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非子》 〈初見秦〉 번역 및 주석
원문 1
臣聞不知而言不智,知而不言不忠,為人臣不忠當死,言而不當亦當死。雖然,臣願悉言所聞,唯大王裁其罪。
번역 1
신(臣)이 듣건대, 알지 못하면서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고,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은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남의 신하가 되어 충성스럽지 못하면 마땅히 죽어야 하고, 말이 합당하지 않아도 또한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비록 그러하오나, 신은 들은 바를 모두 아뢰고자 하오니, 오직 대왕께서 그 죄를 재단(裁斷)하여 주시옵소서.
원문 2
臣聞天下陰燕陽魏,連荊固齊,收韓而成從,將西面以與秦強為難,臣竊笑之。世有三亡,而天下得之,其此之謂乎!臣聞之曰:「以亂攻治者亡,以邪攻正者亡,以逆攻順者亡。」今天下之府庫不盈,囷倉空虛,悉其士民,張軍數十百萬。其頓首戴羽為將軍,斷死於前,不至千人,皆以言死。白刃在前,斧鑕在後,而卻走不能死也。非其士民不能死也,上不能故也。言賞則不與,言罰則不行,賞罰不信,故士民不死也。
번역 2
신이 듣건대, 천하가 북쪽의 연(燕)과 남쪽의 위(魏)로¹⁾ 시작하여, 초(楚)나라와 연합하고 제(齊)나라를 굳건히 하며, 한(韓)나라를 거두어 합종(合從)²⁾을 이루고는, 장차 서쪽을 향하여 강한 진(秦)나라와 어려움을 함께하고자 하니, 신은 남몰래 이를 비웃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망하는 길이 있는데 천하가 그것을 모두 가졌으니, 아마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습니다! 신이 듣기를, “혼란으로써 다스려짐을 공격하는 자는 망하고, 사악함으로써 올바름을 공격하는 자는 망하며, 거스름으로써 순리를 공격하는 자는 망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천하의 부고(府庫)는 가득 차지 않았고, 원형 창고[囷倉]³⁾는 텅 비어 있는데도, 그 사민(士民)을 다 동원하여 수십, 수백만의 군대를 벌여놓고 있습니다. 그 머리를 조아리고 깃 장식을 달고 장군이 된 자들⁴⁾ 중에서, 앞에서 결연히 죽는 자는 천 명에 이르지 못하고, 모두 말로써 죽을 뿐입니다.⁵⁾ 시퍼런 칼날이 앞에 있고 도끼와 형틀[斧鑕]⁶⁾이 뒤에 있는데도, 물러나 달아나면서도 죽지 못합니다. 그 사민들이 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이 그들로 하여금 죽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⁷⁾ 상을 주겠다 말해도 주지 않고, 벌을 내리겠다 말해도 시행하지 않으니, 상벌에 믿음이 없으므로 사민들이 죽지 않는 것입니다.
주석
1) 음연양위(陰燕陽魏): 산의 북쪽을 음(陰), 남쪽을 양(陽)이라 한다. 여기서는 태행산맥(太行山脈)을 기준으로 하여, 그 북쪽에 있는 연나라와 남쪽에 있는 위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합종책에 참여하는 주요 국가들을 지리적 위치에 따라 묘사한 것이다.
2) 합종(合從):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진(秦)나라를 제외한 6국(한, 위, 조, 연, 초, 제)이 남북으로 연합하여 서쪽의 강대국인 진나라에 대항하던 외교 정책. 소진(蘇秦)이 주장하였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은 연횡(連衡)으로, 각 나라가 개별적으로 진나라와 동맹을 맺어 섬기는 정책이며 장의(張儀)가 주장했다.
3) 균창(囷倉): 원형(圓形)으로 지은 쌀 창고. ‘균(囷)’은 원형 창고, ‘창(倉)’은 사각형 창고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곡물 창고를 통칭한다.
4) 돈수대우위장군(頓首戴羽為將軍): ‘머리를 조아리고[頓首] 깃을 달고[戴羽] 장군이 되다’라는 뜻. 이는 실질적인 군공(軍功)이나 능력이 아니라, 아첨이나 형식적인 절차를 통해 장군이 된 자들을 비판하는 표현이다.
5) 개이언사(皆以言死):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모두 말로만 죽겠다고 할 뿐 실제로는 죽지 않는다’는 의미. 둘째, ‘(전쟁에 패하여) 그 책임에 대한 말 때문에 죽는다’, 즉 패전의 책임을 물어 처형당한다는 의미. 문맥상 전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 그들의 용맹이 실제가 아닌 허풍에 불과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6) 부질(斧鑕): ‘부(斧)’는 도끼, ‘질(鑕)’은 사형을 집행할 때 머리나 허리를 올려놓던 형틀(모루)이다. 즉, 군율에 따라 탈영병 등을 처형하는 엄한 형벌을 상징한다.
7) 상불능고야(上不能故也): ‘윗사람이 능히 그렇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故)’는 ‘~하게 하다’, ‘시키다’라는 사역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병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지 않는 것은 그들의 본성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지도층이 상벌을 공정하고 확실하게 시행하여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법가(法家)의 핵심 사상이 드러나는 구절이다.
원문 3
今秦出號令而行賞罰,有功無功相事也。出其父母懷衽之中,生未嘗見寇耳。聞戰,頓足徒裼,犯白刃,蹈鑪炭,斷死於前者皆是也。夫斷死與斷生者不同,而民為之者,是貴奮死也。夫一人奮死可以對十,十可以對百,百可以對千,千可以對萬,萬可以剋天下矣。今秦地折長補短,方數千里,名師數十百萬。秦之號令賞罰、地形利害,天下莫若也。以此與天下,天下不足兼而有也。是故秦戰未嘗不剋,攻未嘗不取,所當未嘗不破,開地數千里,此其大功也。然而兵甲頓,士民病,蓄積索,田疇荒,囷倉虛,四鄰諸侯不服,霸王之名不成,此無異故,其謀臣皆不盡其忠也。
번역 3
지금 진나라는 호령(號令)을 내리고 상벌(賞罰)을 시행함에 있어, 공이 있는 자와 공이 없는 자의 대우가 서로 다릅니다.⁸⁾ 그 부모의 품속에서 나와 나서는 평생 도적조차 본 적이 없을 뿐입니다.⁹⁾ 그러나 전쟁 소식을 들으면, 발을 구르고 웃통을 벗어붙이며,¹⁰⁾ 시퍼런 칼날을 무릅쓰고 숯불 화로를 밟으며,¹¹⁾ 앞에서 결연히 죽는 자들이 모두 이러합니다. 무릇 죽기를 각오하는 것과 살기를 각오하는 것은 다른데도 백성들이 이를 행하는 것은, 분연히 일어나 죽는 것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무릇 한 사람이 분연히 일어나 죽고자 하면 열 사람을 대적할 수 있고, 열 사람은 백 사람을, 백 사람은 천 사람을, 천 사람은 만 사람을 대적할 수 있으며, 만 사람이면 천하를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진나라의 땅은 긴 곳을 잘라 짧은 곳을 보충하여¹²⁾ 사방 수천 리에 달하고, 이름난 군대는 수십, 수백만입니다. 진나라의 호령과 상벌, 지형의 유리함과 불리함은 천하에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이것으로써 천하를 상대한다면, 천하를 겸병하여 소유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진나라는 싸워서 이기지 않은 적이 없었고, 공격하여 빼앗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맞서는 것마다 격파하지 않은 적이 없어, 영토를 수천 리나 열었으니, 이것이 그 큰 공업(功業)입니다. 그러나 병기와 갑옷은 낡고[頓], 사민들은 지쳤으며[病], 비축한 물자는 바닥나고[索], 밭두둑은 황폐해졌으며, 원형 창고는 비었고, 사방의 이웃 제후들은 복종하지 않으며, 패왕(霸王)의 이름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니,¹³⁾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니라, 그 모신(謀臣)들이 모두 그 충성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석
8) 유공무공상사야(有功無功相事也): ‘공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일을 달리한다’는 뜻으로, 공적에 따라 대우가 명확히 구분됨을 의미한다. 진나라의 신상필벌(信賞必罰)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9) 생미상견구이(生未嘗見寇耳): ‘살면서 일찍이 도적(寇)을 본 적도 없다’는 뜻. 이는 진나라의 국내 치안이 안정되어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았음을 의미한다. 그런 평화로운 환경에서 자란 젊은이들조차 일단 전쟁이 나면 용맹하게 싸운다는 점을 부각시켜, 진나라 군대의 강인함이 본성이 아니라 엄격한 법과 제도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10) 돈족도석(頓足徒裼): ‘발을 구르고[頓足] 웃통을 벗다[徒裼]’. 병사들이 전투에 임하기 전, 결의를 다지고 용맹을 과시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표현이다.
11) 도로탄(蹈鑪炭): ‘화로(鑪)와 숯(炭)을 밟는다’는 뜻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떠한 위험에도 뛰어드는 용맹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12) 절장보단(折長補短):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보충한다’는 뜻의 성어. 여기서는 진나라가 영토를 확장하고 정리하여 지리적으로 효율적이고 방어에 유리한 형태를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13) 패왕(霸王): 춘추시대의 패자(覇者)와 전국시대의 왕(王)을 합친 말로, 무력과 덕을 겸비하여 천하를 호령하는 절대 군주를 의미한다. 진나라가 수많은 군사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천하의 지배자, 즉 패왕이 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문제의 핵심으로 넘어가는 부분이다.
원문 4
臣敢言之,往者齊南破荊,東破宋,西服秦,北破燕,中使韓、魏,土地廣而兵強,戰剋攻取,詔令天下。齊之清濟濁河,足以為限;長城巨防,足以為塞。齊五戰之國也,一戰不剋而無齊。由此觀之,夫戰者,萬乘之存亡也。且聞之曰:「削跡無遺根,無與禍鄰,禍乃不存。」秦與荊人戰,大破荊,襲郢,取洞庭、五湖、江南,荊王君臣亡走,東服於陳。當此時也,隨荊以兵則荊可舉,荊可舉,則民足貪也,地足利也。東以弱齊、燕,中以凌三晉。然則是一舉而霸王之名可成也,四鄰諸侯可朝也。而謀臣不為,引軍而退,復與荊人為和,令荊人得收亡國,聚散民,立社稷,主置宗廟,令率天下西面以與秦為難,此固以失霸王之道一矣。天下又比周而軍華下,大王以詔破之,兵至梁郭下,圍梁數旬則梁可拔,拔梁則魏可舉,舉魏則荊、趙之意絕,荊、趙之意絕則趙危,趙危而荊狐疑,東以弱齊、燕,中以凌三晉。然則是一舉而霸王之名可成也,四鄰諸侯可朝也。而謀臣不為,引軍而退,復與魏氏為和,令魏氏反收亡國,聚散民,立社稷,主置宗廟,令,此固以失霸王之道二矣。前者穰侯之治秦也,用一國之兵而欲以成兩國之功。是故兵終身暴露於外,士民疲病於內,霸王之名不成,此固以失霸王之道三矣。
번역 4
신이 감히 말씀드립니다. 지난날 제(齊)나라는 남쪽으로 초(楚)를 격파하고, 동쪽으로 송(宋)을 격파했으며, 서쪽으로 진(秦)을 굴복시키고, 북쪽으로 연(燕)을 격파했으며, 중앙의 한(韓)·위(魏)를 복속시켜, 토지는 넓고 군대는 강성하였으며,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빼앗아 천하에 조령(詔令)을 내렸습니다. 제나라의 맑은 제수(濟水)와 흐린 황하(黃河)는 국경으로 삼기에 충분하였고, 장성(長城)과 거대한 제방은 요새로 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제나라는 다섯 번 싸워 이긴 강국이었으나,¹⁴⁾ 한 번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자 제나라가 없어졌습니다. 이로 보건대, 무릇 전쟁이란 만승(萬乘)¹⁵⁾의 국가가 존망(存亡)하는 것입니다. 또한 듣기를, “자취를 깎아낼 때는 뿌리를 남기지 말아야 재앙과 이웃하지 않으니, 그래야 재앙이 남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진나라가 초나라 사람과 싸워 초나라를 대파하고 그 수도인 영(郢)을 습격하여 동정호(洞庭湖), 오호(五湖), 강남(江南) 땅을 빼앗으니, 초나라 왕과 신하들은 도망쳐 동쪽의 진(陳)나라에 복속하였습니다. 이때를 당하여, 초나라를 군대로 추격했다면 초나라를 점령할 수 있었을 것이고, 초나라를 점령할 수 있었다면 그 백성은 탐할 만하고 그 땅은 이롭게 할 만했을 것입니다.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연나라를 약화시키고, 중앙으로는 삼진(三晉)¹⁶⁾을 능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했다면 한 번의 거사로 패왕의 이름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고, 사방의 이웃 제후들이 조회를 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신(謀臣)들은 이를 행하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물러나 다시 초나라 사람들과 화친하여, 초나라 사람들이 망한 나라를 수습하고 흩어진 백성을 모으며, 사직(社稷)을 세우고 종묘(宗廟)를 주관하여 설치하게 하여, 천하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나라와 맞서 어려움을 겪게 하였으니, 이것이 진실로 패왕의 도를 잃은 첫 번째 일입니다. 천하가 또다시 서로 규합하여 화산(華山) 아래에 군대를 주둔시키자, 대왕께서 조서를 내려 이를 격파하시고, 군대가 위나라 수도인 대량(大梁)의 성곽 아래에 이르렀습니다. 대량을 수십 일 포위했다면 대량을 함락시킬 수 있었고, 대량을 함락시켰다면 위나라를 점령할 수 있었으며, 위나라를 점령했다면 초나라와 조(趙)나라의 (연합하려는) 뜻이 끊어졌을 것입니다. 초나라와 조나라의 뜻이 끊어지면 조나라가 위태로워지고, 조나라가 위태로워지면 초나라는 여우처럼 의심하게 될 것이며,¹⁷⁾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연나라를 약화시키고, 중앙으로는 삼진을 능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했다면 한 번의 거사로 패왕의 이름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고, 사방의 이웃 제후들이 조회를 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신들은 이를 행하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물러나 다시 위씨(魏氏)와 화친하여, 위씨가 도리어 망한 나라를 수습하고 흩어진 백성을 모으며,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주관하여 설치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진실로 패왕의 도를 잃은 두 번째 일입니다. 이전에 양후(穰侯)¹⁸⁾가 진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한 나라의 군대를 쓰면서 두 나라의 공을 이루려고 하였습니다.¹⁹⁾ 이런 까닭에 군대는 종신토록 밖에서 풍찬노숙하고 사민들은 안에서 지치고 병들었으나, 패왕의 이름은 이루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진실로 패왕의 도를 잃은 세 번째 일입니다.
주석
14) 제오전지국야(齊五戰之國也): 제나라 민왕(湣王) 때의 강성함을 표현하는 말. 제나라가 송(宋)을 멸망시키는 등 다섯 차례의 큰 전쟁에서 승리하여 위세를 떨쳤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직후 연(燕)나라 악의(樂毅)가 이끈 5개국 연합군에게 대패하여 망국의 위기에 처했던 사실을 지적하며, 강대국이라도 한 번의 패배로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15) 만승(萬乘): ‘만 대의 병거(兵車)’. 고대에 병거의 수는 국력의 척도였으며, 병거 만 대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는 천자(天子)의 나라 또는 그에 버금가는 강대국을 의미했다.
16) 삼진(三晉): 본래 하나였던 진(晉)나라가 전국시대 초기에 한(韓), 위(魏), 조(趙) 세 나라로 분열된 것을 통칭하는 말이다.
17) 형호의(荊狐疑): ‘초나라가 여우처럼 의심한다’는 뜻. 여우는 의심이 많은 동물로 알려져 있다. 동맹인 위나라가 멸망하고 조나라가 위태로워지면, 초나라는 진나라의 다음 목표가 자신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고 의심과 불안에 빠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18) 양후(穰侯): 이름은 위염(魏冉). 진 소양왕(昭襄王)의 외삼촌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재상이다. 그는 자신의 봉지인 도(陶) 땅을 넓히기 위해, 진나라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제나라를 공격하는 등 국가의 이익보다 사적인 이익을 우선시하는 월권(越權) 외교를 펼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19) 용일국지병 이욕이성양국지공(用一國之兵 而欲以成兩國之功): ‘한 나라(진나라)의 군대를 사용하여 두 나라(진나라와 양후 자신의 봉국인 도나라)의 공을 이루려 했다’는 의미. 이는 양후 위염이 진나라의 군사력을 사적인 영토 확장에 남용하여 국력을 낭비하고, 정작 진나라의 통일 대업에는 기여하지 못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원문 5
趙氏,中央之國也,雜民所居也。其民輕而難用也。號令不治,賞罰不信,地形不便,下不能盡其民力。彼固亡國之形也,而不憂民萌。悉其士民,軍於長平之下,以爭韓上黨。大王以詔破之,拔武安。當是時也,趙氏上下不相親也,貴賤不相信也。然則邯鄲不守。拔邯鄲,筦山東河間,引軍而去,西攻脩武,踰華,絳上黨。代四十六縣,上黨七十縣,不用一領甲,不苦一士民,此皆秦有也。以代、上黨不戰而畢為秦矣,東陽、河外不戰而畢反為齊矣,中山、呼沱以北不戰而畢為燕矣。然則是趙舉,趙舉則韓亡,韓亡則荊、魏不能獨立,荊、魏不能獨立則是一舉而壞韓、蠹魏、拔荊,東以弱齊、燕,決白馬之口以沃魏氏,是一舉而三晉亡,從者敗也。大王垂拱以須之,天下編隨而服矣,霸王之名可成。而謀臣不為,引軍而退,復與趙氏為和。夫以大王之明,秦兵之強,棄霸王之業,地曾不可得,乃取欺於亡國,是謀臣之拙也。且夫趙當亡而不亡,秦當霸而不霸,天下固以量秦之謀臣一矣。乃復悉士卒以攻邯鄲,不能拔也,棄甲負弩,戰竦而卻,天下固已量秦力二矣。軍乃引而復,并於孚下,大王又并軍而至,與戰不能剋之也,又不能反運,罷而去,天下固量秦力三矣。內者量吾謀臣,外者極吾兵力。由是觀之,臣以為天下之從,幾不難矣。內者,吾甲兵頓,士民病,蓄積索,田疇荒,囷倉虛;外者、天下皆比意甚固。願大王有以慮之也。
번역 5
조씨(趙氏)는 중앙의 나라이며, 여러 족속이 섞여 사는 곳입니다. 그 백성은 경박하여 부리기가 어렵습니다. 호령은 잘 시행되지 않고, 상벌은 믿음이 없으며, 지형은 편리하지 않고, 아랫사람들은 그 백성의 힘을 다하게 할 수 없습니다. 저들은 진실로 망해가는 나라의 형세인데도, 백성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민을 모두 동원하여 장평(長平) 아래에 군대를 주둔시켜 한나라의 상당(上黨) 땅을 다투었습니다. 대왕께서 조서를 내려 이를 격파하시고, 무안(武安)을 함락시키셨습니다. 이때를 당하여, 조씨는 상하가 서로 친하지 않았고, 귀천이 서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했다면 수도인 한단(邯鄲)은 지켜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단을 함락시키고, 산동(山東)²⁰⁾과 하간(河間)을 장악한 뒤, 군대를 이끌고 가서 서쪽으로 수무(脩武)를 공격하고, 화산(華山)을 넘어 상당 땅을 아우릅니다. 대(代) 땅의 46개 현과 상당 땅의 70개 현은, 갑옷 한 벌 쓰지 않고 사민 한 명 괴롭히지 않아도, 이 모두가 진나라의 소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대(代)와 상당이 싸우지 않고도 모두 진나라의 것이 되었다면, 동양(東陽)과 하외(河外)는 싸우지 않고도 모두 도리어 제나라의 것이 되고,²¹⁾ 중산(中山)과 호타하(呼沱河) 북쪽은 싸우지 않고도 모두 연나라의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했다면 이는 조나라가 점령되는 것이고, 조나라가 점령되면 한나라가 망하며, 한나라가 망하면 초나라와 위나라가 능히 독립하지 못할 것입니다. 초나라와 위나라가 능히 독립하지 못하면 이는 한 번의 거사로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위나라를 좀먹게 하고, 초나라를 뽑아내며,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연나라를 약화시키고, 백마(白馬)의 나루를 터뜨려 위씨의 땅을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이니,²²⁾ 이는 한 번의 거사로 삼진(三晉)이 망하고 합종(合從)이 깨지는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팔짱을 끼고 기다리기만 하시면,²³⁾ 천하가 차례로 뒤따라 복종할 것이니, 패왕의 이름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신들은 이를 행하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물러나 다시 조씨와 화친하였습니다. 무릇 대왕의 밝으심과 진나라 군대의 강함으로 패왕의 위업을 포기하고, 땅 한 뼘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망해가는 나라에게 속임을 당했으니, 이는 모신들의 졸렬함입니다. 또한 무릇 조나라는 마땅히 망해야 했는데 망하지 않았고, 진나라는 마땅히 패자가 되어야 했는데 패자가 되지 못했으니, 천하가 진실로 이로써 진나라 모신들의 역량을 한 번 헤아렸습니다. 이에 다시 사졸을 모두 동원하여 한단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갑옷을 버리고 쇠뇌를 등에 진 채, 두려워 떨며 물러났으니, 천하가 진실로 이미 진나라의 힘을 두 번 헤아렸습니다. 군대가 이에 물러나 돌아와 부(孚) 땅 아래에 집결하자, 대왕께서 또 군대를 합쳐 이르러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시고, 또한 군량을 운송하지도 못하여, 지쳐서 떠나갔으니, 천하가 진실로 진나라의 힘을 세 번 헤아렸습니다. 안으로는 우리의 모신들을 헤아리게 하고, 밖으로는 우리 병력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신이 생각하기에 천하의 합종은 거의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안으로는 우리의 갑옷과 병기가 낡고, 사민은 지쳤으며, 비축한 물자는 바닥나고, 밭두둑은 황폐해졌으며, 원형 창고는 비어 있습니다. 밖으로는 천하가 모두 뜻을 합하는 것이 매우 굳건합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이를 염려할 방도를 가지시옵소서.
주석
20) 산동(山東): 고대 지리에서 ‘산동’은 특정 지역 이름이 아니라, ‘산의 동쪽’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였다. 여기서는 효산(崤山) 또는 화산(華山)의 동쪽 지역, 즉 전국 6국이 위치한 중원 지역을 가리킨다.
21) 동양(東陽)·하외(河外) ... 반위제(反爲齊)矣: 조나라가 멸망하면 그 영토 일부는 진나라가 차지하지만, 나머지 인접 지역들은 힘의 공백 상태가 되어 주변 강국인 제나라나 연나라에게 쉽게 흡수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는 조나라 멸망이 연쇄적인 세력 재편을 가져올 것임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22) 결백마지구 이옥위씨(決白馬之口 以沃魏氏): ‘백마의 나루[口]를 터뜨려 위나라를 물에 잠기게 한다’. 백마는 황하의 중요한 나루터로, 위나라 영토 근처에 있었다. 이곳의 제방을 무너뜨려 수공(水攻)을 가하면 위나라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구체적이고 무서운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23) 수공이수지(垂拱以須之):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낀 채[垂拱] 그것을 기다린다’.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모습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원문 6
且臣聞之曰:「戰戰栗栗,日慎一日,苟慎其道,天下可有。」何以知其然也?昔者紂為天子,將率天下甲兵百萬,左飲於淇溪,右飲於洹谿,淇水竭而洹水不流,以與周武王為難。武王將素甲三千,戰一日,而破紂之國,禽其身,據其地而有其民,天下莫傷。知伯率三國之眾以攻趙襄主於晉陽,決水而灌之三月,城且拔矣;襄主鑽龜筮占兆,以視利害,何國可降。乃使其臣張孟談於是乃潛於行而出,知伯之約,得兩國之眾以攻知伯,禽其身以復襄主之初。今秦地折長補短,方數千里,名師數十百萬,秦國之號令賞罰,地形利害,天下莫如也,以此與天下,天下可兼而有也。臣昧死願望見大王言所以破天下之從,舉趙、亡韓,臣荊、魏,親齊、燕,以成霸王之名,朝四鄰諸侯之道。大王誠聽其說,一舉而天下之從不破,趙不舉,韓不亡,荊、魏不臣,齊、燕不親,霸王之名不成,四鄰諸侯不朝,大王斬臣以徇國,以為王謀不忠者也。
번역 6
또한 신이 듣기를, “두려워하고 조심하며[戰戰栗栗] 날마다 더욱 신중히 하여, 진실로 그 도(道)를 신중히 한다면 천하를 소유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그러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옛날 상(商)나라 주왕(紂王)은 천자(天子)가 되어 천하의 갑병(甲兵) 백만을 거느리고, 왼쪽 군대는 기수(淇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오른쪽 군대는 원수(洹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니, 기수가 마르고 원수가 흐르지 않을 정도였으며, 이것으로 주(周)나라 무왕(武王)과 어려움을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무왕은 흰 갑옷의 병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하루를 싸워 주왕의 나라를 격파하고, 그의 몸을 사로잡았으며, 그의 땅을 점거하고 그의 백성을 소유하였으나, 천하는 아무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지백(知伯)은 세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진양(晉陽)에서 조양주(趙襄主)를 공격하여, 강물을 터뜨려 성에 물을 댄 지 석 달이 되어 성이 장차 함락될 지경이었습니다. 조양주가 귀갑과 시초로 점을 쳐 길흉을 보니, 어느 나라에 항복하는 것이 이로울지를 살폈습니다. 이에 그의 신하 장맹담(張孟談)을 시켜 마침내 몰래 행렬에 숨어 나가, 지백과의 맹약을 깨고 다른 두 나라의 군대를 얻어 지백을 공격하게 하여, 그의 몸을 사로잡고 조양주의 처음 위기를 회복시켰습니다.²⁴⁾ 지금 진나라의 땅은 긴 곳을 잘라 짧은 곳을 보충하여 사방 수천 리에 달하고, 이름난 군대는 수십, 수백만입니다. 진나라의 호령과 상벌, 지형의 유리함과 불리함은 천하에 이만한 곳이 없으니, 이것으로써 천하를 상대한다면 천하를 겸병하여 소유할 수 있습니다. 신은 죽을죄를 무릅쓰고 대왕을 뵙고 천하의 합종을 깨뜨리고, 조나라를 점령하고 한나라를 멸망시키며, 초나라와 위나라를 신하로 삼고, 제나라와 연나라를 가까이하여, 패왕의 이름을 이루고 사방의 이웃 제후들에게 조회를 받는 방도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그 말씀을 들어주시어, 한 번의 거사로 천하의 합종이 깨지지 않고, 조나라가 점령되지 않고, 한나라가 멸망하지 않으며, 초나라와 위나라가 신하가 되지 않고, 제나라와 연나라가 가까워지지 않으며, 패왕의 이름이 이루어지지 않고, 사방의 이웃 제후들이 조회를 오지 않는다면, 대왕께서는 신의 목을 베어 나라에 돌려 보이시어,²⁵⁾ 왕을 위해 불충한 계책을 꾸민 자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주석
24) 지백(知伯) ... 장맹담(張孟談) ... 고사: 춘추시대 말, 진(晉)나라의 권신이었던 지백(智伯)이 한(韓), 위(魏)와 연합하여 조양주(趙襄主)를 진양성에서 공격한 사건. 지백은 강물을 끌어들여 성을 수몰시키려 했으나, 조양주의 신하 장맹담이 몰래 성을 빠져나가 한, 위 두 나라를 설득하여 지백을 배신하게 만들었다. 결국 역공을 당한 지백은 패하여 죽고, 그의 영토는 세 나라가 나누어 가졌으며, 이는 훗날 삼진(三晉)이 성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약세에 몰렸더라도 외교적, 전략적 수단을 통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사례로 인용한 것이다.
25) 참신이순국(斬臣以徇國): ‘신의 목을 베어 나라에 돌려 보이다’. ‘순(徇)’은 죄인의 목을 베어 대중에게 보여 경각심을 일깨우는 행위를 뜻한다. 자신의 계책이 실패할 경우, 자신을 불충한 자의 본보기로 삼아 처형해도 좋다는 극단적인 표현이다. 이는 자신의 계책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과 목숨을 건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한 강력한 수사적 장치이다.
《한비자》 〈존한〉 번역 및 주석
원문 1
韓事秦三十餘年,出則為扞蔽,入則為蓆薦,秦特出銳師取韓地,而隨之怨懸於天下,功歸於強秦。且夫韓入貢職,與郡縣無異也。今臣竊聞貴臣之計,舉兵將伐韓。夫趙氏聚士卒,養從徒,欲贅天下之兵,明秦不弱,則諸侯必滅宗廟,欲西面行其意,非一日之計也。今釋趙之患,而攘內臣之韓,則天下明趙氏之計矣。夫韓、小國也,而以應天下四擊,主辱臣苦,上下相與同憂久矣。修守備,戒強敵,有蓄積、築城池以守固。今伐韓未可一年而滅,拔一城而退,則權輕於天下,天下摧我兵矣。韓叛則魏應之,趙據齊以為原,如此,則以韓、魏資趙假齊以固其從,而以與爭強,趙之福而秦之禍也。夫進而擊趙不能取,退而攻韓弗能拔,則陷銳之卒,懃於野戰,負任之旅,罷於內攻,則合群苦弱以敵而共二萬乘,非所以亡趙之心也。均如貴臣之計,則秦必為天下兵質矣。陛下雖以金石相弊,則兼天下之日未也。
번역 1
한(韓)나라는 진(秦)나라를 섬긴 지 30여 년에, 밖으로는 방패막이[扞蔽]가 되고,¹⁾ 안으로는 자리가 되어주었습니다.[蓆薦]²⁾ 진나라는 특별히 정예 군대를 내어 한나라 땅을 빼앗았고, 그에 따른 원망은 천하에 매달리게 되었으나 공로는 강한 진나라에 돌아갔습니다. 또한 무릇 한나라는 공물과 직분을 바치는 것이 군현(郡縣)과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 신(臣)이 남몰래 듣건대 귀신(貴臣)의 계책은 군대를 일으켜 장차 한나라를 치려는 것이라 합니다. 무릇 조씨(趙氏)는 사졸을 모으고 무리를 길러 천하의 군대를 규합하여,³⁾ 진나라가 약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면 제후들이 반드시 종묘를 멸망시킬 것이라 여기고, 서쪽을 향해 그 뜻을 펴고자 하니, 이는 하루아침의 계책이 아닙니다. 지금 조나라의 우환을 내버려 두고 안으로는 신하와 같은 한나라를 공격한다면, 천하는 조씨의 계책이 옳았음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무릇 한나라는 작은 나라이면서 천하 사방의 공격에 대응하여, 군주는 욕을 보고 신하는 괴로워하며 상하가 서로 함께 근심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수비 태세를 정비하고 강한 적을 경계하며, 물자를 비축하고 성지(城池)를 쌓아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 한나라를 정벌하여 1년 안에 멸망시킬 수 없을 것이며, 성 하나를 함락시키고 물러난다면 권위가 천하에 가벼워져 천하가 우리 군대를 꺾을 것입니다. 한나라가 배반하면 위(魏)나라가 이에 호응할 것이고, 조나라는 제(齊)나라를 근거지로 삼아 원조로 삼을 것이니, 이와 같이 되면 한나라와 위나라로써 조나라에 자금을 대주고 제나라의 힘을 빌려 그 합종(合從)을 굳건히 하여 강국과 다투게 될 것이니, 이는 조나라의 복이요 진나라의 재앙입니다. 나아가 조나라를 쳐도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한나라를 공격해도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적진에 깊이 들어간 정예 부대는 들판의 싸움에서 지치고,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부대는 내부 공격으로 피폐해질 것이니, 결국 지치고 약해진 무리를 합쳐 두 만승(萬乘)의 적과 함께 대적하게 되는 것이니,⁴⁾ 이는 조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본래의 의도가 아닙니다. 만약 귀신의 계책과 같이 한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천하 군대의 표적[兵質]이 될 것입니다.⁵⁾ 폐하께서 비록 쇠와 돌이 서로 닳아 없어지도록 싸우신다 해도, 천하를 아우를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⁶⁾
주석
1) 한폐(扞蔽): ‘扞’은 막다, ‘蔽’는 가리다는 뜻으로, 외부의 적을 막아주는 방패나 울타리를 의미한다. 한나라가 진나라의 동쪽에 위치하여 다른 6국의 침공을 막아주는 완충지대 역할을 했음을 비유한 말이다.
2) 석천(蓆薦): ‘蓆’은 자리, ‘薦’은 깔개라는 뜻으로, 안에서 편안함을 제공하는 자리를 의미한다. 한나라가 진나라에 복종하며 공물을 바치고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내부의 신하와 같은 존재임을 비유한 말이다.
3) 췌천하지병(贅天下之兵): ‘贅’는 본래 ‘혹’ 또는 ‘데릴사위’를 뜻하나, 여기서는 ‘모으다’, ‘규합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즉, 조나라가 다른 제후국들의 군대를 끌어모아 연합군을 결성하려 함을 뜻한다.
4) 합군고약이적이공이만승(合群苦弱以敵而共二萬乘): ‘지치고 약해진 무리를 합쳐 두 만승의 적과 함께 대적하다’. 여기서 ‘이만승(二萬乘)’은 조나라와 제나라, 혹은 조나라를 중심으로 한 합종군 전체의 강대한 군사력을 상징한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다가 국력을 소모하면, 결국 지친 군대로 막강한 연합군과 맞서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할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5) 병질(兵質): ‘質’은 과녁, 표적을 의미한다. 즉, 천하 모든 나라의 군사적 공격이 집중되는 공동의 목표물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6) 금석상폐(金石相弊): ‘쇠와 돌이 서로 닳아 없어지다’. 이는 끝없는 소모전으로 양측이 모두 피폐해지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섣부른 전쟁으로 국력을 낭비하면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없음을 경고하는 표현이다.
원문 2
今賤臣之愚計:使人使荊,重弊用事之臣,明趙之所以欺秦者;與魏質以安其心,從韓而伐趙,趙雖與齊為一,不足患也。二國事畢,則韓可以移書定也。是我一舉,二國有亡形,則荊、魏又必自服矣。故曰:「兵者,凶器也,」不可不審用也。以秦與趙敵,衡加以齊,今又背韓,而未有以堅荊、魏之心。夫一戰而不勝,則禍搆矣。計者、所以定事也,不可不察也。韓、秦強弱在今年耳。且趙與諸侯陰謀久矣。夫一動而弱於諸侯,危事也;為計而使諸侯有意我之心,至殆也;見二疏,非所以強於諸侯也。臣竊願陛下之幸熟圖之。夫攻伐而使從者閒焉,不可悔也。
번역 2
이제 천한 신의 어리석은 계책은 이러합니다. 사람을 초(荊)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많은 예물[重幣]로 권력을 잡은 신하에게 일을 처리하게 하여, 조나라가 진나라를 속이는 까닭을 분명히 밝히고, 위(魏)나라와는 인질을 교환하여 그 마음을 안정시키며, 한(韓)나라와 연합하여 조나라를 정벌하는 것입니다. 조나라가 비록 제(齊)나라와 하나가 되더라도 걱정할 것이 못 됩니다. 두 나라의 일이 끝나면, 한나라는 가히 격문 한 장을 보내 평정할 수 있습니다.⁷⁾ 이렇게 우리가 한 번 군대를 일으켜 두 나라가 망할 형세에 이르면, 초나라와 위나라는 또한 반드시 스스로 복종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기(兵器)란 흉한 도구이니, 신중하게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⁸⁾라고 하였습니다. 진나라가 조나라와 적대하고 있는데, 여기에 제나라가 가로놓여 있고, 지금 또 한나라를 등지면서 초나라와 위나라의 마음을 굳건하게 할 방도도 없습니다. 무릇 한 번 싸워 이기지 못하면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계책이란 일을 결정하는 것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나라와 진나라의 강약은 올해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또한 조나라는 제후들과 오랫동안 남몰래 음모를 꾸며왔습니다. 무릇 한 번 움직여 제후들보다 약해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계책을 세워 제후들이 우리를 의심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지극히 위태로운 일입니다. 두 나라와의 소원함[二疏]을 보이는 것은 제후들 사이에서 강해지는 방법이 아닙니다.⁹⁾ 신이 남몰래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부디 깊이 헤아려 주십시오. 무릇 공격하고 정벌함에 있어 합종한 자들에게 틈[閒]을 보이게 된다면,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
주석
7) 이가이이서정야(可以移書定也): ‘격문(移書)을 보내 평정할 수 있다’. 주된 위협인 조나라와 제나라를 꺾고 나면, 약소국인 한나라는 군사적 행동 없이 외교 문서 하나만으로도 쉽게 굴복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진나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자신의 계책(存韓伐趙)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주장이다.
8) 병자 흉기야(兵者,凶器也): 《노자(老子)》 3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쟁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므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도가(道家)의 사상을 인용하여, 신중하지 못한 전쟁(伐韓)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9) 견이소(見二疏): ‘두 가지의 소원함(疏遠함)을 보이다’. 여기서 ‘이소’는 진나라가 동맹 또는 우호 관계를 맺어야 할 한나라와 위나라를 소홀히 하여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진나라는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제후들 사이에서 약화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원문 3
詔以韓客之所上書,書言韓子之未可舉,下臣斯,臣斯甚以為不然。秦之有韓,若人之有腹心之病也,虛處則㤥然,若居濕地,著而不去,以極走則發矣。夫韓雖臣於秦,未嘗不為秦病,今若有卒報之事,韓不可信也。秦與趙為難,荊蘇使齊,未知何如?以臣觀之,則齊、趙之交未必以荊蘇絕也;若不絕,是悉趙而應二萬乘也。夫韓不服秦之義,而服於強也。今專於齊、趙,則韓必為腹心之病而發矣。韓與荊有謀,諸侯應之,則秦必復見崤塞之患。
번역 3
(진왕의) 조서가 한나라에서 온 객(客)이 올린 글에 대해 내려졌는데, 그 글은 한나라를 아직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조서가 신 이사(李斯)에게 내려오니, 신 이사는 매우 그렇지 않다고 여깁니다.¹⁰⁾ 진나라에 한나라가 있는 것은, 사람이 심장과 배에 병을 앓는 것과 같습니다. 평상시에는 은근히 아프다가[㤥然],¹¹⁾ 마치 습한 곳에 있는 것처럼 달라붙어 떠나지 않더니, 힘껏 달리기에 이르면 병이 발작합니다. 무릇 한나라는 비록 진나라에 신하 노릇을 하지만, 일찍이 진나라의 병폐가 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만약 지금 갑작스러운 위급한 일이 생긴다면 한나라는 믿을 수 없습니다. 진나라가 조나라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초나라의 소(蘇)씨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으니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¹²⁾ 신이 보건대, 제나라와 조나라의 교류는 초나라 소씨 때문에 반드시 끊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끊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조나라의 모든 힘을 다해 이만승(二萬乘)의 군대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무릇 한나라는 진나라의 의(義)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강함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나라와 조나라에만 전념한다면, 한나라는 반드시 심복의 병이 되어 발작할 것입니다. 한나라가 초나라와 모의를 하고 제후들이 이에 호응한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다시 효산(崤山) 요새의 환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¹³⁾
주석
10) 조이한객지소상서...하사(詔以韓客之所上書...下臣斯): 이 부분부터는 저자가 한비자에서 이사(李斯)로 바뀐다. 진왕이 한비자(韓客)의 상소문(存韓論)을 읽고 그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사가 반박 의견을 제시하는 형식이다.
11) 핵연(㤥然): 은근히 아프거나 불편한 모양. 한나라가 평시에는 큰 위협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진나라의 잠재적인 불안 요소로 존재함을 비유하는 의학적 표현이다.
12) 형소사제(荊蘇使齊): ‘초나라(荊)의 소(蘇)씨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여기서 소씨는 합종책으로 유명한 소진(蘇秦)의 일족인 소대(蘇代)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초나라가 제나라, 조나라와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외교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3) 효새지환(崤塞之患): 기원전 627년, 진 목공(穆公)이 정(鄭)나라를 원정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효산(崤山)의 험준한 요새에서 진(晉)나라 군대의 매복에 걸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한 사건(효산 전투)을 가리킨다. 이는 진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 중 하나로, 이사는 한나라를 배후에 남겨두고 원정을 떠나면 과거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
원문 4
非之來也,未必不以其能存韓也,為重於韓也。辯說屬辭,飾非詐謀,以釣利於秦,而以韓利闚陛下。夫秦、韓之交親,則非重矣,此自便之計也。
번역 4
한비(韓非)가 온 것은, 그가 한나라를 보존시킬 수 있음을 내세워 한나라에서 중용되려 함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묘한 말로 문장을 엮고, 그릇된 것을 꾸미고 계책을 속여서, 진나라에서 이익을 낚으려 하면서, 한나라의 이익을 위해 폐하를 엿보는 것입니다. 무릇 진나라와 한나라의 교류가 친밀해지면 한비는 중용될 것이니, 이는 스스로를 편하게 하려는 계책일 뿐입니다.
원문 5
臣視非之言,文其淫說,靡辯才甚。臣恐陛下淫非之辯而聽其盜心,因不詳察事情。今以臣愚議:秦發兵而未名所伐,則韓之用事者,以事秦為計矣。臣斯請往見韓王,使來入見,大王見、因內其身而勿遣,稍召其社稷之臣,以與韓人為市,則韓可深割也。因令象武發東郡之卒,闚兵於境上而未名所之,則齊人懼而從蘇之計,是我兵未出而勁韓以威擒,強齊以義從矣。聞於諸侯也,趙氏破膽,荊人狐疑,必有忠計。荊人不動,魏不足患也,則諸侯可蠶食而盡,趙氏可得與敵矣。願陛下幸察愚臣之計,無忽。
번역 5
신이 한비의 말을 보건대, 그 음탕한 말을 문식(文飾)하고,¹⁴⁾ 아름다운 변론의 재주가 심합니다. 신은 폐하께서 한비의 변론에 빠져 그 도둑 같은 마음을 들어주시고, 그로 인해 사정을 자세히 살피지 않으실까 두렵습니다. 이제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의논드리건대,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키되 아직 공격할 곳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한나라의 집권자는 진나라를 섬기는 것을 계책으로 삼을 것입니다. 신 이사가 직접 가서 한왕(韓王)을 만나, 그가 와서 입조(入朝)하여 뵙도록 하겠습니다. 대왕께서는 그를 만나신 뒤, 그의 몸을 궁궐 안에 들여보내고 돌려보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점차 그 나라의 중신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가지고 한나라 사람들과 거래를 한다면,¹⁵⁾ 한나라를 깊이 베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상무(象武)¹⁶⁾로 하여금 동군(東郡)의 군사를 일으켜 국경에서 군대를 엿보이게 하되 가는 곳을 밝히지 않으면, 제나라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소(蘇)씨의 계책을 따를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군대가 출동하기도 전에 강한 한나라는 위세로 사로잡고, 강한 제나라는 명분으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이 소문이 제후들에게 알려지면, 조씨는 간담이 서늘해지고 초나라 사람들은 여우처럼 의심하며 반드시 충성스러운 계책을 바칠 것입니다. 초나라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위나라는 걱정할 것이 못 되니, 그리되면 제후들을 누에가 뽕잎을 먹듯 차례로 병탄[蠶食]하여 다할 수 있고, 조씨와도 가히 대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부디 어리석은 신의 계책을 살피시고,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주석
14) 문기음설(文其淫說): ‘그 음탕한 말을 문식하다’. ‘음설(淫說)’은 도리에 어긋나는 과장되고 허황된 말을 의미한다. 이사는 한비의 논리를 ‘궤변’으로 규정하고, 화려한 수사로 그럴듯하게 포장했을 뿐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15) 이여한인위시(以與韓人為市): ‘그들을 가지고 한나라 사람들과 시장을 만들다’. 이는 한나라의 왕과 중신들을 인질로 삼아, 한나라의 영토나 주권을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 거래하겠다는 매우 교활하고 무자비한 계책을 의미한다.
16) 상무(象武): 진나라의 장군 이름으로 추정된다.
원문 6
秦遂遣斯使韓也。
번역 6
진나라는 마침내 이사를 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원문 7
李斯往詔韓王,未得見,因上書曰:「昔秦、韓戮力一意以不相侵,天下莫敢犯,如此者數世矣。前時五諸侯嘗相與共伐韓,秦發兵以救之。韓居中國,地不能滿千里,而所以得與諸侯班位於天下、君臣相保者,以世世相教事秦之力也。先時五諸侯共伐秦,韓反與諸侯先為鴈行以嚮秦軍於關下矣。諸侯兵困力極,無奈何,諸侯兵罷。杜倉相秦,起兵發將以報天下之怨而先攻荊,荊令尹患之曰:「夫韓以秦為不義,而與秦兄弟共苦天下。已又背秦,先為鴈行以攻關。韓則居中國,展轉不可知。」天下共割韓上地十城以謝秦,解其兵。夫韓嘗一背秦而國迫地侵,兵弱至今;所以然者,聽姦臣之浮說,不權事實,故雖殺戮姦臣不能使韓復強。
번역 7
이사가 가서 한왕에게 조서를 전하려 했으나, 만나지 못하자 글을 올려 말하였다. “옛날 진나라와 한나라는 힘을 합치고 뜻을 하나로 하여 서로 침범하지 않았고, 천하가 감히 침범하지 못한 것이 이와 같기를 수 세대였습니다. 지난날 다섯 제후가 일찍이 서로 함께 한나라를 정벌했을 때, 진나라는 군대를 일으켜 구원해주었습니다. 한나라는 중원(中國)에 위치하여 땅이 천 리를 채우지 못하는데도, 제후들과 더불어 천하에 반열을 나란히 하고 군신이 서로를 보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대대로 서로 가르치며 진나라를 섬긴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다섯 제후가 함께 진나라를 정벌할 때, 한나라는 도리어 제후들과 함께 먼저 기러기 떼처럼 진을 치고[鴈行]¹⁷⁾ 함곡관 아래의 진나라 군대를 향했습니다. 제후들의 군대가 곤궁하고 힘이 다하여 어찌할 방법이 없자, 제후들의 군대는 물러났습니다. 두창(杜倉)이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군대를 일으키고 장수를 보내 천하에 대한 원한을 갚고자 먼저 초나라를 공격하니, 초나라의 영윤(令尹)이 이를 근심하여 말하기를, ‘무릇 한나라는 진나라를 불의하다 여기면서도, 진나라와 형제가 되어 함께 천하를 괴롭혔다. 그러다 이미 또 진나라를 배신하고, 먼저 기러기 떼 진형으로 관문을 공격했다. 한나라는 중원에 위치하여, 이리저리 태도를 바꾸니 그 속을 알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천하가 함께 한나라의 상당(上黨) 땅 열 개 성을 베어 진나라에 사죄하고 그 군대를 풀게 하였습니다. 무릇 한나라는 일찍이 한 번 진나라를 배신하여 나라가 핍박받고 땅을 침략당했으며, 군대가 약해진 것이 오늘에 이릅니다. 그렇게 된 까닭은, 간사한 신하의 뜬구름 잡는 말을 듣고 사실 관계를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비록 간사한 신하를 죽여 없앴다 해도 한나라를 다시 강하게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주석
17) 안행(鴈行):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는 모양의 진형. 군대의 선봉에 서거나 측면에서 협공하는 역할을 맡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가 합종군에 가담하여 진나라 공격의 선봉에 섰던 배신 행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다.
원문 8
「今趙欲聚兵士卒,以秦為事,使人來借道,言欲伐秦,其勢必先韓而後秦。且臣聞之:『脣亡則齒寒。』夫秦、韓不得無同憂,其形可見。魏欲發兵以攻韓,秦使人將使者於韓。今秦王使臣斯來而不得見,恐左右襲曩姦臣之計,使韓復有亡地之患。臣斯不得見,請歸報,秦、韓之交必絕矣。斯之來使,以奉秦王之歡心,願效便計,豈陛下所以逆賤臣者邪?臣斯願得一見,前進道愚計,退就葅戮,願陛下有意焉。今殺臣於韓,則大王不足以強,若不聽臣之計,則禍必搆矣。秦發兵不留行,而韓之社稷憂矣。臣斯暴身於韓之市,則雖欲察賤臣愚忠之計,不可得已。邊鄙殘,國固守,鼓鐸之聲於耳,而乃用臣斯之計晚矣。且夫韓之兵於天下可知也,今又背強秦。夫棄城而敗軍,則反掖之寇必襲城矣。城盡則聚散,聚散則無軍矣。城固守,則秦必興兵而圍王一都,道不通,則難必謀,其勢不救,左右計之者不用,願陛下熟圖之。若臣斯之所言有不應事實者,願大王幸使得畢辭於前,乃就吏誅不晚也。秦王飲食不甘,遊觀不樂,意專在圖趙,使臣斯來言,願得身見,因急與陛下有計也。今使臣不通,則韓之信未可知也。夫秦必釋趙之患而移兵於韓,願陛下幸復察圖之,而賜臣報決。」
번역 8
“지금 조나라는 병사와 사졸을 모아 진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일삼으려, 사람을 보내 길을 빌려달라고 하면서 진나라를 치고자 한다고 말하지만, 그 형세는 반드시 한나라를 먼저 치고 그 후에 진나라를 칠 것입니다. 또한 신이 듣건대,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¹⁸⁾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진나라와 한나라는 같은 근심을 갖지 않을 수 없으니, 그 형세는 가히 볼 수 있습니다. 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한나라를 공격하고자 할 때, 진나라는 사람을 보내 한나라에 있는 사신을 호위하게 했습니다. 지금 진왕께서 신 이사를 보내 오게 하셨는데 만나 뵙지 못하니, 좌우의 신하들이 지난날 간신들의 계책을 답습하여 한나라로 하여금 다시 땅을 잃는 환란을 겪게 할까 두렵습니다. 신 이사가 만나 뵙지 못하면, 돌아가 보고하기를 청할 것이니, 진나라와 한나라의 교류는 반드시 끊어질 것입니다. 이사가 사신으로 온 것은 진왕의 기쁜 마음을 받들어 편리한 계책을 바치고자 함인데, 어찌 폐하께서 천한 신을 이처럼 거절하시는 것입니까? 신 이사는 원컨대 한 번 뵙고, 나아가 어리석은 계책을 말씀드리고, 물러나서는 저자에서 몸이 젓 담가지고 찢기는 형벌[葅戮]¹⁹⁾을 받겠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에 뜻을 두시옵소서. 지금 한나라에서 신을 죽이신다 한들 대왕께서 강해지기에는 부족할 것이며, 만약 신의 계책을 듣지 않으시면 재앙이 반드시 닥칠 것입니다.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키면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니, 한나라의 사직(社稷)이 위태로울 것입니다. 신 이사의 몸이 한나라의 저잣거리에 드러나게 되면, 비록 그때 가서 천한 신의 어리석고 충성스러운 계책을 살피고자 하셔도, 이미 불가능할 것입니다. 변방이 파괴되고, 나라는 굳게 지키느라 북과 방울 소리가 귓가에 들릴 때가 되어서야 신 이사의 계책을 쓰려 하시면 늦을 것입니다. 또한 무릇 한나라의 군사력이 천하에서 어느 정도인지는 알 만한 일인데, 지금 또 강한 진나라를 등지려 하십니다. 무릇 성을 버리고 군대가 패하면, 내부의 적[反掖之寇]이 반드시 성을 습격할 것입니다.²⁰⁾ 성이 모두 함락되면 군대는 흩어지고, 흩어지면 군대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성을 굳게 지키면, 진나라는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왕의 도읍 하나를 포위할 것이고, 길이 통하지 않으면 환란을 반드시 도모하게 될 것이며, 그 형세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고, 좌우에서 계책을 내는 자들도 소용이 없을 것이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깊이 헤아려 주십시오. 만약 신 이사가 말한 바에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원컨대 대왕께서는 부디 앞에서 말씀을 마치게 해주신 후에, 관리에게 넘겨 주살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진왕께서는 음식을 드셔도 달지 않고, 유람을 하셔도 즐겁지 않으시며, 오직 뜻을 조나라를 도모하는 데에만 두고 계십니다. 신 이사를 오게 하여 말씀 전하게 하신 것은, 직접 뵙기를 원하시고, 이로 인해 급히 폐하와 상의할 계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신인 저를 통하지 못하게 하시면, 한나라의 신의를 알 수 없게 됩니다. 무릇 진나라는 반드시 조나라의 우환을 내버려 두고 군대를 한나라로 옮길 것이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부디 다시 살피고 헤아리시어, 신에게 회답을 결정하여 내려주시옵소서.”
주석
18)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하나가 망하면 다른 하나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한다. 조나라가 한나라를 먼저 치고 진나라를 공격할 것이므로, 한나라와 진나라는 공동 운명체임을 강조하는 논리이다.
19) 저륙(葅戮): ‘葅’는 소금에 절인 김치, ‘戮’은 죽여서 시체를 욕보이는 형벌을 뜻한다. 즉, 사람을 죽여 그 시신을 젓 담그듯 잘게 썰어 소금에 절이는 끔찍한 형벌이다. 자신의 계책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과장된 표현이다.
20) 반액지구(反掖之寇): ‘겨드랑이를 배반한 도적’. ‘掖’은 겨드랑이로, 신체의 가장 가까운 곳을 의미한다. 주력 군대가 성을 비우고 나가 싸우는 동안, 내부에서 기회를 틈타 반란을 일으키는 적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비자》 〈난언〉 번역 및 주석
원문 1
臣非非難言也,所以難言者:言順比滑澤,洋洋纚纚然,則見以為華而不實。敦祗恭厚,鯁固慎完,則見以為掘而不倫。多言繁稱,連類比物,則見以為虛而無用。摠微說約,徑省而不飾,則見以為劌而不辯。激急親近,探知人情,則見以為譖而不讓。閎大廣博,妙遠不測,則見以為夸而無用。家計小談,以具數言,則見以為陋。言而近世,辭不悖逆,則見以為貪生而諛上。言而遠俗,詭躁人間,則見以為誕。捷敏辯給,繁於文采,則見以為史。殊釋文學,以質信言,則見以為鄙。時稱詩書,道法往古,則見以為誦。此臣非之所以難言而重患也。
번역 1
신(臣) 한비(韓非)가 말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기 어려운 까닭은 이러합니다.¹⁾ 말이 순조롭고 매끄러우며, 물 흐르듯 유창하면[洋洋纚纚然],²⁾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돈독하고 공손하며, 강직하고[鯁固] 신중하면,³⁾ 우직하지만 조리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말을 많이 하고 널리 인용하며, 종류별로 연결하고 사물에 비유하면, 공허하고 쓸모없다고 여겨집니다. 미묘한 것을 총괄하고 요점을 말하며, 간결하고 꾸밈이 없으면, 날카롭지만 변론에 능하지 못하다고 여겨집니다. 격하고 급하게 가까이 다가가 인정(人情)을 깊이 살피면, 참소하며 겸양하지 않는다고 여겨집니다. 뜻이 크고 넓으며, 오묘하고 멀어 헤아릴 수 없으면, 과장되고 쓸모없다고 여겨집니다. 집안 살림 같은 자잘한 이야기를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말하면, 비루하다고 여겨집니다. 말이 시세에 가깝고 표현이 거스르지 않으면, 삶을 탐하여 윗사람에게 아첨한다고 여겨집니다. 말이 세속과 멀고 인간 세상과 괴리되어 있으면, 허황되다고 여겨집니다. 재빠르고 민첩하며 말을 잘하고, 문채(文采)가 화려하면, 사관(史官)과 같다고 여겨집니다.⁴⁾ 문학적인 수식을 버리고, 질박하고 진실하게 말하면, 촌스럽다고 여겨집니다. 때때로 《시경》과 《서경》을 칭송하며 옛것을 도법(道法)으로 삼아 말하면, 그저 외우기만 할 뿐이라고[誦] 여겨집니다.⁵⁾ 이것이 신 한비가 말을 하기 어렵고 또한 이를 크게 근심하는 까닭입니다.
주석
1) 신비비난언야(臣非非難言也): 이 문장은 중의적인 표현이다. 첫 번째 ‘비(非)’는 저자인 한비(韓非) 자신을 가리키고, 두 번째 ‘비(非)’는 부정사 ‘아니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신 한비가, 말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로 해석된다. 자신의 이름을 이용한 언어유희로, 유세(遊說)의 근본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 위한 서두이다.
2) 양양리리연(洋洋纚纚然): 물이 넘실거리며 흐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 말이 막힘없이 유창한 모습을 비유한다.
3) 경고(鯁固): ‘경(鯁)’은 목에 걸린 생선 뼈를 의미한다. 생선 뼈처럼 곧고 단단하여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태도를 비유한다.
4) 사(史): 여기서 ‘사’는 단순히 역사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사관(史官)이나 서기(書記)를 가리킨다. 이들은 실질적인 정책이나 전략보다는 화려한 문장과 수사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여겨졌기에,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5) 송(誦): 단순히 옛 경전을 ‘암송하다’는 뜻을 넘어,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 없이 옛사람의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원문 2
故度量雖正,未必聽也;義理雖全,未必用也。大王若以此不信,則小者以為毀訾誹謗,大者患禍災害死亡及其身。故子胥善謀而吳戮之,仲尼善說而匡圍之,管夷吾實賢而魯囚之。故此三大夫豈不賢哉?而三君不明也。上古有湯至聖也,伊尹至智也;夫至智說至聖,然且七十說而不受,身執鼎俎為庖宰,昵近習親,而湯乃僅知其賢而用之。故曰以至智說至聖,未必至而見受,伊尹說湯是也;以智說愚必不聽,文王說紂是也。故文王說紂而紂囚之,翼侯炙,鬼侯腊,比干剖心,梅伯醢,夷吾束縛,而曹羈奔陳,伯里子道乞,傅說轉鬻,孫子臏腳於魏,吳起收泣於岸門、痛西河之為秦、卒枝解於楚,公叔痤言國器、反為悖,公孫鞅奔秦,關龍逢斬,萇宏分胣,尹子阱於棘,司馬子期死而浮於江,田明辜射,宓子賤、西門豹不鬥而死人手,董安于死而陳於市,宰予不免於田常,范睢折脅於魏。此十數人者,皆世之仁賢忠良有道術之士也,不幸而遇悖亂闇惑之主而死,然則雖賢聖不能逃死亡避戮辱者何也?則愚者難說也,故君子不少也。且至言忤於耳而倒於心,非賢聖莫能聽,願大王熟察之也。
번역 2
그러므로 도량(度量)이 비록 올바르다 해도 반드시 들어주는 것은 아니며, 의리(義理)가 비록 온전하다 해도 반드시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대왕께서 만약 이 때문에 믿지 않으시면, 작게는 헐뜯고 비방하는 것으로 여기고, 크게는 우환과 재앙, 죽음이 그 몸에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서(子胥)는 계책에 뛰어났으나 오(吳)나라에서 죽임을 당했고,⁶⁾ 중니(仲尼)는 설득에 능했으나 광(匡) 땅에서 포위되었으며,⁷⁾ 관이오(管夷吾)는 실로 현명했으나 노(魯)나라에 갇혔습니다.⁸⁾ 그러므로 이 세 대부(大夫)가 어찌 현명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세 군주가 현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상고(上古)에 탕(湯)임금은 지극히 성스러웠고, 이윤(伊尹)은 지극히 지혜로웠습니다. 무릇 지극히 지혜로운 자가 지극히 성스러운 자를 설득하는데도, 예순 번이나 설득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몸소 솥과 도마를 잡고 요리사가 되어 가까이하며 친해진 뒤에야, 탕임금은 비로소 그의 현명함을 알고 등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지혜로운 자가 지극히 성스러운 자를 설득해도, 반드시 이르자마자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니, 이윤이 탕임금을 설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를 설득하면 반드시 듣지 않으니, 문왕(文王)이 주왕(紂王)을 설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왕은 주왕을 설득하다가 주왕에게 갇혔고, 익후(翼侯)는 구워져 죽었고, 귀후(鬼侯)는 젓갈이 되었으며, 비간(比干)은 심장이 갈라졌고, 매백(梅伯)은 젓갈이 되었으며,⁹⁾ 관이오(夷吾)는 결박되었고, 조기(曹羈)는 진(陳)나라로 달아났으며, 백리해(伯里子)는 길에서 구걸했고, 부열(傅說)은 여러 곳으로 팔려 다녔으며, 손자(孫子)는 위(魏)나라에서 무릎뼈를 잘렸고,¹⁰⁾ 오기(吳起)는 안문(岸門)에서 눈물을 거두며 서하(西河) 땅이 진(秦)나라의 것이 됨을 통탄하다가 마침내 초(楚)나라에서 사지가 찢겨 죽었고,¹¹⁾ 공숙좌(公叔痤)는 나라의 큰 그릇(인재)을 말했으나 도리어 거스르는 자로 여겨졌고, 공손앙(公孫鞅)은 진나라로 달아났으며, 관룡봉(關龍逢)은 목이 잘렸고, 장홍(萇宏)은 창자가 갈라졌으며, 윤자(尹子)는 가시나무 밭의 함정에 빠졌고, 사마자기(司馬子期)는 죽어서 그 시체가 강에 떴으며, 전명(田明)은 시체를 세워두고 활로 쏘는 형벌을 당했고, 복자천(宓子賤)과 서문표(西門豹)는 싸우지도 않고 남의 손에 죽었으며, 동안우(董安于)는 죽어서 시체가 저잣거리에 진열되었고, 재여(宰予)는 전상(田常)의 난을 피하지 못했으며, 범수(范睢)는 위나라에서 옆구리뼈가 부러졌습니다.¹²⁾ 이 십수 명의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어질고 현명하며 충성스럽고 양심 있는, 도술(道術)을 지닌 선비들입니다. 불행히도 도리에 어긋나고 혼란하며 어둡고 미혹된 군주를 만나 죽었으니, 그렇다면 비록 현명하고 성스러운 사람이라도 죽음을 피하고 치욕을 면할 수 없었던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어리석은 자는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환영받지 못하여) 적은 것입니다. 또한 지극한 말은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반(反)하는 법이어서, 현명하고 성스러운 군주가 아니면 능히 들을 수 없으니, 원컨대 대왕께서는 이를 깊이 살피시옵소서.
주석
6) 자서(子胥): 오자서(伍子胥).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명신. 월(越)나라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했으나, 월나라의 뇌물을 받은 간신 백비(伯嚭)의 모함과 부차(夫差)의 의심을 사 자결을 명받았다.
7) 중니(仲尼): 공자(孔子)의 자(字).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광(匡) 땅을 지날 때, 그 모습이 일찍이 광 땅 사람들을 괴롭혔던 노나라의 양호(陽虎)와 닮았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아 광 땅 사람들에게 며칠간 포위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8) 관이오(管夷吾): 관중(管仲).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 본래 제나라 환공(桓公)의 정적인 공자 규(糾)를 섬겼다. 규가 노나라로 망명하자 그를 따라갔다가, 규가 환공과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자 노나라에서 포로로 잡혔다. 이후 포숙아(鮑叔牙)의 천거로 환공에게 등용되었다.
9) 익후(翼侯)·귀후(鬼侯)·비간(比干)·매백(梅伯): 모두 상(商)나라 마지막 왕인 폭군 주왕(紂王)에게 죽임을 당한 충신들이다. 주왕의 폭정을 간하다가 익후는 불에 태워 죽이는 포락지형(炮烙之刑)을, 귀후는 시신을 젓갈로 담그는 형벌을, 비간은 심장을 꺼내는 형벌을, 매백은 시신을 다져 젓갈로 만드는 해형(醢刑)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10) 손자(孫子): 손빈(孫臏). 전국시대의 유명한 병법가. 동문수학한 방연(龐涓)의 시기를 받아 위(魏)나라에서 무릎뼈를 잘리는 빈형(臏刑)을 당했다.
11) 오기(吳起): 전국시대의 명장 겸 정치가. 위(魏)나라에서 서하(西河) 땅을 지키며 진(秦)나라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모함을 받아 초(楚)나라로 망명했다. 초 도왕(悼王) 아래서 개혁을 추진하다가 왕이 죽자 귀족들의 반발로 사지가 찢겨 죽는 거열형(車裂刑)을 당했다.
12) 범수(范睢):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재상. 본래 위(魏)나라 사람으로, 재상 위제(魏齊)에게 모함을 받아 매를 맞아 옆구리뼈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진나라로 탈출하여 소양왕(昭襄王)에게 등용되었다. 이하는 모두 군주에게 직언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고난을 겪은 인물들의 사례이다.
《한비자》 〈애신〉 번역 및 주석
원문 1
愛臣太親,必危其身;人臣太貴,必易主位;主妾無等,必危嫡子;兄弟不服,必危社稷。臣聞千乘之君無備,必有百乘之臣在其側,以徙其民而傾其國;萬乘之君無備,必有千乘之家在其側,以徙其威而傾其國。是以姦臣蕃息,主道衰亡。是故諸侯之博大,天子之害也;群臣之太富,君主之敗也。將相之管主而隆國家,此君人者所外也。萬物莫如身之至貴也,此四美者不求諸外,不請於人,議之而得之矣。故曰人主不能用其富,則終於外也。此君人者之所識也。
번역 1
총애하는 신하가 너무 가까우면, 반드시 그 몸을 위태롭게 하고,¹⁾ 신하가 너무 존귀해지면, 반드시 군주의 자리를 바꾸려 하며,²⁾ 군주의 첩들에게 등급이 없으면, 반드시 적자(嫡子)를 위태롭게 하고,³⁾ 형제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반드시 사직(社稷)을 위태롭게 한다.⁴⁾ 신(臣)이 듣건대, 천승(千乘)의 군주가 대비가 없으면, 반드시 그 곁에 백승(百乘)의 신하가 있어, 그 백성을 옮겨가고 그 나라를 기울게 하며,⁵⁾ 만승(萬乘)의 군주가 대비가 없으면, 반드시 그 곁에 천승(千乘)의 가문이 있어, 그 위엄을 옮겨가고 그 나라를 기울게 합니다.⁶⁾ 이 때문에 간신(姦臣)이 번성하고, 군주의 도(道)는 쇠하여 망하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제후가 강대해지는 것은 천자(天子)의 해악이요, 여러 신하가 너무 부유해지는 것은 군주의 패망입니다. 장수와 재상이 군주를 관장하여 국가를 융성하게 한다는 것,⁷⁾ 이것은 군주 된 자가 배척해야 할 바입니다. 만물 중에 자신의 몸만큼 지극히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 네 가지 아름다운 것은⁸⁾ 밖에서 구하거나 남에게 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헤아림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주가 자신의 부(富)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마침내 밖으로 새어 나간다.”⁹⁾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군주 된 자가 알아야 할 바입니다.
주석
1) 애신태친 필위기신(愛臣太親 必危其身): 군주가 특정 신하를 지나치게 총애하고 가깝게 하면, 그 신하가 권력을 남용하거나 역심을 품게 되어 결국 군주 자신의 신변이 위험해진다는 의미이다.
2) 인신태귀 필역주위(人臣太貴 必易主位): 신하의 지위가 지나치게 높아져 군주에 버금가게 되면, 반드시 군주의 자리를 넘보거나 찬탈하게 된다는 경고이다.
3) 주첩무등 필위적자(主妾無等 必危嫡子): 군주의 여러 첩들 사이에 명확한 서열과 등급이 없으면, 첩들이 각자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암투를 벌여 정실부인의 아들인 적자(嫡子)의 지위와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는 뜻이다.
4) 사직(社稷): ‘사(社)’는 토지의 신, ‘직(稷)’은 곡식의 신을 의미한다. 고대 국가에서 토지와 곡식은 국가의 근본이었으므로, 사직은 종묘(宗廟)와 더불어 국가 또는 왕조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5) 천승지군(千乘之君) ... 백승지신(百乘之臣): ‘승(乘)’은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병거(兵車) 한 대를 세는 단위로, 보유한 병거의 수는 곧 국력의 척도였다. ‘천승지군’은 보통 제후국의 군주를, ‘백승지신’은 그 제후에게서 봉토를 받은 대부(大夫)를 가리킨다. 제후가 대비하지 않으면 강력한 신하가 백성을 빼앗아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6) 만승지군(萬乘之君) ... 천승지가(千乘之家): ‘만승지군’은 천자(天子) 또는 그에 버금가는 강대국의 군주를 의미하며, ‘천승지가’는 천자에게서 봉토를 받은 강력한 제후 가문을 의미한다. 천자가 대비하지 않으면 강력한 제후가 군주의 권위(威)를 빼앗아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뜻이다.
7) 장상지관주 이륭국가(將相之管主而隆國家): ‘장수와 재상이 군주를 관리하여 국가를 융성하게 한다’는 말. 이는 신하가 군주를 능가하여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한비자는 설령 그 결과로 국가가 일시적으로 융성해 보인다 하더라도, 군주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므로 군주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될 위험한 사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8) 사미자(四美者): ‘네 가지 아름다운 것’. 앞서 언급된 군주 자신의 몸(身), 군주의 지위(主位), 적자(嫡子), 사직(社稷)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네 가지는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며, 이는 외부의 힘이 아니라 군주 스스로의 통치술(術)과 법(法)을 통해 지켜야 함을 강조한다.
9) 부(富): 단순히 재물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군주가 소유한 권력, 권위, 영토, 인민 등 모든 통치 자원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원문 2
昔者紂之亡,周之卑,皆從諸侯之博大也;晉之分也,齊之奪也,皆以群臣之太富也。夫燕、宋之所以弒其君者,皆以類也。故上比之殷、周,中比之燕、宋,莫不從此術也。是故明君之蓄其臣也,盡之以法,質之以備。故不赦死,不宥刑,赦死宥刑,是謂威淫,社稷將危,國家偏威。是故大臣之祿雖大,不得藉威城市;黨與雖眾,不得臣士卒。故人臣處國無私朝,居軍無私交,其府庫不得私貸於家,此明君之所以禁其邪。是故不得四從;不載奇兵;非傳非遽,載奇兵革,罪死不赦。此明君之所以備不虞者也。
번역 2
옛날 상(商)나라 주왕(紂王)의 멸망과 주(周)나라의 쇠락은 모두 제후가 강대해진 것에서 비롯되었고,¹⁰⁾ 진(晉)나라가 분열되고 제(齊)나라가 찬탈된 것은 모두 여러 신하가 너무 부유했기 때문입니다.¹¹⁾ 무릇 연(燕)나라와 송(宋)나라에서 그 군주를 시해한 까닭은 모두 이와 같은 종류의 일 때문이었습니다.¹²⁾ 그러므로 위로는 은(殷)·주(周)에 비추어보고, 중간으로는 연·송에 비추어보아도, 이 술(術)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¹³⁾ 이런 까닭에 현명한 군주가 그 신하를 기를 때에는,¹⁴⁾ 법(法)으로써 그들을 다스리고, 대비(備)로써 그들을 저지합니다. 그러므로 사형을 사면하지 않고, 형벌을 용서하지 않으니, 사형을 사면하고 형벌을 용서하는 것을 일러 ‘위엄이 새어 나가는 것[威淫]’이라 하고,¹⁵⁾ 사직이 장차 위태로워지며, 국가의 위엄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대신(大臣)의 녹봉이 비록 많더라도, 도시에 위세를 빌리지 못하게 하고, 당여(黨與)가 비록 많더라도, 사졸(士卒)을 신하로 삼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신하는 나라에 있으면서 사사로운 조회를 열지 못하고, 군대에 있으면서 사사로운 교제를 하지 못하며, 그 부고(府庫)에서 집안에 사사로이 대출해주지 못하게 하니, 이것이 현명한 군주가 그 사악함을 금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까닭에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지 못하고,¹⁶⁾ 허가되지 않은 무기를 싣지 못하며, 부신(符信)을 가진 역마나 급한 전령이 아니면서 허가되지 않은 무기와 갑옷을 실으면, 그 죄는 사형에 처하고 사면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현명한 군주가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비하는 방법입니다.
주석
10) 주지망(紂之亡) 주지비(周之卑):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은 제후였던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멸망당했고, 주나라는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제후들의 세력이 강성해져 천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쇠락했다. 두 사례 모두 제후(신하)의 세력이 너무 커져 군주(천자)를 위협한 대표적인 예이다.
11) 진지분(晉之分) 제지탈(齊之奪): ‘진의 분열’은 춘추시대의 강국이었던 진(晉)나라가 한(韓)·위(魏)·조(趙) 세 가문의 대부(大夫)에 의해 삼등분되어 전국시대가 열린 사건(삼가분진, 三家分晉)을 말한다. ‘제의 찬탈’은 제나라의 대부였던 전(田)씨 가문이 세력을 키워 마침내 군주인 강씨(姜氏)를 몰아내고 나라를 차지한 사건(전씨대제, 田氏代齊)을 말한다. 두 사건 모두 신하의 세력이 군주를 능가하여 나라를 차지한 대표적인 하극상의 사례이다.
12) 연(燕)·송(宋) ... 시기군자(弒其君者): 연나라에서는 재상 자지(子之)가 군주의 자리를 찬탈했다가 내란이 일어나 왕(쾌, 噲)과 자지가 모두 죽는 사건이 있었고, 송나라에서는 군주 강(康)이 폭정을 일삼다가 제나라, 위나라, 초나라 연합군에 의해 시해당했다. 이 역시 신하의 권력이 강해지거나 군주가 권위를 잃어 발생한 비극으로 보고 있다.
13) 술(術): 법가(法家)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군주가 신하를 부리고 통제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기술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신하의 세력이 강해지면 군주가 위태로워진다는 역사적 법칙 또는 패턴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14) 축기신야(蓄其臣也): ‘축(蓄)’은 본래 가축을 기른다는 뜻이다. 군주가 신하를 다루는 것을 가축을 기르는 것에 비유하여, 먹이(녹봉)는 주되 철저히 법과 제도로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법가의 비정한 군신관계를 보여주는 표현이다.
15) 위음(威淫): ‘위엄(威)이 넘쳐흐르다(淫)’. 군주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과 형벌권을 함부로 사용하여 법의 엄격함이 무너지고, 군주의 권위가 신하에게로 새어 나가거나 약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16) 사종(四從):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 고대 중국에서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는 천자나 제후 등 최고 지위의 인물만이 탈 수 있는 신분의 상징이었다. 신하가 이를 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신분 질서를 엄격히 하고, 군주의 권위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는 조치이다.
《한비자》 〈주도〉 번역 및 주석
원문 1
道者、萬物之始,是非之紀也。是以明君守始以知萬物之源,治紀以知善敗之端。故虛靜以待令,令名自命也,令事自定也。虛則知實之情,靜則知動者正。有言者自為名,有事者自為形,形名參同,君乃無事焉,歸之其情。故曰:君無見其所欲,君見其所欲,臣自將雕琢;君無見其意,君見其意,臣將自表異。故曰:去好去惡,臣乃見素,去舊去智,臣乃自備。故有智而不以慮,使萬物知其處;有行而不以賢,觀臣下之所因;有勇而不以怒,使群臣盡其武。是故去智而有明,去賢而有功,去勇而有強。群臣守職,百官有常,因能而使之,是謂習常。故曰:寂乎其無位而處,漻乎莫得其所。明君無為於上,群臣竦懼乎下。明君之道,使智者盡其慮,而君因以斷事,故君不窮於智;賢者敕其材,君因而任之,故君不窮於能;有功則君有其賢,有過則臣任其罪,故君不窮於名。是故不賢而為賢者師,不智而為智者正。臣有其勞,君有其成功,此之謂賢主之經也。
번역 1
도(道)란 만물의 시작이요, 시비(是非)의 기강(紀綱)이다.¹⁾ 이런 까닭에 현명한 군주는 시작을 지켜 만물의 근원을 알고, 기강을 다스려 선(善)과 패(敗)의 단서(端緖)를 안다. 그러므로 허정(虛靜)하게 기다림으로써,²⁾ 이름[名]이 스스로 이름 지어지게 하고, 일[事]이 스스로 정해지게 한다. 비어 있으면 실(實)한 것의 실정을 알 수 있고, 고요하면 움직이는 자의 올바름을 알 수 있다. 말을 하는 자는 스스로 이름[名]을 만들고, 일을 하는 자는 스스로 형체[形]를 만드니, 형체와 이름이 부합하는지를 대조하면 군주는 할 일이 없게 되고, 그 실정(實情)으로 돌아가게 된다.³⁾ 그러므로 이르기를, “군주가 그 하고자 하는 바를 보이지 말라. 군주가 하고자 하는 바를 보이면 신하가 스스로 (군주의 뜻에 맞추어) 꾸밀 것이다. 군주가 그 뜻을 보이지 말라. 군주가 그 뜻을 보이면 신하가 스스로 다르게 드러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좋아함과 싫어함을 버리면 신하가 본모습[素]을 드러내고, 옛 관습과 지혜를 버리면 신하가 스스로 대비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어도 그것으로 헤아리지 않음으로써 만물이 제자리를 알게 하고, 덕행이 있어도 그것으로 어짊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신하들이 따르는 바를 관찰하며, 용기가 있어도 그것으로 노여워하지 않음으로써 여러 신하가 그 무용(武勇)을 다하게 한다. 이런 까닭에 지혜를 버림으로써 밝음이 있게 되고, 어짊을 버림으로써 공(功)이 있게 되며, 용기를 버림으로써 강함이 있게 된다. 여러 신하가 직분을 지키고 모든 관리가 떳떳함을 가지니, 능력에 따라 그들을 부리는 것을 일러 ‘떳떳함을 익힌다[習常]’고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고요하여 그 자리에 없는 듯 머물고, 아득하여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다.”라고 하였다. 현명한 군주가 위에서 무위(無為)하면, 여러 신하는 아래에서 두려워한다. 현명한 군주의 도(道)는, 지혜로운 자로 하여금 그 생각을 다하게 하고 군주는 그것에 근거하여 일을 결단하니, 그러므로 군주는 지혜가 궁색해지지 않는다. 어진 자로 하여금 그 재능을 다하게 하고 군주는 그것에 근거하여 임용하니, 그러므로 군주는 능력이 궁색해지지 않는다. 공이 있으면 군주가 그 어짊을 차지하고, 허물이 있으면 신하가 그 죄를 책임지니, 그러므로 군주는 명예가 궁색해지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어질지 않으면서 어진 자의 스승이 되고, 지혜롭지 않으면서 지혜로운 자의 기준이 된다. 신하는 수고로움을 갖고, 군주는 그 성공을 가지니, 이것을 일러 현명한 군주의 떳떳한 길[經]이라 한다.
주석
1) 도(道) ... 시비지기야(是非之紀也): 여기서의 ‘도(道)’는 노장(老莊)의 형이상학적 도가 아니라, 군주가 만물을 통치하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원리, 즉 통치술(統治術)을 의미한다. ‘기(紀)’는 사물의 뼈대, 기강, 표준을 뜻한다. 즉, 군주의 도는 만물을 다스리는 근본 원리이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의미이다.
2) 허정(虛靜): 마음을 텅 비우고 고요하게 유지하는 상태. 이는 도가(道家)의 핵심 개념이지만, 한비자는 이를 군주가 사적인 감정이나 선입견을 배제하고 신하와 사물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통치술의 도구로 변용했다.
3) 형명참동(形名參同): 한비자 사상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형명(形名) 이론’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명(名)’은 신하가 제시하는 언어적 제안이나 직책을, ‘형(形)’은 그 제안에 따라 실제로 수행한 공적이나 실체를 의미한다. ‘참동(參同)’은 이 둘을 비교하여 일치하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군주는 신하의 말(名)과 실제 행동의 결과(形)가 일치하는지만을 검증하여 상벌을 내릴 뿐,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군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無事)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원문 2
道在不可見,用在不可知。虛靜無事,以闇見疵。見而不見,聞而不聞,知而不知。知其言以往,勿變勿更,以參合閱焉。官有一人,勿令通言,則萬物皆盡。函;掩其跡,匿其端,下不能原;去其智,絕其能,下不能意。保吾所以往而稽同之,謹執其柄而固握之。絕其能望,破其意,毋使人欲之。不謹其閉,不固其門,虎乃將存。不慎其事,不掩其情,賊乃將生。弒其主,代其所,人莫不與,故謂之虎。處其主之側,為姦臣,聞其主之忒,故謂之賊。散其黨,收其餘,閉其門,奪其輔,國乃無虎。大不可量,深不可測,同合刑名,審驗法式,擅為者誅,國乃無賊。是故人主有五壅:臣閉其主曰壅,臣制財利曰壅,臣擅行令曰壅,臣得行義曰壅,臣得樹人曰壅。臣閉其主則主失位,臣制財利則主失德,臣擅行令則主失制,臣得行義則主失明,臣得樹人則主失黨。此人主之所以獨擅也,非人臣之所以得操也。
번역 2
도(道)는 보이지 않는 데에 있고, 그 쓰임은 알려지지 않는 데에 있다. 텅 비고 고요하며 하는 일이 없으면서, 어둠 속에서 (신하의) 허물을 본다. 보아도 보지 않는 듯하고, 들어도 듣지 않는 듯하며, 알아도 알지 못하는 듯하라. 그 말을 알았으면 그대로 두고, 바꾸거나 고치지 말며, 그것으로써 (결과와) 부합하는지를 대조하여 살펴보라. 관직에 한 사람만 두고, 서로 말을 통하지 못하게 하면, 만물의 실정이 모두 드러날 것이다. 감추어라. 그 자취를 가리고 그 단서를 숨겨서, 아랫사람이 그 근원을 알 수 없게 하라. 그 지혜를 버리고 그 능력을 끊어서, 아랫사람이 (군주의 뜻을) 억측할 수 없게 하라. 내가 제시한 바를 지켜 그것과 부합하는지를 상고하고, 삼가 그 권력의 자루[柄]를 잡아 굳게 쥐어라. 그들이 바랄 수 있는 바를 끊고, 그 의도를 깨뜨려, 사람들로 하여금 욕심내지 못하게 하라. 그 닫는 것을 삼가지 않고, 그 문을 굳게 지키지 않으면, 호랑이가 장차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 일을 신중히 하지 않고, 그 실정을 감추지 않으면, 도적이 장차 생겨날 것이다. 그 군주를 시해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데도 사람들이 막지 않고 따르는 것, 그러므로 이를 일러 ‘호랑이’라 한다.⁴⁾ 그 군주의 곁에 머물면서 간신이 되어, 그 군주의 과실을 듣고 이용하는 것, 그러므로 이를 일러 ‘도적’이라 한다.⁵⁾ 그 무리를 흩어버리고 그 잔당을 거두며, 그 문을 닫고 그 보필을 빼앗으면, 나라에 호랑이가 없어질 것이다. 크기를 헤아릴 수 없고 깊이를 측량할 수 없게 하며, 형(刑)과 명(名)을 부합시키고 법식을 자세히 검증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를 주살하면, 나라에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군주에게는 다섯 가지 막힘[五壅]이 있다. 신하가 군주를 가로막는 것을 ‘壅’이라 하고, 신하가 재물과 이익을 제멋대로 다루는 것을 ‘壅’이라 하며, 신하가 제멋대로 명령을 시행하는 것을 ‘壅’이라 하고, 신하가 사사로이 의(義)를 베푸는 것을 ‘壅’이라 하며, 신하가 자기 사람을 심는 것을 ‘壅’이라 한다.⁶⁾ 신하가 군주를 가로막으면 군주는 지위를 잃고, 신하가 재물과 이익을 제멋대로 다루면 군주는 덕을 잃으며, 신하가 제멋대로 명령을 시행하면 군주는 통제력을 잃고, 신하가 사사로이 의를 베풀면 군주는 밝음을 잃으며, 신하가 자기 사람을 심으면 군주는 자기 세력을 잃는다. 이것은 군주가 홀로 독점해야 할 바이며, 신하가 잡을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주석
4) 호(虎): 호랑이. 군주의 자리를 찬탈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신하를 비유하는 말이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군주의 권위에 도전하며, 심지어 군주를 시해하고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5) 적(賊): 도적. 군주의 곁에서 신임을 얻은 뒤, 군주의 약점이나 과실을 이용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고 국정을 어지럽히는 간신을 비유한다. ‘호랑이’가 외부의 강력한 위협이라면, ‘도적’은 내부의 은밀한 위협이다.
6) 오옹(五壅): 군주의 눈과 귀, 그리고 권력을 가로막는 다섯 가지 폐단. ① 신하가 정보를 차단하여 군주를 고립시키는 것, ② 신하가 국가의 재정을 장악하는 것, ③ 신하가 군주의 명령 없이 법령을 시행하는 것, ④ 신하가 사사로운 은혜를 베풀어 인심을 얻는 것, ⑤ 신하가 자신의 파벌을 형성하는 것. 이 다섯 가지는 모두 군주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로, 한비자는 이를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로 보았다.
원문 3
人主之道,靜退以為寶。不自操事而知拙與巧,不自計慮而知福與咎。是以不言而善應,不約而善增。言已應則執其契,事已增則操其符。符契之所合,賞罰之所生也。故群臣陳其言,君以其言授其事,事以責其功。功當其事,事當其言則賞;功不當其事,事不當其言則誅。明君之道,臣不陳言而不當。是故明君之行賞也,曖乎如時雨,百姓利其澤;其行罰也,畏乎如雷霆,神聖不能解也。故明君無偷賞,無赦罰。賞偷則功臣墮其業,赦罰則姦臣易為非。是故誠有功則雖疏賤必賞,誠有過則雖近愛必誅。近愛必誅,則疏賤者不怠,而近愛者不驕也。
번역 3
군주의 도는 고요히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을 보배로 삼는다. 스스로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서도 졸렬함과 교묘함을 알고, 스스로 헤아리지 않으면서도 복과 재앙을 안다. 이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잘 응하고, 약속하지 않아도 잘 더해진다. 말이 이미 응하면 그 부절[契]을 잡고, 일이 이미 더해지면 그 부절[符]을 쥔다. 부(符)와 계(契)가 합치하는 곳에서 상벌이 생겨나는 것이다.⁷⁾ 그러므로 여러 신하가 그 말을 아뢰면, 군주는 그 말에 근거하여 일을 맡기고, 일에 근거하여 공(功)을 책문한다. 공이 그 일에 합당하고, 일이 그 말에 합당하면 상을 주고, 공이 그 일에 합당하지 않고, 일이 그 말에 합당하지 않으면 벌을 준다. 현명한 군주의 도에서는, 신하가 말을 아뢰고서 (결과가) 합당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 이런 까닭에 현명한 군주가 상을 행함은, 온화하기가 때맞춰 내리는 비와 같아 백성이 그 혜택을 이롭게 여기고, 그 벌을 행함은, 두렵기가 우레와 같아 신령조차도 풀 수 없다.⁸⁾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요행으로 상을 주지 않고, 함부로 벌을 사면하지 않는다. 상을 요행으로 주면 공 있는 신하가 그 일을 게을리하고, 벌을 함부로 사면하면 간사한 신하가 쉽게 비행을 저지른다. 이런 까닭에 진실로 공이 있으면 비록 멀고 천한 자라도 반드시 상을 주고, 진실로 허물이 있으면 비록 가깝고 총애하는 자라도 반드시 벌을 준다. 가깝고 총애하는 자를 반드시 벌하면, 멀고 천한 자가 태만하지 않고, 가깝고 총애하는 자가 교만하지 않게 된다.
주석
7) 부계(符契): 고대에 신표(信標)로 사용하던 물건. 나무나 대나무, 옥 등으로 만든 물건을 둘로 쪼개어 양쪽이 하나씩 나누어 가진 뒤, 나중에 맞추어 보아 약속의 진위를 확인했다. 한비자는 이를 ‘형명(形名) 이론’의 비유로 사용했다. 신하의 제안(言)이 부절의 한쪽이라면, 군주는 그 제안에 따라 일을 맡기고(授其事), 나중에 그 결과(功)를 가져오게 하여 원래의 제안과 일치하는지를 부절을 맞추듯 검증한다. 일치하면 상을, 불일치하면 벌을 내리는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상벌 시스템을 상징한다.
8) 애호여시우(曖乎如時雨) ... 외호여뢰정(畏乎如雷霆): 군주의 상벌이 개인적인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처럼 객관적이고 필연적이어야 함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상은 때맞춰 내려 만물을 이롭게 하는 단비처럼 예측 가능하고 공평해야 하며, 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천둥벼락처럼 엄격하고 두려워야 함을 의미한다.
《한비자》 〈유도〉 번역 및 주석
원문 1
國無常強,無常弱。奉法者強則國強,奉法者弱則國弱。荊莊王并國二十六,開地三千里,莊王之氓社稷也,而荊以亡。齊桓公并國三十,啟地三千里,桓公之氓社稷也,而齊以亡。燕襄王以河為境,以薊為國,襲涿、方城,殘齊,平中山,有燕者重,無燕者輕,襄王之氓社稷也,而燕以亡。魏安釐王攻趙救燕,取地河東;攻盡陶、魏之地;加兵於齊,私平陸之都;攻韓拔管,勝於淇下;睢陽之事,荊軍老而走;蔡、召陵之事,荊軍破;兵四布於天下,威行於冠帶之國;安釐死而魏以亡。故有荊莊、齊桓則荊、齊可以霸,有燕襄、魏安釐則燕、魏可以強。今皆亡國者,其群臣官吏皆務所以亂,而不務所以治也。其國亂弱矣,又皆釋國法而私其外,則是負薪而救火也,亂弱甚矣。
번역 1
나라는 항상 강한 것도 아니고, 항상 약한 것도 아니다. 법(法)을 받드는 자가 강하면 나라가 강하고, 법을 받드는 자가 약하면 나라가 약하다. 초(荊)나라 장왕(莊王)은 26개 나라를 병합하고 영토를 3천 리나 열었으나, 장왕이 사직(社稷)을 덮어버렸기에 초나라는 그로 인해 망했다.¹⁾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30개 나라를 병합하고 영토를 3천 리나 열었으나, 환공이 사직을 덮어버렸기에 제나라는 그로 인해 망했다. 연(燕)나라 양왕(襄王)은 황하(黃河)로 국경을 삼고 계(薊)를 수도로 삼았으며, 탁(涿)과 방성(方城)을 습격하고 제나라를 파괴했으며 중산(中山)을 평정하여, 연나라가 있으면 존중받고 연나라가 없으면 경시될 정도였으나, 양왕이 사직을 덮어버렸기에 연나라는 그로 인해 망했다. 위(魏)나라 안리왕(安釐王)은 조(趙)나라를 공격하여 연나라를 구원하고 하동(河東) 땅을 빼앗았으며, 도(陶)와 위(魏) 땅을 모두 공격하여 차지했고, 제나라에 군대를 더하여 평륙(平陸)의 도읍을 사사로이 차지했으며, 한(韓)나라를 공격하여 관(管) 땅을 함락시키고 기수(淇水) 아래에서 승리했다. 수양(睢陽)의 싸움에서는 초나라 군대가 지쳐 달아났고, 채(蔡)와 소릉(召陵)의 싸움에서는 초나라 군대가 격파되었다. 군대는 천하 사방에 퍼졌고 위세는 모든 제후국[冠帶之國]에 떨쳤으나, 안리왕이 죽자 위나라는 그로 인해 망했다. 그러므로 초나라 장왕과 제나라 환공이 있으면 초나라와 제나라가 패자(霸者)가 될 수 있었고, 연나라 양왕과 위나라 안리왕이 있으면 연나라와 위나라가 강해질 수 있었다. 지금 이 나라들이 모두 망한 까닭은, 그 신하와 관리들이 모두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에만 힘쓰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는 힘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나라가 어지럽고 약해졌는데도, 또 모두 나라의 법을 내버려 두고 사사로이 외부 세력과 결탁하니, 이는 섶을 지고 불을 끄려는 것과 같아,²⁾ 혼란과 쇠약이 더욱 심해질 뿐이다.
주석
1) 장왕지맹사직야(莊王之氓社稷也): 여기서 ‘맹(氓)’은 ‘덮다’, ‘가리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즉, 초 장왕이나 제 환공과 같은 뛰어난 군주의 개인적인 역량과 위업이 너무나 커서, 오히려 국가의 근본인 법과 제도, 즉 사직(社稷)의 중요성을 덮어버리고 가렸다는 의미이다. 한비자는 군주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인치(人治)는 그 군주가 사라지면 곧바로 국가의 쇠망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군주의 개인적 역량이 아니라, 영속적인 법(法)에 의한 통치, 즉 법치(法治)만이 국가를 영원히 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 부신이구화야(負薪而救火也): ‘섶(땔나무)을 지고 불을 끄러 간다’는 뜻의 고사성어. 불을 끄기 위해 불에 잘 타는 땔나무를 가져가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를 비유한다. 여기서는 나라가 이미 법이 무너져 혼란한데, 신하들이 공적인 법을 따르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외부 세력과 결탁하는 행위가 나라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뿐임을 지적하는 말이다.
원문 2
故當今之時,能去私曲就公法者,民安而國治;能去私行行公法者,則兵強而敵弱。故審得失有法度之制者加以群臣之上,則主不可欺以詐偽;審得失有權衡之稱者以聽遠事,則主不可欺以天下之輕重。今若以譽進能,則臣離上而下比周;若以黨舉官,則民務交而不求用於法。故官之失能者其國亂。以譽為賞,以毀為罰也,則好賞惡罰之人,釋公行、行私術、比周以相為也。忘主外交,以進其與,則其下所以為上者薄矣。交眾與多,外內朋黨,雖有大過,其蔽多矣。故忠臣危死於非罪,姦邪之臣安利於無功。忠臣危死而不以其罪,則良臣伏矣;姦邪之臣安利不以功,則姦臣進矣;此亡之本也。若是、則群臣廢法而行私重,輕公法矣。數至能人之門,不壹至主之廷;百慮私家之便,不壹圖主之國。屬數雖多,非所以尊君也;百官雖具,非所以任國也。然則主有人主之名,而實託於群臣之家也。故臣曰:亡國之廷無人焉。廷無人者,非朝廷之衰也。家務相益,不務厚國;大臣務相尊,而不務尊君;小臣奉祿養交,不以官為事。此其所以然者,由主之不上斷於法,而信下為之也。
번역 2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때에, 사사로운 왜곡을 버리고 공적인 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사사로운 행실을 버리고 공적인 법을 행할 수 있는 자는 군대를 강하게 하고 적을 약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득실을 살피는 법도(法度)의 제도를 여러 신하의 위에 더하면, 군주는 사기와 거짓에 속지 않을 것이다. 득실을 살피는 저울[權衡]을 가지고 먼 곳의 일을 들으면, 군주는 천하의 경중(輕重)에 속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만약 명성으로 유능한 자를 등용한다면 신하들은 윗사람을 멀리하고 아랫사람들과 어울려 무리를 지을 것이며, 만약 붕당으로 관리를 추천한다면 백성들은 사귀는 데에만 힘쓰고 법에 따라 쓰이기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관리가 능력을 잃으면 그 나라는 어지러워진다. 명성을 상으로 삼고 비방을 벌로 삼으면, 상을 좋아하고 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공적인 행실을 버리고 사사로운 술수를 행하며, 서로 무리를 지어 도울 것이다. 군주를 잊고 외부 세력과 교제하여 자기 무리를 등용시키면, 그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을 위하는 마음은 엷어질 것이다. 교제하는 무리가 많고, 안팎으로 붕당을 이루면, 비록 큰 잘못이 있더라도 그것을 가려주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충신은 죄 없이 위태롭게 죽고, 간사하고 사악한 신하는 공 없이 편안하고 이롭게 된다. 충신이 죄 없이 위태롭게 죽으면 어진 신하들은 숨어버리고, 간사하고 사악한 신하가 공 없이 편안하고 이롭게 되면 간사한 신하들이 나아오니, 이것이 망국의 근본이다. 이와 같으면, 여러 신하는 법을 폐하고 사사로움을 중시하며, 공적인 법을 가볍게 여길 것이다. 유능한 자의 문에는 자주 드나들면서도 군주의 조정에는 한 번도 이르지 않으며, 온갖 생각은 사사로운 집안의 편리에만 있고 군주의 나라를 위해서는 한 번도 도모하지 않는다. 속한 무리가 비록 많더라도 군주를 존귀하게 하는 방법이 아니며, 모든 관리가 비록 갖추어져 있더라도 나라를 맡길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군주는 군주라는 이름만 있을 뿐, 실제로는 여러 신하의 집에 기탁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신이 말하기를, “망하는 나라의 조정에는 사람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³⁾ 조정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조정의 건물이 낡았다는 것이 아니다. 가신(家臣)들은 서로의 이익에만 힘쓰고 나라를 두텁게 하는 데에는 힘쓰지 않으며, 대신들은 서로를 존중하는 데에만 힘쓰고 군주를 존중하는 데에는 힘쓰지 않으며, 소신(小臣)들은 녹봉을 받아 교제를 유지할 뿐, 관직을 일로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되는 까닭은, 군주가 위에서 법으로 결단하지 않고, 아랫사람들이 하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법으로 하여금 사람을 선택하게 하고 스스로 천거하지 않으며, 법으로 하여금 공을 헤아리게 하고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유능한 자는 가려질 수 없고, 실패한 자는 꾸밀 수 없으며, 칭찬받는 자라고 등용될 수 없고, 비방받는 자라고 물리칠 수 없게 되면, 군신 사이가 명확하게 분별되어 다스리기 쉬워지니, 그러므로 군주는 법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주석
3) 망국지정무인언(亡國之廷無人焉): “망하는 나라의 조정에는 사람이 없다.” 이는 조정에 신하가 한 명도 없다는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다. 조정에 있는 모든 신하가 공적인 법이나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공인(公人)’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가문이나 붕당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인(私人)’일 뿐이라는 뜻이다. 즉, 진정한 의미의 신하, 국가를 위하는 신하가 한 명도 없다는 강력한 비판이다.
원문 3
賢者之為人臣,北面委質,無有二心,朝廷不敢辭賤,軍旅不敢辭難,順上之為,從主之法,虛心以待令而無是非也。故有口不以私言,有目不以私視,而上盡制之。為人臣者,譬之若手,上以脩頭,下以脩足,清暖寒熱,不得不救,入,鏌邪傅體,不敢弗搏。無私賢哲之臣,無私事能之士。故民不越鄉而交,無百里之慼。貴賤不相踰,愚智提衡而立,治之至也。今夫輕爵祿,易去亡,以擇其主,臣不謂廉。詐說逆法,倍主強諫,臣不謂忠。行惠施利,收下為名,臣不謂仁。離俗隱居,而以作非上,臣不謂義。外使諸侯,內耗其國,伺其危嶮之陂以恐其主曰:「交非我不親,怨非我不解」,而主乃信之,以國聽之,卑主之名以顯其身,毀國之厚以利其家,臣不謂智。此數物者,險世之說也,而先王之法所簡也。先王之法曰:「臣毋或作威,毋或作利,從王之指;無或作惡,從王之路。」古者世治之民,奉公法,廢私術,專意一行,具以待任。
번역 3
어진 자가 신하가 됨에 있어서는, 북쪽을 향해 몸을 맡기고 두 마음이 없으며,⁴⁾ 조정에서는 천한 일을 사양하지 않고, 군대에서는 어려운 일을 사양하지 않으며, 윗사람이 하는 바에 순종하고 군주의 법을 따르며, 마음을 비우고 명령을 기다릴 뿐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입이 있어도 사사로이 말하지 않고, 눈이 있어도 사사로이 보지 않으며, 윗사람이 모든 것을 통제한다. 신하 된 자는 비유컨대 손과 같아서, 위로는 머리를 다스리고 아래로는 발을 다스리며, 서늘함과 따뜻함, 추위와 더위를 구제하지 않을 수 없고, 막야(鏌鋣)와 같은 명검이 몸에 닿아도 감히 막아내지 않을 수 없다. 사사로이 어질고 지혜로운 신하가 없고, 사사로이 유능한 선비도 없다. 그러므로 백성은 고을을 넘어 교제하지 않고, 백 리 밖의 근심이 없다. 귀하고 천함이 서로의 분수를 넘지 않고,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저울에 달린 듯 바로 서니, 이것이 다스림의 지극함이다. 지금 무릇 벼슬과 녹봉을 가벼이 여기고, 쉽게 떠나 망명하여 그 군주를 선택하는 것을, 신은 청렴(廉)이라 말하지 않는다. 거짓된 말로 법을 거스르고, 군주를 배반하며 강하게 간언하는 것을, 신은 충성(忠)이라 말하지 않는다. 은혜를 베풀고 이익을 나누어주어, 아랫사람을 거두어 명성을 얻는 것을, 신은 인(仁)이라 말하지 않는다. 세속을 떠나 숨어 살면서 윗사람을 비방하는 것을, 신은 의(義)라 말하지 않는다. 밖으로 제후에게 사신으로 가서는 안으로 그 나라를 소모시키고, 그 위태로운 기회를 엿보아 그 군주를 위협하며 말하기를, “외교는 제가 아니면 친해질 수 없고, 원한은 제가 아니면 풀 수 없습니다.”라고 하여 군주가 마침내 그를 믿고 나라의 일을 맡기니, 군주의 명예를 낮추어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나라의 부(富)를 훼손하여 자신의 집안을 이롭게 하는 것을, 신은 지혜(智)라 말하지 않는다.⁵⁾ 이 몇 가지 것들은 험난한 세상의 논리이며, 선왕(先王)의 법에서는 간택되어 버려진 것들이다. 선왕의 법에 이르기를, “신하는 위엄을 만들지 말고, 이익을 만들지 말며, 왕의 지시를 따르라. 악(惡)을 만들지 말고, 왕의 길을 따르라.”라고 하였다. 옛날 잘 다스려지던 세상의 백성은, 공적인 법을 받들고 사사로운 술수를 폐하며, 뜻을 오로지하고 행동을 하나로 하여, 갖추고서 임용되기를 기다렸다.
주석
4) 북면위질(北面委質): 신하가 군주를 뵈올 때 북쪽을 향해 서는 것에서 유래한 말로, 군주에게 신하로서의 예를 갖추고 복종을 맹세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질(質)’은 처음 신하가 될 때 예물로 바치는 폐백을 뜻하며, 여기서는 자신의 몸, 즉 신변 자체를 맡긴다는 의미로 쓰였다.
5) 청렴(廉)·충성(忠)·인(仁)·의(義)·지혜(智)에 대한 재정의: 이 부분은 한비자의 법가 사상이 유가(儒家) 사상과 어떻게 다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유가에서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인의예지(仁義禮智)나 충(忠) 등의 가치를, 한비자는 군주의 절대적인 권위와 통일된 법질서를 훼손하는 위험한 행위로 재해석한다. 법가에서 ‘충성’은 군주의 명령에 대한 절대복종이지,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간언(強諫)이 아니다. ‘인(仁)’은 군주가 법을 통해 공적으로 베푸는 것이지, 신하가 사사로이 인심을 얻는 행위가 아니다. 이처럼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군주와 법에 둠으로써, 신하의 자의적인 판단과 행동의 여지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것이 법가 사상의 핵심이다.
원문 4
夫為人主而身察百官,則日不足,力不給。且上用目則下飾觀,上用耳則下飾聲,上用慮則下繁辭。先王以三者為不足,故舍己能,而因法數,審賞罰。先王之所守要,故法省而不侵。獨制四海之內,聰智不得用其詐,險躁不得關其佞,姦邪無所依。遠在千里外,不敢易其辭;勢在郎中,不敢蔽善飾非。朝廷群下,直湊單微,不敢相踰越。故治不足而日有餘,上之任勢使然也。
번역 4
무릇 군주가 되어 몸소 모든 관리를 살피면, 날이 부족하고 힘이 미치지 못한다. 또한 윗사람이 눈을 사용하면 아랫사람은 외모를 꾸미고, 윗사람이 귀를 사용하면 아랫사람은 목소리를 꾸미며, 윗사람이 생각을 사용하면 아랫사람은 말을 번잡하게 꾸민다. 선왕(先王)은 이 세 가지가 부족하다고 여겼으므로, 자신의 능력을 버리고 법(法)과 술(數)에 의거하여 상벌을 명확히 하였다. 선왕이 지킨 것은 요체(要體)였으므로, 법은 간결하면서도 침해받지 않았다. 홀로 사해(四海)의 안을 통제하니, 총명하고 지혜로운 자도 그 사기를 부리지 못하고, 험악하고 조급한 자도 그 아첨을 끼워 넣지 못하며, 간사하고 사악한 자도 의지할 곳이 없었다. 멀리 천 리 밖에 있어도 감히 그 말을 바꾸지 못하고, 권세가 궁궐 안에 있어도 감히 선(善)을 가리고 비(非)를 꾸미지 못했다. 조정의 여러 아랫사람들은 곧바로 나아가고 개별적으로 아뢰며,⁶⁾ 감히 서로의 분수를 넘지 못했다. 그러므로 다스림은 부족함이 없는데도 날은 여유가 있었으니, 윗사람이 세(勢)에 맡겼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⁷⁾
주석
6) 직주단미(直湊單微): 신하들이 다른 사람을 거치지 않고 군주에게 직접(直) 나아가(湊) 개별적으로(單) 아뢰는(微)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하들 간의 붕당 형성이나 정보 왜곡을 막고, 군주가 모든 정보를 직접 통제할 수 있게 하는 통치술의 하나이다.
7) 세(勢): 법(法), 술(術)과 함께 한비자 사상의 3대 요소 중 하나. ‘세’는 군주라는 지위(地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권세, 권위, 위력을 의미한다. 군주는 자신의 개인적인 지혜나 능력(己能)이 아니라,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군주라는 ‘지위(勢)’에 의거하여 법과 술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가 ‘세’를 장악하고 있으면, 개인적인 노력 없이도 저절로 나라가 다스려진다고 보았다.
원문 5
夫人臣之侵其主也,如地形焉,即漸以往,使人主失端、東西易面而不自知。故先王立司南以端朝夕。故明主使其群臣不遊意於法之外,不為惠於法之內,動無非法。法所以凌過遊外私也,嚴刑所以遂令懲下也。威不貸錯,制不共門。威制共則眾邪彰矣,法不信則君行危矣,刑不斷則邪不勝矣。故曰:巧匠目意中繩,然必先以規矩為度;上智捷舉中事,必以先王之法為比。故繩直而枉木斲,準夷而高科削,權衡縣而重益輕,斗石設而多益少。故以法治國,舉措而已矣。法不阿貴,繩不撓曲。法之所加,智者弗能辭,勇者弗敢爭。刑過不避大臣,賞善不遺匹夫。故矯上之失,詰下之邪,治亂決繆,絀羨齊非,一民之軌,莫如法。屬官威民,退淫殆,止詐偽,莫如刑。刑重則不敢以貴易賤,法審則上尊而不侵,上尊而不侵則主強,而守要,故先王貴之而傳之。人主釋法用私,則上下不別矣。
**번
역 5**
무릇 신하가 그 군주를 침범하는 것은 지형(地形)과 같아서, 점차 나아가 군주로 하여금 기준을 잃게 하여, 동서의 방향을 바꾸고도 스스로 알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선왕은 사남(司南)을 세워 조석(朝夕)의 방향을 바로잡았다.⁸⁾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여러 신하로 하여금 법의 밖에서 멋대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법의 안에서 사사로운 은혜를 베풀지 못하게 하여, 움직임에 법이 아닌 것이 없게 한다. 법은 허물을 꾸짖고 법 밖에서 노니는 사사로움을 막는 것이며, 엄한 형벌은 명령을 완수하게 하고 아랫사람을 징계하는 것이다. 위엄은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제도는 문을 공유하지 않는다. 위엄과 제도를 공유하면 뭇 사악함이 드러나고, 법에 믿음이 없으면 군주의 행동이 위태로워지며, 형벌이 결단력 있지 않으면 사악함을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솜씨 좋은 장인은 눈대중으로도 먹줄에 맞추지만, 반드시 먼저 규구(規矩)를 기준으로 삼는다. 뛰어난 지혜를 가진 자는 재빨리 일의 핵심을 파악하지만, 반드시 선왕의 법을 기준으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먹줄이 곧으면 굽은 나무가 깎여나가고, 수평기가 평평하면 높은 곳이 깎여나가며, 저울이 매달리면 무거운 것이 더해지고 가벼운 것이 덜어지며, 말[斗]과 섬[石]이 설치되면 많은 것이 더해지고 적은 것이 덜어진다. 그러므로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법을) 들어 조치할 뿐이다. 법은 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것에 휘어지지 않는다. 법이 더해지는 곳에는, 지혜로운 자도 능히 변명하지 못하고 용감한 자도 감히 다투지 못한다. 허물을 벌함에 대신을 피하지 않고, 선행을 상 줌에 필부(匹夫)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윗사람의 실수를 바로잡고, 아랫사람의 사악함을 꾸짖으며, 혼란을 다스리고 잘못을 결단하며, 남는 것을 덜어내고 아닌 것을 바로잡아, 백성의 궤도를 하나로 만드는 데에는 법만 한 것이 없다. 관리에 소속시켜 백성을 위엄 있게 하고, 음란하고 위태로운 것을 물리치며, 사기와 거짓을 그치게 하는 데에는 형벌만 한 것이 없다. 형벌이 무거우면 감히 귀한 신분으로 천한 신분을 바꾸려 하지 못하고, 법이 명확하면 윗사람이 존귀해져 침범받지 않으며, 윗사람이 존귀해져 침범받지 않으면 군주가 강해져 요체를 지키게 되니, 그러므로 선왕이 이를 귀하게 여겨 전한 것이다. 군주가 법을 버리고 사사로움을 사용하면, 상하의 구별이 없어질 것이다.
주석
8) 사남(司南): ‘남쪽을 관장한다’는 뜻으로, 고대 중국에서 방향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기구, 즉 자석으로 만든 국자 모양의 원시적인 나침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하의 침범이 지형의 변화처럼 알아채기 어렵게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므로, 군주는 ‘사남’과 같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 즉 법(法)을 세워 항상 올바른 방향(기준)을 잃지 말아야 함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비자》 〈이병〉 번역 및 주석
원문 1
明主之所導制其臣者,二柄而已矣。二柄者,刑、德也。何謂刑德?曰:殺戮之謂刑,慶賞之謂德。為人臣者畏誅罰而利慶賞,故人主自用其刑德,則群臣畏其威而歸其利矣。故世之姦臣則不然,所惡則能得之其主而罪之,所愛則能得之其-主而賞之。今人主非使賞罰之威利出於己也,聽其臣而行其賞罰,則一國之人皆畏其臣而易其君,歸其臣而去其君矣,此人主失刑德之患也。夫虎之所以能服狗者、爪牙也,使虎釋其爪牙而使狗用之,則虎反服於狗矣。人主者、以刑德制臣者也,今君人者、釋其刑德而使臣用之,則君反制於臣矣。故田常上請爵祿而行之群臣,下大斗斛而施於百姓,此簡公失德而田常用之也,故簡公見弒。子罕謂宋君曰:「夫慶賞賜予者,民之所喜也,君自行之;殺戮刑罰者,民之所惡也,臣請當之。」於是宋君失刑而子罕用之,故宋君見劫。田常徒用德而簡公弒,子罕徒用刑而宋君劫。故今世為人臣者兼刑德而用之,則是世主之危甚於簡公、宋君也。故劫殺擁蔽之主,非失刑德而使臣用之而不危亡者,則未嘗有也。
번역 1
현명한 군주가 그 신하를 이끌고 통제하는 것은, 두 자루의 권병(權柄)일 뿐이다.¹⁾ 두 권병이란 형(刑)과 덕(德)이다. 무엇을 형과 덕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죽이고 베는 것을 형이라 하고, 상을 내리는 것을 덕이라 한다.²⁾ 신하 된 자는 주살과 형벌을 두려워하고 상을 이롭게 여기므로, 군주가 스스로 그 형과 덕을 사용하면, 여러 신하는 그 위엄을 두려워하고 그 이익에 귀의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간신은 그렇지 않아서, 미워하는 자는 그 군주에게서 (벌할 권한을) 얻어내어 죄를 주고, 사랑하는 자는 그 군주에게서 (상 줄 권한을) 얻어내어 상을 준다. 지금 군주가 상벌의 위엄과 이익을 자신에게서 나오게 하지 않고, 그 신하의 말을 듣고 상벌을 행하면, 온 나라 사람이 모두 그 신하를 두려워하고 그 군주를 가벼이 여기며, 그 신하에게 귀의하고 그 군주를 떠나갈 것이니, 이것이 군주가 형과 덕을 잃는 우환이다. 무릇 호랑이가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까닭은 발톱과 어금니 때문이니, 만약 호랑이가 그 발톱과 어금니를 버리고 개로 하여금 그것을 쓰게 한다면, 호랑이는 도리어 개에게 굴복당할 것이다. 군주란 형과 덕으로 신하를 통제하는 자이다. 지금 군주 된 자가 그 형과 덕을 버리고 신하로 하여금 그것을 쓰게 한다면, 군주는 도리어 신하에게 통제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상(田常)은 위로는 (군주에게) 벼슬과 녹봉을 청하여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 주고, 아래로는 큰 되와 말을 사용하여 백성에게 베풀었으니, 이는 간공(簡公)이 덕(德)을 잃고 전상이 그것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간공은 시해당했다.³⁾ 자한(子罕)은 송(宋)나라 군주에게 말하기를, “무릇 상을 내리고 물건을 하사하는 것은 백성이 기뻐하는 바이니, 군주께서 직접 행하십시오. 죽이고 베는 형벌은 백성이 싫어하는 바이니, 신이 그것을 맡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송나라 군주는 형(刑)을 잃고 자한이 그것을 사용하였고, 그러므로 송나라 군주는 겁박당했다.⁴⁾ 전상은 단지 덕(德)만을 사용하여 간공이 시해되었고, 자한은 단지 형(刑)만을 사용하여 송군(宋君)이 겁박당했다. 그러므로 지금 세상의 신하 된 자가 형과 덕을 겸하여 사용한다면, 이 시대 군주의 위험은 간공이나 송군보다 심할 것이다. 그러므로 겁박당하고 살해당하며 (눈과 귀가) 가려진 군주로서, 형과 덕을 잃고 신하로 하여금 그것을 사용하게 하고도 위태롭거나 망하지 않은 자는 일찍이 없었다.
주석
1) 이병(二柄): ‘두 자루의 권병(權柄)’, 즉 두 개의 권력의 자루.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는 가장 핵심적이고 유일한 두 가지 수단인 형벌(刑罰)과 상여(賞與)를 가리킨다. 한비자는 이 두 가지 권한을 군주가 독점하고 절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2) 형(刑)·덕(德): 여기서 ‘덕(德)’은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도덕적 ‘덕(virtue)’이 아니라, ‘은혜를 베풀다’는 의미로 전용(轉用)되어 ‘상(賞)’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이는 한비자가 기존의 유가적 가치 개념을 해체하고, 오직 상과 벌이라는 실리적인 통치 수단으로 재정의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3) 전상(田常) ... 간공(簡公) 시해: 전상은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대부로, 군주인 간공(簡公)의 권위를 무력화하고 민심을 얻기 위해, 군주의 이름으로 벼슬을 나누어 주고, 곡식을 빌려줄 때는 큰 되를 쓰고 돌려받을 때는 작은 되를 쓰는 등 사사로이 은혜(德)를 베풀었다. 이를 통해 세력을 키운 그는 마침내 간공을 시해하고 정권을 찬탈했다(B.C. 481). 이는 신하가 ‘덕(德)’의 권한을 장악했을 때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4) 자한(子罕) ... 송군(宋君) 겁박: 자한은 전국시대 송(宋)나라의 재상이다. 그는 군주에게 인심을 얻는 상(賞)은 직접 하시게 하고, 인심을 잃는 벌(罰)은 자신이 맡겠다고 하여 형벌권을 장악했다. 이를 통해 모든 신하와 백성이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결국 군주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정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이는 신하가 ‘형(刑)’의 권한을 장악했을 때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원문 2
人主將欲禁姦,則審合刑名者,言異事也。為人臣者陳而言,君以其言授之事,專以其事責其功。功當其事,事當其言,則賞;功不當其事,事不當其言,則罰。故群臣其言大而功小者則罰,非罰小功也,罰功不當名也。群臣其言小而功大者亦罰,非不說於大功也,以為不當名也害甚於有大功,故罰。昔者韓昭侯醉而寢,典冠者見君之寒也,故加衣於君之上,覺寢而說,問左右曰:「誰加衣者?」左右對曰:「典冠。」君因兼罪典衣與典冠。其罪典衣、以為失其事也,其罪典冠、以為越其職也。非不惡寒也,以為侵官之害甚於寒。故明主之畜臣,臣不得越官而有功,不得陳言而不當。越官則死,不當則罪,守業其官所言者貞也,則群臣不得朋黨相為矣。
번역 2
군주가 장차 간악함을 금하고자 한다면, 형(形)과 명(名)을 자세히 부합시켜야 하니, 말과 일은 다른 것이다.⁵⁾ 신하 된 자가 말을 아뢰면, 군주는 그 말에 근거하여 일을 맡기고, 오로지 그 일에 근거하여 공(功)을 책문한다. 공이 그 일에 합당하고, 일이 그 말에 합당하면 상을 주고, 공이 그 일에 합당하지 않고, 일이 그 말에 합당하지 않으면 벌을 준다. 그러므로 여러 신하 중에 그 말이 큰데 공이 작은 자는 벌을 받으니, 작은 공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공이 그 이름[名]에 합당하지 않음을 벌하는 것이다. 여러 신하 중에 그 말이 작은데 공이 큰 자 또한 벌을 받으니, 큰 공을 기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름에 합당하지 않은 것의 해가 큰 공이 있는 것보다 심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벌하는 것이다.⁶⁾ 옛날 한(韓)나라 소후(昭侯)가 술에 취해 잠들었는데, 관(冠)을 담당하는 관리[典冠]가 군주가 추워하는 것을 보고 옷을 군주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잠에서 깨어 기뻐하며 좌우에 묻기를, “누가 옷을 덮어주었는가?” 하니, 좌우에서 대답하기를, “전관입니다.”라고 하였다. 군주는 이로 인해 옷을 담당하는 관리[典衣]와 관을 담당하는 관리[典冠]를 아울러 죄주었다. 그 전의(典衣)를 죄준 것은 그 직무를 소홀히 했다고 여겼기 때문이고, 그 전관(典冠)을 죄준 것은 그 직분을 넘어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추위를 싫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관직을 침범하는 해가 추위보다 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⁷⁾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신하를 기를 때에는,⁸⁾ 신하가 관직을 넘어서 공을 세우지 못하게 하고, 말을 아뢰고서 (결과가) 합당하지 않게 하지 못한다. 관직을 넘어서면 죽고, (말과 결과가) 합당하지 않으면 죄를 받는다. 자기 관직의 업무를 지키고 그 말한 바가 올곧으면, 여러 신하는 붕당을 이루어 서로를 위하지 못할 것이다.
주석
5) 형명(刑名): 본문의 ‘형(刑)’은 형벌이 아니라 형체, 실제를 의미하는 ‘형(形)’과 통용된다. ‘형명(形名)’ 또는 ‘명실(名實)’ 이론은 한비자 사상의 핵심 중 하나이다. ‘명(名)’은 신하가 제시한 언어적 제안이나 직책을, ‘형(形)’은 그에 따른 실제 공적이나 결과를 의미한다. 군주는 신하의 말(名)과 실제 행동의 결과(形)가 일치하는지만을 기계적으로 검증하여 상벌(二柄)을 내리면 된다는 것이다.
6) 언소이공대자역벌(言小而功大者亦罰): ‘말은 작았는데 공이 큰 자 또한 벌한다’. 이는 법가 사상의 비정함과 체계 중심적 사고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하가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공을 세우는 것조차도, 군주가 신하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통제하는 시스템(名實參同)을 교란하는 행위로 간주한다. 이는 군주를 속이거나 월권행위를 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으로 보았기 때문에, 결과가 좋더라도 약속(名)과 다르다면 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7) 한소후(韓昭侯) 고사: 한소후가 추울까 봐 자신의 직분을 넘어 옷을 덮어준 전관(典冠)과, 자신의 직무인 옷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전의(典衣)를 둘 다 처벌한 일화. 이는 군주의 개인적인 안위나 감정보다 관료 시스템의 원칙(職分)을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법가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8) 축신(畜臣): ‘신하를 기른다’. ‘축(畜)’은 가축을 기른다는 뜻으로, 군주가 신하를 인격체가 아닌, 철저히 법과 술(術)에 따라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도구적 존재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원문 3
人主有二患:任賢,則臣將乘於賢以劫其君;妄舉,則事沮不勝。故人主好賢,則群臣飾行以要君欲,則是群臣之情不效;群臣之情不效,則人主無以異其臣矣。故越王好勇,而民多輕死;楚靈王好細腰,而國中多餓人;齊桓公妒而好內,故豎刁自宮以治內,桓公好味,易牙蒸其子首而進之;燕子噲好賢,故子之明不受國。故君見惡則群臣匿端,君見好則群臣誣能。人主欲見,則群臣之情態得其資矣。故子之託於賢以奪其君者也,豎刁、易牙因君之欲以侵其君者也,其卒子噲以亂死,桓公蟲流出戶而不葬。此其故何也?人君以情借臣之患也。人臣之情非必能愛其君也,為重利之故也。今人主不掩其情,不匿其端,而使人臣有緣以侵其主,則群臣為子之、田常不難矣。故曰:去好去惡,群臣見素。群臣見素,則大君不蔽矣。
번역 3
군주에게는 두 가지 우환이 있다. 어진 이를 임용하면 신하가 장차 그 어짊을 이용하여 군주를 겁박할 것이고, 함부로 등용하면 일이 막혀 성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주가 어짊을 좋아하면, 여러 신하는 행동을 꾸며 군주의 욕망에 영합하려 하니, 이렇게 되면 여러 신하의 실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여러 신하의 실정이 드러나지 않으면, 군주는 그 신하들을 구별할 방법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월(越)나라 왕이 용맹을 좋아하자 백성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자가 많았고,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가는 허리를 좋아하자 나라 안에 굶주리는 사람이 많았으며,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질투심이 많고 여색을 좋아하자 수조(豎刁)는 스스로 거세하여 후궁을 관리했고, 환공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자 역아(易牙)는 자기 아들의 머리를 쪄서 바쳤다.⁹⁾ 연(燕)나라의 자쾌(子噲)가 어짊을 좋아하자, 자지(子之)는 명분상 나라를 받지 않는 척했다. 그러므로 군주가 싫어하는 것을 보이면 여러 신하는 그 단서를 숨기고,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보이면 여러 신하는 능력을 속인다. 군주의 욕망이 드러나면, 여러 신하의 실정과 태도는 그것을 이용할 자산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자지(子之)는 어짊을 핑계로 그 군주를 빼앗은 자이고, 수조(豎刁)와 역아(易牙)는 군주의 욕망으로 인해 그 군주를 침범한 자들이다. 그 결과 자쾌(子噲)는 난리로 죽었고, 환공(桓公)은 시체에서 벌레가 흘러나와 문밖으로 나올 때까지 장사 지내지 못했다. 이 까닭은 무엇인가? 군주가 자신의 실정(實情)을 신하에게 빌려주었기 때문에 생긴 우환이다. 신하의 마음은 반드시 그 군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큰 이익을 위하기 때문이다. 지금 군주가 그 실정을 가리지 않고 그 단서를 숨기지 않아, 신하로 하여금 군주를 침범할 빌미를 주게 되면, 여러 신하가 자지(子之)나 전상(田常)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좋아함과 싫어함을 버리면 여러 신하가 본모습[素]을 드러낸다. 여러 신하가 본모습을 드러내면, 위대한 군주는 (눈과 귀가)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9) 수조(豎刁)와 역아(易牙): 모두 제 환공 시대의 간신이다. 수조는 환공의 후궁을 관리하는 직책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거세하였고, 역아는 요리사로서 환공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인육을 먹어보고 싶다는 환공의 말에 자기 아들을 죽여 요리해 바쳤다. 이들은 군주의 비정상적인 욕망에 극단적으로 영합하여 신임을 얻은 뒤, 결국 국정을 농단하고 환공이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는 군주가 자신의 개인적인 호오(好惡)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비자》 〈양권〉 번역 및 주석
원문 1
天有大命,人有大命。夫香美脆味,厚酒肥肉,甘口而病形;曼理皓齒,說情而捐精。故去甚去泰,身乃無害。權不欲見,素無為也。事在四方,要在中央。聖人執要,四方來效。虛而待之,彼自以之。四海既藏,道陰見陽。左右既立,開門而當。勿變勿易,與二俱行,行之不已,是謂履理也。夫物者有所宜,材者有所施,各處其宜,故上下無為。使雞司夜,令狸執鼠,皆用其能,上乃無事。上有所長,事乃不方。矜而好能,下之所欺。辯惠好生,下因其材。上下易用,國故不治。
번역 1
하늘에 큰 운명이 있고, 사람에게도 큰 운명이 있다. 무릇 향기롭고 아름다우며 아삭한 맛, 진한 술과 기름진 고기는 입에는 달지만 몸을 병들게 하고, 고운 살결과 흰 치아는 감정을 즐겁게 하지만 정기(精氣)를 버리게 한다. 그러므로 심한 것을 버리고 지나친 것을 버려야, 몸에 해가 없을 것이다. 권세(權勢)는 드러내려 하지 않으니, 그 본바탕은 무위(無為)이다.¹⁾ 일은 사방에 있으나, 그 요체(要體)는 중앙에 있다. 성인(聖人)이 요체를 잡으면, 사방에서 와서 힘을 바친다. 텅 비우고 그들을 기다리면, 저들이 스스로 올 것이다. 사해(四海)가 이미 감추어지니, 도(道)는 음(陰)을 통해 양(陽)을 드러낸다.²⁾ 좌우가 이미 세워지면, 문을 열고 마주하라. 바꾸지 말고 고치지 말며, 둘과 함께 나아가라.³⁾ 행하기를 그치지 않는 것, 이를 일러 이치를 밟는다고 한다. 무릇 사물에는 마땅한 바가 있고, 재목에는 쓰임새가 있으니, 각자 그 마땅한 곳에 머물게 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모두 할 일이 없게 된다. 닭으로 하여금 밤을 알리게 하고, 살쾡이로 하여금 쥐를 잡게 하면, 모두 그 능력을 사용하므로 윗사람은 할 일이 없게 된다. 윗사람이 잘하는 바가 있으면, 일이 방정(方正)하지 않게 된다. 스스로를 뽐내고 능력을 좋아하면, 아랫사람에게 속게 된다. 말 잘하고 지혜로우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면, 아랫사람이 그 재능을 이용한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쓰임이 바뀌면, 나라는 다스려지지 않는다.
주석
1) 권불욕견 소무위야(權不欲見 素無為也): ‘권(權)’은 군주의 절대적인 권력과 권위를 의미한다. 군주의 권력은 그 실체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위(無為)’의 상태에 있을 때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법가(法家)의 역설적인 통치술을 보여준다. 여기서의 ‘무위’는 도가(道家)의 자연 방임이 아니라, 군주가 사적인 감정이나 판단을 배제하고 오직 법(法)과 술(術)이라는 객관적 시스템을 통해 통치하는 고도의 정치 기술을 의미한다.
2) 사해기장 도음견양(四海既藏 道陰見陽): ‘사해(四海)’는 천하를 의미하며, ‘감추어진다’는 것은 군주가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깊이 숨기는 것을 뜻한다. ‘도(道)’는 군주의 통치술을, ‘음(陰)’은 군주의 드러나지 않는 고요한 상태(虛靜)를, ‘양(陽)’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신하들의 구체적인 행동과 공적을 의미한다. 즉, 군주가 음의 위치에서 자신을 숨기면, 신하들이 양의 위치에서 저절로 움직여 그 실상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3) 여이구행(與二俱行): ‘둘과 함께 나아간다’. 여기서 ‘둘’은 형(形)과 명(名), 또는 형(刑)과 덕(德)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군주는 신하의 말(名)과 실제 공적(形)을 비교하거나, 상(德)과 벌(刑)이라는 두 가지 권한을 함께 사용하여 통치해야 함을 의미한다.
원문 2
用一之道,以名為首。名正物定,名倚物徙。故聖人執一以靜,使名自命,令事自定。不見其采,下故素正。因而任之,使自事之。因而予之,彼將自舉之。正與處之,使皆自定之。上以名舉之,不知其名,復脩其形。形名參同,用其所生。二者誠信,下乃貢情。謹脩所事,待命於天。毋失其要,乃為聖人。聖人之道,去智與巧,智巧不去,難以為常。民人用之,其身多殃,主上用之,其國危亡。因天之道,反形之理,督參鞠之,終則有始。虛以靜後,未嘗用己。凡上之患,必同其端。信而勿同,萬民一從。
번역 2
하나[一]를 사용하는 도(道)는, 이름[名]을 으뜸으로 삼는다.⁴⁾ 이름이 바르면 사물이 안정되고, 이름이 기울어지면 사물이 옮겨간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하나를 잡고 고요히 있으면서, 이름이 스스로 이름 짓게 하고 일이 스스로 정해지게 한다. 그 채색을 드러내지 않으니, 아랫사람은 본래의 모습대로 바르다. 그에 따라 일을 맡겨 스스로 일하게 하고, 그에 따라 자리를 주면 저들이 장차 스스로 일어설 것이다. 올바름으로 그들과 함께 머물러, 모두 스스로 안정되게 하라. 윗사람이 이름으로 그를 등용하고, 그 이름을 알지 못하면 다시 그 형체[形]를 살핀다. 형체와 이름을 대조하여 부합하면, 그에 따라 생겨나는 것을 쓴다. 두 가지가 진실로 믿음직하면, 아랫사람이 실정을 바친다. 맡은 바 일을 삼가 닦고, 하늘의 명을 기다려라.⁵⁾ 그 요체를 잃지 않아야, 성인이 될 수 있다. 성인의 도는 지혜와 기교를 버리는 것이니, 지혜와 기교를 버리지 않으면 떳떳함을 지키기 어렵다. 백성이 이것을 사용하면 그 몸에 재앙이 많고, 군주가 이것을 사용하면 그 나라가 위태롭게 망한다. 하늘의 도에 근거하고, 형체의 이치로 돌아가, 감독하고 참고하며 궁구하면, 끝남이 곧 시작이 된다. 텅 비고 고요함으로써 뒤에 머물고, 일찍이 자신을 사용하지 않는다. 무릇 윗사람의 우환은 반드시 그 단서를 함께하는 데에 있다. 믿되 함께하지 않으면, 만백성이 하나로 따를 것이다.
주석
4) 용일지도 이명위수(用一之道 以名為首): ‘일(一)’은 군주가 장악해야 할 유일하고 절대적인 통치 원리, 즉 도(道)를 의미한다. 그 도를 운용하는 첫걸음은 ‘명(名)’, 즉 명분, 직책, 개념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는 한비자 사상의 핵심인 형명(形名)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5) 대명어천(待命於天):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이는 운명론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군주가 법과 제도라는 객관적인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한 뒤에는, 사사로이 개입하지 않고 그 시스템이 스스로 작동하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 그 결과는 마치 하늘의 뜻처럼 필연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문 3
夫道者、弘大而無形,德者、覈理而普至。至於群生,斟酌用之,萬物皆盛,而不與其寧。道者、下周於事,因稽而命,與時生死。參名異事,通一同情。故曰道不同於萬物,德不同於陰陽,衡不同於輕重,繩不同於出入,和不同於燥溼,君不同於群臣。凡此六者,道之出也。道無雙,故曰一。是故明君貴獨道之容。君臣不同道,下以名禱,君操其名,臣效其形,形名參同,上下和調也。
번역 3
무릇 도(道)란 넓고 커서 형체가 없고, 덕(德)이란 이치를 살펴 두루 이르는 것이다. 여러 생물에 이르러서는, 짐작하여 그것을 사용하니, 만물이 모두 번성하지만 그 편안함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도(道)는 아래로 일에 두루 미치고, 상고하여 명하며, 때와 함께 살고 죽는다. 이름을 참고하여 일을 구별하고, 다른 것을 통하여 같은 실정을 파악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도(道)는 만물과 같지 않고, 덕(德)은 음양과 같지 않으며, 저울대는 가벼움과 무거움과 같지 않고, 먹줄은 나오고 들어감과 같지 않으며, 조화는 마름과 젖음과 같지 않고, 군주는 여러 신하와 같지 않다.”라고 하였다. 무릇 이 여섯 가지는 도에서 나온 것이다. 도는 둘이 없으므로 하나[一]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현명한 군주는 홀로 도(道)의 모습을 지니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군주와 신하는 도가 같지 않으니, 아랫사람은 이름[名]으로써 아뢰고, 군주는 그 이름을 쥐고 있으며, 신하는 그 형체[形]를 바치니, 형체와 이름이 부합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조화를 이룬다.
원문 4
凡聽之道,以其所出,反以為之入。故審名以定位,明分以辯類。聽言之道,溶若甚醉。脣乎齒乎,吾不為始乎,齒乎脣乎,愈惛惛乎。彼自離之,吾因以知之。是非輻湊,上不與構。虛靜無為,道之情也;參伍比物,事之形也。參之以比物,伍之以合虛。根幹不革,則動泄不失矣。動之溶之,無為而改之。喜之則多事,惡之則生怨。故去喜去惡,虛心以為道舍。上不與共之,民乃寵之。上不與義之,使獨為之。上固閉內扃,從室視庭,參咫尺已具,皆之其處。以賞者賞,以刑者刑。因其所為,各以自成。善惡必及,孰敢不信!規矩既設,三隅乃列。
번역 4
무릇 듣는 도(道)는, 그 나온 바로써 도리어 들어가는 바로 삼는다.⁶⁾ 그러므로 이름을 살펴 지위를 정하고, 분수를 밝혀 종류를 분별한다. 말을 듣는 도는, 녹아내리듯 마치 심하게 취한 것과 같다. 입술이여, 치아여, 내가 먼저 시작하지 않으리라. 치아여, 입술이여, 더욱더 흐릿해지리라.⁷⁾ 저들이 스스로 드러내면, 나는 그것으로 인해 알게 된다. 옳고 그름이 수레바퀴 살처럼 모여들어도, 윗사람은 그와 얽히지 않는다. 텅 비고 고요하며 함이 없는 것[虛靜無為]은 도(道)의 실정이요, 참고하고 비교하여 사물을 대조하는 것[參伍比物]은 일의 형체이다.⁸⁾ 그것을 참고하여 사물과 비교하고, 그것을 나란히 하여 텅 빔[虛]에 부합시킨다. 뿌리와 줄기가 바뀌지 않으면, 움직임이 새어나가도 잃지 않을 것이다. 움직이되 녹아내리듯 하고, 함이 없이 그것을 바꾼다. 기뻐하면 일이 많아지고, 싫어하면 원망이 생긴다. 그러므로 기쁨을 버리고 싫어함을 버려, 텅 빈 마음을 도(道)의 집으로 삼는다. 윗사람이 그것을 함께하지 않으면 백성이 그를 총애하고, 윗사람이 그것을 의롭게 여기지 않으면 홀로 그것을 하게 된다. 윗사람이 안쪽 빗장을 굳게 닫고, 방 안에서 뜰을 내다보면, 참고할 자[咫尺]가 이미 갖추어져 모두 제자리로 간다. 상 줄 자는 상을 주고, 벌할 자는 벌을 준다. 그 행한 바에 따라, 각자 스스로 이루게 한다. 선과 악에 반드시 미치니, 누가 감히 믿지 않겠는가! 규구(規矩)가 이미 설치되니, 세 모퉁이가 드러난다.⁹⁾
주석
6) 이귀소출 반이위지입(以其所出 反以為之入): ‘그 나온 바로써 도리어 들어가는 바로 삼는다’. 신하의 입에서 나온 말(所出)을, 군주는 그대로 다시 그 신하에게 돌아갈 책임(所入)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즉, 신하가 한 말은 반드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 귀결된다는 형명(形名) 이론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7) 순호치호...유혼혼호(脣乎齒乎...愈惛惛乎): 군주가 신하의 말을 들을 때, 마치 술에 취해 몽롱한 것처럼 자신의 속내나 판단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허정(虛靜)’의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한 구절이다. 군주가 먼저 입을 열거나(不為始) 명확한 태도를 보이면 신하가 그에 맞춰 자신을 꾸미기 때문에, 일부러 흐릿한 태도를 유지하여 신하가 스스로 모든 것을 드러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8) 참오비물(參伍比物): ‘참오’는 본래 군대 조직에서 다섯 명을 한 오(伍)로, 오장이 나머지 넷을 감독하고 서로 보증하게 하는 제도이다. 여기서는 신하들의 말과 행동을 서로 대조하고 비교하여 그 진위를 검증하는 통치 기술을 의미한다. 군주는 겉으로 ‘무위(無為)’하지만, 이면에서는 이처럼 치밀한 검증 작업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
9) 규구기설 삼우내열(規矩既設 三隅乃列): ‘규구(規矩)’는 원과 사각형을 그리는 도구로, 법도(法度)를 상징한다. ‘모퉁이 하나를 들어 보이면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안다(舉一隅不以三隅反)’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군주가 법이라는 하나의 기준(一隅)을 명확히 세우면, 나머지 모든 일(三隅)이 저절로 질서를 잡게 된다는 의미이다.
원문 5
主上不神,下將有因。其事不當,下考其常。若天若地,是謂累解。若地若天,孰疏孰親?能象天地,是謂聖人。欲治其內,置而勿親;欲治其外,官置一人;不使自恣,安得移并。大臣之門,唯恐多人。凡治之極,下不能得。周合刑名,民乃守職。去此更求,是謂大惑。猾民愈眾,姦邪滿側。故曰:毋富人而貸焉,毋貴人而逼焉,毋專信一人而失其都國焉。腓大於股,難以趣走。主失其神,虎隨其後。主上不知,虎將為狗。主不蚤止,狗益無已。虎成其群,以弒其母。為主而無臣,奚國之有!主施其法,大虎將怯;主施其刑,大虎自寧。法刑狗信,虎化為人,復反其真。
번역 5
군주가 신묘(神妙)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장차 (군주를 조종할) 빌미를 갖게 된다.¹⁰⁾ 그 일이 합당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그 떳떳함을 상고한다. 하늘과 같고 땅과 같으면, 이를 일러 얽힘이 풀린다고 한다. 땅과 같고 하늘과 같으면, 누가 멀고 누가 가깝겠는가? 능히 천지를 본받으면, 이를 일러 성인(聖人)이라 한다. 그 안을 다스리고자 하면, 두되 친하지 말라. 그 밖을 다스리고자 하면, 관직에 한 사람만 두라. 제멋대로 굴지 못하게 하면, 어찌 권력이 옮겨가고 합쳐지겠는가. 대신의 문에는, 오직 사람이 많을까 두려워하라. 무릇 다스림의 지극함은, 아랫사람이 (군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형(刑)과 명(名)을 두루 부합시키면, 백성이 직분을 지킨다. 이것을 버리고 다시 다른 것을 구하면, 이를 큰 미혹이라 한다. 교활한 백성이 더욱 많아지고, 간사하고 사악한 자가 곁에 가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부유한 사람에게 돈을 빌리지 말고, 귀한 사람에게 핍박당하지 말며, 한 사람을 오로지 믿어 도읍과 나라를 잃지 말라.”라고 하였다. 종아리가 넓적다리보다 크면, 빨리 달리기가 어렵다. 군주가 그 신묘함을 잃으면, 호랑이가 그 뒤를 따른다. 군주가 알지 못하면, 호랑이가 장차 개가 될 것이다. 군주가 일찍 막지 않으면, 개가 됨이 더욱 그치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가 그 무리를 이루어, 그 어미(군주)를 시해한다. 군주가 되어 신하가 없다면, 어찌 나라가 있겠는가! 군주가 그 법을 시행하면 큰 호랑이가 장차 두려워하고, 군주가 그 형벌을 시행하면 큰 호랑이가 스스로 편안해진다. 법과 형벌이 개에게도 믿음직하게 적용되면,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하여 다시 그 본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주석
10) 신(神): 군주가 ‘허정무위(虛靜無為)’의 도를 실천하여, 신하들이 그 속마음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신비롭고 초월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군주가 이 ‘신묘함’을 잃고 감정이나 의도를 드러내면, 신하들이 그 틈을 이용해 군주를 조종하고 권력을 침탈하게 된다.
원문 6
欲為其國,必伐其聚,不伐其聚,彼將聚眾。欲為其地,必適其賜,不適其賜,亂人求益。彼求我予,假仇人斧,假之不可,彼將用之以伐我。黃帝有言曰:「上下一日百戰。」下匿其私,用試其上;上操度量,以割其下。故度量之立,主之寶也;黨與之具,臣之寶也。臣之所不弒其君者,黨與不具也。故上失扶寸,下得尋常。有國之君,不大其都。有道之臣,不貴其家。有道之君,不貴其臣。貴之富之,備將代之。備危恐殆,急置太子,禍乃無從起。內索出圉,必身自執其度量。厚者虧之,薄者靡之。虧靡有量,毋使民比周,同欺其上。虧之若月,靡之若熱。簡令謹誅,必盡其罰。毋弛而弓,一棲兩雄。一棲兩雄,其鬬㘖㘖。豺狼在牢,其羊不繁。一家二貴,事乃無功。夫妻持政,子無適從。為人君者,數披其木,毋使木枝扶疏;木枝扶疏,將塞公閭,私門將實,公庭將虛,主將壅圍。數披其木,無使木枝外拒;木枝外拒,將逼主處。數披其木,毋使枝大本小,枝大本小,將不勝春風,不勝春風,枝將害心。公子既眾,宗室憂吟。止之之道,數披其木,毋使枝茂。木數披,黨與乃離。掘其根本,木乃不神。填其洶淵,毋使水清。探其懷,奪之威。主上用之,若電若雷。
번역 6
그 나라를 위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모임을 쳐야 하니, 그 모임을 치지 않으면 저들이 장차 무리를 모을 것이다. 그 땅을 위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하사품을 적절히 해야 하니, 그 하사품을 적절히 하지 않으면 난을 일으키는 자가 이익을 구할 것이다. 저들이 구하는 것을 내가 주면, 원수에게 도끼를 빌려주는 것이니, 빌려주는 것은 불가하다. 저들이 장차 그것을 사용하여 나를 칠 것이다. 황제(黃帝)의 말에 이르기를, “윗사람과 아랫사람은 하루에 백 번을 싸운다.”라고 하였다. 아랫사람은 그 사사로움을 숨기고 그것으로 윗사람을 시험하며, 윗사람은 도량(度量)을 쥐고 그것으로 아랫사람을 깎아낸다. 그러므로 도량이 서는 것은 군주의 보배요, 붕당(朋黨)이 갖추어지는 것은 신하의 보배이다.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지 않는 까닭은, 붕당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윗사람이 한 치[扶寸]를 잃으면, 아랫사람은 여덟 자[尋常]를 얻는다.¹¹⁾ 나라를 가진 군주는 그 도성을 너무 크게 하지 않는다. 도가 있는 신하는 그 집안을 귀하게 하지 않는다. 도가 있는 군주는 그 신하를 귀하게 하지 않는다. 귀하게 하고 부유하게 하면, 대비하다가 장차 그를 대신할 것이다. 위험을 대비하고 위태로움을 두려워하여, 서둘러 태자를 세우면 화가 일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안으로 찾고 밖으로 막음에, 반드시 몸소 그 도량을 잡아야 한다. 두터운 자는 덜어내고, 엷은 자는 갈아 없애라. 덜어내고 갈아 없앰에 법도가 있으니, 백성으로 하여금 무리를 지어 함께 윗사람을 속이지 못하게 하라. 덜어내는 것은 달과 같이 하고, 갈아 없애는 것은 열과 같이 하라.¹²⁾ 명령을 간결히 하고 주살을 신중히 하며, 반드시 그 벌을 다하라. 활 하나를 늦추지 말고, 한 홰에 두 마리의 수컷을 두지 말라. 한 홰에 두 마리의 수컷이 있으면, 그 싸움이 시끄러울 것이다. 승냥이와 이리가 우리에 있으면, 그 양은 번성하지 못한다. 한 집에 두 명의 귀인이 있으면, 일에 공이 없을 것이다. 부부가 정사를 잡으면, 자식은 따를 곳이 없을 것이다. 군주 된 자는, 자주 그 나무를 쳐내어, 나뭇가지가 무성하지 않게 하라. 나뭇가지가 무성하면 장차 공적인 문을 막을 것이고, 사사로운 문은 가득 차고 공적인 조정은 텅 비게 되어, 군주는 가로막혀 포위될 것이다. 자주 그 나무를 쳐내어, 나뭇가지가 밖으로 막지 않게 하라. 나뭇가지가 밖으로 막으면, 장차 군주의 거처를 핍박할 것이다. 자주 그 나무를 쳐내어, 가지가 크고 뿌리가 작게 하지 말라. 가지가 크고 뿌리가 작으면, 장차 봄바람을 이기지 못할 것이고, 봄바람을 이기지 못하면 가지가 장차 심(心)을 해칠 것이다. 공자(公子)가 이미 많으니, 종실이 근심하여 신음한다. 이를 막는 도는, 자주 그 나무를 쳐서 가지가 무성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무를 자주 쳐내면, 붕당이 흩어질 것이다. 그 뿌리를 파내면, 나무가 신묘하지 않을 것이다. 그 소용돌이치는 연못을 메워, 물이 맑지 않게 하라.¹³⁾ 그 품을 더듬어, 그 위엄을 빼앗아라. 군주가 이것을 사용함은, 번개와 같고 우레와 같아야 한다.
주석
11) 상실부촌 하득심상(上失扶寸 下得尋常): ‘부촌(扶寸)’은 손가락 하나의 폭 정도의 짧은 길이를, ‘심상(尋常)’은 여덟 자(尋)와 열여섯 자(常)를 합친 매우 긴 길이를 의미한다. 군주가 아주 작은 권력을 잃더라도, 신하는 그로 인해 막대한 권력을 얻게 됨을 과장하여 표현한 말이다. 군주와 신하의 권력 관계가 제로섬 게임임을 강조한다.
12) 휴지약월 미지약열(虧之若月 靡之若熱): ‘덜어내는 것은 달과 같이 하고, 갈아 없애는 것은 열과 같이 하라’. 세력이 강한 신하를 억제하는 방법을 비유한 말이다. ‘달이 이지러지듯(虧月)’ 점진적이고 자연스럽게 세력을 깎아내리고, ‘열기가 식어가듯(靡熱)’ 그 기세를 서서히 꺾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13) 전기흉연 무사수청(填其洶淵 毋使水清): ‘그 소용돌이치는 연못을 메워, 물이 맑지 않게 하라’. 매우 함축적인 비유이다. 군주는 자신의 마음속(淵)을 신하들이 꿰뚫어 볼 수 없도록, 항상 깊고 혼란스럽게(洶)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이 맑으면(水清) 바닥이 훤히 보이듯, 군주의 의도가 명확해지면 신하들이 그에 맞춰 대처하고 군주를 조종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는 군주가 ‘허정(虛靜)’과 ‘신(神)’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상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이다.
《한비자》 〈팔간〉 번역 및 주석
원문 1
凡人臣之所道成姦者有八術:一曰在同床。何謂同床?曰:貴夫人,愛孺子,便僻好色,此人主之所惑也。託於燕處之虞,乘醉飽之時,而求其所欲,此必聽之術也。為人臣者內事之以金玉,使惑其主,此之謂同床。二曰在旁。何謂在旁?曰:優笑侏儒,左右近習,此人主未命而唯唯,未使而諾諾,先意承旨,觀貌察色以先主心者也。此皆俱進俱退,皆應皆對,一辭同軌以移主心者也。為人臣者內事之以金玉玩好,外為之行不法,使之化其主,此之謂在旁。三曰父兄。何謂父兄?曰:側室公子,人主之所親愛也,大臣廷吏,人主之所與度計也,此皆盡力畢議,人主之所必聽也。為人臣者事公子側室以音聲子女,收大臣廷吏以辭言,處約言事事成則進爵益祿,以勸其心使犯其主,此之謂父兄。四曰養殃。何謂養殃?曰:人主樂美宮室臺池、好飾子女狗馬以娛其心,此人主之殃也。為人臣者盡民力以美宮室臺池,重賦歛以飾子女狗馬,以娛其主而亂其心、從其所欲,而樹私利其間,此謂養殃。五曰民萌。何謂民萌?曰:為人臣者散公財以說民人,行小惠以取百姓,使朝廷市井皆勸譽己,以塞其主而成其所欲,此之謂民萌。六曰流行。何謂流行?曰:人主者,固壅其言談,希於聽論議,易移以辯說。為人臣者求諸侯之辯士、養國中之能說者,使之以語其私,為巧文之言,流行之辭,示之以利勢,懼之以患害,施屬虛辭以壞其主,此之謂流行。七曰威強。何謂威強?曰:君人者,以群臣百姓為威強者也。群臣百姓之所善則君善之,非群臣百姓之所善則君不善之。為人臣者,聚帶劍之客、養必死之士以彰其威,明為己者必利,不為己者必死,以恐其群臣百姓而行其私,此之謂威強。八曰四方。何謂四方?曰:君人者,國小則事大國,兵弱則畏強兵,大國之所索,小國必聽,強兵之所加,弱兵必服。為人臣者,重賦歛,盡府庫,虛其國以事大國,而用其威求誘其君;甚者舉兵以聚邊境而制歛於內,薄者數內大使以震其君,使之恐懼,此之謂四方。凡此八者,人臣之所以道成姦,世主所以壅劫,失其所有也,不可不察焉。
번역 1
무릇 신하가 간악함을 이루는 방법에는 여덟 가지 술(術)이 있다. 첫째는 ‘동상(同床)’에 있다. 무엇을 동상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귀한 부인, 사랑하는 어린 아들, 아첨하는 측근과 총애하는 미색(美色)은, 군주가 미혹되는 바이다. 편안히 거처하는 즐거움을 핑계 삼고, 술에 취하고 배부른 때를 틈타, 그 하고자 하는 바를 구하니, 이는 반드시 들어주게 되는 술책이다. 신하 된 자가 안으로 이들에게 금과 옥으로 섬겨 그 군주를 미혹하게 하니, 이를 일러 ‘동상’이라 한다.¹⁾ 둘째는 ‘재방(在旁)’에 있다. 무엇을 재방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배우와 광대, 난쟁이, 좌우의 측근들은, 군주가 명하기도 전에 ‘예, 예’하고, 시키기도 전에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며, 미리 뜻을 헤아려 받들고, 얼굴빛을 관찰하여 군주의 마음을 앞서가는 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함께 나아가고 함께 물러나며, 모두 응하고 모두 대답하여, 한결같은 말로써 군주의 마음을 움직이는 자들이다. 신하 된 자가 안으로 이들에게 금과 옥, 노리개로 섬기고, 밖으로는 그들을 위해 불법을 행하여, 그들로 하여금 군주를 교화하게 하니, 이를 일러 ‘재방’이라 한다.²⁾ 셋째는 ‘부형(父兄)’에 있다. 무엇을 부형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측실의 공자(公子)는 군주가 친애하는 바이고, 대신과 조정의 관리는 군주가 함께 계획을 헤아리는 바이다. 이들은 모두 힘을 다해 의논을 마치니, 군주가 반드시 듣는 바이다. 신하 된 자가 공자와 측실을 음악과 미녀로 섬기고, 대신과 조정의 관리를 교묘한 말로 거두며, 약속을 정하고 일을 말하여 일이 이루어지면 벼슬을 올려주고 녹봉을 더해주어, 그 마음을 부추겨 군주를 범하게 하니, 이를 일러 ‘부형’이라 한다.³⁾ 넷째는 ‘양앙(養殃)’에 있다. 무엇을 양앙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군주가 아름다운 궁실과 누대, 연못을 즐기고, 미녀와 개, 말을 치장하여 그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을 좋아하니, 이것이 군주의 재앙이다. 신하 된 자가 백성의 힘을 다하여 궁실과 누대, 연못을 아름답게 하고, 무겁게 세금을 거두어 미녀와 개, 말을 치장하여, 그 군주를 즐겁게 하여 그 마음을 어지럽히고 그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면서, 그 사이에 사사로운 이익을 심으니, 이를 일러 ‘재앙을 기른다[養殃]’고 한다.⁴⁾ 다섯째는 ‘민맹(民萌)’에 있다. 무엇을 민맹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신하 된 자가 공적인 재물을 흩어 백성을 기쁘게 하고, 작은 은혜를 베풀어 백성의 마음을 얻으며, 조정과 저잣거리의 모든 사람이 자기를 칭찬하게 하여, 그 군주의 (눈과 귀를) 막고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니, 이를 일러 ‘민맹’이라 한다.⁵⁾ 여섯째는 ‘유행(流行)’에 있다. 무엇을 유행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군주는 본래 그 언담(言談)이 막혀 있고, 논의를 듣는 일이 드물며, 교묘한 변설(辯說)에 쉽게 움직인다. 신하 된 자가 제후들의 변론가들을 구하고 나라 안의 말 잘하는 자들을 길러,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사로운 일을 말하게 하고, 교묘하게 꾸민 말과 유행하는 말을 만들어, 이로움과 권세를 보여주고 환란과 재앙으로 두렵게 하며, 허황된 말을 퍼뜨려 그 군주를 무너뜨리니, 이를 일러 ‘유행’이라 한다.⁶⁾ 일곱째는 ‘위강(威強)’에 있다. 무엇을 위강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군주 된 자는 여러 신하와 백성으로써 위엄과 강함을 삼는다. 여러 신하와 백성이 좋다고 하는 것은 군주도 좋다고 하고, 여러 신하와 백성이 좋다고 하지 않는 것은 군주도 좋다고 하지 않는다. 신하 된 자가 칼을 찬 자객을 모으고 죽음을 각오한 선비들을 길러 그 위세를 드러내며, 자기를 위하는 자는 반드시 이롭고 자기를 위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여, 그 여러 신하와 백성을 두렵게 하여 그 사사로움을 행하니, 이를 일러 ‘위강’이라 한다.⁷⁾ 여덟째는 ‘사방(四方)’에 있다. 무엇을 사방이라 하는가? 말하기를, 군주 된 자는 나라가 작으면 큰 나라를 섬기고, 군대가 약하면 강한 군대를 두려워한다. 큰 나라가 요구하는 바는 작은 나라가 반드시 듣고, 강한 군대가 공격하는 바에 약한 군대는 반드시 복종한다. 신하 된 자가 무겁게 세금을 거두고 부고를 다 비우며, 그 나라를 텅 비게 하여 큰 나라를 섬기고, 그 위세를 이용하여 그 군주를 구슬리니, 심한 자는 군대를 일으켜 국경에 모아놓고 안으로 세금을 거두는 것을 통제하며, 덜한 자는 자주 외국의 대사(大使)를 끌어들여 그 군주를 뒤흔들어 두렵게 하니, 이를 일러 ‘사방’이라 한다.⁸⁾ 무릇 이 여덟 가지는, 신하가 간악함을 이루는 방법이며, 세상의 군주가 (눈과 귀가) 막히고 겁박당하여 그 소유를 잃게 되는 까닭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주석
1) 동상(同床): ‘같은 침상’. 군주의 사적인 공간, 즉 침실에까지 접근할 수 있는 부인, 후궁, 총애하는 자식, 측근 등을 이용하는 간악한 술책. 이들의 환심을 사서 군주의 사적인 시간에 사사로운 청탁을 하거나 군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방법이다.
2) 재방(在旁): ‘곁에 있음’. 군주의 공식적인 활동 공간에서 항상 곁을 지키는 광대, 측근, 시종 등을 이용하는 술책. 이들은 군주의 기분을 맞추고 아첨하며 군주의 눈과 귀를 가려, 간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군주의 마음을 움직인다.
3) 부형(父兄): 군주의 친족(공자, 측실 등)과 국가의 중신(대신, 관리 등)을 통칭하는 말. 이들은 군주가 신뢰하고 의지하는 대상이므로, 이들을 뇌물이나 이권으로 매수하여 군주를 배반하게 만드는 술책이다.
4) 양앙(養殃): ‘재앙을 기른다’. 군주의 사치와 향락에 대한 욕망을 적극적으로 부추겨, 국력을 낭비하고 군주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술책. 간신은 군주의 욕망을 채워주는 척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운다.
5) 민맹(民萌): ‘백성의 싹’. 국가의 재물을 사사로이 사용하여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인기를 얻는 술책. 이를 통해 간신은 군주가 받아야 할 칭송을 가로채고,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군주의 눈과 귀를 막아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진다.
6) 유행(流行): ‘널리 퍼뜨림’. 국내외의 유능한 변론가들을 동원하여, 간신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이나 거짓 정보를 마치 시대의 흐름이나 대세인 것처럼 퍼뜨리는 술책. 이를 통해 군주의 판단을 흐리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7) 위강(威強): ‘위세와 강함’. 사사로이 자객이나 군대를 길러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보복을 가하여 공포정치를 행하는 술책. 이를 통해 다른 신하와 백성을 굴복시켜 자신의 사적인 목적을 달성한다.
8) 사방(四方): ‘네 방향’, 즉 외부 세계, 특히 강대국을 의미한다. 외세의 힘을 빌려 자신의 군주를 압박하고 위협하는 술책. 나라의 재물을 바쳐 강대국의 환심을 산 뒤, 그 위세를 등에 업고 국내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방법이다.
원문 2
明君之於內也,娛其色而不行其謁,不使私請。其於左右也,使其身必責其言,不使益辭。其於父兄大臣也,聽其言也必使以罰任於後,不令妄舉。其於觀樂玩好也,必令之有所出,不使擅進不使擅退,群臣虞其意。其於德施也,縱禁財,發墳倉,利於民者,必出於君,不使人臣私其德。其於說議也,稱譽者所善,毀疵者所惡,必實其能、察其過,不使群臣相為語。其於勇力之士也,軍旅之功無踰賞,邑鬥之勇無赦罪,不使群臣行私財。其於諸侯之求索也,法則聽之,不法則距之。
번역 2
현명한 군주는 안(內)에 대해서는, 그 미색을 즐기되 그 청탁은 들어주지 않으며, 사사로운 청을 하지 못하게 한다. 좌우의 측근에 대해서는, 그 몸으로 하여금 반드시 그 말에 책임을 지게 하고, 말을 덧붙이지 못하게 한다. 부형과 대신에 대해서는, 그 말을 듣되 반드시 나중에 벌로써 책임을 지게 하여, 함부로 천거하지 못하게 한다. 음악을 관람하고 노리개를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것이 나오는 곳이 있게 하여, 제멋대로 바치거나 제멋대로 물리지 못하게 하여, 여러 신하가 그 뜻을 짐작하게 한다. 은덕을 베푸는 것에 대해서는, 금지된 재물을 풀어주고 큰 창고를 열어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은, 반드시 군주에게서 나오게 하여, 신하가 그 은덕을 사사로이 하지 못하게 한다. 유세와 의논에 대해서는, 칭찬하는 자가 좋다고 하는 것과 헐뜯는 자가 나쁘다고 하는 것에 대해, 반드시 그 능력을 실증하고 그 허물을 살펴서, 여러 신하가 서로를 위해 말하지 못하게 한다. 용력 있는 선비에 대해서는, 군대에서의 공은 상을 넘어서지 않게 하고, 마을 싸움에서의 용맹은 죄를 사면하지 않으며, 여러 신하가 사사로운 재물을 쓰지 못하게 한다. 제후의 요구에 대해서는, 법에 맞으면 들어주고, 법에 맞지 않으면 물리친다.
원문 3
所謂亡君者,非莫有其國也,而有之者,皆非己有也。令臣以外為制於內,則是君人者亡也,聽大國為救亡也,而亡亟於不聽,故不聽。群臣知不聽則不外諸侯,諸侯之不聽則不受之,臣誣其君矣。
번역 3
이른바 망한 군주[亡君]란, 그 나라를 소유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소유하고 있되 모두 자기의 소유가 아닌 것이다. 신하로 하여금 외부의 힘으로 내부를 통제하게 한다면, 이는 군주 된 자가 망한 것이다. 큰 나라의 말을 듣는 것은 망하는 것을 구제하기 위함인데, 듣지 않는 것보다 망하는 것이 더 빠르므로, 듣지 않는다.⁹⁾ 여러 신하는 (군주가) 듣지 않을 것을 알면 제후와 내통하지 않을 것이고, 제후들은 (군주가) 듣지 않을 것을 알면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신하가 그 군주를 속인 것이다.
주석
9) 청대국위구망야 이망극어불청 고불청(聽大國為救亡也 而亡亟於不聽 故不聽): 이 문장은 해석이 다소 복잡하다. 문맥상, ‘(신하의 말을 따라) 큰 나라의 말을 듣는 것은 망국을 구제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말을 듣지 않았을 때보다 망하는 것이 더 빠르므로, (현명한 군주는) 듣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간신이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은 나라를 구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실상은 나라를 더 빨리 망하게 하는 길이므로, 현명한 군주는 그런 말을 결코 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원문 4
明主之為官職爵祿也,所以進賢材勸有功也。故曰:賢材者,處厚祿任大官;功大者,有尊爵受重賞。官賢者量其能,賦祿者稱其功。是以賢者不誣能以事其主,有功者樂進其業,故事成功立。今則不然,不課賢不肖,論有功勞,用諸侯之重,聽左右之謁,父兄大臣上請爵祿於上,而下賣之以收財利及以樹私黨。故財利多者買官以為貴,有左右之交者請謁以成重。功勞之臣不論,官職之遷失謬。是以吏偷官而外交,棄事而財親。是以賢者懈怠而不勸,有功者隳而簡其業,此亡國之風也。
번역 4
현명한 군주가 관직과 작위, 녹봉을 만드는 것은, 어질고 재능 있는 자를 등용하고 공 있는 자를 권면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어질고 재능 있는 자는 두터운 녹을 받고 큰 관직을 맡으며, 공이 큰 자는 높은 작위를 받고 무거운 상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어진 자를 관리로 삼을 때는 그 능력을 헤아리고, 녹봉을 줄 때는 그 공에 걸맞게 한다. 이 때문에 어진 자는 능력을 속여 그 군주를 섬기지 않고, 공 있는 자는 즐거이 그 일에 나아가니, 이 때문에 일이 성공하고 공이 세워진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헤아리지 않고, 공로를 논하지 않으며, 제후의 위세를 이용하고, 좌우 측근의 청탁을 들으며, 부형과 대신이 위로는 군주에게 작위와 녹봉을 청하여, 아래로는 그것을 팔아 재물을 거두고 사사로운 붕당을 심는다. 그러므로 재물이 많은 자는 관직을 사서 귀하게 되고, 좌우 측근과 교분이 있는 자는 청탁하여 중책을 맡는다. 공로가 있는 신하는 논하지 않고, 관직의 이동은 잘못되고 어그러진다. 이 때문에 관리들은 관직을 소홀히 하면서 외부와 교제하고, 일을 버리고 재물을 가까이한다. 이 때문에 어진 자는 해이해져 힘쓰지 않고, 공 있는 자는 나태해져 그 일을 소홀히 하니, 이것이 망하는 나라의 풍조이다.
《한비자》 〈십과〉 번역 및 주석
원문 1
十過:一曰、行小忠則大忠之賊也。二曰、顧小利則大利之殘也。三曰、行僻自用,無禮諸侯,則亡身之至也。四曰、不務聽治而好五音,則窮身之事也。五曰、貪愎喜利則滅國殺身之本也。六曰、耽於女樂,不顧國政,則亡國之禍也。七曰、離內遠遊而忽於諫士,則危身之道也。八曰、過而不聽於忠臣,而獨行其意,則滅高名為人笑之始也。九曰、內不量力,外恃諸侯,則削國之患也。十曰、國小無禮,不用諫臣,則絕世之勢也。
번역 1
열 가지 과실[十過]: 첫째, 작은 충성을 행하는 것은 큰 충성의 적이다. 둘째, 작은 이익을 돌아보는 것은 큰 이익을 해치는 것이다. 셋째, 편벽된 행동을 하고 스스로를 고집하며, 제후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은 몸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넷째, 정사를 듣는 데 힘쓰지 않고 오음(五音)을 좋아하는 것은 몸을 곤궁하게 하는 일이다. 다섯째, 탐욕스럽고 고집이 세며 이익을 좋아하는 것은 나라를 멸망시키고 자신을 죽이는 근본이다. 여섯째, 여악(女樂)에 빠져 국정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망국의 재앙이다. 일곱째, 나라 안을 떠나 멀리 노닐면서 간언하는 선비를 소홀히 하는 것은 몸을 위태롭게 하는 길이다. 여덟째, 잘못이 있어도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오로지 자기 뜻대로만 행하는 것은 높은 명성을 잃고 남의 웃음거리가 되는 시작이다. 아홉째, 안으로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밖으로 제후를 믿는 것은 나라가 깎이는 우환이다. 열째, 나라가 작으면서 무례하고, 간언하는 신하를 쓰지 않는 것은 대(代)가 끊기는 형세이다.
원문 2
奚謂小忠?昔者楚共王與晉厲公戰於鄢陵,楚師敗,而共王傷其目。酣戰之時,司馬子反渴而求飲,豎穀陽操觴酒而進之。子反曰:「嘻,退!酒也。」子反受而飲之。子反之為人也,嗜酒而甘之,弗能絕於口,而醉。戰既罷,共王欲復戰,令人召司馬子反,司馬子反辭以心疾。共王駕而自往,入其幄中,聞酒臭而還,曰:「今日之戰,不穀親傷,所恃者司馬也。而司馬又醉如此,是亡楚國之社稷而不恤吾眾也,不穀無復戰矣。」於是還師而去,斬司馬子反以為大戮。故豎穀陽之進酒不以讎子反也,其心忠愛之而適足以殺之。故曰:行小忠則大忠之賊也。
번역 2
무엇을 작은 충성[小忠]이라 하는가? 옛날 초(楚)나라 공왕(共王)이 진(晉)나라 여공(厲公)과 언릉(鄢陵)에서 싸울 때, 초나라 군대가 패하고 공왕은 눈을 다쳤다. 전투가 한창일 때, 사마(司馬) 자반(子反)이 목이 말라 마실 것을 찾자, 시종[豎] 곡양(穀陽)이 술잔을 잡아 술을 올렸다. 자반이 말하기를, “어허, 물러가라! 술이 아니냐.” 하였으나, 자반은 그것을 받아 마셨다. 자반의 사람됨이 술을 즐기고 달게 여겨, 입에서 끊지를 못하여 취하고 말았다. 전투가 이미 끝난 뒤, 공왕이 다시 싸우고자 하여 사람을 시켜 사마 자반을 부르니, 사마 자반은 심장병[心疾]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공왕이 수레를 몰아 직접 가서 그의 막사에 들어가니, 술 냄새가 나므로 돌아와 말하기를, “오늘의 싸움에서 나[不穀]는¹⁾ 직접 부상을 당했고, 믿는 바는 오직 사마뿐이었다. 그런데 사마가 또 이처럼 취해 있으니, 이는 초나라의 사직(社稷)을 망하게 하고 우리 군사들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다시 싸우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군대를 돌려 돌아가서, 사마 자반을 베어 큰 벌[大戮]로 삼았다. 그러므로 시종 곡양이 술을 올린 것은 자반을 원수로 여겨서가 아니라, 그 마음은 그를 충실히 아끼고 사랑한 것이었으나 도리어 그를 죽이기에 충분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작은 충성을 행하는 것은 큰 충성의 적이다.”라고 하였다.²⁾
주석
1) 불곡(不穀): ‘곡식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군주의 겸칭이다. 덕이 부족하여 백성을 잘 기르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소충(小忠)과 대충(大忠): 여기서 ‘작은 충성’이란 개인적인 정이나 눈앞의 상황에 얽매여 상관의 기분을 맞추거나 사사로운 정을 베푸는 행위를 말한다. 시종 곡양은 목마른 자반 개인에게 술을 주어 기쁘게 했지만, 이는 장수로서의 임무를 망각하게 만든 행위였다. 반면 ‘큰 충성’이란 개인적인 감정이나 관계를 넘어, 국가와 조직 전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진정한 충신이었다면 자반이 술을 원했더라도 전투 중임을 상기시키고 물을 주어 정신을 차리게 했어야 한다는 것이 한비자의 논지이다.
원문 3
奚謂顧小利?昔者晉獻公欲假道於虞以伐虢。荀息曰:「君其以垂棘之璧、與屈產之乘,賂虞公,求假道焉,必假我道。」君曰:「垂棘之璧,吾先君之寶也;屈產之乘,寡人之駿馬也。若受吾幣不假之道將奈何?」荀息曰:「彼不假我道,必不敢受我幣。若受我幣而假我道,則是寶猶取之內府而藏之外府也,馬猶取之內廄而著之外廄也。君勿憂。」君曰:「諾。」乃使荀息以垂棘之璧、與屈產之乘,賂虞公而求假道焉。虞公貪利其璧與馬而欲許之。宮之奇諫曰:「不可許。夫虞之有虢也,如車之有輔,輔依車,車亦依輔,虞、虢之勢正是也。若假之道,則虢朝亡而虞夕從之矣。不可,願勿許。」虞公弗聽,遂假之道。荀息伐虢之,還反處三年,興兵伐虞,又剋之。荀息牽馬操璧而報獻公,獻公說曰:「璧則猶是也。雖然,馬齒亦益長矣。」故虞公之兵殆而地削者何也?愛小利而不慮其害。故曰:顧小利則大利之殘也。
번역 3
무엇을 작은 이익[小利]을 돌아본다고 하는가? 옛날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우(虞)나라에 길을 빌려 괵(虢)나라를 치고자 하였다. 순식(荀息)이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수극(垂棘)의 구슬과 굴산(屈產)의 명마를 우공(虞公)에게 뇌물로 주어 길을 빌려달라고 청하십시오. 반드시 우리에게 길을 빌려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수극의 구슬은 우리 선군(先君)의 보물이요, 굴산의 명마는 과인의 준마이다. 만약 우리의 예물을 받고 길을 빌려주지 않으면 장차 어찌하겠는가?” 하니, 순식이 말하기를, “저들이 우리에게 길을 빌려주지 않으려 한다면, 반드시 감히 우리의 예물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예물을 받고 길을 빌려준다면, 이는 보물을 안쪽 창고에서 꺼내 바깥 창고에 보관하는 것과 같고, 말을 안쪽 마구간에서 꺼내 바깥 마구간에 두는 것과 같습니다. 군주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군주가 “좋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순식으로 하여금 수극의 구슬과 굴산의 명마를 우공에게 뇌물로 주어 길을 빌려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우공은 그 구슬과 말을 탐내어 허락하고자 하였다. 궁지기(宮之奇)가 간언하여 말하기를,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무릇 우나라에 괵나라가 있는 것은, 수레에 덧방나무[輔]가 있는 것과 같으니, 덧방나무는 수레에 의지하고 수레 또한 덧방나무에 의지하는 것이니, 우나라와 괵나라의 형세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만약 길을 빌려준다면, 괵나라는 아침에 망하고 우나라는 저녁에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불가하오니, 원컨대 허락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우공은 듣지 않고 마침내 길을 빌려주었다. 순식은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와 3년을 머문 뒤, 군대를 일으켜 우나라를 쳐서 또한 이겼다. 순식이 말을 끌고 구슬을 손에 쥐고 헌공에게 보고하니, 헌공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구슬은 여전하구나. 비록 그러하나, 말의 나이는 또한 더 먹었구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공의 군대가 위태로워지고 땅이 깎인 까닭은 무엇인가? 작은 이익을 사랑하고 그 해를 염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작은 이익을 돌아보는 것은 큰 이익을 해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³⁾
주석
3) 순망치한(脣亡齒寒): 이 고사는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순망치한’이라는 유명한 성어의 유래가 되었다. 궁지기는 우나라와 괵나라의 관계를 수레와 덧방나무, 또는 입술과 이에 비유하며 서로 의지하는 운명 공동체임을 역설했다. 우공은 눈앞의 보물(小利)에 눈이 멀어 국가의 존망이라는 큰 이익(大利)을 보지 못하고 결국 나라를 잃었다.
원문 4
奚謂行僻?昔者楚靈王為申之會,宋太子後至,執而囚之,狎徐君,拘齊慶封。中射士諫曰:「合諸侯不可無禮,此存亡之機也。昔者桀為有戎之會,而有緡叛之;紂為黎丘之蒐,而戎、狄叛之;由無禮也。君其圖之。」君不聽,遂行其意。居未期年,靈王南遊,群臣從而劫之,靈王餓而死乾溪之上。故曰:行僻自用,無禮諸侯,則亡身之至也。
번역 4
무엇을 편벽된 행동[行僻]이라 하는가? 옛날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신(申) 땅에서 회맹(會盟)을 열었을 때, 송(宋)나라 태자가 늦게 도착하자 그를 잡아 가두고, 서(徐)나라 군주를 희롱하며, 제(齊)나라의 경봉(慶封)을 구금하였다. 중사사(中射士)가 간언하여 말하기를, “제후들을 모으면서 무례해서는 안 되니, 이것이 존망의 기틀입니다. 옛날 걸(桀)임금이 유융(有戎)에서 회맹을 열자 유민(有緡)이 배반하였고, 주(紂)임금이 여구(黎丘)에서 사냥을 하자 융(戎)과 적(狄)이 배반하였으니, 이는 무례함 때문이었습니다. 군주께서는 이를 도모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군주는 듣지 않고 마침내 자기 뜻대로 행하였다.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영왕이 남쪽으로 노닐 때 여러 신하가 그를 따라가 겁박하니, 영왕은 간계(乾溪)의 강가에서 굶어 죽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편벽된 행동을 하고 스스로를 고집하며, 제후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은 몸을 망치는 지름길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5
奚謂好音?昔者衛靈公將之晉,至濮水之上,稅車而放馬,設舍以宿,夜分,而聞鼓新聲者而說之,使人問左右,盡報弗聞。乃召師涓而告之,曰:「有鼓新聲者,使人問左右,盡報弗聞,其狀似鬼神,子為我聽而寫之。」師涓曰:「諾。」因靜坐撫琴而寫之。師涓明日報曰:「臣得之矣,而未習也,請復一宿習之。」靈公曰:「諾。」因復留宿,明日,而習之,遂去之晉。晉平公觴之於施夷之臺,酒酣,靈公起,公曰:「有新聲,願請以示。」平公曰:「善。」乃召師涓,令坐師曠之旁,援琴鼓之。未終,師曠撫止之,曰:「此亡國之聲,不可遂也。」平公曰:「此道奚出?」師曠曰:「此師延之所作,與紂為靡靡之樂也,及武王伐紂,師延東走,至於濮水而自投,故聞此聲者必於濮水之上。先聞此聲者其國必削,不可遂。」平公曰:「寡人所好者音也,子其使遂之。」師涓鼓究之。平公問師曠曰:「此所謂何聲也?」師曠曰:「此所謂清商也。」公曰:「清商固最悲乎?」師曠曰:「不如清徵。」公曰:「清徵可得而聞乎?」師曠曰:「不可,古之聽清徵者皆有德義之君也,今吾君德薄,不足以聽。」平公曰:「寡人之所好者音也,願試聽之。」師曠不得已,援琴而鼓。一奏之,有玄鶴二八,道南方來,集於郎門之垝。再奏之而列。三奏之,延頸而鳴,舒翼而舞。音中宮商之聲,聲聞於天。平公大說,坐者皆喜。平公提觴而起為師曠壽,反坐而問曰:「音莫悲於清徵乎?」師曠曰:「不如清角。」平公曰:「清角可得而聞乎?」師曠曰:「不可。昔者黃帝合鬼神於泰山之上,駕象車而六蛟龍,畢方並轄,蚩尤居前,風伯進掃,雨師灑道,虎狼在前,鬼神在後,騰蛇伏地,鳳皇覆上,大合鬼神,作為清角。今主君德薄,不足聽之,聽之將恐有敗。」平公曰:「寡人老矣,所好者音也,願遂聽之。」師曠不得已而鼓之。一奏之,有玄雲從西北方起;再奏之,大風至,大雨隨之,裂帷幕,破俎豆,隳廊瓦,坐者散走,平公恐懼,伏於廊室之間。晉國大旱,赤地三年。平公之身遂癃病。故曰:不務聽治,而好五音不已,則窮身之事也。
번역 5
무엇을 음악을 좋아함[好音]이라 하는가? 옛날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장차 진(晉)나라로 가다가, 복수(濮水)의 강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말을 풀며, 숙소를 짓고 묵었다. 한밤중에 새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기뻐하여, 사람을 시켜 좌우에 물었으나 모두 듣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악사[師] 연(涓)을 불러 그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새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자가 있는데, 사람을 시켜 좌우에 물었으나 모두 듣지 못했다고 하니, 그 모양이 귀신과 같다. 그대는 나를 위해 그것을 듣고 악보로 옮겨라.”라고 하였다. 사연이 말하기를, “알겠습니다.” 하고는, 조용히 앉아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그것을 악보로 옮겼다. 사연이 다음 날 보고하여 말하기를, “신이 그것을 얻었으나, 아직 익숙하지 못하니, 다시 하룻밤을 묵으며 익히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영공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다시 머물러 묵고, 다음 날 그것을 익혀 마침내 진나라로 갔다.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시이(施夷)의 누대에서 그에게 술잔을 권하는데, 술이 거나해지자 영공이 일어나 말하기를, “새로운 음악이 있는데, 청컨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평공이 말하기를, “좋소.” 하고는, 이에 사연을 불러 악사[師] 광(曠)의 곁에 앉게 하고, 거문고를 당겨 연주하게 하였다. 연주가 끝나기도 전에, 사광이 손으로 막으며 말하기를, “이것은 망국의 소리[亡國之聲]이니, 끝까지 연주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평공이 말하기를, “이 곡조는 어디서 나왔소?” 하니, 사광이 말하기를, “이것은 악사[師] 연(延)이 지은 것으로, 주(紂)임금을 위해 만든 음란한 음악[靡靡之樂]입니다. 무왕(武王)이 주를 정벌하자, 사연은 동쪽으로 달아나 복수에 이르러 스스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리를 듣는 자는 반드시 복수의 강가에서 듣게 됩니다. 먼저 이 소리를 들은 자는 그 나라가 반드시 깎일 것이니, 끝까지 연주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평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니, 그대는 끝까지 연주하게 하시오.”라고 하였다. 사연이 끝까지 연주하였다. 평공이 사광에게 묻기를, “이것을 무슨 소리라고 하오?” 하니, 사광이 말하기를, “이를 청상(清商)이라 합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청상이 진실로 가장 슬프오?” 하니, 사광이 말하기를, “청치(清徵)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청치를 들어볼 수 있겠소?” 하니, 사광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옛날에 청치를 들었던 분들은 모두 덕과 의가 있는 군주였습니다. 지금 우리 군주께서는 덕이 박하시어 듣기에 부족합니다.”라고 하였다. 평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니, 시험 삼아 들어보고 싶소.”라고 하였다. 사광이 마지못해 거문고를 당겨 연주하였다. 한 번 연주하자, 검은 학 열여섯 마리가 남쪽으로부터 날아와, 궁문 기둥의 무너진 담에 모였다. 두 번 연주하자 줄을 지어 섰다. 세 번 연주하자, 목을 길게 빼어 울고, 날개를 펴고 춤을 추었다. 그 소리가 궁상(宮商)의 음률에 맞고, 하늘에까지 들렸다. 평공이 크게 기뻐하고, 자리에 앉은 자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평공이 술잔을 들고 일어나 사광의 장수를 빌어주고, 다시 자리에 앉아 묻기를, “음악 중에 청치보다 더 슬픈 것은 없소?” 하니, 사광이 말하기를, “청각(清角)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평공이 말하기를, “청각을 들어볼 수 있겠소?” 하니, 사광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옛날 황제(黃帝)께서 태산(泰山) 위에서 귀신들을 모으실 때, 코끼리 수레를 타고 여섯 마리 교룡을 부리셨으며, 필방(畢方)이 멍에를 나란히 하고, 치우(蚩尤)가 앞에 거하며, 풍백(風伯)이 나아가 길을 쓸고, 우사(雨師)가 길에 물을 뿌렸으며, 호랑이와 이리가 앞에 있고 귀신이 뒤에 있으며, 등사(騰蛇)가 땅에 엎드리고 봉황이 위를 덮은 채, 크게 귀신들을 모아 청각을 지으셨습니다. 지금 주군께서는 덕이 박하시어 듣기에 부족하며, 그것을 들으시면 장차 패망이 있을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평공이 말하기를, “과인은 늙었고,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니, 원컨대 끝까지 듣고 싶소.”라고 하였다. 사광이 마지못해 연주하였다. 한 번 연주하자, 검은 구름이 서북쪽에서 일어났다. 두 번 연주하자, 큰 바람이 불고 큰비가 뒤따르며, 휘장을 찢고 제기를 부수며, 행랑의 기와를 무너뜨리니, 자리에 앉은 자들이 흩어져 달아나고, 평공은 두려워하며 행랑의 방 사이에 엎드렸다. 진나라는 크게 가물어, 3년 동안 땅이 붉었다. 평공의 몸은 마침내 중병이 들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정사를 듣는 데 힘쓰지 않고 오음(五音)을 좋아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몸을 곤궁하게 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6
奚謂貪愎?昔者智伯瑤率趙、韓、魏而伐范、中行,滅之,反歸,休兵數年,因令人請地於韓,韓康子欲勿與。段規諫曰:「不可不與也。夫知伯之為人也,好利而驁愎。彼來請地而弗與,則移兵於韓必矣。君其與之。與之彼狃,又將請地他國,他國且有不聽,不聽,則知伯必加之兵。如是韓可以免於患而待其事之變。」康子曰:「諾。」因令使者致萬家之縣一於知伯,知伯說。又令人請地於魏,宣子欲勿與,趙葭諫曰:「彼請地於韓,韓與之,今請地於魏,魏弗與,則是魏內自強,而外怒知伯也。如弗予,其措兵於魏必矣。」宣子「諾」。因令人致萬家之縣一於知伯。知伯又令人之趙請蔡、皋狼之地,趙襄子弗與,知伯因陰約韓、魏將以伐趙。襄子召張孟談而告之曰:「夫知伯之為人也,陽規而陰疏,三使韓、魏而寡人不與焉,其措兵於寡人必矣,今吾安居而可?」張孟談曰:「夫董閼于,簡主之才臣也,其治晉陽,而尹鐸循之,其餘教猶存,君其定居晉陽而已矣。」君曰:「諾。」乃召延陵生,令將軍車騎先至晉陽,君因從之。君至,而行其城郭及五官之藏,城郭不治,倉無積粟,府無儲錢,庫無甲兵,邑無守具,襄子懼,乃召張孟談曰:「寡人行城郭及五官之藏,皆不備具,吾將何以應敵?」張孟談曰:「臣聞聖人之治,藏於臣不藏於府庫,務修其教不治城郭。君其出令,令民自遺三年之食,有餘粟者入之倉,遺三年之用,有餘錢者入之府,遺,有奇人者使治城郭之繕。」君夕出令,明日,倉不容粟,府無積錢,庫不受甲兵,居五日而城郭已治,守備已具。君召張孟談而問之曰:「吾城郭已治,守備已具,錢粟已足,甲兵有餘,吾奈無箭何?」張孟談曰:「臣聞董子之治晉陽也,公宮之垣皆以荻蒿楛楚牆之,有楛高至於丈,君發而用之。」於是發而試之,其堅則雖菌輅之勁弗能過也。君曰:「吾箭已足矣,奈無金何?」張孟談曰:「臣聞董子之治晉陽也,公宮令舍之堂,皆以鍊銅為柱、質,君發而用之。」於是發而用之,有餘金矣。號令已定,守備已具,三國之兵果至,至則乘晉陽之城,遂戰,三月弗能拔。因舒軍而圍之,決晉陽之水以灌之,圍晉陽三年。城中巢居而處,懸釜而炊,財食將盡,士大夫羸病。襄子謂張孟談曰:「糧食匱,財力盡,士大夫羸病,吾恐不能守矣,欲以城下,何國之可下?」張孟談曰:「臣聞之,亡弗能存,危弗能安,則無為貴智矣,君失此計者。臣請試潛行而出,見韓、魏之君。」張孟談見韓、魏之君曰:「臣聞脣亡齒寒。今知伯率二君而伐趙,趙將亡矣。趙亡,則二君為之次。」二君曰:「我知其然也。雖然,知伯之為人也麤中而少親,我謀而覺,則其禍必至矣,為之奈何?」張孟談曰:「謀出二君之口而入臣之耳,人莫之知也。」二君因與張孟談約三軍之反,與之期日。夜遣孟談入晉陽以報二君之反於襄子,襄子迎孟談而再拜之,且恐且喜。二君以約遣張孟談,因朝知伯而出,遇智過於轅門之外,智過怪其色,因入見知伯曰:「二君貌將有變。」君曰:「何如?」曰:「其行矜而意高,非他時之節也,君不如先之。」君曰:「吾與二主約謹矣,破趙而三分其地,寡人所以親之,必不侵欺。兵之著於晉陽三年,今旦暮將拔之而嚮其利,何乃將有他心,必不然,子釋勿憂,勿出於口。」明旦,二主又朝而出,復見智過於轅門,智過入見曰:「君以臣之言告二主乎?」君曰:「何以知之?」曰:「今日二主朝而出,見臣而其色動,而視屬臣,此必有變,君不如殺之。」君曰:「子置勿復言。」智過曰:「不可,必殺之。若不能殺,遂親之。」君曰:「親之奈何?」智過曰:「魏宣子之謀臣曰趙葭,韓康子之謀臣曰段規,此皆能移其君之計,君與其二君約,破趙國因封二子者各萬家之縣一,如是則二主之心可以無變矣。知伯曰:「破趙而三分其地,又封二子者各萬家之縣一,則吾所得者少,不可。」智過見其言之不聽也,出,因更其族為輔氏。至於期日之夜,趙氏殺其守隄之吏而決其水灌知伯軍,知伯軍救水而亂,韓、魏翼而擊之,襄子將卒犯其前,大敗知伯之軍而擒知伯。知伯身死軍破,國分為三,為天下笑。故曰:貪愎好利,則滅國殺身之本也。
번역 6
무엇을 탐욕스럽고 고집이 셈[貪愎]이라 하는가? 옛날 지백(智伯) 요(瑤)가 조(趙)·한(韓)·위(魏)를 이끌고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를 쳐서 멸망시키고, 돌아와 군대를 수년 간 쉬게 한 뒤, 사람을 시켜 한나라에 땅을 요구하니, 한강자(韓康子)가 주지 않으려 하였다. 단규(段規)가 간언하여 말하기를,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지백의 사람됨이 이익을 좋아하고 오만하며 고집이 셉니다. 그가 와서 땅을 요구하는데 주지 않으면, 군대를 한나라로 옮기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군주께서는 그에게 주십시오. 그에게 주면 그는 버릇이 들어, 또 다른 나라에 땅을 요구할 것이고, 다른 나라가 듣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이며, 듣지 않으면 지백은 반드시 그들에게 군대를 보낼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한나라는 환란에서 벗어나 일의 변화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강자가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사신으로 하여금 만 호의 현 하나를 지백에게 바치게 하니, 지백이 기뻐하였다. 또 사람을 시켜 위나라에 땅을 요구하니, 위선자(魏宣子)가 주지 않으려 하였다. 조가(趙葭)가 간언하여 말하기를, “그가 한나라에 땅을 요구하자 한나라는 주었고, 지금 위나라에 땅을 요구하는데 위나라가 주지 않으면, 이는 위나라가 안으로 스스로 강한 체하고 밖으로 지백을 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주지 않으면, 그가 군대를 위나라에 둘 것이 필연적입니다.”라고 하였다. 선자가 “좋다.” 하고는, 사람을 시켜 만 호의 현 하나를 지백에게 바치게 하였다. 지백이 또 사람을 조나라에 보내 채(蔡)와 고랑(皋狼) 땅을 요구하니, 조양자(趙襄子)가 주지 않았다. 지백은 이로 인해 몰래 한·위와 약속하고 장차 조나라를 치려 하였다. 양자가 장맹담(張孟談)을 불러 그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무릇 지백의 사람됨이, 겉으로는 계획이 있는 듯하나 속으로는 소홀하며, 세 번이나 한·위에 사신을 보냈는데 과인이 주지 않았으니, 그가 과인에게 군대를 둘 것이 필연적이오. 지금 우리가 편안히 거처할 수 있겠는가?” 하니, 장맹담이 말하기를, “무릇 동안우(董閼于)는 간주(簡主)의 재능 있는 신하로서, 그가 진양(晉陽)을 다스렸고 윤탁(尹鐸)이 그 뒤를 따랐으니, 그 남은 가르침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군주께서는 진양에 거처를 정하실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연릉생(延陵生)을 불러 장군으로 삼아 전차와 기병을 먼저 진양에 이르게 하고, 군주가 그 뒤를 따랐다. 군주가 도착하여 그 성곽과 오관(五官)의 창고를 둘러보니, 성곽은 다스려지지 않았고, 창고에는 쌓인 곡식이 없으며, 부고에는 저장된 돈이 없고, 무기고에는 갑옷과 병기가 없으며, 읍에는 수비 도구가 없었다. 양자가 두려워하여, 이에 장맹담을 불러 말하기를, “과인이 성곽과 오관의 창고를 둘러보니, 모두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내가 장차 무엇으로 적에 대응하겠는가?” 하니, 장맹담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성인의 다스림은, 신하에게 저장하고 부고에 저장하지 않으며, 그 가르침을 닦는 데 힘쓰고 성곽을 다스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군주께서는 명령을 내리시어, 백성으로 하여금 스스로 3년 치의 식량을 남기게 하고, 남은 곡식이 있는 자는 창고에 들이게 하며, 3년 치의 비용을 남기게 하고, 남은 돈이 있는 자는 부고에 들이게 하며, 남은, 뛰어난 사람이 있는 자는 성곽을 수리하는 일을 다스리게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군주가 저녁에 명령을 내리니, 다음 날 창고는 곡식을 다 담지 못하고, 부고에는 돈을 쌓아둘 곳이 없으며, 무기고는 갑옷과 병기를 다 받지 못하였고, 닷새가 지나자 성곽은 이미 다스려지고 수비 도구는 이미 갖추어졌다. 군주가 장맹담을 불러 묻기를, “내 성곽은 이미 다스려졌고, 수비 도구는 이미 갖추어졌으며, 돈과 곡식은 이미 넉넉하고, 갑옷과 병기는 남음이 있는데, 내가 화살이 없는 것은 어찌하겠는가?” 하니, 장맹담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동자(董子)가 진양을 다스릴 때, 공궁의 담장을 모두 억새와 쌀대로 쌓았는데, 쌀대의 높이가 한 길[丈]에 이르렀으니, 군주께서 그것을 꺼내 쓰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꺼내어 시험해보니, 그 단단함이 비록 균로(菌輅)의 강함으로도 뚫을 수 없었다. 군주가 말하기를, “내 화살은 이미 넉넉한데, 쇠[金]가 없는 것은 어찌하겠는가?” 하니, 장맹담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동자가 진양을 다스릴 때, 공궁과 관사의 당(堂)을 모두 단련된 구리로 기둥과 주춧돌을 만들었으니, 군주께서 그것을 꺼내 쓰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꺼내어 쓰니, 쇠가 남음이 있었다. 호령이 이미 정해지고, 수비 도구가 이미 갖추어지자, 세 나라의 군대가 과연 도착했다. 도착하자 진양성을 타고 넘어 싸웠으나, 석 달이 지나도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에 군대를 펼쳐 포위하고, 진수(晉水)를 터뜨려 성에 물을 대니, 진양을 포위한 지 3년이 되었다. 성안에서는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살며, 솥을 매달아 밥을 짓고, 재물과 식량이 장차 다하며, 사대부들은 여위고 병들었다. 양자가 장맹담에게 말하기를, “양식이 다하고, 재력이 다하며, 사대부들이 여위고 병들었으니, 내가 지키지 못할까 두렵다. 성을 바쳐 항복하고자 하는데, 어느 나라에 항복하는 것이 좋겠는가?” 하니, 장맹담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망하는 것을 능히 보존하지 못하고, 위태로운 것을 능히 편안하게 하지 못한다면, 지혜를 귀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군주께서 이 계책을 잃으셨습니다. 신이 청컨대 시험 삼아 몰래 빠져나가, 한·위의 군주를 뵙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장맹담이 한·위의 군주를 만나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고 하였습니다. 지금 지백이 두 군주를 이끌고 조나라를 치니, 조나라는 장차 망할 것입니다. 조나라가 망하면, 두 군주께서 그 다음 차례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두 군주가 말하기를, “우리도 그러할 줄 알고 있소. 비록 그러하나, 지백의 사람됨이 거칠고 친한 이가 적으니, 우리의 모의가 발각되면 그 화가 반드시 닥칠 것이오. 이를 어찌하겠소?” 하니, 장맹담이 말하기를, “모의는 두 군주의 입에서 나와 신의 귀로 들어갈 뿐이니, 아무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두 군주는 이로 인해 장맹담과 세 군대가 배반할 것을 약속하고, 그 날짜를 정하였다. 밤에 맹담을 진양으로 보내 두 군주의 배반을 양자에게 보고하게 하니, 양자는 맹담을 맞이하며 두 번 절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기뻐하였다. 두 군주는 약속대로 장맹담을 보내고, 지백에게 조회를 마치고 나오다가, 원문 밖에서 지과(智過)를 만났다. 지과가 그들의 안색을 이상하게 여겨, 들어가 지백을 뵙고 말하기를, “두 군주의 모습에 장차 변고가 있을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어떠한가?” 하니, 말하기를, “그들의 걸음걸이가 교만하고 뜻이 높으니, 평소의 태도가 아닙니다. 군주께서 선수를 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내가 두 군주와 약속을 신중히 하였소. 조나라를 격파하고 그 땅을 삼등분하기로 하였으니, 과인이 그들을 친애하는 바이므로, 반드시 침범하거나 속이지 않을 것이오. 군대가 진양에 머문 지 3년이 되었고, 이제 조만간 함락시켜 그 이익을 누리려 하는데, 어찌 다른 마음이 있겠소. 반드시 그렇지 않을 것이니, 그대는 마음 놓고 걱정하지 말며, 입 밖에 내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아침, 두 군주가 또 조회를 마치고 나오다가, 다시 원문에서 지과를 만났다. 지과가 들어가 뵙고 말하기를, “군주께서 신의 말을 두 군주에게 고하셨습니까?” 하니, 군주가 말하기를, “어떻게 아는가?” 하였다. 말하기를, “오늘 두 군주가 조회를 마치고 나오다가, 신을 보고 그 안색이 변하며, 신에게 눈길을 주었으니, 이는 반드시 변고가 있는 것입니다. 군주께서 그들을 죽이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그대는 그만두고 다시 말하지 말라.” 하니, 지과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만약 죽일 수 없다면, 그들을 친애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친애하는 것은 어찌하는가?” 하니, 지과가 말하기를, “위선자의 모신은 조가라 하고, 한강자의 모신은 단규라 하는데, 이들은 모두 그 군주의 계책을 바꿀 수 있는 자들입니다. 군주께서 그 두 군주와 약속하시어, 조나라를 격파한 뒤 두 아들에게 각각 만 호의 현 하나씩을 봉해주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두 군주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지백이 말하기를, “조나라를 격파하고 그 땅을 삼등분한 뒤, 또 두 아들에게 각각 만 호의 현 하나씩을 봉해주면, 내가 얻는 것이 적어지니, 안 된다.”라고 하였다. 지과는 자기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보고, 나가서 자기 성씨를 보씨(輔氏)로 바꾸었다. 약속한 날 밤이 되자, 조씨가 제방을 지키던 관리를 죽이고 물을 터뜨려 지백의 군대에 물을 대니, 지백의 군대는 물을 막느라 혼란에 빠졌다. 한·위가 양쪽에서 공격하고, 양자가 군사를 이끌고 그 앞을 치니, 지백의 군대를 대파하고 지백을 사로잡았다. 지백은 몸이 죽고 군대는 격파되었으며, 나라는 셋으로 나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탐욕스럽고 고집이 세며 이익을 좋아하는 것은, 나라를 멸망시키고 자신을 죽이는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7
奚謂耽於女樂?昔者戎王使由余聘於秦,穆公問之曰:「寡人嘗聞道而未得目見之也,願聞古之明主得國失國何常以?」由余對曰:「臣嘗得聞之矣,常以儉得之,以奢失之。」穆公曰:「寡人不辱而問道於子,子以儉對寡人何也?」由余對曰:「臣聞昔者堯有天下,飯於土簋,飲於土鉶,其地南至交趾,北至幽都,東西至日月之所出入者,莫不賓服。堯禪天下,虞舜受之,作為食器,斬山木而財之,削鋸修之跡流漆墨其上,輸之於宮以為食器,諸侯以為益侈,國之不服者十三。舜禪天下而傳之於禹,禹作為祭器,墨染其外,而朱畫其內,縵帛為茵,蔣席頗緣,觴酌有采,而樽俎有飾,此彌侈矣,而國之不服者三十三。夏后氏沒,殷人受之,作為大路,而建九旒,食器雕琢,觴酌刻鏤,四壁堊墀,茵席雕文,此彌侈矣,而國之不服者五十三。君子皆知文章矣,而欲服者彌少,臣故曰儉其道也。」由余出,公乃召內史廖而告之,曰:「寡人聞鄰國有聖人,敵國之憂也。今由余,聖人也,寡人患之,吾將奈何?」內史廖曰:「臣聞戎王之居,僻陋而道遠,未聞中國之聲,君其遺之女樂,以亂其政,而後為由余請期,以疏其諫,彼君臣有間而後可圖也。」君曰:「諾。」乃使史廖以女樂二八遺戎王,因為由余請期,戎王許諾。見其女樂而說之,設酒張飲,日以聽樂,終歲不遷,牛馬半死。由余歸,因諫戎王,戎王弗聽,由余遂去之秦,秦穆公迎而拜之上卿,問其兵勢與其地形,既以得之,舉兵而伐之,兼國十二,開地千里。故曰:耽於女樂,不顧國政,亡國之禍也。
번역 7
무엇을 여악(女樂)에 빠짐이라 하는가? 옛날 융(戎)나라 왕이 유여(由余)를 시켜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보내니, 목공(穆公)이 그에게 묻기를, “과인이 일찍이 도(道)에 대해 들었으나 아직 눈으로 보지는 못하였소. 원컨대 옛날의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얻고 잃는 것이 항상 무엇 때문이었는지 듣고 싶소.”라고 하였다. 유여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이 일찍이 들으니, 항상 검소함으로 얻고, 사치함으로 잃는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목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욕됨을 무릅쓰고 그대에게 도를 묻는데, 그대가 검소함으로 과인에게 대답하는 것은 어째서요?” 하니, 유여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옛날 요(堯)임금께서 천하를 소유하셨을 때, 흙으로 만든 그릇[土簋]에 밥을 드시고 흙으로 만든 국그릇[土鉶]에 마셨으나, 그 땅이 남으로는 교지(交趾)에 이르고 북으로는 유도(幽都)에 이르며, 동서로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곳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요임금께서 천하를 선양하시어 우순(虞舜)이 그것을 받으시고, 식기를 만드시되 산의 나무를 베어 재료로 삼고, 톱으로 깎아 자취를 다듬고 그 위에 검은 옻칠을 흘려, 궁으로 들여보내 식기로 삼으시니, 제후들이 더욱 사치스러워졌다고 여겨, 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열셋이었습니다. 순임금께서 천하를 선양하시어 우(禹)에게 전하시니, 우임금께서 제기를 만드시되, 그 밖은 검게 물들이고 그 안은 붉게 그렸으며, 무늬 없는 비단으로 자리를 만들고, 부들자리 가장자리를 조금 꾸몄으며, 술잔에는 채색이 있고, 제기에는 장식이 있었으니, 이는 더욱 사치스러워져, 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서른셋이었습니다. 하후씨(夏后氏)가 망하고, 은(殷)나라 사람이 그것을 받으시고, 큰 수레를 만들고 아홉 개의 유(旒)를 세웠으며, 식기는 조각하고, 술잔은 새겼으며, 사방 벽은 흰 흙을 바르고, 자리에는 무늬를 새겼으니, 이는 더욱 사치스러워져, 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쉰셋이었습니다. 군주들께서 모두 문채(文章)를 알게 되셨으나, 복종하고자 하는 자는 더욱 적어졌으니, 신이 그러므로 검소함이 그 도(道)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유여가 나가자, 공이 내사(內史) 요(廖)를 불러 그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과인이 듣건대 이웃 나라에 성인이 있는 것은, 적국의 근심이라고 하였소. 지금 유여는 성인이니, 과인이 그를 근심하는데, 내 장차 어찌하겠소?” 하니, 내사 요가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융왕이 거처하는 곳은, 궁벽하고 길이 멀어, 중원의 음악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군주께서는 그에게 여악(女樂)을 보내어 그 정치를 어지럽히고, 그런 뒤에 유여를 위해 귀국 기한을 늦추어 달라고 청하여 그 간언을 멀어지게 하십시오. 저 군신 사이에 틈이 생긴 뒤에야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내사 요로 하여금 여악 열여섯 명을 융왕에게 보내고, 유여를 위해 귀국 기한을 늦추어 달라고 청하니, 융왕이 허락하였다. 여악을 보고 기뻐하여, 술자리를 베풀고 마시며, 날마다 음악을 듣느라, 한 해가 다 가도록 옮기지 않아, 소와 말이 절반이나 죽었다. 유여가 돌아와 융왕에게 간언하였으나, 융왕이 듣지 않자, 유여는 마침내 진나라로 가버렸다. 진 목공이 그를 맞이하여 상경(上卿)으로 삼고, 그 병력의 형세와 지형에 대해 물었다. 이미 그것을 얻고 나서, 군대를 일으켜 융을 정벌하여, 열두 나라를 병합하고 영토를 천 리나 열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여악에 빠져 국정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망국의 재앙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8
奚謂離內遠遊?昔者田成子遊於海而樂之,號令諸大夫曰:「言歸者死。」顏涿聚曰:「君遊海而樂之,奈臣有圖國者何?君雖樂之,將安得?」田成子曰:「寡人布令曰言歸者死,今子犯寡人之令。」援戈將擊之。顏涿聚曰:「昔桀殺關龍逢而紂殺王子比干,今君雖殺臣之身以三之可也。臣言為國,非為身也。」延頸而前曰:「君擊之矣!」君乃釋戈趣駕而歸,至三日,而聞國人有謀不內田成子者矣。田成子所以遂有齊國者,顏涿聚之力也。故曰:離內遠遊,則危身之道也。
번역 8
무엇을 나라 안을 떠나 멀리 노닒[離內遠遊]이라 하는가? 옛날 전성자(田成子)가 바다에서 노닐며 그것을 즐기다가, 여러 대부에게 호령하여 말하기를, “돌아가자고 말하는 자는 죽인다.”라고 하였다. 안탁취(顏涿聚)가 말하기를, “군주께서 바다에서 노니는 것을 즐기시는데, 신하 중에 나라를 도모하려는 자가 있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군주께서 비록 그것을 즐기신들, 장차 어찌 편안하시겠습니까?” 하니, 전성자가 말하기를, “과인이 명령을 내려 돌아가자고 말하는 자는 죽인다고 하였는데, 지금 그대가 과인의 명령을 어겼다.” 하고는, 창을 당겨 장차 그를 치려 하였다. 안탁취가 말하기를, “옛날 걸(桀)은 관룡봉(關龍逢)을 죽였고 주(紂)는 왕자 비간(比干)을 죽였으니, 지금 군주께서 비록 신의 몸을 죽여 세 번째가 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신의 말은 나라를 위한 것이지, 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고는, 목을 길게 빼고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군주께서 치십시오!”라고 하였다. 군주가 이에 창을 놓고 수레를 재촉하여 돌아오니, 사흘 만에 나라 사람들 중에 전성자를 안으로 들이지 않으려는 모의가 있었음을 들었다. 전성자가 마침내 제(齊)나라를 소유하게 된 것은, 안탁취의 힘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나라 안을 떠나 멀리 노닐면, 몸을 위태롭게 하는 길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9
奚謂過而不聽於忠臣?昔者齊桓公九合諸侯,一匡天下,為五伯長,管仲佐之。管仲老,不能用事,休居於家,桓公從而問之曰:「仲父家居有病,即不幸而不起此病,政安遷之?」管仲曰:「臣老矣,不可問也。雖然,臣聞之,知臣莫若君,知子莫若父,君其試以心決之。」君曰:「鮑叔牙何如?」管仲曰:「不可。鮑叔牙為人,剛愎而上悍。剛則犯民以暴,愎則不得民心,悍則下不為用,其心不懼。非霸者之佐也。」公曰:「然則豎刁何如?」管仲曰:「不可。夫人之情莫不愛其身,公妒而好內,豎刁自獖以為治內,其身不愛,又安能愛君?」公曰:「然則衛公子開方何如?」管仲曰:「不可。齊、衛之間不過十日之行,開方為事君,欲適君之故,十五年不歸見其父母,此非人情也,其父母之不親也,又能親君乎?」公曰:「然則易牙何如?」管仲曰:「不可。夫易牙為君主味,君之所未嘗食唯人肉耳,易牙蒸其子首而進之,君所知也。人之情莫不愛其子,今蒸其子以為膳於君,其子弗愛,又安能愛君乎?」公曰:「然則孰可?」管仲曰:「隰朋可。其為人也,堅中而廉外,少欲而多信。夫堅中則足以為表,廉外則可以大任,少欲則能臨其眾,多信則能親鄰國,此霸者之佐也,君其用之。」君曰:「諾。」居一年餘,管仲死,君遂不用隰朋而與豎刁。刁蒞事三年,桓公南遊堂阜,豎刁率易牙、衛公子開方及大臣為亂,桓公渴餒而死南門之寢、公守之室,身死三月不收,蟲出於戶。故桓公之兵橫行天下,為五伯長,卒見弒於其臣,而滅高名,為天下笑者,何也?不用管仲之過也。故曰:過而不聽於忠臣,獨行其意,則滅其高名為人笑之始也。
번역 9
무엇을 잘못이 있어도 충신의 말을 듣지 않음이라 하는가? 옛날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아홉 번 제후를 규합하고 한 번 천하를 바로잡아, 오패(五伯)의 으뜸이 되었는데, 관중(管仲)이 그를 보좌하였다. 관중이 늙어 일을 처리할 수 없게 되어, 집에서 쉬고 있자, 환공이 그를 찾아가 묻기를, “중부(仲父)께서 집에 계시며 병이 있으신데, 만약 불행히 이 병에서 일어나지 못하시면, 정사를 누구에게 옮겨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관중이 말하기를, “신은 늙었으니, 물으실 일이 아닙니다. 비록 그러하나, 신이 듣건대 신하를 아는 것은 군주만 한 이가 없고, 자식을 아는 것은 아버지 만한 이가 없다고 하였으니, 군주께서 시험 삼아 마음으로 결정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포숙아(鮑叔牙)는 어떻습니까?”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포숙아의 사람됨이, 강직하고 고집이 세며 윗사람에게 사납습니다. 강직하면 백성을 포악하게 범하고, 고집이 세면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며, 사나우면 아랫사람이 그를 위해 일하지 않고, 그 마음이 두려움이 없습니다. 패자의 보좌역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수조(豎刁)는 어떻습니까?”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무릇 사람의 정이란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공께서 질투심이 많고 여색을 좋아하시자, 수조는 스스로 거세하여 후궁을 다스렸으니, 자기 몸도 사랑하지 않는데, 또 어찌 능히 군주를 사랑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위(衛)나라 공자 개방(開方)은 어떻습니까?”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제나라와 위나라 사이는 열흘 길에 지나지 않는데, 개방은 군주를 섬기기 위해, 군주의 뜻에 맞추고자, 15년 동안 돌아가 부모를 뵙지 않았으니, 이는 사람의 정이 아닙니다. 그 부모와도 친하지 않은데, 또 능히 군주와 친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역아(易牙)는 어떻습니까?”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무릇 역아는 군주를 위해 맛을 주관하는데, 군주께서 일찍이 드셔보지 못한 것은 오직 사람 고기뿐이었습니다. 역아는 자기 아들의 머리를 쪄서 바쳤으니, 군주께서 아시는 바입니다. 사람의 정이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지금 자기 자식을 쪄서 군주께 반찬으로 바쳤으니, 자기 자식도 사랑하지 않는데, 또 어찌 능히 군주를 사랑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누가 괜찮습니까?”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습붕(隰朋)이 괜찮습니다. 그의 사람됨이, 속은 굳세고 겉은 청렴하며, 욕심이 적고 믿음이 많습니다. 무릇 속이 굳세면 족히 표본이 될 수 있고, 겉이 청렴하면 큰 임무를 맡길 수 있으며, 욕심이 적으면 능히 그 무리를 대할 수 있고, 믿음이 많으면 능히 이웃 나라와 친할 수 있으니, 이가 패자의 보좌역입니다. 군주께서는 그를 쓰십시오.”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알겠습니다.” 하였다. 일 년여가 지나 관중이 죽자, 군주는 마침내 습붕을 쓰지 않고 수조와 함께하였다. 수조가 일을 맡은 지 3년, 환공이 당부(堂阜)로 남쪽 유람을 떠나자, 수조가 역아, 위나라 공자 개방 및 대신들을 이끌고 난을 일으켰다. 환공은 남문의 침실, 즉 시신을 지키는 방에서 굶주려 죽었고, 몸이 죽은 지 석 달이 지나도록 거두지 않아, 벌레가 문밖으로 나왔다. 그러므로 환공의 군대가 천하를 횡행하고 오패의 으뜸이 되었으나, 마침내 그 신하에게 시해당하고, 높은 명성을 잃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까닭은 무엇인가? 관중의 말을 쓰지 않은 과실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잘못이 있어도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오로지 자기 뜻대로만 행하는 것은, 그 높은 명성을 잃고 남의 웃음거리가 되는 시작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0
奚謂內不量力?昔者秦之攻宜陽,韓氏急,公仲朋謂韓君曰:「與國不可恃也,豈如因張儀為和於秦哉?因賂以名都而南與伐楚,是患解於秦而害交於楚也。」公曰:「善。」乃警公仲之行,將西和秦。楚王聞之,懼,召陳軫而告之曰:「韓朋將西和秦,今將奈何?」陳軫曰:「秦得韓之都一,驅其練甲,秦、韓為一以南鄉楚,此秦王之所以廟祠而求也,其為楚害必矣,王其趣發信臣,多其車,重其幣,以奉韓曰:『不穀之國雖小,卒已悉起,願大國之信意於秦也。因願大國令使者入境視楚之起卒也。』」韓使人之楚,楚王因發車騎陳之下路,謂韓使者曰:「報韓君言弊邑之兵今將入境矣。」使者還報韓君,韓君大悅,止公仲,公仲曰:「不可。夫以實告我者秦也,以名救我者楚也,聽楚之虛言而輕誣強秦之實禍,則危國之本也。」韓君弗聽,公仲怒而歸,十日不朝。宜陽益急,韓君令使者趣卒於楚,冠蓋相望而卒無至者,宜陽果拔,為諸侯笑。故曰:內不量力,外恃諸侯者,則國削之患也。
번역 10
무엇을 안으로 힘을 헤아리지 않음[內不量力]이라 하는가? 옛날 진(秦)나라가 의양(宜陽)을 공격하자, 한(韓)씨가 위급해졌다. 공중붕(公仲朋)이 한나라 군주에게 말하기를, “동맹국은 믿을 수 없으니, 어찌 장의(張儀)를 통해 진나라와 화친하는 것만 하겠습니까? 이 기회에 이름난 도읍을 뇌물로 주고 남쪽으로 함께 초(楚)나라를 친다면, 이는 진나라로부터의 환란은 풀리고 해악은 초나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이에 공중의 길을 경비하여 장차 서쪽으로 진나라와 화친하려 하였다. 초나라 왕이 이를 듣고 두려워하여, 진軫(陳軫)을 불러 그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한나라의 공중붕이 장차 서쪽으로 진나라와 화친하려 하니, 지금 장차 어찌하겠는가?” 하니, 진軫이 말하기를, “진나라가 한나라의 도읍 하나를 얻고 그 정예 군대를 몰아, 진나라와 한나라가 하나가 되어 남쪽으로 초나라를 향한다면, 이는 진나라 왕이 종묘에 제사 지내며 구하는 바이니, 그 초나라에 대한 해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서둘러 믿을 만한 신하를 보내시되, 그 수레를 많이 하고 그 예물을 무겁게 하여, 한나라에 바치며 말하기를, ‘나[不穀]의 나라가 비록 작으나, 군대를 이미 모두 일으켰으니, 원컨대 대국께서는 진나라에 대한 뜻을 믿으십시오. 이 기회에 원컨대 대국께서는 사신을 보내 국경에 들어와 초나라가 군대를 일으킨 것을 보게 하십시오.’라고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한나라가 초나라에 사람을 보내니, 초나라 왕이 이에 전차와 기병을 일으켜 하로(下路)에 진을 치고, 한나라 사신에게 일러 말하기를, “한나라 군주께 돌아가 아뢰기를, 폐읍(弊邑)의 군대가 지금 장차 국경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시오.”라고 하였다. 사신이 돌아와 한나라 군주에게 보고하니, 한나라 군주가 크게 기뻐하며 공중을 막았다. 공중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무릇 실질로써 우리에게 고한 자는 진나라이고, 명분으로써 우리를 구원하려는 자는 초나라입니다. 초나라의 헛된 말을 듣고 강한 진나라의 실질적인 재앙을 가벼이 속이려 한다면, 이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근본입니다.”라고 하였다. 한나라 군주가 듣지 않자, 공중이 노하여 돌아가 열흘 동안 조회에 나오지 않았다. 의양은 더욱 위급해지고, 한나라 군주가 사신을 보내 초나라에 군대를 재촉하니, 사신들의 관 덮개가 서로 바라보일 정도였으나 군대는 끝내 이르지 않았다. 의양은 과연 함락되고,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안으로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밖으로 제후를 믿는 것은, 나라가 깎이는 우환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1
奚謂國小無禮?昔者晉公子重耳出亡過於曹。曹君袒裼而觀之。釐負羈與叔瞻侍於前。叔瞻謂曹君曰。臣觀晉公子非常人也。君遇之無禮。彼若有時反國而起兵。即恐為曹傷。君不如殺之。曹君弗聽。釐負羈歸而不樂。其妻問之曰。公從外來而有不樂之色何也。負羈曰。吾聞之。有福不及。禍來連我。今日吾君召晉公子。其遇之無禮。我與在前。吾是以不樂。其妻曰。吾觀晉公子。萬乘之主也。其左右從者。萬乘之相也。今窮而出亡過於曹。曹遇之無禮。此若反國。必誅無禮。則曹其首也。子奚不先自貳焉。負羈曰。諾。盛黃金於壺。充之以餐。加璧其上。夜令人遺公子。公子見使者。再拜受其餐而辭其璧。公子自曹入楚自楚入秦。入秦三年。秦穆公召群臣而謀曰。昔者晉獻公與寡人交。諸侯莫弗聞。獻公不幸離群臣。出入十年矣。嗣子不善。吾恐此將令其宗廟不祓除而社稷不血食也。如是弗定。則非與人交之道。吾欲輔重耳而入之晉。何如?群臣皆曰善。公因起卒。革車五百乘。疇騎二千。步卒五萬。輔重耳入之于晉。立為晉君。重耳即位三年。舉兵而伐曹矣。因令人告曹君曰。懸叔瞻而出之。我且殺而以為大戮。又令人告釐負羈曰。軍旅薄城。吾知子不違也。其表子之閭。寡人將以為令。令軍勿敢犯。曹人聞之率其親戚而保釐負羈之閭者七百餘家。此禮之所用也。故曹小國也。而迫於晉、楚之間。其君之危猶累卵也。而以無禮蒞之。此所以絕世也。故曰。國小無禮。不用諫臣。則絕世之勢也。
번역 11
무엇을 나라가 작으면서 무례함[國小無禮]이라 하는가? 옛날 진(晉)나라 공자 중이(重耳)가 망명하여 조(曹)나라를 지나갔다. 조나라 군주가 웃통을 벗고 그를 구경하였다. 희부기(釐負羈)와 숙첨(叔瞻)이 앞에서 모시고 있었다. 숙첨이 조나라 군주에게 말하기를, “신이 보건대 진나라 공자는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군주께서 그를 무례하게 대하시는데, 그가 만약 언젠가 나라로 돌아가 군대를 일으킨다면, 조나라에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군주께서는 그를 죽이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조나라 군주가 듣지 않았다. 희부기가 돌아와 즐거워하지 않자, 그 아내가 묻기를, “공께서 밖에서 돌아오셨는데 즐겁지 않은 기색이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희부기가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복이 있으면 미치지 못하고, 화가 오면 나에게 연루된다고 하였소. 오늘 우리 군주께서 진나라 공자를 부르시고, 그를 무례하게 대하셨는데, 내가 그 앞에 함께 있었소. 내가 이 때문에 즐겁지 않은 것이오.”라고 하였다. 그 아내가 말하기를, “제가 보건대 진나라 공자는 만승(萬乘)의 군주이며, 그 좌우의 종자들은 만승의 재상입니다. 지금 곤궁하여 망명하여 조나라를 지나가는데, 조나라가 그를 무례하게 대하니, 이 사람이 만약 나라로 돌아가면 반드시 무례한 자를 주살할 것이고, 그렇다면 조나라가 그 첫 번째일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어찌하여 먼저 스스로 다른 마음을 품지 않으십니까?” 하니, 희부기가 말하기를, “알겠소.” 하고는, 황금을 항아리에 담고, 그것을 음식으로 채우고, 그 위에 구슬을 더하여, 밤에 사람을 시켜 공자에게 보내게 하였다. 공자가 사신을 보고, 두 번 절하고 그 음식은 받고 그 구슬은 사양하였다. 공자는 조나라에서 초나라로 들어가고, 초나라에서 진(秦)나라로 들어갔다. 진나라에 들어간 지 3년, 진 목공(穆公)이 여러 신하를 불러 모의하여 말하기를, “옛날 진 헌공이 과인과 교제한 것을, 제후들이 듣지 않은 이가 없소. 헌공이 불행히 여러 신하를 떠나, 출입한 지 10년이 되었소. 뒤를 이은 아들이 선하지 못하니, 내 두렵건대 이가 장차 그 종묘에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고 사직에 피의 제사를 올리지 못하게 할 것이오. 이와 같은데도 안정시키지 않으면, 남과 교제하는 도리가 아니오. 내가 중이를 도와 진나라에 들여보내고자 하는데, 어떻소?” 하니, 여러 신하가 모두 좋다고 하였다. 공이 이에 군대를 일으켜, 전차 오백 승, 기병 이천, 보병 오만을 주어, 중이를 도와 진나라에 들여보내, 진나라 군주로 세웠다. 중이가 즉위한 지 3년, 군대를 일으켜 조나라를 쳤다. 이에 사람을 시켜 조나라 군주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숙첨을 매달아 내놓아라. 내가 장차 그를 죽여 큰 벌로 삼겠다.”라고 하였다. 또 사람을 시켜 희부기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군대가 성에 육박하더라도, 내 그대가 어기지 않을 것을 아오. 그대의 마을 입구에 표시를 하시오. 과인이 장차 명령으로 삼아, 군사들에게 감히 침범하지 못하게 하겠소.”라고 하였다. 조나라 사람들이 이를 듣고 그 친척들을 이끌고 희부기의 마을을 보호한 자가 칠백여 가구나 되었다. 이것이 예(禮)가 쓰이는 바이다. 그러므로 조나라는 작은 나라이고, 진(晉)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핍박받고 있어, 그 군주의 위태로움이 마치 알을 쌓아놓은 것과 같았는데도, 무례함으로 그를 대하였으니, 이것이 대가 끊긴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나라가 작으면서 무례하고, 간언하는 신하를 쓰지 않으면, 대가 끊기는 형세이다.”라고 하였다.
