “잘 다스리는 자는 형세(시스템)에서 원인을 찾고,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뜻으로, 법가 사상의 핵심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개인의 도덕성에 의존하기보다 잘된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0) 可與權(가여권): 『논어(論語)』 「자한편(子罕)」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권(權)’은 저울추를 의미하며, 상황에 따라 원칙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권도(權道)’를 뜻한다. 저자는 이를 군주의 통치 권력(權)과 연결하여, 군주만이 상황에 따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
11) 顯諸仁,藏諸用(현저인, 장저용): 『주역』 「계사전」 상편의 구절이다. 성인의 도는 인(仁)으로 드러나지만, 그 실제적인 운용(用), 즉 통치술은 드러내지 않고 감춘다는 의미이다.
12) 神而化之,使民宜之(신이화지, 사민의지): 이 또한 『주역』 「계사전」 상편의 구절이다. 성인의 도가 신묘하게 작용하여 백성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 맞게 행동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상적인 통치의 모습을 묘사한다.

잠부론(潛夫論) - 제35편 본훈(本訓)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上古之世,太素之時,元氣窈冥,未有形兆,萬精合并,混而為一,莫制莫御。若斯久之,翻然自化,清濁分別,變成陰陽。陰陽有體,實生兩儀。「天地壹鬱,萬物化淳。」和氣生人,以統理之。

【번역문 1】
상고(上古)의 세상, 태소(太素)의 시절에는,¹⁾ 원기(元氣)가 아득하고 어두워 아직 형체와 조짐이 없었고, 온갖 정기(精氣)가 합쳐져 섞여 하나가 되어, 제어하거나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 지 오래되자, 문득 스스로 변화하여 맑고 탁한 것이 나뉘고 변하여 음양(陰陽)이 되었습니다. 음양에 형체가 생기자, 실로 양의(兩儀)가 생겨났습니다.²⁾ “천지가 한데 뭉쳐 빽빽하자, 만물이 순박하게 화생하였다”고 하니,³⁾ 조화로운 기운이 사람을 낳아, 이로써 (만물을) 통솔하고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원문 2】
是故天本諸陽,地本諸陰,人本中和。三才異務,相待而成,各循其道,和氣乃臻,璣衡乃平。

【번역문 2】
이런 까닭에 하늘은 양(陽)에 근본을 두고, 땅은 음(陰)에 근본을 두며, 사람은 중화(中和)의 기운에 근본을 둡니다. 삼재(三才)는⁴⁾ 하는 일이 다르나, 서로를 기다려 이루어지며, 각기 그 도(道)를 따를 때 조화로운 기운이 비로소 이르고, 기형(璣衡)이 이에 평형을 이룹니다.⁵⁾


【원문 3】
天道日施,地道日化,人道日為。為者、蓋所謂感通陰陽而致珍異也。人行之動天地,譬猶車上御駟馬,蓬中擢自照矣。雖為所覆載,然亦在我何所之可。孔子曰:「時乘六龍以御天。」「言行、君子所以動天地也,可不慎乎?」從此觀之,天呈其兆,人序其勳,《書》故曰:「天功、人其代之。」如蓋理其政以和天氣,以臻其功。

【번역문 3】
하늘의 도(道)는 날마다 베풀고, 땅의 도는 날마다 화육(化育)하며, 사람의 도는 날마다 행합니다. 행한다는 것은, 대개 이른바 음양과 감응하여 통함으로써 진귀한 것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실이 천지를 움직이는 것은, 비유하자면 수레 위에서 네 마리 말을 부리는 것과 같고, 덮개 있는 수레 안에서 등불을 꺼내 스스로를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⁶⁾ 비록 (천지에 의해) 덮이고 실려 있으나, 또한 어디로 갈지는 나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때에 맞게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다스린다”고 하셨고,⁷⁾ “말과 행동은 군자가 천지를 움직이는 것이니,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로 보건대, 하늘은 그 조짐을 드러내고 사람은 그 공훈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니, 《서경(書經)》에서 “하늘의 공을 사람이 그것을 대신한다”고 한 까닭입니다.⁸⁾ 아마도 그 정치를 다스려 하늘의 기운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그 공을 이루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원문 4】
是故道德之用,莫大於氣。道者,之根也。氣,所變也神,氣之所動也。當此之時,正氣所加,非唯於人,百穀草木,禽獸魚鱉,皆口養其氣。聲入於耳,以感於心,男女聽,以施精神。資和以兆衃,民之胎,含嘉以成體。及其生也,和以養性,美在其中,而暢於四胑,實於血脈,以心性志耳,意目精欲,無不貞廉絜懷履行者。此五帝三王所以能畫法像而民不違,正己德而世自化也。

【번역문 4】
이런 까닭에 도덕(道德)의 작용은 기(氣)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도(道)란 기(氣)의 근본이요, 신(神)이란 기(氣)가 변화하는 것이며, 움직임이란 기(氣)가 움직이는 것입니다.⁹⁾ 이때에 바른 기운이 더해지면, 비단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온갖 곡식과 초목, 금수(禽獸)와 어별(魚鱉)이 모두 입으로 그 기운을 기릅니다. 소리가 귀에 들어가 마음에 감응하고, 남녀가 이를 듣고 정신(精神)을 베풉니다. 조화로운 기운에 의지하여 처음으로 배(衃)를 싹트게 하고,¹⁰⁾ 백성의 태아는 아름다운 기운을 머금어 형체를 이룹니다. 태어나서는 조화로운 기운으로 성품을 기르니, 아름다움이 그 안에 있어 사지(四肢)로 뻗어 나가고 혈맥에 가득 차서, 마음과 성품, 뜻과 귀, 생각과 눈, 정기(精氣)와 욕망에 이르기까지, 곧고 청렴하며 깨끗한 마음을 품고 행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됩니다. 이것이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이 능히 법과 형상을 그려 보여주어도 백성이 어기지 않고, 자신의 덕을 바르게 하니 세상이 저절로 교화되었던 까닭입니다.


【원문 5】
是故法令刑賞者,乃所以治民事而致整理爾,未足以興大化而升太平也。夫欲歷三正之絕迹,臻帝、皇之極功者,必先原元而本本,興道而致和,以淳粹之氣,生敦龐之民,明德義之表,作信厚之心,然後化可美而功可成也。

【번-역문 5】
이런 까닭에 법령(法令)과 형벌(刑罰), 상주(賞賜)는 백성의 일을 다스려 정돈되게 할 뿐이니, 큰 교화를 일으켜 태평성세에 오르기에는 족하지 못합니다. 무릇 삼정(三正)의 끊어진 자취를 다시 밟고, 제(帝)와 황(皇)의 지극한 공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는,¹¹⁾ 반드시 먼저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고 근본을 근본으로 삼으며, 도(道)를 일으키고 조화로움을 이루어, 순수하고 정粹한 기운으로써 돈독하고 순박한 백성을 낳고, 덕의(德義)의 표상을 밝히며, 믿음직하고 두터운 마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교화가 아름다워지고 공(功)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주석 (Footnotes)

1) 太素(태소): 중국 고대의 우주론에서, 기(氣)는 존재하지만 아직 형체(形)가 생겨나기 이전의 원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회남자(淮南子)』, 『열자(列子)』 등에서 우주 생성의 한 단계로 설명된다.
2) 兩儀(양의):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서 유래한 용어로, 태극(太極)에서 생겨난 음(陰)과 양(陽)을 가리킨다.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두 가지 근본 원리이다.
3) 天地壹鬱,萬物化淳(천지일울, 만물화순): 고대의 우주 생성론을 묘사하는 구절로 보인다. ‘壹鬱(일울)’은 천지가 분리되지 않고 한데 뭉쳐 빽빽한 상태를, ‘化淳(화순)’은 그 상태에서 만물이 순박하게 화생(化生)함을 의미한다.
4) 三才(삼재): 하늘(天), 땅(地), 사람(人)을 가리키는 유교의 중요 개념이다. 이 셋이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조화를 이룰 때 우주가 안정된다고 보았다.
5) 璣衡(기형): 고대 중국의 천문 관측 기구인 혼천의(渾天儀)의 주요 부품이다. 여기서는 우주의 질서와 균형을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
6) 譬猶車上御駟馬,蓬中擢自照矣(비유차상어사마, 봉중탁자조의): 인간의 주체적 역할을 강조하는 비유이다. 사람은 천지라는 거대한 시스템(수레) 안에 있지만,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수레를 모는 사람, 등불을 드는 사람) 자신이라는 의미이다.
7) 時乘六龍以御天(시승육룡이어천): 『주역』 건괘(乾卦)의 단전(彖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성인(聖人)이 때의 변화에 맞추어 하늘의 도를 운행함을 비유하는 말로, 인간의 능동적인 역할을 상징한다.
8) 天功、人其代之(천공, 인기대지): 『서경(書經)』 「고요모(皋陶謨)」에 나오는 구절이다. 하늘이 이루어야 할 공(功)을 사람이 대신하여 이룬다는 뜻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9) 道者,之根也。氣,所變也神,氣之所動也(도자, 지근야. 기, 소변야신, 기지소동야): 원문의 구두점이 불분명하여 해석의 여지가 있으나, 문맥상 “道者,氣之根也。神者,氣之所變也。動者,氣之所動也(도란 기의 근본이요, 신이란 기가 변화하는 것이며, 움직임이란 기가 움직이는 것이다)”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도(道), 기(氣), 신(神)의 관계를 정의하며, 기(氣)를 만물 변화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10) 衃(배): 엉긴 피, 또는 임신 초기의 태아를 가리키는 고어(古語)이다. 여기서는 조화로운 기운이 생명의 시초를 형성함을 설명하고 있다.
11) 三正(삼정): 하(夏)·은(殷)·주(周) 세 왕조가 각각 다른 달을 정월(正月)로 삼았던 역법(曆法)을 말한다. 여기서는 세 왕조의 이상적인 통치가 행해졌던 상고 시대를 상징하는 의미로 쓰였다.

잠부론(潛夫論) - 제32편 덕화(德化)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人君之治,莫大於道,莫盛於德,莫美於教,莫神於化。道者、所以持之也,德者、所以苞之也,教者、所以知之也,化者、所以致之也。民有性,有情,有化,有俗。情性者、心也,本也。化俗者、行也,末也。末生於本,行起於心。是以上君撫世,先其本而後其末,慎其心而理其行。心精苟亡,則姦匿所作,邪意無所載矣。

【번역문 1】
군주의 다스림은 도(道)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덕(德)보다 더 성대한 것이 없으며, 교(教)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고, 화(化)보다 더 신묘한 것이 없습니다. 도라는 것은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요, 덕이라는 것은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며, 교라는 것은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요, 화라는 것은 그것을 이루는 것입니다.¹⁾ 백성에게는 성(性)과 정(情)이 있고, 화(化)와 속(俗)이 있습니다. 정과 성은 마음이니 근본(本)이요, 교화와 풍속은 행실이니 말단(末)입니다.²⁾ 말단은 근본에서 생겨나고, 행실은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이 때문에 훌륭한 군주가 세상을 어루만질 때는, 그 근본을 먼저 하고 그 말단을 나중에 하며, 그 마음을 신중히 하고 그 행실을 다스립니다. 마음의 정미로운 [악한] 부분이 진실로 없어지면, 간사함과 숨은 악이 그치게 되고(所作), 사악한 뜻이 실릴 곳이 없게 됩니다.³⁾


【원문 2】
夫化變民心也,猶政變民體也。德政加於民,則多滌暢姣好堅彊考壽;惡政加於民,則多罷癃尪病夭昏扎瘥。故《尚書》美「考終命」,而惡「凶短折」。國有傷明之政,則民多病因;有者,道之使也。必有其根,其氣乃生;必有其使,變化乃成。是故道之為物也,至神以妙;其為功也,至彊以大。天之以動,地之以靜,日之以光,月之以明,四時五行,鬼神人民,億兆醜類,變異吉凶,何非氣然?

【번역문 2】
무릇 교화(化)가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치가 백성의 몸을 변화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덕스러운 정치가 백성에게 더해지면, 깨끗하고 상쾌하며 아름답고 굳세며 장수하는 이가 많아지고, 악한 정치가 백성에게 더해지면, 피로하고 등이 굽으며 파리하고 병들며 일찍 죽고 정신이 어두우며 일찍 죽는 병에 걸리는 이가 많아집니다.⁴⁾ 그러므로 《상서(尙書)》에서는 “천수를 다하는 것(考終命)”을 아름답게 여기고, “흉하고 요절하는 것(凶短折)”을 미워하였습니다.⁵⁾ 나라에 현명함을 해치는 정치가 있으면 백성들은 병의 원인을 많이 갖게 되니, 원인이 있는 것은 도(道)가 그렇게 시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뿌리가 있어야 그 기(氣)가 생겨나고, 반드시 그렇게 시키는 바가 있어야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까닭에 도(道)라는 것은 지극히 신묘하고, 그 공(功)은 지극히 강하고 큽니다. 하늘이 움직이고, 땅이 고요하며, 해가 빛나고, 달이 밝으며, 사시(四季)와 오행(五行), 귀신과 인민, 억조의 온갖 무리, 변화와 기이함, 길흉(吉凶) 중에 어느 것인들 기(氣)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


【원문 3】
及其乖戾,天之尊也氣裂,地之大也氣動,山之重也氣徙,水之流也氣絕之,日月神也氣蝕之,星辰虛也氣隕之,旦有晝晦,宵有,大風飛車拔樹,僨電為冰,溫泉成湯,麟龍鸞鳳,蝥蠈蝝蝗,莫不氣之所為也。

【번역문 3】
그것이 어그러지면, 하늘의 존귀함도 기(氣)가 찢어놓고, 땅의 거대함도 기가 움직이며, 산의 무거움도 기가 옮기고, 물의 흐름도 기가 그것을 끊으며, 해와 달의 신령함도 기가 그것을 좀먹고, 별들의 허공에 있음도 기가 그것을 떨어뜨립니다. 아침에 대낮처럼 어두워지고, 밤에는 (햇무리처럼) 밝아지며, 큰 바람이 수레를 날리고 나무를 뽑으며, 번개가 얼음을 만들고, 온천이 끓는 물이 되며, 기린·용·난새·봉황과 같은 상서로운 짐승과, 해충과 메뚜기 같은 재앙의 벌레가 나타나는 것 모두, 기(氣)가 하는 바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⁶⁾ 이로 보건대, 기(氣)의 운행과 감응은 또한 참으로 위대합니다. 변화의 작용으로, 어떤 사물인들 만들어내지 못하겠습니까?


【원문 4】
是故上聖故不務治民事而務治民心,故曰:「聽訟,吾猶人也。必也使無訟乎!」「導之以德,齊之以禮。」務厚其情而明則務義,民親愛則無相害傷之意,動思義則無姦邪之心。夫若此者,非律之所使也,非威刑之所彊也,此乃教化之所致。

【번-역문 4】
이런 까닭에 위대한 성인께서는 백성의 일을 다스리는 데 힘쓰지 않고 백성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힘쓰셨으니,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송사(訟事)를 듣는 것은 나도 남과 같으나, 반드시 송사가 없게 해야 한다!”고 하셨고,⁷⁾ “덕으로써 이끌고, 예(禮)로써 가지런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⁸⁾ 그 정(情)을 두텁게 하고 그 법칙을 밝히는 데 힘쓰면 백성들은 의(義)를 힘쓰게 되니, 백성들이 서로 친하고 사랑하면 서로 해치려는 뜻이 없어지고, 움직일 때 의(義)를 생각하면 간사하고 사악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무릇 이와 같은 것은, 법률이 시켜서 되는 바가 아니며, 위엄과 형벌이 강제해서 되는 바가 아니니, 이는 바로 교화(教化)가 이루어낸 것입니다.


【원문 5】
國有傷聰之政,則民多病身;有傷賢之政,則賢多橫夭。夫形體骨幹為堅彊也,然猶隨政變易,又況乎心氣精微不可養哉?《詩》云:「敦彼行葦,羊牛勿踐履。方苞方體,惟葉握握。」又曰:「鳶飛厲天,魚躍于淵。愷悌君子,胡不作人?」公劉厚德,恩及草木,羊牛六畜,且猶感德。

【번역문 5】
나라에 총명함을 해치는 정치가 있으면 백성들은 몸에 병이 많아지고, 어짊을 해치는 정치가 있으면 어진 이들이 뜻밖의 재앙으로 요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릇 형체와 골격은 단단한 것인데도 오히려 정치를 따라 변하고 바뀌거늘, 하물며 마음의 기운처럼 정미로운 것을 기를 수 없겠습니까?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무성한 저 길가의 갈대를, 양과 소도 밟지 않네. 바야흐로 싹이 트고 형체를 이루니, 그 잎이 무성하도다”라고 하였고,⁹⁾ 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뛰노네. 평화롭고 즐거운 군자여, 어찌 사람을 만들지 않으리오?”라고 하였습니다.¹⁰⁾ 공류(公劉)의 두터운 덕은 은혜가 초목에까지 미치니, 양과 소, 여섯 가축조차도 그 덕에 감응하였습니다.


【원문 6】
消息於心,己之所無,不以責下,我之所有,不以譏彼;感己之好敬也,故接士以禮,感己之好愛也,故遇人有恩;「己欲立而立人,己欲達而達人」;善人之憂我也,故先勞人,惡人之忘我也,故常念人。凡品則不然,論人不恕己,動作不思心;無之己而責之人,有之我而譏之彼;己無禮而責人敬,己無恩而責人愛;貧賤則非人之不我憂也,富貴則是我之不憂人也。行己若此,難以稱仁矣。

【번역문 6】
마음속으로 헤아려, 자신에게 없는 바로써 아랫사람을 책망하지 않고, 나에게 있는 바로써 저 사람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공경받기를 좋아함을 느끼므로 선비를 예(禮)로써 대하고, 자신이 사랑받기를 좋아함을 느끼므로 사람을 은혜로써 대합니다.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면 남을 도달하게 합니다.”¹¹⁾ 남이 나를 걱정해주는 것을 선(善)으로 여기므로 먼저 남을 위로하고, 남이 나를 잊는 것을 악(惡)으로 여기므로 항상 남을 생각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니, 남을 논할 때 자신을 헤아리지 않고, 행동할 때 마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는 없는 것을 남에게 책망하고, 나에게는 있는 것을 저 사람에게 비난합니다. 자신은 예가 없으면서 남에게 공경을 요구하고, 자신은 은혜가 없으면서 남에게 사랑을 요구합니다. 빈천할 때는 남이 나를 걱정해주지 않는 것을 탓하고, 부귀해지면 내가 남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행함이 이와 같으니, 인(仁)이라 칭하기 어렵습니다.


【원문 7】
所謂平者,內懷尸鳩之恩,外執砥矢之心;論士必定於志行,毀譽必參於效驗;不隨俗而雷同,不逐聲而寄論;苟善所在,不譏貧賤,苟惡所錯,不忌富貴;不謟上而慢下,不猒故而敬新。凡品則不然,內偏頗於妻子,外僭惑於知友;得則譽之,怨則謗之;平議無惇均,譏譽無效驗;苟阿貴以比黨,苟剽聲以群吠;事富貴如奴僕,視貧賤如傭客;百至秉權之門,而不一至無勢之家。執心若此,難以稱義。

【번역문 7】
이른바 평(平)이라는 것은, 안으로는 시구(尸鳩)의 은혜를 품고, 밖으로는 숫돌과 화살의 마음을 지니는 것입니다.¹²⁾ 선비를 논할 때는 반드시 그 뜻과 행실에 근거하고, 헐뜯거나 칭찬할 때는 반드시 그 공효와 증험을 참고합니다. 세속을 따라 뇌동하지 않고, 명성을 좇아 논의를 부치지 않습니다. 진실로 선(善)이 있는 바라면 빈천하다고 비난하지 않고, 진실로 악(惡)이 있는 바라면 부귀하다고 꺼리지 않습니다. 윗사람에게 아첨하고 아랫사람에게 거만하지 않으며, 옛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공경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니, 안으로는 처자에게 치우치고, 밖으로는 친구에게 넘어가 미혹됩니다. 뜻을 얻으면 칭찬하고, 원망이 있으면 비방합니다. 공평한 논의에는 돈독하고 균등함이 없고, 비난과 칭찬에는 공효와 증험이 없습니다. 진실로 귀한 자에게 아첨하여 무리를 짓고, 진실로 남의 말을 훔쳐 무리 지어 짖어댑니다. 부귀한 자를 섬기기를 노복처럼 하고, 빈천한 자를 보기를 고용된 손님처럼 합니다. 권세 잡은 자의 문에는 백 번 이르면서도, 세력 없는 자의 집에는 한 번도 이르지 않습니다. 마음을 지님이 이와 같으니, 의(義)라 칭하기 어렵습니다.


