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지 夷堅志/갑지 제3권

1.1.3.9.43 - 이견지 갑지 제3권 - 소남의 신통한 술수 邵南神術 소남신술

集賢堂 2016. 2. 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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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남의 신통한 술수 邵南神術

 소남(邵南)은 엄주(嚴州: 현재 저장성 젠더시) 사람으로 여러 책을 많이 읽었는데, 특히 《천문(天文)》, 《오행지(五行志)》를 즐겨읽었다. 그리고 그는 둔갑술에 정통하였고, 점을 치면 귀신처럼 맞추었다.  술을 마셔 술기운이 나면 남을 면절하기 좋아해서 사람들이 그를 모두 미치광이라고 말했다. (宣和) 4년(1122년) 소남이 임안(臨安 : 현재 저장성 항저우시)에 갔는데, 당시 상서(尚書) 소급(少汲: 호직유의 자字) 호직유(胡直孺)가 비서수찬(秘閣修撰)으로서 양절전운사(兩浙轉運使)를 맡았다. 호직유는 소남의 명성을 듣고 그를 시켜 점을 치게 하였다. 


 소남이 말하기를, "육십 안에 발운사(發運使)의 관직을 맡으실텐데, 전임은 진씨(陳氏)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때 태위(太尉) 곽중순(郭仲荀)이 양절로(兩浙路)의 병마검할(兵馬鈐轄)에 임명되자,  부사자(部使者) 서관(序官)보다는 삼로(三路)의 방식을 따르려고 하였는데, 항주를 관할하는 임무를 맡은 상서(尚書) 문요(文饒) 채의(蔡嶷)가 항상 곽중순을 억압하여 매일 태계(台階) 아래에서 읍한 다음에야 앉도록 하였다. 곽중순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벼슬에서 물러나겠다고 조정에 아뢰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소남을 불러 자신의 앞날을 예측하게 하였다. "수찬(修撰)께서 발운사에 제수되신 지 사십 일이 지나면, 태위께서도 북방의 어떤 고을에서 관직을 맡으실 것입니다. 관직명에 '안무(安撫)'라는 글자가 있으니, 고을을 관할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이에 곽중순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하였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오십칠 일이 되자, 발운사 진형백(陳亨伯)이 수도에 불려나가서, 호직유가 그 직임을 대신하였다. 곽중순이 술자리를 준비하고서 소남을 초대하여 다시 물어 보았다. 

 

 소남이 대답하기를, "이번 점괘가 전에 쳐본 것과 같아 물러나실 것 같지 않으십니다. 전에 해드린 말씀이 망언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오래지 않아 조정에서 명령이 내려왔는데, 곽중순의 퇴직을 허가하는 칙명이었다. 곽중순이 다시 소남에게 가서 물었으나, 소남의 대답은 여전하였다. 


 곽중순이 화가 나서 칙명을 적은 첩을 꺼내 보였는데, 소남도 난처해 하며 말하기를, "이렇게 된 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때 곽중순과 친하게 지내던 담진(譚稹)이 그를 조정에 천거하여 열흘이 되기도 전에 다시, 곽중순은 원래의 관직에다가 대주(代州: 현재 산시성 다이현)의 지주(知州: 주의 장관)가 되었고, 또 연변안무사공사(沿邊安撫司公事)를 겸임하게 되었다. 


 중승(中丞) 단조(端朝) 옹언국(翁彥國)은 금릉(金陵: 현재 장쑤성 난징)을 지키는 관직을 맡았는데, 항주(杭州: 현재 저장성 항저우시)를 지나다 호직유를 방문하였다. 마침 소남이 자리에 있었는데, 호직유가 소남의 신통력에 대해 말하였다. 옹언국이 전당(錢塘; 杭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물어보니, 소남이 탁자에 '화(火)'자를 크게 썼다. 옹언국은 최근에 이미 화재가 난 적이 있다고 말하였다. 


 소남이 답하였다. "재앙이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삼일 안에 또 일어날 것입니다. 중승께서 직접 보시게 될텐데, 후일 여기를 지키실 것입니다." 


 옹언국이 듣고는 누설하지 않았는데, 당시가 12월 5일이었다. 


 그 이튿날이 채의의 생일이라, 크게 잔치가 베풀어 졌다. 이때 수도에 있던 병사들이 항주로 돌아왔는데, 그들 손에는 조정에서 하사한 견직물이 들려 있었다. 채의가 시장에 방을 붙여 하사품의 매매를 불허하고는 관아에서 싼 값에 그것을 다시 사들이니 병사들이 크게 노하였다. 밤이 되자, 도성 곳곳에서 불이 일어났는데, 병사들은 채의가 나와 불길을 잡으려고 할 때,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술에서 깬 채의가 사태가 심각함을 알고서 담을 넘어 순검새(巡檢寨: 현 경찰서와 유사한 개념)에 숨었고, 집안 사람들도 중화당(中和堂)에 피신하였다. 이때 관아가 전부 타버렸다. 