《한비자》 〈고분〉 번역 및 주석
원문 1
智術之士,必遠見而明察,不明察不能燭私;能法之士,必強毅而勁直,不勁直不能矯姦。人臣循令而從事,案法而治官,非謂重人也。重人也者,無令而擅為,虧法以利私,耗國以便家,力能得其君,此所為重人也。智術之士,明察聽用,且燭重人之陰情;能法之士,勁直聽用,且矯重人之姦行。故智術能法之士用,則貴重之臣必在繩之外矣。是智法之士與當塗之人,不可兩存之仇也。
번역 1
지혜와 술책을 아는 선비[智術之士]는,¹⁾ 반드시 멀리 내다보고 명확히 살피니, 명확히 살피지 못하면 사사로움을 밝혀낼 수 없다. 법에 능한 선비[能法之士]는, 반드시 강하고 굳세며 힘차고 곧으니, 힘차고 곧지 못하면 간악함을 바로잡을 수 없다. 신하가 명령을 따르고 일에 종사하며, 법에 근거하여 관직을 다스리는 것을, 권세 있는 신하[重人]라고 하지는 않는다.²⁾ 권세 있는 신하란, 명령 없이 제멋대로 행하고, 법을 훼손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며, 나라를 소모시켜 집안을 편하게 하고, 힘으로 그 군주를 제압할 수 있는 자이니, 이를 일러 권세 있는 신하라 한다. 지혜와 술책을 아는 선비가 명철하여 등용되면, 권세 있는 신하의 숨겨진 실정을 밝혀낼 것이고, 법에 능한 선비가 강직하여 등용되면, 권세 있는 신하의 간사한 행동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와 술책, 그리고 법에 능한 선비가 등용되면, 권세 있고 존귀한 신하는 반드시 법의 심판대[繩之外]에 서게 될 것이다.³⁾ 이 때문에 지혜와 법을 아는 선비와 권력을 잡은 자[當塗之人]는,⁴⁾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원수이다.
주석
1) 지술지사(智術之士)·능법지사(能法之士): 한비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두 유형의 신하. ‘지술지사’는 통찰력과 지략으로 국가의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고 간신들의 음모를 꿰뚫어 보는 책사형 인물이다. ‘능법지사’는 강직한 성품으로 제정된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여 비리를 바로잡는 행정가형 인물이다. 이 둘은 법치(法治)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존재이다.
2) 중인(重人): ‘무거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막강한 권력을 쥐고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권신(權臣)을 가리킨다. 이들은 법이나 군주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사적인 권력과 이익을 기준으로 행동한다. 이 글의 핵심적인 비판 대상이다.
3) 승지외(繩之外): ‘먹줄의 바깥’. ‘승(繩)’은 목수가 나무의 굽고 곧음을 재는 먹줄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객관적인 기준인 ‘법(法)’을 비유한다. ‘승지외’에 있다는 것은 법의 심판을 받아 처벌될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4) 당도지인(當塗之人): ‘길을 막고 있는 사람’. ‘중인(重人)’과 같은 의미로 쓰인 말로, 권력의 길목을 차지하고 국가의 정상적인 통치를 방해하는 권신을 가리킨다.
원문 2
當塗之人擅事要,則外內為之用矣。是以諸侯不因則事不應,故敵國為之訟。百官不因則業不進,故群臣為之用。郎中不因則不得近主,故左右為之匿。學士不因則養祿薄禮卑,故學士為之談也。此四助者,邪臣之所以自飾也。重人不能忠主而進其仇,人主不能越四助而燭察其臣,故人主愈弊,而大臣愈重。凡當塗者之於人主也,希不信愛也,又且習故。若夫即主心同乎好惡,固其所自進也。官爵貴重,朋黨又眾,而一國為之訟。則法術之士欲干上者,非有所信愛之親,習故之澤也;又將以法術之言矯人主阿辟之心,是與人主相反也。處勢卑賤,無黨孤特。夫以疏遠與近愛信爭,其數不勝也;以新旅與習故爭,其數不勝也;以反主意與同好爭,其數不勝也;以輕賤與貴重爭,其數不勝也;以一口與一國爭,其數不勝也。法術之士,操五不勝之勢,以歲數而又不得見;當塗之人,乘五勝之資,而旦暮獨說於前;故法術之士,奚道得進,而人主奚時得悟乎?故資必不勝而勢不兩存,法術之士焉得不危?其可以罪過誣者,以公法而誅之;其不可被以罪過者,以私劍而窮之。是明法術而逆主上者,不僇於吏誅,必死於私劍矣。
번역 2
권력을 잡은 자가 일의 요체를 독점하면, 안팎이 그를 위해 일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제후들은 그를 통하지 않으면 일이 응답받지 못하므로, 적국조차 그를 위해 칭송한다. 모든 관리는 그를 통하지 않으면 업무가 진척되지 않으므로, 여러 신하가 그를 위해 일한다. 낭중(郎中)은 그를 통하지 않으면 군주 가까이 갈 수 없으므로, 좌우의 측근들이 그를 위해 (잘못을) 숨겨준다. 학사(學士)는 그를 통하지 않으면 봉록이 박하고 예우가 낮아지므로, 학사들이 그를 위해 (좋게) 말해준다. 이 네 가지 도움[四助]은,⁵⁾ 사악한 신하가 스스로를 꾸미는 수단이다. 권세 있는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하여 자신의 원수를 등용할 수 없고, 군주는 이 네 가지 도움을 뛰어넘어 그 신하를 밝게 살필 수 없으니, 그러므로 군주는 더욱 가려지고 대신은 더욱 권세가 무거워진다. 무릇 권력을 잡은 자는 군주에 대해, 신임과 총애를 받지 않는 경우가 드물고, 또한 오랫동안 익숙한 사이이다. 만약 군주의 마음에 나아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를 같이한다면, 진실로 스스로 등용되는 바이다. 관직과 작위는 높고 귀하며, 붕당 또한 많아서, 온 나라가 그를 위해 칭송한다. 그러나 법술지사(法術之士)가 윗사람에게 나아가고자 한들, 신임과 총애를 받는 친분도 없고, 오랫동안 익숙한 은택도 없다. 또한 장차 법술의 말로써 군주의 편벽된 마음을 바로잡으려 하니, 이는 군주와 서로 반대되는 것이다. 처한 형세는 낮고 천하며, 붕당 없이 외롭고 특별하다. 무릇 소원한 자가 가깝고 총애받는 자와 다투니, 그 형세상 이길 수 없다. 새로 온 나그네가 오랫동안 익숙한 자와 다투니, 그 형세상 이길 수 없다.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자가 같은 것을 좋아하는 자와 다투니, 그 형세상 이길 수 없다. 가볍고 천한 자가 높고 귀한 자와 다투니, 그 형세상 이길 수 없다. 하나의 입으로 온 나라와 다투니, 그 형세상 이길 수 없다.⁶⁾ 법술지사는 다섯 가지 이길 수 없는 형세를 지니고, 여러 해가 지나도록 또한 군주를 뵐 수 없다. 권력을 잡은 자는 다섯 가지 이기는 자산을 타고, 아침저녁으로 군주 앞에서 홀로 유세한다. 그러니 법술지사가 무슨 수로 등용될 수 있으며, 군주는 어느 때에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질은 반드시 이길 수 없고 형세는 함께 존재할 수 없으니, 법술지사가 어찌 위태롭지 않겠는가? 죄과를 씌워 무고할 수 있는 자는 공적인 법으로 주살하고, 죄과를 씌울 수 없는 자는 사사로운 칼[私劍]로써 그를 궁지에 모니,⁷⁾ 이는 법술을 밝히고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관리의 형벌에 죽지 않으면 반드시 사사로운 칼에 죽는다는 것이다.
주석
5) 사조(四助): 권신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이용하는 네 종류의 조력자. ① 외국의 제후, ② 조정의 백관, ③ 군주의 측근(낭중), ④ 여론을 형성하는 학사. 이들은 모두 권신의 힘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에, 권신에게 협력하게 된다.
6) 오불승(五不勝): 법술지사가 권신과의 경쟁에서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는 다섯 가지 구조적인 불리함. ① 관계의 소원함(疏遠) vs. 군주의 총애(近愛信), ② 새로 온 나그네(新旅) vs. 오랜 측근(習故), ③ 군주의 뜻을 거스름(反主意) vs. 군주와 취향을 같이함(同好), ④ 낮은 신분(輕賤) vs. 높은 권세(貴重), ⑤ 하나의 입(一口) vs. 온 나라의 여론(一國). 이 구절은 제목인 ‘고분(孤憤)’, 즉 고립된 지식인의 분노가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7) 사검(私劍): ‘사사로운 칼’. 공식적인 법 절차를 통한 처형이 아니라, 자객을 동원한 암살이나 사적인 폭력을 의미한다. 권신이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법술지사를 제거하기 위해 합법, 불법을 가리지 않음을 보여준다.
원문 3
朋黨比周以弊主,言曲以便私者,必信於重人矣。故其可以功伐借者,以官爵貴之;其不可借以美名者,以外權重之。是以弊主上而趨於私門者,不顯於官爵,必重於外權矣。今人主不合參驗而行誅,不待見功而爵祿,故法術之士安能蒙死亡而進其說,姦邪之臣安肯乘利而退其身?故主上愈卑,私門益尊。夫越雖國富兵彊,中國之主皆知無益於己也,曰:「非吾所得制也。」今有國者雖地廣人眾,然而人主壅蔽,大臣專權,是國為越也。智不類越,而不智不類其國,不察其類者也。人主所以謂齊亡者,非地與城亡也,呂氏弗制,而田氏用之。所以謂晉亡者,亦非地與城亡也,姬氏不制,而六卿專之也。今大臣執柄獨斷,而上弗知收,是人主不明也。與死人同病者,不可生也;與亡國同事者,不可存也。今襲跡於齊、晉,欲國安存,不可得也。
번역 3
붕당을 이루고 무리를 지어 군주를 가리고, 말을 왜곡하여 사사로움을 편하게 하는 자는, 반드시 권세 있는 신하에게 신임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적을 빌릴 수 있는 자는 관직과 작위로써 귀하게 해주고, 아름다운 명분을 빌릴 수 없는 자는 외부의 권세로써 무겁게 해준다. 이 때문에 군주를 가리고 사사로운 가문으로 달려가는 자는, 관직과 작위로 드러나지 않으면 반드시 외부의 권세로써 무거워진다. 지금 군주가 참고하고 검증하는 것[參驗]을 합하여 처벌을 행하지 않고,⁸⁾ 공이 드러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작위와 녹봉을 주니, 그러므로 법술지사가 어찌 죽음을 무릅쓰고 그 주장을 펼칠 수 있으며, 간사하고 사악한 신하가 어찌 이로움을 타고서 그 몸을 물리려 하겠는가? 그러므로 군주는 더욱 낮아지고, 사사로운 가문은 더욱 존귀해진다. 무릇 월(越)나라가 비록 나라가 부유하고 군대가 강하더라도, 중원의 군주들은 모두 자기에게 이익이 없음을 아니, 말하기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한다. 지금 나라를 가진 자가 비록 땅이 넓고 사람이 많더라도, 군주가 가려지고 대신이 권력을 독점한다면, 이는 나라가 월나라가 된 것과 같다. 지혜로운 자는 월나라와 같지 않지만, 지혜롭지 못한 자는 그 나라와 같지 않으니, 그 유사함을 살피지 못하는 자이다. 군주들이 제(齊)나라가 망했다고 말하는 까닭은, 땅과 성이 망해서가 아니라, 여씨(呂氏)가 통제하지 못하고 전씨(田氏)가 그것을 사용했기 때문이다.⁹⁾ 진(晉)나라가 망했다고 말하는 까닭 또한, 땅과 성이 망해서가 아니라, 희씨(姬氏)가 통제하지 못하고 여섯 경(六卿)이 그것을 독점했기 때문이다.¹⁰⁾ 지금 대신이 권병을 잡고 독단하는데도 윗사람이 그것을 거둘 줄을 모르니, 이는 군주가 밝지 못한 것이다. 죽은 사람과 같은 병을 앓는 자는 살 수 없고, 망한 나라와 같은 일을 하는 자는 존속할 수 없다. 지금 제나라와 진나라의 발자취를 답습하면서 나라가 편안히 존속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주석
8) 참험(參驗): 여러 정보와 증거들을 서로 비교하고 검증하는 것.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의 말이나 평판만으로 상벌을 내리지 말고, 반드시 객관적인 사실과 공적에 근거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법가 통치술의 중요한 원칙이다.
9) 제(齊)나라의 멸망: 춘추시대 제나라의 정통 군주 가문은 강태공의 후예인 강씨(姜氏)였으나, 대부였던 전씨(田氏) 가문이 점차 세력을 키워 민심을 얻고 국정을 장악한 뒤, 마침내 강씨를 몰아내고 나라를 찬탈했다(B.C. 386). 이를 ‘전씨대제(田氏代齊)’라 한다. 한비자는 영토는 그대로이지만 실질적인 주권자가 바뀌었으므로 이는 망국이라고 본다.
10) 진(晉)나라의 멸망: 춘추시대의 강국이었던 진나라는 군주 가문인 희씨(姬氏)의 권위가 약화되고, 한(韓)·위(魏)·조(趙)·지(智)·범(范)·중행(中行)의 여섯 가문(六卿)이 권력을 독점했다. 이후 이들 간의 다툼 끝에 한·위·조 세 가문이 나라를 삼등분하여 전국시대가 열렸다(B.C. 403). 이를 ‘삼가분진(三家分晉)’이라 한다.
원문 4
凡法術之難行也,不獨萬乘,千乘亦然。人主之左右不必智也,人主於人有所智而聽之,因與左右論其言,是與愚人論智也。人主之左右不必賢也,人主於人有所賢而禮之,因與左右論其行,是與不肖論賢也。智者決策於愚人,賢士程行於不肖,則賢智之士羞而人主之論悖矣。人臣之欲得官者,其修士且以精絜固身,其智士且以治辯進業。其修士不能以貨賂事人,恃其精潔,而更不能以枉法為治,則修智之士,不事左右,不聽請謁矣。人主之左右,行非伯夷也,求索不得,貨賂不至,則精辯之功息,而毀誣之言起矣。治辯之功制於近習,精潔之行決於毀譽,則修智之吏廢,則人主之明塞矣。不以功伐決智行,不以參伍審罪過,而聽左右近習之言,則無能之士在廷,而愚污之吏處官矣。
번역 4
무릇 법술(法術)을 행하기 어려운 것은, 만승(萬乘)의 군주뿐만 아니라 천승(千乘)의 군주도 그러하다. 군주의 좌우 측근이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군주가 어떤 사람을 지혜롭다고 여겨 그의 말을 듣고서, 이어서 좌우 측근과 그 말을 논의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를 논하는 것이다. 군주의 좌우 측근이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다. 군주가 어떤 사람을 어질다고 여겨 그를 예우하고서, 이어서 좌우 측근과 그 행실을 논의한다면, 이는 불초한 자와 어짊을 논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에게서 결재를 받고, 어진 선비가 불초한 자에게서 행실을 평가받는다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비는 수치스러워하고 군주의 논의는 어그러질 것이다. 신하 중에 관직을 얻고자 하는 자로서, 품행을 닦는 선비[修士]는 청렴결백으로 몸을 굳게 지키려 하고, 지혜로운 선비[智士]는 다스림과 변론으로 공업을 이루려 한다. 품행을 닦는 선비는 뇌물로써 사람을 섬길 수 없고, 자신의 청렴결백을 믿으며, 또한 법을 왜곡하여 다스릴 수도 없으니, 품행을 닦고 지혜로운 선비는 좌우 측근을 섬기지 않고 청탁을 듣지 않는다. 군주의 좌우 측근은 행실이 백이(伯夷)가 아니어서, 요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뇌물이 이르지 않으면, 정밀한 변론의 공은 멈추고 헐뜯고 무고하는 말이 일어날 것이다. 다스림과 변론의 공이 측근에게 통제되고, 청렴결백한 행실이 헐뜯음과 칭찬에 의해 결정된다면, 품행을 닦고 지혜로운 관리는 폐해지고 군주의 밝음은 막힐 것이다. 공적으로써 지혜와 행실을 결정하지 않고, 참고하고 비교하여[參伍] 죄과를 살피지 않으며, 좌우 측근의 말만 듣는다면, 무능한 선비가 조정에 있고 어리석고 더러운 관리가 관직에 있게 될 것이다.
원문 5
萬乘之患,大臣太重;千乘之患,左右太信;此人主之所公患也。且人臣有大罪,人主有大失,臣主之利與相異者也。何以明之哉?曰:主利在有能而任官,臣利在無能而得事;主利在有勞而爵祿,臣利在無功而富貴;主利在豪傑使能,臣利在朋黨用私。是以國地削而私家富,主上卑而大臣重。故主失勢而臣得國,主更稱蕃臣,而相室剖符,此人臣之所以譎主便私也。故當世之重臣,主變勢而得固寵者,十無二三。是其故何也?人臣之罪大也。臣有大罪者,其行欺主也,其罪當死亡也。智士者遠見,而畏於死亡,必不從重人矣。賢士者修廉,而羞與姦臣欺其主,必不從重人矣。是當塗者之徒屬,非愚而不知患者,必污而不避姦者也。大臣挾愚污之人,上與之欺主,下與之收利侵漁,朋黨比周,相與一口,惑主敗法,以亂士民,使國家危削,主上勞辱,此大罪也。臣有大罪而主弗禁,此大失也。使其主有大失於上,臣有大罪於下,索國之不亡者,不可得也。
번역 5
만승(萬乘)의 우환은 대신이 너무 무거운 것이고, 천승(千乘)의 우환은 좌우 측근을 너무 믿는 것이니, 이것이 군주들이 공통으로 겪는 우환이다. 또한 신하에게는 큰 죄가 있고, 군주에게는 큰 실수가 있으니, 신하와 군주의 이익은 서로 다른 것이다. 무엇으로 이를 밝히겠는가? 말하기를, 군주의 이익은 유능한 자가 관직을 맡는 데에 있고, 신하의 이익은 무능한 자가 일을 얻는 데에 있다. 군주의 이익은 공로가 있는 자가 작위와 녹봉을 받는 데에 있고, 신하의 이익은 공이 없어도 부귀해지는 데에 있다. 군주의 이익은 호걸이 능력을 부리는 데에 있고, 신하의 이익은 붕당이 사사로움을 쓰는 데에 있다.¹¹⁾ 이 때문에 나라의 땅은 깎여도 사사로운 집안은 부유해지고, 군주는 낮아져도 대신은 무거워진다. 그러므로 군주가 권세를 잃고 신하가 나라를 얻으며, 군주는 도리어 번신(蕃臣)이라 불리고, 재상의 집에서는 부절(符節)을 쪼개니,¹²⁾ 이것이 신하가 군주를 속이고 사사로움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당세의 권세 있는 신하로서, 군주가 바뀌고 형세가 변해도 총애를 굳게 얻는 자는, 열에 두셋도 없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신하의 죄가 크기 때문이다. 신하에게 큰 죄가 있다는 것은, 그 행실이 군주를 속이는 것이며, 그 죄는 마땅히 죽음에 해당한다. 지혜로운 선비는 멀리 내다보고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반드시 권세 있는 신하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어진 선비는 청렴을 닦고 간신과 함께 그 군주를 속이는 것을 부끄러워하므로, 반드시 권세 있는 신하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권력을 잡은 자의 무리는, 어리석어 우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더러워 간악함을 피하지 않는 자이다. 대신은 어리석고 더러운 사람들을 끼고, 위로는 그들과 함께 군주를 속이고, 아래로는 그들과 함께 이익을 거두고 침탈하며, 붕당을 이루고 무리를 지어, 서로 한입이 되어, 군주를 미혹시키고 법을 무너뜨려, 선비와 백성을 어지럽히고, 국가를 위태롭게 깎이게 하며, 군주를 수고롭고 욕되게 하니, 이것이 큰 죄이다. 신하에게 큰 죄가 있는데도 군주가 금하지 않으니, 이것이 큰 실수이다. 군주로 하여금 위에서 큰 실수가 있게 하고, 신하로 하여금 아래에서 큰 죄가 있게 하면서, 나라가 망하지 않기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주석
11) 군주와 신하의 이해관계 대립: 한비자 정치철학의 핵심적인 전제. 군주의 이익(공익)과 신하의 이익(사익)은 근본적으로 상충한다고 본다. 군주는 능력 위주의 공정한 시스템을 원하지만, 신하는 무능해도 사적인 연줄로 이익을 얻는 시스템을 원한다. 이 갈등을 통제하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법(法)이다.
12) 번신(蕃臣)·부부(剖符): ‘번신’은 제후국의 신하를 뜻한다. 군주가 자기 나라 안에서 도리어 신하의 신하처럼 되어버린 상황을 의미한다. ‘부부’는 부절을 쪼개는 행위로, 본래 군주가 신하에게 임무를 부여하며 내리는 신표(信標)이다. 재상의 집에서 부절을 쪼갠다는 것은, 신하가 군주의 고유 권한인 임면권과 명령권을 찬탈했음을 상징한다.
《한비자》 〈설난〉 번역 및 주석
원문 1
凡說之難:非吾知之,有以說之之難也;又非吾辯之,能明吾意之難也;又非吾敢橫失,而能盡之難也。凡說之難,在知所說之心,可以吾說當之。
번역 1
무릇 유세(遊說)의 어려움이란, 나의 아는 바가 부족하여 그것으로 설득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한 나의 변론이 부족하여 나의 뜻을 명확히 밝히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또한 내가 감히 거리낌 없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무릇 유세의 어려움은, 설득하려는 대상의 마음을 알아서, 나의 주장으로 그것에 부합시키는 데에 있다.¹⁾
주석
1) 유세(遊說)의 본질: 이 서두에서 한비자는 유세의 어려움이 지식(知), 언변(辯), 용기(敢)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진정한 어려움은 상대방, 즉 군주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춰 설득 전략을 구사하는 데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는 《설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원문 2
所說出於為名高者也,而說之以厚利,則見下節而遇卑賤,必棄遠矣。所說出於厚利者也,而說之以名高,則見無心而遠事情,必不收矣。所說陰為厚利而顯為名高者也,而說之以名高,則陽收其身而實疏之,說之以厚利,則陰用其言顯棄其身矣。此不可不察也。
번역 2
설득하려는 대상이 높은 명성을 추구하는 자일 때, 그에게 큰 이익으로 유세하면, 절개가 낮다고 여겨져 비천한 대우를 받고 반드시 버려져 멀어질 것이다. 설득하려는 대상이 큰 이익을 추구하는 자일 때, 그에게 높은 명성으로 유세하면, 성의가 없고 사정에 어둡다고 여겨져 반드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설득하려는 대상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추구하면서 겉으로는 높은 명성을 추구하는 척하는 자일 때, 그에게 높은 명성으로 유세하면, 겉으로는 그 사람을 받아들이나 실제로는 그를 멀리할 것이고, 그에게 큰 이익으로 유세하면, 속으로는 그 말을 쓰면서 겉으로는 그 사람을 버릴 것이다.²⁾ 이것은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석
2) 군주의 세 가지 심리 유형: 한비자는 군주의 동기를 세 가지로 분류하여 각기 다른 접근법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① 명예 추구형, ② 이익 추구형, ③ 위선형(겉으로는 명예, 속으로는 이익 추구). 유세가는 상대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배척당하거나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는 유세가 단순한 논리의 전달이 아니라 고도의 심리전임을 보여준다.
원문 3
夫事以密成,語以泄敗,未必其身泄之也,而語及所匿之事,如此者身危。彼顯有所出事,而乃以成他故,說者不徒知所出而已矣,又知其所以為,如此者身危。規異事而當,知者揣之外而得之,事泄於外,必以為己也,如此者身危。周澤未渥也,而語極知,說行而有功則德忘,說不行而有敗則見疑,如此者身危。貴人有過端,而說者明言禮義以挑其惡,如此者身危。貴人或得計而欲自以為功,說者與知焉,如此者身危。彊以其所不能為,止以其所不能已,如此者身危。故與之論大人則以為閒己矣,與之論細人則以為賣重,論其所愛則以為藉資,論其所憎則以為嘗己也。徑省其說則以為不智而拙之,米鹽博辯則以為多而交之。略事陳意則曰怯懦而不盡,慮事廣肆則曰草野而倨侮。此說之難,不可不知也。
번역 3
무릇 일은 비밀로써 이루어지고, 말은 누설됨으로써 실패한다. 반드시 자신이 직접 누설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 숨겨야 할 일에 미치면, 이러한 자는 몸이 위태롭다. 저쪽에서 겉으로 드러낸 일이 있는데, 실은 다른 까닭을 이루기 위한 것일 때, 유세하는 자가 단지 드러난 바를 알 뿐만 아니라 또한 그 까닭까지 안다면, 이러한 자는 몸이 위태롭다. 다른 일을 계획한 것이 들어맞았는데, 지혜로운 자가 밖으로 추측하여 그것을 알아냈을 때,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반드시 자기가 누설했다고 여겨질 것이니, 이러한 자는 몸이 위태롭다. 두터운 은혜가 아직 젖지 않았는데, 지극한 지혜를 말하여, 유세가 실행되어 공이 있으면 그 덕을 잊히고, 유세가 실행되지 않아 실패가 있으면 의심을 받으니, 이러한 자는 몸이 위태롭다. 귀한 사람에게 잘못의 단서가 있을 때, 유세하는 자가 예의(禮義)를 명백히 말하여 그 악행을 들추어내면, 이러한 자는 몸이 위태롭다. 귀한 사람이 혹 계책을 얻어 스스로 공을 삼고자 하는데, 유세하는 자가 그것을 함께 안다면, 이러한 자는 몸이 위태롭다.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하게 하고, 그만둘 수 없는 것을 그만두게 하면, 이러한 자는 몸이 위태롭다. 그러므로 그와 함께 대인(大人)을 논하면 자기를 이간질한다고 여기고, 그와 함께 소인(細人)을 논하면 권세를 판다고 여기며, 그가 아끼는 바를 논하면 그것을 이용하려 한다고 여기고, 그가 미워하는 바를 논하면 자기를 시험한다고 여긴다. 그 말을 간결하게 하면 지혜롭지 못하고 졸렬하다고 여기고, 쌀과 소금처럼 자잘하게 넓리 변론하면 말이 많고 뒤섞였다고 여긴다.³⁾ 일을 간략히 하고 뜻을 아뢰면 겁이 많아 말을 다하지 못한다고 하고, 일을 헤아림이 넓고 거리낌 없으면 거칠고 오만하다고 한다. 이것이 유세의 어려움이니, 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석
3) 미염박변(米鹽博辯): ‘쌀과 소금처럼 자잘한 것을 가지고 넓게 변론한다’는 뜻.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장황하고 현학적으로 말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표현이다. 이는 군주에게 지루함과 번잡함을 느끼게 하여 배척당하는 원인이 된다.
원문 4
凡說之務,在知飾所說之所矜而滅其所恥。彼有私急也,必以公義示而強之。其意有下也,然而不能己,說者因為之飾其美而少其不為也。其心有高也,而實不能及,說者為之舉其過而見其惡而多其不行也。有欲矜以智能,則為之舉異事之同類者,多為之地,使之資說於我,而佯不知也以資其智。欲內相存之言,則必以美名明之,而微見其合於私利也。欲陳危害之事,則顯其毀誹而微見其合於私患也。譽異人與同行者,規異事與同計者。有與同汙者,則必以大飾其無傷也;有與同敗者,則必以明飾其無失也。彼自多其力,則毋以其難概之也;自勇其斷,則無以其謫怒之;自智其計,則毋以其敗窮之。大意無所拂悟,辭言無所繫縻,然後極騁智辯焉,此道所得親近不疑而得盡辭也。伊尹為宰,百里奚為虜,皆所以干其上也,此二人者,皆聖人也,然猶不能無役身以進,如此其汙也。今以吾言為宰虜,而可以聽用而振世,此非能仕之所恥也。夫曠日離久,而周澤既渥,深計而不疑,引爭而不罪,則明割利害以致其功,直指是非以飾其身,以此相持,此說之成也。
번역 4
무릇 유세의 요체는, 설득하려는 대상이 자랑스러워하는 바를 꾸며주고 그가 부끄러워하는 바를 없애주는 데에 있다. 그에게 사사로운 급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공적인 명분을 보여주어 그를 강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의 뜻이 비루한 데가 있으나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면, 유세하는 자는 그를 위해 그 아름다움을 꾸며주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의 단점을 줄여주어야 한다. 그의 마음이 고상한 데가 있으나 실제로는 미치지 못하면, 유세하는 자는 그를 위해 그 허물을 들어 그 악함을 보여주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의 장점을 많게 해주어야 한다. 지혜와 능력으로 뽐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으면, 그를 위해 다른 일의 같은 종류를 들어, 여러 바탕을 마련해주어, 그가 나에게서 유세의 자산을 얻게 하고, 나는 모르는 척하여 그의 지혜를 도와주어야 한다. 안으로 서로 보존하려는 말을 하고자 하면, 반드시 아름다운 명분으로 그것을 밝히고, 은근히 그것이 사사로운 이익에 부합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위해(危害)로운 일을 아뢰고자 하면, 겉으로는 헐뜯음을 드러내고 은근히 그것이 사사로운 우환에 부합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칭찬할 때는 그와 동행하는 자와 함께하고, 다른 일을 계획할 때는 그와 함께 계책을 세운 자와 함께하라. 함께 더러운 일에 연루된 자가 있으면, 반드시 크게 꾸며 그것이 해가 없음을 보여주어야 하고, 함께 실패한 자가 있으면, 반드시 명백히 꾸며 그것이 실수가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가 스스로 자기 힘을 대단하게 여기면, 그 어려움으로 그를 꺾지 말고, 스스로 자기 결단을 용감하게 여기면, 그 꾸짖음으로 그를 노하게 하지 말며, 스스로 자기 계책을 지혜롭게 여기면, 그 실패로 그를 궁지에 몰지 말라. 큰 뜻을 거스르지 않고, 말에 얽매임이 없게 한 뒤에야, 지혜와 변론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니, 이것이 친밀해지고 의심받지 않으며 말을 다할 수 있게 되는 방법이다. 이윤(伊尹)은 요리사가 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포로가 되었으니, 모두 그 윗사람에게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성인(聖人)이었으나, 그럼에도 몸을 낮추어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처럼 더러웠던 것이다. 지금 나의 말로써 요리사나 포로가 되더라도, 등용되어 세상을 떨칠 수 있다면, 이는 벼슬할 줄 아는 자가 부끄러워할 바가 아니다. 무릇 오랜 세월이 지나 두터운 은혜가 이미 젖고, 깊은 계책을 내어도 의심하지 않으며, 논쟁을 끌어들여도 죄주지 않게 되면, 그때는 이해(利害)를 명확히 갈라 그 공을 이루고, 시비(是非)를 곧바로 지적하여 그 몸을 꾸미니, 이로써 서로를 지탱하는 것, 이것이 유세의 성공이다.
원문 5
昔者鄭武公欲伐胡,故先以其女妻胡君以娛其意。因問於群臣:「吾欲用兵,誰可伐者?」大夫關其思對曰:「胡可伐。」武公怒而戮之,曰:「胡,兄弟之國也,子言伐之何也?」胡君聞之,以鄭為親己,遂不備鄭,鄭人襲胡,取之。宋有富人,天雨牆壞,其子曰:「不築,必將有盜。」其鄰人之父亦云。暮而果大亡其財,其家甚智其子,而疑鄰人之父。此二人說者皆當矣,厚者為戮,薄者見疑,則非知之難也,處知則難也。故繞朝之言當矣,其為聖人於晉,而為戮於秦也。此不可不察。
번역 5
옛날 정(鄭)나라 무공(武公)이 호(胡)나라를 치고자 하여, 먼저 자기 딸을 호나라 군주에게 시집보내 그 뜻을 즐겁게 하였다. 이어서 여러 신하에게 묻기를, “내가 군대를 쓰고자 하는데, 누구를 칠 만한가?” 하니, 대부 관기사(關其思)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호나라를 칠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무공이 노하여 그를 죽이며 말하기를, “호나라는 형제의 나라이거늘, 그대가 치자고 말하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였다. 호나라 군주가 이를 듣고, 정나라가 자기를 친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정나라에 대비하지 않으니, 정나라 사람이 호나라를 습격하여 차지하였다. 송(宋)나라에 부자가 있었는데, 비가 와서 담이 무너졌다. 그 아들이 말하기를, “다시 쌓지 않으면, 반드시 도둑이 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이웃집의 아버지 또한 그렇게 말했다. 저물녘에 과연 큰 재물을 잃으니, 그 집에서는 자기 아들을 매우 지혜롭다고 여기고, 이웃집의 아버지를 의심하였다. 이 두 사람의 유세는 모두 타당하였으나, (관계가) 두터운 자는 죽임을 당하고, (관계가) 엷은 자는 의심을 받았으니, 곧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앎에 처신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요조(繞朝)의 말은 타당하였으나, 그는 진(晉)나라에서는 성인이 되었고, 진(秦)나라에서는 죽임을 당했다.⁴⁾ 이것은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석
4) 요조(繞朝): 춘추시대 진(秦)나라의 대부. 진(晉)나라와의 전투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진나라 군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려 진(晉)나라 군대가 철수하게 만들었다. 이 계책은 진(晉)나라에게는 이로웠으므로 그는 진(晉)나라에서 성인으로 칭송받았지만, 조국인 진(秦)나라에서는 군주를 속인 죄로 처형당했다. 같은 지혜로운 행동이라도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달라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원문 6
昔者彌子瑕有寵於衛君。衛國之法,竊駕君車者罪刖。彌子瑕母病,人閒往夜告彌子,彌子矯駕君車以出,君聞而賢之曰:「孝哉,為母之故,忘其刖罪。」異日,與君遊於果園,食桃而甘,不盡,以其半啗君,君曰:「愛我哉,忘其口味,以啗寡人。」及彌子色衰愛弛,得罪於君,君曰:「是固嘗矯駕吾車,又嘗啗我以餘桃。」故彌子之行未變於初也,而以前之所以見賢,而後獲罪者,愛憎之變也。故有愛於主則智當而加親,有憎於主則智不當見罪而加疏。故諫說談論之士,不可不察愛憎之主而後說焉。夫龍之為蟲也,柔可狎而騎也,然其喉下有逆鱗徑尺,若人有嬰之者則必殺人。人主亦有逆鱗,說者能無嬰人主之逆鱗,則幾矣。
번역 6
옛날 미자하(彌子瑕)가 위(衛)나라 군주의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의 법에, 몰래 군주의 수레를 몬 자는 발뒤꿈치를 베는 형벌[刖刑]에 처했다.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들자, 어떤 사람이 밤중에 몰래 가서 미자에게 알렸다. 미자가 군주의 명령이라 속이고 군주의 수레를 몰고 나가니, 군주가 듣고 그를 어질다고 여기며 말하기를, “효성스럽구나! 어머니를 위하여 발뒤꿈치가 잘리는 죄를 잊었도다.”라고 하였다. 다른 날, 군주와 함께 과수원에서 노닐다가, 복숭아를 먹는데 달아서 다 먹지 않고 그 절반을 군주에게 먹이니, 군주가 말하기를, “나를 사랑하는구나! 자기 입맛을 잊고 과인에게 먹이는구나.”라고 하였다. 미자하의 용모가 쇠하고 총애가 느슨해지자, 군주에게 죄를 얻었다. 군주가 말하기를, “이 자는 본래 일찍이 내 수레를 몰래 탔고, 또 일찍이 나에게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였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과 변함이 없었으나, 이전에는 어질다고 여겨졌던 까닭이 나중에는 죄를 얻게 된 것은, 사랑과 미움의 변화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의 사랑을 받으면 지혜가 들어맞아 더욱 친밀해지고, 군주의 미움을 받으면 지혜가 들어맞지 않아 죄를 받고 더욱 멀어진다. 그러므로 간언하고 유세하며 담론하는 선비는, 군주의 사랑과 미움을 살핀 뒤에 유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릇 용이라는 동물은, 유순하여 길들여 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구멍 아래에는 지름이 한 자나 되는 거꾸로 난 비늘[逆鱗]이 있는데, 만약 어떤 사람이 이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 군주에게도 또한 역린이 있으니, 유세하는 자가 능히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면, (성공에) 가까울 것이다.⁵⁾
주석
5) 역린(逆鱗): ‘거꾸로 난 비늘’.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돋아난 비늘로, 이곳을 건드리면 아무리 유순하던 용이라도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이는 군주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치명적인 약점이나 자존심을 비유하는 말로, 유세가는 군주의 역린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피해야만 목숨을 보전하고 유세에 성공할 수 있다는 한비자의 마지막 경고이다. 이 ‘역린’이라는 말은 오늘날까지도 ‘군주나 윗사람의 노여움’을 의미하는 단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한비자》 〈화씨〉 번역 및 주석
원문 1
楚人和氏得玉璞楚山中,奉而獻之厲王,厲王使玉人相之,玉人曰:「石也。」王以和為誑,而刖其左足。及厲王薨,武王即位,和又奉其璞而獻之武王,武王使玉人相之,又曰「石也」,王又以和為誑,而刖其右足。武王薨,文王即位,和乃抱其璞而哭於楚山之下,三日三夜,泣盡而繼之以血。王聞之,使人問其故,曰:「天下之刖者多矣,子奚哭之悲也?」和曰:「吾非悲刖也,悲夫寶玉而題之以石,貞士而名之以誑,此吾所以悲也。」王乃使玉人理其璞而得寶焉,遂命曰:「和氏之璧。」
번역 1
초(楚)나라 사람 화씨(和氏)가 초나라 산중에서 옥의 원석[玉璞]을 얻어,¹⁾ 그것을 받들어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옥 다루는 장인[玉人]을 시켜 그것을 감정하게 하니, 옥인이 말하기를, “돌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화씨가 속였다고 여겨, 그의 왼쪽 발뒤꿈치를 베었다.[刖]²⁾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가 또 그 원석을 받들어 무왕에게 바쳤다. 무왕이 옥인을 시켜 그것을 감정하게 하니, 또 말하기를, “돌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또 화씨가 속였다고 여겨, 그의 오른쪽 발뒤꿈치를 베었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마침내 그 원석을 끌어안고 초나라 산 아래에서 우니, 사흘 밤낮으로 눈물이 다하자 피가 뒤를 이었다. 왕이 이를 듣고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묻기를, “천하에 발뒤꿈치를 잘린 자가 많은데, 그대는 어찌 그리 슬피 우는가?” 하니, 화씨가 말하기를, “저는 발뒤꿈치가 잘린 것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보배로운 옥을 돌이라 이름 붙이고, 정직한 선비를 거짓말쟁이라 이름 붙이는 것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에 옥인을 시켜 그 원석을 다듬게 하여 보물을 얻었고, 마침내 이름하여 ‘화씨의 구슬[和氏之璧]’이라 하였다.³⁾
주석
1) 옥박(玉璞): 아직 가공되지 않아 돌 속에 섞여 있는 옥의 원석. 겉보기에는 평범한 돌과 같아 전문가가 아니면 그 가치를 알아보기 어렵다. 이는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비유로, 아직 군주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법술(法術) 사상의 가치를 상징한다.
2) 월(刖): 고대 중국의 오형(五刑) 중 하나로, 발뒤꿈치나 발목을 자르는 잔혹한 형벌.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군주의 무지와 그로 인해 충신이 겪는 가혹한 박해를 상징한다.
3) 화씨지벽(和氏之璧):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보물 중 하나로, 천하의 귀한 보배 또는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한 재능을 상징하는 고사로 널리 인용된다. 한비자는 이 고사를 통해 자신의 법술 사상이 바로 이 화씨지벽과 같다고 주장한다. 즉, 그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군주들 때문에 자신과 같은 법술지사(法術之士)들이 화씨처럼 억울한 고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원문 2
夫珠玉人主之所急也,和雖獻璞而未美,未為主之害也,然猶兩足斬而寶乃論,論寶若此其難也。今人主之於法術也,未必和璧之急也,而禁群臣士民之私邪;然則有道者之不僇也,特帝王之璞未獻耳。主用術則大臣不得擅斷,近習不敢賣重;官行法則浮萌趨於耕農,而游士危於戰陳。則法術者乃群臣士民之所禍也。人主非能倍大臣之議,越民萌之誹,獨周乎道言也。則法術之士雖至死亡,道必不論矣。
번역 2
무릇 구슬과 옥은 군주가 급히 원하는 바이지만, 화씨가 비록 원석을 바쳤을 때 아직 아름답지 않았으나, 군주에게 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두 발이 잘린 뒤에야 보배가 논해졌으니, 보배를 논하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지금 군주가 법술(法術)에 대해,⁴⁾ 반드시 화씨의 구슬만큼 급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면서도, 여러 신하와 선비, 백성의 사사로운 사악함을 금하려 한다. 그렇다면 도(道)를 가진 자[有道者]가 죽임을 당하지 않는 것은,⁵⁾ 다만 제왕의 원석[璞]이 아직 바쳐지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군주가 술(術)을 사용하면 대신(大臣)이 제멋대로 결단하지 못하고, 측근[近習]이 감히 권세를 팔지 못한다. 관리가 법(法)을 행하면 정처 없이 떠도는 백성[浮萌]은 농사일에 힘쓰게 되고, 유세하는 선비[游士]는 전쟁터에서 위태로워진다.⁶⁾ 그렇다면 법술이란 여러 신하와 선비, 백성에게는 재앙인 것이다. 군주가 대신의 의논을 배반하고 백성의 비방을 뛰어넘어, 홀로 도(道)의 말에 두루 통하지 못한다면, 법술을 아는 선비는 비록 죽음에 이르더라도 그 도는 반드시 논해지지 않을 것이다.
주석
4) 법술(法術): 법가 사상의 핵심 개념. ‘법(法)’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성문법, ‘술(術)’은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고 다루는 통치 기술을 의미한다. 한비자는 이 법과 술을 통해 군주의 절대 권력을 확립하고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5) 유도자(有道者): 여기서 ‘도(道)를 가진 자’는 도가(道家)의 성인이 아니라, 올바른 통치 ‘도(道)’, 즉 법술을 체득한 선비를 가리킨다. 한비자 자신과 같은 법가 사상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6) 부맹(浮萌)·유사(游士): ‘부맹’은 뿌리 없이 떠다니는 싹이라는 뜻으로,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백성을 가리킨다. ‘유사’는 벼슬을 구하며 각국을 떠돌아다니는 유세객을 의미한다. 법가에서는 농업과 전쟁(耕戰)을 국가 생산력의 근본으로 보았으므로, 이들은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비생산적인 계층으로 간주하여 억제하고자 했다. 법술이 시행되면 기존의 기득권층뿐만 아니라 이러한 계층까지도 위협을 느끼게 됨을 보여준다.
원문 3
昔者吳起教楚悼王以楚國之俗曰:「大臣太重,封君太眾,若此則上偪主而下虐民,此貧國弱兵之道也。不如使封君之子孫三世而收爵祿,絕滅百吏之祿秩,損不急之枝官,以奉選練之士。」悼王行之期年而薨矣,吳起枝解於楚。商君教秦孝公以連什伍,設告坐之過,燔詩書而明法令,塞私門之請而遂公家之勞,禁游宦之民而顯耕戰之士。孝公行之,主以尊安,國以富強,八年而薨,商君車裂於秦。楚不用吳起而削亂,秦行商君法而富強,二子之言也已當矣,然而枝解吳起而車裂商君者何也?大臣苦法而細民惡治也。當今之世,大臣貪重,細民安亂,甚於秦、楚之俗,而人主無悼王、孝公之聽,則法術之士,安能蒙二子之危也而明己之法術哉!此世所以亂無霸王也。
번역 3
옛날 오기(吳起)가 초(楚)나라 도왕(悼王)에게 초나라의 풍속에 대해 가르쳐 말하기를, “대신이 너무 무겁고, 봉토를 받은 군주가 너무 많습니다. 이와 같으면 위로는 군주를 핍박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학대하니, 이는 나라를 가난하게 하고 군대를 약하게 하는 길입니다. 봉토를 받은 군주의 자손은 3대가 지나면 작위와 녹봉을 거두고, 모든 관리의 녹봉과 질서를 끊어 없애며, 급하지 않은 지엽적인 관직을 줄여, 그것으로 정예 병사를 봉양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도왕이 이를 시행한 지 일 년 만에 죽으니, 오기는 초나라에서 사지가 찢겨 죽었다.[枝解]⁷⁾ 상군(商君)은 진(秦)나라 효공(孝公)에게 십오(什伍)를 연대하게 하고, 고발하지 않으면 연좌되는 죄를 설치하며, 《시경》과 《서경》을 불태워 법령을 명확히 하고,⁸⁾ 사사로운 가문의 청탁을 막아 공적인 노고를 이루게 하며, 벼슬을 구하며 떠도는 백성을 금하고 농업과 전쟁에 힘쓰는 선비를 드러내도록 가르쳤다. 효공이 이를 시행하여, 군주는 존귀하고 편안해졌으며, 나라는 부유하고 강해졌다. (그러나) 8년 만에 죽으니, 상군은 진나라에서 수레에 찢겨 죽었다.[車裂]⁹⁾ 초나라는 오기를 쓰지 않아 깎이고 어지러워졌고, 진나라는 상군의 법을 행하여 부유하고 강해졌으니, 두 사람의 말은 이미 타당하였다. 그럼에도 오기의 사지를 찢고 상군을 수레로 찢어 죽인 까닭은 무엇인가? 대신은 법을 괴로워하고, 소인배 백성은 다스려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은, 대신은 권세를 탐하고, 소인배 백성은 혼란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 진나라와 초나라의 풍속보다 심한데, 군주는 도왕이나 효공과 같은 들음이 없으니, 법술을 아는 선비가 어찌 능히 두 사람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법술을 밝히겠는가! 이것이 세상이 어지러워 패왕(霸王)이 없는 까닭이다.
주석
7) 오기(吳起)·지해(枝解): 오기는 전국시대 초기의 뛰어난 병법가이자 개혁가이다. 위(魏)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서 도왕의 신임을 얻어 귀족의 특권을 제한하는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으나, 그에게 불만을 품은 귀족 세력에 의해 도왕이 죽자마자 활에 맞아 죽고 시신은 사지가 찢기는 형벌(枝解)을 당했다.
8) 상군(商君)·번시서(燔詩書): 상군은 상앙(商鞅)을 말한다. 진 효공의 지지 아래 변법(變法)을 단행하여 진나라가 통일 제국으로 발전하는 기틀을 닦았다. ‘번시서’는 유가의 경전인 《시경》과 《서경》을 불태웠다는 뜻으로, 이는 기존의 도덕적, 인습적 권위를 부정하고 오직 군주가 제정한 법령만을 유일한 가치 기준으로 삼으려는 법가 사상의 급진성을 보여준다. 훗날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사상적 원류로 평가된다.
9) 거열(車裂): 사지를 각각 다른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는 극형. 상앙은 개혁으로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지만, 법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여 원한을 많이 샀다. 특히 태자의 스승을 처벌한 일로 태자(훗날의 혜문왕)의 미움을 사, 효공이 죽자마자 반역죄로 몰려 이 형벌을 당했다. 오기와 상앙의 사례는 법술지사가 아무리 옳은 개혁을 하더라도, 군주의 절대적인 보호 없이는 기득권 세력의 보복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한비자의 핵심 논거이다.
《한비자》 〈간겁시신〉 번역 및 주석
원문 1
凡姦臣皆欲順人主之心以取親幸之勢者也。是以主有所善,臣從而譽之;主有所憎,臣因而毀之。凡人之大體,取舍同者則相是也,取舍異者則相非也。今人臣之所譽者,人主之所是也,此之謂同取。人臣之所毀者,人主之所非也,此之謂同舍。夫取舍合而相與逆者,未嘗聞也,此人臣之所以取信幸之道也。夫姦臣得乘信幸之勢以毀譽進退群臣者,人主非有術數以御之也,非參驗以審之也,必將以曩之合己信今之言,此幸臣之所以得欺主成私者也。故主必欺於上,而臣必重於下矣,此之謂擅主之臣。國有擅主之臣,則群下不得盡其智力以陳其忠,百官之吏不得奉法以致其功矣。何以明之?夫安利者就之,危害者去之,此人之情也。今為臣盡力以致功,竭智以陳忠者,其身困而家貧,父子罹其害;為姦利以弊人主,行財貨以事貴重之臣者,身尊家富,父子被其澤;人焉能去安利之道而就危害之處哉?治國若此其過也,而上欲下之無姦,吏之奉法,其不可得亦明矣。故左右知貞信之不可以得安利也,必曰:「我以忠信事上積功勞而求安,是猶盲而欲知黑白之情,必不幾矣。若以道化行正理不趨富貴事上而求安,是猶聾而欲審清濁之聲也,愈不幾矣。二者不可以得安,我安能無相比周、蔽主上、為姦私以適重人哉?」此必不顧人主之義矣。其百官之吏,亦知方正之不可以得安也,必曰:「我以清廉事上而求安,若無規矩而欲為方圓也,必不幾矣。若以守法不朋黨治官而求安,是猶以足搔頂也,愈不幾也。二-者不可以得安,能無廢法行私以適重人哉?」此必不顧君上之法矣。故以私為重人者眾,而以法事君者少矣。是以主孤於上而臣成黨於下,此田成之所以弒簡公者也。
번역 1
무릇 간사한 신하[姦臣]는 모두 군주의 마음에 순응하여 친밀함과 총애의 권세를 얻으려는 자들이다. 이 때문에 군주가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신하는 따라서 그것을 칭찬하고, 군주가 미워하는 바가 있으면 신하는 인하여 그것을 헐뜯는다. 무릇 사람의 대체적인 속성은, 취하고 버리는 바가 같은 자는 서로 옳다고 여기고, 취하고 버리는 바가 다른 자는 서로 그르다고 여긴다. 지금 신하가 칭찬하는 바는 군주가 옳다고 여기는 바이니, 이를 일러 ‘함께 취함[同取]’이라 한다. 신하가 헐뜯는 바는 군주가 그르다고 여기는 바이니, 이를 일러 ‘함께 버림[同舍]’이라 한다. 무릇 취하고 버리는 바가 합치하는데도 서로 거스르는 경우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것이 신하가 신임과 총애를 얻는 방법이다. 무릇 간신이 신임과 총애의 권세를 타고 헐뜯음과 칭찬으로써 여러 신하를 내치고 등용하는데, 군주가 술수(術數)로써 그들을 제어하지 않고, 참고하고 검증하여[參驗] 살피지 않는다면, 반드시 예전에 자기와 뜻이 맞았다는 이유로 지금의 말을 믿을 것이니, 이것이 총애받는 신하가 군주를 속이고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반드시 위에서 속임을 당하고, 신하는 반드시 아래에서 권세가 무거워질 것이니, 이를 일러 ‘군주를 독점하는 신하[擅主之臣]’라 한다. 나라에 군주를 독점하는 신하가 있으면, 여러 아랫사람은 그 지혜와 힘을 다하여 충성을 아뢸 수 없고, 모든 관리들은 법을 받들어 그 공을 이룰 수 없게 된다. 무엇으로 이를 밝히겠는가? 무릇 편안하고 이로운 것은 따르고, 위태롭고 해로운 것은 피하는 것이, 이것이 사람의 실정이다. 지금 신하가 되어 힘을 다해 공을 이루고, 지혜를 다해 충성을 아뢰는 자는 그 몸이 곤궁하고 집안이 가난하여 부자가 그 해를 입고, 간사한 이익을 위해 군주를 가리고, 재물을 써서 권세 있고 존귀한 신하를 섬기는 자는 몸이 존귀해지고 집안이 부유해져 부자가 그 은택을 입으니, 사람이 어찌 편안하고 이로운 길을 버리고 위태롭고 해로운 곳으로 나아가겠는가? 나라를 다스림이 이처럼 잘못되었는데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간사함이 없기를 바라고, 관리가 법을 받들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함이 또한 명백하다. 그러므로 좌우의 측근들은 정직하고 신의가 있어도 편안함과 이로움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반드시 말하기를, “내가 충성과 신의로 윗사람을 섬기고 공로를 쌓아 편안함을 구하는 것은, 이는 장님이 흑백의 실정을 알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가깝지 않다. 만약 도의 교화로써 바른 이치를 행하고 부귀에 달려가지 않으며 윗사람을 섬겨 편안함을 구하는 것은, 이는 귀머거리가 맑고 탁한 소리를 분별하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 더욱 가깝지 않다. 두 가지 방법으로는 편안함을 얻을 수 없으니, 내가 어찌 서로 무리를 짓고, 군주를 가리며, 간사하고 사사로운 짓을 하여 권세 있는 신하에게 영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할 것이다. 이는 반드시 군주의 의(義)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그 모든 관리들 또한, 방정(方正)함으로는 편안함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반드시 말하기를, “내가 청렴함으로 윗사람을 섬겨 편안함을 구하는 것은, 규구(規矩) 없이 사각형과 원을 만들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가깝지 않다. 만약 법을 지키고 붕당을 짓지 않으며 관직을 다스려 편안함을 구하는 것은, 이는 발로 정수리를 긁는 것과 같으니, 더욱 가깝지 않다. 두 가지 방법으로는 편안함을 얻을 수 없으니, 어찌 법을 폐하고 사사로움을 행하여 권세 있는 신하에게 영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할 것이다. 이는 반드시 군주의 법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사로움으로 권세 있는 신하를 위하는 자는 많아지고, 법으로 군주를 섬기는 자는 적어질 것이다. 이 때문에 군주는 위에서 외로워지고 신하는 아래에서 붕당을 이루니, 이것이 전성(田成)이 간공(簡公)을 시해한 까닭이다.¹⁾
주석
1) 전성(田成)이 간공(簡公)을 시해한 사건: 전성(田成)은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대부 전상(田常)을 말한다. 그는 군주인 간공(簡公)의 권위를 무력화하고, 사사로이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민심을 얻었으며, 조정의 신하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붕당을 형성했다. 결국 군주 간공은 고립되었고, 전상은 그를 시해하고 정권을 찬탈했다(B.C. 481). 이는 군주가 고립되고 신하가 붕당을 이루었을 때 발생하는 비극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되었다.
원문 2
夫有術者之為人臣也,得效度數之言,上明主法,下困姦臣,以尊主安國者也。是以度數之言得效於前,則賞罰必用於後矣。人主誠明於聖人之術,而不苟於世俗之言,循名實而定是非,因參驗而審言辭。是以左右近習之臣,知偽詐之不可以得安也,必曰:「我不去姦私之行盡力竭智以事主,而乃以相與比周妄毀譽以求安,是猶負千鈞之重,陷於不測之淵而求生也,必不幾矣。」百官之吏,亦知為姦利之不可以得安也,必曰:「我不以清廉方正奉法,乃以貪污之心枉法以取私利,是猶上高陵之顛,墮峻谿之下而求生,必不幾矣。」安危之道若此其明也,左右安能以虛言惑主,而百官安敢以貪漁下?是以臣得陳其忠而不弊,下得守其職而不怨。此管仲之所以治齊,而商君之所以強秦也。從是觀之,則聖人之治國也,固有使人不得不愛我之道,而不恃人之以愛為我也。恃人之以愛為我者危矣,恃吾不可不為者安矣。夫君臣非有骨肉之親,正直之道可以得利,則臣盡力以事主;正直之道不可以得安,則臣行私以干上。明主知之,故設利害之道以示天下而已矣。夫是以人主雖不口教百官,不目索姦邪,而國已治矣。人主者,非目若離婁乃為明也,非耳若師曠乃為聰也。目必,不任其數,而待目以為明,所見者少矣,非不弊之術也。耳必,不因其勢,而待耳以為聰,所聞者寡矣,非不欺之道也。明主者,使天下不得不為己視,天下不得不為己聽。故身在深宮之中而明照四海之內,而天下弗能蔽、弗能欺者何也?闇亂之道廢,而聰明之勢興也。故善任勢者國安,不知因其勢者國危。古秦之俗,君臣廢法而服私,是以國亂兵弱而主卑。商君說秦孝公以變法易俗而明公道,賞告姦,困末作而利本事。當此之時,秦民習故俗之有罪可以得免、無功可以得尊顯也,故輕犯新法。於是犯之者其誅重而必,告之者其賞厚而信,故姦莫不得而被刑者眾,民疾怨而眾過日聞。孝公不聽,遂行商君之法,民後知有罪之必誅,而私姦者眾也,故民莫犯,其刑無所加。是以國治而兵強,地廣而主尊。此其所以然者,匿罪之罰重,而告姦之賞厚也。此亦使天下必為己視聽之道也。至治之法術已明矣,而世學者弗知也。
번역 2
무릇 술(術)을 가진 자가 신하가 됨에 있어서는, 법도와 술수[度數]의 말을 증험하게 하여, 위로는 군주의 법을 밝히고 아래로는 간신을 곤경에 빠뜨려, 군주를 높이고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자이다. 이 때문에 법도와 술수의 말이 앞에서 증험되면, 상벌이 반드시 뒤에서 쓰이게 된다. 군주가 진실로 성인의 술(術)에 밝고, 세속의 말에 구차하지 않으며, 이름과 실체[名實]를 따라 시비를 정하고, 참고하고 검증하여[參驗] 언사를 살핀다. 이 때문에 좌우의 측근 신하들은, 거짓과 속임수로는 편안함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반드시 말하기를, “내가 간사하고 사사로운 행실을 버리고 힘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여 군주를 섬기지 않고, 서로 무리를 지어 함부로 헐뜯고 칭찬하여 편안함을 구하는 것은, 이는 천鈞의 무게를 지고 예측할 수 없는 깊은 연못에 빠져 살기를 구하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가깝지 않다.”라고 할 것이다. 모든 관리들 또한, 간사한 이익을 취해서는 편안함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반드시 말하기를, “내가 청렴하고 방정하게 법을 받들지 않고, 탐욕스럽고 더러운 마음으로 법을 왜곡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는 것은, 이는 높은 언덕 꼭대기에 올라 가파른 계곡 아래로 떨어져 살기를 구하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가깝지 않다.”라고 할 것이다. 편안함과 위태로움의 길이 이처럼 명백한데, 좌우 측근이 어찌 헛된 말로 군주를 미혹시킬 수 있으며, 모든 관리가 어찌 감히 탐욕으로 아랫사람을 침탈하겠는가? 이 때문에 신하는 그 충성을 아뢰어도 가려지지 않고, 아랫사람은 그 직분을 지켜도 원망하지 않는다. 이것이 관중(管仲)이 제(齊)나라를 다스린 까닭이고, 상군(商君)이 진(秦)나라를 강하게 한 까닭이다. 이로부터 보건대,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진실로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방법이 있는 것이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줄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줄 것을 믿는 자는 위태롭고, 내가 하는 바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을 믿는 자는 편안하다. 무릇 군신(君臣)은 골육의 친함이 없으니, 정직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면 신하는 힘을 다해 군주를 섬기고, 정직한 방법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 없으면 신하는 사사로움을 행하여 윗사람에게 나아간다. 현명한 군주는 이를 알므로, 이해(利害)의 길을 설치하여 천하에 보여줄 뿐이다. 이 때문에 군주가 비록 입으로 모든 관리를 가르치지 않고, 눈으로 간사하고 사악함을 찾지 않아도, 나라는 이미 다스려진다. 군주 된 자는, 눈이 이루(離婁)와 같아야 비로소 밝은 것이 아니며, 귀가 사광(師曠)과 같아야 비로소 총명한 것이 아니다.²⁾ 눈이 반드시, 그 술수(術數)에 맡기지 않고 눈에 의지하여 밝고자 한다면, 보이는 바가 적을 것이니, 가려지지 않는 방법이 아니다. 귀가 반드시, 그 권세[勢]에 의거하지 않고 귀에 의지하여 총명하고자 한다면, 들리는 바가 적을 것이니, 속지 않는 방법이 아니다. 현명한 군주는, 천하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천하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듣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몸은 깊은 궁궐 안에 있으면서도 사해(四海)의 안을 밝게 비추고, 천하가 능히 가리거나 속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어둡고 혼란한 방법이 폐지되고, 총명(聰明)의 권세가 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세를 잘 쓰는 자는 나라가 편안하고, 그 권세에 의거할 줄 모르는 자는 나라가 위태롭다. 옛날 진나라의 풍속은, 군신이 법을 폐하고 사사로움에 복종하였으므로, 나라가 어지럽고 군대가 약하며 군주가 낮았다. 상군이 진 효공에게 변법(變法)으로 풍속을 바꾸고 공적인 도리를 밝히며, 간악함을 고발하면 상을 주고, 말단 산업[末作]을 곤궁하게 하고 근본 산업[本事]을 이롭게 하라고 유세하였다. 이때를 당하여, 진나라 백성은 옛 풍속에 익숙하여 죄가 있어도 면죄받을 수 있고 공이 없어도 존귀하고 드러날 수 있다고 여겼으므로, 가벼이 새로운 법을 어겼다. 이에 법을 어긴 자는 그 주살이 무겁고 반드시 시행되었고, 고발한 자는 그 상이 두텁고 신뢰가 있었으므로, 간악한 자는 드러나지 않는 이가 없고 형벌 받는 자가 많았으며, 백성은 괴로워하고 원망하며 많은 과실이 날마다 들려왔다. 효공은 듣지 않고 마침내 상군의 법을 행하니, 백성은 나중에 죄가 있으면 반드시 주살되고 사사로운 간악함을 저지르는 자가 많음을 알았으므로, 백성 중에 감히 법을 어기는 자가 없어 그 형벌을 더할 곳이 없었다. 이 때문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군대가 강해졌으며, 땅이 넓어지고 군주가 존귀해졌다. 이렇게 된 까닭은, 죄를 숨긴 것에 대한 벌이 무겁고, 간악함을 고발한 것에 대한 상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이 또한 천하로 하여금 반드시 자신을 위해 보고 듣게 하는 방법이다. 지극한 다스림의 법술은 이미 명백한데도, 세상의 학자들은 알지 못한다.
주석
2) 이루(離婁)·사광(師曠): 이루는 고대 전설상의 인물로, 백 보 밖에서도 털끝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사광은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유명한 악사로, 눈은 멀었으나 소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한비자는 군주가 개인의 뛰어난 감각(시력, 청력)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모든 신하와 백성이 군주의 눈과 귀가 되게 하는 시스템, 즉 법술(法術)과 권세(勢)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문 3
且夫世之愚學,皆不知治亂之情,讘䛟多誦先古之書,以亂當世之治;智慮不足以避阱井之陷,又妄非有術之士。聽其言者危,用其計者亂,此亦愚之至大,而患之至甚者也。俱與有術之士,有談說之名,而實相去千萬也,此夫名同而實有異者也。夫世愚學之人比有術之士也,猶螘垤之比大陵也,其相去遠矣。而聖人者,審於是非之實,察於治亂之情也。故其治國也,正明法,陳嚴刑,將以救群生之亂,去天下之禍,使強不陵弱,眾不暴寡,耆老得遂,幼孤得長,邊境不侵,君臣相親,父子相保,而無死亡係虜之患,此亦功之至厚者也。愚人不知,顧以為暴。愚者固欲治而惡其所以治,皆惡危而喜其所以危者。何以知之?夫嚴刑重罰者,民之所惡也,而國之所以治也;哀憐百姓、輕刑罰者,民之所喜,而國之所以危也。聖人為法國者,必逆於世,而順於道德。知之者,同於義而異於俗;弗知之者,異於義而同於俗。天下知之者少,則義非矣。
번역 3
또한 무릇 세상의 어리석은 학자들은, 모두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의 실정을 알지 못하고, 재잘거리며 옛날의 책을 많이 외워, 그것으로 당세의 다스림을 어지럽힌다. 지혜와 생각이 함정이나 우물의 빠짐을 피하기에도 부족하면서, 또 함부로 술(術)을 가진 선비를 비난한다. 그 말을 듣는 자는 위태롭고, 그 계책을 쓰는 자는 혼란스러우니, 이 또한 어리석음의 지극히 큰 것이요, 우환의 지극히 심한 것이다. 모두 술을 가진 선비와 더불어, 담론하고 유세한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제로는 서로의 거리가 천만 리이니, 이것이 무릇 이름은 같으나 실체는 다른 것이다. 무릇 세상의 어리석은 학자들을 술을 가진 선비에 비유하는 것은, 개미둑을 큰 언덕에 비유하는 것과 같으니, 그 서로의 거리가 멀다. 그러나 성인(聖人)이란, 시비의 실체를 살피고,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의 실정을 살피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다스림에, 법을 바르고 명확하게 하고, 엄한 형벌을 펼쳐, 장차 뭇 생명의 혼란을 구제하고 천하의 재앙을 제거하여,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많은 자가 적은 자에게 포악하게 굴지 못하게 하며, 늙은이가 제 명을 다하게 하고, 어린 고아가 자라게 하며, 국경이 침범당하지 않고, 군신이 서로 친하며, 부자가 서로를 보전하여, 죽거나 사로잡히는 우환이 없게 하니, 이 또한 공이 지극히 두터운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고, 도리어 포악하다고 여긴다. 어리석은 자는 진실로 다스려지기를 바라면서도 그 다스리는 방법은 싫어하고, 모두 위태로움을 싫어하면서도 그 위태로워지는 방법은 기뻐한다. 무엇으로 이를 아는가? 무릇 엄한 형벌과 무거운 벌은, 백성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나라가 다스려지는 까닭이다. 백성을 가엾게 여기고 형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백성이 기뻐하는 바이지만,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까닭이다. 성인이 나라를 위해 법을 만드는 것은, 반드시 세상의 흐름에는 거스르지만 도덕(道德)에는 순응한다.³⁾ 이를 아는 자는 의(義)와는 같고 세속과는 다르며, 이를 알지 못하는 자는 의와는 다르고 세속과는 같다. 천하에 이를 아는 자가 적으면, 의(義)가 그릇된 것이 된다.
주석
3) 도덕(道德): 여기서의 ‘도덕’은 유가에서 말하는 인의(仁義)와 같은 윤리적 덕목이 아니다. ‘도(道)’는 국가를 다스리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를, ‘덕(德)’은 그 원리가 구체적으로 발현된 공적이나 결과를 의미한다. 즉, 법가에서 말하는 ‘도덕’은 ‘통치의 원리와 그 실현’이라는 정치적 개념에 가깝다.
원문 4
處非道之位,被眾口之譖,溺於當世之言,而欲當嚴天子而求安,幾不亦難哉!此夫智士所以至死而不顯於世者也。楚莊王之弟春申君有愛妾曰余,春申君之正妻子曰甲,余欲君之棄其妻也,因自傷其身以視君而泣,曰:「得為君之妾,甚幸。雖然,適夫人非所以事君也,適君非所以事夫人也。身故不肖,力不足以適二主,其勢不俱適,與其死夫人所者,不若賜死君前。妾以賜死,若復幸於左右,願君必察之,無為人笑。」君因信妾余之詐,為棄正妻。余又欲殺甲而以其子為後,因自裂其親身衣之,以示君而泣,曰:「余之得幸君之日久矣,甲非弗知也,今乃欲強戲余,余與爭之,至裂余之衣,而此子之不孝,莫大於此矣。」君怒,而殺甲也。故妻以妾余之詐棄,而子以之死。從是觀之,父之愛子也,猶可以毀而害也。君臣之相與也,非有父子之親也,而群臣之毀言非特一妾之口也,何怪夫賢聖之戮死哉!此商君之所以車裂於秦,而吳起之所以枝解於楚者也。凡人臣者,有罪固不欲誅,無功者皆欲尊顯。而聖人之治國也,賞不加於無功,而誅必行於有罪者也。然則有術數者之為人也,固左右姦臣之所害,非明主弗能聽也。
번역 4
올바른 도(道)가 아닌 자리에 처하고, 뭇 입의 참소를 입으며, 당세의 말에 빠져 있으면서, 엄한 천자를 대하여 편안함을 구하고자 하니, 거의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이것이 무릇 지혜로운 선비가 죽음에 이르도록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초 장왕(莊王)의 동생 춘신군(春申君)에게 여(余)라는 애첩이 있었고, 춘신군의 정실부인의 아들은 갑(甲)이라 하였다. 여는 군주가 그 아내를 버리게 하고자 하여, 스스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어 군주에게 보이며 울면서 말하기를, “군주의 첩이 된 것을 매우 다행으로 여깁니다. 비록 그러하나, 부인을 섬기는 것으로는 군주를 섬길 수 없고, 군주를 섬기는 것으로는 부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몸이 본래 불초하여, 두 주인을 섬기기에는 힘이 부족합니다. 그 형세가 함께 섬길 수 없으니, 부인에게서 죽느니, 차라리 군주 앞에서 죽음을 하사받는 것이 낫겠습니다. 첩이 죽음을 하사받은 뒤, 만약 다시 좌우 측근에게 총애를 받게 되시거든, 원컨대 군주께서는 반드시 이를 살피시어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군주는 이로 인해 첩 여의 속임수를 믿고, 정실부인을 버렸다. 여는 또 갑을 죽이고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자 하여, 스스로 자기 몸의 옷을 찢고, 그것을 군주에게 보이며 울면서 말하기를, “제가 군주의 총애를 받은 지 오래되었음을, 갑이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저를 억지로 희롱하고자 하여, 제가 그와 다투다가 제 옷을 찢기에 이르렀으니, 이 아들의 불효가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노하여, 갑을 죽였다. 그러므로 아내는 첩 여의 속임수로 버려지고, 아들은 그로 인해 죽었다. 이로부터 보건대, 아비가 아들을 사랑함도, 오히려 헐뜯음으로 해칠 수 있는 것이다. 군신이 서로 사귐은, 부자의 친함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 신하의 헐뜯는 말은 단지 한 첩의 입에 그치지 않으니, 어찌 현명하고 성스러운 이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겠는가! 이것이 상군이 진나라에서 수레에 찢겨 죽고, 오기가 초나라에서 사지가 찢겨 죽은 까닭이다. 무릇 신하 된 자는, 죄가 있어도 진실로 주살되기를 원치 않고, 공이 없는 자는 모두 존귀하고 드러나기를 원한다. 그러나 성인이 나라를 다스림은, 상을 공 없는 자에게 더하지 않고, 주살을 반드시 죄 있는 자에게 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술수(術數)를 가진 자의 사람됨은, 진실로 좌우의 간신들에게 해를 입는 바이니, 현명한 군주가 아니면 능히 듣지 못한다.
원문 5
世之學術者說人主,不曰「乘威嚴之勢以困姦邪之臣」,而皆曰「仁義惠愛而已矣」。世主美仁義之名而不察其實,是以大者國亡身死,小者地削主卑。何以明之?夫施與貧困者,此世之所謂仁義;哀憐百姓不忍誅罰者,此世之所謂惠愛也。夫有施與貧困,則無功者得賞;不忍誅罰,則暴亂者不止。國有無功得賞者,則民不外務當敵斬首,內不急力田疾作,皆欲行貨財、事富貴、為私善、立名譽以取尊官厚俸。故姦私之臣愈眾,而暴亂之徒愈勝,不亡何待?夫嚴刑者,民之所畏也;重罰者,民之所惡也。故聖人陳其所畏以禁其邪,設其所惡以防其姦。是以國安而暴亂不起。吾以是明仁義愛惠之不足用,而嚴刑重罰之可以治國也。無捶策之威,銜橛之備,雖造父不能以服馬。無規矩之法,繩墨之端,雖王爾不能以成方圓。無威嚴之勢,賞罰之法,雖堯、舜不能以為治。今世主皆輕釋重罰、嚴誅,行愛惠,而欲霸王之功,亦不可幾也。故善為主者,明賞設利以勸之,使民以功賞,而不以仁義賜;嚴刑重罰以禁之,使民以罪誅而不以愛惠免。是以無功者不望,而有罪者不幸矣。託於犀車良馬之上,則可以陸犯阪阻之患;乘舟之安,持楫之利,則可以水絕江河之難;操法術之數,行重罰嚴誅,則可以致霸王之功。治國之有法術賞罰,猶若陸行之有犀車良馬也,水行之有輕舟便楫也,乘之者遂得其成。伊尹得之湯以王,管仲得之齊以霸,商君得之秦以強。此三人者,皆明於霸王之術,察於治強之數,而不以牽於世俗之言;適當世明主之意,則有直任布衣之士,立為卿相之處;處位治國,則有尊主廣地之實;此之謂足貴之臣。湯得伊尹,以百里之地立為天子;桓公得管仲,立為五霸主,九合諸侯,一匡天下;孝公得商君,地以廣,兵以強。故有忠臣者,外無敵國之患,內無亂臣之憂,長安於天下,而名垂後世,所謂忠臣也。若夫豫讓為智伯臣也,上不能說人主使之明法術、度數之理,以避禍難之患,下不能領御其眾,以安其國;及襄子之殺智伯也,豫讓乃自黔劓,敗其形容,以為智伯報襄子之仇;是雖有殘刑殺身以為人主之名,而實無益於智伯若秋毫之末。此吾之所下也,而世主以為忠而高之。古有伯夷、叔齊者,武王讓以天下而弗受,二人餓死首陽之陵;若此臣者,不畏重誅,不利重賞,不可以罰禁也,不可以賞使也。此之謂無益之臣也,吾所少而去也,而世主之所多而求也。
번역 5
세상의 학술(學術)을 하는 자들은 군주를 유세함에, “위엄의 권세를 타고 간사하고 사악한 신하를 곤경에 빠뜨려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모두 “인의(仁義)와 혜애(惠愛)일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세상의 군주들은 인의의 이름을 아름답게 여기고 그 실체를 살피지 않으니, 이 때문에 크게는 나라가 망하고 몸이 죽으며, 작게는 땅이 깎이고 군주가 낮아진다. 무엇으로 이를 밝히겠는가? 무릇 가난하고 곤궁한 자에게 베풀어주는 것, 이것이 세상에서 이르는 바 인의이다. 백성을 가엾게 여겨 차마 주살하고 벌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세상에서 이르는 바 혜애이다. 무릇 가난하고 곤궁한 자에게 베풀어주면, 공 없는 자가 상을 얻게 되고, 차마 주살하고 벌하지 못하면, 포악하고 난폭한 자가 그치지 않는다. 나라에 공 없는 자가 상을 얻는 자가 있으면, 백성은 밖으로 적을 맞아 목을 베는 일에 힘쓰지 않고, 안으로 밭 갈고 힘써 일하는 데 서두르지 않으며, 모두 재물을 써서 부귀한 이를 섬기고, 사사로운 선행을 하여 명예를 세워, 높은 관직과 두터운 봉록을 얻고자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간사하고 사사로운 신하는 더욱 많아지고, 포악하고 난폭한 무리는 더욱 기승을 부리니, 망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는가? 무릇 엄한 형벌은 백성이 두려워하는 바이고, 무거운 벌은 백성이 싫어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 두려워하는 바를 펼쳐 그 사악함을 금하고, 그 싫어하는 바를 설치하여 그 간사함을 막는다. 이 때문에 나라가 편안하고 포악과 난폭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로써 인의와 애혜가 쓰기에 부족하고, 엄한 형벌과 무거운 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채찍의 위엄과, 재갈과 굴레의 준비가 없으면, 비록 조보(造父)라도 능히 말을 복종시킬 수 없다.⁴⁾ 규구(規矩)의 법과, 먹줄의 기준이 없으면, 비록 왕이(王爾)라도 능히 사각형과 원을 이룰 수 없다.⁵⁾ 위엄의 권세와, 상벌의 법이 없으면, 비록 요(堯)·순(舜)이라도 능히 다스릴 수 없다. 지금 세상의 군주들은 모두 무거운 벌과 엄한 주살을 가벼이 버리고, 사랑과 은혜를 행하면서, 패왕(霸王)의 공을 이루고자 하니, 또한 바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군주 노릇을 잘하는 자는, 상을 밝히고 이익을 설치하여 그들을 권면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공으로 상을 받게 하고 인의로써 하사하지 않으며, 엄한 형벌과 무거운 벌로써 그들을 금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죄로써 주살되게 하고 사랑과 은혜로써 면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 없는 자는 바라지 않고, 죄 있는 자는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무소 수레와 좋은 말에 의탁하면, 육지에서 언덕과 험한 곳의 환란을 범할 수 있고, 배의 편안함과 노의 이로움을 타면, 물에서 강하(江河)의 어려움을 끊을 수 있으며, 법술의 술수를 쥐고, 무거운 벌과 엄한 주살을 행하면, 패왕의 공을 이룰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림에 법술과 상벌이 있는 것은, 육지를 가는 데 무소 수레와 좋은 말이 있는 것과 같고, 물을 가는 데 가벼운 배와 편리한 노가 있는 것과 같으니, 그것을 타는 자는 마침내 그 성공을 얻는다. 이윤(伊尹)은 그것을 얻어 탕(湯)임금을 왕으로 만들었고, 관중(管仲)은 그것을 얻어 제(齊)나라를 패자로 만들었으며, 상군(商君)은 그것을 얻어 진(秦)나라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패왕의 술(術)에 밝고, 다스림과 강함의 술수(數)를 살폈으며, 세속의 말에 이끌리지 않았다. 당세의 현명한 군주의 뜻에 마침맞으니, 곧바로 포의(布衣)의 선비를 임용하여 경상(卿相)의 자리에 세웠고, 자리에 처하여 나라를 다스림에, 군주를 높이고 땅을 넓히는 실적이 있었으니, 이를 일러 족히 귀하게 여길 만한 신하라 한다. 탕임금은 이윤을 얻어, 백 리의 땅으로 천자가 되었고, 환공은 관중을 얻어, 오패의 주인이 되어 아홉 번 제후를 규합하고 천하를 한 번 바로잡았으며, 효공은 상군을 얻어, 땅이 넓어지고 군대가 강해졌다. 그러므로 충신이 있는 자는, 밖으로 적국의 우환이 없고, 안으로 난신의 근심이 없어, 천하에 길이 편안하고, 이름이 후세에 드리워지니, 이른바 충신이다. 만약 저 예양(豫讓)이 지백(智伯)의 신하가 된 경우를 보면, 위로는 군주를 유세하여 법술과 도수(度數)의 이치를 밝혀 화난의 우환을 피하게 하지 못했고, 아래로는 그 무리를 거느려 그 나라를 편안하게 하지 못했다. 양자(襄子)가 지백을 죽임에 이르러, 예양은 마침내 스스로 얼굴에 옻칠을 하고 코를 베어, 그 용모를 망가뜨리고, 지백을 위해 양자에게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 이는 비록 형벌로 몸을 상하고 자신을 죽여 군주를 위한다는 이름은 있었으나, 실제로는 지백에게 터럭 끝만큼의 이익도 없었다. 이것은 내가 낮게 여기는 바이지만, 세상의 군주들은 충성스럽다고 여기고 높이 평가한다. 옛날에 백이(伯夷)·숙제(叔齊)라는 자가 있었는데, 무왕(武王)이 천하를 양보하였으나 받지 않고, 두 사람은 수양산 기슭에서 굶어 죽었다. 이와 같은 신하는, 무거운 주살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거운 상을 이롭게 여기지 않으니, 벌로써 금할 수도 없고, 상으로써 부릴 수도 없다. 이를 일러 ‘이익이 없는 신하[無益之臣]’라 하니, 나는 그들을 경시하고 버리지만, 세상의 군주들은 그들을 대단하게 여기고 구한다.
주석
4) 조보(造父): 주(周)나라 목왕(穆王) 때의 명 마부. 말을 다루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5) 왕이(王爾): 고대의 이름난 명장(名匠)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여기서는 솜씨 좋은 장인의 대명사로 쓰였다.
원문 6
諺曰:「厲憐王。」此不恭之言也。雖然,古無虛諺,不可不察也。此謂劫殺死亡之主言也。人主無法術以御其臣,雖長年而美材,大臣猶將得勢擅事主斷,而各為其私急。而恐父兄豪傑之士,借人主之力,以禁誅於己也,故弒賢長而立幼弱,廢正的而立不義。故春秋記之曰:「楚王子圍將聘於鄭,未出境,聞王病而反,因入問病,以其冠纓絞王而殺之,遂自立也。齊崔杼,其妻美,而莊公通之,數如崔氏之室,及公往,崔子之徒賈舉率崔子之徒而攻公,公入室,請與之分國,崔子不許,公請自刃於廟,崔子又不聽,公乃走踰於北牆,賈舉射公,中其股,公墜,崔子之徒以戈斫公而死之,而立其弟景公。」近之所見:李兌之用趙也,餓主父百日而死;卓齒之用齊也,擢湣王之筋,懸之廟梁,宿昔而死。故厲雖癰腫疕瘍,上比於春秋,未至於絞頸射股也;下比於近世,未至餓死擢筋也。故劫殺死亡之君,此其心之憂懼、形之苦痛也,必甚於厲矣。由此觀之,雖「厲憐王」可也。
번역 6
속담에 이르기를, “나병 환자가 왕을 불쌍히 여긴다[厲憐王].”라고 하였다. 이는 불경한 말이다. 비록 그러하나, 옛 속담에 헛된 것이 없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겁박당하고 살해당하여 죽는 군주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군주가 법술로써 그 신하를 제어하지 못하면, 비록 나이가 많고 재질이 아름답더라도, 대신은 여전히 장차 권세를 얻어 일을 독점하고 군주의 결단을 대신하며, 각자 자기의 사사로운 급한 일을 위할 것이다. 그리고 부형과 호걸들이, 군주의 힘을 빌려, 자신을 금하고 주살할까 두려워하므로, 어질고 나이 많은 이를 시해하고 어리고 약한 이를 세우며, 정실의 적자를 폐하고 의롭지 않은 이를 세운다. 그러므로 《춘추》에 기록되기를, “초나라 왕자 위(圍)가 장차 정(鄭)나라에 사신으로 가려다, 국경을 나가기 전에 왕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이어서 들어가 병을 문안하고, 자기 관의 끈으로 왕을 목 졸라 죽이고, 마침내 스스로 즉위하였다. 제나라의 최저(崔杼)는 그 아내가 아름다웠는데, 장공(莊公)이 그녀와 통정하여, 자주 최씨의 집에 갔다. 공이 가자, 최자의 무리인 가거(賈舉)가 최자의 무리를 이끌고 공을 공격하니, 공이 방으로 들어가 나라를 나누어 갖자고 청하였으나 최자가 허락하지 않았고, 공이 종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청하였으나 최자가 또 듣지 않았다. 공이 마침내 달아나 북쪽 담을 넘자, 가거가 공을 쏘아 그 넓적다리를 맞추니, 공이 떨어졌다. 최자의 무리가 창으로 공을 베어 죽이고, 그 동생인 경공(景公)을 세웠다.”라고 하였다. 가까운 시대에 본 바로는, 이태(李兌)가 조(趙)나라를 다스릴 때, 주부(主父)를 백일 동안 굶겨 죽였고, 탁치(卓齒)가 제나라를 다스릴 때, 민왕(湣王)의 힘줄을 뽑아, 종묘의 들보에 매달아 하룻밤 사이에 죽게 하였다. 그러므로 나병 환자가 비록 종기와 부스럼으로 앓더라도, 위로 춘추시대에 비하면, 목이 졸리고 넓적다리에 화살을 맞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고, 아래로 근세에 비하면, 굶어 죽고 힘줄이 뽑히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겁박당하고 살해당하여 죽는 군주는, 그 마음의 근심과 두려움, 형체의 고통이, 반드시 나병 환자보다 심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비록 “나병 환자가 왕을 불쌍히 여긴다.”라고 해도 괜찮은 것이다.
《한비자》 〈망징〉 번역 및 주석
원문 1
凡人主之國小而家大,權輕而臣重者,可亡也。簡法禁而務謀慮,荒封內而恃交援者,可亡也。群臣為學,門子好辯,商賈外積,小民右仗者,可亡也。好宮室臺榭陂池,事車服器玩好,罷露百姓,煎靡貨財者,可亡也。用時日,事鬼神,信卜筮,而好祭祀者,可亡也。聽以爵不待參驗,用一人為門戶者,可亡也。官職可以重求,爵祿可以貨得者,可亡也。緩心而無成,柔茹而寡斷,好惡無決,而無所定立者,可亡也。饕貪而無饜,近利而好得者,可亡也。喜淫而不周於法,好辯說而不求其用,濫於文麗而不顧其功者,可亡也,淺薄而易見,漏泄而無藏,不能周密,而通群臣之語者,可亡也。很剛而不和,愎諫而好勝,不顧社稷而輕為自信者,可亡也。恃交援而簡近鄰,怙強大之救,而侮所迫之國者,可亡也。羈旅僑士,重帑在外,上閒謀計,下與民事者,可亡也。民信其相,下不能其上,主愛信之而弗能廢者,可亡也。境內之傑不事,而求封外之士,不以功伐課試,而好以名問舉錯,羈旅起貴以陵故常者,可亡也。輕其適正,庶子稱衡,太子未定而主即世者,可亡也。大心而無悔,國亂而自多,不料境內之資而易其鄰敵者,可亡也。國小而不處卑,力少而不畏強,無禮而侮大鄰,貪愎而拙交者,可亡也。太子已置,而娶於強敵以為后妻,則太子危,如是,則群臣易慮,群臣易慮者,可亡也。怯懾而弱守,蚤見而心柔懦,知有謂可,斷而弗敢行者,可亡也。出君在外而國更置,質太子未反而君易子,如是則國攜,國攜者,可亡也,挫辱大臣而狎其身,刑戮小民而逆其使,懷怒思恥而專習則賊生,賊生者,可亡也。大臣兩重,父兄眾強,內黨外援以爭事勢者,可亡也。婢妾之言聽,愛玩之智用,外內悲惋而數行不法者,可亡也。簡侮大臣,無禮父兄,勞苦百姓,殺戮不辜者,可亡也。好以智矯法,時以行集公,法禁變易,號令數下者,可亡也。無地固,城郭惡,無畜積,財物寡,無守戰之備而輕攻伐者,可亡也。種類不壽,主數即世,嬰兒為君,大臣專制,樹羈旅以為黨,數割地以待交者,可亡也。太子尊顯,徒屬眾強,多大國之交,而威勢蚤具者,可亡也。變褊而心急,輕疾而易動發,心悁忿而不訾前後者,可亡也。主多怒而好用兵,簡本教而輕戰攻者,可亡也。貴臣相妒,大臣隆盛,外藉敵國,內困百姓,以攻怨讎,而人主弗誅者,可亡也。君不肖而側室賢,太子輕而庶子伉,官吏弱而人民桀,如此則國躁,國躁者,可亡也。藏怒而弗發,懸罪而弗誅,使群臣陰憎而愈憂懼,而久未可知者,可亡也。出軍命將太重,邊地任守太尊,專制擅命,徑為而無所請者,可亡也。后妻淫亂,主母畜穢,外內混通,男女無別,是謂兩主,兩主者,可亡也。后妻賤而婢妾貴,太子卑而庶子尊,相室輕而典謁重,如此則內外乖,內外乖者,可亡也。大臣甚貴,偏黨眾強,壅塞主斷而重擅國者,可亡也。私門之官用,馬府之世,鄉曲之善舉,官職之勞廢,貴私行而賤公功者,可亡也。公家虛而大臣實,正戶貧而寄寓富,耕戰之士困,末作之民利者,可亡也。見大利而不趨,聞禍端而不備,淺薄於爭守之事,而務以仁義自飾者,可亡也。不為人主之孝,而慕匹夫之孝,不顧社稷之利,而聽主母之令,女子用國,刑餘用事者,可亡也。辭辯而不法,心智而無術,主多能而不以法度從事者,可亡也。親臣進而故人退,不肖用事而賢良伏,無功貴而勞苦賤,如是則下怨,下怨者,可亡也。父兄大臣祿秩過功,章服侵等,宮室供養太侈,而人主弗禁,則臣心無窮,臣心無窮者,可亡也。公婿公孫與民同門,暴傲其鄰者,可亡也。亡徵者,非曰必亡,言其可亡也。夫兩堯不能相王,兩桀不能相亡,亡王之機,必其治亂、其強弱相踦者也。木之折也必通蠹,牆之壞也必通隙。然木雖蠹,無疾風不折;牆雖隙,無大雨不壞。萬乘之主,有能服術行法以為亡徵之君風雨者,其兼天下不難矣。
번역 1
무릇 군주의 나라가 작고 (신하의) 가문이 크며, 권세가 가볍고 신하가 무거운 자는, 망할 수 있다. 법과 금령을 소홀히 하고 모략에만 힘쓰며, 나라 안을 황폐하게 하고 외교적 지원에만 의지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여러 신하가 학문을 하고, 문객들이 변론을 좋아하며, 상인이 재물을 밖에 쌓아두고, 백성들이 사사로운 세력에 의지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¹⁾ 궁실과 누대, 연못을 좋아하고, 수레와 의복, 기물과 노리개를 일삼으며, 백성을 지치게 하고, 재물을 낭비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길일(吉日)을 가려 쓰고, 귀신을 섬기며, 점복(卜筮)을 믿고, 제사를 좋아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벼슬로써 듣고 참고하고 검증하기를 기다리지 않으며, 한 사람을 문호(門戶)로 삼는 자는, 망할 수 있다.²⁾ 관직을 거듭하여 구할 수 있고, 작위와 녹봉을 재물로 얻을 수 있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마음이 해이하여 이룸이 없고, 마음이 여리고 결단력이 없으며, 좋고 싫음에 결단이 없어, 정하여 세우는 바가 없는 자는, 망할 수 있다. 탐욕스러워 만족할 줄 모르고, 눈앞의 이익에 가까워 얻기만 좋아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음란함을 기뻐하여 법에 두루 맞지 않고, 변론을 좋아하여 그 쓰임을 구하지 않으며, 화려한 문장에 빠져 그 공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망할 수 있다. 얕고 천박하여 쉽게 드러나고, 말을 흘려 감춤이 없으며, 주도면밀하지 못하여 여러 신하의 말을 통용시키는 자는, 망할 수 있다. 사납고 강퍅하여 화합하지 않고, 간언에 고집을 부리고 이기기만 좋아하며, 사직을 돌아보지 않고 가벼이 자신만 믿는 자는, 망할 수 있다. 외교적 지원만 믿고 가까운 이웃을 소홀히 하며, 강대국의 구원만 믿고 자신을 핍박하는 나라를 업신여기는 자는, 망할 수 있다. 타국에서 온 나그네 선비가, 많은 재물을 밖에 두고, 위로는 계책에 관여하며, 아래로는 백성의 일에 관여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³⁾ 백성은 그 재상을 믿고 아랫사람은 그 윗사람을 따르지 않는데, 군주가 그를 아끼고 믿어 폐하지 못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나라 안의 뛰어난 인재는 쓰지 않고, 국외의 선비를 구하며, 공적으로 시험하지 않고, 명성만으로 등용하고 내치며, 타국에서 온 나그네를 귀하게 일으켜 옛 신하를 능멸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그 적자(嫡子)와 정실(正室)을 가벼이 여기고, 서자(庶子)가 동등하게 일컬어지며, 태자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군주가 세상을 뜨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마음이 커서 후회가 없고, 나라가 어지러운데도 스스로 대단하게 여기며, 나라 안의 자산을 헤아리지 않고 그 이웃 적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나라가 작으면서 낮은 데에 처하지 않고, 힘이 적으면서 강한 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무례하게 큰 이웃을 업신여기고, 탐욕스럽고 고집이 세며 외교에 서투른 자는, 망할 수 있다. 태자가 이미 세워졌는데도, 강한 적국에서 장가들어 후처로 삼으면, 태자가 위태로워진다. 이와 같으면 여러 신하가 다른 마음을 품게 되니, 여러 신하가 다른 마음을 품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겁이 많고 나약하게 지키며, 일찍 드러나도 마음이 유약하여, 옳다고 이르는 바가 있음을 알면서도, 결단하여 감히 행하지 못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군주를 밖에 내보내고 나라에서 다시 군주를 세우며, 인질로 보낸 태자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군주가 아들을 바꾸면, 이와 같으면 나라가 이반되니, 나라가 이반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대신을 꺾어 욕보이고 그 몸을 희롱하며, 백성을 형벌로 죽이고 그 부림을 거스르며, 분노를 품고 치욕을 생각하여 오로지 익히면 적이 생기니, 적이 생기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대신이 둘 다 무겁고, 부형의 세력이 많고 강하며, 안으로 붕당을 짓고 밖으로 외세를 끌어들여 권세를 다투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비첩(婢妾)의 말을 듣고, 총애하는 노리개의 지혜를 쓰며, 안팎이 슬퍼하고 탄식하는데도 자주 불법을 행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대신을 소홀히 하고 업신여기며, 부형에게 무례하고, 백성을 고달프게 하며, 죄 없는 자를 죽이는 자는, 망할 수 있다. 지혜로써 법을 왜곡하기를 좋아하고, 때때로 행동으로 공적인 것을 모으며, 법과 금령이 자주 바뀌고, 호령이 자주 내려지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땅의 견고함이 없고, 성곽이 허술하며, 비축한 것이 없고, 재물이 적으며, 수비와 전투의 준비가 없으면서도 가벼이 공격하고 정벌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군주의 종족이 장수하지 못하고, 군주가 자주 세상을 뜨며, 어린아이가 군주가 되고, 대신이 정치를 독점하며, 타국에서 온 나그네를 심어 붕당을 만들고, 자주 땅을 베어주어 외교를 기다리는 자는, 망할 수 있다. 태자가 존귀하고 드러나며, 따르는 무리가 많고 강하고, 대국과의 교제가 많아, 위세가 일찍 갖추어지는 자는, 망할 수 있다.⁴⁾ 성격이 편협하고 마음이 급하며, 경솔하고 쉽게 움직이고 발하며, 마음이 분노에 차서 전후를 헤아리지 않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군주가 노여움이 많고 군대 쓰기를 좋아하며, 근본 가르침을 소홀히 하고 전투와 공격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귀한 신하들이 서로 질투하고, 대신들이 융성하며, 밖으로 적국을 빌리고 안으로 백성을 곤궁하게 하여, 원수에게 공격하는데도 군주가 그를 주살하지 않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군주가 불초한데 측실이 현명하고, 태자가 가벼운데 서자가 대항하며, 관리가 약한데 인민이 사나우면, 이와 같으면 나라가 소란스러우니, 나라가 소란스러운 자는, 망할 수 있다. 분노를 감추고 발하지 않으며, 죄를 매달아두고 주살하지 않아, 여러 신하로 하여금 속으로 미워하고 더욱 근심하고 두려워하게 하면서도, 오래도록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군대를 내보내 장수에게 명함이 너무 무겁고, 변방 땅을 지키는 자를 너무 존귀하게 맡기며, 제멋대로 통제하고 명령을 독점하며, 마음대로 행하고 청하는 바가 없는 자는, 망할 수 있다. 후처가 음란하고, 군주의 어머니가 더러움을 기르며, 안팎이 뒤섞여 통하고, 남녀의 구별이 없는 것을, 이를 일러 ‘두 명의 군주[兩主]’라 하니, 두 명의 군주가 있는 자는, 망할 수 있다. 후처가 천한데 비첩이 귀하고, 태자가 비천한데 서자가 존귀하며, 재상[相室]이 가벼운데 문지기[典謁]가 무거우면, 이와 같으면 안팎이 어그러지니, 안팎이 어그러지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대신이 심히 귀하고, 편당이 많고 강하며, 군주의 결단을 가로막고 거듭 나라를 독점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사사로운 가문의 관리가 등용되고, 마구간지기의 세습이 있으며, 시골의 착한 이가 추천되고, 관직의 공로가 폐지되며, 사사로운 행실을 귀하게 여기고 공적인 공을 천하게 여기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공적인 집안은 텅 비고 대신의 집안은 가득 차며, 정식 호구는 가난하고 임시 거주자는 부유하며, 농사짓고 싸우는 선비는 곤궁하고, 말단 산업에 종사하는 백성은 이로운 자는, 망할 수 있다.⁵⁾ 큰 이익을 보고도 나아가지 않고, 재앙의 단서를 듣고도 대비하지 않으며, 다투고 지키는 일에는 얕고 천박하면서, 인의(仁義)로써 스스로를 꾸미는 데에만 힘쓰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군주로서의 효도를 하지 않고, 필부(匹夫)의 효도를 흠모하며, 사직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군주 어머니의 명령을 들으며, 여자가 나라를 사용하고, 환관[刑餘]이 일을 처리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⁶⁾ 말이 뛰어나나 법에 맞지 않고, 마음이 지혜로우나 술(術)이 없으며, 군주가 재능이 많으나 법도로써 일에 종사하지 않는 자는, 망할 수 있다. 친한 신하가 나아가고 옛 신하가 물러나며, 불초한 자가 일을 처리하고 어질고 양심 있는 자가 엎드리며, 공 없는 자가 귀하고 수고로운 자가 천하면, 이와 같으면 아랫사람이 원망하니, 아랫사람이 원망하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부형과 대신의 녹봉과 직위가 공을 넘어서고, 의복과 휘장이 등급을 침범하며, 궁실과 공양이 너무 사치스러운데도 군주가 금하지 않으면, 신하의 마음이 끝이 없게 되니, 신하의 마음이 끝이 없는 자는, 망할 수 있다. 공주의 남편과 군주의 손자가 백성과 같은 문을 쓰면서, 그 이웃에게 포악하고 오만하게 구는 자는, 망할 수 있다. 망국의 징조란, 반드시 망한다는 말이 아니라, 망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무릇 두 요임금이 서로를 왕으로 삼을 수 없고, 두 걸임금이 서로를 망하게 할 수 없으니, 망하고 왕이 되는 기틀은, 반드시 그 다스려짐과 어지러움, 그 강함과 약함이 서로 기울어졌을 때이다.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속에 좀이 있기 때문이고, 담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가 비록 좀이 먹었어도 사나운 바람이 없으면 부러지지 않고, 담이 비록 틈이 있어도 큰비가 없으면 무너지지 않는다. 만승의 군주로서, 능히 술(術)을 따르고 법(法)을 행하여, 망국의 징조가 있는 군주에게 비바람이 되어주는 자는, 그 천하를 아우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⁷⁾
주석
1) 신하·문객·상인·백성의 타락: 이 구절은 법가적 관점에서 이상적인 국가 질서가 무너진 모습을 보여준다. 신하들은 실용적인 통치술 대신 공허한 학문을, 문객들은 변론을 일삼아 국론을 분열시킨다. 상인들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재산을 해외에 축적하고, 백성들은 국가의 법이 아닌 사적인 권력자에게 의지한다. 이는 국가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사회의 근간인 농업과 전쟁(耕戰)이 무너지는 전형적인 망국의 징조이다.
2) 문호(門戶): ‘문과 지게문’. 특정 신하 한 사람을 통해서만 군주에게 의견을 전달하거나 사람을 등용할 수 있는 통로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군주의 눈과 귀가 한 사람에게 막혀 국정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게 되는 위험한 상황을 가리킨다.
3) 기려교사(羈旅僑士): ‘나그네로 머무는 선비’. 외국 출신의 관리를 의미한다. 한비자는 이들이 본국에 재산을 숨겨두는 등 충성심이 의심스럽고, 국내 정치에 깊이 관여하여 국정을 어지럽힐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보았다.
4) 태자의 위세: 태자의 지위가 너무 존귀하고 따르는 세력이 강하며, 외국과의 교류가 잦아 그 위세가 일찍부터 갖추어지는 것 또한 망국의 징조로 보았다. 이는 군주가 살아있을 때부터 태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 집단이 형성되어, 군주의 권위를 위협하고 잠재적인 정변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본업(本業)과 말업(末業): 법가에서는 농업과 전쟁(耕戰)을 국가의 근본이 되는 산업(本事, 本業)으로, 상공업이나 학문 등은 부차적인 산업(末事, 末業)으로 보았다. 근본 산업에 종사하는 자는 곤궁하고 말단 산업에 종사하는 자가 이익을 보는 것은 국가의 경제 기반과 군사력이 약화되는 심각한 징조이다.
6) 군주의 효도와 필부의 효도: 한비자는 군주의 효도와 일반 백성의 효도는 다르다고 본다. 필부의 효도는 부모를 섬기는 것이지만, 군주의 효도는 사직(社稷), 즉 국가의 안녕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군주가 국가의 이익을 버리고 사사로운 감정(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것을 망국의 징조로 보았다. ‘형여(刑餘)’는 형벌을 받고 남은 자, 즉 환관을 의미한다.
7) 망징의 결론: 이 마지막 단락은 〈망징〉 편의 핵심을 요약한다. 망국의 징조는 그 자체로 필연적인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망할 수 있는’ 취약한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마치 속에 좀이 먹은 나무나 틈이 생긴 담과 같다. 이런 나라는 외부의 충격(疾風, 大雨)이 가해지면 쉽게 무너진다. 반대로, 법술(法術)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군주는 스스로가 이 ‘비바람’이 되어, 망국의 징조를 보이는 약한 나라들을 정복하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고를 넘어, 법가 사상을 통한 천하 통일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한비자》 〈삼수〉 번역 및 주석
원문 1
人主有三守。三守完則國安身榮,三守不完則國危身殆。何謂三守?人臣有議當途之失、用事之過、舉臣之情,人主不心藏而漏之近習能人,使人臣之欲有言者,不敢不下適近習能人之心而乃上以聞人主,然則端言直道之人不得見,而忠直日疏。愛人不獨利也,待譽而後利之;憎人不獨害也,待非而後害之;然則人主無威而重在左右矣。惡自治之勞憚,使群臣輻湊之變,因傳柄移藉,使殺生之機、奪予之要在大臣,如是者侵。此謂三守不完。三守不完則劫殺之徵也。
번역 1
군주에게는 세 가지 지켜야 할 것[三守]이 있다. 세 가지 지킴이 온전하면 나라가 편안하고 몸이 영화로우며, 세 가지 지킴이 온전하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고 몸이 위태로워진다. 무엇을 세 가지 지킴이라 하는가?
(첫째는) 신하가 권력을 잡은 자[當途之人]의 실책, 일을 처리하는 자[用事]의 과실, 신하를 천거하는 실정(實情)에 대해 논의하는 경우가 있을 때, 군주가 마음에 감추지 않고 그것을 측근[近習]이나 유능한 자[能人]에게 누설하면, 말을 하고자 하는 신하로 하여금 감히 먼저 측근이나 유능한 자의 마음에 맞추지 않고서는 군주에게 아뢰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바른 말을 하고 곧은 도리를 행하는 사람은 등용될 수 없고, 충직한 자는 날로 멀어진다.¹⁾
(둘째는) 사람을 아끼되 홀로 이롭게 하지 않고, (측근의) 칭찬을 기다린 뒤에야 그를 이롭게 하며, 사람을 미워하되 홀로 해롭게 하지 않고, (측근의) 비방을 기다린 뒤에야 그를 해롭게 하면, 그렇게 되면 군주는 위엄이 없어지고 권세가 좌우 측근에게 있게 된다.²⁾
(셋째는) 스스로 다스리는 수고로움을 싫어하고 꺼려서, 여러 신하가 수레바퀴 살처럼 모여드는 변화를 그대로 두어, 이로 인해 권력의 자루[柄]를 넘겨주고 권세의 바탕[藉]을 옮겨주어, 죽이고 살리는 기틀과 빼앗고 주는 요체가 대신에게 있게 되면, 이와 같은 자는 (권력을) 침탈당한다.³⁾
이것을 일러 ‘세 가지 지킴이 온전하지 않다’고 한다. 세 가지 지킴이 온전하지 않으면, 이는 겁박당하고 살해당할 징조이다.
주석
1) 제1수(守): 내수(內守), 즉 비밀을 지킴. 군주는 신하가 올린 중요한 정보나 건의를 자신의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총애하는 측근에게조차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만약 군주가 정보를 누설하면, 다른 신하들은 군주에게 직접 보고하기 전에 먼저 그 측근의 환심을 사려 할 것이다. 이는 정상적인 보고 체계를 무너뜨리고, 측근을 새로운 권력의 중심으로 만들며, 결국 바른 말을 하는 충신들의 입을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당도지인(當塗之人)’은 길을 막고 선 사람, 즉 권력의 요직을 차지한 권신을 의미한다.
2) 제2수(守): 중수(中守), 즉 상벌을 독점함. 군주는 상(賞)과 벌(罰)을 내릴 때, 반드시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다. 만약 좌우 측근의 칭찬[譽]이나 비방[非]에 의존하여 상벌을 결정한다면, 이는 군주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권한인 ‘두 개의 권병[二柄]’을 측근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군주의 위엄은 사라지고, 실질적인 권력은 측근에게 옮겨가게 된다.
3) 제3수(守): 외수(外守), 즉 권력을 위임하지 않음. 군주는 통치의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핵심 권한을 대신에게 위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전병이적(傳柄移藉)’은 권력의 자루(柄)와 권세의 기반(藉)을 넘겨준다는 뜻이다. 특히 생살여탈권(殺生之機)과 상벌권(奪予之要)을 대신에게 맡기는 것은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는 행위이며, 이는 곧 권력 찬탈(侵)로 이어진다.
원문 2
凡劫有三:有明劫,有事劫,有刑劫。人臣有大臣之尊,外操國要以資群臣,使外內之事非己不得行。雖有賢良,逆者必有禍,而順者必有福。然則群臣直莫敢忠主憂國以爭社稷之利害。人主雖賢不能獨計,而人臣有不敢忠主,則國為亡國矣,此謂國無臣。國無臣者,豈郎中虛而朝臣少哉?群臣持祿養交,行私道而不效公忠。此謂明劫。鬻寵擅權,矯外以勝內,險言禍福得失之形,以阿主之好惡,人主聽之,卑身輕國以資之,事敗與主分其禍,而功成則臣獨專之。諸用事之人,壹心同辭以語其美,則主言惡者必不信矣。此謂事劫。至於守司囹圄,禁制刑罰,人臣擅之,此謂刑劫。三守不完則三劫者起,三守完則三劫者止,三劫止塞則王矣。
번역 2
무릇 겁박[劫]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명겁(明劫), 사겁(事劫), 형겁(刑劫)이 있다.
신하가 대신의 존귀함을 가지고, 밖으로 나라의 요체를 쥐어 여러 신하에게 자산을 대주며, 안팎의 일이 자기가 아니면 행해지지 못하게 한다. 비록 어질고 양심 있는 자가 있더라도, 거스르는 자는 반드시 화를 입고, 순종하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여러 신하는 감히 군주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여 사직의 이해를 다투지 못한다. 군주가 비록 어질어도 홀로 계획할 수 없고, 신하가 감히 군주에게 충성하지 못하면, 나라는 망한 나라가 된다. 이를 일러 ‘나라에 신하가 없다[國無臣]’고 한다. 나라에 신하가 없다는 것이, 어찌 낭중(郎中)이 비고 조정의 신하가 적다는 것이겠는가? 여러 신하가 녹봉을 유지하고 교제를 돈독히 하며, 사사로운 길을 행하고 공적인 충성을 바치지 않는 것이다. 이를 명겁(明劫)이라 한다.⁴⁾
총애를 팔아 권력을 독점하고, 외부를 속여 내부를 이기며, 화와 복, 득실의 형세를 위태롭게 말하여, 군주의 좋고 싫음에 아첨한다. 군주가 이를 듣고, 몸을 낮추고 나라를 가벼이 여겨 그에게 자산을 대주니, 일이 실패하면 군주와 그 화를 나누고, 공이 이루어지면 신하가 홀로 그것을 독점한다. 일을 처리하는 모든 사람이 한마음 한목소리로 그의 아름다움을 말하면, 군주가 나쁘다고 말하는 자는 반드시 믿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를 사겁(事劫)이라 한다.⁵⁾
감옥[囹圄]을 지키고 관리하며, 형벌을 금지하고 제정하는 것을, 신하가 독점하는 것, 이를 형겁(刑劫)이라 한다.⁶⁾
세 가지 지킴이 온전하지 않으면 세 가지 겁박이 일어나고, 세 가지 지킴이 온전하면 세 가지 겁박이 그치며, 세 가지 겁박이 그치고 막히면 왕 노릇을 할 수 있다.
주석
4) 명겁(明劫): 명백한 겁박. 권신이 국가의 인사권과 재정권 등 핵심 권력(國要)을 명백하게 장악하고, 자신만의 상벌 체계를 만들어 다른 신하들을 통제하는 방식의 찬탈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모든 신하는 군주가 아닌 권신에게 충성하게 되므로, 조정에 신하가 가득해도 실질적으로는 ‘나라에 신하가 없는(國無臣)’ 상태가 된다.
5) 사겁(事劫): 일을 통한 겁박. 권신이 군주의 총애를 이용하여 국정(事)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정보를 왜곡하며, 군주의 심리를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는 방식이다. 실패의 책임은 군주와 나누고 성공의 공은 독차지하며, 자신의 붕당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여 군주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6) 형겁(刑劫): 형벌을 통한 겁박. 권신이 사법권과 형벌 집행권을 장악하는 방식이다. 이는 군주의 핵심 권한인 ‘두 개의 권병’ 중 하나인 형(刑)을 직접적으로 빼앗는 것으로, 이를 통해 반대 세력을 합법적으로 제거하고 공포 정치를 행하여 권력을 찬탈한다.
《한비자》 〈남면〉 번역 및 주석
원문 1
人主之過,在己任在臣矣,又必反與其所不任者備之,此其說必與其所任者為讎,而主反制於其所不任者。今所與備人者,且曩之所備也。人主不能明法而以制大臣之威,無道得小人之信矣。人主釋法而以臣備臣,則相愛者比周而相譽,相憎者朋黨而相非,非譽交爭,則主惑亂矣。人臣者,非名譽請謁無以進取,非背法專制無以為威,非假於忠信無以不禁,三者,惛主壞法之資也。人主使人臣雖有智能不得背法而專制,雖有賢行不得踰功而先勞,雖有忠信不得釋法而不禁,此之謂明法。
번역 1
군주가 남면(南面)하여¹⁾ 다스릴 때의 과실은, 이미 신하에게 임무를 맡겨놓고서, 또 반드시 도리어 그 임무를 맡기지 않은 다른 자와 함께 그를 대비하는 데에 있다. 이렇게 되면 그의 말은 반드시 그 임무를 맡은 자와 원수가 되고, 군주는 도리어 그 임무를 맡기지 않은 자에게 제압당하게 된다. 지금 함께 남을 대비하는 자는, 또한 예전에 대비하던 대상이었다. 군주가 법(法)을 밝혀 그것으로 대신의 위세를 제어하지 못하면, 소인의 신임을 얻을 방법이 없게 된다. 군주가 법을 버리고 신하로써 신하를 대비하게 하면,²⁾ 서로 아끼는 자들은 무리를 지어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 미워하는 자들은 붕당을 이루어 서로를 비방하니, 비방과 칭찬이 뒤섞여 다투면 군주는 미혹되고 혼란스러워진다. 신하 된 자는, 명예와 청탁이 아니면 나아가 취할 수 없고, 법을 등지고 제멋대로 하지 않으면 위엄을 세울 수 없으며, 충성과 신의를 빌리지 않으면 금지당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세 가지는 어리석은 군주가 법을 무너뜨리는 자산이다. 군주가 신하로 하여금 비록 지혜와 능력이 있더라도 법을 등지고 제멋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비록 어진 행실이 있더라도 공을 넘어서 먼저 수고롭다 하지 못하게 하며, 비록 충성과 신의가 있더라도 법을 버리고 금지당하지 않게 하니, 이를 일러 ‘법을 밝힌다[明法]’고 한다.³⁾
주석
1) 남면(南面): ‘남쪽을 향하다’. 고대 중국에서 군주는 북쪽에 등을 지고 남쪽을 향해 앉아 신하들의 조회를 받았으므로, ‘남면’은 곧 군주의 자리에 앉아 나라를 통치하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 편의 제목은 군주가 통치함에 있어 가져야 할 도리, 즉 ‘군주의 도(主道)’를 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2) 이신비신(以臣備臣): ‘신하로써 신하를 대비한다’. 이는 법(法)이라는 객관적인 기준 대신, 군주가 특정 신하를 신임하여 다른 신하를 견제하게 하는 인치(人治)적 통치 방식을 비판하는 말이다. 한비자는 이러한 방식이 필연적으로 신하들 간의 붕당(朋黨)과 이간질을 조장하여 군주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결국 군주가 신하에게 제압당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보았다.
3) 명법(明法): ‘법을 밝힌다’. 이는 단순히 법을 명확히 공포하는 것을 넘어, 군주가 법을 유일한 통치 기준으로 삼아 신하의 모든 행위를 통제함을 의미한다. 신하가 아무리 지혜롭고(智能), 어질고(賢行), 충성스러워도(忠信), 법
《한비자》 〈남면〉 번역 및 주석
원문 1
人主之過,在己任在臣矣,又必反與其所不任者備之,此其說必與其所任者為讎,而主反制於其所不任者。今所與備人者,且曩之所備也。人主不能明法而以制大臣之威,無道得小人之信矣。人主釋法而以臣備臣,則相愛者比周而相譽,相憎者朋黨而相非,非譽交爭,則主惑亂矣。人臣者,非名譽請謁無以進取,非背法專制無以為威,非假於忠信無以不禁,三者,惛主壞法之資也。人主使人臣雖有智能不得背法而專制,雖有賢行不得踰功而先勞,雖有忠信不得釋法而不禁,此之謂明法。
번역 1
군주[南面]의¹⁾ 과실은, 이미 신하에게 일을 맡기고서, 또 반드시 도리어 그 맡기지 않은 자와 함께 그를 대비하는 데에 있다. 이 방법은 반드시 그 맡은 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군주는 도리어 그 맡기지 않은 자에게 제압당하게 된다. 지금 함께 남을 대비하는 자는, 또한 예전에 대비하던 대상이었다. 군주가 법(法)을 밝혀 대신의 위세를 제어하지 못하면, 소인의 신임을 얻을 방법이 없다. 군주가 법을 버리고 신하로써 신하를 대비하게 하면[以臣備臣], 서로 아끼는 자들은 무리를 지어 서로 칭찬하고, 서로 미워하는 자들은 붕당을 이루어 서로 비방하니, 비방과 칭찬이 엇갈려 다투면 군주는 미혹되고 혼란스러워진다. 신하 된 자는, 명예와 청탁이 아니면 나아가 취할 수 없고, 법을 등지고 제멋대로 하지 않으면 위엄을 세울 수 없으며, 충성과 신의를 가장하지 않으면 금지당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세 가지는 어리석은 군주와 무너진 법의 자산이다. 군주가 신하로 하여금 비록 지혜와 능력이 있더라도 법을 등지고 제멋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비록 어진 행실이 있더라도 공을 넘어서서 공로를 앞세우지 못하게 하며, 비록 충성과 신의가 있더라도 법을 버리고 금이 정한 직분과 공적의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 ‘명법’의 핵심이다.
원문 2
人主有誘於事者,有壅於言者,二者不可不察也。人臣易言事者,少索資,以事誣主,主誘而不察,因而多之,則是臣反以事制主也,如是者謂之誘,誘於事者困於患。其進言少,其退費多,雖有功其進言不信,不信者有罪,事有功者必賞,則群臣莫敢飾言以惛主。主道者,使人臣前言不復於後,後言不復於前,事雖有功,必伏其罪,謂之任下。人臣為主設事而恐其非也,則先出說設言曰:「議是事者,妒事者也。」人主藏是言不更聽群臣,群臣畏是言不敢議事,二勢者用,則忠臣不聽而譽臣獨任,如是者謂之壅於言,壅於言者制於臣矣。主道者,使人臣必有言之責,又有不言之責。言無端末、辯無所驗者,此言之責也。以不言避責、持重位者,此不言之責也。人主使人臣言者必知其端以責其實,不言者必問其取舍以為之責,則人臣莫敢妄言矣,又不敢默然矣,言默則皆有責也。人主欲為事,不通其端末,而以明其欲,有為之者,其為不得利,必以害反,知此者,任理去欲。舉事有道,計其入多,其出少者,可為也。惑主不然,計其入不計其出,出雖倍其入,不知其害,則是名得而實亡,如是者功小而害大矣。凡功者,其入多、其出少乃可謂功。今大費無罪而少得為功,則人臣出大費而成小功,小功成而主亦有害。
번역 2
군주는 일에 유인당하는 경우가 있고, 말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있으니, 이 두 가지는 살피지 않을 수 없다.⁴⁾ 신하가 쉽게 일을 말하는 것은, 적은 자본을 요구하여, 그 일로써 군주를 속이는 것이다. 군주가 유인당하여 살피지 않고, 그로 인해 (일을) 많게 하면, 이는 신하가 도리어 일로써 군주를 제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유인당한다[誘]’고 하니, 일에 유인당하는 자는 우지당하지 않게 하니, 이를 일러 ‘법을 밝힌다[明法]’고 한다.²⁾
주석
1) 남면(南面): ‘남쪽을 향하다’. 고대 중국에서 군주는 옥좌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며 신하들의 조회를 받고 정사를 다스렸다. 따라서 ‘남면’은 ‘군주’ 또는 ‘군주의 통치술’ 그 자체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2) 명법(明法): ‘법을 밝힌다’. 이는 단순히 법을 공포하는 것을 넘어, 법(法)을 국가 통치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군주의 개인적인 판단이나 신하의 명성, 청탁, 사사로운 충성심 등 모든 자의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오직 법에 근거하여 신하의 공과 과를 판단하고 상벌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신하가 사사로운 방법으로 권력을 얻는 세 가지 통로(명예와 청탁, 월권, 충성 위장)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명법’의 핵심이다.
원문 2
人主有誘於事者,有壅於言者,二者不可不察也。人臣易言事者,少索資,以事誣主,主誘而不察,因而多之,則是臣反以事制主也,如是者謂之誘,誘於事者困於患。其進言少,其退費多,雖有功其進言不信,不信者有罪,事有功者必賞,則群臣莫敢飾言以惛主。主道者,使人臣前言不復於後,後言不復於前,事雖有功,必伏其罪,謂之任下。人臣為主設事而恐其非也,則先出說設言曰:「議是事者,妒事者也。」人主藏是言不更聽群臣,群臣畏是言不敢議事,二勢者用,則忠臣不聽而譽臣獨任,如是者謂之壅於言,壅於言者制於臣矣。主道者,使人臣必有言之責,又有不言之責。言無端末、辯無所驗者,此言之責也。以不言避責、持重位者,此不言之責也。人主使人臣言者必知其端以責其實,不言者必問其取舍以為之責,則人臣莫敢妄言矣,又不敢默然矣,言默則皆有責也。人主欲為事,不通其端末,而以明其欲,有為之者,其為不得利,必以害反,知此者,任理去欲。舉事有道,計其入多,其出少者,可為也。惑主不然,計其入不計其出,出雖倍其入,不知其害,則是名得而實亡,如是者功小而害大矣。凡功者,其入多、其出少乃可謂功。今大費無罪而少得為功,則人臣出大費而成小功,小功成而主亦有害。
번역 2
군주에게는 일에 유인당하는 경우가 있고, 말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있으니, 이 두 가지는 살피지 않을 수 없다.³⁾ 신하가 쉽게 일을 말하는 것은, 자금을 적게 요구하여, 일로써 군주를 속이는 것이니, 군주가 유인되어 살피지 않고, 이로 인해 그것을 많다고 여기면, 이는 신하가 도리어 일로써 군주를 제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유인당한다[誘]’고 하니, 일에 유인당하는 자는 우환에 곤궁해진다. 그 말을 올릴 때는 적게 하고, 그 물러나서 쓰는 비용은 많으며, 비록 공이 있더라도 그 올린 말이 믿음직하지 않으면, 믿음직하지 않은 자는 죄가 있고, 일에 공이 있는 자는 반드시 상을 받게 하면, 여러 신하가 감히 말을 꾸며 군주를 어리석게 하지 못한다. 군주의 도(道)란, 신하로 하여금 앞서 한 말이 뒤의 말과 다르지 않게 하고, 뒤에 한 말이 앞의 말과 다르지 않게 하며, 일이 비록 공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죄에 엎드리게 하는 것이니, 이를 일러 ‘아랫사람에게 맡긴다[任下]’고 한다. 신하가 군주를 위해 일을 계획하고 그것이 잘못될까 두려워하면, 먼저 유세하여 말을 설정하여 말하기를, “이 일을 의논하는 자는, 일을 질투하는 자입니다.”라고 한다. 군주가 이 말을 마음에 감추고 다시는 여러 신하의 말을 듣지 않으며, 여러 신하는 이 말을 두려워하여 감히 일을 의논하지 못한다. 두 가지 형세가 쓰이면, 충신은 등용되지 못하고 칭찬받는 신하만 홀로 임용되니, 이와 같은 것을 ‘말에 가로막힌다[壅於言]’고 하니, 말에 가로막히는 자는 신하에게 제압당한다. 군주의 도란, 신하로 하여금 반드시 말한 것에 대한 책임[言之責]이 있게 하고, 또한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不言之責]도 있게 하는 것이다.⁴⁾ 말에 시작과 끝이 없고, 변론에 증험할 바가 없는 것이, 이것이 말한 것에 대한 책임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피하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이것이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다. 군주가 신하로 하여금 말하는 자는 반드시 그 단서를 알아 그 실체를 책문하고, 말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그 취사선택을 물어 책임을 삼게 하면, 여러 신하가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또한 감히 침묵하지도 못하니,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모두 책임이 있게 된다. 군주가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시작과 끝을 통하지 않고, 그것으로 그 욕망을 밝히면, 그것을 하는 자가 있더라도, 그 하는 것이 이익을 얻지 못하고 반드시 해로움으로 돌아올 것이니, 이를 아는 자는 이치에 맡기고 욕망을 버린다. 일을 일으킴에 도가 있으니, 그 들어오는 것을 계산함이 많고, 그 나가는 것이 적은 자는, 할 만하다. 미혹된 군주는 그렇지 않아서, 그 들어오는 것만 계산하고 그 나가는 것은 계산하지 않으니, 나가는 것이 비록 들어오는 것의 배가 되더라도 그 해로움을 알지 못한다. 이는 이름은 얻고 실체는 잃는 것이니, 이와 같은 자는 공은 작고 해는 크다. 무릇 공이란, 그 들어오는 것이 많고 그 나가는 것이 적어야 비로소 공이라 할 수 있다. 지금 큰 비용을 써도 죄가 없고 적게 얻어도 공이 된다면, 신하는 큰 비용을 내어 작은 공을 이룰 것이고, 작은 공이 이루어져도 군주에게는 또한 해가 된다.
주석
3) 유어사(誘於事)·옹어언(壅於言): 군주가 신하에게 속는 두 가지 대표적인 유형. ‘유어사’는 신하가 제안하는 일(事)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럴듯한 명분이나 작은 이익에 유인당하는 것을 말한다. ‘옹어언’은 신하가 교묘한 말(言)로 군주의 눈과 귀를 막아(壅) 올바른 정보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4) 언지책(言之責)·불언지책(不言之責): ‘말한 것에 대한 책임’과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 이는 법가 통치술의 핵심인 형명참동(形名參同)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 것이다. 신하는 자신이 한 말(名)에 대해 반드시 그 결과(實)로 책임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言之責), 마땅히 보고하거나 간언해야 할 상황에서 침묵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는 것(不言之責) 또한 처벌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를 통해 신하가 어떤 경우에도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엄격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원문 3
不知治者,必曰:「無變古,毋易常。」變與不變,聖人不聽,正治而已。然則古之無變,常之毋易,在常古之可與不可。伊尹毋變殷,太公毋變周,則湯、武不王矣。管仲毋易齊,郭偃毋更晉,則桓、文不霸矣。凡人難變古者,憚易民之安也。夫不變古者,襲亂之跡;適民心者,恣姦之行也。民愚而不知亂,上懦而不能更,是治之失也。人主者,明能知治,嚴必行之,故雖拂於民心立其治。說在商君之內外而鐵殳,重盾而豫戒也。故郭偃之始治也,文公有官卒;管仲始治也,桓公有武車;戒民之備也。是以愚贛窳墯之民,苦小費而忘大利也,故夤虎受阿謗。𨌑小變而失長便,故鄒賈非載旅。狎習於亂而容於治,故鄭人不能歸。
번역 3
다스림을 알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말하기를, “옛것을 바꾸지 말고, 떳떳한 것을 고치지 말라.”라고 한다.⁵⁾ 바꾸고 바꾸지 않는 것을, 성인(聖人)은 듣지 않고, 다스림을 바로잡을 뿐이다. 그렇다면 옛것을 바꾸지 않고 떳떳한 것을 고치지 않는 것은, 떳떳한 옛것의 옳고 그름에 달려 있다. 이윤(伊尹)이 은(殷)나라를 바꾸지 않고, 태공(太公)이 주(周)나라를 바꾸지 않았다면, 탕(湯)·무(武)는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관중(管仲)이 제(齊)나라를 고치지 않고, 곽언(郭偃)이 진(晉)나라를 바꾸지 않았다면, 환공(桓公)·문공(文公)은 패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⁶⁾ 무릇 사람들이 옛것을 바꾸기 어려워하는 것은, 백성의 편안함을 바꾸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무릇 옛것을 바꾸지 않는 것은 혼란의 자취를 답습하는 것이고, 백성의 마음에 맞추는 것은 간사한 행위를 제멋대로 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은 어리석어 혼란을 알지 못하고, 윗사람은 나약하여 바꾸지 못하니, 이것이 다스림의 실패이다. 군주 된 자는, 밝아 능히 다스림을 알고, 엄하여 반드시 그것을 행하니, 그러므로 비록 백성의 마음에 거슬리더라도 그 다스림을 세운다. 그 설명은 상군(商君)이 안팎환에 곤궁해진다. 그 나아가는 말은 적고, 그 물러나는 비용은 많으며, 비록 공이 있더라도 그 나아가는 말이 믿음직하지 않으면, 믿음직하지 않은 자는 죄가 있고, 일에 공이 있는 자는 반드시 상을 받게 하면, 여러 신하가 감히 말을 꾸며 군주를 어리석게 하지 못한다. 군주의 도(道)란, 신하로 하여금 앞서 한 말이 뒤에 한 말과 다르지 않게 하고, 뒤에 한 말이 앞에 한 말과 다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이 비록 공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죄에 엎드리게 하니, 이를 ‘아랫사람에게 맡긴다[任下]’고 한다. 신하가 군주를 위해 일을 계획하고 그것이 잘못될까 두려워하면, 먼저 유세하여 말을 설정하여 말하기를, “이 일을 의논하는 자는, 이 일을 질투하는 자입니다.”라고 한다. 군주가 이 말을 마음에 감추고 다시는 여러 신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여러 신하는 이 말을 두려워하여 감히 일을 의논하지 못한다. 두 가지 형세가 쓰이면, 충신은 등용되지 않고 칭찬받는 신하만 홀로 임용되니, 이와 같은 것을 ‘말에 가로막힌다[壅於言]’고 하며, 말에 가로막히는 자는 신하에게 제어당한다. 군주의 도란, 신하로 하여금 반드시 말한 것에 대한 책임[言之責]이 있게 하고, 또한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不言之責]도 있게 하는 것이다.⁵⁾ 말에 시작과 끝이 없고, 변론에 증험할 바가 없는 것, 이것이 말한 것에 대한 책임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피하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이것이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다. 군주가 신하로 하여금 말하는 자는 반드시 그 단서를 알아 그 실체를 책문하고, 말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그 취사선택을 물어 책임을 삼게 하면, 여러 신하는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또한 감히 침묵하지도 못하니, 말과 침묵에 모두 책임이 있게 된다. 군주가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시작과 끝을 통달하지 못하고서 그 욕망을 밝히면, 그것을 하는 자가 있더라도, 그 행위는 이익을 얻지 못하고 반드시 해로움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를 아는 자는 이치에 맡기고 욕망을 버린다.⁶⁾ 일을 일으킴에 도(道)가 있으니, 그 들어오는 것을 계산하여 많고, 그 나가는 것이 적은 자는, 할 만하다. 미혹된 군주는 그렇지 않아서, 그 들어오는 것만 계산하고 그 나가는 것은 계산하지 않으니, 나가는 것이 비록 들어오는 것의 배가 되더라도 그 해로움을 알지 못한다. 이는 이름은 얻고 실체는 잃는 것이니, 이와 같으면 공은 작고 해는 크다. 무릇 공이란, 그 들어오는 것이 많고 그 나가는 것이 적어야 비로소 공이라 할 수 있다. 지금 큰 비용을 써도 죄가 없고 적게 얻어도 공이 된다면, 신하는 큰 비용을 내어 작은 공을 이룰 것이고, 작은 공이 이루어져도 군주에게는 또한 해가 있을 것이다.
주석
4) 유어사(誘於事)·옹어언(壅於言): 군주가 신하에게 속는 두 가지 대표적인 유형. ‘유어사’는 신하가 성공하기 쉬운 작은 일로 군주를 유인하여 신임을 얻은 뒤, 점차 큰일을 도모하며 군주를 조종하는 것이다. ‘옹어언’은 신하가 교묘한 말로 반대 의견을 미리 차단하여(예: “이것을 반대하는 자는 질투하는 자입니다.”) 군주의 귀를 막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것이다.
5) 언책(言責)·불언지책(不言之責): 말에 대한 책임과 침묵에 대한 책임. 이는 한비자의 엄격한 책임주의를 보여준다. 신하는 자신이 한 말(제안)에 대해 결과로써 책임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言責), 마땅히 말해야 할 상황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침묵한 것 또한 직무유기로 간주하여 책임을 물어야 한다(不言之責)는 것이다.
6) 이(理)·욕(欲): ‘이치’와 ‘욕망’. 군주는 국가를 다스릴 때, 자신의 사사로운 욕망(欲)을 버리고, 사물의 객관적인 이치와 손익 계산(理)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원문 3
不知治者,必曰:「無變古,毋易常。」變與不變,聖人不聽,正治而已。然則古之無變,常之毋易,在常古之可與不可。伊尹毋變殷,太公毋變周,則湯、武不王矣。管仲毋易齊,郭偃毋更晉,則桓、文不霸矣。凡人難變古者,憚易民之安也。夫不變古者,襲亂之跡;適民心者,恣姦之行也。民愚而不知亂,上懦而不能更,是治之失也。人主者,明能知治,嚴必行之,故雖拂於民心立其治。說在商君之內外而鐵殳,重盾而豫戒也。故郭偃之始治也,文公有官卒;管仲始治也,桓公有武車;戒民之備也。是以愚贛窳墯之民,苦小費而忘大利也,故夤虎受阿謗。𨌑小變而失長便,故鄒賈非載旅。狎習於亂而容於治,故鄭人不能歸。
번역 3
다스림을 알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말하기를, “옛것을 바꾸지 말고, 떳떳한 것을 고치지 말라.”라고 한다. 바꾸고 바꾸지 않는 것을, 성인(聖人)은 듣지 않고, 다스림을 바로잡을 뿐이다. 그렇다면 옛것을 바꾸지 않고 떳떳한 것을 고치지 않는 것은, 떳떳한 옛것의 가능함과 불가능함에 달려 있다. 이윤(伊尹)이 은(殷)나라를 바꾸지 않고, 태공(太公)이 주(周)나라를 바꾸지 않았다면, 탕(湯)·무(武)는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관중(管仲)이 제(齊)나라를 고치지 않고, 곽언(郭偃)이 진(晉)나라를 바꾸지 않았다면, 환공(桓公)·문공(文公)은 패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무릇 사람들이 옛것을 바꾸기 어려워하는 것은, 백성의 편안함을 바꾸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무릇 옛것을 바꾸지 않는 것은 혼란의 자취를 답습하는 것이고, 백성의 마음에 맞추는 것은 간사한 행위를 제멋대로 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은 어리석어 혼란을 알지 못하고, 윗사람은 나약하여 고치지 못하니, 이것이 다스림의 실패이다. 군주 된 자는, 밝아 능히 다스림을 알고, 엄하여 반드시 그것을 행하니, 그러므로 비록 백성의 마음에 거슬리더라도 그 다스림을 세운다. 그 설명은 상군(商君)이 안팎으로 쇠몽둥이와 무거운 방패로 미리 경계한 것에 있다. 그러므로 곽언이 처음 다스릴 때, 문공에게는 관리가 이끄는 군대가 있었고, 관중이 처음 다스릴 때, 환공에게는 무장한 수레가 있었으니, 백성을 경계하는 준비였다. 이 때문에 어리석고 게으른 백성은, 작은 비용을 괴로워하고 큰 이익을 잊어버리니, 그러므로 은호(夤虎)는 아첨과 비방을 받았다.⁸⁾ 작은 변화에 얽매여 긴 편리를 잃으니, 그러므로 추가(鄒賈)는 재려(載旅)를 비난했다.⁹⁾ 혼란에 익숙해져 다스림에 관용을 베푸니, 그러므로 정(鄭)나라 사람은 돌아갈 수 없었다.¹⁰⁾
주석
7) 변고(變古): ‘옛것을 바꾼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낡은 법과 제도를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는 법가(法家)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한비자는 옛것만을 숭상하는 유가(儒家)의 복고주의(復古主義)를 비판하며, 이윤, 태공, 관중 등 성공한 개혁가들의 사례를 들어 변법(變法)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8) 은호(夤虎)·추가(鄒賈): 이 두 가지는 현재 그 구체적인 고사의 내용이 전해지지 않는 매우 드문 인용이다. 문맥상, 은호와 재려는 백성을 위해 작은 변화를 시도했으나, 어리석은 백성이나 기득권층의 비방을 받아 좌절된 인물로 추정된다. 한비자는 이를 통해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9) 정인(鄭人) 이야기: 이는 《한비자》 〈외저설 좌상〉 편에 나오는 ‘정인매리(鄭人買履)’ 고사를 가리킨다. 정나라 사람이 신발을 사러 갔다가 발 치수를 재어놓은 것을 집에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다시 가지러 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 시장은 이미 파했으나, 그는 “나는 치수를 믿지 내 발을 믿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한비자는 이 고사를 인용하여, 사람들이 이미 익숙해진 혼란스러운 옛 관습(치수)에만 얽매여, 합리적이고 올바른 새로운 다스림(자기 발)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있다.
《한비자》 〈식사〉 번역 및 주석
원문 1
鑿龜數筴,兆曰大吉,而以攻燕者趙也。鑿龜數筴,兆曰大吉,而以攻趙者燕也。劇辛之事,燕無功而社稷危。鄒衍之事,燕無功而國道絕。趙代先得意於燕,後得意於齊,國亂節高,自以為與秦提衡,非趙龜神而燕龜欺也。趙又嘗鑿龜數筴而北伐燕,將劫燕以逆秦,兆曰大吉,始攻大梁而秦出上黨矣,兵至釐而六城拔矣,至陽城,秦拔鄴矣,龐援揄兵而南則鄣盡矣。臣故曰:趙龜雖無遠見於燕,且宜近見於秦。秦以其大吉,辟地有實,救燕有有名。趙以其大吉,地削兵辱,主不得意而死。又非秦龜神而趙龜欺也。初時者魏數年東鄉攻盡陶、衛,數年西鄉以失其國,此非豐隆、五行、太一、王相、攝提、六神、五括、天河、殷搶、歲星非數年在西也,又非天缺、弧逆、刑星、熒惑、奎台非數年在東也。故曰:龜筴鬼神不足舉勝,左右背鄉不足以專戰。然而恃之,愚莫大焉。
번역 1
거북 등껍질을 뚫고 시초점을 쳐서,¹⁾ 징조가 ‘대길(大吉)’이라 나왔는데, 그것으로 연(燕)나라를 공격한 것은 조(趙)나라였다. 거북 등껍질을 뚫고 시초점을 쳐서, 징조가 ‘대길’이라 나왔는데, 그것으로 조나라를 공격한 것은 연나라였다. 극신(劇辛)의 일에서, 연나라는 공이 없었고 사직(社稷)이 위태로워졌다. 추연(鄒衍)의 일에서, 연나라는 공이 없었고 나라의 도(道)가 끊어졌다.²⁾ 조나라의 대(代) 땅은 먼저 연나라에게서 뜻을 얻고, 뒤에 제(齊)나라에게서 뜻을 얻어, 나라가 어지러운데도 기개는 높아, 스스로 진(秦)나라와 균형을 이룬다고 여겼으니, 이는 조나라의 거북이 신령하고 연나라의 거북이 속인 것이 아니다. 조나라는 또 일찍이 거북 등껍질을 뚫고 시초점을 쳐서 북쪽으로 연나라를 정벌하여, 장차 연나라를 겁박하여 진나라에 맞서려 하였는데, 징조가 ‘대길’이라 나왔다. 대량(大梁)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진나라는 상당(上黨)으로 나왔고, 군대가 이(釐) 땅에 이르자 여섯 성이 함락되었으며, 양성(陽城)에 이르자 진나라는 업(鄴) 땅을 함락시켰고, 방난(龐援)이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가자 장(鄣) 땅이 모두 함락되었다. 신이 그러므로 말하기를, “조나라의 거북이 비록 연나라에 대한 먼 예견은 없었더라도, 마땅히 진나라에 대한 가까운 예견은 있었어야 했다.”라고 하는 것이다. 진나라는 그 ‘대길’로써, 땅을 개척한 실적이 있었고, 연나라를 구원한 명분이 있었다. 조나라는 그 ‘대길’로써, 땅이 깎이고 군대가 욕을 보았으며, 군주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이 또한 진나라의 거북이 신령하고 조나라의 거북이 속인 것이 아니다. 초기에 위(魏)나라는 수년간 동쪽을 향해 도(陶)와 위(衛) 땅을 모두 공격하였고, 수년간 서쪽을 향하다가 그 나라를 잃었다. 이는 풍륭(豐隆), 오행(五行), 태일(太一) 등 길한 별들이 수년간 서쪽에 있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며, 또한 천결(天缺), 호역(弧逆), 형성(刑星) 등 흉한 별들이 수년간 동쪽에 있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다.³⁾ 그러므로 이르기를, “거북점과 시초점, 귀신은 승리를 장담하기에 부족하고, 군대의 좌향(左右背鄉)은 전투를 전담하기에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것을 믿으니, 어리석음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착귀수협(鑿龜數筴):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점술 방법. ‘착귀(鑿龜)’는 거북의 등껍질이나 배딱지에 구멍을 뚫고 불에 구워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것이고, ‘수협(數筴)’은 시초(蓍草)라는 식물의 줄기를 세어 괘(卦)를 얻어 점을 치는 것이다. 한비자는 이러한 미신적 행위가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논증하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다.
2) 극신(劇辛)·추연(鄒衍): 극신은 연나라의 장군으로, 조나라를 얕보고 공격했다가 대패하여 전사했다. 추연은 음양오행설로 유명한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연나라에서 높은 대우를 받았으나 그의 사상이 연나라의 부국강병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는 못했다. 한비자는 점괘뿐만 아니라 명망 있는 인물의 판단조차도 신뢰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들을 예로 들었다.
3) 풍륭(豐隆) 등: 모두 고대 중국의 천문학과 점성술에 등장하는 별들의 이름이다. 풍륭, 오행, 태일 등은 길성(吉星)을, 천결, 형혹 등은 흉성(凶星)을 상징한다. 한비자는 국가의 흥망성쇠가 이러한 별들의 운행과 같은 미신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원문 2
古者先王盡力於親民,加事於明法。彼法明則忠臣勸,罰必則邪臣止。忠勸邪止而地廣主尊者,秦是也。群臣朋黨比周以隱正道、行私曲而地削主卑者,山東是也。亂弱者亡,人之性也。治強者王,古之道也。越王勾踐恃大朋之龜與吳戰而不勝,身臣入宦於吳,反國棄龜,明法親民以報吳,則夫差為擒。故恃鬼神者慢於法,恃諸侯者危其國。曹恃齊而不聽宋,齊攻荊而宋滅曹。荊恃吳而不聽齊,越伐吳而齊滅荊。許恃荊而不聽魏,荊攻宋而魏滅許。鄭恃魏而不聽韓,魏攻荊而韓滅鄭。今者韓國小而恃大國,主慢而聽秦魏、恃齊荊為用,而小國愈亡。故恃人不足以廣壤,而韓不見也。荊為攻魏而加兵許、鄢,齊攻任扈而削魏,不足以存鄭,而韓弗知也。此皆不明其法禁以治其國,恃外以滅其社稷者也。
번역 2
옛날 선왕(先王)들은 백성을 가까이하는 데 힘을 다하고, 법을 밝히는 일에 힘을 더했다. 저 법이 밝으면 충신이 권면되고, 벌이 반드시 시행되면 사악한 신하가 그친다. 충신이 권면되고 사악한 신하가 그쳐서 땅이 넓어지고 군주가 존귀해진 자는, 진(秦)나라가 바로 그것이다. 여러 신하가 붕당을 이루고 무리를 지어 바른 도리를 가리고, 사사로운 왜곡을 행하여 땅이 깎이고 군주가 비천해진 자는, 산동(山東)의 나라들이 바로 그것이다.⁴⁾ 어지럽고 약한 자는 망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요, 다스려지고 강한 자는 왕이 되는 것이 옛날의 도리이다.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대붕(大朋)의 거북점을 믿고 오(吳)나라와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몸소 신하가 되어 오나라에 들어가 시중을 들었다. 나라로 돌아와서는 거북을 버리고, 법을 밝히고 백성을 가까이하여 오나라에 복수하니, 부차(夫差)가 사로잡혔다. 그러므로 귀신을 믿는 자는 법에 게으르고, 제후를 믿는 자는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조(曹)나라는 제(齊)나라를 믿고 송(宋)나라의 말을 듣지 않았으나, 제나라가 초(荊)나라를 공격하는 사이에 송나라가 조나라를 멸망시켰다. 초나라는 오나라를 믿고 제나라의 말을 듣지 않았으나, 월나라가 오나라를 정벌하는 사이에 제나라가 초나라를 멸망시켰다. 허(許)나라는 초나라를 믿고 위(魏)나라의 말을 듣지 않았으나,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는 사이에 위나라가 허나라를 멸망시켰다. 정(鄭)나라는 위나라를 믿고 한(韓)나라의 말을 듣지 않았으나, 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는 사이에 한나라가 정나라를 멸망시켰다. 지금 한나라는 작으면서 대국을 믿고, 군주는 태만하여 진나라와 위나라의 말을 들으며, 제나라와 초나라를 의지하여 쓰려 하니, 작은 나라는 더욱 망할 뿐이다. 그러므로 남을 믿는 것은 영토를 넓히기에 부족한데도, 한나라는 이를 보지 못한다. 초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허나라와 언(鄢) 땅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제나라가 임호(任扈)를 공격하여 위나라를 깎는 것이, 정나라를 보존하기에 부족한데도, 한나라는 이를 알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그 법과 금령을 밝혀 그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외부 세력에 의지하여 그 사직을 멸망시킨 자들이다.
주석
4) 산동(山東): 효산(崤山) 또는 화산(華山)의 동쪽에 위치한 여섯 나라, 즉 한(韓)·위(魏)·조(趙)·제(齊)·초(楚)·연(燕)을 통칭하는 말이다. 법가 사상을 통해 중앙집권과 부국강병에 성공한 진(秦)나라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붕당과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얽매여 쇠퇴한 나라들을 상징한다.
원문 3
臣故曰:明於治之數,則國雖小,富。賞罰敬信,民雖寡,強。賞罰無度,國雖大兵弱者,地非其地,民非其民也。無地無民,堯、舜不能以王,三代不能以強。人主又以過予;人臣又以徒取。舍法律而言先王明君之功者,上任之以國,臣故曰:是願古之功,以古之賞賞今之人也,主以是過予,而臣以此徒取矣。主過予則臣偷幸,臣徒取則功不尊。無功者受賞則財匱而民望,財匱而民望則民不盡力矣。故用賞過者失民,用刑過者民不畏。有賞不足以勸,有刑不足以禁,則國雖大,必危。故曰:小知不可使謀事,小忠不可使主法。荊恭王與晉厲公戰於鄢陵,荊師敗,恭王傷,酣戰而司馬子反渴而求飲,其友豎穀陽奉卮酒而進之,子反曰:「去之,此酒也。」豎穀陽曰:「非也。」子反受而飲之。子反為人嗜酒,甘之,不能絕之於口,醉而臥。恭王欲復戰而謀事,使人召子反,反辭以心疾,恭王駕而往視之,入幄中聞酒臭而還,曰:「今日之戰,寡人目親傷,所恃者司馬,司馬又如此,是亡荊國之社稷而不恤吾眾也,寡人無與復戰矣。」罷師而去之,斬子反以為大戮。故曰:豎穀陽之進酒也,非以端惡子反也,實心以忠愛之而適足以殺之而已矣。此行小忠而賊大忠者也。故曰:小忠,大忠之賊也。若使小忠主法,則必將赦罪以相愛,是與下安矣,然而妨害於治民者也。
번역 3
신이 그러므로 말하기를, “다스림의 술수[數]에 밝으면, 나라가 비록 작아도 부유하고, 상벌이 신중하고 믿음직하면, 백성이 비록 적어도 강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상벌에 법도가 없으면, 나라가 비록 크더라도 군대가 약한 자는, 땅이 그의 땅이 아니요, 백성이 그의 백성이 아니다. 땅이 없고 백성이 없으면, 요(堯)·순(舜)도 왕 노릇을 할 수 없고, 삼대(三代)도 강해질 수 없다. 군주는 또한 과분하게 주고, 신하는 또한 공연히 취한다. 법률을 버리고 선왕과 명군의 공을 말하는 자를, 윗사람이 그에게 나라를 맡기니, 신이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는 옛날의 공을 원하면서, 옛날의 상으로 지금의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군주는 이로써 과분하게 주고, 신하는 이로써 공연히 취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군주가 과분하게 주면 신하는 요행을 바라고, 신하가 공연히 취하면 공이 존중받지 못한다. 공 없는 자가 상을 받으면 재물이 고갈되고 백성이 원망하며, 재물이 고갈되고 백성이 원망하면 백성이 힘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을 잘못 쓰는 자는 백성을 잃고, 형벌을 잘못 쓰는 자는 백성이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이 있어도 권면하기에 부족하고, 형벌이 있어도 금하기에 부족하면, 나라가 비록 크더라도 반드시 위태로워
《한비자》 〈식사〉 번역 및 주석
원문 1
鑿龜數筴,兆曰大吉,而以攻燕者趙也。鑿龜數筴,兆曰大吉,而以攻趙者燕也。劇辛之事,燕無功而社稷危。鄒衍之事,燕無功而國道絕。趙代先得意於燕,後得意於齊,國亂節高,自以為與秦提衡,非趙龜神而燕龜欺也。趙又嘗鑿龜數筴而北伐燕,將劫燕以逆秦,兆曰大吉,始攻大梁而秦出上黨矣,兵至釐而六城拔矣,至陽城,秦拔鄴矣,龐援揄兵而南則鄣盡矣。臣故曰:趙龜雖無遠見於燕,且宜近見於秦。秦以其大吉,辟地有實,救燕有有名。趙以其大吉,地削兵辱,主不得意而死。又非秦龜神而趙龜欺也。初時者魏數年東鄉攻盡陶、衛,數年西鄉以失其國,此非豐隆、五行、太一、王相、攝提、六神、五括、天河、殷搶、歲星非數年在西也,又非天缺、弧逆、刑星、熒惑、奎台非數年在東也。故曰:龜筴鬼神不足舉勝,左右背鄉不足以專戰。然而恃之,愚莫大焉。
번역 1
거북 배딱지를 뚫고 시초점을 쳐서[鑿龜數筴],¹⁾ 점괘가 ‘크게 길하다[大吉]’고 나왔는데도 연(燕)나라를 공격한 것은 조(趙)나라였다. 거북 배딱지를 뚫고 시초점을 쳐서, 점괘가 ‘크게 길하다’고 나왔는데도 조나라를 공격한 것은 연나라였다. 극신(劇辛)의 일에서, 연나라는 공이 없고 사직이 위태로워졌다. 추연(鄒衍)의 일에서, 연나라는 공이 없고 나라의 도리가 끊어졌다.²⁾ 조나라의 대(代) 땅은 먼저 연나라에서 뜻을 얻고, 뒤에 제(齊)나라에서 뜻을 얻었으나, 나라가 어지럽고 절개만 높아, 스스로 진(秦)나라와 균형을 이룬다고 여겼으니, 조나라의 거북이 신령하고 연나라의 거북이 속인 것이 아니다. 조나라는 또 일찍이 거북 배딱지를 뚫고 시초점을 쳐서 북쪽으로 연나라를 정벌하여, 장차 연나라를 겁박하여 진나라에 맞서려 하였는데, 점괘가 ‘크게 길하다’고 나왔다. 대량(大梁)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진나라는 상당(上黨)으로 나왔고, 군대가 이(釐) 땅에 이르자 여섯 성이 함락되었으며, 양성(陽城)에 이르자 진나라가 업(鄴)을 함락시켰고, 방난(龐援)이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가자 장(鄣) 땅이 모두 함락되었다. 신이 그러므로 말하기를, “조나라의 거북이 비록 연나라에 대한 먼 앞날은 보지 못했더라도, 마땅히 진나라에 대한 가까운 앞날은 보았어야 했다.”라고 하는 것이다. 진나라는 그 ‘크게 길함’으로, 땅을 개척하는 실리가 있었고, 연나라를 구원하는 명분이 있었다. 조나라는 그 ‘크게 길함’으로, 땅이 깎이고 군대가 욕을 보았으며, 군주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이 또한 진나라의 거북이 신령하고 조나라의 거북이 속인 것이 아니다. 초기에 위(魏)나라는 수년간 동쪽을 향해 도(陶)와 위(衛)를 모두 공격하였고, 수년간 서쪽을 향하다가 그 나라를 잃었다. 이는 풍륭(豐隆), 오행(五行), 태일(太一), 왕상(王相), 섭제(攝提), 육신(六神), 오괄(五括), 천하(天河), 은창(殷搶), 세성(歲星)이 수년간 서쪽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며,³⁾ 또한 천결(天缺), 호역(弧逆), 형성(刑星), 형혹(熒惑), 규태(奎台)가 수년간 동쪽에 있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거북점과 시초점, 귀신은 승리를 장담하기에 부족하고, 좌향(左右背鄉)은 전투를 전담하기에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것을 믿으니, 어리석음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착구수협(鑿龜數筴):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점술. ‘착구(鑿龜)’는 거북의 배딱지에 구멍을 뚫고 불에 달구어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것이고, ‘수협(數筴)’은 시초(蓍草)라는 식물의 줄기를 세어 그 수로 점을 치는 것이다. 한비자는 이러한 신비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방법에 의존하여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2) 극신(劇辛)·추연(鄒衍): 모두 전국시대 연나라에서 활동한 유명한 학자들이다. 극신은 조나라와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전사했고, 추연은 음양오행설로 유명했으나 그의 이론이 연나라의 부국강병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진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작은 지혜는 일을 도모하게 할 수 없고, 작은 충성은 법을 주관하게 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초(荊)나라 공왕(恭王)이 진(晉)나라 여공(厲公)과 언릉(鄢陵)에서 싸울 때, 초나라 군대가 패하고 공왕이 부상을 당했다. 전투가 한창일 때 사마(司馬) 자반(子反)이 목이 말라 마실 것을 찾자, 그의 친구인 시종 곡양(穀陽)이 잔에 술을 담아 올렸다. 자반이 말하기를, “물러가라, 이것은 술이다.” 하니, 시종 곡양이 말하기를,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자반이 받아 마셨다. 자반은 사람됨이 술을 즐기고 달게 여겨, 입에서 끊지를 못하여 취하여 누워버렸다. 공왕이 다시 싸우고자 일을 상의하려 하여, 사람을 시켜 자반을 부르니, 자반이 심장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공왕이 수레를 몰아 직접 가서 보니, 막사 안에 들어가 술 냄새를 맡고 돌아와 말하기를, “오늘의 싸움에서 과인은 직접 눈을 다쳤고, 믿는 바는 오직 사마뿐인데, 사마가 또 이와 같으니, 이는 초나라의 사직을 망하게 하고 우리 군사들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과인은 더불어 다시 싸우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군대를 철수하여 돌아가서, 자반을 베어 큰 벌로 삼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시종 곡양이 술을 올린 것은, 본래 자반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그를 충성스럽게 아꼈으나 도리어 그를 죽이기에 충분했을 뿐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작은 충성을 행하여 큰 충성을 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작은 충성은 큰 충성의 적이다.”라고 하였다. 만약 작은 충성지는 못했다. 한비자는 이들의 사례를 들어, 명성 높은 학자의 이론이나 계책 역시 점술처럼 비현실적이고 믿을 수 없음을 지적한다.
3) 풍륭(豐隆) 등: 모두 고대 중국의 천문, 점성술과 관련된 신이나 별의 이름이다. 한비자는 이러한 천체의 운행이나 점성술적 길흉 판단이 국가의 흥망성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역설하며, 오직 현실적인 국력과 법치(法治)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원문 2
古者先王盡力於親民,加事於明法。彼法明則忠臣勸,罰必則邪臣止。忠勸邪止而地廣主尊者,秦是也。群臣朋黨比周以隱正道、行私曲而地削主卑者,山東是也。亂弱者亡,人之性也。治強者王,古之道也。越王勾踐恃大朋之龜與吳戰而不勝,身臣入宦於吳,反國棄龜,明法親民以報吳,則夫差為擒。故恃鬼神者慢於法,恃諸侯者危其國。曹恃齊而不聽宋,齊攻荊而宋滅曹。荊恃吳而不聽齊,越伐吳而齊滅荊。許恃荊而不聽魏,荊攻宋而魏滅許。鄭恃魏而不聽韓,魏攻荊而韓滅鄭。今者韓國小而恃大國,主慢而聽秦魏、恃齊荊為用,而小國愈亡。故恃人不足以廣壤,而韓不見也。荊為攻魏而加兵許、鄢,齊攻任扈而削魏,不足以存鄭,而韓弗知也。此皆不明其法禁以治其國,恃外以滅其社稷者也。
번역 2
옛날의 선왕(先王)은 백성과 가까워지는 데 힘을 다하고, 법을 밝히는 일에 힘을 더했다. 저 법이 밝으면 충신이 권면되고, 벌이 반드시 시행되면 사악한 신하가 그친다. 충신이 권면되고 사악한 신하가 그쳐서 땅이 넓어지고 군주가 존귀해진 자는, 진(秦)나라가 바로 그것이다. 여러 신하가 붕당을 이루고 무리를 지어 바른 도리를 숨기고, 사사로운 왜곡을 행하여 땅이 깎이고 군주가 낮아진 자는, 산동(山東)의 여섯 나라가 바로 그것이다. 어지럽고 약한 자는 망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다스려지고 강한 자는 왕이 되는 것이, 옛날의 도리이다.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대붕(大朋)의 거북점을 믿고 오(吳)나라와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몸소 신하가 되어 오나라에 들어가 벼슬살이를 하였다. 나라로 돌아와서는 거북을 버리고, 법을 밝히고 백성과 가까워져 오나라에 복수하니, 부차(夫差)는 사로잡혔다.⁴⁾ 그러므로 귀신을 믿는 자는 법에 게으르고, 제후를 믿는 자는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조(曹)나라는 제(齊)나라를 믿고 송(宋)나라의 말을 듣지 않다가, 제나라가 초(荊)나라를 공격하자 송나라가 조나라를 멸망시켰다. 초나라는 오나라를 믿고 제나라의 말을 듣지 않다가, 월나라가 오나라를 정벌하자 제나라가 초나라를 멸망시켰다. 허(許)나라는 초나라를 믿고 위(魏)나라의 말을 듣지 않다가,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자 위나라가 허나라를 멸망시켰다. 정(鄭)나라는 위나라를 믿고 한(韓)나라의 말을 듣지 않다가, 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가 정나라를 멸망시켰다. 지금 한나라는 작으면서 대국을 믿고, 군주는 태만하여 진·위의 말을 들으며, 제·초를 의지하여 쓰려 하니, 작은 나라는 더욱 망할 뿐이다. 그러므로 남을 믿는 것은 영토를 넓히기에 부족한데도, 한나라는 이를 보지 못한다. 초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허(許)와 언(鄢)에 군대를 더하고, 제나라가 임(任)과 호(扈)를 공격하여 위나라를 깎는 것이, 정나라를 보존하기에는 부족한데도, 한나라는 이를 알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그 법과 금령을 밝혀 그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외부 세력에 의지하여 그 사직을 멸망시킨 자들이다.
주석
4) 월왕 구천(越王勾踐): 춘추시대 월나라의 군주.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오왕 부차(夫差)의 신하가 되어 온갖 굴욕을 견뎠다(와신상담, 臥薪嘗膽). 이후 귀국하여 미신을 버리고 내치(明法親民)에 힘써 국력을 키운 뒤, 결국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복수에 성공했다. 한비자는 구천의 사례를 통해, 신비주의나 외세 의존이 아닌, 법에 근거한 자력갱생만이 국가를 강하게 만들 수 있음을 강조한다.
원문 3
臣故曰:明於治之數,則國雖小,富。賞罰敬信,民雖寡,強。賞罰無度,國雖大兵弱者,地非其地,民非其民也。無地無民,堯、舜不能以王,三代不能以強。人主又以過予;人臣又以徒取。舍法律而言先王明君之功者,上任之以國,臣故曰:是願古之功,以古之賞賞今之人也,主以是過予,而臣以此徒取矣。主過予則臣偷幸,臣徒取則功不尊。無功者受賞則財匱而民望,財匱而民望則民不盡力矣。故用賞過者失民,用刑過者民不畏。有賞不足以勸,有刑不足以禁,則國雖大,必危。故曰:小知不可使謀事,小忠不可使主法。荊恭王與晉厲公戰於鄢陵,荊師敗,恭王傷,酣戰而司馬子反渴而求飲,其友豎穀陽奉卮酒而進之,子反曰:「去之,此酒也。」豎穀陽曰:「非也。」子反受而飲之。子反為人嗜酒,甘之,不能絕之於口,醉而臥。恭王欲復戰而謀事,使人召子反,反辭以心疾,恭王駕而往視之,入幄中聞酒臭而還,曰:「今日之戰,寡人目親傷,所恃者司馬,司馬又如此,是亡荊國之社稷而不恤吾眾也,寡人無與復戰矣。」罷師而去之,斬子反以為大戮。故曰:豎穀陽之進酒也,非以端惡子反也,實心以忠愛之而適足以殺之而已矣。此行小忠而賊大忠者也。故曰:小忠,大忠之賊也。若使小忠主法,則必將赦罪以相愛,是與下安矣,然而妨害於治民者也。
번역 3
신이 그러므로 말하기를, “다스림의 술수[數]에 밝으면, 나라가 비록 작아도 부유하고, 상벌이 신중하고 믿음직하면, 백성이 비록 적어도 강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상벌에 법도가 없어, 나라가 비록 커도 군대가 약한 자는, 그 땅이 자기 땅이 아니며, 그 백성이 자기 백성이 아니다. 땅이 없고 백성이 없으면, 요(堯)·순(舜)도 왕 노릇을 할 수 없고, 삼대(三代)도 강해질 수 없다. 군주는 또한 과분하게 주고, 신하는 또한 공연히 취한다. 법률을 버리고 선왕과 명군의 공을 말하는 자를, 윗사람이 그에게 나라를 맡기니, 신이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는 옛날의 공을 원하면서, 옛날의 상으로 지금의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군주는 이로써 과분하게 주고, 신하는 이로써 공연히 취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군주가 과분하게 주면 신하는 요행을 바라고, 신하가 공연히 취하면 공이 존중받지 못한다. 공 없는 자가 상을 받으면 재물이 고갈되고 백성이 원망하며, 재물이 고갈되고 백성이 원망하면 백성이 힘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을 잘못 쓰는 자는 백성을 잃고, 형벌을 잘못 쓰는 자는 백성이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이 있어도 권면하기에 부족하고, 형벌이 있어도 금하기에 부족하면, 나라가 비록 크더라도 반드시 위태롭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작은 지혜는 일을 도모하게 할 수 없고, 작은 충성은 법을 주관하게 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초(荊)나라 공왕(恭王)이 진(晉)나라 여공(厲公)과 언릉(鄢陵)에서 싸울 때, 초나라 군대가 패하고 공왕이 부상을 당했다. 전투가 한창일 때 사마(司馬) 자반(子反)이 목이 말라 마실 것을 찾자, 그의 친구인 시종[豎] 곡양(穀陽)이 술잔을 받들어 올렸다. 자반이 말하기를, “물러가라, 이것은 술이다.”라고 하였으나, 시종 곡양이 말하기를,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자반은 그것을 받아 마셨다. 자반은 사람됨이 술을 즐기고 달게 여겨, 입에서 끊지를 못하여 취하여 누웠다. 공왕이 다시 싸우고자 일을 도모하려 하여, 사람을 시켜 자반을 부르니, 자반은 심장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공왕이 수레를 몰아 직접 가서 보니, 막사 안에 들어가 술 냄새를 맡고 돌아와 말하기를, “오늘의 싸움에서 과인은 직접 눈을 다쳤고, 믿는 바는 오직 사마뿐이었는데, 사마가 또 이와 같으니, 이는 초나라의 사직을 망하게 하고 우리 군사들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과인은 더불어 다시 싸우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군대를 철수하여 돌아가서, 자반을 베어 큰 벌로 삼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시종 곡양이 술을 올린 것은, 본래 자반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그를 충성스럽게 아끼고 사랑한 것이었으나, 도리어 그를 죽이기에 충분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작은 충성을 행하여 큰 충성을 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작은 충성은 큰 충성의 적이다.”라고 하였다.⁵⁾ 만약 작은 충성으로 법을 주관하게 한다면, 반드시 죄를 사면하여 서로 아껴주려 할 것이니, 이는 아랫사람과 함께 편안해지는 것이지만,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방해가 된다.
주석
5) 소충(小忠), 대충지적야(大忠之賊也): ‘작은 충성은 큰 충성의 적이다’. 이 편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이다. ‘작은 충성’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관계에 기반한 사사로운 충성심을 의미한다. 시종 곡양은 목마른 상관 개인에게는 충성했지만(小忠), 그 결과 국가의 안위라는 더 큰 가치(大忠)를 해쳤다. 법가에서는 이러한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국가와 법에 대한 비정한 충성, 즉 ‘큰 충성’만을 인정한다. 이 일화는 《십과(十過)》 편에도 나온다.
원문 4
當魏之方明立辟、從憲令行之時,有功者必賞,有罪者必誅,強匡天下,威行四鄰;及法慢,妄予,而國日削矣。當趙之方明國律、從大軍之時,人眾兵強,辟地齊、燕;及國律慢,用者弱,而國日削矣。當燕之方明奉法、審官斷之時,東縣齊國,南盡中山之地;及奉法已亡,官斷不用,左右交爭,論從其下,則兵弱而地削,國制於鄰敵矣。故曰:明法者強,慢法者弱。強弱如是其明矣,而世主弗為,國亡宜矣。語曰:「家有常業,雖饑不餓。國有常法,雖危不亡。」夫舍常法而從私意,則臣下飾於智能,臣下飾於智能則法禁不立矣。是妄意之道行,治國之道廢也。治國之道,去害法者,則不惑於智能、不矯於名譽矣。昔者舜使吏決鴻水,先令有功而舜殺之;禹朝諸侯之君會稽之上,防風之君後至而禹斬之。以此觀之,先令者殺,後令者斬,則古者先貴如令矣。故鏡執清而無事,美惡從而比焉;衡執正而無事,輕重從而載焉。夫搖鏡則不得為明,搖衡則不得為正,法之謂也。故先王以道為常,以法為本,本治者名尊,本亂者名絕。凡智能明通,有以則行,無以則止。故智能單道,不可傳於人。而道法萬全,智能多失。夫懸衡而知平,設規而知圓,萬全之道也。明主使民飾於道之故,故佚而則功。釋規而任巧,釋法而任智,惑亂之道也。亂主使民飾於智,不知道之故,故勞而無功。
번역 4
위(魏)나라가 법률[辟]을 명확히 세우고, 헌령(憲令)을 따라 그것을 행하던 때에는, 공 있는 자는 반드시 상을 받고 죄 있는 자는 반드시 주살되어, 천하를 강하게 바로잡고 위세가 사방 이웃에 떨쳤다. 법이 해이해지고, 함부로 주게 되자, 나라는 날로 깎였다. 조(趙)나라가 국률(國律)을 명확히 하고, 대군(大軍)을 따르던 때에는, 사람이 많고 군대가 강하여, 제(齊)·연(燕)의 땅을 개척하였다. 국률이 해이해지고, 쓰이는 자가 약해지자, 나라는 날로 깎였다. 연(燕)나라가 법을 받들고, 관청의 판결을 살피던 때에는, 동쪽으로 제나라를 현(縣)으로 삼고, 남쪽으로 중산(中山)의 땅을 다 차지하였다. 법을 받드는 것이 이미 없어지고, 관청의 판결이 쓰이지 않으며, 좌우가 서로 다투고, 논의가 그 아랫사람을 따르게 되자, 군대가 약해지고 땅이 깎이며, 나라가 이웃 적에게 제압당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법을 밝히는 자는 강하고, 법을 해이하게 하는 자는 약하다.”라고 하였다. 강하고 약함이 이처럼 명백한데도, 세상의 군주가 이를 행하지 않으니, 나라가 망하는 것이 마땅하다. 속담에 이르기를, “집에 떳떳한 생업이 있으면, 비록 굶주려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나라에 떳떳한 법이 있으면, 비록 위태로워도 망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 무릇 떳떳한 법을 버리고 사사로운 뜻을 따르면, 신하들은 지혜와 능력으로 꾸미게 되고, 신하들이 지혜와 능력으로 꾸미게 되면 법과 금령이 서지 않는다. 이는 함부로 뜻을 쓰는 방법이 행해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 폐지되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법을 해치는 자를 제거하는 것이니, 그리하면 지혜와 능력에 미혹되지 않고, 명예에 속지 않을 것이다. 옛날 순(舜)임금이 관리에게 홍수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명령보다 앞서 공을 세우자 순임금은 그를 죽였다. 우(禹)임금이 회계산(會稽山) 위에서 제후들을 조회할 때, 방풍(防風)의 군주가 늦게 도착하자 우임금은 그를 베었다.⁶⁾ 이로써 보건대, 명령보다 앞선 자는 죽이고, 명령보다 늦은 자는 베니, 옛날에는 명령대로 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거울은 맑음을 지키고 하는 일이 없으면, 아름다움과 추함이 따라서 비치고, 저울은 바름을 지키고 하는 일이 없으면, 가벼움과 무거움이 따라서 실린다. 무릇 거울을 흔들면 밝을 수 없고, 저울을 흔들면 바를 수 없으니, 법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선왕은 도(道)로써 떳떳함을 삼고, 법으로써 근본을 삼았으니, 근본이 다스려지는 자는 이름이 존귀해지고, 근본이 어지러운 자는 이름이 끊어진다. 무릇 지혜와 능력, 명철함과 통달함은, 바탕이 있으면 행하고, 바탕이 없으면 그친다. 그러므로 지혜와 능력은 단일한 길이라, 남에게 전할 수 없다. 그러나 도와 법은 만전(萬全)하고, 지혜와 능력은 실수가 많다. 무릇 저울을 매달아 평평함을 알고, 규(規)를 설치하여 둥긂을 아는 것이, 만전의 방법이다. 현명한 군주는 백성으로 하여금 도(道)로써 꾸미게 하므로,으로 하여금 법을 주관하게 한다면, 반드시 죄를 사면하여 서로 아껴주려 할 것이니, 이는 아랫사람과 함께 편안해지는 것이지만,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는 방해가 되는 것이다.
원문 4
當魏之方明立辟、從憲令行之時,有功者必賞,有罪者必誅,強匡天下,威行四鄰;及法慢,妄予,而國日削矣。當趙之方明國律、從大軍之時,人眾兵強,辟地齊、燕;及國律慢,用者弱,而國日削矣。當燕之方明奉法、審官斷之時,東縣齊國,南盡中山之地;及奉法已亡,官斷不用,左右交爭,論從其下,則兵弱而地削,國制於鄰敵矣。故曰:明法者強,慢法者弱。強弱如是其明矣,而世主弗為,國亡宜矣。語曰:「家有常業,雖饑不餓。國有常法,雖危不亡。」夫舍常法而從私意,則臣下飾於智能,臣下飾於智能則法禁不立矣。是妄意之道行,治國之道廢也。治國之道,去害法者,則不惑於智能、不矯於名譽矣。昔者舜使吏決鴻水,先令有功而舜殺之;禹朝諸侯之君會稽之上,防風之君後至而禹斬之。以此觀之,先令者殺,後令者斬,則古者先貴如令矣。故鏡執清而無事,美惡從而比焉;衡執正而無事,輕重從而載焉。夫搖鏡則不得為明,搖衡則不得為正,法之謂也。故先王以道為常,以法為本,本治者名尊,本亂者名絕。凡智能明通,有以則行,無以則止。故智能單道,不可傳於人。而道法萬全,智能多失。夫懸衡而知平,設規而知圓,萬全之道也。明主使民飾於道之故,故佚而則功。釋規而任巧,釋法而任智,惑亂之道也。亂主使民飾於智,不知道之故,故勞而無功。
번역 4
위(魏)나라가 바야흐로 법률[辟]을 밝게 세우고, 헌령(憲令)을 따라 그것을 행할 때에는, 공 있는 자는 반드시 상을 받고, 죄 있는 자는 반드시 주살되어, 천하를 강하게 바로잡고 위세가 사방 이웃에 떨쳤다. 법이 해이해지고, 함부로 주게 되자, 나라는 날로 깎였다. 조(趙)나라가 바야흐로 국률(國律)을 밝히고, 대군(大軍)을 따를 때에는, 사람이 많고 군대가 강하여, 제(齊)·연(燕)의 땅을 개척하였다. 국률이 해이해지고, 쓰이는 자가 약해지자, 나라는 날로 깎였다. 연(燕)나라가 바야흐로 법을 받들고, 관청의 판결을 살필 때에는, 동쪽으로 제나라를 현(縣)으로 삼고, 남쪽으로 중산(中山)의 땅을 다 차지하였다. 법을 받드는 것이 이미 없어지고, 관청의 판결이 쓰이지 않으며, 좌우가 서로 다투고, 논의가 그 아랫사람을 따르게 되자, 군대가 약해지고 땅이 깎이며, 나라가 이웃 적에게 제압당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법을 밝히는 자는 강하고, 법에 게으른 자는 약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강하고 약함이 이처럼 명백한데도, 세상의 군주들이 이를 행하지 않으니, 나라가 망하는 것이 마땅하다. 속담에 이르기를, “집에 떳떳한 생업이 있으면, 비록 굶주려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나라에 떳떳한 법이 있으면, 비록 위태로워도 망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 무릇 떳떳한 법을 버리고 사사로운 뜻을 따르면, 신하들은 지혜와 능력으로 꾸미게 되고, 신하들이 지혜와 능력으로 꾸미게 되면 법과 금령이 서지 않는다. 이는 함부로 뜻을 세우는 방법이 행해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 폐지되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법을 해치는 자를 제거하는 것이니, 그러면 지혜와 능력에 미혹되지 않고, 명예에 속지 않을 것이다. 옛날 순(舜)임금이 관리에게 홍수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명령보다 앞서 공을 세우자 순임금이 그를 죽였다. 우(禹)임금이 회계산 위에서 제후들을 조회할 때, 방풍씨(防風氏)의 군주가 늦게 도착하자 우임금이 그를 베었다. 이로써 보건대, 명령보다 앞선 자는 죽이고, 명령보다 늦은 자는 베었으니, 옛날에는 명령대로 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거울은 맑음을 지키고 하는 일이 없으나, 아름다움과 추함이 따라서 거기에 비추어지고, 저울은 올바름을 지키고 하는 일이 없으나, 가벼움과 무거움이 따라서 거기에 실린다. 무릇 거울을 흔들면 밝음을 얻을 수 없고, 저울을 흔들면 올바름을 얻을 수 없으니, 법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선왕은 도(道)로써 떳떳함을 삼고, 법(法)으로써 근본을 삼았으니, 근본이 다스려지는 자는 이름이 존귀해지고, 근본이 어지러운 자는 이름이 끊어진다. 무릇 지혜와 능력, 명철함과 통달함은, 근거가 있으면 행하고, 근거가 없으면 그친다. 그러므로 지혜와 능력은 단일한 길이어서, 남에게 전할 수 없다. 그러나 도(道)와 법(法)은 만전(萬全)하고, 지혜와 능력은 실수가 많다. 무릇 저울을 매달아 평평함을 알고, 규(規)를 설치하여 둥긂을 아는 것이, 만전의 방법이다. 현명한 군주는 백성으로 하여금 도(道)로써 꾸미게 하므로, 편안하면서도 공이 있다. 규(規)를 버리고 기교에 맡기고, 법(法)을 버리고 지혜에 맡기는 것은, 미혹되고 혼란스러운 방법이다. 어지러운 군주는 백성으로 하여금 지혜로써 꾸미게 하고, 도(道)의 까닭을 알지 못하므로, 수고로우면서도 공이 없다.
원문 5
釋法禁而聽請謁,群臣賣官於上,取賞於下,是以利在私家而威在群臣。故民無盡力事主之心,而務為交於上。民好上交則貨財上流,而巧說者用。若是,則有功者愈少。姦臣愈進而材臣退,則主惑而不知所行,民聚而不知所道,此廢法禁、後功勞、舉名譽、聽請謁之失也。凡敗法之人,必設詐託物以來親,又好言天下之所希有,此暴君亂主之所以惑也,人臣賢佐之所以侵也。故人臣稱伊尹、管仲之功,則背法飾智有資;稱比干、子胥之忠而見殺,則疾強諫有辭。夫上稱賢明,下稱暴亂,不可以取類,若是者禁。君之立法,以為是也,今人臣多立其私智。以法為非,者是邪以智。過法立智,如是者禁,主之道也。禁主之道,必明於公私之分,明法制,去私恩。夫令必行,禁必止,人主之公義也;必行其私,信於朋友,不可為賞勸,不可為罰沮,人臣之私義也。私義行則亂,公義行則治,故公私有分。人臣有私心,有公義。修身潔白而行公行正,居官無私,人臣之公義也。汙行從欲,安身利家,人臣之私心也。明主在上則人臣去私心行公義,亂主在上則人臣去公義行私心,故君臣異心。君以計畜臣,臣以計事君,君臣之交,計也。害身而利國,臣弗為也;富國而利臣,君不行也。臣之情,害身無利;君之情,害國無親。君臣也者,以計合者也。至夫臨難必死,盡智竭力,為法為之。故先王明賞以勸之,嚴刑以威之。賞刑明則民盡死,民盡死則兵強主尊。刑賞不察則民無功而求得,有罪而幸免,則兵弱主卑。故先王賢佐盡力竭智。故曰:公私不可不明,法禁不可不審,先王知之矣。
번역 5
법과 금령을 버리고 청탁을 들어주면, 여러 신하는 위로는 관직을 팔고, 아래로는 상을 취하니, 이 때문에 이익은 사사로운 가문에 있고 위엄은 여러 신하에게 있게 된다. 그러므로 백성은 힘을 다해 군주를 섬길 마음이 없고, 윗사람과 교제하는 데에만 힘쓴다. 백성이 윗사람과 교제하기를 좋아하면 재물이 위로 흘러가고, 교묘하게 말하는 자가 등용된다. 이와 같으면, 공 있는 자는 더욱 적어진다. 간신은 더욱 나아가고 유능한 신하는 물러나니, 군주는 미혹되어 행할 바를 알지 못하고, 백성은 모여도 따를 바를 알지 못하니, 이것이 법과 금령을 폐하고, 공로를 뒤로하며, 명예를 들어 올리고, 청탁을 듣는 것의 실패이다. 무릇 법을 무너뜨리는 사람은, 반드시 속임수를 설치하고 사물을 핑계 대어 친해 편안하면서도 공이 있다. 규(規)를 버리고 기교에 맡기고, 법을 버리고 지혜에 맡기는 것은, 미혹되고 혼란스러운 방법이다. 어지러운 군주는 백성으로 하여금 지혜로써 꾸미게 하고, 도(道)의 까닭을 알지 못하므로, 수고로우면서도 공이 없다.
주석
6) 순(舜)과 우(禹)의 일화: 이 두 가지 사례는 법가 사상의 비정함과 원칙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순임금은 홍수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웠더라도 명령을 어기고 앞서나간 관리를 처벌했고, 우임금은 회맹에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제후를 처형했다. 이는 개인의 공로나 지위보다 국가의 명령과 법질서의 절대적인 권위를 우선시하는 법가의 핵심 사상을 상징한다.
원문 5
釋法禁而聽請謁,群臣賣官於上,取賞於下,是以利在私家而威在群臣。故民無盡力事主之心,而務為交於上。民好上交則貨財上流,而巧說者用。若是,則有功者愈少。姦臣愈進而材臣退,則主惑而不知所行,民聚而不知所道,此廢法禁、後功勞、舉名譽、聽請謁之失也。凡敗法之人,必設詐託物以來親,又好言天下之所希有,此暴君亂主之所以惑也,人臣賢佐之所以侵也。故人臣稱伊尹、管仲之功,則背法飾智有資;稱比干、子胥之忠而見殺,則疾強諫有辭。夫上稱賢明,下稱暴亂,不可以取類,若是者禁。君之立法,以為是也,今人臣多立其私智。以法為非,者是邪以智。過法立智,如是者禁,主之道也。禁主之道,必明於公私之分,明法制,去私恩。夫令必行,禁必止,人主之公義也;必行其私,信於朋友,不可為賞勸,不可為罰沮,人臣之私義也。私義行則亂,公義行則治,故公私有分。人臣有私心,有公義。修身潔白而行公行正,居官無私,人臣之公義也。汙行從欲,安身利家,人臣之私心也。明主在上則人臣去私心行公義,亂主在上則人臣去公義行私心,故君臣異心。君以計畜臣,臣以計事君,君臣之交,計也。害身而利國,臣弗為也;富國而利臣,君不行也。臣之情,害身無利;君之情,害國無親。君臣也者,以計合者也。至夫臨難必死,盡智竭力,為法為之。故先王明賞以勸之,嚴刑以威之。賞刑明則民盡死,民盡死則兵強主尊。刑賞不察則民無功而求得,有罪而幸免,則兵弱主卑。故先王賢佐盡力竭智。故曰:公私不可不明,法禁不可不審,先王知之矣。
번역 5
법과 금령을 버리고 청탁을 들으면, 여러 신하는 위로는 관직을 팔고, 아래로는 상을 취하니, 이 때문에 이익은 사사로운 가문에 있고 위엄은 여러 신하에게 있게 된다. 그러므로 백성은 힘을 다해 군주를 섬길 마음이 없고, 윗사람과 교제하는 데에만 힘쓴다. 백성이 윗사람과 교제하기를 좋아지려 하고, 또한 천하에 드문 것을 말하기를 좋아하니, 이것이 포악한 군주와 어지러운 군주가 미혹되는 까닭이며, 신하와 어진 보좌가 침범당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신하가 이윤(伊尹)·관중(管仲)의 공을 칭송하면, 법을 등지고 지혜를 꾸미는 데 자산이 생기고, 비간(比干)·자서(子胥)의 충성이 죽임을 당한 것을 칭송하면, 강한 간언을 비난하는 데 명분이 생긴다. 무릇 위로는 현명함을 칭송하고 아래로는 포악과 혼란을 칭송하여, 유추할 수 없게 하는 것, 이와 같은 자는 금지한다. 군주가 법을 세우는 것은, 그것을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신하는 많이들 그 사사로운 지혜를 세운다. 법을 그르다고 여기는 자는, 이는 사악함으로 지혜를 삼는 것이다. 법을 넘어 지혜를 세우는 것, 이와 같은 자를 금지하는 것이, 군주의 도리이다. 군주를 금지하는 도리는, 반드시 공(公)과 사(私)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법제를 밝히며, 사사로운 은혜를 제거하는 것이다. 무릇 명령은 반드시 행해지고, 금령은 반드시 그치게 하는 것이, 군주의 공적인 의(義)이다. 반드시 그 사사로움을 행하고, 친구에게 신의를 지키며, 상으로 권면될 수 없고, 벌로 좌절될 수 없는 것이, 신하의 사사로운 의(義)이다. 사사로운 의가 행해지면 어지러워지고, 공적인 의가 행해지면 다스려지니, 그러므로 공과 사에는 구분이 있다. 신하에게는 사사로운 마음이 있고, 공적인 의가 있다. 몸을 닦아 결백하고 공적인 행실을 바르게 하며, 관직에 있으면서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 신하의 공적인 의이다. 더러운 행실로 욕망을 따르고, 몸을 편안하게 하고 집안을 이롭게 하는 것이, 신하의 사사로운 마음이다. 현명한 군주가 위에 있으면 신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공적인 의를 행하고, 어지러운 군주가 위에 있으면 신하는 공적인 의를 버리고 사사로운 마음을 행하니, 그러므로 군신은 마음이 다르다. 군주는 계산[計]으로 신하를 기르고, 신하는 계산으로 군주를 섬기니, 군신의 사귐은 계산이다. 몸을 해치고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은, 신하가 하지 않는다.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신하를 이롭게 하는 것은, 군주가 행하지 않는다. 신하의 실정은, 몸을 해치면 이로움이 없는 것이고, 군주의 실정은, 나라를 해치면 친함이 없는 것이다. 군신이란, 계산으로 합쳐진 자들이다. 저 어려움에 임하여 반드시 죽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은, 법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왕은 상을 밝혀 그들을 권면하고, 엄한 형벌로 그들을 위협하였다. 상과 형벌이 명확하면 백성이 죽음을 다하고, 백성이 죽음을 다하면 군대가 강해지고 군주가 존귀해진다. 형벌과 상을 살피지 않으면 백성은 공 없이 얻기를 구하고, 죄가 있어도 요행히 면하기를 바라니, 군대가 약해지고 군주가 비천해진다. 그러므로 선왕과 어진 보좌는 힘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공과 사는 밝히지 않을 수 없고, 법과 금령은 살피지 않을 수 없음을, 선왕은 아셨다.”라고 하였다.