【원문 8】
所謂恭者,內不敢傲於室家,外不敢慢於士大夫;見賤如貴,視少如長;其禮先入,其言後出;恩意無不荅,禮敬無不報;覩賢不居其上,與人推讓;事處其勞,居從其德,位安其卑,養甘其薄。凡品則不然,內慢易於妻子,外輕侮於知友;聰明不別真偽,心思不別善醜;愚而喜傲賢,少而好陵長;恩意不相荅,禮敬不相報;覩賢不相推,會同不能讓;動欲擇其佚,居欲處其安,養欲擅其厚,位欲爭其尊;見人謙讓,因而嗤之;見人恭敬,因而傲之,如是而自謂賢能智慧。為行如此,難以稱忠。

【번역문 8】
이른바 공(恭)이라는 것은, 안으로는 감히 집안 식구에게 오만하지 않고, 밖으로는 감히 사대부에게 거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한 이를 보기를 귀한 이처럼 하고, 젊은이를 보기를 어른처럼 합니다. 그 예(禮)는 먼저 들어가고 그 말은 나중에 나옵니다. 은혜와 뜻에는 답하지 않음이 없고, 예의와 공경에는 보답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어진 이를 보면 그 윗자리에 거처하지 않고, 남과 더불어 미루어 사양합니다. 일은 그 수고로운 곳에 처하고, 거처는 그 덕을 따르며, 지위는 그 낮은 곳에 편안해하고, 봉양은 그 박한 것을 달게 여깁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니, 안으로는 처자에게 거만하고, 밖으로는 친구를 가벼이 여겨 업신여깁니다. 총명함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고, 마음은 선과 추함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어리석으면서 어진 이를 오만하게 대하기를 좋아하고, 젊으면서 어른을 업신여기기를 좋아합니다. 은혜와 뜻에 서로 답하지 않고, 예의와 공경에 서로 보답하지 않습니다. 어진 이를 보아도 서로 미루지 않고, 모임에서는 사양할 줄 모릅니다. 움직이면 그 편안함을 택하려 하고, 거처하면 그 안락한 곳에 있으려 하며, 봉양은 그 두터운 것을 독차지하려 하고, 지위는 그 높은 것을 다투려 합니다. 남이 겸양하는 것을 보면 이로 인해 비웃고, 남이 공경하는 것을 보면 이로 인해 오만하게 굴면서, 이와 같이 하고도 스스로 어질고 능력 있으며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행실이 이와 같으니, 충(忠)이라 칭하기 어렵습니다.


【원문 9】
所謂守者,心也。有度之士,情意精專,心思獨覩,不驅於險墟之俗,不惑於眾多之口;聰明懸絕,秉心塞淵,獨立不懼,遯世無悶,心堅金石,志輕四海,故守其心而成其信。凡器則不然,內無持操,外無準儀;傾側險詖,求同於心,口無定論,「不恒其德」,二三其行。秉操如此,難以稱信。

【번역문 9】
이른바 수(守)라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법도가 있는 선비는 정과 뜻이 정미롭고 오로지하며, 마음의 생각이 홀로 투철하여, 험하고 공허한 풍속에 내몰리지 않고, 여러 사람의 입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총명함이 뛰어나고, 마음을 지님이 깊은 연못과 같으며, 홀로 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피해 살아도 번민이 없으며, 마음은 금석(金石)처럼 굳고, 뜻은 온 세상을 가벼이 여기니, 그러므로 그 마음을 지켜 그 믿음을 이룹니다. 평범한 그릇은 그렇지 않으니, 안으로는 지조가 없고 밖으로는 준칙이 없습니다. 기울고 험하며 비뚤어져 마음과 같아지기를 구하고, 입에는 정해진 논의가 없으며, “그 덕이 항상되지 못하고”,¹³⁾ 그 행동은 두세 갈래로 나뉩니다. 지조를 지님이 이와 같으니, 신(信)이라 칭하기 어렵습니다.


【원문 10】
夫是四行者,其輕如毛,其重如山,君子以為易,小人以為難。孔子曰:「仁遠乎哉?我欲仁,仁斯至矣。」又稱「知德者尠」。俗之偏黨,自古而然,非乃今也。凡百君子,競於驕僭,貪樂慢傲,如忠信未達,而為左右所掬按,當世而覆被,更為否愚惡狀之臣者,豈可勝哉?孝成終沒之日,不知王章之直;孝哀終沒之日,不知王嘉之忠也。此後賢雖有憂君哀主之情,忠誠正直之節,然猶且沈吟觀聽行己者也。

【번역문 10】
무릇 이 네 가지 행실은, 그 가벼움이 터럭과 같고 그 무거움이 산과 같으니, 군자는 쉽다고 여기고 소인은 어렵다고 여깁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인(仁)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仁)을 하고자 하면, 인(仁)이 이에 이른다”고 하셨고,¹⁴⁾ 또한 “덕(德)을 아는 자가 드물다”고 칭하셨습니다. 세속이 치우치고 무리 짓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했던 것이지, 지금에 와서 비로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무릇 모든 군자들이 교만하고 분수에 넘치는 것을 다투고, 즐거움을 탐하며 거만하고 오만하니, 만약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이가 등용되지 못하고 좌우의 신하들에게 억눌려, 당대에 화를 입고 다시 비색하고 어리석으며 악한 모습을 한 신하가 되는 자가 어찌 이루 다 셀 수 있겠습니까? 효성제(孝成帝)는 죽는 날까지 왕장(王章)의 정직함을 알지 못했고, 효애제(孝哀帝)는 죽는 날까지 왕가(王嘉)의 충성스러움을 알지 못했습니다.¹⁵⁾ 이 때문에 후대의 어진 이들이 비록 군주를 근심하고 슬퍼하는 정과, 충성스럽고 정직한 절개가 있더라도, 오히려 주저하며 관망하다가 자신을 행하는 것입니다.


【원문 11】
「鳴鶴在陰,其子和之。」「相彼鳥矣,猶求。」仁不忍踐履生草,則又況於民萌而有不化者乎?君子脩其樂易之德,上及飛鳥,下及淵魚,不歡忻悅豫,則又況士庶而不仁者乎?

【번-역문 11】
“우는 학이 그늘에 있으니, 그 새끼가 화답하네.” “저 새를 보아도, 오히려 (짝을) 구하네.”¹⁶⁾ 인(仁)은 살아있는 풀을 차마 밟지 못하거늘, 하물며 싹트는 백성 중에 교화되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 군자가 그 즐겁고 평이한 덕을 닦으면, 위로는 나는 새에 미치고 아래로는 연못의 물고기에 미쳐,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음이 없거늘, 하물며 사대부와 서민 중에 어질지 못한 자가 있겠습니까?


【원문 12】
聖深知之,皆務正己以為表,明禮義以為教,和德氣於未生之前,正表義於咳笑之後。民之胎也,合中和以成;其生也,立方正以長。是以為仁義之心、廉恥之志,骨著脈通,與體俱生,而無麤穢之氣,無邪淫之欲。雖放之大荒之外,措之幽冥之內,終無違禮之之行;投之危亡之地,納之鋒鍔之間,終無苟全之心。舉世之人,行皆若此,則又烏所得亡夫姦亂之民而加辟哉?「上天之載,無馨無臭,儀形文王,萬邦作孚。」此姬氏所以崇美於前,而致刑錯於後。

【번-역문 12】
성인께서는 이를 깊이 아시어, 모두 자신을 바르게 하여 표본으로 삼고, 예의(禮義)를 밝혀 가르침으로 삼으며, 태어나기 전에 덕의 기운을 조화롭게 하고, 기침하고 웃은 뒤에 표상과 의리를 바르게 하셨습니다. 백성이 태(胎)에 있을 때는 중화(中和)의 기운을 합하여 이루어지고, 태어나서는 방정(方正)함을 세워 자라납니다. 이 때문에 인의(仁義)의 마음과 염치(廉恥)의 뜻이 뼈에 새겨지고 혈맥에 통하여, 몸과 함께 생겨나, 거칠고 더러운 기운이 없고 사악하고 음란한 욕망이 없게 됩니다. 비록 아득히 먼 황야의 밖에 내놓고, 어둡고 깊숙한 곳에 두더라도 끝내 예(禮)에 어긋나는 행동이 없으며, 위망(危亡)의 땅에 던져지고 칼날 사이에 놓이더라도 끝내 구차하게 목숨을 보전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온 세상 사람의 행동이 모두 이와 같다면, 또한 어찌 간사하고 어지러운 백성이 없어져 형벌을 가할 필요가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니, 문왕(文王)을 본받으면, 온 나라가 믿게 되리라.”¹⁷⁾ 이것이 희씨(姬氏)가 앞에서 아름다움을 숭상하여, 뒤에 형벌을 쓰지 않는 경지에 이른 까닭입니다.¹⁸⁾


【원문 13】
聖人其尊德禮而卑刑罰,故舜先勑契以敬敷五教,而後命皋陶以五刑三居。是故凡立法者,非以司民短而誅過誤,乃以防姦惡而救禍敗,撿淫邪而內正道爾。

【번역문 13】
성인께서는 덕(德)과 예(禮)를 높이고 형벌을 낮추셨으니, 그러므로 순(舜)임금은 먼저 설(契)에게 명하여 공경히 오교(五教)를 펴게 한 뒤에, 고요(皋陶)에게 명하여 오형(五刑)을 세 곳에 적용하게 하셨습니다.¹⁹⁾ 이런 까닭에 무릇 법을 세우는 자는, 백성의 단점을 살피고 과오를 주살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간악함을 막고 재앙과 실패를 구제하며, 음란하고 사악한 것을 단속하여 정도(正道)로 들어오게 할 뿐입니다.


【원문 14】
《詩》云:「民之秉夷,好是懿德。」故民有心也,猶為種之有園也。遭和氣則秀茂而成實,遇水旱則枯槁而生孽。民蒙善化,則有士君子之心;被惡政,則人有懷姦亂之慮。故善者之養天民也,猶良工為麴豉也。起居以其時,寒溫得其適,則一蔭之麴豉盡美而多量。其愚拙工,則一蔭之麴豉皆臭敗而棄損。今六合亦由一蔭也,黔首之屬猶豆麥也,「變化云為」,在將者爾。遭良吏則皆懷忠信而履仁厚,遇惡吏則皆懷姦邪而行淺薄。忠厚積則致太平,姦薄積則致危亡。是以聖帝明王,皆敦德化而薄威刑。德者、所以脩己也,威者、所以治人也。上智則下愚之民少,而中庸之民多。中民之生世也,猶鑠金之在鑪也,從篤變化,唯冶所為,方圓薄厚,隨鎔制爾。

【번역문 14】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백성이 지닌 떳떳한 마음,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네”라고 하였습니다.²⁰⁾ 그러므로 백성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마치 씨앗에게 밭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조화로운 기운을 만나면 빼어나게 무성하여 열매를 맺고, 홍수와 가뭄을 만나면 마르고 시들어 재앙의 싹을 틔웁니다. 백성이 선한 교화를 입으면 선비와 군자의 마음을 갖게 되고, 악한 정치를 당하면 사람들이 간사하고 어지러운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한 자가 하늘의 백성을 기르는 것은, 마치 훌륭한 장인이 누룩과 메주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때에 맞춰 일으키고 눕히며, 차고 따뜻함을 적절히 맞추면, 한 번 덮어 만든 누룩과 메주가 모두 맛이 좋고 양도 많습니다. 그 어리석고 서툰 장인은, 한 번 덮어 만든 누룩과 메주가 모두 냄새나고 썩어 버려지게 됩니다. 지금 온 세상 또한 한 번 덮어 만드는 것과 같고, 백성들은 콩이나 보리와 같으니,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은 장차 다스리는 자에게 달려있을 뿐입니다. 훌륭한 관리를 만나면 모두 충성과 믿음을 품고 인자하고 두터움을 행하며, 악한 관리를 만나면 모두 간사하고 사악함을 품고 천박함을 행합니다. 충성스럽고 두터움이 쌓이면 태평에 이르고, 간사하고 천박함이 쌓이면 위망(危亡)에 이릅니다. 이 때문에 성스러운 제왕과 현명한 왕은 모두 덕화(德化)를 돈독히 하고 위엄과 형벌을 가벼이 하였습니다. 덕(德)은 자신을 닦는 것이요, 위엄은 남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윗사람이 지혜로우면 아랫사람 중에 어리석은 백성이 적고, 중용(中庸)의 백성이 많아집니다. 평범한 백성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마치 녹인 쇠가 도가니에 있는 것과 같아서, 돈독함에 따라 변화하니, 오직 야금장이가 하는 바에 따라 네모나고 둥글며 얇고 두꺼움이 틀에 따라 만들어질 뿐입니다.


【원문 15】
是故世之善否,俗之薄厚,皆在於君。上聖和氣以化民心,正表儀以率群下,故能使民比屋可封,堯、舜是也。其次躬道德而敦慈愛,美教訓而崇禮讓,故能使民無爭心而致刑錯,文、武是也。其次明好惡而顯法禁,平賞罰而無阿私,故能使民辟姦邪而趨公正,理弱亂以致治彊,中興是也。治天下,身處汙而放情,怠民事而急酒樂,近頑童而遠賢才,親謟諛而踈正直,重賦稅以賞無功,妄加喜怒以傷無辜,故能亂其政以敗其民,弊其身以喪其國者,幽、厲是也。

【번-역문 15】
이런 까닭에 세상의 선하고 악함, 풍속의 박하고 두터움은 모두 군주에게 달려있습니다. 위대한 성인은 조화로운 기운으로 백성의 마음을 교화하고, 표상과 위의를 바르게 하여 아랫사람들을 이끌었으므로, 능히 백성들로 하여금 집집마다 봉(封)할 만하게 하였으니, 요(堯)·순(舜)이 바로 그들입니다.²¹⁾ 그 다음은 몸소 도덕을 행하고 자애를 돈독히 하며, 교훈을 아름답게 하고 예양(禮讓)을 숭상하였으므로, 능히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는 마음이 없게 하여 형벌을 쓰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하였으니, 문왕(文王)·무왕(武王)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 다음은 좋고 싫음을 분명히 하고 법과 금령을 드러내며, 상벌을 공평히 하여 사사로움이 없게 하였으므로, 능히 백성들로 하여금 간사함을 피하고 공정함으로 나아가게 하여, 약하고 어지러운 나라를 다스려 강하게 하였으니, 중흥(中興)의 군주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천하를 다스리면서, 몸은 더러운 곳에 두고 감정을 방종하게 하며, 백성의 일은 게을리하고 술과 음악에 급급하며, 어리석은 아이를 가까이하고 어진 인재를 멀리하며, 아첨하는 자를 친하게 여기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며, 공 없는 자에게 상을 주기 위해 부세를 무겁게 하고, 망령되이 기쁨과 노여움을 더하여 무고한 이를 상하게 하여, 능히 그 정치를 어지럽히고 그 백성을 패망시키며, 그 몸을 피폐하게 하고 그 나라를 잃게 한 자는, 유왕(幽王)·여왕(厲王)이 바로 그들입니다.


【원문 16】
孔子曰:「三人行,必有我師焉。擇其善者而從之,其不善者,我則改之。」《詩》美「宜鑒于殷」,「自求多福」。是故世主誠能使六合之內,舉世之人,咸懷方厚之情,而無淺薄之惡,各奉公政之心,而無姦陬之慮,則羲、農之俗,復見于茲,麟龍鸞鳳,復畜于郊矣。

【번역문 16】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그 안에 있다. 그 선한 자를 가려 따르고, 그 선하지 않은 자를 보고는 나 자신을 고친다”고 하였습니다.²²⁾ 《시경》에서는 “마땅히 은(殷)나라를 거울삼으라”고 하고,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라”고²³⁾ 칭송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세상의 군주가 진실로 능히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방정하고 두터운 정을 품고 얕고 박한 악함이 없게 하며, 각기 공정한 정치의 마음을 받들고 간사하고 편벽된 생각이 없게 한다면, 복희(伏羲)와 신농(神農) 시대의 풍속이 다시 여기서 나타날 것이며, 기린·용·난새·봉황이 다시 교외에서 길러질 것입니다.


주석 (Footnotes)

1) 道(도), 德(덕), 教(교), 化(화): 유가(儒家) 정치사상의 핵심 개념들이다. ‘도’는 우주와 인간 사회의 근본 원리, ‘덕’은 군주가 몸에 체득한 도의 발현, ‘교’는 덕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교육, ‘화’는 교육을 통해 백성이 저절로 선하게 변화하는 궁극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2) 本(본), 末(말): 근본과 말단을 의미하는 유가의 중요 개념. 저자는 마음(心)과 성정(性情)을 근본으로, 행실(行)과 풍속(俗)을 말단으로 보아, 내면의 수양을 통한 근본적인 변화를 강조한다.
3) 心精苟亡...: 이 구절은 해석이 난해하다. ‘心精(심정)’은 마음의 정미로운 부분, ‘亡(망)’은 없어지다, ‘作(작)’은 일어나다를 의미한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마음의 정미로움이 없어지면, 간사함과 숨은 악이 일어난다”가 되어 뒤따르는 “사악한 뜻이 실릴 곳이 없다”는 긍정적 결과와 모순된다. 문맥상 ‘作’을 ‘그치다(止)’의 오기로 보아, “간사함과 숨은 악이 그치게 되고”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는 군주가 마음을 잘 다스리면 악한 마음이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는 전체적인 논지와 부합한다.
4) 滌暢姣好(척창교호)...扎瘥(찰채): 덕치(德治)와 악정(惡政)이 백성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묘사하는 말들이다. ‘滌暢姣好(척창교호)’ 등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罷癃尪病(파륭왕병)’ 등은 쇠약하고 병든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정치와 인간의 심신(心身)이 기(氣)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한(漢)나라 시대의 유기체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5) 考終命(고종명), 凶短折(흉단절): 『서경(書經)』 「홍범(鴻範)」편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의 오복(五福) 중 하나가 천수를 다하는 것이고, 육극(六極) 중 하나가 흉하고 일찍 죽는 것이라고 하여, 장수를 선(善)으로, 요절을 악(惡)으로 보았다.
6) 及其乖戾...莫不氣之所為也: 정치와 사회의 조화가 깨졌을 때(乖戾), 그 불화의 기(氣)가 천지자연에 영향을 미쳐 온갖 기상이변과 재앙을 일으킨다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7) 聽訟,吾猶人也。必也使無訟乎!: 『논어(論語)』 「안연(顏淵)」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법으로 송사를 처리하는 능력은 남과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덕으로 교화하여 송사 자체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강조한다.
8) 導之以德,齊之以禮: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법령으로 백성을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만 피하려 하고 부끄러움이 없지만,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선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9) 敦彼行葦...: 『시경(詩經)』 「대아(大雅)·행위(行葦)」편의 구절이다. 주(周)나라의 덕치가 널리 퍼져 길가의 갈대조차 함부로 밟지 않게 되었음을 노래한다.
10) 鳶飛厲天...: 『시경』 「대아·한록(旱麓)」편의 구절이다. 솔개가 하늘 높이 날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노는 것처럼 만물이 제자리에서 즐거워하는 것은 군자의 덕이 만물을 길러주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11) 己欲立而立人,己欲達而達人: 『논어』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구절로, 인(仁)을 실천하는 방법인 ‘서(恕)’를 설명하는 유명한 말이다.
12) 尸鳩(시구)之恩, 砥矢(지시)之心: 시구(뻐꾸기)는 새끼를 기를 때 먹이를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고 하여 공평함의 상징으로 쓰였다. 숫돌(砥)과 화살(矢)은 곧고 바름을 상징한다. 즉, 공평무사한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13) 不恒其德(불항기덕): 『주역(周易)』 항괘(恒卦)의 효사(爻辭)에 나오는 말로, 덕이 한결같지 못함을 의미한다.
14) 仁遠乎哉?我欲仁,仁斯至矣: 『논어』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仁)은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바로 이룰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15) 孝成帝...王章...孝哀帝...王嘉: 모두 전한(前漢) 말기의 고사이다. 왕장과 왕가는 각각 성제와 애제에게 직언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충신들이다. 군주가 어두워 충신을 알아보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되었다.
16) 鳴鶴在陰...相彼鳥矣,猶求: 앞의 구절은 『주역』 중부괘(中孚卦)의 효사, 뒤의 구절은 『시경』 「소아·벌목(伐木)」편의 구절이다. 모두 미물인 새조차도 서로 감응하고 짝을 찾는다는 내용으로, 군주의 덕이 만물에 미침을 비유한다.
17) 上天之載,無馨無臭,儀形文王,萬邦作孚: 『시경』 「대아·문왕(文王)」편의 구절이다. 하늘의 일은 소리도 냄새도 없이 이루어지지만, 문왕의 덕을 본받으면 온 세상이 믿고 따르게 된다는 의미이다.
18) 刑錯(형착): ‘錯’은 ‘두다(置)’의 의미. 형벌을 제정해 놓기만 하고 실제로 사용할 필요가 없는 이상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19) 舜先勑契...後命皋陶...: 『서경』 「순전(舜典)」에 나오는 고사이다. 순임금이 신하를 임명할 때, 교육을 담당하는 설(契)을 먼저 임명하고, 형벌을 담당하는 고요(皋陶)를 나중에 임명한 것을 들어, 교화가 형벌에 우선함을 강조한다.
20) 民之秉夷,好是懿德: 『시경』 「대아·증민」편의 구절이다. 백성은 떳떳한 본성(夷)을 지니고 있어, 아름다운 덕(懿德)을 좋아한다는 성선설(性善說)적 관점을 보여준다.
21) 比屋可封(비옥가봉): 집집마다 제후로 봉할 만하다는 뜻으로, 온 백성의 덕이 지극히 높아진 이상적인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22) 三人行,必有我師焉...: 『논어』 「술이」편의 유명한 구절이다.
23) 宜鑒于殷, 自求多福: 앞 구절은 『시경』 「대아·문왕」편, 뒷 구절은 「대아·문왕」편을 인용한 『맹자』의 구절이다. 은나라의 멸망을 거울삼아 스스로 덕을 닦아 복을 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잠부론(潛夫論) - 제34편 오덕지(五德志)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自古在昔」,天地開闢。三皇迭制,各樹號謚,以紀其世。天命五代,正朔三復。神明感生,愛興有國。亡于嫚以,滅於積惡。神微精以,天命罔極。或皇馮依,或繼體育。太曎以前尚矣。迪斯用來,頗可紀錄。雖一精思,議而復誤。故撰古訓,著《五德志》。

【번역문 1】
“아득한 옛날”, 천지가 개벽하였습니다. 삼황(三皇)이 번갈아 다스리며 각기 칭호와 시호를 세워 그 시대를 기록하였습니다. 하늘은 오행(五行)의 덕을 지닌 왕조에 차례로 명하고, 정삭(正朔)은 세 번 바뀌었습니다.¹⁾ 신명(神明)이 감응하여 태어나, 사랑으로 나라를 일으켰습니다. (나라는) 교만하고 태만하여 망하고, 쌓인 악으로 멸망합니다. 신(神)은 정미로움을 통해 드러나고, 천명(天命)은 다함이 없습니다. 어떤 이는 황(皇)에게 의지하고, 어떤 이는 그 뒤를 이어 길러졌습니다. 태역(太曎) 이전은 너무나 아득합니다. 이로부터 내려오면서는 자못 기록할 만합니다. 비록 한결같이 정밀하게 생각하여도 논하다 보면 다시 오류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옛 가르침을 편찬하여 《오덕지(五德志)》를 저술합니다.