 이때 옹언국은 어디 갈 데가 없어 채의를 만나 뵙고 말하기를, "엊그제께 소남 선생을 만났다는데, 이 일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과연 맞더군요." 


 채의는 본래 점 치는 것을 싫어했지만, 한번 소남을 불러 물어보았다. 


 소남이 대답하였다. "십오 일 안에 다른 도성으로 관직을 옮겨갈 것입니다." 


 채의가 말하였다. "분사(分司)는 아니겠지? 어찌 이리도 급한가!" 


 이틀 후, 마침 언관에게 탄핵을 받아 채의는 남경(南京: 현재 허난성 상추시) 홍경궁(鴻慶宮) 제거(提舉)로 좌천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지나, 다시 용도각(龍圖閣) 직학사(直學士)로 관작이 떨어져 예정대로 명령을 받들고는 떠났다. 


 옹언국이 항주(杭州)를 지키고 있을 당시, 제거상평(提舉常平) 허자대(許子大)의 조카가 이부(吏部)에서 새로 관직을 임명받았는데, 오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조카며느리가 허자대에게 아뢰니, 허자대가 소남에게 가서 점을 쳐보았다. 


 소남이 말해주기를, "그대의 조카는 도성을 떠나자 마자, 삼촌을 만났는데 삼촌이 서쪽으로 낙양에 파견가기를 조카에게 원하여 그리고 떠났군요. 지금은 '화(火)'자 두 개가 이름에 있는 사람에게 의탁하여 한 고을에서 공무를 보고 있습니다. 고을 이름은 '수(水)'자가 변에 있는데, 필시 빈주(濱州)입니다. 고을 관할하는 현관(縣官)은 아닌 조관(曹官)인데, 아울러 옥사(獄事)도 보고 있으니, 사조연(士曹掾)이 분명합니다."라고 하였다. 


 허자대가 말하였다. "소남의 말씀은 정확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허탄스럽습니다." 


 한달 후 조카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제가 변경(汴京) 수문(水門)을 지나자마자, 삼촌을 만났는데 삼촌께서는 제가 낙양에 파견가기를 극력 바라시기에 부득이 가게 주인을 통해 편지 보냅니다." 


 허자대는 소남의 말이 사실인 것을 알고 놀랐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 관에서 알려왔다. 과연 조카는 빈주에서 사조연(士曹掾)을 맡고 있었고, 아울러 좌추원(左推院)도 맡았는데, 그의 삼촌 허염(許炎)이 임명한 것이었다. 


 소남과 구주(衢州: 현재 저장성 취셴) 사람 정순(鄭甸)은 술을 함께 마시는 친구였다. 정순은 도박을 좋아하였는데, 따고 잃는 돈이 수천 전에 지나지 않았다. 


 소남이 말하였다. “그대가 하는 판은 작아서 쓸모가 없네. 십만 전을 준비하고 그대가 상대할 만한 적수를 부르면 내가 그대를 위해 날을 잡아 도와 주겠네.” 


 정순이 말하였다. “내 주머니가 텅 비었는데, 어떻게 준비하겠는가?” 


 소남이 말하였다. “내가 돈을 빌려주겠네.” 


 기약한 날이 되자, 영은산(靈隱山) 앞 냉천정(冷泉亭)에 모여 도박을 하였다. 


 소남은 사찰에 들어가 누웠는데, 갑자기 문을 나서며 정순을 불렀다. “그만두게나. 이미 액수를 넘었어.” 


 급히 살펴 보니 바로 십만 팔백 전이었다. 


 소남이 일전에 통주(通州: 현재 장쑤성 난퉁)를 지나다 낭관(郎官) 범지재(範之才)를 만났다. 그는 소호(巢湖)에 솥이 있다고 황제께 아뢰었으나 사실이 아니므로 책임을 지게 되자, 소남을 찾아와 앞날의 길흉화복을 물었다. 


 소남이 말하였다. “다시 십년 뒤에 무주(婺州)에서 그대를 만날 것입니다.” 


 범지재가 만하였다. “유배를 간 뒤에 다시 관직을 맡게 됩니까?” 


 소남이 말하였다. “군수가 됩니다.” 