《한비자》 〈해로〉 번역 및 주석
원문 1
德者,內也。得者,外也。上德不德,言其神不淫於外也。神不淫於外則身全,身全之謂德。德者,得身也。凡德者,以無為集,以無欲成,以不思安,以不用固。為之欲之,則德無舍,德無舍則不全。用之思之則不固,不固則無功,無功則生於德。德則無德,不德則在有德。故曰:「上德不德,是以有德。」
번역 1
덕(德)이란 안[內]의 것이고, 득(得)이란 밖[外]의 것이다. ‘상덕(上德)은 덕으로 여기지 않는다[不德]’는 것은, 그 정신이 밖으로 방탕하게 흐르지 않음을 말한다.¹⁾ 정신이 밖으로 방탕하게 흐르지 않으면 몸이 온전해지고, 몸이 온전해지는 것을 일러 덕(德)이라 한다. 덕이란 몸을 얻는[得身] 것이다. 무릇 덕이란, 함이 없음[無為]으로써 모이고, 욕심 없음[無欲]으로써 이루어지며, 생각 없음[不思]으로써 편안해지고, 쓰지 않음[不用]으로써 굳건해진다. 무엇인가를 하려 하고 무엇인가를 욕심내면, 덕이 머물 곳이 없고, 덕이 머물 곳이 없으면 온전해지지 않는다. 그것을 쓰고 그것을 생각하면 굳건하지 않고, 굳건하지 않으면 공(功)이 없으며, 공이 없으면 덕에서 생겨난다. 덕으로 여기면 덕이 없고, 덕으로 여기지 않아야 덕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상덕은 덕으로 여기지 않으므로, 이 때문에 덕이 있다.”라고 하였다.²⁾
주석
1) 덕(德)과 득(得)의 재해석: 이 글은 《노자(老子)》를 법가(法家)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한비자는 먼저 《노자》의 핵심 개념인 ‘덕(德)’을 ‘득(得)’과 발음이 같은 점을 이용하여 새롭게 정의한다.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윤리적 덕목으로서의 ‘덕’이 아니라,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정신과 몸을 온전히 보전하는 것, 즉 ‘몸을 얻음[得身]’이 바로 ‘덕’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도가(道家)의 양생(養生) 사상을 법가적 군주론의 기초로 삼으려는 시도이다.
2) 상덕부덕 시이유덕(上德不德 是以有德): 《노자》 38장의 첫 구절이다. 한비자는 이를 “가장 높은 차원의 덕(上德)은 스스로를 덕이라고 의식하거나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不德], 역설적으로 진정한 덕을 소유하게 된다[有德].”라고 해석한다. 덕을 의식하고 인위적으로 행하려는 순간, 그것은 이미 참된 덕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문 2
所以貴無為無思為虛者,謂其意無所制也。夫無術者,故以無為無思為虛也。夫故以無為無思為虛者,其意常不忘虛,是制於為虛也。虛者,謂其意無所制也。今制於為虛,是不虛也。虛者之無為也,不以無為為有常,不以無為為有常則虛,虛則德盛,德盛之謂上德,故曰:「上德無為而無不為也。」
번역 2
무위(無為)와 무사(無思)를 귀하게 여겨 허(虛)라고 하는 까닭은, 그 뜻이 제약받는 바가 없음을 말한다. 무릇 술(術)이 없는 자는, 일부러 무위와 무사를 행하여 허(虛)가 되려 한다. 무릇 일부러 무위와 무사를 행하여 허가 되려는 자는, 그 뜻이 항상 허(虛)를 잊지 못하니, 이는 허(虛)가 되려는 것에 제약받는 것이다. 허(虛)란, 그 뜻이 제약받는 바가 없음을 말한다. 지금 허(虛)가 되려는 것에 제약받으니, 이는 허(虛)가 아니다. 허(虛)한 자의 무위(無為)는, 무위를 떳떳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니, 무위를 떳떳한 것으로 여기지 않아야 허(虛)해지고, 허(虛)해지면 덕(德)이 성대해지며, 덕이 성대해지는 것을 상덕(上德)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상덕은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못함이 없다.”라고 하였다.³⁾
주석
3) 상덕무위 이무불위야(上德無為而無不為也): 《노자》 38장의 구절. 한비자는 여기서 ‘허(虛)’와 ‘무위(無為)’의 개념을 법가적으로 해석한다. 진정한 ‘허’는 ‘비우려는 의도’조차 없는 상태이며, 진정한 ‘무위’는 ‘무위를 하려는 인위적인 노력’조차 없는 상태이다. 군주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사적인 욕망이나 판단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법과 술수에 따라 만물을 통치하게 되므로,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無為) 실제로는 모든 것을 이루게 된다(無不為)는 것이다.
원문 3
仁者,謂其中心欣然愛人也。其喜人之有福,而惡人之有禍也。生心之所不能已也,非求其報也。故曰:「上仁為之而無以為也。」
번역 3
인(仁)이란, 그 마음속으로부터 기쁘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남이 복을 받는 것을 기뻐하고, 남이 화를 입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생겨나 그만둘 수 없는 것이며, 그 보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상인(上仁)은 그것을 행하되, (무엇을 위해) 행하는 바가 없다.”라고 하였다.⁴⁾
주석
4) 상인위지 이무이위야(上仁為之而無以為也): 《노자》 38장의 구절. 여기서 한비자는 ‘인(仁)’을 순수한 동정심과 사랑으로 정의한다. 이는 유가적 ‘인’의 개념과 유사해 보이지만, 한비자는 뒤에서 이러한 ‘인’이 법치(法治)의 관점에서는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해로울 수 있음을 암시한다. ‘상인’은 보답을 바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하지만, 이는 군주의 통치 원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원문 4
義者,君臣上下之事,父子貴賤之差也,知交朋友之接也,親疏內外之分也。臣事君宜,下懷上宜,子事父宜,賤敬貴宜,知交友朋之相助也宜,親者內而疏者外宜。義者,謂其宜也,宜而為之,故曰:「上義為之而有以為也。」
번역 4
의(義)란, 군신(君臣)과 상하(上下)의 일이며, 부자(父子)와 귀천(貴賤)의 차이이며, 지인과 친구의 사귐이며, 친하고 소원함과 안과 밖의 구분이다.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것이 마땅하고[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품는 것이 마땅하며,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마땅하고, 천한 이가 귀한 이를 공경하는 것이 마땅하며, 지인과 친구가 서로 돕는 것이 마땅하고, 친한 자는 안으로 하고 소원한 자는 밖으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의(義)란, 그 마땅함을 말한다. 마땅하기 때문에 그것을 행하는 것이므로, 이르기를, “상의(上義)는 그것을 행하되, (무엇을 위해) 행하는 바가 있다.”라고 하였다.⁵⁾
주석
5) 상의위지 이유이위야(上義為之而有以為也): 《노자》 38장의 구절. 한비자는 ‘의(義)’를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과 신분에 ‘마땅한(宜)’ 바를 행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인(仁)’이 내면의 자연스러운 감정인 것과 달리, ‘의(義)’는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인위적인 목적(有以為)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원문 5
禮者,所以貌情也,群義之文章也,君臣父子之交也,貴賤賢不肖之所以別也。中心懷而不諭,故疾趨卑拜而明之。實心愛而不知,故好言繁辭以信之。禮者,外節之所以諭內也。故曰:「禮以貌情也。」凡人之為外物動也,不知其為身之禮也。眾人之為禮也,以尊他人也,故時勸時衰。君子之為禮,以為其身,以為其身,故神之為上禮,上禮神而眾人貳,故不能相應,不能相應,故曰:「上禮為之而莫之應。」眾人雖貳,聖人之復恭敬盡手足之禮也不衰,故曰:「攘臂而仍之。」道有積而德有功,德者道之功。功有實而實有光,仁者德之光。光有澤而澤有事,義者仁之事也。事有禮而禮有文,禮者義之文也。故曰:「失道而後失德,失德而後失仁,失仁而後失義,失義而後失禮。」
번역 5
예(禮)란, 정(情)을 드러내는 것이며, 여러 의(義)의 문채(文章)이며, 군신과 부자의 사귐이며, 귀천과 현명함과 불초함을 구별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품고 있으나 알려지지 않으므로, 빠른 걸음과 낮은 절로써 그것을 밝힌다.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나 알려지지 않으므로, 좋은 말과 번다한 말로써 그것을 믿게 한다. 예(禮)란, 외부의 형식[外節]으로써 내부를 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예는 정을 드러낸다.”라고 하였다. 무릇 사람이 외부 사물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그것이 자신을 위한 예(禮)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眾人]이 예를 행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높이기 위함이므로, 때로는 힘쓰고 때로는 쇠한다. 군자(君子)가 예를 행하는 것은, 자신을 위함이며, 자신을 위하므로 정신을 상례(上禮)로 삼는다. 상례는 정신을 중시하나 여러 사람은 의심하므로, 서로 응할 수 없다. 서로 응할 수 없으므로, 이르기를, “상례(上禮)는 그것을 행하여도 응하는 이가 없다.”라고 하였다. 여러 사람이 비록 의심하더라도, 성인이 다시 공경하고 손발의 예를 다함이 쇠하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팔을 걷어붙이고 그것을 계속한다.”라고 하였다.⁶⁾ 도(道)에는 쌓임이 있고 덕(德)에는 공(功)이 있으니, 덕은 도의 공이다. 공에는 실체가 있고 실체에는 빛이 있으니, 인(仁)은 덕의 빛이다. 빛에는 윤택함이 있고 윤택함에는 일이 있으니, 의(義)는 인의 일이다. 일에는 예(禮)가 있고 예에는 꾸밈[文]이 있으니, 예는 의의 꾸밈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도를 잃은 뒤에 덕을 잃고, 덕을 잃은 뒤에 인을 잃으며, 인을 잃은 뒤에 의를 잃고, 의를 잃은 뒤에 예를 잃는다.”라고 하였다.⁷⁾
주석
6) 상례위지 이막지응 양비이잉지(上禮為之而莫之應 攘臂而仍之): 《노자》 38장의 구절. 한비자는 ‘상례(上禮)’를 군주가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행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일반 대중(眾人)은 예를 타인을 높이는 행위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군주의 진정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응하지 않는다(莫之應).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는 억지로라도(攘臂而仍之) 예라는 형식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7) 실도이후덕...실의이후례(失道而後德...失義而後禮): 《노자》 38장의 구절. 한비자는 도(道)·덕(德)·인(仁)·의(義)·예(禮)를 단계적으로 타락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가장 근원적인 ‘도’를 잃으면 인위적인 ‘덕’이 나타나고, ‘덕’을 잃으면 감정적인 ‘인’이, ‘인’을 잃으면 사회규범인 ‘의’가, ‘의’를 잃으면 최종적으로 형식적인 ‘예’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법가 사상이 예나 인의와 같은 유가적 덕목보다 더 근원적인 통치 원리(道, 法)를 추구함을 보여준다.
원문 6
禮為情貌者也,文為質飾者也。夫君子取情而去貌,好質而惡飾。夫恃貌而論情者,其情惡也;須飾而論質者,其質衰也。何以論之?和氏之璧,不飾以五采,隋侯之珠,不飾以銀黃,其質至美,物不足以飾之。夫物之待飾而後行者,其質不美也。是以父子之間,其禮樸而不明,故曰:「禮薄也。」凡物不並盛,陰陽是也。理相奪予,威德是也。實厚者貌薄,父子之禮是也。由是觀之,禮繁者實心衰也。然則為禮者,事通人之樸心者也。眾人之為禮也,人應則輕歡,不應則責怨。今為禮者事通人之樸心,而資之以相責之分,能毋爭乎?有爭則亂,故曰:「禮者,忠信之薄也,而亂之首乎。」
번역 6
예(禮)는 정(情)의 겉모습이고, 문(文)은 바탕[質]의 꾸밈이다. 무릇 군자는 정을 취하고 겉모습을 버리며, 바탕을 좋아하고 꾸밈을 싫어한다. 무릇 겉모습에 의지하여 정을 논하는 자는 그 정이 악하고, 꾸밈을 기다려 바탕을 논하는 자는 그 바탕이 쇠한 것이다. 무엇으로 이를 논하는가? 화씨(和氏)의 구슬은 오색으로 꾸미지 않고, 수후(隋侯)의 구슬은 은과 황금으로 꾸미지 않으니, 그 바탕이 지극히 아름다워 다른 사물이 족히 그것을 꾸밀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릇 사물이 꾸밈을 기다린 뒤에야 행해지는 것은, 그 바탕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자(父子) 사이에는 그 예가 소박하고 분명하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예는 엷다.”라고 하였다. 무릇 사물은 함께 번성하지 않으니, 음양이 그러하다. 이치는 서로 빼앗고 주니, 위엄과 은덕이 그러하다. 실체가 두터운 자는 겉모습이 엷으니, 부자의 예가 그러하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예가 번다한 자는 진실한 마음이 쇠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를 행하는 것은,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을 통하게 하는 일이다. 여러 사람이 예를 행함에, 남이 응하면 가벼이 기뻐하고, 응하지 않으면 원망을 꾸짖는다. 지금 예를 행하는 자가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을 통하게 하는 일에, 서로를 꾸짖는 명분을 더하니, 어찌 다툼이 없을 수 있겠는가? 다툼이 있으면 혼란스러우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예란, 충성과 믿음이 엷어진 것이요, 혼란의 시작이다.”라고 하였다.⁸⁾
주석
8) 예자 충신지박야 이란지수호(禮者 忠信之薄也 而亂之首乎): 《노자》 38장의 구절. 한비자는 이 구절을 통해 예(禮)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예는 내면의 진실한 마음(忠信)이 쇠퇴했을 때 나타나는 겉치레에 불과하며, 형식적인 예를 따지기 시작하면 사람들 사이에 다툼과 원망이 생겨나 결국 사회 혼란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법(法)이라는 객관적이고 강제적인 규범만이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법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원문 7
先物行先理動之謂前識,前識者,無緣而忘意度也。何以論之?詹何坐,弟子侍,有牛鳴於門外,弟子曰:「是黑牛也而白題。」詹何曰:「然,是黑牛也,而白在其角。」使人視之,果黑牛而以布裹其角。以詹子之術,嬰眾人之心,華焉殆矣,故曰「道之華也」。嘗試釋詹子之察,而使五尺之愚童子視之,亦知其黑牛而以布裹其角也。故以詹子之察,苦心傷神,而後與五尺之愚童子同功,是以曰「愚之首也」。故曰:「前識者道之華也,而愚之首也。」
번역 7
사물보다 앞서 행하고 이치보다 앞서 움직이는 것을 일러 ‘미리 앎[前識]’이라 하니, 미리 아는 자는, 근거 없이 망령되이 헤아리는 것이다. 무엇으로 이를 논하는가? 첨하(詹何)가 앉아 있고 제자가 모시고 있는데, 문밖에서 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제자가 말하기를, “이는 검은 소인데 이마가 희다.”라고 하였다. 첨하가 말하기를, “그렇다. 이는 검은 소인데, 흰 것이 그 뿔에 있다.”라고 하였다. 사람을 시켜 살펴보게 하니, 과연 검은 소인데 천으로 그 뿔을 감싸고 있었다. 첨자의 술법으로 여러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니, 화려하지만 위태롭다. 그러므로 ‘도의 꽃[道之華]’이라고 하였다. 시험 삼아 첨자의 살핌을 버리고, 다섯 자의 어리석은 아이를 시켜 그것을 보게 해도, 또한 그것이 검은 소이고 천으로 그 뿔을 감쌌음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첨자의 살핌으로는, 마음을 괴롭히고 정신을 상한 뒤에야 다섯 자의 어리석은 아이와 같은 공을 이루니, 이 때문에 ‘어리석음의 시작[愚之首]’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미리 아는 자는 도의 꽃이요, 어리석음의 시작이다.”라고 하였다.⁹⁾
주석
9) 전식자 도지화야 이우지수야(前識者道之華也 而愚之首也): 《노자》 38장의 구절. ‘전식(前識)’은 예지(豫知) 능력이나 직관적 통찰력을 의미한다. 한비자는 첨하의 고사를 통해 이러한 신비로운 능력이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道之華), 실제로는 쓸모없고 오히려 정신만 소모시키는 어리석은 짓(愚之首)이라고 비판한다. 평범한 아이도 직접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을, 복잡한 추리로 알아맞히는 것은 아무런 실용적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법가가 신비주의나 개인의 특출한 지혜가 아닌, 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한 사실과 법에 근거한 통치를 중시함을 보여준다.
원문 8
所謂大丈夫者,謂其智之大也。所謂處其厚不處其薄者,行情實而去禮貌也。所謂處其實不處其華者,必緣理不徑絕也。所謂去彼取此者,去貌徑絕而取緣理好情實也。故曰:「去彼取此。」
번역 8
이른바 대장부(大丈夫)란, 그 지혜가 큼을 말한다. 이른바 ‘그 두터운 데에 머물고 그 엷은 데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실정(實情)을 행하고 예의와 겉모습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그 열매에 머물고 그 꽃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반드시 이치를 따르고 지름길로 끊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는 것은, 겉모습과 지름길로 끊는 것을 버리고, 이치를 따르고 실정을 좋아하는 것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라고 하였다.¹⁰⁾
주석
10) 거피취차(去彼取此): 《노자》 38장의 마지막 구절. 한비자는 이를 자신의 논지에 맞춰 종합적으로 해석한다. ‘저것(彼)’은 겉치레(禮貌), 화려함(華), 지름길(徑絕) 등 비실용적이고 형식적인 것을, ‘이것(此)’은 실질(情實), 이치(理) 등 근본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의미한다. 즉, 성인(군주)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이나 명분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과 실질적인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법가적 실용주의를 강조하며 마무리한다.
원문 9
人有禍則心畏恐,心畏恐則行端直,行端直則思慮熟,思慮熟則得事理,行端直則無禍害,無禍害則盡天年,得事理則必成功,盡天年則全而壽,必成功則富與貴,全壽富貴之謂福。而福本於有禍,故曰:「禍兮福之所倚。」以成其功也。
번역 9
사람에게 화(禍)가 있으면 마음이 두려워하고, 마음이 두려우면 행동이 단정하고 곧아지며, 행동이 단정하고 곧아지면 생각이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면 일의 이치를 얻게 된다. 행동이 단정하고 곧아지면 재앙이 없고, 재앙이 없으면 천수(天壽)를 다하며, 일의 이치를 얻으면 반드시 성공하고, 천수를 다하면 온전하여 장수하며, 반드시 성공하면 부유하고 존귀해지니, 온전한 장수와 부귀를 일러 복(福)이라 한다. 그런데 복은 화에 근본을 두었으므로, 이르기를, “화여! 복이 의지하는 바로다.”라고 하였으니, 그 공을 이루기 때문이다.¹¹⁾
주석
11) 화혜복지소의(禍兮福之所倚): 《노자》 58장의 구절. 한비자는 화(禍)와 복(福)의 변증법적 관계를 법가적 통치술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화’는 군주가 내리는 형벌이나 위엄을 상징한다. 백성들은 형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心畏恐)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그 결과 사회 질서가 잡히고 생산성이 향상되어 결국 부귀와 장수라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즉, 군주의 엄한 형벌(禍)이 국가 전체의 복(福)의 근본이 된다는 논리이다.
원문 10
人有福則富貴至,富貴至則衣食美,衣食美則驕心生,驕心生則行邪僻而動棄理,行邪僻則身死夭,動棄理則無成功。夫內有死夭之難,而外無成功之名者,大禍也。而禍本生於有福,故曰:「福兮禍之所伏」。
번역 10
사람에게 복(福)이 있으면 부귀가 이르고, 부귀가 이르면 의식이 아름다워지며, 의식이 아름다워지면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행동이 사악하고 편벽되며 움직임이 이치를 버리게 된다. 행동이 사악하고 편벽되면 몸이 요절하고, 움직임이 이치를 버리면 성공이 없다. 무릇 안으로 요절의 어려움이 있고 밖으로 성공의 이름이 없는 자는, 큰 화(禍)이다. 그런데 화는 본래 복에서 생겨났으므로, 이르기를, “복이여! 화가 엎드려 있는 바로다.”라고 하였다.¹²⁾
주석
12) 복혜화지소복(福兮禍之所伏): 《노자》 58장의 구절. 여기서 ‘복’은 군주가 내리는 상(賞)이나 은혜를 상징한다. 과도한 상이나 은혜(福)는 백성들을 교만하고 나태하게 만들어 결국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상벌을 내릴 때 신중해야 하며, 특히 은혜나 관용에 의존하는 통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는 법가적 논리이다.
원문 11
夫緣道理以從事者無不能成。無不能成者,大能成天子之勢尊,而小易得卿相將軍之賞祿。夫棄道理而忘舉動者,雖上有天子諸侯之勢尊,而下有猗頓、陶朱、卜祝之富,猶失其民人而亡其財資也。眾人之輕棄道理而易忘舉動者,不知其禍福之深大而道闊遠若是也,故諭人曰:「熟知其極。」人莫不欲富貴全壽,而未有能免於貧賤死夭之禍也,心欲富貴全壽,而今貧賤死夭,是不能至於其所欲至也。凡失其所欲之路而妄行者之謂迷,迷則不能至於其所欲至矣。今眾人之不能至於其所欲至,故曰「迷」。眾人之所不能至於其所欲至也,自天地之剖判以至于今,故曰:「人之迷也,其日故以久矣。」
번역 11
무릇 도리(道理)를 따라 일에 종사하는 자는 이루지 못함이 없다. 이루지 못함이 없는 자는, 크게는 천자의 존귀한 권세를 이룰 수 있고, 작게는 경상(卿相)과 장군의 상과 녹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무릇 도리를 버리고 행동을 망령되이 하는 자는, 비록 위로는 천자나 제후의 존귀한 권세가 있고, 아래로는 의돈(猗頓), 도주(陶朱), 복축(卜祝)의 부(富)가 있더라도,¹³⁾ 오히려 그 백성을 잃고 그 재물을 잃게 될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가벼이 도리를 버리고 쉽게 행동을 망령되이 하는 것은, 그 화와 복의 깊고 큼과 도의 넓고 멂이 이와 같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사람을 깨우쳐 이르기를, “누가 그 끝을 아는가?”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부귀하고 온전히 장수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으나, 가난하고 천하며 요절하는 화를 능히 면한 자가 아직 없다. 마음은 부귀하고 온전히 장수하기를 바라는데, 지금 가난하고 천하며 요절하는 것은, 이는 그 이르고자 하는 바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그 바라는 길을 잃고 망령되이 가는 자를 일러 ‘미혹되었다[迷]’고 하니, 미혹되면 그 이르고자 하는 바에 이를 수 없다. 지금 여러 사람이 그 이르고자 하는 바에 이르지 못하므로, ‘미혹되었다’고 말한다. 여러 사람이 그 이르고자 하는 바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천지가 처음 나뉜 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므로, 이르기를, “사람의 미혹됨이여, 그 날이 진실로 오래되었도다.”라고 하였다.¹⁴⁾
주석
13) 의돈(猗頓)·도주(陶朱)·복축(卜祝): 모두 고대에 부(富)로 유명했던 인물들이다. 의돈은 소금 장사로, 도주공(陶朱公)은 범려(范蠡)의 다른 이름으로 장사로 큰돈을 벌었다. 복축은 점술가로 부를 쌓았다고 전해진다. 한비자는 이들의 사례를 들어, 개인적인 부나 권세가 있더라도 올바른 도리, 즉 법에 근거한 통치를 따르지 않으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
14) 숙지기극(孰知其極)·인지미야 기일고이구의(人之迷也 其日故以久矣): 모두 《노자》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숙지기극’은 58장에서, ‘인지미야’는 64장에서 가져왔다. 한비자는 사람들이 화복(禍福)의 근본 원리(道理)를 깨닫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이나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미혹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원문 12
所謂方者,內外相應也,言行相稱也。所謂廉者,必生死之命也,輕恬資財也。所謂直者,義必公正,公心不偏黨也。所謂光者,官爵尊貴,衣裘壯麗也。今有道之士,雖中外信順,不以誹謗窮墮;雖死節輕財,不以侮罷羞貪;雖義端不黨,不以去邪罪私;雖勢尊衣美,不以夸賤欺貧。其故何也?使失路者而肯聽習問知,即不成迷也。今眾人之所以欲成功而反為敗者,生於不知道理而不肯問知而聽能。眾人不肯問知聽能,而聖人強以其禍敗適之,則怨。眾人多而聖人寡,寡之不勝眾,數也。今舉動而與天下之為讎,非全身長生之道也,是以行軌節而舉之也。故曰:「方而不割,廉而不劌,直而不肆,光而不耀。」
번역 12
이른바 방정(方正)하다는 것은, 안과 밖이 서로 응하고, 말과 행동이 서로 걸맞는 것이다. 이른바 청렴(廉潔)하다는 것은, 생사의 명을 반드시 따르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다. 이른바 정직(正直)하다는 것은, 의리가 반드시 공정하고, 공적인 마음이 붕당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빛난다[光]는 것은, 관직과 작위가 존귀하고, 의복이 장려한 것이다. 지금 도가 있는 선비는, 비록 안팎으로 믿음직하고 순응하더라도, 비방으로 곤궁하게 하거나 타락시키지 않는다. 비록 절개를 위해 죽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더라도, 게으름을 모욕하거나 탐욕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비록 의리가 단정하여 붕당을 짓지 않더라도, 사악함을 제거하거나 사사로움을 죄주지 않는다. 비록 권세가 존귀하고 의복이 아름답더라도, 천한 이를 자랑하거나 가난한 이를 속이지 않는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길 잃은 자로 하여금 기꺼이 듣고 익히며 묻고 알게 한다면, 곧 미혹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러 사람이 성공하고자 하면서도 도리어 실패하는 까닭은, 도리를 알지 못하면서도 기꺼이 묻고 알거나 능한 이를 듣지 않는 데서 생긴다. 여러 사람이 기꺼이 묻고 알거나 능한 이를 듣지 않는데, 성인이 억지로 그 화와 패망으로써 그들에게 맞추려 하면, 원망을 산다. 여러 사람은 많고 성인은 적으니, 적은 것이 많은 것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형세이다. 지금 행동하여 천하와 원수가 되는 것은, 몸을 온전히 하고 오래 사는 방법이 아니므로, 궤도와 절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방정하되 베지 않고, 청렴하되 상처내지 않으며, 정직하되 제멋대로 굴지 않고, 빛나되 번쩍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¹⁵⁾
주석
15) 방이불할...광이불요(方而不割...光而不耀): 《노자》 58장의 구절. 한비자는 이를 성인(군주)의 통치 태도로 해석한다. 군주는 법(方, 廉, 直)을 엄격하게 세우되, 그것을 너무 과격하게 적용하여 백성들의 원망을 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군주의 권위(光)는 자연스럽게 드러나야지, 인위적으로 과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는 법가의 엄격한 원칙주의와 현실 정치의 유연성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문 13
聰明睿智天也,動靜思慮人也。人也者,乘於天明以視,寄於天聰以聽,託於天智以思慮。故視強則目不明,聽甚則耳不聰,思慮過度則智識亂。目不明則不能決黑白之分,耳不聰則不能別清濁之聲,智識亂則不能審得失之地。目不能決黑白之色則謂之盲,耳不能別清濁之聲則謂之聾,心不能審得失之地則謂之狂。盲則不能避晝日之險,聾則不能知雷霆之害,狂則不能免人間法令之禍。書之所謂治人者,適動靜之節,省思慮之費也。所謂事天者,不極聰明之力,不盡智識之任。苟極盡則費神多,費神多則盲聾悖狂之禍至,是以嗇之。嗇之者,愛其精神,嗇其智識也。故曰:「治人事天莫如嗇。」
번역 13
총명(聰明)과 예지(睿智)는 하늘의 것이고, 동정(動靜)과 사려(思慮)는 사람의 것이다. 사람이란, 하늘의 밝음[天明]을 타고 보며, 하늘의 들음[天聰]에 의지하여 듣고, 하늘의 지혜[天智]에 의탁하여 생각한다. 그러므로 보기를 억지로 하면 눈이 밝지 않고, 듣기를 심하게 하면 귀가 밝지 않으며, 생각이 지나치면 지식이 어지러워진다. 눈이 밝지 않으면 흑백의 구분을 결단할 수 없고, 귀가 밝지 않으면 맑고 탁한 소리를 분별할 수 없으며, 지식이 어지러우면 득실의 경지를 살필 수 없다. 눈이 흑백의 색을 결단할 수 없으면 이를 일러 ‘맹(盲)’이라 하고, 귀가 맑고 탁한 소리를 분별할 수 없으면 이를 일러 ‘농(聾)’이라 하며, 마음이 득실의 경지를 살필 수 없으면 이를 일러 ‘광(狂)’이라 한다. 맹인(盲人)은 대낮의 위험을 피할 수 없고, 농인(聾人)은 우레의 해를 알 수 없으며, 광인(狂人)은 인간 세상 법령의 화를 면할 수 없다. 책에서 이르는 바 ‘사람을 다스린다[治人]’는 것은, 동정의 절도를 맞추고 생각의 비용을 더는 것이다. 이르는 바 ‘하늘을 섬긴다[事天]’는 것은, 총명의 힘을 다하지 않고, 지식의 임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다하면 정신의 소모가 많고, 정신의 소모가 많으면 맹·농·광의 화가 이르므로, 이 때문에 아끼는[嗇] 것이다. 아낀다는 것은, 그 정신을 아끼고 그 지식을 아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 아끼는 것만 한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¹⁶⁾
주석
16) 치인사천 막여색(治人事天莫如嗇): 《노자》 59장의 구절. 한비자는 이를 군주의 양생술(養生術)이자 통치술로 해석한다. ‘색(嗇)’은 ‘아끼다’는 뜻으로, 군주가 자신의 정신력과 지혜를 함부로 소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군주가 개인의 지혜나 감각에 의존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면(治人), 정신이 소모되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다. 대신, 자연의 이치(天)에 따라 만들어진 법과 제도에 통치를 맡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 정신을 보존하는 것(事天)이 가장 이상적인 통치라는 것이다.
원문 14
眾人之用神也躁,躁則多費,多費之謂侈。聖人之用神也靜,靜則少費,少費之謂嗇。嗇之謂術也生於道理。夫能嗇也,是從於道而服於理者也。眾人離於患,陷於禍,猶未知退,而不服從道理。聖人雖未見禍患之形,虛無服從於道理,以稱蚤服。故曰:「夫謂嗇,是以蚤服。」
번역 14
여러 사람이 정신을 씀이 조급하니, 조급하면 소모가 많고, 소모가 많은 것을 일러 ‘사치[侈]’라 한다. 성인이 정신을 씀이 고요하니, 고요하면 소모가 적고, 소모가 적은 것을 일러 ‘아낌[嗇]’이라 한다. 아낌을 일러 술(術)이라 하니, 도리(道理)에서 생겨난다. 무릇 능히 아낄 수 있다는 것은, 도를 따르고 이치에 복종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은 환란에서 벗어나고 화에 빠져도, 오히려 물러설 줄을 모르고, 도리에 복종하지 않는다. 성인은 비록 화환의 형체를 보지 못했더라도, 허무(虛無)하게 도리에 복종하니, 이를 일러 ‘일찍 복종한다[蚤服]’고 칭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무릇 아낀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에 일찍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¹⁷⁾
주석
17) 부위색 시이조복(夫謂嗇 是以蚤服): 《노자》 59장의 구절. ‘조복(蚤服)’은 ‘일찍 복종하다’는 뜻으로, 화가 닥치기 전에 미리 도(道)에 복종함을 의미한다. 한비자는 이를 군주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자신의 정신을 아껴(嗇) 도리에 따르는 것으로 해석한다.
원문 15
知治人者其思慮靜,知事天者其孔竅虛。思慮靜,故德不去。孔竅虛,則和氣日入。故曰:「重積德。」夫能令故德不去,新和氣日至者,蚤服者也。故曰:「蚤服是謂重積德。」積德而後神靜,神靜而後和多,和多而後計得,計得而後能御萬物,能御萬物則戰易勝敵,戰易勝敵而論必蓋世,論必蓋世,故曰「無不克」。無不克本於重積德,故曰「重積德則無不克」。戰易勝敵則兼有天下,論必蓋世則民人從。進兼天下而退從民人,其術遠,則眾人莫見其端末。莫見其端末,是以莫知其極,故曰:「無不克則莫知其極。」
번역 15
사람을 다스릴 줄 아는 자는 그 생각이 고요하고, 하늘을 섬길 줄 아는 자는 그 구멍[孔竅]이 비어 있다. 생각이 고요하므로 덕(德)이 떠나지 않는다. 구멍이 비어 있으면 조화로운 기운[和氣]이 날마다 들어온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덕을 두텁게 쌓는다[重積德].”라고 하였다. 무릇 옛 덕이 떠나지 않게 하고, 새로운 조화로운 기운이 날마다 이르게 할 수 있는 자는, 일찍 복종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일찍 복종하는 것, 이를 일러 덕을 두텁게 쌓는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덕을 쌓은 뒤에야 정신이 고요해지고, 정신이 고요해진 뒤에야 조화로움이 많아지며, 조화로움이 많아진 뒤에야 계책이 들어맞고, 계책이 들어맞은 뒤에야 능히 만물을 제어할 수 있다. 능히 만물을 제어하면 싸움에서 쉽게 적을 이기고, 싸움에서 쉽게 적을 이기면 논의가 반드시 세상을 덮으며, 논의가 반드시 세상을 덮으므로 ‘이기지 못함이 없다[無不克]’고 하였다. 이기지 못함이 없음은 덕을 두텁게 쌓는 데에 근본을 두므로, 이르기를, “덕을 두텁게 쌓으면 이기지 못함이 없다.”라고 하였다. 싸움에서 쉽게 적을 이기면 천하를 아우르고, 논의가 반드시 세상을 덮으면 백성이 따른다. 나아가 천하를 아우르고 물러나 백성을 따르게 하니, 그 술(術)이 멀어서 여러 사람이 그 시작과 끝을 볼 수 없다. 그 시작과 끝을 볼 수 없으므로, 그 끝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이기지 못함이 없으면 그 끝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¹⁸⁾
주석
18) 중적덕즉무불극 무불극즉막지기극(重積德則無不克 無不克則莫知其極): 《노자》 59장의 구절들을 연결하여 해석한 것이다. 한비자는 ‘덕을 쌓는 것(積德)’을 군주가 정신을 보존하고 조화로운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본다. 이렇게 내면의 힘을 기른 군주는 어떤 적도 이길 수 있고(無不克), 그 힘의 근원을 남들이 알 수 없게 되어(莫知其極) 신비로운 권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도가적 수양론을 군주의 통치력 강화 논리로 변용한 것이다.
원문 16
凡有國而後亡之,有身而後殃之,不可謂能有其國能保其身。夫能有其國、必能安其社稷,能保其身、必能終其天年,而後可謂能有其國、能保其身矣。夫能有其國、保其身者必且體道,體道則其智深,其智深則其會遠,其會遠眾人莫能見其所極。唯夫能令人不見其事極,不見事極者為保其身、有其國,故曰:「莫知其極;莫知其極,則可以有國。」
번역 16
무릇 나라를 가졌다가 뒤에 잃고, 몸을 가졌다가 뒤에 재앙을 입는 것은, 능히 그 나라를 가졌다거나 능히 그 몸을 보전했다고 말할 수 없다. 무릇 능히 그 나라를 가진 자는 반드시 능히 그 사직을 편안하게 하고, 능히 그 몸을 보전한 자는 반드시 능히 그 천수를 마쳐야, 그런 뒤에야 능히 그 나라를 가졌고 능히 그 몸을 보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무릇 능히 그 나라를 가지고 그 몸을 보전하는 자는 반드시 장차 도(道)를 체득해야 하니, 도를 체득하면 그 지혜가 깊어지고, 그 지혜가 깊어지면 그 모임이 멀어지며, 그 모임이 멀어지면 여러 사람이 능히 그 끝을 볼 수 없다. 오직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일의 끝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 일의 끝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자가 그 몸을 보전하고 그 나라를 가지는 것이므로, 이르기를, “그 끝을 알지 못한다. 그 끝을 알지 못하면, 나라를 가질 수 있다.”라고 하였다.
원문 17
所謂有國之母,母者,道也,道也者生於所以有國之術,所以有國之術,故謂之有國之母。夫道以與世周旋者,其建生也長,持祿也久,故曰:「有國之母,可以長久。」樹木有曼根,有直根。根者,書之所謂柢也。柢也者,木之所以建生也;曼根者,木之所以持生也。德也者,人之所以建生也;祿也者,人之所以持生也。今建於理者其持祿也久,故曰:「深其根。」體其道者,其生日長,故曰:「固其柢。」柢固則生長,根深則視久,故曰:「深其根,固其柢,長生久視之道也。」
번역 17
이른바 ‘나라를 가지는 어미[有國之母]’에서, 어미란 도(道)이다. 도란 나라를 가지는 방법[術]에서 생겨나니, 나라를 가지는 방법이므로, 이를 일러 ‘나라를 가지는 어미’라고 한다. 무릇 도(道)로써 세상과 더불어 주선하는 자는, 그 삶을 세움이 길고, 녹을 지님이 오래가므로, 이르기를, “나라를 가지는 어미는, 길고 오래갈 수 있다.”라고 하였다. 나무에는 뻗어 나가는 뿌리[曼根]가 있고, 곧은 뿌리[直根]가 있다. 뿌리란, 책에서 이르는 바 ‘밑동[柢]’이다. 밑동이란, 나무가 그것으로 삶을 세우는 것이고, 뻗어 나가는 뿌리란, 나무가 그것으로 삶을 지탱하는 것이다. 덕(德)이란, 사람이 그것으로 삶을 세우는 것이고, 녹(祿)이란, 사람이 그것으로 삶을 지탱하는 것이다. 지금 이치[理]에 세워진 자는 그 녹을 지님이 오래가므로, 이르기를, “그 뿌리를 깊게 한다.”라고 하였다. 그 도(道)를 체득한 자는, 그 삶의 날이 길므로, 이르기를, “그 밑동을 굳건히 한다.”라고 하였다. 밑동이 굳건하면 삶이 길어지고, 뿌리가 깊으면 봄이 오래가므로, 이르기를, “그 뿌리를 깊게 하고, 그 밑동을 굳건히 하는 것이, 오래 살고 오래 보는 도이다.”라고 하였다.¹⁹⁾
주석
19) 유국지모(有國之母)·심근고저(深根固柢): 모두 《노자》 59장의 구절이다. 한비자는 ‘나라의 어미’를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원리, 즉 ‘도(道)’와 ‘술(術)’로 해석한다. ‘뿌리를 깊게 하고 밑동을 굳건히 한다’는 것은 군주가 이러한 근본 원리를 튼튼하게 세우는 것을 비유한다. 이렇게 근본이 튼튼해야만 국가(長生)와 군주의 통치(久視)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문 18
工人數變業則失其功,作者數搖徙則亡其功。一人之作,日亡半日,十日則亡五人之功矣。萬人之作,日亡半日,十日則亡五萬人之功矣。然則數變業者,其人彌眾,其虧彌大矣。凡法令更則利害易,利害易則民務變,務變之謂變業。故以理觀之,事大眾而數搖之則少成功,藏大器而數徙之則多敗傷,烹小鮮而數撓之則賊其澤,治大國而數變法則民苦之,是以有道之君貴靜,不重變法,故曰:「治大國者若烹小鮮。」
번역 18
장인이 자주 직업을 바꾸면 그 공을 잃고, 만드는 자가 자주 옮겨 다니면 그 공을 잃는다. 한 사람이 일하는데, 하루에 반나절을 잃으면, 열흘이면 다섯 사람의 공을 잃는 것이다. 만 사람이 일하는데, 하루에 반나절을 잃으면, 열흘이면 오만 사람의 공을 잃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주 직업을 바꾸는 것은, 그 사람이 많을수록 그 손실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무릇 법령이 바뀌면 이해(利害)가 바뀌고, 이해가 바뀌면 백성의 일이 바뀌니, 일이 바뀌는 것을 일러 ‘직업을 바꾼다[變業]’고 한다. 그러므로 이치로 보건대, 많은 사람을 부리면서 자주 흔들면 성공이 적고, 큰 그릇을 보관하면서 자주 옮기면 파손이 많으며, 작은 생선을 삶으면서 자주 저으면 그 맛을 해치고, 큰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주 법을 바꾸면 백성이 괴로워한다. 이 때문에 도가 있는 군주는 고요함[靜]을 귀하게 여기고, 법을 바꾸는 것을 중히 여기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²⁰⁾
주석
20)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 《노자》 60장의 유명한 구절. 한비자는 이를 ‘법령의 안정성’에 대한 비유로 해석한다. 작은 생선을 자주 뒤집으면 살이 부서져 맛을 버리는 것처럼, 국가의 법령을 너무 자주 바꾸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백성들이 고통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는 한번 정한 법을 함부로 바꾸지 말고, 고요하고 일관된 통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법가의 ‘변법(變法)’ 사상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비자는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법을 개혁하는 ‘변법’과, 이미 잘 정비된 법을 경솔하게 바꾸는 ‘변법’을 구분하고 있다.
원문 19
人處疾則貴醫,有禍則畏鬼。聖人在上則民少欲,民少欲則血氣治,而舉動理則少禍害。夫內無痤疽癉痔之害,而外無刑罰法誅之禍者,其輕恬鬼也甚,故曰:「以道蒞天下,其鬼不神。」治世之民不與鬼神相害也,故曰:「非其鬼不神也,其神不傷人也。」鬼崇也疾人之謂鬼傷人,人逐除之之謂人傷鬼也;民犯法令之謂民傷上,上刑戮民之謂上傷民;民不犯法則上亦不行刑,上不行刑之謂上不傷人;故曰:「聖人亦不傷民。」上不與民相害,而人不與鬼相傷,故曰:「兩不相傷。」民不敢犯法,則上內不用刑罰,而外不事利其產業,上內不用刑罰、而外不事利其產業則民蕃息,民蕃息而畜積盛,民蕃息而畜積盛之謂有德。凡所謂崇者,魂魄去而精神亂,精神亂則無德。鬼不崇人則魂魄不去,魂魄不去而精神不亂,精神不亂之謂有德。上盛畜積,而鬼不亂其精神,則德盡在於民矣。故曰:「兩不相傷,則德交歸焉。」言其德上下交盛而俱歸於民也。
번역 19
사람은 병이 들면 의원을 귀하게 여기고, 화가 있으면 귀신을 두려워한다. 성인이 위에 있으면 백성의 욕심이 적어지고, 백성의 욕심이 적어지면 혈기가 다스려지며, 행동이 이치에 맞으면 재앙이 적다. 무릇 안으로 종기나 치질의 해가 없고, 밖으로 형벌과 법에 의한 주살의 화가 없는 자는, 그 귀신을 가벼이 여기고 편안하게 여김이 심하므로, 이르기를, “도(道)로써 천하에 임하면, 그 귀신이 신령하지 않다.”라고 하였다. 잘 다스려지는 세상의 백성은 귀신과 서로 해치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그 귀신이 신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신령함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귀신이 깃들어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을 일러 ‘귀신이 사람을 상하게 한다’고 하고, 사람이 그것을 쫓아내 제거하는 것을 일러 ‘사람이 귀신을 상하게 한다’고 한다. 백성이 법령을 어기는 것을 일러 ‘백성이 윗사람을 상하게 한다’고 하고, 윗사람이 백성을 형벌로 죽이는 것을 일러 ‘윗사람이 백성을 상하게 한다’고 한다. 백성이 법을 어기지 않으면 윗사람 또한 형벌을 행하지 않으니, 윗사람이 형벌을 행하지 않는 것을 일러 ‘윗사람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성인 또한 백성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윗사람이 백성과 서로 해치지 않고, 사람이 귀신과 서로 상하게 하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둘이 서로 상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백성이 감히 법을 어기지 않으면, 윗사람은 안으로 형벌을 쓰지 않고, 밖으로 그 산업을 이롭게 하는 일에 힘쓰지 않아도 된다. 윗사람이 안으로 형벌을 쓰지 않고, 밖으로 그 산업을 이롭게 하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백성이 번성하고, 백성이 번성하고 축적이 성대해지며, 백성이 번성하고 축적이 성대해지는 것을 일러 ‘덕이 있다’고 한다. 무릇 이른바 ‘깃든다[崇]’는 것은, 혼백이 떠나고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것이니, 정신이 어지러우면 덕이 없다. 귀신이 사람에게 깃들지 않으면 혼백이 떠나지 않고, 혼백이 떠나지 않으면 정신이 어지러워지지 않으니, 정신이 어지러워지지 않는 것을 일러 ‘덕이 있다’고 한다. 윗사람은 축적을 성대하게 하고, 귀신은 그 정신을 어지럽히지 않으니, 덕이 모두 백성에게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둘이 서로 상하게 하지 않으면, 덕이 서로에게 돌아간다.”라고 하였으니, 그 덕이 위아래로 서로 성대해져 모두 백성에게 돌아감을 말하는 것이다.
원문 20
有道之君,外無怨讎於鄰敵,而內有德澤於人民。夫外無怨讎於鄰敵者,其遇諸侯也外有禮義。內有德澤於人民者,其治人事也務本。遇諸侯有禮義則役希起,治民事務本則淫奢止。凡馬之所以大用者,外供甲兵,而內給淫奢也。今有道之君,外希用甲兵,而內禁淫奢。上不事馬於戰鬥逐北,而民不以馬遠淫通物,所積力唯田疇,積力於田疇必且糞灌,故曰:「天下有道,卻走馬以糞也。」
번역 20
도가 있는 군주는, 밖으로 이웃 적과 원한이 없고, 안으로 인민에게 덕과 은택이 있다. 무릇 밖으로 이웃 적과 원한이 없는 자는, 그 제후를 대함에 밖에 예의가 있기 때문이다. 안으로 인민에게 덕과 은택이 있는 자는, 그 백성의 일을 다스림에 근본에 힘쓰기 때문이다. 제후를 대함에 예의가 있으면 전쟁이 드물게 일어나고, 백성의 일을 다스림에 근본에 힘쓰면 음란과 사치가 그친다. 무릇 말이 크게 쓰이는 까닭은, 밖으로 군대에 공급되고, 안으로 음란과 사치에 공급되기 때문이다. 지금 도가 있는 군주는, 밖으로 군대를 드물게 사용하고, 안으로 음란과 사치를 금한다. 윗사람은 전투에서 말을 부려 패주하는 적을 쫓지 않고, 백성은 말을 이용하여 멀리 가서 음란하게 물건을 통하지 않으니, 힘을 쌓는 곳은 오직 밭두둑뿐이다. 힘을 밭두둑에 쌓으면 반드시 장차 거름을 주게 되므로, 이르기를, “천하에 도가 있으면, 달리는 말을 물리쳐 거름을 주게 한다.”라고 하였다.²¹⁾
주석
21) 천하유도 각주마이분야(天下有道 卻走馬以糞也): 《노자》 46장의 구절. ‘주마(走馬)’는 전쟁에 쓰이는 군마(軍馬)를 의미한다. 한비자는 이를 국가의 통치 상태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해석한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즉, 법치가 잘 이루어지면) 전쟁이 그치고 사치가 없어져, 군마가 쓸모없게 된다. 그 결과 군마를 농사일에 동원하여 밭에 거름을 주는 데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평화롭고 생산적인 국가의 모습을 상징한다.
원문 21
人君者無道,則內暴虐其民,而外侵欺其鄰國。內暴虐則民產絕,外侵欺則兵數起。民產絕則畜生少,兵數起則士卒盡。畜生少則戎馬乏,士卒盡則軍危殆。戎馬乏則將馬出,軍危殆則近臣役。馬者,軍之大用;郊者,言其近也。今所以給軍之具於將馬近臣,故曰:「天下無道,戎馬生於郊矣。」
번역 21
군주에게 도가 없으면, 안으로 그 백성을 포학하게 대하고, 밖으로 그 이웃 나라를 침략하고 속인다. 안으로 포학하면 백성의 생산이 끊기고, 밖으로 침략하고 속이면 전쟁이 자주 일어난다. 백성의 생산이 끊기면 가축이 적어지고, 전쟁이 자주 일어나면 사졸이 다한다. 가축이 적어지면 군마가 부족해지고, 사졸이 다하면 군대가 위태로워진다. 군마가 부족하면 장수의 말을 내보내고, 군대가 위태로우면 가까운 신하를 부린다. 말이란, 군대의 큰 쓰임새이다. 교(郊)란, 그 가까움을 말한다. 지금 군대에 공급할 도구를 장수의 말과 가까운 신하에게서 구하므로, 이르기를, “천하에 도가 없으면, 군마가 성 밖 가까운 들[郊]에서 새끼를 낳는다.”라고 하였다.²²⁾
주석
22) 천하무도 융마생어교의(天下無道 戎馬生於郊矣): 《노자》 46장의 구절. ‘융마(戎馬)’는 군마를, ‘교(郊)’는 성곽 바로 바깥의 들판을 의미한다. 천하에 도가 없으면(즉, 법치가 무너지면) 전쟁이 끊이지 않아, 군마가 전선에서 부족해져 결국 성곽 바로 앞에서까지 말을 징발하고 새끼를 낳게 할 정도로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됨을 상징한다.
원문 22
人有欲則計會亂,計會亂而有欲甚,有欲甚則邪心勝,邪心勝則事經絕,事經絕則禍難生。由是觀之,禍難生於邪心,邪心誘於可欲。可欲之類,進則教良民為姦,退則令善人有禍。姦起則上侵弱君,禍至則民人多傷。然則可欲之類,上侵弱君而下傷人民。夫上侵弱君而下傷人民者,大罪也。故曰:「禍莫大於可欲。」是以聖人不引五色,不淫於聲樂,明君賤玩好而去淫麗。人無毛羽,不衣則不犯寒。上不屬天,而下不著地,以腸胃為根本,不食則不能活。是以不免於欲利之心,欲利之心不除,其身之憂也。故聖人衣足以犯寒,食足以充虛,則不憂矣。眾人則不然,大為諸侯,小餘千金之資,其欲得之憂不除也,胥靡有免,死罪時活,今不知足者之憂,終身不解,故曰:「禍莫大於不知足。」故欲利甚於憂,憂則疾生,疾生而智慧衰,智慧衰則失度量,失度量則妄舉動,妄舉動則禍害至,禍害至而疾嬰內,疾嬰內則痛禍薄外,痛禍薄外則苦痛雜於腸胃之間,苦痛雜於腸胃之間則傷人也憯,憯則退而自咎,退而自咎也生於欲利,故曰:「咎莫憯於欲利。」
번역 22
사람에게 욕심이 있으면 계산이 어지러워지고, 계산이 어지러운데도 욕심이 심해지며, 욕심이 심해지면 사악한 마음이 이기고, 사악한 마음이 이기면 일의 경위가 끊어지며, 일의 경위가 끊어지면 화와 어려움이 생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화와 어려움은 사악한 마음에서 생기고, 사악한 마음은 욕심낼 만한 것[可欲]에 유인된다. 욕심낼 만한 것의 종류는, 나아가면 양민을 가르쳐 간악하게 만들고, 물러나면 선량한 사람에게 화가 있게 한다. 간악함이 일어나면 위로는 군주를 침범하여 약하게 하고, 화가 이르면 백성들이 많이 다친다. 그렇다면 욕심낼 만한 것의 종류는, 위로는 군주를 침범하여 약하게 하고 아래로는 인민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무릇 위로는 군주를 침범하여 약하게 하고 아래로는 인민을 상하게 하는 것은, 큰 죄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화는 욕심낼 만한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성인은 오색(五色)에 이끌리지 않고, 성악(聲樂)에 빠지지 않으며, 현명한 군주는 노리개를 천하게 여기고 음란하고 화려한 것을 버린다. 사람은 털과 깃이 없어, 옷을 입지 않으면 추위를 막지 못한다. 위로는 하늘에 속하지 않고 아래로는 땅에 붙어 있지 않으며, 장위(腸胃)를 근본으로 삼으니,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익을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이익을 바라는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몸의 근심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옷이 족히 추위를 막을 만하고, 음식이 족히 빈 배를 채울 만하면, 근심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은 그렇지 않아서, 크게는 제후가 되고 작게는 천금의 재물이 남아도, 그 얻고자 하는 근심이 제거되지 않는다. 노역하는 죄수도 사면되는 경우가 있고, 사형수도 때로 살아나는데, 지금 족함을 알지 못하는 자의 근심은, 종신토록 풀리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화는 족함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익을 바라는 것이 근심보다 심하니, 근심하면 병이 생기고, 병이 생기면 지혜가 쇠하며, 지혜가 쇠하면 도량을 잃고, 도량을 잃으면 망령되이 행동하며, 망령되이 행동하면 재앙이 이르고, 재앙이 이르고 병이 안에 얽히며, 병이 안에 얽히면 고통과 화가 밖에 닥치고, 고통과 화가 밖에 닥치면 괴로움이 장위 사이에 뒤섞이며, 괴로움이 장위 사이에 뒤섞이면 사람을 상하게 함이 참혹하다. 참혹하면 물러나 스스로를 탓하니, 물러나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이익을 바라는 데서 생겨나므로, 이르기를, “허물은 이익을 바라는 것보다 더 참혹한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원문 23
道者,萬物之所然也,萬理之所稽也。理者,成物之文也;道者,萬物之所以成也。故曰:「道,理之者也。」物有理不可以相薄,物有理不可以相薄故理之為物之制。萬物各異理,萬物各異理而道盡。稽萬物之理,故不得不化;不得不化,故無常操;無常操,是以死生氣稟焉,萬智斟酌焉,萬事廢興焉。天得之以高,地得之以藏,維斗得之以成其威,日月得之以恆其光,五常得之以常其位,列星得之以端其行,四時得之以御其變氣,軒轅得之以擅四方,赤松得之與天地統,聖人得之以成文章。道與堯、舜俱智,與接輿俱狂,與桀、紂俱滅,與湯、武俱昌。以為近乎,遊於四極;以為遠乎,常在吾側;以為暗乎,其光昭昭;以為明乎,其物冥冥;而功成天地,和化雷霆,宇內之物,恃之以成。凡道之情,不制不形,柔弱隨時,與理相應。萬物得之以死,得之以生;萬事得之以敗,得之以成。道譬諸若水,溺者多飲之即死,渴者適飲之即生。譬之若劍戟,愚人以行忿則禍生,聖人以誅暴則福成。故得之以死,得之以生,得之以敗,得之以成。
번역 23
도(道)란, 만물이 그러한 바이며, 만물의 이치가 상고되는 바이다. 이치[理]란, 사물을 이루는 결[文]이며, 도(道)란, 만물이 그것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도는 이치를 다스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물에는 이치가 있어 서로 핍박할 수 없으니, 사물에 이치가 있어 서로 핍박할 수 없으므로 이치가 사물의 제도가 된다. 만물은 각각 이치가 다르며, 만물이 각각 이치가 다른데도 도는 그것을 다한다. 만물의 이치를 상고하므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떳떳한 지조가 없다. 떳떳한 지조가 없으므로, 이 때문에 죽음과 삶이 기운을 부여받고, 온갖 지혜가 짐작되며, 온갖 일이 폐하고 흥한다. 하늘은 그것을 얻어 높아지고, 땅은 그것을 얻어 감추며, 북두칠성은 그것을 얻어 그 위엄을 이루고, 해와 달은 그것을 얻어 항상 그 빛을 내며, 오성(五常)은 그것을 얻어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여러 별은 그것을 얻어 그 운행을 단정히 하며, 사계절은 그것을 얻어 그 변화하는 기운을 제어하고, 헌원(軒轅)은 그것을 얻어 사방을 독차지했으며, 적송자(赤松子)는 그것을 얻어 천지와 계통을 이루었고, 성인은 그것을 얻어 문장(文章)을 이루었다. 도는 요·순과 함께하면 지혜롭고, 접여(接輿)와 함께하면 미치광이가 되며, 걸·주와 함께하면 멸망하고, 탕·무와 함께하면 창성한다. 가깝다고 여기면, 사방 끝에서 노닐고, 멀다고 여기면, 항상 내 곁에 있으며, 어둡다고 여기면, 그 빛이 밝고 밝으며, 밝다고 여기면, 그 실체는 어둡고 어둡다. 공은 천지를 이루고, 조화는 우레를 만들며, 우주 안의 사물은, 그것에 의지하여 이루어진다. 무릇 도의 실정은, 제약하지 않고 형성하지 않으며, 부드럽고 약하여 때를 따르며, 이치와 서로 응한다. 만물은 그것을 얻어 죽고, 그것을 얻어 살며, 만사는 그것을 얻어 패하고, 그것을 얻어 성공한다. 도를 비유컨대 물과 같아서, 물에 빠진 자가 많이 마시면 곧 죽고, 목마른 자가 적당히 마시면 곧 산다. 비유컨대 칼과 창과 같아서, 어리석은 사람이 그것으로 분노를 행하면 화가 생기고, 성인이 그것으로 포악함을 주살하면 복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것을 얻어 죽고, 그것을 얻어 살며, 그것을 얻어 패하고, 그것을 얻어 성공하는 것이다.
원문 24
人希見生象也,而得死象之骨,案其圖以想其生也,故諸人之所以意想者皆謂之象也。今道雖不可得聞見,聖人執其見功以處見其形,故曰:「無狀之狀,無物之象。」
번역 24
사람들은 살아있는 코끼리를 보기 드물지만, 죽은 코끼리의 뼈를 얻어, 그 그림에 근거하여 그 살아있을 때를 상상한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그것으로 마음속에 상상하는 것을 모두 ‘상(象)’이라 한다. 지금 도(道)는 비록 듣거나 볼 수 없으나, 성인은 그 드러난 공(功)을 잡고 그것으로 그 형체를 보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형체 없는 형체요, 실체 없는 형상이다.”라고 하였다.²³⁾
주석
23) 무상지상 무물지상(無狀之狀 無物之象): 《노자》 14장의 구절. 한비자는 이를 도(道)의 특성에 대한 설명으로 해석한다. 도 자체는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지만(無狀, 無物), 그것이 현실 세계에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 즉 공(功)을 통해서 그 존재와 형체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코끼리 뼈를 보고 살아있는 코끼리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원문 25
凡理者,方圓、短長、麤靡、堅脆之分也。故理定而後可得道也。故定理有存亡,有死生,有盛衰。夫物之一存一亡,乍死乍生,初盛而後衰者,不可謂常。唯夫與天地之剖判也具生,至天地之消散也不死不衰者謂常。而常者,無攸易,無定理,無定理非在於常所,是以不可道也。聖人觀其玄虛,用其周行,強字之曰道,然而可論,故曰:「道之可道,非常道也。」
번역 25
무릇 이치[理]란, 네모와 둥긂, 짧음과 김, 거침과 고움, 단단함과 무름의 구분이다. 그러므로 이치가 정해진 뒤에야 도(道)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정해진 이치에는 존망(存亡)이 있고, 사생(死生)이 있으며, 성쇠(盛衰)가 있다. 무릇 사물이 한 번은 존재하고 한 번은 사라지며, 잠깐 죽고 잠깐 살며, 처음에는 성했다가 뒤에는 쇠하는 것은, 떳떳하다[常]고 말할 수 없다. 오직 저 천지가 나뉠 때 함께 생겨나, 천지가 사라질 때 이르러서도 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을 떳떳하다고 한다. 그런데 떳떳한 것은, 바뀌는 바가 없고, 정해진 이치가 없으며, 정해진 이치가 없는 것은 떳떳한 곳에 있지 않으므로, 이 때문에 말로 할 수 없다. 성인이 그 현묘하고 텅 빔을 관찰하고, 그 두루 운행함을 사용하여, 억지로 글자를 붙여 ‘도(道)’라고 하였으나, 그럼에도 논할 수 있으므로, 이르기를, “말로 할 수 있는 도는, 떳떳한 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²⁴⁾
주석
24) 도지가도 비상도야(道之可道 非常道也): 《노자》 1장의 첫 구절. 한비자는 이를 ‘이(理)’와 ‘도(道)’의 관계로 설명한다. ‘이(理)’는 개별 사물에 내재된 구체적이고 상대적인 법칙(方圓, 短長 등)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므로 ‘떳떳하지 않다[非常]’. 반면 ‘도(道)’는 이러한 모든 개별적인 이치를 초월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우주의 근본 원리이므로 ‘떳떳하다[常]’. 이 근본적인 ‘도’는 언어로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문 26
人始於生而卒於死。始之謂出,卒之謂入,故曰:「出生入死。」人之身三百六十節,四肢,九竅,其大具也。四肢與九竅十有三者,十有三者之動靜盡屬於生焉。屬之謂徒也,故曰:「生之徒也十有三者。」至死也十有三具者皆還而屬之於死,死之徒亦有十三,故曰:「生之徒,十有三;死之徒,十有三。」凡民之生生而生者固動,動盡則損也,而動不止,是損而不止也,損而不止則生盡,生盡之謂死,則十有三具者皆為死死地也。故曰:「民之生,生而動,動皆之死地,之十有三。」是以聖人愛精神而貴處靜,此甚大於兕虎之害。夫兕虎有域,動靜有時,避其域,省其時,則免其兕虎之害矣。民獨知兕虎之有爪角也,而莫知萬物之盡有爪角也,不免於萬物之害。何以論之?時雨降集,曠野閒靜,而以昏晨犯山川,則風露之爪角害之。事上不忠,輕犯禁令,則刑法之爪角害之。處鄉不節,憎愛無度,則爭鬥之爪角害之。嗜慾無限,動靜不節,則痤疽之爪角害之。好用其私智而棄道理,則網羅之爪角害之。兕虎有域,而萬害有原,避其域,塞其原,則免於諸害矣。凡兵革者,所以備害也。重生者雖入軍無忿爭之心,無忿爭之心則無所用救害之備。此非獨謂野處之軍也,聖人之遊世也無害人之心,無害人之心則必無人害,無人害則不備人,故曰:「陸行不遇兕虎。」入山不恃備以救害,故曰:「入軍不備甲兵。」遠諸害,故曰:「兕無所投其角,虎無所錯其爪,兵無所容其刃。」不設備而必無害,天地之道理也。體天地之道,故曰:「無死地焉。」動無死地,而謂之「善攝生」矣。
번역 26
사람은 삶에서 시작하여 죽음에서 마친다. 시작을 일러 ‘나옴[出]’이라 하고, 마침을 일러 ‘들어감[入]’이라 하므로, 이르기를, “삶에서 나오고 죽음으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사람의 몸에는 삼백육십 개의 관절, 사지(四肢), 아홉 개의 구멍[九竅]이 있으니, 그것이 크게 갖추어진 것이다. 사지와 아홉 구멍은 열셋이니, 이 열셋의 움직임과 고요함은 모두 삶에 속한다. 속하는 것을 일러 ‘무리[徒]’라 하므로, 이르기를, “삶의 무리는 열셋이다.”라고 하였다. 죽음에 이르면 열셋의 갖추어진 것이 모두 돌아가 죽음에 속하니, 죽음의 무리 또한 열셋이므로, 이르기를, “삶의 무리는 열셋이요, 죽음의 무리도 열셋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백성이 삶을 살아가면서 사는 자는 진실로 움직이니, 움직임이 다하면 손상되고, 움직임이 그치지 않으면, 이는 손상됨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손상됨이 그치지 않으면 삶이 다하고, 삶이 다하는 것을 일러 ‘죽음’이라 하니, 열셋의 갖추어진 것이 모두 죽음의 땅이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백성의 삶은, 살면서 움직이고, 움직임은 모두 죽음의 땅으로 가니, 열셋이 그러하다.”라고 하였다.²⁵⁾ 이 때문에 성인은 정신을 아끼고 고요함에 머무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이것이 무소나 호랑이의 해보다 심히 크다. 무릇 무소와 호랑이는 영역이 있고, 움직임과 고요함에 때가 있으니, 그 영역을 피하고 그 때를 살피면, 그 무소와 호랑이의 해를 면할 수 있다. 백성들은 유독 무소와 호랑이에게 발톱과 뿔이 있음을 알지만, 만물에 모두 발톱과 뿔이 있음을 알지 못하여, 만물의 해를 면하지 못한다. 무엇으로 이를 논하는가? 때맞춰 비가 내리고, 넓은 들이 한가하고 고요한데, 어두운 새벽에 산천을 범하면, 바람과 이슬의 발톱과 뿔이 그를 해친다. 윗사람을 섬김에 충성스럽지 않고, 가벼이 금령을 어기면, 형법의 발톱과 뿔이 그를 해친다. 마을에 머물면서 절제하지 않고, 미움과 사랑에 법도가 없으면, 다툼의 발톱과 뿔이 그를 해친다. 기호와 욕망이 한이 없고, 움직임과 고요함에 절제가 없으면, 종기의 발톱과 뿔이 그를 해친다. 그 사사로운 지혜를 쓰기 좋아하고 도리를 버리면, 법망의 발톱과 뿔이 그를 해친다. 무소와 호랑이는 영역이 있지만, 온갖 해악에는 근원이 있으니, 그 영역을 피하고 그 근원을 막으면, 여러 해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릇 병기란, 해악에 대비하는 것이다. 삶을 중히 여기는 자는 비록 군대에 들어가도 성내어 다투는 마음이 없으니, 성내어 다투는 마음이 없으면 해악을 막는 대비를 쓸 곳이 없다. 이는 단지 들에 머무는 군대를 이르는 것이 아니다. 성인이 세상을 노닒에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니,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면 반드시 남이 해치지 않고, 남이 해치지 않으면 남을 대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육지를 다녀도 무소나 호랑이를 만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산에 들어가도 대비에 의지하여 해를 막으려 하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군대에 들어가도 갑옷과 병기를 갖추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여러 해악을 멀리하므로, 이르기를, “무소는 그 뿔을 던질 곳이 없고, 호랑이는 그 발톱을 둘 곳이 없으며, 병기는 그 칼날을 용납할 곳이 없다.”라고 하였다. 대비하지 않아도 반드시 해가 없는 것은, 천지의 도리이다. 천지의 도를 체득하므로, 이르기를, “죽음의 땅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움직여도 죽음의 땅이 없는 것을 일러 ‘삶을 잘 보존한다[善攝生]’고 한다.
주석
25) 출생입사(出生入死)·생지사지(生之徒死之徒): 《노자》 50장의 구절. 한비자는 이를 독특한 인체생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열셋’은 사지와 구규(九竅)를 합한 것으로, 삶의 활동 기관을 상징한다. 이 기관들을 지나치게 사용하여(動) 정신을 소모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자신의 정신력을 아껴야 한다는 양생론(養生論)으로 이어진다.
원문 27
愛子者慈於子,重生者慈於身,貴功者慈於事。慈母之於弱子也,務致其福,務致其福則事除其禍,事除其禍則思慮熟,思慮熟則得事理,得事理則必成功,必成功則其行之也不疑,不疑之謂勇。聖人之於萬事也,盡如慈母之為弱子慮也,故見必行之道,見必行之道則明,其從事亦不疑,不疑之謂勇。不疑生於慈,故曰:「慈故能勇。」
번역 27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자식에게 자애롭고, 삶을 중히 여기는 자는 몸에 자애로우며, 공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일에 자애롭다. 자애로운 어머니가 약한 자식에 대해, 힘써 그 복을 이르게 하고, 힘써 그 복을 이르게 하면 일에서 그 화를 제거하며, 일에서 그 화를 제거하면 생각이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면 일의 이치를 얻으며, 일의 이치를 얻으면 반드시 성공하고, 반드시 성공하면 그 행함에 의심이 없으니, 의심이 없는 것을 일러 ‘용맹[勇]’이라 한다. 성인이 모든 일에 대해, 모두 자애로운 어머니가 약한 자식을 위해 염려하는 것과 같으므로, 반드시 행해야 할 도를 보고, 반드시 행해야 할 도를 보면 밝아지며, 그 일에 종사함에 또한 의심이 없으니, 의심이 없는 것을 일러 ‘용맹’이라 한다. 의심 없음은 자애로움[慈]에서 생겨나므로, 이르기를, “자애롭기 때문에 능히 용맹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²⁶⁾
주석
26) 자고능용(慈故能勇): 《노자》 67장의 구절. 한비자는 ‘자(慈)’를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대상(자식, 몸, 일)의 근본적인 이익을 위해 깊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신중한 태도로 해석한다. 이러한 깊은 사려(慈)를 통해 일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확신을 가지고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용(勇)’이라는 것이다.
원문 28
周公曰:「冬日之閉凍也不固,則春夏之長草木也不茂。」天地不能常侈常費,而況於人乎?故萬物必有盛衰,萬事必有弛張,國家必有文武,官治必有賞罰。是以智士儉用其財則家富,聖人愛寶其神則精盛,人君重戰其卒則民眾。民眾則國廣,是以舉之曰:「儉故能廣。」
번역 28
주공(周公)이 말하기를, “겨울날에 닫고 어는 것이 굳건하지 않으면, 봄여름에 초목이 자라는 것이 무성하지 않다.”라고 하였다. 천지도 항상 사치하고 항상 소비할 수는 없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그러므로 만물에는 반드시 성함과 쇠함이 있고, 만사에는 반드시 이완과 긴장이 있으며, 국가에는 반드시 문(文)과 무(武)가 있고, 관청의 다스림에는 반드시 상과 벌이 있다. 이 때문에 지혜로운 선비는 그 재물을 아껴 쓰므로 집안이 부유하고, 성인은 그 정신을 아끼고 보배롭게 여기므로 정기가 성하며, 군주는 그 군사를 아껴 싸우므로 백성이 많아진다. 백성이 많아지면 나라가 넓어지므로, 이를 들어 이르기를, “아끼기 때문에 능히 넓힐 수 있다.”라고 하였다.²⁷⁾
주석
27) 검고능광(儉故能廣): 《노자》 67장의 구절. 한비자는 ‘검(儉)’을 단순히 재물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이나 군사력과 같은 핵심 자원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고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확장하여 해석한다. 군주가 군사력을 아껴(儉)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면, 백성들이 전쟁으로 소모되지 않아 인구가 늘고 결국 영토를 확장(廣)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원문 29
凡物之有形者易裁也,易割也。何以論之?有形則有短長,有短長則有小大,有小大則有方圓,有方圓則有堅脆,有堅脆則有輕重,有輕重則有白黑。短長、大小、方圓、堅脆、輕重、白黑之謂理。理定而物易割也。故議於大庭而後言則立,權議之士知之矣。故欲成方圓而隨其規矩,則萬事之功形矣。而萬物莫不有規矩。議言之士,計會規矩也。聖人盡隨於萬物之規矩,故曰:「不敢為天下先。」不敢為天下先則事無不事,功無不功,而議必蓋世,欲無處大官,其可得乎?處大官之謂為成事長,是以故曰:「不敢為天下先,故能為成事長。」
번역 29
무릇 형체가 있는 사물은 재단하기 쉽고, 베기 쉽다. 무엇으로 이를 논하는가? 형체가 있으면 짧고 김이 있고, 짧고 김이 있으면 작고 큼이 있으며, 작고 큼이 있으면 네모와 둥긂이 있고, 네모와 둥긂이 있으면 단단함과 무름이 있으며, 단단함과 무름이 있으면 가벼움과 무거움이 있고, 가벼움과 무거움이 있으면 희고 검음이 있다. 짧고 김, 작고 큼, 네모와 둥긂, 단단함과 무름, 가벼움과 무거움, 희고 검음을 일러 ‘이치[理]’라 한다. 이치가 정해지면 사물은 베기 쉽다. 그러므로 큰 조정에서 의논한 뒤에 말이 서면, 권모와 의논의 선비는 이를 안다. 그러므로 네모와 둥긂을 이루고자 하여 그 규구(規矩)를 따르면, 만사의 공이 형체를 이룰 것이다. 그런데 만물에는 규구가 없는 것이 없다. 의논하고 말하는 선비는, 규구를 계산하는 것이다. 성인은 만물의 규구를 모두 따르므로, 이르기를,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으면 일마다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고, 공마다 공이 되지 않음이 없으며, 의논이 반드시 세상을 덮으니, 큰 관직에 머물지 않고자 한들,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큰 관직에 머무는 것을 일러 ‘일을 이루는 우두머리가 된다’고 하니, 이 때문에 이르기를,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으므로, 능히 일을 이루는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라고 하였다.²⁸⁾
주석
28) 불감위천하선 고능위성사장(不敢為天下先 故能為成事長): 《노자》 67장의 구절. 한비자는 ‘앞서지 않는다’는 것을 군주가 자신의 사사로운 지혜나 판단으로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만물에 내재된 객관적인 이치와 법칙(規矩, 理), 즉 법(法)을 따르는 것으로 해석한다. 군주가 이처럼 법을 따르면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자연스럽게 최고의 지도자(成事長)가 된다는 것이다.
원문 30
慈於子者不敢絕衣食,慈於身者不敢離法度,慈於方圓者不敢舍規矩。故臨兵而慈於士吏則戰勝敵,慈於器械則城堅固。故曰:「慈於戰則勝,以守則固。」夫能自全也而盡隨於萬物之理者,必且有天生。天生也者,生心也。故天下之道盡之生也,若以慈衛之也。事必萬全,而舉無不當,則謂之寶矣。故曰:「吾有三寶,持而寶之。」
번역 30
자식에게 자애로운 자는 감히 의식을 끊지 못하고, 몸에 자애로운 자는 감히 법도를 떠나지 못하며, 네모와 둥긂에 자애로운 자는 감히 규구(規矩)를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대에 임하여 병사와 관리를 자애롭게 대하면 싸움에서 적을 이기고, 기계를 자애롭게 대하면 성이 견고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자애로움으로 싸우면 이기고, 그것으로 지키면 굳건하다.”라고 하였다. 무릇 능히 스스로를 온전히 하고 만물의 이치를 모두 따르는 자는, 반드시 장차 하늘이 낳은 것이 있을 것이다. 하늘이 낳은 것이란, 마음을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도는 모두 삶에서 나오니, 만약 자애로움으로 그것을 지키는 것과 같다. 일이 반드시 만전하고, 행동이 마땅하지 않음이 없으면, 이를 일러 ‘보배[寶]’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나에게 세 가지 보배가 있으니, 그것을 지니고 보배롭게 여긴다.”라고 하였다.²⁹⁾
주석
29) 오유삼보 지이보지(吾有三寶 持而寶之): 《노자》 67장의 첫 구절. 노자가 말한 세 가지 보배는 자(慈), 검(儉), 불감위천하선(不敢為天下先)이다. 한비자는 앞선 구절들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법가적인 통치 원리로 재해석했으며, 이 구절에서 그것을 종합하여 군주가 지녀야 할 핵심적인 통치 도구(寶)로 규정한다.
원문 31
書之所謂大道也者,端道也。所謂貌施也者,邪道也。所謂徑大也者,佳麗也。佳麗也者,邪道之分也。朝甚除也者,獄訟繁也。獄訟繁則田荒,田荒則府倉虛,府倉虛則國貧,國貧而民俗淫侈,民俗淫侈則衣食之業絕,衣食之業絕則民不得無飾巧詐,飾巧詐則知采文,知采文之謂服文采。獄訟繁、倉廩虛、而有以淫侈為俗,則國之傷也若以利劍刺之。故曰:「帶利劍。」諸夫飾智故以至於傷國者,其私家必富,私家必富,故曰:「資貨有餘。」國有若是者,則愚民不得無術而效之,效之則小盜生。由是觀之,大姦作則小盜隨,大姦唱則小盜和。竽也者,五聲之長者也,故竽先則鍾瑟皆隨,竽唱則諸樂皆和。今大姦作則俗之民唱,俗之民唱則小盜必和,故服文采,帶利劍,厭飲食,而貨資有餘者,是之謂盜竽矣。
번역 31
책에서 이르는 바 ‘큰길[大道]’이란, 바른 길이다. 이른바 ‘겉모습만 베푸는 것’이란, 사악한 길이다. 이른바 ‘지름길이 크다’는 것은, 아름답고 화려한 것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것은, 사악한 길의 한 부분이다. ‘조정이 심히 깨끗하다’는 것은, 옥사(獄訟)가 번잡하다는 것이다. 옥사가 번잡하면 밭이 황폐해지고, 밭이 황폐해지면 부고와 창고가 비며, 부고와 창고가 비면 나라가 가난해지고, 나라가 가난한데도 백성의 풍속이 음란하고 사치스러우며, 백성의 풍속이 음란하고 사치스러우면 의식(衣食)의 산업이 끊기고, 의식의 산업이 끊기면 백성이 교묘한 속임수를 꾸미지 않을 수 없게 되며, 교묘한 속임수를 꾸미면 채색과 무늬를 알게 되니, 채색과 무늬를 아는 것을 일러 ‘문채 있는 옷을 입는다[服文采]’고 한다. 옥사가 번잡하고, 창고가 비었는데도, 음란과 사치를 풍속으로 삼는 것이 있으면, 나라가 상하는 것이 마치 날카로운 칼로 찌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날카로운 칼을 찬다[帶利劍].”라고 하였다. 무릇 지혜를 꾸며 일부러 나라를 상하게 하는 데에 이른 자는, 그 사사로운 집안이 반드시 부유하니, 사사로운 집안이 반드시 부유하므로, 이르기를, “재화가 남음이 있다[資貨有餘].”라고 하였다. 나라에 이와 같은 자가 있으면, 어리석은 백성이 술책 없이 그것을 본받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을 본받으면 작은 도둑이 생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큰 간악함이 일어나면 작은 도둑이 따르고, 큰 간악함이 선창하면 작은 도둑이 화답한다. 우(竽)라는 것은, 오성(五聲)의 으뜸이니, 그러므로 우가 먼저 하면 종(鍾)과 슬(瑟)이 모두 따르고, 우가 선창하면 여러 악기가 모두 화답한다. 지금 큰 간악함이 일어나면 세속의 백성이 선창하고, 세속의 백성이 선창하면 작은 도둑이 반드시 화답하므로, 문채 있는 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며, 음식을 싫도록 먹고, 재화가 남음이 있는 자는, 이를 일러 ‘도둑의 우두머리[盜竽]’라 한다.³⁰⁾
주석
30) 대도심이(大道甚夷) 이하의 구절 해석: 한비자는 《노자》 53장의 구절들을 국가 쇠망의 과정으로 해석한다. ‘조정이 심히 깨끗하다(朝甚除)’는 것을 궁궐만 화려하고 민생은 파탄 난 상태로 본다. 이로 인해 소송이 늘고, 농업이 황폐해지며, 국가는 가난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배층(大姦)이 사치와 불법을 일삼으면, 백성들(小盜)도 이를 따라 하여 사회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도둑의 우두머리(盜竽)’는 이러한 사회 붕괴를 선도하는 지배층을 비판하는 표현이다.
원문 32
人無愚智,莫不有趨舍。恬淡平安,莫不知禍福之所由來。得於好惡,怵於淫物,而後變亂。所以然者,引於外物,亂於玩好也。恬淡有趨舍之義,平安知禍福之計。而今也玩好變之,外物引之,引之而往,故曰:「拔。」至聖人不然,一建其趨舍,雖見所好之物不能引,不能引之謂不拔。一於其情,雖有可欲之類,神不為動,神不為動之謂不脫。為人子孫者體此道,以守宗廟不滅之謂祭祀不絕。身以積精為德,家以資財為德,鄉國天下皆以民為德。今治身而外物不能亂其精神,故曰:「脩之身,其德乃真。」真者,慎之固也。治家,無用之物不能動其計則資有餘,故曰:「脩之家,其德有餘。」治鄉者行此節,則家之有餘者益眾,故曰:「脩之鄉,其德乃長。」治邦者行此節,則鄉之有德者益眾,故曰:「脩之邦,其德乃豐。」蒞天下者行此節,則民之生莫不受其澤,故曰:「脩之天下,其德乃普。」脩身者以此別君子小人,治鄉治邦蒞天下者各以此科適觀息耗則萬不失一,故曰:「以身觀身,以家觀家,以鄉觀鄉,以邦觀邦,以天下觀天下,吾奚以知天下之然也?以此。」
번역 32
사람은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나아가고 버리는 바가 없는 이가 없다. 담담하고 평안하면, 화와 복이 말미암는 바를 알지 못하는 이가 없다. 좋고 싫음에 사로잡히고, 음란한 사물에 두려워한 뒤에야, 변하고 어지러워진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외부 사물에 이끌리고, 노리개에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다. 담담하면 나아가고 버리는 의리가 있고, 평안하면 화와 복의 계책을 안다. 그런데 지금 노리개가 그것을 변화시키고, 외부 사물이 그것을 이끄니, 이끌려 가므로, 이르기를, “뽑힌다[拔].”라고 하였다. 지극한 성인은 그렇지 않아서, 한번 그 나아가고 버리는 바를 세우면, 비록 좋아하는 사물을 보더라도 이끌리지 않으니, 이끌리지 않는 것을 일러 ‘뽑히지 않는다[不拔]’고 한다. 그 정에 하나가 되면, 비록 욕심낼 만한 종류가 있더라도, 정신이 그것 때문에 움직이지 않으니, 정신이 그것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일러 ‘벗어나지 않는다[不脫]’고 한다. 사람의 자손 된 자가 이 도를 체득하여, 종묘를 지켜 멸망하지 않게 하는 것을 일러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몸은 정기를 쌓는 것으로 덕을 삼고, 집은 재물로 덕을 삼으며, 향(鄉)·국(國)·천하(天下)는 모두 백성으로 덕을 삼는다. 지금 몸을 다스려 외부 사물이 그 정신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므로, 이르기를, “몸에 닦으면, 그 덕이 참되다.”라고 하였다. 참되다는 것은, 신중함이 굳건한 것이다. 집을 다스려, 쓸모없는 사물이 그 계획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재물이 남음이 있으므로, 이르기를, “집에 닦으면, 그 덕이 남음이 있다.”라고 하였다. 향(鄉)을 다스리는 자가 이 절도를 행하면, 집안에 남음이 있는 자가 더욱 많아지므로, 이르기를, “향에 닦으면, 그 덕이 길다.”라고 하였다. 나라[邦]를 다스리는 자가 이 절도를 행하면, 향에 덕이 있는 자가 더욱 많아지므로, 이르기를, “나라에 닦으면, 그 덕이 풍성하다.”라고 하였다. 천하에 임하는 자가 이 절도를 행하면, 백성의 삶이 그 은택을 받지 않음이 없으므로, 이르기를, “천하에 닦으면, 그 덕이 널리 퍼진다.”라고 하였다. 몸을 닦는 자는 이로써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고, 향·국·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각각 이 과목으로써 흥하고 쇠함을 관찰하면 만에 하나도 잃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몸으로써 몸을 보고, 집으로써 집을 보며, 향으로써 향을 보고, 나라로써 나라를 보며, 천하로써 천하를 본다. 내가 어찌 천하가 그러함을 알겠는가? 이로써이다.”라고 하였다.³¹⁾
주석
31) 수지신(脩之身) 이하의 구절 해석: 한비자는 《노자》 54장의 구절들을 수신(脩身)에서부터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이르는 단계적인 확장 과정으로 해석한다. 각 단계의 핵심은 외부의 유혹(外物, 玩好)에 흔들리지 않고 근본(德)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다. 몸의 덕은 정신(積精)이고, 집의 덕은 재물(資財)이며, 국가의 덕은 백성(民)이다. 군주는 이러한 원리를 자신에게 적용하여(以身觀身), 집, 향, 나라, 천하로 확장해 나감으로써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비자》 〈유로〉 번역 및 주석
원문 1
天下有道無急患則曰靜,遽傳不用,故曰:「卻走馬以糞。」天下無道,攻擊不休,相守數年不已,甲冑生蟣蝨,鷰雀處帷幄,而兵不歸,故曰:「戎馬生於郊。」
번역 1
천하에 도(道)가 있어 급한 우환이 없으면 이를 일러 ‘고요하다[靜]’고 하니, 역마(驛馬)를 쓰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달리는 말을 물리쳐 거름을 주게 한다.”라고 하였다.¹⁾ 천하에 도가 없으면, 공격이 쉬지 않고, 서로 지키기를 수년이 지나도 그치지 않아, 갑옷과 투구에 이[蟣蝨]가 생기고, 제비와 참새가 군대의 장막[帷幄]에 깃드는데도, 군대가 돌아오지 못하므로, 이르기를, “군마(戎馬)가 성 밖 가까운 들[郊]에서 새끼를 낳는다.”라고 하였다.²⁾
주석
1) 각주마이분(卻走馬以糞): 《노자》 46장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주마(走馬)’는 전쟁이나 급한 소식을 전할 때 쓰는 빠른 말이다. 천하가 태평하면(有道) 전쟁이나 급한 일이 없어 이런 말이 필요 없게 되므로, 농사일에 동원하여 밭에 거름을 주는 데 쓴다는 뜻이다. 이는 평화롭고 생산적인 국가의 모습을 상징한다.
2) 융마생어교(戎馬生於郊): 《노자》 46장의 구절. ‘융마(戎馬)’는 군마를, ‘교(郊)’는 성곽 바로 바깥의 들판을 의미한다. 천하가 혼란하면(無道) 전쟁이 끊이지 않아, 군마가 전선에서 부족해져 결국 성곽 바로 앞에서까지 말을 징발하고 새끼를 낳게 할 정도로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됨을 상징한다. 한비자는 이 두 구절을 통해 ‘도(道)’의 유무에 따른 국가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원문 2
翟人有獻豐狐、玄豹之皮於晉文公,文公受客皮而歎曰:「此以皮之美自為罪。」夫治國者以名號為罪,徐偃王是也。以城與地為罪,虞、虢是也。故曰:「罪莫大於可欲。」
번역 2
적인(翟人) 중에 풍호(豐狐)와 검은 표범[玄豹]의 가죽을 진(晉) 문공(文公)에게 바친 자가 있었다. 문공이 손님의 가죽을 받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가죽의 아름다움 때문에 스스로 죄가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자로서 명성[名號] 때문에 죄가 된 자는, 서언왕(徐偃王)이 바로 그이다.³⁾ 성과 땅 때문에 죄가 된 자는, 우(虞)나라와 괵(虢)나라가 바로 그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죄는 욕심낼 만한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⁴⁾
주석
3) 서언왕(徐偃王): 주(周)나라 때 서(徐)나라의 군주. 인의(仁義)의 정치를 베풀어 주변 30여 개국이 조공을 바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 명성을 시기한 주 목왕(穆王)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잃었다. 이는 뛰어난 명성(可欲)이 오히려 화를 부른 사례이다.
4) 죄막대어이욕(罪莫大於可欲): 《노자》 46장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한비자는 이를 ‘욕심낼 만한 것’, 즉 아름다운 가죽, 높은 명성, 탐나는 영토 등이 오히려 재앙의 근원이 됨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다. 이는 군주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명분보다 실질적인 힘과 안보를 중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원문 3
智伯兼范、中行而攻趙不已,韓、魏反之,軍敗晉陽,身死高梁之東,遂卒被分,漆其首以為溲器,故曰:「禍莫大於不知足。」
번역 3
지백(智伯)이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를 아우르고도 조(趙)나라 공격을 그치지 않자, 한(韓)·위(魏)가 그를 배반하여, 군대는 진양(晉陽)에서 패하고, 자신은 고량(高梁)의 동쪽에서 죽었으며, 마침내 마침내 (그의 영지가) 나뉘고, 그 머리는 옻칠을 당해 요강[溲器]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화는 족함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⁵⁾
주석
5) 화막대어부지족(禍莫大於不知足): 《노자》 46장의 구절. 지백은 춘추시대 말기 진(晉)나라의 가장 강력한 권신이었으나,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으로 다른 가문들을 계속 압박하다가 결국 한·위·조 연합군에게 패망했다. 그의 두개골은 조양자(趙襄子)의 술잔(또는 요강)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이는 끝없는 탐욕이 파멸을 부른다는 교훈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원문 4
虞君欲屈產之乘,與垂棘之璧,不聽宮之奇,故邦亡身死,故曰:「咎莫憯於欲得。」
번역 4
우(虞)나라 군주가 굴산(屈產)의 명마와 수극(垂棘)의 구슬을 탐하여, 궁지기(宮之奇)의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나라가 망하고 몸이 죽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허물은 얻으려는 욕심보다 더 참혹한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⁶⁾
주석
6) 구막참어욕득(咎莫憯於欲得): 《노자》 46장의 구절. 이 또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우나라 군주가 진(晉)나라의 보물(欲得)에 눈이 멀어 괵(虢)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길을 빌려주었다가 결국 자신도 멸망당한 사건을 통해, 얻으려는 욕심이 가장 큰 재앙의 원인이 됨을 설명한다.
원문 5
邦以存為常,霸王其可也。身以生為常,富貴其可也。不欲自害則邦不亡身不死,故曰:「知足之為足矣。」
번역 5
나라는 보존되는 것을 떳떳함으로 삼으니, 패왕(霸王)이 되는 것은 그 다음이다. 몸은 살아있는 것을 떳떳함으로 삼으니, 부귀(富貴)는 그 다음이다. 스스로를 해치려 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하지 않고 몸은 죽지 않으므로, 이르기를, “족함을 아는 것이 참된 만족이다.”라고 하였다.⁷⁾
주석
7) 지족지위족의(知足之為足矣): 《노자》 46장의 구절을 변용한 것이다. 한비자는 ‘지족(知足)’을 단순히 욕심을 버리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국가와 자신의 생존(存, 生)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목표를 지키는 현실적인 지혜로 해석한다. 패업이나 부귀와 같은 부차적인 목표에 집착하다가 근본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원문 6
楚莊王既勝狩於河雍,歸而賞孫叔敖,孫叔敖請漢間之地,沙石之處。楚邦之法,祿臣再世而收地,唯孫叔敖獨在。此不以其邦為收者,瘠也,故九世而祀不絕。故曰:「善建不拔,善抱不脫,子孫以其祭祀世世不輟」,孫叔敖之謂也。
번역 6
초(楚) 장왕(莊王)이 하옹(河雍)에서 사냥하여 이기고 돌아와 손숙오(孫叔敖)에게 상을 내리자, 손숙오는 한수(漢水) 사이의 땅, 즉 모래와 돌이 많은 척박한 곳을 청하였다. 초나라의 법에, 신하에게 녹으로 준 땅은 2대가 지나면 거두었는데, 오직 손숙오의 땅만은 홀로 남아 있었다. 이는 나라에서 그 땅을 거두지 않은 것이 척박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9대가 지나도록 제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고, 잘 품은 것은 벗어나지 않아, 자손이 그 제사를 대대로 그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손숙오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⁸⁾
주석
8) 선건불발 선포불탈...(善建不拔 善抱不脫...): 《노자》 54장의 구절. 손숙오는 초나라의 명재상으로, 일부러 척박한 땅을 하사받음으로써 후손들이 질투를 받거나 국가로부터 땅을 몰수당할 위험을 미리 피했다. 이는 눈앞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는 지혜로써 가문을 오래 보존한 사례이다. 한비자는 이를 통해 ‘잘 세운다’는 것은 이처럼 근본을 튼튼히 하여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임을 설명한다.
원문 7
制在己曰重,不離位曰靜。重則能使輕,靜則能使躁。故曰:「重為輕根,靜為躁君。故曰君子終日行不離輜重也。」邦者,人君之輜重也。主父生傳其邦,此離其輜重者也。故雖有代、雲中之樂,超然已無趙矣。主父,萬乘之主,而以身輕於天下,無勢之謂輕,離位之謂躁,是以生幽而死。故曰:「輕則失臣,躁則失君」,主父之謂也。
번역 7
통제권이 자신에게 있는 것을 ‘무거움[重]’이라 하고,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을 ‘고요함[靜]’이라 한다. 무거우면 능히 가벼운 것을 부릴 수 있고, 고요하면 능히 조급한 것을 부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가 되고, 고요한 것은 조급한 것의 군주가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종일 길을 가도 치중(輜重)을 떠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나라란, 군주의 치중이다. 주보(主父)가 살아있을 때 그 나라를 물려주었으니, 이는 그 치중을 떠난 자이다.⁹⁾ 그러므로 비록 대(代) 땅과 운중(雲中)의 즐거움이 있었으나, 초연히 이미 조(趙)나라가 없어진 것이었다. 주보는 만승(萬乘)의 군주였으나, 그 몸을 천하보다 가벼이 여겼으니, 권세가 없는 것을 ‘가벼움[輕]’이라 하고, 자리를 떠난 것을 ‘조급함[躁]’이라 한다. 이 때문에 살아서 유폐되었다가 죽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가벼우면 신하를 잃고, 조급하면 군주를 잃는다.”라고 하였으니, 주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주석
9) 주보(主父): 전국시대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을 가리킨다. 그는 살아있을 때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주보’라 칭하며 막후에서 실권을 행사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 군주의 자리(輜重)를 떠나 권력의 근본을 잃는(輕, 躁) 행위였다. 결국 그는 아들들 간의 왕위 다툼에 휘말려 궁에 갇혀 굶어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는 군주가 결코 자신의 자리와 권세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이다.
원문 8
勢重者,人君之淵也。君人者勢重於人臣之閒,失則不可復得也。簡公失之於田成,晉公失之於六卿,而邦亡身死。故曰:「魚不可脫於深淵。」賞罰者,邦之利器也,在君則制臣,在臣則勝君。君見賞,臣則損之以為德;君見罰,臣則益之以為威。人君見賞而人臣用其勢,人君見罰而人臣乘其威。故曰:「邦之利器不可以示人。」
번역 8
권세가 무거운 것은, 군주의 깊은 연못[淵]이다. 군주 된 자의 권세는 신하들 사이에서 무거우니, 잃으면 다시 얻을 수 없다. 제(齊) 간공(簡公)은 전성(田成)에게 그것을 잃었고, 진(晉)나라 군주는 여섯 경(六卿)에게 그것을 잃어, 나라가 망하고 몸이 죽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물고기는 깊은 연못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¹⁰⁾ 상벌(賞罰)이란, 나라의 날카로운 무기[利器]이니, 군주에게 있으면 신하를 제어하고, 신하에게 있으면 군주를 이긴다. 군주가 상을 내리려 하면 신하는 그것을 덜어 자기의 은덕으로 삼고, 군주가 벌을 내리려 하면 신하는 그것을 더하여 자기의 위엄으로 삼는다. 군주가 상을 내리려 하는데 신하가 그 기세를 이용하고, 군주가 벌을 내리려 하는데 신하가 그 위엄을 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나라의 날카로운 무기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¹¹⁾
주석
10) 어불가탈어심연(魚不可脫於深淵): 《노자》 36장의 구절. 한비자는 ‘물고기(魚)’를 군주에, ‘깊은 연못(深淵)’을 군주의 절대적인 권세(勢)에 비유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군주는 권세를 잃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11) 방지이기 불가이시인(邦之利器不可以示人): 《노자》 36장의 구절. ‘나라의 날카로운 무기(邦之利器)’를 군주의 고유 권한인 상벌권(賞罰權)에 비유한다. 군주가 이 상벌권을 신하에게 맡기거나(示人) 신하가 이를 좌지우지하게 되면, 군주는 권력을 잃고 신하에게 제압당하게 된다는 경고이다.
원문 9
越王入宦於吳,而觀之伐齊以弊吳。吳兵既勝齊人於艾陵,張之於江、濟,強之於黃池,故可制於五湖。故曰:「將欲翕之,必固張之;將欲弱之,必固強之。」晉獻公將欲襲虞,遺之以璧馬;知伯將襲仇由,遺之以廣車。故曰:「將欲取之,必固與之。」起事於無形,而要大功於天下,是謂微明。處小弱而重自卑謂損弱勝強也。
번역 9
월왕(越王)이 오(吳)나라에 들어가 벼슬살이를 하면서, 오나라가 제(齊)나라를 정벌하는 것을 보고 오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오나라 군대가 이미 애릉(艾陵)에서 제나라 사람을 이기고, 강수(江水)와 제수(濟水)에서 위세를 떨치며, 황지(黃池)에서 강함을 과시하였으므로, 오호(五湖)에서 제압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장차 오므리려 하면, 반드시 먼저 펴주고, 장차 약하게 하려 하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준다.”라고 하였다. 진(晉) 헌공이 장차 우(虞)나라를 습격하려 하여, 그에게 구슬과 말을 보내주었고, 지백(智伯)이 장차 구유(仇由)를 습격하려 하여, 그에게 넓은 수레를 보내주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장차 취하려 하면, 반드시 먼저 준다.”라고 하였다. 형체가 없는 데서 일을 일으켜, 천하에 큰 공을 요구하는 것, 이를 ‘미묘한 밝음[微明]’이라 한다. 작고 약한 데에 처하면서도 거듭 스스로를 낮추는 것을 일러 ‘덜어내고 약하게 하여 강한 것을 이긴다’고 한다.
원문 10
有形之類,大必起於小;行久之物,族必起於少。故曰:「天下之難事必作於易,天下之大事必作於細。」是以欲制物者於其細也,故曰:「圖難於其易也,為大於其細也。」千丈之隄以螻蟻之穴潰,百尺之室以突隙之煙焚。故曰:白圭之行隄也塞其穴,丈人之慎火也塗其隙。是以白圭無水難,丈人無火患。此皆慎易以避難,敬細以遠大者也。扁鵲見蔡桓公,立有間,扁鵲曰:「君有疾在腠理,不治將恐深。」桓侯曰:「寡人無。」扁鵲出,桓侯曰:「醫之好治不病以為功。」居十日,扁鵲復見曰:「君之病在肌膚,不治將益深。」桓侯不應。扁鵲出,桓侯又不悅。居十日,扁鵲復見曰:「君之病在腸胃,不治將益深。」桓侯又不應。扁鵲出,桓侯又不悅。居十日,扁鵲望桓侯而還走。桓侯故使人問之,扁鵲曰:「疾在腠理,湯熨之所及也;在肌膚,鍼石之所及也;在腸胃,火齊之所及也;在骨髓,司命之所屬,無奈何也。今在骨髓,臣是以無請也。」居五日,桓公體痛,使人索扁鵲,已逃秦矣,桓侯遂死。故良醫之治病也,攻之於腠理,此皆爭之於小者也。夫事之禍福亦有腠理之地,故曰:聖人蚤從事焉。
번역 10
형체가 있는 종류는, 큰 것이 반드시 작은 것에서 일어나고, 오래 가는 사물은, 무리가 반드시 적은 것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만들어지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데서 만들어진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사물을 제어하고자 하는 자는 그 미세한 데에서 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어려운 것을 그 쉬운 데서 도모하고, 큰 것을 그 미세한 데서 행한다.”라고 하였다. 천 길의 둑도 땅강아지와 개미의 구멍으로 무너지고, 백 척의 집도 굴뚝 틈의 연기로 불탄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백규(白圭)가 둑을 다닐 때 그 구멍을 막았고, 노인[丈人]이 불을 조심할 때 그 틈을 발랐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백규는 물의 어려움이 없었고, 노인은 불의 우환이 없었다. 이들은 모두 쉬운 것을 신중히 하여 어려운 것을 피하고, 미세한 것을 공경하여 큰 것을 멀리한 자들이다. 편작(扁鵲)이 채(蔡) 환공(桓公)을 뵙고, 잠시 서 있다가, 편작이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병이 피부 결[腠理]에 있는데, 치료하지 않으시면 장차 깊어질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환후가 말하기를, “과인은 병이 없소.”라고 하였다. 편작이 나가자, 환후가 말하기를, “의원이란 병 없는 것을 치료하여 공으로 삼기를 좋아하는구나.”라고 하였다. 열흘이 지나, 편작이 다시 뵙고 말하기를, “군주의 병이 피부에 있는데, 치료하지 않으시면 장차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환후가 응하지 않았다. 편작이 나가자, 환후가 또 기뻐하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 편작이 다시 뵙고 말하기를, “군주의 병이 장위(腸胃)에 있는데, 치료하지 않으시면 장차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환후가 또 응하지 않았다. 편작이 나가자, 환후가 또 기뻐하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 편작이 환후를 멀리서 바라보고는 되돌아 달아났다. 환후가 일부러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물으니, 편작이 말하기를, “병이 피부 결에 있을 때는, 탕약이나 찜질로 미칠 수 있습니다. 피부에 있을 때는, 침이나 돌침으로 미칠 수 있습니다. 장위에 있을 때는, 화제(火齊)로 미칠 수 있습니다. 골수(骨髓)에 있을 때는, 사명(司命)이 주관하는 바여서,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골수에 있으니, 신이 이 때문에 청하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닷새가 지나, 환공의 몸이 아파, 사람을 시켜 편작을 찾았으나, 이미 진(秦)나라로 달아난 뒤였다. 환후는 마침내 죽었다. 그러므로 훌륭한 의원이 병을 치료함에, 피부 결에 있을 때 그것을 공격하니, 이들은 모두 작은 데에서 다투는 것이다. 무릇 일의 화와 복에도 또한 피부 결과 같은 자리가 있으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성인은 일찍이 일에 종사한다.”라고 하였다.
원문 11
昔晉公子重耳出亡過鄭,鄭君不禮,叔瞻諫曰:「此賢公子也,君厚待之,可以積德。」鄭君不聽。叔瞻又諫曰:「不厚待之,不若殺之,無令有後患。」鄭君又不聽。及公子返晉邦,舉兵伐鄭,大破之,取八城焉。晉獻公以垂棘之璧假道於虞而伐虢,大夫宮之奇諫曰:「不可。脣亡而齒寒,虞、虢相救,非相德也。今日晉滅虢,明日虞必隨之亡。」虞君不聽,受其璧而假之道。晉已取虢,還,反滅虞。此二臣者皆爭於腠理者也,而二君不用也。然則叔瞻、宮之奇亦虞、鄭之扁鵲也,而二君不聽,故鄭以破,虞以亡。故曰:「其安易持也,其未兆易謀也。」
번역 11
옛날 진(晉)나라 공자 중이(重耳)가 망명하여 정(鄭)나라를 지나갈 때, 정나라 군주가 무례하게 대하자, 숙첨(叔瞻)이 간언하여 말하기를, “이는 현명한 공자이니, 군주께서 후하게 대접하시면, 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정나라 군주가 듣지 않았다. 숙첨이 또 간언하여 말하기를, “후하게 대접하지 않으시려거든, 차라리 그를 죽여, 후환이 없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정나라 군주가 또 듣지 않았다. 공자가 진나라로 돌아가, 군대를 일으켜 정나라를 정벌하여, 크게 격파하고 여덟 성을 빼앗았다. 진 헌공이 수극의 구슬로써 우(虞)나라에 길을 빌려 괵(虢)나라를 정벌하려 하자, 대부 궁지기(宮之奇)가 간언하여 말하기를, “안 됩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니, 우나라와 괵나라가 서로 구원하는 것은, 서로에게 은덕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진나라가 괵나라를 멸망시키면, 내일 우나라는 반드시 그 뒤를 따라 망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우나라 군주가 듣지 않고, 그 구슬을 받고 길을 빌려주었다. 진나라가 이미 괵나라를 취하고, 돌아와, 도리어 우나라를 멸망시켰다. 이 두 신하는 모두 피부 결[腠理]에서 다툰 자들이나, 두 군주는 쓰지 않았다. 그렇다면 숙첨과 궁지기는 또한 우나라와 정나라의 편작(扁鵲)이었으나, 두 군주가 듣지 않았으므로, 정나라는 격파되고 우나라는 멸망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안정되었을 때는 유지하기 쉽고, 그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는 도모하기 쉽다.”라고 하였다.
원문 12
昔者紂為象箸而箕子怖。以為象箸必不加於土鉶,必將犀玉之杯。象箸玉杯必不羹菽藿,則必旄象豹胎。旄象豹胎必不衣短褐而食於茅屋之下,則錦衣九重,廣室高臺。吾畏其卒,故怖其始。居五年,紂為肉圃,設炮烙,登糟邱,臨酒池,紂遂以亡。故箕子見象箸以知天下之禍,故曰:「見小曰明。」
번역 12
옛날 주(紂)임금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箕子)가 두려워하였다. 상아 젓가락은 반드시 흙으로 만든 국그릇에 더하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무소 뿔이나 옥으로 만든 잔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아 젓가락과 옥잔에는 반드시 콩잎 국을 담지 않을 것이니, 소꼬리, 코끼리, 표범의 태아 같은 진귀한 음식을 먹을 것이다. 소꼬리, 코끼리, 표범의 태아를 먹는 자는 반드시 짧은 베옷을 입고 띠풀로 이은 집 아래에서 먹지 않을 것이니, 비단옷을 아홉 겹으로 입고, 넓은 방과 높은 누대에 오를 것이다. 나는 그 끝을 두려워하므로, 그 시작을 두려워한다. 5년이 지나, 주임금은 고기 동산을 만들고, 포락(炮烙)의 형벌을 설치하며, 술지게미 언덕에 오르고, 술 연못에 임하니, 주임금은 마침내 이로 인해 망하였다. 그러므로 기자는 상아 젓가락을 보고 천하의 재앙을 알았으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음[明]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원문 13
句踐入宦於吳,身執干戈為吳王洗馬,故能殺夫差於姑蘇。文王見詈於王門,顏色不變,而武王擒紂於牧野。故曰:「守柔曰強。」越王之霸也不病宦,武王之王也不病詈。故曰:「聖人之不病也,以其不病,是以無病也。」
번역 13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 들어가 벼슬살이를 하며, 몸소 방패와 창을 잡고 오왕(吳王)의 말을 씻어주었으므로, 능히 부차(夫差)를 고소(姑蘇)에서 죽일 수 있었다. 문왕(文王)이 왕문(王門)에서 욕을 보았으나, 얼굴색이 변하지 않았고, 무왕(武王)은 주(紂)를 목야(牧野)에서 사로잡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함[強]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월왕이 패자가 된 것은 벼슬살이를 병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고, 무왕이 왕이 된 것은 욕을 보는 것을 병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성인이 병이 없는 것은, 그것을 병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병이 없다.”라고 하였다.
원문 14
宋之鄙人得璞玉而獻之子罕,子罕不受,鄙人曰:「此寶也,宜為君子器,不宜為細人用。」子罕曰:「爾以玉為寶,我以不受子玉為寶。」是鄙人欲玉,而子罕不欲玉。故曰:「欲不欲,而不貴難得之貨。」
번역 14
송(宋)나라의 시골 사람이 옥의 원석을 얻어 그것을 자한(子罕)에게 바치자, 자한이 받지 않았다. 시골 사람이 말하기를, “이것은 보물이니, 마땅히 군자의 그릇이 되어야지, 소인이 쓸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자한이 말하기를, “그대는 옥을 보물로 여기지만, 나는 그대의 옥을 받지 않는 것을 보물로 여긴다.”라고 하였다. 이는 시골 사람은 옥을 욕심냈으나, 자한은 옥을 욕심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욕심내지 않기를 욕심내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원문 15
王壽負書而行,見徐馮於周塗,馮曰:「事者,為也。為生於時,知者無常事。書者,言也。言生於知,知者不藏書。今子何獨負之而行?」於是王壽因焚其書而舞之。故知者不以言談教,而慧者不以藏書篋。此世之所過也,而王壽復之,是學不學也。故曰:「學不學,復歸眾人之所過也。」
번역 15
왕수(王壽)가 책을 지고 가다가, 주(周)나라 길에서 서빙(徐馮)을 만났다. 서빙이 말하기를, “일이라는 것은, 행하는 것이다. 행함은 때에서 생겨나니, 지혜로운 자는 떳떳한 일이 없다. 책이라는 것은, 말이다. 말은 앎에서 생겨나니, 지혜로운 자는 책을 보관하지 않는다. 지금 그대는 어찌하여 유독 그것을 지고 가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왕수는 그 책을 불태우고 춤을 추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말로써 가르치지 않고, 총명한 자는 책궤에 보관하지 않는다. 이것이 세상이 지나치는 바이지만, 왕수는 그것으로 돌아갔으니, 이것이 ‘배우지 않음을 배우는 것[學不學]’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배우지 않음을 배워, 여러 사람이 지나치는 바로 돌아간다.”라고 하였다.
원문 16
夫物有常容,因乘以導之,因隨物之容。故靜則建乎德,動則順乎道。宋人有為其君以象為楮葉者,三年而成。豐殺莖柯,毫芒繁澤,亂之楮葉之中而不可別也。此人遂以功食祿於宋邦。列子聞之曰:「使天地三年而成一葉,則物之有葉者寡矣。」故不乘天地之資,而載一人之身;不隨道理之數,而學一人之智;此皆一葉之行也。故冬耕之稼,后稷不能羨也;豐年大禾,臧獲不能惡也。以一人力,則后稷不足;隨自然,則臧獲有餘。故曰:「恃萬物之自然而不敢為也。」
번역 16
무릇 사물에는 떳떳한 모습이 있으니, 그것을 타고 이끌어주며, 사물의 모습에 따른다. 그러므로 고요하면 덕(德)에 세워지고, 움직이면 도(道)에 순응한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 그 군주를 위해 코끼리 상아로 닥나무 잎을 만든 자가 있었는데, 3년 만에 완성되었다. 줄기와 가지의 굵고 가늘음, 털끝의 섬세함과 윤택함이, 그것을 닥나무 잎 속에 섞어놓아도 구별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마침내 그 공으로 송나라에서 녹을 먹었다. 열자(列子)가 이를 듣고 말하기를, “만약 천지가 3년 만에 잎 하나를 만든다면, 잎이 있는 사물은 적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천지의 자산을 타지 않고, 한 사람의 몸에 실으며, 도리의 술수(數)를 따르지 않고, 한 사람의 지혜를 배우는 것, 이들은 모두 잎 하나를 만드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겨울에 밭 가는 곡식은, 후직(后稷)도 남게 할 수 없고, 풍년의 큰 벼는, 노비[臧獲]도 나쁘게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후직도 부족하고, 자연을 따르면, 노비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만물의 자연에 의지하고 감히 행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원문 17
空竅者,神明之戶牖也。耳目竭於聲色,精神竭於外貌,故中無主。中無主則禍福雖如丘山無從識之,故曰:「不出於戶,可以知天下;不闚於牖,可以知天道。」此言神明之不離其實也。
번역 17
빈 구멍[空竅]이란, 신명(神明)의 창문이다. 이목(耳目)이 성색(聲色)에 다하고, 정신이 외모에 다하면, 그러므로 안에 주인이 없게 된다. 안에 주인이 없으면 화와 복이 비록 언덕이나 산과 같더라도 그것을 알 길이 없으므로, 이르기를, “문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고, 창문을 엿보지 않아도, 하늘의 도를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는 신명이 그 실체를 떠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원문 18
趙襄主學御於王子期,俄而與於期逐,三易馬而三後。襄主曰:「子之教我御術未盡也。」對曰:「術已盡,用之則過也。凡御之所貴,馬體安於車,人心調於馬,而後可以進速致遠。今君後則欲逮臣,先則恐逮於臣。夫誘道爭遠,非先則後也。而先後心皆在於臣,上何以調於馬,此君之所以後也。」白公勝慮亂,罷朝,倒杖而策銳貫顊,血流至於地而不知。鄭人聞之曰:「顊之忘,將何為忘哉!」故曰:「其出彌遠者,其智彌少。」此言智周乎遠,則所遺在近也,是以聖人無常行也。能並智,故曰:「不行而知。」能並視,故曰:「不見而明。」隨時以舉事,因資而立功,用萬物之能而獲利其上,故曰:「不為而成。」
번역 18
조(趙) 양주(襄主)가 왕자기(王子期)에게 마부 기술을 배우다가, 얼마 안 되어 자기와 경주를 하였는데, 세 번 말을 바꾸고도 세 번 뒤처졌다. 양주가 말하기를, “그대가 나에게 마부 기술을 가르침을 다하지 않았소.”라고 하였다. 대답하여 말하기를, “기술은 이미 다하였으나, 그것을 사용함에 과실이 있습니다. 무릇 마부 기술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말의 몸이 수레에 편안하고, 사람의 마음이 말과 조화를 이루어야, 그런 뒤에야 빨리 나아가고 멀리 이를 수 있습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뒤처지면 신을 따라잡으려 하고, 앞서면 신에게 따라잡힐까 두려워하십니다. 무릇 길을 이끌어 멀리 가기를 다툼에, 앞서지 않으면 뒤처지는 법입니다. 그런데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마음이 모두 신에게 있으니, 위에서 어찌 말과 조화를 이루겠습니까. 이것이 군주께서 뒤처지신 까닭입니다.”라고 하였다. 백공(白公) 승(勝)이 난을 염려하여, 조회를 파하고, 지팡이를 거꾸로 짚었는데 채찍 끝이 뺨을 꿰뚫어, 피가 땅에까지 흘렀으나 알지 못했다. 정(鄭)나라 사람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뺨을 잊었으니, 장차 무엇을 위해 잊은 것인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나감이 더욱 멀수록, 그 앎이 더욱 적다.”라고 하였다. 이는 지혜가 먼 곳에 두루 미치면, 빠뜨리는 바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이니, 이 때문에 성인은 떳떳한 행실이 없다. 능히 지혜를 아우르므로, 이르기를, “가지 않고도 안다.”라고 하였다. 능히 봄을 아우르므로, 이르기를, “보지 않고도 밝다.”라고 하였다. 때를 따라 일을 일으키고, 자산에 의거하여 공을 세우며, 만물의 능력을 사용하여 그 위에서 이익을 얻으므로, 이르기를, “하지 않고도 이룬다.”라고 하였다.
원문 19
楚莊王蒞政三年,無令發,無政為也。右司馬御座而與王隱曰:「有鳥止南方之阜,三年不翅不飛不鳴,嘿然無聲,此為何名?」王曰:「三年不翅,將以長羽翼。不飛不鳴,將以觀民則。雖無飛,飛必沖天;雖無鳴,鳴必驚人。子釋之,不穀知之矣。」處半年,乃自聽政,所廢者十,所起者九,誅大臣五,舉處士六,而邦大治。舉兵誅齊,敗之徐州,勝晉於河雍,合諸侯於宋,遂霸天下。莊王不為小害善,故有大名;不蚤見示,故有大功。故曰:「大器晚成,大音希聲。」
번역 19
초(楚) 장왕(莊王)이 정사에 임한 지 3년 동안, 내리는 명령도 없고, 행하는 정치도 없었다. 우사마(右司馬)가 어좌에 나아가 왕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말하기를, “남쪽 언덕에 머무는 새가 있는데, 3년 동안 날갯짓도 하지 않고 날지도 않으며 울지도 않아, 잠잠하여 소리가 없으니, 이를 무엇이라 이름합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3년 동안 날갯짓을 하지 않는 것은, 장차 깃과 날개를 기르기 위함이다. 날지 않고 울지 않는 것은, 장차 백성의 법도를 살피기 위함이다. 비록 날지 않으나, 날면 반드시 하늘을 찌를 것이고, 비록 울지 않으나, 울면 반드시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대는 그만두라, 나[不穀]가 그것을 알았다.”라고 하였다. 반년을 지내고, 마침내 스스로 정사를 들으니, 폐한 것이 열이요, 일으킨 것이 아홉이며, 대신 다섯을 주살하고, 초야의 선비 여섯을 등용하여,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군대를 일으켜 제(齊)나라를 주살하여, 서주(徐州)에서 격파하고, 하옹(河雍)에서 진(晉)나라를 이겼으며, 송(宋)나라에서 제후를 규합하여, 마침내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장왕은 작은 것을 위해 좋은 것을 해치지 않았으므로, 큰 이름이 있었고, 일찍 드러내 보이지 않았으므로, 큰 공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 큰 소리는 소리가 드물다.”라고 하였다.
원문 20
楚莊王欲伐越,杜子諫曰:「王之伐越何也?」曰:「政亂兵弱。」杜子曰:「臣愚患之。智如目也,能見百步之外而不能自見其睫。王之兵自敗於秦、晉,喪地數百里,此兵之弱也。莊蹻為盜於境內而吏不能禁,此政之亂也。王之弱亂非越之下也,而欲伐越,此智之如目也。」王乃止。故知之難,不在見人,在自見。故曰:「自見之謂明。」
번역 20
초(楚) 장왕(莊王)이 월(越)나라를 치고자 하자, 두자(杜子)가 간언하여 말하기를, “왕께서 월나라를 치시려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정치가 어지럽고 군대가 약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두자가 말하기를, “신의 어리석음으로는 그것을 근심합니다. 지혜는 눈과 같아서, 능히 백 보 밖은 보면서도 스스로 자기 속눈썹은 보지 못합니다. 왕의 군대는 진(秦)·진(晉)에게 패하여, 땅 수백 리를 잃었으니, 이것이 군대의 약함입니다. 장교(莊蹻)가 국경 안에서 도둑질을 하는데도 관리가 금하지 못하니, 이것이 정치의 어지러움입니다. 왕의 약하고 어지러움이 월나라보다 아래가 아닌데도, 월나라를 치고자 하시니, 이것이 지혜가 눈과 같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에 그만두었다. 그러므로 앎의 어려움은, 남을 보는 데에 있지 않고, 스스로를 보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스스로를 보는 것을 밝음[明]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원문 21
子夏見曾子,曾子曰:「何肥也?」對曰:「戰勝故肥也。」曾子曰:「何謂也?」子夏曰:「吾入見先王之義則榮之,出見富貴之樂又榮之,兩者戰於胸中,未知勝負,故臞。今先王之義勝,故肥。」是以志之難也,不在勝人,在自勝也。故曰:「自勝之謂強。」
번역 21
자하(子夏)가 증자(曾子)를 뵙자, 증자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살이 쪘는가?”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싸움에 이겼기 때문에 살이 쪘습니다.”라고 하였다. 증자가 말하기를, “무슨 말인가?” 하니, 자하가 말하기를, “제가 들어가 선왕(先王)의 의(義)를 뵈면 그것을 영화롭게 여기고, 나와서 부귀의 즐거움을 보면 또한 그것을 영화롭게 여겨, 두 가지가 가슴속에서 싸워, 승부를 알지 못했으므로 여위었습니다. 지금 선왕의 의가 이겼으므로, 살이 쪘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뜻의 어려움은, 남을 이기는 데에 있지 않고, 스스로를 이기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스스로를 이기는 것을 강함[強]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원문 22
周有玉版,紂令膠鬲索之,文王不予,費仲來求,因予之。是膠鬲賢而費仲無道也。周惡賢者之得志也,故予費仲。文王舉太公於渭濱者,貴之也;而資費仲玉版者,是愛之也。故曰:「不貴其師,不愛其資,雖知大迷,是謂要妙。」
번역 22
주(周)나라에 옥판(玉版)이 있었는데, 주(紂)임금이 교격(膠鬲)을 시켜 그것을 찾게 하자, 문왕(文王)이 주지 않았다. 비중(費仲)이 와서 구하자, 이내 그에게 주었다. 이는 교격은 어질고 비중은 무도하기 때문이다. 주나라는 어진 자가 뜻을 얻는 것을 싫어했으므로, 비중에게 준 것이다. 문왕이 태공(太公)을 위수(渭水) 가에서 등용한 것은, 그를 귀하게 여긴 것이다. 비중에게 옥판을 자산으로 준 것은, 그를 아낀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 자산을 아끼지 않으면, 비록 안다고 해도 크게 미혹되니, 이를 요묘(要妙)라 한다.”라고 하였다.¹²⁾
주석
12) 불귀기사 불애기자...(不貴其師 不愛其資...): 《노자》 27장의 구절. 한비자의 해석은 매우 독특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문맥상, 문왕이 어진 교격에게는 옥판을 주지 않고 간신인 비중에게 준 것은, 어진 자(교격)가 주왕에게 등용되어 주나라에 위협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자산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도덕적 행위(어진 자를 돕는 것)보다 국가의 실질적인 안위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해 비정한 결단을 내리는 것을 ‘요묘(要妙)’, 즉 오묘한 지혜라고 해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일반적인 도가적 해석과는 매우 다른, 철저히 법가적인 관점의 해석이다.
《한비자》 〈설림상〉 번역 및 주석
원문 1
湯以伐桀,而恐天下言己為貪也,因乃讓天下於務光。而恐務光之受之也,乃使人說務光曰:「湯殺君而欲傳惡聲于子,故讓天下於子。」務光因自投於河。
번역 1
탕(湯)임금이 걸(桀)임금을 정벌하고서, 천하가 자기를 탐욕스럽다고 말할까 두려워하여, 이내 천하를 무광(務光)에게 양보하였다. 그러나 무광이 그것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이에 사람을 시켜 무광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탕임금이 군주를 죽이고 그 나쁜 명성을 그대에게 전가하려 하므로, 천하를 그대에게 양보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무광은 이로 인해 스스로 강에 몸을 던졌다.¹⁾
주석
1) 탕(湯)과 무광(務光)의 고사: 이 이야기는 군주의 정치적 행위 이면에 숨겨진 교활한 계산과 명분 쌓기의 기술을 보여준다. 탕왕은 걸왕을 몰아낸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탐욕스럽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은자인 무광에게 왕위를 양보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실제로 무광이 왕위를 받을 경우 자신의 입지가 곤란해질 것을 우려하여, 교묘한 말로 무광을 설득(압박)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탕왕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
원문 2
秦武王令甘茂擇所欲為於僕與行事,孟卯曰:「公不如為僕。公所長者、使也,公雖為僕,王猶使之於公也。公佩僕璽而為行事,是兼官也。」
번역 2
진(秦) 무왕(武王)이 감무(甘茂)에게 복(僕)과 행사(行事) 중에서 하고 싶은 것을 고르게 하자, 맹묘(孟卯)가 말하기를, “공께서는 복이 되는 것만 못합니다. 공께서 잘하시는 바는 사신(使臣)의 일인데, 공께서 비록 복이 되시더라도 왕께서는 여전히 공에게 사신의 일을 시키실 것입니다. 공께서 복의 인장[僕璽]을 차고 행사의 일을 하시면, 이는 관직을 겸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²⁾
주석
2) 감무(甘茂)의 선택: ‘복(僕)’은 왕의 수레를 모는 낮은 직책이고, ‘행사(行事)’는 외교 사절과 같은 중요한 직책이다. 맹묘는 감무에게 실질적인 권한(行事)을 유지하면서도 명목상 낮은 직책(僕)을 맡으라고 조언한다. 이는 왕의 신임을 얻으면서도 다른 신하들의 질투를 피하고, 실질적으로는 두 가지 직책의 권한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교묘한 처세술을 보여준다.
원문 3
子圉見孔子於商太宰,孔子出,子圉入,請問客,太宰曰:「吾已見孔子,則視子猶蚤蝨之細者也。吾今見之於君。」子圉恐孔子貴於君也,因謂太宰曰:「君已見孔子,亦將視子猶蚤蝨也。」太宰因弗復見也。
번역 3
자어(子圉)가 상(商)나라 태재(太宰)에게 공자(孔子)를 뵙게 하였다. 공자가 나가자, 자어가 들어가 손님에 대해 물으니, 태재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공자를 뵈니, 그대를 보는 것이 마치 벼룩이나 이[蚤蝨]처럼 작게 보이는구나. 내가 이제 그를 군주께 뵙게 하겠다.”라고 하였다. 자어는 공자가 군주에게 귀하게 여겨질까 두려워하여, 이내 태재에게 말하기를, “군주께서 이미 공자를 뵈시면, 또한 장차 그대를 보시기를 벼룩이나 이처럼 여기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재는 이로 인해 다시는 (공자를) 뵙지 않았다.
원문 4
魏惠王為臼里之盟,將復立於天子,彭喜謂鄭君曰:「君勿聽,大國惡有天子,小國利之。若君與大不聽,魏焉能與小立之。」
번역 4
위(魏) 혜왕(惠王)이 구리(臼里)에서 맹약을 맺고, 장차 다시 천자(天子)를 세우려 하자, 팽희(彭喜)가 정(鄭)나라 군주에게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듣지 마십시오. 대국은 천자가 있는 것을 싫어하고, 소국은 그것을 이롭게 여깁니다. 만약 군주께서 대국과 함께 듣지 않으시면, 위나라가 어찌 능히 소국과 함께 그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5
晉人伐邢,齊桓公將救之,鮑叔曰:「太蚤。邢不亡,晉不敝,晉不敝,齊不重。且夫持危之功,不如存亡之德大。君不如晚救之以敝晉,齊實利。待邢亡而復存之,其名實美。」桓公乃弗救。
번역 5
진(晉)나라 사람이 형(邢)나라를 정벌하자, 제(齊) 환공(桓公)이 장차 구원하려 하였다. 포숙(鮑叔)이 말하기를, “너무 이릅니다. 형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진나라가 피폐해지지 않고, 진나라가 피폐해지지 않으면 제나라가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또한 무릇 위태로운 것을 붙들어주는 공은, 망한 것을 다시 보존해주는 덕보다 크지 못합니다. 군주께서는 차라리 늦게 구원하여 진나라를 피폐하게 하는 것이, 제나라의 실질적인 이익입니다. 형나라가 망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보존해주면, 그 명분과 실리가 모두 아름다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환공은 이에 구원하지 않았다.
원문 6
子胥出走,邊候得之,子胥曰:「上索我者,以我有美珠也。今我已亡之矣,我且曰子取吞之。」候因釋之。
번역 6
자서(子胥)가 도망쳐 나오다가, 국경의 관리[邊候]에게 잡혔다. 자서가 말하기를, “윗사람이 나를 찾는 것은, 내가 아름다운 구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이미 그것을 잃어버렸는데, 내가 장차 ‘그대가 빼앗아 삼켰다’고 말하겠다.”라고 하였다. 관리는 이로 인해 그를 풀어주었다.
원문 7
慶封為亂於齊而欲走越,其族人曰:「晉近,奚不之晉?」慶封曰:「越遠,利以避難。」族人曰:「變是心也,居晉而可。不變是心也,雖遠越,其可以安乎!」
번역 7
경봉(慶封)이 제(齊)나라에서 난을 일으키고 월(越)나라로 달아나려 하자, 그의 족인이 말하기를, “진(晉)나라가 가까운데, 어찌하여 진나라로 가지 않습니까?” 하니, 경봉이 말하기를, “월나라는 멀어서, 난을 피하기에 이롭다.”라고 하였다. 족인이 말하기를, “이 마음을 바꾼다면, 진나라에 머물러도 괜찮습니다. 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비록 먼 월나라라도, 그곳에서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8
智伯索地於魏宣子,魏宣子弗予,任章曰:「何故不予?」宣子曰:「無故請地,故弗予。」任章曰:「無故索地,鄰國必恐,彼重欲無厭,天下必懼,君予之地,智伯必驕而輕敵,鄰邦必懼而相親,以相親之兵待輕敵之國,則智伯之命不長矣。《周書》曰:「將欲敗之,必姑輔之,將欲取之,必姑予之。」君不如予之以驕智伯。且君何釋以天下圖智氏,而獨以吾國為智氏質乎?」君曰:「善。」乃與之萬戶之邑,智伯大悅。因索地於趙,弗與,因圍晉陽,韓、魏反之外,趙氏應之內,智氏自亡。
번역 8
지백(智伯)이 위(魏) 선자(宣子)에게 땅을 요구하자, 위 선자가 주지 않으려 하였다. 임장(任章)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주지 않으십니까?” 하니, 선자가 말하기를, “까닭 없이 땅을 청하므로, 주지 않으려 한다.”라고 하였다. 임장이 말하기를, “까닭 없이 땅을 요구하면, 이웃 나라들이 반드시 두려워할 것이고, 저가 거듭 탐욕을 부려 만족할 줄 모르면, 천하가 반드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군주께서 땅을 주시면, 지백은 반드시 교만해져 적을 가벼이 여길 것이고, 이웃 나라들은 반드시 두려워하여 서로 친해질 것입니다. 서로 친해진 군대로써 적을 가벼이 여기는 나라를 기다린다면, 지백의 목숨은 길지 않을 것입니다. 《주서(周書)》에 이르기를, ‘장차 그를 패망시키려 하면, 반드시 우선 그를 도와주고, 장차 그에게서 빼앗으려 하면, 반드시 우선 그에게 준다.’라고 하였습니다. 군주께서는 그에게 주어 지백을 교만하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또한 군주께서는 어찌하여 천하와 함께 지씨(智氏)를 도모하는 것을 버리고, 유독 우리 나라로써 지씨의 표적이 되게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이에 만 호의 읍을 주니, 지백이 크게 기뻐하였다. 이어서 조(趙)나라에 땅을 요구하였으나 주지 않자, 진양(晉陽)을 포위하였다. 한(韓)·위(魏)가 밖에서 배반하고, 조씨가 안에서 호응하니, 지씨는 스스로 망하였다.
원문 9
秦康公築臺三年,荊人起兵,將欲以兵攻齊,任妄曰:「饑召兵,疾召兵,勞召兵,亂召兵。君築臺三年,今荊人起兵將攻齊,臣恐其攻齊為聲,而以襲秦為實也,不如備之。」戍東邊,荊人輟行。
번역 9
진(秦) 강공(康公)이 누대를 3년 동안 쌓자, 초(荊)나라 사람이 군대를 일으켜, 장차 군대로써 제(齊)나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임망(任妄)이 말하기를, “기근은 군대를 부르고, 질병은 군대를 부르며, 노역은 군대를 부르고, 혼란은 군대를 부릅니다. 군주께서 누대를 3년 동안 쌓으셨는데, 지금 초나라 사람이 군대를 일으켜 장차 제나라를 공격하려 하니, 신은 그들이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소리로 삼고, 진나라를 습격하는 것을 실체로 삼을까 두렵습니다. 대비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동쪽 변경을 지키니, 초나라 사람이 행군을 그만두었다.
원문 10
齊攻宋,宋使臧孫子南求救於荊,荊大說,許救之,甚歡,臧孫子憂而反,其御曰:「索救而得,今子有憂色何也?」臧孫子曰:「宋小而齊大,夫救小宋而惡於大齊,此人之所以憂也,而荊王說,必以堅我也。我堅而齊敝,荊之所利也。」臧孫子乃歸,齊人拔五城於宋而荊救不至。
번역 10
제(齊)나라가 송(宋)나라를 공격하자, 송나라가 장손자(臧孫子)를 남쪽으로 보내 초(荊)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게 하였다. 초나라가 크게 기뻐하며 구원을 허락하고 매우 즐거워하니, 장손자가 근심하며 돌아왔다. 그의 마부가 말하기를, “구원을 요청하여 얻었는데, 지금 당신께서 근심하는 기색이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장손자가 말하기를, “송나라는 작고 제나라는 크다. 무릇 작은 송나라를 구원하고 큰 제나라에 미움을 사는 것은, 사람들이 근심하는 바이다. 그런데 초나라 왕이 기뻐하니, 반드시 우리를 굳건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굳건히 버티고 제나라가 피폐해지는 것이, 초나라의 이익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장손자가 마침내 돌아오니, 제나라 사람이 송나라의 다섯 성을 함락시켰으나 초나라의 구원은 이르지 않았다.
원문 11
魏文侯借道於趙而攻中山,趙肅侯將不許,趙刻曰:「君過矣。魏攻中山而弗能取,則魏必罷,罷則魏輕,魏輕則趙重。魏拔中山,必不能越趙而有中山也,是用兵者魏也,而得地者趙也。君必許之。許之而大歡,彼將知君利之也,必將輟行。君不如借之道,示以不得已也。」
번역 11
위(魏) 문후(文侯)가 조(趙)나라에 길을 빌려 중산(中山)을 공격하려 하자, 조 숙후(肅侯)가 장차 허락하지 않으려 하였다. 조각(趙刻)이 말하기를, “군주께서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위나라가 중산을 공격하여 능히 취하지 못하면, 위나라는 반드시 지칠 것이고, 지치면 위나라는 가벼워지며, 위나라가 가벼워지면 조나라는 무거워집니다. 위나라가 중산을 함락시키더라도, 반드시 조나라를 넘어 중산을 소유할 수는 없을 것이니, 군대를 쓰는 자는 위나라이고, 땅을 얻는 자는 조나라입니다. 군주께서는 반드시 허락하십시오. 허락하시되 크게 기뻐하시면, 저들이 장차 군주께서 그것을 이롭게 여긴다는 것을 알 것이니, 반드시 행군을 그만둘 것입니다. 군주께서는 길을 빌려주시되,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보이시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2
鴟夷子皮事田成子,田成子去齊,走而之燕,鴟夷子皮負傳而從,至望邑,子皮曰:「子獨不聞涸澤之蛇乎?澤涸,蛇將徙,有小蛇謂大蛇曰:子行而我隨之,人以為蛇之行者耳,必有殺子,不如相銜負我以行,人以我為神君也。乃相銜負以越公道,人皆避之,曰:神君也。今子美而我惡,以子為我上客,千乘之君也;以子為我使者,萬乘之卿也。子不如為我舍人。」田成子因負傳而隨之,至逆旅,逆旅之君待之甚敬,因獻酒肉。
번역 12
치이자피(鴟夷子皮)가 전성자(田成子)를 섬겼다. 전성자가 제(齊)나라를 떠나, 달아나 연(燕)나라로 가는데, 치이자피가 부신(符信)을 지고 따랐다. 망읍(望邑)에 이르러, 자피가 말하기를, “당신께서는 유독 마른 연못의 뱀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연못이 마르자, 뱀이 장차 옮겨가려 하는데, 작은 뱀이 큰 뱀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가고 내가 그 뒤를 따르면, 사람들은 뱀이 가는 것이라고만 여겨, 반드시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서로 입에 물고 나를 업고 가는 것만 못하니,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신령한 군주로 여길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서로 입에 물고 업고서 큰길을 건너니,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피하며 말하기를, ‘신령한 군주이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당신은 아름답고 나는 추하니, 당신을 나의 상객(上客)으로 삼으면 천승(千乘)의 군주로 보일 것이고, 당신을 나의 사자(使者)로 삼으면 만승(萬乘)의 경(卿)으로 보일 것입니다. 당신이 나의 사인(舍人)이 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전성자는 이내 부신을 지고 그를 따랐다. 여관에 이르자, 여관의 주인이 그들을 매우 공경하게 대접하며, 술과 고기를 바쳤다.
원문 13
溫人之周,周不納客,問之曰:「客耶?」對曰:「主人。」問其巷人而不知也,吏因囚之,君使人問之曰:「子非周人也,而自謂非客何也?」對曰:「臣少也誦《詩》曰:普天之下,莫非王土,率土之濱,莫非王臣。今君,天子,則我天子之臣也,豈有為人之臣而又為之客哉?故曰主人也。」君使出之。
번역 13
온(溫) 땅 사람이 주(周)나라로 갔는데, 주나라에서 나그네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 묻기를, “나그네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주인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동네 사람에게 물었으나 알지 못하므로, 관리가 이내 그를 가두었다. 군주가 사람을 시켜 그에게 묻기를, “그대는 주나라 사람이 아니면서, 스스로 나그네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어릴 때 《시경(詩經)》을 외우니 이르기를, ‘넓은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땅의 끝까지, 왕의 신하가 아닌 이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천자이시니, 저는 천자의 신하입니다. 어찌 남의 신하가 되어 또 그의 나그네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주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그를 내보내게 하였다.
원문 14
韓宣王謂樛留曰:「吾欲兩用公仲、公叔其可乎?」對曰:「不可。晉用六卿而國分,簡公兩用田成、闞止而簡公殺,魏兩用犀首、張儀而西河之外亡。今王兩用之,其多力者樹其黨,寡力者借外權。群臣有內樹黨以驕主,有外為交以削地,則王之國危矣。」
번역 14
한(韓) 선왕(宣王)이 규류(樛留)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공중(公仲)과 공숙(公叔)을 둘 다 쓰고자 하는데, 그것이 괜찮겠는가?”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안 됩니다. 진(晉)나라는 여섯 경(六卿)을 써서 나라가 나뉘었고, 간공(簡公)은 전성(田成)과 간지(闞止)를 둘 다 써서 간공이 살해되었으며, 위(魏)나라는 서수(犀首)와 장의(張儀)를 둘 다 써서 서하(西河)의 밖을 잃었습니다. 지금 왕께서 둘 다 쓰시면, 힘이 많은 자는 그 붕당을 심고, 힘이 적은 자는 외부의 권세를 빌릴 것입니다. 여러 신하 중에 안으로 붕당을 심어 군주에게 교만하게 구는 자가 있고, 밖으로 교제를 하여 땅을 깎는 자가 있게 되면, 왕의 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5
紹績昧醉寐而亡其裘,宋君曰:「醉足以亡裘乎?」對曰:「桀以醉亡天下,而。《康誥》曰:『毋彝酒。』者,彝酒、常酒也,常酒者,天子失天下,匹夫失其身。」
번역 15
소적매(紹績昧)가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그 갖옷을 잃어버리자, 송(宋)나라 군주가 말하기를, “술 취함이 족히 갖옷을 잃게 하는가?”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걸(桀)은 술 취함으로 천하를 잃었고, 《강고(康誥)》에 이르기를, ‘술을 떳떳이 하지 말라[毋彝酒].’고 하였습니다. 이주(彝酒)는 상주(常酒)이니, 항상 술을 마시는 자는, 천자는 천하를 잃고, 필부(匹夫)는 그 몸을 잃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6
管仲、隰朋從於桓公而伐孤竹,春往冬反,迷惑失道,管仲曰:「老馬之智可用也。」乃放老馬而隨之,遂得道。行山中無水,隰朋曰:「蟻冬居山之陽,夏居山之陰,蟻壤一寸而仞有水。」乃掘地,遂得水。以管仲之聖,而隰朋之智,至其所不知,不難師於老馬與蟻,今人不知以其愚心而師聖人之智,不亦過乎。
번역 16
관중(管仲)과 습붕(隰朋)이 환공(桓公)을 따라 고죽(孤竹)을 정벌하러 갔다가, 봄에 가서 겨울에 돌아오는데, 미혹되어 길을 잃었다. 관중이 말하기를, “늙은 말의 지혜를 쓸 만하다.” 하고는, 이에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르니, 마침내 길을 찾았다. 산속을 가는데 물이 없자, 습붕이 말하기를, “개미는 겨울에는 산의 양지에 살고, 여름에는 산의 음지에 사니, 개미둑 한 치 아래에는 여덟 자 깊이에 물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땅을 파니, 마침내 물을 얻었다. 관중의 성스러움과 습붕의 지혜로도, 그 알지 못하는 바에 이르러서는,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기를 어려워하지 않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 어리석은 마음으로 성인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을 줄을 모르니, 또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원문 17
有獻不死之藥於荊王者,謁者操之以入,中射之士問曰:「可食乎?」曰:「可。」因奪而食之,王大怒,使人殺中射之士,中射之士使人說王曰:「臣問謁者曰可食,臣故食之,是臣無罪,而罪在謁者也。且客獻不死之藥,臣食之而王殺臣,是死藥也,是客欺王也。夫殺無罪之臣,而明人之欺王也,不如釋臣。」王乃不殺。
번역 17
불사약(不死之藥)을 초(荊)나라 왕에게 바친 자가 있었는데, 알자(謁者)가 그것을 가지고 들어왔다. 중사지사(中射之士)가 묻기를, “먹을 수 있는가?” 하니, 말하기를, “그렇다.”라고 하였다. 이내 빼앗아 그것을 먹으니, 왕이 크게 노하여, 사람을 시켜 중사지사를 죽이게 하였다. 중사지사가 사람을 시켜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신이 알자에게 ‘먹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고, 신은 그래서 그것을 먹었으니, 이는 신에게는 죄가 없고, 죄는 알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또한 손님이 불사약을 바쳤는데, 신이 그것을 먹고 왕께서 신을 죽이시면, 이것은 죽는 약[死藥]이니, 이는 손님이 왕을 속인 것입니다. 무릇 죄 없는 신하를 죽여, 남이 왕을 속였음을 밝히는 것은, 신을 풀어주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에 죽이지 않았다.
원문 18
田駟欺鄒君,鄒君將使人殺之,田駟恐,告惠子,惠子見鄒君曰:「今有人見君,則眇其一目,奚如?」君曰:「我必殺之。」惠子曰:「瞽,兩目眇,君奚為不殺?」君曰:「不能勿犁。」惠子曰:「田駟東慢齊侯,南欺荊王,駟之於欺人,瞽也,君奚怨焉?」鄒君乃不殺。
번역 18
전사(田駟)가 추(鄒)나라 군주를 속이자, 추나라 군주가 장차 사람을 시켜 그를 죽이려 하였다. 전사가 두려워하여 혜자(惠子)에게 알리니, 혜자가 추나라 군주를 뵙고 말하기를, “지금 어떤 사람이 군주를 뵙는데, 그 한쪽 눈을 흘긴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군주가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그를 죽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혜자가 말하기를, “장님은, 두 눈이 다 먼데, 군주께서는 어찌하여 죽이지 않으십니까?” 하니, 군주가 말하기를, “어쩔 수 없이 짝눈이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혜자가 말하기를, “전사는 동쪽으로 제(齊)나라 후(侯)를 업신여기고, 남쪽으로 초(荊)나라 왕을 속였으니, 전사가 남을 속이는 것은, 장님과 같습니다. 군주께서 어찌 원망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추나라 군주가 이에 죽이지 않았다.
원문 19
魯穆公使眾公子或宦於晉,或宦於荊,犁鉏曰:「假人於越而救溺子,越人雖善遊,子必不生矣。失火而取水於海,海水雖多,火必不滅矣,遠水不救近火也。今晉與荊雖強,而齊近,魯患其不救乎?」
번역 19
노(魯) 목공(穆公)이 여러 공자(公子)를 시켜 혹은 진(晉)나라에서 벼슬하게 하고, 혹은 초(荊)나라에서 벼슬하게 하자, 이서(犁鉏)가 말하기를, “월(越)나라에서 사람을 빌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한다면, 월나라 사람이 비록 헤엄을 잘 치더라도, 아이는 반드시 살지 못할 것입니다. 불이 났는데 바다에서 물을 길어온다면, 바닷물이 비록 많더라도, 불은 반드시 꺼지지 않을 것이니, 먼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가 비록 강하지만, 제(齊)나라가 가까우니, 노나라의 우환을 그들이 구원하지 않을까 걱정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20
嚴遂不善周君,患之,馮沮曰:「嚴遂相,而韓傀貴於君,不如行賊於韓傀,則君必以為嚴氏也。」
번역 20
엄수(嚴遂)가 주군(周君)과 사이가 좋지 않아, 그것을 근심하자, 풍저(馮沮)가 말하기를, “엄수가 재상이고, 한괴(韓傀)가 군주에게 귀하게 여겨지니, 한괴에게 자객을 보내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면 군주께서는 반드시 엄씨의 소행이라고 여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21
張譴相韓,病將死,公乘無正懷三十金而問其疾,居一月自問張譴曰:「若子死,將誰使代子?」答曰:「無正重法而畏上,雖然,不如公子食我之得民也。」張譴死,因相公乘無正。
번역 21
장견(張譴)이 한(韓)나라의 재상이 되어, 병들어 장차 죽게 되자, 공승무정(公乘無正)이 30금을 품고 그 병을 문안하였다. 한 달을 머물다가 스스로 장견에게 묻기를, “만약 당신이 죽으면, 장차 누구를 시켜 당신을 대신하게 하겠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무정은 법을 중히 여기고 윗사람을 두려워하지만, 비록 그러하나, 공자 식아(食我)가 백성의 마음을 얻은 것만은 못하다.”라고 하였다. 장견이 죽자, 이내 공승무정을 재상으로 삼았다.
원문 22
樂羊為魏將而攻中山,其子在中山,中山之君烹其子而遺之羹,樂羊坐於幕下而啜之,盡一杯,文侯謂堵師贊曰:「樂羊以我故而食其子之肉。」答曰:「其子而食之,且誰不食?」樂羊罷中山,文侯賞其功而疑其心。
번역 22
악양(樂羊)이 위(魏)나라 장수가 되어 중산(中山)을 공격하는데, 그의 아들이 중산에 있었다. 중산의 군주가 그의 아들을 삶아 그에게 국을 보내니, 악양이 막사 아래에 앉아 그것을 마셔, 한 잔을 다 비웠다. 문후(文侯)가 도사찬(堵師贊)에게 일러 말하기를, “악양은 나 때문에 자기 아들의 고기를 먹었다.”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자기 아들도 먹는데, 장차 누구를 먹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악양이 중산을 평정한 뒤, 문후는 그의 공을 상 주었으나 그의 마음은 의심하였다.
원문 23
孟孫獵得麑,使秦西巴持之歸,其母隨之而啼,秦西巴弗忍而與之,孟孫歸,至而求麑,答曰:「余弗忍而與其母。」孟孫大怒,逐之,居三月,復召以為其子傅,其御曰:「曩將罪之,今召以為子傅何也?」孟孫曰:「夫不忍麑,又且忍吾子乎?」故曰:「巧詐不如拙誠。」樂羊以有功見疑,秦西巴以有罪益信。
번역 23
맹손(孟孫)이 사냥하여 새끼 사슴을 얻어, 진서파(秦西巴)를 시켜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게 하였다. 그 어미가 그 뒤를 따르며 우니, 진서파가 차마 그러지 못하여 그것을 주었다. 맹손이 돌아와, 이르러 새끼 사슴을 찾자, 대답하기를, “제가 차마 그러지 못하여 그 어미에게 주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맹손이 크게 노하여 그를 내쫓았다. 석 달을 지내고, 다시 불러 그의 아들 스승으로 삼았다. 그의 마부가 말하기를, “지난번에는 장차 그를 죄주려 하시더니, 지금 불러 아들의 스승으로 삼으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맹손이 말하기를, “무릇 새끼 사슴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데, 또 장차 내 아들을 차마 해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교묘한 속임수는 서투른 정성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악양은 공이 있어 의심을 받았고, 진서파는 죄가 있어 신임을 더했다.
원문 24
曾從子,善相劍者也。衛君怨吳王,曾從子曰:「吳王好劍,臣相劍者也,臣請為吳王相劍,拔而示之,因為君刺之。」衛君曰:「子為之是也,非緣義也,為利也。吳強而富,衛弱而貧,子必往,吾恐子為吳王用之於我也。」乃逐之。
번역 24
증종자(曾從子)는, 칼을 잘 감정하는 자였다. 위(衛)나라 군주가 오(吳)나라 왕을 원망하자, 증종자가 말하기를, “오나라 왕은 칼을 좋아하고, 신은 칼을 감정하는 자입니다. 신이 청컨대 오나라 왕을 위해 칼을 감정하다가, 뽑아 그것을 보여주고, 그 기회에 군주를 위해 그를 찌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위나라 군주가 말하기를, “그대가 그것을 하는 것은 옳으나, 의(義)를 따라서가 아니라, 이(利)를 위해서이다. 오나라는 강하고 부유하며, 위나라는 약하고 가난하니, 그대가 반드시 가게 되면, 나는 그대가 오나라 왕을 위해 그것을 나에게 쓸까 두렵다.”라고 하고는, 이에 그를 내쫓았다.
원문 25
紂為象箸而箕子怖,以為象箸必不盛羹於土簋,則必犀玉之杯,玉杯象箸必不盛菽藿,則必旄象豹胎,旄象豹胎必不衣短褐,而舍茅茨之下,則必錦衣九重,高臺廣室也。稱此以求,則天下不足矣。聖人見微以知萌,見端以知末,故見象箸而怖,知天下不足也。
번역 25
주(紂)임금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箕子)가 두려워하였으니, 상아 젓가락은 반드시 흙으로 만든 그릇에 국을 담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무소 뿔이나 옥으로 만든 잔을 쓸 것이며, 옥잔과 상아 젓가락에는 반드시 콩잎 국을 담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소꼬리, 코끼리, 표범의 태아 같은 것을 먹을 것이며, 소꼬리, 코끼리, 표범의 태아를 먹는 자는 반드시 짧은 베옷을 입고 띠풀로 이은 집 아래에 머물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비단옷을 아홉 겹으로 입고, 높은 누대와 넓은 방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걸맞게 구한다면, 천하가 부족할 것이다. 성인은 미세한 것을 보고 싹틈을 알고, 단서를 보고 끝을 아니, 그러므로 상아 젓가락을 보고 두려워하여, 천하가 부족할 것을 알았던 것이다.
원문 26
周公旦已勝殷,將攻商、蓋,辛公甲曰:「大難攻,小易服,不如服眾小以劫大。」乃攻九夷而商、蓋服矣。
번역 26
주공(周公) 단(旦)이 이미 은(殷)나라를 이기고, 장차 상(商)과 개(蓋)를 공격하려 하자, 신공(辛公) 갑(甲)이 말하기를, “큰 것은 공격하기 어렵고, 작은 것은 복종시키기 쉬우니, 여러 작은 것을 복종시켜 큰 것을 겁박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구이(九夷)를 공격하니, 상과 개가 복종하였다.
원문 27
紂為長夜之飲,懼以失日,問其左右盡不知也,乃使人問箕子,箕子謂其徒曰:「為天下主而一國皆失日,天下其危矣。一國皆不知而我獨知之,吾其危矣。」辭以醉而不知。
번역 27
주(紂)임금이 긴 밤의 술자리를 열다가, 날짜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그 좌우에 물었으나 모두 알지 못했다. 이에 사람을 시켜 기자(箕子)에게 물으니, 기자가 그 무리에게 일러 말하기를, “천하의 주인이 되어 온 나라가 모두 날짜를 잃으니, 천하가 위태롭구나. 온 나라가 모두 알지 못하는데 나 홀로 그것을 아니, 내 몸이 위태롭구나.” 하고는, 술에 취해 알지 못한다고 사양하였다.
원문 28
魯人身善織屨,妻善織縞,而欲徒於越,或謂之曰:「子必窮矣。」魯人曰:「何也?」曰:「屨為履之也,而越人跣行;縞為冠之也,而越人被髮。以子之所長,游於不用之國,欲使無窮,其可得乎?」
번역 28
노(魯)나라 사람 중에 자신은 신발을 잘 짜고, 아내는 흰 비단을 잘 짜는 자가 있었는데, 월(越)나라로 옮겨가려 하였다. 어떤 이가 그에게 일러 말하기를, “당신은 반드시 곤궁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노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어째서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신발은 신기 위한 것인데, 월나라 사람은 맨발로 다니고, 흰 비단은 관을 만들기 위한 것인데, 월나라 사람은 머리를 풀어헤칩니다. 당신의 장점을 가지고, 그것을 쓰지 않는 나라에서 노닐면서, 곤궁함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29
陳軫貴於魏王,惠子曰:「必善事左右,夫楊橫樹之即生,倒樹之即生,折而樹之又生。然使十人樹之而一人拔之,則毋生楊至。以十人之眾,樹易生之物,而不勝一人者何也?樹之難而去之易也。子雖工自樹於王,而欲去子者眾,子必危矣。」
번역 29
진軫(陳軫)이 위(魏)나라 왕에게 귀하게 여겨지자, 혜자(惠子)가 말하기를, “반드시 좌우를 잘 섬겨야 합니다. 무릇 버드나무는 옆으로 심어도 곧 살고, 거꾸로 심어도 곧 살며, 꺾어서 심어도 또 삽니다. 그러나 열 사람이 그것을 심고 한 사람이 그것을 뽑는다면, 살아나는 버드나무는 없을 것입니다. 열 사람의 무리로, 쉽게 사는 것을 심으면서도,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심기는 어렵고 제거하기는 쉽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비록 왕에게 스스로를 공교하게 심었더라도, 당신을 제거하고자 하는 자가 많으니, 당신은 반드시 위태로워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30
魯季孫新弒其君,吳起仕焉。或謂起曰:「夫死者,始死而血,已血而衄,已衄而灰,已灰而土,及其土也,無可為者矣。今季孫乃始血,其毋乃未可知也。」吳起因去之晉。
번역 30
노(魯)나라 계손(季孫)이 새로 그 군주를 시해하자, 오기(吳起)가 그를 섬겼다. 어떤 이가 오기에게 일러 말하기를, “무릇 죽은 자는, 처음 죽으면 피가 나고, 피가 그치면 코피가 나며, 코피가 그치면 재가 되고, 재가 그치면 흙이 되니, 그 흙이 됨에 이르러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계손은 이에 비로소 피가 나기 시작했으니, 그 일이 아직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오기는 이로 인해 그를 떠나 진(晉)나라로 갔다.
원문 31
隰斯彌見田成子,田成子與登臺四望,三面皆暢,南望,隰子家之樹蔽之,田成子亦不言,隰子歸,使人伐之,斧離數創,隰子止之,其相室曰:「何變之數也?」隰子曰:「古者有諺曰:知淵中之魚者不祥。夫田子將有大事,而我示之知微,我必危矣。不伐樹未有罪也,知人之所不言,其罪大矣。」乃不伐也。
번역 31
습사미(隰斯彌)가 전성자(田成子)를 뵈니, 전성자가 함께 누대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았다. 세 면이 모두 시원하게 트였는데, 남쪽을 바라보니 습자의 집 나무가 그것을 가렸다. 전성자는 또한 말하지 않았으나, 습자가 돌아와 사람을 시켜 그것을 베게 하였다. 도끼가 몇 번 상처를 내자, 습자가 그것을 멈추게 하였다. 그의 가신(家臣)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리 자주 변하십니까?” 하니, 습자가 말하기를, “옛날에 속담이 있어 이르기를, ‘연못 속의 물고기를 아는 자는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하였소. 무릇 전자(田子)가 장차 큰일을 도모하려 하는데, 내가 그에게 미세한 것을 아는 것을 보이면, 나는 반드시 위태로워질 것이오. 나무를 베지 않는 것은 아직 죄가 없으나, 남이 말하지 않는 바를 아는 것은, 그 죄가 크오.” 하고는, 이에 베지 않았다.
원문 32
楊子過於宋東之逆旅,有妾二人,其惡者貴,美者賤。楊子問其故,逆旅之父答曰:「美者自美,吾不知其美也,惡者自惡,吾不知其惡也。」楊子謂弟子曰:「行賢而去自賢之心,焉往而不美。」
번역 32
양자(楊子)가 송(宋)나라 동쪽의 여관을 지나가는데, 첩이 두 사람 있었는데, 그 추한 자는 귀하게 여겨지고, 아름다운 자는 천하게 여겨졌다. 양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여관의 주인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아름다운 자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니,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고, 추한 자는 스스로 추하다고 여기니, 나는 그녀의 추함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양자가 제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어진 것을 행하되 스스로 어질다고 여기는 마음을 버리면, 어디를 간들 아름답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원문 33
衛人嫁其子而教之曰:「必私積聚。為人婦而出,常也。其成居,幸也。」其子因私積聚,其姑以為多私而出之,其子所以反者倍其所以嫁。其父不自罪於教子非也,而自知其益富。今人臣之處官者皆是類也。
번역 33
위(衛)나라 사람이 그 딸을 시집보내며 가르쳐 말하기를, “반드시 사사로이 모아두어라. 남의 아내가 되었다가 쫓겨나는 것은, 떳떳한 일이다. 그곳에 머물러 사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 딸이 이로 인해 사사로이 모아두니, 그 시어머니가 사사로움이 많다고 여겨 그녀를 내쫓았다. 그 딸이 돌아온 까닭은 그 시집갈 때보다 배나 되었다. 그 아버지는 딸을 잘못 가르친 것을 스스로 죄주지 않고, 자신이 더욱 부유해진 것을 알았다. 지금 신하로서 관직에 있는 자들이 모두 이와 같은 부류이다.
원문 34
魯丹三說中山之君而不受也,因散五十金事其左右,復見,未語,而君與之食。魯丹出,而不反舍,遂去中山。其御曰:「反見,乃始善我,何故去之?」魯丹曰:「夫以人言善我,必以人言罪我。」未出境,而公子惡之曰:「為趙來閒中山。」君因索而罪之。
번역 34
노단(魯丹)이 세 번 중산(中山)의 군주를 유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내 50금을 흩어 그 좌우를 섬기고, 다시 뵈니, 아직 말도 하기 전에 군주가 그와 함께 식사하였다. 노단이 나와서,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마침내 중산을 떠났다. 그의 마부가 말하기를, “다시 뵈니, 비로소 우리를 좋게 대하시는데, 무슨 까닭으로 떠나십니까?” 하니, 노단이 말하기를, “무릇 남의 말로써 나를 좋게 대하는 자는, 반드시 남의 말로써 나를 죄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국경을 나가기 전에, 공자가 그를 미워하여 말하기를, “조(趙)나라를 위해 와서 중산을 이간질한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이내 그를 찾아 죄주었다.
원문 35
田伯鼎好士而存其君,白公好士而亂荊,其好士則同,其所以為則異。公孫友自刖而尊百里,豎刁自宮而諂桓公,其自刑則同,其所以自刑之為則異。慧子曰:「狂者東走,逐者亦東走,其東走則同,其所以東走之為則異。故曰:同事之人,不可不審察也。」
번역 35
전백정(田伯鼎)은 선비를 좋아하여 그 군주를 보존하였고, 백공(白公)은 선비를 좋아하여 초(荊)나라를 어지럽혔으니, 그 선비를 좋아한 것은 같으나, 그 까닭은 달랐다. 공손우(公孫友)는 스스로 발뒤꿈치를 베어 백리(百里)를 존귀하게 하였고, 수조(豎刁)는 스스로 거세하여 환공(桓公)에게 아첨하였으니, 그 스스로 형벌을 가한 것은 같으나, 그 스스로 형벌을 가한 까닭은 달랐다. 혜자(惠子)가 말하기를, “미친 자가 동쪽으로 달리고, 쫓는 자 또한 동쪽으로 달리니, 그 동쪽으로 달리는 것은 같으나, 그 동쪽으로 달리는 까닭은 다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살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한비자》 〈설림하〉 번역 및 주석
원문 1
伯樂教二人相踶馬,相與之簡子廄觀馬。一人舉踶馬,其一人從後而循之,三撫其尻而馬不踶,此自以為失相。其一人曰:「子非失相也。此其為馬也,踒肩而腫膝。夫踶馬也者,舉後而任前,腫膝不可任也,故後不舉。子巧於相踶馬而拙於任腫膝。」夫事有所必歸,而以有所,腫膝而不任,智者之所獨知也。惠子曰:「置猿於柙中,則與豚同。」故勢不便,非所以逞能也。
번역 1
백락(伯樂)이 두 사람에게 뒷발질하는 말[踶馬]을 감정하는 법을 가르치고, 함께 간자(簡子)의 마구간에 가서 말을 보았다. 한 사람이 뒷발질하는 말을 지목하자, 다른 한 사람이 뒤에서부터 그 말을 따라가며, 세 번 그 엉덩이를 어루만졌으나 말이 뒷발질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스스로 감정을 잘못했다고 여겼다. 다른 한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가 감정을 잘못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어깨를 절고 무릎이 부어 있다. 무릇 뒷발질하는 말은, 뒷다리를 들고 앞다리에 힘을 싣는데, 부은 무릎은 힘을 실을 수 없으므로, 뒷다리를 들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뒷발질하는 말을 감정하는 데에는 교묘하나, 부은 무릎에 힘을 싣는 것을 아는 데에는 서투르다.”라고 하였다. 무릇 일에는 반드시 귀결되는 바가 있는데, 무릎이 부어 힘을 싣지 못하는 바가 있음을, 지혜로운 자만이 홀로 아는 것이다. 혜자(惠子)가 말하기를, “원숭이를 우리 안에 두면, 돼지와 같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형세가 편리하지 않으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¹⁾
주석
1) 형세(勢)의 중요성: 이 이야기는 능력(能)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조건, 즉 형세(勢)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뒷발질하는 능력(踶)을 가진 말도 무릎이 아픈(腫膝) 불리한 조건에서는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우리에 갇힌 원숭이처럼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나 제약 속에서는 평범한 사람(돼지)과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것이다.
원문 2
衛將軍文子見曾子,曾子不起而延於坐席,正身於奧。文子謂其御曰:「曾子,愚人也哉!以我為君子也,君子安可毋敬也?以我為暴人也,暴人安可侮也?曾子不僇命也。」
번역 2
위(衛)나라 장군 문자(文子)가 증자(曾子)를 뵈었는데, 증자는 일어나지 않고 앉은 자리로 맞아들이며, 몸을 안쪽 깊숙한 곳[奧]에서 바로 하였다. 문자가 그의 마부에게 일러 말하기를, “증자는,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나를 군자(君子)로 여긴다면, 군자를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나를 포악한 사람[暴人]으로 여긴다면, 포악한 사람을 어찌 업신여길 수 있는가? 증자는 목숨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 하는구나.”라고 하였다.²⁾
주석
2) 증자(曾子)의 처신: 문자는 증자의 행동이 어떤 경우에도 모순된다고 지적한다. 자신을 군자로 본다면 공경해야 하고, 포악한 자로 본다면 두려워해야 하는데, 증자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문자는 이를 증자가 자신을 죽음의 위협에 빠뜨리지 않으려는(不僇命)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판한다. 이는 상대방의 심리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어정쩡한 태도가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원문 3
鳥有翢翢者,重首而屈尾,將欲飲於河則必顛,乃銜其羽而飲之。人之所有飲不足者,不可不索其羽也。
번역 3
새 중에 서서(翢翢)라는 것이 있는데, 머리가 무겁고 꼬리가 굽어, 장차 강에서 물을 마시려 하면 반드시 넘어진다. 이에 자기 깃털을 물고서 물을 마신다. 사람이 마실 것이 부족한 바가 있는 자는, 그 깃털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³⁾
주석
3) 서서(翢翢) 새의 지혜: 이 새는 머리가 무거워 물을 마실 수 없다는 신체적 결함(弱點)을, 깃털을 물어 균형을 잡는 지혜(羽)로 극복한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약점이나 부족한 점이 있을 때,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지혜나 방법을 찾아야 함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원문 4
鱣似蛇,蠶似蠋。人見蛇則驚駭,見蠋則毛起。漁者持鱣,婦人拾蠶,利之所在,皆為賁、諸。
번역 4
철갑상어는 뱀과 비슷하고, 누에는 애벌레와 비슷하다. 사람은 뱀을 보면 놀라고, 애벌레를 보면 털이 곤두선다. 어부는 철갑상어를 잡고, 부인은 누에를 주우니, 이익이 있는 곳에서는, 모두 맹분(孟賁)이나 전저(專諸)와 같이 용감해진다.⁴⁾
주석
4) 이익(利)의 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뱀이나 애벌레를 혐오하고 두려워하지만, 그것이 이익(철갑상어, 누에)이 될 때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감하게 행동한다. 맹분과 전저는 고대의 유명한 용사들이다. 이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이익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법가 사상의 인간관을 잘 드러낸다.
원문 5
伯樂教其所憎者相千里之馬,教其所愛者相駑馬。千里之馬時一,其利緩,駑馬日售,其利急。此《周書》所謂「下言而上用者惑也。」
번역 5
백락(伯樂)은 그가 미워하는 자에게는 천리마를 감정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가 아끼는 자에게는 둔한 말[駑馬]을 감정하는 법을 가르쳤다. 천리마는 때로 한 마리씩 나오니 그 이익이 더디고, 둔한 말은 날마다 팔리니 그 이익이 빠르다. 이것이 《주서(周書)》에서 이르는 바 “아랫사람의 말을 윗사람이 쓰는 것은 미혹된 것이다.”라는 것이다.⁵⁾
주석
5) 백락(伯樂)의 가르침: 백락은 겉으로는 미워하는 자에게 더 가치 있는 기술(천리마 감정법)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익이 더디고 불확실한 길로 인도한 것이다. 반면 아끼는 자에게는 당장 이익이 되는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쳤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나 행위의 이면에 숨겨진 실질적인 의도를 파악해야 함을 보여준다. 《주서》의 인용은, 아랫사람의 그럴듯한 말(下言)을 윗사람이 분별없이 받아들이면(上用) 미혹에 빠지게 된다는 경고이다.
원문 6
桓赫曰:「刻削之道,鼻莫如大,目莫如小。鼻大可小,小不可大也。目小可大,大不可小也。」舉事亦然,為其不可復者也,則事寡敗矣。
번역 6
환혁(桓赫)이 말하기를, “조각하는 방법은, 코는 크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고, 눈은 작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코가 크면 작게 할 수 있으나, 작은 것은 크게 할 수 없다. 눈이 작으면 크게 할 수 있으나, 큰 것은 작게 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일을 행함도 또한 그러하니, 그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위한다면, 일이 실패하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
원문 7
崇侯、惡來知不適紂之誅也,而不見武王之滅之也。比干、子胥知其君之必亡也,而不知身之死也。故曰:「崇侯、惡來知心而不知事,比干、子胥知事而不知心。」聖人其備矣。
번역 7
숭후(崇侯)와 오래(惡來)는 주(紂)임금의 주살에 맞지 않음을 알았으나, 무왕(武王)이 그를 멸망시킬 것은 보지 못했다. 비간(比干)과 자서(子胥)는 그 군주가 반드시 망할 것을 알았으나, 자신의 몸이 죽을 것은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숭후와 오래는 마음은 알았으나 일은 알지 못했고, 비간과 자서는 일은 알았으나 마음은 알지 못했다.”라고 한다. 성인(聖人)은 그것을 모두 갖춘다.⁶⁾
주석
6) 네 인물의 분석: 숭후와 오래는 주왕의 마음(心)에 영합하여 총애를 받았지만, 시대의 흐름(事)을 읽지 못해 함께 망했다. 비간과 자서는 나라가 망할 것(事)은 알았지만, 군주의 마음(心)을 거슬러 죽임을 당했다. 한비자는 진정한 성인(군주 또는 유세가)은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과 시대의 흐름을 읽는 능력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원문 8
宋太宰貴而主斷。季子將見宋君,梁子聞之曰:「語必可與太宰三坐乎,不然,將不免。」季子因說以貴主而輕國。
번역 8
송(宋)나라 태재(太宰)가 존귀하여 군주의 결단을 대신하였다. 계자(季子)가 장차 송나라 군주를 뵈려 하자, 양자(梁子)가 이를 듣고 말하기를, “말이 반드시 태재와 함께 세 번 앉을 만한 것이어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장차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계자는 이내 군주를 귀하게 여기고 나라를 가벼이 여기는 것으로 유세하였다.
원문 9
楊朱之弟楊布衣素衣而出,天雨,解素衣,衣緇衣而反,其狗不知而吠之。楊布怒,將擊之。楊朱曰:「子毋擊也,子亦猶是。曩者使女狗白而往,黑而來,子豈能毋怪哉!」
번역 9
양주(楊朱)의 동생 양포(楊布)가 흰 옷을 입고 나갔다가, 비가 와서, 흰 옷을 벗고 검은 옷을 입고 돌아오니, 그의 개가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짖었다. 양포가 노하여, 장차 그 개를 치려 하였다. 양주가 말하기를, “너는 치지 말아라. 너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지난번에 네 개가 흰 채로 갔다가, 검게 되어 돌아온다면, 네가 어찌 능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원문 10
惠子曰:「羿執鞅持扞,操弓關機,越人爭為持的。弱子扞弓,慈母入室閉戶。故曰:可必,則越人不疑羿;不可必,則慈母逃弱子。」
번역 10
혜자(惠子)가 말하기를, “예(羿)가 활시위를 당기고 방패를 잡으며, 활을 쥐고 쇠뇌를 당기면, 월(越)나라 사람이 다투어 과녁을 잡아주려 한다. 약한 아이가 활을 당기면, 자애로운 어머니도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반드시 할 수 있으면, 월나라 사람도 예를 의심하지 않고, 반드시 할 수 없으면, 자애로운 어머니도 약한 아이를 피한다.’”라고 하였다.
원문 11
桓公問管仲「富有涯乎」?答曰:「水之以涯,其無水者也。富之以涯,其富已足者也。人不能自止於足,而亡其富之涯乎。」
번역 11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에게 묻기를, “부(富)에 끝이 있는가?”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물에 끝이 있는 것은, 그 물이 없는 곳입니다. 부에 끝이 있는 것은, 그 부가 이미 만족한 자입니다. 사람이 능히 스스로 만족함에서 그치지 못하는데, 어찌 그 부의 끝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12
宋之富賈有監止子者,與人爭買百金之璞玉,因佯失而毀之,負其百金,而理其毀瑕,得千溢焉。事有舉之而有敗而賢其毋舉之者,負之時也。
번역 12
송(宋)나라의 부유한 상인 중에 감지자(監止子)라는 자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과 백금(百金)짜리 옥의 원석을 다투어 사다가, 이내 일부러 실수하여 그것을 훼손하고, 그 백금을 빚지고, 그 훼손된 흠을 다스려, 천 일(溢)의 이익을 얻었다. 일에는 그것을 행하여 실패가 있는데도 그것을 행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으니, 빚을 질 때이다.
원문 13
有欲以御見荊王者,眾騶妒之,因曰:「臣能撽鹿。」見王,王為御,不及鹿,自御及之。王善其御也,乃言眾騶妒之。
번역 13
마부 기술로 초(荊)나라 왕을 뵙고자 하는 자가 있었는데, 여러 마부가 그를 질투하였다. 이내 말하기를, “신은 능히 사슴을 몰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을 뵙자, 왕이 마부가 되었으나 사슴에 미치지 못했고, 스스로 마부가 되자 그것에 미쳤다. 왕이 그의 마부 기술을 훌륭하게 여기자, 이에 여러 마부가 그를 질투했음을 말했다.
원문 14
荊令公子將伐陳,丈人送之曰:「晉強,不可不慎也。」公子曰:「丈人奚憂,吾為丈人破晉。」丈人曰:「可。吾方廬陳南門之外。」公子曰:「是何也?」曰:「我笑句踐也,為人之如是其易也,己獨何為密密十年難乎?」
번역 14
초(荊)나라 영(令) 공자(公子)가 장차 진(陳)나라를 정벌하려 하자, 노인[丈人]이 그를 전송하며 말하기를, “진(晉)나라는 강하니, 신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노인께서는 어찌 근심하십니까. 내가 노인을 위해 진나라를 격파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노인이 말하기를, “좋습니다. 나는 바야흐로 진나라 남문 밖에 오두막을 짓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그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나는 구천(句踐)을 비웃습니다. 남을 위하는 것이 이처럼 쉬운데, 자신은 유독 어찌하여 은밀하게 10년 동안이나 어려워했는가?”라고 하였다.
원문 15
堯以天下讓許由,許由逃之,舍於家人,家人藏其皮冠。夫棄天下而家人藏其皮冠,是不知許由者也。
번역 15
요(堯)임금이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양보하자, 허유가 그것을 피해 달아나, 어떤 사람의 집에 머물렀는데, 그 집 사람이 그의 가죽관을 감추었다. 무릇 천하를 버렸는데도 집 사람이 그의 가죽관을 감추었으니, 이는 허유를 알지 못하는 자이다.
원문 16
三蝨相與訟,一蝨過之,曰:「訟者奚說?」三蝨曰:「爭肥饒之地。」一蝨曰:「若亦不患臘之至而茅之燥耳,若又奚患?」於是乃相與聚嘬其母而食之。彘臞,人乃弗殺。
번역 16
세 마리의 이[蝨]가 서로 다투고 있는데, 한 마리의 이가 그곳을 지나가다가 말하기를, “다투는 자들은 무슨 말을 하는가?” 하니, 세 마리의 이가 말하기를, “살찌고 기름진 땅을 다투고 있다.”라고 하였다. 한 마리의 이가 말하기를, “너희들은 또한 섣달[臘]이 이르고 띠풀이 마를 것을 근심하지 않을 뿐인데, 너희들이 또 어찌 근심하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마침내 서로 모여 그 어미(돼지)를 빨아먹었다. 돼지가 여위자, 사람이 마침내 죽이지 않았다.
원문 17
蟲有就1者,一身兩口,爭食相齕也。遂相殺,因自殺。人臣之爭事而亡其國者,皆蚘類也。
번역 17
벌레 중에 회충[蚘]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 몸에 두 입이 있어, 먹이를 다투어 서로를 물어뜯는다. 마침내 서로를 죽이고, 이내 자살한다. 신하들이 일을 다투어 그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는, 모두 회충과 같은 부류이다.
원문 18
宮有堊器,有滌則潔矣。行身亦然,無滌堊之地則寡非矣。
번역 18
궁궐에 흰 흙으로 만든 그릇이 있는데, 씻는 곳이 있으면 깨끗해진다. 몸을 행함도 또한 그러하니, 흰 흙을 씻을 곳이 없으면 잘못이 적을 것이다.
원문 19
公子糾將為亂,桓公使使者視之,使者報曰:「笑不樂,視不見,必為亂。」乃使魯人殺之。
번역 19
공자 규(糾)가 장차 난을 일으키려 하자, 환공(桓公)이 사자를 시켜 그를 살펴보게 하였다. 사자가 보고하여 말하기를, “웃어도 즐거워하지 않고, 보아도 보지 못하니, 반드시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노(魯)나라 사람을 시켜 그를 죽였다.
원문 20
公孫弘斷髮而為越王騎,公孫喜使人絕之曰:「吾不與子為昆弟矣。」公孫弘曰:「我斷髮,子斷頸而為人用兵,我將謂子何?」周南之戰,公孫喜死焉。
번역 20
공손홍(公孫弘)이 머리를 자르고 월(越)나라 왕의 기병이 되자, 공손희(公孫喜)가 사람을 시켜 그와 의절하며 말하기를, “나는 너와 형제가 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공손홍이 말하기를, “나는 머리를 잘랐지만, 너는 목을 자르고 남을 위해 군대를 쓰니, 내가 장차 너를 무엇이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주남(周南)의 전투에서, 공손희가 죽었다.
원문 21
有與悍者鄰,欲賣宅而避之。人曰:「是其貫將滿矣,子姑待之。」答曰:「吾恐其以我滿貫也。」遂去之。故曰:「物之幾者,非所靡也。」
번역 21
사나운 자와 이웃한 이가 있어, 집을 팔아 그를 피하고자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의 죄악의 꿰미가 장차 가득 찰 것이니, 그대는 우선 기다리시오.”라고 하였다.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그가 나로써 꿰미를 채울까 두렵소.” 하고는, 마침내 그곳을 떠났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사물의 기미는, 머물 곳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22
孔子謂弟子曰:「孰能導子西之釣名也?」子貢曰:「賜也能。」乃導之,不復疑也。孔子曰:「寬哉,不被於利;絜哉,民性有恆。曲為曲,直為直。孔子曰子西不免。」白公之難,子西死焉。故曰:「直於行者曲於欲。」
번역 22
공자(孔子)가 제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누가 능히 자서(子西)가 명예를 낚는 것을 이끌어줄 수 있겠는가?” 하니,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사(賜)가 능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를 이끌어주니,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하기를, “너그럽구나, 이익에 입지 않음이여. 깨끗하구나, 백성의 본성은 떳떳함이 있도다. 굽은 것은 굽게 하고, 곧은 것은 곧게 하라. 공자가 말하기를, ‘자서는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백공(白公)의 난에, 자서가 죽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행동이 곧은 자는 욕망이 굽었다.”라고 하였다.
원문 23
晉中行文子出亡,過於縣邑,從者曰:「此嗇夫,公之故人,公奚不休舍?且待後車。」文子曰:「吾嘗好音,此人遺我鳴琴;吾好珮,此人遺我玉環;是振我過者也。以求容於我者,吾恐其以我求容於人也。」乃去之。果收文子後車二乘而獻之其君矣。
번역 23
진(晉)나라 중행(中行) 문자(文子)가 망명하여 나가다가, 현읍(縣邑)을 지나가는데, 따르는 자가 말하기를, “이곳의 색부(嗇夫)는, 공의 옛 친구이니, 공께서는 어찌하여 쉬어가지 않으십니까? 또한 뒷수레를 기다리십시오.”라고 하였다. 문자가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음악을 좋아하자, 이 사람이 나에게 명금(鳴琴)을 보내주었고, 내가 패옥을 좋아하자, 이 사람이 나에게 옥환(玉環)을 보내주었으니, 이는 나의 과실을 부추긴 자이다. 나에게 용납되기를 구한 자이니, 나는 그가 나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용납되기를 구할까 두렵다.” 하고는, 이에 그곳을 떠났다. 과연 (그 색부는) 문자의 뒷수레 두 대를 거두어 그 군주에게 바쳤다.
원문 24
周趮謂宮他曰:「為我謂齊王曰:以齊資我於魏,請以魏事王。」宮他曰:「不可,是示之無魏也,齊王必不資於無魏者,而以怨有魏者。公不如曰:以王之所欲,臣請以魏聽王。齊王必以公為有魏也,必因公。是公有齊也,因以有齊、魏矣。」
번역 24
주조(周趮)가 궁타(宮他)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를 위해 제(齊)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제나라로써 위(魏)나라에 있는 나를 도와주시면, 청컨대 위나라로써 왕을 섬기겠습니다.’라고 하시오.”라고 하였다. 궁타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이는 그에게 위나라가 없음을 보이는 것이니, 제나라 왕은 반드시 위나라가 없는 자를 돕지 않을 것이고, 위나라가 있는 자에게 원한을 살 것입니다. 공께서는 차라리 말하기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로써, 신이 청컨대 위나라로 하여금 왕의 말을 듣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시는 것만 못합니다. 제나라 왕은 반드시 공에게 위나라가 있다고 여길 것이고, 반드시 공을 통할 것입니다. 이는 공께서 제나라를 가지는 것이고, 이로 인해 제나라와 위나라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25
白圭謂宋令尹曰:「君長自知政,公無事矣。今君少主也而務名,不如令荊賀君之孝也,則君不奪公位,而大敬重公,則公常用宋矣。」
번역 25
백규(白圭)가 송(宋)나라 영윤(令尹)에게 일러 말하기를, “군주께서 장성하여 스스로 정사를 아시게 되면, 공께서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젊은 주군이시고 명예를 힘쓰시니, 초(荊)나라로 하여금 군주의 효성을 축하하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면 군주께서 공의 자리를 빼앗지 않으실 것이고, 크게 공을 공경하고 중히 여길 것이니, 그러면 공께서는 항상 송나라에서 쓰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26
管仲、鮑叔相謂曰:「君亂甚矣,必失國。齊國之諸公子其可輔者,非公子糾則小白也,與子人事一人焉,先達者相收。」管仲乃從公子糾,鮑叔從小白。國人果弒君,小白先入為君,魯人拘管仲而效之,鮑叔言而相之。故諺曰:「巫咸雖善祝,不能自祓也;秦醫雖善除,不能自彈也。」以管仲之聖而待鮑叔之助,此鄙諺所謂「虜自賣裘而不售,士自譽辯而不信」者也。
번역 26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 서로 일러 말하기를, “군주가 어지러움이 심하니, 반드시 나라를 잃을 것이다. 제(齊)나라의 여러 공자 중에 보좌할 만한 자는, 공자 규(糾)가 아니면 소백(小白)이다. 그대와 내가 한 사람씩 섬겨서, 먼저 뜻을 이룬 자가 서로를 거두어주자.”라고 하였다. 관중은 이에 공자 규를 따랐고, 포숙은 소백을 따랐다. 나라 사람들이 과연 군주를 시해하자, 소백이 먼저 들어가 군주가 되었다. 노(魯)나라 사람이 관중을 잡아 그를 바치자, 포숙이 말하여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무함(巫咸)이 비록 빌기를 잘하나, 스스로를 위해 불제(祓除)할 수는 없고, 진(秦)나라 의원이 비록 제거를 잘하나, 스스로를 위해 (병을) 튕겨낼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관중의 성스러움으로도 포숙의 도움을 기다렸으니, 이는 비속한 속담에서 이르는 바 “포로가 스스로 갖옷을 팔아도 팔리지 않고, 선비가 스스로 변론을 칭찬해도 믿음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문 27
荊王伐吳,吳使沮衛蹙融犒於荊師而將軍曰「縛之,殺以釁鼓。」問之曰:「汝來卜乎?」答曰:「卜。」「卜吉乎?」曰:「吉。」荊人曰:「今荊將與女釁鼓其何也?」答曰:「是故其所以吉也。吳使人來也,固視將軍怒。將軍怒,將深溝高壘;將軍不怒,將懈怠。今也將軍殺臣,則吳必警守矣。且國之卜,非為一臣卜。夫殺一臣而存一國,其不言吉何也?且死者無知,則以臣釁鼓無益也;死者有知也,臣將當戰之時,臣使鼓不鳴。」荊人因不殺也。
번역 27
초(荊)나라 왕이 오(吳)나라를 정벌하자, 오나라가 저위축융(沮衛蹙融)을 시켜 초나라 군대를 위로하게 하였는데, 장군이 말하기를, “그를 묶어, 죽여서 북에 피를 발라라[釁鼓].” 하고는, 그에게 묻기를, “네가 점을 치러 왔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점을 쳤습니다.”라고 하였다. “점이 길한가?” 하니, 말하기를, “길합니다.”라고 하였다. 초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초나라가 장차 너로써 북에 피를 바를 것인데, 그것이 어찌된 일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그것이 바로 길한 까닭입니다. 오나라가 사람을 보낸 것은, 본래 장군께서 노하시는지를 보려는 것입니다. 장군께서 노하시면, 장차 구덩이를 깊게 파고 보루를 높게 쌓을 것이고, 장군께서 노하지 않으시면, 장차 해이해질 것입니다. 지금 장군께서 신을 죽이시면, 오나라는 반드시 경계하고 지킬 것입니다. 또한 나라의 점은, 한 신하를 위해 점치는 것이 아닙니다. 무릇 한 신하를 죽여 한 나라를 보존하는데, 그것이 길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죽은 자는 앎이 없으니, 신으로써 북에 피를 바른들 이익이 없을 것이고, 죽은 자가 앎이 있다면, 신이 장차 전투를 당할 때, 신이 북을 울리지 못하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초나라 사람이 이내 죽이지 않았다.
원문 28
知伯將伐仇由,而道難不通。乃鑄大鐘遺仇由之君,仇由之君大說,除道將內之。赤章曼枝曰:「不可。此小之所以事大也,而今也大以來,卒必隨之,不可內也。」仇由之君不聽,遂內之。赤章曼枝因斷轂而驅,至於齊七月,而仇由亡矣。
번-역 28
지백(智伯)이 장차 구유(仇由)를 정벌하려 하는데, 길이 험하여 통하지 않았다. 이에 큰 종을 주조하여 구유의 군주에게 보내니, 구유의 군주가 크게 기뻐하며, 길을 닦아 장차 그것을 들여오려 하였다. 적장만지(赤章曼枝)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이것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방법인데, 지금 큰 나라가 이것을 가지고 왔으니, 군대가 반드시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들여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구유의 군주가 듣지 않고, 마침내 그것을 들였다. 적장만지는 이내 수레바퀴 통을 끊고 달아나, 제(齊)나라에 이른 지 일곱 달 만에, 구유가 망하였다.
원문 29
越已勝吳,又索卒於荊而攻晉,左史倚相謂荊王曰:「夫越破吳,豪士死,銳卒盡,大甲傷,今又索卒以攻晉,示我不病也,不如起師與分吳。」荊王曰:「善。」因起師而從越,越王怒,將擊之,大夫種曰:「不可。吾豪士盡,大甲傷,我與戰必不剋,不如賂之。」乃割露山之陰五百里以賂之。
번역 29
월(越)나라가 이미 오(吳)나라를 이기고, 또 초(荊)나라에 군사를 요구하여 진(晉)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좌사(左史) 의상(倚相)이 초나라 왕에게 일러 말하기를, “무릇 월나라가 오나라를 격파하여, 호걸들은 죽고, 정예병은 다했으며, 큰 갑옷은 손상되었습니다. 지금 또 군사를 요구하여 진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은, 우리에게 병들지 않았음을 보이려는 것입니다. 군대를 일으켜 함께 오나라를 나누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이에 군대를 일으켜 월나라를 따랐다. 월나라 왕이 노하여, 장차 그들을 치려 하자, 대부 종(種)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우리의 호걸은 다했고, 큰 갑옷은 손상되었으니, 우리가 싸운들 반드시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노산(露山)의 북쪽 오백 리를 베어 그들에게 뇌물로 주었다.
원문 30
荊伐陳,吳救之,軍閒三十里,雨十日夜,星。左史倚相謂子期曰:「雨十日,甲輯而兵聚,吳人必至,不如備之。」乃為陳,陳未成也而吳人至,見荊陳而反。左史曰:「吳反覆六十里,其君子必休,小人必食,我行三十里擊之,必可敗也。」乃從之,遂破吳軍。
번역 30
초(荊)나라가 진(陳)나라를 정벌하자, 오(吳)나라가 구원하였다. 군대 사이가 30리였는데, 비가 열흘 밤낮으로 내리고, 별이 보였다. 좌사(左史) 의상(倚相)이 자기(子期)에게 일러 말하기를, “비가 열흘 동안 내려, 갑옷이 젖고 병사들이 모여 있으니, 오나라 사람이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대비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진을 쳤는데, 진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때 오나라 사람이 이르렀다가, 초나라의 진을 보고 돌아갔다. 좌사가 말하기를, “오나라가 왕복 60리를 갔으니, 그 군자는 반드시 쉴 것이고, 소인은 반드시 먹을 것입니다. 우리가 30리를 가서 그들을 치면, 반드시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를 따르니, 마침내 오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원문 31
韓、趙相與為難。韓子索兵於魏,曰:「願借師以伐趙。」魏文侯曰:「寡人與趙兄弟,不可以從。」趙又索兵以攻韓,文侯曰:「寡人與韓兄弟,不敢從。」二國不得兵,怒而反。已乃知文侯以搆於己,乃皆朝魏。
번역 31
한(韓)·조(趙)가 서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자(韓子)가 위(魏)나라에 군사를 요구하며 말하기를, “원컨대 군대를 빌려 조나라를 정벌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위 문후(文侯)가 말하기를, “과인은 조나라와 형제이니,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조나라가 또 군사를 요구하여 한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문후가 말하기를, “과인은 한나라와 형제이니, 감히 따르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두 나라가 군사를 얻지 못하고, 노하여 돌아갔다. 그 뒤에야 문후가 자신들을 이간질했음을 알고, 이에 모두 위나라에 조회를 드렸다.
원문 32
齊伐魯,索讒鼎,魯以其鴈往,齊人曰:「鴈也。」魯人曰:「真也。」齊曰:「使樂正子春來,吾將聽子。」魯君請樂正子春,樂正子春曰:「胡不以其真往也?」君曰:「我愛之。」答曰:「臣亦愛臣之信。」
번역 32
제(齊)나라가 노(魯)나라를 정벌하고, 참정(讒鼎)을 요구하자, 노나라는 그 가짜[鴈]를 가지고 갔다. 제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가짜이다.”라고 하니, 노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진짜입니다.”라고 하였다. 제나라가 말하기를, “악정자춘(樂正子春)을 오게 하면, 내 장차 그대의 말을 듣겠다.”라고 하였다. 노나라 군주가 악정자춘에게 청하자, 악정자춘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 진짜를 가지고 가지 않으셨습니까?” 하니, 군주가 말하기를, “내가 그것을 아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 또한 신의 믿음을 아낍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33
韓咎立為君,未定也。弟在周,周欲重之,而恐韓咎不立也。綦毋恢曰:「不若以車百乘送之。得立,因曰為戒;不立,則曰來效賊也。」
번역 33
한구(韓咎)가 군주로 섰으나,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 동생이 주(周)나라에 있었는데, 주나라가 그를 중히 여기려 하였으나, 한구가 서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다. 기무회(綦毋恢)가 말하기를, “수레 백 승(乘)으로써 그를 전송하는 것만 못합니다. (한구가) 서게 되면, 경계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서지 못하면, 도적을 바치러 왔다고 말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원문 34
靖郭君將城薛,客多以諫者。靖郭君謂謁者曰:「毋為客通。」齊人有請見者曰:「臣請三言而已,過三言,臣請烹。」靖郭君因見之,客趨進曰:「海大魚。」因反走。靖郭君曰:「請聞其說。」客曰:「臣不敢以死為戲。」靖郭君曰:「願為寡人言之。」答曰:「君聞大魚乎?網不能止,繳不能絓也,蕩而失水,螻蟻得意焉。今夫齊亦君之海也,君長有齊,奚以薛為?君失齊,雖隆薛城至於天猶無益也。」靖郭君曰:「善。」乃輟,不城薛。
번역 34
정곽군(靖郭君)이 장차 설(薛) 땅에 성을 쌓으려 하자, 손님 중에 간언하는 자가 많았다. 정곽군이 알자(謁者)에게 일러 말하기를, “손님을 위해 통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제(齊)나라 사람 중에 뵙기를 청하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신이 청컨대 세 마디 말만 할 뿐이니, 세 마디 말을 넘으면, 신이 청컨대 삶아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정곽군이 이내 그를 뵈니, 손님이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바다 큰 물고기[海大魚].” 하고는, 이내 되돌아 달아났다. 정곽군이 말하기를, “청컨대 그 설명을 듣고 싶소.” 하니, 손님이 말하기를, “신은 감히 죽음을 희롱으로 삼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정곽군이 말하기를, “원컨대 과인을 위해 그것을 말해주시오.”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큰 물고기에 대해 들으셨습니까? 그물도 막을 수 없고, 주살도 걸 수 없으나, 물결에 휩쓸려 물을 잃으면, 땅강아지와 개미가 뜻을 얻습니다. 지금 무릇 제나라 또한 군주의 바다입니다. 군주께서 오래도록 제나라를 가지시면, 어찌 설 땅을 위하시겠습니까? 군주께서 제나라를 잃으시면, 비록 설 땅의 성을 하늘에 닿도록 높이 쌓아도 유익함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정곽군이 말하기를, “좋소.” 하고는, 이에 그만두고, 설 땅에 성을 쌓지 않았다.
원문 35
荊王弟在秦,秦不出也。中射之士曰:「資臣百金,臣能出之。」因載百金之晉,見叔向,曰:「荊王弟在秦,秦不出也,請以百金委叔向。」叔向受金,而以見之晉平公曰:「可以城壺丘矣。」平公曰:「何也?」對曰:「荊王弟在秦,秦不出也,是秦惡荊也,必不敢禁我城壺丘。若禁之,我曰:為我出荊王之弟,吾不城也。彼如出之,可以德荊。彼不出,是卒惡也,必不敢禁我城壺丘矣。」公曰:「善。」乃城壺丘,謂秦公曰:「為我出荊王之弟,吾不城也。」秦因出之,荊王大說,以鍊金百鎰遺晉。
번역 35
초(荊)나라 왕의 동생이 진(秦)나라에 있었는데, 진나라가 내보내지 않았다. 중사지사(中射之士)가 말하기를, “신에게 백금(百金)을 주시면, 신이 능히 그를 나오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내 백금을 싣고 진(晉)나라로 가서, 숙향(叔向)을 뵙고 말하기를, “초나라 왕의 동생이 진나라에 있는데, 진나라가 내보내지 않습니다. 청컨대 백금으로써 숙향께 맡깁니다.”라고 하였다. 숙향이 금을 받고, 그것으로 진 평공(平公)을 뵙고 말하기를, “호구(壺丘)에 성을 쌓을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평공이 말하기를, “어째서인가?”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초나라 왕의 동생이 진나라에 있는데, 진나라가 내보내지 않으니, 이는 진나라가 초나라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감히 우리가 호구에 성 쌓는 것을 금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금한다면, 우리는 말하기를, ‘우리를 위해 초나라 왕의 동생을 내보내주면, 우리는 성을 쌓지 않겠다.’라고 할 것입니다. 저들이 만약 그를 내보내면, 초나라에 은덕을 베풀 수 있습니다. 저들이 내보내지 않으면, 이는 끝내 미워하는 것이니, 반드시 감히 우리가 호구에 성 쌓는 것을 금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는, 이에 호구에 성을 쌓고, 진나라 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우리를 위해 초나라 왕의 동생을 내보내주면, 우리는 성을 쌓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진나라가 이내 그를 내보내니, 초나라 왕이 크게 기뻐하며, 단련한 금 백 일(鎰)을 진나라에 보냈다.
원문 36
闔廬攻郢,戰三勝,問子胥曰:「可以退乎?」子胥對曰:「溺人者一飲而止則無逆者,以其不休也,不如乘之以沈之。」
번역 36
합려(闔廬)가 영(郢)을 공격하여, 세 번 싸워 이기고, 자서(子胥)에게 묻기를, “물러나도 괜찮겠는가?” 하니, 자서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물에 빠진 사람을 한 번 마시고 그치게 하면 거스르는 자가 없을 것이나, 그 쉬지 않음으로써, 그 기세를 타고 그를 가라앉히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37
鄭人有一子,將宦,謂其家曰:「必築壞牆,是不善人將竊。」其巷人亦云。不時築,而人果竊之。以其子為智,以巷人告者為盜。
번역 37
정(鄭)나라 사람에게 한 아들이 있었는데, 장차 벼슬을 하러 가면서, 그 집안에 일러 말하기를, “반드시 무너진 담을 쌓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장차 훔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동네 사람 또한 그렇게 말했다. 때맞춰 쌓지 않았는데, 사람이 과연 그것을 훔쳐갔다. 그 아들은 지혜롭다고 여기고, 동네 사람 중에 알려준 자는 도둑으로 여겼다.
《한비자》 〈관행〉 번역 및 주석
원문 1
古之人目短於自見,故以鏡觀面;智短於自知,故以道正己。故鏡無見疵之罪,道無明過之怨。目失鏡則無以正鬚眉,身失道則無以知迷惑。西門豹之性急,故佩韋以自緩;董安于之心緩,故佩弦以自急。故以有餘補不足,以長續短之謂明主。
번역 1
옛날 사람은 눈이 스스로를 보는 데에 부족하므로, 거울로써 얼굴을 보았고, 지혜가 스스로를 아는 데에 부족하므로, 도(道)로써 자신을 바로잡았다.¹⁾ 그러므로 거울은 흠을 드러내도 죄가 없고, 도(道)는 잘못을 밝혀도 원망이 없다. 눈이 거울을 잃으면 수염과 눈썹을 바로잡을 수 없고, 몸이 도를 잃으면 미혹됨을 알 수 없다. 서문표(西門豹)는 성품이 급했으므로, 부드러운 가죽[韋]을 차서 스스로를 늦추었고, 동안우(董安于)는 마음이 느렸으므로, 활시위[弦]를 차서 스스로를 재촉하였다.²⁾ 그러므로 남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긴 것으로 짧은 것을 잇는 것을, 현명한 군주라 한다.³⁾
주석
1) 도(道): 이 글에서 ‘도(道)’는 노장(老莊)의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라, 자신을 비추어보고 바로잡는 객관적인 기준과 방법을 의미한다. 한비자의 사상 체계 안에서는 군주가 국가를 다스리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원리, 즉 ‘법(法)’과 ‘술(術)’을 가리킨다. 거울이 얼굴의 흠을 비추듯, 법과 술은 군주와 신하의 잘못을 명확히 드러내는 기준이 된다.
2) 서문표(西門豹)·동안우(董安于): 서문표는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관리고, 동안우는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관리이다. 성격이 급한 서문표는 항상 부드럽고 유연한 가죽(韋)을 몸에 차고 다니며 자신의 성급함을 경계했고, 성격이 느긋한 동안우는 항상 팽팽하게 긴장된 활시위(弦)를 차고 다니며 나태함을 경계했다는 고사이다. 이는 객관적인 기준(가죽, 활시위)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교정하는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3) 명주(明主): 이 마지막 문장은 앞선 개인의 수양에 대한 비유를 국가 통치의 원리로 확장시킨다. 현명한 군주란, 서문표나 동안우처럼 자신의 단점을 교정할 뿐만 아니라, 이 원리를 국가 전체에 적용하여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나라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원문 2
天下有信數三:一曰智有所不能立,二曰力有所不能舉,三曰彊有所不能勝。故雖有堯之智,而無眾人之助,大功不立。有烏獲之勁,而不得人助,不能自舉。有賁、育之彊,而無法術,不得長生。故勢有不可得,事有不可成。故烏獲輕千鈞而重其身,非其身重於千鈞也,勢不便也;離朱易百步而難眉睫,非百步近而眉睫遠也,道不可也。故明主不窮烏獲,以其不能自舉;不困離朱,以其不能自見。因可勢,求易道,故用力寡而功名立。時有滿虛,事有利害,物有生死,人主為三者發喜怒之色,則金石之士離心焉。聖賢之撲淺深矣。故明主觀人,不使人觀己。明於堯不能獨成,烏獲不能自舉,賁、育之不能自勝,以法術則觀行之道畢矣。
번역 2
천하에는 믿을 만한 이치[信數]가 세 가지 있으니,⁴⁾ 첫째는 지혜로도 세울 수 없는 바가 있음이요, 둘째는 힘으로도 들 수 없는 바가 있음이며, 셋째는 강함으로도 이길 수 없는 바가 있음이다. 그러므로 비록 요(堯)임금의 지혜가 있더라도, 여러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큰 공을 세울 수 없다. 오획(烏獲)의 힘이 있더라도, 남의 도움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를 들 수 없다.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의 강함이 있더라도, 법술(法術)이 없으면 오래 보전될 수 없다.⁵⁾ 그러므로 형세[勢]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고, 일에도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오획은 천鈞의 무게는 가벼이 여기면서도 자기 몸은 무겁게 여기니, 그의 몸이 천鈞보다 무거워서가 아니라 형세가 편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루(離朱)는 백 보 밖은 쉽게 보면서도 자기 눈썹과 속눈썹은 보기 어려워하니, 백 보가 가깝고 눈썹과 속눈썹이 멀어서가 아니라 방법[道]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⁶⁾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오획이 스스로를 들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곤궁하게 하지 않고, 이루가 스스로를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 가능한 형세에 의거하고 쉬운 방법을 구하므로, 힘은 적게 들이고도 공과 이름이 세워진다. 때에는 참과 빔이 있고, 일에는 이로움과 해로움이 있으며, 사물에는 삶과 죽음이 있는데, 군주가 이 세 가지 때문에 기쁨과 노여움의 기색을 드러내면, 쇠와 돌처럼 굳건한 선비[金石之士]도 마음이 떠날 것이다.⁷⁾ 성현(聖賢)의 질박함에는 얕고 깊음이 있다.⁸⁾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남을 관찰하되, 남이 자기를 관찰하게 하지는 않는다. 요(堯)임금이 홀로 이룰 수 없었고, 오획(烏獲)이 스스로를 들 수 없었으며,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이 스스로를 이길 수 없었음을 명확히 알고, 법술(法術)로써 다스린다면 행실을 관찰하는 도(觀行之道)는 다 갖추어지는 것이다.⁹⁾
주석
4) 신수(信數): ‘믿을 만한 이치’ 또는 ‘검증 가능한 법칙’. 이는 세상이 신비나 우연이 아닌, 파악 가능한 객관적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법가(法家)의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용어이다.
5) 요(堯)·오획(烏獲)·맹분(孟賁)·하육(夏育): 모두 특정 분야에서 극한의 능력을 지닌 인물들의 대명사이다. 요는 지혜, 오획은 힘, 맹분과 하육은 용맹으로 유명했다. 한비자는 이처럼 뛰어난 개인의 능력조차도 한계가 명확하며, 따라서 개인의 역량이 아닌 객관적인 시스템, 즉 법술(法術)에 의존해야 함을 역설한다.
6) 세(勢)·도(道): 여기서 ‘세(勢)’는 물리적인 위치나 상황을, ‘도(道)’는 방법이나 원리를 의미한다. 아무리 힘이 센 오획이라도 자신을 들어 올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勢)’이며, 아무리 눈이 밝은 이루라도 자기 눈썹을 직접 보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방법(道)’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 능력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7) 금석지사(金石之士): 쇠와 돌처럼 의지가 굳고 변치 않는 선비를 비유하는 말이다. 이러한 원칙 있는 선비조차도, 군주가 객관적 기준 없이 자신의 감정에 따라 상벌을 내리고 변덕스럽게 행동하면 마음이 ## 《한비자》 〈안위〉 번역 및 주석
원문 1
安危在是非,不在於強弱。存亡在虛實,不在於眾寡。故齊、萬乘也,而名實不稱,上空虛於國內,不充滿於名實,故臣得奪主。殺天子也,而無是非,賞於無功;使讒諛,以詐偽為貴;誅於無罪,使傴以天性剖背;以詐偽為是,天性為非,小得勝大。
번역 1
안전과 위태로움[安危]은 옳고 그름[是非]에 달려있지, 강하고 약함[強弱]에 달려있지 않다. 존속과 멸망[存亡]은 실질과 공허함[虛實]에 달려있지, 많고 적음[衆寡]에 달려있지 않다. 그러므로 제(齊)나라는 만승(萬乘)의 국가였으나, 명분과 실상이 부합하지 않고, 군주가 나라 안에서 공허하여 명분과 실상으로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신하가 군주를 찬탈할 수 있었다. 천자를 죽였는데도 시비를 가리지 않고, 공 없는 자에게 상을 주며, 참소하고 아첨하는 자를 부려, 속임수를 귀하게 여겼다. 죄 없는 자를 주살하여, 곱사등이로 하여금 천성 때문에 등을 갈리게 하니,¹⁾ 속임수를 옳다고 여기고 천성을 그르다고 여겨,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게 되었다.
주석
1) 구이천성부배(傴以天性剖背): ‘곱사등이(傴)가 천성(天性) 때문에 등을 갈리는 형벌을 받다’. 이는 제나라 민왕(湣王)의 포악함을 보여주는 일화로 추정된다. 민왕이 선천적인 곱사등이를 보고 그 모습이 부자연스럽다며 등을 갈라 그 안을 살펴보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시비(是非)의 기준이 완전히 무너져, 바꿀 수 없는 천성(天性)이 죄가 되고 인위적인 속임수(詐偽)가 옳은 것이 되는 극도의 혼란 상태를 상징한다.