【원문 2】
世傳三皇五帝,多以為伏羲、神農為三皇;其一者或曰燧人,或曰祝融,或曰女媧。其是與非,未可知也。我聞古有天皇、地皇、人皇,以為或及此謂,亦不敢明。凡斯數,其於五經,皆無正文。故略依《易繫》,記伏羲以來,以遺後賢。雖多未必獲正,然罕可以浮游博觀,共求厥真。

【번역문 2】
세상에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전해지는데, 대부분 복희(伏羲)와 신농(神農)을 삼황에 포함시키고, 그 나머지 한 명은 수인(燧人)이라고도 하고, 축융(祝融)이라고도 하며, 여와(女媧)라고도 합니다. 그 옳고 그름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듣건대 옛날에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이 있었다고 하니, 아마도 이들을 이르는 듯하나 또한 감히 분명히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무릇 이러한 것들은 오경(五經)에 모두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략 《역경(易經)》의 「계사전(繫辭傳)」에 의거하여 복희 이래를 기록하여, 후대의 현인들에게 남깁니다. 비록 많은 내용이 반드시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으나, 드물게나마 널리 살펴보고 함께 그 참됨을 구하는 데 쓰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원문 3】
大人迹出雷澤,華胥履之生伏羲。其相日角,世號太曎。都于陳。其德木,以龍紀,故為龍師而龍名。作八卦,結繩為網以漁。

【번역문 3】
뇌택(雷澤)에 거인(大人)의 발자국이 나타나자, 화서(華胥)가 그것을 밟고 복희(伏羲)를 낳았습니다. 그의 관상은 일각(日角)이었고, 세상에서는 태역(太曎)이라 불렀습니다.²⁾ 진(陳)에 도읍하였습니다. 그의 덕(德)은 목(木)에 해당하고 용(龍)으로써 벼슬을 기록하였으므로, 용(龍)을 스승으로 삼고 용(龍)으로 벼슬 이름을 삼았습니다. 팔괘(八卦)를 만들고, 끈을 엮어 그물을 만들어 고기잡이를 하였습니다.


【원문 4】
後嗣帝嚳,代顓頊氏。其相戴十,其號高辛。厥質神靈,德行祇肅,迎逆日月,順天之則,能敘三辰以周民。作樂《六英》。世有才子八人:伯奮、仲堪、叔獻、季仲、伯虎、仲雄、叔豹、季狸,忠肅恭懿,宣慈惠和,天下之人謂之八元。

【번-역문 4】
그 후손인 제곡(帝嚳)은 전욱(顓頊)씨를 이었습니다. 그의 관상은 머리에 십(十)자 무늬가 있는 것이었고, 그의 칭호는 고신(高辛)이었습니다. 그 바탕이 신령하고 덕행이 공경스럽고 엄숙하였으며, 해와 달의 운행을 맞이하고 보내며 하늘의 법칙에 순응하였고, 능히 삼진(三辰)의 질서를 세워 백성을 두루 다스렸습니다.³⁾ 음악 《육영(六英)》을 지었습니다. 세상에 재능 있는 아들 여덟 명이 있었으니, 백분(伯奮), 중감(仲堪), 숙헌(叔獻), 계중(季仲), 백호(伯虎), 중웅(仲雄), 숙표(叔豹), 계리(季狸)입니다. 이들은 충성스럽고 엄숙하며 공손하고 아름다우며, 자애롭고 은혜로우며 온화하여, 천하 사람들이 이들을 팔원(八元)이라 불렀습니다.


【원문 5】
後嗣姜嫄,履大人迹生姬棄。厥相披頤。為堯司徒,又主播種,農植嘉穀。堯遭水災,萬民以濟。故舜命曰后稷。初,烈山氏之有天下也,其子曰柱,能植百穀,故立以為稷,自夏以上祀之。周之興也,以棄代之,至今祀之。

【번역문 5】
그 후손인 강원(姜嫄)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희(姬)씨 성을 가진 기(棄)를 낳았습니다. 그의 관상은 턱이 넓은 것이었습니다. 요(堯)임금 때 사도(司徒)가 되었고, 또한 파종을 주관하여 농사짓고 좋은 곡식을 심었습니다. 요임금이 홍수를 만났을 때, 만백성이 그로 인해 구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순(舜)임금이 그에게 후직(后稷)이라는 벼슬을 명하였습니다. 처음에 열산씨(烈山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 그 아들 주(柱)가 능히 온갖 곡식을 심었으므로, 그를 세워 직(稷)으로 삼고 하(夏)나라 이전부터 그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주(周)나라가 흥하자, 기(棄)로써 그를 대신하여 지금까지 그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원문 6】
大妊夢長人感己,生文王。厥相四乳。為西伯,興於岐。斷虞、芮之訟而始受命。武王駢齒,勝殷遏劉,成周道。姬之別封眾多,管、蔡、成、霍、魯、衛、毛、聃、郜、雍、曹、滕、畢、原、酆、郇,文之昭也。邘、晉、應、韓,武之穆也。凡、蔣、邢、茆、祚、祭,周公之胤也。周、召、虢、吳、隨、邠、方、卬、自、潘、養、滑、鎬、宮、密、榮、丹、郭、楊、逄、管、唐、韓、楊、觚,欒、甘、鱗虞、王氏,皆姬姓也。

【번역문 6】
태임(大妊)이 꿈에 장인(長人)이 자신에게 감응하는 것을 보고 문왕(文王)을 낳았습니다. 그의 관상은 네 개의 젖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서백(西伯)이 되어 기산(岐山)에서 일어났습니다. 우(虞)와 예(芮)의 송사를 판결하고 비로소 천명(天命)을 받았습니다. 무왕(武王)은 이가 나란히 붙은 관상이었는데, 은(殷)나라를 이기고 살육을 막아 주(周)나라의 도(道)를 이루었습니다. 희(姬)씨에서 갈라져 봉해진 이가 많으니, 관(管)·채(蔡)·성(成)·곽(霍)·노(魯)·위(衛)·모(毛)·담(聃)·고(郜)·옹(雍)·조(曹)·등(滕)·필(畢)·원(原)·풍(酆)·순(郇)은 문왕의 소목(昭穆) 중 소(昭)에 해당합니다. 우(邘)·진(晉)·응(應)·한(韓)은 무왕의 소목 중 목(穆)에 해당합니다. 범(凡)·장(蔣)·형(邢)·모(茆)·조(祚)·채(祭)는 주공(周公)의 후손입니다. 주(周)·소(召)·괵(虢)·오(吳)·수(隨)·빈(邠)·방(方)·앙(卬)·자(自)·반(潘)·양(養)·활(滑)·호(鎬)·궁(宮)·밀(密)·영(榮)·단(丹)·곽(郭)·양(楊)·방(逄)·관(管)·당(唐)·한(韓)·양(楊)·고(觚), 난(欒)·감(甘)·인우(鱗虞)·왕(王)씨는 모두 희(姬)씨 성입니다.


【원문 7】
有神龍首出常,感妊姒,生赤帝魁隗。身號炎帝,世號神農,代伏羲氏。其德火紀,故為火師而火名。是以斲木為耜,揉木為耒耨。日中為市,致天下之民,聚天下之貨,交易而退,各得其所。

【번역문 7】
신령한 용의 머리가 상(常) 땅에 나타나, 임사(妊姒)에게 감응하여 적제(赤帝) 괴외(魁隗)를 낳았습니다. 그의 몸소 칭호는 염제(炎帝)요, 세상의 칭호는 신농(神農)이니, 복희씨를 이었습니다. 그의 덕(德)은 화(火)로써 기록되었으므로, 불(火)을 스승으로 삼고 불(火)로 벼슬 이름을 삼았습니다. 이로써 나무를 깎아 보습을 만들고, 나무를 휘어 쟁기와 김매는 호미를 만들었습니다. 한낮에 시장을 열어 천하의 백성을 오게 하고 천하의 재물을 모아, 교역하고 물러가 각기 원하는 바를 얻게 하였습니다.


【원문 8】
後嗣慶都,與龍合婚,生伊堯。代高辛氏。其眉八彩。世號唐。作樂《大章》。始禪位。武王克殷,而封其冑於鑄。

【번역문 8】
그 후손인 경도(慶都)가 용과 혼인하여 이요(伊堯)를 낳았으니, 고신씨를 이었습니다. 그의 눈썹은 여덟 가지 채색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당(唐)이라 불렀습니다. 음악 《대장(大章)》을 지었습니다. 비로소 선위(禪位)를 시작하였습니다. 무왕이 은나라를 이기고 그 후손을 주(鑄) 땅에 봉하였습니다.


【원문 9】
含始吞赤珠,剋曰「玉英生漢」,龍感女媼,劉季興。

【번역문 9】
함시(含始)가 붉은 구슬을 삼키니, 점괘에 “옥의 정기가 한(漢)을 낳으리라”고 하였고, 용이 여온(女媼)에게 감응하여 유계(劉季)가 일어났습니다.⁴⁾


【원문 10】
大電繞樞炤野,感符寶,生黃帝軒轅。代炎帝氏。其相龍顏,其德土行。以雲紀,故為雲師而雲名。作樂《咸池》。是始制衣裳。

【번-역문 10】
큰 번개가 북두칠성을 두르고 들판을 비추어, 부보(符寶)에게 감응하여 황제(黃帝) 헌원(軒轅)을 낳았습니다. 염제씨를 이었습니다. 그의 관상은 용의 얼굴이었고, 그의 덕(德)은 토(土)의 운행에 해당하였습니다. 구름(雲)으로써 벼슬을 기록하였으므로, 구름(雲)을 스승으로 삼고 구름(雲)으로 벼슬 이름을 삼았습니다. 음악 《함지(咸池)》를 지었습니다. 이로써 비로소 의상(衣裳)을 만들었습니다.


【원문 11】
後嗣握登,見大虹,意感生重華虞舜。其目重瞳。事堯,堯乃禪位曰:「格爾舜!天之曆數在爾躬。允執厥中,四海困窮,天祿永終。」乃受終于文祖。也號有虞。作樂《九韶》。禪位於禹。武王克殷,而封胡公媯滿於陳,庸以元女大姬。

【번역문 11】
그 후손인 악등(握登)이 큰 무지개를 보고 마음에 감응하여 중화(重華) 우순(虞舜)을 낳았습니다. 그의 눈은 눈동자가 두 개였습니다. 요(堯)임금을 섬기자, 요임금이 이에 선위하며 말하기를, “오라, 그대 순(舜)이여! 하늘의 역수(曆數)가 그대 몸에 있도다. 진실로 그 중심을 잡으라. 사해가 곤궁해지면, 하늘의 녹(祿)이 영원히 끝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문조(文祖)의 사당에서 천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유우(有虞)라고도 불렀습니다. 음악 《구소(九韶)》를 지었습니다. 우(禹)에게 선위하였습니다. 무왕이 은나라를 이기고 호공(胡公) 규만(媯滿)을 진(陳) 땅에 봉하고, 맏딸 대희(大姬)를 시집보냈습니다.


【원문 12】
大星如虹,下流華渚,女節萬接,生白帝摯青陽。世號少曎。代黃帝氏,都于曲阜。其德金行。其立也,鳳皇適至,故紀於鳥。鳳氏、曆正也,玄鳥氏、司分者也,伯趙氏、司至者也,青鳥氏、司啟者也,丹鳥氏、司閉者也。祝鳩氏、司徒也,雎鳩氏、司馬也,尸鳩氏、司空也,爽鳩氏、司寇也,鶻鳩氏、司事也。五鳩、鳩民者也。五雉為五工正,利器用,夷民者也。是故作書契,「百官以治,萬民以察。」有才子四人,曰重,曰該,曰脩,曰熙,實能金木及水,故重為勾芒,該為蓐收,脩及熙為玄冥。恪恭厥業,世不失職,遂濟窮桑。

【번-역문 12】
무지개 같은 큰 별이 화저(華渚)로 흘러내려, 여절(女節)이 이를 만나 백제(白帝) 지(摯) 청양(青陽)을 낳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소역(少曎)이라 불렀습니다. 황제씨를 이어 곡부(曲阜)에 도읍하였습니다. 그의 덕(德)은 금(金)의 운행에 해당하였습니다. 그가 즉위하자 봉황이 마침 이르렀으므로, 새로써 벼슬을 기록하였습니다. 봉씨(鳳氏)는 역법을 바로잡는 벼슬이요, 현조씨(玄鳥氏)는 춘분과 추분을 맡은 자이며, 백조씨(伯趙氏)는 동지와 하지를 맡은 자이고, 청조씨(青鳥氏)는 입춘과 입하를 맡은 자이며, 단조씨(丹鳥氏)는 입추와 입동을 맡은 자입니다. 축구씨(祝鳩氏)는 사도(司徒)요, 저구씨(雎鳩氏)는 사마(司馬)이며, 시구씨(尸鳩氏)는 사공(司空)이요, 상구씨(爽鳩氏)는 사구(司寇)이며, 골구씨(鶻鳩氏)는 여러 일을 맡은 자입니다. 오구(五鳩)는 백성을 모으는 자입니다. 오치(五雉)는 다섯 공관(工官)의 우두머리로서, 기물을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자입니다. 이런 까닭에 서계(書契)를 만들어, “모든 관리가 이로써 다스려지고, 만백성이 이로써 살펴졌다”고 합니다. 재능 있는 아들 네 명이 있었으니, 중(重), 해(該), 수(脩), 희(熙)입니다. 이들은 실로 금(金)·목(木)과 수(水)를 잘 다스렸으므로, 중은 구망(勾芒)이 되고, 해는 욕수(蓐收)가 되었으며, 수와 희는 현명(玄冥)이 되었습니다.⁵⁾ 삼가 공손히 그 직업에 힘써 대대로 직책을 잃지 않고, 마침내 궁상(窮桑) 땅을 구제하였습니다.


【원문 13】
後嗣脩紀,見流星,意感生白帝文命我禹。其耳參漏。為堯司空,主平水土,命山川,畫九州,制九貢。功成,賜玄珪,以告勳于天。舜乃禪位,命如堯詔,禹乃即位。作樂《大夏》。世號夏后。

【번역문 13】
그 후손인 수기(脩紀)가 유성을 보고 마음에 감응하여 백제(白帝) 문명(文命) 우리 우(禹)를 낳았습니다. 그의 귀는 구멍이 셋이었습니다. 요(堯)임금 때 사공(司空)이 되어, 물과 흙을 다스리는 일을 주관하고, 산과 강에 이름을 붙이며, 구주(九州)를 구획하고, 구공(九貢)을 제정하였습니다. 공을 이루자 현규(玄珪)를 하사받아, 하늘에 공훈을 고하였습니다. 순(舜)임금이 이에 선위하며 요임금의 조서와 같이 명하니, 우가 이에 즉위하였습니다. 음악 《대하(大夏)》를 지었습니다. 세상에서는 하후(夏后)라 불렀습니다.


【원문 14】
傳嗣子啟。啟子太康、仲康更立。兄弟五人,皆有昏德,不堪帝事,降須洛汭,是謂五觀。

【번역문 14】
아들 계(啟)에게 전위하였습니다. 계의 아들 태강(太康)과 중강(仲康)이 번갈아 즉위하였습니다. 형제 다섯 명이 모두 어두운 덕이 있어 제왕의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낙수(洛水) 가에 내려와 머물렀으니, 이를 일러 오관(五觀)이라 합니다.


【원문 15】
孫相嗣位,夏道浸衰。於是后羿自鉏遷于窮石,因夏民以代夏政,滅相。妃后緡方娠,逃出自竇,奔于有仍,生少康焉。仍妃牧正。

【번역문 15】
손자 상(相)이 즉위하자, 하(夏)나라의 도가 점점 쇠퇴하였습니다. 이에 후예(后羿)가 서(鉏) 땅에서 궁석(窮石)으로 옮겨와, 하나라 백성에게 의지하여 하왕조의 정치를 대신하고, 상(相)을 멸망시켰습니다. 상의 비(妃) 후민(后緡)이 마침 임신 중이었는데, 구멍으로 도망쳐 나와 유잉(有仍)씨에게로 달아나 소강(少康)을 낳았습니다. 유잉씨의 비는 목정(牧正)이었습니다.


【원문 16】
羿恃己射也,不脩民事,而淫于原獸;棄武羅、伯因、熊髡、尨圉,而用寒浞。浞、柏明氏讒子弟也。柏明氏惡而棄之。夷羿收之,信而使之,以為己相。浞行媚于內,施賂于外,愚弄于民,虞羿于田,樹之詐匿,以取其國家,外內咸服。羿猶不悛,將歸自田,家眾殺而烹之,以食其子,子不忍食諸,死于窮門。

【번-역문 16】
예(羿)는 자신의 활쏘기만 믿고 백성의 일은 돌보지 않으며 들에서 짐승 사냥에만 빠졌고, 무라(武羅)·백인(伯因)·웅혼(熊髡)·방어(尨圉)와 같은 충신들을 버리고 한착(寒浞)을 등용하였습니다. 착(浞)은 백명씨(柏明氏)의 참소하는 자제였습니다. 백명씨가 그를 미워하여 버리자, 동이족 예(羿)가 그를 거두어 믿고 써서 자신의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착(浞)은 안으로는 아첨하고 밖으로는 뇌물을 뿌리며,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고 예(羿)가 사냥하는 것을 틈타, 속임수와 숨은 계략을 세워 그 나라를 빼앗으니, 안팎이 모두 복종하였습니다. 예(羿)가 여전히 뉘우치지 않자, 사냥에서 돌아오려 할 때 집안의 무리가 그를 죽여 삶아서 그 아들에게 먹이려 하니, 아들이 차마 그것을 먹지 못하고 궁문(窮門)에서 죽었습니다.


【원문 17】
靡奔于有鬲氏。浞因羿室生澆及𤡬,恃其讒慝詐偽,而不德于民,使澆用師,滅斟灌及斟尋氏,處𤡬于過,處澆于戈,使椒求少康。逃奔有虞,為之胞正。虞思妻以二妃,而邑諸綸,有田一成,有眾一旅,能布其德,而兆其謀,以收夏眾,撫其官職。靡自有鬲收二國之燼,以滅浞,而立少康焉。乃使女艾誘澆,使后杼誘𤡬,遂滅過、戈,復禹之績,祀夏配天,不失舊物。十有七世而桀亡天下。

【번역문 17】
미(靡)는 유격씨(有鬲氏)에게로 달아났습니다. 착(浞)은 예(羿)의 아내와 관계하여 교(澆)와 희(𤡬)를 낳고, 그 참소와 사악함, 속임수를 믿고 백성에게 덕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교(澆)를 시켜 군대를 쓰게 하여, 짐관(斟灌)씨와 짐심(斟尋)씨를 멸망시키고, 희(𤡬)는 과(過) 땅에, 교(澆)는 과(戈) 땅에 머물게 하고, 초(椒)를 시켜 소강(少康)을 찾게 하였습니다. (소강은) 유우(有虞)씨에게로 달아나, 그곳의 포정(庖正)이 되었습니다. 유우씨의 임금은 두 딸을 아내로 주고 그를 윤(綸) 땅에 봉해주니, 밭 일 성(一成)과 군사 일 려(一旅)를 갖게 되었습니다. 능히 그 덕을 펴고 그 계책을 시작하여, 하(夏)나라의 유민을 거두고 그 관직을 어루만졌습니다. 미(靡)는 유격씨로부터 두 나라의 남은 무리를 거두어 착(浞)을 멸망시키고, 소강(少康)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에 여애(女艾)를 시켜 교(澆)를 유인하고, 후저(后杼)를 시켜 희(𤡬)를 유인하여, 마침내 과(過)와 과(戈)를 멸망시키고 우(禹)의 공적을 회복하여, 하(夏)나라의 제사를 하늘에 배향하고 옛 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17대를 지나 걸(桀)에 이르러 천하를 잃었습니다.


【원문 18】
武王克殷,而封其後於杞,或封於繒。又封少曎之冑於祁。

【번역문 18】
무왕이 은나라를 이기고, 그 후손을 기(杞)나라에 봉하고, 혹은 증(繒)나라에 봉하였습니다. 또한 소역(少曎)의 후손을 기(祁) 땅에 봉하였습니다.


【원문 19】
澆才力蓋眾,驟其勇武而卒以亡。故南宮括曰:「羿善射,奡盪舟,俱不得其死也。」

【번역문 19】
교(澆)는 재주와 힘이 뭇사람을 압도하였으나, 그 용맹과 무력을 함부로 부리다가 마침내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남궁괄(南宮括)이 말하기를, “예(羿)는 활을 잘 쏘았고, 오(奡, 교의 다른 이름)는 배를 잘 저었으나, 모두 제명에 죽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⁶⁾


【원문 20】
姒姓分氏,夏后、有扈、有南、斟尋、泊㳶、辛、襄、費、戈、冥、繒,皆禹後也。

【번역문 20】
사(姒)씨 성에서 갈라져 나온 씨족은, 하후(夏后)·유호(有扈)·유남(有南)·짐심(斟尋)·박유(泊㳶)·신(辛)·양(襄)·비(費)·과(戈)·명(冥)·증(繒)이니, 모두 우(禹)의 후손입니다.


