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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을 헐다가 벽 속에서 발견된 원나라 시대 예찬의 작품 《태흔수영도苔痕树影图》

集賢堂 2016. 3. 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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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아무거나 찾아 읽다가 알게 된, 오래된 집 벽 속에서 나왔다는 흥미로운 사연을 가진 그림


王照宇 : 论道安素斋:倪瓒之《苔痕树影图》, 【文献出处】 中国国家博物馆馆刊 ,Journal of National Museum of China , 编辑部邮箱 ,2016年02期



- 무석(無錫)의 화가 예찬(倪瓚, 1301~1374)이 소주(蘇州)에서 벗 안소거사(安素居士)를 위해 그려준 한 폭의 산수화이다.


- 왼편 위 부분에 예찬이 지은 시문이 있다.

이끼가 낀 바위에 비가 내리고, 무성한 대나무 그림자 진 나무에 구름은 깊구나.

소문을 듣기로 안소재가 그 가운데 있어, 미치광이 손님의 읊조림을 용납한다고 하네.[石□苔痕雨過 竹陰樹影雲深 聞道安素齋中 能容狂客獨吟]


- 본 그림에는 이름이 없는데, 이러한 작법은 예찬의 작법과 일치한다. 그는 작품을 완성하면 곧바로 시 한 수를 짓고, 간혹 며칠 뒤에 보충하여 짓기도 하는데, 시종일관 이름을 짓지는 않는다. 이러한 작법은 황공망(黄公望, 1269~1354), 오진(吳鎭, 1280~1354)과 동일하다. 한편 왕몽(王蒙, 1308~1385)은 화폭의 오른쪽 모퉁이에 독특한 전서 혹은 해서로 이름을 자주 쓴다. 왕몽의 <갈유천이거도葛稚川移居图>와 <하일산거도> 등이 그러한 예이다.



王蒙,《葛稚川移居图》



- 이 그림은 1970년대 장쑤성 양주시 가오유의 한 마을에서 발견되었다. 오래된 집을 헐다가 벽의 격판 사이에서 단독으로 발견되었다. 집 주인은 그 그림의 가치를 모르고 양주시문물상점에 팔았다. 그러나 상점에서도 이 그림의 가치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다. 1986년 9월 당시 '칠인서화감정소조'가 양주에 찾아와 고서화를 감정하였는데, 골동품 속에서 이 그림을 발견하고 '태흔수영도(苔痕樹影圖)'라고 명명하였다. 그들의 감정으로 그림의 가치는 월등히 뛰었으나 당시 그들의 감정 의견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후 출판된 《中国古代书画目录》和《中国古代书画图目》에서는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이 그림에 대한 소식을 들은 무석시 정부에서는 이 그림을 예찬의 그림으로 보고 이후 협상을 통해 무석시박물관에서 5만 위안을 지불하고 입수한다. 그리고 1993년 10월 장쑤성 문화청의 평가를 통해 일급문물로 지정된다.


- 본 그림에는 인장이 15개가 찍혀 있는데, 모두 대체로 화폭의 좌우 양편에 있고, 좌변에 6개, 우변에 9개가 찍혀 있다.


좌변 인장은 다음과 같다. [순서는 위에서 아래로]


1.“晴雲書屋珍藏” 2.“琴書堂” 3.“都尉耿信公書畫之章” 4.“雪齋清玩” 5“公” 6.“信公珍賞”


우변 인장은 다음과 같다.


1.“真賞” 2.“如園” 3.“道樞壹元” 4.“果亭再子” 5.“珍秘” 6.“宜爾子孫” 7.“玉池生鑑賞書畫之章” 8.“嘉祚” 9.“耿會侯鑑定書畫之章”


이들 인장 대부분은 청나라 시대 색액도(索額圖), 경소충(耿昭忠) 집안과 관련이 있는 자들의 인장이다.