원문 2
安術有七,危道有六。
번역 2
안전한 술책[安術]에는 일곱 가지가 있고, 위태로운 길[危道]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원문 3
安術:一曰、賞罰隨是非,二曰、禍福隨善惡,三曰、死生隨法度,四曰、有賢不肖而無愛惡,五曰、有愚智而無非譽,六曰、有尺寸而無意度,七曰、有信而無詐。
번역 3
안전한 술책이란, 첫째, 상벌(賞罰)은 시비(是非)를 따르고, 둘째, 화복(禍福)은 선악(善惡)을 따르며, 셋째, 사생(死生)은 법도(法度)를 따르고, 넷째, 어짊과 불초함[賢不肖]은 있으나 사랑과 미움[愛惡]은 없으며, 다섯째, 어리석음과 지혜로움[愚智]은 있으나 비방과 칭찬[非譽]은 없고, 여섯째, 척과 촌[尺寸]의 기준은 있으나 자의적인 헤아림[意度]은 없으며,²⁾ 일곱째, 믿음[信]은 있고 속임[詐]은 없는 것이다.
주석
2) 척촌(尺寸)·의도(意度): ‘척’과 ‘촌’은 길이를 재는 객관적인 단위이다. 이는 군주가 국가를 다스릴 때,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감정[意度]이 아니라, 자나 저울처럼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 즉 법(法)에 의거해야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일곱 가지 술책은 모두 군주의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는 법치(法治)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원문 4
危道:一曰、斲削於繩之內,二曰、斷割於法之外,三曰、利人之所害,四曰、樂人之所禍,五曰、危人於所安,六曰、所愛不親,所惡不疏。如此,則人失其所以樂生,而忘其所以重死,人不樂生則人主不尊,不重死則令不行也。
번역 4
위태로운 길이란, 첫째, 먹줄의 안쪽을 깎아내고,³⁾ 둘째, 법의 바깥에서 베어 자르며, 셋째, 남이 해롭게 여기는 것을 이롭게 여기고, 넷째, 남이 재앙으로 여기는 것을 즐거워하며, 다섯째, 남이 편안하게 여기는 것을 위태롭게 하고, 여섯째, 사랑하는 바를 친하게 대하지 않고 미워하는 바를 멀리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사람들은 삶을 즐거워하는 까닭을 잃고 죽음을 중히 여기는 까닭을 잊게 되니, 사람이 삶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군주가 존귀해지지 않고, 죽음을 중히 여기지 않으면 명령이 행해지지 않는다.
주석
3) 착삭어승지내(斲削於繩之內): ‘먹줄(繩)의 안쪽을 깎아낸다’. 목수가 나무를 다듬을 때 먹줄을 튕겨 기준선을 긋고 그 바깥쪽을 깎아내야 하는데, 기준선 안쪽을 깎는다는 것은 규칙을 지킨 사람을 오히려 벌하는 극도의 부조리한 상황을 비유한다. 이는 법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최악의 통치 행위임을 상징한다.
원문 5
使天下皆極智能於儀表,盡力於權衡,以動則勝,以靜則安。治世使人樂生於為是,愛身於為非。小人少而君子多,故社稷常立,國家久安。奔車之上無仲尼,覆舟之下無伯夷。故號令者,國之舟車也。安則智廉生,危則爭鄙起。故安國之法,若饑而食,寒而衣,不令而自然也。先王寄理於竹帛,其道順,故後世服。今使人去饑寒,雖賁、育不能行;廢自然,雖順道而不立。強勇之所不能行,則上不能安。上以無厭責,己盡,則下對無有,無有則輕法,法所以為國也而輕之,則功不立、名不成。聞古扁鵲之治其病也,以刀刺骨;聖人之救危國也,以忠拂耳。刺骨,故小痛在體而長利在身;拂耳,故小逆在心而久福在國。故甚病之人利在忍痛,猛毅之君以福拂耳。忍痛,故扁鵲盡巧;拂耳,則子胥不失;壽安之術也。病而不忍痛,則失扁鵲之巧;危而不拂耳,則失聖人之意。如此,長利不遠垂,功名不久立。
번역 5
천하로 하여금 모두 그 지혜와 능력을 법도[儀表]에 다하게 하고, 힘을 저울[權衡]에 다하게 하면, 움직이면 이기고 고요하면 편안하다. 다스려지는 세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옳은 일을 함으로써 삶을 즐거워하게 하고, 그른 일을 함으로써 몸을 아끼게 한다. 소인이 적고 군자가 많으므로, 사직(社稷)이 항상 서고 국가가 오래 편안하다. 질주하는 수레 위에는 중니(仲尼)가 없고, 뒤집힌 배 아래에는 백이(伯夷)가 없다.⁴⁾ 그러므로 호령(號令)이란 나라의 수레와 배이다. 편안하면 지혜와 청렴이 생겨나고, 위태로우면 다툼과 비루함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법은, 마치 굶주리면 먹고 추우면 옷 입는 것과 같아, 명령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선왕(先王)은 이치를 죽백(竹帛)에 기탁하였는데, 그 도(道)가 순리적이므로 후세가 복종하였다. 지금 사람으로 하여금 굶주림과 추위를 버리게 한다면, 비록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이라도 행할 수 없고, 자연스러움을 폐하면, 비록 도에 순응하더라도 서지 못한다. 강하고 용맹한 자도 행할 수 없는 바를, 윗사람이 편안하게 할 수는 없다. 윗사람이 만족할 줄 모름으로 책망하고, 자신은 모든 것을 다하면, 아랫사람은 가진 것이 없음으로 대응하고, 가진 것이 없으면 법을 가벼이 여기게 된다. 법은 나라를 위한 것인데 그것을 가벼이 여기면, 공이 서지 않고 이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듣건대 옛날 편鵲(扁鵲)이 그 병을 치료할 때, 칼로 뼈를 찔렀다고 한다. 성인이 위태로운 나라를 구원할 때, 충언으로 귀에 거슬리게 한다. 뼈를 찌르므로, 작은 고통은 몸에 있으나 긴 이로움은 몸에 있다. 귀에 거슬리므로, 작은 거스름은 마음에 있으나 오랜 복은 나라에 있다. 그러므로 심한 병을 앓는 사람은 아픔을 참는 데에 이로움이 있고, 용맹하고 굳센 군주는 복을 위해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는다. 아픔을 참으므로, 편鵲이 기교를 다할 수 있었고,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므로, 자서(子胥)가 실책을 범하지 않았으니,⁵⁾ 이것이 장수하고 편안한 술책이다. 병들었는데 아픔을 참지 못하면 편鵲의 기교를 잃게 되고, 위태로운데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지 않으면 성인의 뜻을 잃게 된다. 이와 같으면, 긴 이로움은 멀리 드리워지지 않고, 공과 이름은 오래 서지 못한다.
주석
4) 중니(仲尼)·백이(伯夷): 중니는 공자(孔子)의 자(字)이고, 백이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이다. 공자는 예(禮)를, 백이는 의(義)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질주하는 수레나 뒤집히는 배와 같은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는, 예의나 도덕을 논할 겨를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는 국가의 안위가 경각에 달렸을 때는, 평상시의 도덕률이 아니라 비상한 법과 술(術)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비유이다.
5) 자서(子胥):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명신 오자서(伍子胥). 여기서는 충언을 하는 신하의 대명사로 쓰였다.
원문 6
人主不自刻以堯而責人臣以子胥,是幸殷人之盡如比干,盡如比干則上不失、下不亡。不權其力而有田成,而幸其身盡如比干,故國不得一安。廢堯、舜而立桀、紂,則人不得樂所長而憂所短。失所長則國家無功,守所短則民不樂生,以無功御不樂生,不可行於齊民。如此,則上無以使下,下無以事上。
번역 6
군주가 스스로 요(堯)임금처럼 자신을 단련하지 않으면서 신하에게 자서(子胥)와 같기를 요구한다면, 이는 은(殷)나라 사람들이 모두 비간(比干)과 같기를 바라는 것이니, 모두 비간과 같다면 윗사람은 잃지 않고 아랫사람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⁶⁾ 그 힘을 헤아리지 않아 전성(田成)과 같은 신하를 두면서도, 그 몸이 모두 비간과 같기를 바란다면, 나라는 한 번도 편안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요·순(舜)을 폐하고 걸·주(紂)를 세우면, 사람들은 잘하는 바를 즐거워하지 못하고 못하는 바를 근심하게 된다. 잘하는 바를 잃으면 국가는 공이 없고, 못하는 바를 지키면 백성은 삶을 즐거워하지 않으니, 공이 없음으로 삶을 즐거워하지 않는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모든 백성에게 행할 수 없다. 이와 같으면,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부릴 수 없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섬길 수 없다.
주석
6) 비간(比干): 상(商)나라의 충신. 폭군 주왕(紂王)에게 직간하다가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는데 사실인가”라는 주왕의 말에 심장이 꺼내져 죽었다. 한비자는 군주 스스로가 폭군처럼 행동하면서 신하에게는 비간과 같은 절대적인 충성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원문 7
明主堅內,故不外失。失之近而不亡於遠者無有。故周之奪殷也,拾遺於庭,使殷不遺於朝,則周不敢望秋毫於境,而況敢易位乎。
번역 7
현명한 군주는 안을 굳건히 하므로, 밖에서 잃지 않는다. 가까운 데서 잃고서 먼 데서 망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주(周)나라가 은(殷)나라를 빼앗은 것은, 뜰에 떨어진 것을 주운 것과 같다.⁷⁾ 만약 은나라가 조정에서 잃는 것이 없었다면, 주나라는 감히 국경에서 터럭 끝만큼도 바라보지 못했을 것인데, 하물며 감히 그 자리를 바꾸려 했겠는가.
주석
7) 습유어정(拾遺於庭): ‘뜰에 떨어진 것을 줍다’. 이는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강력한 힘으로 정복했다기보다는 이미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붕괴하여(뜰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지 않을 정도로 기강이 해이해져) 스스로 무너진 은나라를 손쉽게 차지한 것과 같다는 비유이다. 모든 국가의 멸망은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에서 시작된다는 한비자의 역사관을 보여준다.
원문 8
明主之道忠法,其法忠心,故臨之而法,去之而思。堯無膠漆之約於當世而道行,舜無置錐之地於後世而德結。能立道於往古,而垂德於萬世者之謂明主。
번역 8
현명한 군주의 도(道)는 법(法)에 충실하고, 그 법은 마음에 충실하므로, 그를 대하면 법을 따르게 되고 그를 떠나면 생각하게 된다. 요(堯)임금은 당세에 아교나 옻칠 같은 맹세가 없었어도 도(道)가 행해졌고, 순(舜)임금은 후세에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어도 덕(德)이 맺어졌다.⁸⁾ 능히 먼 옛날에 도를 세우고, 만세에 덕을 드리우는 자를, 현명한 군주라 한다.
주석
8) 교칠지약(膠漆之約)·치추지지(置錐之地): ‘아교와 옻칠 같은 맹세’는 굳건한 약속을, ‘송곳 하나 꽂을 땅’은 아주 작은 사유재산을 의미한다. 요·순과 같은 성군(聖君)의 통치는 개인적인 약속이나 사유재산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운 공정하고 보편적인 ‘도(道)’와 그 결과로 나타난 ‘덕(德)’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영향력이 만세에 미쳤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도’와 ‘덕’은 법가적인 의미, 즉 통치의 원리와 그 공적으로 해석된다.
《한비자》 〈수도〉 번역 및 주석
원문 1
聖王之立法也,其賞足以勸善,其威足以勝暴,其備足以必完法。治世之臣,功多者位尊,力極者賞厚,情盡者名立。善之生如春,惡之死如秋,故民勸極力而樂盡情,此之謂上下相得。上下相得,故能使用力者自極於權衡,而務至於任鄙;戰士出死,而願為賁、育;守道者皆懷金石之心,以死子胥之節。用力者為任鄙,戰如賁、育,中為金石,則君人者高枕而守己完矣。
번역 1
성인(聖人)인 왕이 법을 제정함에,¹⁾ 그 상(賞)은 족히 선(善)을 권장하고, 그 위엄은 족히 포악함을 이기며, 그 대비(備)는 족히 법을 완비하게 한다. 다스려지는 세상의 신하는, 공이 많은 자는 지위가 존귀해지고, 힘을 다한 자는 상이 두터워지며, 충정을 다한 자는 이름이 서게 된다. 선(善)이 생겨나는 것은 봄과 같고, 악(惡)이 죽는 것은 가을과 같으므로, 백성은 힘을 다하도록 권장되고 충정을 다하는 것을 즐거워하니, 이를 일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를 얻는 것’이라 한다.²⁾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를 얻으므로, 힘쓰는 자로 하여금 스스로 저울[權衡]에 힘을 다하게 하여 임비(任鄙)에 이르기를 힘쓰게 하고, 전사(戰士)는 죽음을 무릅쓰고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이 되기를 원하게 하며, 도(道)를 지키는 자는 모두 쇠와 돌 같은 마음[金石之心]을 품어 자서(子胥)의 절개를 위해 죽게 한다.³⁾ 힘쓰는 자가 임비와 같이 되고, 싸우는 자가 맹분·하육과 같으며, 안으로 쇠와 돌 같은 마음을 가지면, 군주 된 자는 베개를 높이 베고도[高枕]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⁴⁾
주석
1) 성왕(聖王): 한비자가 말하는 ‘성인인 왕’은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인의(仁義)의 덕을 갖춘 군주가 아니라, 법(法)과 술(術), 세(勢)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용하여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를 의미한다.
2) 상하상득(上下相得):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를 얻는다’. 이는 유가적인 온정주의적 관계가 아니라, 철저히 법에 기반한 상호 이익 관계를 의미한다. 군주는 신하의 공로와 충성을 ‘얻고’, 신하는 그 대가로 확실한 상과 명예를 ‘얻는다’. 즉, 공적인 법 시스템을 통해 군주의 목표와 신하의 사적인 욕망(공을 세워 부귀를 얻으려는)이 일치되는 상태를 말한다.
3) 임비(任鄙)·맹분(孟賁)·하육(夏育)·자서(子胥): 모두 특정 분야에서 극한의 능력을 보여준 인물들의 대명사이다. 임비는 진(秦)나라의 유명한 장사(壯士)이고, 맹분과 하육은 고대의 전설적인 용사이며, 자서(오자서)는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충신으로, 충절의 상징이다. 법과 상벌이 명확하면 모든 사람이 각자의 분야에서 이들처럼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4) 고침(高枕): ‘베개를 높이 베다’. 아무런 걱정 없이 편안히 잠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군주가 개인의 능력으로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완벽한 법 시스템이 저절로 국가를 안정시키고 군주를 편안하게 한다는 법치(法治)의 이상을 보여준다.
원문 2
古之善守者,以其所重禁其所輕,以其所難止其所易。故君子與小人俱正,盜跖與曾、史俱廉。何以知之?夫貪盜不赴谿而掇金,赴谿而掇金則身不全;賁、育不量敵則無勇名,盜跖不計可則利不成。明主之守禁也,賁、育見侵於其所不能勝,盜跖見害於其所不能取。故能禁賁、育之所不能犯,守盜跖之所不能取,則暴者守愿,邪者反正。大勇愿,巨盜貞,則天下公平,而齊民之情正矣。
번역 2
옛날에 잘 지키는 자는, 그 소중히 여기는 바로써 그 가벼이 여기는 바를 금하고, 그 어려운 바로써 그 쉬운 바를 막았다.⁵⁾ 그러므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이 함께 올바르게 되고, 도척(盜跖)과 증자(曾子)·사추(史鰌)가 함께 청렴하게 된다.⁶⁾ 무엇으로 이를 아는가? 무릇 탐욕스러운 도둑은 깊은 계곡에 뛰어들어 황금을 줍지 않으니, 계곡에 뛰어들어 황금을 주우면 몸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맹분과 하육은 적을 헤아리지 않으면 용맹하다는 이름이 없을 것이고, 도척은 가능한지를 계산하지 않으면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현명한 군주가 금지하는 것을 지킴에, 맹분과 하육은 이길 수 없는 바에서 침해를 당하게 되고, 도척은 취할 수 없는 바에서 해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능히 맹분과 하육이 범할 수 없는 바를 금하고, 도척이 취할 수 없는 바를 지키면, 포악한 자는 삼가고 성실하게 되며, 사악한 자는 바름으로 돌아온다. 큰 용맹을 지닌 자가 성실해지고, 큰 도둑이 정직해지면, 천하가 공평해지고 모든 백성의 실정이 올바르게 될 것이다.
주석
5) 이귀소중 금기소경(以其所重 禁其所輕): ‘그 소중히 여기는 것(자신의 목숨)으로써 그 가벼이 여기는 것(범죄로 얻는 이익)을 금한다’는 뜻이다. 법의 본질이 인간의 이해타산적인 심리를 이용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아무리 탐욕스러운 도둑이라도, 범죄로 얻는 이익보다 발각되어 잃게 될 목숨의 가치가 훨씬 크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게 만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6) 도척(盜跖)·증(曾)·사(史):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인물들이다. 도척은 고대 중국 전설상의 가장 유명한 도둑으로, 악(惡)의 상징이다. 증자(공자의 제자)와 사추(위나라의 충신)는 유가에서 칭송하는 덕과 청렴의 상징이다. 한비자는 완벽한 법 시스템 앞에서는, 사람의 타고난 본성(선악)이 무의미해지고, 오직 이해타산에 따른 행동만이 남게 되어 도척마저도 증자처럼 행동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인성(人性)을 중시하는 유가 사상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원문 3
人主離法失人,則危於伯夷不妄取,而不免於田成、盜跖之耳可也。今天下無一伯夷,而姦人不絕世,故立法度量。度量信則伯夷不失是,而盜跖不得非。法分明則賢不得奪不肖,強不得侵弱,眾不得暴寡。託天下於堯之法,則貞士不失分,姦人不徼幸。寄千金於羿之矢,則伯夷不得亡,而盜跖不敢取。堯明於不失姦,故天下無邪;羿巧於不失發,故千金不亡。邪人不壽而盜跖止,如此,故圖不載宰予,不舉六卿;書不著子胥,不明夫差。孫、吳之略廢,盜跖之心伏。人主甘服於玉堂之中,而無瞋目切齒傾取之患。人臣垂拱於金城之內,而無扼捥聚脣嗟唶之禍。服虎而不以柙,禁姦而不以法,塞偽而不以符,此賁、育之所患,堯、舜之所難也。故設柙非所以備鼠也,所以使怯弱能服虎也;立法非所以備曾、史也,所以使庸主能止盜跖也;為符非所以豫尾生也,所以使眾人不相謾也。不獨恃比干之死節,不幸亂臣之無詐也,恃怯之所能服,握庸主之所易守。當今之世,為人主忠計,為天下結德者,利莫長於此。故君人者無亡國之圖,而忠臣無失身之畫。明於尊位必賞,故能使人盡力於權衡,死節於官職。通賁、育之情,不以死易生;惑於盜跖之貪,不以財易身;則守國之道畢備矣。
번역 3
군주가 법을 떠나고 사람을 잃으면, 백이(伯夷)가 망령되이 취하지 않는 것보다 위태롭고, 전성(田成)이나 도척(盜跖)의 귀가 되는 것을 면치 못함이 옳다.⁷⁾ 지금 천하에 한 명의 백이도 없지만, 간사한 사람은 세상에 끊이지 않으므로, 법과 도량(度量)을 세운다. 도량이 믿음직하면 백이는 그 옳음을 잃지 않고, 도척은 그 그름을 행하지 못한다. 법의 구분이 명확하면 어진 자가 불초한 자에게 빼앗기지 않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침범하지 못하며, 많은 자가 적은 자에게 포악하게 굴지 못한다. 천하를 요(堯)임금의 법에 맡기면, 정직한 선비는 자기 분수를 잃지 않고, 간사한 사람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천금(千金)을 예(羿)의 화살에 맡기면, 백이는 잃지 않고 도척은 감히 취하지 못한다.⁸⁾ 요임금은 간사함을 놓치지 않는 데에 밝았으므로 천하에 사악함이 없었고, 예는 활을 쏨에 실수하지 않는 데에 교묘하였으므로 천금이 없어지지 않았다. 사악한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하고 도척이 멈추니, 이와 같으므로 그림에는 재여(宰予)를 싣지 않고 육경(六卿)을 천거하지 않으며, 책에는 자서(子胥)를 싣지 않고 부차(夫差)를 밝히지 않는다.⁹⁾ 손자(孫子)와 오기(吳起)의 지략은 폐기되고, 도척의 마음은 굴복한다. 군주는 옥당(玉堂) 안에서 달게 옷을 입고도,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나라를 빼앗으려는 우환이 없다. 신하는 금성(金城) 안에서 팔짱을 끼고도, 손목을 잡고 입술을 모으며 탄식하는 재앙이 없다. 호랑이를 굴복시키되 우리[柙]를 쓰지 않고, 간사함을 금하되 법을 쓰지 않으며, 거짓을 막되 부절[符]을 쓰지 않는 것은, 이것은 맹분과 하육이 근심하던 바요, 요·순이 어려워하던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설치하는 것은 쥐를 대비하기 위함이 아니라, 겁 많고 약한 자로 하여금 호랑이를 굴복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법을 제정하는 것은 증자나 사추를 대비하기 위함이 아니라, 평범한 군주[庸主]로 하여금 도척을 막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부절을 만드는 것은 미생(尾生)을 예비하기 위함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서로 속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¹⁰⁾ 오직 비간(比干)의 죽음의 절개에만 의지하지 않고, 난신(亂臣)에게 속임수가 없기를 요행으로 바라지 않으며, 겁 많은 자가 굴복시킬 수 있는 바에 의지하고, 평범한 군주가 지키기 쉬운 것을 손에 쥔다. 지금의 세상에, 군주를 위해 충성스러운 계책을 세우고 천하를 위해 덕을 맺는 자에게, 이보다 더 큰 이익은 없다. 그러므로 군주 된 자는 나라를 잃을 계획이 없고, 충신은 몸을 잃을 계획이 없다. 존귀한 지위에 오르면 반드시 상을 받는다는 것이 명확하므로,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저울에 힘을 다하게 하고, 관직에서 절개를 위해 죽게 한다. 맹분과 하육의 실정을 통찰하여, 죽음으로 삶을 바꾸지 않게 하고, 도척의 탐욕에 미혹되어, 재물로 몸을 바꾸지 않게 하면, 나라를 지키는 도(道)는 모두 갖추어지는 것이다.
주석
7) 백이(伯夷)·전성(田成)·도척(盜跖): 백이는 의(義)를 위해 왕위와 목숨을 버린 청렴의 상징이다. 전성(전상)은 제나라를 찬탈한 권신이고, 도척은 악의 화신이다. 군주가 법을 잃으면, 백이 같은 이상적인 인물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며, 결국 전성이나 도척 같은 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된다는 의미이다.
8) 예(羿):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명궁(名弓). 그의 화살은 결코 빗나가지 않는 절대적인 확실성을 상징한다. 한비자는 법이 바로 이 예의 화살처럼,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절대적이고 확실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9) 재여(宰予)·육경(六卿)·자서(子胥)·부차(夫差) 등: 모두 정치적 실패나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다 실패한 사례들이다. 재여는 공자의 제자였으나 반란에 연루되었고, 육경은 진(晉)나라의 권력을 찬탈했으며, 자서는 충신이었으나 부차의 의심을 사 죽었다. 손자와 오기는 뛰어난 전략가였지만 그들의 지략만으로는 국가의 안위를 영원히 보장할 수 없었다. 완벽한 법 시스템은 이러한 개인의 능력이나 도덕, 혹은 실패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10) 우리[柙]·법(法)·부절[符]의 비유: 이 부분은 법가 사상의 핵심을 명확히 보여준다. 법과 제도는 성인(聖人)이나 군자(君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평범한 군주(庸主)나 약한 사람(怯弱)이 악하고 강한 자(盜跖, 虎)를 제어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하고 객관적인 ‘도구’라는 것이다. 이는 군주의 개인적 자질에 의존하는 인치(人治)를 비판하고, 시스템에 의한 법치(法治)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논리이다. 미생(尾生)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리 밑에서 죽은 어리석은 정직함의 상징이다.
《用人》 번역 및 주석
본 문헌은 전국시대(戰國時代) 법가(法家) 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저작으로, 군주가 인재를 등용하고 국가를 통치하는 원칙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군주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법(法)’과 ‘술(術)’이라는 객관적 기준을 통해 상벌(賞罰)을 명확히 하여 국가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직역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독자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해 상세한 주석을 첨부하였습니다.
【1】
[원문]
聞古之善用人者,必循天順人而明賞罰。循天則用力寡而功立,順人則刑罰省而令行,明賞罰則伯夷、盜跖不亂。如此,則白黑分矣。治國之臣,效功於國以履位,見能於官以受職,盡力於權衡以任事。人臣皆宜其能,勝其官,輕其任,而莫懷餘力於心,莫負兼官之責於君。故內無伏怨之亂,外無馬服之患。明君使事不相干,故莫訟;使士不兼官,故技長,使人不同功,故莫爭。爭訟止,技長立,則彊弱不觳力,冰炭不合形,天下莫得相傷,治之至也。
[번역문]
옛날에 사람을 잘 썼던 이에 대해 듣건대, 반드시 하늘의 이치를 따르고 사람의 마음에 순응하며 상벌을 명확히 하였다고 한다. 하늘의 이치를 따르면¹⁾ 힘을 적게 들이고도 공이 서고, 사람의 마음에 순응하면²⁾ 형벌이 줄어도 명령이 행해지며, 상벌을 명확히 하면 백이(伯夷)와 도척(盜跖)이 뒤섞이지 않는다.³⁾ 이와 같이 하면 흑과 백이 나뉘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신하는 나라에 공을 보여줌으로써 지위에 오르고, 관직에서 능력을 드러냄으로써 직책을 받으며, 권형(權衡)에 힘을 다함으로써 임무를 맡는다.⁴⁾ 신하들이 모두 자신의 능력에 걸맞고, 그 관직을 감당해 내며, 그 임무를 가벼이 여기게 되어, 마음에 남은 힘을 품지 않고 군주에게 관직을 겸하는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안으로는 숨은 원망으로 인한 혼란이 없고, 밖으로는 마복(馬服)의 환란이 없게 된다.⁵⁾ 현명한 군주는 일이 서로 간섭하지 않게 하므로 송사(訟事)가 없고, 선비로 하여금 관직을 겸하지 않게 하므로 기예(技藝)가 뛰어나게 되며, 사람들로 하여금 공을 같이하지 않게 하므로 다툼이 없다. 다툼과 송사가 그치고 기예가 뛰어나게 되면, 강자와 약자가 힘을 겨루지 않고 얼음과 숯이 그 형태를 합치지 않는 것과 같아 천하가 서로 해칠 수 없게 되니, 이는 다스림의 지극함이다.
[주석]
1) 循天(순천): 여기서 ‘天’은 인격적인 신이나 운명이 아니라, 사물의 운행 원리, 즉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이나 자연의 이치를 의미한다. 법가에서 ‘법(法)’은 이러한 객관적 법칙을 인위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따라서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는 것은 군주의 주관적 판단이 아닌 객관적 법칙에 근거하여 통치함을 뜻한다.
2) 順人(순인): 여기서 ‘人’은 인간의 본성, 특히 이익을 추구하고 해를 피하려는 경향(好利惡害)을 가리킨다. 상벌을 통해 백성들의 이러한 본성을 통치에 순응하도록 유도하면, 가혹한 형벌 없이도 명령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법가 사상의 중요한 인간관을 보여준다.
3) 伯夷(백이), 盜跖(도척): 백이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로 절의(節義)의 상징이며, 도척은 춘추시대의 전설적인 큰 도적으로 탐욕과 잔악함의 대명사이다. 상벌의 기준이 명확하면, 선인(백이)과 악인(도척)의 구분이 분명해져 사회 질서가 혼란에 빠지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4) 權衡(권형): 저울추(權)와 저울대(衡)를 뜻하며, 사물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공과(功過)를 측정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 즉 ‘법(法)’을 비유한다. 신하는 법이라는 기준에 따라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함을 강조한다.
5) 馬服之患(마복지환):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명장 조괄(趙括)과 관련된 고사이다. 조괄은 마복군(馬服君) 조사의 아들로, 병법 이론에는 밝았으나 실전 경험이 없어 장평(長平) 전투에서 진(秦)나라의 백기(白起)에게 대패하여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잃게 했다. 이는 능력에 맞지 않는 사람을 중용했을 때 발생하는 재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된다.
【2】
[원문]
釋法術而心治,堯不能正一國。去規矩而妄意度,奚仲不能成一輪。廢尺寸而差短長,王爾不能半中。使中主守法術,拙匠守規矩尺寸,則萬不失矣。君人者,能去賢巧之所不能,守中拙之所萬不失,則人力盡而功名立。
[번역문]
법술(法術)을 버리고 마음으로 다스리려 한다면 요(堯)임금이라도 한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다.⁶⁾ 규구(規矩)를 버리고 멋대로 헤아린다면 해중(奚仲)이라도 바퀴 하나를 완성할 수 없다.⁷⁾ 척촌(尺寸)을 폐하고 길고 짧음을 어림잡는다면 왕이(王爾)라도 절반도 맞히지 못할 것이다.⁸⁾ 평범한 군주(中主)로 하여금 법술을 지키게 하고 서툰 장인으로 하여금 규구와 척촌을 지키게 하면, 만에 하나도 실수가 없을 것이다.⁹⁾ 사람들의 군주 된 자가 현명하고 재주 있는 이조차 할 수 없는 바를 버리고, 평범하고 서툰 이가 만에 하나도 실수하지 않을 바를 지킬 수 있다면, 사람의 힘은 극진히 발휘되고 공적과 명성은 서게 될 것이다.
[주석]
6) 法術(법술), 心治(심치), 堯(요): ‘법술’은 법가 통치의 핵심 도구인 법(法, 공개된 법률), 술(術, 신하를 다루는 군주의 통치술), 세(勢, 군주의 권세)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심치’는 군주의 주관적인 마음이나 덕(德)에 의존하는 유가적(儒家的)인 통치 방식을 가리킨다. 요임금은 유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군(聖君)으로 꼽힌다. 이 문장은 법가의 입장에서, 아무리 위대한 성군이라도 객관적인 ‘법술’ 없이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인치(人治)를 비판하고 법치(法治)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7) 規矩(규구), 奚仲(해중): ‘규’는 원을 그리는 컴퍼스, ‘구’는 네모를 그리는 직각자이다. 객관적인 표준과 규칙을 비유한다. 해중은 고대 중국에서 수레를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장인이다.
8) 尺寸(척촌), 王爾(왕이): ‘척’과 ‘촌’은 길이를 재는 단위이다. 왕이는 고대의 이름난 장인으로 전해진다.
9) 中主(중주): 자질이 뛰어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수준의 군주를 뜻한다. 법가 사상은 요순(堯舜)과 같은 비범한 성군이 아니라,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군주가 의지하여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시스템, 즉 ‘법술’의 구축을 목표로 했다.
【3】
[원문]
明主立可為之賞,設可避之罰。故賢者勸賞而不見子胥之禍,不肖者少罪而不見傴剖背,盲者處平而不遇深谿,愚者守靜而不陷險危。如此,則上下之恩結矣。古之人曰:「其心難知,喜怒難中也。」故以表示目,以鼓語耳,以法教心。君人者釋三易之數而行一難知之心,如此,則怒積於上,而怨積於下,以積怒而御積怨則兩危矣。明主之表易見,故約立;其教易知,故言用;其法易為,故令行。三者立而上無私心,則下得循法而治,望表而動,隨繩而斲,因攢而縫。如此,則上無私威之毒,而下無愚拙之誅。故上君明而少怒,下盡忠而少罪。
[번역문]
현명한 군주는 이룰 수 있는 상을 세우고, 피할 수 있는 벌을 설정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자는 상을 힘써 구하면서도 자서(子胥)와 같은 화를 당하지 않고,¹⁰⁾ 못난 자는 죄가 적어 꼽추가 등을 쪼개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며,¹¹⁾ 눈먼 자는 평탄한 곳에 머물러 깊은 계곡에 빠지지 않고, 어리석은 자는 고요함을 지켜 험하고 위태로운 곳에 빠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은혜가 맺어지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그 마음은 알기 어렵고, 기쁨과 노여움은 맞히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깃발로써 눈에 표시하고, 북으로써 귀에 말하며, 법으로써 마음에 가르친다. 사람들의 군주 된 자가 이 세 가지 쉬운 수단을 버리고¹²⁾ 하나의 알기 어려운 마음으로 행한다면, 노여움은 위에서 쌓이고 원망은 아래에서 쌓일 것이니, 쌓인 노여움으로 쌓인 원망을 통제하려 하면 양쪽 모두 위태로워진다. 현명한 군주의 깃발은 보기 쉽기에 약속이 서고, 그 가르침은 알기 쉽기에 말이 쓰이며, 그 법은 행하기 쉽기에 명령이 시행된다. 이 세 가지가 확립되고 윗사람에게 사사로운 마음이 없으면, 아랫사람들은 법을 따라 다스려지고, 깃발을 보고 움직이며, 먹줄을 따라 깎고, 송곳 자국에 따라 꿰맬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면 윗사람에게는 사사로운 위엄의 해독이 없고, 아랫사람에게는 어리석고 서툴다는 이유로 주살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윗사람인 군주는 밝아서 노여움이 적고, 아랫사람은 충성을 다하여 죄가 적어진다.
[주석]
10) 子胥之禍(자서지화):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충신 오자서(伍子胥)를 가리킨다. 그는 오왕 부차(夫差)에게 월(越)나라를 경계할 것을 간언했으나, 부차는 이를 듣지 않고 오히려 간신 백비(伯嚭)의 모함을 믿어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했다. 이는 공로가 있는 현신이라도 군주의 주관적 판단과 변덕에 의해 억울하게 죽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1) 傴剖背(구부배): ‘傴’는 등이 굽은 꼽추를 뜻한다. ‘剖背’는 등을 쪼개는 잔혹한 형벌이다. 이는 군주의 자의적이고 포악한 형벌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법에 근거하지 않은 가혹한 처벌을 의미한다.
12) 三易之數(삼역지수): ‘세 가지 쉬운 수단’이란 바로 앞에서 언급한 ‘깃발(表)’, ‘북(鼓)’, ‘법(法)’을 가리킨다. 깃발은 시각적으로 명확하고, 북소리는 청각적으로 명확하며, 법은 행동 기준으로 명확하다. 이는 군주의 예측 불가능한 ‘마음(心)’과 대비되는 객관적이고 명료한 통치 도구이다.
【4】
[원문]
聞之曰:「舉事無患者,堯不得也。」而世未嘗無事也。君人者不輕爵祿,不易富貴,不可與救危國。故明主厲廉恥,招仁義。昔者介子推無爵祿而義隨文公,不忍口腹而仁割其肌,故人主結其德,書圖著其名。人主樂乎使人以公盡力,而苦乎以私奪威。人臣安乎以能受職,而苦乎以一負二。故明主除人臣之所苦,而立人主之所樂,上下之利,莫長於此。不察私門之內,輕慮重事,厚誅薄惱,久怨細過,長侮偷快,數以德追禍,是斷手而續以玉也,故世有易身之患。
[번역문]
듣건대 “일을 벌여 근심이 없는 것은 요임금이라도 할 수 없는 바이다.”라고 하였는데, 세상에는 일찍이 일이 없었던 적이 없다. 사람들의 군주 된 자가 작록(爵祿)을 가벼이 여기고 부귀를 쉽게 여기면,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함께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염치(廉恥)를 장려하고 인의(仁義)를 불러들인다. 옛날 개자추(介子推)는 작록이 없었으나 의로움으로 문공(文公)을 따랐고, 입과 배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여 인(仁)으로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었다.¹³⁾ 그러므로 군주는 그 덕을 마음에 맺고, 서책과 그림에 그 이름을 드러내었다. 군주는 사람들이 공(公)을 위해 힘을 다하게 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사(私)로 인해 위엄을 빼앗기는 것을 괴로워한다. 신하는 능력으로 직책을 받는 것을 편안해하고, 하나를 맡아 둘을 책임지는 것을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신하가 괴로워하는 바를 제거하고 군주가 즐거워하는 바를 세우니,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이로움이 이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사사로운 가문의 문안을 살피지 않고,¹⁴⁾ 중요한 일을 가벼이 생각하며, 사소한 노여움에 무거운 벌을 내리고, 작은 허물을 오래 원망하며, 모욕을 오래 지속하고 순간의 쾌락을 탐하며, 자주 덕으로써 화를 불러들이는 것은, 손을 자르고 옥으로 잇는 것과 같으니,¹⁵⁾ 이 때문에 세상에는 몸이 바뀌는 환란이 있는 것이다.
[주석]
13) 介子推(개자추), 文公(문공): 개자추는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충신이다. 진나라의 공자 중이(重耳, 훗날의 文公)가 망명 생활을 할 때 굶주리자,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어 그를 먹였다. 훗날 문공이 군주가 되어 논공행상을 할 때 개자추는 이를 사양하고 산에 은거했으며, 문공이 그를 나오게 하려 산에 불을 질렀으나 끝내 나오지 않고 타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고사는 사리사욕을 버린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14) 私門之內(사문지내): 군주의 공적인 조정(朝廷)이 아닌, 권세 있는 신하나 귀족의 사사로운 집안을 의미한다. ‘사문을 살피지 않는다’는 것은 군주가 공적인 감찰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사적인 정보나 특정 세력의 영향력에 의존하여 국정을 판단하는 것을 비판하는 말이다. 이는 국가 권력의 사유화와 파벌 형성의 원인이 된다.
15) 斷手而續以玉(단수이속이옥): ‘손을 자르고 그 자리에 옥으로 만든 손을 이어 붙인다’는 뜻이다. 옥은 귀하지만 실제 손의 기능을 할 수는 없다.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거나, 손해는 막심한데 이득은 없는 어리석은 행위를 비유하는 말이다.
【5】
[원문]
人主立難為而罪不及,則私怨生;人臣失所長而奉難給,則伏怨結。勞苦不撫循,憂悲不哀憐。喜則譽小人,賢不肖俱賞;怒則毀君子,使伯夷與盜跖俱辱;故臣有叛主。
[번역문]
군주가 행하기 어려운 것을 세우고 죄가 미치지 않으면 사사로운 원망이 생겨나고, 신하가 자신의 장점을 잃고 만족시키기 어려운 이를 받들면 숨은 원망이 맺힌다. 노고를 위로하고 보살펴 주지 않으며, 근심과 슬픔을 애처롭게 여기지 않는다. 기쁘면 소인을 칭찬하여 현명한 자와 못난 자를 함께 상주고, 노여우면 군자를 헐뜯어 백이와 도척으로 하여금 함께 욕을 보게 한다. 그러므로 신하 중에 군주를 배반하는 자가 생기는 것이다.
【6】
[원문]
使燕王內憎其民而外愛魯人,則燕不用而魯不附。民見憎,不能盡力而務功;魯見說,而不能離死命而親他主。如此,則人臣為隙穴,而人主獨立。以隙穴之臣而事獨立之主,此之謂危殆。
[번역문]
가령 연(燕)나라 왕이 안으로는 자기 백성을 미워하고 밖으로는 노(魯)나라 사람을 사랑한다면, 연나라 백성은 쓰이지 않으려 할 것이고 노나라 사람은 귀부하지 않을 것이다. (연나라) 백성은 미움을 받으니 힘을 다해 공을 세우려 하지 않을 것이고, 노나라 사람은 사랑받음을 보더라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천명을 버리고 다른 군주를 섬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되면 신하는 틈새와 구멍이 되고 군주는 홀로 서게 된다.¹⁶⁾ 틈새와 구멍 같은 신하를 데리고 홀로 선 군주를 섬기게 하는 것, 이를 일러 위태롭다고 하는 것이다.
[주석]
16) 隙穴(극혈), 獨立(독립): ‘틈새와 구멍’은 국가의 방벽에 생긴 균열, 즉 내부의 취약점이나 배반할 마음을 품은 신하를 비유한다. ‘홀로 선 군주(獨立之主)’는 백성과 신하의 지지를 모두 잃고 고립된 통치자를 의미한다. 이는 군주가 자기 기반을 무시하고 먼 곳이나 비현실적인 대상에 의지할 때 겪게 되는 위험을 경고하는 비유이다.
【7】
[원문]
釋儀的而妄發,雖中小不巧;釋法制而妄怒,雖殺戮而姦人不恐。罪生甲,禍歸乙,伏怨乃結。故至治之國,有賞罰,而無喜怒,故聖人極;有刑法而死,無螫毒,故姦人服。發矢中的,賞罰當符,故堯復生,羿復立。如此,則上無殷、夏之患,下無比干之禍,君高枕而臣樂業,道蔽天地,德極萬世矣。
[번역문]
과녁을 버리고 함부로 쏘면, 비록 맞더라도 교묘하다 할 수 없다. 법제를 버리고 함부로 노여워하면, 비록 살륙하더라도 간사한 자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 죄는 갑에게서 생겼는데 화가 을에게 돌아가면, 숨은 원망이 마침내 맺히게 된다. 그러므로 지극한 다스림의 나라에는 상벌은 있으되 기쁨과 노여움은 없으니, 이 때문에 성인의 다스림이 지극해지는 것이다. 형법에 따라 죽을 뿐 쏘는 독과 같은 잔혹함은 없으니,¹⁷⁾ 이 때문에 간사한 자들이 복종하는 것이다. 화살을 쏘아 과녁에 맞히듯 상벌이 부절(符節)처럼 딱 들어맞으면, 요임금이 다시 살아나고 예(羿)가 다시 서는 것과 같다.¹⁸⁾ 이와 같이 되면 위로는 은(殷)·하(夏)의 환란이 없고 아래로는 비간(比干)의 화가 없을 것이니,¹⁹⁾ 군주는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잠들고 신하는 자기 일을 즐거워하며, 도(道)는 천지를 덮고 덕(德)은 만세에 이를 것이다.
[주석]
17) 螫毒(석독): 벌이나 전갈 등이 쏘는 독을 의미한다. 법에 규정된 형벌 외에, 군주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분노에서 비롯된 잔인하고 사적인 처벌을 비유한다. 법에 의한 처벌은 공적이고 예측 가능하지만, ‘석독’과 같은 처벌은 사적이고 자의적이어서 백성들의 원망을 살 뿐 진정한 복종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18) 羿(예):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명궁(名弓)이다. 활쏘기의 명수인 예가 반드시 과녁을 맞히듯, 상벌이 정확하게 시행됨을 비유한다.
19) 殷、夏之患(은·하지환), 比干之禍(비간지화): 은나라의 주왕(紂王)과 하나라의 걸왕(桀王)은 폭군의 대명사로, 이들의 포악한 정치로 인해 나라가 망하는 환란을 ‘은·하의 환란’이라 한다. 비간은 은나라 주왕의 충신으로, 주왕의 폭정을 간하다가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 있다는데, 내가 확인해 보겠다”는 주왕의 말에 심장이 도려내져 죽었다. 충신이 억울하게 죽는 ‘비간의 화’는 군주의 자의적이고 포악한 통치가 빚는 비극을 상징한다.
【8】
[원문]
夫人主不塞隙穴,而勞力於赭堊,暴雨疾風必壞。不去眉睫之禍,而慕賁、育之死;不謹蕭牆之患,而固金城於遠境;不用近賢之謀,而外結萬乘之交於千里。飄風一旦起,則賁、育不及救,而外交不及至,禍莫大於此。當今之世,為人主忠計者,必無使燕王說魯人,無使近世慕賢於古,無思越人以救中國溺者,如此,則上下親,內功立,外名成。
[번-역문]
무릇 군주가 틈새와 구멍을 막지 않고 붉은 흙과 흰 흙을 바르는 데에만 힘쓴다면,²⁰⁾ 사나운 비바람이 불면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눈썹과 속눈썹 사이의 재앙을 제거하지 않으면서 분(賁)과 육(育)과 같은 죽음을 흠모하고,²¹⁾ 소장(蕭牆)의 근심을 삼가지 않으면서 먼 국경에 금성(金城)을 굳건히 하며,²²⁾ 가까운 현자의 계책을 쓰지 않으면서 밖으로 천리 밖 만승의 나라와 교류를 맺는다면, 회오리바람이 하루아침에 일어나면 분과 육도 구하러 올 수 없고 외교 관계도 미치지 못할 것이니, 이보다 더 큰 화는 없다. 지금의 세상에서 군주를 위해 충성스러운 계책을 세우는 자는, 반드시 연나라 왕이 노나라 사람을 기뻐하게 하지 말고, 현세의 군주가 옛 현인을 흠모하게 하지 말며, 월나라 사람으로 중원의 물에 빠진 자를 구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해야 한다.²³⁾ 이와 같이 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친밀해지고, 안으로는 공적이 서며, 밖으로는 명성이 이루어질 것이다.
[주석]
20) 赭堊(자악): 붉은 흙(赭)과 흰 흙(堊)으로, 벽을 칠하는 도료를 말한다. 이는 근본적인 구조적 결함(隙穴)을 해결하지 않고 겉만 꾸미는 피상적인 대책을 비유한다.
21) 眉睫之禍(미첩지화), 賁(분)·育(육): ‘눈썹과 속눈썹 사이의 재앙’이란 바로 눈앞에 닥친 매우 절박하고 임박한 위험을 뜻한다.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은 전국시대의 전설적인 용사들이다. ‘분·육의 죽음’은 용맹하게 싸우다 죽는 영웅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즉, 코앞의 위험은 방치하면서 멀리 있는 영웅적 명성이나 행위만을 흠모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22) 蕭牆之患(소장지환), 金城(금성): ‘소장’은 대문 안쪽에 세우는 작은 담장으로, 내부를 의미한다. ‘소장의 근심’은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 즉 내란이나 궁중의 암투를 가리킨다. ‘금성’은 쇠로 만든 성이라는 뜻으로, 매우 견고한 방어 시설을 의미한다. 내부의 불안을 다스리지 않고 외부의 방비만 튼튼히 하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임을 비판한다.
23) 越人以救中國溺者(월인이구중국익자):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편에 나오는 유명한 비유이다. 중원(中國, 중국 중앙 지역)에서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수영을 잘하는 월(越)나라 사람을 데려와 구하려 한들 너무 멀어서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멀리 있는 해결책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이 비유들을 종합하여, 군주는 먼 곳의 이상이나 외부 세력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기반인 백성과 가까운 현자를 통해 내부를 다지는 것이 급선무임을 역설하고 있다.떠나게 됨을 경고한다.
8) 성현지박천심의(聖賢之撲淺深矣): 이 구절은 문맥상 해석이 분분하나, ‘박(撲)’을 ‘질박함(樸)’으로 보아 “성현의 자질에는 얕고 깊음의 차이가 있다”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군주는 신하들의 다양한 자질과 능력의 차이를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바로 다음 문장인 “현명한 군주는 남을 관찰하되, 남이 자기를 관찰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주제로 이어진다.
9) 관행지도(觀行之道): 이 편의 제목이자 핵심 주제. ‘행실을 관찰하는 도’를 의미한다. 이는 군주가 자신의 주관적 판단이나 감정이 아니라, 법술(法術)이라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시스템을 통해 신하들의 언행과 공과(功過)를 정확히 관찰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법가의 통치 원리를 집약한 말이다.
《한비자》 〈안위〉 번역 및 주석
원문 1
安危在是非,不在於強弱。存亡在虛實,不在於眾寡。故齊、萬乘也,而名實不稱,上空虛於國內,不充滿於名實,故臣得奪主。殺天子也,而無是非,賞於無功;使讒諛,以詐偽為貴;誅於無罪,使傴以天性剖背;以詐偽為是,天性為非,小得勝大。
번역 1
안전과 위태로움[安危]은 옳고 그름[是非]에 달려있지, 강하고 약함[強弱]에 달려있지 않다. 존속과 멸망[存亡]은 실질과 공허함[虛實]에 달려있지, 많고 적음[衆寡]에 달려있지 않다. 그러므로 제(齊)나라는 만승(萬乘)의 국가였으나, 명분과 실상이 부합하지 않고, 군주가 나라 안에서 공허하여 명분과 실상으로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신하가 군주를 찬탈할 수 있었다. 천자를 죽였는데도 시비를 가리지 않고, 공 없는 자에게 상을 주며, 참소하고 아첨하는 자를 부려, 속임수를 귀하게 여겼다. 죄 없는 자를 주살하여, 곱사등이로 하여금 천성 때문에 등을 갈리게 하니,¹⁾ 속임수를 옳다고 여기고 천성을 그르다고 여겨,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게 되었다.
주석
1) 구이천성부배(傴以天性剖背): ‘곱사등이(傴)가 천성(天性) 때문에 등을 갈리는 형벌을 받다’. 이는 제나라 민왕(湣王)의 포악함을 보여주는 일화로 추정된다. 민왕이 선천적인 곱사등이를 보고 그 모습이 부자연스럽다며 등을 갈라 그 안을 살펴보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시비(是非)의 기준이 완전히 무너져, 바꿀 수 없는 천성(天性)이 죄가 되고 인위적인 속임수(詐偽)가 옳은 것이 되는 극도의 혼란 상태를 상징한다.
원문 2
安術有七,危道有六。
번역 2
안전한 술책[安術]에는 일곱 가지가 있고, 위태로운 길[危道]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원문 3
安術:一曰、賞罰隨是非,二曰、禍福隨善惡,三曰、死生隨法度,四曰、有賢不肖而無愛惡,五曰、有愚智而無非譽,六曰、有尺寸而無意度,七曰、有信而無詐。
번역 3
안전한 술책이란, 첫째, 상벌(賞罰)은 시비(是非)를 따르고, 둘째, 화복(禍福)은 선악(善惡)을 따르며, 셋째, 사생(死生)은 법도(法度)를 따르고, 넷째, 어짊과 불초함[賢不肖]은 있으나 사랑과 미움[愛惡]은 없으며, 다섯째, 어리석음과 지혜로움[愚智]은 있으나 비방과 칭찬[非譽]은 없고, 여섯째, 척과 촌[尺寸]의 기준은 있으나 자의적인 헤아림[意度]은 없으며,²⁾ 일곱째, 믿음[信]은 있고 속임[詐]은 없는 것이다.
주석
2) 척촌(尺寸)·의도(意度): ‘척’과 ‘촌’은 길이를 재는 객관적인 단위이다. 이는 군주가 국가를 다스릴 때,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감정[意度]이 아니라, 자나 저울처럼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 즉 법(法)에 의거해야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일곱 가지 술책은 모두 군주의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는 법치(法治)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원문 4
危道:一曰、斲削於繩之內,二曰、斷割於法之外,三曰、利人之所害,四曰、樂人之所禍,五曰、危人於所安,六曰、所愛不親,所惡不疏。如此,則人失其所以樂生,而忘其所以重死,人不樂生則人主不尊,不重死則令不行也。
번역 4
위태로운 길이란, 첫째, 먹줄의 안쪽을 깎아내고,³⁾ 둘째, 법의 바깥에서 베어 자르며, 셋째, 남이 해롭게 여기는 것을 이롭게 여기고, 넷째, 남이 재앙으로 여기는 것을 즐거워하며, 다섯째, 남이 편안하게 여기는 것을 위태롭게 하고, 여섯째, 사랑하는 바를 친하게 대하지 않고 미워하는 바를 멀리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사람들은 삶을 즐거워하는 까닭을 잃고 죽음을 중히 여기는 까닭을 잊게 되니, 사람이 삶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군주가 존귀해지지 않고, 죽음을 중히 여기지 않으면 명령이 행해지지 않는다.
주석
3) 착삭어승지내(斲削於繩之內): ‘먹줄(繩)의 안쪽을 깎아낸다’. 목수가 나무를 다듬을 때 먹줄을 튕겨 기준선을 긋고 그 바깥쪽을 깎아내야 하는데, 기준선 안쪽을 깎는다는 것은 규칙을 지킨 사람을 오히려 벌하는 극도의 부조리한 상황을 비유한다. 이는 법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최악의 통치 행위임을 상징한다.
원문 5
使天下皆極智能於儀表,盡力於權衡,以動則勝,以靜則安。治世使人樂生於為是,愛身於為非。小人少而君子多,故社稷常立,國家久安。奔車之上無仲尼,覆舟之下無伯夷。故號令者,國之舟車也。安則智廉生,危則爭鄙起。故安國之法,若饑而食,寒而衣,不令而自然也。先王寄理於竹帛,其道順,故後世服。今使人去饑寒,雖賁、育不能行;廢自然,雖順道而不立。強勇之所不能行,則上不能安。上以無厭責,己盡,則下對無有,無有則輕法,法所以為國也而輕之,則功不立、名不成。聞古扁鵲之治其病也,以刀刺骨;聖人之救危國也,以忠拂耳。刺骨,故小痛在體而長利在身;拂耳,故小逆在心而久福在國。故甚病之人利在忍痛,猛毅之君以福拂耳。忍痛,故扁鵲盡巧;拂耳,則子胥不失;壽安之術也。病而不忍痛,則失扁鵲之巧;危而不拂耳,則失聖人之意。如此,長利不遠垂,功名不久立。
번역 5
천하로 하여금 모두 그 지혜와 능력을 법도[儀表]에 다하게 하고, 힘을 저울[權衡]에 다하게 하면, 움직이면 이기고 고요하면 편안하다. 다스려지는 세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옳은 일을 함으로써 삶을 즐거워하게 하고, 그른 일을 함으로써 몸을 아끼게 한다. 소인이 적고 군자가 많으므로, 사직(社稷)이 항상 서고 국가가 오래 편안하다. 질주하는 수레 위에는 중니(仲尼)가 없고, 뒤집힌 배 아래에는 백이(伯夷)가 없다.⁴⁾ 그러므로 호령(號令)이란 나라의 수레와 배이다. 편안하면 지혜와 청렴이 생겨나고, 위태로우면 다툼과 비루함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법은, 마치 굶주리면 먹고 추우면 옷 입는 것과 같아, 명령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선왕(先王)은 이치를 죽백(竹帛)에 기탁하였는데, 그 도(道)가 순리적이므로 후세가 복종하였다. 지금 사람으로 하여금 굶주림과 추위를 버리게 한다면, 비록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이라도 행할 수 없고, 자연스러움을 폐하면, 비록 도에 순응하더라도 서지 못한다. 강하고 용맹한 자도 행할 수 없는 바를, 윗사람이 편안하게 할 수는 없다. 윗사람이 만족할 줄 모름으로 책망하고, 자신은 모든 것을 다하면, 아랫사람은 가진 것이 없음으로 대응하고, 가진 것이 없으면 법을 가벼이 여기게 된다. 법은 나라를 위한 것인데 그것을 가벼이 여기면, 공이 서지 않고 이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듣건대 옛날 편鵲(扁鵲)이 그 병을 치료할 때, 칼로 뼈를 찔렀다고 한다. 성인이 위태로운 나라를 구원할 때, 충언으로 귀에 거슬리게 한다. 뼈를 찌르므로, 작은 고통은 몸에 있으나 긴 이로움은 몸에 있다. 귀에 거슬리므로, 작은 거스름은 마음에 있으나 오랜 복은 나라에 있다. 그러므로 심한 병을 앓는 사람은 아픔을 참는 데에 이로움이 있고, 용맹하고 굳센 군주는 복을 위해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는다. 아픔을 참으므로, 편鵲이 기교를 다할 수 있었고,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므로, 자서(子胥)가 실책을 범하지 않았으니,⁵⁾ 이것이 장수하고 편안한 술책이다. 병들었는데 아픔을 참지 못하면 편鵲의 기교를 잃게 되고, 위태로운데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지 않으면 성인의 뜻을 잃게 된다. 이와 같으면, 긴 이로움은 멀리 드리워지지 않고, 공과 이름은 오래 서지 못한다.
주석
4) 중니(仲尼)·백이(伯夷): 중니는 공자(孔子)의 자(字)이고, 백이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이다. 공자는 예(禮)를, 백이는 의(義)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질주하는 수레나 뒤집히는 배와 같은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는, 예의나 도덕을 논할 겨를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는 국가의 안위가 경각에 달렸을 때는, 평상시의 도덕률이 아니라 비상한 법과 술(術)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비유이다.
5) 자서(子胥):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명신 오자서(伍子胥). 여기서는 충언을 하는 신하의 대명사로 쓰였다.
원문 6
人主不自刻以堯而責人臣以子胥,是幸殷人之盡如比干,盡如比干則上不失、下不亡。不權其力而有田成,而幸其身盡如比干,故國不得一安。廢堯、舜而立桀、紂,則人不得樂所長而憂所短。失所長則國家無功,守所短則民不樂生,以無功御不樂生,不可行於齊民。如此,則上無以使下,下無以事上。
번역 6
군주가 스스로 요(堯)임금처럼 자신을 단련하지 않으면서 신하에게 자서(子胥)와 같기를 요구한다면, 이는 은(殷)나라 사람들이 모두 비간(比干)과 같기를 바라는 것이니, 모두 비간과 같다면 윗사람은 잃지 않고 아랫사람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⁶⁾ 그 힘을 헤아리지 않아 전성(田成)과 같은 신하를 두면서도, 그 몸이 모두 비간과 같기를 바란다면, 나라는 한 번도 편안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요·순(舜)을 폐하고 걸·주(紂)를 세우면, 사람들은 잘하는 바를 즐거워하지 못하고 못하는 바를 근심하게 된다. 잘하는 바를 잃으면 국가는 공이 없고, 못하는 바를 지키면 백성은 삶을 즐거워하지 않으니, 공이 없음으로 삶을 즐거워하지 않는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모든 백성에게 행할 수 없다. 이와 같으면,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부릴 수 없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섬길 수 없다.
주석
6) 비간(比干): 상(商)나라의 충신. 폭군 주왕(紂王)에게 직간하다가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는데 사실인가”라는 주왕의 말에 심장이 꺼내져 죽었다. 한비자는 군주 스스로가 폭군처럼 행동하면서 신하에게는 비간과 같은 절대적인 충성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원문 7
明主堅內,故不外失。失之近而不亡於遠者無有。故周之奪殷也,拾遺於庭,使殷不遺於朝,則周不敢望秋毫於境,而況敢易位乎。
번역 7
현명한 군주는 안을 굳건히 하므로, 밖에서 잃지 않는다. 가까운 데서 잃고서 먼 데서 망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주(周)나라가 은(殷)나라를 빼앗은 것은, 뜰에 떨어진 것을 주운 것과 같다.⁷⁾ 만약 은나라가 조정에서 잃는 것이 없었다면, 주나라는 감히 국경에서 터럭 끝만큼도 바라보지 못했을 것인데, 하물며 감히 그 자리를 바꾸려 했겠는가.
주석
7) 습유어정(拾遺於庭): ‘뜰에 떨어진 것을 줍다’. 이는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강력한 힘으로 정복했다기보다는 이미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붕괴하여(뜰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지 않을 정도로 기강이 해이해져) 스스로 무너진 은나라를 손쉽게 차지한 것과 같다는 비유이다. 모든 국가의 멸망은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에서 시작된다는 한비자의 역사관을 보여준다.
원문 8
明主之道忠法,其法忠心,故臨之而法,去之而思。堯無膠漆之約於當世而道行,舜無置錐之地於後世而德結。能立道於往古,而垂德於萬世者之謂明主。
번역 8
현명한 군주의 도(道)는 법(法)에 충실하고, 그 법은 마음에 충실하므로, 그를 대하면 법을 따르게 되고 그를 떠나면 생각하게 된다. 요(堯)임금은 당세에 아교나 옻칠 같은 맹세가 없었어도 도(道)가 행해졌고, 순(舜)임금은 후세에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어도 덕(德)이 맺어졌다.⁸⁾ 능히 먼 옛날에 도를 세우고, 만세에 덕을 드리우는 자를, 현명한 군주라 한다.
주석
8) 교칠지약(膠漆之約)·치추지지(置錐之地): ‘아교와 옻칠 같은 맹세’는 굳건한 약속을, ‘송곳 하나 꽂을 땅’은 아주 작은 사유재산을 의미한다. 요·순과 같은 성군(聖君)의 통치는 개인적인 약속이나 사유재산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운 공정하고 보편적인 ‘도(道)’와 그 결과로 나타난 ‘덕(德)’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영향력이 만세에 미쳤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도’와 ‘덕’은 법가적인 의미, 즉 통치의 원리와 그 공적으로 해석된다.
《한비자》 〈수도〉 번역 및 주석
원문 1
聖王之立法也,其賞足以勸善,其威足以勝暴,其備足以必完法。治世之臣,功多者位尊,力極者賞厚,情盡者名立。善之生如春,惡之死如秋,故民勸極力而樂盡情,此之謂上下相得。上下相得,故能使用力者自極於權衡,而務至於任鄙;戰士出死,而願為賁、育;守道者皆懷金石之心,以死子胥之節。用力者為任鄙,戰如賁、育,中為金石,則君人者高枕而守己完矣。
번역 1
성인(聖人)인 왕이 법을 제정함에,¹⁾ 그 상(賞)은 족히 선(善)을 권장하고, 그 위엄은 족히 포악함을 이기며, 그 대비(備)는 족히 법을 완비하게 한다. 다스려지는 세상의 신하는, 공이 많은 자는 지위가 존귀해지고, 힘을 다한 자는 상이 두터워지며, 충정을 다한 자는 이름이 서게 된다. 선(善)이 생겨나는 것은 봄과 같고, 악(惡)이 죽는 것은 가을과 같으므로, 백성은 힘을 다하도록 권장되고 충정을 다하는 것을 즐거워하니, 이를 일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를 얻는 것’이라 한다.²⁾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를 얻으므로, 힘쓰는 자로 하여금 스스로 저울[權衡]에 힘을 다하게 하여 임비(任鄙)에 이르기를 힘쓰게 하고, 전사(戰士)는 죽음을 무릅쓰고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이 되기를 원하게 하며, 도(道)를 지키는 자는 모두 쇠와 돌 같은 마음[金石之心]을 품어 자서(子胥)의 절개를 위해 죽게 한다.³⁾ 힘쓰는 자가 임비와 같이 되고, 싸우는 자가 맹분·하육과 같으며, 안으로 쇠와 돌 같은 마음을 가지면, 군주 된 자는 베개를 높이 베고도[高枕]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⁴⁾
주석
1) 성왕(聖王): 한비자가 말하는 ‘성인인 왕’은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인의(仁義)의 덕을 갖춘 군주가 아니라, 법(法)과 술(術), 세(勢)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용하여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를 의미한다.
2) 상하상득(上下相得):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를 얻는다’. 이는 유가적인 온정주의적 관계가 아니라, 철저히 법에 기반한 상호 이익 관계를 의미한다. 군주는 신하의 공로와 충성을 ‘얻고’, 신하는 그 대가로 확실한 상과 명예를 ‘얻는다’. 즉, 공적인 법 시스템을 통해 군주의 목표와 신하의 사적인 욕망(공을 세워 부귀를 얻으려는)이 일치되는 상태를 말한다.
3) 임비(任鄙)·맹분(孟賁)·하육(夏育)·자서(子胥): 모두 특정 분야에서 극한의 능력을 보여준 인물들의 대명사이다. 임비는 진(秦)나라의 유명한 장사(壯士)이고, 맹분과 하육은 고대의 전설적인 용사이며, 자서(오자서)는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충신으로, 충절의 상징이다. 법과 상벌이 명확하면 모든 사람이 각자의 분야에서 이들처럼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4) 고침(高枕): ‘베개를 높이 베다’. 아무런 걱정 없이 편안히 잠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군주가 개인의 능력으로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완벽한 법 시스템이 저절로 국가를 안정시키고 군주를 편안하게 한다는 법치(法治)의 이상을 보여준다.
원문 2
古之善守者,以其所重禁其所輕,以其所難止其所易。故君子與小人俱正,盜跖與曾、史俱廉。何以知之?夫貪盜不赴谿而掇金,赴谿而掇金則身不全;賁、育不量敵則無勇名,盜跖不計可則利不成。明主之守禁也,賁、育見侵於其所不能勝,盜跖見害於其所不能取。故能禁賁、育之所不能犯,守盜跖之所不能取,則暴者守愿,邪者反正。大勇愿,巨盜貞,則天下公平,而齊民之情正矣。
번역 2
옛날에 잘 지키는 자는, 그 소중히 여기는 바로써 그 가벼이 여기는 바를 금하고, 그 어려운 바로써 그 쉬운 바를 막았다.⁵⁾ 그러므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이 함께 올바르게 되고, 도척(盜跖)과 증자(曾子)·사추(史鰌)가 함께 청렴하게 된다.⁶⁾ 무엇으로 이를 아는가? 무릇 탐욕스러운 도둑은 깊은 계곡에 뛰어들어 황금을 줍지 않으니, 계곡에 뛰어들어 황금을 주우면 몸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맹분과 하육은 적을 헤아리지 않으면 용맹하다는 이름이 없을 것이고, 도척은 가능한지를 계산하지 않으면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현명한 군주가 금지하는 것을 지킴에, 맹분과 하육은 이길 수 없는 바에서 침해를 당하게 되고, 도척은 취할 수 없는 바에서 해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능히 맹분과 하육이 범할 수 없는 바를 금하고, 도척이 취할 수 없는 바를 지키면, 포악한 자는 삼가고 성실하게 되며, 사악한 자는 바름으로 돌아온다. 큰 용맹을 지닌 자가 성실해지고, 큰 도둑이 정직해지면, 천하가 공평해지고 모든 백성의 실정이 올바르게 될 것이다.
주석
5) 이귀소중 금기소경(以其所重 禁其所輕): ‘그 소중히 여기는 것(자신의 목숨)으로써 그 가벼이 여기는 것(범죄로 얻는 이익)을 금한다’는 뜻이다. 법의 본질이 인간의 이해타산적인 심리를 이용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아무리 탐욕스러운 도둑이라도, 범죄로 얻는 이익보다 발각되어 잃게 될 목숨의 가치가 훨씬 크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게 만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6) 도척(盜跖)·증(曾)·사(史):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인물들이다. 도척은 고대 중국 전설상의 가장 유명한 도둑으로, 악(惡)의 상징이다. 증자(공자의 제자)와 사추(위나라의 충신)는 유가에서 칭송하는 덕과 청렴의 상징이다. 한비자는 완벽한 법 시스템 앞에서는, 사람의 타고난 본성(선악)이 무의미해지고, 오직 이해타산에 따른 행동만이 남게 되어 도척마저도 증자처럼 행동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인성(人性)을 중시하는 유가 사상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원문 3
人主離法失人,則危於伯夷不妄取,而不免於田成、盜跖之耳可也。今天下無一伯夷,而姦人不絕世,故立法度量。度量信則伯夷不失是,而盜跖不得非。法分明則賢不得奪不肖,強不得侵弱,眾不得暴寡。託天下於堯之法,則貞士不失分,姦人不徼幸。寄千金於羿之矢,則伯夷不得亡,而盜跖不敢取。堯明於不失姦,故天下無邪;羿巧於不失發,故千金不亡。邪人不壽而盜跖止,如此,故圖不載宰予,不舉六卿;書不著子胥,不明夫差。孫、吳之略廢,盜跖之心伏。人主甘服於玉堂之中,而無瞋目切齒傾取之患。人臣垂拱於金城之內,而無扼捥聚脣嗟唶之禍。服虎而不以柙,禁姦而不以法,塞偽而不以符,此賁、育之所患,堯、舜之所難也。故設柙非所以備鼠也,所以使怯弱能服虎也;立法非所以備曾、史也,所以使庸主能止盜跖也;為符非所以豫尾生也,所以使眾人不相謾也。不獨恃比干之死節,不幸亂臣之無詐也,恃怯之所能服,握庸主之所易守。當今之世,為人主忠計,為天下結德者,利莫長於此。故君人者無亡國之圖,而忠臣無失身之畫。明於尊位必賞,故能使人盡力於權衡,死節於官職。通賁、育之情,不以死易生;惑於盜跖之貪,不以財易身;則守國之道畢備矣。
번역 3
군주가 법을 떠나고 사람을 잃으면, 백이(伯夷)가 망령되이 취하지 않는 것보다 위태롭고, 전성(田成)이나 도척(盜跖)의 귀가 되는 것을 면치 못함이 옳다.⁷⁾ 지금 천하에 한 명의 백이도 없지만, 간사한 사람은 세상에 끊이지 않으므로, 법과 도량(度量)을 세운다. 도량이 믿음직하면 백이는 그 옳음을 잃지 않고, 도척은 그 그름을 행하지 못한다. 법의 구분이 명확하면 어진 자가 불초한 자에게 빼앗기지 않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침범하지 못하며, 많은 자가 적은 자에게 포악하게 굴지 못한다. 천하를 요(堯)임금의 법에 맡기면, 정직한 선비는 자기 분수를 잃지 않고, 간사한 사람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천금(千金)을 예(羿)의 화살에 맡기면, 백이는 잃지 않고 도척은 감히 취하지 못한다.⁸⁾ 요임금은 간사함을 놓치지 않는 데에 밝았으므로 천하에 사악함이 없었고, 예는 활을 쏨에 실수하지 않는 데에 교묘하였으므로 천금이 없어지지 않았다. 사악한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하고 도척이 멈추니, 이와 같으므로 그림에는 재여(宰予)를 싣지 않고 육경(六卿)을 천거하지 않으며, 책에는 자서(子胥)를 싣지 않고 부차(夫差)를 밝히지 않는다.⁹⁾ 손자(孫子)와 오기(吳起)의 지략은 폐기되고, 도척의 마음은 굴복한다. 군주는 옥당(玉堂) 안에서 달게 옷을 입고도,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나라를 빼앗으려는 우환이 없다. 신하는 금성(金城) 안에서 팔짱을 끼고도, 손목을 잡고 입술을 모으며 탄식하는 재앙이 없다. 호랑이를 굴복시키되 우리[柙]를 쓰지 않고, 간사함을 금하되 법을 쓰지 않으며, 거짓을 막되 부절[符]을 쓰지 않는 것은, 이것은 맹분과 하육이 근심하던 바요, 요·순이 어려워하던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설치하는 것은 쥐를 대비하기 위함이 아니라, 겁 많고 약한 자로 하여금 호랑이를 굴복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법을 제정하는 것은 증자나 사추를 대비하기 위함이 아니라, 평범한 군주[庸主]로 하여금 도척을 막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부절을 만드는 것은 미생(尾生)을 예비하기 위함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서로 속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¹⁰⁾ 오직 비간(比干)의 죽음의 절개에만 의지하지 않고, 난신(亂臣)에게 속임수가 없기를 요행으로 바라지 않으며, 겁 많은 자가 굴복시킬 수 있는 바에 의지하고, 평범한 군주가 지키기 쉬운 것을 손에 쥔다. 지금의 세상에, 군주를 위해 충성스러운 계책을 세우고 천하를 위해 덕을 맺는 자에게, 이보다 더 큰 이익은 없다. 그러므로 군주 된 자는 나라를 잃을 계획이 없고, 충신은 몸을 잃을 계획이 없다. 존귀한 지위에 오르면 반드시 상을 받는다는 것이 명확하므로,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저울에 힘을 다하게 하고, 관직에서 절개를 위해 죽게 한다. 맹분과 하육의 실정을 통찰하여, 죽음으로 삶을 바꾸지 않게 하고, 도척의 탐욕에 미혹되어, 재물로 몸을 바꾸지 않게 하면, 나라를 지키는 도(道)는 모두 갖추어지는 것이다.
주석
7) 백이(伯夷)·전성(田成)·도척(盜跖): 백이는 의(義)를 위해 왕위와 목숨을 버린 청렴의 상징이다. 전성(전상)은 제나라를 찬탈한 권신이고, 도척은 악의 화신이다. 군주가 법을 잃으면, 백이 같은 이상적인 인물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며, 결국 전성이나 도척 같은 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된다는 의미이다.
8) 예(羿):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명궁(名弓). 그의 화살은 결코 빗나가지 않는 절대적인 확실성을 상징한다. 한비자는 법이 바로 이 예의 화살처럼,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절대적이고 확실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9) 재여(宰予)·육경(六卿)·자서(子胥)·부차(夫差) 등: 모두 정치적 실패나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다 실패한 사례들이다. 재여는 공자의 제자였으나 반란에 연루되었고, 육경은 진(晉)나라의 권력을 찬탈했으며, 자서는 충신이었으나 부차의 의심을 사 죽었다. 손자와 오기는 뛰어난 전략가였지만 그들의 지략만으로는 국가의 안위를 영원히 보장할 수 없었다. 완벽한 법 시스템은 이러한 개인의 능력이나 도덕, 혹은 실패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10) 우리[柙]·법(法)·부절[符]의 비유: 이 부분은 법가 사상의 핵심을 명확히 보여준다. 법과 제도는 성인(聖人)이나 군자(君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평범한 군주(庸主)나 약한 사람(怯弱)이 악하고 강한 자(盜跖, 虎)를 제어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하고 객관적인 ‘도구’라는 것이다. 이는 군주의 개인적 자질에 의존하는 인치(人治)를 비판하고, 시스템에 의한 법치(法治)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논리이다. 미생(尾生)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리 밑에서 죽은 어리석은 정직함의 상징이다.
《用人》 번역 및 주석
본 문헌은 전국시대(戰國時代) 법가(法家) 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저작으로, 군주가 인재를 등용하고 국가를 통치하는 원칙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군주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법(法)’과 ‘술(術)’이라는 객관적 기준을 통해 상벌(賞罰)을 명확히 하여 국가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원문]
聞古之善用人者,必循天順人而明賞罰。循天則用力寡而功立,順人則刑罰省而令行,明賞罰則伯夷、盜跖不亂。如此,則白黑分矣。治國之臣,效功於國以履位,見能於官以受職,盡力於權衡以任事。人臣皆宜其能,勝其官,輕其任,而莫懷餘力於心,莫負兼官之責於君。故內無伏怨之亂,外無馬服之患。明君使事不相干,故莫訟;使士不兼官,故技長,使人不同功,故莫爭。爭訟止,技長立,則彊弱不觳力,冰炭不合形,天下莫得相傷,治之至也。
[번역문]
옛날에 사람을 잘 썼던 이에 대해 듣건대, 반드시 하늘의 이치를 따르고 사람의 마음에 순응하며 상벌을 명확히 하였다고 한다. 하늘의 이치를 따르면¹⁾ 힘을 적게 들이고도 공이 서고, 사람의 마음에 순응하면²⁾ 형벌이 줄어도 명령이 행해지며, 상벌을 명확히 하면 백이(伯夷)와 도척(盜跖)이 뒤섞이지 않는다.³⁾ 이와 같이 하면 흑과 백이 나뉘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신하는 나라에 공을 보여줌으로써 지위에 오르고, 관직에서 능력을 드러냄으로써 직책을 받으며, 권형(權衡)에 힘을 다함으로써 임무를 맡는다.⁴⁾ 신하들이 모두 자신의 능력에 걸맞고, 그 관직을 감당해 내며, 그 임무를 가벼이 여기게 되어, 마음에 남은 힘을 품지 않고 군주에게 관직을 겸하는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안으로는 숨은 원망으로 인한 혼란이 없고, 밖으로는 마복(馬服)의 환란이 없게 된다.⁵⁾ 현명한 군주는 일이 서로 간섭하지 않게 하므로 송사(訟事)가 없고, 선비로 하여금 관직을 겸하지 않게 하므로 기예(技藝)가 뛰어나게 되며, 사람들로 하여금 공을 같이하지 않게 하므로 다툼이 없다. 다툼과 송사가 그치고 기예가 뛰어나게 되면, 강자와 약자가 힘을 겨루지 않고 얼음과 숯이 그 형태를 합치지 않는 것과 같아 천하가 서로 해칠 수 없게 되니, 이는 다스림의 지극함이다.
[주석]
1) 循天(순천): 여기서 ‘天’은 인격적인 신이나 운명이 아니라, 사물의 운행 원리, 즉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이나 자연의 이치를 의미한다. 법가에서 ‘법(法)’은 이러한 객관적 법칙을 인위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따라서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는 것은 군주의 주관적 판단이 아닌 객관적 법칙에 근거하여 통치함을 뜻한다.
2) 順人(순인): 여기서 ‘人’은 인간의 본성, 특히 이익을 추구하고 해를 피하려는 경향(好利惡害)을 가리킨다. 상벌을 통해 백성들의 이러한 본성을 통치에 순응하도록 유도하면, 가혹한 형벌 없이도 명령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법가 사상의 중요한 인간관을 보여준다.
3) 伯夷(백이), 盜跖(도척): 백이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로 절의(節義)의 상징이며, 도척은 춘추시대의 전설적인 큰 도적으로 탐욕과 잔악함의 대명사이다. 상벌의 기준이 명확하면, 선인(백이)과 악인(도척)의 구분이 분명해져 사회 질서가 혼란에 빠지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4) 權衡(권형): 저울추(權)와 저울대(衡)를 뜻하며, 사물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공과(功過)를 측정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 즉 ‘법(法)’을 비유한다. 신하는 법이라는 기준에 따라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함을 강조한다.
5) 馬服之患(마복지환):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명장 조괄(趙括)과 관련된 고사이다. 조괄은 마복군(馬服君) 조사의 아들로, 병법 이론에는 밝았으나 실전 경험이 없어 장평(長平) 전투에서 진(秦)나라의 백기(白起)에게 대패하여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잃게 했다. 이는 능력에 맞지 않는 사람을 중용했을 때 발생하는 재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된다.
【2】
[원문]
釋法術而心治,堯不能正一國。去規矩而妄意度,奚仲不能成一輪。廢尺寸而差短長,王爾不能半中。使中主守法術,拙匠守規矩尺寸,則萬不失矣。君人者,能去賢巧之所不能,守中拙之所萬不失,則人力盡而功名立。
[번역문]
법술(法術)을 버리고 마음으로 다스리려 한다면 요(堯)임금이라도 한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다.⁶⁾ 규구(規矩)를 버리고 멋대로 헤아린다면 해중(奚仲)이라도 바퀴 하나를 완성할 수 없다.⁷⁾ 척촌(尺寸)을 폐하고 길고 짧음을 어림잡는다면 왕이(王爾)라도 절반도 맞히지 못할 것이다.⁸⁾ 평범한 군주(中主)로 하여금 법술을 지키게 하고 서툰 장인으로 하여금 규구와 척촌을 지키게 하면, 만에 하나도 실수가 없을 것이다.⁹⁾ 사람들의 군주 된 자가 현명하고 재주 있는 이조차 할 수 없는 바를 버리고, 평범하고 서툰 이가 만에 하나도 실수하지 않을 바를 지킬 수 있다면, 사람의 힘은 극진히 발휘되고 공적과 명성은 서게 될 것이다.
[주석]
6) 法術(법술), 心治(심치), 堯(요): ‘법술’은 법가 통치의 핵심 도구인 법(法, 공개된 법률), 술(術, 신하를 다루는 군주의 통치술), 세(勢, 군주의 권세)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심치’는 군주의 주관적인 마음이나 덕(德)에 의존하는 유가적(儒家的)인 통치 방식을 가리킨다. 요임금은 유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군(聖君)으로 꼽힌다. 이 문장은 법가의 입장에서, 아무리 위대한 성군이라도 객관적인 ‘법술’ 없이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인치(人治)를 비판하고 법치(法治)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7) 規矩(규구), 奚仲(해중): ‘규’는 원을 그리는 컴퍼스, ‘구’는 네모를 그리는 직각자이다. 객관적인 표준과 규칙을 비유한다. 해중은 고대 중국에서 수레를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장인이다.
8) 尺寸(척촌), 王爾(왕이): ‘척’과 ‘촌’은 길이를 재는 단위이다. 왕이는 고대의 이름난 장인으로 전해진다.
9) 中主(중주): 자질이 뛰어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수준의 군주를 뜻한다. 법가 사상은 요순(堯舜)과 같은 비범한 성군이 아니라,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군주가 의지하여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시스템, 즉 ‘법술’의 구축을 목표로 했다.
【3】
[원문]
明主立可為之賞,設可避之罰。故賢者勸賞而不見子胥之禍,不肖者少罪而不見傴剖背,盲者處平而不遇深谿,愚者守靜而不陷險危。如此,則上下之恩結矣。古之人曰:「其心難知,喜怒難中也。」故以表示目,以鼓語耳,以法教心。君人者釋三易之數而行一難知之心,如此,則怒積於上,而怨積於下,以積怒而御積怨則兩危矣。明主之表易見,故約立;其教易知,故言用;其法易為,故令行。三者立而上無私心,則下得循法而治,望表而動,隨繩而斲,因攢而縫。如此,則上無私威之毒,而下無愚拙之誅。故上君明而少怒,下盡忠而少罪。
[번역문]
현명한 군주는 이룰 수 있는 상을 세우고, 피할 수 있는 벌을 설정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자는 상을 힘써 구하면서도 자서(子胥)와 같은 화를 당하지 않고,¹⁰⁾ 못난 자는 죄가 적어 꼽추가 등을 쪼개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며,¹¹⁾ 눈먼 자는 평탄한 곳에 머물러 깊은 계곡에 빠지지 않고, 어리석은 자는 고요함을 지켜 험하고 위태로운 곳에 빠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은혜가 맺어지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그 마음은 알기 어렵고, 기쁨과 노여움은 맞히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깃발로써 눈에 표시하고, 북으로써 귀에 말하며, 법으로써 마음에 가르친다. 사람들의 군주 된 자가 이 세 가지 쉬운 수단을 버리고¹²⁾ 하나의 알기 어려운 마음으로 행한다면, 노여움은 위에서 쌓이고 원망은 아래에서 쌓일 것이니, 쌓인 노여움으로 쌓인 원망을 통제하려 하면 양쪽 모두 위태로워진다. 현명한 군주의 깃발은 보기 쉽기에 약속이 서고, 그 가르침은 알기 쉽기에 말이 쓰이며, 그 법은 행하기 쉽기에 명령이 시행된다. 이 세 가지가 확립되고 윗사람에게 사사로운 마음이 없으면, 아랫사람들은 법을 따라 다스려지고, 깃발을 보고 움직이며, 먹줄을 따라 깎고, 송곳 자국에 따라 꿰맬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면 윗사람에게는 사사로운 위엄의 해독이 없고, 아랫사람에게는 어리석고 서툴다는 이유로 주살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윗사람인 군주는 밝아서 노여움이 적고, 아랫사람은 충성을 다하여 죄가 적어진다.
[주석]
10) 子胥之禍(자서지화):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충신 오자서(伍子胥)를 가리킨다. 그는 오왕 부차(夫差)에게 월(越)나라를 경계할 것을 간언했으나, 부차는 이를 듣지 않고 오히려 간신 백비(伯嚭)의 모함을 믿어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했다. 이는 공로가 있는 현신이라도 군주의 주관적 판단과 변덕에 의해 억울하게 죽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1) 傴剖背(구부배): ‘傴’는 등이 굽은 꼽추를 뜻한다. ‘剖背’는 등을 쪼개는 잔혹한 형벌이다. 이는 군주의 자의적이고 포악한 형벌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법에 근거하지 않은 가혹한 처벌을 의미한다.
12) 三易之數(삼역지수): ‘세 가지 쉬운 수단’이란 바로 앞에서 언급한 ‘깃발(表)’, ‘북(鼓)’, ‘법(法)’을 가리킨다. 깃발은 시각적으로 명확하고, 북소리는 청각적으로 명확하며, 법은 행동 기준으로 명확하다. 이는 군주의 예측 불가능한 ‘마음(心)’과 대비되는 객관적이고 명료한 통치 도구이다.
【4】
[원문]
聞之曰:「舉事無患者,堯不得也。」而世未嘗無事也。君人者不輕爵祿,不易富貴,不可與救危國。故明主厲廉恥,招仁義。昔者介子推無爵祿而義隨文公,不忍口腹而仁割其肌,故人主結其德,書圖著其名。人主樂乎使人以公盡力,而苦乎以私奪威。人臣安乎以能受職,而苦乎以一負二。故明主除人臣之所苦,而立人主之所樂,上下之利,莫長於此。不察私門之內,輕慮重事,厚誅薄惱,久怨細過,長侮偷快,數以德追禍,是斷手而續以玉也,故世有易身之患。
[번역문]
듣건대 “일을 벌여 근심이 없는 것은 요임금이라도 할 수 없는 바이다.”라고 하였는데, 세상에는 일찍이 일이 없었던 적이 없다. 사람들의 군주 된 자가 작록(爵祿)을 가벼이 여기고 부귀를 쉽게 여기면,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함께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염치(廉恥)를 장려하고 인의(仁義)를 불러들인다. 옛날 개자추(介子推)는 작록이 없었으나 의로움으로 문공(文公)을 따랐고, 입과 배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여 인(仁)으로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었다.¹³⁾ 그러므로 군주는 그 덕을 마음에 맺고, 서책과 그림에 그 이름을 드러내었다. 군주는 사람들이 공(公)을 위해 힘을 다하게 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사(私)로 인해 위엄을 빼앗기는 것을 괴로워한다. 신하는 능력으로 직책을 받는 것을 편안해하고, 하나를 맡아 둘을 책임지는 것을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신하가 괴로워하는 바를 제거하고 군주가 즐거워하는 바를 세우니,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이로움이 이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사사로운 가문의 문안을 살피지 않고,¹⁴⁾ 중요한 일을 가벼이 생각하며, 사소한 노여움에 무거운 벌을 내리고, 작은 허물을 오래 원망하며, 모욕을 오래 지속하고 순간의 쾌락을 탐하며, 자주 덕으로써 화를 불러들이는 것은, 손을 자르고 옥으로 잇는 것과 같으니,¹⁵⁾ 이 때문에 세상에는 몸이 바뀌는 환란이 있는 것이다.
[주석]
13) 介子推(개자추), 文公(문공): 개자추는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충신이다. 진나라의 공자 중이(重耳, 훗날의 文公)가 망명 생활을 할 때 굶주리자,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어 그를 먹였다. 훗날 문공이 군주가 되어 논공행상을 할 때 개자추는 이를 사양하고 산에 은거했으며, 문공이 그를 나오게 하려 산에 불을 질렀으나 끝내 나오지 않고 타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고사는 사리사욕을 버린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14) 私門之內(사문지내): 군주의 공적인 조정(朝廷)이 아닌, 권세 있는 신하나 귀족의 사사로운 집안을 의미한다. ‘사문을 살피지 않는다’는 것은 군주가 공적인 감찰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사적인 정보나 특정 세력의 영향력에 의존하여 국정을 판단하는 것을 비판하는 말이다. 이는 국가 권력의 사유화와 파벌 형성의 원인이 된다.
15) 斷手而續以玉(단수이속이옥): ‘손을 자르고 그 자리에 옥으로 만든 손을 이어 붙인다’는 뜻이다. 옥은 귀하지만 실제 손의 기능을 할 수는 없다.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거나, 손해는 막심한데 이득은 없는 어리석은 행위를 비유하는 말이다.
【5】
[원문]
人主立難為而罪不及,則私怨生;人臣失所長而奉難給,則伏怨結。勞苦不撫循,憂悲不哀憐。喜則譽小人,賢不肖俱賞;怒則毀君子,使伯夷與盜跖俱辱;故臣有叛主。
[번역문]
군주가 행하기 어려운 것을 세우고 죄가 미치지 않으면 사사로운 원망이 생겨나고, 신하가 자신의 장점을 잃고 만족시키기 어려운 이를 받들면 숨은 원망이 맺힌다. 노고를 위로하고 보살펴 주지 않으며, 근심과 슬픔을 애처롭게 여기지 않는다. 기쁘면 소인을 칭찬하여 현명한 자와 못난 자를 함께 상주고, 노여우면 군자를 헐뜯어 백이와 도척으로 하여금 함께 욕을 보게 한다. 그러므로 신하 중에 군주를 배반하는 자가 생기는 것이다.
【6】
[원문]
使燕王內憎其民而外愛魯人,則燕不用而魯不附。民見憎,不能盡力而務功;魯見說,而不能離死命而親他主。如此,則人臣為隙穴,而人主獨立。以隙穴之臣而事獨立之主,此之謂危殆。
[번역문]
가령 연(燕)나라 왕이 안으로는 자기 백성을 미워하고 밖으로는 노(魯)나라 사람을 사랑한다면, 연나라 백성은 쓰이지 않으려 할 것이고 노나라 사람은 귀부하지 않을 것이다. (연나라) 백성은 미움을 받으니 힘을 다해 공을 세우려 하지 않을 것이고, 노나라 사람은 사랑받음을 보더라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천명을 버리고 다른 군주를 섬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되면 신하는 틈새와 구멍이 되고 군주는 홀로 서게 된다.¹⁶⁾ 틈새와 구멍 같은 신하를 데리고 홀로 선 군주를 섬기게 하는 것, 이를 일러 위태롭다고 하는 것이다.
[주석]
16) 隙穴(극혈), 獨立(독립): ‘틈새와 구멍’은 국가의 방벽에 생긴 균열, 즉 내부의 취약점이나 배반할 마음을 품은 신하를 비유한다. ‘홀로 선 군주(獨立之主)’는 백성과 신하의 지지를 모두 잃고 고립된 통치자를 의미한다. 이는 군주가 자기 기반을 무시하고 먼 곳이나 비현실적인 대상에 의지할 때 겪게 되는 위험을 경고하는 비유이다.
【7】
[원문]
釋儀的而妄發,雖中小不巧;釋法制而妄怒,雖殺戮而姦人不恐。罪生甲,禍歸乙,伏怨乃結。故至治之國,有賞罰,而無喜怒,故聖人極;有刑法而死,無螫毒,故姦人服。發矢中的,賞罰當符,故堯復生,羿復立。如此,則上無殷、夏之患,下無比干之禍,君高枕而臣樂業,道蔽天地,德極萬世矣。
[번역문]
과녁을 버리고 함부로 쏘면, 비록 맞더라도 교묘하다 할 수 없다. 법제를 버리고 함부로 노여워하면, 비록 살륙하더라도 간사한 자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 죄는 갑에게서 생겼는데 화가 을에게 돌아가면, 숨은 원망이 마침내 맺히게 된다. 그러므로 지극한 다스림의 나라에는 상벌은 있으되 기쁨과 노여움은 없으니, 이 때문에 성인의 다스림이 지극해지는 것이다. 형법에 따라 죽을 뿐 쏘는 독과 같은 잔혹함은 없으니,¹⁷⁾ 이 때문에 간사한 자들이 복종하는 것이다. 화살을 쏘아 과녁에 맞히듯 상벌이 부절(符節)처럼 딱 들어맞으면, 요임금이 다시 살아나고 예(羿)가 다시 서는 것과 같다.¹⁸⁾ 이와 같이 되면 위로는 은(殷)·하(夏)의 환란이 없고 아래로는 비간(比干)의 화가 없을 것이니,¹⁹⁾ 군주는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잠들고 신하는 자기 일을 즐거워하며, 도(道)는 천지를 덮고 덕(德)은 만세에 이를 것이다.
[주석]
17) 螫毒(석독): 벌이나 전갈 등이 쏘는 독을 의미한다. 법에 규정된 형벌 외에, 군주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분노에서 비롯된 잔인하고 사적인 처벌을 비유한다. 법에 의한 처벌은 공적이고 예측 가능하지만, ‘석독’과 같은 처벌은 사적이고 자의적이어서 백성들의 원망을 살 뿐 진정한 복종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18) 羿(예):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명궁(名弓)이다. 활쏘기의 명수인 예가 반드시 과녁을 맞히듯, 상벌이 정확하게 시행됨을 비유한다.
19) 殷、夏之患(은·하지환), 比干之禍(비간지화): 은나라의 주왕(紂王)과 하나라의 걸왕(桀王)은 폭군의 대명사로, 이들의 포악한 정치로 인해 나라가 망하는 환란을 ‘은·하의 환란’이라 한다. 비간은 은나라 주왕의 충신으로, 주왕의 폭정을 간하다가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 있다는데, 내가 확인해 보겠다”는 주왕의 말에 심장이 도려내져 죽었다. 충신이 억울하게 죽는 ‘비간의 화’는 군주의 자의적이고 포악한 통치가 빚는 비극을 상징한다.
【8】
[원문]
夫人主不塞隙穴,而勞力於赭堊,暴雨疾風必壞。不去眉睫之禍,而慕賁、育之死;不謹蕭牆之患,而固金城於遠境;不用近賢之謀,而外結萬乘之交於千里。飄風一旦起,則賁、育不及救,而外交不及至,禍莫大於此。當今之世,為人主忠計者,必無使燕王說魯人,無使近世慕賢於古,無思越人以救中國溺者,如此,則上下親,內功立,外名成。
[번-역문]
무릇 군주가 틈새와 구멍을 막지 않고 붉은 흙과 흰 흙을 바르는 데에만 힘쓴다면,²⁰⁾ 사나운 비바람이 불면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눈썹과 속눈썹 사이의 재앙을 제거하지 않으면서 분(賁)과 육(育)과 같은 죽음을 흠모하고,²¹⁾ 소장(蕭牆)의 근심을 삼가지 않으면서 먼 국경에 금성(金城)을 굳건히 하며,²²⁾ 가까운 현자의 계책을 쓰지 않으면서 밖으로 천리 밖 만승의 나라와 교류를 맺는다면, 회오리바람이 하루아침에 일어나면 분과 육도 구하러 올 수 없고 외교 관계도 미치지 못할 것이니, 이보다 더 큰 화는 없다. 지금의 세상에서 군주를 위해 충성스러운 계책을 세우는 자는, 반드시 연나라 왕이 노나라 사람을 기뻐하게 하지 말고, 현세의 군주가 옛 현인을 흠모하게 하지 말며, 월나라 사람으로 중원의 물에 빠진 자를 구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해야 한다.²³⁾ 이와 같이 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친밀해지고, 안으로는 공적이 서며, 밖으로는 명성이 이루어질 것이다.
[주석]
20) 赭堊(자악): 붉은 흙(赭)과 흰 흙(堊)으로, 벽을 칠하는 도료를 말한다. 이는 근본적인 구조적 결함(隙穴)을 해결하지 않고 겉만 꾸미는 피상적인 대책을 비유한다.
21) 眉睫之禍(미첩지화), 賁(분)·育(육): ‘눈썹과 속눈썹 사이의 재앙’이란 바로 눈앞에 닥친 매우 절박하고 임박한 위험을 뜻한다.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은 전국시대의 전설적인 용사들이다. ‘분·육의 죽음’은 용맹하게 싸우다 죽는 영웅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즉, 코앞의 위험은 방치하면서 멀리 있는 영웅적 명성이나 행위만을 흠모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22) 蕭牆之患(소장지환), 金城(금성): ‘소장’은 대문 안쪽에 세우는 작은 담장으로, 내부를 의미한다. ‘소장의 근심’은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 즉 내란이나 궁중의 암투를 가리킨다. ‘금성’은 쇠로 만든 성이라는 뜻으로, 매우 견고한 방어 시설을 의미한다. 내부의 불안을 다스리지 않고 외부의 방비만 튼튼히 하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임을 비판한다.
23) 越人以救中國溺者(월인이구중국익자):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편에 나오는 유명한 비유이다. 중원(中國, 중국 중앙 지역)에서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수영을 잘하는 월(越)나라 사람을 데려와 구하려 한들 너무 멀어서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멀리 있는 해결책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이 비유들을 종합하여, 군주는 먼 곳의 이상이나 외부 세력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기반인 백성과 가까운 현자를 통해 내부를 다지는 것이 급선무임을 역설하고 있다.
《한비자(韓非子)》 번역 및 주석
아래는 《한비자》의 〈공명(功名)〉편과 〈대체(大體)〉편의 일부를 번역하고 주석을 단 것입니다. 두 편 모두 군주의 통치 원리에 대해 논하고 있으나, 〈공명〉은 공적과 명성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조건, 특히 ‘세(勢)’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대체〉는 도가(道家)적 색채를 빌려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통치(法術)를 역설합니다.
《공명(功名)》
【1】
[원문]
明君之所以立功成名者四:一曰天時,二曰人心,三曰技能,四曰勢位。非天時雖十堯不能冬生一穗,逆人心雖賁、育不能盡人力。故得天時則不務而自生,得人心則不趣而自勸,因技能則不急而自疾,得勢位則不進而名成。若水之流,若船之浮,守自然之道,行毋窮之令,故曰明主。
[번역문]
현명한 군주가 공(功)을 세우고 명(名)을 이루는 까닭은 네 가지이다. 첫째는 천시(天時)이고, 둘째는 인심(人心)이며, 셋째는 기능(技能)이고, 넷째는 세위(勢位)이다.¹⁾ 천시가 아니면 비록 열 명의 요(堯)임금이라도 겨울에 한 이삭을 틔울 수 없고, 인심을 거스르면 비록 분(賁)과 육(育)이라도 사람들의 힘을 다하게 할 수 없다.²⁾ 그러므로 천시를 얻으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나고, 인심을 얻으면 재촉하지 않아도 저절로 힘쓰며, 기능에 의지하면 서두르지 않아도 저절로 빨라지고, 세위를 얻으면 나아가지 않아도 명성이 이루어진다. 이는 마치 물이 흐르고 배가 뜨는 것과 같으니, 자연의 도(道)를 지키고 다함이 없는 명령을 행하므로 현명한 군주라 일컫는 것이다.
[주석]
1) 天時(천시), 人心(인심), 技能(기능), 勢位(세위): 한비자가 제시하는 성공의 네 가지 조건이다. ‘천시’는 시기적 적절성, ‘인심’은 백성과 신하의 지지, ‘기능’은 신하들의 전문적 능력, ‘세위’는 군주가 차지한 권세와 지위를 의미한다. 한비자는 이 네 가지, 특히 객관적 조건인 ‘세위’가 군주의 개인적 현명함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2) 堯(요), 賁(분)·育(육): 요임금은 유가에서 칭송하는 이상적인 성군(聖君)이며,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은 고대의 전설적인 용사이다. 아무리 위대한 성군이라도 자연의 때(天時)를 거스를 수 없고, 아무리 뛰어난 용사라도 사람들의 마음(人心)을 얻지 못하면 그들의 힘을 이끌어낼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이는 개인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2】
[원문]
夫有材而無勢,雖賢不能制不肖。故立尺材於高山之上,則臨千仞之谿,材非長也,位高也。桀為天子,能制天下,非賢也,勢重也;堯為匹夫,不能正三家,非不肖也,位卑也。千鈞得船則浮,錙銖失船則沈,非千鈞輕錙銖重也,有勢之與無勢也。故短之臨高也以位,不肖之制賢也以勢。人主者,天下一力以共載之,故安;眾同心以共立之,故尊。人臣守所長,盡所能,故忠。以尊主主御忠臣,則長樂生而功名成。名實相持而成,形影相應而立,故臣主同欲而異使。人主之患在莫之應,故曰:一手獨拍,雖疾無聲。人臣之憂在不得一,故曰:右手畫圓,左手畫方,不能兩成。故曰:至治之國,君若桴,臣若鼓,技若車,事若馬。故人有餘力易於應,而技有餘巧便於事。立功者不足於力,親近者不足於信,成名者不足於勢。近者已親,而遠者不結,則名不稱實者也。聖人德若堯、舜,行若伯夷,而位不載於世,則功不立,名不遂。故古之能致功名者,眾人助之以力,近者結之以成,遠者譽之以名,尊者載之以勢。如此,故太山之功長立於國家,而日月之名久著於天地。此堯之所以南面而守名,舜之所以北面而效功也。³⁾
[번역문]
무릇 재능이 있으나 세(勢)가 없으면, 비록 현명하더라도 못난 자를 제압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 자 길이의 나무를 높은 산 위에 세우면 천 길 깊이의 계곡을 굽어볼 수 있으니, 나무가 길어서가 아니라 그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 걸(桀)이 천자가 되어 천하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현명해서가 아니라 세(勢)가 막중했기 때문이며, 요(堯)가 일개 필부였을 때 세 집조차 바로잡지 못했던 것은 그가 못나서가 아니라 지위가 낮았기 때문이다. 천 균(千鈞)의 무게도 배를 얻으면 뜨고, 치수(錙銖)의 무게도 배를 잃으면 가라앉으니, 천 균이 가볍고 치수가 무거워서가 아니라 세(勢)가 있고 없음의 차이이다. 그러므로 짧은 것이 높은 곳에 임하는 것은 지위 때문이고, 못난 자가 현명한 자를 제압하는 것은 세(勢) 때문이다. 군주란 천하가 한마음으로 함께 받드는 존재이므로 안정되고, 뭇사람이 한마음으로 함께 세우므로 존귀해진다. 신하는 자신의 장점을 지키고 능력을 다하므로 충성스럽다. 존귀한 군주가 충성스러운 신하를 부리면, 영원한 즐거움이 생기고 공명(功名)이 이루어진다. 이름과 실질은 서로 버팀으로써 이루어지고, 형체와 그림자는 서로 응함으로써 서게 되니, 군주와 신하는 바라는 바는 같으나 쓰임은 다르다. 군주의 근심은 응하는 이가 없는 데 있으므로, “한 손으로만 홀로 손뼉을 치면 아무리 빨라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신하의 근심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데 있으므로, “오른손으로 원을 그리고 왼손으로 네모를 그리면, 둘 다 이룰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지극한 다스림의 나라에서는, 군주는 북채와 같고 신하는 북과 같으며, 기술은 수레와 같고 일은 말과 같다. 따라서 사람에게 남는 힘이 있어야 응하기 쉽고, 기술에 남는 재주가 있어야 일을 처리하기에 편리하다. 공을 세우려는 자는 힘이 부족하고, 가까이 지내는 자는 신뢰가 부족하며, 이름을 이루려는 자는 세(勢)가 부족하다. 가까운 자는 이미 친밀한데 먼 곳의 사람들이 귀부하지 않는다면, 이는 이름이 실질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인이라도 덕은 요·순과 같고 행실은 백이(伯夷)와 같더라도 그 지위가 세상에 실려 있지 않으면 공을 세울 수 없고 이름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옛날에 공명을 이룰 수 있었던 자는, 뭇사람들이 힘으로 돕고, 가까운 자들이 성심으로 결속하며, 먼 곳의 사람들이 명성으로 칭송하고, 존귀한 자가 세(勢)로써 받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았으므로 태산 같은 공이 국가에 길이 서고, 해와 달 같은 이름이 천지에 오래도록 드러났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임금이 남면(南面)하여 명성을 지키고, 순임금이 북면(北面)하여 공을 바쳤던 까닭이다.
[주석]
3) 堯之所以南面而守名,舜之所以北面而效功也(요지소이남면이수명 순지소이북면이효공야): 고대 중국에서 군주는 남쪽을 향해(南面) 앉아 신하들의 조회를 받았고, 신하는 북쪽을 향해(北面) 서서 군주에게 보고했다. 따라서 ‘남면’은 군주의 지위를, ‘북면’은 신하의 지위를 상징한다. 이 구절은 요임금은 이미 군주의 ‘세(勢)’를 확보하여 그 명성을 지켰고, 순임금은 신하의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과 공적을 보임으로써 훗날 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각자의 지위(位)에 맞는 역할과 공(功)이 있음을 보여준다.
《대체(大體)》
【1】
[원문]
古之全大體者:望天地,觀江海,因山谷,日月所照,四時所行,雲布風動;不以智累心,不以私累己;寄治亂於法術,託是非於賞罰,屬輕重於權衡;不逆天理,不傷情性;不吹毛而求小疵,不洗垢而察難知;不引繩之外,不推繩之內;不急法之外,不緩法之內;守成理,因自然;禍福生乎道法而不出乎愛惡,榮辱之責在乎己,而不在乎人。故至安之世,法如朝露,純樸不散;心無結怨,口無煩言。故車馬不疲弊於遠路,旌旗不亂於大澤,萬民不失命於寇戎,雄駿不創壽於旗幢;豪傑不著名於圖書,不錄功於盤盂,記年之牒空虛。故曰:利莫長於簡,福莫久於安。使匠石以千歲之壽操鉤,視規矩,舉繩墨,而正太山;使賁、育帶干將而齊萬民;雖盡力於功,極盛於壽,太山不正,民不能齊。故曰:古之牧天下者,不使匠石極巧以敗太山之體,不使賁、育盡威以傷萬民之性。因道全法,君子樂而大姦止;澹然閒靜,因天命,持大體。故使人無離法之罪,魚無失水之禍。如此,故天下少不可。
[번역문]
옛날에 대체(大體)를 온전히 한 자는, 천지를 바라보고 강과 바다를 관찰하며 산과 계곡에 의지하고, 해와 달이 비추는 바와 사계절이 운행하는 바와 구름이 펴지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을 따랐다.⁴⁾ 지혜로써 마음에 누를 끼치지 않고, 사사로움으로써 자신에게 누를 끼치지 않았다. 다스려짐과 어지러워짐을 법술(法術)에 맡기고, 옳고 그름을 상벌(賞罰)에 맡기며, 가볍고 무거움을 권형(權衡)에 맡겼다.⁵⁾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사람의 본성(情性)을 해치지 않았다. 털을 불어가며 작은 흠을 찾지 않았고, 때를 씻어가며 알기 어려운 것을 살피지 않았다. 먹줄 밖으로 당기지 않고, 먹줄 안으로 밀지 않았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급하게 굴지 않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느슨하게 굴지 않았다. 이미 이루어진 이치를 지키고 자연스러움을 따랐다. 화와 복은 도(道)와 법(法)에서 생겨날 뿐 사랑과 미움(愛惡)에서 나오지 않으며, 영광과 치욕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을 뿐 남에게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극히 안정된 세상에서는 법이 아침 이슬과 같아 순박함이 흩어지지 않고, 마음에는 맺힌 원망이 없으며 입에는 번거로운 말이 없다. 그리하여 수레와 말은 먼 길에 지치지 않고, 깃발은 넓은 못에서 어지러이 나부끼지 않으며, 만백성은 도적과 오랑캐에게 목숨을 잃지 않고, 뛰어난 준마는 군기(軍旗) 아래서 제 수명을 다치지 않는다. 호걸은 도서(圖書)에 이름이 드러나지 않고, 공적이 쟁반과 대야에 기록되지 않으며, 연대를 기록하는 서판은 텅 비어 있다.⁶⁾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로움은 간결함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복은 편안함보다 더 오래가는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장석(匠石)으로 하여금 천 년의 수명을 가지고 갈고리를 잡고 규구(規矩)를 보며 먹줄을 들고 태산(太山)을 바로잡게 하고, 분(賁)과 육(育)으로 하여금 간장(干將)을 차고 만백성을 가지런히 하게 한다면, 비록 공(功)에 힘을 다하고 수명이 지극히 길다 한들 태산은 바로 서지 못하고 백성은 가지런해질 수 없다.⁷⁾ 그러므로 말하기를, “옛날에 천하를 다스리던 자는, 장석으로 하여금 기교를 다하여 태산의 본체를 무너뜨리게 하지 않았고, 분과 육으로 하여금 위엄을 다하여 만백성의 본성을 해치게 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도(道)에 의거하여 법(法)을 온전히 하면 군자는 즐거워하고 큰 간신은 그치며, 담담하고 한가하며 고요히 천명(天命)을 따르고 대체(大體)를 지닌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떠나는 죄가 없게 하고, 물고기로 하여금 물을 잃는 재앙이 없게 한다. 이와 같으므로 천하에 불가능한 일이 거의 없게 되는 것이다.
[주석]
4) 大體(대체): ‘큰 틀’, ‘전체적인 골격’을 의미한다. 이는 사소하고 지엽적인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는 근본 원리와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도가(道家)의 ‘도(道)’와 유사한 개념으로, 자연의 운행 원리처럼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통치 원리를 가리킨다.
5) 法術(법술), 賞罰(상벌), 權衡(권형): 모두 법가(法家)의 핵심적인 통치 도구이다. ‘법술’은 공개된 법률과 신하를 다루는 기술, ‘상벌’은 공과에 따른 보상과 처벌, ‘권형’은 공과를 재는 저울, 즉 객관적 기준을 의미한다. 군주는 자신의 주관적 판단(智, 私, 愛惡)을 배제하고 이러한 객관적 시스템에 통치를 맡겨야 함을 강조한다.
6) 豪傑不著名於圖書...記年之牒空虛(호걸부저명어도서...기년지첩공허): 지극히 안정된 세상, 즉 ‘무위(無爲)의 다스림’이 실현된 상태를 묘사한다. 전쟁이나 큰 사건이 없어 공을 세울 호걸도, 그 공을 기록할 일도 없으므로 역사 기록이 텅 비게 된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이는 노자(老子)가 말한 ‘최고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 존재조차 모르는 군주’라는 사상과 맞닿아 있다.
7) 匠石(장석), 賁(분)·育(육), 干將(간장): 장석은 전설적인 목수, 분과 육은 전설적인 용사, 간장은 춘추시대의 명검(名劍)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의 기술이나 힘, 무력이라도 자연의 거대한 본체(太山)나 만백성의 본성(性)과 같은 근본 질서를 인위적으로 바꾸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비유한다. 이는 인위적인 통치보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통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2】
[원문]
上不天則下不遍覆,心不地則物不畢載。太山不立好惡,故能成其高;江海不擇小助,故能成其富。故大人寄形於天地而萬物備,歷心於山海而國家富。上無忿怒之毒,下無伏怨之患,上下交撲,以道為舍。故長利積,大功立,名成於前,德垂於後,治之至也。
[번역문]
윗사람이 하늘과 같지 않으면 아랫사람을 두루 덮어주지 못하고, 마음이 땅과 같지 않으면 만물을 모두 실어주지 못한다. 태산은 좋고 싫음을 세우지 않으므로 그 높음을 이룰 수 있고, 강과 바다는 작은 도움을 가리지 않으므로 그 풍요로움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대인(大人)은 그 형체를 천지에 맡기므로 만물이 갖추어지고, 그 마음을 산과 바다처럼 두루 거치므로 국가가 부유해진다. 윗사람에게는 분노의 해독이 없고 아랫사람에게는 숨은 원망의 근심이 없으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소박하게 교류하고 도(道)로써 거처를 삼는다. 그러므로 장구한 이로움이 쌓이고 큰 공이 서며, 명성은 당대에 이루어지고 덕은 후세에 드리워지니, 이야말로 다스림의 지극함이다.
韓非子 《內儲說上》 번역 및 주석
원문-번역문
【원문 1】
內儲說上:
主之所用也七術,所察也六微。七術:一曰、眾端參觀,二曰、必罰明威,三曰、信賞盡能,四曰、一聽責下,五曰、疑詔詭使,六曰、挾知而問,七曰、倒言反事。此七者,主之所用也。
【번역문 1】
군주가 사용하는 것은 일곱 가지 술(術)이고, 살피는 것은 여섯 가지 은미(微)함이다. 칠술(七術)이란 첫째, 여러 단서를 종합하여 관찰함[眾端參觀]이고, 둘째, 반드시 벌하여 위엄을 분명히 함[必罰明威]이며, 셋째, 신뢰할 수 있는 상으로 능력을 다하게 함[信賞盡能]이고, 넷째, 보고를 일원화하여 그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물음[一聽責下]이며, 다섯째, 의심스러운 명령을 내리고 거짓 사신을 보냄[疑詔詭使]이고, 여섯째, 정보를 쥐고서 질문함[挾知而問]이며, 일곱째, 말을 거꾸로 하고 일을 반대로 하여 시험함[倒言反事]이다. 이 일곱 가지는 군주가 사용하는 것이다.
【주석 1】
- 七術(칠술): 군주가 신하를 제어하고 통치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곱 가지 구체적인 기술. 이 편의 핵심 주제이다.
- 六微(육미): 군주가 신하의 간사함을 간파하기 위해 살펴야 할 여섯 가지 은미한 징후. 『내저설(內儲說) 하(下)』 편에서 상세히 다룬다.
- 眾端參觀(중단참관): 여러 경로에서 들어온 정보나 단서들을 서로 비교하고 대조하여 실정을 파악하는 방법.
- 必罰明威(필벌명위): 공정하고 예외 없는 처벌을 통해 법의 권위와 군주의 위엄을 명확히 세우는 것.
- 信賞盡能(신상진능): 약속한 상을 반드시 내려 신뢰를 쌓음으로써 신하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유도하는 것.
- 一聽責下(일청책하): 보고 체계를 일원화하여 한 사람의 보고만을 듣고, 그 보고 내용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그에게 묻는 방식. 이를 통해 신하들이 서로 견제하거나 군주를 속이는 것을 방지한다.
- 疑詔詭使(의조궤사): 일부러 의심스러운 명령을 내리거나 거짓된 임무를 맡은 사신을 보내 신하들의 반응을 떠보고 충성심을 시험하는 방법.
- 挾知而問(협지이문): 이미 정답이나 실상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모르는 척 신하에게 질문하여 그의 정직성이나 능력을 시험하는 방법.
- 倒言反事(도언반사): 일부러 사실과 반대되는 말을 하거나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여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 간사한 자를 가려내는 방법.
【원문 2】
觀聽不參則誠不聞,聽有門戶則臣壅塞。其說在侏儒之夢見灶,哀公之稱莫眾而迷。故齊人見河伯,與惠子之言亡其半也。其患在豎牛之餓叔孫,而江乙之說荊俗也。嗣公欲治不知,故使有敵。是以明主推積鐵之類,而察一市之患。
【번역문 2】
보고 듣는 것을 여러 방면으로 비교 검토하지 않으면 진실을 들을 수 없고, 정보를 듣는 창구가 정해져 있으면 신하들에 의해 군주의 눈과 귀가 가려진다.¹⁾ 그 설화는 난쟁이가 꿈에서 부뚜막을 본 이야기,²⁾ 노나라 애공이 사람이 많을수록 미혹된다고 말한 이야기에 있다.³⁾ 또한 제나라 사람이 하백을 보았다는 이야기,⁴⁾ 혜자가 자신의 주장의 절반을 잃었다는 이야기와 같다.⁵⁾ 그 폐단은豎牛가 숙손을 굶겨 죽인 일⁶⁾과 강을이 초나라의 풍속에 대해 말한 일에 있다.⁷⁾ 위나라 사공은 다스리면서도 모르는 체하고자 하였기에 일부러 적수를 두었다.⁸⁾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쇠를 쌓는 비유를 미루어 생각하고,⁹⁾ 하나의 시장에서 생기는 폐단을 살피는 것이다.¹⁰⁾
【주석 2】
- 壅塞(옹색): '막히고 통하지 않음'을 의미. 여기서는 특정 신하가 정보 경로를 독점하여 군주가 올바른 정보를 얻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 侏儒之夢見灶(주유지몽견조): 위나라 영공 때 한 난쟁이가 총신 미자하(彌子瑕)가 군주의 눈과 귀를 막고 있음을 부뚜막에 빗대어 풍자한 고사. (「설일(說一)」에 상세히 나옴)
- 哀公之稱莫眾而迷(애공지칭막중이미): 노나라 애공이 "사람이 많으면 미혹된다"는 속담에 대해 묻자, 공자와 안자가 "여러 신하의 말이 한 사람(계손씨)의 사사로운 의견과 같으니, 이는 한 사람의 말만 듣는 것과 같아 혼란에 빠지는 것"이라고 답한 고사. (「설일(說一)」에 상세히 나옴)
- 齊人見河伯(제인견하백): 제나라 사람이 강에서 큰 물고기를 보고는 하백(河伯, 황하의 신)이라고 왕을 속인 고사. 이는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을 비판하는 예이다. (「설일(說一)」에 상세히 나옴)
- 惠子之言亡其半也(혜자지언망기반야): 혜시(惠施)가 위나라 혜왕에게 외교 정책을 진언할 때, 모든 신하가 장의(張儀)의 편을 들자 "모두가 옳다고 하니, 왕께서는 이미 판단의 절반을 잃으신 것"이라고 설파한 고사. (「설일(說一)」에 상세히 나옴)
- 豎牛之餓叔孫(수우지아숙손): 노나라의 권신 숙손(叔孫)이 총애하던 신하 수우(豎牛)의 이간질에 속아 두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결국 수우에게 굶어 죽게 된 고사. 이는 한 사람의 말만 믿었을 때의 폐해를 보여준다. (「설일(說一)」에 상세히 나옴)
- 江乙之說荊俗也(강을지설형속야): 강을(江乙)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이 나라의 풍속은 남의 장점은 가리고 단점은 말하지 않는다는데 사실입니까?"라고 물어, 정보가 차단된 사회의 위험성을 지적한 고사. (「설일(說一)」에 상세히 나옴)
- 嗣公欲治不知,故使有敵(사공욕치부지, 고사유적): 위나라 사공(嗣公)이 총신들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 일부러 그들의 경쟁자를 등용하여 서로 견제하게 만든 일. 한비자는 이 방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설일(說一)」에 상세히 나옴)
- 積鐵之類(적철지류): 화살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올지 모르면 쇠로 방 전체를 감싸 대비해야 하듯, 신하들의 간사함에 대비하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보를 다각도로 수집해야 한다는 비유. (「설일(說一)」에 상세히 나옴)
- 一市之患(일시지환):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도 세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 고사를 가리킨다. 이는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 진실성을 반드시 교차 검증해야 함을 의미한다. (「설일(說一)」에 상세히 나옴)
【원문 3】
參觀一
【번역문 3】
중단참관(眾端參觀)의 첫 번째.
【원문 4】
愛多者則法不立,威寡者則下侵上。是以刑罰不必則禁令不行。其說在董子之行石邑,與子產之教游吉也。故仲尼說隕霜,而殷法刑棄灰;將行去樂池,而公孫鞅重輕罪。是以麗水之金不守,而積澤之火不救。成歡以太仁弱齊國,卜皮以慈惠亡魏王。管仲知之,故斷死人。嗣公知之,故買胥靡。
【번역문 4】
총애하는 자가 많으면 법이 서지 않고, 위엄이 적으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침범한다. 이 때문에 형벌이 반드시 시행되지 않으면 금령이 행해지지 않는다. 그 설화는 동자(董子)가 석읍(石邑)을 다스린 이야기¹⁾와 자산이 유길을 가르친 이야기에 있다.²⁾ 그러므로 중니(仲尼)는 서리가 내리지 않은 일을 설명했고,³⁾ 은나라 법은 재를 버린 자를 처벌했으며,⁴⁾ 장행(將行)은 악지(樂池)를 떠났고,⁵⁾ 공손앙은 가벼운 죄를 무겁게 다스렸다.⁶⁾ 이 때문에 여수(麗水)의 금은 지켜지지 못했고,⁷⁾ 적택(積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⁸⁾ 성환(成歡)은 지나친 인자함으로 제나라를 약하게 만들었고,⁹⁾ 복피(卜皮)는 자애와 은혜로 위나라 왕을 망하게 하였다.¹⁰⁾ 관중은 이를 알았기에 죽은 사람을 벌했고,¹¹⁾ 사공(嗣公)은 이를 알았기에 서미(胥靡)를 사들였다.¹²⁾
【주석 4】
- 董子之行石邑(동자지행석읍): 조나라 상지수(上地守) 동알우(董閼于)가 석읍(石邑)의 험준한 골짜기를 보고, 법을 어기는 것을 이 골짜기에 들어가는 것처럼 반드시 죽는 일로 만들면 아무도 법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고사.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 子產之教游吉也(자산지교유길야): 정나라 재상 자산(子產)이 죽기 전 후임자인 유길(游吉)에게 "불은 엄하기에 사람들이 좀처럼 데지 않지만, 물은 부드러워 많은 사람이 빠져 죽는다"며 엄격하게 다스릴 것을 당부한 고사.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 仲尼說隕霜(중니설운상): 공자(仲尼)가 "겨울에 서리가 내려 콩을 죽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 죽지 않은 것이니 하늘의 도가 무너진 것"이라고 설명하며 상벌의 필연성을 강조한 고사.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 殷法刑棄灰(은법형기회): 은나라 법에서 길에 재를 버리는 자의 손을 자르는 중벌을 내린 것. 이는 사소한 무질서가 큰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 將行去樂池(장행거악지): 중산국의 재상 악지(樂池)가 사신으로 보낸 장행(將行)이 임무 수행에 실패하자, 장행이 "저에게 상벌의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항변한 고사. 이는 권한 없는 책임의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 公孫鞅重輕罪(공손앙중경죄): 진나라의 공손앙(상앙)이 가벼운 죄를 무겁게 처벌하여, 사람들이 작은 잘못조차 저지르지 않게 함으로써 큰 죄가 발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으려 한 정책.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 麗水之金不守(여수지금불수): 여수(麗水)에서 나는 금을 훔치는 자를 시장에서 책형(辜磔)에 처하는 극형을 내려도 도둑질이 그치지 않았으니, 이는 처벌이 아무리 무거워도 '반드시 잡힌다'는 필연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예시.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 積澤之火不救(적택지화불구): 노나라 적택(積澤)에 불이 났을 때, 불을 끄는 데는 상이 없고 짐승을 쫓는 데는 벌이 없자 사람들이 모두 짐승만 쫓아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고사. 상벌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 成歡以太仁弱齊國(성환이태인약제국): 성환(成歡)이 제나라 왕에게 "왕께서 총신인 설공(薛公)에게 지나치게 인자하고 왕족인 제전(諸田)에게 지나치게 관대하지 못하여, 대신의 권위가 서지 않고 왕족이 법을 어겨 나라가 약해졌다"고 간언한 고사.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 卜皮以慈惠亡魏王(복피이자혜망위왕): 위나라 혜왕이 자신의 평판을 묻자 복피(卜皮)가 "왕께서는 자애롭고 은혜롭다는 평판을 듣지만, 이 때문에 공 없는 자에게 상을 주고 죄 있는 자를 벌하지 않아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답한 고사.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 管仲知之,故斷死人(관중지지, 고단사인): 제나라 환공 때 후장(厚葬) 풍습이 심해지자, 관중이 "규정을 어긴 관곽은 그 시신을 베고 상주를 처벌한다"는 법을 만들어 풍습을 바로잡은 일. 죽은 자에게조차 법을 적용하는 엄격함을 보여준다.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 嗣公知之,故買胥靡(사공지지, 고매서미): 위나라 사공(嗣公)이 위(魏)나라로 도망간 죄수(胥靡) 한 명을 되찾기 위해 도시(左氏) 하나를 내주려 한 고사. 이는 법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영토보다 중요함을 보여주는 예이다. (「설이(說二)」에 상세히 나옴)
【원문 5】
必罰二
【번역문 5】
필벌(必罰)의 두 번째.
【원문 6】
賞譽薄而謾者,下不用也,賞譽厚而信者下輕死。其說在文子稱若獸鹿。故越王焚宮室,而吳起倚車轅,李悝斷訟以射,宋崇門以毀死。句踐知之,故式怒蛙。昭侯知之,故藏弊褲。厚賞之使人為賁、諸也,婦人之拾蠶,漁者之握鱣,是以效之。
【번역문 6】
상과 명예가 박하고 거짓되면 아랫사람들이 힘써 일하지 않고, 상과 명예가 두텁고 신의가 있으면 아랫사람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긴다. 그 설화는 문자가 짐승이나 사슴과 같다고 칭한 이야기에 있다.¹⁾ 그러므로 월왕은 궁실을 불태웠고,²⁾ 오기는 수레의 채에 기댔으며,³⁾ 이회는 활쏘기로 소송을 판결했고,⁴⁾ 송나라 숭문에서는 상심하여 죽는 일이 있었다.⁵⁾ 구천은 이를 알았기에 성난 개구리에게 예를 표했고,⁶⁾ 소후는 이를 알았기에 해진 바지를 감추어 두었다.⁷⁾ 두터운 상이 사람을 맹분이나 전저와 같은 용사로 만드니,⁸⁾ 부인이 누에를 줍고 어부가 장어를 잡는 것이⁹⁾ 그 효험을 증명하는 것이다.
【주석 6】
- 文子稱若獸鹿(문자칭약수록): 제나라 문자(文子)가 왕에게 "신하란 짐승이나 사슴과 같아서 오직 풀(이익)이 있는 곳으로 나아갈 뿐"이라고 말하며, 상벌이라는 '이로운 기물'을 군주가 꽉 쥐고 있어야 함을 강조한 고사. (「설삼(說三)」에 상세히 나옴)
- 越王焚宮室(월왕분궁실):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치기 전, 신상필벌의 원칙이 잘 서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궁실에 불을 지르고, 목숨을 걸고 불을 끄는 자에게 큰 상을 내걸어 병사들의 사기를 확인한 고사. (「설삼(說三)」에 상세히 나옴)
- 吳起倚車轅(오기의차원): 오기(吳起)가 위나라 서하(西河)의 태수로 있을 때, 수레의 긴 채(車轅)를 북문에서 남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큰 상을 내려 신뢰를 쌓은 뒤, 이를 바탕으로 병사들을 모집하여 작은 요새를 쉽게 함락시킨 고사. '이목지신(移木之信)' 고사와 유사하다. (「설삼(說三)」에 상세히 나옴)
- 李悝斷訟以射(이회단송이사): 이회(李悝)가 위나라 상지(上地)의 태수로 있을 때, 백성들의 활쏘기 실력을 늘리기 위해 소송 당사자들에게 활을 쏘게 하여 과녁을 맞힌 자가 이기게 한 고사. 이로 인해 백성들이 밤낮으로 활쏘기를 익혀 진(秦)나라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설삼(說三)」에 상세히 나옴)
- 宋崇門以毀死(송숭문이훼사): 송나라 숭문(崇門)의 한 주민이 부모상에 몸을 심하게 상하자, 군주가 이를 효심 깊다 여겨 벼슬을 내렸다. 그러자 이듬해부터 상으로 몸을 상하여 죽는 자가 열 명이 넘었다는 고사. 이는 상이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설삼(說三)」에 상세히 나옴)
- 句踐知之,故式怒蛙(구천지지, 고식노와): 월왕 구천이 길에서 성난 개구리를 보고 그 기세를 칭찬하며 수레 위에서 예를 표하자, 이 소문을 들은 선비들이 "미물인 개구리도 기개가 있으면 왕께서 예를 표하는데, 하물며 용기 있는 선비이랴"라며 왕에게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선 고사. 명예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됨을 보여준다. (「설삼(說三)」에 상세히 나옴)
- 昭侯知之,故藏弊褲(소후지지, 고장폐고): 한나라 소후(昭侯)가 해진 바지를 버리지 않고 보관하며 "공이 있는 자에게 주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 고사. 군주의 작은 언행조차 신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신중히 행동한 예이다. (「설삼(說三)」에 상세히 나옴)
- 賁、諸(분, 저): 맹분(孟賁)과 전저(專諸). 춘추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용사.
- 婦人之拾蠶,漁者之握鱣(부인지습잠, 어자지악전): 뱀처럼 생긴 장어(鱣)나 벌레처럼 생긴 누에(蠶)는 징그럽지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어부는 장어를 잡고 부인은 누에를 줍는다는 비유. 이익 앞에서는 혐오감도 잊게 된다는 의미로, 신상(信賞)의 효과를 강조한다. (「설삼(說三)」에 상세히 나옴)
【원문 7】
賞譽三
【번역문 7】
상예(賞譽)의 세 번째.
【원문 8】
一聽則智愚不分,責下則人臣不參。其說在索鄭與吹竽。其患在申子之以趙紹、韓沓為嘗試。故公子氾議割河東,而應侯謀弛上黨。
【번역문 8】
보고를 일원화하면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가 구분되지 않고,¹⁾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물으면 신하들이 (군주를 속이기 위해) 서로 공모하지 못한다. 그 설화는 정나라를 요구한 이야기²⁾와 피리를 분 이야기에 있다.³⁾ 그 폐단은 신자가 조소와 한답을 시켜 시험해 본 일에 있다.⁴⁾ 그러므로 공자 범은 하동을 떼어주는 문제를 논의했고,⁵⁾ 응후는 상당을 풀어주는 계책을 꾸몄다.⁶⁾
【주석 8】
- 一聽則智愚不分(일청즉지우불분): 여기서 '一聽'은 '여러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들으면 잘하는 자와 못하는 자를 구분할 수 없다는 뜻. 아래 '吹竽(취우)' 고사와 연결된다.
- 索鄭(색정): 위(魏)나라가 정(鄭)나라를 병합하려 하자, 정나라 공자가 "정나라가 본래 위나라 땅이라 합칠 수 있다면, 위나라도 본래 정나라 땅이었으니 우리가 합병하겠다"고 역으로 제안하여 위나라의 요구를 물리친 고사. (「설사(說四)」에 상세히 나옴)
- 吹竽(취우): 제나라 선왕이 300명의 합주를 좋아하여 실력 없는 남곽 처사가 섞여 들어가 녹을 타 먹다가, 왕이 바뀌어 독주를 시키자 도망쳤다는 고사. 이는 집단 속에 숨은 무능력자를 가려내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설사(說四)」에 상세히 나옴)
- 申子之以趙紹、韓沓為嘗試(신자지이조소, 한답위상시): 한나라의 재상 신자(申子, 신불해)가 조나라의 군대 파병 요청을 군주에게 건의하기에 앞서, 자신의 측근인 조소(趙紹)와 한답(韓沓)을 시켜 군주의 의중을 떠보게 한 일. 이는 신하가 군주를 시험하는 위험한 행위로 묘사된다. (「설사(說四)」에 상세히 나옴)
- 公子氾議割河東(공자범의할하동): 진(秦)나라가 삼국의 공격을 받자, 공자 범(氾)이 "땅을 떼어주고 화친해도 후회하고, 화친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니, 차라리 땅을 잃고 후회하는 것이 나라가 위태로워진 뒤에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고 조언한 고사. (「설사(說四)」에 상세히 나옴)
- 應侯謀弛上黨(응후모치상당): 진(秦)나라의 재상 응후(應侯, 범수)가 조나라를 굴복시키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인 상당(上黨) 땅을 조나라에 넘겨주어 방심하게 한 뒤 공격하자고 제안한 고사. (「설사(說四)」에 상세히 나옴)
【원문 9】
一聽四
【번역문 9】
일청(一聽)의 네 번째.
【원문 10】
數見久待而不任,姦則鹿散。使人問他則不鬻私。是以龐敬還公大夫,而戴讙詔視轀車。周主亡玉簪,商太宰論牛矢。
【번역문 10】
자주 만나고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면서도 임무를 맡기지 않으면, 간사한 자는 사슴처럼 흩어져 달아난다. 다른 사람을 시켜 다른 일을 묻게 하면 사사로운 정을 팔지 못한다. 이 때문에 방경은 공대부를 돌려보냈고,¹⁾ 대환은 온거를 살펴보라고 명했으며,²⁾ 주나라 군주는 옥비녀를 잃어버렸고,³⁾ 상나라 태재는 쇠똥에 대해 논했다.⁴⁾
【주석 10】
- 龐敬還公大夫(방경환공대부): 현령 방경(龐敬)이 시장에 심부름꾼을 보낸 뒤, 일부러 공대부(公大夫)를 불렀다가 아무 말 없이 돌려보냈다. 이를 본 심부름꾼은 현령과 공대부 사이에 밀약이 있다고 의심하여 감히 부정을 저지르지 못했다는 고사. (「설오(說五)」에 상세히 나옴)
- 戴讙詔視轀車(대환조시온거): 송나라 태재 대환(戴驩)이 "밤중에 온거(轀車, 죄인을 실어 나르던 수레)가 이사(李史)의 집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고 거짓 정보를 흘려 감시하게 하자, 실제로는 온거가 아니라 비단 상자를 뇌물로 받은 사실이 드러난 고사. (「설오(說五)」에 상세히 나옴)
- 周主亡玉簪(주주망옥잠): 주나라 군주가 일부러 옥비녀를 잃어버렸다고 하고 관리가 찾지 못하게 한 뒤, 자신이 직접 집 안에서 찾아내어 관리들의 무능과 태만을 질책하고 기강을 잡은 고사. (「설오(說五)」에 상세히 나옴)
- 商太宰論牛矢(상태재론우시): 상나라 태재가 시장에 다녀온 부하에게 본 것을 묻고 "남문 밖에 소가 많았다"는 답을 들은 뒤, 시장 관리에게 "어찌하여 남문 밖에 쇠똥이 그리 많으냐"고 질책하여, 자신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보이게 한 고사. (「설오(說五)」에 상세히 나옴)
【원문 11】
詭使五
【번역문 11】
궤사(詭使)의 다섯 번째.
【원문 12】
挾智而問,則不智者至;深智一物,眾隱皆變。其說在昭侯之握一爪也。故必南門而三鄉得。周主索曲杖而群臣懼,卜皮事庶子,西門豹詳遺轄。
【번역문 12】
지식을 쥐고서 질문하면, 지혜롭지 못한 자의 실상이 드러나고, 한 가지 사물을 깊이 알면 숨겨진 모든 것들이 드러난다. 그 설화는 소후가 손톱 하나를 쥔 이야기에 있다.¹⁾ 그러므로 반드시 남문을 통해 세 고을의 정보를 얻었고,²⁾ 주나라 군주가 굽은 지팡이를 찾자 여러 신하가 두려워했으며,³⁾ 복피는 서자를 섬겼고,⁴⁾ 서문표는 수레바퀴 빗장을 잃어버린 체했다.⁵⁾
【주석 12】
- 昭侯之握一爪也(소후지악일조야): 한나라 소후(昭侯)가 손톱 하나를 일부러 감추고는 잃어버렸다고 하자, 측근이 자신의 손톱을 깎아 바쳤다. 소후는 이를 통해 측근의 정직성을 시험했다. (「설육(說六)」에 상세히 나옴)
- 必南門而三鄉得(필남문이삼향득): 한나라 소후가 사신에게 "남문 밖에서 누런 송아지가 밭의 싹을 뜯어 먹는 것을 보았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근거로 세 고을의 관리들에게 소 단속 실태를 보고하게 하여 관리들의 태만함을 적발하고 기강을 잡은 고사. (「설육(說六)」에 상세히 나옴)
- 周主索曲杖而群臣懼(주주색곡장 이군신구): 주나라 군주가 일부러 구하기 힘든 '굽은 지팡이'를 찾아오라고 명한 뒤, 관리들이 찾지 못하자 자신이 쉽게 찾아내어 관리들의 무능을 질책한 고사. (「설육(說六)」에 상세히 나옴)
- 卜皮事庶子(복피사서자): 현령 복피(卜皮)가 부패한 어사(御史)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자신의 어린 서자(庶子)를 시켜 어사의 애첩에게 접근하게 하여 정보를 알아낸 고사. (「설육(說六)」에 상세히 나옴)
- 西門豹詳遺轄(서문표상유할): 업(鄴)의 현령 서문표(西門豹)가 일부러 자기 수레의 빗장(轄)을 잃어버린 척하고는, 관리들이 찾지 못하자 자신이 직접 찾아내어 관리들을 통제한 고사. (「설육(說六)」에 상세히 나옴)
【원문 13】
挾智六
【번역문 13】
협지(挾智)의 여섯 번째.
【원문 14】
倒言反事以嘗所疑則姦情得。故陽山謾樛豎,淖齒為秦使,齊人欲為亂,子之以白馬,子產離訟者,嗣公過關市。
【번역문 14】
말을 거꾸로 하고 일을 반대로 하여 의심스러운 바를 시험하면 간사한 실정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양산군은 규수를 속였고,¹⁾ 요치는 진나라 사신 행세를 했으며,²⁾ 제나라 사람은 반란을 일으키려 했고,³⁾ 자지는 흰 말을 이용했으며,⁴⁾ 자산은 소송 당사자들을 떼어놓았고,⁵⁾ 사공은 관문을 지나는 시장 사람을 이용했다.⁶⁾
【주석 14】
- 陽山謾樛豎(양산만규수): 위나라 재상 양산군(陽山君)이 왕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말을 듣고, 총애하는 신하 규수(樛豎)를 일부러 모함하여 왕의 진짜 의중을 떠본 고사. (「설칠(說七)」에 상세히 나옴)
- 淖齒為秦使(요치위진사): 요치(淖齒)가 제나라 왕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진(秦)나라 사신인 척 행세하여 왕의 본심을 알아낸 고사. (「설칠(說七)」에 상세히 나옴)
- 齊人欲為亂(제인욕위란): 제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려던 자가 왕이 눈치챌 것을 두려워하여, 일부러 아끼는 사람을 내쫓는 척하여 왕을 속이려 한 고사. (「설칠(說七)」에 상세히 나옴)
- 子之以白馬(자지이백마): 연나라 재상 자지(子之)가 앉아서 "문밖으로 나간 것이 어찌 흰 말이냐?"라고 거짓말을 하여, 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답하는 자와 직접 확인하고 오는 자를 구분하여 측근의 정직성을 시험한 고사. (「설칠(說七)」에 상세히 나옴)
- 子產離訟者(자산이송자): 정나라 재상 자산(子產)이 소송 당사자들을 서로 만나지 못하게 격리한 뒤, 각자의 주장을 반대로 전해주어 그 반응을 보고 진실을 가려낸 고사. (「설칠(說七)」에 상세히 나옴)
- 嗣公過關市(사공과관시): 위나라 사공(嗣公)이 어떤 사람을 나그네로 위장시켜 관문을 통과하게 한 뒤, 그가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통과한 사실을 확인하고 해당 관리를 질책하여 기강을 잡은 고사. (「설칠(說七)」에 상세히 나옴)
【원문 15】
倒言七
【번역문 15】
도언(倒言)의 일곱 번째.
【원문 16】
右經
【번역문 16】
이상은 경(經)이다.¹⁾
【주석 16】
- 經(경): 원리 또는 강령. 앞서 제시된 칠술(七術)의 원칙과 그에 해당하는 간략한 사례 목록을 '경'으로 규정하고, 뒤따를 상세한 설화 부분인 '설(說)'과 구분하는 부분이다.
【원문 17】
說一
【번역문 17】
설(說)의 첫 번째.
【원문 18】
衛靈公之時,彌子瑕有寵,專於衛國,侏儒有見公者曰:「臣之夢踐矣。」公曰:「何夢?」對曰:「夢見灶,為見公也。」公怒曰:「吾聞見人主者夢見日,奚為見寡人而夢見灶?」對曰:「夫日兼燭天下,一物不能當也。人君兼燭一國,一人不能壅也,故將見人主者夢見日。夫灶一人煬焉,則後人無從見矣。今或者一人、有煬君者乎?則臣雖夢見灶,不亦可乎!」
【번역문 18】
위나라 영공(靈公) 시절에 미자하(彌子瑕)가 총애를 받아 위나라의 권력을 독점하였다. 한 난쟁이가 영공을 뵙고 말하기를, "신의 꿈이 실현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무슨 꿈인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부뚜막을 보는 꿈을 꾸었는데, 공을 뵙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 군주를 뵈려는 자는 해를 꿈꾼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과인을 보면서 부뚜막을 꿈꾸었는가?"라고 하였다. 난쟁이가 대답하기를, "무릇 해는 천하를 두루 비추니, 하나의 사물도 그것을 가릴 수 없습니다. 군주께서는 한 나라를 두루 비추시니, 한 사람이 그 앞을 가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장차 군주를 뵈려는 자는 해를 꿈꾸는 것입니다. 무릇 부뚜막은 한 사람이 그 앞에서 불을 쬐면 뒷사람은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혹시 한 사람이 군주 앞에서 불을 쬐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신이 비록 부뚜막을 꿈꾸었다 한들 또한 괜찮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19】
魯哀公問於孔子曰:「鄙諺曰:莫眾而迷。今寡人舉事,與群臣慮之,而國愈亂,其故何也?」孔子對曰:「明主之問臣,一人知之,一人不知也。如是者,明主在上,群臣直議於下。今群臣無不一辭同軌乎季孫者,舉魯國盡化為一,君雖問境內之人,猶不免於亂也。」
【번역문 19】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묻기를, "속담에 이르기를, '여럿이면 미혹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과인이 일을 일으킬 때 여러 신하와 함께 그것을 헤아리는데도 나라가 더욱 혼란스러워지니,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라고 하였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현명한 군주가 신하에게 물을 때에는, 어떤 사람은 그것을 알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모릅니다. 이와 같아야 현명한 군주가 위에 있고 신하들은 아래에서 거리낌 없이 논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신하들은 모두 계손씨(季孫氏)와 말을 하나로 하고 행동을 같이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¹⁾ 온 노나라가 모두 하나로 변해버렸습니다. 군주께서 비록 나라 안의 모든 사람에게 물으신다 해도, 혼란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9】
- 季孫氏(계손씨): 노나라의 권력을 장악했던 삼환(三桓) 중 가장 세력이 강했던 가문. 당시 애공은 허수아비 군주였고, 국정은 사실상 계손씨가 좌지우지했다. 신하들이 모두 계손씨의 눈치만 보며 같은 말만 하니, 여러 사람에게 물어도 결국 한 사람의 의견만 듣는 셈이라는 뜻이다.
【원문 20】
一曰。晏子聘魯,哀公問曰:「語曰:莫三人而迷。今寡人與一國慮之,魯不免於亂何也?」晏子曰:「古之所謂莫三人而迷者,一人失之,二人得之,三人足以為眾矣,故曰莫三人而迷。今魯國之群臣以千百數,一言於季氏之私,人數非不眾,所言者一人也,安得三哉?」
【번역문 20】
다른 이야기가 있다. 안자(晏子)가 노나라에 사신으로 가자 애공이 묻기를, "속담에 '세 사람이면 미혹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과인은 한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헤아리는데도 노나라가 혼란을 면치 못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안자가 말하기를, "옛날에 이른바 '세 사람이면 미혹되지 않는다'는 것은, 한 사람은 틀리고 두 사람은 맞으면, 세 사람이면 여럿으로 충분하기에 '세 사람이면 미혹되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노나라의 신하들은 천백으로 헤아릴 만큼 많지만, 모두 계씨(季氏)의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한 가지 말만 하니, 사람의 수는 많지 않은 것이 아니나 말하는 바는 한 사람의 것일 뿐입니다. 어찌 세 사람이 있다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21】
齊人有謂齊王曰:「河伯,大神也。王何不試與之遇乎?臣請使王遇之。」乃為壇場大水之上,而與王立之焉。有閒,大魚動,因曰:「此河伯。」
【번역문 21】
제나라 사람 중에 제나라 왕에게 말하는 자가 있었다. "하백(河伯)은 위대한 신입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한번 그를 만나보려 하지 않으십니까? 신이 청컨대 왕께서 그를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에 큰 물가에 제단을 만들고 왕과 함께 그곳에 섰다. 잠시 후, 큰 물고기가 움직이자, 그가 말하기를, "이것이 하백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22】
張儀欲以秦、韓與魏之勢伐齊、荊,而惠施欲以齊、荊偃兵。二人爭之,群臣左右皆為張子言,而以攻齊、荊為利,而莫為惠子言,王果聽張子,而以惠子言為不可。攻齊、荊事已定,惠子入見,王言曰:「先生毋言矣。攻齊、荊之事果利矣,一國盡以為然。」惠子因說:「不可不察也。夫齊、荊之事也誠利,一國盡以為利,是何智者之眾也?攻齊、荊之事誠不利,一國盡以為利,何愚者之眾也?凡謀者,疑也。疑也者,誠疑,以為可者半,以為不可者半。今一國盡以為可,是王亡半也。劫主者固亡其半者也。」
【번역문 22】
장의(張儀)는 진(秦)·한(韓)·위(魏)의 세력으로 제(齊)·초(荊)를 치려 하였고, 혜시(惠施)는 제·초와 동맹하여 전쟁을 그만두게 하려 하였다. 두 사람이 이를 두고 다투었는데, 여러 신하와 측근들이 모두 장자(張子, 장의)의 편을 들어 제·초를 공격하는 것이 이롭다고 말하고 혜자(惠子, 혜시)의 편을 드는 자가 없었다. 왕은 과연 장자의 말을 듣고 혜자의 말은 불가하다 여겼다. 제·초를 공격하는 일이 이미 결정되자 혜자가 들어와 뵙자, 왕이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이제 말씀하지 마시오. 제·초를 공격하는 일은 과연 이로우니, 온 나라가 모두 그렇다고 여기오."라고 하였다. 혜자가 이내 설득하여 말하기를,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제·초를 공격하는 일이 참으로 이로워서 온 나라가 모두 이롭다고 여긴다면, 이는 어찌 그리 지혜로운 자가 많단 말입니까? 제·초를 공격하는 일이 참으로 이롭지 않은데도 온 나라가 모두 이롭다고 여긴다면, 이는 어찌 그리 어리석은 자가 많단 말입니까? 무릇 계책이란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의심스럽다는 것은, 참으로 의심스러워 옳다고 여기는 자가 절반이고, 옳지 않다고 여기는 자가 절반이어야 합니다. 지금 온 나라가 모두 옳다고 여기니, 이는 왕께서 (판단의) 절반을 잃으신 것입니다. 군주를 위협하는 자는 본래 그 절반을 잃게 하는 자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23】
叔孫相魯,貴而主斷。其所愛者曰豎牛,亦擅用叔孫之令。叔孫有子曰壬,豎牛妒而欲殺之,因與壬游於魯君所,魯君賜之玉環,壬拜受之而不敢佩,使豎牛請之叔孫,豎牛欺之曰:「吾已為爾請之矣,使爾佩之。」壬因佩之,豎牛因謂叔孫:「何不見壬於君乎?」叔孫曰:「孺子何足見也。」豎牛曰:「壬固已數見於君矣。君賜之玉環,壬已佩之矣。」叔孫召壬見之,而果佩之,叔孫怒而殺壬。壬兄曰丙,豎牛又妒而欲殺之,叔孫為丙鑄鐘,鐘成,丙不敢擊,使豎牛請之叔孫,豎牛不為請,又欺之曰:「吾已為爾請之矣。使爾擊之。」丙因擊之,叔孫聞之曰:「丙不請而擅擊鐘。」怒而逐之。丙出走齊,居一年,豎牛為謝叔孫,叔孫使豎牛召之,又不召而報之曰:「吾已召之矣,丙怒甚,不肯來。」叔孫大怒,使人殺之。二子已死,叔孫有病,豎牛因獨養之而去左右,不內人,曰:「叔孫不欲聞人聲。」因不食而餓殺。叔孫已死,豎牛因不發喪也,徙其府庫重寶空之而奔齊。夫聽所信之言,而子父為人僇,此不參之患也。
【번역문 23】
숙손(叔孫)이 노나라의 재상이 되어 존귀해지자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그가 아끼는 자로 수우(豎牛)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 또한 숙손의 명령을 제멋대로 사용했다. 숙손에게 임(壬)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수우가 그를 질투하여 죽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임과 함께 노나라 군주가 있는 곳에서 노는데, 노나라 군주가 그에게 옥고리를 하사하였다. 임은 절하고 그것을 받았으나 감히 차지 못하고, 수우를 시켜 숙손에게 허락을 청하게 하였다. 수우는 그를 속여 말하기를, "내가 이미 너를 위해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너에게 그것을 차라고 하셨다."라고 하였다. 임이 이에 그것을 차자, 수우는 숙손에게 가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임을 군주께 뵙게 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숙손이 말하기를, "어린아이가 어찌 뵐 만하겠는가."라고 하자, 수우가 말하기를, "임은 본래 이미 여러 번 군주를 뵈었습니다. 군주께서 옥고리를 하사하시어 임이 이미 그것을 차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숙손이 임을 불러 보니 과연 옥고리를 차고 있었다. 숙손은 노하여 임을 죽였다. 임의 형으로 병(丙)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수우가 또 그를 질투하여 죽이고자 하였다. 숙손이 병을 위해 종을 만들어 주었는데, 종이 완성되자 병은 감히 치지 못하고 수우를 시켜 숙손에게 허락을 청하게 하였다. 수우는 청하지 않고 또 그를 속여 말하기를, "내가 이미 너를 위해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너에게 그것을 치라고 하셨다."라고 하였다. 병이 이에 종을 치자, 숙손이 그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병이 청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종을 쳤다."라며 노하여 그를 내쫓았다. 병은 달아나 제나라로 가서 1년을 살았는데, 수우가 숙손을 대신하여 사과하겠다며, 숙손이 수우에게 그를 불러오게 하였다. 수우는 부르지 않고 돌아와 보고하기를, "제가 이미 그를 불렀으나, 병이 몹시 노하여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숙손은 크게 노하여 사람을 시켜 그를 죽였다. 두 아들이 이미 죽고 숙손이 병이 들자, 수우는 홀로 그를 돌보며 측근들을 물리치고 사람을 들여보내지 않으며 말하기를, "숙손께서는 사람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음식을 주지 않아 굶겨 죽였다. 숙손이 이미 죽자, 수우는 상(喪)을 발표하지 않고 그의 창고에 있는 귀한 보물들을 몽땅 옮겨 제나라로 달아났다. 무릇 믿는 자의 말만 듣다가 부자(父子)가 남에게 살해당하니, 이것이 여러 정보를 비교 검토하지 않은[不參] 데서 온 재앙이다.
【원문 24】
江乙為魏王使荊,謂荊王曰:「臣入王之境內,聞王之國俗曰:君子不蔽人之美,不言人之惡,誠有之乎?」王曰:「有之。」「然則若白公之亂,得庶無危乎!誠得如此,臣免死罪矣。」
【번역문 24】
강을(江乙)이 위(魏)나라 왕의 사신이 되어 초(荊)나라로 가서, 초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신이 왕의 국경 안으로 들어와, 왕의 나라 풍속이 '군자는 남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않고, 남의 악행을 말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진실로 그러합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그러하다."라고 답하자, 강을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만약 백공(白公)의 난¹⁾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거의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실로 이와 같다면, 신은 죽을죄를 면하게 될 것입니다."²⁾라고 하였다.
【주석 24】
- 白公之亂(백공지란): 춘추시대 초나라에서 왕자 승(勝), 즉 백공(白公)이 일으킨 반란. 이 반란으로 영윤(令尹)과 사마(司馬)가 살해당하는 등 큰 혼란이 있었다. 강을은 좋은 말만 하고 나쁜 말은 하지 않는 풍속이 계속되면, 이런 반란의 징후를 미리 알 수 없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 臣免死罪矣(신면사죄의): 직역하면 "신은 죽을죄를 면할 것입니다"이지만, 반어적인 표현이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초나라의 미래가 너무나 뻔히 보이니) 제가 굳이 외교적 조언을 하다가 미움을 사 죽을 일은 없겠습니다"라는 의미로, 초나라의 정보가 차단된 현실을 비꼬는 말이다.
【원문 25】
衛嗣君重如耳,愛世姬,而恐其皆因其愛重以壅己也,乃貴薄疑以敵如耳,尊魏姬以耦世姬,曰:「以是相參也。」嗣君知欲無壅,而未得其術也。夫不使賤議貴,下必坐上,而必待勢重之鈞也,而後敢相議,則是益樹壅塞之臣也。嗣君之壅乃始。
【번역문 25】
위나라 사군(嗣君)은 여이(如耳)를 중용하고 세희(世姬)를 총애하였는데, 그들이 모두 그 총애를 등에 업고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릴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박의(薄疑)를 귀하게 대우하여 여이의 적수가 되게 하고, 위희(魏姬)를 높여 세희의 짝이 되게 하며 말하기를, "이로써 서로를 견제하게 한다[相參]."라고 하였다. 사군은 정보가 막히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알았으나, 그 방법을 얻지는 못했다. 무릇 낮은 신분의 신하가 높은 신분의 신하를 논의하게 하지 않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죄를 고발하게 하지 않으면서, 반드시 세력이 대등해지기를 기다린 후에야 감히 서로를 논의하게 한다면, 이는 군주의 눈과 귀를 막는 신하를 더욱 키우는 것이다. 사군이 정보를 막히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원문 26】
夫矢來有鄉,則積鐵以備一鄉;矢來無鄉,則為鐵室以盡備之。備之則體不傷。故彼以盡備之不傷,此以盡敵之無姦也。
【번역문 26】
무릇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이 정해져 있으면 쇠를 쌓아 그 한 방향만 대비하면 되지만, 화살이 오는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쇠로 방을 만들어 모든 방향을 완벽히 대비해야 한다. 이렇게 대비하면 몸이 다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쇠로 만든 방)이 완벽히 대비하여 다치지 않는 것처럼, 이것(군주의 통치)은 모든 신하를 대등하게 하여 간사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내저설상》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번역과 주석을 제공합니다.
원문-번역문 (계속)
【원문 26】
夫矢來有鄉,則積鐵以備一鄉;矢來無鄉,則為鐵室以盡備之。備之則體不傷。故彼以盡備之不傷,此以盡敵之無姦也。
【번역문 26】
무릇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이 정해져 있으면 쇠를 쌓아 그 한 방향만 대비하면 되지만, 화살이 오는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쇠로 방을 만들어 모든 방향을 완벽히 대비해야 한다. 이렇게 대비하면 몸이 다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쇠로 만든 방)이 완벽히 대비하여 다치지 않는 것처럼, 이것(군주의 통치)은 신하들을 모두 대등한 경쟁 상대로 만들어¹⁾ 간사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주석 26】
- 盡敵之無姦也(진적지무간야): 직역하면 '모두를 대적하게 하여 간사함이 없게 하다'이다. 앞선 25절에서 위나라 사군(嗣公)이 총신 여이(如耳)를 견제하기 위해 박의(薄疑)를 등용한 것을 비판하며, 세력이 대등해진 뒤에야 서로를 비판하게 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구절은 그에 대한 결론으로, 군주는 특정 인물들만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하가 서로를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철실(鐵室)'과 같은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간사한 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敵'은 '적수' 또는 '경쟁 상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원문 27】
龐恭與太子質於邯鄲,謂魏王曰:「今一人言市有虎,王信之乎?」曰:「不信。」「二人言市有虎,王信之乎?」曰:「不信。」「三人言市有虎,王信之乎?」王曰:「寡人信之。」龐恭曰:「夫市之無虎也明矣,然而三人言而成虎。今邯鄲之去魏也遠於市,議臣者過於三人,願王察之。」龐恭從邯鄲反,竟不得見。
【번역문 27】
방공(龐恭)이 태자와 함께 한단(邯鄲)에 인질로 가게 되었을 때, 위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지금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그것을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니, 왕이 "믿지 않소."라고 답했다. "두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있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그것을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니, "믿지 않소."라고 답했다.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있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그것을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니, 왕이 "과인은 그것을 믿겠소."라고 답했다. 방공이 말하기를, "무릇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은 명백한데도, 세 사람이 말하니 호랑이가 있는 것이 됩니다. 지금 한단은 위나라에서 시장보다 훨씬 멀고, 신을 헐뜯을 자는 세 사람이 넘을 것이니, 원컨대 왕께서는 이를 살피소서."라고 하였다. 방공이 한단에서 돌아왔으나, 끝내 왕을 뵙지 못했다.
【주석 27】
- 龐恭(방공):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대신.
- 質於邯鄲(질어한단): 한단은 조(趙)나라의 수도이다. 위나라 태자가 조나라에 인질로 갈 때 방공이 그를 수행하게 된 상황을 말한다.
- 三人言而成虎(삼인언이성호): '세 사람이 말하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된 구절이다.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참말처럼 여겨진다는 의미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나 소문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는 '중단참관(眾端參觀)', 즉 여러 정보를 비교 검토해야 한다는 첫 번째 술(術)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사례이다.
【원문 28】
說二
【번역문 28】
설(說)의 두 번째.
【원문 29】
董閼于為趙上地守,行石邑山中,澗深,峭如牆,深百仞,因問其旁鄉左右曰:「人嘗有入此者乎?」對曰:「無有。」曰:「嬰兒癡聾狂悖之人嘗有入此者乎?」對曰:「無有。」「牛馬犬彘嘗有入此者乎?」對曰:「無有。」董閼于喟然太息曰:「吾能治矣。使吾法之無赦,猶入澗之必死也,則人莫之敢犯也,何為不治?」
【번역문 29】
동알우(董閼于)가 조나라 상지(上地)의 태수가 되어 석읍(石邑) 산속을 지나가는데, 골짜기가 깊고 담벼락처럼 깎아지른 것이 그 깊이가 백 길이나 되었다. 이에 그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묻기를, "일찍이 이곳에 들어간 사람이 있었는가?"라고 하니,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갓난아이나 어리석고 귀먹고 미쳐서 사리에 어긋나는 사람이 일찍이 이곳에 들어간 적이 있는가?"라고 하니,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소나 말, 개나 돼지가 일찍이 이곳에 들어간 적이 있는가?"라고 하니,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동알우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다스릴 수 있겠다. 나의 법을 용서 없이 적용하여, 마치 저 골짜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 것과 같게 한다면, 사람들이 감히 법을 어기지 않을 것이니, 어찌 다스려지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주석 29】
- 董閼于(동알우): 조(趙)나라의 관리.
- 百仞(백인): '仞'은 고대의 길이 단위로, 일곱 자 또는 여덟 자에 해당한다. '백 길'은 매우 깊음을 나타내는 과장된 표현이다.
- 必罰明威(필벌명위): 이 고사는 '반드시 벌하여 위엄을 세운다'는 두 번째 술(術)의 핵심을 보여준다. 법을 어겼을 때의 결과가 험준한 골짜기에 떨어지는 것처럼 '필연적이고 예외 없는 죽음(처벌)'으로 인식된다면, 지각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미물조차도 감히 그 경계를 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즉, 법의 효력은 형벌의 가혹함보다 그 집행의 '필연성'에 있음을 강조한다.
【원문 30】
子產相鄭,病將死,謂游吉曰:「我死後,子必用鄭,必以嚴蒞人。夫火形嚴,故人鮮灼;水形懦,人多溺。子必嚴子之形,無令溺子之懦。」故子產死,游吉不肯嚴形,鄭少年相率為盜,處於雚澤,將遂以為鄭禍。游吉率車騎與戰,一日一夜,僅能剋之。游吉喟然歎曰:「吾蚤行夫子之教,必不悔至於此矣。」
【번역문 30】
자산(子產)이 정나라의 재상으로 있다가 병들어 장차 죽게 되자, 유길(游吉)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 그대가 반드시 정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이니, 반드시 엄격함으로 사람들을 대하시오. 무릇 불의 모습은 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좀처럼 데지 않지만, 물의 모습은 부드러워 사람들이 많이 빠져 죽소. 그대는 반드시 그대의 모습을 엄격하게 하여, 사람들이 그대의 부드러움에 빠져 죽게 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자산이 죽자 유길은 엄격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고, 정나라의 젊은이들이 서로 이끌고 도적이 되어 관택(雚澤)에 머물면서 마침내 정나라의 재앙이 되려 하였다. 유길이 수레와 기병을 이끌고 그들과 싸워 하루 낮과 밤 만에 겨우 이길 수 있었다. 유길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행하였더라면, 반드시 이 지경에 이른 것을 후회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하였다.
【주석 30】
- 子產(자산), 游吉(유길): 모두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유명한 정치가. 자산은 유능한 재상으로 이름이 높았고, 유길은 그의 후계자였다.
- 火形嚴(화형엄), 水形懦(수형나): 불과 물의 비유를 통해 통치 방식의 차이를 설명한다. '엄격한 통치(火)'는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법을 어기지 않으므로 오히려 안전하지만, '관대한 통치(水)'는 사람들이 얕보고 함부로 행동하다가 결국 큰 화를 입게 된다는 논리이다. 이는 법가의 엄격한 법 집행을 옹호하는 비유이다.
- 雚澤(관택): 정나라에 있던 큰 늪의 이름. 도적들의 소굴이 되었다.
【원문 31】
魯哀公問於仲尼曰:「春秋之記曰:冬十二月霣霜不殺菽,何為記此?」仲尼對曰:「此言可以殺而不殺也。夫宜殺而不殺,桃李冬實。天失道,草木猶犯干之,而況於人君乎?」
【번역문 31】
노나라 애공(哀公)이 중니(仲尼)에게 묻기를, "《춘추(春秋)》의 기록에 '겨울 12월에 서리가 내렸으나 콩을 죽이지 못했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이것을 기록하였습니까?"라고 하였다. 중니가 대답하기를, "이는 죽일 수 있었는데도 죽이지 못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릇 마땅히 죽여야 할 것을 죽이지 않으면,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가 겨울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늘이 도를 잃으면 초목조차도 이를 어기고 침범하는데, 하물며 군주의 경우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석 31】
- 仲尼(중니): 공자(孔子)의 자(字).
- 霣霜不殺菽(운상불살숙): 겨울에 서리가 내려 마땅히 죽어야 할 콩(菽)이 죽지 않은 것은 자연의 질서가 무너진 이변(異變)이라는 의미이다.
- 天失道(천실도): 하늘이 자연의 법칙을 잃었다는 뜻. 한비자는 이 고사를 인용하여, 자연계에서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 죽지 않으면 이변이 생기듯, 인간 사회에서도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죄인이 처벌받지 않으면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고 질서가 파괴된다는 법가의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원문 32】
殷之法刑棄灰於街者,子貢以為重,問之仲尼,仲尼曰:「知治之道也。夫棄灰於街必掩人,掩人人必怒,怒則鬥,鬥必三族相殘也。此殘三族之道也,雖刑之可也。且夫重罰者,人之所惡也,而無棄灰,人之所易也。使人行之所易,而無離所惡,此治之道。」
【번역문 32】
은나라의 법에 길거리에 재를 버린 자를 처벌하는 것이 있었는데, 자공(子貢)이 이를 무겁다고 여겨 중니에게 물으니, 중니가 말하기를, "다스림의 도를 아는 것이다. 무릇 길거리에 재를 버리면 반드시 사람을 덮치게 되고, 사람을 덮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노하며, 노하면 싸우게 되고, 싸우면 반드시 삼족(三族)이 서로 해치게 된다. 이것이 삼족을 해치게 되는 길이니, 비록 중형에 처한다 해도 괜찮다. 또한 무릇 무거운 벌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고, 재를 버리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기 쉬운 일을 행하게 하여 그들이 싫어하는 바(중벌)를 당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다스림의 도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32】
- 子貢(자공): 공자의 제자.
- 刑棄灰於街者(형기회어가자): 길에 재를 버리는 사소한 행위를 중벌로 다스리는 법.
- 三族相殘(삼족상잔): 사소한 시비가 큰 싸움으로 번져, 결국 아버지·어머니·아내의 친족(三族)이 서로 죽이는 참극으로 이어진다는 논리. 이는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경고이다.
- 重罰者,人之所惡也,而無棄灰,人之所易也(중벌자, 인지소오야, 이무기회, 인지소이야): '가벼운 죄를 무겁게 처벌한다(重輕罪)'는 법가의 핵심 원리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무거운 벌을 극도로 싫어하므로, 아주 사소하고 지키기 쉬운 법규(재 버리지 않기)를 어겨 그 벌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통해 작은 위법 행위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큰 범죄의 발생을 막는다는 논리이다.
【원문 33】
一曰。殷之法,棄灰于公道者斷其手,子貢曰:「棄灰之罪輕,斷手之罰重,古人何太毅也?」曰:「無棄灰所易也,斷手所惡也,行所易不關所惡,古人以為易,故行之。」
【번역문 33】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은나라의 법에 공공도로에 재를 버린 자는 그 손을 잘랐는데, 자공이 말하기를, "재를 버린 죄는 가벼운데 손을 자르는 벌은 무거우니, 옛사람들은 어찌 그리도 가혹했습니까?"라고 하였다. (공자가) 답하기를, "재를 버리지 않는 것은 하기 쉬운 일이고, 손이 잘리는 것은 싫어하는 일이다. 하기 쉬운 일을 행하여 싫어하는 일에 연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옛사람들은 쉽다고 여겼기에, 그렇게 행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33】
- 毅(의): '굳세다', '결단력 있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단호하다', '가혹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 行所易不關所惡(행소역불관소오): 앞선 32절의 논리를 더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다. 사람들은 '하기 쉬운 일(준법)'을 함으로써 '끔찍하게 싫어하는 일(중벌)'을 피할 수 있으므로, 결국 법을 준수하는 쪽을 택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원문 34】
中山之相樂池以車百乘使趙,選其客之有智能者以為將行,中道而亂,樂池曰:「吾以公為有智,而使公為將行,今中道而亂何也?」客因辭而去曰:「公不知治,有威足以服人,而利足以勸之,故能治之。今臣,君之少客也。夫從少正長,從賤治貴,而不得操其利害之柄以制之,此所以亂也。嘗試使臣彼之善者我能以為卿相,彼不善者我得以斬其首,何故而不治?」
【번역문 34】
중산국(中山國)의 재상 악지(樂池)가 수레 백 승을 이끌고 조나라에 사신으로 가면서, 그의 식객 중 지혜와 능력이 있는 자를 뽑아 장행(將行)¹⁾으로 삼았다. 가는 도중에 행렬의 질서가 어지러워지자, 악지가 말하기를, "내가 그대를 지혜롭다 여겨 장행으로 삼았는데, 지금 가는 도중에 어지러워지니 어찌된 일인가?"라고 하였다. 그 식객이 이내 사양하고 떠나며 말하기를, "공께서는 다스림을 모르십니다. 위엄이 있어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고, 이익이 있어 그들을 권면할 수 있어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지금 신은 공의 젊은 식객일 뿐입니다. 무릇 나이 어린 자가 어른을 바로잡고, 미천한 자가 귀한 자를 다스리면서 그 이해득실의 권한(利害之柄)을 쥐고 그들을 제어할 수 없다면, 이것이 바로 어지러워지는 까닭입니다. 시험 삼아 신으로 하여금 저들 중 잘하는 자는 제가 경상(卿相)으로 삼을 수 있게 하고, 저들 중 잘하지 못하는 자는 제가 그 목을 벨 수 있게 해보십시오. 무슨 까닭으로 다스려지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석 34】
- 將行(장행): 사신단의 행렬을 책임지는 우두머리.
- 利害之柄(이해지병): 이익과 손해를 줄 수 있는 권한, 즉 상벌의 권한을 의미한다. 한비자가 다른 편에서 강조하는 '두 개의 자루(二柄)'와 같은 개념이다. 이 고사는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으면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임무를 완수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즉, 엄격한 법 집행(必罰)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권한의 부여를 전제로 해야 함을 말한다.
【원문 35】
公孫鞅之法也重輕罪。重罪者人之所難犯也,而小過者人之所易去也,使人去其所易無離其所難,此治之道。夫小過不生,大罪不至,是人無罪而亂不生也。
【번-역문 35】
공손앙(公孫鞅)의 법은 가벼운 죄를 무겁게 다스렸다. 무거운 죄는 사람들이 저지르기 어려워하는 것이고, 작은 잘못은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저지르기 쉬운 것(작은 잘못)을 하지 않게 하여 저지르기 어려운 것(무거운 죄)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다스림의 도이다. 무릇 작은 잘못이 생기지 않으면 큰 죄가 이르지 않으니, 이는 사람들이 죄가 없게 되어 혼란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주석 35】
- 公孫鞅(공손앙): 진(秦)나라 효공(孝公)을 섬겨 변법을 단행한 위(衛)나라 출신의 법가 사상가. 상(商) 땅에 봉해져 상앙(商鞅)이라고도 불린다.
- 重輕罪(중경죄): '가벼운 죄를 무겁게 처벌한다'는 원칙. 사소한 위법 행위를 엄벌하여 아예 잘못을 저지를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들면, 결국 큰 범죄도 예방되어 사회 전체의 범죄율이 낮아진다는 논리이다. 이는 법가 사상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원문 36】
一曰。公孫鞅曰:「行刑重其輕者,輕者不至,重者不來,是謂以刑去刑。」
【번역문 36】
다른 이야기가 있다. 공손앙이 말하기를, "형벌을 집행할 때 그 가벼운 죄를 무겁게 다스리면, 가벼운 죄가 이르지 않고 무거운 죄도 오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형벌로써 형벌을 없앤다(以刑去刑)'고 한다."라고 하였다.
【주석 36】
- 以刑去刑(이형거형): '형벌을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형벌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법가의 이상을 나타내는 유명한 구절이다. 엄격한 형벌은 수단일 뿐, 그 목적은 범죄 없는 안정된 사회의 구현에 있다는 의미이다.
【원문 37】
荊南之地、麗水之中生金,人多竊采金,采金之禁,得而輒辜磔於市,甚眾,壅離其水也,而人竊金不止。夫罪莫重辜磔於市,猶不止者,不必得也。故今有於此,曰:「予汝天下而殺汝身」,庸人不為也。夫有天下,大利也,猶不為者,知必死。故不必得也,則雖辜磔,竊金不止;知必死,則天下不為也。
【번역문 37】
초나라 남쪽 땅 여수(麗水)에서 금이 나는데, 많은 사람이 몰래 금을 캐 갔다. 금을 캐는 것을 금지하여, 발각되면 번번이 시장에서 사지를 찢어 죽이는 책형(辜磔)에 처하여 죽는 자가 매우 많았고, 그 강을 막고 떠나게 해도 사람들이 금을 훔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무릇 죄 중에 시장에서 책형을 당하는 것보다 무거운 것은 없는데도 그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잡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너에게 천하를 주고 너의 몸은 죽이겠다."라고 한다면, 평범한 사람이라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무릇 천하를 얻는 것은 큰 이익이지만, 그래도 하려 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잡히는 것이 아니라면 비록 책형에 처한다 해도 금을 훔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천하라도 얻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주석 37】
- 辜磔(고책): 시체를 저잣거리에 내걸고 사지를 찢는 극형.
- 不必得也(불필득야): '반드시 잡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 이 고사는 형벌의 엄격성(severity)보다 집행의 확실성(certainty)이 범죄 억제에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무리 형벌이 무거워도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요행의 가능성이 남아있으면 범죄는 근절되지 않지만, 결과가 '반드시(必)' 일어난다고 확신하면 아무리 큰 이익이 걸려 있어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필벌(必罰)'의 '필(必)'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원문 38】
魯人燒積澤,天北風,火南倚,恐燒國,哀公懼,自將眾趣救火,左右無人,盡逐獸而火不救,乃召問仲尼,仲尼曰:「夫逐獸者樂而無罰,救火者苦而無賞,此火之所以無救也。」哀公曰:「善。」仲尼曰:「事急,不及以賞,救火者盡賞之,則國不足以賞於人,請徒行罰。」哀公曰:「善。」於是仲尼乃下令曰:「不救火者比降北之罪,逐獸者比入禁之罪。」令下未遍而火已救矣。
【번역문 38】
노나라 사람이 적택(積澤)에 불을 질렀는데, 마침 북풍이 불어 불길이 남쪽으로 번져 나라를 태울까 두려웠다. 애공(哀公)이 두려워하며 직접 무리를 이끌고 불을 끄러 달려갔으나, 좌우에 사람이 없고 모두 짐승을 쫓아다녀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에 중니(仲尼)를 불러 물으니, 중니가 말하기를, "무릇 짐승을 쫓는 자는 즐겁고 벌이 없으며, 불을 끄는 자는 괴롭고 상이 없으니, 이것이 불이 꺼지지 않는 까닭입니다."라고 하였다. 애공이 "옳소."라고 하였다. 중니가 말하기를, "일이 급하여 상을 내릴 겨를이 없습니다. 불 끄는 자를 모두 상 주려 하면 나라의 재물이 사람들에게 상 주기에 부족할 것이니, 청컨대 오직 벌만 시행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애공이 "옳소."라고 하였다. 이에 중니가 마침내 명령을 내리기를, "불을 끄지 않는 자는 항복하여 패주한 죄에 준하고, 짐승을 쫓는 자는 금지 구역에 들어간 죄에 준한다."라고 하였다. 명령이 미처 다 퍼지기도 전에 불은 이미 꺼졌다.
【주석 38】
- 積澤(적택): 노나라에 있던 늪의 이름.
- 趣(취): '달려가다', '재촉하다'의 의미.
- 比降北之罪(비항북지죄): '항복하여 패주한 죄에 견준다'는 뜻. '北'은 전쟁에서 져서 달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군법에 따른 중죄에 해당한다.
- 比入禁之罪(비입금지죄): '출입이 금지된 곳에 들어간 죄에 견준다'는 뜻. 이 역시 처벌 대상이다. 이 고사는 인간의 행동이 철저히 이해타산(즐거움/괴로움, 상/벌)에 따라 결정됨을 보여준다. 명확한 상벌 규정, 특히 긴급한 상황에서는 즉각적인 처벌 규정이 사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을 증명한다.
【원문 39】
成驩謂齊王曰:「王太仁,太不忍人。」王曰:「太仁、太不忍人,非善名邪?」對曰:「此人臣之善也,非人主之所行也。夫人臣必仁而後可與謀,不忍人而後可近也。不仁則不可與謀,忍人則不可近也。」王曰:「然則寡人安所太仁、安不忍人?」對曰:「王太仁於薛公,而太不忍於諸田。太仁薛公則大臣無重,太不忍諸田則父兄犯法。大臣無重則兵弱於外,父兄犯法則政亂於內。兵弱於外、政亂於內,此亡國之本也。」
【번역문 39】
성환(成驩)이 제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왕께서는 너무 인자하시고, 너무 사람에게 차마 모질게 대하지 못하십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너무 인자하고 너무 차마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 것이 좋은 평판이 아니오?"라고 하자, 성환이 대답하기를, "이는 신하의 좋은 점이지, 군주가 행할 바는 아닙니다. 무릇 신하는 반드시 인자한 뒤에야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고, 차마 사람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한 뒤에야 가까이할 수 있습니다. 인자하지 않으면 함께 도모할 수 없고, 사람에게 모질게 대할 수 있다면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왕이 "그렇다면 과인이 어느 부분에서 너무 인자하고, 어느 부분에서 차마 모질게 대하지 못한다는 말이오?"라고 묻자, 성환이 대답하기를, "왕께서는 설공(薛公)에게는 너무 인자하시고, 여러 전씨(諸田)들에게는 너무 차마 모질게 대하지 못하십니다. 설공에게 너무 인자하시면 대신들의 권위가 서지 않고, 여러 전씨들에게 너무 차마 모질게 대하지 못하시면 부형(父兄)들이 법을 어깁니다. 대신들의 권위가 서지 않으면 군대가 밖에서 약해지고, 부형들이 법을 어기면 정치가 안에서 어지러워집니다. 군대가 밖에서 약해지고 정치가 안에서 어지러워지는 것,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근본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39】
- 成驩(성환): 제나라의 신하.
- 太仁(태인), 太不忍人(태불인인): '너무 인자함'과 '너무 차마 모질게 굴지 못함'. 법가에서는 군주의 개인적 감정이나 도덕(인자함 등)이 법의 공정한 적용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본다.
- 薛公(설공): 제나라의 강력한 신하였던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을 가리킨다.
- 諸田(제전): 제나라의 왕족인 전(田)씨 일족을 가리킨다.
- 太不忍於諸田(태불인어제전): 문맥상 '너무 관대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왕이 강력한 신하(설공)와 왕족(제전)에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법을 공정하게 적용하지 못하여, 결국 국가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필벌(必罰)'의 원칙을 강조한다.
【원문 40】
魏惠王謂卜皮曰:「子聞寡人之聲聞亦何如焉?」對曰:「臣聞王之慈惠也。」王欣然喜曰:「然則功且安至?」對曰:「王之功至於亡。」王曰:「慈惠,行善也,行之而亡何也?」卜皮對曰:「夫慈者不忍,而惠者好與也。不忍則不誅有過,好予則不待有功而賞。有過不罪,無功受賞,雖亡不亦可乎?」
【번역문 40】
위나라 혜왕(惠王)이 복피(卜皮)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과인의 평판이 어떠하다고 들었소?"라고 하였다. 복피가 대답하기를, "신은 왕께서 자애롭고 은혜로우시다고 들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그렇다면 공업(功業)이 장차 어디에 이르겠소?"라고 하였다. 복피가 대답하기를, "왕의 공업은 망하는 데에 이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자애롭고 은혜로운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인데, 그것을 행하고서 망하는 것은 어째서요?"라고 묻자, 복피가 대답하기를, "무릇 자애로운 자는 차마 벌하지 못하고, 은혜로운 자는 주기를 좋아합니다. 차마 벌하지 못하면 죄 있는 자를 베지 않고, 주기를 좋아하면 공이 있기를 기다리지 않고 상을 줍니다. 죄가 있어도 벌하지 않고 공이 없는데도 상을 받는다면, 비록 망한다 한들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석 40】
- 卜皮(복피): 위(魏)나라의 신하.
- 慈惠(자혜): 자애와 은혜. 유가에서는 긍정적인 덕목으로 보지만, 법가에서는 군주가 경계해야 할 감정으로 본다.
- 有過不罪,無功受賞(유과불죄, 무공수상): '죄가 있어도 벌하지 않고, 공이 없는데도 상을 받는다'. 이는 상벌의 원칙이 무너진 상태를 말하며, 국가 기강의 해이와 시스템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복피의 대답은 군주의 역할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벌이라는 국가 시스템을 냉정하고 공정하게 운영하는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원문 41】
齊國好厚葬,布帛盡於衣衾,材木盡於棺槨,桓公患之,以告管仲曰:「布帛盡則無以為蔽,材木盡則無以為守備,而人厚葬之不休,禁之奈何?」管仲對曰:「凡人之有為也,非名之則利之也。」於是乃下令曰:「棺槨過度者戮其尸,罪夫當喪者。」夫戮死無名,罪當喪者無利,人何故為之也?
【번역문 41】
제나라가 후한 장례(厚葬)를 좋아하여, 베와 비단은 수의(衣衾)에 다 써버리고 재목은 관곽(棺槨)에 다 써버렸다. 환공(桓公)이 이를 걱정하여 관중(管仲)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베와 비단이 다 떨어지면 몸을 가릴 것이 없고, 재목이 다 떨어지면 수비할 방비가 없게 되는데, 사람들이 후한 장례를 그치지 않으니, 이를 금지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라고 하였다. 관중이 대답하기를, "무릇 사람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면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마침내 명령을 내리기를, "관곽이 규정을 넘는 자는 그 시신을 욕보이고,¹⁾ 상주(當喪者)를 처벌한다."라고 하였다. 무릇 죽은 자를 욕보이면 명예가 없고, 상주를 처벌하면 이익이 없으니, 사람들이 무슨 까닭으로 그것을 하겠는가?
【주석 41】
- 戮其尸(육기시): '그 시신을 베다' 또는 '욕보이다'라는 뜻. 죽은 사람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큰 불명예로 여겨졌다.
- 非名之則利之也(비명지즉리지야):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면 이익을 위한 것이다'. 인간 행동의 동기를 명예(名)와 이익(利) 두 가지로 규정하는 관점이다. 관중은 이 두 가지 동기를 모두 차단함으로써 후장 풍습을 근절하고자 했다. 즉, 시신을 욕보여 '명예'를 없애고, 상주를 처벌하여 '이익'(또는 허례허식으로 인한 만족감)을 없애는 것이다. 이는 상벌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법가적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원문 42】
衛嗣君之時,有胥靡逃之魏,因為襄王之后治病,衛嗣君聞之,使人請以五十金買之,五反而魏王不予,乃以左氏易之。群臣左右諫曰:「夫以一都買胥靡可乎?」王曰:「非子之所知也。夫治無小而亂無大,法不立而誅不必,雖有十左氏無益也。法立而誅必,雖失十左氏無害也。」魏王聞之曰:「主欲治而不聽之,不祥。」因載而往,徒獻之。
【번역문 42】
위나라 사군(嗣君) 시절에 서미(胥靡)¹⁾ 한 사람이 위나라로 도망가서 위나라 양왕(襄王)의 왕후의 병을 치료해주고 있었다. 위나라 사군이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50금으로 그를 사겠다고 청하였으나, 다섯 번이나 거절당하고 위나라 왕이 그를 내주지 않자, 마침내 좌씨(左氏)라는 도시와 그를 바꾸려 하였다. 여러 신하와 측근들이 간언하여 말하기를, "무릇 하나의 도시로 서미 한 명을 사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그대들이 알 바가 아니다. 무릇 다스림에는 작은 것이 없고 혼란에는 큰 것이 없다. 법이 서지 않고 형벌이 반드시 시행되지 않으면, 비록 열 개의 좌씨가 있다 한들 이로울 것이 없다. 법이 서고 형벌이 반드시 시행된다면, 비록 열 개의 좌씨를 잃는다 한들 해로울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위나라 왕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데 그 뜻을 들어주지 않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하고는, 그를 수레에 태워 가서 그냥 바쳤다.
【주석 42】
- 胥靡(서미): 고대에 얼굴에 먹물로 죄명을 새기고 노역에 동원되던 죄수.
- 治無小而亂無大(치무소이난무대): '잘 다스려지는 데에는 사소한 일이란 없고, 어지러워지는 데에는 큰 일이란 없다'. 즉, 사소한 법규 위반이라도 방치하면 국가의 기강 전체가 무너지는 큰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 法立而誅必(법립이주필): '법이 서고 형벌이 반드시 시행된다'. 이는 법가 통치의 핵심이다. 위나라 사군은 도망친 죄수 한 명을 되찾는 행위가 단순히 한 개인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법은 반드시 집행된다'는 국가의 원칙을 세우는 상징적인 행위라고 보았다. 그 가치는 도시 하나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문 43】
說三
【번역문 43】
설(說)의 세 번째.
【원문 44】
齊王問於文子曰:「治國何如?」對曰:「夫賞罰之為道,利器也。君固握之,不可以示人。若如臣者,猶獸鹿也,唯薦草而就。」
【번역문 44】
제나라 왕이 문자(文子)에게 묻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어떠합니까?"라고 하였다. 문자가 대답하기를, "무릇 상벌의 도는 날카로운 무기(利器)와 같습니다. 군주께서 굳게 쥐고서 남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신과 같은 자라면, 짐승이나 사슴과 같아서 오직 풀을 보고 나아갈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44】
- 文子(문자): 제나라의 신하.
- 利器(이기): 날카로운 무기. 상벌의 권한이 국가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도구임을 비유한다.
- 不可以示人(불가이시인): 상벌의 권한을 다른 신하에게 위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군주가 직접 상벌의 권한을 장악해야 함을 강조한다.
- 唯薦草而就(유천초이취): '오직 풀을 보고 나아간다'. 신하들은 짐승이 풀(먹이)을 쫓듯 오직 이익(상)을 따라 움직이는 존재라는 비유이다. 이는 '신상진능(信賞盡能)', 즉 신뢰할 수 있는 상을 통해 신하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한다는 세 번째 술(術)의 기본 전제를 보여준다.
【원문 45】
越王問於大夫文種曰:「吾欲伐吳可乎?」對曰:「可矣。吾賞厚而信,罰嚴而必。君欲知之,何不試焚宮室?」於是遂焚宮室,人莫救之,乃下令曰:「人之救火者,死,比死敵之賞。救火而不死者,比勝敵之賞。不救火者,比降北之罪。」人塗其體、被濡衣而走火者,左三千人,右三千人。此知必勝之勢也。
【번역문 45】
월왕(越王)이 대부 문종(文種)에게 묻기를, "내가 오나라를 치고자 하는데 괜찮겠는가?"라고 하였다. 문종이 대답하기를, "괜찮습니다. 우리의 상은 두텁고 신뢰가 있으며, 벌은 엄격하고 반드시 시행됩니다. 군주께서 이를 알고자 하신다면, 어찌 궁실을 불태워 시험해보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마침내 궁실을 불태웠으나 사람들이 아무도 구하지 않았다. 이에 명령을 내리기를, "불을 끄다가 죽는 자는 적과 싸우다 죽은 상에 준하고, 불을 끄고도 죽지 않은 자는 적에게 이긴 상에 준하며, 불을 끄지 않는 자는 항복하여 패주한 죄에 준한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몸에 진흙을 바르고 젖은 옷을 입고 불 속으로 달려가는 자가 좌군에 삼천 명, 우군에 삼천 명이었다. 이것이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기세임을 안 것이다.
【주석 45】
- 越王(월왕): 월왕 구천(句踐)을 가리킨다.
- 文種(문종):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명신.
- 賞厚而信,罰嚴而必(상후이신, 벌엄이필): '상은 두텁고 신뢰가 있으며, 벌은 엄격하고 반드시 시행된다'. 이는 법가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상벌 제도의 모습이다. 이 고사는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벌 규정이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조차 무릅쓰게 할 만큼 강력한 동기 부여 수단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원문 46】
吳起為魏武侯西河之守,秦有小亭臨境,吳起欲攻之。不去,則甚害田者;去之,則不足以徵甲兵。於是乃倚一車轅於北門之外而令之曰:「有能徙此南門之外者賜之上田上宅。」人莫之徙也,及有徙之者,還,賜之如令。俄又置一石赤菽東門之外而令之曰:「有能徙此於西門之外者賜之如初。」人爭徙之。乃下令曰:「明日且攻亭,有能先登者,仕之國大夫,賜之上田宅。」人爭趨之,於是攻亭一朝而拔之。
【번역문 46】
오기(吳起)가 위나라 무후(武侯)를 위해 서하(西河)의 태수로 있을 때, 진나라의 작은 초소가 국경에 임해 있었다. 오기가 이를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내버려 두자니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심히 해가 되었고, 그것을 치자니 갑옷 입은 병사를 징집할 만한 명분이 부족했다. 이에 수레의 긴 채(車轅) 하나를 북문 밖에 세워두고 명령하기를, "이것을 남문 밖으로 옮길 수 있는 자에게는 최상의 밭과 집을 상으로 내리겠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아무도 그것을 옮기지 않았는데, 마침내 그것을 옮긴 자가 있자, 돌아온 뒤 명령대로 상을 내렸다. 얼마 후 또 붉은 콩 한 섬(石)을 동문 밖에 두고 명령하기를, "이것을 서문 밖으로 옮길 수 있는 자에게는 처음과 같이 상을 내리겠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다투어 그것을 옮겼다. 이에 명령을 내리기를, "내일 장차 초소를 공격할 것이니, 먼저 오를 수 있는 자에게는 나라의 대부 벼슬을 주고 최상의 밭과 집을 상으로 내리겠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다투어 달려가니, 마침내 초소를 공격하여 하루아침에 그것을 함락시켰다.
【주석 46】
- 吳起(오기): 전국시대 초기의 유명한 병법가이자 정치가.
- 車轅(차원): 수레의 양쪽으로 뻗은 긴 나무 채.
- 徙此南門之外者(사차남문지외자): 이 일화는 상앙(商鞅)의 '이목지신(移木之信)' 고사와 매우 유사하다. 사소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킴으로써 국가(또는 지도자)의 명령과 포상에 대한 백성의 절대적인 신뢰(信)를 구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신뢰가 쌓인 후에야 큰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문 47】
李悝為魏文侯上地之守,而欲人之善射也,乃下令曰:「人之有狐疑之訟者,令之射的,中之者勝,不中者負。」令下而人皆疾習射,日夜不休。及與秦人戰,大敗之,以人之善射也。
【번역문 47】
이회(李悝)가 위나라 문후(文侯)를 위해 상지(上地)의 태수로 있으면서, 사람들이 활을 잘 쏘게 만들고 싶었다. 이에 명령을 내리기를, "사람들 중에 시비를 가리기 어려운 소송이 있는 자는 활로 과녁을 쏘게 하여, 맞힌 자가 이기고 맞히지 못한 자가 지게 한다."라고 하였다. 명령이 내려지자 사람들이 모두 빠르게 활쏘기를 익혀 밤낮으로 쉬지 않았다. 마침내 진나라 사람들과 싸울 때, 그들을 크게 무찌른 것은 사람들이 활을 잘 쏘았기 때문이다.
【주석 47】
- 李悝(이회): 전국시대 위나라의 정치가로, 법가 사상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 狐疑之訟(호의지송): 여우가 의심이 많다는 속성에서 유래한 말로,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운 애매한 소송을 의미한다.
- 令之射的(영지사적): 이 고사는 국가가 원하는 목표(군사력 강화)를 달성하기 위해, 상벌 시스템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설계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소송의 승패라는 강력한 이익(利)을 활쏘기 능력과 직접 연결함으로써,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국방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원문 48】
宋崇門之巷人服喪,而毀甚瘠,上以為慈愛於親,舉以為官師。明年,人之所以毀死者歲十餘人。子之服親喪者為愛之也,而尚可以賞勸也,況君上之於民乎?
【번역문 48】
송나라 숭문(崇門)의 마을 사람이 상(喪)을 치르는데, 몸을 상하게 함이 매우 심하여 몹시 여위었다. 윗사람이 이를 어버이에 대한 자애로운 사랑이라 여겨, 그를 등용하여 관사(官師)로 삼았다. 이듬해에, 몸을 상하게 하여 죽는 사람이 한 해에 열 명이 넘었다. 자식이 부모의 상을 치르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인데도 오히려 상으로써 권장할 수 있거늘, 하물며 군주가 백성에게 하는 경우는 어떻겠는가?
【주-석 48】
- 毀甚瘠(훼심척): 상을 치르면서 슬픔 때문에 몸을 돌보지 않아 매우 수척해진 것을 의미한다.
- 官師(관사): 관리 또는 백성의 스승.
- 子之服親喪者為愛之也,而尚可以賞勸也(자지복친상자위애지야, 이상가이상권야): 이 구절은 상(賞)의 위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부모에 대한 사랑이라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사적인 감정조차도 '상'이라는 외적 동기에 의해 강화되고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가 백성에게 내리는 상은 그들의 행동을 얼마나 강력하게 유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신상(信賞)'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원문 49】
越王慮伐吳,欲人之輕死也,出見怒蛙乃為之式,從者曰:「奚敬於此?」王曰:「為其有氣故也。」明年之請以頭獻王者歲十餘人。由此觀之,譽之足以殺人矣。
【번역문 49】
월왕(越王)이 오나라 정벌을 계획하면서, 사람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게 만들고 싶었다. 외출했다가 성난 개구리를 보고는 그를 위해 예를 표하자(式),¹⁾ 따르던 자가 "어찌하여 이것에 경의를 표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왕이 "그것이 기개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이듬해에 자신의 머리를 왕께 바치겠다고 청하는 자가 한 해에 열 명이 넘었다. 이로 보건대, 명예(譽)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주석 49】
- 式(식): 수레 위에서 몸을 앞으로 굽혀 가로대에 기대는 동작으로, 존경을 표하는 예법이다.
- 譽之足以殺人矣(예지족이살인의): '명예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여기서 '죽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도 불사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군주가 사소한 미물(개구리)의 기개조차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용맹한 병사에게는 얼마나 큰 명예를 주겠는가 하는 기대를 심어준 것이다. 이는 물질적 보상(賞)뿐만 아니라 정신적 보상(譽)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수단임을 보여준다.
【원문 50】
一曰。越王句踐見怒蛙而式之,御者曰:「何為式?」王曰:「蛙有氣如此,可無為式乎?」士人聞之曰:「蛙有氣,王猶為式,況士人之有勇者乎!」是歲人有自剄死以其頭獻者。故越王將復吳而試其教,燔臺而鼓之,使民赴火者,賞在火也,臨江而鼓之,使人赴水者,賞在水也,臨戰而使人絕頭刳腹而無顧心者,賞在兵也,又況據法而進賢,其助甚此矣。
【번역문 50】
다른 이야기가 있다. 월왕 구천(句踐)이 성난 개구리를 보고 그에게 예를 표하자, 마부가 "어찌하여 예를 표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왕이 "개구리가 이와 같은 기개를 가졌는데, 어찌 예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선비들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개구리가 기개가 있다 하여 왕께서 오히려 예를 표하시는데, 하물며 용기 있는 선비의 경우이겠는가!"라고 하였다. 그해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어 그 머리를 바치는 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월왕이 장차 오나라에 복수하려 하면서 그 가르침을 시험하였으니, 누대를 불태우고 북을 쳐서 백성들이 불 속으로 달려들게 한 것은 상이 불 속에 있었기 때문이고, 강에 임하여 북을 쳐서 사람들이 물속으로 뛰어들게 한 것은 상이 물속에 있었기 때문이며, 전투에 임하여 사람들이 머리가 잘리고 배가 갈라져도 돌아볼 마음이 없게 한 것은 상이 군대(전공)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물며 법에 근거하여 현명한 이를 등용한다면, 그 도움이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주석 50】
- 絕頭刳腹(절두고복): 머리가 잘리고 배가 갈라지는 것. 전투의 참혹함을 묘사한다.
- 據法而進賢,其助甚此矣(거법이진현, 기조심차의): 이 구절은 앞선 모든 예시의 결론에 해당한다. 명예나 상벌을 통해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극단적인 방법도 효과가 있는데, 하물며 '법에 근거하여(據法)' 공정하게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국가에 얼마나 더 큰 도움이 되겠느냐는 의미이다. 이는 상벌 시스템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여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있음을 시사한다.
【원문 51】
韓昭侯使人藏弊褲,侍者曰:「君亦不仁矣,弊褲不以賜左右而藏之。」昭侯曰:「非子之所知也,吾聞明主之愛,一嚬一笑,嚬有為嚬,而笑有為笑。今夫褲豈特嚬笑哉!褲之與嚬笑相去遠矣,吾必待有功者,故藏之未有予也。」
【번역문 51】
한나라 소후(昭侯)가 사람을 시켜 해진 바지를 감추게 하자, 시종이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또한 인자하지 못하십니다. 해진 바지를 좌우의 신하들에게 하사하지 않으시고 감추시다니요."라고 하였다. 소후가 말하기를, "그대가 알 바가 아니다. 내가 듣기로 현명한 군주의 사랑은, 한 번 찡그림과 한 번 웃음에도, 까닭이 있어 찡그리고 까닭이 있어 웃는다고 하였다. 지금 저 바지가 어찌 단지 찡그림이나 웃음뿐이겠는가! 바지가 찡그림이나 웃음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멀다. 나는 반드시 공이 있는 자를 기다리는 것이므로, 그것을 감추어 두고 아직 주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51】
- 韓昭侯(한소후):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군주. 신불해(申不害)를 등용하여 술(術) 정치를 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 一嚬一笑(일빈일소):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 군주의 사소한 감정 표현조차도 신중하고 목적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 褲之與嚬笑相去遠矣(고지여빈소상거원의): 해진 바지라는 실물은 단순한 감정 표현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큰 의미를 갖는 상(賞)의 상징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소후는 아주 사소한 물건이라도 공적인 상벌 시스템의 일부로 취급하여, 군주의 모든 행위가 통치술의 일환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원문 52】
鱣似蛇,蠶似蠋。人見蛇則驚駭,見蠋則毛起。然而婦人拾蠶,漁者握鱣,利之所在,則忘其所惡,皆為孟賁。
【번역문 52】
장어는 뱀과 비슷하고, 누에는 애벌레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뱀을 보면 놀라고, 애벌레를 보면 털이 곤두선다. 그러나 부인들은 누에를 줍고 어부들은 장어를 잡으니, 이익이 있는 곳에서는 그 싫어하는 바를 잊고 모두 맹분(孟賁)¹⁾처럼 용감해진다.
【주석 52】
- 孟賁(맹분): 전국시대의 전설적인 용사.
- 利之所在,則忘其所惡(이지소재, 즉망기소오): '이익이 있는 곳에서는 그 싫어하는 바를 잊는다'. 이 구절은 '이익(利)'이라는 동기가 인간의 본능적인 혐오감이나 공포심마저 극복하게 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신상(信賞)'의 원리가 왜 효과적인지에 대한 인간 본성에 대한 법가적 통찰을 담고 있다.
【원문 53】
說四
【번역문 53】
설(說)의 네 번째.
【원문 54】
魏王謂鄭王曰:「始鄭、梁一國也,已而別,今願復得鄭而合之梁。」鄭君患之,召群臣而與之謀所以對魏,鄭公子謂鄭君曰:「此甚易應也。君對魏曰:以鄭為故魏而可合也,則弊邑亦願得梁而合之鄭。」魏王乃止。
【번역문 54】
위나라 왕이 정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처음에 정(鄭)나라와 양(梁)¹⁾은 한 나라였는데, 그 후에 나뉘었소. 이제 다시 정나라를 얻어 양나라에 합치고 싶소."라고 하였다. 정나라 군주가 이를 걱정하여 여러 신하를 불러 위나라에 대응할 방법을 모의하였는데, 정나라의 한 공자가 정나라 군주에게 말하기를, "이는 매우 쉽게 응대할 수 있습니다. 군주께서 위나라에 답하여 말하기를, '정나라가 옛 위나라 땅이라 하여 합칠 수 있다면, 우리 비읍(弊邑)²⁾ 또한 양나라를 얻어 정나라에 합치고 싶습니다.'라고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위나라 왕이 이에 그만두었다.
【주석 54】
- 梁(양): 위(魏)나라는 수도를 대량(大梁)으로 옮긴 후 양(梁)나라라고도 불렸다.
- 弊邑(폐읍): '우리 누추한 나라'라는 뜻으로, 제후가 자국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이다.
- 一聽(일청): 이 고사는 네 번째 술(術)인 '일청책하(一聽責下)'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약해 보인다. 다만, 군주가 신하들의 여러 의견을 듣고 그중 가장 적절한 계책을 채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상대방의 논리를 그대로 역으로 적용하여 부당함을 지적하는 재치 있는 외교술의 사례이다.
【원문 55】
齊宣王使人吹竽,必三百人,南郭處士請為王吹竽,宣王說之,廩食以數百人。宣王死,湣王立,好一一聽之,處士逃。
【번역문 55】
제나라 선왕(宣王)은 사람을 시켜 생황(竽)을 불게 할 때 반드시 삼백 명의 합주를 시켰다. 남곽 처사(南郭處士)가 왕을 위해 생황을 불겠다고 청하자, 선왕이 그를 기뻐하여 수백 명과 함께 녹봉을 주어 먹여 살렸다. 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즉위하여, 한 사람씩 연주하는 것을 듣기를 좋아하자, 처사가 달아났다.
【주석 55】
- 竽(우): 고대의 관악기, 생황의 일종.
- 南郭處士(남곽처사): 성(城)의 남쪽 외곽에 사는 벼슬 없는 선비라는 뜻. 이름이 아니라 신분을 나타낸다.
- 一一聽之(일일청지):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듣는 것. 이 고사는 '남곽선생(南郭先生)', '남우충수(濫竽充數)'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었다. 이는 '일청(一聽)'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집단 속에 숨어 있는 무능력자는 개별적으로 책임을 묻고 능력을 검증할 때(一一聽之)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는 '일청책하(一聽責下)', 즉 보고를 일원화하고 그 책임을 묻는 술(術)의 원리와 통한다.
【원문 56】
一曰。韓昭侯曰:「吹竽者眾,吾無以知其善者。」田嚴對曰:「一一而聽之。」
【번역문 56】
다른 이야기가 있다. 한나라 소후(昭侯)가 말하기를, "생황 부는 자가 많아서, 내가 그중 잘하는 자를 알 방법이 없구나."라고 하였다. 전엄(田嚴)이 대답하기를, "한 사람씩 들어보시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56】
- 田嚴(전엄): 한(韓)나라의 신하.
- 一一而聽之(일일이청지): 앞선 55절의 고사와 동일한 교훈을 담고 있는 간결한 이야기이다. 집단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실상을 가릴 수 있으므로, 개별적으로 검증해야만 옥석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원문 57】
趙令人因申子於韓請兵,將以攻魏,申子欲言之君,而恐君之疑己外市也,不則恐惡於趙,乃令趙紹、韓沓嘗試君之動貌而後言之,內則知昭侯之意,外則有得趙之功。
【번역문 57】
조나라가 사람을 시켜 한나라에 있는 신자(申子)를 통해 군사를 청하여, 장차 위나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신자는 이를 군주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군주가 자기를 의심하여 밖으로 사사로운 이익을 판다고 여길까 두려웠고,¹⁾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나라의 미움을 살까 두려웠다. 이에 조소(趙紹)와 한답(韓沓)을 시켜 군주의 기색을 시험해 보게 한 후에 그것을 말하니, 안으로는 소후의 뜻을 알 수 있었고 밖으로는 조나라의 환심을 얻는 공을 세울 수 있었다.
【주석 57】
- 申子(신자): 한나라 소후의 재상이었던 신불해(申不害)를 가리킨다.
- 外市(외시): '밖에서 팔다'는 뜻으로, 외국의 세력을 등에 업고 사사로운 이익이나 명예를 취하는 행위를 비판하는 말이다.
- 一聽責下(일청책하)의 폐단: 이 고사는 '일청책하'의 원칙이 신하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신하(신자)는 군주에게 직접 보고했을 때의 책임과 의심을 두려워하여, 직접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군주의 의중을 떠보는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이는 신하가 군주를 속이거나 시험하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원문 58】
三國兵至韓,秦王謂樓緩曰:「三國之兵深矣,寡人欲割河東而講,何如?」對曰:「夫割河東,大費也;免國於患,大功也。此父兄之任也,王何不召公子氾而問焉?」王召公子氾而告之,對曰:「講亦悔,不講亦悔。王今割河東而講,三國歸,王必曰:三國固且去矣,吾特以三城送之。不講,三國也入韓,則國必大舉矣,王必大悔,王曰:不獻三城也。臣故曰:王講亦悔,不講亦悔。」王曰:「為我悔也,寧亡三城而悔,無危乃悔。寡人斷講矣。」
【번역문 58】
세 나라의 군대가 한나라에 이르자, 진(秦)나라 왕이 누완(樓緩)에게 말하기를, "세 나라의 군대가 깊이 쳐들어왔소. 과인이 하동(河東) 땅을 떼어주고 화의를 청하고자 하는데, 어떻소?"라고 하였다. 누완이 대답하기를, "무릇 하동을 떼어주는 것은 큰 손실이지만, 나라를 환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큰 공입니다. 이는 부형(父兄)¹⁾의 임무이니, 왕께서는 어찌하여 공자 범(氾)을 불러 그에게 묻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공자 범을 불러 그에게 고하자, 공자 범이 대답하기를, "화의를 해도 후회하고, 화의를 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입니다. 왕께서 지금 하동을 떼어주고 화의를 하면, 세 나라 군대가 돌아간 뒤 왕께서는 반드시 '세 나라는 본래 돌아가려 했는데, 내가 괜히 세 성을 바쳤구나.'라고 하실 것입니다. 화의를 하지 않아 세 나라 군대가 한나라로 쳐들어오면 나라가 반드시 크게 위태로워질 것이니, 왕께서는 반드시 크게 후회하며 '세 성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신이 그러므로 '왕께서는 화의를 해도 후회하고, 화의를 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나의 후회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세 성을 잃고 후회할지언정, 나라가 위태로워진 뒤에 후회하지는 않겠소. 과인은 화의하기로 결단하였소."라고 하였다.