【원문 21】
搖光如月正日,感女樞幽防之宮,生黑帝顓頊。其相駢幹。身號高陽,世號共工。代少曎氏。其德水行,以水紀,故為水師而水名。承少曎衰,九黎亂德,乃命重黎討訓服。曆象日月,東西南北。作樂《五英》。有才子八人,蒼舒、隤凱、擣演、大臨、尨降、庭堅、仲容、叔達,齊聖廣淵,明允篤誠,天下之人謂之八凱。共工氏有子曰勾龍,能平九土,故號后土,死而為社,天下祀之。

【번-역문 21】
요광(搖光)이 달처럼 해를 바로 비추어, 여추(女樞)가 유방(幽防)의 궁에서 감응하여 흑제(黑帝) 전욱(顓頊)을 낳았습니다. 그의 관상은 갈비뼈가 붙은 것이었습니다. 몸소 칭호는 고양(高陽)이요, 세상의 칭호는 공공(共工)이니, 소역씨를 이었습니다. 그의 덕(德)은 수(水)의 운행에 해당하고, 물(水)로써 벼슬을 기록하였으므로, 물(水)을 스승으로 삼고 물(水)로 벼슬 이름을 삼았습니다. 소역씨가 쇠하고 구려(九黎)가 덕을 어지럽히자, 이에 중(重)과 여(黎)에게 명하여 토벌하고 가르쳐 복종하게 하였습니다. 해와 달의 운행을 관측하고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하였습니다. 음악 《오영(五英)》을 지었습니다. 재능 있는 아들 여덟 명이 있었으니, 창서(蒼舒)·퇴개(隤凱)·도언(擣演)·대림(大臨)·방강(尨降)·정견(庭堅)·중용(仲容)·숙달(叔達)입니다. 이들은 지혜가 가지런하고 성스러우며 넓고 깊고, 밝고 진실하며 돈독하고 성실하여, 천하 사람들이 이들을 팔개(八凱)라 불렀습니다. 공공씨에게 구룡(勾龍)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능히 아홉 땅을 평정하였으므로 후토(后土)라 불렀고, 죽어서 사(社)가 되니 천하가 그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원문 22】
娀簡吞燕卵生子契,為堯司徒,職親百姓,順五品。

【번역문 22】
유융(有娀)씨의 딸 간적(簡狄)이 제비 알을 삼키고 아들 설(契)을 낳았으니, 요(堯)임금 때 사도(司徒)가 되어, 백성을 친애하고 오품(五品)을 순하게 하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원문 23】
扶都見白氣貫月,意感生黑帝子履,其相二肘。身號湯,世號殷。致太平。

【번역문 23】
부도(扶都)가 흰 기운이 달을 꿰뚫는 것을 보고 마음에 감응하여 흑제(黑帝)의 아들 리(履)를 낳았으니, 그의 관상은 팔꿈치가 두 개씩 있는 것이었습니다. 몸소 칭호는 탕(湯)이요, 세상의 칭호는 은(殷)이니, 태평을 이루었습니다.


【원문 24】
後衰,乃生武丁。即位,默以不言,思道三年,而夢獲賢人以為師。乃使以夢像求之四方側陋,得傅說,方以胥靡築於傅巖。升以為大公,而使朝夕規諫。恐其布憚怠也,則勑曰:「若金,用汝作礪;若濟巨川,用汝作舟楫;若時大旱,用汝作霖雨。啟乃心,沃朕心。若藥不瞑眩,厥疾不瘳;若跣不視地,厥足用傷。爾交脩余,無棄!」故能中興,稱號高宗。及帝辛而亡,天下謂之紂。

【번역문 24】
후에 쇠하여, 이에 무정(武丁)이 태어났습니다. 즉위하여, 침묵하며 말하지 않고 3년 동안 도(道)를 생각하다가, 꿈에 어진 사람을 얻어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꿈속의 형상대로 사방의 미천한 곳에서 찾게 하여 부열(傅說)을 얻었는데, 그는 마침 서미(胥靡)의 형벌을 받고 부험(傅巖)에서 성을 쌓고 있었습니다. 그를 등용하여 태공(大公)으로 삼고, 아침저녁으로 바로잡고 간언하게 하였습니다. 그가 널리 알리는 것을 꺼리고 게을리할까 두려워, 칙령을 내려 말하기를, “쇠라면, 너를 숫돌로 삼겠다. 큰 강을 건넌다면, 너를 배와 노로 삼겠다. 때마침 큰 가뭄이라면, 너를 단비로 삼겠다. 너의 마음을 열어 나의 마음에 물을 대어라. 만약 약이 명현(瞑眩)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 병이 낫지 않고, 만약 맨발로 땅을 보지 않으면 그 발이 다칠 것이다. 너는 나를 함께 닦아, 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능히 중흥하여, 고종(高宗)이라 칭하였습니다. 제신(帝辛)에 이르러 망하니, 천하가 그를 주(紂)라 불렀습니다.


【원문 25】
武王封微子於宋,封箕子於朝鮮。

【번역문 25】
무왕은 미자(微子)를 송(宋)나라에 봉하고,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하였습니다.


【원문 26】
子姓分氏,殷、時、來、宋、扐、蕭、空同、北段,皆湯後也。

【번역문 26】
자(子)씨 성에서 갈라져 나온 씨족은, 은(殷)·시(時)·래(來)·송(宋)·륵(扐)·소(蕭)·공동(空同)·북단(北段)이니, 모두 탕(湯)의 후손입니다.


주석 (Footnotes)

1) 天命五代,正朔三復(천명오대, 정삭삼복): ‘오대(五代)’는 오행(五行)의 덕(德)에 따라 차례로 흥망하는 다섯 왕조를 의미하는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을 가리킨다. ‘정삭삼복(正朔三復)’은 하(夏)·은(殷)·주(周) 세 왕조가 각각 다른 달(인월(寅月), 축월(丑月), 자월(子月))을 정월(正月)로 삼았던 것을 말한다.
2) 日角(일각): 고대 관상학에서 제왕의 상(相)으로 여겨졌던 특징 중 하나. 이마의 뼈가 솟아 해와 같이 둥근 모양을 한 것을 말한다. ‘태역(太曎)’은 복희씨의 다른 칭호이다.
3) 三辰(삼진): 해(日), 달(月), 별(星)을 가리킨다. 즉, 천체의 운행 질서를 바로잡았다는 의미이다.
4) 含始吞赤珠...劉季興(함시탄적주...유계흥):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 자는 季)의 탄생 신화이다. ‘함시(含始)’는 유방의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여온(女媼)’ 역시 유방의 어머니 유온(劉媼)을 뜻한다. 한나라가 화덕(火德)을 지녔다는 사상에 따라, 붉은 구슬, 붉은 용 등 불(火)과 관련된 상징이 나타난다.
5) 勾芒(구망), 蓐收(욕수), 玄冥(현명): 각각 봄(木), 가을(金), 겨울(水)을 주관하는 신(神)의 이름이다. 소호씨의 아들들이 각 계절과 방위를 다스리는 신이 되었다는 신화를 기록한 것이다.
6) 南宮括(남궁괄)...: 이 인용문은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 나온다. 남궁괄은 공자의 제자로, 뛰어난 재능만 믿고 도(道)를 닦지 않으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됨을 예(羿)와 오(奡)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오(奡)’는 한착의 아들 교(澆)의 다른 이름이다.

잠부론(潛夫論) - 제33편 지씨성(志氏姓)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昔者聖王觀象於乾坤,考度於神明,探命曆之去就,省群后之德業,而賜姓命氏,因彰德功。傳稱氏之徹官百,王公之子第千世能聽其官者,而物賜之姓,是謂百姓。姓有徹品,於王謂之千品。昔堯賜契姓,姬;賜禹姓姒,氏曰有夏;伯夷為姜,氏曰有呂。下及三代,官有世功,則有官族,邑亦如之。後世微末,因是以為姓,則不能故也。故或傳本姓,或氏號邑謚,或氏於,爵,或氏於志,若夫五帝三王之世,所謂號也;文、武、昭、景、成、宣、戴、桓,所謂謚也;齊、魯、吳、楚、秦、晉、燕、趙,所謂國也;王氏、侯氏、王孫、公孫,所謂爵也;司馬、司徒、中行、下軍,所謂官也;伯有、孟孫、子服、叔子,所謂字也;巫氏、匠氏、陶氏,所謂事也;東門、西門、南宮、東郭、北郭,所謂居也;三烏、五鹿、青牛、白馬,所謂志也;凡厥姓氏,皆出屬而不可勝紀也。

【번역문 1】
옛날 성왕(聖王)께서는 하늘과 땅의 형상을 관찰하고, 신명(神明)의 뜻을 헤아리며, 천명과 역수(曆數)의 가고 옴을 탐구하고, 여러 제후의 덕업(德業)을 살펴, 성(姓)을 하사하고 씨(氏)를 명하여 그 덕과 공을 드러내셨습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씨(氏)는 백 개의 관직에 통하고, 왕공(王公)의 자제 중 천 세대 동안 그 관직을 맡을 수 있는 자에게 사물의 종류에 따라 성(姓)을 하사하니, 이를 일러 백성(百姓)이라 한다고 합니다. 성(姓)에는 등급이 있으니, 왕에게는 천 개의 등급이 있습니다. 옛날 요(堯)임금은 설(契)에게 희(姬)라는 성을 하사하였고,¹⁾ 우(禹)에게는 사(姒)라는 성을 하사하고 씨(氏)를 유하(有夏)라 하였으며, 백이(伯夷)는 강(姜)씨가 되고 씨를 유려(有呂)라 하였습니다. 아래로 삼대(三代)에 이르러, 관직에 대대로 공이 있으면 관직을 씨족명으로 삼았고, 봉읍(封邑)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후세의 미미한 자들은 이로 인하여 성(姓)으로 삼았으나, 그 유래를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본래의 성(姓)을 전하고, 어떤 이는 칭호·봉읍·시호를 씨(氏)로 삼으며, 어떤 이는 작위(爵位)를, 어떤 이는 상징물(志)을 씨로 삼았습니다. 무릇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의 시대에 이른바 칭호라는 것이 있었고, 문(文)·무(武)·소(昭)·경(景)·성(成)·선(宣)·대(戴)·환(桓)은 이른바 시호(謚號)입니다. 제(齊)·노(魯)·오(吳)·초(楚)·진(秦)·진(晉)·연(燕)·조(趙)는 이른바 나라(國)입니다. 왕씨(王氏)·후씨(侯氏)·왕손씨(王孫氏)·공손씨(公孫氏)는 이른바 작위(爵位)입니다. 사마(司馬)·사도(司徒)·중항(中行)·하군(下軍)은 이른바 관직(官)입니다. 백유(伯有)·맹손(孟孫)·자복(子服)·숙자(叔子)는 이른바 자(字)입니다. 무씨(巫氏)·장씨(匠氏)·도씨(陶氏)는 이른바 직업(事)입니다. 동문(東門)·서문(西門)·남궁(南宮)·동곽(東郭)·북곽(北郭)은 이른바 거주지(居)입니다. 삼오(三烏)·오록(五鹿)·청우(青牛)·백마(白馬)는 이른바 상징물(志)입니다. 무릇 그 모든 성씨는 모두 소속된 곳에서 나왔으니,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원문 2】
衛侯滅邢,昭公娶同姓,言皆同祖也。近古以來,則不必然。古之賜姓,大諦可用,其餘則難。周室衰微,吳、楚僭號,下歷七國,咸各稱王。故王氏、王孫氏、公孫氏及謚氏官,國自有之,千八百國,謚官萬數,故元不可同也。及孫氏者,或王孫之班也,或諸孫之班也,故同祖而異姓,有同姓而異祖。亦有雜錯,變而相入,或從母姓,或避怨讎。夫吹律定姓,唯聖能之。今民散久,鮮克遠音律。天主尊正其祖。故且略紀顯者,以待士合揖損焉。

【번역문 2】
위(衛)나라 후(侯)가 형(邢)나라를 멸망시킨 것이나, (노나라) 소공(昭公)이 동성(同姓)에게 장가든 것은, 모두 같은 조상임을 말하는 것입니다.²⁾ 근고(近古) 이래로는 반드시 그러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성(姓)을 하사한 것은 대체로 쓸 만하나, 그 나머지는 어렵습니다. 주(周)나라 왕실이 쇠미해지자, 오(吳)·초(楚)가 왕호를 참칭하고, 아래로 칠국(七國)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기 왕을 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왕씨(王氏)·왕손씨(王孫氏)·공손씨(公孫氏) 및 시호를 씨로 삼는 것과 관직을 씨로 삼는 것은 나라마다 스스로 있었으니, 천팔백 개 나라에 시호와 관직은 만 가지 수에 이르므로, 그 근원을 같이할 수 없습니다. 또한 손씨(孫氏)라는 것은, 어떤 경우는 왕손(王孫)의 부류이고, 어떤 경우는 여러 손자(諸孫)의 부류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조상이면서 성이 다른 경우가 있고, 성은 같으나 조상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뒤섞이고 변하여 서로 들어가기도 하니, 어떤 경우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어떤 경우는 원수를 피하기 위함입니다. 무릇 율관(律管)을 불어 성(姓)을 정하는 것은 오직 성인만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³⁾ 지금 백성들이 흩어져 산 지 오래되어, 멀리 음률(音律)을 아는 이가 드뭅니다. 하늘의 주재자는 그 조상을 높이고 바로잡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대략 드러난 것들을 기록하여, 선비들이 모여 검토하고 덜어내기를 기다립니다.


【원문 3】
伏羲姓風,其後封任、宿、須朐、顓臾四國,實司太曎與有濟之祀,且為東蒙主。魯僖公母成風,蓋須朐之女也。季氏欲伐顓臾,而孔子譏之。

【번역문 3】
복희(伏羲)의 성은 풍(風)씨이며, 그 후손은 임(任)·숙(宿)·수구(須朐)·전유(顓臾) 네 나라에 봉해져, 실로 태역(太曎)과 유제(有濟)의 제사를 주관하고, 또한 동몽산(東蒙山)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노(魯)나라 희공(僖公)의 어머니 성풍(成風)은 아마도 수구(須朐)의 딸일 것입니다. 계씨(季氏)가 전유를 치려 하자, 공자께서 이를 비난하셨습니다.


【원문 4】
炎帝苖冑,四嶽伯夷,為堯典禮,「折民惟刑」,以封申、呂。裔生尚,為文王師,克殷而封之齊,或封許、向,或封於紀,或封於申。城在南陽宛北序山之下,故《詩》云:「亹亹申伯,王薦之事,于邑于序,南國為式。」宛西三十里有呂望。許在潁川,今許縣是也。姜戎居伊、洛之間,晉惠公徙置陸渾。州、薄、甘、戲、露、帖,及齊之國氏、高氏、襄、隰氏、士氏強氏、東郭氏、雍門氏、子雅氏、子尾氏、子襄氏、子淵氏、子乾氏、公旗氏、翰公氏、賀氏、盧氏,皆姜姓也。

【번-역문 4】
염제(炎帝)의 후손인 사악(四嶽) 백이(伯夷)는 요(堯)임금 때 예법을 주관하며, “백성을 판결함에 오직 형벌로써 한다”고 하여, 신(申)과 여(呂)에 봉해졌습니다. 그 후손으로 상(尚)이 태어나 문왕(文王)의 스승이 되었고, 은(殷)나라를 이기고 제(齊)나라에 봉해졌습니다. 혹은 허(許)·향(向)에 봉해지기도 하고, 기(紀)나라나 신(申)나라에 봉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신(申)나라의 성은 남양(南陽) 완현(宛縣) 북쪽 서산(序山) 아래에 있었으므로,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부지런한 신백(申伯)이여, 왕께서 그 일을 천거하시어, 서(序) 땅에 도읍을 정하니, 남쪽 나라의 법도가 되었네”라고 하였습니다. 완현 서쪽 삼십 리에 여망(呂望)의 유적이 있습니다. 허(許)나라는 영천(潁川)에 있었으니, 지금의 허현(許縣)이 바로 그곳입니다. 강성(姜姓)의 융족(戎族)은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사이에 살았는데, 진(晉)나라 혜공(惠公)이 육혼(陸渾)으로 옮겨 살게 하였습니다. 주(州)·박(薄)·감(甘)·희(戲)·노(露)·첩(帖)씨, 그리고 제나라의 국씨(國氏)·고씨(高氏)·양씨(襄氏)·습씨(隰氏)·사씨(士氏)·강씨(強氏)·동곽씨(東郭氏)·옹문씨(雍門氏)·자아씨(子雅氏)·자미씨(子尾氏)·자양씨(子襄氏)·자연씨(子淵氏)·자건씨(子乾氏)·공기씨(公旗氏)·한공씨(翰公氏)·하씨(賀氏)·노씨(盧氏)는 모두 강(姜)씨 성입니다.


【원문 5】
黃帝之子二十五人,班為十二:姬、酉、祁、己、勝、蔵、伾、拘、釐、姞、衣氏也。當春秋,晉有祁奚,舉子薦讎,以忠直著。莒子姓己氏。夏之興,有任奚為夏車正,以封於薛,後遷于祁,其嗣仲𧈭居薛,為湯左相。王季之妃大任,及謝、章、昌、采、祝、結、泉、卑、遇、狂大氏,皆任姓也。台氏女為后稷元妃,繁育周先。姞氏封於燕,及鄭文公有賤妾燕姞,夢神與之蘭曰:「余為伯儵,余而祖也。以是有國香,人服媚。」及文公見姞,賜蘭而御之。姞言其夢,且曰:「妾不才,幸而有子,將不信,敢徵蘭乎?」公曰:「諾。」遂生穆公。姞氏之別,有闞、尹、蔡、光、魯、雍、斷、密須氏。及漢,河東有郅都,汝南有郅君章,姓音與古姞同,而書其字異,二人皆著名當世。

【번역문 5】
황제(黃帝)의 아들 스물다섯 명 중, (성이 다른) 열두 씨족으로 나뉘었으니, 희(姬)·유(酉)·기(祁)·기(己)·승(勝)·장(蔵)·비(伾)·구(拘)·리(釐)·길(姞)·의(衣)씨입니다.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에 기해(祁奚)가 있었는데, 아들을 천거하고 원수를 추천하여 충직함으로 이름이 났습니다. 거(莒)나라 군주의 성은 기(己)씨입니다. 하(夏)나라가 흥할 때, 임해(任奚)라는 이가 있어 하나라의 거정(車正)이 되어 설(薛) 땅에 봉해졌다가, 후에 기(祁) 땅으로 옮겼습니다. 그 후손 중훼(仲𧈭)는 설(薛) 땅에 살면서 탕(湯)임금의 좌상(左相)이 되었습니다. 왕계(王季)의 비(妃)인 태임(大任), 그리고 사(謝)·장(章)·창(昌)·채(采)·축(祝)·결(結)·천(泉)·비(卑)·우(遇)·광대(狂大)씨는 모두 임(任)씨 성입니다. 태씨(台氏)의 딸은 후직(后稷)의 원비(元妃)가 되어 주(周)나라의 선조를 번성하게 하였습니다. 길(姞)씨는 연(燕)나라에 봉해졌고, 정(鄭)나라 문공(文公)에게 연(燕)나라 출신의 천한 첩 연길(燕姞)이 있었는데, 꿈에 신(神)이 그녀에게 난초를 주며 말하기를, “나는 백숙(伯儵)이니, 나는 너의 조상이다. 이로써 나라의 향기를 지니게 되니, 사람들이 그 향기를 지니면 사랑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문공이 길(姞)을 보고 난초를 하사하고 동침하였습니다. 길(姞)이 그 꿈을 말하고, 또한 말하기를, “첩이 재주가 없어, 다행히 아들을 낳더라도 믿지 않으실 것이니, 감히 난초로써 증표를 삼아도 되겠습니까?”라고 하니, 공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목공(穆公)을 낳았습니다. 길(姞)씨에서 갈라져 나온 씨족으로는 감(闞)·윤(尹)·채(蔡)·광(光)·노(魯)·옹(雍)·단(斷)·밀수(密須)씨가 있습니다. 한(漢)나라 때에 이르러, 하동(河東)에 질도(郅都)가 있었고, 여남(汝南)에 질군장(郅君章)이 있었는데, 성의 음은 옛 길(姞)씨와 같으나 글자는 다릅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당대에 이름이 났습니다.