 후에 범지재가 죄를 씻고 난 뒤에 과연 무주를 맡게 되었다. 소남이 항주(杭州)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내 불렀는데, 당시가 처음 만난 이후로 구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소남이 가지 않으려 하고는 다시 편지를 보냈다. “지난 해에 약속한 것이 있더라도 내가 점을 쳐보니, 두 사람이 성에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니, 가게 된다면 필시 죽을 것입니다.” 


 범지재가 연이어 사자를 보내어 술을 선사하니 초청하는 뜻이 더욱 간절하였다. 이미 약속한 해도 지나자, 마침내 소남은 길을 떠났다. 


 엄주(嚴州)를 지나다 엄주 태수(太守) 주격비(周格非)가 소남에게 물었다. “나는 이번 임기가 끝나면 어디에서 벼슬합니까?” 


 소남이 말하였다. “그대는 조만간 용도각(龍圖閣)을 맡는데, 무주의 범지재와 같이 일할 것입니다.” 


 주격비가 말하였다. “이 다음에는 어떠합니까?” 


 소남이 말하였다. “관직이 한번 더 바뀐 뒤에 죽습니다.” 


 이에 주격비가 크게 노하여 속히 그를 보냈다. 소남이 무주에 이르자, 범지재는 매우 기뻐하였다. 


 소남이 말하였다. “그대는 엄주의 주격비와 함께 용도각에서 일하게 됩니다.” 


 하루는 다시 찾아와 말하였다. “내가 어젯밤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였는데,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대는 내일 임명을 받게 될 테지만 나는 죽게 될 것입니다. 사자가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올 것이니, 온 집안이 그대를 축하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오시(午時: 오전 11시- 오후 1시) 정도 될 텐데 늦으시면 저를 다시는 못 볼 것입니다.” 


 범지재가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다음날 소남이 범지재를 만났는데, 사람을 물리치고는 말하였다. “고명이 왔습니다만, 마침 사자가 성밖 이십 리에 못미쳐 돌에 발을 다쳤습니다. 청컨대 건강하고 잘 걷는 자를 한 명 뽑아 가서 데려오게 하십시오.” 


 범지재가 말하였다. “내가 군수를 맡고 있는데, 까닭없이 이렇게 행동한다면 남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입니다. 아울러 소식도 아직 없으니 이렇게 급하게 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남이 말하였다. “내가 죽음을 참으며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이리도 인색하십니까?” 


 범지재가 즉시 한 병졸에게 명하였다. “성 밖 이십 리에 문서를 들고 있는 자를 만나면 급히 데려오라.” 


 마침내 띠를 풀고 서로 대화를 하였다. 그리고 명하여 음식을 갖추게 하였다. 


 얼마 지나 보냈던 병졸이 땀을 흘리며 돌아와 뜰 아래에 절하며 크게 외쳤다. “용도각을 맡게 되셨으니 경하드리옵니다.” 


 가져다 보니 바로 범지재를 직용도각(直龍圖閣)에 임명한다는 문서였다. 당시 왕보(王黼)가 재상이 되어 무주(婺州)의 병사를 돌리라는 긴급 명령서를 하달하며 신속히 가라 하였기 때문에 밖에서는 이에 대해 알지 못한 것이었다. 조금 지나 소남이 음식을 재촉하였다. 식사를 마치자, 범지재가 방에 들어가 부모께 사례하였다. 


 소남은 급히 손님이 머무는 방으로 돌아가 주렴을 치게 하고는 경계하였다. “누구라도 감히 여기에 온다면 용도께 아뢰어 매로 다스리라 할 것이다.” 


 범지재의 집안 사람이 기뻐하며 다투어 술잔을 들며 축하하였다. 범지재가 한참 지나 방에서 나와 급히 소남을 불렀으나 이미 소남은 앉은 채 죽어 있었다. 


 소남이 항주에 있을 적에 나의 부친과 친하게 지냈는데, 일찍이 그가 가진 책을 전수해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부친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소남은 자식이 없었다. 그가 죽자, 그의 학문도 마침내 끊어졌다.




