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지 夷堅志/갑지 제4권

1.1.4.8.51 - 이견지 갑지 제4권 - 제거가 수부의 판관이 되다 水府判官 수부판관

集賢堂 2016. 3. 1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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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거가 수부의 판관이 되다水府判官

 제거(齊琚)는 자(字)가 중옥(仲玉)이고, 요주(饒州) 덕흥(德興: 현재 장시성 더싱) 사람이다. 성품이 온화하고 후덕했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집이 가난해서 생도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먹고 살았다. 


 소흥(紹興) 정묘년(丁卯: 1147년)에는 같은 고을 사람 동시민(董時敏)의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약속한 시기가 지났는데도 제거가 나타나지 않았다. 동시민이 편지를 보내 재촉하였다. 심부름꾼이 제거의 집에 이르자 곡성이 들려왔는데, 제거는 죽은 지 이틀이 지났었다. 


 평소 제거와 친분이 있던 왕요신(汪堯臣)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거(齊琚)가 지난 해 늦겨울에 병이 났었는데, 꿈에 어떤 사람이 문서를 들고 그에게 와서 말하기를, '어느 왕이 수재(秀才)인 당신을 수부판관으로 삼으려 하십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그가 문서를 뜯어 살펴보니, 글 가운데에 부모를 보살필 수 없으며, 처자식을 생각할 수 없다고 써 있었는데, 제거(齊琚)는 정월 십삼 일에 떠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깨어나서 그는 집안사람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다음 해 정월 십삼 일에 죽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이 때부터 의원과 약을 멀리하고, 식사를 중단하였는데, 이따금 스스로 말하기를, '저기에 좋은 곳이 많구나! 어찌 여기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집안사람들이 처음에 속으로 걱정을 하였는데, 정월 십삼 일에 죽지는 않고, 이 때부터 점점 위급해지더니, 다시 팔 일이 지나서야 죽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왕요신이 말해 주었다.




원문

齊琚,字仲玉,饒州德興人。溫厚好學,家苦貧,教生徒以自給。紹興丁卯,就館於同邑董時敏家。約已定,過期不至,董遣書促之。才及門,聞哭聲,則琚死兩日矣。琚所善汪堯臣言:“琚以去年季冬得疾,夢人持文書至,曰:'某王請秀才為水府判官。'發書視之,中云:'不得顧父母,不得戀妻子。'琚與約正月十三日當去。既覺,語家人曰:'我明年正月十三日死。'自是謝醫卻藥,食飲盡廢,時時自言曰:'彼中大有好處,那能久住此!'家人初竊憂之,至期雖無它,然自此遂困殆,不復語。又八日,乃不起。”(堯臣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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