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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51 - 이견지 갑지 제4권 - 제거가 수부의 판관이 되다 水府判官 수부판관

제거가 수부의 판관이 되다水府判官 제거(齊琚)는 자(字)가 중옥(仲玉)이고, 요주(饒州) 덕흥(德興: 현재 장시성 더싱) 사람이다. 성품이 온화하고 후덕했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집이 가난해서 생도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먹고 살았다. 소흥(紹興) 정묘년(丁卯: 1147년)에는 같은 고을 사람 동시민(董時敏)의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약속한 시기가 지났는데도 제거가 나타나지 않았다. 동시민이 편지를 보내 재촉하였다. 심부름꾼이 제거의 집에 이르자 곡성이 들려왔는데, 제거는 죽은 지 이틀이 지났었다. 평소 제거와 친분이 있던 왕요신(汪堯臣)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거(齊琚)가 지난 해 늦겨울에 병이 났었는데, 꿈에 어떤 사람이 문서를 들고 그에게 와서 말하기를, '어느 왕이 수재(秀才..

1.1.4.6.49 - 이견지 갑지 제4권 - 유일공이 말로 변하다 俞一公 유일공

유일공이 말로 변하다俞一公 유일공(俞一公)은 자(字)가 언보(彥輔)이고, 휘주(徽州) 무원(婺源: 현재 장시성 상라오) 사람이다.  그는 매사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였다. 그리고 그를 미워하지만 법을 두려워해 그와 싸우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언보는 술수를 써서 그의 재산을 빼앗았는데,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고치지 않았다.  이윽고 소흥(紹興) 임술년(壬戌歲: 1140년)에 언보가 병에 걸렸는데, 수시로 말 울음소리를 내었다.  하루는 집안사람이 곁에 있지 않았는데, 언보가 갑자기 일어나 문을 잠갔다.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방 안에서 무언가 던지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급히 방 안에 들어가니, 언보의 손과 발이 모두 말발굽이 되어 있었다. 몸과 머리는 아..

1.1.4.1.44 - 이견지 갑지 제4권 - 정린이 다시 살아나다 鄭鄰再生 정린재생

정린이 다시 살아나다鄭鄰再生 소흥(紹興) 14년(1144년) 3월 4일, 강동(江東) 헌사(憲司)에서 말을 모는 노복인 정린(鄭鄰)이 병을 오랫동안 앓는 와중에 꿈을 꾸었다. 꿈에서 두 관리가 그를 붙잡으며 말하였다. "대왕이 부르신다." 이에 수십 리를 가니, 높다란 누각이 보였다. 관리가 그를 이끌어 대계에 올라 붉은 문(朱門)을 들어가니, 궁궐에는 남녀 승려 무리와, 닭, 개, 소, 양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전각 앞에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어, 사람의 내장을 비추었는데, 내장을 낱낱이 볼 수 있었다. 조금 지나 왕이 나오자, 두 관리가 정린을 붙잡고 예를 표하더니, 정린을 붙잡아 왔다고 아뢰었다. 왕이 물었다. "어느 곳 사람인가?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가?" 정린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였다..

1.1.3.4.38 - 이견지 갑지 제3권 - 이상인 李尚仁

이상인李尚仁 승가(承可) 왕부(王鈇)는 소흥(紹興) 신유년(辛酉歲: 1141년)에 절동로(浙東路: 현재 저장성 일대)의 제봉다염공사(提舉茶鹽公事)에 임명되었는데, 관청이 회계(會稽: 현재 저장성 사오싱시) 자성(子城)의 동녘에 있는 옛날의 용흥사(龍興寺)였다. 승가(承可)의 셋째 아들인 왕유(王洧)가 자포(紫袍)를 입은 장부가 나타나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 장부가 말하기를, "나의 유골이 복숭아나무 아래에 매장되어 있어서 혼이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대가 나를 가엽게 생각하신다면 부디 유골을 다른 곳으로 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왕유가 깨어난 뒤에 그의 부친에게 아뢰었다. 건물 주위를 살펴보니 과연 커다란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가 있었다. 이에 나무 아래를 파내어 유골을 찾았으나 ..

1.1.1.8.8 - 이견지 갑지 제1권 - 천태산에서 경전을 취하다

천태산에서 경전을 취하다天台取經 소흥 7년1137년 위제偽齊: 유예가 세운 금나라의 부용국 경내의 제주濟州 통판通判 황승黃塍이 죽은지 삼일 만에 부활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여러 사람이 나를 붙잡아 법정에 데리고 갔는데, 관복을 입은 사람이 앉아서 말하기를, ‘네가 오백 명의 중들을 오대산五台山에 데려가거라’라고 하였어. 그런데 내가 집안이 가난하여 어린 자식들이 마음에 걸리므로 갈 수 없다고 사양하니, 좌우에 있던 관리가 말하기를, ‘주부主簿 이씨를 대신 보낼 수 있습니다. 아울러 달리 늦지 않으면 자연히 다른 차사差使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다시 나를 붙잡아왔던 사람을 파견하여 돌려 보내주었기에 도로 살 수 있었네.”라고 하였다. 이틀이 지나 제주 산구현山口縣 보수사報帥司에서 주부 ..

1.1.1.3.3 - 이견지 갑지 제1권 - 보루각주

보루각주寶樓閣咒 원가구袁可久라는 사람이 일찍이 그의 동생 원창袁昶에게 ‘보루각주寶樓閣咒’라는 주문을 가르쳤다. 원창은 주문을 믿지는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반드시 삼십 내지 오십 번은 외웠는데, 애초에 그 효과를 알지 못했다. 소흥紹興 3년1133년 여름에 원창이 부학府學: 유학儒學 교육을 하는 기관에서 학업을 익히는데, 당시에 전쟁이 일어났으므로 성읍城邑은 황량한채 있었다. 부학에 배치된 병사 왕성汪成이라는 사람이 숙직실에 잘때마다 악몽을 꾸는데, 아침이 되어서야 끝이나 하루도 잘 자지를 못하더니, 마침내 이 일을 고민하였다. 누군가가 그가 꿈에서 본 것을 물었는데, 왕성이 말하기를, “헝클어진 머리를 한 사람이 나를 몽둥이로 때리려고 해서 소리를 지르면서 막는다네.”라고 하였다. 원창이 동정심이 들어..

1.1.1.2.2 - 이견지 갑지 제1권 - 유장군

유장군柳將軍 장정蔣靜은 자字가 숙명叔明으로 의흥宜興 사람이다. 요주饒州 안인安仁 현령縣令이 되었을 때에 그가 다스리는 고을 내에는 사당이 지나치게 많았다. 그래서 모두 철폐하도록 명을 내렸으며, 기물을 모두 강에 던져버리도록 하였다. 또 백성이 제사를 지내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모두 삼백 개의 사당을 없앴는데, 오직 유장군柳將軍의 사당이 가장 영험하므로 즉시 철폐하고 싶지는 않아 은근히 보존하였다. 사당 정원에 삼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줄기와 가지가 매우 커서 생기는 그늘이 넓었다. 장정이 이 나무를 베려고 하였는데, 금당琴堂: 깡깡이를 연주하기 위해 지은 건물에 누워 낮잠을 자다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기이한 사람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 계단에 이르러 말에서 내리고서 길게 읍하면서 말하기를, “나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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