원문

邵南者,嚴州人,頗涉書記,好讀《天文》、《五行志》。邃於遁甲,占筮如神。然使酒尚氣,好面折人,人皆謂之狂。宣和四年,遊臨安,胡尚書少汲(直孺)以秘閣修撰為兩浙轉運使,聞其名,召使筮之。曰:“六十日內仍舊職作大漕,替姓陳人。”時郭太尉仲荀為路鈐轄,欲仿三路式與部使者序官,蔡尚書文饒(嶷)帥杭,常抑之,須日日揖階下,乃得坐。不勝忿,奏乞致仕,亦召南決之。南曰:“候胡修撰除發運,更四十日,太尉亦得郡北方,銜內帶安撫字,但非帥耳。”郭曰:“某已丐休致矣,豈有是事!”才五十七日,發運使陳亨伯被召,少汲代焉。郭具飯延南,复扣之。對曰:“兆與前卦同,無閒退象,前言必不妄。”既勑下,郭守本官致仕,復問南,南對如初。郭怒,取勑牒示之,南意不自得,曰:“若爾,則某亦不能曉。”會譚稹與郭善,薦之,未旬日,以舊官起知代州,兼沿邊安撫司公事。翁中丞端朝(彥國)守金陵,過杭訪少汲,南適在坐,少汲因言其奇中事。翁問錢塘如何,南大書卓上曰:“火。”翁曰:“近已爇矣。”曰:“禍未息也,不出三日當驗。中丞須見之,它日卻來鎮此。”翁不敢洩,時十二月五日也。明日,蔡帥生朝,大張樂置酒。會京畿戍卒代歸,當得犒絹,蔡榜於市,不許買,官以賤直取之,皆大怒。至夜,數處舉火,欲蔡出救而殺之。蔡已醉,知事勢洶洶,踰垣入巡檢寨,家人皆趨中和堂避之,於是州治皆煨燼。端朝未行,見蔡曰:“兩日前見邵先生言此事,未敢信,果然。”蔡素不喜卜筮,試呼詢之,對曰:“十五日內,當移官別京。”蔡曰:“得非分司乎?何遽也!”居二日,適為言者論擊,罷為提舉南京鴻慶宮。未幾,又落龍圖閣直學士,如期拜命而徙。端朝鎮杭,提舉常平許子大之侄調官上都,久不歸,侄婦白子大,令詣南卜。南批曰:“令侄已出京,遇親舅邀往西洛差遣,見托兩火人受得官之州,當從水邊,必濱州也。非縣官曹官而又兼獄,必士曹掾也。”子大曰:“邵生言多中,然此亦太誕。”月餘侄書來,曰:“已出水門,逢舅氏力邀往洛差遣,只託書鋪家耳。”已驚其驗。俄得報,果擬濱州士曹掾,兼左推院,乃其叔炎所受也。南與衢人鄭甸為酒侶,甸好博,然勝敗不過數千。南曰:“子小胜,無所濟。可辦進十萬,召博徒能相敵者,吾為子擇一日與之戰。”甸曰:“吾囊中空空,豈能辦。”曰:“我當以物假子。”及期,聚博於靈隱山前冷泉亭上。南入僧寮偃臥,忽出門呼甸曰:“子有可止,已溢數矣。”急視之,正百千餘八百也。南昔至通州,郎官範之才,以言巢湖有鼎非是被責,來問休咎,南曰:“更十年當於婺女相見。”範曰:“量移邪?”曰: “作郡守也。”後範罪抆拭,果得婺。聞南在杭,使召之,時相去九年矣。南不肯往,復書曰:“昔年雖有約,然吾自筮,二人入城而不出,若往必死。”範連遣使齎酒醴,請意益勤。既度歲,遂行。過嚴州,嚴守周格非問:“吾此去官何地?”曰:“旦夕為假龍,再任仍與範婺州同命。”曰:“復當如何?”曰:“更一官而死。 ”周大怒,速湯遣去。至婺,範喜甚,南曰:“公當與周嚴州皆為假龍。”一日,又至曰:“某昨通夕不寐,細推之,公來日當拜命,然某適當死,使巳時至,猶及旅賀公,遷延可至午,緩則無及矣。”範曰:“先生何遽至此?”來日復謁範,屏人語曰:“告命且至,偶使人未到城二十里,為石踠足,願選一健步者往取之。”範曰:“某備位郡守,無故為此舉,豈不為邦人所笑!兼邸報尚未聞,不應如是之速。”曰:“某忍死相待,何惜此!”範即命一卒曰:“去城二十里外,遇持文字者,急攜來。”遂解帶款語,令具食,移時所遣卒流汗而至,拜庭下,大呼曰:“賀龍圖。”取而觀之,乃除直龍圖閣告也。時王黼為相,促告命付婺州回兵,仍令兼程而進,故外不及知。少頃,南促饌,遂食。食已,範入謝親,南趨至客次,使下簾,戒曰:“諸人敢至此者,當白龍圖撻治。”范家人喜抃,爭捧觴為壽。良久方出,急召南,已坐逝矣。南在杭,與家君善,嘗欲以其書傳授,家君不領。南無子,既死,其學遂絕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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