【주석 58】
- 父兄(부형): 왕의 부친이나 형제, 즉 왕족 중 중신을 의미한다. 누완은 영토 할양과 같은 중대한 문제는 왕족의 책임으로 돌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 講亦悔,不講亦悔(강역회, 불강역회): '화의해도 후회하고, 화의하지 않아도 후회한다'. 공자 범은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필연적임을 지적하며, 군주에게 '어떤 후회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프레임을 전환시켰다. 이는 군주가 신하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결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유도하는 고도의 화술이다.
【원문 59】
應侯謂秦王曰:「王得宛葉、藍田、陽夏,斷河內,因梁、鄭,所以未王者,趙未服也。弛上黨在一而已以臨東陽,則邯鄲口中虱也。王拱而朝天下,後者以兵中之。然上黨之安樂,其處甚劇,臣恐弛之而不聽,奈何?」王曰:「必弛易之矣。」
【번역문 59】
응후(應侯)가 진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왕께서 완(宛)·섭(葉)·남전(藍田)·양하(陽夏)를 얻고 하내(河內)를 끊고 양(梁)·정(鄭)을 차지하고서도 아직 왕 노릇을 하지 못하는 까닭은, 조나라가 아직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당(上黨)을 풀어주어¹⁾ 동양(東陽)에 임하게 하면, 한단(邯鄲)은 입안의 이와 같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팔짱을 끼고 천하의 조회를 받으시고, 뒤늦게 복종하는 자는 군대로 치시면 됩니다. 그러나 상당은 편안하고 즐거운 곳이라 그곳에 머물기가 매우 좋으니, 신은 그들을 풀어주어도 (우리의 계책을) 따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반드시 그들을 풀어주고 바꿀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59】
- 應侯(응후): 진(秦)나라의 재상 범수(范雎)를 가리킨다.
- 弛上黨(치상당): '상당을 풀어주다'. 이는 진나라가 점령하고 있던 상당 땅을 조나라에 넘겨주는 척하여, 조나라를 방심시키고 다른 나라들과 이간질하려는 계책을 의미한다.
- 邯鄲口中虱也(한단구중슬야): '한단(조나라 수도)은 입안의 이와 같다'.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비유이다. 이 고사는 군주에게 계책을 제시할 때, 그 성공 가능성뿐만 아니라 잠재적 위험성(弛之而不聽)까지 함께 제시하여 군주가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결단하게 하는 신하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문 60】
說五
【번역문 60】
설(說)의 다섯 번째.
【원문 61】
龐敬,縣令也,遣市者行,而召公大夫而還之,立有間,無以詔之,卒遣行,市者以為令與公大夫有言,不相信,以至無姦。
【번역문 61】
현령인 방경(龐敬)이 시장에 가는 심부름꾼을 보내놓고, 공대부(公大夫)를 불렀다가 돌려보냈다. 잠시 서 있게 하다가 아무런 명을 내리지 않고 마침내 가도록 하니, 심부름꾼은 현령이 공대부와 무슨 말을 나누었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감시할까 두려워) 서로 믿지 못하게 되어 간사한 짓을 저지르지 않게 되었다.
【주석 61】
- 龐敬(방경): 현령의 이름.
- 詭使(궤사): 이 고사는 다섯 번째 술(術)인 '의심스러운 명령을 내리고 거짓 사신을 보낸다(疑詔詭使)'의 한 예이다. 방경은 실제로 아무런 밀명을 내리지 않았지만, 심부름꾼으로 하여금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이처럼 군주(또는 상관)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통해 신하들 사이에 불신과 의심을 조장함으로써, 그들이 공모하여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막는 통치술이다.
【원문 62】
戴驩、宋太宰,夜使人曰:「吾聞數夜有乘轀車至李史門者,謹為我伺之。」使人報曰:「不見轀車,見有奉笥而與李史語者,有間,李史受笥。」
【번역문 62】
송나라 태재(太宰)인 대환(戴驩)이 밤에 사람을 시켜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 며칠 밤 동안 온거(轀車)¹⁾를 탄 자가 이사(李史)의 문에 이른다고 하니, 삼가 나를 위해 그를 감시하라."라고 하였다. 심부름꾼이 보고하여 말하기를, "온거는 보이지 않았고, 궤짝(笥)을 받들고 이사와 말하는 자가 있었는데, 잠시 후에 이사가 그 궤짝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62】
- 轀車(온거): 사방을 막아 죄인을 실어 나르던 수레.
- 詭使(궤사): 이 역시 '궤사'의 사례이다. 대환은 '온거'라는 거짓 정보를 흘려 감시하게 함으로써, 실제로는 뇌물(궤짝)이 오가는 현장을 포착했다. 이는 일부러 거짓된 임무(詭使)를 주어 신하의 부정행위를 적발하거나 충성심을 시험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원문 63】
周主亡玉簪,令吏求之,三日不能得也,周主令人求而得之家人之屋閒,周主曰:「吾知吏之不事事也。求簪,三日不得之,吾令人求之,不移日而得之。」於是吏皆聳懼,以為君、神明也。
【번역문 63】
주나라 군주가 옥비녀를 잃어버렸다며 관리에게 찾으라고 명하였으나 사흘이 지나도 찾지 못했다. 주나라 군주가 다른 사람을 시켜 찾게 하여 집안사람의 방 사이에서 그것을 찾아내고는, 주나라 군주가 말하기를, "나는 관리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음을 안다. 비녀를 찾으라 하니 사흘이 지나도 찾지 못하더니, 내가 사람을 시켜 찾게 하니 하루도 안 되어 그것을 찾아냈다."라고 하였다. 이에 관리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군주를 신명(神明)¹⁾과 같다고 여겼다.
【주석 63】
- 神明(신명):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신과 같은 존재.
- 詭使(궤사): 이 고사는 군주가 일부러 일을 꾸며(옥비녀를 숨김) 신하의 태만함을 드러내고,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과시하여 신하들을 통제하는 '궤사'의 변용된 형태이다. 신하들이 군주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적인 존재'로 두려워하게 만들어, 감히 속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원문 64】
商太宰使少庶子之市,顧反而問之曰:「何見於市?」對曰:「無見也。」太宰曰:「雖然何見也?」對曰:「市南門之外甚眾牛車,僅可以行耳。」太宰因誡使者無敢告人吾所問於女,因召市吏而誚之曰:「市門之外何多牛屎?」市吏甚怪太宰知之疾也,乃悚懼其所也。
【번역문 64】
상(商)나라 태재(太宰)가 어린 서자(庶子)를 시장에 보냈다가, 돌아오자 그를 돌아보며 묻기를, "시장에서 무엇을 보았느냐?"라고 하였다. 서자가 "본 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태재가 "그렇다 해도 무엇을 보았느냐?"라고 물었다. 서자가 "시장 남문 밖에 소달구지가 매우 많아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태재가 이에 심부름꾼에게 "내가 너에게 물은 것을 감히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경계하고는, 시장 관리를 불러 꾸짖어 말하기를, "시장 문밖이 어찌 그리 쇠똥이 많으냐?"라고 하였다. 시장 관리는 태재가 그토록 빨리 아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여겨, 마침내 그 자리에서 두려워하였다.
【주석 64】
- 商太宰(상태재): 상나라의 태재. 상(商)은 송(宋)나라의 전신이므로 송나라 태재를 의미할 수 있다.
- 挾知而問(협지이문): 이 고사는 다음 여섯 번째 술(術)인 '정보를 쥐고서 묻는다'에 더 가까운 사례로 볼 수 있다. 태재는 서자를 통해 얻은 사소한 정보('소달구지가 많았다')를 이용하여,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를 통해 하급 관리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통제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원문 65】
說六
【번역문 65】
설(說)의 여섯 번째.
【원문 66】
韓昭侯握爪而佯亡一爪,求之甚急,左右因割其爪而效之,昭侯以此察左右之誠不。
【번역문 66】
한나라 소후(昭侯)가 손톱을 쥐고 있다가 일부러 손톱 하나를 잃어버린 체하며, 그것을 매우 급히 찾았다. 측근이 이에 자기 손톱을 깎아 바치자, 소후는 이로써 측근의 정직성 여부를 살폈다.
【주석 66】
- 握爪而佯亡一爪(악조이양망일조): '손톱을 쥐고 있다가 하나를 잃어버린 척하다'.
- 挾知而問(협지이문): 여섯 번째 술(術)인 '정보를 쥐고서 묻는다'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소후는 '잃어버린 손톱은 없다'는 진실(知)을 쥐고서(挾), 모르는 척 신하들을 시험했다. 그 결과 군주를 속이려는 부정직한 신하를 가려낼 수 있었다.
【원문 67】
韓昭侯使騎於縣,使者報,昭侯問曰:「何見也?」對曰:「無所見也。」昭侯曰:「雖然何見?」曰:「南門之外,有黃犢食苗道左者。」昭侯謂使者「毋敢洩吾所問於女」,乃下令曰:「當苗時,禁牛馬入人田中固有令,而吏不以為事,牛馬甚多入人田中,亟舉其數上之,不得,將重其罪。」於是三鄉舉而上之,昭侯曰:「未盡也。」復往審之,乃得南門之外黃犢,吏以昭侯為明察,皆悚懼其所而不敢為非。
【번역문 67】
한나라 소후(昭侯)가 기병을 현(縣)에 보냈다가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자, 소후가 묻기를, "무엇을 보았느냐?"라고 하였다. 사자가 "본 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소후가 "그렇다 해도 무엇을 보았느냐?"라고 물었다. 사자가 "남문 밖 길 왼편에서 누런 송아지가 싹을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소후가 사자에게 "내가 너에게 물은 것을 감히 누설하지 말라."고 이르고는, 마침내 명령을 내리기를, "싹이 돋는 시기에 소나 말을 다른 사람의 밭에 들이지 말라는 명령이 본래 있었는데도 관리들이 이를 일삼지 않아, 소와 말이 다른 사람의 밭에 들어가는 일이 매우 많다. 급히 그 수를 조사하여 보고하라. 찾아내지 못하면 장차 그 죄를 무겁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세 고을에서 조사하여 보고하자, 소후가 "다 보고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다시 가서 살펴보게 하니, 마침내 남문 밖의 누런 송아지를 찾아냈다. 관리들은 소후를 명찰(明察)하다고 여겨, 모두 그 자리에서 두려워하며 감히 나쁜 짓을 하지 못했다.
【주석 67】
- 黃犢食苗(황독식묘): '누런 송아지가 싹을 뜯어 먹다'.
- 明察(명찰): 모든 것을 밝게 살핌.
- 挾知而問(협지이문): 이 역시 '협지이문'의 정교한 활용 사례이다. 소후는 사자를 통해 얻은 '누런 송아지'라는 극히 사소한 정보(知)를 쥐고서(挾), 관리들의 업무 태만을 시험하고 적발했다. 관리들은 군주가 어떻게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알 수 있는지 의아해하며, 그를 전지전능한 존재로 여기고 두려워하게 되었다.
【원문 68】
周主下令索曲杖,吏求之數日不能得,周主私使人求之,不移日而得之,乃謂吏曰:「吾知吏不事事也。曲杖甚易也,而吏不能得,我令人求之,不移日而得之,豈可謂忠哉?」吏乃皆悚懼其所,以君為神明。
【번역문 68】
주나라 군주가 명령을 내려 굽은 지팡이를 찾게 하였으나, 관리가 며칠을 찾아도 얻지 못했다. 주나라 군주가 몰래 사람을 시켜 그것을 찾게 하니 하루도 안 되어 얻었다. 이에 관리에게 이르기를, "나는 관리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음을 안다. 굽은 지팡이는 매우 찾기 쉬운데도 관리가 얻지 못하더니, 내가 사람을 시켜 찾게 하니 하루도 안 되어 얻었다. 어찌 충성스럽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관리들이 이에 모두 그 자리에서 두려워하며, 군주를 신명(神明)과 같다고 여겼다.
【주석 68】
- 索曲杖(색곡장): '굽은 지팡이를 찾다'.
- 挾知而問(협지이문): 63절의 '옥비녀' 고사와 거의 동일한 구조이다. 군주가 이미 답(지팡이를 찾는 방법 또는 지팡이의 위치)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관리의 능력을 시험하고, 그 무능과 태만을 질책하여 군주의 신적인 권위를 세우는 방법이다.
【원문 69】
卜皮為縣令。其御史汙穢,而有愛妾,卜皮乃使少庶子佯愛之以知御史陰情。
【번역문 69】
복피(卜皮)가 현령으로 있었다. 그의 어사(御史)가 부패하였는데 아끼는 첩이 있었다. 복피는 이에 어린 서자를 시켜 그 첩을 사랑하는 척하게 하여 어사의 숨겨진 사정을 알아내었다.
【주석 69】
- 御史(어사): 감찰을 담당하는 관리.
- 陰情(음정): 숨겨진 사정이나 비밀.
- 挾知而問(협지이문): 이 고사는 정보를 얻는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복피는 첩을 통해 어사의 비밀(知)을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어사를 추궁하거나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협지이문'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정보 수집 활동의 예시이다.
【원문 70】
西門豹為鄴令,佯亡其車轄,令吏求之不能得,使人求之而得之家人屋間。
【번역문 70】
서문표(西門豹)가 업(鄴)의 현령으로 있을 때, 일부러 자기 수레의 빗장(轄)을 잃어버린 체하고, 관리에게 찾으라고 명하였으나 찾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시켜 찾게 하여 집안사람의 방 사이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주석 70】
- 西門豹(서문표):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관리. 업(鄴) 지역의 미신을 타파한 일화로 유명하다.
- 車轄(차할): 수레바퀴가 축에서 빠지지 않도록 축 끝에 꽂는 쇠막대.
- 挾知而問(협지이문): 63절의 '옥비녀', 68절의 '굽은 지팡이' 고사와 완전히 동일한 구조의 이야기이다. 이는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는 보편적인 술(術)의 하나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원문 71】
說七
【번역문 71】
설(說)의 일곱 번째.
【원문 72】
陽山君相衛,聞王之疑己也,乃偽謗樛豎以知之。
【번역문 72】
양산군(陽山君)이 위(衛)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왕이 자기를 의심한다는 말을 듣고, 이에 일부러 규수(樛豎)를 거짓으로 비방하여 그것을 알아내었다.
【주석 72】
- 陽山君(양산군), 樛豎(규수): 위(衛)나라의 인물들.
- 倒言反事(도언반사): 일곱 번째 술(術)인 '말을 거꾸로 하고 일을 반대로 하여 시험한다'의 사례이다. 양산군은 왕이 총애하는 규수를 거짓으로 비방했을 때 왕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보고, 왕이 자신을 정말로 의심하는지 그 진의를 떠본 것이다.
【원문 73】
淖齒聞齊王之惡己也,乃矯為秦使以知之。
【번역문 73】
요치(淖齒)가 제나라 왕이 자기를 미워한다는 말을 듣고, 이에 거짓으로 진(秦)나라 사신 행세를 하여 그것을 알아내었다.
【주석 73】
- 淖齒(요치): 전국시대 제나라의 신하. 제 민왕을 시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 矯為秦使(교위진사): '거짓으로 진나라 사신인 체하다'. 요치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 '반대되는 행동(反事)'을 통해, 제나라 왕의 본심을 떠보려 한 것이다.
【원문 74】
齊人有欲為亂者,恐王知之,因詐逐所愛者,令走王知之。
【번역문 74】
제나라 사람 중에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가 있었는데, 왕이 알까 두려워하여, 이에 거짓으로 아끼는 자를 내쫓고, 그가 달아나 왕에게 알려지게 하였다.
【주석 74】
- 詐逐所愛者(사축소애자): '아끼는 자를 거짓으로 내쫓다'. 이는 반란을 준비하는 자신의 진짜 의도를 숨기기 위한 위장 행동이다. 즉, '반대되는 일(反事)'을 꾸며 왕을 속이려는 시도이다.
【원문 75】
子之相燕,坐而佯言曰:「走出門者何白馬也?」左右皆言不見。有一人走追之,報曰:「有。」子之以此知左右之誠信不。
【번역문 75】
자지(子之)가 연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앉아서 일부러 말하기를, "문밖으로 달려 나간 것이 어찌 그리 흰 말이냐?"라고 하였다.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보지 못했다고 말하였다. 한 사람이 달려가 뒤쫓아 가보고는, 보고하여 말하기를,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자지는 이로써 좌우 신하들의 정직성 여부를 알았다.
【주석 75】
- 子之(자지):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재상. 왕위를 찬탈했다가 제나라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 走出門者何白馬也(주출문자하백마야): '달려 나간 것이 어찌 흰 말이냐?'. 실제로는 말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말을 거꾸로 하여(倒言)' 신하들을 시험한 것이다. 확인하지 않고 '보지 못했다'고 답한 자들과, 군주의 말에 영합하기 위해 달려가 보지도 않고 '있었다'고 거짓 보고하는 자를 가려내어 그들의 정직성을 시험하는 방법이다.
【원문 76】
有相與訟者,子產離之而無使得通辭,倒其言以告而知之。
【번역문 76】
서로 소송하는 자들이 있자, 자산(子產)이 그들을 떼어놓아 서로 말을 통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말을 거꾸로 하여 알려줌으로써 (진실을) 알아내었다.
【주석 76】
- 倒其言以告(도기언이고): '그들의 말을 거꾸로 하여 알려주다'. 예를 들어, A에게는 "B가 이렇게 주장했다"고 B의 주장을 반대로 전하고, B에게는 A의 주장을 반대로 전하여 각자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거짓말을 한 쪽은 상대방이 자신과 다르게 진술했다는 말에 당황하여 진실을 드러내게 된다. 이는 '도언(倒言)'을 재판에 응용한 지혜로운 사례이다.
【원문 77】
衛嗣公使人為客過關市,關市苛難之,因事關市以金,關吏乃舍之,嗣公為關吏曰:「某時有客過而所,與汝金,而汝因遣之。」關市乃大恐,而以嗣公為明察。
【번역문 77】
위나라 사공(嗣公)이 사람을 시켜 나그네 행세를 하며 관문 시장을 지나가게 하였다. 관문 시장의 관리가 그를 까다롭게 대하며 어렵게 하자, 나그네가 관문 관리에게 금을 바치니, 관리가 이에 그를 보내주었다. 사공이 관문 관리에게 말하기를, "아무 때에 나그네 한 명이 네가 있는 곳을 지나가면서 너에게 금을 주자, 네가 그를 보내주었다."라고 하였다. 관문 관리가 이에 크게 두려워하며, 사공을 명찰(明察)하다고 여겼다.
【주석 77】
- 使人為客過關市(사인위객과관시): '사람을 시켜 나그네 행세를 하며 관문을 지나가게 하다'. 이는 '거짓 사신을 보낸다(詭使)'와 '정보를 쥐고서 묻는다(挾知而問)'가 결합된 형태의 술(術)이다. 일부러 함정을 파서(詭使) 관리의 비리를 유도하고, 그 정보를 확보한 뒤(挾知) 추궁함으로써, 군주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기강을 바로잡는 방법이다.
韓非子 內儲說下 (한비자 내저설하) 번역 및 주석
經 (경)
[원문 78]
內儲說下:
六微:一曰、權借在下,二曰、利異外借,三曰、託於似類,四曰、利害有反,五曰、參疑內爭,六曰、敵國廢置。此六者,主之所察也。
[번역문]
내저설 하:
여섯 가지 은미한 위기[六微]¹⁾가 있으니, 첫째는 권세가 아랫사람에게 맡겨지는 것[權借在下]이고, 둘째는 이해관계가 달라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利異外借]이며, 셋째는 유사한 것에 의탁하여 속이는 것[託於似類]이고, 넷째는 이해관계에 상반된 이면이 있는 것[利害有反]이며, 다섯째는 여러 의심이 뒤섞여 내부 다툼이 일어나는 것[參疑內爭]이고, 여섯째는 적국이 신하를 등용하거나 내치게 만드는 것[敵國廢置]이다. 이 여섯 가지는 군주가 살펴야 할 바이다.
[주석]
1) 육미(六微): ‘미(微)’는 ‘은미(隱微)하다’, ‘미묘하다’는 뜻으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군주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여섯 종류의 위기 또는 간신들의 술책을 가리킨다.
[원문 79]
內儲說下:
權勢不可以借人,上失其一,臣以為百。故臣得借則力多,力多則內外為用,內外為用則人主壅。其說在老聃之言失魚也。是以人主久語,而左右鬻懷刷。其患在胥僮之諫厲公,與州侯之一言,而燕人浴矢也。
[번역문]
권세는 남에게 빌려줄 수 없는 것이니, 군주가 그 하나를 잃으면 신하는 그것을 백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신하가 권세를 빌리면 힘이 많아지고, 힘이 많아지면 안팎의 사람들을 사사로이 부리게 되며, 안팎의 사람들을 사사로이 부리게 되면 군주는 눈과 귀가 가려진다[壅]¹⁾. 그 설명은 노담(老聃)²⁾이 물고기를 잃는 것에 대해 한 말에 있다. 이런 까닭에 군주가 특정 인물과 오래 이야기하면 측근들이 그 총애를 팔아 이익을 취하고[鬻懷刷]³⁾, 그 재앙은 서동(胥僮)이 여공(厲公)에게 간언한 일과, 주후(州侯)의 한마디 말, 그리고 연나라 사람이 화살에 목욕한 일⁴⁾에 있다.
[주석]
1) 옹(壅): ‘막히다’는 뜻. 군주의 눈과 귀를 막아 올바른 정보를 얻지 못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만드는 상태를 이른다. 군주가 신하에게 권력을 위임했을 때 발생하는 가장 큰 폐해로 한비자가 지적하는 개념이다.
2) 노담(老聃):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여기서 인용된 말은 《노자(老子)》 제36장에 나오는 “나라의 이로운 그릇은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國之利器不可以示人]”는 구절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권력(利器)을 연못(國)에, 신하를 물고기(魚)에 비유하여, 군주가 권력을 신하에게 넘겨주는 것은 연못의 주인이 물고기를 잃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3) 육회솔(鬻懷刷): ‘팔 육(鬻)’, ‘품을 회(懷)’, ‘솔 솔(刷)’. 군주의 총애를 얻는 행위를 비유하는 말이다. 군주가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것[久語]이나, 군주의 옷자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懷刷] 사소한 행위조차도 측근에게는 군주의 총애를 상징하는 것이 되어, 이를 이용해 다른 이들에게 위세를 부리거나 뇌물을 받고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가리킨다.
4) 서동(胥僮)之諫厲公, 州侯之一言, 燕人浴矢: 이어지는 「설일(說一)」에서 구체적인 고사로 설명될 내용들을 예시로 든 것이다. 각각 진(晉) 여공, 초(荊)나라 주후, 연(燕)나라 사람의 고사이다.
[원문 80]
內儲說下:
權借一
[번역문]
권세를 빌려주는 것[權借]의 첫 번째.
[원문 81]
內儲說下:
君臣之利異,故人臣莫忠,故臣利立而主利滅。是以姦臣者,召敵兵以內除,舉外事以眩主,苟成其私利,不顧國患。其說在衛人之夫妻禱祝也。故戴歇議子弟,而三桓攻昭公;公叔內齊軍,而翟黃召韓兵;太宰嚭說大夫種,大成牛教申不害;司馬喜告趙王,呂倉規秦、楚;宋石遺衛君書,白圭教暴譴。
[번역문]
군주와 신하의 이해관계는 다르므로 신하된 자는 충성하지 않으며, 따라서 신하의 이익이 서면 군주의 이익은 사라진다. 이 때문에 간사한 신하는 적국의 군대를 불러들여 내부의 정적을 제거하고, 외부의 일을 일으켜 군주를 현혹시키며, 구차하게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만 이룰 뿐 나라의 우환은 돌아보지 않는다. 그 설명은 위(衛)나라 부부의 기도 이야기에 있다. 그러므로 대헐(戴歇)은 공자들을 외국에 벼슬시키는 것을 논하였고, 삼환(三桓)¹⁾은 소공(昭公)을 공격했으며, 공숙(公叔)은 제(齊)나라 군대를 끌어들였고, 적황(翟黃)은 한(韓)나라 군대를 불렀다. 태재 비(太宰嚭)는 대부 종(大夫種)을 설득했고, 대성우(大成牛)는 신불해(申不害)를 가르쳤으며, 사마희(司馬喜)는 조(趙)나라 왕에게 기밀을 알렸고, 여창(呂倉)은 진(秦)나라와 초(楚)나라를 위해 계책을 꾸몄다. 송석(宋石)은 위군(衛君)에게 서신을 보냈고, 백규(白圭)는 포견(暴譴)을 가르쳤다.
[주석]
1) 삼환(三桓): 노(魯)나라 환공(桓公)의 후손인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 세 가문을 가리킨다. 이들은 노나라의 권력을 장악하고 군주를 위협했다.
[원문 82]
內儲說下:
利異二
[번역문]
이해관계가 다른 것[利異]의 두 번째.
[원문 83]
內儲說下:
似類之事,人主之所以失誅,而大臣之所以成私也。是以門人捐水而夷射誅,濟陽自矯而二人罪,司馬喜殺爰騫而季辛誅,鄭袖言惡臭而新人劓,費無忌教郤宛而令尹誅,陳需殺張壽而犀首走。故燒芻廥而中山罪,殺老儒而濟陽賞也。
[번역문]
겉모습이 비슷하여 속기 쉬운 일[似類之事]은 군주가 처벌의 대상을 잘못 판단하게 되는 까닭이며, 대신(大臣)이 사사로운 이익을 이루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문지기가 물을 버렸으나 이사(夷射)가 처형되었고, 제양군(濟陽君)이 스스로 거짓 명을 꾸며 두 사람이 죄를 받았으며, 사마희(司馬喜)가 원건(爰騫)을 죽였으나 계신(季辛)이 처형되었다. 정수(鄭袖)가 나쁜 냄새가 난다고 말하여 새로운 미인의 코가 베였고[劓]¹⁾, 비무기(費無忌)가 극완(郤宛)을 속여 영윤(令尹)이 그를 죽였으며, 진수(陳需)가 장수(張壽)를 죽이자 서수(犀首)가 달아났다. 그러므로 마초 창고를 불태운 일로 중산(中山)의 공자가 죄를 받았고, 늙은 유학자를 죽인 일로 제양(濟陽)의 서자가 상을 받았다.
[주석]
1) 의(劓): 고대 중국의 형벌 중 하나로 코를 베는 형벌이다.
[원문 84]
內儲說下:
似類三
[번역문]
유사한 것에 의탁하는 것[似類]의 세 번째.
[원문 85]
內儲說下:
事起而有所利,其尸主之;有所害,必反察之。是以明主之論也,國害則省其利者,臣害則察其反者。其說在楚兵至而陳需相,黍種貴而廩吏覆。是以昭奚恤執販茅,而不僖侯譙其次;文公髮繞炙,而穰侯請立帝。
[번역문]
어떤 일이 일어나서 이익을 보는 자가 있다면, 그가 그 일의 주모자[尸主之]¹⁾이다. 손해를 보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이면을 살펴야 한다. 이런 까닭에 현명한 군주가 논단할 때에는, 나라에 해가 되면 그로 인해 이익을 얻는 자를 살피고, 신하에게 해가 되면 그 반대의 경우를 살핀다. 그 설명은 초(楚)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진수(陳需)가 재상이 된 일과, 기장 종자 가격이 비싸지자 창고 관리가 조사를 받은 일에 있다. 이 때문에 소해휼(昭奚恤)은 띠를 파는 자를 잡아들였고, 소희후(昭僖侯)는 그 다음 사람을 꾸짖었으며, 문공(文公)은 머리카락으로 감싼 구이를 보고 그 이면을 밝혔고, 양후(穰侯)는 황제를 세우자고 청하였다.
[주석]
1) 시주지(尸主之): ‘시(尸)’는 제사 때 신(神)을 대신하여 앉아 있는 사람, 즉 주관자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사건의 배후에 있는 주모자, 즉 그 사건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 자를 가리킨다.
[원문 86]
內儲說下:
有反四
[번역문]
상반된 이면이 있는 것[有反]의 네 번째.
[원문 87]
內儲說下:
參疑之勢,亂之所由生也,故明主慎之。是以晉驪姬殺太子申生,而鄭夫人用毒藥,郤州吁殺其君完,公子根取東周,王子職甚有寵,而商臣果作亂,嚴遂、韓廆爭而哀侯果遇賊,田常、闞止、戴驩、皇喜敵而宋君、簡公殺。其說在狐突之稱二好,與鄭昭之對未生也。
[번역문]
여러 의심이 뒤섞이는 형세[參疑之勢]는 혼란이 생겨나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이를 신중히 다룬다. 이 때문에 진(晉)나라 여희(驪姬)는 태자 신생(申生)을 죽였고, 정(鄭)나라 부인은 독약을 사용했으며, 위(衛)나라 주우(州吁)는 그의 군주 완(完)을 죽였다. 공자 근(公子根)은 동주(東周)를 차지했고, 왕자 직(王子職)이 매우 총애를 받자 상신(商臣)이 과연 난을 일으켰다. 엄수(嚴遂)와 한괴(韓廆)가 다투어 애후(哀侯)가 결국 도적에게 죽임을 당했고, 전상(田常)과 간지(闞止), 대환(戴驩)과 황희(皇喜)가 대립하여 송군(宋君)과 간공(簡公)이 살해되었다. 그 설명은 호돌(狐突)이 ‘두 가지 좋아함[二好]’을 말한 것과, 정소(鄭昭)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대답한 것에 있다.
[원문 88]
內儲說下:
參疑五
[번역문]
여러 의심이 뒤섞이는 것[參疑]의 다섯 번째.
[원문 89]
內儲說下:
敵之所務在淫察而就靡,人主不察則敵廢置矣。故文王資費仲,而秦王患楚使,黎且去仲尼,而干象沮甘茂。是以子胥宣言而子常用,內美人而虞、虢亡,佯遺書而萇宏死,用雞猳而鄶桀盡。
[번역문]
적국이 힘쓰는 바는 상대를 면밀히 살피고 약점을 이용해 무너뜨리는 데 있으니, 군주가 이를 살피지 못하면 적국에 의해 신하가 내쳐지거나 등용되게 된다. 그러므로 문왕(文王)은 비중(費仲)을 지원했고, 진(秦)나라 왕은 초(楚)나라 사신을 걱정했으며, 이저(黎且)는 중니(仲尼)¹⁾를 떠나게 했고, 간상(干象)은 감무(甘茂)를 좌절시켰다. 이 때문에 자서(子胥)가 헛소문을 퍼뜨리자 자상(子常)이 등용되었고, 미인을 들여보내자 우(虞)나라와 괵(虢)나라가 망했으며, 거짓으로 서신을 떨어뜨리자 장홍(萇弘)이 죽었고, 닭과 수퇘지를 이용하자 회(鄶)나라의 호걸들이 모두 제거되었다.
[주석]
1) 중니(仲尼): 공자(孔子)의 자(字)이다.
[원문 90]
內儲說下:
廢置六
[번역문]
신하를 등용하거나 내치게 만드는 것[廢置]의 여섯 번째.
[원문 91]
內儲說下:
參疑廢置之事,明主絕之於內而施之於外。資其輕者,輔其弱者,此謂廟攻。參伍既用於內,觀聽又行於外,則敵偽得。其說在秦侏儒之告惠文君也。故襄疵言襲鄴,而嗣公賜令蓆。
[번역문]
여러 의심을 뒤섞고 신하를 등용하거나 내치게 만드는 일은, 현명한 군주라면 내부에서는 이를 근절하고 외부의 적국에게는 이를 시행한다. 적국의 경망한 자를 지원하고, 적국의 약한 자를 도우니, 이를 일러 묘공(廟攻)¹⁾이라 한다. 삼오(參伍)²⁾의 법을 이미 내부에서 사용하고, 보고 듣는 정탐을 또한 외부에서 행하면, 적의 거짓된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그 설명은 진(秦)나라 난쟁이가 혜문군(惠文君)에게 보고한 일에 있다. 그러므로 양자(襄疵)가 업(鄴)을 습격할 것이라 말하자, 사군(嗣公)은 현령에게 자리를 하사하였다.
[주석]
1) 묘공(廟攻): ‘묘당(廟堂)에서의 공격’이라는 뜻으로, 군사적 충돌 없이 조정에서의 외교, 첩보, 이간책 등 정치적 수단을 통해 적국을 공격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삼오(參伍): 여러 정보들을 서로 비교하고 대조하여 그 진위를 가리는 방법을 말한다. 한비자가 강조하는 신하 감찰 및 정보 분석의 핵심 기법이다.
[원문 92]
內儲說下:
廟攻
[번역문]
묘공(廟攻).
[원문 93]
內儲說下:
右經
[번역문]
이상은 경(經)이다.
說 (설)
[원문 94]
內儲說下:
說一
[번역문]
설명 일(一).
[원문 95]
內儲說下:
勢重者,人主之淵也;臣者,勢重之魚也。魚失於淵而不可復得也,人主失其勢重於臣而不可復收也。古之人難正言,故託之於魚。
[번역문]
권세[勢重]는 군주의 연못이요, 신하는 권세라는 연못 속의 물고기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면 다시 얻을 수 없듯이, 군주는 신하에게 권세를 잃으면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다. 옛사람들은 정면으로 말하기 어려웠으므로, 물고기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원문 96]
內儲說下:
賞罰者,利器也。君操之以制臣,臣得之以擁主。故君先見所賞則臣鬻之以為德,君先見所罰則臣鬻之以為威。故曰:「國之利器不可以示人。」
[번역문]
상벌은 날카로운 무기[利器]이다. 군주는 그것을 쥐고 신하를 제압하고, 신하는 그것을 얻어 군주를 막아선다. 그러므로 군주가 상 주려는 뜻을 먼저 보이면 신하가 이를 팔아 자신의 은덕으로 삼고, 군주가 벌 주려는 뜻을 먼저 보이면 신하가 이를 팔아 자신의 위세로 삼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나라의 이로운 무기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¹⁾고 한 것이다.
[주석]
1) 國之利器不可以示人: 《노자(老子)》 제36장의 구절이다. 한비자는 노자의 이 구절을 법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군주의 핵심 권한인 상벌권을 신하에게 드러내거나 위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원문 97]
內儲說下:
靖郭君相齊,與故人久語則故人富,懷左右刷則左右重。久語懷刷,小資也,猶以成富,況於吏勢乎?
[번역문]
정곽군(靖郭君)¹⁾이 제(齊)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옛 친구와 오래 이야기하면 그 친구가 부유해졌고, 측근의 옷을 어루만지며 먼지를 털어주면[懷刷] 그 측근의 지위가 중요해졌다. 오래 이야기하고 옷의 먼지를 털어주는 것은 작은 자산에 불과한데도 오히려 부를 이룰 수 있었으니, 하물며 관직의 권세에 있어서랴?
[주석]
1) 정곽군(靖郭君):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귀족으로 이름은 전영(田嬰)이다.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의 아버지이다.
[원문 98]
內儲說下:
晉厲公之時,六卿貴。胥僮長魚矯諫曰:「大臣貴重,敵主爭事,外市樹黨,下亂國法,上以劫主,而國不危者,未嘗有也。」公曰:「善。」乃誅三卿。胥僮長魚矯又諫曰:「夫同罪之人偏誅而不盡,是懷怨而借之閒也。」公曰:「吾一朝而夷三卿,予不忍盡也。」長魚矯對曰:「公不忍之,彼將忍公。」公不聽,居三月,諸卿作難,遂殺厲公而分其地。
[번역문]
진(晉)나라 여공(厲公) 때에 여섯 경[六卿]¹⁾의 세력이 강대했다. 서동(胥僮)과 장어교(長魚矯)가 간언하여 말하기를, “대신들의 지위가 높고 권세가 무거워지면, 군주와 일을 다투고, 밖으로는 사사로이 세력을 형성하며, 아래로는 국법을 어지럽히고, 위로는 군주를 위협하게 되니, 그러고서도 나라가 위태롭지 않은 경우는 아직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여공이 “좋다.” 하고는 세 명의 경을 주살하였다. 서동과 장어교가 또 간언하여 말하기를, “무릇 같은 죄를 지은 사람들을 일부만 주살하고 모두 없애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원한을 품게 하고 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여공이 말하기를, “내가 하루아침에 세 명의 경을 죽였으니, 차마 모두 죽일 수는 없구나.”라고 하였다. 장어교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공께서 그들을 차마 죽이지 못하시면, 그들이 장차 공을 차마 해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여공이 듣지 않았는데, 석 달이 지나자 여러 경들이 난을 일으켜 마침내 여공을 시해하고 그의 땅을 나누어 가졌다.
[주석]
1) 육경(六卿):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국정을 장악했던 여섯 가문, 즉 범씨(范氏), 중항씨(中行氏), 지씨(知氏), 한씨(韓氏), 위씨(魏氏), 조씨(趙氏)를 가리킨다.
[원문 99]
內儲說下:
州侯相荊,貴而主斷,荊王疑之,因問左右,左右對曰「無有」,如出一口也。
[번역문]
주후(州侯)가 초[荊]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지위가 존귀해져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자, 초나라 왕이 그를 의심하여 측근들에게 물었으나, 측근들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마치 한 입에서 나온 듯 똑같았다.
[원문 100]
內儲說下:
燕人無惑,故浴狗矢。燕人、其妻有私通於士,其夫早自外而來,士適出,夫曰:「何客也?」其妻曰:「無客。」問左右,左右言無有,如出一口。其妻曰:「公惑易也。」因浴之以狗矢。
[번역문]
연(燕)나라 사람은 현혹되지 않았는데도 개똥으로 목욕을 했다. 연나라 사람의 아내가 어떤 남자와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 있었는데, 그 남편이 일찍 밖에서 돌아오자 남자가 막 나가고 있었다. 남편이 묻기를, “어떤 손님이었소?”라고 하니, 아내가 말하기를, “손님은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주위 사람들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마치 한 입에서 나온 듯 똑같았다. 그러자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께서 쉽게 현혹되시는군요.” 하고는 그에게 개똥으로 목욕을 시켰다.¹⁾
[주석]
1) 浴之以狗矢: 고대에 귀신에 씌거나 헛것을 보았다고 여겨질 때,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개똥이나 오물을 뿌려 귀신을 쫓는 미신적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아내와 주변인들이 공모하여 남편을 속이고, 그가 헛것을 본 것이라며 모욕을 주는 상황을 묘사한다. 이는 군주가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눈과 귀가 가려지는[壅] 상황을 비유한다.
[원문 101]
內儲說下:
一曰。燕人李季好遠出,其妻私有通於士,季突至,士在內中,妻患之,其室婦曰:「令公子裸而解髮直出門,吾屬佯不見也。」於是公子從其計,疾走出門,季曰:「是何人也?」家室皆曰:「無有。」季曰:「吾見鬼乎?」婦人曰:「然。」「為之奈何?」「取五姓之矢浴之。」季曰:「諾。」乃浴以矢。一曰浴以蘭湯。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연(燕)나라 사람 이계(李季)는 멀리 나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의 아내가 어떤 남자와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 있었다. 이계가 갑자기 돌아오자 남자가 집 안에 있었으므로 아내가 이를 걱정하니, 그녀의 시녀가 말하기를, “그 남자에게 벌거벗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곧장 문밖으로 나가게 하십시오. 저희들은 못 본 척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남자가 그 계책을 따라 빠르게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계가 묻기를, “이 자는 누구인가?”라고 하니, 집안사람들이 모두 “아무도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계가 말하기를, “내가 귀신을 보았는가?”라고 하니, 아내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아내가 대답하기를, “다섯 성씨의 오줌[矢]¹⁾을 받아 그것으로 목욕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이계가 “알겠다.” 하고는 마침내 오줌으로 목욕을 하였다. 일설에는 난초를 삶은 물[蘭湯]로 목욕했다고도 한다.
[주석]
1) 矢: ‘화살 시’이지만, 여기서는 ‘똥 시(屎)’와 통용되어 오줌이나 똥을 의미한다. 앞선 이야기의 ‘구시(狗矢)’와 맥락이 같다.
[원문 102]
內儲說下:
說二
[번역문]
설명 이(二).
[원문 103]
內儲說下:
衛人有夫妻禱者,而祝曰:「使我無故,得百束布。」其夫曰:「何少也?」對曰:「益是,子將以買妾。」
[번역문]
위(衛)나라에 어떤 부부가 기도를 하는데, 아내가 축원하여 말하기를, “아무 까닭 없이 베 백 필을 얻게 해 주소서.”라고 하였다. 그 남편이 말하기를, “어찌 그리 적게 비는가?”라고 하니, 아내가 대답하기를, “이보다 더 많아지면, 당신은 그것으로 첩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04]
內儲說下:
荊王欲宦諸公子於四鄰,戴歇曰:「不可。」「宦公子於四鄰,四鄰必重之」。曰:「子出者重,重則必為所重之國黨,則是教子於外市也,不便。」
[번역문]
초[荊]나라 왕이 여러 공자들을 이웃 나라에서 벼슬살이하게 하려고 하자, 대헐(戴歇)이 말하기를, “불가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공자들을 이웃 나라에서 벼슬살이하게 하면, 이웃 나라들이 반드시 그들을 중히 여길 것이다.”라고 하자, 대헐이 말하기를, “공자들이 나가서 중용되면, 반드시 그들을 중용하는 나라의 편이 될 것이니, 이는 공자들에게 밖에서 세력을 만들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아 이롭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05]
內儲說下:
魯孟孫、叔孫、季孫相戮力劫昭公,遂奪其國而擅其制。魯三桓公偪,昭公攻季孫氏,而孟孫氏、叔孫氏相與謀曰:「救之乎?」叔孫氏之御者曰:「我,家臣也,安知公家?凡有季孫與無季孫於我孰利?」皆曰:「無季孫必無叔孫。」「然則救之。」於是撞西北隅而入,孟孫見叔孫之旗入,亦救之,三桓為一,昭公不勝,逐之死於乾侯。
[번역문]
노(魯)나라의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가 서로 힘을 합쳐 소공(昭公)을 위협하여, 마침내 그의 나라를 빼앗고 제도를 마음대로 하였다. 노나라 삼환(三桓)이 군주를 핍박하자, 소공이 계손씨를 공격했다. 그러자 맹손씨와 숙손씨가 서로 모의하여 말하기를, “그를 구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숙손씨의 어자(御者)¹⁾가 말하기를, “저는 가신(家臣)일 뿐인데, 어찌 공가(公家)의 일을 알겠습니까? 다만 계손씨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중 어느 것이 저희에게 이롭습니까?”라고 하니, 모두가 말하기를, “계손씨가 없으면 반드시 숙손씨도 없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를 구하자.” 하고는 서북쪽 모퉁이를 들이받고 들어가니, 맹손씨가 숙손씨의 깃발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또한 그를 구했다. 삼환이 하나가 되니 소공이 이기지 못하고 쫓겨나 건후(乾侯)에서 죽었다.
[주석]
1) 어자(御者): 수레를 모는 사람. 여기서는 가문의 중요한 신하를 가리킨다.
[원문 106]
內儲說下:
公叔相韓而有攻齊,公仲甚重於王,公叔恐王之相公仲也,使齊、韓約而攻魏,公叔因內齊軍於鄭,以劫其君,以固其位,而信兩國之約。
[번역문]
공숙(公叔)이 한(韓)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제(齊)나라를 공격하려 했는데, 공중(公仲)이 왕에게 매우 중용되고 있었다. 공숙은 왕이 공중을 재상으로 삼을까 두려워하여, 제나라와 한나라가 동맹을 맺어 위(魏)나라를 공격하게 하고, 공숙은 이를 빌미로 제나라 군대를 정(鄭)나라 땅으로 끌어들여 그의 군주를 위협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굳건히 하고 양국의 동맹을 확실하게 하였다.
[원문 107]
內儲說下:
翟璜,魏王之臣也,而善於韓,乃召韓兵令之攻魏,因請為魏王搆之以自重也。
[번역문]
적황(翟璜)은 위(魏)나라 왕의 신하이면서 한(韓)나라와 친하게 지냈다. 이에 한나라 군대를 불러 위나라를 공격하게 한 뒤, 위나라 왕을 위해 이를 해결해 주겠다고 청하여 스스로의 지위를 중하게 만들었다.
[원문 108]
內儲說下:
越王攻吳,王吳王謝而告服,越王欲許之,范蠡、大夫種曰:「不可。昔天以越與吳,吳不受,今天反夫差,亦天禍也。以吳予越,再拜受之,不可許也。」太宰嚭遺大夫種書曰:「狡兔盡則良犬烹,敵國滅則謀臣亡。大夫何不釋吳而患越乎?」大夫種受書讀之,太息而歎曰:「殺之,越與吳同命。」
[번역문]
월(越)나라 왕이 오(吳)나라를 공격하자, 오나라 왕 부차(夫差)가 사죄하며 항복을 고했다. 월나라 왕이 이를 허락하려 하자, 범려(范蠡)와 대부 종(大夫種)이 말하기를, “불가합니다. 옛날에 하늘이 월나라를 오나라에 주었으나 오나라가 받지 않았고, 지금 하늘이 도리어 부차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이니, 오나라를 월나라에 주는 것입니다. 두 번 절하고 받아야지,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태재 비(太宰嚭)가 대부 종에게 서신을 보내 말하기를, “교활한 토끼가 다 잡히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지고[狡兔盡則良犬烹], 적국이 멸망하면 계책을 낸 신하는 죽습니다. 대부께서는 어찌 오나라를 놓아주고 월나라를 걱정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대부 종이 서신을 받아 읽고는,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그를 죽이면, 월나라도 오나라와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09]
內儲說下:
大成牛從趙謂申不害於韓曰:「以韓重我於趙,請以趙重子於韓,是子有兩韓,我有兩趙。」
[번역문]
대성우(大成牛)가 조(趙)나라에서 한(韓)나라에 있는 신불해(申不害)에게 말하기를, “한나라의 힘으로 조나라에서 저의 지위를 중하게 해 주시면, 저는 조나라의 힘으로 한나라에서 그대의 지위를 중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대는 두 개의 한나라를 갖는 셈이고, 저는 두 개의 조나라를 갖는 셈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10]
內儲說下:
司馬喜,中山君之臣也,而善於趙,嘗以中山之謀微告趙王。
[번역문]
사마희(司馬喜)는 중산국(中山國) 군주의 신하이면서 조(趙)나라와 친하게 지내, 일찍이 중산국의 계획을 몰래 조나라 왕에게 알려주었다.
[원문 111]
內儲說下:
呂倉,魏王之臣也,而善於秦、荊,微諷秦、荊令之攻魏,因請行和以自重也。
[번역문]
여창(呂倉)은 위(魏)나라 왕의 신하이면서 진(秦)나라 및 초[荊]나라와 친하게 지냈다. 그는 몰래 진나라와 초나라를 부추겨 위나라를 공격하게 한 뒤, 화친을 주선하겠다고 청하여 스스로의 지위를 중하게 만들었다.
[원문 112]
內儲說下:
宋石,魏將也。衛君,荊將也。兩國搆難,二子皆將,宋石遺衛君書曰:「二軍相當,兩旗相望,唯毋一戰,戰必不兩存,此乃兩主之事也,與子無有私怨,善者相避也。」
[번역문]
송석(宋石)은 위(魏)나라 장수이고, 위군(衛君)은 초[荊]나라 장수였다.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게 되어 두 사람이 모두 장수가 되자, 송석이 위군에게 서신을 보내 말하기를, “두 군대가 마주 보고 있고, 양측의 깃발이 서로 바라보고 있소. 부디 한 번의 전투도 벌이지 맙시다. 싸우면 반드시 두 사람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이는 두 군주의 일일 뿐, 그대와 나 사이에 사사로운 원한은 없으니, 현명한 자라면 서로 피하는 것이 좋겠소.”라고 하였다.
[원문 113]
內儲說下:
白圭相魏,暴譴相韓。白圭謂暴譴曰:「子以韓輔我於魏,我請以魏待子於韓,臣長用魏,子長用韓。」
[번역문]
백규(白圭)는 위(魏)나라 재상이었고, 포견(暴譴)은 한(韓)나라 재상이었다. 백규가 포견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한나라의 힘으로 위나라에 있는 나를 돕는다면, 나는 위나라의 힘으로 한나라에 있는 그대를 대우하겠소. 그러면 나는 오랫동안 위나라에서 권력을 누리고, 그대는 오랫동안 한나라에서 권력을 누릴 것이오.”라고 하였다.
[원문 114]
內儲說下:
說三
[번역문]
설명 삼(三).
[원문 115]
內儲說下:
齊中大夫有夷射者,御飲於王,醉甚而出,倚於郎門,門者刖跪請曰:「足下無意賜之餘瀝乎?」夷射曰:「叱去!刑餘之人,何事乃敢乞飲長者?」刖跪走退,及夷射去,刖跪因捐水郎門霤下,類溺者之狀。明日,王出而訶之曰:「誰溺於是?」刖跪對曰:「臣不見也。雖然,昨日中大夫夷射立於此。」王因誅夷射而殺之。
[번역문]
제(齊)나라 중대부(中大夫) 중에 이사(夷射)라는 자가 있었다. 왕을 모시고 술을 마시다가 심하게 취하여 나와 낭문(郎門)¹⁾에 기대어 서 있었다. 월형(刖刑)²⁾을 받은 문지기가 다가와 무릎을 꿇고 청하기를, “나리께서 남은 술 몇 방울이라도 하사해 주실 뜻은 없으십니까?”라고 하였다. 이사가 꾸짖어 말하기를, “물러가라! 형벌을 받은 몸으로 어찌 감히 어른에게 술을 구걸하느냐?”라고 하였다. 월형 받은 문지기가 달아나 물러갔다. 이사가 떠나자, 월형 받은 문지기는 낭문 처마 밑에 물을 버려 마치 오줌을 눈 것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 다음 날, 왕이 나와서 그것을 보고 꾸짖어 말하기를, “누가 여기에 오줌을 누었는가?”라고 하였다. 월형 받은 문지기가 대답하기를, “신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하오나, 어제 중대부 이사께서 여기에 서 계셨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이로 인하여 이사를 주살하였다.
[주석]
1) 낭문(郎門): 궁궐의 복도에 있는 문.
2) 월형(刖刑): 발뒤꿈치를 베는 형벌.
[원문 116]
內儲說下:
魏王臣二人不善濟陽君,濟陽君因偽令人矯王命而謀攻己,王使人問濟陽君曰:「誰與恨?」對曰:「無敢與恨,雖然,嘗與二人不善,不足以至於此。」王問左右,左右曰:「固然。」王因誅二人者。
[번역문]
위(魏)나라 왕의 신하 두 사람이 제양군(濟陽君)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제양군은 거짓으로 사람을 시켜 왕명을 사칭하여 자신을 공격하도록 모의하게 하였다. 왕이 사람을 보내 제양군에게 묻기를, “누구와 원한이 있는가?”라고 하니, 제양군이 대답하기를, “감히 누구와 원한을 맺은 일은 없습니다. 그러하오나, 일찍이 두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이 지경에 이를 정도는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측근들에게 물으니, 측근들이 말하기를, “진실로 그러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이로 인하여 그 두 사람을 주살하였다.
[원문 117]
內儲說下:
季辛與爰騫相怨。司馬喜新與季辛惡,因微令人殺爰騫,中山之君以為季辛也,因誅之。
[번역문]
계신(季辛)과 원건(爰騫)은 서로 원한 관계였다. 사마희(司馬喜)가 새로이 계신과 사이가 나빠지자, 몰래 사람을 시켜 원건을 죽이고는, 중산국(中山國)의 군주가 계신이 한 짓이라고 여기게 하여 그를 주살하게 하였다.
[원문 118]
內儲說下:
荊王所愛妾有鄭袖者。荊王新得美女,鄭袖因教之曰:「王甚喜人之掩口也,為近王,必掩口。」美女入見,近王,因掩口,王問其故,鄭袖曰:「此固言惡王之臭。」及王與鄭袖、美女三人坐,袖因先誡御者曰:「王適有言,必亟聽從。」王言美女前,近王,甚數掩口,王悖然怒曰:「劓之。」御因揄刀而劓美人。
[번역문]
초[荊]나라 왕이 사랑하는 첩 중에 정수(鄭袖)라는 자가 있었다. 초나라 왕이 새로 미녀를 얻자, 정수는 그녀를 시기하여 가르쳐 말하기를, “왕께서는 사람이 입을 가리는 것을 매우 좋아하시니, 왕을 가까이할 때에는 반드시 입을 가리도록 하시오.”라고 하였다. 미녀가 들어가 왕을 뵐 때, 왕에게 가까이 가면서 입을 가렸다. 왕이 그 까닭을 묻자, 정수가 말하기를, “이것은 본래 왕의 체취가 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정수, 그리고 미녀 세 사람과 함께 앉아 있을 때, 정수는 미리 시종에게 경계시켜 말하기를, “왕께서 잠시 후에 무슨 말씀을 하시든, 반드시 즉시 따르도록 하라.”고 하였다. 왕이 미녀 앞에서 말하기를, “왕에게 가까이 오면서 매우 자주 입을 가리는구나.” 하고는, 발끈 화를 내며 말하기를, “그녀의 코를 베어라[劓之]!”라고 하였다. 시종이 칼을 뽑아 그 미인의 코를 베었다.
[원문 119]
內儲說下:
一曰。魏王遺荊王美人,荊王甚悅之,夫人鄭袖知王悅愛之也,亦悅愛之,甚於王,衣服玩好擇其所欲為之,王曰:「夫人知我愛新人也,其悅愛之甚於寡人,此孝子所以養親,忠臣之所以事君也。」夫人知王之不以己為妒也,因為新人曰:「王甚悅愛子,然惡子之鼻,子見王,常掩鼻,則王長幸子矣。」於是新人從之,每見王,常掩鼻,王謂夫人曰:「新人見寡人常掩鼻何也?」對曰:「不己知也。」王強問之,對曰:「頃嘗言惡聞王臭。」王怒曰:「劓之。」夫人先誡御者曰:「王適有言,必可從命。」御者因揄刀而劓美人。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위(魏)나라 왕이 초[荊]나라 왕에게 미인을 보내니, 초나라 왕이 그녀를 매우 기뻐하였다. 부인 정수(鄭袖)는 왕이 그녀를 기뻐하고 사랑함을 알고는, 자신 또한 그녀를 기뻐하고 사랑하기를 왕보다 더 심하게 하여, 의복과 노리개 등 그녀가 원하는 것을 골라 마련해 주었다. 왕이 말하기를, “부인은 내가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그녀를 기뻐하고 사랑함이 과인보다 더 심하니, 이는 효자가 어버이를 봉양하고 충신이 군주를 섬기는 도리로다.”라고 하였다. 부인은 왕이 자기를 질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자, 새로운 미인에게 말하기를, “왕께서 그대를 매우 기뻐하고 사랑하시지만, 그대의 코를 싫어하시니, 그대가 왕을 뵐 때 항상 코를 가리면 왕께서 오랫동안 그대를 총애하실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에 새로운 미인이 그 말을 따라 매번 왕을 뵐 때마다 항상 코를 가렸다. 왕이 부인에게 말하기를, “새로운 사람이 과인을 볼 때마다 항상 코를 가리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니, 부인이 대답하기를, “저도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억지로 캐물으니, 대답하기를, “얼마 전에 왕의 체취를 맡기 싫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노하여 말하기를, “그녀의 코를 베어라!”라고 하였다. 부인이 미리 시종에게 경계시켜 말하기를, “왕께서 잠시 후에 무슨 말씀을 하시든, 반드시 명에 따르도록 하라.”고 하였다. 시종이 칼을 뽑아 그 미인의 코를 베었다.
[원문 120]
內儲說下:
費無極,荊令尹之近者也。郤宛新事令尹,令尹甚愛之,無極因謂令尹曰:「君愛宛甚,何不一為酒其家?」令尹曰:「善。」因令之為具於郤宛之家。無極教宛曰:「令尹甚傲而好兵,子必謹敬,先亟陳兵堂下及門庭。」宛因為之。令尹往而大驚曰:「此何也?」無極曰:「君殆去之,事未可知也。」令尹大怒,舉兵而誅郤宛,遂殺之。
[번역문]
비무기(費無忌)¹⁾는 초[荊]나라 영윤(令尹)²⁾의 측근이었다. 극완(郤宛)이 새로 영윤을 섬기게 되자 영윤이 그를 매우 아꼈다. 비무기가 이를 시기하여 영윤에게 말하기를, “군께서 극완을 매우 아끼시니, 어찌 한 번 그의 집에서 연회를 베풀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영윤이 “좋다.” 하고는 극완의 집에서 연회를 준비하게 하였다. 비무기는 극완에게 가르쳐 말하기를, “영윤께서는 매우 거만하고 병장기를 좋아하시니, 그대는 반드시 삼가고 공경하여, 먼저 서둘러 병장기를 당(堂) 아래와 문과 뜰에 진열해 두시오.”라고 하였다. 극완이 그 말대로 하였다. 영윤이 가서 보고는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하였다. 비무기가 말하기를, “군께서는 서둘러 이곳을 떠나십시오.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영윤이 크게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극완을 토벌하고 마침내 그를 죽였다.
[주석]
1) 비무기(費無忌):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간신. 이름은 비무극(費無極)이라고도 한다.
2) 영윤(令尹): 초(楚)나라의 최고 관직으로, 다른 나라의 재상(宰相)에 해당한다.
[원문 121]
內儲說下:
犀首與張壽為怨,陳需新入,不善犀首,因使人微殺張壽,魏王以為犀首也,乃誅之。
[번역문]
서수(犀首)¹⁾와 장수(張壽)는 원수지간이었다. 진수(陳需)가 새로 등용되었는데 서수와 사이가 좋지 않자, 몰래 사람을 시켜 장수를 죽이고는, 위(魏)나라 왕이 서수가 한 짓이라고 여기게 하여 그를 주살하게 하였다.
[주석]
1) 서수(犀首):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명장인 공손연(公孫衍)을 가리킨다. 서수는 그의 관직명이었다.
[원문 122]
內儲說下:
中山有賤公子,馬甚瘦,車甚弊,左右有私不善者,乃為之請王曰:「公子甚貧,馬甚瘦,王何不益之馬食?」王不許,左右因微令夜燒芻廄,王以為賤公子也,乃誅之。
[번역문]
중산국(中山國)에 미천한 신분의 공자가 있었는데, 그의 말은 매우 여위고 수레는 매우 낡았다. 그와 사사로이 사이가 좋지 않은 측근이 있어, 그를 위해 왕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공자께서 매우 가난하여 말이 몹시 여위었으니, 왕께서는 어찌하여 그에게 말먹이를 더해주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허락하지 않자, 그 측근은 몰래 사람을 시켜 밤에 마초 창고에 불을 지르게 하였다. 왕은 미천한 공자가 한 짓이라고 여겨, 그를 주살하였다.
[원문 123]
內儲說下:
魏有老儒而不善濟陽君,客有與老儒私怨者,因攻老儒殺之以德於濟陽君曰:「臣為其不善君也,故為君殺之。」濟陽君因不察而賞之。
[번역문]
위(魏)나라에 한 늙은 유학자가 있었는데 제양군(濟陽君)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늙은 유학자에게 사사로운 원한이 있던 어떤 식객이, 그 늙은 유학자를 공격하여 죽이고는 제양군에게 은혜를 베풀 듯이 말하기를, “신이 그가 군과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기에, 군을 위하여 그를 죽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제양군은 그 내막을 살피지 않고 그에게 상을 주었다.
[원문 124]
內儲說下:
一曰。濟陽君有少庶子,有不見知,欲入愛於君者,齊使老儒掘藥於馬梨之山,濟陽少庶子欲以為功,入見於君曰:「齊使老儒掘藥於馬梨之山,名掘藥也,實閒君之國,君殺之,是將以濟陽君抵罪於齊矣。臣請刺之。」君曰:「可。」於是明日得之城陰而刺之,濟陽君還益親之。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양군(濟陽君)에게 젊은 서자(庶子)가 있었는데, 인정을 받지 못하여 군주의 총애를 받고자 하였다. 제(齊)나라가 늙은 유학자를 시켜 마리산(馬梨之山)에서 약초를 캐게 하였는데, 제양군의 젊은 서자가 이를 공으로 삼고자 하여, 군주를 뵙고 말하기를, “제나라가 늙은 유학자를 시켜 마리산에서 약초를 캐게 하였는데, 명분은 약초를 캐는 것이나 실제로는 군의 나라를 염탐하는 것입니다. 군께서 그를 죽이시면, 이는 장차 제양군으로 하여금 제나라에 죄를 짓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이 그를 찔러 죽이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좋다.”고 하였다. 이에 다음 날 성의 그늘진 곳에서 그를 찾아 찔러 죽이니, 제양군은 도리어 그를 더욱 친근하게 대하였다.
[원문 125]
內儲說下:
說四
[번역문]
설명 사(四).
[원문 126]
內儲說下:
陳需,魏王之臣也,善於荊王,而令荊攻魏,荊攻魏,陳需因請為魏王行解之,因以荊勢相魏。
[번역문]
진수(陳需)는 위(魏)나라 왕의 신하였으나 초[荊]나라 왕과 친하게 지내, 초나라로 하여금 위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초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자, 진수는 이를 기회로 위나라 왕을 위해 이를 해결하겠다고 청하고, 초나라의 위세를 빌려 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원문 127]
內儲說下:
韓昭侯之時,黍種嘗貴甚,昭侯令人覆廩,吏果竊黍種而糶之甚多。
[번역문]
한(韓)나라 소후(昭侯) 때에 기장 종자 가격이 일찍이 매우 비싸진 적이 있었다. 소후가 사람을 시켜 창고를 조사하게 하니, 관리가 과연 기장 종자를 훔쳐 매우 많이 팔아넘기고 있었다.
[원문 128]
內儲說下:
昭奚恤之用荊也,有燒倉廥窌者,而不知其人,昭奚恤令吏執販茅者而問之,果燒也。
[번역문]
소해휼(昭奚恤)이 초[荊]나라에서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창고와 구덩이에 불을 지른 자가 있었으나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소해휼이 관리에게 띠[茅]를 파는 자들을 잡아 심문하게 하니, 과연 그들이 불을 지른 자들이었다.¹⁾
[주석]
1) 창고에 불이 나면 띠와 같은 인화성 물질의 수요가 늘어 띠 장수가 이익을 본다는 점에 착안한 수사 방법이다. 이는 ‘어떤 일이 일어나 이익을 보는 자가 주모자’라는 ‘유반(有反)’의 원칙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원문 129]
內儲說下:
昭僖侯之時,宰人上食而羹中有生肝焉。昭侯召宰人之次而誚之曰:「若何為置生肝寡人羹中?」宰人頓首服死罪曰:「竊欲去尚宰人也。」
[번역문]
한(韓)나라 소희후(昭僖侯)¹⁾ 때에, 요리사가 음식을 올렸는데 국 속에 생간이 들어 있었다. 소희후가 그 요리사의 다음 서열인 자를 불러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어찌하여 과인의 국 속에 생간을 넣었느냐?”라고 하였다. 그 요리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죽을죄를 자복하여 말하기를, “남몰래 선임 요리사를 제거하고 싶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소희후(昭僖侯): 한(韓)나라 소후(昭侯)를 가리킨다.
[원문 130]
內儲說下:
一曰。僖侯浴,湯中有礫,僖侯曰:「尚浴免則有當代者乎?」左右對曰:「有。」僖侯曰:「召而來。」譙之曰:「何為置礫湯中?」對曰:「尚浴免,則臣得代之,是以置礫湯中。」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희후(僖侯)가 목욕을 하는데, 탕 속에 자갈이 있었다. 희후가 말하기를, “목욕 시중을 드는 책임자가 면직되면 그를 대신할 자가 있는가?”라고 하니, 측근들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희후가 “불러오라.” 하고는, 그를 꾸짖어 말하기를, “어찌하여 탕 속에 자갈을 넣었느냐?”라고 하였다. 그가 대답하기를, “목욕 시중 책임자가 면직되면 신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으므로, 탕 속에 자갈을 넣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31]
內儲說下:
文公之時,宰臣上炙而髮繞之,文公召宰人而譙之曰:「女欲寡人之哽邪?奚為以髮繞炙。」宰人頓首再拜請曰:「臣有死罪三:援礪砥刀,利猶干將也,切肉,肉斷而髮不斷,臣之罪一也;援木而貫臠而不見髮,臣之罪二也;奉熾爐,炭火盡赤紅,而炙熟而髮不燒,臣之罪三也。堂下得無微有疾臣者乎?」公曰:「善。」乃召其堂下而譙之,果然,乃誅之。
[번역문]
진(晉)나라 문공(文公) 때에, 요리사가 구이를 올렸는데 머리카락이 감겨 있었다. 문공이 요리사를 불러 꾸짖어 말하기를, “네가 과인의 목을 메게 하려 하느냐? 어찌하여 머리카락으로 구이를 감았느냐?”라고 하였다. 요리사가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며 아뢰기를, “신에게는 죽을죄가 세 가지 있습니다. 숫돌을 가져다 칼을 갈아 그 날카로움이 간장(干將)¹⁾과 같았는데, 고기는 잘렸으나 머리카락은 끊어지지 않았으니, 이것이 신의 첫 번째 죄입니다. 나무 꼬챙이로 고기 조각을 꿰면서도 머리카락을 보지 못했으니, 이것이 신의 두 번째 죄입니다. 활활 타는 화로를 받들고 숯불이 온통 붉게 달아올라 고기는 익었는데 머리카락은 타지 않았으니, 이것이 신의 세 번째 죄입니다. 당(堂) 아래에 혹시 남몰래 신을 미워하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공이 “옳다.” 하고는, 당 아래의 신하들을 불러 꾸짖으니 과연 그러하였으므로, 그를 주살하였다.
[주석]
1) 간장(干將):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명검(名劍) 이름. 여기서는 매우 날카로운 칼을 비유한다.
[원문 132]
內儲說下:
一曰。晉平公觴客,少庶子進炙而髮繞之,平公趣殺炮人,毋有反令,炮人呼天曰:「嗟乎!臣有三罪,死而不自知乎?」平公曰:「何謂也?」對曰:「臣刀之利,風靡骨斷而髮不斷,是臣之一死也;桑炭炙之,肉紅白而髮不焦,是臣之二死也;炙熟又重睫而視之,髮繞炙而目不見,是臣之三死也。意者堂下其有翳憎臣者乎?殺臣不亦蚤乎!」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손님에게 술을 대접하는데, 젊은 서자가 올린 구이에 머리카락이 감겨 있었다. 평공이 요리사를 서둘러 죽이라고 명하며, 명을 거역하지 말라고 하였다. 요리사가 하늘을 부르짖으며 말하기를, “아아! 신에게 세 가지 죄가 있는데, 죽으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평공이 “무슨 말인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신의 칼날은 예리하여 바람에 쓰러지듯 뼈를 자르는데도 머리카락은 끊지 못했으니, 이것이 신의 첫 번째 죽을죄입니다. 뽕나무 숯으로 그것을 구워 고기는 붉고 희게 잘 익었는데 머리카락은 타지 않았으니, 이것이 신의 두 번째 죽을죄입니다. 구이가 익은 뒤에 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았는데, 머리카락이 구이에 감긴 것을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이것이 신의 세 번째 죽을죄입니다. 생각건대 당(堂) 아래에 신을 가리고 미워하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을 죽이는 것이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133]
內儲說下:
穰侯相秦而齊強,穰侯欲立秦為帝而齊不聽,因請立齊為東帝而不能成也。
[번역문]
양후(穰侯)¹⁾가 진(秦)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제(齊)나라가 강성했다. 양후는 진나라를 황제[帝]로 세우려 했으나 제나라가 듣지 않자, 이로 인해 제나라를 동제(東帝)로 세우자고 청했으나 이루지 못했다.²⁾
[주석]
1) 양후(穰侯):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재상 위염(魏冉)을 가리킨다.
2) 양후가 제나라를 동제로, 진나라를 서제(西帝)로 세우려 한 것은 제나라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진나라의 패권을 확립하려는 계책이었다. 이 사건의 이면에는 제나라의 강성함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양후의 사적인 이익이 있었다는 해석이다.
[원문 134]
內儲說下:
說五
[번역문]
설명 오(五).
[원문 135]
內儲說下:
晉獻公之時,驪姬貴,擬於后妻,而欲以其子奚齊代太子申生,因患申生於君而殺之,遂立奚齊為太子。
[번역문]
진(晉)나라 헌공(獻公) 때에 여희(驪姬)가 귀 총애를 받아 정실부인에 비견되었는데, 자기 아들 해제(奚齊)로 태자 신생(申生)을 대신하게 하려고 하였다. 이로 인해 군주에게 신생을 헐뜯어 그를 죽게 하고, 마침내 해제를 태자로 세웠다.
[원문 136]
內儲說下:
鄭君已立太子矣,而有所愛美女欲以其子為後,夫人恐,因用毒藥賊君殺之。
[번역문]
정(鄭)나라 군주가 이미 태자를 세웠으나, 사랑하는 미녀가 있어 그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자 하였다. 부인이 이를 두려워하여 독약을 써서 군주를 해치고 죽였다.
[원문 137]
內儲說下:
衛州吁重於衛,擬於君,群臣百姓盡畏其勢重,州吁果殺其君而奪之政。
[번역문]
위(衛)나라의 주우(州吁)가 위나라에서 중용되어 그 위세가 군주에 비견되니, 여러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그의 무거운 권세를 두려워했다. 주우는 과연 그의 군주를 죽이고 정권을 빼앗았다.
[원문 138]
內儲說下:
公子朝,周太子也,弟公子根甚有寵於君,君死,遂以東周叛,分為兩國。
[번역문]
공자 조(公子朝)는 주(周)나라 태자였는데, 그의 동생 공자 근(公子根)이 군주에게 매우 총애를 받았다. 군주가 죽자, 마침내 동주(東周)를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둘로 나누었다.
[원문 139]
內儲說下:
楚成王以商臣為太子,既而又欲置公子職。商臣作亂,遂攻殺成王。
[번역문]
초(楚)나라 성왕(成王)이 상신(商臣)을 태자로 삼았으나, 얼마 후에 또 공자 직(公子職)을 세우려 하였다. 상신이 난을 일으켜 마침내 성왕을 공격하여 죽였다.
[원문 140]
內儲說下:
一曰。楚成王商臣為太子,既欲置公子職。商臣聞之,未察也,乃為其傅潘崇曰:「奈何察之也?」潘崇曰:「饗江芊而勿敬也。」太子聽之。江芊曰:「呼役夫!宜君王之欲廢女而立職也。」商臣曰:「信矣。」潘崇曰:「能事之乎?」曰:「不能。」「能為之諸侯乎?」曰:「不能。」「能舉大事乎?」曰:「能。」於是乃起宿營之甲而攻成王,成王請食能膰而死,不許,遂自殺。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초(楚)나라 성왕(成王)이 상신(商臣)을 태자로 삼았으나, 이윽고 공자 직(公子職)을 세우려 하였다. 상신이 이 소문을 들었으나 확실히 알지 못하여, 그의 스승인 반숭(潘崇)에게 말하기를, “어떻게 하면 그 사실을 알아볼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반숭이 말하기를, “왕의 누이인 강芊(강芊)을 연회에 초대하여 공경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태자가 그 말을 따랐다. 강芊이 말하기를, “이런 종놈 같으니! 군왕께서 너를 폐하고 직을 세우려 하시는 것이 마땅하구나.”라고 하였다. 상신이 “사실이었구나.”라고 말하자, 반숭이 묻기를, “그를 섬길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불가능하다.”라고 대답했다. “다른 제후에게로 망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불가능하다.”라고 대답했다. “큰일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가능하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숙위하던 군사들을 일으켜 성왕을 공격하니, 성왕이 곰 발바닥 요리[熊膰]¹⁾를 먹고 죽게 해달라고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자,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석]
1) 웅번(熊膰): 곰의 발바닥을 삶아 만든 요리. 진귀한 음식으로,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성왕은 요리가 완성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외부의 구원군이 오기를 기대했으나, 상신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원문 141]
內儲說下:
韓廆相韓哀侯,嚴遂重於君,二人甚相害也,嚴遂乃令人刺韓廆於朝,韓廆走君而抱之,遂刺韓廆而兼哀侯。
[번역문]
한괴(韓廆)가 한(韓)나라 애후(哀侯)의 재상이었고, 엄수(嚴遂)는 군주에게 중용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심하게 해치려 하였는데, 엄수가 마침내 사람을 시켜 조정에서 한괴를 찌르게 하였다. 한괴가 군주에게 달려가 그를 껴안자, 자객이 한괴를 찌르면서 애후까지 함께 찔러 죽였다.
[원문 142]
內儲說下:
田恆相齊,闞止重於簡公,二人相憎而欲相賊也,田恆因行私惠以取其國,遂殺簡公而奪之政。
[번역문]
전항(田恆)¹⁾이 제(齊)나라 재상이었고, 간지(闞止)는 간공(簡公)에게 중용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미워하여 해치려 하였는데, 전항이 사사로이 은혜를 베풀어 나라의 인심을 얻고, 마침내 간공을 죽이고 정권을 빼앗았다.
[주석]
1) 전항(田恆): 춘추시대 말 제나라의 권신으로, 후에 제나라를 찬탈한 전씨(田氏) 가문의 인물이다. 이름은 전상(田常)이라고도 한다.
[원문 143]
內儲說下:
戴驩為宋太宰,皇喜重於君,二人爭事而相害也,皇喜遂殺宋君而奪其政。
[번역문]
대환(戴驩)이 송(宋)나라 태재(太宰)였고, 황희(皇喜)는 군주에게 중용되었다. 두 사람이 일을 두고 다투며 서로 해치려 하였는데, 황희가 마침내 송나라 군주를 죽이고 정권을 빼앗았다.
[원문 144]
內儲說下:
狐突曰:「國君好內則太子危,好外則相室危。」
[번역문]
호돌(狐突)¹⁾이 말하기를, “나라의 군주가 안[內]²⁾을 좋아하면 태자가 위태롭고, 밖[外]³⁾을 좋아하면 재상의 가문이 위태롭다.”라고 하였다.
[주석]
1) 호돌(狐突): 춘추시대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신하이며, 태자 신생(申生)의 외조부이다.
2) 내(內): 후궁, 즉 여색을 가리킨다. 군주가 여색에 빠지면 총애하는 후궁의 아들을 태자로 삼으려 하므로 기존의 태자가 위태로워진다는 의미이다.
3) 외(外): 궁궐 밖의 신하, 즉 권신(權臣)을 가리킨다. 군주가 특정 신하를 총애하면 그 권세가 강대해져 기존의 권력 기반인 재상 가문이 위협받는다는 의미이다.
[원문 145]
內儲說下:
鄭君問鄭昭曰:「太子亦何如?」對曰:「太子未生也。」君曰:「太子已置而曰未生何也?」對曰:「太子雖置,然而君之好色不已,所愛有子,君必愛之,愛之則必欲以為後,臣故曰太子未生也。」
[번역문]
정(鄭)나라 군주가 정소(鄭昭)에게 묻기를, “태자는 또한 어떠한가?”라고 하였다. 정소가 대답하기를, “태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태자가 이미 세워졌는데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니, 정소가 대답하기를, “태자가 비록 세워졌으나, 군주께서 여색을 좋아하심이 그치지 않으시니, 사랑하는 여인에게 아들이 생기면 군주께서는 반드시 그를 사랑하실 것이고, 그를 사랑하시면 반드시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태자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46]
內儲說下:
說六
[번역문]
설명 육(六).
[원문 147]
內儲說下:
文王資費仲而游於紂之旁,令之諫紂而亂其心。
[번역문]
문왕(文王)은 비중(費仲)을 지원하여 주왕(紂王)의 곁에서 활동하게 하고, 그로 하여금 주왕에게 간언하게 하여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원문 148]
內儲說下:
荊王使人之秦,秦王甚禮之。王曰:「敵國有賢者,國之憂也。今荊王之使者甚賢,寡人患之。」群臣諫曰:「以王之賢聖與國之資厚,願荊王之賢人。王何不深知之而陰有之,荊以為外用也,則必誅之。」
[번역문]
초[荊]나라 왕이 진(秦)나라에 사신을 보내니, 진나라 왕이 그를 매우 예우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적국에 현명한 자가 있는 것은 나라의 근심거리이다. 지금 초나라 왕의 사신이 매우 현명하니, 과인은 그것이 걱정이다.”라고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간언하여 말하기를, “왕의 현명하심과 성스러우심, 그리고 나라의 두터운 자원으로 보아, 초나라 왕에게 현명한 인재가 있기를 바라야 합니다. 왕께서는 어찌 그와 깊이 교유하여 남몰래 그를 우리 편으로 만들지 않으십니까? 초나라에서는 그가 외부 세력에게 쓰인다고 여기게 되면, 반드시 그를 주살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49]
內儲說下:
仲尼為政於魯,道不拾遺,齊景公患之,梨且謂景公曰:「去仲尼猶吹毛耳。君何不迎之以重祿高位,遺哀公女樂以驕榮其意。哀公新樂之,必怠於政,仲尼必諫,諫必輕絕於魯。」景公曰:「善。」乃令梨且以女樂二八遺哀公,哀公樂之,果怠於政,仲尼諫,不聽,去而之楚。
[번역문]
중니(仲尼)¹⁾가 노(魯)나라에서 정치를 맡으니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었다.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이를 걱정하자, 이저(黎且)가 경공에게 말하기를, “중니를 제거하는 것은 마치 털을 불어내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군께서는 어찌 그를 후한 녹봉과 높은 지위로 맞이하는 척하면서, 애공(哀公)에게 여악(女樂)을 보내 그의 뜻을 교만하고 영화롭게 만들지 않으십니까? 애공이 새로이 이를 즐기게 되면 반드시 정사에 게을러질 것이고, 중니는 반드시 간언할 것이며, 간언하면 반드시 노나라에서 가벼이 버려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경공이 “좋다.” 하고는, 이저에게 명하여 여악 16명[二八]을 애공에게 보내게 하였다. 애공이 이를 즐겨 과연 정사에 게을러졌고, 중니가 간언하였으나 듣지 않자, 노나라를 떠나 초(楚)나라로 갔다.
[주석]
1) 중니(仲尼): 공자(孔子)의 자(字)이다.
[원문 150]
內儲說下:
楚王謂干象曰:「吾欲以楚扶甘茂而相之秦可乎?」干象對曰:「不可也。」王曰:「何也?」曰:「甘茂少而事史舉先生,史舉,上蔡之監門也,大不事君,小不事家,以苛刻聞天下,茂事之順焉。惠王之明,張儀之辨也,茂事之,取十官而免於罪,是茂賢也。」王曰:「相人敵國而相賢,其不可何也?」干象曰:「前時王使邵滑之越,五年而能亡越,所以然者,越亂而楚治也。日者知用之越,今亡之秦,不亦太亟忘乎!」王曰:「然則為之奈何?」干象對曰:「不如相共立。」王曰:「共立可相何也?」對曰:「共立少見愛幸,長為貴卿,被王衣,含杜若,握玉環,以聽於朝。且利以亂秦矣。」
[번역문]
초(楚)나라 왕이 간상(干象)에게 말하기를, “내가 초나라의 힘으로 감무(甘茂)를 도와 진(秦)나라의 재상으로 삼는 것이 가능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간상이 대답하기를, “불가능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어째서인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감무는 젊어서 사거(史舉) 선생을 섬겼는데, 사거는 상채(上蔡)의 문지기로서, 크게는 군주를 섬기지 않고 작게는 집안을 돌보지 않으며, 가혹하고 각박하기로 천하에 알려졌으나 감무는 그를 순순히 섬겼습니다. 또한 혜왕(惠王)의 현명함과 장의(張儀)의 변론술에도 불구하고, 감무는 그들을 섬기면서 열 번이나 관직을 옮기면서도 죄를 면했으니, 이는 감무가 현명하다는 증거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적국에 사람을 재상으로 삼으면서 현명한 자를 삼는 것이 어찌하여 불가능하다는 것인가?”라고 하니, 간상이 말하기를, “지난번 왕께서 소활(邵滑)을 월(越)나라에 보내 5년 만에 월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던 까닭은, 월나라는 혼란하고 초나라는 잘 다스려졌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월나라에 썼던 지혜를 지금 진나라에 대해서는 잊으시니, 너무 빨리 잊으신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간상이 대답하기를, “공립(共立)을 재상으로 삼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공립을 재상으로 삼을 만한 점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공립은 어려서부터 총애를 받았고, 자라서는 귀한 경(卿)이 되어 왕의 옷을 입고, 두약(杜若)¹⁾을 머금고, 옥고리[玉環]를 쥐고 조정의 일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는 진나라를 혼란시키는 데 이로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두약(杜若): 향초의 일종. 입에 머금어 입 냄새를 제거하는 데 사용했다. 이는 공립이 실무 능력보다는 겉치레에 능한 인물임을 암시한다.
[원문 151]
內儲說下:
吳政荊,子胥使人宣言於荊曰:「子期用,將擊之。子常用,將去之。」荊人聞之,因用子常而退子期也。吳人擊之,遂勝之。
[번역문]
오(吳)나라가 초[荊]나라를 정벌할 때, 자서(子胥)가 사람을 시켜 초나라에 헛소문을 퍼뜨리기를, “자기(子期)가 등용되면 우리는 장차 공격할 것이고, 자상(子常)이 등용되면 우리는 장차 물러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초나라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자상을 등용하고 자기를 물리쳤다. 오나라 사람들이 이를 공격하여 마침내 승리하였다.
[원문 152]
內儲說下:
晉獻公伐虞、虢,乃遺之屈產之乘,垂棘之璧,女樂二八,以榮其意而亂其政。
[번역문]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우(虞)나라와 괵(虢)나라를 정벌하고자, 그들에게 굴(屈) 땅에서 나는 명마와 수극(垂棘)에서 나는 옥구슬, 그리고 16명의 여악(女樂)을 보내 그들의 뜻을 영화롭게 하고 그들의 정치를 어지럽혔다.
[원문 153]
內儲說下:
叔向之讒萇弘也,為書曰:「萇弘謂叔向曰:子為我謂晉君,所與君期者時可矣,何不亟以兵來?」因佯遺其書周君之庭而急去行,周以萇弘為賣周也,乃誅萇弘而殺之。
[번역문]
숙향(叔向)이 장홍(萇弘)을 참소할 때, 편지를 지어 쓰기를, “장홍이 숙향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나를 위해 진(晉)나라 군주에게, 군주와 약속했던 때가 되었으니 어찌 서둘러 군대를 이끌고 오지 않느냐고 전해주시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거짓으로 그 편지를 주(周)나라 군주의 뜰에 떨어뜨리고 급히 가버리니, 주나라에서는 장홍이 주나라를 팔아넘기려 한다고 여겨, 마침내 장홍을 주살하였다.
[원문 154]
內儲說下:
鄭桓公將欲襲鄶,先問鄶之豪傑良臣辯智果敢之士,盡與其姓名,擇鄶之良田賂之,為官爵之名而書之,因為設壇場郭門之外而埋之,釁之以雞豭,若盟狀。鄶君以為內難也而盡殺其良臣,桓公襲鄶,遂取之。
[번역문]
정(鄭)나라 환공(桓公)이 장차 회(鄶)나라를 습격하고자, 먼저 회나라의 호걸, 어진 신하, 언변이 뛰어나고 지혜로우며 과감한 선비들의 이름을 모두 알아내고, 그들의 성명을 적었다. 그리고 회나라의 좋은 밭을 골라 그들에게 뇌물로 주는 것처럼 하고, 관직과 작위의 이름을 만들어 적었다. 이어서 성곽 문밖에 제단을 설치하고 그것을 묻은 뒤, 닭과 수퇘지의 피를 뿌려[釁] 마치 맹세한 것 같은 모양으로 꾸몄다. 회나라 군주는 내부의 반란이 일어났다고 여겨 그의 어진 신하들을 모두 죽였고, 환공이 회나라를 습격하여 마침내 차지하였다.
[원문 155]
內儲說下:
說七
[번역문]
설명 칠(七).
[원문 156]
內儲說下:
七秦侏儒善於荊王,而陰有善荊王左右而內重於惠文君,荊適有謀,侏儒常先聞之以告惠文君。
[번역문]
진(秦)나라의 난쟁이가 초[荊]나라 왕과 친하게 지내면서, 남몰래 초나라 왕의 측근들과도 잘 지내고 안으로는 혜문군(惠文君)에게 중용되었다. 초나라에 마침 모의가 있으면, 난쟁이는 항상 먼저 그것을 듣고 혜문군에게 보고하였다.
[원문 157]
內儲說下:
鄴令襄疵,陰善趙王左右,趙王謀襲鄴,襄疵常輒聞而先言之魏王,魏王備之,趙乃輒還。
[번역문]
업(鄴)의 현령인 양자(襄疵)는 남몰래 조(趙)나라 왕의 측근들과 잘 지냈다. 조나라 왕이 업을 습격하려고 모의하면, 양자는 항상 번번이 이를 듣고 먼저 위(魏)나라 왕에게 말하였다. 위나라 왕이 이를 대비하면, 조나라 군대는 번번이 되돌아갔다.
[원문 158]
內儲說下:
衛嗣君之時,有人於令之左右,縣令有發蓐而席弊甚,嗣公還令人遺之席曰:「吾聞汝今者發蓐而席弊甚,賜汝席。」縣令大驚,以君為神也。
[번역문]
위(衛)나라 사군(嗣君) 때에, 현령의 측근 중에 (사군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현령이 잠자리를 정리하다가 자리가 매우 낡은 것을 보았는데, 사군이 돌아와 사람을 시켜 그에게 자리를 보내며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네가 오늘 잠자리를 정리하다 보니 자리가 매우 낡았다고 하더구나. 너에게 자리를 하사한다.”라고 하였다. 현령은 크게 놀라 군주를 신(神)처럼 여겼다.
韓非子 外儲說左上 (한비자 외저설좌상) 번역 및 주석
經 (경)
[원문 1]
外儲說左上:
一、明主之道,如有若之應密子也。明主之聽言也美其辯,其觀行也賢其遠,故群臣士民之道言者迂弘,其行身也離世。其說在田鳩對荊王也。故墨子為木鳶,謳癸築武宮。夫藥酒用言,明君聖主之以獨知也。
[번역문]
외저설 좌상:
一. 현명한 군주의 도(道)는 유약(有若)이 밀자(宓子)¹⁾에게 대답한 것과 같아야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군주가 말을 들을 때에는 그 변론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행동을 볼 때에는 그 고상함을 현명하다 여기니, 이 때문에 여러 신하와 선비, 백성들 중에서 말하는 자들은 황당하고 과장되며, 몸가짐은 세속을 벗어난다. 그 설명은 전구(田鳩)가 초나라 왕에게 대답한 이야기에 있다. 그러므로 묵자(墨子)는 나무 솔개를 만들었고, 구계(謳癸)는 무궁(武宮)을 쌓을 때 노래를 불렀다. 무릇 약이나 술을 쓸 때 그 효능에 대한 설명을 듣더라도, 현명한 군주나 성스러운 군주는 자신만의 판단으로 이를 사용하는 법이다.
[주석]
1) 유약지응밀자(有若之應密子): 유약(有若)은 공자의 제자이고, 밀자(宓子)는 밀자천(宓子賤)을 가리킨다. 이어지는 「설일(說一)」에서 밀자천이 직접 통치하느라 수척해진 것을 보고 유약이 술(術)을 써서 다스려야 한다고 조언한 고사를 가리킨다. 군주는 직접 노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법(術)으로 신하를 부려야 함을 의미한다.
[원문 2]
外儲說左上:
二、人主之聽言也,不以功用為的,則說者多棘刺白馬之說;不以儀的為關,則射者皆如羿也。人主於說也,皆如燕王學道也;而長說者,皆如鄭人爭年也。是以言有纖察微難而非務也,故李、惠、宋、墨皆畫策也;論有迂深閎大非用也,故畏震瞻車狀皆鬼魅也;言而拂難堅确非功也,故務、卞、鮑、介、墨翟皆堅瓠也。且虞慶詘匠也而屋壤,范且窮工而弓折。是故求其誠者,非歸餉也不可。
[번역문]
二. 군주가 말을 들을 때 실용적인 공로[功用]를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유세가들은 가시나무 끝의 원숭이나 흰 말에 대한 궤변[棘刺白馬之說]¹⁾을 많이 늘어놓게 된다. (활쏘기에서) 표준 과녁[儀的]을 관문으로 삼지 않으면, 활 쏘는 자들이 모두 명궁 예(羿)와 같아질 것이다. 군주가 유세를 대하는 태도는 모두 연나라 왕이 불사(不死)의 도를 배우려 한 것과 같고, 유세를 잘하는 자들은 모두 나이를 다투던 정나라 사람들과 같다. 이 때문에 말에 섬세하고 미묘하며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실무가 아니므로, 이회(李悝), 혜시(惠施), 송견(宋牼), 묵적(墨翟)의 이론은 모두 종이 위의 계획일 뿐이다. 논의가 황당하고 심오하며 광대하더라도 쓸모가 없으므로, 외진(畏震)이나 첨거(瞻車)의 형상은 모두 귀신이나 도깨비와 같은 것이다. 말이 도리에 어긋나면서도 단단하고 확고하더라도 공적이 아니므로, 무광(務光), 변수(卞隨), 포초(鮑焦), 개자추(介子推), 묵적(墨翟)은 모두 단단한 박[堅瓠]²⁾과 같다. 또한 우경(虞慶)은 목수를 말로 굴복시켰으나 집이 무너졌고, 범저(范且)는 활 만드는 장인을 궁지에 몰았으나 활이 부러졌다. 그러므로 그 진실됨을 구하는 자는 실질적인 양식으로 돌아가지[歸餉]³⁾ 않으면 안 된다.
[주석]
1) 극자백마지설(棘刺白馬之說): ‘가시나무 끝에 원숭이를 조각한다’는 실현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는 궤변과, 공손룡(公孫龍)의 ‘백마는 말이 아니다(白馬非馬)’라는 명가(名家)의 궤변을 합친 말이다. 실용성은 없고 현란하기만 한 말을 비유한다.
2) 견호(堅瓠): 단단해서 쪼개 쓸 수 없는 박. 겉보기에는 그럴듯하나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나 이론을 비유한다.
3) 귀향(歸餉): ‘양식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겉만 화려하고 공허한 이론을 버리고, 먹고 사는 문제와 같이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돌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원문 3]
外儲說左上:
三、挾夫相為則責望,自為則事行。故父子或怨譟,取庸作者進美羹。說在文公之先宣言,與句踐之稱如皇也。故桓公藏蔡怒而攻楚,吳起懷瘳實而吮傷。且先王之賦頌,鍾鼎之銘,皆播吾之跡,華山之博也。然先王所期者利也,所用者力也。築社之諺,目辭說也。請許學者而行宛曼於先王,或者不宜今乎?如是不能更也。鄭縣人得車厄也,衛人佐弋也,卜子妻寫弊褲也,而其少者也。先王之言,有其所為小而世意之大者,有其所為大而世意之小者,未可必知也。說在宋人之解書,與梁人之讀記也。故先王有郢書而後世多燕說。夫不適國事而謀先王,皆歸取度者也。
[번역문]
三. 남을 위해 해준다는 마음을 품으면 서로에게 바라는 마음이 생기고, 자신을 위해 하면 일이 잘 진행된다. 그러므로 부자 사이에도 원망하고 떠드는 일이 있지만, 품삯을 받고 일하는 사람은 맛있는 국을 바친다. 그 설명은 문공(文公)이 먼저 명분을 선언한 일과, 구천(句踐)이 여황(如皇)의 대를 칭송한 일에 있다. 그러므로 환공(桓公)은 채(蔡)나라에 대한 분노를 감추고 초(楚)나라를 공격했고, 오기(吳起)는 병사를 낫게 하려는 실질적 목적을 품고 종기를 빨아주었다. 또한 선왕(先王)의 부(賦)와 송(頌), 종(鍾)과 정(鼎)의 명문(銘文)은 모두 ‘나[吾]’의 자취와 화산(華山)의 도박¹⁾을 퍼뜨린 것이다. 그러나 선왕이 기대했던 것은 이익이었고, 사용했던 것은 힘이었다. 사직을 쌓는 것에 대한 속담은, 명분과 실리가 다름을 설명하는 말이다. 학자들에게 옛것을 본받게 하여 선왕의 아름다운 도를 행하게 한다면, 그것이 혹 오늘날에 맞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와 같은 것을 고칠 수는 없다. 정(鄭)현 사람이 수레의 멍에를 얻은 일, 위(衛)나라 사람이 주살을 돕는 일, 복자(卜子)의 아내가 낡은 바지를 본뜬 일은, 그중에서도 작은 사례이다. 선왕의 말에는, 그 행한 바는 작으나 세상이 그 뜻을 크게 여기는 것이 있고, 그 행한 바는 크나 세상이 그 뜻을 작게 여기는 것이 있으니, 반드시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설명은 송나라 사람이 책을 해석한 일과, 양나라 사람이 기록을 읽은 일에 있다. 그러므로 선왕에게는 영(郢)나라의 편지가 있었으나 후세에는 연(燕)나라의 해석²⁾이 많아졌다. 무릇 나라의 실정에 맞추지 않고 선왕의 도만 꾀하는 것은, 모두 (발은 잊고) 집으로 자[度]를 가지러 돌아가는 자들이다.
[주석]
1) 파오지적(播吾之跡), 화산지박(華山之博): 이어지는 「설삼(說三)」에 나오는 고사. 조(趙)나라 주보(主父)가 파오산(播吾山)에 자신의 발자취를 새기고, 진(秦) 소왕(昭王)이 화산(華山)에서 신선과 도박을 했다는 명문을 새기게 한 일을 가리킨다. 모두 자신의 위업을 과시하기 위한 행위이다.
2) 영서연설(郢書燕說): 영(郢)나라 사람이 연(燕)나라 재상에게 편지를 쓰다가 실수로 ‘거촉(舉燭, 촛불을 들어라)’이라는 말을 적었는데, 연나라 재상은 이를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라’는 깊은 뜻으로 해석했다는 고사. 원문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을 비유한다.
[원문 4]
外儲說左上:
四、利之所在民歸之,名之所彰士死之。是以功外於法而賞加焉,則上不能得所利於下;名外於法而譽加焉,則士勸名而不畜之於君。故中章、胥己仕,而中牟之民棄田圃而隨文學者邑之半;平公腓痛足痺而不敢壞坐,晉國之辭仕託者國之錘。此三士者,言襲法則官府之籍也,行中事則如令之民也,二君之禮太甚;若言離法而行遠功,則繩外民也,二君又何禮之,禮之當亡。且居學之士,國無事不用力,有難不被甲;禮之則惰修耕戰之功,不禮則周主上之法;國安則尊顯,危則為屈公之威;人主奚得於居學之士哉?故明王論李疵視中山也。
[번역문]
四. 이익이 있는 곳으로 백성이 돌아가고, 명예가 드러나는 곳에서 선비는 목숨을 바친다. 이 때문에 공로가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데도 상이 더해지면, 군주는 아랫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수 없다. 명성이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데도 칭송이 더해지면, 선비는 명예를 추구할 뿐 군주에게 쓰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장(中章)과 서기(胥己)가 벼슬을 하자 중모(中牟)의 백성들이 밭을 버리고 문학(文學)을 따르는 자가 고을의 절반이나 되었고, 평공(平公)이 종아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도 감히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자, 진(晉)나라에서 벼슬을 사양하고 핑계를 대는 자가 나라의 절반[錘]¹⁾이나 되었다. 이 세 선비는, 그들의 말이 법도를 따른다면 관청의 문서에 기록될 일이고, 그들의 행동이 일에 맞는다면 법령에 따르는 백성과 같을 뿐이니, 두 군주의 예우가 너무 심했다. 만약 그들의 말이 법을 벗어나고 행동이 공로와 멀다면, 이는 법 밖의 백성일 뿐인데 두 군주가 또한 어찌 그들을 예우했는가? 그들을 예우하면 마땅히 망할 것이다. 또한 학문에 머무는 선비[居學之士]는 나라에 일이 없으면 힘을 쓰지 않고, 어려움이 닥쳐도 갑옷을 입지 않는다. 그들을 예우하면 밭 갈고 싸우는 공을 닦는 데 게을러지고, 예우하지 않으면 군주의 법을 두루 어지럽힌다. 나라가 안정되면 존귀하고 드러나지만, 위태로워지면 굴공(屈公)처럼 위엄을 부린다. 군주가 학문에 머무는 선비에게서 무엇을 얻겠는가? 그러므로 현명한 왕은 이疵(이疵)가 중산(中山)을 살핀 논의를 중시한다.
[주석]
1) 추(錘): 저울추. 여기서는 ‘절반’을 의미하는 ‘반(半)’과 통용된다.
[원문 5]
外儲說左上:
五、《詩》曰:「不躬不親,庶民不信。」傅說之以無衣紫,緩之以鄭簡、宋襄,責之以尊厚耕戰。夫不明分,不責誠,而以躬親位下,且為下走睡臥,與夫揜弊微服。孔丘不知,故稱猶盂。鄒君不知,故先自僇。明主之道,如叔向賦獵,與昭侯之奚聽也。
[번역문]
五.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몸소 행하지 않고 친히 하지 않으면, 뭇 백성이 믿지 않는다.”¹⁾고 하였다. (그러나) 자주색 옷을 입지 않는 것으로 설명하고, 정(鄭)나라 간공(簡公)과 송(宋)나라 양공(襄公)의 일로 그 주장을 완화하며, 밭 갈고 싸우는 것[耕戰]을 존중하고 두텁게 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무릇 직분[分]을 밝히지 않고, 실질[誠]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몸소 아랫사람의 자리에 처하고, 또한 아랫사람을 위해 달려가고 잠을 자며, 허름한 옷을 가리고 미복(微服)을 하는 것과 같다. 공구(孔丘)²⁾는 이를 알지 못했으므로, 군주를 그릇에 비유했다. 추(鄒)나라 군주는 이를 알지 못했으므로, 먼저 스스로를 욕보였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숙향(叔向)이 사냥의 공을 분배한 것과 같고, 소후(昭侯)가 어찌 (사사로운 청을) 듣겠느냐고 한 것과 같다.
[주석]
1) 不躬不親,庶民不信: 《시경》에는 없는 구절이다. 당시 유행하던 격언이거나, 한비자가 유가의 주장을 인용하며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구절일 수 있다. 한비자는 군주가 직접 모든 일을 하는 ‘궁친(躬親)’을 비판하고, 법과 술(術)을 통해 시스템으로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공구(孔丘): 공자(孔子)의 이름.
[원문 6]
外儲說左上:
六、小信成則大信立,故明主積於信。賞罰不信,則禁令不行。說在文公之攻原與箕鄭救餓也。是以吳起須故人而食,文侯會虞人而獵。故明主表信,如曾子殺彘也。患在尊厲王擊警鼓與李悝謾兩和也。
[번역문]
六. 작은 신의가 이루어지면 큰 신의가 서게 되므로,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쌓는다. 상벌에 신의가 없으면 금령이 행해지지 않는다. 그 설명은 문공(文公)이 원(原)나라를 공격한 일과, 규정(箕鄭)이 굶주림을 구제한 일에 있다. 이 때문에 오기(吳起)는 옛 친구를 기다렸다가 식사했고, 문후(文侯)는 사냥터 관리인[虞人]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냥에 나갔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신의를 보이는 것은 증자(曾子)가 돼지를 죽인 것과 같다. 그 재앙은 여왕(厲王)이 경고의 북을 친 일과, 이회(李悝)가 양쪽 군대를 속인 일에 있다.
[원문 7]
外儲說左上:
右經
[번역문]
이상은 경(經)이다.
說 (설)
[원문 8]
外儲說左上:
說一
[번역문]
설명 일(一).
[원문 9]
外儲說左上:
宓子賤治單父,有若見之曰:「子何臞也?」宓子曰:「君不知賤不肖,使治單父,官事急,心憂之,故臞也。」有若曰:「昔者舜鼓五絃之琴,歌南風之詩而天下治。今以單父之細也,治之而憂,治天下將奈何乎?故有術而御之,身坐於廟堂之上,有處女子之色,無害於治;無術而御之,身雖瘁臞,猶未有益。」
[번역문]
밀자천(宓子賤)이 단보(單父)를 다스릴 때, 유약(有若)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이리 수척한가?”라고 하였다. 밀자가 말하기를, “군주께서 이 천하고 못난 저를 모르시고 단보를 다스리게 하시어, 관청 일이 급하고 마음으로 이를 걱정하다 보니 수척해졌습니다.”라고 하였다. 유약이 말하기를, “옛날 순(舜)임금은 오현금(五絃琴)을 타고 남풍(南風)의 시를 노래하며 천하를 다스렸습니다. 지금 단보처럼 작은 곳을 다스리면서도 걱정한다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술(術)¹⁾을 가지고 다스리면, 몸은 묘당(廟堂) 위에 앉아 있고 처녀와 같은 얼굴빛을 하고 있어도 다스림에 해가 없지만, 술(術) 없이 다스리면, 몸이 비록 지치고 수척해져도 오히려 이로움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술(術): 방법, 기술. 한비자 사상에서는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고 부리는 구체적인 통치 기술을 의미한다.
[원문 10]
外儲說左上:
楚王謂田鳩曰:「墨子者,顯學也。其身體則可,其言多而不辯何也?」曰:「昔秦伯嫁其女於晉公子,令晉為之飾裝,從衣文之媵七十人,至晉,晉人愛其妾而賤公女,此可謂善嫁妾而未可謂善嫁女也。楚人有賣其珠於鄭者,為木蘭之櫃,薰以桂椒,綴以珠玉,飾以玫瑰,輯以翡翠,鄭人買其櫝而還其珠,此可謂善賣櫝矣,未可謂善鬻珠也。今世之談也,皆道辯說文辭之言,人主覽其文而忘有用。墨子之說,傳先王之道,論聖人之言以宣告人,若辯其辭,則恐人懷其文忘其直,以文害用也。此與楚人鬻珠,秦伯嫁女同類,故其言多不辯。」
[번역문]
초나라 왕이 전구(田鳩)에게 말하기를, “묵자(墨子)는 저명한 학자이다. 그의 몸소 실천하는 것은 괜찮으나, 그의 말은 많으면서도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였다. 전구가 대답하기를, “옛날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그의 딸을 진(晉)나라 공자에게 시집보내면서, 진(晉)나라에서 장식을 하게 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잉첩(媵) 칠십 명을 딸려 보냈습니다. 진나라에 이르자, 진나라 사람들은 그 잉첩을 사랑하고 공녀를 천하게 여겼으니, 이는 잉첩을 잘 시집보냈다고는 할 수 있으나 딸을 잘 시집보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초나라 사람 중에 정(鄭)나라에서 진주를 파는 자가 있었는데, 목란(木蘭)으로 짠을 만들고 계피와 산초로 향을 피우며, 주옥으로 장식하고 아름다운 구슬로 꾸미며 비취로 엮었습니다. 정나라 사람이 그 궤짝은 사고 진주는 돌려주었으니, 이는 궤짝을 잘 팔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진주를 잘 팔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세상의 담론은 모두 변론과 문장이 화려한 말을 하는데, 군주들은 그 문장만 보고 그 유용함을 잊습니다. 묵자의 학설은 선왕의 도를 전하고 성인의 말씀을 논하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인데, 만약 그 말을 화려하게 꾸민다면 사람들이 그 문장만 품고 그 본질을 잊어, 문장으로 인해 실용성을 해칠까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는 초나라 사람이 진주를 판 것, 진나라 목공이 딸을 시집보낸 것과 같은 종류이므로, 그의 말은 대부분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1]
外儲說左上:
墨子為木鳶,三年而成,蜚一日而敗。弟子曰:「先生之巧,至能使木鳶飛。」墨子曰:「吾不如為車輗者巧也,用咫尺之木,不費一朝之事,而引三十石之任致遠,力多,久於歲數。今我為鳶,三年成,蜚一日而敗。」惠子聞之曰:「墨子大巧,巧為輗,拙為鳶。」
[번역문]
묵자(墨子)가 나무 솔개를 만들었는데, 삼 년 만에 완성하여 하루를 날고는 부서졌다. 제자가 말하기를, “선생님의 기교는 나무 솔개를 날게 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라고 하였다. 묵자가 말하기를, “나는 수레의 멍에를 연결하는 빗장[車輗]을 만드는 사람의 기교만 못하다. 그는 한 자 남짓한 나무를 사용하여 하루아침의 노력도 들이지 않고서, 삼십 석(石)의 짐을 끌고 멀리까지 가게 하니, 그 힘이 많고 여러 해 동안 오래간다. 지금 나는 솔개를 만들어 삼 년 만에 완성했으나 하루를 날고 부서졌다.”라고 하였다. 혜자(惠子)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묵자는 크게 교묘하구나. 빗장을 만드는 데는 교묘하고, 솔개를 만드는 데는 졸렬하니 말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2]
外儲說左上:
宋王與齊仇也,築武宮。謳癸倡,行者止觀,築者不倦,王聞召而賜之,對曰:「臣師射稽之謳又賢於癸。」王召射稽使之謳,行者不止,築者知倦,王曰:「行者不止,築者知倦,其謳不勝如癸美何也?」對曰:「王試度其功,癸四板,射稽八板;擿其堅,癸五寸,射稽二寸。」
[번역문]
송(宋)나라 왕이 제(齊)나라와 원수지간이라 무궁(武宮)을 쌓았다. 구계(謳癸)가 노래를 부르니, 길 가던 사람들이 멈추어 구경하고 성 쌓는 인부들은 지치지 않았다. 왕이 듣고 그를 불러 상을 내리자, 그가 대답하기를, “신의 스승인 사계(射稽)의 노래는 또한 저보다 뛰어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사계를 불러 노래하게 하니, 길 가던 사람들은 멈추지 않고 성 쌓는 인부들은 지친 기색을 알았다. 왕이 말하기를, “길 가던 사람들이 멈추지 않고, 인부들이 지친 기색을 아니, 그의 노래가 구계의 아름다움만 못한데 어째서인가?”라고 하였다. 그가 대답하기를, “왕께서 시험 삼아 그 공적을 헤아려 보십시오. 구계가 노래할 때는 (하루에) 네 판¹⁾을 쌓았고, 사계가 노래할 때는 여덟 판을 쌓았습니다. 그 단단함을 찔러보면, 구계 때는 다섯 치가 들어갔고, 사계 때는 두 치가 들어갔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판(板): 흙으로 성벽을 쌓을 때 사용하는 거푸집. 여기서는 일의 진척도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원문 13]
外儲說左上:
夫良藥苦於口,而智者勸而飲之,知其入而已己疾也。忠言拂於耳,而明主聽之,知其可以致功也。
[번역문]
무릇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지혜로운 자는 참고 마시니, 그것이 몸에 들어가 자신의 병을 낫게 함을 알기 때문이다.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현명한 군주는 이를 들으니, 그것으로 공을 이룰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원문 14]
外儲說左上:
說二
[번역문]
설명 이(二).
[원문 15]
外儲說左上:
宋人有請為燕王以棘刺之端為母猴者,必三月齋然後能觀之,燕王因以三乘養之。右御、治工言王曰:「臣聞人主無十日不燕之齋。今知王不能久齋以觀無用之器也,故以三月為期。凡刻削者,以其所以削必小。今臣治人也,無以為之削,此不然物也,王必察之。」王因囚而問之,果妄,乃殺之。治人謂王曰:「計無度量,言談之士多棘刺之說也。」
[번역문]
송(宋)나라 사람 중에 연(燕)나라 왕을 위해 가시나무 끝으로 암원숭이를 만들어 주겠다고 청하는 자가 있었는데, 반드시 석 달 동안 재계(齋戒)한 뒤에야 그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연나라 왕은 그에게 수레 세 대에 해당하는 봉록을 주며 그를 부양했다. 왕의 측근이자 기술을 다루는 관리가 왕에게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군주에게는 열흘을 넘는 재계는 없다고 합니다. 지금 그는 왕께서 쓸모없는 물건을 보기 위해 오래 재계할 수 없음을 알고, 일부러 석 달을 기한으로 삼은 것입니다. 무릇 조각하는 자는, 그것을 깎는 도구가 반드시 (조각품보다) 작아야 합니다. 지금 신이 다루는 사람으로는 그것을 깎을 만한 도구가 없으니,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왕께서는 반드시 이를 살피셔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를 가두고 심문하니 과연 거짓이었으므로, 그를 죽였다. 기술을 다루는 관리가 왕에게 말하기를, “헤아리는 기준이 없으면, 말 잘하는 선비들은 가시나무 끝의 원숭이 같은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6]
外儲說左上:
一曰。燕王好微巧,衛人曰:「能以棘刺之端為母猴。」燕王說之,養之以五乘之奉。王曰:「吾試觀客為棘刺之母猴。」客曰:「人主欲觀之,必半歲不入宮,不飲酒食肉,雨霽日出視之晏陰之間,而棘刺之母猴乃可見也。」燕王因養衛人不能觀其母猴。鄭有臺下之治者謂燕王曰:「臣為削者也,諸微物必以削削之,而所削必大於削。今棘刺之端不容削鋒,難以治棘刺之端。王試觀客之削能與不能可知也。」王曰:「善。」謂衛人曰:「客為棘削之?」曰:「以削。」王曰:「吾欲觀見之。」客曰:「臣請之舍取之。」因逃。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연(燕)나라 왕이 미세하고 교묘한 것을 좋아하자, 위(衛)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가시나무 끝으로 암원숭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연나라 왕이 기뻐하며 그에게 수레 다섯 대에 해당하는 봉록으로 부양했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시험 삼아 그대가 만든 가시나무 끝의 암원숭이를 보겠다.”라고 하니, 그 손님[客]이 말하기를, “군주께서 그것을 보시려면, 반드시 반년 동안 궁에 들어가지 않고,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지 않으며, 비가 갠 뒤 해가 뜰 때 어스름한 그늘 사이에서 보아야만 가시나무 끝의 암원숭이를 볼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연나라 왕은 그 위나라 사람을 부양하면서도 그 암원숭이를 볼 수는 없었다. 정(鄭)나라에 대하(臺下)의 관리가 있어 연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신은 조각칼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모든 미세한 물건은 반드시 조각칼로 깎는데, 깎이는 물건은 반드시 조각칼보다 커야 합니다. 지금 가시나무 끝은 조각칼의 날끝조차 용납할 수 없으니, 가시나무 끝을 다듬기는 어렵습니다. 왕께서 시험 삼아 그 손님의 조각칼을 보신다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좋다.” 하고는, 위나라 사람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가시나무를 무엇으로 깎는가?”라고 하니, “조각칼로 깎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이 “내가 그것을 보고 싶다.”라고 하자, 손님이 말하기를, “신이 숙소에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하고는 도망쳤다.
[원문 17]
外儲說左上:
兒說,宋人,善辯者也。持白馬非馬也服齊稷下之辯者,乘白馬而過關,則顧白馬之賦。故籍之虛辭則能勝一國,考實按形不能謾於一人。
[번역문]
예설(兒說)은 송(宋)나라 사람으로 변론을 잘하는 자였다.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제(齊)나라 직하(稷下)의 변론가들을 굴복시켰으나, 흰 말을 타고 관문을 지날 때에는 흰 말에 대한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므로 서류상의 헛된 말로는 한 나라를 이길 수 있으나, 실질을 따지고 형체를 근거로 하면 한 사람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원문 18]
外儲說左上:
夫新砥礪殺矢,彀弩而射,雖冥而妄發,其端未嘗不中秋毫也,然而莫能復其處,不可謂善射,無常儀的也;設五寸之的,引十步之遠,非羿、逢蒙不能必全者,有常儀的也;有度難而無度易也。有常儀的則羿、逢蒙以五寸為巧,無常儀的則以妄發而中秋毫為拙,故無度而應之則辯士繁說,設度而持之雖知者猶畏失也不敢妄言。今人主聽說不應之以度,而說其辯不度以功,譽其行而不入關,此人主所以長欺、而說者所以長養也。
[번역문]
무릇 새로 간 화살촉을 쇠뇌에 메겨 쏘면, 비록 어두운 곳에서 마구 쏘아도 그 끝이 추호(秋毫)¹⁾에 맞지 않은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맞은 곳을 다시 맞힐 수는 없으니, 활을 잘 쏜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일정한 표준 과녁[常儀的]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 치의 과녁을 설치하고 십 보 거리에서 당기면, 예(羿)나 봉몽(逢蒙) 같은 명궁이 아니면 반드시 다 맞힐 수는 없으니, 이는 일정한 표준 과녁이 있기 때문이다. 기준이 있으면 어렵고 기준이 없으면 쉽다. 일정한 표준 과녁이 있으면 예와 봉몽도 다섯 치 과녁을 맞히는 것을 교묘하다고 여기지만, 일정한 표준 과녁이 없으면 마구 쏘아 추호를 맞힌 것을 졸렬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기준 없이 응대하면 변론가들은 말을 번잡하게 하고, 기준을 세워 지키면 비록 지혜로운 자라도 실수를 두려워하여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지금 군주가 유세를 들으면서 기준으로 응대하지 않고 그 변론을 기뻐하며, 공로로 헤아리지 않고 그 행동을 칭송하며 관문에 들여보내지 않으니, 이것이 군주가 오래도록 속임을 당하고 유세가들이 오래도록 부양받는 까닭이다.
[주석]
1) 추호(秋毫): 가을에 짐승의 털이 가늘어지는 것에서 유래한 말로, 지극히 작고 미세한 것을 비유한다.
[원문 19]
外儲說左上:
客有教燕王為不死之道者,王使人學之,所使學者未及學而客死。王大怒,誅之。王不知客之欺己,而誅學者之晚也。夫信不然之物,而誅無罪之臣,不察之患也。且人所急無如其身,不能自使其無死,安能使王長生哉?
[번역문]
연(燕)나라 왕에게 죽지 않는 도(道)를 가르쳐 주겠다는 손님이 있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그것을 배우게 했는데, 배우러 간 사람이 미처 배우기도 전에 그 손님이 죽었다. 왕이 크게 노하여 배우러 간 사람을 주살했다. 왕은 손님이 자기를 속인 것은 알지 못하고, 배우러 간 사람이 늦었다고 주살한 것이다. 무릇 그렇지 않은 것을 믿고 죄 없는 신하를 주살하는 것은, 살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재앙이다. 또한 사람이 가장 급하게 여기는 것은 자기 몸만 한 것이 없는데, 스스로 죽지 않게 할 수도 없으면서 어찌 왕을 장수하게 할 수 있겠는가?
[원문 20]
外儲說左上:
鄭人有相與爭年者,一人曰:「吾與堯同年。」其一人曰:「我與黃帝之兄同年。」訟此而不決,以後息者為勝耳。
[번역문]
정(鄭)나라 사람 중에 서로 나이를 다투는 자가 있었다. 한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요(堯)임금과 동갑이다.”라고 하니, 다른 한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황제(黃帝)의 형과 동갑이다.”라고 하였다. 이 소송은 결판이 나지 않았고, 나중에 말을 그치는 자가 이기는 것일 뿐이었다.
[원문 21]
外儲說左上:
客有為周君畫莢者,三年而成,君觀之,與髹莢者同狀,周君大怒,畫莢者曰:「築十版之牆,鑿八尺之牖,而以日始出時加之其上而觀。」周君為之,望見其狀盡成龍蛇禽獸車馬,萬物之狀備具,周君大悅。此莢之功非不微難也,然其用與素髹筴同。
[번역문]
주(周)나라 군주를 위해 콩깍지에 그림을 그리는 손님이 있었는데, 삼 년 만에 완성되었다. 군주가 그것을 보니, 옻칠만 한 콩깍지와 같은 모양이었다. 주나라 군주가 크게 노하자, 그림 그린 자가 말하기를, “열 판(版) 높이의 담을 쌓고 여덟 자 크기의 창을 뚫은 다음, 해가 막 뜰 때 그것을 창 위에 놓고 보십시오.”라고 하였다. 주나라 군주가 그대로 하니, 그 모양이 모두 용, 뱀, 새, 짐승, 수레, 말 등 만물의 형상을 갖추고 있음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주나라 군주가 크게 기뻐했다. 이 콩깍지의 공이 미묘하고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쓰임새는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콩깍지와 같았다.
[원문 22]
外儲說左上:
客有為齊王畫者,齊王問曰:「畫孰最難者?」曰:「犬馬最難。」「孰最易者?」曰:「鬼魅最易。夫犬馬、人所知也,旦暮罄於前,不可類之,故難。鬼魅、無形者,不罄於前,故易之也。」
[번역문]
제(齊)나라 왕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손님이 있었다. 제나라 왕이 묻기를, “그림에서 무엇이 가장 그리기 어려운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개나 말이 가장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무엇이 가장 쉬운가?”라고 묻자, “귀신이나 도깨비가 가장 쉽습니다. 무릇 개나 말은 사람이 아는 바로, 아침저녁으로 눈앞에 나타나므로 비슷하게 그리지 않을 수 없어 어렵습니다. 귀신이나 도깨비는 형체가 없는 것으로,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23]
外儲說左上:
齊有居士田仲者,宋人屈穀見之曰:「穀聞先生之義,不恃仰人而食。今穀有樹瓠之道,堅如石,厚而無竅,獻之。」仲曰:「夫瓠所貴者,謂其可以盛也。今厚而無竅,則不可剖以盛物,而任重如堅石,則不可以剖而以斟,吾無以瓠為也。」曰:「然,穀將棄之。今田仲不恃仰人而食,亦無益人之國,亦堅瓠之類也。」
[번역문]
제(齊)나라에 은거하는 선비 전중(田仲)이라는 자가 있었다. 송(宋)나라 사람 굴곡(屈穀)이 그를 만나 말하기를, “제가 듣건대 선생의 의로움은 남에게 의지하여 먹고살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 지금 제게 박을 키우는 방법이 있는데, 돌처럼 단단하고 두꺼우며 구멍이 없습니다. 이것을 바칩니다.”라고 하였다. 전중이 말하기를, “무릇 박이 귀한 까닭은 그것으로 무언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오. 지금 두껍고 구멍이 없다면 쪼개서 물건을 담을 수 없고, 무게가 돌처럼 단단하다면 쪼개서 국을 뜰 수도 없으니, 나는 그 박을 쓸 데가 없소.”라고 하였다. 굴곡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저는 장차 이것을 버릴 것입니다. 지금 전중 선생께서 남에게 의지하여 먹고살지는 않으나, 또한 남의 나라에 이로움이 없으니, 역시 단단한 박[堅瓠]의 종류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24]
外儲說左上:
虞慶為屋,謂匠人曰:「屋太尊。」匠人對曰:「此新屋也,塗濡而椽生。」虞慶曰:「不然。夫濡塗重而生椽撓,以撓椽任重塗,此宜卑。更日久則塗乾而椽燥,塗乾則輕,椽燥則直,以直椽任輕塗,此益尊。」匠人詘,為之而屋壞。
[번역문]
우경(虞慶)이 집을 짓는데, 목수에게 말하기를, “집이 너무 높다.”라고 하였다. 목수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새집이라, 흙은 젖어 있고 서까래는 생나무입니다.”라고 하였다. 우경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무릇 젖은 흙은 무겁고 생나무 서까래는 휘어지니, 휘어진 서까래로 무거운 흙을 지탱하면 이것은 마땅히 낮아질 것이다. 다시 날이 오래되면 흙은 마르고 서까래도 마를 것이니, 흙이 마르면 가벼워지고 서까래가 마르면 곧아질 것이다. 곧은 서까래로 가벼운 흙을 지탱하면 이것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목수가 굴복하여 그대로 하니 집이 무너졌다.
[원문 25]
外儲說左上:
一曰。虞慶將為屋,匠人曰:「材生而塗濡。夫材生則撓,塗濡則重,以撓任重,今雖成,久必壞。」虞慶曰:「材乾則直,塗乾則輕,今誠得乾,日以輕直,雖久必不壞。」匠人詘,作之,成,有間,屋果壞。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우경(虞慶)이 장차 집을 지으려 하자, 목수가 말하기를, “재목은 생나무이고 흙은 젖어 있습니다. 무릇 재목이 생나무이면 휘어지고, 흙이 젖어 있으면 무거우니, 휘어진 재목으로 무거운 것을 지탱하면 지금 비록 완성되더라도 오래되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우경이 말하기를, “재목이 마르면 곧아지고, 흙이 마르면 가벼워질 것이니, 지금 진실로 마르기만 하면 날마다 가벼워지고 곧아져서, 비록 오래되더라도 반드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목수가 굴복하여 집을 지었는데,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이 과연 무너졌다.
[원문 26]
外儲說左上:
范且曰:「弓之折必於其盡也,不於其始也。夫工人張弓也,伏檠三旬而蹈弦,一日犯機,是節之其始而暴之其盡也,焉得無折。」范且曰,「不然。伏檠一日而蹈弦,三旬而犯機,是暴之其始而節之其盡也。」工人窮也,為之,弓折。
[번역문]
범저(范且)가 말하기를, “활이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그 끝에서이지, 그 처음에서가 아니다. 무릇 장인이 활을 맬 때, 교정틀[檠]에 삼십 일을 넣어두고 활시위를 밟아 당기며, 하루 만에 시위를 걸쇠에 거니, 이는 처음에 절제하고 끝에 사납게 다루는 것이니, 어찌 부러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범저가 다시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교정틀에 하루를 넣어두고 활시위를 밟아 당기며, 삼십 일 만에 시위를 걸쇠에 걸어야 하니, 이는 처음에 사납게 다루고 끝에 절제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장인이 궁지에 몰려 그대로 하니, 활이 부러졌다.
[원문 27]
外儲說左上:
范且、虞慶之言皆文辯辭勝而反事之情,人主說而不禁,此所以敗也。夫不謀治強之功,而豔乎辯說文麗之聲,是卻有術之士而任壞屋折弓也。故人主之於國事也,皆不達乎工匠之搆屋張弓也,然而士窮乎范且、虞慶者,為虛辭、其無用而勝,實事、其無易而窮也。人主多無用之辯,而少無易之言,此所以亂也。今世之為范且、虞慶者不輟,而人主說之不止,是貴敗折之類而以知術之人為工匠也。不得施其技巧,故屋壞弓折。知治之人不得行其方術,故國亂而主危。
[번-역문]
범저(范且)와 우경(虞慶)의 말은 모두 문장이 화려하고 변론이 뛰어나지만 사물의 실정과 반대되는데, 군주가 이를 기뻐하고 금하지 않으니, 이것이 실패하는 까닭이다. 무릇 나라를 다스려 강하게 할 공을 꾀하지 않고, 변론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부러워하는 것은, 기술 있는 선비를 물리치고 집을 무너뜨리고 활을 부러뜨리는 자를 임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나라의 일에 대해 모두 목수가 집을 짓고 활을 매는 이치에 통달하지 못하는데, 선비들이 범저나 우경 같은 자들에게 궁지에 몰리는 것은, 헛된 말은 쓸모가 없어도 이기기 쉽고, 실질적인 일은 바꾸기 어려워 궁지에 몰리기 때문이다. 군주는 쓸모없는 변론을 많이 듣고, 바꾸기 어려운 말을 적게 들으니, 이것이 혼란스러워지는 까닭이다. 지금 세상에 범저나 우경 같은 자들이 그치지 않고, 군주가 이를 기뻐하기를 멈추지 않으니, 이는 실패하고 부러뜨리는 부류를 귀하게 여기고 기술을 아는 사람을 장인처럼 천시하는 것이다. 그 기교를 펼칠 수 없으므로 집이 무너지고 활이 부러지는 것이다. 다스림을 아는 사람이 그 방술을 행할 수 없으므로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군주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원문 28]
外儲說左上:
夫嬰兒相與戲也,以塵為飯,以塗為羹,以木為胾,然至日晚必歸饟者,塵飯塗羹可以戲而不可食也。夫稱上古之傳頌,辯而不愨,道先王仁義而不能正國者,此亦可以戲而不可以為治也。夫慕仁義而弱亂者,三晉也;不慕而治強者,秦也;然而未帝者,治未畢也。
[번역문]
무릇 어린아이들이 서로 놀 때, 흙으로 밥을 짓고 진흙으로 국을 끓이며 나무로 고기 조각을 삼지만, 날이 저물면 반드시 집으로 밥을 먹으러 돌아가는 것은, 흙으로 만든 밥과 진흙으로 만든 국은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릇 상고(上古)의 전설과 칭송을 일컬으며, 변론은 잘하나 성실하지 못하고, 선왕의 인의(仁義)를 말하면서도 나라를 바로잡지 못하는 자는, 이 또한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다스림의 방도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무릇 인의를 사모하다가 약해지고 어지러워진 자는 삼진(三晉)¹⁾이고, 사모하지 않고 다스려져 강해진 자는 진(秦)나라이다. 그러나 아직 천하의 황제가 되지 못한 것은, 다스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석]
1) 삼진(三晉): 전국시대에 진(晉)나라에서 분리되어 나온 한(韓), 위(魏), 조(趙) 세 나라를 가리킨다.
[원문 29]
外儲說左上:
說三
[번역문]
설명 삼(三).
[원문 30]
外儲說左上:
人為嬰兒也,父母養之簡,子長而怨。子盛壯成人,其供養薄,父母怒而誚之。子、父,至親也,而或譙、或怨者,皆挾相為而不周於為己也。夫賣庸而播耕者,主人費家而美食、調布而求易錢者,非愛庸客也,曰:如是,耕者且深耨者熟耘也。庸客致力而疾耘耕者,盡巧而正畦陌畦畤者,非愛主人也,曰:如是,羹且美錢布且易云也。此其養功力,有父子之澤矣,而心調於用者,皆挾自為心也。故人行事施予,以利之為心,則越人易和;以害之為心,則父子離且怨。
[번역문]
사람이 갓난아기일 때 부모의 양육이 소홀하면, 자식이 자라서 원망한다. 자식이 장성하여 어른이 되었는데 그 공양이 박하면, 부모가 노하여 그를 꾸짖는다. 자식과 아버지는 지극히 가까운 사이인데도, 혹은 꾸짖고 혹은 원망하는 것은, 모두 서로를 위한다는 마음을 품고 자신을 위하는 데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릇 품을 팔아 씨 뿌리고 밭 가는 자에게, 주인이 집안 비용을 들여 맛있는 음식을 주고 베를 마련하여 쉽게 돈을 구하게 해주는 것은, 품팔이 손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밭 가는 자는 깊이 갈고 김매는 자는 정성껏 맬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품팔이 손님이 힘을 다해 빠르게 김매고 밭을 갈며, 기교를 다해 밭두둑을 바르게 하는 것은, 주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국이 맛있어지고 돈과 베를 쉽게 얻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로의 공과 힘을 길러주는 데는 부자 사이의 은혜가 있는 듯하지만, 그 마음이 쓰임에 맞춰 조절되는 것은, 모두 자신을 위하는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을 행하고 무언가를 베풀 때,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월(越)나라 사람처럼 먼 사이라도 쉽게 화합하고, 해롭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부자 사이라도 멀어지고 원망하게 된다.
[원문 31]
外儲說左上:
文公伐宋,乃先宣言曰:「吾聞宋君無道,蔑侮長老,分財不中,教令不信,余來為民誅之。」
[번역문]
진(晉) 문공(文公)이 송(宋)나라를 정벌할 때, 먼저 선언하여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송나라 군주는 무도하여, 어른을 업신여기고 재물을 나눔에 공정하지 못하며, 교령(教令)에 신의가 없으니, 내가 백성을 위해 그를 주살하러 왔다.”라고 하였다.
[원문 32]
外儲說左上:
越伐吳,乃先宣言曰:「我聞吳王築如皇之臺,掘深池,罷苦百姓,煎靡財貨,以盡民力,余來為民誅之。」
[번역문]
월(越)나라가 오(吳)나라를 정벌할 때, 먼저 선언하여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오나라 왕은 여황(如皇)의 대(臺)를 쌓고 깊은 연못을 파며, 백성을 지치고 괴롭게 하고 재화를 낭비하여 백성의 힘을 다하게 하니, 내가 백성을 위해 그를 주살하러 왔다.”라고 하였다.
[원문 33]
外儲說左上:
蔡女為桓公妻,桓公與之乘舟,夫人蕩舟,桓公大懼,禁之不止,怒而出之,乃且復召之,因復更嫁之,桓公大怒,將伐蔡,仲父諫曰:「夫以寢席之戲,不足以伐人之國,功業不可冀也,請無以此為稽也。」桓公不聽,仲父曰:「必不得已,楚之菁茅不貢於天子三年矣,君不如舉兵為天子伐楚,楚服,因還襲蔡曰:余為天子伐楚而蔡不以兵聽從,因遂滅之。此義於名而利於實,故必有為天子誅之名,而有報讎之實。」
[번역문]
채(蔡)나라 여인이 제(齊) 환공(桓公)의 아내가 되었는데, 환공이 그녀와 함께 배를 탔을 때 부인이 배를 흔들었다. 환공이 크게 두려워하여 금지했으나 그치지 않자, 노하여 그녀를 내쫓았다가 다시 부르려 했으나, 채나라에서 그녀를 다시 다른 곳으로 시집보냈다. 환공이 크게 노하여 장차 채나라를 정벌하려 하자, 중보(仲父)¹⁾가 간언하여 말하기를, “무릇 침실에서의 장난 때문에 남의 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공업(功業)을 바랄 수 없으니, 청컨대 이로써 일을 지체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환공이 듣지 않자, 중보가 말하기를, “반드시 해야만 한다면, 초(楚)나라가 제사에 쓸 정모(菁茅)를 천자에게 바치지 않은 지 삼 년이 되었습니다. 군주께서는 차라리 군사를 일으켜 천자를 위해 초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낫습니다. 초나라가 굴복하면, 돌아오는 길에 채나라를 습격하며 말하기를, ‘내가 천자를 위해 초나라를 정벌하는데 채나라가 군사를 보내 따르지 않았다’고 하고, 이어서 마침내 멸망시키십시오. 이는 명분상 의롭고 실리상 이로우니, 반드시 천자를 위해 주살한다는 명분이 있으면서 원수를 갚는 실리가 있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중보(仲父): 제나라 환공이 재상 관중(管仲)을 존경하여 부른 칭호.
[원문 34]
外儲說左上:
吳起為魏將而攻中山,軍人有病疽者,吳起跪而自吮其膿,傷者之母立泣,人問曰:「將軍於若子如是,尚何為而泣?」對曰:「吳起吮其父之創而父死,今是子又將死也,今吾是以泣。」
[번역문]
오기(吳起)가 위(魏)나라 장수가 되어 중산(中山)을 공격할 때, 군인 중에 종기를 앓는 자가 있자, 오기가 무릎을 꿇고 스스로 그 고름을 빨아주었다. 상처 입은 자의 어머니가 서서 울자, 어떤 사람이 묻기를, “장군께서 당신 아들에게 이와 같이 해주시는데, 어찌하여 우십니까?”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대답하기를, “오기 장군이 예전에 이 아이 아버지의 상처를 빨아주어 그 아버지가 (감격하여 용감히 싸우다) 죽었는데, 지금 이 아들 또한 장차 죽을 것입니다. 지금 저는 이 때문에 웁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35]
外儲說左上:
趙主父令工施鉤梯而緣播吾,刻疏人跡其上,廣三尺,長五尺,而勒之曰:「主父常遊於此。」
[번역문]
조(趙)나라 주보(主父)¹⁾가 장인에게 명하여 갈고리 사다리를 놓고 파오산(播吾山)에 오르게 하고, 그 위에 드문드문 사람 발자국을 너비 석 자, 길이 다섯 자로 새기게 한 다음, 거기에 새겨 말하기를, “주보께서 일찍이 이곳에서 노닐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주보(主父):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을 가리킨다. 왕위에서 물러난 뒤 자신을 주보라 칭했다.
[원문 36]
外儲說左上:
秦昭王令工施鉤梯而上華山,以松柏之心為博,箭長八尺,棋長八寸,而勒之曰「昭王嘗與天神博於此」矣。
[번역문]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장인에게 명하여 갈고리 사다리를 놓고 화산(華山)에 오르게 하고, 소나무와 잣나무의 속으로 장기판[博]을 만들고 화살대는 길이 여덟 자, 장기알은 길이 여덟 치로 하여, 거기에 새겨 말하기를, “소왕께서 일찍이 이곳에서 하늘의 신과 장기를 두었다.”라고 하였다.
[원문 37]
外儲說左上:
文公反國,至河,令籩豆捐之,席蓐捐之,手足胼胝,面目黧黑者後之,咎犯聞之而夜哭,公曰:「寡人出亡二十年,乃今得反國,咎犯聞之不喜而哭,意不欲寡人反國邪?」犯對曰:「籩豆所以食也,席蓐所以臥也,而君捐之;手足胼胝、面目黧黑,勞有功者也,而君後之。今臣有與在後,中不勝其哀,故哭。且臣為君行詐偽以反國者眾矣,臣尚自惡也,而況於君?」再拜而辭,文公止之曰:「諺曰:築社者,攐撅而置之,端冕而祀之。今子與我取之,而不與我治之;與我置之,而不與我祀之;焉可?」解左驂而盟于河。
[번역문]
진(晉) 문공(文公)이 나라로 돌아와 황하에 이르러, 제기[籩豆]를 버리고 잠자리[席蓐]를 버리게 하며, 손발에 굳은살이 박이고 얼굴이 검게 탄 자들을 뒤에 오게 하였다. 구범(咎犯)¹⁾이 이 소식을 듣고 밤에 곡을 하자, 문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망명한 지 이십 년 만에 이제야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구범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고 곡을 하니, 과인이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구범이 대답하기를, “제기는 먹는 데 쓰는 것이고, 잠자리는 눕는 데 쓰는 것인데 군주께서 그것을 버리셨습니다. 손발에 굳은살이 박이고 얼굴이 검게 탄 자들은, 수고하여 공이 있는 자들인데 군주께서 그들을 뒤처지게 하셨습니다. 지금 신은 뒤처진 자들과 함께 있으니, 마음속으로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곡을 한 것입니다. 또한 신이 군주를 위해 사기와 거짓을 행하여 나라로 돌아온 것이 많으니, 신 스스로도 오히려 부끄러운데 하물며 군주께서는 어떻겠습니까?” 하고는, 두 번 절하고 떠나려 하였다. 문공이 그를 말리며 말하기를, “속담에 이르기를, ‘사직을 쌓는 자는, 옷을 걷어붙이고 흙을 파서 그것을 세우고, 단정히 관을 쓰고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소. 지금 그대는 나와 함께 나라를 취하고는 나와 함께 다스리지 않으려 하고, 나와 함께 사직을 세우고는 나와 함께 제사 지내지 않으려 하니, 어찌 옳겠소?” 하고는, 왼쪽 곁말[左驂]을 풀어 황하에서 맹세하였다.
[주석]
1) 구범(咎犯): 진(晉) 문공의 외삼촌이자 충신인 호언(狐偃)을 가리킨다. 자(字)가 자범(子犯)이다.
[원문 38]
外儲說左上:
鄭縣人卜子,使其妻為褲,其妻問曰:「今褲何如?」夫曰:「象吾故苦。」妻子因毀新令如故褲。
[번역문]
정(鄭)현 사람 복자(卜子)가 그의 아내에게 바지를 만들게 하였다. 그의 아내가 묻기를, “이번 바지는 어떻게 할까요?”라고 하니, 남편이 말하기를, “나의 낡은 바지처럼 해주시오.”라고 하였다. 아내는 이로 인해 새 바지를 찢어서 낡은 바지처럼 만들었다.
[원문 39]
外儲說左上:
鄭縣人有得車軛者,而不知其名,問人曰:「此何種也?」對曰:「此車軛也。」俄又復得一,問人曰:「此是何種也?」對曰:「此車軛也。」問者大怒曰:「曩者曰車軛,今又曰車軛,是何眾也?此女欺我也。」遂與之鬥。
[번역문]
정(鄭)현 사람 중에 수레의 멍에[車軛]를 얻은 자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사람에게 묻기를, “이것은 무슨 종류입니까?”라고 하였다. 상대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수레의 멍에입니다.”라고 하였다. 잠시 후 또 하나를 얻어 사람에게 묻기를, “이것은 무슨 종류입니까?”라고 하니, 상대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수레의 멍에입니다.”라고 하였다. 묻는 자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아까도 수레의 멍에라 하고, 지금 또 수레의 멍에라 하니, 어찌 이리 많단 말인가? 네가 나를 속이는구나.” 하고는, 마침내 그와 싸웠다.
[원문 40]
外儲說左上:
衛人有佐弋者,鳥至,因先以其裷麾之,鳥驚而不射也。
[번역문]
위(衛)나라 사람 중에 주살(弋)¹⁾을 돕는 자가 있었는데, 새가 이르자 먼저 그의 옷소매로 그것을 휘저어 쫓아버렸다. 새가 놀라 날아가 버려 쏘지 못했다.
[주석]
1) 익(弋): 줄 달린 화살로 새를 쏘아 잡는 것.
[원문 41]
外儲說左上:
鄭縣人卜子妻之市,買鱉以歸,過潁水,以為渴也,因縱而飲之,遂亡其鱉。
[번역문]
정(鄭)현 사람 복자(卜子)의 아내가 시장에 가서 자라를 사서 돌아오다가, 영수(潁水)를 지나면서 자라가 목마를 것이라 생각하여, 놓아주어 물을 마시게 하다가 마침내 그 자라를 잃어버렸다.
[원문 42]
外儲說左上:
夫少者侍長者飲,長者飲亦自飲也。
[번역문]
무릇 젊은이가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실 때, 어른이 마시면 자기도 또한 마신다.
[원문 43]
外儲說左上:
一曰。魯人有自喜者,見長年飲酒不能釂則唾之,亦效唾之。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노(魯)나라 사람 중에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는 자가 있었는데, 어른이 술을 마시고 다 비우지 못하고 뱉는 것을 보고, 자기도 또한 그것을 본받아 뱉었다.
[원문 44]
外儲說左上:
一曰。宋人有少者亦欲效善,見長者飲無餘,非斟酒飲也而欲盡之。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 젊은이가 있어 또한 잘하는 것을 본받고자 하였는데, 어른이 남김없이 마시는 것을 보고, 자기에게 술을 따라준 것이 아닌데도 그것을 다 마시려 하였다.
[원문 45]
外儲說左上:
《書》曰:「紳之束之。」宋人有治者,因重帶自紳束也。人曰:「是何也?」對曰:「書言之,固然。」
[번역문]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큰 띠로 그것을 묶는다.”라고 하였다. 송(宋)나라의 어떤 관리가 이로 인해 여러 겹의 띠로 스스로를 묶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은 어찌된 일입니까?”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책에 그렇게 말했으니, 본래 그러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46]
外儲說左上:
《書》曰:「既雕既琢,還歸其樸。」梁人有治者,動作言學,舉事於文,曰難之,顧失其實,人曰:「是何也?」對曰:「書言之固然。」
[번역문]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깎고 또 쪼아서, 그 본바탕인 통나무[樸]로 돌아간다.”라고 하였다. 양(梁)나라의 어떤 관리가 행동거지와 말을 배움에 있어, 모든 일을 문장에 근거하여 말하기를 어렵게 하다가, 도리어 그 실질을 잃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은 어찌된 일입니까?”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책에 그렇게 말했으니, 본래 그러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47]
外儲說左上:
郢人有遺燕相國書者,夜書,火不明,因謂持燭者曰:「舉燭。」云而過書舉燭,舉燭,非書意也,燕相受書而說之,曰:「舉燭者,尚明也,尚明也者,舉賢而任之。」燕相白王,王大說,國以治,治則治矣,非書意也。今世舉學者多似此類。
[번역문]
영(郢)나라 사람 중에 연(燕)나라 상국(相國)에게 편지를 보내는 자가 있었다. 밤에 글을 쓰는데 불이 밝지 않자, 촛불 든 자에게 말하기를, “촛불을 들어라[舉燭].”라고 하고는, 말실수로 편지에 ‘거촉(舉燭)’이라고 썼다. ‘거촉’은 편지의 뜻이 아니었으나, 연나라 재상이 편지를 받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촛불을 들라’는 것은 밝음을 숭상하라는 것이고, 밝음을 숭상하라는 것은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여 임용하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연나라 재상이 왕에게 아뢰니 왕이 크게 기뻐하여 나라가 다스려졌다. 다스려지기는 했으나, 편지의 본래 뜻은 아니었다. 지금 세상에 등용되는 학자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한 부류이다.
[원문 48]
外儲說左上:
鄭人有且置履者,先自度其足而置之其坐,至之市而忘操之,已得履,乃曰:「吾忘持度。」反歸取之,及反,市罷,遂不得履,人曰:「何不試之以足?」曰:「寧信度,無自信也。」
[번역문]
정(鄭)나라 사람 중에 장차 신을 사려는 자가 있었다. 먼저 자기 발의 치수[度]를 재어 그것을 자리에 놓아두고, 시장에 가서는 그것을 가져가는 것을 잊었다. 이미 신을 고르고 나서야 말하기를, “내가 치수를 가져오는 것을 잊었구나.”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 그것을 가져왔다. 돌아왔을 때에는 시장이 이미 파하여, 마침내 신을 사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발로 신어보지 않았는가?”라고 하니, 말하기를, “차라리 치수를 믿을지언정, 나 자신은 믿지 못하겠다.”라고 하였다.
[원문 49]
外儲說左上:
說四
[번역문]
설명 사(四).
[원문 50]
外儲說左上:
王登為中牟令,上言於襄主曰:「中牟有士曰中章、胥己者,其身甚修,其學甚博,君何不舉之?」主曰:「子見之,我將為中大夫。」相室諫曰:「中大夫,晉重列也,今無功而受,非晉臣之意。君其耳而未之目邪?」襄主曰:「我取登既耳而目之矣,登之所取又耳而目之,是耳目人絕無已也。」王登一日而見二中大夫,予之田宅,中牟之人棄其田耘、賣宅圃,而隨文學者邑之半。
[번역문]
왕등(王登)이 중모(中牟)의 현령이 되었을 때, 양주(襄主)¹⁾에게 아뢰어 말하기를, “중모에 중장(中章)과 서기(胥己)라는 선비가 있는데, 그 몸가짐이 매우 닦여 있고 그 학문이 매우 넓으니, 군주께서는 어찌 그들을 등용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그대가 그들을 만나보게. 내가 중대부(中大夫)로 삼겠다.”라고 하였다. 재상[相室]이 간언하여 말하기를, “중대부는 진(晉)나라의 중요한 직위인데, 지금 공도 없이 받게 하는 것은 진나라 신하들의 뜻이 아닙니다. 군주께서는 그들에 대해 듣기만 하시고 아직 보지는 못하신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양주가 말하기를, “내가 왕등을 등용할 때 이미 듣고 또 보았다. 왕등이 등용하는 사람을 또 듣고 본다면, 이는 사람을 듣고 보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왕등이 하루 만에 두 사람을 중대부로 삼고 그들에게 밭과 집을 주니, 중모의 사람들이 밭 갈고 김매는 일을 버리고 집과 채마밭을 팔며, 문학(文學)을 따르는 자가 고을의 절반이나 되었다.
[주석]
1) 양주(襄主): 조(趙)나라 양자(襄子)를 가리킨다.
[원문 51]
外儲說左上:
叔向御坐平公請事,公腓痛足痺轉筋而不敢壞坐,晉國聞之,皆曰「叔向賢者,平公禮之,轉筋而不敢壞坐。」晉國之辭仕託、慕叔向者國之錘矣。
[번역문]
숙향(叔向)이 평공(平公)을 모시고 앉아 일을 아뢸 때, 평공이 종아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며 근육에 경련이 일어났으나 감히 앉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진(晉)나라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말하기를, “숙향은 현명한 자로다. 평공께서 그를 예우하여,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도 감히 앉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으셨다.”라고 하였다. 진나라에서 벼슬을 사양하고 핑계를 대며 숙향을 흠모하는 자가 나라의 절반[錘]이나 되었다.
[원문 52]
外儲說左上:
鄭縣人有屈公者,聞敵恐,因死;恐已,因生。
[번역문]
정(鄭)현 사람 중에 굴공(屈公)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적이 온다는 소문을 들으면 두려워서 죽은 척하고, 두려움이 사라지면 다시 살아났다.
[원문 53]
外儲說左上:
趙主父使李疵視中山可攻不也?還報曰:「中山可伐也,君不亟伐,將後齊、燕。」主父曰:「何故可攻?」李疵對曰:「其君見好巖穴之士,所傾蓋與車以見窮閭隘巷之士以十數,伉禮下布衣之士以百數矣。」君曰:「以子言論,是賢君也,安可攻?」疵曰:「不然。夫好顯巖穴之士而朝之,則戰士怠於行陣;上尊學者,下士居朝,則農夫惰於田。戰士怠於行陳者則兵弱也,農夫惰於田者則國貧也。兵弱於敵,國貧於內,而不亡者,未之有也,伐之不亦可乎?」主父曰:「善。」舉兵而伐中山,遂滅也。
[번역문]
조(趙)나라 주보(主父)가 이疵(이疵)를 시켜 중산(中山)을 공격할 만한지 아닌지 살펴보게 하였다. 돌아와 보고하여 말하기를, “중산은 칠 만합니다. 군주께서 서둘러 치지 않으시면, 장차 제(齊)나라나 연(燕)나라에 뒤처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보가 말하기를, “무슨 까닭으로 공격할 만한가?”라고 하니, 이疵가 대답하기를, “그 나라 군주가 바위굴에 사는 선비를 좋아하여, 수레의 덮개를 기울이고 수레를 몰아 궁벽한 마을과 좁은 골목의 선비를 만난 것이 수십 번이고, 평민 선비에게 대등한 예로 자신을 낮춘 것이 수백 번입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로 논하자면, 이는 현명한 군주인데 어찌 공격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이疵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바위굴에 사는 선비를 드러내어 조정에 나오게 하는 것을 좋아하면, 전사들은 전장에서 싸우는 데 게을러집니다. 위에서 학자를 존중하여 낮은 신분의 선비가 조정에 머물면, 농부들은 밭에서 일하는 데 게을러집니다. 전사들이 전장에서 게으르면 군대가 약해지고, 농부들이 밭에서 게으르면 나라가 가난해집니다. 군대가 적보다 약하고 나라가 안으로 가난하면서도 망하지 않은 경우는 아직 없었으니, 그들을 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보가 “좋다.” 하고는, 군사를 일으켜 중산을 정벌하여 마침내 멸망시켰다.
[원문 54]
外儲說左上:
說五
[번역문]
설명 오(五).
[원문 55]
外儲說左上:
齊桓公好服紫,一國盡服紫,當是時也,五素不得一紫,桓公患之,謂管仲曰:「寡人好服紫,紫貴甚,一國百姓好服紫不已,寡人奈何?」管仲曰:「君欲何不試勿衣紫也,謂左右曰,吾甚惡紫之臭。」於是左右適有衣紫而進者,公必曰:「少卻,吾惡紫臭。」公曰:「諾。」於是日郎中莫衣紫,其明日國中莫衣紫,三日境內莫衣紫也。
[번역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자주색 옷 입기를 좋아하자, 온 나라가 모두 자주색 옷을 입었다. 당시 흰 비단 다섯 필로도 자주색 비단 한 필을 살 수 없었다. 환공이 이를 걱정하여 관중(管仲)에게 말하기를, “과인이 자주색 옷 입기를 좋아하니 자주색 옷값이 매우 비싸지고, 온 나라 백성들이 자주색 옷 입기를 그치지 않으니, 과인은 어찌하면 좋겠소?”라고 하였다. 관중이 말하기를, “군주께서 어찌 시험 삼아 자주색 옷을 입지 않으시고, 측근들에게 ‘나는 자주색 냄새가 몹시 싫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마침 자주색 옷을 입고 나아오는 측근이 있으면, 환공이 반드시 말하기를, “조금 물러나라. 나는 자주색 냄새가 싫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알겠다.” 하고는, 그날 낭중(郎中)들이 아무도 자주색 옷을 입지 않았고, 그 다음 날에는 나라 안에 아무도 자주색 옷을 입지 않았으며, 사흘째에는 나라 국경 안에 아무도 자주색 옷을 입지 않았다.
[원문 56]
外儲說左上:
一曰。齊王好衣紫,齊人皆好也。齊國五素不得一紫,齊王患紫貴。傅說王曰:「《詩》云:不躬不親,庶民不信。今王欲民無衣紫者,王以自解紫衣而朝,群臣有紫衣進者,曰益遠,寡人惡臭。」是日也,郎中莫衣紫;是月也,國中莫衣紫;是歲也,境內莫衣紫。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齊)나라 왕이 자주색 옷 입기를 좋아하자, 제나라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다. 제나라에서 흰 비단 다섯 필로도 자주색 비단 한 필을 살 수 없게 되자, 제나라 왕이 자주색 옷값이 비싼 것을 걱정했다. 어떤 이가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시경》에 이르기를, ‘몸소 행하지 않고 친히 하지 않으면, 뭇 백성이 믿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백성들이 자주색 옷을 입지 않기를 바라신다면, 왕께서 스스로 자주색 옷을 벗고 조회에 임하시고, 여러 신하 중에 자주색 옷을 입고 나아오는 자가 있으면, ‘더 멀리 물러나라, 과인은 그 냄새가 싫다.’고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날 낭중(郎中)들이 아무도 자주색 옷을 입지 않았고, 그 달에는 나라 안에 아무도 자주색 옷을 입지 않았으며, 그 해에는 나라 국경 안에 아무도 자주색 옷을 입지 않았다.
[원문 57]
外儲說左上:
鄭簡公謂子產曰:「國小,迫於荊、晉之間。今城郭不完,兵甲不備,不可以待不虞。」子產曰:「臣閉其外也已遠矣,而守其內也已固矣,雖國小猶不危之也。君其勿憂。」是以沒簡公身無患。
[번역문]
정(鄭)나라 간공(簡公)이 자산(子產)에게 말하기를, “나라가 작아 초[荊]나라와 진(晉)나라 사이에 압박을 받고 있소. 지금 성곽은 완전하지 않고 병기와 갑옷은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비할 수 없소.”라고 하였다. 자산이 말하기를, “신이 외부의 침입을 막는 것은 이미 멀리까지 미치고 있고, 내부를 지키는 것은 이미 굳건하니, 비록 나라가 작더라도 위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군주께서는 부디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간공은 죽을 때까지 아무런 우환이 없었다.
[원문 58]
外儲說左上:
子產相鄭,簡公謂子產曰:「飲酒不樂也,俎豆不大,鍾鼓竽瑟不鳴,寡人之事不一,國家不定,百姓不治,耕戰不輯睦,亦子之罪。子有職,寡人亦有職,各守其職。」子產退而為政五年,國無盜賊,道不拾遺,桃棗蔭於街者莫有援也,錐刀遺道三日可反,三年不變,民無飢也。
[번-역문]
자산(子產)이 정(鄭)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간공(簡公)이 자산에게 말하기를, “술을 마셔도 즐겁지 않고, 제기[俎豆]는 크지 않으며, 종과 북, 우(竽)와 슬(瑟)은 울리지 않고, 과인의 일이 한결같지 않으며, 국가가 안정되지 않고 백성이 다스려지지 않으며, 밭 갈고 싸우는 일[耕戰]이 화목하지 않으니, 또한 그대의 죄이다. 그대에게 직분이 있듯이, 과인에게도 직분이 있으니, 각자 자기 직분을 지키도록 하라.”고 하였다. 자산이 물러나 정치를 한 지 5년 만에, 나라에 도적이 없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이가 없으며, 거리에 그늘을 드리운 복숭아나무와 대추나무의 열매를 따는 자가 없었고, 송곳이나 칼이 길에 떨어져도 사흘 뒤에 되찾을 수 있었으며, 삼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았다.
[원문 59]
外儲說左上:
宋襄公與楚人戰於涿谷上,宋人既成列矣,楚人未及濟,右司馬購強趨而諫曰:「楚人眾而宋人寡,請使楚人半涉未成列而擊之,必敗。」襄公曰:「寡人聞君子曰:不重傷,不擒二毛,不推人於險,不迫人於阨,不鼓不成列。今楚未濟而擊之,害義。請使楚人畢涉成陣而後鼓士進之。」右司馬曰:「君不愛宋民,腹心不完,特為義耳。」公曰:「不反列,且行法。」右司馬反列,楚人已成列撰陣矣,公乃鼓之,宋人大敗,公傷股,三日而死,此乃慕自親仁義之禍。夫必恃人主之自躬親而後民聽從,是則將令人主耕以為上,服戰鴈行也民乃肯耕戰,則人主不泰危乎?而人臣不泰安乎?
[번역문]
송(宋)나라 양공(襄公)이 초나라 사람들과 탁수(涿水) 가에서 싸울 때, 송나라 군대는 이미 진열을 마쳤으나 초나라 군대는 미처 강을 건너지 못했다. 우사마(右司馬) 고강(購強)이 달려와 간언하여 말하기를, “초나라 군대는 많고 송나라 군대는 적으니, 청컨대 초나라 군대가 절반쯤 건너와 아직 진열을 마치지 못했을 때 공격하면, 반드시 패배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양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듣건대 군자는 ‘이미 부상당한 자를 거듭 다치게 하지 않고, 머리가 희끗한 자를 사로잡지 않으며, 사람을 험한 곳으로 밀어 넣지 않고, 사람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붙이지 않으며, 진열을 마치지 않은 군대에게는 북을 치지 않는다.’고 하였소. 지금 초나라가 아직 강을 건너지 않았는데 공격하는 것은 의(義)를 해치는 것이오. 청컨대 초나라 군대가 모두 건너와 진을 완성한 뒤에 북을 쳐서 병사들을 나아가게 하겠소.”라고 하였다. 우사마가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송나라 백성을 아끼지 않으시고, 나라의 중심이 온전치 못한데도, 오직 의(義)만을 위하십니다.”라고 하였다. 양공이 말하기를, “진열로 돌아가지 않으면, 장차 법을 집행하겠다.”라고 하였다. 우사마가 진열로 돌아가니, 초나라 군대가 이미 진열을 마치고 진을 갖추었다. 양공이 이에 북을 치게 하니, 송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고 양공은 넓적다리에 부상을 입어 사흘 만에 죽었다. 이것이 바로 몸소 인의(仁義)를 실천하려다 부른 재앙이다. 무릇 반드시 군주가 스스로 몸소 행한 뒤에야 백성이 따르게 한다면, 이는 장차 군주가 직접 밭을 갈아야 으뜸으로 여기고, 전투복을 입고 기러기처럼 줄지어 싸워야 백성이 비로소 밭 갈고 싸우려 하는 것과 같으니, 그러면 군주가 너무 위태롭지 않겠는가? 그리고 신하는 너무 편안하지 않겠는가?
[원문 60]
外儲說左上:
齊景公游少海,傳騎從中來謁曰:「嬰疾甚,且死,恐公後之。」景公遽起,傳騎又至。景公曰:「趨駕煩且之乘,使騶子韓樞御之。」行數百步,以騶為不疾,奪轡代之,御可數百步,以馬為不進,盡釋車而走。以煩且之良,而騶子韓樞之巧,而以為不如下走也。
[번역문]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소해(少海)에서 노닐고 있을 때, 전령 기병이 와서 아뢰기를, “안영(晏嬰)의 병이 매우 위독하여 장차 죽으려 하니, 공께서 늦으실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경공이 급히 일어나는데, 전령 기병이 또 도착했다. 경공이 말하기를, “서둘러 번차(煩且)의 수레를 준비하고, 마부인 추자(騶子) 한추(韓樞)에게 몰게 하라.”고 하였다. 수백 보를 가다가, 마부가 빠르지 않다고 여겨 고삐를 빼앗아 대신 몰았다. 수백 보를 몰다가, 말이 나아가지 않는다고 여겨, 수레를 모두 버리고 달려갔다. 번차와 같은 좋은 말과 추자 한추와 같은 교묘한 마부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달려가는 것만 못하다고 여긴 것이다.
[원문 61]
外儲說左上:
魏昭王欲與官事,謂孟嘗君曰:「寡人欲與官事。」君曰:「王欲與官事,則何不試習讀法?」昭王讀法十餘簡而睡臥矣,王曰:「寡人不能讀此法。」夫不躬親其勢柄,而欲為人臣所宜為者也,睡不亦宜乎。
[번역문]
위(魏)나라 소왕(昭王)이 관청의 일에 관여하고자 하여, 맹상군(孟嘗君)에게 말하기를, “과인이 관청의 일에 관여하고 싶소.”라고 하였다. 맹상군이 말하기를, “왕께서 관청의 일에 관여하고자 하신다면, 어찌 시험 삼아 법률을 익혀 읽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소왕이 법률 십여 간(簡)¹⁾을 읽다가 잠이 들어 누워버렸다. 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이 법률을 읽을 수가 없구나.”라고 하였다. 무릇 자신의 권세의 자루를 몸소 쥐지 않고, 신하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자 하니, 잠이 드는 것이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주석]
1) 간(簡): 글씨를 쓰던 대나무 조각. 여러 개를 엮어 책을 만들었다.
[원문 62]
外儲說左上:
孔子曰:「為人君者猶盂也,民猶水也,盂方水方,盂圜水圜。」
[번역문]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군주 된 자는 그릇과 같고, 백성은 물과 같아서, 그릇이 네모나면 물도 네모나지고, 그릇이 둥글면 물도 둥글어진다.”라고 하였다.
[원문 63]
外儲說左上:
鄒君好服長纓,左右皆服長纓,纓甚貴,鄒君患之,問左右,左右曰:「君好服,百姓亦多服,是以貴。」君因先自斷其纓而出,國中皆不服長纓。君不能下令為百姓服度以禁之,乃斷纓出以示民,是先戮以蒞民也。
[번역문]
추(鄒)나라 군주가 긴 갓끈[長纓]을 매기 좋아하자, 측근들이 모두 긴 갓끈을 매어 갓끈이 매우 비싸졌다. 추나라 군주가 이를 걱정하여 측근들에게 물으니, 측근들이 말하기를, “군주께서 매기를 좋아하시니 백성들도 또한 많이 매어, 이 때문에 비싸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이에 먼저 스스로 갓끈을 자르고 나가니, 나라 안에 모두 긴 갓끈을 매지 않았다. 군주가 명령을 내려 백성들의 복식 제도를 정하여 이를 금하지 못하고, 이에 갓끈을 잘라 백성에게 보였으니, 이는 먼저 스스로를 욕보임으로써 백성에게 임하는 것이다.
[원문 64]
外儲說左上:
叔向賦獵,功多者受多,功少者受少。
[번역문]
숙향(叔向)이 사냥의 성과를 분배할 때, 공이 많은 자는 많이 받고, 공이 적은 자는 적게 받았다.
[원문 65]
外儲說左上:
韓昭侯謂申子曰:「法度甚易行也。」申子曰:「法者見功而與賞,因能而受官。今君設法度而聽左右之請,此所以難行也。」昭侯曰:「吾自今以來知行法矣,寡人奚聽矣。」一日,申子請仕其從兄官,昭侯曰:「非所學於子也。聽子之謁敗子之道乎?亡其用子之謁。」申子辟舍請罪。
[번역문]
한(韓)나라 소후(昭侯)가 신자(申子)¹⁾에게 말하기를, “법도를 행하기는 매우 쉽소.”라고 하였다. 신자가 말하기를, “법이란 공을 보고 상을 주며, 능력에 따라 관직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 군주께서 법도를 세우시고도 측근의 청탁을 들어주시니, 이것이 법을 행하기 어려운 까닭입니다.”라고 하였다. 소후가 말하기를, “내가 이제부터 법을 행할 줄 알았으니, 과인이 어찌 (사사로운 청을) 듣겠소.”라고 하였다. 어느 날, 신자가 그의 사촌 형에게 벼슬을 주기를 청하자, 소후가 말하기를, “이는 내가 그대에게서 배운 바가 아니오. 그대의 청탁을 들어주어 그대의 도를 무너뜨리겠소? 아니면 그대의 청탁을 쓰지 않겠소?”라고 하였다. 신자가 자리를 피하여 죄를 청했다.
[주석]
1) 신자(申子): 법가 사상가인 신불해(申不害)를 가리킨다.
[원문 66]
外儲說左上:
說六
[번역문]
설명 육(六).
[원문 67]
外儲說左上:
晉文公攻原,裹十日糧,遂與大夫期十日,至原十日而原不下,擊金而退,罷兵而去,士有從原中出者曰:「原三日即下矣。」群臣左右諫曰:「夫原之食竭力盡矣,君姑待之。」公曰:「吾與士期十日,不去,是亡吾信也。得原失信,吾不為也。」遂罷兵而去。原人聞曰:「有君如彼其信也,可無歸乎?」乃降公。衛人聞曰:「有君如彼其信也,可無從乎?」乃降公。孔子聞而記之曰:「攻原得衛者信也。」
[번역문]
진(晉) 문공(文公)이 원(原)나라를 공격할 때, 열흘 치 식량을 싸고 마침내 대부들과 열흘을 기약했다. 원나라에 이른 지 열흘이 되어도 원나라가 항복하지 않자, 징을 쳐서 군대를 물리치고 떠났다. 병사 중에 원나라 성안에서 나온 자가 말하기를, “원나라는 사흘이면 곧 항복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여러 신하와 측근들이 간언하여 말하기를, “무릇 원나라의 식량은 고갈되고 힘은 다하였으니, 군주께서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라고 하였다. 문공이 말하기를, “내가 병사들과 열흘을 기약했는데, 떠나지 않으면 이는 나의 신의를 잃는 것이다. 원나라를 얻고 신의를 잃는 일은, 나는 하지 않겠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거두어 떠났다. 원나라 사람들이 듣고 말하기를, “저와 같이 신의 있는 군주가 있는데, 어찌 귀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는, 이에 문공에게 항복했다. 위(衛)나라 사람들이 듣고 말하기를, “저와 같이 신의 있는 군주가 있는데,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는, 이에 문공에게 항복했다. 공자(孔子)가 듣고 이를 기록하여 말하기를, “원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까지 얻은 것은 신의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68]
外儲說左上:
文公問箕鄭曰:「救餓奈何?」對曰:「信。」公曰:「安信?」曰:「信名。信名,則群臣守職,善惡不踰,百事不怠。信事,則不失天時,百姓不踰。信義,則近親勸勉而遠者歸之矣。」
[번역문]
문공(文公)이 규정(箕鄭)에게 묻기를, “굶주림을 구제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신의(信)입니다.”라고 하였다. 문공이 “어떤 신의인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명분[名]에 대한 신의입니다. 명분에 신의가 있으면 여러 신하들이 직분을 지키고, 선과 악이 법도를 넘지 않으며, 모든 일이 게을러지지 않습니다. 일[事]에 대한 신의가 있으면 천시(天時)를 잃지 않고 백성들이 법도를 넘지 않습니다. 의(義)에 대한 신의가 있으면 가까운 친족들이 힘쓰고 격려하며 먼 곳의 사람들이 귀의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69]
外儲說左上:
吳起出,遇故人而止之食,故人曰:「諾,今返而御。」吳子曰:「待公而食。」故人至暮不來,起不食待之,明日早,令人求故人,故人來方與之食。
[번역문]
오기(吳起)가 외출했다가 옛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자고 만류했다. 옛 친구가 말하기를, “알겠네. 지금 돌아가서 준비하고 오겠네.”라고 하였다. 오기가 말하기를, “그대를 기다렸다가 식사하겠네.”라고 하였다. 옛 친구가 저물도록 오지 않자, 오기는 식사하지 않고 그를 기다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사람을 시켜 옛 친구를 찾게 하여, 옛 친구가 오자 비로소 그와 함께 식사했다.
[원문 70]
外儲說左上:
魏文侯與虞人期獵,明日,會天疾風,左右止,文侯不聽,曰:「不可。以風疾之故而失信,吾不為也。」遂自驅車往,犯風而罷虞人。
[번역문]
위(魏) 문후(文侯)가 사냥터 관리인[虞人]과 사냥을 약속했다. 다음 날, 마침 날씨가 몹시 바람이 불자, 측근들이 만류했으나 문후는 듣지 않고 말하기를, “안 된다. 바람이 심하다는 까닭으로 신의를 잃는 일은, 나는 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스스로 수레를 몰고 가서, 바람을 무릅쓰고 사냥터 관리인을 돌려보냈다.
[원문 71]
外儲說左上:
曾子之妻之市,其子隨之而泣,其母曰:「女還,顧反為女殺彘。」妻適市來,曾子欲捕彘殺之,妻止之曰:「特與嬰兒戲耳。」曾子曰:「嬰兒非與戲也。嬰兒非有知也,待父母而學者也,聽父母之教,今子欺之,是教子欺也。母欺子,子而不信其母,非所以成教也。」遂烹彘也。
[번-역문]
증자(曾子)의 아내가 시장에 가는데, 그 아들이 따라가며 울었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돌아가 있거라. 돌아와서 너를 위해 돼지를 잡겠다.”라고 하였다. 아내가 마침 시장에서 돌아오자, 증자가 돼지를 잡아 죽이려 하였다. 아내가 그를 말리며 말하기를, “단지 어린아이와 장난친 것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증자가 말하기를, “어린아이는 장난쳐도 되는 상대가 아니다. 어린아이는 지각이 없어, 부모를 기다리며 배우는 자이고, 부모의 가르침을 듣는다. 지금 그대가 아이를 속이는 것은, 아이에게 속이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은 그 어머니를 믿지 않을 것이니, 이는 가르침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돼지를 삶았다.
[원문 72]
外儲說左上:
楚厲王有警,為鼓以與百姓為戍,飲酒醉,過而擊之也,民大驚,使人止之。曰:「吾醉而與左右戲,過擊之也。」民皆罷。居數月,有警,擊鼓而民不赴,乃更令明號而民信之。
[번역문]
초(楚) 여왕(厲王) 때에 경계할 일이 있어, 북을 만들어 백성들과 수자리서는 약속으로 삼았다. (어느 날 왕이) 술을 마시고 취하여, 실수로 그 북을 쳤다. 백성들이 크게 놀라자, 사람을 시켜 그들을 멈추게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취하여 측근들과 장난치다가, 실수로 북을 쳤다.”라고 하니, 백성들이 모두 해산했다. 몇 달이 지나, 경계할 일이 생겨 북을 쳤으나 백성들이 달려오지 않았다. 이에 다시 명령과 신호를 명확히 한 뒤에야 백성들이 그것을 믿었다.
[원문 73]
外儲說左上:
李悝警其兩和曰:「謹警敵人,旦暮且至擊汝。」如是者再三而敵不至,兩和懈怠,不信李悝,居數月,秦人來襲之,至,幾奪其軍,此不信患也。
[번역문]
이회(李悝)가 그의 양쪽 군대[兩和]에 경고하여 말하기를, “삼가 적을 경계하라. 조만간 적이 와서 너희를 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하기를 두세 번 하였으나 적이 오지 않자, 양쪽 군대는 해이해져서 이회를 믿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 진(秦)나라 사람들이 와서 습격하여, 이르러서는 거의 그 군대를 빼앗을 뻔했으니, 이것이 믿지 않아서 생긴 재앙이다.
[원문 74]
外儲說左上:
一曰。李悝與秦人戰,謂左和曰:「速上,右和已上矣。」又馳而至右和曰:「左和已上矣。」左右和曰:「上矣。」於是皆爭上。其明年與秦人戰,秦人襲之,至,幾奪其軍,此不信之患。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회(李悝)가 진(秦)나라 사람들과 싸울 때, 좌군(左和)에게 말하기를, “빨리 올라가라. 우군(右和)은 이미 올라갔다.”라고 하였다. 또 말을 달려 우군에 이르러 말하기를, “좌군은 이미 올라갔다.”라고 하였다. 좌우 군대가 “올라갔다.”고 말하며, 이에 모두 다투어 올라갔다. 그 다음 해에 진나라 사람들과 싸울 때, 진나라 사람들이 습격하여 이르러서는 거의 그 군대를 빼앗을 뻔했으니, 이것이 신의가 없어서 생긴 재앙이다.
[원문 75]
外儲說左上:
有相與訟者,子產離之而毋得使通辭,到至其言以告而知也。
[번역문]
서로 소송하는 자가 있으면, 자산(子產)은 그들을 떼어놓아 서로 말을 통하지 못하게 하고, 각각의 말을 들어보고 알려주어 그 실정을 알았다.
[원문 76]
外儲說左上:
惠嗣公使人偽關市,關市呵難之,因事關市以金,關市乃舍之,嗣公謂關市曰:「某時有客過而予汝金,因譴之。」關市大恐,以嗣公為明察。
[번역문]
위(衛) 사군(嗣公)이 사람을 시켜 거짓으로 관문을 통과하게 하니, 관문 관리가 그를 꾸짖고 어렵게 하였다. 이에 그가 관문 관리에게 금을 주자, 관문 관리가 그를 놓아주었다. 사군이 관문 관리에게 말하기를, “아무 때에 어떤 손님이 지나가면서 너에게 금을 주었다.” 하고는, 그를 꾸짖었다. 관문 관리가 크게 두려워하여, 사군을 매우 잘 살피는 군주라고 여겼다.
韓非子 外儲說左下 (한비자 외저설좌하) 번역 및 주석
經 (경)
[원문 77]
外儲說左下:
一、以罪受誅,人不怨上,刖危坐子皋。以功受賞,臣不德君,翟璜操右契而乘軒。襄王不知,故昭卯五乘而履屩。上不過任,臣不誣能,即臣將為失少室周。
[번역문]
一. 죄로 인해 처벌을 받아도 사람들은 윗사람을 원망하지 않으니, 발이 잘린 위(危)가 자고(子皋)를 안전하게 앉힌 것¹⁾이 그 예이다. 공으로 인해 상을 받아도 신하는 군주에게 은혜로 여기지 않으니, 적황(翟璜)이 오른쪽 부절[右契]을 쥐고 높은 수레[軒]를 탄 것²⁾이 그 예이다. 양왕(襄王)은 이를 알지 못했으므로, 소묘(昭卯)는 수레 다섯 채를 받고도 짚신[履屩]을 신은 듯 여겼다³⁾. 윗사람은 과분한 임무를 맡기지 않고 신하는 능력을 속이지 않으니, 신하 된 자는 장차 소실주(少室周)를 잃게 될까 염려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⁴⁾.
[주석]
1) 월위좌자고(刖危坐子皋): 공자의 제자인 자고(子皋)가 위(衛)나라의 옥리(獄吏)로 있을 때 법에 따라 위(危)라는 사람의 발을 베는 형벌[刖刑]을 내렸다. 훗날 위나라에 난이 일어나 자고가 도망칠 때, 문지기가 된 위(危)가 원한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자고를 숨겨주어 목숨을 구해주었다. 이는 형벌이 공정했기에 벌을 받은 이조차 원망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고사이다.
2) 적황조우계이승헌(翟璜操右契而乘軒): 적황(翟璜)이 위(魏) 문후(文侯)에게 유능한 인재들을 추천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자, 문후가 그에게 높은 수레[軒]를 하사했다. 적황은 이를 군주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공에 대한 당연한 대가로 여겼다. 우계(右契)는 채권자가 가지는 증표로,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음을 상징한다.
3) 소묘오승이리교(昭卯五乘而履屩): 소묘(昭卯)가 외교술로 위(魏)나라를 네 나라의 침공 위기에서 구했으나, 양왕(襄王)이 내린 다섯 수레의 상이 공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여겼다는 고사이다. ‘리교(履屩)’는 짚신을 신는다는 뜻으로, 큰 공을 세우고도 초라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한 불만을 비유한다.
4) 실소실주(失少室周): 소실주(少室周)는 조(趙) 양주(襄主)의 힘센 신하였다. 자신보다 더 힘이 센 사람을 발견하자, 자신의 능력이 최고가 아님을 부끄럽게 여겨 즉시 그를 추천하고 자신은 물러났다. 이는 신하가 자신의 능력을 속이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있으면 자리를 내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임을 보여주는 고사이다.
[원문 78]
外儲說左下:
二、恃勢而不恃信,故東郭牙議管仲。恃術而不恃信,故渾軒非文公。故有術之主,信賞以盡能,必罰以禁邪,雖有駮行,必得所利,簡主之相陽虎,哀公問一足。
[번역문]
二. 신의(信義)를 믿지 않고 권세[勢]를 믿어야 하므로, 동곽아(東郭牙)는 관중(管仲)에 대해 논하였다. 신의를 믿지 않고 술(術)을 믿어야 하므로, 혼헌(渾軒)은 문공(文公)을 비판하였다. 그러므로 술(術)을 지닌 군주는, 상을 신실하게 하여 능력을 다하게 하고, 벌을 반드시 내려 간사함을 금하며, 비록 상반되는 행동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로운 바를 얻으니, 간주(簡主)가 양호(陽虎)를 재상으로 삼은 일과, 애공(哀公)이 한 발[一足]에 대해 물은 것¹⁾이 그 예이다.
[주석]
1) 애공문일족(哀公問一足): 노(魯)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옛날에 기(夔)라는 신하는 발이 하나였다는데 사실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기(夔)라는 인물 한 명만으로도 충분하다[一而足]는 뜻이지, 정말 발이 하나[一足]라는 뜻이 아닙니다.”라고 답한 고사. 이는 군주가 말의 표면이 아닌 그 실질과 유용성을 파악하는 ‘술(術)’을 가져야 함을 비유한다.
[원문 79]
外儲說左下:
三、失臣主之理,則文王自履而矜。不易朝燕之處,則季孫終身莊而遇賊。
[번역문]
三. 신하와 군주의 도리를 잃으면, 문왕(文王)이 스스로 신발 끈을 매면서도 자랑스러워하는 일이 생긴다. 조정과 연회의 장소를 구별하지 않으면, 계손(季孫)은 평생을 근엄하게 지내고도 도적을 만난다.
[원문 80]
外儲說左下:
四、利所禁,禁所利,雖神不行;譽所罪,毀所賞,雖堯不治。夫為門而不使入,委利而不使進,亂之所以產也。齊侯不聽左右,魏主不聽譽者,而明察照群臣,則鉅不費金錢,孱不用璧,西門豹請復治鄴足以知之。猶盜嬰兒之矜裘,與刖危子榮衣。子綽左右畫,去蟻驅蠅,安得無桓公之憂索官,與宣王之患臞馬也。
[번역문]
四. 금지하는 바를 이롭게 하고 이롭게 하는 바를 금지하면, 비록 신(神)이라도 행할 수 없다. 죄 주는 바를 칭찬하고 상 주는 바를 헐뜯으면, 비록 요(堯)임금이라도 다스릴 수 없다. 무릇 문을 만들어 놓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익을 맡겨놓고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혼란이 생겨나는 까닭이다. 제(齊)나라 후작이 측근의 말을 듣지 않고, 위(魏)나라 군주가 칭찬하는 자의 말을 듣지 않으며, 밝은 통찰로 여러 신하들을 비추어보면, 거(鉅)는 금전을 낭비할 필요가 없고 잔(孱)은 옥구슬을 쓸 필요가 없으니, 서문표(西門豹)가 다시 업(鄴)을 다스리게 해달라고 청한 일로써 족히 이를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갓난아기의 갖옷을 훔치고 자랑하는 것과 같고, 발 잘린 위(危)의 아들이 좋은 옷을 영광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 자작(子綽)이 양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개미를 쫓고 파리를 몰아내는 것과 같은 일¹⁾을 하니, 어찌 환공(桓公)이 관직을 구하는 자가 많음을 걱정하고, 선왕(宣王)이 말이 여윈 것을 근심하는 것과 같은 일이 없겠는가.
[주석]
1) 자작좌우화(子綽左右畫), 거의구승(去蟻驅蠅): 자작(子綽)이 양손으로 네모와 원을 동시에 그릴 수 없다고 한 것, 고기로 개미를 쫓으면 개미가 더 모이고 생선으로 파리를 쫓으면 파리가 더 꼬인다는 비유. 모두 이치에 맞지 않고 효과 없는 일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군주가 상벌의 기준 없이 측근의 청탁이나 비효율적인 방법에 의존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됨을 뜻한다.
[원문 81]
外儲說左下:
五、臣以卑儉為行,則爵不足以觀賞;寵光無節,則臣下侵偪。說在苗賁皇非獻伯,孔子議晏嬰,故仲尼論管仲與叔孫敖。而出入之容變,陽虎之言見其臣也。而簡主之應人臣也失主術。朋黨相和,臣下得欲,則人主孤;群臣公舉,下不相和,則人主明。陽虎將為趙武之賢、解狐之公。而簡主以為枳棘,非所以教國也。
[번역문]
五. 신하가 비천함과 검소함을 행동 규범으로 삼으면, 벼슬로써 상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 총애와 영광에 절도가 없으면, 아랫 신하들이 (군주를) 침범하고 핍박한다. 그 설명은 묘분황(苗賁皇)이 헌백(獻伯)을 비판한 일과, 공자(孔子)가 안영(晏嬰)을 논한 일에 있다. 그러므로 중니(仲尼)는 관중(管仲)과 숙손오(叔孫敖)를 논하였다. 출입할 때의 용모가 변하고, 양호(陽虎)의 말은 그 신하 됨을 드러낸다. 그러나 간주(簡主)가 신하에게 응대한 것은 군주의 술(術)을 잃은 것이다. 붕당(朋黨)이 서로 화합하여 아랫 신하들이 욕심을 채우면 군주는 외로워지고, 여러 신하들이 공적으로 추천하여 아랫사람들이 서로 화합하지 않으면 군주는 현명해진다. 양호는 장차 조무(趙武)의 현명함과 해호(解狐)의 공정함을 본받으려 했는데, 간주(簡主)는 그를 탱자나무나 가시나무[枳棘]¹⁾로 여겼으니, 나라를 가르치는 방법이 아니다.
[주석]
1) 지극(枳棘): 탱자나무와 가시나무. 쓸모없고 해로운 존재를 비유한다. 간주가 양호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를 해로운 인물로만 여겨 잘못 대처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원문 82]
外儲說左下:
六、公室卑則忌直言,私行勝則少公功。說在文子之直言,武子之用杖;子產忠諫,子國譙怒;梁車用法,而成侯收璽;管仲以公,而國人謗怨。
[번역문]
六. 공실(公室)이 비천해지면 곧은 말을 꺼리게 되고, 사사로운 행실이 성행하면 공적인 공로가 적어진다. 그 설명은 문자(文子)의 곧은 말과, 무자(武子)가 지팡이를 사용한 일에 있다. 자산(子產)이 충성스럽게 간언하자, 자국(子國)이 꾸짖고 노하였다. 양거(梁車)가 법을 사용하자, 성후(成侯)는 인장(印章)을 거두었다. 관중(管仲)이 공적으로 행하자, 나라 사람들이 비방하고 원망하였다.
[원문 83]
外儲說左下:
右經
[번역문]
이상은 경(經)이다.
說 (설)
[원문 84]
外儲說左下:
說一
[번역문]
설명 일(一).
[원문 85]
外儲說左下:
孔子相衛,弟子子皋為獄吏,刖人足,所刖者守門,人有惡孔子於衛君者曰:「尼欲作亂。」衛君欲執孔子,孔子走,弟子皆逃,子皋從出門,刖危引之而逃之門下室中,吏追不得,夜半,子皋問刖危曰:「吾不能虧主之法令而親刖子之足,是子報仇之時也,而子何故乃肯逃我?我何以得此於子?」刖危曰:「吾斷足也,固吾罪當之,不可奈何。然方公之獄治臣也,公傾側法令,先後臣以言,欲臣之免也甚,而臣知之。及獄決罪定,公憱然不悅,形於顏色,臣見又知之。非私臣而然也,夫天性仁心固然也,此臣之所以悅而德公也。」
[번역문]
공자(孔子)가 위(衛)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제자 자고(子皋)가 옥리(獄吏)가 되어 어떤 사람의 발을 베는 형벌을 내렸다. 발이 잘린 그 사람은 문지기가 되었다. 어떤 사람이 위나라 군주에게 공자를 헐뜯어 말하기를, “중니(仲尼)가 난을 일으키려 합니다.”라고 하였다. 위나라 군주가 공자를 잡으려 하자, 공자는 달아나고 제자들도 모두 도망쳤다. 자고가 따라 문을 나서자, 발이 잘린 위(危)가 그를 이끌어 문 아래의 작은 방으로 숨겨주었다. 관리가 뒤쫓았으나 찾지 못했다. 한밤중에 자고가 발 잘린 위에게 묻기를, “내가 군주의 법령을 어기지 못하고 친히 그대의 발을 베었으니, 지금은 그대가 원수를 갚을 때인데,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기꺼이 나를 숨겨주었는가? 내가 어찌하여 그대에게서 이런 대우를 받는가?”라고 하였다. 발 잘린 위가 말하기를, “제가 발이 잘린 것은, 진실로 저의 죄가 마땅히 그러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공께서 저의 옥사를 다스리실 때, 공께서는 법령을 이리저리 살피시고, 앞뒤로 저에게 말씀하시며 제가 형벌을 면하기를 매우 바라셨는데, 저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옥사가 결정되고 죄가 정해지자, 공께서 슬퍼하며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 얼굴빛에 드러나, 저는 그것을 보고 또 알았습니다. 사사로이 저를 위해서 그러신 것이 아니라, 무릇 타고난 어진 마음이 본래 그러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공을 기뻐하고 은혜롭게 여기는 까닭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86]
外儲說左下:
田子方從齊之魏,望翟黃乘軒騎駕出,方以為文侯也,移車異路而避之,則徒翟黃也,方問曰:「子奚乘是車也?」曰:「君謀欲伐中山,臣薦翟角而謀得果。且伐之,臣薦樂羊而中山拔。得中山,憂欲治之,臣薦李克而中山治。是以君賜此車。」方曰:「寵之稱功尚薄」。
[번역문]
전자방(田子方)이 제(齊)나라에서 위(魏)나라로 갈 때, 적황(翟璜)이 기마가 끄는 높은 수레[軒]를 타고 나오는 것을 멀리서 보았다. 자방은 그가 문후(文侯)인 줄 알고, 수레를 다른 길로 옮겨 그를 피했는데, 알고 보니 단지 적황이었다. 자방이 묻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이 수레를 탔는가?”라고 하니, 적황이 말하기를, “군주께서 중산(中山)을 정벌하고자 계획하실 때, 신이 적각(翟角)을 추천하여 계획이 과연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그곳을 정벌할 때, 신이 악양(樂羊)을 추천하여 중산을 함락시켰습니다. 중산을 얻고 나서 그곳을 다스릴 것을 걱정하시기에, 신이 이극(李克)을 추천하여 중산이 잘 다스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군주께서 이 수레를 하사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자방이 말하기를, “총애가 공에 비하면 오히려 부족하구려.”라고 하였다.
[원문 87]
外儲說左下:
秦、韓攻魏,昭卯西說而秦、韓罷。齊、荊攻魏,卯東說而齊、荊罷。魏襄王養之以五乘將軍,卯曰:「伯夷以將軍葬於首陽山之下,而天下曰:夫以伯夷之賢與其稱仁,而以將軍葬,是手足不掩也。今臣罷四國之兵,而王乃與臣五乘,此其稱功,猶贏勝而履蹻。」
[번역문]
진(秦)나라와 한(韓)나라가 위(魏)나라를 공격하자, 소묘(昭卯)가 서쪽으로 가서 유세하여 진나라와 한나라 군대가 물러갔다. 제(齊)나라와 초[荊]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자, 소묘가 동쪽으로 가서 유세하여 제나라와 초나라 군대가 물러갔다. 위(魏) 양왕(襄王)이 그에게 장군급의 대우로 수레 다섯 채를 주며 부양하자, 소묘가 말하기를, “백이(伯夷)를 장군의 예로 수양산 아래에 장사 지내자, 천하 사람들이 말하기를, ‘무릇 백이의 현명함과 그의 인(仁)에 대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장군의 예로 장사 지내는 것은, 손과 발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신은 네 나라의 군대를 물리쳤는데, 왕께서는 이에 신에게 수레 다섯 채를 주시니, 이것이 공에 걸맞은 대우라 한다면, 마치 크게 이기고도 짚신[履蹻]을 신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88]
外儲說左下:
孔子曰:「善為吏者樹德,不能為吏者樹怨。概者、平量者也,吏者、平法者也,治國者、不可失平也。」
[번역문]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관리를 잘하는 자는 은덕을 세우고, 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자는 원한을 세운다. 되밀이[概]는 양을 평평하게 하는 것이고, 관리는 법을 평평하게 하는 것이니,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평평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원문 89]
外儲說左下:
少室周者,古之貞廉潔愨者也,為趙襄主力士,與中牟徐子角力,不若也,入言之襄主以自代也,襄主曰:「子之處,人之所欲也,何為言徐子以自代?」曰:「臣以力事君者也,今徐子力多臣,臣不以自代,恐他人言之而為罪也。」
[번역문]
소실주(少室周)는 옛사람으로 곧고 청렴하며 결백하고 성실한 자였다. 조(趙) 양주(襄主)의 역사(力士)가 되어, 중모(中牟)의 서자(徐子)와 힘을 겨루었으나 그만 못했다. 들어가서 양주에게 그를 말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다. 양주가 말하기를, “그대의 자리는 남들이 바라는 바인데, 어찌하여 서자를 말하여 스스로를 대신하게 하는가?”라고 하니, 소실주가 말하기를, “신은 힘으로써 군주를 섬기는 자입니다. 지금 서자의 힘이 신보다 많으니, 신이 그로써 스스로를 대신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를 말하여 (제가 능력을 속인) 죄가 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90]
外儲說左下:
一曰。少室周為襄主驂乘,至晉陽,有力士牛子耕與角力而不勝,周言於主曰:「主之所以使臣騎乘者,以臣多力也,今有多力於臣者,願進之。」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소실주(少室周)가 양주(襄主)의 참승(驂乘)¹⁾이 되어 진양(晉陽)에 이르렀는데, 역사(力士)인 우자경(牛子耕)과 힘을 겨루어 이기지 못했다. 소실주가 군주에게 말하기를, “주군께서 신을 수레에 타게 하신 까닭은 신의 힘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보다 힘이 많은 자가 있으니, 원컨대 그를 등용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주석]
1) 참승(驂乘): 고대 전차에서 군주나 장군의 오른쪽에 타서 호위하는 무사.
[원문 91]
外儲說左下:
說二
[번역문]
설명 이(二).
[원문 92]
外儲說左下:
齊桓公將立管仲,令群臣曰:「寡人將立管仲為仲父,善者入門而左,不善者入門而右。」東郭牙中門而立,公曰:「寡人立管仲為仲父,令曰善者左,不善者右,今子何為中門而立?」牙曰:「以管仲之智為能謀天下乎?」公曰:「能」。「以斷為敢行大事乎?」公曰:「敢」。牙曰:「君知能謀天下,斷敢行大事,君因專屬之國柄焉。以管仲之能,乘公之勢以治齊國,得無危乎?」公曰:「善」。乃令隰朋治內,管仲治外以相參。
[번역문]
제(齊) 환공(桓公)이 장차 관중(管仲)을 세우려 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기를, “과인이 장차 관중을 중보(仲父)로 세우려 하니, 찬성하는 자는 문에 들어와 왼쪽으로 서고, 반대하는 자는 문에 들어와 오른쪽으로 서라.”고 하였다. 동곽아(東郭牙)가 문 가운데에 서 있자, 환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관중을 중보로 세우려 하며, 찬성하는 자는 왼쪽, 반대하는 자는 오른쪽으로 서라고 명하였는데, 지금 그대는 어찌하여 문 가운데에 서 있는가?”라고 하였다. 동곽아가 말하기를, “관중의 지혜로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환공이 “능하다.”라고 하였다. “그의 결단력으로 감히 큰일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환공이 “감히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동곽아가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그가 천하를 도모할 수 있고, 결단력으로 감히 큰일을 행할 수 있음을 아시면서, 그에게 나라의 권력을 오로지 맡기려 하십니다. 관중의 능력으로 군주의 권세를 타고 제나라를 다스린다면,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환공이 “좋다.” 하고는, 이에 습붕(隰朋)에게 내치를 맡기고 관중에게 외치를 맡겨 서로 견제하게 하였다.
[원문 93]
外儲說左下:
晉文公出亡,箕鄭挈壺餐而從,迷而失道,與公相失,飢而道泣,寢餓而不敢食。及文公反國,舉兵攻原,克而拔之,文公曰:「夫輕忍飢餒之患而必全壺餐,是將不以原叛」。乃舉以為原令。大夫渾軒聞而非之曰:「以不動壺餐之故,怙其不以原叛也,不亦無術乎!故明主者,不恃其不我叛也,恃吾不可叛也;不恃其不我欺也,恃吾不可欺也。」
[번역문]
진(晉) 문공(文公)이 망명 생활을 할 때, 규정(箕鄭)이 도시락을 들고 그를 따랐다. 길을 잃어 문공과 헤어지게 되었는데, 굶주려 길에서 울면서도 잠을 잘 때 굶주릴지언정 감히 그 음식을 먹지 않았다. 문공이 나라로 돌아와 군사를 일으켜 원(原)나라를 공격하여 이기고 함락시키자, 문공이 말하기를, “무릇 굶주림의 고통을 가벼이 참고 반드시 도시락을 온전히 지켰으니, 이는 장차 원나라를 가지고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는, 이에 그를 등용하여 원(原)의 현령으로 삼았다. 대부 혼헌(渾軒)이 듣고 이를 비판하여 말하기를, “도시락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가 원나라를 가지고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 믿으니, 또한 술(術)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신하가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반당할 수 없음을 믿는다. 신하가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임을 당할 수 없음을 믿는다.”라고 하였다.
[원문 94]
外儲說左下:
陽虎議曰:「主賢明則悉心以事之,不肖則飾姦而試之。」逐於魯,疑於齊,走而之趙,趙簡主迎而相之,左右曰:「虎善竊人國政,何故相也?」簡主曰:「陽虎務取之,我務守之。」遂執術而御之,陽虎不敢為非,以善事簡主,興主之強,幾至於霸也。
[번역문]
양호(陽虎)가 논하여 말하기를, “군주가 현명하면 마음을 다해 그를 섬기고, 못났으면 간사함을 꾸며 그를 시험한다.”라고 하였다. 노(魯)나라에서 쫓겨나고 제(齊)나라에서 의심을 받아, 달아나 조(趙)나라로 가니, 조(趙) 간주(簡主)가 그를 맞이하여 재상으로 삼았다. 측근들이 말하기를, “양호는 남의 나라 정권을 훔치는 데 능한데, 무슨 까닭으로 재상을 삼으십니까?”라고 하니, 간주가 말하기를, “양호는 빼앗으려 힘쓰고, 나는 지키려 힘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술(術)을 쥐고 그를 부리니, 양호가 감히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고, 간주를 잘 섬겨 군주의 강성함을 일으켜, 거의 패업을 이룰 뻔했다.
[원문 95]
外儲說左下:
魯哀公問於孔子曰:「吾聞古者有夔一足,其果信有一足乎?孔子對曰:「不也,夔非一足也。夔者忿戾惡心,人多不說喜也。雖然,其所以得免於人害者,以其信也,人皆曰獨此一足矣,夔非一足也,一而足也。」哀公曰:「審而是固足矣。」
[번역문]
노(魯) 애공(哀公)이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내가 듣건대 옛날에 기(夔)라는 신하는 발이 하나였다는데, 과연 정말로 발이 하나였습니까?”라고 하였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기는 발이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기라는 자는 성질이 사납고 마음이 악하여,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함에도, 그가 사람들에게 해를 입는 것을 면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신의 때문이었으니,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오직 이것 하나로 충분하다[獨此一足矣].’라고 하였습니다. 기는 발이 하나[一足]가 아니라,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一而足]는 뜻입니다.”라고 하였다. 애공이 말하기를, “살펴보니 진실로 그것만으로도 진실로 충분하군요.”라고 하였다.
[원문 96]
外儲說左下:
一曰。哀公問於孔子曰:「吾聞夔一足,信乎?」曰:「夔,人也,何故一足?彼其無他異,而獨通於聲,堯曰:『夔一而足矣。』使為樂正。故君子曰:『夔有一足,非一足也。』」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애공(哀公)이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내가 듣건대 기(夔)는 발이 하나라는데, 정말입니까?”라고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기(夔)는 사람인데, 무슨 까닭으로 발이 하나이겠습니까? 그는 다른 뛰어난 점은 없었으나, 유독 음악[聲]에 정통하였습니다. 요(堯)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기(夔) 한 명이면 충분하다[夔一而足矣].’ 하시고는, 그를 악정(樂正)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군자가 말하기를, ‘기(夔)는 한 가지 뛰어난 점이 있다[有一足]는 것이지, 발이 하나[一足]라는 뜻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97]
外儲說左下:
說三
[번역문]
설명 삼(三).
[원문 98]
外儲說左下:
文王伐崇,至鳳黃虛,襪繫解,因自結,太公望曰:「何為也?」王曰:「君與處皆其師,中皆其友,下盡其使也。今皆先君之臣,故無可使也。」
[번역문]
문왕(文王)이 숭(崇)나라를 정벌할 때, 봉황허(鳳黃虛)에 이르러 버선 끈이 풀어지자, 스스로 그것을 묶었다. 태공망(太公望)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직접 하십니까)?”라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군주와 함께 있는 자들은, 윗사람은 모두 그의 스승이고, 중간은 모두 그의 친구이며, 아랫사람은 모두 그가 부리는 자들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선군(先君)의 신하들이니, 그러므로 부릴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99]
外儲說左下:
一曰。晉文公與楚戰,至黃鳳之陵,履係解,因自結之,左右曰:「不可以使人乎?」公曰:「吾聞上君所與居,皆其所畏也;中君之所與居,皆其所愛也;下君之所與居,皆其所侮也。寡人雖不肖,先君之人皆在,是以難之也。」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진(晉) 문공(文公)이 초(楚)나라와 싸울 때, 황봉(黃鳳)의 언덕에 이르러 신발 끈이 풀어지자, 스스로 그것을 묶었다. 측근들이 말하기를, “사람을 시키실 수는 없습니까?”라고 하니, 문공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상등의 군주가 함께 있는 자들은 모두 그가 두려워하는 자들이고, 중등의 군주가 함께 있는 자들은 모두 그가 사랑하는 자들이며, 하등의 군주가 함께 있는 자들은 모두 그가 업신여기는 자들이라고 하였소. 과인이 비록 못났으나, 선군(先君)의 사람들이 모두 있으니, 이 때문에 (시키기가) 어려운 것이오.”라고 하였다.
[원문 100]
外儲說左下:
季孫好士,終身莊,居處衣服,常如朝廷,而季孫適懈,有過失,而不能長為也,故客以為厭易己,相與怨之,遂殺季孫。故君子去泰去甚。
[번역문]
계손(季孫)은 선비를 좋아하여, 평생을 근엄하게 지내며 거처와 의복을 항상 조정에 있는 것처럼 하였다. 그러나 계손이 마침 해이해져 과실이 있었고, 오랫동안 그렇게 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식객들은 그가 자신들을 싫어하고 가벼이 여긴다고 생각하여, 서로 원망하다가 마침내 계손을 죽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지나침을 버리고 심함을 버린다.
[원문 101]
外儲說左下:
南宮敬子問顏涿聚曰:「季孫養孔子之徒,所朝服與坐者以十數而遇賊,何也?」曰:「昔周成王近優侏儒以逞其意,而與君子斷事,是能成其欲於天下。今季孫養孔子之徒,所朝服而與坐者以十數,而與優侏儒斷事,是以遇賊。故曰:不在所與居,在所與謀也。」
[번-역문]
남궁경자(南宮敬子)가 안탁취(顏涿聚)에게 묻기를, “계손(季孫)이 공자(孔子)의 무리를 길러, 조복(朝服)을 입고 함께 앉은 자가 수십 명이었는데도 도적을 만난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안탁취가 말하기를, “옛날 주(周) 성왕(成王)은 배우나 난쟁이를 가까이하여 자신의 뜻을 즐겁게 하면서도, 군자와 함께 일을 결정하였으니, 이로써 천하에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금 계손은 공자의 무리를 길러, 조복을 입고 함께 앉은 자가 수십 명이었으나, 배우나 난쟁이와 함께 일을 결정하였으니, 이 때문에 도적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누구와 함께 거처하느냐에 있지 않고, 누구와 함께 도모하느냐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02]
外儲說左下:
孔子御坐於魯哀公,哀公賜之桃與黍,哀公:「請用。」仲尼先飯黍而後啗桃,左右皆揜口而笑,哀公曰:「黍者,非飯之也,以雪桃也。」仲尼對曰:「丘知之矣。夫黍者五穀之長也,祭先王為上盛。果蓏有六,而桃為下,祭先王不得入廟。丘之聞也,君子以賤雪貴,不聞以貴雪賤。今以五穀之長雪果蓏之下,是從上雪下也,丘以為妨義,故不敢以先於宗廟之盛也。」
[번역문]
공자(孔子)가 노(魯) 애공(哀公)을 모시고 앉아 있는데, 애공이 그에게 복숭아와 기장을 하사하였다. 애공이 “드시지요.”라고 청하자, 중니(仲尼)는 먼저 기장밥을 먹고 뒤에 복숭아를 먹었다. 측근들이 모두 입을 가리고 웃자, 애공이 말하기를, “기장은 밥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복숭아를 닦는 데 쓰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중니가 대답하기를, “저 구(丘)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무릇 기장은 오곡의 으뜸으로, 선왕께 제사 지낼 때 가장 좋은 제물로 올립니다. 과일에는 여섯 등급이 있는데 복숭아는 그중 가장 아래여서, 선왕께 제사 지낼 때 묘당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제가 듣기로, 군자는 천한 것으로 귀한 것을 닦는다고는 들었으나, 귀한 것으로 천한 것을 닦는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오곡의 으뜸으로 과일 중 가장 아래인 것을 닦는 것은, 윗사람으로 아랫사람을 닦는 것과 같으니, 저는 이것이 의(義)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종묘의 성찬보다 먼저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03]
外儲說左下:
趙簡子謂左右曰:「車席泰美。夫冠雖賤,頭必戴之;屨雖貴,足必履之。今車席如此,大美,吾將何屩以履之?夫美下而耗上,妨義之本也。」
[번역문]
조간자(趙簡子)가 측근들에게 말하기를, “수레의 자리가 너무 아름답다. 무릇 관은 비록 천하더라도 머리에 반드시 쓰고, 신발은 비록 귀하더라도 발에 반드시 신는다. 지금 수레 자리가 이와 같이 매우 아름다우니, 내가 장차 어떤 짚신[屩]을 신고 이것을 밟아야 하는가? 무릇 아랫것을 아름답게 하고 윗것을 소모시키는 것은, 의(義)를 해치는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04]
外儲說左下:
費仲說紂曰:「西伯昌賢,百姓悅之,諸侯附焉,不可不誅,不誅必為殷患。」紂曰:「子言,義主,何可誅?」費仲曰:「冠雖穿弊,必戴於頭;履雖五采,必踐之於地。今西伯昌,人臣也,修義而人向之,卒為天下患,其必昌乎!人人不以其賢為其主,非可不誅也。且主而誅臣,焉有過?」紂曰:「夫仁義者,上所以勸下也。今昌好仁義,誅之不可。」三說不用,故亡。
[번역문]
비중(費仲)이 주왕(紂王)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서백 창(西伯昌)¹⁾은 현명하여 백성들이 그를 기뻐하고 제후들이 그에게 붙으니, 주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살하지 않으면 반드시 은(殷)나라의 우환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왕이 말하기를, “그대가 말하는 그는 의로운 군주인데, 어찌 주살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비중이 말하기를, “관은 비록 해지고 낡았어도 반드시 머리에 쓰고, 신발은 비록 오색으로 화려해도 반드시 땅에 밟습니다. 지금 서백 창은 신하인데, 의(義)를 닦아 사람들이 그를 따르니, 마침내 천하의 우환이 될 자는 필시 창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의 현명함 때문에 그를 군주로 삼지 않는다면, 주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군주가 신하를 주살하는데, 어찌 허물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왕이 말하기를, “무릇 인의(仁義)라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권하는 바이다. 지금 창이 인의를 좋아하는데, 그를 주살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 세 번 설득하였으나 쓰이지 않았으므로, (은나라는) 망했다.