【원문 6】
少曎氏之世衰,而九黎亂德,顓頊受之,乃命南正重司天以屬神,命火正黎司地以屬民,使復舊常,無相侵瀆,是謂絕地天通。夫黎、顓頊氏裔子吳回也。為高辛氏火正,淳燿天明地德,光四海也,故名祝融。後三苗復九黎之德,堯繼重、黎之後不忘舊者,羲伯復治之。故重黎氏世序天地,別其分主,以歷三代,而封於程。其在周世,為宣王大司馬,《詩》美「王謂尹氏,命程伯休父」。其後失守,適晉為司馬,遷自謂其後。

【번-역문 6】
소역(少曎)씨의 시대가 쇠하고 구려(九黎)가 덕을 어지럽히자, 전욱(顓頊)이 이를 이어받아, 남정(南正) 중(重)에게 명하여 하늘을 맡아 신(神)에 속하게 하고, 화정(火正) 여(黎)에게 명하여 땅을 맡아 백성에게 속하게 하여, 옛 떳떳함으로 돌아가 서로 침범하고 더럽히지 않게 하였으니, 이를 일러 ‘절지천통(絕地天通)’이라 합니다. 무릇 여(黎)는 전욱씨의 후손인 오회(吳回)입니다. 고신씨(高辛氏)의 화정(火正)이 되어, 하늘의 밝음과 땅의 덕을 순수하게 빛내어 온 세상을 비추었으므로, 축융(祝融)이라 이름하였습니다. 후에 삼묘(三苗)가 다시 구려의 덕을 행하자, 요(堯)임금이 중(重)과 여(黎)의 후손 중 옛것을 잊지 않은 자를 이어, 희백(羲伯)이 다시 이를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중려(重黎)씨는 대대로 천지의 질서를 세우고, 그 맡은 바를 구별하여 삼대(三代)를 지냈으며, 정(程)나라에 봉해졌습니다. 주(周)나라 시대에는 선왕(宣王)의 대사마(大司馬)가 되었으니, 《시경》에서는 “왕께서 윤씨(尹氏)에게 이르시어, 정백(程伯) 휴보(休父)에게 명하셨네”라고 칭송하였습니다. 그 후손이 봉지를 잃고 진(晉)나라로 가서 사마(司馬)가 되었는데, 천(遷)은 스스로 그 후손이라고 칭하였습니다.


【원문 7】
祝融之孫,分為八姓:己、禿、彭、姜、妘、曹、斯、牟。己姓之嗣飂叔安,其裔子曰董父,實甚好龍,能求其嗜欲以飲食之,龍多歸焉。乃學擾龍,以事帝舜。賜姓曰董,氏曰豢龍,封諸朡川。朡夷、彭姓豕韋,皆能馴龍者也。豢龍逄以忠諫,桀殺之。凡因祝融之子孫,己姓之班,昆吾、藉、扈、溫、董。

【번역문 7】
축융(祝融)의 손자는 여덟 성(姓)으로 나뉘었으니, 기(己)·독(禿)·팽(彭)·강(姜)·운(妘)·조(曹)·사(斯)·모(牟)입니다. 기(己)씨 성의 후손인 요숙안(飂叔安)의 후손으로 동보(董父)라는 이가 있었는데, 실로 용을 매우 좋아하여 능히 그 기호와 욕구를 찾아내어 먹이니, 용들이 많이 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이에 용을 길들이는 법을 배워 순(舜)임금을 섬겼습니다. 동(董)이라는 성을 하사받고, 씨(氏)를 환룡(豢龍)이라 하였으며, 동천(朡川)에 봉해졌습니다. 동이(朡夷)와 팽(彭)씨 성의 시위(豕韋)는 모두 능히 용을 길들인 자들입니다. 환룡씨 방(逄)은 충성스러운 간언으로 인하여 걸(桀)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무릇 축융의 자손으로, 기(己)씨 성의 부류에는 곤오(昆吾)·자(藉)·호(扈)·온(溫)·동(董)씨가 있습니다.


【원문 8】
禿姓朡夷、豢龍,則夏滅之。祖姓彭祖、豕韋、諸稽,則商滅之。姜姓會人,則滅之。

【번역문 8】
독(禿)씨 성의 동이(朡夷)와 환룡(豢龍)씨는 하(夏)나라가 멸망시켰습니다. 조(祖)씨 성의 팽조(彭祖)·시위(豕韋)·제계(諸稽)씨는 상(商)나라가 멸망시켰습니다. 강(姜)씨 성의 회인(會人)은 (주나라가) 멸망시켰습니다.


【원문 9】
妘姓之後封於鄢、會、路、偪陽。鄢取仲任為妻,貪冒愛恡,蔑賢簡能,是用亡邦。會在河、伊之間,其君驕貪嗇儉,減爵損祿,群臣卑讓,上下不臨。詩人憂之,故作《羔裘》、閔其痛悼也,《匪風》、冀君先教也。會仲不悟,重氏伐之,上下不能相使,禁罰不行,遂以見亡,路子嬰兒,娶晉成公姊為夫人,酆舒為政而虐之。晉伯宗怒,遂伐滅路。荀罃武子伐滅偪陽。曹姓封於邾;邾顏子之支,別為小邾,皆楚滅之。

【번-역문 9】
운(妘)씨 성의 후손은 언(鄢)·회(會)·노(路)·핍양(偪陽)에 봉해졌습니다. 언(鄢)나라 군주는 중임(仲任)을 아내로 삼았는데, 탐욕스럽고 인색하며, 어진 이를 업신여기고 능력 있는 이를 소홀히 하여, 이로써 나라를 잃었습니다. 회(會)나라는 하수(河水)와 이수(伊水) 사이에 있었는데, 그 군주가 교만하고 탐욕스러우며 인색하여, 작위를 줄이고 녹봉을 깎으니, 여러 신하가 비굴하게 사양하고 상하가 서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시인(詩人)이 이를 걱정하여, 「고구(羔裘)」를 지어 그 아픔을 슬퍼하고, 「비풍(匪風)」을 지어 군주가 먼저 가르침을 펴기를 바랐습니다. 회중(會仲)이 깨닫지 못하자, 중씨(重氏)가 이를 쳤는데, 상하가 서로 부리지 못하고 금령과 형벌이 행해지지 않아, 마침내 멸망당하였습니다. 노(路)나라 군주 영아(嬰兒)는 진(晉)나라 성공(成公)의 누이를 부인으로 맞았는데, 풍서(酆舒)가 정치를 맡아 그를 학대하였습니다. 진(晉)나라 백종(伯宗)이 노하여 마침내 노(路)나라를 쳐서 멸망시켰습니다. 순앵(荀罃) 무자(武子)가 핍양(偪陽)을 쳐서 멸망시켰습니다. 조(曹)씨 성은 주(邾)나라에 봉해졌고, 주(邾)나라 안자(顏子)의 지파는 따로 소주(小邾)가 되었는데, 모두 초(楚)나라가 멸망시켰습니다.


【원문 10】
羋姓之裔熊嚴,成王封之於楚,是謂粥熊,又號粥子。生四人,伯霜、仲雪、叔熊、季紃。紃嗣為刑子,或封於夔,或封於越。夔子不祀祝融、粥熊,楚伐滅。公族有楚季氏、列宗氏、鬭強氏、良臣氏、耆氏、門氏、侯氏、季融氏、仲熊氏、子季氏、陽氏、無鈞氏、蒍氏、善氏、陽氏、昭氏、景氏、嚴氏、嬰齊氏、來氏、來纖氏、即氏、申氏、訋氏、沈氏、賀氏、減氏、吉白氏、伍氏、沈瀸氏、餘推氏、公建氏、子南氏、子庚氏、子午氏、西氏、王孫、田公氏、舒堅氏、魯陽氏、黑肱氏,皆羋姓也。

【번역문 10】
미(羋)씨 성의 후손 웅엄(熊嚴)을 성왕(成王)이 초(楚)나라에 봉하였으니, 이가 육웅(粥熊)이며, 또한 육자(粥子)라고도 불립니다. 네 아들을 낳았으니, 백상(伯霜)·중설(仲雪)·숙웅(叔熊)·계순(季紃)입니다. 순(紃)이 뒤를 이어 형자(刑子)가 되었고, 혹은 기(夔)나라에, 혹은 월(越)나라에 봉해졌습니다. 기(夔)나라 군주가 축융(祝融)과 육웅(粥熊)에게 제사 지내지 않자, 초(楚)나라가 쳐서 멸망시켰습니다. 공족(公族)으로는 초계씨(楚季氏)·열종씨(列宗氏)·투강씨(鬭強氏)·양신씨(良臣氏)·기씨(耆氏)·문씨(門氏)·후씨(侯氏)·계융씨(季融氏)·중웅씨(仲熊氏)·자계씨(子季氏)·양씨(陽氏)·무균씨(無鈞氏)·위씨(蒍氏)·선씨(善氏)·양씨(陽氏)·소씨(昭氏)·경씨(景氏)·엄씨(嚴氏)·영제씨(嬰齊氏)·래씨(來氏)·래섬씨(來纖氏)·즉씨(即氏)·신씨(申氏)·조씨(訋氏)·심씨(沈氏)·하씨(賀氏)·감씨(減氏)·길백씨(吉白氏)·오씨(伍氏)·심섬씨(沈瀸氏)·여추씨(餘推氏)·공건씨(公建氏)·자남씨(子南氏)·자경씨(子庚氏)·자오씨(子午氏)·서씨(西氏)·왕손씨(王孫氏)·전공씨(田公氏)·서견씨(舒堅氏)·노양씨(魯陽氏)·흑굉씨(黑肱氏)가 있으니, 모두 미(羋)씨 성입니다.


【원문 11】
楚季者、王子敖之曾孫也。蚠冒主蒍章者,王子無鈞也。令尹孫叔敖者、蒍章之子也。左司馬戍者、莊王之曾孫也。葉公諸梁者、戍之第三弟也。楚大夫申无畏者,又氏文氏。

【번역문 11】
초계(楚季)라는 자는 왕자 오(敖)의 증손입니다. 분모(蚠冒)가 위장(蒍章)을 주관하였는데, 그는 왕자 무균(無鈞)입니다. 영윤(令尹) 손숙오(孫叔敖)는 위장(蒍章)의 아들입니다. 좌사마(左司馬) 수(戍)는 장왕(莊王)의 증손입니다. 섭공(葉公) 제량(諸梁)은 수(戍)의 셋째 동생입니다. 초(楚)나라 대부 신무외(申无畏)는 또한 문(文)씨를 씨로 삼았습니다.


【원문 12】
初,紂有蘇氏以妲己女而亡殷。周武王時,有蘇忿生為司寇而封溫。其後洛邑有蘇秦。

【번역문 12】
처음에 주(紂)임금은 유소씨(有蘇氏)의 딸 달기(妲己)로 인하여 은(殷)나라를 잃었습니다. 주(周) 무왕(武王) 때, 유소씨의 분생(忿生)이 사구(司寇)가 되어 온(溫) 땅에 봉해졌습니다. 그 후손으로 낙읍(洛邑)에 소진(蘇秦)이 있었습니다.


【원문 13】
高陽氏之世有才子八人,蒼舒、隤凱、擣戭、大臨、尨降、庭堅、仲容、叔達,天下之人謂之八凱。

【번역문 13】
고양씨(高陽氏)의 시대에 재능 있는 아들 여덟 명이 있었으니, 창서(蒼舒)·퇴개(隤凱)·도언(擣戭)·대림(大臨)·방강(尨降)·정견(庭堅)·중용(仲容)·숙달(叔達)이며, 천하 사람들이 이들을 팔개(八凱)라 불렀습니다.


【원문 14】
後嗣有皋陶,事舜。舜曰:「皋陶!蠻夷滑夏,寇賊姦宄,女作士。」其子伯翳,能議百姓以佐舜、禹,擾馴鳥獸,舜賜姓羸。

【번역문 14】
그 후손으로 고요(皋陶)가 있어, 순(舜)임금을 섬겼습니다. 순임금이 말하기를, “고요여! 오랑캐가 중화를 어지럽히고, 도적이 간사한 짓을 하니, 그대가 사(士)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백예(伯翳)는 능히 백성을 의논하여 순임금과 우(禹)임금을 돕고, 새와 짐승을 길들였으므로, 순임금이 영(羸)이라는 성을 하사하였습니다.


【원문 15】
後有仲衍,鳥體人元,為夏帝大戊御。嗣及費仲,生惡來、季勝。武王伐紂,并殺惡來。

【번-역문 15】
후에 중연(仲衍)이 있었는데, 새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였으며, 하(夏)나라 황제 태무(大戊)의 어자(御者)가 되었습니다. 후사가 비중(費仲)에 이르러, 오래(惡來)와 계승(季勝)을 낳았습니다. 무왕이 주(紂)를 칠 때, 아울러 오래를 죽였습니다.


【원문 16】
季勝之後有造父,以善御事周穆王。穆王游西海忘歸,於是徐偃作亂,造父御,一日千里,以征之。王封造父於趙城,因以為氏。其後失守,至於趙夙,仕晉卿大夫,十一世而為列侯,五世而為武靈王,五世亡趙。恭叔氏、邯鄲氏、訾辱氏、嬰齊氏、樓季氏、盧氏、原氏,皆趙羸姓也。

【번역문 16】
계승(季勝)의 후손으로 조보(造父)가 있었는데, 말을 잘 부리는 것으로 주(周) 목왕(穆王)을 섬겼습니다. 목왕이 서해(西海)에서 노닐며 돌아오는 것을 잊자, 이에 서언(徐偃)이 난을 일으켰는데, 조보가 수레를 몰아 하루에 천 리를 달려 이를 정벌하였습니다. 왕이 조보를 조(趙)성에 봉하고, 이로 인하여 씨(氏)로 삼았습니다. 그 후손이 봉지를 잃고, 조숙(趙夙)에 이르러 진(晉)나라의 경대부(卿大夫)로 벼슬하였습니다. 11대 만에 열후(列侯)가 되고, 5대 만에 무령왕(武靈王)이 되었으며, 5대 만에 조(趙)나라가 망하였습니다. 공숙씨(恭叔氏)·한단씨(邯鄲氏)·자욕씨(訾辱氏)·영제씨(嬰齊氏)·누계씨(樓季氏)·노씨(盧氏)·원씨(原氏)는 모두 조(趙)나라의 영(羸)씨 성입니다.


【원문 17】
惡來後有非子,以善畜,周孝封之於秦,世地理以為西陲大夫,汧秦高是也。其後列於諸侯,五世而稱王,六世而始皇生於邯鄲,故曰趙政。及梁、葛、江、黃、徐、莒、蓼、六、英、皆皋陶之後也。鍾離、運掩、菟裘、尋梁、脩魚,白寘、飛廉、密如、東灌、良、時、白、巴、公巴公巴、郯、復、蒲,皆羸姓也。

【번역문 17】
오래(惡來)의 후손으로 비자(非子)가 있었는데, 가축을 잘 길러 주(周) 효왕(孝王)이 진(秦) 땅에 봉하고, 대대로 그 땅을 다스려 서쪽 변방의 대부(大夫)가 되게 하였으니, 견(汧) 땅과 진(秦) 땅의 높은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 후손이 제후의 반열에 오르고, 5대 만에 왕을 칭하였으며, 6대 만에 시황(始皇)이 한단(邯鄲)에서 태어났으므로, 조정(趙政)이라 불렸습니다. 또한 양(梁)·갈(葛)·강(江)·황(黃)·서(徐)·거(莒)·요(蓼)·육(六)·영(英)씨는 모두 고요(皋陶)의 후손입니다. 종리(鍾離)·운엄(運掩)·토구(菟裘)·심량(尋梁)·수어(脩魚), 백치(白寘)·비렴(飛廉)·밀여(密如)·동관(東灌)·양(良)·시(時)·백(白)·파(巴)·공파(公巴)·담(郯)·복(復)·포(蒲)씨는 모두 영(羸)씨 성입니다.


【원문 18】
帝堯之後為陶唐氏。後有劉累,能畜龍,孔甲賜姓為御龍,以更豕韋之後。至周為唐杜氏。周衰,有隰叔子違周難于晉國,生子輿,為李,以正於朝,朝無閒官,故氏為士氏;為司空,以正於國,國無敗績,故氏司空;食采隨,故氏隨氏。士蒍之孫會,佐文、襄,於諸侯無惡;為卿,以輔成、景,軍無敗政;為成率,居傅,端刑法,法集訓典,國無姦民,晉國之盜逃奔于秦。於是晉侯為請冕服于王,王命隨會為卿,是以受范,卒謚武子。武子文,成晉、荊之盟,降兄弟之國,使無閒隙,是以受郇、櫟。由此帝堯之後,有陶唐氏、劉氏、御龍氏、唐杜氏、隰氏、士氏、季氏、司空氏、趙氏、范氏、郇氏、櫟氏、嬴氏、冀氏、縠氏、薔氏、擾氏、㩏氏、傅氏、楚氏令尹建嘗問范武子之德於文子,文子對曰:「夫子之家事治,言於晉國,竭情無私,其祝史陳信不媿,其家事無猜,其祝史不祈。」建歸,以告,康王曰:「神人無怨,宜夫子之股肱五君,以為諸侯主也。」故劉氏自唐以下漢以上,德著於世,莫若范會之最盛也。斯亦有脩己以安人之功矣。武王克殷,而封帝堯之後於社也。

【번-역문 18】
제요(帝堯)의 후손은 도당씨(陶唐氏)가 되었습니다. 후에 유루(劉累)가 있었는데, 능히 용을 길러 공갑(孔甲)이 어룡(御龍)이라는 성을 하사하고, 시위(豕韋)씨의 뒤를 잇게 하였습니다. 주(周)나라에 이르러 당두씨(唐杜氏)가 되었습니다. 주나라가 쇠하자, 습숙(隰叔)의 아들이 주나라의 난을 피해 진(晉)나라로 갔는데, 아들 여(輿)를 낳아 이(李)씨가 되었습니다. 조정에서 법을 바로잡아, 조정에 한가한 관리가 없었으므로 사씨(士氏)를 씨로 삼았고, 사공(司空)이 되어 나라를 바로잡아, 나라에 패전이 없었으므로 사공씨(司空氏)를 씨로 삼았으며, 수(隨) 땅을 식읍으로 받았으므로 수씨(隨氏)를 씨로 삼았습니다. 사위(士蒍)의 손자 회(會)는 문공(文公)과 양공(襄公)을 도와, 제후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경(卿)이 되어 성공(成公)과 경공(景公)을 보좌하여, 군대에 패하는 정치가 없었습니다. 성솔(成率)이 되어 부(傅)에 거처하며 형법을 단정히 하니, 법이 훈전(訓典)에 모여 나라에 간사한 백성이 없었고, 진(晉)나라의 도적이 진(秦)나라로 달아났습니다. 이에 진후(晉侯)가 왕에게 면복(冕服)을 청하자, 왕이 수회(隨會)를 경(卿)으로 명하였으니, 이로써 범(范) 땅을 받고 죽어서 무자(武子)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무자(武子)의 아들 문(文)은 진(晉)나라와 형(荊)나라의 맹약을 이루고, 형제 나라들을 복종시켜 틈이 없게 하였으니, 이로써 순(郇)과 역(櫟) 땅을 받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제요(帝堯)의 후손으로는 도당씨·유씨·어룡씨·당두씨·습씨·사씨·계씨·사공씨·조씨·범씨·순씨·역씨·영씨·기씨·곡씨·장씨·요씨·우씨·부씨·초씨가 있습니다. 영윤(令尹) 건(建)이 일찍이 범무자(范武子)의 덕에 대해 문자(文子)에게 물으니, 문자가 대답하기를, “부자(夫子)의 집안일은 잘 다스려지고, 진(晉)나라에 말할 때는 정성을 다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며, 그 축사(祝史)는 믿음을 진술함에 부끄러움이 없고, 그 집안일에는 의심이 없으며, 그 축사는 기도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건(建)이 돌아가 이를 고하니, 강왕(康王)이 말하기를, “신(神)과 사람이 원망이 없으니, 마땅히 부자(夫子)가 다섯 군주를 보좌하여 제후들의 주인이 될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씨(劉氏)는 당(唐)나라 이하 한(漢)나라 이상에 이르기까지 덕이 세상에 드러났으나, 범회(范會)만큼 가장 성대한 이가 없었습니다. 이 또한 자신을 닦아 남을 편안하게 한 공이 있었던 것입니다. 무왕이 은나라를 이기고, 제요의 후손을 사(社) 땅에 봉하였습니다.


【원문 19】
帝舜姓虞,又為姚,居媯。武王克殷,而封媯滿於陳,是為胡公。陳哀氏、舀氏、咸氏、慶氏、夏氏、宗氏、來氏、儀氏、司徒氏、司城氏,皆媯姓也。

【번역문 19】
제순(帝舜)의 성은 우(虞)씨이며, 또한 요(姚)씨가 되고, 규(媯) 땅에 살았습니다. 무왕이 은나라를 이기고, 규만(媯滿)을 진(陳)나라에 봉하였으니, 이가 호공(胡公)입니다. 진애씨(陳哀氏)·요씨(舀氏)·함씨(咸氏)·경씨(慶氏)·하씨(夏氏)·종씨(宗氏)·래씨(來氏)·의씨(儀氏)·사도씨(司徒氏)·사성씨(司城氏)는 모두 규(媯)씨 성입니다.


【원문 20】
厲公孺子完奔齊,桓公說之,以為工正。其子孫大得民心,遂奪君而自立,是為威王,五世而亡。齊人謂陳田矣。漢高祖徙諸田關中,而有第一至第八氏。丞相田千秋、司直田仁,及杜陽田先、碭田先,皆陳後也。武帝賜千秋乘小車入殿,故世謂之車丞相。及莽自謂本田安之後,以王家故更氏云。莽之行詐,寔以田常之風。敬仲之又,有皮氏、占氏、沮氏、與氏、獻氏、子氏、鞅氏、梧氏、坊氏、高氏、笀氏、禽氏。

【번-역문 20】
여공(厲公)의 어린 아들 완(完)이 제(齊)나라로 달아나자, 환공(桓公)이 그를 기뻐하여 공정(工正)으로 삼았습니다. 그 자손이 크게 민심을 얻어, 마침내 군주의 자리를 빼앗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니, 이가 위왕(威王)이며, 5대 만에 망하였습니다. 제나라 사람들은 진(陳)씨를 전(田)씨라 불렀습니다. 한(漢) 고조(高祖)가 여러 전(田)씨들을 관중(關中)으로 옮기니, 제1씨부터 제8씨까지 있었습니다. 승상 전천추(田千秋), 사직 전인(田仁), 그리고 두양(杜陽)의 전선(田先), 탕(碭)의 전선(田先)은 모두 진(陳)씨의 후손입니다. 무제(武帝)가 천추에게 작은 수레를 타고 궁전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그를 거승상(車丞相)이라 불렀습니다. 왕망(王莽)에 이르러, 스스로 본래 전안(田安)의 후손이라 칭하며, 왕씨 가문이라는 이유로 성씨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왕망의 속임수는 실로 전상(田常)의 풍모를 따른 것입니다. 경중(敬仲, 완)의 후손으로는 또한 피씨(皮氏)·점씨(占氏)·저씨(沮氏)·여씨(與氏)·헌씨(獻氏)·자씨(子氏)·앙씨(鞅氏)·오씨(梧氏)·방씨(坊氏)·고씨(高氏)·망씨(笀氏)·금씨(禽氏)가 있습니다.


