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204호 의겸등필수월관음도 義謙等筆水月觀音圖

集賢堂 2016. 6. 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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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겸등필수월관음도[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간략정보]

한자 義謙等筆水月觀音圖

분야 예술·체육/회화

유형 유물

시대 조선/조선후기

성격 불화

수량 1점

재질 비단 바탕에 채색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1204호

문화재 지정일 1994년 7월 29일

집필자 문명대

[정의]

조선시대의 불화.
[개설]
보물 제1204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43.7㎝, 가로 105.5㎝. 이 수월관음도는 1730년(영조 6)에 제작된 조선시대의 희귀한 수월관음도로서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특히 18세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불화사(佛畵師) 의겸이 그린 당대 최고의 수월관음도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내용]
수월관음이 전 화면에 가득 차게 구도를 잡았다. 수월관음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것이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와 다른 특징이다. 보관은 높고 큼직하며 화려하다. 얼굴이나 이목구비는 둥글고 예쁜 편이지만 신체가 건장하여 대비를 이룬다. 어깨가 장대하며 하체는 유희좌(遊戱坐)로 널찍하게 앉아 있어 전체적으로 건장한 모습이다. 천의(天衣 : 천인이나 선녀의 옷)의 색채는 녹색과 홍색이 주조색이어서 서로 대비 효과를 나타낸다. 현재는 다소 퇴색되어 있다.
관음의 오른쪽에는 버들가지를 꽂은 정병(淨甁)이 바위 위에 놓여 있고 왼쪽에는 쌍죽(雙竹)이 솟아 있어서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와 유사한 배치를 보인다. 하지만 정면을 향한 수월관음의 형태, 천의의 색채, 정병이나 쌍죽 그리고 암좌의 형태 등은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 수월관음도의 특징이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은 의겸의 「운흥사수월관음도」에도 나타나고 있어 의겸은 이런 관음도를 즐겨 그렸던 것으로 이해된다.

화기(畵記)는 다음과 같다. “옹정8년경술월화/성봉안봉위/주상전하수만세/기포시주 이성위양주/이병춘양주/이○명양주/황일주양주/배준비구/체인비구/정○취/영옥 효명 특전금혜/금어의겸 동행 행종석인 배○ 화주인일 ○심 손두연 ○좌즉평/공양주신언 모근 법찰 말왕 말오/부목김질리.
(雍正八年庚戌月畵/成奉安奉爲/主上殿下壽萬歲/基布施主 李成位兩主/李屛春兩主/李○明兩主/黃一柱兩主/拜俊比丘/體仁比丘/訂○就/靈玉 曉明 特展錦惠/金魚義謙 東行 幸宗釋仁 拜○ 化主因逸 ○心 孫斗連 ○坐卽評/供養主信彦 慕根 法察 末往 末悟/負木金叱里)”


<유래 및 발달과정>


관음은 보통 물가의 바위에 반가좌(半跏座)의 자세로 앉아 있으며, 손에는 버들가지나 정병(淨甁)을 쥐고 있거나 옆에 정병을 두고 있는 모습이다. 관음보살의 뒤쪽에는 기괴한 절벽과 대나무 등을 배치하고 발아래에는 연꽃과 산호초 등이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장면은 『화엄경(華嚴經)』입법계품(立法界品)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보타락가산에 거주하는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장면을 도상화한 것이다.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와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의하면 중국 당대의 화가 주방(周昉)이 수월(水月)의 양식을 창안하였으며, 원광(圓光)과 대나무가 표현된 수월관자재보살(水月觀自在菩薩)을 그렸다고 전한다. 돈황에서는 당 말 오대 이후 수월관음도상이 유행하여 송, 원대에 이르기까지 유행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확인된 것은 30여 점이 남아 있으며, 도상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과는 달리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옆에 그려지고 발아래 선재동자가 빠짐없이 등장하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법화경(法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 중 제난구제상(諸難救濟像)과 같은 도상이 표현되는 경우도 있어 이미 독자적인 양식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계속 조성되었지만, 불화로 조성된 예는 많지 않고 대웅전 등 전각의 후불벽 뒷면에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려시대와는 달리 정면관이 대부분이며, 관음보살의 투명한 사라(紗羅)가 백의(白衣)로 바뀐 점도 특징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고려시대에 제작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의 도상(圖像)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조선시대에 들어와 새롭게 변형시킨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는 관음보살이 바위 위에 길상초(吉祥草)를 깔고 그 위에 반가좌(半跏坐)로 앉아 있다. 오른쪽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淨甁)이 놓여 있으며 위에는 극락조(極樂鳥)가 한 마리 있다. 아래에는 합장(合掌)하고 있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있다. 왼쪽에는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다. 관음보살은 머리에 구슬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목걸이의 양쪽에는 구슬 장식이 달린 적색의 띠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다. 손목과 팔에는 화려하게 영락(瓔珞)으로 장식된 팔찌가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이며 천의의 흐름에서는 도식적(圖式的)인 기법이 보인다. 색채는 두광(頭光)과 허리띠는 녹청색을 띠고 있고, 다른 부분은 주로 붉은색, 청남색 등을 주조색(主調色)으로 사용하여 밝고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관음도는 동일 화사(畵師)인 의겸(義謙)에 의하여 그려진 운흥사소장수월관음도(雲興寺所藏水月觀音圖)와 유사하지만, 보다 우아하고 세련된 형태와 밝고 선명한 색채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화기(畵記)에 의하면 의겸(義謙), 진행(陳行), 행종(幸宗), 채인(采仁), 석인(釋仁)의 화사(畵師)가 이 불화제작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서울옥션 제137회 미술품 경매에서 18억 원에 낙찰 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전 소장처는 종로구 원서동 한국미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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