[주석]
1) 서백 창(西伯昌): 주(周) 문왕(文王)을 가리킨다.
[원문 105]
外儲說左下:
齊宣王問匡倩曰:「儒者博乎?」曰:「不也。」王曰:「何也?」匡倩對曰:「博者貴梟,勝者必殺梟,殺梟者,是殺所貴也,儒者以為害義,故不博也。」又問曰:「儒者弋乎?」曰:「不也。弋者從下害於上者也,是從下傷君也,儒者以為害義,故不弋。」又問儒者鼓瑟乎?曰:「不也。夫瑟以小絃為大聲,以大絃為小聲,是大小易序,貴賤易位,儒者以為害義,故不鼓也。」宣王曰:「善。」仲尼曰:「與其使民諂下也,寧使民諂上。」
[번역문]
제(齊) 선왕(宣王)이 광천(匡倩)에게 묻기를, “유학자들은 박(博)¹⁾ 놀이를 하는가?”라고 하니,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이 “어째서인가?”라고 묻자, 광천이 대답하기를, “박 놀이를 하는 자는 효(梟)를 귀하게 여기는데, 이기는 자는 반드시 효를 죽입니다. 효를 죽이는 것은 귀하게 여기는 바를 죽이는 것이니, 유학자들은 이를 의(義)에 해롭다고 여겨, 그러므로 박 놀이를 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유학자들은 주살(弋)을 하는가?”라고 하니, “하지 않습니다. 주살은 아래에서 위를 해치는 것이니, 이는 아래에서 군주를 상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유학자들은 이를 의에 해롭다고 여겨, 그러므로 주살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유학자들이 비파[瑟]를 타는지 물으니, 대답하기를, “타지 않습니다. 무릇 비파는 작은 현으로 큰 소리를 내고, 큰 현으로 작은 소리를 내니, 이는 크고 작음의 순서가 바뀌고 귀하고 천함의 위치가 바뀌는 것입니다. 유학자들은 이를 의에 해롭다고 여겨, 그러므로 타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선왕이 “좋다.”고 하였다. 중니(仲尼)가 말하기를, “백성으로 하여금 아랫사람에게 아첨하게 하느니, 차라리 윗사람에게 아첨하게 하는 것이 낫다.”라고 하였다.
[주석]
1) 박(博): 고대의 보드게임.
[원문 106]
外儲說左下:
說四
[번역문]
설명 사(四).
[원문 107]
外儲說左下:
鉅者,齊之居士。孱者,魏之居士。齊、魏之君不明,不能親照境內,而聽左右之言,故二子費金璧而求入仕也。
[번역문]
거(鉅)는 제(齊)나라의 은거 선비이고, 잔(孱)은 위(魏)나라의 은거 선비이다. 제나라와 위나라의 군주가 현명하지 못하여, 직접 나라 안을 살피지 못하고 측근의 말만 들었으므로, 두 사람은 금과 옥구슬을 써서 벼슬길에 오르려 하였다.
[원문 108]
外儲說左下:
西門豹為鄴令,清剋潔愨,秋毫之端無私利也,而甚簡左右,左右因相與比周而惡之,居期年,上計,君收其璽,豹自請曰:「臣昔者不知所以治鄴,今臣得矣,願請璽復以治鄴,不當,請伏斧鑕之罪。」文侯不忍而復與之,豹因重斂百姓,急事左右,期年,上計,文侯迎而拜之,豹對曰:「往年臣為君治鄴,而君奪臣璽,今臣為左右治鄴,而君拜臣,臣不能治矣。」遂納璽而去,文侯不受,曰:「寡人曩不知子,今知矣,願子勉為寡人治之。」遂不受。
[번역문]
서문표(西門豹)가 업(鄴)의 현령이 되어, 청렴하고 엄격하며 결백하고 성실하여, 털끝만큼의 사사로운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측근들을 매우 소홀히 대하자, 측근들이 이로 인해 서로 무리를 지어 그를 헐뜯었다. 일 년이 지나 회계를 보고하자, 군주가 그의 인장(印章)을 거두었다. 서문표가 스스로 청하여 말하기를, “신이 지난날에는 업을 다스리는 방법을 몰랐으나, 지금 신은 터득했습니다. 원컨대 인장을 다시 받아 업을 다스리게 해 주십시오. 제대로 하지 못하면, 청컨대 도끼와 모루의 죄[斧鑕之罪]¹⁾를 받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문후(文侯)가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다시 그에게 인장을 주었다. 서문표는 이에 백성들에게 무겁게 세금을 거두고, 측근들을 급히 섬겼다. 일 년이 지나 회계를 보고하자, 문후가 그를 맞이하며 절을 하였다. 서문표가 대답하기를, “지난해 신은 군주를 위해 업을 다스렸는데 군주께서는 신의 인장을 빼앗으셨고, 지금 신은 측근들을 위해 업을 다스렸는데 군주께서는 신에게 절을 하시니, 신은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인장을 바치고 떠나려 하였다. 문후가 받지 않고 말하기를, “과인이 지난날에는 그대를 몰랐으나, 지금은 알았소. 원컨대 그대는 힘써 과인을 위해 다스려 주시오.”라고 하며, 마침내 (인장을) 받지 않았다.
[주석]
1) 부질지죄(斧鑕之罪): 도끼와 모루 위에서 받는 사형. 극형을 의미한다.
[원문 109]
外儲說左下:
齊有狗盜之子與刖危子戲而相誇,盜子曰:「吾父之裘獨有尾。」危子曰:「吾父獨冬不失褲。」
[번역문]
제(齊)나라에 개도둑의 아들과 발 잘린 위(危)의 아들이 놀면서 서로 자랑을 하였다. 도둑의 아들이 말하기를, “우리 아버지의 갖옷에는 유독 꼬리가 달려 있다.”¹⁾고 하니, 위의 아들이 말하기를, “우리 아버지는 유독 겨울에도 바지를 잃지 않는다.”²⁾고 하였다.
[주석]
1) 개를 훔칠 때 꼬리까지 통째로 가죽을 벗겼다는 뜻으로, 아버지가 도둑질에 능함을 자랑하는 말이다.
2) 발이 잘려 바지를 훔쳐가려는 자가 없다는 뜻으로, 아버지가 형벌을 받아 불구가 된 것을 자랑하는 말이다. 둘 다 비정상적인 것을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원문 110]
外儲說左下:
子綽曰:「人莫能左畫方而右畫圓也。以肉去蟻蟻愈多,以魚驅蠅蠅愈至。」
[번-역문]
자작(子綽)이 말하기를, “사람은 왼손으로 네모를 그리고 오른손으로 원을 그릴 수 없다. 고기로 개미를 쫓으면 개미가 더욱 많아지고, 생선으로 파리를 몰면 파리가 더욱 몰려온다.”라고 하였다.
[원문 111]
外儲說左下:
桓公謂管仲曰:「官少而索者眾,寡人憂之。」管仲曰:「君無聽左右之謂請,因能而受祿,錄功而與官,則莫敢索官,君何患焉?」
[번역문]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에게 말하기를, “관직은 적은데 구하는 자가 많으니, 과인이 이를 걱정하오.”라고 하였다. 관중이 말하기를, “군주께서 측근들의 청탁을 듣지 마시고, 능력에 따라 녹봉을 주고 공로를 기록하여 관직을 주시면, 감히 관직을 구하는 자가 없을 터이니, 군주께서 무엇을 걱정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112]
外儲說左下:
韓宣子曰:「吾馬菽粟多矣,甚臞,何也?寡人患之。」周市對曰:「使騶盡粟以食,雖無肥,不可得也。名為多與之,其實少,雖無臞,亦不可得也。主不審其情實,坐而患之,馬猶不肥也。」
[번역문]
한(韓) 선자(宣子)가 말하기를, “내 말에게 콩과 조를 많이 주는데도 몹시 여위니, 어째서인가? 과인이 이를 걱정한다.”라고 하였다. 주시(周市)가 대답하기를, “마부에게 명하여 곡식을 다 먹이게 한다면, 살찌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명목상으로는 많이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적게 주니, 여위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군주께서 그 실정을 살피지 않으시고, 앉아서 걱정만 하시니, 말은 여전히 살찌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13]
外儲說左下:
桓公問置吏於管仲,管仲曰:「辯察於辭,清潔於貨,習人情,夷吾不如弦商,請立以為大理。登降肅讓,以明禮待賓,臣不如隰朋,請立以為大行。墾草仞邑,辟地生粟,臣不如甯武,請以為大田。三軍既成陳,使士視死如歸,臣不如公子成父,請以為大司馬。犯顏極諫,臣不如東郭牙,請立以為諫臣。治齊此五子足矣,將欲霸王,夷吾在此。」
[번역문]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에게 관리를 임명하는 것에 대해 묻자, 관중이 말하기를, “말을 잘 살피고, 재물에 깨끗하며, 사람의 실정에 익숙한 점은, 저 이오(夷吾)¹⁾가 현상(弦商)만 못하니, 청컨대 그를 대리(大理)²⁾로 삼으십시오. 오르내릴 때 엄숙하고 사양하며, 예로써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밝히는 점은, 신이 습붕(隰朋)만 못하니, 청컨대 그를 대행(大行)³⁾으로 삼으십시오. 풀을 베고 성읍을 개간하며, 땅을 개척하여 곡식을 생산하는 점은, 신이 영무(甯武)만 못하니, 청컨대 그를 대전(大田)⁴⁾으로 삼으십시오. 삼군(三軍)이 이미 진을 이루었을 때, 병사들로 하여금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게 하는 점은, 신이 공자 성보(公子成父)만 못하니, 청컨대 그를 대사마(大司馬)로 삼으십시오. 안색을 거스르며 극진히 간언하는 점은, 신이 동곽아(東郭牙)만 못하니, 청컨대 그를 간신(諫臣)으로 삼으십시오. 제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이 다섯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장차 패왕(霸王)이 되고자 하신다면, 저 이오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이오(夷吾): 관중(管仲)의 이름.
2) 대리(大理): 법률과 형벌을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
3) 대행(大行): 외교와 빈객 접대를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
4) 대전(大田): 농업과 토지를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
[원문 114]
外儲說左下:
說五
[번역문]
설명 오(五).
[원문 115]
外儲說左下:
孟獻伯相魯,堂下生藿藜,門外長荊棘,食不二味,坐不重席,晉無衣帛之妾,居不粟馬,出不從車,叔向聞之,以告苗賁皇,賁皇非之曰:「是出主之爵祿以附下也。」
[번역문]
맹헌백(孟獻伯)이 노(魯)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당(堂) 아래에는 콩잎과 명아주가 자라고 문밖에는 가시나무가 자랐으며, 식사에는 두 가지 맛 이상을 올리지 않고 앉을 때는 자리를 겹쳐 깔지 않았다. 집에는 비단옷 입은 첩이 없었고, 거처에는 곡식을 먹이는 말이 없었으며, 외출할 때는 수레를 따르게 하지 않았다. 숙향(叔向)이 이 말을 듣고 묘분황(苗賁皇)에게 알리자, 묘분황이 이를 비판하여 말하기를, “이는 군주의 작록(爵祿)을 내놓아 아랫사람들을 따르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16]
外儲說左下:
一曰。孟獻伯拜上卿,叔向往賀,門有御,馬不食禾,向曰:「子無二馬二輿何也?」獻伯曰:「吾觀國人尚有飢色,是以不秣馬。班白者多以徒行,故不二輿。」向曰:「吾始賀子之拜卿,今賀子之儉也。」向出,語苗賁皇曰:「助吾賀獻伯之儉也。」苗子曰:「何賀焉!夫爵祿旂章,所以異功伐別賢不肖也。故晉國之法,上大夫二輿二乘,中大夫二輿一乘,下大夫專乘,此明等級也。且夫卿必有軍事,是故循車馬,比卒乘,以備戎事。有難則以備不虞,平夷則以給朝事。今亂晉國之政,乏不虞之備,以成節,以絜私名,獻伯之儉也可與?又何賀!」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맹헌백(孟獻伯)이 상경(上卿)에 임명되자, 숙향(叔向)이 가서 축하하는데, 문에 마부가 있었으나 말이 곡식을 먹지 않고 있었다. 숙향이 말하기를, “그대에게 두 필의 말과 두 채의 수레가 없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헌백이 말하기를, “내가 나라 사람들을 보니 아직도 굶주린 기색이 있으므로, 이 때문에 말에게 곡식을 먹이지 않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자들이 대부분 걸어 다니므로, 두 채의 수레를 두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숙향이 말하기를, “내가 처음에는 그대가 경(卿)에 임명된 것을 축하했으나, 지금은 그대의 검소함을 축하합니다.”라고 하였다. 숙향이 나와서 묘분황(苗賁皇)에게 말하기를, “나를 도와 헌백의 검소함을 축하해 주시오.”라고 하였다. 묘분황이 말하기를, “무엇을 축하한단 말이오! 무릇 작록(爵祿)과 기장(旂章)은 공적의 차이를 드러내고 현명함과 못남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晉)나라의 법에는, 상대부는 두 채의 수레와 두 필의 말을, 중대부는 두 채의 수레와 한 필의 말을, 하대부는 오직 한 필의 말만 타게 하니, 이는 등급을 밝히는 것입니다. 또한 무릇 경(卿)은 반드시 군사 업무가 있으므로, 수레와 말을 점검하고 병사와 전차를 정렬하여 군사에 대비합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비하고, 평화로울 때에는 조정의 일에 공급합니다. 지금 진나라의 정치를 어지럽히고,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한 대비를 부족하게 하면서, 절개를 이루고 사사로운 명예를 깨끗이 하려 하니, 헌백의 검소함이 가상합니까? 또한 무엇을 축하한단 말이오!”라고 하였다.
[원문 117]
外儲說左下:
管仲相齊,曰:「臣貴矣,然而臣貧。」桓公曰:「使子有三歸之家。」曰:「臣富矣,然而臣卑。」桓公使立於高、國之上。曰:「臣尊矣,然而臣疏。」乃立為仲父。孔子聞而非之曰:「泰侈偪上。」
[번역문]
관중(管仲)이 제(齊)나라 재상이 되어 말하기를, “신은 귀해졌으나, 그러나 신은 가난합니다.”라고 하였다.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그대에게 삼귀(三歸)¹⁾의 집을 갖게 하겠다.”라고 하였다. 관중이 말하기를, “신은 부유해졌으나, 그러나 신은 비천합니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그를 고씨(高氏)와 국씨(國氏)의 위에 서게 하였다. 관중이 말하기를, “신은 존귀해졌으나, 그러나 신은 (군주와) 멉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를 세워 중보(仲父)로 삼았다. 공자(孔子)가 듣고 이를 비판하여 말하기를, “지나치게 사치하여 윗사람을 핍박한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삼귀(三歸): 제후만이 가질 수 있는 호화로운 건축물. 관중이 이를 소유한 것은 분수에 넘치는 사치로 여겨졌다.
[원문 118]
外儲說左下:
一曰。管仲父,出、朱蓋青衣,置鼓而歸,庭有陳鼎,家有三歸,孔子曰:「良大夫也,其侈偪上。」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중보(仲父) 관중은, 외출할 때 붉은 덮개의 수레와 푸른 옷을 사용하고, 북을 설치하고 돌아왔으며, 뜰에는 솥[鼎]을 진열해 놓고, 집에는 삼귀(三歸)를 두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훌륭한 대부이지만, 그 사치함이 윗사람을 핍박한다.”라고 하였다.
[원문 119]
外儲說左下:
孫叔敖相楚,棧車牝馬,糲餅菜羹,枯魚之膳,冬羔裘,夏葛衣,面有飢色,則良大夫也,其儉偪下。
[번역문]
숙손오(叔孫敖)가 초(楚)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나무 수레와 암말을 타고, 거친 밥과 나물국, 마른 생선 반찬을 먹었으며, 겨울에는 양가죽 옷을, 여름에는 칡베 옷을 입고,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있었다. 그는 훌륭한 대부였으나, 그 검소함이 아랫사람들을 핍박했다.
[원문 120]
外儲說左下:
陽虎去齊走趙,簡主問曰:「吾聞子善樹人。」虎曰:「臣居魯,樹三人,皆為令尹,及虎抵罪於魯,皆搜索於虎也。臣居齊,薦三人,一人得近王,一人為縣令,一人為候吏,及臣得罪,近王者不見臣,縣令者迎臣執縛,候吏者追臣至境上,不及而止。虎不善樹人。」主俛而笑曰:「夫樹橘柚者,食之則甘,嗅之則香;樹枳棘者,成而刺人;故君子慎所樹。」
[번역문]
양호(陽虎)가 제(齊)나라를 떠나 조(趙)나라로 달아나자, 간주(簡主)가 묻기를, “내가 듣건대 그대는 사람을 잘 키운다고 하더군.”이라고 하였다. 양호가 말하기를, “신이 노(魯)나라에 있을 때 세 사람을 키워 모두 영윤(令尹)이 되게 하였는데, 제가 노나라에서 죄를 짓게 되자 모두 저를 수색했습니다. 신이 제나라에 있을 때 세 사람을 추천하여, 한 사람은 왕을 가까이 모시게 되었고, 한 사람은 현령이 되었으며, 한 사람은 국경 관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죄를 짓게 되자, 왕을 가까이 모시던 자는 저를 만나주지 않았고, 현령이 된 자는 저를 맞이하여 결박했으며, 국경 관리가 된 자는 저를 국경까지 추격하다가 따라잡지 못하자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잘 키우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군주가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말하기를, “무릇 귤이나 유자를 심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면 달고 그 냄새를 맡으면 향기롭다. 탱자나무나 가시나무를 심는 자는, 다 자라면 사람을 찌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심는 바를 신중히 한다.”라고 하였다.
[원문 121]
外儲說左下:
中牟無令,晉平公問趙武曰:「中牟,三國之股肱,邯鄲之肩髀,寡人欲得其良令也,誰使而可?」武曰:「邢伯子可。」公曰:「非子之讎也?」曰:「私讎不入公門。」公又問曰:「中府之令誰使而可?」曰:「臣子可。」故曰:「外舉不避讎,內舉不避子。」趙武所薦四十六人,及武死,各就賓位,其無私德若此也。
[번역문]
중모(中牟)에 현령이 없자, 진(晉) 평공(平公)이 조무(趙武)에게 묻기를, “중모는 세 나라의 팔다리요, 한단(邯鄲)의 어깨와 넓적다리와 같은 곳이라, 과인이 그곳의 좋은 현령을 얻고 싶은데, 누구를 시키면 좋겠소?”라고 하였다. 조무가 말하기를, “형백자(邢伯子)가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평공이 말하기를, “그대의 원수가 아니오?”라고 하니, 조무가 말하기를, “사사로운 원한은 공적인 문에 들어오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평공이 또 묻기를, “중부(中府)의 현령은 누구를 시키면 좋겠소?”라고 하니, “신의 아들이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밖으로는 원수라도 피하지 않고 등용하며, 안으로는 아들이라도 피하지 않고 등용한다.”라고 한다. 조무가 추천한 사람이 마흔여섯 명이었는데, 조무가 죽자 각자 손님의 자리로 물러났으니, 그에게 사사로운 은덕을 입은 자가 이와 같이 없었다.
[원문 122]
外儲說左下:
平公問叔向曰:「群臣孰賢?」曰:「趙武。」公曰:「子黨於師人。」曰:「武立如不勝衣,言如不出口,然所舉士也數十人,皆得其意,而公家甚賴之,及武子之生也不利於家,死不託於孤,臣敢以為賢也。」
[번역문]
평공(平公)이 숙향(叔向)에게 묻기를, “여러 신하 중에 누가 현명한가?”라고 하니, “조무(趙武)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평공이 말하기를, “그대는 스승의 사람을 편드누나.”라고 하니, 숙향이 말하기를, “조무는 서 있을 때 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듯하고, 말할 때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가 등용한 선비가 수십 명인데, 모두 그의 뜻을 얻어 공가(公家)가 매우 그에게 의지했습니다. 조무는 살아있을 때 집안을 이롭게 하지 않았고, 죽어서는 고아를 부탁하지 않았으니, 신은 감히 그를 현명하다고 여깁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23]
外儲說左下:
解狐薦其讎於簡主以為相,其讎以為且幸釋己也,乃因往拜謝,狐乃引弓送而射之,曰:「夫薦汝公也,以汝能當之也。夫讎汝,吾私怨也,不以私怨汝之故擁汝於吾君。故私怨不入公門。」
[번역문]
해호(解狐)가 그의 원수를 간주(簡主)에게 추천하여 재상으로 삼게 하였다. 그의 원수는 장차 다행히도 자신을 용서해 주려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에 가서 절하며 감사했다. 해호가 이에 활을 당겨 그를 쏘며 말하기를, “무릇 너를 추천한 것은 공적인 일로, 네가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릇 너를 원수로 여기는 것은 나의 사사로운 원한이니, 너에 대한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내 군주 앞에서 너를 막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사사로운 원한은 공적인 문에 들어오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원문 124]
外儲說左下:
一曰。解狐舉邢伯柳為上黨守,柳往謝之曰:「子釋罪,敢不再拜。」曰:「舉子公也,怨子私也,子往矣,怨子如初也。」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해호(解狐)가 형백류(邢伯柳)를 등용하여 상당(上黨)의 태수로 삼자, 형백류가 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말하기를, “그대께서 저의 죄를 풀어주시니, 감히 두 번 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해호가 말하기를, “그대를 등용한 것은 공적인 일이고, 그대를 원망하는 것은 사적인 일이오. 그대는 가시오. 그대를 원망하는 마음은 처음과 같소.”라고 하였다.
[원문 125]
外儲說左下:
鄭縣人賣豚,人問其價,曰:「道日暮安暇語汝。」
[번역문]
정(鄭)현 사람이 돼지를 파는데, 어떤 사람이 그 가격을 묻자, 말하기를, “길 가는데 날이 저물었으니, 어느 겨를에 너와 말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원문 126]
外儲說左下:
說六
[번역문]
설명 육(六).
[원문 127]
外儲說左下:
范文子喜直言,武子擊之以杖:「夫直議者不為人所容,無所容則危身,非徒危身,又將危父。」
[번역문]
범문자(范文子)가 곧은 말을 하기 좋아하자, (그의 아버지) 무자(武子)가 그를 지팡이로 때리며 말하기를, “무릇 곧게 논하는 자는 남에게 용납되지 못하고, 용납되지 못하면 몸이 위태로워진다. 단지 몸만 위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또한 장차 아비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28]
外儲說左下:
子產者,子國之子也。子產忠於鄭君,子國譙怒之曰:「夫介異於人臣,而獨忠於主,主賢明,能聽汝,不明,將不汝聽,聽與不聽,未可必知,而汝已離於群臣,離於群臣則必危汝身矣,非徒危己也,又且危父矣。」
[번역문]
자산(子產)은 자국(子國)의 아들이다. 자산이 정(鄭)나라 군주에게 충성하자, 자국이 그를 꾸짖고 노하여 말하기를, “무릇 다른 신하들과 달리 유독 군주에게만 충성하는데, 군주가 현명하면 너의 말을 들어주겠지만, 현명하지 않으면 장차 너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들어주고 들어주지 않고는, 아직 반드시 알 수 없는데, 너는 이미 여러 신하들에게서 멀어졌다. 여러 신하들에게서 멀어지면 반드시 네 몸이 위태로워질 것이니, 단지 자신만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장차 아비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29]
外儲說左下:
梁車新為鄴令,其姊往看之,暮而後門閉,因踰郭而入,車遂刖其足,趙成侯以為不慈,奪之璽而免之令。
[번-역문]
양거(梁車)가 새로 업(鄴)의 현령이 되었는데, 그의 누이가 그를 보러 왔다가, 저물어서 뒷문이 닫히자 성곽을 넘어 들어왔다. 양거가 마침내 그녀의 발을 베는 형벌을 내리니, 조(趙) 성후(成侯)가 이를 자애롭지 못하다고 여겨, 그의 인장을 빼앗고 현령직에서 면직시켰다.
[원문 130]
外儲說左下:
管仲束縛,自魯之齊,道而飢渴,過綺烏封人而乞食,烏封人跪而食之,甚敬,封人因竊謂仲曰:「適幸及齊不死而用齊,將何報我?」曰:「如子之言,我且賢之用,能之使,勞之論,我何以報子?」封人怨之。
[번역문]
관중(管仲)이 결박된 채 노(魯)나라에서 제(齊)나라로 가던 중, 길에서 굶주리고 목말라 기오(綺烏)의 봉인(封人)¹⁾을 지나다가 음식을 구걸했다. 기오의 봉인이 무릎을 꿇고 그에게 음식을 주며 매우 공경하였다. 봉인이 이로 인해 몰래 관중에게 말하기를, “마침 다행히 제나라에 이르러 죽지 않고 등용되신다면, 장차 저에게 어떻게 보답하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관중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과 같다면, 나는 장차 현명한 자를 등용하고, 능력 있는 자를 부리며, 공로 있는 자를 논할 터인데, 내가 무엇으로 그대에게 보답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봉인이 그를 원망하였다.
[주석]
1) 봉인(封人): 국경을 지키는 관리.
韓非子 外儲說右上 (한비자 외저설우상) 번역 및 주석
經 (경)
[원문 131]
君所以治臣者有三:
[번역문]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원문 132]
外儲說右上:
一、勢不足以化則除之。師曠之對,晏子之說,皆合勢之易也而道行之難,是與獸逐走也,未知除患。患之可除,在子夏之說春秋也。善持勢者蚤絕其姦萌,故季孫讓仲尼以遇勢,而況錯之於君乎?是以太公望殺狂矞,而臧獲不乘驥。嗣公知之,故不駕鹿。薛公知之,故與二欒博。此皆知同異之反也。故明主之牧臣也,說在畜烏。
[번역문]
一. 권세[勢]¹⁾로써 교화할 수 없으면 제거한다. 사광(師曠)의 대답과 안자(晏子)의 설명은, 모두 권세를 사용하는 것은 쉽지만 (인덕의) 도(道)를 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에 부합하니, 이는 짐승을 쫓아 함께 달리는 것과 같아, 우환을 제거할 줄 모르는 것이다. 우환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이치는 자하(子夏)가 《춘추(春秋)》를 설명한 것에 있다. 권세를 잘 지닌 자는 간악한 싹을 일찌감치 잘라버리니, 그러므로 계손(季孫)이 중니(仲尼)를 꾸짖은 것은 권세를 만났기 때문인데, 하물며 군주에게 그것을 적용함에 있어서랴? 이 때문에 태공망(太公望)은 광휼(狂矞)을 죽였고, 노비[臧獲]는 천리마[驥]를 타지 못하는 것이다. 사군(嗣公)은 이를 알았으므로 사슴에게 멍에를 씌우지 않았고, 설공(薛公)은 이를 알았으므로 두 명의 난씨(欒氏)와 도박을 하였다. 이들은 모두 같음과 다름의 이면을 안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신하를 기르는[牧臣] 방법은, 까마귀를 기르는 이야기에 그 설명이 있다.
[주석]
1) 세(勢): 권세, 위세. 한비자 사상에서 군주가 가진 지위에서 나오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힘을 의미한다. 이는 군주의 개인적인 덕성이나 지혜와는 구별되는 통치의 핵심 도구이다.
2) 목신(牧臣): ‘신하를 목축한다’는 뜻으로, 군주가 신하를 가축을 기르듯 철저히 통제하고 관리해야 함을 나타내는 법가 특유의 냉철한 표현이다.
[원문 133]
外儲說右上:
二、人主者,利害之軺轂也,射者眾,故人主共矣。是以好惡見則下有因,而人主惑矣;辭言通則臣難言,而主不神矣。說在申子之言六慎,與唐易之言弋也。患在國羊之請變,與宣王之太息也。明之以靖郭氏之獻十珥也,與犀首、甘茂之道穴聞也。堂谿公知術,故問玉卮。昭侯能術,故以聽獨寢。明主之道,在申子之勸獨斷也。
[번역문]
二. 군주란 이해(利害)가 모이는 가벼운 수레의 바퀴 축[軺轂]과 같아, 그것을 쏘려는 자가 많으므로 군주는 공동의 표적이 된다. 이 때문에 군주의 좋고 싫음[好惡]이 드러나면 아랫사람들이 이를 이용할 빌미[因]를 갖게 되어 군주는 현혹된다. 군주의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신하들이 (진실을) 말하기 어려워지고, 군주는 신비함[神]¹⁾을 잃게 된다. 그 설명은 신자(申子)가 말한 여섯 가지 신중함[六慎]과, 당역(唐易)이 말한 주살(弋) 이야기에 있다. 그 재앙은 국양(國羊)이 변명을 청한 일과, 선왕(宣王)이 크게 한숨을 쉰 일에 있다. 정곽군(靖郭君)이 열 개의 귀고리를 바친 일과, 서수(犀首)와 감무(甘茂)가 길에서 구멍으로 엿들은 이야기로써 이를 밝힐 수 있다. 당계공(堂谿公)은 술(術)을 알았으므로 옥 술잔에 대해 물었고, 소후(昭侯)는 술(術)에 능했으므로 남의 말을 듣고 나면 홀로 잠을 잤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신자가 권한 독단(獨斷)에 있다.
[주석]
1) 신(神): 신묘함, 신비로움. 군주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 신하들이 그 의도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신하를 통제하는 중요한 술(術)의 하나이다.
[원문 134]
外儲說右上:
三、術之不行,有故。不殺其狗則酒酸。夫國亦有狗,且左右皆社鼠也。人主無堯之再誅,與莊王之應太子,而皆有薄媼之決蔡嫗也。知貴不能以教歌之法先揆之,吳起之出愛妻,文公之斬顛頡,皆違其情者也。故能使人彈疽者,必其忍痛者也。
[번역문]
三. 술(術)이 행해지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개를 죽이지 않으면 술이 시어진다. 무릇 나라에도 또한 개[國狗]¹⁾가 있고, 게다가 측근들은 모두 사직의 쥐[社鼠]²⁾이다. 군주에게는 요(堯)임금이 두 번 주살한 것과 같은 결단력과, 장왕(莊王)이 태자에게 대응한 것과 같은 엄격함이 없으면서, 모두 박씨 할머니가 무당 채씨 할머니에게 의존하여 결정하는 것과 같은 우유부단함이 있다. 귀한 것을 알면서도 노래 가르치는 법으로 먼저 헤아려보지 못하니, 오기(吳起)가 사랑하는 아내를 내쫓은 일과, 문공(文公)이 전힐(顛頡)을 벤 일은, 모두 사사로운 감정[情]을 거스른 것이다. 그러므로 남으로 하여금 종기를 째게 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자이다.
[주석]
1) 국구(國狗): 나라의 개. 사납게 권세를 휘둘러 유능한 인재들의 접근을 막는 권신(權臣)을 비유한다.
2) 사서(社鼠): 사직(社稷)의 사당에 사는 쥐. 사당을 허물거나 물을 붓거나 불을 피워 잡으려 하면 사당 자체가 훼손될 위험이 있어 제거하기 어려운 존재. 군주의 곁에서 위세를 부리며 국정을 어지럽히지만, 군주와의 친분 때문에 처벌하기 어려운 간신을 비유한다.
[원문 135]
外儲說右上:
右經
[번역문]
이상은 경(經)이다.
說 (설)
[원문 136]
外儲說右上:
說一
[번역문]
설명 일(一).
[원문 137]
外儲說右上:
賞之譽之不勸,罰之毀之不畏,四者加焉不變,則其除之。
[번역문]
상을 주고 칭찬해도 힘쓰지 않으며, 벌을 주고 헐뜯어도 두려워하지 않아, 이 네 가지를 더해도 변하지 않으면, 그를 제거해야 한다.
[원문 138]
外儲說右上:
齊景公之晉,從平公飲,師曠侍坐,始坐,景公問政於師曠曰:「太師將奚以教寡人?」師曠曰:「君必惠民而已。」中坐,酒酣,將出,又復問政於師曠曰:「太師奚以教寡人?」曰:「君必惠民而已矣。」景公出之舍,師曠送之,又問政於師曠,師曠曰:「君必惠民而已矣。」景公歸,思,未醒,而得師曠之所謂。「公子尾、公子夏者,景公之二弟也,甚得齊民,家富貴而民說之,擬於公室,此危吾位者也,今謂我惠民者,使我與二弟爭民邪?」於是反國發廩粟以賦眾貧,散府餘財以賜孤寡,倉無陳粟,府無餘財,宮婦不御者出嫁之,七十受祿米,鬻德惠施於民也,已與二弟爭。居二年,二弟出走,公子夏逃楚,公子尾走晉。
[번역문]
제(齊) 경공(景公)이 진(晉)나라에 가서 평공(平公)을 따라 술을 마실 때, 사광(師曠)이 곁에서 모시고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경공이 사광에게 정치를 물어 말하기를, “태사(太師)께서는 장차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라고 하니, 사광이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반드시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실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자리가 중반에 이르고 술이 거나해져 장차 나가려 할 때, 또다시 사광에게 정치를 물어 말하기를, “태사께서는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라고 하니, “군주께서는 반드시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실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경공이 나와 숙소로 가는데 사광이 그를 배웅하자, 또 사광에게 정치를 물으니, 사광이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반드시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실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경공이 돌아와 생각하다가 술이 깨기도 전에 사광이 말한 바를 깨달았다. “공자 미(公子尾)와 공자 하(公子夏)는 경공의 두 아우인데, 제나라 백성의 인심을 매우 얻었고, 집안이 부유하고 귀하여 백성들이 그들을 기뻐하며, 공실(公室)에 비견되니, 이는 내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자들이다. 지금 나에게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라고 한 것은, 나로 하여금 두 아우와 백성을 두고 다투게 하려는 것이구나!” 이에 나라로 돌아와 창고의 곡식을 풀어 가난한 무리에게 나누어 주고, 관청의 남은 재물을 흩어 고아와 과부에게 하사하니, 창고에는 묵은 곡식이 없고 관청에는 남은 재물이 없었으며, 총애를 받지 못하는 궁녀들을 내보내 시집보내고, 칠십 노인에게는 녹미(祿米)를 주었다. 이처럼 덕을 팔고 은혜를 백성에게 베풀어, 이미 두 아우와 다투었다. 이 년이 지나자, 두 아우가 달아나니, 공자 하는 초(楚)나라로 도망쳤고, 공자 미는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원문 139]
外儲說右上:
景公與晏子游於少海,登柏寢之臺而還望其國,曰:「美哉,泱泱乎,堂堂乎,後世將孰有此?」晏子對曰:「其田成氏乎?」景公曰:「寡人有此國也,而曰田成氏有之,何也?」晏子對曰:「夫田成氏甚得齊民,其於民也,上之請爵祿行諸大臣,下之私大斗斛區釜以出貸,小斗斛區釜以收之。殺一牛,取一豆肉,餘以食士。終歲,布帛取二制焉,餘以衣士。故市木之價不加貴於山,澤之魚鹽龜鱉蠃蚌不加貴於海。君重斂,而田成氏厚施。齊嘗大飢,道旁餓死者不可勝數也,父子相牽而趨田成氏者不聞不生。故周秦之民相與歌之曰:謳乎,其己乎苞乎,其往歸田成子乎!《詩》曰:『雖無德與女,式歌且舞。』今田成氏之德,而民之歌舞,民德歸之矣。故曰:其田成氏乎。」公泫然出涕曰:「不亦悲乎!寡人有國而田成氏有之,今為之奈何?」晏子對曰:「君何患焉!若君欲奪之,則近賢而遠不肖,治其煩亂,緩其刑罰,振貧窮而恤孤寡,行恩惠而給不足,民將歸君,則雖有十田成氏,其如君何?」
[번역문]
경공(景公)이 안자(晏子)와 함께 소해(少海)에서 노닐다가, 백침대(柏寢之臺)에 올라 자신의 나라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아름답구나, 넓고도 깊으며, 당당하구나. 후세에 장차 누가 이것을 차지하게 될까?”라고 하였다. 안자가 대답하기를, “아마도 전성씨(田成氏)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경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이 나라를 가지고 있는데, 전성씨가 그것을 차지할 것이라 말하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니, 안자가 대답하기를, “무릇 전성씨는 제나라 백성의 인심을 매우 얻었습니다. 그가 백성에게 하는 것을 보면, 위로는 작록을 청하여 여러 대신들에게 베풀고, 아래로는 사사로이 큰 되[斗斛區釜]로 곡식을 내어 빌려주고 작은 되로 거두어들입니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한 그릇의 고기만 취하고, 나머지는 선비들을 먹입니다. 한 해가 끝나면, 베와 비단 두 벌만 취하고 나머지는 선비들을 입힙니다. 그러므로 시장의 목재 가격이 산지보다 비싸지지 않고, 연못의 물고기, 소금, 거북, 자라, 우렁이, 조개 가격이 바닷가보다 비싸지지 않습니다. 군주께서는 무겁게 세금을 거두시나, 전성씨는 후하게 베풉니다. 제나라에 일찍이 큰 흉년이 들어, 길가에 굶어 죽는 자가 이루 다 셀 수 없었을 때, 부자가 서로 이끌고 전성씨에게 달려간 자는 살아나지 않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주(周)나라와 진(秦)나라의 백성들이 서로 노래하기를, ‘아아, 그만둘까, 싸 들고 갈까, 저 전성자에게로 돌아갈까!’라고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비록 너에게 베푼 덕은 없으나, 이에 노래하고 또 춤추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전성씨가 덕을 베풀어 백성들이 노래하고 춤추니, 백성의 마음이 그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전성씨일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경공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과인이 나라를 가졌는데 전성씨가 그것을 차지하려 하니, 지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하였다. 안자가 대답하기를, “군주께서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만약 군주께서 그것을 빼앗고자 하신다면, 현명한 이를 가까이하고 못난 이를 멀리하며, 번거롭고 어지러운 것을 다스리고, 형벌을 완화하며, 가난하고 궁핍한 이를 구제하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은혜를 베풀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면, 백성들이 장차 군주께 돌아올 것이니, 비록 열 명의 전성씨가 있더라도 그들이 군주를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140]
外儲說右上:
或曰:景公不知用勢,而師曠、晏子不知除患。夫獵者,託車輿之安,用六馬之足,使王良佐轡,則身不勞而易及輕獸矣。今釋車輿之利,捐六馬之足與王良之御,而下走逐獸,則雖樓季之足無時及獸矣,託良馬固車則臧獲有餘。國者、君之車也,勢者、君之馬也。夫不處勢以禁誅擅愛之臣,而必德厚以與天下齊行以爭民,是皆不乘君之車,不因馬之利車而下走者也。故曰:景公不知用勢之主也,而師曠、晏子不知除患之臣也。
[번역문]
어떤 이가 말하기를, “경공(景公)은 권세[勢]를 쓸 줄 몰랐고, 사광(師曠)과 안자(晏子)는 우환을 제거할 줄 몰랐다. 무릇 사냥꾼은 수레의 편안함에 의지하고, 여섯 필 말의 다리를 사용하며, 왕량(王良)¹⁾으로 하여금 고삐를 잡게 하면, 몸은 수고롭지 않으면서도 날랜 짐승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 지금 수레의 이로움을 버리고, 여섯 필 말의 다리와 왕량의 어술(御術)을 내버린 채, 내려서 달려 짐승을 쫓는다면, 비록 누계(樓季)와 같이 빠른 발이라도 짐승을 따라잡을 때가 없을 것이다. 좋은 말과 견고한 수레에 의지하면 노비[臧獲]라도 충분하다. 나라란 군주의 수레요, 권세란 군주의 말이다. 무릇 권세의 자리에 처하여 제멋대로 사랑을 베푸는 신하를 금하고 주살하지 않고, 반드시 덕을 두텁게 하여 천하의 백성들과 나란히 행하며 백성을 다투려 하는 것은, 모두 군주의 수레를 타지 않고 말의 이로움을 이용하지 않으며 내려서 달리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경공은 권세를 쓸 줄 모르는 군주이고, 사광과 안자는 우환을 제거할 줄 모르는 신하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주석]
1) 왕량(王良):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이름난 마부.
[원문 141]
外儲說右上:
子夏曰:「春秋之記臣殺君,子殺父者,以十數矣,皆非一日之積也,有漸而以至矣。」凡姦者,行久而成積,積成而力多,力多而能殺,故明主蚤絕之。今田常之為亂,有漸見矣,而君不誅。晏子不使其君禁侵陵之臣,而使其主行惠,故簡公受其禍。故子夏曰:「善持勢者蚤絕姦之萌。」
[번역문]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춘추(春秋)》에 기록된 신하가 군주를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죽인 사건이 수십 건에 이르는데, 모두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간악한 짓은, 오래 행하여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지면 힘이 많아지며, 힘이 많아지면 죽일 수 있게 되므로, 현명한 군주는 일찌감치 그것을 끊어버린다. 지금 전상(田常)이 난을 일으킨 것에는 점차적인 조짐이 보였는데도, 군주가 주살하지 않았다. 안자(晏子)는 그의 군주로 하여금 (군주의 권위를) 침범하고 능멸하는 신하를 금하게 하지 않고, 그의 군주로 하여금 은혜를 베풀게 하였으므로, 간공(簡公)이 그 화를 입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하가 말하기를, “권세[勢]를 잘 지닌 자는 간악함의 싹을 일찌감치 잘라버린다.”라고 한 것이다.
[원문 142]
外儲說右上:
季孫相魯,子路為郈令。魯以五月起眾為長溝,當此之為,子路以其私秩粟為漿飯,要作溝者於五父之衢而餐之。孔子聞之,使子貢往覆其飯,擊毀其器,曰:「魯君有民,子奚為乃餐之?」子路怫然怒,攘肱而入請曰:「夫子疾由之為仁義乎?所學於夫子者仁義也,仁義者,與天下共其所有而同其利者也。今以由之秩粟而餐民,不可何也?」孔子曰:「由之野也!吾以女知之,女徒未及也,女故如是之不知禮也!女之餐之,為愛之也。夫禮,天子愛天下,諸侯愛境內,大夫愛官職,士愛其家,過其所愛曰侵。今魯君有民而子擅愛之,是子侵也,不亦誣乎!」言未卒,而季孫使者至,讓曰:「肥也起民而使之,先生使弟子令徒役而餐之,將奪肥之民耶?」孔子駕而去魯。以孔子之賢,而季孫非魯君也,以人臣之資,假人主之術,蚤禁於未形,而子路不得行其私惠,而害不得生,況人主乎?以景公之勢而禁田常之侵也,則必無劫弒之患矣。
[번역문]
계손(季孫)이 노(魯)나라 재상으로 있고, 자로(子路)가 후(郈) 땅의 현령으로 있었다. 노나라가 오월에 백성을 동원하여 긴 도랑을 파게 하였는데, 이때 자로가 자신의 사사로운 녹봉으로 받은 곡식으로 장과 밥을 만들어, 도랑 파는 인부들을 오부(五父)의 네거리에서 맞이하여 먹였다. 공자(孔子)가 이 소식을 듣고, 자공(子貢)을 시켜 가서 그 밥을 엎고 그 그릇을 부수게 하며 말하기를, “노나라 군주에게 백성이 있는데, 너는 어찌하여 그들을 먹이는가?”라고 하였다. 자로가 발끈 화를 내며, 팔을 걷어붙이고 들어와 청하여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저 유(由)¹⁾가 인의(仁義)를 행하는 것을 미워하십니까? 선생님께 배운 바가 인의인데, 인의란 천하와 더불어 가진 바를 함께하고 그 이로움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의 녹봉으로 백성을 먹이는 것이, 어찌하여 옳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유(由)는 미련하구나! 나는 네가 알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는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했구나. 너는 이와 같이 예(禮)를 알지 못하는구나! 네가 그들을 먹이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릇 예란, 천자는 천하를 사랑하고, 제후는 나라 안을 사랑하며, 대부는 관직을 사랑하고, 선비는 자기 집안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해야 할 범위를 넘어 사랑하는 것을 침범[侵]이라 한다. 지금 노나라 군주에게 백성이 있는데 네가 제멋대로 그들을 사랑하니, 이는 네가 침범하는 것이다. 또한 속이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계손의 사자가 이르러 꾸짖어 말하기를, “나 비(肥)²⁾가 백성을 일으켜 부리는데, 선생께서는 제자를 시켜 부역하는 무리를 거느리고 먹이시니, 장차 나 비(肥)의 백성을 빼앗으려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공자는 수레를 타고 노나라를 떠났다. 공자의 현명함으로도, 그리고 계손이 노나라 군주가 아님에도, 신하의 자격으로 군주의 술(術)을 빌려, 일이 형성되기 전에 일찌감치 금지하니, 자로가 그 사사로운 은혜를 베풀 수 없었고 해악이 생겨날 수 없었는데, 하물며 군주에 있어서랴? 경공(景公)의 권세로 전상(田常)의 침범을 금했다면, 반드시 위협받고 시해당하는 우환은 없었을 것이다.
[주석]
1) 유(由): 자로(子路)의 이름.
2) 비(肥): 계손(季孫)의 이름.
[원문 143]
外儲說右上:
太公望東封於齊,齊東海上有居士曰狂矞、華士,昆弟二人者立議曰:「吾不臣天子,不友諸侯,耕作而食之,掘井而飲之,吾無求於人也。無上之名,無君之祿,不事仕而事力。」太公望至於營丘,使吏執殺之以為首誅。周公旦從魯聞之,發急傳而問之曰:「夫二子,賢者也。今日饗國而殺賢者,何也?」太公望曰:「是昆弟二人立議曰:『吾不臣天子,不友諸侯,耕作而食之,掘井而飲之,吾無求於人也,無上之名,無君之祿,不事仕而事力。』彼不臣天子者,是望不得而臣也。不友諸侯者,是望不得而使也。耕作而食之,掘井而飲之,無求於人者,是望不得以賞罰勸禁也。且無上名,雖知、不為望用;不仰君祿,雖賢、不為望功。不仕則不治,不任則不忠。且先王之所以使其臣民者,非爵祿則刑罰也。今四者不足以使之,則望當誰為君乎?不服兵革而顯,不親耕耨而名,又所以教於國也。今有馬於此,如驥之狀者,天下之至良也。然而驅之不前,卻之不止,左之不左,右之不右,則臧獲雖賤,不託其足。臧獲之所願託其足於驥者,以驥之可以追利辟害也。今不為人用,臧獲雖賤,不託其足焉。已自謂以為世之賢士,而不為主用,行極賢而不用於君,此非明主之所臣也,亦驥之不可左右矣,是以誅之。」
[번역문]
태공망(太公望)이 동쪽 제(齊)나라에 봉해졌을 때, 제나라 동쪽 바닷가에 광휼(狂矞)과 화사(華士)라는 은거 선비 형제가 있었는데, 두 사람이 의론을 세워 말하기를, “우리는 천자를 신하로 섬기지 않고, 제후를 벗으로 삼지 않으며, 밭 갈아 먹고 우물 파서 마시니, 우리는 남에게 구할 것이 없다. 윗사람의 명예도 없고, 군주의 녹봉도 없으며, 벼슬을 섬기지 않고 힘써 일하는 것을 섬긴다.”라고 하였다. 태공망이 영구(營丘)에 이르러, 관리를 시켜 그들을 잡아 죽여 첫 번째 주살의 본보기로 삼았다. 주공 단(周公旦)이 노(魯)나라에서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역마를 보내 물어보기를, “무릇 두 사람은 현명한 자들입니다. 오늘 나라를 받으시고 현명한 자를 죽이시니,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태공망이 말하기를, “이 형제 두 사람이 의론을 세워 말하기를, ‘우리는 천자를 신하로 섬기지 않고, 제후를 벗으로 삼지 않으며, 밭 갈아 먹고 우물 파서 마시니, 우리는 남에게 구할 것이 없다. 윗사람의 명예도 없고, 군주의 녹봉도 없으며, 벼슬을 섬기지 않고 힘써 일하는 것을 섬긴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천자를 신하로 섬기지 않는다는 것은, 나 망(望)이 그들을 신하로 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후를 벗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나 망(望)이 그들을 부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밭 갈아 먹고 우물 파서 마시며 남에게 구할 것이 없다는 것은, 나 망(望)이 상벌로써 권하고 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윗사람의 명예가 없으니 비록 지혜로워도 나 망(望)을 위해 쓰이지 않을 것이고, 군주의 녹봉을 바라보지 않으니 비록 현명해도 나 망(望)을 위해 공을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벼슬하지 않으면 다스려지지 않고, 임용되지 않으면 충성하지 않습니다. 또한 선왕께서 그 신하와 백성을 부리시는 방법은, 작록이 아니면 형벌입니다. 지금 이 네 가지로도 그들을 부리기에 부족하다면, 나 망(望)은 마땅히 누구의 군주가 되겠습니까? 군대에 복무하지 않고 드러나며, 직접 밭 갈고 김매지 않고 명성을 얻으니, 또한 나라를 그릇되게 가르치는 바입니다. 지금 여기에 말이 있는데, 천리마[驥]와 같은 모습을 한 천하의 지극히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몰아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물리쳐도 멈추지 않으며, 왼쪽으로 몰아도 왼쪽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몰아도 오른쪽으로 가지 않는다면, 노비[臧獲]라도 비록 천하지만 그 발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노비가 그 발을 천리마에게 맡기고자 하는 까닭은, 천리마로 이익을 쫓고 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에게 쓰이지 않는다면, 노비라도 비록 천하지만 그 발을 맡기지 않습니다. 스스로 세상의 현명한 선비라 일컬으면서 군주를 위해 쓰이지 않고, 행동이 지극히 현명하면서도 군주에게 쓰이지 않는다면, 이는 현명한 군주가 신하로 삼을 바가 아니며, 또한 좌우로 부릴 수 없는 천리마와 같으니, 이 때문에 주살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44]
外儲說右上:
一曰。太公望東封於齊,海上有賢者狂矞,太公望聞之往請焉,三卻馬於門而狂矞不報見也,太公望誅之。當是時也,周公旦在魯,馳往止之,比至,已誅之矣。周公旦曰:「狂矞,天下賢者也,夫子何為誅之?」太公望曰:「狂矞也議不臣天子,不友諸侯,吾恐其亂法易教也,故以為首誅。今有馬於此,形容似驥也,然驅之不往,引之不前,雖臧獲不託足以旋其軫也。」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태공망(太公望)이 동쪽 제(齊)나라에 봉해졌을 때, 바닷가에 현명한 자 광휼(狂矞)이 있었다. 태공망이 그 소문을 듣고 가서 그를 청하였는데, 세 번이나 문 앞에서 말을 물리쳤으나 광휼은 답하여 만나주지 않았다. 태공망이 그를 주살하였다. 이때 주공 단(周公旦)이 노(魯)나라에 있다가, 말을 달려 가서 그를 말리려 하였으나,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그를 주살한 뒤였다. 주공 단이 말하기를, “광휼은 천하의 현명한 자인데,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주살하셨습니까?”라고 하였다. 태공망이 말하기를, “광휼은 천자를 신하로 섬기지 않고, 제후를 벗으로 삼지 않겠다고 의론하였으니, 나는 그가 법을 어지럽히고 가르침을 바꿀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주살의 본보기로 삼은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말이 있는데, 모습은 천리마와 같으나, 몰아도 가지 않고 끌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비록 노비라도 그 발을 맡겨 수레를 돌리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45]
外儲說右上:
如耳說衛嗣公,衛嗣公說而太息。左右曰:「公何為不相也?」公曰:「夫馬似鹿者而題之千金,然而有百金之馬而無一金之鹿者,馬為人用而鹿不為人用也。今如耳,萬乘之相也,外有大國之意,其心不在衛,雖辯智,亦不為寡人用,吾是以不相也。」
[번역문]
여이(如耳)가 위(衛) 사군(嗣公)을 유세하니, 위 사군이 기뻐하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측근들이 말하기를, “공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재상으로 삼지 않으십니까?”라고 하니, 사군이 말하기를, “무릇 말이 사슴과 닮았다고 하여 천금의 값을 매기지만, 백금짜리 말은 있어도 일금짜리 사슴은 없는 까닭은, 말은 사람에게 쓰이지만 사슴은 사람에게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여이는 만승지국(萬乘之國)의 재상감이지만, 밖으로는 대국에 뜻을 두고 있어 그 마음이 위나라에 있지 않으니, 비록 변론에 능하고 지혜롭더라도 또한 과인을 위해 쓰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때문에 재상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46]
外儲說右上:
薛公之相魏昭侯也,左右有欒子者曰陽胡、潘,其於王甚重,而不為薛公,薛公患之。於是乃召與之博,予之人百金,令之昆弟博,俄又益之人二百金。方博有閒,謁者言客張季之子在門,公怫然怒,撫兵而授謁者曰:「殺之,吾聞季之不為文也。」立有閒,時季羽在側,曰:「不然。竊聞季為公甚,顧其人陰未聞耳。」乃輟不殺客,而大禮之曰:「曩者聞季之不為文也,故欲殺之。今誠為文也,豈忘季哉!」告廩獻千石之粟,告府獻五百金,告騶私廄獻良馬固車二乘,因令奄將宮人之美妾二十人並遺季也。欒子因相謂曰:「為公者必利,不為公者必害,吾曹何愛不為公?」因私競勸而遂為之。薛公以人臣之勢,假人主之術也,而害不得生,況錯之人主乎?夫馴烏者斷其下翎焉,斷其下翎則必恃人而食,焉得不馴乎?夫明主畜臣亦然,令臣不得不利君之祿,不得無服上之名;夫利君之祿,服上之名,焉得不服?
[번역문]
설공(薛公)¹⁾이 위(魏) 소후(昭侯)의 재상으로 있을 때, 측근에 양호(陽胡)와 반(潘)이라는 난씨(欒氏)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왕에게 매우 중용되었으나 설공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았다. 설공이 이를 걱정하였다. 이에 그들을 불러 함께 도박을 하며, 각각 백금을 주어 형제가 도박하게 하고, 잠시 후 또 각각 이백금을 더 주었다. 한창 도박을 하던 중에, 알자(謁者)가 손님 장계(張季)의 아들이 문에 와 있다고 보고했다. 설공이 발끈 화를 내며, 무기를 잡고 알자에게 주며 말하기를, “그를 죽여라. 내가 듣건대 장계는 나 문(文)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하더구나.”라고 하였다. 잠시 서 있는데, 그때 계우(季羽)가 곁에 있다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남몰래 듣건대 장계는 공을 위해 매우 힘쓰는데, 다만 그 사람이 드러나지 않아 아직 듣지 못하셨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손님을 죽이는 것을 멈추고, 그에게 큰 예로 대하며 말하기를, “지난번에 장계가 나 문(文)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들어, 그러므로 그를 죽이려 하였다. 지금 진실로 나 문(文)을 위해 일한다니, 어찌 장계를 잊겠는가!” 하고는, 창고지기에게 명하여 곡식 천 석을 바치게 하고, 재물 담당에게 명하여 오백금을 바치게 하며, 마부에게 명하여 개인 마구간에서 좋은 말과 견고한 수레 두 채를 바치게 하고, 이어서 환관에게 명하여 궁녀 중 아름다운 첩 스무 명을 데리고 함께 장계에게 보내게 하였다. 난씨 형제는 이로 인해 서로에게 말하기를, “공을 위해 일하는 자는 반드시 이롭고, 공을 위해 일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해로우니, 우리들이 어찌 공을 위해 일하기를 아끼겠는가?” 하고는, 사사로이 서로 경쟁하며 권하여 마침내 그를 위해 일했다. 설공이 신하의 권세로 군주의 술(術)을 빌렸는데도 해악이 생겨나지 않았으니, 하물며 군주에게 그것을 적용함에 있어서랴? 무릇 까마귀를 길들이는 자는 그 아랫 날갯죽지를 자른다. 그 아랫 날갯죽지를 자르면 반드시 사람에게 의지하여 먹게 되니, 어찌 길들여지지 않겠는가? 무릇 현명한 군주가 신하를 기르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신하로 하여금 군주의 녹봉을 이롭게 여기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윗사람의 명예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무릇 군주의 녹봉을 이롭게 여기고 윗사람의 명예에 복종한다면, 어찌 복종하지 않겠는가?
[주석]
1) 설공(薛公):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을 가리킨다.
[원문 147]
外儲說右上:
說二
[번역문]
설명 이(二).
[원문 148]
外儲說右上:
《申子》曰:「上明見,人備之;其不明見,人惑之。其知見,人惑之;不知見,人匿之。其無欲見,人司之;其有欲見,人餌之。故曰:吾無從知之,惟無為可以規之。」
[번역문]
《신자(申子)》¹⁾에 이르기를, “윗사람이 밝게 보는 체하면 사람들이 그에 대비하고, 밝게 보지 못하는 체하면 사람들이 그를 현혹시킨다. 그가 아는 체하면 사람들이 그를 현혹시키고, 모르는 체하면 사람들이 그에게 숨긴다. 그가 욕심 없는 체하면 사람들이 그의 속을 엿보고, 욕심 있는 체하면 사람들이 그에게 미끼를 던진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나는 그들을 알 길이 없으니, 오직 무위(無為)로써 그들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하였다.”
[주석]
1) 신자(申子): 법가 사상가인 신불해(申不害)의 저서.
[원문 149]
外儲說右上:
一曰。《申子》曰:「慎而言也,人且知女;慎而行也,人且隨女。而有知見也,人且匿女;而無知見也,人且意女。女有知也,人且臧女;女無知也,人且行女。故曰:惟無為可以規之。」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신자(申子)》에 이르기를, “말을 신중히 하면, 사람들이 장차 너를 알게 될 것이다. 행동을 신중히 하면, 사람들이 장차 너를 따를 것이다. 네가 아는 체하면, 사람들이 장차 너에게 숨길 것이다. 네가 모르는 체하면, 사람들이 장차 너를 억측할 것이다. 네가 지혜가 있으면, 사람들이 장차 너를 감출 것이다. 네가 지혜가 없으면, 사람들이 장차 너를 움직일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직 무위(無為)로써 그들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하였다.”
[원문 150]
外儲說右上:
田子方問唐易鞠曰:「弋者何慎?」對曰:「鳥以數百目視子,子以二目御之,子謹周子廩。」田子方曰:「善。子加之弋,我加之國。」鄭長者聞之曰:「田子方知欲為廩,而未得所以為廩。夫虛無無見者廩也。」
[번역문]
전자방(田子方)이 당역국(唐易鞠)에게 묻기를, “주살(弋)하는 자는 무엇을 신중히 해야 하는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새는 수백 개의 눈으로 그대를 보고, 그대는 두 개의 눈으로 그것을 대적하니, 그대는 그대의 은폐물[廩]을 삼가고 빈틈없이 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전자방이 말하기를, “좋다. 그대는 그것을 주살에 적용하고, 나는 그것을 나라에 적용하겠다.”라고 하였다. 정(鄭)나라의 한 어른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전자방은 은폐물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알지만, 은폐물을 만드는 방법은 터득하지 못했다. 무릇 텅 비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虛無無見]이 바로 은폐물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51]
外儲說右上:
一曰。齊宣王問弋於唐易子曰:「弋者奚貴?」唐易子曰:「在於謹廩。」王曰:「何謂謹廩?」對曰:「鳥以數十目視人,人以二目視鳥,奈何不謹廩也?故曰在於謹廩也。」王曰:「然則為天下何以為此廩?今人主以二目視一國,一國以萬目視人主,將何以自為廩乎?」對曰:「鄭長者有言曰:『夫虛靜無為而無見也。』其可以為此廩乎。」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齊) 선왕(宣王)이 당역자(唐易子)에게 주살(弋)에 대해 묻기를, “주살하는 자는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가?”라고 하니, 당역자가 말하기를, “은폐물[廩]을 신중히 하는 데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은폐물을 신중히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새는 수십 개의 눈으로 사람을 보고, 사람은 두 개의 눈으로 새를 보니, 어찌 은폐물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은폐물을 신중히 하는 데 있다고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무엇으로 이 은폐물을 삼아야 하는가? 지금 군주는 두 개의 눈으로 한 나라를 보고, 한 나라는 만 개의 눈으로 군주를 보니, 장차 무엇으로 스스로를 위한 은폐물을 삼아야 하는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정(鄭)나라의 한 어른이 말하기를, ‘무릇 텅 비고 고요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것[虛靜無為而無見]’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이 이 은폐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52]
外儲說右上:
國羊重於鄭君,聞君之惡己也,侍飲,因先謂君曰:「臣適不幸而有過,願君幸而告之,臣請變更,則臣免死罪矣。」
[번역문]
국양(國羊)이 정(鄭)나라 군주에게 중용되었는데, 군주가 자기를 미워한다는 말을 듣고, 술자리에서 모시다가 먼저 군주에게 말하기를, “신이 마침 불행히도 과오가 있다면, 원컨대 군주께서 다행히 알려주십시오. 신이 고치기를 청하오니, 그러면 신은 죽을죄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53]
外儲說右上:
客有說韓宣王,宣王說而太息,左右引王之說之以先告客以為德。
[번역문]
어떤 손님이 한(韓) 선왕(宣王)을 유세하자, 선왕이 기뻐하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측근들이 왕이 기뻐하는 것을 이용하여 먼저 손님에게 알려주어 자신의 공덕으로 삼았다.
[원문 154]
外儲說右上:
靖郭君之相齊也,王后死,未知所置,乃獻玉珥以知之。
[번역문]
정곽군(靖郭君)이 제(齊)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왕후가 죽어 누구를 세울지 알 수 없자, 이에 옥 귀고리를 바쳐 그것을 알아냈다.
[원문 155]
外儲說右上:
一曰。薛公相齊,齊威王夫人死,中有十孺子皆貴於王,薛公欲知王所欲立而請置一人以為夫人,王聽之、則是說行於王而重於置夫人也,王不聽、是說不行而輕於置夫人也,欲先知王之所欲置以勸王置之,於是為十玉珥而美其一而獻之,王以賦十孺子,明日坐,視美珥之所在而勸王以為夫人。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설공(薛公)이 제(齊)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제 위왕(威王)의 부인이 죽자, 궁중에 열 명의 총애하는 후궁[孺子]이 모두 왕에게 귀함을 받았다. 설공은 왕이 누구를 세우고 싶어 하는지 알고자 하여 한 사람을 세워 부인으로 삼기를 청하면, 왕이 그것을 들어주면 자신의 말이 왕에게 통하여 부인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고, 왕이 들어주지 않으면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아 부인을 세우는 데 경미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왕이 세우고 싶어 하는 바를 먼저 알아내어 왕에게 그 사람을 세우도록 권하고자 하였다. 이에 열 개의 옥 귀고리를 만들어 그중 하나를 아름답게 꾸며 그것을 바쳤다. 왕이 그것을 열 명의 후궁에게 나누어 주자, 다음 날 자리에 앉아 아름다운 귀고리가 있는 곳을 보고는 왕에게 그 사람을 부인으로 삼도록 권했다.
[원문 156]
外儲說右上:
甘茂相秦惠王,惠王愛公孫衍,與之閒有所言,曰:「寡人將相子。」甘茂之吏道穴聞之,以告甘茂,甘茂入見王,曰:「王得賢相,臣敢再拜賀。」王曰:「寡人託國於子,安更得賢相?」對曰:「將相犀首。」王曰:「子安聞之?」對曰:「犀首告臣。」王怒犀首之泄,乃逐之。
[번역문]
감무(甘茂)가 진(秦) 혜왕(惠王)의 재상으로 있을 때, 혜왕이 공손연(公孫衍)을 아껴, 그와 한가로이 이야기하며 말하기를, “과인이 장차 그대를 재상으로 삼겠다.”라고 하였다. 감무의 관리가 길에서 구멍으로 엿듣고, 이를 감무에게 알렸다. 감무가 들어가 왕을 뵙고 말하기를, “왕께서 현명한 재상을 얻으셨으니, 신이 감히 두 번 절하며 축하드립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나라를 그대에게 맡겼는데, 어찌 다시 현명한 재상을 얻겠는가?”라고 하니, 감무가 대답하기를, “장차 서수(犀首)¹⁾를 재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대는 어디서 들었는가?”라고 묻자, “서수가 신에게 알려주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은 서수가 누설한 것에 노하여, 이에 그를 내쫓았다.
[주석]
1) 서수(犀首): 공손연(公孫衍)의 관직명.
[원문 157]
外儲說右上:
一曰。犀首,天下之善將也,梁王之臣也。秦王欲得之與治天下,犀首曰:「衍其人臣者也,不敢離主之國。」居期年,犀首抵罪於梁王,逃而入秦,秦王甚善之。樗里疾,秦之將也,恐犀首之代之將也,鑿穴於王之所常隱語者,俄而王果與犀首計曰:「吾欲攻韓,奚如?」犀首曰:「秋可矣。」王曰:「吾欲以國累子,子必勿泄也。」犀首反走再拜曰:「受命。」於是樗里疾也道穴聽之,矣郎中皆曰:「兵秋起攻韓犀首為將。」於是日也郎中盡知之,於是月也境內盡知之。王召樗里疾曰:「是何匈匈也,何道出?」樗里疾曰:「似犀首也。」王曰:「吾無與犀首言也,其犀首何哉?」樗里疾曰:「犀首也羈旅,新抵罪,其心孤,是言自嫁於眾。」王曰:「然。」使人召犀首,已逃諸侯矣。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서수(犀首)는 천하의 뛰어난 장수로, 양(梁)나라 왕의 신하였다. 진(秦)나라 왕이 그를 얻어 함께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였으나, 서수가 말하기를, “저 연(衍)은 남의 신하된 자로서, 감히 군주의 나라를 떠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일 년이 지나, 서수가 양나라 왕에게 죄를 짓고, 도망쳐 진나라로 들어가니, 진나라 왕이 그를 매우 좋게 대하였다. 저리질(樗里疾)은 진나라의 장수였는데, 서수가 자신을 대신하여 장수가 될까 두려워, 왕이 항상 은밀히 이야기하는 곳에 구멍을 뚫었다. 얼마 후 왕이 과연 서수와 함께 계책을 논하며 말하기를, “내가 한(韓)나라를 공격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라고 하니, 서수가 말하기를, “가을이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나라를 그대에게 맡기고자 하니, 그대는 반드시 누설하지 말라.”고 하였다. 서수가 물러나 두 번 절하며 말하기를, “명을 받들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저리질이 구멍으로 엿듣고, 낭중(郎中)들에게 모두 말하기를, “군대가 가을에 일어나 한나라를 공격하고 서수가 장수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날 낭중들이 모두 알게 되고, 그 달에 나라 안이 모두 알게 되었다. 왕이 저리질을 불러 말하기를, “어찌 이리 흉흉한가, 어떤 경로로 말이 나갔는가?”라고 하니, 저리질이 말하기를, “서수인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나는 서수와 말한 적이 없는데, 어찌 서수이겠는가?”라고 하니, 저리질이 말하기를, “서수는 나그네 신세이고, 새로 죄를 지었으며, 그 마음이 외로우니, 이는 스스로를 여러 사람에게 드러내어 팔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렇구나.” 하고는, 사람을 시켜 서수를 불렀으나, 이미 제후들에게로 도망친 뒤였다.
[원문 158]
外儲說右上:
堂谿公謂昭侯曰:「今有千金之玉卮,通而無當,可以盛水乎?」昭侯曰:「不可。」「有瓦器而不漏,可以盛酒乎?」昭侯曰:「可。」對曰:「夫瓦器至賤也,不漏,可以盛酒。雖有乎千金之玉卮,至貴,而無當,漏,不可盛水,則人孰注漿哉?今為人主而漏其群臣之語,是猶無當之玉卮也,雖有聖智,莫盡其術,為其漏也。」昭侯曰:「然。」昭侯聞堂谿公之言,自此之後,欲發天下之大事,未嘗不獨寢,恐夢言而使人知其謀也。
[번역문]
당계공(堂谿公)이 소후(昭侯)에게 말하기를, “지금 천금짜리 옥 술잔이 있는데, 통하였으나 밑바닥이 없다면, 물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소후가 “불가능하다.”라고 하였다. “질그릇이 있는데 새지 않는다면, 술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소후가 “가능하다.”라고 하였다. 당계공이 대답하기를, “무릇 질그릇은 지극히 천하지만, 새지 않으면 술을 담을 수 있습니다. 비록 천금짜리 옥 술잔이 있어 지극히 귀하더라도, 밑바닥이 없어 새어 물을 담을 수 없다면, 사람들이 누가 거기에 물을 붓겠습니까? 지금 군주가 되어 여러 신하들의 말을 누설하는 것은, 마치 밑바닥 없는 옥 술잔과 같습니다. 비록 성인의 지혜가 있더라도 그 술(術)을 다하지 못할 것이니, 그것이 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소후가 “그렇소.”라고 하였다. 소후는 당계공의 말을 듣고, 이로부터 천하의 대사를 일으키고자 할 때, 일찍이 홀로 잠자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잠꼬대로 사람들에게 그 계책을 알릴까 두려워해서였다.
[원문 159]
外儲說右上:
一曰。堂谿公見昭侯曰:「今有白玉之卮而無當,有瓦卮而有當,君渴,將何以飲?」君曰:「以瓦卮。」堂谿公曰:「白玉之卮美,而君不以飲者,以其無當耶?」君曰:「然。」堂谿公曰:「為人主而漏泄其群臣之語,譬猶玉卮之無當。」堂谿公每見而出,昭侯必獨臥,惟恐夢言泄於妻妾。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당계공(堂谿公)이 소후(昭侯)를 뵙고 말하기를, “지금 밑바닥 없는 백옥 술잔과, 밑바닥 있는 질그릇 술잔이 있는데, 군주께서 목이 마르시면 장차 어느 것으로 마시겠습니까?”라고 하니, 군주가 “질그릇 술잔으로 마시겠다.”라고 하였다. 당계공이 말하기를, “백옥 술잔이 아름다운데도 군주께서 그것으로 마시지 않는 것은, 그 밑바닥이 없기 때문입니까?”라고 하니, 군주가 “그렇다.”라고 하였다. 당계공이 말하기를, “군주가 되어 여러 신하들의 말을 누설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밑바닥 없는 옥 술잔과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당계공이 매번 뵙고 나갈 때마다, 소후는 반드시 홀로 누웠으니, 오직 잠꼬대로 처첩에게 말이 새어 나갈까 두려워해서였다.
[원문 160]
外儲說右上:
《申子》曰:「獨視者謂明,獨聽者謂聰。能獨斷者,故可以為天下主。」
[번역문]
《신자(申子)》에 이르기를, “홀로 보는 자를 일러 밝다[明] 하고, 홀로 듣는 자를 일러 귀 밝다[聰] 한다. 능히 홀로 결단하는 자라야, 그러므로 천하의 군주가 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원문 161]
外儲說右上:
說三
[번역문]
설명 삼(三).
[원문 162]
外儲說右上:
宋人有酤酒者,升概甚平,遇客甚謹,為酒甚美,縣幟甚高,著然不售,酒酸,怪其故,問其所知閭長者楊倩,倩曰:「汝狗猛耶。」曰:「狗猛則酒何故而不售?」曰:「人畏焉。或令孺子懷錢挈壺罋而往酤,而狗迓而齕之,此酒所以酸而不售也。」夫國亦有狗,有道之士懷其術而欲以明萬乘之主,大臣為猛狗迎而齕之,此人主之所以蔽脅,而有道之士所以不用也。故桓公問管仲「治國最奚患?」對曰:「最患社鼠矣。」公曰:「何患社鼠哉?」對曰:「君亦見夫為社者乎?樹木而塗之,鼠穿其間,掘穴託其中,燻之則恐焚木,灌之則恐塗阤,此社鼠之所以不得也。今人君之左右,出則為勢重而收利於民,入則比周而蔽惡於君,內閒主之情以告外,外內為重,諸臣百吏以為富,吏不誅則亂法,誅之則君不安,據而有之,此亦國之社鼠也。」故人臣執柄而擅禁,明為己者必利,而不為己者必害,此亦猛狗也。夫大臣為猛狗而齕有道之士矣,左右又為社鼠而閒主之情,人主不覺,如此,主焉得無壅,國焉得無亡乎?
[번역문]
송(宋)나라 사람 중에 술을 파는 자가 있었는데, 되질은 매우 공평하고,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공손하며, 빚은 술은 매우 맛있고, 내건 깃발은 매우 높았으나, 그런데도 팔리지 않아 술이 시어버렸다. 그 까닭을 이상히 여겨, 아는 사이인 마을 어른 양천(楊倩)에게 물으니, 양천이 말하기를, “자네 개가 사나운가?”라고 하였다. 술 파는 이가 말하기를, “개가 사나우면 술이 무슨 까닭으로 팔리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양천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네. 어떤 이가 어린아이에게 돈을 품고 항아리를 들고 가서 술을 사오게 했는데, 개가 맞이하여 그를 무니, 이것이 술이 시어버리고 팔리지 않는 까닭이네.”라고 하였다. 무릇 나라에도 또한 개가 있으니, 도(道)를 지닌 선비가 그 술(術)을 품고 만승지국의 군주를 밝히고자 하나, 대신(大臣)이 사나운 개가 되어 맞이하여 그를 무니, 이것이 군주가 가려지고 위협받는 까닭이며, 도를 지닌 선비가 등용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무엇이 걱정거리인가?”라고 묻자, 관중이 대답하기를,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사직의 쥐[社鼠]입니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어찌 사직의 쥐가 걱정거리인가?”라고 묻자, 관중이 대답하기를, “군주께서는 또한 사직을 만드는 것을 보셨습니까? 나무를 세우고 흙을 바르는데, 쥐가 그 사이를 뚫고 굴을 파서 그 안에 의탁합니다. 연기로 그을리자니 나무가 탈까 두렵고, 물을 붓자니 흙벽이 무너질까 두렵습니다. 이것이 사직의 쥐를 잡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지금 군주의 측근들은, 나가서는 권세가 무거워 백성에게서 이익을 거두고, 들어와서는 무리를 지어 군주에게 악행을 가립니다. 안으로 군주의 실정을 염탐하여 밖에 알리고, 안팎으로 세력을 중하게 하여, 여러 신하와 모든 관리가 그들을 부유하게 여깁니다. 이들을 주살하지 않으면 법이 어지러워지고, 주살하자니 군주가 불안해하며, 그들을 그대로 두니, 이 또한 나라의 사직의 쥐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신하가 권력을 쥐고 제멋대로 금령을 내리며, 명백히 자기를 위하는 자는 반드시 이롭게 하고 자기를 위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해롭게 하니, 이 또한 사나운 개이다. 무릇 대신이 사나운 개가 되어 도를 지닌 선비를 물고, 측근들이 또한 사직의 쥐가 되어 군주의 실정을 염탐하는데, 군주가 깨닫지 못한다면, 이와 같으니 군주가 어찌 막히지 않을 수 있으며,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문 163]
外儲說右上:
一曰。宋之酤酒者有莊氏者,其酒常美,或使僕往酤莊氏之酒,其狗齕人,使者不敢往,乃酤佗家之酒,問曰:「何為不酤莊氏之酒?」對曰:「今日莊氏之酒酸。」故曰:不殺其狗則酒酸。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송(宋)나라의 술 파는 자 중에 장씨(莊氏)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 술이 항상 맛있었다. 어떤 이가 하인을 시켜 장씨의 술을 사오게 했는데, 그 집 개가 사람을 물어, 사자가 감히 가지 못하고 이에 다른 집의 술을 사왔다. 주인이 묻기를, “어찌하여 장씨의 술을 사오지 않았느냐?”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오늘 장씨의 술은 시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그 개를 죽이지 않으면 술이 시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원문 164]
外儲說右上:
一曰。桓公問管仲曰:「治國何患?」對曰:「最苦社鼠。夫社木而塗之,鼠因自託也。燻之則木焚,灌之則塗阤,此所以苦於社鼠也。今人君左右,出則為勢重以收利於民,入則比周謾侮蔽惡以欺於君,不誅則亂法,誅之則人主危,據而有之,此亦社鼠也。」故人臣執柄擅禁,明為己者必利,不為己者必害,亦猛狗也。故左右為社鼠,用事者為猛狗,則術不行矣。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에게 묻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엇이 걱정거리인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가장 괴로운 것은 사직의 쥐[社鼠]입니다. 무릇 사직은 나무를 세우고 흙을 바르는데, 쥐가 이를 의지하여 스스로 몸을 맡깁니다. 연기로 그을리자니 나무가 불타고, 물을 붓자니 흙벽이 무너지니, 이것이 사직의 쥐 때문에 괴로운 까닭입니다. 지금 군주의 측근들은, 나가서는 권세가 무거워 백성에게서 이익을 거두고, 들어와서는 무리를 지어 업신여기고 악행을 가리며 군주를 속입니다. 주살하지 않으면 법이 어지러워지고, 주살하자니 군주가 위태로워지며, 그들을 그대로 두니, 이 또한 사직의 쥐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신하가 권력을 쥐고 제멋대로 금령을 내리며, 명백히 자기를 위하는 자는 반드시 이롭게 하고 자기를 위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해롭게 하니, 이 또한 사나운 개이다. 그러므로 측근들이 사직의 쥐가 되고, 권력을 쓰는 자가 사나운 개가 되면, 술(術)은 행해지지 않는다.
[원문 165]
外儲說右上:
堯欲傳天下於舜,鯀諫曰:「不祥哉!孰以天下而傳之於匹夫乎?」堯不聽,舉兵而誅,殺鯀於羽山之郊。共工又諫曰:「孰以天下而傳之於匹夫乎?」堯不聽,又舉兵而誅,共工於幽州之都。於是天下莫敢言無傳天下於舜。仲尼聞之曰:「堯之知,舜之賢,非其難者也。夫至乎誅諫者必傳之舜,乃其難也。」一曰。「不以其所疑敗其所察則難也。」
[번역문]
요(堯)임금이 천하를 순(舜)에게 전하려 하자, 곤(鯀)이 간언하여 말하기를, “상서롭지 못합니다! 누가 천하를 일개 평민에게 전한단 말입니까?”라고 하였다. 요임금이 듣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주살하여, 곤을 우산(羽山)의 들에서 죽였다. 공공(共工)이 또 간언하여 말하기를, “누가 천하를 일개 평민에게 전한단 말입니까?”라고 하였다. 요임금이 듣지 않고, 또 군사를 일으켜 주살하여, 공공을 유주(幽州)의 도읍에서 죽였다. 이에 천하에 감히 천하를 순에게 전하지 말라고 말하는 자가 없었다. 중니(仲尼)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요임금의 지혜와 순임금의 현명함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릇 간언하는 자를 주살하면서까지 반드시 순에게 전하려 한 것, 그것이 바로 어려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자신이 의심하는 바 때문에 자신이 살핀 바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라고도 한다.
[원문 166]
外儲說右上:
荊莊王有茅門之法曰:「群臣大夫諸公子入朝,馬蹄踐霤者,廷理斬其輈,戮其御。」於是太子入朝,馬蹄踐霤,廷理斬其輈,戮其御。太子怒,入為王泣曰:「為我誅戮廷理。」王曰:「法者所以敬宗廟,尊社稷。故能立法從令尊敬社稷者,社稷之臣也,焉可誅也?夫犯法廢令不尊敬社稷者,是臣乘君而下尚校也。臣乘君則主失威,下尚校則上位危。威失位危,社稷不守,吾將何以遺子孫?」於是太子乃還走,避舍露宿三日,北面再拜請死罪。
[번역문]
초[荊] 장왕(莊王)에게 모문(茅門)의 법이 있었는데, 이르기를, “여러 신하와 대부, 여러 공자들이 조회에 들어올 때, 말발굽이 처마의 낙숫물을 밟으면, 정위(廷理)¹⁾는 그 수레의 끌채를 자르고 그 마부를 죽인다.”라고 하였다. 이에 태자가 조회에 들어오다가 말발굽이 낙숫물을 밟으니, 정위가 그 수레의 끌채를 자르고 그 마부를 죽였다. 태자가 노하여, 들어가 왕에게 울며 말하기를, “저를 위해 정위를 주살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법이란 종묘를 공경하고 사직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세우고 명령에 따르며 사직을 존중할 수 있는 자는, 사직의 신하인데, 어찌 주살할 수 있겠는가? 무릇 법을 어기고 명령을 폐하며 사직을 존중하지 않는 자는, 신하가 군주를 능멸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과 힘을 겨루는 것이다. 신하가 군주를 능멸하면 군주는 위엄을 잃고, 아랫사람이 윗사람과 힘을 겨루면 윗자리가 위태로워진다. 위엄을 잃고 지위가 위태로워지면, 사직을 지킬 수 없으니, 내가 장차 무엇을 자손에게 남겨주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태자가 이에 물러나, 숙소를 피하여 사흘간 노숙하고,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하며 죽을죄를 청했다.
[주석]
1) 정리(廷理): 법률과 형벌을 담당하는 관리. 정위(廷尉)라고도 한다.
[원문 167]
外儲說右上:
一曰。楚王急召太子。楚國之法,車不得至於茆門。天雨,廷中有潦,太子遂驅車至於茆門。廷理曰:「車不得至茆門,非法也。」太子曰:「王召急,不得須無潦。」遂驅之,廷理舉殳而擊其馬,敗其駕。太子入為王泣曰:「廷中多潦,驅車至茆門,廷理曰非法也,舉殳擊臣馬,敗臣駕,王必誅之。」王曰:「前有老主而不踰,後有儲主而不屬,矜矣。是真吾守法之臣也。」乃益爵二級,而開後門出太子。「勿復過。」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초(楚)나라 왕이 급히 태자를 불렀다. 초나라의 법에는, 수레가 모문(茆門)에 이를 수 없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 뜰 안에 물이 고이자, 태자가 마침내 수레를 몰아 모문에 이르렀다. 정위(廷理)가 말하기를, “수레가 모문에 이르는 것은, 법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말하기를, “왕의 부르심이 급하여, 물이 없어지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하고는, 마침내 수레를 몰았다. 정위가 몽둥이[殳]를 들어 그 말을 때리고, 그 수레를 부수었다. 태자가 들어가 왕에게 울며 말하기를, “뜰 안에 물이 많이 고여 수레를 몰아 모문에 이르렀는데, 정위가 법이 아니라며, 몽둥이를 들어 신의 말을 때리고 신의 수레를 부수었으니, 왕께서는 반드시 그를 주살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앞에는 늙은 군주가 있는데도 법을 넘지 않고, 뒤에는 다음 군주가 있는데도 아첨하지 않으니, 훌륭하구나. 이 자가 참으로 나의 법을 지키는 신하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의 작위를 두 등급 올려주고, 뒷문을 열어 태자를 내보내며, “다시는 지나가지 말라.”고 하였다.
[원문 168]
外儲說右上:
衛嗣君謂薄疑曰:「子小寡人之國以為不足仕,則寡人力能仕子,請進爵以子為上卿。」乃進田萬頃。薄子曰:「疑之母親疑,以疑為能相萬乘所不窕也。然疑家巫有蔡嫗者,疑母甚愛信之,屬之家事焉。疑智足以信言家事,疑母盡以聽疑也。然已與疑言者,亦必復決之於蔡嫗也。故論疑之智能,以疑為能相萬乘而不窕也;論其親,則子母之間也;然猶不免議之於蔡嫗也。今疑之於人主也,非子母之親也,而人主皆有蔡嫗。人主之蔡嫗,必其重人也。重人者,能行私者也。夫行私者,繩之外也;而疑之所言,法之內也。繩之外與法之內,讎也,不相受也。」
[번역문]
위(衛) 사군(嗣君)이 박의(薄疑)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과인의 나라를 작다고 여겨 벼슬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과인의 힘으로 능히 그대를 벼슬하게 할 수 있으니, 청컨대 작위를 올려 그대를 상경(上卿)으로 삼겠소.” 하고는, 이에 밭 만 경(頃)을 주었다. 박의가 말하기를, “저 의(疑)의 어머니는 저 의(疑)를 믿으시어, 저 의(疑)가 만승지국(萬乘之國)의 재상을 하더라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십니다. 그러나 저 의(疑)의 집에 채씨(蔡氏) 할머니라는 무당이 있는데, 저 의(疑)의 어머니가 그녀를 매우 아끼고 믿어, 집안일을 그녀에게 맡기십니다. 저 의(疑)의 지혜가 족히 집안일을 믿고 맡길 만하여, 저 의(疑)의 어머니는 모든 것을 저 의(疑)의 말을 들으십니다. 그러나 이미 저 의(疑)와 말한 것이라도, 또한 반드시 다시 채씨 할머니에게 물어 결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저 의(疑)의 지혜와 능력을 논하자면, 저 의(疑)가 만승지국의 재상을 하더라도 부족하지 않다고 여기시지만, 그 친함으로 논하자면 아들과 어머니 사이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채씨 할머니와 상의하는 것을 면하지 못합니다. 지금 저 의(疑)와 군주와의 관계는, 아들과 어머니의 친함이 아닌데, 군주에게는 모두 채씨 할머니가 있습니다. 군주의 채씨 할머니는, 반드시 그가 중히 여기는 사람일 것입니다. 중히 여기는 사람은, 사사로움을 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무릇 사사로움을 행하는 자는, 법도[繩]의 밖에 있는 것이고, 저 의(疑)가 말하는 바는, 법도의 안에 있는 것입니다. 법도의 밖과 법도의 안은, 원수지간이라 서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69]
外儲說右上:
一曰。衛君之晉,謂薄疑曰:「吾欲與子皆行。」薄疑曰:「媼也在中,請歸與媼計之。衛君自請薄媼,薄媼曰:「疑,君之臣也,君有意從之,甚善。」衛君曰:「吾以請之媼,媼許我矣。」薄疑歸言之媼也,曰:「衛君之愛疑奚與媼?」媼曰:「不如吾愛子也。」「衛君之賢疑奚與媼也?」曰:「不如吾賢子也。」「媼與疑計家事,已決矣,乃請決之於卜者蔡嫗。今衛君從疑而行,雖與疑決計,必與他蔡嫗敗之,如是則疑不得長為臣矣。」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위(衛)나라 군주가 진(晉)나라로 가면서, 박의(薄疑)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대와 함께 가고 싶소.”라고 하였다. 박의가 말하기를, “어머니[媼]께서 안에 계시니, 청컨대 돌아가 어머니와 상의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위나라 군주가 직접 박의의 어머니에게 청하니, 박의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의(疑)는 군주의 신하이니, 군주께서 그를 데리고 가실 뜻이 있으시면, 매우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위나라 군주가 말하기를, “내가 어머니께 청하였더니, 어머니께서 나를 허락하셨소.”라고 하였다. 박의가 돌아가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위나라 군주가 저를 아끼는 것이 어찌 어머니와 같겠습니까?”라고 하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내가 너를 아끼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위나라 군주가 저를 현명하게 여기는 것이 어찌 어머니와 같겠습니까?”라고 하니, “내가 너를 현명하게 여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어머니께서는 저와 집안일을 상의하여, 이미 결정하셨으면서도, 점쟁이 채씨 할머니에게 물어 결정하십니다. 지금 위나라 군주가 저를 따라 행하면서, 비록 저와 계책을 결정하더라도, 반드시 다른 채씨 할머니와 함께 그것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이와 같으면 저는 오랫동안 신하 노릇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70]
外儲說右上:
夫教歌者,使先呼而詘之,其聲反清徵者乃教之。
[번역문]
무릇 노래를 가르치는 자는, 먼저 소리치게 하여 그 소리를 꺾어보아, 그 소리가 도리어 맑은 치(徵)음으로 돌아오는 자라야 이에 가르친다.
[원문 171]
外儲說右上:
一曰。教歌者,先揆以法,疾呼中宮,徐呼中徵。疾不中宮,徐不中徵,不可謂教。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노래를 가르치는 자는, 먼저 법도로써 헤아려, 빠르게 소리칠 때 궁(宮)음에 맞고, 느리게 소리칠 때 치(徵)음에 맞는지를 본다. 빠르게 소리쳐도 궁음에 맞지 않고, 느리게 소리쳐도 치음에 맞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다고 한다.
[원문 172]
外儲說右上:
吳起,衛左氏中人也。使其妻織組而幅狹於度,吳子使更之,其妻曰:「諾。」及成,復度之,果不中度,吳子大怒。其妻對曰:「吾始經之而不可更也。」吳子出之,其妻請其兄而索入,其兄曰:「吳子,為法者也。其為法也,且欲以與萬乘致功,必先踐之妻妾然後行之,子毋幾索入矣。」其妻之弟又重於衛君,乃因以衛君之重請吳子,吳子不聽,遂去衛而入荊也。
[번역문]
오기(吳起)는 위(衛)나라 좌씨(左氏) 마을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에게 비단을 짜게 하였는데 폭이 기준보다 좁았다. 오기가 다시 짜게 하니, 그의 아내가 “알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완성되자, 다시 재어보니 과연 기준에 맞지 않았다. 오기가 크게 노하였다. 그의 아내가 대답하기를, “제가 처음 날실을 걸 때부터 정해져서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오기가 그녀를 내쫓자, 그의 아내가 오빠에게 청하여 다시 들어가기를 요구했다. 그녀의 오빠가 말하기를, “오기는 법을 세우는 사람이다. 그가 법을 세우는 것은, 장차 만승지국과 더불어 공을 이루고자 함이니, 반드시 먼저 처첩에게 실천한 뒤에 행하려는 것이다. 너는 다시 들어가기를 바라지 말라.”고 하였다. 그의 아내의 남동생이 또한 위나라 군주에게 중용되었는데, 이에 위나라 군주의 권세를 이용하여 오기에게 청하였으나, 오기가 듣지 않고 마침내 위나라를 떠나 초[荊]나라로 들어갔다.
[원문 173]
外儲說右上:
一曰。吳起示其妻以組曰:「子為我織組,令之如是。」組已就而效之,其組異善。起曰:「使子為組,令之如是,而今也異善何也?」其妻曰:「用財若一也,加務善之。」吳起曰:「非語也。」使之衣歸。其父往請之,吳起曰:「起家無虛言。」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오기(吳起)가 그의 아내에게 비단 견본을 보여주며 말하기를, “그대는 나를 위해 비단을 짜되, 이와 같이 하라.”고 하였다. 비단이 이미 완성되어 그것을 보니, 그 비단이 (견본보다) 유달리 훌륭했다. 오기가 말하기를, “그대에게 비단을 짜게 하여 이와 같이 하라고 했는데, 지금 유달리 훌륭한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니, 그의 아내가 말하기를, “재료를 쓴 것은 같으나, 힘을 더하여 더 좋게 만들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오기가 말하기를, “약속과 다르다.” 하고는, 그녀에게 옷을 입혀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그녀의 아버지가 가서 청하였으나, 오기가 말하기를, “저 기(起)의 집안에는 헛된 말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74]
外儲說右上:
晉文公問於狐偃曰:「寡人甘肥周於堂,卮酒豆肉集於宮,壺酒不清,生肉不布,殺一牛遍於國中,一歲之功盡以衣士卒,其足以戰民乎?」狐子曰:「不足。」文公曰:「吾弛關市之征而緩刑罰,其足以戰民乎?」狐子曰:「不足。」文公曰:「吾民之有喪資者,寡人親使郎中視事;有罪者赦之;貧窮不足者與之;其足以戰民乎?」狐子對曰:「不足。此皆所以慎產也。而戰之者,殺之也。民之從公也,為慎產也,公因而迎殺之,失所以為從公矣。」曰:「然則何如足以戰民乎?」狐子對曰:「令無得不戰。」公曰:「無得不戰奈何?」狐子對曰:「信賞必罰,其足以戰。」公曰:「刑罰之極安至?」對曰:「不辟親貴,法行所愛。」文公曰:「善。」明日令田於圃陸,期以日中為期,後期者行軍法焉。於是公有所愛者曰顛頡後期,吏請其罪,文公隕涕而憂。吏曰:「請用事焉。」遂斬顛頡之脊,以徇百姓,以明法之信也。而後百姓皆懼曰:「君於顛頡之貴重如彼甚也,而君猶行法焉,況於我則何有矣?」文公見民之可戰也,於是遂興兵伐原,克之。伐衛,東其畝,取五鹿。攻陽,勝虢,伐曹。南圍鄭,反之陴。罷宋圍,還與荊人戰城濮,大敗荊人,返為踐土之盟,遂成衡雍之義。一舉而八有功。所以然者,無他故異物,從狐偃之謀,假顛頡之脊也。
[번역문]
진(晉) 문공(文公)이 호언(狐偃)에게 묻기를, “과인이 달고 기름진 음식을 당(堂)에 두루 갖추고, 술잔과 고기 그릇을 궁에 모아두며, 항아리의 술이 맑지 않고 생고기가 널려 있지 않게 하며, 소 한 마리를 잡아 나라 안에 두루 나누고, 일 년의 수확을 다하여 사졸들을 입히면, 그것으로 백성들을 싸우게 하기에 충분하겠소?”라고 하니, 호언이 “부족합니다.”라고 하였다. 문공이 말하기를, “내가 관문과 시장의 세금을 풀어주고 형벌을 완화하면, 그것으로 백성들을 싸우게 하기에 충분하겠소?”라고 하니, 호언이 “부족합니다.”라고 하였다. 문공이 말하기를, “내 백성 중에 상을 당하여 재물을 쓴 자가 있으면, 과인이 직접 낭중(郎中)을 시켜 일을 보게 하고, 죄 있는 자는 사면하며, 가난하고 궁핍하여 부족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면, 그것으로 백성들을 싸우게 하기에 충분하겠소?”라고 하니, 호언이 대답하기를, “부족합니다. 이것은 모두 생업을 소중히 여기게 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그러나 전쟁이란, 그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백성이 공을 따르는 것은, 생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인데, 공께서 이로 인해 그들을 맞이하여 죽인다면, 공을 따르는 까닭을 잃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문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백성들을 싸우게 하기에 충분하겠소?”라고 하니, 호언이 대답하기를,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문공이 “싸우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은 어찌하는 것이오?”라고 묻자, 호언이 대답하기를, “상을 신실하게 하고 벌을 반드시 내리면, 그것으로 싸우게 하기에 충분합니다.”라고 하였다. 문공이 “형벌의 지극함은 어디에 이릅니까?”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가깝고 귀한 자도 피하지 않고, 사랑하는 자에게도 법을 행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문공이 “좋소.”라고 하였다. 다음 날 포륙(圃陸)에서 사냥할 것을 명하고, 정오를 기한으로 삼아, 늦게 오는 자는 군법을 행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문공이 사랑하는 자인 전힐(顛頡)이 늦게 오자, 관리가 그의 죄를 청하니, 문공이 눈물을 흘리며 근심하였다. 관리가 말하기를, “청컨대 일을 집행하겠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전힐의 등을 베어, 백성들에게 보여 법의 신실함을 밝혔다. 그 후에 백성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군주께서 전힐을 귀하게 여기심이 저와 같이 심한데도, 군주께서는 오히려 법을 행하시니, 하물며 우리에게 있어서랴!”라고 하였다. 문공은 백성들이 싸울 수 있음을 보고, 이에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원(原)나라를 정벌하여 이겼다. 위(衛)나라를 정벌하여 그 밭의 경계를 동쪽으로 넓히고, 오록(五鹿)을 취했다. 양(陽)나라를 공격하고, 괵(虢)나라를 이겼으며, 조(曹)나라를 정벌했다. 남쪽으로 정(鄭)나라를 포위하고 그 성벽을 허물었다. 송(宋)나라의 포위를 풀고, 돌아와 초[荊]나라 사람들과 성복(城濮)에서 싸워, 초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르고, 돌아와 천토(踐土)의 맹약을 맺어, 마침내 형옹(衡雍)의 의(義)를 이루었다. 한 번의 거사로 여덟 가지 공을 이루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호언의 계책을 따르고, 전힐의 등을 빌렸기 때문이다.
[원문 175]
外儲說右上:
夫痤疽之痛也,非刺骨髓,則煩心不可支也;非如是不能使人以半寸砥石彈之。今人主之於治亦然,非不知有苦則安;欲治其國,非如是不能聽聖知而誅亂臣。亂臣者,必重人。重人者,必人主所甚親愛也。人主所甚親愛也者,是同堅白也。夫以布衣之資,欲以離人主之堅白、所愛,是以解左髀說右髀者,是身必死而說不行者也。
[번역문]
무릇 종기의 아픔은, 뼛속을 찌르지 않으면, 그 괴로운 마음을 지탱할 수 없다. 이와 같지 않으면 반 촌짜리 숫돌로 그것을 째게 할 수 없다. 지금 군주가 다스림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여, 괴로움이 있어야 편안함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다면, 이와 같지 않으면 성인의 지혜를 듣고 어지러운 신하를 주살할 수 없다. 어지러운 신하는, 반드시 중용되는 사람이다. 중용되는 사람은, 반드시 군주가 매우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자이다. 군주가 매우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자는, (군주와) 견백(堅白)¹⁾처럼 단단히 결합된 것과 같다. 무릇 평민의 자질로, 군주의 견백과 같이 단단히 결합된 사랑하는 자를 떼어놓으려는 것은, 왼쪽 넓적다리를 설득하여 오른쪽 넓적다리를 풀게 하려는 것과 같으니, 이는 몸은 반드시 죽고 그 유세는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주석]
1) 견백(堅白): 명가(名家)의 철학적 개념. 단단함[堅]과 흰색[白]이라는 속성이 돌에서 분리될 수 없듯이, 군주와 총애하는 신하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여 떼어놓기 어려움을 비유한다.
韓非子 外儲說右下 (한비자 외저설우하) 번역 및 주석
經 (경)
[원문 176]
外儲說右下:
一、賞罰共則禁令不行,何以明之,明之以造父、於期。子罕為出彘,田恆為圃池,故宋君、簡公弒。患在王良、造父之共車,田連、成竅之共琴也。
[번역문]
一. 상벌의 권한이 나뉘면[共]¹⁾ 금령(禁令)이 행해지지 않으니, 무엇으로 이를 밝힐 것인가? 조보(造父)와 어기(於期)의 예로써 밝힌다. 자한(子罕)은 튀어나온 돼지[出彘]가 되었고, 전항(田恆)은 동산의 연못[圃池]이 되었으므로, 송(宋)나라 군주와 간공(簡公)이 시해되었다. 그 재앙은 왕량(王良)과 조보(造父)가 함께 수레를 모는 것과, 전련(田連)과 성규(成竅)가 함께 거문고를 타는 것에 있다.
[주석]
1) 공(共): ‘함께하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군주가 독점해야 할 상벌의 권한이 신하와 나뉘어 함께 행사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비자는 권력의 분점을 국가 혼란의 근본 원인으로 보았다.
2) 출체(出彘), 포지(圃池): 이어지는 「설일(說一)」에서 설명될 비유이다. ‘튀어나온 돼지’는 군주의 통제(마부)를 벗어나게 하는 외부의 위협(자한의 권력)을, ‘동산의 연못’은 백성의 마음(목마른 말)을 끄는 사사로운 은혜(전항의 선심)를 상징한다. 둘 다 군주의 유일한 권위를 침해하는 요소를 가리킨다.
[원문 177]
外儲說右下:
二、治強生於法,弱亂生於阿,君明於此,則正賞罰而非仁下也。爵祿生於功,誅罰生於罪,臣明於此,則盡死力而非忠君也。君通於不仁,臣通於不忠,則可以王矣。昭襄知主情,而不發五苑;田鮪知臣情,故教田章;而公儀辭魚。
[번역문]
二. 다스려지고 강성해지는 것은 법(法)에서 생겨나고, 약해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사사로운 정[阿]¹⁾에서 생겨난다. 군주가 이를 밝게 알면, 상벌을 바로잡을 뿐 아랫사람에게 인(仁)을 베풀지 않는다. 작록(爵祿)은 공(功)에서 생겨나고, 주벌(誅罰)은 죄(罪)에서 생겨남을 신하가 밝게 알면, 죽을힘을 다할 뿐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군주가 불인(不仁)에 통달하고 신하가 불충(不忠)에 통달하면, 천하의 왕이 될 수 있다.²⁾ 소양왕(昭襄王)은 군주의 실정(實情)을 알았으므로 다섯 동산[五苑]을 열지 않았고, 전유(田鮪)는 신하의 실정을 알았으므로 아들 전장(田章)을 가르쳤으며, 공의휴(公儀休)는 물고기를 사양하였다.
[주석]
1) 아(阿): ‘아첨하다’, ‘치우치다’는 뜻. 법에 의거하지 않고 사사로운 감정이나 관계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2) 군통어불인, 신통어불충, 즉가이왕의(君通於不仁,臣通於不忠,則可以王矣): 한비자의 핵심 사상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구절이다. 여기서 ‘불인(不仁)’과 ‘불충(不忠)’은 악(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불인’은 군주가 법을 초월하여 사사로운 온정을 베풀지 않는 것을, ‘불충’은 신하가 군주 개인에 대한 인격적 충성이 아니라 오직 법과 직분에 따라 공적인 의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군신 관계가 사적인 감정이 배제된 공적인 법률 관계로 재정립될 때 나라가 강성해진다는 법가적 통치론을 압축한 말이다.
[원문 178]
外儲說右下:
三、明主者、鑒於外也,而外事不得不成,故蘇代非齊王。人主鑒於士也,而居者不適不顯,故潘壽言禹情。人主無所覺悟,方吾知之,故恐同衣於族,而況借於權乎?吳章知之,故說以佯,而況借於誠乎?趙王惡虎目而壅;明主之道,如周行人之卻衛侯也。
[번역문]
三. 현명한 군주는 외부의 일[外]¹⁾을 거울삼으므로, 외부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소대(蘇代)는 제(齊)나라 왕을 비판하였다. 군주가 선비[士]를 거울삼으므로, 은거하는 자가 등용되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니, 그러므로 반수(潘壽)는 우(禹)임금의 실정을 말하였다. 군주가 깨닫는 바가 없으면, 바야흐로 내가 그것을 알게 되니, 그러므로 같은 옷을 일족과 함께 입는 것도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권력을 빌려주는 것이겠는가? 오장(吳章)은 이를 알았으므로 거짓으로 꾸며서 유세하였는데, 하물며 진심으로 빌려주는 것이겠는가? 조(趙)나라 왕은 호랑이 눈을 싫어하여 막혔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주(周)나라 행인(行人)이 위(衛)나라 후작을 물리친 것과 같다.
[주석]
1) 감어외(鑒於外): ‘외부의 것을 거울로 삼는다’는 뜻. 다른 나라의 흥망성쇠나 외교적 상황을 통해 자신의 통치를 반성하고 전략을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원문 179]
外儲說右下:
四、人主者,守法責成以立功者也。聞有吏雖亂而有獨善之民,不聞有亂民而有獨治之吏,故明主治吏不治民。說在搖木之本,與引網之綱。故失火之嗇夫,不可不論也。救火者,吏操壺走火、則一人之用也,操鞭使人、則役萬夫。故所遇術者,如造父之遇驚馬,牽馬推車則不能進,代御執轡持筴則馬咸騖矣。是以說在椎鍛平夷,榜檠矯直。不然,敗在淖齒用齊戮閔王,李兌用趙餓主父也。
[번역문]
四. 군주란 법을 지키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공을 세우는 자이다. 관리가 비록 어지러워도 홀로 선한 백성이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백성이 어지러운데 홀로 잘 다스리는 관리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관리를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다. 그 설명은 나무의 근본을 흔드는 것과, 그물의 벼리[綱]를 당기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불을 낸 인색한 남편[嗇夫]¹⁾은 논죄하지 않을 수 없다. 불을 끄는 데 있어, 관리가 물병을 들고 불로 달려가는 것은 한 사람의 쓰임일 뿐이지만, 채찍을 잡고 사람을 부리는 것은 만 명을 부릴 수 있다. 그러므로 술(術)을 만난다는 것은, 조보(造父)가 놀란 말을 만난 것과 같으니, 말을 끌고 수레를 밀면 나아갈 수 없지만, 마부를 대신하여 고삐를 잡고 채찍을 들면 말들이 모두 잘 달리게 된다. 이 때문에 그 설명은 망치질로 평평하게 하고 교정틀로 곧게 펴는 것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실패는 조치(淖齒)가 제(齊)나라를 이용하여 민왕(閔王)을 죽인 일과, 이태(李兌)가 조(趙)나라를 이용하여 주보(主父)를 굶겨 죽인 일에 있다.
[주석]
1) 실화지색부(失火之嗇夫): 불이 났을 때 그 원인을 제공한 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의미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함을 비유한다.
[원문 180]
外儲說右下:
五、因事之理則不勞而成,故茲鄭之踞轅而歌以上高梁也。其患在趙簡主稅吏請輕重,薄疑之言國中飽;簡主喜而府庫虛,百姓餓而姦吏富也。故桓公巡民而管仲省腐財怨女。不然,則在延陵乘馬不得進,造父過之而為之泣也。
[번역문]
五. 일의 이치에 따르면 수고롭지 않고도 이룰 수 있으니, 그러므로 자정(茲鄭)이 수레의 끌채에 걸터앉아 노래를 불러 높은 언덕을 오른 것이다. 그 재앙은 조간주(趙簡主)가 세리(稅吏)에게 세율의 경중을 물은 일과, 박의(薄疑)가 ‘나라 안이 배부르다’고 말한 것에 있다. 간주가 기뻐했으나 나라의 창고는 비고, 백성은 굶주렸으며 간사한 관리만 부유해졌다. 그러므로 환공(桓公)은 백성을 순시하고 관중(管仲)은 썩어나는 재물과 원망하는 여인을 살폈다. 그렇지 않으면, 연릉(延陵)에서 말을 타도 나아가지 못하여, 조보(造父)가 그 곁을 지나다가 그를 위해 우는 것과 같은 일이 있을 것이다.
[원문 181]
外儲說右下:
右經
[번역문]
이상은 경(經)이다.
說 (설)
[원문 182]
外儲說右下:
說一
[번역문]
설명 일(一).
[원문 183]
外儲說右下:
造父御四馬,馳驟周旋而恣欲於馬。恣欲於馬者,擅轡筴之制也。然馬驚於出彘,而造父不能禁制者,非轡筴之嚴不足也,威分於出彘也。王子於期為駙駕,轡筴不用而擇欲於馬,擅芻水之利也。然馬過於圃池而駙馬敗者,非芻水之利不足也,德分於圃池也。故王良、造父,天下之善御者也,然而使王良操左革而叱吒之,使造父操右革而鞭笞之,馬不能行十里,共故也。田連、成竅,天下善鼓琴者也,然而田連鼓上,成竅擫下,而不能成曲,亦共故也。夫以王良、造父之巧,共轡而御不能使馬,人主安能與其臣共權以為治?以田連、成竅之巧,共琴而不能成曲,人主又安能與其臣共勢以成功乎?
[번역문]
조보(造父)가 네 필의 말을 몰 때, 달리고 돌며 말에게 마음대로 하였으니, 말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삐와 채찍의 통제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이 튀어나온 돼지에 놀라 조보가 금지하고 제어할 수 없었던 것은, 고삐와 채찍의 위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위엄이 튀어나온 돼지에게 나뉘었기 때문이다. 왕자 어기(於期)가 부마(駙馬)를 몰 때, 고삐와 채찍을 쓰지 않고도 말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꼴과 물의 이로움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이 동산의 연못을 지나다가 부마가 실패한 것은, 꼴과 물의 이로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은덕이 동산의 연못에 나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량(王良)과 조보는 천하의 말을 잘 모는 자들이지만, 왕량에게 왼쪽 고삐를 잡고 소리치게 하고 조보에게 오른쪽 고삐를 잡고 채찍질하게 하면, 말은 십 리도 가지 못할 것이니, 권한을 함께하기[共] 때문이다. 전련(田連)과 성규(成竅)는 천하의 거문고를 잘 타는 자들이지만, 전련이 윗줄을 뜯고 성규가 아랫줄을 누르면 곡을 이룰 수 없으니, 이 또한 권한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무릇 왕량과 조보의 기교로도, 고삐를 함께 잡고 몰면 말을 부릴 수 없는데, 군주가 어찌 그 신하와 함께 권력[權]을 나누어 다스릴 수 있겠는가? 전련과 성규의 기교로도, 거문고를 함께 타면 곡을 이룰 수 없는데, 군주가 또한 어찌 그 신하와 함께 권세[勢]를 나누어 공을 이룰 수 있겠는가?
[원문 184]
外儲說右下:
一曰。造父為齊王駙駕,渴馬服成,效駕圃中,渴馬見圃池,去車走池,駕敗。王子於期為趙簡主取道爭千里之表,其始發也,彘伏溝中,王子於期齊轡筴而進之,彘突出於溝中,馬驚駕敗。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조보(造父)가 제(齊)나라 왕을 위해 부마(駙馬)를 몰 때, 목마른 말을 길들여 성공하고, 동산 안에서 시범을 보였다. 목마른 말이 동산의 연못을 보고는, 수레를 버리고 연못으로 달려가니, 마차 몰기가 실패했다. 왕자 어기(於期)가 조간주(趙簡主)를 위해 길을 잡아 천 리 밖의 목표물을 다툴 때, 처음 출발할 때 돼지가 도랑에 엎드려 있었다. 왕자 어기가 고삐와 채찍을 나란히 하고 나아가는데, 돼지가 도랑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니, 말이 놀라 마차 몰기가 실패했다.
[원문 185]
外儲說右下:
司城子罕謂宋君曰:「慶賞賜與,民之所喜也,君自行之。殺戮誅罰,民之所惡也,臣請當之。」宋君曰:「諾。」於是出威令,誅大臣,君曰「問子罕」也。於是大臣畏之,細民歸之。處期年,子罕殺宋君而奪政。故子罕為出彘以奪其君國。
[번역문]
사성(司城) 자한(子罕)이 송(宋)나라 군주에게 말하기를, “경사스러운 상과 하사는 백성이 기뻐하는 바이니, 군주께서 직접 행하십시오. 살육과 주벌은 백성이 싫어하는 바이니, 신이 청컨대 이를 맡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송나라 군주가 “알겠다.”고 하였다. 이에 위엄 있는 명령을 내리고 대신을 주살할 때, 군주가 “자한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이에 대신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평민들은 그에게 귀의하였다. 일 년이 지나, 자한이 송나라 군주를 죽이고 정권을 빼앗았다. 그러므로 자한은 튀어나온 돼지가 되어 그의 군주의 나라를 빼앗은 것이다.
[원문 186]
外儲說右下:
簡公在上位,罰重而誅嚴,厚賦斂而殺戮民。田成恆設慈愛,明寬厚。簡公以齊民為渴馬,不以恩加民,而田成恆以仁厚為圃池也。
[번역문]
간공(簡公)이 윗자리에 있으면서, 벌은 무겁고 주살은 엄격했으며, 세금을 무겁게 거두고 백성을 살육했다. 전성항(田成恆)은 자애를 베풀고, 너그러움과 후덕함을 밝혔다. 간공은 제나라 백성을 목마른 말처럼 대하며 은혜를 백성에게 더하지 않았고, 전성항은 인자하고 후덕함으로써 동산의 연못이 되었다.
[원문 187]
外儲說右下:
一曰。造父為齊王駙駕,以渴服馬,百日而服成,服成請效駕,齊王王曰:「效駕於圃中。」造父驅車入圃,馬見圃池而走,造父不能禁。造父以渴服馬久矣,今馬見池,駻而走,雖造父不能治。今簡公之以法禁其眾久矣,而田成恆利之,是田成恆傾圃池而示渴民也。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조보(造父)가 제(齊)나라 왕을 위해 부마(駙馬)를 몰 때, 목마름으로 말을 길들여 백일 만에 길들이기를 마쳤다. 길들이기를 마치고 시범을 보이기를 청하자, 제나라 왕이 말하기를, “동산 안에서 시범을 보여라.”고 하였다. 조보가 수레를 몰아 동산으로 들어가자, 말이 동산의 연못을 보고 달려가니, 조보가 금지할 수 없었다. 조보가 목마름으로 말을 길들인 지 오래되었으나, 지금 말이 연못을 보고 사납게 달려가니, 비록 조보라도 다스릴 수 없었다. 지금 간공(簡公)이 법으로써 그 무리를 금한 지 오래되었는데, 전성항(田成恆)이 그들을 이롭게 하니, 이는 전성항이 동산의 연못을 기울여 목마른 백성에게 보여주는 것과 같다.
[원문 188]
外儲說右下:
一曰。王子於期為宋君為千里之逐。已駕,察手吻文。且發矣,驅而前之,輪中繩引而卻之,馬掩跡。拊而發之,彘逸出於竇中,馬退而卻,筴不能進前也,馬駻而走,轡不能正也。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왕자 어기(於期)가 송(宋)나라 군주를 위해 천 리를 달리는 경주를 하였다. 이미 멍에를 메고, 손과 입의 무늬를 살폈다. 장차 출발하려 할 때, 몰아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바퀴에 묶은 줄을 당겨 뒤로 물러나게 하니, 말이 발자국을 덮었다. 어루만져 출발시키는데, 돼지가 구멍에서 뛰쳐나오니, 말이 물러나고 뒷걸음질 쳐, 채찍으로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었고, 말이 사납게 달려 고삐로도 바로잡을 수 없었다.
[원문 189]
外儲說右下:
一曰。司城子罕謂宋君曰:「慶賞賜予者,民之所好也,君自行之。誅罰殺戮者,民之所惡也,臣請當之。」於是戮細民而誅大臣,君曰「與子罕議之」。居期年,民知殺生之命制於子罕也,故一國歸焉。故子罕劫宋君而奪其政,法不能禁也。故曰子罕為出彘,而田成常為圃池也。令王良、造父共車,人操一邊轡而入門閭,駕必敗而道不至也。令田連、成竅共琴,人撫一絃而揮,則音必敗曲不遂矣。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사성(司城) 자한(子罕)이 송(宋)나라 군주에게 말하기를, “경사스러운 상과 하사는 백성이 좋아하는 바이니, 군주께서 직접 행하십시오. 주벌과 살육은 백성이 싫어하는 바이니, 신이 청컨대 이를 맡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평민을 죽이고 대신을 주살할 때, 군주가 “자한과 상의하라.”고 하였다. 일 년이 지나, 백성들은 살리고 죽이는 명령이 자한에게서 제어됨을 알았으므로, 온 나라가 그에게 귀의하였다. 그러므로 자한이 송나라 군주를 위협하고 그 정권을 빼앗았으나, 법으로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자한은 튀어나온 돼지가 되었고, 전성상(田成常)은 동산의 연못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왕량(王良)과 조보(造父)에게 함께 수레를 몰게 하여, 각자 한쪽 고삐를 잡고 마을 문으로 들어가게 하면, 마차 몰기는 반드시 실패하고 목적지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전련(田連)과 성규(成竅)에게 함께 거문고를 타게 하여, 각자 한 줄씩 맡아 연주하게 하면, 음은 반드시 깨지고 곡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원문 190]
外儲說右下:
說二
[번역문]
설명 이(二).
[원문 191]
外儲說右下:
秦昭王有病,百姓里買牛而家為王禱。公孫述出見之,入賀王曰:「百姓乃皆里買牛為王禱。」王使人問之,果有之。王曰:「訾之人二甲。夫非令而擅禱,是愛寡人也。夫愛寡人,寡人亦且改法而心與之相循者,是法不立,法不立,亂亡之道也。不如人罰二甲而復與為治。」
[번역문]
진(秦) 소왕(昭王)이 병이 들자, 백성들이 마을마다 소를 사서 집집마다 왕을 위해 기도했다. 공손술(公孫述)이 나가서 이를 보고, 들어와 왕에게 축하하며 말하기를, “백성들이 이에 모두 마을마다 소를 사서 왕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물어보니, 과연 그런 일이 있었다. 왕이 말하기를, “그 사람들에게 갑옷 두 벌씩을 벌금으로 매겨라. 무릇 명령 없이 제멋대로 기도하는 것은, 과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무릇 과인을 사랑한다고 하여, 과인 또한 장차 법을 바꾸고 마음으로 그들과 서로 따른다면, 이는 법이 서지 않는 것이고, 법이 서지 않는 것은 혼란과 멸망의 길이니, 사람들에게 갑옷 두 벌을 벌하고 다시 다스리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원문 192]
外儲說右下:
一曰。秦襄王病,百姓為之禱,病愈,殺牛塞禱。郎中閻遏、公孫衍出見之曰:「非社臘之時也,奚自殺牛而祠社?」怪而問之。百姓曰:「人主病,為之禱,今病愈,殺牛塞禱。」閻遏、公孫衍說,見王,拜賀曰:「過堯、舜矣。」王驚曰:「何謂也?」對曰:「堯、舜,其民未至為之禱也,今王病,而民以牛禱,病愈,殺牛塞禱,故臣竊以王為過堯、舜也。」王因使人問之何里為之,訾其里正與伍老屯二甲。閻遏、公孫衍媿不敢言。居數月,王飲酒酣樂,閻遏、公孫衍謂王曰:「前時臣竊以王為過堯、舜,非直敢諛也。堯、舜病,且其民未至為之禱也。今王病而民以牛禱,病愈,殺牛塞禱。今乃訾其里正與伍老屯二甲,臣竊怪之。」王曰:「子何故不知於此。彼民之所以為我用者,非以吾愛之為我用者也,以吾勢之為我用者也。吾釋勢與民相收,若是,吾適不愛,而民因不為我用也,故遂絕愛道也。」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진(秦) 양왕(襄王)¹⁾이 병이 들자 백성들이 그를 위해 기도했고, 병이 낫자 소를 잡아 보답 기도를 올렸다. 낭중(郎中) 염알(閻遏)과 공손연(公孫衍)이 나가서 이를 보고 말하기를, “사제(社祭)나 납제(臘祭)의 때가 아닌데, 어찌하여 스스로 소를 잡아 사직에 제사를 지내는가?” 하고는, 이상히 여겨 물었다. 백성들이 말하기를, “군주께서 병이 드셔서 그를 위해 기도했고, 지금 병이 나으셔서 소를 잡아 보답 기도를 올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염알과 공손연이 기뻐하며 왕을 뵙고, 절하며 축하하여 말하기를, “요(堯)·순(舜)을 넘으셨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놀라 “무슨 말인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요·순 임금 때에도 그 백성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지금 왕께서 병이 드시자 백성들이 소를 바쳐 기도하고, 병이 나으시자 소를 잡아 보답 기도를 올리니, 그러므로 신들은 남몰래 왕께서 요·순을 넘으셨다고 여깁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에 사람을 시켜 어느 마을에서 그랬는지 묻게 하고, 그 마을의 이정(里正)과 오로(伍老)에게 갑옷 두 벌씩을 벌금으로 부과했다. 염알과 공손연이 부끄러워 감히 말하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나, 왕이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즐거워하자, 염알과 공손연이 왕에게 말하기를, “지난번 신들이 남몰래 왕께서 요·순을 넘으셨다고 한 것은, 감히 아첨하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순 임금이 병이 드셨어도 그 백성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지금 왕께서 병이 드시자 백성들이 소를 바쳐 기도하고, 병이 나으시자 소를 잡아 보답 기도를 올렸습니다. 지금 이에 그 마을의 이정과 오로에게 갑옷 두 벌씩을 벌금으로 부과하시니, 신들은 남몰래 이를 이상하게 여깁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를 알지 못하는가. 저 백성들이 나를 위해 쓰이는 까닭은,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권세[勢] 때문에 나를 위해 쓰이는 것이다. 내가 권세를 버리고 백성들과 서로 (은혜로) 거두려 한다면, 이와 같으면 내가 마침 사랑하지 않을 때 백성들은 이로 인해 나를 위해 쓰이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마침내 사랑의 도를 끊어버린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양왕(襄王): 앞선 이야기의 소왕(昭王)과 동일 인물로 보인다. 텍스트에 따라 왕의 칭호가 다르게 기록된 경우이다.
[원문 193]
外儲說右下:
秦大饑,應侯請曰:「五苑之草著、蔬菜、橡果、棗栗,足以活民,請發之。」昭襄王曰:「吾秦法,使民有功而受賞,有罪而受誅。今發五苑之蔬草者,使民有功與無功俱賞也。夫使民有功與無功俱賞者,此亂之道也。夫發五苑而亂,不如棄棗蔬而治。」一曰。「今發五苑之蓏蔬棗栗足以活民,是用民有功與無功爭取也。夫生而亂,不如死而治,大夫其釋之。」
[번역문]
진(秦)나라에 큰 흉년이 들자, 응후(應侯)¹⁾가 청하여 말하기를, “다섯 동산[五苑]의 풀, 채소, 상수리, 대추, 밤이 족히 백성을 살릴 수 있으니, 청컨대 그것을 푸십시오.”라고 하였다. 소양왕(昭襄王)이 말하기를, “우리 진나라의 법은, 백성으로 하여금 공이 있으면 상을 받고, 죄가 있으면 벌을 받게 하는 것이다. 지금 다섯 동산의 채소와 풀을 푸는 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공이 있는 자와 공이 없는 자가 함께 상을 받게 하는 것이다. 무릇 백성으로 하여금 공이 있는 자와 공이 없는 자가 함께 상을 받게 하는 것은, 이는 혼란의 길이다. 무릇 다섯 동산을 풀어 혼란스러워지느니, 대추와 채소를 버리고 다스려지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지금 다섯 동산의 과일, 채소, 대추, 밤을 풀면 족히 백성을 살릴 수 있으나, 이는 백성으로 하여금 공이 있는 자와 공이 없는 자가 다투어 취하게 하는 것이다. 무릇 살아서 혼란스러워지느니, 죽어서 다스려지는 것만 못하니, 대부는 그만두시오.”라고도 한다.
[주석]
1) 응후(應侯): 진(秦)나라의 재상 범수(范雎)를 가리킨다.
[원문 194]
外儲說右下:
田鮪教其子田章曰:「欲利而身,先利而君;欲富而家,先富而國。」
[번역문]
전유(田鮪)가 그의 아들 전장(田章)을 가르쳐 말하기를, “네 몸을 이롭게 하고자 하면, 먼저 네 군주를 이롭게 하라. 네 집안을 부유하게 하고자 하면, 먼저 네 나라를 부유하게 하라.”고 하였다.
[원문 195]
外儲說右下:
一曰。田鮪教其子田章曰:「主賣官爵,臣賣智力,故自恃無恃人。」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전유(田鮪)가 그의 아들 전장(田章)을 가르쳐 말하기를, “군주는 관직과 작위를 팔고, 신하는 지혜와 힘을 파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믿고 남을 믿지 말라.”고 하였다.
[원문 196]
外儲說右下:
公儀休相魯而嗜魚,一國盡爭買魚而獻之,公儀子不受,其弟諫曰:「夫子嗜魚而不受者何也?」對曰:「夫唯嗜魚,故不受也。夫即受魚,必有下人之色,有下人之色,將枉於法,枉於法則免於相,雖嗜魚,此不必能自給致我魚,我又不能自給魚。即無受魚而不免於相,雖嗜魚,我能長自給魚。」此明夫恃人不如自恃也,明於人之為己者不如己之自為也。
[번역문]
공의휴(公儀休)가 노(魯)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물고기를 즐겨 먹자, 온 나라가 모두 다투어 물고기를 사서 그에게 바쳤다. 공의휴가 받지 않자, 그의 동생이 간언하여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물고기를 즐기시면서 받지 않으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공의휴가 대답하기를, “무릇 오직 물고기를 즐기기 때문에, 그러므로 받지 않는 것이다. 무릇 만약 물고기를 받으면, 반드시 남에게 자신을 낮추는 기색이 있게 되고, 남에게 자신을 낮추는 기색이 있으면, 장차 법을 굽히게 될 것이며, 법을 굽히게 되면 재상직에서 면직될 것이다. 비록 물고기를 즐기더라도, (면직되면) 이들은 반드시 나에게 물고기를 가져다줄 수 없을 것이고, 나 또한 스스로 물고기를 마련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물고기를 받지 않고 재상직에서 면직되지 않는다면, 비록 물고기를 즐기더라도,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 물고기를 마련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는 무릇 남을 믿는 것이 스스로를 믿는 것만 못하며, 남이 자기를 위해 해주는 것이 자기가 스스로를 위해 하는 것만 못함을 밝힌 것이다.
[원문 197]
外儲說右下:
說三
[번역문]
설명 삼(三).
[원문 198]
外儲說右下:
子之相燕,貴而主斷。蘇代為齊使燕,王問之曰:「齊王亦何如主也?」對曰:「必不霸矣。」燕王曰:「何也?」對曰:「昔桓公之霸也,內事屬鮑叔,外事屬管仲,桓公被髮而御婦人,日遊於市。今齊王不信其大臣。」於是燕王因益大信子之。子之聞之,使人遺蘇代金百鎰,而聽其所使之。
[번역문]
자지(子之)가 연(燕)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지위가 존귀해져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소대(蘇代)가 제(齊)나라 사신으로 연나라에 가자, 연나라 왕이 그에게 묻기를, “제나라 왕은 또한 어떠한 군주입니까?”라고 하니, 소대가 대답하기를, “반드시 패자(霸者)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연나라 왕이 “어째서입니까?”라고 묻자, 소대가 대답하기를, “옛날 환공(桓公)이 패자가 되었을 때, 안의 일은 포숙(鮑叔)에게 맡기고 밖의 일은 관중(管仲)에게 맡겼으며, 환공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부인을 태우고 다니며 날마다 시장에서 노닐었습니다. 지금 제나라 왕은 그의 대신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연나라 왕은 이로 인해 자지를 더욱 크게 신임하게 되었다. 자지가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소대에게 금 백 일(鎰)¹⁾을 보내고, 그가 시키는 바를 들어주었다.
[주석]
1) 일(鎰): 고대의 무게 단위. 1일은 20량(兩) 또는 24량에 해당한다.
[원문 199]
外儲說右下:
一曰。蘇代為秦使燕,見無益子之,則必不得事而還,貢賜又不出,於是見燕王乃譽齊王。燕王曰:「齊王何若是之賢也!則將必王乎?」蘇代曰:「救亡不暇,安得王哉?」燕王曰:「何也?」曰:「其任所愛不均。」燕王曰:「其亡何也?」曰:「昔者齊桓公愛管仲,置以為仲父,內事理焉,外事斷焉,舉國而歸之,故一匡天下,九合諸侯。今齊任所愛不均,是以知其亡也。」燕王曰:「今吾任子之,天下未之聞也。」於是明日張朝而聽子之。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소대(蘇代)가 진(秦)나라 사신으로 연(燕)나라에 갔는데, 자지(子之)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일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며, 공물과 하사품도 또한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이에 연나라 왕을 뵙고 제(齊)나라 왕을 칭찬하였다. 연나라 왕이 말하기를, “제나라 왕이 어찌 이와 같이 현명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장차 반드시 천하의 왕이 되겠는가?”라고 하니, 소대가 말하기를, “망하는 것을 구제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어찌 천하의 왕이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연나라 왕이 “어째서인가?”라고 묻자, “그가 사랑하는 바를 임용함에 고르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연나라 왕이 “그가 망할 것이라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묻자, “옛날 제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을 아껴, 그를 중보(仲父)로 삼고, 안의 일은 그에게 다스리게 하고 밖의 일은 그에게 결단하게 하여, 온 나라를 그에게 맡겼으므로, 천하를 한 번 바로잡고 제후를 아홉 번 규합하였습니다. 지금 제나라는 사랑하는 바를 임용함에 고르지 않으니, 이 때문에 그가 망할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연나라 왕이 말하기를, “지금 내가 자지를 임용하고 있으나, 천하가 아직 이를 듣지 못했다.”라고 하고는, 이에 다음 날 조회를 열어 자지의 말을 들었다.
[원문 200]
外儲說右下:
潘壽謂燕王曰:「王不如以國讓子之。人所以謂堯賢者,以其讓天下於許由,許由必不受也,則是堯有讓許由之名而實不失天下也。今王以國讓子之,子之必不受也,則是王有讓子之之名而與堯同行也。」於是燕王因舉國而屬之,子之大重。
[번역문]
반수(潘壽)가 연(燕)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왕께서는 나라를 자지(子之)에게 양위하는 것만 못합니다. 사람들이 요(堯)임금을 현명하다고 말하는 까닭은, 그가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양위했기 때문인데, 허유는 반드시 받지 않았으니, 이는 요임금이 허유에게 양위했다는 명예는 얻고 실제로는 천하를 잃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왕께서 나라를 자지에게 양위하시면, 자지는 반드시 받지 않을 것이니, 이는 왕께서 자지에게 양위했다는 명예는 얻고 요임금과 같은 행적을 남기시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연나라 왕이 나라를 들어 그에게 맡기니, 자지의 권세가 매우 무거워졌다.
[원문 201]
外儲說右下:
一曰。潘壽,闞者。燕使人聘之。潘壽見燕王曰:「臣恐子之之如益也。」王曰:「何益哉?」對曰:「古者禹死,將傳天下於益,啟之人因相與攻益而立啟。今王信愛子之,將傳國子之,太子之人盡懷印為,子之之人無一人在朝廷者,王不幸棄群臣,則子之亦益也。」王因收吏璽自三百石以上皆效之子之,子之大重。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반수(潘壽)는 문지기였다. 연(燕)나라에서 사람을 보내 그를 초빙했다. 반수가 연나라 왕을 뵙고 말하기를, “신은 자지(子之)가 익(益)과 같이 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무슨 익이란 말인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옛날 우(禹)임금이 죽을 때, 장차 천하를 익에게 전하려 하였으나, 계(啟)의 사람들이 이로 인해 서로 함께 익을 공격하고 계를 세웠습니다. 지금 왕께서 자지를 믿고 사랑하시어, 장차 나라를 자지에게 전하려 하시나, 태자의 사람들은 모두 인장을 품고 벼슬을 하고 있고, 자지의 사람들은 조정에 한 명도 없습니다. 왕께서 불행히 여러 신하들을 버리시면(돌아가시면), 자지 또한 익과 같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에 삼백 석(石) 이상의 관리들의 인장을 거두어 모두 자지에게 바치니, 자지의 권세가 마침내 무거워졌다.
[원문 202]
外儲說右下:
夫人主之所以鏡照者,諸侯之士徒也,今諸侯之士徒皆私門之黨也。人主之所以自淺娟者,巖穴之士徒也,今巖穴之士徒皆私門之舍人也。是何也?奪褫之資在子之也。故吳章曰:「人主不佯憎愛人,佯愛人不得復憎也,佯憎人不得復愛也。」
[번-역문]
무릇 군주가 거울로 삼아 비추어보는 대상은 제후들의 선비들인데, 지금 제후들의 선비들은 모두 사사로운 가문의 무리이다. 군주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는 대상은 바위굴의 선비들인데, 지금 바위굴의 선비들은 모두 사사로운 가문의 사인(舍人)이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빼앗고 벗기는 자산이 자지(子之)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장(吳章)이 말하기를, “군주는 거짓으로 사람을 미워하거나 사랑해서는 안 되니, 거짓으로 사랑하면 다시 미워할 수 없게 되고, 거짓으로 미워하면 다시 사랑할 수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원문 203]
外儲說右下:
一曰。燕王欲傳國於子之也,問之潘壽,對曰:「禹愛益,而任天下於益,已而以啟人為吏。及老,而以啟為不足任天下,故傳天下於益,而勢重盡在啟也。已而啟與友黨攻益而奪之天下,是禹名傳天下於益,而實令啟自取之也。此禹之不及堯、舜明矣。今王欲傳之子之,而吏無非太子之人者也。是名傳之,而實令太子自取之也。」燕王乃收璽自三百石以上皆效之子之,子之遂重。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연(燕)나라 왕이 나라를 자지(子之)에게 전하고자 하여, 반수(潘壽)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우(禹)임금은 익(益)을 아껴 천하를 익에게 맡겼으나, 이윽고 계(啟)의 사람들을 관리로 삼았습니다. 늙어서는 계가 천하를 맡기에 부족하다고 여겨, 그러므로 천하를 익에게 전했으나, 권세는 모두 계에게 있었습니다. 이윽고 계가 친구, 무리와 함께 익을 공격하여 천하를 빼앗았으니, 이는 우임금이 명분상으로는 천하를 익에게 전했으나, 실제로는 계로 하여금 스스로 취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임금이 요(堯)·순(舜)에 미치지 못함이 명백한 점입니다. 지금 왕께서 나라를 자지에게 전하고자 하시나, 관리들은 태자의 사람이 아닌 자가 없습니다. 이는 명분상으로는 그에게 전하는 것이나, 실제로는 태자로 하여금 스스로 취하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연나라 왕이 이에 삼백 석(石) 이상의 관리들의 인장을 거두어 모두 자지에게 바치니, 자지의 권세가 마침내 무거워졌다.
[원문 204]
外儲說右下:
方吾子曰:「吾聞之古禮,行不與同服者同車,不與同族者共家,而況君人者乃借其權而外其勢乎!」
[번역문]
방오자(方吾子)가 말하기를, “내가 옛 예법에 대해 듣건대, 길을 갈 때 같은 옷을 입은 자와 같은 수레를 타지 않고, 같은 족속과 집을 함께 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사람의 군주 된 자가 이에 그 권력[權]을 빌려주고 그 권세[勢]를 밖으로 드러내겠는가!”라고 하였다.
[원문 205]
外儲說右下:
吳章謂韓宣王曰:「人主不可佯愛人,一日不可復憎;不可以佯憎人,一日不可復愛也。故佯憎佯愛之徵見,則諛者因資而毀譽之,雖有明主不能復收,而況於以誠借人也!」
[번역문]
오장(吳章)이 한(韓) 선왕(宣王)에게 말하기를, “군주는 거짓으로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 되니, 하루아침에 다시 미워할 수 없게 됩니다. 거짓으로 사람을 미워해서도 안 되니, 하루아침에 다시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짓으로 미워하고 거짓으로 사랑하는 징조가 보이면, 아첨하는 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헐뜯거나 칭찬하니, 비록 현명한 군주라도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는데, 하물며 진심으로 남에게 (권력을) 빌려주는 것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206]
外儲說右下:
趙王遊於圃中,左右以菟與虎而輟,盼然環其眼,王曰:「可惡哉,虎目也!」左右曰:「平陽君之目可惡過此。見此未有害也,見平陽君之目如此者則必死矣。」其明日,平陽君聞之,使人殺言者,而王不誅也。
[번역문]
조(趙)나라 왕이 동산 안에서 노닐 때, 측근들이 토끼와 호랑이를 보여주자 (호랑이를 보고) 멈추어, 눈을 부릅뜨고 둥글게 떴다. 왕이 말하기를, “밉살스럽구나, 호랑이 눈이여!”라고 하니, 측근이 말하기를, “평양군(平陽君)의 눈은 이보다 더 밉살스럽습니다. 이것을 보는 것은 아직 해가 없지만, 평양군의 눈이 이와 같은 것을 보면 반드시 죽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다음 날, 평양군이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말한 자를 죽였으나, 왕은 주살하지 않았다.
[원-문 207]
外儲說右下:
衛君入朝於周,周行人問其號,對曰:「諸侯辟疆。」周行人卻之曰:「諸侯不得與天子同號。」衛君乃自更曰「諸侯燬」而後內之。仲尼聞之曰:「遠哉禁偪,虛名不以借人,況實事乎!」
[번역문]
위(衛)나라 군주가 주(周)나라에 입조(入朝)하자, 주나라 행인(行人)¹⁾이 그의 칭호를 물었다. 대답하기를, “제후 벽강(辟疆)입니다.”라고 하니, 주나라 행인이 그를 물리치며 말하기를, “제후는 천자와 같은 칭호를 쓸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위나라 군주가 이에 스스로 칭호를 “제후 훼(燬)”라고 고친 뒤에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중니(仲尼)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핍박을 금하는 것이 원대하구나. 헛된 이름도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데, 하물며 실제적인 일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주석]
1) 행인(行人): 외교 및 빈객 접대를 담당하던 관직.
[원문 208]
外儲說右下:
說四
[번역문]
설명 사(四).
[원문 209]
外儲說右下:
搖木者一一攝其葉則勞而不遍,左右拊其本而葉遍搖矣。臨淵而搖木,鳥驚而高,魚恐而下。善張網者引其綱,不一一攝萬目而後得則是勞而難,引其綱而魚已囊矣。故吏者,民之本綱者也,故聖人治吏不治民。
[번역문]
나무를 흔드는 자가 하나하나 그 잎을 잡으면 수고롭기만 하고 두루 미치지 못하지만, 좌우로 그 근본을 치면 잎이 두루 흔들린다. 연못가에서 나무를 흔들면, 새는 놀라 높이 날고, 물고기는 두려워 아래로 내려간다. 그물을 잘 치는 자는 그 벼리[綱]를 당기니, 하나하나 만 개의 그물코를 잡은 뒤에야 얻는다면 이는 수고롭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 벼리를 당기면 물고기는 이미 주머니 안에 있다. 그러므로 관리란, 백성의 근본이자 벼리이니,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관리를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다.
[원문 210]
外儲說右下:
救火者,令吏挈壺甕而走火則一人之用也,操鞭箠指麾而趣使人則制萬夫。是以聖人不親細民,明主不躬小事。
[번역문]
불을 끄는 데 있어, 관리가 물병과 항아리를 들고 불로 달려가게 하면 한 사람의 쓰임일 뿐이지만, 채찍을 잡고 지휘하여 사람을 재촉하여 부리면 만 명을 제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성인(聖人)은 평민을 직접 대하지 않고, 현명한 군주는 작은 일에 몸소 나서지 않는다.
[원문 211]
外儲說右下:
造父方耨,得有子父乘車過者,馬驚而不行,其子下車牽馬,父子推車請造父助我推車,造父因收器輟而寄載之,援其子之乘,乃始檢轡持筴,未之用也而馬轡驚矣。使造父而不能御,雖盡力勞身助之推車,馬猶不肯行也。今身使佚,且寄載,有德於人者,有術而御之也。故國者君之車也,勢者君之馬也,無術以御之,身雖勞猶不免亂,有術以御之,身處佚樂之地,又致帝王之功也。
[번역문]
조보(造父)가 막 김을 매고 있는데, 어떤 부자(父子)가 수레를 타고 지나가다가 말이 놀라 나아가지 않았다. 그 아들이 수레에서 내려 말을 끌고, 아버지는 수레를 밀며 조보에게 “나를 도와 수레를 밀어주시오.”라고 청했다. 조보는 이에 농기구를 거두어 그만두고 수레에 실어놓고는, 그 아들의 자리에 올라타, 이에 비로소 고삐를 점검하고 채찍을 쥐었다. 아직 그것을 쓰기도 전에 말이 고삐에 놀랐다. 만약 조보가 말을 몰지 못하고, 비록 힘을 다하고 몸을 수고롭게 하여 그들을 도와 수레를 밀었더라도, 말은 여전히 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몸은 편안하게 하고 또한 짐까지 실었으며, 사람들에게 덕을 베푼 것은, 술(術)이 있어 그것을 몰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란 군주의 수레요, 권세[勢]란 군주의 말이다. 술(術) 없이 그것을 몰면, 몸이 비록 수고로워도 혼란을 면치 못하고, 술(術)을 가지고 그것을 몰면, 몸은 편안하고 즐거운 곳에 있으면서 또한 제왕의 공을 이룰 수 있다.
[원문 212]
外儲說右下:
椎鍛者所以平不夷也,榜檠者所以矯不直也,聖人之為法也,所以平不夷矯不直也。
[번역문]
망치질은 평평하지 않은 것을 평평하게 하는 방법이고, 교정틀[榜檠]은 곧지 않은 것을 곧게 펴는 방법이다. 성인(聖人)이 법(法)을 만드는 것은, 평평하지 않은 것을 평평하게 하고 곧지 않은 것을 곧게 펴기 위함이다.
[원문 213]
外儲說右下:
淖齒之用齊也擢閔王之筋,李兌之用趙也餓殺主父。此二君者皆不能用其椎鍛榜檠,故身死為戮而為天下笑。
[번역문]
조치(淖齒)가 제(齊)나라를 이용할 때 민왕(閔王)의 힘줄을 뽑았고, 이태(李兌)가 조(趙)나라를 이용할 때 주보(主父)를 굶겨 죽였다. 이 두 군주는 모두 자신의 망치와 교정틀을 쓰지 못했으므로, 몸은 죽어 시체가 되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원문 214]
外儲說右下:
一曰。入齊則獨聞淖齒而不聞齊王,入趙則獨聞李兌而不聞趙王。故曰:人主者不操術,則威勢輕而臣擅名。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齊)나라에 들어가면 오직 조치(淖齒)만 들리고 제나라 왕은 들리지 않으며, 조(趙)나라에 들어가면 오직 이태(李兌)만 들리고 조나라 왕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군주가 술(術)을 쥐지 않으면, 위세가 가벼워지고 신하가 명성을 독차지한다.
[원문 215]
外儲說右下:
一曰。田嬰相齊,人有說王者曰:「終歲之計,王不一以數日之間自聽之,則無以知吏之姦邪得失也。」王曰:「善。」田嬰聞之,即遽請於王而聽其計,王將聽之矣,田嬰令官具押券斗石參升之計,王自聽計,計不勝聽,罷食,後復坐,不復暮食矣。田嬰復謂曰:「群臣所終歲日夜不敢偷怠之事也,王以一夕聽之,則群臣有為勸勉矣。」王曰:「諾。」俄而王已睡矣,吏盡揄刀削其押券升石之計。王自聽之,亂乃始生。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전영(田嬰)이 제(齊)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왕을 유세하여 말하기를, “한 해의 회계를, 왕께서 며칠 사이에 한 번이라도 직접 듣지 않으시면, 관리들의 간사함과 사악함, 득실을 알 길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좋다.”고 하였다. 전영이 이 말을 듣고, 즉시 급히 왕에게 청하여 그 회계를 듣게 하였다. 왕이 장차 그것을 들으려 하자, 전영이 관리에게 명하여 증서와 말[斗石], 되[升]의 회계를 갖추게 하였다. 왕이 직접 회계를 듣는데, 회계가 너무 많아 다 들을 수 없어 식사를 중단하고, 뒤에 다시 앉았으나 저녁 식사도 다시 하지 못했다. 전영이 다시 말하기를, “여러 신하들이 한 해 내내 밤낮으로 감히 게으르지 않고 하는 일인데, 왕께서 하룻저녁이라도 그것을 들으시면, 여러 신하들이 힘써 권면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알겠다.”고 하였다. 얼마 후 왕이 이미 잠이 들자, 관리들이 모두 칼을 뽑아 그 증서와 되, 말의 회계를 깎아 없앴다. 왕이 직접 그것을 들으면서, 혼란이 이에 비로소 생겨났다.
[원문 216]
外儲說右下:
一曰。武靈王使惠文王蒞政,李兌為相,武靈王不以身躬親殺生之柄,故劫於李兌。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무령왕(武靈王)이 혜문왕(惠文王)에게 정치를 맡게 하고, 이태(李兌)가 재상이 되었는데, 무령왕이 몸소 살리고 죽이는 권한[殺生之柄]을 쥐지 않았으므로, 이태에게 위협을 당했다.
[원문 217]
外儲說右下:
說五
[번역문]
설명 오(五).
[원문 218]
外儲說右下:
茲鄭子引輦上高梁而不能支。茲鄭踞轅而歌,前者止,後者趨,輦乃上。使茲鄭無術以致人,則身雖絕力至死,輦猶不上也。今身不至勞苦而輦以上者,有術以致人之故也。
[번역문]
자정(茲鄭)이라는 사람이 수레를 끌고 높은 다리에 오르려 했으나 지탱할 수 없었다. 자정이 수레의 끌채에 걸터앉아 노래를 부르니, 앞에 있던 자는 멈추고 뒤에 있던 자는 달려와, 수레가 이에 올라갔다. 만약 자정에게 사람을 부를 술(術)이 없었다면, 몸이 비록 힘이 다해 죽더라도, 수레는 여전히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몸이 노고에 이르지 않고도 수레가 올라간 것은, 사람을 부를 술(術)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문 219]
外儲說右下:
趙簡主出稅者,吏請輕重,簡主曰:「勿輕勿重。重則利入於上,若輕則利歸於民,吏無私利而正矣。」薄疑謂趙簡主曰:「君之國中飽。」簡主欣然而喜曰:「何如焉?」對曰:「府庫空虛於上,百姓貧餓於下,然而姦吏富矣。」
[번역문]
조간주(趙簡主)가 세금을 거두는 자를 내보낼 때, 관리가 세율의 경중을 묻자, 간주가 말하기를, “가볍게도 말고 무겁게도 말라. 무거우면 이익이 위로 들어오고, 만약 가벼우면 이익이 백성에게 돌아가니, 관리가 사사로운 이익이 없어야 바르다.”라고 하였다. 박의(薄疑)가 조간주에게 말하기를, “군주의 나라 안이 배부릅니다.”라고 하였다. 간주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어떠한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위로는 나라의 창고가 텅 비고, 아래로는 백성이 가난하고 굶주렸으나, 그러나 간사한 관리들은 부유해졌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220]
外儲說右下:
齊桓公微服以巡民家,人有年老而自養者,桓公問其故,對曰:「臣有子三人,家貧,無以妻之,傭未反。」桓公歸,以告管仲,管仲曰:「畜積有腐棄之財則人飢餓,宮中有怨女則民無妻。」桓公曰:「善。」乃論宮中有婦人而嫁之,下令於民曰:「丈夫二十而室,婦人十五而嫁。」
[번역문]
제(齊) 환공(桓公)이 평복으로 갈아입고 백성의 집을 순시하는데, 늙어서도 스스로를 부양하는 자가 있었다. 환공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에게 아들 셋이 있는데, 집이 가난하여 그들을 장가보낼 길이 없어, 품팔이를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돌아와, 이를 관중(管仲)에게 알리니, 관중이 말하기를, “쌓아둔 재물이 썩어 버려지면 백성이 굶주리고, 궁중에 원망하는 여인[怨女]이 있으면 백성이 아내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좋다.” 하고는, 이에 궁중에 있는 부인들을 논하여 시집보내고, 백성에게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장부는 스무 살에 장가가고, 부인은 열다섯 살에 시집가라.”고 하였다.
[원문 221]
外儲說右下:
一曰。桓公微服而行於民間,有鹿門稷者,行年七十而無妻,桓公問管仲曰:「有民老而無妻者乎?」管仲曰:「有鹿門稷者,行年七十矣而無妻」桓公曰:「何以令之有妻?」管仲曰:「臣聞之,上有積財則民臣必匱乏於下,宮中有怨女則有老而無妻者。」桓公曰:「善。」令於宮中女子未嘗御出嫁之,乃令男子年二十而室,女年十五而嫁。則內無怨女,外無曠夫。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환공(桓公)이 평복으로 갈아입고 민간을 다니는데, 녹문직(鹿門稷)이라는 자가 나이 일흔인데도 아내가 없었다. 환공이 관중(管仲)에게 묻기를, “백성 중에 늙어서도 아내가 없는 자가 있는가?”라고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녹문직이라는 자가 있는데, 나이 일흔인데도 아내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말하기를, “어떻게 하면 그에게 아내가 있게 할 수 있는가?”라고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위에서 재물을 쌓아두면 백성과 신하는 반드시 아래에서 궁핍해지고, 궁중에 원망하는 여인[怨女]이 있으면 늙어서도 아내가 없는 자가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좋다.” 하고는, 궁중의 여자 중에 아직 총애를 받지 않은 자를 내보내 시집보내게 하고, 이에 남자 나이 스물에 장가가고 여자 나이 열다섯에 시집가게 하였다. 그러자 안으로는 원망하는 여인이 없고, 밖으로는 홀아비[曠夫]가 없었다.
[원문 222]
外儲說右下:
延陵卓子乘蒼龍挑文之乘,鉤飾在前,錯錣在後,馬欲進則鉤飾禁之,欲退則錯錣貫之,馬因旁出。造父過而為之泣涕曰:「古之治人亦然矣。夫賞所以勸之而毀存焉,罰所以禁之而譽加焉,民中立而不知所由,此亦聖人之所為泣也。」
[번-역문]
연릉(延陵)의 탁자(卓子)가 푸른 용과 같은 좋은 말에 무늬를 새긴 수레를 탔는데, 갈고리 장식이 앞에 있고 무늬 새긴 송곳이 뒤에 있었다. 말이 나아가려 하면 갈고리 장식이 그것을 막고, 물러나려 하면 무늬 새긴 송곳이 그것을 꿰뚫으니, 말이 이로 인해 옆으로 벗어났다. 조보(造父)가 지나가다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옛날에 사람을 다스리는 것도 또한 그러하였다. 무릇 상은 권장하기 위한 것인데 헐뜯음이 거기에 있고, 벌은 금지하기 위한 것인데 칭찬이 거기에 더해지니, 백성이 가운데에 서서 갈 바를 알지 못한다. 이것이 또한 성인(聖人)이 우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223]
外儲說右下:
一曰。延陵卓子乘蒼龍與翟文之乘,前則有錯飾,後則有利錣,進則引之,退則筴之,馬前不得進,後不得退,遂避而逸,因下抽刀而刎其腳。造父見之、泣,終日不食,因仰天而歎曰:「筴所以進之也,錯飾在前;引所以退之也,利錣在後。今人主以其清潔也進之,以其不適左右也退之,以其公正也譽之,以其不聽從也廢之,民懼,中立而不知所由,此聖人之所為泣也。」
[번역문]
다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연릉(延陵)의 탁자(卓子)가 푸른 용과 같은 말과 꿩 깃으로 장식한 수레를 탔는데, 앞에는 무늬 새긴 장식이 있고 뒤에는 날카로운 송곳이 있었다. 나아가게 하려면 그것을 끌어당기고, 물러나게 하려면 채찍질하니, 말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어, 마침내 피하여 달아나 버렸다. 이에 내려서 칼을 뽑아 그 다리를 베었다. 조보(造父)가 이를 보고 울며, 종일토록 먹지 않고, 이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기를, “채찍은 나아가게 하는 것인데, 무늬 새긴 장식이 앞에 있다. 끌어당기는 것은 물러나게 하는 것인데, 날카로운 송곳이 뒤에 있다. 지금 군주는 그가 청렴결백하다고 하여 등용하고, 그가 측근들에게 맞추지 않는다고 하여 물리친다. 그가 공정하다고 하여 칭찬하고, 그가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폐한다. 백성들이 두려워, 가운데에 서서 갈 바를 알지 못하니, 이것이 성인(聖人)이 우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韓非子 難一 (한비자 난일) 번역 및 주석
[원문 1]
難一:
晉文公將與楚人戰,召舅犯問之,曰:「吾將與楚人戰,彼眾我寡,為之奈何?」舅犯曰:「臣聞之,繁禮君子,不厭忠信;戰陣之閒,不厭詐偽。君其詐之而已矣。」文公辭舅犯,因召雍季而問之,曰:「我將與楚人戰,彼眾我寡,為之奈何?」雍季對曰:「焚林而田,偷取多獸,後必無獸;以詐遇民,偷取一時,後必無復。」文公曰:「善。」辭雍季,以舅犯之謀與楚人戰以敗之。歸而行爵,先雍季而後舅犯。群臣曰:「城濮之事,舅犯謀也,夫用其言而後其身可乎?」文公曰:「此非君所知也。夫舅犯言,一時之權也;雍季言,萬世之利也。」仲尼聞之,曰:「文公之霸也宜哉!既知一時之權,又知萬世之利。」
[번역문]
난일(難一):
진(晉) 문공(文公)이 장차 초(楚)나라 사람들과 싸우려 할 때, 구범(舅犯)¹⁾을 불러 그에게 묻기를, “내가 장차 초나라 사람들과 싸우려 하는데,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하였다. 구범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예의가 번잡한 군자는 충신(忠信)을 싫어하지 않고, 전쟁터에서는 속임수[詐偽]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군주께서는 그들을 속이실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문공이 구범을 물러가게 하고, 이어서 옹계(雍季)를 불러 그에게 묻기를, “내가 장차 초나라 사람들과 싸우려 하는데,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하였다. 옹계가 대답하기를, “숲을 불태워 사냥하면, 구차하게 많은 짐승을 잡을 수는 있으나 뒤에는 반드시 짐승이 없어질 것입니다. 속임수로 백성을 대하면, 구차하게 한때의 이익은 얻을 수 있으나 뒤에는 반드시 다시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문공이 “좋다.”고 하고는, 옹계를 물러가게 하고, 구범의 계책을 써서 초나라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패배시켰다. 돌아와 작위를 내릴 때, 옹계를 먼저 하고 구범을 뒤로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말하기를, “성복(城濮)의 일은 구범의 계책이었습니다. 무릇 그의 말을 쓰고 그의 몸을 뒤로하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하니, 문공이 말하기를, “이는 그대들이 알 바가 아니다. 무릇 구범의 말은 한때의 권도(權道)이고, 옹계의 말은 만세(萬世)의 이익이다.”라고 하였다. 중니(仲尼)²⁾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문공이 패자(霸者)가 된 것이 마땅하구나! 한때의 권도를 알았고, 또한 만세의 이익을 알았으니 말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1) 구범(舅犯): 진(晉) 문공(文公)의 외삼촌인 호언(狐偃). 자(字)는 자범(子犯)이다. 문공의 망명 생활을 돕고 패업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운 핵심 참모이다.
2) 중니(仲尼): 공자(孔子)의 자(字).
[원문 2]
或曰:雍季之對,不當文公之問。凡對問者,有因問小大緩急而對也,所問高大而對以卑狹,則明主弗受也。今文公問以少遇眾,而對曰「後必無復」,此非所以應也。且文公不知一時之權,又不知萬世之利。戰而勝,則國安而身定,兵強而威立,雖有後復,莫大於此,萬世之利,奚患不至?戰而不勝,則國亡兵弱,身死名息,拔拂今日之死不及,安暇待萬世之利?待萬世之利在今日之勝,今日之勝在詐於敵,詐敵,萬世之利而已。故曰:雍季之對不當文公之問。且文公又不知舅犯之言,舅犯所謂不厭詐偽者,不謂詐其民,請詐其敵也。敵者,所伐之國也,後雖無復,何傷哉?文公之所以先雍季者,以其功耶?則所以勝楚破軍者,舅犯之謀也;以其善言耶?則雍季乃道其後之無復也,此未有善言也。舅犯則以兼之矣。舅犯曰「繁禮君子,不厭忠信」者,忠、所以愛其下也,信、所以不欺其民也。夫既以愛而不欺矣,言孰善於此?然必曰出於詐偽者,軍旅之計也。舅犯前有善言,後有戰勝,故舅犯有二功而後論,雍季無一焉而先賞。「文公之霸,不亦宜乎,」仲尼不知善賞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¹⁾: 옹계(雍季)의 대답은 문공(文公)의 물음에 합당하지 않다. 무릇 물음에 대답하는 자는 물음의 크고 작음과 느리고 급함에 따라 대답해야 하는 법인데, 묻는 바가 높고 큰데도 낮고 좁은 것으로 대답하면, 현명한 군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문공은 적은 수로 많은 수를 대적하는 방법을 물었는데, ‘뒤에는 반드시 다시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으니, 이는 응대하는 방법이 아니다. 또한 문공은 한때의 권도(權道)도 알지 못하고, 만세(萬世)의 이익도 알지 못한다. 싸워서 이기면 나라가 안정되고 몸이 평안해지며, 군대는 강해지고 위엄이 서니, 비록 뒤에 다시 얻는 것이 있다 한들 이보다 큰 것이 없거늘, 만세의 이익이 어찌 이르지 않을 것을 걱정하겠는가?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나라는 망하고 군대는 약해지며, 몸은 죽고 명성은 끊어지니, 당장 오늘의 죽음을 막기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만세의 이익을 기다리겠는가? 만세의 이익을 기다리는 것은 오늘의 승리에 있고, 오늘의 승리는 적을 속이는 데 있으니, 적을 속이는 것이야말로 만세의 이익일 뿐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옹계의 대답은 문공의 물음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문공은 구범(舅犯)의 말도 알지 못했다. 구범이 말한 바 ‘속임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백성을 속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적을 속이라는 말이다. 적이란 정벌하려는 나라이니, 뒤에 비록 다시 속일 수 없게 된들, 무슨 손해가 있겠는가? 문공이 옹계를 먼저 한 까닭이, 그의 공 때문인가? 그렇다면 초나라를 이기고 군대를 격파한 것은 구범의 계책이었다. 그의 말이 훌륭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옹계는 단지 뒤에 다시 얻을 수 없음을 말했을 뿐이니, 이는 아직 훌륭한 말이라고 할 수 없다. 구범은 두 가지를 겸비했다. 구범이 ‘예의가 번잡한 군자는 충신(忠信)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충(忠)은 그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신(信)은 그 백성을 속이지 않는 방법이다. 무릇 이미 사랑하고 속이지 않았으니, 어떤 말이 이보다 훌륭하겠는가? 그러나 반드시 속임수에서 나온다고 말한 것은, 군대의 계책이기 때문이다. 구범은 앞서 훌륭한 말을 했고, 뒤에는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그러므로 구범은 두 가지 공이 있는데도 뒤에 논해졌고, 옹계는 하나도 없는데도 먼저 상을 받았다. “문공이 패자가 된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라고 한 것을 보면, 중니(仲尼)는 상을 잘 내리는 법을 알지 못한 것이다.
[주석]
1) 혹왈(或曰): ‘어떤 이가 말하기를’이라는 뜻으로, 한비자가 기존의 통념이나 다른 학파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사용하는 서술 형식이다. 여기서 ‘어떤 이’는 사실상 한비자 자신을 가리킨다.
[원문 3]
歷山之農者侵畔,舜往耕焉,期年,甽畝正。河濱之漁者爭坻,舜往漁焉,期年,而讓長。東夷之陶者器苦窳,舜往陶焉,期年而器牢。仲尼歎曰:「耕、漁與陶,非舜官也,而舜往為之者,所以救敗也。舜其信仁乎!乃躬藉處苦而民從之,故曰:聖人之德化乎!」
[번역문]
역산(歷山)의 농부들이 밭두둑을 침범하자, 순(舜)이 가서 밭을 가니 일 년 만에 밭두둑이 바로잡혔다. 황하 가의 어부들이 물가의 좋은 자리를 다투어 차지하자, 순이 가서 고기를 잡으니 일 년 만에 어른에게 양보하게 되었다. 동이(東夷)의 도공들이 만든 그릇이 쉽게 깨지자, 순이 가서 그릇을 만드니 일 년 만에 그릇이 단단해졌다. 중니(仲尼)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밭 갈고, 고기 잡고, 그릇 만드는 것은 순의 관직이 아니었으나, 순이 가서 그것을 한 까닭은 폐단을 구제하기 위함이었다. 순은 참으로 인(仁)하구나! 이에 몸소 힘든 곳에 처하자 백성들이 그를 따랐으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성인의 덕이 교화하는구나!’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4]
或問儒者曰:「方此時也,堯安在?」其人曰:「堯為天子。」「然則仲尼之聖堯奈何?聖人明察在上位,將使天下無姦也。今耕漁不爭,陶器不窳,舜又何德而化?舜之救敗也,則是堯有失也;賢舜則去堯之明察,聖堯則去舜之德化;不可兩得也。楚人有鬻楯與矛者,譽之曰:『吾楯之堅,莫能陷也。』又譽其矛曰:『吾矛之利,於物無不陷也。』或曰:『以子之矛陷子之楯,何如?』其人弗能應也。夫不可陷之楯與無不陷之矛,不可同世而立。今堯、舜之不可兩譽,矛楯之說也。且舜救敗,期年已一過,三年已三過,舜有盡,壽有盡,天下過無已者,以有盡逐無已,所止者寡矣。賞罰使天下必行之,令曰:『中程者賞,弗中程者誅。』令朝至暮變,暮至朝變,十日而海內畢矣,奚待期年?舜猶不以此說堯令從己,乃躬親,不亦無術乎?且夫以身為苦而後化民者,堯、舜之所難也;處勢而驕下者,庸主之所易也。將治天下,釋庸主之所易,道堯、舜之所難,未可與為政也。」
[번역문]
어떤 이가 유학자에게 묻기를, “바야흐로 이때에, 요(堯)임금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요임금은 천자(天子)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중니(仲尼)가 요임금을 성인이라 한 것은 어찌된 것인가? 성인이 밝게 살피며 윗자리에 있으면, 장차 천하에 간사함이 없게 할 것이다. 지금 밭 갈고 고기 잡는 일에 다툼이 없고, 도기가 깨지지 않게 되었으니, 순(舜)이 또한 무슨 덕으로 교화했단 말인가? 순이 폐단을 구제했다면, 이는 곧 요임금에게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순을 현명하다고 하면 요임금의 밝은 살핌을 버리는 것이고, 요임금을 성인이라 하면 순의 덕으로 교화했다는 것을 버리는 것이니,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는 없다. 초(楚)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창을 파는 자가 있었는데, 그것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내 방패의 견고함은, 어떤 것도 뚫을 수 없다.’고 하고, 또 그 창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내 창의 날카로움은, 어떤 물건이든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그대의 창으로 그대의 방패를 뚫으면, 어떠한가?’라고 하니, 그 사람이 능히 대답하지 못했다. 무릇 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는 창은, 같은 세상에 함께 설 수 없다. 지금 요임금과 순임금을 함께 칭찬할 수 없는 것은, 창과 방패의 이야기[矛盾之說]¹⁾와 같다. 또한 순이 폐단을 구제하는데, 일 년에 겨우 한 가지 잘못을 바로잡았고, 삼 년에 겨우 세 가지 잘못을 바로잡았다. 순의 능력에는 끝이 있고 수명에도 끝이 있는데, 천하의 잘못은 끝이 없으니,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쫓으면,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은 적을 것이다. 상벌을 천하에 반드시 행하게 하여, 명령하기를, ‘기준에 맞는 자는 상을 주고, 기준에 맞지 않는 자는 벌을 준다.’고 하라. 명령이 아침에 내려져 저녁에 바뀌고, 저녁에 내려져 아침에 바뀌더라도, 열흘이면 온 세상이 다 바로잡힐 터인데, 어찌 일 년을 기다리겠는가? 순이 오히려 이것으로 요임금을 설득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지 않고, 이에 몸소 행했으니, 또한 술(術)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무릇 몸소 고생한 뒤에야 백성을 교화하는 것은, 요임금과 순임금도 어려워한 바이고, 권세[勢]의 자리에 처하여 아랫사람에게 교만하게 구는 것은, 평범한 군주도 쉽게 하는 바이다. 장차 천하를 다스리면서, 평범한 군주도 쉽게 하는 바를 버리고, 요임금과 순임금도 어려워한 바를 행하려 하니, 더불어 정치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주석]
1) 모순지설(矛盾之說): ‘창과 방패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오늘날 사용하는 ‘모순(矛盾)’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된 고사이다. 양립할 수 없는 두 주장을 동시에 내세우는 논리적 오류를 가리킨다.
[원문 5]
管仲有病,桓公往問之,曰:「仲父病,不幸卒於大命,將奚以告寡人?」管仲曰:「微君言,臣故將謁之。願君去豎刁,除易牙,遠衛公子開方。易牙為君主味,君惟人肉未嘗,易牙烝其子首而進之;夫人情莫不愛其子,今弗愛其子,安能愛君?君妒而好內,豎刁自宮以治內,人情莫不愛其身,身且不愛,安能愛君?聞開方事君十五年,齊、衛之間不容數日行,棄其母久宦不歸,其母不愛,安能愛君?臣聞之:『矜偽不長,蓋虛不久。』願君去此三子者也。」管仲卒死,桓公弗行,及桓公死,蟲出尸不葬。
[번역문]
관중(管仲)이 병이 들자, 환공(桓公)이 가서 그에게 묻기를, “중보(仲父)께서 병이 드셨는데, 불행히 돌아가시게 되면, 장차 과인에게 무엇을 알려주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관중이 말하기를, “군주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더라도, 신이 본래 장차 아뢰려 하였습니다. 원컨대 군주께서는 수조(豎刁)를 버리시고, 역아(易牙)를 제거하시며, 위(衛)나라 공자 개방(開方)을 멀리하십시오. 역아는 군주를 위해 맛을 주관하는데, 군주께서 오직 사람 고기만 맛보지 못하셨다 하자, 역아가 자기 아들의 머리를 쪄서 바쳤습니다. 무릇 사람의 정(情)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지금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니, 어찌 군주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군주께서 질투가 심하고 여색을 좋아하시자, 수조는 스스로 거세[自宮]하여 후궁을 다스렸습니다. 사람의 정은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자기 몸조차 사랑하지 않으니, 어찌 군주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듣건대 개방은 군주를 섬긴 지 십오 년인데, 제(齊)나라와 위(衛)나라 사이는 며칠 걸리지 않는 거리임에도, 자기 어머니를 버리고 오랫동안 벼슬하며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으니, 어찌 군주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꾸미고 거짓된 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덮고 헛된 것은 길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원컨대 군주께서는 이 세 사람을 버리십시오.”라고 하였다. 관중이 마침내 죽자, 환공이 이를 행하지 않았고, 환공이 죽자 시체에서 벌레가 나오고 장사 지내지 못했다.
[원문 6]
或曰:管仲所以見告桓公者,非有度者之言也。所以去豎刁、易牙者,以不愛其身,適君之欲也。曰「不愛其身,安能愛君」,然則臣有盡死力以為其主者,管仲將弗用也。曰「不愛其死力,安能愛君」,是君去忠臣也。且以不愛其身,度其不愛其君,是將以管仲之不能死公子糾度其不死桓公也,是管仲亦在所去之域矣。明主之道不然,設民所欲以求其功,故為爵祿以勸之;設民所惡以禁其姦,故為刑罰以威之。慶賞信而刑罰必,故君舉功於臣,而姦不用於上,雖有豎刁,其奈君何?且臣盡死力以與君市,君垂爵祿以與臣市,君臣之際,非父子之親也,計數之所出也。君有道,則臣盡力而姦不生;無道,則臣上塞主明而下成私。管仲非明此度數於桓公也,使去豎刁,一豎刁又至,非絕姦之道也。且桓公所以身死蟲流出尸不葬者,是臣重也;臣重之實,擅主也。有擅主之臣,則君令不下究,臣情不上通,一人之力能隔君臣之間,使善敗不聞,禍福不通,故有不葬之患也。明主之道,一人不兼官,一官不兼事。卑賤不待尊貴而進,論,大臣不因左右而見。百官修通,群臣輻湊。有賞者君見其功,有罰者君知其罪。見知不悖於前,賞罰不弊於後,安有不葬之患?管仲非明此言於桓公也,使去三子,故曰管仲無度矣。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관중(管仲)이 환공(桓公)에게 알려준 바는, 법도(法度)를 아는 자의 말이 아니다. 수조(豎刁)와 역아(易牙)를 버리라고 한 까닭은, 그들이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고 군주의 욕망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으니, 어찌 군주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신하 중에 죽을힘을 다해 그 군주를 위하는 자가 있더라도, 관중은 장차 그를 쓰지 않을 것이다. ‘자기의 죽을힘을 사랑하지 않으니, 어찌 군주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다면, 이는 군주가 충신을 버리는 것이다. 또한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그가 자기 군주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 헤아린다면, 이는 장차 관중이 공자 규(公子糾)를 위해 죽지 못한 것으로 그가 환공을 위해 죽지 않을 것이라 헤아리는 것과 같으니, 이는 관중 또한 버려야 할 영역에 있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그렇지 않으니, 백성이 바라는 바를 설치하여 그 공을 구하고, 그러므로 작록(爵祿)을 만들어 그들을 권면한다. 백성이 싫어하는 바를 설치하여 그 간사함을 금하고, 그러므로 형벌을 만들어 그들을 위협한다. 경사와 상이 신실하고 형벌이 반드시 행해지면, 군주는 신하에게서 공을 취하고 간사함은 위에서 쓰이지 않으니, 비록 수조 같은 자가 있더라도 그가 군주를 어찌하겠는가? 또한 신하는 죽을힘을 다하여 군주와 거래하고[市], 군주는 작록을 내려 신하와 거래하니, 군신(君臣)의 관계는 부자(父子)의 친함이 아니라, 계산[計數]에서 나오는 것이다. 군주에게 도(道)가 있으면 신하는 힘을 다하고 간사함이 생기지 않으며, 도가 없으면 신하는 위로는 군주의 밝음을 막고 아래로는 사사로움을 이룬다. 관중은 이러한 법도를 환공에게 밝히지 않고, 수조를 버리게 하였으니, 한 명의 수조가 가면 또 다른 수조가 올 것이니, 간사함을 끊는 도가 아니다. 또한 환공이 몸이 죽어 벌레가 흘러나오고 시체가 장사 지내지지 못한 까닭은, 신하가 중용되었기 때문[臣重]이며, 신하가 중용된 실상은 군주를 제멋대로 한 것이다. 군주를 제멋대로 하는 신하가 있으면, 군주의 명령은 아래로 끝까지 내려가지 않고, 신하의 실정은 위로 통하지 않으며, 한 사람의 힘이 능히 군신 사이를 가로막아, 잘하고 잘못한 것이 들리지 않고 화와 복이 통하지 않게 하니, 그러므로 장사 지내지 못하는 우환이 있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한 사람이 관직을 겸하지 않고, 한 관직이 일을 겸하지 않는 것이다.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를 기다리지 않고 나아가 논하며, 대신이 측근으로 인하여 뵙지 않는다. 모든 관리가 잘 통하고, 여러 신하들이 수레바퀴 살처럼 모여든다. 상 받을 자가 있으면 군주가 그 공을 보고, 벌 받을 자가 있으면 군주가 그 죄를 안다. 보고 아는 것이 앞에서 어긋나지 않고, 상벌이 뒤에서 폐단이 없으면, 어찌 장사 지내지 못하는 우환이 있겠는가? 관중은 이러한 말을 환공에게 밝히지 않고, 세 사람을 버리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관중은 법도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원문 7]
襄子圍於晉陽中,出圍,賞有功者五人,高赫為賞首。張孟談曰:「晉陽之事,赫無大功,今為賞首何也?」襄子曰:「晉陽之事,寡人國家危,社稷殆矣。吾群臣無有不驕侮之意者,惟赫子不失君臣之禮,是以先之。」仲尼聞之曰:「善賞哉襄子!賞一人而天下為人臣者莫敢失禮矣。」
[번역문]
양자(襄子)¹⁾가 진양(晉陽)에서 포위되었다가, 포위를 벗어나 공이 있는 자 다섯 사람에게 상을 내렸는데, 고혁(高赫)을 상의 으뜸으로 삼았다. 장맹담(張孟談)이 말하기를, “진양의 일에서, 고혁은 큰 공이 없는데, 지금 상의 으뜸으로 삼은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양자가 말하기를, “진양의 일에서, 과인의 국가는 위태롭고 사직은 거의 망할 뻔했다. 내 여러 신하 중에 교만하고 업신여기는 뜻이 없는 자가 없었는데, 오직 고혁만이 군신의 예를 잃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그를 먼저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니(仲尼)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훌륭한 상이로구나, 양자여! 한 사람에게 상을 주어 천하의 신하 된 자들이 감히 예를 잃지 않게 하였으니 말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양자(襄子): 조(趙)나라의 실권자였던 조양자(趙襄子)를 가리킨다.
[원문 8]
或曰:仲尼不知善賞矣。夫善賞罰者,百官不敢侵職,群臣不敢失禮。上設其法,而下無姦詐之心,如此,則可謂善賞罰矣。使襄子於晉陽也,令不行,禁不止,是襄子無國,晉陽無君也,尚誰與守哉?今襄子於晉陽也,知氏灌之,臼灶生龜,而民無反心,是君臣親也;襄子有君臣親之澤,操令行禁止之法,而猶有驕侮之臣,是襄子失罰也。為人臣者,乘事而有功則賞。今赫僅不驕侮而襄子賞之,是失賞也。明主賞不加於無功,罰不加於無罪。今襄子不誅驕侮之臣,而賞無功之赫,安在襄子之善賞也?故曰仲尼不知善賞。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중니(仲尼)는 훌륭한 상을 알지 못한다. 무릇 상벌을 잘하는 자는, 모든 관리가 감히 직분을 침범하지 못하고, 여러 신하들이 감히 예를 잃지 못한다. 위에서 그 법을 설치하여 아래에 간사하고 속이는 마음이 없게 되면, 이와 같으면 훌륭한 상벌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양자(襄子)가 진양(晉陽)에 있을 때, 명령이 행해지지 않고 금령이 그치지 않았다면, 이는 양자에게 나라가 없고 진양에 군주가 없는 것이니, 또한 누구와 함께 지켰겠는가? 지금 양자가 진양에 있을 때, 지씨(知氏)가 물로 공격하여 절구와 부뚜막에서 거북이가 생겨났는데도 백성들이 배반할 마음이 없었으니, 이는 군신이 친했기 때문이다. 양자에게 군신이 친한 은택이 있고, 명령이 행해지고 금령이 그치는 법을 쥐고 있었는데도, 오히려 교만하고 업신여기는 신하가 있었으니, 이는 양자가 벌을 잘못 내린 것이다. 신하 된 자는, 일을 틈타 공이 있으면 상을 받는다. 지금 고혁(高赫)은 겨우 교만하고 업신여기지 않았을 뿐인데 양자가 그에게 상을 주었으니, 이는 상을 잘못 내린 것이다. 현명한 군주는 공이 없는 자에게 상을 더하지 않고, 죄가 없는 자에게 벌을 더하지 않는다. 지금 양자는 교만하고 업신여기는 신하를 주살하지 않고, 공이 없는 고혁에게 상을 주었으니, 어찌 양자가 상을 잘 내렸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중니는 훌륭한 상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원문 9]
晉平公與群臣飲,飲酣,乃喟然歎曰:「莫樂為人君!惟其言而莫之違。」師曠侍坐於前,援琴撞之,公披衽而避,琴壞於壁。公曰:「太師誰撞?」師曠曰:「今者有小人言於側者,故撞之。」公曰:「寡人也。」師曠曰:「啞!是非君人者之言也。」左右請除之。公曰:「釋之,以為寡人戒。」
[번역문]
진(晉) 평공(平公)이 여러 신하들과 술을 마시다가, 술이 거나해지자 이에 탄식하며 말하기를, “사람의 군주가 되는 것만큼 즐거운 것이 없구나! 오직 그 말을 하면 아무도 그것을 어기지 않으니 말이다.”라고 하였다. 사광(師曠)이 앞에서 모시고 앉아 있다가, 거문고를 들어 그를 치려 하니, 평공이 옷자락을 헤치고 피하여 거문고가 벽에 부딪혀 부서졌다. 평공이 말하기를, “태사(太師)는 누구를 치려 하였소?”라고 하니, 사광이 말하기를, “지금 곁에서 소인(小人)의 말을 하는 자가 있기에, 그러므로 그를 치려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평공이 말하기를, “과인이었소.”라고 하니, 사광이 말하기를, “아! 이는 사람의 군주 된 자의 말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측근들이 그를 처벌하기를 청하자, 평공이 말하기를, “놓아주어라. 과인의 경계로 삼겠다.”라고 하였다.
[원문 10]
或曰:平公失君道,師曠失臣禮。夫非其行而誅其身,君之於臣也;非其行則陳其言,善諫不聽則遠其身者,臣之於君也。今師曠非平公之行,不陳人臣之諫,而行人主之誅,舉琴而親其體,是逆上下之位,而失人臣之禮也。夫為人臣者,君有過則諫,諫不聽則輕爵祿以待之,此人臣之禮義也。今師曠非平公之過,舉琴而親其體,雖嚴父不加於子,而師曠行之於君,此大逆之術也。臣行大逆,平公喜而聽之,是失君道也。故平公之跡,不可明也,使人主過於聽而不悟其失。師曠之行亦不可明也,使姦臣襲極諫而飾弒君之道。不可謂兩明,此為兩過。故曰:平公失君道,師曠亦失臣禮矣。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평공(平公)은 군주의 도를 잃었고, 사광(師曠)은 신하의 예를 잃었다. 무릇 그 행동을 비판하고 그 몸을 주살하는 것은, 군주가 신하에게 하는 것이다. 그 행동을 비판하면 그 말을 진술하고, 훌륭한 간언을 듣지 않으면 그 몸을 멀리하는 것은, 신하가 군주에게 하는 것이다. 지금 사광은 평공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신하의 간언을 진술하지 않고, 군주의 주살을 행하여, 거문고를 들어 그 몸에 가까이 하였으니, 이는 상하의 위치를 거스르고 신하의 예를 잃은 것이다. 무릇 신하 된 자는, 군주에게 과오가 있으면 간언하고, 간언을 듣지 않으면 작록을 가벼이 여기고 그를 대하는 것이, 이것이 신하의 예의이다. 지금 사광은 평공의 과오를 비판하면서, 거문고를 들어 그 몸에 가까이 하였으니, 비록 엄한 아버지라도 아들에게 그리하지 않는데, 사광은 그것을 군주에게 행하였으니, 이는 대역(大逆)의 술수이다. 신하가 대역을 행하는데, 평공이 기뻐하며 그것을 들었으니, 이는 군주의 도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평공의 행적은, 밝다고 할 수 없으니, 군주로 하여금 듣는 데에 과오가 있게 하고 그 실수를 깨닫지 못하게 한다. 사광의 행동 또한 밝다고 할 수 없으니, 간신으로 하여금 극진한 간언을 본받아 군주를 시해하는 도를 꾸미게 한다. 두 가지 모두 밝다고 할 수 없으니, 이는 두 가지 모두 과오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평공은 군주의 도를 잃었고, 사광 또한 신하의 예를 잃었다고 하는 것이다.
[원문 11]
齊桓公時,有處士曰小臣稷,桓公三往而弗得見。桓公曰:「吾聞布衣之士,不輕爵祿,無以易萬乘之主;萬乘之主,不好仁義,亦無以下布衣之士。」於是五往乃得見之。
[번역문]
제(齊) 환공(桓公) 때에, 소신직(小臣稷)이라는 은거 선비가 있었는데, 환공이 세 번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평민 선비는 작록(爵祿)을 가벼이 여기지 않아야 만승지국(萬乘之國)의 군주를 바꿀 수 없고, 만승지국의 군주는 인의(仁義)를 좋아하지 않으면 또한 평민 선비에게 자신을 낮출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에 다섯 번 찾아가서야 마침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원문 12]
或曰:桓公不知仁義。夫仁義者,憂天下之害,趨一國之患,不避卑辱謂之仁義。故伊尹以中國為亂,道為宰于湯;百里奚以秦為亂,道為虜于穆公;皆憂天下之害,趨一國之患,不辭卑辱,故謂之仁義。今桓公以萬乘之勢,下匹夫之士,將欲憂齊國,而小臣不行,見小臣之忘民也,忘民不可謂仁義。仁義者,不失人臣之禮,不敗君臣之位者也。是故四封之內,執會而朝名曰臣,臣吏分職受事名曰萌。今小臣在民萌之眾,而逆君上之欲,故不可謂仁義。仁義不在焉,桓公又從而禮之。使小臣有智能而遁桓公,是隱也,宜刑;若無智能而虛驕矜桓公,是誣也,宜戮;小臣之行,非刑則戮。桓公不能領臣主之理,而禮刑戮之人,是桓公以輕上侮君之俗教於齊國也,非所以為治也。故曰:桓公不知仁義。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환공(桓公)은 인의(仁義)를 알지 못한다. 무릇 인의란, 천하의 해를 걱정하고 한 나라의 우환에 달려가며, 비천함과 치욕을 피하지 않는 것을 일러 인의라 한다. 그러므로 이윤(伊尹)은 중원(中國)이 어지러움을 보고, 길을 나서 탕(湯)임금의 요리사가 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진(秦)나라가 어지러움을 보고, 길을 나서 목공(穆公)의 포로가 되었으니, 모두 천하의 해를 걱정하고 한 나라의 우환에 달려가며, 비천함과 치욕을 마다하지 않았으므로, 인의라 일컫는 것이다. 지금 환공이 만승(萬乘)의 권세로 일개 평민 선비에게 자신을 낮추어, 장차 제(齊)나라를 걱정하고자 하는데, 소신(小臣)이 행하지 않으니, 소신이 백성을 잊었음을 볼 수 있다. 백성을 잊는 것은 인의라 할 수 없다. 인의란, 신하의 예를 잃지 않고, 군신의 위치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사방 국경 안에서, 회계 장부를 가지고 조회하는 자를 신(臣)이라 하고, 신하와 관리로서 직분을 나누어 일을 받는 자를 맹(萌)¹⁾이라 한다. 지금 소신은 백성[民萌]의 무리 속에 있으면서, 군주의 뜻을 거스르니, 그러므로 인의라 할 수 없다. 인의가 없는데도, 환공이 또한 그를 따라 예우하였다. 만약 소신에게 지혜와 능력이 있으면서 환공을 피했다면, 이는 숨는 것이니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한다. 만약 지혜와 능력이 없으면서 헛되이 교만하게 환공에게 뽐냈다면, 이는 속이는 것이니 마땅히 죽임을 당해야 한다. 소신의 행동은, 형벌이 아니면 죽임이다. 환공은 신하와 군주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형벌이나 죽임을 당해야 할 사람을 예우했으니, 이는 환공이 윗사람을 가벼이 여기고 군주를 업신여기는 풍속을 제나라에 가르친 것이니, 다스리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환공은 인의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주석]
1) 맹(萌): 싹. 여기서는 백성을 의미하는 ‘민맹(民萌)’의 줄임말로 쓰였다.
[원문 13]
靡笄之役,韓獻子將斬人,郤獻子聞之,駕往救之,比至,則已斬之矣。郤子因曰:「胡不以徇?」其僕曰:「曩不將救之乎?」郤子曰:「吾敢不分謗乎?」
[번역문]
미계(靡笄)의 전투에서, 한헌자(韓獻子)가 장차 어떤 사람을 베려 하자, 극헌자(郤獻子)가 이 소식을 듣고 수레를 몰아 그를 구하러 갔다.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그를 벤 뒤였다. 극자가 이에 말하기를, “어찌하여 조리돌리지[徇]¹⁾ 않소?”라고 하였다. 그의 하인이 말하기를, “아까는 장차 그를 구하려 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하니, 극자가 말하기를, “내가 감히 비방을 나누어 받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주석]
1) 순(徇): 죄인의 목을 베어 여러 사람에게 돌려 보임으로써 경계로 삼는 일.
[원문 14]
或曰:郤子言不可不察也,非分謗也。韓子之所斬也,若罪人則不可救,救罪人,法之所以敗也,法敗則國亂;若非罪人,則勸之以徇,勸之以徇,是重不辜也,重不辜,民所以起怨者也,民怨則國危。郤子之言,非危則亂,不可不察也。且韓子之所斬若罪人,郤子奚分焉?斬若非罪人,則已斬之矣,而郤子乃至,是韓子之謗已成,而郤子且後至也。夫郤子曰「以徇」,不足以分斬人之謗,而又生徇之謗。是子言分謗也?昔者紂為炮烙,崇侯、惡來又曰斬涉者之脛也,奚分於紂之謗?且民之望於上也甚矣,韓子弗得,且望郤子之得之也;今郤子俱弗得,則民絕望於上矣,故曰:郤子之言非分謗也,益謗也。且郤子之往救罪也,以韓子為非也,不道其所以為非,而勸之「以徇」,是使韓子不知其過也。夫下使民望絕於上,又使韓子不知其失,吾未得郤子之所以分謗者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극자(郤子)의 말은 살피지 않을 수 없으니, 비방을 나눈 것이 아니다. 한자(韓子)가 벤 자가, 만약 죄인이라면 구해서는 안 되니, 죄인을 구하는 것은 법이 무너지는 까닭이고, 법이 무너지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만약 죄인이 아니라면, 그에게 조리돌리라고 권한 것인데, 조리돌리라고 권하는 것은 죄 없는 자에게 형벌을 더하는 것이다. 죄 없는 자에게 형벌을 더하는 것은, 백성이 원망을 일으키는 까닭이고, 백성이 원망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극자의 말은,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면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자가 벤 자가 만약 죄인이라면, 극자가 어찌 비방을 나누겠는가? 벤 자가 만약 죄인이 아니라면, 이미 그를 벤 뒤에 극자가 이에 이르렀으니, 이는 한자의 비방이 이미 이루어졌고 극자는 또한 뒤늦게 도착한 것이다. 무릇 극자가 ‘조리돌리라’고 말한 것은, 사람을 벤 비방을 나누기에 부족하고, 또한 조리돌린다는 비방을 낳는다. 이것이 그대가 말하는 비방을 나눈다는 것인가? 옛날 주왕(紂王)이 포락(炮烙)의 형벌을 만들자, 숭후(崇侯)와 오래(惡來)가 또한 ‘물을 건너는 자의 정강이를 베자’고 하였는데, 어찌 주왕의 비방을 나누었다고 하겠는가? 또한 백성이 윗사람에게 바라는 바가 심한데, 한자가 그것을 들어주지 못하자, 또한 극자가 그것을 들어주기를 바랐다. 지금 극자마저 모두 들어주지 못했으니, 백성은 윗사람에게 희망을 끊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극자의 말은 비방을 나눈 것이 아니라, 비방을 더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극자가 죄인을 구하러 간 것은, 한자를 그르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가 그른 까닭을 말하지 않고, 그에게 ‘조리돌리라’고 권했으니, 이는 한자로 하여금 그 과오를 알지 못하게 한 것이다. 무릇 아래로는 백성으로 하여금 윗사람에게 희망을 끊게 하고, 또한 한자로 하여금 그 실수를 알지 못하게 하였으니, 나는 극자가 비방을 나눈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원문 15]
桓公解管仲之束縛而相之。管仲曰:「臣有寵矣,然而臣卑。」公曰:「使子立高、國之上。」管仲曰:「臣貴矣,然而臣貧。」公曰:「使子有三歸之家。」管仲曰:「臣富矣,然而臣疏。」於是立以為仲父。霄略曰:「管仲以賤為不可以治國,故請高、國之上;以貧為不可以治富,故請三歸;以疏為不可以治親,故處仲父。管仲非貪,以便治也。」
[번역문]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의 결박을 풀고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관중이 말하기를, “신은 총애를 받았으나, 그러나 신은 비천합니다.”라고 하니, 환공이 말하기를, “그대를 고씨(高氏)와 국씨(國氏)의 위에 서게 하겠다.”라고 하였다. 관중이 말하기를, “신은 귀해졌으나, 그러나 신은 가난합니다.”라고 하니, 환공이 말하기를, “그대에게 삼귀(三歸)의 집을 갖게 하겠다.”라고 하였다. 관중이 말하기를, “신은 부유해졌으나, 그러나 신은 (군주와) 멉니다.”라고 하니, 이에 그를 세워 중보(仲父)로 삼았다. 소략(霄略)이 말하기를, “관중은 비천함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고 여겨, 그러므로 고씨와 국씨의 위를 청했고, 가난함으로는 부유한 자를 다스릴 수 없다고 여겨, 그러므로 삼귀를 청했으며, 소원함으로는 친한 자를 다스릴 수 없다고 여겨, 그러므로 중보의 자리에 처한 것이다. 관중은 탐욕스러워서가 아니라, 다스림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라고 하였다.
[원문 16]
或曰:今使臧獲奉君令詔卿相,莫敢不聽,非卿相卑而臧獲尊也,主令所加,莫敢不從也。今使管仲之治,不緣桓公,是無君也,國無君不可以為治。若負桓公之威,下桓公之令,是臧獲之所以信也,奚待高、國、仲父之尊而後行哉?當世之行事都丞之下徵令者,不辟尊貴,不就卑賤。故行之而法者,雖巷伯信乎卿相;行之而非法者,雖大吏詘乎民萌。今管仲不務尊主明法,而事增寵益爵,是非管仲貪欲富貴,必闇而不知術也。故曰:管仲有失行,霄略有過譽。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지금 노비[臧獲]로 하여금 군주의 명령을 받들어 경상(卿相)에게 조서를 내리게 해도, 감히 듣지 않는 자가 없으니, 경상이 비천하고 노비가 존귀해서가 아니라, 군주의 명령이 더해진 바에는 감히 따르지 않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관중(管仲)의 다스림이 환공(桓公)을 통하지 않는다면, 이는 군주가 없는 것이니, 나라에 군주가 없으면 다스릴 수 없다. 만약 환공의 위엄에 힘입고, 환공의 명령을 내린다면, 이는 노비가 신임을 얻는 까닭인데, 어찌 고씨(高氏)와 국씨(國氏), 중보(仲父)의 존귀함을 기다린 뒤에야 행하겠는가? 당세에 일을 행하는 도승(都丞) 아래의 징세관은, 존귀한 자를 피하지 않고, 비천한 자에게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에 따라 행하면, 비록 골목의 우두머리라도 경상에게 신임을 얻고, 법에 따르지 않고 행하면, 비록 큰 관리라도 백성[民萌]에게 굴복한다. 지금 관중은 군주를 높이고 법을 밝히는 데 힘쓰지 않고, 총애를 늘리고 작위를 더하는 데 힘썼으니, 이는 관중이 부귀를 탐욕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어두워서 술(術)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관중은 행동에 실수가 있었고, 소략(霄略)은 칭찬에 과오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원문 17]
韓宣王問於樛留:「吾欲兩用公仲、公叔其可乎?」樛留對曰:「昔魏兩用樓、翟而亡西河,楚兩用昭、景而亡鄢、郢,今君兩用公仲、公叔,此必將爭事而外市,則國必憂矣。」
[번역문]
한(韓) 선왕(宣王)이 규류(樛留)에게 묻기를, “내가 공중(公仲)과 공숙(公叔)을 함께 등용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규류가 대답하기를, “옛날 위(魏)나라는 누완(樓緩)과 적황(翟璜)을 함께 등용하여 서하(西河)를 잃었고, 초(楚)나라는 소씨(昭氏)와 경씨(景氏)를 함께 등용하여 언(鄢)과 영(郢)을 잃었습니다. 지금 군주께서 공중과 공숙을 함께 등용하시면, 이들은 반드시 장차 일을 다투고 밖으로 세력을 만들 것이니, 그러면 나라는 반드시 근심거리가 생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18]
或曰:昔者齊桓公兩用管仲、鮑叔,成湯兩用伊尹、仲虺。夫兩用臣者國之憂,則是桓公不霸,成湯不王也。湣王一用淖齒而手死乎東廟,主父一用李兌,減食而死。主有術,兩用不為患;無術,兩用則爭事而外市,一則專制而劫弒。今留無術以規上,使其主去兩用一,是不有西河、鄢、郢之憂,則必有身死減食之患。是樛留未有善以知言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옛날 제(齊) 환공(桓公)은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을 함께 등용했고, 성탕(成湯)은 이윤(伊尹)과 중훼(仲虺)를 함께 등용했다. 무릇 두 신하를 함께 등용하는 것이 나라의 근심이라면, 이는 환공이 패자가 되지 못하고 성탕이 왕이 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민왕(湣王)은 조치(淖齒) 한 사람을 등용하여 동묘(東廟)에서 손수 죽임을 당했고, 주보(主父)는 이태(李兌) 한 사람을 등용하여 음식을 줄이다가 굶어 죽었다. 군주에게 술(術)이 있으면, 두 사람을 함께 등용해도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다. 술(術)이 없으면, 두 사람을 함께 등용하면 일을 다투고 밖으로 세력을 만들고, 한 사람만 등용하면 독단적으로 처리하여 위협하고 시해한다. 지금 규류(樛留)는 술(術)로써 윗사람을 바로잡지 못하고, 그의 군주로 하여금 두 사람을 버리고 한 사람만 쓰게 하였으니, 이는 서하(西河)와 언(鄢)·영(郢)의 근심이 없으면, 반드시 몸이 죽고 음식을 줄이다 죽는 우환이 있을 것이다. 이는 규류가 아직 훌륭하게 말할 줄 아는 지혜가 없는 것이다.
韓非子 難二 (한비자 난이) 번역 및 주석
[원문 1]
難二:
景公過晏子曰:「子宮小,近市,請徙子家豫章之圃。」晏子再拜而辭曰:「且嬰家貧,待市食,而朝暮趨之,不可以遠。」景公笑曰:「子家習市,識貴賤乎?」是時景公繁於刑,晏子對曰:「踴貴而屨賤。」景公曰:「何故?」對曰:「刑多也。」景公造然變色曰:「寡人其暴乎!」於是損刑五。
[번역문]
난이(難二):
경공(景公)이 안자(晏子)를 찾아가 말하기를, “그대의 집이 작고 시장에 가까우니, 청컨대 그대의 집을 예장(豫章)의 동산으로 옮겨주겠소.”라고 하였다. 안자가 두 번 절하며 사양하여 말하기를, “또한 저 영(嬰)¹⁾의 집은 가난하여, 시장에 의지하여 먹고 사는지라 아침저녁으로 달려가야 하니, 멀리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경공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집이 시장에 익숙하니, 물건 값의 귀하고 천함을 알겠구려?”라고 하였다. 이때 경공은 형벌을 번잡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안자가 대답하기를, “의족[踴]²⁾은 비싸고 신발[屨]은 쌉니다.”라고 하였다. 경공이 “무슨 까닭인가?”라고 묻자, “형벌이 많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경공이 발끈하며 얼굴색이 변하여 말하기를, “과인이 포악하단 말인가!” 하고는, 이에 형벌 다섯 가지를 줄였다.
[주석]
1) 영(嬰): 안자(晏子)의 이름.
2) 용(踴): 월형(刖刑), 즉 발뒤꿈치를 베는 형벌을 받은 사람이 신는 의족(義足).
[원문 2]
或曰:晏子之貴踴,非其誠也,欲便辭以止多刑也,此不察治之患也。夫刑當無多,不當無少,無以不當聞,而以太多說,無術之患也。敗軍之誅以千百數,猶北不止。即治亂之刑如恐不勝,而姦尚不盡。今晏子不察其當否,而以太多為說,不亦妄乎!夫惜草茅者耗禾穗,惠盜賊者傷良民。今緩刑罰,行寬惠,是利姦邪而害善人也,此非所以為治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안자(晏子)가 의족이 비싸다고 한 것은, 그의 진심이 아니라, 편리한 말로써 많은 형벌을 그치게 하려 한 것이다. 이는 다스림의 실상을 살피지 못한 데서 오는 재앙이다. 무릇 형벌이 합당하면 많아도 문제가 없고, 합당하지 않으면 적어도 문제가 된다. 합당하지 않다는 것으로 들리지 않고, 너무 많다는 것으로 유세하니, 술(術)이 없는 데서 오는 재앙이다. 패전한 군대를 주살하는 것이 천백에 이르러도, 오히려 패주를 그치게 하지 못한다. 즉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형벌은 이기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과 같아도, 간사함은 아직 다 없어지지 않는다. 지금 안자는 그 합당함과 그렇지 않음을 살피지 않고, 너무 많다는 것으로 유세하니, 또한 망령되지 않은가! 무릇 잡초를 아끼는 자는 벼 이삭을 소모시키고, 도적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는 선량한 백성을 해친다. 지금 형벌을 늦추고, 너그러운 은혜를 행하는 것은, 간사하고 사악한 자를 이롭게 하고 선량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니, 이는 다스리는 방법이 아니다.
[원문 3]
齊桓公飲酒醉,遺其冠,恥之,三日不朝。管仲曰:「此非有國之恥也,公胡其不雪之以政?」公曰:「胡其善。」因發倉囷,賜貧窮;論囹圄,出薄惱。處三日而民歌之曰:「公胡不復遺冠乎!」
[번역문]
제(齊) 환공(桓公)이 술을 마시고 취하여, 그 관을 잃어버리고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사흘 동안 조회에 나오지 않았다. 관중(管仲)이 말하기를, “이는 나라를 가진 자의 부끄러움이 아니니, 공께서는 어찌하여 그것을 정치로써 씻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환공이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하니, 이에 창고를 열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게 하사하고, 감옥의 죄수를 심리하여 가벼운 죄를 지은 자를 내보냈다. 사흘이 지나자 백성들이 노래하여 말하기를, “공께서는 어찌하여 다시 관을 잃어버리지 않으시는가!”라고 하였다.
[원문 4]
或曰:管仲雪桓公之恥於小人,而生桓公之恥於君子矣。使桓公發倉囷而賜貧窮,論囹圄而出薄惱,非義也,不可以雪恥使之而義也。桓公宿義,須遺冠而後行之,則是桓公行義,非為遺冠也。是雖雪遺冠之恥於小人,而亦遺義之恥於君子矣。且夫發囷倉而賜貧窮者,是賞無功也;論囹圄而出薄惱者,是不誅過也。夫賞無功則民偷幸而望於上,不誅過則民不懲而易為非,此亂之本也,安可以雪恥哉?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관중(管仲)은 환공(桓公)의 부끄러움을 소인(小人)에게는 씻어주었으나, 군자(君子)에게는 환공의 부끄러움을 낳게 하였다. 만약 환공이 창고를 열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게 하사하고, 감옥의 죄수를 심리하여 가벼운 죄를 지은 자를 내보내는 것이 의(義)가 아니라면, 부끄러움을 씻기 위해 그것을 하게 한들 의가 될 수 없다. 만약 환공이 본래 의로운 마음을 품고 있다가, 관을 잃어버린 뒤에야 그것을 행했다면, 이는 환공이 의를 행한 것이지, 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비록 관을 잃은 부끄러움을 소인에게는 씻었으나, 또한 의를 잃은 부끄러움을 군자에게는 남긴 것이다. 또한 무릇 창고를 열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게 하사하는 것은, 공이 없는 자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감옥의 죄수를 심리하여 가벼운 죄를 지은 자를 내보내는 것은, 과오를 벌하지 않는 것이다. 무릇 공이 없는 자에게 상을 주면 백성은 요행을 바라고 윗사람에게 기대게 되고, 과오를 벌하지 않으면 백성은 징계받지 않아 쉽게 잘못을 저지르니, 이는 혼란의 근본인데, 어찌 부끄러움을 씻을 수 있겠는가?
[원문 5]
昔者文王侵孟、克莒、舉酆,三舉事而紂惡之,文王乃懼,請入洛西之地、赤壤之國、方千里以請解炮烙之刑,天下皆說。仲尼聞之曰:「仁哉文王!輕千里之國而請解炮烙之刑。智哉文王!出千里之地而得天下之心。」
[번역문]
옛날 문왕(文王)이 맹(孟)나라를 침공하고, 거(莒)나라를 이겼으며, 풍(酆)나라를 점령하니, 세 번의 거사로 주왕(紂王)이 그를 미워하였다. 문왕이 이에 두려워하여, 낙수(洛水) 서쪽의 땅과 적양(赤壤)의 나라, 사방 천 리의 땅을 바치며 포락(炮烙)의 형벌을 풀어주기를 청하니, 천하가 모두 기뻐하였다. 중니(仲尼)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인(仁)하구나, 문왕이여! 천 리의 나라를 가벼이 여기고 포락의 형벌을 풀어주기를 청하였으니. 지혜롭구나, 문왕이여! 천 리의 땅을 내어주고 천하의 마음을 얻었으니.”라고 하였다.
[원문 6]
或曰:仲尼以文王為智也,不亦過乎!夫智者知禍難之地而辟之者也,是以身不及於患也。使文王所以見惡於紂者,以其不得人心耶?則雖索人心以解惡可也。紂以其大得人心而惡之,己又輕地以收人心,是重見疑也。固其所以桎梏囚於羑里也。鄭長者有言:「體道,無為、無見也。」此最宜於文王矣,不使人疑之也。仲尼以文王為智,未及此論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중니(仲尼)가 문왕(文王)을 지혜롭다고 한 것은, 또한 지나치지 않은가! 무릇 지혜로운 자란 화와 어려움의 자리를 알고 그것을 피하는 자이니, 이 때문에 몸이 우환에 미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문왕이 주왕(紂王)에게 미움을 받은 까닭이, 인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비록 인심을 구하여 미움을 풀더라도 괜찮다. 주왕이 그가 크게 인심을 얻었기 때문에 그를 미워했는데, 자기가 또 땅을 가벼이 여겨 인심을 거두어들이니, 이는 거듭 의심을 받는 것이다. 진실로 이것이 그가 질곡(桎梏)에 묶여 유리(羑里)에 갇힌 까닭이다. 정(鄭)나라의 한 어른이 말하기를, “도를 체득함은, 무위(無為)하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문왕에게 가장 마땅한 것이었으니, 남으로 하여금 자기를 의심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중니가 문왕을 지혜롭다고 한 것은, 이 논의에 미치지 못했다.