색액도가 소장한 작품에는 “欽賜忠孝長白山索額圖字九如號愚庵圖書珍藏永貽子孫”이라는 인장이 대부분 찍혀 있는데, '欽賜'에서 보이듯이 그가 소장한 작품에는 황제가 하사한 것이 많았다. 그리고 '忠孝長白山'은 강희제가 그에게 내려준 봉호이다. 색액도의 소장품은 차자 아이희보(阿爾喜普)가 계승한다.


색액도의 장자 색분(索芬, ?~1708)이 소장한 작품에는 “晴雲書屋珍藏”이나 본인의 서명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그는 공상임(孔尚任, 1648~1718), 박이도(博爾都, ?~1697), 악단(岳端, 1671~1704), 왕휘(王翬, 1632~1717) 등과 교유하였다. 


경소충(耿昭忠, 1640~1686)은 삼번의 난을 일으킨 정남왕 경중명(耿仲明)의 손자이고, 그의 아들은 경가조(耿嘉祚, 17~18세기)인데, 자는 회후(會侯)다. 이들 부자가 소유한 작품에는 "會侯珍藏", "耿嘉祚會侯氏號漱六主人書畫之賞章"이라는 인장이 많이 찍혀 있다. 경소충의 소장품은 사망 이후 아들 경가조에게 계승된다.


경소충 부자의 사망 연대가 더 빠르므로 Marshall Wu는 색분의 소장품이 경소충과 경가조로부터 왔고, 동생의 소장품과는 서로 섞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색액도 부자가 태자 윤잉[색액도의 딸 효성인황후와 강희제 사이에 태어난 아들]의 즉위를 위해 벌인 사건 덕분에 사사되자, 이들의 소장품도 흩어진다.


소장 경위 : 예찬 - 왕대춘(예찬과 동시기 인물) - 경소충 - 경가조 - 색분 - 무명인 (2.“如園” 3.“道樞壹元” 4.“果亭再子”) - 扬州高邮 - 无锡市博物馆(1987년 5월 7일부터)


- 운천자의 발문 옆에 호리병 모양의 “真賞”이라는 인장은 명나라 시대 무석 지방의 대수장가 화하(華夏, 15세기)의 것으로 여겨졌으나, 화하의 “真賞” 인장이 찍힌

遼寧博物館的唐人張旭(675- ?)《古詩四帖》(紙 本草書,五色箋,共40 行,縱28.8 厘米,橫192.3 厘米)

台北故宮博物院的顏真卿(709- 784)的《劉中使帖》(墨跡,行書,信札,縱28.5 厘米,橫43.1 厘米)

北京故宮博物院黃 庭堅(1045-1105)的《諸上座帖》(紙本草書,手捲,縱33 厘米,橫729.5 厘米)


이상의 세 작품과 비교 결과 일치하지 않는다. 즉 화하의 소장품이 아닌 것이다. 대신 이하의 작품에 찍힌 “真賞”과 일치한다.


台北故宮博物院的沈周的《廬山高圖》,

美國華盛頓弗利爾博物 館藏周文矩(生卒年不詳,南唐畫家)的《宮女圖》(絹本設色,縱23.2 厘米,橫25.1 厘米) 和《浴嬰仕女圖》(絹本設色,縱23 厘米,橫24.5 厘米)

李公麟(1049-1106)的《貨郎嬰 戲圖》(絹本設色,21.8 厘米,橫29.4 厘米)、

閻次於(生卒年不詳,南宋畫家)的《山村歸 起騎圖》(絹本設色,縱25.5 厘米,橫25.9 厘米)、

倪瓚的《墨竹圖》(紙本墨筆,縱29.3 厘米,橫29 厘米)、

宋克(1327-1387)的《萬竹圖》(紙本墨筆,縱24.9 厘米,橫98.1 厘 米)



沈周的《廬山高圖》



- “玉池生鑑賞書畫之章”은 여타 작품에 잘 나타나지 않는 인장인데, 옥지생(玉池生)은 색분의 벗인 악단(岳端, 1671-1704)의 호이다. 본인이 찍었다는 설과 위조되었다는 설이 있다.


- “雪齋清玩”은 확실히 위조된 것이다.


- 무명인의 세 인장은 고대 서화에 드물게 나타나나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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