【원문 21】
帝乙元子微子開,紂之庶兄也。武王封之於宋,今之睢陽是也。宋孔氏、祝其氏、韓獻氏、季老男氏、巨辰、經氏、事父氏、皇甫氏、華氏、魚氏、而董氏、艾、歲氏、鳩夷氏、中野氏、越椒氏、完氏、懷氏、不弟氏、冀氏、牛氏、司城氏、冈氏、近氏、止氏、朝氏、㪍氏、右歸氏、三㐾氏、王夫氏、宜氏、徵氏、鄭氏、目夷氏、鱗氏、臧氏、虺氏、沙氏、黑氏、圍龜氏、既氏、據氏、磚氏、己氏、成氏、邊氏、戎氏、買氏、尾氏、桓氏、戴氏、向氏、司馬氏,皆子姓也。

【번역문 21】
제을(帝乙)의 맏아들 미자(微子) 개(開)는 주(紂)의 서형(庶兄)입니다. 무왕이 그를 송(宋)나라에 봉하였으니, 지금의 수양(睢陽)이 바로 그곳입니다. 송(宋)나라의 공씨(孔氏)·축기씨(祝其氏)·한헌씨(韓獻氏)·계노남씨(季老男氏)·거진씨(巨辰氏)·경씨(經氏)·사부씨(事父氏)·황보씨(皇甫氏)·화씨(華氏)·어씨(魚氏)·이동씨(而董氏)·애씨(艾氏)·세씨(歲氏)·구이씨(鳩夷氏)·중야씨(中野氏)·월초씨(越椒氏)·완씨(完氏)·회씨(懷氏)·부제씨(不弟氏)·기씨(冀氏)·우씨(牛氏)·사성씨(司城氏)·강씨(冈氏)·근씨(近氏)·지씨(止氏)·조씨(朝氏)·복씨(㪍氏)·우귀씨(右歸氏)·삼환씨(三㐾氏)·왕부씨(王夫氏)·의씨(宜氏)·징씨(徵氏)·정씨(鄭氏)·목이씨(目夷氏)·인씨(鱗氏)·장씨(臧氏)·훼씨(虺氏)·사씨(沙氏)·흑씨(黑氏)·위구씨(圍龜氏)·기씨(既氏)·거씨(據氏)·전씨(磚氏)·기씨(己氏)·성씨(成氏)·변씨(邊氏)·융씨(戎氏)·매씨(買氏)·미씨(尾氏)·환씨(桓氏)·대씨(戴氏)·향씨(向氏)·사마씨(司馬氏)는 모두 자(子)씨 성입니다.


【원문 22】
閔公子弗父河生宋父,宋父生世子,世子生正考父,正考父生孔父嘉,孔父嘉生子木金父;木金父降為士,故曰滅於宋。金父生祁父,祁父生防叔;防叔為華氏所偪,出奔魯,為防大夫,故曰防叔。防叔生伯夏,伯夏叔梁紇,為鄹大夫,故曰鄹叔紇,生孔子。

【번-역문 22】
민공(閔公)의 아들 불보하(弗父何)가 송보(宋父)를 낳고, 송보가 세자(世子)를 낳았으며, 세자가 정고보(正考父)를 낳고, 정고보가 공부가(孔父嘉)를 낳았으며, 공부가가 자목(子木) 금보(金父)를 낳았습니다. 목금보(木金父)가 사(士)로 강등되었으므로, 송(宋)나라에서 멸망했다고 말합니다. 금보가 기보(祁父)를 낳고, 기보가 방숙(防叔)을 낳았습니다. 방숙이 화씨(華氏)에게 핍박받아 노(魯)나라로 달아나, 방(防) 땅의 대부(大夫)가 되었으므로 방숙이라 불렸습니다. 방숙이 백하(伯夏)를 낳고, 백하가 숙량흘(叔梁紇)을 낳았는데, 추(鄹) 땅의 대부가 되었으므로 추숙흘(鄹叔紇)이라 불렸으며, 공자(孔子)를 낳았습니다.


【원문 23】
周靈王之太子晉,幼有成德,聰明博達,溫恭敦敏。穀、雒水鬭,將毀王宮,欲壅之。太子晉諫,以為不順天心,不若脩政。晉平公使叔譽聘於周,見太子,與之言,五稱而三窮,逡巡而退,歸告平公曰:「太子晉行年十五,而譽弗能與言,君請事之。」平公遺師曠見太子晉。太子晉與語,師曠服德,深相結也。乃問曠曰:「吾聞太師能知人年之長短。」師曠對曰:「女色赤白,女聲清汗,火色不壽。」晉曰:「然。吾後三年將上賓于帝,女慎無言,殃將及女。」其後三年而太子死。孔子聞之曰:「惜夫!殺吾君也。」世人以其豫自去期,故傳稱王子喬仙。仙之後,其嗣避周難於晉,家于平陽,田氏王氏。其後子孫世喜養性神仙之術。

【번역문 23】
주(周) 영왕(靈王)의 태자 진(晉)은 어려서부터 완성된 덕이 있었고, 총명하고 박식하며 통달하였고, 온화하고 공손하며 돈독하고 민첩하였습니다. 곡수(穀水)와 낙수(雒水)가 범람하여 장차 왕궁을 무너뜨리려 하자, (왕이) 물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태자 진이 간언하여, 이는 하늘의 마음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니, 정치를 닦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진(晉) 평공(平公)이 숙예(叔譽)를 시켜 주(周)나라에 조문하게 하였는데, 태자를 만나 그와 더불어 말하다가, 다섯 번 칭찬하고 세 번 궁지에 몰려, 머뭇거리며 물러나 돌아가 평공에게 고하기를, “태자 진은 나이가 열다섯인데, 제가 그와 더불어 말할 수 없었으니, 군주께서는 그를 섬기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평공이 사광(師曠)을 보내 태자 진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태자 진이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자, 사광이 그 덕에 감복하여 깊이 서로 교분을 맺었습니다. 이에 사광에게 묻기를, “내가 듣건대 태사(太師)께서는 사람의 수명이 길고 짧음을 아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라고 하니, 사광이 대답하기를, “당신의 얼굴색은 붉고 희며, 당신의 목소리는 맑고 가볍습니다. 화(火)의 색은 장수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진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나는 3년 뒤에 장차 상제(上帝)께 손님으로 올라갈 것이니, 당신은 삼가 말하지 마십시오. 재앙이 장차 당신에게 미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3년 만에 태자가 죽었습니다. 공자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시기를, “애석하도다! 나의 군주를 죽였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미리 자신의 죽을 날을 알았다고 하여, 전(傳)에서는 왕자 교(喬)가 신선이 되었다고 칭합니다. 신선이 된 뒤에, 그 후손이 주나라의 난을 피해 진(晉)나라로 가서 평양(平陽)에 집을 이루니, 전씨(田氏)와 왕씨(王氏)가 되었습니다. 그 후 자손들은 대대로 양성(養性)과 신선(神仙)의 술법을 좋아하였습니다.


【원문 24】
魯之公故,有蟜氏、后氏、眾氏、臧氏、施氏、孟氏、仲孫氏、服氏、公山氏、南宮氏、叔孫氏、叔仲氏、子我氏、子士氏、季氏、公鉏氏、公巫氏、公之氏、子干氏、華氏、子言氏、子駶氏、子雅氏、子陽氏、東門氏、公折氏、公石氏、叔氏、子家氏、榮氏、展氏、乙氏,皆魯姬姓也。

【번역문 24】
노(魯)나라의 공족(公族)으로는, 교씨(蟜氏)·후씨(后氏)·중씨(眾氏)·장씨(臧氏)·시씨(施氏)·맹씨(孟氏)·중손씨(仲孫氏)·복씨(服氏)·공산씨(公山氏)·남궁씨(南宮氏)·숙손씨(叔孫氏)·숙중씨(叔仲氏)·자아씨(子我氏)·자사씨(子士氏)·계씨(季氏)·공서씨(公鉏氏)·공무씨(公巫氏)·공지씨(公之氏)·자간씨(子干氏)·화씨(華氏)·자언씨(子言氏)·자구씨(子駶氏)·자아씨(子雅氏)·자양씨(子陽氏)·동문씨(東門氏)·공절씨(公折氏)·공석씨(公石氏)·숙씨(叔氏)·자가씨(子家氏)·영씨(榮氏)·전씨(展氏)·을씨(乙氏)가 있으니, 모두 노나라의 희(姬)씨 성입니다.


【원문 25】
衛之公族,石氏、世叔氏、孫氏、甯氏、子齊氏、司徒氏、公文氏、折龜氏、公叔氏、公南氏、公上氏、公孟氏、將者,亦常在權寵,為貴臣。及留侯張良,韓公族姬姓也。秦始皇滅韓,良弟死不葬,良散家貲千萬,為韓報讎,擊始皇於博浪沙中,誤椎副車。秦索賊急,良乃變姓為張,匿於下邳,遇神人黃石公,遺之兵法。及沛公之起也,良往屬焉。沛公使與韓信略定韓地,立橫陽君城為韓王,而拜良為韓信都。者、司徒也。俗前音不正,曰信都,或曰司徒,或勝屠,然其本共一司徒耳。後作傳者不知「信都」何因,彊妄生意,以為此乃代王為信都也。凡桓叔之後,有韓氏、言氏、嬰氏、禍餘氏、公族氏、張氏,此皆韓後姬姓也。昔周宣王亦有韓侯,其國也近燕,故《詩》云:「普彼韓城,燕師所完。」其後韓西亦姓韓,為衛滿所伐,遷居海中。畢公高與周同姓,封於畢,因為氏。周公之薨也,高繼職焉。其後子孫失守,為庶世。及畢萬佐晉獻公,十六年使趙夙御戎,畢萬為右,以滅耿滅魏封萬,今之河北縣是也。魏顆又氏令狐。自萬後九世為魏文侯。文侯孫罃為魏惠王,五世而亡。畢陽之孫豫讓,事智伯,智伯國士待之,豫讓亦以見知之恩報智伯,天下紀其義。魏氏、令狐氏、不雨氏、葉大夫氏、伯夏氏、魏強氏,豫氏、皆畢氏,本姬姓也。周厲王之子友封於鄭。鄭恭叔之後,為公文氏。軒氏、軍氏、子彊氏、強梁氏、卷氏、會氏雅氏、孔氏、趙陽、田章氏、孤氏、王孫氏、史龜氏、羌氏、羌憲氏、邃氏,皆衛姬姓也。

【번역문 25】
위(衛)나라의 공족(公族)으로는 석씨(石氏)·세숙씨(世叔氏)·손씨(孫氏)·영씨(甯氏)·자제씨(子齊氏)·사도씨(司徒氏)·공문씨(公文氏)·절구씨(折龜氏)·공숙씨(公叔氏)·공남씨(公南氏)·공상씨(公上氏)·공맹씨(公孟氏)·장씨(將氏)가 있는데, 또한 항상 권세와 총애를 받아 귀한 신하가 되었습니다. 유후(留侯) 장량(張良)에 이르러서는, 한(韓)나라 공족의 희(姬)씨 성입니다. 진시황이 한나라를 멸망시키자, 장량의 동생이 죽었는데도 장사 지내지 않고, 장량은 천만금의 가산을 흩어 한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박랑사(博浪沙) 가운데서 시황을 공격하였으나, 잘못하여 부거(副車)를 쳤습니다. 진나라가 도적을 급히 찾자, 장량은 이에 성을 장(張)씨로 바꾸고 하비(下邳)에 숨어, 신인(神人) 황석공(黃石公)을 만나 병법을 전수받았습니다. 패공(沛公)이 일어나자, 장량이 가서 그에게 속하였습니다. 패공이 한신(韓信)과 더불어 한(韓) 땅을 대략 평정하게 하고, 횡양군(橫陽君) 성(城)을 한왕(韓王)으로 세우고, 장량을 한신도(韓信都)로 임명하였습니다. 신도(信都)는 사도(司徒)입니다. 속된 앞의 음이 바르지 않아, 신도(信都)라 하기도 하고, 사도(司徒)라 하기도 하며, 혹은 승도(勝屠)라 하기도 하나, 그 근본은 모두 하나의 사도(司徒)일 뿐입니다. 후에 전(傳)을 지은 자가 ‘신도(信都)’의 유래를 알지 못하고, 억지로 망령된 뜻을 내어, 이것이 바로 대(代)나라 왕을 위해 신도(信都)가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환숙(桓叔)의 후손으로는 한씨(韓氏)·언씨(言氏)·영씨(嬰氏)·화여씨(禍餘氏)·공족씨(公族氏)·장씨(張氏)가 있으니, 이들은 모두 한(韓)나라 후손의 희(姬)씨 성입니다. 옛날 주(周) 선왕(宣王) 때 또한 한후(韓侯)가 있었는데, 그 나라는 연(燕)나라와 가까웠으므로, 《시경》에 이르기를, “넓은 저 한(韓)나라 성, 연나라 군사가 완성했네”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손 한서(韓西) 또한 한(韓)씨 성이었는데, 위만(衛滿)에게 정벌당하여 바다 가운데로 옮겨 살았습니다. 필공(畢公) 고(高)는 주(周)나라와 동성(同姓)으로, 필(畢) 땅에 봉해져 이로써 씨(氏)로 삼았습니다. 주공(周公)이 죽자, 고(高)가 그 직책을 이었습니다. 그 후 자손이 봉지를 잃고 서민이 되었습니다. 필만(畢萬)에 이르러 진(晉) 헌공(獻公)을 보좌하였는데, 16년에 조숙(趙夙)을 시켜 수레를 몰게 하고 필만은 오른쪽을 맡아, 경(耿)나라를 멸하고 위(魏)나라를 멸하여 만(萬)을 봉하였으니, 지금의 하북현(河北縣)이 바로 그곳입니다. 위과(魏顆)는 또한 영호(令狐)씨를 씨로 삼았습니다. 만(萬)의 후손으로 9대 만에 위(魏) 문후(文侯)가 되었습니다. 문후의 손자 앵(罃)이 위(魏) 혜왕(惠王)이 되었고, 5대 만에 망하였습니다. 필양(畢陽)의 손자 예양(豫讓)은 지백(智伯)을 섬겼는데, 지백이 국사(國士)의 예로 그를 대우하자, 예양 또한 자신을 알아준 은혜로써 지백에게 보답하여, 천하가 그 의리를 기록하였습니다. 위씨(魏氏)·영호씨(令狐氏)·불우씨(不雨氏)·섭대부씨(葉大夫氏)·백하씨(伯夏氏)·위강씨(魏強氏)·예씨(豫氏)는 모두 필씨(畢氏)이며, 본래 희(姬)씨 성입니다. 주(周) 여왕(厲王)의 아들 우(友)는 정(鄭)나라에 봉해졌습니다. 정(鄭)나라 공숙(恭叔)의 후손은 공문씨(公文氏)가 되었습니다. 헌씨(軒氏)·군씨(軍氏)·자강씨(子彊氏)·강량씨(強梁氏)·권씨(卷氏)·회씨(會氏)·아씨(雅氏)·공씨(孔氏)·조양(趙陽)·전장씨(田章氏)·고씨(孤氏)·왕손씨(王孫氏)·사구씨(史龜氏)·강씨(羌氏)·강헌씨(羌憲氏)·수씨(邃氏)는 모두 위(衛)나라의 희(姬)씨 성입니다.


【원문 26】
晉之公族郄氏,又斑為呂,郄芮又從邑氏為冀,後有呂錡,號駒伯。郄犨食采於苦,號苦成叔;郄至食采於溫,號曰溫季,各以為氏。郄氏之班,有州氏、祁氏。伯宗以直見殺,其子州黎奔又楚,以郄宛直而和,故為子常所妬,受誅。其子嚭奔吳為大宰,懲祖禰之行仍正直遇禍也,乃為謟諛而亡吳。凡郄氏之班,有冀氏、呂氏、苦成氏、溫氏、伯氏;靖侯之孫欒賓,及富氏、游氏、賈氏、狐氏、羊舌氏、季夙氏、籍氏,及襄公之孫孫黶,皆晉姬姓也。

【번역문 26】
진(晉)나라의 공족(公族) 극씨(郄氏)는 또한 나뉘어 여(呂)씨가 되었고, 극예(郄芮)는 또한 봉읍을 따라 기(冀)씨가 되었으며, 후에 여錡(여錡)가 있었는데 호는 구백(駒伯)이었습니다. 극주(郄犨)는 고(苦) 땅을 식읍으로 받아 호를 고성숙(苦成叔)이라 하였고, 극지(郄至)는 온(溫) 땅을 식읍으로 받아 호를 온계(溫季)라 하였으니, 각기 이를 씨(氏)로 삼았습니다. 극씨(郄氏)의 부류로는 주씨(州氏)와 기씨(祁氏)가 있습니다. 백종(伯宗)은 정직함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아들 주려(州黎)는 초(楚)나라로 달아났습니다. 극완(郄宛)은 정직하고 온화하였으므로, 자상(子常)의 질투를 받아 주살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비(嚭)는 오(吳)나라로 달아나 태재(大宰)가 되었는데, 조상들이 정직함을 행하다가 연이어 화를 만난 것을 징계로 삼아, 이에 아첨하다가 오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무릇 극씨(郄氏)의 부류로는 기씨(冀氏)·여씨(呂氏)·고성씨(苦成氏)·온씨(溫氏)·백씨(伯氏)가 있습니다. 정후(靖侯)의 손자 난빈(欒賓), 그리고 부씨(富氏)·유씨(游氏)·가씨(賈氏)·호씨(狐氏)·양설씨(羊舌氏)·계숙씨(季夙氏)·적씨(籍氏), 그리고 양공(襄公)의 손자 손염(孫黶)은 모두 진(晉)나라의 희(姬)씨 성입니다.


【원문 27】
晉穆侯生桓叔,桓叔生韓萬,傅晉大夫,十世而為韓武侯,五世為韓惠王,五世而亡國。襄王之孽孫信,俗人謂之韓信都。高祖以信為韓王孫,以信為韓王,後徙王代,為匈奴所攻,自降之。漢遣柴將軍擊之,斬信於參合,信妻子亡入匈奴中。至景帝,信子頹當及孫赤來降,漢封頹當為弓高侯,赤為襄城侯。及韓嫣,武帝時為侍中,貴幸無比。案道侯韓說,前將軍韓魯,皆顯於漢。子孫各隨時帝分陽陵、茂陵、杜陵。及漢陽、金城諸韓,皆其後也。信子孫餘留匈奴中。

【번-역문 27】
진(晉) 목후(穆侯)가 환숙(桓叔)을 낳고, 환숙이 한만(韓萬)을 낳았으며, 진(晉)나라 대부(大夫)를 보좌하였습니다. 10대 만에 한(韓) 무후(武侯)가 되고, 5대 만에 한(韓) 혜왕(惠王)이 되었으며, 5대 만에 나라를 잃었습니다. 양왕(襄王)의 서손(孽孫) 신(信)을 속인들은 한신도(韓信都)라 불렀습니다. 고조(高祖)는 신(信)을 한왕(韓王)의 손자라 여겨, 신(信)을 한왕(韓王)으로 삼았는데, 후에 대(代)나라 왕으로 옮겼다가 흉노의 공격을 받아 스스로 항복하였습니다. 한(漢)나라가 시(柴) 장군을 보내 그를 쳐서, 참합(參合)에서 신(信)을 베니, 신(信)의 처자는 흉노 속으로 달아나 들어갔습니다. 경제(景帝) 때에 이르러, 신(信)의 아들 퇴당(頹當)과 손자 적(赤)이 와서 항복하니, 한(漢)나라가 퇴당을 궁고후(弓高侯)에, 적(赤)을 양성후(襄城侯)에 봉하였습니다. 한언(韓嫣)에 이르러, 무제(武帝) 때 시중(侍中)이 되어, 귀함과 총애가 비할 데 없었습니다. 안도후(案道侯) 한열(韓說), 전장군(前將軍) 한로(韓魯)는 모두 한(漢)나라에서 현달하였습니다. 자손들은 각기 때에 따라 황제를 나누어 양릉(陽陵)·무릉(茂陵)·두릉(杜陵)에 살았습니다. 또한 한양(漢陽)과 금성(金城)의 여러 한(韓)씨들은 모두 그 후손입니다. 신(信)의 자손 중 남은 이들은 흉노 속에 머물렀습니다.


【원문 28】
駟氏、豐、將氏、國氏、然氏、孔氏、羽氏、良氏、大李氏。十族之祖,穆公之子也,各以字為姓。及伯有氏、馬師氏、褚師氏,皆鄭姬姓也。

【번역문 28】
사씨(駟氏)·풍씨(豐氏)·장씨(將氏)·국씨(國氏)·연씨(然氏)·공씨(孔氏)·우씨(羽氏)·양씨(良氏)·대이씨(大李氏). 열 씨족의 조상은 목공(穆公)의 아들이며, 각기 자(字)로써 성(姓)을 삼았습니다. 또한 백유씨(伯有氏)·마사씨(馬師氏)·저사씨(褚師氏)는 모두 정(鄭)나라의 희(姬)씨 성입니다.