[원문 7]
晉平公問叔向曰:「昔者齊桓公九合諸侯,一匡天下,不識臣之力也?君之力也?」叔向對曰:「管仲善制割,賓胥無善削縫,隰朋善純緣,衣成,君舉而服之,亦臣之力也,君何力之有?」師曠伏琴而笑之。公曰:「太師奚笑也?」師曠對曰:「臣笑叔向之對君也。凡為人臣者,猶炮宰和五味而進之君,君弗食,孰敢強之也。臣請譬之:君者、壤地也,臣者、草木也,必壤地美然後草木碩大,亦君之力也,臣何力之有?」
[번역문]
진(晉) 평공(平公)이 숙향(叔向)에게 묻기를, “옛날 제(齊) 환공(桓公)이 아홉 번 제후를 규합하고, 한 번 천하를 바로잡았는데, 신하의 힘인지, 군주의 힘인지 알지 못하겠소?”라고 하였다. 숙향이 대답하기를, “관중(管仲)은 재단(制割)을 잘하고, 빈서무(賓胥無)는 꿰매는 것을 잘하며, 습붕(隰朋)은 옷 가장자리를 잘 두르니, 옷이 완성되면 군주께서 들어 그것을 입으시는 것입니다. 또한 신하의 힘이니, 군주께서 무슨 힘이 있으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사광(師曠)이 거문고에 엎드려 그를 비웃었다. 평공이 말하기를, “태사(太師)는 어찌하여 웃는 것이오?”라고 하니, 사광이 대답하기를, “신은 숙향이 군주께 대답하는 것을 비웃습니다. 무릇 신하 된 자는, 마치 요리사가 오미(五味)를 조화롭게 하여 군주께 올리는 것과 같으니, 군주께서 드시지 않으면, 누가 감히 억지로 권하겠습니까. 신이 청컨대 비유하자면, 군주는 땅이요, 신하는 초목이니, 반드시 땅이 좋아야 그 후에 초목이 크고 무성해집니다. 또한 군주의 힘이니, 신하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원문 8]
或曰:叔向、師曠之對皆偏辭也。夫一匡天下,九合諸侯,美之大者也,非專君之力也,又非專臣之力也。昔者宮之奇在虞,僖負眾在曹,二臣之智,言中事,發中功,虞、曹俱亡者何也?此有其臣而無其君者也。且蹇叔處干而干亡,處秦而秦霸,非蹇叔愚於干而智於秦也,此有君與無臣也。向曰「臣之力也」不然矣。昔者桓公宮中二市,婦閭二百,被髮而御婦人,得管仲為五伯長,失管仲得豎刁,而身死,蟲流出尸不葬。以為非臣之力也,且不以管仲為霸;以為君之力也,且不以豎刁為亂。昔者晉文公慕於齊女而亡歸,咎犯極諫,故使反晉國。故桓公以管仲合,文公以舅犯霸,而師曠曰「君之力也」又不然矣。凡五霸所以能成功名於天下者,必君臣俱有力焉。故曰:叔向、師曠之對皆偏辭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숙향(叔向)과 사광(師曠)의 대답은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말이다. 무릇 천하를 한 번 바로잡고 제후를 아홉 번 규합한 것은, 아름다움 중에서도 큰 것이니, 오로지 군주의 힘도 아니요, 또한 오로지 신하의 힘도 아니다. 옛날 궁지기(宮之奇)는 우(虞)나라에 있었고, 희부기(僖負羈)는 조(曹)나라에 있었는데, 두 신하의 지혜는 말하면 일에 맞고, 행동하면 공을 이루었으나, 우나라와 조나라가 모두 망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는 그 신하는 있었으나 그 군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건숙(蹇叔)이 간(干)나라에 있을 때 간나라는 망했고, 진(秦)나라에 있을 때 진나라는 패자가 되었으니, 건숙이 간나라에서는 어리석고 진나라에서는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이는 군주가 있고 없음의 차이이다. 숙향이 ‘신하의 힘이다’라고 한 것은 그렇지 않다. 옛날 환공(桓公)은 궁중에 두 개의 시장을 두고, 여염(婦閭)에 이백 명을 두었으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부인을 태우고 다녔으나, 관중(管仲)을 얻어 오패(五霸)의 으뜸이 되었고, 관중을 잃고 수조(豎刁)를 얻어, 몸이 죽고 시체에서 벌레가 흘러나와 장사 지내지 못했다. 신하의 힘이 아니라고 한다면, 또한 관중 때문에 패자가 된 것이 아니다. 군주의 힘이라고 한다면, 또한 수조 때문에 어지러워진 것이 아니다. 옛날 진(晉) 문공(文公)은 제(齊)나라 여인을 사모하여 돌아가기를 잊었으나, 구범(咎犯)이 극진히 간언하였으므로, 진나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므로 환공은 관중으로 인해 규합했고, 문공은 구범으로 인해 패자가 되었으니, 사광이 ‘군주의 힘이다’라고 한 것 또한 그렇지 않다. 무릇 오패가 천하에 공명을 이룰 수 있었던 까닭은, 반드시 군주와 신하가 함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숙향과 사광의 대답은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말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문 9]
齊桓公之時,晉客至,有司請禮,桓公曰「告仲父」者三。而優笑曰:「易哉為君,一曰仲父,二曰仲父。」桓公曰:「吾聞君人者勞於索人,佚於使人。吾得仲父已難矣,得仲父之後,何為不易乎哉!」
[번역문]
제(齊) 환공(桓公) 때에, 진(晉)나라 손님이 이르자, 담당 관리가 예법을 청하니, 환공이 “중보(仲父)에게 고하라.”고 말하기를 세 번 하였다. 그러자 배우[優]가 웃으며 말하기를, “군주 노릇하기 쉽구나, 한 번 말해도 중보요, 두 번 말해도 중보라니.”라고 하였다. 환공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사람의 군주 된 자는 사람을 구하는 데는 수고롭고, 사람을 부리는 데는 편안하다고 하였다. 내가 중보를 얻는 것이 이미 어려웠으니, 중보를 얻은 뒤에, 어찌 쉽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원문 10]
或曰:桓公之所應優,非君人者之言也。桓公以君人為勞於索人,何索人為勞哉?伊尹自以為宰干湯,百里奚自以為虜干穆公,虜所辱也,宰所羞也,蒙羞辱而接君上,賢者之憂世急也;然則君人者無道賢而已矣,索賢不為人主難。且官職所以任賢也,爵祿所以賞功也,設官職,陳爵祿,而士自至,君人者奚其勞哉!使人又非所佚也,人主雖使人必以度量準之,以刑名參之,以事;遇於法則行,不遇於法則止;功當其言則賞,不當則誅;以刑名收臣,以度量準下;此不可釋也,君人者焉佚哉?索人不勞,使人不佚,而桓公曰「勞於索人,佚於使人」者,不然。且桓公得管仲又不難,管仲不死其君而歸桓公,鮑叔輕官讓能而任之,桓公得管仲又不難明矣。已得管仲之後,奚遽易哉!管仲非周公旦,周公旦假為天子七年,成王壯,授之以政,非為天下計也,為其職也。夫不奪子而行天下者,必不背死君而事其讎,背死君而事其讎者,必不難奪子而行天下,不難奪子而行天下者,必不難奪其君國矣。管仲,公子糾之臣也,謀殺桓公而不能,其君死而臣桓公,管仲之取舍非周公旦未可知也。若使管仲大賢也,且為湯、武,湯、武,桀、紂之臣也,桀、紂作亂,湯、武奪之,今桓公以易居其上,是以桀、紂之行居湯、武之上,桓公危矣。若使管仲不肖人也,且為田常,田常,簡公之臣也,而弒其君,今桓公以易居其上,是以簡公之易居田常之上也,桓公又危矣。管仲非周公旦以明矣,然為湯、武與田常未可知也,為湯、武有桀、紂之危,為田常有簡公之亂也。已得仲父之後,桓公奚遽易哉!若使桓公之任管仲必知不欺己也,是知不欺主之臣也;然雖知不欺主之臣,今桓公以任管仲之專借豎刁、易牙,蟲流出尸而不葬,桓公不知臣欺主與不欺主已明矣,而任臣如彼其專也,故曰:桓公闇主。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환공(桓公)이 배우[優]에게 응대한 바는, 사람의 군주 된 자의 말이 아니다. 환공은 군주 노릇하는 것이 사람을 구하는 데 수고롭다고 하였는데, 어찌 사람을 구하는 것이 수고롭겠는가? 이윤(伊尹)은 스스로 요리사가 되어 탕(湯)임금을 구했고, 백리해(百里奚)는 스스로 포로가 되어 목공(穆公)을 구했으니, 포로는 치욕스러운 바이고 요리사는 부끄러운 바인데, 부끄러움과 치욕을 무릅쓰고 군주를 대한 것은, 현자가 세상을 걱함이 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군주 된 자는 현자를 등용할 방법이 없을 따름이니, 현자를 구하는 것은 군주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관직은 현자를 임용하는 방법이고, 작록은 공을 상 주는 방법이니, 관직을 설치하고 작록을 진열하면 선비가 스스로 이르는데, 사람의 군주 된 자가 어찌 수고롭겠는가! 사람을 부리는 것 또한 편안한 바가 아니니, 군주는 비록 사람을 부리더라도 반드시 법도[度量]로써 그것을 헤아리고, 형명(刑名)¹⁾으로써 그것을 검증하며, 일로써 해야 한다. 법에 맞으면 행하고, 법에 맞지 않으면 그만둔다. 공이 그 말에 해당하면 상을 주고, 해당하지 않으면 벌을 준다. 형명으로 신하를 거두고, 법도로 아랫사람을 헤아리니, 이것은 놓을 수 없는 것이거늘, 사람의 군주 된 자가 어찌 편안하겠는가? 사람을 구하는 것은 수고롭지 않고, 사람을 부리는 것은 편안하지 않은데, 환공이 ‘사람을 구하는 데는 수고롭고, 사람을 부리는 데는 편안하다’고 한 것은, 그렇지 않다. 또한 환공이 관중(管仲)을 얻은 것 또한 어렵지 않았으니, 관중은 자기 군주를 위해 죽지 않고 환공에게 귀순했고, 포숙(鮑叔)은 관직을 가벼이 여기고 능력 있는 자에게 양보하여 그를 임용했으니, 환공이 관중을 얻은 것이 어렵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이미 관중을 얻은 뒤에, 어찌 갑자기 쉬워지겠는가! 관중은 주공 단(周公旦)이 아니니, 주공 단은 임시로 천자 노릇을 칠 년 하다가, 성왕(成王)이 장성하자 그에게 정권을 넘겨주었으니, 천하를 위한 계책이 아니라, 그의 직분을 위한 것이었다. 무릇 아들의 자리를 빼앗지 않고 천하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죽은 군주를 배신하고 그 원수를 섬기지 않을 것이며, 죽은 군주를 배신하고 그 원수를 섬기는 자는, 반드시 아들의 자리를 빼앗고 천하를 행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아들의 자리를 빼앗고 천하를 행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 자는, 반드시 그 군주의 나라를 빼앗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관중은 공자 규(公子糾)의 신하였는데, 환공을 죽이려 꾀했으나 능히 하지 못했고, 그의 군주가 죽자 환공의 신하가 되었으니, 관중의 취하고 버림이 주공 단과 같지 않음은 아직 알 수 없다. 만약 관중이 크게 현명한 사람이라면, 또한 탕(湯)·무(武)와 같이 될 것이니, 탕·무는 걸(桀)·주(紂)의 신하였는데, 걸·주가 난을 일으키자 탕·무가 그들을 빼앗았다. 지금 환공이 쉽게 그 위에 있으니, 이는 걸·주의 행실로 탕·무의 위에 있는 것과 같아, 환공이 위태롭다. 만약 관중이 못난 사람이라면, 또한 전상(田常)과 같이 될 것이니, 전상은 간공(簡公)의 신하였는데 그 군주를 시해했다. 지금 환공이 쉽게 그 위에 있으니, 이는 간공이 쉽게 전상의 위에 있는 것과 같아, 환공이 또한 위태롭다. 관중이 주공 단이 아님은 명백한데, 탕·무와 같이 될지 전상과 같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으니, 탕·무와 같이 되면 걸·주의 위태로움이 있고, 전상과 같이 되면 간공의 혼란이 있을 것이다. 이미 중보를 얻은 뒤에, 환공이 어찌 갑자기 쉬워지겠는가! 만약 환공이 관중을 임용함에 반드시 자기를 속이지 않을 것을 알았다면, 이는 군주를 속이지 않는 신하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군주를 속이지 않는 신하를 알았더라도, 지금 환공이 관중을 임용함에 오로지 수조(豎刁)와 역아(易牙)에게 맡겨, 벌레가 흘러나오고 시체가 장사 지내지지 않았으니, 환공이 신하가 군주를 속이는지 속이지 않는지를 알지 못했음이 이미 명백한데, 신하를 임용함이 저와 같이 오로지 하였으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환공은 어두운 군주라고 하는 것이다.
[주석]
1) 형명(刑名): 말[名]과 실제[刑]가 일치하는지를 따지는 법가의 통치 술어. 신하의 언행일치를 검증하는 기준이다.
[원문 11]
李兌治中山,苦陘令上計而入多。李兌曰:「語言辨,聽之說,不度於義,謂之窕言。無山林澤谷之利而入多者,謂之窕貨。君子不聽窕言,不受窕貨,子姑免矣。」
[번역문]
이태(李兌)가 중산(中山)을 다스릴 때, 고형(苦陘)의 현령이 회계를 보고하는데 수입이 많았다. 이태가 말하기를, “언어가 분별 있고 듣기에 즐거우나, 의(義)에 비추어 헤아리지 않는 것을, 경박한 말[窕言]이라 한다. 산림과 연못, 계곡의 이로움이 없는데도 수입이 많은 것을, 경박한 재물[窕貨]이라 한다. 군자는 경박한 말을 듣지 않고, 경박한 재물을 받지 않으니, 그대는 잠시 면직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2]
或曰:李子設辭曰:「夫言語辨,聽之說,不度於義者,謂之窕言。」辯、在言者,說、在聽者,言非聽者也。所謂不度於義,非謂聽者必謂所聽也。聽者非小人則君子也,小人無義必不能度之義也,君子度之義必不肯說也。夫曰「言語辨,聽之說,不度於義」者,必不誠之言也。入多之為窕貨也,未可遠行也。李子之姦弗蚤禁,使至於計,是遂過也。無術以知而入多,入多者,穰也,雖倍入將奈何!舉事慎陰陽之和,種樹節四時之適,無早晚之失,寒溫之災,則入多。不以小功妨大務,不以私欲害人事,丈夫盡於耕農,婦人力於織紝,則入多。務於畜養之理,察於土地之宜,六畜遂,五穀殖,則入多。明於權計,審於地形、舟車機械之利,用力少致功大,則入多。利商市關梁之行,能以所有致所無,客商歸之,外貨留之,儉於財用,節於衣食,宮室器械,周於資用,不事玩好,則入多。入多、皆人為也。若天事、風雨時,寒溫適,土地不加大,而有豐年之功,則入多。人事、天功,二物者皆入多,非山林澤谷之利也。夫無山林澤谷之利入多,因謂之窕貨者,無術之言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이태(李兌)가 말을 설정하여 이르기를, ‘무릇 언어가 분별 있고 듣기에 즐거우나, 의(義)에 비추어 헤아리지 않는 것을, 경박한 말[窕言]이라 한다.’고 하였다. 분별 있음은 말하는 자에게 있고, 즐거움은 듣는 자에게 있으니, 말은 듣는 자가 아니다. 이른바 의에 비추어 헤아리지 않는다는 것은, 듣는 자가 반드시 듣는 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듣는 자는 소인이 아니면 군자이니, 소인은 의가 없어 반드시 의에 비추어 헤아릴 수 없고, 군자는 의에 비추어 헤아리면 반드시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무릇 ‘언어가 분별 있고 듣기에 즐거우나, 의에 비추어 헤아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반드시 성실하지 않은 말이다. 수입이 많은 것을 경박한 재물[窕貨]이라 하는 것은, 멀리 행할 수 없다. 이태가 간사함을 일찍 금하지 않고, 회계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는 과오를 키운 것이다. 술(術) 없이 알면서 수입이 많다면, 수입이 많은 것은 풍년이 들었기 때문이니, 비록 수입이 배가 된들 장차 어찌하겠는가! 일을 일으킴에 음양의 조화를 신중히 하고, 나무를 심음에 사계절의 적절함을 맞추며, 이르고 늦음의 실수가 없고, 춥고 따뜻함의 재앙이 없으면, 수입이 많아진다. 작은 공으로 큰 임무를 방해하지 않고, 사사로운 욕심으로 사람의 일을 해치지 않으며, 장부는 밭 갈고 농사짓는 데 힘을 다하고, 부인은 길쌈하는 데 힘쓰면, 수입이 많아진다. 가축을 기르는 이치에 힘쓰고, 토지의 적절함을 살피며, 여섯 가축이 잘 자라고 오곡이 번성하면, 수입이 많아진다. 권모와 계산에 밝고, 지형과 배, 수레, 기계의 이로움을 살피며, 힘을 적게 쓰고 큰 공을 이루면, 수입이 많아진다. 상업과 시장, 관문과 다리의 통행을 이롭게 하고, 능히 가진 것으로 없는 것을 이루며, 객상(客商)이 귀의하고, 외국의 재화가 머무르게 하며, 재물을 씀에 검소하고, 의식(衣食)을 절약하며, 궁실과 기계가 쓰임에 두루 맞고, 노리개를 일삼지 않으면, 수입이 많아진다. 수입이 많은 것은,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 만약 하늘의 일, 즉 비바람이 때에 맞고, 춥고 따뜻함이 적절하며, 토지가 더 커지지 않았는데도 풍년의 공이 있으면, 수입이 많아진다. 사람의 일과 하늘의 공, 이 두 가지는 모두 수입이 많아지는 것이니, 산림과 연못, 계곡의 이로움이 아니다. 무릇 산림과 연못, 계곡의 이로움 없이 수입이 많다고 하여, 이로 인해 경박한 재물이라 일컫는 것은, 술(術)이 없는 말이다.
[원문 13]
趙簡子圍衛之郛郭,犀楯、犀櫓立於矢石之所不及,鼓之而士不起,簡子投枹曰:「烏乎!吾之士數弊也。」行人燭過免冑而對曰:「臣聞之,亦有君之不能耳,士無弊者。昔者吾先君獻公并國十七,服國三十八,戰十有二勝,是民之用也。獻公沒,惠公即位,淫衍暴亂,身好玉女,秦人恣侵,去絳十七里,亦是人之用也。惠公沒,文公授之,圍衛、取鄴,城濮之戰,五敗荊人,取尊名於天下,亦此人之用也。亦有君不能耳,士無弊也。」簡子乃去楯、櫓立矢石之所及,鼓之而士乘之,戰大勝。簡子曰:「與吾得革車千乘,不如聞行人燭過之一言也。」
[번역문]
조간자(趙簡子)가 위(衛)나라의 외성(外城)을 포위하였는데, 무소 가죽 방패와 큰 방패를 화살과 돌이 미치지 않는 곳에 세워두고, 북을 쳐도 병사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간자가 북채를 던지며 말하기를, “아아! 내 병사들이 여러 번 지쳤구나.”라고 하였다. 행인(行人) 촉과(燭過)가 투구를 벗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또한 군주가 능하지 못할 뿐, 병사가 지치는 경우는 없습니다. 옛날 우리 선군(先君) 헌공(獻公)께서는 열일곱 나라를 병합하고, 서른여덟 나라를 복종시켰으며, 열두 번 싸워 이겼으니, 이는 백성을 잘 썼기 때문입니다. 헌공께서 돌아가시고 혜공(惠公)이 즉위하여, 음란하고 방자하며 포악하고 어지러웠으며, 몸소 옥녀(玉女)를 좋아하여 진(秦)나라 사람들이 제멋대로 침략하여, 수도 강(絳)에서 십칠 리 떨어진 곳까지 왔으니, 이 또한 이 사람들을 썼기 때문입니다. 혜공께서 돌아가시고 문공(文公)이 그 뒤를 이어, 위나라를 포위하고 업(鄴)을 취했으며, 성복(城濮)의 전투에서 다섯 번 초[荊]나라 사람들을 패배시키고, 천하에 존귀한 이름을 얻었으니, 이 또한 이 사람들을 썼기 때문입니다. 또한 군주가 능하지 못할 뿐, 병사가 지치는 경우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간자가 이에 방패를 치우고 화살과 돌이 미치는 곳에 서서, 북을 치니 병사들이 이에 올라타, 싸움에서 크게 이겼다. 간자가 말하기를, “내가 가죽 수레 천 승(乘)을 얻는 것보다, 행인 촉과의 한마디 말을 듣는 것이 낫다.”라고 하였다.
[원문 14]
或曰:行人未有以說也,乃道惠公以此人是敗,文公以此人是霸,未見所以用人也;簡子未可以速去楯、櫓也。嚴親在圍,輕犯矢石,孝子之所愛親也。孝子愛親,百數之一也。今以為身處危而人尚可戰,是以百族之子於上皆若孝子之愛親也,是行人之誣也。好利惡害,夫人之所有也。賞厚而信,人輕敵矣;刑重而必,失人不北矣。長行徇上,數百不一失。喜利畏罪,人莫不然。將眾者不出乎莫不然之數,而道乎百無一人之行,行人未知用眾之道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행인(行人)은 아직 유세할 만한 것이 없는데, 이에 혜공(惠公)이 이 사람들 때문에 패했고, 문공(文公)이 이 사람들 때문에 패자가 되었다고 말했으니, 사람을 쓰는 방법을 아직 보지 못한 것이다. 간자(簡子)는 아직 서둘러 방패를 치워서는 안 되었다. 엄한 어버이가 포위 속에 있을 때, 가벼이 화살과 돌을 무릅쓰는 것은, 효자가 어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효자가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백에 하나 정도이다. 지금 몸을 위태로운 곳에 둔다고 하여 사람들이 또한 싸울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모든 족속의 자식들이 윗사람에 대해 모두 효자가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는 행인의 속임수이다. 이익을 좋아하고 해를 싫어하는 것은, 무릇 사람이 가진 바이다. 상이 두텁고 신실하면, 사람들은 적을 가벼이 여길 것이다. 형벌이 무겁고 반드시 행해지면, 사람을 잃어도 패주하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윗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수백에 하나도 잃지 않는다. 이익을 기뻐하고 죄를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이가 없다. 무리를 이끄는 자는 그렇지 않은 이가 없는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고, 백에 한 명도 없는 행동을 말하니, 행인은 무리를 쓰는 도를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다.
韓非子 難三 (한비자 난삼) 번역 및 주석
[원문 1]
難三:
魯穆公問於子思曰:「吾聞龐𥼴氏之子不孝,其行奚如?」子思對曰:「君子尊賢以崇德,舉善以觀民。若夫過行,是細人之所識也,臣不知也。」子思出,子服厲伯入見,問龐𥼴氏子,子服厲伯對曰:「其過三,皆君之所未嘗聞。」自是之後,君貴子思而賤子服厲伯也。
[번역문]
난삼(難三):
노(魯)나라 목공(穆公)이 자사(子思)에게 묻기를, “내가 듣건대 방몽씨(龐𥼴氏)의 아들이 불효하다는데, 그 행실이 어떠한가?”라고 하였다. 자사가 대답하기를, “군자(君子)는 현명한 이를 존중하여 덕을 숭상하고, 선한 이를 등용하여 백성에게 보입니다. 무릇 과오가 있는 행실은, 소인(小人)들이나 아는 바이니, 신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자사가 나가자, 자복여백(子服厲伯)이 들어와 뵙기에, 방몽씨의 아들에 대해 물으니, 자복여백이 대답하기를, “그의 과오가 세 가지인데, 모두 군주께서 일찍이 듣지 못하신 바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군주는 자사를 귀하게 여기고 자복여백을 천하게 여겼다.
[원문 2]
或曰:魯之公室,三世劫於季氏,不亦宜乎!明君求善而賞之,求姦而誅之,其得之一也。故以善聞之者,以說善同於上者也;以姦聞之者,以惡姦同於上者也;此宜賞譽之所力也。不以姦聞,是異於上而下比周於姦者也,此宜毀罰之所及也。今子思不以過聞,而穆公貴之,厲伯以姦聞而穆公賤之,人情皆喜貴而惡賤,故季氏之亂成而不上聞,此魯君之所以劫也。且此亡王之俗,取、魯之民所以自美,而穆公獨貴之,不亦倒乎!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노(魯)나라의 공실(公室)이 삼대(三代)에 걸쳐 계씨(季氏)¹⁾에게 위협받았으니,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현명한 군주는 선(善)을 구하여 상을 주고, 간악함[姦]을 구하여 벌을 주니, 그들을 얻는 것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아뢰는 자는, 선을 좋아하는 마음을 윗사람과 같이하는 자이다. 간악한 일을 아뢰는 자는, 간악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윗사람과 같이하는 자이다. 이는 마땅히 상과 칭찬이 힘써야 할 바이다. 간악한 일을 아뢰지 않는 것은, 윗사람과는 뜻이 다르고 아래로는 간악한 자들과 무리를 짓는 것이니, 이는 마땅히 비방과 형벌이 미쳐야 할 바이다. 지금 자사(子思)는 과오를 아뢰지 않았는데도 목공(穆公)이 그를 귀하게 여겼고, 여백(厲伯)은 간악한 일을 아뢰었는데도 목공이 그를 천하게 여겼다. 사람의 정(情)은 모두 귀함을 기뻐하고 천함을 싫어하니, 그러므로 계씨의 난이 이루어져도 윗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것이 노나라 군주가 위협받은 까닭이다. 또한 이것은 망국의 풍속[亡王之俗]²⁾인데, 노나라 백성들이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취하여, 목공이 유독 그것을 귀하게 여겼으니, 또한 도리에 어긋나지 않은가!
[주석]
1) 계씨(季氏): 춘추시대 노나라의 권력을 장악했던 삼환(三桓) 중 가장 세력이 강했던 가문. 노나라 군주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정을 전횡하였다. 한비자는 군주가 자사와 같이 현실의 악을 외면하는 자를 중용했기 때문에 계씨 같은 권신이 발호할 수 있었다고 비판한다.
2) 망왕지속(亡王之俗):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풍속. 여기서는 신하의 간악한 행위를 군주에게 보고하지 않고 숨기는 것을 고상한 태도로 여기는 유가적 풍조를 비판하는 말이다.
[원문 3]
文公出亡,獻公使寺人披攻之蒲城,披斬其袪,文公奔翟。惠公即位,又使攻之惠竇,不得也。及文公反國,披求見。公曰:「蒲城之役,君令一宿,而汝即至;惠竇之難,君令三宿,而汝一宿,何其速也?」披對曰:「君令不二,除君之惡,惟恐不堪,蒲人、翟人余何有焉?今公即位,其無蒲、翟乎!且桓公置射鉤而相管仲。」君乃見之。
[번역문]
문공(文公)이 망명 생활을 할 때, 헌공(獻公)이 환관[寺人] 피(披)를 시켜 포성(蒲城)에서 그를 공격하게 하니, 피가 그의 옷소매[袪]를 베었고, 문공은 적(翟)나라로 달아났다. 혜공(惠公)이 즉위하자, 또 그를 시켜 혜두(惠竇)에서 공격하게 하였으나, 잡지 못했다. 문공이 나라로 돌아오자, 피가 뵙기를 청하였다. 문공이 말하기를, “포성의 전투에서, 군주께서 하룻밤을 기한으로 명하셨는데 너는 즉시 이르렀고, 혜두의 난에서는, 군주께서 사흘 밤을 기한으로 명하셨는데 너는 하룻밤 만에 이르렀으니, 어찌 그리 빨랐는가?”라고 하였다. 피가 대답하기를, “군주의 명령은 두 가지가 없으니, 군주의 악을 제거함에 오직 능히 해내지 못할까 두려웠을 뿐, 포(蒲)나라 사람이나 적(翟)나라 사람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지금 공께서 즉위하셨으니, 그 포나라와 적나라가 없겠습니까! 또한 환공(桓公)께서는 사구(射鉤)¹⁾의 원한을 버리고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삼으셨습니다.”라고 하니, 군주가 이에 그를 만나주었다.
[주석]
1) 사구(射鉤): ‘갈고리를 쏘다’는 뜻. 제(齊) 환공(桓公)이 공자 시절에 공자 규(糾)와 왕위를 다툴 때, 규의 신하였던 관중(管仲)이 환공을 향해 활을 쏘았으나 화살이 허리띠의 갈고리에 맞아 목숨을 건진 고사. 환공은 즉위 후 이 원한을 잊고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하여 패업을 이루었다. 환관 피는 이 고사를 인용하여 자신도 군주의 명령에 따랐을 뿐 사사로운 원한은 없었음을 변호하고 있다.
[원문 4]
或曰:齊、晉絕祀,不亦宜乎!桓公能用管仲之功而忘射鉤之怨,文公能聽寺人之言而棄斬袪之罪,桓公、文公能容二子者也。後世之君,明不及二公;後世之臣,賢不如二子。以不忠之臣事不明之君。君不知,則有燕操、子罕、田常之賊;知之,則以管仲、寺人自解。君必不誅,而自以為有桓、文之德,是臣讎而明不能燭,多假之資。自以為賢而不戒,則雖無後嗣,不亦可乎!且寺人之言也,直飾君令而不貳者,則是貞於君也。死君後生臣不愧而復為貞,今惠公朝卒而暮事文公,寺人之不貳何如?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제(齊)나라와 진(晉)나라의 제사가 끊긴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의 공을 쓸 줄 알고 사구(射鉤)의 원한을 잊을 수 있었고, 문공(文公)은 환관의 말을 들을 줄 알고 옷소매를 벤 죄를 버릴 수 있었으니, 환공과 문공은 두 사람을 용납할 수 있는 군주였다. 후세의 군주는, 현명함이 두 공(公)에 미치지 못하고, 후세의 신하는, 현명함이 두 사람만 못하다. 불충한 신하로써 현명하지 못한 군주를 섬긴다. 군주가 알지 못하면, 연(燕)나라의 조(操), 송(宋)나라의 자한(子罕), 제(齊)나라의 전상(田常)과 같은 도적이 있게 된다. 알더라도, 관중과 환관의 예로써 스스로를 변명한다. 군주는 반드시 주살하지 않고, 스스로 환공과 문공의 덕이 있다고 여기니, 이는 신하가 원수인데도 밝음이 능히 비추지 못하고, 그에게 많은 자산을 빌려주는 것이다. 스스로 현명하다고 여기고 경계하지 않으니, 비록 후사가 없더라도 또한 옳지 않겠는가! 또한 환관의 말은, 단지 군주의 명령을 꾸미고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것이니, 이는 군주에게 곧다는 것이다. 죽은 군주를 뒤로하고 살아남은 신하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시 곧다고 하니, 지금 혜공(惠公)이 아침에 죽었는데 저녁에 문공을 섬기니, 환관의 두 마음 없음은 어떠한가?
[원문 5]
人有設桓公隱者曰:「一難,二難,三難,何也?」桓公不能對,以告管仲。管仲對曰:「一難也、近優而遠士。二難也、去其國而數之海。三難也、君老而晚置太子。」桓公曰:「善。」不擇日而廟禮太子。
[번역문]
어떤 사람이 환공(桓公)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말하기를, “첫째 어려움, 둘째 어려움, 셋째 어려움은, 무엇입니까?”라고 하였다. 환공이 대답하지 못하고, 이를 관중(管仲)에게 알렸다. 관중이 대답하기를, “첫째 어려움은, 배우[優]를 가까이하고 선비[士]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둘째 어려움은, 그 나라를 떠나 바다로 자주 가는 것입니다. 셋째 어려움은, 군주가 늙어서 늦게 태자를 세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좋다.”고 하고는, 날을 가리지 않고 사당에서 태자를 세우는 예를 행했다.
[원문 6]
或曰:管仲之射隱不得也。士之用不在近遠。而俳優侏儒,固人主之所與燕也。則近優而遠士,而以為治,非其難者也。夫處勢而不能用其有,而悖不去國,是以一人之力禁一國。以一人之力禁一國者,少能勝之。明能照遠姦而見隱微,必行之令,雖遠於海,內必無變;然則去國之海而不劫殺,非其難者也。楚成王置商臣以為太子,又欲置公子職,商臣作難,遂弒成王。公子宰,周太子也,公子根有寵,遂以東州反,分而為兩國。此皆非晚置太子之患也。夫分勢不二,庶孽卑,寵無藉,雖處大臣,晚置太子可也;然則晚置太子,庶孽不亂,又非其難也。物之所謂難者;必借人成勢而勿使侵害己,可謂一難也。貴妾不使二后,二難也。愛孽不使危正適,專聽一臣而不敢隅君,此則可謂三難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관중(管仲)이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했다. 선비의 쓰임은 가깝고 먼 데에 있지 않다. 그리고 배우와 난쟁이는, 본래 군주가 더불어 연회를 즐기는 자들이다. 그러니 배우를 가까이하고 선비를 멀리하면서도, 다스려진다고 여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릇 권세[勢]의 자리에 처하여 그 가진 것을 쓰지 못하고, 도리에 어긋나면서도 나라를 떠나지 않는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한 나라를 금하려는 것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 한 나라를 금하는 자는, 능히 이기는 경우가 드물다. 밝음이 능히 먼 곳의 간악함을 비추고 숨겨진 미미함을 볼 수 있으며, 반드시 행해지는 명령이 있다면, 비록 바다처럼 멀리 있더라도 안에서는 반드시 변고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를 떠나 바다에 있으면서도 위협받거나 살해당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초(楚) 성왕(成王)은 상신(商臣)을 태자로 세웠다가, 또 공자 직(公子職)을 세우려 하자, 상신이 난을 일으켜 마침내 성왕을 시해했다. 공자 재(宰)는 주(周)나라 태자였는데, 공자 근(公子根)이 총애를 받자, 마침내 동주(東周)를 가지고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둘로 나누었다. 이는 모두 늦게 태자를 세운 데서 온 재앙이 아니다. 무릇 권세를 나눔에 둘이 없고, 서자(庶孽)가 비천하며, 총애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비록 대신의 자리에 있더라도 늦게 태자를 세워도 괜찮다. 그렇다면 늦게 태자를 세워도 서자가 난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물에서 이른바 어렵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남을 빌려 세력을 이루게 하면서도 자기를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첫째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귀한 첩으로 하여금 두 명의 왕후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둘째 어려움이다. 사랑하는 서자로 하여금 정실의 적자(嫡子)를 위태롭게 하지 못하게 하고, 한 신하의 말만 오로지 들으면서도 감히 군주를 한쪽 구석으로 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것이 바로 셋째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원문 7]
葉公子高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悅近而來遠。」哀公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選賢。」齊景公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節財。」三公出,子貢問曰:「三公問夫子政一也,夫子對之不同,何也?」仲尼曰:「葉都大而國小,民有背心,故曰政在悅近而來遠。魯哀公有大臣三人,外障距諸侯四鄰之士,內比周而以愚其君,使宗廟不掃除,社稷不血食者,必是三臣也,故曰政在選賢。齊景公築雍門,為路寢,一朝而以三百乘之家賜者三,故曰政在節財。」
[번역문]
섭공(葉公) 자고(子高)가 중니(仲尼)에게 정치를 묻자, 중니가 말하기를, “정치는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이 오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애공(哀公)이 중니에게 정치를 묻자, 중니가 말하기를, “정치는 현명한 이를 가려 뽑는 데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제(齊) 경공(景公)이 중니에게 정치를 묻자, 중니가 말하기를, “정치는 재물을 절약하는 데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세 공(公)이 나가자, 자공(子貢)이 묻기를, “세 공께서 선생님께 물으신 정치는 하나인데, 선생님께서 대답하신 것이 다른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중니가 말하기를, “섭(葉) 땅은 도읍은 크나 나라는 작아, 백성들이 배반할 마음이 있으므로, 정치는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이 오게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노(魯) 애공에게는 대신 세 사람이 있는데, 밖으로는 이웃 제후들의 선비들을 막고, 안으로는 무리를 지어 그 군주를 어리석게 만드니, 종묘가 청소되지 않고 사직에 피 제사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자는, 반드시 이 세 신하일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현명한 이를 가려 뽑는 데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제 경공은 옹문(雍門)을 쌓고, 노침(路寢)을 지으며, 하루아침에 삼백 승(乘)의 집을 하사한 자가 셋이나 되므로, 정치는 재물을 절약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8]
或曰:仲尼之對,亡國之言也。葉民有倍心,而說之悅近而來遠,則是教民懷惠。惠之為政,無功者受賞,而有罪者免,此法之所以敗也。法敗而政亂,以亂政治敗民,未見其可也。且民有倍心者,君上之明有所不及也。不紹葉公之明,而使之悅近而來遠,是舍吾勢之所能禁而使與不行惠以爭民,非能持勢者也。夫堯之賢,六王之冠也,舜一從而咸包,而堯無天下矣。有人無術以禁下,恃為舜而不失其民,不亦無術乎!明君見小姦於微,故民無大謀;行小誅於細,故民無大亂;此謂圖難於其所易也,為大者於其所細也。今有功者必賞,賞者不得君,力之所致也;有罪者必誅,誅者不怨上,罪之所生也。民知誅罰之皆起於身也,故疾功利於業,而不受賜於君。「太上、下智有之。」此言太上之下民無說也,安取懷惠之民?上君之民無利害,說以悅近來遠,亦可舍己。哀公有臣外障距內比周以愚其君,而說之以選賢,此非功伐之論也,選其心之所謂賢者也。使哀公知三子外障距內比周也,則三子不一日立矣。哀公不知選賢,選其心之所謂賢,故三子得任事。燕子噲賢子之而非孫卿,故身死為僇。夫差智太宰嚭而愚子胥,故滅於越。魯君不必知賢,而說以選賢,是使哀公有夫差、燕噲之患也。明君不自舉臣,臣相進也;不自賢,功自徇也。論之於任,試之於事,課之於功。故群臣公政而無私,不隱賢,不進不肖,然則人主奚勞於選賢?景公以百乘之家賜,而說以節財,是使景公無術使智君之侈,而獨儉於上,未免於貧也。有君以千里養其口腹,則雖桀、紂不侈焉。齊國方三千里,而桓公以其半自養,是侈於桀、紂也,然而能為五霸冠者,知侈儉之地也。為君不能禁下而自禁者謂之劫,不能飾下而自飾者謂之亂,不節下而自節者謂之貧。明君使人無私,以詐而食者禁;力盡於事,歸利於上者必聞,聞者必賞;污穢為私者必知,知者必誅。然故忠臣盡忠於方公,民士竭力於家,百官精剋於上,侈倍景公,非國之患也。然則說之以節財,非其急者也。夫對三公一言而三公可以無患,知下之謂也。知下明則禁於微,禁於微則姦無積,姦無積則無比周。無比周則公私分,公私分則朋黨散,朋黨散則無外障距內比周之患。知下明則見精沐,見精沐則誅賞明,誅賞明則國不貧,故曰一對而三公無患,知下之謂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중니(仲尼)의 대답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말이다. 섭(葉) 땅의 백성이 배반할 마음이 있는데, 그에게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이 오게 하라고 유세하는 것은, 백성에게 은혜를 품게 가르치는 것이다. 은혜로써 정치를 하면, 공이 없는 자가 상을 받고, 죄가 있는 자가 면제되니, 이것이 법이 무너지는 까닭이다. 법이 무너지고 정치가 어지러워지는데, 어지러운 정치로써 타락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옳다고 보지 못했다. 또한 백성이 배반할 마음이 있는 것은, 군주의 밝음이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섭공(葉公)의 밝음을 잇게 하지 않고, 그로 하여금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이 오게 하는 것은, 나의 권세[勢]로 능히 금할 수 있는 것을 버리고, 행해지지 않는 은혜로써 백성과 다투게 하는 것이니, 권세를 지닐 줄 아는 자가 아니다. 무릇 요(堯)임금의 현명함은 여섯 왕의 으뜸이었으나, 순(舜)이 한 번 따르자 모두 감싸 안아, 요임금은 천하를 잃었다. 어떤 사람이 술(術) 없이 아랫사람을 금하면서, 순이 되는 것을 믿고 그 백성을 잃지 않으려 한다면, 또한 술(術)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명한 군주는 작은 간악함을 미미할 때 보고, 그러므로 백성에게 큰 계책이 없다. 작은 주살을 미세할 때 행하고, 그러므로 백성에게 큰 혼란이 없다. 이를 일러 ‘어려움을 그 쉬운 데서 도모하고, 큰 것을 그 미세한 데서 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공이 있는 자는 반드시 상을 받으니, 상 받는 자는 군주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라, 힘이 이르게 한 바이다. 죄가 있는 자는 반드시 주살되니, 주살되는 자는 윗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죄가 낳은 바이다. 백성은 주벌이 모두 자신에게서 일어남을 알므로, 그러므로 생업에서 공과 이익을 서두르고, 군주에게서 하사품을 받지 않는다. “가장 훌륭한 군주는,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음을 알 뿐이다.”¹⁾ 이 말은 가장 훌륭한 군주 아래의 백성은 기뻐할 일이 없다는 것이니, 어찌 은혜를 품는 백성을 취하겠는가? 윗 등급 군주의 백성은 이해관계가 없으니,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이 오게 하라고 유세하는 것은, 또한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애공(哀公)에게 밖으로는 막고 안으로는 무리를 지어 그 군주를 어리석게 하는 신하가 있는데, 그에게 현명한 이를 가려 뽑으라고 유세하는 것은, 공적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그 마음속에 이른바 현명하다고 여기는 자를 가려 뽑는 것이다. 만약 애공이 세 사람이 밖으로는 막고 안으로는 무리를 짓는 것을 알았다면, 세 사람은 하루도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애공은 현명한 이를 가려 뽑을 줄 모르고, 그 마음속에 이른바 현명하다고 여기는 자를 가려 뽑으니, 그러므로 세 사람이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연(燕)나라의 자쾌(子噲)는 자지(子之)를 현명하다 여기고 손경(孫卿)을 그렇지 않다고 여겼으므로, 몸이 죽어 치욕을 당했다. 부차(夫差)는 태재 비(太宰嚭)를 지혜롭다 여기고 자서(子胥)를 어리석다 여겼으므로, 월(越)나라에 멸망했다. 노(魯)나라 군주가 반드시 현명한 이를 알지는 못하는데, 현명한 이를 가려 뽑으라고 유세하는 것은, 애공으로 하여금 부차와 연나라 자쾌의 우환을 겪게 하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는 스스로 신하를 등용하지 않고, 신하들이 서로 천거한다. 스스로 현명하다 하지 않고, 공이 스스로 드러난다. 임무로써 논하고, 일로써 시험하며, 공으로써 평가한다. 그러므로 여러 신하들이 공적인 정치를 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며, 현명한 이를 숨기지 않고, 못난 이를 천거하지 않으니, 그렇다면 군주가 어찌 현명한 이를 가려 뽑는 데 수고롭겠는가? 경공(景公)이 백 승(乘)의 집을 하사하는데, 재물을 절약하라고 유세하는 것은, 경공으로 하여금 지혜로운 군주의 사치를 부릴 술(術)이 없게 하고, 오직 위에서만 검소하게 하여, 가난함을 면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군주가 천 리의 땅으로 자기 입과 배를 채운다면, 비록 걸(桀)·주(紂)라도 이보다 사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齊)나라 땅은 사방 삼천 리인데, 환공(桓公)이 그 절반으로 스스로를 봉양했으니, 이는 걸·주보다 사치한 것이다. 그러나 능히 오패(五霸)의 으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치와 검소함의 자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군주가 되어 아랫사람을 금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금하는 것을 일러 겁박당한다[劫] 하고, 아랫사람을 꾸미지 못하고 스스로를 꾸미는 것을 일러 어지럽다[亂] 하고, 아랫사람을 절제시키지 못하고 스스로를 절제하는 것을 일러 가난하다[貧]고 한다. 현명한 군주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사로움이 없게 하고, 속임수로 먹고사는 자를 금한다. 힘을 일에 다하고, 이익을 위로 돌리는 자는 반드시 알려지니, 알려진 자는 반드시 상을 받는다. 더럽고 추하게 사사로움을 위하는 자는 반드시 알려지니, 알려진 자는 반드시 주살된다. 그런 까닭에 충신은 공적인 일에 충성을 다하고, 백성과 선비는 집안일에 힘을 다하며, 모든 관리는 위에서 정밀하고 엄격하니, 경공보다 배로 사치하더라도, 나라의 우환이 아니다. 그렇다면 재물을 절약하라고 유세하는 것은, 그 급한 바가 아니다. 무릇 세 공(公)에게 한마디 말로 대답하여 세 공이 우환이 없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랫사람을 아는 것[知下]을 말한다. 아랫사람을 아는 것이 밝으면 미미할 때 금할 수 있고, 미미할 때 금하면 간사함이 쌓이지 않으며, 간사함이 쌓이지 않으면 무리를 짓지 않는다. 무리를 짓지 않으면 공과 사가 나뉘고, 공과 사가 나뉘면 붕당이 흩어지며, 붕당이 흩어지면 밖으로는 막고 안으로는 무리를 짓는 우환이 없다. 아랫사람을 아는 것이 밝으면 정밀하게 살피게 되고, 정밀하게 살피면 주벌과 상이 밝아지며, 주벌과 상이 밝아지면 나라가 가난해지지 않으니, 그러므로 한 번의 대답으로 세 공이 우환이 없게 하는 것은, 아랫사람을 아는 것을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주석]
1) 太上、下智有之(태상, 하지유지): 《노자(老子)》 17장의 “太上,下知有之(태상, 하지유지)”를 인용한 것이다. 원문은 “가장 훌륭한 (군주는),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안다”는 뜻으로, 군주가 무위(無為)로 다스려 그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최상의 통치 상태를 말한다. 한비자는 이를 인용하여, 백성이 군주의 존재를 의식하고 은혜를 바라는 상태는 이미 최상의 통치가 아님을 역설한다.
[원문 9]
鄭子產晨出,過東匠之閭,聞婦人之哭,撫其御之手而聽之。有閒,遣吏執而問之,則手絞其夫者也。異日,其御問曰:「夫子何以知之?」子產曰:「其聲懼。凡人於其親愛也,始病而憂,臨死而懼,已死而哀。今哭已死不哀而懼,是以知其有姦也。」
[번역문]
정(鄭)나라 자산(子產)이 새벽에 나가다가, 동쪽 장인의 마을을 지나는데, 부인의 곡소리를 듣고, 그 마부의 손을 어루만지며 그것을 들었다. 잠시 후, 관리를 보내 잡아다 물어보니, 손으로 그 남편을 목 졸라 죽인 자였다. 다른 날, 그 마부가 묻기를, “선생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아셨습니까?”라고 하니, 자산이 말하기를, “그 목소리에 두려움이 있었다. 무릇 사람이 그 친하고 사랑하는 이에 대해, 처음 병이 들면 근심하고, 죽음에 임박하면 두려워하며, 이미 죽으면 슬퍼한다. 지금 이미 죽었는데도 슬퍼하지 않고 두려워하니, 이 때문에 간사한 짓이 있음을 안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0]
或曰:子產之治,不亦多事乎?姦必待耳目之所及而後知之,則鄭國之得姦者寡矣。不任典成之吏,不察參伍之政,不明度量,恃盡聰明,勞智慮,而以知姦,不亦無術乎?且夫物眾而智寡,寡不勝眾,智不足以遍知物,故因物以治物。下眾而上寡,寡不勝眾,者言君不足以遍知臣也,故因人以知人。是以形體不勞而事治,智慮不用而姦得。故宋人語曰:「一雀過羿,羿必得之,則羿誣矣。以天下為之羅,則雀不失矣。」夫知姦亦有大羅,不失其一而已矣。不修其理,而以己之胸察為之弓矢,則子產誣矣。老子曰:「以智治國,國之賊也。」其子產之謂矣。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자산(子產)의 다스림은, 또한 일이 많지 않은가? 간사함을 반드시 귀와 눈이 미친 뒤에야 안다면, 정(鄭)나라에서 간사한 자를 잡아내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 법을 맡은 관리를 임용하지 않고, 삼오(參伍)의 정치를 살피지 않으며, 법도[度量]를 밝히지 않고, 총명을 다하는 것을 믿고, 지혜와 생각을 수고롭게 하여 간사함을 알아내니, 또한 술(術)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무릇 사물은 많고 지혜는 적으니, 적은 것은 많은 것을 이기지 못하고, 지혜는 사물을 두루 알기에 부족하므로, 사물로 인하여 사물을 다스린다. 아랫사람은 많고 윗사람은 적으니, 적은 것은 많은 것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군주가 신하를 두루 알기에 부족하다는 말이니, 그러므로 사람으로 인하여 사람을 안다. 이 때문에 몸은 수고롭지 않고 일이 다스려지며, 지혜와 생각은 쓰이지 않고 간사함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송(宋)나라 사람의 말에, “참새 한 마리가 예(羿)를 지나가는데, 예가 반드시 그것을 잡는다면, 예는 속이는 것이다. 천하로써 그 그물을 삼으면, 참새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간사함을 아는 것 또한 큰 그물이 있으니, 그 하나를 놓치지 않을 따름이다. 그 이치를 닦지 않고, 자기의 가슴속 살핌으로써 활과 화살을 삼으니, 자산은 속이는 것이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도적이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자산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원문 11]
秦昭王問於左右曰:「今時韓、魏孰與始強?」左右對曰:「弱於始也。」「今之如耳、魏齊孰與曩之孟常、芒卯?」對曰:「不及也。」王曰:「孟常、芒卯率強韓、魏猶無奈寡人何也!」左右對曰:「甚然!」中期推琴而對曰:「王之料天下過矣!夫六晉之時,知氏最強,滅范、中行而從韓、魏之兵以伐趙,灌以晉水,城之未沈者三板。知伯出,魏宣子御,韓康子為驂乘,知伯曰:「始吾不知水可以滅人之國,吾乃今知之。汾水可以灌安邑,絳水可以灌平陽。」魏宣子肘韓康子,康子踐宣子之足,肘足接乎車上,而知氏分於晉陽之下。今足下雖強,未若知氏;韓、魏雖弱,未至如其在晉陽之下也。此天下方用肘足之時,願王勿易之也。」
[번역문]
진(秦) 소왕(昭王)이 측근들에게 묻기를, “지금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는 처음과 비교하여 누가 더 강한가?”라고 하니, 측근들이 대답하기를, “처음보다 약합니다.”라고 하였다. “지금의 여이(如耳)와 위제(魏齊)는 지난날의 맹상(孟嘗)과 망묘(芒卯)와 비교하여 누가 더 나은가?”라고 하니,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이 말하기를, “맹상과 망묘가 강한 한나라와 위나라를 이끌고도 오히려 과인을 어찌하지 못했다!”라고 하니, 측근들이 대답하기를, “매우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중기(中期)가 거문고를 밀치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왕께서 천하를 헤아리심이 지나치십니다! 무릇 여섯 경(卿)이 있던 진(晉)나라 시절에, 지씨(知氏)가 가장 강하여,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멸하고 한(韓)·위(魏)의 군대를 이끌고 조(趙)나라를 정벌하여, 진수(晉水)로 물을 대니, 성이 잠기지 않은 부분이 세 판(板)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백(知伯)이 나가는데, 위선자(魏宣子)가 마차를 몰고, 한강자(韓康子)가 참승(驂乘)이 되었습니다. 지백이 말하기를, ‘처음에는 내가 물로써 남의 나라를 멸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는데, 내가 이제야 그것을 알았다. 분수(汾水)로는 안읍(安邑)에 물을 댈 수 있고, 강수(絳水)로는 평양(平陽)에 물을 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위선자가 팔꿈치로 한강자를 치고, 한강자가 위선자의 발을 밟으니, 팔꿈치와 발이 수레 위에서 맞닿았고, 지씨는 진양(晉陽) 아래에서 나뉘어 멸망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비록 강하시나, 지씨만 못하고, 한나라와 위나라가 비록 약하나, 진양 아래에 있을 때와 같은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이때는 천하가 바야흐로 팔꿈치와 발을 쓸 때이니, 원컨대 왕께서는 그들을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원문 12]
或曰:昭王之問也有失,左右中期之對也有過。凡明主之治國也,任其勢。勢不可害,則雖強天下無奈何也,而況孟常、芒卯、韓、魏能奈我何!其勢可害也,則不肖如如耳、魏齊,及韓、魏猶能害之。然則害與不侵,在自恃而已矣,奚問乎?自恃其不可侵,則強與弱奚其擇焉?失在不自恃,而問其奈何也,其不侵也幸矣!《申子》曰:「失之數而求之信則疑矣,」其昭王之謂也。知伯無度,從韓康、魏宣而圖以水灌滅其國,此知伯之所以國亡而身死、頭為飲杯之故也。今昭王乃問孰與始強,其畏有水人之患乎?雖有左右非韓、魏之二子也,安有肘足之事,而中期曰「勿易」,此虛言也。且中期之所官、琴瑟也,絃不調,弄不明,中期之任也,此中期所以事昭王者也。中期善承其任,未慊昭王也,而為所不知,豈不妄哉!左右對之曰「弱於始」與「不及」則可矣,其曰「甚然」則諛也。《申子》曰:「治不踰官,雖知不言。」今中期不知而尚言之。故曰昭王之問有失,左右中期之對皆有過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소왕(昭王)의 물음에는 실수가 있고, 측근들과 중기(中期)의 대답에는 과오가 있다. 무릇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그 권세[勢]에 맡기는 것이다. 권세가 해를 입을 수 없으면, 비록 천하가 강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데, 하물며 맹상(孟嘗), 망묘(芒卯), 한(韓), 위(魏)가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 권세가 해를 입을 수 있다면, 여이(如耳), 위제(魏齊)와 같이 못난 자와, 한나라, 위나라라도 오히려 그를 해칠 수 있다. 그렇다면 해를 입고 침략당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믿는 데에 있을 따름이니, 어찌 묻겠는가? 스스로 침략당할 수 없음을 믿는다면, 강하고 약함을 어찌 가리겠는가? 실수는 스스로를 믿지 않고, 그들을 어찌할 것인지를 묻는 데에 있으니, 침략당하지 않은 것은 다행일 뿐이다! 《신자(申子)》에 이르기를, “술수[數]를 잃고 신의[信]에서 구하면 의심스러워진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소왕을 두고 한 말이다. 지백(知伯)은 법도가 없어, 한강자(韓康子)와 위선자(魏宣子)를 따르게 하고는 물로써 그들의 나라를 멸망시키려 꾀했으니, 이것이 지백이 나라가 망하고 몸이 죽었으며, 머리가 술잔이 된 까닭이다. 지금 소왕이 이에 처음과 비교하여 누가 더 강한지를 물으니, 그가 물로 공격당하는 우환이 있을까 두려워해서인가? 비록 측근들이 한나라와 위나라의 두 사람과 같지 않더라도, 어찌 팔꿈치와 발의 일이 있겠는데, 중기가 ‘가벼이 여기지 말라’고 하니, 이는 헛된 말이다. 또한 중기의 관직은 거문고와 비파이니, 현이 조율되지 않고 연주가 밝지 않은 것이 중기의 임무이며, 이것이 중기가 소왕을 섬기는 방법이다. 중기가 그 임무를 잘 받들지 못하여, 아직 소왕을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알지 못하는 바를 행하니, 어찌 망령되지 않겠는가! 측근들이 그에게 ‘처음보다 약합니다’와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한 것은 괜찮으나, ‘매우 그렇습니다’라고 한 것은 아첨이다. 《신자》에 이르기를, “다스림은 관직을 넘지 않으니, 비록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지금 중기는 알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소왕의 물음에는 실수가 있고, 측근들과 중기의 대답에는 모두 과오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원문 13]
管子曰:「見其可說之有證,見其不可惡之有形,賞罰信於所見,雖所不見,其敢為之乎?見其可說之無證,見其不可惡之無形,賞罰不信於所見,而求所不見之外,不可得也。」
[번역문]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기뻐할 만한 것에는 증거가 있음을 보고, 미워할 만한 것에는 형체가 있음을 보며, 상벌이 보이는 바에 신실하면, 비록 보이지 않는 것이라도, 그들이 감히 그것을 하겠는가? 기뻐할 만한 것에 증거가 없음을 보고, 미워할 만한 것에 형체가 없음을 보며, 상벌이 보이는 바에 신실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것의 밖에서 구하면, 얻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원문 14]
或曰:廣廷嚴居,眾人之所肅也;晏室獨處,曾、史之所僈也。觀人之所肅,非行、情也。且君上者,臣下之所為飾也。好惡在所見,臣下之飾姦物以愚其君,必也。明不能燭遠姦,見隱微,而待之以觀飾行,定賞罰,不亦弊乎!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넓은 조정과 엄숙한 거처는, 뭇사람들이 엄숙해지는 곳이다. 편안한 방에 홀로 있는 것은, 증자(曾子)나 사어(史魚)라도 해이해지는 곳이다. 사람이 엄숙해지는 곳을 관찰하는 것은, 행동의 실정(實情)이 아니다. 또한 군주란, 아랫사람들이 꾸미는 대상이다. 좋고 싫음이 보이는 바에 있으니, 아랫사람들이 간사한 것을 꾸며 그 군주를 어리석게 만드는 것은, 필연적이다. 밝음이 능히 먼 곳의 간악함을 비추지 못하고, 숨겨진 미미함을 보지 못하면서, 꾸며진 행동을 관찰하는 것으로써 그것을 기다려, 상벌을 정하니, 또한 폐단이 아니겠는가!
[원-문 15]
管子曰:「言於室滿於室,言於堂滿於堂,是謂天下王。」
[번역문]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방에서 한 말이 방에 가득 차고, 당(堂)에서 한 말이 당에 가득 차면, 이를 일러 천하의 왕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원문 16]
或曰:管仲之所謂言室滿室、言堂滿堂者,非特謂遊戲飲食之言也,必謂大物也。人主之大物,非法則術也。法者,編著之圖籍,設之於官府,而布之於百姓者也。術者,藏之於胸中,以偶眾端而潛御群臣者也。故法莫如顯,而術不欲見。是以明主言法,則境內卑賤莫不聞知也,不獨滿於堂。用術,則親愛近習莫之得聞也,不得滿室。而管子猶曰「言於室滿室,言於堂滿堂」,非法術之言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관중(管仲)이 이른바 ‘방에서 한 말이 방에 가득 차고, 당(堂)에서 한 말이 당에 가득 찬다’고 한 것은, 단지 놀고 마시는 말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큰 것을 이르는 것이다. 군주의 큰 것이란, 법(法)이 아니면 술(術)이다. 법이란, 도서와 기록에 편찬하여, 관청에 설치하고, 백성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다. 술이란, 가슴속에 감추어, 여러 단서들을 맞추어보고 남몰래 여러 신하들을 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은 드러나는 것만 한 것이 없고, 술은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가 법을 말하면, 나라 안의 비천한 자라도 듣고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니, 단지 당에만 가득 차는 것이 아니다. 술을 쓸 때에는, 친하고 사랑하는 측근이라도 그것을 들을 수 없으니, 방에 가득 찰 수 없다. 그런데도 관자가 오히려 ‘방에서 한 말이 방에 가득 차고, 당에서 한 말이 당에 가득 찬다’고 하였으니, 법과 술에 대한 말이 아니다.
韓非子 難三 (한비자 난삼) 번역 및 주석
[원문 1]
難三:
魯穆公問於子思曰:「吾聞龐𥼴氏之子不孝,其行奚如?」子思對曰:「君子尊賢以崇德,舉善以觀民。若夫過行,是細人之所識也,臣不知也。」子思出,子服厲伯入見,問龐𥼴氏子,子服厲伯對曰:「其過三,皆君之所未嘗聞。」自是之後,君貴子思而賤子服厲伯也。
[번역문]
난삼(難三):
노(魯)나라 목공(穆公)이 자사(子思)에게 묻기를, “내가 듣건대 방몽씨(龐𥼴氏)의 아들이 불효하다는데, 그 행실이 어떠한가?”라고 하였다. 자사가 대답하기를, “군자(君子)는 현명한 이를 존중하여 덕을 숭상하고, 선한 이를 등용하여 백성에게 보입니다. 무릇 과오가 있는 행실은, 소인(小人)들이나 아는 바이니, 신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자사가 나가자, 자복여백(子服厲伯)이 들어와 뵙기에, 방몽씨의 아들에 대해 물으니, 자복여백이 대답하기를, “그의 과오가 세 가지인데, 모두 군주께서 일찍이 듣지 못하신 바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군주는 자사를 귀하게 여기고 자복여백을 천하게 여겼다.
[원문 2]
或曰:魯之公室,三世劫於季氏,不亦宜乎!明君求善而賞之,求姦而誅之,其得之一也。故以善聞之者,以說善同於上者也;以姦聞之者,以惡姦同於上者也;此宜賞譽之所力也。不以姦聞,是異於上而下比周於姦者也,此宜毀罰之所及也。今子思不以過聞,而穆公貴之,厲伯以姦聞而穆公賤之,人情皆喜貴而惡賤,故季氏之亂成而不上聞,此魯君之所以劫也。且此亡王之俗,取、魯之民所以自美,而穆公獨貴之,不亦倒乎!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¹⁾: 노(魯)나라의 공실(公室)이 삼대(三代)에 걸쳐 계씨(季氏)²⁾에게 위협받았으니,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현명한 군주는 선(善)을 구하여 상을 주고, 간악함[姦]을 구하여 벌을 주니, 그들을 얻는 것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아뢰는 자는, 선을 좋아하는 마음을 윗사람과 같이하는 자이다. 간악한 일을 아뢰는 자는, 간악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윗사람과 같이하는 자이다. 이는 마땅히 상과 칭찬이 힘써야 할 바이다. 간악한 일을 아뢰지 않는 것은, 윗사람과는 뜻이 다르고 아래로는 간악한 자들과 무리를 짓는 것이니, 이는 마땅히 비방과 형벌이 미쳐야 할 바이다. 지금 자사(子思)는 과오를 아뢰지 않았는데도 목공(穆公)이 그를 귀하게 여겼고, 여백(厲伯)은 간악한 일을 아뢰었는데도 목공이 그를 천하게 여겼다. 사람의 정(情)은 모두 귀함을 기뻐하고 천함을 싫어하니, 그러므로 계씨의 난이 이루어져도 윗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것이 노나라 군주가 위협받은 까닭이다. 또한 이것은 망국의 풍속[亡王之俗]³⁾인데, 노나라 백성들이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취하여, 목공이 유독 그것을 귀하게 여겼으니, 또한 도리에 어긋나지 않은가!
[주석]
1) 혹왈(或曰): ‘어떤 이가 말하기를’이라는 뜻으로, 한비자가 기존의 통념이나 다른 학파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사용하는 서술 형식이다. 여기서 ‘어떤 이’는 사실상 한비자 자신을 가리킨다.
2) 계씨(季氏): 춘추시대 노나라의 권력을 장악했던 삼환(三桓) 중 가장 세력이 강했던 가문. 노나라 군주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정을 전횡하였다. 한비자는 군주가 자사와 같이 현실의 악을 외면하는 자를 중용했기 때문에 계씨 같은 권신이 발호할 수 있었다고 비판한다.
3) 망왕지속(亡王之俗):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풍속. 여기서는 신하의 간악한 행위를 군주에게 보고하지 않고 숨기는 것을 고상한 태도로 여기는 유가적 풍조를 비판하는 말이다.
[원문 3]
文公出亡,獻公使寺人披攻之蒲城,披斬其袪,文公奔翟。惠公即位,又使攻之惠竇,不得也。及文公反國,披求見。公曰:「蒲城之役,君令一宿,而汝即至;惠竇之難,君令三宿,而汝一宿,何其速也?」披對曰:「君令不二,除君之惡,惟恐不堪,蒲人、翟人余何有焉?今公即位,其無蒲、翟乎!且桓公置射鉤而相管仲。」君乃見之。
[번역문]
문공(文公)이 망명 생활을 할 때, 헌공(獻公)이 환관[寺人] 피(披)를 시켜 포성(蒲城)에서 그를 공격하게 하니, 피가 그의 옷소매[袪]를 베었고, 문공은 적(翟)나라로 달아났다. 혜공(惠公)이 즉위하자, 또 그를 시켜 혜두(惠竇)에서 공격하게 하였으나, 잡지 못했다. 문공이 나라로 돌아오자, 피가 뵙기를 청하였다. 문공이 말하기를, “포성의 전투에서, 군주께서 하룻밤을 기한으로 명하셨는데 너는 즉시 이르렀고, 혜두의 난에서는, 군주께서 사흘 밤을 기한으로 명하셨는데 너는 하룻밤 만에 이르렀으니, 어찌 그리 빨랐는가?”라고 하였다. 피가 대답하기를, “군주의 명령은 두 가지가 없으니, 군주의 악을 제거함에 오직 능히 해내지 못할까 두려웠을 뿐, 포(蒲)나라 사람이나 적(翟)나라 사람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지금 공께서 즉위하셨으니, 그 포나라와 적나라가 없겠습니까! 또한 환공(桓公)께서는 사구(射鉤)¹⁾의 원한을 버리고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삼으셨습니다.”라고 하니, 군주가 이에 그를 만나주었다.
[주석]
1) 사구(射鉤): ‘갈고리를 쏘다’는 뜻. 제(齊) 환공(桓公)이 공자 시절에 공자 규(糾)와 왕위를 다툴 때, 규의 신하였던 관중(管仲)이 환공을 향해 활을 쏘았으나 화살이 허리띠의 갈고리에 맞아 목숨을 건진 고사. 환공은 즉위 후 이 원한을 잊고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하여 패업을 이루었다. 환관 피는 이 고사를 인용하여 자신도 군주의 명령에 따랐을 뿐 사사로운 원한은 없었음을 변호하고 있다.
[원문 4]
或曰:齊、晉絕祀,不亦宜乎!桓公能用管仲之功而忘射鉤之怨,文公能聽寺人之言而棄斬袪之罪,桓公、文公能容二子者也。後世之君,明不及二公;後世之臣,賢不如二子。以不忠之臣事不明之君。君不知,則有燕操、子罕、田常之賊;知之,則以管仲、寺人自解。君必不誅,而自以為有桓、文之德,是臣讎而明不能燭,多假之資。自以為賢而不戒,則雖無後嗣,不亦可乎!且寺人之言也,直飾君令而不貳者,則是貞於君也。死君後生臣不愧而復為貞,今惠公朝卒而暮事文公,寺人之不貳何如?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제(齊)나라와 진(晉)나라의 제사가 끊긴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의 공을 쓸 줄 알고 사구(射鉤)의 원한을 잊을 수 있었고, 문공(文公)은 환관의 말을 들을 줄 알고 옷소매를 벤 죄를 버릴 수 있었으니, 환공과 문공은 두 사람을 용납할 수 있는 군주였다. 후세의 군주는, 현명함이 두 공(公)에 미치지 못하고, 후세의 신하는, 현명함이 두 사람만 못하다. 불충한 신하로써 현명하지 못한 군주를 섬긴다. 군주가 알지 못하면, 연(燕)나라의 조(操), 송(宋)나라의 자한(子罕), 제(齊)나라의 전상(田常)과 같은 도적이 있게 된다. 알더라도, 관중과 환관의 예로써 스스로를 변명한다. 군주는 반드시 주살하지 않고, 스스로 환공과 문공의 덕이 있다고 여기니, 이는 신하가 원수인데도 밝음이 능히 비추지 못하고, 그에게 많은 자산을 빌려주는 것이다. 스스로 현명하다고 여기고 경계하지 않으니, 비록 후사가 없더라도 또한 옳지 않겠는가! 또한 환관의 말은, 단지 군주의 명령을 꾸미고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것이니, 이는 군주에게 곧다는 것이다. 죽은 군주를 뒤로하고 살아남은 신하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시 곧다고 하니, 지금 혜공(惠公)이 아침에 죽었는데 저녁에 문공을 섬기니, 환관의 두 마음 없음은 어떠한가?
[원문 5]
人有設桓公隱者曰:「一難,二難,三難,何也?」桓公不能對,以告管仲。管仲對曰:「一難也、近優而遠士。二難也、去其國而數之海。三難也、君老而晚置太子。」桓公曰:「善。」不擇日而廟禮太子。
[번역문]
어떤 사람이 환공(桓公)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말하기를, “첫째 어려움, 둘째 어려움, 셋째 어려움은, 무엇입니까?”라고 하였다. 환공이 대답하지 못하고, 이를 관중(管仲)에게 알렸다. 관중이 대답하기를, “첫째 어려움은, 배우[優]를 가까이하고 선비[士]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둘째 어려움은, 그 나라를 떠나 바다로 자주 가는 것입니다. 셋째 어려움은, 군주가 늙어서 늦게 태자를 세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좋다.”고 하고는, 날을 가리지 않고 사당에서 태자를 세우는 예를 행했다.
[원문 6]
或曰:管仲之射隱不得也。士之用不在近遠。而俳優侏儒,固人主之所與燕也。則近優而遠士,而以為治,非其難者也。夫處勢而不能用其有,而悖不去國,是以一人之力禁一國。以一人之力禁一國者,少能勝之。明能照遠姦而見隱微,必行之令,雖遠於海,內必無變;然則去國之海而不劫殺,非其難者也。楚成王置商臣以為太子,又欲置公子職,商臣作難,遂弒成王。公子宰,周太子也,公子根有寵,遂以東州反,分而為兩國。此皆非晚置太子之患也。夫分勢不二,庶孽卑,寵無藉,雖處大臣,晚置太子可也;然則晚置太子,庶孽不亂,又非其難也。物之所謂難者;必借人成勢而勿使侵害己,可謂一難也。貴妾不使二后,二難也。愛孽不使危正適,專聽一臣而不敢隅君,此則可謂三難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관중(管仲)이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했다. 선비의 쓰임은 가깝고 먼 데에 있지 않다. 그리고 배우와 난쟁이는, 본래 군주가 더불어 연회를 즐기는 자들이다. 그러니 배우를 가까이하고 선비를 멀리하면서도, 다스려진다고 여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릇 권세[勢]의 자리에 처하여 그 가진 것을 쓰지 못하고, 도리에 어긋나면서도 나라를 떠나지 않는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한 나라를 금하려는 것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 한 나라를 금하는 자는, 능히 이기는 경우가 드물다. 밝음이 능히 먼 곳의 간악함을 비추고 숨겨진 미미함을 볼 수 있으며, 반드시 행해지는 명령이 있다면, 비록 바다처럼 멀리 있더라도 안에서는 반드시 변고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를 떠나 바다에 있으면서도 위협받거나 살해당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초(楚) 성왕(成王)은 상신(商臣)을 태자로 세웠다가, 또 공자 직(公子職)을 세우려 하자, 상신이 난을 일으켜 마침내 성왕을 시해했다. 공자 재(宰)는 주(周)나라 태자였는데, 공자 근(公子根)이 총애를 받자, 마침내 동주(東周)를 가지고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둘로 나누었다. 이는 모두 늦게 태자를 세운 데서 온 재앙이 아니다. 무릇 권세를 나눔에 둘이 없고, 서자(庶孽)가 비천하며, 총애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비록 대신의 자리에 있더라도 늦게 태자를 세워도 괜찮다. 그렇다면 늦게 태자를 세워도 서자가 난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물에서 이른바 어렵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남을 빌려 세력을 이루게 하면서도 자기를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첫째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귀한 첩으로 하여금 두 명의 왕후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둘째 어려움이다. 사랑하는 서자로 하여금 정실의 적자(嫡子)를 위태롭게 하지 못하게 하고, 한 신하의 말만 오로지 들으면서도 감히 군주를 한쪽 구석으로 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것이 바로 셋째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원문 7]
葉公子高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悅近而來遠。」哀公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選賢。」齊景公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節財。」三公出,子貢問曰:「三公問夫子政一也,夫子對之不同,何也?」仲尼曰:「葉都大而國小,民有背心,故曰政在悅近而來遠。魯哀公有大臣三人,外障距諸侯四鄰之士,內比周而以愚其君,使宗廟不掃除,社稷不血食者,必是三臣也,故曰政在選賢。齊景公築雍門,為路寢,一朝而以三百乘之家賜者三,故曰政在節財。」
[번역문]
섭공(葉公) 자고(子高)가 중니(仲尼)에게 정치를 묻자, 중니가 말하기를, “정치는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이 오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애공(哀公)이 중니에게 정치를 묻자, 중니가 말하기를, “정치는 현명한 이를 가려 뽑는 데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제(齊) 경공(景公)이 중니에게 정치를 묻자, 중니가 말하기를, “정치는 재물을 절약하는 데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세 공(公)이 나가자, 자공(子貢)이 묻기를, “세 공께서 선생님께 물으신 정치는 하나인데, 선생님께서 대답하신 것이 다른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중니가 말하기를, “섭(葉) 땅은 도읍은 크나 나라는 작아, 백성들이 배반할 마음이 있으므로, 정치는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이 오게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노(魯) 애공에게는 대신 세 사람이 있는데, 밖으로는 이웃 제후들의 선비들을 막고, 안으로는 무리를 지어 그 군주를 어리석게 만드니, 종묘가 청소되지 않고 사직에 피 제사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자는, 반드시 이 세 신하일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현명한 이를 가려 뽑는 데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제 경공은 옹문(雍門)을 쌓고, 노침(路寢)을 지으며, 하루아침에 삼백 승(乘)의 집을 하사한 자가 셋이나 되므로, 정치는 재물을 절약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8]
或曰:仲尼之對,亡國之言也。葉民有倍心,而說之悅近而來遠,則是教民懷惠。惠之為政,無功者受賞,而有罪者免,此法之所以敗也。法敗而政亂,以亂政治敗民,未見其可也。且民有倍心者,君上之明有所不及也。不紹葉公之明,而使之悅近而來遠,是舍吾勢之所能禁而使與不行惠以爭民,非能持勢者也。夫堯之賢,六王之冠也,舜一從而咸包,而堯無天下矣。有人無術以禁下,恃為舜而不失其民,不亦無術乎!明君見小姦於微,故民無大謀;行小誅於細,故民無大亂;此謂圖難於其所易也,為大者於其所細也。今有功者必賞,賞者不得君,力之所致也;有罪者必誅,誅者不怨上,罪之所生也。民知誅罰之皆起於身也,故疾功利於業,而不受賜於君。「太上、下智有之。」此言太上之下民無說也,安取懷惠之民?上君之民無利害,說以悅近來遠,亦可舍己。哀公有臣外障距內比周以愚其君,而說之以選賢,此非功伐之論也,選其心之所謂賢者也。使哀公知三子外障距內比周也,則三子不一日立矣。哀公不知選賢,選其心之所謂賢,故三子得任事。燕子噲賢子之而非孫卿,故身死為僇。夫差智太宰嚭而愚子胥,故滅於越。魯君不必知賢,而說以選賢,是使哀公有夫差、燕噲之患也。明君不自舉臣,臣相進也;不自賢,功自徇也。論之於任,試之於事,課之於功。故群臣公政而無私,不隱賢,不進不肖,然則人主奚勞於選賢?景公以百乘之家賜,而說以節財,是使景公無術使智君之侈,而獨儉於上,未免於貧也。有君以千里養其口腹,則雖桀、紂不侈焉。齊國方三千里,而桓公以其半自養,是侈於桀、紂也,然而能為五霸冠者,知侈儉之地也。為君不能禁下而自禁者謂之劫,不能飾下而自飾者謂之亂,不節下而自節者謂之貧。明君使人無私,以詐而食者禁;力盡於事,歸利於上者必聞,聞者必賞;污穢為私者必知,知者必誅。然故忠臣盡忠於方公,民士竭力於家,百官精剋於上,侈倍景公,非國之患也。然則說之以節財,非其急者也。夫對三公一言而三公可以無患,知下之謂也。知下明則禁於微,禁於微則姦無積,姦無積則無比周。無比周則公私分,公私分則朋黨散,朋黨散則無外障距內比周之患。知下明則見精沐,見精沐則誅賞明,誅賞明則國不貧,故曰一對而三公無患,知下之謂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중니(仲尼)의 대답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말이다. 섭(葉) 땅의 백성이 배반할 마음이 있는데, 그에게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이 오게 하라고 유세하는 것은, 백성에게 은혜를 품게 가르치는 것이다. 은혜로써 정치를 하면, 공이 없는 자가 상을 받고, 죄가 있는 자가 면제되니, 이것이 법이 무너지는 까닭이다. 법이 무너지고 정치가 어지러워지는데, 어지러운 정치로써 타락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옳다고 보지 못했다. 또한 백성이 배반할 마음이 있는 것은, 군주의 밝음이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섭공(葉公)의 밝음을 잇게 하지 않고, 그로 하여금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이 오게 하는 것은, 나의 권세[勢]로 능히 금할 수 있는 것을 버리고, 행해지지 않는 은혜로써 백성과 다투게 하는 것이니, 권세를 지닐 줄 아는 자가 아니다. 무릇 요(堯)임금의 현명함은 여섯 왕의 으뜸이었으나, 순(舜)이 한 번 따르자 모두 감싸 안아, 요임금은 천하를 잃었다. 어떤 사람이 술(術) 없이 아랫사람을 금하면서, 순이 되는 것을 믿고 그 백성을 잃지 않으려 한다면, 또한 술(術)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명한 군주는 작은 간악함을 미미할 때 보고, 그러므로 백성에게 큰 계책이 없다. 작은 주살을 미세할 때 행하고, 그러므로 백성에게 큰 혼란이 없다. 이를 일러 ‘어려움을 그 쉬운 데서 도모하고, 큰 것을 그 미세한 데서 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공이 있는 자는 반드시 상을 받으니, 상 받는 자는 군주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라, 힘이 이르게 한 바이다. 죄가 있는 자는 반드시 주살되니, 주살되는 자는 윗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죄가 낳은 바이다. 백성은 주벌이 모두 자신에게서 일어남을 알므로, 그러므로 생업에서 공과 이익을 서두르고, 군주에게서 하사품을 받지 않는다. “가장 훌륭한 군주는,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음을 알 뿐이다.”¹⁾ 이 말은 가장 훌륭한 군주 아래의 백성은 기뻐할 일이 없다는 것이니, 어찌 은혜를 품는 백성을 취하겠는가? 윗 등급 군주의 백성은 이해관계가 없으니,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이 오게 하라고 유세하는 것은, 또한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애공(哀公)에게 밖으로는 막고 안으로는 무리를 지어 그 군주를 어리석게 하는 신하가 있는데, 그에게 현명한 이를 가려 뽑으라고 유세하는 것은, 공적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그 마음속에 이른바 현명하다고 여기는 자를 가려 뽑는 것이다. 만약 애공이 세 사람이 밖으로는 막고 안으로는 무리를 짓는 것을 알았다면, 세 사람은 하루도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애공은 현명한 이를 가려 뽑을 줄 모르고, 그 마음속에 이른바 현명하다고 여기는 자를 가려 뽑으니, 그러므로 세 사람이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연(燕)나라의 자쾌(子噲)는 자지(子之)를 현명하다 여기고 손경(孫卿)을 그렇지 않다고 여겼으므로, 몸이 죽어 치욕을 당했다. 부차(夫差)는 태재 비(太宰嚭)를 지혜롭다 여기고 자서(子胥)를 어리석다 여겼으므로, 월(越)나라에 멸망했다. 노(魯)나라 군주가 반드시 현명한 이를 알지는 못하는데, 현명한 이를 가려 뽑으라고 유세하는 것은, 애공으로 하여금 부차와 연나라 자쾌의 우환을 겪게 하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는 스스로 신하를 등용하지 않고, 신하들이 서로 천거한다. 스스로 현명하다 하지 않고, 공이 스스로 드러난다. 임무로써 논하고, 일로써 시험하며, 공으로써 평가한다. 그러므로 여러 신하들이 공적인 정치를 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며, 현명한 이를 숨기지 않고, 못난 이를 천거하지 않으니, 그렇다면 군주가 어찌 현명한 이를 가려 뽑는 데 수고롭겠는가? 경공(景公)이 백 승(乘)의 집을 하사하는데, 재물을 절약하라고 유세하는 것은, 경공으로 하여금 지혜로운 군주의 사치를 부릴 술(術)이 없게 하고, 오직 위에서만 검소하게 하여, 가난함을 면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군주가 천 리의 땅으로 자기 입과 배를 채운다면, 비록 걸(桀)·주(紂)라도 이보다 사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齊)나라 땅은 사방 삼천 리인데, 환공(桓公)이 그 절반으로 스스로를 봉양했으니, 이는 걸·주보다 사치한 것이다. 그러나 능히 오패(五霸)의 으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치와 검소함의 자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군주가 되어 아랫사람을 금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금하는 것을 일러 겁박당한다[劫] 하고, 아랫사람을 꾸미지 못하고 스스로를 꾸미는 것을 일러 어지럽다[亂] 하고, 아랫사람을 절제시키지 못하고 스스로를 절제하는 것을 일러 가난하다[貧]고 한다. 현명한 군주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사로움이 없게 하고, 속임수로 먹고사는 자를 금한다. 힘을 일에 다하고, 이익을 위로 돌리는 자는 반드시 알려지니, 알려진 자는 반드시 상을 받는다. 더럽고 추하게 사사로움을 위하는 자는 반드시 알려지니, 알려진 자는 반드시 주살된다. 그런 까닭에 충신은 공적인 일에 충성을 다하고, 백성과 선비는 집안일에 힘을 다하며, 모든 관리는 위에서 정밀하고 엄격하니, 경공보다 배로 사치하더라도, 나라의 우환이 아니다. 그렇다면 재물을 절약하라고 유세하는 것은, 그 급한 바가 아니다. 무릇 세 공(公)에게 한마디 말로 대답하여 세 공이 우환이 없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랫사람을 아는 것[知下]을 말한다. 아랫사람을 아는 것이 밝으면 미미할 때 금할 수 있고, 미미할 때 금하면 간사함이 쌓이지 않으며, 간사함이 쌓이지 않으면 무리를 짓지 않는다. 무리를 짓지 않으면 공과 사가 나뉘고, 공과 사가 나뉘면 붕당이 흩어지며, 붕당이 흩어지면 밖으로는 막고 안으로는 무리를 짓는 우환이 없다. 아랫사람을 아는 것이 밝으면 정밀하게 살피게 되고, 정밀하게 살피면 주벌과 상이 밝아지며, 주벌과 상이 밝아지면 나라가 가난해지지 않으니, 그러므로 한 번의 대답으로 세 공이 우환이 없게 하는 것은, 아랫사람을 아는 것을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주석]
1) 太上、下智有之(태상, 하지유지): 《노자(老子)》 17장의 “太上,下知有之(태상, 하지유지)”를 인용한 것이다. 원문은 “가장 훌륭한 (군주는),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안다”는 뜻으로, 군주가 무위(無為)로 다스려 그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최상의 통치 상태를 말한다. 한비자는 이를 인용하여, 백성이 군주의 존재를 의식하고 은혜를 바라는 상태는 이미 최상의 통치가 아님을 역설한다.
[원문 9]
鄭子產晨出,過東匠之閭,聞婦人之哭,撫其御之手而聽之。有閒,遣吏執而問之,則手絞其夫者也。異日,其御問曰:「夫子何以知之?」子產曰:「其聲懼。凡人於其親愛也,始病而憂,臨死而懼,已死而哀。今哭已死不哀而懼,是以知其有姦也。」
[번역문]
정(鄭)나라 자산(子產)이 새벽에 나가다가, 동쪽 장인의 마을을 지나는데, 부인의 곡소리를 듣고, 그 마부의 손을 어루만지며 그것을 들었다. 잠시 후, 관리를 보내 잡아다 물어보니, 손으로 그 남편을 목 졸라 죽인 자였다. 다른 날, 그 마부가 묻기를, “선생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아셨습니까?”라고 하니, 자산이 말하기를, “그 목소리에 두려움이 있었다. 무릇 사람이 그 친하고 사랑하는 이에 대해, 처음 병이 들면 근심하고, 죽음에 임박하면 두려워하며, 이미 죽으면 슬퍼한다. 지금 이미 죽었는데도 슬퍼하지 않고 두려워하니, 이 때문에 간사한 짓이 있음을 안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문 10]
或曰:子產之治,不亦多事乎?姦必待耳目之所及而後知之,則鄭國之得姦者寡矣。不任典成之吏,不察參伍之政,不明度量,恃盡聰明,勞智慮,而以知姦,不亦無術乎?且夫物眾而智寡,寡不勝眾,智不足以遍知物,故因物以治物。下眾而上寡,寡不勝眾,者言君不足以遍知臣也,故因人以知人。是以形體不勞而事治,智慮不用而姦得。故宋人語曰:「一雀過羿,羿必得之,則羿誣矣。以天下為之羅,則雀不失矣。」夫知姦亦有大羅,不失其一而已矣。不修其理,而以己之胸察為之弓矢,則子產誣矣。老子曰:「以智治國,國之賊也。」其子產之謂矣。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자산(子產)의 다스림은, 또한 일이 많지 않은가? 간사함을 반드시 귀와 눈이 미친 뒤에야 안다면, 정(鄭)나라에서 간사한 자를 잡아내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 법을 맡은 관리를 임용하지 않고, 삼오(參伍)의 정치를 살피지 않으며, 법도[度量]를 밝히지 않고, 총명을 다하는 것을 믿고, 지혜와 생각을 수고롭게 하여 간사함을 알아내니, 또한 술(術)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무릇 사물은 많고 지혜는 적으니, 적은 것은 많은 것을 이기지 못하고, 지혜는 사물을 두루 알기에 부족하므로, 사물로 인하여 사물을 다스린다. 아랫사람은 많고 윗사람은 적으니, 적은 것은 많은 것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군주가 신하를 두루 알기에 부족하다는 말이니, 그러므로 사람으로 인하여 사람을 안다. 이 때문에 몸은 수고롭지 않고 일이 다스려지며, 지혜와 생각은 쓰이지 않고 간사함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송(宋)나라 사람의 말에, “참새 한 마리가 예(羿)를 지나가는데, 예가 반드시 그것을 잡는다면, 예는 속이는 것이다. 천하로써 그 그물을 삼으면, 참새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간사함을 아는 것 또한 큰 그물이 있으니, 그 하나를 놓치지 않을 따름이다. 그 이치를 닦지 않고, 자기의 가슴속 살핌으로써 활과 화살을 삼으니, 자산은 속이는 것이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도적이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자산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원문 11]
秦昭王問於左右曰:「今時韓、魏孰與始強?」左右對曰:「弱於始也。」「今之如耳、魏齊孰與曩之孟常、芒卯?」對曰:「不及也。」王曰:「孟常、芒卯率強韓、魏猶無奈寡人何也!」左右對曰:「甚然!」中期推琴而對曰:「王之料天下過矣!夫六晉之時,知氏最強,滅范、中行而從韓、魏之兵以伐趙,灌以晉水,城之未沈者三板。知伯出,魏宣子御,韓康子為驂乘,知伯曰:「始吾不知水可以滅人之國,吾乃今知之。汾水可以灌安邑,絳水可以灌平陽。」魏宣子肘韓康子,康子踐宣子之足,肘足接乎車上,而知氏分於晉陽之下。今足下雖強,未若知氏;韓、魏雖弱,未至如其在晉陽之下也。此天下方用肘足之時,願王勿易之也。」
[번역문]
진(秦) 소왕(昭王)이 측근들에게 묻기를, “지금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는 처음과 비교하여 누가 더 강한가?”라고 하니, 측근들이 대답하기를, “처음보다 약합니다.”라고 하였다. “지금의 여이(如耳)와 위제(魏齊)는 지난날의 맹상(孟嘗)과 망묘(芒卯)와 비교하여 누가 더 나은가?”라고 하니,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이 말하기를, “맹상과 망묘가 강한 한나라와 위나라를 이끌고도 오히려 과인을 어찌하지 못했다!”라고 하니, 측근들이 대답하기를, “매우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중기(中期)가 거문고를 밀치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왕께서 천하를 헤아리심이 지나치십니다! 무릇 여섯 경(卿)이 있던 진(晉)나라 시절에, 지씨(知氏)가 가장 강하여,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멸하고 한(韓)·위(魏)의 군대를 이끌고 조(趙)나라를 정벌하여, 진수(晉水)로 물을 대니, 성이 잠기지 않은 부분이 세 판(板)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백(知伯)이 나가는데, 위선자(魏宣子)가 마차를 몰고, 한강자(韓康子)가 참승(驂乘)이 되었습니다. 지백이 말하기를, ‘처음에는 내가 물로써 남의 나라를 멸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는데, 내가 이제야 그것을 알았다. 분수(汾水)로는 안읍(安邑)에 물을 댈 수 있고, 강수(絳水)로는 평양(平陽)에 물을 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위선자가 팔꿈치로 한강자를 치고, 한강자가 위선자의 발을 밟으니, 팔꿈치와 발이 수레 위에서 맞닿았고, 지씨는 진양(晉陽) 아래에서 나뉘어 멸망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비록 강하시나, 지씨만 못하고, 한나라와 위나라가 비록 약하나, 진양 아래에 있을 때와 같은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이때는 천하가 바야흐로 팔꿈치와 발을 쓸 때이니, 원컨대 왕께서는 그들을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원문 12]
或曰:昭王之問也有失,左右中期之對也有過。凡明主之治國也,任其勢。勢不可害,則雖強天下無奈何也,而況孟常、芒卯、韓、魏能奈我何!其勢可害也,則不肖如如耳、魏齊,及韓、魏猶能害之。然則害與不侵,在自恃而已矣,奚問乎?自恃其不可侵,則強與弱奚其擇焉?失在不自恃,而問其奈何也,其不侵也幸矣!《申子》曰:「失之數而求之信則疑矣,」其昭王之謂也。知伯無度,從韓康、魏宣而圖以水灌滅其國,此知伯之所以國亡而身死、頭為飲杯之故也。今昭王乃問孰與始強,其畏有水人之患乎?雖有左右非韓、魏之二子也,安有肘足之事,而中期曰「勿易」,此虛言也。且中期之所官、琴瑟也,絃不調,弄不明,中期之任也,此中期所以事昭王者也。中期善承其任,未慊昭王也,而為所不知,豈不妄哉!左右對之曰「弱於始」與「不及」則可矣,其曰「甚然」則諛也。《申子》曰:「治不踰官,雖知不言。」今中期不知而尚言之。故曰昭王之問有失,左右中期之對皆有過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소왕(昭王)의 물음에는 실수가 있고, 측근들과 중기(中期)의 대답에는 과오가 있다. 무릇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그 권세[勢]에 맡기는 것이다. 권세가 해를 입을 수 없으면, 비록 천하가 강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데, 하물며 맹상(孟嘗), 망묘(芒卯), 한(韓), 위(魏)가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 권세가 해를 입을 수 있다면, 여이(如耳), 위제(魏齊)와 같이 못난 자와, 한나라, 위나라라도 오히려 그를 해칠 수 있다. 그렇다면 해를 입고 침략당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믿는 데에 있을 따름이니, 어찌 묻겠는가? 스스로 침략당할 수 없음을 믿는다면, 강하고 약함을 어찌 가리겠는가? 실수는 스스로를 믿지 않고, 그들을 어찌할 것인지를 묻는 데에 있으니, 침략당하지 않은 것은 다행일 뿐이다! 《신자(申子)》에 이르기를, “술수[數]를 잃고 신의[信]에서 구하면 의심스러워진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소왕을 두고 한 말이다. 지백(知伯)은 법도가 없어, 한강자(韓康子)와 위선자(魏宣子)를 따르게 하고는 물로써 그들의 나라를 멸망시키려 꾀했으니, 이것이 지백이 나라가 망하고 몸이 죽었으며, 머리가 술잔이 된 까닭이다. 지금 소왕이 이에 처음과 비교하여 누가 더 강한지를 물으니, 그가 물로 공격당하는 우환이 있을까 두려워해서인가? 비록 측근들이 한나라와 위나라의 두 사람과 같지 않더라도, 어찌 팔꿈치와 발의 일이 있겠는데, 중기가 ‘가벼이 여기지 말라’고 하니, 이는 헛된 말이다. 또한 중기의 관직은 거문고와 비파이니, 현이 조율되지 않고 연주가 밝지 않은 것이 중기의 임무이며, 이것이 중기가 소왕을 섬기는 방법이다. 중기가 그 임무를 잘 받들지 못하여, 아직 소왕을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알지 못하는 바를 행하니, 어찌 망령되지 않겠는가! 측근들이 그에게 ‘처음보다 약합니다’와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한 것은 괜찮으나, ‘매우 그렇습니다’라고 한 것은 아첨이다. 《신자》에 이르기를, “다스림은 관직을 넘지 않으니, 비록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지금 중기는 알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소왕의 물음에는 실수가 있고, 측근들과 중기의 대답에는 모두 과오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원문 13]
管子曰:「見其可說之有證,見其不可惡之有形,賞罰信於所見,雖所不見,其敢為之乎?見其可說之無證,見其不可惡之無形,賞罰不信於所見,而求所不見之外,不可得也。」
[번역문]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기뻐할 만한 것에는 증거가 있음을 보고, 미워할 만한 것에는 형체가 있음을 보며, 상벌이 보이는 바에 신실하면, 비록 보이지 않는 것이라도, 그들이 감히 그것을 하겠는가? 기뻐할 만한 것에 증거가 없음을 보고, 미워할 만한 것에 형체가 없음을 보며, 상벌이 보이는 바에 신실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것의 밖에서 구하면, 얻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원문 14]
或曰:廣廷嚴居,眾人之所肅也;晏室獨處,曾、史之所僈也。觀人之所肅,非行、情也。且君上者,臣下之所為飾也。好惡在所見,臣下之飾姦物以愚其君,必也。明不能燭遠姦,見隱微,而待之以觀飾行,定賞罰,不亦弊乎!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넓은 조정과 엄숙한 거처는, 뭇사람들이 엄숙해지는 곳이다. 편안한 방에 홀로 있는 것은, 증자(曾子)나 사어(史魚)라도 해이해지는 곳이다. 사람이 엄숙해지는 곳을 관찰하는 것은, 행동의 실정(實情)이 아니다. 또한 군주란, 아랫사람들이 꾸미는 대상이다. 좋고 싫음이 보이는 바에 있으니, 아랫사람들이 간사한 것을 꾸며 그 군주를 어리석게 만드는 것은, 필연적이다. 밝음이 능히 먼 곳의 간악함을 비추지 못하고, 숨겨진 미미함을 보지 못하면서, 꾸며진 행동을 관찰하는 것으로써 그것을 기다려, 상벌을 정하니, 또한 폐단이 아니겠는가!
[원문 15]
管子曰:「言於室滿於室,言於堂滿於堂,是謂天下王。」
[번역문]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방에서 한 말이 방에 가득 차고, 당(堂)에서 한 말이 당에 가득 차면, 이를 일러 천하의 왕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원문 16]
或曰:管仲之所謂言室滿室、言堂滿堂者,非特謂遊戲飲食之言也,必謂大物也。人主之大物,非法則術也。法者,編著之圖籍,設之於官府,而布之於百姓者也。術者,藏之於胸中,以偶眾端而潛御群臣者也。故法莫如顯,而術不欲見。是以明主言法,則境內卑賤莫不聞知也,不獨滿於堂。用術,則親愛近習莫之得聞也,不得滿室。而管子猶曰「言於室滿室,言於堂滿堂」,非法術之言也。
[번역문]
어떤 이는 반박하여 말한다: 관중(管仲)이 이른바 ‘방에서 한 말이 방에 가득 차고, 당(堂)에서 한 말이 당에 가득 찬다’고 한 것은, 단지 놀고 마시는 말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큰 것을 이르는 것이다. 군주의 큰 것이란, 법(法)이 아니면 술(術)이다. 법이란, 도서와 기록에 편찬하여, 관청에 설치하고, 백성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다. 술이란, 가슴속에 감추어, 여러 단서들을 맞추어보고 남몰래 여러 신하들을 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은 드러나는 것만 한 것이 없고, 술은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가 법을 말하면, 나라 안의 비천한 자라도 듣고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니, 단지 당에만 가득 차는 것이 아니다. 술을 쓸 때에는, 친하고 사랑하는 측근이라도 그것을 들을 수 없으니, 방에 가득 찰 수 없다. 그런데도 관자가 오히려 ‘방에서 한 말이 방에 가득 차고, 당에서 한 말이 당에 가득 찬다’고 하였으니, 법과 술에 대한 말이 아니다.
韓非子 難勢 (한비자 난세) 번역 및 주석
[원문 1]
難勢:
慎子曰:「飛龍乘雲,騰蛇遊霧,雲罷霧霽,而龍蛇與螾螘同矣,則失其所乘也。賢人而詘於不肖者,則權輕位卑也;不肖而能服於賢者,則權重位尊也。堯為匹夫不能治三人,而桀為天子能亂天下,吾以此知勢位之足恃,而賢智之不足慕也。夫弩弱而矢高者,激於風也;身不肖而令行者,得助於眾也。堯教於隸屬而民不聽,至於南面而王天下,令則行,禁則止。由此觀之,賢智未足以服眾,而勢位足以詘賢者也。」
[번역문]
난세(難勢):
신자(慎子)¹⁾가 말하기를, “나는 용[飛龍]은 구름을 타고, 오르는 뱀[騰蛇]은 안개를 타고 노니는데,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걷히면 용과 뱀도 지렁이나 개미[螾螘]와 같아지니, 이는 그 타고 있던 바를 잃었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이 못난 사람에게 굴복하는 것은 권력이 가볍고 지위가 낮기 때문이며, 못난 사람이 능히 현명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권력이 무겁고 지위가 높기 때문이다. 요(堯)임금이 평민이었을 때에는 세 사람도 다스리지 못했으나, 걸(桀)임금은 천자(天子)가 되어 능히 천하를 어지럽혔으니, 나는 이로써 권세와 지위[勢位]는 족히 믿을 만하고, 현명함과 지혜[賢智]는 족히 흠모할 만한 것이 못 됨을 안다. 무릇 쇠뇌가 약한데도 화살이 높이 나는 것은 바람에 의해 솟구치기 때문이며, 몸은 못났는데도 명령이 행해지는 것은 무리의 도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요임금이 평민으로서 가르쳤을 때에는 백성들이 듣지 않았으나, 남면(南面)하여 천하의 왕이 되자 명령하면 행해지고 금지하면 그쳤다. 이로 보건대, 현명함과 지혜는 족히 무리를 복종시키지 못하며, 권세와 지위는 족히 현명한 자를 굴복시킨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신자(慎子): 전국시대 법가(法家) 사상가인 신도(愼到)를 가리킨다. 그는 특히 군주의 권세와 지위에서 나오는 힘, 즉 ‘세(勢)’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2) 인사(螾螘): 지렁이와 개미. 미미하고 힘없는 존재를 비유한다.
3) 세위(勢位): 권세와 지위. 군주가 가진 직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권력과 권위를 의미하는 법가의 핵심 개념이다. 신도는 군주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도덕성[賢智]보다 이 객관적인 ‘세(勢)’가 통치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4) 남면(南面): 제왕이 남쪽을 향해 앉아 신하들의 조회를 받고 정사를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천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뜻한다.
[원문 2]
應慎子曰:飛龍乘雲,騰蛇遊霧,吾不以龍蛇為不託於雲霧之勢也。雖然,夫釋賢而專任勢,足以為治乎?則吾未得見也。夫有雲霧之勢,而能乘遊之者,龍蛇之材美也。今雲盛而螾弗能乘也,霧醲而螘不能遊也,夫有盛雲醲霧之勢而不能乘遊者,螾螘之材薄也。今桀、紂南面而王天下,以天子之威為之雲霧,而天下不免乎大亂者,桀、紂之材薄也。且其人以堯之勢以治天下也,其勢何以異桀之勢也,亂天下者也。夫勢者,非能必使賢者用已,而不肖者不用已也,賢者用之則天下治,不肖者用之則天下亂。人之情性,賢者寡而不肖者眾,而以威勢之利濟亂世之不肖人,則是以勢亂天下者多矣,以勢治天下者寡矣。夫勢者,便治而利亂者也,故《周書》曰:「毋為虎傅翼,將飛入邑,擇人而食之。」夫乘不肖人於勢,是為虎傅翼也。桀、紂為高臺深池以盡民力,為炮烙以傷民性,桀、紂得乘四行者,南面之威為之翼也。使桀、紂為匹夫,未始行一而身在刑戮矣。勢者,養虎狼之心,而成暴亂之事者也,此天下之大患也。勢之於治亂,本末有位也,而語專言勢之足以治天下者,則其智之所至者淺矣。夫良馬固車,使臧獲御之則為人笑,王良御之而日取千里,車馬非異也,或至乎千里,或為人笑,則巧拙相去遠矣。今以國位為車,以勢為馬,以號令為轡,以刑罰為鞭筴,使堯、舜御之則天下治,桀、紂御之則天下亂,則賢不肖相去遠矣。夫欲追速致遠,不知任王良;欲進利除害,不知任賢能;此則不知類之患也。夫堯、舜亦治民之王良也。
[번역문]
신자(慎子)에게 응답하여 말한다¹⁾: 나는 용이 구름을 타고 오르는 뱀이 안개를 타고 노니는 것에 대해, 용과 뱀이 구름과 안개의 권세[勢]에 의탁하지 않는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하나, 무릇 현명함[賢]을 버리고 오로지 권세[勢]만 믿는 것이, 족히 다스림을 이루기에 충분한가? 그렇다면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무릇 구름과 안개의 권세가 있더라도, 능히 그것을 타고 노니는 것은 용과 뱀의 재능[材]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지금 구름이 무성해도 지렁이는 능히 타지 못하고, 안개가 짙어도 개미는 능히 노닐지 못하니, 무릇 무성한 구름과 짙은 안개의 권세가 있어도 능히 타고 노닐지 못하는 것은, 지렁이와 개미의 재능이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지금 걸(桀)·주(紂)가 남면하여 천하의 왕이 되어, 천자의 위엄으로써 구름과 안개를 삼았는데도 천하가 큰 혼란을 면치 못한 것은, 걸·주의 재능이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람이 요(堯)임금의 권세로써 천하를 다스렸다면, 그 권세가 어찌 걸임금의 권세와 다르겠는가? 천하를 어지럽혔을 것이다. 무릇 권세란, 반드시 현명한 자로 하여금 쓰이게 하고 못난 자로 하여금 쓰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명한 자가 그것을 쓰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못난 자가 그것을 쓰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 사람의 정과 성품은, 현명한 자는 적고 못난 자는 많으니, 위세의 이로움으로 어지러운 세상의 못난 사람을 돕는다면, 권세로써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가 많을 것이고, 권세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적을 것이다. 무릇 권세란, 다스림에는 편리하지만 혼란에는 이로운 것이니, 그러므로 《주서(周書)》에 이르기를,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말라. 장차 마을로 날아 들어와, 사람을 가려 잡아먹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못난 사람을 권세에 태우는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걸·주가 높은 누대와 깊은 연못을 만들어 백성의 힘을 다하게 하고, 포락(炮烙)의 형벌을 만들어 백성의 본성을 해쳤는데, 걸·주가 네 가지 악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남면하는 위엄이 그들에게 날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걸·주가 평민이었다면, 한 가지 악행도 시작하기 전에 몸이 형벌을 받아 죽었을 것이다. 권세란, 호랑이와 이리의 마음을 길러주고, 포악하고 어지러운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이니, 이는 천하의 큰 우환이다. 권세가 다스림과 어지러움에 미치는 영향에는 근본과 말단의 위치가 있는데, 오로지 권세만으로 족히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지혜가 미치는 바가 얕은 것이다. 무릇 좋은 말과 견고한 수레라도, 노비[臧獲]에게 몰게 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왕량(王良)²⁾이 몰면 하루에 천 리를 가니, 수레와 말이 다른 것이 아닌데도, 혹은 천 리에 이르고 혹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교묘함과 졸렬함의 차이가 멀기 때문이다. 지금 나라의 지위를 수레로 삼고, 권세를 말로 삼으며, 호령을 고삐로 삼고, 형벌을 채찍으로 삼아, 요·순이 그것을 몰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걸·주가 그것을 몰면 천하가 어지러워지니, 현명함과 못남의 차이가 먼 것이다. 무릇 빨리 달리고 멀리 이르고자 하면서도 왕량을 임용할 줄 모르고, 이익을 나아가게 하고 해를 제거하고자 하면서도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를 임용할 줄 모르는 것은, 이는 유추(類推)할 줄 모르는 데서 오는 재앙이다. 무릇 요·순 또한 백성을 다스리는 왕량인 것이다.
[주석]
1) 응신자왈(應慎子曰): ‘신자에게 응답하여 말한다’는 뜻으로, 한비자가 신도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형식이다. 한비자는 권세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군주의 현명함[賢]과 통치술[術]이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왕량(王良):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전설적인 마부. 뛰어난 기술을 가진 전문가를 비유한다. 한비자는 통치 역시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며, 군주는 통치 기술의 전문가인 ‘왕량’과 같아야 한다고 본다.
[원문 3]
復應之曰:其人以勢為足恃以治官。客曰「必待賢乃治」,則不然矣。夫勢者,名一而變無數者也。勢必於自然,則無為言於勢矣。吾所為言勢者,言人之所設也。今日堯、舜得勢而治,桀、紂得勢而亂,吾非以堯、桀為不然也。雖然,非一人之所得設也。夫堯、舜生而在上位,雖有十桀、紂不能亂者,則勢治也;桀、紂亦生而在上位,雖有十堯、舜而亦不能治者,則勢亂也。故曰:「勢治者,則不可亂;而勢亂者,則不可治也。」此自然之勢也,非人之所得設也。若吾所言,謂人之所得勢也而已矣,賢何事焉?何以明其然也?客曰:「人有鬻矛與楯者,譽其楯之堅,物莫能陷也,俄而又譽其矛曰:『吾矛之利,物無不陷也。』人應之曰:『以子之矛陷子之楯何如?』其人弗能應也。」以為不可陷之楯,與無不陷之矛,為名不可兩立也。夫賢之為勢不可禁,而勢之為道也無不禁,以不可禁之勢,此矛楯之說也;夫賢勢之不相容亦明矣。且夫堯、舜、桀、紂千世而一出,是比肩隨踵而生也,世之治者不絕於中。吾所以為言勢者,中也。中者,上不及堯、舜,而下亦不為桀、紂。抱法處勢則治,背法去勢則亂。今廢勢背法而待堯、舜,堯、舜至乃治,是千世亂而一治也。抱法處勢而待桀、紂,桀、紂至乃亂,是千世治而一亂也。且夫治千而亂一,與治一而亂千也,是猶乘驥駬而分馳也,相去亦遠矣。夫棄隱栝之法,去度量之數,使奚仲為車,不能成一輪。無慶賞之勸,刑罰之威,釋勢委法,堯、舜戶說而人辯之,不能治三家。夫勢之足用亦明矣,而曰必待賢則亦不然矣。且夫百日不食以待粱肉,餓者不活;今待堯、舜之賢乃治當世之民,是猶待粱肉而救餓之說也。夫曰良馬固車,臧獲御之則為人笑,王良御之則日取乎千里,吾不以為然。夫待越人之善海遊者以救中國之溺人,越人善游矣,而溺者不濟矣。夫待古之王良以馭今之馬,亦猶越人救溺之說也,不可亦明矣。夫良馬固車,五十里而一置,使中手御之,追速致遠,可以及也,而千里可日致也,何必待古之王良乎!且御,非使王良也,則必使臧獲敗之;治,非使堯、舜也,則必使桀、紂亂之。此味非飴蜜也,必苦萊亭歷也。此則積辯累辭,離理失術,兩末之議也,奚可以難,失道理之言乎哉!客議未及此論也。
[번역문]
다시 응답하여 말한다: 그 사람은 권세[勢]를 족히 믿고 관직을 다스릴 수 있다고 여긴다. 손님¹⁾이 “반드시 현명함[賢]을 기다려야 다스려진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렇지 않다. 무릇 권세란, 이름은 하나이나 변화는 무수하다. 권세가 반드시 자연적인 것이라면, 권세에 대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권세에 대해 말하는 바는, 사람이 설치한 것을 말한다. 오늘날 요·순이 권세를 얻으면 다스려지고, 걸·주가 권세를 얻으면 어지러워진다는 것에 대해, 내가 요·걸이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하나, 이는 한 사람이 설치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무릇 요·순이 태어나 윗자리에 있으면, 비록 열 명의 걸·주가 있더라도 능히 어지럽히지 못하니, 이는 권세가 다스리는 것[勢治]이다. 걸·주 또한 태어나 윗자리에 있으면, 비록 열 명의 요·순이 있더라도 또한 능히 다스리지 못하니, 이는 권세가 어지럽히는 것[勢亂]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권세가 다스리면 어지럽힐 수 없고, 권세가 어지러우면 다스릴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적인 권세이지, 사람이 설치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만약 내가 말하는 바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권세를 말할 따름이니, 현명함이 무슨 상관인가? 무엇으로 그것이 그러함을 밝힐 것인가? 손님이 말하기를,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방패의 견고함을 칭찬하여 어떤 물건도 능히 뚫을 수 없다고 하고, 잠시 후 또 그 창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내 창의 날카로움은, 어떤 물건이든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응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창으로 그대의 방패를 뚫으면 어떠한가?’라고 하니, 그 사람이 능히 대답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는 창은, 이름상 양립할 수 없다고 여긴다. 무릇 현명함의 권세는 금할 수 없고, 권세의 도는 금하지 못함이 없으니, 금할 수 없는 권세로써 (금하지 못함이 없는 권세를 대하는 것은), 이는 창과 방패의 이야기이다. 무릇 현명함과 권세가 서로 용납되지 않음 또한 명백하다. 또한 무릇 요·순, 걸·주는 천 년에 한 번 나오는데, 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꿈치를 따라 태어나는 것과 같으니, 세상의 다스려지는 자가 그 중간에 끊이지 않는다. 내가 권세에 대해 말하는 까닭은, 중간[中] 때문이다. 중간이란, 위로는 요·순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또한 걸·주가 되지 않는 자이다. 법을 품고 권세에 처하면 다스려지고, 법을 등지고 권세를 떠나면 어지러워진다. 지금 권세를 폐하고 법을 등지며 요·순을 기다린다면, 요·순이 이르러서야 다스려지니, 이는 천 년 동안 어지럽다가 한 번 다스려지는 것이다. 법을 품고 권세에 처하여 걸·주를 기다린다면, 걸·주가 이르러서야 어지러워지니, 이는 천 년 동안 다스려지다가 한 번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또한 무릇 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워지는 것과, 한 번 다스려지고 천 번 어지러워지는 것은, 마치 천리마와 노둔한 말을 타고 나뉘어 달리는 것과 같으니, 서로의 차이가 또한 멀다. 무릇 교정틀[隱栝]의 법을 버리고, 법도[度量]의 수를 떠나, 해중(奚仲)²⁾에게 수레를 만들게 해도, 바퀴 하나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경사와 상의 권면이 없고, 형벌의 위엄이 없으며, 권세를 놓고 법을 버리면, 요·순이 집집마다 유세하고 사람들이 그들과 변론하더라도, 세 집안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무릇 권세가 족히 쓰일 만함 또한 명백한데, 반드시 현명함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또한 그렇지 않다. 또한 무릇 백일 동안 먹지 않고 좋은 음식[粱肉]을 기다리면, 굶주린 자는 살지 못한다. 지금 요·순의 현명함을 기다려 당세의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마치 좋은 음식을 기다려 굶주림을 구제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무릇 좋은 말과 견고한 수레를, 노비가 몰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왕량이 몰면 하루에 천 리를 간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무릇 월(越)나라의 바다 수영 잘하는 자를 기다려 중국의 물에 빠진 사람을 구제한다면, 월나라 사람은 수영을 잘하지만, 물에 빠진 자는 구제되지 못할 것이다. 무릇 옛날의 왕량을 기다려 지금의 말을 몰게 하는 것은, 또한 월나라 사람이 물에 빠진 자를 구제한다는 이야기와 같으니, 옳지 않음 또한 명백하다. 무릇 좋은 말과 견고한 수레를, 오십 리마다 한 번 쉬게 하고, 중간 수준의 마부[中手]에게 몰게 하면, 빨리 달리고 멀리 이르는 것을, 따라잡을 수 있으며, 천 리를 하루에 이를 수 있으니, 어찌 반드시 옛날의 왕량을 기다리겠는가! 또한 말을 모는 데 있어, 왕량을 쓰지 않으면 반드시 노비가 그것을 망치게 하고, 다스림에 있어, 요·순을 쓰지 않으면 반드시 걸·주가 그것을 어지럽힌다고 하는 것은, 이 맛이 엿이나 꿀이 아니면, 반드시 쓴 냉이나 씀바귀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는 변론을 쌓고 말을 거듭하며, 이치를 떠나고 술(術)을 잃은, 양극단의 의론이니, 어찌 도리의 말을 잃었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손님의 의론은 이 논의에 미치지 못했다.
[주석]
1) 객(客): 손님. 여기서는 앞선 문단에서 신도의 주장을 반박하고 현명함[賢]의 중요성을 강조한 논객, 즉 한비자 자신을 제3자의 입장에서 지칭하며 논의를 심화시키는 수사적 장치이다.
2) 해중(奚仲): 고대 중국에서 수레를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
3) 중(中): 중간 수준의 군주. 한비자 사상의 핵심적인 개념으로, 그는 비범한 성인 군주나 극악한 폭군이 아닌,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군주를 위한 현실적인 통치술로서 법(法), 술(術), 세(勢)를 제시했다.
4) 양말지의(兩末之議): 양 극단의 논의. 즉, ‘반드시 성인 군주(堯·舜)여야만 다스릴 수 있다’는 주장과 ‘반드시 폭군(桀·紂)이면 망한다’는 식의 흑백논리를 비판하는 말이다. 한비자는 이러한 극단론을 배격하고, 평균적인 군주가 법과 권세라는 시스템을 통해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韓非子 問辯 (한비자 문변) 번역 및 주석
[원문 1]
問辯:
或問曰:「辯安生乎?」對曰:「生於上之不明也。」問者曰:「上之不明因生辯也何哉?」對曰:「明主之國,令者、言最貴者也,法者、事最適者也。言無二貴,法不兩適,故言行而不軌於法令者必禁。若其無法令而可以接詐應變生利揣事者,上必采其言而責其實,言當則有大利,不當則有重罪,是以愚者畏罪而不敢言,智者無以訟,此所以無辯之故也。亂世則不然,主有令而民以文學非之,官府有法民以私行矯之,人主顧漸其法令,而尊學者之智行,此世之所以多文學也。夫言行者,以功用為之的彀者也。夫砥礪殺矢而以妄發,其端未嘗不中秋毫也,然而不可謂善射者,無常儀的也。設五寸之的,引十步之遠,非羿、逢蒙不能必中者,有常也。故有常則羿、逢蒙以五寸的為巧,無常則以妄發之中秋毫為拙。今聽言觀行,不以功用為之的彀,言雖至察,行雖至堅,則妄發之說也。是以亂世之聽言也,以難知為察,以博文為辯;其觀行也,以離群為賢,以犯上為抗。人主者說辯察之言,尊賢抗之行,故夫作法術之人,立取舍之行,別辭爭之論,而莫為之正。是以儒服帶劍者眾,而耕戰之士寡;堅白無厚之詞章,而憲令之法息。故曰:上不明,則辯生焉。」
[번역문]
문변(問辯):
어떤 이가 묻기를, “변론[辯]¹⁾은 어디에서 생겨납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윗사람이 밝지 못함[不明]에서 생겨납니다.”라고 하였다. 묻는 이가 말하기를, “윗사람이 밝지 못함으로 인해 변론이 생겨난다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현명한 군주의 나라에서는, 명령[令]이 가장 존귀한 말이고, 법[法]이 일에 가장 적합한 것입니다. 말에는 두 가지 존귀한 것이 없고, 법에는 두 가지 적합한 것이 없으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법령의 궤도에 따르지 않는 자는 반드시 금지됩니다. 만약 법령이 없는 일에 대해 속임수에 대응하고 변화에 응하며 이익을 낳고 일을 헤아릴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윗사람은 반드시 그 말을 채택하고 그 실적에 책임을 묻습니다. 말이 합당하면 큰 이익이 있고, 합당하지 않으면 무거운 죄가 있으니, 이 때문에 어리석은 자는 죄를 두려워하여 감히 말하지 못하고, 지혜로운 자는 다툴 것이 없으니, 이것이 변론이 없는 까닭입니다. 어지러운 세상은 그렇지 않으니, 군주에게 명령이 있어도 백성들은 문학(文學)²⁾으로써 그것을 비판하고, 관청에 법이 있어도 백성들은 사사로운 행실로써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며, 군주는 도리어 그 법령을 가벼이 여기고 학자들의 지혜와 행동을 존중하니, 이것이 세상에 문학이 많은 까닭입니다. 무릇 말과 행동이란, 공과 쓰임[功用]으로써 그 과녁[的彀]³⁾을 삼는 것입니다. 무릇 숫돌에 갈아 날카로운 화살을 마구 쏘면, 그 끝이 추호(秋毫)⁴⁾에 맞지 않은 적이 없을 것이나, 그러나 활을 잘 쏜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일정한 표준 과녁[常儀的]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섯 치의 과녁을 설치하고 십 보 거리에서 당기면, 예(羿)나 봉몽(逢蒙)이 아니면 반드시 맞힐 수 없는 것은, 기준[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준이 있으면 예와 봉몽도 다섯 치 과녁을 맞히는 것을 교묘하다고 여기지만, 기준이 없으면 마구 쏘아 추호를 맞힌 것을 졸렬하다고 여깁니다. 지금 말을 듣고 행동을 관찰하면서, 공과 쓰임으로써 그 과녁을 삼지 않는다면, 말이 비록 지극히 세밀하고 행동이 비록 지극히 굳건하더라도, 이는 마구 쏘는 것과 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 때문에 어지러운 세상에서 말을 들을 때에는, 알기 어려운 것을 명찰(明察)하다 하고, 글이 넓은 것을 변론이라 합니다. 그 행동을 볼 때에는,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현명하다 하고, 윗사람을 거스르는 것을 저항이라 합니다. 군주가 변론과 명찰한 말을 기뻐하고, 현명하고 저항하는 행동을 존중하므로, 무릇 법술(法術)을 만드는 사람, 취하고 버리는 행동을 세우는 사람, 다투는 말을 분별하는 논의에 대해, 아무도 그것을 바로잡아 주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유학자의 옷을 입고 칼을 찬 자는 많아지고, 밭 갈고 싸우는 선비는 적어지며, ‘견백(堅白)’과 ‘무후(無厚)’의 궤변적인 문장⁵⁾은 성행하고, 법령의 법은 그칩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윗사람이 밝지 못하면, 변론이 생겨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석]
1) 변(辯): 단순한 ‘변론’이나 ‘토론’을 넘어, 현실적인 공과(功過)와 무관하게 현란한 말솜씨나 논리로 상대를 현혹시키는 궤변(詭辯)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다. 한비자는 이러한 ‘변(辯)’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근원 중 하나로 보았다.
2) 문학(文學): 여기서는 유가(儒家)를 비롯한 여러 학파의 학문과 저술을 가리킨다. 한비자는 이러한 학문이 국가의 통일된 법령을 비판하고 상대화함으로써 국정의 혼란을 야기한다고 비판한다.
3) 적곡(的彀): ‘과녁 적(的)’, ‘활 당길 곡(彀)’. 활쏘기의 과녁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말과 행동의 가치를 판단하는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기준, 즉 ‘공용(功用)’을 비유한다.
4) 추호(秋毫): 가을철 짐승의 털. 지극히 가늘고 미세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5) 견백(堅白)·무후(無厚)지사장(之詞章): 전국시대 명가(名家)의 대표적인 궤변. 공손룡(公孫龍)의 ‘견백석리론(堅白石離論)’은 단단함(堅)과 흰색(白)이라는 속성이 돌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이며, ‘무후(無厚)’는 두께가 없는 평면의 개념에 대한 논의이다. 한비자는 이러한 논의가 국가 통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공허한 말장난이라고 비판한다.
韓非子 問田 (한비자 문전) 번역 및 주석
[원문 1]
問田:
徐渠問田鳩曰:「臣聞智士不襲下而遇君,聖人不見功而接上。令陽成義渠,明將也,而措於毛伯;公孫亶回,聖相也,而關於州部;何哉?」田鳩曰:「此無他故異物,主有度,上有術之故也。且足下獨不聞楚將宋觚而失其政,魏相馮離而亡其國。二君者驅於聲詞,眩乎辯說,不試於毛伯,不關乎州部,故有失政亡國之患。由是觀之,夫無毛伯之試,州部之關,豈明主之備哉!」
[번역문]
문전(問田):
서거(徐渠)가 전구(田鳩)에게 묻기를, “신이 듣건대 지혜로운 선비는 아랫사람을 거치지 않고 군주를 만나고, 성인(聖人)은 공을 보이지 않고 윗사람을 접견한다고 합니다. 지금 양성의거(陽成義渠)는 현명한 장수인데도 모백(毛伯)¹⁾에게 막히고, 공손단회(公孫亶回)는 성스러운 재상감인데도 주부(州部)²⁾에 막혔으니,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전구가 말하기를, “이는 다른 특별한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군주에게 법도[度]가 있고, 윗사람에게 술(術)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족하께서는 유독 초(楚)나라가 장수 송고(宋觚)를 등용하여 그 정치를 잃고, 위(魏)나라가 재상 풍리(馮離)를 등용하여 그 나라를 잃은 것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두 군주는 화려한 말에 이끌리고, 변론에 현혹되어, 모백에게 시험하지 않고, 주부에서 관문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정치를 잃고 나라를 잃는 우환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무릇 모백의 시험과 주부의 관문이 없는 것이, 어찌 현명한 군주의 대비책이라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석]
1) 모백(毛伯): 인재를 등용할 때 그 관상을 보고 능력을 시험하던 관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인재 검증 시스템의 한 단계를 상징한다.
2) 주부(州部): 지방 행정 단위. 인재가 중앙으로 진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실무 부서 또는 관문을 의미한다.
[원문 2]
堂谿公謂韓子曰:「臣聞服禮辭讓,全之術也;修行退智,遂之道也。今先生立法術,設度數,臣竊以為危於身而殆於軀。何以效之?所聞先生術曰:『楚不用吳起而削亂,秦行商君而富彊,二子之言已當矣,然而吳起支解而商君車裂者,不逢世遇主之患也。』逢遇不可必也,患禍不可斥也,夫舍乎全遂之道而肆乎危殆之行,竊為先生無取焉。」韓子曰:「臣明先生之言矣。夫治天下之柄,齊民萌之度,甚未易處也。然所以廢先王之教,而行賤臣之所取者,竊以為立法術,設度數,所以利民萌便眾庶之道也。故不憚亂主闇上之患禍,而必思以齊民萌之資利者,仁智之行也。憚亂主闇上之患禍,而避乎死亡之害,知明夫身而不見民萌之資利者,貪鄙之為也。臣不忍嚮貪鄙之為,不敢傷仁智之行。先王有幸臣之意,然有大傷臣之實。」
[번역문]
당계공(堂谿公)이 한자(韓子)¹⁾에게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예(禮)에 복종하고 사양하는 것은 몸을 보전하는 술(術)이며, 수행(修行)하고 지혜를 감추는 것은 뜻을 이루는 도(道)라고 합니다. 지금 선생께서는 법술(法術)을 세우고 법도[度數]를 설치하시니, 신은 남몰래 생각건대 몸에 위태롭고 신체에 위태로운 일입니다. 무엇으로 이를 증명하겠습니까? 듣건대 선생의 술(術)에 이르기를, ‘초(楚)나라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지 않아 삭감되고 어지러워졌고, 진(秦)나라는 상군(商君)의 법을 행하여 부유하고 강해졌다.’고 하니, 두 사람의 말은 이미 합당합니다. 그러나 오기는 사지가 찢겨 죽고[支解] 상군은 수레에 매달려 찢겨 죽은[車裂] 것은, 시대를 만나지 못하고 군주를 잘못 만난 우환입니다.²⁾ 만남은 반드시 기약할 수 없고, 우환과 재앙은 물리칠 수 없으니, 무릇 몸을 보전하고 뜻을 이루는 도를 버리고 위태로운 행동을 마음대로 하시는 것을, 남몰래 선생을 위해 취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다. 한자가 말하기를, “신은 선생의 말씀을 분명히 알겠습니다. 무릇 천하를 다스리는 권력과, 백성[民萌]을 가지런히 하는 법도는, 매우 쉽게 처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선왕(先王)의 가르침을 폐하고 이 천한 신하가 취하는 바를 행하는 까닭은, 남몰래 생각건대 법술을 세우고 법도를 설치하는 것이, 백성을 이롭게 하고 뭇사람을 편리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지러운 군주와 어두운 윗사람의 우환과 재앙을 꺼리지 않고, 반드시 백성의 자산과 이익을 가지런히 할 것을 생각하는 것은, 인(仁)과 지(智)의 행동입니다. 어지러운 군주와 어두운 윗사람의 우환과 재앙을 꺼리고, 죽음의 해를 피하며, 자기 몸만 밝게 알 뿐 백성의 자산과 이익을 보지 못하는 것은, 탐욕스럽고 비루한 행위입니다. 신은 차마 탐욕스럽고 비루한 행위를 향하지 못하며, 감히 인과 지의 행동을 해치지 못하겠습니다. 선왕께서는 신하를 아끼는 뜻이 있었으나, 그러나 신하의 실질을 크게 해치는 바가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한자(韓子): 한비(韓非) 자신을 가리킨다.
2) 오기(吳起)·상군(商君)의 환(患): 오기와 상앙(商鞅, 상군)은 전국시대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개혁가들이다. 그들은 각기 초나라와 진나라에서 부국강병을 이끌었으나,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당계공은 이들의 사례를 들어 한비의 개혁 노선이 개인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고 있다.
韓非子 定法 (한비자 정법) 번역 및 주석
[원문 1]
定法:
問者曰:「申不害、公孫鞅,此二家之言孰急於國?」應之曰:「是不可程也。人不食,十日則死;大寒之隆,不衣亦死。謂之衣食孰急於人,則是不可一無也,皆養生之具也。今申不害言術,而公孫鞅為法。術者,因任而授官,循名而責實,操殺生之柄,課群臣之能者也,此人主之所執也。法者,憲令著於官府,刑罰必於民心,賞存乎慎法,而罰加乎姦令者也,此臣之所師也。君無術則弊於上,臣無法則亂於下,此不可一無,皆帝王之具也。」
[번역문]
정법(定法):
묻는 이가 말하기를, “신불해(申不害)와 공손앙(公孫鞅), 이 두 학파의 말 중에 어느 것이 나라에 더 시급합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이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열흘 만에 죽고, 큰 추위가 닥쳤을 때 옷을 입지 않아도 또한 죽습니다. 옷과 음식 중에 어느 것이 사람에게 더 시급하냐고 묻는다면, 이는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모두 생명을 기르는 도구입니다. 지금 신불해는 술(術)을 말하고, 공손앙은 법(法)을 만듭니다. 술(術)이란, 능력에 따라 관직을 주고, 이름[名]에 따라 실적[實]에 책임을 물으며, 살리고 죽이는 권한[殺生之柄]을 쥐고, 여러 신하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니, 이는 군주가 잡는 바입니다. 법(法)이란, 법령이 관청에 명시되고, 형벌이 백성의 마음에 반드시 각인되며, 상(賞)은 법을 삼가는 자에게 있고 벌(罰)은 명령을 어기는 자에게 더해지는 것이니, 이는 신하가 스승으로 삼는 바입니다. 군주에게 술(術)이 없으면 위에서 가려지고, 신하에게 법(法)이 없으면 아래에서 어지러워지니, 이는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며, 모두 제왕(帝王)의 도구입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2]
問者曰:「徒術而無法,徒法而無術,其不可何哉?」對曰:「申不害,韓昭侯之佐也。韓者,晉之別國也。晉之故法未息,而韓之新法又生;先君之令未收,而後君之令又下。申不害不擅其法,不一其憲令則姦多故。利在故法前令則道之,利在新法後令則道之,利在故新相反,前後相勃。則申不害雖十使昭侯用術,而姦臣猶有所譎其辭矣。故託万乘之勁韓,七十年而不至於霸王者,雖用術於上,法不勤飾於官之患也。公孫鞅之治秦也,設告相坐而責其實,連什伍而同其罪,賞厚而信,刑重而必,是以其民用力勞而不休,逐敵危而不卻,故其國富而兵強。然而無術以知姦,則以其富強也資人臣而已矣。及孝公、商君死,惠王即位,秦法未敗也,而張儀以秦殉韓、魏。惠王死,武王即位,甘茂以秦殉周。武王死,昭襄王即位,穰侯越韓、魏而東攻齊,五年而秦不益尺土之地,乃城其陶邑之封,應侯攻韓八年,成其汝南之封;自是以來,諸用秦者皆應、穰之類也。故戰勝則大臣尊,益地則私封立,主無術以知姦也。商君雖十飾其法,人臣反用其資。故乘強秦之資,數十年而不至於帝王者,法不勤飾於官,主無術於上之患也。」
[번역문]
묻는 이가 말하기를, “단지 술(術)만 있고 법(法)이 없거나, 단지 법만 있고 술이 없는 것이, 옳지 않은 까닭은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신불해(申不害)는 한(韓) 소후(昭侯)의 보좌관이었습니다. 한나라는 진(晉)나라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입니다. 진나라의 옛 법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한나라의 새 법이 또한 생겨났고, 선군(先君)의 명령이 아직 거두어지지 않았는데 후군(後君)의 명령이 또한 내려졌습니다. 신불해가 그 법을 오로지하지 않고, 그 법령을 하나로 통일하지 않으니 간사한 자들이 핑계 댈 것이 많았습니다. 이익이 옛 법과 이전 명령에 있으면 그것을 따르고, 이익이 새 법과 이후 명령에 있으면 그것을 따르며, 이익이 옛것과 새것이 서로 반대되고, 이전과 이후가 서로 충돌하였습니다. 그러니 신불해가 비록 열 번이나 소후로 하여금 술(術)을 쓰게 하였더라도, 간사한 신하들은 여전히 그 말을 속일 데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승(萬乘)의 강한 한나라에 의탁하고도, 칠십 년 동안 패왕(霸王)에 이르지 못한 것은, 비록 위에서 술(術)을 썼으나, 관청에서 법이 부지런히 정비되지 않은 우환 때문입니다. 공손앙(公孫鞅)이 진(秦)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고발하면 연좌시키고 그 실적에 책임을 물었으며, 십오(什伍)¹⁾를 연대 책임으로 묶어 그 죄를 같이하게 하고, 상은 두텁고 신실하게, 형벌은 무겁고 반드시 행하였으므로, 그 백성들이 힘을 씀에 수고로워도 쉬지 않고, 적을 쫓음에 위태로워도 물러서지 않아, 그 나라가 부유하고 군대가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간사함을 아는 술(術)이 없으니, 그 부강함으로 신하들에게 자산을 대어줄 따름이었습니다. 효공(孝公)과 상군(商君)이 죽고 혜왕(惠王)이 즉위하자, 진나라의 법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는데도, 장의(張儀)는 진나라를 이용하여 한(韓)·위(魏)를 위해 희생시켰습니다. 혜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감무(甘茂)는 진나라를 이용하여 주(周)나라를 위해 희생시켰습니다. 무왕이 죽고 소양왕(昭襄王)이 즉위하자, 양후(穰侯)는 한·위를 넘어 동쪽으로 제(齊)나라를 공격하여, 오 년 동안 진나라는 한 자의 땅도 더 얻지 못하고, 이에 자신의 봉지인 도읍(陶邑)에 성을 쌓았습니다. 응후(應侯)는 한나라를 팔 년간 공격하여, 자신의 봉지인 여남(汝南)을 이루었습니다. 이로부터 진나라를 이용한 자들은 모두 응후와 양후의 부류였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이기면 대신이 존귀해지고, 땅을 더 얻으면 사사로운 봉지가 세워지니, 군주에게 간사함을 아는 술(術)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상군이 비록 열 번이나 그 법을 정비했더라도, 신하들이 도리어 그 자산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강한 진나라의 자산에 의지하고도, 수십 년 동안 제왕(帝王)에 이르지 못한 것은, 관청에서 법이 부지런히 정비되지 않고, 위에서 군주에게 술(術)이 없었던 우환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1) 십오(什伍): 고대 중국의 군사 및 행정 조직 단위. 다섯 가구[伍]를 기본 단위로 하고, 두 개의 오(伍)를 묶어 십(什)으로 편성하여 서로 감시하고 연대 책임을 지게 한 제도이다.
[원문 3]
問者曰:「主用申子之術、而官行商君之法,可乎?」對曰:「申子未盡於法也。申子言『治不踰官,雖知弗言』。治不踰官,謂之守職也可;知而弗言,是不謂過也。人主以一國目視,故視莫明焉;以一國耳聽,故聽莫聰焉。今知而弗言,則人主尚安假借矣?商君之法曰:『斬一首者爵一級,欲為官者為五十石之官;斬二首者爵二級,欲為官者為百石之官。』官爵之遷與斬首之功相稱也。今有法曰:斬首者令為醫匠,則屋不成而病不已。夫匠者,手巧也;而醫者,齊藥也;而以斬首之功為之,則不當其能。今治官者,智能也;今斬首者,勇力之所加也。以勇力之所加、而治智能之官,是以斬首之功為醫匠也。故曰:二子之於法術,皆未盡善也。」
[번역문]
묻는 이가 말하기를, “군주는 신자(申子)의 술(術)을 쓰고, 관청에서는 상군(商君)의 법(法)을 행하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신자는 법에 대해 다하지 못했습니다. 신자가 말하기를, ‘다스림은 관직을 넘지 않으니, 비록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다스림이 관직을 넘지 않는 것을, 직분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알고도 말하지 않는 것은, 과오를 아뢰지 않는 것입니다. 군주는 한 나라로써 눈을 삼아 보므로, 보는 것이 이보다 밝을 수 없고, 한 나라로써 귀를 삼아 들으므로, 듣는 것이 이보다 밝을 수 없습니다. 지금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면, 군주는 또한 어디에서 (정보를) 빌려오겠습니까? 상군의 법에 이르기를, ‘머리 하나를 벤 자는 작위 일급을 주고, 관리가 되고자 하는 자는 오십 석(石)의 관리가 되게 한다. 머리 둘을 벤 자는 작위 이급을 주고, 관리가 되고자 하는 자는 백 석의 관리가 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관직과 작위의 승진이 머리를 벤 공과 서로 걸맞습니다. 지금 만약 법에 이르기를, ‘머리를 벤 자는 의원이나 장인이 되게 하라.’고 한다면, 집은 완성되지 않고 병은 낫지 않을 것입니다. 무릇 장인(匠人)은 손재주이고, 의원(醫員)은 약을 조제하는 것이니, 머리를 벤 공으로써 이것을 삼는다면, 그 능력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지금 관직을 다스리는 것은 지혜와 능력이고, 지금 머리를 베는 것은 용맹과 힘이 더해진 것입니다. 용맹과 힘이 더해진 것으로써 지혜와 능력의 관직을 다스리게 하는 것은, 머리를 벤 공으로써 의원이나 장인을 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두 사람의 법술(法術)은, 모두 지극히 선하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韓非子 說疑 (한비자 설의) 번역 및 주석
[원문 1]
說疑:
凡治之大者,非謂其賞罰之當也。賞無功之人,罰不辜之民,非所謂明也。賞有功,罰有罪,而不失其人,方在於人者也,非能生功止過者也。是故禁姦之法,太上禁其心,其次禁其言,其次禁其事。今世皆曰「尊主安國者,必以仁義智能」,而不知卑主危國者之必以仁義智能也。故有道之主,遠仁義,去智能,服之以法。是以譽廣而名威,民治而國安,知用民之法也。凡術也者,主之所以執也;法也者,官之所以師也。然使郎中日聞道於郎門之外,以至於境內日見法,又非其難者也。
[번역문]
설의(說疑):
무릇 다스림의 큰 것은, 그 상벌이 합당함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공이 없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죄 없는 백성을 벌하는 것은, 이른바 현명함이 아니다.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자에게 벌을 주어, 그 사람을 놓치지 않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방법일 뿐, 능히 공을 낳게 하고 과오를 그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간사함을 금하는 법은, 가장 좋은 것은 그 마음을 금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 말을 금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그 일을 금하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모두 말하기를, “군주를 높이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자는, 반드시 인의(仁義)와 지능(智能)으로써 한다.”고 하지만, 군주를 낮추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자 또한 반드시 인의와 지능으로써 함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도(道)가 있는 군주는, 인의를 멀리하고 지능을 버리며, 법(法)으로써 그들을 복종시킨다. 이 때문에 명예가 넓어지고 이름에 위엄이 있으며, 백성이 다스려지고 나라가 안정되니, 백성을 부리는 법을 아는 것이다. 무릇 술(術)이란, 군주가 잡는 바이고, 법이란, 관리가 스승으로 삼는 바이다. 그러나 낭중(郎中)으로 하여금 날마다 낭문(郎門) 밖에서 도를 듣게 하고, 국경 안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법을 보게 하는 것은,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문 2]
昔者有扈氏有失度,讙兜氏有孤男,三苗有成駒,桀有侯侈,紂有崇侯虎,晉有優施,此六人者,亡國之臣也。言是如非,言非如是,內險以賊其外,小謹以徵其善,稱道往古、使良事沮,善禪其主、以集精微,亂之以其所好,此夫郎中左右之類者也。往世之主,有得人而身安國存者,有得人而身危國亡者,得人之名一也,而利害相千万也,故人主左右不可不慎也。為人主者誠明於臣之所言,則別賢不肖如黑白矣。
[번역문]
옛날 유호씨(有扈氏)에게는 실도(失度)가 있었고, 환두씨(讙兜氏)에게는 고남(孤男)이 있었으며, 삼묘(三苗)에게는 성구(成駒)가 있었고, 걸(桀)에게는 후치(侯侈)가 있었으며, 주(紂)에게는 숭후호(崇侯虎)가 있었고, 진(晉)에게는 우시(優施)가 있었으니, 이 여섯 사람은 나라를 망하게 한 신하들이다. 옳은 것을 그르다 말하고, 그른 것을 옳다 말하며, 안으로는 험악하여 밖을 해치고, 작은 것을 삼가하여 그 선함을 드러내며, 옛날을 칭송하여 좋은 일을 좌절시키고, 그 군주를 잘 속여 정미(精微)한 것을 모으며, 그가 좋아하는 것으로써 그를 어지럽히니, 이들이 무릇 낭중(郎中)과 측근의 부류이다. 지난 세상의 군주 중에, 사람을 얻어 몸이 편안하고 나라가 보존된 자가 있고, 사람을 얻어 몸이 위태롭고 나라가 망한 자가 있으니, 사람을 얻었다는 이름은 하나이나, 이해(利害)는 서로 천만 배나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군주의 측근은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 군주 된 자가 진실로 신하가 말하는 바에 밝다면, 현명함과 못남을 구별하는 것이 흑백과 같을 것이다.
[원문 3]
若夫許由、續牙、晉伯陽、秦顛頡、衛僑如、狐不稽、重明、董不識、卞隨、務光、伯夷、叔齊,此十二人者,皆上見利不喜,下臨難不恐,或与之天下而不取,有萃辱之名,則不樂食穀之利。夫見利不喜,上雖厚賞無以勸之;臨難不恐,上雖嚴刑無以威之;此之謂不令之民也。此十二人者,或伏死於窟穴,或槁死於草木,或飢餓於山谷,或沉溺於水泉。有民如此,先古聖王皆不能臣,當今之世,將安用之?
[번역문]
무릇 허유(許由), 속아(續牙), 진(晉)나라의 백양(伯陽), 진(秦)나라의 전힐(顛頡), 위(衛)나라의 교여(僑如), 호불해(狐不稽), 중명(重明), 동불식(董不識), 변수(卞隨), 무광(務光), 백이(伯夷), 숙제(叔齊)와 같은, 이 열두 사람은, 모두 위로는 이익을 보아도 기뻐하지 않고, 아래로는 어려움에 임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혹은 그에게 천하를 주어도 취하지 않고, 치욕스러운 이름이 있으면 곡식을 먹는 이로움도 즐기지 않았다. 무릇 이익을 보아도 기뻐하지 않으니, 윗사람이 비록 후하게 상을 주어도 그들을 권면할 수 없고, 어려움에 임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윗사람이 비록 엄하게 형벌을 내려도 그들을 위협할 수 없으니, 이를 일러 명령을 따르지 않는 백성[不令之民]이라 한다. 이 열두 사람은, 혹은 굴속에 엎드려 죽고, 혹은 초목 사이에서 말라 죽고, 혹은 산골짜기에서 굶어 죽고, 혹은 샘물에 빠져 죽었다. 이와 같은 백성이 있으니, 옛 성왕(聖王)들도 모두 신하로 삼지 못했는데, 지금의 세상에서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원문 4]
若夫關龍逢、王子比干、隨季梁、陳泄冶、楚申胥、吳子胥,此六人者,皆疾爭強諫以勝其君。言聽事行,則如師徒之勢;一言而不聽,一事而不行,則陵其主以語,待之以其身,雖死家破,要領不屬,手足異處,不難為也。如此臣者,先古聖王皆不能忍也,當今之時,將安用之?
[번역문]
무릇 관룡봉(關龍逢), 왕자 비간(王子比干), 수(隨)나라의 계량(季梁), 진(陳)나라의 설야(泄冶), 초(楚)나라의 신서(申胥), 오(吳)나라의 자서(子胥)와 같은, 이 여섯 사람은, 모두 격렬하게 다투고 강하게 간언하여 그 군주를 이기려 하였다. 말이 받아들여지고 일이 행해지면, 스승과 제자의 기세와 같았으나, 한마디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한 가지 일이 행해지지 않으면, 그 군주를 말로써 능멸하고, 그 몸으로써 그를 대하니, 비록 죽어 집안이 망하고, 허리와 목이 이어지지 않으며, 손과 발이 다른 곳에 있더라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이와 같은 신하는, 옛 성왕들도 모두 참지 못했는데, 지금의 시대에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원문 5]
若夫齊田恆、宋子罕、魯季孫意如、晉僑如、衛子南勁、鄭太宰欣、楚白公、周單荼、燕子之,此九人者之為其臣也,皆朋黨比周以事其君,隱正道而行私曲,上逼君,下亂治,援外以撓內、親下以謀上,不難為也。如此臣者,唯聖王智主能禁之,若夫昏亂之君,能見之乎?
[번-역문]
무릇 제(齊)나라의 전항(田恆), 송(宋)나라의 자한(子罕), 노(魯)나라의 계손의여(季孫意如), 진(晉)나라의 교여(僑如), 위(衛)나라의 자남경(子南勁), 정(鄭)나라의 태재 흔(太宰欣), 초(楚)나라의 백공(白公), 주(周)나라의 단도(單荼), 연(燕)나라의 자지(子之)와 같은, 이 아홉 사람이 신하가 되었을 때, 모두 붕당(朋黨)을 짓고 무리를 지어 그 군주를 섬기며, 바른 도를 숨기고 사사로운 그릇됨을 행하며, 위로는 군주를 핍박하고 아래로는 다스림을 어지럽히며,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내부를 흔들고, 아랫사람과 친하여 윗사람을 도모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이와 같은 신하는, 오직 성왕(聖王)과 지혜로운 군주만이 능히 금할 수 있으니, 무릇 혼미하고 어지러운 군주라면, 능히 그들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원문 6]
若夫后稷、皋陶、伊尹、周公旦、太公望、管仲、隰朋、百里奚、蹇叔、舅犯、趙衰、范蠡、大夫種、逢同、華登,此十五人者為其臣也,皆夙興夜寐,卑身賤體,竦心白意,明刑辟、治官職以事其君,進善言、通道法而不敢矜其善,有成功立事而不敢伐其勞,不難破家以便國,殺身以安主,以其主為高天泰山之尊,而以其身為壑谷釜洧之卑,主有明名廣譽於國,而身不難受壑谷釜洧之卑。如此臣者,雖當昏亂之主尚可致功,況於顯明之主乎?此謂霸王之佐也。
[번역문]
무릇 후직(后稷), 고요(皋陶), 이윤(伊尹), 주공 단(周公旦), 태공망(太公望), 관중(管仲), 습붕(隰朋), 백리해(百里奚), 건숙(蹇叔), 구범(舅犯), 조쇠(趙衰), 범려(范蠡), 대부 종(大夫種), 봉동(逢同), 화등(華登)과 같은, 이 열다섯 사람이 신하가 되었을 때, 모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며, 몸을 낮추고 신체를 천하게 여기며, 마음을 삼가고 뜻을 깨끗이 하며, 형벌을 밝히고 관직을 다스려 그 군주를 섬겼다. 좋은 말을 올리고 법(法)의 도(道)를 통하게 하면서도 감히 그 선함을 뽐내지 않고, 공을 이루고 일을 세워도 감히 그 노고를 자랑하지 않으며, 집안을 망가뜨려 나라를 편하게 하고, 몸을 죽여 군주를 안정시키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그 군주를 높은 하늘이나 태산의 존귀함으로 여기고, 그 몸을 골짜기나 가마솥의 비천함으로 여겼다. 군주가 나라에 밝은 이름과 넓은 명예를 얻게 하고, 자신은 골짜기나 가마솥의 비천함을 받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이와 같은 신하는, 비록 혼미하고 어지러운 군주를 만나더라도 오히려 공을 이룰 수 있는데, 하물며 현명하고 밝은 군주에게 있어서랴? 이를 일러 패왕(霸王)의 보좌관이라 한다.
[원문 7]
若夫周滑之、鄭王孫申、陳公孫寧、儀行父、荊芋尹申亥、隨少師越、種干、吳王孫額、晉陽成泄、齊豎刁、易牙,此十二人者之為其臣也,皆思小利而忘法義,進則揜蔽賢良以陰闇其主,退則撓亂百官而為禍難,皆輔其君、共其欲,苟得一說於主,雖破國殺眾不難為也。有臣如此,雖當聖王尚恐奪之,而況昏亂之君,其能無失乎?有臣如此者,皆身死國亡,為天下笑。故周威公身殺,國分為二;鄭子陽身殺,國分為三;陳靈公身死於夏徵舒氏;荊靈王死於乾谿之上;隨亡於荊;吳併於越;智伯滅於晉陽之下;桓公身死七日不收。故曰,諂諛之臣,唯聖王知之,而亂主近之,故至身死國亡。
[번역문]
무릇 주(周)나라의 활지(滑之), 정(鄭)나라의 왕손 신(王孫申), 진(陳)나라의 공손 녕(公孫寧)과 의행보(儀行父), 초[荊]나라의 우윤(芋尹) 신해(申亥), 수(隨)나라의 소사(少師) 월(越)과 종간(種干), 오(吳)나라의 왕손 액(王孫額), 진(晉)나라의 양성설(陽成泄), 제(齊)나라의 수조(豎刁)와 역아(易牙)와 같은, 이 열두 사람이 신하가 되었을 때, 모두 작은 이익을 생각하고 법과 의(義)를 잊었으며, 나아가서는 현명하고 선량한 이를 가리고 막아 그 군주를 남몰래 어둡게 하고, 물러나서는 모든 관리를 어지럽히고 화와 어려움을 만들었다. 모두 그 군주를 돕고 그 욕망을 함께하며, 구차하게 군주에게 한 번의 유세가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비록 나라를 망가뜨리고 무리를 죽이는 것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이와 같은 신하가 있으면, 비록 성왕(聖王)을 만나더라도 오히려 그에게 빼앗길까 두려운데, 하물며 혼미하고 어지러운 군주가, 어찌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신하가 있는 자는, 모두 몸이 죽고 나라가 망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주 위공(威公)은 몸이 살해되고 나라가 둘로 나뉘었고, 정 자양(子陽)은 몸이 살해되고 나라가 셋으로 나뉘었으며, 진 영공(靈公)은 하징서(夏徵舒)의 집에서 몸이 죽었고, 초 영왕(靈王)은 건계(乾谿) 위에서 죽었으며, 수나라는 초나라에 망했고, 오나라는 월(越)나라에 병합되었으며, 지백(智伯)은 진양(晉陽) 아래에서 멸망했고, 환공(桓公)은 몸이 죽어 이레 동안 거두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아첨하는 신하는, 오직 성왕만이 그것을 알고, 어지러운 군주는 그들을 가까이하니, 그러므로 몸이 죽고 나라가 망하는 데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다.
[원문 8]
聖王明君則不然,內舉不避親,外舉不避讎。是在焉從而舉之,非在焉從而罰之。是以賢良遂進而姦邪并退,故一舉而能服諸侯。其在記曰:「堯有丹朱,而舜有商均,啟有五觀,商有太甲,武王有管、蔡」,五王之所誅者,皆父兄子弟之親也,而所殺亡其身殘破其家者何也?以其害國傷民敗法類也。觀其所舉,或在山林藪澤巖穴之間,或在囹圄緤紲纏索之中,或在割烹芻牧飯牛之事。然明主不羞其卑賤也,以其能、為可以明法,便國利民,從而舉之,身安名尊。
[번역문]
성왕(聖王)과 현명한 군주는 그렇지 않으니, 안으로는 친족이라도 피하지 않고 등용하며, 밖으로는 원수라도 피하지 않고 등용한다. 능력이 있으면 그에 따라 등용하고, 능력이 없으면 그에 따라 벌한다. 이 때문에 현명하고 선량한 이는 마침내 나아가고 간사하고 사악한 이는 아울러 물러나니, 그러므로 한 번의 거사로 능히 제후를 복종시킬 수 있다. 기록에 이르기를, “요(堯)에게는 단주(丹朱)가 있었고, 순(舜)에게는 상균(商均)이 있었으며, 계(啟)에게는 오관(五觀)이 있었고, 상(商)에게는 태갑(太甲)이 있었으며, 무왕(武王)에게는 관(管)·채(蔡)가 있었다.”고 하니, 다섯 왕이 주살한 자는, 모두 아버지, 형, 아들, 아우의 친족이었다. 그들을 죽여 몸을 망하게 하고 집안을 잔혹하게 파괴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이 나라를 해치고 백성을 상하게 하며 법의 종류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등용한 바를 보면, 혹은 산림과 늪, 바위굴 사이에 있었고, 혹은 감옥의 포승줄에 묶여 있었으며, 혹은 고기를 자르고 삶으며, 풀을 베고 소를 먹이는 일에 있었다. 그러나 현명한 군주는 그 비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능력으로써 법을 밝히고, 나라를 편하게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으므로, 그에 따라 등용하여, 몸은 편안하고 이름은 존귀해졌다.
[원문 9]
亂主則不然,不知其臣之意行,而任之以國。故小之名卑地削,大之國亡身死,不明於用臣也。無數以度其臣者,必以其眾人之口斷之。眾之所譽,從而說之;眾之所非,從而憎之。故為人臣者破家殘賥,內構黨與,外接巷族以為譽,從陰約結以相固也,虛相與爵祿以相勸也。曰:「與我者將利之,不與我者將害之。」眾貪其利,劫其威。彼誠喜、則能利己,忌怒、則能害己。眾歸而民留之,以譽盈於國,發聞於主,主不能理其情,因以為賢。彼又使譎詐之士,外假為諸侯之寵使,假之以輿馬,信之以瑞節,鎮之以辭令,資之以幣帛,使諸侯淫說其主,微挾私而公議。所為使者,異國之主也,所為談者,左右之人也。主說其言而辯其辭,以此人者天下之賢士也。內外之於左右,其諷一而語同,大者不難卑身尊位以下之,小者高爵重祿以利之。夫姦人之爵祿重而黨與彌眾,又有姦邪之意,則姦臣愈反而說之,曰:「古之所謂聖君明王者,非長幼弱也及以次序也。以其搆黨與,聚巷族,偪上弒君而求其利也。」彼曰:「何知其然也?」因曰:「舜偪堯,禹偪舜,湯放桀,武王伐紂,此四王者,人臣弒其君者也,而天下譽之。察四王之情,貪得人之意也;度其行,暴亂之兵也。然四王自廣措也,而天下稱大焉;自顯名也,而天下稱明焉。則威足以臨天下,利足以蓋世,天下從之。」又曰:「以今時之所聞田成子取齊,司城子罕取宋,太宰欣取鄭,單氏取周,易牙之取衛,韓、魏、趙三子分晉,此六人,臣之弒其君者也。」姦臣聞此,蹙然舉耳以為是也。故內搆黨與,外攄巷族,觀時發事,一舉而取國家。且夫內以黨與劫弒其君,外以諸侯之權矯易其國,隱敦適,持私曲,上禁君,下撓治者,不可勝數也。是何也?則不明於擇臣也。記曰:「周宣王以來,亡國數十,其臣弒其君而取國者眾矣。」然則難之從內起,與從外作者相半也。能一盡其民力,破國殺身者,尚皆賢主也。若夫轉法易位,全眾傳國,最其病也。
[번역문]
어지러운 군주는 그렇지 않으니, 그 신하의 뜻과 행동을 알지 못하고, 그에게 나라를 맡긴다. 그러므로 작게는 이름이 비천해지고 땅이 깎이며, 크게는 나라가 망하고 몸이 죽으니, 신하를 쓰는 데에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술수[數] 없이 그 신하를 헤아리는 자는, 반드시 여러 사람의 입으로써 그것을 판단한다. 무리가 칭찬하는 바를, 따라 기뻐하고, 무리가 비난하는 바를, 따라 미워한다. 그러므로 신하 된 자는 집안을 망가뜨리고 재물을 헐어, 안으로는 당파를 엮고, 밖으로는 여염의 족속과 접촉하여 명예를 만들며, 남몰래 약속하고 결탁하여 서로를 굳건히 한다. 헛되이 서로에게 작록을 주어 서로를 권면한다. 말하기를, “나와 함께하는 자는 장차 이롭게 하고,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장차 해롭게 할 것이다.”라고 한다. 무리는 그 이익을 탐하고, 그 위세에 겁을 먹는다. 저들이 진실로 기뻐하면 능히 자기를 이롭게 하고, 꺼리고 노하면 능히 자기를 해롭게 한다. 무리가 귀의하고 백성이 그를 만류하며, 명예가 나라에 가득 차고, 군주에게 알려지니, 군주는 그 실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이로 인해 현명하다고 여긴다. 저들은 또한 속임수에 능한 선비를 시켜, 밖으로는 거짓으로 제후의 총애받는 사신인 체하게 하여, 그에게 수레와 말을 빌려주고, 신표[瑞節]로써 믿게 하며, 말로써 진정시키고, 폐백으로써 자금을 대어준다. 제후로 하여금 그 군주를 음란하게 유세하게 하여, 남몰래 사사로움을 끼고 공적인 의론을 하게 한다. 사신 노릇을 하는 자는, 다른 나라의 군주이고, 이야기하는 자는, 측근의 사람이다. 군주는 그 말을 기뻐하고 그 변론을 분별하여, 이 사람이 천하의 현명한 선비라고 여긴다. 안팎의 측근들에게, 그 풍자와 말이 하나이고 같으니, 큰 자는 몸을 낮추고 지위를 높여 그 아래에 있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작은 자는 높은 작위와 무거운 녹봉으로 그를 이롭게 한다. 무릇 간사한 사람의 작록이 무거워지고 당파가 더욱 많아지며, 또한 간사하고 사악한 뜻이 있으면, 간신은 더욱 도리어 그를 유세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이른바 성군(聖君)과 명왕(明王)은, 나이가 많고 어리거나 약한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당파를 엮고 여염의 족속을 모아, 윗사람을 핍박하고 군주를 시해하여 그 이익을 구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한다. 저들이 “어떻게 그것이 그러함을 아는가?”라고 물으면, 이어서 말하기를, “순(舜)은 요(堯)를 핍박했고, 우(禹)는 순을 핍박했으며, 탕(湯)은 걸(桀)을 내쫓았고, 무왕(武王)은 주(紂)를 정벌했으니, 이 네 왕은, 신하로서 그 군주를 시해한 자들인데, 천하가 그들을 칭찬합니다. 네 왕의 실정을 살피면, 남의 것을 탐내어 얻으려는 뜻이 있었고, 그 행동을 헤아리면, 포악하고 어지러운 군대였습니다. 그러나 네 왕이 스스로를 넓게 펼치자, 천하가 크다고 칭송했고, 스스로 이름을 드러내자, 천하가 밝다고 칭송했습니다. 그러니 위엄이 족히 천하에 임하고, 이익이 족히 세상을 덮으니, 천하가 그들을 따랐습니다.”라고 한다. 또 말하기를, “지금 시대에 듣는 바로는 전성자(田成子)가 제(齊)나라를 취했고, 사성 자한(司城子罕)이 송(宋)나라를 취했으며, 태재 흔(太宰欣)이 정(鄭)나라를 취했고, 단씨(單氏)가 주(周)나라를 취했으며, 역아(易牙)가 위(衛)나라를 취했고, 한(韓)·위(魏)·조(趙) 세 집안이 진(晉)나라를 나누었으니, 이 여섯 사람은, 신하로서 그 군주를 시해한 자들입니다.”라고 한다. 간신이 이 말을 듣고, 귀를 쫑긋 세우고 옳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안으로는 당파를 엮고, 밖으로는 여염의 족속을 펼치며, 때를 보아 일을 일으켜, 한 번의 거사로 국가를 취한다. 또한 무릇 안으로는 당파로써 그 군주를 위협하고 시해하며, 밖으로는 제후의 권력으로써 그 나라를 속이고 바꾸며, 적자(嫡子)를 숨기고 억누르며, 사사로운 그릇됨을 지니고, 위로는 군주를 금하고 아래로는 다스림을 흔드는 자가, 이루 다 셀 수 없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신하를 가려 뽑는 데에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록에 이르기를, “주 선왕(宣王) 이래로, 망한 나라가 수십이고, 그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고 나라를 취한 자가 많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려움이 안에서 일어나는 것과,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서로 절반이다. 능히 그 백성의 힘을 한 번 다하게 하여, 나라를 망가뜨리고 몸을 죽이는 자는, 오히려 모두 현명한 군주이다. 무릇 법을 바꾸고 지위를 바꾸며, 무리를 온전히 하고 나라를 전하는 것은, 가장 큰 병이다.
[원문 10]
為人主者,誠明於臣之所言,則雖罼弋馳騁,撞鐘舞女,國猶且存也。不明臣之所言,雖節儉勤勞,布衣惡食,國猶自亡也。趙之先君敬侯,不修德行,而好縱慾,適身體之所安,耳目之所樂,冬日罼弋,夏浮淫,為長夜,數日不廢御觴,不能飲者以筩灌其口,進退不肅、應對不恭者斬於前。故居處飲食如此其不節也,制刑殺戮如此其無度也,然敬侯享國數十年,兵不頓於敵國,地不虧於四鄰,內無君臣百官之亂,外無諸侯鄰國之患,明於所以任臣也。燕君子噲,邵公奭之後也,地方數千里,持戟數十萬,不安子女之樂,不聽鍾石之聲,內不湮汙池臺榭,外不罼弋田獵,又親操耒耨以修畎畝,子噲之苦身以憂民如此其甚也,雖古之所謂聖王明君者,其勤身而憂世不甚於此矣。然而子噲身死國亡,奪於子之,而天下笑之,此其何故也?不明乎所以任臣也。故曰:人臣有五姦,而主不知也。為人臣者,有侈用財貨賂以取譽者,有務慶賞賜予以移眾者,有務朋黨徇智尊士以擅逞者,有務解免赦罪獄以事威者,有務奉下直曲、怪言偉服瑰稱、以眩民耳目者。此五者明君之所疑也,而聖主之所禁也。去此五者,則譟詐之人不敢北面談立,文言多、實行寡、而不當法者不敢誣情以談說。是以群臣居則修身,動則任力,非上之令、不敢擅作疾言誣事,此聖王之所以牧臣下也。彼聖主明君,不適疑物以闚其臣也。見疑物而無反者,天下鮮矣。故曰:孽有擬適之子,配有擬妻之妾,廷有擬相之臣,臣有擬主之寵,此四者國之所危也。故曰:內寵並后,外寵貳政,枝子配適,大臣擬主,亂之道也。故周記曰:「無尊妾而卑妻,無孽適子而尊小枝,無尊嬖臣而匹上卿,無尊大臣以擬其主也。」四擬者破,則上無意、下無怪也。四擬不破,則隕身滅國矣。
[번역문]
군주 된 자가, 진실로 신하가 말하는 바에 밝다면, 비록 그물질하고 주살하며 말을 달려도, 종을 치고 무희와 춤을 추어도, 나라는 오히려 존속할 것이다. 신하가 말하는 바에 밝지 못하면, 비록 절약하고 검소하며 부지런히 일하고, 베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어도, 나라는 오히려 스스로 망할 것이다. 조(趙)나라의 선군(先君) 경후(敬侯)는, 덕행을 닦지 않고, 욕망을 마음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여, 신체가 편안한 바와, 귀와 눈이 즐거운 바를 따랐다. 겨울에는 그물질하고 주살하며, 여름에는 물놀이하고 음란하며, 긴 밤의 연회를 열어, 며칠 동안 술잔을 놓지 않고, 마시지 못하는 자는 통으로 그 입에 부었으며, 나아가고 물러남이 엄숙하지 않고, 응대가 공손하지 않은 자는 앞에서 베었다. 그러므로 거처와 음식이 이와 같이 절도가 없었고, 형벌과 살육을 제정함이 이와 같이 법도가 없었다. 그러나 경후는 나라를 수십 년 동안 누렸고, 군대는 적국에 꺾이지 않았으며, 땅은 이웃 나라에 훼손되지 않았고, 안으로는 군신과 모든 관리의 혼란이 없었으며, 밖으로는 제후와 이웃 나라의 우환이 없었으니, 신하를 임용하는 방법에 밝았기 때문이다. 연(燕)나라 군주 자쾌(子噲)는, 소공 석(邵公奭)의 후예로, 땅은 사방 수천 리이고, 창을 든 자가 수십만이었으나, 자녀의 즐거움을 편안히 여기지 않고, 종과 경쇠 소리를 듣지 않았으며, 안으로는 연못과 누대를 막지 않고, 밖으로는 그물질하고 사냥하지 않았으며, 또한 직접 쟁기와 호미를 잡고 밭두둑을 닦았으니, 자쾌가 몸을 고생시키며 백성을 걱정함이 이와 같이 심했다. 비록 옛날의 이른바 성왕(聖王)과 명군(明君)이라도, 그 몸을 부지런히 하고 세상을 걱정함이 이보다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쾌는 몸이 죽고 나라가 망했으며, 자지(子之)에게 빼앗기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신하를 임용하는 방법에 밝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신하에게는 다섯 가지 간사함[五姦]이 있는데, 군주가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신하 된 자 중에는, 재물을 사치스럽게 쓰고 뇌물을 주어 명예를 얻는 자가 있고, 경사와 상, 하사를 힘써 무리를 옮기는 자가 있으며, 붕당에 힘쓰고 지혜를 뽐내며 선비를 존중하여 제멋대로 하는 자가 있고, 사면하고 죄와 옥사를 면제하는 데 힘써 위세를 부리는 자가 있으며, 아랫사람을 받들고 굽은 것을 곧게 하며, 괴이한 말과 위대한 복장, 기이한 칭호로써 백성의 귀와 눈을 현혹시키는 자가 있다. 이 다섯 가지는 현명한 군주가 의심하는 바이고, 성스러운 군주가 금하는 바이다. 이 다섯 가지를 제거하면, 떠들썩하고 속이는 사람이 감히 북면(北面)하여 서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문장은 많으나 실행은 적으며, 법에 맞지 않는 자가 감히 실정을 속여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여러 신하들이 거처할 때는 몸을 닦고, 움직일 때는 힘을 쓰며, 윗사람의 명령이 아니면 감히 제멋대로 격한 말을 하고 일을 속이지 않으니, 이것이 성왕이 아랫 신하를 기르는[牧] 방법이다. 저 성스러운 군주와 현명한 군주는, 의심스러운 사물에 나아가 그 신하를 엿보지 않는다. 의심스러운 사물을 보고도 반성함이 없는 자는, 천하에 드물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서자(孽) 중에 적자(嫡子)에 비견되는 아들이 있고, 첩 중에 아내에 비견되는 첩이 있으며, 조정에 재상에 비견되는 신하가 있고, 신하 중에 군주에 비견되는 총애를 받는 자가 있으니, 이 네 가지는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바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안의 총애가 왕후와 나란히 하고, 밖의 총애가 정치를 둘로 나누며, 서자가 적자에 비견되고, 대신이 군주에 비견되는 것은, 혼란의 길이다. 그러므로 《주기(周記)》에 이르기를, “첩을 높이고 아내를 낮추지 말며, 서자를 적자로 삼고 작은 가지를 높이지 말며, 총애하는 신하를 높여 상경(上卿)에 비기지 말고, 대신을 높여 그 군주에 비기지 말라.”고 하였다. 네 가지 비견되는 것이 깨지면, 위에는 뜻이 없고 아래에는 괴이함이 없다. 네 가지 비견되는 것이 깨지지 않으면, 몸이 떨어지고 나라가 멸망할 것이다.
韓非子 詭使 (한비자 궤사) 번역 및 주석
[원문 1]
詭使:
聖人之所以為治道者三:一曰利,二曰威,三曰名。夫利者所以得民也,威者所以行令也,名者上下之所同道也。非此三者,雖有不急矣。今利非無有也而民不化,上威非不存也而下不聽從,官非無法也而治不當名。三者非不存也,而世一治一亂者何也?夫上之所貴與其所以為治相反也。
[번역문]
궤사(詭使)¹⁾:
성인(聖人)이 다스리는 도(道)로 삼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이(利)이고, 둘째는 위(威)이며, 셋째는 명(名)이다. 무릇 이(利)란 백성을 얻는 방법이고, 위(威)란 명령을 행하게 하는 방법이며, 명(名)이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함께 따르는 길이다.²⁾ 이 세 가지가 아니면, 비록 다른 것이 있더라도 시급하지 않다. 지금 이익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백성이 교화되지 않고, 윗사람의 위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도 아랫사람이 따르지 않으며, 관청에 법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다스림이 그 이름에 걸맞지 않다. 세 가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도, 세상이 한편으로는 다스려지고 한편으로는 어지러운 것은 어째서인가? 무릇 윗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바가, 그 다스리는 방법과 서로 반대되기 때문이다.
[주석]
1) 궤사(詭使): ‘궤(詭)’는 ‘어긋나다’, ‘반대되다’는 뜻이고, ‘사(使)’는 ‘부리다’, ‘~하게 하다’는 뜻이다. 제목은 군주가 귀하게 여기는 가치와 실제 통치에 필요한 수단이 서로 어긋나[詭] 있어, 의도와는 반대로 나라가 어지러워지게 되는[使] 현상을 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이(利), 위(威), 명(名): 한비자가 제시하는 통치의 세 가지 기본 수단. 이(利)는 상(賞)을 통해 백성의 이익을 보장하여 마음을 얻는 것이고, 위(威)는 벌(罰)을 통해 권위를 세워 명령을 관철하는 것이며, 명(名)은 작위나 신분 등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여 상하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원문 2]
夫立名號所以為尊也,今有賤名輕實者,世謂之高。設爵位所以為賤貴基也,而簡上不求見者,世謂之賢。威利所以行令也,而無利輕威者,世謂之重。法令所以為治也,而不從法令、為私善者,世謂之忠。官爵所以勸民也,而好名義、不進仕者,世謂之烈士。刑罰所以擅威也,而輕法、不避刑戮死亡之罪者,世謂之勇夫。民之急名也甚,其求利也如此,則士之飢餓乏絕者,焉得無巖居苦身以爭名於天下哉?故世之所以不治者,非下之罪,上失其道也。常貴其所以亂,而賤其所以治,是故下之所欲,常與上之所以為治相詭也。今下而聽其上,上之所急也。而惇愨純信、用心怯言,則謂之窶。守法固、聽令審,則謂之愚。敬上畏罪,則謂之怯。言時節,行中適,則謂之不肖。無二心私學,聽吏從教者,則謂之陋。難致謂之正。難予謂之廉。難禁謂之齊。有令不聽從謂之勇。無利於上謂之愿。少欲寬惠行德謂之仁。重厚自尊謂之長者。私學成群謂之師徒。閑靜安居謂之有思。損仁逐利謂之疾。險躁佻反覆謂之智。先為人而後自為,類名號,言,汎愛天下,謂之聖。言大本稱而不可用,行而乘於世者,謂之大人。賤爵祿,不撓上者,謂之傑。下漸行如此,入則亂民,出則不便也。上宜禁其欲、滅其跡而不止也,又從而尊之,是教下亂上以為治也。
[번역문]
무릇 명호(名號)를 세우는 것은 존귀함을 위한 것인데, 지금 명예를 천하게 여기고 실리를 가벼이 여기는 자를, 세상은 고상하다[高]고 일컫는다. 작위(爵位)를 설치하는 것은 천하고 귀함의 기초를 위한 것인데,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뵙기를 구하지 않는 자를, 세상은 현명하다[賢]고 일컫는다. 위엄과 이익은 명령을 행하기 위한 것인데, 이익을 무시하고 위엄을 가벼이 여기는 자를, 세상은 존중받는다[重]고 일컫는다. 법령은 다스림을 위한 것인데, 법령을 따르지 않고 사사로운 선행[私善]을 하는 자를, 세상은 충성스럽다[忠]고 일컫는다. 관직과 작위는 백성을 권면하기 위한 것인데, 명분과 의리를 좋아하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자를, 세상은 열사(烈士)라 일컫는다. 형벌은 위엄을 독점하기 위한 것인데, 법을 가벼이 여기고 형벌과 죽음의 죄를 피하지 않는 자를, 세상은 용감한 사내[勇夫]라 일컫는다. 백성이 명예를 구하기를 심하게 하고, 그 이익을 구하기를 이와 같이 하니, 굶주리고 궁핍한 선비들이 어찌 바위굴에 살며 몸을 괴롭혀 천하에 명예를 다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이 다스려지지 않는 까닭은, 아랫사람의 죄가 아니라 윗사람이 그 도를 잃었기 때문이다. 항상 어지러워지는 방법을 귀하게 여기고, 다스려지는 방법을 천하게 여기니, 이런 까닭에 아랫사람이 바라는 바가, 항상 윗사람이 다스리는 방법과 서로 어긋나는 것이다. 지금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윗사람이 시급히 여기는 바이다. 그러나 돈독하고 성실하며 순박하고 믿음직스러우며, 마음을 씀에 말을 조심하는 자를, 궁색하다[窶]고 일컫는다. 법을 굳게 지키고, 명령 듣기를 신중히 하는 자를, 어리석다[愚]고 일컫는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죄를 두려워하는 자를, 겁이 많다[怯]고 일컫는다. 말이 때에 맞고, 행동이 적절한 자를, 못났다[不肖]고 일컫는다. 두 마음이나 사사로운 학문이 없이, 관리를 듣고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비루하다[陋]고 일컫는다. (뇌물로) 부르기 어려운 자를 바르다[正]고 일컫는다. (뇌물을) 주기 어려운 자를 청렴하다[廉]고 일컫는다. 금하기 어려운 자를 가지런하다[齊]고 일컫는다. 명령이 있어도 따르지 않는 자를 용감하다[勇]고 일컫는다. 윗사람에게 이로움이 없는 자를 삼간다[愿]고 일컫는다. 욕심이 적고 너그러우며 은혜롭고 덕을 행하는 자를 어질다[仁]고 일컫는다. 신중하고 후덕하며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를 어른[長者]이라 일컫는다. 사사로운 학문으로 무리를 이루는 것을 스승과 제자[師徒]라 일컫는다. 한가하고 조용히 편안히 거처하는 것을 생각이 있다[有思]고 일컫는다. 인(仁)을 버리고 이익을 쫓는 것을 민첩하다[疾]고 일컫는다. 험하고 조급하며 경박하고 변덕스러운 것을 지혜롭다[智]고 일컫는다. 남을 먼저 위하고 뒤에 자신을 위하며, 명호를 본뜨고, 천하를 널리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성스럽다[聖]고 일컫는다. 큰 근본을 말하나 칭송받으면서도 쓸모가 없고, 행동이 세상에 편승하는 자를, 대인(大人)이라 일컫는다. 작록을 천하게 여기고, 윗사람에게 굽히지 않는 자를, 뛰어나다[傑]고 일컫는다. 아랫사람들이 점차 이와 같이 행하면, 들어와서는 백성을 어지럽히고, 나가서는 (나라에) 이롭지 않다. 윗사람이 마땅히 그 욕망을 금하고 그 자취를 없애야 하는데도 그치지 않고, 또한 따라서 그들을 존중하니, 이는 아랫사람에게 윗사람을 어지럽히는 것으로써 다스림을 삼으라고 가르치는 것이다.¹⁾
[주석]
1) 이 문단은 한비자의 핵심적인 사회 비판을 담고 있다. 그는 당대의 사회가 법치(法治)에 필요한 가치(준법, 복종, 공리 추구 등)를 어리석고 비루한 것으로 폄하하고, 반대로 국가 질서를 저해하는 가치(개인적 명예, 사사로운 선행, 권위에 대한 저항 등)를 고상하고 현명한 것으로 칭송하는 ‘가치의 전도’ 현상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이는 군주가 통치의 기준을 법과 공(功)에 두지 않고, 유가나 도가에서 말하는 막연한 ‘현명함’이나 ‘고상함’에 두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본다.
[원문 3]
凡所治者刑罰也,今有私行義者尊。社稷之所以立者安靜也,而譟險讒諛者任。四封之內所以聽從者信與德也,而陂知傾覆者使。令之所以行、威之所以立者恭儉聽上,而巖居非世者顯。倉廩之所以實者耕農之本務也,而綦組錦繡刻劃為末作者富。名之所以成、城池之所以廣者戰士也,今死士之孤飢餓乞於道,而優笑酒徒之屬乘車衣絲。賞祿所以盡民力易下死也,今戰勝攻取之士勞而賞不霑,而卜筮視手理狐蟲為順辭於前者日賜。上握度量所以擅生殺之柄也,今守度奉量之士欲以忠嬰上而不得見,巧言利辭行姦軌以倖偷世者數御。據法直言、名刑相當、循繩墨、誅姦人所以為上治也而愈疏遠,諂施順意從欲以危世者近。習悉租稅、專民力所以備難充倉府也,而士卒之逃事狀匿附託有威之門以避傜賦、而上不得者萬數。夫陳善田利宅所以戰士卒也,而斷頭裂腹播骨乎平原野者,無宅容身,身死田奪;而女妹有色、大臣左右無功者,擇宅而受,擇田而食。賞利一從上出、所以擅剬下也,而戰介之士不得職,而閒居之士尊顯。上以此為教,名安得無卑,位安得無危。夫卑名位者,必下之不從法令、有二心無私學、反逆世者也,而不禁其行,不破其群,以散其黨,又從而尊之,用事者過矣。上世之所以立廉恥者,所以屬下也;今士大夫不羞汙泥醜辱而宦,女妹私義之門不待次而宦。賞賜之所以為重也,而戰鬥有功之士貧賤,而便辟優徒超級。名號誠信,所以通威也,而主揜障。近習女謁並行,百官主爵遷人,用事者過矣。大臣官人與下先謀比周,雖不法行,威利在下則主卑而大臣重矣。
[번역문]
무릇 다스리는 바는 형벌인데, 지금 사사로이 의(義)를 행하는 자가 존중받는다. 사직이 서는 까닭은 안정인데, 떠들고 험하며 참소하고 아첨하는 자가 임용된다. 사방 국경 안에서 따르게 하는 까닭은 신의와 덕인데, 비뚤어진 지혜로 뒤엎는 자가 부림을 받는다. 명령이 행해지고 위엄이 서는 까닭은 공손하고 검소하며 윗사람을 듣는 것인데, 바위굴에 살며 세상을 비난하는 자가 드러난다. 창고가 채워지는 까닭은 농사가 근본 임무이기 때문인데, 무늬 있는 끈이나 비단, 조각을 만드는 말단 일[末作]¹⁾을 하는 자가 부유해진다. 명성이 이루어지고 성과 못이 넓어지는 까닭은 전사(戰士) 때문인데, 지금 죽은 병사의 고아는 길에서 굶주리고 구걸하며, 배우와 웃음 파는 자, 술꾼의 무리는 수레를 타고 비단옷을 입는다. 상과 녹봉은 백성의 힘을 다하게 하고 아랫사람이 죽음을 쉽게 여기게 하는 방법인데, 지금 전쟁에서 이기고 공격하여 취한 병사는 수고로워도 상이 미치지 않고, 점치고 손금 보며 여우나 벌레를 다루어 앞에서 순한 말을 하는 자는 날마다 하사품을 받는다. 윗사람이 법도[度量]를 쥐는 것은 살리고 죽이는 권한[生殺之柄]을 독점하기 위함인데, 지금 법도를 지키고 법량을 받드는 선비가 충성으로써 윗사람을 만나고자 해도 뵙지 못하고, 교묘한 말과 이로운 말로 간사한 궤도를 행하여 요행으로 세상을 훔치는 자는 자주 군주를 모신다. 법에 근거하여 곧게 말하고, 이름과 형벌이 서로 맞으며, 법도[繩墨]를 따르고, 간사한 사람을 주살하는 것이 윗사람을 위한 다스림인데도 더욱 멀어지고, 아첨하고 베풀며 뜻에 순종하고 욕망을 따라 세상을 위태롭게 하는 자는 가까워진다. 조세를 익히고 거두며, 백성의 힘을 오로지 하는 것은 어려움에 대비하고 창고를 채우기 위함인데, 병사 중에 일을 피해 도망치고 숨어 위세 있는 가문에 의탁하여 요역과 부세를 피하여, 윗사람이 얻지 못하는 자가 만 단위로 헤아린다. 무릇 좋은 밭과 이로운 집을 진열하는 것은 병사들을 위한 것인데, 머리가 잘리고 배가 찢기며 뼈가 평원의 들판에 흩어진 자는, 몸을 용납할 집이 없고, 몸이 죽으면 밭을 빼앗긴다. 그러나 누이동생이 얼굴이 예쁘거나, 대신과 측근 중에 공이 없는 자는, 집을 골라 받고, 밭을 골라 먹는다. 상과 이익이 오로지 위에서 나오는 것은, 아랫사람을 독점적으로 제어하기 위함인데, 갑옷 입고 싸우는 병사는 직책을 얻지 못하고, 한가로이 거처하는 선비가 존귀하고 드러난다. 윗사람이 이것으로써 가르치니, 명예가 어찌 비천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지위가 어찌 위태로워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명예와 지위를 비천하게 하는 자는, 반드시 법령을 따르지 않고, 두 마음을 품고 사사로운 학문을 하며, 세상을 거스르는 아랫사람이다. 그런데도 그 행동을 금하지 않고, 그 무리를 깨뜨려 그 당파를 흩어버리지 않고, 또한 따라서 그들을 존중하니, 일을 맡은 자의 과오이다. 윗 시대에 염치를 세운 까닭은, 아랫사람을 복속시키기 위함이었다. 지금 사대부는 더러운 진흙과 추한 치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벼슬하며, 여동생이나 사사로운 의리의 문중은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벼슬한다. 상과 하사가 중한 까닭이 있는데도, 전투에서 공이 있는 선비는 가난하고 천하며, 군주에게 아첨하는 자와 배우의 무리는 등급을 뛰어넘는다. 명호와 신의는, 위엄을 통하게 하는 방법인데, 군주가 가리고 막는다. 측근과 여자의 청탁이 나란히 행해지고, 모든 관리가 작위를 주관하여 사람을 옮기니, 일을 맡은 자의 과오이다. 대신이 사람을 관직에 임명할 때 아랫사람과 먼저 모의하고 무리를 지으면, 비록 법대로 행하지 않더라도, 위엄과 이익이 아랫사람에게 있으니 군주는 비천해지고 대신은 무거워진다.
[주석]
1) 말작(末作): 근본이 되는 농업(本業)에 대비되는 상공업이나 사치품 생산 등을 가리키는 법가 용어. 한비자는 국가의 부강은 농업과 국방에 달려있다고 보았기에, 말작이 성행하는 것을 국가 쇠퇴의 징조로 여겼다.
[원문 4]
夫立法令者以廢私也,法令行而私道廢矣。私者所以亂法也。而士有二心私學、巖居窞處、託伏深慮,大者非世,細者惑下;上不禁,又從而尊之,以名化之以實,是無功而顯,無勞而富也。如此,則士之有二心私學者,焉得無深慮、勉知詐、與誹謗法令以求索,與世相反者也。凡亂上反世者,常士有二心私學者也。故本言曰:「所以治者法也,所以亂者私也;法立,則莫得為私矣。」故曰:道私者亂,道法者治。上無其道,則智者有私詞,賢者有私意。上有私惠,下有私欲,聖智成群,造言作辭,以非法措於上。上不禁塞,又從而尊之,是教下不聽上、不從法也。是以賢者顯名而居,姦人賴賞而富。賢者顯名而居,姦人賴賞而富,是以上不勝下也。
[번역문]
무릇 법령을 세우는 것은 사사로움[私]을 폐하기 위함이니, 법령이 행해지면 사사로운 길[私道]은 폐해진다. 사사로움이란 법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그런데 선비 중에 두 마음을 품고 사사로운 학문[私學]을 하며, 바위굴이나 구덩이에 살고, 숨어 엎드려 깊이 생각하며, 크게는 세상을 비난하고 작게는 아랫사람을 현혹하는 자가 있다. 윗사람이 금하지 않고, 또한 따라서 그들을 존중하며, 명예로써 그들을 교화하고 실질로써 대하니, 이는 공이 없는데도 드러나고, 노고가 없는데도 부유해지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두 마음을 품고 사사로운 학문을 하는 선비가, 어찌 깊이 생각하고, 속이는 지혜에 힘쓰며, 법령을 비방하여 구하고 찾으며, 세상과 서로 반대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윗사람을 어지럽히고 세상을 거스르는 자는, 항상 두 마음을 품고 사사로운 학문을 하는 선비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말에 이르기를, “다스리는 것은 법이고, 어지럽히는 것은 사사로움이다. 법이 서면, 사사로움을 행할 수 없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사사로운 길을 따르면 어지러워지고, 법의 길을 따르면 다스려진다고 하는 것이다. 윗사람에게 그 도가 없으면, 지혜로운 자는 사사로운 말을 하고, 현명한 자는 사사로운 뜻을 품는다. 위에서 사사로운 은혜가 있으면, 아래에서 사사로운 욕망이 있고, 성인과 지혜로운 자들이 무리를 이루어, 말을 만들고 글을 지어, 법이 아닌 것으로 윗사람에게 대처한다. 윗사람이 금하고 막지 않고, 또한 따라서 그들을 존중하니, 이는 아랫사람에게 윗사람을 듣지 말고 법을 따르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명한 자는 이름을 드러내고 은거하며, 간사한 사람은 상에 의지하여 부유해진다. 현명한 자는 이름을 드러내고 은거하며, 간사한 사람은 상에 의지하여 부유해지니, 이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韓非子 第49篇 - 六反 (여섯 가지 반대되는 현상)
원문 및 번역
【원문 1】
六反:畏死難,降北之民也,而世尊之曰貴生之士;學道立方,離法之民也,而世尊之曰文學之士;遊居厚養,牟食之民也,而世尊之曰有能之士;語曲牟知,偽詐之民也,而世尊之曰辯智之士;行劍攻殺,暴憿之民也,而世尊之曰磏勇之士;活湧匿姦,當死之民也,而世尊之曰任譽之士;此六民者,世之所譽也。赴險殉誠,死節之民,而世少之曰失計之民也;寡聞從令,全法之民也,而世少之曰樸陋之民也;力作而食,生利之民也,而世少之曰寡能之民也;嘉厚純粹,整穀之民也,而世少之曰愚戇之民也;重命畏事,尊上之民也,而世少之曰怯懾之民也;挫賊遏姦,明上之民也,而世少之曰諂讒之民也;此六民者,世之所毀也。姦偽無益之民六,而世譽之如彼;耕戰有益之民六,而世毀之如此;此之謂六反。布衣循私利而譽之,世主聽虛聲而禮之,禮之所在,利必加焉。百姓循私害而訾之,世主壅於俗而賤之,賤之所在,害必加焉。故名賞在乎私惡當罪之民,而毀害在乎公善宜賞之士,索國之富強,不可得也。
【번역문 1】
여섯 가지 반대되는 현상[¹]이란 다음과 같다. 죽음과 어려움을 두려워하여 항복하고 달아나는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존중하여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선비’라 하고, 도(道)를 배우고 독자적인 뜻을 세워 법을 어기는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존중하여 ‘문학(文學)의 선비’라 하며, 일하지 않고 놀면서 풍족하게 부양받아 이익을 찾는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존중하여 ‘능력 있는 선비’라 하고, 말을 교묘하게 꾸며 지혜를 구하는 거짓되고 속이는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존중하여 ‘변론과 지혜의 선비’라 하며, 칼을 차고 다니며 사람을 공격하고 죽이는 포악하고 사나운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존중하여 ‘청렴하고 용감한 선비’라 하고, 죄인을 살려주고 도망치게 하며 간악한 자를 숨겨주는 마땅히 죽어야 할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존중하여 ‘의협심 있고 명예로운 선비’[²]라 하니, 이 여섯 부류의 백성은 세상이 칭송하는 자들이다. 위험에 나아가고 진심을 위해 목숨을 바쳐 절개를 위해 죽는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폄하하여 ‘계책에 실패한 백성’이라 하고, 들은 것이 적어도 명령에 따르는 법을 온전히 지키는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폄하하여 ‘소박하고 비루한 백성’이라 하며, 힘써 일하여 먹고사는 이익을 생산하는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폄하하여 ‘능력이 별로 없는 백성’이라 하고, 아름답고 돈후하며 순수한[³] 반듯하고 착한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폄하하여 ‘어리석고 미련한 백성’이라 하며, 명령을 중히 여기고 일을 두려워하여 윗사람을 존중하는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폄하하여 ‘겁 많고 나약한 백성’이라 하고, 도적을 꺾고 간악한 자를 막아 윗사람을 밝히는[⁴] 백성인데 세상은 이들을 폄하하여 ‘아첨하고 참소하는 백성’이라 하니, 이 여섯 부류의 백성은 세상이 헐뜯는 자들이다. 간사하고 거짓되어 이로움이 없는 여섯 부류의 백성을 세상은 저와 같이 칭송하고, 농사짓고 싸우는[⁵] 이로운 여섯 부류의 백성을 세상은 이와 같이 헐뜯으니, 이를 일컬어 ‘여섯 가지 반대되는 현상(六反)’이라 한다. 평민들은[⁶]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그들을 칭송하고, 군주는 헛된 명성을 듣고 그들을 예우하니, 예우가 있는 곳에 이익이 반드시 더해진다. 백성들은 사사로운 해로움에 따라 그들을 헐뜯고, 군주는 세속의 평판에 막혀 그들을 천시하니, 천시가 있는 곳에 해로움이 반드시 더해진다. 그러므로 명예와 상이 사사로움과 악행으로 마땅히 죄 받아야 할 백성에게 있고, 헐뜯음과 해로움이 공적인 선행으로 마땅히 상 받아야 할 선비에게 있으니, 나라의 부강을 구하고자 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주석 1】
六反(육반):篇名(편명)이자 이 글의 핵심 개념이다. ‘反’은 ‘반대되다’, ‘뒤바뀌다’는 뜻으로, 국가에 유익한 행위가 비난받고 해로운 행위가 칭송받는 여섯 가지 가치 전도 현상을 가리킨다. 이는 법가(法家) 사상가인 한비(韓非)가 당시 사회의 통념과 유가(儒家) 등에서 중시하는 가치가 국가 통치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任譽之士(임예지사): ‘任’은 의협심(義俠心)이나 의리를 뜻하고, ‘譽’는 명예를 뜻한다. 사적인 의리를 내세워 범죄자를 비호하고 명예를 얻는 자들을 가리킨다. 한비는 이러한 사적인 의리(私義)가 국가의 공법(公法)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보았다.
嘉厚純粹(가후순수): 사람의 성품이 아름답고(嘉), 돈후하며(厚), 잡것이 섞이지 않고(純) 깨끗함(粹)을 의미한다.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성품을 가진 백성은 꾸밈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범적인 국민이다.
明上(명상): 윗사람, 즉 군주나 관리를 밝게 한다는 뜻이다. 간악한 자의 악행을 고발하여 윗사람의 판단을 흐리지 않게 돕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당시의 통념으로는 이를 고자질이나 아첨으로 여겨 비난했던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耕戰(경전): 농사(耕)와 전쟁(戰). 법가 사상, 특히 상앙(商鞅) 이래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한 국가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핵심 정책을 상징하는 용어이다.
布衣(포의): 베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벼슬이 없는 평민이나 선비를 가리킨다.
【원문 2】
古者有諺曰:「為政、猶沐也,雖有棄髮、必為之。」愛棄髮之費,而忘長髮之利,不知權者也。夫彈痤者痛,飲藥者苦,為苦憊之故,不彈痤、飲藥,則身不活、病不已矣。
【번역문 2】
옛적에 속담이 있어 말하기를, “정치를 하는 것은 머리를 감는 것과 같아서, 비록 빠지는 머리카락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한다.”라고 하였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손실을 아까워하고 머리카락이 자라는 이로움을 잊는 것은, 경중을 저울질할 줄 모르는[⁷] 자이다. 무릇 종기를 짜는 것은 아프고 약을 마시는 것은 쓰다. 그러나 그 괴로움 때문에 종기를 짜지 않고 약을 마시지 않으면, 몸은 살아남지 못하고 병은 멎지 않을 것이다.
【주석 2】
權(권): 저울추, 저울질하다. 사물의 경중(輕重)이나 이해득실(利害得失)을 비교하여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비는 여기서 엄격한 법 집행(예: 重刑)이라는 단기적 고통(棄髮, 彈痤)을 감수해야만 국가 안정이라는 장기적 이익(長髮, 病已)을 얻을 수 있음을 역설하며, 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군주를 비판한다.
【원문 3】
今上下之接,無子父之澤,而欲以行義禁下,則交必有郤矣。且父母之於子也,產男則相賀,產女則殺之。此俱出父母之懷衽,然男子受賀,女子殺之者,慮其後便、計之長利也。故父母之於子也,猶用計算之心以相待也,而況無父子之澤乎!
【번역문 3】
지금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은혜로운 정이 없는데, 의(義)를 행함으로써 아랫사람을 통제하고자 한다면 그 관계에는 반드시 틈이 생길 것이다. 하물며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도, 아들을 낳으면 서로 축하하고 딸을 낳으면 죽이기까지 한다.[⁸] 이들은 모두 부모의 품속에서 나왔으나, 사내아이는 축하를 받고 여자아이는 죽임을 당하는 것은 훗날의 편의를 염려하고 장기적인 이익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도 오히려 계산하는 마음을 써서 서로 대하는데, 하물며 부모와 자식 간의 은혜로운 정이 없는 관계에서는 어떻겠는가!
【주석 3】
產男則相賀,產女則殺之(산남즉상하 산녀즉살지): 남아선호사상과 여아 살해 풍습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이것이 당시의 보편적인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한비가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한 수사적 표현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한비가 이를 통해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 자식 관계조차 철저히 이해타산에 기반하고 있음을 주장하며, 인의(仁義)와 같은 도덕적 감정에 기반한 통치의 허구성을 폭로하려는 데 있다.
【원문 4】
今學者之說人主也,皆去求利之心,出相愛之道,是求人主之過父母之親也,此不熟於論恩詐而誣也,故明主不受也。聖人之治也,審於法禁,法禁明著則官法;必於賞罰,賞罰不阿則民用。官官治則國富,國富則兵強,而霸王之業成矣。霸王者,人主之大利也。人主挾大利以聽治,故其任官者當能,其賞罰無私。使士民明焉盡力致死、則功伐可立而爵祿可致,爵祿致而富貴之業成矣。富貴者,人臣之大利也。人臣挾大利以從事,故其行危至死,其力盡而不望。此謂君不仁,臣不忠,則不可以霸王矣。
【번역문 4】
지금 학자들이 군주를 설득하는 것을 보면, 모두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는 도리를 내세우라고 말한다. 이는 군주에게 부모의 친함보다 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니, 이는 은혜와 거짓의 논리에[⁹] 익숙하지 못한 기만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인(聖人)의 다스림은 법과 금령을 명확히 하는 데 있으니, 법과 금령이 명백하게 드러나면 관리들은 법대로 다스린다. 또한 상벌을 반드시 행하는 데 있으니, 상벌이 치우치지 않으면 백성들은 쓰임에 응한다. 관리들이 직분을 잘 다스리면 나라가 부유해지고, 나라가 부유해지면 군대가 강해져서, 패왕(霸王)의 위업이 이루어진다. 패왕의 위업은 군주의 큰 이익이다. 군주는 큰 이익을 품고 정사를 듣기 때문에, 관리를 임용함에는 능력 있는 자를 쓰고 그 상벌에는 사사로움이 없다. 선비와 백성들로 하여금 이를 분명히 알고 힘을 다해 죽음에 이르게 하면, 공적을 세울 수 있고 작록을 얻을 수 있으며, 작록을 얻으면 부귀의 위업이 이루어진다. 부귀는 신하의 큰 이익이다. 신하는 큰 이익을 품고 일에 종사하기 때문에, 그 행동이 위험하여 죽음에 이르더라도 그 힘을 다하고 원망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군주가 인(仁)하지 않고 신하가 충(忠)하지 않으면[¹⁰] 패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석 4】
論恩詐(논은사): 은혜(恩)와 거짓(詐)에 대한 논리. 인간관계의 본질이 애정(恩)이 아니라 계산(詐)에 있음을 통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비는 유학자들이 이러한 현실을 모르고 막연히 사랑(相愛)을 주장하는 것은 세상을 속이는(誣) 행위라고 비판한다.
君不仁,臣不忠,則不可以霸王矣(군불인, 신불충, 즉불가이패왕의): 이 구절은 문맥상 반어적(反語的)으로 해석해야 한다. 앞선 논리에 따르면 군주는 인(仁)이 아닌 이익(利)으로, 신하는 충(忠)이 아닌 이익(利)으로 움직여야 패업이 완성된다. 따라서 이 문장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군주가 인(仁)하고 신하가 충(忠)해야만 패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다”는 의미, 혹은 “군주가 (세상에서 말하는) 인(仁)을 버리고, 신하가 (맹목적인) 충(忠)을 버리지 않으면 패왕이 될 수 없다”는 역설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즉, 인(仁)과 충(忠)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버리고, 군신(君臣)이 각자의 ‘큰 이익(大利)’을 추구하는 이해관계로 맺어질 때 비로소 패업이 가능하다는 법가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다.
【원문 5】
夫姦必知則備,必誅則止;不知則肆,不誅則行。夫陳輕貨於幽隱,雖曾、史可疑也;懸百金於市,雖大盜不取也。不知則曾、史可疑於幽隱,必知則大盜不取懸金於市。故明主之治國也眾其守、而重其罪,使民以法禁而不以廉止。母之愛子也倍父,父令之行於子者十母;吏之於民無愛,令之行於民也萬父。母積愛而令窮,吏用威嚴而民聽從,嚴愛之筴亦可決矣。且父母之所以求於子也,動作則欲其安利也,行身則欲其遠罪也;君上之於民也,有難則用其死,安平則盡其力。親以厚愛關子於安利而不聽,君以無愛利求民之死力而令行。明主知之,故不養恩愛之心而增威嚴之勢。故母厚愛處,子多敗,推愛也;父薄愛教笞,子多善,用嚴也。
【번역문 5】
무릇 간악한 짓은 반드시 발각된다는 것을 알면 대비하게 되고, 반드시 처벌된다는 것을 알면 그만두게 된다.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제멋대로 하고,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실행한다. 가벼운 재물을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 두면 비록 증자(曾子)나 사어(史魚)라[¹¹] 할지라도 의심받을 수 있고, 백금(百金)을 시장에 매달아 놓으면 비록 큰 도둑이라도 가져가지 않는다.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증자나 사어라도 은밀한 곳에서 의심받을 수 있고, 반드시 발각된다는 것을 알면 큰 도둑도 시장에 매달린 황금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감시하는 자를 많이 두고 그 죄에 대한 벌을 무겁게 하여, 백성들이 청렴함 때문이 아니라 법에 의한 금령 때문에 그만두게 한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아버지의 배(倍)가 되지만, 아버지의 명령이 자식에게 행해지는 것은 어머니의 열 배이다. 관리가 백성에게는 사랑이 없지만, 그의 명령이 백성에게 행해지는 것은 아버지의 만 배이다. 어머니는 사랑을 쌓지만 명령은 막히고, 관리는 위엄을 사용하지만 백성은 복종하니, 엄격함과 사랑의 계책[¹²] 중 어느 것이 나은지는 또한 결단할 수 있다. 또한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바는, 행동거지에 있어서는 편안하고 이롭기를 바라고, 몸가짐에 있어서는 죄에서 멀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군주가 백성에게 바라는 바는, 어려움이 있으면 그들의 죽음을 쓰고, 평안할 때에는 그들의 힘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어버이는 두터운 사랑으로 자식이 편안하고 이롭도록 마음을 써주어도 자식은 듣지 않는데, 군주는 사랑 없이 이익으로써 백성의 죽을힘을 요구해도 명령은 행해진다. 현명한 군주는 이를 알기 때문에, 은혜와 사랑의 마음을 기르지 않고 위엄의 기세를 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두터운 사랑으로 대하면 자식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으니 이는 사랑에만 맡겨두기 때문이고, 아버지가 사랑은 옅어도 가르치고 매질하면 자식이 선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는 엄격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주석 5】
曾、史(증, 사): 증자(曾子)와 사어(史魚). 증자는 공자(孔子)의 제자로 효행과 성실함으로 유명한 유학의 대표적 현인이다. 사어는 위(衛)나라의 대부로, 자신의 시신을 이용해 군주에게 간언했을 정도로 강직함의 상징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한비는 이처럼 도덕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인물들조차 ‘발각되지 않을 상황’에서는 유혹에 흔들릴 수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성(廉)이 아닌 ‘처벌의 확실성’이라는 제도(法)에 의존해야 함을 강조한다.
筴(책): ‘책(策)’과 통용되는 글자로, 계책, 방법, 수단을 의미한다.
【원문 6】
今家人之治產也,相忍以飢寒,相強以勞苦,雖犯軍旅之難,饑饉之患,溫衣美食者,必是家也;相憐以衣食,相惠以佚樂,天饑歲荒,嫁妻賣子者,必是家也。故法之為道,前苦而長利;仁之為道,偷樂而後窮。聖人權其輕重,出其大利,故用法之相忍,而棄仁人之相憐也。學者之言,皆曰輕刑,此亂亡之術也。凡賞罰之必者,勸禁也。賞厚、則所欲之得也疾,罰重、則所惠之禁也急。夫欲利者必惡害,害者,利之反也,反於所欲,焉得無惡。欲治者必惡亂,亂者,治之反也。是故欲治甚者,其賞必厚矣;其惡亂甚者,其罰必重矣。今取於輕刑者,其惡亂不甚也,其欲治又不甚也,此非特無術也,又乃無行。是故決賢不肖愚知之美,在賞罰之輕重。且夫重刑者,非為罪人也。明主之法,揆也。治賊,非治所揆也;治所揆也者,是治死人也。刑盜,非治所刑也;治所刑也者,是治胥靡也。故曰重一姦之罪而止境內之邪,此所以為治也。重罰者,盜賊也;而悼懼者,良民也;欲治者奚疑於重刑!若夫厚賞者,非獨賞功也,又勸一國。受賞者甘利,未賞者慕業,是報一人之功而勸境內之眾也,欲治者何疑於厚賞!今不知治者,皆曰重刑傷民,輕刑可以止姦,何必於重哉?此不察於治者也。夫以重止者,未必以輕止也;以輕止者,必以重止矣。是以上設重刑者而姦盡止,姦盡止則此奚傷於民也?所謂重刑者,姦之所利者細,而上之所加焉者大也;民不以小利蒙大罪,故姦必止者也。所謂輕刑者,姦之所利者大,上之所加焉者小也;民慕其利而傲其罪,故姦不止也。故先聖有諺曰:「不躓於山,而躓於垤。」山者大、故人順之,垤微小、故人易之也。今輕刑罰,民必易之。犯而不誅,是驅國而棄之也;犯而誅之,是為民設陷也。是故輕罪者,民之垤也。是以輕罪之為民道也,非亂國也則設民陷也,此則可謂傷民矣!
【번역문 6】
지금 한 집안이 재산을 다스림에 있어, 서로 굶주림과 추위를 참고 견디며 서로 힘써 노고를 견디면, 비록 군대의 어려움이나 기근의 우환을 만나더라도 따뜻한 옷과 맛있는 음식을 누리는 것은 반드시 이런 집안이다. 서로 옷과 음식을 가엾게 여기고 서로 편안함과 즐거움을 베풀면, 천재지변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아내를 시집보내고 자식을 파는 것은 반드시 이런 집안이다. 그러므로 법(法)의 도리는 처음에는 괴롭지만 길게 보면 이롭고, 인(仁)의 도리는 당장의 즐거움을 훔치지만 나중에는 궁핍해진다. 성인(聖人)은 그 경중을 저울질하여 그 큰 이익을 취하는 까닭에, 법에 따른 ‘서로 참고 견딤’을 사용하고 인(仁)에 따른 ‘서로 가엾게 여김’을 버리는 것이다. 학자들의 말은 모두 형벌을 가볍게 하라고 하는데, 이는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망하게 하는 술책이다. 무릇 상벌을 반드시 행하는 것은 권장하고 금지하기 위함이다. 상이 두터우면 바라는 바를 얻음이 빠르고, 벌이 무거우면 막고자 하는 바를 금함이 급하다. 무릇 이익을 바라는 자는 반드시 해로움을 싫어하니, 해로움은 이익의 반대이다. 바라는 바에 반대되니 어찌 싫어하지 않겠는가.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혼란을 싫어하니, 혼란은 다스려짐의 반대이다. 이런 까닭에 다스려지기를 심하게 바라는 자는 그 상이 반드시 두터울 것이고, 혼란을 심하게 싫어하는 자는 그 벌이 반드시 무거울 것이다. 지금 가벼운 형벌을 취하는 자는 그 혼란을 싫어함이 심하지 않은 것이고, 그 다스려지기를 바람 또한 심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단지 술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실천 의지도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명함과 어리석음, 미련함과 지혜로움의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는 것은 상벌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달려 있다. 또한 무거운 형벌이라는 것은 죄인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¹³] 현명한 군주의 법은 헤아리는 것이다. 도적을 다스리는 것은, 이미 헤아려진 바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이미 헤아려진 바를 다스린다는 것은, 죽은 사람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도둑을 처벌하는 것은, 이미 처벌받은 자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이미 처벌받은 자를 다스린다는 것은, 이미 형벌을 받아 노역하는 자(胥靡)를[¹⁴] 다스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한 가지 간사한 죄를 무겁게 다스려 나라 안의 사악함을 그치게 한다’고 하니, 이것이 다스림이 되는 까닭이다. 무거운 벌을 받는 자는 도적이지만, 이를 보고 두려워하는 자는 선량한 백성이다. 다스리고자 하는 자가 어찌 무거운 형벌을 의심하겠는가! 무릇 두터운 상이라는 것은 단지 공을 세운 자에게 상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온 나라를 권면하는 것이다. 상을 받은 자는 그 이익을 달게 여기고, 아직 상을 받지 못한 자는 그 공업을 흠모하게 되니, 이는 한 사람의 공에 보답하여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을 권면하는 것이다. 다스리고자 하는 자가 어찌 두터운 상을 의심하겠는가! 지금 다스림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말하기를, “무거운 형벌은 백성을 해치고, 가벼운 형벌로도 간사함을 그치게 할 수 있는데, 어찌 반드시 무겁게 해야 하는가?”라고 한다. 이는 다스림에 대해 살피지 못하는 자이다. 무릇 무거운 것으로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을, 반드시 가벼운 것으로 그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벼운 것으로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무거운 것으로도 그치게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윗사람이 무거운 형벌을 설치하면 간사함이 모두 그치게 되고, 간사함이 모두 그치게 되면 이것이 어찌 백성을 해치는 것이겠는가? 이른바 무거운 형벌이란, 간사한 자가 얻는 이익은 작은데 윗사람이 그에게 가하는 벌은 큰 것이다. 백성은 작은 이익 때문에 큰 죄를 뒤집어쓰려 하지 않으므로, 간사함이 반드시 그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가벼운 형벌이란, 간사한 자가 얻는 이익은 큰데 윗사람이 그에게 가하는 벌은 작은 것이다. 백성은 그 이익을 탐내고 그 죄를 업신여기므로, 간사함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성인의 속담에 이르기를, “산에는 걸려 넘어지지 않으나, 개미둑에는 걸려 넘어진다.”라고 하였다. 산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심하지만, 개미둑은 미미하고 작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쉽게 여긴다. 지금 형벌을 가볍게 하면 백성들이 반드시 그것을 쉽게 여길 것이다. 죄를 저질러도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나라를 몰아서 내다 버리는 것이다. 죄를 저질렀을 때 처벌하는 것은, 백성을 위해 함정을 설치하는 것과 같다.[¹⁵] 이런 까닭에 가벼운 형벌은 백성에게 개미둑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가벼운 형벌로 백성을 이끄는 것은,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면 백성을 위해 함정을 설치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백성을 해친다고 말할 수 있다!
【주석 6】
重刑者,非為罪人也(중형자, 비위죄인야): 무거운 형벌의 목적이 이미 죄를 지은 범죄자 자체를 처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처벌을 통해 잠재적인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 전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법가의 ‘일벌백계(一罰百戒)’ 사상을 명확히 보여준다.
胥靡(서미): 고대 중국의 형벌 중 하나로, 죄수를 묶어 강제 노역에 동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처벌을 받아 노역 중인 사람을 다시 처벌하는 것은 의미가 없듯이, 형벌은 범죄가 발생하기 이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是為民設陷也(시위민설함야): 형벌이 가벼우면 백성들이 이를 업신여겨 쉽게 죄를 짓게 되는데, 막상 죄를 지으면 (가볍더라도) 처벌을 받게 되니, 이는 결국 국가가 백성들을 범죄의 함정으로 유인하는 꼴이라는 역설적인 주장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다면, 아예 죄를 지을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형벌을 무겁게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원문 7】
今學者皆道書筴之頌語,不察當世之實事,曰:「上不愛民,賦斂常重,則用不足而下恐上,故天下大亂。」此以為足其財用以加愛焉,雖輕刑罰可以治也。此言不然矣。凡人之取重賞罰,固已足之之後也。雖財用足而厚愛之,然而輕刑猶之亂也。夫當家之愛子,財貨足用,財貨足用則輕用,輕用則侈泰;親愛之則不忍,不忍則驕恣;侈泰則家貧,驕恣則行暴,此雖財用足而愛厚,輕利之患也。凡人之生也,財用足則隳於用力,上治懦則肆於為非;財用足而力作者神農也,上治懦而行修者曾、史也;夫民之不及神農、曾、史亦已明矣。老聃有言曰:「知足不辱,知止不殆。」夫以殆辱之故而不求於足之外者老聃也,今以為足民而可以治,是以民為皆如老聃也。故桀貴在天子而不足於尊,富有四海之內而不足於寶。君人者雖足民,不能足使為君,天子而桀未必為天子為足也,則雖足民,何可以為治也?故明主之治國也,適其時事以致財物,論其稅賦以均貧富,厚其爵祿以盡賢能,重其刑罰以禁姦邪,使民以力得富,以事致貴,以過受罪,以功致賞而不念慈惠之賜,此帝王之政也。
【번역문 7】
지금 학자들은 모두 서책의 칭송하는 말만 이야기하고 당세의 실제 일은 살피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윗사람이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 부세(賦斂)가 항상 무거우면, 재용(財用)이 부족해지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므로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진다.”라고 한다. 이는 그들의 재용을 풍족하게 해주고 사랑을 더하면, 비록 형벌이 가벼워도 다스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말은 그렇지 않다. 무릇 사람이 무거운 상벌을 무릅쓰는 것은, 본래 이미 풍족해진 이후의 일이다.[¹⁶] 비록 재용이 풍족하고 두텁게 사랑해 주더라도, 가벼운 형벌은 여전히 혼란을 야기한다. 무릇 집안의 사랑받는 자식은 재화가 쓰기에 넉넉하고, 재화가 넉넉하면 함부로 쓰게 되며, 함부로 쓰면 사치스러워진다. 지극히 사랑하면 차마 꾸짖지 못하고, 차마 꾸짖지 못하면 교만하고 방자해진다. 사치스러우면 집안이 가난해지고, 교만하고 방자하면 포악한 행동을 하니, 이것이 비록 재용이 풍족하고 사랑이 두터워도 가벼운 이익을 좇는[¹⁷] 폐해이다. 무릇 사람의 삶이란, 재용이 풍족하면 힘쓰기를 게을리하고, 윗사람의 다스림이 나약하면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한다. 재용이 풍족해도 힘써 일하는 자는 신농(神農)이고, 윗사람의 다스림이 나약해도 행실을 닦는 자는 증자(曾子)와 사어(史魚)이다. 무릇 백성들이 신농이나 증자, 사어에 미치지 못함은 또한 이미 명백하다. 노담(老聃)이[¹⁸] 말하기를,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라고 하였다. 무릇 위태로움과 치욕 때문에 만족하는 것 외에 더 구하지 않는 자는 노담이다. 지금 백성을 풍족하게 해주면 다스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백성들이 모두 노담과 같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걸(桀)은[¹⁹] 신분이 천자(天子)에 있었으나 존귀함에 만족하지 못했고, 부유함이 온 세상에 있었으나 보물에 만족하지 못했다. 사람의 군주 된 자가 비록 백성을 풍족하게 해주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군주가 되는 것에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천자였던 걸조차 천자인 것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니, 비록 백성을 풍족하게 해주더라도 어찌 그것으로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시기와 일에 맞추어 재물을 이르게 하고, 그 세금을 논하여 빈부를 고르게 하며, 그 작록을 두텁게 하여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들의 힘을 다하게 하고, 그 형벌을 무겁게 하여 간사하고 사악한 것을 금하며, 백성으로 하여금 힘으로 부유함을 얻고, 일로써 귀함을 이루며, 잘못으로 죄를 받고, 공으로 상을 받게 할 뿐 자비로운 은혜의 베풂을 생각하지 않으니, 이것이 제왕(帝王)의 정치이다.
【주석 7】
凡人之取重賞罰,固已足之之後也(범인지취중상벌, 고이족지 chi 후야): 이 구절은 해석이 다소 어렵다. “사람이 큰 상을 탐하거나 무거운 벌을 무릅쓰는 것은, 이미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도 더 큰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제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輕利之患(경리지환): 원문에는 ‘輕利’로 되어 있으나, 문맥상 ‘가벼운 형벌(輕刑)’의 폐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물질적 풍요와 사랑만으로는 기강 해이를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혹은 ‘이익을 가볍게 여김’ 즉, 쉽게 얻은 재물을 함부로 쓰는 폐해로도 볼 수 있다.
老聃(노담):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한비는 도가(道家)의 ‘무위(無爲)’와 ‘지족(知足)’ 사상을 인용하지만, 이는 극소수의 성인에게나 가능한 경지일 뿐, 일반 백성을 다스리는 현실 정치의 원리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桀(걸): 고대 중국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으로, 포악한 정치로 나라를 멸망시킨 폭군의 대명사이다. 한비는 천하를 소유했던 걸조차 만족할 줄 몰랐다는 예를 들어,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며 물질적 만족만으로는 결코 통제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원문 8】
人皆寐、則盲者不知,皆嘿、則喑者不知。覺而使之視,問而使之對,則喑盲者窮矣。不聽其言也,則無術者不知;不任其身也,則不肖者不知;聽其言而求其當,任其身而責其功,則無術不肖者窮矣。夫欲得力士而聽其自言,雖庸人與烏獲不可別也,授之以鼎俎則罷健效矣。故官職者,能士之鼎俎也,任之以事,而愚智分矣。故無術者得於不用,不肖者得於不任,言不用而自文以為辯,身不任而自飾以為高,世主眩其辯、濫其高而尊貴之,是不須視而定明也,不待對而定辯也,喑盲者不得矣。明主聽其言必責其用,觀其行必求其功,然則虛舊之學不談,矜誣之行不飾矣。
【번역문 8】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있으면 눈먼 자를 알 수 없고, 모두 침묵하고 있으면 벙어리를 알 수 없다. 깨워서 보게 하고, 물어서 대답하게 하면, 벙어리와 눈먼 자는 곤궁해진다.[²⁰] 그 말을 듣지 않으면 술책 없는 자를 알 수 없고, 그에게 임무를 맡기지 않으면 불초한 자를 알 수 없다. 그 말을 듣고 그 타당성을 추궁하며, 그에게 임무를 맡기고 그 공적에 대해 책임을 물으면, 술책 없고 불초한 자는 곤궁해진다. 무릇 힘센 장사를 얻고자 하면서 그 스스로 하는 말만 듣는다면, 비록 평범한 사람과 오획(烏獲)을[²¹]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솥과 도마를[²²] 들어보게 하면 지친 자와 건강한 자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관직이란 능력 있는 선비에게 솥과 도마와 같은 것이다. 일로써 임무를 맡기면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나뉜다. 그러므로 술책 없는 자는 등용되지 않음으로써 이득을 보고, 불초한 자는 임무를 맡지 않음으로써 이득을 본다. 말이 쓰이지 않으니 스스로를 꾸며 변론을 잘한다고 여기고, 몸이 임무를 맡지 않으니 스스로를 장식하여 고상하다고 여긴다. 군주가 그 변론에 현혹되고 그 고상함을 함부로 믿어 존귀하게 대우하니, 이는 보게 하지 않고도 밝음을 판정하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도 변론을 잘한다고 판정하는 것과 같아서, 벙어리와 눈먼 자를 가려낼 수 없게 된다. 현명한 군주는 그 말을 들으면 반드시 그 쓰임을 책임지게 하고, 그 행동을 관찰하면 반드시 그 공적을 추궁한다. 그렇게 되면 헛되고 낡은 학문은[²³] 논해지지 않고, 뽐내고 속이는 행동은 꾸며지지 않을 것이다.
【주석 8】
窮(궁): 곤궁해지다, 막다른 지경에 이르다. 여기서는 실체가 드러나 더 이상 속일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烏獲(오획):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장사(壯士)로, 힘이 매우 센 인물의 대명사로 사용된다.
鼎俎(정조): 솥(鼎)과 도마(俎). 고대에 무거운 솥을 들어 힘을 겨루었던 것에서 유래하여, 능력이나 실력을 시험하는 구체적인 과제나 시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관직이라는 실무를 의미한다.
虛舊之學(허구지학): 공허하고 낡은 학문. 현실 정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유가(儒家) 등의 이론이나 과거의 사례만을 되풀이하는 학문을 비판하는 말이다. 한비는 실용적인 결과(功)로 증명되지 않는 모든 이론을 배격하였다.
韓非子 八說 (한비자 팔설) 번역 및 주석
[원문 1]
八說:
為故人行私謂之不棄,以公財分施謂之仁人,輕祿重身謂之君子,枉法曲親謂之有行,棄官寵交謂之有俠,離世遁上謂之高傲,交爭逆令謂之剛材,行惠取眾謂之得民。不棄者吏有姦也,仁人者公財損也,君子者民難使也,有行者法制毀也,有俠者官職曠也,高傲者民不事也,剛材者令不行也,得民者君上孤也。此八者匹夫之私譽,人主之大敗也。反此八者,匹夫之私毀,人主之公利也。人主不察社稷之利害,而用匹夫之私譽,索國之無危亂,不可得矣。
[번역문]
팔설(八說)¹⁾:
옛 친구를 위해 사사로움을 행하는 것을 일러 버리지 않는다[不棄]고 하고, 공적인 재물을 나누어 베푸는 것을 일러 어진 사람[仁人]이라 하며, 녹봉을 가벼이 여기고 몸을 중히 여기는 것을 일러 군자(君子)라 하고, 법을 굽히고 친족을 편드는 것을 일러 행실이 있다[有行]고 하며, 관직을 버리고 교제를 총애하는 것을 일러 의협심이 있다[有俠]고 하고, 세상을 떠나 윗사람을 피하는 것을 일러 고상하고 오만하다[高傲]고 하며, 다투고 명령을 거스르는 것을 일러 굳센 재목[剛材]이라 하고, 은혜를 베풀어 무리를 얻는 것을 일러 백성을 얻었다[得民]고 한다.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관리가 간사함을 행하는 것이고, 어진 사람이라는 것은 공적인 재물이 손해 보는 것이며, 군자라는 것은 백성을 부리기 어려운 것이고, 행실이 있다는 것은 법제가 무너지는 것이며, 의협심이 있다는 것은 관직이 비는 것이고, 고상하고 오만하다는 것은 백성이 섬기지 않는 것이며, 굳센 재목이라는 것은 명령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고, 백성을 얻었다는 것은 군주가 외로워지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는 평민의 사사로운 명예이지만, 군주의 큰 실패이다. 이 여덟 가지와 반대되는 것은, 평민의 사사로운 비방이지만, 군주의 공적인 이익이다. 군주가 사직의 이해(利害)를 살피지 않고, 평민의 사사로운 명예를 쓰면서, 나라에 위태로움과 혼란이 없기를 구하는 것은, 얻을 수 없는 일이다.
[주석]
1) 팔설(八說): ‘여덟 가지 그릇된 말(가치관)’이라는 뜻. 한비자는 당대에 칭송받던 여덟 가지 행동(不棄, 仁人, 君子, 有行, 有俠, 高傲, 剛材, 得民)이 실제로는 국가의 법질서를 무너뜨리고 군주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해로운 가치관이라고 비판한다. 이는 개인의 윤리(私譽)와 국가의 이익(公利)이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비자의 핵심적인 논리 중 하나이다.
[원문 2]
任人以事,存亡治亂之機也。無術以任人,無所任而不敗。人君之所任,非辯智則修潔也。任人者,使有勢也;智士者未必信也;為多其智,因惑其信也;以智士之計,處乘勢之資而為其私急,則君必欺焉。為智者之不可信也,故任修士;者,使斷事也,修士者未必智;為潔其身,因惑其智;以愚人之所惛,處治事之官而為其所然,則事必亂矣。故無術以用人,任智則君欺,任修則君事亂,此無術之患也。明君之道,賤德義貴,下必坐上,決誠以參,聽無門戶,故智者不得詐欺。計功而行賞,程能而授事,察端而觀失,有過者罪,有能者得,故愚者不任事。智者不敢欺,愚者不得斷,則事無失矣。
[번역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존망과 치란의 계기이다. 술(術) 없이 사람을 임용하면, 임용하는 바마다 실패하지 않음이 없다. 군주가 임용하는 바는, 변론에 능하고 지혜로운 자[辯智]가 아니면 행실을 닦고 결백한 자[修潔]이다. 사람을 임용하는 것은, 그에게 권세[勢]를 주는 것이다. 지혜로운 선비는 반드시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니, 그 지혜가 많기 때문에 도리어 그 믿음을 현혹시킨다. 지혜로운 선비의 계책으로, 권세를 타는 자리에 처하여 그의 사사로운 급한 일을 위한다면, 군주는 반드시 속임을 당할 것이다. 지혜로운 자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행실을 닦는 자를 임용하여 일을 결단하게 하는데, 행실을 닦는 자는 반드시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그 몸을 결백하게 하기 때문에, 도리어 그 지혜를 현혹시킨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두운 바로써, 일을 다스리는 관직에 처하여 그가 옳다고 여기는 바를 행한다면, 일은 반드시 어지러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쓰는 술(術)이 없으면, 지혜로운 자를 임용하면 군주가 속고, 행실을 닦는 자를 임용하면 군주의 일이 어지러워지니, 이것이 술(術)이 없는 데서 오는 재앙이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덕의(德義)를 천하게 여기고 (공로를) 귀하게 여기며, 아랫사람이 반드시 윗사람의 자리에 앉게 하고, 성실함을 결단하여 검증하며, 듣는 데에 문호(門戶)가 없으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가 속이고 기만하지 못한다. 공을 계산하여 상을 행하고, 능력을 헤아려 일을 주며, 단서를 살펴 실수를 관찰하고, 과오가 있는 자는 죄를 주고, 능력이 있는 자는 얻게 하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는 일을 맡지 못한다. 지혜로운 자가 감히 속이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가 결단하지 못하면, 일에 실수가 없을 것이다.
[원문 3]
察士然後能知之,不可以為令,夫民不盡察。賢者然後能行之,不可以為法,夫民不盡賢。楊朱、墨翟,天下之所察也,干世亂而卒不決,雖察而不可以為官職之令。鮑焦、華角,天下之所賢也,鮑焦木枯,華角赴河,雖賢不可以為耕戰之士。故人主之察,智士盡其辯焉;人主之所尊,能士盡其行焉。今世主察無用之辯,尊遠功之行,索國之富強,不可得也。博習辯智如孔、墨,孔、墨不耕耨,則國何得焉?修孝寡欲如曾、史,曾、史不戰攻,則國何利焉?匹夫有私便,人主有公利。不作而養足,不仕而名顯,此私便也。息文學而明法度,塞私便而一功勞,此公利也。錯法以道民也而又貴文學,則民之所師法也疑。賞功以勸民也而又尊行修,則民之產利也惰。夫貴文學以疑法,尊行修以貳功,索國之富強,不可得也。
[번역문]
명찰(明察)한 선비라야 그 후에 그것을 알 수 있으니, 명령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은, 무릇 백성이 모두 명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명한 자라야 그 후에 그것을 행할 수 있으니, 법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은, 무릇 백성이 모두 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은, 천하가 명찰하다고 여기는 자들이나, 세상의 혼란을 구하려다 마침내 해결하지 못했으니, 비록 명찰하더라도 관직의 명령으로 삼을 수는 없다. 포초(鮑焦)와 화각(華角)은, 천하가 현명하다고 여기는 자들이나, 포초는 나무처럼 말라 죽고, 화각은 강에 몸을 던졌으니, 비록 현명하더라도 밭 갈고 싸우는 선비[耕戰之士]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군주가 명찰함을 중시하면, 지혜로운 선비는 그 변론을 다하고, 군주가 존중하는 바를 따르면, 능력 있는 선비는 그 행동을 다한다. 지금 세상의 군주는 쓸모없는 변론을 명찰하다 여기고, 공로와는 먼 행동을 존중하면서, 나라의 부강을 구하니, 얻을 수 없는 일이다. 널리 익히고 변론에 능하며 지혜롭기가 공자(孔子)·묵자(墨子)와 같더라도, 공자와 묵자가 밭 갈고 김매지 않으니, 나라가 무엇을 얻겠는가? 효도를 닦고 욕심이 적기가 증자(曾子)·사어(史魚)와 같더라도, 증자와 사어가 싸우고 공격하지 않으니, 나라가 무엇을 이롭게 하겠는가? 평민에게는 사사로운 편리가 있고, 군주에게는 공적인 이익이 있다. 일하지 않아도 봉양이 족하고, 벼슬하지 않아도 이름이 드러나는 것은, 사사로운 편리이다. 문학(文學)을 그치게 하고 법도(法度)를 밝히며, 사사로운 편리를 막고 공로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공적인 이익이다. 법을 두어 백성을 인도하면서 또한 문학을 귀하게 여기면, 백성이 스승으로 삼고 본받을 바가 의심스러워진다. 공을 상 주어 백성을 권면하면서 또한 행실 닦는 것을 존중하면, 백성이 이익을 생산함에 게을러진다. 무릇 문학을 귀하게 여겨 법을 의심하게 하고, 행실 닦는 것을 존중하여 공을 둘로 나누면서, 나라의 부강을 구하는 것은, 얻을 수 없는 일이다.
[원문 4]
搢笏干戚,不適有方鐵銛;登降周旋,不逮日中奏百;狸首射侯,不當強弩趨發;干城距衝,不若堙穴伏櫜。古人亟於德,中世逐於智,當今爭於力。古者寡事而備簡,樸陋而不盡,故有珧銚而推車者。古者人寡而相親,物多而輕利易讓,故有揖讓而傳天下者。然則行揖讓,高慈惠,而道仁厚,皆推政也。處多事之時,用寡事之器,非智者之備也;當大爭之世而循揖讓之軌,非聖人之治也。故智者不乘推車,聖人不行推政也。
[번역문]
홀(笏)을 꽂고 방패와 도끼를 드는 것은, 네모난 쇠 날을 가진 무기[鐵銛]에 맞서기에 적합하지 않다. 오르내리고 빙빙 도는 것은, 한낮에 백 번 아뢰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이수(狸首)¹⁾를 부르며 과녁을 쏘는 것은, 강한 쇠뇌를 재빨리 쏘는 것에 당하지 못한다. 성벽을 지키고 공격 수레를 막는 것은, 땅굴을 메우고 화살통을 숨기는 것만 못하다. 옛사람들은 덕(德)에 힘썼고, 중세(中世) 사람들은 지(智)를 쫓았으며, 지금은 힘[力]을 다툰다. 옛날에는 일이 적어 대비가 간단했고, 소박하고 비루하여 다하지 못했으므로, 조개껍데기 괭이[珧銚]로 수레를 미는 자가 있었다. 옛날에는 사람이 적어 서로 친했고, 물건이 많아 이익을 가벼이 여기고 쉽게 양보했으므로, 읍하고 양보하며 천하를 전하는 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읍양(揖讓)을 행하고, 자비와 은혜를 높이며, 인자하고 후덕함을 말하는 것은, 모두 미는 정치[推政]²⁾이다. 일이 많은 시대에 처하여, 일이 적은 시대의 도구를 쓰는 것은, 지혜로운 자의 대비가 아니다. 크게 다투는 세상에 당하여 읍양의 궤도를 따르는 것은, 성인(聖人)의 다스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미는 수레를 타지 않고, 성인은 미는 정치를 행하지 않는다.
[주석]
1) 이수(狸首): 《시경(詩經)》의 편명. 활쏘기 의식에서 부르던 노래로, 여기서는 옛 시대의 의례적인 활쏘기를 상징한다.
2) 추정(推政): ‘밀어서 하는 정치’라는 뜻. 한비자는 유가에서 이상화하는 덕치(德治)나 선양(禪讓)을, 마치 원시적인 ‘미는 수레[推車]’처럼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효율적인 통치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힘과 법이 지배하는 전국시대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문 5]
法所以制事,事所以名功也。法有立而有難,權其難而事成則立之;事成而有害,權其害而功多則為之。無難之法,無害之功,天下無有也。是以拔千丈之都,敗十萬之眾,死傷者軍之乘,甲兵折挫,士卒死傷,而賀戰勝得地者,出其小害計其大利也。夫沐者有棄髮,除者傷血肉,為人見其難,因釋其業,是無術之事也。先聖有言曰:「規有摩,而水有波,我欲更之,無奈之何!」此通權之言也。是以說有必立而曠於實者,言有辭拙而急於用者,故聖人不求無害之言,而務無易之事。人之不事衡石者,非貞廉而遠利也,石不能為人多少,衡不能為人輕重,求索不能得,故人不事也。明主之國,官不敢枉法,吏不敢為私,貨賂不行,是境內之事盡如衡石也。此其臣有姦者必知,知者必誅。是以有道之主,不求清潔之吏,而務必知之術也。
[번역문]
법(法)은 일을 제어하는 방법이고, 일은 공(功)을 이름 짓는 방법이다. 법에는 세우면 어려움이 있으니, 그 어려움을 저울질하여 일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세운다. 일이 이루어지면 해로움이 있으니, 그 해로움을 저울질하여 공이 많으면 그것을 행한다. 어려움이 없는 법과, 해로움이 없는 공은, 천하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천 길의 도성을 뽑고, 십만의 무리를 패배시키면, 죽고 다치는 자가 군대의 다수이고, 갑옷과 병기가 부러지고 꺾이며, 병사들이 죽고 다치는데도, 전쟁에서 이기고 땅을 얻은 것을 축하하는 것은, 그 작은 해로움을 내놓고 그 큰 이로움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무릇 머리를 감는 자는 빠지는 머리카락이 있고, (종기를) 제거하는 자는 피와 살을 상하게 되는데, 사람이 그 어려움을 보고, 이로 인해 그 일을 버리는 것은, 술(術)이 없는 일이다. 선현(先聖)의 말에 이르기를, “그림쇠[規]에는 마모됨이 있고, 물에는 물결이 있으니, 내가 그것을 고치고 싶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라고 하였으니, 이는 권도(權道)를 통달한 말이다. 이 때문에 유세에는 반드시 세워지나 실질이 텅 빈 것이 있고, 말에는 표현이 졸렬하나 쓰임이 시급한 것이 있으니,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해로움이 없는 말을 구하지 않고, 바뀌지 않는 일을 힘쓴다. 사람들이 저울과 추[衡石]를 섬기지 않는 것은, 곧고 청렴하여 이익을 멀리해서가 아니라, 추가 사람을 위해 많고 적음을 조절할 수 없고, 저울이 사람을 위해 가볍고 무거움을 조절할 수 없어, 구하고 찾아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섬기지 않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의 나라에서는, 관리가 감히 법을 굽히지 않고, 관리가 감히 사사로움을 행하지 않으며, 뇌물이 통하지 않으니, 이는 나라 안의 일이 모두 저울과 추와 같은 것이다. 이 경우 그 신하 중에 간사한 자가 있으면 반드시 알려지고, 알려진 자는 반드시 주살된다. 이 때문에 도(道)가 있는 군주는, 청렴결백한 관리를 구하지 않고, 반드시 아는 술(術)을 힘쓴다.
[원문 6]
慈母之於弱子也,愛不可為前。然而弱子有僻行,使之隨師;有惡病,使之事醫。不隨師則陷於刑,不事醫則疑於死。慈母雖愛,無益於振刑救死。則存子者非愛也,子母之性,愛也。臣主之權,筴也。母不能以愛存家,君安能以愛持國?明主者,通於富強則可以得欲矣。故謹於聽治,富強之法也。明其法禁,察其謀計。法明則內無變亂之患,計得則外無死虜之禍。故存國者,非仁義也。仁者,慈惠而輕財者也;暴者,心毅而易誅者也。慈惠則不忍,輕財則好與。心毅則憎心見於下,易誅則妄殺加於人。不忍則罰多宥赦,好與則賞多無功。憎心見則下怨其上,妄誅則民將背叛。故仁人在位,下肆而輕犯禁法,偷幸而望於上;暴人在位,則法令妄而臣主乖,民怨而亂心生。故曰:仁暴者,皆亡國者也。
[번역문]
자애로운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하는 사랑은, 그보다 앞설 것이 없다. 그러나 어린 자식에게 비뚤어진 행실이 있으면, 스승을 따르게 하고, 나쁜 병이 있으면, 의원을 섬기게 한다. 스승을 따르지 않으면 형벌에 빠지고, 의원을 섬기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까 의심스럽다. 자애로운 어머니가 비록 사랑하더라도, 형벌에서 구하고 죽음에서 구하는 데에는 이로움이 없다. 그러니 자식을 보존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며, 자식과 어머니의 본성은 사랑이다. 신하와 군주의 권한은, 채찍[筴]이다. 어머니가 사랑으로써 집안을 보존할 수 없는데, 군주가 어찌 사랑으로써 나라를 지탱할 수 있겠는가? 현명한 군주는, 부강함에 통달하면 하고자 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스림을 듣는 데 신중한 것은, 부강의 법이다. 그 법과 금령을 밝히고, 그 계책을 살핀다. 법이 밝으면 안으로 변란의 우환이 없고, 계책이 들어맞으면 밖으로 죽고 사로잡히는 재앙이 없다. 그러므로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인의(仁義)가 아니다. 인자(仁者)란, 자애롭고 은혜로우며 재물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다. 포악한 자[暴者]란, 마음이 굳세고 쉽게 주살하는 자이다. 자애롭고 은혜로우면 차마 벌하지 못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면 주기 좋아한다. 마음이 굳세면 미워하는 마음이 아랫사람에게 드러나고, 쉽게 주살하면 함부로 죽이는 것이 사람에게 더해진다. 차마 벌하지 못하면 벌에 용서가 많아지고, 주기 좋아하면 상에 공 없는 경우가 많아진다. 미워하는 마음이 드러나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원망하고, 함부로 주살하면 백성이 장차 배반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한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 아랫사람이 방자하여 가벼이 금법을 어기고, 요행을 바라며 윗사람에게 기대게 된다. 포악한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 법령이 망령되고 신하와 군주가 어긋나며, 백성이 원망하고 어지러운 마음이 생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인자한 자와 포악한 자는, 모두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라고 하는 것이다.
[원문 7]
不能具美食而勸餓人飯,不為能活餓者也;不能辟草生粟而勸貸施賞賜,不能為富民者也。今學者之言也,不務本作而好末事,知道虛聖以說民,此勸飯之說。勸飯之說,明主不受也。
[번역문]
맛있는 음식을 갖추지 못하고 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권하는 것은, 굶주린 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풀을 베고 곡식을 생산하지 못하고 대출과 하사를 권하는 것은, 백성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학자들의 말은, 근본적인 일[本作]에 힘쓰지 않고 말단적인 일[末事]을 좋아하며, 헛된 성스러움[虛聖]의 도를 가지고 백성을 유세하니, 이는 밥을 권하는 이야기[勸飯之說]이다. 밥을 권하는 이야기는, 현명한 군주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원문 8]
書約而弟子辯,法省而民訟簡。是以聖人之書必著論,明主之法必詳事。盡思慮,揣得失,智者之所難也;無思無慮,挈前言而責後功,愚者之所易也。明主慮愚者之所易,以責智者之所難,故智慮力勞不用而國治也。
[번역문]
글이 간략하면 제자들이 변론하고, 법이 간소하면 백성들의 소송이 간략해진다. 이 때문에 성인(聖人)의 글은 반드시 논의를 명확히 하고, 현명한 군주의 법은 반드시 일을 상세히 한다. 생각과 헤아림을 다하고, 득실을 헤아리는 것은, 지혜로운 자도 어려워하는 바이다. 생각도 없고 헤아림도 없이, 이전의 말을 가지고 이후의 공에 책임을 묻는 것은, 어리석은 자도 쉽게 하는 바이다. 현명한 군주는 어리석은 자도 쉽게 하는 바를 고려하여, 지혜로운 자도 어려워하는 바에 책임을 물으니, 그러므로 지혜와 생각, 힘과 노고를 쓰지 않고도 나라가 다스려진다.
[원문 9]
酸甘鹹淡,不以口斷而決於宰尹,則廚人輕君而重於宰尹矣。上下清濁,不以耳斷而決於樂正,則瞽工輕君而重於樂正矣。治國是非,不以術斷而決於寵人,則臣下輕君而重於寵人矣。人主不親觀聽,而制斷在下,託食於國者也。
[번역문]
시고, 달고, 짜고, 싱거운 것을, 입으로 판단하지 않고 요리 책임자[宰尹]에게 결정하게 하면, 요리사는 군주를 가벼이 여기고 요리 책임자를 중히 여길 것이다. 음의 높고 낮음과 맑고 탁함을, 귀로 판단하지 않고 악관[樂正]에게 결정하게 하면, 악사[瞽工]는 군주를 가벼이 여기고 악관을 중히 여길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옳고 그름을, 술(術)로써 판단하지 않고 총애하는 사람[寵人]에게 결정하게 하면, 신하들은 군주를 가벼이 여기고 총애하는 사람을 중히 여길 것이다. 군주가 직접 보고 듣지 않고, 제어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랫사람에게 있으면, 나라에 의탁하여 먹고사는 자일 뿐이다.
[원문 10]
使人不衣不食而不飢不寒,又不惡死,則無事上之意。意欲不宰於君,則不可使也。
[번역문]
사람으로 하여금 옷 입지 않고 먹지 않아도 굶주리거나 춥지 않게 하고, 또한 죽음을 싫어하지 않게 한다면, 윗사람을 섬길 뜻이 없을 것이다. 뜻과 욕망이 군주에게 제어되지 않으면, 부릴 수 없는 것이다.
[원문 11]
今生殺之柄在大臣,而主令得行者,未嘗有也。虎豹必不用其爪牙而與鼷鼠同威,萬金之家、必不用其富厚而與監門同資。有土之君,說人不能利,惡人不能害,索人欲畏重己,不可得也。
[번-역문]
지금 살리고 죽이는 권한[生殺之柄]이 대신에게 있는데, 군주의 명령이 행해지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호랑이와 표범이 반드시 그 발톱과 어금니를 쓰지 않으면 생쥐와 같은 위엄을 가질 것이고, 만금의 부잣집이 반드시 그 부유함을 쓰지 않으면 문지기와 같은 자산을 가질 것이다. 영토를 가진 군주가, 기쁘게 하는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없고, 미워하는 사람을 해롭게 할 수 없으면서, 사람들이 자기를 두려워하고 중히 여기기를 구하는 것은, 얻을 수 없는 일이다.
[원문 12]
人臣肆意陳欲曰俠,人主肆意陳欲曰亂;人臣輕上曰驕,人主輕下曰暴。行理同實,下以受譽,上以得非,人臣大得,人主大亡。
[번역문]
신하가 제멋대로 뜻을 펴고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일러 의협[俠]이라 하고, 군주가 제멋대로 뜻을 펴고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일러 혼란[亂]이라 한다. 신하가 윗사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일러 교만[驕]이라 하고, 군주가 아랫사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일러 포악[暴]이라 한다. 행동의 이치는 실질이 같은데, 아랫사람은 이로써 칭찬을 받고, 윗사람은 이로써 비난을 얻으니, 신하는 크게 얻고, 군주는 크게 잃는다.
[원문 13]
明主之國,有貴臣無重臣。貴臣者,爵尊而官大也;重臣者,言聽而力多者也。明主之國,遷官襲級,官爵受功,故有貴臣。言不度行,而有偽必誅,故無重臣也。
[번-역문]
현명한 군주의 나라에는, 귀한 신하[貴臣]는 있어도 무거운 신하[重臣]는 없다. 귀한 신하란, 작위가 높고 관직이 큰 자이다. 무거운 신하란, 말이 받아들여지고 힘이 많은 자이다. 현명한 군주의 나라에서는, 관직을 옮기고 등급을 잇는 것이, 관직과 작위가 공에 따라 주어지므로, 귀한 신하가 있다. 말이 행동을 헤아리지 못하고, 거짓이 있으면 반드시 주살되므로, 무거운 신하는 없는 것이다.
韓非子 第50篇 - 八經 (여덟 가지 원칙)
원문 및 번역
【원문 1】
一、凡治天下,必因人情。人情者,有好惡,故賞罰可用;賞罰可用則禁令可立而治道具矣。君執柄以處勢,故令行禁止。柄者,殺生之制也;勢者,勝眾之資也。廢置無度則權瀆,賞罰下共則威分。是以明主不懷愛而聽,不留說而計。故聽言不參則權分乎姦,智力不用則君窮乎臣。故明主之行制也天,其用人也鬼。天則不非,鬼則不困。勢行教嚴逆而不違,毀譽一行而不議。故賞賢罰暴,舉善之至者也;賞暴罰賢,舉惡之至者也;是謂賞同罰異。賞莫如厚,使民利之;譽莫如美,使民榮之;誅莫如重,使民畏之;毀莫如惡,使民恥之。然後一行其法,禁誅於私。家不害功罪,賞罰必知之,知之道盡矣。
【번역문 1】
첫째, 무릇 천하를 다스림에는 반드시 인정(人情)에 근거해야 한다. 인정이라는 것은 좋아함과 싫어함(好惡)이 있으므로 상벌(賞罰)을 사용할 수 있고, 상벌을 사용할 수 있으면 금령(禁令)을 세울 수 있어 다스림의 도구가 갖추어진다. 군주는 권병(權柄)을 쥐고 권세(權勢)의 자리에 거처하므로, 명령이 행해지고 금하는 바가 지켜진다. 권병이란 죽이고 살리는 제도이며, 권세란 무리를 이기는 바탕이다. 관리를 임명하고 폐함에 법도가 없으면 권위가 더럽혀지고, 상벌을 아랫사람과 함께하면 위엄이 나뉜다.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애정(愛)을 품고 듣지 않으며, 유세(遊說)에 머물러[¹] 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을 들음에 참고(參考)하지 않으면[²] 권력이 간신에게 나뉘고, 지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군주는 신하에게 곤궁해진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제도를 행함은 하늘과 같고, 그 사람을 씀은 귀신과 같다.[³] 하늘과 같으므로 어긋남이 없고, 귀신과 같으므로 곤경에 빠지지 않는다. 권세가 행해지고 가르침이 엄하면 거스르면서도 어기지 못하며, 훼방과 칭찬이 한결같이 행해져 논의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명한 자에게 상을 주고 포악한 자를 벌하는 것은 선(善)을 드러내는 지극한 것이며, 포악한 자에게 상을 주고 현명한 자를 벌하는 것은 악(惡)을 드러내는 지극한 것이다. 이를 일컬어 상은 같게 하고 벌은 다르게 하는 것이라 한다.[⁴] 상은 두터운 것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백성들이 그것을 이롭게 여기게 하고, 칭찬은 아름다운 것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백성들이 그것을 영예롭게 여기게 하며, 주살은 무거운 것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백성들이 그것을 두려워하게 하고, 훼방은 지독한 것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백성들이 그것을 치욕스럽게 여기게 한다. 그런 연후에 그 법을 한결같이 행하고, 사사로운 처벌을 금한다. 가문이 공과 죄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하고, 상벌을 반드시 알게 하면, 앎의 도리는 다한 것이다.
【주석 1】
不留說而計(불류설이계): ‘說’은 군주를 설득하는 유세객의 말을 의미한다. 군주가 특정 유세객의 말에 감화되어 그 곁에 머물게 하고 그의 말에만 의존하여 계책을 세우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不參(불참): ‘參’은 셋을 비교하여 검증한다는 의미에서 유래하여, 여러 정보나 의견을 교차 검증하고 참고하는 것을 뜻한다. 신하의 말을 다른 정보와 비교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믿으면 권력이 간신에게 넘어간다는 의미이다. 이는 한비자 사상의 핵심적인 통치술(術) 중 하나인 ‘참험(參驗)’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天…鬼(천…귀): 법가(法家)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통치 방식을 비유하는 중요한 표현이다. ‘하늘과 같다(天)’는 것은 법의 집행이 사사로운 감정 없이 공평무사하고 자연법칙처럼 필연적임을 의미한다. ‘귀신과 같다(鬼)’는 것은 군주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신하들이 예측할 수 없게 함으로써, 신하들이 군주를 속이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통치술(術)을 가리킨다.
賞同罰異(상동벌이): 이 구절은 해석이 분분하다. 앞선 문맥(賞賢罰暴, 賞暴罰賢)을 볼 때, 선악에 따라 상벌의 대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극단적인 두 경우를 대비시킨 것으로 보인다. 혹은 ‘선행에 대한 상의 기준은 동일하고(賞同), 악행에 대한 벌의 기준은 또 그 나름대로 동일하다(罰同)’는 의미에서 ‘罰異’가 ‘罰同’의 오기(誤記)라는 설도 있다. 여기서는 문맥에 따라 ‘상의 기준과 벌의 기준이 명확히 다르다’는 원론적인 의미로 번역하였다.
【원문 2】
二、力不敵眾,智不盡物。與其用一人,不如用一國。故智力敵而群物勝,揣中則私勞,不中則在過。下君盡己之能,中君盡人之力,上君盡人之智。是以事至而結智,一聽而公會。聽不一則後悖於前,後悖於前則愚智不分;不公會則猶豫而不斷,不斷則事留。自取一,則毋墮壑之累。故使之諷,諷定而怒。是以言陳之日,必有筴籍,結智者事發而驗,結能者功見而。謀成敗,成敗有徵,賞罰隨之。事成則君收其功,規敗則臣任其罪。君人者合符猶不親,而況於力乎?事智猶不親,而況於懸乎?故非用人也不取同,同則君怒。使人相用則君神,君神則下盡。下盡下,則臣、上不因君而主道畢矣。
【번역문 2】
둘째, 힘은 무리를 대적하지 못하고, 지혜는 만물을 다 알지 못한다. 한 사람을 쓰는 것보다는 한 나라를 쓰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지혜와 힘이 대등할 때는 여럿이 함께하는 쪽이 이긴다. (군주 혼자) 헤아려서 맞히면 사사로운 수고로움이 되고, 맞히지 못하면 허물이 된다. 하급의 군주는 자기의 능력을 다하고, 중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힘을 다하게 하며, 상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지혜를 다하게 한다. 이 때문에 일이 생기면 지혜를 모으고, 한결같은 기준으로 들어 공적으로 종합한다. 듣는 기준이 한결같지 않으면 나중의 말이 이전의 말과 어긋나고, 나중의 말이 이전의 말과 어긋나면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을 분별할 수 없다. 공적으로 종합하지 않으면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고, 결단하지 못하면 일이 지체된다. 스스로 하나를 취하면, 구렁에 떨어지는[⁵] 근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풍자하게 하고[⁶], 풍자가 정해지면 분노한다. 이 때문에 말이 진술되는 날에는 반드시 서책에 기록해두어야 하니, 지혜를 모은 자는 일이 발생했을 때 증험하고, 능력을 모은 자는 공이 드러났을 때 (증험한다). 계책의 성공과 실패는, 성공과 실패에 징표가 있으니 상벌이 그에 따른다. 일이 성공하면 군주가 그 공을 거두고, 계책이 실패하면 신하가 그 죄를 책임진다. 사람의 군주 된 자는 부절을 맞추는 일조차[⁷] 직접 하지 않는데, 하물며 힘쓰는 일이겠는가? 지혜를 쓰는 일조차 직접 하지 않는데, 하물G물며 (결과가 불확실한 일에) 매달리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면 같은 의견을 취하지 않으니, (신하들의 의견이) 같으면 군주는 분노한다.[⁸]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쓰게 하면 군주는 신묘해지고, 군주가 신묘해지면 아랫사람들은 능력을 다한다. 아랫사람들이 능력을 다하면, 신하와 윗사람이 군주로 말미암지 않아도[⁹] 군주의 도리가 완성된다.
【주석 2】
墮壑之累(타학지루): ‘壑’은 골짜기, 구렁을 의미한다. 군주가 여러 의견 중 하나를 독단적으로 선택했을 때, 그 판단이 잘못될 경우 모든 책임을 지게 되는 위험을 비유한다.
諷(풍): 본래 은유적으로 돌려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신하들이 각자의 의견이나 정보를 자유롭게 내놓게 하는 것을 뜻한다. ‘諷定而怒(풍정이노)’는 신하들이 내놓은 의견이 확정된 후, 군주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사사로운 감정(怒)을 드러내지 않고 공적으로 처리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혹은 여러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면(定), 군주는 (그것이 담합의 결과일 수 있으므로) 의심하고 분노해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合符(합부): ‘符’는 신표(信標)로 쓰기 위해 둘로 쪼갠 물건(주로 대나무나 옥)이다. 양쪽을 맞추어봄으로써 진위를 확인하는 행위(合符)는, 군주가 신하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고 항상 검증의 절차를 거쳐야 함을 상징한다.
同則君怒(동즉군노): 모든 신하의 의견이 하나로 일치하는 것은, 그들이 서로 공모하여 군주를 속이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법가의 시각을 보여준다. 현명한 군주는 이러한 상황을 경계하고 의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臣、上不因君而主道畢矣(신, 상불인군이주도필의): 신하와 윗사람들이 군주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法, 術)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다하게 되면 군주의 도리가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군주의 개인적 역량을 초월한, 제도에 의한 통치를 지향하는 법가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
【원문 3】
三、知臣主之異利者王,以為同者劫,與共事者殺。故明主審公私之分,審利害之地,姦乃無所乘。亂之所生六也:主母,后姬,子姓,弟兄,大臣,顯賢。任吏責臣,主母不放。禮施異等,后姬不疑。分勢不貳,庶適不爭。權籍不失,兄弟不侵。下不一門,大臣不擁。禁賞必行,顯賢不亂。臣有二因,謂外內也。外曰畏,內曰愛。所畏之求得,所愛之言聽,此亂臣之所因也。外國之置諸吏者,結誅親暱重帑,則外不籍矣。爵祿循功,請者俱罪,則內不因矣。外不籍,內不因,則姦宄塞矣。官襲節而進,以至大任,智也。其位至而任大者,以三節持之,曰質、曰鎮、曰固。親戚妻子,質也。爵祿厚而必,鎮也。參伍貴帑,固也。賢者止於質,貪饕化於鎮,姦邪窮於固。忍不制則下上,小不除則大誅,而名實當則徑之。生害事,死傷名,則行飲食;不然,而與其讎;此謂除陰姦也。醫曰詭,詭曰易。易功而賞,見罪而罰,而詭乃止。是非不泄,說諫不通,而易乃不用。父兄賢良播出曰遊禍,其患鄰敵多資。僇辱之人近習曰狎賊,其患發忿疑辱之心生。藏怒持罪而不發曰增亂,其患徼幸妄舉之人起。大臣兩重、提衡而不踦曰卷禍,其患家隆劫殺之難作。脫易不自神曰彈威,其患賊夫酖毒之亂起。此五患者,人主之不知,則有劫殺之事。廢置之事,生於內則治,生於外則亂。是以明主以功論之內,而以利資之外,故其國治而敵亂。即亂之道,臣憎則起外若眩,臣愛則起內若藥。
【번-역문 3】
셋째, 신하와 군주의 이익이 다름을 아는 자는 왕이 되고, 같다고 여기는 자는 위협당하며, (이익을) 함께하는 자는 살해당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공(公)과 사(私)의 구분을 살피고, 이(利)와 해(害)의 지점을 살피니, 간악함이 이에 틈탈 바가 없게 된다. 혼란이 생겨나는 여섯 가지 경우가 있으니, 군주의 어머니, 후궁과 비, 아들과 친족, 형제, 대신, 이름난 현자이다. 관리를 임용하고 신하에게 책임을 물으면 군주의 어머니도 방자하지 못한다. 예우에 등급 차이를 두면 후궁과 비도 의심하지 않는다. 권세를 둘로 나누지 않으면 서자와 적자가 다투지 않는다. 권력과 명부를 잃지 않으면 형제가 침범하지 못한다. 아랫사람이 한 문벌에 속하지 않게 하면 대신이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다. 금령과 상을 반드시 행하면 이름난 현자도 질서를 어지럽히지 못한다. 신하가 의지하는 두 가지 원인이 있으니, 밖과 안을 말한다. 밖으로는 두려워하는 것이라 하고, 안으로는 사랑받는 것이라 한다. 두려워하는 대상의 요구는 들어주고, 사랑하는 대상의 말은 들어주니, 이것이 혼란스러운 신하가 의지하는 바이다. 외국이 관리에 임명한 자에 대해서는, (외국과) 결탁하면 그의 친한 자를 처벌하고 소중한 자를 인질로 삼으면, 밖을 의지하지 못할 것이다. 작록은 공을 따르게 하고, 청탁하는 자는 함께 죄를 주면, 안을 의지하지 못할 것이다. 밖을 의지하지 않고 안을 의지하지 않으면, 간사한 악행이 막힌다. 관직을 절차에 따라 승진시켜 큰 임무에 이르게 하는 것이 지혜이다. 그 지위가 높고 임무가 큰 자는 세 가지 방법으로 제어하니, 질(質), 진(鎮), 고(固)라 한다. 친척과 처자는 질(인질)이다. 작록이 두텁고 필히 주어지는 것은 진(안정)이다. 참오(參伍)로[¹⁰] 귀한 자들을 인질로 삼는 것은 고(견고함)이다. 현명한 자는 인질 때문에 그치고, 탐욕스러운 자는 안정책에 교화되며, 간사하고 사악한 자는 견고한 감시책에 곤궁해진다. 잔인함을 제어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고, 작은 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큰 처벌을 하게 되며, 명분과 실상이 부합하면 그대로 행한다. 살려두면 일을 해치고 죽이면 명예를 손상시키는 자는, 음식이나 주며[¹¹] 내버려 두되, 그렇지 않으면 그와 원수가 되어야 하니, 이를 일컬어 숨은 간악함을 제거하는 것이라 한다. 의심스러운 것을 ‘궤(詭)’라 하고, ‘궤’는 ‘이(易)’라고도 한다. 공을 바꾸면 상을 주고, 죄가 드러나면 벌을 주면, ‘궤’가 이에 그친다. 시비가 새어나가지 않고, 유세와 간언이 통하지 않으면, ‘이’가 이에 쓰이지 않는다. 부형과 현량한 자를 내보내는 것을 ‘유화(遊禍)’라 하니, 그 우환은 이웃 적국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모욕당한 사람을 가까이 두는 것을 ‘압적(狎賊)’이라 하니, 그 우환은 분노를 터뜨리고 모욕을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분노를 감추고 죄를 쥐고서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증란(增亂)’이라 하니, 그 우환은 요행을 바라고 망령되이 거사하는 자가 일어나는 것이다. 대신이 두루 중용되어 저울대처럼 균형을 잡고 기울어지지 않는 것을 ‘권화(卷禍)’라 하니, 그 우환은 가문이 흥성하여 겁박하고 살해하는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경솔하고 안이하여 스스로를 신비롭게 하지 않는 것을 ‘탄위(彈威)’라 하니, 그 우환은 도적 같은 자가 독살하는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우환을 군주가 알지 못하면, 겁박당하고 살해당하는 일이 있게 된다. 폐하고 세우는 일은, 안에서 생기면 다스려지고 밖에서 생기면 어지러워진다.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공(功)으로써 안을 논하고, 이(利)로써 밖을 돕게 하니, 그러므로 그 나라는 다스려지고 적국은 어지러워진다. 혼란에 이르는 길은, 신하가 미워하는 자가 있으면 밖에서 어지럽게 일어나는 듯이 하고, 신하가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안에서 약을 쓰는 듯이 일어난다.
【주석 3】
參伍(참오): 다섯 가구를 한 단위(伍)로 묶어 서로 감시하고 연대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 이를 관리 사회에 적용하여, 여러 관리를 묶어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게 하는 통치술을 의미한다. ‘參伍貴帑(참오귀帑)’는 고위 관리들의 소중한 사람들(貴帑), 즉 가족이나 측근까지 연대 책임의 대상으로 삼아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行飲食(행음식): 죽이기도 살리기도 애매한 신하에게는, 실권은 주지 않고 먹고 마시는 것, 즉 기본적인 생활만 보장해주며 내버려 두라는 의미이다.
【원문 4】
四、參伍之道:行參以謀多,揆伍以責失;行參必拆,揆伍必怒。不拆則瀆上,不怒則相和。拆之徵足以知多寡,怒之前不及其眾。觀聽之勢,其徵在比周而賞異也。誅毋謁而罪同。言會眾端,必揆之以地,謀之以天,驗之以物,參之以人。四徵者符,乃可以觀矣。參言以知其誠,易視以改其澤。執見以得非常。一用以務近習,重言以懼遠使,舉往以悉其前,即邇以知其內,疏置以知其外,握明以問所闇,詭使以絕黷泄,倒言以嘗所疑,論反以得陰姦,設諫以綱獨為,舉錯以觀姦動,明說以誘避過,卑適以觀直諂,宣聞以通未見,作鬥以散朋黨,深一以警眾心,泄異以易其慮。似類則合其參,陳過則明其固,知罪辟罪以止威,陰使時循以省衰,漸更以離通比,下約以侵其上,相室約其廷臣,廷臣約其官屬,兵士約其軍吏,遣使約其行介,縣令約其辟吏,郎中約其左右,后姬約其宮媛,此之謂條達之道。言通事泄則術不行。
【번역문 4】
넷째, 참오(參伍)의 도는 다음과 같다. 참(參)을 행하여 계책의 많고 적음을 알고, 오(伍)를 헤아려 실책을 문책한다. 참을 행할 때는 반드시 쪼개고, 오를 헤아릴 때는 반드시 분노해야 한다.[¹²] 쪼개지 않으면 윗사람을 기만하고, 분노하지 않으면 서로 화합한다. 쪼개는 징험은 많고 적음을 알기에 충분하고, 분노의 조짐은 그 무리에 미치지 않는다. 보고 듣는 형세는, 그 징험이 패거리(比周)를 지었을 때 상을 다르게 주는 데에 있다. 처벌은 아랫사람의 청탁을 받지 않고 죄는 동일하게 적용한다. 말이 여러 단서와 부합하면, 반드시 땅의 이치로 헤아리고, 하늘의 때로 꾀하며, 사물로 증험하고, 사람과 비교해야 한다. 이 네 가지 징험이 부합하면, 이에 관찰할 수 있다. 말을 비교하여 그 진실함을 알고, 시선을 바꾸어 그 안색을 살핀다. 드러난 것을 붙잡아 비상한 것을 얻는다. 한결같이 써서 측근을 살피고, 말을 거듭하여 먼 사신을 두렵게 하며, 지난 일을 들어 그 이력을 다 알고, 가까운 것에 나아가 그 안을 알며, 멀리 두어 그 밖을 알고, 밝은 것을 쥐고 어두운 것을 물으며, 거짓으로 부려 함부로 누설하는 것을 끊고, 말을 거꾸로 하여 의심하는 바를 시험하며, 반대로 논하여 숨은 간악함을 얻고, 간언을 설치하여 독단적인 행동을 단속하며, 거취를 들어 간사한 움직임을 관찰하고, 명백히 설명하여 허물을 피하도록 유도하며, 비천한 자를 가까이하여 정직과 아첨을 관찰하고, 널리 소문을 내어 아직 보지 못한 것을 통하게 하며, 다툼을 일으켜 붕당을 흩어지게 하고, 하나를 깊이 파서 여러 사람의 마음을 경계시키며, 다른 것을 누설하여 그들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 비슷한 부류는 그 비교 대상을 합치고, 허물을 진술하여 그 완고함을 밝히며, 죄를 알고 죄를 피하게 하여 위엄을 그치게 하고, 몰래 사신을 보내 때때로 순찰하여 쇠퇴함을 살피며, 점차 바꾸어 서로 통하고 결탁하는 것을 이간질하고, 아랫사람과 약속하여 그 윗사람을 침범하게 하니, 상실(相室)은 그 조정 신하를 단속하고, 조정 신하는 그 관속을 단속하며, 병사는 그 군리(軍吏)를 단속하고, 사신은 그 수행원을 단속하며, 현령은 그 보좌 관리를 단속하고, 낭중은 그 좌우를 단속하며, 후궁은 그 궁녀를 단속하니, 이를 일컬어 조달(條達)의 도[¹³]라 한다. 말이 통하고 일이 새어나가면 술책은 행해지지 않는다.
【주석 4】
拆…怒(탁…노): ‘拆(탁)’은 신하들의 의견이나 세력을 분리시키고 이간질하는 것을 의미한다. ‘怒(노)’는 군주가 신하들의 담합이나 단결의 조짐에 대해 의심하고 경계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이는 군주가 신하들의 결속을 깨뜨려야만 통제가 가능하다는 법가의 통치술을 보여준다.
條達之道(조달지도): ‘條’는 가지, ‘達’은 통한다는 뜻으로, 군주의 명령과 통제가 막힘없이 최말단까지 전달되는 상명하달(上命下達)의 체계적인 통치 시스템을 의미한다.
【원문 5】
五、明主,其務在周密。是以喜見則德償,怒見則威分。故明主之言隔塞而不通,周密而不見。故以一得十者下道也,以十得一者上道也。明主兼行上下,故姦無所失。伍、官、連、縣而鄰,謁過賞,失過誅。上之於下,下之於上,亦然。是故上下貴賤相畏以法,相誨以和。民之性,有生之實,有生之名。為君者有賢知之名,有賞罰之實。名實俱至,故福善必聞矣。
【번역문 5】
다섯째, 현명한 군주는 그 힘쓰는 바가 주도면밀함에 있다. 이 때문에 기쁨을 드러내면 은덕이 보상으로 여겨지고, 분노를 드러내면 위엄이 나뉜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의 말은 막혀서 통하지 않고, 주도면밀하여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로 열을 얻는 것은 아랫사람의 도리이고, 열로써 하나를 얻는 것은 윗사람의 도리이다.[¹⁴] 현명한 군주는 상하의 도리를 겸하여 행하므로, 간악함이 빠져나갈 곳이 없다. 오(伍), 관(官), 연(連), 현(縣)으로 이웃하게 하여, 허물을 고발하면 상을 주고, 허물을 놓치면 처벌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 또한 그러하다. 이런 까닭에 상하와 귀천이 법으로써 서로 두려워하고, 화합으로써 서로 가르친다. 백성의 본성에는 삶의 실질이 있고 삶의 명분이 있다. 군주 된 자에게는 현명하고 지혜롭다는 명분이 있고, 상벌이라는 실질이 있다. 명분과 실질이 함께 이르므로, 선행에 복을 내리는 것이 반드시 알려진다.
【주석 5】
以一得十者下道也,以十得一者上道也(이일득십자하도야, 이십득일자상도야): 아랫사람(신하)은 하나의 임무를 받아 열의 성과를 내야 하고(以一得十), 윗사람(군주)은 열의 정보를 모아 하나의 핵심을 파악해야 한다(以十得一)는 의미이다. 이는 군주와 신하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다름을 보여준다.
【원문 6】
六、聽不參則無以責下,言不督乎用則邪說當上。言之為物也以多信,不然之物,十人云疑,百人然乎,千人不可解也。吶者言之疑,辯者言之信。姦之食上也,取資乎眾,籍信乎辯,而以類飾其私。人主不饜忿而待合參,其勢資下也。有道之主,聽言、督其用,課其功,功課而賞罰生焉,故無用之辯不留朝。任事者知不足以治職,則放官收。說大而誇則窮端,故姦得而怒。無故而不當為誣,誣而罪,臣言必有報,說必責用也,故朋黨之言不上聞。凡聽之道,人臣忠論以聞姦,博論以內一,人主不智則姦得資。明主之道,己喜則求其所納,己怒則察其所搆;論於已變之後,以得毀譽公私之徵。眾諫以效智故,使君自取一以避罪。故眾之諫也,敗、君之取也。無副言於上以設將然,今符言於後以知謾誠語。明主之道,臣不得兩諫,必任其一語;不得擅行,必合其參;故姦無道進矣。
【번역문 6】
여섯째, 들음에 참고(參考)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을 책망할 수 없고, 말이 쓰임에 부합하는지 감독하지 않으면 사악한 학설이 윗사람의 뜻에 맞게 된다. 말이란 것은 여러 사람이 말하면 믿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도 열 사람이 말하면 의심하게 되고, 백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 그러한가 여기게 되며, 천 사람이 말하면 풀 수 없게 된다. 말더듬이가 말하면 의심스럽고, 달변가가 말하면 믿음이 간다. 간신이 윗사람을 좀먹는 것은, 무리로부터 바탕을 얻고, 달변가로부터 믿음을 빌리며, 비슷한 사례로써 그 사사로움을 꾸민다. 군주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¹⁵] 종합하여 참고하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그 형세는 아랫사람을 돕는 꼴이 된다. 도가 있는 군주는 말을 들으면 그 쓰임을 감독하고, 그 공을 평가하여, 공과가 평가되면 상벌이 생겨나므로, 쓸모없는 변론은 조정에 머물지 못한다. 일을 맡은 자가 직책을 다스리기에 부족함을 알면, 관직에서 내쫓고 권한을 거둔다. 말이 크고 과장되면 그 실마리를 추궁하므로, 간악함이 드러나면 분노한다. 까닭 없이 부당한 것을 무고(誣告)라 하고, 무고하면 죄를 주니, 신하의 말은 반드시 책임이 따르고, 유세는 반드시 그 쓰임을 문책받으므로, 붕당의 말은 위로 들리지 않는다. 무릇 듣는 도는, 신하가 충성스러운 논의로써 간악함을 아뢰게 하고, 넓은 논의로써 하나로 귀결시키는데, 군주가 지혜롭지 못하면 간신이 바탕을 얻는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자기가 기쁘면 그 받아들인 바를 추궁하고, 자기가 노하면 그 꾸며낸 바를 살피며, 이미 변고가 일어난 뒤에 논하여 훼방과 칭찬의 공사(公私)에 대한 징험을 얻는다. 여러 사람이 간하여 지혜를 드러내는 까닭은, 군주로 하여금 스스로 하나를 택하게 하여 죄를 피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의 간언이 실패하는 것은 군주의 선택 때문이다. 윗사람에게 부본(副本)이 없는 말을 하여 장차 그러할 것이라 설정하고, 지금의 말과 나중에 부합시켜 거짓과 참된 말을 안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신하가 두 가지로 간하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그 한 가지 말에 책임지게 하며, 제멋대로 행하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그 참고(參考)에 부합하게 하니, 그러므로 간악함이 나아갈 길이 없게 된다.
【주석 6】
不饜忿而待合參(불염분이대합참): ‘饜忿(염분)’은 분노를 실컷 터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군주가 신하의 말에 즉각적으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냉정하게 여러 정보를 종합하여 검토(合參)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원문 7】
七、官之重也,毋法也;法之息也,上闇也。上闇無度則官擅為,官擅為故奉重,無前則徵多,徵多故富。官之富重也,亂功之所生也。明主之道,取於任,賢於官,賞於功;言程、主喜俱必利,不當、主怒俱必害,則人不私父兄而進其仇讎。勢足以行法,奉足以給事,而私無所生,故民勞苦而輕官。任事也毋重,使其寵必在爵;處官者毋私,使其利必在祿;故民尊爵而重祿。爵祿所以賞也,民重所以賞也則國治。刑之煩也,名之繆也,賞譽不當則民疑。民之重名與其重賞也均。賞者有誹焉,不足以勸;罰者有譽焉,不足以禁。明主之道,賞必出乎公利,名必在乎為上。賞譽同軌,非誅俱行,然則民無榮於賞之內。有重罰者必有惡名,故民畏。罰所以禁也,民畏所以禁則國治矣。
【번역문 7】
일곱째, 관리가 존중받는 것은 법이 없기 때문이고, 법이 그치는 것은 윗사람이 어둡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어둡고 법도가 없으면 관리가 제멋대로 행하고, 관리가 제멋대로 행하므로 받는 봉록이 무거워지며, 전례가 없으면 징수하는 것이 많아지고, 징수하는 것이 많으므로 부유해진다. 관리가 부유하고 존중받는 것은 공을 어지럽히는 바가 생겨나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임무에 따라 사람을 뽑고, 관직에 따라 현명함을 따지며, 공에 따라 상을 준다. 말이 법도에 맞아 군주가 기뻐하면 반드시 이롭고, 부당하여 군주가 노여워하면 반드시 해로우면, 사람들은 사사로이 부형을 위하지 않고 그 원수라도 나아가게 한다. 권세가 법을 행하기에 충분하고, 봉록이 일을 처리하기에 충분하여 사사로움이 생겨날 곳이 없으면, 백성들은 노고를 다하고 관리를 가볍게 여긴다. 일을 맡김에 있어 중히 여기지 말고, 그 총애가 반드시 작위에 있게 하며, 관직에 있는 자는 사사로움이 없게 하여, 그 이익이 반드시 녹봉에 있게 한다. 그러므로 백성은 작위를 존중하고 녹봉을 중히 여긴다. 작위와 녹봉은 상을 주는 수단이니, 백성이 상 주는 수단을 중히 여기면 나라가 다스려진다. 형벌이 번거롭고 명분이 어긋나며, 상과 명예가 부당하면 백성들은 의심한다. 백성이 명예를 중히 여기는 것은 상을 중히 여기는 것과 같다. 상을 받은 자에게 비방이 있으면 권면하기에 부족하고, 벌을 받은 자에게 칭찬이 있으면 금하기에 부족하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상이 반드시 공적인 이익에서 나오게 하고, 명예가 반드시 윗사람을 위하는 데에 있게 한다. 상과 명예가 같은 궤도를 달리게 하고, 비방과 처벌이 함께 행해지게 하면, 백성들은 상을 받는 것 외에 다른 영예를 추구하지 않는다. 무거운 벌을 받은 자에게는 반드시 나쁜 평판이 따르게 하므로 백성들이 두려워한다. 벌은 금지하는 수단이니, 백성이 두려워하여 금지되면 나라가 다스려진다.
【원문 8】
八、行義示則主威分,慈仁聽則法制毀。民以制畏上,而上以勢卑下,故下肆很觸而榮於輕君之俗則主威分。民以法難犯上,而上以法撓慈仁,故下明愛施而務賕紋之政,是以法令隳。尊私行以貳主威,行賕紋以疑法,聽之則亂治,不聽則謗主,故君輕乎位而法亂乎官,此之謂無常之國。明主之道,臣不得以行義成榮,不得以家利為功。功名所生,必出於官法;法之所外,雖有難行,不以顯焉;故民無以私名。設法度以齊民,信賞罰以盡民能,明誹譽以勸沮,名號、賞罰、法令三隅,故大臣有行則尊君,百姓有功則利上,此之謂有道之國也。
【번역문 8】
여덟째, 의로운 행실을 드러내 보이면 군주의 위엄이 나뉘고, 자비와 인애를 들어주면 법제가 무너진다. 백성은 제도로써 윗사람을 두려워하는데, 윗사람이 권세로써 아랫사람에게 자신을 낮추면[¹⁶], 아랫사람은 제멋대로 거역하고 군주를 가벼이 여기는 풍속을 영예롭게 여겨 군주의 위엄이 나뉜다. 백성은 법 때문에 윗사람을 범하기 어려워하는데, 윗사람이 법을 어기고 자비와 인애를 베풀면, 아랫사람은 공공연히 사랑을 베풀고 뇌물을 쓰는 정사에 힘쓰니, 이 때문에 법령이 무너진다. 사사로운 행실을 존중하여 군주의 위엄을 두 마음 품게 하고, 뇌물을 써서 법을 의심하게 하는데, 이를 들어주면 다스림이 어지러워지고, 들어주지 않으면 군주를 비방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그 지위에서 가벼워지고 법은 관리들 사이에서 어지러워지니, 이를 일컬어 ‘일정한 법도가 없는 나라(無常之國)’라 한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신하가 의로운 행실로써 영예를 이루지 못하게 하고, 집안의 이익으로써 공을 삼지 못하게 한다. 공과 명예가 생겨나는 바는 반드시 관청의 법에서 나와야 한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는 비록 행하기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드러내지 않으니, 그러므로 백성들은 사사로운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다. 법도를 설치하여 백성을 가지런히 하고, 상벌을 신실하게 하여 백성의 능력을 다하게 하며, 비방과 칭찬을 명확히 하여 권하고 막으니, 명호(名號), 상벌(賞罰), 법령(法令)이 세 모퉁이가 된다.[¹⁷] 그러므로 대신은 행실이 있으면 군주를 존중하게 되고, 백성은 공이 있으면 윗사람을 이롭게 하니, 이를 일컬어 ‘도가 있는 나라(有道之國)’라 한다.
【주석 8】
上以勢卑下(상이세비하): 군주가 자신의 절대적인 권세(勢)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 백성에게 인자하게 대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말이다. 한비자는 이러한 태도가 군주의 위엄을 손상시키고 법의 권위를 무너뜨린다고 보았다.
三隅(삼우): 세 개의 모퉁이. 명호(지위), 상벌, 법령 이 세 가지가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임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韓非子 五蠹 (한비자 오두) 번역 및 주석
[원문 1]
五蠹:
上古之世,人民少而禽獸眾,人民不勝禽獸蟲蛇,有聖人作,搆木為巢以避群害,而民悅之,使王天下,號曰有巢氏。民食果蓏蚌蛤,腥臊惡臭而傷害腹胃,民多疾病,有聖人作,鑽燧取火以化腥臊,而民說之,使王天下,號之曰燧人氏。中古之世,天下大水,而鯀、禹決瀆。近古之世,桀、紂暴亂,而湯、武征伐。今有搆木鑽燧於夏后氏之世者,必為鯀、禹笑矣。有決瀆於殷、周之世者,必為湯、武笑矣。然則今有美堯、舜、湯、武、禹之道於當今之世者,必為新聖笑矣。是以聖人不期脩古,不法常可,論世之事,因為之備。宋人有耕田者,田中有株,兔走,觸株折頸而死,因釋其耒而守株,冀復得兔,兔不可復得,而身為宋國笑。今欲以先王之政,治當世之民,皆守株之類也。
[번역문]
오두(五蠹)¹⁾:
상고(上古) 시대에는 인민은 적고 금수는 많아, 인민이 금수와 벌레, 뱀을 이기지 못하였다. 어떤 성인(聖人)이 나타나, 나무를 얽어 둥지[巢]를 만들어 뭇 해로움을 피하게 하니, 백성들이 그를 기뻐하여 천하의 왕으로 삼고, 그를 일러 유소씨(有巢氏)라 하였다. 백성들이 과일, 열매, 조개를 먹었는데, 비리고 노린내가 나며 악취가 나서 배와 위를 상하게 하여, 백성들이 병이 많았다. 어떤 성인이 나타나,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켜[鑽燧] 비린내를 변화시키니, 백성들이 그를 기뻐하여 천하의 왕으로 삼고, 그를 일러 수인씨(燧人氏)라 하였다. 중고(中古) 시대에는 천하에 큰 홍수가 나자, 곤(鯀)과 우(禹)가 물길을 터서 해결하였다. 근고(近古) 시대에는 걸(桀)과 주(紂)가 포악하고 어지럽자, 탕(湯)과 무(武)가 정벌하였다. 지금 만약 하후씨(夏后氏)의 시대에 나무를 얽고 불을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곤과 우의 비웃음을 살 것이다. 은(殷)·주(周) 시대에 물길을 트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탕과 무의 비웃음을 살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세(當世)에 요(堯)·순(舜)·탕·무·우의 도(道)를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새로운 성인(新聖)의 비웃음을 살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옛것을 닦기를 기약하지 않고, 항상 옳은 것을 본받지 않으며, 세상의 일을 논하고, 그에 따라 대비책을 마련한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 밭을 가는 자가 있었는데, 밭 가운데에 그루터기가 있었다. 토끼가 달려가다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자, 그는 이로 인해 쟁기를 놓고 그루터기를 지키며, 다시 토끼를 얻기를 바랐다. 토끼는 다시 얻을 수 없었고, 자신은 송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지금 선왕(先王)의 정치로써 당세의 백성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 모두 그루터기를 지키는[守株]²⁾ 부류이다.
[주석]
1) 오두(五蠹): ‘두(蠹)’는 좀벌레를 뜻한다. 나라를 좀먹어 쇠퇴하게 만드는 다섯 종류의 해충 같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비자는 이 편에서 유학자, 유세가, 협객, 병역 기피자, 상공업자를 국가의 다섯 해충으로 규정하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2) 수주(守株): ‘그루터기를 지킨다’는 뜻으로, ‘수주대토(守株待兔)’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된 이야기이다.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하고 낡은 관습이나 방법에만 얽매여 융통성이 없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한비자는 유가(儒家)가 옛 성왕의 도(道)만을 칭송하며 현실에 적용하려는 태도를 이에 비유하여 비판한다.
[원문 2]
古者丈夫不耕,草木之實足食也;婦人不織,禽獸之皮足衣也。不事力而養足,人民少而財有餘,故民不爭。是以厚賞不行,重罰不用而民自治。今人有五子不為多,子又有五子,大父未死而有二十五孫,是以人民眾而貨財寡,事力勞而供養薄,故民爭,雖倍賞累罰而不免於亂。
[번역문]
옛날에는 장부가 밭을 갈지 않아도 초목의 열매가 먹기에 족했고, 부인이 길쌈하지 않아도 금수의 가죽이 입기에 족했다. 힘써 일하지 않아도 봉양이 족하고, 인민은 적고 재물은 남음이 있었으므로, 백성들이 다투지 않았다. 이 때문에 후한 상이 행해지지 않고, 무거운 벌이 쓰이지 않아도 백성이 저절로 다스려졌다. 지금은 사람이 아들 다섯을 두어도 많다고 여기지 않고, 그 아들이 또 아들 다섯을 두어,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스물다섯 명의 손자가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인민은 많아지고 재화는 적어지며, 힘써 일하는 것은 수고로운데 봉양은 박하니, 그러므로 백성들이 다툰다. 비록 상을 배로 하고 벌을 거듭해도 혼란을 면할 수 없다.
[원문 3]
堯之王天下也,茅茨不翦,采椽不斲,糲粢之食,藜藿之羹,冬日麑裘,夏日葛衣,雖監門之服養,不虧於此矣。禹之王天下也,身執耒臿以為民先,股無胈,脛不生毛,雖臣虜之勞不苦於此矣。以是言之,夫古之讓天子者,是去監門之養而離臣虜之勞也,古傳天下而不足多也。今之縣令,一日身死,子孫累世絜駕,故人重之;是以人之於讓也,輕辭古之天子,難去今之縣令者,薄厚之實異也。夫山居而谷汲者,膢臘而相遺以水;澤居苦水者,買庸而決竇。故饑歲之春,幼弟不饟;穰歲之秋,疏客必食;非疏骨肉愛過客也,多少之實異也。是以古之易財,非仁也,財多也;今之爭奪,非鄙也,財寡也;輕辭天子,非高也,勢薄也;爭土橐,非下也,權重也。故聖人議多少、論薄厚為之政,故罰薄不為慈,誅嚴不為戾,稱俗而行也。故事因於世,而備適於事。
[번역문]
요(堯)임금이 천하의 왕이었을 때, 띠 지붕은 다듬지 않고, 서까래는 깎지 않았으며, 거친 기장밥과 명아주국을 먹고, 겨울에는 사슴 가죽옷을, 여름에는 칡베 옷을 입었으니, 비록 문지기의 의복과 봉양이라도 이보다 낫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禹)임금이 천하의 왕이었을 때, 몸소 쟁기와 보습을 잡고 백성들보다 앞장서니, 넓적다리에는 살이 없고 정강이에는 털이 나지 않았으니, 비록 신하나 노예의 노고라도 이보다 더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로써 말하건대, 무릇 옛날에 천자의 자리를 양보한 것은, 문지기의 봉양을 버리고 신하나 노예의 노고를 떠나는 것이니, 옛날에 천하를 전한 것은 족히 대단하게 여길 것이 없다. 지금의 현령(縣令)은, 하루아침에 몸이 죽어도 자손이 여러 세대에 걸쳐 수레를 모니,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를 중히 여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양보함에 있어, 옛날의 천자 자리는 가벼이 사양하고 지금의 현령 자리는 떠나기 어려워하는 것은, 이익[薄厚]의 실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릇 산에 살며 골짜기에서 물을 긷는 자는, 동지와 섣달 제사 때 서로에게 물을 보내주고, 못 가에 살며 물 때문에 고생하는 자는, 품삯을 주고 도랑을 파게 한다. 그러므로 굶주린 해의 봄에는, 어린 동생에게도 밥을 주지 않고, 풍년이 든 해의 가을에는, 서먹한 손님이라도 반드시 먹이니, 골육을 소홀히 하고 지나가는 손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많고 적음의 실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옛날에 재물을 쉽게 여긴 것은, 인(仁)해서가 아니라 재물이 많았기 때문이고, 지금에 다투고 빼앗는 것은, 비루해서가 아니라 재물이 적기 때문이다. 천자 자리를 가벼이 사양한 것은, 고상해서가 아니라 권세[勢]가 미미했기 때문이고, 작은 봉토를 다투는 것은, 비천해서가 아니라 권력[權]이 무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많고 적음을 헤아리고, 박하고 후함을 논하여 정치를 하니, 그러므로 벌이 가벼운 것을 자애롭다고 하지 않고, 주살이 엄한 것을 포악하다고 하지 않으며, 시속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은 시대에 따르고, 대비책은 일에 적합하게 하는 것이다.
[원문 4]
古者文王處豐、鎬之間,地方百里,行仁義而懷西戎,遂王天下。徐偃王處漢東,地方五百里,行仁義,割地而朝者三十有六國,荊文王恐其害己也,舉兵伐徐,遂滅之。故文王行仁義而王天下,偃王行仁義而喪其國,是仁義用於古不用於今也。故曰:世異則事異。當舜之時,有苗不服,禹將伐之,舜曰:「不可。上德不厚而行武,非道也。」乃修教三年,執干戚舞,有苗乃服。共工之戰,鐵銛矩者及乎敵,鎧甲不堅者傷乎體,是干戚用於古不用於今也。故曰:事異則備變。上古競於道德,中世逐於智謀,當今爭於氣力。齊將攻魯,魯使子貢說之,齊人曰:「子言非不辯也,吾所欲者土地也,非斯言所謂也。」遂舉兵伐魯,去門十里以為界。故偃王仁義而徐亡,子貢辯智而魯削。以是言之,夫仁義辯智,非所以持國也。去偃王之仁,息子貢之智,循徐、魯之力使敵萬乘,則齊、荊之欲不得行於二國矣。
[번역문]
옛날 문왕(文王)은 풍(豐)과 호(鎬) 사이에 거처하며, 땅은 사방 백 리였으나, 인의(仁義)를 행하여 서융(西戎)을 복속시키고, 마침내 천하의 왕이 되었다. 서언왕(徐偃王)은 한수(漢水) 동쪽에 거처하며, 땅은 사방 오백 리였고, 인의를 행하여 땅을 바치고 조공하는 나라가 서른여섯 나라였으나, 초(荊) 문왕(文王)이 그가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하여, 군사를 일으켜 서(徐)나라를 정벌하고 마침내 멸망시켰다. 그러므로 문왕은 인의를 행하여 천하의 왕이 되었고, 언왕은 인의를 행하여 그 나라를 잃었으니, 이는 인의가 옛날에는 쓰였으나 지금에는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시대가 다르면 일도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순(舜)임금 때에, 유묘(有苗)가 복종하지 않자, 우(禹)가 장차 그들을 정벌하려 하였다. 순이 말하기를, “안 된다. 윗사람의 덕이 두텁지 않은데 무력을 행하는 것은, 도(道)가 아니다.” 하고는, 이에 가르침을 닦은 지 삼 년 만에, 방패와 도끼를 잡고 춤을 추니, 유묘가 이에 복종하였다. 공공(共工)과의 전쟁에서는, 쇠로 된 날카로운 무기를 가진 자는 적에게 미치고, 갑옷이 견고하지 않은 자는 몸을 다쳤으니, 이는 방패와 도끼가 옛날에는 쓰였으나 지금에는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일이 다르면 대비책도 변한다고 하는 것이다. 상고(上古)에는 도덕으로 경쟁했고, 중세(中世)에는 지모(智謀)를 쫓았으며, 지금은 기력(氣力)으로 다툰다. 제(齊)나라가 장차 노(魯)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노나라가 자공(子貢)을 시켜 그들을 유세하게 하니, 제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변론에 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내가 바라는 바는 토지이지, 이 말이 이르는 바가 아니다.” 하고는,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노나라를 정벌하여, 성문에서 십 리 떨어진 곳을 경계로 삼았다. 그러므로 언왕은 인의 때문에 서나라가 망했고, 자공은 변론과 지혜 때문에 노나라 땅이 깎였다. 이로써 말하건대, 무릇 인의와 변론, 지혜는, 나라를 지탱하는 방법이 아니다. 언왕의 인(仁)을 버리고, 자공의 지혜를 그치게 하며, 서나라와 노나라의 힘을 따라 만승(萬乘)의 적을 대적하게 했다면, 제나라와 초나라의 욕망은 두 나라에서 행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원문 5]
夫古今異俗,新故異備,如欲以寬緩之政、治急世之民,猶無轡策而御駻馬,此不知之患也。今儒、墨皆稱先王兼愛天下,則視民如父母。何以明其然也?曰:「司寇行刑,君為之不舉樂;聞死刑之報,君為流涕。」此所舉先王也。夫以君臣為如父子則必治,推是言之,是無亂父子也。人之情性,莫先於父母,皆見愛而未必治也,雖厚愛矣,奚遽不亂?今先王之愛民,不過父母之愛子,子未必不亂也,則民奚遽治哉!且夫以法行刑而君為之流涕,此以效仁,非以為治也。夫垂泣不欲刑者仁也,然而不可不刑者法也,先王勝其法不聽其泣,則仁之不可以為治亦明矣。且民者固服於勢,寡能懷於義。仲尼,天下聖人也,修行明道以遊海內,海內說其仁,美其義,而為服役者七十人,蓋貴仁者寡,能義者難也。故以天下之大,而為服役者七十人,而仁義者一人。魯哀公,下主也,南面君國,境內之民莫敢不臣。民者固服於勢,誠易以服人,故仲尼反為臣,而哀公顧為君。仲尼非懷其義,服其勢也。故以義則仲尼不服於哀公,乘勢則哀公臣仲尼。今學者之說人主也,不乘必勝之勢,而務行仁義則可以王,是求人主之必及仲尼,而以世之凡民皆如列徒,此必不得之數也。
[번역문]
무릇 옛날과 지금은 풍속이 다르고, 새것과 옛것은 대비책이 다르니, 만약 너그럽고 느슨한 정치로써 급박한 세상의 백성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마치 고삐와 채찍 없이 사나운 말을 모는 것과 같으니, 이는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재앙이다. 지금 유가(儒家)와 묵가(墨家)는 모두 선왕(先王)이 천하를 겸애(兼愛)하여, 백성 보기를 부모와 같이 했다고 칭송한다. 무엇으로 그것이 그러함을 밝히는가? 말하기를, “사구(司寇)가 형벌을 행하면, 군주가 그를 위해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고, 사형의 보고를 들으면, 군주가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 이것이 그들이 드는 선왕이다. 무릇 군신(君臣) 관계를 부자(父子) 관계와 같이 하면 반드시 다스려진다고 한다면, 이 말을 미루어 보건대, 이는 어지러운 부자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정과 성품은, 부모보다 앞서는 것이 없는데, 모두 사랑을 받지만 반드시 다스려지는 것은 아니니, 비록 사랑이 두텁더라도, 어찌 갑자기 어지러워지지 않겠는가? 지금 선왕이 백성을 사랑한 것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넘지 못하는데, 자식도 반드시 어지러워지지 않는 것은 아니니, 백성이 어찌 갑자기 다스려지겠는가! 또한 무릇 법으로써 형벌을 행하는데 군주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인(仁)을 드러내기 위함이지, 다스림을 위함이 아니다. 무릇 눈물을 흘리며 형벌을 내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인(仁)이지만, 그러나 형벌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법(法)이다. 선왕이 그 법을 이기게 하고 그 눈물을 듣지 않았으니, 인(仁)으로써는 다스릴 수 없음 또한 명백하다. 또한 백성이란 본래 권세[勢]에 복종하고, 의(義)를 따를 수 있는 자는 드물다. 중니(仲尼)는 천하의 성인이었으나, 수행하고 도를 밝히며 천하를 돌아다녔을 때, 천하가 그의 인(仁)을 기뻐하고 그의 의(義)를 아름답게 여겼으나, 그를 위해 복역한 자는 칠십 명이었으니, 대개 인(仁)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적고, 의(義)를 행할 수 있는 자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큼으로도, 복역한 자는 칠십 명이고, 인의를 행한 자는 한 명뿐이었다. 노(魯) 애공(哀公)은 하급의 군주였으나, 남면(南面)하여 나라의 군주가 되자, 나라 안의 백성 중에 감히 신하가 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백성이란 본래 권세에 복종하고, 진실로 사람을 복종시키기 쉬우니, 그러므로 중니는 도리어 신하가 되고, 애공은 도리어 군주가 되었다. 중니는 그의 의(義)를 따른 것이 아니라, 그의 권세에 복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義)로써는 중니가 애공에게 복종하지 않지만, 권세를 타면 애공이 중니를 신하로 삼는다. 지금 학자들이 군주를 유세할 때, 반드시 이기는 권세를 타지 않고, 인의를 행하는 데 힘쓰면 왕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이는 군주에게 반드시 중니에 미치기를 구하고, 세상의 모든 평범한 백성이 모두 그의 제자들과 같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는 반드시 얻을 수 없는 이치이다.
[원문 6]
今有不才之子,父母怒之弗為改,鄉人譙之弗為動,師長教之弗為變。夫以父母之愛,鄉人之行,師長之智,三美加焉,而終不動其脛毛,不改;州部之吏,操官兵、推公法而求索姦人,然後恐懼,變其節,易其行矣。故父母之愛不足以教子,必待州部之嚴刑者,民固驕於愛、聽於威矣。故十仞之城,樓季弗能踰者,峭也;千仞之山,跛牂易牧者,夷也。故明王峭其法、而嚴其刑也。布帛尋常,庸人不釋;鑠金百溢,盜跖不掇。不必害則不釋尋常,必害手則不掇百溢,故明主必其誅也。是以賞莫如厚而信,使民利之;罰莫如重而必,使民畏之;法莫如一而固,使民知之。故主施賞不遷,行誅無赦。譽輔其賞,毀隨其罰,則賢不肖俱盡其力矣。
[번역문]
지금 재능 없는 아들이 있는데, 부모가 그에게 노해도 고치지 않고, 마을 사람이 그를 꾸짖어도 움직이지 않으며, 스승이 그를 가르쳐도 변하지 않는다. 무릇 부모의 사랑, 마을 사람의 행실, 스승의 지혜, 세 가지 아름다움이 더해져도, 끝내 그 정강이 털 하나 움직이지 않고, 고치지 않는다. 주부(州部)의 관리가, 관청의 군사를 거느리고 공적인 법을 밀어붙여 간사한 사람을 찾아내고 나서야, 두려워하며 그 절개를 바꾸고 그 행동을 고친다. 그러므로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가르치기에 부족하고, 반드시 주부의 엄한 형벌을 기다리는 것은, 백성이 본래 사랑에는 교만하고 위엄에는 듣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 길[仞]의 성을, 누계(樓季)¹⁾가 능히 넘지 못하는 것은, 가파르기[峭] 때문이다. 천 길의 산을, 절름발이 암양이 쉽게 오르내리는 것은, 평탄하기[夷]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그 법을 가파르게 하고, 그 형벌을 엄하게 한다. 베나 비단 한 발[尋常]²⁾을, 평범한 사람은 놓지 않는다. 녹인 쇠 백 일(鎰)을, 도척(盜跖)³⁾도 줍지 않는다. 반드시 해롭지 않으면 한 발의 베를 놓지 않고, 반드시 손을 해치면 백 일의 쇠를 줍지 않으니,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그 주살을 반드시 행한다. 이 때문에 상은 두텁고 신실하게 하여 백성이 그것을 이롭게 여기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고, 벌은 무겁고 반드시 행하여 백성이 그것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으며, 법은 하나이고 굳건하여 백성이 그것을 알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주가 상을 베풂에 옮기지 않고, 주살을 행함에 용서가 없다. 칭찬은 그 상을 돕고, 비방은 그 벌을 따르니, 그러면 현명한 자와 못난 자가 모두 그 힘을 다할 것이다.
[주석]
1) 누계(樓季): 춘추시대의 달리기를 잘했던 인물.
2) 심상(尋常): 고대의 길이 단위. 8척(尺)을 심(尋), 16척을 상(常)이라 한다. 여기서는 작고 하찮은 물건을 비유한다.
3) 도척(盜跖): 춘추시대의 전설적인 큰 도둑.
[원문 7]
今則不然,以其有功也爵之,而卑其士官也;以其耕作也賞之,而少其家業也;以其不收也外之,而高其輕世也;以其犯禁也罪之,而多其有勇也。毀譽、賞罰之所加者相與悖繆也,故法禁壞而民愈亂。今兄弟被侵必攻者廉也,知友被辱隨仇者貞也,廉貞之行成,而君上之法犯矣。人主尊貞廉之行,而忘犯禁之罪,故民程於勇而吏不能勝也。不事力而衣食則謂之能,不戰功而尊則謂之賢,賢能之行成而兵弱而地荒矣。人主說賢能之行,而忘兵弱地荒之禍,則私行立而公利滅矣。
[번역문]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공이 있다고 하여 그에게 작위를 주면서도, 그 병사의 관직은 낮춘다. 밭 갈고 농사지었다고 하여 그에게 상을 주면서도, 그 가업은 적게 한다. 거두어들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를 외면하면서도, 그가 세상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높이 평가한다. 금령을 어겼다고 하여 그에게 죄를 주면서도, 그가 용기가 있다고 하여 대단하게 여긴다. 비방과 칭찬, 상과 벌이 더해지는 바가 서로 어긋나고 잘못되었으니, 그러므로 법과 금령이 무너지고 백성은 더욱 어지러워진다. 지금 형제가 침략당하면 반드시 공격하는 것을 청렴[廉]이라 하고, 친구가 모욕당하면 원수를 따르는 것을 곧다[貞]고 하니, 청렴하고 곧은 행실이 이루어지면, 군주의 법은 어겨진다. 군주가 곧고 청렴한 행실을 존중하고, 금령을 어긴 죄를 잊으니, 그러므로 백성은 용맹을 기준으로 삼고 관리는 이기지 못한다. 힘써 일하지 않고도 먹고 입으면 능하다[能]고 일컫고, 싸워 공을 세우지 않고도 존귀해지면 현명하다[賢]고 일컫는다. 현명하고 능력 있는 행실이 이루어지면 군대는 약해지고 땅은 황폐해진다. 군주가 현명하고 능력 있는 행실을 기뻐하고, 군대가 약해지고 땅이 황폐해지는 재앙을 잊으니, 사사로운 행실이 서고 공적인 이익은 사라진다.
[원문 8]
儒以文亂法,俠以武犯禁,而人主兼禮之,此所以亂也。夫離法者罪,而諸先生以文學取;犯禁者誅,而群俠以私劍養。故法之所非,君之所取;吏之所誅,上之所養也。法趣上下四相反也,而無所定,雖有十黃帝不能治也。故行仁義者非所譽,譽之則害功;文學者非所用,用之則亂法。楚之有直躬,其父竊羊而謁之吏,令尹曰:「殺之,」以為直於君而曲於父,報而罪之。以是觀之,夫君之直臣,父之暴子也。魯人從君戰,三戰三北,仲尼問其故,對曰:「吾有老父,身死莫之養也。」仲尼以為孝,舉而上之。以是觀之,夫父之孝子,君之背臣也。故令尹誅而楚姦不上聞,仲尼賞而魯民易降北。上下之利若是其異也,而人主兼舉匹夫之行,而求致社稷之福,必不幾矣。古者蒼頡之作書也,自環者謂之私,背私謂之公,公私之相背也,乃蒼頡固以知之矣。今以為同利者,不察之患也。然則為匹夫計者,莫如脩行義而習文學。行義脩則見信,見信則受事;文學習則為明師,為明師則顯榮;此匹夫之美也。然則無功而受事,無爵而顯榮,為有政如此,則國必亂,主必危矣。故不相容之事,不兩立也。斬敵者受賞,而高慈惠之行;拔城者受爵祿,而信廉愛之說;堅甲厲兵以備難,而美薦紳之飾;富國以農,距敵恃卒,而貴文學之士;廢敬上畏法之民,而養遊俠私劍之屬。舉行如此,治強不可得也。國平養儒俠,難至用介士,所利非所用,所用非所利。是故服事者簡其業,而游學者日眾,是世之所以亂也。
[번역문]
유학자[儒]는 글로써 법을 어지럽히고, 협객[俠]은 무력으로써 금령을 어기는데, 군주가 아울러 그들을 예우하니, 이것이 어지러워지는 까닭이다. 무릇 법을 떠난 자는 죄를 받아야 하는데, 여러 선생들은 문학(文學)으로써 등용된다. 금령을 어긴 자는 주살되어야 하는데, 여러 협객들은 사사로운 칼로써 부양된다. 그러므로 법이 비난하는 바를, 군주가 취하고, 관리가 주살하는 바를, 윗사람이 부양한다. 법과 취향, 상과 하가 네 가지로 서로 반대되어, 정해진 바가 없으니, 비록 열 명의 황제(黃帝)가 있더라도 다스릴 수 없다. 그러므로 인의(仁義)를 행하는 자는 칭찬할 바가 아니니, 칭찬하면 공(功)을 해친다. 문학을 하는 자는 쓸 바가 아니니, 쓰면 법을 어지럽힌다. 초(楚)나라에 직궁(直躬)¹⁾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그를 관리에게 고발하였다. 영윤(令尹)이 말하기를, “그를 죽여라.” 하고는, 군주에게는 곧고 아버지에게는 굽었다고 여겨, 보복으로 그에게 죄를 주었다. 이로 보건대, 무릇 군주의 곧은 신하는, 아버지의 포악한 아들이다. 노(魯)나라 사람이 군주를 따라 싸우는데, 세 번 싸워 세 번 패주하였다. 중니(仲尼)가 그 까닭을 묻자, 대답하기를, “저에게 늙은 아버지가 계시어, 제가 죽으면 그를 봉양할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중니는 효성스럽다고 여겨, 그를 등용하여 윗자리에 앉혔다. 이로 보건대, 무릇 아버지의 효자는, 군주의 배신하는 신하이다. 그러므로 영윤이 주살하니 초나라의 간사함이 위로 알려지지 않았고, 중니가 상을 주니 노나라 백성들이 쉽게 항복하고 패주하게 되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이익이 이와 같이 다르거늘, 군주가 아울러 평민의 행실을 등용하면서, 사직의 복을 이루기를 구하는 것은, 반드시 가깝지 않을 것이다. 옛날 창힐(蒼頡)이 글자를 만들 때, 스스로를 둘러싼 것을 사(私)라 하고, 사(私)를 등진 것을 공(公)이라 하였으니, 공과 사가 서로 등지는 것임을, 이에 창힐이 본래부터 알았던 것이다. 지금 그것을 같은 이익이라고 여기는 것은, 살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재앙이다. 그렇다면 평민을 위한 계책으로는, 행실과 의리를 닦고 문학을 익히는 것만 한 것이 없다. 행실과 의리를 닦으면 신임을 받고, 신임을 받으면 일을 맡게 된다. 문학을 익히면 밝은 스승이 되고, 밝은 스승이 되면 드러나고 영화로워지니, 이것이 평민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공이 없는데도 일을 맡고, 작위가 없는데도 드러나고 영화로워지며, 이와 같은 정치가 있다면, 나라는 반드시 어지러워지고 군주는 반드시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용납되지 않는 일은, 함께 설 수 없다. 적을 벤 자에게 상을 주면서, 자비와 은혜의 행실을 높이 평가한다. 성을 함락시킨 자에게 작록을 주면서, 청렴하고 사랑하는 말을 믿는다. 갑옷을 견고히 하고 병기를 날카롭게 하여 어려움에 대비하면서, 선비의 옷 장식을 아름답게 여긴다. 농업으로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사에 의지하여 적을 막으면서, 문학의 선비를 귀하게 여긴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법을 두려워하는 백성을 버리고, 유협(遊俠)과 사사로운 칼을 쓰는 무리를 기른다. 이와 같이 행하면, 다스려지고 강해지는 것은 얻을 수 없다. 나라가 평안하면 유학자와 협객을 기르고, 어려움이 닥치면 갑옷 입은 병사를 쓰니, 이롭게 여기는 바는 쓰는 바가 아니고, 쓰는 바는 이롭게 여기는 바가 아니다. 이런 까닭에 복무하는 자는 그 일을 간략히 하고, 유학하는 자는 날마다 많아지니, 이것이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까닭이다.
[주석]
1) 직궁(直躬): ‘곧은 몸’이라는 뜻으로, 정직함을 상징하는 인물명이다. 이 이야기는 유가에서 중시하는 정직함(直)과 효(孝)가 국가의 법질서(法)와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시이다. 한비자는 국가의 이익(公)이 개인이나 가족의 윤리(私)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문 9]
且世之所謂賢者,貞信之行也。所謂智者,微妙之言也。微妙之言,上智之所難知也。今為眾人法,而以上智之所難知,則民無從識之矣。故糟糠不飽者不務梁肉,短褐不完者不待文繡。夫治世之事,急者不得,則緩者非所務也。今所治之政,民閒之事,夫婦所明知者不用,而慕上知之論,則其於治反矣。故微妙之言,非民務也。若夫賢良貞信之行者,必將貴不欺之士。不欺之士者,亦無不欺之術也。布衣相與交,無富厚以相利,無威勢以相懼也,故求不欺之士。今人主處制人之勢,有一國之厚,重賞嚴誅,得操其柄,以修明術之所燭,雖有田常、子罕之臣,不敢欺也,奚待於不欺之士?今貞信之士不盈於十,而境內之官以百數,必任貞信之士,則人不足官,人不足官則治者寡而亂者眾矣。故明主之道,一法而不求智,固術而不慕信,故法不敗,而群官無姦詐矣。
[번역문]
또한 세상에서 이른바 현명한 자[賢者]란, 곧고 믿음직한 행실이다. 이른바 지혜로운 자[智者]란, 미묘한 말이다. 미묘한 말은, 최상의 지혜를 가진 자도 알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 뭇사람을 위한 법을 만들면서, 최상의 지혜를 가진 자도 알기 어려운 것으로 한다면, 백성들이 그것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게미와 쌀겨로도 배부르지 못한 자는 좋은 음식[梁肉]을 힘쓰지 않고, 짧은 베옷도 온전치 못한 자는 무늬 놓은 비단옷[文繡]을 기다리지 않는다. 무릇 세상을 다스리는 일은, 급한 것을 얻지 못하면, 완만한 것은 힘쓸 바가 아니다. 지금 다스리는 정치에서, 민간의 일, 부부가 분명히 아는 것을 쓰지 않고, 최상의 지혜에 대한 논의를 흠모한다면, 그 다스림에 있어서는 반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묘한 말은, 백성이 힘쓸 바가 아니다. 무릇 현량하고 곧고 믿음직한 행실을 하는 자는, 반드시 속이지 않는 선비를 귀하게 여길 것이다. 속이지 않는 선비란, 또한 속이지 않는 술(術)이 없는 것이다. 평민이 서로 교제함에는, 부유함으로 서로를 이롭게 할 것이 없고, 위세로 서로를 두렵게 할 것이 없으므로, 속이지 않는 선비를 구한다. 지금 군주는 사람을 제어하는 권세[勢]에 처하여, 한 나라의 부유함을 가지고, 무거운 상과 엄한 주살을 내리며, 그 권한을 쥐고, 술(術)이 비추는 바를 밝게 닦으면, 비록 전상(田常)이나 자한(子罕)과 같은 신하가 있더라도 감히 속이지 못할 터인데, 어찌 속이지 않는 선비를 기다리겠는가? 지금 곧고 믿음직한 선비는 열 명을 채우지 못하는데, 나라 안의 관직은 수백이니, 반드시 곧고 믿음직한 선비를 임용한다면, 사람이 관직에 부족할 것이고, 사람이 관직에 부족하면 다스리는 자는 적고 어지럽히는 자는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의 도는, 법을 하나로 하고 지혜를 구하지 않으며, 술(術)을 굳건히 하고 믿음을 흠모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법이 무너지지 않고, 모든 관리가 간사하고 속이는 짓을 하지 않는다.
[원문 10]
今人主之於言也,說其辯而不求其當焉;其用於行也,美其聲而不責其功焉。是以天下之眾,其談言者務為辯而不周於用,故舉先王言仁義者盈廷,而政不免於亂;行身者競於為高而不合於功,故智士退處巖穴、歸祿不受,而兵不免於弱,政不免於亂,此其故何也?民之所譽,上之所禮,亂國之術也。今境內之民皆言治,藏商、管之法者家有之,而國愈貧,言耕者眾,執耒者寡也;境內皆言兵,藏孫、吳之書者家有之,而兵愈弱,言戰者多,被甲者少也。故明主用其力,不聽其言;賞其功,必禁無用;故民盡死力以從其上。夫耕之用力也勞,而民為之者,曰:可得以富也。戰之為事也危,而民為之者,曰:可得以貴也。今修文學、習言談,則無耕之勞、而有富之實,無戰之危、而有貴之尊,則人孰不為也?是以百人事智而一人用力,事智者眾則法敗,用力者寡則國貧,此世之所以亂也。故明主之國,無書簡之文,以法為教;無先王之語,以吏為師;無私劍之捍,以斬首為勇。是境內之民,其言談者必軌於法,動作者歸之於功,為勇者盡之於軍。是故無事則國富,有事則兵強,此之謂王資。既畜王資而承敵國之舋,超五帝,侔三王者,必此法也。
[번역문]
지금 군주가 말에 대해, 그 변론을 기뻐하고 그 합당함을 구하지 않으며, 행동을 씀에 있어, 그 명성을 아름답게 여기고 그 공을 책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천하의 무리는, 이야기하는 자는 변론에 힘쓰고 쓰임에 두루 맞지 않으니, 그러므로 선왕을 들고 인의를 말하는 자가 조정에 가득 차도, 정치는 혼란을 면치 못한다. 몸을 행하는 자는 고상함을 위해 경쟁하고 공에 부합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선비는 물러나 바위굴에 거처하고, 녹봉을 돌려주고 받지 않아도, 군대는 약함을 면치 못하고, 정치는 혼란을 면치 못하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백성이 칭찬하는 바와, 윗사람이 예우하는 바가, 나라를 어지럽히는 술(術)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라 안의 백성이 모두 다스림을 말하고, 상군(商君)과 관자(管子)의 법을 소장한 집이 있으나, 나라는 더욱 가난해지니, 밭 가는 것을 말하는 자는 많고, 쟁기를 잡는 자는 적기 때문이다. 나라 안에 모두 병법을 말하고, 손자(孫子)와 오자(吳子)의 책을 소장한 집이 있으나, 군대는 더욱 약해지니, 전쟁을 말하는 자는 많고, 갑옷을 입는 자는 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그 힘을 쓰고, 그 말을 듣지 않는다. 그 공을 상 주고, 반드시 쓸모없는 것을 금하니, 그러므로 백성이 죽을힘을 다하여 그 윗사람을 따른다. 무릇 밭 가는 데 힘을 쓰는 것은 수고로우나, 백성이 그것을 하는 까닭은, 말하기를, ‘그것으로 부유해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전쟁하는 일은 위태로우나, 백성이 그것을 하는 까닭은, 말하기를, ‘그것으로 존귀해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문학을 닦고 언담을 익히면, 밭 가는 수고로움 없이 부유함의 실질이 있고, 전쟁의 위태로움 없이 존귀함의 높음이 있으니, 사람들이 누가 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백 사람이 지혜를 일삼고 한 사람이 힘을 쓰니, 지혜를 일삼는 자가 많으면 법이 무너지고, 힘을 쓰는 자가 적으면 나라가 가난해지니, 이것이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의 나라에는, 서책의 글이 없고, 법으로써 가르침을 삼는다. 선왕의 말이 없고, 관리로써 스승을 삼는다. 사사로운 칼의 방어가 없고, 머리를 베는 것으로써 용맹을 삼는다. 이러면 나라 안의 백성은, 그 이야기하는 자가 반드시 법에 궤도를 맞추고, 움직여 일하는 자가 공으로 돌아가며, 용맹을 위하는 자가 군대에서 그것을 다한다. 이런 까닭에 일이 없으면 나라가 부유하고, 일이 있으면 군대가 강하니, 이를 일러 왕의 자산[王資]이라 한다. 이미 왕의 자산을 기르고 적국의 틈을 이어받으면, 오제(五帝)를 뛰어넘고 삼왕(三王)과 나란히 하는 것은, 반드시 이 법 때문이다.
[원문 11]
今則不然,士民縱恣於內,言談者為勢於外,外內稱惡以待強敵,不亦殆乎!故群臣之言外事者,非有分於從衡之黨,則有仇讎之忠,而借力於國也。從者,合眾弱以攻一強也;而衡者,事一強以攻眾弱也;皆非所以持國也。今人臣之言衡者皆曰:「不事大則遇敵受禍矣。」事大未必有實,則舉圖而委,效璽而請兵矣。獻圖則地削,效璽則名卑,地削則國削,名卑則政亂矣。事大為衡未見其利也,而亡地亂政矣。人臣之言從者皆曰:「不救小而伐大則失天下,失天下則國危,國危而主卑。」救小未必有實,則起兵而敵大矣。救小未必能存,而交大未必不有疏,有疏則為強國制矣。出兵則軍敗,退守則城拔,救小為從未見其利,而亡地敗軍矣。是故事強則以外權士官於內,救小則以內重求利於外,國利未立,封土厚祿至矣;主上雖卑,人臣尊矣;國地雖削,私家富矣。事成則以權長重,事敗則以富退處。人主之於其聽說也,於其臣,事未成則爵祿已尊矣;事敗而弗誅,則游說之士,孰不為用矰繳之說而徼倖其後?故破國亡主以聽言談者之浮說,此其故何也?是人君不明乎公私之利,不察當否之言,而誅罰不必其後也。皆曰「外事大可以王,小可以安。」夫王者,能攻人者也;而安,則不可攻也。強,則能攻人者也;治,則不可攻也。治強不可責於外,內政之有也。今不行法術於內,而事智於外,則不至於治強矣。鄙諺曰:「長袖善舞,多錢善賈。」此言多資之易為工也。故治強易為謀,弱亂難為計。故用於秦者十變而謀希失,用於燕者一變而計希得,非用於秦者必智,用於燕者必愚也,蓋治亂之資異也。故周去秦為從,期年而舉;衛離魏為衡,半歲而亡。是周滅於從,衛亡於衡也。使周、衛緩其從衡之計,而嚴其境內之治,明其法禁,必其賞罰,盡其地力以多其積,致其民死以堅其城守,天下得其地則其利少,攻其國則其傷大,萬乘之國、莫敢自頓於堅城之下,而使強敵裁其弊也,此必不亡之術也。舍必不亡之術而道必滅之事,治國者之過也。智困於內而政亂於外,則亡不可振也。
[번역문]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선비와 백성은 안에서 제멋대로 하고, 이야기하는 자는 밖에서 세력을 만드니, 안팎에서 악행을 칭송하며 강한 적을 기다리니, 또한 위태롭지 않은가! 그러므로 여러 신하 중에 외부의 일을 말하는 자는, 합종(合從)이나 연횡(連衡)의 무리에 속하지 않으면, 원수에게 충성하여, 나라의 힘을 빌리는 자이다. 합종이란, 여러 약한 나라를 합하여 하나의 강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다. 연횡이란, 하나의 강한 나라를 섬겨 여러 약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다. 모두 나라를 지탱하는 방법이 아니다. 지금 신하 중에 연횡을 말하는 자는 모두 말하기를, “큰 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적을 만나 재앙을 입을 것입니다.”라고 한다.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이 반드시 실리가 있는 것은 아닌데, 지도를 들어 바치고, 인장을 바쳐 군대를 청한다. 지도를 바치면 땅이 깎이고, 인장을 바치면 이름이 비천해지며, 땅이 깎이면 나라가 깎이고, 이름이 비천해지면 정치가 어지러워진다. 큰 나라를 섬기는 연횡은 그 이로움을 아직 보지 못했는데, 땅을 잃고 정치가 어지러워진다. 신하 중에 합종을 말하는 자는 모두 말하기를, “작은 나라를 구하고 큰 나라를 치지 않으면 천하를 잃고, 천하를 잃으면 나라가 위태로우며, 나라가 위태로우면 군주가 비천해집니다.”라고 한다. 작은 나라를 구하는 것이 반드시 실리가 있는 것은 아닌데, 군사를 일으켜 큰 나라를 대적한다. 작은 나라를 구하여 반드시 보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큰 나라와 교제하여 반드시 소원함이 없는 것도 아니니, 소원함이 있으면 강한 나라에게 제어당할 것이다. 군대를 내면 군대가 패하고, 물러나 지키면 성이 함락되니, 작은 나라를 구하는 합종은 그 이로움을 아직 보지 못했는데, 땅을 잃고 군대가 패한다. 이런 까닭에 강한 나라를 섬기면 외부의 권력으로 선비를 안에서 관직에 임명하고, 작은 나라를 구하면 내부의 중함으로 밖에서 이익을 구하니, 나라의 이익은 아직 서지 않았는데, 봉토와 후한 녹봉이 이른다. 군주는 비록 비천해져도, 신하는 존귀해진다. 나라의 땅은 비록 깎여도, 사사로운 집안은 부유해진다. 일이 이루어지면 권력으로 오랫동안 중용되고, 일이 실패하면 부유함으로 물러나 거처한다. 군주가 그 유세를 들음에 있어, 그 신하에게, 일이 아직 이루어지기도 전에 작록이 이미 존귀해진다. 일이 실패해도 주살하지 않으니, 유세하는 선비 중에, 누가 주살(矰繳)¹⁾의 유세를 써서 그 뒤를 요행으로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나라를 망가뜨리고 군주를 잃는 것이 뜬구름 잡는 유세가의 말을 듣기 때문이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군주가 공(公)과 사(私)의 이익에 밝지 못하고, 합당함과 그렇지 않음의 말을 살피지 않으며, 주벌이 반드시 그 뒤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말하기를, “외부의 일이 크면 왕이 될 수 있고, 작으면 안정될 수 있다.”고 한다. 무릇 왕자(王者)란, 능히 남을 공격하는 자이고, 안정된 자[安]란, 공격당할 수 없는 자이다. 강한 자[強]란, 능히 남을 공격하는 자이고, 다스려진 자[治]란, 공격당할 수 없는 자이다. 다스려지고 강해지는 것은 밖에서 책할 수 없고, 내정(內政)에 있는 것이다. 지금 안으로 법술(法術)을 행하지 않고, 밖으로 지혜를 일삼으니, 다스려지고 강해지는 데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자산이 많으면 공을 이루기 쉽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다스려지고 강하면 계책을 세우기 쉽고, 약하고 어지러우면 계책을 세우기 어렵다. 그러므로 진(秦)나라에서 쓰인 자는 열 번 변하여도 계책이 거의 실패하지 않았고, 연(燕)나라에서 쓰인 자는 한 번 변하여도 계책이 거의 성공하지 못했으니, 진나라에서 쓰인 자가 반드시 지혜롭고, 연나라에서 쓰인 자가 반드시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대개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진 자산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周)나라가 진나라를 떠나 합종을 하니, 일 년 만에 멸망했고, 위(衛)나라가 위(魏)나라를 떠나 연횡을 하니, 반년 만에 망했다. 이는 주나라가 합종으로 멸망했고, 위나라가 연횡으로 망한 것이다. 만약 주나라와 위나라가 그 합종과 연횡의 계책을 늦추고, 그 나라 안의 다스림을 엄하게 하며, 그 법과 금령을 밝히고, 그 상벌을 반드시 행하며, 그 땅의 힘을 다하여 그 쌓아둔 것을 많게 하고, 그 백성이 죽음을 무릅쓰게 하여 그 성의 수비를 굳건히 했다면, 천하가 그 땅을 얻어도 그 이익이 적고, 그 나라를 공격해도 그 손상이 크니, 만승지국(萬乘之國)이라도 감히 견고한 성 아래에서 스스로를 지치게 하여, 강한 적이 그 폐단을 재단하게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반드시 망하지 않는 술(術)이다. 반드시 망하지 않는 술(術)을 버리고 반드시 멸망하는 일을 따르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의 과오이다. 지혜가 안에서 곤궁하고 정치가 밖에서 어지러워지면, 망하는 것을 떨쳐 일으킬 수 없다.
[주석]
1) 증격지설(矰繳之說): ‘주살의 유세’라는 뜻. 주살은 줄 달린 화살로, 쏘았다가 다시 회수할 수 있다. 이는 실패해도 아무런 손해가 없는 유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유세가들은 성공하면 큰 이익을 얻고 실패해도 처벌받지 않으니, 마치 주살을 쏘듯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무책임한 유세를 남발한다는 비판이다.
[원문 12]
民之故計,皆就安利如辟危窮。今為之攻戰,進則死於敵,退則死於誅則危矣。棄私家之事而必汗馬之勞,家困而上弗論則窮矣。窮危之所在也,民安得勿避。故事私門而完解舍,解舍完則遠戰,遠戰則安。行貨賂而襲當塗者則求得,求得則私安,私安則利之所在,安得勿就?是以公民少而私人眾矣。夫明王治國之政,使其商工游食之民少而名卑,以寡趣本務而趨末作。今世近習之請行則官爵可買,官爵可買則商工不卑也矣;姦財貨賈得用於市則商人不少矣。聚斂倍農而致尊過耕戰之士,則耿介之士寡而高價之民多矣。
[번역문]
백성의 본래 계산은, 모두 편안하고 이로운 곳으로 나아가고 위태롭고 궁핍한 곳을 피하는 것과 같다. 지금 그들을 위해 공격하고 싸우게 하여, 나아가면 적에게 죽고, 물러나면 주살되어 죽으니 위태롭다. 사사로운 집안일을 버리고 반드시 땀 흘리는 말의 노고를 하게 되는데, 집안이 곤궁해도 윗사람이 논하지 않으니 궁핍하다. 궁핍하고 위태로운 곳이 있는데, 백성이 어찌 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사로운 가문을 섬겨 해이하고 편안한 거처를 온전히 하니, 해이하고 편안한 거처가 온전하면 전쟁을 멀리하고, 전쟁을 멀리하면 편안하다. 뇌물을 행하여 요직에 있는 자를 습격하면 구하는 바를 얻고, 구하는 바를 얻으면 사사로이 편안하며, 사사로이 편안하면 이익이 있는 곳이니, 어찌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공적인 백성[公民]은 적어지고 사사로운 사람[私人]은 많아진다. 무릇 현명한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는, 상공업자와 놀고먹는 백성을 적게 하고 그 이름을 비천하게 하여, 근본적인 일[本務]¹⁾에 힘쓰게 하고 말단적인 일[末作]²⁾로 나아가는 것을 적게 하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측근의 청탁이 행해지면 관직과 작위를 살 수 있고, 관직과 작위를 살 수 있으면 상공업자가 비천하지 않게 된다. 간사한 재화와 장사가 시장에서 쓰임을 얻으면 상인이 적지 않게 된다. 재물을 모으는 것이 농업보다 배가 되고, 존귀함을 이름이 밭 갈고 싸우는 선비를 넘어서면, 강직한 선비는 적어지고 높은 값을 부르는 백성은 많아진다.
[주석]
1) 본무(本務): 근본이 되는 임무. 법가 사상에서는 국가의 부강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농업과 국방(耕戰)을 가리킨다.
2) 말작(末作): 말단적인 일. 농업과 국방 이외의 상공업, 학문, 예술 등 비생산적인 활동을 가리킨다. 한비자는 말작이 성행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린다고 보았다.
[원문 13]
是故亂國之俗,其學者則稱先王之道,以籍仁義,盛容服而飾辯說,以疑當世之法而貳人主之心。其言古者,為設詐稱,借於外力,以成其私而遺社稷之利。其帶劍者,聚徒屬,立節操,以顯其名而犯五官之禁。其患御者,積於私門,盡貨賂而用重人之謁,退汗馬之勞。其商工之民,修治苦窳之器,聚弗靡之財,蓄積待時而侔農夫之利。此五者,邦之蠹也。人主不除此五蠹之民,不養耿介之士,則海內雖有破亡之國,削滅之朝,亦勿怪矣。
[번역문]
이런 까닭에 어지러운 나라의 풍속은, 그 학자[學者]¹⁾들은 선왕의 도를 칭송하고, 인의(仁義)를 빌리며, 용모와 복장을 성대하게 하고 변론을 꾸며, 당세의 법을 의심하게 하고 군주의 마음을 두 갈래로 만든다. 그 옛것을 말하는 자[言古者]²⁾들은, 속임수를 설정하고 칭하며, 외부의 힘을 빌려, 그 사사로움을 이루고 사직의 이익을 버린다. 그 칼을 찬 자[帶劍者]³⁾들은, 무리를 모으고, 절조를 세워, 그 이름을 드러내고 오관(五官)의 금령을 어긴다. 그 병역을 걱정하는 자[患御者]⁴⁾들은, 사사로운 가문에 쌓여, 뇌물을 다하고 중용되는 사람의 알선을 써서, 땀 흘리는 말의 노고를 물리친다. 그 상공업의 백성[商工之民]⁵⁾들은, 쓸모없고 조악한 기물을 수리하고 만들며, 썩지 않는 재물을 모으고, 때를 기다려 쌓아두어 농부의 이익과 맞먹으려 한다. 이 다섯 부류는, 나라의 좀벌레[蠹]이다. 군주가 이 다섯 좀벌레 같은 백성을 제거하지 않고, 강직한 선비를 기르지 않는다면, 천하에 비록 파하고 망하는 나라, 깎이고 멸망하는 조정이 있더라도, 또한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다.
[주석]
이 문단에서 한비자는 나라를 좀먹는 다섯 부류의 해충, 즉 오두(五蠹)를 명확히 규정한다.
1) 학자(學者): 주로 유학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옛 성왕의 도(道)와 인의(仁義)를 내세워 현실의 법(法)을 비판하고 군주의 통치에 혼란을 준다고 보았다.
2) 언고자(言古者): 유세가를 가리킨다. 이들은 합종연횡(合從連衡)과 같은 외교술로 군주를 현혹하여, 외세에 의존하게 만들고 사사로운 이익을 챙긴다고 비판한다.
3) 대검자(帶劍者): 협객(俠客)을 가리킨다. 이들은 사적인 무력을 길러 자신들만의 규범(節操)을 세우고 국가의 법질서를 무시한다고 보았다.
4) 환어자(患御者): 병역을 기피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권력가에게 뇌물을 바치고 청탁하여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회피함으로써 국가의 군사력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한다.
5) 상공지민(商工之民): 상인과 수공업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농업이라는 국가의 근본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사치품을 만들거나 유통을 통해 이익을 독점하여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든다고 보았다.
韓非子 第50篇 - 顯學 (저명한 학파)
원문 및 번역
【원문 1】
世之顯學,儒、墨也。儒之所至,孔丘也。墨之所至,墨翟也。自孔子之死也,有子張之儒,有子思之儒,有顏氏之儒,有孟氏之儒,有漆雕氏之儒,有仲良氏之儒,有孫氏之儒,有樂正氏之儒。自墨子之死也,有相里氏之墨,有相夫氏之墨,有鄧陵氏之墨。故孔、墨之後,儒分為八,墨離為三,取舍相反、不同,而皆自謂真孔、墨,孔、墨不可復生,將誰使定世之學乎?孔子、墨子俱道堯、舜,而取舍不同,皆自謂真堯、舜,堯、舜不復生,將誰使定儒、墨之誠乎?殷、周七百餘歲,虞、夏二千餘歲,而不能定儒、墨之真,今乃欲審堯、舜之道於三千歲之前,意者其不可必乎!無參驗而必之者、愚也,弗能必而據之者、誣也。故明據先王,必定堯、舜者,非愚則誣也。愚誣之學,雜反之行,明主弗受也。
【번역문 1】
세상의 저명한 학파는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이다. 유가의 으뜸은 공구(孔丘)이고, 묵가의 으뜸은 묵적(墨翟)이다. 공자가 죽은 뒤로 자장(子張)의 유파, 자사(子思)의 유파, 안씨(顏氏)의 유파, 맹씨(孟氏)의 유파, 칠조씨(漆雕氏)의 유파, 중량씨(仲良氏)의 유파, 손씨(孫氏)의 유파, 악정씨(樂正氏)의 유파가 있게 되었다. 묵자가 죽은 뒤로는 상리씨(相里氏)의 묵파, 상부씨(相夫氏)의 묵파, 등릉씨(鄧陵氏)의 묵파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공자와 묵자 이후에 유가는 여덟으로 나뉘고 묵가는 셋으로 갈라져, 취하고 버리는 바가 서로 반대되고 같지 않으면서도 모두 스스로가 진짜 공자와 묵자라고 말한다. 공자와 묵자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니, 장차 누구로 하여금 이 세상의 학문을 정하게 하겠는가? 공자와 묵자는 모두 요(堯)와 순(舜)을 말했지만 취하고 버리는 바가 같지 않으면서도, 모두 스스로가 진짜 요와 순의 도를 이었다고 말한다. 요와 순이 다시 살아날 수 없으니, 장차 누구로 하여금 유가와 묵가의 진실됨을 정하게 하겠는가? 은(殷)·주(周) 7백여 년, 우(虞)·하(夏) 2천여 년 동안에도 유가와 묵가의 참됨을 정하지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 3천 년 전의 요·순의 도를 살피고자 하니, 생각건대 그것은 필히 알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고하여 증험함[¹]이 없이 그것을 확신하는 자는 어리석고, 확신할 수 없으면서 그것에 근거하는 자는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백히 선왕(先王)에 근거하고 반드시 요·순을 따른다고 말하는 자는, 어리석지 않으면 속이는 것이다. 어리석고 속이는 학문과 뒤섞이고 모순된 행동을, 현명한 군주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석 1】
參驗(참험): 여러 사실을 비교·대조하여 검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비자 사상의 핵심적인 방법론으로, 고대 성왕의 권위나 추상적인 도덕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관찰되고 검증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과 결과(功)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법가(法家)의 실증주의적 태도를 보여준다. 한비는 이를 통해 근거 없는 전통이나 학설을 비판한다.
【원문 2】
墨者之葬也,冬日冬服,夏日夏服,桐棺三寸,服喪三月,世主以為儉而禮之。儒者破家而葬,服喪三年,大毀扶杖,世主以為孝而禮之。夫是墨子之儉,將非孔子之侈也;是孔子之孝,將非墨子之戾也。今孝戾、侈儉俱在儒、墨,而上兼禮之。漆雕之議,不色撓,不目逃,行曲則違於臧獲,行直則怒於諸侯,世主以為廉而禮之。宋榮子之議,設不鬥爭,取不隨仇,不羞囹圄,見侮不辱,世主以為寬而禮之。夫是漆雕之廉,將非宋榮之恕也;是宋榮之寬,將非漆雕之暴也。今寬廉、恕暴俱在二子,人主兼而禮之。自愚誣之學、雜反之辭爭,而人主俱聽之,故海內之士,言無定術,行無常議。夫冰炭不同器而久,寒暑不兼時而至,雜反之學不兩立而治,今兼聽雜學繆行同異之辭,安得無亂乎?聽行如此,其於治人又必然矣。
【번역문 2】
묵가의 장례는 겨울에는 겨울옷을, 여름에는 여름옷을 입히고, 오동나무 관은 두께 세 치로 하며, 삼 개월 동안 상을 치르니, 세상의 군주들은 이를 검소하다 여겨 예우한다. 유가는 집안을 기울여 장례를 치르고, 삼 년 동안 상을 치르며, 몸을 크게 상하게 하여 지팡이를 짚고 다니니, 세상의 군주들은 이를 효성스럽다 여겨 예우한다. 무릇 묵자의 검소함이 옳다면, 공자의 사치스러움은 그릇된 것이 아니겠는가? 공자의 효성이 옳다면, 묵자의 비정함[²]은 그릇된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효성과 비정함, 사치와 검소함이 모두 유가와 묵가에 있는데, 군주는 이들을 아울러 예우한다. 칠조씨[³]의 주장은, 안색으로 굴하지 않고, 눈빛으로 피하지 않으며, 행동이 그르면 비록 노비에게라도 맞서고, 행동이 곧으면 제후에게라도 노여움을 사는 것이니, 세상의 군주들은 이를 청렴하다 여겨 예우한다. 송영자(宋榮子)[⁴]의 주장은, 다투지 않음을 내세우고, 원수를 좇아 보복하지 않으며, 감옥에 갇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모욕을 당해도 욕됨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니, 세상의 군주들은 이를 관대하다 여겨 예우한다. 무릇 칠조의 청렴함이 옳다면, 송영의 너그러움은 그릇된 것이 아니겠는가? 송영의 관대함이 옳다면, 칠조의 포악함[⁵]은 그릇된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관대함과 청렴함, 너그러움과 포악함이 모두 이 두 사람에게 있는데, 군주는 이들을 아울러 예우한다. 어리석고 속이는 학문과 뒤섞이고 모순된 말들이 다투는데 군주가 이를 모두 들어주므로, 온 세상의 선비들은 말에 정해진 기준이 없고 행동에 일정한 원칙이 없다. 무릇 얼음과 숯은 한 그릇에 오래 담아둘 수 없고, 추위와 더위는 같은 때에 함께 이르지 않으며, 뒤섞이고 모순된 학문은 양립하여 다스릴 수 없다. 지금 뒤섞인 학문과 그릇된 행동, 같고 다름을 논하는 말들을 아울러 듣고 있으니, 어찌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듣고 행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또한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주석 2】
戾(려): 도리에 어긋나다, 사납다, 비정하다는 뜻이다. 유가의 입장에서 볼 때, 묵가의 간소한 장례는 부모에 대한 도리를 저버리는 비정한 행위로 비칠 수 있다. 한비는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가치를 제시하며 둘 다 옳을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漆雕(칠조): 공자의 제자인 칠조개(漆雕開)를 따르는 유가의 한 분파.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하고 실천적인 학풍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宋榮子(송영자): 송견(宋銒) 또는 송경(宋牼)으로도 불리는 전국시대 사상가. 다툼을 반대하고 모욕을 감수하는 비폭력, 평화주의 사상을 주장했다.
暴(포): 포악하다, 사납다는 뜻이다. 송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불의에 대해 조금도 굽히지 않고 분노를 드러내는 칠조의 태도는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사나운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원문 3】
今世之學士語治者多曰:「與貧窮地以實無資。」今夫與人相若也,無豐年旁入之利而獨以完給者,非力則儉也。與人相若也,無饑饉疾疚禍罪之殃獨以貧窮者,非侈則墯也。侈而墯者貧,而力而儉者富。今上徵斂於富人以布施於貧家,是奪力儉而與侈墯也。而欲索民之疾作而節用,不可得也。
【번역문 3】
지금 세상의 학사들 중 다스림을 말하는 자들은 흔히 말하기를, “가난한 자에게 땅을 주어 자산 없는 자들을 채워주어야 한다.”라고 한다. 지금 무릇 다른 사람과 조건이 비슷한데도, 풍년이나 부수입의 이익 없이 유독 완전하게 자급자족하는 자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검소한 것이다. 다른 사람과 조건이 비슷한데도, 기근이나 질병, 재앙이나 죄과의 불행 없이 유독 가난한 자는, 사치스럽지 않으면 게으른 것이다. 사치스럽고 게으른 자는 가난하고, 부지런하고 검소한 자는 부유하다. 지금 군주가 부유한 사람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집에 베푸는 것은, 부지런하고 검소한 자의 것을 빼앗아 사치스럽고 게으른 자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고서 백성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씀씀이를 절약하기를 구하고자 한들,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원문 4】
今有人於此,義不入危城,不處軍旅,不以天下大利易其脛一毛,世主必從而禮之,貴其智而高其行,以為輕物重生之士也。夫上所以陳良田大宅、設爵祿,所以易民死命也,今上尊貴輕物重生之士、而索民之出死而重殉上事,不可得也。藏書策、習談論、聚徒役、服文學而議說,世主必從而禮之,曰:「敬賢士,先王之道也。」夫吏之所稅,耕者也;而上之所養,學士也。耕者則重稅,學士則多賞,而索民之疾作而少言談,不可得也。立節參民,執操不侵,怨言過於耳必隨之以劍,世主必從而禮之,以為自好之士。夫斬首之勞不賞,而家鬥之勇尊顯,而索民之疾戰距敵而無私鬥,不可得也。國平則養儒俠,難至則用介士,所養者非所用,所用者非所養,此所以亂也。且夫人主於聽學也,若是其言、宜布之官而用其身,若非其言、宜去其身而息其端。今以為是也而弗布於官,以為非也而不息其端,是而不用,非而不息,亂亡之道也。
【번역문 4】
지금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 의리를 내세워 위험한 성에 들어가지 않고, 군대에 머물지 않으며, 천하의 큰 이익과도 자기 정강이의 털 한 올을 바꾸지 않는다면[⁶], 세상의 군주들은 반드시 그를 따라 예우하고, 그 지혜를 귀하게 여기고 그 행동을 높이 평가하여, 물질을 가벼이 여기고 생명을 중히 여기는 선비라고 할 것이다. 무릇 군주가 좋은 밭과 큰 집을 내걸고 작록을 설치하는 까닭은 백성들의 목숨과 바꾸기 위함인데, 지금 군주가 물질을 가벼이 여기고 생명을 중히 여기는 선비를 존귀하게 대하면서 백성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군주의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를 구하고자 한들,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서책을 쌓아두고 담론을 익히며, 무리를 모아 부리고, 문학을 떠받들며 논의하고 유세하면, 세상의 군주들은 반드시 그를 따라 예우하며 말하기를, “현명한 선비를 공경하는 것이 선왕의 도이다.”라고 할 것이다. 무릇 관리가 세금을 거두는 대상은 농사짓는 자인데, 군주가 부양하는 대상은 학사들이다. 농사짓는 자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학사들에게는 많은 상을 주면서, 백성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말을 적게 하기를 구하고자 한들,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절개를 세우고 백성들과 어울리며, 지조를 지켜 침범당하지 않고, 원망스러운 말이 귓가를 스치면 반드시 칼로써 그 뒤를 좇는다면, 세상의 군주들은 반드시 그를 따라 예우하여, 스스로를 아끼는 선비라고 할 것이다. 무릇 적의 목을 벤 공로는 상을 받지 못하는데, 사사로운 싸움의 용맹은 존귀하게 드러나면서, 백성들이 힘껏 싸워 적을 막고 사사로운 싸움을 하지 않기를 구하고자 한들,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나라가 평안할 때에는 유가와 협객[⁷]을 기르고, 어려움이 닥치면 갑옷 입은 병사[⁸]를 쓰니, 기르는 자는 쓰는 자가 아니고, 쓰는 자는 기르는 자가 아니다. 이것이 혼란스러워지는 까닭이다. 또한 무릇 군주가 학문을 들을 때, 만약 그 말이 옳다면 마땅히 관청에 공포하여 그 사람을 등용해야 하고, 만약 그 말이 그르다면 마땅히 그 사람을 내치고 그 단초를 끊어야 한다. 지금 옳다고 여기면서도 관청에 공포하지 않고, 그르다고 여기면서도 그 단초를 끊지 않으니, 옳은 것을 쓰지 않고 그른 것을 끊지 않는 것, 이것이 혼란과 멸망의 길이다.
【주석 5】
不以天下大利易其脛一毛(불이천하대리역기경일모): 전국시대 사상가 양주(楊朱)의 극단적 개인주의 사상을 나타내는 유명한 구절이다. 한비는 국가를 위해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 군주가 이러한 개인주의자를 칭송하는 모순을 지적한다.
儒俠(유협): 유학자(儒)와 사사로운 의리를 숭상하는 협객(俠)을 함께 일컫는 말. 한비의 관점에서 이들은 국가의 법질서에 복종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신념이나 사적인 명예를 앞세우며, 생산 활동(耕)이나 국방(戰)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않는 집단이다.
介士(개사): ‘介’는 갑옷을 의미하므로, 갑옷을 입은 병사, 즉 국가를 위해 직접 전투에 나서는 군인을 뜻한다.
【원문 5】
澹臺子羽,君子之容也,仲尼幾而取之,與處久而行不稱其貌。宰予之辭,雅而文也,仲尼幾而取之,與處而智不充其辯。故孔子曰:「以容取人乎,失之子羽;以言取人乎,失之宰予。」故以仲尼之智而有失實之聲。今之新辯濫乎宰予,而世主之聽眩乎仲尼,為悅其言,因任其身,則焉得無失乎?是以魏任孟卯之辯而有華下之患,趙任馬服之辯而有長平之禍;此二者,任辯之失也。夫視鍛錫而察青黃,區冶不能以必劍;水擊鵠雁,陸斷駒馬,則臧獲不疑鈍利。發齒吻形容,伯樂不能以必馬;授車就駕而觀其末塗,則臧獲不疑駑良。觀容服,聽辭言,仲尼不能以必士;試之官職,課其功伐,則庸人不疑於愚智。故明主之吏,宰相必起於州部,猛將必發於卒伍。夫有功者必賞,則爵祿厚而愈勸;遷官襲級,則官職大而愈治。夫爵祿大而官職治,王之道也。
【번역문 5】
담대자우(澹臺子羽)[⁹]는 군자의 용모를 지녔기에, 중니(仲尼)가 그를 보고 등용하였으나, 함께 오래 지내보니 행동이 그 용모에 걸맞지 않았다. 재여(宰予)[¹⁰]의 말은 우아하고 문채가 있었기에, 중니가 그를 보고 등용하였으나, 함께 지내보니 지혜가 그 변론을 채우지 못했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용모로 사람을 판단하다가 자우에게서 실수했고, 말로 사람을 판단하다가 재여에게서 실수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중니의 지혜로도 실상을 잃었다는 평판이 있는 것이다. 지금의 새로운 변론가들은 재여보다 심하고, 세상 군주들의 들음은 중니보다 현혹되기 쉬우니, 그 말을 기뻐하여 그 사람에게 임무를 맡긴다면 어찌 실수가 없겠는가? 이 때문에 위(魏)나라는 맹묘(孟卯)의 변론을 믿고 임용했다가 화하(華下)의 우환을 겪었고, 조(趙)나라는 마복(馬服)[¹¹]의 변론을 믿고 임용했다가 장평(長平)의 재앙을 겪었으니, 이 두 경우는 변론에 의지했다가 실패한 것이다. 무릇 주석(鑄錫)을 보고 청황색을 살펴서는, 구야(區冶)[¹²]라도 반드시 좋은 칼임을 알 수는 없지만, 물에서는 고니와 기러기를 베고 뭍에서는 망아지와 말을 자를 수 있다면, 노비라도 무딤과 날카로움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빨과 입, 생김새를 드러내 보여서는, 백락(伯樂)[¹³]이라도 반드시 좋은 말임을 알 수는 없지만, 수레를 주어 멍에를 메고 길의 끝까지 가는 것을 보면, 노비라도 둔한 말과 좋은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용모와 의복을 보고 말과 언변을 들어서는, 중니라도 반드시 훌륭한 선비임을 알 수는 없지만, 관직으로 시험하고 그 공적을 평가하면, 평범한 사람이라도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의 관리는, 재상은 반드시 주(州)나 부(部)의 하급 관리에서 나오고, 맹장은 반드시 병졸의 대오에서 나온다. 무릇 공이 있는 자는 반드시 상을 받으면, 작록이 두터워져 더욱 힘쓰게 된다. 관직을 옮기고 등급을 이어받으면, 관직이 높아져 더욱 잘 다스리게 된다. 무릇 작록이 크고 관직이 잘 다스려지는 것, 이것이 왕의 도리이다.
【주석 6】
澹臺子羽(담대자우): 성은 담대(澹臺), 이름은 멸명(滅明), 자는 자우(子羽). 공자의 제자로, 용모가 매우 추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여기서는 반대로 군자의 용모를 가졌다고 묘사된다. 어느 쪽이든 공자가 외모로 사람을 잘못 판단한 예로 인용된다.
宰予(재여): 자는 자아(子我). 공자의 제자로 언변이 뛰어났으나, 낮잠을 자다가 공자에게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朽木不可雕也)”는 꾸지람을 들은 일화로 유명하다.
馬服(마복): 조(趙)나라의 명장 조사의 아들인 조괄(趙括)을 가리킨다. 그는 병법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했으나 실전 경험이 없어, 장평 전투에서 진(秦)나라의 백기(白起)에게 대패하여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잃게 한 인물이다.
區冶(구야):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유명한 대장장이.
伯樂(백락): 춘추시대 진(秦)나라 사람으로 말을 감정하는 데 매우 뛰어났던 인물. 명마를 알아보는 사람의 대명사로 쓰인다.
【원문 6】
磐石千里,不可謂富;象人百萬,不可謂強。石非不大,數非不眾也,而不可謂富強者,磐不生粟,象人不可使距敵也。今商官技藝之士亦不墾而食,是地不墾與磐石一貫也。儒俠毋軍勞、顯而榮者則民不使,與象人同事也。夫禍知磐石象人,而不知禍商官儒俠為不墾之地、不使之民,不知事類者也。
【번역문 6】
반석(磐石)이 천 리에 걸쳐 있다 해도 부유하다 할 수 없고, 나무 인형[¹⁴]이 백만이라도 강하다 할 수 없다. 돌이 크지 않은 것이 아니고 수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부강(富强)하다고 할 수 없는 까닭은, 반석은 곡식을 내지 못하고 나무 인형은 적을 막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상인, 관리, 기예를 가진 선비들 또한 밭을 갈지 않고 먹고 사니, 이는 땅이 경작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석과 한가지이다. 유가와 협객은 군공(軍功) 없이 드러나고 영화로우니 백성들이 부림을 당하지 않으려 할 것이므로, 나무 인형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무릇 반석과 나무 인형이 해가 됨은 알면서도, 상인·관리·유가·협객이 경작되지 않는 땅이자 부릴 수 없는 백성으로서 해가 됨을 알지 못하는 것은, 사물의 유사성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주석 7】
象人(상인): 나무나 흙으로 만든 사람 형상. 여기서는 실질적인 전투력이 없는 존재를 비유한다.
【원문 7】
故敵國之君王雖說吾義,吾弗入貢而臣;關內之侯雖非吾行,吾必使執禽而朝。是故力多則人朝,力寡則朝於人,故明君務力。夫嚴家無悍虜,而慈母有敗子,吾以此知威勢之可以禁暴,而德厚之不足以止亂也。
【번역문 7】
그러므로 적국의 군왕이 비록 나의 의(義)를 기뻐하더라도 나는 조공을 바치며 신하가 되지 않을 것이고, 관내의 제후가 비록 나의 행동을 비난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들이 예물을 들고 와 조회하게 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힘이 많으면 남이 조회하러 오고, 힘이 적으면 남에게 조회하러 가니,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힘쓰는 데에 힘쓴다. 무릇 엄한 집안에는 사나운 노비가 없고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망나니 자식이 있으니, 나는 이로써 위세(威勢)가 포악함을 금할 수 있고, 두터운 덕(德)은 혼란을 그치게 하기에 부족함을 안다.
【원문 8】
夫聖人之治國,不恃人之為吾善也,而用其不得為非也。恃人之為吾善也,境內不什數;用人不得為非,一國可使齊。為治者用眾而舍寡,故不務德而務法。夫必恃自直之箭,百世無矢;恃自圜之木,千世無輪矣。自直之箭、自圜之木,百世無有一,然而世皆乘車射禽者何也?隱栝之道用也。雖有不恃隱栝而有自直之箭、自圜之木,良工弗貴也,何則?乘者非一人,射者非一發也。不恃賞罰而恃自善之民,明主弗貴也,何則?國法不可失,而所治非一人也。故有術之君,不隨適然之善,而行必然之道。
【번역문 8】
무릇 성인(聖人)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사람이 나를 위해 선(善)을 행할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릇된 짓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람이 나를 위해 선을 행할 것을 믿는다면, 나라 안에서 (그런 사람은) 열에 몇 명도 되지 않는다. 사람이 그릇된 짓을 할 수 없게 만들면, 온 나라를 가지런히 할 수 있다. 다스리는 자는 다수를 이용하고 소수를 버리므로, 덕(德)에 힘쓰지 않고 법(法)에 힘쓴다. 무릇 반드시 저절로 곧은 화살을 믿는다면 백 세대가 지나도 화살이 없을 것이고, 저절로 둥근 나무를 믿는다면 천 세대가 지나도 수레바퀴가 없을 것이다. 저절로 곧은 화살과 저절로 둥근 나무는 백 세대에 하나도 없는데,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수레를 타고 새를 쏘는 것은 어째서인가? 바로잡고 구부리는 도구[¹⁵]의 도(道)가 쓰이기 때문이다. 비록 도구를 믿지 않아도 저절로 곧은 화살과 저절로 둥근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훌륭한 장인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수레를 타는 자가 한 사람이 아니고, 화살을 쏘는 것이 한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벌을 믿지 않고 저절로 선한 백성을 믿는 것을, 현명한 군주는 귀하게 여기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나라의 법은 잃을 수 없고, 다스리는 대상이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술(術)이 있는 군주는 우연한 선(善)을 따르지 않고, 필연적인 도(道)를 행한다.
【주석 8】
隱栝(은栝): 굽은 것을 바로 펴거나 곧은 것을 구부리는 데 쓰는 도지개와 같은 도구. 여기서는 백성들의 본성을 교정하고 일정한 규범에 맞추도록 강제하는 법(法)과 제도(制度)를 비유한다.
【원문 9】
今或謂人曰:「使子必智而壽」,則世必以為狂。夫智、性也,壽、命也,性命者,非所學於人也,而以人之所不能為說人,此世之所以謂之為狂也。謂之不能,然則是諭也。夫諭、性也。以仁義教人,是以智與壽說也,有度之主弗受也。故善毛嗇、西施之美,無益吾面,用脂澤粉黛則倍其初。言先王之仁義,無益於治,明吾法度,必吾賞罰者亦國之脂澤粉黛也。故明主急其助而緩其頌,故不道仁義。
【번역문 9】
지금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그대를 반드시 지혜롭고 장수하게 해주겠다.”라고 한다면, 세상은 반드시 그를 미쳤다고 여길 것이다. 무릇 지혜는 타고난 성품이고, 장수는 타고난 운명이니, 성품과 운명은 남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남을 설득하니, 이것이 세상에서 그를 미쳤다고 이르는 까닭이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그렇다면 이는 깨우치는 것이다. 무릇 깨우침은 본성이다. 인의(仁義)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지혜와 장수로 설득하는 것과 같으니, 법도가 있는 군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장(毛嬙)과 서시(西施)[¹⁶]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것은 내 얼굴에 아무런 이익이 없고, 연지와 기름, 분과 먹을 사용하면 처음보다 배나 나아진다. 선왕의 인의를 말하는 것은 다스림에 이익이 없고, 나의 법도를 밝히고 나의 상벌을 반드시 행하는 것이 또한 나라의 연지와 기름, 분과 먹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그 도움이 되는 것을 서두르고 그 칭송하는 것을 늦추므로, 인의를 말하지 않는다.
【주석 9】
毛嬙、西施(모장, 서시):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전설적인 미녀들. 한비는 이들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것이 현실의 외모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듯, 과거 성왕의 인의를 칭송하는 것도 현실 정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공허한 말이라고 비판한다.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 것은 법도와 상벌이라는 ‘화장품(脂澤粉黛)’이라고 비유한다.
【원문 10】
今巫祝之祝人曰:「使若千秋萬歲。」千秋萬歲之聲聒耳,而一日之壽無徵於人,此人所以簡巫祝也。今世儒者之說人主,不善今之所以為治,而語已治之功;不審官法之事,不察姦邪之情,而皆道上古之傳,譽先王之成功。儒者飾辭曰:「聽吾言則可以霸王。」此說者之巫祝,有度之主不受也。故明主舉實事,去無用;不道仁義者故,不聽學者之言。
【번역문 10】
지금 무당과 축관이 사람을 위해 축원하며 말하기를, “그대가 천년만년 살게 하소서.”라고 한다. 천년만년의 소리는 귀를 시끄럽게 하지만, 단 하루의 수명 연장도 사람에게 증험이 없으니, 이것이 사람들이 무당과 축관을 업신여기는 까닭이다. 지금 세상의 유학자들이 군주를 설득함에, 지금 다스려지는 까닭은 좋게 여기지 않고 이미 다스려졌던 공적만을 이야기하며, 관리와 법의 일은 살피지 않고 간사하고 사악한 실정은 살피지 않으면서, 모두 상고 시대의 전설을 말하고 선왕의 성공을 칭송한다. 유학자들은 말을 꾸며 말하기를, “저의 말을 들으시면 패왕(霸王)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 이는 유세가 중의 무당과 축관이니, 법도가 있는 군주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실질적인 일을 들고 쓸모없는 것을 버리며, 인의를 말하지 않는 까닭에 학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원문 11】
今不知治者必曰:「得民之心。」欲得民之心而可以為治,則是伊尹、管仲無所用也,將聽民而已矣。民智之不可用,猶嬰兒之心也。夫嬰兒不剔首則腹痛,不揊痤則寖益,剔首、揊痤必一人抱之,慈母治之,然猶啼呼不止,嬰兒子不知犯其所小苦致其所大利也。今上急耕田墾草以厚民產也,而以上為酷;修刑重罰以為禁邪也,而以上為嚴;徵賦錢粟以實倉庫、且以救饑饉備軍旅也,而以上為貪;境內必知介,而無私解,并力疾鬥所以禽虜也,而以上為暴。此四者所以治安也,而民不知悅也。夫求聖通之士者,為民知之不足師用。昔禹決江濬河而民聚瓦石,子產開畝樹桑鄭人謗訾。禹利天下,子產存鄭,皆以受謗,夫民智之不足用亦明矣。故舉士而求賢智,為政而期適民,皆亂之端,未可與為治也。
【번역문 11】
지금 다스림을 알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말하기를,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라고 한다. 백성의 마음을 얻어서 다스릴 수 있다면, 이는 이윤(伊尹)과 관중(管仲)[¹⁷]도 쓸모가 없을 것이고, 장차 백성의 말만 들으면 될 것이다. 백성의 지혜를 쓸 수 없는 것은, 마치 갓난아기의 마음과 같다. 무릇 갓난아기는 머리를 깎아주지 않으면[¹⁸] 배가 아프고, 종기를 째주지 않으면 병이 더욱 심해지는데, 머리를 깎고 종기를 째려면 반드시 한 사람이 그를 안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치료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울부짖기를 그치지 않으니, 갓난아기는 작은 고통을 겪음으로써 큰 이로움을 이룬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군주가 밭 갈고 황무지 개간을 서둘러 백성의 생산물을 두텁게 하려 하면, 군주가 혹독하다고 여기고, 형벌을 정비하고 벌을 무겁게 하여 사악함을 금하려 하면, 군주가 엄격하다고 여기며, 부세를 거두고 돈과 곡식을 징수하여 창고를 채우고 또한 기근을 구제하고 군대를 대비하려 하면, 군주가 탐욕스럽다고 여기고,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이 반드시 갑옷 입는 법을 알고 사사로이 해이해지지 않으며, 힘을 합쳐 맹렬히 싸워 적을 사로잡으려 하면, 군주가 포악하다고 여긴다. 이 네 가지는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방법인데도, 백성들은 기뻐할 줄을 모른다. 무릇 성스럽고 통달한 선비를 구하는 것은, 백성의 지혜가 스승으로 삼아 쓰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옛날 우(禹)임금이 강을 터고 하천을 깊게 파자 백성들이 기왓장과 돌을 던졌고, 자산(子產)이 밭두둑을 열고 뽕나무를 심자 정(鄭)나라 사람들이 그를 비방했다. 우임금은 천하를 이롭게 했고 자산은 정나라를 보존했지만, 모두 비방을 받았으니, 무릇 백성의 지혜가 쓰기에 부족함은 또한 명백하다. 그러므로 선비를 등용하여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를 구하고, 정치를 함에 백성에게 맞추기를 기약하는 것은, 모두 혼란의 단초이니, 더불어 다스림을 꾀할 수 없다.
【주석 10】
伊尹、管仲(이윤, 관중): 이윤은 상(商)나라 탕왕(湯王)을 도와 하나라를 멸하고 상나라를 세운 명재상이며, 관중은 춘추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패업을 이룬 명재상이다. 한비는 이들처럼 위대한 재상조차 백성의 뜻에만 따르지 않고 부국강병을 위한 정책을 시행했음을 암시하며, ‘민심’에 의존하는 정치의 허구성을 비판한다.
剔首(척수): 머리카락을 깎는 것. 고대에 유아의 특정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민간요법의 일종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종기를 째는 것(揊痤)과 함께,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로운 조치를 비유한다.
韓非子 忠孝 (한비자 충효) 번역 및 주석
[원문 1]
忠孝:
天下皆以孝悌忠順之道為是也,而莫知察孝悌忠順之道而審行之,是以天下亂。皆以堯、舜之道為是而法之,是以有弒君,有曲於父。堯、舜、湯、武,或反君臣之義,亂後世之教者也。堯為人君而君其臣,舜為人臣而臣其君,湯、武為人臣而弒其主、刑其尸,而天下譽之,此天下所以至今不治者也。夫所謂明君者,能畜其臣者也;所謂賢臣者,能明法辟、治官職以戴其君者也。今堯自以為明而不能以畜舜,舜自以為賢而不能以戴堯,湯、武自以為義而弒其君長,此明君且常與,而賢臣且常取也。故至今為人子者有取其父之家,為人臣者有取其君之國者矣。父而讓子,君而讓臣,此非所以定位一教之道也。臣之所聞曰:「臣事君,子事父,妻事夫,三者順則天下治,三者逆則天下亂,此天下之常道也,明王賢臣而弗易也。」則人主雖不肖,臣不敢侵也。今夫上賢任智無常,逆道也;而天下常以為治,是故田氏奪呂氏於齊,戴氏奪子氏於宋,此皆賢且智也,豈愚且不肖乎?是廢常、上賢則亂,舍法、任智則危。故曰:「上法而不上賢。」
[번역문]
충효(忠孝)¹⁾:
천하가 모두 효(孝)·제(悌)·충(忠)·순(順)의 도(道)를 옳다고 여기지만, 효·제·충·순의 도를 살펴서 신중하게 행할 줄 아는 이가 없으니, 이 때문에 천하가 어지럽다. 모두 요(堯)·순(舜)의 도를 옳다고 여기고 그것을 본받으니, 이 때문에 군주를 시해하는 일이 있고, 아버지에게 도리를 굽히는 일이 있다. 요·순·탕(湯)·무(武)는, 군신(君臣)의 의(義)를 뒤엎고 후세의 가르침을 어지럽힌 자들이다.²⁾ 요는 군주가 되어 그 신하에게 군주 노릇을 하였으나, 순은 신하가 되어 그 군주를 신하로 삼았다.³⁾ 탕과 무는 신하가 되어 그 군주를 시해하고 그 시신에 형벌을 가했는데도 천하가 이를 칭송하니, 이것이 천하가 지금까지 다스려지지 않는 까닭이다. 무릇 이른바 현명한 군주[明君]란, 그 신하를 잘 기르고 제어할[畜]⁴⁾ 수 있는 자이다. 이른바 현명한 신하[賢臣]란, 법(法)을 밝히고 관직을 잘 다스려 그 군주를 받드는 자이다. 지금 요는 스스로 현명하다고 여겼으나 순을 제어하지 못했고, 순은 스스로 현명하다고 여겼으나 요를 받들지 못했으며, 탕과 무는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그 군주를 시해했으니, 이는 현명한 군주는 항상 (나라를) 내어주고, 현명한 신하는 항상 (나라를) 빼앗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아들 된 자로서 그 아버지의 집안을 빼앗는 자가 있고, 신하 된 자로서 그 군주의 나라를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양보하고, 군주가 신하에게 양보하는 것은, 이는 지위를 정하고 가르침을 하나로 하는 방법이 아니다. 신이 들은 바에 이르기를, “신하는 군주를 섬기고,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며, 아내는 남편을 섬기니, 이 세 가지가 순조로우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이 세 가지가 거스르면 천하가 어지러워지니, 이는 천하의 변치 않는 도[常道]이며, 현명한 왕과 현명한 신하라도 이를 바꾸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면 군주가 비록 못났더라도, 신하가 감히 침범하지 못한다. 지금 무릇 현명함을 숭상하고 지혜로운 자를 임용함에 일정한 기준이 없는 것은, 도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천하가 항상 이것을 다스림이라 여기니, 이런 까닭에 전씨(田氏)가 제(齊)나라에서 여씨(呂氏)의 나라를 빼앗고, 대씨(戴氏)가 송(宋)나라에서 자씨(子氏)의 나라를 빼앗았으니, 이들은 모두 현명하고 또한 지혜로웠지, 어찌 어리석고 못났겠는가? 이는 변치 않는 도를 폐하고 현명함을 숭상하면 어지러워지고, 법을 버리고 지혜로운 자를 임용하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법을 숭상하고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는다[上法而不上賢].”⁵⁾고 하는 것이다.
[주석]
1) 충효(忠孝): 이 편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한비자는 유가(儒家)에서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충(忠)과 효(孝)를 그대로 긍정하지 않는다. 그는 유가에서 성인(聖人)으로 추앙하는 순(舜), 탕(湯), 무(武) 등의 행위를 ‘불충’과 ‘불효’의 사례로 재해석하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도덕(仁, 義, 賢)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법(法)만이 국가 질서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함을 논증한다.
2) 요(堯)·순(舜)·탕(湯)·무(武): 유가에서 이상적인 군주로 꼽는 전설상의 제왕들. 한비자는 이들의 행적을 법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요·순의 선양(禪讓)은 신하에 의한 찬탈로, 탕·무의 혁명은 신하에 의한 시해(弑害)로 규정한다.
3) 순위인신이신기군(舜為人臣而臣其君): “순은 신하가 되어 그 군주를 신하로 삼았다”는 뜻. ‘신기군(臣其君)’은 목적어인 ‘군(君)’을 동사 ‘신(臣)’의 행위 대상으로 만들어 ‘군주를 신하로 부리다’, 즉 군주의 권력을 빼앗고 찬탈했음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4) 축(畜): ‘가축을 기르다’는 뜻 외에, ‘제어하다’, ‘통제하다’, ‘관리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법가 사상에서 군주가 신하를 다루는 방법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다.
5) 상법이불상현(上法而不上賢): “법을 숭상하고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는다.” 한비자 법치 사상의 핵심 명제 중 하나이다. 군주의 통치 기준은 인물에 대한 주관적 평가(賢)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객관적인 법(法)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원문 2]
記曰:「舜見瞽瞍,其容造焉。孔子曰:當是時也,危哉!天下岌岌,有道者、父固不得而子,君固不得而臣也。」臣曰:孔子本未知孝悌忠順之道也。然則有道者,進不為臣主,退不為父子耶?父之所以欲有賢子者,家貧則富之,父苦則樂之;君之所以欲有賢臣者,國亂則治之,主卑則尊之。今有賢子而不為父,則父之處家也苦;有賢臣而不為君,則君之處位也危。然則父有賢子,君有賢臣,適足以為害耳,豈得利哉!焉所謂忠臣不危其君,孝子不非其親?今舜以賢取君之國,而湯、武以義放弒其君,此皆以賢而危主者也,而天下賢之。古之烈士,進不臣君,退不為家,是進則非其君,退則非其親者也。且夫進不臣君,退不為家,亂世絕嗣之道也。是故賢堯、舜、湯、武而是烈士,天下之亂術也。瞽瞍為舜父而舜放之,象為舜弟而殺之。放父殺弟,不可謂仁;妻帝二女而取天下,不可謂義。仁義無有,不可謂明。《詩》云:「普天之下,莫非王土,率土之濱,莫非王臣。」信若詩之言也,是舜出則臣其君,入則臣其父、妾其母、妻其主女也。故烈士內不為家,亂世絕嗣;而外矯於君,朽骨爛肉,施於土地,流於川谷,不避蹈水火,使天下從而效之,是天下遍死而願夭也,此皆釋世而不治是也。世之所為烈士者,雖眾獨行,取異於人,為恬淡之學而理恍惚之言。臣以為恬淡,無用之教也;恍惚,無法之言也。言出於無法,教出於無用者,天下謂之察。臣以為人生必事君養親,事君養親不可以恬淡;之人必以言論忠信法術,言論忠信法術不可以恍惚。恍惚之言,恬淡之學,天下之惑術也。孝子之事父也,非競取父之家也;忠臣之事君也,非競取君之國也。夫為人子而常譽他人之親曰:「某子之親,夜寢早起,強力生財以養子孫臣妾」,是誹謗其親者也。為人臣常譽先王之德厚而願之,是誹謗其君者也。非其親者知謂之不孝,而非其君者天下此賢之,此所以亂也。故人臣毋稱堯、舜之賢,毋譽湯、武之伐,毋言烈士之高,盡力守法,專心於事主者為忠臣。
[번역문]
기록에 이르기를, “순(舜)이 고수(瞽瞍)¹⁾를 뵐 때, 그 용모가 조심스러웠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이때를 당하여, 위태롭구나! 천하가 위태위태하니, 도(道)가 있는 세상에서는 아버지가 진실로 아들을 아들로 삼지 못하고, 군주가 진실로 신하를 신하로 삼지 못하는구나.’라고 하였다.” 신이 말하건대, 공자는 본래 효(孝)·제(悌)·충(忠)·순(順)의 도를 알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가 있는 세상에서는, 나아가서는 군주를 신하로 삼지 않고, 물러나서는 아버지를 아들로 삼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버지가 현명한 아들을 바라는 까닭은, 집안이 가난하면 부유하게 해주고, 아버지가 고생하면 즐겁게 해주기 위함이다. 군주가 현명한 신하를 바라는 까닭은, 나라가 어지러우면 다스려주고, 군주가 비천하면 존귀하게 해주기 위함이다. 지금 현명한 아들이 있으나 아버지를 위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집안에 처함이 고통스럽고, 현명한 신하가 있으나 군주를 위하지 않으면, 군주가 지위에 처함이 위태롭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현명한 아들을 두고, 군주가 현명한 신하를 두는 것은, 마침 해가 되기에 족할 뿐이니, 어찌 이익을 얻겠는가! 어찌 이른바 충신은 그 군주를 위태롭게 하지 않고, 효자는 그 어버이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지금 순은 현명함으로 군주의 나라를 빼앗았고, 탕(湯)과 무(武)는 의(義)로써 그 군주를 내쫓고 시해했으니, 이들은 모두 현명함으로 군주를 위태롭게 한 자들인데, 천하가 그들을 현명하다고 여긴다. 옛날의 열사(烈士)는, 나아가서는 군주를 신하로 섬기지 않고, 물러나서는 집안을 위하지 않으니, 이는 나아가서는 그 군주를 비난하고, 물러나서는 그 어버이를 비난하는 자이다. 또한 무릇 나아가서는 군주를 신하로 섬기지 않고, 물러나서는 집안을 위하지 않는 것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후사를 끊는 길이다. 이런 까닭에 요·순·탕·무를 현명하다 여기고 열사를 옳다고 여기는 것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술수이다. 고수는 순의 아버지였으나 순은 그를 내쫓았고, 상(象)은 순의 동생이었으나 그를 죽였다. 아버지를 내쫓고 동생을 죽인 것은, 인(仁)이라 할 수 없다. 황제의 두 딸을 아내로 삼고 천하를 빼앗은 것은, 의(義)라 할 수 없다. 인의가 없으니, 명(明)이라 할 수 없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넓은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곳이 없고, 땅의 끝까지, 왕의 신하 아닌 이가 없다.”고 하였다. 진실로 시의 말과 같다면, 이는 순이 나가서는 그 군주를 신하로 삼고, 들어와서는 그 아버지를 신하로 삼고, 그 어머니를 첩으로 삼으며, 그 군주의 딸을 아내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열사는 안으로는 집안을 위하지 않아, 어지러운 세상에서 후사를 끊게 하고, 밖으로는 군주에게 거짓을 행하며, 썩은 뼈와 문드러진 살이 토지에 흩어지고, 강과 골짜기에 흘러 다니며, 물과 불에 뛰어드는 것을 피하지 않으니, 천하로 하여금 따라서 그것을 본받게 한다면, 이는 천하가 두루 죽고 일찍 죽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는 모두 세상을 버리고 다스리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이른바 열사라는 자는, 비록 무리와 함께 있으나 홀로 행하고, 남과 다름을 취하며, 담담함[恬淡]의 학문을 하고 황홀한[恍惚] 말을 다룬다. 신이 생각건대 담담함은, 쓸모없는 가르침이고, 황홀함은, 법이 없는 말이다. 말이 법 없음에서 나오고, 가르침이 쓸모없음에서 나오는 것을, 천하가 명찰(明察)하다고 일컫는다. 신이 생각건대 인생은 반드시 군주를 섬기고 어버이를 봉양해야 하니, 군주를 섬기고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은 담담함으로써 할 수 없다. 사람은 반드시 말로써 충신(忠信)과 법술(法術)을 논해야 하니, 충신과 법술을 논하는 것은 황홀함으로써 할 수 없다. 황홀한 말과 담담한 학문은, 천하를 미혹시키는 술수이다. 효자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은, 다투어 아버지의 집안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충신이 군주를 섬기는 것은, 다투어 군주의 나라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 무릇 아들 된 자로서 항상 다른 사람의 어버이를 칭찬하여 말하기를, “아무개 아들의 어버이는, 밤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힘써 재물을 생산하여 자손과 신하, 첩을 봉양한다.”고 한다면, 이는 그 어버이를 비방하는 자이다. 신하 된 자로서 항상 선왕(先王)의 덕이 두터움을 칭찬하고 그것을 바란다면, 이는 그 군주를 비방하는 자이다. 그 어버이를 비난하는 자는 불효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 군주를 비난하는 자를 천하가 현명하다고 여기니, 이것이 어지러워지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신하는 요·순의 현명함을 칭송하지 말고, 탕·무의 정벌을 칭찬하지 말며, 열사의 고상함을 말하지 말고, 힘을 다해 법을 지키며, 오로지 군주를 섬기는 데에 마음을 쓰는 자가 충신이다.
[주석]
1) 고수(瞽瞍): 순(舜)임금의 아버지. 눈이 먼 장님이었다고 전해진다. 유가 경전에서는 순이 완악한 아버지와 계모, 이복동생의 학대 속에서도 효를 다했다고 묘사하지만, 한비자는 이를 비틀어 순이 아버지를 내쫓고 동생을 죽였다고 서술하며 유가적 효(孝)의 위선을 공격한다.
[원문 3]
古者黔首悗密惷愚,故可以虛名取也。今民儇詗智慧,欲自用,不聽上,上必且勸之以賞然後可進,又且畏之以罰然後不敢退。而世皆曰:「許由讓天下,賞不足以勸;盜跖犯刑赴難,罰不足以禁。」臣曰:未有天下而無以天下為者許由是也,已有天下而無以天下為者堯、舜是也;毀廉求財,犯刑趨利,忘身之死者,盜跖是也。此二者殆物也,治國用民之道也不以此二者為量。治也者,治常者也;道也者,道常者也。殆物妙言,治之害也。天下太平之士,不可以賞勸也;天下太平之士,不可以刑禁也。然為太上士不設賞,為太下士不設刑,則治國用民之道失矣。故世人多不言國法而言從橫。諸侯言從者曰:「從成必霸」,而言橫者曰「橫成必王」,山東之言從橫未嘗一日而止也,然而功名不成,霸王不立者,虛言非所以成治也。王者獨行謂之王,是以三王不務離合而正,五霸不待從橫而察,治內以裁外而已矣。
[번역문]
옛날에는 백성[黔首]¹⁾이 어리석고 순박하였으므로, 헛된 이름[虛名]으로도 그들을 취할 수 있었다. 지금 백성은 교활하고 지혜로워, 스스로 쓰이기를 바라고 윗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니, 윗사람은 반드시 장차 상으로써 그들을 권면한 뒤에야 나아가게 할 수 있고, 또한 장차 벌로써 그들을 두렵게 한 뒤에야 감히 물러서지 않는다. 그런데도 세상은 모두 말하기를, “허유(許由)는 천하를 사양했으니, 상으로도 족히 권면할 수 없고, 도척(盜跖)은 형벌을 어기고 어려움에 뛰어들었으니, 벌로도 족히 금할 수 없다.”고 한다. 신이 말하건대, 천하를 아직 갖지 않았는데도 천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자는 허유가 바로 그 사람이고, 이미 천하를 가졌는데도 천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자는 요(堯)·순(舜)이 바로 그 사람들이다. 청렴함을 훼손하고 재물을 구하며, 형벌을 어기고 이익으로 달려가, 자기 몸의 죽음을 잊은 자는, 도척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이 두 부류는 위험한 존재[殆物]이니,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부리는 도는 이 두 부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다스림이란, 평범한 것[常者]을 다스리는 것이고, 도(道)란, 평범한 것을 인도하는 것이다. 위험한 존재와 미묘한 말은, 다스림의 해악이다. 천하의 태평한 선비는, 상으로써 권면할 수 없고, 천하의 태평한 선비는, 형벌로써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최상의 선비를 위해 상을 설치하지 않고, 최하의 선비를 위해 형벌을 설치하지 않는다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부리는 도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나라의 법을 말하지 않고 합종연횡[從橫]을 말한다. 제후 중에 합종을 말하는 자는 “합종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패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고, 연횡을 말하는 자는 “연횡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왕이 될 것이다.”라고 하니, 산동(山東)²⁾에서 합종연횡을 말하는 것이 하루도 그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공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패왕(霸王)이 서지 못하는 것은, 헛된 말이 다스림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왕자(王者)는 홀로 행하는 것을 일러 왕이라 하니, 이 때문에 삼왕(三王)은 이합집산에 힘쓰지 않고도 바르게 되었고, 오패(五霸)는 합종연횡을 기다리지 않고도 밝게 살폈으니, 안을 다스려 밖을 재단했을 따름이다.
[주석]
1) 검수(黔首): ‘검은 머리’라는 뜻으로, 고대 중국에서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2) 산동(山東): 전국시대에 효산(崤山)이나 화산(華山)의 동쪽에 위치한 여섯 나라, 즉 제(齊), 초(楚), 연(燕), 한(韓), 위(魏), 조(趙)를 가리킨다. 이들 나라는 진(秦)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합종책과 연횡책을 활발히 논의했다.
韓非子 第51篇 - 人主 (군주)
원문 및 번역
【원문 1】
人主之所以身危國亡者,大臣太貴,左右太威也。所謂貴者,無法而擅行,操國柄而便私者也。所謂威者,擅權勢而輕重者也。此二者,不可不察也。夫馬之所以能任重引車致遠道者,以筋力也。萬乘之主、千乘之君所以制天下而征諸侯者,以其威勢也。威勢者,人主之筋力也。今大臣得威,左右擅勢,是人主失力,人主失力而能有國者,千無一人。虎豹之所以能勝人執百獸者,以其爪牙也,當使虎豹失其爪牙,則人必制之矣。今勢重者,人主之爪牙也,君人而失其爪牙,虎豹之類也。宋君失其爪牙於子罕,簡公失其爪牙於田常,而不蚤奪之,故身死國亡。今無術之主,皆明知宋、簡之過也,而不悟其失,不察其事類者也。
【번역문 1】
군주의 몸이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망하는 까닭은, 대신(大臣)이 너무 존귀해지고 측근(左右)이 너무 위세 등등해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존귀하다는 것은,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하며, 나라의 권병(權柄)을 쥐고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것이다. 이른바 위세가 있다는 것은, 권세(權勢)를 독차지하여 (사물을) 마음대로 경중을 가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무릇 말이 무거운 짐을 지고 수레를 끌어 먼 길을 갈 수 있는 까닭은 그 근력(筋力) 때문이다. 만승(萬乘)의 군주와 천승(千乘)의 군주가 천하를 제압하고 제후를 정벌할 수 있는 까닭은 그 위세(威勢) 때문이다. 위세란 군주의 근력이다. 지금 대신이 위엄을 얻고 측근이 권세를 독차지한다면, 이는 군주가 힘을 잃는 것이다. 군주가 힘을 잃고서도 나라를 보존할 수 있는 자는 천에 하나도 없다. 호랑이와 표범이 사람을 이기고 온갖 짐승을 사로잡을 수 있는 까닭은 그 발톱과 어금니(爪牙) 때문이다. 만약 호랑이와 표범으로 하여금 그 발톱과 어금니를 잃게 한다면, 사람이 반드시 그들을 제압할 것이다. 지금 권세 있는 자리는 군주의 발톱과 어금니이다. 사람의 군주가 되어 그 발톱과 어금니를 잃는 것은, 호랑이와 표범의 경우와 같다. 송(宋)나라 군주는 그 발톱과 어금니를 자한(子罕)에게 잃었고, (제나라) 간공(簡公)은 그 발톱과 어금니를 전상(田常)에게 잃었으나[¹], 일찍이 그것을 빼앗지 않았으므로 몸이 죽고 나라가 망했다. 지금 술(術)이 없는 군주들은 모두 송나라 군주와 간공의 잘못을 명백히 알면서도, 자신의 실수는 깨닫지 못하니, 이는 그 일의 유형[²]을 살피지 못하는 것이다.
【주석 1】
宋君…子罕,簡公…田常(송군…자한, 간공…전상): 자한(子罕)은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권신으로 국정을 장악하였다. 전상(田常)은 제(齊)나라의 대부로, 간공(簡公)을 시해하고 권력을 찬탈하여 훗날 전씨(田氏)가 제나라를 차지하는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한비는 이들을 군주의 권력(爪牙)을 빼앗아 나라를 위태롭게 한 신하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事類(사류): ‘일의 유형’ 또는 ‘사물의 범주’. 개별적인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속한 보편적인 유형이나 원리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비는 다른 나라의 역사적 실패를 단지 개별 사건으로만 보고, 그것이 자신의 상황과 같은 ‘권력이 신하에게 넘어가는 유형’에 속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군주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이는 법가(法家)의 중요한 인식론적 개념이다.
【원문 2】
且法術之士,與當途之臣,不相容也。何以明之?主有術士,則大臣不得制斷,近習不敢賣重,大臣左右權勢息,則人主之道明矣。今則不然,其當途之臣得勢擅事以環其私,左右近習朋黨比周以制疏遠,則法術之士奚時得進用,人主奚時得論裁?故有術不必用,而勢不兩立,法術之士焉得無危?故君人者非能退大臣之議,而背左右之訟,獨合乎道言也;則法術之士安能蒙死亡之危而進說乎?此世之所以不治也。明主者,推功而爵祿,稱能而官事,所舉者必有賢,所用者必有能,賢能之士進,則私門之請止矣。夫有功者受重祿,有能者處大官,則私劍之士安得無離於私勇而疾距敵,游宦之士焉得無撓於私門而務於清潔矣?此所以聚賢能之士,而散私門之屬也。今近習者不必智,人主之於人也或有所知而聽之,入因與近習論其言,聽近習而不計其智,是與愚論智也。其當途者不必賢,人主之於人或有所賢而禮之,入因與當途者論其行,聽其言而不用賢,是與不肖論賢也。故智者決策於愚人,賢士程行於不肖,則賢智之士奚時得用,而主之明塞矣。昔關龍逢說桀而傷其四肢,王子比干諫紂而剖其心,子胥忠直夫差而誅於屬鏤。此三子者,為人臣非不忠,而說非不當也。然不免於死亡之患者,主不察賢智之言,而蔽於愚不肖之患也。今人主非肯用法術之士,聽愚不肖之臣,則賢智之士、孰敢當三子之危而進其智能者乎?此世之所以亂也。
【번역문 2】
또한 법술(法術)의 선비는 권력을 잡은 신하와 서로 용납될 수 없다. 무엇으로 이를 밝힐 수 있는가? 군주에게 술(術)을 아는 선비가 있으면, 대신은 제멋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측근들은 감히 권세를 팔지 못하며, 대신과 측근의 권세가 사라지면 군주의 도(道)가 밝아질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권력을 잡은 신하들은 권세를 얻어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여 그 사사로움을 둘러싸고, 측근들은 붕당(朋黨)을 만들고 패거리를 지어[³] 소원한 자들을 제압하니, 법술의 선비가 어느 때에 등용될 수 있으며, 군주가 어느 때에 판단하고 재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술(術)이 있어도 반드시 쓰이는 것이 아니고, 형세상 양립할 수 없으니, 법술의 선비가 어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군주 된 자가 대신의 주장을 물리치고 측근의 송사를 등지고 오직 도(道)에 부합하는 말만을 따를 수 없다면, 법술의 선비가 어찌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 유세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세상이 다스려지지 않는 까닭이다. 현명한 군주는 공(功)을 따져 작록을 주고, 능력에 맞춰 관직을 주니, 등용된 자는 반드시 현명하고 쓰이는 자는 반드시 유능하다. 현명하고 유능한 선비가 나아가면, 사사로운 가문을 통한 청탁이 그치게 된다. 무릇 공이 있는 자는 두터운 녹을 받고, 능력이 있는 자는 높은 관직에 머무르면, 사사로운 용맹을 부리던 자객[⁴]이 어찌 사사로운 용맹을 버리고 적을 힘껏 막지 않겠으며, 벼슬을 구하던 선비가 어찌 사사로운 가문에 빌붙지 않고 청렴결백에 힘쓰지 않겠는가? 이것이 현명하고 유능한 선비를 모으고, 사사로운 가문에 속한 무리를 흩어지게 하는 방법이다. 지금 측근이라 해서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닌데, 군주가 어떤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있어 그의 말을 들으려 하다가, 궁에 들어가서는 측근과 그 말을 논의하고, 측근의 말을 들으면서 그 지혜는 헤아리지 않으니, 이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를 논하는 것이다. 권력을 잡은 자라 해서 반드시 현명한 것은 아닌데, 군주가 어떤 사람에 대해 현명하다 여겨 예우하려 하다가, 궁에 들어가서는 권력자와 그 행동을 논의하고, 그의 말을 들으면서 현명한 자는 쓰지 않으니, 이는 못난 자와 현명함을 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에게 정책 결정을 받고, 현명한 선비가 못난 자에게 행동을 평가받는다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비가 어느 때에 등용될 수 있으며, 군주의 밝음은 막히게 될 것이다. 옛날 관룡봉(關龍逢)은 걸(桀)에게 유세하다가 사지가 잘렸고, 왕자 비간(比干)은 주(紂)에게 간하다가 심장이 파헤쳐졌으며, 자서(子胥)는 부차(夫差)에게 충직했으나 속루(屬鏤)라는 칼에 죽임을 당했다.[⁵] 이 세 사람은 신하로서 충성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었고, 유세가 부당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죽음의 우환을 면치 못한 것은, 군주가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의 말을 살피지 않고, 어리석고 못난 자의 폐단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지금 군주가 법술의 선비를 기꺼이 쓰지 않고 어리석고 못난 신하의 말을 듣는다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비 중에 누가 감히 세 사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지혜와 능력을 바치겠는가? 이것이 세상이 혼란스러운 까닭이다.
【주석 3】
朋黨比周(붕당비주):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朋黨)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서로 감싸고 도는 것(比周)을 의미한다. 이는 공적인 질서를 해치는 행위로, 법가에서 가장 경계하는 신하들의 행태 중 하나이다.
私劍之士(사검지사): 사사로운 원한이나 의리를 위해 칼을 쓰는 사람, 즉 협객(俠客)을 가리킨다. 법가는 이들이 국가의 공법(公法)을 따르지 않고 사적인 무력을 행사하므로 사회 혼란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關龍逢…比干…子胥(관룡봉…비간…자서): 모두 군주에게 충언을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충신의 대명사들이다. 관룡봉은 하(夏)나라 걸왕(桀王)에게, 비간은 은(殷)나라 주왕(紂王)에게, 오자서(伍子胥)는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간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한비는 이들의 죽음이 군주가 어리석은 측근들에게 휘둘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군주가 객관적인 ‘술(術)’에 의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韓非子 第52篇 - 飭令 (법령을 정비함)
원문 및 번역
【원문 1】
飭令則法不遷,法平則吏無姦。法已定矣,不以善言售法。任功則民少言,任善則民多言。行法曲斷,以五里斷者王,以九里斷者強,宿治者削。
【번역문 1】
명령을 정비하면 법이 바뀌지 않고, 법이 공평하면 관리가 간사한 짓을 하지 않는다. 법이 이미 정해졌으면, 좋은 말[⁶]로써 법을 팔지 않는다. 공(功)에 따라 임용하면 백성들의 말이 적어지고, 선(善)에 따라 임용하면 백성들의 말이 많아진다. 법을 행함에 상세히 판단해야 하니, 다섯 리로 판단하는 자는 왕이 되고, 아홉 리로 판단하는 자는 강해지며, 낡은 방식으로 다스리는 자는 쇠약해진다.[⁷]
【주석 6】
善言(선언): ‘좋은 말’. 도덕적인 명분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말, 혹은 교묘한 변론 등을 가리킨다. 법의 적용에 있어 이러한 주관적이고 비객관적인 요소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가의 원칙을 보여준다.
以五里斷者王…(이오리단자왕…): 이 구절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해석된다. ‘리(里)’는 거리의 단위이지만, 여기서는 법 적용의 정밀함이나 범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법을 매우 정밀하고 상세하게(五里, 九里) 적용하면 나라가 강성해지지만, 그저 과거의 방식(宿治)에만 머무르면 쇠퇴한다는 의미로, 법의 끊임없는 정비와 엄격한 적용을 강조하는 말이다.
【원문 2】
以刑治,以賞戰,厚祿以用術。行都之過,則都無姦市。物多末眾,農弛姦勝,則國必削。民有餘食,使以粟出,爵必以其力,則震不怠。三寸之管毋當,不可滿也。授官爵、出利祿不以功,是無當也。國以功授官與爵,此謂以成智謀,以威勇戰,其國無敵。國以功授官與爵,則治見者省,言有塞,此謂以治去治,以言去言。以功與爵者也故國多力,而天下莫之能侵也。兵出必取,取必能有之;案兵不攻必當。朝廷之事,小者不毀,效功取官爵,廷雖有辟言,不得以相干也,是謂以數治。以力攻者,出一取十;以言攻者,出十喪百。國好力,此謂以難攻;國好言,此謂以易攻。其能,勝其害,輕其任,而道壞餘力於心,莫負乘宮之責於君,內無伏怨,使明者不相干,故莫訟;使士不兼官,故技長;使人不同功,故莫爭。言此謂易攻。
【번역문 2】
형벌로써 다스리고, 상으로써 싸우게 하며, 두터운 녹봉으로써 술(術)을 쓰는 자를 부린다. 도성 안의 잘못을 단속하면, 도성의 시장에 간사함이 없을 것이다. 사치품이 많고 상공업자가 많아지면, 농업은 해이해지고 간사함이 성행하여, 나라는 반드시 쇠약해진다. 백성에게 남는 식량이 있으면 곡식을 내게 하고, 작위는 반드시 그 노력에 따라 주면, 백성들은 떨쳐 일어나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 세 치의 관에 밑이 없으면[⁸] 채울 수 없다. 공(功)에 의하지 않고 관직과 작위를 주고 이익과 녹봉을 내주는 것이, 바로 이 밑 없는 관과 같다. 나라가 공에 따라 관직과 작위를 주면, 이를 일컬어 지혜로운 계책을 이루게 하고, 위엄 있고 용감하게 싸우게 하는 것이니, 그 나라는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나라가 공에 따라 관직과 작위를 주면, 다스림을 보는 자가 줄어들고 말이 막히게 되니, 이를 일컬어 ‘다스림으로써 다스림을 없애고, 말로써 말을 없애는 것’[⁹]이라 한다. 공으로써 작위를 주는 나라는 힘이 많아져서 천하가 능히 침범하지 못한다. 군대를 내면 반드시 취하고, 취하면 반드시 그것을 소유할 수 있으며, 군대를 멈추고 공격하지 않으면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다. 조정의 일은 작은 것이라도 훼손되지 않고, 공을 바쳐 관직과 작위를 얻으며, 조정에 비록 편벽된 말이 있더라도 서로 간섭하지 못하게 하니, 이를 일컬어 수(數)로써 다스리는 것[¹⁰]이라 한다. 힘으로 공격하는 자는 하나를 내어 열을 취하고, 말로 공격하는 자는 열을 내어 백을 잃는다. 나라가 힘을 좋아하면, 이를 일컬어 공격하기 어려운 나라라 하고, 나라가 말을 좋아하면, 이를 일컬어 공격하기 쉬운 나라라 한다. 그 능력이 그 해로움을 이기고, 그 임무를 가볍게 여기며, 남은 힘을 마음에 품고, 군주에게 수레와 궁궐의 책임을 지우지 않으며, 안으로 숨은 원망이 없고, 현명한 자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게 하므로 송사가 없으며, 선비가 관직을 겸하지 않게 하므로 기술이 뛰어나고, 사람들이 같은 공을 세우지 않게 하므로 다툼이 없다. 말이란 이런 것을 공격하기 쉽다고 하는 것이다.[¹¹]
【주석 8】
三寸之管毋當(삼촌지관무당): ‘當(당)’은 ‘底(저)’와 통하여 ‘밑바닥’을 의미한다. 밑 빠진 관(管)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듯이, 공(功)이라는 명확한 기준 없이 상을 남발하면 국가의 재원은 고갈되고 상의 권위는 떨어진다는 비유이다.
以治去治,以言去言(이치거치, 이언거언): 법가의 이상적인 통치 상태를 나타내는 역설적인 표현. 완벽한 법(治)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면, 군주나 관리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다스림(治)’의 행위가 불필요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공과 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면, 도덕이나 명분에 대한 공허한 ‘말(言)’들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數(수): ‘술(術)’과 통하는 개념으로, 객관적이고 계산 가능한 법규나 제도를 의미한다. 군주의 주관적 판단이나 신하들의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명확한 ‘수(數)’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져야 함을 강조한다.
言此謂易攻(언차위이공): 마지막 문장은 앞선 문맥과 연결이 어색하여 해석이 분분하다. 앞서 ‘나라가 말을 좋아하면 공격하기 쉽다(國好言,此謂以易攻)’고 한 말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앞서 나열된 이상적인 상태가 아닌, ‘말’에 의존하는 정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앞서 말한 (힘이 아닌) ‘말’에 의존하는 것을 일컬어 공격당하기 쉽다고 하는 것이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원문 3】
重刑少賞,上愛民,民死賞。多賞輕刑,上不愛民,民不死賞。利出一空者,其國無敵;利出二空者,其兵半用;利出十空者民不守。重刑明民大制使人則上利。行刑、重其輕者,輕者不至,重者不來,此謂以刑去刑。罪重而刑輕,刑輕則事生,此謂以刑致刑,其國必削。
【번역문 3】
형벌을 무겁게 하고 상을 적게 하면,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니 백성들은 상을 위해 죽을 것이다. 상을 많이 주고 형벌을 가볍게 하면,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니 백성들은 상을 위해 죽지 않을 것이다.[¹²] 이익이 한 구멍에서 나오는 나라는 대적할 자가 없고, 이익이 두 구멍에서 나오는 나라는 그 군대의 절반만 쓰일 것이며, 이익이 열 구멍에서 나오는 나라는 백성들이 나라를 지키지 않을 것이다.[¹³] 무거운 형벌은 백성에게 큰 제도를 명확히 하여 사람을 부리게 하므로 군주에게 이롭다. 형벌을 행함에 있어, 그 가벼운 죄를 무겁게 처벌하면, 가벼운 죄를 짓는 자가 이르지 않고 무거운 죄를 짓는 자도 오지 않을 것이니, 이를 일컬어 ‘형벌로써 형벌을 없애는 것(以刑去刑)’이라 한다. 죄는 무거운데 형벌이 가벼우면, 형벌이 가벼우므로 일이 생겨나니, 이를 일컬어 ‘형벌로써 형벌을 부르는 것(以刑致刑)’이라 하며, 그 나라는 반드시 쇠약해질 것이다.
【주석 12】
重刑少賞,上愛民…(중형소상, 상애민…): 법가 특유의 역설적인 주장이다. 군주의 ‘사랑(愛)’은 감정적인 자비가 아니라, 엄격한 법질서를 통해 사회 안정을 이루고 백성에게 궁극적인 이익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형벌이 무거우면 범죄가 줄어 사회가 안정되고, 상이 희소하면 그 가치가 높아져 백성들이 공을 세우기 위해 목숨을 바치게 되므로, 이것이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길이라는 논리이다.
利出一空(이출일공): ‘이익이 한 구멍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법가의 핵심적인 경제 및 통치 원리이다. 국가의 모든 이익(부, 명예, 작위 등)은 오직 국가(一空)를 통해서만, 그것도 농업과 전쟁에서의 공(功)을 통해서만 분배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만약 이익의 원천이 여러 곳(二空, 十空), 예컨대 권세가의 사사로운 은혜나 상업 활동 등으로 다양해지면, 백성들의 충성심이 분산되어 국가의 통제력이 약화된다고 보았다.
韓非子 心度 (한비자 심도) 번역 및 주석
[원문 1]
心度:
聖人之治民,度於本,不從其欲,期於利民而已。故其與之刑,非所以惡民,愛之本也。刑勝而民靜,賞繁而姦生,故治民者,刑勝、治之首也,賞繁、亂之本也。夫民之性,喜其亂而不親其法。故明主之治國也,明賞則民勸功,嚴刑則民親法。勸功則公事不犯,親法則姦無所萌。故治民者,禁姦於未萌;而用兵者,服戰於民心。禁先其本者治,兵戰其心者勝。聖人之治民也,先治者強,先戰者勝。夫國事務先而一民心,專舉公而私不從,賞告而姦不生,明法而治不煩,能用四者強,不能用四者弱。夫國之所以強者,政也;主之所以尊者,權也。故明君有權有政,亂君亦有權有政,積而不同,其所以立異也。故明君操權而上重,一政而國治。故法者,王之本也;刑者,愛之自也。
[번역문]
심도(心度)¹⁾:
성인(聖人)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근본[本]을 헤아리고, 그들의 욕망을 따르지 않으며,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을 기약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은, 백성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근본이다. 형벌이 이기면[刑勝]²⁾ 백성이 안정되고, 상이 번잡하면 간사함이 생겨나니,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데 있어, 형벌이 이기는 것은 다스림의 으뜸이고, 상이 번잡한 것은 혼란의 근본이다. 무릇 백성의 본성은, 혼란을 기뻐하고 법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릴 때, 상을 밝히면 백성이 공을 세우는 데 힘쓰고, 형벌을 엄하게 하면 백성이 법을 가까이한다. 공을 세우는 데 힘쓰면 공적인 일이 침해받지 않고, 법을 가까이하면 간사함이 싹틀 곳이 없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간사함을 싹트기 전에 금하고, 군대를 쓰는 자는, 백성의 마음속에서 전쟁을 복종시킨다. 금지함에 그 근본을 먼저 하는 자는 다스려지고, 군대가 그 마음을 먼저 공격하는 자는 승리한다. 성인이 백성을 다스림에, 먼저 다스리는 자는 강해지고, 먼저 싸우는 자는 승리한다. 무릇 나라의 일은 먼저 힘쓰고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하며, 오로지 공적인 것을 들고 사사로운 것을 따르지 않으며, 고발을 상 주어 간사함이 생기지 않게 하고, 법을 밝혀 다스림이 번거롭지 않게 하니, 이 네 가지를 능히 쓰는 자는 강해지고, 이 네 가지를 쓰지 못하는 자는 약해진다. 무릇 나라가 강해지는 까닭은 정치[政] 때문이고, 군주가 존귀해지는 까닭은 권력[權]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에게도 권력과 정치가 있고, 어지러운 군주에게도 또한 권력과 정치가 있으나, 쌓이는 것이 같지 않으니, 그 서는 바가 다른 까닭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권력을 쥐어 윗사람이 무거워지고, 정치를 하나로 하여 나라가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법(法)이란, 왕의 근본이고, 형벌이란, 사랑의 근원이다.
[주석]
1) 심도(心度): ‘마음으로 헤아린다’는 뜻. 군주가 백성의 욕망이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국가의 근본적인 이익과 질서를 기준으로 통치해야 함을 강조하는 제목이다.
2) 형승(刑勝): ‘형벌이 이긴다’는 뜻. 상(賞)보다 벌(罰)의 효용을 더 중시하는 법가의 특징을 보여주는 용어이다. 한비자는 인간이 이익을 탐하는 마음보다 손해를 피하려는 마음이 더 강하다고 보았기에, 상으로 유인하는 것보다 벌로 위협하는 것이 질서 유지에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원문 2]
夫民之性,惡勞而樂佚,佚則荒,荒則不治,不治則亂而賞刑不行於天下,者必塞。故欲舉大功而難致而力者,大功不可幾而舉也;欲治其法而難變其故者,民亂,不可幾而治也。故治民無常,唯治為法。法與時轉則治,治與世宜則有功。故民樸、而禁之以名則治,世知、維之以刑則從。時移而治不易者亂,能治眾而禁不變者削。故聖人之治民也,法與時移而禁與能變。
[번역문]
무릇 백성의 본성은, 수고로움을 싫어하고 편안함을 즐기니, 편안하면 거칠어지고, 거칠어지면 다스려지지 않으며,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지러워져 상과 형벌이 천하에 행해지지 않으니, 반드시 막히게 된다. 그러므로 큰 공을 세우고자 하나 힘을 다하기 어려워하는 자는, 큰 공을 거의 이룰 수 없다. 그 법을 다스리고자 하나 옛것을 바꾸기 어려워하는 자는, 백성이 어지러워져 거의 다스릴 수 없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림에는 일정한 방법이 없고, 오직 다스림을 법으로 삼는다. 법이 시대와 함께 바뀌면 다스려지고, 다스림이 세상에 마땅하면 공이 있다. 그러므로 백성이 순박하면, 명예로써 금지해도 다스려지고, 세상이 지혜로워지면, 형벌로써 유지해야 따른다. 시대가 옮겨갔는데도 다스림이 바뀌지 않으면 어지러워지고, 능히 무리를 다스리면서도 금령이 변하지 않으면 깎인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법이 시대와 함께 옮겨가고 금령이 능력과 함께 변하는 것이다.
[원문 3]
能越力於地者富,能起力於敵者強,強不塞者王。故王道在所聞,在所塞。塞其姦者必王,故王術不恃外之不亂也,恃其不可亂也。恃外不亂而治立者削,恃其不可亂而行法者興。故賢君之治國也,適於不亂之術。貴爵則上重,故賞功爵任而邪無所關。好力者其爵貴,爵貴則上尊,上尊則必王。國不事力而恃私學者,其爵賤,爵賤則上卑,上卑者必削。故立國用民之道也,能閉外塞私而上自恃者,王可致也。
[번역문]
능히 땅에서 힘을 넘치게 하는 자는 부유해지고, 능히 적에게서 힘을 일으키는 자는 강해지며, 강함이 막히지 않는 자는 왕이 된다. 그러므로 왕도(王道)는 듣는 바에 있고, 막는 바에 있다. 그 간사함을 막는 자는 반드시 왕이 되니, 그러므로 왕의 술(術)은 외부가 어지럽지 않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지럽혀질 수 없음을 믿는 것이다. 외부가 어지럽지 않음을 믿고 다스림을 세우는 자는 깎이고, 자신이 어지럽혀질 수 없음을 믿고 법을 행하는 자는 흥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어지럽혀지지 않는 술(術)에 맞는 것이다. 작위를 귀하게 여기면 윗사람이 무거워지니, 그러므로 공에 따라 작위를 상 주고 임용하면 사악함이 관계할 곳이 없다. 힘을 좋아하는 자는 그 작위가 귀하고, 작위가 귀하면 윗사람이 존귀해지며, 윗사람이 존귀해지면 반드시 왕이 된다. 나라가 힘을 일삼지 않고 사사로운 학문[私學]을 믿으면, 그 작위가 천해지고, 작위가 천해지면 윗사람이 비천해지며, 윗사람이 비천한 자는 반드시 깎인다. 그러므로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부리는 도는, 능히 외부를 닫고 사사로움을 막으며 윗사람이 스스로를 믿는 것이니, 왕업은 이를 수 있는 것이다.
韓非子 制分 (한비자 제분) 번역 및 주석
[원문 1]
制分:
夫凡國博君尊者,未嘗非法重而可以至乎令行禁止於天下者也。是以君人者分爵制祿,則法必嚴以重之。夫國治則民安,事亂則邦危。法重者得人情,禁輕者失事實。且夫死力者,民之所有者也,情莫不出其死力以致其所欲。而好惡者,上之所制也,民者好利祿而惡刑罰。上掌好惡以御民力,事實不宜失矣,然而禁輕事失者,刑賞失也。其治民不秉法,為善也如是,則是無法也。故治亂之理,宜務分刑賞為急。治國者莫不有法,然而有存有亡,亡者、其制刑賞不分也,治國者、其刑賞莫不有分。有持、以異為分,不可謂分。至於察君之分,獨分也,是以其民重法而畏禁,願毋抵罪而不敢胥賞。故曰:不待刑賞而民從事矣。
[번역문]
제분(制分)¹⁾:
무릇 모든 나라가 넓고 군주가 존귀한 경우는, 일찍이 법이 무거워 천하에 명령이 행해지고 금지가 이루어지는 데에 이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사람의 군주 된 자가 작위를 나누고 녹봉을 제정하면, 법은 반드시 엄격하여 그것을 무겁게 한다. 무릇 나라가 다스려지면 백성이 편안하고, 일이 어지러우면 나라가 위태롭다. 법이 무거운 자는 사람의 실정[人情]을 얻고, 금령이 가벼운 자는 사실을 잃는다. 또한 무릇 죽을힘이란, 백성이 가진 바이니, 실정상 그 죽을힘을 내어 그 바라는 바를 이루지 않음이 없다. 그리고 좋고 싫음[好惡]이란, 윗사람이 제어하는 바이니, 백성은 이익과 녹봉을 좋아하고 형벌을 싫어한다. 윗사람이 좋고 싫음을 장악하여 백성의 힘을 부리면, 사실을 잃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금령이 가볍고 일을 잃는 것은, 형벌과 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 백성을 다스림에 법을 잡지 않고, 선행을 함이 이와 같다면, 이는 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이치는, 마땅히 형벌과 상을 명확히 나누는[分]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법이 있지 않음이 없으나, 그러나 보존되는 경우도 있고 망하는 경우도 있으니, 망하는 자는 그 형벌과 상의 제도가 명확히 나뉘지 않았기 때문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그 형벌과 상이 명확히 나뉘지 않음이 없다. 어떤 것을 가지고, 다른 것을 나눔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나눔이라 할 수 없다. 군주의 나눔을 살피는 데에 이르면, 오직 하나로 나뉠 뿐이니, 이 때문에 그 백성이 법을 중히 여기고 금령을 두려워하며, 죄에 이르지 않기를 바라고 감히 서로 상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형벌과 상을 기다리지 않고도 백성이 일에 종사한다고 하는 것이다.
[주석]
1) 제분(制分): ‘나눔을 제정하다’는 뜻. ‘분(分)’은 명분, 직분, 분수 등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상벌의 기준을 명확하게 나누고 제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군주가 상벌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엄격하게 집행해야만 국가의 질서가 바로 선다는 법가의 핵심 주장을 담고 있다.
[원문 2]
是故夫至治之國,善以止姦為務。是何也?其法通乎人情,關乎治理也。然則去微姦之道奈何?其務令之相規其情者也。則使相闚奈何?曰:蓋里相坐而已。禁尚有連於己者,理不得相闚,惟恐不得免。有姦心者不令得忘,闚者多也。如此,則慎己而闚彼。發姦之密,告過者免罪受賞,失姦者必誅連刑。如此,則姦類發矣。姦不容細,私告任坐使然也。
[번역문]
이런 까닭에 무릇 지극히 잘 다스려지는 나라는, 잘하는 것으로써 간사함을 그치게 하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그 법이 사람의 실정[人情]에 통하고, 다스림의 이치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미한 간사함을 제거하는 방법은 어떠한가? 그들로 하여금 서로 그 실정을 규찰하게 하는 것을 힘쓰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엿보게 하는 것은 어떠한가? 말하기를, 대개 마을에서 서로 연좌시키는 것일 뿐이다. 금령을 어기면 오히려 자신에게 연루되는 바가 있으니, 이치상 서로 엿보지 않을 수 없고, 오직 면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간사한 마음이 있는 자는 잊을 수 없게 되니, 엿보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와 같으면, 자신을 삼가고 저들을 엿본다. 간사함을 드러내는 것이 은밀하고, 과오를 고발하는 자는 죄를 면하고 상을 받으며, 간사함을 놓친 자는 반드시 주살되고 연좌되어 형벌을 받는다. 이와 같으면, 간사한 무리가 드러날 것이다. 간사함이 미세한 것도 용납되지 않는 것은, 사사로운 고발과 연좌제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문 3]
夫治法之至明者,任數不任人。是以有術之國,不用譽則毋適,境內必治,任數也;亡國使兵公行乎其地、而弗能圉禁者,任人而無數也。自攻者人也,攻人者數也。故有術之國,去言而任法。凡畸功之循約者難知,過刑之於言者難見也,是以刑賞惑乎貳。所謂循約難知者,姦功也;臣過之難見者,失根也。循理不見虛功,度情殖乎姦根,則二者安得無兩失也。是以虛士立名於內,而談者為略於外,故愚怯勇慧相連而以虛道屬俗而容乎世,故其法不用,而刑罰不加乎僇人。如此,則刑賞安得不容其二?故實有所至,而理失其量,量之失,非法使然也,法定而任慧也。釋法而任慧者,則受事者安得其務?務不與事相得,則法安得無失、而刑安得無煩?是以賞罰擾亂,邦道差誤,刑賞之不分白也。
[번역문]
무릇 법을 다스림에 지극히 밝은 자는, 술수[數]¹⁾에 맡기고 사람[人]에 맡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술(術)이 있는 나라는, 칭찬을 쓰지 않아도 적합하지 않음이 없으니, 나라 안이 반드시 다스려지는 것은 술수에 맡기기 때문이다. 망하는 나라는 군대가 그 땅을 공공연히 다니는데도 능히 막고 금하지 못하니, 사람에 맡기고 술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사람이고, 남을 공격하는 것은 술수이다. 그러므로 술(術)이 있는 나라는, 말을 버리고 법에 맡긴다. 무릇 기이한 공이 약속을 따르는 것은 알기 어렵고, 과오와 형벌이 말에 있는 것은 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형벌과 상이 두 가지 기준[貳]에 현혹된다. 이른바 약속을 따르나 알기 어려운 것은, 간사한 공[姦功]이다. 신하의 과오를 보기 어려운 것은, 근본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치를 따르지 않고 헛된 공을 보며, 실정을 헤아리지 않고 간사한 뿌리를 심으니, 두 가지 모두를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헛된 선비는 안에서 이름을 세우고, 이야기하는 자는 밖에서 계략을 꾸미니, 그러므로 어리석고, 겁 많고, 용감하고, 지혜로운 자들이 서로 이어져 헛된 도로써 시속에 붙어 세상에 용납된다. 그러므로 그 법이 쓰이지 않고, 형벌이 죄인에게 더해지지 않는다. 이와 같으면, 형벌과 상이 어찌 그 두 가지 기준을 용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실질이 이르는 바가 있는데도, 이치가 그 기준을 잃으니, 기준을 잃는 것은 법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법이 정해져 있는데도 지혜에 맡기기 때문이다. 법을 버리고 지혜에 맡기는 자는, 일을 맡은 자가 어찌 그 임무를 얻겠는가? 임무가 일과 서로 맞지 않으면, 법이 어찌 실수가 없을 수 있으며, 형벌이 어찌 번거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상벌이 어지럽고, 나라의 길이 어긋나니, 형벌과 상이 명확하게 나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석]
1) 수(數): 술수, 방법, 이치. 여기서는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기준, 즉 법(法)과 술(術)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였다. ‘사람에 맡긴다[任人]’는 것은 군주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신하의 개인적인 능력에 의존하는 인치(人治)를 의미하며, 한비자는 이를 비판하고 객관적인 시스템에 의한 통치, 즉 법치(法治)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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