【원문 29】
太伯君吳,端垂衣裳,以治周禮。仲雍嗣立,斷髮文身,倮以為飾。武王克殷,分封其後於吳,令大賜北吳。季扎居延州來,故氏延陵季子。闔閭之弟夫概王奔楚堂谿,因以為氏。此皆姬姓也。

【번-역문 29】
태백(太伯)이 오(吳)나라의 군주가 되어, 의상을 단정히 늘어뜨리고 주(周)나라의 예(禮)로 다스렸습니다. 중옹(仲雍)이 뒤를 이어, 머리를 자르고 몸에 문신을 하며, 맨몸을 장식으로 삼았습니다. 무왕이 은나라를 이기고, 그 후손을 오(吳)나라에 나누어 봉하고, 북오(北吳)에 크게 하사하도록 명하였습니다. 계찰(季扎)은 연릉(延陵)과 주래(州來)에 살았으므로, 연릉계자(延陵季子)를 씨(氏)로 삼았습니다. 합려(闔閭)의 동생 부개왕(夫概王)은 초(楚)나라 당계(堂谿)로 달아나, 이로 인하여 씨(氏)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희(姬)씨 성입니다.


【원문 30】
鄭大夫有馮簡子。後韓有馮亭,為上黨守,嫁禍于趙,以致長平之變。秦有將軍馮劫,與李斯俱誅。有馮唐,與文帝論將帥。後有馮奉世,上黨人也,位至將軍,女為元帝昭儀,因家于京師。其孫衍,字敬通,篤學重義,諸儒號之曰「德行雍雍馮敬通」,著書數十篇,孝章皇帝愛重其文。

【번역문 30】
정(鄭)나라 대부로 풍간자(馮簡子)가 있었습니다. 후에 한(韓)나라에 풍정(馮亭)이 있었는데, 상당(上黨) 태수가 되어 조(趙)나라에 화를 떠넘겨, 장평(長平)의 변란을 초래하였습니다. 진(秦)나라에 장군 풍겁(馮劫)이 있었는데, 이사(李斯)와 함께 주살되었습니다. 풍당(馮唐)이 있었는데, 문제(文帝)와 더불어 장수를 논하였습니다. 후에 풍봉세(馮奉世)가 있었는데, 상당 사람이며, 지위가 장군에 이르렀고, 딸은 원제(元帝)의 소의(昭儀)가 되어, 이로 인하여 수도에 집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손자 연(衍)은 자(字)가 경통(敬通)인데, 학문에 독실하고 의리를 중히 여겨, 여러 유학자들이 그를 칭호하여 “덕행이 온화한 풍경통”이라 하였고,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하였으며, 효장황제(孝章皇帝)가 그 글을 아끼고 중히 여겼습니다.


【원문 31】
晉大夫郇息事獻公,後世將中軍,故氏中行,食采於智。智果諫智伯而不見聽,乃別族于大史為輔氏。

【번역문 31】
진(晉)나라 대부 순식(郇息)은 헌공(獻公)을 섬겼고, 후세에 중군(中軍)을 이끌었으므로 중항씨(中行氏)를 씨로 삼았으며, 지(智) 땅을 식읍으로 받았습니다. 지과(智果)가 지백(智伯)에게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에 태사(大史)에게서 씨족을 나누어 보씨(輔氏)가 되었습니다.


【원문 32】
晉大夫孫伯黶寔司典籍,故姓籍氏。辛有二子董之,故氏董氏。

【번역문 32】
진(晉)나라 대부 손백염(孫伯黶)은 실로 전적(典籍)을 맡았으므로, 적씨(籍氏)를 성으로 삼았습니다. 신(辛)씨에게 두 아들이 있어 이를 주관하였으므로, 동씨(董氏)를 씨로 삼았습니다.


【원문 33】
《詩》頌宣王,始有「張仲孝友」,至春秋時,宋有張白蔑矣。唯晉張侯、張老,寔為大家。張孟談相趙襄子以滅智伯,遂逃功賞,耕於䏍山。後魏有張儀、張丑。至漢,張姓滋多。常山王張耳,梁人。丞相張蒼,陽武人也。東陽侯張相如。御史大夫張湯,增定律令,以防姦惡,有利於民,又好薦賢達士,故受福祐。子安世為車騎將軍,封富平侯,敦仁儉約,矜遂權而好陰德,是以子孫昌熾,世有賢胤,更封武始,遭王莽亂,享國不絕,家凡四公,世著忠孝行義。前有丞相張禹,御史大夫張忠;後有太尉張酺,汝南人,太傅張禹,趙國人。司邑閭里,無不有張者。河東解邑有張城,有西張城,豈晉張之祖所出邪?

【번역문 33】
《시경》에서 선왕(宣王)을 칭송하며, 비로소 “장중(張仲)은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다”는 구절이 있었고, 춘추시대에 이르러 송(宋)나라에 장백멸(張白蔑)이 있었습니다. 오직 진(晉)나라의 장후(張侯)와 장로(張老)가 실로 대가(大家)가 되었습니다. 장맹담(張孟談)은 조양자(趙襄子)를 도와 지백(智伯)을 멸망시키고, 마침내 공과 상을 피해 운산(䏍山)에서 밭을 갈았습니다. 후에 위(魏)나라에 장의(張儀)와 장축(張丑)이 있었습니다. 한(漢)나라에 이르러, 장(張)씨 성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는 양(梁)나라 사람입니다. 승상 장창(張蒼)은 양무(陽武) 사람입니다. 동양후(東陽侯) 장상여(張相如)가 있었습니다. 어사대부 장탕(張湯)은 율령을 증보하여 간악함을 막으니, 백성에게 이로움이 있었고, 또한 어질고 통달한 선비를 추천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복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들 안세(安世)는 거기장군(車騎將軍)이 되어 부평후(富平侯)에 봉해졌는데, 인자하고 검소하며, 권세를 누리면서도 음덕(陰德)을 좋아하였으므로, 자손이 창성하고 대대로 어진 후손이 있었으며, 다시 무시(武始)에 봉해졌습니다. 왕망(王莽)의 난을 만나서도 나라를 누림이 끊이지 않았고, 집안에 무릇 네 명의 공(公)이 있었으며, 대대로 충효와 행의(行義)로 이름이 났습니다. 앞서 승상 장우(張禹), 어사대부 장충(張忠)이 있었고, 뒤에 태위 장포(張酺)는 여남(汝南) 사람이며, 태부 장우(張禹)는 조(趙)나라 사람입니다. 관청과 마을에 장(張)씨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하동(河東) 해읍(解邑)에 장성(張城)이 있고, 서장성(西張城)이 있으니, 어찌 진(晉)나라 장(張)씨의 조상이 나온 곳이 아니겠습니까?


【원문 34】
優性舒唐、鳩、舒龍、舒其、止龍、酈、淫、參、會、六、院、䕁、高國,慶姓樊、尹、駱,嫚姓鄧、優,歸姓胡、有、何,葴姓滑、齊,掎姓棲、䟽,御姓署、番、湯,嵬姓饒、攘、殺,隗姓赤狄、姮姓白狄,此皆大吉之姓。

【번-역문 34】
우(優)씨 성으로는 서당(舒唐)·구(鳩)·서룡(舒龍)·서기(舒其)·지룡(止龍)·역(酈)·음(淫)·참(參)·회(會)·육(六)·원(院)·요(䕁)·고국(高國)씨가 있고, 경(慶)씨 성으로는 번(樊)·윤(尹)·낙(駱)씨가 있으며, 만(嫚)씨 성으로는 등(鄧)·우(優)씨가 있고, 귀(歸)씨 성으로는 호(胡)·유(有)·하(何)씨가 있으며, 침(葴)씨 성으로는 활(滑)·제(齊)씨가 있고, 기(掎)씨 성으로는 서(棲)·소(䟽)씨가 있으며, 어(御)씨 성으로는 서(署)·번(番)·탕(湯)씨가 있고, 외(嵬)씨 성으로는 요(饒)·양(攘)·살(殺)씨가 있으며, 외(隗)씨 성은 적적(赤狄)이요, 긍(姮)씨 성은 백적(白狄)이니, 이들은 모두 대길(大吉)의 성입니다.


【원문 35】
齊有鮑叔,世為卿大夫。晉有鮑癸。漢有鮑宣,累世忠直,漢名臣。漢酈生為使者,弟商為將軍,今高陽諸酈為著姓。昔仲山甫亦姓樊,謚穆仲,封於南陽。南陽者、在今河內。後有樊傾子。曼姓封於鄧,後田氏焉。南陽鄧縣上蔡北有古鄧城,新蔡北有古鄧城。春秋時,楚文王滅鄧。至漢有鄧通、鄧廣。後漢新野禹,以佐命元功封高密侯。孫太后天性慈仁嚴明,約勑諸家莫得權,京師清淨,若無貴戚;勤思憂民,晝夜不怠。是以遭羌兵叛,大水饑饋,而能復之,整平豐穰。太后崩後,群姦相參,競加譖潤,破壞鄧氏,天下痛之。魯昭公母家姓歸氏。漢有隗囂季孟。短即大戎氏,其先本出黃帝。

【번역문 35】
제(齊)나라에 포숙(鮑叔)이 있었는데, 대대로 경대부(卿大夫)가 되었습니다. 진(晉)나라에 포계(鮑癸)가 있었습니다. 한(漢)나라에 포선(鮑宣)이 있었는데, 여러 대에 걸쳐 충직하여 한(漢)나라의 명신(名臣)이 되었습니다. 한(漢)나라의 역생(酈生)은 사자가 되었고, 동생 상(商)은 장군이 되었으며, 지금 고양(高陽)의 여러 역(酈)씨들은 저명한 성씨가 되었습니다. 옛날 중산보(仲山甫) 또한 번(樊)씨 성이었는데, 시호는 목중(穆仲)이며, 남양(南陽)에 봉해졌습니다. 남양은 지금의 하내(河內)에 있습니다. 후에 번경자(樊傾子)가 있었습니다. 만(曼)씨 성은 등(鄧)나라에 봉해졌는데, 후에 전씨(田氏)가 되었습니다. 남양(南陽) 등현(鄧縣) 상채(上蔡) 북쪽에 옛 등성(鄧城)이 있고, 신채(新蔡) 북쪽에 옛 등성(鄧城)이 있습니다. 춘추시대에 초(楚) 문왕(文王)이 등(鄧)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한(漢)나라에 이르러 등통(鄧通)과 등광(鄧廣)이 있었습니다. 후한(後漢) 신야(新野)의 등우(鄧禹)는 황제를 보좌한 원공(元功)으로 고밀후(高密侯)에 봉해졌습니다. 손녀인 태후(太后)는 천성이 자애롭고 인자하며 엄격하고 밝았으며, 여러 집안을 단속하여 권세를 얻지 못하게 하니, 수도가 청정하여 마치 귀척(貴戚)이 없는 듯하였습니다. 부지런히 생각하고 백성을 걱정하여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강(羌)의 군사가 반란을 일으키고, 큰 홍수와 기근을 만났음에도 능히 이를 회복하여, 정돈되고 평안하며 풍요롭게 하였습니다. 태후가 붕어한 뒤, 여러 간신들이 서로 참여하여 다투어 참소하고 윤색하여 등씨(鄧氏)를 파괴하니, 천하가 이를 통탄하였습니다. 노(魯) 소공(昭公)의 외가 성은 귀씨(歸氏)입니다. 한(漢)나라에 외효(隗囂) 계맹(季孟)이 있었습니다. 단(短)씨는 바로 대융씨(大戎氏)이며, 그 선조는 본래 황제(黃帝)에게서 나왔습니다.


【원문 36】
及徐氏、蕭氏、索氏、長勺氏、陶氏、繁氏、騎氏、飢氏、樊氏、荼氏,皆殷氏舊姓也。漢興,相國蕭何封酇侯,本沛人,今長陵蕭其後也。前將軍蕭望之,東海、杜陵蕭其後也。御史大夫有繁延壽,南陵襄陽人也,杜陵、新豐繁其後也。

【번역문 36】
또한 서씨(徐氏)·소씨(蕭氏)·삭씨(索氏)·장작씨(長勺氏)·도씨(陶氏)·번씨(繁氏)·기씨(騎氏)·기씨(飢氏)·번씨(樊氏)·도씨(荼氏)는 모두 은(殷)씨의 옛 성입니다. 한(漢)나라가 흥하자, 상국(相國) 소하(蕭何)가 찬후(酇侯)에 봉해졌는데, 본래 패(沛) 사람이며, 지금 장릉(長陵)의 소(蕭)씨는 그 후손입니다. 전장군(前將軍) 소망지(蕭望之)는 동해(東海)와 두릉(杜陵)의 소(蕭)씨 그 후손입니다. 어사대부로 번연수(繁延壽)가 있었는데, 남릉(南陵) 양양(襄陽) 사람이며, 두릉(杜陵)과 신풍(新豐)의 번(繁)씨는 그 후손입니다.


【원문 37】
周氏、邵氏、畢氏、榮氏、單氏、尹氏、錙氏、富氏、鞏氏、萇氏,此皆周室之世公卿家也。周、召者,周公、召公之庶子,食二公之采,以為主吏,故世有周公、召公不絕也。尹者、本官名也,若宋有太師,楚有令尹、左尹矣。尹吉甫相宣王者大功績,《詩》云:「尹氏大師,維周之底」也。單穆公、襄公、頎公、靖公,世有明德,次聖之才,故叔嚮美之以後必繁昌。

【번-역문 37】
주씨(周氏)·소씨(邵氏)·필씨(畢氏)·영씨(榮氏)·단씨(單氏)·윤씨(尹氏)·치씨(錙氏)·부씨(富氏)·공씨(鞏氏)·장씨(萇氏), 이들은 모두 주(周) 왕실의 대대로 공경(公卿)을 지낸 가문입니다. 주(周)씨와 소(召)씨는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의 서자(庶子)로, 두 공(公)의 식읍을 받아 주된 관리가 되었으므로, 대대로 주공과 소공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윤(尹)씨는 본래 관직명인데, 송(宋)나라에 태사(太師)가 있고, 초(楚)나라에 영윤(令尹)과 좌윤(左尹)이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윤길보(尹吉甫)는 선왕(宣王)을 보좌하여 큰 공적을 세웠으니, 《시경》에 이르기를, “윤씨 태사여, 주나라의 기틀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단(單) 목공(穆公)·양공(襄公)·기공(頎公)·정공(靖公)은 대대로 밝은 덕이 있었고, 성인에 버금가는 재능이 있었으므로, 숙향(叔嚮)이 그들을 칭송하며 후손이 반드시 번창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원문 38】
苦城、城名也,在鹽池東北。後人書之或為「枯」;齊人聞其音,則書之曰「車」;燉煌見其字,呼之曰「車城」;其在漢陽者,不喜「枯」、「苦」之字,則更書之曰「古城氏」。堂谿、谿谷名也,在汝南西平。禹字子啟者,啟開之字也。前人書堂谿誤作「啟」,後人變之,則又作「開」。古漆彫開、公冶長,前人書「彫」從易,泊作「周」,書「治」漢誤作「蠹」,後人又傳作「古」,或復分為古氏、成氏、常氏、開氏、公氏、冶氏、梁氏、周氏。此數氏者,皆本同末異。凡姓之離合變分,固多此類,可以一況,難勝載也。

【번역문 38】
고성(苦城)은 성(城)의 이름이며, 염지(鹽池) 동북쪽에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를 쓸 때 혹은 ‘고(枯)’라고 썼고, 제(齊)나라 사람들은 그 음을 듣고 ‘거(車)’라고 썼으며, 돈황(燉煌) 사람들은 그 글자를 보고 ‘거성(車城)’이라 불렀습니다. 한양(漢陽)에 있는 자들은 ‘고(枯)’나 ‘고(苦)’라는 글자를 좋아하지 않아, 다시 ‘고성씨(古城氏)’라고 썼습니다. 당계(堂谿)는 계곡의 이름이며, 여남(汝南) 서평(西平)에 있습니다. 우(禹)의 자(字)가 자계(子啟)인데, 계(啟)는 개(開)와 같은 글자입니다. 옛사람이 당계(堂谿)를 쓸 때 잘못하여 ‘계(啟)’라고 썼는데, 후세 사람이 이를 바꾸어 또한 ‘개(開)’라고 썼습니다. 옛날 칠조개(漆彫開)와 공야장(公冶長)의 경우, 옛사람이 ‘조(彫)’를 쓸 때 쉽게 하기 위해 ‘주(周)’라고 썼고, ‘치(治)’를 쓸 때 한(漢)나라 때 잘못하여 ‘두(蠹)’라고 썼는데, 후세 사람이 또한 전하여 ‘고(古)’라고 썼습니다. 혹은 다시 고씨(古氏)·성씨(成氏)·상씨(常氏)·개씨(開氏)·공씨(公氏)·야씨(冶氏)·양씨(梁氏)·주씨(周氏)로 나뉘었습니다. 이 몇몇 씨족은 모두 근본은 같으나 끝이 다른 것입니다. 무릇 성(姓)이 나뉘고 합쳐지며 변하고 갈라지는 것은, 진실로 이러한 종류가 많으니, 하나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 이루 다 싣기 어렵습니다.


【원문 39】
《易》曰:「君子以類族辯物」,「多識前言往行以蓄其德」,「學以聚之,問以辯之。」故略觀世記,采經書,依國士,及有明文,以贊賢聖之後,班族類之祖,言氏姓之出,序此假意二篇,以貽後賢今之焉也。

【번-역문 39】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군자는 이로써 족속을 분류하고 사물을 분별한다”고 하였고, “옛말과 지난 행실을 많이 알아 그 덕을 쌓는다”고 하였으며, “배움으로써 모으고, 물음으로써 분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대략 세상의 기록을 보고, 경서(經書)를 채집하며, 나라의 선비에게 의지하고, 또한 분명한 기록이 있는 것에 근거하여, 현인과 성인의 후손을 기리고, 족속과 부류의 조상을 나누며, 씨성(氏姓)의 유래를 말하고, 이 가의(假意) 두 편을 차례로 서술하여, 후대의 현인과 지금의 사람들에게 남기는 바입니다.


주석 (Footnotes)

1) 堯賜契姓,姬(요사계성, 희): 이 부분은 다른 문헌과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설(契)은 자(子)씨 성을 받은 상(商)나라의 시조로 알려져 있으며, 희(姬)씨 성은 주(周)나라의 시조인 후직(后稷) 기(棄)가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의 착오이거나 다른 전승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2) 衛侯滅邢,昭公娶同姓(위후멸형, 소공취동성): 모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고사이다. 위(衛)나라와 형(邢)나라는 모두 주공(周公)의 후손으로 동성(同姓) 국가였으나, 위나라가 형나라를 멸망시켰다. 노(魯)나라 소공(昭公)은 오(吳)나라에서 동성인 희(姬)씨 성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비판을 받았다. 이는 성(姓)이 같으면 조상이 같다는 원칙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3) 吹律定姓(취율정성): 율관(律管)을 불어 나오는 소리의 높낮이(오음: 궁상각치우)에 따라 성씨의 오행(五行) 속성을 정하고 길흉을 판단하던 고대의 술법을 말한다. 저자는 이를 성인만이 할 수 있는 신묘한 일로 보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그 원리가 잊혔음을 지적한다.

잠부론(潛夫論) - 제36편 서록(敘錄)

원문 및 번역문


【원문 1】
夫生於當世,貴能成大功,太上有立德,其下有立言。闒茸而不才,先器能當官,未嘗服斯伇,無所效其勛。中心時有感,援筆紀數文,字以綴愚情,財令不忽忘。芻蕘雖微陋,先聖亦咨詢。草創敘先賢,三十六篇,以繼前訓,左丘明《五經》。

【번역문 1】
무릇 당세(當世)에 태어나서는 능히 큰 공(功)을 이루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보다 위에는 덕(德)을 세우는 것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말(言)을 세우는 것이 있습니다.¹⁾ 저는 용렬하고 재주가 없어, 일찍이 관직에 합당한 기량을 갖추지 못하였고, 이러한 임무를 맡아본 적이 없어 그 공훈을 바친 바가 없습니다. 마음속에 때로 느끼는 바가 있어, 붓을 들어 몇 편의 글을 기록하고, 글자로써 어리석은 정을 엮어, 다만 소홀히 잊히지 않게 하고자 합니다. 나무꾼과 풀 베는 이의 말이라도²⁾ 비록 미천하고 누추하나, 옛 성인께서도 또한 물으셨습니다. 초고(草稿)를 지어 먼저 현인들의 가르침을 서술하니, 서른여섯 편으로 앞선 가르침과 좌구명(左丘明)의 《오경(五經)》을³⁾ 잇고자 합니다.


【원문 2】
先聖遺業,莫大教訓。博學多識,疑則思間。智明所成,德義所建。夫子好學,「誨人不倦。」故敘《讚學》第一。

【번역문 2】
옛 성인께서 남기신 업적 중에 가르침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널리 배우고 많이 알아야 하며, 의심이 들면 물을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혜와 밝음은 이로써 이루어지고, 덕과 의리는 이로써 세워집니다. 부자(夫子)께서는 배우기를 좋아하시고,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셨습니다.”⁴⁾ 그러므로 《찬학(讚學)》 제1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3】
凡士之學,貴本賤末。大人不華,君子務寔。禮雖媒紹,必載於贄。時俗趨末,懼毀術。故敘《務本》第二。

【번역문 3】
무릇 선비의 학문은 근본을 귀하게 여기고 말단을 천하게 여깁니다. 대인(大人)은 화려하지 않고, 군자(君子)는 실질에 힘씁니다. 예(禮)가 비록 중매하고 이어주지만, 반드시 예물에 실려야 합니다. 시속(時俗)이 말단을 좇으니, 도술(道術)이 훼손될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무본(務本)》 제2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4】
人皆智德,苦為利昏。行汙求榮,戴盆望天。「為仁不富,為富不仁。」將修德行,必慎其原。故敘《遏利》第四。

【번-역문 4】
사람은 모두 지혜와 덕이 있으나, 이익 때문에 어두워지는 것을 괴로워합니다. 행실은 더러우면서 영화를 구하니, 동이를 이고 하늘을 보는 격입니다.⁵⁾ “인(仁)을 행하면 부유해지지 못하고, 부유해지려 하면 인(仁)하지 못합니다.”⁶⁾ 장차 덕행을 닦으려면, 반드시 그 근원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알리(遏利)》 제3편을 서술합니다.⁷⁾


【원문 5】
世不識論,以士卒化,弗問志行,官爵是紀。不義富貴,仲尼所恥。傷俗陵遲,遂遠聖述。故敘《論榮》第四。

【번역문 5】
세상이 논의할 줄을 몰라, 선비를 병졸처럼 변화시키고, 그 뜻과 행실은 묻지 않고 관직과 작위로써 기강을 삼습니다. 의롭지 않은 부귀는 중니(仲尼)께서 부끄러워하신 바입니다. 풍속이 무너지고 쇠퇴함을 마음 아파하여, 마침내 성인의 말씀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논영(論榮)》 제4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6】
惟賢所苦,察妬所患,皆嫉過己,以為深怨。或因類舋,或空造端。痛君不察,而信讒言。故敘《賢難》第五。

【번역문 6】
오직 어진 이가 괴로워하는 바와, 질투하는 이가 근심하는 바를 살피건대, 모두 자신보다 나은 이를 질투하여 깊은 원한으로 삼습니다. 혹은 같은 부류라는 이유로 틈을 만들고, 혹은 공연히 실마리를 만듭니다. 군주가 살피지 못하고 참소하는 말을 믿는 것을 통탄합니다. 그러므로 《현난(賢難)》 제5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7】
原明所起,述暗所生,距諫所敗,禍亂所成。當塗之人,成欲專君,壅蔽賢士,以擅主權。故敘《明暗》第六。

【번역문 7】
현명함이 일어나는 근원을 찾고, 어두움이 생겨나는 바를 서술하며, 간언을 물리쳐 패하는 바와 화란이 이루어지는 바를 논합니다. 길을 막고 있는 자들은,⁸⁾ 군주를 오로지하려 하고, 어진 선비를 가로막아 군주의 권력을 독차지하려 합니다. 그러므로 《명암(明暗)》 제6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8】
上覽先王,所以致太平,考績黜陟,著在《五經》。罰賞之寔,不以虛名。明豫德音,焉問揚庭。故敘《考績》第七。

【번역문 8】
위로 선왕(先王)께서 태평을 이룬 까닭을 살펴보니, 공적을 심사하여 내치고 올리는 것이 《오경(五經)》에 드러나 있습니다. 벌주고 상주는 실질은 헛된 이름으로 하지 않습니다. 미리 덕음(德音)을 밝히면, 어찌 조정에서 드러내 묻겠습니까. 그러므로 《고적(考績)》 제7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9】
人君選士,咸求賢能。君司貢薦,競進下材。「憎是掊克」,何官能治?買藥得鴈,難以為醫。故敘《思賢》第八。

【번역문 9】
군주가 선비를 선발할 때는 모두 어질고 능력 있는 이를 구합니다. 군주가 천거를 맡기면, 다투어 하급 인재를 나아가게 합니다. “이러한 탐욕스러운 관리를 미워하는데”,⁹⁾ 어느 관리가 능히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약을 사려다 기러기를 얻으니, 의원으로 삼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현(思賢)》 제8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10】
原本天人,參連相因,致和平機,述在於君,奉法選賢,國自我身。姦門竊位,將誰督察?故敘《本政》第九。

【번-역문 10】
하늘과 사람의 근본을 따져보면, 서로 연결되고 인연하여, 화평을 이루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은 군주에게 달려있으니, 법을 받들고 어진 이를 선발하면, 나라는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간사한 무리가 지위를 훔치면, 장차 누가 감독하고 살피겠습니까? 그러므로 《본정(本政)》 제9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11】
覽觀古今,爰暨書傳,君皆欲治,臣恒樂亂。忠佞溷淆,各以類進,常若不明,而信姦論。故敘《潛歎》第十。

【번역문 11】
고금을 두루 살피고 서(書)와 전(傳)에 이르기까지, 군주는 모두 다스리고자 하나 신하는 항상 어지러움을 즐깁니다. 충성스러운 이와 간사한 이가 뒤섞여, 각기 무리 지어 나아가니, 항상 현명하지 못한 듯하여 간사한 논의를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탄(潛歎)》 제10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12】
夫位以德興,德貴忠立,社稷所賴,安危是繫。非夫讜直貞亮,仁慈惠和,事君如天,視民如子,則莫保爵位,而全令名。故敘《忠貴》第十一。

【번역문 12】
무릇 지위는 덕으로 흥하고, 덕은 충성으로 세워지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사직이 의지하는 바이며, 안위가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무릇 바르고 곧으며 참되고 밝고, 어질고 자애로우며 은혜롭고 온화하여, 군주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고 백성 보기를 자식처럼 하지 않으면, 작위를 보전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온전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충귀(忠貴)》 제11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13】
先王理財,「禁民為非。」《洪範》憂民,《詩》刺末資。浮偽者眾,本農必衰。節以制度,如何弗議?故敘《浮侈》第十二。

【번역문 13】
선왕께서 재물을 다스리실 때, “백성이 그릇된 일을 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홍범(洪範)》은 백성을 걱정하였고, 《시경(詩經)》은 말단적인 재물을 풍자하였습니다. 허황되고 거짓된 자가 많으면, 근본인 농업은 반드시 쇠퇴합니다. 제도로써 절제하는 것을 어찌 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부치(浮侈)》 제12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14】
積微傷行,懷安敗名,明莫恣欲,而無悛容。足以愎諫,聞善不從。微安召辱,終必有凶。故敘《慎微》第十三。

【번역문 14】
미미한 것이 쌓여 행실을 상하게 하고, 편안함을 품어 이름을 망치니, 밝은 이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뉘우치는 기색이 없습니다. 고집으로 간언을 물리치고, 좋은 말을 들어도 따르지 않습니다. 작은 편안함이 욕됨을 부르니, 끝내는 반드시 흉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미(慎微)》 제13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15】
明主思良,勞精賢知。百寮阿黨,不覈真偽,苟崇虛譽,以相誑曜,居官任職,則無功效。故敘《寔貢》第十四。

【번역문 15】
현명한 군주는 어진 이를 생각하고, 어질고 지혜로운 이를 위해 정신을 수고롭게 합니다. 모든 관리가 아첨하고 무리 지어, 참과 거짓을 살피지 않고, 그저 헛된 명예만 숭상하여 서로를 속이고 현혹시키니, 관직에 있으면서 직책을 맡아도 공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식공(寔貢)》 제14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16】
聖人養賢,以及萬民。先王之制,皆足代耕。增爵損祿,必程以傾。先益吏俸,乃可致平。故敘《班祿》第十五。

【번역문 16】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 만백성에게 미치게 합니다. 선왕의 제도는 모두 밭 가는 것을 대신할 만합니다. 작위를 늘리고 녹봉을 줄이면, 반드시 기울어짐에 이르게 됩니다. 먼저 관리의 봉록을 늘려주어야, 이에 공평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록(班祿)》 제15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17】
君憂臣勞,古今通義。上思致平,下宜竭惠。貞良信士,咸痛數赦。姦宄繁興,但以赦故。乃敘《述赦》第十六。

【번역문 17】
군주가 근심하면 신하가 수고로운 것은, 고금의 공통된 의리입니다. 윗사람이 태평을 이루려 생각하면, 아랫사람은 마땅히 은혜를 다해야 합니다. 곧고 어질며 믿음직한 선비들은 모두 잦은 사면을 통탄합니다. 간사한 도적이 번성하는 것은, 다만 사면 때문입니다. 이에 《술사(述赦)》 제16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18】
先王御世,兼秉威德,賞有建侯,罰有刑渥。賞重嚴禁,臣乃敬職。將脩太平,必媚此法。故敘《三式》第十七。

【번역문 18】
선왕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때, 위엄과 덕을 겸하여 잡으셨으니, 상으로는 제후를 세움이 있었고, 벌로는 두터운 형벌이 있었습니다. 상을 무겁게 하고 금령을 엄하게 하면, 신하가 이에 직책을 공경합니다. 장차 태평을 닦으려면, 반드시 이 법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삼식(三式)》 제17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19】
民為國基,穀為民命。日力不暇,穀何由盛?公卿師尹,「卒勞百姓」,輕奪民時,誠可憤諍!故敘《愛日》第十八。

【번-역문 19】
백성은 나라의 기초요, 곡식은 백성의 생명입니다. 날마다 힘쓸 겨를이 없으면, 곡식이 어찌하여 풍성해지겠습니까? 공경과 사윤(師尹)이 “마침내 백성을 수고롭게 하니”,¹⁰⁾ 가벼이 백성의 때를 빼앗는 것은, 참으로 분개하고 다툴 만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애일(愛日)》 제18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20】
觀吏所治,鬭訟居多。原禍所起,詐欺所為。將絕其末,必塞其原。民無欺紿,世乃平安。故敘《斷訟》第十九。

【번역문 20】
관리가 다스리는 바를 보니, 다툼과 송사가 대부분입니다. 재앙이 일어나는 근원을 따져보면, 속이고 기만하는 짓 때문입니다. 장차 그 말단을 끊으려면, 반드시 그 근원을 막아야 합니다. 백성에게 속임수가 없어야, 세상이 이에 평안해집니다. 그러므로 《단송(斷訟)》 제19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21】
五帝三王,優劣有情。雖欲超皇,當先致平。「必世後仁」,仲尼之經。遭衰姦牧,得不用刑?故敘《衰制》第二十。

【번역문 21】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은 우열의 실정이 있습니다. 비록 황(皇)을 뛰어넘고자 하나, 마땅히 먼저 태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반드시 한 세대가 지난 뒤에야 인(仁)이 행해진다”는 것은 중니의 경전 말씀입니다.¹¹⁾ 쇠퇴한 시대를 만나고 간사한 목민관을 만났는데, 형벌을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쇠제(衰制)》 제20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22】
聖王憂勸,選練將帥,授以鈇鉞,假以權貴。誠多蔽暗,不識變勢,賞罰不明,安得不敗?故敘《勸將》第二十一。

【번-역문 22】
성왕께서는 근심하고 권면하시어, 장수를 가려 뽑고 훈련시키며, 부월(鈇鉞)을 주고 권세와 귀함을 빌려주셨습니다.¹²⁾ 진실로 가려지고 어두운 이가 많아, 변화하는 형세를 알지 못하고, 상벌이 분명하지 않으니, 어찌 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권장(勸將)》 제21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23】
蠻夷猾夏,古今所患。堯、舜憂民,皋陶術叛;宣王中興,南仲征邊。今民日死,如何弗蕃?故敘《救邊》第二十二。

【번역문 23】
오랑캐가 중화를 어지럽히는 것은, 고금의 근심거리입니다. 요·순은 백성을 걱정하였고, 고요(皋陶)는 반란을 다스렸습니다. 선왕(宣王)은 중흥하였고, 남중(南仲)은 변방을 정벌하였습니다. 지금 백성들이 날마다 죽어가는데, 어찌 막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구변(救邊)》 제22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24】
凡民之情,與君殊戾,不能遠慮,督取一制,苟扶私議,以為國計。宜尋其言,以詰所謂。故敘《邊議》第二十三。

【번역문 24】
무릇 백성의 실정은 군주와는 사뭇 달라, 멀리 생각하지 못하고, 한 가지 제도만 감독하여 취하며, 그저 사사로운 논의를 도와 나라의 계책으로 삼습니다. 마땅히 그 말을 찾아, 그 이르는 바를 따져 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변의(邊議)》 제23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25】
邊既遠門,太守擅權。臺閣不察,信其姦言,今懷郡縣,毆民內遷。今又丘荒,慮必生心。故敘《寔邊》第二十四。

【번역문 25】
변방은 이미 대궐에서 멀고, 태수는 권력을 마음대로 합니다. 대각(臺閣)에서는 살피지 않고 그 간사한 말을 믿어, 지금 군현을 품에 안고 백성을 몰아 내지로 옮깁니다. 지금 또한 언덕이 황폐해졌으니, (오랑캐가) 반드시 마음을 낼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실변(寔邊)》 제24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26】
天生神物,「聖人則之。」蓍龜卜筮,以定嫌疑。俗工淺源,莫盡其才。自大非賢,何足信哉?故敘《卜列》第二十五。

【번-역문 26】
하늘이 신령한 물건을 내니, “성인이 그것을 본받습니다.”¹³⁾ 시초와 거북으로 점을 쳐서, 의심스러운 것을 정합니다. 속된 술사는 근원이 얕아, 그 재능을 다하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는 것은 어진 것이 아니니, 어찌 믿을 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복렬(卜列)》 제25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27】
《易》有史巫,《詩》有工祝。聖人先成,民後致力。兆黎勸樂,神乃授福。孔子不祈,以明在德。故敘《巫列》第二十六。

【번역문 27】
《역경》에는 사관과 무당이 있고, 《시경》에는 악사와 축관이 있습니다. 성인이 먼저 이루면, 백성이 뒤에 힘씁니다. 뭇 백성이 권면하고 즐거워하면, 신이 이에 복을 내립니다. 공자께서 기도하지 않으신 것은, 복이 덕(德)에 있음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무렬(巫列)》 제26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28】
五行八卦,陰陽所生,稟氣薄厚,以著其形。天題厥象,人寔奉成。弗修其行,福祿不臻。故敘《相列》第二十七。

【번역문 28】
오행과 팔괘는 음양이 낳은 바이니, 기(氣)를 박하게 혹은 후하게 받아 그 형체를 드러냅니다. 하늘이 그 형상을 드러내면, 사람이 실로 그것을 받들어 이룹니다. 그 행실을 닦지 않으면, 복과 녹이 이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상렬(相列)》 제27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29】
《詩》稱吉夢,書傳亦多,觀察行事,古驗不虛。福從善來,禍由德痡,吉凶之應,與行相須。故敘《夢列》第二十八。

【번-역문 29】
《시경》에서는 길한 꿈을 칭송하고, 서(書)와 전(傳)에도 또한 많으니, 행실을 관찰하면 옛 증험이 헛되지 않습니다. 복은 선(善)으로부터 오고, 화는 덕(德)이 병듦으로 말미암으니, 길흉의 응함은 행실과 서로 기다리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몽렬(夢列)》 제28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30】
論難撗發,令道不通。後進疑惑,不知所從。自昔庚子,而有責云。「予豈好辯」?將以明真。故敘《釋難》第二十九。

【번역문 30】
논란이 멋대로 일어나, 도(道)가 통하지 않게 합니다. 후진(後進)들이 의혹하여, 따를 바를 알지 못합니다. 옛날부터 경자(庚子)와 같은 이들이 있어, 비난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내가 어찌 변론을 좋아하겠는가?”¹⁴⁾ 장차 참됨을 밝히고자 함입니다. 그러므로 《석난(釋難)》 제29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31】
朋友之際,義存六紀,「攝以威儀」,講習王道,善其久要,貴賤不改。今民遷久,莫之能奉。故敘《交際》第三十。

【번-역문 31】
친구 사이에는 의리가 여섯 기강에 있으니,¹⁵⁾ “위의로써 바로잡고”, 왕도(王道)를 강습하며, 오랜 약속을 잘 지켜 귀천에 따라 바꾸지 않습니다. 지금 백성들이 변한 지 오래되어, 능히 이를 받드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제(交際)》 제30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32】
君有美稱,臣有令名,二人同心,所願乃成。寶權神術,勾示下情,治勢一定,終莫能傾。故敘《明忠》第三十一。

【번역문 32】
군주에게는 아름다운 칭호가 있고, 신하에게는 훌륭한 이름이 있으니, 두 사람이 한마음이면 원하는 바가 이에 이루어집니다. 권력을 보배로 여기고 통치술을 신묘하게 하여, 아랫사람의 실정을 드러내게 하면, 다스려지는 형세가 한번 정해지면 끝내 기울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명충(明忠)》 제31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33】
人天情通,氣感相和,善惡相徵,異端變化。聖人運之,若御舟車,作民精神,莫能含嘉。故敘《本訓》第三十二。

【번-역문 33】
사람과 하늘은 실정이 통하고, 기(氣)가 감응하여 서로 조화하며, 선과 악이 서로 증험되고, 기이한 단서가 변화합니다. 성인이 이를 운용하는 것은, 마치 배나 수레를 부리는 것과 같으니, 백성의 정신을 일으키면, 아름다움을 머금지 못할 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훈(本訓)》 제32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34】
明王統治,莫大身化,道德為本,仁義為佐。思心順政,責民務廣,四海治焉,何有消長?故敘《德化》第三十三。

【번역문 34】
현명한 왕의 통치는 몸소 교화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도덕을 근본으로 삼고, 인의를 보좌로 삼습니다. 마음을 생각하고 정치에 순응하며, 백성을 책망하고 널리 힘쓰게 하면, 온 세상이 다스려지니, 어찌 사라지고 자라남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덕화(德化)》 제33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35】
上觀太古,五行之運,咨之《詩》、《書》,考之前訓。氣終度盡,後代復進。雖未必正,可依傳問。故敘《五德志》第三十四。

【번-역문 35】
위로 태고(太古)를 관찰하고, 오행(五行)의 운행을 살피며, 《시경》과 《서경》에 묻고, 이전의 가르침을 상고합니다. 기운이 끝나고 법도가 다하면, 후대가 다시 나아갑니다. 비록 반드시 올바르지는 않더라도, 전(傳)에 의거하여 물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덕지(五德志)》 제34편을 서술합니다.


【원문 36】
君子多識,「前言往行」。「類族變物」,古有斯姓。博見同□□□□□□□□□□□□□。故敘《志民姓》第三十五。

【번역문 36】
군자는 “옛말과 지난 행실”을 많이 압니다. “족속을 분류하고 사물을 분별하니”, 옛날에 이러한 성(姓)이 있었습니다. 널리 보고 같은 것을... 그러므로 《지민성(志民姓)》 제35편을 서술합니다.¹⁶⁾


주석 (Footnotes)

1) 立德(입덕), 立功(입공), 立言(입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4년 조에 나오는 ‘삼불후(三不朽)’를 가리킨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남길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세 가지 불멸의 업적으로, 가장 높은 것은 덕을 세우는 것, 그 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 그 다음은 말을 남기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 ‘입언(立言)’을 시도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2) 芻蕘(추요): 땔나무를 하는 사람과 풀을 베는 사람. 미천한 신분의 사람을 비유한다.
3) 左丘明《五經》(좌구명 오경): 이 부분은 해석에 논란이 있다. 좌구명은 『춘추좌씨전』과 『국어』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오경(五經)을 저술했다는 기록은 없다. 저자가 좌구명을 오경의 해설자 중 한 명으로 보았거나, 혹은 ‘좌구명’과 ‘오경’을 각각 훌륭한 역사서와 경전의 대표로 병렬하여, 자신의 저술이 이러한 위대한 전통을 잇고자 함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4) 誨人不倦(회인불권):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5) 戴盆望天(대분망천): 동이를 머리에 이고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여기서는 부도덕한 행실과 명예로운 결과를 동시에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6) 為仁不富,為富不仁(위인불부, 위부불인):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상」에 나오는 말이다.
7) 《遏利》第三: 현재 전해지는 《잠부론》의 편명 순서와 일치한다.
8) 當塗之人(당도지인): ‘塗’는 ‘途’와 통하여 ‘길’을 의미한다. 길을 막고 있는 사람, 즉 권력을 잡고 국정을 방해하는 간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9) 憎是掊克(증시부극):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나오는 말이다. ‘부극(掊克)’은 재물을 탐하고 백성을 착취하는 탐관오리를 뜻한다.
10) 卒勞百姓(졸로백성): 『시경(詩經)』 「소아(小雅)·북산(北山)」에 나오는 구절이다.
11) 必世後仁(필세후인): 『논어』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말이다. 선한 정치를 베풀어도, 한 세대(30년)가 지난 뒤에야 인(仁)이 사회에 정착된다는 의미로, 교화의 어려움과 점진성을 말한다.
12) 鈇鉞(부월): 고대에 장수에게 출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하사하던 큰 도끼. 군사적 지휘권을 의미한다.
13) 聖人則之(성인칙지):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상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14) 予豈好辯(여기호변): 『맹자』 「등문공 하」에 나오는 맹자의 말이다. 자신이 변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지러운 사상을 바로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변론한다는 의미이다.
15) 六紀(육기): 친구 사이에 지켜야 할 여섯 가지 도리를 말한다. 그 내용은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나, 대체로 서로의 장점을 칭찬하고, 단점을 충고하며, 환난을 구제하고, 비밀을 지키는 등의 덕목을 포함한다.
16) 博見同□□□□□□□□□□□□□。故敘《志民姓》第三十五: 이 부분은 원문이 훼손되어 내용을 알 수 없다. 문맥상 “널리 보고 같은 점과 다른 점을...하여, 《지민성(志民姓)》 제35편을 서술한다”는 내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전해지는 《잠부론》의 33편 제목은 《지씨성(志氏姓)》인데, 여기서는 《지민성(志民姓)》으로 기록되어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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